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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by 이성근 2024. 4. 8.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강지나/돌베개/2023.11.

강지나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청소년 정책을 연구한다. 교사생활을 하다가 가난한 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다. 이 아이들이 사회의 일원이 되어 다른 사람들과 나란히 서서 걸어가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감동받고 배우며 함께 성장해왔다. 그런 만큼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고 있다. 숫자와 통계, 점수와 등급으로 평가하는 세상에서도 아이들은 자기만의 목소리가 있고 나름의 삶의 지혜를 터득해간다는 것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같이 옮긴 책으로 제도적 문화기술지가 있다.

목차

들어가며

미래를 생각하면 정말 어두워요

우울을 견디는 삶, 소희

[소희 뒷이야기] 가난한 가족은 왜 우울한가?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요

바르고 성실한 청년, 영성

[영성 뒷이야기] 가족에 대한 애틋함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제 경험을 활용하는 게 제 강점이에요

슈퍼 긍정의 에너지, 지현

[지현 뒷이야기] 가난을 극복하는 힘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나중에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우울한 청춘의 그늘, 연우

[연우 뒷이야기] 자신에게 잘 맞는 길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여기서 밀리면 끝이에요

빈곤의 늪, 수정

[수정 뒷이야기] 취업 이후에도 왜 빈곤 대물림은 끊이지 않는가?

 

오토바이를 타면 답답한 기분이 풀려요

말 그대로 질풍노도, 현석

[현석 뒷이야기]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은 누구인가?

 

돈이 없으면 불안해요

미래 사업가, 우빈

[우빈 뒷이야기] 일하는 청소년들은 어떤 삶을 꿈꾸고 있나?

 

사람들 시선이 싫어요

눈에 띄지만 시선이 무서운, 혜주

[혜주 뒷이야기] 학교 밖 세상의 시선이 왜 두려웠을까?

나가며

 

출판사 서평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여러 번 발음해보게 되는 말이다. 마음이 슬퍼지다가 부끄러워진다. 이 책은 애써 감은 눈을 뜨게 한다. 장기적 빈곤층에서 성장한 여덟 명의 목소리는 가난 서사의 게으른 접근인 대견함불쌍함너머를 환하게 비춘다. 사람들이 섣부르게 재단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생활의 요소와 맥락이 얽힌 상태가 가난임을 드러낸다. 그래서 책장을 덮고 나면 느끼게 된다. 가난하지 않은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지. 한 사람이 성장하는 동안 자연스레 취하는 것, 자기 몫으로 누린 것, 눈감은 것, 선 그은 것이 얼마나 세세하고 많은지를 말이다. 제목이 곧 메시지다.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던져야 할 단 하나의 물음이 담긴 책이다._은유(르포 작가,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저자)

가난이 주인공 자리를 꿰찬 삶은 피로하다. 아이들은 성장의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조로한다. ‘다음을 계획하기 어려운 삶에서 체념은 생존 전략이자 지혜가 된다. 저자는 그들의 말과 말 사이를 방황하며 깨닫는다. 이들의 이야기가 공동체를 위한 중요한 증언이자 폭로임을. 누군가에게는 선진국일 한국사회가 짜놓은 교육·노동·복지의 그물이 얼마나 성기고 낡았는지를. 숫자나 통계가 아니라 구체적인 이름과 목소리가 주는 통증을 성실하게 기록했다. 몰랐다면 알아야 하고, 안다면 외면해서는 안 될 목소리가 도착했다._장일호(시사IN기자, 슬픔의 방문저자)

