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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6.8~

by 이성근 2020. 6. 8.

 

 

 

 

30년 운동 폄훼하는 보수언론 부정·혐오에 맞설 힘을 키울 때다

이용만 당했다” : 누가 누구를 이용하는가

위안부 운동사는 다층적·복합적

여성·인권·평화 국제연대 만들었다는

서사에 결코 만족하지 말고

이번 사태 계기로 깊이 있게 성찰해야

어떤 사태에는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을 고려해 사태를 명명하기 마련이다. 원인은 외부/내부 요인으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외인의 작용으로 인해 오래 봉합됐던 내인이 함께 터져 나올 수도 있고, ‘내인으로 터진 갈등이 외인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 이를 고려해, 지금 이 사태를 뭐라 명명할 수 있을까?

 

사건사의 시각으로 이 사태를 보자면, 원인은 지난 57일 일본군 위안부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인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이다. 피해생존자의 고통이 배인 절박한 말과 인권운동가의 지난 운동의 방향과 방법에 대한 비판적인 말이 뒤섞여 토해졌던 기자회견이었다. 일본군 위안부문제가 30년 동안 답보 상태인 현실을 고통스럽게 마주하고 목소리를 냈다. 이용수님의 말은 윤미향과 정의연을 향하기도 했지만, 또한 말잔치 외에 실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한국 정부, 역사부정론에 입각해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는 아베 정부를 향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파편화된 목소리 막바지에 돈은 왜 마음대로 할머니들한테 안 쓰고 저거 마음대로 써. 그렇게 당하고 있었다가 섞여 나오면서, 대다수 언론은 약 한 달 동안 연일 윤미향 사태또는 정의연 사태로 명명된 엄청난 양의 보도를 쏟아냈다. 그런 명명은 일본군 위안부운동의 대표 활동가(윤미향)와 단체(정의기억연대)에서 사태의 원인을 찾고, ‘현미경 보도로 제기된 각종 의혹들을 기정사실로 바라보게 한다. 525일 이용수님의 두 번째 기자회견은 그런 보도들이 자기 확증하는 근거가 되었다. 대다수 언론은 할머니들을 팔아먹었습니다란 말을 듣고 이용만 당했다고 헤드라인으로 뽑아내면서 그야말로 적극 이용했다. 증언 연구자라면, 이용수 할머니가 어떤 생각과 감정으로 어떤 맥락에서 말하고 있을까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어렵게 결들을 헤쳐 나가고 있었을 거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은 정해진 프레임으로 그 말을 절취해 우겨넣었다. 요샛말로 흑화폭로 저널리즘의 민낯이 아닐까?

 

정의기억연대(정의연)27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1141차 일본군 성노예문재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를 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편, 음모론의 문법으로 기계적으로 대입한 저널리스트와 유튜버들은 이 사태를 이용수 사태로 바라봤다. 이용수 할머니 대 윤미향·정의연 대립 프레임은 그렇게 진영화된 구도로 빨려 들어갔다. 대립적인 사태 명명은 이용수 할머니, 윤미향, 정의연 모두에 대한 혐오·증오 발화의 폭발로 이어졌다. 윤미향·정의연에겐 피해생존자를 앵벌이시킨 파렴치범, (보상)을 못 받게 해서 문제 해결을 방해하고 권력만 쫓은 전체주의자, 반일=종북 낙인, 피해자의 을 따르지 않고 기억을 의심해 일본 극우의 행태를 보인 친일파, 그리고 매춘부라는 혐오가 쏟아졌다. 급기야 이용수 할머니에게도 배후에 의해 조종당하면서 권력만 탐하는 물색없는 대구 사는 노인, 일본군 병사와 영혼결혼식한 친일 매춘부라는 혐오가 줄을 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쪽에도 진실이 없다. 양쪽 다 가짜 사실이 넘쳐나고 진실보다는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을 주도하면서 같은 의견과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대안적 사실을 진실이라고 우겨대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가짜와 거짓을 계속 듣다보면 진실을 보는 눈을 완전히 잃고, 심지어 지어낸 이야기에 만족하게 되는 상황의 도래가 정말 두렵다.

 

난 이 사태를 탈진실의 맥락에서 바라보고 있다. 2019년 한국 사회에서도 본격화된 일본군 위안부문제의 부정·부인(denial)과 여성혐오로 무장한 <반일 종족주의> 자장 아래에 있는 여러 의도와 기획이 이용수 기자회견을 이용해 윤미향과 정의연을 일점 돌파하는 방식으로 힘들을 쏟아내면서 윤미향 사태또는 정의연 사태가 되었다. 그에 대한 진영화된 반발은 이용수 사태로 이어졌다.

 

참담한 건 이 사태들을 보도하는 극우 가짜뉴스 매체들은 물론, 보수 일간지들의 프레임과 숱하게 양산된 기사에서도 <반일 종족주의>의 언어들, 그 논리와 방법이 재현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대협은 그들의 공명심을 충족하기 위해, 그들의 직업적 일거리를 잇기 위해” “개인의 인생사 따윈 아무래도 좋은 것으로 팽개치고위안부를 민족의 성녀로앞세워 시위를 벌이면서 아무도 맞설 수 없는 전체주의적 권력으로 군림하였다”(<반일 종족주의>, 337-338)는 수준의 이해와 내용이 기사마다 넘실거렸다. 이런 기사들은 일본어 온라인판으로 거의 동시에 일본에 출고되었다. 이를 받아쓰는 일본 극우보수 언론은 이 사태를 윤미향, 정의연, 이용수 할머니의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일본군 위안부운동 30년의 역사를 부정하는 사실 근거들로 삼아 보도했고, 한국 보수 언론은 이를 다시 현지(일본) 특파원 칼럼 등의 형식으로 한국어로 보도하면서 결과적으로 부정과 혐오를 진실로 포장해 보도했다.

 

참담한 상황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511일 이영훈 등이 개최한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 출간 기자회견에 대해선 일부 언론이 비판적인 전문가 코멘트나 기획 기사를 낸 바 있다. 그러나 얼마 전 526일 이영훈과 류석춘 교수, 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가 주최한 <정대협의 위안부 운동, 그 실체를 밝힌다> 심포지엄을 보도한 기사들에선 기계적인 비판 코멘트조차 아예 없었고, 일방적으로 그들의 주장을 받아쓰고 대변하는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언론이 <반일 종족주의> 시리즈를 집중적으로 다뤄주고 그 과정에서 (의도했든, 안했든 간에) 그 책의 주장이 부각되고 확대 재생산되는 상황이고, 기자들조차 그 주장에 동조하는 상호 참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512일 수요시위 전 날 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와 위안부인권회복실천연대가 평화의 비(‘소녀상’) 앞에서 연 기자회견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그들이 내건 펼침막에는 위안부상 철거, 수요집회 중단이란 구호가 새겨져 있었다. 태극기와 일장기를 양 손에 들고 친일이 곧 애국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입에서 치욕스런 위안부 이력 속속들이 까발려 모욕 준 정대협과 여가부는 용서 못할 인권침해 집단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 동안 피해생존자들을 조롱하고 모욕한 한국 뉴라이트 부정론자들의 입에서 피해생존자들의 인권이 거론되었던 것이다. 이런 행태야말로 위안부피해자들을 간악하게 이용해먹는 복화술이다. 이렇게 보면, 이 사태는 부정과 혐오의 백래시사태로도 조명되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사태의 외인론 입장에서 보면 말이다.

 

일본군 위안부문제의 역사와 30년 운동의 진실은 결코 매끈하지도 납작하지도 않다. 울퉁불퉁하고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다. 그렇기에 여성·인권·평화 국제연대 운동을 만들었다는 서사에 결코 만족하지 말고, 이 사태를 계기로 삼아 30년이라는 시간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성찰해야만 한다. 그래야 피해자 없는 위안부운동이 가능한 건지, 아니 정말 필요한 건지, 그렇다면 어떤 방향과 방법으로 모색되어야 하는 건지 논의를 모아가면서 부정과 혐오의 백래시에 반격할 수 있는 힘이 더 두터워지지 않을까?

강성현 (성공회대 열림교양대학 교수)/ 한겨레

 

뭉칫돈 들고 아파트 대신 주식으로

동학개미운동의 명암

 

 

 

 

2020514일 코스피가 전날보다 15.46포인트(0.80%) 내린 1924.96에 거래를 마친 서울 명동 KEB하나은행 본점 거래룸. 국내 증시는 개인투자자의 지속적인 매수세에 힘입어 코로나19 타격을 크게 줄였다. 연합뉴스

 

개미(개인 투자자)가 떼 지어 돌아왔다. 국내 주식시장 얘기다. 그냥 개미가 아니다. 뭉칫돈 수십조원을 들고 외국인과 기관이 던진 우량주를 쓸어담는 이른바 동학개미. “내가 알던 그 개미가 맞나?” 서울 여의도 증권가 직원들도 혀를 내둘렀다. 동학개미 매수세와 자금력 때문이다.

 

개인투자자는 2020년 들어 513일까지 코스피(유가증권코스닥 시장에서 주식 323576억원어치를 사들였다. 2019년 한 해 동안 54937억원을 팔아치운 것과 딴판이다. 개인은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나온 120일부터 이날까지 77거래일 가운데 63거래일 동안 주식을 순매수했다.

 

전례 없는 순매수

외국인과 기관은 달랐다. 외국인은 같은 기간 239285억원, 기관은 102452억원어치 주식을 각각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위험 자산인 주식을 처분하고 안전 자산인 채권으로 갈아탔다. 외국인의 국내 채권 보유액은 4월 말 기준 140조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동학개미는 이런 팔자공세에 국내 증시를 떠받친 주인공이다. 코스피 지수는 3월 연중 바닥(1457.64)을 찍고 한 달여 만에 1900선을 회복했다. 각국 정부의 돈풀기 정책과 개미의 주식 열풍 덕분이다.

주식투자에 뛰어드는 개미가 몰리며 증권사도 이례적으로 붐비고 있다. 국내 주식거래 계좌는 4월 말 기준 3127만개로 연초(2936만개)보다 200만 개 가까이 늘었다. 국내 경제활동인구(2773만 명) 1명당 1.1개꼴이다. 국내 증시 기록도 새로 썼다. 코스피·코스닥 시장의 4월 하루 평균 주식 거래대금은 207804억원을 찍었다. 사상 최대다. 전년 같은 달(96284억원)과 비교하면 2배 넘게 급증했다. 동학개미 투자 실탄은 아직 두둑하다. 주식거래를 위해 증권사 계좌에 보관 중인 예탁금은 40조원이 넘는다. 기존 투자금을 합치면 동학개미 군단의 주식투자 재원이 70조원을 넘는 셈이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글로벌매크로팀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시중에 막대한 돈이 풀렸지만 금리가 워낙 낮고 부동산 규제도 세서 돈이 갈 데가 없는 상황이라며 주가가 많이 빠지면서 이 기회에 저평가된 자산에 투자하려는 자산가가 증시에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가계가 보유한 현금·수시 입출금식 예금과 만기 2년 미만 정기 예·적금 등 유동자금은 3월 기준 1524조원에 이른다. 눈에 띄는 것은 2019년 말부터 달마다 10조원 안팎으로 불어나던 가계 보유자금이 3월엔 1조원 느는 데 그쳤다는 점이다. 기업이 유동성 위기에 대비해 3월 한 달 새 현금성 예금 30조원을 쌓아둔 것과 대조적이다.

 

국내 기준금리를 31.25%에서 0.75%0.5%포인트 낮추며 시장금리가 내려가자 은행 예·적금에서 증시로 빠져나간 자금이 많았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시중은행 만기 1년짜리 예·적금 금리는 역대 최저인 0~1%대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부동산과 펀드에 돈을 넣기도 마땅치 않다. 부동산은 이미 가격이 많이 오른데다 정부 대출 규제와 보유세 강화 등 투자 여건도 우호적이지 않다. ‘큰손재테크 상품으로 주목받던 사모펀드는 2019년 해외 금리연계 파생결합증권과 라임자산운용 원금 손실 등 악재가 연이어 터지며 투자자 불신이 커졌다.

 

 

 

 

202056일 국제 유가가 20%대 폭등세를 보인 연합인포맥스 유가 전광판. 코로나19 사태로 유가가 널뛰기를 거듭하면서 유가 관련 파생상품의 투자 위험이 커졌다. 연합뉴스

 

달라진 투자 성향

동학개미는 자금력뿐 아니라 투자 대상도 이전 개미와는 아주 다르다. 2020년 들어 513일까지 개인이 가장 많이 산 종목은 국내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삼성전자다. 순매수액이 93573억원에 이른다. 우선주(19323억원)를 포함한 전체 투자액은 11조원이 넘는다. 전체 동학개미 투자금 3분의 1가량이 우량주인 삼성전자 주식에 쏠린 셈이다. 삼성전자 다음으로 개인투자자 순매수액이 큰 종목은 SK하이닉스(12461억원), 현대자동차(12361억원), SK이노베이션(6770억원) 차례다. 모두 국내 최상위 우량 대기업 주식이다.

 

예전엔 달랐다. 세계 금융위기 때인 2008년에도 개미는 폭락장에서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당시 주로 매입한 것은 중·소형주와 변동성이 큰 테마주였다. 2008년 개인투자자가 가장 많이 팔아치운 종목은 삼성전자였다. 지금과 정반대다. 현대차, 포스코, SK하이닉스, 기아자동차 등 대기업 주식도 주로 처분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동학개미가 우량주에 주로 투자하는 것은 부동산으로 치면 서울 강남 아파트에 투자하는 것과 비슷하다“‘코스피 대장주인 삼성전자의 주가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깔린 것이라고 말했다.

 

동학개미 등장은 그동안 외국인과 기관 등 큰손에 휘둘리며 국내 증시에서 수동적 주체에 불과했던 개인투자자 위상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특히 우량주 중심의 투자, 서점가 베스트셀러 순위를 바꾸는 공부 열기, 모바일·소셜미디어를 활용한 기관 못지않은 정보력 등은 동학개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요인이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4월 초 우리 기업에 대한 애정과 주식시장에 대한 믿음으로 적극 참여해주신 투자자께 감사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위기 때마다 외국인 투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현금인출기라는 별명까지 붙은 한국 증시 체질을 바꾼 개인투자자의 힘을 금융 당국도 인정한 것이다. 부동산에만 쏠렸던 가계자금이 자본시장으로 흘러 들어오면 기업 자금조달이 수월해지고 투자가 확대되는 경제 선순환도 가능하다.

