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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22.5.2~ 31 진영논리에 무너져 내리는 공동체 윤리 기준

by 이성근 2022. 5. 30.

러시아 벌주기인가, 우크라이나 구하기인가? 한겨레 :2022-05-02

제럴드 포드와 문재인 경기신문 :2022-05-02

법무장관 겸 민정수석한동훈 한겨레 : 2022.05.02.

우크라이나 전쟁의 이면 프레시안 2022.05.03.

윤석열 대통령은 대체 뭘 하려는 것일까 한겨레 :2022-05-04

권력의 대기실과 집단사고의 위험 한겨레 :2022-05-05

대한민국 국가부채 후손들이 갚아야 한다고? 시사인 2022.05.08

진영논리에 무너져 내리는 공동체 윤리 기준 프레시안 2022.05.09.

윤석열의 '110대 국정과제'에는 '불평등'이 딱 한 번 등장한다 프레시안 2022.05.09

언론 길들이기에 취한 윤석열 인수위 미디어오늘 1350호 사설

헬조선'에는 '부동산 원귀(寃鬼)'가 산다 함께 사는 길 2022.05.10.

통합 대신 반지성주의로 비판세력 겨냥한 윤 대통령 한겨레 2022.05.10.

대통령 취임사를 비판한다 한겨레:2022-05-11

그래서 누구의 자유인가 한겨레 2022.05.12

식량안보, 한국은 안전한가 한국 2022.05.13.

소비되는 국민과 검찰국가의 그림자 경향 : 2022.05.13.

윤석열과 한동훈의 고등교육 모욕은 닮은 꼴이다 한겨레 2022.05.15

권한 없어 남용 없다?현직 판사의 임성근 무죄대법원 비판 한겨레 2022-05-16

누가 누가 못하나 경향 : 2022.05.16

자유는 없는 자만이 느낀다 경향 : 2022.05.16.

공정과 상식, 그리고 부동산 경향 : 2022.05.17.

묻는다, 집이란 무엇인가 경향 : 2022.05.17.

사설] 표 얻자고 다주택 종부세까지 줄여주겠다는 민주당 한겨레 : 2022.05.17.

최빈도 죽음’, 즉 우리가 맞이할 죽음 한겨레 : 2022.05.17.

우리는 '태극기 부대'를 이해할 수 있을까? 프레시안 2022.05.18.

수도권 탈성장론 한겨레 :2022-05-19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뉴스 매일노동뉴스 2022.05.20.

우리는 검찰공화국에 산다 경향 2022.05.20.

반지성주의 경향 2022.05.25.

노무현이 바꾼 민주당, 다시 과거로 한겨레 :2022-05-25

기레기의 대안이 고작 한겨레 22.05.26

 

윤석열 시대에 살아남기, 어떤 전략을 취할 것인가 시사인 2022.05.29.

사회적농업은 아름다운 농촌공동체운동 한국농정신문 2022.05.29.

종말의 시대에 살면서 동양일보 2022.05.29

상간녀위자료소송은 전문 변호인의 도움이 필수 제주교통복지신문 22.05.30

안보 제일주의에 길 잃은 이상주의 경향 2022.05.30.

윤 대통령의 순발력과 철학의 빈곤 경향 2022.05.30.

블랙리스트 정당 대통령의 축전 경기신문 2022.05.30.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한겨레 2022-05-30

차라리 지역구를 없애자 경향 2022.05.31.

509인 무투표 당선자가 말해주는 것 경향 2022.05.31.

 

러시아 벌주기인가, 우크라이나 구하기인가?

모든 전쟁은 절박한 필요나 숭고한 가치를 내세우나, 결국은 잔인하고 더러운 진창으로 귀결된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나토의 동진 등 서방의 위협을 막기 위한 자신의 절박한 안보 필요성을 내세웠다. 하지만 중립국인 핀란드나 스웨덴 등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밝히면서, 나토는 당분간 더 견고해지고 확장되는 역설을 낳았다. 침략으로부터 우크라이나를 보호하겠다는 미국 등 서방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에 박차를 가하면서, 국제 경제는 주름이 더해지고 확전된다.

 

제발 이 사람(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권좌에 머물러선 안 된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326), “우리는 러시아가 약화되는 것을 보고 싶다”(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 425),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내의) 러시아군 병참선을 공격하는 것은 합법일 것이다”(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 428).

 

러시아의 정권 교체나 영내 공격을 으르는 서방에 맞서 러시아는 한술 더 뜬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425현재 핵전쟁 위험은 실재하며 매우 심각한 수준이고,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데 이어, 29일에도 나토와의 충돌은 핵전쟁 위험을 키운다고 위협했다.

애초에 우크라이나 전쟁의 배경은 무엇이었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위협에서 독립된 주권국가로 설 수 있기를 원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자신의 안보를 위협하는 서방의 교두보가 되지 않기를 원했고, 서방은 기존의 국경선으로 상징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수호를 원했다. 3자의 이런 이해 충돌에서 균형점은 우크라이나 구하기이다. 중립화가 해법이다.

 

중립화는 전쟁 직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중재했으나, 미국은 프랑스가 주제넘은 일을 한다며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기어이 전쟁이 시작되고서야 지난 329일 이스탄불 평화회담에서 원칙적인 중립화 합의가 나왔다. 하지만 부차 학살 등으로 협상은 중단되고 서방과 러시아는 확전으로 가고 있다. 미국은 차제에 러시아를 손보려고 한다. 러시아는 키이우 전선에서 밀려난 뒤 남·동부에서 땅따먹기 전략으로 선회해, 우크라이나를 내륙국가로 만들려 한다.

 

미국의 러시아 손보기는 우크라이나 침공이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위협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제재는 미국에 가장 큰 무기이고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나, 역효과 역시 크다. 북한·베네수엘라·이란에 대한 가혹한 제재가 그 나라를 바꾸지 못했다. 세계 지정학 질서의 한 축인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장기적으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더 침식할 우려가 크다. 러시아, 중국, 인도, 이란 등이 달러 체제를 회피하는 그들만의 결제 시스템 구축에 나서고 있다. 이들 국가가 가진 석유나 가스, 식량 등 막대한 자원이 장기적으로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서 독립된 질서를 이룰 무기가 될 수 있다.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는 국가들은 세계 경제력의 3분의 2에 육박하나 인구는 세계 전체의 14%뿐이다.

 

전쟁을 도발한 쪽은 응징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응징은 침략받은 쪽의 희생을 더 요구하는 게 현실이다.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 우크라이나가 전투에서 이기면 이길수록 우크라이나의 고통과 피해가 커지는 역설이다. 전투에서 그런 승리가 우크라이나의 전쟁 승리를 담보하는 것도 아니다.

 

제재와 군사적 압박은 러시아를 피 흘리게 하고 약화시킬 것이나, 장기적으로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허무는 블록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러시아의 피보다 더 많은 우크라이나의 피를 요구한다. 서방의 진정한 성공은 우선 주권과 안보가 보장되는 우크라이나이다. 그런 우크라이나가 종국적으로 서방의 이익에 복무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피해 속에서 중립화로 안내해야 한다. 러시아도 종전과 철군의 조건을 명확히 해야 한다. 러시아 역시 땅따먹기에 집착할수록 흘릴 피는 많아지고, 종전의 가능성은 멀어진다.

 

한국전쟁 때 연합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는 만주 폭격과 대만 국부군의 중국 해안 침공을 주장했다. 그 주장대로 확전됐을 때와 휴전 이후 경제 번영을 이룬 한국의 현실을 비교하면, 무엇이 진정한 응징이고 공산세력의 위협을 막은 것인지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 선량한 시민들만 피해를 보는 조폭들의 나와바리’(영역) 싸움이 된다. 노엄 촘스키가 핵전쟁을 막으려면 푸틴에게 출구를 주는 추악한 해결책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협상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구하자는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목표가 공허한 평화주의를 주장하는 이상주의로 조롱받는 전도된 세상에 우리는 현재 살고 있다.

정의길 | 국제부 선임기자 한겨레 :2022-05-02

 

제럴드 포드와 문재인

1.19749, 미국 제 38대 대통령 제럴드 포드는 한 달 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 전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발표했다. 일요일 저녁 교회에서 돌아온 다음 (개인적 고민이 깊었다는 뜻이리라) 행한 조치였다. 논란이 분분했다. 하지만 사면을 단행한 포드를 향한 인간적 비난은 드물었다. 해석은 천차만별이었으나 정치적 맹우였던 닉슨에 대한 인간으로서 도리를 다한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315일 정경심 교수에 대한 사면을 요청하는 글을 이 칼럼에서 썼다. 법적, 정치적, 국민통합적 관점에 있어 당위성을 곡진히 말했다.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움직임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문 대통령의 의중을 짐작케 하는 일은 있었다. 425일 열린 청와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이런 말을 내놓았다.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사면 등에 대해서는 국민 공감대가 판단기준이며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 하지만, 결코 대통령의 특권일 수는 없다라고.

 

나는 깜짝 놀랐다. 정 교수에 대한 사면이 마치 부당한 특권행사일 수 있다는 논리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스스로 손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한 사람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그렇다면 세월호 아이들 250명을 수장시킨 부패시스템의 핵심이던 박근혜에 대한 사면은, 한 점 부끄럼 없이 당당한 대통령의 고유권한 행사였다는 말인가?

 

58일은 부처님 태어나심을 경축하는 사월초파일이다. 관례적으로 이날 정치적 특사가 많이 실행된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종료되기 하루 전날이며, 따라서 실질적 사면 실행이 가능한 시점은 이 날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문 대통령이 기자간담회에서 보인 유보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한 번 정경심 교수에 대한 사면조치를 정면으로 요청한다.

 

2.제럴드 포드는 닉슨 사면에 대하여 자신의 조치가 정의의 행동은 아니지만 자비의 조치라고 밝혔다. 이 결단을 통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갈기갈기 찢겨졌던 미국의 국론이 통합과 봉합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역사적 평가도 많다. 그런 거대 담론은 모두 접어두더라도, 나는 포드의 조치가 (스스로 심대한 정치적 부담을 감수한) 한 인간으로서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고 믿는다.

 

세계 정치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고, 미국 정치의 물줄기를 완전히 뒤바꾼 워터게이트 사건과 정경심 교수 사건의 의미를 수평비교할 일은 아니다. 권력 범죄와 그 은폐로 최종 탄핵 직전까지 갔던 닉슨에 대한 사면은, 정 교수의 그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 엄청난 무게를 지녔기 때문이다.

 

포드는 2년 후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대선에 나가야 할 위치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되는 모든 개인적 손실을 무릅쓰고 사면의 길을 선택했다. 형식적 법 논리와 정치적 유 불리를 따진 계산의 결과가 아니었다. 자신과 행로를 같이 했던 동지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온전히 짊어지려 했던 것이다.

 

3.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했을까를 떠올려본다. 휘하와 더구나 그의 가족이 겪는 참담한 고통에 대해서 어떤 형태로든 짐을 졌을 거라고 생각된다. 김영삼이 그러지 않았을 것인가, 김대중이 그러지 않았을 것인가, 노무현이 과연 그러지 않았을 것인가.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이러한 책무조차 외면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배신에 가까운 것이다. 자신의 통치기간 동안 산출된 달콤한 열매만 향유하고 삼켜야 할 쓴 잔은 피하려 드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생의 신념으로 외치던 검찰개혁의 대의를 대신 수행하다가 멸문지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일가족이다. 정경심 교수는 수감 중 뇌출혈 증세로 치료를 받고 있다. 딸 조민 씨는 부산대와 고려대의 입학취소 처분을 통해 청춘을 다 바쳐 걸어온 인생 전부를 절멸당할 처지에 있다. 참혹한 형극의 길이다.

 

요즈음 필자의 카카오톡에 문 대통령이 보낸 메시지들이 연속으로 쌓이고 있다. 지난 5년 동안의 치적을 다룬 것들이다. 322문재인 정부 5년 보고드립니다라는 내용을 시작으로 문재인 정부 5년의 기록이란 동영상 3부작이 올라왔다. 425일부터는 손석희 앵커와 나눈 퇴임 전 마지막 인터뷰시리즈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스스로 업적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누군들 자신의 통치를 멋지게 마무리 짓고 아름다운 퇴장을 하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아직은 그래서는 안 된다. 조국 일가족의 비극을 외면한 채, 끝내 그 피 웅덩이를 밟고 이뤄낼 문재인 정부의 성공적 마무리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의 십자가를 대신 지다가 난도질당한 사람의 참극을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 손에 피는커녕 먼지 하나 안 묻힌 채 혼자만 깨끗하고 고고한 퇴장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정말 지도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동규 동명대 교수 경기신문 :2022-05-02

 

 

법무장관 겸 민정수석한동훈

권력의 작동 원리는 복잡하지 않다. 최고권력자와 가까울수록 강해지고 멀수록 약해진다. 특정인에게 집중될수록 강해지고, 여러 사람에게 분산될수록 약해진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이하 한동훈)를 두고 소통령우려가 나오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한동훈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하 윤석열)의 끈끈한 인연은 잘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석열이 형’ ‘동훈이로 부른다. 지난해 말 윤석열이 지지율 급락으로 위기를 맞았을 때 서초동에선 한동훈이 옷 벗고 캠프에 합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최고권력자와의 거리 측면에서만 봐도 역대 최강 법무장관이 예상되는데, 차기 정부 시스템 측면에서도 한동훈은 날개를 달았다. 윤석열은 대선 공약대로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고, 민정수석실의 인사검증 기능을 법무부와 경찰에 넘기기로 했다. 민정수석 휘하의 법무비서관은 대통령 법률자문을 맡는 법률비서관으로 바뀌어 대통령실에 남는다. 법률비서관으로 유력한 주진우 전 부장검사 역시 윤석열 사단이다. 한동훈은 인사검증과 법률자문 업무를 사실상 통할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헌정사상 최초의 법무장관 겸 민정수석출현이 임박했다.

 

저 멀리서 먹구름이 몰려오는구나.’ 과거 보수정권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한동훈 장관 지명 소식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보수진영 핵심부에서 보기에도 한동훈 카드의 위험성이 감지된다는 뜻이다. 윤석열이라고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낙점한 것은 대체재가 없다고 판단해서일 터다. ‘검사 한동훈을 접해본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그는 유능하다. 수사를 치밀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사를 둘러싼 주변 요소를 능수능란하게 조율하는 모습이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연상시킨다고 한다.

 

유능한 검사 한동훈은 유능한 장관이 될 수 있을까. 장관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수사검사의 덕목과는 다르다. 피의자가 전직 대통령이건 현직 재벌총수건 검사 앞에선 울트라 슈퍼 을에 불과하다. 검사에겐 인신구속이라는 전가의 보도가 있다. 반면 협상과 타협, 설득과 양보를 본령으로 하는 행정·정치 영역에선 슈퍼 갑과 슈퍼 을도, 완승과 완패도 없다. 장관은 능력과 리더십이란 기본 역량 외에 자기절제와 겸손, 상대방에 대한 존중, 민주주의와 권력분립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갖춰야 한다.

 

한동훈은 지난달 13일 장관 지명 직후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에 대해 반드시 저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틀 뒤엔 명분 없는 야반도주라는 독설로 민주당을 직격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동훈의 검수완박 저지발언을 부적절하다고 비판하자 다시 반박했다. “현장을 책임질 법무장관 후보자가 몸 사리고 침묵하는 건 직업윤리와 양심의 문제다.” 국민의힘이 검수완박 여야 합의안을 파기하는 과정에도 개입했다. 여야가 박병석 국회의장 중재로 합의를 이룬 다음날(지난달 23) 입장문을 통해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이후 이준석 대표가 한동훈에게 전화를 걸었고 최고위원회의 재논의발언이 나왔다.

 

검수완박으로 통칭되는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은 법안 내용에 있어서나, 민형배 의원의 탈당 후 법사위 안건조정위 배치 등 절차에 있어서나 문제가 작지 않다. 하지만 한동훈은 행정부 공직후보자 신분이다. 임명되기는커녕 아직 인사청문회도 열리지 않았다. 국회의 입법권을 폄훼하는 건 오만을 넘어 민주주의와 권력분립에 대한 인식을 의심케 한다. 정책적 견해는 인사청문회에서 청문위원 질의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밝히면 충분하다. 더욱이 그는 존재 자체가 권력인 차기 대통령의 최측근 아닌가.

 

한동훈이 4일 인사청문회에 선다. 그는 검·언 유착 의혹(채널A 기자의 취재원 강요미수 사건)으로 2년간 수사를 받아왔다. 지난달 무혐의 처분됐는데 사유는 증거 불충분이다. 그는 검찰에 압수당한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끝내 제공하지 않았다. 개별 사건의 피의자로서, 형사상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를 행사한 것은 탓할 수 없다. 헌법적 권리인 까닭이다. 그러나 법 집행을 책임지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서는 달라야 한다. 인사청문회는 기소를 전제로 한 수사과정이 아니라, 주권자 앞에서 고위공직을 맡을 자격이 있는지 총체적 평가를 받는 자리다. 국민이 궁금해하는 의혹에 대해 충실하게 답해야 마땅하다. 국민은 답변 내용뿐 아니라 답변 태도 역시 주목할 것이다.

김민아 논설실장 한겨레 : 2022.05.02.

 

우크라이나 전쟁의 이면

우크라이나 상황이 한반도에 일어난다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두 달 남짓 지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러시아 전쟁으로 이어지고 나토-러시아 전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금세 멈출 것 같지 않고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전쟁의 일환인 미국,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선전선동 (propaganda)에 따라 언론의 편향왜곡이 넘친다.

 

첫째, 전쟁의 명칭에 관해. 혼란스럽다. 대부분 언론이 쓰는 '우크라이나 전쟁'2014년 돈바스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내전을 가리키기 쉽다. 또한 이 명칭엔 전쟁터만 드러나고 전쟁 주체들이 빠져 있다.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등과 마찬가지다. 침략국을 비롯한 전쟁 당사국을 모두 열거하기 어렵다면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 (War in Ukraine)'이 좀 더 객관적이고 정확하지 않을까.

 

둘째, 전쟁의 원인에 관해. 이 전쟁 보도에 ''는 없고 '어떻게'만 나온다. 개인 간에든 집단 간에든 싸움이나 사건이 일어나면 맨 먼저 원인과 배경을 따지기 마련이다. 러시아 견제를 위한 나토 (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확장이라는 미국의 호전적 대외정책에 관한 보도는 거의 없다. 러시아의 침공과 처참한 민간인 학살만 부각된다.

 

1990년 소련은 동유럽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독일 통일을 지지하며, 독일의 나토 가입을 승인했다. 미국과 독일은 나토 군사력이 동유럽 쪽으로 1인치도 확장되지 않을 것이라거나 소련 국경 가까이 배치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거듭 공언하고 확인했다.

 

1946-47년 소련봉쇄 정책을 입안하며 냉전을 설계했던 미국 외교관 조지 캐넌 (George Kennan)조차 나토 확장을 반대했다. 나토는 소련의 팽창과 공산주의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1949년 들어선 것이라 소련이 해체되고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없어지는 게 마땅했다.

 

그러나 1999년 미국은 소련의 동맹이었던 폴란드, 헝가리, 체코를 나토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고, 코소보에서 전쟁이 터지자 러시아의 우방 세르비아를 폭격했다. 2002년엔 미사일방어망 (Missile Defense)을 개발하기 위해 소련과의 '탄도미사일 요격미사일 제한 조약 (Anti-Ballistic Missile Treaty)'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이 조약은 쉽게 말해 서로 미사일방어망을 만들지 말자는 약속인데, 미국은 이를 파기해 나중에 동유럽엔 러시아 겨냥 미사일방어망을 구축하고, 한국 포함 동아시아엔 중국 겨냥 미사일방어망 (THAAD)을 구축했다.

 

2004년엔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등 동유럽 7개국을 추가로 나토에 받아들였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은 러시아의 반발을 우려해 주저했지만 미국이 밀어붙였다. 나아가 2007년엔 과거 소련의 일부였던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까지 추진했다. 2008년 러시아가 조지아 전쟁에 개입한 배경 가운데 하나다.

 

특히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과거 레닌부터 현재 푸틴까지 러시아와 한 민족 형제 국가로 간주한다. 러시아 군사·경제 안보를 위한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과거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여기를 거쳐 러시아를 침공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완충지대 (buffer zone)이고 금지선 (red line)인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해 독일과 프랑스가 다시 반대하고 러시아는 거듭 경고했던 이유다.

 

2014년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의 쿠데타를 통한 정권교체를 부추기고 지원했다. 친러 정권을 무너뜨리고 친미 정권이 들어서도록. 우크라이나 내전이 일어나고,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점령한 배경이다. 또한 미국은 폴란드와 루마니아에 러시아를 겨냥한 미사일방어망을 구축했다. 미국의 부추김에 우크라이나는 2019년 나토 가입을 헌법에까지 명시하며 러시아를 더욱 자극했다.

 

2021, 우크라이나 쿠데타 및 정권교체에 아들을 통해 연루된 바이든이 대통령에 취임했다. 쿠데타 주모자 빅토리아 눌랜드 (Victoria Nuland)는 국무부차관으로, 동조자 제이크 설리반 (Jake Sullivan)은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이 됐다.

 

이들은 정부 출범 직후부터 우크라이나에 군사고문단을 파견하고 첨단무기를 대량 공급하기 시작했다. 다시 나토 편입을 서둘렀다. 러시아 턱밑 흑해에서 나토군 대규모 해상연합훈련도 실시했다.

 

러시아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지역에 군사력을 배치하고 202112월 미국과 나토에 안전보장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편입하지 말고, 동유럽에 무기와 병력 배치를 중단하며, 러시아 인근에서 연합훈련을 중지하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미국은 거부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우크라이나 중립화를 추진했지만,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반대했다. 러시아는 아마 중국을 고려한 듯,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2022220일 끝나자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셋째, 러시아에 대한 비난, 규탄, 제재에 관해. 무슨 이유로든 전쟁 일으키는 건 천인공노하고 천벌 받을 짓이다. 전쟁을 시작한 나라에 대한 비난 못지않게 전쟁을 부추긴 나라도 비난받아야 한다. 개인 싸움에서든 국가 싸움에서든 먼저 때린 쪽이 나쁘다. 처벌받아야한다. 끊임없이 시비 걸며 자극하는 것도 죄악이다. 역시 처벌받아야 하지 않을까.

 

전쟁 관련 보도에 '원인'은 없고 '과정'만 나오듯, 전쟁을 시작한 러시아를 비난하고 규탄하며 제재하는데, 전쟁을 부추겨온 미국은 약자를 도와주는 착한 정의의 사도처럼 간주된다. 미국의 위선과 선전선동이 빚어내는 결과다.

 

내가 즐겨 써왔듯, 미국은 인류역사상 가장 호전적 국가다. 미국처럼 전쟁 많이 해본 나라 없고, 좋아하는 나라 없으며, 잘 하는 나라 없다. 전쟁을 통해 나라 세우고 영토 확장했으며, 전쟁을 통해 초강대국 되고 세계패권 유지한다. 미국이 독립한 1776년부터 지금까지 딱 16년 빼고 무려 230년 전쟁을 치렀다는 사실은 나뿐만 아니라 미국 대통령을 지낸 카터도 강조한 말이다.

 

미국은 요즘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도 협상·중재를 통한 휴전·종전보다 불판에 기름 붓듯 확전을 부추긴다. 이를 비판하기는커녕 제대로 보도하는 기사라도 있을까. 바이든이 푸틴을 단죄하기 위해 국제형사재판소 (ICC)를 정식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보도도 나온다.

 

그러나 미국은 전쟁을 일으키는 지도자뿐만 아니라 잔혹행위를 일삼는 해외주둔 미군들이 기소당하는 것을 피하고, 미국이 통제하기 어려운 국제법정에 미국인이 피고로 서는 걸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1990년대부터 ICC 설립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 협약 자체에서 탈퇴했다. ICC가 미군의 잔혹행위에 대한 조사를 추진한다는 이유로 ICC에 대한 자금이나 물품 지원을 금지하는 법까지 만들었다. 이런 내용까지 보도한 언론이 있는가.

 

넷째, 중국의 러시아 지원에 관해. 우방이라도 침략국을 두둔하거나 지원하는 건 나쁘다. 따라서 러시아를 지원하는 중국에 대한 비판은 좋지만, 중국에 대해서만 비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이 침략국이 될 때마다 한국은 비판은커녕 동참하며 지원했다는 사실도 기억하는 게 좋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유엔총회 결의안이 140여개국 찬성으로 통과됐다. 북한 등 5개국이 반대했다며 "반대표 던진 북한 외교적 고립 심화할 것"이란 제목의 기사가 떠올랐다. 생뚱맞다. 중국, 인도, 파키스탄 등 35개국이 반대처럼 기권한 것도 보도했어야 한다.

 

유엔안보리 결의안은 당연히 러시아의 반대로 부결됐다. 러시아의 거부권 남용에 문제가 많다고 보도됐다. 참고로, 중국이 러시아나 북한 관련해 유엔에서 거부권 행사하면 비판 기사가 실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주변 아랍국을 침공하고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수없이 학살해 유엔에서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제재하려할 때마다 미국이 거부권 행사하는 건 보도되지 않는다. 거의 매년 반복되는 일인데도. 또한 남한이 유엔에서 북한 인권 비판 결의안에 기권하면 언론이 난리를 떨지만,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비판 결의안에 미국 따라 기권하는 건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엔 중국과 인도는 물론 터키와 이스라엘까지 응하지 않는다. 인도는 미국이 중국 견제·봉쇄 위해 만든 쿼드 (Quad)의 하나다. 터키는 나토 회원국이다. 이스라엘은 미국이 해마다 수십억 달러 군사원조를 공짜로 제공하는 미국의 분신 같은 동맹이다. 한국은 제재에 동참한다. 국제관계에서 국가이익보다 중요한 건 없는데 왜 무엇 때문이겠는가.

