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먼저 더 오래
아파서 몸져 누운 날은
강가에서
고백
무너지는 것들 옆에서
쓸쓸한 날의 연가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아우슈비츠 1
옹기
이 시대의 아벨*
상한 영혼을 위하여
연가(戀歌)
북한강 기슭에서
남남북녀 사랑노래
사십대
전보
하늘에 쓰네
쓸쓸함이 따뜻함에게
사랑법 첫째
봄비
지울 수 없는 얼굴
겨울 사랑
우리동네 구자명 씨
관계
그대 생각
그대가 두 손으로 국수사발을 들어올릴 때
강물에 빠진 달을 보러 가듯
노여운 사랑
들국
따뜻한 동행
가을 편지
꿈꾸는 가을 노래
묵상
베틀 노래
약탕관에 흐르는 눈물
어머니 나의 어머니
천둥벌거숭이의 노래 1
호박
파도타기
동행
편지
포옹
날개
지리산의 봄 1 -뱀사골에서 쓴 편지
지리산의 봄 2-반야봉 부근에서의 일박
지리산의 봄 3-연하천 가는길
지리산의 봄 4-세석고원을 넘으며
지리산의 봄 5 -백제와 신라의 옛장터목에서
지리산의 봄 6 -천왕봉 연가
지리산의 봄 7-온누리 봄을 위해 부르는 노래
지리산의 봄 8-백무동 하산길
지리산의 봄 9 -물소리, 바람소리
지리산의 봄 10 -달궁 가는 길
행방불명 되신 하느님께 보내는 출소장
더 먼저 더 오래- 고정희
더 먼저 기다리고 더 오래 기다리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기다리는 고통 중에 사랑의 의미를 터득할 것이요
더 먼저 달려가고 더 나중까지 서 있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서 있는 아픔 중에 사랑의 길을 발견할 것이요
더 먼저 문을 두드리고 더 나중까지 문닫지 못하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문닫지 못하는 슬픔 중에 사랑의 문을 열게 될 것이요
더 먼저 그리워하고 더 나중까지 그리워 애통하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그리워 애통하는 눈물 중에 사랑의 삶을 차지할 것이요
더 먼저 외롭고 더 나중까지 외로움에 떠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외로움의 막막궁산 중에 사랑의 땅을 얻게 될 것이요
더 먼저 상처받고 더 나중까지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상처로 얼싸안은 절망 중에 사랑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요
더 먼저 목마르고 더 나중까지 목말라 주린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주리고 목마른 무덤 중에서라도 사랑의 궁전을 짓게 되리라
그러므로 사랑으로 씨 부리고 열매 맺는 사람들아 사랑의 삼보-상처와 눈물과 외로움 가운데서 솟은 사랑의 일곱가지 무지개
이 세상 끝날까지 그대 이마에 찬란하리라
아파서 몸져 누운 날은- 고정희
오월의 융융한 햇빛을 차단하고 아파서 몸져누운 날은
악귀를 쫓아내듯 신열과 싸우며 집 안에 가득한 정적을
밀어내며 당신이 오셨으면 하다 잠이 듭니다
기적이겠지... 기적이겠지...
모두가 톱니바퀴처럼 제자리로 돌아간 이 대낮에,
이심전심이나 텔레파시도 없는 이 대낮에,
당신이 내 집 문지방을 들어선다면 나는 아마 생의 최후 같은
오 분을 만나고 말거야. 나도 최후의 오 분을 셋으로 나눌까
그 이 분은 당신을 위해서 쓰고 또 이 분간은 이 지상의 운명을
위해서 쓰고 나머지 일 분간은 내 생을 뒤돌아보는 일에 쓸까
그러다가 정말 당신이 들어선다면 나는 칠성판에서라도
벌떡 일어날거야 그게 나의 마음이니까 그게 나의 희망사항이니까...
하며 왼손가락으로 편지를 쓰다가
고요의 밀림 속으로 들어가 다시 잠이 듭니다.
흔들림이 끝난 그 무엇처럼.
강가에서- 고정희
할 말이 차츰 없어지고
다시는 편지도 쓸 수 없는 날이 왔습니다
유유히 내 생을 가로질러 흐르는
유년의 푸른 풀밭 강뚝에 나와
물이 흐르는 쪽으로
오매불망 그대에게 주고 싶은 마음 한 쪽 뚝떼어
가거라, 가거라 실어 보내니
그 위에 홀연히 햇빛 부서지는 모습
그 위에 남서풍이 입맞춤하는 모습
바라보는 일로도 해저물었습니다
불현듯 강 건너 빈 집에 불이 켜지고
사립에 그대 영혼 같은 노을이 걸리니
바위틈에 매어놓은 목란배 한 척
황혼을 따라
그대 사는 쪽으로 노를 저었습니다
고백- 고정희
너에게로 가는
그리움의 전깃줄에
나는
감
전
되
었
다
무너지는 것들 옆에서 - 고정희
내가 화나고 성나는 날은 누군가 내 발등을 질겅질겅 밟습니다. 내가 위로받고 싶고 등을 기대고 싶은 날은 누군가 내 오른뺨과 왼뺨을 딱딱 때립니다. 내가 지치고 곤고하고 쓸쓸한 날은 지난날 분별 없이 뿌린 말의 씨앗, 정의 씨앗들이 크고 작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꽂힙니다. 오 하느님, 말을 제대로 건사하기란 정을 제대로 건사하기란 정을 제대로 다스리기란 나이를 제대로 꽃피우기란 외로움을 제대로 바로 잡기란 철없는 마흔에 얼마나 무거운 멍에인가요.
나는 내 마음에 포르말린을 뿌릴 수는 없으므로 나는 내 따뜻한 피에 옥시풀을 섞을 수는 없으므로 나는 내 오관에 유한 락스를 풀어 용량이 큰 미련과 정을 헹굴 수는 더욱 없으므로 어눌한 상처들이 덧난다 해도 덧난 상처들로 슬픔의 광야에 이른다 해도, 부처님이 될 수는 없는 내 사지에 돌을 눌러둘 수는 없습니다.
쓸쓸한 날의 연가 - 고정희
내 흉곽에 외로움의 지도 한장
그려지는 날이면
나는 그대에게 편지를 쓰네
봄 여름 가을 겨울 편지를 쓰네
갈비뼈에 철썩이는 외로움으로는
그대 간절하다 새벽편지를 쓰고
간에 들고나는 외로움으로는
아직 그대 기다린다 저녁편지를 쓰네
때론 비유법으로 혹은 직설법으로
그대 사랑해 꽃도장을 찍은 뒤
나는 그대에게 편지를 부치네
비 오는 날은 비 오는 소리 편에
바람 부는 날은 바람 부는 소리 편에
아침에 부치고
저녁에도 부치네
아아 그때마다 누가 보냈을까
이 세상 지나가는 기차표 한 장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네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길을 가다가 불현듯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목을 길게 뽑고두 눈을 깊이 뜨고저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저음으로첼로를 켜며비장한 밤의 첼로를 켜며두 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그 불 다 사그러질 때까지어두운 들과 산굽이 떠돌며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달력 속에서 뚝, 뚝,꽃잎 떨어지는 날이면바람은 너의 숨결을 몰고와측백의 어린 가지를 키웠다
그만큼 어디선가 희망이 자라오르고무심히 저무는 시간 속에서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나는 너에게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수없는 나날이 셔터 속으로 사라졌다내가 꿈의 현상소에 당도했을 때오오 그러나 너는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이었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불쑥불쑥 다가왔다가이내 바람으로 흩어지는 너,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무덤에 잠드신 어머니는
선산 뒤에 큰 여백을 걸어두셨다
말씀보다 큰 여백을 걸어두셨다.
석양 무렵 동산에 올라가
적송밭 그 여백 아래 앉아 있으면
서울에서 묻혀온 온갖 잔소리들이
방생의 시냇물 따라
들 가운데로 흘러흘러 바다로 들어가고
바다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 것은 뒤에서
팽팽한 바람이 멧새의 발톱을 툭, 치며
다시 더 큰 여백을 일으켜
막막궁산 오솔길로 사라진다
오 모든 사라지는 것들 뒤에 남아 있는
둥근 여백이여 뒤안길이여
모든 부재 뒤에 떠오르는 존재여
여백이란 쓸쓸함이구나
쓸쓸함 또한 여백이구나
그리하여 여백이란 탄생이구나
나도 너로부터 사라지는 날
내 마음의 잡초 다 스러진 뒤
네 사립에 걸린 노을 같은, 아니면
네 발 아래로 쟁쟁쟁 흘러가는 시냇물같은
고요한 여백으로 남고 싶다
그 아래 네가 앉아 있는
아우슈비츠 1
비탈에서 소나무가 노랗게 죽은 날
푸르기를 그친 하늘이
사나운 바람을 들녘에 쏟았다
우르르 우르르 들녘이 울고
굉굉 파도가 어둠을 섞었다
파도에 고기떼 나자빠진 대낮
냉동기 속에서 아이가 죽었다
연인들 다정스런 능금밭 혹은
푸른 배추 포기에도 우리들
저녁 식탁으로 실려 오는 암호가 포장되고
그대 젓가락에 암호가 집히는 아침마다
누군가? 순수의 목에 정(釘)을 박는 손,
밤마다 으악으악 소리나는 시체실
돌아오지 않는 강에 떠가는 햇빛
옹기
고려시대에는 고려청자에 눌려
쌍것들의 식탁에나 오르내리고
이조시대에는 이조백자에 눌려
촌노들의 살강에나 포개져
보리밥 된장국 족하던 옹기
지리산 시장기 채우던 옹기
팔십년대 글 쓰는 선비 방이야
고려청자 이조백자 곳간이라지만
글 쓰는 선비 장독대에야
된장독 간장독 김치독
일가족 밑반찬 담아선 옹기
어디엔가 나타난 불가사리 한 마리
옹기 작살낼 거라는 뜬소문이지만
한민족 된장 간장 버리고는 못 살아
자부하라 자부하라 자부하라
한백성 밑반찬 담아낸 옹기
태백산 시장기 채우는 옹기
이 시대의 아벨*
며칠째 석양이 현해탄 물구비에 불을 뿌리고 있었읍니다.
