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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더불어 살기

귀신고래 이야기 -한겨레신문

by 이성근 2015. 4. 18.

   

한국계 밀어낸 북미산 귀신고래, 아시아 진출 417 한겨레 조홍섭

사할린 귀신고래, 태평양 건너 멕시코까지 왕복 22500이동 확인

 

2만마리 북미산 귀신고래가 130마리 극동아시아 서식지 점령 가능성

 

 

»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주위를 살피는 러시아 사할린 해역의 한국계 귀신고래. 따개비 등 부착생물이 많이 붙어있다. 사진=크레이크 헤이슬리프

 

러시아 사할린에서 베링해를 건너 멕시코까지 5개월에 걸쳐 왕복한 귀신고래의 이동 궤적이 확인됐다. 이동 거리는 무려 22500로 포유동물 가운데 신기록이다. 흥미로운 건 단지 이동거리만이 아니다. 태평양 양쪽에 나뉘어 분포하던 귀신고래 두 집단의 구분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계 귀신고래라 불리는 서태평양 집단은 사할린에서 몸집을 불린 뒤 남쪽 어딘가에서 번식을 하는 것으로 추정돼 왔다. 태평양을 건너편의 캘리포니아 귀신고래는 알래스카에서 먹이를 먹고 아메리카 서해안을 따라 따뜻한 멕시코의 바하칼리포르니아까지 가서 번식하는 무리이다.

 

» 사할린에서 귀신고래에 위성추적장치를 부착하는 미국과 러시아 연구자들. 사진=크레이그 헤이슬리프

 

두 집단의 귀신고래는 아직 다른 종으로 구분되지는 않지만 형태와 유전적으로 차이가 있어 각각 독자적인 진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번에 확인된 귀신고래는 이 두 집단의 서식지를 넘나든 것이다. 이번 발견으로 애초 두 집단이 같은 무리인지, 아니면 한국계 귀신고래가 사라진 빈자리에 개체수가 늘어난 캘리포니아 개체군이 진출한 것인지 등 새로운 의문과 논란을 부르고 있다.

 

2011년 위성추적장치를 부착한 바버라란 이름의 한국계 귀신고래가 멕시코까지 이동한 사실은 이듬해 알려져 놀라움을 일으킨 적이 있다(관련기사: 귀신처럼 멕시코로 간 한국계 귀신고래’)

 

미국과 러시아 연구자들은 당시 사할린에서 7마리의 귀신고래에 위성추적장치를 붙였는데 그 가운데 바버라를 포함해 3마리가 태평양을 건너 캘리포니아로 향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고래의 상세한 궤적과 의미를 분석한 논문이 과학저널 <바이올로지 레터스> 16일치에 실렸다.

 

 

» 귀신고래 3마리의 이동 경로. 9살 암컷 바버라 동쪽 이동(진한 노랑), 서쪽 이동(연한 노랑), 13살 수컷 플렉스(하늘색), 6살 암컷 에이전트(자주색). 점선 부위는 새끼 기르는 곳. 그림=메이트 외, <바이올로지 레터스>

 

추적한 고래 가운데 9살짜리 암컷 귀신고래인 바버라는 가장 먼 거리를 이동했다. 20111124일 사할린을 떠난 바바라는 캄차카 반도를 거쳐 알류샨 열도를 향해 태평양을 건넌다. 이어 알래스카만을 가로지른 다음 북아메리카 서쪽 해안을 따라 멕시코의 바하칼리포르니아에 이르러 1880의 여정을 마쳤다.

