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결혼 스테파니 쿤츠 저작가정신2009년 03월
Marriage, a History: How Love Conquered Marriage (Paperback) Paperback
스테파니 쿤츠-미국 현대가족위원회에서 연구 및 대중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워싱턴 주 올림피아의 에버그린 주립대에서 역사와 가족학을 가르치고 있다. 하와이 마카하와 워싱턴을 오가며 일하고 있는 그녀는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워싱턴 포스트》 《하퍼스》 《시카고 트리뷴》 《보그》 《결혼과 가정 저널》 등 여러 전국적인 매체에 결혼과 가정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결코 존재한 적이 없는 우리의 과거: 미국 가정과 향수의 덫The Way We Never Were: American Families and the Nostalgia Trap』을 비롯해 많은 저서들이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목차
들어가는 말
1부 전통적인 결혼
1장 사랑으로 맺어진 결혼은 급진적인 개념
2장 결혼의 수많은 의미
3장 결혼의 발명
2부 정략결혼의 드라마
4장 고대 세계의 연속극
5장 빌려온 것: 고전세계와 초기 기독교세계가 결혼에 관해 남긴 것
6장 주교 흉내, 여왕 잡기: 중세 초기 유럽귀족들의 결혼
7장 나머지 95%의 결혼: 중세 평민들의 결혼
8장 낡은 것과 새로운 것: 현대 여명기 서유럽의 결혼
3부 사랑, 결혼의 돌연변이
9장 노동의 짝에서 영혼의 짝으로: 남자가 생계를 책임지는 결혼의 등장
10장 한 둥지 안의 새 두 마리: 19세기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감상적인 결혼
11장 들썩거리는 화산: 빅토리아 시대 결혼의 이면
12장 산이 움직일 때가 왔다: 감상적인 결혼에서 성적인 결혼으로
13장 대충 견디다가 아기 만들기: 대공황기와 2차 세계대전 때의 결혼
14장 오지와 해리엇의 시대: ‘전통적인’ 결혼의 긴 10년
4부 연애의 재앙과 보편적인 결혼의 붕괴
15장 변화의 기운: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결혼
16장 초강력 폭풍: 20세기 말 결혼의 변신
17장 전인미답의 영역: 결혼의 변화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놓고 있나
결론 : 결혼의 미래
책소개
『진화하는 결혼』은 인류의 여명기 때부터 고대, 중세, 근대, 현대에 이르는 긴 시기 동안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의 결혼과 관련된 각종 문헌과 통계 자료,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취합, 분석하여 결혼의 기원과 결혼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 결혼의 발전 방향 등을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이른바 ‘전통적인’ 의미로서의 결혼에서부터 현대적인 의미로서의 결혼까지를 폭넓게 다루며 결혼이라는 인간만의 독특한 사회 제도가 지닌 위상을 재고하게 만든다.
이 책에는 이와 더불어 중국의 영혼결혼, 나 족의 형제자매 간을 우선시하는 결혼 형태, 중세 유럽의 시버리 풍습 등 결혼을 둘러싼 다양한 문명권의 여러 독특한 제도를 소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결혼을 “가장 폭력적이고, 가장 어리석고, 가장 기만적이며, 가장 덧없는 감정의 영향력 하에서” 이뤄진다고 본 조지 버나드 쇼나 “6세기나 7세기에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서 “왕을 죽인다, 왕이 모아둔 금을 손에 넣는다, 왕의 미망인과 결혼한다”고 수단으로서의 결혼을 이야기한 역사학자 폴리 스태포드 등 결혼에 관한 여러 학자들의 시각과 정의를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결혼한 사람, 결혼한 적이 있는 사람, 결혼하고 싶은 사람, 결혼할 수 없는 사람, 결혼이라면 생각하기도 싫은 사람, 이상적인 결혼이 어떤 것인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원서의 추천사처럼 개인의 일생에서 가장 큰 행사이자 전환점인 결혼에 대해 폭넓은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미래를 좀 더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재의 잘못된 데이터들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막연히 가지고 있던 잘못된 시각을 교정하도록 도와준다. 우선 우리가 흔히 결혼하면 떠오르게 되는 것들, 예를 들어 사랑을 기반으로 해서 이뤄지며 가능하면 남자가 주로 생계를 책임지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서의 결혼상은 사실 빅토리아 시대 이후부터 시작된 것이다. 인류 역사상 오랜 시기 동안 결혼은 그리 낭만적이지도, 애절하거나 가슴 뭉클하지도 않은 정치 행사이자 사회 행사의 일환이었으며, 결혼 생활 역시 새뮤얼 피프스(17세기 영국의 저술가, 그가 남긴 『일기』는 당시의 풍속을 연구하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가 “정말 속이 뒤틀렸다, 예전에 내가 아내와 사랑에 빠졌을 때 그랬던 것처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니컬해지는 일이었다.
결혼은 개인의 이익은 물론 집안과 가문의 이권과 생존이 걸려 있는 중요한 계약 중 하나였으며, 이 결혼 게임에 결혼 당사자는 물론이고 사촌, 친족, 이웃 나아가 왕과 교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계층이 참여했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 자신과 집안의 사회?경제?정치적 지위를 획득하거나 강화해 나가는 발판으로 삼았다.
