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가리왕산 케이블카 운행 시작…벽파령이 발아래로
강원도 정선군 가리왕산 케이블카가 3일 운행을 시작했다.
지난 1일 가리왕산 정상에서 정선군민들이 새해 해맞이를 하고 있다. 정선군 제공
첫 탑승객은 어린이, 장애인, 다문화가정, 어르신 등 8명이다. 이들은 이날 정선군 북평면 알파인 플라자 숙암역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1381m 가리왕산역까지 3.51㎞ 구간을 20분만에 올랐다.
첫 탑승자인 전하은 어린이는 “춥기는 했지만, 엄마와 함께 케이블카를 타고 높은 가리왕산에 올라갈 수 있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군은 정식 운행에 앞서 지난달 1일부터 한 달간 정선군민을 대상으로 시범운영을 했다. 시범 운영 기간 누적 탑승객은 8000여명이다. 지난 1일에는 군민 700여명이 가리왕산 케이블카를 타고 가리왕산 하봉에 올라 새해 해맞이 행사를 하기도 했다.
가리왕산 케이블카 운행 목적은 2018평창동계올림픽 유산인 알파인 경기장 곤돌라 시설의 보존이다. 군은 가리왕산 하봉 정상에 대피 시설 무방류 순환 화장실 생태탐방 데크 로드를 설치했다. 하부에는 하부 탑승장 증설 및 엘리베이터를 각각 조성했다.
올림픽 때 사용했던 관리사무소는 매표소, 농산물판매소, 휴게공간 등 케이블카 이용객 편의시설로 탈바꿈했다.
가리왕산 케이블카 운영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탑승 마감 시간은 오후 4시다. 토요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요일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운영한다. 요금은 성인 1만원, 소인 6000원이다.
해발 1561m의 가리왕산은 정선에서 함백산(1573m)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가리왕산은 조선조에 세운 산삼봉표비가 있을 정도로 산삼과 약초류가 풍부하다. 1970~1980년대까지만 해도 가리왕산은 심마니나 들락거릴 정도로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해 왔다. 현재 희귀식물 100여종, 멸종위기 포유류 4종과 희귀조류 10여 종을 포함한 야생동물 수십여종이 서식한다.
선조들은 겹겹이 둘러싸인 산맥들이 마치 푸른 파도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가리왕산을 벽파령(碧波嶺)으로 불렀다. 일출 일몰 운해는 물론 밤하늘의 은하수 겨울철 상고대 등 계절과 날씨 시간에 따라 다양한 풍광을 연출한다.
정선=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
가리왕산 전면복원 약속 안지키던 강원도가 낳은 산사태 2022.09.02.
강원도 가리왕산에는 동계올림픽 약 2주 동안 쓰기 위해 산림 184만㎡을 훼손하고 만든 스키경기장이 있다. 볼일이 끝나자 강원도는 짓기 전 약속을 뒤집고 이곳을 관광지로 개발하려 했으며, 이에 따라 복원이 지연됐다. 가리왕산 전반에 산사태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는 환경단체의 예측이 최근 호우에 의해 실현됐다.
강원도는 2018년 열린 평창올림픽을 주최하며 가리왕산 일부 구간을 깎아 스키경기장을 만들었다. 가리왕산 스키경기장 계획이 나온 2014년부터 환경단체는 가리왕산 개발에 반대하며 기존 스키장을 활용 · 개조하는 여러 대안을 내놨다. 하지만 강원도는 계획을 고수하고 산림청과 전면 복원에 합의하며 결국 가리왕산에 스키경기장을 지었다.
평창올림픽이 끝나고 4년이 넘게 지난 2022년 9월, 강원도는 기존 약속과 달리 곤돌라를 유지하겠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스키경기장을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구상을 세우고 있다. 현재 스키경기장이 있던 구간은 곤돌라만 남은 채 나무 없이 방치된 상태다.
