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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구멍가계 이야기

by 이성근 2021. 7. 2.

 

구멍가게 이야기 저자 박혜진, 심우장|책과함께 |2021.04

마트와 편의점에는 없는, 우리의 추억과 마을의 이야기가 모여 있는 곳

 

역자소개-박혜진 (지은이) /누군가의 인생에 귀 기울이는 일은 가치가 있다. 스무 살 무렵 충북 단양으로 떠난 학술답사에서 입으로 말하는 이야기에 처음으로 감동을 받았다. 많이 배우지도, 많이 갖지도 못한 산골 노인의 삶과 마주하며 나 자신을 들여다보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이후 문학에 대한 열망으로 대학원에 진학해 고전소설을 전공하면서 한편으로 우리 옛글을 문화산업에 연계하는 일을 해왔다. 그 바탕에는 늘 이야기가 있었지만 성과물이 나올 때마다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곤 했다.

그러던 중 이야기가 살아 있는 현장으로 직접 나서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구멍가게 찾아다니기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비로소 다시 이야기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 시간을 거치면서 누군가의 삶에 귀 기울이는 일이 온전히 내 중심에 자리하게 되었다.

이 책은 혼자서 마음에만 간직했던 감동을 세상에 꺼내놓는 작업이다. 내가 느꼈던 평범하지만 충만한 삶의 이야기에 많은 이들도 공감하기를 바라면서.

심우장 (지은이) /어려서는 이야기 듣는 걸 무척 좋아했어요. 자라서는 친구와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했고요.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에서는 줄곧 옛이야기를 공부했어요. 세상을 이야기로 보고, 이야기로 이해하고, 이야기로 생각하고, 이야기로 바꿔 보려고 애쓰고 있어요. 세상은 온통 이야기로 가득하답니다. 옛이야기 속에서 생각 찾기, 설화 속 동물 인간을 말하다, 한국의 이야기판 문화, 이야기가 흐르는 대한민국 소도시 기행 2등을 다른 분들과 함께 썼어요. 지금은 국민대학교 한국어문학부에서 옛이야기와 동화를 가르치고 있어요.

 

목롤로그: 새로 쓰는 구멍가게

 

1부 구멍가게는 어디에 있을까

1장 동네 안 구멍가게

연산상회를 찾아서 | 마을 속으로 | 나는 우체통 뜯어 가지 마라 그랬어 | 가게 전화? 마을 전화! | 택배도 되나요? | 할머니의 수상한 거래 | 연산상회 잇템 | 긍게 영감 앞에 죽으야 혀

 

2장 길 위의 정류장 가게

정류장 옆 구멍가게 | 코리안타임 버스 | 와룡마을 버스알리미 | 옥찬수퍼 동광고속정류소 | 사라진 버스표와 간판 | 그냥 갈 수 없잖아 | 내가 우리 아저씨 부를 때는 박씨아저씨야

| 쉼터 | 구멍가게의 어원

 

3장 학교 앞 문방구 가게

군것질 천국 | 꼬마 도둑 | 눈이 붐빈다 | 구멍가게 CCTV | 문방구와 놀잇감 | 주사위를 열심히 굴리면 착한 어린이가 됩니다 | 학교 앞 작은 학교 | 밤은 없고 낮만 있으믄 쓰겄다

 

2부 구멍가게가 걸어온 길

4장 마을공동가게에서 구멍가게로

새로운 발견 | 구판장에서 점방으로 | 잘사는 마을의 조건 | 공동구매의 원조, 부녀회 가게 | 문밖으로 나온 여성, 부인상회 | 잘되는 가게의 비결 | 36.5마을 정보통 | 창살 없는 감옥이야

 

5장 구멍가게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야속한 관계, 모기 | 구멍가게 잔혹사 | 아름다운 상생 | 변신의 귀재, 농협 마트 | 외길 인생, 구멍가게 | 구멍가게에는 있고 농협 마트에는 없는 것 | 왕자네 가게와 피아노

| 쉼터 | 슈퍼마켓의 역사

 

6장 구멍가게의 변신, 이름으로 말하다

슈퍼인가 편의점인가 | 겉 다르고 속 다른 태양수퍼 | 변화의 현장,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 막다른 골목, 슈퍼에서 마트로 | 유통의 새바람, 편의점 | 구멍가게, 그다음 장 | 늦게 찾아온 봄

| 쉼터 | 사라진 구멍가게

 

3부 구멍가게 들여다보기

7장 구석구석 클로즈업

시간은 쌓인다 | 숨은 공간 찾기 | 유리문 진열장과 잠금장치 | 여럿이 함께 | 나만의 비밀번호 | 그들만의 포스트잇 | 홍보는 셀프 | DIY 술탁자 | 맨날 이사만 했제, 비워주라 그름 비워주고

| 쉼터 | 구멍가게와 부업의 세계

 

8장 눈깔사탕에서 컵라면까지

오래된 히트상품 | 옷만 없고 모든 게 다 있는 거여 | 하나 물고 십 리 가는 눈깔사탕 | 007 돈사탕을 찾아라! | 구멍가게 1세대 과자 | 새우깡은 현금 판매합니다 | ()의 한류, 초코파이 | 석빙고 아이스케잌과 칠성사이다 | 라면 전성시대 | 그리고 문명이, 문화가, 신비가 있었다

 

9장 담배와 함께한 육십 년

구멍가게 아이콘 | 담배, 상품 이상의 상품 | 구멍가게가 곧 담배가게 | 담배는 어떻게 공급되었을까 | 약국에서 담배를? | 잘나가도 함께, 못나가도 함께 | 담배외전 | 서울처녀의 냉장고 | 담배가 맺어준 인연 | 아구발 없으면 이 장사 못 해요

| 쉼터 | 우리 담배의 변천사

 

4부 구멍가게, 치열한 삶의 현장

10장 구멍가게, 주막을 품다

소문난 술안주 | 하루 세 번 술참 | 흙 묻은 장화 | 키핑도 되나요? | 첨에는 독아지다 부서서 팔았지 | 행운을 소주 뚜껑 속에서 | 풍류주막 | 트러블메이커 | 술 팔아 번 돈은 귀신도 맘대로 못 쓸 거예요

| 쉼터 | 구멍가게와 나눔

 

11장 구멍가게와 쩐()의 전쟁

돈 때문에 울고 돈 때문에 웃고 | 갈등의 씨앗, 외상장부 | 삼태마을 다이어리 | 개구쟁이 석이의 외상 | 속이 쓰려 간이 녹는다 | 어쩔 것이여 냅둬 | 애증의 화투판 | 놀이와 노름 사이 | 긍게 여자도 강하믄 다 그러고 살아, 남자 지지 않애

| 쉼터 | 구멍가게와 셈

 

12장 구멍가게에서 찾은 삶의 무늬

살아온 일을 생각하믄 아실아실해 | 나도 가이내 때는 웃는 게 인사였어 | 우리 동네 멀티플렉스 | 너와 나의 연결고리 | 곽 속에 들어도 큰소리 하지 마라 | 내가 그릏게 고생을 타고난 사람인갑서라 | 남도 나처럼, 나도 남처럼 | 비를 기다리는 사람들

 

에필로그: 숙제를 마치며

 

구멍가게 목록

주차

출판사 책소개

정확하고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사람의 시간을 찾다

하루가 다르게 더욱더 정확하고 빠르고 편리하게 변해가는 세상. 이제는 기술의 진보와 변화가 우리의 편의를 넘어선 느낌마저 들고, 도리어 그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아 조급하고 불안하기까지 하다. ‘아날로그레트로가 유행하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잠시나마 세상의 속도에서 한 발 물러나 여유 있고 넉넉하게 사람의 시간을 가지고픈 마음 말이다. 2021년 봄에 tvN에서 방영하고 있는 어쩌다 사장역시 그런 욕구에 부응한 프로그램이다. 사십대 이상이라면 으레 갖고 있을 동네 구멍가게에 대한 추억을 자극하면서 힐링의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구멍가게라는 공간이 그저 구시대의 추억거리에 불과한 걸까? 이런 의문을 가진 지은이들은 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우리의 일상 속에서 구멍가게가 있어온 모습, 구멍가게가 짊어져온 역할들을 되짚어보고 싶었다. 이렇게 시작된 구멍가게 답사 프로젝트의 결과물이자, 이를 바탕으로 얻은 새로운 생각들을 담은 것이 바로 이 책 구멍가게 이야기.

 

구멍가게의 진짜 이야기는 어디에 있을까?

구멍가게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각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경제적 측면에서 몰락해가는 골목상권의 일부로 보는 시각이다. 변화하는 유통환경의 대표적인 피해자로 구멍가게를 꼽곤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시각은, 구멍가게를 우리 일상의 일부로 기억하며 따뜻했던 행복이 서린 한 편의 동화 같은 추억으로 보는 것이다.

 

구멍가게 이야기의 지은이 박혜진, 심우장은 여기에 구멍가게의 인문학적 존재 방식을 더해 좀 더 입체적으로 구멍가게를 조명하고 싶었다. 그 해법은 다름 아닌 사람살이에서 찾을 수 있다. 일정하게 거리를 둔 타자의 시각이 아니라, 주인공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최적의 방법이 현장 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는 것이었다

 

그 전부터 인터뷰 등을 통해 마을사람들의 이야기를 아카이빙하는 학술 활동을 해왔던 지은이들은, 그렇게 잘 세팅된 공식적인 활동으로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그래서 공적인 지원을 받지 않고 시골마을을 돌며 구석구석 숨은 구멍가게를 예고 없이 찾아 다녀보기로 마음을 모았다.

 

구멍가게 오십여 곳의 진한 이야기가 담긴 르포르타주이자

우리 삶에 바탕이 된, 소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의 근현대사

구멍가게 현지답사는 201111월부터 20146월까지 진행되었다. 답사 지역은 전라남도로 한정했는데, 비교적 변화가 느린 농촌에는 아직 마을공동체가 살아 있어서 오래된 가게가 남아 있을 가능성도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남 지역 22개 시군에 위치한 구멍가게 백여 곳을 방문했다. 마을공동체의 일원으로 마을과 일상을 함께해온 가게라야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삼십 년 이상 한자리를 지켜온 가게에 주목한 결과, 최종적으로 오십여 곳에서 가게 주인과 단골손님을 대상으로 깊이 있는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날것 그대로의 펄떡이는 진짜 이야기를 모을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자 어느덧 구멍가게는 막연하게 그렸던 처음의 모습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닳아빠진 문턱에 스민 숱한 사람들의 발걸음, 찌그러진 막걸릿잔에 밴 이야기들이 구멍가게가 단순히 아름다운 서정이 아닌 핍진한 생활의 현장임을 말해주었다. 그러한 과정을 반복하는 중에 또 다른 많은 의문과 공백이 생겨나기도 했는데, 주로 구멍가게의 현재를 있게 한 이전의 사회문화적 맥락이나 역사적인 변천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런 문제는 다양한 기사와 사료를 조사하고 정리하면서 채워나갔다.

 

택배, 은행, 술집, 놀이터우리 동네 멀티플렉스

구멍가게는 단순히 물건만 파는 곳이 아니다. 우체국?택배업체와 마을을 이어주는 운송대행사, 외상은 물론 돈을 빌려주기도 하는 마을 은행, 마을 입구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어른들의 놀이판, 안주가 무상?무한 리필되는 술집 등, 마을공동체의 구심점이자 연결점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처럼 구멍가게는 마을의 멀티플렉스적 기능을 수행하는데, 그 모두를 아우르는 가치가 있다. 바로 마을공동체에 이야기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주민 누구나 스스럼 없이 들르는 곳이다 보니 마을의 사랑방이 되는데, 이를 통해 서로의 소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나아가 마을의 규칙과 가치를 유지하고 전승하는 장이 된다.

구멍가게가 마을공동체라는 네트워크의 중심인 셈인데, 공동체 내의 다양한 관계들이 연결되는 지점인 동시에 외부세계와의 연결이 이루어지는 네트워크의 결절점, 즉 허브(hub)라고 할 수 있다. 그 덕분에 마을은 닫힌 공동체에 머무르지 않고 외연을 확장할 수 있었다.

 

구멍가게의 이러한 역할과 위상은, 감정과 이성을 적절히 통제하며 중심과 주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중간자의 역할을 잘해왔기 때문에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가게 주인은 마을공동체의 일원에 속하면서도 거기에서 늘 한 걸음 떨어져 있는 주변인이어야 했다.

