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80년대 후반 환경운동에 입문했다. 그 계기는 지역의 시사 잡지사 기자로서 합천 원폭진료소 취재였다. 히로시마 원폭과 더불어 일본의 항복 선언이 있었고, 해방과 더불어 귀국선을 탓던 수많은 조선인들, 그중에 히로시만에는 유독 합천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고 했다. 또 그중에는 피폭자들도 상당수 였지만 현대 한국의 정치는 이들을 주목할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꽤나 시간이 흘렀고 그들은 잊혀졌다.
여성민우회가 펴낸 사진집에 착상하여 그들을 만나러 간 것이 내 환경운동의 시작되었다. 원자폭탄. 그리고 핵 核에 대해 궁금했다. 앞서 1986년 4월 체르노빌 핵참사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 땅에 체르노빌 핵참사의 진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인연맺게 된 것이 한국공해문제연구소 부산지부 후신인 부산공해추방시민운동협의회 였고 앞서 준비모임이 있었다. 거기서 사람들을 만났다.
부산공추협은 89년 1월 창립했다. 그 당시 관통하던 슬로건이 공해추방 반핵평화 였다. 생태라는 용어가 일반인에게는 낯설었던 때였다. 1991년 겨울 녹색평론 창간호가 나왔다. 나는 구독자가 되었다. 탐독했고 메시지를 내 것으로 만들었다. 이른바 내 환경운동에 생태와 문화, 지역이 바탕되던 시기였다. 그렇게 30년이 흘쩍 지나갔다. 빛바랜 녹색평론은 아직도 소장하고 있는 잡지다. 집이 좁아 일부는 사무실에 기증하기도 했지만 ... 그 녹색평론의 발행인 김종철 교수가 얼마전 흙으로 돌아갔다. 그를 추념하며 그가 말했던 메시지들을 퍼 와서 옮겨 보았다-이성근-
출생-1947년, 경상남도 함양
사망- 2020년 6월 25일 -
학력-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 학사
수상-1999년 제7회 대산문학상 평론부문
경력 녹색평론사 대표
녹색평론사 발행인
영남대학교 문과대학 영어영문학과
흙으로 간 사상가 김종철의 외침 "21세기는 환경과 평화의 세기 돼야"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별세...한국 생태주의 사상의 등불
생태사상가 김종철 <녹색평론> 편집인 겸 발행인(전 영남대 영어영문과 교수)이 25일 향년 74세로 별세했다. 생태사상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공생공락(共生共樂)의 가난’을 말하며 1991년 녹색평론을 창간하고, 생태사상을 뿌리 내리게 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는 21세기 벽두에 한국 사회를 향해 “21세기는 환경과 평화의 세기가 돼야 한다”고 외쳤다. 그의 전망은 현실화되고 있고, 우리 사회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김종철의 <녹색평론>, 한국 사회에 생태주의를 뿌리내리게 하다
김 발행인은 1947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초·중·고교를 나온 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영문학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 숭전대학교, 성심여자대학교 등에서 가르치다 1980년부터 영남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일생 동안 이어져 간 김 발행인의 생태주의에 대한 관심은 영남대에 재직하던 1980년대 초 미국 진보지 <뉴욕 가디언>에서 독일 녹색당의 의회 진출과 관련한 글을 보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발행인은 이후 1983년 논문을 쓰기 위해 뉴욕주립대에 1년여 체류하는 동안 생태주의자들의 사상을 많이 접했다. 한 인터뷰에서 김 발행인은 이 시절 "'핵무기에 반대하려면 먼저 뉴욕시의 자동차 문명에 반대해야 한다'는 반핵활동가 루돌프 바로의 강연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온 김 발행인은 사재를 털어넣어 격월간 <녹색평론>을 창간했다. 1991년 11월 <녹색평론> 창간호가 대구의 한 인쇄소에서 처음 세상에 등장했다. 그 사이 수많은 잡지가 생겼다 사라졌지만, <녹색평론>은 2020년 5~6월 172호까지 29년 동안 결호 없이 발행됐다. 이 ‘급진적’ 잡지가 29년 동안 지속될 지는 아무도 몰랐으리라. 그러나 ‘반역’을 꿈꾼 이 잡지는 살아 남았고, 많은 지식인들에게 등불이 됐다. 그리고 ‘급진적'이란 세간의 불온한 딱지와 다르게 우리 삶의 가장 근본적인 일들을 다뤄온, 극도로 현실적인 잡지였다. 2004년부터는 대학 교원을 그만두고 <녹색평론>의 편집과 발간에 열중하며 생태주의 사상과 운동의 확대에 힘썼다.
2012년에는 한국 최초의 생태주의 정당인 '녹색당' 창당에도 참여했다. 당시 김 발행인은 '녹색당 전임강사'를 자처하며 사람들에게 녹색당을 알리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녹색당 창당 발기인 30명의 녹색당 가입 이유를 담은 <녹색당 선언>의 머리말을 쓰기도 했다.
김 발행인의 저서로는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간디의 물레>, <근대 문명에서 생태 문명으로> 등이 있다. 헬레나 노르베라 호지의 <오래된 미래>, 더글러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등을 우리말로 옮기기도 했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프레시안(손문상)
경제성장 논리 극복, 기본소득 도입 등 주장한 생태사상가
김 발행인은 현대 산업문명에 대한 비판의 선봉에 선 사상가였다. 생전 김 발행인은 "경제성장은 하면하고 말면 마는 것이지 적당한 게 있을 수가 없다"며 생태학적 위기를 불러온 자본주의, 산업주의 논리를 완전히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발행인의 저술과 사상은 각종 사회제도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아이디어로 뻗어가기도 했다. 김 발행인은 2010년대 초중반부터 "경제성장이 멈춘 세상에서 인간이 품위를 지키며 살 수 있는 긴요한 방책"으로 기본소득을 지지했다. 2017년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에는 정치에서 보통 사람의 힘을 강화하기 위해 추첨을 통한 시민의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생전 마지막으로 <한겨레>에 발표한 칼럼에서는 코로나 환란 앞에 '당장의 기술적 해법만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며 "생태계 훼손을 막고, 맑은 대기와 물, 건강한 먹을거리를 위한 토양의 보존과 생태적 농법, 그리고 무엇보다 단순·소박한 삶을 적극 껴안"아야 한다고 열변했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공생의 윤리를 부정하는,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면역력을 체계적으로 파괴하는 탐욕이라는 바이러스"라고 이야기했다.
김 발행인은 2008년 5월 19일 <녹색평론> 100호 발간을 기념하는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생태주의가 ‘현실과 괴리 돼 보인다’는 주장에 대해 “그것이야말로 역설적으로 한국 지식사회의 나태함을 증명하는 것인지 모른다. 정작 심각한 문제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채 관념적 논쟁만 해온 게 바로 한국의 지식사회 아닌가?”라고 지적한다.
김 발행인은 “<녹색평론>이 다뤄온 문제들, 지구 온난화가 야기하는 기후 변화, 광우병·조류독감(AI·Avian Influenza)처럼 먹을거리 산업화가 촉발한 전 지구적 전염병 사태, 황우석 사태로 확인된 현대 과학기술의 위기, 한미 FTA로 대표되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에너지 위기, 식량 위기 등은 지금 모든 매체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들이다”라고 지식인 사회의 나태함을 꼬집었다.
되레 그는 가장 현실적인 지식인이었고, 가장 실천적인 지식인이었다. 최근 논의가 활발한 기본소득 역시 김 발행인이 사실상 처음으로 제대로 된 논거와 실천 운동을 한국에 소개했다. 당시 ‘기본소득은 비현실적’이라는 일부 비판이 있었지만, 지금 기본소득 논의는 차기 대권 주자들까지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가 돼 있다.
특히 김 발행인은 농민 기본소득을 강조해 왔다. 생명의 뿌리이자, 인류 역사의 뿌리인 ‘농업’이 사라지고 천대받는 시대에 인류가 생명을 지켜갈 수 있는 근본 수단에 대한 고민 없음을 지적해 왔다. 그는 생전에 “(내가) 정말 '징그럽게' 농업, 농촌, 소농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더라. 글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내 글을 처음 보는 사람을 생각해서 중요한 대목을 계속 강조하다보니, 결국은 비슷한 주장이 계속 반복되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 결과 <녹색평론>은 끊임없이 농업, 농촌, 소농을 강조하는 유일한 잡지가 되었다”고도 말했다.
“21세기는 환경과 평화의 세기가 돼야 한다” 김종철의 제안은 여전히 유효
21세기에 들어서고 대한민국 역사상 첫 ‘시민 정부’인 노무현 정부가 탄생한 시기, 그는 <프레시안> 2003년 10월 15일 인터뷰에서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정확히 지적했다.
그는 “지금 자원 고갈, 생태계 오염 등 심각한 문제들이 우리 앞에 산적해 있다. 이런 생태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인류 문명의 존속 자체가 불가능하다. 특히 '지구 온난화'는 파국의 징후이다. 나는 이 문제들이 21세기 전반에 해결되지 않으면 인류 문명은 파멸한다고 생각한다"며 “우리의 생활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 없이 평화만 얘기하는 것은 허망한 얘기다. 21세기는 '환경과 평화의 세기'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김 발행인은 “지구는 닫힌 시스템이다. 지구가 가진 자원은 유한하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잠시 시간을 연장할 수 있을지언정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는 제한된 자원을 고르게 나눌 수밖에 없다. 그래야 평화와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 내가 <녹색평론>을 펴내면서 일관되게 고르게 나누는 사회를 지향해 온 것도 이 때문”이라고 밝힌다.
김 발행인은 “10년 전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이 지금 상식이 된 것처럼, 지금 생각하지도 못한 또 다른 움직임들이 나와 근본적인 사회의 문화 변혁을 꿈꿀 것이다. 그것이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하나의 거대한 기운이 될 것이다. 지금은 막연하게 느껴지고 미약한 것 같지만, 이런 단초들이 전체적으로 절망으로 빠져드는 집단 자살 체제 속에서 하나의 출구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프레시안(손문상)
박권일 사회평론가는 "몇 번 뵙진 못했으나 선생님의 글과 말은 제게도 큰 이정표였습니다"라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끝까지 지식인의 아니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으신, 드문 어른이셨습니다. 손 모아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전했다.
녹색당은 애도 논평을 통해 “인간을 소외시키고 자연을 약탈하는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성장근본주의에 매서운 비판과 성찰의 눈을 거두지 않으셨던 선생님의 가르침에 각성하고 깨우칠 수 있었다. 기후위기와 불평등으로 고통이 일상이 되는 시대에 선생님이 열어주신 녹색 사상은 남은 이들의 길잡이가 될 것”이라며 “공생과 자치, 순환과 치유라는 선생님의 뜻을 길이 이어가야 할 녹색당의 사명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프레시안 최용락 기자 | 2020-06-25
시대를 바꾸고자 한 예언자이자 실천적 사상가, 김종철
[김종철 선생을 기리며] "우리는 결국 모두 형제들이다"
말과 글과 행동으로 시대를 바꾸고자 한 사상가
모든 역사는 오늘 지금 여기의 역사로 늘 재편성된다, 지금 여기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살아 있는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역사는 늘 다시 재조명되고 다시 쓰여 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든 역사는 편집과 편찬의 역사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다.
모든 시대의 시공간은 오늘 지금 여기의 시대와 시공간으로 늘 다시 호출된다. 그래서 개인이든 공동체든 국가든 지나간 시공간은 현재의 시공간으로 불려 나와 지금의 시공간과 병존하게 된다.
우리의 삶과 세상은 지금 여기의 삶이자 과거와 함께 사는 병존과 공존의 삶이고 세상이다.
김종철. 많은 사람들이 대놓고 까칠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다정했던 사람.
더불어 사는 공생공락의 삶을 추구했던 사람.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원되는 이 부박한 세상을 끔찍이도 싫어했던 사람.
대쪽 같은 원칙주의자이면서도 누구보다도 염치를 중시한 현실주의자였던 사람.
그는 20세기와 21세기라고 이름 붙은 시대에 한반도라는 시공간을 산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단순히 시대에 적응하거나 순응하면서 일생을 살지 않은 특출한 사람이었다. 홀로 그리고 스스로 전혀 낯선 새로운 삶과 세상의 길을 개척하고 그 길을 여럿이 함께 걸어가고자 했던 선각자였다. 그는 그야말로 피를 토하듯 시대의 종말을 소리 높여 외친 예언자였다. 예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혼신의 힘을 다해 시대를 뒤바꾸고자 노력한 실천가였다.
기후위기가 이미 임계점을 지나 여섯 번째 멸종 사태가 급속도로 가속화되고 있는 오늘날, 파국의 징후가 거세질수록 생태주의자 김종철은 앞으로 수없이 다시 살아 있는 우리 앞에 호명되고 수없이 다시 지금 여기 현재의 역사로 재구성될 것이다.
▲ 김종철 <녹색평론> 편집인 겸 발행인. ⓒ프레시안
<녹색평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독자모임이 있는 생태주의 잡지
1991년 11월 25일, 김종철은 44세의 나이에 격월간 잡지 <녹색평론>을 창간했다.
이후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그는 일관되게 <녹색평론>을 근거지로 시대를 바꾸고자 하는, 무모하면서도 거대한 도전을 이어왔다. 착취와 피착취, 억압과 피억압의 인간관계를 우애와 환대의 인간관계로 바꾸고자 한, 어쩌면 유격전의 해방구 투쟁이라고 이름 지을 수도 있는 대장정의 시작이었다.
당시는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과 구소련의 해체가 진행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1989년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이란 논문을 발표해 사이비 체제종말론이 막 유행을 타고 있던 때였다.
19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의 성과로 한반도 역사상 최고조에 달한 서구 산업화의 풍요와 고도 경제성장의 떡고물이 노동자들에게도 떨어지고 있었다. 대기업 노동자들 중심으로 자가용 보급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었다.
거리거리에 의식주 상품이 넘치고 넘쳐 흘렀다.
그런 시대 상황 속에서 김종철은 벌건 대낮에 등불을 들고 자본주의 산업화도 곧 망할 것이라고 외쳤던 것이다. 경제성장과 개발은 범죄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다.
정면으로 시대를 부정하고 시대를 향해 돌진해 들어가는 도전장이나 다름없었다.
150여 쪽의 얇은 소책자에 불과한 <녹색평론> 창간호의 글들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거의 혁명에 가까운 도전과 외침으로 일관하고 있다. 김종철의 창간사는 지금 읽어도 생생하게 각인되는 서구 산업화의 종말, 경제성장과 개발의 중단 선언문이었다. 사회와 국가를 생태사회와 국가로 바꾸자고 제안하고 실천을 촉구하는 성명서였다.
김종철은 마르크스주의와 자본주의를 똑같은 서구 근대 산업화의 자연 파괴 이데올로기로 비판하고 세상의 파국을 피하려면 농업 중심의 소농사회를 복원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우리와 우리의 자식들이 살아남고, 살아남을 뿐 아니라 진실로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협동적인 공동체를 만들고, 상부상조의 사회관계를 회복하고, 하늘과 땅의 이치에 따르는 농업중심의 경제생활을 창조적으로 복구하는 것과 같은 생태학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조직하는 일밖에 다른 선택이 없다."
(바로가기 ☞ : <녹색평론> 창간사 「생명의 문화를 위하여」, 1991. 11. 25.)
http://greenreview.co.kr/greenreview_article/523/
<녹색평론>은 이후 한 호도 거르지 않고 29년 동안 173번이나 세상을 바꾸는 사자후의 목소리를 내놓았다. 많은 정기구독자들이 <녹색평론>을 통해 세상을 다시 보고 <녹색평론>을 삶의 등대로 삼았다.
이들 열혈 정기구독자들이 만든 전국 각지의 <녹색평론> 독자모임은 특이하고도 전 세계에서 유일한, 잡지를 매개로 한 결사체이다. 173호에 실려 있는 독자모임 광고만 헤아려 보더라도, 강원 홍천, 충남 청양, 충남 홍성, 북대전, 충남 서산 태안, 세종, 충북 북부, 경기 부천, 경기 군포, 경기 성남, 경기 화성 동탄, 서울 강서, 서울 강남 서초, 서울 중랑, 대구, 대구경북 가톨릭, 경남 창원, 김해 장유, 경남 진주, 전북 군산, 전북 전주, 제주 서부, 제주 풀무질 등 23개에 이른다. 이외에도 천안 아산, 대전 가톨릭 등 독자모임을 준비 중이거나 잠시 휴지기를 가지고 있는 지역까지 합하면 30여 곳을 훌쩍 넘는다.
1980년대 학생운동과 노동-농민운동에 몸담았던 사람들에게는 기관지 ‘이스크라’의 배포망을 지하당 조직의 뿌리로 삼았던 러시아 사민당을 떠올리게 만들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녹색당 창당에는 이들 ‘녹평 독자모임’ 회원들이 대거 참여해 산파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김종철은 손사래를 치며 싫어하겠지만, 케이팝, 케이방역에 앞서 케이 독자모임이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사대주의 앵무새에서 벗어난 조선의 생태주의자, 김종철
김종철을 어떤 사상가이자 실천가로 자리매김할지 그 논의는 이제 시작일지 모른다.
그런 자리매김의 시론으로 주제넘고 두서없지만 김종철의 사상과 실천을 몇 개의 주요한 측면으로 간략하게 서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선 김종철은 사대주의의 열등의식을 완전히 극복하고 새로운 생태주의 사상의 지평을 연 조선의 생태주의자였다. 오리엔탈리즘과 그 대항으로서의 옥시덴탈리즘을 뛰어넘어 그런 차원과는 전혀 다른 사람과 세상의 밑바탕으로부터의 생태 전환 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조선의 건국 이래 한반도 주민들은 이른바 중화주의 사상과의 오래고 질긴 긴장과 갈등, 투쟁의 역사를 계속해 왔다. 고려, 조선이라는 나라 이름 자체가 사대주의와의 대립과 자립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한글의 창제와 조선 중기 이후의 실학과 동도서기론 등의 대두는 중국 모방과 앵무새 따라 하기를 거부하는 현실주의의 실천이었다.
19세기 말 서구의 침략과 함께 조선의 식민지로의 전락은 한국 인민들에게는 천지개벽 같은 사건이었다. 이후 1세기 이상을 한반도 인민들은 오직 서구 근대화, 산업화를 신앙처럼 숭배하며 부국강병의 경제성장과 개발을 향해 좌고우면 없이 돌진해 왔다.
당연히 사상과 학문의 서구 추종과 따라 하기, 앵무새 같은 식민지성은 거의 유전자처럼 한국 인민들의 내면에 깊숙이 각인되어 버렸다.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가능하다면 황인종 피부까지도 하얗게 바꾸고자 한 '누런 피부 흰 가면'의 교수와 학자들이 지금까지도 온 사회를 점령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과 유럽 유학파들이 장악한 대학은 이같은 식민지 학문과 사상의 온상이었다.
김종철은 이같은 앵무새 따라 하기를 철저하게 거부하고 우리의 문화와 토양에 맞는 생태주의 사상을 꽃피웠다는 점에서 단연 두드러진다.
그가 최해월의 동학과, 동학을 이어받아 한살림운동을 시작한 무위당 장일순을 높이 평가하고 따르고자 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줄기차게 소농사회의 복원을 주창한 것도 기본소득을 강조한 것도 한국 인민의 몸과 마음에 걸맞은 한국의 옷을 만들고자 한 그의 지론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백석의 시 낭송 듣기를 즐겨 하고, 해월의 동학사상과 소태산 박중빈의 원불교를 자주 언급했던 것 또한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 김종철
김종철은 배움을 멈추지 않고 가르침을 멈추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녹색평론>을 발간하면서 거의 하루 25시간을 매달려 실사구시의 철저한 검색과 조사연구를 바탕으로 글을 청탁하고 번역했다. 그는 애매하거나 정확한 조사연구가 덜 된 주제에 대해서는 결코 언급하지 않았다.
이같은 엄격한 태도는 가식과 몰염치가 판치는 이른바 교수들과 학자들의 학문세계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다.
김종철은 누구보다도 염치를 중시하고 염치를 아는 독서인이었다.
그는 겉으로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생태주의 삶을 실천하는 듯이 화장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가족의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예 상종을 피했다.
그가 존경하는 이반 일리치를 굳이 '이반 일리히'라고 부르는 일종의 허세와 고집에 대해서도 지독스러울만큼 싫어했다.
그가 거액을 주는 강연 요청을 거절할 때는 그 강연을 요청한 사람이나 단체가 염치를 모르는 허세와 가식으로 치장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아무리 적은 소수의 사람이 모여 있어도 녹색 사상을 넓고 깊게 할 수 있고 <녹색평론>의 정기구독자를 늘릴 수 있는 강연 요청이라면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2004년 영남대 총장의 뺨싸대기를 후려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정규직의 대학교수 직을 미련없이 때려친 것은 이 시대의 대학교육은 이제 더 이상 배움과 가르침의 현장이 아니라는 선언과도 같았다. 예수의 성전 파괴와 같은 행동이었다. 그 뺨싸대기는 근대 대학교육 자체에 대한 후려치기였고, 대학교육 자체에 대한 사망선고와 다름없었다.
이후 근 10여년 동안 김종철은 매주 토요일 ‘일리치 읽기모임’이라는 배움과 가르침의 독특한 공동체를 지속시켜 왔다. 젊은 청년 몇몇과도 ‘김밥 모임’(김종철과 밥 먹는 모임)을 오랫동안 이어 왔다.
공생공락의 삶을 강조하고 실천한 김종철의 다정다감한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모임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김종철의 평소 일관된 소신에 따라 그의 장례식은 일체의 행사나 의례 없이 조촐하게 가족장으로 치러졌지만, 아쉬움에 장례식장에서 조용히 추모 모임을 가졌던 것도 이들 ‘일리치’ 식구들과 ‘김밥’ 식구들이었다.
(바로가기 ☞ : "이 세계가 망해 가는 대로 내버려 두기엔 너무 아깝습니다")
근본주의자이자 현실주의자, 행동하는 사람 김종철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파한 뒤 김종철은 녹색당 창당에 나섰다. 녹색당 창당은 김종철이 근본주의자이자 동시에 몽상가가 아닌 현실주의자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영어 래디칼(radical)은 뿌리라는 뜻의 영어 root에서 파생한 단어라고 한다.
김종철은 그 어원에 딱 들어맞는 래디칼리스트, 근본주의자였다.
김종철의 글에서 가장 많이 발견하는 단어 또한 근원적, 근본적, 본질적 등등일 것이다. 진보와 개발에 대한 인민의 맹신을 뿌리부터 뒤엎지 않으면 문명과 세상의 종말은 물론 생명체 자체의 멸종 또한 피할 수 없다는 김종철의 절박한 문제의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김종철은 누구보다도 실현 가능한 생태 전환 사회와 국가를 추구한 현실주의자이기도 했다. 녹색당 창당은 한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녹색평론 초대 편집장이었던 장길섶이 홍성에서 2년제의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전공과정을 개설할 때 이를 누구보다도 앞장서 격려하고 적극 후원한 사람은 김종철이었다.
그가 줄기차게 주장하던 소농사회의 복원을 따르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있으면 누구든 김종철은 격려하고 후원했다. 국가에 대한 생각의 변화 역시 김종철의 현실주의자 면모를 여실히 입증한다.
김종철은 2016년 2월 1일 딴지일보의 초청으로 벙커1 특강 <국가 같은 소리 하네>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이 왜 아나키즘의 국가부정론에 공명하다가 국가를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방향을 틀었는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후쿠시마 이후 녹색당 창당에 발벗고 나선 현실주의자 김종철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강연이었다.
밑바닥 인생 편에 선 사람, 김종철
마지막으로 김종철은 자비와 연민을 중요시한 사상가였다. 그는 개발과 성장을 멈추어야 한다는 주장을 넘어 탐욕을 멈추어야 한다고 재삼재사 강조했다. 탐욕을 멈출 때 사람은 비로소 내면에서부터 자비와 연민의 고유한 감정과 생각을 키울 수 있다.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사람이면 그가 누구든 김종철은 자비와 연민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곤 했다. 자비와 연민이란 돈으로 환산된 동정이나 자선과는 뿌리부터 다른, 공생공락과 우애, 환대의 인간관계에서 유래되는 인간의 ‘근원적’ 감정과 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제자이기도 했던 윤중호 시인을 아꼈던 것도 우리 사회의 맨 밑바닥에서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들, 청소부와 일용직 노동자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그들에 대한 자비와 연민의 시를 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른바 명문고 명문대를 나와 대학교수를 역임한 우리 사회의 상층 기득권에 속했지만, 그런 기득권을 거부한 사람답게 육체노동을 하는 우리 사회의 하층 계급에 대해 늘 일종의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김종철은 그것을 숨기지 않았다.
김종철이 필자와 인연을 맺은 계기도 필자가 노동운동의 생태적 전환을 주장한 2004년 <당대비평> 가을호의 글이었다. 당시 그 글 전문이 ‘왕자병 걸린 노동운동, 이대로 가면 죽는다’는 제목으로 <프레시안>에 실리고 논쟁으로 전개된 적이 있었다. 김종철은 그 글과 논쟁을 지켜보고 한참 뒤 지인을 통해 연락을 해 왔던 것이다.
김종철은 늘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의 생태적 방향 전환이 어떻게 실현 가능한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성장과 개발의 최일선 담당자들인 ‘산업화의 역군’ 노동자와 농민 자신이 성장과 개발을 거부하고 생태적 전환의 회심을 하지 않는 한 체제 전환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녹색평론 창간호를 꺼내 다시 읽었다.
그리고 김종철이 그렇게 두려움까지 느끼고 연구 금지 모라토리움이라도 해야 한다는 인공지능의 구글 유튜브 검색도 해보았다. 벙커1 특강 <국가 같은 소리 하네>도 인공지능이 알려 준 것이다.
30여년 전 <녹색평론> 창간호의 시애틀 추장 연설을 읽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선명하게 다시 떠올랐다. 170여년 전 아메리카의 대자연 속에서 생태순환의 삶을 살고 있던 인디언들이 개발과 성장의 백인 침략자들에게 유린당하면서 절규하던 말은 지금 여기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생생한 녹색 저항의 언어다.
"우리는 결국 모두 형제들이다."
박승옥 햇빛학교 이사장/ 프레시안
1991.11.01.
