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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고립의 시대

by 이성근 2025. 3. 31.

'고립의 시대'(원제 : The Lonely Century)의 표지. 노리나 허츠(Noreena Hertz) 지음, 홍정인 옮김, 웅진 지식하우스, 2021

 

목차

1장 지금은 고립의 시대다

프리티 인 핑크 | 외로움의 새로운 정의 | 우리가 어쩌다 여기 이르렀을까 | ‘자유가 불러온 잔인한 변화

 

2징 죽음에 이르는 병, 외로움

외로운 신체들 | 하레디의 건강 수수께끼 | 공동체의 건강상 이점 | 외로움이라는 진화적 특성 | 홀로, 홀로, 오롯이, 오롯이 홀로 | 헬퍼스 하이

 

3장 그들은 왜 히틀러와 트럼프를 지지했는가

외로운 정신은 언제나 뱀을 본다 | 외로운 나치와 전체주의 | 새로운 포퓰리즘의 시대 | 불신의 정치 | 왜 그들은 트럼프를 지지하는가 | 사회적 지위와 자긍심의 상실 | 공동체 도붓장수 | 이민의 무기화

 

4장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다

여기서는 아무도 웃지 않아요 | 더 무례하고, 더 무뚝뚝하고, 더 차갑다 | 반사회적 속도 | 당신이 바리스타와 담소를 나눠야 하는 이유 | 뿌리 없는 동네 | 독거 | 혼밥 | 민주주의 기술 연마하기

 

5장 도시는 어떻게 그들을 배제하는가

도시의 적대적 건축물 | 은밀한 배제 | 포용의 원칙

 

6장 스마트폰에 봉쇄된 사람들

만화경 열풍의 결정판 | 늘 함께, 하지만 늘 혼자 | 저 개 좀 봐 | 쪼개진 자아 | 표정을 읽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 스크린 없는 생활 | 디지털 슬롯머신 | 더한 잔인함 | 실시간 따돌림 | 공개적인 거절과 창피 | 내 아바타가 좋아 | 변화는 가능하다

 

7장 세기의 노동은 외롭다

오픈플랜식 사무실 | 디지털에 장악된 일터 | 다정함에 인센티브를 | 일만 하고 놀지 않는 | 언제나 온라인 | 돌봄 휴가

 

8장 감시 자본주의와 조작된 경제

컴퓨터가 아니라고 한다 | 당신이 내쉬는 모든 숨 | 레이더망을 피해 | 감시 자본주의 시대 | 별점 4점을 드립니다 | 조작된 경제 | 로봇이 온다 | 누구도 무사할 수 없다

 

9장 알렉사와 섹스 로봇만이 웃게 한다

포옹을 팝니다 | 그녀는 나를 웃게 해요 | 무생물 사랑 | 동료 병사들 | 소셜 로봇이 온다 | 우리 모두를 위한 친구 | 섹스에 관해 이야기해봅시다 | 알렉사의 신기술은 불친절?’ | 그냥 날 로봇이랑 내버려둬 | 더 인간적이기 위한 도전

 

10장 외로움 경제, 접촉하고 연결하라

모든 외로운 사람들 | 마지막 한 조각 | 상업화된 공동체 | ‘공유 경제는 또다른 속임일까 | 우리가 아닌 나 | 공동체는 돈으로 살 수 없고 연습이 필요하다 | 배타적인 공동체

 

11장 흩어지는 세계를 하나로 모으다

자본주의를 다시 돌봄과 온정으로 | 계산법을 바꾸다 | 우리가 보고 듣고 있다 | 민주주의를 연습하다 | 다양한 공동체를 설계하다 | 미래는 우리 손안에 있다

 

