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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22.6.30~7.31 죽거나 말거나

by 이성근 2022. 8. 1.

멀기만 한 해외여행 일상회복 한겨레 : 2022.06.30.

식량부족 위기는 사실이 아니다 한국농어민신문 2022.07.01.

기후위기와 농업 한국농어민신문 2022.07.01.

기후위기시대 학교 텃밭의 가치와 방향

기후위기시대 학교텃밭의 가치와 방향 한국농어민신문 2021.06.11./ 7.30

대통령 부인과 옷의 정치 한윤정 전환연구자 경향 : 2022.07.02.

권리들의 전쟁터 경향 : 2022.07.02.

사회적 자본의 저장소 경향 : 2022.07.02.

국민'이라는 용어, 일본과 한국 외에 없다 프레시안 2022.07.02.

먹거리 언어', 이해하시나요 한국농어민신문 2018.04.02.

 

소리 없는 유언 한겨레 2022.7.3.

죽이고 죽지 않기 위한 평등 한겨레 2022.7.3.

경제 올드 보이와 환경친화적 경제 경향 : 2022.07.04

대중은 진보하는데 진보정당은 퇴보? 경향 : 2022.07.04

죽거나 말거나 경향 : 2022.07.04.

재벌특혜와 부자감세 기조 벗어나야 경향 : 2022.07.04.

노동자의 '자유'는 어디가고'92시간'에 임금은 '올리지마'? 프레시안 2022.07.04.

김건희, 이유 불문 잘못한다’ 56%이게 나라냐? 데일리안 2022.07.04.

0.73%보다 14.2%가 더 중요한 이유 경향 : 2022.07.05.

전국노동자대회의 경고매일노동뉴스 2022.07.05.

정녕 허수아비 경찰을 원하는가 경향 : 2022.07.07.

사람이 사람을 부른다 경향 : 2022.07.07.

기후위기에 기름 붓는 광고 경향 : 2022.07.08.

자전거와 사회문제경향 : 2022.07.09.

아베 총격 사진의 목적 프레시안 2022.07.10.

부자 감세' 더 해야 한다 한국경제 2022.07.10.

민생이 비상인데 재정은 긴축인가 한겨레 :2022-07-11

 

분노로 일렁이던 눈가에 이슬 한방울 한겨레 2022.07.28

양두구육윤석열 정권: 도이치 주가조작과 취임식 VIP 한겨레 2022-07-31

민주당이 부자의 지지를 얻는 방법

 

멀기만 한 해외여행 일상회복

코로나가 잦아들자 보는 사람마다 언제쯤 다시 해외 취재를 나갈 거냐고 묻는다. 얼마 전 책을 내는 출판사 편집장도 이제 슬슬 준비해야 하는 시점 아니냐며 연락이 왔다. 여행 가이드로 먹고살던 친구들도 재개되는 여행에 기대가 크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기대와 달리 조만간 해외여행이 예전처럼 활성화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우선 현재 항공기 운임체계는 가파르게 오른 유가로 인해 유류할증료가 기본운임보다 더 비싼 기형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예전처럼 항공편 수가 많지도 않다. 의무격리야 점점 풀리는 추세지만 많은 나라는 입국 때 코로나19 피시아르(PCR) 검사 음성확인서를 요구한다. 한국행 비행기를 탈 때도 피시아르 검사 음성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코로나 창궐기에 비해 손쉽게 피시아르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생각보다 비용도 비싸다. 즉 기본 여행비용이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

 

현지 사정도 녹록지 않다. 명동이 외국인 여행자들의 메카로 떠오르던 시절, 몇몇 식당 주인들은 아예 내국인 손님은 사절하고 외국인 여행자 전문 한식당을 만드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이 알 만한 온갖 종류의 한식, 생선회와 냉면과 떡볶이를 한 식당에서 취급하는, 한국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여러곳에서 펼쳐졌다. 외국도 비슷하다. 어디든 관광지는 현지인이 배제된, 외국인 여행자를 위해 설계된 식당들이 그득하다. 안타깝지만 아주 유명한 노포가 아니고서야 이런 백화점식 식당들이 미디어의 추천을 받는다. 원래의 맛을 모르니 대부분 그 나라가 초행인 외국인들에게는 그 식당이 그 식당이다.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이런 식당들조차 망했거나 업종 전환했거나, 로컬 식당으로 변했다. 우여곡절 끝에 여행을 떠났다 해도 우리가 여태까지 알고 있던 현지 인프라는 대부분 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를 겪으며 여행사 가이드들은 처음 몇달은 버티다가 결국에는 업종 전환했다. 여행사도 힘든 건 마찬가지라 그사이 가이드를 직고용하던 대형 여행사들도 현지 채용 형식의 간접고용으로 전환한 상태다. 안 그래도 열악했던 가이드들의 근로조건과 임금구조가 더 열악해졌다. 여행사를 통한 단체여행이란 순도 100%에 가까운 서비스업인데, 서비스 퀄리티()가 떨어질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유럽과 북미를 제외한 여행지에서 개별 여행자들은 이전과는 다른 여행제한지역이란 벽에 가로막힐 걱정을 해야 한다. 권위주의 국가들은 배낭 하나 둘러메고 산간 오지까지 찾아가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 풍경까지 찍어서 에스엔에스(SNS)에 올려대는 통제불능 개별 여행자들을 그리 반기지 않는다. 단체여행객이야 정해진 동선대로만 움직이고, 가이드들이 밖에 나가면 큰일 나는 것처럼 겁을 주는 탓에 호텔 앞에 있는 편의점도 스스로 못 가는 사람이 수두룩하니 위험할 리 없지만.

 

예전에 만난 중국 국가여유국(관광청) 한 인사가 중국을 방문하는 개별 여행자들을 스파이 아류쯤으로 취급해 꽤 격렬하게 논쟁했던 적이 있다. 인식 수준이 이렇다 보니 권위주의 국가들은 여행지역을 단계적으로 해제한다. 쉽게 말해 핵심 관광지만 개방하고, 외진 곳들은 아직은 코로나를 이유로 개방을 미루고 있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기, 한국에서는 대부분 식당이나 건물에 들어설 때마다 큐아르(QR)코드를 찍어야 했다. 평소 같으면 많은 이들이 과도한 개인정보 축적이자 시민 통제라며 문제를 제기했겠지만, 그런 사람은 별로 없었다. 특별한 상황이라는 이유로 시민의 권리는 축소됐고, 그에 반비례해 행정력은 비대해졌다.

 

이미 사람들은 미증유의 사태로 인해 강력해진 행정력에 순응하는 법을 터득했고 저항하는 법을 망각했다. 작게는 그저 외국인 여행자의 여행지 제한뿐이겠으나 이 또한 그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코로나 확진자가 다시 증가 추세라는 기사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권력을 가진 누군가에겐 참 좋은 시절이다.

전명윤 | 아시아 역사문화 탐구자 한겨레 : 2022.06.30.

 

 

식량부족 위기는 사실이 아니다

얼마 전 UN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몇 달 내에 세계 식량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식량가격이 30% 가까이 인상됐다는 뉴스까지 보도되고 있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에 전쟁까지 더해져 식량 부족으로 인한 영양부족과 대규모 기아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사실 이번 사태 이전부터 식량의 부족과 식량 위기를 숱하게 우려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류가 식량 부족에 직면한 것으로 이해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나는 이 부분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인류가 생산하는 식량의 총량이 79억 인류가 먹고도 남을 만큼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세계 인구가 먹고 생존할 식량의 절대량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빈부 격차와 분배 문제가 있다고 본다.

 

지구를 남반구와 북반구로 구분해서 봤을 때 북반구 국가 중에 배를 곯는 나라는 많지 않다. 미국·유럽·극동 아시아 등 대부분이 너무 많이 먹어서 문제다. 오히려 먹고 남은 음식물 처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북한을 비롯한 일부 국가를 빼면 대부분 배고픔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절대 빈곤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아가 심각한 사회 현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지나친 열량 섭취로 비만과 성인병 등을 더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물론 남반구의 아프리카 또는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 등에서 기아 문제가 심각한 것은 명백하다. 즉 이론상으로는 부자나라의 식량을 잘 배분하면 저개발 국가의 기아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는 물리적인 식량생산이 이뤄지고는 있다고 생각된다. 국제사회의 원만한 노력으로 부의 분배를 성공적으로 실천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지만,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렇다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기아와 가난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 인류가 먹고도 남을 만큼 식량이 생산된다고 주장하면 문제 인식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식량 생산량은 부족하지 않다고 하는 이유는 식량이 부족하다는 인식의 확대는 결국 과도한 식량생산 증대라는 잘못된 메시지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국제기구는 계속해서 식량 부족사태를 예견하고 있는데, 오히려 많은 나라들은 먹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걱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구촌은 식량 부족사태를 걱정하기에 앞서 식량의 고른 분배와 유통을 걱정하는 것이 더 우선돼야 한다.

 

국내 통계 자료를 보면 성인 비만 인구도 늘고 있고, 1인당 지방공급량 또는 1인당 하루 평균 칼로리 섭취량 등 영양지표 대부분이 계속해서 증가해왔다. 이는 비단 우리만의 현상이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처한 공통적인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국민 1인당 연간 육류 (돼지고기·소고기·닭고기 기준) 소비량은 대략 60kg 수준이다. 이를 하루치로 환산하면 160g 정도다. 고기 1인분 정도를 매일 먹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설사 지금보다 육류 섭취량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해도 영양학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미국은 더욱 심각한데, 미국 성인인구 절반이 과체중 내지는 비만일 정도로 너무 많이 먹고 있다. 지구촌 79억 명 인구 중 30억 명이 중국과 인도의 인구이고 유럽·미국 인구가 12억 명 정도인데 이들 나라도 절대 빈곤층이 상당 수 있지만 국제사회가 도와줄 필요는 없다. 아프리카 인구수가 12억 명 정도 되기 때문에 67억 인구가 12억 인구의 절대 기아를 해결할 수도 있는 산술적 계산이 나온다. , 현재까지 상황을 정확히 표현하면 식량의 절대 부족이 아니라 풍요로운 식량의 부족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은지 모른다.

 

뉴스를 보니 식량위기를 걱정하는 국제기구의 책임자들 상당수가 비만으로 보여지고, 심지어 기아 사태에 직면한 아프리카 국가의 대표들도 비만이나 과체중이 상당수 보인다. 또 하나 걱정스러운 것은 식량 부족 사태를 우려한 국제사회가 과도한 식량 증산을 가장 우선된 해결책으로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한다면 결국 지구의 한정된 자원을 더 많이 소비해야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식량 부족이라는 메시지가 불필요하게 국제 식량 가격 상승을 오히려 부추기는 측면이 있을까 우려된다. 필요한 물량이 충분히 유통되고 있음에도 공급 부족에 대한 불안 메시지는 제품의 가격을 상승시키는 원인을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가 식량 부족을 걱정하기 전에 식량의 고른 분배와 유통을 통해 남는 음식물을 줄이고, 과도한 음식 섭취를 줄여서 식량위기에 먼저 대처하자는 인식 개선이 우선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현재는 코로나19와 전쟁 같은 예기치 못한 사태로 국제 곡물가격이 폭등하고, 경기침체가 현실화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를 간과하고 식량은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미래에 발생될 수 있는 식량 위기를 미리 준비하자는 다양한 우려의 메시지를 이해 못한 것도 결코 아니다. 그러나 전쟁 같은 예측하기 힘든 변수를 빼면 적어도 선진국과 선행 개발도상국들은 식량 위기가 아니라 식량 배분의 위기라고 더 깊이 인식하는 것 또한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과거 인구 4000만 시절에 대한가족계획협회는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 했고, 정부가 나서서 산아제한 정책을 펼쳤다가 이제 와서 인구절벽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단순한 산술적 예측이 미래에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수차례 경험해 오지 않았던가. 향후 인구가 늘어날지 줄어들지 식량이 부족할지 남을지 예측하기 쉽지 않으므로 한쪽 방향으로만 극단적인 인식몰이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본다.

 

동물 복지와 인간 복지는 서로 상충될 수 있다. 자연을 보호하는 것은 경제 발전과 상충될 수 있고, 질병 방역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상충될 수 있다. 어느 한쪽의 양보 없이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식량 부족을 우려하기 전에 고른 분배와 적절한 활용을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다양한 각도로 문제를 보는 현명한 시각을 필요로 하는 요즘이다.

허선진 중앙대 교수 한국농어민신문 2022.07.01.

 

 

기후위기와 농업

이제나저제나 비가 오려나 기다렸는데, 이제는 하루걸러 하루 연일 비가 내린다. 간사한 마음에 이제는 비가 좀 띄엄띄엄 오기를 바란다. 이제는 사계절이 아니라 우기와 건기로 나뉘고 있나 보다 말한다.

 

때를 맞춰 심은 콩이 연일 내리는 비에 녹아 싹을 틔우지 못했다. 또 때맞춰 심은 감자는 한창 자라야 할 동안에는 가뭄 속에 있었고, 영글어야 할 때는 빗속에 있다. 올해 감자는 예년보다 늦게 심었다.

 

늦게 심은 13종의 감자들은 한창 물이 필요한 시기에 비를 만났다. 흰색, 연분홍색, 짙은 보라색 각각의 꽃을 피운다. 다들 감자를 캐는 때인데 내 밭은 이제야 감자가 들고 있다.

 

긴 가뭄 뒤에 쏟아져 내리는 비가 반복되니 밭의 두둑은 더 높이고 유기물을 덮는다. 아주 옅게라도 낙엽과 왕겨를 덮은 두둑은 긴 가뭄에도 흙 속이 제법 촉촉했다. 달라지는 기후에서 할 수 있는 대비는 밭마다 작은 기후를 만드는 일이다.

 

유독 가물었던 해에는 수미감자가 들지 않았지만, 논감자를 비롯한 토종 감자들은 많이 들었다. 자주 비가 내린 해에는 논감자는 드는 량이 적었지만 수미와 두백 같은 개량종 감자가 잘 들었었다. 더디고 불편하더라도 기어이 벼 4, 감자 13, 고추 3종을 섞어 짓는 이유다.

 

다양성이 더욱 중요한 때가 온 것이다. 다양한 작물을 기르면 외부에서 들여와야 할 것들이 줄어든다. 동시에 다양한 품종을 심으면 예기치 못한 기후에도 거둘 것이 있다. 지속 가능하게 먹고 살기 위해서 다양성은 이제 선택을 넘어 필수에 가깝다.

 

자연이 부려주는 마법에 숟가락을 얹어 얻어먹는 게 농부의 일이다. 농사를 짓는 일은 귀 기울여 그들이 말해주는 때를 아는 것이다. 그들은 들릴 듯 말 듯 소곤거릴 때가 많다. 그러니 눈과 귀, 코와 손끝을 총동원해 듣고 느껴야 한다.

 

듬성듬성 산에 붉은 산벚나무가 피면 볍씨를 모판에 부어야 할 때다. 그 산의 색, 그 산벚나무의 색에 따라서도 올해 물을 어찌 준비해야 할지 가늠한다. 들판에 조팝나무가 피면 모내기를 하는 때가 되었다. 충분히 흙이 데워지는 때 오동나무 꽃이 연보라색 꽃을 피운다. 그 어느 작물이든 밭에 잘 자리 잡을 시간이다.

 

그러나 지난 3년간 진달래, 개나리, 조팝나무, 산수유, 목련이 함께 피었다. 밭에 나던 엉겅퀴들은 산 중턱으로 올라가 피었다. 귀청 떨어지게 빽! 소리쳐 말해준다. 들의 풀이, 논의 개구리가, 산에 핀 꽃들이 들려주던 이야기를 보고 들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할 줄 알던 그 일이 이제는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지구 온난화다. 기후위기다. 우리가 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우리 모두 계속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거대한 담론 혹은 나와는 먼 이야기가 아니다. 일부 직접 영향을 받는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계속된 가뭄과 지금 내리는 비가 나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아는 일이다. 꽃들이 소리 지르듯 피어나는 일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아는 일이다. 한쪽에서 가뭄으로 밤잠을 못 이루는 일이 나의 일임을 아는 것이다. 사회 도덕적 연대가 아니라 나의 삶이 지속하지 못할 위기를 인식하는 일이다.

 

번개가 치는 밤, 빗속을 걸어 논물을 본다. 번쩍이는 밤의 들판에서 덜덜 떨며 나는,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깨닫는다. 그렇게 밤낮 돌아보지 않으면 내 입에 밥 한 숟가락 들어올 수 없는 것을 알아간다. 어쩌면 기후위기는 스스로 만드는 밥 한 숟가락의 감각을 잃어버린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배이슬·전북 진안 한국농어민신문 2022.07.01.

 

기후위기시대 학교 텃밭의 가치와 방향

나를 담는 다양한 문장 안에서 두 번째로 많은 시간과 마음을 들이는 것이 바로 학교 텃밭 농사 선생님이다. 이든농장의 논, , 산만큼이나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이 바로 진안에 있는 장승초등학교와 마령초등학교의 텃밭이기 때문이다. 제 때에 모내기도 못 하고 동동거리면서도 매주 학교에 아이들과 농사지으러 다닌다. 아이들과 농사를 지을 때 즐겁기도 하고, 결국 농부가 된 중심에는 농사와 교육 두 축이 있기 때문이다. 공교육과 대안교육, 그 밖에 학교를 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조금은 다르게 교육을 받아온 내가 생각하는 교육의 본질은 자립이다. 학교를 만들고 다니고 교육을 하고 교육을 받는 것은 결국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먹고 살아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함이고, 스스로 살 수 있어야 비로소 더불어 사는 삶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립, 삶이란 무엇일까. 결국, 내가 먹는 것이 곧 나의 생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무엇을 어떻게 먹고 어떤 일을 하는지 선택하고 꾸려나가는 것이 자립이 아닐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우리가 무얼 어떻게 먹고 사는지, 그렇게 관념이 아닌 경험과 인지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잃어버리고 살고 있다. 지구상에서 스스로 을 만들며 살아가는 것은 식물뿐이다. 인간은 결국 무언가의 생명을 가지고 와서 자신의 생명을 이어나간다. 그렇게 먹고사는 꼴 즉, 생태가 어떤 모양으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는지 아는 일부터가 자립의 시작이다.

