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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괜찮은 詩

나희덕 시인

by 이성근 2020. 5. 3.


상현(上弦)

길 위에서

수족관 너머의 눈동자

허공 한줌

, 라는 말

쓰러진 나무

도끼를 위한 달

느티나무

누가 우는가

俗離山에서

기억의 자리

못 위의 잠

종점 하나 전

어두워 진다는 것

뜨거운 돌

밥생각

해미읍성에 가시거든

진흙 눈동자

사과밭을 지나며

가벼워지지 않는 가방

뿌리에게

고통에게1

저 물결 하나

포도밭

저 숲에 누가 있다

욕탕 속의 나무들

노루

마른 연못

원정園丁의 말

돼지머리들처럼

바람과 바람막이

팔이 된 눈동자

벗어놓은 스타킹

섶섬이 보이는 방

삼베 두 조각

기억의 자리

이 복도에서는

어린 것

양계장집 딸

공책검사

성공한 인생

푸른밤

분홍신을 신고

해일

언덕

실려가는 나무

조찬朝餐

어떤 出土

북극성처럼 빛나는

방을 얻다

산속에서

찬비 내리고 - 편지 1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릴 때 - 편지 2

젖지 않는 마음 - 편지 3

다음 생의 나를 보듯이

, 바람 속으로

너무 많이

십년 후

다시, 십년 후의 나에게

흐린 날에는

떨기나무 덤불 있다면

복장리에서

태 풍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땅 끝

불 켜진 창

거리

빨래는 얼면서 마르고 있다

그대가 오기 전날

허공 한줌

허락된 과식

사랑

내 속의 여자들

일곱살때의 독서

그림자

배추의 마음

슴새가 아니었을까

오래된 수틀

음계와 계단

살아있어야할 이유

길 속의 길 속의

황사 속에서

눈길

등이 시린일

고통에게 1

나평강 약전(略傳)


 

상현(上弦)

 

 

차오르는 몸이 무거웠던지

새벽녘 능선 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다

 

도 이렇게 들키는 때가 있으니!

 

때로 그녀도 발에 흙을 묻힌다는 것을

외딴 산모퉁이를 돌며 나는 훔쳐보았던 것인데

어느새 눈치를 챘는지

조금 붉어진 얼굴로 구름 사이 사라졌다가

다시 저만치 가고 있다

 

그녀가 앉았던 궁둥이 흔적이

저 능선 위에는 아직 남아 있을 것이어서

능선 근처 나무들은 환한 상처를 지녔을 것이다

뜨거운 숯불에 입술을 씻었던 이사야처럼

 


 

길 위에서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내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가락으로 문질러버린 일이 있다.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제 길 위에 놓아주려 했지만

그럴수록 개미는 발버둥치며 달아나버렸다.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수족관 너머의 눈동자

 

삼짇날 아침 나는 발견되었다

방앗간에 앉아 있던 한 시인*에 의해

그가 하릴없이 뒤적이던 묵은 여성잡지 속에서,

생불이라 불리는 숭산 스님의 수행담과

전도연이 알몸 섹스 연기를 했다는

기사 사이에서,

성과 속 사이에서,

그가 보았다는 내 산문집 기사 속에서

그의 눈동자에 발견된,

그의 시에서 자신을 발견한

나는 누구인가

시집을 닫고 부엌으로 가서 그릇을 씻는다

무엇에 찔린 듯 아프다

물이 손등을 흘러내려 먼 곳으로 가는 동안

어떤 말들이, 기억들이 흘러내린다

십여 년 전 영등포 후미진 다방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그의 등뒤에는 수족관이 놓여 있었고

내 시선은 열대어들을 따라 어색하게 두리번거렸다

그는 쫓기고 있었으나 자유로워 보였고

나는 어떤 날보다도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인파 속으로 사라졌던 그가

몇 달 후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푸른 수의를 입은 그를 한번쯤 더 보았던가

면회창 사이로 말은 자꾸 끊어지고

문밖에는 진눈깨비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어느덧 봄이 오고,

진눈깨비 대신 황사 날리는 삼짇날 아침

방앗간에 앉아 있던 그에 의해 나는 발견되었다,

낡아가는 지느러미를 파닥이며 거대한 수족관 속에서.

 


 

허공 한줌

 

이런 얘기를 들었어.

엄마가 깜박 잠이 든 사이 아기는 어떻게 올라갔는지 난간 위에서 놀고 있었대.

난간 밖은 허공이었지. 잠에서 깨어난 엄마는 난간의 아기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이름을 부르려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아가,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엄마는 숨을 죽이며 아기에게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어.

그러고는 온몸의 힘을 모아 아기를 끌어안았어.

그런데 아기를 향해 내뻗은 두 손에 잡힌 것은 허공 한줌뿐이었지.

순간 엄마는 숨이 그만 멎어버렸어. 다행히도 아기는 난간 이쪽으로 굴러 떨어졌지.

아기가 울자 죽은 엄마는 꿈에서 깬 듯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달렸어.

아기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는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들었어.

죽은 엄마는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아랫목에 뉘었어.

아기를 토닥거리면서 곁에 누운 엄마는 그후로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지.

죽은 엄마는 그제서야 마음놓고 죽을 수 있었던 거야. 이건 그냥 만들어낸 얘기가 아닐지 몰라.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나는 비어 있는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어.

텅 비어 있을 때에도 그것은 꽉 차 있곤 했지.

수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그날밤 참으로 많은 걸 놓아주었어.

허공 한줌까지도 허공에 돌려주려는 듯 말야.

 


  

, 라는 말

 

잊혀진 것들은 모두 여가 되었다망각의 물결 속으로 잠겼다가스르르 다시 드러나는 바위, 사람들은그것을 섬이라고도 부를 수 없어 여라 불렀다울여, 새여, 대천어멈여, 시린여, 검은여......이 이름들에는 여를 오래 휘돌며 지나간파도의 울음 같은 게 스며 있다영영 물에 잠겨버렸을지도 모를 기억을햇빛에 널어 말리는 동안사람들은 그 얼굴에 이름을 붙여주려 하지만그러기 전에 사라져버리는 여도 있다썰물 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그 바위를 향해서도 여, 라 불렀을 것이다그러니 여가 드러난 것은썰물 때가 되어서만은 아니다며칠 전부터 물에 잠긴 여 주변을 낮게 맴돌며끊임없이 날개를 퍼덕이던 새들 때문이다그 젖은 날개에서도 여, 라는 소리가 들렸다

 


 

쓰러진 나무

       

저 아카시아 나무는

쓰러진 채로 십 년을 견뎠다

몇 번은 쓰러지면서

잡목 숲에 돌아온 나는, 이제

쓰러진 나무의 향기와

살아 있는 나무의 향기를 함께 맡는다

쓰러진 아카시아를

제 몸으로 받아낸 떡갈나무

사람이 사람을

그처럼 오래 껴안을 수 있으랴

잡목 숲이 아름다운 건두 나무가 기대어 선 각도 때문이다

아카시아에게로 굽어져 간 곡선 때문이다

아카시아의 죽음과

떡갈나무의 삶이 함께 피워낸

저 연초록빛 소름십 년 전처럼 내 팔에도 소름이 돋는다

 

   

 

도끼를 위한 달

 

이제서야 7월의 중반을 넘겼을 뿐인데 마음에는 11월이 닥치고 있다 삶의 기복이 늘 달력의 날짜에 맞춰 오는 건 아니라고 이 폭염 속에 도사린 추위가 말하고 있다 11월은 도끼를 위한 달이라고 했던 한 자연보전론자의 말처럼 낙엽이 지고 난 뒤에야 어떤 나무를 베어야 할지 알게 되고 도끼날을 갈 때 날이 얼어붙지 않을 정도로 따뜻하면서 나무를 베어도 될 만큼 추운 때가 11월이라 한다 호미를 손에 쥔 열 달의 시간보다 도끼를 손에 쥔 짧은 순간의 선택이, 적절한 추위가, 붓이 아닌 도끼로 씌어진 생활이 필요한 때라 한다 무엇을 베어낼 것인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안의 잡목숲을 들여다본다 부실한 잡목과도 같은 에 도끼의 달이 가까웠으니 7월의 한복판에서 맞이하는 11, 쓰러지지 않기 위해 도끼 자루를 다잡아보는 여름날들

 

 

 

느티나무

 

속이 검게 타버린 고목이지만

창녕 덕산리 느티나무는 올봄도 잎을 내었다

 

잔가지 끝으로 하늘을 밀어올리며 그는

한 그루 榕樹처럼

제 아궁이에서 자꾸만 잎사귀를 꺼낸다

번개가 가슴을 쪼개고 지나간 흔적을 안고도

저렇게 눈부신 잎을 피워내다니,

시커먼 아궁이 하나 들여놓고

그는 오래오래 제 살을 달여 내놓는다

낮의 새와 밤의 새가 다녀가고

다람쥐 일가가 세들어 사는,

구름 몇 점 별 몇 개 뛰어들기도 하는,

바람도 가만히 숨을 모으는 그 검은 아궁이에는

모든 빛이 모여 불타고 모든 빛이 나온다

까마귀 깃들었다 날아간 자리에

검은 울음 몇 가지가 뻗어 있기도 한다

 

발이 묶인 채 날아오르는 새처럼

덕산리 느티나무는 푸른 날개를 마악 펴들고 있다

 

-시집, “사라진 손바닥”(문학과지성 시인선 291, 2004)

 


 

누가 우는가

 

바람이 우는 건 아닐 것이다이 폭우 속에서미친 듯 우는 것이 바람은 아닐 것이다번개가 창문을 때리는 순간 얼핏 드러났다가끝내 완성되지 않는 얼굴,이제 보니 한 뼘쯤 열려진 창 틈으로누군가 필사적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것 같다울음소리는 그 틈에서 요동치고 있다물줄기가 격랑에서 소리를 내듯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는 좁은 틈에서누군가 울고 있다창문을 닫으니 울음소리는 더 커진다유리창에 들러붙는 빗방울들,가로등 아래 나무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다저 견딜 수 없는 울음은 빗방울들의 것,나뭇잎들의 것,또는 나뭇잎을 잃지 않으려고이리저리 부딪치는 나뭇가지들의 것,뿌리뽑히지 않으려고, 끝내 초월하지 않으려고제 몸을 부싯돌처럼 켜대고 있는나무 한 그루가 창 밖에 있다내 안의 나무 한 그루 검게 일어선다

 

 


 

俗離山에서

 

가파른 비탈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 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순한 길을 열어 보였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은 남아 있는 나에게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산을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 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그 하루 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 거라고,

속리산은

단숨에 오를 수도 있는 높이를

길게 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쳐 주었다

 


 

 

기억의 자리

 

어렵게 멀어져 간 것들이

다시 돌아올까 봐.

나는 등을 돌리고 걷는다.

추억의 속도보다는 빨리 걸어야 한다.

이제 보여 줄 수 있는 건

뒷모습뿐,

눈부신 것도

등에 쏟아지는 햇살뿐일 것이니

도망치는 동안에만 아름다울 수 있는

길의 어귀마다

여름 꽃들이 피어난다,

키를 달리하여

수많은 내 몸들이 피었다 진다.

시든 꽃잎이 그만

피어나는 꽃잎 위로 떨어져 내린다.

휘청거리지 않으려고 걷는다,

빨리, 기억의 자리마다

발이 멈추어선 줄도 모르고

예전의 그 자리로 돌아온 줄도 모르고

 


 

못 위의 잠

 

저 지붕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 봅니다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 온 제비,

리에선 아직 흙 바람이 몰려 오나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하나, 그 위의 잠

 


 

종점 하나 전

 

집이 가까워오면

이상하게도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깨어보면 늘 종점이었다

몇 남지 않은 사람들이

죽음으로 내딛듯 골목으로 사라져가고

한 정거장을 되짚어 돌아오던 밤길,

거기 내 어리석은 발길은 뿌리를 내렸다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쳐

늘 막다른 어둠에 이르러야 했던,

그제서야 터벅터벅 되돌아오던,

그 길의 보도블록들은 여기저기 꺼져 있었다

그래서 길은 기우뚱거렸다

잘못 길들여진 말처럼

집을 향한 우회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희미한 종점 다방의 불빛과

셔터를 내린 세탁소, 쌀집, 기름집의

작은 간판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 낮은 지붕들을 지나

마지막 오르막길에 들어서면

지붕들 사이로 숨은 나의 집이 보였다

집은 종점보다 가까운,

그러나 여전히 먼 곳에 있었다

 


 

어두워 진다는 것

 

오래 전 숲속에서 길짐승과 날짐승이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족제비와 꿩.