출판사 서평

1. “코로나19 이후, 외로움에 대한 면역은 준비되어 있는가세계적 정치경제학자 노리나 허츠, 코로나 이후 인류에게 가장 시급한 화두를 던지다

202111, 대한민국은 76%의 국민이 코로나19감염증에 대한 백신 접종을 완료하고 위드코로나 시대를 맞아 사회 재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제는 생존을 위한 2년여의 사회적 거리두기와 고립이 우리의 생존을 다시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 지구적 위기 극복의 국면에서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우리가 전염병보다 더 심각한 사회적 질병, ‘외로움에 대한 면역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경고한다. 마치 2003년 베이징에서의 사스(SARS) 감염병 사태 당시 격리 조치되었던 의료계 종사자들이 3년이 지난 뒤에도 그 정신적 육체적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처럼, 코로나19로 인해 전 인류가 고립으로 인한 심각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사회적 불황, 사회적 교류의 부족으로 전반적인 행복감이 낮아지는 현상을 촉발하기 전에도 이미 한국인 10명 중 여섯은 스스로 외롭다고 여겼다. 외로움은 혼자 있을 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고립의 시대에서 노리나 허츠는 외로움은 도시의 군중 속에 있을수록, 나이가 젊을수록, 그리고 더 많이 온라인에 연결될수록 위력이 강해진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고립감과 외로움은 단순히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정서적 상태에 그치지 않고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 모두가 경험하는 정치로부터의 단절감, 일과 일터에서의 소외감, 경제적 지위로 인한 배제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저자는 스마트폰과 도시의 비대면 시스템, 감시 노동에 갇힌 채 살아가는 21세기 현대인이 만성 고립상태에 놓여 있다고 지적한다. 강요된 고립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 진화의 동인인 소통 본능을 잃은 채 이 사회를 소외와 배제, 양극화와 정치적 극단주의로 몰아가게 만든다. 이 책은 외로움의 사회적 비용에 대한 방대한 사례 연구와 10여 년의 탐사를 통해 우리가 일하고 투표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무너뜨리는 고립 사회의 근원을 파헤친다.

2. “소외된 노동자들은 왜 트럼프의 격렬한 지지자가 되었나강요된 고립이 사회 연대의 붕괴와 정치적 극단주의를 불러일으키다

외로움이 정신 의학의 연구 대상이 된 지는 10년도 채 되지 않았고, 여전히 우리는 외로움을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에 국한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한다. 그러나 개인의 정신과 육체에 끼치는 치명성에 대한 연구 결과는 이러한 통념을 반박한다. 외로움은 알코올의존증과는 비슷한 수준으로, 비만보다는 2배나 더, 그리고 매일 피우는 담배 15개비씩만큼이나 건강에 치명적이다. 또한 지속적 고립은 극한의 스트레스와 만성 염증을 유발함으로써 관상동맥질환, 뇌졸중, 치매로 이어질 확률이 현저히 높고 조기사망의 위험을 약 30% 가까이 높인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수준이다. 5명 중 3명이 외롭다고 답한 미국 사회는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메디케어 지출이 매년 70억 달러에 이른다.

외로움으로 인한 사회 경제적 비용은 공중 보건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마치 오랫동안 우리 안에 홀로 갇힌 생쥐가 친구 생쥐를 침입자로 여기고 잔인하게 공격하듯이, ‘외로운 세기의 현대인들은 인간 고유의 소통 본능을 잃고 외로운 생쥐처럼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실제 인간의 뇌 MRI 실험 결과에 따르면 고립된 상태의 피실험자는 타인의 고통을 공감할 때 활성화되는 부위인 측두정엽의 활성도가 감소하고 경계심, 주의력, 시각과 관련된 뇌 부위인 시각피질이 활성화된다. 노리나 허츠는 사회 경제적으로 고립되고 주변화된 이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무력감, 확장된 정의의 외로움21세기의 세계정세를 위협하는 심각한 원인이 된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 따르면 사회적·경제적으로 주변화된 사람들이 정치에 대한 최소한의 연결감을 잃고, 수십 년째 극단주의적인 정당으로 몰려들며 포퓰리스트의 표적이 되고 있다.(본문 3) 저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사회경제적 지위의 하락을 겪은 테네시주 동부의 탄광 노동자들을 심층 인터뷰함으로써,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였던 이들이 도널드 트럼프의 극렬 지지자로 돌변한 주된 이유를 분석했다. 그는 그동안 기억되지 않은 미국의 남녀를 내가 반드시 기억하겠습니다!”라는 선거 구호, 3년 동안 70번에 이르는 광신도적 집회, ‘우리가(we)’우리를(us)’처럼 일관된 화법 등은 소속감과 인정을 바라던 소외계층의 마음에 깊이 파고들었음을 발견했다. 트럼프는 우리의 힘을 알고 있었고 이를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전략으로 극대화한 것이다.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감소할수록 사람들은 포퓰리스트가 제시하는 배타적이고 분열적인 형태의 공동체에 매력을 느끼게 되며, 경제적 위기는 이러한 경향을 심화시킨다. 공동체의 언어를 활용해 지지층을 확대해가는 포퓰리즘 전략은 이탈리아 동맹당, 스페인 복스당, 벨기에의 극우 정당인 플람스 벨랑 등에서 그 위력을 드러냈다. 1951, 한나 아렌트가 나치즘을 추종한 사람들의 특성을 야만과 퇴보가 아닌 고립과 정상적 사회관계의 결여라고 한 분석이 여전히 유효해 보이는 이유다.