 

진열된 상품 고르듯 읽힐 고등교육 스펙이 쌓여도 반조리 식품이 아닌 온전한 밥 한 끼를 해 먹을 줄 모르는 어른으로 키워진다. 레토르트 호박죽은 데워먹을지언정 떡하니 주어진 호박으로는 호박죽을 끓일 줄 모르게 되어버렸다. 아욱을 보고 먹는 거냐?’며 묻던 또래를 기억한다. 농사와 음식은 인류 최초의 문화이자 삶의 풍요를 만들어내는 기반이다. 먹어보지 못한 음식 재료는 접하더라도 먹기 어렵다. 그렇게 밥상과 함께 삶이 단순해져 간다.

 

어쩌면 교육은 자립을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농업은 어떤가. 농민운동을 하시던 아버지 밑에서 늘 농민운동가를 듣고, 데모 때면 학교를 쉬고 현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농자천하지대본’, 농사가 모든 것의 근간이라는 것이었다. 동시에 반대편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말은 농사지어선 안 된다였다. 그리 귀한 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면서도 내 자식은 농사짓지 않길 바라는 것이다. (물론 아버지는 4남매 중 하나라도 농사짓길 바라셨으니 조금 다르다)

 

5살 때 농민운동 현장에서의 이야기와 농민으로 자리매김한 지금의 현장에서 토로하는 것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누군가는 목숨을 다해 바꿔내고자 했다. 하지만 여전히 농촌에서는 내 자식만은 이렇게 살게 하지 않겠다며 땀으로 벌어 가르친다. 농촌에 사는 이, 농사를 짓는 이는 어딘가 부족한 사람으로 취급당한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절대 부족하지 않았을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농업의 구조적 문제는 나아지지 않는다. 이는 의 가치가 사회 보편적 가치로 함께 이야기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과 농은 서로를 살리는 열쇠가 되리라 생각했다. 교육에서 잃어버린 자립은 오늘 내가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일상에서 배우게 하고, 농의 가치를 만나고 나면 농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3년째 아이들과 학교의 작은 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농은 교과부터 스스로를 만나 가치관을 세우는 과정과 관점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넓은 품이다. 그러한 가치를 살리기 위해서는 몇 가지 방향을 세우고 나아가야 한다. 그 바탕은 어떻게 하면 지구와 함께 오래오래 살아갈 수 있을까이다. 이와 단절된 먹고사는 꼴은 그냥 살아가는 것부터가 지속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속가능성과 다양성이라는 핵심가치는 기후위기시대에 학교 텃밭을 새롭게 만나게 한다. 그런 가치를 담아 몇 가지 색깔을 가지고 나아간다.

 

첫 번째 씨앗농사를 짓는다. 씨앗에서 씨앗으로 돌아오는 온전한 식물의 한 살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삶과 지속가능한 먹을거리, 그 바탕이 되는 생물종다양성을 지키는 것이 씨앗농사이기 때문이다. 싸고 빠른 결과와 생산량을 중심에 두기보다는 조금 덜 먹더라도 씨앗을 받아 다음해 농사를 준비하고 씨앗을 지키고 나누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마트에 파는 상품이 아닌 생명으로서의 작물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처음 토마토 씨앗을 받던 날 한 친구가 단호히 말했다. ‘평생 토마토를 먹었는데 토마토는 씨앗이 없다. 토마토 씨앗을 받아 말리며 반짝이는 솜털을 보며 이게 토마토 씨앗일리 없다고도 했다. 그렇게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부터 벗어나 토마토와 다시 관계 맺기를 시작한다.

 

두 번째는 경운을 하지 않고, 풀을 키우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다. 지구와 함께 살아가는데 가장 용감하게 많은 일을 해내고 있는 것은 흙속의 다양성 즉 미생물들이고, 그들과 함께 우리를 살리고 있는 것이 풀이다. 풀을 잘 길러 이용하고 베어 눕히고 땅을 갈아엎지 않는 것으로 지속가능성에 한발자국 더 다가설 수 있다.

 

세 번째는 을 다르게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토마토와 28점무당벌레에게 배운 신비로움과 즐거움을 아이들과 나눈다. '힘들게 농촌에서 농사짓고 살지 않으려면 공부해라' 같은 맥락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농이 한 번도 즐거웠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농사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을 통해 일상에서 지구와 나의 삶, 그렇게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직접 경험하는 것을 그리며 농장 밖 학교에서도 농사를 짓는다.

 

기후위기시대 학교텃밭의 가치와 방향

감자가 풍년이다. 거름과 비료를 한 밭에서는 감자 하나가 1kg이나 된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 감자가 풍년이 된 것은 때 맞춰 조곤조곤 비가 온 덕이다. 반면 논감자(겉은 보라색에 눈이 많고 길쭉한 재래감자)는 학교도, 인근 지역의 농부도 씨앗만 겨우 건졌다고 한다. 게을러 풀 한복판에서 기른 내 밭은 논감자가 실하고 수미는 작았다.

 

작년에는 내내 가물어 수미나 두백 같은 개량종 감자가 영 부실했지만 울릉도 홍감자, 논감자, 자주감자는 바글바글 들었었다. 작년과 올해 뒤바뀐 감자생산량은 점점 더 국지적으로 변하고 있는 기후 때문이다.

 

비가 내리 오는 날들, 뜨거워도 너무 뜨겁다고 타박하게 되는 더위, 고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비가 때려 붓는 곳과 비 한 방울이 귀한 곳이 나뉜다. 그러니 어딘가에서 연구 결과가 이렇다느니, 시베리아가 불타고 있다느니 같은 이야기 너머로 농촌 현장에서 농업인들은 이미 매일 기후변화 한복판에서 조바심 내고 살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 앞으로 살아갈 아이들의 미래 환경은 지금과 다를 것이기에 환경교육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오늘을 사는 지금은 우리의 문제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미래의 환경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가장 직접적인 대안의 실천 즉, 지금 나의 삶의 전환 없이는 또 다른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다.

 

기후위기 시대 학교 텃밭은 일상으로 연결된 직접적인 대안의 실천이다. 농업기술을 가르치거나 노동의 고됨을 미리 일러주기 위한 게 아니다. 상추 한 잎, 토마토 한 알을 통해 다른 생명과의 연결을 직접 경험한다. 경험을 통해 일상으로 연결되는 즐거움, 신비함, 풍요로움을 만난다.

 

학교 텃밭 시간이 되면 1/3은 텃밭 작물들에 관심을 두지만 2/3는 지렁이와 흙장난에 더 관심을 가진다. 상추한포기 심다가도 ?! 개구리다!!!’ 하는 순간 어디? 어디? 무슨 개구리야?!’ 하고 상추는 관심 밖이 되곤 한다.

 

학교텃밭 활동 자체가 잃어버린 40년의 지혜를 연결하고 일깨우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굳이 성공과 실패라는 틀을 씌운다면 무엇이 성공이고 실패인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다. 학교텃밭에서 가득 자란 작물로 배불리 먹는 것, 아이들이 노동의 관점으로 농업의 기술을 익히는 것이 학교 텃밭의 성공일까? 벌레와의 전쟁, 잡초와의 전쟁으로 여름방학이 지나면 정글이 되어있는, 그래서 그 열매를 하나도 수확하지 못한 텃밭은 실패인가?

 

아무리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고 텃밭에서 배불리 먹었다고 한들 나의 생명이 무엇으로 연결되는지 내가 심은 상추 한포기와 달팽이, 개구리와 뱀 그렇게 관계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학교텃밭에서의 실패가 아닐까.

 

올 해 학교텃밭에는 약 7가지 감자를 심었다. 학교텃밭 별로 땅심, 볕들기 등 차이가 있었지만 하나같이 크기가 작은 감자는 적고, 논감자는 많이 들지 않았다. 감자꽃을 지킨 덕에 방울토마토 같은 감자열매도 적잖게 열렸다. 내년에는 씨감자가 아닌 감자 씨앗으로도 감자를 심을 것이다.

 

유치원 아이들의 텃밭기록에도 분홍, 빨강, 보라, 흰색의 다양한 감자 그림들이 등장한다. 7가지 감자를 심고 기르고 지키고 수확하고 먹어본 아이들에게 감자는 하얗다, 수미감자가 대명사처럼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감자를 만나면 무슨 감자에요?’ ‘어디에서 자랐을까?’ ‘어떻게 자랐을까?’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기후위기는 머나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오늘 나의 삶과 직접 맞닿아 있다. 기후위기 시대 학교텃밭의 가치는 그런 일상으로 지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먹고 사는 꼴을 경험할 수 있다. 7가지 감자를 통해 다양성이 곧 지속가능성임을 배운다. 왜 생물종의 다양성이 필요한지 왜 사라져가고 있는지를 감자를 통해 배운다.

 

한 두가지 감자만 심었다면 어느 해는 감자를 먹지 못했을 것이고, 여러 다른 감자를 심은 덕에 쓰임에 맞게 잘 먹는 것으로, 다름에서 오는 풍요로움을 함께 나누게 된다.

 

사실 기후위기 시대, 코로나 시대를 떠나 나는 오늘 무엇으로 살게 되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먹는 것이 곧 나임을. 머리가 아닌 경험으로 아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게 알아야 할 일이다. 잠시 그 연결을 잊고 살고 있을 뿐.

배이슬·전북 진안 한국농어민신문 2021.06.11./ 7.30

 

대통령 부인과 옷의 정치

나토 회담에서 버젓이대통령 부인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김건희 여사를 지켜보는 심정은 착잡했다. 대선운동 기간 동안 주가 조작, 논문 표절, 경력 위조 등의 범죄 피의자로 주목받게 되자 영부인이 아닌 대통령 배우자로서의 조용한 내조를 약속했지만, 그런 대국민 약속을 별다른 해명 없이 어기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 부인을 차례로 방문해 대통령 부인의 역할에 대한 조언을 들은 다음, 해외방문에 나서 활발한 문화외교를 펼치는 그의 주요한 이미지 메이킹 수단이 패션이라는 사실도 불편하다.

 

역대 대통령 부인 가운데 가장 젊고 맵시가 좋은 김건희 여사 패션은 늘 주목 대상이다. 여러 차례 겹쳐 입은 자줏빛 후드티와 인터넷 쇼핑몰에서 파는 하얀 슬리퍼에서 시작해 고가의 해외 명품 의상과 액세서리까지 자유롭고 세련된 이미지를 전파한다. 모든 언론이 그의 패션 아이템을 시시콜콜 보도하고, 급기야 박지원 전 국정원장까지 나서 영부인의 패션은 국격을 보여준다는 극찬과 함께, “하도 뭐라 하니까 주눅이 든 것 같다는 동정론까지 펼치는 마당이다. 그러는 사이, 50일이 넘도록 답변서가 오지 않는 경찰 심문조서가 보여주듯 법망은 차별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대통령 부인의 옷은 지난 정권과 새로 들어선 정권의 정치 전략으로 사용되면서 이미지 정치의 민낯을 보여준다. 석 달 전만 해도 김정숙 여사의 패션과 옷값 공방이 한창이었다. 그는 공식석상에서만 180여벌의 의상, 200여점의 장신구를 착용했다고 한다. 표범 문양 브로치의 진위까지 논란이 됐다. 워낙 화려한 스타일이라 더 두드러졌던 대통령 부인의 옷값을 대통령의 월급으로 냈는지,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청와대의 특수활동비로 냈는지가 내로남불논란의 핵심이었다.

 

이런 옷의 정치는 이제 구시대의 산물로 넘겨야 한다. 이는 여성을, 그것도 퍼스트레이디를 눈요기로 삼는다. 대통령 부인은 남편에 따라 아내의 지위가 결정되는 가부장제의 산물로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지만, 현실적으로 대통령 부부를 분리시키기 어렵다면 적절한 역할이 주어지는 일은 불가피하다. 대통령 부인이 갖는 대중성으로 인해 선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 부인은 옷이 아니라 활동으로 부각돼야 한다. 김건희 여사의 경우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높다. 늘 반려견과 함께 등장하는 대통령 부부의 모습으로부터 이번 정권에서 적어도 동물의 권리는 높아지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대통령 부인의 옷 자랑이 시대착오적인 또 다른 이유는 최고의 셀럽 모델로서 패션산업을 육성한다는 가치 또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모피코트가 부의 상징에서 몰상식의 표현으로 변한 것처럼 이제 수많은 옷을 사고 입고 버리는 게 자랑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연예인이라면 몰라도 대통령 부인은 정치적 올바름을 실천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젊은이들 가운데는 옷을 사지 않는 이들이 늘어난다. 내가 아는 20대 여성은 4년 전 미국에서 오리털 파카 한 벌을 폭탄세일로 1.5달러에 파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옷을 사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옷과 가격표에 숨어 있는 동물 학대, 개발도상국 여성노동자들의 착취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옛날에 산 옷, 주변에서 주는 옷, 엄마에게 물려받은 옷을 입는데도 그는 늘 멋지다.

 

패션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의 10%, 수질 오염의 20%를 차지한다.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 한 사람이 10년간 마시는 7000의 물이 필요하다. 유럽 귀족의 옷과 군복이 합쳐진 형태인 남성 양복은 화이트칼라 직업을 양산하던 산업시대의 산물이며 이에 보조를 맞춘 여성 의상도 마찬가지다. 우아한 옷으로 지위를 자랑하던 파워엘리트의 시대는 지나갔다. 계절마다 새 옷을 사기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천천히 고르고 오래 입는 게 기후시대의 패셔니스타이다.

 

최근 슬로패션 운동이 활발하다. 여성환경연대가 내놓은 슬로패션 가이드가장 지속 가능한 옷은 이미 옷장에 있는 옷이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세탁기 최소한으로 사용하기(합성섬유 1세탁 시 200만개의 미세플라스틱 발생), 옷 바꿔 입기(중고 거래)와 같이 입기(대여), 꼭 구입해야 한다면 천연섬유나 재활용섬유 그리고 공정무역 의류 선택하기 등을 권장한다.

 

한국 정치와 사회를 뒤흔드는 페미니즘의 물결에 비하면 대통령 부인의 이미지는 시대착오적이다. 화려한 옷 뒤에 숨을 필요 없다. 김건희 여사의 활동이 불가피하다면 오랜 시간 일했던 경험을 살려 혁신적 활동을 선보이면 좋겠다. 약속 파기에 대한 해명과 수사 협조도 요청 드린다.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면, 그 역시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활동을 보장받아야 한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경향 : 2022.07.02.

 

 

권리들의 전쟁터

연세대학교 학생 3명이 임금 인상과 인력 충원 등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석 달 가까이 집회를 하고 있는 청소·경비노동자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학습권이 침해되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 뉴스를 접하고 눈을 의심했다.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집회를 이어 가는 동안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방치하여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한 업체와 학교를 상대로 한 게 아니라 노동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고?

 

그 이유를 찬찬히 살펴봤다. 학교에서 소음을 내면서 시위하는 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며 추후에 장기적으로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그들이 청구한 금액은 638만원. 한 학기 등록금을 기준으로 주말을 제외하고 수업 일수를 나눠 피해 일자를 따져 산출하고, 정신적 손해배상 금액까지 더했다. 그 꼼꼼한 계산 내역을 보고 감탄하다가 새삼 궁금해졌다. 그렇게 피해액(?)을 산출하는 능력이 노동자들이 석 달 가까이 집회를 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파악하고 그 노동자의 권리를 누가 박탈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 왜 사용되지 못했을까?

 

소송을 건 학생들 개인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비단 그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가수 싸이가 여는 흠뻑쇼라는 이름의 콘서트에 물 300t이 뿌려진다고 하여 화제가 되었다. 배우 이엘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에 관한 비판적 견해를 밝히자 논란은 확산되었다. 연예인의 한 줄 글이 논란씩이나 된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지만, 그 비판이 싸이가 아닌 가뭄을 걱정하며 물을 아껴 쓰자고 말하는 이들을 향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내돈내산이 시대정신이고 모든 일에 소비자 마인드로 접근하는 게 익숙하니 가뭄이니 물을 아끼자는 말이 얼마나 불편하게 여겨졌을까? 내 돈으로 티켓 사서 즐기려는 권리와 자유가 부정되는 현실이 얼마나 불공정하게 여겨졌을까?

 

두 사건은 별개 같지만 연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권리가 개인화되고 시장의 영역에 흡수된 사회에서 노동자와 노동자의 권리 혹은 약자와 약자의 권리, 권리들이 충돌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권리를 위해 상대적으로 약한 개인들을 억누르고 배제하고 고립시키려는 발상이 사회적 발언권을 얻어 득세하고 있다. 타인과 약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나의 권리를 조정하거나, 권리를 함께보장받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일에 힘쓰기보다는, 오직 권리만 앞세우며 그것을 침해한다고 간주되는 존재들의 권리를 부정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우리가 누리는 권리는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배분되어야 할지, 타인의 권리와 내 권리가 충돌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따위의 질문은 사치일지 모른다.

 

노동자들이 왜 몇 개월 동안 집회를 지속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구조를 이해하는 사고력과 내가 참여한 콘서트가 가뭄 때문에 근심하는 이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음을 감지하는 감각이 길러지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권리는 오·남용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권리를 잘 누릴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박탈당한 채 쫓겨나는 이들을 위해 나의 권리를 어떻게사용할 것인가 질문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 아닐까?

오수경 자유기고가 경향 : 2022.07.02.

 

 

사회적 자본의 저장소

유대교 랍비인 나오미가 <아인슈타인과 랍비>라는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다. 70대 중반에 이른 외할아버지께 갑자기 우울증이 찾아왔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사람을 빤히 쳐다보기만 하실 뿐 아무 일에도 의욕을 보이질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일평생을 함께했고, 아들딸과 손자·손녀들로 대가족을 이루고 있었고, 사업 또한 번창했고, 건강 또한 좋았다. 우울증에 빠질 이유가 없다고 느낀 엄마가 외할아버지께 여쭈었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잠자코 계시던 외할아버지가 대답했다. “이제 아무도 없다!” 그리고 키비츠(kibbitz) 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에게 결핍된 키비츠란 무엇일까?

