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The Government of the Hong Kong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中華人民共和國香港特別行政區政府)인 홍콩을 다녀 왔다. 거의 10년 만이다. 연휴가 시작되는 금요일 밤 비행기를 이용했다. 김해공항은 북새통이었다. 당혹스러웠다.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그 북새통 속에 신공항의 필요를 동의하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만
귀국 후 신공항과 관련 부산과 경남북 , 대구,울산간에 벌어지고 있는 논쟁과 갈등이 지역언론을 통해 표출되는 양상을 정리해 보았다.
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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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매일 |
경북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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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사설은 6월7일(화) 기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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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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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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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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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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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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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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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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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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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부산 가덕과 밀양 하남을 놓고 지역 언론들이 쏟아내는 말들은 갈데까지 가보자는 논조다. 여기에는 지역 정치권과 토호, 그리고 시민으로 치장된 개발만능 집단들이 먹이감을 향해 몰려드는 형국이고 그 모양이 노골적이다. 일부 시민사회단체도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진보적 시민사회 그룹과 환경 단체는 관망중이거나 침묵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몰매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한다면 방기요 기회주의적 관점이라 해도 무방하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물음에 나 역시 즉답을 피했다. 정리가 덜 된 상황이기도 했지만 이 결정에 한 패가 되고 싶지 않다는 차원과 지역을 지배하는 개발 당위적 정서에 동참하고 싶지 않다는 수동적 저항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보다 근본적 물음, 예컨데 신공항의 필요성에서 그 필요가 충족되어지는 다양한 조건들에 대한 검토가 경제적 수요 외 무엇이 있는지 논의 조차 무시되고 있는 현실이 그냥 바라보는 상황으로 전락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부산과 경남북, 대구와 울산 그 어디에서도 그런 논의의 장이 형성되지 못했다. 더욱이 이제 조만간 둘 중의 하나로 결정이 나는 시점이다. 이와 관련된 내 입장은 별도로 정리해 볼 생각이다.
부산에서 홍콩까지의 비행 시간은 3시간, 간혹 밤 바다에서 조업하는 대형 선단의 불빛 말고는 어둠 뿐인 하늘을 이동하며 2박4일 홍콩의 일정을 짚어 보았다.
주지하다시피 1841년 아편전쟁(阿片戰爭)의 결과 1842년 영국과 청(淸)나라 사이에 홍콩섬의 영구 할양(割讓)을 인정하는 난징조약[南京條約]이 체결됨으로써 영국령 식민지 홍콩이 성립하게 되었다. 이후 1860년의 1차 베이징조약[北京條約]으로 구룡반도를 분할한 데 이어, 1898년 2차 베이징조약으로 신계와 부속도서를 99년 동안 조차하게 되어 오늘날과 같은 홍콩의 경계가 형성되었다.
1941~1945년에는 일본군에게 점령되었으나 일본이 패망한 뒤 1946년 5월부터는 다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1949년 10월 중국 공산정권이 성립하고 군사적 긴장상태가 빚어져 영국군이 급파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50년 1월 영국이 중국을 승인한 데 이어 1963년에는 중국도 ‘홍콩과 마카오 문제는 평화적 해결이 이루어질 때까지 현상을 유지한다’고 표명하고 1966년 4월의 ‘주룽폭동’, 1967년 5월의 ‘반영폭동(反英暴動)’도 중국이 개입하지 않은 채 진압되었다. 또한 1972년 영국은 자유중국(타이완) 주재 영사관을 폐쇄하고 중국과 대사교환 협정을 체결, 홍콩의 정치적 안정을 보장받았다. 이후 1984년 12월 19일 영국과 중국은 홍콩반환협정을 체결하여 1997년 7월 1일을 기하여 155년 식민지 역사를 청산하고 홍콩은 중국으로 반환되었다.
