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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로컬로 턴-저성장 시대를 건너는 법

by 이성근 2022. 5. 16.

<로컬로 턴!>(우치다 타츠루 지음, 박우현 옮김) 이숲 2022.05.

원제-カリズム宣言 成長から定常

저성장 시대를 건너는 법

 

저자 : 우치다 타츠 內田樹 거리의 사상가로 불리는 일본의 철학 연구가, 윤리학자, 번역가, 칼럼니스트, 무도가.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대 문학부 불문과를 졸업한 뒤 에마뉘엘 레비나스를 발견해 평생의 스승으로 삼고 프랑스 문학과 사상을 공부했다. 도쿄도립대를 거쳐 고베여학원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2011년 퇴직하고 명예교수가 되었고 현재는 교토 세이카대학의 객원교수로 있다. 글을 통해 70년대 학생운동 참가자들이나 좌익 진영의 허위의식을 비판해 스스로를 업계 내에서 신보수주의자로 분류되는 것 같다고 하지만 헌법 9조 개정에 반대하고 아베 내각을 독재라는 강한 표현으로 비판하고 있고, 공산당 기관지와의 인터뷰에서 마르크스의 가르침의 가장 본질적인 대목, 즉 사물의 근저에 있는 것을 파악한다는 의미에서 래디컬한 정당이 되기를 바란다고 주문하는 등 진영의 논리를 넘어선 리버럴한 윤리학자의 면모가 강하다.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고 현재까지 공저와 번역을 포함해 100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2011년 그간의 저술 활동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놀랍고, 재미있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을 모토로 삼은 이타미 주조 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망설임의 윤리학』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 『아저씨스러운 사고』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사가판 유대문화론(고바야시 히데오 상 수상) 하류 지향등이 있고 정신적 스승인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곤란한 자유』 『초월, 외상, 신곡-존재론을 넘어서』 『폭력과 영성』 『모리스 블랑쇼등을 번역했다.

 

목차

머리말

 

1장 탈 경제성장_글로벌 자본주의의 종언

 

인간은 하루 다섯 끼를 먹지 못한다

화폐로 화폐를 사는 경제

교육, 의료, 치안을 상품화하는 사회

공공 서비스의 기본 원리는 유목민의 환대 문화

경제성장을 위한 중세로의 퇴행

 

2장 산하를 지킨다_‘성장에서 정상(定常)’으로

 

에도막부의 통치 원리는 정상(定常)’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일본의 자연환경

경제성장이 멈춘다고 자산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경보 신호를 알아챈 청년, 도시를 탈출하다

 

3장 국가의 주식회사화_회사원 마음 자세를 버려라

 

당 지도부에 무조건 복종하는 예스맨 국회의원

주식회사를 모델로 삼는 이상한 행정

박수 주총이 돼버린 국회

독재국가로 향하는 일본

 

4장 정상경제와 증여_선대의 자산을 다음 세대에

 

인구소멸 지역인데도 장사가 망하지 않는 이유

GDP가 제로일지라도 교환으로 풍족하게

증여에 포함된 의무

회사원 마음 자세와 공동체

 

5장 소국과민(?寡民)과 하이퍼 글로벌

 

_글로벌리즘과 반()글로벌리즘의 균형점

자본주의 최후의 보루, 군수산업

()글로벌리즘의 극점, 노자의 소국과민

또 하나의 극점, 하이퍼 글로벌

두 극점 사이, 어디쯤이 살기 좋을까?

 

6폐현치번을 허하라!_로컬로 분절하기

 

미국의 주()와 에도시대의 번()

탁상공론으로 만들어진 도도부현의 경계선

으로 지자체 재편하기

주민의 기분을 소중히 여기는 행정구역의 필요성

 

7장 지방에서 살아가기_탈도시로 인간적 성숙을 지향한다

 

삶의 리스크가 높은 도시 직장인

효율화와 혁신으로도 이끌 수 없는 성장

일본을 벗어날 수 없는 최하층

경제활동의 본질

 

8장 개인에서 집단으로_공동체주의로 위기를 극복한다

 

농업의 가치는 낮은 생산성에 있다

시민적 성숙을 이끄는 농업의 힘

일본 만화가 세계를 휩쓰는 이유

승자에게는 보상을, 패자에게는 처벌을?