 

다섯째,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에 관해.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과 독일 등 나토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늘리자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위협했다. 미국과 나토의 우크라이나 지원 및 러시아 제재가 지속·증폭돼 러시아가 궁지에 몰리면 핵무기를 터뜨릴지 모른다. 핵무기 사용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유일한 사례인 19458월 일본에서 미국 핵무기는 일본 정치지도자들이나 군인들 아닌 무고한 시민들을 대량 학살했다.

 

지난 3월 말 바이든 정부가 <핵 태세 검토 (2022 Nuclear Posture Review)>를 공개했다. 4년마다 만드는 미국의 핵심 국방.안보전략 중 하나다. 이를 통해 "미국이나 동맹국과 우방국들의 핵심이익을 지키기 위한 극단적 상황에서는 핵무기 사용을 고려하겠다 (consider the use of nuclear weapons in extreme circumstances to defend the vital interests of the United States or its allies and partners)"고 했다.

 

대부분 남한 언론은 긍정적으로 보도했다. 2001년 부시 정부가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이라크, 수단, 리비아 등 7개국에 대해 테러 징후가 보이면 핵무기로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발표했을 때는 환호하다시피 했다.

 

이에 맞서 북한이 425"우리가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에.....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핵무력 사용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발표하자 모든 남한 언론이 경악하며 비난했다.

 

러시아와 북한 그리고 미국의 핵무기사용 조건은 비슷하다. 남한 언론보도에 천지 차이가 날 뿐이다. 사상 최초로 핵무기 사용한 나라도 미국이고, 비핵국가 상대로 핵무기 선제공격을 가장 먼저 공언한 나라도 미국이지만, 미국 핵무기 사용에 대해선 애써 눈감는 것이다.

 

여섯째,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관해. 그를 영웅시하는 건 잘못이다. 침공한 쪽보다 침략당한 쪽을 동정하고, 강자보다 약자를 응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과 수도를 지키겠다며 직접 총잡고 러시아에 맞서 싸우는 그가, 전쟁에 대한 준비 없이 허풍떨다 전쟁이 터지자 국민과 수도를 팽개치고 잽싸게 도망친 이승만보다는 훌륭하다.

 

그러나 외교로 전쟁을 피할 수 있었는데도, 전쟁을 불러 수많은 국민을 죽음으로 이끄는 그가 진짜 영웅일까. 병 주고 약 주는 것보다 병을 예방하는 게 백 번 낫고 훨씬 훌륭하다.

 

일곱째,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에 관해. 종교기관이나 시민단체 등이 우크라이나 난민 돕기 성금 모으고 있다. 아름다운 일이다. 바람직하다. 현대 전쟁에서는 군인들보다 무고한 민간인들이 너댓 배 많이 죽는다는 통계가 있다. 이와 함께 되돌아볼 일도 적지 않다.

 

지난날 베트남,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미국이 침공한 수많은 나라들의 전쟁난민에 대해서도 이렇게 관심 갖고 지원했는지. 특히 베트남에서는 미군 못지않게 한국군대가 양민학살을 많이 저질렀는데 이들 유가족들을 지원하기는커녕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여덟째, 전쟁의 교훈에 관해. 우크라이나와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비슷하다는 얘기가 많다. 미국의 러시아 견제·봉쇄 정책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터졌는데, 미국의 중국 견제.봉쇄 정책에 따라 한국이 전쟁에 휘말릴지 모른다. 우크라이나가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균형과 중립 외교를 펼쳤다면 전쟁터가 되었을까.

 

2000년대부터 우크라이나 중립화가 논의됐다. 이번 러시아 침공 직전엔 앞에서도 밝혔듯, 독일과 프랑스가 중립화를 추진했지만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반대했다. 요즘 휴전·종전 협상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게 중립화다.

 

참고로, 중립이란 다른 나라들이 전쟁할 때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고 편들지 않는 외교정책이다. 일시 중립도 있고 영세 중립도 있으며 무장 중립도 있고 비무장 중립도 있으니, 한국도 진지하게 고려해보는 게 바람직하다. 미국의 중국 견제·봉쇄 정책이 날로 심화할텐데, 한미 군사동맹 때문에 우리까지 중국을 적대시하며 대만해협에서의 무력충돌에까지 끌려갈 수는 없지 않은가.

 

불행히도 한국 윤석열 정부가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정부와 비슷할 것 같다. 미국이 6월의 나토 정상회의에 한국을 초청하겠다고 했다. 러시아와 중국 견제를 강화하는 전략을 채택하겠다고 예고한 터다. 윤석열은 미국의 초청에 영광이라 생각하며 주저 없이 동참할 것 같다.

 

이뿐만 아니다. 미국의 중국 견제·봉쇄를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의 쿼드에 끼고 싶어 안달인 모양이다. 중국이 보복하면 대국이 속 좁다고 비난할 일이 아니다.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먹고사는 한국이 중국의 보복을 부르며 혹시 일어날지 모를 미국과 중국의 무력 충돌에 자동 개입되는 건 꼭 피해야 한다. 윤석열은 젤렌스키처럼 까짓것 한 판 붙으면 될 것 아니냐고 용감하게 나설지 모르지만, 무고한 수많은 국민의 피해와 희생은 어찌할 것인가.

이재봉 원광대학교 교수 | 프레시안 2022.05.03.

 

 

윤석열 대통령은 대체 뭘 하려는 것일까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일 경기 용인시 중앙시장을 방문해 어퍼컷 세리머니로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사진은 상징적이다. 아직도 윤 당선자는 선거 유세 때의 심정으로 국정을 마주하고 있는 것일까. 선거 때는 정치적 제스처나 거친 언사가 때론 도움이 된다. 대통령 당선 뒤엔 다르다. 대통령의 성공엔 취임 직후 첫 100일이 중요하고, 100일의 성공은 인수위 시절의 치밀한 준비에 기반한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징표와도 같다.

 

2008114일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당선자는 사흘 뒤 첫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는 오로지 하나의 정부와 하나의 대통령만이 있습니다. 내년 120일까지 그것은 공화당 정부입니다.” 오바마는 77일의 정권이양 기간 동안 권력을 행사하려 하지 않았다. 워싱턴이 아닌 고향 시카고에 머물며, 오로지 내각 인선과 취임 직후 추진할 정책 목록을 작성하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국민 앞에 내놓은 첫 인선은 꽤 성공적이었다. 민주당 경선에서 경쟁한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기용하고,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을 수행 중인 조지 부시 전임 행정부의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을 유임시켰다. 국민 마음을 움직이는 통합의 가치는 구호가 아닌 이런 실천을 통해서 분명하게 각인되는 법이다.

 

윤석열 인수위는 어떤가. 인수위 기간 윤 당선자는 지역민심 청취 겸 당선 인사 명목으로 전국을 돌았다. 지방선거 개입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책임은 없고 권력은 쏠리는 당선자 시절을 만끽하려는 모습으로 비친다. 하지만 트레이드마크인 어퍼컷 세리머니 는 더이상 국민 신뢰를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취임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 삶을 얼마나 나아지게 했는지 결과로서 평가될 것이다.

 

새 정부의 고민을 느낄 수 없는 대표적인 게 첫 내각 인선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인사는 만사라고 늘 말했던 건, 인사가 곧 대국민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인사를 통해서 대통령이 무엇을 하고자 하고 어떤 길을 가려는지 국민과 공직사회에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첫 인사에서 새로운 변화를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윤 당선자가 내세웠던 공정과 정의가치를 구현한 후보자가 단 한사람이라도 있을까 싶다.

 

장관 한번 하려다가 가족 전체가 예리한 칼날에 난도질 당하는 게 당연시되는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인재를 발탁하기 어렵다는 건 나름 이해할 구석이 있다. 그래도 과거엔 18개 부처 장관 후보자 가운데 한둘 또는 두셋 정도는 참신하다거나 뭔가 달라지겠구나라는 감동과 기대를 심어주곤 했다. 새 정부에선 그런 인선을 눈씻고 찾을래야 찾기 어렵다. 국무총리는 공직의 뜻을 완전히 접고 로펌에서 고액 자문료를 받으며 여생을 편안히 즐기려던 말 잘듣는 고령의 전직 관료를 다시 불러낸 것 외에 다른 메시지를 찾기 힘들다. 김인철 교육부총리 후보자가 자진 사퇴했지만, 이것이 끝이 아님을 국민의힘 국회의원들도 내심 안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를 비롯한 모든 후보자가 특혜와 찬스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취임 이후 첫 100일의 중요성을 부각한 건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었다. 대공황 시기에 취임한 루스벨트는 초기 메시지와 정책이 국민 지지를 끌어내고 국가 역량을 재배치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첫 정치인이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코로나로 소득과 자산 격차가 더 벌어지고, 세계적 경기침체의 빨간 불은 번쩍인다. -중 대립과 우크라이나 전쟁, 북한의 핵 증강 의지는 동북아와 한반도 안정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런 시기에 한국은 어떻게 활로를 모색해 나갈지, 새 정부의 인선과 정책에서 믿음직한 해법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떠나는 대통령과의 갈등은 감정을 건드리는 사안이긴 하나,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윤석열의 진정한 승부는 문재인과의 싸움이 아닌, 산적한 과제를 취임 직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1973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영화 <후보자>는 젊고 이상적인 변호사(로버트 레드포드)가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뒤 중심을 잃고 선거전문가에게 기대서 승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당선 확정 직후, 결정적 도움을 준 선거전문가에게 이렇게 묻는다. “이제 뭘 해야 하지?” 내주 출범하는 새 정부를 보면서 도대체 뭘 하려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국민들이 갖는다면, 안타깝고 불안한 일이다.

박찬수 | 대기자 한겨레 :2022-05-04

 

 

권력의 대기실과 집단사고의 위험

지난 1일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대통령실 외교안보팀 면면을 보자. 먼저 김성한 안보실장 내정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와 초등학교 동창으로 50년 지기다. 아마도 자신이 윤 당선인의 분신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김용현 경호처장 내정자는 윤 당선자의 고등학교 1년 선배이고, 대선 때 안보 공약을 총괄했으니 나야말로 복심이라며 지지 않을 거다. 그러자 김태효 안보실 1차장 내정자. 윤 당선자와 같은 아파트에서 살며 목욕탕에서 만난 자신이야말로 대선을 막후에서 지원한 실력자라고 스스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장을 겸임하는 실권을 쥔 김 내정자는 아직도 군 댓글공작 혐의로 재판 중이다. 신인호 안보실 2차장 내정자는 세월호 사건 당시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장으로 전원 구조라는 허위 정보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사후에 보고 사실을 조작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부처로 시야를 확대해보자. 이종섭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현역 대령 시절 이명박 대통령의 외교안보수석실 행정관이었다. 그때 이 후보자의 직속상관이 당시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이니 지금의 둘은 특수 관계이고, 김용현 경호처장이 강력히 추천했다고 전해진다. 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자와 권영세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윤 당선자와 서울법대 동문이다. 세 사람은 서울법대 학회인 형사법학회'에서 활동하면서 40년 지기가 됐다. 윤 당선자는 권 후보자와 연세대도서관에서 고시 공부를 했으며, 박 후보자의 결혼식에도 참석했으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당선자와 사적 인연으로 끈끈하게 짜인 차기 정부의 외교안보팀은 서울대’ ‘육사’ ‘이명박의 사람들이라는 세개의 키워드로 정리된다. 이로써 일찍이 한비자가 경고했던 권력의 대기실이 탄생했다.

새로운 외교안보팀의 첫번째 시험대는 오는 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다. 조속한 한-미 정상회담을 추진했던 이들은 일제히 동맹 강화를 외쳐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을 몰아내고 러시아를 실패 국가로 만들어 다시는 전쟁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겠다는 미국 대통령은 한국에 우크라이나 군사지원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북한이 연일 핵 위협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높은 수준의 한··일 삼국 군사협력과 한국의 자체 핵미사일 대응 능력을 강화할 필요성을 역설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에 호응하면서 미국의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를 요구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의 사드 3불 정책은 자연스럽게 폐기되고, -미 정상회담은 동맹이 한층 강화되는 계기로 활용될 것이다. 무장 국가 대한민국과 한··일 군사협력의 강화는 당연히 북한과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연대를 촉진하게 될 터이지만, 그 지정학적 위험에 대해 경고하며 균형감각으로 주변을 관리하자고 말할 인사가 현 외교안보팀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 외교안보팀에는 중국이나 북한을 잘 아는 인사를 찾아볼 수 없고, 동일한 집단사고의 분위기가 조성되기 때문에 다른 의견을 개진하기 어렵다. 결국 윤석열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의 비핵개방 3000’의 프레임에 갇히게 되며, 대륙세력과의 긴장으로 안보 비용을 한껏 높일 위험성이 매우 크다.

 

<손자병법>지피지기 백전불태’(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를 인용하지 않아도 외교안보에서 오로지 동맹을 외치는 이념과 사상의 편식은 그 자체로 위험하다. 지피(상대방을 아는 것)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동맹의 힘만 과신하여 중국이나 북한에 대한 무모하고 위험한 전략을 구사하게 된다. 지금은 한··일의 자유롭고 개방된 세계 질서를 향한 단결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북··러가 서로 단결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안보 비용을 줄인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미 중국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무력화하여 북한이 마음 놓고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회의 창문을 열었다. 이로써 북한에 대한 제재 효과가 사라지고, 더 나아가 북··러 연대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엄중한 상황이다. 동맹에 대한 과도한 열정으로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파동, 2012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밀실합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엠비(MB) 정권 주역들의 귀환이 불길하다. 이들에게 보수정권에서 실패한 위기관리와 국정문란에 대한 통찰이 있는지, 또 과연 한반도 주변 정세를 균형 있게 바라볼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김종대ㅣ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한겨레 :2022-05-05

 

대한민국 국가부채 후손들이 갚아야 한다고?

최근 한 경제지에 국가부도 내몰린 빚쟁이 나라들이란 논설위원 칼럼이 실렸다. 스리랑카·몰디브 등이 국가채무를 갚지 못해서 국가부도에 내몰렸다는 내용이다. 중국에서 비싼 이잣돈을 빌려 항만·도로 등을 건설했지만, 빚을 갚지 못해 항구의 운영권을 중국에 넘기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말미에 이 칼럼의 교훈이 나온다. 한국도 국가채무가 1000조원을 넘어섰다며 채무를 늘리는 것은 정치인이지만 빚을 갚는 건 결국 국민이다라고 강조한다. 이 기사뿐만 아니라 국가부채는 모두 우리 후손이 갚아야 할 빚이라는 기사는 매우 흔하다.

 

그러나 스리랑카의 외채와 한국의 국가부채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스리랑카의 외채는 중국 등에서 높은 이자의 돈을 빌린 것으로 중국에 줘야 할 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는 대부분 외채가 아니다. 내부 채무다. , 외국에서 빌려 외국에 줘야 할 돈이 아니라, 주로 대한민국 국민에게 빌려서 대한민국 국민에게 갚아야 할 채무다. 현재 대한민국 국채 채권자의 약 80% 이상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물론 20%가량은 외국인이다. 그러나 한국은 순채권국가다. 대한민국이 보유한 외국 채권이 외국인이 보유한 대한민국 채권보다 더 많다. 채무자는 대한민국 정부이지만, 채권자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얘기다. 대한민국 국민이 채권자인데, 대한민국 후손이 갚아야 한다? 내부 채무를 우리 후손이 갚아야 한다는 논리는 좀 어색해 보인다.

 

러너(A. Lerner)와 같은 전통적 견해의 재정학자에 따르면, 해외에서 빌려다 쓰는 채무가 아닌 내부 채무는 미래세대의 부담이 늘어나지 않는다. 그 나라 국민이 채권자라면, 상속이나 매매 등을 통해 국채 상환을 받는 사람도 미래의 국민이라는 것이다. 물론, 국채가 발행되는 시점의 세대에 따라 내부 채무도 미래세대에 부담이 전가된다고 생각하는 이론도 있다. 그러나 스리랑카의 외채 위기와 80% 이상이 대한민국 국민이 보유한 우리나라 국가채무를 똑같이 비교한 것은 합당하지 않다.

 

국가부채 40%는 달러 등 대응 자산이 있는 채무

그런 의미에서 언론에서 가끔 쓰이는 ‘1인당 국가채무라는 개념도 성립할 수 없다. 많은 언론에서 1인당 국가채무가 2000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1인당 국가채무는 대한민국 정부의 국채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나눈 개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채를 채권자인 대한민국 국민 수로 나누어 1인당 국가채무를 산정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개념이다.

 

특히, 국채가 100% 외채라 해도 우리나라 후손이 100% 갚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국채의 약 40%는 대응 자산이 있는 채무다. , 국채를 통해 조달한 돈은 써서 없어지는 것만이 아니다. 달러 같은 자산을 매입하고자 발행한 국채가 약 40%는 된다. 대변에는 국채라는 부채가 생기지만, 차변에는 같은 금액의 달러 자산이 생긴다. 이러한 국채는 후손이 갚을 필요가 없다. 대응되는 자산 자체에 상환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환율이 오르면, 국채 이자비용보다 환율상승 이익이 커진다. 오히려 우리 후손의 자산을 늘리는 부채라는 의미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정부부채 규모를 감시하고 평가하는 것은 언론의 사명이다. 그러나 비평을 하더라도 정확히 비판하자. 단순한 공포 마케팅이 아니라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국가부채 논쟁을 기대해본다.

이상민(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시사인 2022.05.08

 

진영논리에 무너져 내리는 공동체 윤리 기준

기득권 언어 아무렇잖게 발표하는 그들의 민낯

우리사회의 폭력성이 도를 넘고 있다. 폭력은 한 사회가 유지되는 최소한의 기준인 법률, 규칙 등을 어기면서 시작된다. 그런 폭력성을 제어할 규칙들이 작동하지 않는다. 도덕과 양심을 말하는 진작 시대는 지났고 이제는 선을 넘어도 지탄받을 뿐이지만, 명백히 제재가 따르는 법률, 규칙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 법의 그물망을 피하는 것일까? 약자들에겐 저승사자인 법이, 정보와 인맥을 독점한 사람들에겐 넘나들 수 있는 은밀한 기준임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넘나드는 규칙들, 위태로운 사회

아빠찬스, 엄마찬스, 할아버지찬스도 모자라 남편찬스, 본인찬스까지 온갖 '찬스'가 신조어가 되었다. 'OO찬스'가 국어사전에 새로이 등재될 날도 머지않았다. 각종 찬스로 성장하고 찬스로 취득한 능력들이 다시 우리 사회의 지도층을 형성하고 그들이 이 사회를 움직인다. 이런 위장과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서 아이를 키워낸다는 것은 실로 모험에 가깝다. 인구절벽 현상을 그저 경제적 문제로 부각하고 싶은 이도 있겠지만, 청년 세대가 느끼는 두려움의 실체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정당한 경쟁 대신 각종 찬스가 능력이 되고, 그런 가짜 능력으로 부를 창출함은 물론 사법 권력과도 긴밀해지는 현대판 계급 구조에서 법률, 규칙 같은 룰이 자신들에게나 엄격한 것임을 직감적으로 느낀 이라면 자녀를 가질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약속된 룰을 넘나들려는 인간 심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그런 경향이 그 사회의 항상성을 해치는 수준이라면 어떨까. 각종 이력의 허위기재, 논문 짜깁기, 가짜 상장은 기본이요, 불법 증여·상속·투기와 위장 전입, 그리고 찬스를 동원한 입시·병역·입사·논문공저 등 상상을 초월하는 편법들이 그들의 일상이 됐다. 그들은 실상이 드러나도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폭로한 사람을 향한 삿대질로 더 당당함을 보여줘야 그 일상은 공고해진다. 부와 권력, 사회적 지위를 쟁취하는 우리 사회의 작동 방식이다.

 

이런 구조를 제어할 유일한 권리인 투표권을 가진 시민들도 그런 구조를 공고히 하는데 일조한다. 각자 지지하는 권력의 편에 서서 부패의 경중을 겨루며 진영 싸움에 몰두하는 경우다. 부패한 권력을 대신할 새로운 질서가 들어설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이런 사회에서 공정과 정의는 상상의 단어일 뿐, 더는 실천적 의미가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인 기회의 평등과 출발선 논쟁도 이미 저만치 밀어낸 채, 삶의 과정마다 부모나 가족의 인맥과 권력이 따라붙어 폭넓게 작용하는 사회.

 

진영논리에 무너져 내리는 공동체 윤리 기준

이런 뿌리 깊은 현대판 계급 구조가 진영의 구도로, 탈법·부조리의 경중을 따져 비판하는 것으로 해결이 될까?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보고 짖는다'는 오랜 속담이 인류 역사에서 사라지는 날은 오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를 지독한 진영논리로 몰아넣었던 조국 전 장관 사태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조국 전 장관의 딸 조민 씨에 대한 '부산대, 고려대 입학 취소 철회를 요구하는 교수, 연구자 공동성명'에서 상처는 더 깊어졌음을 느낀다. 우리 사회가 공정과 정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물론 차기 정부의 내각 후보군들 이력을 보면 내가 사는 이 세상 일인가 싶을 만큼 기상천외한 각종 편법, 탈법적 신종 발명품들이 줄줄이 사탕이다. 조국 전 장관의 윤리적 문제들이 새삼 무색해질 정도다. 그럼에도 조국 사태에서 경험했던 국민들의 분노와 좌절은 우리사회가 가야 할 방향과 교훈을 분명히 제시했다고 본다. 촛불 정국에서 시민이 이들 권력에 실어줬던 정의와 공정에 대한 간절한 기대가 무너졌다. 수많은 사람들의 정직한 삶들이 차곡차곡 쌓여 이룬 양심과 윤리 기준들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 간절했던 공정과 정의는 더욱 부패한 집단의 먹잇감이 되었다. 이만한 교훈이 어디 있는가.

 

이런 문제들과 별개인 검찰의 먼지털이식 수사와 그로 인해 한 가정이 송두리째 무너졌던 잔인함은 마땅히 해명되고 치유되어야 한다. 연장선상에서 조민의 부산대, 고려대 입학취소 역시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가 누구의 자식이건 객관적이고 명확한 기준 없이 한 젊은이의 삶을 쉽게 부정했던 대학의 행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조국 장관 일가가 살아온 전반적 삶의 방식이 이해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불법, 탈법과 타협하지 않으려 고민하며 살아온 수많은 사람이 했을 고민은커녕, 당시는 그랬고 현실이 그랬다는 변명과 함께 극악스러울 만큼 기득권적 이익에 충실했다.

 

불공정 언어로 공정을 설득할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조민의 문제가 전국의 교수, 연구자들이 들고 일어나 성명서를 낼 정도의 사안이었는지 의문이다. 설령 불가피한 성명이었다 해도 성명서에 드러난 공정에 대한 왜곡된 인식에 더할 수 없는 실망감을 표한다. 먼저 성명을 발표했던 이들 지성들의 인식의 언어를 보자. 우리 사회에서 조국 장관의 딸 조민만이 그렇게 억울함을 당하고 있는가? 삶의 근간부터 흔들리는 억울함을 당해도 의지할 곳 없는 또래의 많은 젊은이들, 부모의 사회적 영향력이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주어진 환경을 습관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성명서에서 얼마나 배려했나. 아니 이는 배려의 문제도 아니다. 인간의 삶을 제대로 인식하는 균형 감각의 문제다.

 

정호영, 한동훈 등 후보자나 조국 전 장관의 자녀들은 이미 출발선에서부터 상당한 기반을 가진 젊은이들이다. 출발선에서부터 줄줄이 포기부터 배워야 했던 자녀들, 학비 벌며 열심히 공부했지만 또 다시 취업 문턱을 넘지 못하는 수많은 자녀들, 이들 기득권 자녀들이 온갖 기회를 독점해 입학한 대학 인원 수 만큼 배제되었을 많은 입시생들, 살기 위해 선택한 위험한 일자리에서 산업재해라는 죽음의 숫자로 자신을 알리는 누군가의 자녀들. 이런 참담한 현실도 모자라 부도덕한 사회 지도층 자녀들로 상대적 박탈까지 감당하며 살고 있을 구조적 일상에 분노한다고 이들 교수들이 성명서를 발표했던 적 있었던가? 젊은이들 삶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는 부모찬스라는 망국적 사회문제 앞에서 '교수 부모찬스를 전수조사 하자'는 목소리에 성명서로 응답한 적 있었던가?

 

성명서를 읽다 보면 한 젊은이가 처한 부당함에 안타까움이 절절하다. '입학서류에 첨부된 표창장이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1단계 서류전형 통과가 공인영어성적의 우수함 때문이며 2단계 면접전형 또한 당락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경력 기재를 이유로 부산대는 입학을 취소했다', 그래서 '대학 4년과 의학전문대학원 4년 동안 그 어려운 공부를 마치고 현재 의사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 모든 학력과 경력을 삭제당한 채 고졸자가 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그런 절절함으로 수많은 소외된 젊은이들을 세심하게 보듬는 걸 보지 못했다.

 

게다가 '그 어려운 공부를 마치고' '고졸자가 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는 말은 도대체 무얼 의미하는가. 그 어려운 의학전문대학원 가고 싶어도 기회조차 차단되는 젊은이들이 있다. 그 어려운 의학전문대학원 아니라도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은 자신에게 허락된 환경에서 피터지게 스펙 쌓고 경쟁하며 그에 못지않게 어렵게 공부하고 산다. 그런데 '고졸자가 될 위험'이라니. 고졸자가 하위 계급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그냥 '열심히 공부한 대학 4년과 의학전문대학원 4년의 과정을 하루아침에 잃게 되었다.' 정도로 쓰면 될 것을, 굳이 고졸자 운운하며 '그 어려운 과정'이란 말까지 해야 했을까? 불평등한 경쟁 사회에서 한 젊은이가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고졸자로의 삶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했다면, 이 사회가 조장한 의사라는 기득권을 잃게 된 것도 당연한 귀결 아닌가? 고졸자로 살고 싶지 않은 수많은 젊은이들을 어쩔 것이며, 고졸자로도 건강하게 살아가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겐 무어라 말할 것인가. 불평등 구조가 낳은 언어를, 기득권적 사고의 언어를 별 생각 없이 받아쓰는 것이 더 큰 폭력임을 모르는가!