 

뭐든지 소식정보를 들으려면 여기를 와. 여기를 한 일주일간 빼먹잖아? 그러면 마을에서 초상나도 몰라. 오늘 뭐 결혼식 있어도 모르고. 여기서 정보가 흘러가고 정보가 나오고. 여기 와서 아저씨들이 오늘은 뭔 일 없어요?’ 물어. 며칠 안 온 사람은 뭔 일 있었냐고 묻고. 옛날에 이장님들도 오면 오늘 죽산일보, 죽산소식 뭐냐고 그러고.”

- 담양 영천리 구판장주인아주머니(163)

 

잘해준 것 없어. 잘해준 것이 아니라 내가 더 잘해부러. 저가 농협 있잖아요. 저리 가믄 다믄 십 원이라도 싼 건 사실이여. 근디 구태여 그리 안 가지. 여기서 가져가.

긍께 나도 모르겄어. 저리 가믄 싸고 그렁게 간단헌디. 나도 모르겄어. 미스테리여.”

- 보성 미력슈퍼단골아저씨, 마트를 두고 왜 굳이 더 비싼 이곳에 오냐는 질문에(190)

책의 구성

이 책의 목차에는 답사 과정과 지은이들의 시선이 그대로 녹아 있다. 실제로 답사의 시작이 그러했듯이 1부에서는 구멍가게가 놓인 물리적 환경(마을 안, 마을 입구, 학교 앞 등)을 따라가면서 위치적 특수성과 맞물려 가게가 담당하고 있는 고유한 역할들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구멍가게의 역할은 변화하는 삶의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통시적 측면에서 구멍가게가 흘러온 양상을 짚어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2부에서는 구판장, 상회, 슈퍼, 마트, 편의점에 이르기까지 구멍가게가 내건 다양한 상호에 주목하여 이러한 간판의 이면에서 시대가 바뀜에 따라 나름의 방식으로 변화를 모색해온 구멍가게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았다.

3부에서는 본격적으로 가게 안으로 들어가 좀 더 밀착된 시선으로 구멍가게를 관찰했다. 그리하여 현실적 필요가 만들어낸 가게마다의 참신한 인테리어와, 과자?라면?담배 등 익숙한 상품들에 담겨 있는 생활문화사의 일면을 통해 구멍가게의 또 다른 의미를 찾아보았다.

사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두 사람살이로 귀결된다. 답사를 마무리할 때마다 늘 도달했던 결론도 결국은 이 모두가 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4부에서는 삶의 현장으로서의 구멍가게에 주목해, 구멍가게를 배경으로 치열하게 울고 웃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를 통해 마을공동체 내에서 구멍가게의 존재 의의는 물론, 구멍가게와 더불어 살아온 개인의 삶의 가치를 되짚어보고자 했다.

 

어쩔 수 없음의 고단함과 힘 분투하는 저마다의 삶에 위로를 건네다

이 책이 구멍가게에 대한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지만, 늘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정서는 가게 주인들의 고단함이다. 농촌마을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한다는 것은 농사지을 땅 한 평 갖지 못해, 자식들을 돌보며 벌어먹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마지막 길인 경우가 많았다. 동네 이웃이기도 한 가게 손님을 상대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진상 취객을 상대하는 일부터 외상값 받아내고 떼이는 일, 농번기면 쉴 새 없이 들이닥치는 진흙투성이 술참 손님들한편으로 1990년대 이후로 농촌 인구 감소에 따라 줄어가는 손님과 읍내에 들어선 대형마트 때문에 운영 자체가 힘들기도 하다.

 

동네 아저씨가 뭐라냐믄 자고 인나서 간을 싹 빼갖고 못에다 걸어놓고 나오래. 첨에는 그게 무슨 소린가 했제. 간을 빼갖고 못에다 걸어놓고 나오래니. 그니까는 그만큼 속이 썩어야 되는 거니까, 인내심이 강해야 되니까는 쓸개가 없이 장사를 해라 그 말이여.

이런 가게에서 술 팔아가지고 돈 버는 거는 진짜 귀신도 맘대로 못 쓸 거예요.”

- 구례 죽마리 구판장주인아주머니(382~383)

 

참 나도 가이내 때는 웃는 게 인사였어. 그른디 이른 장사를 허고 인을 치다 보니까 그리 됩디다. 나도 모르게 큰소리가 나지고 된소리가 나지고 그러드라고. 욕도 잘해 나. 이 동네서 욕보 악보 그러믄 나. 통해부러.”

- 여수 풍류주막주인아주머니(432)

 

이처럼 아슬아슬하리만치 곡절 많은 가게 주인마다의 사연을 듣다 보면 안타깝고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이상하게 한 켠에서 힐링이 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는 아마도 동질감과 공감일 것이다. 이분들만큼은 아닐지라도, 저마다 때때로 어쩔 수 없는 선택에 직면하고 그에 따른 고단함을 겪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어쩔 수 없음이, 그 물러설 데 없는 절박함이 또한 삶을 다시금 일으키는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그렇게/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는 삶의 치유제이기도 하다.

 

지은이들이 이 책을 펴내기까지의 과정에도 그러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2014년에 답사를 마치고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건강 문제 등으로 하릴없이 중단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다시 찾은 구멍가게가 문을 닫거나 모습을 바꾼 것을 보고,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글줄에 쌓인 먼지를 쓸어낼 용기를 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세상은 질주만이 능사가 아님을, 이러한 오래된 것들의 가치가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깨달아가게 되었으니, 오히려 이 책이 출간되기에 더 적절한 시기가 된 듯하다.

 

아무쪼록 손바닥만 한 구멍가게가 전부인 채 살아온 분들, 스스로 먼지같이 보잘것없는 인생이라고 말하는 그분들께, 그리고 저마다의 자리에서 열심히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분께 이 책이 한 자락 의미 있는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책속으로

현지답사를 계획하고 처음 길을 나섰을 땐 의욕만 앞설 뿐 별다른 노하우가 없었다.

 

1장 동네 안 구멍가게

연산상회는 동네 구멍가게가 물건만 파는 곳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 보인다. 할머니에게는 어쩌면 맥주 한 병, 담배 한 갑 파는 것이 부수적인 일인 것도 같다. 그보다는 불편함 많은 작은 마을이 필요로 하는 부분들을 시원스레 해결해주며 이웃의 소소한 일상을 채워주는 데에서 존재 의미를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 시시콜콜한 잔심부름이 성가실 것도 같아 귀찮지 않으시냐며 수고비라도 좀 받아야 할 것 같다고 하자 이렇게 말씀하신다.

 

안 받아. 받아서 뭣혀. 그것도 좋은 일이다 하고 살제. 내가 살았응게 그것도 해주는 것이제. 죽으믄 못 헌다, 그것도 다행이다 생각하고 있는디. 왜 그냐믄 그것도 못 하므는 참말로 아무것도 못 해. 긍게 누가 심부름 시키믄 그도 헐만 헝게 시킨다, 좋드라고 나는. 그렁게 해줘.”

 

그나마 살아 있어서 해줄 수 있다며 그런 심부름도 할 만해 보여서 시키는 걸 테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환하게 웃으시는데, 듣고 있던 우리도 덩달아 마음이 환해졌다. P. 52

 

1장 동네 안 구멍가게

긍게 내가 영감 앞에 죽으야 혀.”

돌아보면 할머니의 인생에는 한 번도 완전한 울타리가 없었던 것 같다. 구멍 난 곳이 채워질 만하면 내면의 쓸쓸함은 더 깊어졌고 결국엔 덩그러니 혼자가 되었다. 지금의 행복도 완전한 것은 아니어서 언제고 남편이 떠나면 끈 떨어진 연처럼 홀로일 수밖에 없으니 더없이 불안하고 두렵다. 그래서 할머니는 남편보다 먼저 가고 싶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외로움으로 허비했기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는 가족에, 세상에 연결되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버려졌다는 상처 때문에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눈을 감고 싶은 마음이 그토록 간절한지도 모르겠다.

할머니의 그런 무의식이 에 대한 집착을 낳은 건 아닐까. 주름진 목과 굽은 허리춤에 연결된 줄, 힘없는 팔다리를 일으켜 세워주는 줄, 집 안 곳곳의 소소한 일상에까지 연결되어 있는 줄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할머니의 두려움과 걱정을 잠재우는 상징적인 장치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줄에만 매달아두면 안심할 수 있듯이 당신의 인생도 누군가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게 묶어두고 싶은 것이다. 긴 줄에 연결된 열쇠 목걸이를 하고서 인터뷰 내내 몇 번이나 영감 앞에 죽어야 한다를 주문처럼 되뇌시던 할머니, 세상과 하직하는 순간만이라도 홀로이고 싶지 않은 그의 마음에 코끝이 시큰했다. 그것이 곧 사람에 대한 간절함이라는 걸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P. 59~60

 

4장 마을공동가게에서 구멍가게로

뭐든지 소식정보를 들으려면 여기를 와. 여기를 한 일주일간 빼먹잖아? 그러면 마을에서 초상나도 몰라. 오늘 뭐 결혼식 있어도 모르고. 여기서 정보가 흘러가고 정보가 나오고. 여기 와서 아저씨들이 오늘은 뭔 일 없어요?’ 물어. 며칠 안 온 사람은 뭔 일 있었냐고 묻고. 옛날에 이장님들도 오면 오늘 죽산일보, 죽산소식 뭐냐고 그러고.”

- 담양 영천리 구판장주인아주머니 P. 163

 

5장 구멍가게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잘해준 것 없어. 잘해준 것이 아니라 내가 더 잘해부러. 저가 농협 있잖아요. 저리 가믄 다믄 십 원이라도 싼 건 사실이여. 근디 구태여 그리 안 가지. 여기서 가져가.

긍께 나도 모르겄어. 저리 가믄 싸고 그렁게 간단헌디. 나도 모르겄어. 미스테리여.”

- 보성 미력슈퍼단골아저씨, 마트를 두고 왜 굳이 더 비싼 이곳에 오냐는 질문에 P. 190

 

7장 구석구석 클로즈업

해남의 해성슈퍼는 홍보 포스터를 활용해서 이 가게만의 재미있는 풍경을 만들어냈다. 해성슈퍼의 벽에는 소주 홍보 포스터가 유난히 많이 붙어 있다. 어여쁜 연예인이 소주잔을 든 사진이 한쪽 벽면을 모두 채울 정도다. 일반적으로 그러하듯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 포스터를 붙였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벽은 뭣으로 발라졌든디 드럽길래, 술 장시가 갖고 와서 내가 이쁜 걸로 싹 발라분 거여. 도배해부러. 저렇게 이쁜 아가씨 어디서 봤소? 누가 보믄 그래. 와따 어서 이런 걸 많이 주서놨소?”

 

주인할머니에게 소주 홍보 포스터는 멋진 도배지였다. 오래된 가게를 단장하던 중 마침 소주 유통업체에서 홍보 포스터를 가져왔기에 여러 장 얻어서 새로 벽을 바른 것이다. 덕분에 이 소주는 다른 어떤 상품보다도 홍보 효과가 톡톡하고, 할머니의 가게는 한결 깨끗하고 발랄해졌으니 윈윈 전략이 따로 없다. P. 268~269

 

10장 구멍가게, 주막을 품다

막걸리 한 병에도 반찬 다 리필해주고 그렁께 사람들이 그 맛에 오지. 한마디로 시골 인심이다 이거지. 근디 요 안주 한 점만 맛 보쇼. 둘이 먹다가 둘이 죽어도 몰라. 어트게 맛있는지. 다른 가게 가믄 막걸리 한 병 묵고 그냥 있으믄 안 되는데, 여그는 한잔 묵고 점심때 되믄 점심도 주고 그래. 공짜로.

이 양반이 어디 멫백 미터 가서 장사를 다시 허믄 우리는 고리 따라가제. 단골이라는 게 터가 중요한 게 아니고 여기 떠나서 이쪽으로 옮기믄 따라가게 돼 있어. 말하자믄 주인 따라간다 그것이여.”