 

9장 탈시장경제_시장은 만능이 아니다

 

멈추지 않는 격차사회

확대가족과 상호부조

좋은 사람이 필요하다

교육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문부성

지역공동체의 중심, 사숙(私塾)

 

10장 탈지방창생_비용절감이 목적인 지방창생

 

콤팩트시티의 진짜 목적은 한계집락 제거

효율화의 종착지는 고용제로

농업정책의 기본은 기아 방지

국내산 농산물의 중요성

 

11장 탈국가_희미해지는 국가의 존재 의의

 

국민국가를 액상화하는 글로벌경제

로컬로 분할하는 국민국가

·일 중심의 동아시아 공동체

 

12장 정상경제를 향해_고아키나이로 살아남기

 

격차확대 조장하는 고용 없는 경제성장

임금 상승이 가능한 정상경제

지속 가능한 얼굴 있는 거래

 

13장 탈미디어_가짜뉴스를 선별하는 직감력

 

기동성 좋은 미디어가 살아남는다

사라지는 신문, 보도하지 못하는 신문의 미래

인터넷의 난제, 거짓 정보 발신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성

 

14장 탈사정(査定)_어떻게 살 것인가

 

평가를 원해 도시로 향하는 젊은 세대

순위 경쟁을 거부하는 청년들, 지역으로 가다

직업을 택하려면

포스트 자본주의 시대, ‘나의 역할을 찾아가는 청년들

 

추천사

역자후기

 

출판사 서평

마이너스 성장 시대, 정상(定常)경제에 미래가 달렸다

전쟁까지 불사하며 자국 상품을 외국에 팔던 성장 시대는 끝났다. 수치를 보면 선진국은 이미 제로성장 시대에 들어간 지 오래다. 이 책의 저자는 제로성장 시대에 살아남는 법으로 정상(定常)경제를 제안한다. 정상경제는 잉여생산을 멈추고 소비에 맞는 생산을 통해 지역 경제를 건강하게 활성화하고 균형 상태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경제체제이자 삶의 방식을 말한다.

 

저자는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 종식의 이유를 세 가지로 들었다. 인구문제, 생산기술 진화, 경제성장.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구가 줄고, 경제성장이 멈췄기에 자본주의 체제 지속이 어려운 상황이다. 많은 학자가 확인하듯이 경제가 다시 성장하기는 불가능하다. 일본에서는 1991년 버블 붕괴 이후 잃어버린 30경제가 다시 성장할 여건이 모두 사라졌다. 이미 성장이 위축된 한국도 일본 사례를 남의 일로 바라볼 수 없다.

 

이 현상을 경제성장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는 저자는 현재 자본주의는 성장을 위해 경제의 주체를 인간에서 인간이 아닌 것으로 이행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화폐경제가 바로 그것이다. 돈이 돈을 버는 구조에서 무엇보다도 노동의 가치가 무너졌다. 노동을 무한대로 외주화하는 체제가 들어선 것이다.

 

이처럼 삶의 위험부담이 커진 도시인이 지방으로 이주해 새로운 생활 거점을 구축하는데, 저자는 이런 현상을 끝나가는 자본주의를 직감한 행동일 뿐, 시골에 가면 뭔가 멋진 일이 있다고 기대해서가 아니라고 말한다. 더구나 임금노동으로 살아가는 청년 일인 가구라면 더더욱 미래가 불안할 수밖에 없고, 특히 혈연이나 지연 공동체가 없는 도시에서는 병들거나 실직했을 때 한순간에 노숙자로 전락할 위험이 있기에 도시 탈출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가 제안하는 모델은 자연환경을 자산으로 삼아 생산과 노동과 소비가 선순환하는, 불안한 성장보다는 안정적인 현상 유지에서 삶의 가치를 찾는 에도시대 정상(定常)경제 체제이다.

 

탈자본주의 시대, 지역공동체의 중요성-선대의 자산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탈자본주의 시대 경제는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지역공동체 중심의 정상경제 모델에 주목한다. 경쟁을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가 아니라 지역에서 생산한 재화와 지역 주민의 용역을 서로 교환하고, 자원을 잘 보존해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방식이다.