 

세심함이 결여된 공정의 외침은 능력주의와 다르지 않다

말꼬리 잡자는 것이 아니라 문구를 만든 이들 교수들에게서는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에 대한 배려를 엿볼 수가 없었다. 이들의 표현 방식에는 의학전문대학원은 어렵게 공부를 마치는 과정이니 고졸자와 달리 더 구제할 필요성이 있고 특권을 인정해도 된다는 인식마저 읽힌다. 정유라-조민-정호영의 아들딸들로 이어지는 입시비리에서의 내로남불 공방이 결국 그들만의 리그라는 쏟아지는 비판의 의미를 이해했는지 의문이다.

 

성숙한 사회라면 학력도 직업도 개인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그런 사회는 고졸자도 대졸자도 필요하고, 의사도 청소부도 필요하다는 인식이 당연시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각자 위치에서의 모든 삶을 소중히 인정할 줄 아는 민주시민의 인식과 자질을 배우는 곳이 다름 아닌 교육 현장이다. 아무리 우리 사회가 지금의 저급한 계급문화를 만들었기로서니, 대학의 지성들까지 그런 인식으로 공정을 말하는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주장하는 그 알량한 능력주의에는 무엇으로 답할 것인가.

 

조민에 대한 성명서는 입학 취소의 문제였던 만큼 그 부분에 집중한 성명서였다고 말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젊은이들을 길러내는 지성의 전당이 대학이라고 스스로 밝혔던 그 이념에 걸맞게 보다 본질적인 부분에 시선이 가 있어야 했다.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었다 해도 적어도 성명의 내용만큼은 한명의 학생이 아닌 교육 불평등의 피해자인 이 땅의 모든 젊은이를 염두에 둔 세심하게 배려된 문구였어야 했다. 나는 이런 식의 교수들 성명서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공정을 더욱 고착화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눈앞 한 사람의 불공정을 구제하는 데만 급급해 수많은 불공정 피해자들은 무시되거나 또 다른 불공정이 기정사실화되는 이런 논조의 성명이 본질적 문제를 망각케 하기 때문이다.

 

정경심 교수의 재판부에 냈던 조정래 작가의 탄원서도 그런 지점을 간과했다. 나 역시도 재판 형량이 심각하게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부당함에 호소하기보다 '어려운 공부를 마친 우리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니 참작해달라는 식의 탄원 내용은 이해하기 어렵다. 개인적 친분으로 내는 탄원서이니 어떤 내용이든 제3자가 비판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공개될 것이 뻔한 이런 사려 깊지 못한 기득권적 언어로 인해 그런 환경을 꿈꿀 수조차 없는 젊은이들이 다시 한 번 느꼈을 거대한 벽을 이해하는가?

 

도대체 '그 어려운 공부'란 것이 언제부터 우리사회가 보호해야할 기준이 되었는가. 이제부터 자식을 키우는 부모가 해야 할 것은 오직 한 가지다. 공교육엔 기댈 수도 없는 사회이니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식에게 '그 어려운 공부'를 시켜 '우리사회의 소중한 자산'으로 길러낼 일이다. 언제 당할지 모를 부당한 법적 조치에서 안전해지려면 말이다. 심각한 갈등의 근원인 우리사회의 온갖 차별의 문제엔 이처럼 편협한 불공정 인식이 자라고 있다.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 현장에서조차 이런 문제 지점을 놓치고 등한시한다면 그 근시안만큼 우리사회도 후퇴할 것이다.

 

공자는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고 했다. 예수도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말했다. 아마 부처도 비슷한 말씀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결국 타인을 나와 똑같은 기준으로 공정하게 대하라는 말인데 이는 타인과 타인 간에도 역시 공정하게 대하라는 의미로도 통한다. 최소한의 기준인 법과 규칙이 건강하게 작동하지 않는 불공정 사회에서 공정성 담론은 허망하다. 지금 우리는, 심각한 불공정 사회에서 무뎌지고 익숙해진 기득권적 언어로 공정을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김진희 노무법인 벽성 대표 | 프레시안 2022.05.09.

 

 

윤석열의 '110대 국정과제'에는 '불평등'이 딱 한 번 등장한다

코로나19 겪고도 보건의료 영리화·상업화 시도?

이제 내일이면 차기 정부가 출범한다. 대통령 취임식을 일주일 앞둔 지난 3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는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이하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물론 이후 상황에 따라 세부 내용들은 다소 달라질 수 있겠지만, 새 정부의 국정철학과 이념을 담은 첫 공식 문건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국정과제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한 마디로 비관적이다. 우리는 지난 논평을 통해 예비 대통령에게 절박한 시대적 과제인 불평등 문제에 대한 대안을 요구했지만, 그 어디에서도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찾아보기 어렵다.(관련 기사 : 예비 대통령이 해야 할 일)코로나19를 거치면서 극도로 심화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마치 실재하지 않는 것처럼, 또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듯이 말이다. '불평등'이라는 표현이 딱 한번 등장하는데, 그것도 여섯 가지 국정목표 가운데 유일하게 국정과제가 하나도 제시되지 않은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에서다. 저소득층의 생계 안정과 위기대응 지원 강화, 이주민 인권보호 등을 언급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대안이 없을 뿐만 아니라 기존 정책의 되새김이며 무엇보다 불평등의 복잡성과 근원에 대한 통찰이 없다.

 

이처럼 차기 정부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완벽한 무관심은 그 자체로 심각한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국정과제는 집권세력의 신념과 의지, 욕망이 반영된 결과이면서 동시에 고도의 정치적 계산을 거친 산물이기도 하다. 정부 출범을 앞두고 가급적 지지율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만한 과제라면 슬그머니 제외하거나, 반대로 꼭 하고 싶지는 않더라도 여론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과제라면 매력적으로 포장해서 내놓는 법이다.

 

국정과제에 수사적(rhetoric) 차원에서조차 '불평등'이 누락되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불평등 문제를 국가의제로 삼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내포된 것으로 읽어야 한다. "국가경쟁력 회복""선진국 도약""시대적 소명"이라고 공언하는 마당에 불평등 문제가 철저히 외면당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불평등에 대한 무관심은 국가의 책무성을 약화시키면서 사회 전 영역에서의 영리화·시장화를 강화·추동하는 신자유주의적 국정 운영기조와 맞닿아 있다. 이러한 징후는 보건의료 분야의 국정과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언제 어디서든 모든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과 같이 아무런 '의미값'도 없는, 공허한 구호를 벗겨내고 나면 건강과 보건의료를 더욱 영리화·상업화하려는, 숨어있는 '열망'을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

 

"필수·공공의료 강화"(국정과제 66)의 구체적 정책수단 중 하나로 제시된 "공공정책수가"가 바로 그러한 예이다. 공공의료 기능을 수행하는 모든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공공병원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시장화된 현재 의료시스템을 감안하면 사실상 민간의료기관이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 가뜩이나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역할을 수행하느라 상당한 손실이 누적된 상태에서 "공공정책수가"를 구실로 정부의 재정지원이 소극적으로 이뤄진다면 공공병원들은 이전보다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바이오·디지털 헬스케어산업의 육성(국정과제 25)이다. 이는 보건의료를 영리화·상업화하려는 시도인 동시에 건강을 철저히 상품화하려는 기획이다. 사실 문재인 정부에서부터 바이오·디지털 헬스는 차세대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각광받으며 대규모 R&D 예산 지원과 전폭적인 투자가 이뤄져 왔다. 대개 정권이 교체되면 으레 이전 정부의 기조와 차별화를 꾀하는 편이지만, 적어도 바이오·디지털 헬스 산업에 있어서만큼 아무런 단절도 찾아보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던 '건강정보 고속도로 시스템' 구축 방안을 국정과제로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이는 정권의 성격과 무관하게 제약산업과 의료기기산업 등의 이해관계가 국정운영기조에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또한, 통상 '보수'정권은 영리화를, '진보'정권은 공공성을 추구한다는 이분법적 도식의 오류를 확인시켜 주는 동시에 궁극적으로 건강과 보건의료를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고자 하는 '체제적 경향성'의 존재를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는 이번 정권교체가 바이오·디지털 헬스 분야에서 그동안 꾸준히 진행되고 있던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를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바이오·디지털 헬스 산업의 육성은 '예방적 건강관리 강화'(국정과제 67)에 제시된 ICT 기술기반의 '스마트 건강관리''비대면진료 제도화'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의료취약지 등 의료사각지대 해소"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그 핵심동기에는 상업화를 통한 수익창출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디지털 헬스기술 자체에 반대하지 않지만, 현실에서 이것이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개발되고 배분되는 한, 기존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게 될 위험성이 클 것으로 판단하며 우려를 표한다.(바로 가기 : 20191021일 자 '무엇을 위한 '첨단' 과학기술인가?')

 

국정과제를 통해 도출된 비관적 전망에 좌절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정확한 진단과 통찰의 토대 위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문제화'에 나서야 한다. 우리에게는 공공성과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하는 신자유주의적 해법이 틀렸다는 생생한 '근거'가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슬픔들이 여전히 생생하게 진행 중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시장 확대, 불평등 심화를 부추기는 신자유주의라는 토대가 있다는 점을 우리는 알고 있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공중보건위기를 거치면서 그 어느 때보다 공공성의 가치와 공공보건의료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진 상황도 우리가 가진 저항의 동력이다. 자본과 시장은 그 구조적 본질상 건강과 생명, 평등과 공공성을 유지·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더욱 확연하고 설득력 있게 주장하자.

 

아울러 우리가 가진 건강에 대한 욕망과 결핍감을 끊임없이 부추기며 자본축적의 도구로 삼으려는 바이오·디지털 헬스 산업의 실체를 드러내고 '개인화'할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의 건강정보가 철저히 상품화됐을 때 벌어질 결과가 나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생각하게끔 만드는 '개인화'. 나아가 이러한 산업화의 흐름이 사회를 더욱 원자화하며 불평등을 악화시키게 될 것이라는 '사회적 상상력'을 키우고 확산시키고 조직화하자.

 

이러한 전략적 실천은 결국 우리 모두 함께 건강과 삶을 공유하려는 '해방적' 욕망을 투쟁의 동력으로 길러내는 과정이고, 바로 여기가 우리의 출발점이다.

시민건강연구소 프레시안 2022.05.09.

 

 

언론 길들이기에 취한 윤석열 인수위

미디어오늘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출범 이후 드러낸 대언론 논란을 언론 길들이기’ ‘비판 언론 솎아내기로 규정한다.

 

논란의 시작은 인수위의 공영방송 간담회였다. 겉으로 내세운 명분은 방송사들의 고충을 듣고 논의하는 자리라고 했지만 정치 권력이 공영방송 관계자를 부른 것은 위화감 조성에 그 목적이 있다고 본다.

 

국민의힘이 공영방송을 바로잡겠다며 불공정보도 책임자를 지목하고 이참에 손을 보겠다는 듯 민영화 이슈를 꺼낸 상황에서 인수위의 공영방송 간담회는 기강 다잡기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언론은 언제든 찍어누를 수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낸 것이다.

 

[관련기사 : 역대 최초 KBS·방문진·방통심의위 부르는 윤석열 인수위 / “인수위에서 언론사 간담회? 전두환밖에 없었다”]

 

일부 언론에 대한 인수위의 출입 거부 역시 대언론 소통에 심각한 결함을 드러낸 것이다. 미디어오늘은 비평 매체라는 특수성 때문에 유관단체 가입을 하지 않고 있는데, 인수위는 유관단체 가입 증빙 서류 미비를 문제 삼아 본지의 출입을 거부했다. 타 정부 출입처에선 이에 관해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나 윤석열 인수위의 기준은 달랐다.

 

실제 유관단체 등록 여부가 인수위 출입 기준이 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유관단체에 가입돼 있는 뉴스타파도 출입이 거부됐기 때문이다. 유관단체 가입은 그저 내세우는 허울일 뿐 입맛에 맞지 않은 매체는 인수위에 발을 들여놓지 못한다는 방침이 공유되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든다.

 

대선 기간 윤석열 후보는 자신에 대한 의혹 제기에 신뢰하지 못하는 매체의 의혹이라고 깎아내린 적 있는데, 매체 출입을 둘러싼 고무줄 기준에 비춰보면 비판 언론에 대한 보복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관련기사 : 인수위 출입거부 뉴스타파 윤석열은 애완견 언론을 원하나” / ‘출입 거부 이유 도대체?’ 제대로 답도 못하는 인수위 대변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출입 등록을 받으면서 기자 재산과 가족 및 친소관계 등 신상 정보(국정원 보안업무규정 서식 신원진술서)를 요구한 것도 언론 길들이기목적이 다분하다. 실무진 착오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을 부를 만한 서식으로 기존 신원조회를 대체한 경위는 도무지 알 수 없다.

 

대통령 집무실과 기자실이 한 건물 안에 배치되기 때문에 더 높은 보안이 요구된다고 하지만 기자들 재산까지 포함한 정보의 요구는 민간인 사찰에 다름 아니다. 시대착오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논란이 일자 양식을 바꾼 것으로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고자 했지만 윤 당선자의 대언론 인식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기자 정보가 그렇게 대통령실로 넘어갔다면 언론 줄 세우기를 위한 기자 관리 정보로도 활용됐을 것이다.

 

한 방송사 기자가 인수위 기자단 단체방에 남긴 “5년이 아니라 20년 만에 정권을 찾아온 것 같다. 하는 게 아마추어 같다라고 혹평한 이유를 되돌아봐야 한다.

 

[관런기사 : 듣도보도 못한 인수위의 기인완박신원조회서 논란 / 용산 대통령실 요구 기자 신원진술서는 실제 국정원 직원용]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대변인실이 기자들에게 요구한 신원진술서양식

 

대통령 집무실 기자실 출입 문제도 논란의 소지가 크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문호 개방 목적으로 박근혜 정부 청와대 출입 매체사를 그대로 인정하고 출입 매체를 추가로 받았다. 반면 윤석열 인수위는 기존 청와대 출입 매체에 대한 심사를 포함해 대통령실 출입 매체사를 새로 선정할 계획이다.

 

공간의 제약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하지만, 이번 기회에 비판 언론을 솎아내고 우호적 언론을 출입사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 강경 보수 성향의 매체가 속해 있는 유관단체를 대통령 집무실 출입 등록 기준에 새롭게 추가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 대통령실 출입등록 추가 협회 소속 매체 대표 기사 300개라니]

 

윤석열 당선자 지역 일정에 지역 기자단 취재를 배제한 것도 어처구니가 없다. 차기 권력자의 지역 방문은 지역 언론의 최대 이슈인데, 이들을 배제한 채 중앙언론의 풀 취재 내용을 공유하라는 건 어느 실무진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지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다.

 

지역 언론 입장에선 이와 같은 조치는 취재 차별인 동시에 지역민 알 권리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몰상식한 행위다. 참다못한 한국기자협회 소속 지역기자협회는 취재 통제라고 비판하기까지 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비판 보도에 법적 대응을 고수하는 것도 부적절하다. 검찰 인사권자의 고소는 앞으로도 의혹 보도를 찍어누르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언론을 상대로 윤석열 인수위가 드러낸 각종 논란이 부디 정권 교체기에 돌발적으로 벌어진 실수이길 바란다. 언론의 자유에 대한 경시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에 대한 무모한 도전일 뿐이다. /미디어오늘 1350호 사설

 

헬조선'에는 '부동산 원귀(寃鬼)'가 산다

'귀신 들린 집'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시사하는 것

...<대박부동산> 남자주인공 오인범(정용화)은 사기꾼이다. 그것도 스탠퍼드 대학 심령학 박사를 내세워 가짜 귀신 퇴치기를 수천만 원에 파는 '귀신 사기꾼'이다. 그는 내일을 준비할 생각이 없다. 사기 친 돈으로 고급호텔 스위트룸과 스포츠카를 빌려 흥청망청 쓰고 나면 또 다른 사기 대상을 찾으면 그뿐이다. 이번에 그는 건축업자 도산으로 두 명이 죽은 신축 오피스텔을 노리고 있다. 홀로그램 등을 이용해 가짜 귀신을 만들어서 준비 중인데, 여기에 진짜 퇴마사 홍지아가 나타났다. 퇴마 과정에서 오인범은 자신의 엄청난 빙의 능력을 알게 된다. 다른 영매와 달리 원귀의 기억이 자신에게 들어오는 것도. 또 홍지아의 심각한 저체온증을 막아주는 능력도 있다. 이렇게 진짜 퇴마사와 귀신 사기꾼이 한 팀이 되고, 원귀의 기억이 들어온 오인범은 그들의 한을 풀어주고자 한다. 원귀의 한을 애써 외면했었던 홍지아는 좌충우돌 초짜 영매 오인범과 함께 망자의 한까지 해결해 나간다.

 

KBS 드라마 <대박부동산>은 공인중개사인 퇴마사가 귀신이 들려 흉가가 된 부동산에서 원귀나 지박령을 퇴치하고 이들의 기구한 사연을 풀어준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4월 중순부터 6월 초까지 16부작으로 방영됐다. KBS

 

지대불로소득이 만든 원귀

연세대 국문과 교수 백문임은 <월하의 여곡성>(책세상 펴냄)에서 한국 문화사에서 귀신도 위계가 있음을 말한다. 그는 "원시종교에서부터 귀신은 숭배 대상이었지만, 인귀(人鬼)는 선한 귀신인 조상신과 악한 귀신인 사귀(邪鬼)로 구분되었고 그중에서도 여자 귀신은 가장 사악한 귀신으로 간주하였다."라고 분석했다. 귀신 위계화는 성리학 도래와 깊은 관련이 있다. 성리학 관점에서 특히 혼인하지 못한 '처녀 귀신'은 귀신 위계의 최하위였다. 백문임은 "이러한 관념은 근대화 과정에서 사회 질서의 변화에 따라 변주되면서도 반복 재생산했고, 공포영화와 같은 하위문화는 그것이 노골적으로 펼쳐질 수 있는 장이 되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오세섭은 "공포영화의 특성은 우리 사회와 닮았다."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공포영화가 처음 정착하던 때는 국가 주도 개발독재가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치던 시기였고, 박기형 감독의 1998<여고괴담>으로 상징하는 1990년대 말 2차 공포영화 시대는 IMF 체제의 사회 변화를 반영했다는 것이 백문임의 평가였다.

 

2020년대 현재는 어떨까? 드라마 <대박부동산>에 등장하는 원귀들은 우리 시대 현실의 단면을 보여준다. 영끌, 빚투, 마이너스 통장까지 만들어 신축 오피스텔에 투기했던 청년 원귀들은 '대한민국 부동산 불패 신화'의 민낯을 보여준다. 만삭의 딸 내외와 같이 살려고 대출 껴서 집을 샀다가 사기당한 할머니는 집 없는 서민의 고통을 말해준다. '옥상빵'이라는 브랜드로 지역 상권을 살렸지만, 고스란히 건물주에게 빼앗긴 젊은 여성 원귀는 청년세대 불안을 대변한다. 아파트 단지 내 분양동, 임대동을 경계 짓는 철조망 때문에 죽은 아이는 어른의 돈 욕심에 희생당하는 미래 세대를 대변한다. 이전 한국 공포영화와 달리 드라마 <대박부동산>엔 남녀노소 원귀가 등장한다. 그러나 원귀 대부분 사회적 약자라는 점에서 가부장제에서 억압받는 여성을 원귀화 했던 앞선 시대와 연결돼 있다.

 

시민운동가 하승수는 <배를 돌려라 : 대한민국 대전환>(한티재 펴냄)에서 "대한민국 경제는 자본주의만으로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지대추구경제'가 현재 대한민국 경제를 설명할 수 있는 적합한 표현이다"라고 밝혔다. 지대추구경제는 지대불로소득이 넘쳐난다는 말이다.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뛰어넘는 이익, 특권·특혜를 통해 얻은 이익"이 바로 지대불로소득이다.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에서 50억 원 퇴직금 등은 대표적인 지대불로소득에 해당한다. 하승수는 "(지대불로소득을) 누리는 것은 기득권을 가진 소수 사람들이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기득권층은 평범한 시민들에게 경쟁과 효율을 강요한다. 정말 괴물 같은 시스템이다."라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지대불로소득의 원천이 바로 부동산이다. 드라마 <대박부동산>에서 등장한 원귀는 결국 이 지대불로소득이 만들어 낸 결과로 봐야 한다.

 

사실 '부동산 전문 퇴마사'라는 설정 자체가 우리 시대 또 다른 단면을 보게 한다. 원귀(寃鬼)는 사람에게 해코지하는 악령(惡靈)을 뜻하는데, 드라마에서 정작 사악한 악령은 몇 되지 않는다. 그냥 대부분 억울함 많은 원혼(寃魂)일 뿐이다. 그러나 이들은 부동산 가격을 떨어뜨리는 요소이기에 강제로라도 퇴마해야 하는 존재다. 부동산 가격을 떨어뜨리는 야생동물과 같은 자연도 이분법적 원귀화 시켜 퇴마 대상으로 만드는 세상이다. 전북대 교수 강준만은 지금의 현실을 "부동산 약탈국가"라고 표현한다. 약탈국가 체제에서 공정과 정의, 환경과 생명의 가치는 빛을 잃어간다. 억울함은 인귀만의 것이 아니다. 부동산 약탈국가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인간 언어를 쓸 수 없는 자연의 생명들이다. 정치를 전환해야 한다. 하승수가 지적하듯이 그러기 위해선 지대불로소득을 없앨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 미래 세대, 비인간 존재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결국 우리가 하나뿐인 지구에서 지탱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이철재 에코큐레이터 | 함께 사는 길 2022.05.10.

 

통합 대신 반지성주의로 비판세력 겨냥한 윤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제20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자유·인권·공정·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고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취임사는 새 정부 5년의 국정 목표와 원칙을 국민들에게 설명하는 수단이다. 윤 대통령은 당면한 위기와 난제를 해결하는 열쇳말로 자유의 확대를 강조했지만, 시대적 요구인 통합협치는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대화와 타협 대신 일방적 국정 운영을 예고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정치가 민주주의의 위기로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며 그 원인으로 반지성주의를 지목했다. 그는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직접 넣었다는 반지성주의라는 표현은 사실상 거대 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자신에게 비판적인 이들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또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돼야 한다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라고도 했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이견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법적 관점에서 사실관계를 다투며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것인가. 자신을 향한 비판과 견제는 억압이라고 바라보는 것도 어불성설이요, 국민들을 지성반지성으로 갈라치기 하고 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취임사엔 한국 사회의 현안 해결을 위한 구체적 실행 방안이 뚜렷이 보이지 않았다.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사에서 자신이 추진할 정책 방향을 명시했던 것에 견주면 매우 이례적이다. 대신 윤 대통령이 주요하게 내세운 것은 자유. 그는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은 바로 자유의 확대라고 했다. 그는 앞서 자신에게 영감을 준 책으로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를 여러차례 꼽은 바 있는데, 이 책에서 강조하는 자유는 시장의 경쟁과 개인의 책임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코로나 19 대확산 이후 각국이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 해소를 위해 국가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흐름이다. 취임사에 복지 확대나 분배 등이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읽힌다. 그가 지나친 양극화와 사회 갈등을 언급하며 도약과 빠른 성장을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도 개발독재 시대의 성장만능주의를 연상시킨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앞에는 국내외의 녹록지 않은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선 협치로 야당의 협조를 최대한 끌어내고, 통합의 정치를 통해 국민적 에너지를 모아내야 한다. 국정의 무한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사설 한겨레 2022.05.10.

 

대통령 취임사를 비판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는 한마디로 “19세기의 자본가가 쓴 허위와 모순투성이의 성명서. 이에 담긴 개념과 의식이 그 정도 수준이고, 미사여구로 포장했을 뿐이지 문제와 원인, 대안이 서로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 전체를 포괄하는 말로 서두를 연다.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겠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 400년의 경험을 통해 전 세계인이 알게 된 것은 견제 없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체제를 기반으로 하면 실제 국민이 아니라 권력자와 자본가가 주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기업의 단 한 가지 목적은 이윤을 늘리는 것이고 자본은 이를 위해 국가와 동맹을 맺고 온갖 불법과 폭력, 더 나아가 전쟁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발전한 미국과 유럽은 자유의 개념을 재정의하거나 이에 정의를 조화시키거나 국가와 시민사회가 시장을 견제하는 시스템을 만들거나 직접민주주의와 숙의민주주의로 보완하거나 사회민주주의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이번 취임사의 핵심어 중 핵심어는 자유. 35번 나올 뿐만 아니라 모든 대안으로 이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자유의 개념 또한 19세기적 개념에 머물고 있다. 이제 자유는 모든 억압과 구속,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뜻한 대로 행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는 소극적 자유(freedom from)일 뿐이다. 이제 자유는 타자를 빈곤, 억압,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때 느끼는 희열인 대자적 자유(freedom for), 노동을 통하여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여 진정한 자기실현을 하거나 수행과 정진을 통하여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적극적 자유(freedom to)를 포함한다. 소극적 자유만을 추구하는 한, 불평등, 공정과 정의의 상실, 구조적 폭력의 증대 등 자유로부터 빚어지는 폐단을 극복하기 어려우며 엘리트를 제외한 나머지의 자유는 오히려 축소된다.

 

윤 대통령은 팬데믹 위기, 기후변화, 에너지 위기, 분쟁의 평화적 해결의 후퇴, 양극화 심화, 민주주의의 위기 등을 지적하면서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반지성주의라고 말하고 있는데 인과적 오류이자 적반하장이다. 민주주의의 위기만으로 국한해도, 자본과 국가의 유착, 언론의 기업화, 시민사회와 공론장의 붕괴, 부족주의, 에스엔에스(SNS)의 확대가 원인이고 반지성주의는 이에 따른 현상일 뿐이다. 무엇보다 윤석열은 이를 획책한 장본인이다. 적반하장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성찰부터 해야 한다.