창간사 – 생명의 문화를 위하여
녹색평론 창간호 | 김종철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지금부터 이십 년이나 삼십 년쯤 후에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범람하는 인쇄물 공해의 시대에 또 하나의 공해를 추가하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를 이 조그마한 잡지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마음은 참으로 무겁다. 거의 파국을 향하여 질주하고 있는 산업문명의 이 압도적인 추세 속에서 우리의 보잘것없는 작업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게다가 이 작업이 불가피하게 삼림파손에 이바지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의 마음은 실로 착잡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시도하려는 작업이 어떤 의미가 있든지 간에 이것이 생태계의 훼손을 조금이라도 수반하는 것이라면, 이 작업은 정당화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망설임 끝에 결국 이 잡지를 내기로 결정한 것은 그것이 크게 가치 있거나 많은 사람들의 필요에 부응할 수 있으리라는 자기도취적인 낙관이 있어서가 아니다. 점점 가속적으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환경문제를 보면서,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인간을 포함한 수많은 생명체들이 지구상에서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대단히 불투명해지는 현실에 직면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은 그렇다 치고 우리의 아이들은 어떻게 될지, 그 아이들이 성장하여 사랑을 하고 이번에는 자기 아이들을 가질 차례가 되었을 때 그들의 심중에 망설임은 없을까–하는 보다 절박한 심정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아마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회피하기 어려운 당면 현실일 것이다. 우리가 《녹색평론》을 구상한 것은 지극히 미약한 정도로나마 우리 자신의 책임감을 표현하고, 거의 비슷한 심정을 느끼고 있는 결코 적지 않을 동시대인들과의 정신적 교류를 희망하면서, 민감한 마음을 지닌 영혼들과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나가기 위한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절박한 심정이 지금 많은 사람들에 의해 공유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러한 심정이 단지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의 예외적인 판단에 기인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다지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은 마음으로도 지금 상황은 인류사에서 유례가 없는 전면적인 위기–정치나 경제의 위기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문화적 위기, 즉 도덕적 철학적 위기라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들의 대부분은 오늘날 우리의 삶이 일종의 묵시록적 상황에 임박해 있다는 사실에 직면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애써 이것을 부인하거나 외면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스스로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안팎의 모든 체험에 비추어 다소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우리 각자는 저마다 내심 깊은 공포를 느끼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게 때문에, 지금 환경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지배적인 논의 방식에서 보는 것처럼 이것을 단순한 외부적 재난이 아니라 삶에 대한 우리 자신의 기본가정 자체의 결함으로 인식하는 데 무능력을 드러내는지도 모른다. 근원적인 공포가 사태의 정당한 인식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인가 본질적인 결핍을 느끼면서도 환경재난에 대한 기술주의적 접근방법만이 활개를 치고, 또 그러한 현실에 대체로 묵종해 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여튼 환경재난이 제기하는 보다 근원적인 물음으로부터 자꾸만 도피한다면, 모처럼 이 위기가 인간의 자기쇄신이나 성숙을 위하여 제공되는 진정한 도전에 성실하게 응답하지 못하는 결과가 될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전대미문의 이 생태학적 재난은 결국 인간이 진보와 발전의 이름 밑에서 이룩해온 이른바 문명, 그 중에서도 특히 서구적 산업문명에 내재한 논리의 필연적인 결과로서의 사회적, 인간적, 자연적 위기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사람이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지구상에서 사람이 삶을 영위하는 올바른 방식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근본적으로 성찰할 것을 요구하는 진실로 심오한 철학적, 종교적 문제에 직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백여년간 서양문화로부터의 충격 속에서 거의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근대화 콤플렉스에 깊숙이 젖어온 민족의 입장에서, 하나의 인간공동체로서 번영을 누릴 뿐만 아니라 단순히 살아 남기 위해서도 모든 사람의 에너지를 경제성장과 산업화에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 어느 정도는 물질적 성공과 서구적 생활방식의 모방의 가능성이 주어지는 것으로 기대되는 바로 그 시점에서, 다름 아닌 그러한 성공의 대가로 인간생존의 터전 자체의 붕괴를 경험해야 한다는 것은 한국 사람들로서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통일 것임이 분명하다. 이 시점에서 대다수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못보고, 적당히 짜깁기함으로써 위기를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오랜 기간 의심할 나위 없이 믿어왔던 삶의 목표와 우선순위에 대한 관점을 근본적으로 변경할 만한 심리적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환상을 갖고 싶어도, 이대로 간다면 머지않아 생존의 자연적 토대가 완전히 허물어지고 만다는 냉정한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온갖 곳에서 매 순간 끊임없이 불거져 나오는 환경재난과 생명훼손의 사례들은 이 추세에 강력한 제동이 걸리지 않으면 우리 자신이나 다음 세대들의 이 지상에서의 생존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불길한 징후들이다. 물론 오랜 옛날부터 예언자들은 흔히 세상의 종말을 이야기해 왔다. 그러나 그러한 예언은 무엇보다 종교적 열정에 근거를 둔 것임에 반해서 오늘의 묵시록적인 전망은 다분히 과학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자들간에는 토양오염이나 온실효과나 오존층 고갈이나 세계의 사막화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한 방법에 대한 기술적 탐색에 골몰하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인간 자신이 생물학적 존재조건을 변경시킬 수 없는 한, 어떠한 기술적 재간으로도 생물체로서의 생존조건을 파괴하면서 살아 남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 남는다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맑은 공기도, 푸른 하늘도, 숲도, 강물도 없는 세상에서 사람은 살고 싶은 욕망을 느낄 수 있는가?
과학기술이 모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는 어리석은 믿음이 지배하고 있다는 점도 오늘의 크나큰 비극을 가중시키는 주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도 기술공학도 결코 만능이 아닐 뿐더러 오히려 사태의 악화에 훨씬 더 많이 기여해 왔다는 것을 알기 위하여 우리 각자가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과학에 대해 품고 있는 맹목적인 숭배나 신뢰는 과학은 거짓이 없고 실패가 없다는 전연 근거 없는 미신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런 터무니없는 미신이 널리 유포된 데에는 이 시대에 만연하고 있는 비역사적 사고가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과학사의 관점에서 볼 때, 과학의 진리에 대한 관계는 언제나 잠정적이고 모색적인 것이었지 결코 항구적인 절대성을 갖는 것은 아니었다. 진정하게 과학적인 태도는 그러니까 늘 열려있는 겸손한 태도일 수밖에 없으며, 자신의 현재 능력이나 인식방법으로써 포착할 수 없는 경험이라고 하여 그것을 무시하거나 비과학적이라고 매도하거나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참다운 과학정신과 인연이 먼 태도라 해야 옳다.
오늘날 과학기술의 힘이 막강하고, 부분적이나마 과학기술 수준이 찬탄스러운 것이라 해도, 과학은 여전히 우리의 삶의 바탕과 이 세상과 우주의 근원적인 진리를 해명하는 데에는 너무나 미약하고 부적절한 수단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하물며, 기계론적 우주관과 선형적 진보사관에 의지하여 전개되어온 지난 수 세기의 근대과학기술의 성과는 이제 인류의 파멸까지도 배제하지 않는 지구생태계의 대 재난을 초래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해 온 것이 아닌가? 삶의 태반을 망가뜨리면서 그것을 진보와 발전이라고 믿어온 것은 실로 우매의 극치라 할 만하고, 완전한 미치광이 짓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과학과 기술에 대한 인간의 본질적 관계, 그리고 근대과학의 근본가정에 깔려 있는 폭력성에 대한 뿌리로부터의 철저한 반성 없이, 계속하여 더 많은 과학과 더 정교한 기술만을 구한다면 파멸은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우리는 지금 닥친 위기가 민족단위로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인류사 전체의 경험으로서도 미증유의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하고, 그러니만큼 여기에 관한 한 어디에서 빌려올 수 있는 손쉬운 처방이 없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유례없는 위기는 본질적으로 우리의 삶의 현상적 측면에 대한 이러저러한 부분적, 임시적, 외면적 수습책으로는 절대로 극복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똑바로 보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날 우리의 생활공간에 빚어지고 있는 공해, 오염, 자연파괴의 문제는 우리의 일반적인 사회관계가 견디기 어려울 만큼의 적의와 긴장에 차있을 뿐더러 우리의 사회상황이 극심한 부패와 윤리적 타락으로 고통 당하고 우리각자의 내면이 날로 피폐해져 가고 있는 상황에 정확히 대응한다고 할 수 있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그러니까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 그리고 개인의 자기자신에 대한관계의 문제와 근본적으로 일치하는 문제라 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정치 경제의 문제이자 동시에 철학과 도덕과 종교의 문제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사람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를 예의주목하고 그것을 혁파하는 일에 주력해 온 전통적으로 진보적인 사회사상은 그것이 사람에 이한 사람의 지배, 착취를 반대해 왔다는 점에서 존경 받아 마땅한 사상이라 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어디까지나 인간중심의 관점에서 머무르고 있는 한, 특히 자연세계와의 조화가 중심문제로 된 오늘날 그것은 크게 미흡한 사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무엇보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때때로 인간과 자연의 동시적인 해방에 관한 언급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맑스주의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삶을 생산과 소비의 측면에 제한하여 본다는 점에서는 부르주아 철학과 궤를 같이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역사를 수렵채취의 생활양식으로부터 산업적 생활방식에 이르는 직선적인 진화의 흐름으로 파악한다는 관점은 이 지구상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이어져온 인류생활의 최신의 전재가 반드시 바람직한 생활형태를 기록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로 해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관점이다. 생산과 소비의 양적 증가는 도리어 인간생활을 비참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비극적인 경험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바로 오늘의 현실인 것이다.
전통적으로 산업화의 이데올로기로 봉사해 왔다고 할 수 있는 맑스주의에서 인간 속에 뿌리깊이 내재한 정신적 종교적 욕구가 흔히 등한시되어 온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영국의 작가 로렌스는 볼셰비키 혁명 후 러시아의 민중이 빵을 고르게 먹는 것은 가능해졌으나 그 빵이 맛이 없어졌다고 말함으로써 인간 영혼의 근원적 요구를 외면하는 사상이나 사회운동에 대한 그 자신의 불신을 표명한 바 있지만,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불가결한 차원의 하나가 초월에 대한 욕구라는 것은 아무래도 부인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사람의 초월에 대한 욕망은 인간성에 깊이 내재하고 있는 충동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자연이나 우주적 연관에서 자신의 삶을 돌이켜봄으로써 획득되는 정신적 체험을 통해 비로소 충족될 수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윤리학에서 삶의 최고형태를 명상하는 삶에서 찾았을 때, 이것은 일반적으로 고대인들이 품고 있었던 조화와 균형과 통일의 세계관을 요약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고대문화에서 흔히 그러했듯이, 사람의 명상할 수 있는 능력은 개인이 자기보다 더 큰 전체, 공동체나 자연이나 우주적 전체 속의 작은 일부로서 스스로의 존재를 느끼고 사색할 줄 아는 습관 속에서 길러지는 것일 것이다. 인간은 좁고, 미약하고, 일시적인 자기의 개인적인 삶의 테두리를 늘 보다 큰 지평 속에 관계시킴으로써 영속적인 거대한 우주적 생명활동에 스스로를 참여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고대사회에서나 토착전통사회에서나 혹은 이른바 미개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실현하는 방식이었다. 현대 산업사회의 핵심적인 비극은 이러한 의미에서의 인생의 의미를 완전히 몰각해 왔다는 점에 있다. 따지고 보면,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삶의 우주적 연관이나 자연적 근거를 완전히 망각한 문화라는 것은 거의 낯선 것이었다고 할 수 있고, 사람의 에너지를 온통 소득과 소비의 경쟁 속에 쏟아 붓도록 강요하는 오늘의 지배적인 산업문화는 인류사에 극히 예외적인 생존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생태학적 위기로 요약되는 이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끔찍스럽기도 한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결국 우리들 각자가 자기 개인보다 더 큰 존재를 습관적으로 이식할 수 있게 하는 문화를 회복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가 생명의 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러한 문화의 재건은 우리 각자의 인간적인 자기쇄신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음이 분명하다.
따지고 보면, 현대 기술문명의 기저에는 정복적 인간의 교만심이 완강하게 버티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때문에, 자연의 도를 따르는 순리의 생활을 우습게 여기면서,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의 통제와 조종 속에 종속 시키려고 하는 야만적인 폭력이 끝없이 창궐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자연적 환경이든 인문적 환경이든 나날이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와 우리들의 자식들이 살아 남고, 살아남을 뿐 아니라 진실로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협동적인 공동체를 만들고, 상부상조의 사회관계를 회복하고, 하늘과 땅의 이치에 따르는 농업중심의 경제생활을 창조적으로 복구하는 것과 같은 생태학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조직하는 일밖에 다른 선택이 없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생활의 창조적 재조직이 가능하려면,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겸손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정신적 자질을 갖추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보인다.
2002.03.01.
흙의 문화를 위하여
녹색평론 통권 제63호 | 김종철
이런 소중한 모임에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 아침에 대구를 떠나서 지금 막 당도해서 분위기도 모르고 대뜸 여기 서게 되어서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점심때도 되고 했으니 빨리 끝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조금 늦어지더라도 너무 미워하지 마십시오.
전주에는 ‘한울생협’이 있고, 서울을 비롯해 전국의 여러 도시에 ‘한살림’을 비롯한 다양한 이름의 생협 조직 속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농산물 직거래를 중심으로 생명을 살리는 활동을 시작한 지 이제 10년이 다 넘었습니다. 오늘 이런 자리는 사실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모임입니다. 연례적인 모임이겠지만, 오늘 이런 모임은 여기서 생산자 농민들과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가 과연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함께 궁리하는 그런 자리란 말이에요. 어떻게 보면 이 자리는 국무회의보다 더 중요한 자리입니다. 국무회의는 맨날 깨부수는 의논만 하는 곳이잖아요. 어떻게 하면 이 산천을 때려부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밑바닥 백성들과 온갖 목숨붙이들을 괴롭힐 것인가, 알고 보면 결국 그런 얘기들을 우리가 낸 세금 받아 가지고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진짜 아이들 제대로 사람답게 키우고, 좀더 나은 사람 꼴을 하고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우리끼리라도 서로 협동하고 도울 것인가, 이런 거 연구하고 궁리하려고 모였단 말이에요. 세상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모임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자부심을 가져야 해요. 점심 좀 늦게 먹어도 됩니다.(웃음) 전 아침도 안 먹었어요.
저도 텔레비젼에 중독이 되어서 아직 텔레비젼을 끊지 못하고 사는데, 아무것도 아닌 줄 알면서도 집에 있는 날은 대개 9시 뉴스는 보게 되죠. 요즘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서 별 하는 일 없이 지내는 우리 딸이 잠시 집에 내려와 있는데, 어제 같이 텔레비젼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이 아이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아빠, 세상이 왜 이래”라고 조그맣게 소리를 질러요. 평소에 그런 소리를 잘 하는 아이가 아닙니다. 또 어제 뉴스가 특별히 다른 날보다 더 끔찍한 얘기도 아니었어요. 물론 가만히 들으면 전부가 다 기막힌 뉴스들이지요. 어제는 올림픽 이야기도 나왔지만, 서울의 아파트 단지들에서 주민들이 담합해 가지고 아파트 값을 그냥 무턱대고 올려놓는다는 얘기, 여러분도 아마 들으셨을 겁니다. 갑자기 5천만원, 1억원 이상으로 껑충 덮어놓고 올려놓고, 그런 값 이하로 팔지 못하도록 이웃을 협박하기도 한다는 그런 뉴스가 나왔잖아요. 이게 서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해요. 그런 사람들이 뉴스기자에게, 남들이야 10억을 받든 20억을 받든 당신들이 무슨 간섭이냐고 대들더군요. 물론 그런 값으로 아파트가 매매되지는 않겠지만, 그래 놓으면 상당히 시가가 상승할 거라는 계산을 하고 그런 짓들을 하는 거겠지요. 사람들 마음이 이젠 사악할 대로 사악해져서 같이 더불어 산다는 개념 같은 것은 벌써 깨끗이 사라져버렸어요. 이런 뉴스는 사실 새로운 것도 아니죠. 그런데 우리 딸이 좀 예민한 아이거든요. 예민하지만 평소에는 그런 소리 전혀 안하는데, 어제는 무엇 때문에 더 참을 수 없었던지 버럭 그런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질러요. 눈에는 눈물까지 글썽해 가지고. 제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물론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뉴스에 접하면 마음이 언짢아지겠지요. 말은 안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내 자식이란 말이에요. 저는 학교 선생 하면서 거짓말을 많이 하고 살아요. 학생들을 보고 내가 너희들을 내 자식처럼 생각한다라고 말하지요.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잖아요. 노력을 해도 잘 안됩디다.(웃음) 내 자식의 반쯤은 생각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엄밀히 내 자식은 아니니까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고 살잖아요. 학생들이 좀 억울한 사정이나 고달픈 문제를 갖고 있어도 여유있는 마음으로 충고하면서 지나갑니다. 그러나 막상 내 자식이 저러니까 내 마음이 못 견디겠어요. 솔직히 말해서 당분간 세상이 개선될 가능성은 없잖아요.
저는 철드는 게 늦어서 고등학교 다닐 때는 사회적인 문제는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았어요. 그때는 모두다 가난했으니까 특별히 부러워하거나 미워할 만한 부자도, 잘난 사람도 우리 주변에는 없었어요. 그러다가 서울로 가서 대학을 다니면서 세상에 기막히게 큰 부자도 많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 너무도 많은 걸 보고, 또 그때가 한일회담 문제로 대학 캠퍼스가 늘 시끄러울 때였으니까 소위 사회적, 정치적 의식이란 게 조금씩 생기지 않을 도리가 없었지요. 그런데 제가 그때 품었던 한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은 왜 이렇게 나쁜 놈들이 활개를 치고 착하고 어진 사람들은 왜 늘 억눌려 살아야 하는가 하는 거였습니다. 이 의문은 실은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는 의문입니다. 하여간 그때 이십대에 저는 저 나름으로 그런 심각한 의문으로 괴로움이 많았는데요. 그런데 수십년이 지난 뒤에 지금 내 딸이 바로 그런 심정을 토로하고 있는 거란 말이에요. “아빠, 세상이 왜 이래”라고 하는 말에 아무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걔가 계속해서 하는 말이 “아빠가 녹색평론이니 뭐니 하면서 애를 써봤자 세상이 뭐 달라지겠어?”라고 해요. 달라질 리가 만무하죠.
지금은 최대의 위기입니다. 인류사상 이런 위기는 없었어요. 지금 세상이 온통 미쳐 돌아가고 있잖아요. 어제 뉴스에도 곧 철도파업이 있을 거라는 얘기도 나왔고, 요즘 기차 타면 철도원들이 띠 두르고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철도 민영화 계획 때문이죠. 아마 전기도 가스도 모두다 민영화될 모양입니다. 정부라는 게 이 사회의 약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책임도 포기한 것 같아요. 민영화해서 철도 경영이 빨리 흑자로 돌아서게 해야 한다, 철도사업이 수지맞는 장사가 되어야 한다는 거 아닙니까. 민영화해서 흑자경영을 이룬다는 것은 결국 무슨 얘깁니까. 대량 해고시킨다는 얘기죠. 그리고 대부분 자동화, 기계화로 처리하는 시스템으로 가겠다는 거죠. 일단 공공사업이 아니라 사기업이 되면 철도요금도 물론 자유롭게 올릴 수 있겠지요. 국가가 개입할 명분도 방법도 없어지잖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되어가고 있을까요. 이 모든 것은 결국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이끌어가고 있는 대자본과 다국적 기업들로부터의 압력 때문이란 말이에요. 모든 공공사업을 사기업화해야 한다, 국가의 보조금 지불제도는 모두 폐지하고, 국산과 수입산에 대한 구분도 철폐되어야 한다, 시장을 완전 개방하라, 구조조정하라, 그렇게 하면 가난한 사람들도 언젠가 다 부자가 될 수 있다, 이것말고는 대안이 없다 ……. 이런 다국적 기업들의 주장에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정부라는 게 동조하는 정도가 아니고 앞장서서 나가고 있잖아요. 세계화 시대에 치열한 국제경쟁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면서 모든 걸 장사논리로만 이끌고 가잖아요. 그러나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간 사람도 사람이지만, 이 나라 산천이 조만간 완전히 망가질 도리밖에 없어요.
며칠 전 미국 대통령이 다녀갔지만 참 한심하데요. 참 우울했습니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새삼스럽게 우리가 별 수 없이 식민지 백성이라는 사실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현실을 보면서, 명색이 대학교수랍시고 내가 학생들 앞에서 이러쿵저러쿵 지껄이고 있다는 게 한없이 수치스럽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말 이게 무슨 꼴이냐. 백여년 전에 이 나라의 선비들 심정을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그때는 물론 기가 막혔겠지요. 그러나 지금이 그때보다 상황은 더 고약한지 모릅니다. 그땐 나라가 눈앞에서 망하는 걸 알고는 있었잖아요. 지금은 더 지독한 내부적 침략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망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어요. 지금은 예전처럼 노골적인 정치적 . 군사적 식민지로 전락하는 일은 없겠지만, 안으로는 더 지독한 노예의 삶이란 말이에요. 인간다운 위엄을 지키면서 살 수가 없게 돼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자기 자동차 가지고 시내를 벗어나서 훤히 뚫린 도로로 나가면 해방감을 느낀다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 정부가 해외자본가나 IMF나 미국 사람들의 압력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 당장 우리가 석유를 들여오지 않으면 한국경제가 그대로 주저앉습니다. 한방울도 나지 않는 석유를 들여오려면 외국자본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고 그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안 따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정부를 욕하고 자본가를 욕하지만 따지고 보면 문제는 궁극적으로 나 자신한테 있어요. 내가 내 자동차를 유지하려고 하는 한에서 나도 공범이에요. 우리 각자가 매일 매일 살아가는 방법이 바로 나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는 원흉이란 말입니다.
아까 대구에서 전주로 오는 동안 지리산 휴게소에서 잠깐 쉬다가 왔는데, 또 연중행사가 시작되었더군요. 지리산 고로쇠 수액 판다고 크게 써 붙여놓고 플라스틱통들을 잔뜩 늘어놓았더군요. 자기 몸 보신한답시고 애매한 나무들을 못 살게 하는 건 밀렵꾼들 통해서 야생 짐승들 간이나 쓸개 빼먹는 짓이나 똑같잖아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자기 몸뚱아리 하나 살찌고 편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살고들 있잖아요. 기후변화 같은 데 대해서는 개인으로서 실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칩시다. 그러나 지금 공기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고, 물은 마실 수 없는 것으로 되어가고 있는 데다가 그마저 고갈되어가고 있습니다. 자기는 그렇다치더라도 자식들은 어떻게 해요. 그리고, 하루하루 먹고 살아가기 바쁜 사람들은 몰라도 이 사회에서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걸 좀 생각하면서 살아가라고 위임받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맨날 누가 뭘 많이 먹는가 하고, 거기 빌붙어 먹을 궁리들이나 하고 살아가고 있어요. 조금 양심적이라는 사람들도 기껏 한다는 소리가 지식정보 사회라느니 남북협력을 통한 시장확대 운운하면서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사고방식에 그대로 빠져 있어요.
제가 제일 마음이 아픈 게 뭐냐 하면, 농업이 붕괴되고 있다는 거예요. 아무리 지금 곤란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래도 내일을 기약해 볼 수 있고, 지금은 엉터리지만 그래도 다음 세대쯤 가서는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볼 수 있기 위해서는 땅이 남아있어야 해요. 그런데 지금 둘러보십시오. 일년에 여의도의 몇십배나 되는 농경지가 잠식되고 있다고 하잖아요. 그것도 한해 두해가 아니라 30년 이상이나 계속되어왔는데, 거기다가 지금은 가속이 붙었어요. 멀쩡한 국도와 고속도로가 다 있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도로가 새로 건설되고 있습니다. 왜 이럴까요. 요즘 언론에서는 경제가 조금 안정되어 간다고, 경제지표가 나아지고 있다고 그러지요. 우리나라는 참 특이한 나라 같아요. 지금 온 세계 전체가 경제가 나빠져 간다고 합니다. 미국도 10년 넘게 장기호황을 누려왔지만 이제부터는 아니라고 하잖아요. 일본은 거의 회생할 가능성이 없다는 말도 들립니다. 전세계적인 투자과잉, 생산과잉으로 물건 팔아먹을 데가 없다고 그래요. 그런데 유독 한국경제만 그 와중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런데도 경제상황이 나아지고 주식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는데 그 근거가 뭘까요. 건설경기와 부동산시장 때문입니다. 다른 게 뭐가 제대로 돌아가는 게 있습니까. 그러니까 당장의 곤경 모면해 보려고 지금 계속 땅을 마구 파헤치고 그린벨트 없애버리고 부수어버리는 거예요. 자기 콩팥 떼어 팔아서 돈 있다고 착각하는 꼴이죠.
저는 대통령 선거에 아무런 기대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신문에 보니까 벌써 이름만 다를 뿐이지 똑같데요. 대통령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정책이라고 내놓는 게 전부가 다 똑같고, 여야도 아무 다를 게 없어요.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예외적으로 성장보다는 분배에, 경쟁보다는 연대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그런 사람도 과연 농업문제에 대해서 깊은 고민이 있을까요? 우리 농촌에는 이제 유권자도 별로 없잖아요.
하여간 제가 제일 절망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농업붕괴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도 제가 감사한 마음으로 왔어요. 여러분이 하자는 게 결국 뭡니까. 농촌 살리자는 거죠. 제가 한살림이나 이런 생협활동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니까 사정을 조금 압니다만 아무 영문도 모르고 들어온 주부들이 많잖아요. 그저 식구들에게 무공해, 무농약 음식 먹여볼까 싶은 생각으로 가입했을 뿐이죠. 그건 물론 나쁜 일이 아니죠. 그만한 애정이라도 가지고 있는 게 정말 다행스러워요. 세상에는 유기농산물이 비싸니 어쩌니 하고 이 운동을 트집잡거나 우습게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유기농산물이라고 비싸면 얼마나 비싸겠습니까. 세상에서 제일 터무니없이 싼 게 농산물 아닙니까. 그동안 계속하여 농촌이 붕괴되어온 건 농산물이 제 값을 못 받아왔기 때문이란 말이에요. 공업화를 한답시고, 소위 근대화를 한답시고 고의적으로 농산물 가격을 억제하고, 공장과 도시의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농촌경제를 고의적으로 망하게 해놓은 결과가 지금의 농촌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오래 길들여오다 보니까 보통 사람들이 온갖 쓸데없는 물건들을 한마디 불평도 안하고 값비싸게 사들여 놓으면서도 정작 농산물 가격에 대해서는 호들갑을 떨어요. 김치냉장고 사들여 놓으면서 정작 거기에 들어가는 김치 어머니, 배추와 무에 대해서는 아주 홀대를 하거든요. 그리고 언론도 늘 공업제품에 대해서는 아무 군소리도 못하면서 상투적으로 유기농산물 비싸다는 얘기만 곧잘 합니다. 그래서 뭐 도농직거래 운동이란 거는 알고 보면 도시 중산층들이 자기네들끼리 해먹는 수작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하는데, 참 서글퍼요.
어쨌든 저는 순전히 가족 이기심이 동기가 되었다 할지라도 자기 식구들에게 가급적 독이 없는 음식, 가급적 영양분이 있는 음식을 먹이겠다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 이런 생협활동에 참가하는 분들이 참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이 있어야 죽어가는 농업과 농촌을 살려보겠다는 최소한의 꿈이라도 꿀 수가 있습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자식들에게 안심하고 먹일 게 없다는 생각 때문에 밤잠을 제대로 못 자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야 오늘날 이 현실에 대하여 정말 근본적으로 고민할 게 아닙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세월이 가도 노상 무농약 농산물 먹어보겠다는 그런 수준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곤란하다는 얘깁니다. 궁극적 목표는 농촌을 살리는 일이에요. 내가 도시에서 살고 일자리를 갖고 있다고 해서 나한테 농촌이 관계없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내가 도시에서 설사 무슨 일을 하고 있든 간에 농촌이 살아있어야 내 뿌리가 존재해요.
그런데 농촌 살리기라는 문제를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들어보셨겠지만 ‘태평농법’이라는 거 말이죠. 이런 얘기 그동안 별로 공개적으로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태평농법이라는 거 생각해보면 참 곤란한 것입니다. 지금 태평농법 한다는 그분이 5만평인가 하는 땅을 자기가 고안한 쇠갈퀴 같은 것을 부착한 콤바인을 사용해서 무경운 ― 이 말은 원래 일본의 자연농법 창시자 후쿠오카 마사노부 선생의 자연농법에서 가져온 것인데 ― 으로 땅을 갈지 않고 따로 비료도 하지 않고 농약 같은 것도 치지 않고 풀도 매지 않고 농사를 지으니까 거의 일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태평농법이라는 거죠.
