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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지역과 마을

다대포 저 바다가 매립됐다면

by 이성근 2016. 7. 15.

 

뜬금없이 울산방송에서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 다대포매립백지화와 관련하여 ....  알겠다 해놓고선  깜빡했다.  

전날 동구 민박촌 강의 후  사무실로 가는 길에 지인들에게 낚여 과음을 하고 말았다.

원래 밀린 업무가 많아 오전 일찍 약속했다.   그래서 현장으로 바로 가야 했음에도 사무실로 출근한 것이다.  사무실 동료가 다대포 가기로 하지 않았냐고 일러 주지 않았으면 무진장 욕들어 먹을 뻔 했다.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다대포 로 향했다, 

주민들과의 인터뷰는 11시부터였고 나는 앞 당겨 9시 반부터 한 시간  동안 대책위 결성에서 전개과정과 백지화에 따른  의미를 이야기 했다.

담당 조 피디는 부산대 신방과 출신으로  울산의 해안과 바다매립에 대해  취재중이었다.  검색을 하고 수소문하던  중에 사례를 발견하고 연락이 닿게 되었다.  주어진 시간 인터뷰에 응하고 사무실로 오려고 했지만 간만에 다대포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 주민들이 인터뷰를 하는 시간, 일대를 둘러 보았다.   

주민들이 둘러 앉아 당시를 회상하며 무용담을 나누고 있다.  사실 무용담을 나눌만 했던 사건이었다.  매립백지화 기념비의 존재는 다대포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그분들의 말마따나  매립계획을 저지, 백지화 시켜내지 못했다면, 그래서 개발론자들의 뜻대로 됐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다.  

당시 대책위 집행부 명단이다.  김만정 당시 의장이 당시 회의 자료며 스크랩해 두었던 신문자료를 가지고 나왔다, 새삼스러웠다.   회의 자료며 발표된 각종 선언문이며, 성명서, 제안서  등을  모두 내가 작성했기 때문이다.  중에는 작고한 분도 몇 분 있다. 그만큼 시간이 경과 했음이다.  안타까운 상황도 있다.  백지화 이후  공원이 들어서면서 또 주변의 변화기 이루어 지는 과정에서 형제처럼 지내던 관계가 와해되기도 했다.  그 이야기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위기 앞에서 하나된  마음들이  백지화 이후 변질된 것이다.  이해의 다름이 서로를 멀어지게 했던 것이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다.  나 또한 그 후 현장을 떠나 다른 일에 매몰되면서 주민들간의 갈등에 대해 깊이 관여할 수도 없는 처지여서 상황이 종료된 뒤에 들었을 뿐이다.  아무튼   

낙동강의 최 말단부 다대포 바다가 강물과 몸을 섞는 곳에서 일대를 조망했다, 정확히 말한다면 바다의 시작점이다.  멀리 거제로부터 가닥연안이 건너다 보아는 곳이다,

그리고 몰운대에서 내려다 본 다대포 해수욕장

위성 지도를 통해 변화된 지형과 토지의 이용들을 살펴 본다.  

가장 최근의 위성사진을 제공받지 못해 변화를 기술함에 시각적 부족함이 있긴 하지만 크게 두가지를 들 수 있다.  해변공원의 조성과 사주의 확장이다.   모래톱의 발달은 하구 전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노래출처: 다음 블로그 실버맨의 사진속 세상구경

Am I That Easy To Forget - Ann Margret & Lee Hazel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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