최근 포착된 가리왕산 스키경기장 산사태 (사진 녹색연합)
최근 우려가 현실이 됐다. 지난달 호우로 산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녹색연합은 2일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에 지난 8월9일에서 8월11일 사이 내린 비로 스키장 중단에서 하단까지 약 2km가량 무너지기 시작해 토사유실과 함께 토석류 등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환경단체는 스키경기장 건설 전부터, 또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산사태로 인해 주변 산림이 유실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땅이 드러난 스키경기장 주변 경사는 흙을 지탱할 나무뿌리가 없어 지속적으로 산사태에 노출되고, 피해 지역이 확장된다는 것이다.
앞서 정규석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올해 4월 가리왕산 관련 뉴스펭귄과 인터뷰에서 “스키경기장 건설 이후 가리왕산 해당 장소에서 산사태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원래 가리왕산이 나무가 뿌리내리기 어려운 지형이다. 이런 곳에서 스키경기장을 짓기 위해 숲을 없애고 흙을 걷어냈으니 나무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원도는 앞서 2018년부터 전면 복원 대신 곤돌라를 유지하겠다고 주장해왔다. 이는 산림청과 약속에도 어긋나는 일이며, 환경당국인 원주지방환경청도 시정을 요구했지만 강원도는 계속 버텼다. 이는 가리왕산 복원이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이유다.
최근 포착된 가리왕산 스키경기장 산사태. 건물 뒤쪽 곤돌라가 있다 (사진 녹색연합)/뉴스펭귄
강원도의 고집에 가리왕산 복원이 본격 시작되는 2024년까지 곤돌라를 존치하기로 결정됐다. 가리왕산에 곤돌라가 있다고 해도 복원을 앞둔 산림일 뿐 관광지는 아니다. 강원도는 최근 ‘국가정원’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관광지로 조성해야 한다는 여론을 만들고 있다.
국가정원 조성은 가리왕산 ‘전면 복원’과는 거리가 멀고, 결국 관광지로 개발됨을 의미한다. 국내 국가정원은 전남 순천 순천만 국가정원, 경남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이 있다. 두 국가정원 사례를 보면 녹지이긴 하지만, 공원에 가깝고 기존 생태계와는 관련이 적다.
민간단체 ‘올림픽국가정원강원도민추진위원회’는 최근 서울 글래드호텔에서 '올림픽 국가정원 대토론회'를 열어 가리왕산을 국가정원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의견을 쏟아냈다. 이 행사에는 김진태 강원도지사, 최승준 정선군수까지 참여해 올림픽 국가정원 조성 활동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최근 포착된 가리왕산 스키경기장 산사태. 땅밑 구조물이 드러났다 (사진 녹색연합)
▲가리왕산 올림픽 국가정원 조성 기본계획도. ⓒ정선군
가리왕산 복원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가리왕산은 겨울올림픽이 결정된 순간부터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조선시대부터 국가의 보호를 받던 산림이었기 때문이다. 단 3일의 경기를 위해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을 해제하고 십만그루가 넘는 나무를 베어냈다. 가리왕산은 ‘환경 올림픽’이라는 구호에도 불구하고 대형 국제스포츠대회가 갖는 병폐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평창올림픽 개최 전인 2014년에 ‘분산 개최’를 포함한 어젠다 2020을 발표했다. 누적된 적자와 대규모 환경파괴로 인해 세계적인 겨울올림픽 유치 반대 여론이 일자 발빠르게 대처한 것이다. 실제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에서 지역 주민들은 2026년 겨울올림픽 유치를 거부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와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분산 개최는 없다’고 일축하며 아이오시의 해법을 외면했다. 같은 정선군에 위치한 하이원리조트도 대안지로 떠올랐다. 이 스키장 정상부에서 폐광지인 영월 상동 쪽으로 대안경기장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원도와 스키협회는 여러 대안을 모두 무시했다.
당시 영업 중인 국내 스키장은 모두 적자였다. 정선 가리왕산에서 가까운 태백 오투리조트 스키장은 4천억원을 들여 건설했으나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그럼에도 강원도는 가리왕산에 알파인 스키장 건설을 강행했다. 무능한 체육행정과 스포츠외교의 결과는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지워졌다.
