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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그랜드스탠딩

by 이성근 2022. 6. 13.

그랜드스탠딩 | 저스틴 토시·브랜던 웜키 지음 | 김미덕 옮김 | 오월의봄 2022.06

 

JUSTIN TOSI-텍사스 테크 대학에서 철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회철학, 정치철학, 법철학, 도덕철학을 연구한다. 특히 국가 정통성, 사회적 도덕성, 도덕적 의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BRANDON WARMKE-볼링그린 주립대학 철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도덕적 책임, 용서, 표현의 자유, 공적 담론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목차

서문

감사의 말

 

1장 도덕적 이야기가 마법은 아니다

 

암에나 걸리지 그래도덕적 이야기그랜드스탠딩: 하비 와인스틴부터 로이 무어까지예상되는 비판들에 대하여

 

2장 도덕적 그랜드스탠딩이란 무엇인가?

 

그랜드스탠딩도덕적 그랜드스탠딩의 기본 공식그랜드스탠더는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할까?알고도 하고 모르고도 하는 그랜드스탠딩그랜드스탠딩과 거짓그랜드스탠딩이 효과가 있을까?그랜드스탠딩이 좌파 쪽만의 문제인가?이 책의 지은이인 우리도 그랜드스탠딩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미덕 시그널링결론

 

3장 그랜드스탠딩의 실제 모습

 

보태기치닫기날조하기강렬한 감정들무시확실한 기준?

 

4장 사회적 손실

 

양극화냉소주의그랜드스탠딩이 추동한 분노의 대가그랜드스탠딩의 사회적 이익

 

5장 그랜드스탠딩과 존중

 

전시기만무임승차결론

 

6장 덕이 있는 사람은 그랜드스탠딩을 할까?

 

옳은 명분을 위해 옳은 일을 하기그랜드스탠딩과 시민적 덕덕과 결과들덕으로서의 허영심?그랜드스탠딩이 결국에 도덕적 행위라고 할 수 있는가?그랜드스탠딩과 니체결론

 

7장 도덕성이 경연되는 장인 제도정치

 

왜 정치인은 그랜드스탠딩을 할까?비타협 문제현시적 정책의 문제사회문제 해결의 모순정치적 그랜드스탠딩의 이익결론

 

8장 변화를 위한 방법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을 반대하며개인 차원의 변화사회 차원의 변화낙관의 이유

 

 

출판사 서평

도덕적 관종은 어떻게 세상을 망치는가?

 

그랜드스탠딩?

 

#1

2016년 미국 네브래스카 출신의 두 살짜리 남자아이가 악어에 물려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12,000명의 팔로워가 있는 한 트위터 계정에는 이런 트윗이 올라왔다. “요즘 나는 백인 남성 권리에 너무 신물이 나서 악어에게 먹힌 그 두 살짜리 아기 사건이 슬프지가 않아. 걔 아빠가 사고 조짐을 무시했을 테니까.”

 

#2

2017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콘서트장에서 한 남성이 군중을 향해 총을 난사했고 58명이 사망했다. 그때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사건과 이 사건을 연결해 다음과 같은 트윗이 올라왔다. “아이들이 살해당했을 때 공화당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옳은 일을 할 것이라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컨트리 음악 팬은 대부분 공화당 총기 소지자들이라 실은 동정이 생기질 않는다.”

 

#3

미국의 린지 스톤이라는 한 여성은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조용히 하고 예를 갖추라는 표지 옆에서 외설적 제스처를 한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 후에 온라인상에서 엄청난 저격의 타깃이 됐다. 그는 직업을 잃었고, 살해 협박을 받았으며,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녀가 일상생활을 간신히 재개할 수 있었던 건, 한 회사를 통해 그 사건의 뉴스 링크를 아래로 내리도록 조작하는 공익적 서비스를 그녀가 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연 린지 스톤의 그 사진이 삶이 파괴될 만큼의 도덕적 비난을 받을 만큼 잘못된 것이었는가.

 

#4

수많은 피해자로부터 고소를 당한 미국 할리우드 거물 하비 와인스틴의 성명서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다. 자신은 미국총기협회와 도널드 트럼프에 반대하며(즉 자신은 정치적으로 진보적이고 도덕적이라는 것), 우연히도 자신은 1년 전부터 자신의 어머니의 이름을 딴 여성 영화인을 지원하는 재단을 꾸리기 시작했다는 것.