 

묻지마 투자우려도

단점도 있다. 동학개미가 받아들 투자 성적표는 아직 미지수다. 코로나19로 증시 불확실성이 여전해서다. 자칫 투자 손실이 확대되면 국내 증시를 향한 배신감만 커질 가능성이 있다. 1457.64로 연중 바닥을 찍고 반등한 코스피지수는 4291947.56까지 오르며 단기 고점을 기록했다. 지수 상승률은 33.6%. 하지만 이 기간 개인 순매수 1위 종목인 삼성전자 주가는 16.4% 오르는 데 그쳤다. 반등장에서 상대적으로 저조한 수익률이다. 같은 기간 2위 종목인 현대차는 42%, 3위 셀트리온헬스케어는 47.9% 각각 올랐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도 4월 말 쓴소리를 했다. “비트코인 문제를 전후로 한국에 상당한 투기성 세력이 존재한다. 그게 동학개미, 유가선물 상장지수 증권 투자로 나타나는 것 아닌가. 단기투자 중심의 동학개미 군단은 일부만 돈을 벌고 나머지 대부분은 아닐 것이다.” 동학개미라는 이름이 붙은 개인투자자 집단 안에 단기 차익을 노리는 묻지마 투자도 상당한 만큼 장밋빛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실제 코스피·코스닥 시장의 신용거래 융자 잔고는 3월 말 6조원대였으나 한 달 만에 2조원 넘게 불어났다.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빚으로 주식에 투자한 사람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금융파생상품인 원유레버리지 상장지수 증권은 과거 암호화폐 열풍을 방불케 하는 투자 과열 논란을 불렀다. 이 상품은 투자 수익률이 국제 유가 등락률의 2배로 움직이는 초고위험 상품이다. 코로나19 여파로 국제 원유 가격이 폭락하자 유가 상승에 베팅하는 개미가 몰려들었다.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치솟고 급기야 4월에는 초유의 거래 정지 사태까지 빚었다. 금융 당국이 고위험 상품의 투자 문턱을 높이는 등 정부 차원의 투기 방지 대책 마련에 나선 배경이다.

 

동학개미 투자열기를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끌려면 정부 차원의 투자자 보호 강화, 증시 육성 정책 등과 함께 기업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 정보공개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성장 과실을 오너 개인이 아닌 주주와 나누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시행한 공매도(주식을 빌려서 파는 것) 금지 등 개인투자자 보호 정책은 예전부터 필요성이 제기됐던 만큼 도입 시점이 늦은 감이 있다시장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시장 조성자 제도 등 기존 투자자 보호 방안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종오 <이데일리> 기자 pjo22@edaily.co.kr

 

 

마포쉼터 소장 원래 기자들은 이러는 건가토로

세상 떠난 마포쉼터 소장, 과도한 취재에 밤새 초인종 누르고 문 쾅쾅 두드려원래 기자들은 이러는 건가

경기도 파주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마포쉼터(평화의 우리집) 소장 A씨가 지인들에게 언론의 과한 취재에 괴로운 심정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숨지기 일주일 안팎 A씨는 평소 위안부피해자 할머니 취재로 알고 지내던 B기자에게 서네차례 전화를 걸어 언론사 취재 문제를 얘기했다.

 

B기자에 따르면 A씨는 할머니와 같이 있는데 낮이고 밤이고 밤새 초인종을 눌러대고 문을 쾅쾅 두드리고 모르는 번호로 전화하고...(정원) 밖에 나갈 수도 없어요. 감시당하는 느낌이라 힘드네요라고 토로했다.

 

마포쉼터에서 A씨는 길원옥 할머니와 지내고 있었다. 지난달 21일 검찰이 쉼터를 압수수색한 뒤 언론사 취재에 노출돼 심적 고통이 컸다는 것이다. A씨는 원래 기자들이 이러는 건가라며 언론사 취재에 괴로운 심정을 전달했다. A씨는 많은 매체의 카메라 기자들이 많이 와 있는 것 같다. 맞은편 건물에도 있는 것 같고, 그리고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마치 범죄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고 B기자는 전했다.

 

B기자는 할머니가 계신 곳인데 압수수색까지 당하고 기자들이 괴롭히고 심적으로 많이 힘드셔서 소장님께서 전화한 것이었는데 도움을 많이 드리지 못했다제가 동료 기자에게 이러면 안된다’, ‘인권침해하면서 취재하면 안 된다고 말리기라도 했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A씨를 추모하는 글을 SNS에 올리면서 언론사의 취재 경쟁을 지적했다. 윤 의원은 쉼터 초인종 소리 딩동 울릴 때마다 그들이(기자들이) 대문 밖에 카메라 세워놓고 생중계하며 마치 쉼터가 범죄자 소굴처럼 보도를 해대고, 검찰에서 쉼터로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하고, 매일같이 압박감. 죄인도 아닌데 죄인의식 갖게 하고, 쉴 새 없이 전화벨 소리로 괴롭힐 때마다 홀로 그것을 다 감당해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라고 썼다.

 

검찰의 압수수색에 고인이 압박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검찰은 7일 오후 낸 입장문에서 압수수색 당시 집행 관련 협의 등은 변호인과만 이뤄졌고 협의에 따라 지하실에서 실제 압수수색을 할 당시엔 고인이 그곳에 없었던 것으로 수사팀은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B기자는 압수수색 당일 (A씨에게) 전화가 왔고 (A씨가) ‘압수수색 왔네요.(길원옥) 할머니 트라우마가 있어서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오면 놀라시는데 걱정이다라고 말한 게 똑똑히 기억난다고 말했다. /이재진 기자 jinpress@mediatoday.co.kr

 

 

 

 

 

세상에 모습 드러낸 584건의 신군부 보도지침

민언련·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서 보도지침 사료 기증식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검찰 수사결과 발표 내용만 보도하고 사건 명칭을 성추행이 아닌 성모욕행위로 표현할 것.”(1986717)

 

김근태 공판, 그가 고문당하고 변호인 접견을 차당 당했다는 등의 주장은 보도하지 말도록. 사진이나 스케치 기사 쓰지 말 것.”(1986124)

 

19876월 항쟁 불씨가 됐던 보도지침 폭로사건의 원고 원본이 시민들에게 공개된다.

 

보도지침은 신군부 시절 문화공보부에서 각 언론사에 하달한 기사작성 지침이다.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언론통제 수단이었다.

 

1986년 김주언 한국일보 기자가 구속을 감내하며 편집국에서 빼낸 보도지침은 당시 김태홍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언협) 사무국장과 신홍범 실행위원 등이 주도해 그해 9월 월간 에 공개됐다. 보도지침이 세상에 존재를 알린 순간이었다.

 

이 사건으로 말지의 편집인이었던 김태홍 사무국장, 신홍범 민언협 실행위원, 김주언 기자는 국가보안법상 국가기밀누설죄와 외교상 기밀누설죄로 구속 기소됐다.

 

민주언론시민연합(상임대표 김서중)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지선)8일 오전 10시 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보도지침 사료 기증식을 열고 당시의 엄혹했던 시대상을 다시 고발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상임대표 김서중)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지선)8일 오전 10시 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보도지침 사료 기증식을 열었다.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제공.

 

이번에 최초 공개되는 보도지침 사료는 19869월 민언협이 발간한 기관지 말 특집호 보도지침, 권력과 원론의 음모-권력이 언론에 보내는 비밀통신문원고 원본이다.

 

19851019일부터 198688일까지 문화공보부 홍보정책실에서 보도통제를 위한 세부 일일지침으로, 각 언론사 편집국 간부에게 전화로 지령한 메모 형식의 자료 584건이다.

 

특기할 만한 것은 보도지침 원고에 당시 빨간 펜으로 교정 교열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 민언련은 원고지에 문장을 옮겨 인쇄소에 넘겨야 했지만 그럴 틈도 없을 정도로 긴박하게 이뤄졌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날 기증식에는 보도지침 자료를 민언협에 제보한 김주언 기자와 보도지침 폭로사건 실행을 총괄한 신홍범 당시 민언협 실행위원, 보도지침 사료를 기증한 임상택 전 월간 말 상무가 참석했다.

 

 

 

 

8일 오전 10시 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보도지침 사료 기증식을 통해 공개된 보도지침 일부.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제공.

 

이번 사료는 임상택 전 상무가 보안을 위해 별도 보관해오던 보도지침 원고 원본을 지난해 1219일 민언련 제35주년 창립기념식에서 기증하면서 이뤄졌다. 민언련은 한국현대사의 귀중한 사료가 될 이번 자료의 철저한 관리와 보존, 폭넓은 활용을 위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위탁관리 기증을 결정했다.

 

김서중 민언련 상임 공동대표는 사료 기증식에 앞서 보도지침 사료는 권력이 언론의 자유를 어떻게 박탈했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라면서 언론은 국민을 위해 사실대로 공정하게 소식을 전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보도지침 사료를 잘 보존해 앞으로 언론 역할이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교훈으로 남겨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지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도 민언련이 소장한 귀중한 사료를 위탁해주셔서 감사드린다. 보도지침은 국민 자유를 억압하고 독재 체제를 공고히 하고자 한 전두환 정권 단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사업회가 잘 보존해 후대에 보도지침과 같은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민언련이 보관하던 보도지침 사료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 이관된 뒤 향후 정리 작업을 거쳐 사료 정보 서비스인 오픈아카이브(https://archives.kdemo.or.kr)에 공개된다.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이메일 바로가기

 

 

분교 사진가가 담은 분교의 아름다운 시절

한겨레서 정년퇴직한 강재훈 사진기자 사진전 들꽃 피는 학교, 분교

오는 9일부터 한 달 동안 강재훈 전 한겨레 사진부 선임기자의 사진전 들꽃 피는 학교, 분교가 서울 종로구 갤러리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열린다. 지난 4월 말 한겨레에서 정년 퇴직한 강 기자는 한겨레21 사진부장, 씨네21 사진부장, 한겨레 사진부장 등을 지낸 베테랑 사진기자다.

 

강재훈 사진전 들꽃 피는 학교, 분교와 동명의 사진집은 통폐합되거나 폐교돼 반공소년 이승복 어린이 동상만 남은 전국 수천 여개의 작은 학교, 분교(分校)의 모습을 담고 있다. 1990년대 초부터 30년 동안 기록한 분교들의 아름다운 시절이다.

 

 

 

 

강재훈.들꽃 피는 학교, 분교 우음분교. 1997

 

이를 테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밀양 사자평의 작은 학교 고사리학교’, 국토 최남단에 자리한 마라도의 마라분교등 이제는 흐릿한 기억으로 남은 분교의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강 기자가 분교를 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한 해는 지난 1991. 그는 학생 한 명인 학교가 폐교된다는 소식에 현장으로 달려갔고, 혼자 입학하는 어린이를 만나러 산골도서 벽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분교들은 점차 사라져갔고 지난해 정부 정책이 바뀌기까지 6000여 개 학교가 폐교됐다.

 

그는 1998분교 들꽃 피는 학교’, 2006산골분교 운동회’, 2009산골분교등 사진집을 내고 전시를 계속했다. 그의 이름 앞에 분교 사진가라는 수식이 붙게 된 이유다. 전시와 책, 언론 기사를 통해 꾸준히 작은학교 살리기에 관여한 덕분에 소규모학교 통폐합 정책 일부를 개정해내는 데도 기여했다는 평가다.

 

강재훈 전 한겨레 사진부 선임기자. 사진=강재훈 제공.

 

강 기자는 작은 분교들의 폐교 걱정 없이 아이들을 키워낼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하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라며 나와 분교에서 만났던 수많은 아이들이 우리사회 어딘가에서 제각각 이름에 어울리는 꽃과 나무로 성장해있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이메일 바로가기

 

 

유튜브 슈퍼챗전 세계 1위는 가로세로연구소

극단적 정치 시사 유튜브, ‘노란 딱지에도 막말·혐오·음모로 떼돈

팬앤드마이크TV’ 6494개 중 1200(20%), ‘고성국TV’ 2400개 중 720(30%), ‘뉴스타운TV’ 2888개 중 2000(70%).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이 밝힌 보수 유튜버 노란 딱지(광고제한) 현황이다. 박대출 의원을 비롯해 몇몇 한국당 의원들은 유튜브 블랙리스트가 현실화됐다고 주장하며 정부 비판유튜버들의 수익이 급감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우려는 기우였다. 그들은 슈퍼챗을 찾아냈다.

 

막말·혐오·허위정보 콘텐츠로 비판받는 보수성향 유튜브 채널이 노란딱지로 광고 수입이 막힌 뒤 슈퍼챗으로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슈퍼챗은 유튜브 시청자들의 후원금 성격으로 생방송을 보면서 채팅창을 통해 직접 돈을 보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슈퍼챗 금액이 높을수록 채팅창에 긴 시간 노출될 수 있다.

 

구글이 2017년 도입한 슈퍼챗 기능은 유튜브가 지난해 6월 광고주들이 꺼리는 콘텐츠에 노란딱지를 붙이는 정책을 강화하며 일종의 수익모델 대안으로 떠올랐다. 노란딱지가 붙은 콘텐츠는 조회 수가 높아도 광고가 붙지 않아 돈을 벌 수 없다. 이 때문에 노란딱지를 많이 받게 된 유튜버들은 노란딱지가 붙는 콘텐츠를 만들지 않는 대신, 더욱 극단적인 콘텐츠를 만들며 슈퍼챗을 쏴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

 

 

 

 

MBC '스트레이트' 방송화면 갈무리.

 

8일 현재 유튜브 통계 사이트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슈퍼챗을 가장 많이 받은 유튜브 채널 1위는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 누적액은 767309798. 최근 군포 물류창고 화재 사고가 선거 조작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 방송에서 845만 원, 사전투표 조작을 주장한 또 다른 방송에선 642만 원 상당의 슈퍼챗을 받았다.

 

뒤를 이어 ‘GZSS TV’595717589원을 기록해 전 세계 슈퍼챗 순위 4위를 나타냈다. 해당 채널 진행자는 저것들은 5·18 시체도 있고 세월호 시체도 있고 별 시체가 다 있는데, 팔 시체가 없어서 우리는 맨날 X됩니다라며 막말과 욕설을 쉴새 없이 쏟아냈다. 역시 각종 막말로 유명한 전광훈씨는 너알아TV’에서 지난 5개월간 슈퍼챗으로 1200만 원어치를 받았다.

 

MBC 탐사보도프로그램 스트레이트는 지난 7일 방송에서 이들 유튜버들의 슈퍼챗 수익과 방송 실태를 공개하며 가세연은 5월 한 달간 12000만 원을 슈퍼챗으로 벌었다. 여기에 개별 후원계좌와 (노란딱지가 안 붙는) 유튜브 콘텐츠 광고 수입까지 감안하면 상당한 돈을 벌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하며 정치 유튜브 채널이 슈퍼챗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은 한국의 독특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전 세계 유튜브 채널 중 슈퍼챗 1~100위를 보면 대다수가 일본 애니메이션 가상 캐릭터 채널이거나 게임 채널이다. 그러나 여기 한국의 정치시사 유튜브 채널이 15개나 자리 잡고 있다. 이 중 7개가 진보성향, 8개가 보수성향으로 분류된다. 8일 기준으로 시사타파TV’324618887원으로 21, ‘딴지방송국286601547원으로 28, ‘신의한수243254273원으로 43위을 기록했다.

 

미국 유튜브 통계 사이트 소셜블레이드에 따르면 100위권 내 한국 유튜브 채널은 핑크퐁(47) 블랙핑크(39) Big Hit Labels(BTS 기획사, 35) 3개에 불과하다. 이 점에 비춰보면 슈퍼챗 순위는 매우 특이한 상황이다. 슈퍼챗은 광고 수익과 달리 구독자 수나 시청자 수 같은 규모보다 시청자의 충성도에 따라 액수가 갈린다.

