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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토요일 오후 5시까지” 위협…청와대엔 “사태 수습 용의” 8.21 한겨레
북한이 남쪽으로 두 차례 포를 쏘고 우리 군이 대응 포격을 한 20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중면사무소 근처에서 군인들이 이동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북 15시53분·16시12분 두차례 포격…남 최고 경계태세
북한군 “48시간 내 대북방송 중단 안하면 군사 행동”
김양건은 김관진 안보실장에게 서한 “관계 개선 의지 있어”
남북이 20일 경기도 연천 서부전선에서 포사격을 교환했다. 북한이 남쪽으로 두 차례 포를 쐈고, 이에 군이 수십발 대응사격을 했다. 북한은 이날 전통문을 보내 48시간 안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철거하지 않으면 군사행동을 하겠다고 위협했다.
국방부는 이날 “북한군이 오후 3시53분께 14.5㎜ 고사포를 한 발 쏴 경기도 연천군 중면 지역 야산에 떨어졌고, 19분 뒤인 4시12분에 다시 76.2㎜ 직사포로 비무장지대 안 군사분계선 남쪽 700m 지점에 수발을 쐈다”며 “이에 우리 군도 5시4분께 비무장지대 안 군사분계선 북쪽 500m 지점에 155㎜ 자주포로 수십발 대응사격을 했다”고 밝혔다. 남쪽의 인명과 재산 피해는 없었으며, 북쪽은 남쪽의 대응사격에 추가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군 당국자는 “남북이 휴전선 일원에서 포격 충돌을 빚은 것은 1973년 강원도 철원 3사단에서 북한의 기습에 대한 보복으로 당시 박정인 사단장이 북한군 지피(GP)에 105㎜ 포 사격을 한 이후 42년 만에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북쪽은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 명의의 서한을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앞으로 보내 대북 확성기 방송의 중단·철거를 요구하는 동시에 “현 사태를 수습하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열기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또 국방부 앞으로 총참모부 명의의 전통문을 보내 “오늘(20일) 오후 5시부터 48시간 내에 대북 심리전 방송을 중지하고 모든 수단을 전면 철거하라”며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군사적 행동을 개시할 것”이라고 위협했다고 국방부가 밝혔다. 통일부는 김양건 명의의 서한 전달에 대해 “최근 북한의 지뢰도발에 의한 상황 악화라는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남북간 포사격이 발생하자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소집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오후 6시부터 40여분간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를 직접 주재했다”며 “북한의 도발에 대해선 단호 대응하고 우리 군은 만반의 대비태세를 유지하는 동시에 주민의 안전과 보호에도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군당국은 전군에 최고 수준의 경계태세를 지시했으며, 해당 지역에 주둔하는 6군단에는 국지전 대응 최고 경계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다. 또 접경지역인 경기 연천·파주·김포와 인천 강화지역 주민 2000여명에게 대피명령이 내려졌다.
북한의 포탄이 떨어진 지역은 육군 28사단이 주둔하는 지역으로, 북한군은 지난해 10월에도 이 지역에서 민간단체가 대북전단 풍선을 날리자 고사총 10여발을 발사했다. 군당국자는 이날 군의 대응사격이 북한의 첫 포격 이후 1시간11분 만에 이뤄진 것과 관련해 “첫 포격 이후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두번째 포격이 이뤄져 다시 포탄의 낙탄 위치 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북한의 포사격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에 대한 불만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북한 포탄 낙하 추정 지역은 대북 확성기 방송 시설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알려졌다. 군당국자는 “북한이 처음에는 한 발만 쏘고 두번째는 비무장지대에 쏜 것으로 봐 실제 타격보다는 경고용, 위협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북간에는 비무장지대 지뢰 폭발 사건 이후 군사적 긴장이 높아져 왔다. 남쪽은 10일 보복조처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으며, 북쪽은 15일 전선사령부 공개 경고장을 통해 “심리전 재개 수단들을 흔적도 없이 조준 격파해 버리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북한이 서부전선 DMZ지역에 대한 포격 이후 준전시상태를 선포한 가운데 20일 심야에 열린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소집 사실을 공개했다
“지금 평양엔 우리 U-15 대표팀이 있다”… 속 타는 축구팬들821 국민
국민일보 DB
“북한에 있는 우리 유소년 축구선수들 어떡해.”
북한군이 우리 측 서부전선에 포격으로 도발하자 우리 축구팬들은 2015 국제 유소년 15세 이하(U-15) 축구대회 출전을 위해 평양을 체류 중인 우리나라 선수들을 걱정했다. 대회는 21일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나흘간 열린다. 경기도와 강원도 남부 유소년 선수들로 연합 대표팀을 구성한 우리 선수들은 개막 하루 전인 20일 오후 평양 양각도 국제호텔 연회장에서 열린 만찬에 참석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선수들과 동행한 남북체육교류협회, 경기도·강원도 관계자들의 경우 오전 중 미림승마장을 견학하고 승마 체험을 했다.
그 사이 남북한은 포격을 주고받았다. 북한군은 오후 3시53분 4시2분 두 차례 포탄을 서부전선으로 발사했다. 북한의 목함 지뢰 도발에 따라 우리 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 시설을 설치한 경기도 연천 일대다. 포탄은 군부대가 아닌 야산으로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군은 북한군의 발사 원점으로 155㎜ 포탄 20여발을 대응 사격했다. 가장 높은 단계의 경계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다.
우리 축구팬들은 북한에서 체류 중인 선수들의 안전을 걱정했다. 이들은 SNS에서 “북한이 선수들의 신변을 위협하는 악질적 행위까지 하진 않을 것으로 믿는다” “남측에 48시간을 경고했지만 그 사이 우리 선수들은 평양에서 축구를 해야 한다. 어른들 때문에 교류의 의미가 사라졌다” “유소년 선수들 털끝 하나라도 건들었다는 소식이 들렸을 땐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고 했다.
이번 대회에는 우리 대표팀과 북측의 4·25체육단, 평양국제축구학교, 우즈베키스탄 분요드코르, 브라질 아틀레티코 소로카바, 크로아티아 HNK 세게스타, 중국 쿤밍이 출전한다.
김무성 "주민 불편 각오" vs. 문재인 "주민 고려 대화" 821 프레시안
문재인은 정장 입고 연천으로, 김무성은 군복 입고 용산으로
21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서울 용산구 합동참모본부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북한군의 포격을 피해 주민들이 대피 중인 경기도 연천군을 각각 방문했다. 김무성 대표는 "피난 주민이 밤을 새우는 불편함을 각오하면서 북의 도발에 가차 없이 응징해야 한다"고 말했고, 문재인 대표는 피난 주민을 만나 "남북 대화로 불안한 상황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하는 등, 서로 다른 주장을 내놓았다.
김무성 "연천 주민 불편 각오하면서 북 도발 응징해야"
군복 상의를 착용하고 나타난 김무성 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에 있는 합동참모본부를 방문해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최윤희 합참의장으로부터 북한의 포격 도발 이후 상황과 이에 대한 우리 군의 지휘 상황 등을 보고받았다. 김 대표는 합동참모본부에 들어가기 전에 기자들과 만나 "이번에 북의 도발을 가차 없이 응징하는 단호한 대응을 보여줘야 한다"면서 "이제 북에 끌려다니는 악순환을 끝낼 수 있는 단호한 우리의 의지와 결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김 대표는 "연천을 비롯한 접경 지역 주민들이 대피소에서 밤을 새우는 등 불편함과 희생을 겪어야 할 텐데, 그런 불편을 각오하면서 전 국민이 단결해야 북의 도발 습성에 종지부를 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최윤희 합참의장을 비롯한 군 장병 여러분, 우리 국민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군을 믿는다. 단호한 의지로 국방을 지켜주시길 바란다"면서 "북한이 원하는 남남갈등이나 분열 책동은 우리가 책임지고 막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남북 고위급 회담해서 국민 불안 끝내야"
반면에 이날 정장 차림으로 나타난 문재인 대표는 지난해 북한군이 대북 전단을 향해 쏜 고사기관총탄 낙탄지를 둘러본 뒤, 주민 200여 명이 대피하고 있는 연천군 중면사무소 주민 대피소와 횡산리 주민 대피소를 찾았다.
문 대표는 피난 중인 주민들에게 "어젯밤에 한잠도 못 주무셨다고 들었다"며 "작년 10월에는 고사총탄이 떨어졌는데, 이번에는 포탄이 또 떨어졌고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다. 얼마나 놀라셨느냐"고 위로했다. 문 대표는 "내일 오후 5시쯤 돼야 상황을 또 알 수 있으니, 불편하시겠지만 조금 더 기다려달라"고 당부했다. 북한은 앞서 48시간 안에 확성기를 철거하지 않으면 군사 행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주민 대피령이 과거에는 거의 없었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 작년에 이어 금년에 또 주민 대피령이 발동됐다. 그만큼 남북 관계가 악화됐다는 증거"라면서 "남북 관계 개선에 좀 더 노력을 기울여야겠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우리가 강경한 대응을 외치는 것만으로 상황이 풀리지는 않고, 북한과 다각도로 대화하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면서 "그래서 저는 오늘 아침 조건 없는 고위급 접촉을 북한에 제의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정부가 직접 대화도 하고, 필요하다면 제3국을 통한 대화도 해서 국민이 더 불안하지 않도록 상황을 안정시켰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북한을 향해서도 문 대표는 "북한은 얼마 전 목함 지뢰 사건에 이어 포격이라는 도발을 연이어서 해왔는데, 결국 패인이다. 이러한 군사 도발로 북한이 얻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군사적 도발은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남북 ‘확성기’ 포격전]수도권 인접한 중서부 ‘최전방’… 심리전 불만 표출 ‘극대화’ 820 경향
북한군이 20일 발사한 포탄이 떨어진 곳은 경기 연천군 중면이다. 육군 28사단이 관할하는 지역으로 중서부 전선의 최전방이다. 북한은 수도권과 인접한 곳으로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에 대한 불만 표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곳을 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연천은 지난 4일 북한군이 목함지뢰 도발을 감행한 파주와 붙어 있다. 지뢰 도발 이후 군이 도발에 대응해 11년 만에 재개한 대북 확성기 방송이 지난 10일 처음 시작된 곳이 연천과 파주다. 북한으로선 연천이 대북 확성기 방송의 진원지인 셈이다. 군 당국도 포탄이 확성기 시설 방향으로 날아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확성기 방송은 이어 강원 화천 등 중·동부 지역 등으로 확대돼 현재 155마일 군사분계선(MDL) 11곳에 확성기 방송 장비가 설치돼 있다.
연천이 수도권과 가까운 지역이라는 점도 감안됐을 개연성이 있다. 대북 심리전 일환인 확성기 방송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나타내면서 군사적 긴장감 등 남한 내 불안감을 고조시킬 수 있는 지역으로 연천을 골랐을 수 있다. 실제 군은 이날 연천 북측 지역을 포함한 파주·강화 등 접경 지역 주민들에게 대피 명령을 내렸다. 연천 지역은 앞서 심리전을 둘러싸고 수차례 긴장이 고조된 사례가 있다. 지난해 10월10일 남한 내 대북 단체가 연천 지역 야산에서 수십개의 풍선에 전단 100여만장을 살포한 것에 반발해 북한군이 연천 중면 삼곶리 방면으로 14.5㎜ 고사총을 발사했다. 이에 우리 군이 K-6 기관총으로 대응사격했다. 이로 인해 남측의 인명피해나 재산피해는 없었지만 주민 60여명이 대피했다. 연천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대북단체의 전단 살포 시도에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연천 지역에선 2003년 7월에도 북한군 경계초소(GP)에서 우리 군 경계초소를 향해 4발의 총격을 가해 군이 M60 기관총으로 17발을 대응사격하기도 했다.
유언비어
조선일보, 북한 도발에 ‘희생 각오하자’ 주문 821 미디어오늘
북한이 20일 오후 연천 일대 휴전선 서부전선에 고사포탄과 직사포탄 수발을 쏘는 등 ‘화력도발’을 감행했다. 이에 우리 군은 자주포 29발로 대응사격을 했다. 그 이후 북한군의 별다른 동향은 없지만 전통문을 보내 48시간 내에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군사적 행동을 개시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42년 만에 DMZ 이남에 포를 쏜 북한
피해는 없었지만 충격적인 일이다. 20일 북한의 서부전선 포격 도발은 1973년 남북이 대구경포로 포격전을 한 이후 42년 만에 DMZ 이남을 포격한 것이다. 1차 포격은 14.5mm 고사포 1발을 쐈으며 이는 남방한계선 이남 연천군의 한 야산에 떨어졌다. 2차 포격은 76.2mm의 직사포를 사용했으며 군사분계선 이남 700미터 지점에 수발을 쐈다.
다행히 아군이나 민간인의 피해는 없었다. 북한이 포격을 가한 곳은 대북 방송이 나가는 확성기 부근 수km 떨어진 곳이다. 이후 북한은 오후 5시 전통문을 보내 북한의 지뢰 도발 이후 11년 만에 재개한 대북 방송이 “전면적 중대 도전”이라며 48시간 내에 중단하지 않으면 추가 군사 도발을 하겠다고 위협했다.
▲ 조선일보 8월 21일자. 3면.
우리 군은 북한의 포격 도발에 대해 155mm K55A1 자주포를 이용해 DMZ 북측 지역에 29발의 대응 포격을 가했다. 아울러 전방 전 지역에 걸쳐 최고 수준의 경계태세를 유지토록 비상령을 내렸으며 대북감시태세를 강화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일정을 취소하고 긴급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했다.
북한의 도발은 있어서는 안 될 행위임은 분명하다. 다만 문제는 우리가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있다. 북한이 대북 방송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48시간 이후 추가도발을 경고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양건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는 사태를 수습하자고 전통문을 보냈으나 북한 총참모부는 위협적인 모습이다.
일단 청와대는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했지만 대통령의 원론적인 발언 외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군은 대북 방송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언론은 어떨까?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이번만큼은 북에 끌려다니는 악순환을 끝내겠다고 결심하고 불편과 희생을 각오한다면 북의 도발 습성은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세계일보도 “단호한 응징”을 촉구했고, 동아일보도 “강력 응징”을 촉구했다.
하지만 단호하되, 냉정한 대응을 촉구한 언론도 많다. 중앙일보는 “철저한 대비태세”를 촉구하는 한편 남북이 한 발 물러나 평화를 추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도 “안정적인 상황관리”를 촉구했다.
北 포격 맞은 증시, 충격은 제한적일 것 821 머니 투데이 늇
김정일 사망일 최고 충격, 3.43% 하락...천안함 사건·제2차 연평해전 때는 상승
21일 대내외 악재속에 코스피 시장은 51.76포인트(2.70%) 떨어진 1862.79에 출발했다. 장 초반 1856.91까지 떨어진 후 기관들의 매수세가 이어지며 현재 1880선을 회복한 상태다. 오후 2시30분 현재 1.73% 하락한 상태로 이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일(3.43% 하락)의 절반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북한 포격사건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대북리스크는 이미 코리아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라는 이름으로 증시 전반에 선 방영됐다는 시각이다. 실제 과거 10여차례의 주요 대북위기를 보면 사건발생 당일 평균 코스피지수 하락률은 0.63%로 낮았다. 오히려 3일 뒤에는 사건 발생일 보다 1.93%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픽=김지영 디자이너
대북리스크 가운데 국내 증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2011년 12월 19일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이다. 당일 주가는 전일보다 3.43% 하락했고, 원/달러 환율은 1.40%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이후 빠르게 주가가 반등하며 3일 뒤 주가는 사망일 보다 3.97% 상승했다. 두 번째로 하락폭이 컸던 경우는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했던 날로 전일보다 코스피지수가 2.41% 하락했다. 1차 핵실험 직후에도 주가는 회복세를 보이며 3일 뒤에는 실험 당일보다 0.94% 상승 마감했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주석 사망 때는 하락률이 낮았다. 사망 발표날은 하루 뒤 토요일이어서 김 주석의 사망이 반영된 것은 11일이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장중 2.11%까지 떨어졌지만 저가매수가 몰리며 0.79%로 하락 마감했다.
대북리스크가 발생한 날 코스피지수가 상승 마감한 경우도 있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2010년 3월 26일 코스피 지수는 0.55% 올랐고, 제2차 연평해전이 있었던 2002년 6월 29일은 0.47% 상승 마감했다.
증권가에서는 이날 주가하락은 단순히 대북리스크에 의한 것이 아니라 대내외 악재가 혼재되며 발생한 것으로 분석한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대북리스크 파장이 전면전이나 극단적 대치상태로 확대되는 것이 아닌 이상 추가적 시장 충격은 일정수준에서 제한됐다”며 “그간 중장기 투자가들에겐 대북 리스크의 일시적 확대국면은 저점매수의 호기로 활용됐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그러나 이번처럼 미국 연준(Fed) 금리인상 리스크, 중국 경기 둔화, 글로벌 원자재 시장 부진 장기화가 한데 결집한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대북 리스크 가세한 환경은 부담스럽다”며 “신중한 시장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변준호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륙 포격이 처음이고 마침 데드라인 시점(대북방송 중단요구 시점)이 주말이어서 투자자의 불안감이 이날 증시에서 좀 더 극대화될 수 있다”며 “하지만 경험적으로 대북리스크가 증시추세에 영향을 준 적이 없고 최근으로 올수록 악재의 영향력도 점차 축소돼 포격 사태 역시 단기 변동성 재료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변 연구원은 “과거 핵실험 등 여러 대북 리스크에 국내 증시는 수일간 조정을 받기도 했지만 금융위기 이후에는 단일 혹은 장중조정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며 “정치적 문제에 대한 예단이 쉽지 않지만 대북리스크로 장중 낙폭 확대시 저가 매수전략이 유효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대 모인 교수들 "치욕스런 굴종, 참지 않겠다" 821 오마이뉴스
[현장] 학내 민주주의 외친 고 고현철 부산대 교수 영결식
"대학의 자율이 말살당하는 치욕스러운 굴종의 시절을 더 이상 참지 않겠습니다."