누가 먼저 싸움을 청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부리와 발톱을 하나로 뒤엉켜 먼지 속

에 뒹굴었다. 꿩은 이미 날갯죽지를 다쳐 멀리 날아갈 수 없었고 , 족제비의 목에

서는 피가 흘렀다.

 

그 날의 숲은 이제 고요하다. 너무나 고요하다. 그러나 내 속에서는 아직도 부리와

발톱이 서로를 겨누고 있다. 새와 짐승,빛과 어둠,대지와 바다,젊음과 늙음,가벼움과

무거움,그 문턱에서 끝없이 뒤척이는 동안 두 세계는 피 흐르는 상처 속에 고스란히

함께 있었다. 피의 맛을 본 자는 더이상 빛나는 물과 뜨거운 꿀을 먹고 살아

가지 못할 것이라는 끌로델의 말처럼, 언제부턴가 내 눈은 빛보다는 어둠에 더 익

숙해졌다.

 

그런데 어둠도 시에 들어오면 어둠만은 아닌 게 되는지,때로 눈부시고 때로 감미

롭기도 했다.그런 暗電에 대한 갈망이 이 저물녘의 시들을 낳았다.어두워진다는

,그것은 스스로의 삶을 밝히려는 내 나름의 방식이자 안간힘이었던 셈이다.

 

 

 

뜨거운 돌

 

움켜쥐고 살아온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놓고 펴 보는 날 있네

지나온 강물처럼 손금을 들여다보는

그런 날이 있네

그러면 내 스무 살 때 쥐어진 돌 하나

어디로도 굴러가지 못하고

아직 그 안에 남아 있는 걸 보네

가투 장소가 적힌 쪽지를 처음 받아들던 날

그건 종이가 아니라 뜨거운 돌이었네

누구에게도 그 돌 끝내 던지지 못했네

한 번도 뜨겁게 끌어안지 못한 이십대

火傷마저 늙어가기 시작한 삼십대

던지지 못한 그 돌

오래된 질문처럼 내 손에 박혀 있네

그 돌을 손에 쥔 채 세상과 손잡고 살았네

그 돌을 손에 쥔 채 글을 쓰기도 했네

문장은 자꾸 걸려 넘어졌지만

그 뜨거움 벗어나기 위해 글을 쓰던 밤 있었네

만일 그 돌을 던졌다면,

누군가에게, 그랬다면,

삶이 좀더 가벼울 수 있었을까

오히려 그 뜨거움이 온기가 되어

나를 품어 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하네

오래된 질문처럼 남아 있는 돌 하나

대답도 할 수 없는데 그 돌 식어 가네

단 한 번도 흘러 넘치지 못한

화산의 용암처럼

식어 가는 돌 아직 내 손에 있네

 


 

밥생각

 

밥 주는 걸 잊으면 그 자리에 서곤 하던 시계가 있었지 긴 다리 짧은 다리 다 내려놓고 쉬다가 밥을 주면 째각 째각 살아나던 시계, 그는 늘 주어진 시간만큼 충실했지 내가 그를 잊고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갔지만 억지로 붙잡아두거나 따라가려는 마음 없이 그냥 밥 생각이나 하면서 기다리는 거야 요즘 내가 그래 누가 내게 밥 주는 걸 잊었나봐 깜깜해 그야말로 停電이야 모든 것과의 싸움에서 停電이야 태엽처럼 감아놓은 고무줄을 누가 놓아버렸나 봐 시간은 흘러가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냉장고의 감자에선 싹이 나지 않고 고드름이 녹지 않고 시계바늘처럼 매달려 있어 째각 째각 살아있다는 소리 들리지 않아 반달이 보름달이 되고 다시 반달이 되는 것을 보지만 멈추어버린 나는 항상 보름달처럼 둥글지 그러니 어디에 부딪쳐도 아프지 않지 부서지지 않지 내 밥은 내가 못 주니까 보름이어도 나는 빛을 볼 수 없어 깜깜해 그냥 밥 생각이나 하고 있어 가끔은 내가 밥을 주지 않아서 서 있을 누군가를 생각하지 밥을 주지 않아도 잘 가는 시계가 많지만 우리가 이렇게 서버린 건 순전히 밥 생각 때문이야 밥을 주다는 것은 나를 잊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그가 감아준 태엽마다 새로운 시간을 감고 싶으니까 그 때까진 停電이야 停戰이라구, 이 구식 시계야

 


 

해미읍성에 가시거든

 

해질무렵 해미읍성에 가시거든 당신은 성문밖에 말을 잠시 매어두고 고요히 걸어 들어가 두 그루 나무를 찾아보실 일입니다 가시 돋힌 탱자울타리를 따라가면 먼저 저녁 해를 받고 있는 회화나무가 보일 것입니다 아직 서 있으나 시커멓게 말라버린 그 나무에는

 

밧줄과 사슬의 흔적 깊이 남아 있고 수천의 비명이 크고 작은 옹이로 박혀 있을 것입니다

 

나무가 몸을 베푸는 방식이 많기도 하지만 하필 형틀의 운명을 타고난 그 회화나무, 어찌 그가 눈 멀고 귀 멀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당신의 손끝은 그 상처를 아프게 만질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더 걸어가 또다른 나무를 만나보실 일입니다

 

옛 동헌 앞에 심어진 아름드리 느티나무, 그 드물게 넓고 서늘한 그늘 아래서

 

사람들은 회화나무를 잊은 듯 웃고 있을 것이고 당신은 말없이 앉아 나뭇잎만 헤아리다 일어서겠지요 허나 당신, 성문 밖으로 혼자 걸어 나오며 단 한 번만 회화나무쪽을 천천히 바라보십시오

 

그 부러진 회화나무를 한번도 떠난 일 없는 어둠을요 그늘과 형틀이 이리도 멀고 가까운데 당신께 제가 드릴 것은 그 어둠뿐이라는 것을요 언젠가 해미읍성에 가시거든 회화나무와 느티나무 사이를 걸어보실 일입니다

 


 

진흙 눈동자


몇 걸음도 안 되는 거리에서 아버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신다 아버지, 부르면 그제서야 너 왔냐, 웃으신다 갑자기 식어버린, 열려 있지만 더 이상 피가 돌지 않는 저 눈동자 속에 어느 손이 진흙을 메워버렸나 괜찮다, 한 눈은 아직 성하니 세상을 반쯤만 보고 살라는 모양이다 조금씩 흙에 가까워지는 게지, 아버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씀하신다 고요한 진흙 눈동자 그 속에 앞산의 나무 몇 그루 들어와 있다

 


 

사과밭을 지나며

 

가을엔 나비조차 낮게 나는가 내려놓을 것이 있다는 듯 부려야 할 몸이 무겁다는 듯 가지가 휘어지도록 열매를 달았던 사과나무, 열매를 다 내려놓고 난 뒤에도 그 휘어진 빈 가지는 펴지지 않는다 아직 짊어질 게 남았다는 듯 그에겐 허공이, 열매의 자리마다 비어 있는 허공이 열매보다 더 무거울 것이다 빈 가지에 나비가 잠시 앉았다 날아간다 무슨 축복처럼 눈 앞이 환해진다 아, 네가, 네가, 어디선가 나를 내려놓았구나 그렇지 않다면 이토록 사과나무 그늘이 환해질 수 있을까 꿰맨 자국 하나 없는 나비의 날개보다 오늘은 내 百結의 옷이 한결 가볍겠구나 아주 뒤늦게 툭, 떨어지는 사과 한 알 사과 한 알을 내려놓는 데 오년이 걸렸다

 


 

가벼워지지 않는 가방

 

또 헛되이 가방을 산다 아무리 작은 가방을 사도 삶의 짐은 가벼워지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꾸었다던 시인은 그 방과 함게 노래를 잃고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알게 되었다지만 나는 방도 바꾸지 못하고 가방만 바꾼다 갇혀 있는 가방이 너무 작게 느껴지는 날에는 커다란 여행 가방을 사고 가방 속이 휑하게 느껴지는 날에는 날렵하고 단단해 보이는 핸드백을 산다 떠나지도 채우지도 못하면서 가방만 산다 가방에 더 넣을 것이 없다는 걸 알면서 크기가 이 정도는 돼야지, 중얼거리고 무늬는 이게 좋겠어, 들었다 놓기도 한다 그때마다 좌판에 놓인 가방은 한눈에 나를 고른다 새로 산 가방에 이끌려 돌아오는 길 혁명은 안 되고 나는 가방만 바꾸었지만 공허의 무게는 가벼워지지 않는다 그 무거움이 마음의 굳은살을 만든다 그걸 알면서 또 헛되이 가방을 살 것이다 채울 수 없는 빈 방을 내 안에 들여놓는 일처럼

 


 

뿌리에게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나의 막 갈구어진 연한 흙이어서

너를 잘 기억할 수 있다네

숨결 처음 대이던 그 자리에 더운 김이 오르고

밝은 피 뽑아 네게 흘려 보내며 즐거움에 떨던

아 나의 사랑을

먼 우물 앞에서도 목마르던 나의 뿌리여

나를 뚫고 오르렴,

눈부셔 잘 부스러지는 살이니

내 밝은 피에 즐겁게 발 적시며 뻗어가려

무나척추를 휘어접고 더 넓게 뻗으면

그때마다 나는 착한 그릇이 되어 너를 감싸고,

불꽃 같은 바람이 가슴을 두드려 세워도

네 뻗어가는 끝을 하냥 축복하는 나는

어리석고도 은밀한 기쁨을 가졌어라

네가 타고 내려올수록

단단해지는 나의 살을 보아라

이제 거무스레 늙었으니

슬픔만 한 두릅 꿰어 있는 껍데기의

마지막 잔을 마셔다오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내 가슴에 끓어오르던 벌레들,

그러나 지금은 하나의 빈 그릇,

너의 푸른 줄기 솟아 햇살에 반짝이면

나는 어느 산비탈 연한 흙으로 일구어지고 있을테니

 


 

고통에게1

 

어느 굽이 몇 번은 만난 듯도 하다

네가 마음에 지핀 듯

울부짖으며 구르는 밤도 있지만

밝은 날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러나 너는 정작 오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날 너는 무심한 표정으로 와서

쐐기풀을 한 짐 내려놓고 사라진다

사는 건 쐐기풀로 열두 벌의 수위를 짜는 일이라고,

그때까지는 침묵해야 한다고,

마술에 걸린 듯 수의를 위해 삶을 짜깁는다

손끝에 맺힌 핏방을이 말라가는 것을 보면서

네 속의 폭풍을 읽기도 하고,

때로는 봄볕이 아른거리는 뜰에 쪼그려 앉아

너를 생각하기도 한다

 

대체 나는 너를 기다리는 것인가

오늘은 비명 없이도 너와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나 너를 기다리고 있다 말해도 좋은 것인가

 

제 죽음에 기대어 피어날 꽃처럼, 봄 뜰에서.

 

 

 

저 물결 하나

 

한강 철교를 건너는 동안

잔물결이 새삼스레 눈에 들어왔다

얼마 안 되는 보증금을 빼서 서울을 떠난 후

낯선 눈으로 바라보는 한강,

어제의 내가 그 강물에 뒤척이고 있었다

한 뼘쯤 솟았다 내려앉는 물결들,

서울에 사는 동안 내게 지분이 있었다면

저 물결 하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결, 일으켜

물새 같은 아이 둘을 업어 길렀다

사랑도 물결, 처럼

사소하게 일었다 스러지곤 했다

더는 걸을 수 없는 무릎을 일으켜 세운 것도

저 낮은 물결, 위에서였다

숱한 목숨들이 일렁이며 흘러가는 이 도시에서

뒤척이며, 뒤척이며, 그러나

같은 자리로 내려앉는 법이 없는

저 물결, 위에 쌓았다 허문 날들이 있었다

거대한 점묘화 같은 서울

물결, 하나가 반짝이며 내게 말을 건넨다

저 물결을 일으켜 또 어디로 갈 것인가

 


 

포도밭

 

저 야트막한 포도밭처럼 살고 싶었다

산등성이 아래 몸을 구부려

낮게 낮게 엎드려서 살고 싶었다

숨은 듯 숨지는 않은 듯

세상 밖에서 익혀가고 싶은 게 있었다

입 속에 남은 단 한 마디

포도씨처럼 물고

끝내 밖으로 내어 놓고 싶지 않았다

둥근 몸을 굴려 어디에 처박히고 싶은 꿈

내게 있었다. 몇 장의 잎새 뒤에서

 

그러나 나는 이미 세상의 술틀에 던져진 포도알이었는지 모른다 채 익기도 전에 으깨어져 붉은 즙액이 되어 버린, 너무 많은 말들을 입 속 가득 머금고 울컥거리는, 나는 어느새 둥근 몸을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포도가 아닌 다른 몸이 되어 절벅거리며, 냄새가 되어 또하나의 풍문이 되어 퍼져가면서, 세상을 적시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저 멀리 야트막한 포도밭의 평화,

아직 내 몸이 가지에 매달려 있는 것만 같아

사라진 손으로 사라진 몸을 더듬어본다

은밀하게 익혀가고 싶은 게 있었던 것처럼

 


 

저 숲에 누가 있다

 

밤구름이 잘 익은 달을 낳고

달이 다시 구름 속으로 숨어버린 후

숲에서는 ......... ...... ...... 타닥.........

