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혐오, 극우…예견된 ‘한국 내란’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바버라 F. 월터 지음·유강은 옮김·열린책들 2025-01
바버라 F. 월터 (Barbara F. Walter)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의 글로벌 정책·전략 대학 국제 관계 담당 특훈 교수이자 내전, 정치적 폭력, 테러리즘 분야의 전문가다. 시카고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 대학교 올린 전략 연구소와 컬럼비아 대학교 전쟁과 평화 연구소에서 박사 후 과정을 마쳤다. 월터는 미국 외교 협회의 종신회원이자, 세계은행과 유엔,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에 적극적으로 조언을 해주는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을 뿐 아니라 『뉴욕 타임스』를 비롯해 『월 스트리트 저널』, 『워싱턴 포스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뉴요커』 등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유강은 (옮긴이) 국제 문제 전문 번역가. 옮긴 책으로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우리는 독점 기업 시대에 살고 있다』, 『불안한 승리』, 『유럽의 죽음』,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불평등의 이유』, 『신이 된 시장』, 『자기 땅의 이방인들』 등이 있다. 『미국의 반지성주의』로 제58회 한국출판문화상(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한국 사회는 어디로 향하는가"
2024년 12월 3일의 계엄은 이전부터 서서히 변화해온 한국의 정치 상황을 수면 위로 드러낸 사건이자 이후로 급변한 사회 상황을 촉발한 사건이다. 민주 사회에서 명시적으로, 암묵적으로 합의되어 왔던 상호 신뢰의 규칙들이 손쓸 새 없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그러니 계엄은 그 자체의 실패와 관계없이, 하나의 정치적 일탈을 넘어서 어두운 시대의 시작점이 되는 중이다. 한국은 지금 어디로 쓸려가고 있는 것일까?....특수하다고 여긴 한국의 현 상황이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과 같은 궤적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것이 한두 국가의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흐름이라는 사실에 아연해진다.
목차
머리말
1 아노크라시의 위협
2 고조되는 파벌 싸움
3 지위 상실이 가져온 암울한 결과
4 희망이 사라질 때
5 촉매
6 우리는 얼마나 가까운가?
7 전쟁은 어떤 모습일까?
8 내전을 예방하기
감사의 말
주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첫 문장
<아노크라시> 상태에 빠진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
우리는 민주주의가 확고한 안정성을 지녔고 위기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금세 회복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어 왔지만, 오판이었다. 이제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미국을 비롯해 점점 더 많은 국가가 독재autocracy도 민주주의democracy도 아닌 중간 상태, <아노크라시anocracy>로 추락하고 있다. 2024년 12월, 눈앞에서 민주주의의 쇠퇴를 목격한 한국도 이 대열에 합류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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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점점 평화로워지고 있다는 대중적 견해는 환상일 뿐이다. 우리는 이제 두려워해야 한다. - 더 타임스 (Th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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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누가 개시하며, 무엇으로 촉발되는가?
2021년 1월 6일, 미국 의사당이 습격당했다. 대선 결과에 불복하며 지속적으로 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도널드 트럼프를 열렬히 지지하는 극우 단체의 소행이었다.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긴 이 사건은 미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된다.
월터는 미국 내에서 정치적 퇴보가 발생하게 된 과정과 아노크라시에 접어든 주요 원인을 명료하게 설명하면서, 이제는 〈가장 오래 지속된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측면에서 일어난 지각 변동에 주목한다. 인구 구성의 형태는 바뀌었으며, 불평등과 양극화는 점차 심해지고 있다. 각종 제도는 약해졌고, 일부 특권 세력들은 횡포를 부린다. 게다가 SNS는 개인적, 또는 파벌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적합한 도구가 되어 상황을 부추긴다.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도 비슷한 국면이 펼쳐지는 중이다.
특히 월터는 20세기 중반을 시작으로 점점 많은 내전이 정치 집단보다는 종족, 종교 집단 간에 벌어졌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는 결국 각자 상대에 대한 지배권을 얻으려는 싸움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전은 단순한 폭력의 우발적 발발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약화되고 사회가 불안정해지는 등 복합적인 요인의 결과이다. 사태가 더 심각해지지 않도록 대처하기 위한 우선 과제는 〈내전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누가 개시하며, 무엇으로 촉발되는 것인지〉를 분명하게 아는 것이다.