홍콩의 면적은 1,104㎢로 서울의 약 1.8배 정도이며 크게 4개 지역으로 구분된다. ① 신계 산악지역:면적은 약 740㎢이며, 북서쪽의 스강[石岗] 평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넓은 산악지역에 속한다. 다마오산[大帽山]은 다우산[大雾山]이라고도 부르며, 해발 957m로 홍콩의 최고봉이다. ② 구룡(주룽)반도[九龙半岛]:신계의 남쪽에서 젠사쭈이[尖沙嘴]까지 포함되며, 면적은 40여㎢이다. 츠취산[慈去山]·지슝산[鸡胸山]·비자산[笔架山] 등 9좌의 산봉우리가 있어서 '주룽[九龙]'이라 부른다. ③ 홍콩섬:주룽과 빅토리아항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면적은 80여㎢이다. 가장 높은 봉우리는 처치산[扯旗山]이라고도 부르는 타이핑산[太平山]으로 해발 552m이다. ④ 235개의 외딴섬들:면적은 약 210㎢이며, 가장 큰 섬은 다위산[大屿山으로 면적은 142㎢이다. 기후는 열대 및 아열대 습윤 계절풍기후에 속한다.
숙소는 홍콩섬 king's Rd에 있는 Harbour Plaza North Point (香港北角海逸酒店) 22층 담배를 피울 수 있는 방이었다.
6월의 홍콩은 우기가 시작된다. 이른 아침 구룡반도 쪽 하늘이 수상했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 했다.
식전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거리로 나서는 순간 몸을 휘감는 텁텁한 기운, 높은 습도로 인해 안그래도 부실한 카메라가 적응을 하지 못했다. 어쩌면 나 처럼 이곳의 날씨에 기계도 정확히 반응한 것인지도 ...
원래 아침은 잘 먹지 않은데밖으로 나오게 되면 습관처럼 또 과하다 싶을 정도로 꼭 챙겨 먹는다 왜 ?
호텔 앞 스타벅스
스타벅스가 입주해 있는 빌딩 로비인데 잘 꾸며 놨다.
그리고 그 빌딩 옆에서 담았던 어떤 홍콩인의 뒷모습
오션파크로 이동 하기 전 숙소 주변 거리를 담아 보았다
꽃들의 이름을 알기 위해 서점을 방문했지만 식물도감은 찾지 못해 헛걸음했다
첫날의 공식일정은 Ocean park와 Jjumbo Kingdom
이동 중에 담았던 거리들, 한국과 같은 겨울이 없다 보니 홍콩의 가로 풍경은 언제나 싱싱하다. 풀과 나무가 지리기에는 더 없이 좋은 기후다.
도시 내부에 묘지들도 모가 나지 않고 자연스레 어울려 삶과 죽음의 공간이 조화롭다
해양공원에 도착했다. 남롱산을 감돌아 넘어가는 케이블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왔다. 이곳의 명물로 10년 전이나 지금 큰 변화가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산 위에 있던 수족관이 아래로 내려 왔다는 것 아무튼 "오션파크(香港海洋公園, Ocean Park)는 총 면적 870,00m2 로 1977년 홍콩마사회의 기부로 만들어졌다. 조성된 곳은 홍콩 애버딘의 동쪽 딥워터베이에 면하는 구릉지대에 조성된 복합 레저랜드로 해양 동물 교육, 오락 시설 등을 포함한 테마파크로 크게 산 정상의 헤드랜드(Headland Rides)와 해안의 로랜드(Lowland Garden)로 구분되며 각 구역은 케이블카로 연결되어 있다. 그외 마린 랜드, 키즈 월드, 어드벤처 랜드, 버드 파라다이스, 미들 킹덤과 함께 다양한 해양 생물을 관람할 수 있는 아쿠아리움 등이 있으며 해양 동물에 관한 교육과 다양한 문화 공연, 돌고래 쇼 등이 펼쳐지고 있다. 볼 거리 즐길거리가 많아 알아주기로는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정도이다.
한편 세계 최초로 청백돌고래의 인공수정에 성공하였으며 수많은 금붕어의 신품종을 만들어낸 곳이다. 따라서 단순한 위락 시설이 아닌 해양 생물 보호와 연구을 수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한해 약 4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홍콩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2006년 포브스(Forbes)지에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7대 놀이 공원으로 선정됐다. 산 위에서의 조망도 뛰어나다.
입장료는 1HK$ 당 우리나라 돈 153원으로 환산하여 어른 250HK$ 어린이 125HK$ (모든시설 이용료) 인데 탐방 후 손익을 계산 시 그만큼의 값은 지불해도 충분하다 느꼈다. 다시 말해 어른 1인당 37,500원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4인(어른2, 어린이 둘) 가족을 대비시키면 113,250원인데 그 정도면 국내 어떤 놀이 시설과도 견주어 우위에 있다고 판단한다.