 

무지하면서도 독선적인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대통령의 주변에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자들이 전면과 후면 모두에 포진하고 있는 점이다. 아니나 다를까 기후위기와 양극화를 거론하면서도 도약과 빠른 성장을 이룩하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렵다며 성장 일변도의 정책을 취하겠다는 것을 표명하고 있다. 가장 큰 희생자인 노동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없다. 기후위기와 불평등의 근본 원인은 성장 일변도의 신자유주의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사령부인 국제통화기금(IMF)이 낙수효과는 허구이고 그 반대로 저소득층을 지원하여 경제를 활성화하는 분수효과가 더 효력이 있다며 이미 오래전부터 유턴을 하였다. 피케티나 스티글리츠와 같은 진보적 경제학자만이 아니라 보수주의자들도 불평등과 기후위기의 대안으로 지속가능한 발전과 조세혁명, 글로벌 자본세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기후위기와 불평등의 원인이 견제가 없는 자유주의 시장 경제와 성장정책인데 이를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모순과 오류의 극치다.

 

과학기술과 혁신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도 구세기적 발상이다. 중세의 주술의 정원에서 계몽의 시대로 나아갈 때는 과학기술이 대안이었다. 하지만 20세기부터 이미 과학기술의 비인간화, 도구화, 반지성화를 지적하였다. 기후위기와 불평등, 팬데믹의 한 원인도 이것이기에 인간과 생명의 얼굴을 한 과학기술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평화 또한 폭력과 전쟁이 없는 상태라는 소극적이고 낡은 평화관에 머물고 있다. 구조적 폭력을 없애는 것이 진정한 평화의 길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국내 문제든, 북한 문제든. 국제 문제든, 협력과 연대를 강조하고 있는데, 문제를 원인과 대책 없이 당위적으로 개인의 협력과 연대로 해결하자는 것은 히틀러가 즐겨 사용하던 어법이다. 시대에 부합하는 인식과 성찰을 바란다.

이도흠 |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겨레:2022-05-11

 

 

그래서 누구의 자유인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는 자유의 폭포 세례와도 같았다. 양과 질 모두 그랬다. 16분 남짓 동안 35번 입에 올렸고, 대한민국뿐 아니라 인류 전체를 구원할 독보적 가치로 추어올렸다.

 

그러나 그의 취임사는 일본 고유의 단시(短詩)하이쿠처럼 언어 밖으로 탈주하려는 텅 빈 기표 같기도 했다. 그는 국민 여러분세계 시민 여러분에게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정확하게 인식해 재발견해야 한다고 주문할 뿐, 왜 자유가 양극화와 사회 갈등을 치유하고 도약과 빠른 성장을 가능케 하는 과학·기술·혁신과 필연적 관계인지 따위에는 지극히 말을 삼갔다. 친절한 설명이 있어도 채워 넣기 어려운 그 광막한 행간은 결국 그가 5번 호명한 여러분몫으로 할당됐다.

 

하지만 각자 흩어져 따로 노는 저 파편적 개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돌연한 비약을 온전한 방정식으로 재구성하기란 애초 불가능해 보인다. 누구는 반지성주의로 퇴행하고 있는 우리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를 일갈했다고 읽고, 다른 누구는 자유 진영 중심의 국제 질서 재편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의지를 드러냈다고 읽는다. 팔할이 해몽이고, 나머지 이할은 인상평이다. 현실과 어긋나거나 까마득하게 멀다 해도 하등 이상한 노릇이 아니다.

 

가령,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스테펀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석좌교수가 지난 1월 발표한 논문(‘한국은 민주주의 퇴행에 취약한가?’)을 보면, 지표로 나타나는 우리의 정치권리나 시민자유 등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조금 내려앉았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세계적 수준으로 회복했다. 물론 1인당 국민총소득(GNI) 같은 경제지표가 그렇듯, 정치지표 또한 삶의 실상과는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비관적 의지를 한껏 현실에 투사하다 별안간 자유를 만병통치약처럼 내놓은 건 뜬금없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윤 대통령이 몇번이고 세계 시민을 호명한 까닭은 자신이 제시한 솔루션이 국제사회에도 소구되기를 바라서였을 터이다. 그러나 이 또한 포스트 신자유주의 시대로 진입한 오늘의 각국 또는 국제 정세 흐름과 확연히 동떨어져 있다. 30년 넘게 시대를 풍미해온 신자유주의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신호탄으로 쇠락의 길로 들어선 뒤, 그 자리를 대신할 좌우의 헤게모니 싸움은 크게 포퓰리즘과 보호적 신국가주의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다.(파올로 제르바우도, <거대한 반격>)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된 영국의 브렉시트를 비롯한 우파적 양상과 미국의 버니 샌더스와 영국의 제러미 코빈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사회주의의 부상 모두 포퓰리즘적인 경향을 강하게 띠고 있다. 또한 좌파와 우파는 사회를 보호하느냐, 아니면 유산자를 보호하느냐를 두고 대립하지만, 둘 다 국가의 개입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보호적 신국가주의의 특성을 공유한다. 신자유주의는 양쪽 모두에 적이다.

 

물론 신자유주의가 무대에서 퇴장한 것은 아니다. 폭력적 기세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러나 황혼기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소싯적에 밀턴 프리드먼 같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의 저서를 읽은 것을 긍지로 내세우는 윤 대통령의 취임사에는 자본의 자유가 성장으로 이어져 만인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교리가 어른거린다. 그러나 여성가족부 폐지에서 보듯, 대선 캠페인에서 보여준 그의 포퓰리즘은 다른 후보들을 압도했다. 이런 이율배반이 그의 취임사를 근엄한 농담으로 읽히게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김수영, ‘푸른 하늘을’). ‘피의 냄새는 자유가 절로 주어지는 시혜가 아님을 강하게 암시한다. 장자크 루소의 자유에 대한 전제조건인 일반의지는 무한한 정보력과 탁월한 판단이성을 가진 것으로 간주한 남성 부르주아지를 주체로 한정했다. 자유주의 안에는 필연적인 비자유가 존재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취임사는 자유의 숭고한 파토스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일관된 언행으로 볼 때, 누군가는 피를 흘리지 않으면 비자유의 나락으로 떨어질 거라는 두려움은 부질없는 망상이 아니다. 우리는 취임사를 해석하지 말고, 물어야 한다. 그 자유는 누구의 자유인가.

안영춘 | 논설위원 한겨레 2022.05.12.

 

 

식량안보, 한국은 안전한가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 3월 세계 곡물 가격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008년 이후 가장 큰 곡물 가격의 상승폭으로 인해 식량문제가 세계적인 화두로 떠올랐으며 식량자급률이 낮은 국내의 생산과 소비 전반에서도 물가 불안을 심화시켰다.

 

현재 세계적인 3대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와 북미,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중국과 미국 등 여러 선진국도 전쟁과 가뭄, 코로나 등으로 인해 흉작의 공포에 떨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국토의 70%가 농경지로 사용될 만큼 농작물을 많이 생산하고 수출하는 국가 중 하나이다. 지난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적으로 곡물 생산 및 공급체계에 큰 영향을 끼쳤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수출금지 및 제한조치 시행은 앞으로 곡물 가격의 상승세를 지속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식량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이 식량 수급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식량위기는 역사적으로 세계적인 재난 및 재해로 인해 식량 가격의 급등으로 초래됐다. 세계식량정상회의(World Food Summit)는 식량위기를 '필요로 하는 안전하고 영양 있는 식량 공급이 부족하거나 총량적으로는 충분하더라도 접근이 곤란한 상황'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같은 식량위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로 나뉜다. 인구성장과 소득증가, 기후변화 등의 여러 요인으로 인해 식량 부족이 예상되며 가격폭등으로 식량위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비관론', 식량위기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 농업투자와 신품종 및 신기술의 접목을 통하여 식량위기 극복이 가능하다는 '낙관론'이다. 두 시선은 공급과 수요, 분배 등의 요인에서 각자 다른 견해를 펼치지만, 어느 때보다 식량안보가 중요해진 지금은 이 상황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모두가 당장 발생한 위기에 철저히 대응하는 협동의 자세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식량문제를 다수확품종의 개발 및 보급, '녹색혁명'을 통해 해결했다. 하지만, 지금은 화학비료와 농약, 사막화 등으로 오염된 환경적인 요소들이 식량 생산 및 공급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 변화된 환경에서 새로운 품종의 개발이 가능한지에 대한 여부도 확실하지 않다.

 

그동안 우리나라도 식량위기에 대한 대책으로 국내 생산 확대와 비축제도 운영, 해외농업 개발 등을 시행해오긴 했지만, 그 성과가 기대만큼 거두어지지 못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45.8%, 곡물자급률은 21%까지 하락했으며, 국가별 식량안보 수준을 비교 및 평가하는 세계식량안보지수(GFSI)32위로 떨어져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우리가 이번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미 수립 및 시행되고 있는 대책의 검토와 운영 및 부족한 내용의 수정과 보완 작업이 필요하다. 특히 세계적 식량위기로 충분한 식량자원 확보가 어려울 때를 대비한 국가 차원의 '시나리오 플래닝'(Scenario planning)이 절실하다.

 

다행히 이번 새 정부의 첫 농정 수장인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은 "농정의 최우선 과제로 식량주권을 확보하고 국민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겠다"라고 밝히며 국내 식량자급률 향상과 식량안보 강화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식량안보에 빨간불이 켜진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처해있는 식량문제를 바르게 인식하고 앞으로의 식량안보 정책에 대한 방향을 바르게 설정할 때이다.

민승규 국립한경대 석좌교수 한국 2022.05.13.

 

 

소비되는 국민과 검찰국가의 그림자

드디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였다. 대통령이 직접 가다듬었다는 취임사는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는 시대적 사명을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주인인 국민은 모두 자유 시민이 되어야 하고, 자유 시민과 함께 반지성주의로 오염된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책임의식을 표출하였다. 제시된 시대적 사명은 국민주권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공화국에서 당연한 원칙의 확인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맥락을 곱씹어보면 강조점이 주어지는 가닥들이 전혀 없지는 않다.

 

무엇보다 자유시민으로 규정한 국민을 지속적으로 호명하고 있음을 주목할 수 있다. 87년 민주화 이후 국민의 민주시민성이 강조되어 왔던 문화를 고려하면 냉전시대의 구호를 연상시키는 자유시민으로 국민을 호명하는 취지를 다시 한번 되씹어보게 한다.

 

원래 시민은 민주와 자유의 가치를 그 자체로 함축하고 있는 개념이다. 시민은 스스로의 가치판단에 따라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공동체의 공공복리를 도모하는 자율적 덕성을 갖추는 것을 본질로 한다. 따라서 민주 시민과 자유 시민은 둘 다 시민이 갖추어야 할 덕성을 특별히 강조하기 위해 민주와 자유를 수식어로 사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자유민주주의에서 민주 시민과 자유 시민은 그 헌법적 함의가 본질적으로 다를 수 없고 서로 호환될 수도 있다. 민주라는 수식적 가치는 개인의 자유로운 양심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고, 자유라는 수식적 가치 또한 동료시민들 사이의 평등을 전제로 한 공동체의 다양한 생활영역에서의 자기결정을 본질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자유 시민으로 국민을 호명하였을까? 그 실마리는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해야 한다는 선언이나 다시도약하는 대한민국이라는 비전에서 공통적으로 이전 정부의 성과를 계승보다는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는 인식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물러나는 정부는 국민을 진정한 주인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다시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에둘러 강조하기 위해 자유 시민으로 국민을 호명한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이전 정부의 무엇이 국민을 업신여긴 것일까? 도대체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고 가는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는 어디에서 발원하는가? 취임사와 국정비전을 구체화한 국정과제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뚜렷한 실마리 한 가지를 던져준다. 반지성주의로 오염된 민주주의가 자유 시민의 주인됨을 부정하고 있으므로 그 위기를 극복할 책임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자유 시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새 대통령의 의지는 정치적 반대자들을 반지성주의에 물든, 자유 시민의 적이자 극복의 대상으로 단정하는 시각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적 사명의 중심에 검찰이 있는 것으로 보면 심층심리의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난다.

 

새 대통령의 자유 시민론은 선거과정에서 상대 후보를 범죄자로 단정하는 언사로, 새 정부의 인사과정에서 검찰 출신을 전방위적으로 배치하는 용인술로, 형사사법 개혁으로 포장된 국정과제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검찰 중심 통치체제의 구축으로 귀결된다. 특히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검찰 독립 예산 편성, 검경 수사권 재조정, 공수처 정상화로 세분화된 국정과제는 자유 시민인 국민의 보호를 명분으로 속성상 국민을 범죄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법집행기관인 검찰 중심의 지배구조 구축에 집중되고 있다.

 

수사지휘권은 검찰의 정치화를 초래하는 부작용도 있지만 법집행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위해 필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그 행사의 투명성과 헌법합치성이 관건이지 폐지가 대안일 수 없다. 법무부의 한 외청에 불과한 검찰의 예산편성과 배정을 대검에 이관하는 발상도 법률상 행정기관의 위상을 침소봉대하고 국가재정법 체제의 기본을 흔드는 발상이다. 국회와 대법원 등 헌법상 독립기관도 예산과 관련하여 정부의 통제를 받게 함으로써 견제와 균형의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원칙인데 검찰이 헌법상 독립기관에 준하는 지위를 인정받거나 국회의 직접 통제만을 받는다는 발상이야말로 초헌법적 검찰특권주의의 극치다. 검찰권의 분권화는 효율성보다는 인권보호를 우선하는 민주공화제의 핵심적 과제인데 그 취지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수사권 재조정이나 공수처 무력화는 오랜 민주화의 성취를 퇴행시키는 것이다.

 

축제 분위기여야 할 새 대통령의 취임이 자유 시민이라는 명목으로 국민을 소비하고 국민 중심 공화국을 검찰국가로 전락시키지 않도록 진정한 주인들이 긴장해야 할 시점이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경향 : 2022.05.13.

 

윤석열과 한동훈의 고등교육 모욕은 닮은 꼴이다

어떤 종류의 모욕은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끝없이 반복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였던 지난해, 그의 배우자가 허위 경력으로 대학 겸임교수로 일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윤 대통령은 겸임교수라는 건 시간강사, “시간강사는 (정식 교수를 뽑을 때처럼) 자료를 보고 뽑는 게 아니라고 해명했다. “어디 석사과정, 박사과정에 있다 그러면 그냥 얘기(시간강사 지원)를 하는 것이라는 그의 말에는, 시간강사는 전공을 엄격히 따지지 않고 알음알음 뽑는 게 관행이라는 인식이 들어 있었다.

 

강사들은 대학 시간강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비판 성명을 냈다. 이른바 강사법이 시행되기 이전에도, “실질적으로 5년 이상의 연구 경력이 있어야 하고 그에 상응하는 연구 업적도 있어야하는 등 연 수입이 2천만원도 넘기지 못하고 1년짜리 비정규직에 불과한 그 하찮은(?) 시간강사라도 해볼라치면고등교육 체계가 요구하는 어떤 기준을 만족시켰어야 했다는 비판이었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최근 미성년 자녀가 여러 편의 논문을 작성해 국외 저널들에 게재하는 등 부적절한 스펙 쌓기를 해왔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이에 대한 그의 태도에는 지난해 윤 대통령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자녀가 쓴 글들을 ·박사 이상만이 작성할 수 있는 것으로 연상되는 논문이라 칭하는 것은 전형적인 왜곡·과장이며, 그것들이 게재된 곳은 간단한 투고 절차만 거치면 바로 게재가 완료되는 오픈액세스 저널’”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논란만 되지 않았다면, 한 후보자 자녀가 쓴 글들은 미국 대학 입시건 어디에서건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으로 포장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논문이 아닌 에세이, 보고서, 리뷰 페이퍼 등으로 도로 격하하기 위해, 돈만 내면 글을 실어주는 가짜·부실 저널을 그 대척점에 있는 오픈액세스저널로 둔갑시키는 무리수를 둔 셈이다. 오픈액세스는 비싼 구독료 없이도 연구 성과를 쉽고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운동인데, 구독료보다 게재료에 주로 기댄다는 특징을 악용한 가짜·부실 학회나 학술지는 이 운동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꼽힌다.

 

고위 공직 후보자들은 검증 과정에서 논문 표절, 자녀 입시 같은 대학과 고등교육 영역에서 곧잘 미끄러진다. 배경에는 대학과 고등교육이 엘리트 세습을 위한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하는, ‘모욕에 가까운 대중 감정이 있다. ‘누군 부모 잘 만나서 저런 봉사활동도 하고 논문 저자도 되는구나!’ 그러나 단지 기회의 불평등·불공정을 탓하는 인식만으로는 포착해낼 수 없는 종류의 모욕도 있다. ‘‘명문대학생이 왜 지방대표창이 필요하냐’, ‘시간강사는 그냥 뽑는다’, ‘간단한 투고 절차만 거치면 게재 완료’, ‘논문 아닌 에세이 수준의 글따위의 말들에서 끊임없이 확인되는, 고등교육 본연의 가치에 대한 모욕이다. 학문이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무언가의 수단으로서만 바라보는 태도가 이런 모욕을 주는 주범이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지위재(positioning goods)로만 취급된다. ‘좋은 대학이 목표지만 좋은 교육에는 관심이 없다. 서열화된 대학 간판은 믿어도 고등교육이란 내용물은 믿지 않는다. 정치세력에 따라 공수만 바꿔가며 서로 불평등·불공정하다고 질타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는 결코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인 묻지마정시 확대, ‘에이아이(AI) 교육등 윤석열 정부의 공허한 교육정책 등이 불평등·불공정 타령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교육을 지위재로 취급하지 않는 것, 그러니까 대학이란 간판이 아니라 고등교육이란 내용물을 믿도록 만드는 것이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교육은 비로소 누구에게나 공적으로 제공되는 공공재’(public goods)일 뿐 아니라, 전사회적으로 함께 만들어 나가는 공동재’(common goods)가 될 수 있다.

최원형 | 책지성 팀장 한겨레 2022.05.15

 

 

권한 없어 남용 없다?현직 판사의 임성근 무죄대법원 비판

공무원이 법령에 의해 부여된 일을 하는 데는 일정한 권한이 필요한바, 우리는 그것을 직권이라고 부른다. 공무원이 직권을 행사하는 데는 일정한 요건이 필요하다. 목적이 정당해야 하고, 수단과 방법이 적법해야 하며, 절차도 법령에 따라야 한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타인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그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면 5년 이하 징역 처벌을 받게 된다. 이른바 직권남용죄다.

 

그런데 실제 직권남용죄를 묻는 일은 쉽지 않다. 직권이 아니라 상급자라는 지위에 기대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그 영향력의 원천이 직권인지, 지위인지 판별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만약 피의자를 소환해 신문하던 경찰이 피의자를 고문하거나 진술을 강요한 경우, 경찰에게 주어지지 않은 고문권이나 진술강요권을 남용한 게 아니라 경찰에게 주어진 권한인 피의자신문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누구나 동의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검찰청 수위가 피의자를 불러서 조사했을 경우는 직권남용죄 적용이 불가능하다. 법은 처음부터 그에게 그런 권한을 부여하지도, 그 권한이 제대로 사용되기를 기대한 바도 없기 때문이다.

 

최근 대법원은 판사들의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해 직권을 남용한 혐의로 기소된 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에게 애당초 그럴 직권이 없어 직권남용죄를 물을 수 없다며 무죄 판결했다. 이 판단은 그 기본방향에서는 지극히 옳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었다. 시청 인사국장이 건축과 하급자를 불러서 당신, 승진 안 할 거야? 내가 부탁한 대로 안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라며 자신의 친인척에게 건축허가를 내주도록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는 논리적으로 직권남용죄를 물을 수 없다. 인사평가에서 부당하게 낮은 평점을 줬다면 몰라도, 건축허가는 인사국장 업무가 아니어서 허가를 지시할 권한(직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직권의 남용과 지위의 남용을 혼동해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042899 판결).

 

반면에 수석부장 사건은 어떤가. 수석부장은 판사들에게 법정에서 특정한 발언을 하고, 판결 선고 때 특정한 내용을 고지하고, 판결문을 수정하라고 요구·지시했다. 검찰은 직권을 남용하여 타인(판사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했다며 기소했고, 1심과 2심은 재판개입은 위헌적이고 위법한 행위지만 수석부장에게는 그럴 직권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이 논리대로 무죄를 확정했다.

 

하지만 법원장을 보좌하는 수석부장은 사건배당 대법원 등 상급기관 보고 법관 근무평정 법관 사무분담 등과 관련해 판사들과 의견을 교환하거나, 지시하거나, 협조를 구하거나, 필요한 정보 제공을 요구할 권한(직권)이 있다. 따라서 수석부장이 특정 사건 담당 판사들에게 부당한 지시나 요구를 한 것은, 사법행정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부여된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그 목적과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봐야 한다.

 

대법원은 무죄 근거로 다음과 같은 점을 든다. ‘직권남용죄를 묻기 위해서는 구체화된 권리의 현실적인 행사가 방해돼야 하는데, 판사들은 재판부 내부 논의와 합의를 거치거나 동료 판사들 의견을 구한 다음 자신의 판단과 책임 아래 재판권을 행사했다. 판사들은 수석부장의 요청을 지시가 아닌 권유나 권고로 받아들였다. 판사들의 행위는 법령이나 직무수행상 준수해야 할 원칙이나 기준 등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는 수긍하기 어려운 논리다. 당초 일처리를 잘못한 판사들이 반성적 차원에서 수석부장의 지시를 수용한 게 아니라, 수석부장의 지시라 마지못해 따른 것으로 보는 게 옳기 때문이다.

 

누구나 부당하게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누구나, 어떤 사건이나 공평하게 처리돼야 하는 것 역시 법치국가와 민주국가의 기본원리다. 대법원은 앞서 언급한 인사국장 사례는 물론, 공무원이 자신의 본래 직무와 관련해 권한을 행사한 경우 예외없이 유죄를 인정해왔다(대법원 20044044 판결, 20111739 판결). 일본 최고재판소 역시 형무소장에게 수형인 자료 열람·제공을 요구해 제공받은 판사의 직권남용죄를 인정했다(일본 최고재판소 쇼와55461 판결). 수석부장의 행위가 본질적인 재판 왜곡으로 이어지지 않은 만큼 관대한 처벌이 마땅하지만, 직권남용죄에 쉽게 무죄 판단이 내려진 점은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양경승 |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한겨레 2022-05-16

 

누가 누가 못하나

잘하기 경쟁을 통해 누가 국민에게 더 충성하는지를 겨뤄야 합니다.”

3·9 대선 패배 후 두 달 만에 전격 등판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지난 11일 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으면서 한 말이다. 이 상임고문은 지난 10일 대선 경쟁자였던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을 맞아서도 야당으로서 협력할 것은 확실히 협력하고, 견제할 것은 제대로 견제하며 잘하기 경쟁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대선 이후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금까지 여야 정치권은 못하기 경쟁을 반복하고 있다. 자신들의 말을 스스로 배반하고, 오기와 독선으로 밀어붙이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충수를 두고 있다. ‘잘하기 경쟁은 언감생심. ‘역대급 비호감 선거로 남은 지난 대선을 반면교사로 삼을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윤석열 대통령부터 그렇다. 그는 당선인 시절 최우선 과제로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들고 나왔다. 광화문에서 용산으로 이전 장소를 바꾸더니 여론 수렴 없이 밀어붙였다. 새 정부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내각·대통령실 인선은 우려스럽다. 검찰 최측근인 한동훈을 법무부 장관에 지명하더니 그의 자녀 스펙쌓기 등 부적격 논란에도 임명을 강행할 태세다. 대통령실 주요 비서관급 이상 보직에 이어 법제처장·보훈처장에 검찰 출신 측근들을 줄줄이 기용했다. 국가정보원 인사·예산을 담당하는 기조실장에도 검찰 출신 측근이 내정됐다고 하니, “검찰공화국 완성이라는 야권 비판에는 뭐라 할 건지 궁금하다.

 

아빠 찬스논란의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풀브라이트 장학금 논란 등으로 낙마한 김인철 전 교육부 장관 후보자, 위안부·동성애 망언 논란에 사퇴한 김성회 다문화종교비서관, 성비위 의혹에 휩싸인 윤재순 총무비서관 등 검증을 하긴 했는지 의심 가는 인물들도 수두룩하다. 검찰 흑역사로 기록된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수사·기소 검사였던 이시원을 공직기강비서관에 발탁한 데선 말문이 막힌다. ‘내로남불은 이럴 때 쓰라고 하는 말인가. 시민들은 윤 대통령의 공정상식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윤 대통령에게 기대했던 통합과 협치의 리더십도 보기 힘들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지방을 돌면서 가는 곳마다 국민의힘 단체장 후보자들과 동행해 선거개입 의혹을 샀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을 어루만지며 같이 갑시다라고 할 시기에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면서 약을 올렸다.”(문희상 전 국회의장) 취임사에서 자유란 단어를 35번이나 쓰면서 통합은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그 취임사에서 자유는 결코 승자독식이 아니다라고 했다. 역대 최소인 0.73%포인트 차 대선 승리는 민심의 예비 경고였지만, 윤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다.