흙수저/금수저의 시대, 가난한 아이들의 말들

지난 10여 년간, ‘가난 혐오’, ‘흙수저’, ‘빈곤 대물림’, ‘청년빈곤같은 말들이 우리 사회의 가난 담론을 지배했다. ‘가난은 은폐되어야 할 상황이거나 모욕의 대상이었다. 또는 불행의 상징이거나 출생과 함께 벗어날 수 없는 신분 같은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가난은 실질적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교육을 통한 계급 이동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고 노동의 가치가 하락한 시대, ‘대치동 키즈’, ‘금수저’, ‘부모 찬스같은 말들과 거리가 먼 청()년들은 어떤 경험을 했고 무엇을 꿈꾸어왔을까? 지금이야말로 이러한 가난과 불평등에 대해 치밀하고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한 시기일 것이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은 빈곤 대물림을 겪은 가정의 청소년들에 대한 저자의 박사학위논문(빈곤대물림 가족 청소년의 대응기제)에서 시작되었다. 20년 넘게 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초임 교사 시절,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하는 제자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현실에 자괴감과 무력함을 느껴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다. 이 책은 2016년 완성된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을 바탕으로 이 청소년들이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을 계속 따라가며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냄으로써, 가난을 둘러싼 겹겹의 현실을 철저히 증언하고 폭로한다. 가족 문제와 진로 고민, 우울증, 탈학교ㆍ가출과 범죄, 그리고 사회 진출과 성인으로서의 자립, ()년의 노동 경험 등의 심층적인 이야기를 생생하게 기록하며, 마지막에는 교육ㆍ노동ㆍ복지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과 제안으로 나아간다.

가난의 틈새에서 자라난 성장의 말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지금 한국사회의 빈곤에 대한 해부인 동시에, 가난이라는 굴레 속에서 청()년들이 어떻게 좌충우돌하면서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를 발견해내는지에 대한 가슴 시린 성장담이다. 또한 기존 청()년 담론에서 지워진 사람들, , 특성화고나 2, 3년제 대학 졸업생, 학교 밖 청소년, 불안정 노동자들의 이야기이자, 1990년대에 태어나 201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내고 2020년대에 청년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모두 여덟 명의 청()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조부모부터 대를 이어 내려온 우울증과 중독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소희, 성실하게 생활하면 그에 따른 보상을 받으리라고 믿지만 한편으론 불안한 모범생 영성, 어려운 환경에서도 정말 원하는 일을 위해 자신의 선택을 밀고나가는 지현, 가족의 무관심과 방임 속에서도 사색하는 시간을 통해 좋아하는 일을 찾은 연우, 어머니의 병과 빚 때문에 꿈을 포기하다가 독립하게 된 수정, 전과자라는 편견과 오해 속에서도 자신을 끊임없이 바꾸고 채워나가려는 현석, ‘돈 좀 만지는 사장님이 되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전념하는 우빈, 학교 밖 청소년으로 자존감이 많이 낮았지만 이제 자기 자리를 찾은 혜주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저마다 성격도, 삶에서 추구하는 일도, 구체적으로 처한 상황도 다르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놀랍도록 닮아 있다. 가난한 가정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삶에 여러 제약이 많다는 뜻이고, 정신적으로 취약해지기 쉽다는 뜻이며, ‘가족에 대해 지나치게 많이 생각하게 된다는 뜻이자,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짐을 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불우한 가정에서 성장한 청소년이 가난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단순히 대학에 합격하는 것도, 졸업 후 안정적인 일자리에 취직하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빈곤은 단순히 낮은 소득이 아니라 기본적 역량의 박탈이며 역량은 개인이 가치 있게 여기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자유”(146)를 의미한다는 아마티아 센의 이야기를 따른다. 그렇기에 가난을 벗어난다는 것은 역량을 되찾는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가난, 가족, 다른 사람들과 사회에 대한 인식의 폭을 확장하고 자기 자신을 고유한 욕망을 지닌 독립된 개인으로서 이해하게 될 때 아이들은 부쩍 성장한다. 이러한 가난 이야기가 성장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한 이 여덟 명의 청()년들은 친구, 가족, 학교, 지역아동센터, 사회복지관, 일터로부터 크고 작은 도움을 받으면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저자는 이들이 자신이 힘들 때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았듯이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했”(8)다고 쓴다.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받은 것을 돌려주고자 하는 마음, 자신의 이야기가 공동체의 자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이들의 진정성과 용기는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지점이다.