#5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18일 제42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팸플릿을 보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모습을 두고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페이스북에 그가 성의가 없으며, 이어 “(광주) 내려가는 길에 가사 몇 번 읽어보는 성의만 있었어도 이런 참상은 안 벌어졌겠다. 팸플릿이라니, 대체 무슨 만행인가라는 글을 남겼다.

 

당장에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SNS에 접속해보라. 정치면 기사나 유튜브 채널, 시사 토론 프로그램을 봐도 좋다. 어떤 사안에 대해 대단한 분노를 표현하며, 자신이 역사의 옳은 편에 있음을 증명하려고 부단히 애쓰는 사람들이 가득할 것이다. 그들은 정말로 저렇게까지 민감해야 할 일인가 싶은 일에도 마치 무기 경쟁을 하듯 자신이 더 도덕적으로 예민하다는 것을 전시한다. 또한 자신의 정치적·윤리적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 자들을 무시하고 조리돌림하고 물어뜯는다. 더 강한 입장을 내보이기 위해 같은 편을 공격하거나 제물로 삼기도 한다. 똑같은 내용의 문제를 일으킨 경우에도 우리 진영사람의 일이라면 덮고 넘어가고, ‘상대 진영사람의 일이라면 엄청난 비난의 폭격을 가하기도 한다. 양극단에 있는 그들의 입장은 좀처럼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진실이 무엇인지 좇는 일에 관심이 있거나, 정말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올바른 이야기를 떡밥 삼아 관중들의 좋아요하트’, 즉 관심을 갈구한다. 이 모두가 바로 도덕적 관종들이 하는 행위, 즉 도덕적 그랜드스탠딩이다.

 

미국의 도덕철학자인 저스틴 토시, 브랜던 웜키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뭐라고 딱히 꼬집기는 어렵고, 하지만 또 많은 이들이 문제적이라고 느끼는 이 현상을 바로 그랜드스탠딩(grandstanding)이라는 말을 통해 적확히 짚어낸다. 그랜드스탠딩이란 남들의 관심을 얻고, 자기과시를 하는 행위를 뜻하는 말로, 철학자인 지은이들은 특히 도덕적 이야기를 이용해 그랜드스탠딩을 하는 도덕적 그랜드스탠딩(moral grandstanding)’이라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해낸다. 특히 지금은 SNS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수천, 수만의 관중들에게 자신의 도덕성을 얼마든지 전시할 수 있는 시절이다. , ‘도덕적 이야기가 자기를 과시하고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오용되는 모습에 우리는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때 도덕적 이야기란 이런 것들이다. 권리·존엄·정의·존중에 관한 이야기, 어떤 사람이 도덕적으로 옳은 일을 했는지 그른 일을 했는지, 얼마나 도덕적이거나 나쁜지에 관한 이야기, 선한 일이나 나쁜 일을 한 사람에게 응당 일어나야 할 일이 있다는 이야기, 도덕적 감정에 관한 이야기, 사회 정책이나 의제에 관한 찬반을 다루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소중하고 귀한 자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도덕적 이야기를 함부로 해대고, 특히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자기를 과시하는 데 도덕적 이야기를 이용해 그 도덕적 이야기의 가치를 훼손한다.

 

이 책은 우리의 공적 담론이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한다. 특히 상대편이 아니라 우리가 도덕적 이야기를 이용해 선한 일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스스로를 좋게만 보이려고 하는지 묻는다. 철학자인 저자들은 이 문제를 포착하는 데 학제 간 연구를 통한 다각적 접근을 활용해, 철학적 논증에 더해 여러 풍부한 자료와 근거를 동원한다. 이 책은 사회과학과 행동과학을 근거로 그랜드스탠딩이 무엇인지, 왜 이런 형태를 띠는지를 설명하고, 도덕철학을 활용해 왜 그것이 도덕적으로 나쁜 것인지 논증한다. 그리고 그랜드스탠딩이 민주주의 사회의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명료하게 제안한다.

 

그랜드스탠딩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으며, 어떤 해악을 끼치는가

그렇다면 실제 그랜드스탠딩은 어떤 양상으로 드러날까? 그랜드스탠더는 공통적으로 다섯 가지 방법을 이용하는데, 보태기, 치닫기, 날조하기, 강렬한 감정 표출, 무시가 그것이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이런 식의 말과 글이 익숙할 것이니 살펴보라.

 

보태기: 다른 사람들의 말에 자신의 말을 또 한 번 보태서 자신의 입장을 공표해 자신이 어떤 편에 서 있는지를 관중들에게 상기시킨다.