 

따뜻한 바하칼리포르니아에서 42일 동안 머문 바버라는 다시 북상길에 오른다. 올 때와는 약간 다른 경로이지만 알래스카를 거쳐 태평양을 건너 사할린까지 다시 1이상을 헤엄쳤다. 이 귀신고래는 172일 동안 태평양을 왕복하는 총 22511를 평균속도 시속 5.5로 이동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바버라는 캘리포니아 귀신고래의 번식지 3곳을 모두 들렀다. 충분히 성숙한다면 그곳에서 짝짓기를 할 것이란 뜻이다. 어린 고래는 어미로부터 이주 행동을 배운다는 사실에 비춰 연구자들은 바바라가 바하칼리포르니아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계 귀신고래와 캘리포니아 귀신고래 모두 남획으로 멸종위기에 몰렸다. 한국계 귀신고래는 멸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1970년대에 작은 집단이 발견됐다. 현재 약 130마리가 러시아 사할린 근해에서 확인되고 있으며,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위급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반대로 캘리포니아 귀신고래는 보호정책이 주효해 현재 18000마리 이상으로 불어났다. 느리게 해안 가까이 이동해 미국과 캐나다에서 고래관광의 중요한 대상이다.

 

» 물속으로 들어가는 귀신고래. 극동아시아에서는 멸종위기종이지만 북미에서는 대표적인 고래관광 대상이다. 사진=오리건 주립대 해양포유류연구소.

 

귀신고래의 이동 경로에 대한 이제까지의 통념을 완전히 뒤집은 이번 연구결과의 의미를 연구책임자인 브루스 메이트 미국 오리건 주립대 해양포유류 연구소장은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이렇게 말했다멸종위기인 서부 태평양 귀신고래가 이렇게 먼 거리를 이동해 동부 태평양 귀신고래와 교류한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고 많은 질문을 불러일으킵니다. 이제까지는 두 집단이 격리돼 유전적 차이가 생겼다고 보았지만 이번 연구는 과연 그런지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를 제기합니다.”

 

연구자들은 이 연구에서 거의 사라져버린 동아시아 귀신고래의 빈자리를 북미산 귀신고래가 점령해 들어왔을 가능성을 강력하게 제시했다. 지느러미 특징 등을 담은 사진을 비교해 봤더니 극동 귀신고래 가운데 10마리가 북미 연안에서 촬영된 개체와 동일했고, 2마리는 유전 정보도 일치했다.

 

메이트는 귀신고래가 이처럼 엄청나게 먼 거리를 이동할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일부 극동 귀신고래가 실은 북미 귀신고래일 가능성도 있다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극동의 귀신고래가 일부 남아있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연구에 참여한 발렌틴 일랴솅코 세베르초프 생태학 및 진화 연구소 연구원은 아예 극동 귀신고래가 캘리포니아 귀신고래의 한 부분이었는데, 이제 과거의 서식지를 회복하고 있는 중이라고 본다.

 

» 고래연구소 연구원들이 사할린에서 촬영한 한국계 귀신고래. 사진=고래연구소

 

우리나라의 고래학자들은 아직 한국계 귀신고래가 독립적 집단을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 그레그 도노반 국제포경위원회(IWC) 수석과학자는 <비비시>와의 인터뷰에서 국제포경위원회와 국제자연보전연맹이 서부 태평양 귀신고래 집단이 아직도 존재하는지 여부를 현재 조사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캘리포니아 귀신고래가 극동의 사할린 인근 바다를 먹이 터로 이용하고 있다면, 한국계 귀신고래의 개체수가 이제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적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또 이제까지 유전적으로 격리된 두 집단이 만나 교잡이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박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한국계 귀신고래가 북미로 넘어가고 그쪽에서도 극동으로 넘어오는 개체가 늘어난다면 유전적 격리가 허물어질 수 있습니다. 유전자 검사를 해 보면, 이미 두 집단의 형질이 섞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가 누적되면 두 집단의 차이가 희박해져 결국 하나의 집단이 돼 버릴 것입니다. 북극해가 녹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캘리포니아 귀신고래가 지중해까지 진출하고 있다는 추정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계 귀신고래를 처음 학계에 보고한 이는 미국의 탐험가이자 박물학자인 로이 채프만 앤드루스(1884~1960)이다. 그는 1912년 울산 장생포에서 포경선에 잡혀온 귀신고래가 캘리포니아 귀신고래와 같은 종이지만 다른 집단임을 발표했고, ‘한국계 귀신고래란 이름을 붙였다.