우리는 이 위기의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경우와 민주주의에서 독재로 변하는 경우 모두 불안정성을 수반한다. 그 과정에서는 권력 공백과 불균형이 자연스레 뒤따르기 때문이다. 월터는 이때 야기되는 〈파벌화〉와 〈극단주의〉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이라크에서 시아파와 수니파 간의 갈등이 왜 그토록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티토의 철권통치 이후 발생한 유고슬라비아의 분열을 악화시킨 요인은 무엇이었는지, 북아일랜드에서의 종교적 충돌은 어쩌다가 폭력적으로 변모하였는지 등
음모론이 부른 ‘내전’…한국 민주주의를 위한 예언서
내란 시도보다 소름 끼치는 것은 내전의 전조다.
“체제 전복 세력 척결” 의지로 상기된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던 장면보다, 무장한 특전사 군인들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로 난입하던 장면보다,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법원을 파괴하며 살기를 뿜는 폭동의 장면이 한국의 오늘을 더 섬뜩하게 드러냈는지 모른다. 내란의 실행은 충격적이었지만 그 우두머리를 체포·구속한 민주적 회복 절차를 해머와 쇠파이프와 소화기로 깨부순 장면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어떤 단계’로 접어든 징조 같아 더 불길했다.
2021년 1월 미국 대선에서 패배한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국회 의사당을 습격했다. 당시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의 초고를 마무리 중이던 바버라 월터는 “자신이 대통령에서 물러나는 즉시 맞서 싸울 것을 요구”하는 현직 대통령을 보며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 “다른 지역에서 확인한 경고 징후가 지난 10년간 (미국에서) 목격하기 시작한 징후들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트럼프 집권 뒤 상승한 미국의 내전 위험을 분석한 그는 “갑자기 내 초고가 예언서가 된 듯 보였다”고 후기(2022년)에 썼다. 그 책이 한국어로 번역돼 출간을 앞두고 있을 때 국내에선 계엄에 실패한 현직 대통령이 ‘나를 지켜달라’는 사인을 지지자들에게 반복해서 보내고 있었다. 지지자들은 책의 국내 공식 출간(1월20일) 하루 전에 ‘서부지방법원 폭동’을 일으키며 화답했다.

저자는 내전과 테러리즘 전문가다. 이라크, 유고슬라비아, 북아일랜드, 시리아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발생한 내전을 연구한 결과 “나라와 시간을 가로질러 되풀이되는 공통된 요소들”을 발견했다. 현대의 내전은 “일종의 각본에 따라” 벌어진다고까지 그는 말한다.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살폈을 때 내전 발발의 핵심 요인은 당혹스럽게도 ‘민주주의’였다. 2차 대전 이후 민주주의 수립 급증과 맞물려 내전도 급증했다. 내전은 ‘아노크라시’(anocracy=autocracy+democracy) 국가들에서 발생했다. 내전국들은 ‘완벽한 독재도 성숙한 민주주의도 아닌 중간 구간’에 위치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특히 독재적 특징보다 민주적 특징이 더 많은 아노크라시는 정치 불안이나 내전을 겪을 가능성이 독재 정부보다 두 배, 민주 정부보다는 세 배 높았”다. 미국 비영리 기구 ‘체제 평화 센터’(Center for Systemic Peace)의 정치체 평가 점수(‘가장 독재적’ –10점부터 ‘가장 민주적’ +10점까지 21단계 분류)에서 노르웨이, 뉴질랜드, 덴마크, 캐나다는 +10점을 받았다. -10점이 매겨진 나라는 북한,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등이었다. 아노크라시는 –5점에서 +5점 사이의 나라들이었다. 2014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사법부와 언론 지배력을 강화한 튀르키예와 2017년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 사임 뒤 폭력 사태가 터진 짐바브웨가 해당했다. 2003년 미국의 후세인 축출 이후 내전에 휩싸인 이라크도 대표 사례로 꼽혔다. 정치·제도·군사적으로 허약한 상태에서 “개혁을 시행하면서 점수가 올라가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바로 그 순간에 내전이 벌어”졌다.