꾹꾹 슬픔을 누르는 말투로 김재호 부산대 교수회장이 추도사를 낭독했다. 21일 부산대 10·16 기념관에서 열린 고현철 교수의 영결식은 슬픔과 다짐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지난 17일 고 교수는 총장 직선제와 대학 민주주의 실현을 요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이 대학 본관 건물에서 몸을 던졌다.
전국교수장으로 열린 이날 영결식에서 교수단체 대표들은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민주주의 회복을 외쳐야 하는 현실에 울분을 터트렸다.
최근호 전국국공립대학교수연합회 상임회장은 "고인께서는 하나밖에 없는 고귀한 생명을 바쳐서 우리나라가 과거의 권위주의 시대나 독재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 경종을 울려주었다"면서 "민주주의의 퇴보를 시도하는 모든 세력에 대항하는 힘을 결집해 나아가자"고 호소했다.
일본대사관 앞 분신’ 고 최현열선생 23일 민주사회장 엄수 821민중의 소리
장지는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장례 일정, 장례위-유족 논의 뒤 결정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21일 오후 고 최현열 선생 빈소에서 조문한 뒤 눈물을 흘리며 나서고 있다.ⓒ김주형 기자
최씨는 광복 70주년을 앞둔 12일 낮 12시40분께 서울 중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집회 도중 자신의 몸에 인화물질을 뿌리고 불을 붙였다. 전신에 심한 화상을 입은 최씨는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분신 9일 만에 숨졌다.
분신 당시 최씨는 가방 속에 아들 딸에게 남긴 3장짜리 유서와 ‘7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5장짜리 성명서를 갖고 있었다.
최씨는 성명서에 “나라는 찾았어도 친일파 민족반역자들과 일제에 동조했던 부유층, 영어를 좀 배웠다는 친미주의자들은 낯짝 좋게 떵떵거리며 다니고 독립유공자들의 자손들은 거리를 헤매고 있다”면서 “그래서 그런지 위안부정신대들이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눈물로 하소연해도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일본놈들은 기가 더 살아나 잘못된 과거사를 낙서 지우듯 하고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남겼다.
‘자가당착’ 검찰…‘김용판→권은희’ 2년만에 뒤바뀐 기소 819 한겨레
권은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달 30일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댓글 사건’ 위증 혐의 고발 사건의 피고발인으로 조사를 받으러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검찰 권은희 의원 기소 파장
2012년 12월11일 세상에 알려진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의 후폭풍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검찰은 당시 수사에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부당한 외압을 행사했다고 폭로한 권은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거짓 증언을 했다며 끝내 그를 재판에 넘겼다. 국정원 대선 개입의 수혜자라고 할 수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한 상황에서 수사에 나섰던 이들은 대부분 ‘반격’을 당하고 있는 모양새다.
권 의원에게 적용된 모해위증 혐의는 다른 사람을 처벌받게 할 목적으로 법정에서 거짓 증언을 하는 경우에 적용된다. 검찰은 네가지 위증을 한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김 전 청장이 전화로 권 의원에게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거나, 당시 서울경찰청이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의 노트북과 데스크톱 분석 범위를 임의로 제한했다는 증언 등이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이밖에도 서울경찰청이 노트북 분석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이 동의한 파일만 열람했다는 것, 당시 이광석 수서경찰서장이 “기자회견을 후회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고 말한 부분도 위증이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권 의원을 제외한 경찰관들이 권 의원의 증언과 다르게 진술하고 있다는 점을 위증 혐의를 입증할 유력한 근거로 들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당사자들의 진술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 정황도 있다”고 했다.
검찰, 김용판 전 청장 기소때는권은희 의원 진술 신뢰
이번 수사 과정서는 되레 다른 경찰 진술 받아들이고권은희 의원 진술엔 “거짓말”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 주체 윤석열 외압 폭로 뒤 한직 밀려나고 권은희 재판까지 넘겨지는 등 수난
하지만 여러 사람의 증언과 다르다는 게 위증의 고의성까지 인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지를 두고 의문이 제기된다. 검찰이 가장 중요하게 본 위증 혐의는 ‘2012년 12월12일 김 전 청장이 전화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하지 말라는 지시를 했다’는 부분이다. 두 사람의 통화 전인 이날 오전 수서경찰서 경찰관이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하러 검찰청에 가는 중에, 서울경찰청에서 증거가 부족하니 일단 돌아와 민주통합당이 제시하겠다는 증거 자료를 보고 다시 결정하자는 지시를 이미 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영장 신청을 안 한 것은 김 전 청장의 지시가 아니라 민주통합당 고발장을 포함해 당시 확보한 자료로는 범죄 소명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전 청장과 권 의원이 통화한 시각은 오후 2시50분이며, 민주통합당이 고발장을 제출한 것은 그로부터 1시간 뒤였다. 김 전 청장이 고발장 내용과 무관하게 ‘영장 신청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권 의원에게 했을 정황은 배제한 것이다.
권 의원 기소는 검찰의 자기모순이기도 하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수사한 검찰 특별수사팀은 권 의원의 진술에 터잡아 김 전 청장을 기소했다. 또 김 전 청장의 직간접적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경찰관들의 법정 진술보다 권 의원을 더 신뢰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권 의원을 주요 증인으로 삼았다. 그런 검찰이 이제 와서 그의 증언이 거짓이라며 처벌해달라는 꼴이다. 이번 기소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에 나선 인물들의 수난사도 이어지게 됐다. 권 의원은 당시 사건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이듬해 2월 송파경찰서로 전보됐다. 그로부터 3년여 시간이 지났지만 그는 다시 검찰과 ‘진실게임’을 벌이게 됐다. 검찰 쪽 사정도 비슷하다. 윤석열 당시 특별수사팀장은 2013년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의 외압을 폭로한 뒤 중징계를 받고 한직으로 밀려났다. 특별수사팀의 울타리 역할을 했던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은 석연찮은 혼외자 논란으로 불명예 퇴진했다.
김 전 청장은 올해 1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가 대선 사흘 전인 2012년 12월16일 밤 11시에 “(국정원 직원이 단 댓글 가운데) 문재인·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비방 댓글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보도자료를 내도록 한 것은 그 ‘목적’이 뻔해 보이지만, 사법부는 면죄부를 줬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1심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에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가 2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법정구속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 7월 “검찰이 제출한 핵심 증거의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뉴라이트를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려야 하는 이유 819 오마이뉴스
[게릴라 칼럼] 건국 67주년 발언에 담긴 문제점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오늘은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1945년 8월 15일에 광복을 하고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을 건국했다는 말이 된다.
1945년에 광복을 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런 경우에 광복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사료상의 근거에 기초한 것이다. 광복(光復)은 말 그대로 '밝게 돌아오다'란 뜻이다. 이것을 근거로 '잃어버린 것을 되찾다'란 의미가 나왔다.
서기 356년에 진(晋)나라는 과거의 도읍인 낙양(뤄양)을 되찾았다. 이 진나라는 진시황제의 진(秦)나라와는 다르다. 356년의 이 사건을 두고 진나라 역사서인 <진서> 환온 열전에서는 '광복'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1912년 중국 한족은 만주족 청나라를 몰아내고 중화민국을 세웠다. 이 사건을 두고 중국 혁명가 손문(쑨원)은 '광복'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이런 사례들에서 나타나듯, 1945년 8월 15일에 우리 민족이 겪은 일을 '광복'으로 표현하는 것은 타당하다.
대한민국 출발점이 1948년?
하지만, 대한민국의 출발점이 1948년이라는 박 대통령의 발언에는 문제가 있다. 물론 한반도 일부에 대한 실효적 지배권을 보유한 대한민국 정부가 그 해 8월 15일에 수립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에는 정부 수립이 국가 수립 곧 건국과 등치되지만, 우리 근현대사의 경우에는 정부 수립과 건국을 등치할 수 없는 현실적 이유가 있다. 그런 이유가 있는데도 박 대통령은 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그 발언에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실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건국과 혼동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발언은 결코 무심코 나온 게 아니다. 이 발언은 의도적이다. 이 발언은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보고자 하는 뉴라이트(신보수) 진영의 역사관을 대변하고 있다.
뉴라이트들은 자신들이 대한민국 헌법질서를 인정하고 있으며 반대편은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은 그들이야말로 대한민국 헌법질서를 부정하는 사람들이다. 거기에다가 그들이 반(反)통일적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특히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보고자 하는 그들의 인식 속에는 반헌법적 요소가 깊이 스며져 있다. 그런 그들의 사고체계를 박 대통령이 추종하고 있는 것이다.
▲ 1945년 8월 15일 열린 ‘정부 수립 기념 축하식’. 이 당시에는 ‘정부 수립’이란 용어가 사용됐다. 서울 광화문광장 동북쪽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대한민국 출발을 1948년에 두고자 하는 그들의 속사정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 정신은 헌법 전문(前文)에 담겨 있다. 전문의 첫 문장은 대한민국의 법통 즉 법적 정통성에 관한 것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가 전문의 첫 구절이다. 이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출발점은 1919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다.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 계승한다"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이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선언했다면, 대한민국과 임시정부를 분리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대한'국민'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선언했을 뿐이다. 이처럼 우리 헌법에서는 대한민국과 임시정부를 분리할 만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우리 헌법에서 양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체적 관계에 있다.
'대한국민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구절은, 임시정부의 수립과 함께 한민족 구성원들이 대한국민의 자격을 얻었고 그 대한국민들이 임정의 법통을 계승하여 1948년에 대한민국정부를 정식으로 세우게 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부는 국가의 의지를 행정적으로 집행하는 기구다. 임시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1919년에 비록 임시정부 형태로나마 정부가 수립됐다는 사실을 헌법이 인정했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그때 건국됐음을 헌법이 인정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 점은 1948년에 제정된 최초 헌법에서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최초 헌법의 전문에서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선언했다. 최초 헌법에서는 대한민국 건국이 1919년에 있었음을 보다 더 명확히 밝혔다.
▲ 상해(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서울 종로구 평동의 경교장(김구 숙소 및 김구 암살 현장)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물론 1919년에 세워진 대한민국이 한반도 전역에 대해 실질적 지배권을 행사한 것은 아니다. 그때 세워진 대한민국의 의지를 행정적으로 집행할 임시정부는 실질적 지배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우리 헌법이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고 인정하는 데는 현실적 이유가 있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불법화하고 1948년 정부 수립을 합법화하기 위한 고려가 깔려 있는 것이다.
우선,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고 인정함으로써 1945년 이전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부정할 수 있다. 또 1948년의 정부 수립이 1919년의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인정함으로써 1948년에 정부를 수립한 사람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
물론,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일부터 실질적 지배권을 행사했다는 엄연한 객관적 사실을 우리 헌법이 무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위와 같은 합리적 이유에서 1919년을 대한민국의 출발점으로 간주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뉴라이트들도 이런 점을 모를 리가 없다. 그들도 대한민국이 1919년의 정신 위에서 세워졌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출발점을 굳이 1948년에 두고자 하는 데는 그들 나름의 속사정이 있다.
그것은 북한을 우리나라의 범주에 넣지 않으려는 반통일적 정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1948년에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로 수립된 남한 단독정부만이 우리 민족의 유일 합법정부라고 인정하고 싶은 속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제3조가 있거나 말거나, 그들은 한반도의 절반만을 우리나라로 인정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또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의 의미를 굳이 부정하고자 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개 다 이승만을 존경한다. 임시정부는 바로 그 이승만을 임시대통령으로 추대하는 가운데 초기 역사를 시작했다. 만약 임시정부의 역사가 이승만의 임시정부로 끝났다면, 뉴라이트들도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는 점을 굳이 부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 이승만과 하지 중장 사이에 낀 김구. 이승만과 미국 사이에 낀 김구의 처지를 보여주는 사진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서울시 종로구 이화동의 이화장(이승만 사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북한을 '우리'범주에 놓기 싫어하는 정서
하지만, 이승만의 임시정부가 별다른 업적을 세우지 못한 상태에서 1930년대에 임시정부는 김구의 임시정부로 바뀌었다. 김구의 임시정부가 이승만의 임시정부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업적을 세웠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김구의 임시정부는 중국정부와의 협조 속에 일본에 대한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또 김구의 임시정부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1945년에 귀국한 뒤로 미군정과 이승만의 분단정책에 맞서 투쟁했다. 그들은 남북협상을 통해 통일정부를 구성하고자 했다.
이렇게 임시정부가 나중에는 김구의 임시정부로 바뀌는 것도 모자라 미국과 이승만의 반통일 노선에 맞섰기 때문에, 이승만을 존경하는 뉴라이트들로서는 임시정부가 출범한 1919년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아니,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따라서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기본적으로 반통일적 정서가 꿈틀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을 '우리'의 범주에 넣기 싫어하는 정서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한 '대한국민들'이 헌법 전문에 심어놓은 정신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헌법을 부정하는 세력은 국가보안법으로 엄히 다스려야 한다고 뉴라이트들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렇다면 헌법이 인정한 1919년의 의미를 부정하고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보고자 하는 세력도 국가보안법의 규율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헌법에서 가장 중요한, 헌법 전문의 첫 문장을 부정하는 세력만큼 반헌법적이고 반국가적인 세력이 또 있을까.
2013년 2월 25일 취임식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 제69조에 따라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로 시작하는 취임선서를 낭독했다. 그런 박 대통령이 헌법 전문에 담긴 1919년의 의미를 무시하고 1948년 건국을 주장하는 뉴라이트들의 행태를 추종하고 있다. 이것은 박 대통령이 헌법을 준수할 의사가 없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박 대통령의 지난주 8·15 경축사 발언은 그렇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
영화 <암살>의 '반역자'로 알려진 염동진은 누구인가? 노컷뉴스 817
임기상의 역사산책 119] 해방정국에서 정치인 테러의 문을 연 극우파
해방 직후 대중집회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는 몽양 여운형. 그의 죽음과 함께 남북한의 좌우합작을 통한 통일은 물거품이 되었다
“탕~탕~탕!”
1947년 7월 19일 오후 1시경, 서울시내 혜화동 로터리에서 총성이 울렸다. 몽양 여운형이 탄 승용차가 트럭에 막혀 멈춘 순간, 괴한 1명이 자동차 범퍼에 뛰어올라 몽양을 향해 권총 3발을 쏘았다. 한 발은 등에서 복부로, 다른 한 발은 어깨 뒤쪽에서 심장을 관통했다. 총탄을 맞은 여운형은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숨을 멈췄다. 그의 나이 62세일 때이다. 이렇게 해서 남북한의 좌우를 아울러 분단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세상을 떠났다.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경찰은 3일 후 범인이 평북 영변 출신의 19세 소년 한지근이라고 발표했다. 과연 그럴까? 먼 훗날 진짜 범인 4명이 자수하고, 유명한 정치깡패 김두한이 방송에서 폭로하면서 '백의사'(白衣社)라는 단체가 암살을 주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일제 관헌이 남긴 염동진의 사진과 기록. 그의 얼굴이 찍힌 유일한 사진이다.
김두한은 1969년 12월 지금은 사라진 동아방송의 '노변야화(爐邊夜話)'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해방 직후의 상황을 자세하게 토로했다.
"백의사의 총사령인 염동진이 참모였던 나를 오라고 해서 갔죠. 그랬더니 암만해도 여운형을 패야 된다고 해요. 그러니 '김 동지가 정보와 돈과 무기만 우리한테 제공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요. '좋습니다. 여기서 못하면 제가 하려고 생각했어요.' 그러자 저보고 총을 구해달라는 거에요. '총이요? 제가 드린 것은 다 어떻게 했습니까?' 하고 묻자, 그걸 가지고 38선을 넘어가 이북에서 공작을 하느라 탄환하고 총이 없다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총을 갖다 주었어요."
김두한의 진술대로라면 백의사 조직이 여운형을 암살했고, 김두한은 총을 전달한 것이다. 이 백의사 조직은 해방 정국에서 송진우, 여운형, 장덕수 암살사건을 주도했고, 그 이전에 북한에서 김일성과 그 측근들을 상대로 한 테러사건을 일으켰다. 쉽게 얘기하면 자기들 입맛에 안 맞으면 좌(左)건 우(右)건 사그리 제거한 무시무시한 테러단체라고 할 수 있다. 이 조직의 총사령 염동진이 영화 <암살>의 모델로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최동훈 감독이 '염동진'을 모델로 친일파 '염석진'이란 인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 중국대륙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간 염석진과 염동진
독립투사에서 밀정, 대한민국 경찰로 계속 변신한 염석진. (영화 스틸)
여기서 영화의 첫 무대인 1933년 항저우로 돌아가보자.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상해의 홍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군 수뇌부를 몰살하자, 일본 군경은 엄청난 현상금을 걸고 김구를 수배했다. 임시정부 요인들은 잽싸게 상하이를 탈출해 항저우 일대에 흩어져 은신했다. 영화의 무대인 '항저우 시대'가 열린 것이다. 여기서 김구는 영화에서처럼 '약산 김원봉'을 만난 것이 아니라 중국 국민당 주석 장개석과 은밀한 회담을 가졌다. 여기서 합의를 본 것이 조선독립군 장교를 양성할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의 '한인분교'를 설치하는 일이었다. 다음해 2월 최고의 교수진과 최고의 학생들이 낙양분교에 모였다. 이때 모인 92명의 학생 가운데 1명이 염동진이었다. 1년간의 교육을 마친 염동진의 활동 무대는 분명하지 않다.
그가 장개석 직속의 '남의사'(藍衣社·한국으로 치면 국가정보원)에서 요원으로 활동했던 것은 분명하다. '남의사'는 중국인이 즐겨입던 '남색 옷'을 의미하고 '백의사'는 한민족이 즐겨 입던 '흰색 옷'을 말한다. 해방 후 자기 조직을 이렇게 '백의사'로 이름 붙였다. 일설에는 첩보공작을 하려고 만주에 밀파되었다가 일본 관동군 헌병대에 체포되어 변절해 밀정 노릇을 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면 정확하게 영화 <암살>의 염석진의 길을 걷는 셈이 된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기록이나 증언은 전혀 없다.