이제 막 닻을 내린 거룻배 위에는
저승의 뱃사공 칼롱의 은발이
석양빛에 두어 번 나-부-끼-더-니, 동서남북
금촉으로 부서지며 혼비백산
숲에 불을 질렀읍니다.
으-아, 솔바람 불바람 홀연히 솟아올라
둘러친 세상은 넋나간 아름다움
넋나간 욕망으로 끓어 오르고 있었읍니다.
아세아를 건너지른 `오그덴 10호'가
현해탄에 당도한 건 바로
이때입니다.
오그덴 10호*는
몇 명의 수부들을 바다 속에 처넣고
벼락을 때리며 외쳤읍니다.
오 아벨은 어디로 갔는가
너희 안락한 처마밑에서
함께 살기 원하던 우리들의 아벨,
너희 따뜻한 난롯가에서
함께 몸을 비비던 아벨은 어디로 갔는가
너희 풍성한 산해진미 잔치상에서
주린 배 움켜 쥐던 우리들의 아벨
우물가에서 혹은 태평 성대 동구 밖에서
지친 등 추스르며 한숨짓던 아벨
어둠의 골짜기로 골짜기로 거슬러 오르던
너희 아벨은 어디로 갔는가?
믿음의 아들 너 베드로야
땅의 아버지 너 요한아
밤새껏 은총으로 배부른 가버나움아
사시장철 음모뿐인 예루살렘아
음탕한 왕족들로 가득한 소돔과 고모라야
너희 식탁과 아벨을 바꿨느냐
너희 침상과 아벨을 바꿨느냐
너희 교회당과 아벨을 바꿨느냐
독야청청 담벼락과 아벨을 바꿨느냐?
회칠한 무덤들, 이 독사의 무리들아
너희 아벨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 고통을 짊어진 아벨
너희 족보를 짊어진 아벨
너희 탐욕과 음습한 과거를 등에 진 아벨
너희 자유의 멍에로 무거운 아벨
너희 사랑가로 재갈물린 아벨
일흔 일곱 날 떠돌던 아벨을 보았느냐?
아흔 아홉 날 한뎃잠을 청하던 아벨을 보았느냐?
이제 침묵은 용서받지 못한다
돌들이 일어나 꽃씨를 뿌리고
바람들이 달려와 성벽을 허물리라
지진이 솟구쳐 빗장을 뽑으리라
바람부는 이 세상 어디서나
아벨의 울음은 잠들지 못하리
오 불쌍한 아벨
외마디 소리마저 빼앗긴 아벨을 위하여
나는 너희 식탁을 엎으리라
나는 너희 아방궁을 엎으리라
나는 너희 별장을 엎으리라
나는 너희 교회당과 종탑을 엎으리라
소돔아 너를 엎으리라
고모라야 너를 엎으리라
가버나움아 너를 엎으리라
예루살렘아 너를 엎으리라
천사야 너도 엎으리라
깃발을 분지르고 상복을 입히리라
생나무 마른 나무 함께 불에 던지고
바다더러 산 위로 오르라 하리라
산더러 너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
바람부는 이 세상 어디서나
이제 침묵은 용서받지 못한다
울지 않는 종은 입에 칼을 물리고
뛰지 않는 말은 등에 창을 받으리
날지 않는 새는 뒷축에 밟히리
뒷날에 참회는 적당치 못하다
너희가 쫓아 버린 아벨
너희가 쫓아 묻어 버린 아벨
너희가 쫓아 묻고 부인한 아벨
너희는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시치미뗀
아벨의 울음 소릴 들었느냐?
금동이의 술잔에 아벨의 피가 고이고
은소반의 안주에 아벨의 기름 흐르도다
촛농이 녹아 흐를 때 아벨이 울고
노랫가락 높을 때 아벨이 탄식하도다
오 불쌍한 아벨을 찾을 때까지
나는 이 세상 어디든 달려가
너희 잔치상과 보신탕을 엎으리라
너희 축복과 토룡탕을 엎으리라
너희 개소주와 단잠을 엎으리라
돌들이 일어나 옥답을 일구고
지진이 솟구쳐 평지 풍파 일으키리라
바람더러 주인이라 주인이라 부르리라
너희의 어둠인 아벨
너희의 절망인 아벨
너희의 자유인 아벨
너희의 멍에인 아벨
너희의 표징인 아벨
낙원의 열쇠인 아벨
아벨 아벨 아벨 아벨 아벨……
그때 한 사내가
불 탄 수염을 쥐어뜯으며
대지에 무릎을 꿇었읍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읍니다
―우리가 눈물 흘리는 동안만이라도
주는 우리를 용서하소서
다음날 신문은
오그덴 10호가
현해탄의 대기권을 완전히 떠나갔다고
보도했읍니다.
* 창세기 4장 2절 이하에 기록된 대로 인간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첫아들 카인과 둘째 아들 아벨을 낳았다.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고 카인은 농부가 되었는데, 형 카인은 아벨에 대한 질투 때문에 아우를 들로 꾀어내어 쳐 죽였다. 이때 야훼께서 이렇게 꾸짖으셨다.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 1981년 8월 초 한반도에도 상륙한 태풍 이름.
상한 영혼을 위하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이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에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에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리고 몸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연가(戀歌)
아픈 머리에 열이 가라앉고
창마다 환하게 불빛 고이는 저녁
겨울 난롯불에 내 혼을 쬐며 고린도전서 13장을 펴면
내 진실의 계단 어디쯤서 너는 오고 있는가
어둠을 쓰러뜨리며 난롯불은 조금씩 내 피를 덥히고
꿈틀이며 꿈틀이며 타고 있는 글자들
구름이 가는 곳을 묻고 싶은 황혼쯤
엉겅퀴 울타리를 밟고 가는 바람처럼
내 안에 서걱이는 한무더기 공허
한무더기 공허로도 비칠 수 없는 얼굴
불심지 휘감아도 살속 캄캄한 어둠 목구멍을 채우네
지구 가득 부신 햇빛 부려놓고
노을을 물들이는 태양이여,
산마루 넘어가는 태양이여,
눈은 눈으로 구름은 구름으로 떠나고 있을 때
나무들 우쭐대는 진종일 바람은 바람으로 만나고 있을 때
내 깊은 눈물샘 어디쯤서 물그르매
물그르매 번쩍이는 너
북한강 기슭에서
위로받고 싶은 사람에게서
위로받지 못하고 돌아서는 사람들의 두 눈에서는
북한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서로 등을 기대고 싶은 사람에게서
등을 기대지 못하고 돌아서는 사람들의 두 눈에서는
북한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건너지 못할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미루나무 잎새처럼 안타까이 손 흔드는 두 눈에서는
북한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상에 안식이 깃드는 황혼녘이면
두 눈에 흐르는 강물들 모여
구만히 아득한 뱃길을 트고
깊으나 깊은 수심을 만들어
그리운 이름들 별빛으로 흔들리게 하고
끝끝내 못한 이야기들
자욱한 물안개로 피워올리는 북한강 기슭에서,
사랑하는 이여
내 생애 적셔줄 가장 큰 강물 또한
당신 두 눈에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남북녀 사랑노래
우리는 꿈꾸네 한사랑 꿈꾸네
둘이 살다 하나 되는 큰세상 꿈꾸네
기쁨이면 나누고
고통이면 맞들어
우리는 꿈꾸네 한살림 꿈꾸네
우리는 길을 가네 한겨레 길을 가네
둘이 가다 하나되는 한민족 길을 가네
힘든 길은 의지하고
험한 길은 쉬엄쉬엄
우리는 길을 가네 통일의 길을 가네
사십대
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씨뿌리는 이십대도
가꾸는 삼십대도 아주 빠르게 흘러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도 안다
선택할 끈이 길지 않다는 것도 안다
방황하던 시절이나
지루하던 고비도 눈물겹게 그러안고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사십대 들녘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 뱉아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전보
그대 이름 목젖에 아프게 걸린 날은
물 한잔에도 어질머리 실리고
술 한잔에도 토악질했다
먼 산 향하여, 으악으악
밤 깊도록 토악질했다
하늘에 쓰네
그대 보지 않아도 나 그대 곁에 있다고
하늘에 쓰네
그대 오지 않아도 나 그대 속에 산다고
하늘에 쓰네
내 먼저 그대를 사랑함은
더 나중의 기쁨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내 나중까지 그대를 사랑함은
그대보다 더 먼저 즐거움의 싹을 땄기 때문이리니
가슴 속 천봉에 눈물 젖는 사람이여
억조창생 물굽이에 달뜨는 사람이여
끝남이 없으니 시작도 없는 곳
시작이 없으니 멈춤 또한 없는 곳,
수련꽃만 희게희게 흔들리는 연못가에
오늘은 봉래산 학수레 날아와
하늘 난간에 적상포 걸어놓고
달나라 광한적 죽지사
열두대의 비파에 실으니
천산의 매화향이 이와 같으랴
묵색 그리움 만리를 적시도다
만리에 서린 사랑 오악을 감싸도다
그대 보지 않아도 나 그대 곁에 있다고
동트는 하늘에 쓰네
그대 오지 않아도 나 그대 속에 산다고
해 지는 하늘에 쓰네
쓸쓸함이 따뜻함에게
언제부턴가 나는
따뜻한 세상 하나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추운 거리에서 돌아 와도, 거기
내 마음과 그대 마음 맞물려 넣으면
아름다운 모닥불로 타오르는 세상,
불그림자 멀리 멀리
얼음장을 녹이고 노여움을 녹이고
가시철망 담벼락을 와르르 녹여
부드러운 강물로 깊어지는 세상,
그런 세상에 살고 싶었습니다
그대 따뜻함에 내 쓸쓸함 기대거나
내 따뜻함에 그대 쓸쓸함 기대어
우리 삶의 둥지 따로 틀 필요 없다면
곤륜산 가는 길이 멀지 않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내 피가 너무 따뜻하여
그대 쓸쓸함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쓸쓸함과 내 따뜻함이
물과 기름으로 외롭습니다
내가 너무 쓸쓸하여
그대 따뜻함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따뜻함과 내 쓸쓸함이
화산과 빙산으로 좌초합니다
오 진실로 원하고 원하옵기는
그대 가슴속에 든 화산과
내 가슴속에 든 빙산이 제풀에 만나
곤륜산 가는 길 트는 일입니다
한쪽으로 만장봉 계곡물 풀어
우거진 사랑 발 담그게 하고
한쪽으로 선연한 능선 좌우에
마가목 구엽초 오가피 다래순
저너기 떡취 얼러지나물 함께
따뜻한 세상 한번 어우르는 일입니다
그게 뜻만으로 되질 않습니다
따뜻한 세상에 지금 사시는 분은
그 길을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사랑법 첫째
그대 향한 내 기대 높으면 높을수록
그 기대보다 더 큰 돌덩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부질없는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에
커다란 돌덩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그대를 기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
기대 따라 행여 그대 잃지 않기 위해서
내 외롬 짓무른 밤일수록
제 설움 넘치는 밤일수록
크고 무거운 돌덩이 하나 가슴 한복판에 매달아 놓습니다.