아노크라시 구간엔 독재에서 탈출한 국가들만 진입하는 것은 아니었다. 벨기에나 영국 등 “신성불가침의 민주주의를 자랑하던 부유한 자유주의 국가들”도 아노크라시로 떨어졌다.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자가 아니라 “선출된 지도자들이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안전장치를 무시하려 하기 때문”이었다. 그 장치들을 해체한 정치인들로 저자는 에르도안과 빅토르 오르반(헝가리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자이르 보우소나루(브라질 대통령) 등 “독재자 지망생들”을 지목했다. “대의제 선거를 약화시키려고 시도”하고 “시민들에게 독재적 조치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지도자들의 이름 끝엔 ‘윤석열’을 추가할 수 있다.
지난해 정치체 점수에서 한국은 +8을 받았지만 스웨덴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가 펴낸 보고서에선 “독재로 바뀌는 나라”로 분류됐다. “계엄 사태가 벌어지기 전 이미 아노크라시 판정”을 받았다고 역자 유강은은 평가(옮긴이의 말)했다. 내전으로 치닫는 미국에 경고할 목적으로 쓰인 이 책이 ‘한국의 내란 전후’를 읽어내는 데도 유용한 까닭은 트럼프와 윤석열의 유사성 탓이다.
1기 트럼프 정부 말기였던 2020년 미국의 정치체 점수는 +5점이었다. “1800년 이래 가장 낮은 점수”였고 “미국은 2백여년 만에 처음으로” 아노크라시가 됐다. 내전의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은 “타자를 배제하고 희생시키면서 통치”하는 파벌주의였다. 권력을 잃게 된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의 미래를 확보할 다른 경로가 없”을 때 “분열을 냉소적으로 활용해 다시 통제권을 잡”는다. “파벌주의를 움직이는 중심적 힘은 언제나 음모론”이었다. 사람들을 선동하고 싶을 땐 “타자를 표적으로 던져주”면 된다. 소셜 미디어는 음모론을 극대화하며 수익을 낸다. 저자가 보기에 파벌화로 정치적 이익을 얻는 “사상 최고의 종족 사업가”는 트럼프다. 지지자들의 의사당 습격은 그 사업의 ‘악의적 결실’이었다.

“국민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면서도 탄핵을 찬성하는 ‘다수 국민과 싸우고 있는’ 한국의 대통령도 자신의 지지자들만을 ‘국민’으로 지칭하는 파벌화와 음모론으로 살길을 도모하고 있다. 저자는 “해법은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개선하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부유한 나라가 경제 번영에 걸맞게 정부가 좋지 않으면 내전이 발발할 위험성이 크게 증가”했다. 법적 절차의 평등하고 공정한 적용, 표현·결사·언론의 자유, 공공 서비스의 질과 행정조직의 독립성이 강화돼야 내전 가능성도 줄어들었다.
월터는 민주주의의 질이 선거 관리 시스템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본다. 독립적이고 중앙 집중화된 선거 관리 체계를 갖지 못한 미국과 달리 한국은 그 체계를 가진 나라 중 하나로 언급된다. 그 시스템으로 당선된 대통령이 그 시스템을 부정하며 내란을 일으키고 폭동을 부추겨 내전으로 몰아가는 모습이 한국의 오늘이다. 그 현실까지 예언하진 못했지만 “반란의 맹아를 무력화하는 최선의 길”인 “퇴화한 정부를 개혁”해내지 못할 때 이 책은 우리에게도 무서운 예언서가 될 수 있다.
이문영기자 한겨레 2025-01-31
오해가 신념이 되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읽을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이에게는 무엇을 읽을 것인가로 읽힐 것이다. 굳은 결의가 선입견에 근거하거나, 오해가 신념이 되는 시대에 우리를 지탱할 수 있는 것은 깊이 생각하고 읽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밀고 나갈 뿐이다. 읽을 뿐이다. 그렇게 읽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들이 더 나은 공동체의 초석이 되지 않을까.
올해는 민주주의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온다. 12·3 내란을 대비하여 출판계에서 미리 준비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2년 반을 넘는 ‘시대 역행’으로 저자들도, 출판사들도 관련 책들을 쏟아낸다. 책 제목과 출간 시점은 유동적이다.