오히려 장개석의 '남의사'와 대립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의 첩보부대에 붙잡혀 고문을 받아 점차 시력을 잃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장애인이 되어 평양으로 돌아온 염동진이 지하 독립운동단체인 '대동단(大同團)'을 설립하고. 해방 후 이 단체를 반공단체인 '백의사'로 이름을 바꿔 격렬한 반공투쟁을 벌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반면에 영화 속의 염석진은 밀정에서 일본군의 앞잡이로, 신생 대한민국의 경찰로 변신하며 더러운 삶을 이어나간다.
◇ 대담무쌍한 염동진의 ‘백의사’, 무자비한 테러를 벌이다
1945년 가을 '붉은 군대 환영 평양시민대회'에 참석해 모습을 드러낸 김일성. 백의사의 가장 중요한 테러 대상이었다.
해방이 되고 소련군이 북한에 진주하자 '백의사'는 반공테러에 나섰다. 제일 먼저 인민위원회 평남도당 위원장인 현준혁을 평양 거리에서 권총으로 쏘아 암살했다. 이어 북한의 새로운 실력자로 등장한 김일성 처단에 나섰다. 1946년 3월 1일 평양역 광장에서 열린 3.1절 기념행사장에서 '백의사' 단원이 던진 수류탄이 터졌다. '백의사' 대원이 던진 수류탄이 김일성을 향해 날라갔으나 그는 가까스로 피하고 옆에 있던 소련군 장교 노비첸코가 오른팔이 날라가고 한쪽 눈이 다치는 중상을 입었다.
이틀 뒤인 3월 3일과 5일 두 차례에 걸쳐 김일성의 최측근 최용건의 집에서 폭탄이 터졌다. 3월 11일에는 또 다른 김일성의 측근 강양욱의 집이 습격당해 그의 아들, 딸과 식모, 경비보초 등이 살해당했다. 이들 테러가 성공했다면 한반도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수사망이 압축되자 염동진과 '백의사'의 대원들은 은밀하게 남한으로 넘어왔다. 서울에 자리를 잡은 '백의사'는 새로운 테러를 시작한다. 바로 '빨갱이 사냥'이다. 남로당 총수였던 박헌영 납치에 실패하자 송진우, 여운형, 장덕수 암살에 개입했다. 김구 암살과의 관련은 미군의 보고서에는 나오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김구와의 오랜 인연과 그들의 이데올로기로 봤을 때 관련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염동진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을 가지 못하고 인민군에 잡혀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방 직후의 격변기의 일이지만 정말 이런 조직은 대한민국에서는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고은 시인은 '염동진'이란 시에서 그를 이렇게 묘사했다.
1945년 겨울 / 서울 종로 2가에 염동진이 나타났다 / 아니 / 스며들었다 / 그가 누구인지 / 어디서 왔는지 / 누구의 동지인지 / 어디로 갈 것인지 몰랐다 / 수군거리기를 / 중국 북부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한다 / 수군거리기를 / 가족 전부가 / 공산당에게 학살당했다 한다 / 극우테러 본부 백의사 우두머리 / 잠자리에서도 / 검은 안경 벗지 않는 / 장님 / 잠자리에서도 권총을 챙겼다 / 청년 유진산은 머리였고 / 청년 김두한은 주먹이었다 / 모자 벗은 머리에서 / 포마드 냄새가 진했다 / 냉혈인간 / 그의 말은 칼끝 / 그의 생각은 찰나였다 / 그의 하루하루는 / 누구를 죽이는 일 / 누구를 없애버리는 일이었다 / 단독정부가 들어선 뒤 / 홀연 사라졌다 / 그러나 그의 극우 테러는 백주에 호열자로 퍼져나갔다.
취업 청탁 ‘현대판 음서제’] 819 경향
“이력서 한 장 보냈으니 잘 부탁” 의원들 ‘문자 스캔들’ 단골손님
국회 본회의장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가 찍힌 사진으로 곤욕을 치른 국회의원들이 많다. 스마트폰 화면에 담긴 민감한 내용이 사진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문자 스캔들’의 단골손님이 ‘취업 청탁’ 관련 문자다.
지난 5월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취업 청탁이 의심되는 스마트폰 문자 화면이 찍혀 구설에 올랐다. 김 위원은 누군가에게 ‘이력서 한 장 보냈다’고 문자를 보냈고 이에 상대는 ‘6월부터 월 3백 맞느냐’는 확인 문자를 회신한 것으로 돼 있었다. 취업 청탁 의혹이 일자 김 위원은 “일자리가 있으면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2013년 새누리당 김희정 의원은 국회 본회의 중 지역구 인사 아들의 ‘국방과학연구소’ 취업 청탁 문자를 확인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같은 해 민주당 김진표 전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 유지 아들이 한전 자회사 시험에 응시했다는 문자를 같은 당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의원에게 전송해 물의를 빚었다. 해당 문자에는 취업 청탁자의 인적사항과 학번, 학교, 아버지 신상 등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권력을 이용해 자녀와 주변인들의 취업 청탁에 힘을 쏟고 있다. 국회의원이 ‘위임된 권력’을 사익 추구에 남용하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의 아들은 정부법무공단의 취업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윤후덕 의원은 변호사인 딸의 취업 청탁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같은 당 문희상 의원은 2004년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에게 처남의 취업 청탁을 했다는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은 이런 취업 청탁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완구 전 총리는 사적인 자리에서 “내가 (언론인들을) 대학 총장도 만들어주고 교수도 만들어 줬다. 40년 된 인연으로 (언론인과 내가) 이렇게 산다”고 발언한 내용이 지난 2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공개돼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사회에 무관심한 대학생들… 70%가 "뉴스, 안 보거나 가십거리로 소비" 819 한국
취업준비를 위해 스펙쌓기에 몰두하고 있는 요즘 대학생들은 뉴스를 아예 보지 않거나, 뉴스를 보더라도 가벼운 뉴스만 소비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연성(軟性)뉴스에 대한 대학생들의 선호는 낮은 시민의식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기관지‘한국청소년연구 26권1호’에 실린 보고서‘뉴스 미디어 레퍼토리에 따른 후기 청소년의 정치적 시민성 차이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대학생들은 뉴스 소비가 저조하거나 뉴스를 보더라도 연예뉴스나 가십에 치중해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부 일반대학원 문지혜씨의 석사논문을 발췌ㆍ요약한 것으로 서울 소재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 300명을 대상으로 지난 해 10월 설문조사 한 결과를 분석했다.
보고서는 정치ㆍ외교, 경제ㆍ산업, 문화ㆍ생활, 스포츠ㆍ연예 등 뉴스 주제별로 ‘1주일 동안 평균 뉴스를 몇 분 소비하는지’에 대해 응답하게 한 뒤 평균 이용 시간을 기준으로 뉴스 이용 집단을 3개 집단으로 구분했다. 응답자 271명 가운데 모든 유형의 주제에서 뉴스 이용률이 낮았던‘뉴스 저이용 집단’은 전체 25.1%(68명) 로 조사됐다. 정치ㆍ외교, 경제ㆍ산업 뉴스를 주로 본‘경성 뉴스 이용 집단’은 31.4%(85명)에 그친 반면 스포츠ㆍ연예 등 가십거리에만 편중해 뉴스를 소비하는‘연성 뉴스 이용 집단’은 43.5%(118명)에 이르렀다. 뉴스를 아예 안 보거나 가십거리로 소비한 학생들이 70%에 육박한 셈이다.
연성 뉴스를 선호할수록 시사 현안에 대한 이해도 낮았다. “‘골프장 여성 캐디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은 누구?”, “‘대리기사 폭행사건’과 관련된 국회의원 이름은?“과 같은 시사 문제를 내고 평균 점수를 내 보니 뉴스 저이용 집단(2.03점ㆍ4점 만점)과 연성 뉴스 이용 집단(2.51점)은 경성 뉴스 이용 집단(3.16점)에 비해 점수가 낮았다.
정부ㆍ정당에 대한 관심도, 인권과 환경 문제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도를 1~5점으로 매겨 측정한 결과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문지혜씨는 보고서에서 “대학생들은 흥미위주의 연성 뉴스를 소비하는 경향이 강했고 경성 뉴스 이용하는 학생들도 시민성 수준이 높은 편이 아니었다”며 “사회 문제에 대한 인지도와 관심도, 참여도가 전반적으로 낮아 이들에 대한 시민 교육이 따로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는 독립운동가를 고문하던 형사였어 814 시사인
친일 스펙트럼은 70년 세월 속에서 수십 가지 색깔로 갈라져 있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워야 할 건 도덕이 아니라 지혜다. 중요한 건 이름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삶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되찾는 일이다.
1945년 8월15일 우리 민족은 ‘해방’을 맞았다. 1910년 일본과 한국을 합친다는 선언이 공표된 건 8월29일이었지만 이미 1주일 전인 8월22일 양국 대표가 조약에 서명을 끝냈다고 하니, 일제 강점은 딱 1주일 모자라는 만 35년이었던 셈이야. 영화 <암살>을 보면서 가장 뭉클했던 장면 중 하나는 일본의 항복 모습을 지켜보며 환호하던 독립운동가들이 “집에 가자!”를 합창하는 장면이었어. 짧아야 몇 년, 길면 수십 년 동안 집에 가지 못하고 고향 풍경을 그리워하기만 한 사람들이지 않았겠니.
어쨌든 일제는 물러갔어. 하지만 일제 강점 35년은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우리 역사에 남게 돼. 신석정이라는 시인은 <꽃덤불>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하지. “(…)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서른여섯 해가 지나갔다. (…)” 맞아. 기어이 그날을 보고자 했지만 끝내 먼 길 떠난 벗들은 얼마며, 천만 리 머나먼 어딘가에서 그리움을 부르는 친구는 좀 많았겠어.
하지만 문제는 ‘맘을 팔고 몸을 팔아버린’ 벗들이었지. 나라를 팔아치워 팔자 고치려던 인간이나 그 앞잡이 노릇을 하며 설치던 말종은 ‘벗’도 아니겠지만 그들 말고 많은 ‘벗’들도 35년을 살아내야 했거든. 결연히 일본 제국주의에 맞섰지만 나중에는 일제의 충실한 앞잡이가 된 ‘몸을 팔아버린 벗들’도 있고, 해방은 올 것 같지 않고 일단 먹고살아나 보자며 순응했던 ‘맘을 팔아버린’ 벗들까지. 우리는 그 모두를 일컬어 ‘친일파’라 뭉뚱그려 부른단다.
하판락(위)은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하던 고등계 형사였다. 해방 후 반민특위에 회부(맨 왼쪽)됐지만 풀려났다.
일제 치하에서 인간 이하의 짓을 했던 악질 친일파를 솎아내지 못한 건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야. 영화 <암살>에서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장면은 마지막 장면일 거다. 우리나라 친일파들이 그렇게 ‘응징’을 받은 예는 극히 드무니까. 하판락이라는 사람 얘길 해보자.
하판락은 독립운동 등 일본에 저항하는 이들을 때려잡는 것을 주 임무로 하는 고등계 형사였지. 동시에 악독한 고문의 명수였는데 즐겨 한 고문 중의 하나는 ‘착혈고문’이었다고 해. 2007년 사망한 독립운동가 이광우 선생은 하판락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진술하지 않는 사람의 혈관에 주사기를 삽입했다. 그리곤 혈관을 통해 주사기 하나 가득 피를 뽑아내서는 뽑아낸 사람에게 뿌렸다”라고 증언하고 있어. ‘사람의 피를 짜낸’ 이 악마는 해방 후 반민특위에 회부되지만 끝끝내 자신이 아닌 부하가 고문을 했다고 잡아떼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 그리고 평생을 잘 먹고 잘산단다. 부산에서 무슨 노인회 회장도 하고 부산 시장 표창까지 받으면서 말이지.
ⓒ부산일보 2007년 사망한 독립운동가 이광우.
그의 존재가 다시 드러난 건 그에게 고문당해 평생을 불구로 산 독립운동가 덕분이었어. 투옥 기록 등 독립운동의 증거가 사라져 독립운동 서훈을 받지 못하는 걸 안타까워한 독립운동가의 아들이 하판락의 생존 사실을 알아내고, 하판락의 진술과 그 주변 서류를 통해 아버지의 독립운동 사실을 증명했거든. 하판락을 만나러 가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한 맺힌 말을 던졌다는구나. “하판락을 만나면 직이뿌라(죽여버려라). 그놈은 인두겁을 쓴 짐승이다.”
이런 악마들을 때려잡지 못한 것, 그들이 짓밟은 사람의 무덤 위에서 잘 먹고 잘살며 한 세상 보내게 한 것은 우리 역사의 수치야. 그들조차 제대로 단죄하지 못했으니 다른 친일파에 대해서도 서슬을 세울 겨를이 없었지. 그런 상태에서 전쟁과 독재의 폭풍이 우리 역사를 휩쓸고 지나가면서 친일이란 키워드는 어느새 일종의 블랙홀이 돼버렸어. 모든 것을 빨아들일 만큼 강력하지만 그 깊이와 범위를 알 수 없고,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맺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조금 다른 예를 들어보자.
그 아동문학가는 ‘친일파’일까?
이원수라는 아동문학가가 계셔. 남북한 사람들이 합창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노래라는 <고향의 봄> 작사가지. 그 부인 최순애씨는 역시 유명한 동요 <오빠 생각>을 작사한 분이고. 그 노래 가사를 쓸 때 놀랍게도 두 분은 10대 소년 소녀였고 각각 수원과 경상도에 살면서 편지로만 데이트를 했어. 어느 날 마침내 소년 이원수가 경부선 열차를 타고 올라오기로 했지만 수원역에서 기다리던 소녀 최순애는 이원수를 만나지 못해. 독립운동 혐의로 잡혀가서 감옥에 갇혀버렸거든. 이원수 선생은 그 후 평생 조선의 아이들, 한국의 소년들을 위해 아름다운 작품을 창조했고 어린이들에게 식민지의 현실과 전쟁의 아픔과 가난의 고통에 대한 위로를 선사해주었어.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에 따르면 “이 세상에서 만났던 분 가운데 가장 맑고 바르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으로서 “4·19와 전태일을 동화로 쓴 유일한” 분이었지. 하지만 일제 말기에 동시 두 편, 자유시 한 편, 수필 두 편 해서 모두 다섯 편의 친일 작품을 조선금융조합연합회 기관지 <반도의 빛(半島の光)>에 발표한 것이 드러나면서 이분은 ‘친일파’ 명단에 오른단다. <고향의 봄>도 한때 교과서에서 삭제됐고 고향 창원에서 진행하려던 이원수 기념사업은 “자유· 정의·
ⓒ이원수문학관 제공 아동문학가 이원수(오른쪽)와 그의 부인 최순애씨.
인권·평화와 같은 인류 보편적인 가치관을 가진 세계인들의 비웃음을 살 일이며 죄 없는 창원시민을 망신시키는 일”이라는 반대에 부딪혀야 했어.
과연 이분은 친일파일까? 하판락 같은 망종까지는 아니더라도 ‘맘을 팔아버린 벗’ ‘몸을 팔아버린 벗’으로서 결국은 하판락과 같은 범주에 올라야 마땅한 사람이고 그를 기리는 것이 “세계인의 비웃음을 살 일”이라는 말까지 들어야 옳은 일일까?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구나. 그렇게 ‘친일’의 스펙트럼은 70년 세월의 두께 속에서 수십 가지 색깔로 갈라지고 있음도 우리는 기억해야 해.
우리에게 ‘친일 청산’이란 무엇일까. 먼저 필요한 건 역사의 온전한 복원이라고 생각해. 하판락 같은 악질 친일파부터 ‘맘을 팔아버린’ 벗들까지 그 모두의 행적이 지금보다 더 선명하고 소상히 드러나야겠지. 그런 의미에서 이원수 선생의 친일 작품이 밝혀지고 사전에 오른 자체는 당연한 일이고, 하판락 같은 자들의 행적은 깡그리 까발려져야 한다고 봐. 하지만 그 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한 단죄와 규정이 아니라 오늘에 필요한 교훈을 얻는 일일 거야.
나이 아흔셋에 죽었으니 명도 지독하게 길었던 하판락의 악행을 저주하고 그에게 천벌을 내리지 않은 신과 그를 때려죽이지 못한 할아버지들을 원망하는 건 어렵지 않아. 이원수 선생의 친일시를 낭독하며 그 과오를 규탄하는 것도 마음먹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야. 하지만 역사에서 배워야 할 건 도덕이 아니라 지혜란다. 왜 그들은 그렇게 됐는가를 분석하고 그들의 삶을 종합적으로 파악하여 다시는 역사에 그런 일이 없으리라는 거울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야.
더하여 가장 중요한 것. 하판락이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독립운동가 서훈의 증거가 마련됐듯, ‘친일 청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잃어버린 독립운동의 역사를 되찾는 일일 거야. 이름 없이 보상도 없이 스러져 간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더듬어 꿰맞추고 그 희생의 무게에 짓눌려 힘겹게 살아온 그 후손에게 우리가 미처 드리지 못한 명예와 경의를 돌려줄 때 ‘친일’은 청산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 ]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이르는 용어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도심 지역의 노후한 주택 등으로 이사 가면서 기존의 저소득층 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신사 계급을 뜻하는 ‘젠트리’에서 파생된 말로 본래는 낙후 지역에 외부인이 들어와 지역이 다시 활성화되는 현상을 뜻했지만, 최근에는 외부인이 유입되면서 본래 거주하던 원주민이 밀려나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다.