봄비
가슴 밑으로 흘려보낸 눈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이뻐라
순하고 따스한 황토 벌판에
봄비 내리는 모습은 이뻐라
언강물 풀리는 소리는 내며
버드나무 가지에 물안개를 만들고
보리밭 잎사귀에 입맞춤하면서
산천초목 호명하는 봄비는 이뻐라
거친 마음 적시는 봄비는 이뻐라
실개천 부풀리는 봄비는 이뻐라
오 그리운 이여
저 비 그치고 보름달 떠오르면
우리들 가슴 속의 수문을 열자
봄비 찰랑대는 수문을 쏴 열고
꿈꾸는 들판으로 달려 나가자
들에서 얼싸안고 아득히 흘러가자
그때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리
다만 둥그런 수평선 위에서
일월성산 숨결같은 빛으로 떠오르자
지울 수 없는 얼굴
냉정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얼음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불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무심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징그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부드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그윽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따뜻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내 영혼의 요람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샘솟는 기쁨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아니야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당신이라 썼다가
이 세상 지울 수 없는 얼굴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겨울 사랑
그 한 번의 따뜻한 감촉
단 한 번의 묵묵한 이별이
몇 번의 겨울을 버티게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허물어지고
활짝활짝 문 열리던 밤의 모닥불 사이로
마음과 마음을 헤집고
푸르게 범람하던 치자꽃 향기,
소백산 한 쪽을 들어올린 포옹,
혈관 속을 서서히 운행하던 별,
그 한 번의 그윽한 기쁨
단 한 번의 이윽한 진실이
내 일생을 버티게 할지도 모릅니다.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고요하여라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무심히 지나는 출근버스 속에서도
추운 이들 곁에
따뜻한 차 한잔 끓는 것이 보이고
울렁거려라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여수 앞바다 오동도쯤에서
춘설 속의 적동백 화드득
화드득 툭 터지는 소리 들리고
눈물겨워라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중국 산동성에서 날아온 제비들
쓸쓸한 처마, 폐허의 처마 밑에
자유의 둥지
사랑의 둥지
부드러운 혁명의 둥지
하나 둘 트는 것이 보이고
우리동네 구자명 씨
―여성사연구 5
맞벌이부부 우리동네 구자명씨
일곱달된 아기엄마 구자명씨는
출근버스에 오르기가 무섭게
아침 햇살 속에서 졸기 시작한다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경적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옆으로 앞으로 꾸벅꾸벅 존다
차창 밖으론 사계절이 흐르고
진달래 피고 밤꽃 흐드러져도 꼭
부처님처럼 졸고 있는 구자명씨,
그래 저 십분은
간밤 아기에게 젖물린 시간이고
또 저 십분은
간밤 시어머니 약시중든 시간이고
그래그래 저 십분은
새벽녘 만취해서 돌아온 남편을 위하여 버린 시간일거야
고단한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잠 속에 흔들리는 팬지꽃 아픔
식탁에 놓인 안개꽃 멍에
그러나 부엌문이 여닫기는 지붕마다
여자가 받쳐든 한 식구의 안식이
아무도 모르게
죽음의 잠을 향하여
거부의 화살을 당기고 있다
관계
싸리꽃 빛깔의 무당기 도지면
여자는 토문강처럼 부풀어
그가 와주기를 기다렸다
옥수수꽃 흔들리는 벼랑에 앉아
아흔 번째 회신 없는 편지를 쓰고
막배 타고 오라고 전보를 치고
오래 못 살거다 천기를 누설하고
배 한 척 들어오길 기다렸다
그런 어느 날 그가 왔다
갈대밭 둔덕에서
철없는 철새들이 교미를 즐기고
언덕 아래서는
잔치를 끝낸 들쥐떼들이
일렬횡대로 귀가할 무렵
노을을 타고 강을 건너온 그는
따뜻한 어깨와
강물소리로 여자를 적셨다
그러나 그는 너무 바쁜 탓으로
마음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미안하다며
빼놓은 마음 가지러 간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여자는 백여든아홉통의 편지를 부치고
갈대밭 둔덕에는 가끔가끔
들 것에 실린 상여가 나갔다
여자의 희끗희끗한 머리칼 속에서
고드름 부딪는 소리가 났다
완벽한 겨울이었다
그대 생각
너인가 하면 지나는 바람이어라
너인가 하면 열사흘 달빛이어라
너인가 하면 흐르는 강물소리여라
너인가 하면 흩어지는 구름이어라
너인가 하면 적막강산 안개비여라
너인가 하면 끝모를 울음이어라
너인가 하면 내가 내 살 찢는 아픔이어라
그대가 두 손으로 국수사발을 들어올릴 때
하루 일 끝마치고
황혼 속에 마주앉은 일일 노동자
그대 앞에 막 나온 국수 한 사발
그 김 모락모락 말아 올릴 때
남도 해 지는 마을
저녁연기 하늘에 드높이 올리듯
두 손으로 국수사발 들어올릴 때
무량하여라
청빈한 밥그릇의 고요함이여
단순한 순명의 너그러움이여
탁배기 한잔에 어스름이 살을 풀고
목메인 달빛이 문 앞에 드넓다
강물에 빠진 달을 보러 가듯
강물에 빠진 달을 보러 가듯
새벽에 당신 사는 집으로 갑니다.
깨끗한 바람에 옷깃을 부풀리며
고개를 수그러뜨리고 말없이 걷는 동안
나는 생각합니다.
어제 부친 편지는 잘 도착되었을까
첫 줄에서 끝 줄까지 불편함은 없었을까
아직도 문은 열어두지 않았을까
아예 열쇠 수리공을 부를까
아니야, 그건 일종의 폭력이야
새벽에 어울리는 단정한 말들만이
내가 그에게 매달리는 희망인가?
신은 그 희망으로 목걸이를 약속하셨지
눈물로 혼을 씻는 자에게만 주시는 목걸이
아침이슬이 몸에 오싹하도록 걷고 또 걸어
나는 당신 집 앞에 발걸음을 멈춥니다.
골목은 고요하고 문은 굳게 닫겨 있습니다.
삼백여든아홉 번째 부자를 누르지만
아무 인기척도 들리지 않습니다.
품속에 간직한 초설 같은 편지 한장
문틈에 꽂아놓고 하늘을 봅니다.
노여운 사랑
가을바람과 옷깃을 스친 뒤 세상이 지루하여
낮술을 마셨습니다
쨍그렁 소리가 나는 빈 술잔에 칸나꽃대 같은
노여움을 따라 부으며 꿈에 본 수미산도 잠기게 하고 날개
달린 낮 달도 띄워 당신 생각 단풍으로 아롱지도록 술잔을
채우고 또 채웠습니다
들국
시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친구가
경기도 들녘에서 꺾어온
들국 한아름을 꽂아놓고
불현듯 핑그르르 눈물이 돈다
그것은 시골에 그냥 핀 들국이 아니라
고향을 다녀올 때 본
어머니의 망연한 눈빛 같기도 하고
좀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수유리에서 해남쯤으로 떠도는
못다 핀 망령들의 이름 같기도 하고
좀더 길게 음미하노라면
서른아홉 살의 목숨을 거두고
두 마리, 빈곤을 상징하는 노새에 끌려
아틀랜타 시가지를 빠져나가던
마틴 루터 킹 목사
그를 따르던 흑인영가 같기도 하고
따뜻한 동행
해거름녘 쓸쓸한 사람들과 흐르던
따뜻한 강물이 내게로 왔네
봄 눈 파릇파릇한 숲길을 지나
아득한 강물이 내게로 왔네
이십도의 따뜻하고 해맑은 강물과
이십도의 서늘하고 아득한 강물이
서로 겹쳐 흐르며 온누리 껴안으며
삼라의 뜻을 돌아 내게로 왔네
사흘 낮 사흘 밤 잔잔한 강물 속에
어여쁜 숭어떼 미끄럽게 춤추고
부드러운 물미역과 수초 사이에서
적막한 날들의 수문이 열렸네
늦게 뜬 별 둘이 살속에 박혔네
달빛이 내려와 이불로 덮혔네
저물 무렵 머나먼 고향으로 흐르던
따뜻한 강물이 내게, 내게로 왔네
외로운 사람들의 낮과 밤 지나
기나긴 강물이 내게, 내게로 왔네
사십도의 따뜻하고 드맑은 강물 위에
열 두 대의 가야금소리 깃들고
사십도의 서늘하고 아득한 강물 위에
스물 네 대의 바라춤이 실렸네
그 위에 우주의 동행이 겹쳤네.