강원도가 관계부처와 시민사회를 설득한 유일한 논리가 ‘쓰고 난 뒤에 원래대로 돌려놓겠다’는 것이었다. 올림픽 바로 전인 2017년 12월8일 환경부, 산림청, 강원도, 정선군, 전문가 등이 모여 가리왕산 알파인 스키장 복원을 합의했다. 그리고 2018년 1월 강원도는 중앙산지관리위원회에 전면복원 안을 제출했다. 그런데 올림픽 경기가 끝나고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이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바뀔 수는 있어도 법이 바뀔 수는 없다. 이를 알면서도 최 지사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마치 가리왕산 복원이 협상 대상이 되는 것처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강원도가 가리왕산을 복원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부터 복원 비용이 2천억원이 되었다. 강원도가 애초 제출했던 전면복원 계획안에 제시한 복원 비용은 약 400억원이다. 그런데 어떤 계산에서인지 복원 비용이 갑자기 2천억원으로 둔갑했다. 그리고 스키장으로 사용한다면 마치 10원도 들지 않고 당장 스키를 탈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가리왕산을 스키장으로 쓰기 위해서도 대대적인 공사가 필요하다. 지난여름 다행히도 큰비가 정선을 피해갔지만, 시간당 30㎜의 비에 가리왕산은 이미 산사태가 났고 슬로프와 운영도로가 결정적인 노릇을 했다. 6가구가 침수되었으며 재해예방 공사를 진행했고 중앙정부의 긴급 지원이 있었다. 가리왕산은 평균 경사도가 약 25%에 이른다. 따라서 산 입구부터 하봉까지 지그재그로 산을 가로지르는 곤돌라와 운영도로를 존치하고는 제대로 된 생태복원이 불가능하다.
가리왕산의 시설물을 철거하는 것은 ‘전면복원’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필요 행위다. 강원도의 가리왕산 스키장 대부 기간이 2018년 12월31일이었다. 국유림을 쓰고 환원할 땐 국유림법에 따라 원상태로 복구해야 한다. 하지만 가리왕산은 산사태 위험이 매우 높은 훼손지로 변해 있다.
강원도는 올림픽만 하고 나면 정선도 뭔가 부흥이 일어날 것처럼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그러나 남은 것은 산사태 위험이 아주 높은 쓸모없는 활강경기장뿐이다. 이것이 동계올림픽이라는 국제경기대회의 본질이다. 아이오시의 2020어젠다는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자구책이다.
지혜를 모으고 힘써야 할 일은 가리왕산 스키장 찬반 논쟁이 아니다. 지역주민들의 허망함을 상쇄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복원이다. 정선군에 복원을 실행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실제적인 조직을 만들고 지원해야 한다. 가리왕산은 산림복원 기술의 집합체가 될 것이다. 산림복원과 연계한 일자리 창출, 생태관광 등으로 지역사회와 상생할 수 있다. 가리왕산의 복원은 올림픽의 새로운 유산으로 기록될 것이다.
배제선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 2019-01-07
짧은 올림픽 영광, 긴 상처…정선 가리왕산 스키장
토사와 돌무더기는 리프트 승강장 주변까지 밀려 내려오는데
급경사면엔 붉은색으로 ‘위험! 토사붕괴 주의’ 경고판만
장마철 임박했는데 응급조치로 산사태 예방될까
생태계 복원은 가늠조차 어려워
평창겨울올림픽 알파인 스키경기장으로 쓰였던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줄기가 맨살을 드러내고 있다. 정선/김봉규 선임기자
1561m 높이의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한줄기가 폭격을 맞은 것처럼 폐허로 변했다. 평창겨울올림픽 알파인 스키경기장으로 쓰였던 곳이다. 계절이 바뀌어 눈이 녹으면서 황폐화된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화려했던 스키장의 모습은 사라지고 돌멩이만 뒹굴고 있다. 토사와 돌무더기가 리프트 승강장 주변까지 밀려 내려왔다. 장마철 폭우로 그 돌들이 언제 급경사를 타고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굴러 내려올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맨 상처를 드러낸 자갈밭에서 고개를 내민 들꽃. 정선/김봉규 선임기자