3. “연결되면 연결될수록 더 고립되는 21세기 외로움의 독특한 본질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에 갇힌 아이들의 소통 능력이 위험하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위기는 일상 속 대부분의 의사소통이 스마트폰과 SNS를 통한 비대면 소통으로 대체되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스크린을 통한 대화 즉, 몸의 움직임과 접촉, 냄새 등과 같은 미묘한 신체적 단서들이 배제된 의사소통은 오해를 낳기 쉽고 사람들 사이의 유대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단적인 사례로 지난 10년간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며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된 한국의 먹방(mukbang)’에 주목한다.(4) 먹방 유튜버의 구독자들은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면서 먹방을 식사 친구삼아 담소하며 식사 시간의 외로움을 달래면서 사회적 경험을 시뮬레이션한다. 식사 속 담소라는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에조차도 별풍선과 좋아요 같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현실은 외로운 세기의 우울한 단면을 보여준다.

오늘날 휴대전화와 소셜 미디어의 사용은 역사상 유례없이 인간을 항시적 연결상태로 만들었다. 우리는 하루 평균 221, 매일 평균 3시간 15, 1년에 약 1,200시간동안 휴대전화를 확인한다.(본문 6)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서로 연결되면 연결될수록 점점 더 고립된다는 것이 21세기 외로움 위기의 독특한 본질이다. 소셜 미디어와 휴대전화를 통해서 이뤄지는 비접촉 연결이 인간 고유의 소통 능력을 현저히 퇴화시키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 아이비리그 대학의 총장과의 대화에서 최근 대학에서 표정 읽는 방법이라는 보충수업이 개설되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표정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제일 기본적으로 얻는 비언어 정보인데, 대학 입학생들 대부분이 본능과도 같은 능력에서 현저한 저하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소통 능력의 저하와 스크린 사용의 연관성은 2010년 브리스톨대에서 수행된 PEACH 프로젝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실험에 따르면 매일 두 시간 이상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같은 스크린을 보며 시간을 보낸 아이는 감정 표현에 어려움을 겪을 뿐 아니라, 과잉 행동을 보이거나 분노 같은 강한 부정적 감정을 조절하는 데 문제를 겪고 있었다.

사회적 교류를 통해 자기 정체성과 목소리와 도덕적 행위 능력을 형성해가는 시기에 소셜 미디어의 파급력은 더욱 심화된다. “군중 앞에서 이뤄지는 보여주기식 얕은 대화는 대화 능력을 퇴화시킬 뿐 아니라, 소셜 미디어는 우리를 좋아요’, ‘팔로등 온라인에서의 사회적 인정을 맹렬히 좇는 불안한 장사꾼으로 만든다.” 날로 심각해지는 사이버 괴롭힘과 악플로 인한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한 2년간의 등교 공백 속에 틱톡이나 유튜브과 같은 숏폼 온라인 플랫폼에 몰두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현실을 고려하면 이는 매우 섬뜩한 진단이다.