상수리나무가 이따금 무슨 생각이라도 난 듯

제 열매를 던지고 있다

열매가 저절로 터지기 위해

나무는 얼마나 입술을 둥글게 오므렸을까

검은 숲에서 이따금 들려오는 말소리,

나는 그제야 알게도 된다

열매는 번식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무가 말을 하고 싶은 때를 위해 지어졌다는 것을

...... 타다닥......... 따악....... ......타르르...........

무언가 짧게 타는 소리 같기도 하고

웃음소리 같기도 하고 박수소리 같기도 한

그 소리들은 무슨 냄새처럼 나를 숲으로 불러들인다.

그러나 어둠으로 꽉 찬 가을 숲에서

밤새 제 열매를 던지고 있는 그의 얼굴을

끝내 보지 않아도 좋으리

그가 던지 둥근 말 몇개가

걸어가던 내 복숭아뼈쯤에 ....... .......굴러와 박혔으니

 

 

 

욕탕 속의 나무들

 

저 나무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늙은 왕버들 한 그루가 반쯤 물에 잠겨 있다더운 김이 오르는 욕탕,마을 어귀 아름드리 그늘을 드리우던 그녀가오늘은 물 속을 들여다보고 있다울퉁불퉁한 나무껍질이 더 검게 보인다그 많던 잎사귀들은 다 어디에 두고빈 가지만 남은 것일까왕버들 곁으로 조금 덜 늙은 왕버들이 다가와그녀의 등과 어깨를 천천히 밀어준다축 늘어진 배와 가슴도, 주름들도,주름들 사이에 낀 어둠까지도 환해진다나무 껍질 벗기는 냄새에나도 모르게 두 왕버들 곁으로 걸어간다냉탕에서 놀던 어린 버들이 뛰어오고왕버들 4나란히 푸른 물 속에 들어가 앉는다큰 굽쇠를 향해 점점 작아지는 굽쇠들처럼나는 당신에게서 나왔다고 말하는 몸들,무리 찰랑찰랑 흘러넘친다오래 전 왕버들의 새순이었던 것을 기억해낸다

 

 

 

노루

 

마음이 궁벽한 곳으로 나를 내몰아

산 속에서 자주 길을 잃었다

달리다보면 손은 수시로 뿔로 변하고

발에는 단단한 발굽이 돋았다

발굽 아래 무엇이 깨져 나가는지도 모르고

밤길을 달리다 문득 멈추어 선 것은

그 눈동자 앞이었다

겁에 질린 초식동물의 눈빛,

길을 잃어버리기는 나와 다르지 않았다

헤드라이트에 놀라 주춤거리다

돌 위에 쓰러진 노루는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노루가 울고 있다고 느꼈다

저 어리디어린 노루는

산 속에 두고 온 스무 살의 나인지도,

말없이 사라진 사람인지도,

언젠가 낳아 함부로 버린 사랑인지도 모른다

나는 헤드라이트를 끄고 어둠의 일부가 되어 외쳤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 안의 노루야,

두 개의 뿔과 네 개의 발굽으로

불행을 추월할 수는 없다 해도

일어나 어둠 속의 길을 마저 건너라

저 울창한 달래와 머루 넝쿨 속으로 사라져라

누구도 너를 다시 찾아낼 수 없도록

 

 

마른 연못

 

물이 빠진 거대한 연못,

오래전 눈에 박힌 풍경이 나가지 않네

장화 신은 발들이

몸 속을 저벅저벅 걸어다니네

울컥 고이는 발자국들,

검고 끈적한 진흙이 삼켜버리네

 

호미를 든 손들이

몸 속에 깊이 박힌 연뿌리를 캐네

숭숭 뿌리 뽑힌 자리마다

진흙이 뱀처럼 흐러들어 스르르 문을 닫네

 

장갑을 낀 손들이

몸 속에 흩어진 잔해를 그러모으네

이토록 태울 게 많았던가

번제를 올리듯 어떤 손이 불을 붙이네

 

타오르면서 타오르지 않는 불의 중심,

명치끝이 점점 뜨거워지네

눈이 너무 매워 움직일 수가 없네

 

뇌수 사에에서 썩어가던 기억의 잎과 줄기가

 

몇 줌의 재가 되어가는 동안

장화 신은 발들이 불을 둘러싸고 서 있네

 

그들이 주고받는 애기가 들렸다 안 들렸다 하고

누구일까. 내 몸을 제물로 삼아

마른 연못 속에서 불을 피우는 그들은

2008, 소월문학상 대상 수상작

 


  

원정園丁의 말

 

 

園丁은 겨울을 나는 벌들을 위해

풍로에 설탕물을 끓여서 벌집 속에 부어 주었다

 

벌집 속에서만 잉잉대는 벌 떼처럼

눈을 튀우지 못한 채 떨고 있던 매화나무들,

언 땅을 파서 묘목들 캐주던 園丁은 벙어리였다

 

그래 봄날, 매화나무는

불 꺼진 베란다 구석 커다란 화분에 갇혀 꽃을 피웠다

드문드문, 살아 있다는 증표로는 충분하게

 

뿌리를 적신 물이 하수구로 흘러 들었고

매화나무는 下血을 하는지

시든 꽃잎들이 하르르 하르르 물에 떠나녔다

 

소리 없는 말처럼 붉은 진이 가지에 맺히고

꽃 진 자리마다 잎이 돋기 시작했다

역류한 하수구의 물이 그녀를 키우기라도 하는 것일까

두려웠다, 집을 삼킬 듯 자라는 잎들이

열매 맺을 수 없는 나무의 피로 무성해지는 잎들이

뒤 늦게야 벙어리 園丁을 떠 올렸다

묘목을 실어주며 간절하게 가슴을 쓸어내리던 그의 손말을

, 알아듣지 못했다

화분 속에 겨울 들판을 들이려고 한 나는

-2008년 소월문학상 대상 수상시-

 

 

 

돼지머리들처럼

 

하루에도 몇 번 씩 거울을 보며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입끝을 집어올린다.

, 웃어야지. 살이 굳어지기 전에.

 

새벽 자갈치 시장, 돼지머리들을

찜통에서 꺼내 진열대 위에 앉힌 주인은

부지런히 손을 놀려 웃는 표정을 만들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웃어야지, 김이 가시기 전에.

 

몸에서 잘린 줄도 모르고

목구멍으로 피가 하염없이 흘러가는 줄도 모르고

아침 햇살에 활짝 웃던 돼지머리들.

 

그렇게 땀스럽게 웃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은 적당히 벌어진 입과 콧구멍 속에

만 원짜리 지폐를 쑤셔 넣지 않았으리라.

 

하루에도 몇 번 씩 진열대 위에 얹혀 있다는 생각,

, 웃어, 웃어봐, 웃는 척이라도 해봐.

시들어가는 입술을 손가락으로 잡아당긴다.

 

- - - - -

그러나 얼굴을 괄약근처럼 쥐었다 폈다

숨죽여 불러보아도 흘러내린 피가 돌아오지 않는다.

 

출근길 백밈러 속에서 발견한

누군가의 머리 하나.

 

 

 

바람과 바람막이

 

바람막이에 금이 갔다

 

금은 금을 불러와 번지더니

쩌억 벌어져 쪼개지기 직전이다

 

차가 속도를 낼수록 바람막이는

이빨 부딪치는 소리를 낸다. , , , ,

 

소음을 견디다 못해

벌어진 틈에 얇은 휴지 한 자을 끼워 넣는다.

 

, 아무소리도 나지 않는다

 

진동을 흡수한 휴지만 흰 깃발처럼 나부낄 뿐,

바람막이의 틈을 침묵으로 메워졌다

 

소리르 삼킨 몸이여

차라리 비명이라도 지르는 게 나았을까

 

결국 바람을 견디지 못한

한 조각이 쪼개져 날아가 버렸다, 돌팔매처럼

 

바람막이는 몸의 일부를 잃는 대신

비로소 금보다 무거운 침묵을 얻게 되었다.

 

 

 

팔이 된 눈동자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자

일제히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하는 사람들,

고기 떼처럼 움직이는 인파 속에서

낯선 비늘 같은 게 반짝, 하고 빛났다

꽁치 떼 속에 끼어든 한 마리 멸치처럼 무언가

다른 전파를 보내는 존재가 있다

내 눈이 재빠르게 찾아낸 그 전파의 전원지는

유난리 키가 작은 한 사내였다

큰 것은 작아지고 작은 것은 커지며*

사내의 붉게 일그러진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다리가 움직일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두팔 대신 두 눈둥자를 위아래로 흔드는 사람,

흙투성이가 된 눈동자로

열심히 허공을 닦으며 걸어가는 사람.

그의 움직이지 않는 소매 속은 텅 비어 있을 것이다

 

신호등이 어느새 빨간 불로 바뀌고

길을 미처 건너지 못한 사내는

더 필사적으로 두 눈동자를 흔들어댔다

이 그물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눈동자라는 두 바퀴를

더 빨리 굴려갈 수 밖에 없다는 듯이

그것만이 사라지니 팔의 통증을 잊게 해 준다는 듯이

* " 큰 것은 작아지고 작은 것은 커지며, 각각은 자신의 순수한 종에 따라 여전히 움직이며 고정된 채 머물며, 가깝거나 멀며 멀어지며 가깝다."는 괴테의 말 중에서 따옴

 


 

벗어놓은 스타킹

 

지치도록 달려온 갈색 암말이

여기 쓰러져 있다

더 이상 흘러가지 않을 것처럼

 

생의 얼굴은 촘촘한 그물 같아서

조그만 까끄라기에도 올이 주르르 풀려나가고

무릎과 엉덩이 부분은 이미 늘어져 있다

몸이 끌고 다니다가 벗어놓은 욕망의

껍데기는 아직 몸의 굴곡을 기억하고 있다

의상을 벗은 광대처럼 맨발이 낯설다

얼른 집어 들고 일어나 물속에 던져 넣으면

달려온 하루가 현상되어 나오고

물을 머금은 암말은

갈색빛이 짙어지면서 다시 일어난다

또 다른 의상이 되기 위하여

밤새 갈기는 잠자리 날개처럼 잘 마를 것이다

 

 

 

섶섬이 보이는 방

-이중섭의 방에 와서

 

서귀포 언덕 위 초가 한 채

귀퉁이 고방을 얻어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다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찰,

방보다는 차라리 관에 가까운 그 방에서

게와 조개를 잡아먹으며 살았다

아이들이 해변에서 묻혀온 모래알이 버석거려도

밤이면 식구들의 살을 부드럽게 끌어안아

조개껍데기처럼 입을 다물던 방,

게를 삶아 먹은 게 미안해 게를 그리는 아고리와

소라껍데기를 그릇 삼아 상을 차리는 발가락군이

서로의 몸을 끌어안던 석회질의 방,

방이 너무 좁아서 그들은

하늘로 가는 사다리를 높이 가질 수 있었다

꿈 속에서나 그림 속에서

아이들은 새를 타고 날아다니고

복숭아는 마치 하늘의 것처럼 탐스러웠다

총소리도 거기까지는 따라오지 못했다

섶섬이 보이는 이 마당에 서서

서러운 햇빛에 눈부셔 한 낱 많았더라도

은박지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아이들과 헤어질 때까지 놀았다

게가 아이의 잠지를 물고

아이는 물고기의 꼬리를 잡고

물고기는 아고리의 손에서 파닥거리던 바닷가,

 

그 행복조차 길지 못하리란 걸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알지 못한 채 살았다

빈 조개껍데기에 세든 소라게처럼

*화가 이중섭과 그의 아내가 서로를 부르던 애칭.

 

   


삼베 두 조각

 

내리는 아침

할머니는 손수 지어놓으신 수의로 갈아입으셨다

수의는 1978715일자 신문지에 싸여 있었다

수의를 지어놓고도 이십년을 더 사신 할머니는

백살이 가까운 어느 겨울날이 되어서야

연듯빛을 군데군데 넣어 만든 그 수의를

벽장 속에 숨겨둔 날개옷처럼 차려 입으신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버선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도 허지, 그것을 안 맨들 양반이 아닌디 아닌디......

