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존/더불어 살기

‘벌들의 전쟁?’ 토종 꿀벌이 침입자 말벌에 대한 방어태세를 갖추기 시작하다

by 이성근 2023. 12. 22.

벌들의 전쟁?’ 토종 꿀벌이 침입자 말벌에 대한 방어태세를 갖추기 시작하다

유럽종 호박벌 스스로 장수말벌의 세 확장을 막는 방법 획득하나?유럽으로 건너간 장수말벌(Vespa velutina)의 개체 수가 증가하면서 토종 꿀벌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지난 9UN 생물다양성과학기구는 외래침입종이 급격히 확산되면서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사람을 공격하는 등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면서 장수말벌을 대표 사례로 소개했다. 주로 아시아 지역에 서식하는 장수말벌은 2016년 영국, 2019년 독일에서 최초 발견된 이후 현재는 유럽대륙 전역에서 생물 다양성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미국 서부와 캐나다까지 장수말벌이 등장해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그런데 지금까지 장수말벌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유럽의 토종 꿀벌이 방어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엑서터대학교 환경 및 지속가능성 연구소는 장수말벌이 꿀벌을 포획하는데 반복적으로 실패하기 시작한 상황을 관찰해 지난달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바이올로지에 게재했다.

유럽으로 건너간 장수말벌(Vespa velutina)이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wikimedia

포식자 장수말벌의 무자비한 횡포

장수말벌이 공포의 대상이 된 이유는 꿀벌의 포식자이기 때문이다. 장수말벌은 몸길이가 30~45로 지구상에서 가장 큰 말벌이며, 꿀벌을 공격해 먹이로 삼는다. 이들이 꿀벌을 공격하는 방법은 호킹(hawking)이라고 부르는데, 대게는 5~50마리씩 떼를 지어 벌집 위를 맴돌다가 꿀벌이 나타나면 빠르게 공격해 머리와 날개, 다리를 잘라내고 몸통을 새끼 말벌에게 먹이로 준다. 곤충 전문가들은 말벌의 공격을 피하려고 벌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꿀벌들도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아둔 꿀이 소진돼 결국 떼죽음을 당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니 장수말벌이 등장했다 하면, 공격을 당해 죽거나 벌집 안에서 자멸해 꿀벌은 상당히 큰 타격을 받는다. 실제로 말벌 수가 많은 지역에는 토종 꿀벌 군집의 성장률이 급감했다는 연구결과가 Journal of Hymenoptera Research를 비롯한 다수의 저널에 실린 바 있다.

문제는 더 있다. 대표적인 수분 매개자 역할을 하는 꿀벌의 개체 수가 줄게 되면 주요 작물들의 수분이 일어나지 못해 생태계 교란까지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2019년에 꿀벌은 물론 여러 절지동물을 잡아먹는 등검은말벌(외래종)에 대해 생태계교란생물로 지정하고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국 서식스대학교 생물학과 꿀벌 보존 연구실은 장수말벌로 인한 꿀벌 군락 손실은 약 3400만 달러, 한화로 약 452억 원의 손해를 낼 것으로 예측했다.

외래침입종으로 알려진 말벌 5종의 기본 서식지와 유입지역 frontiersin.org

아시아 판 벌들의 전쟁, 함께 진화한 꿀벌 vs 말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장수말벌은 곤충 생태계 내 최상위 포식자다. 일부 곤충연구자들은 아무리 장수말벌이라도 몸길이가 9까지 자라는 왕사마귀를 이기기 어렵다고 하지만 단단한 외골격과 강력한 턱, 길이 6의 독침으로 무장한 장수말벌은 사람이나 곤충 모두에게 위협적이다. 특히 몸집이 작은 꿀벌이 천적인 장수말벌의 공격을 받으면 벌집은 초토화되고 만다.

하지만 오랜 세월 장수말벌과 맞서 싸우며 환경에 적응한 아시아 재래종 꿀벌에게는 나름의 전투 전략이 있다. 우선 장수말벌의 냄새를 인지한 꿀벌은 동료들에게 페로몬을 분비해 경계 태세를 갖춘다. 이후 순식간에 꿀벌 3~400마리가 침입한 장수말벌 에워싸면서 꿀벌 공을 만든다. 이 안에 갇힌 장수말벌은 꿀벌이 동시에 발산하는 고열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쪄죽고 만다. 물론 이 과정에서 최전방 수비수 꿀벌 100여 마리는 장수말벌의 극렬한 저항으로 인해 현장에서 죽고, 살아남은 나머지 벌들도 열충격의 영향으로 생존 기간이 길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어쩔 수 없이 피해가 발생하지만 그나마 아시아 꿀벌은 오랜 세월 동안 장수말벌과 같은 생태계에서 진화하면서 나름의 생존 방식을 습득한 것이다.