정책 연구자가 된 교사가 전하는 사랑의 말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여덟 명의 청()년이 경험한 지난 10년간의 기록인 동시에, 20년 넘게 지속되어온 저자의 고민이 맺은 결실로서, 제자들 앞에서 결코 무력해지지 않으려는 한 교사의 책임감 있는 기록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 강지나는 경기도 소재 중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쳐온 교사이자, 사회복지 정책(청소년)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정책과 관련된 여러 편의 논문을 쓴 연구자다. 초임 교사 시절, 가난한 가정에서 학대받는 아이들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그는 그러한 상황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는 대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방법을 모색했다. 교사는 학교사회복지사, 이후엔 정책 연구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동안의 진심 어린 시간들이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겼다.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가난한 청()년들의 목소리와 함께, 저자가 교육 현장과 복지 현장에서 끄집어낸 생생한 증언과 통찰들이 여기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감정적인 접근은 최소화한다. 저자는 세월과 함께 이들의 변화와 삶의 굴곡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때로는 애처롭고 가엾다가 어떨 때는 존경스럽고 대견하다는 느낌이 무수히 교차했다”(8)고 쓰지만, 그러한 마음은 보이지 않는 흔적으로 남는다. 이 책의 각 장은 여덟 명의 청()년의 목소리가 전면에 나서는 전반부,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로부터 이끌어낸 핵심 주제 또는 의제를 논의하는 후반부로 구성된다. 전반부는 저자와 인터뷰 참여자들이 10년 넘게 관계를 유지해온 만큼 따뜻하고 긴밀한 대화에 함께하는 듯한 느낌을 전달하며, 여덟 명 각각의 개성과 말투, 감정이 매우 생생하게 살아 있다. 반면, 후반부는 이들 개인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좀 더 일반화된 문제를 분석한다. 인터뷰 참여자 개인에 대한 애정, 그리고 연구자로서의 냉정함과 차분함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이 교차되며, 이 조금 다른 결의 이야기들은 가난한 청()년들의 생애, 마음풍경, 가난의 사회적 구조를 입체적으로 조명해낸다. 이렇게 볼 때, 이 책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한 교사가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전하는, 또는 오랫동안 보내려고 애쓴 끝에 결국은 도착하게 된 소중한 편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

나는 성장하고 싶은 어린 생명이 가난이란 굴레와 가족으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고 굴절되고 다시 일어서는지 그들의 목소리로 기록하고 싶었다. 그 안에는 세상에서 흔히 통용되는 가난에 대한 인식이나 이미지와 다른,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가 있었다. 나는 청소년들이 삶에서 얻어낸 그 통찰과 지혜를 학문적으로 담아내고 싶었다. _7.

처음 만날 때는 열예닐곱 살의 청소년이었던 이들이 지금은 서른 즈음의 청년이 되었다. 세월과 함께 이들의 변화와 삶의 굴곡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때로는 애처롭고 가엾다가 어떨 때는 존경스럽고 대견하다는 느낌이 무수히 교차했다. 이들은 자신이 힘들 때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았듯이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했고, 다른 인터뷰 참여자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어려운 환경에 처한 다른 청()년들을 위한 마음으로 오랫동안 내 책을 응원해주고 기다려주었다. _8.

나는 소희가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대학에 입학해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매우 기뻤다. 똘똘하고 당찬 소희가 역시 세상에 보란 듯이 그 일을 다 헤쳐나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생활을 하는 소희를 다시 만났을 때 여전히 10대 때처럼 우울하고 관계 맺기를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의아했다. 힘들면 아직도 과하게 술을 마시고 사귀는 사람들도 예전 친구들의 범위에서 별로 많이 벗어나지 못했다. 그를 오랫동안 보아왔던 사회복지사도 역시 이 부분을 설명하지 못했다. 왜 불안이나 우울과 같은 정서적인 문제가 세대를 이어 반복되는가 하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_34.

나는 영성을 보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영성은 가족이 자신에게 꼭 도움이 되기만 했던 것은 아닌데도 왜 가족을 위해 여러 가지 결정을 할까? 영성네 가족은 어려움을 겪고 헤어지는 위기도 있었지만 결국엔 다시 결합하였고 지금은 화목한 예전 관계를 되찾았다. 영성의 성장기에 부모가 보여준 이런 과정은 삶에서 하나의 롤모델이 된 것 같았다. _55.

글을 쓰는 것도 그래요. 장학금을 받으려면 제 사정에 대한 글을 써야 되잖아요. 그렇게 글을 많이 쓰다 보니까 또 글쓰기도 느는 거예요. 왜 이렇게 글을 잘 쓰냐면서 대학교에서 A를 받았어요. 그게 다 도움이 되더라고요(웃음). _81.

원래는 제가 중2 , 공부를 아예 놓고 있다가 다시 시작해서 인문계 쪽으로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엄마 아빠가 결사반대를 했어요. 기술이나 배우라고. 인문 쪽으로 나가면 공부를 특출 나게 잘해야 좋은 대학에 가고 안정적인 직업을 얻잖아요. 기술 쪽은 그렇지 않아도 먹고살기가 쉽다고. 중학교 때는 꿈이 없었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어요. () 전공이 인테리어 디자인이에요. 원래는 친구 따라 들어갔는데, 가서 보니까 재미도 있고 잘하는 것 같고. _110~111.