 

MBC는 이날 방송에서 혐오와 조롱, 음모론을 도구로 삼아 공격하는 대상은 대부분 피해자들이다. N번방 사건, 민식이 사건, 세월호, 위안부 문제 그리고 코로나19 사망자도 있다. 극우성향의 채널은 대부분 친일 성향, 여성 혐오 성향이 짙다고 우려하며 자극적인 막말과 음모론으로 떼돈을 벌 수 있게 설계한 구글의 구조적 책임을 지적했다. 한 우파성향 유튜버는 MBC와 인터뷰에서 “(총선이) 부정선거가 아니라고 얘기하면 슈퍼챗이 확 준다. 감성을 자극하면 돈이 쏟아진다. 좌나 우나 코인에 미친 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MBC슈퍼챗은 달러로 환전돼 미국의 구글 본사로 간다. 거기서 구글이 30% 수수료를 가져간 뒤 다시 유튜버 계좌에 입금한다. 수익 배분율이 73”이라고 전한 뒤 유튜버들은 슈퍼챗을 위해 더 막말하고 자극적으로 방송하며 극단적 논리에 편승하고 있지만 구글은 슈퍼챗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이메일 바로가기

 

프라이버시의 시대는 끝났다

[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 시간의 극장

4화 개인정보

2020년의 팬데믹 시대.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은 국제사회의 칭찬을 받았다. 그런데 확진자 동선 공개가 너무 자세하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민감한 개인정보가 드러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지나친 염려일까, 필요한 지적일까? 다행히 정부는 확진자 동선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삭제하기로 했다. 익명 검사도 늘렸다. 잘된 일이다

 

정보인권이란 말은 우리에게 가깝고도 멀다.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같은 개념은 헌법으로 보장받는 권리지만 이 용어가 낯설다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지루한 설명 대신, <한겨레>에 실린 일화를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개인정보를 다루는 한국 사회의 태도는 30여년 동안 어떻게 변했나? 해설 김태권

 

개인정보를 42가지나 전자칩에

담겠다고 했던 전자주민카드

주민등록증 대신 들고 다니라고?

 

탈북 망명한 고위층 인사 이한영

개명하고 성형하고 이사 다녔는데

살해범에게 어떻게 노출되었을까

 

 

 

 

정보인권 문제를 다룬 시민사회 간담회가 201586일에 열렸다. 당대표였던 문재인이 변호사 최병모와 인사한다. 촬영 이정우 기자.

 

1988년의 일이다. 한 아무개씨는 주민등록증을 다시 발급받았다. 그때만 해도 거주증명서를 떼러 파출소에 따로 찾아가야 했다. 그런데 한씨의 신원을 컴퓨터로 조회하던 경찰이 대뜸 그러더란다. “당신, 노조 간부구먼?” 노태우 정부 때였다. 노동운동 하는 사람은 불법으로 연행하던 시대다. 이런 말은 은근한 위협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한씨는 분했다. “노조 간부라는 것이 범법 사실도 아닌데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1988522일치에 실린 기사다. 창간 직후부터 <한겨레>는 이런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1988522일치 <한겨레>. 창간 일주일 만에 국가의 개인정보 관리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그때는 정보인권이라는 개념이 낯설었는지 국민사생활이라는 말을 썼다.

 

20만 명에게 보낸 생일카드

국가 행정전산망 사업이 막바지이던 1990. <한겨레>수집된 개인정보가 선거에 악용될일을 걱정했다. 정부는 안심하라고 했다. 무려 비밀번호'도 걸었다고 했다. 이걸로 충분할까?

개인정보를 빼돌려 선거에 쓸지 모른다는 걱정은 사실이었다. 노태우 정부 시절 여당이던 민자당의 어느 정치인은 1년 동안 지역구 유권자 20만명에게 생일축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생일카드를 받은 어린이가 가족들만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 내 생일에 축하카드를 보내줘 고맙다며 답장을 쓴 일도 있다. 그 편지를 또 지역의 민자당 당원끼리 모여 낭독하고 감격했다고 한다. 지금 보면 당황스럽다. 개인정보를 털린 쪽도 가져다 쓴 쪽도 이 상황을 지켜본 사람들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199235일치 <한겨레>에 난 기사다. 그때 여당 정치인들은 개인정보를 어디서 얻었을까? 혹시 국가전산망을 통해? 서울시 공무원의 답변이 실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잘라 말하면서도 일선 행정기관에서 흘러나왔을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199235일치 기사는 민자당 후보들이 국가전산망에 오른 유권자 개인정보를 빼돌린다는 의혹을 파헤쳤다. 개인정보 일부는 디스크에 담겨 야권 정치인에게 1천만원 넘는 가격에 판매되기도 했다나.

 

정부가 개인정보를 소중히 다뤄야 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런데 1996년에 정부는 전자주민카드를 도입하려 들었다. 개인정보 42가지를 전자칩에 담겠다고 했다. 이것만도 아슬아슬한데 한술 더 떴다. 이 칩을 카드로 만들어 나눠줄 테니 주민등록증 대신 언제나 들고 다니라고 했다. 이런저런 사고가 터지던 김영삼 정부 막판이었다. 안기부가 이 사업에 공을 들였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사람들은 화가 났다. “이른바 선진국들이 그 효용을 모르거나 기술이 부족해 전자주민카드를 도입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1996107일치 <한겨레>에 실린 변호사 김기중의 글이다. 전자주민카드 반대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정부 관계자는 행정의 효율과 편리성을 높여줄 전자카드에 대해 이렇게까지 반발할 줄은 몰랐다며 당황했다.(19961125일치) 이듬해 12월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이 승리했다. 새 정부는 전자주민카드 사업을 접었다.

 

조순이 길게 출력한 종이

한겨레신문사의 옛 자료를 훑던 중 나는 흥미로운 사진을 발견했다. 그때 서울시장이던 조순이 출력한 종이를 보며 설명을 듣는 장면이다. 무슨 일일까? 1996515일에 서울시청에서 전자주민카드 시연회가 있었다고 한다. 여러 자료를 비교해보니 그 행사를 찍은 사진 같다. 그때만 해도 전자주민카드 문제가 얼마나 뜨거운 논쟁을 몰고 올지 몰랐기 때문에, 행사도 사진도 기사화되지 않고 묻혔던 것이다.

 

 

 

 

유창하 기자가 찍었지만 공개되지 않았던 1996515일의 전자주민카드 시연회 사진이다. 조순의 개인정보를 담은 카드를 만든 다음 관계자들이 보는 앞에서 휴대용 단말기로 출력해 보였다. 조순의 표정이 눈길을 끈다. “내 개인정보로 무슨 짓을 했느냐고 묻는 듯하다.

 

개인정보를 악용하면 사람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19972월에는 이한영 암살 사건이 터졌다. 북한에서 망명한 고위층 인사였는데 아파트 복도에서 권총에 맞아 숨졌다. 이런 일이 있을까봐 이한영은 나름 조심을 했다. 이름도 바꾸고 신분도 새로 만들고 성형수술도 하고 이사도 자주 다녔다. 그런데 사건이 터지기 며칠 전에 이한영의 개인정보를 알아봐달라고 심부름센터에 의뢰한 사람이 있었다. <한겨레> 31일치 기사를 보면 심부름센터는 경찰전산망을 통해 이한영의 정보를 뽑아냈다고 한다.

 

한편 심부름센터에 수고비를 부치는 남자의 모습이 은행의 폐회로(폐쇄회로)텔레비전 카메라에 잡혔다. 안기부는 이 자료를 경찰에 넘겼고, 경찰은 이 남자의 사진을 전단으로 만들어 전국에 뿌렸다. 범인은 잡지 못했지만, 범행도 수사도 옛날에는 상상할 수 없던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이한영 사건은 폐회로텔레비전 화면 속 한 장면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다.

 

 

 

 

이종근 기자가 구한 폐회로(폐쇄회로)텔레비전 화면 사진이 &lt;한겨레&gt; 1997228일치에 실렸다. 그러나 이한영을 죽인 범인은 잡지 못했다. 224일치 기사에 따르면 폐쇄회로 화면 사진이 쓸 만한 단서였다면 안기부가 경찰에게 넘기지 않고 자기들이 결판을 냈을 것이라며 경찰 일부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종근 기자가 구한 폐회로(폐쇄회로)텔레비전 화면 사진이 <한겨레> 1997228일치에 실렸다. 그러나 이한영을 죽인 범인은 잡지 못했다. 224일치 기사에 따르면 폐쇄회로 화면 사진이 쓸 만한 단서였다면 안기부가 경찰에게 넘기지 않고 자기들이 결판을 냈을 것이라며 경찰 일부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선거와 개인정보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자. 1998년의 일이다. 그때 선거법에 따르면 후보자는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선거인명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선거운동이 끝나고 이 명부를 세운상가 같은 곳에 되파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세운상가 개인정보 판매시장안에서도 선거인명부는 값이 비싼 상품이다.” 주민등록번호가 함께 나오기 때문이다. 통신판매업자가 이 정보를 돈을 많이 주고 사간다고 했다. <한겨레> 63일치 기사다.

 

상품으로 둔갑한 선거인명부

1992년에는 공무원이 우리 개인정보를 가져다 정치인에게 넘겼다. 선거를 이기기 위해서였다.(적어도 그랬다는 의혹을 받았다.) 1998년의 상황은 그때와 닮았지만 다르다. “선거운동을 돕기 위해 건네준 선거인명부가 엉뚱하게 상품으로 둔갑한다. 비싼 값을 치르고 우리 개인정보를 사가는 쪽은 통신판매업자다. 더 큰 돈을 벌고 싶어서다.

 

 

 

 

주소와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가 담긴 선거인명부 사본이다. 여기 전화번호를 추가하면 통신판매업체가 반기는 완벽한상품이 되어 비싸게 팔렸다고 한다. 이정용 기자가 찍은 사진이 199863일치에 실렸다.

 

국가가 어느 정도의 개인정보를 관리해야 좋을까? 의견이 엇갈리는 주제다. 정답이 없는 문제라는 뜻이다. 1999년에는 새 주민등록증으로 사람들 의견이 갈렸다. 한동안 지문 날인을 거부하며 버틴 사람도 있다.(나도 그러다가 관공서에 불려가 한바탕 싫은 말을 들어야 했다.) 반면 자기 정보를 달갑게 국가에 넘기고 순순히 새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은 사람도 많았다. 전자주민카드 때처럼 의견이 하나로 모이지는 않았다.

 

2003년에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문제가 터졌다. 줄여서 네이스’(NEIS)라는 이름이 익숙할 것이다. 아니, ‘나이스라는 이름이 귀에 익은 분도 있다.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그 이름조차 다르게 불렀기 때문이다. “네이스족과 나이스족, 어족이 있다. 두 집단의 언어장벽은 깊고도 높다.” <한겨레>2003611일치 칼럼에서 꼬집었다. 찬반 양쪽이 더 많은 대화를 나누길 바라는 뜻에서였다.

 

20041월에는 주민등록증 발급 과정에서 지문찍기를 거부한 청소년의 사연이 <한겨레>에 실렸다. 반면 312일치 <한겨레>에 보내온 독자의 글도 눈길을 끈다. “나는 과학수사반에 근무하는 경찰공무원이다. 변사자의 시신에서 지문을 채취해 신원을 확인한 뒤, 애타게 기다리던 유족에게 차가운 시신이나마 인도하면 고맙다는 인사말을 듣는다.”

 

 

 

 

네이스에 반대하는 중학교 교사가 200369일에 정보인권에 대한 토론 수업을 진행했다. 기자들이 취재하러 오자 이 학교 교감이 기자들을 막아섰다. 교감은 찬성파였다. 표정에 드러난 분한 감정이 무시무시하다. 이정우 기자가 찍었다.

 

청테이프로 가린 국회 카메라

세상은 변했다. 내 개인정보를 더 간절히 원하는 곳은 이제 국가가 아니라 기업이었다. 정보가 돈이 되는 세상이 열렸기 때문이다. 인터넷업체들은 내 개인정보를 달라고 했다. 대신 당장 혜택을 주겠다고 했다. 편하고 안전하고 돈도 벌게 해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많이 있을까. 하지만 내 개인정보를 가져다 어디에 쓰려는지

 

내가 모른다는 점은 문제다.

1999824일치 기사에 소개된 회사원 김영만의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머리가 빠져 걱정이었단다. 그래서 대머리 관련 정보를 검색했다. 그랬더니 대머리 예방약을 선전하는 전자우편이 오더라나.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그런데 출산을 앞둔 아내한테 육아용품을 선전하는 메일이 자주 오자 김영만은 섬뜩함을 느꼈다. “말이 좋아 맞춤 서비스지 자신의 신상정보들이 어떻게 이용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당신의 정보 안전합니까.” 1999824일치 &lt;한겨레&gt; 기사의 제목이다. 다음 문장을 읽고 나는 놀랐다. “인터넷 업체의 가장 큰 자산은 회원들의 개인정보다.” 20년 전에도 우리는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인터넷 이용자가 개인정보를 입력하는 장면을 김봉규 기자가 찍었다.

 

당신의 정보 안전합니까.” 1999824일치 <한겨레> 기사의 제목이다. 다음 문장을 읽고 나는 놀랐다. “인터넷 업체의 가장 큰 자산은 회원들의 개인정보다.” 20년 전에도 우리는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인터넷 이용자가 개인정보를 입력하는 장면을 김봉규 기자가 찍었다.

 

편한 만큼 위험하다. 개인정보를 넘길수록 내가 받을 혜택도 늘지만 무언가 잘못될 위험도 커진다. 폐회로텔레비전은 좋은 예다. 처음에는 우리 모두 폐회로텔레비전을 좋아했다. 도둑 잡을 때 더없이 편리한 도구였다. <한겨레> 199272일치 기사는 폐쇄회로텔레비전 카메라가 더 많이 설치되어야 한다는 경찰의 주장을 전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도구는 평범한 사람을 감시할 때도 쓰이게 되었다. “회사가 당신을 감시하고 있다.” <한겨레> 19991014일치 기사의 제목이다.

 

20053월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김문수와 이재오 등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장을 점거했다. 여야가 합의한 법안을 뒤집겠다고 나선 점도 문제지만, 회의장을 점거한 뒤 의자를 쌓고 올라가 카메라부터 청테이프로 둘둘 말아놓은 일 때문에 더 빈축을 샀다. 카메라 렌즈를 가리는 일이 나쁜 짓을 하겠다는 뻔뻔한 신호로 받아들여진 지 오래되었으니 말이다. 옛날에는 양심 앞에 떳떳한가물었다.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은 카메라 앞에 떳떳한가묻는다.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폐회로텔레비전이 늘면 우리는 그만큼 더 착해지는 걸까? 모르겠다.

 

 

 

 

<한겨레21> 2005315일치에 실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장의 사진엔 흥미로운 사연이 있다. 김문수와 이재오 등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이 카메라에 청테이프를 두르고 문에 못질까지 하는 모습을 보며, 어떤 국회 직원이 화가 났다. 청테이프 감긴 카메라를 사진 찍어 한겨레신문사로 보냈다. 데이터베이스에는 촬영자 이름이 독자 제보로 등록되어 있다.