농촌에서 농사짓는 게 괴로운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는데 실제로 태평농법으로 하면 한 사람이 몇만평을 감당하는 것도 손쉬운 일이 되는 거지요. 그래서 그 책이 꽤 관심을 끌었는데, 그런데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이게 땅 부자들 귀에 들어가면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를 들어 돌아가신 정주영씨 같은 분 말입니다. 그런 재력과 저돌적인 성격을 가진 사업가라면 그냥 몇몇 소수의 인원을 고용해서 무슨 상무다 부장이다 하는 그럴듯한 직함을 주고는 콤바인 몇대 주고 어마어마한 땅을 경작하도록 할 수 있을 거란 말이에요. 소수의 부자들이 농토를 독점하고 그런 식으로 기계를 써서 유기농산물을 만들어낸다고 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나라의 농업과 농촌이 어떻게 될까요. 미국의 기업농이 그런 식이죠. 그러나 거기서는 비행기로 비료 주고 농약 치고 하니까 지금 미국의 농토가 쇠퇴하고 얼마 안가면 사막화의 위험도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 이런 대규모 기계화 농법으로는 계속 더 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대규모 기업농으로 가서는 토양을 보존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하는 반성이 지금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이 태평농법은 그런 문제까지 해결해줄 수 있단 말이에요. 약도 안 치고 비료도 안 쓰고 땅을 갈지도 않아 땅을 점점 기름지게 만들고 그러면서 사람의 노동은 필요없고 …… 얼마나 환상적입니까. 현대적인 산업체제의 논리와 딱 맞아 들어가잖아요. 기계화 . 자동화를 통해서 인력을 줄이죠, 그렇게 생산한 것을 도시의 백화점에서 유기농산물이라고 값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고. 그런데 그게 뭐가 문제냐.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런 식으로 된다면 결국 농촌 마을이 없어집니다. 농촌 공동체가 없어져요. 농촌 공동체는 농촌에서 하는 일이 노동집약적인 일이기 때문에 성립될 수 있습니다. 일하고 살아가는 데 서로 협동하고, 주고 받지 않으면 안될 많은 일거리가 있고 생활방식이 있으니까 자연히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어 상호부조의 삶을 영위해가는 거죠. 우리의 전통사회뿐만 아니라 농사를 중심으로 하면서 기초적인 생명유지 수준에서 땅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모든 토착적 사회가 다 이런 식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실업이란 개념이 있을 수가 없죠.
요즘 실업자 문제가 점점 심각해져 가고 있는데, 이 문제는 현재와 같은 산업체제를 고수하는 한 절대로 해결이 안됩니다. 구조적으로 볼 때 실업자가 늘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존재하고 있어야 돌아가게 되어있는 게 자본주의 체제이고 산업주의 문명입니다. 빈곤문제도 그래요. 별 생각 없이 우리가 모두가 부자로 사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부자가 부자로서 행세할 수 있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늘 존재하고 있어야 해요. 모든 사람이 전부 부자가 되면 부(富)라는 게 아무 의미가 없어요. 아무도 아쉬울 게 없으니까 부자의 권력이 먹혀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경제성장 제일주의를 목표로 하고 있는 한, ‘빈곤퇴치’라는 것은 실은 헛 구호일 뿐입니다. 누군가가 계속 빈곤상태에 있지 않으면 경제성장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산업사회에서의 노동이란 것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즐겨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싫고 재미없는 노동이지만 임금을 받을 수 있고 보상을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산업적 노동은 본질적으로는 강제노동입니다. 가난하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그런 강제노동을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러니까 경제성장, 개발, 산업문명, 진보라는 것은 기실은 끝없이 빈곤을 확대 재창출하도록 구조화되어 있는 체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빈곤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부자가 없는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다 같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큼 땀흘려 일하면서 그저 최소한도로 인간다운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경제, 최대한도의 자급자족이 가능한 문화 속에서만 실업도 해결되고, 빈곤문제도 해결되고, 출산, 육아, 교육, 의료, 노인부양 문제를 포함한 온갖 생활문제가 비로소 극복될 수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체제를 확대하고, 경제성장을 계속해 나가서 사회복지 예산을 증대시켜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이른바 산업선진국형 복지체제에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그 방법으로는 결국 죽도 밥도 안되게 되어있어요. 우선 생태계가 견디어 내지를 못합니다. 그것은 결국 오늘의 생태적 위기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한 주된 원인을 가지고 해결책을 찾는 모순적인 방법일 뿐입니다. 그리고 스웨덴 같은 이른바 모범적인 복지사회가 얼마나 더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벌써 스웨덴은 국고가 비어가고 있다고 해요. 그런 문제와는 별도로 스웨덴과 같은 국가적 복지체제가 과연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체제인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세계에서 자살률이 제일 높은 나라가 스웨덴입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성에 반하는 무슨 문제가 있다는 얘기거든요.
모든 점을 고려할 때 저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살아있는 마을 공동체가 중심이 되어있는 사회말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옛날과 똑같은 모양의 농촌 공동체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고, 의미도 없어요. 어떻든 우리가 인간다운 삶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는다면 어떤 형태로든 땅이 살아있고 농촌에 마을이 풍성하게 살아있는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인간다운 위엄을 유지하고 권력에 대해서든 물건에 대해서든 기계에 대해서든 노예가 아닌 자유인의 삶을 살아가자면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가장 분명하게 선각적으로 자기 사상의 핵심으로서 말씀하셨던 분이 바로 간디입니다. 간디는 우리나라에서는 인도의 독립을 위해서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싸웠던 인도의 민족적 영웅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은 굉장히 영성적으로 깊이있는 정치-경제사상가이자 문명비판가입니다. 간디는 보면 볼수록 대단한 혜안을 가졌던 분입니다. 20세기 초에 이미 산업주의 문명이 인류 전체에 대하여 큰 재앙이 될 날이 곧 올 거라고 말했거든요. 간디는 일생을 두고 인도사람들이 입는 카디라는 옷을 손수 물레로 돌려서 짜서 입었습니다. 인도 사람 각자가 집에서 혹은 마을에서 자기가 입을 옷을 손수 지어 입어야 진정한 독립을 얻을 수 있다고 했어요. 말로만 독립투쟁, 식민지 청산을 떠들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죠. 자기자신들의 생활이 자치, 자립적인 것으로 되도록 토대를 만들어놓는 게 가장 확실한 독립의 조건이란 말이죠. 식민세력에 대해서, 혹은 제국주의자들에 대해서 외교적으로 혹은 정치 . 경제적으로 혹은 군사적으로 맞설 수 있는 힘을 하루빨리 키워야 독립 . 자존할 수 있다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그건 근본적으로 몰지각한 소리라는 거죠. 그런 방식이 진정 가능할지도 의심스럽지만, 그런 방향으로 추구해서 소위 경제성장을 이루고 정치적 위상을 높였다고 하는 사회들을 한번 곰곰이 들여다보세요. 대내적으로는 차별구조가 강화되고, 대외적으로는 지금까지의 제국주의자, 식민주의자들 못지않은 가혹한 약탈, 착취자가 되는 겁니다.
간디는 인도의 진정한 독립은 영국으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한다고 해서 이룩되는 게 아니라고 일관되게 말합니다. 그래서 간디가 생각하는 것은, 진정하게 새롭고 자주적인 인도의 토대는 53만8천개의 농촌 마을이며, 그 마을들 속에서 자립적인 삶의 방식이 번성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독립 이후에 간디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젊은이들이 인도의 농촌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하늘의 조화인지 독립되자마자 간디가 암살 당해요.
이제부터야말로 간디의 사상과 철학이 인도사회에서 제대로 된 실천을 기다리고 있던 바로 그 시점에서 암살을 당해요. 그러고는 네루가 등장하죠. 네루는 간디의 정치적 제자이지만, 스승의 사상과 철학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네루는 속으로는 간디의 역사와 문명에 대한 관점에 대해서 늘 거리를 두고 있었어요. 말하자면 이 문제에 있어서는 간디를 망령든 할아버지쯤으로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농촌 마을 중심의 사회를 이야기하고, 수공업적 생산방식을 말하는가 하고 말이죠. 그래서 네루는 인도가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빨리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 방법으로 자본주의뿐 아니라 사회주의적 모델도 적용하고, 그래서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원조도 과감히 받아들이면서, 한때는 중립 외교를 표방하고 그랬잖아요. 그런 점 때문에 세계의 지식인들로부터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지만, 지식인들이 말하는 진보라는 개념 자체가 사실은 굉장히 문제가 많은 거예요.
하여튼 네루는 인도의 산업화를 가장 우선적인 국가 시책으로 삼았고, 그래서 이미 독립 초기부터 거대한 댐 건설들을 국가적 프로젝트로 계획하였어요. 지금 인도에는 예를 들어서 나르마다 강 같은 경우에 강이 얼마나 큰지 대형 댐이 3,000개나 건설 완료되거나 공사중이거나 계획중이라고 합니다. 그게 대부분 네루 시대부터 계승된 국가적 프로젝트예요. 댐 건설이나 원자력 발전소, 핵무기, 새만금 매립공사, 고속도로, 공항, 관광진흥 ― 이런 게 전부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발상들입니다. 간디를 암살한 것은 고드세라는 힌두교 청년이었는데, 세상에 알려지기로는 힌두교도와 무슬림들 간의 갈등 속에서 간디가 무슬림들을 끼고 도니까 화가 나서 암살했다고 하지만, 법정 최후진술을 보면 단순히 그런 게 아니었어요. 최후진술에서 고드세라는 청년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간디 선생님을 존경하기 때문에, 그분이 영원히 인도 사람들의 아버지로 남아 있도록 하기 위해서 암살을 했다 ― 라는 겁니다. 자기가 보기엔 간디가 미쳤다는 거죠. 서구식 근대화와 산업문명과 진보를 거부하니까. 지금까지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운동을 하는 과정에서는 간디가 옳았지만 이제부터 현대사회를 건설해 나가는 과정에서는 간디는 오히려 인도의 적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인도민중의 적이 되기 전에 그분을 영원한 인도인의 아버지로 모시기 위해 죽였다는 거죠. 이 얘기가 맞을지도 몰라요. 간디가 계속 살아서 인도의 산업화를 막았더라면 아마 인도의 지식인, 지도층 사이에서 간디를 공격하는 사람이 많았을 겁니다. 실제로 산업주의나 서구식 경제발전에 관한 간디의 생각에 동조하고 귀를 기울인 인도의 지도층은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간디가 정확히 예견한 대로 산업주의 문명이 지구와 인류의 재앙이 되었다는 게 분명해진 오늘날에 와서는 간디가 옳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과 같은 발전, 진보의 논리로는 인류에게 전망이 없거든요. 기술의 발전으로 극복될 것 같아요? 지금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은근히 생명공학의 발전에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아도 기술을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적 기술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조작하고 통제하는 기술입니다. 인간의 기술적 지식과 재간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저 자연의 한없이 정교하고 신비스럽고 복잡한 질서를 무슨 수로 통제한다는 겁니까. 생명공학 기술로 품종개량을 시도하는 문제만 하더라도 그 결과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모르는 거란 말이에요. 또 그런 기술로 개량을 하다보면 종내에는 생물종다양성이 소멸되어버려요. 생물다양성은 지구 생물권을 유지하게 하는 근원적인 조건인데 이게 훼손된다면 모든 게 끝입니다. 제 주변에도 이렇게 안이한 생각을 하면서 자기들 전공에만 열심인 교수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끔 그래요. 지금 하고 있는 공부들 좀 중단하고 세상 돌아가는 문제에 조금만이라도 근본적인 관심을 기울여보라고. 생명공학이라고 하는 아무것도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는 불투명하기 짝이 없는 기술에 인류의 장래를 맡기고, 수천년 수만년 동안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 확실한 방법으로서 실천해왔던 방법을 포기하자는 게 말이 되느냐. 지금 우리가 식량자급도가 25%도 안되는 형편에서 정부 사람들은 앞으로 농가 가구수를 10만 이하로 줄이겠다고 계획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제발 우리 모두가 농업과 농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고민 좀 하고 살자고요. 그리고, 농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꼭 식량문제 때문만이 아니잖아요.
저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도 농촌이 반드시 살아나야 된다고 믿습니다. 사람이 사는 가장 높은 가치가 뭡니까. 무엇 때문에 우리가 살아요? 여러분들은 뭐라고 생각해요? 전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건 우애,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고 생각해요. 제가 젊은 시절에 이런 이치를 깨달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뒤늦게 좋은 사람들 다 놓치고 이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건 건강도 아닌 것 같아요. 건강이 제일이라고 얘기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살아있는 동안 우리가 건강하게 살도록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력은 해야죠.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는 건강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게 분명해요. 우리 각자가 이 세상을 하직할 때를 상상해보면 그건 확실한 것 같아요. 가끔 저는 내 자신이 죽을 때를 가상해서 뒤에 남은 가족이나 내 자식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죽을까를 생각해봅니다. 임종시의 말이라는 건 자기의 인생을 요약하는 것이니까 거기에 위선과 거짓이 끼여들 틈이 없죠. 그러니까 사람이 자기에게 가장 진실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할 거란 말이에요. 어떤 이태리 철학자는 무신론자일수록 죽기 직전에 솔직한 이야기를 한다는 얘기를 했어요. 죽은 뒤에는 털어놓고 참회할 데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까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저 같은 경우에도 죽을 때, 평생 동안 돈을 많이 벌지 못한 것에 대해서 후회하거나 유감스러울 것 같지는 않아요. 또,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출세를 못한 걸 억울하다고 생각하면서 죽을 사람도 없을 거예요. 내가 권세가 많아서 남들을 좀 부려먹지 못하고 가는 게 아쉽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지 않아요. 그리고 또 평생 좀 건강하고 기운도 세게 지냈더라면 하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부귀영화를 누리고, 자손이 번창하고, 세상에서 이름도 날리고 …… 이런 게 보통 사람들이 늘 탐하는 것인데 말이죠. 옛날 소설〈옥루몽〉같은 걸 보아도 그런 욕망의 세계에서 우리 조상들도 살았거든요. 이런 욕망은 지금도 마찬가지로 우리들 속에 뿌리깊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 모든 것도 죽는 순간에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단 말이에요. 대체로 숨을 거두기 직전에는 누구든, 사람들하고 좀더 잘 지냈으면 좋았을 걸, 누구에게 그렇게 박절하게 하지 않았어야 옳았는데, 그러니 너희들은 사이좋게 잘 지내고 남들에게 친절하게 해라 등등, 이게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인간이 생의 마지막 무대에서 내뱉는 공통된 대사입니다. 인간이란 본래 영물이니까 평소에는 등신같이 살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듯해도 속 깊이에서는 알 건 다 알고 있어요. 핵심은 무엇인지 뭐가 진짜인지 알고 있는 거예요. 알고 있으면서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온갖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어서 엉터리 짓 하다가 죽는 순간에는 깨닫습니다.
제일 중요한 건 결국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우정입니다. 지난 1월에 제가 전주에 왔다가 돌아갔습니다만, 그때 저하고 같이 시간을 보낸 분이 몇분 여기 앉아 계신데, 그날 황급히 돌아가는 바람에 미친놈 꼴이었지요. 사실 바쁜 건 죄악입니다. 바쁘게 지내다보면 사람들과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하고, 남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주의집중을 할 수가 없잖아요. 어떤 철학자는 도덕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주의집중의 문제라고 해요. 그건 정말 옳은 말인 것 같아요. 요즘 우리들 생활이 뿌리로부터 어긋나있는 것은 우리들이 대체로 바쁘게 지내는 것과 굉장히 큰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여튼 그날 모처럼 제가 전주에 왔다가 행사가 끝나고서 저녁을 먹으러 가는데 저를 자동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가더라고요. 저는 모처럼 전주 음식맛 좀 보고 가는가보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자동차가 시내를 벗어나서 교외로 가요. 그래서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보니 새로 생긴 채식 전문 뷔페식당으로 간다는 거예요. 제가 속으로 자업자득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녹색평론》에서 맨날 채식 얘기를 하니까 이 분들이 저를 생각해서 그리로 데리고 간 거예요. 실은 저는 고기는 안 먹지만, 채식주의자는 아니거든요. 가끔 계란도 먹고 생선도 먹고 때로는 라면도 먹습니다. 그런데 채식전문 식당이라는 건 그렇다 합시다. 뷔페는 문제 있는 거 아니예요?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집회를 가지고 행사를 할 때는 뷔페식이 필요할지 몰라요. 그렇지만 이 서양에서 들어온 뷔페라는 음식 먹는 방법이 과연 인간간의 관계를 결합시키는 것인지 분리시키는 것인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 전통사회뿐만 아니라 모든 토착사회에서 음식은 어떻게 먹습니까? 나누어 먹잖아요. 된장찌개를 상 가운데 놓고 여럿이 둘러앉아서 나누어 먹습니다.
예전에 중국에서는 유토피아를 대동(大同)세상이라고 했답니다. 동양에서는 유토피아라는 말을 안 쓰고 대동세상이라고 하죠. 그런데 대동이라는 말이 원래 무슨 말이냐 하면, 동양철학 전공하는 친구에게 물어보니까, 동(同)자가 본래 상형문자인데, 그게 천막을 쳐놓고 그 밑에서 사람들이 함께 밥 먹는 모습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동양에서는 이상사회가 별 게 아니라 사람들이 밥을 같이 먹는 세상, 즉 한 식구로 사는 세상이라는 얘기죠. 혈연, 지연, 부족, 인종, 종파, 높은 사람 낮은 사람 따위를 따지지 않고 그냥 세상 사람들이 같이 밥을 먹는 세상 말입니다.
지금 세상 돌아가는 꼴이 하도 기막혀서 우리가 주저앉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그러나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곳곳에서 틈을 비집고 당장 대동세상을 실천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어, 제가 좀 아는 분인데, 이 분은 밖에 나와서는 식사를 좀처럼 하지 않으려고 해요. 음식점에서 사서 먹는 밥이란 게 전부 오염되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농사와 농산물 유통에 대해서 아는 사람의 눈에는 그게 독이지 인간의 식사라고는 할 수 없거든요. 그러나 그런 생각 때문에 자꾸 바깥 생활을 기피하다 보면 사람 만나는 기회도 줄어들고, 협소해지고, 늘 혼자서만 지낼 수밖에 없잖아요. 제가 아는 어떤 이는 당근을 절대로 안 먹는 사람도 있어요. 당근은 오염된 땅의 중금속을 잘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음식에 당근 들어가 있으면 일일이 건져내고 먹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사람들에게서 멀어지잖아요. 오염된 음식이라도 여럿이서 같이 나누어 먹는 것이, 좋고 깨끗한 식품 혼자서 뒤돌아 앉아 먹는 것보다는 낫다는 얘기이죠. 아까 말씀드렸죠. 내가 이 깨끗한 음식 먹고 수명을 10년 더 늘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우정의 문제는 어떻게 되느냐 이걸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제가 좋아하는 블레이크라는 영국 시인이 있는데, 이 사람의 잠언에, “새의 보금자리, 거미의 거미줄, 사람의 우정”이라는 구절이 있어요. 그러니까 새와 거미에게 제일 중요한 게 새집과 거미줄이듯이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우정이라는 얘기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우정 또는 우애가 우리가 마음 먹기에 따라서 쉽게 되거나 안되고 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정이 유지될 수 있게 하는 생활이 있어야 하고 생활방식이 있어야 합니다. 남들의 도움이 필요없는 생활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돕고 협동하는 생활을 유지할 수도 없고, 아쉬워할 리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의료문제나 요즘 주부들의 제일 큰 관심사가 아이들 양육하는 문제, 출산문제 등인데요. 이런 얘기 제대로 하자면 시간이 한참 걸리니까 오늘은 그만둘 수밖에 없습니다만, 하여튼 요즘 한국에서 제왕절개율이 50%라는 사실은 정말 기가 막히는 문제입니다. 의사들은 별문제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고 해요. 왜? 우리는 단순히 살덩어리가 아니란 말이에요. 우리는 심층에 뿌리깊은 무의식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제왕절개를 통해서 태어나거나 출산시에 기술적 간섭을 많이 받고 태어난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근원적으로 행복하지 못하다고 해요. 불란서의 유명한 산과의사 미셀 오당이라는 분은 지구의 생태적 미래는 인간의 아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태어나느냐 하는 데 달려있다고 말합니다. 자기의 마음이 평화롭고 자유로워야 우리가 타인이나 자연세계에 대해서 폭력적으로 대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굉장히 중요하고 근원적인 얘기이죠. 그런데 지금 현대 기술사회에서는 산파를 거의 볼 수 없잖아요. 산파가 저절로 없어진 줄로 아십니까? 미국의 의사협회라는 것은 원래 산파를 포함해서 자치적으로 건강을 돌보는 민간의 많은 지혜와 기술을 없애고 불법화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그래서 현대적 기술의학이 지배를 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서로를 돌보는 자주적인 능력들을 잃어버리게 된 겁니다.
옛날에는 아이를 낳고 애를 기르고 사람이 죽을 때 임종을 하고 장사를 치르는 게 비즈니스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중요한 통과의식이었고, 이런 의식은 전부 가족과 마을의 힘으로 치러냈잖아요. 지금은 인간생존에 필요한 모든 기초적인 것들이 전부 상품이란 형식으로 접근하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전부 돈을 벌지 않으면 죽는다고 하는 고정관념 속에서 살고 있어요. 당장 현금을 구해야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우리가 미친 듯이 살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나 공동체 속에서 살아간다면 사람과 사람끼리 돈 관계를 떠나서, 또 국가의 복지체제라는 것을 떠나서 우리가 자주적, 자치적으로 살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진정으로 안전하고 위엄있는 삶이 가능해집니다. 애써 저금하려고 할 필요도, 꼬불칠 필요가 하나도 없잖아요. 내가 일할 기운이 없어지면 동네사람들이 나를 돌보아줄 것이고, 내 죽은 뒤에 내 자식들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교육도 그래요. 오늘날 우리사회가 엄청난 교육지옥이 되어있는 것은 정말 배움에 대한 갈망 때문이 아니라는 건 우리가 다 아는 일입니다. 경쟁적으로 남을 제치고 남의 위에 군림하기 위해서, 아니면 남의 뒤에 처지지 않기 위해서 미친 듯이 달려가는 것 아닙니까. 이러니 우리 꼴이 늘 참혹하기 짝이 없어요. 그런데 공동체적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협동적으로 서로 도우면서 살아간다면 지금과 같은 교육도 필요없는 것이 됩니다. 본래 인간은 학교라는 제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삶의 현장 속에서 저절로 배움을 익히며 성장합니다. 그것이 오랜 인류사회의 경험이거든요. 학교교육이라는 것은 사회적 서열화를 전제로 하고, 또 그러한 차별적인 서열화를 강화하는 데 이바지할 뿐입니다. 그러니까 학교는 사람들이 서로 우애있게 사는 것을 원천적으로 방해하는 근대적 질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 아미쉬라는 독특한 공동체가 있다는 걸 여러분들도 알고 계시겠지요. 지금 수십만명이 주로 인력과 축력에 의지하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농사를 짓고 공동체를 만들어 살고 있는데, 그들은 수십년간 투쟁해서 미국 연방법원으로부터 자기 아이들을 미국의 학교에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권리를 인정받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수 있는 능력과 기본적인 셈법만 알면 족하지 더이상 교육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마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일 겁니다. 농사지으면서 수공업 제품 만들어 내고, 현대적 테크놀로지를 될수록 멀리하고, 텔레비젼은 말할 것도 없고, 전화도 집집마다 두고 살지 않습니다. 전화가 집집마다 있으면 가족의 해체를 가져올지 모른다고 동네에 공중전화 한 대씩 두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현명한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은 미국의 주류 사회처럼 살아가면 필연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소외와 차별이 생길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런 생활방식은 하느님에 대해서 불경(不敬)을 저지르게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저는 현대문명의 본질은 이 ‘불경’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 우리가 마시는 이 물이 좋으냐 나쁘냐, 이 물이 어느정도 오염이 되어있느냐 하면서 이른바 과학적으로 접근해서는 우리가 결국 이 기술사회의 논리에 말려들어갈 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맨날 갈팡질팡 할 수밖에 없어요. 중요한 것은 이 물을 하느님 앞에 바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죠. 동학에서는 깨끗한 물 한잔으로 한울님께 심고(心告)하라고 하잖아요. 물이 더럽다는 것은 하느님의 눈으로 봤을 때 우리의 삶이 죄악에 가득찬 것이라는 얘기가 되거든요. 그걸 무슨 약품으로 아무리 소독을 하고 정화를 한다 한들 우리의 삶의 야만주의와 불경함이 씻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다시한번, 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농촌 공동체를 살리고, 땅으로 돌아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런 생협활동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못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혼자서는 불가능하고 큰 의미도 없어요. 일본의 자연농법 창시자 후쿠오카 선생 같은 분은 대단한 양반이지요. 한사람의 사상가로서 오늘의 인류를 위해서 값진 가르침을 보여주는 사람이지만, 그 방법은 보편적인 것이 될 수가 없죠. 그분은 자연농법이라는 농법을 창시하고 그런 농법의 철학적 의미를 가르쳐주고는 있지만, 공동체의 의미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고, 그냥 산속에서 외롭게 살고 있어요. 아무리 사상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혼자서는 재미가 없어요. 에른스트 블로흐라는 독일의 철학자는 성경에 나오는 “하느님의 왕국이 너희의 가운데(among you) 있다”라는 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해요. 이 말을 잘못 번역해서 “너의 속에(within you)”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정확하게는 내 개인의 내부가 아니라 너와 나 사이에, 사람들과의 관계에 천국이 있다는 얘기라는 거죠. 그러니까 결국 여럿이서 같이 땀을 흘려 일하고, 같이 놀고, 서로 보살피면서, 함께 밥 먹고 사는 데서 사람다운 삶이 존재한다는 뜻이죠.
미국에 예수의 생애를 평생 연구해온 종교사학자로 존 도미니크 크로싼이라는 학자가 있는데, 이 사람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로서 예수를 꼭 볼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예수를 어떻게 신화화해왔든지 간에 성경에 나타난 예수의 가르침은 본질적으로 그 당시 예수의 실존적 상황에 깊은 관계가 있다는 관점이지요. 이 학자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핵심은 복음서를 통해서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은 한마디로 같이 밥 먹어라(eating together)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의 아픔을 낫게 해주는 것(healing)이라는 겁니다. 이것은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cure) 게 아니라 몸과 마음과 심령의 건강을 다 아우르는 포괄적인 치유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것도 단순히 의료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신적, 영적인 교감의 문제인 거죠.
그런데 크로싼이라는 학자는 이러한 복음서의 핵심적인 가르침은 근원적으로 당시의 지중해 연안지방의 유태 농민의 세계관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책 제목이《역사적 예수》인데 부제가〈지중해 연안의 유태인 농민의 생애〉로 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농민이라고 하면 절대로 대농(大農)을 얘기하지 않아요. 농민은 항상 소농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음식 나누어 먹는 것은 근본적으로 농민의 풍습이고 세계관이라는 거죠. 복음서에 보면 예수가 굉장히 급진적이잖아요. “천국은 이와 같으니” 하면서 드는 예수의 몇몇 유명한 비유 중의 하나에, 어떤 장자가 저녁밥을 해놓고 사람들을 초빙한 이야기가 있잖아요. 동네 부자들과 세력가들을 집으로 불러서 같이 저녁식사를 하기로 약속이 되어있는데 시간이 되어도 이 사람들이 안 와요. 그래서 하인을 보냈는데 전부다 바빠서 지금 못 온다는 전갈이 옵니다. 무슨 갑자기 할 일이 생겼다, 다른 약속 때문에 못 간다, 부자들이나 잘난 사람들은 항상 이렇습니다. 그래서 장자가 하인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저 큰 신작로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지 보이는 대로 데리고 와라, 그 사람들하고 같이 식사하자, 그렇게 말해요. 그런데 이 학자의 얘기를 들어보니까 이건 대단한 이야기예요. 당시도 위계사회이기 때문에 사회적 신분이 다른 사람끼리는 같은 식탁에 절대로 안 앉았답니다. 계급이 같고, 신분이 같고, 인종이 같고, 종파가 같아야 식탁에 같이 앉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신작로에서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데리고 와서 같이 식사하자는 이야기는 인간사회에 있는 모든 차별과 불평등성을 전부 근원적으로 부정하는 굉장히 혁명적인 선언인 셈이죠. 그런데 이 사상의 뿌리가 무엇이냐 하면 그게 바로 농민의 세계관이라는 겁니다.