 

 

그는 울산에서 잡히는 귀신고래가 출산이 임박한 상태임에 비추어 이 고래의 번식지가 남해안 다도해라고 추정했다(관련기사: 귀신도 모르는 귀신고래 귀신처럼 나타날까).

 

그러나 이후 남획으로 귀신고래는 남한 근해에서 자취를 감췄다. 국립수산과학원이 2008년 한국계 귀신고래를 사진으로 찍으면 500만원, 그물에 걸리거나 좌초한 개체를 신고하면 1000만원을 주겠다고 포상금을 내건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까지 혹등고래를 오인해 신고한 것을 빼면 귀신고래를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귀신고래를 한국에서 다시 보려면 사할린에 일부 남아있는 귀신고래가 남하해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사할린 개체군이 워낙 작은데다 어업용 그물에 걸려 죽는 혼획, 빈번한 해상 운송에 따른 오염과 충돌, 유전개발 등 위협요인이 상존한다는 것이다.

 

이런 위협에 더해 유전자 오염이란 새로운 변수가 등장한 것이다. 안용락 박사는 희망 섞인 추측을 한다면, 한국계 귀신고래가 북한의 어느 조용한 연안에서 번식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Bruce R. Mate et. al., Critically endangered western gray whales migrate to the eastern North Pacific, Biology Letters, 2015. 11, 20150071; DOI: 10.1098/rsbl.2015.0071. Published 15 April 2015

 

귀신처럼 멕시코로 간 한국계 귀신고래2012.4.20. 한겨레

 

한국계 귀신고래는 러시아 사할린 연안에 130마리 남아 있다. 최근 이곳에 사는 귀신고래 바바라가 위성위치추적장치(GPS)를 부착한 채 멕시코의 바하칼리포르니아까지 갔다 온 것이 밝혀졌다. 고래연구소 제공

 

귀신고래의 오른쪽 머리와 입 주변은 상처투성이입니다. 개펄을 기어다니는 갑각류를 좋아하는데 먹이를 먹기 위해서 주로 머리의 오른쪽 부분으로 개펄을 헤집기 때문이죠. 귀신고래는 혹등고래와 함께 수면 위에서 가장 활동적인 고래이기도 해요. 배 근처에서 수면 위로 솟아올라 입에서 물을 토해내면서 떨어지는 고래뛰기가 장관입니다.

 

2008년부터 국립수산과학원은 한국계 귀신고래에 포상금을 내걸고 있다. 귀신고래 사진을 찍으면 500만원, 혼획(그물에 우연히 걸림)됐거나 좌초한 개체를 신고하면 1000만원을 준다. 여태껏 포상금을 받아간 이는 아무도 없다. 한국계 귀신고래는 1965년 한반도 연안에서 5마리가 포획된 뒤 관찰되지 않고 있다. 귀신고래는 세계적으로 3개 개체군이 있는데, 이 중 한국계 귀신고래(서태평양 개체군)는 여름에 러시아 사할린과 캄차카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겨울엔 동해나 일본 동해를 지나 따뜻한 남중국해로 내려가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최근 한국계 귀신고래가 미국 캘리포니아와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까지 갔다 온 사실이 확인됐다. 기존의 가설을 뒤엎는 이상한 여행에 대해 해양포유류 학자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지난해 10, 미국 오리건주립대학의 해양포유류연구소는 사할린 앞바다에서 9살 난 암컷 귀신고래 바바라에게 위성위치추적장치(GPS)를 부착했다. 한국계 귀신고래의 정확한 회유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바바라는 예상을 뒤엎고, 일본과 한국 등 남쪽이 아니라 태평양 동쪽으로 헤엄쳤다. 지난해 1127일 사할린을 출발한 바바라는 베링해를 건너 한 달 뒤인 1224일 알류샨 열도에 도착했다. 그러곤 북아메리카 대륙에 바짝 붙어 헤엄치면서 캐나다 밴쿠버, 미국 시애틀을 거쳐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의 아열대 바다까지 내려갔다.