가을 편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가을이
흑룡강 기슭까지 굽이치는 날
무르익을 수 없는 내 사랑 허망하여
그대에게 가는 길 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길이 있어
마음의 길은 끊지 못했습니다
황홀하게 초지일관 무르익은 가을이
수미산 산자락에 기립해 있는 날
황홀할 수 없는 내 사랑 노여워
그대 향한 열린 문 닫아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문이 있어
마음의 문은 닫지 못했습니다
작별하는 가을의 뒷모습이
수묵색 눈물비에 젖어 있는 날
작별할 수 없는 내 사랑 서러워
그대에게 뻗은 가지 잘라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무성한 가지 있어
마음의 가지는 자르지 못했습니다
길을 끊고 문을 닫아도
문을 닫고 가지를 잘라도
저녁 강물로 당도하는 그대여
그리움에 재갈을 물리고
움트는 생각에 바윗돌 눌러도
풀밭 한벌판으로 흔들리는 그대여
그 위에 해와 달 멈출 수 없으매
나는 다시 길 하나 내야 하나 봅니다
나는 다시 문 하나 열어야 하나 봅니다
꿈꾸는 가을 노래
꿈꾸는 가을 노래 들녘에 고개 숙인 그대 생각 따다가
반가운 손님 밥을 짓고
코스모스 꽃길에 핀 그대 사랑 따다가
정다운 사람 술잔에 띄우니
아름다워라 아름다워라
늠연히 다가오는 가을 하늘 밑
시월의 선연한 햇빛으로 광내며
깊어진 우리 사랑 쟁쟁쟁 흘러가네
그윽한 산그림자 어질머리 뒤로 하고
무르익은 우리 사랑 아득히 흘러가네
그 위에 황하가
서로 흘러 들어와
서쪽 곤륜산맥 열어놓으니
만리에 용솟는 물보라
동쪽 금강산맥 천봉을
우러르네
묵상
잔설이 분분한 겨울 아침에
출근버스에 기대앉아
그대 계신 쪽이거니 시선을 보내면
언제나
적막한 산천이 거기 놓여 있습니다
고향처럼 머나먼 곳을 향하여
차는 달리고 또 달립니다
나와 엇갈리는 수십 개의 들길이
무심하라 무심하라 고함치기도 하고
차와 엇갈리는 수만 가닥 바람이
떠나라 떠나거라 떠나거라....
차창에 하얀 성에를 끼웁니다
나는 가까스로 성에를 긁어내고 다시
당신 오는 쪽이거니 가슴을 열면
언제나 거기
끝모를 쓸쓸함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운무에 가리운 나지막한 야산들이
희미한 햇빛에 습기 말리는 아침,
무막한 슬픔으로 비어 있는
저 들판이
내게 오는 당신 마음 같아서
나는 왠지 눈물이 납니다.
베틀 노래
내 땀의 한 방울도 날줄에 스며
그대 영혼 감싸기에 따뜻하거라
고즈너기 풀어감은 고통의 실꾸리
한평생 오가는 만남의 잉아
우리님 생각과 실실이 짜여
새벽바람 막아줄 실비단이거라
기다리마 기다리마 기다리마
하루에도 열두 번 끊기는 실이여
무작정 풀리기엔 무서운 맘이거든
단번에 끝내기엔 아쉬운 밤이거든
허천들린 사랑가
평생 동안 불러주마
기다리다 흘린 눈물 모조리 스며
그대 아픔 덮어주는 비단길이거라
약탕관에 흐르는 눈물
섬이라면 주야로 배 저어가고
산이라면 봉이마다 오르는 길 있으련만
사랑의 길눈 어두운 나는
그대에게 가는 길 아직 찾지 못하였습니다.
천하 명금 이마지가 거문고줄을 타고
허오가 자지러지게 피리를 분들
노심초사 그대 생각뿐인 내 마음 즐겁지 않으니
영명한 한의사는 내게 사랑의 묘약 한 재 지어주며
사랑의 길눈 밝아지랍니다.
지은 정성 달이는 정성 마시는 정성으루다
사랑의 길눈 밝아져서 그대 나라에 잘들어가랍니다.
용한 한의사의 처방대로
햇빛 쨍쨍하고 선들바람 부는 날 받아
사랑의 묘약 달이기를 합니다.
진흙으로 빚은 약탕관에 천년설봉 얼음 녹여
사랑의 묘약 털어넣은 후
하루 스물네 시간에 돋은 기다림 썰어넣고
스무 날 우거진 오매불망 구엽초도 비벼넣고
석 달 열흘 무성한 그리움 잘라넣고
삼 년 묵은 섭섭함
오 년 묵은 상처도 뽑아넣고
칠 년간 미련이며
구 년된 슬픔도 다져넣고
참나무숯불에 괄게괄게 달이니,
아 사랑의 길눈 밝아지고 있는지
약탕관에 흐르는 눈물
스무아흐레 동안 그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
내가 내 자신에게 고개를 들 수 없을 때
나직히 불러본다 어머니
짓무른 외로움 돌아누우며
새벽에 불러본다 어머니
더운 피 서늘하게 거르시는 어머니
달빛보다 무심한 어머니
내가 내 자신을 다스릴 수 없을 때
북쪽 창문 열고 불러본다 어머니
동트는 아침마다 불러본다 어머니
아카시아 꽃잎 같은 어머니
이승의 마지막 깃발인 어머니
종말처럼 개벽처럼 손잡는 어머니
천지에 가득 달빛 흔들릴 때
황토 벌판 향해 불러본다 어머니
이 세계의 불행을 덮치시는 어머니
만고 만건곤 강물인 어머니
오 하느님을 낳으신 어머니
천둥벌거숭이의 노래 1
지도에도 없는 숲길을 갑니다
태양이 호수에서 금발을 흔들고
이름 모를 산새들이
등성이를 넘어갑니다
바하의 악보를 오솔길에 깔았더니
무반주 첼로의 서늘한 그림자가
지구의 머리칼에 고요히 걸립니다
내가 당도할 문은 아직 멀었습니다
숲에 별 뜨고
바람 부는 밤
모든 언어에 빗장을 지른 뒤
찔레꽃 향기가 심장을 가릅니다
어둠뿐인 하늘에 당신을 그립니다
오늘밤은 이것으로 따뜻합니다
호박
호박이 익었다
우리나라 땅에서만 자라온
토종호박들이
불볕 더위 아래 이리 딩굴 저리 딩굴
누릿누릿 호박이 익었다
조선땅 어디서나 흙에 심기만 하면
토담이고 울타리고 쑥쑥 뻗어올라
못생긴 꽃타래를 피워내고
하대받는 풋호박을 주렁주렁 달아
놀고먹는 건달들이 쿡쿡 찔러보는
토종호박
흉년 들면 서민들의 밥이 되고
난세에는 마적떼들의 죽밥이 되는
조선 토종호박이 익었다
호박은 호박인 탓으로, 그러나
손톱에 할퀸 데는 할퀸 자죽을 내고
도리깨질 당한 데는 당한 자죽을 내고
군화발에 밟힌 데는 밟힌 자죽을 내고
철사줄에 묶인 데는 묶인 자죽을 그대로
지난 아픔 그대로
또렷이 익어버린 조선호박,
삼천리의 밥인 호박
케이농장에서 호박이 익었다
노릿노릿 뭉실뭉실
호박이 익었다
엿 해먹기 좋은 호박이 익었다
에잇, 엿먹어라
파도타기
둥근 젖무덤에 보름달 떠올라 하룻밤 사무치자 하룻밤 사무치자
팔 벌린 그 밤에 동쪽 샘이 깊은 물에 보름달 주저앉은 그 밤에
느닷없는 부드러움이 두 가슴을 옥죄이던 그 밤에
깊고 푸른 밤이 불을 켜던 그 밤에
사십도의 강물이 범람하던 그 밤에
불꽃춤 찬란하던 그 밤에
서해안의 파도소리 하얗게 부서지던 그 밤에
물미역 아름답게 흔들리던 그 밤에
별들이 내려와 드러눕던 그 밤에
새벽 달빛 호호탕탕 넘어 가던 그 밤에
아아 아홉가지 봉황깃털 창궁에 자욱한 그 밤에
그대와 나 수미산 꼭대기에 떠올라 우주와 교신하던 그 밤에
동행
스산한 불빛들로 가득한
가리봉동의 밤거리를 걸으며
동행의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음산한 어둠으로 가득한
구로동의 골목길을 더듬으며
저무는 우리 삶 어깨동무해 주는
동행의 기쁜 날 생각했습니다
가리봉동에 엎드려 웃는 여자들이
지폐를 헤아리는 남자들의 발 아래서
여름날 수풀처럼 무성했다가
가을날 단풍처럼 무르익었다가
겨울날 눈발처럼 휘날렸다가
진구렁 가랑잎 되어 뒹구는 길 돌아오며
동행하는 무서움 생각했습니다
유방에 불을 켠 여자들이
동해안처럼 줄선 남자들의 발 아래서
실크로드의 황혼이 되었다가
허구한 날 강태공의 월척이 되었다가
홍등가 이무기의 횟감이 되었다가
더는 내려갈 수 없는 곳, 거문도
거문도로 내려가는 길 돌아오며
동행하는 분노를 생각했습니다
오 거문도 해안에서 우는 여자들이
한반도의 썩은 물로 철썩이다가
한반도의 쓰레기로 솟구치다가
그러나, 그러나
세상의 더러움 다 걸러내고
푸른 해일 일으키며 달려오는 곳에서
깊은 바다 이끌며 돌아오는 포구에서
동행의 벅찬 힘 생각했습니다
동행의 소중함 생각했습니다
편지
새벽 다섯시면
수유리 옹달샘 표주박 속에
드맑게 드맑게 넘치고 있는 사람
드맑게 넘치다가
아침 나그네 목 축여주고
머나먼 마을로 떠나고 있는 사람
머나먼 마을로 떠나다가
인천 만석동이나 온양에 이르러
한 많은 사람들 발을 적시기도 하고
어린 물풀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없이 거대한 들판을 가로질러
까마득한 포구로 떠나고 있는 사람
떠날 수 없는 것들 뒤에 두고
바람처럼 깃발처럼 떠나고 있는 사람
아흐, 떠나면서 떠나면서
사라지지 않는 사람
포옹
사랑하는 사람이여 세모난 사람이나 네모난 사람이나
둥근 사람이나 제각기의 영혼 속에 촛불 하나씩 타오르는
이유 올리브 꽃잎으로 뚝뚝 지는 밤입니다
날개
생일선물을 사러 인사동에 갔습니다
안개비 자욱한 그 거리에서
삼천도의 뜨거운 불기운에 구워내고
삼천도의 냉정한 이성에 다듬어낸
분청들국 화병을 골랐습니다
일월 성신 술잔같은 이 화병에
내 목숨의 꽃을 꽂을까, 아니면
개마고원 바람소릴 매달아 놓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장백산 천지연 물소리 풀어
만주대륙 하늘까지 어리게 할까
가까이서 만져보고
떨어져서 바라보고
위아래로 눈 인두질하는 내게
주인이 다가와 말을 건넸지요
손님은 돈으로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선물을 고르고 있군요
이 장사 삼십년에
마음의 선물을 포장하기란
그냥 줘도 아깝지 않답니다
도대체 그 분은 얼마나 행복하죠?