제가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동양의 노자사상의 근본 뿌리도 농민의 세계관이라고 해요. 당시 중국은 이미 국가체제를 만들어서 왕이 있고 통치체제가 확립된 계급사회였지만, 중국의 변방에는 제도화된 통치체제도, 지도자도 없이 그냥 풀뿌리 민중들끼리 자유롭게 마을을 형성해서 살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바로 오랑캐란 이름으로 불리던 사람들입니다. 노자의 무위자연이라는 사상은 그런 사람들의 생활을 묘사한 것이라는 견해지요. 노자는 요순사회도 이미 아니라고 하잖아요. 아무리 어진 정치를 한다 하더라도 이미 국가체제니까 진정한 자주적, 자치적 민중 공동체는 아니지요. 청동기 시대 초기에 자발적으로 상호부양의 유대관계를 이루어서 살았던 농민의 세계관이 바로 도가사상의 뿌리라는 얘깁니다. 모든 사람이 아무 차별 없이 한 지붕 밑에서 같이 밥 먹는 대동세상 말입니다. 위계질서가 확립된 사회가 되면 말이 쉬워서 그렇지 자기 하인하고, 거지하고 같이 밥 먹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밥을 같이 먹는다는 근원적인 평등의 세계관, 즉 뿌리깊이 농민적인 가치를 우리가 상실했기 때문에 이 세상이 이렇게 지옥이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부분적으로 땜질을 한다고 해서 해결이 될 리가 없습니다. 며칠 전에 부시 대통령이 와서 전쟁은 안하겠다고 말했다고 해서 다들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모양이지만, 참으로 서글프고 비참한 이야기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민족의식을 발휘해서 우리도 힘을 길러야 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는 그러한 부국강병의 논리는 거꾸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사람들에게 정말 사람이 어떻게 사는 게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보여줄 만한 생활을 우리가 창조해야 합니다. 꿈같은 소리를 제가 하고 있는지 몰라요.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런 게 없겠는지 끊임없이 틈새를 비집고 찾아보면서, 이 야만적인 사회의 지배논리를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대로 그냥 체념하고 따라갈 수는 없잖아요. 우리가 정말 자식들을 사랑한다면 말입니다.
오늘 너무 심각한 얘기만 해서 아름다운 시를 한편 읽고 끝내겠습니다. 평생 농촌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간 프랑스의 시인 프란시스 잠이 쓴 시인데,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 싶어서 번역시집《새벽의 삼종에서 저녁의 삼종까지》(곽광수 옮김)를 가져 왔습니다. 제목이〈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로 되어있는 작품인데, 이 시에서 어떤 인간의 일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라고 시인은 생각하는지 한번 들어봅시다.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나무 병에
우유를 담는 일,
꼿꼿하고 살갗을 찌르는
밀 이삭들을 따는 일,
암소들을 신선한 오리나무들 옆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일,
숲의 자작나무들을
베는 일,
경쾌하게 흘러가는 시내 옆에서
버들가지를 꼬는 일,
어두운 벽난로와, 옴 오른
늙은 고양이와, 잠든 티티새와,
즐겁게 노는 어린 아이들 옆에서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한밤중 귀뚜라미들이 날카롭게
울 때 처지는 소리를 내며
베틀을 짜는 일,
빵을 만들고
포도주를 만드는 일,
정원에 양배추와 마늘의
씨앗을 뿌리는 일,
그리고 따뜻한
달걀들을 거두어들이는 일.
이런 ‘위대한’ 일들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저도 정말 간절해요. 얘기 그만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글은 지난 2월 23일 전주의 한울생협 2002년도 총회에서 했던 이야기를 정리한 것임.
2008.05.01. 100호를 내면서
녹색평론 통권 제100호 | 김종철
1991년 11월 말에 창간호를 낸 이래 두 달에 한번씩 책을 내다보니까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100호라고 해서 특별히 감상적인 기분에 잠길 이유는 없지만, 어떻든 한번도 결호(缺號) 없이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다는 게 우리 스스로도 약간 믿어지지 않는다.
애초에 우리는《녹색평론》이 몇년 정도만 계속될 수 있다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어느 정도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이고, 따라서 우리의 소임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녹색평론》을 통해서 우리가 하려는 작업은―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든―좀더 지혜롭고 용기있는 사람들에 의해 승계되어, 좀더 효과적으로 전개될 필요가 있다고 우리는 생각했던 것이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답답한 심정으로 잡지를 시작했지만, 우리 자신은 이 작업을 지속시킬 만한 실력이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행운인지 불운인지,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여러번의 위기가 있었고, 그때마다 더이상 잡지를 계속한다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간단히 말해서, 한번 올라탄 호랑이의 등에서 내려올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매호 잡지가 나오기를 기다려주는 열성적인 독자들 때문에 우리는 늘 잡지를 계속하는 것보다 그만두는 게 더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들에게는《녹색평론》이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과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느냐 마느냐를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창간 초기부터 우리는 그동안 이 사회의 저변(底邊)에 결코 무시 못할 어떤 정신적 갈증이 잠재되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한 갈증을 느껴온 사람들은《녹색평론》에서 불충분하게나마 위안을 얻고,《녹색평론》을 통해서 자신의 정신적 동지들을 발견하는 기쁨을 얻었다. 창간 몇년 후부터 전국 여러 지역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녹색평론 독자모임’은 완전히 독자들 자신에 의해 자발적으로 결성된 모임이었다. 이러한 독자들은 처음부터《녹색평론》이 단순한 ‘환경잡지’가 아니라는 것을 대뜸 이해했던 것이다.
사실, 창간 이후《녹색평론》이 줄곧 말해온 ‘고르게 가난한 사회’ 혹은 ‘공생공락의 가난’이라는 개념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생각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 입장을 막론하고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생산력의 증대 혹은 경제성장이라는 것을 인간의 역사적?사회적 진화의 불가결한 전제조건으로 파악하는 한, 전통적 의미에서 좌우의 정치적 이념은 서로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의 ‘진보진영’의 근본문제는 경제지상주의를 표방하는 지배세력에 맞서서 충분히 철저한 대안논리를 구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면서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들이 사회적 공평성과 복지의 전제조건으로 성장논리를 시인(是認)할 수밖에 없는 이상, 가혹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게 우선이라는 지배세력의 논리에 굴복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한, ‘경제’를 위해서 인간적 가치와 환경은 언제까지나 희생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이대로는 안된다고 할지라도, ‘대안’이 없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한, 암울한 상황을 벗어날 출구는 결코 보이지 않는다.
《녹색평론》이 계속 말해온 ‘공생공락의 가난’은 결코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적 논리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들은 본질적으로 보다 많은 자본, 기술혁신, 생산성 제고 따위로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관계의 발본적인 변혁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공존공영’이라는 개념을 포함하여, 무릇 모든 형태의 물질적 ‘번영’이라는 개념 자체가 공생의 논리와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는 근본적 인식의 공유일 것이다. 이것은 인간다운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물질적으로 부유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광범위하게 뿌리깊이 퍼져있는 맹목적인 믿음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그러한 해방이 결코 쉬운 것일 수는 없다. 우리는 지금 국가와 자본이 일체화된 세계에서 살고 있고, 국가와 자본은 본성상 끝없는 경쟁논리와 자기확대의 욕망으로 움직이는 메커니즘이다. 그러므로 ‘고르게 가난한 사회’를 말한다는 것은 자본의 지배에 대한 저항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국익’을 포함한 일체의 근대 국가적 가치에 대한 반역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일찍이 간디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자신도 “무책임하고, 미숙하고, 미쳤다”는 비난을 기꺼이 받아들일 각오를 하지 않는 한, ‘가난’을 옹호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책임있고, 성숙하고, 멀쩡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고 어리석은” 이 시대를 주도해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녹색평론》을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무책임하고, 미숙하고, 미친” 사람들과 함께 한층더 우리의 입장을 비타협적으로 견지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으로 100호 기념호를 펴낸다.
2011.11.01. 창간 스무돌을 맞으며
녹색평론 통권 제121호 | 김종철
수목(樹木)은 중력의 힘에 의해 아래쪽으로 향하지 않고, 오히려 중력에 역행한다. 생명이란 비협력주의가 아닐까?― 균터 안더스
창간 20주년을 맞는다. 되돌아보면 힘겨운 시간의 연속이었으나 어느새 20년이 흘러 여기까지 왔다. 창간 당시부터 지금까지 《녹색평론》의 규모나 살림살이는 별로 변한 게 없고, 생존을 위한 기반은 늘 불안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남았고, 사회 속에서 중요한 매체가 되기 위한 시도를 계속해왔다. 이런 시도가 가능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이 잡지를 성심껏 지원해주는 적지 않은 독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독자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녹색평론》이 실제로 얼마나 쓸모있는 일을 해왔느냐일 것이다. 이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물론 독자들의 몫이다. 그런데 이 점에 관련해서 무엇보다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것은 오늘날 언론이 처해 있는 위기상황이다. 언론은 지금 복합적 위기상황에 처해 있지만, 최대의 위협은 상업주의적 압력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정신적으로 무장되어 있다 하더라도 하나의 기업 혹은 경영조직체로서 언론은 우선 살아남아야 하고, 살아남으려면 비즈니스의 논리를 외면할 수 없다. 따라서 오늘날 미디어가 광고주라는 이름의 금권세력을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인습적인 사고, 편견, 이념적 편향에 의거하여 언론에 대하여 이러저러한 기대를 품고 있는 ‘미디어 소비자’의 욕구도 외면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언론 ― 매스미디어 ― 이 엄밀한 의미의 독립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지난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원래 언론·출판행위란 ‘반역’을 위해 시작된 활동이라는 사실이다. ‘반역’이란 물론 주류의 가치, 즉 지배적인 제도와 관습과 문화를 전면적으로, 뿌리에서부터 의심한다는 뜻이다. 서양에서 출판을 가리키는 말(edition)과 반역행위를 가리키는 말(sedition)이 동일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기성의 체제와 지배적인 가치를 옹호하는 언론은 예로부터 어용언론이라고 일컬어져왔다. 오늘날 언론이 광고주와 ‘미디어 소비자’에 기댈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언제라도 어용언론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론은 자신의 본래적 사명 ― ‘반역행위’ ― 을 스스로 배반하는 행위를 강요당할 위기상황에 항상적으로 처해져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운명을 회피할 수 있는 것은 소규모 매체밖에 없는지 모른다. 소규모일수록 외부압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녹색평론》이 감히 그러한 독립매체에 속한다고 주장할 염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주어진 여건 속에서 열심히 노력은 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후쿠시마 참사 이후 확연해진 원자력의 치명적인 문제와 그것을 둘러싼 온갖 허위, 속임수, 협잡에 대해서 대다수 미디어가 침묵하거나 미온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상황에서 《녹색평론》이 비판적인 물음을 계속 던질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작은’ 매체 특유의 독립성 덕분일 것이다.
《녹색평론》 독자들 중에는 ‘평론’이라는 이름에 위화감을 느끼는 이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평론’이라고 굳이 고집해온 까닭이 없지 않다. 그것은 이 잡지 창간의 주요 목적이 ‘저항’에 있었기 때문이다. ‘평론’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대상을 상대화하면서 철저히 의심하고, 질문하는 행위, 따라서 근원적인 의미의 저항을 뜻한다. 처음부터 《녹색평론》이 의도한 것은 무엇보다도 오늘날 한국사회와 세계 전체가 직면한 위기에 맞서서, 이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올바르게 질문하는 것이었다. 올바른 질문을 통해서만 올바른 방책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사회에는 실로 다양한 의견 ― 현실에 대한 분석과 진단, 해법들이 개진되고 있다. 우리가 묻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분석, 진단, 해법들이 과연 안심하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통적인 좌우의 이념과 논리를 가지고는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을 정당하게 설명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다는 판단 밑에서 작업해왔다.
예를 들어, 현재 이 나라의 ‘진보진영’이 거의 일치해서 제시하고 있는 ‘복지국가’ 논리에 대해서도 《녹색평론》은 계속 유보적인 태도를 견지해왔다. 물론 복지국가론이 나오게 된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복지국가론이 기본적으로 경제성장과 생산주의 이데올로기에 토대를 두고 있는 이상, 그것이 빈곤과 사회적 격차를 해소하는 방책으로서 정말 실효성이 있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복지국가 논리가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인지 극히 의문스럽다. 복지국가란 국가의 계속적인 세수(稅收) 증가를 전제로 해서만 실현 가능한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 세수 증가는 경제성장과 고용의 안정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석유공급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세계금융시스템이 뿌리에서부터 붕괴될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에서 경제성장이 계속되고, 전통적인 의미의 산업적 고용이 확대된다는 게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설령 그러한 기적이 비록 단기간은 실현된다 하더라도, 그 궁극적인 결과는 생태적 자멸행위가 될 것임은 명백한 일이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그렇다. 많은 논자들은 이것을 한국사회가 직면한 가장 긴박한 문제로 파악하고 있다. 그들의 우려는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현상이 계속된다면 조만간 경제활동 인구가 줄어들고, 세대 간 인구비율 균형이 붕괴되어 최소한도의 복지국가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논리에 근거해 있다. 그러나 이 논리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내포되어 있다는 게 문제이다. 그 결함이란 그들이 미래를 단순히 현재의 연장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데 있다.
우리가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될 것은, 오늘날 온갖 징후로 보아서, 앞으로의 세상은 결코 현재상황의 단순한 연장이나 확대된 모습이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조금만 깊이 생각해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거의 전적으로 값싼 석유에 의존해 있는 현재의 산업, 금융, 교역, 에너지, 식량 시스템은 물론이고, 이와 같은 물질적 토대를 기반으로 한 정치, 문화, 교육 등 중앙집권적 시스템 전부가 지금과 같은 형태로는 더 유지될 수 없는 날이 조만간 닥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우려는 순전히 공리주의적인 경제논리에 의거한 것이다.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그것은 또한 심히 비윤리적인 인간관·세계관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인간은 이 세상에 어떤 시스템에 필요한 도구가 되려고 태어나는 게 아니다. 물론 개인이 행복한 삶을 누리자면 복지시스템을 협동적으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개개인의 독특한 인격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행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시스템은 야만적인 폭력이 되고, 개인은 시스템에 복속된 부품으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온 세계가 갈수록 인구과잉 문제로 고뇌가 깊어지는 상황에서, 한국경제의 활력을 위해 인구증가가 계속돼야 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기도 하지만, 명백히 비윤리적인 사고방식이다. 세계 전역에 걸쳐 인간생존의 자연적 토대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어디서든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기본적으로 환영해야 할 일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인구감소 자체가 아니라, 왜 지금 한국사회에서 출산 저하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이 사회에서 아기를 낳아 기르기 위해서 초인적인 용기와 고난을 각오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왜, 어쩌다가 이 사회가 미래로 가는 문을 닫아버린, 절망적인 사회로 떨어져버렸는가 ― 저출산 현상에 관련해서 정말로 필요한 것은 이런 근본적인 물음이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현재 우리가 흔히 보고 듣는 ‘진보적’ 사상과 ‘개혁적’ 담론은 거의 예외 없이 근시안적 현실진단과 피상적인 처방에 머물러 있다. 이 불모적인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아마도 최대 원인은 그러한 사상·담론 속에 에콜로지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결여되어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한국의 지식사회에는 아직도 에콜로지에 무감각하거나 무관심한 이들이 허다하다. 많은 지식인들은 아마도 에콜로지문제는 기술적으로 극복 가능한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아니면, 그들은 당장 급한 것은 먹고사는 경제문제이지, 에콜로지는 이차적인 문제라고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 ‘경제문제’가 이제는 ‘에콜로지’를 고려하지 않고는 한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는 국면에 지금 우리 모두가 처해 있다는 점이다. 일찍이 독일 시인 브레히트는 편협한 근시안적인 이해관계에 사로잡혀 전쟁과 학살로 치닫고 있던 자기 시대의 상황을 “자신이 앉아있는 나뭇가지를 톱으로 베고 있는” 어리석은 인간의 행위로 묘사한 바 있다. 이것은 브레히트 시대보다도 오히려 오늘의 상황을 더 적실하게 드러내는 예리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미 늦었는지 모르지만 이제라도 ‘경제’에 관한 정의를 다시 내리고, 그것이 사회 전체의 새로운 상식이 되도록 하는 노력이다. 그동안 ‘경제’라고 하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지난 200~300년간 화석연료·핵에너지에 기반한 무한한 욕망 추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온 개념체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착오적인 ‘경제’ 개념을 척결하지 않는 한, 갈수록 심화되는 환경―자원―에너지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고사하고, 최소한도의 기초적 생존·생활도 불가능해지는 날이 곧 다가올 게 분명하다. 재생 불가능한 자원과 에너지에 의존하여 무한한 경제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착각이자 망념이다.
시급한 것은 경제성장, 생산력 증대, 대량생산/대량소비를 통한 ‘발전’ 혹은 ‘진보’의 추구라는 낡은 공식을 과감하게 버리고, 우리의 생활방식을 자연의 본성과 리듬에 순응하는 순환적인 패턴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요컨대 산업자본주의 이전, 인류의 오랜 생활방식이었던 순환경제 시스템의 복구·재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순환경제란 단순히 적게 생산하고, 적게 소비하는 생활패턴을 뜻하는 게 아니다. 절제하고, 절약하는 것은 오랫동안 인류사회에서 기려온 덕행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어느 때나 존중돼야 할 생활자세이지만, 그러나 지금 우리가 직면한 위기는 개개인이 물자를 절약하는 미덕을 발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무리 절약하더라도 재생 불가능한 자원은 언젠가는 고갈되기 마련이고, 오염된 환경은 결국 거주 불가능한 공간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재생 불가능한 자원인 지하(地下)자원 ― 원자력을 포함한 ― 에 의존하지 않고, 영구적 지속이 가능한 태양에너지 중심의 지상(地上)자원에 의존하는 생활패턴의 선택이다.
문제는 이러한 선택이 가능하냐 하는 것이다. 이 선택은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경제’의 영역을 넘어서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순환적 생활패턴을 선택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자와 에너지 조달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총체적 방식에 있어서의 근본적 변화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결국 정치적 선택과 결정이 필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용문제만 해도 그렇다. 좁은 의미의 경제문제로서만 볼 때, 부당해고, 실업, 비정규직 등 ‘일자리’ 문제는 자본과 노동 간의 문제로 환원되기 쉽다. 그리고 그 차원에 머물러 있는 이상, 고용문제의 해결은 난망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격심한 경쟁을 강요하는 글로벌경제시스템 속에서 기업은 단지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이윤 증대를 위해서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기업은 윤리적 덕을 실천하기 위한 조직이 아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운운하는 것은 사실 무의미한 말이다. 기업에 의한 기부, 지원, 자선사업이란 것도 결국은 더 많은 이윤 확보를 겨냥한 간접적인 투자행위일 뿐이다. 오늘날 기업 쪽에서 볼 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소비자의 존재이지 더 많은 노동자의 존재는 분명 아니다. 이미 시장은 과잉 생산물로 넘쳐나고, 자동화·기계화의 급속한 발달로 생산현장에서의 인간노동력에 대한 수요는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에는 아직도 초저임금 노동력을 제공하고, 기업의 방종한 행태를 묵인하거나 조장하는 곳이 허다히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애국심 따위에 호소하는 것으로써 기업의 해외이전을 막아낼 도리는 없는 것이다. 이 상황은 계속 확대·심화될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고용문제의 전망은 실로 암담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970년대 전태일의 시대에 노동자는 ‘착취’를 당했으나, 지금 김진숙의 시대에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것은 노동으로부터의 ‘배제’이다. 한때 이 나라 서민층 아이들의 꿈은 대통령, 판사,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규직’이 아이들(그리고 부모들)의 꿈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 더 많은 성장을 통해서 극복한다는 방법은 이미 효력을 상실했다. ‘복지국가’ 시스템을 통한 극복이라는 것도, 그것이 불가피하게 더 많은 성장을 전제로 하는 시스템인 이상, 역시 지속 불가능한 방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산업사회의 주류였던 방법, 즉 대규모 산업시스템 속에서 일자리와 생계를 구하는 것을 그만두고, 소규모 지역 중심, 자립적 생산·생활협동체들을 광범하게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틀 속에서 태양에너지에 기반을 둔 순환경제를 구축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게 아니다. 문제는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실천과 확산을 가로막는 기득권 세력의 방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이다. 그러니까 결국은 민주주의의 확립, 즉 보편적 이성이 존중을 받고, 합리적 상식이 통할 수 있는 정치시스템을 확보하는 게 관건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독일은 흥미로운 참조사례를 제공한다. 후쿠시마 사태 후 원자력을 2020년까지 모두 폐기하기로 결정한 독일의 경우를 보면, 진정한 선진사회란 결국 합리적 상식이 살아있는 사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체르노빌에 이어 또다시 묵시록적인 핵 참사를 목도하면서 독일사회는 더는 원자력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은 정상적인 사고력을 갖춘 인간사회라면 극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당연함이 쉽게 통하지 않는 게 또한 오늘의 세계 현실이다. 미국, 프랑스, 러시아, 영국은 거론할 필요도 없지만, 이 기회를 원자력 강국으로 도약할 기회로 삼겠다는 한국정부나 아직도 원전문제에 대해서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일본정부를 보면, 오늘날 이 세상이 악마적인 정신에 의해 깊이 오염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만큼 독일의 자세는 단연 돋보인다. 특히 주목할 것은 메르켈 독일 수상이 원전문제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안전위원회’와 함께 ‘윤리위원회’를 구성했다는 것, 그리고 윤리위원회 위원장에 자신의 정치적 적수를 임명함으로써 정파의 이해관계를 초월한 공정한 결론을 원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단지 양심적인 행위라기보다 매우 합리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자면 비판적인 관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그 ‘윤리위원회’에는 원자력에 관여하고 있는 전문가·관계자는 단 한 사람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윤리위원회 구성 멤버는 가톨릭의 추기경, 프로테스탄트 목사, 《위험사회》의 저자 울리히 벡을 포함한 몇몇 학자, 소비자 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교수 등 17명이었다. 이 위원회에 참여했던 베를린자유대학 교수 미란다 슈라즈는 지난 6월 일본에서 행한 강연에서, 윤리위원회가 이렇게 구성된 이유는 “어떠한 에너지를 사용할 것인가는 전력회사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결정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요 정책을 이른바 관계당국이나 기업 혹은 전문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생활하는 주체들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논리지만, 이 당연한 논리가 새삼 극히 신선하게 들리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우리가 너무나 오랫동안 비이성과 몰상식이 활개를 치는 사회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독일 연방의회 의석의 절반이 정당별 비례대표제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도 독일의 ‘상식’을 말해주는 증거인지 모른다. 주의해야 할 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의회제 정당정치는 사실상 금권과두(金權寡頭) 정치를 위한 효과적인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선거라는 것은 기득권층의 영구집권을 돕는 합법적인 수단에 불과한 것이기 쉽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선거를 폐지하고, 의회제 정당정치를 방기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현행의 제도 내에서 최대한 민주주의의 공간을 넓혀가는 것이다. 그러한 시도의 하나가 비례대표제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1983년에 독일 연방의회에 녹색당이 진출하고, 2011년에 그 의회에서 핵발전소의 단계적 폐쇄를 압도적 표차로 가결하는 게 가능했던 것은, 독일사회의 일반적인 상식 이외에, 그 정치시스템이 갖는 합리성에도 기인하는 바가 컸을 것임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의석의 절반이 비례대표제에 의해 구성되었기 때문에 독일의회에는 이익집단, 특히 기득권층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적 선택과 결정의 공간이 그만큼 확보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독일이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게 아닐 것이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는, 아직 불완전한 상태일지라도, 비교적 합리적인 정치시스템이 존재할 때 그 사회가 어떻게 좋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지, 하나의 모범적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 인간ㆍ자연ㆍ공동체… 생태적 파국 막으려 ‘공생의 윤리’ 펼치다
김종철의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
문학평론가서 생태사상가로
1991년 격월간지 ‘녹색평론’ 창간
생태학과 생명사상 담론 등 주도
사회이슈 비판적 성찰로 대안 모색
한국적인 생태사상 추구
자연과 인간, 생명과 사회 관계
협동 공동체ㆍ상부상조 사회 통해
공존 모색하는 생태학적 계몽 주력
생태학은 현재ㆍ미래 동시 사상
자연 파괴부터 기후 변화까지…
오늘날 ‘지구의 어둠’ 똑바로 인식
정신적 교감 공동체로 해결 노력
김종철, 이름 석자는 곧 '녹색평론'과 동일하다. 김종철은 생태주의자인 동시에, 머리만이 아닌 몸으로도 그 주의를 증명해 보이려는 지식인 중 한 명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사상을 공부하다 보면 취향이라는 게 생긴다. 비슷한 위상에 놓인 지식인들 가운데 관심이 더 가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 미셸 푸코보다는 위르겐 하버마스에, 에릭 홉스봄보다는 토니 주트에, 밀란 쿤데라보다는 움베르토 에코에 더 애착이 간다. 왜일까. 아마도 그 까닭은 내가 하버마스와 주트와 에코의 사상에 더 깊게 공감하고 그로부터 의식적ㆍ무의식적으로 더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터다.
한국 현대 사상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해온 지식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문학평론가 김종철이다. 요즘에는 생태학자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린다. 김종철을 내가 존경하는 까닭은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생태사상가이기 때문이다. 더하여, 진리에 대한 그의 태도 또한 내게 작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지식인의 덕목으로 신념윤리를 제시한 바 있다. 행위의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게 정치가의 책임윤리라면, 옳고 그름의 진리를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하는 것이 지식인의 신념윤리다. 우리 사회에서 이 신념윤리에 가장 충실한 이로 나는 김종철을 꼽고 싶다. 문학평론가에서 생태사상가로의 지적 여정에서 그와 언제나 함께한 것은 인간과 자연의 존중이라는 지식인의 양심이었다.
문학평론가에서 생태사상가로
김종철은 1947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다.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영남대 등에서 가르쳤다. 1970년대 이후 김종철은 백낙청 염무웅 김현 김병익 유종호 김우창 등과 함께 문학평론가로 활동했다. 1978년에는 문학평론집 ‘시와 역사적 상상력’을 발표하기도 했다. 김종철의 문학평론에 대해 김우창은 “주어진 대상의 가능성을 철저하게 검토함으로써 어떠한 결론에 이르려는 그의 논리의 끈기는 당대에 달리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다고 고평(高評)했다.
김종철이 지식사회에서 관심을 크게 모은 것은 1991년 격월간지 ‘녹색평론’을 창간한 이후부터였다. 그는 ‘녹색평론’의 발행인이자 편집인의 역할을 맡았고, 생태학과 생명사상 담론을 주도해 왔다.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1999), ‘간디의 물레’(1999), ‘땅의 옹호’(2008),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2008), 그리고 ‘발언 IㆍII’(2016) 등은 그 동안 김종철이 발표한 저작들이었다.
이 가운데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는 ‘녹색평론’을 펴내면서 쓴 서문들을 모은 것이다. 서문 모음집이라고 해서 이 책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각 권의 ‘녹색평론’을 대표하는 글들인 만큼 김종철 사유의 넓이와 깊이를 엿볼 수 있다. 그는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전대미문의 생태학적 재난은 (...) 서구적 산업문명에 내재한 논리의 필연적인 결과로서의 사회적, 인간적, 자연적 위기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 이 지구상에서 사람이 삶을 영위한 올바른 방식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근본적으로 성찰할 것을 요구하는 진실로 심오한 철학적, 종교적 문제에 직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어 김종철은 강조한다. “우리와 우리의 자식들이 살아남고,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진실로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협동적인 공동체를 만들고, 상부상조의 사회관계를 회복하고, 하늘과 땅의 이치에 따르는 농업 중심의 경제생활을 창조적으로 복구하는 것과 같은 생태학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조직하는 일밖에 다른 선택이 없다.”
1991년 11월 ‘녹색평론’ 창간호 서문에서 펼친 김종철의 생각이다. 오늘날에도 경청할 만한 주장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외려 설득력이 더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의 ‘책머리에’에서 그는 경고한다. “인간적인 덕성과 자질을 뿌리로부터 부정하는 물신주의의 일방적인 위세 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지는 인간관계, 그에 따른 인간성의 황폐화... ‘근대의 어둠’은 훨씬 더 깊어졌다고 할 수밖에 없다.”