과거 여성들은 결혼에 있어 무조건 약자의 입장에서 수동적으로 행동했으리란 생각도 편견에 불과하다. 중세 시기 여왕들은 자신의 상속권과 기독교 교회가 세운 엄격한 이혼법을 이용해 얼마든지 왕을 괴롭힐 수 있었다. 게다가 여왕이 강력한 통치자의 누이나 딸이었을 경우 왕조차도 함부로 굴 수 없었다. 기원전 18세기에 아시리아의 왕은 아들에게 근심에 찬 편지를 보내 강력한 카트나 왕의 딸인 며느리가 굴욕감을 느끼지 않도록 ‘여자 친구’들을 좀 더 신중하게 사귀라고 훈계했다. 멕시코의 도시국가 틀라테루코의 통치자인 모퀴윅스틀리의 경우, 이 같은 훈계를 듣지 않고 왕비를 소홀히 한 대가로 아스텍의 공격을 받아 멸망당하기도 했다. 평민 여성들에게도 결혼은 남편과 동등한 ‘동반자 관계’이자 ‘동업자 관계’를 맺는 것이었으며 가정경제의 일원으로 부분적으로나마 경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프랑스와 잉글랜드에서 법적인 독신녀feme sole, 독일에서는 Marktfrau라고 부르던 여성들은 남편이 없을 때처럼 스스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빚에 스스로 책임을 졌으며, 도제를 고용할 수도 있었고, 남편의 승인 없이 계약을 맺을 수도 있었다. 아울러 평민 여성들은 이혼 시 재산의 일부를 나눠 받을 수도 있었다.
결혼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라는 시각 역시 항상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나 족의 경우 결혼을 통한 부부간의 관계보다는 같은 형제자매 간의 관계가 더 우선시된다. 이들은 난세세(‘몰래 찾아가다’라는 뜻)라는 형태로 성적인 관계를 맺고 아기를 출산하지만, 아기를 양육하고 책임지는 것은 전적으로 형제자매들이다. 이들에게 있어 부부라는 개념은 거의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워 보일 정도다.
『진화하는 결혼』에서는 이 외에도 중동 지역의 임시 결혼 풍습인 ‘무타’의 허용을 비롯해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결혼 풍습을 하나하나 짚어 가고 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결혼에 관해 폭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으며, 더불어 결혼의 미래상을 예측해볼 수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이런 생각이 조선시대에는 없었던 것은 분명하므로 해방 이후 서양의 문물이 밀물처럼 밀고 들어올 때 따라온 것이 분명하다. 이 결혼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연하게 생물학적인 짝짓기를 연상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결혼이 짝짓기와는 무관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지가 제법된다. 결혼이 생물학적인 짝짓기와 무관하다면 이것은 사회 제도라는 뜻이고, 사회 제도는 문화의 한 부분으로 진화해 왔다는 것이 지금은 정설이다.
저자는 결혼 제도의 변천을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그것이 문화 진화의 일부분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글을 시작한다."어쨌든 사람들은 수천년 전부터 결혼제도가 위기에 봉착했다며 옛날이 더 좋았다고 주장했으니까 말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기혼 여성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로마인들은 이혼율이 높은 것을 개탄하며 과거의 안정적인 가족과 당시를 비교했다. 미국에 정착한 유럽인들은 거의 배에서 내리자마자 여자들과 아이들의 불손함과 가족의 붕괴를 개탄하기 시작했다."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기원전 2500년 경에 쓰여진 이집트의 상형 문자에 "요즘 젊은이들은 행동거지가 경솔하고 버릇이 없다"라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문화는 끊임없이 진화하는데 사람들은 언제나 그 변화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저자는 현재와 같은 결혼관이 성립된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우리가 어쩌다가 지금과 같은 지경에 이르렀는지 이해하려면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결혼의 일차적인 목표는 부부와 그 자식들의 욕구, 즉 개인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 아니었음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결혼은 평생의 반려자를 구하고 사랑하는 자식을 기르기 위한 일인 동시에, 좋은 가문과 사돈을 맺고 가족의 노동력을 증가시키는 일이기도 했다.""과거 수천 년 동안에도 물론 사람들은 사랑에 빠졌다. 때로는 심지어 배우자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결혼은 근본적으로 사랑과 관계가 없었다. 결혼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너무나 중요한 제도였기 때문에 사랑처럼 비이성적인 감정만을 근거로 실행할 수 없었다.""18세기에 시장경제가 전파되고 계몽주의가 등장하면서 커다란 변화들이 급속히 이루어졌다. 1700년대 말에는 중매결혼 대신 개인이 직접 배우자를 선택하는 결혼이 사회적 이상으로 자리 잡았으며,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혼이 장려되었다.5천 년 만에 처음으로 결혼이 정치적,경제적 동맹 속의 연결 고리라기보다는 두 개인의 사적인 관계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18세기에 사람들은 사랑이 결혼의 근본적인 이유가 되어야 하며, 젊은이들이 사랑을 기초로 배우자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급진적인 새 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19세기에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혼에 감상적인 색채가 더해지고 20세기에는 성이 강조된 것은 각각 이 새로운 결혼관의 발달이 논리적으로 거쳐야 하는 단계였다.""하지만 1950년대에 사상 처음으로 서유럽과 북아메리카의 대다수 가정이 남자가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고 여자는 전업주부로 살림을 맡는 형태를 갖췄다. 1950년대에 새로 나타난 또 하나의 현상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결혼해야 하며, 그것도 젊은 나이에 결혼해야 한다는 문화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저자에 의하면 지금과 같은 결혼관이 성립된 것은 불과 150년 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이 결혼의 전제조건'이라는 이 관념이 바로 현재의 '결혼 제도'의 혼란의 원인이라고 한다."사랑의 결합과 평생에 걸친 친밀한 관계라는 이상이 자리를 잡자마자 사람들은 이혼할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가족이 아이들의 욕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데에 사람들이 동의하자마자 사생아 출생에 대한 법적인 처벌이 비인간적이라는 주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여성들이 사랑 없는 결혼을 하지 않고도 경제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여성에게도 동등한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이 감정을 자유로이 따를 수 있어야 한다면서, 동성애를 범죄에서 제외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 까지 했다."저자에 의하면 고대로 부터 사람들이 결혼을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결혼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가 이렇게나다양한데도,역사상대부분의기간동안부부간의분업은대개사회적으로인정을받았다.""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결혼하는 이유 중에는 혼자 힘으로 모든 일을 다 하며 살아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포함되어 있었다.""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결혼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아무래도 여러 가문과 공동체들이 협동 관계를 맺는 데 기여한다는 점이었을 것이다.""사실 역사를 통틀어 결혼으로 정의되거나 찬양받았던 제도들이 몹시 다양한데도, 그 모든 제도들을 분명히 관통하는 유사점들이 존재한다.