스키장 내 리조트 옆 임도를 따라 산 정상 부근에 올라서니 오대산, 두타산, 태백산, 소백산, 치악산 등의 명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정선군과 평창군에 걸쳐 있는 가리왕산은 태백산맥의 중앙부를 이루며, 능선에는 주목·잣나무·단풍나무·갈참나무·박달나무·자작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수목이 울창해 산약초가 많이 자생한다. 폐허로 변한 스키장 슬로프 주변을 벗어나니 취나물, 당귀가 보였고, 야생화 매발톱은 수줍게 고개를 떨어뜨리고 꽃을 피우고 있었다. 산이 높아서인지 이제야 민들레, 산목련이 하얀 꽃잎을 드러내고 있었다
슬로프를 따라 세워진 조명탑. 정선/김봉규 선임기자
장마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달 18일 새벽 가리왕산 일대에 많은 비가 내리면서 알파인 경기장은 곳곳에 수해를 입었다. 강원도는 장비를 투입해 본격적인 산사태 예방사업을 한다고 하지만 이런 응급조치만으로 산사태를 예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최근 가리왕산 현장을 살펴본 정규섭 녹색연합 정책팀장은 “건설 초기부터 복원을 염두에 둔 매뉴얼이 정확하게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파괴된 가리왕산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중앙정부는 강원도가 적극적으로 복원에 나설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그런 모습도 보이질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가리왕산 생태 복원을 더 이상 늦추지 말아야 한다. 자연은 파괴된 만큼 우리에게 재앙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선/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2018-06-22
발 떼기도 힘든 거목 숲이 폭 100m 등걸 민둥산으로
왕사스레·다릅·신갈 등 아름드리 나무가 토막주검
‘생명의 자궁’ 풍혈도 굴삭기에 난도질 당해 ‘불임
0.jpg» 가리왕산의 '3신목' 가운데 하나였던 들메나무 거목(왼쪽)은 스키 활강경기장 건설로 밑둥만 남긴 채 잘려나갔다.
탄성 절로 났던,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들메나무 거목들이...
2012년 8월 환경단체 우이령 사람들 회원들이 동계올림픽 스키 슬로프 예정지인 하봉 일대의 식물을 조사했다. 임도 아래 계곡에서 휴식을 하다가 일행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들메나무 거목을 발견하고 탄성을 질렀다(■ 관련기사=가리왕산 세 아름 들메나무는 울고 있었다 ).
하늘을 향해 쭉 뻗은 나무는 어른 세 명이 안아야 할 만큼 굵고 단단해 보였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만하다는 소리가 나왔고 곧 ‘가리왕산의 3신 나무’ 가운데 하나인 ‘할미 나무’로 이름 붙였다(■ 관련기사=공사 앞둔 가리왕산, 600살 주목의 ‘마지막 겨울’).
회원들은 9일 벌목이 거의 마무리 단계로 접어든 가리왕산을 다시 찾았다. 울창한 숲은 황무지가 됐고 거목들은 팔다리가 잘린 채 목재 토막이 돼 나뒹굴었다.
» 2012년 8월 하봉 공사 예정지에서 발견한 들메나무 거목. 시내가 흐르는 울창한 계곡이었다.
_PB091104.JPG» 등걸만 남은 들메나무에게 우이령 사람들 회원들이 제를 올리고 있다.
눈물 삼키면서 하늘 보며 담배만 뻐끔뻐금
여러 차례 찾아 익었던 숲길은 간 데가 없었다. 어렵게 ‘할미나무’를 발견했다. 황토물이 되어 흐르고 있던 작은 시냇물이 그대로였다.
들메나무 거목은 등걸만 남아 있었다. 바로 밑에서 굴삭기가 들메나무에서 베어낸 나무토막을 무한궤도가 달린 운반차에 실었다. 한 회원이 눈물을 감추느라 하늘을 보고 담배를 피워물었다.
_PC211383-1.jpg» 공사 전 하봉 일대 모습. 활엽수가 많은 부드러운 능선을 보여준다.
크기변환_PB080480-1.jpg» 벌목이 이뤄진 하봉 사면. 껑충한 왕사스레나무가 잘린 나무를 말해준다.
오르기도 퍽퍽, 겨울에는 허벅지까지 눈 쌓여 설피 신어야
가리왕산은 오르기에 쉽지 않은 산이다. 가파르고 먼데다 여름엔 잦은 비와 땅벌, 진드기가 득실대고 겨울에는 허벅지까지 눈에 쌓여 설피를 신어야 한다.