유럽 판 벌들의 전쟁, 유럽종 꿀벌의 반격 시작?

유럽종 꿀벌이 아시아종과 달리 장수말벌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이유는 이들이 함께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같은 생태계에서 서식하는 종들은 각자의 생존 방식을 습득하는데 유럽으로 건너간 장수말벌에 대해서 토종 꿀벌들은 어떠한 방어기제를 갖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이들의 공격·방어 패턴에 변화가 나타난 것으로 조사됐다. 엑서터대학교 환경 및 지속가능성 연구소는 장수말벌의 공격이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것을 관찰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포식자의 공격 순서는 이전과 다르지 않아 예측가능한 패턴을 보인다. 우선 장수말벌은 먹이 사냥 빈도가 높은 꿀벌 군집에 유인되었고, 비행 중에 벌을 추적해 잡는 것도 동일하다.

다만, 이전에 꿀벌이 바로 포획되었던 것과는 달리 말벌과 함께 땅으로 떨어지는 반응을 나타냈다. 둘이 동시에 땅에 떨어지면 순간적으로 말벌이 꿀벌을 놓치게 되는데 그때를 노려 꿀벌은 탈출을 시도한다. 말벌이 땅에 떨어진 후에도 꿀벌을 계속 붙잡고 있는 경우에는 꿀벌이 전형적인 방어 자세를 취해 다리를 들고 등을 대고 침을 들어 올렸다. 먹잇감을 잡은 자세를 보면 상대적으로 약한 말벌의 배가 꿀벌의 침에 닿게 되는데, 이런 상황이 되면 말벌은 예외 없이 포식 시도를 포기하고 다른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것으로 관찰됐다. 이전 연구에 따르면 꿀벌 군집에서 장수말벌의 사냥 성공률은 약 30% 정도였는데, 이런 행동 패턴의 변화가 일어난 후 미미한 수준으로 수치가 하락했을 것으로 예상했다.

벌집을 공격하는 장수말벌 IUCN(국제자연보전연맹)

하지만 연구진은 꿀벌의 이러한 시도가 진화적 우연일 수 있다고 말했다. 아직은 모든 꿀벌이 동일한 상황에서 동일한 행동 패턴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며, 정확한 메커니즘을 알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요소들이 확인되어야 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이들의 반격 행위는 장기적 관점에서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간 장수말벌의 존재로 인한 꿀벌 군집 생존의 부정적 추이가 반전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처럼 새롭게 관찰된 꿀벌과 말벌의 전쟁이 유럽지역의 기후, 토지, 환경, 꿀 공급원 등 매개변수와 관련이 있는지 추가적으로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현정 리포터2023.12.08 ScienceTimes

땅벌은 말벌의 일종으로서 몸길이가 10~14에 불과해 일반적인 말벌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국립생물자원관

말벌의 종류와 특징

https://blog.naver.com/wildhistory/223132443625

동물을 뜻하는 ‘애니멀(animal)’은 영혼을 의미하는 라틴어 ‘아니마(anima)’에서 유래

 

무화과나무와 말벌간 공진화 흔적을 찾다

유전체를 통해 열매 크기와 말벌종 크기간 상관관계 확인

무화과나무속 나무들의 다양한 나뭇잎들. 왼쪽 위 F. hispida, 왼쪽 아래 F. auriculata, 오른쪽 F. semicordata ©위키커먼스

공진화(coevolution)는 한 생물 집단이 진화하면서 상호작용하는 다른 생물 집단도 함께 진화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포식자와 먹이가 되는 생물이나, 숙주와 기생 생물, 공생 관계에 있는 생물들과 같이 다양한 관계에 있는 동물과 식물들이 서로 영향을 주어 형질 변화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기후 변화나 지각 변화와 같은 환경 요소에 의해 같은 조건에서 사는 서로 다른 종이 비슷하게 진화하는 것과 구별된다. 모든 생물종은 촘촘한 생태계 사슬에 얽혀있는 만큼 모든 진화는 공진화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포식자인 치타와 그의 먹잇감이 되는 가젤이 군비 경쟁하듯이 먹기 위해 또는살기 위해 빨리 달리기를 하게 된 것이나, 꽃과 수분매개체가 되는 곤충들 간에 그 크기나 모양에 변화를 주고받는 것 등이 공진화의 예다.

마다가스카르의 난초(Angraecum sesquipedale, 왼쪽)와 수분매개체 나방 크산토판 모르가니(Xanthopan morganii, 오른쪽) ©위키커먼스

찰스 다윈이 전 세계 식물 표본을 관찰하던 중 27~43cm 길이의 꿀주머니를 가진 마다가스카르의 난초(Angraecum sesquipedale)를 보게 되었는데, 놀랍게 긴 통로 끝에 꿀이 있는 형태를 보고 이 꽃의 수분매개체 곤충은 주둥이가 적어도 30cm 길이일 것이라고 추측한 일이 있다. 당시 곤충학자들은 그런 모양의 곤충이 있기 어렵다고 회의적인 반응이었지만, 40여 년쯤 뒤에 다윈의 예상대로 30cm 길이의 주둥이를 가진 크산토판 모르가니(Xanthopan morganii)라는 나방이 마다가스카르에서 발견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공진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다윈의 통찰력이었던 것이다.