결혼은 대개 성과 관련된 권리와 의무, 성역할, 사돈과의 관계, 자식의 합법적인 지위 등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사람들은 결혼을 통해 사회 안에서 구체적인 권리와 역할을 얻는다."문화 현상을 이야기하면서 종교를 빼놓을 수는 없다. 그래서 저자는 결혼 제도에 미친 교회의 영향도 언급한다."초기 기독교는 이혼과 일부다처제에 단호히 반대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독교가 자리를 잡은 뒤 천 년 동안 이혼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취했다. 심지어는 일부일처제를 옹호하는 입장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근친상간에 대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정의는 중세 시대 결혼의 가장 홍미로운 측면 중 하나였다. 구약성서에서도 신약성서에서도 교회가 정한 근친상간 금지 조항의 근거를 찾을 수는 없었다.""교회법은1139년에야 비로소 성직자의 결혼을 완전히 금지했다."우리나라도 그랬지만, 현대에 들어 성도덕이 문란해지고 결혼 제도가 위험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결혼 생활을 잘 유지하는 법에 대한 조언서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학술지와 달리 대중적인 지침서들은 그 분야 전문가들의 검토를 받는 경우가 드물다. 이런 책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시험을 거친 연구 결과가 아니라, 저자들이 자신에게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방법이거나, 독자들에게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방법이거나, 일부 출판사 영업부가 독자들이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방법들 뿐이다. 이 방법들은 모두 "오랜 세월을 거치며 효과가 입증된 규칙"들과 뒤섞여 소개된다.
하지만 과거의 규칙들이 과거에는 효과가 있었을 지 몰라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이것은 성공서에도 같이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저자는 한편으로 혼란스러워 보이는 현대의 결혼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우리는 틀림없이 지금보다 더 건전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으며, 문제를 겪고 있는 부부들을 더 많이 구해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와서 혈연을 통해 정치적 동맹을 맺거나 농부와 장인들을 현대 경제의 중심으로 되돌려 놓을 수 없듯이, 결혼이 과거처럼 사람들이 서로에게서 애정과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제도라는 위치를 되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개인적인 기대와 사회적인 지원 시스템을 이 새로운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제도로서의 결혼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광범위한 문헌 고증을 통해 보여준다. 저자가 제목도 '진화하는 결혼'이라고 붙였다시피 문화 현상으로서의 결혼도 진화해 왔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 책은 방대한 문헌 조사를 통해 결혼 제도를 고찰한 학술서이다. 그런데 그 방대한 부피의 대부분을 결혼 제도가 어느 때는 어떠했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라는 에피소드의 나열로 채워두었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이라면 이 글에서 요약해 둔 것 정도로 충분할 것이다. 따라서 결혼 제도의 변천사 그 자체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이 두터운 책을 굳이 읽으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출처:https://thinknew.tistory.com/entry/
결혼과 이혼 사이, 부부의 재구성
졸혼·반혼·합혼 부부의 재구성
졸혼, 동기도 가지각색
언제부턴가 자주 들리는 단어가 있다. ‘졸혼(卒婚)’이다. 결혼을 졸업한다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유행이다. ‘소쓰콘(そつこん)’이라고 한다. 지난 2004년 <소쓰콘을 권함>(스기야마 유미코)이라는 책이 출간되면서 서서히 알려졌다.
이혼과는 다르다. 굳이 ‘별거’도 아니다. 법적으로 혼인관계를 유지하면서 자기 삶을 찾는 형태다. 100세 시대, 은퇴한 후에도 약 반백 년을 더 살아야 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를 시작하면서 한국에서도 졸혼 사례가 속속 눈에 띄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황혼이혼이 노인 빈곤을 불러오고, 이혼을 바라보는 남들 시선도 아직 부담스럽기 때문에 ‘졸혼’으로 살아가는 부부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 보편적이진 않아서 스스로 ‘졸혼’이라 규명하진 않지만, 실제로 이러한 형태로 살아가는 부부들이 많다.
같이 살 수도 있고 따로 살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누군가의 남편 또는 아내로 사는 게 아니라 ‘나’ 자신으로 산다는 거다. 꼭 부부 사이가 안 좋은 건 아니다. 이러한 형태인 경우 부부끼리 가끔씩 만나 데이트도 한다.
김성환 씨(65) 부부가 그렇다. 김 씨는 광명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아내 이인혜 씨(56)와 각방을 쓴다. 은퇴 후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진 김 씨는 평소 그림을 그리고 작은 전시회도 연다. 김성환 씨는 “자녀 출가 후 남는 방을 놀리면 뭐하겠나”라면서 “내 작업실로 쓰니 좋다”고 했다. 풍경화를 주로 그리는 김 씨는 ‘출사’를 자주 나간다. 지방 곳곳을 돌며 사진을 찍고 이를 보며 그림을 그린다. 한편 아내 이 씨는 서울에서 직장생활 중이다. 때문에 부부가 마주할 시간은 많지 않다. 이 씨는 그런 김 씨의 시간을 존중한다고 했다. “오히려 가끔 보니까 사이가 더 좋아진 것 같다”면서 “가끔씩 남편을 따라서 출사를 같이 갈 때면 여행 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
경북 경산에 거주하는 이희철 씨(59)는 30년간 같이 살던 부인 고은영 씨(48)와 최근 주말부부가 됐다. 귀촌해 목공작업을 하며 사는 건 이 씨의 오랜 바람이었다. 그러나 고 씨는 대기업 임원. 서로의 뜻을 존중해 이 씨는 귀촌하고 아내 고 씨는 서울에 남았다. 아내는 가끔 주말을 이용해 경산으로 내려가 남편과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고 씨는 “20년 넘게 살 부대끼며 살았는데 이제 지겨울 때도 됐지” 하면서 웃었지만 그 말에선 애정이 묻어났다.