도시 환경이 변하면서 중 · 상류층이 도심의 주거지로 유입되고 이로 인해 주거비용이 상승하면서 비싼 월세 등을 감당할 수 없는 원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현상이다. 이 현상은 1964년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R. Glass)가 노동자들의 거주지에 중산층이 이주를 해오면서 지역 전체의 구성과 성격이 변하는 것을 설명하면서 처음 사용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우선 임대료가 저렴한 도심에 독특한 분위기의 갤러리나 공방, 소규모 카페 등의 공간이 생기면서 시작된다. 이후 이들 상점이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지면서 유동인구가 늘어나고, 이에 대규모 프랜차이즈점들도 입점하기 시작하면서 임대료가 치솟게 된다. 그 결과 소규모 가게와 주민들이 치솟는 집값이나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동네를 떠나게 되고, 동네는 대규모 상업지구로 변화된다. 예컨대 2000년대 이후 서울의 경우 종로구 서촌을 비롯해 홍익대 인근, 망원동, 상수동, 경리단길, 삼청동, 신사동 가로수길 등에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주택지구 상류화[ gentrification ]
더 잘사는 가족들이 자신들의 개인적인 주거 또는 투자를 위하여 이전에는 가난하고 과밀한 빈민지역을 구입하고 사적으로 복원시키는 사회적 현상. 이것은 재산가치, 임대료 및 인근 지역 모든 가정들의 재산세율을 상승시키고, 거기에서 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덜 유복한 사람들의 잔존과 복귀가 이뤄지지 못하도록 강요하는 효과를 지닌다. 상류화된 근린지역은 바람직해 보이지만, 거주지를 옮긴 사람들은 다른 근린지역에 몰리게 되고, 인구증대에 따른 압력 결과 그 근린지역이 쇠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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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남녀 10명중 9명 '외국인 남친,여친도 좋아 코리아타임스 8 21
미혼남녀 대다수가 국제연애에 대해 열린 시각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결혼정보회사 듀오에 따르면 이달 13∼19일 전국의 20∼30대 미혼남녀 425명을 대상으로 국제연애와 국제결혼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더니 응답자의 87.3%(남성 88.9%·여성 85.8%)가 연애상대로 외국인도 좋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남성은 '감정에 솔직해 밀당이 필요 없다'(30.4%)는 점을, 여성은 '한국인과 다른 외모·신체 조건'(37.2%)을 국제연애의 장점으로 꼽았다.
다만, 응답자의 절반 이상(56.2%)은 '의사·감정소통이 어렵다'는 점을 국제연애의 가장 큰 장애물로 생각했고 '문화·정서적 차이 때문에 자주 다툼'(14.8%), '이민·비자 등의 문제가 까다로움'(13.4%), '연애로만 끝날 확률이 높음'(10.6%) 등을 단점으로 꼽은 이들도 많았다.
대낮 성매매로 50억원 번 주부 있다”819 시사저널
수유리 일대 주부 성매매단 300여 명…경찰 “단속해도 계속돼”
“한 주부는 성매매로 50억원대의 돈을 모았다. 그들은 점조직으로 움직이며 단속을 피한다. 에이즈 등 성병을 퍼뜨리는데도 당국은 뒷짐만 지고 있다.”
최근 시사저널에 접수된 제보의 핵심 내용이다. 주부 성매매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과거에는 생계에 쪼들리던 몇몇 주부가 아이들 학원비나 분유 값을 벌기 위해 성매매에 나섰다. 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그들은 20년 이상 활동하면서 돈을 모아 집과 고급 차를 샀다. 직업여성들처럼 누군가에 얽매이거나 종속되지 않은 그들은 개인 사업을 하듯이 성매매로 돈을 번다. VIP 고객을 별도로 관리하고 단체관광객을 유치하고 원정 성매매를 하는 등 조직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50대로 보이는 류현주씨(가명)는 주부다. 중국식당 주방장인 남편이 출근하면 자신도 어디론가 출근했다가 남편이 퇴근할 무렵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남편에게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한다고 해두었다. 여느 주부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류씨는 20여 년 동안 건물 등 50억원대의 재산을 모았다. 본명 외에 밖에서 사용하는 가명이 따로 있다. 휴대전화를 5대나 가지고 다닌다. 이쯤 되면 이 여성은 평범한 주부는 아닌 듯 보인다. 주부 성매매 실태를 1년 동안 추적했다는 심우호씨(가명)는 “류현주라는 가명을 쓰는 여자는 20년 이상 서울 수유동 일대에서 성매매를 해왔다. 아침부터 저녁 전까지 매일 5명 정도의 남성과 성관계를 하면서 돈을 번다”고 밝혔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 일대 모텔에는 낮 시간에도 중년 여성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 시사저널 최준필
하루 5~10명 상대 50만~100만원 수입
자영업자인 심씨가 주부 성매매를 파헤친 이유는 7년 동안 같이 근무했던 부하 직원이 한 주부와 성관계를 한 후 성병을 얻어 퇴사했기 때문이다. 그는 “순진하고 착실했던 직원이 성병에 걸려 일도 못하더니 결국 퇴사했다. 항의 차원에서 그 여자와 전화통화를 했는데 오히려 온갖 욕설을 퍼붓고 경찰에 신고한다는 등 적반하장 식으로 나와 이들을 조사한 후 경찰에 신고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는 노원경찰서에 주부 성매매 실태를 신고했고 경찰은 그해 10월 성매매 주부 10명을 붙잡았다. 당시 신고를 받고 성매매 주부들을 검거했던 경찰관은 “성매매 주부들은 단속해도 오랜 기간 계속 성매매를 해오고 있고 앞으로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8월13일 오후 2시쯤 서울 수유역 부근의 모텔촌에는 젊은 커플은 물론 중년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한 중년 남성이 모텔로 들어간 지 몇 분 후 청바지 차림의 중년 여성도 뒤를 한 차례 돌아보고는 재빨리 모텔 안으로 몸을 숨겼다. 또 다른 모텔 앞에서는 40대에 옷차림이 화려한 여성이 두리번거리다 모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어 원피스를 입은 또 다른 중년 여성도 그 모텔로 들어갔다. 이들 중년 여성을 모두 성매매 주부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낮 시간에 혼자 모텔을 드나드는 모습이 심상찮았다. 심씨는 “그들이 요즘 다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남성과 성관계를 할 때 콘돔을 사용하지 않아 성병을 퍼뜨린다. 한 여성은 성관계 전 화장실에서 주삿바늘을 자신의 몸에 찌르는데 그게 마약인지 성병 치료제인지 모르겠다. 한 모텔 업주는 에이즈 환자라고 업계에 소문난 한 주부의 출입을 막는 과정에서 크게 다투기도 했다. 간통죄 폐지로 주부 성매매가 활개를 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매매 주부 수십 명을 추적해 실명, 가명, 휴대전화 번호, 집 주소, 자동차 번호, 남편 직업, 성관계 횟수 등을 파악했다. 취재진에게는 주부 12명의 성매매 실태 자료를 건네며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했다. 주부 A씨의 하루를 사례로 들면 이렇다. 남편이 출근한 후 화사한 화장과 옷으로 멋을 낸 A씨는 서울 수유동에 있는 한 오피스텔로 출근한다. 오피스텔은 성매매를 하는 주부들의 대기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마련한 곳으로 월세 40만원은 나눠서 부담한다.
그곳에서 또래의 주부들을 만나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떤다. 그러다가 전화벨이 울리면 다른 방으로 가서 상대 남성과 은밀한 대화를 나눈다. 그 남성은 인근 전화방에서 여성과 폰팅을 하려는 사람이다. A씨는 손님이 폰팅을 원하면 자신에게 가장 먼저 연결해달라며 전화방 업주에게 이미 몇 만원을 찔러둔 상태다. 전화 대화가 무르익으면 A씨는 상대 남성에게 은근히 성관계를 유도한다. 인근 모텔에 먼저 들어가서 방 번호를 알려달라고 한 후 그 모텔로 가서 성관계를 맺고 7만원을 받는다. 이따금 남성이 샤워하는 동안 지갑에서 몇 만원을 더 빼낸 뒤 모텔을 나서기도 한다.
오피스텔로 돌아가는 도중에 지난달 몇 차례 만났던 남성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친구를 데리고 간다며 다른 주부 한 명과 함께 그 남성이 있는 모텔을 찾아 2 대 1로 성관계를 갖는다. 이 남성으로부터는 20만원에 팁을 별도로 받고 헤어진다. 저녁 무렵 오피스텔로 돌아온 후 다른 주부들과 그날 만났던 남성들을 중심으로 수다를 떤다. 시쳇말로 진상 남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 이날 하루 7명과 성매매를 해 번 돈은 70만원이 조금 넘는다. 남편이 퇴근해서 돌아오기 전에 집으로 간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저녁을 준비한다.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는 아는 언니 옷가게에서 일하느라 힘들었다고 말한다.
“서울 수유역 일대 300명 추산”
제보자 심씨가 지목한 곳은 서울 수유역 일대다. 그는 “손님으로 가장해 그 지역에서 성매매 하는 주부 여러 명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해서 알아낸 바로는 서울 수유동 일대에서 활동하는 성매매 주부가 300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주부들이 처음부터 작심하고 성매매에 나선 것은 아니다. 반찬값이라도 벌기 위해 식당이나 마트에서 일해봤지만 종일 힘들게 일해서 받는 일당은 빤했다. 그러던 중 주변에서 알게 된 다른 주부들의 꼬임에 빠져 남성을 만나게 됐다. 처음에는 술이나 마시고 노래방에서 즐기는 상대로 시작했다. 몇 시간 놀면서 용돈도 생겼다. 그러다가 서서히 성관계까지 맺게 됐다. 심씨는 “몇 년 전 10만원대였던 화대는 요즘 5만~7만원으로 낮아졌다. 경기가 좋지 않고 단속 위험이 있어 손님이 줄어든 데다 성매매 주부의 수는 늘어났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돈을 대주는 애인을 둔 주부도 있고 얼굴이 예뻐 팁을 별도로 두둑이 받는 여자도 있다”고 설명했다.
50대 김동욱씨(가명)는 직장인 남편에게는 식당이나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거짓말을 한 채 20여 년 동안 매일 3~8명의 남성과 성관계를 가졌다. 그 돈으로 빌라를 사서 전셋집 인생을 벗어났다. 수십 년 동안의 성매매로 서울 자양동에 카페를 차린 주부가 있는가 하면 비싼 외제차를 굴리는 여성도 있다. 심씨는 “돈맛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다. 내가 만난 한 여자는 밤에 자려고 하면 매너 좋은 남자 생각이 난다고 털어놓았고, 김동욱이라는 가명을 쓰는 여자는 돈맛을 안 후 자신의 사촌 여동생까지 성매매에 끌어들였다”고 밝혔다.
‘수유리 에이스’로 통하는 40대 주부 선영씨(가명)는 남성에게 자신을 38세라고 속이고 접근한다. 미모가 뛰어나고 어려 보여 인기가 많아 몸값이 높다. 한 모텔 업주는 건수(?)가 생기면 이 여성에게 먼저 연락해준다. 이 여성처럼 한 모텔과 연계해서 활동하는 주부들도 있다. 미리 계약(?)을 맺은 모텔로 남성을 데리고 가면 그 모텔 업주는 남성이 지급한 모텔비에서 5000~1만원을 그 여성에게 떼어준다. 일종의 리베이트다.
그 주부들은 대개 30대 후반부터 50대 사이다. 50대 여성은 대부분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부터 성매매를 시작했다. 20년 이상 성매매를 하면서 단골이 많아졌고 그 가운데 VIP 고객은 따로 관리한다는 게 심씨의 주장이다. 그는 “그 바닥에서 ‘정 실장’으로 통하는 여자는 의사, 변호사, 대기업 임원, 언론인 등 신분이 확실한 단골만 관리한다. 보통 휴대전화를 꺼두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의 전화는 받지 않는다. 이따금 문자를 확인하면서 아는 사람일 경우에만 통화한 후 모텔로 향한다. VIP에게는 되도록 젊고 예쁜 주부를 붙여서 한 번에 30만원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8월12일 제보자 심우호씨(가명)가 서울 수유동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주부 성매매 실태를 담은 자료를 시사저널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남녀 모텔 따로 출입하며 단속 피해
그들은 실명 대신 가명을 사용한다. 휴대전화도 여러 대를 이용하고 전화번호도 자주 바꾼다. 모르는 전화번호가 찍히면 받지 않는다. 서로 소개를 통해 남성 고객 수를 늘린다. 모텔을 찾을 때도 남성과 따로 들어간다. 주부라는 위치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속을 피하려는 나름의 요령이다.
요즘은 점조직이 형성되는 분위기라고 한다. 업계에서 ‘원장님’으로 통하는 한 주부는 수십 년 동안 성매매로 돈을 벌어 강남으로 이사했다. 현재는 나이가 많아 직접 현장을 뛰지 않지만 신입(?) 주부들에게 남성을 소개하고 소개비를 받는다. 심씨는 “원장이라는 여자는 특히 중국인 단체관광객을 유치해 실적을 올린다. 16만원에서 3만원을 소개비로 받는다. 그가 관리하는 주부만 500명에 달해 수도권 어느 지역이라도 전화만 오면 여자를 보낸다”고 설명했다. 조금 연차가 있는 주부들은 개인적으로 원정 성매매에 나서기도 한다. 수십 년 동안 성매매로 돈을 벌어 아파트 2채를 보유한 50대 유경씨(가명)는 자신의 그랜저 승용차로 서울 수유동뿐만 아니라 구리시, 의정부시 등으로 원정 성매매를 다닌다.
제보자 심씨는 평범한 주부들의 성매매가 만연하고 성병 전염 우려까지 있는데도 경찰과 보건소가 적극적인 단속과 예방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경찰이 지난해 한 차례 단속한 이후 지속적인 단속을 벌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여러 차례 신고하다 보니 오히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주부들의 성생활이 문제가 아니라 성병을 퍼뜨리는 게 무서운 것이다. 그들에 대한 성병 검사를 해달라는 내용으로 보건소에 문의했더니 경찰 조사 후 의뢰가 들어와야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관할 경찰서는 단속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강북경찰서 관계자는 “업소 성매매는 현장이 있고 신고도 들어와서 단속할 근거가 된다. 그러나 주부 성매매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신고가 거의 없을뿐더러 단속을 하더라도 특정 장소가 없고 남녀가 1 대 1로 만나고 돈을 주고받은 증거도 없어서 단속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청년, 빈곤의 미로에 갇히다 818 한겨레21
‘취업’ 없이 인간다운 삶 누리기 어려운 청년들, 고용 정책 명분 쌓기에는 득달같이 소비되고 정작 정책에는 청년의 목소리 담기지 않아… 이제 복잡한 청년 빈곤의 현실을 마주하고 해결을 위한 제도·정책 마련의 디딤돌을 쌓아야
청년과 빈곤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노인 빈곤, 여성 빈곤, 아동 빈곤은 복지 정책의 주요 이슈였지만 청년은 배제된다. ‘일자리가 곧 복지’인 한국 사회에서 청년에게 인간다운 삶을 누릴 기본권은 오로지 ‘취업’을 통해서만 허락될 뿐이다. 청년과 관련한 통계들도 ‘고용’과 연관된 의미로만 집계된다. 청년들이 직면하고 있는 노동·주거·복지·빈곤과 관련한 양적·질적 통계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때 청년은 국가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소외받지 않은 자’다.
그러면서도 어느 순간 정부와 정치권, 경영계는 노동 개혁, 연금 개혁 등의 중요한 국면마다 청년을 방패막이로 등장시킨다. 그때 청년은 정규직 또는 아버지 세대에 일자리를 빼앗긴 ‘약자’의 대명사가 된다. ‘삼포 세대’ ‘제로 세대’ 등 청년들의 이름 붙이기가 이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청년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지는 않는다. 단, 고용 정책만 예외다. 청년이란 단어는 그렇게 한국 사회의 모든 논쟁의 중심에 있지만, 청년의 목소리와 청년을 위한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다.
지금 한국 사회의 문제는 모두 청년을 향한다. 비정규직, 저임금, 낮은 출산율, 주거, 불평등, 가계부채 등 모든 이슈가 청년의 삶 안에 웅크리고 있다.
이아라(29·가명)씨가 공원 전망대에서 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을 내려다보고 있다. 김진수 기자
2015년 청년의 삶
청년 빈곤의 실태를 한눈에 보기 쉽게 숫자와 그래프로 정리했다.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해 받은 자료에서는 청년 빈곤이 노인 빈곤만큼 심각하다는 사실(표1)과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 청년이 많다는 사실(표3)이 새롭게 드러났다. 청년 실질실업률은 공식 실업률(10.2%)의 3배 가까이 되는 30.9%에 이른다(표2). 청년의 주거빈곤·채무와 관련해선, 서울시가 지난 4월 내놓은 ‘2015년 서울 청년은, 지금’에 나온 통계를 일부 인용했다(표4). _편집자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국민이 너~무 궁금해서 대통령께 드리는 말씀 818 한겨레21
다섯 번 읽었건만 이해되지 않는 ‘대국민 담화’… 고통 분담과 동참을 당부한 4대 구조 개혁 내용을 톺아볼수록 뚜렷해지는 ‘4대 의문’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월6일 오전 청와대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박 대통령은 4대 구조 개혁에 동참해 고통을 분담할 것을 호소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얼마 전 ‘경제 재도약을 위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대국민 담화가 나왔다. 비루하게 쇠약해가는 몸은 낯선 땅에 있으나, 나는 엄연히 투표권을 가진 국민이다. 물론 표가 필요할 때만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처지가 섭섭하긴 하다. 그래서인지 대국민 담화는 반갑다. 정부의 최종 책임자가 내게 말을 걸고 소통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얼마나 복잡한 일인지 익히 알고 있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도 사무총장이 큰 연설을 앞두고 있으면 난리법석이다. 메시지는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어떤 논리로 설득할 것인지, 어조는 어찌할지 등등 고민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머리 좀 쓴다는 이들이 수십 명 동원되고, 사실관계도 치밀하게 따지고, 통계 수치도 꼼꼼하게 살핀다. 수치 하나 잘못 인용하고 사실관계가 흐트러지면, 수백만 명의 마음을 움직일 메시지도 물거품이 된다.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담화문 전문을 무려 다섯 번이나 읽었다. 공들여 만든 문서는 최소한 두 번은 읽어주어야 한다는 개인적 신념도 있었고, 고도의 정치적 문서에 ‘숨겨진 코드’는 별도의 독해가 필요하다는 ‘경험적 지혜’도 있었다. 그렇게 서너 번 읽다보니, 사실관계가 다시 궁금했다.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이런 지극정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더러 있고, 꼼꼼히 보니 인용된 수치나 사례에는 오해의 소지가 적지 않았다.