저만 봤을 때는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으니까 기반이 어느 정도 다져진 것 같은데, 집안 전체를 봤을 때는 더 부족해진 느낌이고 더 힘들어진 것 같아요. 그리고 앞으로 뭔가가 없고 그냥 이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 같은 느낌? 한없이 꿈을 접어야 할 것 같은 느낌? 꿈이 현실과 부딪친다고 하잖아요. 그 말이 이해가 돼요. 처음에는 꿈만 생각했는데, 현실을 보면서 꿈을 실현하는 게 안 되는구나 싶어요. 그럼 앞을 내다보기가 힘들잖아요. _146.

집이 답답하고요. 그냥 집에 있는 게 답답했어요. 맨날 누나랑 싸우고 나가고 싶어했어요. () 거의 제가 사고 친 것 때문에 싸우고요. 돈 갖고도 싸우고요. 누나가 돈을 빌려줬는데 제가 안 갚았거든요. 집안 살림에 대해서 저한테 말한 적은 없어요. 저는 집에서 밥을 잘 안 먹고요. () 그냥 제가 집을 자주 안 들어갔어요. _171.

다른 걸 하자니 이것만큼 자신 있는 게 없어요. 이런 일은 인맥이 많이 늘더라고요. 지금 이 나이인데도 벌써 주류회사 사람들, 유통업체, 식자재 이런 계열은 웬만하면 알고 지내니까요. 막상 이걸 떠나 다른 걸 하기에는 인맥도 없고 잘할 자신도 없어요. 대학 가도 잘할 자신이 없고. () 이 업종 사람들 보면 저같이 가난하게 산 사람들인데 다 성공했잖아요. 인생 사신 얘길 다 들어보면 저보다 심하신 분들도 있더라고요. 다 도와준대요. 같이 해보자는 사람도 있어요. _207.

나는 10여 년에 걸쳐 봐온 혜주의 변화 과정을 생각해보았다. 10대에 혜주는 거리를 헤매며 사람들의 시선에 당혹해하는 아이였고, 20대 초반의 혜주는 빈손으로 집을 나와 어찌할 줄 모르는 청년이었다. 가족들은 그녀를 구제불능에 집안의 골칫거리로 여겼다. 본인도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시기를 거치고 나서 서서히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제 역할을 해나가는 모습이 내게 대견해 보였다.

혜주는 이제 늙어서 뭐 어쩌겠어요. 그냥 해봐야죠란 말을 많이 했다. 아이들은 좌충우돌하며 성장하고 어느덧 자신의 두 발로 서게 된다. 아이들이 충분히 늙을 때까지우리는 지지해주고 기회를 주고 기다려줘야 하는지도 모른다. _247.

 

부모 찬스' 후보님들, 가난한 아이들이 어떻게 어른 되는지 아시나요

5일 사전투표가 시작되면서 제22대 총선의 막이 올랐다. 이 기간 정치인들은 표심을 얻기 위해 지역 곳곳을 누빈다. 정치부 기자도 생생한 민심을 취재하기 위해 현장을 찾는다. 유권자들은 지역을 찾아온 낯선 기자를 경계하다가도, 점점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정치를 바라보는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는다. 평범한 시민의 입에서 나오는 '정치'는 상대방의 심판을 외치는 정치인의 레토릭과는 거리가 있다.

지난 1일 인천의 한 재래시장인 계양산 전통시장을 찾았다. 한 시민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상점을 운영하는 53세 김모 씨와 61세 이모 씨는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너무 부자라 우리의 삶을 알긴 알겠나" 물었다. 그들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해보이는 것 같다. 국회의원들은 나쁜 짓도 대놓고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들이 생각하는 '나쁜 짓'이 무엇일지 궁금해 짐짓 되물으니 "부동산으로 돈도 벌고 아빠 찬스도 많다"는 답이 돌아왔다. 왜 이들은 많은 '나쁜 짓' 중에서 불법적이라 하기 어려운 '아빠 찬스'를 꼽았을까.