반혼, 법적 한계 빼면 합리적
함께 살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 반쪽 결혼, 반혼(半婚) 커플도 꾸준히 늘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0년 55건이던 사실혼 확인소송은 매년 꾸준히 늘어나 4년 만에 2배가량 증가했다고 한다.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는 부부간 분쟁이 늘어난다는 건 그만큼 반혼 커플이 늘었다는 방증이다. 우선 젊은 층은 ‘실리’를 추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살아보고 신고하겠다는. 그런가 하면 아예 혼인신고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경우도 있다. 특히 자녀계획이 없는 커플의 경우에 더 그렇다. 오롯이 ‘부부 중심’으로 살겠다는 생각이다. 사실혼 관계일 때는 소득세와 주민세 부과 시 배우자 공제 혜택이 없다. 하지만 이들은 이 같은 사실에 연연하지 않는다.
나이 든 커플의 경우에는 자식의 반대로 혼인신고를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바로 상속 문제 때문이다. 7년 전 부인과 사별한 박종호 씨(67)는 5년을 혼자 지내다 2년 전 정모 씨를 만났다. 둘은 지난해부터 작은 아파트를 얻어 함께 살고 있다. 여느 부부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아직 남남이다. 자식들의 반대가 워낙 거세서다. 현행법상 재혼이라도 혼인신고를 하면 박 씨의 재산에서 정 씨의 몫이 배당된다. 만일 재혼하고 박 씨가 하루 만에 사망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발의된 상속법 개정안에 따르면 배우자에게 상속재산의 절반이 우선 배당된다. 이후 남은 재산에 대해서는 현행대로 배우자와 자녀가 1.5 대 1로 나누도록 하고 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배우자가 일단 50%를 가져가고 나머지 반에서 다시 1.5를 가져가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배우자가 70% 정도를 가져갈 수도 있다. 박 씨는 “이렇게 같이 살다가 내가 먼저 가버리면 이 사람에게 아무것도 남길 수 없다”며 씁쓸해했다.
‘사실혼’의 순기능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2011년 자체 보고서를 통해 회원국의 사실혼관계 출산율이 1980년 11%에서 2007년 33%로 3배 증가했다고 소개했다. 국내 일부 전문가들 또한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고 “사실혼 개념을 일반적인 동거에까지 확대해 적용하고, ‘보호할 가치가 있는 관계’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관계’까지 정책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합혼, 지나친 개인주의의 대안
합혼(合婚). 친구, 형제, 자매 부부 등 여러 부부가 함께 사는 형태다. <진화하는 결혼>의 스테파니 쿤츠는 현재의 결혼이 남녀 둘만의 사적인 영역으로 넘어온 건 18세기 말부터라고 말한다. 원래 결혼이란 여러 가문이나 공동체들이 협동관계를 맺는 차원이었다. 실제로 케냐 루오족은 “그들은 우리의 적이고, 우리는 그들과 결혼한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후반부터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인식되면서 결혼을 미루는 남녀가 늘어났다. 이는 개인주의 팽배, 출산율 저하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 그러면서 공동체적 성격의 결혼 형태인 ‘합혼’이 그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인공 대가족’이라는 명칭으로 이러한 가정을 꾸리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오사카에 거주하는 에토 마리 씨(27)는 동호회에서 만난 사토 마사키 씨(37)네 부부와 5년 전부터 함께 살고 있다. 에토 씨는 “예전에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는 게 귀찮아서 일주일에 네 번 정도 외식을 했는데 이제는 식사 준비를 해주는 ‘가족’이 생겨 거의 집에서 밥을 먹는다”고 했다. 사토 씨 또한 “일 때문에 아이를 보육원에 데려다주거나 데려오지 못할 때도 이를 대신해줄 가족이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일본의 한 사회학자는 “핵가족화와 개인주의가 진행돼온 것에 대한 반작용이며, 자연적인 대가족제도가 사라지면서 등장하고 있는 대가족 희구 심리로도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공유 주거’의 개념이 확대되면서 이러한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인천 검암역 인근의 빌라촌. 빌라 8세대 중 401호, 402호, 302호에 공동주거를 선택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우리동네 사람들(우동사)’로, 이들은 한 집에 6명이 사는데 결혼한 커플 두 쌍과 1인 가구로 구성돼 있다. 서울 양천구 목2동 주민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마을에 ‘모기동’이라는 애칭을 붙이고 상부상조하면서 산다. ‘사랑방’ 등 공통된 공간을 두고 가끔씩 마을축제도 연다. 이곳 또한 부부 두 쌍과 1인 가구 등으로 이뤄져 있다. 그 밖에 성미산의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 주택협동조합 ‘뜨락’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여성조선 박지현 기자 2016.10.31
결혼의 종말 사랑·섹스·연애·결혼에 대한 사유 한중섭 저 | 도서출판파람 | 2020년 06월
한중섭 -생각하고 기록하는 사람이다. 인문학과 신기술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잡다한 분야에 호기심이 많다. 증권사, 자산운용사, 암호화폐 스타트업, 헤지펀드, 벤처 캐피털에서 경력을 쌓았다. 큰돈이 오가는 금융 투자 업계와 스타트업에서 일한 경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부류의 부자를 만나며 ‘부자’에 대해 자신만의 철학을 세울 수 있었다.