읽고 또 읽어도 풀리지 않는 의문
그래서 나는 ‘국민이 궁금해서 드리는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 어찌 보면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시시콜콜한 디테일을 따지자는 어리석은 일이겠으나, 본디 내 본성이 어리석기도 하거니와, 몇몇 얘기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논의되는 것들이라 ‘현장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무엇보다도 담화문은 “국민 여러분의 동의”와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하고자 한 것이라 하니, 나 또한 동참의 목소리를 보태고자 한다. 국민의 도리를 다하고자 하니 오해가 없길 바란다.
담화문의 요지는 간단하다. 앞으로 3~4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분수령”이 될 것인데, 이에 정부는 경제 재도약을 위해 “공공·노동·교육·금융의 4대 구조 개혁”을 하고자 하며, 이렇게 “힘든 길”에 국민들의 고통 분담과 협조를 부탁했다. “우리와 후손들을 위해서 반드시 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개혁을 하자는 대전제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크게 네 가지 의문이 있다. 4대 의문이라고 해도 좋다.
우선 구조 개혁 근거의 불명확성이다. “경제 전반에 대한 대수술”이 필요하다면서 4개 분야를 뽑았는데, 피가 철철 흐를 수술을 택한 데는 절박한 이유가 있겠다. 고통이 적은 레이저 수술을 제쳐두고 굳히 고통스러운 수술을 선택할 때는 수많은 전문가들의 힘겨운 토론과 합의가 있었을 것이다. 즉 우리가 굳이 “힘든 길”을 가야 한다면, 필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내용이 필시 담화문에 담겨 있으리라. 다시 읽어볼 수밖에 없었다.
쉽지 않았다. 내가 찾아낸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G20(주요 20개국) 국가성장전략 중 1위로 평가받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따라 4대 구조 개혁을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중국·독일·일본 등 힘센 나라들이 몽땅 포함되어 있는 G20에서 최고로 꼽힌 성장전략이라고 하니, 덧붙여 설명할 이유도 없겠다.
하지만 G20에서 공식적으로 한국의 성장전략을 1위로 평가했다는 근거는 분명치 않다. G20은 누가 더 잘했는지 평가할 만큼 맷집이 좋지는 않다. 등수를 매기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그룹이다. 아마도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G20 성장전략의 국내총생산(GDP) 상승 효과를 분석한 것을 말하는 듯하다. 지난해 국내 언론에서도 그리 보도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분석에서 4.4% 추가 성장이라는 단연 일등의 결과가 나온 것은 구조 개혁 때문이 아니다. 사회간접자본 투자의 대대적 확충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려 4.4%라는 수치의 신뢰성은 논란거리다. 이런 결과에 분석 당사자인 IMF와 OECD도 놀랐고, 한국의 정책 관계자도 놀랐다고 들었다. 여하튼 이런 분석에 기초해서 각국의 성장전략에 등수를 매긴 적은 없다. 게다가 이것이 유일한 근거이고, 그것마저 ‘외부’에서 수입한 것이라면, “국민 여러분”은 섭섭하지 않을 수 없다.
준 적도 받은 적도 없는 개혁안 ‘1등상’
둘째는 개혁 내용의 비대칭성이다. 4대 구조 개혁 분야를 뽑았는데, 개혁의 내용과 구체성이 제각각이다. “노동 개혁은 일자리”라고 선언한 뒤 담화문은 노동시장 구조 개혁에 대해서 구구절절하고 구체적으로 나열했다. 하지만 다른 개혁은 그렇지 않다.
공공부문 개혁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보다는 ‘이미 잘하고 있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공무원연금 개혁도 하고 있고, 혈세 낭비를 막기 위해 재정 정보도 공개한다고 했다. 교육 개혁은 추상적인 문구로 가득하다. “학생의 꿈과 끼를 키우는 교육”이나 “학벌 아닌 능력 중심의 사회 구현” 등등 구호성 문구가 넘치지만, 자유학기제 등과 같은 구체적인 정책은 “대수술”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사소하다. 금융 개혁 분야에는 “보신주의 관행과 현실에 안주한 금융회사의 영업 행태”를 바꾸겠다는 선언 이외에는 없다. 여기에 서비스산업 육성이 덧붙여졌는데, 그 내용은 서비스기본법 통과로 요약된다.
이렇다보니 구조 개혁의 “힘든 길”은 오로지 노동시장으로만 연결되어 있다. 나머지 개혁은 들러리라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4대 개혁이 아니라 “노동 개혁”만을 정조준했다는 ‘오해’를 자초했다.
셋째는 사실관계의 부정확성 또는 모호성이다. 모름지기 주요 경제정책은 타당하고 객관적인 통계나 분석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경제 “대수술”도 수술이라면, 환자의 각종 수치를 제대로 알아내야 한다. 특히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경우에는 어느 한편에서 나온 통계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잘못된 수치로 수술하면 환자가 위험해질 수 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불문율이자 철칙이다.
그런데 담화문은 이런 원칙을 간단히 무시했다. 우선 정년이 60살로 연장되면서 기업의 추가 부담이 115억원이 되므로 임금피크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할 때, 115억원이라는 무시무시한 수치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제시한 것이다. 그 방법도 단순했다. ‘기업 정년 연장 실태조사’라는 기업 설문조사를 통해 정년 연장 혜택을 받을 노동자의 수와 평균급여를 추정한 뒤 그냥 곱한 숫자다. 이들의 실제 정년퇴직 여부와 급여에 대한 면밀한 분석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이를 흔히 “편지봉투 뒤에 끄적인 계산”(back-of-the-envelope calculation)이라 한다. 온 국민을 위해 일하는 일국의 지도자가 인용할 만한 수치는 아니다.
서비스기본법과 관련해서는 이 법이 통과될 경우 “서비스 기업들은 투자 규모를 34% 이상 늘린다”고 했다. 이 수치는 대한상공회의소가 400여 개 기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나온 것이다. 이해당사자가 행한 조사인데다, 인용도 정확하지 않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34%의 기업이 서비스기본법 개정시에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답했다. 서비스 기업들이 전체적으로 34% 이상 투자를 늘리겠다는 얘기와는 큰 차이가 있다. 게다가 기업의 62%는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라고 답했다. 즉, 대다수의 의견은 미지수다. 실수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실수라면 대국민 담화문에서는 있어선 안 될 실수이고, 실수가 아니라면 더 큰 문제다.
멋대로 풀이한 통계, 차라리 실수이길
또한 대수술이 성공하려면 수술 이후 환자의 피가 몸 구석구석으로 잘 흐를 수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심장에서 신선한 피를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혈관이 막혀 흐르지 않는다면 비싸고 고통스러운 수술은 환자의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겠다. 그런 면에서 보면 담화문은 기이하다. 살점을 들어내고 피를 내자고 하지만, 정작 혈관에 대해서는 퉁명스럽다.
예를 들어 정년 연장으로 늘어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자 임금피크제를 “강제적”으로 도입했다고 하자. 그런데 그렇게 생긴 ‘여윳돈’이 피처럼 환류해서 청년 고용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혈관이 없다. 임금피크제를 강제하듯이 이런 환류를 강제하지는 않는다. “기업들이… 그만큼 앞장서주셔서” 해줄 것을 부탁할 뿐이다. “청년들의 실업 문제를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 미래에 큰 문제로 남게 될 것”이기 때문에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결단을 내릴 때”라고 준엄한 경고를 던지는 담화문이 그 해법에 이르러서는 기업에 대한 호소문만 내놓은 셈이다.
그래서 마지막은 고통 분담의 편향성이다. 담화문은 “우린 모두가 한배를 타고 있는 운명공동체”라는 점을 강조하고 고통을 나누자고 호소했다. 하지만 ‘운명공동체의 배’가 항해를 시작하기도 힘들 정도로 고통 분담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기울어진 배가 먼 길을 순항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임금피크제와 관련해서는 노동이 분담하는 몫은 직접적이고 강제적인 데 비해, 기업의 분담은 간접적이고 자발적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정책이 대기업을 대상으로 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대기업 편향이라고 할 법도 하다. ‘프로이트의 말실수’ (Freudian Slip)라는 말이 있다. 무의식이 의식에 개입해서 본의 아니게 속마음을 드러내는 말실수다.
또한 임금피크제를 공공기관에 도입하는 “솔선수범”을 보이겠다고 하지만, 정작 공무원에게 이를 도입하겠다는 얘기는 없다. 다만 “공무원 임금체계도 능력과 성과에 따라 결정되도록 개편”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팍팍한 정부 살림은 허리띠를 졸라매서 해결하겠다고 하는데, 정작 살림살이를 고달프게 만든 조세제도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쓰임새를 아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금을 받아야 할 곳에서 제대로 징수하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균형이고 분담이겠다.
고통 분담이 공평하지 못하면 개혁에 대해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 때문인지 담화문은 노·사·정 대타협과 양보를 강조한다. 하지만 대수술의 방향이나 내용은 다 정해두고 수술 대상자에게 대타협을 호소하는 것은 결국 일방적인 수술동의서에 서명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화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담화문에는 ‘대화’라는 단어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독일의 사례를 꼽았다. ‘양보’와 ‘희생’으로 노동시장 개혁을 이루고 유럽 경제강국으로 다시 부상했다는 ‘아름다운 동화’다.
하지만 독일 전문가들은 독일의 사례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한다. 크리스천 더스트먼과 동료들은 2014년 논문에서 독일 노동시장 개혁의 성공 이유를 대화와 협의를 중시하는 독일 노사관계 모델의 유연성에서 찾았다. 독일과 같은 포용적 노사 구조를 도입할 정치적 의사가 없다면 독일의 노동시장 개혁 모델은 성공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공평한 고통 분담과 진솔한 사회적 대화 없이는 독일식 기적도 없다는 얘기다.
정부 투명성이 ‘꼴찌’란 말입니다
국민 담화문은 노동 개혁과 “고통 분담”을 역설하면서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지표를 언급했다.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26위권인데, 노동시장 효율성이 86위, 특히 그 하위 지수인 노사 간 협력지수가 132위이었기 때문에 국가 순위를 까먹었다고 한다. 노동 개혁만 하면 당장 10위권으로도 돌입할 것이라는 얘기로 들린다.
이 지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겠다. 다만 인용할 때 공정했으면 한다. 한국의 순위를 까먹은 분야는 노동시장만이 아니다. 제도 부분과 금융부분도 모두 80위권이다. 특히 노사 간 협력지수가 132위라고 적시했는데, 사실 한국의 꼴찌 지표는 이게 아니다. 133위로 기록된 부분이 있다. 그건 다름 아니라 ‘정부 정책 결정의 투명성’이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부사무총장 정책특보
청와대 “세월호 침몰 당일 7시간 박 대통령 지시 기록 없다” 820 경향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된 직후 7시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내용으로 지시를 했는지 기록돼있지 않다고 청와대가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청와대는 세월호 침몰 당시 청와대의 보고 및 지시사항을 향후 열람이 엄격히 제한되는 ‘대통령 지정기록물’로 지정하겠다고 말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녹색당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한국기록전문가협회, 한국국가기록연구원은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녹색당이 세월호 침몰 직후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공개하지 않는 청와대를 대상으로 지난해 10월 10일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한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소송 과정에서 청와대가 이같이 밝혔다고 공개했다.
청와대가 소송 과정에서 법원에 제출한 ‘4·16 세월호 사고 당일 시간대별 대통령 조치사항’을 보면 박 대통령은 오전 10시 안보실 보고를 처음으로 이날 오후 5시 15분까지 총 18회에 걸쳐 세월호 침몰과 관련된 보고를 받았다. 이중 서면보고는 11회, 구두보고는 7회다. 또 박 대통령은 6차례에 걸쳐 구두로 세월호 침몰 관련해 지시를 내린 것으로 나와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박 대통령에게 구두로 보고한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다고 밝혔다. 또 박 대통령이 6차례 지시한 것도 구두로 했기 때문에 기록하지 않았다고 했다. 세월호 침몰 당시 박 대통령 등 청와대가 어떤 보고와 지시를 주고 받았는지를 기록한 자료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지난 5월 26일 및 6월 30일 법원에 제출한 준비서면을 통해 “국무회의와 같은 공식 일정에 있어서는 속기록을 작성하는 반면 대통령이 평소 사용하는 업무전화기를 통하여 피고 국가안보실장 등 참모진들에게 지시하거나 보고를 받는 경우나 직접 면전에서 구두로 지시·보고가 있는 경우에는 그 통화와 구두 내용은 별도로 녹음하거나 이를 녹취하지 않는 것이 업무의 관행이나 행태”라고 했다.
또 녹색당에 따르면 청와대는 서면보고한 11회의 내용에 대해서도 “내용이 공개되면 향후 업무 수행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비공개를 결정했다.
청와대는 이같은 대통령 조치사항을 법원에 제출하면서도 “2014년 4월 1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방문과 같은 공개일정의 경우에는 현장에 배석한 수행원들이 대통령이 말한 내용의 요지를 정리하는 관계로 좀 더 자세한 내용을 공개할 수 있는 반면, 이와는 달리 대통령이 대통령이 당시 국가안보실장 등에게 구두로 지시한 내용의 경우에는 국가안보실장 등이 요지로 메모하거나 기억하는 내용을 기초로 재구성한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가 제출한 대통령 조치사항은 지난해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4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경내에 있었으며 서면과 유선으로 21차례에 걸쳐 보고를 받고 필요한 지시를 내렸다”고 발표한 내용과도 횟수가 맞지 않는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의 경우 대통령의 대화 내용이 다 녹음됐고 나중에 공개되면서 진상을 밝힐 수 있었는데 한국은 청와대에서 어떻게 보고를 받고 어떻게 지시를 내리는지에 대해서 전혀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하 위원장은 “소송 과정에서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퇴임할 때 대통령 지정기록물로 지정할 예정이라고도 밝혔다”고 덧붙였다. 대통령 지정기록물은 다른 기록물과 달리 최소 15년간 비공개 보호기간을 둘 수 있고 이 기간에는 열람과 자료 제출 등이 엄격히 제한된다.
김유승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은 “임기가 절반 밖에 안 된 대통령이 지정기록물 지정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미국은 대통령이 백악관 안에서 하는 모든 구두발언도 기록으로 남는데 미국 체제를 그대로 가져와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만든 한국 정부가 기록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법 취지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명숙 징역 2년 확정, 의원직 상실 820 미디어오늘
“정치권력이 개입된 불공정한 판결”… 문재인 “검찰에 이어 법원까지 정치화”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5년 간 법적 공방을 벌이던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전 총리)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이로써 한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하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일 오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의원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2년에 추징금 8억 8천만 원을 선고한 2심을 확정했다. 대법관들의 의견은 8대 5로 엇갈렸다. 기소된 지 5년 만, 대법원으로 사건이 넘어온 지 2년 만이다.
한 의원은 지난 2007년 3월~8월,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앞두고 3차례에 걸쳐 한만호 한신건설 전 대표에게 불법 정치자금 9억 원을 받은 혐의로 2010년 7월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 한명숙 전 총리. kbs
1심 재판부는 한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한 의원이 한 전 대표로부터 9억 원을 받았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한씨의 검찰 진술 뿐이고, 한 전 대표가 법정 진술을 번복하는 등 진술에 일관성이 없어 신뢰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한 전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3차례에 걸쳐 9억 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했으나 법정에서는 돌연 ‘거짓자백이었다’고 진술을 뒤집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유죄를 인정하며 1심을 뒤집었다. 한 전 대표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한 전 대표가 한 의원에게 3억 원의 반환을 요구하며 협박하는 듯한 정황, 폭로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사업상 이득을 취하려 한 정황들을 제시하며 돈을 준 것이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에도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벌였다는 논란은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수사가 시작된 한 의원이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권의 유력한 후보군이었다는 점 때문에 사건 초기부터 ‘표적수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관련 기사 : <한명숙 ‘무죄’, 정치검찰 다시 쥐구멍?>
이번 사건은 지방선거를 앞둔 2010년 4월 9일, 법원이 ‘곽영욱 사건’ 관련해(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 미화 5만달러를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 한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날 언론에 흘러나왔다. 한명숙 무죄 가능성이 커지자 검찰이 또 다른 사건을 흘렸다는 비판이 일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대법원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검찰에 이어 법원까지 정치화됐다는 우려 금할 수 없다. 참담한 심정”이라며 “사법부만큼은 정의와 인권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가 돼주길 기대했지만 오늘 그 기대가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문 대표는 대법원 방청석에서 선고결과를 지켜봤다.
한명숙 의원은 선고 이후 기자들에게 배포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검찰은 별건을 조작해 2차 정치적 기소를 자행했다. 백주대낮 도로 한 복판에서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얼토당토않은 혐의를 덮어씌웠다”며 하지만 검찰에서 제게 돈을 줬다는 증인이 재판장에서 돈을 준 사실이 없다는 양심고백을 했다. 결과적으로 돈을 준 사람이 없는데 돈을 받은 사람만 있는 범죄의 구성요건도 갖추지 못한 날조된 사건이 되고 말았다”고 밝혔다.