공진화는 무화과나무속(Ficus)의 나무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열대 및 아열대 기후에 분포해 있는 이 나무들은 종간 다양성이 매우 높기로 유명하다. 그 수분매개체인 말벌과는 무려 7500만 년의 긴 역사를 통해 공진화해왔는데, 이 다양한 무화과나무속의 나무들이 각각 고유의 말벌종과 형태학적으로나 생리학적으로 함께 적응해왔다고 알려져 있다.

분포 지역이 겹치는 계통이 서로 가까운 무화과나무속 나무 종들 간에 서로 혼혈이 생기지 않는, 이른바 생식적 격리(reproductive isolation)’가 일어나는 것도 서로 다른 수분 매개체 말벌종에 의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최근 지에 발표된 논문은, 이 무화과나무속 나무들 일부와 그 수분매개체 말벌종들의 유전체 서열 분석을 통해 이들의 공진화의 흔적을 유전체 상에서 찾아냈다. 여러 유전자들에서 돌연변이를 제거해오거나 또는 특정 돌연변이가 선택되는 자연선택의 흔적이 있는지를 확인한 것이었다.

무화과나무속의 아속(subgenus) 시코모루스(Sycomorus)에 속하는 14종의 나무들과 이들의 종특이적 수분매개체 말벌종들의 유전체를 비교 분석한 것인데, 먼저 이 나무들과 그 수분매개체 말벌종 사이에 표현형의 공진화를 확인했다. 연구에서는 구체적으로 나무 열매의 크기와 그 수분 매개체 말벌종의 몸 크기 사이에 상관관계로 특정해 테스트했다.

연구진은 무화과나무속 나무 피쿠스 히스피다(Ficus hispida)에서 열매 크기에 관련된 유전자 37개를 취해 이중 18.9퍼센트 (37개 중 7개의 유전자)에 무작위 돌연변이를 제거하는 정화 선택(purifying selection)의 시그니처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반면 이 수종의 수분매개체인 말벌종에게서는 22퍼센트 (62개 중 14개의 유전자)의 히포 신호전달 경로(Hippo signaling pathway) 관련 유전자에 새로운 유전변이의 적응을 암시하는 시그니처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히포 신호전달 경로는 동물의 신체기관의 크기를 통제하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피쿠스 히스피다의 열매 크기와 말벌 몸의 크기가 자연선택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연구에서 시험한 다른 가설은 무화과나무속 나무 종마다 종특이적 말벌종과 상호작용하는 데에는 나무종마다 특유의 꽃향기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것이었다.

연구에서는 무화과나무속 나무종과 말벌종 각 쌍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에 필요한 종특이적 신호전달 물질을 찾기 위해 피쿠스 히스피다(F. hispida)와 케라토솔렌 솜시(C. solmsi), 피쿠스 아우리쿨라타(F. auriculata)와 케라토솔렌 에마르기나투스(C. emarginatus), 피쿠스 세미코르다타(F. semicordata)와 케라토솔렌 그라벨비(C. gravelyi) 등 나무종과 말벌종 3개 쌍을 대상으로, 식물과 수분 매개체 곤충의 상호작용에 관련된 테르피노이드 대사와 베제노이드 관련 유전자들에 돌연변이를 제거하는 정화 선택 시그니처가 있다는 것을 밝혔다.

유사한 기능을 하는 메발론산염(mevalonate)과 시키메이트(shikimate) 경로 관련 유전자들에서는 새로운 유전변이의 적응을 암시하는 시그니처를 감지했다. 모두 자연선택의 유전체 상의 증거로 해석된다.

한편, 무화과나무속 나무종 피쿠스 히스피다의 수분매개체 말벌인 케라토솔렌 솜시에서 꽃향기와 같은 화학 자극을 감지하는데 관여하는 77개 유전자도 분석했는데, 이중 여러 유전자에서 유전적 적응을 암시하는 시그니처를 감지했다.

, 무화나무속 나무종과 수분 매개체가 되는 종특이적 말벌종 간에 서로를 꽃향기로 유인하고 찾아가고 하는 과정에 관여하는 유전적 변이들이 자연선택되었다는 유전체 상의 증거를 제시하는 결과였다.

오랜 시간 긴밀한 공진화의 역사를 함께 해온 무화과나무속 나무들과 말벌들의 정교한 적응의 과정이 유전체에 남은 흔적들로 확인된 것이다./ 한소정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