4. “무엇이 긱 노동자를 별점 평가에 목매게 하는가자동화와 첨단 비대면 기술 속 심화되는 감시 자본주의의 민낯

코로나19 사태 속 한국의 자영업자들은 영업제한으로 인해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받았다. 생계를 잃을 수 있다는 절망에 빠진 이들을 더욱 괴롭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한 번도 본적 없는 얼굴의 손님이 플랫폼에 남긴 별점 평가였다. 팬데믹 이후 3배 높아진 배달 앱의 사용량만큼 수많은 자영업자들은 별점 평가의 늪에 빠져 생계 자체에 위협을 느꼈다. 이 책에 따르면 우리는 사회학자 쇼샤나 주보프가 말한 감시 자본주의의 시대에 산다.(8)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고용주, 그리고 AI와 빅 데이터와 첨단 기기를 동원해 사생활을 침해하고, 승진이나 해고 같은 직장 경력의 중요한 행로를 결정하는 시대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아마존은 물류 직원들이 화장실을 가고 가려운 데를 잠시 긁는 정도의 모든 움직임까지 모니터링하는 팔목밴드를 개발했다. 작업 속도가 떨어지면 그들의 모니터와 밴드에서 속도를 높여달라는 요구가 흘러나온다. 2017년 미국 위스콘신주의 기술기업 스리 스퀘어 마켓(Three Square Market)50명이 넘는 직원의 손에 마이크로칩을 삽입했다.

감시 자본주의 시대의 노동자들은 서로가 서로를 별점으로 평가하도록 강요받는다.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Bridgewater Associates)의 직원들은 닷츠(Dots)라는 앱을 통해 서로를 실시간으로 평가한다. 긱 이코노미 환경에서는 평점이 매겨지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 아예 고용조건이다. 긱 노동자들은 늘 감시받고 로그 정보가 수집되고 디지털 채찍을 맞으며 외로운 노동의 극한까지 내몰린다. 전 세계적으로 6,000만 명에 이르는 노동자가 긱 이코노미에 속한 것으로 추산되며 2027년에는 세 명 중 한 명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긱 노동으로 생업을 삼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긱 노동자들의 생계가 개인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그리고 때로 인종적 젠더적 편견이 실린 불투명한 평가체계에 휘둘린다는 사실은 매우 우려스럽다.

지난 몇 십 년간 벌어진 제조업 분야의 자동화 물결 역시 노동자를 소외시키고 고립시키는 주요 원인이 된다. 미국에서는 2000년 이래 자동화로 사라진 제조업 일자리가 500만 개가 넘고 로봇 한 대가 평균 3.3명의 인간 노동자를 대체했다. 일부 중국 공장에서는 노동자의 최대 40%가 로봇으로 대체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자동화 노출수준이 높은 지역일수록 주민이 국수주의적이거나 극우 성향을 띠는 정당에 투표할 가능성이 컸다는 것이다. 값싸고 질 좋은 상품과 비용 절감이라는 자동화가 가져다준 이점을 고려하더라도, 자동화로 인해 많은 권리를 박탈당하고 사회 체제로부터 소외당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어떤 위험을 초래하는지는 분명하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이념적 토대

하에 노동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시도들은 일과 공동체의 연결고리를 퇴색시키고 사회안전망을 무너뜨리는 악순환을 낳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5. “코로나19가 폭발시킨 외로움 경제, 당신의 고립감은 돈벌이가 된다배제와 소외, 고립의 진원지로서의 도시를 넘어,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하다

도시의 빠른 속도와 군중 속의 고독은 우리를 단지 비사회적으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반사회적으로도 만든다. 노숙자를 몰아내는 불편한 벤치’(캠든 벤치)나 소외계층의 출입문을 분리한 주거단지, 각종 상점의 비대면 설비 등 우리의 도시는 그 자체로 배제의 원리를 내재하고 있다. 그리고 코로나19는 느리지만 꾸준했던 이러한 경향을 뚜렷하고 가파른 상승세로 바꾸어놓았다. 잦은 봉쇄 조치와 사회적 거리두기는 비대면 시스템을 공고화했으며 하룻밤 사이 많은 방면에서 비접촉은 우리에게 유일한 선택지가 되었다.