어리등절해하는 사람들을 향해

할머니의 두 입술은 설핏 웃는 듯도 하였다

상자 속에는 버선 대신 삼베 두 조각이 들어 있어서

그걸로 잘 마른 장작 같은 두 발을 싸드렸다

삼베 두 조각을 두고

할머니는 왜 끝내 버선을 만들지 않으셨을까

1978715일자 신문지 에 싸여 있던

수의 한벌과 삼베 두 조각으로 따뜻하게 여며 입고

할머니는 1998119일 아침

횐눈이 내리는 새로운 집으로 걸어들어 가셨다

 

 

 

기억의 자리

 

어렵게 멀어져간 것들이

다시 돌아올까봐

나는 등을 돌리고 걷는다

추억의 속도보다는 빨리 걸어야 한다

이제 보여줄 수 있는 건

뒷모습뿐, 눈부신 것도

등에 쏟아지는 햇살뿐일 것이니

도망치는 동안에만 아름다울 수 있는

길의 어귀마다 여름꽃들이 피어난다

키를 달리하여

수많은 내 몸들이 피었다 진다

시든 꽃잎이 그만

피어나는 꽃잎 위로 떨어져내린다

휘청거리지 않으려고 걷는다, 빨리

기억의 자리마다

발이 멈추어선 줄도 모르고

예전의 그 자리로 돌아온 줄도 모르고

 

 

 

이 복도에서는

 

종합병원 복도를 오래 서성거리다 보면

누구나 울음의 감별사가 된다

울음마다에는 병아리 깃털 같은 결이 있어서

들썩이는 어깨를 짚어보지 않아도

그것이 병을 마악 알았을 때의 울음인지

죽음을 얼마 앞둔 울음인지

싸늘한 죽음 앞에서의 울음인지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이 복도에서는 보이지 않는 불문율이 있다

울음소리가 들려도 뒤돌아보지 말 것

아무 소리도 듣지 않은 것처럼 앞으로 걸어갈 것

 

마른 시냇물처럼 오래 흘러온

이 울음의 야적장에서는 누구도 그 무게를 달지 않는다

 

 

 

어린 것

 

어디서 나왔을까 깊은 산길

갓 태어난 듯한 다람쥐새끼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맑은 눈빛 앞에서

나는 아무 것도 고집할 수가 없다

세상의 모든 어린것들은

내 앞에 눈부신 꼬리를 쳐들고

나를 어미라 부른다

괜히 가슴이 저릿저릿한 게

핑그르르 굳었던 젖이 돈다

젖이 차올라 겨드랑이까지 찡해오면

지금쯤 내 어린것은

얼마나 젖이 그리울까

울면서 젖을 짜버리던 생각이 문득 난다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

난만한 그 눈동자,

너를 떠나서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고

갈 수도 없다고

나는 오르던 산길을 내려오고 만다

, 물구덩이에는 무사한 송사리떼

 

 

 

양계장집 딸

 

일어나자마자 닭장으로 달려가면

아버지가 손에 쥐어주던 갓 낳은 달걀로부터

나는 따뜻함을 배웠다.

 

분노를 배운 것도 닭장에서였다,

부리로 상대의 눈을 쪼아대며

어느 하나가 죽을 때까지 물러나지 않는,

 

건넛마을 아파트에 달걀을 팔러 가던 날

친구를 만날까봐 언니 뒤에 비비 숨던 어느 대낮

숨을수록 햇빛은 더 크게 소리쳤다.

그러나 닭도 달걀도 별로 돈이 되지는 못했다.

 

텃밭의 채소 몇뿌리와 더불어

무언가 기른다는 것이 아버지를 살게 하는 힘이었다.

그 손에서 길러짐으로써 닭들은 아버지를 살렸다.

종종거리며 아버지를 따라다니던

양계장집 어린 딸의 유일한 친구이기도 했다.

 

결국 닭은 닭장 속에서 견디며

우리 二代를 견디게 한 셈이다

 

 

 

공책검사

 

그때는 물자절약이 한창이었지,

앞표지의 거무죽죽한 꼭두부터 뒷표지의 끝에 이르기까지

위아래 공백에 금을 긋고 세로로도 반을 나누어

빽빽하게 우리는 70년대를 메꾸어나갔다.

 

무엇을 썼느냐 하는 것보다는

한 치의 여백도 없이 얼마나 아껴 썼느냐 하는 것이

우리가 받았던 공책 검사였다.

잘 부러지는 연필에 몇 번씩 침을 발라 쓰면서도

 

우리의 땅이 연필심처럼 부러져 가는 것은 몰랐었다.

자꾸만 찢어지는 공책을 달래어 숙제하면서도

그 순간 누군가 찢겨지고 있는 현실은 몰랐었다.

그저 빽빽하게 성실하게 메꾸어나가는 것뿐이었다.

 

이제 80년대를 다 보내고 난 어느 날 오후

아이들의 공책 검사를 한다.

혹시 다른 소리가 적혀 있지는 않나 검열당하는 시대에

무언가 또렷한 목소리를 지닌 공책 하나 찾으려고 뒤적거린다.

 

희고 매끄러운 여백 위로는

설명을 한 자도 빠뜨리지 않고 베껴놓은 우등생의 공책과

틀린 것조차 그대로 베껴쓴 들러리 공책들,

 

그 위에 빨간 별표 파란 별표 수없이 따 내리고

새까맣게 줄을 긋고 외워야만 대학을 가는 이 시대에

풍요에 길들여진 90년대의 첫장을 넘기면서

가장 곤궁한 시절, 내 손이 자꾸만 떨려온다.

 

 

 

성공한 인생

 

이구아수 폭포를 본 것만으로도

나는 성공한 인생이다

누군가 폭포를 보며 소리쳤다

장엄함에 말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더 성공한 생이 거기에 있다

등반을 거부하는 절벽처럼 쏟아지는 폭포

그 속도의 벽을 뚫고

폭포 뒤에 집을 짓고 먹이를 나르는 새들이 있다

토해낸 물고기 뼈를 둥지에 깔고

맑은 알을 기르는 새들

 

거대한 폭포는 보아도

한 점 새는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비를 덧입고 사진을 찍거나

작은 배를 타고 폭포 아래로 다가간다

그러나 폭포까지는, 폭포까지는 들어서지 못하고

눈도 못 뜨고 몸만 젖어 돌아서는 사람들

배는 눈먼 경전에 지나지 않는다

새들은 폭포의 뜨거운 목젖을 지난다

 

 

 

푸른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너에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러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 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분홍신을 신고

 

음악에 몸을 맡기자

두 발이 미끄러져 시간을 벗어나기 시작했어요

내 안에서 풀려나온 실은

술술술술 문지방을 넘어 밖으로 흘러갔지요

춤추는 발이

빵집을 지나 세탁소를 지나 공원을 지나 동사무소를 지나

당신의 식탁과 침대를 지나 무덤을 지나 풀밭을 지나

돌아오지 않아요 어쩌면 좋아요

세상은 나에게 계속 춤추라고 외쳤죠

꼬리 잘린 고양이처럼 다리를 잘린다 해도

음악에 온전히 몸을 맡길 수 있다니,

그것도 나에게 꼭 맞는 분홍신을 신고 말이에요

내 핏속에서 들리는 노랫소리,

둑을 넘어가는 물소리, 당신에게도 들리나요?

나는 어디든지 갈 수 있지만 아무 데도 가지 않아요

이곳은 아무리 춤을 춰도 해가 지지 않아요

물이 둑을 넘어 흘러내리듯

내 속의 실타래가 한없이 풀려나와요

실들이 뒤엉키고 길들이 뒤엉키고

이 도시가 나를 잡으려고 도끼를 들고 달려와도

이제 춤을 멈출 수가 없어요

오래 전 내 발에 신겨진, 그러나 잠들어 있던

분홍신 때문에

그 잠이 너무도 길었기 때문에

 

 

 

해일

 

숲은 만조다

바람이란 바람 모두 밀려와 나무들 해초처럼 일렁이고

일렁임은 일렁임끼리 부딪쳐 자꾸만 파도를 만든다

숲은 얼마나 오래 웅웅거리는 벌떼들을 키워온 것일까

아주 먼 데서 온 바람이 숲을 건드리자

숨죽이고 있던 모래알갱이들까지 우우 일어나 몰려다닌다

저기 거북의 등처럼 낮게 엎드린 잿빛 바위,

그 완강한 침묵조차 남겨두지 않겠다는 듯 출렁거린다

아니라 아니라고 온몸을 흔든다 스스로 범람한다

숲에서 벗어나기 위해 숲은 肉脫한다

부러진 나뭇가지들 떠내려간다

 

 

 

언덕

 

언덕은

내려오고 있다

 

늙은 고양이

어슬렁거리며

언덕을 내려올 때

언덕도 몇 발짝 따라 내려오고

 

마른 흙 위에

나비 앉았다 날아가면

언덕도 몇 줌 따라 날아가고

 

개나리가 언덕 아래

몸을 부리고 있는 동안

언덕은 또 얼마나 많이 내려와 있는지

중턱의 소나무 몇 그루가 간신히 붙잡고 있다

언덕을 내려오는

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언덕이 조금씩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어느날 아침

사람들은 말하겠지

언덕은 대체 어디로 갔지?

나무들은, 꽃잎들은, 고양이는, 나비는?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다들 어디로 갔지?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실려가는 나무

 

 

풀어헤친 머리가 땅에 닿을락 말락 한다

또다른 에 이식되기 위해

실려가는 나무, 트럭이 흔들릴 때마다

입술을 달싹여 무슨 말을 하는 것 같다

언어의 도끼가 조금은 들어간 얼굴이다

오래 서 있었던 몸에서는

자꾸만 신음소리 같은 게 흘러나오고

기억의 부스러기들이 땅에 떨어지기도 한다

그걸 받아적으며 따라가다가

출근길을 놓치고 낯선 길가에 부려진 나는

나무를 심는 인부의 뒷모습을 보았을 뿐,

나도 모르게 그 나무를 따라간 것은

덜컹덜컹 어디론가 실려가면서

언어의 도끼에 다쳐본 일이 있기 때문일까

어떤 둔탁한 날이 스쳐간 자국,

입술을 달싹이던 그 말들을 다시 읽을 수 없다

 


 

조찬朝餐

 

깃인가 꽃인가 밥인가

저 희디흰 눈은

누구의 허기를 채우려고

어제부터 내리고 있는가

뱃속에 들기도 전에 스러져버릴

양식을, 그러나 손을 펴서

오늘은 받으라 한다

흰밥을 받고 있는 언 손들

튤립나무 마른 열매들도

꽃봉오리 같은 제 속을 다 비워서

송이송이 고봉밥을 먹고 있다

박새들이 한 사흘 쪼아먹고 가겠다

 

 

 

어떤 出土

 

고추밭을 걷어내다가

그늘에서 늙은 호박 하나를 발견했다

뜻밖의 수확을 들어올리는데

흙 속에 쳐박힌 달디단 그녀의 젖을

온갖 벌레들이 오글오글 빨고 있는게 아닌가

소신공양을 위해

타닥타닥 타고 있는 불꽃 같기도 했다

그 은밀한 의식을 훔쳐보다가

나는 말라가는 고춧대를 덮어주고 돌아왔다

가을갈이를 하려고 밭에 다시 가보니

호박은 온데간데 없다

불꽃도 흙 속에 잦아든 지 오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녀는 젖을 다 비우고

잘 마른 종잇장처럼 땅에 엎드려 있는 게 아닌가

스스로의 죽음들 덮고 있는

관뚜껑을 나는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한 움큼 남아 있는 둥근 사리들!