1991년 녹색평론 창간 당시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녹색평론 창간호.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에서 다뤄지는 주제들이 이런 생태학적 분석과 처방만은 아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외환위기와 IMF 사태, 황우석 사건과 생명공학, 월드컵 거리 응원과 공동체, 그리고 한미 FTA 등에 이르기까지 1990년대 이후 우리 사회를 달궜던 주요 이슈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지속 가능한 대안을 모색한다. 길지 않은 서문들의 모음집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근대에 어둠’에 맞서는 생태학적 계몽과 인문학적 비판정신을 선사한다.
정신적 교감의 공동체를 위하여
‘발언 IㆍII’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김종철이 언론에 발표한 글들을 모은 것이다. 두 권으로 이뤄진 이 책은 자연과 인간, 생명과 사회, 미래와 대안에 대해 더욱 원숙한 통찰을 선보인다. 그는 말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과제는 (...) 자연과 사회적 약자를 끊임없이 파괴하고 희생시키지 않고는 한 순간도 지탱할 수 없는 이 비인간적인 시스템을 어떻게 벗어날 것이며, 그리하여 조금이라도 더 인간적이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 문제를 안고 이 암울한 시대를 비통한 심정으로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정신적 교감의 공동체일 것이다.”
김종철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는 무위당 장일순이다. 장일순은 우리 사회에서 환경과 생명의 소중함을 선구적으로 일깨워준 사상가였다. ‘녹색평론’은 장일순의 글들을 모아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를 편집해 출간하기도 했다. 김종철은 최시형에서 장일순으로 이어지는 생명사상을 서구 생태학 담론과 접목시켜 한국적 생태사상을 모색했다.
김종철의 생태사상은 서구의 ‘심층생태학’에 가깝다. 하지만 ‘사회생태학’과 ‘정치생태학’을 경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협동의 공동체, 상부상조의 사회관계, 연대와 협력에 기반한 호혜적 경제, 생태적 생활의 조직화다. 우리 사회와 문화 속에서 인간과 자연,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공존 및 공생을 모색하는 생태학적 계몽이 김종철이 추구해온 한국적 생태사상이다.
어느 나라든 사상가에겐 두 그룹의 독자가 있다. 현재의 독자뿐만 아니라 미래의 독자도 존재한다. 김종철은 현재의 독자는 물론 미래의 독자에게 그가 말한 ‘정신적 교감의 공동체’를 위한 생태학적 메시지들을 타전한다. 우리 사회에선 드문 미래지향적 사상가는 바로 김종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생태사상의 미래
서구 인문ㆍ사회과학에서 생태학은 아르네 네스의 ‘심층생태학’, 머레이 북친의 ‘사회생태학’, 앙드레 고르의 ‘정치생태학’으로 분화되면서 발전해 왔다. 심층생태학이 환경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사유 방식의 근본적 전환을 역설한다면, 사회생태학은 의식 변화와 제도 개선을 동시에 강조한다. 그리고 정치생태학은 자본주의 생산 및 소비체제의 급진적 개혁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생태사상과 그 대안에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가 공존한다. 단기적 시각에서 볼 때는 생태학적 대안이 원칙은 옳으나 다소 한가로운 이상적인 주장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 시각에서 볼 때 생태학적 대안은 이상주의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진정한 현실주의적 주장으로 파악할 수 있다.
녹색평론 서문을 모아 펴낸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
김종철의 생태사상이 갖는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가 기존의 생산과 소비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아가, 이 지속 불가능한 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선 무엇보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대한 우리의 물질주의적 의식 및 문화를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하는 것도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김종철은 절박하게 주장한다.
“지금 세계는 벼랑 끝에 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임박한 생태적 파국이다.(...)인간은 자기 자신의 소멸을 자초하고 있는 소행성인지도 모른다. (...) 인간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아남으려면 지금 절실한 것은 장기적인 비전과 공생의 윤리이다.”
자연 파괴에서 기후 변화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지구의 미래는 암울하다. 장기적 비전과 공생의 윤리를 탐구하는 생태학은 현재의 사상인 동시에 미래의 사상이다. ‘근대의 어둠’을 올바로 인식하며 그 근본적 해결책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 ‘정신적 교감의 공동체’를 일궈가야 하는 것은 신념윤리를 가진 지식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한국일보 2018.08.13.
2019.09.01.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 우리는 왜 질문해야 하는가
녹색평론 통권 제168호 | 김종철
김종철 ― 본지 발행인. 이 글은 2019년 6월 29일, 시 전문 계간지 《신생》 창간 20주년을 기념하여 부산일보 소강당에서 행한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근본주의’라는 꼬리표
《신생》 창간 20주년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전에 《신생》의 초대를 받아서 부산에 와서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간 적이 있는데, 오늘 다시 여러분들을 뵙습니다. 이 척박한 땅에서 생태주의를 지향하는 시문학 잡지를 20년 동안이나 발간해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더욱이 지금은 날이 갈수록 인쇄문화가 위축되어가고, 실제로 책을 보는 독자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문화적 상황이 열악해질수록, 비록 소수일지라도 진지한 지적·예술적 작업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 이들의 노력을 결집시키는 공론의 장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창간 20주년을 맞는 《신생》의 발행인과 편집진의 그동안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오늘 제가 맡은 강연 제목은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입니다. 이건 실은 요 며칠 전에 나온 저의 새로운 책 제목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녹색평론》과 그 밖의 지면들에 발표했던 글 중 일부를 추려서 묶은 책인데,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제목을 그렇게 붙였습니다. 막상 그렇게 정하고 보니까, 지난 30년 동안 제가 해왔던 작업들을 총괄적으로 드러내는 제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제가 지난 28년간 《녹색평론》을 발간하고 그 밖의 일들을 해온 것은 무슨 학술적인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당면한 생태위기와 그것과 긴밀히 관련된 사회적·실존적 위기를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돌파할 것인가, 라는 어디까지나 실천적인 목적을 위해서였습니다. 따라서 제게 늘 중요했던 것은 사태를 원리적으로 진단하고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갈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하면서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하고, 그것을 설명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색평론》 창간 이후 지금까지 저한테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있습니다. ‘근본주의자’라는 호칭 말입니다. 그런데 외람된 말이지만, 《녹색평론》을 꼼꼼히 읽어보고 그런 말을 하는지 저는 늘 의문입니다. 저마다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우리가 남들이 하는 일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와 같은 사람을 보고 ‘근본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기 전에 제가 쓴 글이나 발언을 조금 성의 있게 들여다보고 비판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게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근대’에 대한 물음의 결핍
어쨌든 ‘생태위기’는 제가 수십 년 동안 붙들고 있는 화두라면 화두입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녹색평론》 창간 당시에는 우리의 자연환경이 갈수록 오염되고 파괴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모두 알고는 있었지만, 조만간 생태계 전체가 붕괴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 점에 대해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소수의 예민한 사람들은 내심으로 걱정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공론화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녹색평론》 창간사에서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지금부터 20~30년쯤 뒤에는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게 우리들에게 축복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저주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도, 이게 설마 30년 후의 실제 현실이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실로 엄중하게 돼버렸습니다. 요즘은 아무리 둔한 사람도, 특히 기후변화에 대해서 꺼림칙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어떻게 방향을 전환해야 할지 깊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따라서 사회적 공론화도 아직은 너무나 미약하다는 점입니다. 특히 언론이 이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게 큰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주요 언론의 기자들이라면 이 나라의 중요한 지적 엘리트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게을러서 그런지 무지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언론의 막중한 영향력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런데 냉정히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은 언론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의 정신적·문화적 풍토와 큰 관계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생각에는, 우리 사회가 이 문제에 이토록 둔감한 것은 그 배경에 좀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진보파’ 지식인들의 관심사는 경제민주화, 남북문제 혹은 통일문제, 친일파 청산 문제, 노동문제나 복지문제, 교육문제, 성평등 문제 등등, 다양한 범위에 걸쳐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늘 열정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들은 각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기존의 삶의 원칙과 관습을 근본적으로 변경할 필요는 없습니다. 좀더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투입하거나 기술의 혁신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는(혹은 적어도 해결을 기대할 수 있는) 문제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태위기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생태위기라는 것은 지금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삶의 어딘가에 부분적으로 고장이 난 사태가 아니라, 지난 수백 년 동안 끊임없이 성장을 해온 자본주의 산업문명, 즉 ‘근대문명’의 존립 방식이 총체적으로 빚어낸 재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올바른 대응은 근대문명 그 자체를 근원적으로 묻는 작업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작업은 지금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현대사회라면 어디서든 다급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현대인은 예외 없이 생태적 파국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근대적 제도와 관행에 오랫동안 익숙해져온 사회에서 근대문명 자체를 근원적으로 성찰하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한국사회처럼 이른바 ‘압축적 산업화’를 통해서 비로소 ‘인간다운’ 삶을 누리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압도적 다수를 이루고 있는 사회에서는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식인들에게는 좀 다른 면이 있어야 할 텐데, 한국의 지식사회에는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근대문명 그 자체를 물어야 한다는 관념이 유독 심하게 결여되어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가장 우스꽝스러운 예를 들어볼까요. 심심하면 고개를 들고 나오는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논쟁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식민지근대화론이란 한국사회가 근대화를 이루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계기는 일제 식민통치였다는 주장에서 출발합니다. 즉, 식민지 지배를 받는 동안에 한반도에서 경제가 괄목할 만하게 성장하고, 그와 더불어 근대적 제도와 관행이 이 땅에 발붙이기 시작했다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이에 맞서서 거세게 반론을 펴는 민족주의적 성향의 지식인들의 주장도, 제가 보기에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보다 본질적으로는 더 나을 게 없습니다. 그들은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기 이전에 이미 조선사회에 자본주의적 근대의 싹이 터서 나름대로 진전되고 있던 상황이었다고 말하고, 그 상황에서 일제에 의한 침략으로 조선의 자생적인 근대화의 싹이 잘렸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식민지근대화론이나 자생적 근대화론이나 ‘근대’라는 것을 뭔가 대단히 좋고 가치 있는 것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입장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발전사관의 덫
실제로 서구에서는 근대라고 하면, 그것은 그냥 시대구분 개념으로 사용되는 것일지 몰라도, 서구에 의한 침략을 통해서 근대화를 경험해온 비서구 사회, 그중에서도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근대라는 것은 단순히 시대구분을 위해 사용되는 중성적인 용어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의 경우를 두고 생각해보더라도, 우리가 이 ‘근대’라는 말을 듣거나 사용할 때는 우리의 뇌리에서는 거의 자동적으로 보다 개화된 어떤 것, 보다 문명화된 어떤 것, 보다 향상된 어떤 것, 보다 가치 있는 어떤 것이 연상됩니다. 즉, 우리의 내면에서는 이미 근대라는 것은 ‘가치 개념’으로 깊이 정착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근대라는 말을 쓰거나 들으면,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지난 100년 남짓 우리가 겪어온 굴욕의 역사를 반추하게 되고, 우리들의 내면 속에 아직도 그 굴욕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컨대, 우리는 착잡한 감정 없이 근대를 생각할 수 없는 인간들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근대’란 단순한 시대구분용 어휘일 수 없다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의 지식계 일부에서는 이른바 ‘이중과제’라는 기치를 내걸고 ‘근대에의 적응과 근대의 극복’을 동시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거기서도 역시 ‘근대’라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거쳐야 할 역사적 단계로 상정되어 있습니다. 이 ‘이중과제’를 말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근대를 좋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불분명하지만, 이들도 역시 근대를 어떻든 한번은 거쳐야 할 단계로서 간주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역사를 고대, 중세, 근대 등으로 구분하는 이른바 ‘발전사관’에 동조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근대라는 것이 많은 부정적이고 불건강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으나 어쨌든 인간의 물질적 생활수준의 향상을 가져온 것은 분명한 만큼 근대 그것의 역사적 공적은 인정해줘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어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사고방식에 찬성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역사라는 게 발전하고 진보한다는 사고 자체가 문제라고 저는 봅니다. 우리가 고대, 중세, 근대…, 라는 식으로 인간 역사를 시대적으로 구분하면 자기도 모르게 걸려드는 덫이 있습니다. 즉, 고대보다는 중세가, 중세보다는 근대가 좀더 나은 삶을 약속하거나 보장하는 시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착각에 불과합니다. 물론 우리가 무엇을 기준으로 해서 인간의 삶을 볼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단순히 재화와 서비스가 풍부한 생활이 좋은 삶을 판단하는 잣대가 된다면, 당연히 근대가 가장 좋은 시대임에 틀림없겠지요(물론 ‘민초’들의 입장에서는 근대문명이 가져다주었다는 ‘풍요로운’ 물질생활이라는 것도 실상은 한갓 미신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실제로 근대문명의 혜택을 누려온 인구는 전체 인류의 15%를 넘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잣대, 예를 들어 사람이 사람끼리 돕고 배려하면서 살아가는 생활이야말로 정말 좋은 삶이라고 한다면, 근대는 가장 열악한 시대로 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따져 들어가면, 근대는 물질적 생활의 편의성이나 풍요로움이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온갖 면에서 가장 비인간적일 뿐만 아니라, 또한 가장 어리석고 부조리한 시대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근대는 지속 불가능한 생활방식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유지·확대하기 위해서 온갖 무리수를 쓴 나머지 이제는 마침내 인간 생존의 자연적 토대를 전면적으로 교란·붕괴시키는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근대문명이 벼랑 끝에 이르렀다는 것은 누구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인류가 살아남고, 인간다운 삶이 최소한이나마 유지될 수 있는 상황을 지속시키려면, 근대문명을 넘어서 생태문명을 재창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생태문명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벽은 우리들 뇌리 속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 고정관념, 즉 역사는 보다 나은 단계로 발전해간다는 이른바 발전사관과 이에 결부된 시대구분입니다. 근대문명의 본질을 정확히 포착하고, 생태문명을 재창조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발전이니 진보니 하는 관념적 장벽부터 깨뜨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역사는 일직선적으로 전개되는 것도 아니고, 어떤 목표를 향해서 발전적으로 나아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냉철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사회에 도달해야 할 최종적인 목적지가 있다는 생각이나, 그 목적지를 향해서 역사가 부단히 움직여 나간다는 생각은, 간단히 말하면, 근대적 미신입니다. 실제로 18세기 서구에서 소위 ‘계몽사상가’들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동서양 어디서나 발전사관이라는 것은 낯선 것이었습니다. 세계사란 ‘절대정신’의 자기전개 과정이라고 규정짓고는 세계사의 주역은 어디까지나 유럽인이라고 천명했던 헤겔이나, 그 헤겔식의 사고를 이어받아 인간 역사를 최종적인 인간해방을 위한 투쟁의 과정으로 파악해온 맑스주의적 역사관 역시 그 사상적 모태는 계몽사상이었습니다. 이러한 계몽사상 때문에 ‘근대’는 지구사회 전체에―제국주의적 지배를 통해서라도―확산되어야 할 ‘문명적’ 가치로 인식되어왔고, 그 인식의 지배 밑에서 지난 수 세기 동안 세계 전역의 민초들의 삶이 끊임없이 짓밟히고, 자연생태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온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인간 역사를 굳이 시대적으로 구분해야 한다면, 단순히 ‘비근대’와 ‘근대’로 나눌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흔히 근대 이전을 ‘전근대’라고 표현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근대 이전의 삶은 어딘가 미개하고 야만적인 제도와 관습이 지배하던 시대,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개화’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이 경우 근대화란 바로 문명화의 다른 이름이죠. 그런데 잘 생각해봅시다. 자연 만물과 사회적 약자들을 오로지 자신의 이기적 욕망 충족의 이용 대상으로만 간주하여 끊임없이 수탈·착취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존립기반 자체를 스스로 허물어뜨리고 있는 자멸적인 체제가 바로 근대문명입니다. 그런 시스템을 오랫동안 ‘문명적’인 것으로 간주해왔다는 사실이야말로, ‘근대인’의 정신상태가 얼마나 정상이 아닌지를 단적으로 알려주는 증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태문명과 농경적 감수성
이제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근대’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그 지속 불가능성입니다. 왜냐하면 근대란 자신의 생존기반을 끊임없이 부수고 짓밟지 않으면 한순간도 유지될 수 없는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근대문명을 뒷받침해온 것은 재생 불가능한 자원들이었습니다. 수십만 년에 걸친 호모사피엔스의 생존 기간 중 불과 200~300년 정도의 짧은 기간에 ‘근대문명’은 주로 지하에 매장된 재생 불가능한 자원들을 거의 고갈시켜버렸고, 그 자원 중 화석자원들이 근대문명의 유지와 확산을 위한 불가결한 에너지원으로 무절제하게 남용됨으로써 기후변화라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대두된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싫든 좋든 이 근대문명을 종식시키고, 어쨌든 생태문명을 시급히 재창조해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여기서 제가 ‘재창조’라는 말을 쓴 것은 까닭이 있습니다. 즉, 생태문명이라는 것은 새삼스럽게 우리가 창안할 필요도 없는, 오랜 세월 인류가 살아온 기본적 생활양식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인간 역사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비근대적’ 삶을 누려왔습니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그 비근대적 삶이란 기본적으로 재생 가능한 자원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생활이었습니다. 따라서 큰 이변이 없는 한, 그것은 이 지상에서의 인간의 영속적인 삶을 보장하는 생활양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생태문명의 재창조란 ‘근대’가 이 세계를 전면적으로 지배하기 이전의 거의 모든 토착적 혹은 전통적인 삶의 복구를 통해서 또하나의 ‘비근대적 문명’을 창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복구는 단순한 복원이 될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근대’를 통과해오는 동안 불가피하게 손상된 자연적 및 사회적 질서를 수선·치유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인류 사회에 축적되어온 갖가지 창조적인 지혜와 경험과 기술을 살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제가 ‘재창조’라는 용어를 강조하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생태문명을 재창조해야 한다면, 그 문명은 기본적으로 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문명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류 역사를 돌아볼 때에도, 대부분의 문명적 생활은 기본적으로 농사에 의존하는 생활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농사 중심의 생활은 자연의 순리에 따른 ‘순환적인 생활방식’으로서 거의 유일한 삶의 형태입니다. 물론 신석기시대에 접어들어 농업문명이 시작되면서 비록 국지적이지만 지구 생태계에 상당한 정도의 훼손이 가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터놓고 말해서 지금 우리가 구석기시대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선택입니다. 그리고 구석기시대의 수렵채취민의 생활이 아무리 많은 미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에 못지않게 농업문명 시기 동안에 인간이 쌓아온 덕성들, 예를 들어 자연에 대한 공경과 순응적 태도, 근면성과 인내심, 자기절제와 겸손, 예의작법 그리고 무엇보다 평등과 자치, 자립의 관념 등등은 인간다운 사회를 위해서는 결코 빠뜨릴 수 없는 매우 소중한 덕성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농업문명도 절제를 잃으면 땅을 난폭하게 다루고 그 결과로 사막화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고대 문명 가운데는 토지 관리를 제대로 못한 끝에 망해버린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중국, 만주, 조선, 일본을 방문하여 동아시아의 전통적 농민사회가 토지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꼼꼼히 관찰하고 그 조사 결과를 《4천 년간의 농부》(1911)라는 책으로 정리했던 미국의 토양학자 프랭클린 킹이 강조했듯이, 동아시아의 도작(稻作) 농민들이 전통적으로 행해왔던 지혜로운 농법, 즉 풍부한 자연적 시비(施肥)에 의한 지력의 보존과 철저한 물 관리로 토양유실과 토양오염을 막는 농사를 계속 유지한다면 농업문명은 천 년이든 만 년이든 영속적으로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문제는 이 지혜로운 농법의 존속을 저해하는 요인입니다. 적어도 동아시아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토착 농민들의 지혜로운 농법이 중단되고 토지가 오염되고 파괴되기 시작한 것은 이 지역에 들이닥친 서구 근대문명 때문입니다. 즉, 근대문명의 압도적인 지배와 영향 밑에서 동아시아의 농사도 단지 산업의 일부로 편입되어, 화폐 증식을 위한 영리 수단으로 변질돼버린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제가 근대문명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생태문명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만, 여기서 생태문명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4천 년간의 농부》라는 책이 말하는 순환적인 농사에 토대를 둔 문명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 농경적 감수성의 회복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사연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사회에는 농민들이나 농사에 직접 관계된 소수의 기관이나 개인들을 제외하고는 농사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그렇고, 재계는 말할 것도 없고, 언론, 학계 그리고 노동운동, 인권운동을 포함해서 일반적으로 진보적 사회운동을 한다는 사람들도 마찬가집니다. 저는 그래도 문학인들에게는 아직도 미련이 있어서 기대를 걸고는 있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면 젊은 문학인들일수록 농사에 대한 관심도 희박하고, 농경적 감수성이라는 것은 그들에게는 아예 시대착오적인 개념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1970~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이문구를 비롯하여 우리 농촌, 농민의 현실에 관해서 관심을 갖고 글을 쓰는 작가들이 그리 흔치는 않아도 맥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또,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박경리, 박완서 등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관류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농경적 감수성에 뿌리를 둔 의식과 정조(情調)였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극소수의 농촌 출신 시인들을 제외하고는 농경적 감수성의 표현은 한국문학에서 극히 생소한 것이 되었습니다. 아마 지금 제천에서 과수농사를 하면서 틈틈이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최용탁은 소설가로서는 유일한 예외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누누이 말씀드린 대로, 생태문명의 재창조에 있어서 농사가 갖는 절대적인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우리 문학계의 이런 현실은 참으로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그러나 물론 이는 문학인들만의 책임이 아닙니다. 지금 많은 기성세대의 한국인들은 이른바 압축적 산업화를 통해서, 한때 세계에서도 최빈국이었던 나라가 지금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 생각에는, 실은 이 ‘자부심’이야말로 우리가 생태문명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핵심적인 걸림돌이 아닌가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연로한 문인들이나 지식인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그분들은 어렸을 때나 젊은 시절에 굉장히 가난하게 살았다는 기억 때문에 실제로 오늘날의 생활방식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부조리한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으려 합니다. 하기는 식민지 시절에 태어났거나 해방 전후에 태어난 세대로서는 자신들이 겪었던 그 험하고 배고팠던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과 같은 ‘풍요로운’ 소비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지식인이라면 당장의 눈앞의 현실 너머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대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다는 안락이나 풍요로운 소비생활의 정체가 무엇인지, 전후 맥락을 따져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 지식인들에게는 그게 잘 안되는 이유가 정확히 무엇일까요?
'샘터'와 같은 운명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의 지속가능한 삶
생태문명 전환의 열쇠는 민주정치”
“농민기본소득제로 인구 분산, 지방경제 부활”
● “공정·합리 사회 되려면 부동산 불로소득 잡아야”
● “물질문명과 탐욕 벗어나 영성 살려야”
● “지식인의 서양 사대주의·냉소주의 안타까워”
● “남북 문제 매달리다 개혁 못한 문재인 정부”
● “대통령 주변 우수한 브레인이 없어, 너무 무능”
● “기후변화 파국 앞으로 10년 대응에 달려”
● “농경적 감수성, 예의, 샤머니즘 윤리 소중”
● ‘샘터’와 비슷한 운명, 2년 뒤 30주년 맞는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은 요즘 농민기본소득제 도입을 특히 강조한다. 조영철 기자
● ‘44세 출가, 그리고 28년간의 수행.’ 엉뚱한 비유이겠으나 이 사람의 삶을 달리 표현하기 어려울 듯하다. 44세 때인 1991년 11월 그는 생태·인문 잡지 ‘녹색평론’을 ‘출가하듯’ 창간했다. 이후 사재를 털어 넣으며 28년 동안 결호 한 번 없이 이 잡지를 ‘수행하듯’ 발행해왔다. 어느덧 고희를 넘어 72세. 혈기방장했던 중년의 영문학자는 이제 노년의 완숙한 철학자가 됐다. 지금도 하루하루가 배움과 깨달음의 삶이고, 그 결정체인 ‘녹색평론’을 제작하는 데 청년 같은 열정을 쏟아 붓는다. 날카로운 지성과 열정을 가진 김종철 발행인(전 영남대 교수) 얘기다.
지난 6월엔 생태주의와 민주주의에 관한 에세이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도 출간했다. 이 책도 ‘녹색평론’이 지향하는 가치의 연장선에 있다. 그 가치는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가 당연하게 수용해온 삶의 관행, 즉 서구식 근대의 논리에 따른 산업경제와 그것에 의존한 문명을 근원적인 각도에서 의심해보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사상적 토대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심각한 이념갈등,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 이제껏 없었던 환경적·사회적 위기 앞에서 ‘우리는 과연 지속 가능한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11월 6일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근처 골목길에 있는 커피숍에서 김 발행인과 마주 앉았다. 지금 왜 생태문명이 필요한지, 그것을 이루는 데 필요한 합리적 정치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듣고 싶었다. 김 발행인의 직설은 끝이 없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감에서부터 한국 사회의 천박함, 지식인들의 오만과 무지, 기후변화 대응의 절박함 등 불편한 진실을 끝없이 이어갔다. 생태적 사회로 가는 초석을 놓기 위해 농민기본소득제를 당장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샘터’와 비슷한 운명, 2년 뒤 30주년 맞는 ‘녹색평론’
김 발행인은 1947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중·고교를 졸업했고, 서울대 영문학과에 진학해 졸업 후 영문학과 교원으로 살았다. 그러다 1983년 뉴욕주립대에 체류하면서 당시 세계 지식 사회의 새 테마로 대두하던 ‘에콜로지(생태학)’에 큰 흥미를 갖게 됐다. 현대 문명의 관행이 그대로 지속된다면 세계의 파국이 필연적이라는 에콜로지의 메시지에 전율하면서 시커멓게 오염돼 죽음의 바다가 된 마산 앞바다를 떠올렸다. 이후 그는 에콜로지 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영남대 재직 시절인 1991년 가을 ‘녹색평론’ 발간을 시작했다.
- 2019년 11/12월호가 ‘녹색평론’ 169호입니다. 28년간 만들면서 그사이 결호가 한번도 없었는데요.
“대단한 것 아닙니다. 잡지 만드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결호가 나오면 장사가 안 되기 때문에 꾸준히 출간해야 합니다, 허허.”
- 전반적으로 인쇄 문화가 쇠퇴하고 있고, 책을 보는 독자도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입니다. 출간을 계속할 정도로 수익은 나는지요.
“아마도 오래 못할 것 같습니다. 일단은 30주년이 되는 180호까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발간할 계획입니다. 아마도 기적적인 반전이 없는 한 ‘녹색평론’도 결국은 문을 닫게 될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 안 보는 데는) 참 극단적입니다. 구미나 일본에는 100년, 150년 된 잡지가 아직도 건재합니다. 그런 게 제일 부럽지요. 잡지 위주로 지식인들이 서로 소통하고, 사회에 필요한 지적 담론을 깊이 있게 형성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문화가 다 사라졌습니다.”
“방향 전환 더 늦으면 문명 존속 어려워”
김 발행인은 한때 잡지 내용이 너무 근본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받았다. 하지만 ‘녹색평론’에 실무적 제안보다는 지속 불가능한 현대 산업문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생태문명으로 방향을 바꾸는 내용들을 담고자 했기에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갔다. 그런 의지가 지난 169권의 잡지에 오롯이 담겼다. 지금도 그는 “성장 논리와는 무관한 질적으로 전혀 다른 삶, 즉 ‘비근대적’ 방식으로 방향 전환하려는 급진적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파국적 결과에 대한 그의 우려는 절박하다. 방향 전환이 더 늦는다면 아예 문명 자체가 존속 불가능할 수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김 발행인은 직접 그린 도표 2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관세청이 발표한 2018년 우리나라 10대 수입·수출 품목이었다.