 

폐회로텔레비전은 독인가 약인가

폐회로텔레비전은 인권을 침해하기도 하고 지켜주기도 한다. 2009년부터 이듬해까지, 서울 양천경찰서는 절도 행위를 자백받겠다며 피의자 20여명을 고문했다. 재갈을 물린 채 머리를 밟거나 수갑을 채운 채 팔을 꺾었다. 뼈가 부러지고 보철한 이빨이 깨지기도 했다. “카메라 방향이 천장 쪽으로 올라가 사무실에 사각지대가 있다.” 그 사각지대에 긴 의자를 놓고 피의자들을 두들겨 팼다고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로 밝힌 사실이다. <한겨레> 2010617일치에 크게 실렸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공한 양천경찰서 폐회로텔레비전 사진이다. 사각지대를 만들기 위해 천장을 향해 카메라를 들었다. 이 사건에는 씁쓸한 뒷이야기가 있다. 201259일치에는 예전의 절도 습관을 버리지 못해고문 피해자 두명이 또 도둑질을 하다 잡혀갔다고 했다. 기사 제목은 빈집털이범 잡고 보니 양천서 고문' 피해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공한 양천경찰서 폐회로텔레비전 사진이다. 사각지대를 만들기 위해 천장을 향해 카메라를 들었다. 이 사건에는 씁쓸한 뒷이야기가 있다. 201259일치에는 예전의 절도 습관을 버리지 못해고문 피해자 두명이 또 도둑질을 하다 잡혀갔다고 했다. 기사 제목은 빈집털이범 잡고 보니 양천서 고문' 피해자”.

 

그렇다면 폐회로텔레비전은 약인가 독인가? 질문 자체가 잘못일지도 모른다. 폐회로텔레비전 없는 한국 사회는 이제 상상하기 어렵다. 누구나 동의할 답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다만 토론을 많이 하는 일은 좋을 것이다. “폐쇄회로텔레비전을 학교에 설치할지의 여부도 훌륭한 디베이트의 논제다.” <한겨레> 2012618일치 교육면에 실린 황연성 교사의 디베이트 정복에 나온 토론 주제다.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은행이나 대형마트를 예로 들었다고 하자. 이때 반대편은 교내 설치 여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대형마트와 은행은 사례로 적절하지 않다고 반박해야 한다.” 디베이트 수업을 설명하는 예지만 폐회로를 둘러싼 논쟁으로도 적절해 보인다.

 

 

 

 

황연성 교사의 디베이트 정복’ 2012618일치에 함께 실린 사진이다. 원래 서울 전곡초등학교 선생님들이 학교 안에서 폭력이나 납치 사건이 일어나지 않나교무실에 설치된 폐회로텔레비전을 살펴보는 모습이었다. 좋다 나쁘다 이야기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이종근 기자가 찍었다.

 

섬뜩한 상상

2010년에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프라이버시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했다. 2019121일치 <한겨레>에 안드레아스 와이겐드의 인터뷰가 실렸다. “정보권력의 균형이 개인이 아니라 회사나 국가 같은 큰 집단으로 이동하고 있다. 우리의 모든 정보가 수집당한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개인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얻는 편리함은 크다. 커도 너무 크다. 처음 소개한 1988년의 일화를 다시 살펴보자. 한씨는 왜 굳이 파출소에 가 기분 나쁜 일을 겪었는가? 그때는 서류를 하나 떼려 해도 관공서를 하나하나 발품 팔고 다녀야 했다. 지금은 어떤가. 온갖 업무를 앉은 자리에서 해결하는 편한 세상이 되었다. 그러다 가끔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오면 나는 섬뜩한 상상을 한다. 어디서 누가 내 개인정보로 무슨 일을 벌이는지에 대해, 과연 나는 얼마나 알고 있나?

 

 

 

 

<포스트 프라이버시 경제>의 지은이 안드레아스 와이겐드가 한국을 찾았다. <한겨레>의 구본권 기자가 인터뷰했다.

 

한국 사회에서 정보인권 운동에 앞장선 진보네트워크센터가 2018년에 스무돌을 맞았다. “사려 깊고 열정적인 당신이 세상을 바꿉니다가 창립 때 캐치프레이즈였다. 오병일 대표의 인터뷰가 <한겨레> 2019227일치에 실렸다.

 

 

 

 

최근 데이터 3법이 통과되었다. 기업 쪽의 여론조사 결과가 시민단체의 것과 반대로 나왔다. 민감한 주제다 보니 질문이 어떠하냐에 따라 전혀 다른 답이 나올 수 있다. 설문 문항을 밝히라는 요청을 받자 기업 쪽은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도대체 어땠길래? 2020519일치 &lt;한겨레&gt;에 실린 인포그래픽이다.

 

 

 

 

최근 데이터 3법이 통과되었다. 기업 쪽의 여론조사 결과가 시민단체의 것과 반대로 나왔다. 민감한 주제다 보니 질문이 어떠하냐에 따라 전혀 다른 답이 나올 수 있다. 설문 문항을 밝히라는 요청을 받자 기업 쪽은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도대체 어땠길래? 2020519일치 <한겨레>에 실린 인포그래픽이다.

해설자 4화 해설자인 김태권 작가는 만화가입니다

 

토지 사유화냐, 토지공개념이냐...기로에 선 중국

[기고] 중국 민법전의 도시 주택용지 자동연장조항, 어떻게 볼 것인가?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매년 3월에 성대하게 진행되던 중국의 양회가 올해는 5월로 연기되어 진행되었다. 홍콩 민주화운동을 잠재우기 위한 홍콩 국가안전법이 통과되면서 국내외에 큰 논란을 가져왔다.

 

양회 마지막 날에는 전인대에서 민법전(民法典) 초안이 통과됐다. 한국의 일부 언론사들은 특히 주택용지 자동 연장 규정을 기사화했다. <연합뉴스>"땅 없는 중국 아파트, 70년 후에 또 '땅 사용료'"(2020.6.1.)가 대표적이다. <연합뉴스>는 이 기사를 통해, 주택용지가 자동 연장될 때 토지사용료 납부는 어떻게 되는지 관련 규정을 조속히 마련하여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이와는 조금 다른 접근법으로, <주간조선>은 민법전 통과 이전에 "부동산 부자 천국 중국을 통해 본 토지공개념의 환상"(2607, 2020.05.11.)이라는 기사를 통해 중국의 토지공개념이 얼마나 무력한지, 그리고 현재 베이징 등 주요 도시의 아파트 가격이 얼마나 비싼지 등을 이야기했다.

 

두 기사가 다룬 주제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자기가 보고 싶은 부분만 보고 있다. 마치 동전의 양면이 서로를 볼 수 없는 것처럼. 여하튼 시점과 관점이 다른 두 기사를 종합하면, 중국 시민의 인식체계 속에서 주택용지 자동 연장은 주택용지 소유권의 실질적인 사유화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자동 연장 시 토지사용료 납부 수준이 낮게 설정된다면 중국의 토지공개념은 정말로 환상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이다.

 

토지사용료 재 납부 논쟁과 원저우시 사례

2020528일 제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3차 회의에서 통과된 민법전은 총칙, 물권, 계약, 인격권, 혼인가정, 상속, 권리침해 책임 등 총 7편에 걸쳐 1260개 조항으로 구성됐다. 민법전은 제1편인 총칙 이후 제2편에 물권을 배치하고 그 안에 다음과 같이 주택용지 자동 연장 규정을 두었다: "주택건설용지사용권 기한이 도래하면 자동으로 연장된다. 연장 비용의 납부 또는 감면은 법률, 행정법규 규정에 따라 처리한다(359)."

 

사실 이 규정은 기존의 물권법(2007)이 규정하던 내용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심지어 한국 언론이 주목한 토지사용료 재 납부 여부가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기존 물권법의 한계를 그대로 가져왔다. 다만 주거권(居住权)을 새롭게 규정했다는 점, 그리고 일부 전문가들이 언급하듯이 이러한 흐름이 부동산세 도입으로 이어진다면 민법전에 담긴 물권편은 기존 물권법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중국의 현행법과 새로 제정된 민법전은 동일하게 도시 주택용지 자동 연장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런데 농촌의 집체소유 토지에서 발생하는 토지승포경영권도 30년 기한이 지나면 자동 연장된다. 중국 공산당은 농지와 도시 주택용지처럼 일반 대중의 이해와 밀접하게 관련된 토지에 자동 연장 규정을 둔 것이다. 자동 연장 규정이 없는 용도의 토지는 정부와 재계약을 맺어야 한다. 상업용지도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토지사용권을 재연장할 때 출양금을 다시 납부해야 한다. 출양금은 전체 토지사용 기간에 대해 납부하는 일시불 토지사용료다.

 

주택용지 자동연장 시 토지사용료 납부 선례가 있다. 원저우시 사례다. 2016년 중국 저장성 원저우시가 실험 차원에서 출양방식으로 공급한 20년 기한의 주택용지 사용권이 만기가 도래했다. 지방정부가 처음에 매매가의 45%에 해당하는 30만 위안(한화 5000만 원 수준)의 토지사용료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것이 문제가 되었다. 이 사례는 곧바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고 중앙정부도 관료와 전문가를 파견하여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했다. 이후 재산권자는 '출양계약 수속을 하지 않고', '출양금을 납부하지 않고', '정상적인 등기를 통해'(两不一正常) 토지사용권을 연장해주었다. 맥락을 조금 더 살펴보면, 물권법에서 주택용지 자동연장은 규정했지만 토지사용료 납부 규정을 마련하고 있지 않아 관련 규정이 마련될 때까지 과도기적으로 무상 연장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그래서 부동산등기부 상에 토지사용권 시작 및 종료 시점이 명시되지 않았다.

 

원저우시가 매매가의 45%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것은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바로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이자 최초로 토지사용권 양도 실험을 전개한 선전시 사례이다. 19808월에 선전경제특구가 설립되고 20년 기한의 토지사용권을 양도했는데, 이것이 2000년에 만기가 도래했다. 이 사안에 대해 선전은 '선전시 만기도래 부동산 계약연장에 관한 규정'을 제정(2004.4.23.)하고, 만기 토지에 대해 토지출양금 납부를 원칙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납부 금액은 당시 기준지가의 35%로 정했다(규정 제3).

 

주택용지 자동연장의 사회적 리스크

도시민의 주거불안이라는 사회적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선택한 주택용지 자동 연장 방안은 사실 더 큰 사회적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주택용지 자동연장이 초래할 수 있는 리스크는 크게 다음의 몇 가지로 제시할 수 있다.

 

첫째, 자동 연장으로 인해 시민은 토지가 포함된 주택 전체가 개인 소유라고 인식하게 된다. 실질적인 토지사유화 경향이 강화된다.

 

둘째, 아직 규정되지 않은 토지사용료 납부 규정이 만약 원칙대로 토지출양금 재 납부로 정리된다면 그 규모를 떠나서 일반가구에 끼치는 경제적 부담이 매우 클 것이다. 주택용지 사용기한이 70년인 베이징의 주택가격이 주택용지 사용기한이 영구적인 서울보다 더 비싼 상황만 보아도 예측 가능하다.

 

셋째, 가구 부담을 고려하여 낮은 수준의 토지출양금을 부과하게 되면 부동산 불로소득 사유화를 허용하게 되어 부동산 투기가 강화된다.

 

넷째, 부동산 투기경제는 결국 빈부격차를 확대하여 더 심각한 사회문제를 가져온다. 그렇게 되면 홍콩의 토지공급 체계 및 부동산 개발모델을 차용한 중국은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남의 일처럼 여길 수 없게 될 것이다.

 

다섯째, 이러한 구조적 리스크가 확대 재생산되면 중국 역시 부동산 거품붕괴로 인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이미 그 조짐을 빈부격차 확대, 은행의 파산 확대, 지방정부 부채 증가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원칙에 충실한 해결방안 모색

원저우시 논쟁에 대해 중국 학계는 그 해결책으로 부동산 완전 소유화, 토지사용권 무상 연장, 1년마다 계약 갱신 등을 제시했다. 그밖에 재연장을 하더라도 적정 수준의 세금을 매년 납부하는 식으로 해결하자는 주장도 있다.

 

토지공급 체계의 중심으로 삼고 있는 토지출양제가 여러 부작용을 초래하면서, 토지를 국가가 소유 및 관리하는 중국 역시 올바른 토지정책을 구사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방향 선회의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토지는 중국의 헌법 규정이 아니더라도, 공동의 자원(commons)이다. 토지에 대한 철학적 사고와 정책설계는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공급이 한정된 토지자원을 어떻게 하면 특권을 배제하면서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19세기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헨리 조지는 그의 저서 <진보와 빈곤>을 통해 토지문제의 사회적 매커니즘과 해결책을 제시했다. 헨리 조지는 원론적으로 토지를 공유로 돌리고, 사용자에게 안정적인 토지사용권을 부여하되 적정 지대를 사회 전체에 납부하여 공동재원으로 쓰자고 제안했다. 이러한 제도를 '공공토지임대제'라고 부른다(조성찬, 2019). 그리고 토지가 이미 사유화된 곳에서는 토지보유세를 부과하자고 제안했다. 이러한 제도를 '지대조세제' 또는 '토지가치세제'라고 부른다(김윤상, 2011).

 

중국이 미약한 수준으로 시행하고 있는 토지연조제와 도시토지사용세(또는 실험중인 부동산세)는 헨리 조지의 이론에 부합하는 방식이다. 모두 토지 보유에 대해 매년 지대를 납부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다만 토지연조제는 토지출양제와 같은 차원의 토지공급 방식이고, 도시토지사용세는 출양 방식으로 공급된 토지 보유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이다. 중국이 실행하고 있는 제도에 기초하여 주택용지 자동연장이 가져올 사회적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주택용지 재연장시 토지사용료를 일시에 지불하는 출양제 방식을 종료하고 매년 납부하는 연조제 방식으로 재계약한다. 이렇게 하면 자동연장의 효과를 그대로 누릴 수 있으며, 일시에 큰 금액을 납부해야 하는 출양금 부담도 줄일 수 있다. 게다가 매년 상승하는 토지가치를 적정하게 환수함으로써 부동산 투기도 막고 지방정부 재원도 확충할 수 있다. 자동연장이 실질적인 토지사유화라는 인식 확산도 차단할 수 있다.

 

기존 출양제 방식으로 공급되어 사용 중인 토지는 기한이 만료되기 전까지 도시토지사용세를 강화하여 적용한다. 중국 정부가 2003년부터 도입하려던 부동산세의 도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기존의 도시토지사용세를 강화하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법이다.

 

토지에서 발생하는 재원을 기본소득으로 나눠준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홍콩이 개인들에게 재난지원금을 나눠준 것처럼, 중국도 토지 재원과 기본소득을 결합하여 건강한 이해관계자를 형성하는 것이 앞에서 제시한 토지연조제로의 전환과 도시토지사용세 강화를 뒷받침하는 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

 

토지특권의 일상화를 막아야

현재 중국의 정치와 경제 모두 특권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그리고 경제적 특권의 기초에는, 앨리스 푼(Alice Poon)이 자신의 저서 <홍콩의 토지 특권(Land and Ruling Class in Hong Kong)>에서 언급했듯이, 토지 특권이 자리한다. 이러한 현실은 중국이 사회주의 혁명과 토지개혁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중국의 민법전이 규정한 주택용지 자동 연장은 다른 조치가 수반되지 않는 한, 토지특권의 일상화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정치구조는 물론 경제구조에서 특권의 일상화와 영속화를 막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 중국은 헨리 조지에게서 영감을 받은 쑨원의 평균지권(平均地權) 사상을 복기하고 이를 바람직한 정책으로 구체화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조성찬 하나누리 동북아연구원/프레시안

 

좌파 기본소득·우파 기본소득을 모두 반박한다

[복지국가 SOCIETY] 4차 산업혁명시대의 일자리 감소, 기본소득이 대안인가?