저술가 강응천의 ‘국회의 시간’(그린비)은 해방 직후 입법기관의 속기록을 통해 ‘진정한 국회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들여다본다. 박찬수 한겨레 대기자의 ‘DJ 국정 노트’(한겨레출판)는 김대중 대통령이 자필로 쓴 국정노트를 들여다본다. 대통령으로서의 고민과 결정은 향후 있을 대선에서 ‘이상적 대통령의 모습’에 대한 상을 그리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김정인 춘천교육대 교수(사회학)의 ‘모두의 민주주의: 한국 현대 민주주의의 계보를 탐구하다’(책과함께)는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 ‘독립을 꿈꾸는 민주주의’에 이은 ‘민주주의 3부작’의 완결편이다. 광복 이후부터 2016년 촛불시위까지를 미국·반공·민족 등의 7개의 개념으로 살펴본다.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구축한 것으로 보이는 국가에서도 일어나는 정치적 혼란을 민주주의 쇠퇴로 연결해서 해석한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열린책들, 바버라 월터)도 주목할 만한 책이다.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의사당 난입 사태까지 일으킨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행태가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을 연상시키는데, 민주주의 후퇴를 막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한국인의 탄생’을 쓴 홍대선과 논객 한윤형은 ‘뉴라이트 사용설명서’(메디치미디어)에서 뉴라이트 사관과 주장하는 잘못된 쟁점 10가지를 살펴본다. 비슷하게 ‘혐오 장사’를 키워드로 한 ‘마녀사냥’(메디치미디어, 전지윤·송요훈·이도경)도 나온다. 혐오와 대립으로 치닫는 사회에 대한 해결책으로 이타적 마음을 내세우는 최태현 서울대 교수(행정대학원)의 ‘이타주의자 선언’(디플롯)도 있다.
해방 공간에서의 좌우 이념의 대립은 한국의 이념 지형 이해의 힌트가 된다.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학의 모니카 김의 ‘한국전쟁의 심문실’(후마니타스)은 38선의 움직임만큼 좌우 선택이 유동적이었던 한국전쟁 시기, 심문실에서 행해진 ‘당신은 어느 쪽을 지지하는가, 어느 나라의 국민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과 답을 자료를 통해 살핀다. ‘간첩 할머니 엄주분’(창비)은 김두식 교수(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신작 르포다. ‘남파 공작원’ 엄주분의 생애를 추적하고 복원한다.
탄핵 국면에서 엠제트(MZ)세대의 역동적 시위 문화가 관심을 끌고 있는데, 1980~1990년대 전교조 운동에 영향을 받은 10대의 고등학생 운동을 조망한 ‘고등학생운동사’(동녘)도 출간된다. 다른몸들 활동가 조한진희의 기획으로 여러 필자가 참여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자유의 길: 경제학과 좋은 사회’(21세기북스)는 윤석열의 ‘자유 타령’에 일침을 가하는 책이다. 하이에크, 프리드먼의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거인에 맞서 미국의 핵심 정치와 경제 시스템이 진정한 자유를 제공하지 못하는 이유를 밝힌다. 이탈리아 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추카토는 ‘미션 이코노미: 달을 쏘다 별이 되는’(이음)에서 자본주의 시장에서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한다. 시드니공과대학 칼 로즈 교수의 ‘깨어 있는 자본주의’(여문책)는 정치적 영향력과 기업 자체의 도덕화를 통해 불평등을 통제하는 불평등 완화 방안을 제시한다. 런던정경대 경제학자 대니얼 챈들러가 쓴 ‘자유와 평등’(교양인)이 보편적 기본소득이라는 평등주의의 로드맵을 그린다.
1월 시작되는 제2기 트럼프 정부가 재편할 국제 질서에 대한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다. 미국과 러시아를 ‘제국’의 틀로 분석한 ‘미 제국 연구’(앤서니 홉킨스)와 ‘러시아 제국 연구’(발레리 키벨슨·로널드 수니) 두 책이 나온다(너머북스). ‘투키디데스의 함정과 미중관계, 한국의 길’(사회평론)은 기존 강대국이 갈등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강대국이 부상하면서 생겨나는 충돌(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다룬다. ‘굴라크’와 ‘철의 장막’의 저자 앤 애플바움은 1929년의 스탈린의 농업 집단화 전쟁 중 300만명의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사망하는 대기근을 정치적 전쟁이라고 해석한다. ‘붉은 굶주림: 스탈린의 우크라이나 전쟁’(글항아리). 러시아 역사 전문가 블라디슬라프 주보크는 1991년 소비에트 체제의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까지를 다루는 ‘소련 붕괴의 순간’(위즈덤하우스)을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서술한다.
