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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괜찮은 詩

그리움

by 이성근 2020. 8. 11.

너무 깊이 박혔다 - 이 정 하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이원하

한사람을 잊는다는 건-김종원

이별이후-문정희

사랑했던 날보다-이정하

감 옥- 이 정 하

그 립 다 는 것 은-이 정 하

슬픔의 무게- 이정하

기다린다는것 -이 정 하

번 개 -마쓰오 바쇼

오십 미터- 허연

여백- 류석우

이름을 부르는 일-박남준

-황인숙

신발 끈을 맬 때마다 정호승

너에게 쓴다 천양희

장작을 패다가 -정호승

미안하다 마음아 - 남정화

선운사에서- 최영미

표리부동- 오은

행복- 유치환

그리움-유치

그리움에 관한 푸른 밤 -나희덕

한 사람-한가온

너였던 내 모든 -정끝별

드라이아이스ㅡ 김수형

그리움 나태주

안부-나태주

너무 깊이 박혔다 - 이 정 하

 

마음속에 너무 깊이,

너무 오래 숨겨 두면

자신도 그걸 꺼내기가 힘이 든다.

내 안에 너무 깊숙이 박혀 있어

이젠 내 자신조차도

끄집어 낼 수 없는 이여.

 

강물이 바다를 향해 가듯

내 당신을 향한 마음을 아는가.

세상엔 수많은 길들이 나 있었지만

오로지 내겐 당신을 향한

한 길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가.

세상에 존재하는 그 수많은 것들이

내 오직 당신을 통해서만

보이고, 느껴지고, 숨 쉬어진다는 것을

그대 정녕 아는가, 모르는가.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이원하

 

유월의 제주

종달리에 핀 수국이 살이 찌면

그리고 밤이 오면 수국 한 알을 따서

착즙기에 넣고 즙을 짜서 마실 거예요

수국의 즙 같은 말투를 가지고 싶거든요

 

그러기 위해서 매일 수국을 감시합니다

 

나에게 바짝 다가오세요

 

혼자 살면서 나를 빼곡히 알게 되었어요

화가의 기질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매일 큰 그림을 그리거든요

그래서 애인이 없나봐요

 

나의 정체는 끝이 없어요

 

제주에 온 많은 여행자들을 볼 때면

내 뒤에 놓인 물그릇이 자꾸 쏟아져요

이게 다 등껍질이 얇고 연약해서 그래요

그들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사랑 같은 거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제주에 부는 바람 때문에 깃털이 다 뽑혔어요,

발전에 끝이 없죠

 

매일 김포로 도망가는 상상을 해요

김포를 훔치는 상상을 해요

그렇다고 도망가진 않을 거예요

그렇다고 훔치진 않을 거예요

 

나는 제주에 사는 웃기고 이상한 사람입니다

남을 웃기기도 하고 혼자서 웃기도 많이 웃죠

 

제주에는 웃을 일이 참 많아요

현상 수배범이라면 살기 힘든 곳이죠

웃음소리 때문에 바로 눈에 뜨일 테니깐요

 

한사람을 잊는다는 건-김종원

 

바람이 스쳐지나가도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파도가 지나가도 바다가 흔들리는데

하물며 당신이 지나갔는데

, 흔들리지 않고 어찌 견디겠습니까

 

정녕 당신이 아니라면

흔들리는 나를 누가 붙잡아 주겠습니까

대체 어쩌자고 그렇게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당신은 나를 스쳐 지나간 것입니까

 

어쩌자고

나는 당신을 사랑한 겁니까

도대체 어쩌자고

 

시집 이별한 날에는 그리움도 죄가 되나니/ 포푸리북(2003)

 

 

 

이별이후-문정희

 

너 떠나간지

세상의 달력으론 열흘 되었고

내 피의 달력으론 십 년 되었다

 

나 슬픈 것은

네가 없는데도

밤 오면 잠들어야 하고

끼니 오면

입 안 가득 밥알 떠 넣는 일이다

 

옛날 옛날적

그 사람 되어가며

그냥 그렇게 너를 잊는 일이다

 

이 아픔 그대로 있으면

그래서 숨막혀 나 죽으면

원도 없으리라

 

그러나 나 진실로 슬픈 것은

언젠가 너와 내가

이 뜨거움 까맣게

잊는다는 일이다

 

시집 /딸아 외로울때는 시를 읽으렴1/ 걷는나무(2011)

 

사랑했던 날보다-이정하

 

그대 아는가, 만났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사랑했다는 것을.

사랑했던 날보다 더 많을 날들을

그리워 했다는 것을.

 

그대와의 만남은 잠시였지만

그로 인한 아픔은 내 인생 전체를 덮었다.