뭘요...
마음으로 치장한들 흡족하지 않답니다
이 분청 화병에는
날개가 달려있어야 하는데
그가 이 선물을 타고 날아야 하는데
이 선물이 그의 가슴에
돌이 되어 박히면 난 어쩌죠?
지리산의 봄 1
-뱀사골에서 쓴 편지
남원에서 섬진강 허리를 지나며
갈대밭에 엎드린 남서풍 너머로
번뜩이며 일어서는 빛을 보았습니다.
그 빛 한 자락이 따라와
나의 갈비뼈 사이에 흐르는
축축한 외로움을 들추고
산목련 한 송이 터뜨려놓습니다.
온몸을 싸고도는 이 서늘한 향기,
뱀사골 산정에 푸르게 걸린 뒤
오월의 찬란한 햇빛이
슬픈 깃털을 일으켜세우며
신록 사이로 길게 내려와
그대에게 가는 길을 열어줍니다.
아득한 능선에 서계시는 그대여
우르르우르르 우레 소리로 골짜기를 넘어가는 그대여
앞서가는 그대 따라 협곡을 오르면
삼십 년 벗지 못한 끈끈한 어둠이
거대한 여울에 파랗게 씻겨내리고
육천 매듭 풀려나간 모세혈관에서
철철 샘물이 흐르고
더웁게 달궈진 살과 뼈사이
확 만개한 오랑캐꽃 웃음 소리
아름다운 그대 되어 산을 넘어갑니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승천합니다.
지리산의 봄 2
-반야봉 부근에서의 일박
지리산 반야봉에 달 떴다
푸른 보름달 떴다
서천 서역국까지
달빛 가득하니
술잔 속에 따라붓는 그리움도 뜨고
지나온 길에 누운 슬픔도 뜨고
내 가슴속에 든
망망대해 눈물도 뜨고
체념한 사람들의 몸 속에 흐르는
무서운 시장기도 뜨고
창공에 오천만 혼불 떴다
산이슬 털고 일어서는 바람이여
어디로 가는가
그 한가닥은 하동포구로 내려가고
그 한가닥은 광주로 내려가고
그 한가닥은 수원으로 내려가는 바람이여
때는 오월, 너 가는 곳마다
무성한 신록들 크게 울겠구나
뿌리 없는 것들 다 쓰러지겠구나
지리산의 봄 3
-연하천 가는길
형님,
진나라의 충신 개자추가 있었다지요
일평생 연좌서명이나 하고 상소문만 올리다가
끝내는 역적으로 몰리고 말았다지요
모름지기 따스한 밥을 거부하고
등을 보이며,
다만 외로운 등을 보이며
갈대아우르를 떠나는 아브라함처럼
여벌 신발이나 전대도 없이
천둥벌거숭이 되어 떠났다지요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다지요
산나물 뜯어먹고
마파람 소리로 펄럭이던 사람,
어용으로 타오르는 산불에 바베큐가 될망정
고향에 돌아올 수 없었던 사람,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둔 날에는
중국 대륙 백성들도 찬밥을 먹고
진달래꽃처럼 울었다지요
진달래꽃으로 산을 덮었다지요
형님,
이상도 하여이다
진나라 개자추가 뜯어먹던 산나물이
연하천 가는 길에 가득 돋았습니다
곰취나물 개취나물 떡취나물 참취나물
파랗게 새파랗게 숲길을 덮고
그가 달빛 밟으며 뿌린 피눈물
가도가도 끝없는 진달래꽃으로 피었습니다
이 어찌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으리요
잠시 능선에 발길을 멈추고
분홍숲길 이루는 꽃잎 쓰다듬자니
다시는 고향에 올 수 없는 사람들
한뎃잠 설치며 웃는 소리 들리고요
지 한몸 던져 불이 된 사람들
이산저산에서 봇물 되어 구릅니다.
지리산의 봄 4
-세석고원을 넘으며
아름다워라
세석고원 구릉에 파도치는 철쭉꽃
선혈이 반짝이듯 흘러가는
분홍강물 어지러워라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고
발 아래 산맥들을 굽어보노라면
역사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산머리에 어리는 기다림이 푸르러
천벌처럼 적막한 고사목 숲에서
무진벌 들바람이 목메어 울고 있다
나는 다시 구불거리고 힘겨운 길을 따라
저 능선을 넘어가야 한다
고요하게 엎드린 죽음의 산맥들을
온몸으로 밟으며 넘어가야 한다
이 세상으로부터 칼을 품고, 그러나
서천을 물들이는 그리움으로
저 절망의 능선들을 넘어가야 한다
막막한 생애를 넘어
용솟는 사랑을 넘어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는 저 빙산에
쩍쩍 금가는 소리 들으며
자운영꽃 가득한 고향의 들판에 당도해야 한다
눈물겨워라
세석고원 구릉에 파도치는 철쭉꽃
선혈이 반짝이듯 흘러가는
분홍강물 어지러워라.
지리산의 봄 5
-백제와 신라의 옛장터목에서
황산벌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측백나무의 어린 가지를 키우는 기슭에서
신라의 삼천군마가 뛰어놀았다지오니까
풀벌레 울음 소리 자욱한 수풀에
찔레꽃 향기 부서지는 날
등에 화살통을 멘 신라의 군졸들이
말갈기를 휘날리면서
무진벌 하늘에 시위를 당겼다지오니까
벌들은 저마다 주어진 길을 돌고
접시꽃 같은 백제 처녀들의 가슴에
나당연합군의 장칼이 꽂혔다지오니까
밤꽃 비린내 골짜기를 타고 흘러
이 마을 저마을에 토악질 소리
입덧하는 여자처럼 오월이 흘러갔다지오니까
몸푸는 여자처럼 유월이 오고 말았다지오니까
논두렁 밭두렁에 개구리 울음소리
입다문 백성들의 장송곡이 되었다지오니까
이름없는 송장들은 수장 암장 합장 평쳤다지오니까
청산에 솔바람 들바람 강바람 소리로 살어리랏다지오니까
풀잎처럼 눕는 백성 되었다지오니까
지리산의 봄 6
-천왕봉 연가
산길을 뒤쫓던 계곡물 소리가
기나긴 능선에서 돌아서 가버린뒤
이 깊고 적막한 영산의 골짜기에는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청학동 높새바람 능선을 넘어와
백면묵은 슬픔들을 구름으로 날립니다
천왕봉을 베개삼아 야숙하는 새벽에는
놀라운 일이지요
나의 두개골 사이에서 붉은 해가 솟아오르고
가슴에 들여 앉힌 밀림 사이로
청산의 운무가 넘나들었습니다
해동천 기운이 발원하는 곳,
지리산 상상봉에 두 발을 얹으니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
천 가지 바람이 이곳에서 일어나고
만 가지 사람 뜻이 이곳에서 흐른지라
서러운 산하에 뼈를 묻은 사람들,
동쪽사람 하늘이 동녘 능선 따라 흘러갑니다
남쪽사람 하늘이 남켵 능선 따라 흘러갑니다
서쪽사람 하늘이 서녘 능선 따라 흘러갑니다
북쪽사람 하늘이 북녘 능선 따라 흘러갑니다
정선아리랑이나 진도아리랑 고개 아아
조선인의 하늘이 남누리 북누리 흘러갑니다
산길을 앞지르던 골짜기 어둠이
크고 작은 능선에서 사그라져 버린 뒤
이 깊고 적막한 영산의 골짜기에는
한달 두달 석달 넉달.....
청학동 징소리 능선을 넘어와
천년 묵은 악몽들을 꽃잎으로 날립니다
지리산의 봄 7
-온누리 봄을 위해 부르는 노래
남녘 태백산맥에서 발원하는 봄기운과
북녘 백두산맥에서 뻗어내린 봄기운이
내려오다 올라가다 얼싸안는 곳에서
어여쁘구나 지리산이여
대명천지 어머니들 일어나
장엄한 젖줄을 쓸쓸한 땅에 물리니
그 한 줄기는 소백산맥으로 받아내고
그 한 줄기는 노령산맥으로 받아내고
그 한 줄기는 백악산맥으로 받아내고
그 한 줄기는 차령산맥으로 받아내고
그 한 줄기는 광주산맥으로 받아내는 곳에서
눈부시구나 지리산이여
별건곤 어머니들 일어나
둥글디둥근 수평선을 이루며
수려한 치마폭을 황량한 땅에 덮으니
호남평야 일으키러 영산강 달려가고
김해평야 일으키러 낙동강 달려가고
경기평야 일으키러 임진강 달려가고
김제평야 일으키러 섬진강 달려가고
내포평야 일으키러 금강 달려가고
나주평야 일으키러 보성강 달려가는 곳에서
영원하구나 지리산이여
시방세계 울창한 어머니들 일어나
봄기운 휘몰아 산천초목 흔드니
그 바람 압록과 청천에 이르고
그 바람 대동과 두만에 이르고
그 바람 금강 일만이천 봉에 이르고
그 바람 묘향산과 구월산에 이르고
그 바람 북만주 땅 요동벌에 이르고
그 바람 북방을 휩쓰는 곳에서
우뚝우뚝하구나 지리산이여
지리산의 봄 8
-백무동 하산길
숲으로 구만리 하늘을 가리고
통곡의 폭포에서 물맞은 여자
오호라 지리산 너로구나
수만 가닥 길들이 고향으로 가건만
살아서 들어가지 못할 나라 아득히 굽어보며
떠도는 산 바람에 그리움이 사무치는
오호라 너 지리산이로구나
무심히 황혼 속을 내려가는 사람들
허기진 가슴팍 무섭게 떠미는
오호라 지리산 너로구나 너로구나
욱욱청청 우거진 역사의 산준령
무량수불 말씀도 와르르 쏟아내며
죽음의 핏방울을 수맥으로 바꾸는
너로구나 지리산 너로구나
사람아, 사람아
버린 것들 속에 이미 버림받음이 있다
천리로 방송하고 만리까지 가소사
내 등짝 떼밀며 만 골짜기 우뚝 선
지리산, 지리산 너로구나
지리산의 봄 9
-물소리, 바람소리
가이없구나, 이 끝 모를 숲쩡이에서
물소리 바람 소리 가리마 지르며
-김주열 열사여...