그들이 해준 말을 곱씹으면서 이 책을 읽었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책 제목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가난 속에서 성장한 여덟 명의 아이들을 지켜본 10년의 기록을 담았다. 25년간 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한 저자 강지나는 가난한 집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정책적 공백을 메워보고자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1990년대 태어나 2020년대 청년기를 지나는 아이들 8명의 삶을 추적했다.

가족의 해체를 경험한 영성, 소년범 출신의 현석, 특성화고 출신의 우빈, 우울과 자살충동을 느끼는 소희 등 이들은 처한 상황도, 그 삶을 받아들이는 자세도 다 달랐지만 '가난'이라는 공통점을 가졌다. 그들의 삶을 따라가며 '가난'은 과연 무엇인지, 아이들이 커가면서 가난이 어떤 형태로 이들의 삶에 발현되는지 볼 수 있었다.

한 상인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재한 후보 지원 유세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 ... 대물림 되는 가난 속에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 소희

열일곱의 나이부터 자살 충동을 느끼며 우울증을 앓고 있는 소희는 대물림되는 가난 속에 살고 있었다. 소희 외할아버지는 전형적인 도시 빈민이었다. 살림이 각박했던 외할아버지는 노름을 했고 외할머니는 알코올 중독이었다. 큰딸이었던 소희의 어머니는 학교도 다니지 못한 채 어린 나이에 식모살이를 했다. 어머니는 변변한 직장을 갖기 힘들었고 한부모 가족으로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유지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소희는 가출하고 학교를 결석하고 출석률 미달로 진급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가족 중 누구도 소희의 삶에 관여하지 않았다. 학교를 그만두고 비행을 일삼아도 소희를 혼내주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 삶이었다. 소희는 자살충동을 느꼈고 자신의 삶을 우울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원인을 어머니나 가족에게 돌리지 않았다.

"왜 엄마는 날 안 잡아줬을까. 하지만 엄마가 저를 나쁜 길로 인도한 건 아니잖아요. 일단 저희 엄마잖아요. 그러니까 탓하는 게 너무 죄스러워요. 아빠는 저를 버렸잖아요. 엄마는 저를 안 버리고 키웠어요. 어떻게 키웠든 키웠잖아요. 그게 너무 고마운 거예요. 엄마보다는 하느님을 탓했어요. 하느님이 내가 준비가 돼있으면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진다고 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은 거예요. 잘해보려고 하면 다 안좋게 돼버리니까. 포기를 할 수밖에 없죠. '기회를 공평하게 준다면서 왜 나한테는 그런 게 없었나요' 하면서 혼자 원망을 했어요."

소희는 오히려 어머니도 공평하지 않은 이 세상의 희생자라고 생각했다. 일종의 동질감 같은 것이었다. 어머니의 삶도 자신의 삶과 비슷했으니까. 어머니도 외할아버지 대에서부터 가난과 학대를 겪었고 식모살이를 하며 교육과 돌봄이 결핍된 성장기를 보냈다. 어머니 역시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렇게 학력과 노동 능력이라는 사회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 채로 자녀들을 양육하며 외로운 삶을 살았다. 저자는 "소희네 가족의 대를 이어온 가난은 전형적으로 환경에 의해 축적되어온 양상을 띤다. 한 개인의 힘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열일곱 살에 우연한 계기로 마음을 먹고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이후 대입 시험을 치렀다. 소희가 진학한 학과는 '사회복지과'였다.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대학을 다니는 것 자체가 경제적 지원이 전무한 소희에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여전히 소희는 아무도 잡아주지 않았고 외롭고 마음이 힘든 상태라고 호소했다.

"대학교 다니다 보면 돈이 엄청 필요하잖아요. 다른 애들은 학교를 다닐 때 알바가 필수가 아닌 거예요. 하지만 저는 필수인 거예요. 쟤는 가만있어도 오십만 원, 백만 원씩 집에서 주는데 나는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한 달에 삼사십만 원 밖에 못 벌어요. 이것도 결국에는 나를 위해서 쓰는 게 아니에요. 그냥 교통비, 핸드폰 요금 같은 생활비로 쓰다 보면 제가 쓸 수 있는 돈이 없는 거예요. 한 번은 너무 서러워서 학교에서 수업 받다 운 적도 있어요. 신발이 찢어진 거예요. 근데 난 이제 살 돈이 없는 거예요. 엄마한테 사달라고 할 수도 없고, 내가 살 돈도 없고."