바람은 잠깐 잎새를 스치고 지나가지만

그 때문에 잎새는 내내 흔들린다는 것을.

 

아는가 그대, 이별을 두려워했더라면

애초에 사랑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이별을 예감 했기에 더욱 그대에게

열중할 수 있었다는 것을.

 

상처입지 않으면 아물 수 없듯

아파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네.

만났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사랑했고

사랑했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그대여 진정 아는가.

 

시집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출판사 푸른숲 (1997)

 

감 옥- 이 정 하

 

몸은 마음을 가두는 감옥 이었네.

그대에게 가고 싶은 마음을 끝내 가두고야 마는

내 살아서는 결코 풀려날 수 없는

지긋지긋한 철창이었네.

 

그대, 내 삶의 하염없는 형량이여......

 

 

그 립 다 는 것 은-이 정 하

 

그립다는것은

아직도 네가

내 안에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립다는 것은

지금은 지금은 너를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볼 수는 없지만

보이지 않는 내 안 어느 곳에

네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립다는 것은 그래서

내 안에 있는 너를

샅샅이 찾아내겠다는 뜻이다.

그립다는 것은 그래서

가슴을 후벼 파는 일이다.

가슴을 도려내는 일이다

 

슬픔의 무게- 이정하

 

구름이 많이 모여 있어

그것을 견딜 만한 힘이 없을 때

비가 내린다

 

슬픔이 많이 모여 있어

그것을 견딜 만한 힘이 없을 때

눈물이 흐른다

 

밤새워 울어본 사람은 알리라

세상의 어떤 슬픔이든 간에

슬픔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를

눈물로 덜어내지 않으면

제 몸 하나도 추스를 수 없다는 것을

 

기다린다는것 -이 정 하

 

기약 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쓸쓸하고 허탈한 마음을 아는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막연히 기다리는 일밖에 없을 때

그 누군가가 더 보고 싶어지는 것을 아는가

 

한자리에 잊지 못하고 서성거리다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라도 들릴라치면

그 자리에 멈추고 귀를 곤두세우는

그 안절부절 못하는 마음을 아는가

 

끝내 그가 오지 않았을 때

오지 않을거라는 것을 미리 알았으면서도

왜 가슴은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인지

온다는 기별이 없었는데도

다음에는 꼭 올거라고 믿고 싶은 마음을 아는가

 

그를 기다리는 것은

마음에 그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

그를 위해 마음 한 구석을 비워 두는 일

비워둔 자리만큼 고여드는 슬픔을

아는가 모르는가, 그대여......

 

이정하 / 어쩌면 그리 더디 오십니까/아래아 출판사

 

번 개 -마쓰오 바쇼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 순간인 걸 모르다니

 

바쇼 하이쿠 선집(보이는 것 모두 꽃 생각하는 것 모두 달)마쓰오 바쇼 (1644 ~ 1694)열림원 (2015)

 

오십 미터- 허연

 

마음이 가난한 자는 소년으로 살고, 늘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다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네 생각이 났다. 오십 미터도 못 참고 내 후회는 너를 복원해낸다. 소문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축복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게 그런 축복은 없었다. 불행하게도 오십 미터도 못 가서 죄책감으로 남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무슨 수로 그리움을 털겠는가. 엎어지면 코 닿는 오십 미터가 중독자에겐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지 화면처럼 서서 그대를 그리워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오십 미터를 넘어서기가 수행보다 버거운 그런 날이 계속된다. 밀랍 인형처럼 과장된 포즈로 길 위에서 굳어버리기를 몇 번. 괄호 몇 개를 없애기 위해 인수분해를 하듯, 한없이 미간에 힘을 주고 머리를 쥐어박았다. 잊고 싶었지만 그립지 않은 날은 없었다. 어떤 불운 속에서도 너는 미치도록 환했고, 고통스러웠다

 

때가 오면 바위채송화 가득 피어있는 길에서 너를 놓고 싶다.

 

시집 오십 미터/허연/문학과 지성사 (2016)

 

 

여백 -류석우

 

잘 있냐고

건강하냐고

 

그렇게만 적는다

 

나머지 여백엔

총총히 내 마음을 적으니

네 마음으로 보이거든 읽어라

 

써도 써도 끝없을 사연을

어찌 글자 몇개로 그려 낼 수 있으랴

 

보고싶다

 

시집 / 고백/ 류석우/ 생각의나무(2001)

 

 

 

이름을 부르는 일-박남준

 

그 사람 얼굴을 떠올리네

초저녁 분꽃 향내가 문을 열고 밀려오네

그 사람 이름을 불러보네

문밖은 이미 적막강산

가만히 불러보는 이름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뜨겁고 아플 수가 있다니

 

시집 적막/박남준/출판사 창비(2005)

 

 

-황인숙

 

가끔 네 꿈을 꾼다.