치닫기: 마치 무기 경쟁을 하듯 서로를 능가하기 위해 더 강렬한 도덕적 주장을 하는데, 이때는 자신이 가장 도덕적으로 민감하고 다른 사람은 이 상황의 심각성을 모른다고 알려야 하기 때문에 올바른 도덕적 주장에 도달하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온라인 공간부터 정치권까지 걸핏하면 나타나는 선명성 경쟁을 떠올려보라).

날조하기: 몇십 겹의 매트리스 밑에 있는 완두콩 한 알이 불편했다며 예민함으로 자신의 신분을 증명한 동화 속 공주처럼 도덕성 공주가 된 그랜드스탠더들은 별것 아닌 일을 대단한 도덕적 문젯거리인 양 만들며 자신이 이 구역에서 가장 도덕적으로 민감한 사람임을 증명한다(젊은 정치인이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를 외우지 못하는 게 정말 만행이란 말인가?).

강렬한 감정 표출: 극도의 분노와 같이 강렬한 감정을 표출하는데, 이것의 목적 역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도덕적 화신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무시: 그랜드스탠더는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의견과 가치관을 깡그리 무시한다.

 

이러한 그랜드스탠딩은 큰 사회적 손실을 일으키는데, 특히 저자들은 도덕적 그랜드스탠딩이 오남용될수록 우리가 합리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장이 사라진다는 데 큰 우려를 표하며 여러 사회과학적 연구를 근거로 삼아 그랜드스탠딩의 해악을 짚어낸다. 우선 그랜드스탠딩이 잦아질수록 사람들의 입장은 양극화된다. 급진적 주장이 잘못이라는 게 아니라 경쟁을 부추기는 도덕적 그랜드스탠딩 때문에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며(미국의 공화당원은 민주당원의 38%LGBT라고 생각하고 민주당원은 29%가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실제 수치는 6%), 자신의 입장에 과도한 자신감을 갖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것은 자신의 입장이 틀릴 수 있다는 태도를 견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조기에 무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실질적 위협이 될 수 있다. 게다가 그랜드스탠딩은 사람들로 하여감 도덕적 이야기,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해야 하는 이야기들을 냉소하게 만든다. 도덕적 이야기의 오남용은 도덕적 이야기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또한 그랜드스탠더들의 잦은 분노는 마치 양치기 소년이 그랬던 것처럼 분노의 긍정적 기능(사회의 심각한 문제를 알리는 기능)을 희석하고 훼손한다. 그랜드스탠더에게는 모든 것이 자신의 도덕적 순수성을 전시할 기회이기 때문에,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문제의 심각성과 무관하게 모든 것에, 또 너무 심하게 분노한다. 그런데 심한 수준의 분노가 걸핏하면 표출되는 장에 사람들이 계속 노출되면 사람들은 분노 피로라는 것을 느낀다. 정말로 분개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감을 잃게 되고, 마땅히 분노해야 할 때조차도 그것을 끌어내기 어려워진다.

 

나아가 분노에서 기인한 행동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분노를 표출하면 이미 감정적으로 만족이 되기 때문이다(열정적으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글을 쓰지만, 실질적 실천을 하는 데는 어떤 신경도 쓰지 않는 사람을 생각해보라). 이러다 보면 양극단에 있지 않은 이른바 중도파들은 담론에서 이탈하고, 양극단의 입장에 있는 이들은 서로의 이야기나 다른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책속으로

그랜드스탠더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도덕적으로 고상한 가치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주길 바란다. 공정함이나 도덕적 진보로 여겨지는 자신의 견해가 정말로 특별하다고 생각해주길 바란다. 혹은 도덕적 쟁점에 관한 자신의 민감함에 다른 사람들이 깊은 인상을 받길 바란다. 자신만큼 지진에 슬퍼하거나 최저임금법에 분개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식이다.”--- p.43

 

자신이 도덕적으로 영웅적인 무언가를 실제로 반드시 행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냥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어떤 단어를 말하면서 그러한 명성을 바란다.”--- p.44

 

정치사를 대충만 훑어보아도 그랜드스탠딩이 현대 좌파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p.68

 

사람들은 도덕적 문제를 다루는 토론에 끼어들어 , 그래!“라고밖에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를 보태기 현상이라고 부른다. 발화자가 무엇에 동의를 표명하는 것 말고는 도덕 담론에 기여하는 바가 없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p.83

 