 

바하칼리포르니아는 캘리포니아 귀신고래라고도 불리는 동태평양 개체군이 겨울을 나며 번식하는 곳이다. 봄이 되면 이들은 북아메리카 연안을 따라 올라가 알래스카와 베링해 연안에서 여름을 나며 먹이활동을 한다.

 

바바라는 왜 캘리포니아에 갔을까?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년 동안 사할린에서 한국계 귀신고래를 연구한 김현우 고래연구소 연구원은 20일 이렇게 말했다. 

바바라가 애초 한국계 귀신고래가 아닐지도 모르죠. 캘리포니아 귀신고래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개체군은 알래스카와 베링해 연안에서 섭이장(먹이활동을 하는 곳)을 차리는데, 한발 더 나아가 사할린까지 와서 한국계 귀신고래와 섞여 지냈다고 추정할 수 있어요.”

 

두 개체군이 사할린에서 함께 먹이활동을 하다가 늦가을 무렵에 한국계는 남중국해로, 캘리포니아계는 캘리포니아로 번식을 하러 흩어진다는 가설이다. 김 연구원은 지난해 일본에서 그물에 걸려 죽은 귀신고래가 사할린에서 살던 개체였음을 볼 때, 사할린 귀신고래가 모두 캘리포니아계일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두 개체군은 똑같은 귀신고래이지만, 유전자 분석에서는 약간 차이가 난다.

 

둘째는 한국계 귀신고래가 비정기적인 여행을 떠났다는 가설이다. 일본 오가사와라에 사는 혹등고래는 하와이 집단에 간 것이 보고되기도 했다. 김 연구원은 바바라도 이런 이례적인 회유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2010년 지중해에서 발견된 귀신고래도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지중해는 귀신고래 서식지가 아니다. 201058일 이스라엘 앞바다에서 포착된 귀신고래가 22일 뒤 스페인 바르셀로나 앞바다에서 발견됐다. 꼬리를 찍은 사진으로 봤을 때 동일 개체가 분명했다. 과학자들은 가장 유력한 가설로 캘리포니아 귀신고래가 러시아 북극권을 횡단해 지중해에 왔으리라고 봤다. 기후변화로 인해 북극권의 개빙구역(얼음이 없는 지역)이 생기면서 왕복 3에 이르는 장거리 여행이 가능했으리라는 추정이다. 18세기 북대서양에서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북대서양 개체군이 살아남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월 말 바하칼리포르니아를 출발한 바바라는 다시 사할린으로 돌아오고 있다. 지난 8일부터 바바라는 알류샨 열도에서 머물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오리건주립대 해양포유류연구소는 밝혔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브루스 메이트 소장은 <한겨레>와 한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바바라의 정기적인 회유 경로라고 믿고 있어요. 바바라는 이미 성적으로 성숙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매년 번식을 위해 캘리포니아로 갈 거예요. 건강 상태만 좋다면 캘리포니아에서 임신을 해서 이듬해 출산을 할 겁니다.”

 

한국계 귀신고래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러시아, 일본의 포경선들에 의해 남획돼 지금은 130마리만 남았다. 번식 가능한 암컷은 26마리다. 전세계 멸종위기종 고래 가운데 가장 급박한 처지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가 사할린 연안에서 가스전과 유전을 개발하면서 멸종위기는 가속화되고 있다. 해저의 가스·유전 탐사를 하면서 쏘는 음파와 공사·운영 중 소음은 고래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가스전 개발구역에서 귀신고래 서식처는 불과 20떨어져 있다.

 

이번 바바라 연구 결과는 위기에 처한 한국계 귀신고래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보여준다. 사할린 앞바다에서 한국계 귀신고래와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가 교류한다면, 한국계가 캘리포니아에 가서 번식할 가능성도 기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바라가 그 첫 사례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