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고약하다. 도심 산지들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그만할 때도 됐건만 되레 하루가 멀다하고 산을 대신하는 거대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어깨를 견주고 있다. 앞선 정권들이 기업프렌들리와 규제 완화를 들먹이며 각종 개발 사업에 힘을 실어 준 탓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이 '합법적'으로 둔갑한 것이다. 뉴스테이 사업도 그중 하나다. 집 근처 울창한 숲에 기대어 살던 주민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섰다. 대충 그 면적이 부산서만 37곳 90만 평(4만 6000가구)가량 된다. 대개 임상이 양호한 지역들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원일몰제까지 꿈틀거리고 있다. 2020년 7월 1일로 고시된 시행 일은 지난 1999년 헌법재판소가 내린 결정에 기초한다.
영도 면적 4배가량의 부산지역 숲
아파트 단지로 전락할 위기 내몰려
부산시·의회·정부도 "나 몰라라"
일몰제 타당성 여부까지 따져봐야
난리가 났다. 돈은 없고 시간은 임박했고, 달리 수는 없어 붙들고 늘어진 게 민간공원특례제다. 기준은 5만㎡(1만 5000여 평) 이상의 도시공원이다. 30% 개발권에 70% 기부를 골자로 한 부산지역 사업에 토건 자본들이 달라붙었다. 그들이 보여 준 그림 열에 아홉이 공동주택건설이었다.
민간공원특례 대상에도 못 끼는 산도 무더기로 줄 서 있다. 시민이 즐겨 찾는 황령산, 몰운대, 에덴공원 등의 유원지 11곳이다. 더하여 해운대 동백섬 같은 5만㎡ 이하 도시공원과 녹지 25곳이다. 모두 합치면 얼추 영도구 면적의 4배쯤 된다. 참담한 노릇은 저 많은 산이 아파트단지로 전락하는 일이다.
지난해 봄 부산시는 존치가 필요한 곳을 우선 지정해 매년 600억 원씩 들여 해제 대상 사유지 중 10% 수준이라도 지켜 낼 거라고 했다. 부산시의 올해 예산 10조 7927억 원 중 공원일몰제 예산은 '0'원이다. 이런 기망이 있는가. 반면 서울시는 장기 미집행 도시공원 매입에 한 해 평균 1250억 원을 들였다. 그동안 투입한 예산이 모두 1조 6200억 원이다. 여기다 2020년까지 5500억 원(공시지가 기준), 2023년 이후에도 지속해서 재원을 투입하는 집행 계획을 서울시의회에 보고한 바 있다.
부산시는 그렇다 치고, 부산시의회는, 지역의 국회의원은 뭘 했나? 한 지역의 미래와 공공의 자산이 모조리 사라질 지경에 처했는데도 이마 맞대고 대안을 내는 장면은 못 봤다. 대통령조차 공약 채택 후 함흥차사니 말해야 뭘 할까만, 그래도 그러면 안 된다.
공원일몰제와 관련해 환경시민단체들이 강제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실질적인 책임과 해결책은 중앙정부와 국회가 가지고 있다. 다양한 보상수단의 마련도 법 개정과 예산지원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환경시민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은 관련법을 개정하고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와 지방정부, 국회가 나서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이런 입법 운동과 예산 확보 운동을 전개하는 것에 더해 지방선거 같은 주요 선거 시기에 후보 공약 채택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다.
현 단계에서는 국공유지를 어떻게 할 것인지도 주목해서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부산의 국공유지 비율은 해당 일몰제 전체 면적의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 미집행 도시공원 내 국유지는 대부분 행정재산으로 매각 대상이 아니므로, 도시공원으로 존치하더라도 '과도한' 재산권 제한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끝으로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미집행 도시계획시설 결정 자동실효를 뒷받침하는 헌재 결정이 1999년 10월 21일 있었다. 특별한 조치가 없으면 2020년 7월 1일 이후 시설 결정이 자동 실효된다고 했고 정부는 이 판결을 맹신했다. 하지만 헌재가 내린 동일 사안의 다른 주문사항은 적용되지 않았다. 치명적 오류임에도 공원일몰제는 당연시 됐다. 타당하다고 보는가. 문재인 정부는 시대적 소명으로 '적폐청산'을 내걸었다. 새삼스럽지만 적폐의 뜻은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관행, 부패, 비리의 폐단을 말함이 아니든가. 공원일몰제는 적폐다. /이성근 부산그린트러스트 사무처장 / 부산일보 로컬터치 18.1.26
※ 우연이겠지만 칼럼이 나가고 난 다음 부산시가 3월 추경에 일몰제 예산 400억 정도(예상) 편성 될 것 같다는 문자를 보내 왔다.
Copla Guajira - Ibrahim Fer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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