우리는 인정 욕구로 동기화된 많은 대화가 도덕적 무기 경쟁이 되는 것까지도 예상할 수 있다. 치닫기는 도덕성과 정치에 대한 많은 대화가 왜 그렇게 빨리 감당할 수 없게 되는지 설명해준다. 관세에 대한 이견으로 시작된 것이, ……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나치라고 부르면서 끝이 난다."--- p.94

 

그랜드스탠더는 도덕적으로 훌륭하게 보이길 열망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정확히) 본 사안들을 도덕적 문제로 몹시 규정하고 싶어 한다. …… 새로운 도덕적 비판을 찾아낼 (아니면 발명할) 동기는 항상 존재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날조를 한다.”--- p.99

 

만약 이 세상의 많은 것이 여러분의 화를 돋운다면 사람들은 틀림없이 여러분이 상당한 도덕적 신념을 갖고 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p.103

 

다른 사람들에게 분명하지 않은 것이 그랜드스탠더에게는 매우 분명하다. 게다가 그랜드스탠더는 도덕의 복잡성, 의구심을 표현하는 것, 혹은 도덕적 의견이 불일치할 가능성을 모두 도덕적 관심에 무감하다거나 도덕성 자체에 관심이 없다고 여긴다.”--- p.107

 

양극화에는 수많은 원안이 있고 복잡하기 때문에 우리가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랜드스탠딩이 그 문제에 일조한다. 자기과시를 위해 도덕적 이야기를 활용하는 것은 사람들이 더 멀어지게 하는 것들을 말하고 믿도록 하기 때문이다.”--- p.116

 

많은 사람이 적어도 자신의 사회적 네트워크 안에서는 자신이 최고로 도덕적 자격이 있다고 보이고 싶은 욕구 때문에 공적 담론에서 상당한 과장을 한다.”--- p.123

 

그랜드스탠딩은 도덕 담론에 기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진정성에 대한 회의와 환멸을 낳는다.”--- p.127

 

경찰의 만행에 보일 만한 격분과 같은 수위로 대학 식당 음식의 문화적 전유에 반응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분노 감각이 중요한 문제를 정확하게 좇고 있는지 믿을 수 없다.”--- p.136

 

그랜드스탠딩의 가장 위험한 특징 중 하나는 이미 분노한 사람들이 한 것에 보태기를 하거나 신념을 과장해 실제로 파괴적인 일을 했을 때조차, 마치 자신이 선한 일을 한 것처럼 느끼게 하는 힘이 있다는 점이다.”--- p.140

 

도덕적 이야기라는 실천은 어떤 면에서 목초지와 같은 공동의 자원이다. …… 과잉 방목된 목초지와 마찬가지로 도덕적 이야기도 오용을 통해 파괴될 수 있다. …… 뭔가를 지나치게 도덕적으로 설명하고, 명백히 거짓이거나 터무니없는 도덕적 주장을 하거나, 도덕적 언사를 노골적으로 이기적인 방식으로 이용한다는 의미다.”--- p.176

 

그랜드스탠딩은 단순히 집단을 양분하는 데 그치지 않고, ……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상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사회 분열을 일으키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 p.216

 

정치 쟁점이 도덕화되면 될수록 사람들이 그 쟁점에서 타협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p.218

 

도덕성과 정치를 이야기하면 친구를 잃는다. 한 연구는 친구가 많은 사람은 소셜 미디어에서 논쟁적인 정치, 도덕적 사안을 덜 토론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이가 페이스북에서의 이런저런 시달림을 예상한다.”--- p.143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데 공식 입장을 밝히라고 팝 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에게 압박을 가하는 사람들의 기괴한 집착을 보라. …… 정치적 충성을 보여야 하는 도덕적·정치적 환경에서는 팝 스타조차도 정치를 피해 이별 노래를 부를 자유가 없다.”--- p.145

 

충분히 많은 사람이 담론을 다르게 다루기 시작하면 규범이 바뀔 수 있다. 도덕적 이야기를 남용하는 것이 왜 나쁜가를 알게 된 많은 사람이 그랜드스탠딩을 그만둘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잘못 대하고 있으며 공적 자원을 망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끝내 그랜드스탠딩이 자주 역효과를 내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 p.272

 

 

나만 옳다는 도덕적 허세공정사회 망치는 고질병

판치는 한국사회

곰곰이 씹어봐야 할 과제로

 

정의와 인권, 평화와 평등처럼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힘든 좋은 말을 앞세워 상대를 비방하는 행태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책 제목이자 사람들의 눈길을 끌려는 행위라는 뜻의 그랜드스탠딩(Grandstanding)’은 도덕적 이야기로 우월성을 과시하고 인정 욕구를 충족하는 행태를 포착하는 용어다. 저자들은 철학·심리학 이론을 토대로 그랜드스탠딩의 원인을 분석하는 한편 도덕 이야기로 오염된 공론장을 정화하는 방안을 살핀다. 철저히 미국 사례 중심이지만, ‘나만 옳다는 아집과 진영논리가 득세하는 한국에도 유효한 메시지를 전한다.