- 나주 안산부녀회슈퍼단골아저씨 P. 353~354

 

10장 구멍가게, 주막을 품다

동네 아저씨가 뭐라냐믄 자고 인나서 간을 싹 빼갖고 못에다 걸어놓고 나오래. 첨에는 그게 무슨 소린가 했제. 간을 빼갖고 못에다 걸어놓고 나오래니. 그니까는 그만큼 속이 썩어야 되는 거니까, 인내심이 강해야 되니까는 옛날부터 그 속담이 내려오는 거래. 자고 나서 간을 빼서 못에다 걸어놓고, 긍게 쓸개가 없이 장사를 해라 그 말이여.

이런 가게에서 술 팔아가지고 돈 버는 거는 진짜 귀신도 맘대로 못 쓸 거예요.”

- 구례 죽마리 구판장주인아주머니 P. 382~383

 

12장 구멍가게에서 찾은 삶의 무늬

구멍가게는 단순히 물건만 파는 곳이 아니라, 공동체 내의 다양한 관계들이 연결되는 지점인 동시에 외부세계와의 연결이 이루어지는 네트워크의 결절점, 즉 허브(hub). 가게라는 공간이 마을 안팎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연결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구멍가게가 잘 짜인 프로그램만큼이나 감정과 이성을 적절히 통제하며 중심과 주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중간자의 역할을 잘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가게 주인은 마을공동체의 일원에 속하면서도 거기에서 늘 한 걸음 떨어져 있는 주변인이어야 했다. P. 444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 저자 이미경|남해의봄날 |2020.06

그동안 구멍가게를 찾아 나섰던 날들을 떠올리면 한적한 시골이나 혼잡한 도심의 언저리마다 오아시스 같은 구멍가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허전했던 마음의 틈이 어느새 위로 받고 다시 따뜻하게 차올랐습니다. 지금까지 만났던 구멍가게와 주인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프롤로그_오늘도 열려 있는 구멍가게를 찾아서중에서

 

가게가 헐리지 않아 다행이다 싶다가도 더 편리하고 깨끗한, 비싼 건물들이 들어서면 이 가게가 초라해 보이지 않을까 걱정이 돼요. 아파트가 들어서도 자동차로 지하주차장을 통해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길 앞의 조그만 구멍가게가 안중에나 있을까 싶어요. 장사가 더 잘되는 건 바라지도 않아요. 공원 가는 길목이라 가게를 찾는 손님이 끊이지 않아 그나마 다행인데 지금처럼만이라도 유지되면 좋겠어요.”

---정다운슈퍼중에서

 

제게 이 작은 가게는 어느 문화유적 못지않게 곧고 당당해 보입니다. 화분마다 옹기종기 한가득 핀 꽃 사이로 주인 어르신의 부지런한 손길도 느껴지고, 숱이 풍성한 잎새를 자랑하여 은신처로 안성맞춤인 나무 사이에는 어딘가 노란 애벌레가 기어 다니고 새 둥지도 품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오가던 사람들도 그 푸르름과 여유로운 품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화분에 물을 주고 돌보는 소소한 일상이 정겹습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그 정성을 떠올리면 마음까지 넉넉한 위안을 받습니다.

---칠성면에서중에서

 

밥은 먹었는지, 다음에 오면 집에서 자고 가라고 멀리서 찾아온 낯선 손님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건네는 아주머니의 말씀이 더할 나위 없이 살가웠습니다. 잘 가라며 제 손을 맞잡은 투박한 손끝에선 강하고 단단한 삶이 전해졌습니다. 틈틈이 농사일도 하고 한평생 가게를 지키며 부지런히 하루하루 살아왔던 시간을 아주머니의 손이 말해 주는 듯합니다.

---대율정류소 가게중에서

 

이문에 따라 생겼다 쉽게 사라지기도 하는 도시의 편의점들과 달리 부흥슈퍼는 할머니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곳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 미래를 모두 담아 구멍가게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 애틋한 매력이 이미 저에게도 숙명과도 같은 삶의 한 부분이 되어 버렸습니다.

---부흥슈퍼중에서

 

그림 속 연화슈퍼는 녹색 대문, 빨간 우체통, 나무 의자, 노란 진열대 위에 올망졸망 놓인 소박한 물건이 봄 햇살에 꽃처럼 반짝입니다. 봄꽃에 둘러싸인 가게는 속세와 단절된 듯 고요해 월든 호숫가에 지은 작은 오두막을 떠오르게 합니다. 구멍가게로 가는 길, 팍팍해진 삶에 쉬어 가는 여백의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연화슈퍼중에서

 

구멍가게 그림들이 단순한 기록과 보관의 의미를 넘어 어떻게 하면 시대와 문화를 아우르고 함께 공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 봅니다. 구멍가게를 아끼고 더 이상 우리 곁에서 사라지지 않게 지켜지기를 소망하는 마음들이 모여 작은 힘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라며 이제 그 희망을 기둥 삼아 그동안 모아 두었던 씨오쟁이를 엽니다. ---에필로그_소소하지만 기품 있는 구멍가게, 오래도록 함께할 수는 없을까?중에서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저자 이미경|남해의봄날 |2017.02

구멍가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행복을 파는 곳/ 글 정근표|그림 이미경|샘터(샘터사) |2009.01

밀양댁이 외상값을 갚겠다고 장부를 들고 왔었다. 보통 한 달에 한 번 결산을 했는데 주판을 놓던 어머니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한 번 계산을 했다. 그러다가 외상값이 적힌 수첩 한 장이 찢겨나간 것을 알았다. 그걸 알면서도 어머니는 행여 상대방이 난처해질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머니가 알고 있다는 걸 눈치 챈 밀양댁이 지레 겁을 먹고 단골을 옮긴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그걸 예사로 넘기지 못하고 밤잠을 못 이루며 끙끙 앓았다.

 

그 아줌마 안 온다고 장사가 안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내가 장사 안 될까 봐 이러는 줄 아니? 장사 때문에 친구 잃은 게 원망스러워서 이러지.” - '단골손님' 중에서

 

상기의 도시락이 양은이 아니라 사발 공기라는 것을 알만한 친구들은 다 알고 있는데도 상기는 끝내 돌아앉지 않았다. 나는 시작이 어렵지 한번 같이 먹으면 상기도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며 상기 밥공기를 친구들이 둥그렇게 앉아있는 쪽으로 옮겨 놓기 위해 잡았다. 그 순간 상기와 나 사이에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상기는 싫다고 하고 나는 괜찮다고 하며 서로 밀고 당기다가 손에서 미끄러진 밥공기가 교실 바닥에서 산산조각이 나며 깨어졌다. 시커먼 보리밥 덩이가 반찬종지에서 쏟아져 나온 멸치젓갈과 한데 뒤엉켜 나뒹굴었다. 상기는 초라하게 널브러진 도시락이 창피해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밖으로 나가 버렸다. - '도시락' 중에서

 

그 시절 우리는 목욕탕에 자주 가지 못했다. 집에 목욕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여름에는 보통 등목으로 목욕을 대신하고 가을에서 봄에 걸쳐 서너 번 목욕탕을 찾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서 두꺼운 내복을 입는 한겨울의 설날 어귀에 목욕을 가면 무릎과 팔꿈치, 그리고 뱃살이 튀어나온 부분에는 눈에 보일 정도로 때가 딱지처럼 더덕더덕 붙어있었다. 우리는 탈의실에서 탕으로 들어갈 때마다 행여 누가 볼세라 때가 낀 부분을 수건으로 가리고 주위 눈치를 보곤 했다. - '부모' 중에서

전라남도 일대 구멍가게 백여곳을 직접 다녔습니다

'구멍가게 이야기' 펴낸 박혜진 작가... 공간은 없어져도 말은 남기고 싶어서

낯선 사람이 '구멍가게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고 녹음기와 카메라를 멘 채 불쑥 가게 문을 열면 어떻게 반응할까? 설령 마주 앉아도 선선히 살아온 세월을 들려줄까?

 

수줍음을 잘 타고 말 주변도 없는 박혜진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장성군의 연산상회를 찾아갔을 때 뜻밖에도 근심은 스르르 풀렸다. 국문과 대학원 선배인 심우장이 주차를 하러 간 사이, 박혜진은 가게 문을 사이에 두고 주인 할머니와 마주쳤다. 순간 그는 당황해 "오래된 가게 얘기 들으러 왔어요"라고 쭈뼜거리며 말했다. 놀랍게도 할머니는 "나 힘들게 살아왔어" 하며 박혜진의 손을 안으로 이끌었다.

 

"아버지가 환갑 나이에 아들 본다고 후처를 얻었어. 그때 나는 결혼했는데 전쟁이 나서 남편과 생이별했지. 기댈 때는 친정뿐이어서 돌아오니 다들 재혼하라고 성화야, 할 수 없이 이곳 장성으로 시집 왔는데 막막했지. 남편하고 또 잘못되면 어떡해, 그래서 가게를 하나 얻어달라고 했어, 그때부터 평생 이 가게를 붙들고 산 거야."

<구멍가게이야기>의 표지디자인 석운디자인의 이석운 실장의 작품. 나주 금성슈퍼를 모델로 그렸다. <책과함께> 제공

 

그렇게 시작한 얘기는 가을바람이 어둑해지고 달무리가 가게 쪽창에 한두겹 쌓일 때가 돼서야 끝났다. 박혜진과 심우장은 그날, 연산상회를 떠나 광주로 되돌아오면서 '구멍가게 작업'을 시작하길 잘했다고 서로 격려했다. 이 작업은 심우장이 툭 꺼낸 한 마디가 계기였다.

 

"박 선생, 우리 구멍가게 이야기 들으러 다녀볼까요?"

"글쎄요, 왜 하필 구멍가게? 가서 뭘 듣지요?"

 

국문학을 전공한 박혜진과 심우장은 마을회관이나 노인정에서 '이야기를 채록'한 경험이 많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쳐다보는 곳에서 촬영을 하고 녹음을 하면 아무래도 내밀한 얘기가 나오기 어려워 아쉬움이 컸다.

 

"자기 삶을 깊이 있게 들려줄 수 있는 장소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구멍가게 아주머니들은 거기선 다 주인공이니까요!"

 

그렇게 박혜진과 당시 광주과학기술원의 교수였던 심우장은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어떤 얘기를 이끌어내고 그 기록으로 무엇을 만들지 모든 게 막연했다. 두 사람은 일단 구멍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기로 했다. 연산상회는 201111월 그런 마음으로 찾아간 세 번째 가게였다.

2011년에 시작된 구멍가게 작업

나주 금성슈퍼 표지디자인의 모델이 된 가게다 박혜진 제공

 

이 둘은 2011년 가을부터 2014년 여름까지 3년간, 전라남도에 흩어진 100여 곳의 구멍가게를 찾아다녔다.

 

오래된 가게를 찾는 일은 어려웠다. 무작정 나섰다가 시간을 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어느 지역에 가든 면사무소나 우체국으로 직행했다. 취지를 설명하고 오래된 가게를 물었다. 어렵사리 가겟방에 자리를 잡으면 2시간 안팎 이야기를 나눴고 녹취는 풀어내는 데만 10시간 이상이 걸렸다. 전라남도 말맛을 살려내려고 몇 번을 돌려 들었다.

 

그렇게 많은 곳을 다니며 듣게 된 구멍가게 얘기는 묵직했다. 담양군 영천리 구판장 아주머니는 "새벽 다섯 시면 문을 열고 밤 열 시에 문 닫는데 수십 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았어. 아이들과 한 번 놀러 가 보지도 못했고 입학식 졸업식에도 못 갔지. 군대 갈 때도 잘 다녀와라, 제대 할 때까지 면회도 못 갔어. ? 가게는 마을의 가게나 마찬가지야, 내 맘대로 열고 닫으면 안 돼"라고 했다.

고흥 호산리 가게 박혜진의 작품이다. 박혜진제공

 

장성군의 아곡상회에서 만난 아주머니는 자기 인생을 '진돗개'라고 했다. 대구에서 시집온 아주머니를 기다린 건 남편의 병든 몸이었다. 맞선 볼 때는 몰랐지만 신경병 환자였다. 결국 생계는 당신의 책임이 되었다. 막걸리주막을 사들여 아곡상회라고 이름짓고 평생 그 자리를 지켰다. 구멍가게 벌이만으로는 입을 감당할 수 없어 틈틈이 농사짓고 소도 키우고... 그래서 아주머니는 "아저씨 돌봐야지, 소 봐야지, 가게 봐야지. 완전히 진돗개가 돼 부렀제"라고 했다.