저서로는 『친절한 독재자, 디지털 빅브라더가 온다』 『결혼의 종말』 『비트코인 제국주의』 등이 있다.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주요한 동기는 돈에 관한 순수한 호기심과, 작품을 인정받고 싶은 허영심, 그리고 독자들이 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를 바라는 정치적인 목적이다. 유튜브와 SNS에서 책을 리뷰하는 ‘21세기 살롱’을 운영한다. 글쓰기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감을 주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목차
프롤로그 결혼이란 무엇인가
사랑·섹스·연애·결혼의 변천사
1장 진화하는 결혼
결혼의 발명
농업혁명과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
일부일처제, 섹스를 통제하다
결혼은 최고의 비즈니스다
2장 낭만적인 사랑과 결혼의 결합
로맨스의 대중화
사랑이 결혼의 전제조건이 되다
데이트의 탄생, 사랑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다
피임법의 발전, 섹스 혁명을 야기하다
코르셋을 던져버린 여성들
3장 섹스와 결혼의 충돌
호모 사피엔스, 가장 특이하게 섹스하는 동물
남녀 짝짓기에 대한 불편한 진실
남성뿐 아니라 여성도 섹스를 좋아한다
멀쩡한 사람들이 불륜을 저지르는 이유
폴리아모리, 아내가 결혼했다
4장 현대인의 사랑과 연애와 결혼
사랑한다면 소비하라
낭만 인플레이션의 함정에 빠지다
아날로그 사랑 vs. 디지털 사랑
참을 수 없는 썸의 가벼움
현대인들이 결혼에 심드렁한 이유
5장 결혼의 종말
유동하는 결혼
결혼을 불공정 거래로 여기는 건어물녀와 초식남
결혼의 양극화, 돈 없으면 결혼 못한다
신인류의 디지털 사랑, 러브 로봇과 사랑을 나누다
배우자를 임대하는 시대
결혼 대신 동거를 택하다
에필로그 결혼의 종말, 그 이후
출처 및 참고문헌
출판사 리뷰
군혼(群婚)에서 비즈니스적 결혼까지 시대에 따라 진화하다
“결혼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이 책의 내용은 결혼의 역사부터 시작된다. 우리 인류에게 최초의 결혼이 언제였는지 불분명하지만 수렵시대에 가족을 구성하는 군혼을 결혼의 시초로 본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군혼에서는 가족을 비롯해 집단구성원끼리 자유로운 성관계가 허용되었다. 이후 농업혁명을 거치며 혈족 간 성관계를 금하고 남녀가 한 사람의 배우자를 선택하는 대우혼(對偶婚)이 자리 잡았고, 다시 일부일처제로 진화했다. 하지만 농업혁명, 계급사회, 부계사회로의 전환, 여성의 지휘하락 등의 변화를 거치며 결혼을 둘러싼 소유욕과 질투, 비즈니스적인 이해관계가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낭만적인 사랑과 결혼의 만남 결혼의 조건이 바뀌다
남녀 당사자들 간의 애정이 결혼조건의 우선순위가 되면서 연애와 사랑, 그리고 결혼 문화에 많은 것이 달라졌다. 특히, 계몽주의가 확산된 17-18세기 즈음에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개인의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이 붐을 이루면서 사람들에게 낭만적인 사랑이 삶과 결혼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었다. 가문 간 비즈니스였던 결혼이 사랑을 전제로 한 개인 간 약속으로 변화되면서 결혼의 당사자들이 결혼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데이트’라는 연애문화를 창조했고, 페미니즘 운동은 남성과 여성 간 사랑의 역학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쾌락을 즐기는 인간 섹스와 결혼의 충돌
저자는 호모사피엔스, 즉 현생 인류는 ‘가장 특이하게 섹스하는 동물’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동물은 섹스의 목적이 ‘생식’인데 반해, 호모사피엔스는 섹스의 주된 동기가 쾌락이라는 것이다. 또한 다른 동물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금기'와 '수치심'이 인간의 성생활에는 존재한다. 이처럼 섹스에 대한 쾌락적 욕구가 강한 인간이 사회규범 때문에 도덕적인 성생활과 일부일처제를 지키고 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며, 결혼생활에서 충돌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저자는 일부일처제를 반대하거나 정상적인 부부들의 성생활을 부정할 의도가 없음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진화심리학, 에로티즘, 폴리아모리 등의 개념을 소개하며 낭만적인 사랑, 정열적인 섹스, 가정의 안정감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결혼이라는 '올인원 패키지'로 해결해야 한다는 믿음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인지에 대해 말한다.
현대인의 사랑, 연애, 결혼 새로운 문화를 만들다
사랑도 문화다. 저자는 사랑과 연애, 심지어 결혼까지도 시대의 흐름에 맞물려 돌아가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자본주의가 '사랑한다면 소비하라'는 원칙하에 인간을 상품으로 전락시키며 사랑의 본질을 퇴색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디어는 사랑의 긍정성만을 편향적으로 다루고 범람하는 낭만의 합성 이미지는 '낭만 인플레이션'을 낳아 사람들로 하여금 사랑에 대해 터무니없는 환상을 갖게 만든다. 또한 러브스타그램, 온라인 데이팅과 같은 디지털 사랑 양식이 생겨나면서 사랑과 연애와 결혼에 관한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고 있다고 밝힌다. 만남과 연애의 중간 단계인 '썸'도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던 현대인의 사랑 방식이다.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저자는 이러한 문화적 변화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말한다.