 

키비츠는 이디시어로 친구들과 격의 없이 지내는 모든 것을 두루 일컫는 단어이다. 몰려다니며, 농담하고, 수다를 떨고, 놀리고, 이야기하고, 마음의 짐을 풀어놓고, 귀 기울여 들어주고, 킬킬거리는 등의 일들 말이다. 하찮고 사소해 보이지만 키비츠의 시간은 무의미하지 않다. 오히려 목적지향적인 삶과 의미 추구의 무거움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할 때가 많다. 삶은 의미와 무의미, 당위와 현실, 경쟁과 협동, 역할과 노릇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격렬한 운동을 하거나 힘든 노동을 한 후에 몸에 쌓인 피로물질을 적절히 풀어내야 하듯이, 우리 정신에 알게 모르게 누적된 무거움을 풀어놓아야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

 

268명의 하버드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장기 연구 프로젝트인 그랜트 연구1938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80년 이상을 이어가고 있다. 실험 참가자들의 성격, 지성, 건강, 습관, 관계 등이 풍요로운 삶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연구이다. 30년 이상 그 연구를 이끈 베일런트 박사는 그랜트 연구 결과로 얻은 교훈이 뭐냐는 질문에 삶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이들과 맺는 관계라고 대답했다. 친밀한 관계가 돈이나 명예보다 중요하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자발없는 삶으로 하강하지 않도록 지켜주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쇠약해지는 속도를 늦추더라는 것이다.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을 맞아들일 여백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지 흉허물 없이 이웃을 맞아들이기도 했던 집은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 변했고, 모처럼 벗들을 만나도 설면하기 이를 데 없다. 직접 대면보다 익숙한 것은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한 간접적 만남이다. 그 공간에서는 상대방의 글에 좋아요’ ‘힘내요’ ‘슬퍼요등으로 공감을 표현할 수는 있지만, 그의 현실에 깊이 관여하지는 않는다. 안전한 거리가 확보되어 있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는 다른 이들의 필요에 응답할 때 주어지는 선물이다.

 

아브라함 헤셸은 우리가 절망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자신이 목적이 되는 게 아니라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통받는 타자들의 삶에 관여하기를 꺼리지 않을 때 우리 삶은 확장되는 동시에 상승한다. 상승이란 욕망 주변을 맴돌던 삶에서 벗어나 더 큰 존재의 지평 속에서 세상을 바라봄을 의미한다. 욕망이 삶의 중심이 될 때 우리는 고립을 면하기 어렵다. 부푼 욕망에는 타자를 위한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철학적 거리 두기가 아닌 고립은 타자에 대한 편견과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적대감에 사로잡히는 순간 세상은 전쟁터로 바뀐다.

 

낯선 이들과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의 필요에 응답할 때 자기 속으로 구부러진 마음은 비로소 바루어진다. 공동체에서 벗어나 홀로 자족하는 신앙인보다는 어떤 동기에서든 공동체 예배에 참여하는 무신론자가 망가진 세상을 고치고, 시련 속에 처한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활동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사람들을 보편적 신뢰의 장으로 초대함으로써 낯섦을 넘어 상호 소통하도록 할 때 종교는 사회적 자본의 저장소가 된다.

 

종교는 주류 담론에 대한 대항 담론으로서의 역할을 할 때 건강하다. 소유의 풍부함이 행복을 위한 유일한 길인 것처럼 우리를 현혹하는 시대정신에 맞서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일깨우지 않는다면 그 종교는 죽은 종교일 뿐이다. 이익 사회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만나 상호 이해를 도모하고, 함께 만들어갈 세상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고, 고립을 넘어 연대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때 삶이 든든해진다. 부조리와 허무에 대항할 힘이 생긴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경향 : 2022.07.02.

 

국민'이라는 용어, 일본과 한국 외에 없다

국민의힘이 집권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정치권에서 가장 애용되어왔던 국민이라는 말은 바야흐로 전성시대를 맞은 듯하다. 얼마 전 대통령집무실 명칭도 자칫 국민의집이라는 이름으로 될 뻔 했다. ‘국민이라는 말이 범람하는 사회이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 ‘국민이라는 용어는 본래 영어 nation의 번역어이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많은 용어와 마찬가지로 국민이라는 말 역시 근대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다만 국민이라는 용어는 근대에 만들어진 말은 아니고 원래 존재했던 한자어이다. , 한 나라()의 백성()이라는 의미로서 <주례(周禮)><좌전(左傳)> 등 고서에도 출현하고 있다.

 

일본 후쿠자와 유키치가 정착시킨 국민이라는 용어

처음 근대 일본에서 국민이라는 용어는 광범하게 사용된 것은 <국민지우(國民之友)>라는 잡지의 제목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1887년 창간된 이 잡지의 제목은 미국 잡지 <Nation>을 모방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 사회에 국민이라는 용어를 근본적으로 정착시킨 핵심적인 인물은 일본 근대화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근대화론의 선구자이자 김옥균 등 조선 개화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였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초기에 서양 민권사상을 받아들여 인민국민을 혼용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는 점차 국가구성원의 용어로서 권리의 측면이 강조되는 인민대신 국민을 채택함으로써 국가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고 명확하게 국권(國權)을 민권(民權)의 우위에 설정하게 된다. “一国帝王一家父母(일국의 제왕은 가족의 부모와 같다)”国民なり(국가는 국민의 껍데기이다)”라는 그의 글에서도 분명히 드러나듯, 그는 분명하게 국권론자로 전향하면서 일본의 국가주의적 제국주의와 보조를 맞추었다.

 

그리고 국권론의 전제 위에 규정되었던 이 국민의 개념은 일본 제국주의에서 신민(臣民)’과 사실상 동일한 것이었다. 당시의 <일본대제국헌법><교육칙어>에서는 汝臣民”, 너희 신민들이라는 용어가 출현하고 심지어 1945년 일본 천황의 <항복조서>조차도 이 汝臣民로 시작하고 있었다.

 

국민이라는 용어, 일본과 한국 외에 없다

우리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이라는 조항이 많다. 그런데 독일 기본법(헌법)을 보면, 관련 조항 모두 “Alle Deutschen...”, 모든 독일인은...”으로 시작된다. 이 대목에서 프랑스 헌법은 au peuple, people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밤면 일본 헌법은 すべて国民....(모든 국민은...)”이다. 물론 우리 헌법이 일본 헌법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정한론의 주창자로서 마침내 그것을 실현시켰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가 정착시켰던 국민이라는 용어가 그가 정복을 주창했던 이 땅에서 이렇듯 시대의 유행어로 된 지금의 모습은 우리 역사와 우리 사회의 모순과 아이러니가 응축된 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 | 프레시안 2022.07.02.

 

 

먹거리 언어', 이해하시나요

CSA, 로컬푸드, 로커보어, 푸드마일리지, 소셜다이닝독자 분들은 이 글에 등장하는 단어들을 다 알고 계실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로, 이왕이면 우리말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설명으로 더 나은 먹거리 체계를 표현하고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노력이 시작되기를 기대해본다.

 

병원에 가면 마음이 편치가 않다. 환자들을 위해 의사들이 존재하고, 환자가 알아야할 이야기들이 오고가고 있는데도 의사가 환자에게 증상을 설명할 때, 간호사에게 환자와 관련된 업무를 지시할 때, 회진을 할 때, 진단서를 발급받아 읽을 때. 의사들이 쓰는 전문용어는 오히려 환자를 소외시킨다. 가끔 일어나는 일이면 좋으련만, 의학용어는 너무나 어려워 일상적으로 우리는 의학 용어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법률도 마찬가지이다. 뭔가 필요한 일이 있어 법조항을 찾아보게 되거나 판결을 받아야할 때 법률 용어는 실제 용어와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필요한 사람들의 머리에 쏙쏙 들어오지 않는다. 어떤 전문영역이건 전문 언어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생노병사, 식의주처럼 삶과 밀접한 영역의 언어는 쉬워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의학용어, 법률용어를 쉽게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먹거리와 관련된 언어는 어떨까?

 

2009년 전북 장수로 내려와 유기농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회원제로 운영되는 채소꾸러미를 하게 되었다. 귀농을 해서 채소꾸러미를 하려고 마음먹고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보고 들은 단어는 CSA(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였다. 종자값부터 수확 후 판매까지 걱정없이 농사지을 수 있도록 미리 대금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시민들이 가족농, 소농을 지원하는 방식은 우리농촌에서 시작된 운동이 아니기에 본래의 의도를 정확하게 설명하려는 목적이었겠지만 우리말로 시민지원농업이라고 써도 좋을텐데(물론 그렇게 쓰는 분들도 계시다) CSA라는 말을 읽고, 듣고, 말하려면 무척이나 낯설었다.

 

많은 분들이 로컬푸드(local food) 운동에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행정기관, 연구소, 학자, 먹거리운동 단체들이 로컬푸드라는 말을 사용할 때 농부에게, 시민들에게 저 말은 어떻게 들릴까 싶어지곤 했다. 로컬푸드를 먹는 로커보어(Locavore)’라는 단어가 등장했을 때에는 따로 설명을 듣지 않는 한 도대체 로커보어라는 저 말을 누가 알아들을 수 있을까 싶었다. 로컬푸드와 기후변화와 푸드마일리지(food mileage)이야기를 할 때에도 몇사람이나 듣자마자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지곤 한다. 슬로푸드 활동을 하면서 슬로푸드는 식품의 산업화 기업화에 저항하는 운동임에도 사람들에게 슬로푸드가 뭘까요? 하고 물어보면 느리게 먹기”, “ 발효음식 먹기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슬로푸드라는 말을 우리말로 대체할 수 있는 단어를 만들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심각하게 들고는 했다.

 

밥을 먹으면서 특정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소셜다이닝(Social dining)을 시작하고 운영하면서 어떻게 이 말을 더 쉽고 편하게 쓸 수 있을까 항상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이야기밥상이란는 단어를 쓰게 되었다. 며칠 전 좋은 농산물 구입을 희망한다며 전화를 주신 분께서는 단어만으로는 유기농과 무농약이 정확하게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모르시겠다며 차이를 이해하기 원하셨다. 어떤 분은 토종종자가 아닌 모든 것은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로 알고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GMO가 나쁘다는데 GMO가 무엇인지 모르시거나 어렴풋이 알겠는데 종자 개량과 다른 것이 뭐냐고 묻는 분들도 많다.

 

독자분들은 이 글에 등장하는 단어들을 다 알고 계실까? 독자분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들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먹거리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나 또한 와인병 라벨을 읽는 것처럼, 어느 먼 나라의 메뉴판을 읽고 있는 것처럼 이 단어들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을 하고 있었으리라.

 

언어는 표현의 수단이자 의미전달의 수단이다. 먹거리는 식품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 가공, 유통, 소비라는 사회적 체계로 존재하므로 먹거리와 관련된 언어는 먹거리사회구조를 담은 언어이며 사회를 향한 중요한 메시지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메시지가 누구나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말, 외국에서 시작된 운동이라서 우리 것으로 만들어보려는 노력없이 그대로 차용해서 쓰는 말이라고 한다면 이는 특정그룹만이 사용하는 언어이며, 누군가에게 우위를 점하는 또 하나의 권력이 될 수도 있다. 누구나 좋은 음식을 먹어야하는 것처럼 더 나은 먹거리체계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하는데 어려운 말들이 이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면 당연히 이 장벽은 없어져야할 것이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로, 이왕이면 우리말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설명으로 더 나은 먹거리 체계를 표현하고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노력이 시작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그렇지 못해왔음을 깊이 반성해본다.

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2018.04.02.

 

 

소리 없는 유언

199538일 밤 전국노점상연합회 활동가 유희는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최정환이라는 장애인 노점상이 분신했다는 소식이었다. 사람들과 함께 병원으로 달려간 유희는 난생처음 분신한 사람을 보았다. 불에 탄 남자는 온몸의 껍질이 벌겋게 벗겨진 채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서른일곱이었던 유희 역시 청계천에서 노점을 하며 아이 셋을 키운 사람이었기에, 누구보다 단속의 고통을 잘 알고 있었다. “장애인이 직업을 갖는다는 걸 감히 생각지도 못하던 시절에 노점을 해서 먹고살아 보려던 사람이 얼마나 괴로웠으면 제 몸에 불을 붙였을까, 그 심정을 생각하니 죽을 것처럼 마음이 힘들었어요.” 세월이 흘러 60대가 된 유희가 마이크를 꼭 쥐고 말했다. 최정환 열사의 이야기가 실린 책 <유언을 만난 세계> 북 콘서트 자리에서였다.

 

최정환을 보고 돌아온 그는 밤새 험한 꿈에 시달렸다. 불에 탄 최정환이 귀신처럼 커다랗게 다가오는 꿈이었다. 어찌나 무서운지 눈을 감기가 두려운 밤이었다. 이렇게 무서운 것들을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텐데 이걸 뛰어넘지 못하면 영원히 운동은 못 할 것 같았다. 다음날 그는 동료들에게 이 두려움을 넘어서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최정환을 계속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중환자실의 최정환은 하루 두번밖에 면회가 되지 않았는데 스스로 그 일을 자처한 것이었다. 인간이 얼마나 크게 말하고 싶으면 제 몸에 불을 붙일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듣길 바라면 그런 고통을 감내할까. 그는 녹음기를 쥐고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두 눈을 부릅뜨고 최정환을 바라보았다.

 

그는 최정환의 저 유명한 유언 복수해 달라, 400만 장애인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는 말을 직접 듣고 전한 사람이었다. 60대의 유희가 그 말을 들었던 과정을 들려줬다. “화상으로 입술과 눈꺼풀이 다 뒤집어진 사람도 이야기할 수 있습디다. 왜 이렇게 힘든 일을 했나요, 하고 내가 말하면 최정환도 어, , , 하면서 무언가 말하려고 애를 썼고 그러면 내가 스무고개를 하듯이 그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계속 물었습니다.”

 

어느 날 최정환이 입술에 힘을 주며 오므리는 모양이 꼭 복수같아서 유희가 물었다. 복수? 복수해 달라고요? 최정환이 어, , , 하자 유희는 자신의 얘기가 맞으면 눈을 깜빡여보라고 주문했다. 최정환이 안간힘을 써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유희는 목이 메었다. 알았어요, 복수해 줄게요. 그러니까 절대로 죽지 말아요. 당신이 그렇게 원하던 집회를 매일 하고 있어요. 그러니 꼭 살아야 해요. 살 거죠? 동지, 살 거죠? 유희는 그의 답이 간절하게 듣고 싶었다. “내 말을 알아들었으면 눈을 깜빡여 보세요.” 이번에도 최정환은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하지만 다음날 만났을 때 최정환의 동공은 열려 있었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날 밤 그는 서른여덟의 나이로 사망했다. 유희가 들은 복수해 달라는 말은 그렇게 그의 유언이자 시대의 유언이 되었다. 수많은 장애인과 노점상, 대학생들이 그 말에 화답하듯 거리로 뛰쳐나와 살인적 노점 단속에 저항하고 장애인과 빈민의 생존권을 요구하며 싸웠다. 최정환이 그토록 기다렸던 존재들이었다. 유희는 커다란 솥을 걸고 수백명이 먹을 밥을 지었다.

<유언을 만난 세계>

 

최정환의 영결식은 연세대에서 치러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연세대로 출발한 트럭은 병원을 나서자마자 방향을 틀어버렸다. 한 장애인 조직이 경찰과 손잡고 주검을 빼돌렸다. 최정환의 주검은 까만 캐딜락에 옮겨져 경찰의 엄호와 방송사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어딘가로 향했다. 분노한 사람들은 경찰서 앞에 건축 쓰레기를 쌓아 불을 질렀고 유희는 캐딜락을 막고 엉엉 울었다. 그날 오후 어떤 사람들은 서울 도심 곳곳에서 최정환의 유언을 외치며 격렬하게 저항하다 체포되었고, 어떤 사람들은 경기도 용인의 공원묘역에서 불에 탄 최정환의 주검을 조용히 땅에 묻었다.

 

유희가 들었다는 최정환의 유언은 소리가 없었으므로 의심을 받았다. 기도를 절개했던 최정환이 정말로 그렇게 말할 수 있었겠느냐고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두 사람의 대화가 담겼다는 그날의 녹음테이프는 진실을 알고 있을까. 말하는 사람의 소리는 하나도 없고 듣는 사람의 한숨과 훌쩍임, 애절한 질문만이 가득 담겨 있을 그 테이프 말이다. 최정환의 유언에 얽힌 이 이야기는 잘 듣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한편의 슬픈 영화 같다. ‘무엇을 듣겠다는 것은 실은 어떻게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어서, 우리는 같은 것을 듣고도 모두 다르게 살아가는 것이다.

홍은전 | 작가·인권 동물권 기록활동가/ 한겨레 2022.7.3.

 

 

죽이고 죽지 않기 위한 평등

돌봄에서 살인으로 번지는 일이 끊이지 않는다. 장애가 있는 자녀를 죽인 소식, 돌봄을 하던 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식, 그 두가지가 동시에 벌어진 소식이 반복해서 들려온다. 아픈 부모나 배우자를 죽이는 간병살인도 계속된다.

 

그런 소식에 나는 죽일 수밖에 없었던이에게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지난날 나를 짓눌렀던 가난과 돌봄의 무게를 떠올리며 극단적 선택 말고는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 몰입했다. 마음을 쏟던 소식들이 끊이지 않고 들리니 어느새 변하지 않는 국가에 혀를 끌끌 차며 다시 일상을 살아가게 된다.

 

오죽했으면 그랬겠냐돌봄에서 살인으로 번진 사건을 두고 세간에서 많이 보이는 반응이다. 많은 이들이 혼자서 돌봄을 하다 살인을 택한 이에게 동정을 표한다. 가족을 죽인 비정한 살인자라고 질타하던 지난날과는 달라진 분위기다. 더 이상 돌봄이 가족 책임일 수 없으며 한시라도 빨리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돌봄 하는 이가 그럴 수밖에 없던 상황을 헤아리는 마음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죽어야 했던 돌봄 받는 이의 존재를 잊게 한다. 돌봄에 지친 가족에게 죽임을 당할 공포를 일상적으로 느끼는 이의 마음은 어떨까. ‘가해자에게 동질감을 느꼈던 나는 이 질문 앞에서 주저앉는다.

 

가해자의 자리에 있는 마음도, ‘피해자의 자리에 있는 마음도 같은 해결책을 지향할 수는 있다. 국가가 더 많은 책임을 느끼고 돌봄 서비스를 확충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가해자의 자리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취약한 이가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전제를 강화시킨다. 그런 전제는 돌봄을 제공과 수혜라는 이분법으로만 보게 만든다.