그러나 벌목과 함께 이 산 하봉 정상까지 수십~수백m 폭의 길이 났다. 헤치고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우거졌던 숲은 황량한 벌판으로 바뀌었다. 군데군데 아름드리 나무의 둥치만이 숲의 기억을 되살렸다.
회원들은 지난 몇 년 동안 공사 예정지의 대형 나무를 조사해 왔다. 나무마다 가슴높이 지름, 키, 지피에스(GPS) 좌표를 기록했다. 할머니 들메나무는 ‘가슴높이 지름 110㎝, 키 25m’로 적혀있었다. 이번에는 등걸의 지름과 좌표를 기록하고 나이테를 세기도 했다. 들메나무는 밑동 지름 123㎝에 나이는 약 100살이었다.
_P5113263.JPG» 하봉 정상 부근의 봄. 거대 신갈나무 옆에 박새와 얼레지가 한창이다.
_PB080569-1.jpg» 황무지로 바뀐 하봉 정상 부근. 돌을 다져 놓아 토양구조도 훼손됐다.
희귀 야생화들 온 데 간 데 없고 이미 복원 불가능
남자 활강경기의 출발점인 해발 1370m 지점 부근에는 낮은 기온 때문에 보기보다 나이 많은 신갈나무가 즐비했다. 그 밑에는 바람꽃 등 각종 야생화도 많았다.
가리왕산에 희귀식물이 많은 것은 풍혈 지형 덕분이다. 땅속에 묻힌 돌들이 여름철 고온을 막아주고 연중 적절한 습기를 유지해 준다. 굴삭기로 파헤친 산허리에는 이런 풍혈 구조가 파헤쳐진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풍혈을 허물고 불도저로 다진 곳도 눈에 띄었다. 토양구조를 파괴하면 복원은 불가능해진다.
_PC221712-1.jpg» 공사 전 하봉 정상 부근의 신갈나무 등 활엽수 군락.
_PB080515-1.jpg» 공사로 하봉 정상부근의 풍혈구조가 망가진 모습.
어른 장딴지 굵기 철쭉 군락지도 골재 채취장처럼
가리왕산엔 어른 손목 굵기의 대형 철쭉이 하봉 정상에서 스키장 예정지를 따라 다수 분포해 봄에는 장관을 이뤘다. 때론 어른 장딴지 굵기의 거대 철쭉도 있었다. 그러나 철쭉 군락지는 골재 채취장처럼 변했고 일부 이식하기 위해 가는 철쭉들을 따로 모아 놓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크기변환_P5113337.JPG» 하봉 일대에는 어른 허벅지 굵기의 이런 거대 철쭉을 비롯해 대규모 철쭉이 무리를 짓고 있었다.
_PB080578-1.jpg» 공사를 하면서 이식하기 위해 옮겨놓은 철쭉.
다른 어는 산에서보다 나무가 굵고 형태가 좋아 가리왕산을 특별하게 만들던 왕사스레나무, 사시나무, 음나무, 신갈나무, 물푸레나무, 다릅나무, 고로쇠나무 거목들은 모두 나무토막이 되어 있었다. 공사 전 거목을 200여 그루로 세었지만 이번 조사에서 발견된 등걸은 400개가 넘었다.
_P8187000.JPG» 공사 전 낙엽송 조림지 모습.
_PB090924-1.jpg» 왕사스레나무 등 천연림을 지나 낙엽송 조림지까지 벌채한 모습.
등걸을 조사하며 산비탈을 내려오던 이병천 우이령 사람들 회장의 혼잣말이 쓸쓸하게 들렸다. “싫다 싫어. 정말 싫다.”
_PB080166-1.jpg» 벌채된 거목 실태를 조사하는 이병천 박사. 산림청에서 식물전문가로 근무하다 정년 퇴임한 뒤 최근 환경단체인 우이령 사람들 회장을 맡았다.