비혼, 동거, 이혼, 졸혼, 로봇과의 사랑, 가상현실 사랑 결혼의 종말이 다가오다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2030년쯤이면 결혼제도가 사라진다.’고 예측하며 ‘이혼이 간편해지고 90%가 동거로 바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이제 결혼은 고체가 아닌 액체의 속성으로 변했다며 결혼의 종말을 예고한다. 여성의 지위 향상, 경제적 불안, 개인주의 확산 등으로 지금의 결혼방식은 구시대의 유물처럼 변해가고 있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결혼 대신 동거를 선택하고, 로봇과 사랑을 나누고, 배우자를 임대하는 시대까지 예고하며 결혼의 미래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과연 결혼의 종말은 디스토피아일까? 분명한 것은 과거의 사람들이 오늘날 사랑과 연애와 섹스와 결혼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미래의 후손들은 현재의 우리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랑하고 연애하고 섹스하고 불륜을 저지르며 잘 살아갈 것이라는 점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제는 그 누구도 결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사실을 그럭저럭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책 속으로
결혼의 진화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보면, 우리는 향후 이십 년간의 변화가 과거 이백 년간의 변화보다 더욱 급진적일 수 있다는 합리적인 유추를 해볼 수 있다. 사실 오늘날 결혼은 이미 변화의 파고를 넘는 중이다. 현대인들은 결혼을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청년 세대는 결혼을 더 이상 삶의 우선순위로 두지 않으며 황혼이혼과 졸혼은 기성세대로부터 공감대를 얻고 있다. 비혼과 이혼은 더 이상 유별난 사례가 아니다.---「프롤로그」중에서
오랜 시기에 걸쳐 인간의 짝짓기와 가족의 형성은 종의 생존과 번식이라는 본능적 욕구에 충실한 생물학적 현상에 지나지 않았다. 오늘날 강력히 금기시되는 근친상간과 난교가 과거에는 일상적이었다. 그러다 인지 혁명이 태동한 이후 인간은 세를 불리면서 결혼이라는 사회문화적 제도를 발명했다. 결혼은 외부 집단과 유대감을 형성하고 동맹 관계를 강화하며 사람과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매개체였다. 이때 결혼이 성사되는데 있어서 당사자들의 의지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결혼의 발명」중에서
질투와 일부일처제는 문명의 발명품이다. 실제로 포유류 중에서 일부일처제를 채택한 비율은 5% 미만에 불과하다. 또한 인간이라는 종을 놓고 봤을 때도, 인간 사회에 일부일처제가 자리 잡은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600만 년 인류 역사에서 일부일처제가 정착된 시기는 고작 1%도 되지 않는다.---「일부일처제, 섹스를 통제하다」중에서
피임의 대중화는 여성 해방 운동에 불을 지폈다. 여성들은 투쟁을 통해 정치적 권리를 획득했던 것처럼 성적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여성은 출산 도구가 아니다” “내 자궁은 나의 것이다” 와 같은 시위 구호가 사회적 공감대를 얻고 확산되었다. 사유재산의 탄생과 남성의 강박적인 부성 확실성에 기인한, 여성의 성적 자유를 억압하는 전근대적인 인습은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피임법의 발전, 섹스 혁명을 야기하다」중에서
단언컨대, 호모 사피엔스만큼 섹스를 좋아하고 특이하게 섹스하는 동물은 없다. 다른 동물들의 경우 섹스의 목적은 대개 ‘생식’이다. 반면 호모 사피엔스는 생식뿐 아니라 쾌락을 즐기기 위해 섹스하는 경우가 많다. 임신의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는 피임법이 만연한 것은, 호모 사피엔스가 섹스를 하는 주된 동기가 생식이 아닌 쾌락이라는 것을 증명한다.---「호모 사피엔스, 가장 특이하게 섹스하는 동물」중에서
진화심리학은 성적으로 문란한 남성은 일부다처제를 지향하고, 성적으로 소극적인 여성은 일부일처제를 지향하는 것이 태생적이라고 주장한다. 번식상의 이득을 위해 남성은 항상 되도록 많은 여성과의 섹스에 굶주린 상태이고, 여성은 자신과 자녀에게 자원을 꾸준하고도 독점적으로 제공할 남성의 능력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화심리학을 지지하는 자들이 대체로 남성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남성뿐 아니라 여성도 섹스를 좋아한다」중에서
우리의 조상들은 부부간의 성생활과 결혼 생활의 만족도를 결부시키지 않을 정도로 현명했다. 그러나 17-18세기 들어 낭만적인 사랑과 결혼이 결합되고, 20세기 들어 피임이 발전하고 섹스 혁명이 발발하면서 부부간의 성생활은 결혼 생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직 한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정열적인 애정 관계를 유지하며, 건강한 성생활을 지속해야 한다는 놀라운 개념이 많은 사람들에게 강요되기 시작했다.---「멀쩡한 사람들이 불륜을 저지르는 이유」중에서
자본주의는 사랑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근대 후기부터 대중화된 낭만적인 사랑은 20세기부터 본격적으로 태동한 자본주의적인 사랑에 밀려 그 영향력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 자본주의적인 사랑은 인간을 짝짓기 시장의 상품으로 만들고 개인의 고유성을 단순한 교환가치로 환원해 버린다. 사랑을 체험하려는 현대인들은 짝짓기 시장에서 잘 팔리는 상품이 되기 위해, 동시에 최적의 상품을 찾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사랑한다면 소비하라」중에서
결혼을 반드시 해내야 할 인생의 과업으로 여겼던 조상들과는 달리 왜 현대인들은 결혼에 대해 심드렁한 것일까? 도시화 및 산업화, 경제 성장, 기술 발전 등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맞물려 인간 사회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했고, 이는 결혼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중에서도 특히 1)여성의 지위 향상; 2)경제적 불안감; 3)개인주의의 확산; 4)배우자에 대한 높은 기대와 같은 요인들은 현대인들로 하여금 결혼을 회피하게 만든다.---「현대인들이 결혼에 심드렁한 이유」중에서
결혼의 종말 시기를 2030년으로 설정한 것이 다소 빠른 감이 있어 보이지만, 나는 자크 아탈리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결혼이라는 견고한 제도가 급격히 유동하는 것을 넘어 종국에는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결혼 제도가 존재하지 않던 역사적 표준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시기가 이십 년 후가 되든, 이백 년 후가 되든지 간에 결혼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유동하는 결혼」중에서
불과 수십 년 전 사람들이 오늘날 온라인 데이팅의 대중화를 전혀 예견하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는 현재의 기준으로 미래의 사랑을 정확히 예측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예술작품의 힘을 빌려 미래를 상상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영화 [그녀]와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묘사한 것처럼, AI와 가상현실이 우리가 관계를 맺고 사랑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꿀 잠재력이 크다고 생각한다. 미래의 신(新) 인류는 러브로봇과 가상현실 사랑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디지털 사랑을 경험할 것이고, 이것이 대중화된다면 결혼은 고지식한 아날로그 사랑의 유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신인류의 디지털 사랑, 러브 로봇과 사랑을 나누다」중에서
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사랑에 대하여, 섹스에 대하여, 연애에 대하여, 결혼에 대하여,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하여 스스로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그리하여 과도한 질투와 소유욕을 열렬한 사랑의 증거로 착각하거나, 자본주의적인 사랑에 세뇌돼 소비와 애정 표현을 동일시 여기거나, 낭만 인플레이션의 함정에 빠져 완벽한 사랑이 존재할 것이라는 헛된 환상을 품거나, 디지털 사랑이 조장하는 과잉 연결을 진심 어린 소통으로 오해하거나, 자기 자신과 타인을 기만하고 성급하게 결혼한 뒤 평생을 후회하거나, 배우자에 대한 불만을 자식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으로 벌충하려 하거나, 결혼 생활의 만성적인 권태를 일시적인 위안을 주는 불륜으로 극복하려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에필로그」중에서
결혼의 종말 이혼소송의 고통과 현실
결혼은 많은 이들에게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혼인생활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그 결과로 이혼소송이 발생하고, 이는 결혼 생활의 고통과 현실에 대한 반영이 됩니다.