“1~10위 모두 석유 관련 품목들입니다. 수입 품목 1위가 원유, 2위가 반도체, 3위가 천연가스, 4위가 석유제품입니다. 수출 품목 1위는 반도체, 2위 석유제품, 3위 자동차입니다. 이 표가 뜻하는 것은 석유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우리나라는 속된 말로 ‘폭망’한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이런 것을 걱정하는 경제학자들이 있나요? EROEI(Energy Returned on Energy Invested·에너지투자수익률) 지표라는 게 있는데요. 1980년대엔 석유에너지 1을 투입했을 때 30의 결과가 나왔는데 2010년대엔 1대 5까지 하락했어요. 이것을 유추해보면 석유를 사용할 수 있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겁니다. 미국에서 셰일오일이 2010년대부터 공격적으로 생산되면서 이런 우려가 좀 들어갔지만, 앞으로 석유를 이용하는 시기가 20, 30년도 남지 않았어요. 더욱이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비(非)석유경제로 하루빨리 가야 해요.”
- 지진이 오기 전에 먼저 알아차리고 이동하는 동물들처럼 직관적인 얘기를 하시는 거군요.
“그렇지요. 제 이야기가 바로 그겁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정치 극우화
김 발행인이 던지는 불편한 질문 가운데는 원자력 문제도 있다. 일반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은 실익 없는 공허한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김 발행인은 오히려 문재인 정부가 탈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 당장 사라지는 원전은 없고, 정부 방침대로 해도 2050년에 가야 원전이 사라지게 돼 있어 너무 더디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 사례를 들면서 탈원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베 일본 총리가 한국에 대해 적대적 조치들을 취하고 있는데,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후유증도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히로시마 원폭 때보다 100배, 1000배나 많은 방사능이 유출됐고, 지금도 나오고 있습니다. 아베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 관련 보도를 못 하게 하는 비밀정보보호법을 만들어 언론을 통제할 정도입니다. 절망적인 상태지요.”
-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본 정치의 발목 잡았다는 건가요.
“일본 정치의 극우화가 가속화했습니다. 이전의 우익 세력과 달리 지금은 광범위하고 본격적입니다.”
- 어떤 형태의 극우화를 말하는지요.
“언론자유를 통제하고, 민주주의를 우습게 보며, 외국 문화와 물건, 사상을 배격하는 배외주의(排外主義)가 강화됐습니다. 중국과 한국이 경제적으로 부상하면서 일본이 심리적으로 위축됐어요. 더욱이 후쿠시마 사고로 일본의 국력이 굉장히 약해졌습니다. 일본 국민이 전반적으로 무기력하고 체념 상태에 빠졌습니다. 장기적으로 일본이 살 만한 곳인지 의문을 품는 이도 많다고 해요.”
- 미국이나 유럽 환경주의자들 가운데 기후변화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가 가장 적게 나오는 에너지원인 원전을 위험을 줄여가는 방식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하는데요.
“지구를 환경과 생물로 구성된 하나의 생명체로 여기는 가이아 이론의 제임스 러브록이나 가디언 칼럼니스트 조지 몬비오 같은 이들이 그런 주장을 하고 있지요. 그런데 그들의 주장은 현재와 같은 현대인의 생활수준을 낮추기 어렵다는 것을 전제한 것입니다. 그리고 원자력은 원전폐기물 처리 문제도 심각하고, 원전 재앙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기후변화를 저지하려면 우리 생활 규모를 대폭 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자력이나 화석연료 의존도를 계속 낮춰야 해요. 기계문명의 안락함을 어떻게 뿌리칠 수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경제개발이 시작된 1970년대 이전이 결코 원시사회가 아니었습니다. 나름대로 품위 있고 문화적인 사회였어요. 얼마든지 생활 규모를 줄일 수 있는 겁니다.”
농민기본소득제로 인구 분산, 지방경제 부활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연단 오른쪽)은 2018년 11월 독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녹색평론' 제공
‘녹색평론’ 11/12월호는 ‘농민기본소득이 나라를 살린다’는 특별좌담을 머리기사로 내세웠다. 기본소득이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을 뜻한다. 김 발행인은 이것을 우선 농민들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농민에게 지급하는 농민기본소득이 농사뿐 아니라 나라를 살릴 수 있는 최적의 방책이라며 최근 매우 강조하고 있다.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농민기본소득은 생태문명으로의 전환,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정부 정책의 실패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 농민의 권리를 되찾아 땅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는 것”의 의미가 있다고 좌담에서 말했다. 현재 몇몇 지자체에서는 미약하나마 농민기본소득제를 실시하고 있고, 마침 경기도도 내년 하반기부터 농민기본소득을 도입할 것이라고 11월 8일 밝혔다.
- 농민기본소득제를 한다면 우리 사회에 풀릴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인가요.
“우선 농사를 살리고, 생존의 근본 터전인 땅과 농촌공동체를 살리고, 지방경제를 부활할 수 있습니다. 또 농민기본소득이 본격화하면 도시민들이 시골로 대거 이주할 것입니다. 그러면 수도권에 밀집된 문화·정치·경제가 분권화할 수 있습니다.”
- 농민기본소득 지급액이 어느 수준이 되면 도시민이 시골로 가고픈 유혹을 느낄까요.
“최소한 인간적 생활이 가능할 정도는 돼야 합니다. 시골은 물가가 싸고 먹을거리는 자급이 가능하니까 도시민의 최저생계비보다는 적을 겁니다.”
- 예산 마련이 쉽지 않을 텐데요.
“정치적 의지의 문제입니다. 농어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부동산 거래 시 부과되는 농어촌특별세가 있지만, 그게 과연 농민에게 얼마나 직접 가는지 모르겠어요. 농민은 경제 사정이 열악한데 농민 관련 기관들은 번창하고 있습니다. 농림부가 있어서 농민에게 기여하는 게 뭔가요. 장기적으로 민족의 생존 터전을 살려나가는 것이 중요한데, 농림부는 당장 눈앞에 돈 되는 일만 찾고 있습니다.”
김 발행인은 또 농민기본소득제에 의해 도시인구가 농촌으로 유입되면 농촌에서 새로운 농경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저는 지금 제일 큰 문제가 우리 사회에 농경적 감수성이 소멸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엔 농촌 삶을 경험한 이들이 있었고, 도시인의 친척 가운데 몇몇은 농촌 출신이어서 농경적 감수성이 일반화돼 있었지요. 그런데 요즘은 지식인 엘리트 대부분이 농촌과 관련 없이 자랐고, 심지어 외국 도시에서 태어난 이들도 있습니다. 해외는 뻔질나게 다녀도 우리나라 농촌에는 가보지 않은 이가 많아요.”
지식인의 서양 사대주의와 냉소주의
이 대목에서 김 발행인은 오래 생각해오던 말을 꺼냈다. 열등감. 서양이 산업문명을 일으켜 지구를 이렇게 파괴하고 더럽혀놓았는데, 이제는 서양인들이 생태문명을 앞서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은 이제야 겨우 산업문명을 따라잡았는데, 눈앞이 절벽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지식인이 아무런 각성도 없다.
“서양은 동양에 병도 주고 약도 주는 것 같아요. 저는 이게 아주 기분이 나빠요. 예전에 고려대에서 동양철학을 강의한 김충렬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어요. ‘인류가 문명생활을 유지하려면 생태문명으로 가야 하는데, 그것은 동양 사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즉 앞으로 동양사상이 세계를 구원한다는 것은 맞는 얘기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문명의 담지자가 동아시아인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보기엔 현재 동양사상도 제대로 연구하고 이해하는 것은 서양 사람들이다’라고요.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까. 여기에 대해 한국 지식인들은 아무런 자각이 없어 안타깝습니다. 신문의 서평란에는 서양 서적이 대부분입니다. 한국의 젊은 지식인들이 이전보다 더 지적으로 서양에 대한 사대주의에 젖어 있는 것 같습니다. 생태문명에 대해선 지극히 냉소적이고요.”
그는 메르켈 독일 총리가 탈핵과 관련한 ‘안전한 에너지 미래를 위한 윤리위원회’를 만들었을 때의 일화를 언급했다. 당시 윤리위원회엔 과학자, 철학자, 환경운동가 등 여러 부문의 사람들이 참가했는데, 그 결정문에 ‘이것은 유럽 문화와 기독교 윤리에 입각한 결정이다’라고 언급했음을 상기했다.
“당시 저는, ‘그러면 우리는 어떤 윤리적 입각점을 갖고 원전 반대 운동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우리의 행동과 사고를 좌우하는 근본적 기준, 윤리적 잣대는 무엇인지 고민해봤는데, 내 생각에 그것은 샤머니즘 전통이었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 억울함을 느낄 때, 현실에서 아무리 애써도 해결되지 않을 때 물을 떠놓고 빌던 그 행위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농경적 감수성, 예의, 샤머니즘 윤리 소중
- 샤머니즘을 윤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윤리라기보다는 행동을 규율하는 근본적 잣대인 거지요. 넓은 의미에서 윤리라고 할 수 있지요. 서양의 기독교 윤리 전통에 대응할 만한 것이 결국 우리에게는 동양사상이고, 동아시아의 원초적 농경문화 정서입니다. 공자와 맹자의 사상도 그 뿌리는 농경문화에 토대를 둔 윤리입니다. 오랫동안 동양사회를 지배해온 상부상조의 정신이나 절제와 예의 등등, 인간다운 생활에 꼭 필요한 기본적인 가치 규범은 공자나 옛 성현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게 아니라 근원적으로는 농경문화 전통에서 나온 겁니다. 동아시아인으로서 우리가 이 전통을 망각하면 어떻게 될까요. 걱정입니다.”
- 교수님은 늘 소농 중심 사회를 얘기해왔는데요. 우리 사회에 소농 비율이 어느 정도되면 좋을까요.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생태철학자 루이스 멈퍼드는 한 사회가 생태적으로 건강하게 지속되려면 농민이 최소한 50~60%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230만 명)의 두 배인 10%라도 된다면 좋겠습니다. 농민이 500만 명 정도 되면 소상공인도 늘어나고, 학교 병원 책방 도서관, 기타 문화시설도 생기면서 인구가 늘어 생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안정될 수 있습니다. 김영삼 정부 들어설 때만 해도 우리나라 농민이 1000만 명이 넘었고, 노무현 정부 초기엔 500만 명이었습니다.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농촌인구가 급속하게 줄어들었지요.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겨우 40%대이지만, 유럽 산업선진국은 거의 다 100%입니다. 영국은 제국주의 시대 해외 식민지에 식량을 의존했다가 제2차 세계대전 때 큰코다쳤습니다. 히틀러가 해상을 봉쇄하면서 국민들이 식량을 배급받는 경험을 했지요. 그때 식량 자급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기후변화 탓에 농사 작황은 계속 나빠지고 있는데, 특단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문재인 정부 2년 반에 대한 평가
2017년 촛불시위에 매번 참가한 김 발행인은 지금 문재인 정부에 실망이 크다. 당시 김해자 시인은 “대통령 하나 갈아치우자고 우리는 여기에 모이지 않았다”(‘여기가 광화문이다’ 중에서)라고 노래했다. “정말로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세상을 보고 싶다”고 열망했다. 문재인 정부 2년 반, 그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현재 우리나라 농지 임대차 비율이 50%가 넘습니다. 광복 후 농지개혁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물론 그때처럼 착취 정도는 심하지 않지만 이는 우리 사회가 인간적으로 발전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됩니다. 또 부동산 가격을 통제하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쉽습니다. 어느 인간 사회에서든 재산 문제가 가장 중요합니다. 아테네 민주주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보니 기원전 6세기는 부유층과 평민층의 격차가 너무나 커 준전시 상태였습니다.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독재관(獨裁官)이라는 관직이 생겼습니다. 솔론이라는 떠돌이 시인이 양측의 합의에 의해 독재관이 돼 전권을 행사하며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는 노예 신분으로 전락한 사람들의 빚을 탕감해주고 극심한 빈부격차를 해소한 다음, 그 자리를 떠납니다. 그것이 바로 아테네 민주주의의 초석이 됐습니다.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는 데는 그처럼 강력한 사회 개혁이 필요합니다. 재산의 격차가 정치권력의 격차이고, 모든 불평등의 원인이므로 농지개혁에 준하는 일을 민주 정부가 해야 한다고 봅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농지개혁에 준하는 일이 될까요.
“가장 현실적인 문제이고, 반발에 덜 부딪힐 수 있으며, 문재인 정부라면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것이 바로 농민기본소득제입니다. 그런데 아무 생각이 없으니 걱정입니다.
토마 피케티가 최근에 내놓은 저서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주장하는 것도 핵심은 기본소득과 부유세입니다. 초부유층에게 부가 너무나 많이 집중돼 있다며 자산세를 90%까지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피케티는 저 같은 사람 이상으로 급진적이에요. 물론 이게 현실이 되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기본소득도 월급식으로 주는 게 아니라 생애 25세에 한 번 1억5000만 원 정도를 종잣돈으로 준다는 방안입니다. 사실 이건 토마스 페인이 18세기에 주장한 내용과 비슷합니다. 인간 역사나 현실을 보면 특별히 더 나은 다른 방안이 나올 수가 없어요. 그런 정도의 급진적 방법이 아니면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공정사회 이루려면 부동산 불로소득 잡아야
문재인 정부가 가장 잘못한 게 무엇이냐고 묻자 김 발행인은 “남북 문제에 매달려 있다가 실질적 개혁을 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답하면서 부동산 정책을 다시 언급했다.
“우리 가족이 15년 전에 대구에서 서울로 이사할 때 북한산 아랫동네에 낡은 빌라를 사서 살고 있는데 지금도 집값이 그대로랍니다. 그런데 당시 같은 가격으로 강남에 집을 샀더라면 지금은 3배는 올랐을 겁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매우 불쾌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평범한 이들이 무슨 의욕으로 살겠어요. 이 정부가 민주 정부라면, 공정하고 합리적 사회라면 지대(地代) 불로소득은 반드시 잡아야 해요. 대통령 주변에 정말 우수한 브레인이 없는 것 같아요. 내가 보기엔 너무 무능해요. 이것은 우리 지식 사회의 전반적 수준이 그만큼 낮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 어떤 영역의 브레인을 말하는지요.
“나라의 장래가 세계와 맞물려 장단기적으로 어떻게 돌아갈지에 대해, 바둑에서 포석(布石)하듯이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해요. 포석은 끝이 어떻게 될 건지 생각하면서 바둑을 두는 거잖아요. 문재인 정부는 눈앞의 것만 보고 더 큰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 같고. 남북통일이 되면 뭐 합니까. 기후변화 탓에 생존이 불가능해지면 어떻게 하려고.”
김 발행인은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한국 최초의 ‘녹색당’ 창립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생태적 삶의 패턴을 회복하는 것이 긴급한데, 그 길로 방향을 전환하자면 우리 사회의 정치가 합리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파국 앞으로 10년 대응에 달려
- 2020년 총선에는 무엇을 기대합니까.
“지난 2년 반 동안 국회가 완전 마비 상태였어요. 특히 기후변화 상황을 보면 앞으로 10년이 우리나 세계에 마지막 남은 기회입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에서는 2030년까지 화석연료 사용량을 지금보다 절반 이하로 줄여야 한다고 합니다. 말이 쉬워 그렇지, 산업의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친환경산업, 순환적인 농업을 중시하는 사회로 가야 합니다. 그걸 정치가 결정해줘야 해요. 그래서 합리적으로 사고할 능력이 있는 정치 세력이 꼭 등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시민의회를 1년에 두 차례 정도 소집해 농민기본소득이나 부유세 등 진짜 국회에서 풀기 어려운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면 좋겠습니다. 제가 꿈같은 소리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 정도 급진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희망이 없습니다.”
시민의회는 추첨으로 뽑힌 시민대표들이 직접 권력기관을 감시하고, 국가의 중대사를 토의·결정하도록 설계된 대표적인 ‘숙의민주주의’ 제도다. 2016년 10월 아일랜드가 낙태 합법화 문제 등 몇 가지 현안을 토의하기 위해 시민의회를 출범시킨 적이 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성장 논리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는 우리 사회가 꼭 경제성장을 해야만 살 만한 사회가 된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성장에 대한 강박관념보다는 오히려 살 만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본이 30년간 성장이 멈춘 사회였다지만 일본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안정되게 살고 있잖아요. 일본도 세계경제와 맞물려 있고, 성장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세계경제 자체가 성장이 안 되는 시대가 됐습니다. 저는 이것이 결국 석유 문제라고 봅니다. 이전처럼 석유를 펑펑 쓰기 힘든 시대입니다. 일본에서는 성숙사회니 축소균형사회니 하는 말을 관료들까지 합니다. 우리도 새로운 시대의 문법에 맞게 그동안의 관행을 탈피해 사고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그러면 인구 감소도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 교수님이 번역하신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책 제목이 떠오르네요.
“물질문명이 어느 수준으로 높아야 풍요로울 것인지는 상대적인 거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인 2012년 일본에서 마음의 풍요와 물질의 풍요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한지 묻는 여론조사가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5년 전 같은 내용의 조사와는 반대의 결과가 나왔는데 마음의 풍요가 중요하다는 이가 60%, 물질적 풍요가 더 중요하다는 반응이 30%로 나왔습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무엇이 더 중요한지 확실히 알게 된 겁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통해 물질 수준을 끌어올려야 사회주의가 된다고 했는데, 과연 어느 정도까지 끌어올려야 하는지는 아무도 객관적으로 얘기할 수 없어요. 한이 없는 겁니다.”
물질문명과 탐욕 벗어나 영성 살려야
- 현대인이 대체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사는데, 그런 삶을 멀리하고 자발적 가난의 삶을 취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낭비적이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우리는 식민지와 전쟁과 군사정권 시대를 겪으면서 마음의 중심을 잃은 듯합니다. 일본은 가정집에도 신단을 모시고, 늘 뭔가 초월적 존재에 대해 비는 마음이 있어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재해를 끊임없이 당해왔기 때문에 인간의 한계를 느끼고 체념하는 정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인은 저마다 다 자기가 제일이라고 생각해요. 뭔가 마음속에 섬기는 게 없어요.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너무나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종교인이 얼마나 많습니까.”
- 우리가 마음의 중심에 둬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안다는 데서 비롯합니다. 물러나야 할 때는 물러나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연과 신과 대화하며, 세상의 온갖 생명체와 미물과도 내가 연결돼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해요. 세상 만물이 영성적으로 교감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야 참다운 인간이 됩니다. 시와 철학, 예술, 삶의 풍요가 거기서 나옵니다. 영성적으로 죽은 인간은 자연을 보고도 감동할 줄 모르고, 꽃을 보고도 아름다움을 모르며, 사람의 우정을 높이 평가할 줄 모르고, 물질생활만 찬양합니다. 그런 천박함이 혐오스러워요.”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신동아/ 2019.12.19.
2020.03.01.
기후위기 시대의 민주주의
녹색평론 통권 제171호 | 김종철
“서구적인 민주주의란 것에 대해서 나는 좀 회의적이야. 우리가 사이좋게 잘 지내다가도 정치를 해보겠다고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래서 선거운동을 하게 되면, 내가 뭐라고 하겠어요? ‘여러분, 쟤들 다 형편없는 친구들이니 날 뽑아주시오’라고 말하게 된다고. 그게 민주주의라는 거 아닌가. 이런 민주주의를 하니까 나라꼴이 이 모양이 되는 거지. 그런 민주주의가 평화를 가져왔느냐 말이야.”
이것은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생애 말기에 어떤 언론인과 가졌던 대담 중에 했던 말이다(《나락 한 알 속의 우주》(2016), 272쪽). 대의제 민주주의의 내재적인 결함을 매우 알아듣기 쉽게, 간명하게 지적하고 있는 이 흥미로운 발언은 무위당 특유의 근원적인 평화사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즉, 선거라는 게 물불을 가리지 않고 겨루는 치열한 싸움일 수밖에 없는 한, 그러한 철저한 배타성의 원리에 의거한 선거를 통해서 공생공존을 겨냥하는 정치질서가 과연 성립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무위당의 메시지는 누구든 잠깐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논리이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때때로 그와 유사한 생각을 하게 되는 때가 있더라도 그것을 드러내 놓고 말하지 못한다. 오늘날 우리들의 머릿속에는 선거란 신성불가침의 것으로 깊게 각인되어 있고, 그 때문에 선거제도 그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이의 제기는 엄두조차 내기 힘든 일이 돼버린 느낌이 없지 않다. 즉, 우리들 대다수에게는 선거란 곧 민주주의의 대명사가 되어 있는 것이다.
무위당의 말처럼, 실제로 선거를 치르다 보면 멀쩡한 사람들도 상대방에 대한 적의를 품게 마련이다. 언론은 선거 때마다 인신공격이 아니라 정책 대결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올바른’ 주장을 하지만, 그런 주장이 선거 때마다 빠짐없이 되풀이된다는 점이야말로 선거판에서는 그런 교과서적인 주장이 절대로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예외적인 사례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를 꺾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고 하는 선거판을 통과하는 동안 자신의 적수에 대해서 평온한 감정을 유지할 수 있는 인간이 있다면, 그는 매우 특출한 인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특출한’ 인간의 존재를 상정하는 정치가 정상적인 민주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란 원래 ‘인민의 자기 통치’를 뜻한다.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민주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예외적인 인간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평범한 사람들의 감정과 욕구와 생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평범한 생활인들이 어떻게 자기들의 삶에 관한 결정권을 상호―주체적으로 행사하면서 공생공존의 질서를 구축하고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새삼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정기적으로 습관처럼 치르는 선거가 과연 이에 합당한 제도냐 하는 것이다.
선거, ‘엘리트들’ 간의 권력 쟁탈 게임
확실히 선거라는 것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적대적으로 만드는 제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선거의 문제는 그 점에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 시민들의 이익을 대변하겠다고 선거판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실은 평범한 생활인들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특권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는 ‘엘리트들’이다. 그 엘리트들끼리의 경쟁을 우리가 선거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치 시장에서 소비자가 자신의 구미에 맞는 상품을 선택하듯이, 선거판에서 유권자는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를 선택하여 그에게 표를 준다. 즉,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시장 논리와 하등 다를 게 없는 메커니즘으로 돌아가고 있는 게 현대의 선거민주주의인 것이다. 예를 들면, 상품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 자본과 기업은 광고를 비롯한 온갖 술책을 쓰듯이, 선거판이라는 정치 시장에서도 후보들은 자신의 ‘상품가치’를 높여서 소비자―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려고 갖가지 책략을 구사한다. 그런데 선거판에서의 상품가치란 다름 아닌 ‘인지도’라는 것인데, 인지도를 좌우하는 것은 기왕의 사회적 지위와 재산과 평판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이름 없는’ 평범한 생활인―서민들이 선거판에 나선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그렇다면 선거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기득권층 내부의 싸움, 즉 사회적으로 특권적인 위치에 있는 ‘엘리트들’끼리의 권력 쟁탈 게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기득권층의 영구적 권력 향유를 보장하는 합법적 메커니즘’인 것이다. 사실, 선거(election)라는 말 자체가 원래 엘리트(elite)라는 말과 어원이 같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일찍이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이 했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만약에 선거로 진정한 개혁이 가능하다면, 선거는 벌써 오래전에 (지배층에 의해) 불법화되었을 것이다.”
물론 마크 트웨인의 말은, 예컨대 차베스나 모랄레스 혹은 호세 무히카 등의 급진적 정치가들이 선거에 의해서 집권을 하는 게 가능했던 남미의 경우를 생각하면, 다소 과장된 풍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남미의 경우는 매우 특수한 역사적 조건과 정치적 상황 속에서 발생했던 현상이었고, 그나마도 차베스 사후 지금은 그들의 집권과 더불어 개시된 급진적 사회개혁이 크게 훼손되고, 후퇴를 강요당하고 있다. 물론 이 현상은 단지 선거라는 요인 하나만으로 해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좀더 크고 복잡한 국제정치 및 세계경제 등 여러 요인들이 개입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나 볼리비아 등, 남미 국가들의 현재의 혼란스러운 정국과 사회개혁의 후퇴도, 따져보면, 선거의 공정성을 둘러싼 논쟁으로 촉발된 사태이다. 물론 배후에는 보다 깊은 이념적·경제적 충돌과 갈등이 있지만,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현대사회에서 선거란 권력의 정당성 여부를 가리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어 있고, 그 때문에 어디서나 선거는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한국의 언론에서도 4월의 총선을 앞두고 선거 이야기가 압도적이다.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이 이런저런 공약들을 내놓지만, 선거가 끝나면 그 공약들이 헛소리가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아직도 허다한 사람들이 선거에 대한 기대를 접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하기는 선거공약이라는 것은 그냥 이기기 위한 책략으로 제시된 것이니 그것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짓인지 모른다. 그리고 대부분의 공약은 지켜지지 않는 게 오히려 좋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경제성장’에 대한 공약이다. 실제로 가공할 기후파국이 코앞에 닥친 이 시점에도 선거판에서 횡행하는 전형적인 공약은 여전히, 더 풍요롭고 더 안락하고 더 편리한 생활에 대한 약속, 요컨대 경제성장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약속이다. 만약 이런 약속들이 말 그대로 지켜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되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식의 선거제도로는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 이번 총선의 결과로 구성될 다음 국회 역시 임기 만료까지 끊임없는 무의미한 분쟁으로 아까운 시간과 세금만 허비하는 난장판이 될 것임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고 기대할 만한 아무런 근거도, 조짐도 지금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국회에서 여야로 갈라져 끝없이 싸우는 까닭은 무엇일까? 집권당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야당은 차기 정권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일 것이지만, 그러나 (단순한 권력욕망의 충족 이외에)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집권인지는, 어느 쪽을 보더라도 분명치 않다.