 

수혜와 제공의 이분법은 우리가 관계 속에서 크고 작은 돌봄에 의존하며 살아왔다는 걸 느끼지 못하게 한다. 우리 모두 돌봄 수혜자임에도 돌봄을 삶의 예외적인 것으로 두거나, 돌봄 제공자의 관점에서만 돌봄을 상상하게 한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 돌봄에서 살인으로 번진 사건을 평등의 관점에서 되짚을 수 있어야 한다.

 

<정동적 평등>은 돌봄 제공자가 처하는 불평등과 돌봄 수혜자가 처하는 불평등을 함께 보려고 시도한다. 평등·불평등이 발생하는 영역은 네가지다. 우리에게 익숙한 경제, 정치, 사회문화와 더불어 정동의 영역도 함께 봐야 한다. 네 영역은 서로가 얽히고설키면서 ()평등을 강화하거나 약화시킨다.

 

여기서 정동은 사랑, 돌봄, 연대에 다름 아니다. 사랑은 서로가 대체 불가능한 보살핌을 주고받는 관계를, 돌봄은 이웃이나 동료 간 도움이나 돌봄 서비스로 제공되는 관계를, 연대는 국가나 지자체의 제도와 시민사회의 활동 등으로 권리를 보장하거나 대표해주는 관계를 의미한다. ‘정동적 평등이란 대체 불가능한 사랑, 공동체에서 주고받는 돌봄, 권리를 보장하는 연대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고르게 주어진 상태를 말한다.

 

서로가 잘 돌봄 받고 잘 돌보는 것은 단지 국가의 책임만으로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국가에 의해 제공되는 돌봄 서비스는 정동적 평등을 위한 관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선 자리에서부터 누군가와 사랑, 돌봄, 연대의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돌봄이 어렵다면 그건 그들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다.

 

<정동적 평등>의 저자들은 돌봄을 받는 이와 하는 이뿐 아니라, 그 돌봄에 관계된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까지 함께 들으려고 했다. 자신들의 방법을 돌봄 대화라고 칭했다. 사랑, 돌봄, 연대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말을 못 하고, 죽인 자는 말이 없다. 살아 있는 우리가 동정을 넘어 돌봄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모두의 정동적 평등을 위해서 말이다

조기현 | 작가 한겨레 2022.7.3.

 

 

경제 올드 보이와 환경친화적 경제

나도 어느덧 50대 중반이 되었다. 김영삼 시절부터 사회활동을 시작하면서 여러 번의 정권교체를 보았다. 아주 개인적인 단상이라면, 환경에 관해 가장 적극적인 대통령은 김영삼이었던 것 같다. 21세기를 맞으면서 비전 21’을 정부 차원에서 마련했는데, 20세기 후반인 시대상을 감안하면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삼성도 지구환경연구소라는 환경 관련 연구기관을 운영했고, 이건 현대나 LG도 마찬가지였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은 아마 한국 사회가 환경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던 단일 사안일 것이다. 사회적 분위기도 공해 문제에 대해 아주 적극적이었다. 기억할 만한 사건은 1997년 수질이 급격히 악화된 시화호에 해수 유통을 결정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지난 세기의 얘기지만, 김영삼은 나름대로 환경 문제를 풀려고 고민하기는 했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가고, 세월이 바뀌었다. 만약 요즘 낙동강 페놀 사건이 벌어지거나, 시화호 오염 사태가 벌어지면 그 시절처럼 과감한 조치들이 뒤따르게 될 것인가? 녹조로 인한 낙동강 식수오염 문제가 해마다 얘기되어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요즘 같은 정치 과잉 시대에 김영삼 때의 시화호 해수 유통이나 김대중 때인 2000년의 동강댐 백지화 같은 일이 벌어질까? 유튜브에서 이놈이 문제다, 저놈이 문제다한참 떠들기만 하고 결국 아무 결정도 못할 것이다. 대통령의 힘이 너무 세서 문제라고 하는데, 환경만 떼어놓고 보면 대통령의 힘은 김영삼과 김대중 시대에 비해 더 약해진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00년대 초반 당시의 재정경제부를 지속가능경제부로 개편하자는 논의였다. 환경부 등 소위 규제부처 차원에서 환경 문제를 다룰 게 아니라 아예 경제부처의 목표 자체를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바꾸자는 거였다. 지금 돌아보면 과연 그런 시대가 있었나,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윤석열 정부 인사들 환경 무관심

, 이제는 윤석열 시대, 환경 문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안철수가 마무리한 인수위 보고서와 최근에 나온 새정부경제정책방향보고서를 읽어봤는데, 환경에 대해서는 정말 관심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윤석열이나 안철수나 심지어 이준석까지, 환경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는 사람들 아닌가 싶다. 그나마 안철수가 윤석열보다 좀 나은 점 하나를 꼽자면, 그는 골프는 안 친다.

 

인플레이션과 함께 정부에서 유류세 인하 대책을 내놓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 고위직 특히 경제 고위직 중에서 환경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3~4조원 혹은 그 이상의 세수 감소는 확실한데, 당 몇 백원 수준 감소라서 체감할 지원 효과는 그렇게 높지 않다. 그나마도 정유사 이문으로 빠질 여지도 있고, 유류세 인하는 고소득일수록 지원효과가 높은 역진적 성격이 강한 정책이다.

 

이렇게 허공에 몇 조원을 태울 거라면, 차라리 그 돈으로 전기차 아니 하이브리드 차량으로의 전환에 대한 지원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플레이션과 고유가가 잠시 이러고 말 것이라면 임시 대책으로서의 유류세 인하를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게 몇 달 안에 끝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어차피 내연기관차가 영원할 것이 아니라면, 지금의 경제적 조건을 미래를 위한 전환점의 계기로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 유럽 많은 국가들이 2030~2040년 정도로 내연기관차의 종말을 선언한 상태다. 고유가 자체가 문제라면 하이브리드 차량 구입에 대해서도 한시적으로 지원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택시 등 상업용 차량에 대해서는 전면적 전환 등 좀 더 강한 지원책을 디자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류세 인하가 나은가, 친환경 차량에 대한 지원이 나은가는 기술적으로 매우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다. 내가 진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런 기술적 옵션에 대한 대안을 검토해보고 유류세 인하가 정부 방침으로 결정되었느냐는 것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경제관료들이 유류세 인하 방침을 검토할 때, 과연 장기적 대안이나 친환경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려보기라도 했을까? 김영삼이나 김대중 시대에는 청와대 정책실장 주도로 중장기적 대안 검토 정도는 했었다. 2000년대 초반 중동 지역 불안으로 인한 고유가 시절에도 그 정도는 했다.

 

문제는 개발연대 시절의 그들

전기 택시로의 전환이나 전기 버스 증가, 저소득층 가정의 에너지와 전기 절감 대책 혹은 빌딩 리모델링 등 인플레이션을 친환경적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 옵션은 많다. 독일은 ‘9유로 티켓으로 한 달간 독일 전역의 교통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놨다. 문제는 총리나 경제부총리나, 이런 경제 올드 보이들이 환경은 귀찮은 것으로 간주하던 개발연대 시절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대통령에게 친환경적인 사유를 기대? 연목구어다. 이러니 갑자기 김영삼 시대를 자꾸 회상하게 된다.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경향 : 2022.07.04

 

대중은 진보하는데 진보정당은 퇴보?

프랑스는 극우의 위협에 맞서 중도 보수로 뭉친다. 2002년 대선의 시라크와 2017, 2022년 대선의 마크롱이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본 대통령이다. 세 선거에서 승리를 결정한 것은 르펜 부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우의 유령이 유럽 정치판을 배회하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래다. 이 과정에서 가장 손해를 본 세력은 좌파로 거론된다. 반극우파 전선을 통해 중도 우파가 강화된 반면 사회당이 몰락했기 때문이다. 2017년 대선 1차 투표에서 사회당은 5위에 그쳤고, 올해 대선에서는 무려 10위까지 전락했다. 총선에서도 2017년 사상 유례없는 몰락을 겪었고, 올해에는 독자 출마는커녕 좌파 연합 내의 주도권조차 상실했다.

 

사회당의 몰락이 좌파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급진 좌파인 불굴프랑스가 성장해 올해 대선에서 3위를 하고 총선에서는 좌파 연합인 인민연합을 주도해 집권 연합인 앙상블에 불과 0.1%포인트 부족한 25.7%의 득표율을 올렸다. 지난 총선은 연합을 통한 좌파의 승리였다고도 할 수 있다.

 

좌파 연합이 성공한 사례는 그리스나 스페인에서도 속속 이루어졌다. 이 사례들은 다양한 좌파들을 포괄한 진보 연합이 급성장하면서 집권까지 한 경우다. 같은 지중해 문화권에 속한 프랑스도 이제 유사한 경향을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도 좌파 연합이 처음은 아니다. 절대 다수제인 총선은 주로 진영 싸움으로 치러졌으며, 사회당은 다양한 좌파 정당들과 연합을 형성했다. 하지만 사회당이 좌파 지형을 석권하는 상황에서 연합은 소규모로 이루어졌고, 사회당의 독주로 그 규모와 효과는 점차 줄어들었다.

 

2007년과 2012년 일시적 회복기를 거치면서 사회당은 연합에 더욱 미온적이었다. 극우에 대항해 보수 정당들의 연합이 단일 정당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대처는 매우 위험한 것이었다. 2017년 총선에서 사회당은 공산당과도, 불굴프랑스와도 연합하지 않았으며 결과는 4분의 1로 줄어든 7.4% 득표율과 10분의 1로 줄어든 29석이라는 의석수였다.

 

지난 6월 총선에서 연합의 주도권은 불굴프랑스로 넘어갔다. 2017년 총선에서 사회당보다 높은 11.0%의 득표율을 올렸고, 최근 두 번의 대선에서도 사회당을 앞질렀기 때문이다. 좌파의 주요 정당들을 망라한 선거 연합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연합에 참가한 정당들이 2017년 총선에서 각자 거둔 득표율과 의석수를 합하면 25.4%57석이었다. 반면 올해 총선에서는 의석수가 세 배 가까이 증가한 142석에 달했다. 다수 대표제에서 선거 연합이 거둔 성과임에 틀림없다.

 

향후 문제는 이 연합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느냐다. 인민연합은 단일 정당화를 두고 논쟁 중이다. 하지만 다양한 세력들의 입장이 서로 달라 정리가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시리자와 스페인 포데모스도 연합을 통해 단일 정당으로 발전했거나 처음부터 다양한 정파들을 포괄한 정당이었다. 현재적 위기의 실체를 명확히 포착해 각자의 주장과 이념을 상호 인정하는 가운데 하위 목표로 재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적으로 배제해야 할 것은 힘 관계에 따른 기계적 안배일 것이다. 각자가 대변하는 특정 집단을 아우르는 포괄적 집단을 설정해야 한다. ‘인민연합이라는 명칭에서 드러나듯이 그것은 인민으로 호명되었다. 신자유민주주의 질서에서 엘리트 지배 구조의 폐해가 심각하다. 극우 포퓰리즘의 득세가 일시적 바람으로 끝나지 않는 것은 이러한 지배 구조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는 인민으로 호명되는 대중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대중추수주의에 빠져서는 안 되지만 대중의 흐름을 파악해 이념과 주장을 재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우리나라 진보 정당들도 연합을 시도했다. 그러나 논의조차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지방선거에서는 그러한 시도조차 없었다. 특별한 변란이나 천재지변이 없는 한 역사가 발전하듯이 대중도 성격을 달리할 뿐 진보해간다. 촛불집회가 증명하듯이 대중은 진보하는데 대중을 대변한다는 진보 정당은 퇴보하고 있다.

 

단순 다수제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나라는 절대 다수제를 채택한 프랑스보다 연합이 더욱 절실하다. 서로의 차이만 강조하거나 과거 이념에 묶여 있는 모습은 대중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고루함과 아집일 뿐이다. 한국 사회 발전의 한 축을 떠받칠 진보가 연합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나길 기대해본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경향 : 2022.07.04

 

 

죽거나 말거나

Roe is gone. ‘는 갔다. 스스로 떠난 것이 아니라 강제 추방됐다. 미연방의 늙수그레한 대법관들이 모든 여성을 대변하는 에게서 헌법이 부여했던 임신중단(낙태)을 빼앗았다.

 

로 대 웨이드(Roe et Wade)’는 임신중단권을 임신부에게 부여한 1973년 판결의 명칭이다. ‘는 텍사스의 임신중단금지법에 위헌소송을 제기한 여성의 가성이고, 웨이드는 소송 대상 검사의 진성이다. 이때부터 는 이름 없는 여성의 이름이 되었다.

 

감염과 합병증으로 건강과 생명을 잃은 여성들, 계획되지 않은 임신으로 생계수단을 잃은 여성들, 생명체를 품은 채 버려진 여성들, 비난과 절망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성들은 모두 이다. 죽거나 말거나 이제 여기저기서 의 배를 향한 발차기가 이어질 것이다.

 

영국에서도 생뚱맞은 발차기가 있었다. 윔블던 테니스 대회 조직위 짓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다닐 메드베데프를 비롯해 최고의 기량을 갖춘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들의 출전을 금지한 것이다. 정부와 권력자가 져야 할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 윔블던의 결정은 전형적인 국가폭력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독재자 푸틴의 침공으로 시작되었다. 전쟁 초반 서방은 푸틴이 미쳤다는 말로 전쟁을 설명하곤 했다. ‘미친 푸틴에 맞선 정상국가들의 연합으로 전쟁이 조기에 끝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은 점점 미친 푸틴쪽으로 흐른다. 이해와 이익을 따지며 적지 않은 국가들이 미친 푸틴편에서 거래를 한다. 약삭빠른 지식인들 말처럼 세계화, 세계주의가 끝난 것일까?

 

우크라이나 무력 전쟁은 이념 전쟁이 아니라 패권 전쟁이다. 이 전쟁은 미·중 무역갈등, 곧 무역전쟁에서 발화되었다. 트럼프가 유발한 무역전쟁은 아직 진행형이다. 오히려 바이든이 민주주의 수호를 명분으로 확전을 꾀했다. 그렇게 고약한 상황에 빠진 무역전쟁을 푸틴은 무력전쟁으로 전환시킨다.

 

미친 푸틴은 갑자기 악마 푸틴으로 바뀐다. 미국과 나토는 우크라이나 방어에서 러시아 패배와 푸틴 퇴출로 전략을 수정한다. 미국의 나팔수가 된 주류 언론들은 타협, 화해, 평화 서사를 버리고 보복, 응징, 승리로 가는 전쟁 서사를 택한다. 이 서사에서 악마 푸틴의 응징에 동참하지 않는 나라는 모두 전체주의 혐의를 받는다. 중국과 러시아의 전체주의에 맞서 민주주의 동맹을 강화해야만 한다는 담론의 최초 설계자는 바이든이다.

 

바이든은 집권 초기부터 민주주의 동맹을 주창했다. 트럼프로 상징되는 반민주 체계로의 세계적 퇴행을 차단하기 위해 범세계, 범민주 세력의 연대를 지향한 기획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는 지난해 12월 바이든이 만든 제1회 세계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이 있길 바랐다. 순진하고 어리석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 바이든의 제안은 아무런 국제적 호응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무역전쟁이 무력전쟁으로 바뀌면서 바이든의 동맹제안은 준엄한 명령이 되었다.

 

대부분의 나라, 특히 우리는 미국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동맹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다만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 참여해야 한다. 블록화와 전쟁을 불사하는 동맹이 아니라 세계화와 평화를 키우는 동맹이 되도록 균형추의 역할을 수행하는 참가자여야 한다. 우선 민주주의 동맹과 나토를 동일시해선 안 된다. 전자가 평화를 내세우는 가치동맹이라면 후자는 전쟁도 불사하는 특수기구이다. 국가의 미래는 아랑곳하지 않고 불러준다고 따라갈 곳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주권과 인권을 동등하게 존중하는 정치체계다. 주권을 내세워 인권을 말살하거나 인권을 보호한다며 주권을 침해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런데 정작 민주주의 동맹을 주도하고 있는 두 나라에서 이 균형이 깨지고 있다. ‘를 추방한 미국과 선수 개인의 인권을 침해한 영국의 결정은 비민주적이다. 더구나 세계화에서 블록화로의 역주행은 보편적 가치로서 민주주의의 심각한 훼손이다.

 

전체주의만이 아니라 민주주의 체계의 상층부조차 다른 사람의 건강과 생명, 그리고 미래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을 서슴없이 할까? 미지의 생명과 주권을 내세워 날 생명과 인권을 위협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도덕은 원한감정에 사로잡힌 노예 도덕일 뿐이다. 타인의 몸과 삶에 저주를 퍼부을 수 있는 것은 그저 단순한 복수심 때문이다. 남들이 세운 복수의 칼날 위에 서 춤을 추는 대통령 부부, 국민은 죽거나 말거나!

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경향 : 2022.07.04.

 

 

재벌특혜와 부자감세 기조 벗어나야

정부는 616일 향후 5년간 우리 경제의 청사진이라고 할 수 있는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한 후 본격적인 정책행보에 나섰다. 민간주도 성장을 강조하며 자유·공정·혁신·연대의 가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구체적 정책을 보면 과거 보수정부가 취해오던 재벌주도 성장이자 재벌특혜·부자감세기조를 답습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 심화로 인한 경제양극화와 불평등 확대에 대한 우려가 크다.