전에는 꿈이라도 꿈인 줄 모르겠더니

이제는 너를 보면

, 꿈이로구나,

알아챈다.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황인숙 문학과 지성사(1998)

 

신발 끈을 맬 때마다 -정호승

 

신발 끈을 맬 때마다

목을 매는 것 같다

높은 나뭇가지 끝에

목을 매려고 묶었던

넥타이 두 개

아직 버리지 못하고

아이들 몰래

장롱 깊숙이

숨겨놓고 있는데

오늘도 신발끈을 맬 때마다

길이 먼저 일어나

휑하니 떠나버린다

 

 

너에게 쓴다 -천양희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길이 되었다.

길 위에서 신발 하나 먼저 다 닳았다.

 

꽃이 진 자리에 잎이 피었다 너에게 쓰고

잎 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내 일생이 되었다.

마침내는 내 생() 풍화 되었다.

 

 

 

장작을 패다가 -정호승

 

장작을 패다가

도끼로 발등을 찍어버렸다

피가 솟고

시퍼렇게 발등이 부어올랐으나

울지는 않았다

다만 도끼를 내려놓으면서

가을을 내려놓고

내사랑을 내려놓았다

 

 

 

 

미안하다 마음아 - 남정화

 

이른 밤 담배를 꺼내 들었다

섭섭하게 떠난 네 얼굴이 떠올라 문을 닫았다

무의식은 오래된 뱀처럼 능수능란하다

기억은 전혀 다치지 않은 채 그렇게 꽁꽁 묶여 있다

불현듯 마음에 금을 긋고 두 눈 찔끔

생의 편린들이 유리 조각처럼 반짝인다

너와 나 우리들의 생애가 상처투성이인 것만 같아서

나에게 혹은 너에게 미안하다

내 마음이 네 마음을 모르고 살아서 미안하다

내 마음이 네 마음을 건너뛰어 미안하다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함부로 해서 미안하다

 

시집 미안하다 마음아 /남정화/ 천년의 시작 (2018)

 

 

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것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표리부동- 오은

 

 

어제밤 꿈에는 네가 나왔다

"잘지내?"라고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잘지내"라고 서슴없이 대답할까봐

 

누구보다 네가 잘 지내기를 바라면서도

나는 이렇게 나쁘다

 

꿈 속에서도 나아지지 않는다

 

오은 시집 왼손은 마음이 아파/현대문학(2018)

 

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로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그리움-유치환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도 더욱 너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드메 꽃같이 숨었느냐

 

 

그리움에 관한 푸른 밤 -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 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한 사람-한가온

 

잠깐 닿았어도 깊게 번져가는 사람

가득 채웠지만 순간 쏟아지는 사람

 

날 삼킨 사람, 그리고 내뱉은 사람

 

나의 긴 여행 끝에 마중 나와 준 사람

그리고 다시 반환점이 되어주는 사람

 

잊어야 하는 사람

잊혀지지 않은 사람

 

너였던 내 모든 -정끝별

 

 

심장이 몸밖에 달렸더라면

네 마음을 더 잘 볼 수 있을 텐데

 

뿔이 눈 아래에 돋았더라면

네가 더 아프도록 찌를 수 있을 텐데

 

그 뿔에 손이라도 있었더라면

네 상처를 더 어루만질 수 있을 텐데

 

그러니까 생각이 나보다 먼저 잠들기만 했어도

너와 더 오래 한집에 머물 수 있을 텐데

 

그게 아니라면 집에 바퀴라도 달았더라면

가출하지 않고도 달아날 수 있을 텐데

 

사랑을 감시할 수 있었더라면

서로를 찌를 때까지 그리 파고들지 않을 텐데

 

그랬더라면 우리도 없었겠지?

 

 

드라이아이스김수형

 

불꽃이 되지 못한

노래들이 떠도네

차가운 몸 밖에서 휘파람 들려오면

한 방울 아픔도 없이 흩날리는 숨결들

 

마취 풀린 꽃잎이 그 어디 피어 있길래

얼어붙은 나비들 내 안에서 날아가고

희미한 웃음이런가

녹지 않는 이 예감은

 

차가운 피로 불타는 치사량의 그리움이

뜨겁게 살갗에 달라붙는 밤이면

사랑은 아주 오래전

죽은 노래로 남아 있네

 

 

그리움 -나태주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만나지 말자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욱 해 복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

 

 

안부-나태주

 

오래

보고 싶었다

 

오래

만나지 못했다

 

잘 있노라니

그것만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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