최근 고물가 등으로 상환 능력이 떨어지며 빚을 갚지 못하는 서민들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급전이 필요한 취약계층에 최대 100만원을 당일 빌려주는 소액생계비대출의 연체율은 11.7%로 집계됐다. 사진은 지난달 17일 서울 명동거리에 붙은 대출 광고물. 연합뉴스

가난한 아이는 자라서 가난한 청년이 됐다

기초생활수급가정에서 자란 수정은 성실한 학교생활을 토대로 유아교육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좋은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고 유치원 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공황장애를 앓는 어머니는 도박에 중독됐고, 사기 피해를 입었다. 수정의 살림은 여전히 가난했다. 결국 가난한 아이는 자라서 가난한 청년이 되었다.

"대학에 다닐 때 수정은 개인적인 꿈이 있었다. 편입을 해서 4년제 대학에서 공부도 하고 싶었고, 취직에 도움이 되는 자격증도 따고 싶었고, 관심 있던 패션 공부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 많은 꿈들은 조금씩 퇴색되어갔다. 수정은 적은 월급에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었고 미래를 위해 뭔가를 구상하고 저축할 여력이 없었다수정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질의 직장을 얻을 수 있는 자격증 시험을 보고 싶어했다. 그러려면 시험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당장 집에 생활비로 제공할 돈이 없어지는 셈이었다. 엄마가 반대했고, 언니도 난색을 표했다."

수정이 청년이 되어서도 가난했던 이유는 디딤돌이 없는 삶의 조건이었다. 수정의 수입이 가족의 비빌 언덕이었다. 가족의 현실을 아는 수정이 장기적 전망을 꾀하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저자는 "수정이 꿈꾸는 미래의 삶은 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생활과 그것이 보장되는 여유였다"고 짚었다. 저자는 아마르티아 센의 <자유로서의 발전>을 인용하며 빈곤은 "단순히 낮은 소득이 아니라 기본적 역량의 박탈로 규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역량이란 "개인이 가치 있게 여기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자유".

"첫 노동시장 진입까지 너무 많은 비용이 들고, 가족 공동체가 이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현 구조는 빈곤을 재생산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계층 상승의 기회가 거의 없는, 아예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걷어차버리는 구조인 셈이다부모의 부와 계층이 세습되는 사회가 되면서 부모와 같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얻기위해 오랫동안 부모에게 의지하는 현상이 일반화되었다이런 구조하에서 빈곤층 청년들은 출발선부터 불평등한 구조 아래 놓인다."

'부모 찬스'라는 참을 수 없이 '화목하고 합법적인 절망'

이번 총선에도 어김없이 '부모 찬스'가 등장했다. 자녀에게 수억, 많게는 수십억의 주택을 증여한 이들이 후보로 나왔다. 경기 화성을에 출마하는 더불어민주당 공영운 후보는 22살 군복무를 하는 아들에게 10억이 넘는 성수동의 주택을 증여했다. 매입 당시 해당 주택은 118000만 원이었으나, 현 시세는 28~3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되자 공영운 후보는 입장문을 통해 "이후 자녀가 향후 결혼 등을 준비함에 있어 집 한 채는 해줘야겠다는 마음에 증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증여세도 성실히 납부하였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광주 서을에 출마하는 민주당 양부남 후보도 25살과 23살 아들들에게 9억이 넘는 한남동의 단독 주택을 증여했다. 양 후보는 소득이 없던 두 아들을 대신해 증여세를 내줬다. 양부남 후보 역시 논란 후 입장문을 통해 "현재 가수로 활동하는 큰아들과 취업 준비를 하는 둘째 아들의 수입이 변변치 못하여 증여세를 대신 내준 사실은 맞다""두 아들에게 물려 준 서울의 한남동 주택은 '편법대출'도 없었으며 '꼼수 증여'도 아닌 적법한 절차에 따른 정상적인 증여"라고 인정했다.