 

민주당도 이에 못지않다. 지난 대선은 민주당 정권의 오만과 무능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러나 반성과 쇄신보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희한한 논리를 내세웠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꺼내들더니 꼼수 탈당과 회기 쪼개기 등 수적 우위를 앞세운 편법을 동원해 입법을 밀어붙였다. 대선 패배에 책임을 진다던 전 당대표는 연고가 없는 서울시장에 출마했고, 이 과정에서 계파갈등만 노출했다. 이재명 상임고문도 대선 패배를 숙고하는 시간을 두 달 만에 끝내고 아무런 인연이 없는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이 와중에 민주당은 86그룹(1980년대 학번·1960년대생) 3선인 박완주 의원의 성비위와 2차 가해 사건에 휩싸였다. 이번 사안은 못하기 경쟁에 안주해온 민주당, 더 나아가 기성 정치권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은 그간 성비위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일단 비부터 피하고 보자는 식의 대응을 해왔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이번 사건은 과연 민주당에 자정 능력이 있는지를 묻고 있다. 또 중년 남성 중심의 정치 문화가 지속 가능한 것인지 묻고 있다. 그런데도 여야는 박 의원 사건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윤재순 총무비서관의 성비위 의혹을 놓고 피장파장론으로 맞붙고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여야는 모두 정치교체를 외쳤다. 다시 이재명 상임고문의 말이다. “‘국민 삶과 동떨어진 구태정치, 정쟁정치를 중단하라’ ‘기득권의 잔치, 여의도 정치를 혁신하라등 국민의 명령대로 하겠다.”(지난 126) 정치권에 국민의 명령을 따르는 자가 과연 있는가. 김진우 정치부장 경향 : 2022.05.16

 

 

자유는 없는 자만이 느낀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일정한 경제적·교육적·문화적 수준이 없이는 자유가 불가능하니, 자유가 유린된 이들을 돕기 위해 연대해야 함을 강조했다. 선거운동 당시 주 120시간 노동이라는 초현실적인 말을 뱉은 거에 비하면 약간은 균형을 잡으려고 한 것 같다. 다른 논란이었던 최저임금보다 더 최저로 임금을 받고도 일할 자유도, 취임사대로라면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찰의 결과물이라기보단, 중학생들이 자유라는 주제로 작문을 할 때 툭툭 던지는 추임새 수준이었다.

 

개인의 자유가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자유가 없는 이들을 도와주자는 얼핏 아름다워 보이는 말은 그게 좋은 사회 아니냐는 의식구조로 이어지지만 연대를 시민의 의무가 아니라 약자를 향한 시혜적 시선 안에서 해석하게끔 하는 큰 문제를 지닌다. 그래서 너희들이 누리는 자유를 내게도 달라는 장애인의 지하철 시위는 쉽사리 내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비문명적 시위로 포장된다. 그 자유, 그러니까 지하철을 이용하여 제때 이동하는 일상이 출근시간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어마어마한 불평등을 전제로 만들어졌음은 한순간에 휘발된다. 보편적 자유를 위해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한 괴상한 사회는 그렇게 흘러간다.

 

자유는 없는 자만이 느낀다. 비장애인 누구도 나는 지하철을 탈 자유를 누렸어라면서 감탄하지 않는다. 주어진 것을 당연하게 누릴 뿐이다. 태어난 성별대로 정체성 고민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면서 용변을 볼 자유를 누려서 행복하다고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소수자들은 고작 화장실을 이용하면서도 다른 이의 눈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자신을 발견한다.

 

집회와 시위를 할 자유를 헌법이 보장하는 건 그게 자유가 유린된 이들을 발견하는 사회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도 너처럼 살고 싶다는 자유를 향한 원초적인 몸부림에 대해 자유를 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라면 늘 환영해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런가?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를 실천하는 이들은 시끄럽다,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 떼만 쓰면 다 되는 줄 안다 등등의 수식어를 덕지덕지 붙이고 살아가야 한다. 밑도 끝도 없이 자유만 뱉으며 실제 그 자유의 결핍을 상징하는 불평등에 대해서는 둔감한 이들이 어디 한둘이었던가.

 

자유라는 말이 빈번하면, 오용된다. 노키즈존을 운영할 자유, 난민을 배제할 자유, 특수학교를 반대할 자유, 임대아파트 주민을 무시할 자유, 부동산 투기할 자유, 제재 없이 기업 활동을 할 자유, 여성은 돌봄 노동에 적합하다고 여길 자유 등등은 자유가 오용된 대표적인 반지성주의 사례다.

 

최근 조현철 배우의 수상소감이 화제다. 그는 투병 중인 아버지를 위로하면서 죽음의 사회적 가치를 불평등하고 편견이 얼룩진 세상의 피해자인 박길래, 변희수, 김용균, 이경택 등의 이름으로 조명했다. 자유는 이들의 자유롭지 못했음을 설명할 때 등장해야 한다. 어쩌다가 저 사람의 자유가 유린되었는지를 반성하는 것이야말로 자유라는 가치의 재발견 아니겠는가. 지금 한 노동자가 50여일을 단식하고 있다. 요구사항 중 하나는 놀랍게도 점심시간 1시간 보장이다. 이걸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게 자유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오찬호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저자 경향 : 2022.05.16.

 

 

공정과 상식, 그리고 부동산

부동산은 정치다.”

윤석열 대통령이 아직 어록을 많이 남기지는 않았지만, 이 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지난 2년간 많이 봤다. 정부가 어렵게 만든 보유세 인상 개편안이 시행도 못해본 채 사라지는 것도 봤고, 한때는 보유세를 올려야 한다던 모 정당이 앞장서서 종부세를 깎고 업적인 양 우쭐대는 것도 봤다. 윤 대통령이 공약으로 제시한 ‘1기 신도시 특별법‘GTX 노선 확대는 대선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 정책의 일관성이 어찌되든 결과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표가 되면 삼키고 안 되면 뱉는다. 부동산이 정치인 이유는 차고 넘친다.

 

부동산을 정치로 규정했으니 윤 대통령의 상징인 공정과 상식이 부동산 시장에도 자리 잡길 바란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새로 취임도 했으니 딱 한 가지 짚고 넘어갈까 한다. 원 장관은 스스로를 가리켜 의외의 인물이 국토부 장관이 됐다고 말하지만 지나친 겸양이다. 부동산을 정치로 생각하는 대통령이 정치인을 주무부처 수장에 앉힌 건 너무나 자연스럽다. 정치인 출신 국토부 장관이 처음도 아니다.

 

윤 대통령은 당선된 이후부터는 부동산 문제에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활동을 통해 생각을 가늠할 수밖에 없는데, 인수위가 부동산에 제시한 화두는 시장의 정상화였다. 정부가 너무 많은 규제를 해 시장이 망가지고 가격이 폭등했으니 이를 되돌려놓겠다는 뜻이다.

 

취재로 부동산을 처음 담당하면 여러 가지가 낯설지만 몇년이 지나도 적응되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주택공시가격이다. 주택에 대해 정부가 세금을 매기려고 가격을 정해주는 것인데, 볼 때마다 반시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열람안에 따르면 공시가격은 시세의 평균 71.5%(현실화율) 수준이다. 예컨대 시장에서 10억원에 팔리는 아파트에 정부는 71500만원의 가격만 책정한 것이다. 인수위의 시각에서 보면 이보다도 더한 비정상적인 규제는 없다. 물건값이 현실과 다른데 어찌 시장이 정상화될 수 있단 말인가.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상식에도 맞지 않다.

 

공정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현행 공시가격제도는 비싼 집을 가진 사람일수록 이득을 보는 구조다. 윤 대통령이 거주하게 될 한남동의 경우 수십억원에 달하는 고급 단독주택이 즐비한데, 올해 표준단독주택의 현실화율은 57.9%대로 공동주택보다 더 낮다. 비싼 집을 가졌으니 세금을 더 내라는 것이 아니다. 현재 가치에 맞게 세금을 내라는 얘기다. 그게 공정 아닌가.

 

염려되는 것은 인수위가 작성한 국정과제에 이런 문제는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전임 문재인 정부가 향후 20~30년간 단계적으로 현실화율을 최대 97~98%까지 올리려 한 계획을 백지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과연 공정과 상식에 맞는지 윤 대통령도 한번 돌아보길 바란다. 공시가격에 대해 원 장관이 선입견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도 우려스럽다. 그는 지난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공시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하자 공개적으로 반발하며 공시가격 재산정을 요구했다. 새 정부의 공정과 상식을 실천해야 할 국토부 장관으로서 과연 현행 공시가격제도가 정말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송진식 경제부 차장 경향 : 2022.05.17.

 

 

묻는다, 집이란 무엇인가

가끔 꿈에 집이 나온다. 옆에는 초등학교가 있고 뒤에는 논이 펼쳐진 층 낮은 아파트. 15년을 조금 안 되게 살았다. 떠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꿈만 꿨다 하면 그 집이다. 그 후로 3년에 한 번꼴로 이사를 다녔다. 다니던 학교가 멀어서, 가족이 서울에 살아야 해서, 그리고 계약이 끝나서. 지금 가족과 함께 사는 집도 1년 뒤면 계약이 끝난다. 점점 밀려나는 기분이다. 1년 뒤면 또다른 주소지를 갖게 되겠지.

 

이사 기한이 가까워질수록 독립에 대한 욕구도 커진다. 사실 턱도 없다. 내가 가진 돈의 4배는 있어야 서울에 5평짜리 방 하나를 빌릴 수 있다. 온갖 부동산 애플리케이션, 인터넷 카페를 다 봐도 결과는 같다. 그래서 나에게 집이란 뜬구름이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고개를 들면 다닥다닥 붙은 주택용 건물만 눈에 들어차는데, 내 것 하나 없다. 여력을 총동원해도 5평짜리 방 하나가 지금 내가 겨우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과연 집은 무엇일까. ‘이라는 키워드로 최근 마주한 몇 가지 장면을 공유한다.

1. 윤석열 정부 출범 둘째 날.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집회가 열렸다. 집회에 참여한 동자동 주민들은 흔들림 없이 공공개발이라는 문구가 적힌 부채를 들었다. 동자동은 국내의 최대 쪽방 밀집지역이다. 올라가기 힘든 좁고 가파른 계단, 과연 보금자리가 될 수 있나 싶은 곳에 자리한 쪽방들. 그러나 그곳에도 사람이 산다. 쪽방 주민의 거주 환경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주민이 정착해 살게 하는 공공주택 개발 사업의 흔들림 없는 추진을 외치기 위한 집회였다.

 

2. 집회가 끝나고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한 경제지에서 집회를 다뤘다. 집회의 주된 요구였던 공공개발 사업은 언급도 하지 않았다. 대신 집회 중간에 일어난 불협화음을 담았다. 주변 자영업자들은 상업권 침해라며 소리를 높였고, 경찰이 이를 저지하며 잠깐의 소란이 있었다. 이를 보도한 것이다. 기사 끝머리에서는 부동산 중개인의 코멘트도 잊지 않았다. 대통령의 집무실 이전이 삼각지 일대의 개발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3. 윤석열 정부 첫날. 다주택자에게 부과하던 양도세 중과가 없어졌다. 다주택자의 투기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두던 중과 조치가 없어지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때부터, 나아가 인수위 시절에도 다주택자의 세 부담을 낮출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다주택자의 세 부담과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를 이유로 들었지만, 양도세 중과 유예 조치가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킬 것인지는 누구도 확언하지 못한다. 새 정부가 가장 먼저 감응한 불안의 주체는 바로 집값이 너무 올라 세 부담이 늘어난 다주택 보유자이다.

 

4. 지난 4. 서울 창신동의 한 모자가 국가의 지원도 받지 못하고 살다가 집 안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모자가 사회복지제도 밖에 있던 이유는 다름 아닌 80년 된 낡은 집이었다. 망가진 싱크대와 아늑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낡은 벽과 바닥. 그런데도 재개발로 묶여 17000만원의 공시가격이 매겨졌다.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만한 가난의 조건에서 탈락한 것이다. 낡아서 무너져가는 그 집 때문에.

 

묻는다. 당신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누구의 불안에 공감하는가.

조희원 참여연대 활동가 경향 : 2022.05.17.

 

사설] 표 얻자고 다주택 종부세까지 줄여주겠다는 민주당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1주택자 종합부동산세 과세 기준선을 공시가 9억원에서 11억원으로 올린 더불어민주당이 6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주택자의 종부세 기준선도 합산 6억원에서 11억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어차피 집값 급등으로 비난을 받는 판이니, 당의 정강정책에 해당되는 것이라도 눈앞의 선거에 도움이 안 된다면 내다버리자는 태도로 읽힌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16일 의원총회를 마친 뒤 브리핑에서 다주택자도 11억원 이상 구간부터 (종부세가) 부과될 수 있도록 해 1주택자와 일치시키는 정책을 보고했다가급적 이번주 내로 입법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주택자 종부세 기준 상향은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의 공약인데, 원내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국회에서 입법으로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다.

 

송 후보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중저가 2주택 소유자가 고가 1주택자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하는 부작용이 초래되고 있다고 법 개정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다주택자에게 더 큰 부담을 지우는 데는 이유가 있다. 투자·투기 목적의 추가 주택 보유를 억제하자는 뜻이다. 민주당은 주도적으로 이런 정책을 추진해오고선 벌써 까맣게 잊은 것 같다.

 

김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21일 전국동시지방선거 정강정책 방송연설에서 민주당은 지난 5년 부동산 정책을 반면교사로 삼아 지킬 것은 지키되 바꿀 것은 과감히 바꾸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무주택 서민과 청년에게는 주거안정과 내집 마련의 기회를 드리고 1주택자에게는 부담 없이 실거주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한편, 다주택 투기 수요는 적절한 조세정책을 통해 불로소득을 억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법 개정 추진은 그런 약속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표를 위해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 서울지역 다주택자 보유자에게 납작 엎드린 것으로 비칠 뿐이다.

 

민주당의 이런 변신은 불과 얼마 전까지 보유세 강화를 주창한 정당이 맞나 싶을 정도다. 민주당이 지난 대선 때 서울에서 고전했고,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고가·다주택 보유자들의 지지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부동산 보유세를 점진적으로 올리고, 특히 다주택 보유 과세를 강화해 주택을 투기 대상으로 삼기 어렵게 하자는 것은 민주당 부동산 정책의 핵심이다. 정책정당이라면 그걸 무너뜨려선 안 된다. 많은 무주택자들의 공감을 얻기는커녕 비난을 살 것이다. 한겨레 : 2022.05.17.

 

부끄러움이 만든 역사

지난 토요일 이지문 중위 군 부재자 투표 부정 고발 30기념행사에 갈 생각을 한 건, 얼마 전 봤던 한 프로그램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에스비에스>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1990년 윤석양 이병의 보안사 민간인 사찰 폭로를 다뤘다. 방송 인터뷰를 사양하며 그는 그날의 양심선언은 세상을 바꾸는 거창한 일이 아니라, 벼랑 끝에 선 청년이 살기 위해 했던 선택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탈영과 폭로 전, 보안사 강요에 의한 프락치활동으로 학생운동 시절 동지들을 구속에 이르게 했던 과거의 괴로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듯해 먹먹했다. 90년대 초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잇단 내부고발에 많은 빚을 졌다고 우리는 말한다. 하지만 그들의 삶의 무게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얼굴에 여드름 흔적이 남아 있던 20대 청년 장교 이지문은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머리가 희끗해지고 배도 나온” 50대 중반 중년이 됐다.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 등 20년 넘게 내부고발과 반부패운동을 지속하는 한편 정치학 박사 학위도 받았다. 그런 그의 주요 생계수단은 국민권익위원회 청렴연수원에 등록된 전문강사로 1년에 200~300회씩 전국의 공무원이나 기관을 상대로 벌이는 청렴교육 강의다.

 

장교 복무를 마치면 삼성그룹 입사가 확정돼 있던 범생이였다. 6월항쟁 때도 거리시위 한번 나가지 않은 고려대 정외과에서 드문 학생이었다. 14대 총선을 이틀 앞둔 1992322일 밤 기자회견을 하고 헌병들에게 연행되기 전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공선협) 관계자들과 불렀던 우리 승리하리라는 처음 듣는 노래라 대충 따라 했다고 한다. “사회를 위해 희생하는 삶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던 그를 수십년간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군 부재자 부정선거를 폭로한 현역 육군 중위로 만든 건, 정의감보다 부끄러움이었다.

 

당시 직속상관인 육사 출신 중대장은 1번 찍기를 강요하는 정신교육 실시를 처음엔 거부했지만 서신검열기로 스캔하면 부대별로 여당 지지율이 다 파악된다는 기무사 파견 보안반장의 압박에 결국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이들은 1번을 찍어달라고 말한 뒤 눈시울을 붉혔다. “내가 직업군인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중대장이 정치적 중립 신념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현실과 거기 맞서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체포된 이지문과 단둘이 만난 자리에서 중대장은 군복을 입은 나는 끝까지 (네 폭로를) 부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드레퓌스 사건처럼 언젠가 밝혀질 거다라고 말했다. 몇년 전 중대장의 아들이 지금까지 자랑스러워했던 우리 아버지가 부정에 연루됐다는 거냐고 에스엔에스로 쪽지를 보내왔다. 이지문은 생애 가장 힘든 답장을 보냈다.

 

1988년 동기들의 전방입소 거부 투쟁 기억도 부끄러움으로 남았다고 했다. 그날 안에 입소하지 않으면 학군단 합격은 취소였다. 과 동기회장이 보내주자고 말해 학교 운동장에 서 있던 마지막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이등병으로 강등돼 파면됐던 이지문은 1995년 파면처분 취소가 최종확정됐지만 시기가 지났다는 이유로 삼성 입사를 거부당했다. 당시 다른 대기업이 입사를 보장하며 백지여도 되니 시험만 치라 했다. 접수는 했지만 시험날 가지 않았다. “특혜로 누군가의 자리 하나를 뺏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영웅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아는 이들이 역사를 만든다. 1992년 말 대선부터 군 부재자 투표는 영외 투표로 바뀌었다. 이지문의 구속적부심사 재판 파행이 이슈가 되며 1993년 사단장 등이 아닌 군판사가 군인의 구속영장을 발부하도록 군사법원법이 개정됐다. 그의 파면 취소 청구소송 승소는 양심선언보호 첫 판결이 됐다

 

19931231일치 <한겨레신문> 1.

돌이켜보면 1990년대 초는 공안정국과 3당 합당, 그리고 이른바 분신 정국속에서 격렬했던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이 퇴조의 징후를 보이던 시기였다. 그때 사회 전체의 변혁을 지향하는 조직적인 운동세력이 아니라, 양심과 상식에 어긋나는 조직의 문제를 고발하는 개인들이 등장한 것은 완전히 결이 다른 흐름의 시작이었다.

이지문은 내 사회적 나이는 30, 사회적 출생지는 한겨레라고 내게 말했다. 1992년 기자회견 이틀 전인 금요일 밤, 서울 광화문에 도착한 그가 공중전화박스에 들어가 전화를 걸고 찾아온 곳이 한겨레였다. 2년 전 이문옥 감사관도, 윤석양 이병도 그랬다. 진영과 계층으로 갈려 나와 너의 기준이 달라지고 합리적 의혹을 제기하는 저널리즘의 자리가 좁아진 시대. 하지만 34살 한겨레는 일방적 주장과 조롱이 아니라 상식과 부끄러움의 힘을 여전히 믿는다. 주말 오후 사람들로 꽉 찬 흥사단 강당에 이지문과 고대 동기들이 함께 부르는 우리 승리하리라가 울려 퍼졌다.

김영희 | 논설위원실장 한겨레 : 2022.05.17.

 

최빈도 죽음’, 즉 우리가 맞이할 죽음

최근 호스피스 전문 의사인 박중철씨가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그 속에는 최빈도 죽음’, 즉 우리가 맞이할 가능성이 가장 큰 죽음의 모습이 있다.

“60대 후반부터 신체적, 정신적 기능이 감소되면서, 고혈압, 당뇨, 뇌졸중, 폐렴, 낙상으로 인한 골절로 병원 신세를 지기 시작한다. 자녀들은 육아나 생계 문제로 간병이 어렵다. 결국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입원한다. 열악한 임금·노동조건 아래서 적은 간병인력으로 운영되는 시설에서 한사람 한사람 세심한 인격적 돌봄을 받을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고 일당 10~15만원인 사설 간병인을 몇년간 둘 수도 없다. 누워 있는 모든 노인 환자들의 꿈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이 꿈을 이루는 이는 거의 없다. 간혹 성공해도 곧 다시 요양원으로 돌아와야 한다. 폐렴, 요로감염, 뇌경색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코에는 인공급식관이 끼워진다. 몸에는 독한 항생제 내성균이 자라고 격리 차원에서 면회와 접촉이 제한된다. 몇차례 응급상황이 벌어지고, 처치실이나 중환자실에서 외롭게 죽음을 맞는다.”

 

2020년 전체 사망자의 75.6%가 요양병원을 포함한 의료기관에서 사망했다. 물론 이런 죽음을 맞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최빈도 죽음은 그나마 병원비를 낼 수 있는 사람들 이야기다. 이 시간에도 며칠째 대소변을 처리하지 못한 채 골방에 혼자 누워 있는 많은 환자들이 있다. 간병과 생활비 벌기를 동시에 해야 하는 경훈이는 자퇴하고, 성희는 애인과 헤어졌다. 간병은 가장 비민주적인 권력공간이다. 약자가 가장 힘든 일을 맡는다.

 

돈이 많아도 고독한 기간이 연장될 뿐, 그 끝은 비슷하다. 권력도 소용없다. 사람들이 찾는 건 정승이 아니라 정승 집 개가 죽었을 때라는 걸 우린 알고 있다. 많은 이들이 스콧 니어링처럼 100살쯤 되어 자기 집, 아내 곁에서 스스로 곡기를 끊고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꿈꾸지만, 노화는 제일 먼저 그런 인지기능과 의지를 빼앗는다. 죽기 위해 병원에서 인공급식관을 빼는 것도 현행법상 불법이다. 영국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말처럼 우리가 맞이할 죽음은 때 이른 죽음이기도 하다. 아직 살아 있는데도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격리된 사람은 이미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잊힌 채 누워 있는 시간을 빼면 과연 한국 사회의 평균 수명이 늘었다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맞이하게 될 최빈도 죽음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가 바라는 좋은 죽음’, 즉 고통이 없고,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며,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에게 둘러싸여 죽음을 맞는, 잘 준비된 죽음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결국 하루 종일 오직 성장과 돈만이 해결책이라는 슬로건 아래 생존의 전쟁터로 내몰려 가족의 죽음 과정에서조차 연민의 시간을 나누기 어렵게 만들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문명이 그 원인이다. ‘건강하게 살아 있는 자만이 생산적이고 고로 가치가 있다는 천박한 문명 말이다. 죽음을 감당할 준비가 안 돼 있으니 죽음을 부정하는 심리적 방어기전이 작동하고, 정작 죽음이 닥치면 자신의 죽음마저 의료전문가에게 맡긴다. 의료는 갈수록 영리화되고 비싸져 그 돈을 벌기 위해 가족들은 다시 연장근무를 해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돌고 있다.

 

우리의 죽음이 쓸쓸하고 볼품없어지는 사이 이미 전체 인구 중 32%1인 가구로, 국가가 간병 책임을 떠넘겼던 가족이 사라지고 있다.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부양할 인구는 202038.7명에서 2038년에 70, 2056년에는 100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낙인과 저임금에 시달리며 간병 인력의 60~80%를 지탱해주었던 중국동포들도 이제 늙어가고

 

결국 유일한 해결책은 가정·지역사회·의료기관·복지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계된 보편적, 포괄적 돌봄체계의 구축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체계의 운영 중심에 죽음에 대한 격리와 배제가 아니라 연민이 자리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민은 공공성의 다른 이름이다. 이 연민 공동체를 제일 먼저 파괴하는 것은 빈부 격차, 약육강식과 각개약진의 풍조, 영리화 정책 등이다. 사회서비스 영역 규제 완화와 영리화를 표방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출범이 벌써부터 걱정스러운 이유다.

 

잠시 시간을 내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병상에 기저귀를 차고 몇달째 누워 있는 당신을 떠올려보시라. 모처럼 맑은 정신으로 깨어난 새벽, 당신은, 아니 우리는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이렇게 중얼거릴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때는 이미 늦었다는 점이다.

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 한겨레 : 2022.05.17.

 

 

우리는 '태극기 부대'를 이해할 수 있을까?

태극기 군중의 심리 고찰

년 전 국회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하던 중에, '태극기 부대'60대 여성과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그와 대화를 하고 나서 많이 놀랐다. 당시만 해도 태극기 부대를 특정 세력이 돈으로 동원한 정치용역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박근혜에 대한 지지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듯했다. 또한 나름의 식견도 있었다. 한동안 필자는 부유하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 중년 여성이 이념적 박근혜 지지자로 등장한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등장한 대중적 우익세력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태극기 우익에 대해서 여러 측면에서 분석될 수도 있다. 먼저 사회경제적 곤경이 사람들을 우경화시킨 핵심요인으로 보는 입장이다. 힘든 사람들이 우경화되는 현상은 역사에서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그러나 힘들기 때문에 좌경화되는 경우도 많기에 경제적 분석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철학자 문성훈(서울여대)은 논문 '태극기 군중의 탄생에 대한 사회 병리학적 탐구'에서 태극기 군중이 보이는 행동을 '심리적 징후'라고 해독한다. 단순한 물질적 보상에 대한 좌절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들은 "국정농단이 밝혀져도,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직을 파면하고 그 죄상이 법정에서 낱낱이 드러나도" 지지를 철회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경제가 안 좋아서 자신의 삶이 별로여서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수준이 아닌 것이다. 이들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문성훈은 에리히 프롬의 '근대화의 역설'이란 개념을 끌어들인다."인간은 근대에 이르러 전통 사회를 지배했던 모든 구속과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영위할 수 있는 독립적 개인이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개인은 자유를 만끽하며 자신의 모든 잠재력을 개발하고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절대적 권위체에 복종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이것이 근대화의 역설이다."