 


 

북극성처럼 빛나는 

   

멀리 보이는 흰 바위섬,

뱃사람은 그것을 오지바위라 부른다

가까이 가보니 새들의 분뇨로 뒤덮여 있었다

가마우지떼가 겨울을 나는 섬이라고 한다

수많은 바위섬을 두고 유독

그 바위에만 날아와 앉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마우지들이 발디딜 틈도 없이 모여사는 것은

서로 사랑해서가 아니다

포식자의 눈과 발톱을 피하기 위해

서로를 밀어내면서도 떼를 지어 살 수밖에 없는

그들의 운명이 바위를 희게 만들었다

절벽 위에서 서로를 견디며

분뇨 위에서 뒹굴고 싸우고 구애하는 것은

새들만이 아니다

지상의 집들 또한 상처를 널어 말리고 있지 않은가

가파른 절벽 위에 뒤엉킨 채

말라붙은 기억, 화석처럼 찍힌 발톱자국,

일렁이는 파도에도 씻기지 않는

그 상처를 덮으러 다시 돌아올 가마우지떼

그들을 돌아오게 하는 힘은

파도 위 북극성처럼 빛나는 저 분뇨자국이다

 

 

 

방을 얻다

 

담양이나 평창 어디쯤 방을 얻어

다람쥐처럼 드나들고 싶어서

고즈넉한 마을만 보면 들어가 기웃거렸다

지실마을 어느 집을 지나다

오래된 한옥 한채와 새로 지은 별채 사이로

수더분한 꽃들이 피어 있는 마당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섰는데

아저씨는 숫돌에 낫을 갈고 있었고

아주머니는 밭에서 막 돌아온 듯 머릿수건이 촉촉했다

-저어, 방을 한칸 얻었으면 하는데요

일주일에 두어 번 와서 일할 공간이 필요해서요

나는 조심스럽게 한옥 쪽을 가리켰고

나주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글씨, 아그들도 다 서울로 나가불고

우리는 별채서 지낸께로 안채가 비기는 해라우

그라제마는 우리 이씨 집안의 내력이 짓든 데라서

맴으로는 지금도 쓰고 있단 밀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정갈한 마루와

마루 위에 앉아 계신 저녁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세놓으라는 말도 못하고 돌아섰지만

그 부부는 알고 있을까,

빈방을 마음으로는 늘 쓰고 있다는 말 속에

내가 이미 세들어 살기 시작했다는 것을

 

 

 

산속에서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찬비 내리고 - 편지 1

 

 

우리가 후끈 피워냈던 꽃송이들이

어젯밤 찬비에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아프지도 못합니다

밤새 난간을 타고 흘러내리던

빗방울들이 또한 그러하여

마지막 한 방울이 차마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에 매달려 있습니다

떨어지기 위해 시들기 위해

아슬하게 저를 매달고 있는 것들은

그 무게의 눈물겨움으로 하여

저리도 눈부신가요

몹시 앓을 듯한 이 예감은

시들기 직전의 꽃들이 내지르는

향기 같은 것인가요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마음껏 향기로울 수도 없습니다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릴 때 - 편지 2

       

세상이 나를 잊었는가 싶을 때

날아오는 제비 한 마리 있습니다

이젠 잊혀져도 그만이다 싶을 때

갑자기 날아온 새는

내 마음 한 물결 일으켜놓고 갑니다

그러면 다시 세상 속에 살고 싶어져

모서리가 닳도록 읽고 또 읽으며

누군가를 기다리게 되지요

제비는 내 안에 깃을 접지 않고

이내 더 멀고 아득한 곳으로 날아가지만

새가 차고 날아간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릴 때

그 여운 속에서 나는 듣습니다

당신에게도 쉽게 해 지는 날 없었다는 것을

그런 날 불렀을 노랫소리를

 

 

 

젖지 않는 마음 - 편지 3

       

여기에 내리고

거기에는 내리지 않는 비

당신은 그렇게 먼 곳에 있습니다

지게도 없이

자기가 자기를 버리러 가는 길

길가의 풀들이나 스치며 걷다 보면

발 끝에 쟁쟁 깨지는 슬픔의 돌멩이 몇개

그것마저 내려놓고 가는 길

오로지 젖지 않는 마음 하나

어느 나무그늘 아래 부려두고 계신가요

여기에 밤새 비 내려

내 마음 시린 줄도 모르고 비에 젖었습니다

젖는 마음과 젖지 않는 마음의 거리

그렇게 먼 곳에서

다만 두 손 비비며 중얼거리는 말

그 무엇으로도 돌아오지 말기를

거기에 별빛으로나 그대 총총 뜨기를

 

 

 

다음 생의 나를 보듯이

       

어느 부끄러운 영혼이

절간 옆 톱밥더미를 쪼고 있다.

마치 다음 생의 나를 보듯이 정답다.

왜 하필이면 까마귀냐고

묻지는 않기로 한다.

새도 짐승도 될 수 없어

퍼드득 낮은 날개의 길을 내며

종종걸음 치는 한 의 지나감이여

톱밥가루는 생목의 슬픔으로 젖어 있고

그것을 울며 가는 나여

짙은 그늘 속

떠나지 않는 너를 들여다보며

나는 이 생의 나와 화해한다.

그리고 산을 내려가면서

불쌍히 여길 무엇이 남아 있는 듯

까욱까욱 울음소리를 한번 내보기도 한다

 

 

 

 

, 바람 속으로

       

아버지 저를 업었지요.

별들이 멀리서만 반짝이던 밤

저는 눈을 뜬 듯 감은 듯 꿈도 깨지 않고

등에 업혀 이 세상 건너갔지요.

차마 눈에 넣을 수 없어서

꼭꼭 씹어 삼킬 수도 없어서

아버지 저를 업었지요.

논둑길 뱀딸기 밑에 자라던

어린 바람도 우릴 따라왔지요

어떤 행위로도 다할 수 없는 마음의 표현

업어준다는 것

내 생의 무게를 누군가 견디고 있다는 것

그것이 긴 들판 건너게 했지요.

그만 두 손 내리고 싶은

세상마저 내리고 싶은 밤에도

저를 남아 있게 했지요.

저는 자라 또 누구에게 업혔던가요.

바람이 저를 업었지요.

업다가 자주 넘어져 일어나지 못했지요.

 

 

       

너무 많이

 

 

그때 나를 내리친 것이 빗자루방망이였을까 손바닥이었을까

손바닥이었을까 손바닥에 묻어나던 절망이었을까.

나는 방구석에 쓰레받기처럼 처박혀 울고 있었다.

창 밖은 어두워져갔고 불을 켤 생각도 없이 우리는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침침한 방의 침묵은 어머니의 자궁 속처럼 느껴져 하마터면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을 뻔했다.

그러나 마른번개처럼 머리 위로 지나간 숱한 손바닥에서 어머니를 보았다면,

마음이 마음을 어루만지는 소리를 들었다면,

나는 그때 너무 자라버린 것일까.

이제 누구도 때려주지 않는 나이가 되어 밤길에 서서 스스로 뺨을 쳐볼 때가 있다.

내 안의 어머니를 너무 많이 맞게 했다.

 

 

        

십년 후

      

당신의 손이 아니었다면 건널 수 없었던

어둠조차 이제 여기는 없습니다

오직 당신에게 돌아가기 위하여

이 산길에 접어든 나는

더 깊은 골짜기를 찾아 헤매었지요

예전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는 게 있다면

단 하나라도 남아 있기만 하다면

그 어둠과 안개의 힘으로

말랐던 계곡의 물도 다시 흐르게 할 텐데

그러면 돌 몇개는 징검돌이 되기 위해

번쩍 깨어날 텐데, 어떠한 은밀함도

순결함도 남아 있지 않은 산길 위에

나는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물결을 거스르며 견디는 돌멩이처럼

 

 

 

 

다시, 십년 후의 나에게

        

십년 후의 나에게, 라고 시작하는

편지는 그보다 조금 일찍 내게 닿았다

 

책갈피 같은 나날 속에서 떠올라

오늘이라는 해변에 다다른 유리병 편지

오래도록 잊고 있었지만

줄곧 이곳을 향해 온 편지

 

다행히도 유리병은 깨어지지 않았고

그 속엔 스물다섯의 내가 밀봉되어 있었다

스물다섯살의 여자가

서른다섯살의 여자에게 건네는 말

그때의 나는 첫아이를 가진 두려움을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한마리 짐승이 된 것 같아요, 라고

또하나의 목숨을 제 몸에 기를 때만이

비로소 짐승이 될 수 있는 여자들의 행복과 불행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 자란 만큼 내 속의 여자들도 자라나

 

나는 오늘 또 한통의 긴 편지를 쓴다

다시, 십년 후의 나에게

내 몸에 깃들여 사는 소녀와 처녀와 아줌마와 노파에게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는 그 늑대여인들에게

두려움이라는 말 대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책갈피 같은 나날 속으로,

다시 심연 속으로 던져지는 유리병 편지

누구에게 가 닿을지 알 수 없지만

줄곧 어딘가를 향해 있는 이 길고 긴 편지

 

 

 

       

흐린 날에는

 

 

너무 맑은 날 속으로만 걸어왔던가

습기를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여

썩기도 전에

이 악취는 어디서 오는지,

바람에 나를 널어 말리지 않고는

좀더 가벼워지지 않고는

그 습한 방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바람은 칼날처럼 깊숙이,

꽂힐 때보다 빠져나갈 때 고통은 느껴졌다

나뭇잎들은 떨어져나가지 않을 만큼만 바람에 몸을 뒤튼다

저렇게 매달려서, 견디어야 하나

구름장 터진 사이로 잠시 드는 햇살

그러나, , 나는 눈부셔 바라볼 수 없다

큰 빛을 보아버린 두 눈은

그 빛에 멀어서 더듬거려야 하고

너무 맑게만 살아온 삶은

흐린 날 속을 오래오래 걸어야 한다

그래야 맞다, 나부끼다 못해

서로 뒤엉켜 찢겨지고 있는

저 잎새의 날들을 넘어야 한다

 

 

 

 

떨기나무 덤불 있다면

 

 

내가 기대어 살아온 것은 정작

허기에 불과했던 것일까

채우면 이내 사라지는, 허나

다시 배고픈 영혼이 되어

무언가를 불러대던 소리, 눈빛, 몸짓, 저 냄새

내가 사랑한 모든 것은

그런 지푸라기에 붙인 불꽃이었을까

그러나 허기가 아니었다면

한 눈빛

어떤 눈빛을 알아볼 수 있었을까

한 손이 다른 손을 잡을 수는 있었을까

허기로 견디던 한 시절은 가고, 이제

발자국조차 남길 수 없는 자갈밭 같은 시대

거기 메아리를 얻지 못한 소리들만 갈앉아

뜨겁게 자갈을 달구는 시대

불타도 사라지지 않는 떨기나무 덤불 있다면

그 앞에 신이라도 벗어야겠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그리로 그리로 기울고 싶다

 

 

 

 

복장리에서

 

 

전혀 낯선 곳에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복장리,

처음 들어 보는 이곳으로

누가 나를 불렀나

해질 무렵 인적 끊어진 산길에서

그것도 아기를 업고

나는 왜 이곳을 서성거리고 있나

 

뻐꾸기 울음소리가 내 주위를 맴돈다

아기를 업은 채

울음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다가갔다

스스로는 둥지를 짓지 않고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다는 뻐꾸기,

내가 다가서자 푸드득 날아올랐다

 

뻐꾸기, 내 어리석은 가슴에도 탁란을 했던 것일까

그 울음 하도 슬퍼서

등뒤에 업은 아이가 혹시

뻐꾸기 새끼는 아닐까 쉽기도 하다

어두워져 길은 닫히고

저녁 하늘과 같은 빛으로 가뭇없이 사라진

잿빛 뻐꾸기, 그 울음이 나를 불렀던 것일까

 

 

 

태 풍

        

바람아, 나를 마셔라.

단숨에 비워내거라.

내 가슴속 모든 흐느낌을 가져다

저 나부끼는 것들에게 주리라.

울 수 있는 것들은 울고

꺾일 수 있는 것들은 꺾이도록.

그럴 수도 없는 내 마음은

가벼워지고 또 가벼워져서

신음도 없이 지푸라기처럼 날아오르리.

바람아, 풀잎 하나에나 기대어 부르는

나의 노래조차 쓸어가버려라.

울컥울컥 내 설움 데려가거라.

그러면 살아가리라,

네 미친 울음 끝

가장 고요한 눈동자 속에 태어나.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살았을 때의 어떤 말보다

아름다웠던 한마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이 잎을 노랗게 물들였다.

지나가는 소나기가 잎을 스쳤을 뿐인데

때로는 여름에도 낙엽이 진다.

온통 물든 것들은 어디로 가나.

사라짐으로 하여

남겨진 말들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말이 아니어도, 잦아지는 숨소리,

일그러진 표정과 차마 감지 못한 두 눈까지도

더이상 아프지 않은 그 순간

삶을 꿰매는 마지막 한땀처럼

낙엽이 진다.

낙엽이 내 젖은 신발창에 따라와

문턱을 넘는다, 아직은 여름인데.