대의제 정당정치에서 진보/보수 혹은 여야 간의 분쟁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부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둘러싼 싸움이다. 실제로 이러한 정치시스템은, 자본주의 산업경제가 계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런대로 작동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970년대의 오일쇼크 이후 점차로 성장이 둔화되기 시작한 세계경제는 마침내 2008년의 세계금융위기를 고비로 사실상 성장 정지 국면으로 들어섰고, 이에 따라 대의제 정당정치도 기능부전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우연적이든 필연적이든 자본주의 산업경제의 발달과 보조를 같이해온 정치시스템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아마도 불가피한 현상일 것이다. 경제성장이 계속될 수 없는 상황, 즉 빵의 크기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 빵의 분배를 둘러싼 다툼은 전례 없이 격렬한 것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 ‘성장시대의 종언’은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시대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시대상황에서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협동과 나눔이라는 (인류사회의 오래된, 그러나 근대 이후 철저히 억압되어온) 윤리적 덕목의 광범위한 실천일 것이다. 그런데 혹심한 경쟁 논리를 전제로 하는 선거민주주의의 틀 속에서 이 협동과 나눔의 윤리가 다시 뿌리를 내리고 확산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오늘날 민주주의의 본산이라고 하는 영국과 미국이 보여주고 있는 정치 현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지난 수년간 영국에서는 ‘브렉시트’ 사태에 관련하여 의회정치가 완전히 마비되고, 미국에서는 트럼프라는 전대미문의 괴기스러운 인간이 대통령이 되어 이제는 재선까지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기막힌 현실은 대의제 선거민주주의의 수명이 사실상 끝났음을 알려주는 확실한 신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금년 11월 버니 샌더스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다면, 미국의 민주주의가 회생하고 세계의 앞날이 밝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문화 풍토에서는 매우 낯선 개념, 즉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샌더스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이변이 과연 일어날 수 있을까? 최근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샌더스가 우위를 점하고는 있지만, 전 대통령 오바마와 클린턴 부부를 포함한 민주당 주류파와 〈뉴욕타임스〉를 위시한 ‘진보파’ 언론들의 샌더스에 대한 거부감은 갈수록 노골적으로 되고 있다.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이 무엇이건, 그들이 샌더스를 반대하는 이유는 극히 단순하다. 즉, 민주, 공화 양당체제 속에서 오랫동안 엘리트들로서 온갖 특권을 누려온 그들은 사상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사회주의자’ 샌더스와는 결코 동지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기존의 선거제도하에서 샌더스와 같은 혁신적인 비전을 가진 급진파가 정치적으로 성공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지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든 한국이든 거의 모든 나라의 엄중한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난세는 영웅을 부른다고 하지만, 실제로 지금 많은 사람들은 무엇보다 양심적이고 지혜롭고 결단력 있는 정치적 리더십을 대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정파 간의 대립 때문에 중대한 현안들이 아무것도 논의되지도, 결정되지도 못하는 현실상황 때문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하여 이 답답한 현실에 절망한 나머지, 예컨대 중국이나 러시아식 권위주의체제 비슷한 것의 도입을 주장하는 견해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비상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기본적 권리인 언론, 표현, 결사의 자유를 제약하는 권위주의체제에 우리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는 게 아닌가. 그뿐만 아니라, 정치체제의 극적인 변혁은 격렬한 변란 상황이라면 모를까, 현대 법치국가의 통상적인 절차로는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민주주의의 강화만이 길이다
그러니까 길은 하나,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뿐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강화란 ‘인민의 자기 통치’라는 원칙에 충실한 정치체제를 회복하거나 새로이 구축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민주주의의 원칙으로 돌아가자고 하면, 그것은 ‘중우정치’가 되기 쉽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항상 존재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 자신은 자기를 그 ‘어리석은 대중’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리석은 대중’은 항상 타인들, 그중에서도 교육을 많이 받지 않은 민초들을 가리킬 뿐이다. 하기는 민중의 능력을 경시하거나 무시하는 사고습관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근대 사상가에 한정한다면, 대표적인 예는 존 스튜어트 밀의 견해일 것이다. 밀은 19세기 유럽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사상가이자 양심적인 지식인이었으나, 선거에 있어서는 고등교육을 받은 계층과 하층민들의 투표가 갖는 효력에 차등을 두어, 가령 지식인의 1표는 교육받지 못한 서민의 2표에 해당하는 것으로 계산하는 게 마땅하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처럼 왜 ‘엘리트들’은 늘 자신들의 판단력은 믿을 수 있고, 서민들의 판단력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할까. 실태를 보면, 그들 자신도 끊임없이 그릇된 판단을 하고, 비양심적인 행동을 하면서 말이다. 인간이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어리석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이 점에서는 엘리트나 평범한 서민들이나 조금도 다를 게 없다. 그렇다면 소수 엘리트의 고독한 혹은 과두적인 결정이 민초들의 결집된 판단력보다 더 합리적이고 건강하다고 믿을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분야에 따라서는 오랜 경험과 지식을 가진 ‘전문가’의 판단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거의 모든 공직자를 추첨으로 뽑았던 고대 아테네에서도 전쟁 지휘관이나 폴리스의 회계업무 담당자는 선거로 뽑았던 것이다. 아테네에서는 공동체의 일반적인 운영이나 사무, 혹은 중대한 정책결정(법률의 개정, 전쟁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등등)에 관한 토론, 그리고 ‘민중법정’의 심판원으로 참가할 권리는 시민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졌고, 토론의 장에서는 자유롭고 기탄없는 발언이 권장되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러한 적극적인 정치참가가 가능했던 아테네의 시민들은 소수의 귀족과 부자들만이 아니라, 소농, 소상인, 장인, 노(櫓)잡이 등, 다수의 하층민들로 구성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상하게도 근현대의 지식인들 중에는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혹은 편견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면, 아테네 시민들의 활발한 정치참가는 노예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주장도 그런 편견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노예가 없는 현대사회에서는 아테네식의 (직접)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이것은 무엇보다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그냥 주장일 뿐이다. 왜냐하면 아테네의 시민들은 예외적인 경우(광산노동 등)를 제외하고는 노예들과 함께 생산노동에 종사하고 있었고, 노예들은 정치활동을 빼고는 시민들과 다름없는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음은 여러 연구에 의해 이미 밝혀졌기 때문이다(예컨대 Ellen Meiksins Wood, Peasant―Citizen and Slave: The Foundations of Athenian Democracy, 1988).
그러나 대의제 정당정치로는 이제 더 나아갈 길이 없다고, 그러므로 보다 강화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데는 또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현행의 대의제는 기후변화와 같은 장기적인 배려가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대응할 능력이 없다는, 결정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선거가 전부인 이 제도에서는 모든 정치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다음 선거에서 또다시 승리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들의 시야는 늘 4~5년을 주기로 하는 단기적인 국면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그들에게는 국가나 사회의 먼 장래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문제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지금 당장의 문제, 즉 다음 선거에 대비한 계책과 궁리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정치인들의 권력욕망을 비웃거나 비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권력욕망이란 남들이 비난하고 비웃는다고 해서 버릴 수 있는 그런 성질의 욕망이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욕망이 무의미한 것이 되도록 정치제도를 개변하거나, 새로이 만드는 것이다.
결국 이처럼 선거라는 메커니즘에만 의존하는 한,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장기적인 대응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무능력·무책임은 어쩌면 대의제 민주주의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론 정치가 이래서는 안된다. 일찍이 보수주의 정치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건전한 정치란 기본적으로 과거세대와 현세대 그리고 미래세대의 조화로운 파트너십이어야 한다고 갈파한 바 있다. 즉, 현실의 정치를 책임지는 현세대는 늘 선조들의 유지를 기억하고, 자손들의 장래를 염두에 두면서 정치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 현실의 정치는 언제나 현세대의 이익에만 관심을 집중해왔을 뿐이다. 어쩌면 이는 필연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근대적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원자화된 개인들의 이기심을 핵심적인 동력으로 삼아 전개돼왔고, 이 시장경제의 에토스를 고스란히 공유해온 것이 바로 대의제 정당정치이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 전역에서 그레타 툰베리를 비롯한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뺏지 말라고, 지구가 불타고 있는데 정치가들이 대체 뭘 하고 있느냐고 절규를 하고 있다. 이 기막힌 상황에서, 우리는 막연히 정치가들을 비난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정치하는 사람들 개개인의 자질과 책임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미래세대에 대한 배려가 강조되는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그런 방향으로 시스템을 보강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예컨대 일곱 세대 이후 자손들에게 미칠 영향을 깊이 고려하면서 현재의 문제를 토의·숙고하는 전통을 오랫동안 유지해온 아메리카 토착민의 집단적 의사결정 시스템과 유사한 시스템이 지금은 무엇보다 필요한 때인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 때문이겠지만, 최근 들어서 세계 곳곳에서 ‘숙의민주주의’ 운동이 어느 때보다도 활기를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영국에서는 수년 동안의 격렬한 운동의 연장선에서 ‘절멸저항’ 활동가들이 요구해온 ‘기후시민의회(Climate Assembly)’가 일부 기성 정치가들의 지지를 얻어 그들의 도움으로 현재 여러 지역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민의회’가 당장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정파적 대립과 온갖 이해관계에 묶여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기존의 의회 대신에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긴급한 현안에 대응할 수 있는 정치적 방법을 찾아냈고, 많은 시민들과 일부 정치가들이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알다시피, ‘시민의회’란 무작위 추첨으로 뽑힌 시민들로 회의체를 구성한 다음, 그 시민 대표들이 거기서 당면한 중대 사안에 대해서 관련된 자료를 철저히 숙지하고, 관계 전문가들의 설명을 충분히 청취한 후에 집중적인 토의와 숙의를 거쳐서 결론을 내리는 집단적 의사결정 시스템이다. 물론 이것은 아테네 민주주의의 정신과 방법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된 일종의 직접민주주의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결함투성이의 대의제 정당정치 대신에 시민들의 집단지성으로써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하자는 것이다. 아마도 이 ‘시민의회’는 비단 기후문제뿐만 아니라, 극심한 경제 불평등을 포함한 (기성의 정치제도 틀 내에서 해결하기가 지난한) 각종 과제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극히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고, 그 점에서 조만간 세계 전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숙의민주주의가 기왕의 대의제 민주주의를 전면적으로 대체할 수 있을지는 아직은 미지수이다. 또, 그게 바람직스러울지도 분명치 않다. 아무리 현행의 대의제 정치제도가 무능력·무책임을 조장하는 시스템이라고 하더라도, 선거제도를 폐지하고, 직업정치인의 존재를 소거하는 게 과연 맞는 것인가는, 지금으로서는 판단 유보 상태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급진적인 변혁이 현실화되려면 현행의 의회가 동의를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동의를 받아낸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까 ‘시민의회’ 등, 숙의민주주의 제도는 현행의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보완책으로 고려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시민의회’로써 현재의 정치시스템을 보완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곧 희망적인 활로가 열릴 것인지는 아무도 장담 못한다. 그러나 과감한 정치적 개혁과 급진적 사회적 실험을 시도하지 않고, 현행의 제도와 관행만으로 이대로 계속 간다면, 우리 모두를 기다리는 것은 결국 파국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설령 숙의민주주의를 통한 민중의 집단적 의사결정이 결과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는 날이 온다고 하더라도, 몇몇 소수 엘리트들이 맘대로 내린 결정을 따르다가 망하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더 바람직하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인간에게는 자신의 생은 자기가 책임지고자 하는 근원적인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2019.07.01.
한반도의 비핵화와 녹색화
녹색평론 통권 제167호 | 김종철
하노이 회담 결렬되는 것 보고 다들 걱정 많이 하셨지요? 이렇게 될 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상을 못했던 것 같습니다. 평범한 시민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소위 전문가들까지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트럼프가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점이에요. 오바마까지는 예상이 가능한 대통령들이었죠. 그런데 트럼프는 그게 아니란 말이에요. 전문가들이 예측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정부도 대응방법을 확실히 찾지 못하는 주된 원인이 거기 있는 거죠.
최근에 북한의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말했다죠. “두 정상 간의 관계는 좋다. 왜 그런지는 미스터리지만 관계가 좋다”라고요. 뭔가 상황을 받아들이지도 내치지도 못하는 심리적 불안과 함께 어떻게든 트럼프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는 안간힘이 엿보이는 발언이죠. 그런데 미국의 외교문제에 대한 트럼프의 지식이 차츰 늘어난다는 얘기가 있어요. 기존 관례를 다 무시하고 지내왔는데 대통령을 하다 보니까 조금씩 생각이 바뀌고 있다는 얘기죠. 그렇게 되면 미국 외교의 오래된 틀을 트럼프도 답습할 가능성이 커지고, 한반도 문제가 더 풀리기 어렵게 될지도 모릅니다. 미국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서로 경쟁을 한다지만, 대외관계에서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민주당 집권 시에 전쟁을 더 많이 했으니까요.
그런데 한반도 평화문제는 미국이나 유럽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대체로 관심이 없고, 서방 언론들도 우리한테 별로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특히 미국의 주류 사회에는 우리의 우군이 없습니다. 있다면 한 사람 있는데, 트럼프죠. 문제는 그의 동기가 노벨평화상에 대한 욕심과 재선을 노린 계산이라는 거죠.
한편으로는,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 기회를 좀더 근본적인 성찰의 시간으로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돌아보면, ‘촛불’의 힘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약속대로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나섰고, 김정은 위원장도 어차피 이대로는 더 갈 수 없으니까 호응을 하게 되었고, 워싱턴 정가의 이방인인 트럼프도 일단 긍정적으로 나오면서 모처럼 절묘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바람에 여기까지 오긴 왔죠. 그래서 1년 동안 남북 정상이 세 번이나 만나고, 북미 정상도 두 번 만났죠. 사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에요.
그런데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당분간은 소강상태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도 자중하지 않을까 싶어요. 다시 장거리 미사일을 쏘거나 핵실험을 했다가는 10년, 20년 전으로 돌아갑니다. 그걸 모를 리 없잖아요. 트럼프도 다음 대선까지는 현상 유지를 하려고 할 거예요. 이런 상황을 우리 정부가 예민하게 분석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상황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사활을 좌우하는데도,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에 정부도 꽤 흔들리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니까 그게 더 걱정되더군요. 제가 잘못 보았다면 좋겠습니다.
한반도의 빛과 어둠
《미국은 왜 실패했는가》(녹색평론사, 2015)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는 모리스 버먼이라는 역사가인데, 10년도 더 전에 미국이 너무 나쁜 사회이기 때문에 더이상 기대할 게 없다면서 멕시코로 이주를 했습니다. 미국이라고 하면 대개 정치나 경제, 혹은 군사문제를 먼저 생각하지만, 미국인의 내면적 심리와 기질을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하다면서 굉장히 신랄하게 미국과 미국문화를 비판합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돈벌이라면 아무 거리낌이 없고, 남의 사정은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 사기꾼들, 즉 ‘허슬러’들이 모여서 사는 나라라는 겁니다. 그게 건국 이후 쭉 계속돼온 미국인의 DNA라는 거예요. 이런 미국에 비하면 멕시코는 가난하고 거친 사회이지만, 매우 인간적인 사회라는 거죠. 미국은 제도적으로 복지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되는 사회인데, 멕시코는 상부상조가 몸에 밴 사회라서 어지간한 일이라면 동네사람들이 서로 도와주고 해결한다는 겁니다. 자기가 이사를 했을 때도, 낯선 외국인이 왔는데도 경계를 하는 게 아니라 스스럼없이 짐도 옮겨주고, 쾌활하게 거들어주더랍니다. 못이 필요하고 공구가 필요하다 싶으면 자기들끼리 서로 연락을 하더니 어디서 가져다주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미국이야말로 정말로 고약한 사회라는 것을 더욱 확실히 알게 됐다는 거예요. 하기는 미국은 이제 끝나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완전히 망할 때까지 꽤 오래 걸릴 거라는 점이죠. 그러니까 그동안을 우리가 얼마나 지혜롭게 버티면서, 미국인들을 상대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까 얘기로 돌아가죠. 이 소강상태에서 우리가 차분히 생각해봐야 할 게 있습니다. 여태까지 우리는 남북 간에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그 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잘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대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남북경협 정도가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오랫동안 우리가 섬 아닌 섬에 갇혀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북방을 거쳐서 멀리로 뻗어 나가 민족의 기상을 한껏 펼쳐보자,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결국 우리도 부강한 나라가 돼보자는 거죠. 그런데 그런 욕망 때문에 통일하자는 거라면, 너무 웃기지 않아요? 대체 부강한 나라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그게 정말 좋은 것인지, 좀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우리는 이런 근본적인 문제는 거의 생각을 하지 않죠. 그러나 이제는 무조건 정서적으로만 반응하지 말고, 좀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할 때가 됐다고 봅니다. “통일을 하면 100년 먹을 게 생긴다” 등등, 그런 천박한 말은 그만하고, 좀더 보편적인 인간적 가치를 염두에 두고 한반도의 장래를 숙고해보자는 거죠.
물론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경제를 발전시켜야죠. 그런데 예를 들어, 지금 북한의 경제개발이 중국식이 될 것이냐 혹은 베트남식이 될 것이냐 하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지만, 사실은 둘 다 문제가 많거든요. 북한 당국은, 자본주의 세계시장에 문을 열었으면서도 공산당 정권이 무너지지 않는 걸 보고 중국이나 베트남식 개발 모델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고 있겠죠. 그래서 그 방향으로 가기로 맘먹고 여러가지 고민을 하고 있을 겁니다. 남한의 우리들도 대개 북한이 그 방향으로 갈 거라고 보고 있죠? 그런데 딱 거기에서 이야기가 멈추는 게 문젭니다.
왜냐면 중국과 베트남식의 경제개발 방식이 정말 바람직하냐는 문제가 있으니까요. 무조건 GDP(국내총생산)만 올라가면 그게 성공일까요? 지금 중국은 굉장히 문제 많은 사회잖아요. 이미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곧 미국을 능가한다고 하지만, 엄청난 환경 오염과 파괴, 노동자 인권유린은 말할 것도 없지만, 무엇보다 언론자유가 없는 사회예요. 학술적인 활동마저도 정권에 비판적인 것은 일절 허용되지 않습니다. 원래 건강한 사회는 비판정신이 살아 움직여야 하는데, 중국이나 베트남은 그 점에서는 결코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2015년에 《녹색평론》에 베트남전쟁 종식 40주년 기념 특집을 해보려고 베트남 관계 자료를 열심히 찾아본 적이 있는데, 그때 제가 많이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난 독립적인 신문, 잡지, 언론이 하나도 없고, 밑바닥 민초들의 삶이 그간의 경제개발로 더 좋아진 것도 거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산당 간부들이나 공무원들의 부패가 극심한 모양이더라고요. 위에서 아래로, 관료주의적으로 경제개발을 하면 어느 사회나 그렇게 되지만, 베트남의 부패는 특히 심각해 보였습니다. 이런 말은 함부로 해선 안되겠지만, 그런 자료들을 보다가 이러려고 미국과 그 엄청난 전쟁을 했나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북한이 어떤 경제개발 노선을 택할지, 남한의 우리가 왜 고민해야 되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반드시 고민해야 합니다. 북한의 향방이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니까요.
야간에 한반도를 찍은 위성사진을 보면 휴전선 남쪽은 휘황찬란한데, 북쪽은 깜깜하잖아요. 흔히 우리는 이 사진을 남한은 발전하고 번영한 사회, 북한은 아주 낙후된 암담한 사회를 상징하는 기표로 보고 있지만, 오늘날 크나큰 위기에 처한 지구 환경문제를 생각하면 북쪽이 남쪽을 따라 할 게 아니라 오히려 남쪽이 북쪽을 따르는 게 순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아무 생각도 없이 흥청망청 에너지를 낭비하면서 살고 있잖아요. 이 조그마한 나라가 식량자급도, 에너지자급도 못하면서, 석유 낭비가 구조화된 경제를 맹목적으로 확대하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그러다 보니 결국 미국에 대해서도 할 말 제대로 못 하고 굴종적인 처지가 된 거란 말이에요. 미국인들이 이런 한국에 대해 존경심이 들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했다는 공허한 이야기나 하고 있습니다. 그런 수치가 무슨 의미가 있어요? 주권국가다운 존엄도 없고, 미래가 지극히 불투명한 지속 불가능한 사회가 돼버렸는데 말이에요. 그렇게 보면 휘황찬란한 야경은 도리어 부끄러운 모습이라고 해야 옳죠. 한반도 전체가 이런 야경을 가진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면, 차라리 통일은 안하는 게 낫겠죠.
‘그린뉴딜’이라는 대안
저는 한반도 문제를 포괄적, 장기적인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녹색화죠. 이 ‘평화의 길’을 설립할 때 준비모임에서도 제가 여러 번 얘기를 했죠.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한반도 녹색화라는 큰 틀 속에서 접근해보자고요. 녹색화는 당연히 비핵화를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녹색화의 이념은 근본적으로 무기를 버리는 것, 즉 반전·평화 사상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지금 세계가 직면한 최대의 현안은 기후변화 위기입니다. 유엔의 과학자들은 기후위기가 최악의 상황으로 가는 것을 막자면, 2030년까지, 즉 앞으로 12년밖에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현재의 탄소에너지 소비량의 절반 이상을 그 기간 내에 줄여야 한다는 거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구상에서 어떤 형태의 문명도 존속할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경제성장을 지상목표로 하면서 에너지 낭비를 강요하는 세계경제체제 속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단기간 내에 극적으로 감축시킨다는 게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어떤 방법으로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어쨌든 기후변화는 먼 장래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지금 화석연료를 제일 많이 소비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공산당 당헌에도 ‘생태문명’의 필요성이 이야기되어 있고, 미국에서도 트럼프는 기후위기를 부정하고 있지만, 많은 지식인·활동가들이 다급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아마 틀림없이 차기 미국 대선에서는 기후문제가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럽도 마찬가집니다. 주요 유럽 국가들에서 지금 녹색당이 약진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죠. 영국에서는 벌써 몇 달째 ‘절멸 저항’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고, 최근에는 청소년들이 동맹휴학을 하고 가두시위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미국에서 특히 화제가 되고 있는 게 있는데, 이른바 ‘그린뉴딜’이라는 것입니다. 원래 그린뉴딜이라는 아이디어는 이미 10년도 더 전부터 녹색활동가들이 제기해왔는데, 갑자기 최근에 화제가 된 것은 작년 말의 중간선거 때문이었어요. 그때 뉴욕시의 한 선거구에 출마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라는 29세의 여성 후보자가 기후문제를 핵심적인 선거 이슈로 제기하고 그린뉴딜을 주장했는데, 그게 뉴욕시민들에게 크게 어필했습니다. 원래 그 선거구는 민주당의 원로 정치가의 지역구였는데, 예비선거에서 아무런 정치경험도 없는 젊은 여성이 그 늙은 정치가를 이긴 것도 화제가 되었지만, 본선에서도 이기자 미국 전체가 들썩거렸어요. 동시에 그 신인 정치가가 내건 그린뉴딜이 큰 주목을 끌게 된 거죠. 그런데 그 그린뉴딜이 지금 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느냐 하면, 그게 환경문제뿐만 아니라 일자리나 복지문제를 포함한 많은 사회적 난제들을 다소나마 완화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정밀하게 구체화된 것은 아니지만, 화석에너지 대신에 새로운 재생에너지를 대대적으로 개발한다는 계획에서부터 자동차 위주 교통시스템을 대폭 축소하고 전국을 고속철도망으로 연결한다는 계획, 그리고 하층민들도 골고루 혜택을 받도록 하기 위한 의료나 교육시스템의 재정비 등등을 약속하고 있거든요. 미국에서는 일찍이 서민들을 위해 이 정도의 과감한 정책을 제시한 정당도, 정치가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 미국의 평범한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아직도 언론, 정치, 학계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역시 경제성장입니다. 하기는 당장 먹고사는 문제보다 더 다급한 문제는 없죠. 하지만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계속 화석연료 소비를 늘려야 하고, 그러면 점점 기후위기를 완화하기는커녕 심화시킬 게 뻔합니다. 사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다양한 환경운동이 전개돼왔지만 거의 다 실패했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은, 결국 이 문제를 풀지 못했기 때문이죠. 환경을 지키는 것과 경제성장은 완전히 상충되거든요. 흔히 사람들은 기후변화는 먼 미래의 일이고, 먹고사는 게 더 절실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환경문제가 경제문제를 이길 수 없지요. 그런데 그린뉴딜은 좀 다릅니다. 이것은 경제와 환경을 어느 정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란 말이에요.
결국 문제는, 이 프로그램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의지입니다. 그런데 정치가 과두 기득권세력의 지배하에 있으면 새로운 개혁정책이 절대로 채택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 기득권세력은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산업·금융 시스템과 깊이 연루돼 있습니다. 만약에 그린뉴딜과 같은 프로젝트가 대대적으로 실행된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이 약화될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벌써 다수의 기성 정치가들과 엘리트들은 그린뉴딜을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핵심적인 반대 이유가 뭐냐면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 거냐는 것입니다. 안 그래도 미국의 국가부채가 막대한데, 그린뉴딜을 실행할 돈이 어디 있느냐는 거죠. 달리 반대할 명분이 없으니까, 비용문제를 가지고 개혁의 싹을 아예 잘라버리려는 거죠.
‘현대화폐이론’
그래서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일부 경제학자들이 혁신적인 경제이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이론에 따르면, 비용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고 국가가 화폐를 발행하면 간단히 해결된다는 겁니다. 너무 놀랍고 간단한 이야기죠? 사실은 저 자신도 그 얘기를 듣고 굉장히 놀랐는데, 놀란 이유는 이게 엉뚱한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실은 10년쯤 전부터 《녹색평론》이 계속 주장해왔던 내용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전부터 늘 궁금한 게 있었어요. 즉, 정부가 돈이 필요할 때 왜 국채라는 것을 발행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국가가 주권을 가졌다면 화폐를 발행할 권한을 갖고 있다는 얘기인데, 왜 그냥 화폐를 발행해서 쓰면 되지 굳이 국채를 발행하여 부자들에게 두고두고 이자를 지불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었죠. 제가 무식해서 그런 의문을 품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에 여러 나라의 화폐를 좀 들여다봤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동전은 한국은행이 발행 주체로 돼 있지만, 일본의 동전을 한번 보세요. 거기에는 발행 주체가 ‘일본국’이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일본의 지폐는 일본은행이 발행 주체로 돼 있습니다만, 동전에는 ‘일본국’이라고 명확히 표시돼 있습니다. 그리고 홍콩에서는 여러 종류의 지폐가 지금 통용되고 있는데, 그중에는 주요 은행이 발행한 은행권도 있지만 홍콩정부가 직접 발행한 지폐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화폐를 정부가 발행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원리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돈이 필요하면 국채를 발행하여 빚을 질 게 아니라, 국가가 돈을 만들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부가 화폐를 발행하여 쓰면 국가가 부자들에게 빚을 질 일도 없고, 국민의 세금으로 이자를 지불할 이유도 없습니다. 저는 기본소득의 재원도 이런 식으로 마련하면 된다는 이론을 오래전부터 소개하고, 저 자신도 그렇게 주장해왔습니다. 그런데 경제를 좀 안다는 사람들은 그건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고, 그냥 덮어놓고 무시해버립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국가가 화폐발행 주권을 되찾으면 된다는 이론은 1920년대 경제공황 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경제공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일부 경제학자들이 이 이론을 이야기했지만, 소위 정통 경제학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실현되지 못하고, 그 대신 뉴딜정책이 채택되어 대규모 토목사업 위주의 경기부양책이 실시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1920년대에 일부 경제학자들이 구상했던 것과 본질적으로 유사한 화폐이론이 지금 미국에서 그린뉴딜과 더불어 재등장했는데, 그게 지금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현대화폐이론’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국가가 빚을 많이 져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얽매여 소위 긴축재정이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을 고생시킬 필요가 없다는 거죠. 지금 실업자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기업을 살려야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 갇혀 늘 국가는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펴고, 경제정의의 원칙도 깨뜨리고, 환경규제도 풀어버리고 온갖 이상한 짓을 다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드는 궁극적인 주체는 기업이 아니라 소비자입니다. 일반 생활인들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와 서비스를 시장에서 큰 어려움 없이 구매할 수 있다면 저절로 국민경제가 살아납니다.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보통의 생활인들의 구매력이죠. 그 구매력을 높여주는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 것이 국가의 임무입니다. 그런 구매력을 높여주는 방법은 정부가 많은 일자리가 생기는 공공사업들을 직접 시행하거나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방법도 있지만, 기본소득의 형태로 일정한 액수의 돈을 국민들에게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그린뉴딜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이면서 동시에 일반 시민들의 구매력을 높여서 실업자도 구제하고 경제도 살리겠다는 유력한 방책이라고 할 수 있죠. ‘현대화폐이론’을 주창하는 경제학자들은 그런 사업을 위해서 증세를 한다든지 특별히 부유세를 신설한다든지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국가 부채와 개인이나 가계의 부채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국가는 무엇보다 화폐발행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파산하는 일은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단지 인플레이션이 염려될 수 있지만, 그러나 시장에 돈이 많이 풀렸다고 반드시 인플레이션이 유발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회에 인력과 자원이 있고, 그 인력과 자원을 필요로 하는 수요가 있는 한에 있어서는 인플레이션이 되지 않습니다. 일본은 지난 수십 년간 침체된 경기를 회복시키려고 소위 양적완화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엄청난 돈을 시장에 쏟아부었지만 인플레이션은커녕 여전히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화폐이론’에 의하면, 정말로 필요 이상의 돈이 넘쳐나서 악성 인플레이션의 위험이 있으면 국가가 세금 징수를 통해서 과잉 통화를 거둬들여 폐기해버리면 됩니다.