 

심리학자들은 자신을 실제보다 낫다고 보는 태도를 자기고양(self-enhancement)’이라고 부른다. 흥미로운 것은 자기고양이 지성이나 지혜같은 인지적 측면보다 도덕성 부분에서 한층 강렬하게 발현된다는 사실이다. 대다수 사람은 타인보다 자신이 더 많은 선행을 실천하고, 더 적은 비행을 저지른다고 믿는다. 한 연구에 따르면 참여자의 83%암 연구 기부를 위한 꽃을 살 이라고 답한 반면, ‘다른 학우도 꽃을 살 것이라고 말한 참여자는 56%에 불과했다. 수감자를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에선 폭력적 범죄자조차 법 준수 항목을 제외한 도덕적·친사회적 항목에서 자신이 평균적인 사람보다 더 낫다고 평가했다. “도덕적 우월성은 인간이 보편적으로 지닌 환상이다. 우리는 타인에겐 잘 주지 않는 도덕적 지위에 자신을 올려둔다.”

 

저자들은 도덕적 허세가 보편적 욕망이기에 공적 담론에 나타나는 그랜드스탠딩 역시 특정 정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랜드스탠딩을 좌파의 무기혹은 고질병으로 보는 인식은 그릇된 통념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진영을 넘나드는 그랜드스탠딩은 어제오늘의 현상이 아니지만, 인터넷의 부상과 함께 널리 확산한 건 분명하다. 인터넷은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줄 청중을 찾기가 어느 곳보다 쉬운 장소이기 때문이다. SNS에서 그랜드스탠딩은 같은 편 의견에 말 보태기’, 극단으로 치닫기’ ‘팩트 날조등과 함께 강화·증폭된다.

 

그랜드스탠딩이 만연하면 집단 간 양극화는 물론 집단 내 양극화도 심해진다. ‘누가 제일 상대편을 경멸하는가를 놓고 펼쳐지는 집단 내 경쟁에서 가장 강력한 도덕적 언사를 구사하는 자가 지배력을 얻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진실 추구보다 도덕 경쟁이 우선인 그랜드스탠딩은 상대편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해서도 잘못된 믿음을 갖게 한다. 한 조사에서 미국 민주당원은 공화당원의 44%1년에 25만 달러 이상을 번다고 예측한 반면, 공화당원들 스스로는 33%가 그 정도 소득을 올릴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실제로 공화당원 가운데 25만 달러 이상 고소득자는 2%에 불과했다.

 

민주당원 중 성 소수자가 차지하는 비율에 대한 질문에 공화당원과 민주당원은 각각 38%, 29%라고 답했으나 실제 수치는 6%였다. 상대가 씌운 프레임에 맞서 공방을 벌이다 자기 집단에 대한 인식조차 왜곡된 것이다.

 

책은 그랜드스탠딩으로 인한 양극화로 타협이 어려워지는 것보다 심각한 문제는 도덕 담론에 대한 대중의 회의와 환멸이 깊어지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정의인권의 개념은 하나일진대 각자 진영이 서로 다른 정의와 인권을 부르짖으면서 건전한 상식을 지닌 중도파를 공론장에서 밀어낸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도덕 경쟁이 유발하는 분노 피로탓에 적절한 시점에 사회의 위험을 알려야 할 분노의 효용이 옅어지고 있다는 점 역시 그랜드스탠딩 사회가 치러야 할 뼈아픈 대가다.

 

저자들은 그랜드스탠딩을 완전히 없애기는 불가능하다고 전제하면서도 SNS 사용 제한, 과격한 그랜드스탠더에 대한 언팔로 같은 일상 속 실행 계획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좋은 것은 그 자체로 ()’이 될 수 없다. 좋은 의도로 좋은 결과를 낳을 때만 의미를 지닌다. 저자들의 일침처럼 모든 좋은 말이 칭송받을 만한 것이 아니라면, 어떤 좋은 말은 사라져야 세상이 좋아진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