 

 

 

땅 끝

 

 

산너머 고운 노을을 보려고

그네를 힘차게 차고 올라 발을 굴렸지

노을은 끝내 어둠에게 잡아먹혔지

나를 태우고 날아가던 그넸줄이

오랫동안 삐걱삐걱 떨고 있었어

어릴 때는 나비를 쫓듯

아름다움에 취해 땅끝을 찾아갔지

그건 아마도 끝이 아니었을지 몰라

그러나 살면서 몇번은 땅끝에 서게도 되지

파도가 끊임없이 땅을 먹어들어오는 막바지에서

이렇게 뒷걸음질치면서 말야

살기 위해서는 이제

뒷걸음질만이 허락된 것이라고

파도가 아가리를 쳐들고 달려드는 곳

찾아나선 것도 아니었지만

끝내 발 디디며 서 있는 땅의 끝,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는 것이

땅끝은 늘 젖어 있다는 것이

그걸 보려고

또 몇번은 여기에 이르리라는 것이

 

 

 

 

불 켜진 창

 

 

불빛을 훔치려는 사람처럼

문이 아닌 창 쪽으로 가서 집 안을 들여다본다

 

남편과 큰아이는 장기를 두고 있고

접시에 남은 과일은 아직 물기 마르지 않았고

주전자에서는 김이 오르고 있다

작은아이는 자는가

 

나는 한마리 나방인 듯이

창문에 부대껴 서서 생각한다

그 익숙한 살림살이들의 낯설음에 대하여

부르면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의 아득함에 대하여

내가 없는 세상의 온기 또는 평화에 대하여

 

큰아이가 자꾸 시계를 올려다본다

그러나 한마리 나방인 듯이

오늘은 창 밖 어둠속에 나는 숨어서

오래오래 들여다본다

 

불 켜진 버스처럼 금방이라도 떠날 것 같은

그 창문을

 

 

 

거리

 

 

이쯤이면 될까.

아니야. 아니야. 아직 멀었어.

멀어지려면 한참 멀었어.

 

이따금 염주 생각을 해봐.

 

한 줄에 꿰어 있어도

다른 빛으로 빛나는 염주알과 염주알,

그 까마득한 거리를 말야.

 

알알이 흩어 버린다 해도

여전히 너와 나,

모감주나무 열매인 것을.

 

 

 

빨래는 얼면서 마르고 있다

 

 

이를테면, 고드름 달고

빳빳하게 벌서고 있는 겨울 빨래라든가

달무리진 밤하늘에 희미한 별들,

그것이 어느 세월에 마를 것이냐고

또 언제나 반짝일 수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겠습니다.

빨래는 얼면서 마르고 있다고,

희미하지만 끝내 꺼지지 않는 게

세상엔 얼마나 많으냐고 말입니다.

상처를 터뜨리면서 단단해지는 손등이며

얼어붙은 나무껍질이며

거기에 마음 끝을 부비고 살면

좋겠다고, 아니면 겨울 빨래에

작은 고기 한 마리로 깃들여 살다가

그것이 마르는 날

나는 아주 없어져도 좋겠다고 말입니다.

 

 

 

그대가 오기 전날

 

 

그동안 나에게는 열망하는 바가 얼마나 많았더냐

오랜 줄다리기, 그 줄을 내려놓고

이제 두 손을 털면

하늘마저 가까이 내려와 숨을 내쉰다

 

그러나 나에게는 망설이던 적이 얼마나 많았더냐

진흙탕 속을 걸어가면서도

발목 하나 빠지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다가

이제 온몸으로 넘어지고 나니

진흙도 나를 받아 감싸는구나

 

열망하면서도 뛰어들지 못했던 많은 일들이

활활한 불길처럼 살아오는 오늘

그대로 하여

열망과 용기를 함께 가지게 되었으니

두렵지 않아라,

눈먼 그대를 내 안에 앉히는 일이

 

 

 

허공 한줌

 

 

이런 얘기를 들었어. 엄마가 깜박 잠이 든 사이 아기는 어떻게 올라갔는지 난간 위에서 놀고 있었대. 아기가 모르는 난간 밖은 허공이었지. 잠에서 깨어난 엄마는 난간의 아기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이름을 부르려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 아가,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엄마는 숨을 죽이며 아기에게로 한 걸음 다가갔어. 그리고는 온몸의 힘을 모아 아기를 끌어안았어. 그런데 아기를 향해 내뻗은 두 손에 잡힌 것은 허공 한줌뿐이었지. 그 순간 엄마는 숨이 멈춰버렸어. 다행히 아기는 엄마 쪽으로 굴러 떨어졌지. 죽은 엄마는 꿈에서 깬 듯 우는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달렸어. 아기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말고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울음을 그치고 아기는 잠이 들었어. 죽은 엄마는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아랫목에 눕혔어. 아기를 토닥거리면서 그 옆에 누운 엄마는 그 후로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어. 죽은 엄마는 그제서야 마음놓고 죽을 수 있었던 거야.

 

이건 그냥 만들어낸 얘기가 아닐지 몰라.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나는 비어 있는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어. 텅 비어 있을 때에도 그것은 꽉 차 있곤 했지. 수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그날 밤 참으로 많은 걸 놓아주었어. 허공 한줌까지도 허공에 돌려주려는 듯 말야.

 

 

 

허락된 과식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햇빛이 가득한 건

근래에 보기 드문 일

 

오랜 허기를채우려고

맨발 몇이

봄날 오후 산자락에 누워 있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햇빛을

연초록 잎들이 그렇게 하듯이

핥아먹고 빨아먹고 꼭꼭 씹어도 먹고

허천난 듯 먹고 마셔댔지만

 

그래도 남아도는 열두 광주리의 햇빛!

 

 

 

사랑

 

 

피 흘리지 않았는데

뒤돌아 보니

하얀 눈 위로

상처 입은 짐승의

발자욱이

나를 따라온다

 

저 발자욱

내 속으로

절뚝거리며 들어와

한 마리 짐승을 키우리

 

눈 녹으면

그제야

몸 눕힐 양지를

찾아 떠나리

 

 

 

내 속의 여자들

 

내 속에는

반만 피가 도는 목련 한 그루와

잎끝이 뾰족뾰족한 오엽송,

잎을 잔뜩 오그린 모란 두어 그루,

꽃을 일찍 피워 버려

이제 하릴없이 무성해진 라일락,

이런 여자들이 몇이 산다

한 뙈기 땅에 마음을 붙이고부터는

그녀들이 뿌리 내려

내 영혼의 발목도 잡아 주기를,

어디로도 못 가고

바람 소리도 못 들은 체 살 수 있기를 바랐다

바람의 길은 너무 높거나 너무 낮은 곳에 있었다

어떤 날은 전지가위를 들고

무성해진 가지를 마구 쳐내기도 했다

쳐내면서 내 잎끝에 내가 찔리고

그런 날 밤에는

내 속의 뿌리들, 그녀들, 몸살을 앓고는 했다

다른 뜰에서 수십 송이 꽃들이

폭죽처럼 터지던 봄날

내 반쪽 옆구리에는 목련 한 송이 간신히 피어

났다

오그린 모란잎 사이에 고여 있는

몇 방울 빗물은 쉽게 마르지 않았다

라일락의 이미 흩어진 향기 돌아오지 않았다

바람은 짐짓 모른 체하며 내 곁을 지나갔다

 

 

 

일곱살때의 독서

 

 

제 빛남의 무게만으로

하늘의 구멍을 막고 있던 별들, 그날 밤

하늘의 누수는 시작되었다 하늘은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것이었던가 별똥별이

떨어질 때마다 하늘은 울컥울컥 쏟아져서

우리의 잠자리를 적시고 바다로 흘러들었다

그 깊은 우물 속에서 전갈의 붉은 심장이

깜박깜박 울던 초여름밤 우리는 무서운 줄도

모르고 바닷가 어느 집터에서, 지붕도 바닥도 없이

블록 몇 장이 바람을 막아 주던 차가운 모래

위에서 킬킬거리며, 담요를 밀고 당기며 잠이 들었다

모래와 하늘, 그토록 확실한 바닥과 천장이

우리의 잠을 에워싸다니, 나는 하늘이 달아날까 봐

몇 번이나 선잠이 깨어 그 거대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날 밤 파도와 함께 밤하늘을

다 읽어 버렸다 그러나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내가

그날 밤 하늘의 한 페이지를 훔쳤다는 걸,

그 한 페이지를 어느 책갈피에 끼워 넣었는지를

 

 

 

그림자

 

 

햇빛이 겨누는 창 끝에 놀라

문득 걸음을 멈춘다

 

그림자가 짧다

 

뒤따라오던 불안은 어디로 갔을까

내가 헤치고 온 풀마다 누렇게 말라 있다

시든 풀을 보고 울지 않은 지

오래 되었다

나는 덜 여문 잔디씨 몇을 훑어 달아난다

 

끝내 나를 놓치지 않는 그림자

흩어지는 잔디씨에도 그림자가 있다

 

 

 

배추의 마음

 

 

배추에게도 마음이 있나보다

씨앗 뿌리고 농약 없이 키우려니

하도 자라지 않아

가을이 되어도 헛일일 것 같더니

여름내 밭둑 지나며 잊지 않았던 말

- 나는 너희로 하여 기쁠 것 같아

- 잘 자라 기쁠 것 같아

 

늦가을 배추포기 묶어주며 보니

그래도 튼실하게 자라 속이 꽤 찼다

- 혹시 배추벌레 한 마리

이 속에 갇혀 나오지 못하면 어떡하지?

꼭 동여매지도 못하는 사람 마음이나

배추벌레에게 반 넘어 먹히고도

속은 점점 순결한 잎으로 차오르는

배추의 마음이 뭐가 다를까

배추 풀물이 사람 소매에도 들었나보다

 

 

슴새가 아니었을까

 

 

종각 지하도를 막 올라오는데

, 한 마리가

눈앞을 미끄러지듯 날아갔다

 

그 순간 나는 왜 슴새를 떠올렸을까

저 남쪽바다 구쿨도나 칠발도나 사수도 같은

무인도에서나 살고 있을 그 새를

 

종로2가에 나타난 슴새라니!

 

무인도에서가 아니라

이 붉은 먼지들 속에서 알을 품고 있을,

가슴 가장자리는 다 떨어져나가고

슴만 남아 도시를 맴돌고 있을,

혹시 비둘기였을지도 모를,

그 흔한 비둘기조차 슴새가 되어가는 하늘 아래

빌딩들 사이로 날아간 새

 

그 날개에 나는 가슴 한쪽을 베인 것처럼

지하도 입구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오래된 수틀

 

 

누군가 나를 수놓다가 사라져버렸다

 

씨앗들은 싹을 틔우지 않았고

꽃들은 오랜 목마름에도 시들지 않았다

파도는 일렁이나 넘쳐흐르지 않았고

구름은 더 가벼워지지도 무거워지지도 않았다

 

오래된 수틀 속에서

비단의 둘레를 댄 무명천의 압정에 박혀

팽팽한 그 시간 속에서

 

녹슨 바늘을 집어라 실을 꿰어라

 

서른세 개의 압정에 박혀 나는 아직 팽팽하다

나를 처음으로 뚫고 지나갔던 바늘끝,

이 씨앗과 꽃잎과 물결과 구름은

그 통증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기다리고 있다

 

헝겊의 이편과 저편, 건너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언어들로 나를 반성해다오

오래 전 나를 수놓다가 사라진 이여.

 

 

 

음계와 계단

 

 

예배당 뒷문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제단 구석 검고 슬픈 짐승처럼 놓여 있던

피아노 한 대

 

피아노에 비친 아이는

피아노를 열고 조심스럽게 연주를 시작했다

얼었던 거번을 손가락의 체온으로 다 녹이기에

아이의 손은 너무 작고 여렸지만

예배당의 냉기 속으로 울려 퍼지던 음들은

열 살의 아이가 가까스로 피워 올린 향과도 같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뒷문이 열리고

사찰 집사가 노모를 모시고 나타나면

아이는 피아노를 닫고 계단을 내려와야 했다

제단에 두 개의 낡은 방석이 놓여지고

무릎 꿇고 앉은 노파와 그의 아들은

알 수 없는 방언으로 또 하나의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은밀한 제사를 뒷문 계단에서 훔쳐보며

아이는 광기의 황홀함을 배우기 시작하고

냉기를 향해 피워 올렸던 음들은

다시 건바과 함께 얼어가기 시작했다

피아노의 검은 빛은

모자의 제사를, 그 길들여진 도취와 반복의 몸짓을

오래오래 말없이 비추어 주고 있었다

피아노가 음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검은 빛으로 빨아들인 몇 개의 풍경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건반을 울리기 위해 올라야 했던 계단은

음계 속으로 들어가는 사다리 같은 것이었다

 

 

 

살아있어야할 이유

 

 

가슴의 피를 조금씩 식게 하고

차가운 손으로 제 가슴을 문질러

온갖 열망과 푸른 고집들 가라앉히며

단 한 순간 타오르다 사라지는 이여

 

스스로 떠난다는 것이

저리도 눈부시고 환한 일이라고

땅에 뒹굴면서도 말하는 이여

 

한번은 제 슬픔의 무게에 물들고

붉은 석양에 다시 물들며

저물어가는 그대, 그러나 나는

 

저물고 싶지를 않습니다

모든 것이 떨어져내리는 시절이라 하지만

푸르죽죽한 빛으로 오그라들면서

이렇게 떨면서라도

내안의 물기 내어줄 수 없습니다

 

눅눅한 유월의 독기를 견디며 피어나던

그 여름 때늦은 진달래처럼

 

 

 

 

길 속의 길 속의

 

 

저 풀들은 홍해를 건너고 있는 것일까

 

갈라진 아스팔트 틈으로 풀들이 자라고 있다

길 속의 길,

길이 갈라져 풀이 난 게 아니라

풀씨가 팽창하면서

홍해처럼 길이 갈라진 게 아니었을까

키 작은 풀꽃 아래 개미들이 부지런히 부지런히

개미의 길을 가고 있다

길 속의 길 속의 길 속의 길 속의

 

어린 시절 뒷창을 열면

푸성귀를 이고 지고 장터로 가던 아낙들,

장날이면 피어나던 그 푸른 길을

창턱에 올라앉아 바라보던 어린 내가 있었다

 

 

황사 속에서

 

 

놀고 들어온 아이가 양말을 벗으며 말했다

 

_아빠가 불쌍해요

_, 갑자기?