가리왕산(정선)/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2014. 11. 12
가리왕산 세 아름 들메나무는 울고 있었다
우이령사람들, 동계올림픽 스키 슬로프 식생조사서 거목과 희귀군락 대거 발견
사시나무, 왕사스레나무, 백작약 등…스키장 예정지 인근엔 국내 최대 신갈나무도
sgari1-2.jpg» 활강 스키 슬로프에 자리잡은 들메나무 거목.
“와~”
눈앞을 막아선 거목 앞에서 조사단원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나라 어디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큰 들메나무 두 그루가 작은 시냇가에 서 있었다.
sgari2.jpg» 스키 활강장 슬로프를 표시한 리본.
수피가 매끄럽고 단단해 보이는 한 그루는 어른 세 명이 팔을 벌려야 둘러쌀 수 있을 정도로 굵었다. 가슴높이 지름이 무려 110㎝에 높이는 25m에 이르는 큰 나무였다. 나란히 선 지름 54㎝의 거목이 오히려 아담해 보였다.
나무는 1.5m 높이에서 세 갈래로 갈라졌지만 옆으로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위로 쭉 뻗어 당당해 보였다. 가지에는 어른 손목 굵기의 다래 덩굴이 네댓 개 휘감겨 있었다. 이 다래나무가 타고 오른 나무는 이미 오래전에 죽어 사라졌을 것이다.
sgari1.jpg» 지름 110㎝의 들메나무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동행한 이병천 국립수목원 박사(식물분류학)는 “80살쯤 되어 보인다”고 했다. 일제가 가리왕산을 벌목해 숲에 틈이 생겼을 때 선구 종인 들메나무가 들어와 싹을 틔웠을 것이라고 이 박사는 추정했다.
선구 종은 수명이 짧아 대개 100년을 넘기지 못한다. 나무 중간이 갈라져 목재로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살아남은 이 들메나무는 유례없이 천수에 가깝게 살아남는 행운을 누렸다.
그러나 그 운도 다한 걸까? 들메나무가 선 강원도 정선군 숙암리 계곡에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활강경기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스키 코스임을 알리는 노란 리본을 매단 들메나무 수피에 빗방울이 흘러 눈물처럼 반짝였다.
sgari9.jpg» 여자 활강스키 슬로프에 자리잡은 신갈나무 거목.
환경단체 우이령사람들은 지난 15~19일 동안 가리왕산에서 동계올림픽 활강경기장이 들어설 예정 구간을 답사하면서 벌채될 수목의 실태를 조사했다. 조사단이 경사가 급한 스키 슬로프 예정지를 직접 걸으면서 확인한 것은 우리나라 어디서도 보기 힘든 거대한 나무와 희귀한 수목 군락이 곳곳에 펼져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자 활강코스의 임도 아래 숲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밖인데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수목이 잘 보존된 곳 못지않은 임상을 보였다. 가슴둘레 지름이 50㎝가 넘는 신갈나무와 소나무가 무리지어 나타났고 굵은 거제수나무, 물박달, 물푸레나무, 다릅나무, 마가목이 키재기를 했다. 지름 42㎝의 개벚지나무 거목은 비에 젖어 마호가니처럼 광택이 나는 수피를 자랑했다.
지름 41㎝, 높이 22m의 사시나무를 비롯해 지름이 30㎝가 넘는 초대형 사시나무들도 눈길을 끌었다. 이병천 박사는 “보존이 잘 된 계방산에도 이렇게 굵은 사시나무는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sgari3.jpg» 수피가 독특한 왕사스레피나무.
러시아와 백두산 등에 많이 자라는 사스레나무와 거제수의 교잡종인 왕사스레나무도 가리왕산의 명물이다. 사스레나무의 잎과 거제수나무의 수피를 한 이 나무는 은회색 껍질이 벗겨져 거친 질감의 독특한 수피를 이룬다. 가리왕산의 스키 코스 곳곳에서 왕사스레나무 거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자 활강경기장의 출발점인 하봉 정상 아래에는 지름 82㎝인 개체를 비롯해 신갈나무 거목이 즐비했다. 그 아래엔 대규모 철쭉 군락이 펼쳐졌다.