여의도 정치권에 기본소득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기본소득은 지금까지 어느 나라에서도 실시된 적이 없지만 짧게는 60, 길게는 170년이나 된 오래된 담론이다. 최근 일부 옹호자들은 사람들의 뇌리에 기본소득을 각인시키기 위해 코로나19 사태라는 위기 상황의 타개를 위해 지급된 재난지원금을 '재난기본소득'이라고 명명했다. 진실의 왜곡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 유령은 곧 닥쳐올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일자리 불안 등을 과장하며 마치 자신이 유능한 해법이나 되는 것처럼 사람들을 현혹한다. 복지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에 불과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사회보장의 실질적 보편주의 달성을 위해 전력 질주를 해야 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일부 정치권과 언론들은 이 실체 없는 유령에 정신이 팔려 있다.

 

이재명, 김세연, 김종인, 안철수 그리고 민주당의 태도

기본소득이라는 정치적 유령을 여의도 정치권으로 불러들인 사람은 이재명 경기지사다. 지난 2017년 대선 직전부터 당시 성남 시장이던 이재명 지사는 기본소득을 자신의 정치적 의제로 삼았다. 당시에는 당내 대선 경선에 나섰음에도 기본소득을 정치적으로 크게 확산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이 지사는 경기도 행정 권력을 기반으로 기본소득을 정치적으로 확산해 나갔고,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재난을 기회 삼아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기본소득을 전국적으로 알리는 데 성공했다. 재난 위기와 4차 산업혁명시대라는 미래의 불확실성 담론을 틈타 이 실체 없는 유령이 여의도에 상륙한 것이다.

 

보수야당도 예외가 아니다. 미래통합당 김세연 전 의원은 지난 달 <경향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의 보수가 집중해야 할 과제로 기본소득을 꼽았다. 그는 "장차 4차 산업혁명으로 줄어들 일자리와 소득을 기본소득으로 채울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이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전 의원은 "정부의 규모와 기능이 줄어들 것이므로 정부 지출이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기본소득을 도입하고 노동과 복지 시스템의 큰 틀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의 노동·복지 등 정부 재정의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한 재원으로 기본소득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으로 해석된다.

 

63,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은 초선 의원 강연에서 "실질적인 자유를 이 당이 어떻게 구현해내느냐,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실질적 자유'를 두고, 여야 정치권은 기본소득 논의를 사실상 공식화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실질적 자유'가 기본소득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같은 당 조해진 의원과 성일종 의원 등도 기본소득을 연구하거나 입법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529일 열린 미래통합당 당선인 총회에서도 "기본소득 도입을 논의하자"는 요구가 나왔다. 3040 조직위원장들의 모임인 '젊은미래당'은 기본소득 논의를 경제·노동·복지 정책의 리모델링 기회로 삼자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64, 김종인 위원장은 비대위 회의에서 마침내 "기본소득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이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한국형 기본소득(K-기본소득) 도입 방안을 집중적으로 검토해나갈 것을 제안했다. '(n)분의 1' 논리에서 탈피해 전 생애주기의 한국형 복지모형을 설계하자는 주장이다. 같은 날, 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김종인 대표의 실질적·물질적 자유 언급을 기본소득 도입의 공식화로 간주하면서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여··정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증세 논의를 하자"고 제안했다. 이 의원은 통합당 대표가 기본소득을 들고 나왔으므로 본격적 논쟁이 일 것으로 전망했던 것이다. 한편, 민주당 지도부는 공식적으로 기본소득 도입을 언급하진 않고 있다. 일부 의원을 제외한 대다수 의원들이나 당 차원의 공식적인 움직임은 유보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바로 그날 오후, 김종인 위원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보편적 기본소득 지급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오전에 비해 말의 기조가 크게 바뀐 것이다. 여기서 그는 "기본소득 지급은 한시적으로 할 수는 없고 지속 가능해야 한다"면서 "이 때문에 적자 재정 상황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건 환상일 뿐 상당히 요원한 얘기"라고 말했다. 심지어 김 위원장은 간담회 도중에 돌연 "자신이 언제 기본소득을 주장했느냐. 기본소득을 주장한 적 없다"고 말하는 등 다소 모호한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다.

 

최근 여의도에 상륙한 기본소득은 그야말로 실체 없는 유령처럼 종잡을 수 없다. 김종인 위원장이 이렇게 말을 바꾼 것은 기본소득 언급을 통해 정치적 관심을 끌고 난 후에는 오히려 이 의제를 호주머니에 넣어 두는 게 정치적으로 더 이롭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우파 기본소득' 자체의 정당성 논리에도 불구하고 기본소득 논의가 본격화했을 때 미래통합당 내부의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부 재정을 구조조정 한다고 해도 일부 증세는 불가피할 것이고, 막상 논의가 시작되면 기존 복지의 축소와 증세에 따른 반발을 보수정당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65, 이재명 지사는 확산이 주춤하던 이 유령을 더 강력하게 호출하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증세나 재정건전성 훼손 없이 기본소득 도입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첫해에 연 20만 원으로 시작해 매년 조금씩 증액하여 수년 내에 연 50만 원까지 만들면 연간 재정 부담은 10~25조 원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일반회계예산 조정으로 이 재원을 만들 수 있으므로 증세 없이 기본소득을 도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럴 경우 5200만 국민에게 매달 나눠줄 현금이 푼돈이라는 게 문제다. 그에 따르면 첫해엔 월 16000원씩 나눠줄 수 있고, 수년이 지나서도 지급액은 월 4만 원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후에는 증세를 하자는 것이므로 '증세 없는 기본소득'은 여기까지로 국한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기본소득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질적 자유'를 위한 기본소득 제도의 핵심 내용

지난 수개월 동안 정명(正名)이 아닌 '재난기본소득'이란 용어가 정치적 목적으로 버젓이 확산됐고, 언론과 방송 등을 통해 전국적으로 빈번하게 언급됐다. 이재명 지사 등이 '재난기본소득'이란 왜곡된 용어의 확산을 통해 달성하려는 목표는 상당부분 관철됐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우호적인 이미지로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재난 상황에서 국민의 귀에 익숙해진 기본소득이란 말은 '기본적으로 복지에 더해 서민의 생계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소득까지 보장해주는' 좋은 어떤 것으로 간주될 개연성이 크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이런 식의 일반명사가 아니다. 기본소득은 특정한 실질에 상응하는 고유한 명칭이고, '실질적 자유의 세계'를 구현하겠다는 철학과 비전을 가진 오래된 담론이다.

 

그렇다면, 고유한 담론의 명칭인 기본소득 제도는 어떤 실질을 포함하고 있을까. 다섯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보편성이다. 자산조사 없이 소득과 재산이 많든 적든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현금을 지급한다. 둘째, 무조건성이다. 근로 등의 조건이나 심사 없이 모두에게 지급한다. 셋째, 개별성이다. 가구 단위가 아니라 각 개인에게 지급한다. 넷째, 정기성이다. 매달 지속적으로 지급한다. 다섯째, 충분성이다.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충분한 현금을 지급한다. 이런 특성들을 모두 갖출 때라야 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이 허락된다. 기본소득 제도의 주창자들에 의하면, 여기서 하나라도 빠질 경우 기본소득이 아니다.

 

이들 요건 중에서 둘째와 다섯째를 주목해보자. 둘째 요건인 '무조건성'은 생산연령인구 모두에게 소득수준·고용상태·근로의사 등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동일 금액을 지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산연령인구의 일부 그룹(청년, 농민 등)에만 현금을 지급하는 것은 기본소득이 아니다. 다섯째 요건인 충분성은 '완전기본소득'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이다. 완전기본소득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25%를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줘야 한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2000조 원으로 간주하면, 이것의 25%500조 원이다. 이것을 5200만 국민에게 똑같이 나눠주면 월 80만 원이 된다. 이는 국민기초생활보장의 현금 급여인 1인 가구의 생계급여(52.7만 원)와 주거급여(서울 26.6만 원, 광역시 17.9만 원)를 합한 금액과 비슷하다.

 

기본소득의 충분성 요건을 갖추려면, 우리나라에서는 국민 모두에게 매달 80만 원(1인당 GDP25%)씩 지급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중앙정부 재정 규모가 연간 512조 원임을 감안할 때, GDP25%500조 원을 추가로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현실적인 재원 마련의 어려움을 감안해 기본소득 옹호자들은 완전기본소득으로 가기 위한 중간 전략으로 1인당 GDP10~15%를 지급하는 부분기본소득을 제기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민 모두에게 매달 32~48만 원을 지급하면 부분기본소득이 성립된다. 32만 원을 지급하려면 GDP10%200조 원이, 48만 원을 지급하려면 GDP15%300조 원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부분기본소득 제도를 실시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정부 재정 200조 원은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우선은 증세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현재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GDP20%이다. 그리고 OECD의 평균 조세부담률은 25%이다. 우리나라가 장차 OECD 평균 수준의 조세부담률을 목표로 삼는다면, 우리나라의 가능한 증세 여력은 GDP5%포인트인 100조 원인 셈이다. 32만 원짜리 부분기본소득을 실시할 경우, 최종적으로 100조 원의 증세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추가적으로 100조 원이 더 필요하다. 만약, 증세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월 32만 원짜리 부분기본소득 재원 200조 원 모두를 기존 정부 재정의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보편적 복지인가?

많은 분들이 기본소득을 보편적 복지라고 오해한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앞서 언급한 기본소득의 핵심 요건 5가지 중의 첫 번째가 '보편성'인데, 이것으로 인해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다. 기본소득의 보편성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현금을 지급한다는 의미일 뿐이고, 기본소득은 성격상 보편적 복지(사회보장)와 무관하다. 그렇다면 보편적 복지는 무엇인가? 보편적 복지는 자산조사로 가난한 국민을 선별해 복지를 제공하는 선별적 복지와 구분되는 개념으로 국민 모두에게 일생에 걸쳐 소득과 사회서비스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말한다. , 보편적 복지는 일생에 걸친 소득 보장과 사회서비스 보장을 의미한다. 보편적 복지의 '소득 보장'에는 사회보험과 사회수당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존재한다.

 

첫째, 사회보험이다. 사람은 일생 동안 돈이 필요하고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정부는 완전고용을 위해 노력한다. 그럼에도 기업이나 산업의 구조조정으로 실업자가 되거나 기타 여러 사정으로 인해 소득이 단절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위험에 대처하는 제도적 장치가 사회보험이다. 산업재해로 인한 소득 단절에 대해서는 산재보험이 작동한다. 해고와 실업의 경우에는 고용보험이, 질병으로 인한 소득 단절에는 질병보험이, 노령과 은퇴로 인한 소득 단절엔 국민연금이 작동한다. 이것이 공적 소득보장 제도인 4대 사회보험이다. 여기서 실질적 보편주의 원칙이 중요하다. 즉 모든 대상자를 포괄하는 보편적 가입과 적정 수준의 급여 보장성(소득대체율)을 핵심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복지국가들은 실질적 보편주의 원칙에 따라 여기에 모든 국민을 포괄하고 적정 소득대체율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둘째, 사회수당이다. 보편적 복지의 소득 보장 장치에 속하는 사회수당이 사회보험과 다른 점은 평소에 보험료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달 보험료를 강제로 내야 하는 사회보험과 달리 사회수당은 일정한 특성을 공유한 자격이 되는 사람들 모두에게 정부가 매달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다. 사회수당 지급에 필요한 재원은 공적 보험료에 기반을 두지 않고 일반 조세에 기반을 둔 국가 재정으로부터 조달한다는 특징이 있다. 주로 인구학적으로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집단을 대상으로 삼는데, 복지국가의 공통적인 사회수당 프로그램에는 아동수당, 장애인수당, 학생수당, 노인수당 등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소득 보장 제도는 몇 가지 문제에 봉착해 있다. 첫째, 4대 사회보험은 보편주의가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이를 위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질병보험이 아예 없다. 질병으로 입원할 경우 치료비는 국민건강보험으로 63% 정도를 충당하지만 소득 단절로 인한 생계의 위협은 불가피하다. 그래서 국민 대다수는 이런 위험에 대비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다. 고용보험은 노동자의 절반 정도만을 보호한다. 비정규직·특수고용직이나 저임금 노동자의 대부분은 가입하지 않고, 자영업 종사자는 그저 임의 가입 대상일 뿐이다. 게다가 급여 보장성(소득대체율)도 낮은 편이다. 국민연금의 넒은 사각지대와 낮은 보장성 때문에 노후보장이 취약하다. 산재보험도 일부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둘째, 우리나라의 사회수당 제도는 여전히 부실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아동수당이 도입됐지만 7세 미만에게 월 10만 원만 지급하고 있다. ‘모든 아이들이 우리 모두의 아이라는 공적 의식에 근거해 다른 선진국들의 경우처럼 15세 또는 18세까지 지급 대상을 확대하고 금액도 월 15만 원 정도로 확충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장애인 수당은 보편주의가 아니라 소득조사를 통해 선별하고 있고, 학생수당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노인수당은 기초연금 형식으로 소득 하위 70% 노인들에게만 지급되고 있다. 기초연금은 지급 연령의 상향조정과 함께 지급 대상과 금액을 더 확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다음으로, 보편적 복지의 사회서비스 보장을 살펴보자. 여기에는 보육, 교육, 의료, 요양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 이들 역시 부실한 편이다. 의료는 전 국민을 포괄(보편적 가입)하고 있지만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63%에 머물고 있다. 보육도 외형적 보편주의는 달성했으나 예산의 제약으로 여전히 질이 낮은 편이다. 교육은 공교육의 위기 상황으로 인해 입시 교육 중심의 사교육 의존이 심각하다. 그래서 교육비 부담은 사교육비까지 포함해 세계 1위 수준이다. 대학생들의 학업 비용 부담도 여전히 큰 편이다. 장기요양보험은 서비스의 질뿐만 아니라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제도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다. 결국, 사회서비스도 실질적 보편주의에는 여전히 못 미친다. 정부의 재정 지원 부족 탓이다.

 

결국 보편적 복지의 부실로 인해 사람들이 필요한 복지의 큰 부분을 시장에서 취득한다. 이렇게 탈상품화 수준이 낮은 것이 외환위기 이후의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양극화와 불평등의 확대 추세와 맞물려 민생 불안을 심화했다. 그러므로 이제 보편적 복지의 확충은 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여기에 더해, 보편적 복지는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물적 조건을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제공해 주고, 기회의 실질적 평등을 보장해 주며, 경제사회적 격차를 해소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역동적 발전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보편적 복지는 '연대의 제도화'를 의미하는데, 이는 우리 모두가 '한 배를 타고 있다'는 공통의 정서를 공유하는 것이므로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의 확충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보편적 복지(사회보장). 소득 보장의 경우는 소득이 상실될 각종 사회적 위험에 처했을 때 사회보험 프로그램을 통해 충분한 수준의 실질적 지원이 이루어지고, 아동 등의 취약한 인구집단에겐 조세 기반의 보편적 사회수당이 매달 현금으로 지급된다. 그런데 기본소득은 아동이나 노인·장애인 등의 취약한 인구집단이나 사회적 위험에 처한 생산연령인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생산연령인구를 포함한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동일한 현금을 매달 지급하자고 한다. 그러므로 기본소득은 각종 사회적 위험에 처했거나 복지 필요가 발생했을 경우 소득조사를 통한 선별 없이 누구라도 실질적 보편주의 원칙에 따라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보편적 복지(사회보장)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우파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이유

우파 기본소득의 뿌리는 밀턴 프리드먼이다. 그는 1962년 마이너스 소득세(음의 소득세) 제안을 대중화했다. 그는 만약 빈곤을 경감하고 싶다면 가장 추천할만한 제도가 바로 마이너스 소득세라고 말했다. 밀턴 프리드먼은 신자유주의 산실인 시카고학파의 거두로 1980'레이거노믹스' 시대를 연 주역이다. 그는 1960~70년대를 전후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함께 복지국가 체제의 해체를 위해 노력했는데, 덩치가 커진 복지국가의 각종 복지 프로그램들을 마이너스 소득세(기본소득)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1970년을 전후로 마이너스 소득세 아이디어는 유럽에 전파됐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성향의 우파 기본소득 아이디어는 당시 유럽 사회에는 거의 수용되지 않았다.