 

그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의미를 상품과 화폐의 교환 가치로만 따지는 사람은 오래 지속하는 인간 공동체를 만들 수 없다며, 현대 일본 사회에서 지역공동체와 혈연공동체가 붕괴한 이유를 여기서 찾는다. 공동체 복원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뢰할 수 있는 인간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상부상조하는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 ‘환대신뢰를 비롯한 약속보장이라는 인간적개념으로 서로 연대해야 한다. 어찌 보면 너무 순진해 보이는 제안이지만, 이런 소규모 지역공동체의 복원 없이는 고령화, 고립화, 빈곤화하는 사회에 탈출구는 없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포스트 자본주의 시대, 자기 역할을 찾아가는 청년들

왜 젊은이는 도시를 좋아할까? 지역 소멸 위기는 인구가 감소하는 탓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청년의 도시 집중 현상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일자리가 많아서 청년들이 도시로 몰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역에 일자리가 더 많다. 젊은이들이 도시를 찾는 것은 자기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고 싶기 때문이다. 자기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상대 비교할 수 있는 도시에서 스스로 확인하면서 정체성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일률적 평가 수단으로 등급을 판정받는다면 기업과 자본은 그들을 호환성 높은 부품으로 여길 뿐이다. 기업이 원하는 스펙의 일괄적인 기준을 따르다 보니 청년이 모두 서로 비슷해진다. 현대 일본 사회에서 활력이 사라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순위경쟁을 거부하고, 남에게 평가받기보다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찾아가는 청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자는 지방으로 향하는 청년들에게서 그런 공통점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지금 일본에서 도시를 떠나 지방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서로 가청 음역 밖의 주파수로 소통하고 있다. 누군가가 깃발을 들고 나선 것도 아니고, 이론가 리더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발적으로 자기 방식대로 걷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수많은 사람이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이런 움직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빈부격차와 기회 불평등이 지배하는 사회, 점점 비대해지는 초대형 기업들이 획일화한 노동력을 요구하고, 성공의 사다리는 일찌감치 내팽개쳐진 제로성장 사회에서 바로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속으로

우리 사회는 지금 포스트 글로벌상태를 보이면서 근대 이전 사회로 퇴행하고 있습니다. 어느 분야에서나 경제성장의 여지가 더는 보이지 않는데도 경제성장을 이루려는 불가능한 꿈을 좇고 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것에 가격표를 붙여 시장에서 사고팔게 하면 소비활동이 활발해져 다시 경제가 살아나리라는 도착적인 꿈을 꾸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이 멈췄는데도 무리하게 경제성장을 시도하려는, 변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이 사회를 중세로 퇴행시키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미쳐가고 있습니다.--- p.31

 

지금 젊은이가 도시 탈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끝나가는 자본주의를 직감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시골에 가면 뭔가 멋진 일이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위험이 바싹 다가왔다는 경계 신호를 감지하고 도시를 탈출하는 겁니다.--- p.42

 

단순히 상호부조 공동체를 만든다고 모두가 즐겁게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예컨대 공유주택이라든가 공동육아 또는 공동간병 같은 조직은 실제로 구성원들에게 구체적인 편익을 제공합니다. 좋은 아이디어죠. 하지만 30, 50년 장기간에 걸쳐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공동체 내부에서 이뤄지는 서비스는 일종의 상품으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서비스를 이행한 사람은 등가의 서비스를 다른 구성원에게 기대합니다. 그래서 구성원 사이에는 받은 몫주는 몫이 다르면 안 되겠죠. 일부에게만 부담이 쏠리고, 다른 일부는 부당하게 이득을 취한다는 불공평한 느낌이 드는 공동체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p.69

 

주식회사의 논리를 깊이 내면화한 사람은 안타깝지만 공동체를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사회제도, 언어, 학문, 종교, 생활문화 등 모든 것이 선대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자력으로 얻은 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되도록 온전한 형태로 미래세대에 넘겨줘야 합니다. 증여받은 것에 반대급부의 의무가 포함돼 있다는 규칙을 내면화한 사람을 인간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의 의미를 상품과 화폐의 교환으로만 따지는 사람은 엄밀하게 말해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만이 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p.73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만으로 구성된 사회 집단이라면 자기 이익만을 추구할 겁니다. 서로 사회자원을 뺏겠다며 다람쥐 쳇바퀴 굴리기 같은 경쟁을 벌이겠죠. 그런 사회에서는 사회보장제도를 아무리 교묘하게 설계하더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같은 집단에서 자기 능력껏 함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남을 돕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일정 수 이상 존재한다면, 아무리 조잡한 제도라도 제대로 기능합니다. 즉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라는 겁니다.--- p.113

 

시장원리가 점령한 사회에서 탈출하려는 것, 저는 그것을 지금 벌어지는 귀농 움직임의 인류사적 의미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시장경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시장과 분리된 장소를 만드는 일을 생존의 급선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타난 겁니다.--- p.154