이혼소송은 결혼 생활 도중에 발생한 갈등과 불화로 인해 선택된 행동입니다. 이는 부부 간의 인간관계의 해체로, 각각의 이혼 과정은 상대방과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부부들은 정서적, 재정적으로 큰 고통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혼소송은 법적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며, 이는 더욱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과정입니다. 각각의 이혼소송은 혼인관계와 부동산, 자녀양육, 재산분할 등 다양한 쟁점들을 포함하게 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변호사와 법정에서의 경매, 증인실질조사, 증거 제출 등의 절차가 이루어집니다.
이혼소송은 단순한 법적인 문제로만 볼 수 없습니다. 이는 결혼 생활의 실패, 상처, 분노, 슬픔 등 다양한 감정과 함께합니다. 부부는 서로의 기대와 신뢰를 잃게 되고, 이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특히 자녀는 이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며, 그들은 정서적으로 큰 충격과 혼란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결혼의 종말인 이혼소송은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때 보다 더 많은 고통을 수반할 수 있습니다. 이 고통을 최소화하고 싶다면, 부부는 갈등을 예방하고, 상호적인 이해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또한 법적인 절차에 착실히 따라야 하며, 자녀의 이해와 지원도 필요합니다.
결혼은 사랑과 행복을 찾는 과정이지만, 가끔은 이혼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결혼 생활의 고통과 현실을 직면하고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이혼은 어려움을 겪는 시기이지만, 지지와 도움을 받으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health1422/223277051627 작성자 health1422
결혼의 길 유섬∙글/그림
https://comic.naver.com/challenge/detail?titleId=804137&no=1
0화. 결혼의 길 / 1화. 안 어울리는 커플/ 3화. 결혼의 이유(1) 7화. 결혼 준비하면서 레벨업....
과학자의 질문, ‘인간은 왜 결혼하나
사랑이 결혼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은 놀랍게도 아주 최근에 탄생한 것이다. 낭만적 사랑, 안정된 가정, 정열적 섹스를 모두 결혼에서 찾으려는 근대인의 환상은 대부분 실망으로 귀결된다.
계엄 사태로 묻히기는 했지만, 최근 배우 정우성과 모델 문가비,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의 혼외 자녀가 사회적 이슈였다. 도덕적 비난이 주류인 가운데, 프라이버시라는 반론도 있었다. 이 기회에 결혼을 주제로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결혼은 위험한 주제다. 어떻게 다뤄도 욕먹기 십상이다. 하지만 인간 사회에서 결혼만큼 중요한 제도도 많지 않다. 근래 결혼제도를 보는 시각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니 위험하다고 피하기만 할 수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여기서 혼외 자녀나 결혼제도에 대한 도덕적 가치판단을 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결혼이란 어떤 제도인지, 근래 이 제도가 왜 자주 문제가 되는지 격물치지의 정신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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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의 많은 동물이 양성생식으로 번식한다. 암수가 만나 정자와 난자를 제공·결합하여 자식을 만든다는 뜻이다. 번식은 생물에게 너무나 중요한 과제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유전자를 최대한 많이 남기는 것이야말로 모든 생명이 가진 궁극의 목표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렇다면 번식이야말로 최선의 전략을 따라야 한다. 결혼은 인간의 번식과 밀접하게 관련된 제도다. 최선의 번식이란 무엇일까? 최고의 상대를 구하여 최대한 많이 번식하는 것이 아닐까? 나아가 자식이 다시 최선의 번식에 성공하는 것이리라. 한 개체가 최선의 번식에 성공하고 죽음을 맞이하면, 적어도 ‘이기적 유전자’의 시각에서는 만족스러운 삶이라 할 수 있을 테다.
동물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것을 인간에게 적용하는 순간 논란이 일어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간도 동물이다. 인간도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수정란을 만들고, 수정란의 세포분열로 아이가 형성되고, 다른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아이에게 젖을 먹인다. 인간의 유전자도 이기적이니 최선의 번식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다. 결혼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면 (마음이 불편하지만) 인간도 동물의 하나라는 전제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렇다면 결혼, 즉 장기적인 일부일처제는 어떻게 인간 짝짓기의 표준 양식이 된 것일까? 아직 이 질문에 대해 모두가 동의하는 답은 없으니 그럴듯한 추측을 해보는 수밖에 없다.