한 의원은 이어 “오늘 정치탄압의 사슬에 묶인 죄인이 되었다. 법원의 판결을 따르지만 유감스럽게도 인정할 수는 없다”며 “공정해야할 법이 정치권력에 휘둘려버리고 말았다. 법리에 따른 판결이 아닌 정치권력이 개입된 불공정한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한명숙 의원에게 징역 2년 원심을 확정한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민중의소리
대법원의 증거능력 인정이 이중잣대라는 비판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1심 재판부가 한 전 대표의 진술 번복에 대해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으나 2심 재판부는 별다른 추가 증거없이 한 전 대표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을 뒤집었고, 대법원도 이를 증거로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지난 7월 16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국정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파기환송했는데, 그 이유는 2심 재판부가 증거로 인정한 이메일 첨부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때는 증거능력에 대해 엄격하게 판단한 반면 한명숙 의원 판결 때는 그렇지 않았다는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한명숙 의원은 “저에게 돈을 줬다는 증인을 재판정에 한 번도 부르지 않은 채 2심 재판부는 무죄를 뒤집고 검찰의 손을 들어 유죄를 선고했다. 1심에서 입증된 모든 무죄 취지는 2심에서 채택되지 않았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대법원은 2심 재판부의 판결만을 인용하여 유죄를 선고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논평을 내 이번 판결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김영우 새누리당 대변인은 현안관련 브리핑에서 “이번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사필귀정”이라며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번 재판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할 것이다. 법과 원칙에 따라 재판부가 판단한 것을 가지고 아무런 근거 없이 공안탄압 운운하는 것은 변명에 불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죄 받은 한명숙, 노무현이 떠오른다 8.20 미디어오늘
[기자수첩] 정치적 반대세력-보수언론 집요한 공세 속 ‘정치적’ 판결? 법리적 근거 납득 못해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정치적 반대세력과 보수 언론의 집요한 공세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닮았다는 평가가 있다.
한명숙 의원은 1974년 한국크리스천아카데미에서 간사로 시민 운동을 시작했다. 여러 여성단체장을 맡으면서 여성운동의 대모로 통했다.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사회운동을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케하는 대목이다. 한 의원은 지난 199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에 따라 정치에 입문했다. 한 의원이 지역구(경기 고양)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후 치러진 총선에서 홍사덕 한나라당 의원을 누르면서다. 그리고 한명숙 의원은 2006년 노무현 정부에서 첫 여성 총리가 됐다.
민주화 운동과 사회운동을 하고 정치에 입문한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최고통수권자가 됐고 그 아래에서 한 의원은 총리를 지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한명숙 의원은 대표적인 친노 정치인으로 통한다. 지난 2012년 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 전신) 대표로 총선을 진두지휘하면서 당내 비주류로부터 공천 학살의 주역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명박 정권으로 바뀐 뒤 두 사람이 겪은 시련도 비슷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론 최초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검찰은 기소 여부조차 결정하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의원은 지난 2010년 7월 불법정치자금 9억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고 1심에서 무죄, 2심에서 유죄를 받았다. 대법원은 지난 2년 동안 판결을 내리지 못하다가 전원합의체에서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판결이 지연됨에 따라 한 의원이 현직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세비 낭비를 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한 의원 입장에선 그동안 정치 활동의 발목잡는 족쇄로 작용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보통 법원은 불법정치자금 혐의와 관련해 정치권의 상황을 보며 ‘타이밍’을 재고 판결을 내린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데 한 의원의 유죄 판결도 정치적 유불리를 따진 시점에 이뤄진 것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은 보고 있다.
이번 유죄 확정판결이 수구세력의 공세에 따른 정치적 판결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회있을 때마다 '소환'해 공격의 대상으로 삼은 것처럼 한 의원 역시 반대세력과 보수언론의 ‘먹잇감’이 돼 왔기 때문이다.
한 의원의 남편인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가 박정희 정권에서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수감된 전력을 놓고 보수언론은 박 교수를 종북의 아이콘으로 만들면서 한 의원을 공격하는 소재로 삼았다.
지난 2013년 채널A는 '종북부부' 명단을 공개한다며 한 의원과 박 교수를 올려놓고 "한명숙은 과거 정상회담 당시 방북해 '김정일은 온화하고 자상하고 위트가 넘친다'고 칭찬했다"고 비난하면서 종북의 이미지를 덧씌웠다. 나아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비 아래 깔려있는 대형 태극기를 밟았다며 "야당 대표, 국무총리까지 지낸 사람이 어떻게 태극기를 밟을 수 있냐"라는 억지 주장으로 그를 공격했다.
한 의원의 불법정치자금 혐의는 국정원의 공격 대상이기도 했다.
국정원 심리전단은 2012년 2월 한 의원의 불법정치자금 혐의 내용과 관련한 비난성 글을 집중적으로 트위터에 올렸다. 2012년 2월 당시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를 받은 사건은 1심부터 3심까지 모두 무죄를 받았고,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9억원의 자금을 받은 혐의는 1심에서 무죄를 받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국정원은 한명숙 의원을 언급하며 "정치적 유죄 의혹을 해명하라"고 공세를 펼쳤다.
한 의원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유죄 선고에 대해 "법리에 따른 판결이 아닌 정치권력이 개입된 불공정한 판결"이라고 반발한 것도 그동안 집요한 정치공세를 당해왔고 법리적 근거 역시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만호 한신건영 전 대표는 검찰 진술에선 한 의원에게 9억원을 줬다고 했지만 1심 법정에서는 '거짓자백'이었다고 진술했다.
이재화 변호사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검찰진술과 법정진술이 엇갈릴 때 검찰 진술은 검찰 앞에서 일방적으로 한 진술이기 때문에 법원이 면전에서 심문을 하지 않으면 하급심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이었고 기존 판례"였다며 "종전 판례를 뒤집지 않고 배치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검찰 진술을 뒷받침하는 명백한 증거나 객관적 물증도 나오지 않았는데 이런 판결을 내린 것은 고도의 정치적 계산 하에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생계형 안티? 조선일보가 박근령을 보는 불편한 심경 818 미디어오늘
박 대통령에게 박근령 ‘선긋기’ 주문 “친동생이라는 박탈 불가능한 무기… 정치적 금치산자 수준 발언”
박근혜 대통령의 여동생 박근령씨가 최근 일본 우익성향 매체와 인터뷰에서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한국인이 반발하는 것을 두고 “내정간섭”이라 말했다. 일왕은 “천황폐하”로 불렀다. 용납하기 어려운 국가적 망언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조용하다. 대다수 언론은 대통령 눈치만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조선일보는 “청와대는 박근령 발언에 입장을 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박근령씨는 오랜 기간 ‘불편한’ 관계를 가져왔다. 박지만씨를 포함한 삼남매는 2000년대 육영재단 분규사태 당시 조폭과 나병환자들을 동원하며 갈등을 겪었다. 박근령씨는 1990년 노태우 대통령에게 쓴 탄원서에서 “저희 언니와 저희들을 최씨(최태민 목사)의 손아귀에서 건져 주세요”라고 간청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박근령씨의 결혼식에도 오지 않았다.
박근령씨의 망언은 그간 대통령 친인척 문제와는 성격이 다르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이전 대통령들의 친인척 관리대상이 주로 비리였던 점에 비춰볼 때 박근령씨의 경우는 과거와 다른 형태의 친인척 문제”라고 지적했다. 비리는 수사를 하면 되지만 망언은 수사대상도 아니고, 반복될 가능성도 높다. 그래 근령씨의 망언에 대한 보수언론의 일반적 기조는 ‘선긋기’였다.
▲ TV조선 '대찬인생'에 출연했던 박근령씨 모습.
예컨대 장재선 문화일보 사회부장은 지난3일 칼럼에서 “박근령씨는 위안부 문제와 신사참배에 대해 일본 입장을 이해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일 우익의 군사확장주의와 그 위험성을 간과한 접근”이라고 지적한 뒤 “개인의 발언을 일부 세력이 이념대결로 몰고 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속 보이는 작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근령씨는 개인이 아니다. 대통령의 여동생이다. 선긋기는 오직 당사자인 대통령만 할 수 있다. 보수진영의 답답함이 여기 있다.
친박 원로인 김용갑 새누리당 상임고문은 8일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동생이 (박 대통령이 성과를 내야 할 시점에) 재를 뿌리고 장애물로 등장했다”, “더 이상 방치하면 근령씨가 2차, 3차의 사고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지난 12일 80대 최아무개씨가 분신했다. 최씨의 성명에는 박근령씨의 잇단 친일 발언에 울분을 느낀다는 내용이 담겼다.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한겨레는 17일자에서 독립운동가 장준하씨의 장남 장호권씨와 인터뷰를 통해 “박근령씨는 혈서로 일제에 충성을 맹세한 만주 군관학교 출신의 아버지 박정희에게 세뇌되어 뼛속까지 친일임이 드러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침묵하지 말고 가족의 친일 행각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가족’은 박 대통령의 가장 강한 고리이자 약한 고리다.
▲ 조선일보 14일자 칼럼.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정부가 근령씨를 공개적으로 비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박은주 조선일보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은 14일자 칼럼에서 “야당도, 심지어 일본 언론도 근혜·근령 자매간에 ‘케미’가 없다는 걸 알고 있다”고 전한 뒤 “그럼에도 ‘박정희 대통령 차녀’ ‘박근혜 대통령 친동생’이라는 박탈 불가능한 타이틀을 무기로 박근령‧신동욱 두 사람은 대중의 인내심을 지속적으로 시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은주 부본부장은 “청와대 대변인이 박근령씨 발언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두 자매 사이에 어떠한 연관관계도 없음을 밝혔으면 좋겠다. 총리나 관련 장관들도 근령씨 발언에 대해 비판할 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용갑 상임고문이 “국민이 박 대통령을 향해 자기 동생도 관리하지 못하면서 남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느냐고 비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우려한 대목과 연결된다. 이 같은 일련의 지적은 대통령이 위기에서 나오려면 여동생을 비판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청와대의 상황이 간단치 않다. 윤희웅 여론분석센터장은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번 사안은 자칫 대통령이 희화화되는 소재로 활용되며 국정 신뢰도 약화까지 가는 실질적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 뒤 “근령씨 발언이 대통령과 관계없다는 걸 청와대가 명확히 밝히면 이 사안에 대한 부담은 줄겠지만 여동생과 선긋기를 하는 순간 여동생 발언에 논란이 있었다는 걸 공식화하고 친인척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셈이어서 부담이 있을 것”이라 지적했다.
▲ 박근령 망언을 다룬 채널A 뉴스 화면 갈무리.
대통령 눈치만 보는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언론 입장에서도 박근령 비판을 통해 대통령과의 ‘선긋기’를 대신 해줘야 하는 건지, 아님 보도 자체를 하지 않으며 묻히길 기다려야 하는 건지 판단이 애매한 상황이다. 흥미로운 점은 지상파3사가 해당 이슈에 침묵하고, 종편채널이 근령씨 비판에 적극적인 오늘의 장면이다.
박근령·신동욱 부부는 망언 이후 종편채널을 비롯한 각종 언론에 오르내리며 ‘주가’를 올리고 있다. 박은주 조선일보 부본부장은 “박·신씨를 두고 오전 방송에서 출연자가 ‘입에 재갈을 물릴 수도 없고…정신이상자들’이라고 격앙하면 신씨가 오후에 ‘종편이 우리를 이용해 시청률을 올린다’고 반박한다”며 “방송사는 시청률 올리고, 신씨는 출연료를 버는 일종의 협업으로 보일 정도”라고 꼬집었다.
박은주 부본부장은 “양측의 영업행위에 주목하는 것은 정치적 금치산자 수준의 발언이 부수적 피해를 낳기 때문”이라고 꼬집으며 “(청와대의) 대책 없는 외면이 ‘생계형 안티’를 키우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근령씨가 생계형 안티인지는 모르겠으나 여동생의 ‘친일논란’이 경제성장을 외치는 대통령 입장에선 불필요하고 뼈아픈 상처가 되리란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일상으로 파고든 차별… 너도나도 벌레가 되었다 819 한국
[까톡 2030] '충' 낙인 찍는 사회
무뇌충·의전충·일베충… 민폐 끼치는 엄마는 '맘충'
기득권 지키기 위한 포장술, 사회적 약자에 비난 화살
"갈수록 자극적인 단어 찾아… 관용 상실한 사회, 규제 필요"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 한 마리의 커다란 해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첫 문장이 대한민국에서 재연됐다. 의전충 로퀴벌레 지균충 설명충 토익충까지, 바야흐로 벌레의 시대다. 사회적 약자를 비롯해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벌레(蟲)의 낙인을 찍어 거리낌없이 조롱하고 비하하는 차별과 혐오의 언어가 사회에 횡행하고 있다.
● 의사ㆍ변호사 등 전문가 집단에서도 번져
‘벌레 충(蟲)’이 처음 쓰이기 시작한 시점은 2000년 대 초반이다. 뇌가 없는 벌레라는 의미로 특정 연예인을 비하하여 쓴 데서 비롯된 ‘무뇌충’이란 단어는 2002년 국립국어원의 신어 자료집에 수록될 정도로 널리 사용됐다. 점차 사용빈도가 줄어 사라져가던 이 신어는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의 도입으로 부활했다. 의과대학의 학생들이나 의사들이 의전원 학생들을 ‘의전충’(의학전문대학원+벌레 충)이라 비하한 것이다.
2009년에 첫 입학생을 받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도 비슷한 움직임이 일었다. 로스쿨 학생들은 ‘로퀴벌레’(로스쿨+바퀴벌레)나 ‘법퀴’(법학전문대학원+바퀴벌레)라고 불린다. 이 같은 차별의 기저에는 출신성분에 따른 구별짓기가 있다. ‘의대, 법대 졸업장 없이도 의사, 변호사가 될 수 있다’는 의도로 ‘좋은 직업’의 진입장벽 철폐를 위해 도입됐던 전문대학원제도가 오히려 차별을 부추긴 셈이다.
전문대학원을 졸업한 후에도 차별은 계속된다. 전문대학원 출신들은 입사나 입사 후 승진 등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호소한다. 서울소재의 로스쿨을 졸업하고 손꼽히는 대형 로펌에 취업했던 권모(33)는 “출근 첫날부터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사법고시 출신 변호사들과 권씨를 비롯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은 연봉부터 차이가 났고 함께 식사를 하는 일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이혼사건이나 가사사건처럼 사건 배당도 수임료가 적거나 덜 중요한 사건들을 맡다 보니 실력을 키우기도 어려웠고 실적도 나지 않았다”는 권씨는 눈칫밥에 결국 몇 해를 버티지 못하고 로펌을 그만뒀다. 의전원 졸업반인 김모(32)씨도 “대형 병원들 중에 의전원 출신을 꺼리거나 과를 배정할 때 인기 과에서 제외시키기로 유명한 곳들이 있다”며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봤자 의사 세계에서의 서열은 ‘벌레’수준이라 생각에 씁쓸해진다”고 자조했다.
● 일상 속으로 들어온 벌레들
차별의 의미로 쓰였던 벌레의 용법은 점차 다양한 형태로 일상 속으로 파고들었다. 논란이 되는 보수 사이트 일간베스트 이용자들에 대한 혐오의 표시로 벌레를 의미하는 충(蟲)을 붙여 ‘일베충’으로 부른데 이어, 다소 과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도 벌레라며 거부감 없이 부르는 것이 유행어로 자리잡았다. 일부 커뮤니티 사이에서 비난과 조롱의 의미였던 단어들이 일상 생활의 영역으로 내려오면서 혐오가 옅어진 은어로 문제의식 없이 널리 통용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맘충’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해 논란이 됐다. 공공장소에서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엄마들을 영어단어인 맘(Mom)에 벌레 충 자를 붙여 폄하하는 것으로, 어머니를 벌레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큰 반발을 불렀다.
주부인 김성연(33)씨는 “물론 자기 자식만 알고 남들을 신경 쓰지 않는 엄마들에게 문제가 많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이런 표현들이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엄마를 비롯해 배려가 필요한 사람들을 약자가 아닌 진상이라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고 전했다.
맘충 뿐 아니라 설명충(지나치게 길게 설명하는 사람) 진지충(모든 사안에 대해 진지한 사람) 페북충(모든 일상을 일일이 SNS에 게시물로 올리는 사람) 등 큰 잘못이 아니더라도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모두 벌레취급을 당한다. 타인뿐 아니라 스스로를 토익충, 출근충이라 부르는 자조적인 용법으로 쓰이기도 한다. 토익공부나 출근처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타의에 의해 해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를 무력한 벌레에 빗댄 표현이다.
● 자조적인 공격성 드러내는 청년들
청년들은 왜 하필 벌레가 됐을까. 전문가들은 ‘불안감의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실험용 쥐들을 상자에 몰아넣고 음식을 주지 않는 스트레스 상황을 만들면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며 “지금 한국이 그런 상황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헬조선’(Hellㆍ지옥+조선), 즉 한국사회가 지옥처럼 살기 어렵다는 신조어가 공감을 얻을 정도로 위기에 몰린 청년들이 자조적인 공격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교양 있는 집단으로 자부하는 의사와 변호사 집단 내에서의 차별은 밥그릇 싸움이 본질이라는 것이다. 윤 교수는 “결국 기저에는 자신들의 독점적인 지위가 약화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있다”며 “로스쿨이나 의전원의 계층 차별적 구조에 대한 지적은 기득권 지키기의 포장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전문가 집단과 비슷한 종류의 차별이 나타난 곳이 서울대학교라는 점도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서울대 학생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의 일부 이용자들은 농어촌 전형이 포함되는 기회균형선발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을 ‘기균충’이라 부른다. 지역균형선발을 비하한 ‘지균충’이란 말도 나왔다.
문제는 청년들의 공격이 사회적 약자, 즉 자신보다 약한 대상에게만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벌레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표현도 있듯이, ‘충’이라는 단어에는 이미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 대한 비하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극심한 취업난과 높은 자살률 등 개인이 차지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이 줄어든 상황에서 사회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주변인들, 특히 소수자에 대한 배려나 인권의식의 향상으로 기존보다 나은 위치를 차지하게 된 이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게 된 것이다.