 

박혜진이 이렇듯 사람들의 인생살이 이야기에 빠져 살게 된 데는 계기가 있었다. 건국대 국어국문과에 입학해 구비문학반으로 활동하던 그는 대학 1학년 때 충청북도 단양의 산골로 학술답사를 떠났다.

 

그곳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소백산 설화'에 이어 청하지도 않은 당신의 어린 시절 얘기를 꺼내놓았다. 서너 명이 앉으니 무릎이 닿는 작은 방에서 할아버지는 손때 묻은 명심보감과 천자문을 보여줬다. 표지는 누렇게 반들거렸고 안에 있는 글자들은 빛이 바래있었다.

 

"밭에 가서 김매야지, 소 꼴 거둬야지, 겨울엔 장작 해야지. 농사일 돕느라 나는 학교를 못 다녔어. 밤에 아궁이에 장작불 때면서 나하고 동생이 그 불빛에 천자문하고 명심보감을 보고 또 봤어. 이게 나한테 보물이야."

 

마을 여기저기 굴뚝에서 저녁 짓는 연기가 실핏줄처럼 올라올 때 시작한 할아버지의 사연은 늦은 밤까지 끝나지 않았다. 대학 새내기 박혜진은 할아버지의 얘기에 흠뻑 취했고 주름깊은 눈매에서 숭고함을 보았다. 어쩌면 그날의 이야기 마당이 박혜진으로 하여금 늘상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이를 글로 써내게끔 했는지도 모른다.

무안 해광상회 박혜진의 작품 박혜진 제공

 

박혜진과 심우장은 그렇게 3년간 풍부한 밑감을 모았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여러 자료도 찾아냈다. 처음 시작은 "일단 오래된 가게 얘기를 들어보자"였지만 자료가 쌓이니 어떻게든 책으로 내고 싶었다. 답사 중간중간에도 두 사람은 작업 방향을 놓고 치열하게 토론했는데 책의 방향을 정하는 과정 또한 뜨거웠다.

 

"<화림리 구멍가게> 할머니는 50년 가까운 가겟방 삶을 '아슬아슬'이 아니라 '아실아실'하다고 했잖아요. <영천리 구판장> 아주머니는 "인생을 다 바친 곳. 창살없는 감옥"이라고 했고, 이것만큼 살아있는 얘기들이 어딨어요? 이런 삶을 그려내는데 집중하지요."

"영암의 <금월상회>는 하나로마트에서 다 묵고 난 찌꺼기를 주서 먹는게 자기네 삶이라고 했잖아요. 모녀상회는 "농협마트에서 세일한다고 광고해 하다못해 홈키파 하나도 세일해부러 우리를 완전히 죽여부렀어, 죽여만불믄 되는디 죽여갖고 밟아버려 완전히 너무 해 분다니까"라고 했지요. 중요한 건 이런 현실의 원인을 분석해야돼요. 우린 문학도이면서 연구자잖아요."

"그러면 대형마트 생기면서 동네 골목상권과 전통시장 무너진다는 그 흔한 보고서와 다를 바가 없잖아요."

 

그렇게 두 사람은 책의 방향을 놓고 여러 날을 토론했다. 결론은 '균형'. '개인의 삶과 생활문화사의 무게추를 맞추자, 구멍가게 주인들의 삶을 그려내되 사회적 맥락을 배경으로 그려내자'였다.

 

이렇게 방향을 정하고 1년 반에 걸친 작업 끝에 201512월 원고지 약 1200매 분량의 초안이 나왔다. 그런데 책 <구멍가게 이야기>(책과함께)20214월 세상에 나올 때까지 무려 54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공교롭게도 심우장과 박혜진의 배우자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건강이 나빠졌다. 가족을 돌보는 일이 중요하니, 초안의 수정 작업은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불과 3년 사이에 사라진 구멍가게들

보성 남양상회 박혜진의 작품 박혜진제공

 

2017년 어는 날 박혜진은 광주에서 장성 나들이길에 올랐다. 광산교차로를 지날 때 박혜진은 자그만 흥분을 느꼈다. 그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특별히 정들었던 아곡상회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게 앞에 다다라보니 '행복슈퍼'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물어보니 아주머니는 가게를 넘기고 서울 아드님 집으로 올라가셨다고 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아성상회만이 아니라 장성군의 오랜 된 가게들, 43년 동안 한자리를 지켰던 삼태상회가 문을 닫았고 55년간 하루도 문을 닫지 않았던 아치실가게도 없어졌다. 연산상회도 백양슈퍼편의점도 사라져버렸다.

 

이런 상황은 다른 군도 다를 바 없었다. 53년을 버텨온 장흥의 하꼬방가게도 31년이나 된 영암군의 세흥상회도 51년을 영업한 나주시의 금성슈퍼도... 깊이 있게 얘기를 나눈 58군데에서 무려 24군데가 문을 닫은 것이었다. 불과 3년 사이에.

 

박혜진은 마음이 급해졌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한두 해가 지나면 남은 가게들의 운명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박혜진은 수북이 먼지 쌓인 원고를 꺼내들었다. 계속 묵히면 자기 인생사를 털어놓으신 분들에게 죄송스럽기도 하고 원고의 가치도 떨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작업의 흐름은 끊긴 상태였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초고만 되풀이 읽으며 생각을 삭히던 2020, 남편이 용기를 주었다. 그는 어떻게든 책으로 만들자고 격려했다. 남편은 스스로 나서서 연락이 끊어졌던 출판사에게 원고를 보냈다. <책과함께> 출판사에서는 "꼭 책으로 내고 싶다며 글을 완성해달라"고 답을 줬다.

 

그날부터 박혜진은 하루 10시간씩 써나갔다. 미심쩍은 녹취는 다시 돌려 듣고 쓰다가 막히면 구멍가게 어머니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마음을 북돋았다. 그렇게 박혜진은 2020년 가을, 초고보다 500매가 늘어난 1700매 가량의 원고를 완성했다.

 

10년이 걸린 여정의 마침표, <구멍가게 이야기>

담양 강쟁상회 내부 오래된 진열장과 술탁자가 정겹다 박혜진제공

 

그런데 막상 책을 편집하려고 보니 아쉬운 게 사진이었다. 얼굴 나오는게 싫다고 손사래치시는 분도 많았고 가게 안이 침침해 쨍한 사진을 얻기 힘들었다. 대개 10평 안되는 공간에 진열장과 술탁자까지 있다보니 가게 전경을 담기도 어려웠다.

 

박혜진이 사진 때문에 끌탕을 하며 편집 과정을 마무리지을 즈음 "구멍가게 주인들이 자신들의 얘기를 책으로 펴내는 데 동의했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처음 만나서 구멍가게 얘기를 들을 때는 출판을 전제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얘기에는 비밀스러운 가정사도 있고 자식들에게는 불편한 얘기도 있었다.

 

결국 박혜진은 전라남도를 다시 한 바퀴 돌며 일일이 허락을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아곡상회였다. 아주머니가 서울로 올라가셨고 핸드폰 번호가 바뀌었는지 연락이 안되었다. 어렵사리 아드님 전화번호를 구해 연락했지만 "우리는 동의하지 않으니 아곡상회 얘기는 빼달라"고 했다.

 

아곡상회 아주머니는 박혜진이 제일 애착을 가졌던 분 중의 하나고 아곡상회의 삶을 들어내면 책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박혜진은 마음을 담아 아드님에게 메일을 보냈지만 오래도록 답이 없다가 정확히 20201225일 크리스마스날, '출판해도 좋다'는 답신이 왔다.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20214월 드디어 <구멍가게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다. 2011년 시작해서 10년이 걸린 여정이었다. 대학교 때는 소설을 쓰고 싶었던 박혜진, 서울대 대학원에서 고전소설을 공부하며 이야기를 듣고 기록을 남겼지만 책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박혜진은 좋은 글을 접하면 "나도 이런 글을 써야지" 하는 시샘으로 문장을 벼려왔다. 그런데 10년을 걸려 펴낸 <구멍가게 이야기>에는 구멍가게 사람들의 삶을 받드는 마음으로 좋은 문장을 담아냈다.

 

"긍께 여자도 강하믄 다 그러고 사는 거여. 남자지지 않애." (삼태상회)

"나한테 주어진 삶잉게 살아야 되고 어쩔 수 없고. 어디 가서 바꿀 수도 없고." (아곡상회)

"외상 못 받은 건 다 포기했어요. 마음 편안해요 포기해 부리니까." (현순상회)

"나는 죽으믄 도로 여자가 될란다. 알뜰살뜰 가정 한 번 꾸려보게" (운농수퍼)

"이런 가게에서 술 팔아 갖고 돈 번 거는 진짜 귀신도 맘대로 못 쓸 거예요." (죽마리구판장)

10년간 구멍가게를 순례한 박혜진은 다음에는 어떤 여정에 오를까? 그 길에서 박혜진이 만날 삶의 문장들은 어떤 것일까?

 

<못다한 이야기>

박혜진은 <구멍가게 이야기>를 펴내며 표지디자인에 대해 고민했던 과정을 들려주었다.

 

"표지그림은 나주 금성슈퍼를 모델로 했습니다. 사실 구멍가게를 소재로 한 책들이 대개 구멍가게 일러스트를 표지에 내세우는 식으로 디자인되었기 때문에 표지 시안을 받아보고 저는 조금 망설였어요. 일반적으로 구멍가게를 '추억'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한 상황에서 표지까지 비슷한 분위기와 이미지로 가면 그 전형성에 또다시 갇혀버리는 것 같았어요.

 

책의 내용은 많이 다르지만, 구멍가게를 테마로 한 유명작이 있어서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초고 이후에 작업이 중단되지 않았다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겠죠. 후일담을 들어보니 디자이너 분은 전작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계셨더라구요. 표지 시안으로 일러스트가 아닌 사진을 활용한 것도 있었는데, 주변의 반응을 참고해서 지금의 안으로 결정했습니다."

 

박혜진은 또 책을 엮는 과정의 협동작업에 대해 많은 경험을 했다며 저자의 인사말에는 구멍가게 어르신들에 대한 감사 인사만을 담았는데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출판사 '책과함께' 이정우 팀장님에게도 고맙다는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박혜진이 찾아다닌 전라남도 일대 구멍가게 지도 한 곳 한 곳을 찾아다녔다. <책과함께> 제공

 

민병래(pmsigni)/ 오마이뉴스

 

기억 속 구멍가게, 할 말을 잃게 하는 풍경

[서평] 이미경의 펜화 수상집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구멍가게'라면 미국 작가 폴 빌라드(Paul Villard)'위그든 씨의 사탕가게'를 빼놓을 수 없다. 작가의 유년 시절 기억이 투영된 아름다운 수필 '이해의 선물'에 나오는 이 가게는 한 어린이가 만나는 세상의 일부이면서 어른의 이해와 관용이 무엇보다 소중한 선물이라는 걸 깨우쳐 준다(관련 기사 : 이해의 선물).

 

'교환'의 개념을 이해했으되 그걸 매개하는 ''에 대한 이해가 모자랐던 한 어린이에게 베푸는 위그든씨의 넉넉한 마음이 선사해 준 사탕가게의 추억은 작가에게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았다. 그가 물려준 유산은 작가의 삶의 방식으로 이어졌다.

 

사탕가게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유년시절의 구멍가게를 기억한다. 그곳은 처음으로 우리가 세상과 '거래'하던 공간이며 몇 푼의 동전으로 교환된 감미로움의 원천이었다. 알록달록한 포장지 안에, 혹은 유리 상자 속에 든 사탕과 빵 따위가 제공하는 즉각적 쾌락의 마법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했다.

 

구멍가게, 그 유년의 추억 속으로

그 구멍가게의 모습은 한결같았다. 갈색이나 녹색의 페인트를 칠한, 윗부분만 유리를 단 나무 미닫이문은 뻑뻑해서 열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유리창엔 담배가게 표지가, 하얗게 회칠한 외벽에는 먼지가 쌓인 빨간 우체통이 걸려 있었다.