수렵채집 시대의 가족은 군혼(群婚)이었다고 한다. 집단 내 구성원이 모두 서로의 남편이자 아내였다는 것으로, 지금의 시각으로는 상상하기도 힘든 끔찍한 형태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많다. 이후 긴 세월을 거치며 부모 자식, 형제자매 간의 성관계, 즉 근친혼이 금지되는 가족의 형태가 자리 잡는다. 이 경우 족외혼을 해야 하니 외부 집단과의 교류는 불가피하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다른 집단과 평화롭게 공존한 것은 아니었지만, 때로 자원을 공동으로 이용할 정도의 협력은 필요했다. 항상 이동해야 하는 수렵채집 집단의 경우, 잉여물자 축적이 불가능하다. 식량이 부족하거나 수렵채집 활동에 도움이 될 정보가 필요할 때마다 다른 집단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외부 세계와 단절된 (그래서 선사시대와 다름없는 삶을 사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부족들은 가혹한 환경의 사막에서 살아왔다. 이들은 다른 부족과의 결혼동맹을 통해 어디를 여행하든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이때 부족의 장로가 결혼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며, 이 결정에 개인이 저항하는 것은 결코 용납되지 못한다. 이 사례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듯이, 선사시대 결혼은 낯선 외부 집단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세습을 위한 가부장 남성의 해결책
농업이 시작되자 결혼에 변화가 일어난다. 이제 수렵채집인은 정착하게 되고, 인구 증가는 물론, 잉여 산물이 생긴다. 잉여 산물은 사유재산이 되고, 일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계급도 탄생한다. 이들은 주로 무력을 가진 남성이었다. 이렇게 가부장적 사회가 정착되어간다. 가부장 남성은 사유재산을 자식에게 남겨주길 원했고, 이를 위해 여성을 억압하게 된다. 여성은 직접 아이를 출산하므로 자식이 누구인지 헷갈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남성은 자식이 진짜 나의 아이인지 확신하기 힘들다. 여성의 성을 배타적으로 소유하고 정절을 강요하는 것이 이 문제에 대한 가부장 남성의 해결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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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결혼은 상류계급에서 지위를 세습하고 부를 상속하기 위해 필수적인 제도가 되었다. 결혼이 일종의 경제적 계약이었다는 뜻이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결혼은 중요했다. 농업은 엄청난 양의 노동을 요구했는데, 가족의 도움은 물론 부부간의 생산 분업 없이 생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은 보조적 노동과 집안일을 해야 했으며 노동력 확충을 위해 가급적 많은 아이를 낳아야 했다. 평범한 사람에게도 재산 상속은 중요한 문제다. 가부장제이므로 재산은 합법적 아들에게 상속되었다.
이런 결혼에서 일부일처제는 재산 상속과 관련한 합법적 자식을 결정하는 데 필요하다. 경제력이 있는 전근대의 남성은 다수의 아내를 두었지만, 일부일처제의 합법적 아내의 자식만 상속을 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전근대 시대의 결혼은 경제적 계약에 가까웠던 터라 부부간의 사랑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결혼은 남녀 두 사람의 결합이 아니라 두 집안의 결합, 좀 더 정확히는 사회경제적 결합이었다. 이런 형태의 결혼제도는 생물학적 번식 본능을 뛰어넘는 인간만의 특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부부간의 사랑보다 부모 자식, 혹은 형제자매 사이의 사랑을 더 중요시했다. 부부간의 지나친 사랑은 비난의 대상이었다. 서구에서도 부부간의 사랑은 필수적 요소가 아니라 보너스로 여겼다. 실제 당시의 많은 이들이 결혼제도 바깥에서 사랑을 찾고 아이를 낳았다.
집안 동의 없는 결혼 가능해진 이유
근대가 되자 결혼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난다. 사랑이 결혼의 전제가 된 것이다. 서양에서 낭만적 사랑이라는 이상은 17~18세기 널리 퍼졌다. 르네상스로 ‘개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인쇄술의 발전으로 로맨스를 다루는 책들이 대중화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안의 동의 없이 사랑만으로 결혼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필요했다. 산업혁명과 과학기술 발전으로 생겨난 임금노동과 도시화 덕분에 가족의 도움 없이 부부의 힘만으로 자립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핵가족의 탄생이다. 계몽주의는 강제 결혼보다 사랑에 기반을 둔 자발적 결혼을 옹호했다. 이제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사랑이 결혼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은 놀랍게도 아주 최근에 (서양에서는 200여 년, 한국에서는 100여 년 전쯤) 탄생한 것이다.
근대인은 낭만적인 사랑, 안정된 가정, 정열적인 섹스, 모두를 결혼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아가 현대의 낭만적 사랑은 대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환상인 경우도 많다. 낭만적 사랑을 하는 데는 종종 많은 돈이 들기 때문이다. 사랑은 도파민에 의한 단기간의 흥분, 이어지는 권태와 질투, 의심과 슬픔을 포함하는 복잡한 현상이다. 하지만 낭만적 사랑은 긍정적인 면만 부각하며 우리를 기만한다.
전근대 사람들은 결혼에서 사랑을 기대하지 않았다. 결혼은 주로 경제적인 문제였다. 그러니 사랑 때문에 실망할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근대인에게 결혼은 사랑이다. 문명이 시작된 이래 결혼은 사랑과 직접적 관계가 없었지만, 지금 우리는 결혼에서 사랑을 찾는다. 여기서 현대 결혼의 많은 문제가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부부 사이에 사랑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서로 사랑하며 사는 부부도 많다. 하지만 우리는 결혼제도와 사랑을 조화시킬 최고의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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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으로 원시 인간의 짝짓기는 일부다처제로 추측되지만, 인류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일부일처제 결혼이 표준이다. 여기에는 경제적 계약 말고도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참고로 포유류 가운데 일부일처제인 경우는 흔치 않다. 일부일처제가 아니었다면, 짝을 원해도 찾지 못하는 남성이 많을 테니 사회가 불안정해질 것이다. 소규모 집단을 이루는 일부다처제의 고릴라나 바다표범이라면 모를까, 대규모 협력이 필요한 인간 사회에서 이런 불안정성은 사회 자체를 붕괴시킬 수 있을 것이다.
농업혁명 이후 가부장제를 지탱하던 남성의 무력은 현대사회에서 더 이상 생존에 유리한 능력이 아니다.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사회적 권력도 강해져가는 지금, 결혼제도가 탄생할 때 중요했던 가부장제는 점점 빛바랜 신화가 되어가는 중이다. 장자상속 원칙도 무너지고, 사랑을 기반으로 한 근대 결혼의 이상도 도전받고 있다. 이제 이혼은 놀라운 일이 아니고,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미혼으로 살아간다. 인간의 번식이 결혼제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면 인류가 적정 인구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까? 근대가 되며 결혼에 로맨틱한 사랑이 결합하여 혁명이 일어났다. 그 혁명은 아직 진행 중이다.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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