정덕현 평론가는 “이런 단어들은 짧으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벌레뿐 아니라 더욱 강한 표현이 나올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과거 쓸모 없는 사람을 의미하는‘폐인’이 지금의 ‘벌레 충’과 비슷한 용법으로 쓰였듯이 단어가 주는 감각이 무뎌지면 이보다 더 자극적인 단어를 찾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미 벌레라는 단어 역시 무분별하게 일상 속에서 쓰이고 있는 만큼 이후 이보다 더 차별적인 혐오 표현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윤인진 교수는“널리, 또 가볍게 쓰이는 표현이라고 해서 그 안에 담긴 혐오와 차별이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다”며 “규제나 제도개선을 통해서라도 관용을 상실한 한국사회에 제동을 걸어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약자가 약자를 혐오할 때 14.9.4 한국
약자들의 따스한 연대를 누구나가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없는 사람들끼리 돕고 살아야죠” 같은 대사를 실생활에서도, 허구에서도 수시로 들었다. “우리 같은 서민들”은 많은 문장의 주어로 곳곳에서 발화됐고,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 같은 위대한 인문정신도 저잣거리에서 빈번히 설파됐다. 이제는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피식 웃음이 나는, 풍속극에나 등장할 법한 사어(死語)들이지만, 말로라도 그러던 시절이 어쨌든 있기는 했다.
이제는 누구도 스스로를 약자로 규정하거나 선언하지 않는다. 도리어 나의 ‘약자-됨’은 결단코 은폐되어야 할 존재의 치부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어. 갑과 을. 나는 내 자식이 갑이 되길 바래.” 정성주 작가가 이태 전 쓴 드라마 ‘아내의 자격’에 나오는 시대를 꿰뚫는 명대사다. 그러므로, ‘갑-되기’가 시대정신인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사건들의 대부분은 약자가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약자를 혐오하는 약자들에 의해 자행된다. 윤일병을 죽음에 이르게 한 28사단의 장병들, 단식 중인 세월호 유가족 보라며 닭다리를 뜯고 있는 노인들, 한때의 피해자가 가장 극렬한 가해자로 돌변하는 왕따와 학교 폭력, 지역차별과 여성비하를 토사물처럼 쏟아놓는 극우 청년단체….. ‘나는 너보다 나이가 많다’, ‘나는 너처럼 비명에 자식을 잃지 않았다’, ‘나는 이제 친구가 있다’, ‘나는 그 지역 출신이 아니다’, ‘나는 여성이 아니다’가 이들에겐 일말의 권력, 알량한 권세가 된다. 모두가 갑이 되길 원하고, 기적적으로 모두가 갑이 되는 곳. 아이부터 어른까지, 세상의 모든 사람이 갑이어서 슬픈 땅.
강한 것은 아름답고, 약한 것은 추하다는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우리는 너무도 성실하게 내면화했다. 약한 것은 딱하고 가여운 것이 아니라 못나고 혐오스러운 것이어서, 이제 약자조차도 약자의 마인드 따위는 필사적으로 가지려 하지 않는다. 영세 자영업자지만 정치의식은 대기업 CEO인 ‘사장님’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며 노동을 착취하고, 평생을 서울내기로 살아온 중년 부인도 지배계급을 선망하며 거침없는 지역 차별 발언을 쏟아낸다. 권력이라곤 가부장 권력밖에 가져본 적 없는 가난한 노인들은 어버이의 이름으로 정신적 매질을 멈추지 않고, 성 권력뿐인 절망한 청년들은 칼날보다 잔인한 언어로 여성을 능멸한다. 내가 약자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제물을 찾아 물고 물리는, 갑의 표식을 이마에 붙인 을들의 아귀다툼이 벌어지는 지옥이 바로 여기다. 이것은 소수의 흉측한 사람들이 벌이는 이상행태가 아니라 강한 것만을 욕망하게 만든 이 사회의 아비투스가 초래한 총체적 정신병리다. ‘얕보이면 죽는다’는 공포, ‘당하는 게 죄인’이라는 좌절이 우리 내면에서 작동하고 있는 한, 이 그악스런 비극은 종식될 수 없다.
미시권력의 끊임없는 비교우위를 통해 약자가 약자를 혐오하는 동안, 강자들의 거악은 쉬이 잊혀졌다. 강자들의 태평성대를 만들어준 건 그러니까 바로 우리 약자들이다. 아마 지그시 웃고들 있었겠지. 강한 것은 아름답고, 약한 것은 추한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것이 아름다운 것이고, 추한 것이 추한 것이다. 그게 누구든, 약자를 돕는 자가 아름답고, 약자를 혐오하는 자가 추한 것이다. 이미 늦어버렸다는 생각이 사실은 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이들에게라도 가르치는 수밖에.
위기의 남성들 "여성은 배려 아닌 척결 대상" 뒤틀린 적개심 15.5.28 한국
2000년대 들어 여성부 출범
군가산제 위헌 등 男 피해의식
개똥녀 ㆍ신상녀ㆍ루저녀 모멸 시리즈
여성 고시 약진ㆍ대학진학률 추월
불황 속 일자리 경쟁 압박감까지
실제론 임금격차ㆍ채용비율서
한국 여성 여전히 OECD 최하위권
우리사회에 여성 혐오 현상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더 이상 여성들을 배려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남성들도 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올해는 대한민국 사회에 된장녀가 등장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커피믹스 하나면 족할 것을, 된장인지 커피인지도 모르면서 꼴에!’로 번역할 수 있는 이 신조어는 한 끼 밥값에 육박하는 스타벅스 카페라테를 손에 쥐고 해외 럭셔리 브랜드로 치장한 젊은 여성들의 사치 풍조를 비판하는 다소 유머러스한 용어로 수용되며, 이듬해 야후 코리아가 조사한 인터넷 신조어 및 유행어 1위에 오를 정도로 광범위한 파급력을 보여줬다.
● 된장녀에서 개보년까지… 여성혐오 약사
이후 10년간 여성혐오의 발전사는 현란하다. 개똥녀(2005), 강사녀(2006), 군삼녀(2007), 신상녀(2008), 루저녀(2009), 패륜녀, 지하철 막말녀(2010) 등 끝없는 ‘○○녀 시리즈’를 김치녀가 집대성한 것과 동시에 여성 성기 명칭을 핵심 어근으로 삼는 신조어들-보슬아치, 개보년 등-이 온라인, 특히 포털 사이트의 언론 기사 댓글에까지 창궐하기 시작했다. ‘댓글은 본래 저질이고, 저질 댓글을 공론장의 의견인 양 수용하는 것은 저널리즘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라며 주류언론이 외면하고 있는 사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언사로 가시화한 여성혐오는 명백하고도 심각한 사회 문제로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여성혐오는 더 이상 일부에 국한된 행태가 아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2014년 12월 발표한 ‘온라인 상의 여성혐오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보슬아치’ 등 여성혐오 표현은 정치적으로 극우인 일베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쉽게 접하는 정상적인 온라인 공간-네이버 댓글, 엠엘비파트, 오늘의유머, 네이트 판-은 물론 진보적인 인터넷 페이지에서도 광범위하게 관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미 이 표현이 특정 여성 집단을 일컫는 편견을 담은 단어로 일반화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인터넷의 발달과 궤를 같이 해온 여성혐오의 역사에서 2001년은 특히 중요한 해다. 여성부 출범과 군가산점제 위헌 판결이 각각 이 해 1월과 10월에 있었다. 여성혐오의 원조 아이콘 ‘꼴페미년’을 탄생시킨 이 국가적 사건들로 인해 안티-페미니즘 사이트, 안티-이대 사이트, 안티-여성부 사이트 등이 대거 구축되며 페미니즘이 공공연한 남성의 적으로 자리잡았다.
남성들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안티-페미니즘 모임들을 결집시켜 남성연대를 출범시킨 것이 2008년. 이듬해에는 드디어 일간베스트 사이트가 설립되며 여성혐오 현상이 사회 담론의 장에 전면적으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프로그램 개발자인 이준행씨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일베 게시물을 분석한 결과 욕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이 여자(4,321건)였다. ‘노무현’(2,399건)보다 약 두 배나 높은 주목도다. 여자가 언급된 글들은 ‘보슬아치’ 같은 멸시와 적대의 단어로 점철돼 있다.
● 한 줌 알파걸이 불러온 착시
여성이 배려해야 할 사회적 약자에서 척결해야 할 남성의 적으로 전복된 시기는 알파걸 담론으로 대표되는 여성의 사회적 약진이 두드러졌던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국가고시 합격자 비율을 시작으로 ‘여풍’이란 타이틀을 단 언론 보도가 쏟아지기 시작했던 게 외무고시 여성합격자가 40%대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았던 2001년이다. 이 비율은 최근에는 현저히 낮아졌지만, 2007년 67.7%, 2008년 65.7%까지 치솟으며 남성들을 위협했다. 서울초등교원임용시험에선 2005년 이후 여성합격자가 90%를 넘었고,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여성채용할당제가 같은 해 양성평등채용제로 전환되면서 여성 합격자 비율이 압도적이었던 공무원시험의 교육행정직과 일반행정직에서 남성이 혜택을 받는 상황이 펼쳐지기까지 했다. 2009년에는 대학진학률에서 여성이 남성을 추월했다. 여기에 2008년 불어 닥친 전 세계적 금융위기로 경제불황이 만성화하면서 일자리를 놓고 극한경쟁을 해야 하는 젊은 남성들에게 여성혐오는 강력한 소구력을 행사하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위협이 될 정도로 그 지위가 향상되고, 실제 삶의 내용에 큰 변화를 맞은 것일까? 세계경제포럼의 성 격차 지수(GGI)에 따르면, 한국은 2014년 142개국 중 117위로 태국(61), 방글라데시(68), 인도(114), 아랍에미레이트(115), 카타르(116)보다 성 격차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 성별 임금격차는 독보적이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4년째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14년 전은 OECD가 남녀 임금격차 통계를 처음 산출한 해로, 2013년 기준으로 한국 남성이 100만원을 벌 때, 여성은 63만밖에 못 번다. 여성은 1997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친 경제위기 당시 노동시장의 정리해고 충격을 집중적으로 받은 사회 위기의 완충지대로 기능했고, 최근의 경제위기에서도 여성 실직은 그 비율이 매우 높다. 국내 30대 공기업 신입사원 중 여성은 22.7%(2013년)이며, 30대 대기업의 여성 신규채용은 31.8%밖에 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출산과 육아 부담으로 경력을 단절하는 여성들이 많아 기업들의 여성 고위직 비율은 11%로 국제노동기구(ILO) 회원국 중 최하위다.
● 지배적 놀이문화가 된 여성혐오
누구도 여성이 온전한 시민권을 누리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극렬한 여성혐오가 창궐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진중권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는 “경제가 안 돌아가다보니 남성들이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고, 이로 인해 일부 남성들이 남녀평등은 이미 이뤄졌다고 생각하는데 군 가산점제 폐지 등으로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해 생긴 현상”이라고 봤다. ‘혐오의 시대’를 기획특집으로 마련한 ‘여/성이론’ 올 여름호에서 손희정 편집위원은 모든 노동력을 잉여화하는 신자유주의는 “지금까지 스스로 경제적 주체라고 생각해왔던 남성들에게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탈각의 순간을 선사”했다고 분석했다. “가진 것은 점점 더 없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통적 성역할을 강요 받는 시대에 남성들이 노출돼 있는 압박감의 무게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권일도 지난해 쓴 ‘…넷우익이라는 ‘보편증상’’이라는 글에서 “경제위기와 여권신장이 불러일으킨 위기의식의 해소 방안으로 젊은 남성들이 여성혐오를 채택했다”고 진단한다.
진보평론 2013년 가을호에 실린 윤보라(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박사과정)의 ‘일베와 여성혐오’는 “일베는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불안과 공포의 임계치가 한계에 달했을 때 여성을 전면적으로 타자화하는 방식으로 이를 해소해 온 한국사회의 한 단면”이라며 “어휘의 과격함을 걷어내고 보면, 일베 내 여성혐오를 작동시키는 구조가 실은 우리 사회에 내재된 모종의 의미구조를 정확히 반영한다”고 지적한다. “여성은 사회적 불안이 만들어내는 분노를 쏟아부을 수 있는 신자유주의적 안전망”인 것이다.
여성혐오는 이제 하나의 문화다. 같은 학교 여학생을 대상으로 “가슴은 큰데 얼굴은 못생겼으니 비닐을 씌우고 하자” 등의 범죄적 발언을 한 국민대 단톡방 사건이나 “생리휴가를 쓰려면 당일 착용 생리대를 제출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던 일베 사용자가 KBS 기자로 채용돼 충격을 줬던 최근 사건들은 여성혐오가 일부 소수 남성의 문제라는 시각을 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오히려 10여 년 간 만연해있던 여성혐오의 문화, 특히 농담과 놀이의 컨텍스트 속에서 수행되던 이 혐오의 문화를 수시로 접하며 자라난 젊은 남성들이 사회 주류로 진입하며 불거져 나온 문제라고 봐야 한다.
여성 차별과 혐오, 무지의 산물이다 15.7.3 한국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성폭력은 학력 · 소득 · 인격과 무관, 남녀가 학습한 사회적 행동서 비롯
性 구분은 행위 · 담론의 산물, 혐오 대상으로 여성을 타자화
게티이미지뱅크
지난달 갑작스레 알려진 진보논객 한윤형씨의 데이트 폭력 사건으로 온라인 세상이 들썩거렸다. 사건을 폭로한 한씨의 전 여자친구 A씨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한씨와 교제 중 수없이 폭행 및 그에 준하는 행동(술에 취해 발로 차고 물건을 집어 던지고 모욕적 언사를 퍼붓는)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로빈 윌쇼 지음·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옮김 일다 발행·331쪽·1만4,500원
이 사건을 접한 이들에게 최초의 충격은 ‘진보’ 논객의 여성 폭행이었다. 한씨는 기고글을 통해 페미니즘과 운동권의 도덕성에 대해 설파했었다. A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한씨는 낮에는 여성의 권리를 말하고 밤에는 여자친구를 걷어찬 이중인격자가 된다. 온라인 게시판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금세 “쓰레기다” “끝났다” 류의, 한씨를 겨냥한 단호한 판정으로 도배됐다. 충격이 한풀 꺾이자 화살은 A씨에게로 돌아갔다. “근데 여자애도 제정신이 아니네. 처음 맞았을 때 끝냈어야지.” 부지런한 몇몇이 과거 A씨가 했던 강도 높은 남성 혐오 발언을 찾아내 게시하면서, 사건은 ‘이중인격 쩌는 진보 논객과 맞을 짓 하는 꼴페미’가 알아서 해결해야 할 ‘사적’인 일로 희석돼버렸다.
그러나 최근 번역된 책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에 따르면 이는 개인의 일이 아닌 명백한 사회 문제다. 데이트 강간, 즉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을 다룬 이 책은 1982년 미국 전역의 32개 대학에 재학 중인 남녀 대학생 6,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물이다. 출간된 지 3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유효한 이유는, 폭력이 발생하는 맥락과 피해자·가해자의 심리가 지금 한국 사회의 그것과 완전하게 겹치기 때문이다.
책은 남자의 공격적인 성욕을 논하면서, 그것을 사회적 구성물이 아닌 생물학적 결과(본능)로 보는 데서부터 모든 것이 틀어진다고 말한다. 폭력과 강간은 가해자의 학력이나 인종, 종교, 소득 수준, 심지어 그의 인격에 대한 주변의 평판과도 무관하게 발생하며, 많은 경우 남녀가 학습해온 사회적 행동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어긋난 남성성 강화 훈련 중 언어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성관계를 의미할 때 사용하는 ‘준다’ ‘가진다’ 등의 단어가 소년으로 하여금 여성과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게 만드는지에 대해 우리 사회는 일체의 경계심이 없다. 남성의 성기를 의인화하는 일련의 단어들은, 성기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사고들에 있어 남성에게 면죄부를 부여한다.
여성 역시 학습의 피해자다. 여성들은 강간과 폭력의 위험 앞에서 ‘드센 년’이 되지 않기 위해 이빨로 상대방을 물어 뜯거나 거친 욕설을 퍼붓는 행위를 자제한다. A씨의 경우는 반대였다. 그는 폭로를 망설였던 이유에 대해 “남자한테 맞은 년이 되는 게 무서웠다”고 말했다. 페미니스트 중에서도 급진파를 자처하던 그가 실은 남자한테 발로 차이기나 하는 ‘한심한 여자’라는 걸 들킬까 봐 두려웠다는 얘기다.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 윤보라 외 6인 지음 현실문화 발행·256쪽·1만4,000원
사회가 우리에게 투사하고 때론 강요하는 이미지_남자, 여자, 페미니스트_들은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내면의 목소리로 바뀌고, 이는 폭력을 부추기거나 피해 사실에 입을 다물게 만드는 힘으로 작동한다. 동시에 출간된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는 여성에 대한 폭력 중에서도 온라인을 중심으로 퍼지는 여성 혐오 풍조를 집중 조명한 최신 보고서다. 개똥녀부터 김치녀까지 한국 사회를 면면히 흐르는 여성 혐오의 역사를 통해 혐오라는 감정이 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 사회에 이토록 강력한 그늘을 드리게 됐는지를 필자 여섯 명의 글을 통해 점검한다.
윤보라씨는 여성 혐오글에서 강하게 풍기는 조작의 냄새에 주목했다. 한때 여러 커뮤니티에 등장했던, ‘여직원들에게 도넛을 선물했더니 먹지도 않고 전부 반으로 잘라놨다’며 올린 사진은 출처가 외국의 유머 사이트임이 밝혀졌다. 악의적인 각색자들은 거짓말이 들통나면 커뮤니티를 탈퇴해 버리고 남는 것은 ‘하여간 여자들이란…’류의 쯧쯧 소리뿐이다. 조작된 증거들을 원활하게 유통시키는 힘은 ‘유머’다. 여성 혐오글들은 통상 원색적인 분노가 아닌 유머러스한 언변에 실려 재미난 에피소드의 형태로 유통되기 때문에 여기에 핏대를 세웠다간 유머를 모르는 뻣뻣한 인간으로 낙인 찍힌다는 것이다.