 

정부는 민간·기업·시장 중심 경제운용으로 경제활력 제고와 저성장 극복 기틀을 세우기 위해 환경, 보건·의료, 입지, 신산업 등 산업 전반에 걸친 규제를 검토해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불필요한 규제는 정비할 필요가 있지만 언급하고 있는 산업분야 규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개인정보, 환경, 농지, 수도권 집중, 조세 등과 관련된 것이 많아 완화에 신중해야 한다. 다음으로 공정정책으로 제시하고 있는 경제법령상 형벌 규정의 개정, 부당지원 및 사익편취 행위 규제 개선, 벤처기업 복수의결권주식 도입, 플랫폼기업 자율규제 등은 재벌의 사익편취와 범죄를 부추기고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킬 불공정한 정책들이다. 따라서 폐기 또는 전면 재검토를 해야 한다. 사익편취 방지와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해서는 소수주주동의제(MOM) 도입, 출자제한, 징벌배상과 디스커버리제도 도입, 플랫폼기업 독과점 규제를 해야 한다. 조세정책 방향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5%에서 22%로 인하, 부동산 보유세 인하, 가업상속공제 확대, 주식양도소득세 폐지 등 감세정책을 내세우고 있어 형평성 훼손은 물론 재정건전성 정책과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향후 늘어나는 복지지출을 포함한 정부지출 증가분을 감당키 위해서는 지출구조조정으로는 한계가 있어 증세 방안이 필요한바 그 부담을 서민들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부자감세·서민증세논란까지 일고 있다. 따라서 부자감세 기조의 정책들은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2022년 재벌들의 GDP 대비 자산총액 비중은 1대 재벌이 24%, 10대 재벌 84%, 30대 재벌 108%로 많았다. GDP 대비 매출액 비중 또한 1대 재벌 18%, 10대 재벌 63%, 30대 재벌 77%로 집계돼 우리 경제가 재벌로 심각하게 쏠려 있음이 드러났다. 성장을 위한 재벌들의 경영노력도 있었겠지만 지금까지 재벌중심 정책기조하에 조세와 금융지원, 공정거래법 등 규제완화, 민영화로 인한 공기업 인수, 민간투자사업 수주 등 온갖 특혜를 받은 원인도 크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정부는 재벌의 경제력을 더욱 키워줄 특혜와 규제완화 정책노선을 밟고 있다. 재벌중심 성장정책은 당장은 달콤할지 모르지만 과거에도 그랬듯이 향후에는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부는 재벌특혜·부자감세기조에서 벗어나 공정과 형평, 중소혁신기업 중심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장 경향 : 2022.07.04.

 

 

노동자의 '자유'는 어디가고'92시간'에 임금은 '올리지마'?

임금과 노동시간, 노동자와 자본의 '자율적 합의'라는 이데올로기

물가가 오르면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 이럴 때 임금은 낮춰야 할까, 높여야 할까? 자본은 낮추거나 최소한 유지하자고 주장한다. 노동자들은 당연히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금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그럼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윤석열 정부는 자본의 손을 들어주려고 한다.

 

지난 629,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5.0% 인상한 시간당 9620원으로 확정됐다. 이미 지난 5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139개월 만에 가장 높은 5.4%를 기록했고 6~8월 중에는 6%대 인상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사실상 이는 임금 삭감 조치다.

 

최저임금이 확정되기 하루 전날,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만나 임금 인상 자제를 요청했다. IT 기업, 대기업의 임금 인상이 다른 산업과 기업으로 확산하면 고물가 상황과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심화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인플레이션 그 자체의 역진적 성격(저소득자에 더 많은 부담)을 고려하면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 인상이 격차를 완화할 간단한 방법이련만, 수백만 취약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좌우하는 최저임금이 사실상 삭감되면서 임금 격차는 더 심화하게 됐다.

 

총임금을 결정짓는 또 다른 변수, 노동시간 규제도 퇴행 중이다. 지난 623,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현재 주 단위로 관리하는 연장근로 시간을 노사합의에 따라 월 단위로 관리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에도 IT 산업과 젊은 세대가 호명됐다. 기업별·업종별 사정에 따라 '탄력적으로', 개인의 선호에 따라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가 높다는 게 정부의 진단이었다.

 

발표대로 추진된다면 주 52시간 상한제는 무력화되고, 한 주에 몰아서 사용할 경우 주 최대 근무시간은 92시간까지도 늘어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미 후보 시절부터 '120시간 바짝 일할 수 있어야' 함을 운운한 전력이 있다.

 

야간 노동이 '2급 발암물질'이고, 장시간 노동과 야간 노동이 과로사의 주범이라는 사실은 이미 상식이 된 지 오래지만, 많은 경우 '야근'은 선택이 아니라 강제라는 현실을 모르는 사람도 있던가? 하물며 물가는 오르는데 임금이 오르지 않는다면, 노동자는 더 많이 일하는 쪽을 택할 수밖에 없다. 더 많이 일하고 싶어도 일거리가 없는 경우에는 생계를 위협받게 된다.

 

노동시간과 임금은 노사 간의 '자율적 합의'에 맡겨야 한다면서도 연일 발표되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은 명백히 자본의 이해관계를 가리키고 있다. 노사 간의 본질적 권력 불평등을 고려하면, 노동자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선택'이란 허구적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불안정 저임금 노동자의 경우 더욱 불평등한 상황에 처할 것이 명백하다.

 

임금과 노동시간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그 자체로 노동자의 삶과 생계, 건강에 직결된다. 최저임금 결정과 연장근로 규제완화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이는 개인의 '능력'이나 '선택'에만 좌우되지 않는다. 노동시장 정책과 산업안전보건 규제, 나아가 이러한 거시 정책을 좌우하는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 사회 권력 사이의 관계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올해 총회에서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을 노동기본권에 추가했고, 이에 따라 산업안전보건은 결사의자유, 차별금지, 강제노동금지, 아동노동금지와 함께 5대 노동기본권이 되었다. 노동자의 신체적, 정신적 수용력에 적합한 '적절한 노동시간'은 이미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의 핵심 요소로 인정되어 있다.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재택'할 수 없었던 대면 필수노동자들, 업무량 폭증으로 과로에 시달린 콜센터 노동자와 배달노동자들을 벌써부터 잊을 수 없다. 한국의 이중 노동시장 구조는 코로나19 유행 대응을 어렵게 했고, 유행 대응 과정에서 심지어 그 격차는 심화하였다.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처방 없이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노동시간 규제완화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라는 말로 운을 띄웠다. 노동시간은 "가장 기본이 되는 노동조건"일 뿐만 아니라 "일터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핵심 요소"라고도 했다.

 

자본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고용'부 장관에게 가르쳐 주자.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 투쟁의 역사"라고.(바로 가기: <매일노동뉴스>630일 자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단축 투쟁의 역사다') 정부의 '임금 인상 자제' 발언에 끓어오르는 분노만큼, 나와 우리의 건강한 노동, 인간다운 노동을 위해 힘을 모으자.

시민건강연구소 | 프레시안 2022.07.04.

 

 

김건희, 이유 불문 잘못한다’ 56%이게 나라냐?

대통령 윤석열의 부인 김건희에 대한 국민 다수의 시선이 비정상적으로 따갑다. 거의 병적이다. 사회 전체가 한 여자를 이지메(학생들간 집단 괴롭힘의 일본어)하고, 마녀사냥 하는 상황이다.

 

김건희에 관한 여론조사는 여러 가지로 의문을 일으킨다. 대통령이 아닌 영부인 지지도를 왜 조사하는가? 특별히 잘못한 일도 없는데, 부정 평가가 과반이 넘는 결과가 과연 옳은 민심이며 그런 수치가 가치 있는 것인가?

 

여론조사는 어느 것이나 의미 없는 건 없긴 하다. 국민들 마음, 그 변화가 왜곡되었더라도 일정한 정도로 유의미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김건희 여론조사는 그런 점에서 2022년 대한민국 사회의 극단적 양극화조차 넘어서는, 특정 여성에 대한 좌우 진영 공통의 병리적 감정을 드러내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부정적 의견은 여자들 중에서 특히 심하다. 비 명문대 학력임에도 외모와 재력으로, ‘불공정하게’, 유명 검사와 결혼해 급기야 영부인 자리까지 올랐다는, 진보도 보수도 아닌 동네 아줌마 수준의 편견, 증오와 질시가 진보좌파들의 쥴리 등의 의혹 공세와 합해지면서 병적인 여론조사 결과를 낳고 있다.

 

작금의 여론조사들은 후보 지지율보다는 정확도가 훨씬 떨어진다. 현직자의 수행 평가라 관심도가 낮고 정권 지지자들보다 혐오자들이 더 열성적으로 응답한다. 급한 게 없는 지지자들은 전화를 안 받거나 도중에 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데이터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지난달 말 조사한 김건희의 성적표를 보노라면 일반 상식인의 입장에서 쉽게 납득하기 어렵고, 나라가 이래도 되는 건지 강한 회의가 든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관위 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잘못하고 있다가 무려 56.3%. ‘잘하고 있다36.6%……. 김건희가 도대체 뭘 잘못했다는 것인가? 아마도 빵 사러 다니고 영화 보는 장면이, 공식 창구가 아닌 팬 카페를 통해 언론에 보도되는 일 등에 못마땅해 하는 여론이지 않나 싶다.

 

지역별로 호남 66.9%, 제주 69.2%, 충청 60.4%가 부정 평가 1~3위인데, 영남을 제외한 지방에서 그녀를 더 안 좋게 보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의 고루함을 엿보게 한다. 김건희는 닥치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생각들인 것 같다.

 

그녀의 역할이 확대되어야 한다24.7%에 불과하고 축소되어야 한다49.3%. 이재명의 대선 득표율 47.83%보다 높다. 이 응답과 잘못하고 있다’ 56.3%는 윤석열을 찍은(48.56%) 중도층과 일부 보수층에도 안티 김건희가 있다는 반증이다.

 

다른 조사에서는 김건희가 조용히 내조에만 집중, 외부 활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이 무려 67%에 이르렀다. 어처구니가 없다. 나토 정상회의에 김건희가 간 장면과 가지 않은 장면을 비교해서 생각해 보라. 응답자들이 경제 선진국 국민들 맞나?

 

이번 방문에서 김건희는 문제가 되는 언행 없이 국격 높이는 역할을 비교적 잘 했다는 평가를 야권에서도 받았다. 국정원장을 그만둔 뒤 윤석열에 듣기 좋은 말을 줄지어 내놓는 80정치 9박지원도 90점을 줬다. 윤석열은 80점이라면서…….

 

자신을 돕는 공식 국가 조직과 인력이 아직 없으므로 자기가 직접 고심해서 주문한 경우가 많았을 드레스, 정장, 구두, 그리고 태극기 배지 등이 많은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여 주었다. 대통령 부인이 뭘 입어도 기품 있고 우아한데, 이를 보는 국민으로서 기분이 좋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그 사람이 이상한 것 아닌가?

 

반대자들이 하도 뭐라 해서주눅이 잔뜩 든 나머지 다른 세계 정상부인들 틈에서 혹시 너무 위축된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던 마음이 사라지게 했다. 무엇보다,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 옷을 입어도 몸빼’(일하기 편하도록 허리와 발목에 고무줄을 넣은 여성용 바지의 일본어) 입은 듯 볼품이 없고, 대통령보다 앞서 걸으며 크게 손을 흔드는 모습과는 자연히 비교도 됐다. 언제나 대통령보다 한 걸음 뒤를 따르고 손짓보다는 고개를 다소곳이 숙여 인사하는 태도마저 보기 싫었다면, 국민 자격을 반환해야 할 것이다.

 

보수의 여전사(女戰士)’ 전여옥은 이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고한다.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비난은 좀 더 만만한 김건희 여사를 정조준한다. 이번 방문에서 그녀는 기대 이상이었다. 단정한 의상과 태도로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반대진영의 비난은 무지하고 생트집 잡기였다. 아무리 공인이라 해도 도가 지나쳤다.”

 

영부인 모멸(侮蔑)을 취미로, 병적으로 즐기는 대선 불복자들이 절대 다수일 그들은 김건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비난거리를 잡고, 실수하기만을 기다린다. 민주당 의원 장경태가 그들을 대표해 한 건 하려 했다가 처럼회 코미디를 재방송했다.

 

한심한 순방 길이다. 김건희 여사는 각국 영부인과의 사진 등을 통해서 너무 구석에서 초라한 모습들을 보이는 듯 한 인상들을 많이 받았다. 영부인의 외교 일정, 공식 일정, 만찬 참석 일정 등의 수행을 과연 어떤 분들이 하고 계신지 궁금하다.”

 

수행을 잘했으면 우리 영부인이 앞줄 돋보이는 데에 설 수 있는가? 외교 의전 관례를 모르는 무식한 지적이다. 통상 다자 정상회의에서 기념사진 찍는 자리는 취임 순서대로 찍는다. 윤석열은 취임 2개월짜리다. 전임자 문재인도 지난 5년간 뒷줄에서 앞줄로 조금씩 전진하는 변화를 보여 준 기념사진들이 그 증거다.

 

순수 외부 활동 평가가 아닌, 윤석열 부부 혐오자들의 증오와 질시에 의해 응답된 김건희 여론조사는 앞으로도 계속 나오게 될 것이다. 나토 회의 이후 조사에서도 부정이 긍정을 압도하는, 이유를 불문하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면, 그들은 박근혜 정부에 했던 물음을 돌려받을 수밖에 없다.

이게 나라냐?”

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 전경향 기자 /데일리안 2022.07.04.

 

 

0.73%보다 14.2%가 더 중요한 이유

한국 정치와 사회를 이해하고 재설계를 위한 구상을 함에 있어 0.73%보다 더 중요한 수치가 있다. 14.2%가 그것이다. 0.73%는 주지하다시피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 간의 득표율 격차다. 그럼 14.2%는 무슨 수치일까? 2020년 기준 한국의 노조 조직률이다. 2018년 이후 지속 상승 중이다. 그럼 왜 0.73%보다 14.2%가 더 중요한 걸까? 대선 득표율 격차의 감소는 양극화와 혼전 상태의 유지를 뜻하고 실제 그리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반면에 노조 조직률의 증가는 정치를 에워싸고 있는 사회적 변동과 힘의 관계 구조와 관련된 현상이기 때문이다. 가령 정치를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도 있는 조짐이기 때문이다.

 

노조는 시민이 고립된 개별 유권자가 아닌 집합적 주체(주권자)’로서 정체성을 갖고 부와 권력의 배분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결사의 형태이다. 노조 조직률이 높을수록 복지예산 비중이 높고 불평등지수가 낮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이 지향해야 할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의 모형으로 추앙받던 북유럽 국가들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에도 스웨덴은 70%가 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만 해도 30%에 달할 정도다. 즉 노조를 통해 시민들이 국가와 자본에 대해 교섭 권력을 획득해 자원 배분 과정에서 결정권을 행사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원리가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노조가 아닌 각종 사회운동조직과 이익집단 등을 통해서도 자원 배분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노동시간을 늘리고 늘려야 간신히 생활이 가능한 다수 보통사람들의 처지에서는 시간을 따로 내야 하는 그런 조직에 접근하기가 수월치 않다. 그래서 자신의 일터에서 결사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또한 노조는 노동3권에 기초해 헌법이 직접 보장하고 있는 조직으로서 제도적 정당성이 가장 높다. 바로 이런 의미를 갖는 노조의 조직률이 한국에서 최근 들어 지속적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198919.8%를 기록하고 내려앉은 후 20년 넘게 한 자릿수에 머물다가 2010년대 들어 10%대에 올라선 이후 201811.8%, 201912.5%에 이어 202014.2%를 기록했다.

 

그런데 한국은 대표적인 ()노동 국가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로 불리기도 한다. 친기업 정치사회세력이 주도하는 반노조 정서와 이데올로기가 무척 강고하다. 개발독재 치하에서만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에도 그렇다. 노사갈등이 빚어져 파업 좀 할라치면 적법한 절차를 따랐는데도 시민을 볼모로 잡은 집단이기주의, 노동귀족 횡포 등등의 반노동 담론이 횡행한다. ‘불법파업의 혐의를 씌울 이유를 어디선가 꼭 찾아낸다. 협상 타결이 지체되거나 무산되면 강경노조 탓이 된다. 타결되어도 기업 측이 파업 참여자와 노조간부 개인에 대해 천문학적 액수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가압류를 걸어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다. 희망퇴직과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 포기와 노조 탈퇴 등을 약속해야 소송을 취하해 준다. 해외 국가의 경우 노동권과 인권 침해의 우려를 이유로 노동자 개인에 대한 손배소를 삼가고 있는데도 유독 한국에서는 그리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노동자는 비시민으로 간주된다. 쌍용차의 비극적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대량해고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30여명이 목숨을 끊어도 정부와 기업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노동자가 파업이 아닌 작업 중에 목숨을 잃어도 산업재해의 책임을 노동자의 안전의식 부족으로 돌린다. 이런 나라에서 노조 조직률이 지속 상승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노동약자 가세로 역학 변화 기대

노조 조직률 14.2%2805000명에 해당한다.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치가 아니다. 지난 대선 기준 총 유권자 수 44197692명의 6%를 넘는 수치다. 3~5% 안팎에 머물고 있는 제3당 정의당의 지지율을 웃도는 수치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2805000명 중 1695153명이 초기업 노조원이라는 것이다. 즉 기업별 단위를 넘어서서 산업단위별로 조직된 노동자 수가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별 분할을 넘어서서 노동자 내부의 통합성이 높아짐에 따라 이른바 계급 정체성이 강화될 수도 있음을 기대케 한다. OECD 회원국 중 한국 수준의 노조 조직률을 기록하고 있는 국가로 프랑스가 있다. 프랑스는 낮은 노조 조직률에 비해 높은 복지 수준과 의식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중앙교섭 결과의 사업장 반영 정도가 높다는 것이다. 이는 상급단위조직의 대표성이 높다는 것이고, 사업장이 달라도 노동자들이 상급단위조직의 소속원이라는 공통의 정체성을 수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20년 넘게 노동자의 영향력 강화를 위해서는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했는데, 그 길로 한국도 들어선 것일 수 있다. 또한 300명 이상 기업의 조합원은 1년 새 12만명 이상 감소한 데 비해 100~299명 사업장 조합원은 3만명 이상 증가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노동운동에서 탈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다. 아직은 공공부문 조직률이 압도적임을 감안할 때 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노조 조직률의 지속 상승에는 그간 노조라는 권력자원에서 소외되었던 노동약자들의 참여가 주되게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노동약자의 교섭권력 보유와 강화에 기초해 자원 배분 결정 과정을 둘러싼 힘의 관계 지형에 변화가 생겨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할 계기가 형성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공히 퇴직자 노조 가입과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과 노조 가입 권리 보장에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하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그런 힘의 관계 지형 변화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나 싶다.

 

민주·정의당 혁신 논의에 참조돼야

필자는 꽤 오랜 기간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주도한다는 이유로 노동운동에 대해 신뢰하지 않았다. 노동운동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의심한 게 아니다. 양대 노총 소속원 상당수가 최상위 소득 1% 바로 아래인 상위 9%에 분포하고 있다는 노동운동가의 전언, 그리고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WID)’에 기초할 때 이들 상위 9%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이 30%를 넘어 스웨덴(20.3%)은 물론 미국(26.7%)보다도 높은 상황의 특성을 이해했던 것이다. 그런 현실 상황에서 노동약자를 위한 노동운동이 만들어지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노조 조직률의 지속적인 증가를 보면서 그들이 말만이 아니라, 실제로 산별노조 가입 운동을 지속해 왔고, 또 성과를 거두고 있음을 확인함으로써 이제는 좀 더 신뢰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노력과 성과에 기초하면 노동약자의 사회세력화와 그에 바탕한 정치세력화가 다시 활성화되어 노동 있는 민주주의’, 그리고 경제민주화와 복지강국의 비전을 다시 세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래서 14.2%의 진짜 중요한 의미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아닌가 싶다. 노동운동에 대한 신뢰를 다시금 회복하고 노조를 정치와 사회에 대한 재설계의 구성요소로 간주할 수 있게 한다는 점, 그리고 이를 정치세력도 학자도 그 누구도 아닌 노동약자 스스로가 먼저 알아차리고 행동에 나선 것일 수도 있다는 점.