 

내 유년 시절의 구멍가게 앞에는 커다란 석유드럼통이 놓여 있었다. 나는 가끔씩 빈 됫병을 들고 석유를 '받으러'(술이나 석유를 사오는 걸 경상도에선 '받으러 간다'고 한다) 가곤 했다. 가게 주인은 익숙한 솜씨로 드럼통을 기울여 석유를 따라 주었는데 그 강렬한 기름 냄새는 마치 미지의 문명 세계, 그 낯선 조짐 같았다.

 

가게 앞에는 여럿이 앉는 길쭉한 일자형의 나무의자나, 평상이 놓여 있기 마련이었다. 비가 오면 꼼짝없이 젖어야 했던 평상은 언제부턴가 비닐 장판을 두르게 되었다. 가게 앞에는 빨강과 파랑, 진녹색이나 노란색 음료와 주류 상자가 쟁여 있었는데 그것은 그 집의 매출을 가늠하는 지표이기도 했다.

남해슈퍼(2013). 앞의 드럼통에 석유가 담겨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에어컨 실외기와 석유드럼통은 어울리지 않으니까 말이다. 이미경

서산에서(2015). 구멍가게의 슬레이트 지붕에서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유신시대를 만날 수 있다. 이미경

정선 남면가게(2012). 가을의 산골 마을이라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이미경

구멍가게 앞에 당도한 세월은 가게의 모습을 조금씩 바꾸어 냈다. 대부분 상호가 없던 가게가 '○○상회' 같은 간판을 달다가 '○○수퍼'가 되는 세월 말이다. 나무 의자가 등받이가 널따란 플라스틱 의자로 바뀌거나 헌 소파가 덩그렇게 가게 앞을 장식하게 된 것도 그 무렵이다.

 

뻑뻑한 나무문이 알루미늄 새시 문으로 바뀌고 얼음과자를 넣는 길쭉한 냉장고가 가게 앞으로 나오고, 커피 자판기를 들이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이후의 풍경이었을 것이다. 가게 앞에 음료수 회사의 상표를 단 얼룩덜룩한 파라솔이 세워지면서 그 주변에 둘러앉아 '푼돈으로 한잔' 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기억 속 구멍가게로 가는 길'

소주와 콜라를 탄 이른바 '소콜'이나 '백주'라는 이름의 값싼 고량주를 마시면서 젊은이들은 젊음의 객기를 풀곤 했다. , 그 무렵에는 주머니가 가벼운 청년들이나 주민들은 '외상'으로 물건을 살 수도 있었다. 가게의 돈통 위에 얹힌 금전출납부에는 그런 외상 목록이 빽빽했다.

 

이제 그런 구멍가게는 아주 궁벽한 시골마을이 아니면 보기 힘들어졌다. 엔간하면 편의점이 문을 여는 세월이니 성장의 길목을 스쳐갔던 구멍가게의 추억은 점점 바래져갈 수밖에 없다. 요즘 시골에는 구멍가게조차 없는 마을도 적지 않은 것이다.

 

일간지 화보를 읽다가 그 시절의 구멍가게 그림에 나는 넋을 잃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탄성을 지르다가 나는 단박에 꽂혀서 그 '그림책'을 샀다. 이미경의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이다. 이 책은 작가가 사라져가는 소중한 것들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으로 전국 구석구석의 작고 낡은 구멍가게를 찾아 화폭에 재현한 펜화집이다.

 

작가는 둘째 아이를 갖고 퇴촌으로 이사해 산책을 다니다가 퇴촌 관음리의 구멍가게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후 20여 년 동안 그는 전국 곳곳을 찾아다니며 수백 점의 구멍가게를 화폭에 담아 사람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전했다.

 

그의 구멍가게도 시간의 세례를 피하지 못했다. 8년 전에 다녔던 길을 되밟았는데 '오래 전 길에서 만난 가게도, 어르신도, 고목도 넓게 확장된 도로와 새로 지어진 건물들 사이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이제는 전설이 된 가게들을 소개하는 것은 더 늦기 전에 우리와 한 시대를 살았던 소소하고 소박한 존재들과 눈빛을 나눌 기회''기억 속 구멍가게로 가는 길'을 독자들 앞에 펼쳐놓은 것이다.

 

그의 구멍가게 그림 속에 담긴 '시간의 흔적''따스함'은 의례적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이른바 싱크로율 100%의 공감과 그리움으로 독자들에게 추억의 시간과 공간을 복기해 주기 때문이다. 그림과 그림 사이에 짤막하게 붙인 글과 함께 아크릴 잉크와 펜으로 작업한 그림은 순식간에 우리를 수십 년 전의 시간여행으로 초대한다.

덕평리에서(2014). 산수유 꽃그늘이나 목련이 흐드러지고, 살구꽃, 벚꽃이 밝히는 잃어버린 시대의 풍경 앞에서 가끔씩 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미경

양촌리에서(2014). 산슈유 꽃그늘이 화사한 이 구멍가게는 전형적인 1970년대 슬레이트 지붕을 하고 있다. 이미경

청송수퍼(2008). 작가는 비 오는 겨울 밤 마주한 청송수퍼는 서슬 푸른 1980년대 시대상을 한눈에 가늠케 하는 슬픈 역사의 한 장면 같았다고 했다. 이미경

 

구멍가게의 지붕도 다채롭다. 슬레이트와 함석, 그리고 시멘트기와를 얹은 지붕의 모양도 맞배지붕, 팔작지붕, 우진각지붕 등으로 갈리는데 이들 소재와 모양은 시대와 긴밀히 이어져 있다. 슬레이트 지붕에서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유신시대를 만날 수 있다. 뒤에 그 지붕은 녹색이나 주황색 페인트가 입혀지기도 했다.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구멍가게 주변에 서 있는 꽃나무다. 산수유 꽃그늘이나 목련이 흐드러지고, 화사한 살구꽃, 은은한 벚꽃이 밝히는 잃어버린 시대의 풍경 앞에서 나는 가끔씩 말을 잃곤 했다. 내 기억 속의 구멍가게에도 버드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작가는 숱한 구멍가게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찾아내 거기 담긴 단란한 가족의 삶과 세상을 불러낸다. 그가 도란도란 뇌어주는 '달고나'의 추억과 고향, 아이를 낳고 그림을 그리는 성년의 삶, 구멍가게와의 만남은 작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동시대를 살아왔던 모든 사람들의 추억, 그리고 삶과 겹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들여다봐도 구멍가게 그림은 질리지 않는다. 볼 때마다 그림 속 풍경이 환기해 주는 기억의 갈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가의 상상을 통해 이루어진 그림이 아니라, 존재했거나 지금도 남아 있는 실제의 가게이기 때문이다. 상상은 현실 이상의 리얼리티를 보일 수는 있어도 현실의 진정성을 따를 수는 없는 것이다.

 

작가는 전국에서 만난 구멍가게 그림을 통해서 잃어버린 풍경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그림책이 단순히 추억과 연민에 머물지 않고 있는 것은 그 맥락 속에 담긴 삶을 소환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가가 위로 솟구치는 '수직'이 아닌 '평온하고 따뜻한, 수평을 지향하는 마음'을 그림에 담는 까닭과도 이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왜 작고 오래된 쇠락하는 가게 풍경을 그리느냐고, 인류의 가치관을 대변할 좀 더 근사하고 웅장한 상징물을 그리라고 한다. 기억의 향수에 머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더 높이 수직을 보라 한다. 그렇지만 왕조의 유물, 역사에 기록된 위대한 상징물보다 나를 더 강렬히 잡아끄는 것은 보통의 삶에 깃든 소소한 이야기다. 사람 냄새나고 매력 있게 다가온다.

 

수직에서 느껴지는 경쟁과 성공 지향의 이미지와 엄숙함, 숭고함이 나는 낯설다. 그저 동시대의 소박한 일상이나 사람과 희망에 의지하여 오늘도 작업에 임할 뿐이다. 정겨운 구멍가게, 엄마의 품, 반짇고리 같이 잊고 있던 소중한 마음을 되돌아보게 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 본문 138, '수평과 수직' 중에서

곡성교통죽정정유소(2008). 순천시 목사동면 죽정리 원정마을에 있는 이 가게는 70년 세월을 훌쩍 넘긴 아주 오래된 점방이다. 이미경

봉평상회(2016). 출판사가 있는 통영 봉평동의 구멍가게. 벚꽃이 흐드러지고 따스한 햇살까지 더해졌다’. 이미경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을 펴낸 곳은 '남해의봄날'이다. 책 도매상 송인서적의 부도로 피해를 입은 업체 가운데 하나인 이 출판사는 놀랍게도 경남 통영에 있다. 몇 해 전 찾았던 아름다운 도시 통영의 짙푸른 바다를 떠올리며 '작지만 소중한 가치를 좇아' '책으로 소통'한다는 출판사의 생각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존재에게 배운 것들'(에필로그)에서 작가는 '지난 20여 년의 시간 동안 구멍가게 작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영감과 교훈을 주신 구멍가게 주인 어르신들께 감사'로 책을 마무리한다. 어찌 그 어르신들뿐이랴. 거기 말없이 서 있었던 구멍가게의 존재가 오늘을, 사람들을 있게 하였으니.

오마이뉴스 /장호철(q9447)편집: 최은경(nuri78)17.02.20

 

할매, 점빵어디 갔는교?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것들] <9> 동네 골목 추억의 구멍가게

1960~1980년대 동네 골목길에는 어디나 구멍가게인 점방이 있었다. 점방은 과자와 사탕, 아이스크림뿐 아니라 소주·콩나물·설탕·라면·비누 등 모든 생활용품의 보고다. 아침 일찍 부모님 심부름으로 두부를 사러 가고, 아이들은 용돈을 받으면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사러 서로 내기하듯 뛰어가는 만물상회다. 어른들에겐 퇴근길에 집으로 들어가기 전 이웃 동네 사람들과 막걸리 몇 잔에 그날의 피로를 푸는 활력의 장소였다. 동네 점방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장소를 넘어 지역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소중한 휴식 장소였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전국에 아파트촌이 들어서고 골목 곳곳에 편의점이 자리잡으면서 점방은 하나둘씩 우리 곁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도심뿐 아니라 농촌에서도 우리의 희로애락이 담긴 점방이 없어졌다. 어릴 적 소중한 기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련한 추억이 깃든 구멍가게는 세월과 함께 잊혀져 가는 옛 단어가 돼 버렸다. 전국에 몇 개 남지 않은 점방을 돌아봤다.

 

동네에서 이른 새벽 제일 먼저 불이 켜지고 늦은 밤 가장 늦게 불이 꺼지는 곳이 구멍가게였다. 하루 일과를 마친 마을 주민들은 저녁 어스름이 깔리는 무렵이면 구멍가게의 탁자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막걸리잔을 놓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점빵’ ‘연쇄점’ ‘○○상회추억 속으로

라디오나 TV, 전화가 없고 신문도 귀했던 그때 그 시절 마을마다 바깥세상 소식을 가장 빨리 들을 수 있는 장소 또한 동네 구멍가게였다. 시골뿐 아니라 도시 지역에서도 마을마다 생필품 공급과 토론의 공간이었던 구멍가게는 사회 변화에 따라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점빵’, ‘연쇄점’, ‘○○상회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던 구멍가게들은 이제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추억이 돼 버렸다.

 

인구 감소로 농촌 마을 빈집이 갈수록 늘어나고, 대형유통매장이 시골 마을까지 진출해 구멍가게가 버티며 생존할 수 있는 틈새는 아예 없어졌다. 또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농촌 마을에도 승용차를 가진 집이 많아 필요한 물건을 언제든지 인근 도시나 가까운 대형유통매장에서 저렴하고 손쉽게 살 수 있게 됐다. 구멍가게가 도저히 경쟁할 수 없는 환경으로 바뀐 것이다.

 

최근에는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24시간 편의점이 생활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 영세 상점은 더 설 자리가 없어졌다. 마을의 쉼터이자 뉴스센터 역할을 하던 구멍가게 앞 평상도 사라진 지 오래다. 농촌이나 구도심 경우에는 학생 등 젊은층이 거의 없고, 나이 든 어른들은 거동이 불편하거나 돌아가신 경우가 많아 동네 점방은 존재 자체가 없어져 버렸다. 그나마 아주 드물게 남아 있는 구멍가게조차 지키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70~80대 고령층이어서 머지않아 문을 닫게 될 처지다.