2월이면 만 3년이 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2023년 10월 전면화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종전 80주년이 되는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인류의 비극에 대한 고찰을 이끈다. 재야의 전쟁사학자 권성욱은 추축국 중심에서 벗어나 주변부에서 생존을 모색한 약소국들 입장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재구성한다. ‘약소국들의 제2차 세계대전사’(열린책들). 세계 대전과 전후사의 권위자인 키스 로의 ‘야만 대륙: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유럽 잔혹사’(글항아리)는 종전 이후 유럽 대륙의 민족 간 갈등이 나치의 범죄에 버금갈 정도였다는 사실을 고발한다. ‘냉전’(서해문집)은 노르웨이 역사학자 오드 아르네 베스타가 1천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풀어낸 냉전에 관한 거의 모든 역사를 다룬다.
한국 역사 분야의 기대작으로는 김혈조 영남대 명예교수의 ‘원문 열하일기’(돌베개)가 있다. 수많은 이본과 대조하여 하나의 교합본으로 완성했다. 인문학 연구자 강명관은 ‘홍대용 평전’(푸른역사)을 완성한다. 실학자나 뛰어난 과학사상가라는 이전의 틀 대신 ‘실천적 정주학자’로 해석한다. 우사의 종횡무진한 행적을 촘촘하게 되살린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의 ‘김규식 평전’(돌베개)은 총 4권 중 항일운동 시기(3권)까지 나올 예정이다.
불평등과 청년 문제, 돌봄 의제 등 대표적인 사회 의제를 다룬 책들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많이 쏟아진다.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조은주는 ‘서사화되지 않는 꿈’(생각의힘)에서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의 삶에서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 불평등과 긴밀하게 결합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정신과 분석의 나종호와 내과 전문의 정희원이 쓴 ‘가속사회의 청년들’(문학동네, 하반기)은 데이터를 통해 엠제트세대의 몸과 마음을 살펴본다. ‘특권계급론’(오월의봄, 클라이브 해밀턴·마이라 해밀턴)은 불평등 구조의 수혜자인 이들이 누리는 특권이 노동시장을 왜곡하는 사례를 살펴본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리처드 리브스는 ‘소년과 남자들에 대하여’(민음사)에서 진보 정치가 외면한 젊은 남성들의 문제를 짚어본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 해체에 반대 입장을 내기도 한 ‘20 대 80의 사회’의 저자다. ‘도둑맞은 집중력’의 요한 하리는 신종 비만치료제를 매개로 아이슬란드·일본·미국 등 세계 각지의 전문가에게 비만과 몸, 의지력과 수치심에 관해서 묻는다. ‘매직 필’(어크로스).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를 쓴 리단은 중증 정신질환자와 이들을 돌보는 가족, 친구, 연인을 만나고 쓴 ‘중증의 세계’(반비)를 내고, 하은빈은 근육병을 가진 연인과 사랑하고 헤어지면서 느낀 장애와 몸과 돌봄의 문제를 ‘우는 나와 우는 우는’(동녘)에 담는다. ‘이타·돌봄·상처의 윤리학’(다다서재)은 젊은 철학자 지카우치 유타가 진화생물학·문학 등을 넘나들며 이타적 돌봄에 관한 문제를 고민한다.
여성 분야 기대작으로는 여성학 연구자 김미선이 한국 현대사 속 여성 경제주체들을 호명하는 ‘여사장의 탄생’(마음산책)이 있다. ‘모성의 공동체’(연립서가)는 화가 윤석남이 여성 독립운동가 100인의 초상화를 그렸다. 여성 철학자 클레어 맥 컴해일, 레이첼 와이즈먼의 ‘형이상학적 동물들’(바다출판사)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남성들이 징집되어 떠난 옥스퍼드대학교 강의실에서 만난 여성 4인의 철학적 모색과 우정을 다룬다.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학교 인류학과 이상희 교수의 ‘나라는 인류로부터’(김영사)는 ‘한국 고인류학 연구자 1호’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연구자, 교수, 이민자, 동양인, 여성, 아내, 엄마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살아온 이야기다. ‘우리, 나이 드는 존재’(휴머니스트)는 김하나·정희진 등 10명의 여성 작가가 잘 나이 들기 위해 하는 일을 공유한다.