 

우파 기본소득의 핵심은 복지국가를 대체하는 신자유주의 시장국가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자유 시장에서 초래되는 소득의 불평등은 그 자체로 빈곤 문제를 야기하고, 이로 인해 총수요 부족을 초래할 텐데, 기본소득을 제공함으로써 빈곤에 대처하고 시장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높임과 동시에 국가 복지의 해체를 통해 효율성 높은 작은 정부를 달성하자는 것이다. 우파 부분기본소득 입장인 김세연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나 우리나라의 신자유주의 정치인들은 '증세 없이' 기존의 정부 재정 512조 원 중에서 지출 구조조정으로 필요 재원 200조 원 모두를 마련하자는 쪽에 가깝다. 김종인 위원장이 갑자기 기본소득 논의에서 한 발을 빼는 것이나 김부겸 전 의원이 "국가 복지를 축소해 지급한 기본소득으로 사회보장서비스를 시장에서 구매토록 하자는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은 모두 우파 기본소득이 가지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성격 때문이다.

 

지난 30년 넘게 전 세계를 강타했던 신자유주의 광풍 속에서도 기존의 복지국가가 기본소득으로 대체된 경우는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실제로 그동안의 신자유주의가 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 성장했던 복지국가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내부경쟁 등의 방안을 강구하거나 심할 경우 일부 프로그램의 민영화를 추진하긴 했어도, 국가복지 프로그램을 기본소득으로 대체할 생각은 누구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의 일부 보수 정치권에서 이런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다. 이렇게 될 경우 국가는 주로 국민 개개인의 계좌로 기본소득을 송금하는 일을 하게 되고, 재정의 한계로 인해 국방·치안이나 기본적인 교육·의료 등만 담당하게 될 것이다. 장차 4차 산업혁명시대를 신자유주의 시장국가 방식으로 맞을 수는 없는 일이다.

 

좌파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이유

좌파 기본소득 아이디어는 역사가 길다. '공산당 선언'이 발표됐던 1848년 조제프 샤를리에는 <사회문제의 해법>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그는 여기서 최초로 진정한 의미의 기본소득을 주장했다. 전국적으로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석 달에 한 번씩 획일적인 영토배당금(기본소득)을 지불하는데, 재원은 건물의 유무를 불문하고 모든 토지를 임대하여 거기서 나오는 지대로 충당하자는 것이었다. 이런 진보적 기본소득 주장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서 국가상여금 혹은 국민배당금이라는 이름으로, 2차 세계대전 전후로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제기됐다. 하지만 전후 베버리지 보고서의 사회보장 원리가 복지국가의 전략으로 채택됨으로써 기본소득 주장은 영국에서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한편,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좌파(진보적) 기본소득 논의가 일었다. 제임스 토빈과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가 이 논의를 이끌었다. 두 사람은 197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에 출마한 조지 맥거번의 선거 캠프에 합류해 기본소득을 공약에 포함시켰다. 당시 모든 미국인 개인에게 1년에 1000달러를 한 번 지급하자는 것이었는데, 이 금액은 당시 1인당 GDP의 약 16%였다. 19727월 맥거번은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지만 8월 말 논란이 컸던 기본소득 공약을 스스로 철회하고 말았다. 이후 미국에서 진보적 기본소득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1986년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가 창립됐고, 2004년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가 성립됐다.

 

우파와 달리 좌파라고 명명한 것은 이들이 주장한 좌파 기본소득은 당대의 국가복지를 폐지하는 것 없이, 추가적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으로 이해됐기 때문이다. 이 논리를 지금 우리나라의 기본소득 논의에 대입해보면, 좌파 기본소득 옹호자들은 월 32만 원짜리 부분기본소득을 실시하는 데 필요한 재원 200조 원 중에서 100조 원은 증세를 통해 얻고, 나머지 100조 원은 정부 재정의 지출 구조조정으로 마련하자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완전이든 부분이든, 지금까지 기본소득은 어떤 나라에서도 도입된 전례가 없다. 이 담론의 긴 역사성에도 불구하고 기본소득은 지금까지 제도 정치권의 좌·우파 모두로부터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본소득은 좌우를 불문하고 실체 없는 유령일 뿐이다.

 

그럼에도 일부에서 알래스카를 기본소득 실시 사례로 드는 경우가 있다. 알래스카 배당금(기본소득) 제도는 1982년 처음 시행됐는데, 1년 이상 거주한 사람은 누구든 동일 액수의 연간 배당금을 받을 자격을 갖는다. 알래스카의 천연자원에 근거한 '알래스카 영구 펀드'의 투자 수익을 배당하는 것이므로 경제 상황에 따라 지급액이 달라진다. 지급액은 처음엔 연간 400달러 수준이었지만 2015년엔 2072달러로 높아져 당시 알래스카 1인당 GDP3%에 근접했다. 이는 부분기본소득인 GDP10~15%에 비하면 적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조차 거의 40년이 지났지만 세계의 다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알래스카가 유일무이한 사례이다. 그리고 알래스카는 하나의 지역이지 국가 단위가 아니다.

 

2016년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최초의 국가가 탄생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성사되진 않았다. 정명(正名)으로서의 기본소득 제도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가 스위스의 국민투표였다. 스위스에서 충분성의 원칙까지 모두 갖춘 기본소득 제도의 원형에 해당하는 모델이 시민운동단체에 의해 제기됐고, 스위스의 참여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20166월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매달 18세 이상 모든 성인에게 2500스위스프랑(300만 원), 어린이·청소년에게 650스위스프랑(78만 원)을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국민투표 결과, 유권자의 76.7%가 반대해 부결됐다. 특히 정치인들은 대부분 반대했다. 복지국가의 주요 정치 세력들은 거의 예외 없이 기본소득을 거부한다. 왜 그런지, 그 이유를 따져보자.

 

첫째, 기본소득은 복지국가의 보편적 사회보장에 비해 복지 효과가 현저하게 작다. 기본소득은 보편적 복지(사회보장) 원리를 거부하고 생산연령인구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동일하게 현금을 나눠준다. 보편적 복지(사회보장)는 소득과 재산이 많든 적든 누구라도 실업·질병·산재·은퇴·출산·육아 등의 사회적 위험(또는 필요)에 처했을 때 사회안전망으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는 것이다. 가령, 실업의 경우 보편적 고용보험의 실업급여가 충분히 지급된다. 우리나라도 월 180~198만 원을 지급한다. 선진국들은 실업급여의 소득대체율이 훨씬 높다. 그런데 GDP10%짜리 부분기본소득의 경우, 100조 원 증세에도 불구하고(100조 원의 재정 구조조정 추가) 지급액이 1인당 월 32만 원에 불과하다. 이 돈으론 필요 충족에 크게 부족하다. 180~198만 원을 받는 고용보험의 올해 연간 재정 규모는 약 10조 원이다. 그런데 연간 재정 규모 200조 원의 기본소득은 지급액이 1인당 월 32만 원에 그친다. 기본소득은 사회적 위험에 처하거나 추가적 필요가 발생한 사람뿐만 아니라 고소득자를 포함한 생산연령인구 모두에게 소액의 현금을 똑같이 지급되므로 필요 충족의 복지 효과가 작다.

 

둘째, 기본소득은 복지국가의 보편적 사회보장에 비해 경제 효과가 현저하게 작다. 보편적 복지(사회보장)는 각종 사회적 위험에 처할 때라야 급여체계가 작동해 충분한 지원이 이뤄지는 반면에, 기본소득은 언제나 모두에게 똑같이 지급된다. , 보편적 사회보장은 경기 침체(하강) 때 한계소비성향이 큰 실업자와 경제적 약자들이 충분히 소비할 수 있도록 각종 지원을 강화하는 데 비해, 기본소득은 경기 순환과 무관하게 언제나 생산연령인구를 포함한 모두에게 같은 금액을 지급한다. 가령, 경기 침체로 인해 실업률이 오르고 빈자가 많아지면 정부의 고용보험과 공공부조 등이 작동해 정부 측에서 가계(시장)로 재원이 이전돼서 경기 활성화를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된다. 반대로 경기가 활성화됐을 때는 실업률이 낮아지고 빈곤의 크기가 작아지므로 고용보험과 공공부조의 지출은 줄고 정부의 세금 수입은 늘어나므로 인플레이션 압박이 줄어든다. 이것이 바로 사회보장의 경기조절 기능이다. 그런데 기본소득은 경기의 침체나 활성화와 무관하게 언제나 같은 금액을 생산연령인구 모두에게 나눠주므로 소비 진작 효과가 작고 경기조절 기능은 아예 없다.

 

셋째, 기본소득은 복지국가의 보편적 사회보장에 비해 소득재분배 효과가 작다. 기본소득 도입으로 소득재분배가 개선된다는 주장이 있다. 얼핏 보면, 누진적으로 부자들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주면 소득재분배 효과가 더 커질 것 같아 보인다. 우리는 복지국가의 보편적 사회보장을 확립하기 위해서도 누진적 증세를 추진해야 한다. 이는 기본소득이나 보편적 사회보장이나 동일하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세금 징수로 인한 소득재분배 효과가 1이라면 사회보장의 복지 급여를 통한 소득재분배 효과는 최대 3.12라고 한다. 게다가 부분기본소득 지급에 사용될 연간 200조 원 중에서 100조 원은 기존의 복지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한 것인데, 사회적 위험(실업이나 빈곤 등)에 처한 경제사회적 약자들이 주로 받던 100조 원의 공공복지를 회수해 부자를 포함한 모두에게 똑같이 배분하는 것이므로 기본소득은 역진적 재분배를 초래한다. 결과적으로 어렵게 마련한 200조 원의 재정을 월 32만 원짜리 부분기본소득으로 나눠주는 것보다 증세로 마련된 재정을 보편적 사회보장에 투입하는 것이 소득재분배에 훨씬 유리하다. 이는 사회적 위험과 복지 필요에 처할 확률이 경제사회적 약자에게서 더 높고, 이들에게 주로 보장과 지원이 집중되는 보편적 복지(사회보장) 효과 때문이다.

 

가짜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이유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 담론에 어긋나는 가짜가 매우 많다. 편의상 이들을 통칭해 '가짜 기본소득'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이재명 지사가 대표적이다. 그는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을 시행했다. 청년기본소득 조례(201811)에 근거해 경기도에 거주하는 만 24세 청년 모두에게 지역화폐로 분기마다 25만 원씩, 연간 총 1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또 지난 4월에는 재난기본소득 조례(20204)를 통해 도민 모두에게 1인당 10만 원씩 지급했다. 최근에는 경기도에 거주하는 농민 모두에게 1인당 일정 금액(가령, 5만 원)의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농민기본소득을 도입키로 결정하고, 관련 용역을 공고했다고 한다.

 

진실을 말하자면, 이것들 모두가 가짜 기본소득이다.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은 월 83000원짜리인데, 24세 청년에게만 지급한다. 이는 충분성의 원칙에도 어긋나지만, 일반적으로 청년이 18세부터 34세까지라고 한다면 24세 때만 지급하는 현금을 청년기본소득이라고 부르면 곤란하다. 더 중요한 것은 생산연령인구를 연령별로 차별하는 것은 기본소득의 보편성 원칙에 어긋난다. 그러므로 청년에게 기본소득이라는 용어를 붙이는 것은 어떤 경우라도 형용 모순이다. 아동의 경우처럼 일정한 조건의 청년이 인구학적으로 경제사회적 약자라면 보편적 사회수당을 지급할 수는 있을 것이다. 선진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대학에서 공부하는 청년들에게 학생수당을 지급하거나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위해 노력하는 과도기의 청년들을 인구학적 약자로 간주해 취업 준비기의 청년수당 프로그램을 도입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복지국가의 사회수당 프로그램이며, 기본소득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결국, 이재명 지사 등의 청년기본소득은 가짜 기본소득이다.

 

이재명 지사는 경기도민 모두에게 10만 원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이 돈이 그의 주장대로 기본소득인지 따져보자. 경기도가 지급한 10만 원은 기본소득의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의 원칙에는 부합한다. 하지만 정기성과 충분성의 원칙에는 어긋난다. 재난 대응을 위한 일시적 현금 지급은 매달 지속적으로 지급된다는 정기성의 원칙에 위배된다. 10만 원을 12개월로 나눈 월 8300원은 기초생계가 가능할 정도의 충분한 금액(부분기본소득 월 32만 원, 완전기본소득 월 80만 원)이 지급돼야 한다는 충분성의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지사의 재난기본소득은 정명이 아니다. 가짜 기본소득이다.

 

이재명 지사가 조만간 도입하겠다는 농민기본소득도 마찬가지로 정명으로서의 기본소득이 아니다. 거론되는 금액(5만 원)이 부분기본소득에 견줘보더라도 지나치게 적고, 무엇보다 생산연령인구 모두를 포함해야 한다는 기본소득의 보편성 원칙에 어긋난다. 농민기본소득도 결국 가짜 기본소득이다. 취업을 앞둔 일부 청년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특정 지역의 농민이라는 인구집단 전체를 경제사회적 약자로 간주한다면 이들에게 보편적 사회수당을 지급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농민에게 지급되는 월정 금액은 농민기본소득이 아니라 복지국가의 소득 보장 제도에 속하는 사회수당 프로그램의 하나인 농민수당으로 명명되는 게 옳다. 결국, 이재명 지사가 추진하려는 농민기본소득도 가짜 기본소득이다.

 

이재명 지사가 페이스북으로 제안한 "증세나 재정건전성 훼손 없는 기본소득"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해 연 20만 원으로 시작해 매년 조금씩 증액하여 수년 내에 연 50만 원까지 만들면 연간 재정 부담은 10~25조 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일반회계예산 조정으로 이 재원을 만들 수 있으므로 증세 없이 기본소득을 도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럴 경우, 5200만 국민에게 매달 나눠줄 현금이 푼돈이라는 게 문제다. 그에 따르면, 첫해의 지급액은 월 16000원씩이고 수년이 지나도 월 4만 원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후에는 증세를 하자는 것이므로 '증세 없는 기본소득'은 여기까지다. 16000원은 부분기본소득인 월 32만 원의 5%에 불과하고, 수년 후 받게 될 월 4만 원은 부분기본소득인 월 32만 원의 12.5%에 그친다. 도수 20% 알코올을 소주라고 부른다면 1% 알코올은 가짜 소주임에 틀림이 없다. 결과적으로 이재명 지사가 제안한 '증세 없는 푼돈 기본소득'도 가짜 기본소득이다.