 

실제로 인구 29만여명으로 광주, 전주에 이어 호남 3대 인구 도시인 전남 순천시에서도 점방이나 동네 슈퍼가 사라졌다. 겨우 동네 가게라는 조그마한 간판만 붙어 있는 곳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지난 6일 오후 3시쯤 시내와 3정도 떨어져 있는 옥천동의 한 상점. 혼자 누워 있던 김모(85)씨는 “50년 정도 했는데 지금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막걸리 한잔하러 가끔 오는 경우 말고는 손님이 없다면서 이제는 팔 물건도 갖다 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손님이라고는 담배를 사러 오거나 막걸리·맥주 한 잔씩 마시러 우연히 들르는 사람밖에 없다고 했다.

 

가게 안에는 라면 8, 부탄가스 20여개, 소주, 맥주, 홈키파 5개 등이 휑하니 놓여 있었다. 손님이 없어 경로당에서 놀다 방금 들어왔다는 김씨는 혼자 살면서 집 지킬 겸 앉아 있다애들이 장사 그만하라고 하는데 문 닫으면 할 게 뭐가 있겠냐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하루에 한 명도 안 올 때도 많다면서 노느니 100원이라도 벌려고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번 앉아 있어 보면 손님이 아예 없다는 걸 느낄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도심에서 5거리에 있는 상사면의 광주슈퍼 김모(81)씨 사정도 마찬가지. 60살부터 시어머니랑 같이 장사하다가 지금은 혼자 하고 있단다. 마트와 편의점이 생겨 동네 사람들조차 오지 않고 주변 편의점을 간다고 했다. 간혹 담배를 사러 오거나 여름에는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사러 오는 게 전부라고 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치매 온다고 장사를 계속하라고도 하고, 말동무할 겸 문을 열어 놓고 있다진작 닫아야 했는데 계속하고 있어 창피하기도 해서 올해 안에는 그만두려고 물건을 안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농촌 마을을 몇 시간 돌아다니다 어렵게 찾아낸 시골 마을 구멍가게들에서 요즘 매출이 어떠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했다. 한결같이 온종일 가게는 지키고 있지만,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드물다고 했다.

경남 함안군 강주리 삼거리 슈퍼의 내부 모습.

 

수입 쥐꼬리물건 다 빠지면 그만둬야지

경남 함안군 법수면 강주리 삼거리 도로가에서 11년째 구멍가게(삼거리슈퍼)를 하는 박모(55)씨는 담배나 갑자기 필요한 물건을 사러 오는 동네 단골 주민들을 보고 가게를 계속하고 있지만, 수입은 쥐꼬리보다 못하다주변 가까이에 하나둘씩 늘어난 편의점이 4곳이나 된다고 말했다. 박씨 구멍가게에서 100m쯤 떨어진 마을 입구 도로가에는 유리로 된 출입문에 슈퍼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적혀 있는 구멍가게를 겸한 허름한 주택 하나가 오래전에 문을 닫은 듯 빈 건물로 방치돼 있었다.

 

강주리 삼거리슈퍼에서 승용차로 한참을 달리다 법수면 백산리 백산보건진료소가 있는 백산마을 입구 삼거리에서 두 개의 구멍가게를 만났다. 두 가게는 50m쯤 떨어져 있었다. 한 슈퍼는 80대 노부부가 젊은 시절부터 시작해 50년 넘게 지키고 있는 구멍가게다. 주인 서모씨는 주변 마을 주민들이 얼마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대부분 노인인 데다 필요한 물건은 가까운 대형유통매장에서 구입한다면서 음료수나 생수, 과자를 찾는 사람은 하루 몇 명에 그친다고 구멍가게의 현실을 설명했다. 이어 서씨는 나이 많은 우리 부부가 죽으면 이 구멍가게도 우리와 함께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인근 길가에 있는 또 다른 구멍가게도 80대와 70대 노부부가 20년 넘게 지키고 있다. 좁은 가게 안 상품 진열대에는 여러 종류의 담배와 과자, 간단한 음료, 면장갑 등이 진열돼 있었다. 가게 주인 장모(77)씨는 옛날에는 밤마다 동네 주민들이 술잔을 놓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그런 모습은 오래전에 사라졌다수익도 거의 없어 벌써 그만둬야 했지만 하던 일이라 계속 문을 연다고 말했다.

순천 최종필 기자·창원 강원식 기자 choijp@seoul.co.kr

 

구멍가게, 그리고 경인로와 경인선 사이 1킬로

[김시덕의 직업적 책읽기]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건물의 초상>

이미경의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남해의봄날, 2017)과 김은희의 <건물의 초상>(단추, 2019)이다. 이미경 선생의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은 전국의 도시와 시골에 흩어져 있는, 또는 흩어져 있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폐업한 구멍가게를 펜화로 세밀하게 묘사한 작품집이다. 김은희 선생의 <건물의 초상>은 본인의 작업실이 자리한 부천시 역곡역 주변의 도회 풍경을 세밀하게 그린 작품집이다. 두 권 모두 아름다운 그림과 글이 담긴 훌륭한 책인데,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은 이미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므로 오늘은 <건물의 초상>에 좀 더 무게중심을 두면서 두 책을 이야기하려 한다.

 

사람이 노스탤지어와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상은 제각기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대상이 다른 사람에게는 무한한 노스탤지어를 부여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사람은 구멍가게와 역곡역 인근 도회 풍경에서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할 터이다. 또 어떤 사람은 이제는 없어진 시골의 구멍가게 모습에서는 향수를 느끼지만,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선 철도와 경인로가 지나는 상업·공업·주거 복합 지역의 풍경에서는 살풍경함만을 느낄 것이다. 나는 두 풍경 모두에서 애잔함을 느꼈기에 두 책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개성이나 삼남(三南) 지역의 고택·개량한옥만이 진정 보존되어야 할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주공아파트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60~80년대의 국민주택이나 속칭 집장사집을 재평가하자는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상은 다르므로, 서로 간에 그 다양성을 인정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어떤 사람 또는 세대의 발언력이 지나치게 커지면, 그 사람()의 추억 대상이 과도하게 대표된다는 데 있다. 기와집만이 보존·복원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이외의 일식가옥(적산가옥), 집장사집, 주공아파트를 철거대상인 흉물이거나 최소한 보존의 가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앞 세대의 이러한 정서에 반감을 느끼는 다음 세대는, 자신들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주거 형태나 공간을 보존하자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다음 세대가 그리움을 느끼는 대상에는 무심함을 드러낸다.

 

이미경 선생이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에서 "반세기 동안 근대화와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낡고 오래된 옛것을 우리의 삶에서 지우고 감추었다. (...) 무분별한 개발보다는 복원과 보존으로 우리 삶의 근본과 맥락을 찾아야 할 때다."(164)라고 말하고 있는 대상인 구멍가게는, 개량한옥뿐 아니라 일식가옥·판잣집·단독주택·꼬마빌딩 등 여러 가지 형태의 건물에 입주해 있다. 짐작컨대, 현재 한국에서 어떤 건물을 보존·복원할지를 결정할 권한을 지닌 세대에게 일식가옥이나 판잣집에 들어선 구멍가게가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그들은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그 구멍가게를 없애고 도로를 확장하자는 결정을 내릴 터이다. 그렇게 해서 수많은 옛 구멍가게가 사라졌다. 전국을 답사하면서, 불과 몇 년 전까지 남아 있던 옛 건물과 블록이 도로 확장 공사로 인해 사라진 사례를 무수하게 접하고 있다.

 

이미경 선생은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송천리에 있던 장자상회가 사라져간 과정을 이렇게 증언한다. "2002년 처음 그곳을 찾았을 땐 (...) 소박하지만 바위에 그려 놓은 그림처럼 단단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 2013년 그곳을 다시 찾았을 때는 길이 넓어졌고 은행나무도 사라졌다. 집도 이미 부서져 허물어지기 직전이었다."(194-5) 이미경 선생과 비슷한 심정으로 전국 구석구석의 정미소·이발소·시장·구멍가게를 사진으로 남기고 계신 김지연 선생도,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명 대목리에 있던 대목리수퍼가 폐업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이 가게는 가게 앞길이 넓어진 것이 아니라 외곽도로가 뚫리면서 가게로서의 존재의의를 상실하고 폐업한 경우지만, 아무도 애도하지 않는 구멍가게의 소멸임에는 다름이 없다. "예전에는 주로 담배, , 과자 종류가 팔렸는데 장사가 안 돼서 주막으로 바꿨다가 안주인이 죽고 외곽도로가 뚫리면서 문을 닫게 되었다고 했다."(김지연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 114)

 

그래도 구멍가게는 운이 좋은 편이다. 이미경 선생이 펜화로, 김지연 선생이 사진으로 기록을 남겼으므로. 한국에는 이 정도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로 사라지는 건물과 가게가 숱하게 많다. 역사적 이유에서 20세기 전반기에 만들어진 일식가옥(적산가옥)이 그러하고, 옛 동네에 빼곡히 지어졌던 판잣집과 집장사집이 그러하고, 경인선변의 작은 공장 건물과 꼬마빌딩들이 그렇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건물들이 없어지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그것이 없어졌다는 말을 들어도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라는 반응을 보인다. 나는 그런 풍토가 아쉬워서 을지로와 영등포를 걸으며 일식가옥을, 재개발 예정지역에서 지역주택조합 관계자들의 눈치를 보며 판잣집과 집장사집을, 영등포에서 부천을 거쳐 인천·시흥·안산까지 끝없이 펼쳐진 공업지역을 헤매며 공장 사진을 찍고 있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이 건물들의 기록을 남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내가 찍은 사진이 이 건물의 유일한 사진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지난 해 11월에 김은희 선생이 <건물의 초상>, 그리고 역곡역 인근 1구간을 연속적으로 그린 화보집 <1, 오늘도 삶을 짓는 중입니다>를 출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에게는 관찰과 기록의 대상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그저 살풍경하게 느껴질 뿐인 경인선·경인로변의 풍경을 애잔하게 여기고 기록하는 사람이 한국에 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반가웠다.

 

1974년 수도권전철이 개통되면서 급격히 인구가 늘어 1987년에는 한국 8대 도시로까지 성장한 부천은 문자 그대로 "경인선이 낳은 도시"(박해천 기획 <확장도시 인천> 101)였다. 부천시에서도 서울시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한 역곡역 인근은 특히 그 변화의 정도가 심했다. 부천시가 막 급성장을 시작한 1980년대에 출판된 뿌리깊은나무 출판사의 <한국의 발견 - 경기도>편에는, 당시 역곡역 인근의 풍경이 다음과 같이 그려져 있다.

 

"서울하고 가까운 역곡역 언저리나 인천하고 가까운 송내역 언저리는 고속도로 너머의 북쪽 동네들과 마찬가지로 아직은 부천시의 중심지와는 동떨어져 있으며 시골 냄새가 꽤 짙은 곳에 든다고 하겠다. 다만 역곡역이 있는 역곡동은 칠십년 대 후반에 성심여자대학교가 들어옴으로써 새로 개발된 지역이라서 산뜻한 느낌을 주며 아직까지 집들이 듬성듬성한 만큼 앞으로 발전성이 크다고 이곳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그러나 아직 역곡역과 부천역의 북쪽을 잇는 소사동의 '탁박골' 도로는 포장조차 안 되어 있다."(<한국의 발견 - 경기도> 1986년 제3, 213)

<건물의 초상>(김은희 지음) 단추

 

김은희 선생이 기록한 역곡역 인근 1의 파노라마 삽화를 보면, <한국의 발견 - 경기도>편이 출판된 후 20~30년 사이에 이 일대는 "시골 냄새가 꽤 짙은 곳"에서 "공장 냄새가 꽤 짙은 곳"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영등포와 인천을 잇는 경인공업지대의 한 가운데 자리한 부천다운 모습이다. 그런 동시에, 서울시와 가까운 경기 지역의 공업지대들이 그러하듯이, 공장을 수도권 외곽으로 이전하고 남겨진 부지에 아파트단지나 오피스텔이 들어서는 변화가 현재진형형으로 이루어지고 있음도 알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예전의 살풍경한 모습이 또 다른 살풍경한 모습으로 바뀌고 있을 뿐이라고 느껴질 경인선과 경인로 사이에 낀 역곡역 인근 지역을 그림으로 기록하게 된 계기를 김은희 선생은 이렇게 밝힌다.