참죽나무 숲이 운다
-전태일 열사여....
조팝나무 숲이 운다
-김상진 열사여....
물비나무 숲이 운다
-김태훈 열사여....
박달나무 숲이 운다
-황정하 열사여....
쥐엄나무 숲이 운다
-한희철 열사여....
원뿔나무 숲이 운다
-박관현 열사여....
비술나무 숲이 운다
-김경숙 열사여....
가시나무 숲이 운다
-김세진 열사여....
개암나무 숲이 운다
-이재호 열사여....
쥐똥나무 숲이 운다
-이동수 열사여....
꽝꽝나무 숲이 운다
-김종태 열사여....
작살나무 숲이 운다
-장의기 열사여....
화살나무 숲이 운다
-송광영 열사여....
이팝나무 숲이 운다
-박영진 열사여....
생달나무 숲이운다
-박종만 열사여....
층층나무 숲이 운다
-이동수 열사여....
굴참나무 숲이 운다
-광주 이천 열사여....
사시나무 숲이 운다
-박종철 열사여....
느릅나무 숲이 운다
-이한열 열사여
야광나무 숲이 운다
열사여, 열사여, 열사여....
고욤나무 숲이 운다
홰나무 아그배나무 숲이 운다
박태기나무 순비기나무 숲이 운다
염주나무 보리수나무 통나무 숲이 운다
숲이란 숲이 모두 따라 운다
이 비 내리는 한반도에서!
지리산의 봄 10
-달궁 가는 길
황홀한 붕괴가 시작되는 가을 지리산에서
절룩이며 절룩이며 산길을 오르다가
코르자코프와 그의 고아들을 생각했습니다
히틀러와 같은 해에 태어나
생명의 어머니 하느님을 만난 뒤
거짓말을 발음해보지 않았다는 코르자코프,
그가 일렬종대로 아이들을 이끌고
아우슈비츠로 향하던 모습을 생각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아들아
하느님의 축제에 들어가게 된단다
어둠이 오기 전에 별궁에 든단다
최후의 운명 같은 거짓말에 이끌리어
죽음의 숲길로 접어들던 고아들,
행복원 고아들을 생각했습니다
성락원 고아들을 생각했습니다
평화원 빨갱이 고아들을 생각했습니다
용바위 지나서 영웅바위 지나서
탐관바위 지나서 오리바위 지나서
큰손바위 지나서 도피바위 지나서
하마바위 지나서 번들바위 지나서
벼락바위 지나서 오적바위 지나서
장군바위 지니서 송장바위 지나서
피바위 지나서 눈물바위 지나서
神의 제단에 옷을 벗고
천당으로 천당으로 올라가는
달궁마을 고아들을 생각했습니다
어히
어히 어히
어이 어이 어히
어이 어이
우리들 등짝에 무섭게 엉겨붙는
어린 예수 비명을 생각했습니다
행방불명 되신 하느님께 보내는 출소장
무릇 너희가 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영에서 나온
말씀으로 거듭나리라, 수수께끼를 주신 하느님, 우리
가 영에서 나온 말씀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미사일 핵
무기고에서 나오는 살인능력 보유자와 우리들 밥줄을
틀어진 자를 구세주로 받드는 오늘날 이 세상 절반의
살겁과 기아선상의 대하여 어떤 비상정책을 수립하고
계신지요
한나절을 일한 자나 하루 종일 일한 자나 똑같이 최
대 생계비를 지불함이 하늘나라 은총이다 선포하셨건
만, 반평생을 뼈빠지게 일한 자나 일년으로 혼빠지게 일
한 자나 똑같이 임금을 채불당한 채 밀린 품삯 받으로
일본으로 미국으로 다국적기업 뒤꽁무니 쫓아간 우리
딸들이 임금 대신 똥물을 뒤집어쓰고 울부짖을 때 당
신의 말씀은 침묵했습니다
온갖 제국주의 음모와 죽음의 쓰레기들이 자유와 정
의와 평화라는 식품 상표를 달고, 당신의 이름으로,
배고픈 나라의 백성을 향하여 무한대로 수출되고 있는
작금에도 당신의 말씀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아아 살인병기를 자처하는 다국적군이 실로 처참하
고 참혹하게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땅을 피바다로 싹쓸
이할 때도 당신의 말씀은 침묵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
까 “미국은 새로운 전쟁시대의 첫 승리자이다”부시가
오만불손하게 음성을 높일 때, 그리고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스무 번씩 기립박수를 칠 때도 당신은
온전히 침묵했습니다
대답해 주시지요 하느님, 당신은 지금 어디 계신지
요 세상이 너무 재미없어 쟈니 윤의 쇼 프로그램에서
미국식 웃는 법을 익히고 계십니까, 아니면 힘이 무지
무지 센 나라의 현대판 노예 수출선에 팔려가고 계십
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용용 죽겠지 꼭꼭 숨어라 목하
종말론이 생산중인 페르시아 만이나 바빌론의 무기창
고에서 재고를 헤아리는 무기 상인들을 격려하고 계십
니까? 아니아니 당신의 이름을 교수형에 처한 공산대
륙이나 모스끄바 뻬레스뜨로이까 전철 속에 앉아 이단
의 풍물을 감상하고 계십니까? 대답해 주시지요 하느
님, 당신을 교회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을 교
회의 창고부터 열어야 합니다
이 곤궁한 시대에
교회는 실로 너무 많은 것을 가졌습니다
교회는 너무 많은 재물을 가졌고 너무 많은 거짓을 가졌고
너무 많은 보태기 십자가를 가졌고
너무 많은 권위와 너무 많은 집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파당과 너무 많은 미움과
너무 많은 철조망과 벽을 가졌습니다
빼앗긴 백성들이 갖지 못한 것을 교회는 다 가졌습니다
잘못된 권력이 가진 것을 교회는 다 가졌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벙어리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장님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귀머거리가 된 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오직 침묵으로 번창합니다
의인의 변절을 탓하던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합니다
옳은 자들이 당신의 이름을 더 이상 부르지 않는 시대가 오기 전에
하느님, 가버나움을 후려치듯 후려지듯
교회를 옮음의 땅으로 되돌려
참회의 강물이 온갖 살겁의 무기들을 휩쓸어가게 하소서
새로운 참소리 태어나게 하소서
거기에 창세기의 빛이 있사옵니다 아멘......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고정희 유고시집 창비시선 104
고정희 시집 [눈물꽃] 실천문학 1986-임헌영
1991년 6월 9일 지리산의 사연 많은 계곡의 하나인 뱀사골 격류 속에서 생명을 빼앗긴 규수시인 고정희는 언제 쓴 것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책상 한 가운데에 자신의 운명을 예견한 것 같은 시 한 편을 남겨 두었다. "환절기의 옷장을 정리하듯 / 애증의 물꼬를 하나 둘 방류하는 밤이면 / 이제 내게 남아 있는 길, / 내가 가야 할 저만치 길에 /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로 시작하여, "크고 넓은 세상에 / 객사인지 횡사인지 모를 한 독신자의 시신이 / 기나긴 사연의 흰 시트에 덮이고 / 내가 잠시도 잊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달려와 / 지상의 작별을 노래하는 모습이 보인다"로 이어지는 이 시는 한xx,강xx,노xx,김xx 등의 인물들이 자신의 시신 앞에서 할 법한 말들을 요약한 뒤에 아래와 같이 끝맺는다.
오 하느님
죽음은 단숨에 맞이해야 하는데
이슬처럼 단숨에 사라져
푸른 강물에 섞였으면 하는데요--(나)
뒤늦게 달려온 어머니가
내 시신에 염하시며 우신다
내 시신에 수의를 입히시며 우신다
저 칼날 같은 세상을 걸어오면서
몸이 상하지 않았구나, 다행이구나
내 두 눈을 감기신다
<독신자>에서
"혼신의 힘으로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마치 자신의 살이며 뼈, 심지어 영혼까지도 모두 불살라 태워 올리는 듯한 간절함"을 지닌 여인,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미 세속의 즐거움이나 기쁨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 필생으로 짊어지고 갈 무거운 고통이며 종교적이기까지도 한 질곡"(시집 <<아름다운 사람 하나>>에 실린 발문 송기원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시>)을 진 이 시인은 자신의 운명을 예견했던 것일까.
1948년 전남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에서 태어난 그녀의 본명은 고성애. 스무살에 개인 시화전을 여는 등 약간은 들뜬 문학적 사춘기를 보낸 고정희는 지방지 기자생활을 하면서 <<현대시학>>을 통해 박남수의 추천으로 등단(1975), 한국신학대학 졸업(1979), <<또 하나의 문화>>창간동인 참여(1983), 한국가정법률상담소 편집부장(1986), <<여성신문>>편집주간(1989) 등의 외형적인 경력과 함께, 문학적으로는 <<목요시>> 동인(허형만 김준태 송수권 국효문 등), 대구에서 김춘수의 시학 강의 경청이라는 과정을 밟았다. 이런 사실들은 그녀를 기독교적인 세계관에다 모더니즘적인 작품성향을 지닌 시인으로 접근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는데, 초기시는 사실 그 범주를 넘어서지 않았다.
첫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1979)부터 제2시집 <<실락원>>(1981)까지가 아마 고정희 시인의 제일단계에 속하는 기간일 것이다. 그러나 제3,4시집인 <<초혼제>><<이 시대의 아벨>>(1983)에 이르면 신앙인과 시인으로서의 양심에 입각한 세상 눈뜨기 현상이 나타나며, 그 다섯 번째 시집인 <<눈물꽃>>(1986)에서는 해방신학적인 미학에 바탕삼은 우리 역사 바로 알기의 단계로 들어서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모두 4부로 이뤄진 이 시집의 제1부는 아직 미학적인 변신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 서정시들로 채워져 있는 반면에 제2부 <프라하의 봄> 연작 15편은 80년대 초기의 살벌함이 묻어난다. "오 친구여/부분적으로 회색을 띠지 않고는/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는 간통의 시대에서/누가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누가 깨끗함을 앞세울 수 있을까" <프라하의 봄.2>라는 구절에서 보듯이 고정희는 당시의 잔혹한 탄압을 직시하면서 그것을 정확히 파악해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한다면 그런 혹독한 억압 아래서 "회색"을 거부하고 분연히 일어섰던 많은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노래해야 할까?