저자는 일상적인 소통과 교환에서 인간을 쫓아내면 쫓아낼수록 우리는 필연적으로 더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일상적으로 상점에서 점원과 나누는 형식적인 담소나 체육 시설에서의 짧은 스침과 같은 미세 상호작용(micro-interactions)’만으로도 우리는 더 높은 수준의 행복감과 연결감을 느끼게 된다. 반대로 비대면이 제도화될수록 미세 상호작용은 줄어들고 고립감과 단절감은 필연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공동체 의식을 경험하기는 갈수록 힘들어지지만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갈망을 채우려는 욕구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기업들이 이러한 틈을 파고들어 주도하는 외로움 경제(Loneliness Economy)’가 폭발할 것이다. 에밀 뒤르켐이 집단 열광(collective effervescence,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를 직접 같이하며 느끼는 극도의 흥분 상태)’이라고 부른 것에 대한 사람들의 사그라지지 않는 욕구를 만족시키고자 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 혁신적인 방법들을 동원하고 있다.(10) 치즈버거를 주문하듯 앱을 통해 우정을 주문하고, 아이폰 매장을 타운 스퀘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상품이 진열된 복도를 거리’, 전시 공간을 광장’, 기술 안내대를 이라고 부르며 어휘상 탈취로 실제 시민 공간을 빙자한다. 플랫폼기업이 표방하는 공유경제역시 진정한 공유의 정신과는 거리가 먼 유행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저자는 기업에 의해 상품화된 공동체가 과연 진정한더불어 살기를 경험시켜줄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을 던진다.

진화적 차원에서 신체적 접촉이나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우리의 원초적 욕구는 너무나 강렬하다. 21세기 외로움의 물길을 바꾸고 시민들의 공동체 의식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면, 우리 사이에 생긴 분열을 메우려면, 우리는 지금 외로운 세기의 현실을 세밀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모든 사람이 도움과 보살핌을 주고받는 능력을 갖추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돌봄과 친절과 온정 같은 덕목이 우리 시대의 새로운 작동방식이 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구조적인 해결책을 찾고 공동의 노력을 시작하게 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옆에 사람을 두고 노골적으로 휴대전화와 바람을 피우며, 어찌 된 일인지 이러한 부정을 다 같이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여기 있지만 여기 있지 않으며, 함께이지만 혼자다.

2018년 영국 정부는 외로움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임명했는가하면 미국에서는 외로움 관련 비즈니스까지 등장했다. 시간당 40달러를 지불하고 친구를 빌릴 수 있는 회사(Rent-a-Friend)와 사람의 온기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 가벼운 토닥거림이나 포옹을 제공하는 이들도 있다고 하는데. "서른에서 마흔 살 정도의 외로운 전문직 종사자, 장시간 업무 때문에 친구를 많이 사귈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 주요 고객이라고 한다.

더 충격적인 건 일본의 경우인데요. 지난 20년동안 노년층의 범죄 건수가 4배로 급증!! 그 배경을 살펴보니 경범죄로 수감된 재소자 중 절반이 가족과 거의 대화하지 않거나 수감 전까지 혼자 살았던 경우였다고 한다. 알고보니 사회적 고립감에서 벗어나고자 친구 뿐 아니라 도움과 돌봄이 제공되는 감옥을 안식처로 선택한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우리 자신을 협력자가 아닌 경쟁자로, 시민이 아닌 소비자로, 공유하는 사람이 아닌 축적하는 사람으로, 돕는 사람이 아닌 투쟁하는 사람으로 여기게 했다고립의 시대. 1. 지금은 고립의 시대다

실제로 인간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먹이사슬의 최상부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더불어 살기를 열정적으로 채택한 덕분이었다. 우리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 복잡한 집단 사냥과 채집 기술을 발달시켰고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집단적 방어 전략을 세웠다.고립의 시대. 2. 죽음에 이르는 병, 외로움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이 환자들의 건강과 웰빙에 미치는 영향은 장기적인 만성질환에 맞먹습니다.”외로움은 심각한 정신적 괴로움과 고통을 초래할 수 있다.

 

외로움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충격적인 영향

외로움은 신체 건강에 해롭다

연구 결과 외로움이 단순한 감정 상태가 아니라 우리 몸 전체를 병들게 하는 위험 요소임을 보여준다.

외로움은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같은 수준의 건강 위험을 초래한다.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것보다 건강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친다.