 

괴안동 189-○○번지

어느 해 봄, 부천 역곡역 굴다리 근처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를 보고 작업실을 얻었다. 경인선과 경인로가 지나가는 건물 꼭대기였다. 경인선 철길에서는 새벽부터 자정이 넘도록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작업실 앞쪽으로 난 경인로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는 88번 버스는 새벽 4시부터 늦은 밤까지 사람들을 일터로, 집으로 실어 날랐다. 작업실에서 500미터 떨어진 역곡역은 아침이면 사람들을 빨아들였다가 저녁 7시쯤 다시 동네로 뱉어놓았다. (...) 그런 동네에서 14년을 지냈다. 작은 작업실 창 너머로 공장이 생기고 사라지고 아파트가 세워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동네를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 그 사이 재건축하는 곳이 늘면서 작은 철공소나 철강회사들이 사라지고 아파트가 생겨났다. 도시는 끝없이 변화하고 있었다. 그림에는 그 변화과정과 다양한 시기의 모습이 중첩되었다.

 

누군가에게는 통근·통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지나다녀야 하는 황량한 공간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꾸리는 일터가 있는 무덤덤한 공간일 뿐인 역곡역 인근 1, 김은희 선생에게는 기록해야 할 대상으로 느껴졌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사이에도 숱한 건물과 가게가 나타났다가는 사라졌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역곡이라는 동네가, 부천이라는 도시가, 경인(京仁)이라는 메갈로폴리스가 경험한 과거와 현재가 여러 겹의 시층(時層)을 이루고 있다. 역곡역 인근 1의 시층이 담겨 있는 김은희 선생의 그림은 나에게 노스탤지어를 준다.

 

어떤 풍경이 사람들에게 노스탤지어를 주는 이유는 그 풍경이 절대적으로 보존되어야 할 그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 풍경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그 풍경에 아름다움과 의미를 부여할 때, 비로소 그 풍경은 노스탤지어의 대상이 된다. 지금 한국의 문화정책·도시계획을 담당하는 세대에게는 구멍가게이든 역곡역 인근 1구간의 풍경이든, 둘 다 별다른 의미도 없고 아름다움도 느껴지지 않는 대상에 지나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구멍가게에서 의미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한국 사회에 나타나서 세계적으로 주목받았고, 이번에는 한국의 도시 풍경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 나는 이러한 세대교체가 반갑다. 복원이라는 명목으로 신축되는 조선시대풍 현대 건축물과 고층아파트단지를 제외한 그 밖의 옛 건물과 블록이 모두 재개발·재건축으로 사라지기 전에 이들의 발언이 사회적으로 힘을 얻어서, 한국의 도시에서 높고 낮은 건물들의 시층과 다양성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프레시안

 

구멍가게, 그 정겹던 이름

걸음이 저절로 멈춰졌다. 초등학교 앞 문방구 유리창에 굵게 써 붙인 세놈이라는 두 글자 때문이었다. 무슨 뜻일까? 세 사람이란 뜻은 아닐 테고. ! ‘세놓는다는 말이었구나. 결국 문방구도 문을 닫았다는 뜻이다. 방앗간과 함께 동네를 가장 오래 지킨 가게였다. 하긴, 요즘은 아이들 학용품도 대형 마켓에서 한꺼번에 사다 준다니 버틸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꽤 오래전에 이발소가 문을 닫았고, 몇 달 전에는 동네 슈퍼가 폐업했다. 시류에 따라 이름을 슈퍼로 바꿨을 뿐이지 구멍가게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서울이라고는 해도 변두리 동네이다 보니 옛 정취가 남아 있는 점포들이 꽤 많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하나 둘 그 흔적들을 지워 나가고 있다. ‘슈퍼라는 간판이 붙은 구멍가게가 문을 닫을 때는 무척 안타까웠다. 내가 나고 자라고 살아온 한 시대가 문을 닫는 것 같은 상실감까지 들었다. 구멍가게. 얼마나 정겹고, 얼마나 많은 추억이 담긴 이름이었던가.

 

어느 동네든 어지간하면 구멍가게 하나쯤은 있었다. 도시도 마찬가지였다. 달동네든, 일반 주택가든 구멍가게로부터 한 동네가 시작됐다. 구멍가게 규모가 그 동네의 생활수준을 말해 주는 척도가 되기도 했다.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동네는 구멍가게가 백화점이었다. 없는 게 없었다. 두부·콩나물 등 기본적인 찬거리에서부터 조미료·설탕·국수·라면까지. 과자·아이스크림 같은 군것질거리에서부터 모기약·부탄가스 같은 공산품까지. 부지런한 주인들은 새벽같이 먼 시장에 나가 채소와 계절 과일, 생선을 받아다 좌판을 벌여 놓았다. 좀 크고 여유 있는 가게는 연탄집이나 석유집을 겸하기도 했다.

 

파리채를 한 손에 쥔 안주인은 물건에 동네 소식을 담은 수다를 끼워 팔았다. 또 구멍가게는 동네의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했다. 주민들은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생기면 가슴에 담아 가게 앞으로 하나 둘 모여들었다. 평상이라도 있으면 좋았고, 없어도 상관없었다. 사과 궤짝 하나 엎어 놓고 그 위에 소주나 막걸리 두어 병 올려놓으면 최고의 상이었다. 그 앞에 둘러앉아 기쁨은 키우고, 슬픔은 서로 나누어 줄였다.

 

하지만 그런 풍경은 언제부턴가 아득한 옛일이 됐다. 그 많던 구멍가게가 대부분 사라졌기 때문이다. 제법 큰 규모의 슈퍼마켓이란 게 등장했을 땐 그동안 얻은 인심이나 부지런함으로 버티는가 싶었다. 하지만 24시간 불을 밝히는 편의점과 가장 싼 가격을 내세우며 골목까지 점령한 할인마트의 공세 앞에서는 태풍 앞의 촛불에 불과했다. 이미 오래전 이야기지만, ‘2001년부터 2006년 사이에 구멍가게 11000여 곳이 문을 닫았다는 통계도 있다.

 

나는 여전히 낯선 동네에 가면 골목 초입이나 모퉁이를 두리번거린다. 그러다 보일 듯 말 듯 자리 잡고 있는 구멍가게를 발견하면 망설이지 말고 문을 열고 들어간다. 음료수 한 병을 병째로 마시거나 조금은 딱딱해진 아이스크림을 골라 입에 물면서 그곳에 켜켜이 쌓인 시간을 천천히 둘러본다.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과자 봉지와 오랫동안 선반 위를 지켰음직한 소주병 하나까지 눈에 담는다. 그런 풍경을 볼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고철과 빈 병 따위를 주워서 판 돈을 들고 드나들던 시골의 구멍가게도, 하루의 노고를 깔고 앉아 소주잔을 나누던 달동네 구멍가게도 머지않아 하나 둘 추억으로만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사라지는 모든 것들이 그렇듯이 구멍가게 역시 그 흔적을 지우면서 많은 것들을 거둬 갈 것이다. 라면과 소주에 끼워 팔았던 정과, 콩나물 한 봉지에 담겼던 눈물과 행복까지.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서울신문 18.11.27

 

해운대는 거들 뿐기찻길 옆 해리단길감성투어

폐역 뒤로 맛집·점집·빈티지숍 즐비바다 근접 최고 골목상권 선정 힙스터천국

 

서울 이태원에 '경리단길'이 있고, 경주 황남동에 '황리단길'이 있다면 부산 해운대에는 '해리단길'이 있다. 해리단길은 해운대구의 경리단길이라는 뜻이다. 해리단길은 폐역이 된 옛 해운대역 뒷골목이 조금씩 새롭게 단장되면서 또 하나의 도시재생 모델이 된 케이스다. 요즘 도시재생은 단순히 마을의 인프라와 시설을 개선하는 수준을 넘어 지역 문화의 수준을 높이는 문화재생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해리단길은 전국 골목상권 우수사례에서 대상을 차지할 만큼 나름 인정도 받았다. 다국적 레스토랑부터 루프탑카페, 버거가게와 빵집을 비롯해 소품숍, 사진관, 꽃가게, 서점, 타로점집, 빈티지의류숍 등이 주택가와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다.

서울 이태원에 경리단길이 있고 경주 황남동에 황리단길이 있다면 부산 해운대에는 해리단길이 있다. 사진=이송이 기자

 

#해운대 '핫플' 해리단길

해리단길은 해운대 핫플(핫플레이스)’이다. 2017~2018년부터 폐역 뒤로 하나둘씩 생겨난 가게들이 어느새 30~40개나 된다. 소박하고 특색 있는 가게들이 모여 해리단길의 이색적인 거리 풍경을 만들어낸다.

 

전국엔 이렇게 경리단길의 이름의 따 그 지역의 지역명과 리단길을 붙여 ‘OO리단길이 유행 중이다. 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거리만 해도 전국에 20곳이 넘는다. 일명 리단길들은 좁은 골목에 트렌디한 카페와 특색 있는 식당들, 갤러리와 문화공간, 게스트하우스와 숍 등이 모여 젊은 감각을 뿜으면서도 동시에 옛 동네의 편안함을 주는 특징이 있다.

소박하고 특색 있는 가게들이 모여 해리단길의 이색적인 거리 풍경을 만들어낸다. 사진=이송이 기자

 

대개 리단길은 복잡한 중심가나 신시가지와는 다르게 여유와 소소한 낭만이 흐르는 옛길이나 옛 동네다. 규모가 크고 번지르르한 대형 상점이나 프랜차이즈 카페 대신 그 지역이나 개인의 특성을 살린 소규모 가게들이 자기들만의 개성을 뽐내며 늘어서 있다. 자본가들이 아닌 지역상인, 주로 젊은이들에 의해 꾸려진다는 특징도 보인다. 아기자기한 소품 가게나 레트로 분위기를 한껏 살린 식당과 카페가 거리에 멋을 더한다. 보통은 작은 골목들이 사방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도로를 끼고 있어도 왕복 2차선 정도라 아늑한 느낌을 준다.

 

해리단길도 여느 리단길들처럼 작은 골목길들이 마을의 집들이나 소소한 편의시설들과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다. 주거지 사이로 가게와 식당들이 아기자기하게 이어지며 거리의 풍경과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어느 한 세대만을 위한 골목이 아니라서 더 좋다. 2030 데이트족과 4050 나들이객, 6070의 주민들이 골목의 공간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채우고 있다. 주말이면 한 테이블 안에도 세대는 쉽게 어우러진다.

주거지 사이로 가게와 식당들이 아기자기 이어지며 거리의 풍경과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사진=이송이 기자

 

#카페소품숍이 주택가와 어우러져

폐역이 된 동해선 해운대역은 부산 지하철 2호선 해운대역과 붙어있다. 해운대역 어느 출구로 나오든 바로 옛 해운대역이 보인다. 외지인이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무엇보다 다른 리단길들과는 달리 해운대 바닷가와 걸어서 10분 거리라 바다와의 접근성이 좋다.

 

옛 해운대역은 푸른 기와를 얹고 있다. 아담한 역사를 옆으로 끼고 철길을 건너면 바로 해리단길이다. 부산 토박이 몇몇이 스쳐 가며 예전엔 해운대에서 잘 사는 동네 좌동이랑 못 사는 동네 우동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길을 통해 가니 바로 옆 동네라고 한다.

기찻길 너머는 해운대구의 상징인 고층 아파트의 연속이다. 어쩐지 해운대역을 통과하면 미래에서 과거로 넘어가 버리고 말 것 같다. 사진=이송이 기자

해리단길이 있는 우동은 해운대구에서 좀 낙후된 지역이다. 해리단길 곳곳에는 재개발 관련 현수막이 간혹 붙어 있다. 기찻길 너머는 해운대구의 상징인 고층 아파트의 연속이다. 해운대역을 통과하면 미래에서 과거로 넘어가 버리고 말 것 같다.

 

해리단길은 옛 동네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을 뿐 그리 낡지 않았다. 아주 오래된 과거가 아니라 1980년대 흔한 동네 풍경 정도로 정감이 있다. 옛 주택을 소박하게 다시 꾸며 카페로 만들거나 옛 구멍가게를 소품숍으로 만들거나 옛 건물 구조를 그대로 살려 레스토랑을 만든 덕에 편안한 느낌을 준다.