공원녹지 분야에 몸담고 있다보니 자연스레 조경시설에 눈이 간다. 전에 없던 관찰이다. 덕분에 시설 보는 눈이 보다 섬세해졌다고나 할까
탐방 코스는 아쿠아리움 > 케이블카 > 헤드랜드공원 > 금붕어 전시장 > 자이언트 팬더 등 멸종위기 동물 만나기 순이다,
아쿠아리움 입구에서 입장하는 순서대로 사진을 찍어 준다. 그리고 코스가 끝나는 지점에서 인화된 사진을 즉석에서 판매하기도 하는데, 구매는 개인판단이다. 지켜 보았는데 시도는 좋았지만 구매자는 별로 없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내부 탐방객들을 일정 정도 거리를 두어 탐방시킬 수도 있고 또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일자리도 보전해주어 좋기는 한데 글쎄 였다.
아쿠아리움 동선은 잠깐 바깥으로 연결되었다 다시 내부로 연결되는데 앞 부분에서는 탐방객들의 해양생물과 만나는 입문 시간이다. 바닷가 일부분을 옮겨다 놓은 그리 깊지 않은 수심에 중간 중간 명 유리로 내부를 보게 만들었는데 칸칸이 어종이 달랐다. 그렇게 함으로써 탐방객의 분산을 자연스레 유인하고 있었다.
동선이 잠깐 외부로 돌출된 구간에서 바라 본 하부 전경
산호초 (Rainforest of the Ocean: 바다의 열대우림이라 함) 생물관인듯 싶다
‘The Summit’에서는 상어, 가오리, 철갑상어 등을 만날 수 있다. ‘상어의 신비 Shark Mystique’ 수족관에는 100여 종이 넘는 상어와 가오리떼가 살고 있다.
무엇보다 전시기법이 세밀하여 눈요기는 원 없이 할 수 있다.
해파리 전용 수족관인 ‘씨 젤리 스펙터큘러’에는 1000종 이상의 바다 해파리들을 만날 수 있다.
전시관을 나오면 곧바로 상품 판매장으로 이어진다.
눈길을 끌었던 우연한 장면은 사람을 그다지 두려워 하지 않는 이곳의 야생 조류들이다. 특히 참새류인 듯한 이 작은 명금류가 사람이 던져 주는 과자나 빵 부스러기에 길들여 진 것일까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길에 조성 해 놓은 '올드 홍콩'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의 홍콩거리, 문화, 음식점을 실제의 모습으로 재현해 놓았다. 1950~70년대 홍콩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 그 시절 홍콩의 맛을 찾기 위함이라면
홍콩섬 센트럴에 위치한 Starbucks BING SUTT를 추천한다. 이곳은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빙셧이라 불리우던 홍콩의 옛카페를 1950년대 분위기로 재현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불러 들이고 있다.
1950년대 한국은 굳세어라 금순아-현인, 단장의 미아리고개- 이해연, 럭키서울 –현인, 아메리카 차이나 타운, 봄날은 간다 –백설희 , 이별의 부산정거장 –남인수, 전선야곡-신세영, 홍콩아가씨-금사향 등의 가수들이 전쟁통의 이별과 아픔을 노래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상하이에서 이주한 사진작가 Ho Fan의 작품으로 그는 낯선 사람을 무작이로 촬영함을 통해 도시가 가진 본래 모습을 기록했다고 한다. 사진들은 그의 작품집 ‘홍콩 회고록’에 수록된 것의 일부이지만 그 시절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아 Hong kong In The 1950s Captured By Teenager 에서 퍼 왔다. 아래 사진출처: blog.naver.com/stalag17/80042413742
1950년대 피크트램에서 바라 본 완차이만 에버딘가 페니숼라호텔
1950년대는 멀다 내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다. 홍콩의 존재를 알기 시작했던 것은 이소룡을 통해서 였다. 그리고 뒤어어 보았던 액션배우들과 영화가 내게는 홍콩의 전부였다.
케이블카를 타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 섰고 기다리는 시간은 1시간은 기본이다. 사전 예매 덕분에 그 시간은 상당히 줄일 수있었지만 그 조차도 30분이었다.
올드홍콩 구간 벽면에는 그 시절의 생활상과 당시 유행했던 생활용품 광고지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케이블카는 6인승이다. 모두 252대가 쉴 사이 없이 사람을 실어 나른다. 이동거리는 약 1.4km
케이블카가 남롱산 허리를 타고 오르며 보여주는 풍광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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