 

대선과 지방선거 패배자인 민주당과 정의당이 혁신 논의를 시작했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들 논의의 핵심에 14.2%의 의미에 대한 검토가 포함되길 기대해 본다. D H 로런스가 제대로 된 혁명에서 노래했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을 폐지하고 싶다. 그래서 웃고 즐기고 재미있는 혁명과 그것이 가능한 삶을 구가하는 해방을 얻고 싶다. 하지만 해방을 위해 노동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 노동해방·인간해방은 정치 민주화 이행 초기인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이미 구호로 등장해 큰 울림을 선사한 바 있다. 그러나 2022년 지금 아직도 그 실현의 단초도 흐릿한 상태다. 30여년 동안 노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낡은 것으로 간주해 삭제하고 노동해방·인간해방의 실천 의지를 노동약자=능력주의 사회의 패배자로 치부하며 거세해 왔기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다시 시작해 볼 때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부조리한 세상을 혁파하는) ‘가장 망치다운 망치는 낡은 망치일 수 있다. 지금은 노동에 대한 의지적 낙관주의가 다시 필요한 때이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경향 : 2022.07.05.

 

 

전국노동자대회의 경고

1. 지난 2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는 6만여명(주최측 추산)이 참석한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섭씨 33도를 옷돈 무더위에도 참석자들은 물가폭등 못 살겠다’ ‘노동자는 죽어난다는 문구가 양면에 인쇄된 손피켓을 머리 위로 연신 흔들었다고 이날 집회 모습을 매일노동뉴스는 4일 보도했다. 첫머리를 이렇게는 못 살겠습니다. 불평등한 세상을 노동자와 민중의 힘으로 한 방에 엎어 버립시다라고 시작한 뉴스 기사였다.

 

이렇게 취재 기사를 읽고서 이날 대회 장면을 그려 보자니 노동자들의 열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잘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근래 찾아볼 수 없는 참석자수로 날씨만큼이나 뜨거웠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참석자수로 대회 분위기를 파악하려 든다면서 내 짐작을 비난할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나는 뉴스 기사의 ‘6만명에 솔직히 놀랐다. 그래서 도대체 무엇때문인지 궁금했다. 어째서 못 살겠다는 것이고,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나는 궁금했다. 뉴스 기사들을 읽고, 대회를 주최한 민주노총의 보도자료를 읽었다. 읽고서 보니, 내가 읽은 뉴스 기사들 내용은 보도자료의 것과 같았다. “이렇게는 못 살겠다”(매일노동뉴스) “윤석열 정부 노동개악 저지”(경향신문) “경제위기에 노동자 죽어난다”(오마이뉴스) 이렇게 제목은 달리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주최측이 낸 보도자료의 내용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은 어째서 못 살겠다는 것이고,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살펴봐야겠다.

 

2. ‘물가폭등, 민생 대책 마련! 노동개악 저지! 사회공공성·국가책임 강화! 비정규직 철폐!’ 이것이 이날 전국노동자대회의 제목이고, 요구 내지 투쟁 구호였다.

 

이날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월급 빼고 다 오른 세상. 일할수록 적자인 세상. 대출에는 이자 폭탄이 떨어지고, 장바구니에는 한숨만 가득한 세상인데 (윤석열) 정부는, 우리(노동자)를 외면하고, 비정규직이 천만인데 단 한마디 말도, 아무런 대책도 없이 민영화로, 민간위탁으로 아예 비정규직 나라를 만들겠다고 대회사를 했다. 계속해서 양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뜯어고쳐 노동자들을 죽음의 시대로 돌아가라하고 있다면서 윤석열 정부에 엄중히 경고한 뒤,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공공성을, 일하는 사람에게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서 양 위원장은 경고가 쌓이면 다음은 퇴장이라고 경고했다.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가 출발한 지 아직 두 달이 지나지 않았지만 쏟아놓는 반노동 정책은 이미 5년 치를 다 쏟아낸 것 같다고 일갈하며 윤석열 정부를 반노동 친재벌 정권, 과로사 정권, 최악의 민영화 정권이라 규정하고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반노동 친재벌, 민영화 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투쟁에 나설 것을 호소했다.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을 서두에 꺼내며 어려워지는 물가 전망 속에서 노동자·민중의 삶이 옥죄이고 있는 와중에도 최대의 이익을 올리고 있는 재벌·대기업에 갖가지 혜택으로 곳간을 채워 주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과 현실을 규탄했다.

 

3. 최근 물가대책과 관련해 추경호 부총리가 기업들에 임금인상 자제를 주문했던 것이 언론에 크게 보도돼 논란이 됐다. 물가폭등에 대한 정부 대책이 임금인상 억제라니 고물가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에게 사용자 자본이 떠안아야 할 부담까지 전가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부동산세·법인세 등 각종 부자감세를 추진하면서도 이렇게 노동자에 대해서는 임금인상을 억압하는 정책이라니. 노골적인 친기업 내지 친자본의 행태에 낯이 뜨거울 지경이다. 거창하게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 1192항까지 인용하면서 말하고 싶지 않다. 최소한 노동자를 대통령 선거권자인 국민 여러분, 수시로 존경한다는 국민 여러분으로 취급한다면 이렇게 자본에 대해 노동을 차별적으로 취급해서는 안 될 일이다. 국민 여러분으로 취급했다면 물가가 폭등해서 생계가 어려워질 노동자의 임금을 인상해 주도록 기업을 찾아다니며 사용자 자본을 상대로 임금인상을 설득하거나 국가가 지원해 줄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균형 있는 경제 성장’ ‘적정한 소득의 분배’ ‘경제력의 남용 방지’ ‘경제주체 간의 조화’, ‘경제의 민주화’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등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적인 경제질서 규정에서 사용한 개념 하나만이라도 떠올릴 수 있는 자라면 물가 대책으로 노동자 임금억제를 감히 내놓지 못했을 것이다.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에 관한 고용노동부 장관의 공개적인 설명을 정부 내 비공식적인 의견에 불과한 것을 취급한 대통령의 발언이 있었다.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에 관해 연장근로시간을 현행 주 단위가 아니라 월 단위로 파악해 관리하는 것으로 추진하겠다고 이정식 장관이 보도자료까지 내 언론에 대대적으로 설명했다. 월 단위로 관리하게 되면 특정한 주에 92시간까지 근로해도 주 52시간제 위반에 해당하지 않게 된다. 장관이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보도자료에서는 이 나라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고 통계 자료를 통해 밝혀 놓았다. 그러면서도 주 52시간 상한제를 현행 주 단위가 아닌 월 단위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니 장시간 근로시간 실태 등 진단과 대책이 엉뚱하다. 독일이 어떻고, 일본이 어떻다고 주단위로 하지 않을 수 있는 사례를 들고 있는데 어떻게 현재의 주 단위로 하던 걸 월 단위로 하는 것이 장시간 근로에 대한 대책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정말로 OECD 2위인 장시간 근로를 단축해야 한다고 본다면, 대책은 간단하다. 연장근로까지 포함한 현행 52시간 상한제를 단축하면 된다. 만약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현행 52시간 상한제를 단축하겠다고 했다면, 44시간·40시간 등으로 단축하겠다면서 노사합의를 통해 월 단위로 관리하는 방안을 대책으로 내놨다면 지금보다는 노동자들의 반발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장관이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에서는 장시간 노동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 없이 노동자를 장시간 노동에 내모는 것이었으니 이를 두고서 이 나라 노동자들이 노동개악이라며 저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에서 공공연히 문제가 많은 법이라며 개정하겠다고 했었다. 입법 시행된 이후에 개정 요구가 많았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사용자 기업뿐만 아니라 노동자들도 개정을 요구했다. 이러한 개정 요구 중 윤석열 정부의 추진 방향은 사용자 기업의 요구를 받드는 것이다. 도대체가 어느 하나 사용자 자본과 노동의 이해와 요구가 엇갈리는 경우 노동을 받드는 걸 보지 못했다. 이 지경이라면, 윤석열 정부에서 노사 간 대화 내지 협상을 통해서 노동정책을 마련한다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 해마다 수천 명이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나라를 더는 방치할 수 없어서 마련한 법인데, 이 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중대산업재해 발생은 여전하다. 어떻게 중대재해의 발생을 억제할 것인지를 두고서 입법과 집행을 고민해야 마땅했다. 국가의 입법과 집행이 대책일 수밖에 없는데, 단순히 사용자 기업을 상대로 한 홍보와 지원을 대책으로 내세운다면 그건 사용자 기업을 위해서 정부가 방치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대책은 나온 게 없다. 친기업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에서 노동문제에 관해서 대책을 발표할 때면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아무런 대책도 발표하지 않는 게 고마울 지경인데, 사실 무대책은 방치다. 대회사를 통해서 민주노총 위원장이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 비정규직이 천만인데 단 한마디 말도, 아무런 대책도 없다고 비판했는데, 바로 이러한 현실을 말한 것이다. 여기에 민영화·민간위탁이 추진되면 그동안 해 왔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 그 방향을 잃게 될 것이 뻔하다.

 

4. 이상과 같이 이번 전국노동자대회를 읽어 보면, 참석 노동자들은 지난 2개월 윤석열 정부에서 노동정책은 사용자 기업을 위한 것이었다고 비판하면서 노동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노동자들은 노동자대회를 통해서 지금까지 정부정책이 반노동이라고 비판했고, 이와 관련해서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윤석열 정부에 이러저런 경고를 하고서 경고가 쌓이면 다음은 퇴장이라고 경고했다. 한마디로 이번 전국노동자대회는 노동자에 반해서 사용자 자본을 위한 정책에 몰두하는 권력을 향한 경고였던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김기덕 매일노동뉴스 2022.07.05.

 

 

정녕 허수아비 경찰을 원하는가

우리 경찰에게는 천형(天刑)이 있다. 일제강점기엔 독립군 잡아들이는 순사로 오명을 얻었고 해방 후엔 독재권력의 편에 섰다. 민주화를 탄압했고, 단속 대상인 업소에서 소위 을 뜯던 시절도 있었다. 이런 부끄러운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두가 뼈를 깎고 또 깎았다. 민간 기업처럼 치안서비스와 고객만족도 평가를 도입했다. 내부 감찰을 강화해 청렴 의식도 높였다. 그렇게 시민의 지지를 얻는 대신 경찰은 권위를 내려놓았다. 친근함과 근엄함은 양립하기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경찰에 대한 인식은 많이 달라졌다.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편한 이웃이 됐다. 동시에 멋쩍지만 치안강국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새벽까지 술을 마셔도 걱정 없는 나라에 산다. 지구상에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경찰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친근한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그럼에도 경찰을 사나운 공룡에 비유하는 시선도 있다. 우리가 공룡인 건 맞다. 아기 공룡 둘리여서 유감이지만.

 

최근 행정안전부는 공룡 경찰을 통제한다는 명분으로 경찰국 신설 의도를 분명히 했다. 내부 반발은 거세다. 직장협의회(직협)를 중심으로 전국 대부분 경찰 기관에서 반대 입장문을 발표했다. 길거리마다 이들이 내건 현수막이 만장처럼 펄럭인다. 얼마 전에는 경찰의 꽃으로 불리는 한 총경의 1인 시위가 큰 감동을 주었다. 경찰 지휘부의 침묵과는 정반대다. 아기 공룡들의 꼼지락거림은 아름답다.

 

어떤 경찰관은 소나기가 퍼붓는 와중에 삭발식을 했다. 그는 퍼붓는 빗물을 경찰의 눈물이라고 했다. 한발 더 나아가 노동계·시민사회와 연대해 반대 입장을 널리 알리고 있다. 지난달 28일에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직협 대표단과 한국노총 공무원연맹 공동 주최로 경찰국 신설 반대 기자회견도 있었다.

 

행안부의 경찰권 비대화 주장은 추상적이다. 조직의 수장이 차관급에 불과한 경찰이 권력화됐다면 차관급이 50명 넘게 즐비한 검찰은 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 그들이야말로 둘리를 다스리는 티라노사우루스 아닌가. ‘수사 만능키인 영장청구권도 없이 일거리만 늘어난 마당에 경찰을 통제하겠다는 발상도 그렇다. 게다가 행안부 내외부 인사들이 모여 고작 네 번의 회의를 거쳐 도출한 결론이다. 그래서 경찰 장악 의도라고 의심받는 것이다.

 

반면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에 대한 우려는 현실적이다. 과거 정부에서 청와대가 관행적으로 경찰청장과 고위직 임명권을 행사했다면 이번에 나온 행안부 권고안은 그보다 더 구체적이고 위협적이다. 지난달 27일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경찰에 대한 지휘규칙을 만들어 인사·예산·징계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명백히 했다. 주요 권한을 뺏긴 경찰청장은 허수아비가 될 수밖에 없다.

 

경찰 내부 게시판은 지금 우경충정으로 펄펄 끓는다. 현대판 시일야방성대곡이 등장하고 독립선언문을 패러디한 글도 올라왔다. 하루 10건 정도 올라오던 게시물이 수십건씩 쏟아지고 있다. 이상민 장관이 경찰 여론을 파악하겠다며 서울 마포경찰서 홍익지구대를 방문한 것을 두고도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경찰국 신설을 기정사실화한 상태에서 현장을 달래려는 시늉만 하고 있어서다. 그 와중에 마포서장은 이상민 장관에게 악수를 하면서 굴신 경례까지 곁들여 빈축을 샀다.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지휘부가 벌써 행안부에 무릎을 꿇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모든 반발의 요점은 하나다. 최소한 경찰의 자존심만은 지켜달라는 것이다. 지금보다 나아지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과거로 돌아가지만 않게 해달라는 절규다.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정부의 대응이다. 몇 명을 시범 케이스로 징계해 반대 의견을 억압할까봐서다. 그건 민주열사를 고문했던 과거로 시계를 되돌리는 것이다. 우리는 행안부 권고안에 대한 반대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정현수 충주경찰서 경위 경향 : 2022.07.07.

 

 

사람이 사람을 부른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겪으면서 이웃이 중요해졌다. 개인이든 사회든 간에 회복력이 있느냐는 내 에 이웃이 있고, 그 이웃이 나를 들어주고, 나를 어주느냐가 중요하다. , , 품의 가치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치철학자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커뮤니티는 없고, 소사이어티만 남았다고 진단한다. 이해관계에 의해서만 모이는 소사이어티가 불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소사이어티만 득세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 , 을 위한 도시정책이 늦출 수 없는 정책 화두와 방향이 되었음은 말할 나위 없다.

 

중앙정부 및 기초자치단체에서도 재미있고 의미 있는 프로그램들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춘천문화재단에서 2020년부터 실시하는 도시가 살롱프로그램이 퍽 인상적이다. 개인의 취향을 바탕으로 공간 주인장이 기획한 커뮤니티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사람과 지역이 연결되며, 도시 공간 내 문화적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프로그램으로 인기가 높다. 갤러리, 목공방, 카페, 공유서재, 책방, 다도 공간 등 다양한 개인 상업 공간들이 여럿 참여했다. 모든 것이 사유화되는 시절에, 새로운 문화적 공유지를 만들고자 하는 사업에 너도나도 팔을 걷고 나선 것이다.

 

참여자들의 변화가 눈에 띈다. ‘화양연화커피숍을 운영하는 60대 최대식 주인장은 한 포럼에서 간증을 했다. 수년 동안 레트로 음악카페를 열었지만, 세 번이나 열고 닫아야 했다. 그때마다 꼭 해보고 싶은 일이 팝송영어교실이었다. 지금 여기서 커피를 팔고 있지만, 커피 파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시()도 같이 나누어 읽고, 커뮤니티 활동도 하는 것이 꿈이었다. ‘도시가 살롱은 그런 사람들의 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으로서 안성맞춤이었다. 최대식 주인장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얻은 가장 큰 소득은 해보니 되더라라는 자신감이었다. 어느 시인이 피로(疲勞)도 내가 만드는 것/ 긍지도 내가 만드는 것”(김수영, ‘긍지의 날’)이라고 했던가. 이 자신감은 참여자들이 화양패밀리를 결성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코로나 엔데믹 상황에서 지역의 회복력이 시급하다. 소멸을 말하는 시절이지만, 일본 산골 오지마을 가미야마(神山)는 전국적 조명을 받는다. 마을 변화를 이끈 주역은 60대 후반의 NPO법인 그린밸리의 설립자 오미나미 신야(大南信也) 이사장과 또래 친구들이다. 그는 타지 사람들에게 지역공헌따위는 신경 쓰지 말라며, 재미와 장난의 요소를 가미한 프로그램들을 여럿 만들었고, 그것이 도쿄 IT 기업을 비롯해 타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마을은 마음이다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사람들에게 곁, , 품을 기꺼이 내어주려는 마음에서 환대하는 마을이 탄생한 셈이다. 오미나미 신야가 사람이 사람을 부른다. 그곳에 어떤 사람이 있는가의 문제이다라고 한 말은 회복력을 고민해야 하는 시절에 음미해야 하는 소중한 화두이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사회공헌을 권장하는 문화에 빠져 있었다. 소위 사회공헌하지 않는 진짜 사회공헌을 고민해야 하고, 더 유연해져야 한다. 이 여름, 화양연화 가서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 마셔야겠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경향 : 2022.07.07.

 

 

기후위기에 기름 붓는 광고

앞을 보면 기후위기라고 난리인데, 옆을 보면 석유제품을 빛나게 광고한다. 새 내연 자동차가 굉음을 내며 달리는 영상이나 석유를 사는 만큼 나무를 심는다는 주유소 홍보물이 눈길을 잡아끈다. 광고는 얼른 비행기를 타고 떠나라 유혹하고, 매끄러운 플라스틱 제품을 구입하라며 소비자 가슴을 들쑤신다. 찬물과 더운물 사이에서 시민들은 혼란스럽다. 뉴스는 기후위기 소식으로 난리인데, 광고 속 세상은 마냥 아름답다. 얼른 내연차를 타고 숲속을 달리란다. 이건 담배가 해롭다는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담배를 권하는 상업광고가 나오는 꼴이다.