고혈압, 심장병, 면역력 저하, 치매 발병률 증가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만성적인 외로움을 경험한 사람들은 조기 사망률이 26%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로움은 경제적 손실을 초래한다

외로움은 단순히 개인의 감정 문제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지는 심각한 문제다.

미국에서는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의료비 지출이 연간 70억 달러에 이른다.

영국에서는 노동 생산성 저하로 인해 매년 8억 파운드(11,800억 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

외로움을 자주 느끼는 직원들은 업무 몰입도가 낮고, 협업이 어려우며, 창의성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직장 내 관계가 단절되면서 직원들의 이직률이 증가하고, 기업의 운영 비용도 상승한다.

 

외로움은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긴다

외로운 사람들은 극단적인 정치 이념에 더 쉽게 빠질 가능성이 높다.

외로움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정치인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가 외로운 사람들을 기반으로 성장했다는 한나 아렌트의 분석과도 연결된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는 정치 전략에서 외로운 유권자들의 소속감 욕구를 자극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사회 내 갈등을 더욱 극대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외로워졌는가?

디지털 기술의 발전 연결될수록 더 고립된다

스마트폰 덕분에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지만 이러한 연결이 오히려 정서적 단절을 초래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스마트폰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기만 해도 대화의 질이 낮아지고, 공감 능력이 감소한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행복한 순간만 강조하기 때문에, 자신만 소외된 것 같은 ‘BOMP(Belief that Others are More Popular, 남들이 더 인기 있다는 믿음)’ 현상이 강화된다.

온라인에서는 상대방의 표정과 감정을 직접 볼 수 없기 때문에, 상대를 비인간화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직장 내 인간관계의 변화 일터에서도 고립되는 사람들

원격 근무와 긱 이코노미(프리랜서 플랫폼 근무)의 확산으로 직장 내 인간관계가 약화되고 있다.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이 증가하면서, 직장 내 소속감을 경험하기 어려워졌다.

기업들은 직원들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감시 기술을 도입하면서 직원 간의 신뢰 관계를 약화시키고 있다.

 

공동체 붕괴 혼자 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뉴욕, 도쿄, 베를린 등 대도시에서는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독거 가구다.

공동체에서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가 줄어들면서, 사회적 연결이 약화되고 있다.

사람들이 점점 더 혼자 사는 것을 당연한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외로움이 더욱 고착화되고 있다.

 

어떻게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

공동체를 활성화해야 한다.

지역 커뮤니티, 독서 모임, 자원봉사 활동 등을 통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교류할 기회를 늘려야 한다.

기업들도 직원들의 소속감을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 점심시간에 함께 식사하기, 공동 프로젝트 기획 등)

 

 디지털 환경에서의 인간관계를 재정비해야 한다.

소셜 미디어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혐오 콘텐츠를 방지하는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

사람들은 온라인 활동을 줄이고, 면대면 관계를 늘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치와 경제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

저임금 노동자, 긱 이코노미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새로운 노동법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모든 노동자가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 책에서 시종일관 강조하는 점이 있다. 외로움의 시대는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 시국과 그에 따른 격리, 봉쇄 등의 조치 그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다. 외로움과 고립은 개인적인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관계망(SNS)의 역기능, 구조적 차별, 공동체의 붕괴 등 다른 요인과 맞물려 극단주의, 파시즘이 발호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한다. 한 사람에 그치지 않고 수십, 수백만이 공동체도, 동료도, 정부도, 정치인도, 아무도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고, 자신이 도움을 요청해도 외면한다고 느낀다. 이를 '외로움의 사회화'라고 표현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그들은 점점 더 공감 능력이 결여되고 자기 방어적 행동을 강화한다. 그러면 남아 있던 유대감도 붕괴하고 불신이 심화된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 급부상한 극단주의자의 예로 히틀러, 트럼프를 꼽고 있다. 그들은 소외된 자들의 정서, 이를테면 상실감 '자랑스럽게' 여겼던 지위와 사회적 인정의 상실에서 오는 박탈감, 누린 적이 있는 것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것을 되찾으려는 갈망 등을 자극하여 자신이 그들과 공명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선전한다. 적대의 대상을 지정하여 '외로운 늑대'들이 스스로 인정받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극단주의자의 선전이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있는지, 실증적 근거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렇다고 믿게 하는 것으로 족하다. 소외된 자들의 '버림받은' 느낌을 자극해 자신이 '구세주'인 것처럼 설파한다. 비록 이 책은 코로나19 시국 초기인 2021년에 나왔지만, 최근의 상황을 비춰 민주주의 체계 자체를 파괴하려는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언동도 이와 관계가 있지는 않을까 추론해 본다. 그들은 예전에는 그늘에 숨어 있다가, 내란 우두머리와 그 수하들이 자신을 추켜세워주는 것처럼 보이니, 용기를 얻어서 극단적인 만행도 서슴지 않을 수 있다.