기후위기 대처의 실패 원인을 분석하는 책도 눈에 띈다. ‘불로소득 자본주의 시대’의 저자인 브렛 크리스토퍼스는 ‘가격은 틀렸다’(여문책)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가 자리 잡지 못하는 이유를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 문제로 살펴본다. ‘초과: 어쩌다 세계는 기후 붕괴에 굴복하였는가’(두번째테제)는 환경사상가 안드레아스 말름의 ‘화석 자본’에 이은 환경서로, 파국의 지구온난화에 강력하게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밖에도 김범준의 만화 명작 ‘기계전사 109’(바다출판사)가 복간되는데, 1989년부터 연재된 이 작품은 사이보그의 계급투쟁을 다뤘다. ‘새로 쓴 아틀라스 세계사’(사계절)는 ‘아틀라스 세계사’ 시리즈 중 유일하게 번역서였던 것을 역사책 저자·편집자 강창훈이 다시 썼다. ‘케임브리지 몽골제국사’(사계절)는 영국 케임브리지 히스토리 시리즈의 번역본인데, 김호동 서울대 명예교수가 전세계 연구자를 모아 편찬했다.
구둘래기자 한겨레 2025-01-04
지난 2024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는 여러가지 화제속에 치뤄졌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놀라웠던 것은, 많은 언론과 승부사들이 박빙을 점쳤던 것과 달리 뚜껑을 열고보니 트럼프의 압승이었던 점이다. 선거결과를 보며 지난 1기때 많은 논란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트럼프의 행적이 떠올랐다. 특히 그의 선거부정과 함께 총대를 맨 체 국회의사당을 점거했던 그의 지지자들은 큰 충격으로 남아있다.
극단적 분열과 대립의 결과는 어떤 것일까. 오늘 읽은 책은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로 UC 샌디에이고의 국제관계 담당 특훈 교수이자 정치적 폭력 및 테러리즘 전문가가 쓴 책이다. 그는 이번 책에서 오늘날 내전이 일어나는 과정과 해법, 특히 민주주의하에서 내전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독재와의 연관성에서 면밀하게 살펴본다.
책 서두엔 미시간 주지사 그레천 휘트머를 납치하는 음모를 꾸민 폭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때는 바야흐로 2020년 코로나 셧다운 시기로, 여자친구 집에서 쫓겨난 뒤 홈리스로 살던 그는 다행히 친구가 잠시 내어준 공간에서 개 두마리와 지내고 있다. 상황이 나빠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본인이 이렇게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민주당의 바이든과 펠로시 의원 때문이라 믿으며 셧다운 반대 집회에서 만난 10여명의 무리들과 주지사 납치 음모를 꾸미다 FBI에 잡힌다. 저자는 이런 사태를 내전의 징조이자 중간상태로 보며, 독재와 민주주의가 혼재한 아노크라시 상태로 정의한다.
전개 과정은 종족이나 종교에 의해 집단이 형성되며 이들 집단간의 파벌 싸움이 고조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들 중 하나 이상의 파벌이 초파벌이 되며 권력욕이 강한 지도자가 나타나 이들을 이끈다. 이 기회주의자들은 특정 집단의 이름으로 기꺼이 차별을 호소하고 차별 정책을 추구하며 공포와 원한, 또는 민족주의를 부추겨 정치적 착취 및 폭력을 자행한다. 한편 정치 과정에서 밀려난 집단 중 극단적 일부는 폭력행사를 수단으로 삼고, 온건한 무리도 처음엔 평화적 시위를 여러차례 벌이나 이런 시위가 여러차례 실패로 돌아가면서 생각이 바뀐다.