 

최근 기본소득을 둘러싼 미래통합당 내 혼선이 일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미래통합당이 부담스러운 우파 기본소득 대신에 청년기본소득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국민의당과 민주당을 포함한 여야 정당들이 대선을 앞두고 청년 표를 얻을 전략으로 앞 다투어 청년기본소득을 거론할 가능성 크다. 실제로 일정 연령대의 청년들에게 현금을 지급한다면, 이것 역시 기본소득의 보편성 요건을 위배한 것이므로 가짜 기본소득이 된다. 그러므로 청년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을 사용해선 안 된다. 다만, 선진국들의 경우처럼 취업을 앞둔 청년들에게 취업 패키지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청년수당을 도입하는 것이라면, 이는 기본소득과 무관한 복지국가의 사회수당 프로그램의 하나가 된다.

 

'전 국민 대상'2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반대하는 이유

지난 2, 이재명 지사는 전 국민에게 20만 원씩 2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 위해 3차 추경 예산에 약 10조 원을 추가 편성할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는데,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왜곡된 명칭이 이들 기사에 여러 번 등장했다. 재난을 틈타 기본소득을 확산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주요 언론들을 통해 그대로 관철되고 있고, 이로 인해 국가 정책이 왜곡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위기감이 존재한다. 재난지원금은 말 그대로 재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지원이 가도록 해야 하고, 당연히 옳은 적극적 재정 정책이다. 재난지원금은 전 국민이 아니라 재난으로 실직이나 유의미한 소득감소 등의 어려움을 겪거나 빈곤의 위험에 처한 분들에게 더 두텁게 지원과 보장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소득 상위 20~30%에게는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 정부의 1차 재난지원금이 상위 소득자의 자발적 기부를 통한 환수를 전제 조건으로 모든 가구에게 지원됐는데, 이미 98% 이상에게 지급됐다. 재난으로 곤경에 처한 경우가 아님에도 상당수가 재난지원금을 받아갔던 것이다. 1차 재난지원금 정책은 지난 4월 총선을 열흘 정도 앞두고 여야 정당들의 공약 경쟁 때문에 만들어졌는데, 이는 우리 사회가 치른 정치 비용으로 간주하더라도 향후에는 달라야 한다. 이후 재난지원금 정책을 다시 사용할 경우 전체 국민이 아니라 소득 상위 20~30%는 배제하고, 소득 하위 50% 중에서도 특히 어려운 계층에게 더 두텁게 지원하는 게 옳다. 이때 확장 재정 정책의 기조 하에 재정적 보수주의를 극복하도록 해야 한다.

 

재난으로 인해 실직과 소득감소 등의 피해를 입은 분들(위험에 처한 사람)에게 지원과 보장이 가도록 하고, 또 경기 진작을 위해 추가로 소득 하위 계층에게 현금 지원이 더 가도록 하는 것이 복지 효과와 경제 효과가 크고, 이것이 보편적 사회보장의 원리에 더 잘 부합한다. 소득 상위 계층은 당장 복지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에게 가는 지원금은 복지 효과가 없다. 또 소득 상위 계층은 한계소비성향이 낮기 때문에 추가적 소비를 통한 경기 진작 효과인 경제 효과도 낮다. 반대로 소득 하위 계층에게 가는 재난지원금은 복지 효과와 경제 효과가 매우 크다. 그러므로 나는 이재명 지사의 전 국민 대상 재난지원금 제안을 반대한다.

 

 

 

 

송파 세모녀의 비극을 기본소득이 해결할 수 있나? 서울지방경찰청

 

사각지대와 빈곤 해소, 기본소득이 해법인가?

모든 국민에게 월 32만 원씩 부분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사각지대와 빈곤이 해소돼 송파 세 모녀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될까?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사람 중의 일부는 이렇게 믿고 있다. 그런데 진실은 전혀 다르다. 1인당 월 32만 원은 국민기초생활보장의 1인 가구 현금 지원액 70~80만 원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된다. 그러므로 GDP10%인 연간 200조 원을 쓰는 부분기본소득을 실시한다고 해도 선별적 복지인 공공부조(국민기초생활보장)는 여전히 작동할 수밖에 없다. 다만, GDP25%인 연간 500조 원을 쓰는 완전기본소득을 실시한다면 선별적 복지인 공공부조는 필요가 없어진다. 그런데 공공부조를 없애자고 정부 재정이 512조 원인 나라에서 추가로 500조 원을 기본소득으로 나눠줄 순 없는 일이다.

 

사각지대와 빈곤을 걱정하는 분들은 송파 세 모녀의 경우처럼 소득 하위 계층이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시점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기존의 복지국가로는 막아내지 못했으므로 기본소득을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32만 원짜리 기본소득은 이 경우의 해법으로는 부족하다.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당시 송파 세 모녀는 근로를 통한 자립적 경제생활을 이어가는 데 실패했고, 빈곤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공공부조 수급자도 아니었다. 송파 세 모녀는 복지 사각지대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들은 소위 '비수급 빈곤층'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대빈곤자들 중 상당수는 절대빈곤에 가깝지만 공공부조의 제도적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각지대가 넓은 것이다.

 

상대빈곤층, 그중에서도 특히 비수급 빈곤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리적 방안으로 크게 두 갈래의 해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공공부조인 국민기초생활보장의 포괄 범위를 크게 확충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근로를 통한 자립적 경제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경제와 복지 제도를 유기적·통합적으로 잘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전자는 선별적 복지인 공공부조를 통해 빈자들을 더 넓게 보호하자는 것이고, 후자는 복지국가의 보편적 사회보장 체제를 확립해서 보장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동시에 경제사회적 격차와 불평등을 최소화함으로써 빈자의 비중 자체를 줄이자는 전략이다. 선진 복지국가들은 이미 후자의 길을 제도화했다. 우리도 이 길을 향해 지난 10여 년간 달려왔다. 그런데 기본소득은 보편적 사회보장의 길을 포기하고 연간 재정 200조 원으로 월 32만 원씩의 기본소득을 모두에게 나눠주자고 주장한다.

 

보편적 사회보장의 중요성을 송파 세 모녀 사례로 설명해보자. 어머니 박 씨의 남편은 12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녀는 당뇨와 고혈압에 시달렸고, 만화가를 꿈꾸었던 차녀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을 했다. 두 딸은 신용불량자여서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고, 이들 가족의 생계는 식당 일을 하던 엄마 박 씨가 책임지고 있었다. 그런데 박 씨가 자살 한 달 전에 넘어져 오른쪽 팔을 다치면서 식당 일을 못하게 됐다. 그때부터 이 집의 소득은 단절됐다. 두 딸은 소득이 없었으므로 엄마 박 씨가 식당 일을 해서 벌던 월 150만 원 남짓이 이 가구의 총 수입이었다. 이 정도의 소득이면 절대빈곤선을 넘나드는 상대빈곤 가구에 속한다.

 

만약 송파 세 모녀가 보편적 사회보장이 제대로 작동하는 복지국가의 국민이었다면 어땠을까? 빈곤으로 자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4대 사회보험이 작동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 박 씨가 일하던 식당이 산재보험에 가입했을 것이고, 산재보험 급여로 평소 받던 임금의 약 80% 정도를 수령했을 것이다. 고용보험에 가입해 있었더라도 당시 월 150만 원 정도는 실업급여로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식당들 대부분이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녀는 보편적 국민건강보장 제도를 통해 당뇨와 고혈압에 대한 치료와 건강관리를 제대로 받았어야 했다. 차녀는 만화가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당연히 월정 수당을 받으면서 교육과 직업훈련의 기회를 누릴 수 있어야 했다.

 

우리나라는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적용 대상을 획기적으로 확대해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고용보험의 적용 대상을 특수 형태 근로종사자 및 프리랜서 예술인으로 확대하고, 보험료 지원 등을 통해 자영업자의 가입을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었다. 그런데 현재까지 여전히 전체 취업자의 절반 정도만 고용보험에 가입해 있다. 미가입자들은 주로 비정규직이나 특수고용직 그리고 저임금 근로자들이다. 임의가입 대상인 영세 자영업자의 대부분도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은 경제사회적 약자들이다. 1차 실업 안전망인 고용보험의 사각지대 문제가 심각하다. 고용보험 미가입자를 위한 2차 실업 안전망인 한국형 실업부조(국민취업지원제도)가 내년 11일부터 실시되지만 지원 대상이 협소하고 금액도 작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정부 재정의 한계로 인해 대상과 지원액을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고용 지원과 실업의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구조적 빈곤에 대응하는 데는 올해 고용보험 재정 규모인 연간 10조 원에 더해 20조 원이 추가로 투입되면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부분기본소득 옹호자들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10배나 되는 연간 200조 원을 고소득자를 포함한 국민 모두에게 월 32만 원씩 나눠주자고 주장한다.

 

복지 강화와 함께 가는 기본소득 도입은 가능한가?

앞서 살펴봤듯이 기본소득은 복지국가의 보편적 사회보장에 비해 어느 것 하나 장점이 없다. 그러자 기본소득 옹호자들은 기본소득의 도입이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차원에서 추진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인들도 기존 제도의 대체가 아닌 보완과 추가 차원의 기본소득에는 별 저항감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우호적인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파 기본소득에는 강력하게 반대 의견을 제시하지만, 가짜 기본소득이나 좌파 부분기본소득에는 별로 반대 의견을 표명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는 모두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생각이다. 기존 복지(사회보장)의 강화와 기본소득은 함께 갈 수 없다. 사실상 언제나 대체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연간 10~25조 원의 재정으로 가짜 기본소득을 도입한다면, 5200만 국민 모두에게 매달 16000~4만 원씩을 나눠줄 수 있게 된다. 연간 10~25조 원을 증세 없이 일반회계예산의 구조조정으로 마련한다면, 우리는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 합리적 결정을 내린다면 당연히 모두에게 푼돈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전 국민 고용안전망의 확충 등에 이 소중한 돈을 쓰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 비중은 11%OECD 평균(20%)55% 수준이다. 선진 복지국가의 25~30%에 비하면 거의 3분의 1 수준이다. 보편적 복지국가의 국제적 기준에 이렇게 미달하는 부분은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가 실질적 보편주의를 이루지 못한 탓이다. 즉 거대한 사각지대와 낮은 보장성 때문인데, 이는 사실상 정부 재정의 부족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지출 구조조정이든 증세든 간에 연간 10~25조 원의 재정이 추가로 생기면 당연히 사회보장의 실질적 보편주의 실현을 위해 투입해야 한다. OECD 평균 수준의 조세부담률에 이르도록 단계적인 증세를 통해 최대 연간 100조 원까지 마련한다면, 이 재원은 부분기본소득이 아니라 보편적 사회보장과 사람에 대한 적극적 투자를 통해 포용적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데 투입해야 한다. 결국, 보편적 복지의 확충과 적극적 복지 투자는 기본소득 도입과 함께 갈 수 없으며, 기본소득 도입은 보편적 복지국가로 가는 길을 포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4차 산업혁명시대의 일자리 감소, 기본소득이 대안인가?

4차 산업혁명은 초지능과 초연결을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 경제 혁명을 말한다. 이것이 현실화할 경우 기존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일자리 수의 전체적인 감소가 일어날 개연성이 존재한다. 그런데 기존의 세 차례 산업혁명에서는 일자리 수가 꾸준히 늘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미래에도 일자리 수가 크게 감소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로봇 등의 밀집도가 높다고 해서 실업률이 무조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기업과 산업의 생산성이 높아지면 관련 분야의 일자리가 더 많이 파생되는 경향도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미래에는 일자리의 구성이 바뀔 것이라는 사실이다. 중간 숙련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대신에 고임금·고숙련의 일자리와 서비스 쪽의 저임금·저숙련 일자리가 늘어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미래의 상황에서 기본소득 도입이 올바른 해법일까? 부분기본소득이든 완전기본소득이든 기본소득을 도입할 경우, 국가의 역할은 경제적 토대의 변화에 따라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포함해 국민 모두에게 매달 기본소득을 송금하는 일에 주로 국한될 개연성이 크다. 왜냐하면 기본소득 지급으로 인해 국가의 재정 능력이 크게 제약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가는 사람에 대한 투자를 포함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등의 적극적 복지를 펼 여력을 가지기 어렵게 되고, 사회 정책적 대응력을 상실하게 된다.

 

미래에는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전제하고 기본소득이나 나눠줄 것이 아니라 한국판 뉴딜 등을 통해 기업이 더 높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제대로 된 교육과 직업훈련을 통해 국민이 변화하는 노동시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중심으로 자동화된 생산 체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 또 고임금·고숙련 쪽의 노동 수요에 사람들을 적응시키는 데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이게 바로 사람에 대한 투자이며, 사회구성원의 물고기 잡는 능력을 키워주고 노동시장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복지국가의 역할이다. 그럼에도 발생하는 각종 사회적 위험(실업, 전직, 재해)에는 복지국가의 보편적 사회보장 원리에 따라 소득을 보장하면 된다. 이런 경로는 기본소득과 완전히 다르다.

 

장차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복지국가의 적극적인 사회 정책적 대응은 일자리 정책과 관련해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미래에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는 서비스 분야의 저임금·저숙련 일자리를 재정 능력을 가진 복지국가가 개입해 적정 일자리로 조정해줘야 한다. , 사람의 능력을 키워주는 사회서비스 분야와 직업훈련 등에 정부의 지출을 크게 늘려야 한다. 이것이 기본소득을 모두에게 나눠주는 것보다 경제 효과가 압도적으로 크고,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는 방식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의 정부는 더 나은 일자리 창출과 고용보장에 최선을 다하는 포용적 복지국가여야 한다. 그러므로 정부 역할의 제약을 초래할 기본소득은 미래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이럴 경우 극심한 양극화와 불평등 속에 대다수가 수동적이고 불행한 처지로 내몰릴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프레시안

이재용 부회장 영장 기각법원 "구속 필요성 소명 부족

이재용 삼성 전자 부회장이 구속을 피했습니다. 서울 중앙 지방법원이 오늘(9) 새벽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습니다. 원정숙 영장 전담 부장 판사는 "불구속 재판의 원칙에 반해 구속할 필요성과 상당성에 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밝혔습니다. 최지성 옛 삼성 미래전략실 실장과 김종중 옛 미전실 전략 팀장의 구속영장도 모두 기각했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 그룹의 경영권 승계와 그룹 지배권을 높이기 위해서 계열사의 합병과 분식 회계를 계획하고 진행한 혐의로 17개월 동안 검찰의 수사를 받아왔습니다.

 

이렇게 영장은 기각이 됐고 이제 관심은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인데요. 검찰이 그 결정에 반드시 따라야하는 건 아니지만 여기서 나올 권고가 이 부회장을 재판에 넘기는 데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기자]오늘 새벽 240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구치소 밖으로 나옵니다. 관련 의혹을 묻는 취재진에게 이렇게 답했습니다.

[이재용/삼성전자 부회장 : (불법 합병 지시하거나 보고 받았다는 의혹 있는데 계속 부인하나요?) 늦게까지 고생하셨습니다.]

 

법원은 새벽 2시쯤 이 부회장과 최지성 옛 미래전략실 실장, 김종중 옛 미전실 전략팀장의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습니다.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 판사는 "불구속 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과 상당성에 관해 소명이 부족하다"고 봤습니다.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와 그 정도는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영장이 기각되자 검찰은 20분 만에 입장을 냈습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본 사안의 중대성, 지금까지 확보된 증거자료 등에 비춰 법원의 기각 결정을 아쉽게 받아들인다"고 했습니다. "법과 원칙에 따라 향후 수사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삼성 측은 "범죄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고 향후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에서 엄정한 심의를 거쳐 기소 여부가 결정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jtbc 이상엽 기자입니다.