 

제도와 환경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인간은 다시금 스스로를 절대적 존재에 복속시킨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자유를 넘어서는 불안감이 개인을 엄습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 프롬의 분석이다. 상기 논문의 한 문장이다. "중세의 인간은 신분제도, 봉건제도, 교회 제도가 만들어낸 사회질서의 일부로서,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이미 사회적 권위에 따라 결정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다." 구속은 존재했지만 인간은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지 알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불안감은 크지 않았다.

 

구속은 존재하되 나름 안정적이었던 사회는 자본주의 발전, 종교개혁, 시민혁명 등을 거치면서 붕괴한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존재적 정당성을 하나님이 아니라 이윤에서 찾게 했다. 종교개혁은 특히 교회라는 공동체의 매개를 인정하지 않고 신과의 단독대면이라는 상황을 만들었다. 시민혁명이 촉발한 사회적 격변은 더욱 개인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발전이기도 했지만 개인이 감당하기에 너무 힘든 상황의 연속이었다. 문성훈의 분석이다. "근대 사회에서 각 개인이 경제적 자유를 획득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자신의 능력만으로 경제적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지만, 다른 한편 근대의 개인들은 중세사회에서 얻을 수 있었던 인간적 유대와 안정감을 상실하고 고독과 불안에 빠지게 되었다." 근대의 등장은 자유와 불안감이 동시적으로 증가하는 이중의 과정이었다.

 

프롬에 따르면 인간은 불안에 대해 두 가지 방식으로 대응한다. 사랑과 연대를 통해 불안감을 극복하고 안정감을 확보하는 방식과 자유를 던져버리고 새로운 의존과 복종을 추구하는 방식 두 가지다. 후자의 방식은 권위주의적 종교와 나치즘의 등장을 초래했다. 이 방식은 자신을 부정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신에 의해 정해져 있다는 캘빈의 예정론은 개인의 무력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이런 무력감 위에 교회와 종교개혁가에 대한 절대적 권위가 확립되었다. 캘빈이 장악한 도시에서는 사랑 대신 무서운 형벌이 횡횡했다. 웬만한 잘못도 중형으로 처벌받았다. 한국 교회 내부에서 순종의 미덕이 강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에 대한 부정과 강한 타자에 대한 복종은 새로운 성격유형으로 나타난다. '마조히즘'이다. 문성훈의 설명이다. "마조히즘적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은 그게 어떤 것이든 이런 힘센 존재에 복종하면서 자신도 이 힘의 일부가 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며,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의 의미를 확신하게 됨으로써 모든 불안감에서 벗어나게 된다." 또한 사디즘도 다르게 보일지라도 고립감, 무력감을 벗어나 타인과 일체화되려는 욕구라는 점에서 마조히즘과 동일한 기원을 갖는다. 사도 마조히즘은 기득권으로부터 배제된 계층에게 더욱 확고하게 자리 잡는다. 결국 이런 심리적 성향의 사람들은 전체주의의 토양이 된다.

 

'근대화의 역설'은 한국의 경우 산업화가 본격화된 70년대부터 발생하기 시작했다. 일자리를 찾아 시골 공동체로부터 나온 개인들이 도시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연고가 거의 없는 도시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불안과 고립감을 감내하며 생존해왔다. 농촌 마을과 달리 도시는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사회였다. 한눈팔면 생존이 불안해졌다. 따라서 불안감도 극적으로 높아졌다. 이런 불안감은 종교적 권위에 대한 철저한 순종을 외치는 대형교회, 사도마조히즘이 일상의 영역으로 침투한 기업, '유신''5'으로 대표되는 전체주의를 배양했다.

 

이런 억압적인 위계질서를 개인들이 왜 받아들였을까? 다시 문성훈의 말이다. "사회 전체가 명령과 복종의 체계로 위계화되고 지속적 순환체계를 만들어낸다. 물론 이러한 위계 관계가 지속적으로 확대될 수 있었던 까닭은 이를 통해 개개인이 자기 혼자 행동할 때 갖는 내적 불안감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맹목적 복종과 가학적 지배가 결합되었다.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절대적 대상은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적 신(), 박정희와 미국이었다. 태극기 군중이 십자가와 성조기를 들고 군복을 입고 있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역설적인 사실은 산업화가 주는 혜택에서 배제된 사람들조차 이 위계의 질서에 편입되기를 강력히 원한다는 사실이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누군가를 증오하면서 지배 체제에 편입된듯한 만족감을 누리는 것뿐이다. 이들에게 지역 차별, 소수자 차별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의미 있는 작업이다. 이들의 정체성은 그냥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절대자와의 가족 로망스를 통해 형성된 정체성이다.

 

미디어아트 연구자 박현선은 논문'<태극기 집회의 대중 심리와 텅 빈 신화들'에서 그들의 정체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프랑스혁명 시기 귀족과 부르주아지의 계급 갈등을 새로운 문화사의 관점에서 풀어낸 <프랑스혁명의 가족 로망스>에서 린 헌트(Lynn A Hunt 역사학자)'가족 로망스'를 통해서 국민들이 가족이 확장된 형태로 국가 체제를 이해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정신분석학에서 도입된 가족 로망스라는 용어는 본래 '자신이 낮게 평가하게 된 부모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대체적으로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지닌 다른 사람들로 부모를 대체하고자 하는' 신경증환자의 환상을 일컫는 것이지만 여기에 국한되지 않고 사람들이 현실의 불안을 메우고 허구적인 자기정체성을 구성하는 정치적 환상의 기제로 작동한다." 박정희와 딸 박근혜에 대한 지지는 이런 환상에 기인하는 면이 크다. 그들에게 박정희, 박근혜는 남이 아닌 가족과 다름없는 존재인 것이다.

 

가족 로망스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한 태극기는 멜랑콜리아 과정으로 빠져든다. 프로이트의 멜랑콜리아는 죽은 자에 대한 극도의 슬픔으로 죽은 자를 개인의 삶에서 떠나보내지 못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죽은 자에 대한 애정만이 아닌 증오도 동시적으로 존재할 때 이런 양가감정적 증상이 발현한다고 한다. 다시 박현선의 말이다. "보수우익들이 과거를 애도하는 방식은 멜랑콜리아의 병리적 과정과 닮아있다. 프로이트는 <애도와 멜랑콜리아>에서 어떻게 상실을 경험한 사람이 우울증에 빠지는가를 분석한 바 있다. 정상적인 애도가 상실한 대상의 빈자리를 새로운 대상-사랑으로 채워나가며 그 아픔을 극복한다면 멜랑콜리아는 그 빈자리를 옛 것에게 바치며 잃어버린 대상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 사회적 병리를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을까? 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상호인정의 원리를 도입해 사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자고 한다. 대표적인 공동체주의 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사회의 파편화를 가속화하는 개인주의 원리를 재편성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일본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은 정치적, 윤리적으로 깨어있는 작은 단위의 살아있는 공동체 어소시에이셔니즘(associationism 결사체주의, 필자 주)으로 사회를 재구조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상가마다 자신의 비전을 제시하지만 그들의 비전은 너무 고원해서 우리가 지금 당장 실현해 가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태극기 군중을 이해하고 이 사회적 현상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만약 실패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더욱 어두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김창훈 칼럼니스트 | 프레시안 2022.05.18.

 

 

수도권 탈성장론

요즘 전세계에서 뜨거운 쟁점 가운데 하나는 탈성장이다. 물론 경제성장 강박에서 벗어나자는 주장은 등장한 지 이미 오래됐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극소수 이상주의자들만의 논의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한데 녹색성장을 내세우는 주류 정치세력들의 기후위기 대응이 지지부진하기만 하자 점차 판도가 바뀌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기존 자본주의 성장 경로에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기서 예외다. 대통령선거에서도 양대 정당은 모두 경제성장을 목 놓아 외쳤다. 특히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성장’, 그것도 빠른 성장을 부르짖는다. 2주 뒤로 다가온 지방선거 분위기 역시 마찬가지다. 늘 그랬듯이 광역단체장 후보부터 기초의원 후보까지 예외 없이 지역발전 공약을 강조한다. 발전이란 결국 우리 고장을 최대한 서울과 닮도록, 과장하면 강남을 뒤따르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나라 밖 세상과 국내 분위기가 이렇게 다르다. 한국에서도 기후정의운동 등이 탈성장을 모색하고는 있지만, 당장 현실에 적용하기는 힘겨워하는 것 같다. 더구나 수도권과 다른 지역 사이의 커다란 격차가 지방선거나 지역정치의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할수록 더 커다란 벽을 느끼는 것 같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그나마 뜻있는 이들은 어떻게 하면 수도권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에 빨려들어가지 않을지 고민하고 있다. 상대적 박탈감을 넘어 소멸을 감수해야 하는 운명에서 벗어나는 것이 너무도 절박한 당면 과제다. 이 과제 앞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이들에게 탈성장이야기를 꺼내고 동의를 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이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이게 현실의 전부는 아니다. 수도권과 다른 지역의 격차 문제는 접근하기에 따라서는 오히려 탈성장 지향과 밀접하게 결합할 수도 있다. 어떻게 말인가? 바로 수도권 과잉성장에 물음을 던지고 지금이라도 급격히 방향을 선회하자는 주장을 통해 가능하다. 비수도권이 수도권을 닮아가는 성장이 아니라 수도권의 탈성장을 통해 수도권과 다른 지역의 격차를 좁히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수도권 탈성장론이다.

 

가령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기본전제 중 하나인 에너지 자립 문제를 보자. 수도권은 인근 충청남도에서 전력을 대량 생산해 공급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다. 또 수도권 안에서는 인천에서 전력을 집중 생산하지 않으면 서울, 경기의 2400만 인구가 삶을 이어갈 수 없다. 석탄을 태워 전기를 만드는 시대에는 이게 통했지만, 당장 탄소 배출을 줄이자고 하면 답을 찾기 힘들어진다. 단지 태양광·풍력발전 기술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너무나 과밀한 도시를 위해 에너지를 대량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수도권부터 전력 사용을 줄여나가야 하고, 인구가 더 늘지 않도록 조절해야 한다. 이제껏 성장의 최대 수혜지가 수도권이었다면, 탈성장 실험이 시작돼야 할 곳 역시 수도권이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에서 아직 이런 발상이나 고민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것은 정치 탓이다. 양대 정당이 수도권에는 더 많은 성장을, 비수도권에는 수도권을 뒤쫓는 성장을 약속하며 선출직 공직 임기를 끝없이 이어가는 게 대한민국 제6공화국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양대 정당에 도전한다는 정치세력들 역시 이러한 한국식 성장 정치-경제 경로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 경로가 안락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다. 서울에서부터 성장지상주의의 꼬인 매듭을 풀기 시작하는 정치세력만이 새로운 시대의 안내자가 될 수 있다. 과연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런 지향을 과감히 제시하고 시민들을 설득하는 미래의 싹을 찾아낼 수 있을까? 이것이 문제의 그 수도권에 거주하는 시민으로서 내가 지방선거에서 판단 기준으로 삼고자 하고, 또한 동료 시민들에게 권하고 싶은 잣대다.

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한겨레 :2022-05-19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뉴스

한때 한나라당 대권 주자로도 거론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80년대 서노련을 거쳐 90년대 초까지 진보정당인 민중당에서 활동했다. 내내 그의 수하였던 차명진 전 의원은 김 전 지사가 한나라당으로 들어가 국회의원과 경기도지사를 할 때 보좌관과 공보관으로 지근거리에서 일했다. 덕분에 차 전 의원은 200617대 총선에서 김 지사의 지역구를 이어받아 2선 의원까지 지냈다. 차 전 의원은 1989년엔 민중당 노동위원회가 만들었던 <노동자의 길> 편집장을 맡았다. 90년과 91년엔 민중당 구로갑지구당 사무국장도 지냈다.

 

이랬던 차 전 의원은 검수완박 법안에 합의해 준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장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선 강용석 전 의원과 나란히 섰다. 중앙일보는 이 회견 장면을 서로 통화했다, 안 했다고 공방 중인 윤석열 대통령과 강용석 전 의원 간 공방 기사(517일자)에 재소환했다. 강 전 의원은 윤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로 원래 통화하던 사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런 노이즈 마케팅은 언론이 보도해 주면 더 기승을 부린다. 기자는 양측 공방을 중계보도하면 하루치 업무량을 채우겠지만, 시민에겐 정치 공해일 뿐이다.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

 

국민일보는 지난 10일 대통령 취임 기념 만찬장에서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김건희씨가 웃으며 함께 찍힌 사진의 의미를 1주일이나 지나서 설명하는 기사를 썼다. 국민일보는 지난 17김건희 여사 앞 웃다 곤욕 치른 윤호중, 시아버지와 항렬 같다는 말에 웃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국민일보는 이 기사에서 만찬장 사진 속 웃음의 의미가 지난 16일 윤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에 앞서 여야 지도부와 만나 사전 환담하는 자리에서 밝혀졌다고 했다. 김건희씨가 윤 위원장에게 시댁이 파평 윤씨고 시아버님이 위원장님과 항렬이 같다.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대통령 아버지가 윤기중이고, 윤호중 위원장과 자 항렬이 같다.

 

윤 대통령 취임식은 역대 최저 시청률을 기록했다. 꼭 주인공이 윤석열이라서 그런 것만이 아니다. 유튜브만 열면 언제든 보는데 먹고살기 바쁜 시민이 대통령 취임식을 본방 사수해야 할 이유가 없다. 취임사에 자유35번 언급했다는 것까지 알아야 할까. 취임사가 3303자로 약식 취임식을 한 문재인 전 대통령의 3181자와 비슷하다는 것까지 알고 싶지 않다.

 

동아일보는 지난 9일 경제섹션 1면을 모두 할애해 조선업종의 인력난을 보도했다. “구인난에 웃지 못하는 조선업계” “300명 조선소 교육원 첫 모집에 들어온 건 18” “수주 대박 나면 뭐하나, 배 만들 사람이 없는데같은 제목을 넣어 수주량이 많아 조선업이 호황인데도 배 만들 사람이 없다며 속앓이하는 조선회사들의 고충을 충분히 담았다.

 

조선업에 생산인력이 부족한 건 언론의 책임도 상당하다. 언론은 7~8년 전 조선업 불황 때 앞다퉈 인력 구조조정을 부추기는 기사를 써 댔다. 덕분에 여론을 등에 업은 조선사는 손쉽게 사람을 잘랐다. 정규직 2만명 대 비정규직(사내하청) 5만명이 일했던 현대중공업은 비정규직을 절반 이상 줄였고, 정규직도 각종 구조조정으로 인력을 줄였다. 그 결과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 방어진에 빈집이 크게 늘기도 했다.

 

당시 생각 있는 조선업 연구자들은 불황 뒤에 호황이 왔을 땐 인력 부족에 시달릴 것이라며 구조조정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대부분 언론은 귀 기울이지 않았다. 한국 언론은 쓸데없는 것만 보도하거나, 쓸데 있는 걸 보도해도 꼭 본질은 외면한다.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매일노동뉴스 2022.05.20.

 

 

우리는 검찰공화국에 산다

200339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서울청사에서 평검사 10명과 마주 앉았다. 강금실 참여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의 기수 파괴 인사에 반발하는 검사들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였다. 검사들과 허심탄회하게 검찰개혁에 대해 의견을 나눠보겠다는 게 대통령의 속내였다. 하지만 대통령의 의도와 달리 격한 언어와 감정 섞인 설전이 이어졌고 양쪽의 간극만 확인한 채 만남은 끝났다.

 

검사들의 주장은 간단했다. 검사 출신이 아닌, 청와대의 입김을 받는 믿을 수 없는 외부 인사들이 검찰 인사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검사에 대한 인사권을 검찰에 넘기라는 얘기였다. 노 대통령이 기대했던 검찰개혁,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어떻게 분산할 건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견도 오가지 않았다. 대신 대통령을 향한 그들의 공격이 이어졌다. 새파랗게 젊은 검사들은 대통령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호기롭게 맞짱을 떴다. “언론 지상에서 대통령께서 83학번이란 보도를 봤다며 대통령이 고졸 출신이란 점을 비꼬는가 하면 많이 서운하지 않으시냐며 비아냥거렸다. 최소한의 예의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대통령이 힘들게 입을 열었다. “대통령의 개인적 약점을 거론하는 자리가 아니죠.”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죠.” 검사들의 태도는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오만함으로 비칠 정도였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다는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다.

 

검찰은 막강한 권력집단이다.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 통과로 수사 범위가 축소되었다지만 여전히 독점적 영장청구권을 틀어쥐고 있다. 기소독점권에 기소재량권까지 그들의 손에 있다. 경찰이 구속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영장 청구를 요청할지라도 검사가 하면 그만이다. ·현직 검찰 구성원의 비리를 경찰이 수사해도 검찰이 영장 청구 요청을 기각하면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다. 자신들의 조직을 보호하고 경찰을 통제하는 데는 이만한 장치가 없는 셈이다.

 

기소권 독점 역시 엄청난 힘이다. 특정인을 법정에 세울지 말지는 검찰 마음이다. 아무리 중죄인이라도 검사가 기소하지 않으면 재판을 받지 않는다. 꼬투리를 잡아 기소하면 어쨌든 법정에 서야 한다. 유무죄 여부는 다음 문제다. 무소불위의 검찰권을 행사함으로써 검찰은 그들만의 견고한 성을 쌓았다.

 

엊그제 취임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조국 전 장관 일가 수사를 하다가 한직을 전전하던 특수통 검사들이 전면에 다시 등장했다. 죄다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장관의 검사 시절 에이스소리를 들어가며 손발을 맞춰온 선수들이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과 최측근 장관, 그들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핵심 라인이 일선 검찰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앞서 대통령실의 법률, 인사, 총무비서관 등 핵심 보직에 기용된 6명 중 5명이 검사나 검찰 수사관 출신이다. 검찰의 독립성이나 정치적 중립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고민조차 하지 않은 것 같다. ‘능력 위주의 인선이라고 주장하지만 누가 봐도 윤 대통령의 특기인 자기 사람 챙기기의 결정판이나 다름없다. ‘윤석열 직할 체제가 완성되면서 검찰이 대통령의 의중을 헤아려 수사할 것이란 우려는 얼마 안 가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정권 사람들이 줄줄이 검찰청사에 불려나가 포토라인에 서는 낯익은 장면이 펼쳐질지는 안 봐도 비디오.

 

검찰은 이제 거칠 것이 없게 됐다. 과거에는 정치권과 결탁해 권력의 시녀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젠 검찰이 권력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대권을 잡은 전직 검찰총장과 법무부·검찰을 장악한 그의 수하들이 그렇잖아도 막강한 힘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경우, 그 누구도 이를 제지하거나 견제할 수 없다.

 

2011년 출간된 <검찰공화국, 대한민국>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검찰, 그리고 검찰 세력은 대한민국의 요소요소에서 가장 중요한 권력을 장악해 들어가고 있다. 법무부를 장악하고 한나라당 등 정치권과 국회를 장악하다시피 한 것도 검찰 세력들이다. () 검찰 세력의 권력욕이 우리 공동체의 안정성과 법의 지배를 파괴하는 형국에 이르게 되었다.”

 

11년 전에도 우리 사회는 권력화되어가는 검찰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이 탄생할 것이라는 데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진짜 검찰공화국에 살고 있다.

조홍민 사회에디터: 경향 2022.05.20.

 

 

반지성주의

대통령 취임사에 난데없이 등장한 반지성주의라는 용어를 둘러싸고 설왕설래하는 분위기가 있다. 민주주의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은 이 단어는 도널드 트럼프의 극적인 등장과 퇴장으로 인해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철학이나 사회과학에서 그렇게 자주 논의되는 주제에는 속하지 않았다. 학술강연에서나 들을 수 있는 단어가 취임사에 등장한 것을 두고 비꼬는 소리도 들리고, 이것이 과연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를 두고 해석 또한 분분하다

 

사실 전후의 문맥을 보면 반지성주의라는 단어가 꼭 등장할 필요도 없고, 만약 필요했다면 비타협적인 독선주의나 이와 비슷한 의미를 전달하는 다른 단어를 사용해, 이것이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트린다고 했으면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기왕에 반지성주의라는 화두가 등장했기에 이의 내용이 과연 무엇을 담고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왜냐하면, 이 단어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매우 복합적이며 다의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반지성주의는 당연히 그의 반대말인 지성주의의 이해를 전제한다. 라틴어 인텔렉투스에서 유래하는 지성, 즉 이성에 기초한 인간 능력에 대한 확신을 따르는 지성주의의 의미는 다양하다. 또 항상 긍정적인 의미만을 전달하지도 않는다.

 

지성주의를 동양문화권에서는 종종 주지주의(主知主義)로도 이해하는데 이는 지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정서, 윤리 또는 의지와 같은, 인간의 또 다른 중요한 본성을 경시하거나 무시하는 점을 비판하는 뉘앙스도 담고 있다. 단순한 지식이나 인식 능력이 아니라, 존재와 실천의 원리 전체를 뜻하는 양지(良知)와 이에 따른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강조한 양명학(陽明學)에서 그러한 이해가 특별히 드러난다. 쉽게 표현해서 재주는 있지만 덕이 없는(才勝薄德) 사람이 되지 말라는 뜻이다.

 

이렇게 사변(思辨)에만 경도된 지식에 대한 비판적인 흐름은 유럽 사상사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여기에 하나의 큰 획을 남긴 철학자는 프리드리히 니체이다. 그는 <우상의 황혼>에서 이론적인 인간의 화신인 소크라테스가 설파한, 이성이 곧 덕이며 행복이라는 낙관주의야말로 인간의 삶을 비극으로 내몰았다고까지 비판한다. 인간의 본능을 거슬러 피도 통하지 않는 메마른 지성이 만든 결과물이 바로 데카당스라고도 지적했다. 지성적인 것으로부터 진실은 물론, 도덕과 아름다움도 모두 함께 얻을 수 있다는 이 믿음, 그리고 이에 기반을 둔 이성과 진보에 대한 맹목적 확신이 바로 비극의 탄생이라고 보았다.

 

니체 왈 어떻게 쇠망치로 철학

 

이번 취임사에 등장한 과학과 진실,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라는 단어를 만약 니체가 들었다면 위에 언급된 그의 저서의 부제(‘어떻게 쇠망치로 철학하는가’)처럼 이 단어들을 모두 부쉈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우상을 만들어 왔던 이런 단어가 진짜인지, 아니면 가짜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너는 진짜냐, 아니면 배우냐, 아니면 배우를 흉내 내는 또 다른 배우냐라는 질문을 던진 니체였기 때문이다.

 

취임사에서 강조된,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에 대한 비판은 정치적 맹동주의나 포퓰리즘과의 연관 속에서 항상 제기되는 문제다.

 

자주 언급되는 사례로는 러시아혁명 이후 부침했던 인텔리겐치아에 대한 비판과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있다. 러시아혁명 후에 일부 급진적인 볼셰비키가 부르주아 출신의 전문가들이 혁명 후에도 국가와 기간산업 요직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데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지식분자는 항상 철권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레닌조차도 9차 당대회(1920)에서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을 주관적인 의지만으로는 성취할 수 없다는 이유로 구체제의 지식인을 새 체제 안에 흡수하는 정책을 폈다.

 

이를 두고 폴란드 출신의 무정부주의자 마하이스키(1866~1926)는 부르주아 출신의 지식분자들이 혁명 후에도 노동계급을 지배한다고까지 신랄하게 비판했다. 1930년대 중반에 다시 이 문제에 부딪힌 스탈린은 사회주의에서 지식계층을 적대시하는 마하이스키의 추종세력에 대한 숙청을 단행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때도 특히 지식분자에 대한 박해는 극심했다. 당시 수많은 지식인은 농촌 강제노역에 동원되었고, 심지어는 부르주아 예술인이라는 이유로 홍위병이 피아노 연주자의 손가락을 꺾는 일도 있었다. 이를 두고 피아노 연주자의 손가락을 훼손하려면 무엇을 위해 예술대학은 세웠느냐는 북한의 비판과 함께 사회주의 노선을 둘러싸고 중국과 북한 사이에도 심각한 이념적 갈등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는 사회주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특히 트럼프의 대선 승리는 미국의 반지성주의를 둘러싼 많은 논의를 촉발시켰다. 1960년대 초반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미국의 반지성주의>1950년대 매카시즘의 광풍을 필두로 미국의 종교, 경제, 사회, 교육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드러난 지식인에 대한 적대적 분위기와 이의 내적인 작동 방식을 분석했다.

 

정신적 삶과 이를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한 의심과 경멸, 나아가 증오까지 담은 미국의 반지성주의에는 전통적으로 기독교 근본주의 또는 복음주의가 큰 자리를 잡고 있다. 성서를 진리의 모든 것으로 믿고 진화론을 교과서에서 축출하고 코로나 팬데믹도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한다. 이 같은 분위기를 두고 미국의 과학 공상소설작가 아이작 아시모프(1920~1992)나의 무식도 너의 지식만큼이나 훌륭하다고 여기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잘못된 생각이 반지성주의의 핵심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묻자, 누굴 위한 진단과 처방인가

그러면 반지성주의의 한국적 모습은 과연 어떤가. 한국적 반지성주의도 최근 논의되는, 비합리적인 판단이나 행동, 전체 사회를 위한 장기적인 안목보다 개인의 이익 추구, 전문가를 포함한 엘리트 집단에 강한 불신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남북 분단으로 말미암은 첨예한 이념적 갈등과 압축성장이 가져온 급격한 사회 변동에서 온 충격 등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반지성주의의 내용은 상당히 거칠고 복잡해졌다. 복음주의, 반공주의, 능력주의, 학벌주의, 소비지상주의, 지역주의 등이 복합적으로 엉킨 속에서 전 사회가 마치 오징어 게임을 하는 것 같다.

 

비록 내용은 정확하게 전달되지 못했더라도 이런 문제를 한마디로 반지성주의로 진단하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누구를 위한 진단이며 처방인가 하는 물음이다.