아빠는 죽어가고 있잖아요

_대체 무슨 소리야?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죽는다는데

아빤 우리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으니까요.

 

양말을 뒤집어도 바지를 털어도 모래투성이다

아이는 매일 모래를 묻혀 들어온다

그리고 모래알보다 많은 걸 배워서 들어온다

 

사람은 죽어가는 게 아니라구,

살아가는 거라구,

밥을 안치면서 나는 말하지 못했다

젖은 쌀알이 모래처럼 서걱거렸다

 

아이가 묻혀 들어온 모래를 쓸어담으면서

다 쓸어담지도 못하면서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한 창밖을 본다

 

간신히 가라앉은 모래를

바람은 또다시 일으켜 어디론가 쓸고 간다

 

 

 

눈길

 

 

사람의 발길이 닿는 순간부터

녹기 시작하는 눈,

젖은 눈은 금세 상처를 입고

나는 어제의 길 위에

또 하나의 길을 내며 간다

다시 더럽혀진 길들,

누구도 쉽게 내디딜 수 없고

마치 습기를 타고 번지는 곰팡이처럼

소문의 발자국이 무성하게 지나간

이 흙탕 속에 발을 담그며 간다

더러는 꺾인 채로 더러는 일어선 채로

눈 위로 솟아난 들풀 같은 삶

먼 길을 걸어온 나에게

건네는 위로 한마디가

이 눈발이라면,

눈 위에 길을 내고

그 길을 다시 덮어가는 이 눈발 속으로

젖은 발끝만 보며 걷고 있는 나에게

어디선가 날아온 눈덩이 하나

등에 와서 박히는, 이것은 무엇인가

 

 

 

등이 시린일

 

 

눈 위에,

소복하게 쌓인 눈 위에

나는 큰대자로 눕는다

 

예전의 이 자리

한자도 넘게 쌓인 낙엽더미였는데

그땐 온기조차 느껴졌는데

이젠 제법 서늘하다는 생각을 한다

 

체온 때문에 눈이 녹는지

등이 시려온다

그동안의 세월이 몸속에서 역류하며

자꾸만 눈을 꺼뜨린다

금방 낙엽에 가 닿을 것도 같다

 

눈 녹은 물이 나를 타고 흐른다

등창 위로 꽃피는 상처

등에 등을 대고 사는 일

갈수록 시린 일이 아니냐고

나는 그에게 묻는다

 

 

고통에게 1

 

 

어느 굽이 몇번은 만난듯도 하다

네가 마음에 지핀듯

울부짖으며 구르는 밤도 있지만

밝은 날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러나 너는 정작 오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날 너는 무심한 표정으로 와서

쐐기풀을 한 짐 내려놓고 사라진다

사는 건 쐐기풀로 열두벌의 수의를 짜는 일이라고,

그때까지는 침묵해야 한다고,

마술에 걸린듯 수의를 위해 삶을 짜 깁는다

 

손끝에 맺힌 핏방울이 말라가는 것을 보면서

네 속의 폭풍을 읽기도 하고,

때로는 봄볕이 어른거리는 뜰에 쪼그려 앉아

너를 생각하기도 한다

대체 나는 너를 기다리는 것인가

오늘은 비명없이도 너와 지낼수 있을 것 같아

나 너를 기다리고 있다 말해도 좋은 것인가

 

제 죽음에 피어날 꽃처럼, 봄뜰처럼

 

 

나평강 약전(略傳)

 

 

그는 얼마간의 가축을 키웠다

 

병아리들을 부화시켜 마당에 놓아먹였고

 

입덧이 심한 아내를 위해

얼룩염소 한 마리를 사다가 젖을 짜 먹였다

 

염소가 언덕에서 풀을 뜯을 때

가만히 앉아 무슨 생각인가를 하염없이 하는 사람이었다

 

염소가 풀을 다 뜯은 후에도

멀리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었다

 

언덕의 풀처럼 나지막하고 바람에 잘 쓸리는 사람이었다

 

닭 키우는 걸 좋아했지만

죽은 닭은 잘 만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갓 낳은 달걀과

마악 짜낸 염소젖,

생전에 그가 식구들에게 건네준 전부였다

 

그보다 따뜻한 것을 알지 못한다




 

한 사람의 생애를 간략하게 적은 것이 약전(略傳)이지요. 내밀한 부분까지 함께 겪은 가까운 사람만이 쓸 수 있고, 그래서 몇몇 문장으로 한 사람을 가감 없이 알게 되는 것이 약전이지요. ‘라고 불리는 이 사람을 볼까요. 이 사람은 언덕의 풀처럼 자연스럽고 조용조용하고 다감했을 것 같아요. 높은 이상을 가졌고, 연하고 섬세한 사람이었을 것 같아요. 갓 난 달걀과 마악 짜낸 염소젖이 생전에 그가 식구들에게 건네준 전부였다지요. 이 사람이 나평강씨라지요.

 

 

얼마간의 수채화 같은, 얼핏 얼핏 현실의 균열이 보이는 듯도 한 이 시를 읽고, 이름도 시적인 나평강씨는 누구인가, 궁금해졌지요. 그래서 찾아보았지요. 1960년대 신앙공동체에서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났다고, 여자는 보육원 고아들을 돌보고 남편은 닭을 키우며 글을 썼다고, 둘 사이에 난 아기는 얼룩염소의 젖을 먹고 자랐는데, 그 아기가 바로 이 시를 쓴 시인이었다고, 어느 글에 나희덕 시인이 밝히고 있네요. 과거형 어미, 3인칭의 시가, 마지막 행에 와서 현재형 어미, 1인칭으로 바뀌는 이유를 알게 되는 순간이었지요.

 

출생 ; 196628

출신지 ; 충청남도 논산

직업 ; 시인,대학교수(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중)

학력 ; 연세대학교대학원

데뷔 ;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뿌리에게' 등단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녹색평론>>의 편집자문위원.

199817김수영문학상,

200112김달진문학상,

9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문학 부문,

200348현대문학상,

200517이산문학상,

200722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다.

 

 

더 깊이 울게된 乾川이 소리를 낸다가 흐른다

어릴 때 나는 유난히 울음이 많았다. 슬프거나 아프지 않을 때에도 공연히 눈물을 글썽거리기 일쑤였다. 노을 빛을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눈가에 물기가 맺혔고, 심중의 말을 간곡하게 몇 마디 꺼내려 해도 울먹임이 앞을 가로막았다. 너무 아름답거나 간절한 것을 보며 어린 나이에 왜 환희보다 아련한 슬픔을 느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그 툭하면 터지던 울음이 내가 문학이라는 불꽃을 지피는 데 주된 연료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감상적 낭만주의자란 뜻은 아니다. 나는 내 문학이 만물에 대한 눈물 글썽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부터 오히려 그 눈물을 말리고 식히는 데 애를 썼다. 그래서인가. 언제부턴가 웬만한 일에는 울지 않게 되었다. 견디기 어려운 치욕이나 슬픔 앞에서도 울음은 속에서만 아우성칠 뿐 좀처럼 목을 밀고 올라오는 일이 없어졌다.

 

"슬픔을 섣불리 표현할 수 없을때

자신이 아픔에 덜 열중할 때

비로소 만물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홍사용의 나는 ()이로소이다는 장황하고 과장된 시이기는 하지만, 삶이 얼마나 슬픔으로 점철된 것인가를 말하면서 그것을 잘 다스리라고 넌지시 일러준다. 어머니는 어린 아들의 귀밑머리를 단단히 땋아주면서 오늘부터는 아무쪼록 울지 말아라고 말한다. 그날부터 눈물의 왕은 어머니 몰래 남 모르게 속 깊이 소리없이 혼자 우는 그것이 버릇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누구에게나 자의든 타의든 이렇게 마음의 물줄기를 감추어야 하는 시기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따라서 눈물이 말랐다는 것은 세상사에 무심해져 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밖으로 흐르지 못함으로써 내면으로 더 깊게 숨어버린 물줄기 같은 게 있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저마다 마음 속에 건천(乾川)을 하나씩 품고 사는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슬픔을 섣불리 표현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자신의 슬픔에 덜 열중하게 되었을 때, 시인으로서는 다른 존재의 울음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꽤 오래 전 일이다. 12일 일정으로 열리는 문학행사에서 아름답고 화사한 한 여자를 보았다. 먼 발치에서 바라보았을 뿐 그녀와 인사를 제대로 나눈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밤에 술자리가 길어지면서 술에 취한 그녀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몸부림을 쳤다. 나는 그녀가 왜 우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짙은 화장기 아래 숨어 있던 아픈 영혼을 모두 보아버린 느낌이었다.

 

그녀를 간신히 숙소로 부축해 들어와 달래고 난 뒤 나는 우두커니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뜨거운 기운이 목을 밀고 올라왔다. 내 안의 마른 물줄기가 갑자기 격랑을 만났을 때처럼 수압이 높아지면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잠든 그녀의 등 뒤에서 나는 영문도 알 수 없는 울음을 밤새 그치지 못했다.

 

그 낯선 여자의 아픈 삶을 속속들이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왜 그녀의 슬픔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던 것일까. 흔히 시인을 곡비(哭婢)에 비유하지만, 그 날의 경험이 내게는 우는 자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

 

이제 생각해보니 내 시의 팔 할은 슬픔이나 연민의 공명(共鳴)에서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 내 안의 슬픔이 다른 슬픔과 만나 서로 스미고 어루만질 때 흘러나오는 언어. 또는 존재와 존재가 서로 삐걱거리고 뒤척이며 내는 소리들. 시는 그런 다양한 울음소리를 받아적은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시인이 가장 귀 기울여야 할 것은 만물이 내는 울음소리의 섬세한 리듬과 결일 것이다.

 

"실핏줄처럼 뻗은 고통의 물줄기

바라건데 강물 하나 만들어내길"

어느 기자가 마더 테레사에게 수녀님은 무어라고 기도하십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 질문에 테레사 수녀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저는 듣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의아해 하는 기자가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그러면 수녀님이 들을 때, 하나님은 무어라고 말씀하십니까?” 이 질문에도 역시 그녀는 그분도 들으십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기도든 시든 고백과 발언의 양식임이 분명하지만 말하기 못지않게 듣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얘기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하나의 답을 내놓아야 한다면, 먼저 세상의 모든 소리들을 잘 듣기 위해서라고 대답하고 싶다. 특히 살아 있는 존재들이 뺨울음소리를 나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듣고 싶다.

 

사물과 자연을 통해 누군가 얘기하고 있는 것을, 아니 사물 자체가 말하거나 울고 있는 것을 잘 듣고 있으면 그 속에는 이미 시가 흐르고 있다. 그 소리들을 받아 적어서 한 편의 시로 완성하고 문예지에 발표하고 시집을 묶는 행위는 어찌 보면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시인이 가장 충실하게 살아 있는 순간은 만물의 울음소리를 자신의 몸으로 가장 온전하게 실어낼 수 있는 때이다. 마음 속의 건천(乾川)이 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죽은 것처럼 보이던 존재가 되살아 나고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기 시작한다.