 

시장도 공동체를 싫어합니다. 시장에서 재화나 서비스를 사지 않고 가난한 사람끼리 상호부조 네트워크를 만든다면 시장으로서는 밑지는 장사가 될 테니까요. 다시 말해 자본주의경제는 상호지원·상호부조 조직의 출현을 바라지 않습니다. 필요한 물품을 누군가에게 받거나 빌리는 연대한 가난한 사람보다 그러지 못해 한 푼의 임금이라도 받으려고 귀중한 시간과 몸을 팔아야 하는 나 홀로 빈자쪽이 GDP 증대에는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하죠. 그런 연유로 이 사회는 약자를 정책적으로 분리합니다.--- p.175

 

지방보다 수도를, 로컬보다 글로벌을 동경하는 이유는 딱히 세계를 무대로 뛰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지금 사회에서 자신이 서 있는 객관적 위치가 궁금한 겁니다. 내가 어느 곳에서 어느 정도로 쓰일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하는 지적 욕망이 이들을 도시로 향하게 합니다. 그래서 야심이 있는 젊은이일수록 도쿄, 그것도 생존을 위한 경쟁률이 높은 업계를 꿈꿉니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모인 곳으로 뛰어들죠. 같은 능력을 발휘했을 때 양적 차이가 두드러지는 직종으로 빨려드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정확한 등급 판정을 원하는 청년들은 되도록 많은 사람이 종사하는 일을 전문 직종으로 여기며 선호합니다. 실제로 현대 일본 사회에서 활력이 사라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능력 있는 청년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이미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분야에서 내 순위는 어느 정도인지를 우선으로 고려합니다. 그 결과, 경쟁이 치열할수록 사회의 활기가 사라지는 역설적 현상이 빚어졌습니다. --- p.239

 

 

한계에 달한 자본주의 대안 찾으러 '로컬로 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많은 학자들이 자본주의의 종언을 이야기했다. 소련이 무너지며 공산주의가 끝난 데 이어, 이제 자본주의 체제도 종말을 고했다는 소리였다.

 

모두가 알다시피, 글로벌 금융위기로부터 십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으나 자본주의 체제는 아직 유지되고 있다. 다만 건강한 상태라고는 볼 수 없다. 전 세계가 고용 없는 성장의 대열에 들어섰다. 선진국부터 성장 한계에 직면하기 시작했다. 이에 관한 첫 번째 대응은 생산비 절감이다. 제조 기반이 노동력이 싼 국외로 이주하기 시작하고, 동시에 '생산성 향상'을 통해 일자리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남은 일자리는 점차 비정규화하고, 그에 따라 국내에서 실업이 항상적인 위기 상태에 처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오늘날 신자유주의 체제를 이식한 대부분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 위기를 타개하는 방법 또한 대체로 나라마다 크게 다르지 않다. 제품을 팔기 어렵다면? 돈을 팔면 된다. 제조 기반이 사라진 공백에 자산이 상품으로 등장해 거래된다. 부동산, 주식, 선물, 옵션이 눈만 뜨면 변화하는 새로운 상품으로 나와 시장에 유통된다. 이제는 디지털화폐까지 투자 상품이 됐다. 돈이 돈을 사면서 국내에 현금이 순환하도록 하는 '자유주의' 체제가 안착했다.

 

이런 상태가 과연 지속 가능할까. 비틀거리며 걷는 자본주의의 오늘을 의구(疑懼)하고 대안을 찾는 흐름이 각지에서 나타나고 있다. <로컬로 턴!>(박우현 옮김, 이숲)에서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타츠루 고베여대 교수는 성장의 시대가 끝났음을 선언하고, 이제 허황한 성장 신화에 목매는 대신, 정상(定常) 경제를 추구하자고 제안한다. 탈자본주의 사회의 모델로서 성장하지 않는 사회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우치다 교수는 일본이 세계에 문을 열기 전인 에도 시대를 정상 경제 체제의 예로 든다. 오늘날 일본의 산림률은 68%에 달해 핀란드(74%), 스웨덴(69%)에 이어 선진국 중 세계 3위 규모를 자랑한다. 온 국토를 난개발한 나라가 일본이리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산림자원은 일찌감치 보호 대상이 됐다. 그 기원은 도쿠가와 바쿠후(幕府)에서 찾을 수 있다. 센고쿠(戰國) 시대에는 각 나라(구니, )의 경쟁적인 축성과 제철로 인해 산림자원이 황폐화했다. 이에 따라 산림의 침식과 홍수 피해 증가가 생겨났다. 정부는 이를 바로잡고자 통일 후 전국 산림의 벌목을 규제했다. 어느 지역에 어떤 종류의 수목이 몇 그루 있는지를 일일이 기록할 정도로 세밀한 관리가 이뤄졌다. 이는 계획적인 벌목과 조림 정책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가 오늘날 일본의 울창한 밀림이 됐다.