다시 고도를 낮추면 함박꽃나무와 희귀식물인 백작약의 무리를 만난다. 이어 주목과 피나무 거목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상희 우리령사람들 전 회장은 “스키장이 건설되면 폭 30~40m 구간에 있는 모든 거목과 희귀식물은 모두 베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스키 선수가 활강을 하면서 통과하는 기문 하나하나마다 거목의 생명이 스러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sgari7.jpg» 이끼에 뒤덮인 스키장 인근의 풍혈지대. 희귀 북방계 식물이 많이 산다.
가리왕산에는 중봉과 하봉 사이에 남자용과 여자용 그리고 각각의 예비용 등 모두 4개의 활강 스키 슬포프가 건설된다. 그렇지만 스키 경기장의 악영향이 공사가 이뤄지는 슬로프에만 국한된다는 보장은 없다.
애초 산림청이 가리왕산을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할 때 핵심구역으로 상정했던 상봉과 중봉 사이의 고산지대는 희귀식물의 보고이다. 높은 습도와 너덜지대의 풍혈 덕분에 북방계 식물 등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든 식물이 다수 분포한다. 스키장 건설이 이곳의 미기후를 교란했을 때 어떤 영향을 받을지는 현재까지 전혀 조사된 적이 없다.
장구목이에서 숲으로 들어서자 돌 위를 주단처럼 뒤덮은 초록색 이끼와 넘어진 고목이 원시림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주목은 어린 개체부터 고목까지 두루 자라고 있었고 북방계인 거대한 분비나무가 이채로웠다.
sgari4-2.jpg» 습기가 많은 가리왕산엔 버섯도 다양하다.
sgari4-3.jpg
북방계 식물이어서 설악산 정상이나 백두산의 2000m 이상 고지에서나 볼 수 있는 만년석송이 큰괭이밥과 함께 냉기가 스며 나오는 풍혈 위에 돋아나 있었다.
잣나무는 두만강과 극동 러시아에 자연림을 이루고 한반도에선 점봉산이 남방한계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곳에선 조림한 것이 아닌 천연 잣나무가 직경 57㎝의 거목으로 자라고 있었다. 이 정도 크기면 100년은 넘게 자라야 한다.
sgari5.jpg» 거대 주목. 가리왕산엔 어린 개체부터 큰 개체까지 모두 있다.
숲 안으로 더 들어가자 아마도 가리왕산의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 신갈나무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옹이 하나 없이 매끈하게 자란 이 신갈나무의 가슴높이 지름은 무려 130㎝로 어른 네 아름에 가까웠다.
sgari6.jpg» 국내 최대 신갈나무로 추정되는 지름 130㎝의 신갈나무.
이병천 박사는 점봉산에서 1979년 지름 150㎝짜리 신갈나무를 이유미 국립수목원 박사 등과 함께 발견했으나 이듬해 벼락을 맞아 죽은 일이 있다며, 이 거목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신갈나무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압도적인 중량감을 느끼게 하는 이 거목은 이끼와 지의류로 덮여 있었고, 나무 중간엔 다른 나무와 일엽초가 자라고 있어 하나의 작은 생태계를 이루는 것처럼 보였다. 수령은 약 220년으로 추정됐다.
sgari8.jpg» 가는잎쐐기풀의 가시. 유리질로 된 가시가 부러지면서 독물을 주입하도록 돼 있다.
임도 주변엔 가는잎쐐기풀이 마치 숲을 외적으로부터 지키려는 듯 독물이 든 날카로운 가시를 벼르고 있었다. 가리왕산의 멋진 나무와 드문 생태계가 그 가치가 제대로 알려지기도 전에 망가지는 것을, 작은 풀일망정 그냥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정선/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2012. 08. 24
'길에서 > 오래된 미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상근린공원 민간특례사업지 베어진 곰솔 (0) | 2023.02.04 |
---|---|
최대 둘레 5m도... 남해에서 비자나무 열두그루 발견 (0) | 2023.01.04 |
중국에서 가장 키 큰 나무의 높이는 83.4m (0) | 2022.12.26 |
의령에서 창령군 성사리로 주소를 바꾼 450살 모과나무 (0) | 2022.12.12 |
불량한 환경 탓에 '노거수'가 지쳐간다 (0) | 2022.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