길이 끝났나 싶으면 가게 하나가 불쑥 나타나고 이 골목도 해리단길인가 하고 후미진 골목을 들어가 보면 눈이 번쩍 뜨이게 귀여운 소품숍이 들어앉아 있다. 사진=이송이 기자

해리단길에는 버거숍, 피자집, 태국레스토랑, 우동집, 만두집, 디저트카페, 루프탑카페, 고메빵집을 비롯해 장난감가게, 꽃가게, 소품숍, 옛날 목욕탕, 서점, 빈티지의류숍 등이 길 따라 한 집 걸러 하나씩, 두 집 걸러 하나씩, 때로는 연달아, 때로는 꼭꼭 숨은 채로 이어져 있다. 길이 끝났나 싶으면 가게 하나가 불쑥 나타나고 이 골목도 해리단길인가 하고 후미진 골목을 들어가 보면 눈이 번쩍 뜨이게 귀여운 소품숍이 들어앉아 있다.

 

눈 씻고 잘 찾아다녀야 보일락 말락 하는 가게들도 있다. 미국식 햄버거 집에서 미국식 인테리어를 구경하며 치즈버거로 한 끼, 해외여행 고픈 참에 잘 됐다 싶은 태국식당에서 똠양꿍 국수로 또 한 끼, 그리고 그 사이 시간들은 카페와 소품숍, 빈티지숍들을 구경하며 터벅터벅 걸어 다니며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기 좋다. 동네는 생각보다 작지만 이것저것 먹고 구경하며 놀다 보면 서너 시간이 금방 사라진다.

미국식 햄버거 집에서 미국식 인테리어를 구경하며 치즈버거로 한 끼, 해외여행 고픈 참에 잘 됐다 싶은 태국식당에서 똠양꿍 국수로 또 한 끼. 사진=이송이 기자

 

#타로점헤나문신도 재미삼아

해리단길에는 유독 점집이 여럿이다. 풍수학적으로 뭔가 영험한 기운이 깃들어 있는 것인지, 관광객을 상대로 한 상업 행위에 불과한지는 모르겠지만 재미 삼아 볼 만하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다 가도 자꾸 눈앞에 점집이 나타나니 없었던 마음이 생긴다. 아예 대놓고 점집이나 무당집 모습이라 탁 들어서기 어려운 곳이 있는가 하면 카페처럼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 놓은 공간에서 재미있게 타로점과 신점을 봐주는 언니도 있다.

 

골목 깊숙한 곳 소품숍에선 역시 재미 삼아 해보기 좋은 헤나문신도 할 수 있다. 놀러 온 기분을 내며 손가락이나 손목, 발목 정도에 가볍게 해보는 것도 잔잔한 재미를 준다. 작은 것은 가격도 천 원대부터 몇 천 원, 만 원대 정도로 비싸지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손목에 3000원짜리 돌고래 헤나 문신 하나 하는 데는 5분도 채 안 걸린다. 예전처럼 헤나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 오랫동안 말리는 방식이 아니라 판박이처럼 붙이고 떼어낸 후 드라이어로 말리면 끝이다. 장난 같은 헤나문신은 팔뚝에 큰 호랑이 문신을 한다고 해도 3일이면 지워질 여행의 소소한 재미다. /부산=이송이 기자 일요신문 [1519] 2021.06.15

 

쌍욕과 쓰레기... 항우울제 먹으며 버티는 아현동 사람들

[용산 참사 10, 다시 철거민 ] 빨간 깃발 걸린 집들엔 아직 50여 명이 살고 있다

지난 517일 오전 아파트 재건축이 한창인 서울 마포구 아현2구역.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골목길 여기저기에서 '탕탕' 하는 망치 소리가 들렸다. 철거되지 않은 빈집들은 유리창이 다 뜯겨나간 채 골조만 남아 을씨년스러웠다.

 

건물 철거를 마친 곳에는 벽돌과 나뭇가지, 흙 등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골목길 곳곳에는 각종 쓰레기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쓰레기 주변에는 파리 등 날벌레가 날아다녔다. 한때 주민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던 동네 구멍가게에는 '공가'라는 푯말만 붙어있었다.

 

사람이 모두 떠났을 법한 자리지만, 이곳엔 아직 50여 명의 사람이 산다. 세 들어 살던 세입자도 있고, 집과 땅을 가진 가옥주도 있다. 이들이 사는 집에는 빨간 색 기가 걸려있다. '재건축 반대'를 뜻하는 것이다.

 

빨간 색 깃발 사람이 있다

지난 51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아현2구역 재건축 사업 지역에 거주하는 정봉덕씨가 용역이 언제 와서 강제철거하고 쫓아낼까 밤잠을 못 이루고 있다라며 피해도 많고 몸까지 병들어서 갈 곳이 없는 사람들 죽게 생겼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정봉덕씨는 지난 2월 재건축조합 관계자 등과 몸싸움을 벌이다가 뒤로 넘어져 허리가 부러졌다. 유성호

 

남은 사람들은 '여길 떠나면 살 곳이 없는' 사람들이다. 정봉덕(75)씨는 이 구역에 10평 남짓한 단독주택을 갖고 있다. 재건축 사업이 진행되면서 보상을 받고 떠나야 하지만, 조합이 내민 보상 조건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정씨는 "수년 전 책정된 토지가격을 적용해 이 돈을 받고 나가라고 한다"면서 "현재 시세와 비교하면 반 토막 수준인데, 이 돈을 받아서 다른 곳에 갈 데도 없다"고 했다. 그는 "돈을 더 많이 달라는 게 아니다, 현재 내 재산의 가치만큼 보상하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 남은 집주인들도 대부분 정씨처럼 보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떠나야 하지 않고 남은 대가는 혹독했다. 재건축 철거를 전문으로 하는 용역업체가 들어오면서, 이들은 일상적인 폭력에 노출돼 있다. 덩치 큰 용역들은 주민들에게 몸싸움과 욕설, 협박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나가라'고 압박하고 있다.

 

유엔 보고관이 현장을 찾다

강현미 아현2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이 강제철거를 반대하며 이주를 거부하자, 누군가 몰래 자신의 집 앞에 쓰레기를 갖다 버려 주거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성호

지난 518일 서울 마포구 아현2구역 재건축 사업 지역 거주민들은 헐값 보상을 받고는 인근 지역에서 방을 구하지도 못 한다라며 잘 살던 원주민 밟아죽이는 재건축은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유성호

 

라힐라니 파르하 유엔(UN)주거권특별보고관도 지난 515일 이곳을 방문해 거주민 등을 만나 현장 조사를 했다. 유엔이 눈여겨볼 정도로 상황이 불안정한 것이다. 남은 주민들은 '사람 취급'을 못받는다고 호소한다.

 

이곳에 머물고 있는 강현미씨는 몇 달새 살이 7kg이나 빠졌다. 강씨는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요, 나가라는 거죠"라면서 "(용역들을) 볼 때마다 욕하고 위협하고, '강제 집행할 때 피X 싸게 해주겠다'고 하니까 그에 따른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다"고 호소했다.

 

용역 등과의 몸싸움도 일상이다. 정봉덕씨는 지난 2월 재건축조합 관계자 등과 몸싸움을 벌이다가 뒤로 넘어져 허리가 부러졌다. 전치 6주의 큰 부상이었다. 정씨는 취재진을 만날 때도 허리보조개를 차고 있었고, 걷는 것도 불편해 보였다.

 

정씨는 "경찰서에 고소하고, 합의 안하겠다고 했지만, (용역들은) 달라지는 게 없다"면서 "나중에 (자신을 가해한 사람이) '나는 벌금만 내면 된다'고 하더라"며 울분을 터트렸다.

 

욕설과 협박은 일상

지난 518일 서울 마포구 아현2구역 재건축 사업 지역에서 거주민이 골목 출입구에 설치된 철제 펜스 때문에 주민과 차량 통행을 방해 받고 있다며 항의하고 있다. 유성호

지난 518일 서울 마포구 아현2구역 재건축 사업 지역 거주민들이 강제철거를 막기 위해 대기근무를 서고 있다. 유성호

 

일상의 폭력을 겪으면서도 가장 두려운 것은 언제 들어올지 모를 강제집행이다. 동네 곳곳에는 '집행이 예정된 세대는 일정대로 진행한다'는 재건축조합 안내문이 붙어있다.

 

얼마 전에도 주택 5~6채가 철거됐다. 최선경씨는 사람들이 곡괭이를 들고 우르르 몰려가면 황급히 집으로 뛰어간다. 혹시나 자신이 살고있는 집을 때려부수는 게 아닐까 싶어서다. 여든 살 어머니 등이 거주하는 집을 지킬 수 있는 건 최씨뿐이다.

 

최씨는 "이 사람들이 몰려가서 철거를 하는 게 내 집일까 싶어서 뛰어간다""유엔 조사관이 왔을 때도 곡괭이를 들고 사람들이 가서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집으로 달려갔다"고 했다.

 

철거되지 않은 집 안에서 한창 주민들과 대화를 하던 중,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방에 모인 주민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움츠렸다. 몸을 움츠리지 않은 건 기자 한 사람뿐이었다. 사람들은 작은 소리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최씨는 "이런 소리 하나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면서 "유리창을 깨고 용역들이 들어오지 않을까 항상 불안감에 시달린다"고 토로했다. 최씨의 눈에선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최근 최씨는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다. 병원에선 우울감과 불안감이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자살 위험도도 굉장히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무리한 요구할 생각 없어, 그냥 임대주택 하나만 있으면..."

지난 518일 서울 마포구 아현2구역 재건축 사업 지역에 예전에 어린 아이가 신나게 타고 놀던 자전거가 놓여있다. 유성호

아현2구역 재건축 사업에 반대하는 거주민들은 수년전 책정된 토지가격으로 이주할 곳이 없다고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유성호

 

작은 면적이라고 좋으니 이 곳에 살 수 있는 임대주택을 하나 내달라는 게 이들의 요구다. 유진무씨는 "이 돈(보상금)을 갖고는 어디 갈 곳이 없다"면서 "그냥 임대 주택이라도 하나 내달라고 하는데, 그게 없다고 한다"고 한숨을 뱉었다.

 

하지만 아무도 이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아무도 이들의 편에 서지 않는다. 외부에서 볼 때 이들은 '합법적으로 진행되는 재건축 사업을 불법 방해하고, 보상금으로 막대한 이득을 챙기려는 이익 집단'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씨는 "(용역들이) '우린 법대로 한다, 너희들이 권력을 이길 수 있느냐'고 한다""손주뻘 되는 사람한테 온갖 쌍욕을 듣고,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데, 구청도 경찰관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했다.

 

정씨는 취재진에게 한 통의 편지를 건넸다. 이곳에 거주하는 이종열씨가 손수 적은 A4 두장짜리 편지였다. 편지에는 절규에 가까운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내 집을 헐값에 빼앗아 그곳에 아파트를 지어 엄청난 이익금은 누가 챙기는가? 힘없고 돈없고 빽 없는 사람은 이 나라에선 보호받지 못하고 함부로 해도 되는가? 태어나 평생 살던 집 스스로 이사를 한다 해도 쉽지 않은 일인데, 헐값으로 내쫓는 이런 것이 진정 대한민국 법인가?"

 

재건축 조합 "보상 금액은 법원 판결로 정해지는 것"

한편 아현2구역 재건축 조합은 재건축 보상 문제와 관련해 "보상 금액은 조합에서 무작정 정하는 것이 아니고 법원 판결에 따라 정해진다"고 말했다. 세입자 문제와 관련해 조합 관계자는 "재건축 사업에서 세입자 보상은 (법적으로 규정된 것이) 없다"면서 "재건축 단지에서는 가옥주가 세입자를 내보내는 것이 원칙이고, 조합이 추가로 보상을 준다면 오히려 그것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남은 주민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것과 관련해 "조합도 그분(남아있는 주민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더하다"면서 "사무실 앞에서 시위하고 출근도 못하게 한다. 그분들 입장만 듣지 마시라"고 했다.

아현2구역 재건축 사업 현장에 재건축조합이 531일까지 이사 비용으로 1세대 삼백만 원을 주겠다는 안내문을 붙여놓자, 재건축에 반대하는 거주민들이 돈으로 회유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유성호

 

신상호(lkveritas) 유성호(hoyah35) 오마이뉴스 18.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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