고정희는 여기서 "대저 네가 쓰는 시문이라는 것도/한 자루 낫보다 무딘 것이 라면야/흙에 씨뿌리고 가꾸는 일보다/떳떳하지 못하니라/그러니 이 애비 말 잘 듣고/생의 근본이 무엇인지 따지기 바란다"(<프라하의 봄 9>)는 기본 입장을 고수하는 듯 하며, 이런 자세는 죽을 때까지 일관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제3부 <현대사 연구> 연작 14편은 <프라하의 봄>에서 역사의 격랑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선다. "근대사를 공부하는 그대와 만나면서/참 이상한 일이야/매일 밤 꿈자리에 네로가 나타나"로 시작되는 <현대사 연구.8>에서 "예술지상주의자에게 하사된 안전그물,/그것은 바로 종교의 은총"이라고 할만큼 고정희의 시는 변모한다. 이런 시학의 변모는 <1>에서 아름다움을 탐구하면서 "미끄럼타기 쉬운 말/찬양하기 좋은 말/포장하기 좋은 말"을 매도하면서 "모나고 미운 말/건방지게 개성이 강한 말/누구에게나 익숙치 못한 말/서릿발 서린 말"을 추구하는 자세에서도 나타난다. 이 연작에서 고정희는 나름대로의 분단 80년대사를 일별하는데 여기에는 문화, 신앙, 정치, 분단 등을 다루는 한편 일제 식민지 시기의 피억압현상을 강력한 목소리로 고발하기도 한다. 사실 이 시집 <책 뒤에>란 글에서 고정희 자신은 이렇게 당시의 자신을 털어놓고 있다.
<<눈물꽃>>의 시편들이 만들어질 동안 나를 가장 강하게 사로잡았던 문제는 우리 시대의 문화적 위기와 지성의 뿌리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이상과 현실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으며 정치현실과 예술의 혼을 따로 떼어놓지 못한다. 삶과 이데아는 동전의 안과 밖의 관계이다.'현실'이라는 렌즈가 곧 꿈의 광맥을 캐는 도구인 것이다. 탐사는 계속 될 것이다.
시집 <<눈물꽃>>의 <책 뒤에>에서
그 뒤 세월은 무척 빠르게 변했고, 고정희의 시세계 역시 시집 <<지리산의 봄>>(1987),<<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1989),<<광주의 눈물비>>(1990) 등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제3기의 민중시적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 기간에 고정희는 유럽(1988)과 필리핀(1990- 91)을 다녀왔는데, 특히 필리핀에서의 10개월 여 체재는 그녀에게 민중과 여성문제의 총체적인 인식으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미 <<또 하나의 문화>>와 <<여성신문>>에 투신하면서 굳어지기 시작한 여성문제에 대한 관심의 소산인 시집 <<여성해방 출사표>>(1990)와, 필리핀에 머물면서 쓴 작품인 <밥과 자본주의>연작(유고시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1992)에 게재)은 좋은 대조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중간에 고정희는 <<아름다운 사람 하나>>(1991)라는 연시집을 냈는데, 이것은 이 시인이 90년대적인 세계사적 변모에 나름대로 대처하려는 시세계의 변모를 위한 추구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시대의 그리움을 절절히 노래한 이 시집은 어쩌면 고정희의 긴 방황의 귀착지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가슴속은 항상 불길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강한 지향점을 지니고 있어 중간 중간의 쉼표를 만들고 싶어하는 우리들의 게으름과 비겁성의 틈바구니를 한없이 파고 들어와 버린다" (조옥라 <고정희와의 만남>,시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발문)는 말처럼 그녀는 눈물꽃으로 피었다가 지면서 우리에게 여백을 남기고 가버린 철새인지 모른다 ( cafe 시사랑
역사와 신화 속으로 걸어들어 간 해방시인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 출생. 5남 3녀 가운데 장녀로 태어났다.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했다. 1975년 ' 현대시학'을 통해 문단에 나온 이래 ' 실락원 기행' ' 초혼제' ' 지리산의 봄' '저 무덤 위의 푸른 잔디' '여성해방 출사표'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여백을 남긴다' 등 10권의 시집을 발표하며 치열한 삶을 살았다.
삶 자체가 문화콘텐츠인 사람들이 있다. 문화콘텐츠는 식상함이 부각되는 순간 생명력을 잃게 되므로 콘텐츠를 살리는 데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이름만 들어도 이야기가 따라 나오고 상상의 날개를 펴게 하는 사람. 나는 몇 안 되는 그런 사람 중의 하나로 고정희 시인을 꼽는다.
그가 여류시인이고, 독신자로 살다 지리산 등반 중 급류에 휩쓸려 극적인 삶을 마감했다는 사실 외에도 사후 짧은 시간에 고정희 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그의 삶을 조명하고 죽음을 추모하는 이가 흔치 않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렇다.
1948년에 태어나 91년 사망, 43세를 일기로 아쉽게 세상을 떠난 시인은 비록 세대가 다르지만 프랑스의 요절여성철학자 시몬느 베이유를 상기시킨다. 철학 교수 자격 학위를 받았지만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스스로 노동자가 된 유대인 여자, 2차 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에 참여하는 등 자신의 사상을 삶으로 실천하기 위해 헌신한 그녀는 악화된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34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침으로 역사와 신화가 되었다.
고정희시인 21주기를 맞아 고향 해남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추모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그가 시와 삶을 통해 드러낸 여성운동, 민중운동의 발자국을 따라가 보자. 누구라도 역사와 삶에 대한 성찰을 얻을 것이다.
왜 고 시인의 죽음이 안타까운가?
1991년 6월 9일 일요일, 아침부터 내린 비 때문에 뱀사골 골짜기물이 불어있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건넜다 위험을 감지하고 다시 되돌아오면서 생긴 사고사였다.
고정희 시인이 생전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심지어는 가장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조차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다는 것은 여러 기록들을 통해서 나타난다. 아마도 그의 결벽주의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여성의 고통을 가볍게 아는 '머스마'들에 치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민족의 고통을 가볍게 아는 '기집아'들에 치이면서 그 틈바구니에서 누구보다 무겁게 십자가를 지고 살았던 시인"이라고 그의 친구 조혜정씨(사회학자, 연세대교수)는 말했다.
고정희 시인의 죽음이 안타까운 것은 그가 한창 일을 해야 할 나이에 필리핀에서 막 돌아와 '여성해방출사표'를 쓰고, 이제 본격적으로 민중이든, 여성이든 해방운동의 중심에 서야할 시점에 홀연히 떠나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시간이 길어야 많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짧은 생애 동안에 천수를 다한 사람보다 많은 일을 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고정희의 43년이 그런 것이었다.
고정희라는 인물이 갖는 아이콘
고정희 시인은 살아있는 동안에 10권의 시집을 내었다. 31세에 공식적으로 등단하여 12년 동안 10권의 시집을 내었으니 치열하게 많은 시를 쓴 셈이다. 매일 새벽 5시면 일어나 정좌하고 단정한 글씨로 써내려간 그의 시편들은 시에 헌신한 수도자의 모습과 같다. 그의 방에 걸려져 있던(지금도 생가에 보존) 작은 나무현판의 '고행, 청빈, 묵상'이란 세 단어는 그의 삶과 문학에 임하는 자세를 잘 보여준다.
시를 쓰는 한편 광주 YWCA 간사와 크리스찬 아카데미 출판부 책임간사, 가정 법률 상담소 출판부장으로 사회활동과 직업전선에 참여하기도 하며 특히 1980년대 초부터 여자와 남자 그리고 아이들과 어른들이 서로 평등하고 자유롭게 어울려 사는 대안 사회를 모색하는 여성주의 공동체 모임인 '또 하나의 문화'에 동인으로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고정희 시인을 이야기할 때 이 모든 활동에 앞서 언급할 것은 시인으로서 그가 이룬 업적일 것이다. 시인 나희덕은 "고정희는 서정시의 좁은 틀을 과감하게 부수고 새로운 형식의 가능성을 부단히 탐구했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나 성적으로 금기시되던 시적 언술들을 해방시켰다는 점에서 선구적 역할을 인정받기에 충분했다"고 하며 "고정희가 없었다면 한국문학사에 페미니즘이라는 중요한 인식의 장은 훨씬 더 늦게 열렸을 것이다"고 말한다.
한국 문학사에서 고정희 이전에 '여성의 경험'과 '여성의 역사성' 그리고 '여성과 사회가 맺는 관계방식'을 특별한 문학적 가치로 강조하고 이론화한 작가는 아무도 없었다.
초기 시, 기독교적 세계관의 지상실현을 꿈꾸는 희망찬 노래에서부터 민족민중문학에 대한 치열한 모색, 그리고 여성해방을 지향하는 페미니즘 문학의 선구자적 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적 탐구는 한국문학사에 남을 귀중한 자산이다. 시인으로서, 여성운동가로서의 고정희의 실천적 삶은 이제 역사와 신화가 되었고 이 땅을 살아가는 소녀들의 전범이 되고 있다. 매년 고정희 시인을 기리는 문학제가 열리고 여기에 모여드는 청소년들의 관심이 높아가는 걸 보면 고정희라는 아이콘이 발신하는 메시지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김원자(호남대 외래교수) - 2012.10.22
198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문학가
고정희-여성 해방 전사
어떤 여성 시인보다 투철한 여성 해방 의식을 시에 구현한 고정희(高靜熙, 1948~1991)는 “자그마하고 깡마른 몸집에 커다란 두 눈, 연약하면서도 완강한 조선 여자의 골상”을 하고 있던 시인이다.각주1) 그는 대학의 여성학 관련 전공 교수들과 ‘또 하나의 문화’ 동인을 결성해 활동하고, 1988년 『여성신문』의 창간에 발벗고 나서 편집 주간을 맡는다. 시인은 평소에도 입버릇처럼 “나는 이상과 현실을 분리해서 생각지 않으며 정치 현실과 예술의 혼을 따로 떼어놓지 못한다. 삶과 이데아는 동전의 안과 밖의 관계이다.”라고 말한다. 남녀 차별과 사회 모순을 꿰뚫어보며 군더더기 없는 직설적이며 강건한 문체로 여성 해방을 노래한 고정희는 시와 삶을 한 덩어리로 밀고 나간다.