'아빠 찬스'를 받은 후보도 있었다. 국민의힘 장진영 서울 동작구갑 후보는 법인 명의로 2021년 경기 양평군 공흥리 부지를 80억 원에 매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자금의 90% 이상을 부친이 이사로 재직하던 금융기관 등에서 대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일대는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시 수혜 지역으로 이미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장진영 후보는 입장문을 내고 "부동산 개발을 모두 투기라고 할 것이냐"고 반문하며 "장 후보 부친이 재직 중이던 신협의 대출금은 12%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더불어민주당 영입 인재인 공영운 전 현대자동차 사장이 6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동탄호수공원에서 제22대 국회의원선거 화성을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이 29일 서울 동작구 성대시장 인근에서 동작구갑 장진영 후보 지원유세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모는 자녀가 편히 살 수 있도록 주택을 '합법적으로' 증여하고, 자녀는 부모가 재직한 곳에서 '합법적인' 대출 도움을 받는 가정의 '화목함'까지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공영운 후보는 딸의 주택이 '갭투자'라는 의혹을 받자 "영끌, 갭투자 젊은이들 많이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거는 규정에 문제 없는 걸 가지고 문제 삼으면 안 되죠"라고 반박했다. 그들도 "합법적인 절차"였다고 항변하며 오히려 억울해 하고 있지 않나.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민의를 대변하는 국민의 대표가 되려고 한다는 점이다. 소희와 수정이의 눈에는 이들의 뉴스가 어떻게 보일까.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점은 받아들인다"고 자세를 낮추면서도 "합법적인 절차"였다고 항변하는 후보들의 해명을 받아들이고 늘 그랬던 것처럼 공평하게 기회를 주지 않는 하느님을 원망해야하는 걸까. 소희가 자살충동을 느끼는 이유는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비롯되었다.

"실질적으로는 죽는 것보다 누가 내 얘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게 더 크겠죠? 그런데 안 풀리더라고요, 얘기를 해도. 그래서 아직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답답할 때도 있고... 왜냐면 얘기는 어떻게 됐든 할 순 있잖아요? 근데 제가 갖고 있는 감정들까지는 전달이 안 되잖아요. , 나 힘들어. 그것 뿐이잖아요. 사람이 보통 다른 사람이 힘든 것보다 내가 힘든 게 더 크게 느껴지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얘기해도 별로... 더 우울해져요. "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이를 모르는 것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당내 '부모 찬스'가 논란이 불거진 지난달 28일 이 대표는 계양 유세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공정한 나라, 성장하는 나라, 희망이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재산 물려주는 것도 능력 키워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능력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나라를 기회가 공평하게 부여되는 그런 세상을 물려줘야 한다. 그게 부모세대들의 의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 문제가 불거진 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누군가에게 '부모 찬스''절망'의 다른 말일 수도 있다. 특히나 국민의 대표가 되어 민의를 대변하겠다는 이들의 그것은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앞서 계양산 전통시장에서 만난 시민은 '부모 찬스'를 나쁜 짓으로 꼽은 이유를 묻자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는 못할 망정 희망을 뺏지는 말아야지"라고 말했다. 이번 총선을 통해 소희와 수정이가 '희망'을 갖게 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저 아이들이 어떻게든 계속 살아줬으면 좋겠다.

박정연 기자 | 프레시안 2024.04.06.

 

대학은 가는데, 문제는..." 현직교사가 본 '가난한 아이들'

강지나 작가 인터뷰

잘사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 되기 쉬워."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어른이 된 가난한 아이 이지안(이지은 분)의 이 말은 가난함과 부유함의 차이를 드러낸다. 돈이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보다 기부하기 쉽고, 종일 앉아서 일한 사람이 서서 일한 사람보다 자리를 양보하기 쉬운 것은 당연한 일.

이런 세상에서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지 궁금했다. 그들의 성장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과연 고군분투 끝에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었을까. 지난달 28, 오마이뉴스 서교동 마당집에서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의 저자 강지나 작가를 만났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나도 책 속 아이들과 비슷하다'며 북토크 찾아온 관객 기억에 남아"

- 신간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어떤 책인가.

"빈곤의 대물림에 대한 논문을 쓰고 난 다음, 논문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의 생애사를 중심으로 책을 써보고 싶었다. 그렇게 여섯 명의 청소년, 그리고 김용균 사건 이후 특성화고를 나온 두 명을 추가로 만나 총 여덟 명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제목에는 '아이들'이라는 말을 꼭 넣고 싶었다.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힘과 전략과 지혜가 있었는지도 담았다.

가난이라고 하면 단순하게 약자다, 힘이 없다, 꿈이 없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다양한 상황이 있고, 또 아이들에게는 강한 생명력과 그 상황을 개척할 힘이 있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책에 자세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 현직 교사인 것으로 안다.

"2000년에 발령받아 지금도 근무 중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교사가 되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더라.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보고만 있기 어려워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했다."