 

몇 해 전, 그리 크지 않은 폭포를 찾아 강원도 산길을 올라간 적이 있다. 어느새 인가도 사라져 버리고 가파른 산길에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이 길로 올라가다 보면 폭포가 나온다고 했는데, 물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든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침 바위에 앉아 있는 한 노인이 보였고, 나는 노인에게 다가가 그 폭포에 대해 여쭈어 보았다. 노인은 더 올라가도 폭포를 볼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몇 해 전 물줄기가 시름시름 새기 시작해서 이제는 마른 절벽밖에는 남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이 숨어버렸다니! 나는 오히려 그 소리도 형체도 보이지 않게 된 폭포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지친 걸음을 재촉해 올라갔다. 얼마쯤 올라갔을까. 물이 거의 마르다시피 한 계곡에 홀연히 서있는 절벽을 보았다. 절벽에는 아직 풀포기들이 드문드문 자라고 있었다. 풀포기들은 마치 절벽 속으로 사라진 물줄기를 따라 들어간 푸른 발자국들처럼 보였다. 물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오래도록 그 절벽 앞에 앉아 물소리를 들었다. 더 어두운 곳에 닿아 측량할 수 없는 높이로 곤두서 있는 물소리를. 더 깊이 울게 된 물소리를.

 

시가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이란 그 마른 폭포와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러면서 정지용의 시론을 곱씹곤 한다. “안으로 열()하고 겉으로 서늘옵기란 일종의 생리를 압복시키는 노릇이기에 심히 어렵다. 그러나 시의 위의(威儀)는 겉으로 서늘옵기를 바라서 마지 않는다.”

 

이 말처럼, 눈물을 다스리는 힘이 없이는 슬픔을 제대로 노래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울음을 터뜨리려는 힘과 울지 않으려는 힘의 팽팽한 긴장. 겉으로는 서늘한 듯하면서 안으로는 뜨거운 슬픔의 샘에서 길어 올려진 진폭과 파동을 지닌 언어. 시의 위의란 바로 그런 내면의 싸움을 통과한 언어에 의해 얻어질 수 있는 것이리라.

 

여기에 비추어 볼 때 그 동안 내가 써온 시가 얼마나 진정성을 지닐 수 있을까 자문해본다. 뒤돌아보면 수많은 슬픔의 물줄기가 실핏줄처럼 뻗은 채 도란거리고 있다. 저 젖은 길들을 과연 내 발로 걸어오기는 온 것인가 싶기도 하다. 바라건대, 저 실핏줄들이 모여 언젠가는 슬픔의 강물 하나 만들어낼 수 있기를. 넓게 흐를수록 더 깊이 숨어서 우는 건천이 되기를.

 

글이 아닌 글씨를 쓰는 필경사였던 나희덕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에 축구화를 신고 축구를 할 만큼 부유한 지주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아버지는 조부의 총살 현장을 목격했고, 누이와 단둘이서 고향인 평안도 용강을 떠나 월남을 했다. 월남 후 고독과 궁핍 속에서 방황하던 아버지는 종교를 접하면서 생의 의미를 찾게 되었다. 그리하여 산골에서 신앙공동체를 일구며 살아간다. 그 곳에서 어머니를 만나 결혼을 하고 내려와 먼 친척이 운영하던 고아원에 정착하였고, 나희덕은 그 곳에서 태어났다.

 

고아원에서 자란 나희덕은 일찍부터 고아인 아이들을 배려해야만 했고, 그것은 하나의 빚처럼 그녀의 마음 속에 깊이 자리를 잡게 된다. 고학으로 학비를 장만하고 가족들까지 부양해야 했던 그녀는 아르바이트르 다섯 개까지 할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고가원의 친구들을 떠올리며 자신은 행복하게 여겨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져야만 했다. 그녀가 그곳 친구들의 이야기를 문학으로 끌어들일 수 없는 것도, 그들에게 누를 끼칠 것 같아서이다.

 

그러한 배경은 그녀를 사회과학으로 빠지게도 만들었다. 한 선배의 권유로 사회과학 공부를 하였는데, 자신도 모르게 `조직`의 일부가 되어버린 사건으로 인해 회의를 느끼고 발을 돌리게 된다. 그곳이 바로 문학회이다. 그러나 사실 그녀가 문학과 인연을 맺은 것은 중학교 때이다. 독실한 신앙인이던 어머니는 그녀에게 교과서 이외의 책은 읽지 못하게 하였으나 우연한 기회에 중3때 백일장에 나가게 된다. 백일장에서 입선을 한 그녀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문예반 활동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문학 상식이 풍부하던 남학생으로 인해 여러 책들을 구해 읽기도 하고, 종로서적에 등교를 하다시피 하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김춘수에서 강은교, 박재삼, 김수영, 세계시인선까지 독파하였다.

 

그러나 나희덕은 그 시절의 글은 글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고, 글을 쓰기 위해 국문과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맏딸`이 아닌 `맏아들`이길 바랬던 아버지는 딸이 출세가 보장되는 법대에 들어갔으면 했다. 그러나 아버지로부터,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픈 그녀는 학자가 되고 싶은 꿈대로 국문과를 택하였다. 유일한 말동무였던 큰딸의 등교길을 기다려 함께 걷고 싶어하던 아버지에게서 매몰차게 가방을 빼앗아 들고 달아나던 그녀였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어디에 있는 학교인가`를 따져 수원의 숙식이 가능한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른 결혼으로 집에서 떠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집에서 떠나던 날 그녀는 아버지를 받아들이게 된다. 짐을 싣고 떠나는 트럭 뒤에 남은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던 것이다.

 

11녀의 어머니이고, 수많은 아이들의 선생님인 나희덕은 이제 아버지의 딸로서 아버지의 글을 책으로 묶어내려 한다. 글씨를 쓰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아버지에게 선물로 드리고 싶다는 것이다.

 

불러낼 수 없는 그를 목놓아 부르다

'떠난 자는 떠난 게 아니다. 불현듯 타자의 얼굴로 돌아오고 또 돌아온다. 그들은 떠남으로써 스스로를 드러내고, 끝내 돌아오지 않음으로써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된다. 사랑하는 것들은 대체로 부재 중이다. 떼어낸 만큼 온전해지는, 덜어낸 만큼 무거워지는 이상한 저울, . (중략) 이미 돌이킬 수 없거나 사라진 존재를 불러오려는 불가능한 호명, .'

 

 시집의 말미에 붙은 시인의 산문에 눈물을 쏟았다. 올해 등단 25주년을 맞는 나희덕(48)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문학과 지성사)은 사랑하지만 떠나보내야 했던 이를 목놓아 부르는 초혼가(招魂歌). 죽음이 드리운 슬픔의 그림자와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삶에 대한 의지가 치열하게 다툰 시간의 기록이기도 하다.

 

 '제 마른 가지 끝은/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졌습니다/더는 쪼개질 수 없도록//제게 입김을 불어넣지 마십시오/당신 옷깃만 스쳐도/저는 피어날까 두렵습니다/곧 무거워질 잎사귀일랑 주지 마십시오//나부끼는 황홀 대신/스스로의 이 되도록 허락해주십시오//부디 저를 다시 꽃 피우지는 마십시오.'('어떤 나무의 말')

 

 시집을 여는 첫 번째 시는 서늘하게 아프다. '마른 풀 위로 난 바퀴 자국/황급히 생을 이탈한 곡선이 화인처럼 찍힌 아침'('그날 아침')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남동생이 시인의 가슴에 박혔다. 동생이 떠난 방을 눈으로 더듬고('다시, 다시는') 더 이상 말을 주고받을 수 없음을 슬퍼하며('상처 입은 혀') 시인은 '난파된 배처럼 가라앉는 방'('불투명한 유리벽')에 스스로를 가뒀다.

 

 "상실은 수동적으로 겪어야 하는 시간이에요. 남동생이 세상을 떠난 뒤 밤과 같은 시간을 보냈죠. 동생의 죽음을 쓰지 않으려 내적으로 저항했어요. 죽음에 대한 모독같이 느껴지고 경험을 소비해버리는 것 같아서 싫었죠. 치부나 고통을 공개적으로 내보이는 것이 수치스럽기도 했구요. 하지만 작가는 상처받은 치유자에요. 자기의 상처를 통해서, 상처를 대면하도록 하는 게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겠죠."

 

 삶의 덧없음을 마주하고 좌초했던 시인에게 떠남은 상처를 대면하고 치유하는 계기였다. 사고가 난 이듬해인 2012, 영국 런던대 교환교수로 머물며 시인은 자폐의 상태에서 벗어나 타자와 세계를 향해 조금씩 나아갔다. 그때 쓴 시가 표제작인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이다.

 

 '말들이 돌아오고 있다/물방울을 흩뿌리며 모래알을 일으키며/바다 저편에서 세계 저편에서//흰 갈기와 검은 발굽이/시간의 등을 후려치는 채찍처럼/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중략)//지금은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

 

 "어느 날 바닷가에 서 있는데 파도가 마치 말갈기를 휘날리며 밀려오는 듯했어요. 파도가 바다 저편에서 돌아와 내가 살았던 시간과 공간과 만난 것 같았죠. 내가 부친 소포를 받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돌아오고 회귀하고 회복되는 듯했어요."

 

 다시 돌아온 삶 앞에서 시인의 발걸음은 한결 자유로워졌다. 그의 등단작 '뿌리에게'의 대척점에 놓인 듯한 시 '뿌리로부터'는 그런 변화를 보여준다.

 

 "'뿌리로부터'25년 시작(詩作)의 중간 결산과 같은 시예요. 뿌리를 내리고 안정되려고 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죠. 하지만 가지가 뻗어나가려는 것은 중력에 맞먹는 힘이 필요한 일이고. 덧없는 것에 대한 찬미이기도 하고.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감정의 색깔이 달라졌어요. 좀 자유로워진 듯해요. 나만이 쓸 수 있는 정직한 시를 쓰려고 해요."

 

 죽음을 감싸안고 사랑을 안은 채 다시 길을 나서는 시인. 긴 어둠을 거쳐 어둑한 새벽을 지나 밝은 아침을 맞으려 가듯, 그는 이렇게 다짐한다.

 

 '길을 그리기 위해서는/마음의 지평선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누군가 까마득히 멀어지는 풍경/그 쓸쓸한 소실점을 끝까지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나는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 하네'('길을 그리기 위해서는' )

 

=하현옥 기자 2014.02.03. 중앙일보

 

 

 

작가 이야기 -뿌리로부터 길어올려진 따뜻한 교감

나희덕 시인은 첫 시집 '뿌리에게'에선 전교조 탈퇴 서약서를 둘러싸고 벌이던 갈등과 양심적 고뇌를 시로 육화(肉化)시키는 데 주력한다. 그래서 이 시집을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분위기는 사회적 모순과 한심한 교육 현실에 대한 죄의식과 분노였다. 그 내면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러 시인은 "깎아도 깎아도 가벼워지지 않는 형벌"(손톱)이라 부르짖는다. 그런데 두 번째 시집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에서부터 시인은 무표정하고 덤덤한 일상 속에서 삶의 쓸슬함과 고통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길어 올리기 시작한다. 커다란 시적 변화를 감행한 것이다.

특히 두 번째 시집에서 하루 일과가 아침과 저녁이란 시간대에 따라 이중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점은 주목에 값한다. 신예 평론가 허정의 예리한 지적처럼 혼돈과 분열을 겪는 아침의 시간대와 안정감과 자아 인식을 가능케 하는 저녁의 시간대, 이것은 근본적으로 직장 여성과 어머니라는 그녀가 처한 환경의 이중성에서 비롯되는 것들이다. 여기서 시인은 저녁의 시간대를 지향하는데, 그 선택은 해뜬 후에 비웠던 모성의 자리를 채우는 부단한 움직임을 상징한다. "이제 나 종일 밭을 갈다가/집에 돌아오면 문득 몰매기인 나를 보네./젖무덤 아래 울고 있는 아기를 보네"('몰매기를 기억함'). 해가 뜬 시간이 아기와 가정을 떠나는 불안의 시간이라면, 어둠이 깔려 외부와 차단되는 황혼녘은 안정과 평안의 시간일 터이다.

 

세 번째 시집 <그 곳이 멀지 않다>의 해설을 쓴 평론가 황연산은 나희덕의 시에 잘 어울리는 꼬리표 하나를 달아 주었다. '단정한 기억'! 대상에 대한 따뜻한 응시와 교감이 기억이라는 집 속에 정갈하게 담겨져 있는 그의 시세계를 잘 요약한 말이다. 그녀는 벗어 놓은 스타킹을 하루 동안 "지치도록 달려온 갈색 암말이 여기 쓰러져 있다"고 표현한 뒤, "몸이 끌고 다니다가 벗어 놓은 욕망의/껍데기는 아직 몸의 굴곡을 기억하고 있다"며 삶의 실천과 욕망의 건겅한 외화(外化)만이 사물에 그 기억의 날을 세운다는 점을 보여준다. 여기서도 저녁이란 시간대는 삶을 반추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나희덕 시인의 쉼 없는 시적 행보를 기다려 보자. 어쨌든, 그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닌가. (류신/문학평론가)

 

 

 

Speak Softly, Love / Yao Si 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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