 

반지성주의 문제를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개인이나 집단만을 겨냥하고 내놓았다면 이는 애초부터 잘못되었다. 과학과 진실, 그리고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는 우리 편에, 반대편은 이를 부정한다는 편가르기 식의 진단에서 반지성주의가 제기됐다면 이는 이미 잘못된 처방이다. ‘K트럼프’ ‘내로남불’, 반지성주의는 정작 자기들의 문제가 아닌지 되묻는 소리가 벌써 나온다.

 

지성주의와 반지성주의는 학력의 높음과 낮음, 진보와 보수, 좌나 우, 친정부와 반정부에 따라 갈라 볼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다. 우리는 누구나 많은 양의 정보에 빨리 접근할 수 있으며, 특히 민감한 정치적 사안과 관련해서 편가르기를 쉽게 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라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 만나 몰려다닐 수 있게 되었다. 이른바 디지털 홍위병에 의해 정치적 공론의 장이 점거되는 상황이 나타나게 되었다.

 

여기까지 이르는 데는 두 요소가 특별히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하나는 정치적 공론장의 중심인 의회가 제구실을 하지 못했고, 다른 하나는 주류 언론이 특정한 집단의 이해만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사회의 다양한 요구가 협치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정치개혁, 그러한 요구를 공론장에 정직하게 전달할 수 있게끔 하는 언론개혁이 그래서 반지성주의에 대한 시급한 처방전이라고 생각한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경향 2022.05.25.

 

노무현이 바꾼 민주당, 다시 과거로

지금의 민주당을 만드는 데 노무현 대통령의 기여가 절대적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선거로 첫 정권교체를 이룬 건 김대중 대통령이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민주당은 호남 중심의 지역정당을 넘어서지 못했다. 열악한 정치 환경을 뛰어넘은 건 김대중 개인의 정치력과 통찰력에 힘입은 바 컸다.

 

노무현 대통령을 거치며, 정확히는 2009523일 그의 비극적인 죽음을 거치면서 민주당은 뚜렷하게 진화했다. 호남 정당에서 벗어나 수도권을 기반으로 한 전국 정당으로 발돋움했다. 이념적으론 중도개혁을 내세운 김대중 시대를 지나 분명하게 진보를 내걸고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정당으로 탈바꿈했다. 노무현의 진보는 전통 진보정당으로부터 신자유주의 변형이란 비판을 받았지만, 어쨌든 민주당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중도에서 왼쪽까지 크게 넓히면서 폭넓은 대중 지지를 이끌어내는 기반으로 작용한 게 사실이다.

 

이런 변화의 밑바닥엔, 검찰의 집요한 수사 끝에 스스로를 던진 노무현 대통령의 자기희생이 무겁게 자리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었던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이렇게 말했다. “노 대통령 서거 전엔 아무리 진보를 얘기해도 전달이 되지 않았는데, 서거라는 충격적 사건이 생기자 국민들이 대통령이 해온 것과 말한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국민 인식에서 노무현의 시민민주주의에 대한 업그레이드가 일어났고, 민주당과 기존 진보정당 사이의 갭이

 

그는 지역이란 벽을 뛰어넘었을 뿐 아니라, 20대 젊은 세대의 전폭적 지지라는 유리한 정치 지형을 민주당에 선사했다.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과 죽음을 목격한 20대는 그후 십수년간 민주당의 가장 강력한 지지 기반으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참패했지만, 유일하게 40대에서만은 국민의힘을 압도했다.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을 얻는 역대급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도, 지난 세번의 지방선거에서 수도권을 석권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배경에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여론조사 편차를 고려해도 호남 광역단체장 3(광주, 전남·)과 제주를 제외하면 단 한곳도 확실하게 앞서는 지역이 없다는 말이 민주당에서 흘러나온다. 어쩌면 민주당은 다시 호남의 벽에 갇힐지 모른다는 걱정이 안팎에서 고개를 든다. 그야말로 노 대통령 서거 이전의 정치 상황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지난 23일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 대통령 13주기 추도식엔 여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정치인들이 모여 노무현 정신을 외쳤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 정치에 참 안타깝고 비극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집권 시절 보수기득권 세력의 맹렬한 공격 대상이던 노무현은 이제 좌우 가리지 않고 모든 정치세력이 끌어안아야 할 정치인으로 재조명되는 듯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진짜 노무현이 추구했던 가치와 정신은 점점 더 앙상하게 말라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에 대한 더 큰 책임은, 변화에 둔감해진 민주당에 있다.

 

민주주의와 평화, 지방분권, 복지 확대 등이 노무현의 핵심 가치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시간이 지나도 많은 국민이 노무현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아니다. 국민이 그에게 감동하고 그의 가치를 염원하는 데엔,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누구보다 떳떳하고 흔들리지 않았던 노무현의 길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서 손쉽게 원칙과 명분을 저버리지 않고, 선거 승리보다 선거 과정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분명히 드러내려 애썼던 그의 행동이 국민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패배할 걸 알면서도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부산에서 세번이나 출마했다. 2000년 총선에서 세번째로 낙선했을 때 그는 승리니 패배니 하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저는 누구와도 싸운 일이 없다.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추구해야 할 목표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2002년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그를 기억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은 국민과 지지자들에게 그런 가치와 목표를 제대로 보여준 적이 있는가. ‘지방선거를 이기기 위해서라는 말만 했던 것은 아닌가. 눈앞의 승리나 정치적 유불리가 아니라 국민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고민하는 것,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건 이것이다.

pcs@hani.co.kr 한겨레 :2022-05-25

 

기레기의 대안이 고작

1996년에야 여행을 시작한 탓에 혁명 전야의 나라를 현장에서 직접 보진 못했다. 혁명으로부터 20년쯤 지난 시점에야 이란이나 베트남 같은 곳에 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혁명을 수호하는 빛바랜 깃발만을 보았다.

 

거리엔 총칼을 든 군경이 있었다. 총과 칼은 시민을 보호하지 않았다. 혁명을 의심하는 시민으로부터 혁명을 보호할 뿐이었다. 내가 본 혁명은 크루아상의 겉면처럼 약하기만 했다.

 

이란 좋아요? 호메이니 좋아요? 하메네이 좋아요?' 한명을 제외한, 내가 만난 모든 이란 사람은 이 세마디 영어밖에 할 줄 몰랐다.

 

혁명은 유통기한이 짧아 금세 상해 버린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 혁명이란 말은 언젠가부터 한국에서도 사라졌고, 개혁이나 대안이라는 말이 혁명이란 단어를 대체했다. 부숴버리자는 말보다는 이렇게 저렇게 바꿔보자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렸다.

 

대안학교를 시작으로 대안이라는 말이 쏟아졌고, 사람들은 언론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대안미디어는 자본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표방하면서 등장했다. 조중동을 악의 축이라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자본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란 말은 꿀같이 달았다. 때마침 나꼼수' 열풍은 수많은 정치 시사 팟캐스트의 탄생을 알렸다.

 

대안미디어가 생존을 위해 선택한 것은 자본과 권력 대신 청취자 혹은 시청자의 선의였다. 2000년대 초 그 공간에서 공적 글쓰기를 시작했으니 대안미디어라는 매체가 그리 낯설지도 않았다. 때마침 홍콩에서 우산혁명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이런 이야기를 원하는 팟캐스트 한곳을 골라 국제 이야기를 떠들기 시작했다.

 

자본과 권력, 그리고 사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독자들의 후원금'알려지지 않은 건강한 기업의 광고'라는 장밋빛 계획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본 바로는 규모가 작은 대안미디어는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기존 언론보다 사주의 입김에서 더 자유롭지 못했다. ‘우리 매체는 자신을 진보라 믿는 수구들이 주요 청취자'라는 정의는 비록 술자리 한정이긴 했으나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었고, 좋은 쌀을 판다던 광고 기업은 쌀에 등급제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듯했다. 사회자 겸 패널인 사주는 방송에 끼어들며 틀린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손 들고 녹음 중지! 틀린 내용이니 재녹음합시다, 라고 말하는 건 매번 용기가 필요했다.

 

대체할 수 있긴 한 것일까라는 본질적 의문을 가지게 된 건, 청취자 권력의 존재 때문이었다. 대안미디어는 특정 정파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기계적 중립조차 뜨뜻미지근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다 보니 수익 구조의 거의 전부가 독자 후원과 자체 쇼핑몰 매출이다. 에피소드 건건이 어찌하면 우리 청취자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방송, 혹은 편집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작동했다. 이러한 태생적 편파성은 청취자의 입맛에 맞아야 생존이 가능한 구조로 인해 점점 더 과격해지고, 돈을 쏘는 청취자들의 입맛에만 맞는다면 적당한 오보는 무시됐다. 크로스체크는 취재자의 양심에 의존하고, 게이트키핑은 독자가 듣기 좋은 소리인지 아닌지가 판단의 전부였다고 해도 큰 과장은 아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논조가 등장할 때마다 자본과 권력의 입김으로부터 매체를 보호하겠다던 청취자 권력은 후원 중지, 쇼핑몰 불매를 통해 매체를 길들였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대안미디어들에 의해 탄생한 음모론, 과도한 편향은 이런 구조 속에서 나왔다.

 

베트남과 이란 거리에서 도대체 혁명이란 무엇인가' 끝없이 자문하며 길을 떠나고 머물기를 반복했다. 단지 20년이란 시간이 그들을 변하게 했던 걸까?

 

지금도 경천동지할 그 무엇이 있다고는 하지만, 숨겨진 진실이란 그리 많이 존재하지도 않거니와 설사 드물게 있다고 해도 그것들은 우리가 아는 고정관념을 깨면서 등장하기에 항상 불편함을 동반한다. 내가 듣고 싶어 하는, 정치적으로 편안한 이야기에 진실의 무게가 넉넉할 리는 없다.

전명윤 | 아시아 역사문화 탐구자 한겨레 22.05.26

 

윤석열 시대에 살아남기, 어떤 전략을 취할 것인가

새 정부가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공약 후퇴를 반복한다면, 이미 촛불혁명을 이룬 경험이 있는 국민들이 양극화 심화와 심각한 불공정을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인사를 통해 윤석열 정부는 검찰과 기획재정부의 공동 정권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대통령이 검찰에 평생 몸담았기 때문에 같이 일했던 분들이 검찰뿐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이겠지만, 검찰 업무와 상관없는 자리도 검찰 출신들을 대거 임용했다. 이제는 인사 검증도 검찰이 대거 포진하고 있는 법무부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앞으로 정부 부처의 공직 기강은 일사불란해지고, 대통령 지시에 반발하는 일은 공직사회에서는 없어질 것이다.

 

기재부의 약진도 눈에 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임명 등 경제 관련 부처뿐 아니라, 대통령비서실장으로 기재부 출신이 임용되고, 정부의 중요 보직에 기재부 출신들이 광범위하게 배치되었다. 이러한 인사는 그동안 기재부가 가져온 재정 건전화민간 중심이라는 정책 방침이 국정 전반에 반영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 방향을 전망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표가 있다. 인수위에서 선정한 110대 국정과제를 추진하는 데 소요되는 신규 재정이 209조원이라고 한다. 5년 동안 매년 평균 40조원 정도만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2023년 예산은 올해 본예산 6077000억원에 정부가 2021~2025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제시한 연평균 총지출 증가율 전망치 5.5%를 단순 반영하면 약 640조원이 넘어, 전년 대비 33조원이 증가한다. , 윤석열 정부에서는 재정의 자연증가 범위 내에서만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재정준칙을 제정하여, 국가부채를 줄이고 재정 건전화를 달성하는 것을 인수위 국정과제의 하나로 발표했다. 이런 재정계획에서는 예산이 들어가는 대부분의 신규 공약 사업들은 시행이 불가능하게 된다. 병사 월급 200만원 당장 시행 등의 예산이 수반되는 공약이 모두 후퇴할 수밖에 없다.

 

인수위가 기재부와 협의한 내년도 예산편성 지침은, ‘코로나 지출을 끝내고, 3년 전으로 되돌리는 것과 집행 부진 사업 등을 삭감하여 지출을 10~50% 줄여나가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고용유지지원금, 방역 지원사업, 소상공인 긴급금융지원 등과 관련된 지출이 모두 삭감될 터이다. 그나마 유지하던 공공부문 일자리도 줄어들고 서민들의 가계부채는 악성 채무로 전환되지 않을지 우려된다.

 

반면 감세정책은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국회를 통과하지 않아도 되는 시행령을 개정하여, 취임식 당일부터 다주택자에게 부과되는 82.5% 양도세율을 45% 수준으로 낮추었다. 다주택 소유자가 20억원 차익을 남기고 주택을 매매한 경우, 4억원 이상의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 주식양도소득세는 아예 폐지하겠다는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시행한 부자감세 정책의 후유증은 심각했다. 국회 예산정책처 계산으로도 최소 87조원 이상의 세수 감소를 초래했는데, 다시 그와 같은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재정 자연증가 범위 내에서만 일하겠다는 것인가

국민의힘 후보들의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전망도 밝지 않다. 새 정부가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공약 후퇴를 반복한다면, 이미 촛불혁명을 이룬 경험이 있는 국민들이 양극화 심화와 심각한 불공정을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가계부채에 시달리는 서민들, 복지 축소로 그동안 받던 혜택조차 빼앗긴 국민들, 일자리를 잃은 시민들은 스스로 살길을 찾아 나서게 되고, 윤석열 시대의 살아남기 전략으로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 현 상태대로라면 앞으로 나라가 시끄러워지리라 예상된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도 폐지되어, 이제 광화문광장이 다시 붐빌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희생이 너무 크지 않기를 바라야 하는 상황이 올 것 같아 걱정이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 시사인 2022.05.29.

 

사회적농업은 아름다운 농촌공동체운동

한국은 GDP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용인 SOCX11.1%OECD 국가 중 최하위로 알려져 있다.

 

우리사회의 위협요인인 고령화·실직·보건·장애 등 각종 사회적위험에 대한 정부의 사회정책 지출 종합지표라 할 수 있는 이 지표는 그나마 박근혜정부(10.2%)에 비해 상당히 상승했지만 OECD평균인 20.1%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폐해인 불평등과 양극화에 더하여 고령화와 저출생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농업·농촌에 대안으로 지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운동이 마을공동체 운동인데, 농업활동을 중심으로 두고 시민의 자발성과 연대성에 기반한 공동체활동, 그리고 그것을 통한 관계 중심 마을 안전망을 만들어 내자는 농촌공동체 운동의 일환이 사회적농업이라고 본다.

 

2017년부터 농식품부가 운영하고 있는 사회적농업 활성화 지원사업은 농업활동을 통해 국민의 정신건강을 증진하고,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돌봄·교육·고용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농업의 확산을 도모한다. 사회적농업을 통해 사회적 약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증진 및 사회적 역할수행을 돕고, 지역의 다양한 주체 간에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농촌공동체를 활성화하도록 유도한다라고 고지하고 있다.

 

우리 조합(함께마을교육사회적협동조합)은 올해 정부 사회적농업 지역서비스공동체형사업에 응모하여 사회적농업과 지역돌봄네트워크를 준비하고 있는데, 이 사업은 그간 우리 조합원들이 마을주민들과 하고 싶었던 다양한 것들을 즐겁게 펼쳐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귀농한 농부조합원은 자신의 열두 다랭이밭을 공유농장으로 내놓겠다 하였고 이곳에서 함께 퍼머컬쳐와 토종종자 증식을 하겠다는 이가 힘을 보탰다.

 

다랭이 생태공유텃밭에 장애인과 아이들, 농촌유학생 가족, 할매들이 함께 농사지어 참기름도 짜고 과일·채소도 가꿔서 공유냉장고도 채우고 농부장터도 열자고 하였고, 직접 키운 앉은키밀로 통밀빵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 마을빵집을 열겠다는 조합원도 있었다.

 

농장에서 재배한 작물은 동네 건강한 밥집에 납품하여 수익도 올리고, 반찬도 만들어 식사 마련이 어려운 분들께 반찬 나눔도 하자고 제안하였는데, 4월부터 죽곡면 주민자치회 죽곡마을119와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면사무소 복지팀이 연계하여 죽곡면 반찬나눔을 바로 실행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하였다.

 

장애인들과 노인들도 참여하는 마을밴드를 만들어 마을음악회를 진행하겠다는 분, 찾아가는 마을목공팀을 꾸려 생활불편을 해소해주겠다는 목수조합원, 생태환경과 생태감수성을 지키는 걷는독서를 운영하고 싶다는 분, 코디네이터가 되어 죽곡면 복지지도를 완성해보겠다는 주민자치활동가, 치매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해보겠다는 분, 그리고 이 모든 활동들을 사진으로 담는 어르신사진교실을 꾸려보겠다는 의견 등이 나왔다.

 

어느 것 하나도 허투루 놓치기 아까운 프로젝트이고 이곳엔 서로 살피고 함께 행복하자는 조합원들의 지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삼태마을공동체와 강빛마을이 다랭이생태공유농장을 연계해서 운영하고, 마을학교와 학교가 함께 정규수업으로 진행하는 생태텃밭정원과도 연결하여 마을교육과정을 만들 것이다.

 

사회적기업인 꽃두레협동조합과 죽곡면 농부들, 예술가들이 협력하여 농부장터를 꾸려내고, 오감만족체험관과 귀농인들을 연계하여 찾아가는 마을목공을 운영하게 될 것이다.

 

마을빵집은 한울고 해봄센터의 조리실을 활용하여 빵을 만들고, 죽곡면 지역사회보장협의회·죽곡마을119와 연계하여 반찬나눔과 죽곡마을 복지지도를 운영할 것이고, 주민자치회 문화분과, 죽곡초, 대황강아지매 라인댄스팀이 협력하여 마을밴드와 찾아가는 마을음악회를 꾸려내기로 하였다.

 

연대와 협력의 관계망을 형성하여 돌봄과 교육을 지원하고 면민의 자발성을 통해 농촌공동체를 복원하는 죽곡면 사회적농업을 응원하며 지켜봐 주길 바란다.

박진숙(전남 곡성함께마을교육사회적협동조합 한국농정신문 2022.05.29.

 

종말의 시대에 살면서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변화하는 세상은 과학의 발전과 소득의 증가로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이전보다는 행복하고 안락하게 살 것이라 믿고 싶다.

 

그러나 그 정반대로 가고 있는 현실이 걱정스럽다. 급속한 과학의 발전에 맞추어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따라가지 못한다는 느낌이 든다. 밀레니움시대에 들어 선지도 이십년이 지나버렸는데 세상이 그때보다 고르게 나아졌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세계 곳곳에서 분쟁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으며 독재와 부패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항쟁에서 많은 무고한 희생자들이 속출한다. 지역 전쟁에서 양국의 사람들이 희생되기도 한다. 이 와중에 무력을 과시하며 주변국을 겁박하는 나라도 있다. 인간의 세상에서 평화로운 시간은 사치인 것 같다. 이외에도 지구 곳곳에 물과 식량이 부족하여 고통을 겪고 있으며 지진이나 자연재해로 고통을 받는 나라들도 많다. 인간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기반이 되는 두 가지 필수요소인 자연과 인간사이의 일과 인간끼리의 일 모두가 요동을 치고 있다.

 

엄밀하게 본다면 자연은 원래 스스로 변해가는 것이기에 인간사회가 적응하면서 사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오로지 인간의 행위만 조정이 가능한데 그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즉 자연과 인간사이의 일에서 성공적이지 못한 결과들이 산출되고 있다. 최근 자연의 급격한 변화는 인간이 초래한 것이다. 지구전체 오염 산림파괴 등과 대규모 가축사육 자동차배기가스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기후변화가 일어나 지구 곳곳에서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그 피해는 점점 더 커지게 될 것이다. 인간사회의 문명 활동으로 누적된 결과가 결국 인류를 종말로 이끌어가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의 종말적 경고가 구체적 사실로 나타나고 있다. 숲의 종말 오랑우탄의 종말 벌의 종말 생선의 종말 산호의 종말 등등 종말의 시대에 돌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후변화를 늦추기 위한 화석에너지 사용비율의 조정과 태양광 에너지 사용은 한편으로 또 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다. 바다의 수온은 상승하여 지역어종이 사라지고 먼 바다의 자원 생태계는 대규모 선단의 남획과 선단 폐기물의 오염으로 파손되어가고 있다.

 

또 하나 인간끼리의 일은 실패에 가깝다. 모여 사는데 필요한 핵심요소들이 사라지고 있다. 평화의 종말 도덕의 종말 협동의 종말 등이다. 오히려 종말을 붙여 사라지게 해야 할 것들은 기승을 부린다. 전쟁 핵 바이러스 테러 독재 겁박 오염 등이다. 종국적으로 세상의 종말을 볼 수도 있다. 지구 공동체이므로 우리나라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나라인구의 감소이다.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입장에서 보면 인구가 감소되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전 인류차원이고 국가의 문제는 다르다. 급격한 인구의 감소는 당장 지탱하고 있는 사회구조의 모든 시스템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온다. 국가의 안보 문제도 심각하다. 인구감소의 원인에는 결혼의 종말이라 부를 수 있는 혼인회피 현상에 있다. 사회가 불안정하면 혼인건수도 줄어든다. 결혼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제도 전반에 문제가 없는지 검토하고 획기적이고 참신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결혼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문제로 국가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단지 복지차원의 지원만 가지고 해결할 수 없다. 경제지원뿐만 아니라 복잡한 사회문화 제도의 개선과 법적인 뒷받침이 요구된다. 결혼제도의 새로운 개념 정립도 필요하다. 많은 부처가 나서야 되는 종합적인 문제이다.

 

이미 인구감소의 문제를 겪고 이를 해결한 나라들이 있으니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결혼의 종말사태는 신생아의 출생이 감소하여 아이들이 귀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지금과 같이 혼란한 국제사회에서 나라인구의 급격한 감소는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국가의 존망에도 문제가 된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문제만 요란스럽게 제기하고 대책은 나중으로 미룰 일이 아니다.

 

인구가 줄어들면 모든 곳이 덜 붐비고 교통도 원활하고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면서 평화스러운 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믿는다. 단지 지역의 농촌을 생각해 보는 것으로도 쉽게 이해가 가능하다. 아이들이 없고 젊은이들이 빠져 나간 시골의 풍경은 목가적인지 돌아보면 실상이 파악된다. 빈집이 늘어나 폐허가 되어가고 경작지는 휴경상태이고 상가는 문을 닫고 학교들도 폐교상태로 남아있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없으면 나라가 힘을 잃고 무기력해진다. 모든 기능이 축소되어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힘이 빠져 무기력하게 되는 나라는 쉽게 무너진다. 대한민국이 종말국가 리스트에 오르기 전에 미리 대처하고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민 모두가 걱정하고 하나로 힘을 모을 때 종말의 단계를 벗어날 수 있다.

김선환 시인 동양일보 2022.05.29

 

 

상간녀위자료소송은 전문 변호인의 도움이 필수

사람들은 불륜이 사회적으로도 마땅히 지탄의 대상이 되는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번 관계를 맺고 나면 쉽게 끊어내지 못하고 점차 그 관계가 더욱 깊어지고, 반복된다는 것이 불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2015년 우리나라에서 간통죄가 폐지되고 난 이후에는 부정한 행위를 저지른다고 하더라도 처벌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절대적인 오해라고 할 수 있다. 배우자를 두고 다른 사람과 부정한 행위를 저지르는 것은 엄연히 민법상 이혼 사유에 해당하며 위자료 청구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는데 상간녀 소송의 법적 근거는 부부관계에 있는 사람과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에 대해 그 책임을 묻는 것에 있다.

 

,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성관계까지는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제3자와 연인관계로 지낸 사실이 있다면 이를 부정행위로 규정지으며 민사소송까지도 진행할 수 있는 불법행위에 속한다.

 

2015년 간통죄 폐지가 결정되며 상간자소송을 위해 변호사사무실을 찾는 사람들은 배우자의 외도 이외에도 상간자의 반성 없는 태도에 더욱 울분을 터트리며 변호사와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상간 소송은 이제 민사소송의 범위 내에서만 가능해서 법률사무소를 통해 상간자소송(상간남, 상간녀) 필요한 부정행위의 증거를 잡기 위해 법률상담을 받는 경우가 많다.

 

SNS 내용 또는 카카오톡 대화, 숙박업소 사용내역, 블랙박스 영상파일, 데이트 사진 등을 수집해 상대방을 특정 후 이름이나 집 주소, 직장 주소 등을 확보해 변호사를 통해 소장을 송달할 수 있다.

 

배우자의 외도가 의심되는 상황이라도 확실한 증거가 없이는 소송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 힘들다. 감정을 자제하고 변호사 선임을 통해 이혼 상담을 진행해 이혼소송과 재산분할, 양육권 및 양육비 소송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사 변호사를 통해 수집한 증거자료가 사실관계 입증에 도움이 되는지, 객관적으로 활용 가능한지 등을 확인하고 위자료 금액 청구 진행 등 손해배상에 대해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야 한다. 조정이혼에서도 배우자의 상간 사실이 있으면 여성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같은 증거에서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으므로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전문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어야 한다.

강은실 창원이혼전문변호사 제주교통복지신문 22.05.30

 

안보 제일주의에 길 잃은 이상주의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한다. 두 나라의 가입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고수해온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각에는 대한민국도 중립을 선언하자는 주장이 있었다. 중국과 일본,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작은 나라로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중립국으로 남으면 전쟁도 피해 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소국으로 열강 어디에도 끼어들지 않고 누구 편도 들지 않는 중립은 실리적이고 편리한 개념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 국가의 중립은 선언만으로 이루어지는 단순한 일이 아니다. 중립의 지위가 보이지 않는 갑옷처럼 전쟁을 막아주지도 않는다. 인간관계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하물며 얽히고설킨 국가 간 역학과 경제적 의존도를 떠나 중립을 선언하는 것이 어찌 쉬울까?