정희진씨는 우리가 통상 여성, 남성이라고 인식하는 인간이 실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간다. 여성 혹은 남성이란 증거는 “성기 모양이나 출산력 여부가 아니라 젠더 이데올로기에 의한 행위와 담론의 산물”이라는 정씨의 주장에 따르면, 성별이 생기고 혐오가 만들어진 게 아니라 혐오를 위해 성별 구분이 ‘필요’해진 셈이다. 여성이 세상 모든 타자의 은유라면, 우리 사회의 모든 남녀는 스스로 자문할 의무가 있다. 자신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당연히 다수라고 생각하거나 소수와 다수를 구분하는 창조주로 생각하는 것일까. 내가 누구인가의 문제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타고난 자연스러운 권리인가?”
차별과 혐오는 이 무지를 동력 삼아 작동한다. 무지는 “몰라도 된다”는 사회적 인식으로 더 크게 몸집을 불린다. 지금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남성, 여성이 아니라 “조직된 무지, 합의된 비윤리, 페르소나를 던져 버린 뻔뻔한 얼굴들”이다.
두 눈 부릅뜨고 몰려오는 두 개의 ‘태풍’820 한겨레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형상화한 기상지도. 왼쪽이 15호 태풍 고니, 오른쪽이 16호 태풍 앗사니이다. earth.nullschool.net
바람의 방향을 형상화한 위 사진을 보면 마치 태풍이 두 눈을 부릅뜨고 땅 위의 인간들을 겁박하는 듯합니다. 이 사진은 일본 도쿄에서 활동하는 미술가 겸 엔지니어 카메론 베카리오(Cameron Beccario)가 ‘어스 프로젝트’(Earth project)란 이름으로 개발한 것입니다.(어스 프로젝트 사이트)를 방문하시면 세계 각 지역에서 현재 바람이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강하게 불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습니다.
여성 첫 강간죄 성립될까…국민참여재판 결과 주목 821 jtbc
지난해 이혼을 하고 홀로 지내던 50대 전 씨는 자전거 동호회에서 유부남 김 씨를 만났습니다. 그후 두 사람은 내연관계를 유지해왔는데요, 그런데 유부남 김 씨가 이별을 통보했습니다.
여기에 전 씨는 김 씨를 집으로 불렀고, 홍삼음료에 수면제를 타서 김 씨에게 먹인 후 그의 양손과 발을 노끈으로 묶었습니다. 잠시 후에 깨어난 김 씨가 전 씨를 제압하고 도망치려고 했고, 전 씨는 김 씨의 머리를 망치로 내려쳐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혔습니다. 피해자 김 씨는 전 씨를 강간미수 및 상해치사 혐의로 고소했고, 전 씨는 고의로 성관계를 하려고 한 적이 없다며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여성에게 강간 혐의가 적용된 첫 사례인데요,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팔고, 자르고 … 구조조정 칼바람 818 내일
조선 '빅3' 고강도 자구안 추진 … 삼성중, 인력 감축 수준 관심
세계 조선시장을 주도하던 국내 조선 3사에 구조조정 칼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해양플랜트에서만 8조원 이상의 손실을 낸 조선 3사가 생존하기 위해 초강수의 자구안을 추진 중이다. 현대중공업에 이어 대우조선해양이 자산매각, 인력조정 등에 착수했다. 13일 임원워크숍을 개최한 삼성중공업도 강도 높은 구조조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이 경영정상화를 위해 선택한 방안은 부실사업과 비주력 사업 자산 매각, 인력감축 등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이미 3조2000억원대의 해양플랜트 부실을 털어낸 직후부터 올해까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올 초부터 계열사 정리에 나섰다. 현대자원개발과 현대종합상사를 합병했다. 금융계열사(현대기업금융ㆍ현대기술투자ㆍ현대선물) 3곳을 통폐합하기로 했다. 올 3월에는 조선 계열사인 현대미포조선ㆍ현대삼호중공업의 재정·회계·IT·홍보 등 유사 업무를 통합했다. 인력도 줄였다. 임원 30% 감축을 시작으로 과장급 이상 사무직 1500명과 15년 이상 근속 여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최근에는 40대 임원을 대거 발탁하는 등 임원진을 대폭 물갈이했다. 권오갑 사장은 지난 6월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 중단을 선언한 바 있다.
2분기에 3조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대우조선해양은 삼성중공업보다 더 강력한 쇄신안을 꺼내 들었다. 대우조선은 본사 사옥을 포함한 조선업과 무관한 자산 및 자회사를 모두 정리하기로 했다. 풍력사업의 '드윈드'와 캐나다 풍력발전설비사 '트렌튼', 골프장 및 연수원을 운영하는 자회사 FLC, 건설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건설 등이 매각 대상이다. 임원 규모를 30% 가량 줄이고, 조직규모도 재배치 등을 통해 30% 축소시키기로 했다. 이와관련 현직 임원과 고문 등 13명이 17명 자진사퇴했다.부장 이상 1300명을 대상으로 9월 말까지 희망퇴직 또는 권고사직 등 감원도 진행한다. 특히 비리 연루 임직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등 비리 방지를 위해 일벌백계 원칙도 세웠다.
1조5000억원 규모의 적자를 기록한 삼성중공업도 이런 흐름을 비껴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13일 거제조선소에서 열린 경영정상화 방안 마련을 위한 임원워크숍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영업·설계·생산부문의 개선방안 등 많은 의견이 오고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중공업이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인력감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임원수를 줄이고 비효율 자산의 매각에도 나설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삼성중공업의 실제 임원수는 비상무이사나 고문 등을 제외하면 80여명이다. 조선이나 해양플랜트 생산과 직결되지 않아 매각이 거론되는 계열사는 아이마켓코리아와 두산엔진 등이 있다.
2분기 추가 부실의 주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나이지리아의 '에지나 프로젝트'나 호주 '이치스 프로젝트' 등도 정리해야 하는 입장이다.
가장 민감한 인력감축도 어쩔 수 없이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수주가 늘지 않는 한 인력을 줄일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인력감축은 노동조합의 강력한 반발로 경영을 더욱 어렵게 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중공업과 조선업계 관계자는 "인력감축은 장기적으로 조선업체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안이지만 현재 위기 상황을 벗어나려면 어쩔 수 없이 인력을 줄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망국적 뉴타운 사업 13년 7.29 내일
투기조장, 주거불안, 부채증가, 사회갈등…. 뉴타운사업이 13년동안 우리 사회에 남긴 상처다. 장밋빛 꿈으로 시작된 이 사업이 어쩌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천덕꾸러기가 된 것일까. 또다른 뉴타운 의 헛된 꿈이 대한민국을 흔들어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① 상처만 남긴 잔치, 국민들은 고통] 장미빛 공약으로 개발광풍 일으키고 애물단지 전락
http://www.naeil.com/news_view/?id_art=160295
한일월드컵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2002년 10월,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취임 3개월 만에 '뉴타운' 사업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당선 공약이었던 "강남·강북의 균형발전"이 그 명분이었다.이에 따라 성동구 하왕십리동 일대가 '왕십리뉴타운', 성북구 길음·정릉동 일대는 '길음뉴타운' 은평구 진관동 일대는 '은평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시범지구에 선정됐다. 시 재정도 1500억원 가량 투입됐다.
부동산 시장이 장밋빛 꿈에 들썩였다.
◆들뜬 부동산, 선거까지 좌지우지 = 시범지구 선정지역들은 이듬해 아파트 매매가격이 3.3㎡당 전년 대비 약 20% 치솟았다. 당초 매매값 700여만원이던 성동구는 900만원에 육박했고 은평구와 성북구도 비슷한 폭으로 뛰었다.
별다른 검토도 없이 지구 지정이 속속 이어졌다.
서울시는 2003년에도 10월 △종로구 교남지구 △용산구 한남지구 △강북구 미아지구△동대문구 전농·답십리지구 등 2차 뉴타운 12곳을 추가로 발표했다.
2005년에는 △동대문구 이문휘경지구 △성북구 장위지구 △노원구 상계지구 △은평구 수색증산지구 △관악구 신림지구 등 11곳이 3차로 지정돼 모두 35개 지구 305개 구역에서 사업이 추진됐다. 이들 지역 대부분 지정과 동시에 부동산 가치가 폭등했다.
부동산 열풍은 전국적으로 확산돼 2008년 총선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뉴타운'의 '뉴'자만 들어가도 집값이 뛰니 지역주민들이 한결같이 뉴타운 추가 지정을 요구했고, 후보들도 뉴타운 공약을 경쟁적으로 앞세웠다.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서울 49개 지역구 가운데 40곳을 싹쓸이했다. 이 중 23명이 뉴타운 공약을 내걸고 배지를 달았다. 이같은 현상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도 반복됐다. 당시 취임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뉴타운을 50개로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2008년 총선도 마찬가지. 총선 이후 내일신문사와 한길리서치여론조사 결과 유권자들은 뉴타운 등 개발기대감으로 20.5%가 한나라당을 지지했다고 답했다.
◆거품 꺼지고 드러난 실상 = 그러나 '장밋빛' 뉴타운사업은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국내 부동산경기 침체를 맞으면서 잿빛으로 변했다.
서울 곳곳의 뉴타운 지역들이 사업 진행과정에서 개발 비례율(개발 기대이익률)이 급감, '억대' 분담금을 요구하는 곳이 늘어났다. 시범지구 미분양 아파트들이 헐값에 나오기 시작했다. 사업 추진을 반대하는 주민도 늘면서 사업추진 지속을 원하는 주민 및 조합과 갈등이 번져 물리적 충돌과 소송이 잇따랐다.이 과정에서 건설사, 철거용역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조합임원, 지자체 관계자 등이 줄줄이 수사를 받기도 했다. 그동안 진행됐던 305개 뉴타운 사업구역 중 사업이 완료된 곳은 전체의 29곳에 불과했다.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사업 자체에 대한 의문도 커졌다.
기존의 주택들을 모조리 철거하는 과정에서 쫓겨나는 세입자가 적지 않아 주거불안 문제가 심화됐고 원래 살던 주민들이 뉴타운에 재정착하는 비율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사업이 마무리된 길음뉴타운 4구역의 경우 원주민 재정착률이 일반 주택재개발사업 평균 재정착률(34%)의 절반인 17%에 불과했다.
2009년 초 터진 용산참사는 뉴타운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회의감을 증폭시켰다. 정부도 결국 뉴타운사업이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2011년 4월 김황식 국무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뉴타운 사업은 현재 시점에서 볼 때 실패한 정책"이라고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2년 1월 '뉴타운 출구전략'을 발표했다. 이후 2013년 6월 창인·숭인뉴타운을 시작으로 30여곳의 뉴타운 사업지역들이 줄줄이 해제됐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등은 지난해 이후 뉴타운을 대신해 소규모 개발 중심인 '도시재생사업'을 추진중이다.
-이명박과 노무현의 합작품 '뉴타운법’
뉴타운 사업은 아파트 단지나 조합별로 진행되던 사업을 지방정부가 나서 생활권역으로 묶어 도시기반 시설과 주택을 새로 짓는 '시가지 종합재개발' 방식이다. 국민의 정부가 제정한 도정법이 있었기에 가능한 개발방식이다. 이 사업은 2003년 서울시가 '지역균형발전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면서 공식화됐다. 2004년 총선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뉴타운 사업을 공약으로 제시하며 이른바 '욕망의 정치'에 불을 댕겼다.
뉴타운은 표면적으론 강남·북 균형발전이지만 이면엔 집값 상승을 원하는 주민들의 욕망을 자극해 정치적 이득을 노린 표 계산이 숨어있다. 2005년 6월 당시 이명박 시장은 정치권과 정부를 향해 '뉴타운 특별법' 제정을 공식 건의했다. 그는 도심내 낙후지역과 인근 지역을 묶어 광역으로 개발하는데 필요한 기반시설을 중앙정부가 지원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물론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원 등이 가세해 3건의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그해 12월 8일 정치권은 3가지 법안을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으로 묶어 내놓기에 이른다. 역설적이게도 이 법안은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이 본회의에 참여하지 않아 여당이던 열린우리당 의원 중심으로 통과시켰다.
'도촉법'으로 불린 이 법안은 기존 단위방식 대신 광역 생활권을 촉진지구로 지정해 주거지형(50만㎡) 중심지형(20만㎡)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 정부가 재개발·재건축의 구체적인 시행방식을 정한 '도정법'을 제정했고, 그 뒤를 이은 '참여정부'와 여당이 시행을 촉진하는 특별법을 만든 것이다. 도촉법은 뉴타운사업의 날개 역할을 했다. 특히 2006년 지방선거와 2008년 총선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2006년 4회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오세훈 서울시장을 필두로 25개 전 구청의 단체장을 석권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선 서울 48개 의석 가운데 40석을 차지했다. 하나같이 뉴타운사업을 추진하거나 마무리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7석을 지킨 당시 민주당 의원 가운데 5명도 뉴타운 조성을 공약으로 내놨다.
정가에선 이와 같은 현상을 '뉴타운돌이'라는 신조어로 표현했다. 뉴타운 사업을 수도권 전체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된 도촉법을 주도했던 민주당 의원들이 제 발등을 찍은 셈이다. 반면에 한나라당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뉴타운 효과에 힘입어 지방선거·대선·총선을 모두 승리했다.
그런데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부분의 뉴타운 사업이 중단되거나 지연됐다. 이 과정에 한나라당 의원 주도로 뉴타운 사업의 모법 성격인 도정법 개정안이 잇따라 등장한다. 지방의회 의견 수렴절차를 줄이고, 50만 이상 대도시에서는 단체장이 직접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권한을 부여했다. 또 인접하지 않은 지역도 정비구역 지정이 가능하고, 강제로 땅을 수용할 경우 보상은 공시지가 수준으로 가능하도록 했다. 이 개정안은 2009년 1월 여야 187명 찬성으로 통과됐다. 그러나 후유증은 여전했다.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후, 앞다퉈 광역개발을 부추기고 앞장서 약속했던 여야 의원들은 2011년 말 30건이 넘는 도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2005년 도촉법을 통과시킨 민주통합당(당시 열린우리당)이나, 뉴타운을 앞세워 2008년 총선에서 대거 당선된 한나라당 의원들은 앞다퉈 뉴타운 출구전략을 내놨다. 뉴타운 활성화 법안을 내놓고 시민들을 부추겼던 국회의원들이 3년도 안돼 정반대 입장으로 돌아선 것이다.
-도시개발사업이 '원주민 교체사업'으로 변질
뉴타운 후유증 여전히 계속된다
부동산 투기로 온 나라 몸살 … 집값폭등·가계부채 증가 등 부작용 심각
멀쩡한 주택까지 노후불량주택으로 규정해 전면 철거하고 아파트를 건설하는 뉴타운사업은 집값 폭등을 불러왔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 분석에 따르면 2000년 전국 아파트 평균가격을 100이라 할 때 뉴타운사업이 시작된 2002년부터 집 값은 가파르게 상승해 2008년 리먼사태가 터지기 직전 241로 2.4배나 올랐다. 특히 강남 3구 아파트는 3.5배나 올라 집값 폭등을 주도했다. 현재까지 오른 집값은 떨어지지 않아 2015년 5월 전국아파트가격지수는 역대 최고치인 243을 기록했다. 전셋값도 끝 모를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2000년 1월 100이던 전국아파트전세지수는 2015년 5월 316으로 무려 3.1배나 올랐다.
집값폭등은 주거불안을 낳았다. 가계부채와 주거비 부담 증가로 이어져 주거불안이 국민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로 등장했다.한국은행 가계신용통계에 따르면 2002년 416조원이던 가계부채는 2015년 1100조원으로 2.5배 이상 늘었다. 이중 50% 가량은 집값폭등을 뒷받침하기 위한 주택담보대출이다.
뉴타운 사업 지역에 살던 원주민은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뉴타운 원주민 재정착률은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터무니없이 비싼 분양가와 임대주택이나 작은 평수 아파트가 적은 것이 문제였다. 세입자나 자영업자들도 쫓겨났다. 또한 주택을 강제로 수용하고도 시세보다 낮은 감정가나 그 이하로 보상을 해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뉴타운사업이 벌어진 곳이면 예외없이 철거반대 투쟁이 벌어져 극심한 사회혼란을 낳았다. 급기야 2009년 1월 용산4구역 철거현장에서 농성을 벌이던 세입자를 경찰과 용역이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뉴타운사업은 예외 없이 부패사건을 낳았다. 구속된 조합장은 부지기수였고, 그 과정에 연루된 건설회사 직원과 관료, 정치인 등이 줄줄이 쇠고랑을 찼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맞으며 집값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자 국민들은 '뉴타운 꿈'에서 깨어났다. 끝 없는 집값 상승은 가능하지 않음을 알게 됐다. 뉴타운지구 지정해제 요구가 시작됐다. 2011년 취임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뉴타운 출구전략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2011년 4월 김황식 국무총리도 국회에서 "뉴타운사업은 실패한 정책"이라고 시인했다.
뉴타운을 추진했던 지역들은 건설회사가 그동안 지출했던 매몰비용 청구로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여전히 높은 주택가격은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협하고 있다.
[② 용산참사는 아직도 진행형] 개발이익은 신기루 … 뉴타운에 '사람'은 없었다 2015-07-30
http://www.naeil.com/news_view/?id_art=16048
-뉴타운 현장마다 억울한 사연, 반발은 필연
-구청장·조합장·업자가 한통속
-[③ 계속되는 뉴타운 후유증] 서울시, 공원부지 확보하려 기형적 구역변경 2015-07-31
http://www.naeil.com/news_view/?id_art=160643
-돈의문뉴타운 추진 서울시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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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도심재개발] '록본기 힐스' 400명 설득에 13년 공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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