흥미롭게 읽은 것은 과거와 현재의 내전양태의 변화이다. 저자에 따르면 예전에는 군 장성들의 쿠데타에 의해 독재가 생겨났다면, 요즘은 SNS 등에 의해 유권자들이 스스로 독재를 탄생시킨다고 한다. 한편 과거에는 내전=전쟁이었으나 요즘은 비대칭 폭력, 정치폭력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저자는 아노크라시 해결을 위해 민주주의 및 법치 강화 등 정부를 개혁하고, 사회적 취약자들을 부양하려는 노력이 시행되어야 하며 파벌주의를 조장하는 소셜미디어 제어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12.3 계엄사태로 벌어진 혼란한 정국탓에 더 몰입이 되었던 것 같다./ 롱롱
책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너무도 오랫동안 언제나 평화가 지배할 것이라고 믿어 왔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제도는 흔들림이 없고, 우리 국가는 예외적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또한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시민으로서 우리가 가진 힘을 알아야 한다고 배웠다.P. 17
민주주의 국가가 독재 국가로 변신하는 것은 지도자가 독재자를 본받아 국가를 조직하려고 애쓰는 이들처럼 검증되지 않은 허약한 인물이기 때문이 아니라 선출된 지도자들 ― 대부분 매우 인기가 높은 이들 ― 이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안전장치를 무시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안전장치에는 대통령에 대한 제약과 입법, 사법, 행정의 견제와 균형, 책임성을 요구하는 자유로운 언론, 공정하고 개방된 정치적 경쟁 등이 있다. 오르반, 에르도안, 블라디미르 푸틴, 또는 브라질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 같은 독재자 지망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건전한 민주주의의 요구보다 앞세우면서, 일자리, 이민, 안전 등에 관한 시민들의 공포를 이용해서 지지를 확보한다. P. 42~43
폭력의 가장 유력한 결정 요인은 한 집단의 정치적 지위의 궤적이다. 일단 권력을 잡았다가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볼 때 사람들이 특히 싸움에 나설 가능성이 높았다. 정치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지위 격하downgrading>라고 지칭한다. 이 주제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변이가 많지만, 내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나라에서 누가 폭력을 개시할지를 예측하는 신뢰할 만한 방법이다. P. 93
2010년 이래 해마다 세계는 민주주의 사다리를 올라가는 나라보다 내려가는 나라가 더 많은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새롭게 민주화된 나라들만이 아니라, 한때 오랫동안 신성불가침의 민주주의를 자랑하던 부유한 자유주의 국가들에서도 이런 퇴보가 나타난다. 선거로 뽑힌 일부 지도자들이 표현의 자유를 공격하고 헌법을 개정해서 권력을 자신들의 수중에 집중시키고 있다. 다른 지도자들은 대의제 선거를 약화시키려고 시도한다. 모든 지도자가 시민들에게 독재적 조치의 필요성을 설득하려고 한다. P. 140
현대사에서 반민주적 성향의 포퓰리스트가 집권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가 퇴보를 겪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전에는 군 장성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독재가 생겨났다. 하지만 지금은 유권자들 스스로가 독재를 탄생시킨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주된 이유는 소셜 미디어 덕분에 후보자들이 하나의 정부 형태로서 민주주의에 관해 시민들이 가질 법한 의심을 키우거나 편승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가짜 정보 캠페인을 활용해서 제도를 공격하면서 대의 정부와 자유 언론, 독립적 사법부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훼손하고, 관용과 다원주의에 대한 지지를 갉아먹을 수 있다. 또한 가짜 정보를 활용해서 공포를 부추김으로써 법질서를 강조하는 극우파 후보가 당선되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가짜 정보를 활용해서 부정 선거를 주장하고 최소한 일부 유권자들에게 선거 결과가 뒤집어졌다고 설득하면서 시민들이 선거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 수 있다. P. 151
트럼프 역시 백인, 남성, 기독교도, 농촌 미국인들의 불만을 단순한 틀에 욱여넣으면서 그들을 정당한 유산을 도둑맞은 피해자로 치켜세웠다. 그는 종종 무엇을 빼앗기고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종교적 권리, 총기 소유권, 고용 기회 등이었다. 트럼프의 선거 슬로건은 영광스러운 시절로 돌아갈 것을 약속했다.P. 190
미국에서 두 번째 내전이 일어난다면, 전투원들은 들판에서 모이지 않으며 군복을 입지도 않을 것이다. 지휘관이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늘을 들락거리면서 게시판과 암호화된 네트워크에서 소통할 것이다. (……) 온라인에서 저항 계획을 짜면서 모든 수준에서 정부를 잠식하고 미국의 일부 지역을 장악할 전략을 마련할 것이다. 그들은 혼돈과 공포를 조성할 것이다. 그러고는 미국인들에게 편을 선택하도록 강요할 것이다. P. 211~212
내전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파벌화다. 시민들이 종족이나 종교, 지리적 구분을 바탕으로 집단을 형성하고, 정당들이 약탈적으로 바뀌어 경쟁자를 배제하고 주로 자신과 지지자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실행할 때 파벌화가 완성된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만큼 파벌화를 부추기고 가속화하는 것은 없다.P.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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