 

우치다 교수는 에도시대의 통치 원리는 '한결같음', 즉 정상이었지 '성장'이 아니었기에 이 같은 시대 유지가 이어졌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성장 한계에 부딪친 지금의 일본 역시 정상 경제 국가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자식 세대든 손자 세대든, 백년 후 이백 년 후에 살아갈 후손까지도 지금의 나와 같은 땅에서 같은 생산양식과 생활문화를 영위한다는 것을 전제로 사회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소리다.

 

실제 이 같은 움직임은 일본 곳곳에서 관측된다. 도시의 경쟁적이고 소모적인 삶을 버리고 시골로 회귀하는 청년의 움직임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남들과 경쟁에서 이겨 홀로 승자가 되려는 목표 대신, 성장은 포기하더라도 더불어 살기를 택하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관측된다.

 

우치다 교수는 아울러 성장 자본주의 시대에 출범한 국민국가 체제 역시 수명을 다했다고 진단하고, 폐현치번(폐번치현廃藩置県을 비튼 용어. 폐번치현은 메이지 유신 시기 에도 시대의 번 체제를 폐지하고 중앙에서 내려 보낸 관료에 의한 전국 단위 통치 체제를 만들기 위해 현을 설치한 정책)을 감행할 때라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자연스러운 지역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정상 경제 체제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누리는 시대, '로컬로 턴'하는 삶을 저성장 시대의 대안으로 강조한 셈이다.

 

우치다 교수의 주장은 일본과 같이 저성장-저출산 시대에 접어든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 있다. 그가 자신 있게 제시하는 대안은 과도한 경쟁에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버린 우리 도시민이 귀 기울여 들어볼 법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콤팩트시티를 향한 그의 비판은 독창적이다. 지역 소멸 위기에 처한 일본은 각 지역의 거점 도시에 제한된 자원을 집중 투자해 개별 거점을 중심으로 전국을 발전시킨다는 지방창생 구상을 정책화하고 있다. 우리로 따지자면 각 도에서 한둘의 소수 도시에 제한된 자원을 집중해 개별 도시가 서울과 마찬가지로 가용한 자원을 콤팩트하게 집중 관리해 인구의 유출을 최소화하고, 그 반대급부로 농촌 촌락 등 재활이 불가능한 지역은 사실상 방치한다는 구상이다.

 

우치다 교수는 이 같은 구상은 성장 쥐어짜내기식 아이디어일뿐이라고 혹평한다. 간단히 말해 지방에 '등급'을 매기고, 그에 따라 자원을 차등배분하겠다는 이 아이디어는 "일본 전역에서 벌어지는 수도권 집중을 도도부현 차원에서 소규모로 재연하는 것"일 뿐이라고 우치다 교수는 비판한다. 이는 결국 해당 거점도시의 인구 감소를 유예하는 조치일 뿐이고, 오히려 농촌 생산 현장에 있던 사람마저 저임금 서비스직 노동자로 전락시키는 대책일 뿐이라고 우치다 교수는 일갈한다.

 

<로컬로 턴!>에 나온 모든 이야기에 동의하지는 않을 수 있다. 가령 성장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오늘날 한국은 인구감소라는 숙제를 풀 대안으로 여성 인권 강화, 강력한 이주민 유입 정책 도입 등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생산가능 인구가 늘어나 경제성장률 유지를 위한 자본주의 체제를 돌릴 수 있다.

 

이는 어쩌면 성장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일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이 인구 증가와 더불어 더 열린 사회 문화를 일으키고 높은 인권 인식을 사람들 사이에 심어주는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이처럼 책은 다양한 의문을 자문자답 가능하게끔 친절한 설명으로 독자에게 다가간다. '지역이 답'이라는 이야기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에 빠진 한국에서도 중요한 대안적 움직임으로 조명받는 아이디어이기도 하다. 다른 삶을 꿈꾸는 이라면 우치다 교수의 주장을 귀 기울일 때다.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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