남자가 모여서 지배를 낳고 / 지배가 모여서 전쟁을 낳고 / 전쟁이 모여서 억압세상을 낳았기 때문에, // 국토분단 장벽보다 먼저 / 민족분단 장벽보다 먼저 / 남녀분단 장벽 허물 일이 급선무 /고정희, 『여성 해방 출사표』(동광출판사, 1990)
투철한 여성 해방 의식을 시에 구현한 시인 고정희
작지만 당찬 ‘여성 해방 전사’ 고정희는 1948년 전남 해남에서 평범한 집안의 5남 3녀 가운데 맏딸로 태어난다. 그의 본명은 고성애다. 그가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스무 살 무렵의 일이며, 광주에서 나오는 『새전남』 · 『주간전남』의 사회부 기자로 1970년부터 근무하며 시대 의식과 여성 문제에 눈을 뜬다. 고정희는 1975년 『현대시학』에 「연가」 · 「부활과 그 이후」 등을 추천받아 정식으로 문단에 나온다. 1979년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한 그는 허형만 · 김준태 · 장효문 · 송수권 · 국효문 등과 『목요시』 동인으로 활동한다. 그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로 여성문학인위원회 위원장과 시창작분과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내기도 한다. 문단에 나온 뒤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1979) · 『실락원 기행』(1981) · 『이 시대의 아벨』(1983)을 펴내며 비평가들의 눈길을 끈 그는 장시집 『초혼제』(1983)를 내고 나서 ‘대한민국 문학상’을 받기도 한다.
『초혼제』에서 그가 선보인 ‘마당굿시’라는 형식은 서사성과 희곡성을 아우르려는 뜻깊은 실험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고정희는 기독교신문사, 크리스찬아카데미 출판 간사, 가정법률상담소 출판부장, 『여성신문』 초대 편집 주간을 거쳐 여성 문화 운동 동인 ‘또 하나의 문화’에서 활동한다. 동인지 『또 하나의 문화』에서 그는 출판인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그 동안 모아둔 여성 문제 자료를 바탕으로 여성사 새로 쓰기 작업을 구체화한다. 그는 『또 하나의 문화』 2호에 여성 문학 70년사를 점검하는 논문 「한국 여성 문학의 흐름」을 발표하는데, 이 작업은 여성 문학의 개념도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진 선구적인 시도여서 관심을 모은다.
우리는 최선의 이념으로서 참된 민주 공동체의 형성을 지향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문학인들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 중의 하나가 일차적으로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민주 문화 형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여성 문학은 진정한 여성 문화 양식을 형성시켜 나가는 데 자기 자리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여성 문화란 현재 우리가 직면해 있는 지배 문화 혹은 가부장제 부성 문화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대안 문화’를 의미한다. 즉 여성 문화 운동은 지금까지 주종의 관계로 일반화된 남녀를 동시에 구원하려는 해방적 차원을 지니고 동시에 새로운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는 모성적 생명 문화의 차원이어야 한다고 본다.
고정희, 「한국 여성 문학의 흐름」, 『또 하나의 문화 2호 ― 열린 사회 자율적 여성』(1995)
고정희가 활동하던 여성 문화 운동 동인 〈또 하나의 문화〉 9호고정희 추모 특집 글들이 실려 있다.
고정희는 1986년에 새로 쓰는 여성사를 다룬 『눈물꽃』을 ‘실천문학사’에서, 1987년에 『지리산의 봄』을 ‘문학과지성사’에서, 1989년에 수난자의 빛으로 광주항쟁을 재해석한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를 ‘창작과비평사’에서 낸다. 1988년에는 12명의 시인이 쓴 75편의 여성 해방시를 엮어 『하나보다 더 좋은 백의 얼굴이어라』를 펴내 한국 여성 문학사에 중요한 성과를 남긴다. 이어 그는 『광주의 눈물비』(1990), 여성 해방과 사회 변혁에 대한 갈망을 노래한 시편들을 묶은 『여성 해방 출사표』(1990)를 내놓는다.
『여성 해방 출사표』에서 시인은 황진이 · 이옥봉 · 허난설헌 · 신사임당 등 역사 속의 여성 문학가들을 내세워 역사와 여성 해방을 연결시키고, 시공을 초월해 여성들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한다. 황진이가 혁명을 꿈꾸며 스스로 기생이 된 선각자로 그려지는 등 이 시집에서 그는 여성의 시각으로 시대를 앞서 간 여성 문학가들의 생애를 재해석하며 여남 해방 세상의 도래를 힘차게 노래한다. 고정희는 남녀 동등권 쟁취 투쟁에서 더 나아가 인간 해방 운동의 차원에서 여성 운동이 펼쳐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이를 시에 구현하려고 애쓴다.
지금의 조선 한반도 여자들은 / 안팎으로 힘이 세지고 슬기로워 / 학식이나 주장이나 실천 능력 어느 면인들 / 남성에 견줄 바가 아니라지요? / 농자천하지본이라는 말이 부끄럽게 / 해동의 옥토는 여자 농민들이 떠맡다시피 하고 / 여자 노동자들 또한 대동단결하여 / 여성 해방 운동의 흐름을 이끌며 / 지식인 여자들도 학문이 고강해져 / 평등세상 땅고르기 한창이라지요? / 규방일 관청일 출입문 따로 없고 / 밥짓기 빨래하기 남녀가 구별 없고 / 벼슬길 풍류마당 신분차별 없다지요? / 얼마나 학수고대했던 세상입니까 고정희, 『여성 해방 출사표』(동광출판사, 1990)
1990년 그는 필리핀에 있는 아시아종교음악연구소 초청으로 아시아 여러 나라의 시인 및 작곡가들과 ‘탈식민지 시와 음악 워크숍’에 참여, 제3세계에서 자행되고 있는 억압의 현장을 눈으로 보고 분노하기도 한다.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 뿌리 깊으면야 /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가랴 /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고정희, 「상한 영혼을 위하여」, 『뱀사골에서 쓴 편지』(미래사, 1991)
이처럼 서정성이 무르녹아 있는 초기의 시편에 비해 고정희의 시 세계는 1980년대에 들어서며 역사 현실에 대한 투철한 인식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한편 그의 시 세계를 물들이고 있는 커다란 정서는 짙은 슬픔이다. 김주연은 이 슬픔에 대해 “떳떳한 죽음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시인의 자괴감을 반영하는데, 그 감정 속에는 죽음을 가져온 현실과 그 세력에 대한 공분이 깃들여 있다.”고 설명한다.각주2) 민중, 독재, 광주항쟁 등을 화두로 삼았던 고정희의 슬픔은 막연한 정서의 산물이 아니라 의롭지 못한 역사에 희생당한 무고한 생명들에 대한 연민과 그 역사를 주도한 이들을 향한 공분이 버무려진 슬픔이다.
가까이 오라, 죽음이여 / 동구 밖에 당도하는 새벽 기차를 위하여 / 힘이 끝난 폐차처럼 누워 있는 아득한 철길 위에 / 새로운 각목으로 누워야 하리 / 거친 바람 속에서 밤이 깊었고 / 겨울숲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 모닥불이 어둠을 둥글게 자른 뒤 / 원으로 깍지 낀 사람들의 등뒤에서 / 무수한 설화가 /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서걱거린다
고정희, 「땅의 사람들 1」, 『지리산의 봄』(문학과지성사, 1987)
그의 시에서는 슬픔이 허무나 좌절, 타인에 대한 분노로 연결되는 대신에 자신이 그 슬픔을 낳는 어둠의 자식, 죄지은 자아라는 기독교적 참회와 고백으로 나아갈 때가 많다. 결국 어둠의 자아, 죄지은 자아에 대한 각성은 용서와 연결되면서 새로운 전망과 힘을 고취시킨다.
빨래터에서도 씻기지 않은 / 고(高)씨 족보의 어둠을 펴놓고 / 그 위에 내 긴 어둠도 쓰러뜨려 / 네 가슴의 죄 부추긴 다음에야 / 우리는 따스히 손을 잡는다 / 검은 너와 검은 내가 손잡은 다음에야 / 우리가 결속된 어둠 속에서 / 캄캄하게 쓰러지는 법을 배우며 / 흰 것을 흰 채로 버려두고 싶구나 / 너와 나 검은 대로 언덕에 서니 / 멀리서 빛나는 등불이 보이고 / 멀리서 잠든 마을들 아름다워라 / 우리 때묻은 마음 나란히 포개니 / 머나먼 등불 어둠 주위로 / 내 오랜 갈망 나비되어 날아가누나 / 네 슬픈 자유 불새 되어 날아가누나 / 오 친구여 / 오랫동안 어둠으로 무거운 친구여 / 내가 오늘 내 어둠 속으로 / 순순히 돌아와보니 / 우리들 어둠은 사랑이 되는구나 / 우리들 어둠은 구원이 되는구나 / 공평하여라 어둠의 진리 / 이 어둠 속에서는 / 흰 것도 검은 것도 없어라
고정희, 「서울 사랑」, 『뱀사골에서 쓴 편지』(미래사, 1991)
따라서 고정희의 시는 슬픔을 얘기하면서도 투쟁을 얘기하는 것만큼 힘이 넘치기 일쑤다. 그의 시는 활력이 가득한 슬픔의 힘을 자주 보여준다. 이런 것이 탄탄한 시적 구성과 힘찬 리듬, 시를 빚어내는 맵찬 솜씨 등과 어울려 고정희의 시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1991년에 사랑하는 이를 향한 간절한 기다림과 절망, 자기 비판과 희생을 담은 연시집 『아름다운 사람 하나』를 펴낸 고정희는 같은 해 6월 9일 지리산 산행중 갑자기 내린 비로 불어난 계곡 물에 빠지는 불의의 사고로 아깝게 목숨을 잃는다. 이듬해인 1992년 그의 유고 시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가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온다.(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4 |저자 장석주 |cp명시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