 

중립은 쉽게 말해 스스로 왕따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무리에서 힘이 세고 싸움 잘하는 아이가 나 건들지 마라고 하는 것과 약한 아이가 하는 말은 무게가 다르다. ‘나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겠다라는 말을 강자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약자가 그렇게 말하면 당장 주변에서 너 누구 편이냐?”며 추궁할 것이다. 국제 관계에서 중립이라는 것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동시에 내 편도 없다는 뜻이니 중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힘이 세든지, 주변 모두가 중립을 허락하든지 둘 중 하나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각각의 예다. 스웨덴은 19세기 나폴레옹 전쟁에서 영토의 일부를 잃은 이후 중립을 이어왔다. 스웨덴은 북유럽 안에서는 강국이지만 유럽 전체로 확대해 보면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데다 척박한 땅과 기후 때문에 주변 강대국의 관심에 비켜 있었다. 그 덕에 중립을 지키기가 비교적 수월했다. 각종 분쟁에는 군사 개입 대신 인도적 지원만 해왔다. 1950년 한국 전쟁 당시에도 의료지원단만 보냈다.

 

1960년대 올로프 팔메가 스웨덴 정치의 중심에 등장하면서부터 중립의 개념이 달라졌다. 스웨덴은 위기 상황에 침묵을 지키는 것이 아닌 상황에 적극 개입해 약자와 연대하는 적극적 중립 외교를 펼치기 시작했다. ‘힘없이는 중립 없다는 신념으로 군사력 증대에도 힘썼다. 스웨덴식 중립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지만 인류애의 관점으로 할 말은 하며 열강에 대응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도 원칙적 중립을 견지하는 스위스식 기계적 중립과는 다르다. 지금도 스웨덴은 국제 외교 무대에서 각종 분쟁 중재에 앞장서고 있으며 이는 스웨덴의 자랑이기도 하다. 환경, 인권 등의 분야에 있어 스웨덴은 국가의 크기보다 훨씬 큰 발언권을 갖는다. 한때 스웨덴을 두고 도덕 강대국이라고까지 칭할 정도였다.

 

핀란드는 1939년 소비에트 연방과의 전쟁으로 영토를 잃고 난 후 중립을 견지했다. 여기에는 핀란드의 의지라기보다 소련의 의지가 더 크게 반영됐다. 미국이 나토를 통해 유럽 안에 동맹을 늘리며 숨통을 죄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은 핀란드를 일종의 완충지로 두고 싶어 했다. 핀란드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른 이후라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지 않는 조건으로 중립의 지위를 유지했다.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이래 해법의 하나로 핀란드화가 등장했다. 국제정치학에서 핀란드화란 약소국이 강대국의 눈치를 보면서 종속적 자세로 주권을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1948년 소련과 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을 맺은 핀란드는 자국의 이익을 양보하며 러시아의 영향 아래 머물렀다. 꼭 비판적으로 볼 수만은 없는 것이 핀란드화는 초강대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작은 국가의 생존전략이기 때문이다.

 

적극적 중립을 펼쳐온 사민당 정권이 오랜 전통을 폐기하고 나토 가입을 선언한 것은, 핀란드가 러시아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나토에 가입하는 것은 그만큼 러시아에 대한 불안이 크다는 방증이다. 핀란드는 과거 소련과 두 차례 전쟁을 겪으며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 생존자들이 지금도 살아 있으니 러시아에 대한 두려움이 나토 가입으로 이어진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있다.

 

스웨덴의 결정은 다른 의미에서 시사점이 있다. ‘중립으로 상징되는 사민당의 노선 즉 당의 정체성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지켜야 하는 무언가가 아니다. 스웨덴은 과거 자유시장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두 가치를 절충한 사민주의를 펼쳤다. 수정주의니 개량주의니 하는 외부의 비판에 휘둘리지 않고 이상과 실리를 동시에 추구했다. 민주주의는 시대에 따라 진화한다. 야만의 시대에 안보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고, 이상주의는 길을 잃었다.

하수정 북유럽연구소 소장 경향 2022.05.30.

 

윤 대통령의 순발력과 철학의 빈곤

미국 대통령이 옆에 서 있는 정상외교 무대에서 민망하긴 했나 보다. ·미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국 측 기자로부터 내각의 성비 불균형을 지적하는 질문을 받았으니 말이다. ‘남성 편중인사 지적에 윤석열 대통령은 장관을 예로 들면 그 직전 위치까지 여성이 많이 올라오지 못했다. 기회를 더 적극적으로 보장할 생각이라고 했다. 사흘 뒤 국회의장단 접견 자리에서는 제가 정치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시야가 좁았다공직 인사에서 여성에게 과감한 기회를 부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거나, ‘능력주의를 표방하며 여성 할당이나 안배를 하지 않겠다고 했던 기존 입장을 생각하면 긍정적인 변화다. 윤 대통령은 이틀 뒤 세 명의 장차관급 인사를 단행하며 모두 여성을 발탁했다. 오판을 인정하고 즉각 조치에 나선 점에는 박수를 보낸다

 

이번에 내정된 후보들은 공교롭게도 윤 대통령이 노동개혁과 함께 3대 개혁과제로 제시한 교육개혁과 연금개혁을 책임질 인사들이다. 교육·연금·노동개혁은 하나같이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갈등구조가 복잡한 현안이다.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과 미래세대의 삶을 좌우할 과제들이기도 하다. 문제는 인사에서도, 국정기조에서도 개혁의 방향성과 철학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국정과제 자료집을 보면 윤석열 정부는 교육 분야에서 소프트웨어(SW)와 인공지능(AI) 교육을 중시하고 있다. 100만 디지털 인재 양성, 디지털·AI 교육 강화, 대학 규제 완화 등이 담겼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이니 첨단 과학기술 강국을 지향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수십년간 교육의 영역에 누적된 구조적 문제들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교육 불평등이 갈수록 커지고, 사교육이 공교육을 압도하고, 대입 스펙을 위해 각종 편법·탈법이 만연한 상황에서 어떻게 교육격차를 줄이고, 대학입시의 공정성을 확보하며,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할지에 대한 비전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분야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한 박순애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를 새 교육수장 후보로 내세운 것은 현 정부가 말하는 교육개혁이 대체 뭘 의미하는 것인지 더욱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교육계 현안에 밝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100만 디지털 인재 양성에 부합하는 과학기술 전문가도 아닌 공공행정 전문가를 발탁한 것은 단지 교육분야를 비효율성을 제거할 행정 영역의 하나로 본 것이거나 여성이니까 지명한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연금개혁은 어떤가. 윤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나라 안팎의 위기와 도전은 미뤄놓은 개혁을 완성하지 않고서는 극복하기 어렵다며 연금개혁을 첫 번째로 꼽았다. 당연한 얘기다. 문재인 정부가 저출생 고령화를 내내 우려하면서도 연금개혁을 방치한 채 5년을 흘려버린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국민연금·기초연금·공무원연금·사학연금·사적연금 등으로 나눠진 연금제도의 구조를 개혁하고, 노후소득 보장성을 강화하면서도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에 비견되는 난제이지만 피할 수 없다. 그런데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의 국회의원 시절 발언이나 의정활동을 보면 이 같은 일을 맡길 적임자인지 의문이다. 상대진영을 향해 막말과 억지주장을 서슴지 않고 정치적 편향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사람이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고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 합의를 도출하는 일을 해낼 수 있을지 말이다.

 

노동개혁은 노동계가 우려하는 대로 노동시간 유연화와 규제 완화로 흘러가는 분위기다. 여전히 한국은 세계적인 장시간 노동 국가인데도 윤석열 정부는 선택적 근로시간제 확대를 통해 주 52시간제의 취지를 허물려 한다. 시행한 지 4개월밖에 안 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선 규제이고 국가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경영계 의견에 동의한다며 개정을 예고했다. 매일 현장에선 노동자가 일하다가 깔려 죽고 떨어져 죽고 끼어 죽는데도 자본·경영의 논리를 앞세운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윤 대통령의 박순애·김승희 내정자 발탁에 순발력이 보통 아니다라고 했다. 평생 검사로 살다 정치에 발을 들인 지 9개월 만에 대권을 거머쥔 것이나 외신 기자의 지적을 받자마자 여성 발탁에 나선 것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개혁이 요구되는 장기 미해결 현안들을 철학도 없이 순발력만으로 풀 순 없다. 성차별 해소 역시 보여주기식으로만 접근해선 안 될 일이다.

이주영 정책사회부장 경향 2022.05.30.

 

블랙리스트 정당 대통령의 축전

일요일 꼭두새벽, 칸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과 배우 송강호 씨가 각각 헤어질 결심브로커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진부하지만 이런 생각을 했다. 마침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이틀째 사전투표를 마친 날이다. 한국은 정말 정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 그런데 그것이 참으로 요원하다는 생각. 아마도 다들 비슷한 생각과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영화를 비롯해 한국 사람들의 개인기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확대 발전하고 있는데 그 개인들의 역량을 담아낼 국가나 사회와 같은 체제의 용기(容器)는 매우 부실하다. 걱정은, 당연히, 그렇기 때문에, 과연 이런 분위기가 오래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몇 번을 얘기하지만 아베 이후 일본 영화는 큰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물론 하마구치 류스케 같은 신성(新星)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오죽했으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같은 명장(名匠)이 한국에 와서 한국영화를 찍겠는가. 일본 자국(自國) 내 침체된 분위기를 넘어서고 싶다는 욕망이 읽히는 부분이다. 고레에다는 한국 영화사와 브로커를 찍었고 그 주인공이 송강호이며 송강호가 이번에 남우주연상을 탄 것이다. 한국영화와 한국의 배우가 아시아형 영화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 데 있어 명실공히 대표 격 선수가 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중국도 시진핑 이후 도무지 영화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다. 러시아 역시 푸틴 독재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미국도 트럼프가 만든 암흑의 시대 때문에 여전히 타격을 많이 받고 있다. 그런 와중에 한국의 영화가 나름 승승장구하고 있는 데는 과거 5년의, ‘열린 사회가 만들어 놓은 성과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가나 공적 시스템과는 애초부터 따로 가려는, 그렇게 별개의 능력을 지닌, 국민 개개인의 노력 덕이기도 하다. 국민들 한 명 한 명의 이 같은 놀라운 성취에 대해 한국이라는 국가와 사회와 그리고 정치는 대체 무엇을 해왔는지, 어떤 백업을 해왔는지 이제 좀 반성하고 성찰할 일이다. 심지어 한때는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아티스트를 관리 통제하려 했고 그렇게 부당하고 끔찍했던 유산이 지금 다시 가동될 가능성이 높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잦아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박찬욱, 송강호 두 사람에게 축전을 보냈다는 소식이 다소 코미디처럼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지금의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든 정당이 과거에 박찬욱을 블랙리스트에 올린 정당이다. 이 정당의 대통령이 축전을 보내려면, 한 줄이라도 과거의 행태에 대해 유감의 뜻을 밝혔어야 옳았다. 그게 정무적으로 든 정치적으로 든 맞는 얘기다. 박찬욱은 대통령의 축전을 받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특유의 히죽, 하는 웃음을 흘리지 않았을까.

 

한국영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검열을 없애고 나서부터이다. 아주 오래된 얘기 같지만 얼마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영화에 대한 검열이 없어진 것은 1996년이고 그건 순전히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이 크다. 사회가 열리면, 영화가 좋아진다. 닫힌 사회에서 영화는 주눅이 든다. 위에서 얘기했던 트럼프와 아베, 푸틴과 시진핑을 생각하면 된다. 영화를 보면, 그 나라의 열린 사회와 적들이 누구인지 금방 알 수가 있다.

 

축전을 보내는 대통령을 두고 뭐라 할 생각은 없다. 축전보다는 극장에서 영화를 찾아보는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 영화에 대해 한 마디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대통령이면 좋겠다. 아마도 윤석열 대통령은 그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술과 풍류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그런데 그가 속한 정당은 그렇지가 않다. 그 문화적 이율배반을 그가 어떻게 헤쳐 나갈지가 개인적으로는 관심거리다.

 

박찬욱의 이번 영화 헤어질 결심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현기증의 유산을 이어받고 있다는 평가다. 킴 노박이 나오는 영화, 제임스 스튜어트가 종탑 계단을 오르면서 고소공포증 때문에 현기증을 일으키고 그 바람에 여인의 죽음을 막지 못한다는 내용의 영화 현기증. 정치부 기자가 마이크를 들이 대면 이런 얘기를 술술, 까지는 아니어도, 비록 더듬더듬거려도, 어느 정도는 할 줄 아는 대통령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언제 이런 대통령을 갖게 될 수 있을까. 박찬욱에게 보낸 축전에는 봉황이 그려져 있었을까. 청와대는 버렸는데 봉황은 바꾸지 않았을까. 칸에서의 수상 소식이 이상한 우울에 빠지게 하는 날이다. 역시 정치가 좋아야 영화가 신이 난다. 정치는 영화이고 영화는 정치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경기신문 2022.05.30.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한국 영화가 1980년대 암흑기를 거쳐 2000년대 세계 영화계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고인이 발판 구실을 했다. 국내 언론은 잇단 영화제 수상 이후 고인의 이름 앞에 국내 배우 최초로 월드 스타라는 수식을 붙이기 시작했다.”

 

지난 7일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난 배우 강수연을 두고 언론의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지금까지 펴낸 12권의 영화평론집을 새삼 펼쳐 보았다. ‘강수연 출연작을 보고 그의 연기에 대해 썼던 글들

을 찾아보며 고인을 영원히 기리고 싶어서였다.

1992년 발간한 첫 영화평론집 <우리영화 좀 봅시다>를 비롯해 <한국영화 씹어먹기>(1995) <한국영화 산책>(1996) <한국영화를 위함>(1999) 등을 펼쳐보니, 고인의 전성기 시절인 1990년대에 쓴 글들이 역시 많았다. 2004년 펴낸 방송평론집 <텔레비전 째려보기>에도 강수연에 대한 글이 있었다. 20011월 중순 전국의 일간지 연예면을 장식한 강수연 인터뷰 기사를 보고 쓴 것이었다. 영화 만을 고집해오던 그가 16년 만에 티브이 출연해 화제였는데 바로 사극 <여인천하>(SBS)였다.

 

1985년 내가 영화평을 쓰기 시작한 이래, 한 배우의 출연작 7편을 보고 그때마다 글을 쓴 것은 유일했다. 유독 그에 대한 글이 많아 스스로도 놀랐다. 그만큼 강수연이 왕성한 배우 활동을 했다는 증표였다. 평론들 가운데 몇 문장을 옮겨본다. ‘배우 강수연은 어느 작품에서나 발광하듯 돋보인다. 1987베니스영화제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씨받이>에서 옥녀는 배역에 철저히 맞아 떨어져 영화 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왕서방 앞에서 처음 옷을 벗을 때 흘리는 <감자>의 표정 연기는보다 씨받이에서보다 윗길로 보인다.’ ‘한편 강수연의 출연료는 12만 달러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개봉된 <베를린 리포트>에서도 1억 원을 현찰로 받았다고 하는데, 과연 그 값을 해냈는지 따져 보자. 내가 기억하기로 강수연의 연기가 일품인 영화는 손창민과 공연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이다.’ ‘<장미의 나날>에서 실망스러운 것은 이 영화의 중요한 부분인 재희(강수연)의 섹스신이 미스터리와 잘 맞아 떨어지지 않은 채 각각 놀고 있는 점이다. 한편 신인(김병세)과 해보인 강수연의 섹스 연기는 좀 서두른 것이 흠이었지만, 그런 대로 볼거리였다. 그가 출연한 어떤 영화보다도 잦은 섹스신에서 강수연의 표정·자세·분위기 등은 압권이었다.’ ‘<블랙잭>에서, 우선 강수연(장은영 역)의 섬세한 심리연기를 특기할만하다. 도입부에서 강한 거부감을 보인 끝에 오세근(최민수)과 키스하는 사실감을 보이더니 날 안믿는 거죠할 때나 왜 전화한 게 잘못이예요?” 물을 때의 백치미어린 표정 연기가 그것이다. 에로틱 스릴러가 아니라면 선뜻 이해하기 힘든 장은영의 그런 천사와 악마의 이중적 모습을 강수연이 과연 월드 스타답게 섬세한 심리연기로 커버해낸 것이다. 그런 모습은 결말의 당신을 사랑했어요. 하지만 날 믿지 말아요에서 절정을 이룬다.’

 

지난 57~8일 이틀 연속 고인의 빈소를 찾은 임권택 감독은 좋은 연기자를 만난 행운 덕분에 내 영화가 좀 더 빛날 수 있었다. 여러 모로 감사한 배우라며 말을 잇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맞는 말이지 싶다. 임 감독은 강수연에게 <씨받이>(1987),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로 각각 베니스영화제와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게해 준 거장이다. 그로부터 20년도 넘게 지난 2011년 강수연은 임 감독의 102번째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에 출연하는 의리를 보였다.

한편 영화 속 명대사로 회자되는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자그마치 1341만여명이 극장을 찾은 <베테랑>에서 황정민이 한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은 강수연이 술자리에서 처음 했고, 류승완 감독이 대사로 집어넣었단다.

 

우리에게 강수연은 없지만, 그가 남긴 명연기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부디 영면하시길!

전주/장세진 문화평론가 한겨레 2022-05-30

 

차라리 지역구를 없애자

욕속부달(欲速不達).’ 제자 자하가 한 고을 장관이 된 뒤 찾아와 정치하는 법을 묻자 공자가 준 답이다. ‘어떤 일이고 급하게 서두르면 도리어 이루지 못한다’는 뜻으로 정치를 제대로 하려면 서두르지 말라는 충고였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보고 있자니 이 말이 떠오른다. 대선 패배 후에는 자숙하며 와신상담하는 관행과 달리 이재명 전 경기지사가 패배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송영길의 지역구 인천 계양에 출마했다. 명분은 지방선거를 총지휘한다는 것이었지만, 여론조사들은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려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간첩조작 사건으로 징계받은 검사, 국정교과서 불법 추진으로 징계 대상이 된 자, 성추행 관련 인사조치자 등 이런 문제인물들만 모으기도 어려운 윤석열 정부의 인사 참사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헛발질과 혁신 부족으로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지지율 격차는 더 커지고 있다. 민주당의 텃밭으로 가볍게 승리할 것으로 예상됐던 인천 계양까지도 박빙을 유지하고 있어 잘못하다가는 이 후보가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한 읍소처럼 이 후보의 정치생명이 끝장날 위기에 처해 있다. 여권에서 비판하듯이, 대장동 사건 등으로 방탄신분이 절실하게 필요했는지 모르지만, 정도와 거리가 먼 조기 출마 결정은 공자가 경고한 욕속부달로 가고 있다는 우려가 든다.

 

이 후보가 고전을 하고 있는 이유는 조기 출마도 문제지만 경기도지사와 대선 후보까지 한 거물 정치인이 전혀 연고가 없는, 그것도 험지가 아닌 손쉬운 텃밭에 출마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후보가 자신의 출마가 철새 논쟁으로 비화하자 인천이 원래 외지인이 사는 곳이라고 말하는 등 논쟁을 키웠다. 주목할 것은 이 후보만이 아니라 재·보궐선거는 으레 지역에 연고가 있고 오랫동안 생활해온 토박이가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공직을 갖지 못한 거물 정치인들을 낙하산 공천해 재생시키는 재활원구실을 해왔다는 점이다.

 

이 후보를 철새라고 맹비난하고 있는 국민의힘의 안철수 후보도 지역구였던 노원병을 버리고 김은혜 의원의 경기도지사 출마로 보궐선거를 치르는 판교에서 출마했다. 물론 안 후보가 만든 안랩이 판교에 있지만 이는 다른 이야기다. 사실 그는 정치 입문에서부터 철새였다. 진보정당운동의 상징이었던 고 노회찬 의원이 삼성X파일 폭로로 의원직을 상실하자 노 의원의 노원병과 부산 영도 등에서 보궐선거가 실시됐는데 안 후보는 고향인 부산에 출마하라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전혀 연고가 없는 노원병에 출마해,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보궐선거에 거물 정치인들이 연고가 없는 지역구에 철새로 날아오는 예는 끝이 없다. 우리가 사표 등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제가 아니라 지역구제를 기본틀로 채택하고 있는 이유는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이 지역을 대표해 지역문제를 잘 풀라는 것이다. 철새 논쟁이 일어나자 이 후보는 유능론으로 대응했지만, 그가 아무리 유능해도 토박이보다 지역현안을 모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안과 명의가 내가 명의니 대장암 환자 치료에도 유능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철새 논쟁을 넘어 근본적으로 지역구제도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제 지방자치도 본격화되었으니, 국회의원은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대표를 넘어 대한민국과 국민, 아니면 계급계층, 젠더, 소수자 등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을 대표하도록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러면 철새 논쟁은 사라질 것이다. 스위스, 핀란드처럼 지역구를 없애고 전국 내지 호남, 영남 같은 권역별로 국회의원을 뽑는 순수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을 논의해야 한다. 흔히 선진국의 기준으로 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37개 나라 중 3분의 2가 넘는 25개 국가가 이 같은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의 지역구제는 많은 사표를 만들어내고 국민이 행사하는 한 표가 똑같이 한 표로 평가받는 표의 등가성을 해쳐서, 헌법재판소가 표의 가치 차이가 2배 이상 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일 제도를 반쯤 따라가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지만 입법정신을 짓밟은 거대양당의 위성정당 설립으로 이들을 찍은 표와 정의당 등 군소정당을 찍은 표의 가치 차이는 오히려 7.9배로 벌어져 이 후보가 대선에서 위성정당 금지 등 개혁을 약속했다. 지역구를 없애면 철새, 사표 등 이 모두가 해결된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경향 2022.05.31.

 

509인 무투표 당선자가 말해주는 것

지방선거가 내일로 다가왔다. 이미 약 20%의 유권자들이 지난주 사전투표에 참여하였으며, 내일 저녁이면 선거결과의 윤곽이 밝혀질 것이다. 이번 지방 선거가 한국 정치에 제기하는 문제점들은 이 지면을 통해 지난 두 달에 걸쳐 밝혔지만, 오늘은 이번 선거의 한 주요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무투표 당선자들이 말해주는 바에 대해 토론하고자 한다.

 

지방선거는 시·도지사에서부터 시··(), ·도 의회 및 구··군의회의 지역구 및 비례대표의원들에 더하여 교육감까지 총 7개의 선출직, 전국적으로는 4132명의 선출직을 뽑게 되는 대규모 동시선거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하면 등록 후보자만 7500명이 넘는 선거인 것이다. 출마자들의 면면을 기억하기조차 버거운 선거이며, 출마자들을 소개하는 두꺼운 선거공보물이 유권자에게 부담스러운 선거인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후보자 등록이 마감된 이후, 이 중 509명의 후보자가 무투표로 당선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4000여명을 선출하는데 12%를 상회하는 후보자들이 선거의 출발선에 서기 전에 이미 당선을 확정한 것이다. 선거별로 본다면 기초단체장 6, 교육감 1, 그리고 광역의회 약 100, 기초의회 약 400명이 무투표 당선을 확정하였다. 이러한 무투표 당선의 규모는 유례없는 것이며,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투표 당선은 전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특히 지역패권정당이라고까지 불리는 지역적으로 확고한 기반을 지니고 있는 정당들이 존재하는 우리 정치의 풍토에서, 때로는 해당 정당의 후보자에 대한 도전이 거의 무의미하다고 생각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단독출마가 비상식적인 현상은 아니다. 물론 예전 선거들을 생각한다면 제3당이나 무소속의 도전자들이 일당 우위 체제에 도전장을 내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으나, 이번 선거에서는 이러한 일당 우위체제에 대한 도전이 매우 심각할 정도로 후퇴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영호남 지역은 270여명의 무투표 당선자를 내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새롭게 나타난 흥미로운 현상 중의 하나는 2인 이상을 뽑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는 기초의회선거에서 서울·인천·경기 지역에서 180여석이 무투표로 결정되었다는 사실이다. 지역주의가 존재하지 않는 수도권, 적어도 지역패권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수도권에서 무투표 당선자들이 이렇게 많이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기초의회의원 선거에서 2인 선거구의 경우 각 정당이 복수공천(1-, 1-, 2-, 2-나 등의 기호를 부여하게 된다)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당이 1명씩만 사이좋게’(1-가와 2-가만) 공천을 했기 때문이다. 양당이 복수 후보를 공천하게 된다면 결과의 불확실성뿐 아니라 표가 나눠질 것을 예상한 여타 정당이나 무소속 후보자들의 출마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에, 양당이 확실한 1석씩을 확보하는 옵션을 선택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것을 우리는 정당 간의 암묵적 담합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509인에 대한 가장 중요한 통계는 아마 이들의 소속 정당일 것이다. 정당공천이 없는 1명의 교육감 후보자를 제외하고 나머지 508인은 모두 더불어민주당(282)이나 국민의힘(226) 소속 후보자들이다. 이들의 당선이 결정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우리가 투표를 행사하는 내일이 아니라 양대 정당이 이들을 공천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정말 심각한 질문은, 과연 선거라는 국민의 심판대를 거쳐 내일 당선을 확정하게 될 유투표 당선자들이라고 해서 그렇게 다를까 하는 물음이다. 내일이면 결정될 대다수의 당선자들이 결국 빨간당과 파란당 옆에 붙는 숫자를 부풀리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 또한 이미 확정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양당의 패권적 공존질서가 공고해지는 한국정치의 근본적 문제점에 도달하게 된다. 양당의 공천을 받지 않으면 유의미한 후보자조차 될 수 없는 구조, 사소한 의제나 지역 현안도 양당의 인증을 받지 못하면 말할 수조차 없는 구조. 509명의 무투표 당선자들은 그 자체로서 문제가 아니라 보다 더 큰 문제의 일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정말 지방선거를 치렀던 것일까. 대통령의 취임, 그리고 뒤이은 양당 대립이 선거전략 그 자체였던 곳에서, 지역의 구체적인 절망과 고민은 소거된 채, 7장의 투표용지에 양자선택의 그림자만이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지방정치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경향 2022.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