 

굴뚝 없는 광고·홍보업도 온실가스를 유발할까? 내 생각은 그렇다이다. 광고·홍보업계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소비하라고 보챈다. 화려한 영상과 소리로 기후위기를 까마득히 잊게 하고, 때때로 불필요한 소비를 부른다. 기후에 해로운 제품을 친환경으로 위장(그린워싱)하는 일도 종종 있다. 오죽하면 올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처음으로 기후위기 속 광고·홍보의 역할을 언급하며, 화석에너지 기업을 위해 일하는 광고·홍보업체가 잘못된 기후정보를 퍼뜨리지 말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유엔 레이스 투 제로(Race to Zero) 캠페인 사무국은 지난 615일 광고·홍보업계를 향한 새로운 지침을 세웠다. 캠페인에 참여하는 광고·홍보업체는 화석연료 관련 제품이나 회사의 광고를 대행하여 올린 매출을 밝혀야 한다. 이는 광고·홍보가 부추겨 추가 발생한 온실가스양을 측정하는 기초가 된다.

 

광고·홍보업계도 이를 잘 아는 모양이다. 지난 620일 프랑스 남부 칸에서 열린 세계 최대 국제광고제 개막식이었다. 15년 전, 이 광고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구스타프 마트너가 개막식 무대에 불쑥 올라갔다. 그린피스 액티비스트가 되어 15년 전에 받은 트로피를 들고 행사장을 다시 찾은 남자는 황금사자상을 주최 측에 반납했다. 배출가스 시험성적을 위조한 독일 폭스바겐의 디젤 자동차를 광고해 받은 트로피였다. 마트너는 광고계는 화석연료 광고 금지조치를 지지해야 한다. 죽은 지구에는 상도 없다고 외쳤다. 그 순간 행사장에는 적지 않은 박수와 환호가 퍼졌다.

 

공교롭게도 마트너가 트로피를 반납한 올해 칸 국제광고제에서 현대자동차가 지면과 옥외광고 부문 은사자상을 받았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태풍 제비로 인해 자동차가 뒤집힌 모습으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보여주며 미래 세대를 위해 친환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광고다. 그러나 광고와 달리 현대자동차는 디젤 자동차 배출가스 조작 혐의로 지난 628일 독일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불법 배기가스 조작장치를 부착한 디젤차 21만대 이상을 2020년까지 유통한 혐의다. 폭스바겐 디젤게이트와 장면이 겹친다.

 

한순간이 모든 걸 바꿀 수 있다.’

마트너가 트로피를 반납하는 순간 칸 국제광고제 무대 배경에 커다랗게 적힌 문구였다. 그들이 자각하고 있는 것처럼 광고·홍보의 영향은 이토록 크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담배 광고가 사라진 것처럼 화석연료 관련 제품 광고도 사라질 때다. 광고·홍보업에도 윤리가 있지 않은가. 기후위기에 기름 붓는 광고를 당장 멈추라.

김연식 전 그린피스 항해사 경향 : 2022.07.08.

 

 

자전거와 사회문제

열두 살 무렵 내 몸은 작고 날랬다. 담장을 넘어 다녔고, 지붕과 나무에 기어 올라갔고, 계단을 내려갈 땐 열 개씩 건너 뛰어 내려갔다. 그 무렵 자전거도 배웠다. 넘어질 것 같은 쪽으로 핸들을 꺾으면서 가라는 말을 아무리 들어도 잘 이해하지 못하다가, 야트막한 내리막길에서 살살 출발해 봤더니, 약간의 중력을 받아 어설픈 핸들 조작만으로도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두 바퀴 위에 몸을 온전히 싣고 미끄러져 나가는 감각은 신비로웠다. 인류 문명의 달콤한 맛.

 

 

얼마 후 교복을 맞췄고, 그땐 몰랐다. 교복 치마가 제약하는 범위에 몸을 맞춰 길들이고 향후 20년쯤 나는 자전거와 관계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며, 해마다 나무를 타는 방법도, 계단을 열 개씩 뛰어서 내려가는 요령과 감각도 점점 잊어서 나중에는 그럴 수 있었던 과거를 전생처럼 느끼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한편 남동생은 교복을 입고부터 자전거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엄마는 얼마 전까지 사내애라고 자전거로 통학시킨 불쌍한 네 동생이란 레퍼토리를 반복했다. 차 타면 편한데 땀나고 추워서 싫긴 했겠지, 생각했다. 재작년부터 다시 몸을 움직이는 법을 익히고, 이듬경향 : 2022.07.07월에만 따릉이를 100쯤 타고 나서 생각을 바꿨다. 맞다, 자전거는 재밌는 거였지?

 

다시 굴러다니는 맛을 알고 생활 자전거인으로 살아가게 됐다. 버스·지하철 노선도를 짠 누군가의 손바닥 위에서 벗어나는 해방감. 차에서 잠깐 내리는 건 힘들지만, 귀갓길 과일가게 앞에 자전거를 대고 바나나를 사는 건 쉽다. 동네에서 귀여운 가게 간판을 발견하면 멈춰서 큭큭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좋은 건 동네방네 알리자는 주의라, 친구들을 죄다 따릉이 정류장으로 데리고 가 이용권을 끊게 했다. 그러면서 주변 친구들 중 여자는 십중팔구 교복 치마를 입고 자전거와 멀어졌다는 걸 알게 됐다. 반면 남자인 친구들은 10대 시절을 자전거와 가깝게 보냈다. 이들은 물고기가 헤엄치듯 자전거를 탔고, 곧 그걸로 운동도 가고 출근도 했다.

 

여자들을 다시 자전거에 태우는 건 너무 어려웠다. 심지어 태권도 4단의 생활체육인도, 선수 출신인 나의 운동 선생님도 시내에서 자전거는 무서워서 못 타겠다고 했다. 우리 집만 그랬는 줄 알았는데 남의 집도 그랬다면 그건 사회문제. 한국여성정책연구원(2010)에 따르면 자전거 이용자 중 자전거를 매우 잘 탄다고 한 비율은 남성 40.2%, 여성 18.0%. 한국의 자전거 교통수단 분담률은 지난 수년간 2% 근처다. 도로는 보행자도, 자전거도 아닌 자동차만의 것이다. 자전거에 아주 익숙하거나, 나처럼 전기자전거 산 지 두 달 만에 800씩 타면서 도로 주행 요령을 익히면 자전거 인프라가 엉망인 이 도시를 그럭저럭 다닐 수 있다. 하지만 뭐든 중간쯤 해도 안전하고 문제가 없어야 제대로 된 것이다.

 

어떤 도시에서 자전거 생활이 편하다는 건 그 도시가 자전거의 속도에 맞게 움직인다는 의미겠다. 네덜란드의 교통에서 자전거 비율은 3분의 1쯤이고, 덴마크도 비슷하다. 공교롭게도 두 나라는 대부분의 조사에서 아동·청소년이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힌다. 한국 어린이의 행복지수는 작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개국 중 22등이다. 우연일까?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경향 : 2022.07.09.

 

 

아베 총격 사진의 목적

언론 보도에서 인간이 단순한 수단으로, 객체로 전락할 때 그 표현은 부적절하게 선정적이다. 이는 특히 죽어가거나 육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 공익과 독자의 정보 이익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보도되는 경우에 그렇다. 폭력과 사고 사진을 1면에 배치할 때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다.”

 

독일 언론윤리강령 중 한 부분이다. 언론윤리강령에는 피해자와 가해자 보도 등 사건 사고를 다룰 때 유의할 점이 상세히 명시되어 있다. 인간 존엄과 인격권 존중이 그 바탕이다. 독일의 언론윤리강령은 강제력도 법적 구속력도 없는 문장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이 가이드를 준수한다. 윤리강령을 의식해서가 아니다. 언론으로서 지켜야 할 절제와 품위를 알기 때문이다.

 

최근 독일에서 큰 사고가 두 번 있었다. 지난 6월 초 기차가 전복되어 5명이 사망하고 70여 명이 다쳤다. 며칠 뒤에는 베를린 도심 인도에 자동차가 난입해 1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피해자 중에는 청소년들이 많았다. 독일 전역에서 탄식과 애도가 이어진 사고였다.

 

관련 보도에서 사고 현장의 피해자 사진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유가족 취재도 없다. 대부분 사건 사고의 사실관계와 배경을 중심으로 보도한다. 사고 현장을 자세히 보고 싶으면 타블로이드지 빌트(Bild) 홈페이지로 접속하면 된다. 사고 직후 피해자나 감정적인 상태의 유가족 취재를 하는 곳도 타블로이드지뿐이다.

 

한국의 보도 방식과 비교하면 다른 점이 명확하다. 한국은 큰 사고가 나면 앞다퉈 장례식장으로 간다. 유가족, 지인, 이웃을 찾아 피해자의 이야기를 찾는다. 죽음을 둘러싼 사연과 감정이 기사가 된다. 물론 어느 방식이 낫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독일 보도가 지나치게 건조하게 보일 때도 있다. 피해자나 유가족의 경우 언론에 호소하고 싶을 때도 있지 않을까? 죽음을 받아들이고 고인을 보내는 문화의 차이도 반영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보도의 목적이다.

독일 의 부고 기사. ‘포퓰리즘 민족주의자라고 평가했다. zeit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총격을 받았다는 뉴스를 본다.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진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한국 포털이나 언론사 페이지에 들어가 어떤 기사를 클릭해도 그 사진이 함께 나왔다. 메인 화면에 걸린 곳도 많았다. 원치 않아도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뉴스를 보는 전 연령대가 그 장면을 보고 또 보았다.

 

그 사진을 선택한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죽어가는 사람의 사진을 싣는 것은 애도가 아니다. 탄식도 아니다. 인간을 도구로 쓴 것이다. 신경을 자극하며 클릭을 유도하는 도구다. 심지어 일본 전 총리 아베라니, 애도하지 않아도 괜찮은 대상이 아닌가. 기사 댓글 창은 영화의 사이다장면을 보는 듯한 감상평이 대다수다.

 

그렇게 아베 전 총리의 공과와 평가보다는 마지막 모습만이 뇌리에 남았다.

이유진 프리랜서 기자 프레시안 2022.07.10.

 

 

부자 감세' 더 해야 한다

낙수효과와 부자 감세. 소위 진보가 시장주의 개혁을 비난할 때 조자룡 헌 칼 쓰듯 남발하는 양대 키워드다.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에 대한 거대 야당의 반응 역시 한 치도 다르지 않다. 법인세율 인하(25%22%) 계획에 대해 야당은 또 철 지난 낙수효과 타령이냐며 비아냥댔다. 있는 자만 위하는 부자 감세노력이 눈물겹다는 조롱도 보탰다.

 

그러나 낙수효과는 없고, 감세는 반서민적이라는 인식이야말로 억지요 뇌피셜이다. 사과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투자 세계에서 낙수효과는 직관적으로 동의되는 명제다. 낙수효과의 존재를 확인한 논문도 수없이 많다. 어찌 보면 한국 경제의 기적 스토리 자체가 대기업이 앞장서고 중소기업이 동행해 만든 낙수효과의 누적 결과 아니던가.

 

진보좌파 진영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낙수효과 실종을 전제로 소득주도성장 전략을 주조한 홍장표 교수조차 실은 그 존재를 잘 알고 있다. 2015년 발표 논문에서 그는 낙수효과는 정의상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단정하기까지 했다. ‘낙수효과는 없다고 우긴 문재인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는 올 2월에도 청와대에서 주한 외국기업 간담회를 열고 참석한 CEO들에게 추가 투자를 독려했다. 낙수효과를 부정한다면 의미 없는 행보다.

 

낙수효과가 명백하기에 감세정책도 정당하다. 감세가 투자와 GDP 증가를 부른다는 것은 최근 프랑스가 재차 입증했다. 프랑스는 마크롱 대통령 집권 5년 동안 법인세율을 33.3%에서 25%로 끌어내렸다. 그 결과 5년 성장률이 유럽 주요 5개국 중 최고가 돼 유럽연합(EU)의 경제모범생으로 대접받는다.

 

미국도 대대적 감세(35%21%)를 단행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 만만찮은 호황을 누렸다. 감세정책의 효과는 한국에서도 광범위하게 확인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이 30년의 방대한 데이터를 돌려 보니 최고세율 1%포인트 인하 시 설비투자 증가율은 3.6%에 달했다.

 

그래봐야 부자들만 좋은 반서민 정책이라는 비난도 선동에 불과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내내 악화하던 양극화 저지에 성공한 것은 감세에 적극적이던 이명박 정부다. 반면 부자 증세와 퍼주기로 치달은 문재인 정부 때는 불평등이 다시 극심해졌다. 양극화 지표가 너무 악화하자 애먼 통계청장을 전격 경질하고 좋은 통계로 보답하겠다는 새 청장을 앉히기까지 하지 않았나.

 

세율을 내리면 세수가 쪼그라든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법인세율 인하(25%22%) 첫해인 200839조원이던 법인세수는 201871조원으로 불어났다. 세율 인하 10년 만에 세수가 거의 2배가 된 것이다. 반면 문재인 정부 세율 인상(22%25%) 2년 뒤인 2020년 세수는 23% 급락했다. 높은 법인세율은 근로자에게 전가돼 임금도 낮춘다. 법인세율이 10% 오르면 임금은 평균 2.5% 감소한다는 분석도 나와 있다.

 

감세 무용론의 거대 야당이 근거로 제시하는 주요 팩트는 딱 하나다. 이명박 정부 당시 법인세율을 낮췄지만 투자가 줄었다는 주장을 무한반복 중이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불확실성 증대로 아주 잠깐 투자가 위축됐지만 금방 회복됐다는 게 진짜 팩트.

 

자칭 진보 매체와 학자들까지 가세해 새 정부 경제정책을 실패한 MB 시즌2’로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다. ‘실패한 MB’라는 수식어부터 악의적 프레임이다. 이명박 정부의 성장률(OECD 대비 초과 성장률)은 외환위기 이후 정권 중 압도적 1위다. MB 정책과 정반대로 치달은 문재인 정부야말로 초과 성장률 꼴찌의 굴욕을 당했다.

 

한국은 대표적 부자 과세국가다. 상위 1%84%, 10%97%의 법인세를 부담한다. 반면 두 곳 중 한 곳은 법인세액이 제로(0). 이익 규모를 4단계로 나눠 고율의 누진세를 때리는 나라도 한국 말고는 잘 없다. OECD 회원국 절반 이상은 단일세율 체계다. 기형적 부자 과세손질로 성장률을 높이고 임금까지 올릴 수 있다면 감세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

백광엽 논설위원 한국경제 2022.07.10.

 

분노로 일렁이던 눈가에 이슬 한방울

초등학생 때 전쟁기념관은 견학할지언정 노동조합을 찾지 않으며, 중학생 때 모의 노사협의를 하는 일이 없고, 고등학생 때 노동조합이 민주주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글쓰기를 하지 않는다. 대신 국가경쟁력, 기업 하기 좋은 나라 등 객관적 진리로 포장된 지배세력의 관점과 이념을 주입받는다. 수많은 노동자가 자본 편에 선다.

너희들은 자본 투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럴듯한 말 뒤에는 더 많은 돈을 모으려는 짐승 같은 허기만이 있을 뿐이다. ‘짐승 같은이라고 말했지만, 이 표현은 짐승에 대한 모욕이다. 왜냐하면 짐승은 배가 부르면 먹기를 그치기 때문이다.”

 

나치 선전상이 되기 전 은행원이었던 시절 괴벨스가 노트에 쓴 말이다. 인플레로 물가가 치솟자 대토지와 건물 소유주들은 부유해졌지만, 곤경에 처한 서민들의 작은 토지들을 헐값에 사들이면서 재산을 엄청나게 긁어모았다.

 

축적하라! 축적하라! 축적하라! 자본운동의 제1법칙은 윤석열 정권의 부자감세 좀비”(폴 크루그먼)에 힘입어 맹렬하게 관철될 참이다. 신종 좀비는 주식 투자를 통하면 천억원까지 양도세나 상속세를 내지 않게 해주는 신공도 펼친다. 소유에 일시 소유는 없고, 자손만대 영구적이다.

 

<조선일보>가 대우조선해양 본사를 따라 파업노동자들이 회사에 8천억원의 손해를 입혔다고 썼다. 손배소 폭탄을 투하할 것을 종용하고, 윤 정권은 법대로 원칙대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라고 화답한다. 물경 8천억원! 삼척동자도 말할 것이다. 그렇게 엄청난 손해를 입을 거라면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기 전에 요구사항이었던 임금 30% 인상을 해줬어야 마땅한 게 아닌가. 20년 넘게 일한 노동자들의 시급이 최저임금에서 기백원 많은 터라면, 더욱이 30% 인상 요구가 원상회복일 뿐이라면! 결국 4.5% 인상에 머물렀는데,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한다. 손배 가압류가 어른댄다.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 윤지영 변호사가 말했다. 손배 가압류는 기업의 손해보전이 아닌, 노동자들의 손발을 묶는 게 목적이라고. 또 터무니없는 청구액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사용자의 책임을 희석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다고. 실제 손배 가압류는 두산중공업 배달호 노동자를 불사르게 했고, 한진중공업 김주익·최강서 노동자가 목을 매게 했으며,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이 사악한 법을 없애기 위해 손잡고가 결성됐을 때 발기인으로 참여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말했다. “손해배상과 가압류의 남용은 노동3권을 무력화시키는 부당한 처사입니다. 절망 속에서 세상을 떠난 분도 여럿입니다. 노조법 개정안 노란봉투법을 관철해낼 것입니다.”

 

그 뒤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한국도로공사, 금호타이어, 한국지엠(GM), 아사히글라스, 유성기업 등 노동자들이 손배 가압류 대상자 목록에 추가됐고, 그사이 민주당이 180석을 차지했으나 노란봉투법은 지금껏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국제노총(ITUC)이 지난달 28일 전세계 148개국 노동권 수준을 평가한 글로벌 권리 지수를 발표했다. 6개 등급 가운데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는 튀르키예(터키)와 함께 5등급으로 분류됐다.