이 책은 모두가 외로워지는 이유로 SNS의 확산,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 도시의 구조를 꼽는다. 도시 생활은 사람들이 뭔가에 쫓겨서 바쁘게 움직이게 하여 서로에게 무관심하게 만들고, '불순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배제하기 위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서로 이질적인 집단 간의 접촉을 차단해 불신을 조장한다. 공동체 공간이 점점 축소되면서 실제 대인 접촉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스마트폰 중독, SNS 중독으로 사람들은 점점 항시적으로 연결돼 있지만 실제로는 멀어진, 모순적인 연결 상태에 놓인다. 멀리 있는 누군가의 동영상을 보고, 혼자 밥을 먹으면서도 실제 사람들과 소통한다. 그러면서 실제로는 사람과 점점 멀어져 간다. 예전에는 익숙했던 것이 이제는 익숙하지 않은 것이 된다. 로봇이 발달하면서 사람 사이의 친밀 표시인 신체 접촉이나 웃음까지도 파는 세상이 되고, 인간 관계도 기계와의 상호작용으로 대체되고 있는 사례도 있다. 이런 경향이 심해진다면, 실제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사람과 기계를 분간하지 못하고 기계에게 하듯이 사람에게도 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어떤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모든 것을 대하는 태도가 된다. 차이를 인정하고 타인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방법에 익숙하지 않은 들이 늘어나면 민주주의의 위기가 오지 않겠는가?

이 책에서 언급한 내용에 더해, 교육의 문제 또한 극단주의를 촉진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은둔 생활을 하면서 학생 시절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았다. 다른 고립·은둔 청년들 그리고 상담사들과 화상 대화도 하고, 가끔씩은 현실에서 만나기도 하면서 학생 시절의 기억을 꺼낼 용기를 얻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교육과 공부란 시험에서 빠르게 문제를 풀어서 점수를 잘 받고 이른바 좋은 대학에 가고, 그렇게 해서 사회적으로 인정과 부러움을 받는 높은 지위를 얻는 것, 그것만이 목표라고 생각했다. 현실에 나타난 적 없는 것, 혹은 결코 나타날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것을 상상하는 법도, 역사를 돌아보면서 통찰하는 법도, 현실의 문제와 마주했을 때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법도 배우지 못했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법도, 각자의 뜻을 모아 의사를 결정하는 법도 조금 들은 적이 있지만 그저 형식에 그쳤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입시 경쟁 속에서 현실 문제를 돌아볼 여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아를 잃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은 하지도 못하고 소외됐다. 나는 현실 문제에 충격과 환멸을 느끼고 은둔 생활을 하게 된 후로 지나간 것들을 돌아보게 되었지만, 많은 학생들에게는 그럴 의지 또는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그들이 억압받고 봉인당한 감정을 표현하고 해소할 방법을 익히지 못한다면 파괴적, 극단적인 행동까지도 자행할 수 있다고 우려된다.

12.3 내란, 그날 이후 지금까지 변화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계속된다. 시민들도 점점 인내심이 시험에 드는 것을 느낀다. 비록 모든 실질적인 변화는 내란을 완전히 진압해야만 가능할 것임을 알지만, 적어도 상상, 통찰, 분별을 키워주는 것만큼은 교육의 변화에 꼭 포함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각 개인의 작은 행동으로 삶이 개선되는 것을 느끼고, 자신과 공동체를 지키고, 체념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최윤성(제비) 시민기자 시민언론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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