제가 자료를 찾아보니까 실제로 역사적인 선례가 꽤 있더군요. 그중에서 특기할 만한 것이 히틀러가 독일 경제를 부흥시킨 방법입니다. 히틀러가 집권을 하게 된 것은, 1차 세계대전 직후 폐허가 된 상황에서 연합국들한테 과도한 배상금을 물어야 했기에 절망적인 경제위기를 겪고 있던 독일 국민에게 급진적인 경제부흥을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틀러가 채택한 방법은 대대적인 공공사업을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바로 정부가 화폐를 발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제국은행(중앙은행)의 총재였던 얄마르 샤흐트라는 금융전문가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샤흐트는 ‘메포’라는 유령회사를 만들어 그 회사가 발행한 ‘교환권’을 국가의 법정화폐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특이한 금융 메커니즘을 고안했습니다. 즉, 형식상은 한 회사가 발행한 채권이지만 실제로는 법정화폐와 다름없는 기능을 갖춘 돈을 만들어 국내의 각 사업장의 요구에 따라 화폐를 공급하고 시장이 활기를 띠도록 만들었던 거죠. 물론 그런 돈은 본질적으로 지역화폐이기 때문에 국제적인 교역에는 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독일은 철광석이 풍부한 나라였기 때문에 철광을 수출하여 그 대가로 석유라든지 기타 필요한 물자를 들여오는 방법을 썼습니다. 그 결과, 단기간 내에 경제부흥을 성취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 산업국가들 중에서 가장 빨리 공황에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히틀러가 이 정도에서 만족하지 않고 계속 그 방법을 확대하여 대대적인 군비증강을 원했다는 겁니다. 샤흐트는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히틀러와 언쟁까지 해가면서 반대했다고 합니다. 히틀러가 말을 듣지 않자 샤흐트는 결국 제국은행 총재직을 사임합니다. 나중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치 전범들에 대한 국제재판이 뉘른베르크에서 열렸을 때 샤흐트도 불려가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어쨌든 히틀러에게 협력했던 중앙은행 총재였으니까요. 그러나 히틀러의 군비증강 정책에 강력히 반대하고 사임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는 석방되었습니다. 하여간 그런 에피소드가 있는데, 일본에는 이 이야기를 주제로 한 책도 나와 있습니다. 요컨대, 이런 에피소드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국가가 돈이 없다는 이유로 할 일을 하지 않고, 죄 없는 국민들을 도탄에 빠트린다는 게 얼마나 말이 안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도 임기 초에 사람들이 잔뜩 기대를 했다가 이제는 많이 실망하는 분위기가 돼버렸는데, 경제정책이 시원한 게 나오지 않은 게 결정적인 이유죠. 취임하자마자 내놓은 게 소득주도성장 정책이었고, 그래서 최저임금 인상을 결행한 것은 좋았는데, 그 방법이 너무 서툰 나머지 인심을 많이 잃게 된 것 같아요. 최저임금만 하더라도, 서서히 추진하면서 자영업자들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그 피해를 어떻게 막을지 등등, 주도면밀하게 접근해야 하는데도 불쑥 일괄적으로 올려버리니까 엄청난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죠. 제가 어떤 영국 경제전문 저널리스트의 글을 보니까, 최저임금을 일시에 5% 이상 올려서 성공한 예가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던데, 지금 정부나 민주당의 경제정책 담당자들 중에 이런 문제를 깊이 있게 살피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반도 및 세계의 녹색화를 위하여
어쨌든 기후변화에 대처하자면 세계의 산업국들은 그린뉴딜이나 그와 유사한 정책을 과감히 시행해야 합니다. 지구상에서 인류 문명이 존속할 수 있을지 여부는 앞으로 10년이 결정적인 기간이 될 것이니까요.
조금 냉정히 생각하면, 지금 한반도 평화구축이라는 과제는 우리에게는 절박한 이슈지만, 적어도 동아시아 바깥 지역 사람들에게는 별로 중요한 관심사가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한반도 비핵화보다도 세계의 녹색화가 훨씬 더 긴박하고 절실한 현안이니까요. 미국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봐야 합니다. 한반도 비핵화를 원만히 해결하자면 미국의 양식 있는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자기들의 정부 정책에 영향을 끼쳐야 하는데, 소위 전문가들을 제외하고 일반 미국 시민들 중 한반도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한테는 초미의 관심사인데 외국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비난할 수도 없죠. 원래 인간은 그런 법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제안하고 싶은 게, 바로 한반도 비핵화라는 문제를 세계의 녹색화의 일환으로 간주하고, 그 테두리 속에서 접근하면서 한반도 문제가 세계 전체의 녹색화를 위해서 빠트릴 수 없는 현안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설득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외국인들을 우리의 우군으로 만들 수 있고, 그들의 지지를 받는 것도 한결 쉬운 일이 될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단순히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한 편법으로 녹색화라는 슬로건을 내걸자는 말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도, 앞으로 남북이 경제협력을 추진하게 되었을 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생각하는 데에도 이 녹색화라는 개념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북한에는 미개발의 상당한 지하자원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 석탄 같은 화석연료 자원은 이 기후위기 시대에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 전체가 미세먼지 지옥이 되고 기후변화를 앞당기는 주범이 될지도 모릅니다. 북한은 아마 당장의 경제개발을 위해서 무차별로 그것을 개발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유혹을 억누르고 신중하게 자원이용을 하려면 남북 간의 지혜로운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지혜롭게 접근한다는 것은 말은 쉽지만, 남한 사회 자체 내에서 이런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도 없는 상태에서 그게 실현될 수 있을지는 극히 회의적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자신이 더 깊게 학습하고,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거죠. 북한이 난개발로 치달을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도 우리 자신의 치열한 공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만약에 한반도 비핵화가 한반도와 세계의 녹색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추진된다면, 그것의 성공 여부를 떠나서 우리는 세계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 우리가 성공한다면 그때는 지금 세계가 공통적으로 처한 위기상황을 뚫고 나갈 좋은 모델까지 제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면, 이제부터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공감을 얻어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 간의 관계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국제사회에서는 대의명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콩알 하나 가지고 밀고 당기는 식이 아니라 큰 틀 속에서 이야기를 하면 훨씬 설득력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그게 가장 실리적일지도 모릅니다. 이 자리에서 더이상 구체적이고 정밀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습니다만, 왜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한반도 비핵화와 함께 녹색화를 동시에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는가에 대해서 여러분과 함께 한번 생각을 해보고자 오늘 제가 이런저런 군소리를 늘어놨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글은 2019년 3월 29일 사단법인 ‘평화의 길’이 주최한 강연회에서 했던 이야기를 녹취, 정리한 것이다
“이 세계가 망해 가는 대로 내버려 두기엔 너무 아깝습니다” 2020-07-05
<녹색평론> 김종철 선생의 마지막 말
이명 잊으려 “자잘한 이야기” 요청
작고 전 이틀간 벗들과 나눈 말·글
생전 이 세계에 남긴 마지막 언어
고통의 시간 견디며 생의 끝까지
몰두한 일은 유례없는 지구적 재난
파악하고 성찰하고 모색한 글쓰기
이명의 고통 속에서도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의 생각이 마지막까지 더듬고자 했던 것은 전 지구적 감염 시대로 진입한 이 세계의 미래였다. 2016년 1월의 모습. 김진수 <한겨레21> 기자 jsk@hani.co.kr
▶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을 추모(6월25일 새벽 별세)하는 글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인적 인연이 있든 없든 그 글들에선 ‘저마다의 김종철’이 생전 모습처럼 카랑카랑합니다. 그만큼 그가 한국 사회에 찍은 발자국은 깊고 짙었습니다. 코로나 사태 뒤 건강이 나빠진 그는 외부 기고(4월17일치 <한겨레> 칼럼을 끝으로)와 강연을 모두 중단했습니다. 바이러스는 그의 목소리가 타전되는 길목을 막았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이틀 동안 ‘김밥모임’의 “벗들”과 나눈 말과 글을 모임의 일원인 이문영 기자가 모았습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언어들입니다.
“몹시 더운 날들입니다. 6월 기온으로는 사상 최고라죠. 시베리아가 뜨거운 시베리아로 되고 있다니, 무섭습니다. 나는 때때로 인간이 어떤 식으로든 다 사라진 후의 지구의 풍경을 그려봅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인간 중에는 굉장히 강인하게 살아남는 자들이 있을 것이고, 그들이 어떤 형태로든 삶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무리 중에 적어도 나는 포함되지 않겠지만.”
김종철 선생님의 이메일 편지가 10명의 “벗들에게”(제목) 동시에 도착했습니다. 6월23일 오전 10시42분이었습니다. 일찍 닥친 더위와 그 더위가 달굴 지구를 염려하며 선생님의 편지는 시작됐습니다.
“조해일씨가 세상을 떠나셨군요. 그리고 까치의 박종만씨도.”
6월19일 작고한 소설가(조해일·향년 79)와 그보다 닷새 앞서 별세한 출판인(박종만·향년 75)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대표작 <겨울여자>가 대중소설로 “오해”돼 진지한 평가를 받지 못한 작가의 영면 앞에서 선생님은 “우리 문단에는 섬세한 촉각을 가지고 좋고 나쁜 작가를 섬세히, 충분히 평가하는 전통이 부재한 게 아닌지 늘 유감스럽다”고 하셨습니다. “상업성을 따지면 엄두도 내지 못할 책들을 과감하고 꾸준히 내온” 출판인의 사망 소식엔 “쓸쓸해진다”고 쓰셨습니다.
“인생무상, 이보다 더 진실이 없지요.”
선생님은 당신의 건강 악화를 전하셨습니다.
“벌써 잠을 못 잔 지 여러 날입니다. 이명이라는 것 때문에. 원래 이명이 있었는데, 그런대로 적응해서 살아왔는데, 최근에 갑자기 음, 비행기가 가면서 바퀴가 구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그게 어느새 증폭되어, 낮이고 밤이고 단 일각도 멈추지 않습니다. 평생 소음을 지독히 싫어해온 것에 대한 형벌을 받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병원에서는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자체가 죽을병은 아니지만, 이 때문에 잠을 못 자고, 온종일 신경이 쉬지 못하니 버티기가 참 만만치 않습니다. 일생 동안 제가 많이 아파봤지만, 이번에는 난감하네요.”
선생님은 부탁하셨습니다.
“결국 적응을 빨리 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끊임없이 주의를 돌려야 하는데, 그게 혼자서는 잘 안 되네요. 여러분들이 자잘한 이야기라도 자주 저에게 보내주면 그걸 읽고 생각하는 동안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아무 이야기라도 좋아요. 폼 잡지 말고, 그냥 기탄없이 있는 그대로 자기를 스스럼없이 표현하면서 산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절감하며 지냅니다.”
편지를 보내신 지 이틀 뒤였습니다. “벗들”이 보내오는 “자잘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이명과 싸우시던 선생님의 사망(향년 73)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벗들”은 땅이 흔들리는 충격으로 얼어붙었습니다.
김종철 발행인이 2005년 1월11일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구간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네번째 단식 중인 지율 스님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인생, 이리저리 궁리할 것 아닙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선생님은 글을 쓰셨습니다. 머리를 어지럽히는 이명을 견디며 몰두하신 일은 유례없는 재난에 대한 파악과, 성찰과, 모색이었습니다. 재난의 실체와, 원인과, 이후에 가닿으려는 사고의 조각들이 이 세계에 남긴 선생님의 마지막 언어들이 됐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거의 반강제적으로 칩거 상태로 지낸 지 벌써 몇 달이 되었군요. 저는 원래 이런 생활에 익숙한 사람인데도, 때때로 갑갑증을 느낍니다. 어서 이 상황에서 벗어났으면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계절이면 지독한 미세먼지로 괴로움을 겪던 것을 생각하면 이 상황이 종결되고 또 그 지옥으로 되돌아가면 어떻게 하나, 그런 두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 이 와중에, 책상 위에 늘 흩어져 있는 종이들이나 노트들에 이것저것 떠오르는 상념들을 즉흥적, 단편적으로 적어놓았는데, 며칠 전 우연히 그것들을 대충 훑어보니 버릴 게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여러분과 나눠봐도 될 만한 이야기들이 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코로나 일지를 시작하며)
선생님은 오랫동안 두개의 모임에서 후배들을 만나오셨습니다. 영남대학교 교수직을 그만둔 2004년 ‘이반 일리치 읽기 모임’을 시작하셨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녹색평론사 사무실에서 일리치(오스트리아 사상가)의 글을 나누던 모임은 만남의 주기와 장소를 달리하며 지금까지 이어져왔습니다. ‘김밥모임’(김종철 선생님과 밥 먹는 모임)은 2007년 출발했습니다. 두달 간격으로 <녹색평론>이 나오면 만날 날을 잡아주셨습니다. 시인(김해자·정우영·황규관)과 소설가(김남일), 문학평론가(고영직·노지영·오창은·이명원), 정치학자(하승우), 출판인(김선정), 기자(손제민·이문영) 등이 선생님께 밥과 술을 얻어먹었습니다.
일체의 권위를 싫어하신 선생님은 20~30년 어린 후배들과도 격의 없이 대화하고, 귀 기울여 듣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는 메모하셨습니다. 새로 읽고 공부한 내용을 나누실 때 가장 기운 넘치고 신나 하셨습니다. 그 기운을 받으며 후배들은 지난 13년간 선생님 곁에서 나이를 먹었습니다. 코로나 사태는 통권 170호가 발행된 지난 1월 이후 김밥모임도 멈춰 세웠습니다. 소소한 만남조차 차단된 현실이 선생님의 이명을 키우고 있을 줄 후배들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김종철 발행인의 2005년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선생님은 지난 5월24일에도 단체 메일을 보내셨습니다. ‘코로나 일지’가 첨부돼 있었습니다. 일리치 읽기 모임 카페에 올리신 글을 “심심할 때 구경하시라”며 김밥모임에도 공유하셨습니다. ‘일기’가 아니라 ‘일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일기는 쓰지 않습니다. 지금도 마음이 허전할 때 가끔 들춰보는 타르코프스키의 일기 같은 것을 보면, 저 자신도 일기를 쓰고 싶은 유혹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것은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들에게는 맞을지 모르지만, 나 같은 인간은 일기를 쓰면, 그 일기라는 것은 매우 위선적이고 거짓된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 그 정도는 제가 알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세상에서 제일 혐오스러운 것 중의 하나는 출판을 의식하며 쓴 일기입니다. 그런 일기를 쓰는 개인은 일기를 씀으로써 좀 더 정직하고 열린 인간이 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에고(ego)에 더욱더 갇히게 된다고 저는 봅니다. 노골적인 나르시시즘의 표출이 왜 문제냐 하면, 그게 부도덕해서가 아니라, 미학적으로 보기 흉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제가 가끔 종이에 휘갈겨 적는 것은 어디까지나 낙서이지 일기가 아닙니다. 왜 지금 낙서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득 이 낙서들 중에서 그래도 쓸 만한 이야기가 있다면, 여러분들이나 저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심란한 시간을 버티고 이겨내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코로나 일지를 시작하며)
모두 6개의 파일이었습니다. 이 글들과 이후 추가로 보태신 글들이 선생님의 손을 거친 마지막 <녹색평론>(7·8월호)에 ‘코로나 시즌, 12개의 단상’이란 제목으로 묶였습니다. “서문을 쓰려는데 이 증상(이명)이 나타나는 바람에 쓰지 못했다”며 일지가 서문을 대신한 까닭을 선생님은 작고 이틀 전 메일에서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당부하셨습니다.
“인생, 그거 너무 이리저리 궁리할 것 아닙니다. 사람은 모두 다 똑같아요. 다 어린애죠. 이 난경에 처해보니, 뼈저리게 알겠습니다. 평소 건강할 때 사람들에게 충분히 배려하고, 관심을 베풀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여러분은 후회 없는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김종철 발행인의 손을 거친 마지막 <녹색평론>(통권 173호).
“세계사는 감염병의 역사”
이명을 잊을 ‘글의 대화’를 청하시는 편지를 받고 김밥모임 후배들은 ‘이상하게’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시인 황규관(<삶이 보이는 창> 편집인)의 회신이 가장 빨랐습니다. 메일 수신 한시간 뒤(6월23일 오전 11시42분)였습니다.
“코로나 이후 출판계의 양극화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 요즘에는 저도 참 괴롭습니다. 삶창 하면서 주위에 신세를 많이 졌는데 그것 못 갚고 그만두면 어쩌나, 이런 불안이 자주 듭니다….”
그가 전한 문학판 소식에 선생님은 “서양어의 번역말을 쓰기 시작한 한국 근대 100년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적어도 일본 사람들은 생소한 서양어를 자기 나름으로 번역하면서, 말하자면 서양과 일대 대결을 하고, 고투를 한 역사를 경험했는데, 우리는 그 과정을 생략하고 당연한 듯이 일본 사람들의 번역어를 그대로 받아썼으니, 서양정신과의 대결 경험이 없었고, 그 없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성찰해야 한다는 지적(6월23일 오후 2시1분)이었습니다.
한시간 뒤엔 소설가 김남일이 메일(6월23일 오후 3시18분)을 보냈습니다. 조해일·박종만 두분의 소설과 출간도서를 읽으며 통과한 젊은 날을 회고하며 선생님의 건강을 걱정했습니다.
“실은 지난 시절, 저도 아마 등 떠밀려 광장으로 가고는 있었지만, 마음은 얼른 골방으로 들어가 좋아하는 책이나 실컷 읽었으면 하고 자꾸 망설이고 주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놓친 세월에도 이제 먼지가 켜켜이 쌓였습니다.”
선생님은 이튿날 오전 “응원해줘 고맙다”(6월24일 11시50분 회신)고 하셨습니다.
“남일씨처럼 욕심 없이 좋은 소설, 책들을 읽으며 평온한 마음으로 사는 게 제일 부럽습니다. 최소한 생계만 꾸릴 수 있다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요. 후회해봤자 소용없지만, 지나간 날들을 많이 돌아보고 있습니다. 견뎌볼게요.”
김남일의 편지 10분 뒤 문학평론가 노지영의 메일(6월23일 오후 3시29분)이 선생님께 갔습니다. 그는 ‘폼 잡지 말고’ 소식 전해달라는 선생님의 글에 일부러 “미주알고주알 잡다한 이야기”로 회신했습니다. 그가 살고 있는 동네에 ‘개발 바람’이 불며 공동체가 쪼개지는 과정을 ‘스스럼없이 표현’했습니다. 지난해 그 동네를 방문한 적 있는 선생님의 답장(6월23일 오후 6시37분)엔 개발을 주도하는 “출세하고 성공했다는 인간들의 빈약한 정신”을 바라보는 안타까움이 어려 있었습니다.
“맑은 하늘 밑에 사람들이 소박하게 생활하는 곳, 빈터에서 아이들이 아무 걱정 없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그런 곳이야말로 낙원인 줄 모르고, 그냥 돈 몇 푼 생기는 게 목표가 된 사람들의 세상, 참 끔찍합니다. 요새는 그냥 사람들이 모두 불쌍하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맘이 약해져서인지, 어쩔 수 없다는 체념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혹은 어쩌면 ‘고향’을 잃어가고 있다는 상실감으로 너무 오래 속을 썩여온 끝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어요.”
김종철 발행인의 2008년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문학평론가 이명원(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의 응답은 날짜가 바뀐 직후(6월24일 오전 1시2분)였습니다. 그는 코로나 시대에 카뮈의 <페스트>를 두고 쓴 글을 “선생님의 이명을 잠깐 잊게 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첨부했습니다. 선생님은 답신(6월24일 낮 12시17분)에서 그 글을 칭찬하며 최근 “나도 <페스트>를 다시 읽어보려고 꺼내놓았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대학생 시절 처음 <페스트>를 읽었을 때는, 그때는 카뮈를 늘 사르트르와 비교해서 읽는 풍토였던 탓도 있겠지만, 이 소설이 파시즘에 대한 알레고리라고 생각하는 당시 사람들의 생각에 나도 동조했고, 그래서 역병과 파시즘이라는, 전혀 성격과 차원이 다른 문제를 그런 식으로 다룬다는 것에 대한 저항감 때문에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이었지요. 더욱이 그 당시 불문학자 김붕구 선생 같은 분(반공주의자)이 늘 카뮈와 사르트르를 대비시키면서 사르트르를 비난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반발도 아마 있었던 것 같소. 그러나 역시 카뮈는 좋은 작가임에 틀림없소. 다만 알제리 식민해방투쟁에서 카뮈가 별 역할을 하지 않은 데는 아직 의구심이 남아 있지만.”
선생님도 ‘코로나바이러스 습격’의 의미를 묻는 재료로 페스트를 불러오셨습니다.
“이번에 새삼 느낀 것은 세계사는 질병의 역사, 그중에서 특히 감염병의 역사라는 점이다. 몽골제국이 망한 것도 결국은 페스트 때문이고, 유럽 중세 질서가 해체된 것도 결국은 페스트 창궐의 여파였다. 게다가 실크로드가 폐쇄된 것도 페스트의 영향 때문이었다. 그렇게 보면, 맑스주의 역사관에서 말하는 생산력의 발전이니 교역의 확대니 하는 것들은, 역사적 변화의 주된 요인이라기보다 실은 부차적인 요소로 봐야 하지 않을까.”(코로나 일지)
“정부의 재난지원금이라는 거
이참에 항구적인 제도 됐으면
이론투쟁 활발해져야 하는데 답답”
“때가 되면 다 떠나야겠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앓고, 사랑하고, 그리워하길”
“화폐공급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
선생님은 이 세계의 근본적 전환을 쉼 없이 호소하셨습니다. 혁명 없는 시대에 가장 혁명적인 사상가셨습니다. 구호가 아닌 대안을 내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읽고, 쓰고, 행동하셨습니다. “온종일 신경이 쉬지 못하는 중에도” 선생님의 생각이 끝까지 더듬고자 했던 것은 전 지구적 감염 시대로 진입한 이 세계의 미래였습니다.
“지금까지 (국내외의) 언론과 지식분자들이 쏟아내는 견해나 주장들은 대부분 소비활동 위축, 수요 급감에 따른 경기후퇴에 관한 우려와 그 해결책에 관한 제안들에 국한되어 있다. ‘그린뉴딜’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으나, 그것도 대부분 경제성장 논리와 단호히 결별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코로나 일지)
김종철 발행인이 2012년 2월12일 녹색당 서울시당 창당대회에서 축하 인사를 하고 있다. 그는 ‘녹색당 전임강사’를 자임했다. 연합뉴스
작고 한달 전 메일에선 치열한 논쟁의 시급함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나마 저는 (연금 덕분에) 이런 ‘고독한’ 생활이 가능하지만, 타인들과의 긴밀한 상호작용이 없으면 생활이 곤란해질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 걱정을 안 할 수 없습니다. 정부지원금이라는 거, 우리 집도 받아서 쓰고 있습니다만, 이참에 항구적인 제도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이론투쟁이 활발해져야 하는데, 아직도 기본소득론자들도 대부분 증세나 세수 조정을 통한 재원, 혹은 좀 더 진전된 생각으로는, 토지보유세를 통한 재원 확보라는 생각에 머물고 있어 답답합니다. 은행을 국유화하거나 엠엠티(MMT·Modern Money Theory: 국채 발행이 아니라 국가가 돈을 찍어 재정을 충당해야 한다는 ‘현대화폐이론’은 최근 미국 진보정치 진영에서 그린뉴딜의 재원 조달 방안으로 재조명)를 적용하면 간단한데, 왜 우리나라에는 그런 공부를 한 경제학자가 없는지, 설혹 있다고 해도 용기 있게 발언하는 사람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제 저녁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기본소득론자와 반대론자 간의 맞토론을 보았는데, 거기서도 결국은 ‘한정된 국가수입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쓰느냐’는 게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국가가 마련할 수 있는 돈이 ‘한정되어 있다’는 생각에 양쪽 다 고착되어 있는 거죠.”
엠엠티를 주제로 칼럼을 쓰려고 공부 중이던 기자 손제민(<경향신문> 사회부장)은 “뵙게 되면 듣고 싶은 말씀이 많다”며 조언을 구했습니다.
“화폐를 보는 패러다임 전환이 생태위기 해소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독자들에게) 풀어줘야 할 것 같습니다.”(5월28일 낮)
선생님은 답장(5월28일 오후)에서 “(엠엠티를) 잘만 적용한다면 획기적인 경제정책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를 표하셨습니다.
“엘렌 브라운(<부채의 덫> 저자)이 제창하는 공공은행 운동도 그래서 늘 관심 갖고 보고 있는데, 브라운이 작년 가을에 전주시가 개최한 심포지엄에 다녀갔다는 사실을 요즘 뒤늦게 알고 자료집을 구해서 읽어봤소. ‘한국의 경제 기적’이 가능했던 배경으로 (박정희 시대의) 한국의 은행들이 국유였다는 점을 주요 요인으로 지적하던데, 별로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었소. <녹색평론> 다음 호에 재정 건전성이라는 것은 미신일 뿐이다, 화폐공급이란 궁극적으로 경제학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다, 라는 이야기를 부각시키고 싶소.”
이 문제의식은 ‘균형재정론은 틀렸다’(홍기빈)는 글로 7·8월호에 실려 선생님의 장례 기간 중 정기구독자들에게 배달됐습니다.
“마흔에 접어들면서 갑상선 종양 진단을 받고 여러 달 후 수술을 받기까지, 나는 사람이 죽는다는 게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는 버릇에 빠져 지냈다. (…) 불교책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마음의 평정을 얻는 데에는 산책이 더 효험이 있었다. 집 근처의 개천 길이나 산길을 몇 시간씩 아무 생각 없이 걸어 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길가의 풀들에 시선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그 풀들도 인간과 다를 게 없는 생명체였다. 함부로 밟을 수가 없었다.”(코로나 시즌, 12개의 단상)
6월25일 새벽 선생님은 새와 물 소리로 이명을 덮으려 이른 산책을 나가셨습니다. 무엇 하나 함부로 밟을 수 없는 생명들을 피해 걸으시다 먼 길을 떠나셨습니다.
전날 저녁(8시47분) 황규관에게 도착한 메일이 선생님의 마지막 메시지였습니다. 그가 ‘읽을거리’로 보내드린 에세이 한 편(‘장마’)에 대한 격려였습니다.
“고마워. 앞으로 이런 글 많이 쓰라고 권하고 싶네. 괜히 어려운 소리 하지 말고. 고향을 잃고, 잃어가는 슬픔과 고통을 솔직히 나누는 게 문학의 본질 아닌가 싶어. 때가 되면 다 떠나야겠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앓고, 사랑하고, 그리워하면서 말이야.”
3시간 전(6월24일 오후 5시25분)엔 시인 김해자에게 편지를 쓰셨습니다. 잠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물으시며 “고맙다”고 하셨고, 안 그래도 아픈 사람에게 “내 고통만 이야기해서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김종철 발행인이 지난해 평론집 <대지의 상상력>을 냈을 때의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함부로 밟을 수 없었다”
일리치 읽기 모임과 김밥모임이 주관한 작은 추도식이 6월26일 저녁 빈소 한켠에서 열렸습니다. 김해자가 조시를 낭송했습니다.
“세계가 죽음을 향해 나자빠지는 소용돌이 속에서/ 비행기 바퀴 구르는 소리가 일각도 멈추지 않는 이명/ 그것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만이 아니라 대지가 온몸으로 절규하는 귀울음.”
재난 앞에서 터진 약한 생명들의 울음이 그들의 소리에 누구보다 예민했던 선생님의 귀로 달려가 차곡차곡 쌓였을 것입니다. 시인 정우영은 선생님의 이명을 “지구가 깨지는 소리”라고 했습니다. “그 소리를 온몸에 받아 홀로 삭인 이”가 떠난 뒤 남은 자들의 세계는 그 울음들에 귀 닫고 득의양양할지도 모릅니다. 지난 5월 띄운 편지를 맺을 때 선생님은 쓰셨습니다.
“이 세계는 그냥 이대로 망해 가는 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너무 아깝습니다.”
문학평론가 오창은(중앙대 다빈치교양대학 교수)은 김밥모임의 총무로 매번 선생님과 만날 날짜를 조율해왔습니다. 그가 선생님을 운구한 뒤 썼습니다.
“(몸이) 너무 가벼워, 나비처럼 자연의 일부가 되어 날아가신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사주신 밥, 대략 70끼니가 넘는 것 같습니다. 밥값 하는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빈자리는 무엇으로 메꾸어야 합니까?”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