 

우리에겐 유소년 시절 메이데이에 노동자 아버지의 목말을 타거나 노동자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거리행진에 나선 경험이 없다. 초등학생 때 전쟁기념관(전쟁을 기념한다!)은 견학할지언정 노동조합을 찾지 않으며(찾을 수 없으며학부모가 인솔 교사를 고발한다), 중학생 때 모의 노사협의를 하는 일이 거의 없고, 고등학생 때 노동조합이 민주주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글쓰기를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초중고 사회 시간을 통틀어 자본주의에 관한 공부는 거의 하지 않는 것이다. 대신 국가경쟁력, 기업 하기 좋은 나라 등 객관적 진리로 포장된 지배세력의 관점과 이념을 주입받는다. 수많은 노동자가 자본 편에 선다.

 

민주공화국의 시민도 드물다. 황국신민에서 신자유주의 체제의 소비자, 고객이 됐다. “우리는 사회 불의보다는 차라리 무질서를 택한다는 알베르 카뮈의 말에서 우리는 공화국 시민을 가리킨다. 1871528일 새벽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 벽에서 즉결 총살된 파리코뮌 전사들이 마지막으로 외쳤던 공화국 만세!”에 담긴 공화국의 의미가 우리에겐 티끌만큼도 없다. 대신 재벌공화국, 삼성공화국, 검찰공화국이 난무한다. 가치는 사라지고 지배 형태만 남았다.

 

고대 로마시대에 가뭄이 오면 귀족용 전용 수도를 제일 먼저 끊었고, 공중수도를 마지막까지 흐르게 했다. ‘공화국’(republic)의 라틴어 어원이 ‘res publica’(공적인 일, 공중(公衆)의 것)였다. 오늘날 교육, 의료, 주거 공공성의 시원이 지금도 로마나 스페인 등지에 남아 있는 수도교(하천이나 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상하수도를 받치려고 만든 다리) 유적으로 알 수 있는 물의 공공성이었다. 그 가치는 프랑스대혁명 직후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1조 제2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익을 바탕에 둘 때만 가능하다에 담겼다.

 

역사학자 김기협은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을 넘어>에서 중국과 한국의 군주제는 공공성의 원리에 입각한 것이었고 비록 상하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갖는 상당 수준의 민주적 원리가 포함되었다고 쓰면서, 사마천의 혹리열전’(酷吏列傳) 서문을 소개했다. “()과 형()으로 백성을 다스리면 이를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모르게 되므로 덕()과 예()로 다스려야 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는 내로남불이 부끄러움을 완전히 몰아낸 사회다.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박근혜, 문재인을 거쳐 윤석열 정권까지 어떤 정치철학 아래 어떤 정책을 펴기 위해 집권했는지 알 수 없는 한편, “법은 힘센 자의 권리”(크로폿킨)라는 말이 적용되므로 서로 정()과 형()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일차적 목적의 권력다툼을 치열하게 벌인다. 자기 사람에게 국가의 괜찮은 일자리를 주는 부차적 목적도 있다. 어느 쪽이든 자본의 마름이 되어 노동 탄압에 나선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정치는 본디 고귀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사회적 연대의 실현을 소명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벽안의 신부님의 말에 담긴 정치는 우리에겐 신기루일 뿐이다.

 

벨기에 겐트시의 성에 있는 고문 도구 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마녀사냥 시절에 사용되었던 쇠사슬, 밧줄, 도르래, 결박틀과 그것들의 조합인 고문 도구들이 즐비했다. 대부분이 몸의 일부를 결박하고 다른 일부를 잡아 늘이는 방식이었는데, 이런 공통점에서 벗어난 게 있었다. 세 변이 60쯤 되는 정육면체 감방이었다. 피고문자는 그 안에서 웅크린 자세로 꼼짝할 수 없었다.

 

그보다는 조금 큰 0.3평 쇠감옥에서 31일 동안 갇혀 있다 나온 유최안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말했다. “돈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만나봤어요. (노동조합 활동하면서) 인간답게 사는 것 같았습니다.” 분노로 일렁이던 누군가의 눈가에 이슬방울 하나가 맺혔다.

홍세화 | 장발장은행장·‘소박한 자유인대표 한겨레 2022.07.28

 

민생이 비상인데 재정은 긴축인가

경제가 어려울수록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서민과 취약계층이다. 정부는 민생안정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대통령의 말이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를 기록하는 등 물가는 연일 오르고 경기는 둔화돼 민생이 비상인 가운데, 정부가 8일 제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고 취약계층 지원 정책들을 내놨다. 저소득층의 생계지원을 위해 에너지바우처 단가를 인상하고 식료품비와 생필품비 지원을 확대하며 취약계층 복지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란다. 또 식료품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돼지고기 등에 대한 할당관세 적용과 농산물 조기방출 등도 추진된다. 필요한 정책들이지만 총 8천억원 규모로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우려되는 것은 윤석열 정부 거시경제정책의 방향 자체다. 비상경제민생회의 전날 개최한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회복하겠다며 긴축재정 기조를 선언했다. 정부는 국가채무비율을 국내총생산(GDP)50%대 중반으로 관리하고, 특히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의 3% 내로 유지하는 재정준칙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 이후 다시 닥쳐온 복합위기 가능성 앞에서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면 경기를 둔화시켜 저소득층의 살림살이가 악화할 것이다. 정부는 지난 정부의 과도한 재정확장으로 나라 곳간이 비었고 국가채무비율이 빠르게 높아졌다지만, 누가 뭐래도 한국의 재정은 매우 건실한 편이다.

 

특히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 한도 법제화는 강력한 긴축편향을 만들어낼 것이다. 한국은 연금 수입에 비해 지출이 적어 사회보장성기금 수지가 흑자이기 때문에,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사회보장성기금 수지를 포함한 통합재정수지 적자보다 더 크다. 거시경제에 중요한 것은 통합재정수지인데, 재정준칙에 따르면 통합재정수지 적자 한도는 국내총생산의 약 1%에 불과하다. 이런 정책은 경기관리를 위한 유연한 재정운용을 가로막고 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한편 정부는 지출구조조정으로 마련한 재원을 가난한 이들에게 더 두텁게 지원할 것이라고 말한다. 공공부문 개혁은 필요하겠지만, 재원을 생각하면 고유가 시기 정유회사의 높은 이윤에 대한 과세처럼 대기업과 부자에게 한시적으로 증세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그것이 대통령의 말마따나 어려운 이들을 위해 부담을 나누고 연대하고 협력하여위기를 극복하는 방향이다.

하지만 지난달 발표된 경제정책방향은 역시 그와는 반대 방향이다. 정부는 민간 주도 경제성장을 강조하며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등 감세를 제시했다. 이는 기업과 부자 감세가 고용과 성장을 촉진해 그 이득이 서민에게도 돌아갈 것이라는 낙수효과경제학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나 여러 경제학 연구와 역사적 경험은 그것이 환상임을 보여준다. 이 흘러간 주장이 2020년대에 되살아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게다가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물가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며 임금인상 억제를 주문했다. 하지만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20224월 임금총액은 전년 동월 대비 2.7% 상승해 1분기보다 크게 낮아졌고 소비자물가 상승률 4.8%에 비해도 한참 낮았다. 결국 실질임금은 하락했고, 일각에서 우려하는 임금-물가 상승 악순환 가능성도 크지 않다.

 

통화정책도 우려스럽다. 높은 인플레를 배경으로 한국은행은 빠르게 금리를 인상할 전망이다. 그러나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글로벌 공급망 문제나 전쟁 같은 공급 쪽 요인이 크다.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실질국내총생산은 잠재국내총생산보다 낮아 총수요와 경기과열로 인한 물가상승 가능성은 작다. 이런 상황에서 급속한 금리인상은 인플레이션 억제 효과는 제한적인 반면 경기에는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 금리인상과 함께 원화 환율이 높아졌지만 코로나19 이후 한국의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이 다른 국가에 비해 특별히 심각하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외환시장 불안 가능성도 제한적이다. 금리인상과 동시에 재정도 긴축한다면 경기가 급속히 둔화되고 민생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최근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크게 하락했고 보수언론마저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통령은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는다지만 그것은 국민의 어려운 삶을 챙기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실망을 반영하는 것이다. 말로만 민생을 얘기할 게 아니라 경제정책방향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강국 |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한겨레 :2022-07-11

 

 

양두구육윤석열 정권: 도이치 주가조작과 취임식 VIP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로 기소된 권오수 전 회장의 아들이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브이아이피(VIP)로 참석했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 왠지 속이 메슥거려오는 것을 느꼈다. 강한 모욕감 같은 것이었다. 이유를 곱씹어봤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517일 취임하자마자 ‘1호 지시로 문재인 정부 때 없앴던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부활시켰다. 검찰 직접수사를 축소해온 전 정부 시책을 뒤집는 첫 조처로 증권 범죄를 선택한 것이다. 한 장관은 취임사에서 서민을 울리는 경제 범죄 실태에 대해 시급히 점검하고 발빠르게 대처해야 한다저는 오늘 즉시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다시 출범시키는 것으로 그 첫발을 떼겠다고 말했다. “서민 다중에게 피해를 주는 범법자들은 지은 죄에 맞는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럴 듯한 법무부 장관의 취임 일성이었다.

 

그런데 그 며칠 전 열렸던 대통령 취임식에는 권오수 전 회장 아들인 현 도이치모터스 대표 권혁민씨가 앞쪽 자리에 버젓이 앉아 있었다. 선량한 투자자들을 울리는 주가조작 범죄 혐의를 받는 사람의 아들이자 그로부터 회사 경영을 물려받은 사람을 취임식에 초청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 한동훈 장관의 취임사가 그 이유를 말해준다. 한 장관은 이런 말도 했다. “(증권범죄합동수사단 폐지는) 서민 다중이 피해자인 금융증권 범죄에 대해 연성으로 대처하겠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시장에 준 조치라고 생각한다. 국가는 그런 범죄에 대해 강력히 대처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대중에게 주는 게 중요하다. 서민 다중이 피해를 보는 (금융·증권) 범죄는 피해를 호소할 곳이 없다. 이럴 때는 확실하게 끝까지 책임을 묻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한다.”(520일 국회 답변) 그렇다면 권씨의 취임식 참석이야말로 주가조작 범죄에 대한 최악의 메시지를 주고, 국가의 존재 이유를 부정한 게 아닌가.

 

게다가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이 주가조작에 전주로 가담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상태다. 국민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의식했다면 권씨의 취임식 참석이 이뤄졌을까. 대통령직의 무게와 국가의 법 집행 책임, 대통령 부인의 의혹을 지켜보는 국민에 대한 도리를 모두 팽개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을 일이다. 권력을 잡았으니 무슨 일을 하든 대수겠느냐는 오만함이 아니고선 설명할 수 없다.

 

권씨의 취임식 참석은 김 여사 수사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김 여사가 주가조작 의도를 모른 채 속아서 계좌를 빌려줬던 것이라면, 이후 검찰 수사로 권오수 전 회장 등 일당이 구속기소된 뒤에도 여전히 친분을 유지하는 게 가능할까. 김 여사의 뒤통수를 친 사람의 아들이 취임식에 브이아이피로 참석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선 김 여사 쪽도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 같다. 검찰의 태도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공범 5명이 모두 구속기소된 뒤에도 김 여사는 조사조차 하지 않고 있다. 대선 국면에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후에도 미동조차 없는 검찰의 모습은 이해할 수 없다. ‘살아있는 권력 수사를 이마에 쓰고 다니던 검찰 아닌가. 그 사이, 대통령의 검찰총장 시절 최측근이자 김 여사와도 수백회 카톡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한동훈 장관은 검찰총장 공백 속에 검찰 인사를 강행했고, 주가조작 사건의 수사 지휘라인은 모두 교체됐다. 한 장관은 취임사에서 사회적 강자에 대해서도 엄정 수사를 할 수 있는 공정한 검찰을 만들겠다할 일 제대로 하는 검찰을 두려워할 사람은 오직 범죄자뿐이라고 일갈했다. 아들을 대통령 취임식장에 보낸 권오수 전 회장은 검찰을 두려워할까. 이제 사회적 최강자가 된 김 여사에 대해 검찰은 엄정한 수사를 할 수 있을까. 그러리라고 기대하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한 장관이 틈만 나면 증권범죄 엄단을 강조하는 것은 어떤 의도인지 모를 일이다. 한달 전 미국 출장 때는 뉴욕 맨해튼 월스트리트를 관할하며 주가조작 등 금융·증권 범죄 수사로 유명한 뉴욕남부연방검찰청을 방문지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지난 26일 법무부 업무보고를 받고 부정부패와 서민 다중 피해 범죄에 대한 엄정한 대응 체계를 구축해 달라고 주문했다. 지난 28일에는 주식 공매도 관련 불법행위 엄단을 지시하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 주식시장이 투자자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했다. 권씨의 취임식 참석에 대해 일말의 성찰이라도 하면서 이런 말을 하는지 의문스럽다.

 

바로 이런 게 양두구육이다. 최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인용했던 이 사자성어의 유래를 찾아보면 이렇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영공이 여성들의 남장을 좋아했는데 이게 궁 밖에도 알려져 유행하게 됐다. 그러자 이를 금지시켰지만 백성들은 듣지 않았다. 영공이 당대의 사상가 안자에게 그 이유를 묻자 안자는 궁궐 안에서는 허용하면서 밖에서는 금지하니 이는 문에 소머리를 걸어놓고 안에서는 말고기를 파는 것과 같다고 했다. 영공이 깨닫고 궁궐 안에서도 남장을 금하자 백성이 이를 따랐다. 안자의 비유에서 소머리가 양머리로, 말고기가 개고기로 변천해 양두구육이 됐다고 한다.

 

양두구육 일화는 권력자가 자신(주변)과 국민들에게 각기 다른 잣대를 들이대선 안 된다는 정치 윤리의 근본을 말해준다. 수천년 전 왕조국가에서도 사리분별하는 통치자는 이와 같았는데 21세기 어느 민주공화국에서는 국민을 무시하는 양두구육의 풍경이 거리낌없고 노골적이다. 도이치모터스 대표의 대통령 취임식 참석은 그 하나일 뿐, 잠시만 생각해보면 숱한 사례가 떠오를 것이다. 그러니 주권자로서 모욕감을 느낄밖에.

박용현 논설위원 한겨레 2022-07-31

 

민주당이 부자의 지지를 얻는 방법

주말 내내 이재명 의원의 발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난 29일 한 유튜브 라이브방송에서 했던, 소득과 학력수준에 따른 정치 성향에 관한 발언 말이다. 해당 방송에서 그는 저학력·저소득층에 국민의힘 지지자가 많은 반면 고학력·고소득자, 소위 부자중에 더불어민주당 지지자가 많다면서, 민주당이 부자를 배제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야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발언은 향후 민주당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시사하는 것 같아 의미심장하다.

저소득층이 선거에서 자신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않는 보수후보를 지지하는 계급배반 투표는 상당 정도 통계적으로도 입증된 사실로, 오랫동안 정치경제학의 논의 대상이 돼왔다. 실제 지난 3월 대선 결과에 관한 한 분석에서는, 가구소득이 월 200만원 미만이라고 답한 유권자의 61.3%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투표한 반면 월소득 600만원 이상에서는 이재명 의원에게 표를 줬다는 응답이 더 많았다.

 

계급배반 투표를 문제 삼는 경우, 정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 곧 민주당의 경우엔 서민과 중산층의 지지를 어떻게 되찾을지를 고민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이 의원의 고민은 다른 쪽에 있는 것 같다. 부자들이 표를 많이 주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을 위해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으니 말이다. 전당대회를 한달도 안 남겨둔 시점에서 당권에 가장 가까운 후보가 서민과 중산층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민주당 강령을 시대에 맞게 고쳐야 한다는 취지로 말하는 맥락에서 나온 언급이라니, 그 고민을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될 것 같다.

 

정당이 더 다양한 계층을 품을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그 자체로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과연 민주당은 부자들에게 무엇을 주고서 지지를 얻을 것인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자를 어떻게 식별하느냐에 따라 그들에게 줄 것이 무엇인지도 결정된다는 점이다. 부자를 그저 돈 많은 사람, 자신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지키는 데만 투철한 사람들로 단순하게 정의한다면, 그들에게 줄 것은 지금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내놓은 세법개정안 같은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자도 다 같은 부자가 아니다. 자신의 경제적 이해관계, 경제 전체의 발전 방향, 경제 이외의 영역에서의 다양한 가치관 등 세가지 측면에서 그들을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소득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고소득층 내에서 소득의 수준과 구성은 크게 차이가 난다. 노동연구원 홍민기 박사 연구에 따르면, 2019년 우리나라 최상위 10%1%의 소득 비중은 각각 49.4%, 14.9%로서 꼭대기로 갈수록 소득의 집중도가 높으며, 구성 면에서 보더라도 근로소득보다는 사업소득이나 금융소득의 최상위 집중도가 훨씬 더 높다. 특히 금융소득의 경우 최상위 0.1%가 전체 금융소득의 30% 이상을 가져간다. 이런 상황에서 부자를 위한 정책이란, ‘어떤 부자를 상정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둘째, 같은 부자라도 우리나라 경제가 어떤 식으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인지 다양한 견해를 가질 수 있다. 현재와 같은 대기업 중심 발전체제를 옹호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중소기업이나 다양한 혁신기업들의 역할에 더 많은 기대를 품는 사람도 많다. 승자독식 체제보다는 여럿이 함께 가는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목소리도 절대 작지 않다. 지난 정부에서 내세웠던 소득주도성장론은 그런 목소리들이 만들어낸 시도였다. 이 시도가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그것이 그런 시도를 멈춰야 할 이유가 되진 못한다.

 

끝으로, 부자들은 다른 모든 계층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꼭 경제적 이해관계에만 반응하진 않는다. 양성평등, 생태적 지속가능성, 종교나 신념, 삶의 방식에서의 다양성과 같은 다양한 가치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지를 보임으로써도 부자들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다.

 

요컨대 부자를 돈만 아는 저질로만 표상하고 그들에게 무엇을 줄지를 고민한다면, 민주당은 더는 민주당이 아니게 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세 측면에서 명확한 노선을 확립함으로써 남다른부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또한 당을 통해서 부자들이 성장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드는 것그것이 민주당이 부자의 지지를 얻는 방법이다.

김공회 | 경상국립대 경제학부 교수 한겨레 2022-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