- 책이 나온 뒤 주인공들은 어떤 반응이었나. 북토크 후기도 궁금하다.

"스스로 봐도 자기의 삶이 너무 처절해서 슬프다는 친구도,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모습이 기특하다는 친구도 있었다. 많은 분이 북토크를 찾아주신 것도 감사한 일이다. 특히, 북토크가 끝난 후 '나도 책 속의 아이들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며 다가온 이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도움받을 방안을 설명줬다."

"특성화고 현장실습 필요하지만...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가난한 아이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사회적 관계망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강지나 작가 차원

- 특성화고 현장실습에 관한 의견이 궁금하다.

"그 분야에서 근무해야 하는 친구들은 그 제도가 꼭 필요하다고 하더라. 있어야 하는 제도는 맞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체제는 안된다. 매우 위험한 일터에 매우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영화 <다음 소희>에 나오는 문제가 다시는 없어야 할 것 아닌가. 안전하게 제대로 대우받으며 일할 수 있어야 하고, 교육의 테두리 안에 있어야 한다. 결국 노동 시장 안에서의 안전 문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 결국 사회 전체의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으면 가난한 아이들은 계속 있을 수밖에 없겠다.

"그래도 지금은 모두가 마음만 먹으면 대학교까지는 졸업할 수 있다. 지원도 적지 않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우리나라 노동 시장 양극화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100대 기업이 받는 평균 임금과 중소기업이 받는 평균 임금의 격차가 어마어마하지 않나. 이런 사회의 문제가 당연히 청소년들에게도 대물림 될 수밖에 없다. 가난한 아이가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 공교육의 역할도 중요한데, 잘하고 있다고 보나.

"그래도 진보 교육감 시대를 거치면서 과거에 비해 많이 공공성을 갖췄다고 본다. 무상교육, 무상급식 등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데까지는 돈도 거의 들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성과다. 누군가 이것을 되돌리려 해도 쉽지 않을 거다."

- 가난한 아이들은 탈학교 청소년이 되기도 쉽다. 책에도 관련 사례가 나오는데.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을 위한 제도도 있지만, '청소년은 곧 학생'이라는 인식이 있기에 많은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게 된다. 사실 이 책에 나온 아이들의 경우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아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정말 많다. 관심과 정책이 절실하다."

"자립준비청년, 금전적 지원보다 사회적 관계망 제공이 절실"

- 빈곤 청소년들의 상황은 어떤가.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현재의 빈곤 개념은 해체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먹고 살기만 하면 되는 세상은 아니지 않나. 우리 사회의 수준이 많이 올라왔고, 예전같이 밥을 굶어야 하는 가난은 많지 않다. 따라서 의식주에 대한 부분도 중요하지만, 불평등 등 구조화된 차별에 더 집중해야 한다. 지원 과정에 있어서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더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정의로운 분배가 필요한 이유다. 현재 시혜적이고 파편적인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 현재 우리 사회엔 능력주의, 노력 만능론이 팽배하다. 책을 소개한 기사를 보니 '노력을 안 해서 가난한 거 아니냐, 그런데 왜 우리 세금을 도와야 하느냐'는 댓글이 많더라. 뭐라고 답변할 건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탓하기보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공공성에 대한 논의가 너무 부족했구나 싶다. 공부를 잘하고 돈을 많이 번 게 다 자기가 잘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인프라가 풍족한 지역에서,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는 부모에게서 태어나서, 장애가 없어서 등등일 확률이 높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렇지 않은 조건에서 태어나서 자라는데, 이런 운이 개인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공유하지 못했다. 공공의 의미를 생각하고, 건강한 소통이 이뤄지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 최근 국민의힘에서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한 공약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주로 금전적인 지원 이야기가 많던데, 돈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아이들과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사회에 나와서 적응할 때 누군가 내 옆에 있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사회적 관계망이 곧 안전망이다. 복지관에서 지원받아 사회에 나간 청년들이 돌아와 자원봉사를 하는 경우도 인상 깊더라. 이런 공간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이제 어른의 삶을 살고 있는 책 속의 주인공들의 경우, 여전히 가난이 남긴 통증이 재발하기도, 상처가 아문 자리에 새살이 돋아나기도 한다. 부디 이 여덟 명의, 그리고 세상 모든 가난한 아이들의 삶이 마침내 편안함에 이르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절실하다./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