 

'이재용 불구속'에 박용진 "피해자 삼성 응원한다"

[스팟 인터뷰] ", , 힘 앞에 적용되는 불구속 재판 원칙... 삼성, 오너리스크 극복하길

 

 

 

 

박용진 삼성바이오로직스, 고의 분식회계는 중대 범죄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고의 분식회계를 했다고 문제를 제기하며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 미래전략실이 주고받은 내부 문서를 공개하고 있다. 유성호

 

"판사의 재량이다. 다만, 평범한 시민들에겐 적용되지 않는 불구속 재판 원칙이 돈, , 힘 있는 사람 앞에선 부활하는 사법 현실이 씁쓸할 따름이다."

 

20대 국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불법 경영 승계 의혹을 줄곧 제기해 온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재선, 서울 강북을)이 이 부회장에 대한 9일 불구속 재판 결정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기업 차원의 자정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으리라 봤다. '내부 증언'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박 의원은 같은 날 <오마이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판사의 양심을 믿지만, (이 부회장에 대한) 증언을 하는 사람들에겐 상당한 압박이 느껴질 만한 상황"이라면서 "증언에 대한 관리와 훼손이 증거 인멸에 해당한다는 게 제 생각이다"라고 말했다(관련기사 : 이재용 구속영장 기각... 얼굴 구긴 '윤석열 검찰' http://omn.kr/1nv4s

 

"이번 사건에서 나는 삼성을 응원한다. 더 성장해 투자자들과 한국 경제에 큰 보탬이 되길 바란다."

 

박 의원은 더 나아가, 이 부회장을 둘러싼 검찰 수사가 삼성과 한국 경제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삼성 측의 주장에 되려 '오너리스크를 극복할 기회'로 삼아줄 것을 주문했다. 그는 "이번 사건에서 삼성은 피해자다. 가해자는 이재용 부회장이다. 가해자로부터 불이익을 받은 회사를 보호하기 위해선, 기업을 사유물로 생각하는 이들의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박 의원과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내부 증언에 영향줄 것... 검찰이 최선 다해야"

-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영장이 기각됐다.

"철저하게 구속 재판이 필요한 지, 아닌 지 판단한 거라고 하니까, 재판부 재량권에 따라 그 부분에는 다른 불만이 없다. 다만, 평범한 시민들에겐 적용되지 않는 불구속 재판 원칙이 돈, , 힘 있는 사람 앞에선 부활하는 대한민국의 사법 현실이 씁쓸할 따름이다."

 

- 기각 사유는 어떻게 봤나.

"기본적 사실 관계는 다 드러났다고 보지 않았나. 범죄행위가 소명됐다는 거고. 증거 자료도 다 수집됐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이걸 전면 부인하고 있다. 잘못도 확인됐고, 증거도 있고 증인도 있는데 본인이 부인하니까 불구속 재판한다? 이런 경우가 몇 번이나 있었는지 묻고 싶다."

 

 

 

 

이재용, 구속영장 기각 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법행위 관여 혐의 의혹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오전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안 좋은 사인을 줄 수 있다는 뜻인가?

"(기업 내에서도) 수사에 협조적인 사람은 오히려 인사 불이익을 받고, 범죄를 주도한 사람들은 영전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내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감시위 소속 내부 위원인)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도 '참담하다'며 사의를 표명하지 않았나.

 

이런 상황을 무시한 결론이다. '수사에 협조 말라, 증언을 관리하겠다'는 움직임이 있는데, 이 사건에서 최대 장악력을 가진 사람을 불구속 재판한다는 판단은 안일한 태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판사의 양심을 믿는다. 다만, 이 사건에 대해 불리한 증언을 하는 사람들에겐 상당한 압박이 느껴질 만한 상황이다. 증언에 대한 관리와 훼손이 증거 인멸에 해당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 추가 증거 인멸의 가능성도 줄곧 제기해왔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 바닥에 (재경팀 공용서버와 직원 노트북을) 묻은 사실도 드러나지 않았나. (비슷한) 영향이 있으리라 본다."

 

- 코로나19 상황에서 이 부회장을 둘러싼 검찰 수사가 삼성 전체의 경영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삼성 측의 우려에 동의하는 여론도 있다.

"이번 사건에서 저는 삼성 기업을 응원한다. 이 회사가 더 성장하고, 많은 이익을 남겨 투자자들과 한국 경제에 큰 보탬이 되길 바란다. 이번 사건에서 삼성은 피해자다. 가해자는 이재용 부회장이다. 가해자로부터 많은 불이익을 받은 회사를 보호하고 안전하게 육성하기 위해선, 기업을 사유물로 생각하는 이들의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을 없애야 한다. 삼성에게 가장 큰 리스크는 '오너리스크'임을 분명히 했으면 좋겠다. 이재용과 삼성을 따로 봐야 한다."

 

- 시세 조작 여부를 두고 증권선물위원회와 삼성 측의 주장이 부딪히는 상황이다.

"(범죄 판단 여부가) 분식 회계 보다 시세 조작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선 그게 훨씬 죄가 크다.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고. (삼성 측의 주장처럼) 단순한 회계 상 실수였다? 그 말이 바로 분식 회계다. 고의성이 있느냐, 없느냐 나눌 수 잇겠지만... 증선위는 고의라고 봤고. (공시를 누락했다는 걸) 모를 리가 없으니까. 내부 문건을 보면 일부러 누락했다가 나중에 넣는 과정에서, 서로 의논해 진행한 사실도 나오지 않나. 이를 모의하고 현실화 했다는 건 검찰에서 다 확인한 것이다."

 

- 검찰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범죄 행위에 대한 소명은 분명한 사실이다. 검찰이 수사를 잘 한 것 같다. (수사 방침에 대한) 검찰 내부 이견은 없다는 게 공식 입장으로 안다. 구속이든 불구속 재판이든, 한국 경제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과정이다. 사명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조혜지(hyezi1208) / 오마이뉴스

 

이재용 영장 기각 조직적 증거인멸 간과한 판단

김남근 조직적 증거인멸했는데 구속사유 부족? 법앞에 평등과 다른 잣대 적용한 결정, 영장 재청구해야검찰 아쉽다

원정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경영권 불법 승계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특히 원 부장판사는 이재용 부회장 혐의 관련 기본적 사실관계(범죄사실)가 기본적으로 소명됐다면서도 구속 핵심사유인 증거인멸 여부는 직접적 언급을 하지 않은채 구속 상당성과 필요성이 소명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일반인은 단 하나의 증거인멸만 해도 곧바로 구속하면서 삼성 일가의 사주에게는 여러차례 조직적 증거인멸이 드러났는데도 관대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원정숙 부장판사는 9일 새벽 서울중앙지법 형사공보판사를 통해 내놓은 이재용 등의 구속영장실질심사결과 요지에서 이재용, 최지성, 김종중의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위반’ ‘주식회사등의외부감사에관한법률위반등 혐의로 청구된 구속영장을 기각한다고 밝혔다.

 

구속의 핵심 요소인 증거인멸, 도주의 우려, 범죄의 소명이다. 이 가운데, 범죄의 소명과 관련해 원 부장판사는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되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그는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하여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하였다고 보인다고 판단했다.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표현 대신 검찰이 증거를 확보했다는 주장이다.

 

원 부장판사는 이어 그러나 불구속재판의 원칙에 반하여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하여는 소명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도주의 우려는 없다해도 증거인멸의 우려에 대해서는 여기서도 직접 언급을 하지 않았다.

 

원 부장판사는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추어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반인과 형평에 어긋나는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김남근 민변 개혁입법TF팀장(전 민변 부회장)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범죄혐의가 소명됐다고 했다며 “(이재용과 삼성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염두에 두고 분식회계와 시세조종을 한 것에 대한 혐의를 인정한 만큼 반드시 기소돼야 한다고 평가했다.

 

김 변호사는 사실관계(범죄혐의) 소명됐으나 구속사유의 소명이 부족했다는 주장을 두고 조직적 증거인멸이 이뤄져 왔다는 것을 간과한 판단이라며 증거가 확보됐으니 증거인멸우려가 없다고 보는 것같은데, 그룹차원의 조직적 증거인멸이 이뤄졌고, 향후 재판 진행에서도 계속 증거인멸이나 조작의 가능성이 있을지를 심도있게 심리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그룹 차원에서 삼성전자 사업지원TF이 조직적으로 증거인멸하고, 금감원에 조작된 증거를 낸 부분이 있는데, 이를 고려한다면 증거인멸 가능성 판단없이 영장을 기각한 것은 형평에 맞지 않다증거인멸에 대한 판단자체가 결정문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사건에서 삼성전자 관계자들이 증거인멸로 여러명이 실형을 선고된 만큼 이 부회장 등도 구속해야 할 사유가 높다일반인이라면 한 번이라도 증거인멸 시도하면 즉각 구속이라고 했다.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 재판에서 공방과 심리로 결정해야 한다는 원 부장판사의 주장에 김 변호사는 총수의 조직적 지시에 의한 범죄인지, 밑에서 과잉충성한 것인지는 재판과정에서 다툴 필요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와 관련된 증거인멸이나 조작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재청구해야 할지와 관련 김 변호사는 법원이 증거인멸 가능성에 명확한 입장을 담지 않았기 때문에 검찰은 구체적 소명을 해서 재청구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번 이재용 구속영장 기각의 의미를 두고 김 변호사는 헌법 11, 법앞에 만인이 평등해야 한다는 이념과 다른 잣대가 적용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삼성측이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움직임 전에 기소심의위원회 신청을 한 것과 관련 김 변호사는 검찰이 영장을 먼저 청구하는 것을 변호인단이 간파하고 이를 피하기 위해 기소 심의위에 신청한 것으로 보인다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절차이지만, 법원도 범죄혐의가 소명됐다고 하는데, 기소를 면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변호사는 과연 이 사건이 기소할 까 말까를 고심할 문제인가라며 이미 많은 사실이 드러나 있는데 기소 면해보겠다는 판단은 오산이라고 비판했다.

 

검찰은 아쉽게 받아들인다면서도 영장 재청구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박세현 서울중앙지검 전문공보관은 9일 언론에 배포한 검찰 입장에서 본 사안의 중대성, 지금까지 확보된 증거자료 등에 비추어 법원의 기각 결정을 아쉽게 받아들인다다만, 영장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향후 수사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구속영장 청구와 관련 박 공보관은 수사팀은 그동안 철저한 수사와 심도있는 검토, 준비를 거쳐 구속영장 청구에 이른 것이라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수사심의위 관련 절차를 포함하여 향후 수사에도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다만 영장재청구와 여부에 대한 미디어오늘에 질의에는 별다른 답변이 없었다.

조현호 기자 chh@mediatoday.co.kr

 

 

포스트 코로나19 시대, 세계화의 모습은?

 

 

 

 

팬데믹으로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국제공항이 한산하다. 감염병은 국가 간 물자와 사람의 이동을 중단시켰다. REUTERS

 

세계화’(Globalization)란 국가의 경제 장벽이 낮아지고 재화·서비스··사람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정부·초국적자본·엘리트는 세계화가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경제성장을 가져올 것이라며 세계화 흐름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제조업에서 좋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불평등이 커지면서 세계화에 불만인 사람이 늘어났다. 세계를 충격과 공포 속에 빠뜨린 코로나19 사태는 세계화와도 연관이 깊다. 코로나19와 세계화가 어떤 함수관계인지, 세계화 진로와 관련해 어떤 전망이 제시되고 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자.

 

세계화는 물자··사람의 이동성을 높이고, 기업과 사람의 연결망을 넓히며, 상호의존성도 키운다. 번영의 기회도 늘어나지만, 개별 기업이나 특정 국가 차원에서 피해를 보거나 그 충격이 금융시장 전체로 파급돼 전세계로 전파될 위험도 크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이언 골딘 교수는 세계화가 사이버테러·팬데믹(감염병 세계적 유행금융위기 같은 시스템 리스크(위험 요인)도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강조한다. 세계화와 함께 글로벌 공급망도 확대됐다. 생산기지를 외국으로 내보내고 부품을 세계 곳곳에서 조달함으로써 온실가스 배출도 늘어났다. 국지적으로 발생한 코로나19는 세계화를 바탕으로 심화된 상호의존성에 기반해 빠르게 퍼져나갔고, 중국의 생산 중단이 글로벌 공급망 교란으로 이어지면서 전세계 공장이 가동을 멈추는 사태가 일어났다.

 

코로나19 이후 나라마다 문 닫아걸어

각국 정부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감염이 악화하자, 세계를 향해 열었던 문을 닫아걸었다. 물자와 사람의 이동이 중단됐고 외출마저 금지됐다. 언젠가 코로나19가 물러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인류가 새롭게 맞이할 뉴노멀’(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표준)은 어떤 모습일까?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를 보면, 2세기 말 천연두가 로마제국을 엄습하고 교역이 끊어지면서 약 1천 년 동안 정체 상태에 머물렀던 반면, 14세기 중반 흑사병(페스트)이 생긴 이후에는 살아남은 농민의 높아진 교섭력과 생산성을 토대로 근대적인 경제성장 경로가 열렸다고 한다. 코로나19 이후 세계의 방향은 고대 로마제국의 장기 정체 경로와 중세 흑사병의 장기 성장 경로 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

 

코로나19 사태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진행 중인 세계화의 둔화를 재촉하리라는 전망이 많고, ‘글로벌 공급망축소가 그 핵심으로 거론된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경제학자 기타 고피너스는 팬데믹으로 세계화의 비용과 편익이 재평가되고 있으며, 비용절감을 위한 글로벌 공급망의 숨겨진 위험이 드러났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효율과 비용절감보다는 회복력(Resilience)과 위험 절감이 중시되고, 부품의 국내 조달 비중이 확대되며, 생산기지가 국내로 되돌아오는 리쇼어링현상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의 수전 헬퍼 교수는 비용절감에 초점을 맞춰 환경오염 등 비윤리적 경영도 서슴지 않던 저진로 공급망에서, 기업이 창출할 긍정적 가치에 초점을 맞춰 모든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고진로 공급망으로 전환하길 기대한다.

 

세계화의 가장 큰 불만은 좋은 일자리를 없애버린다는 데 있다. 글로벌 공급망을 줄이고 공장을 국내로 되돌리더라도 똑똑해진 로봇이 사람을 대체한다면 일자리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다. 국제무역 연구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에 따르면, 일자리 소멸은 무역자유화 외에 노동 절약적 기술 진보, 서비스업 비중 확대, 노동의 교섭력 약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세계화 폐해를 진정으로 해결하려면, 글로벌 공급망 축소에 더해, 서비스 부문 노동자에게 적정 수준의 급여, 건강보험, 연금, 단체교섭권 등을 줘야 한다.

 

불평등 문제를 전세계 학문 의제로 만든 토마 피케티의 신작 <자본과 이데올로기>에는 신선한 해법이 담겨 있다. 재화·서비스··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되, 돈의 이동에 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책임성을 확보하고, 재산·상속·소득 관련 누진과세를 강화해 확보한 재원으로 기본재산을 모든 이에게 제공해 경제적 여력을 높여주며, 노동자의 기업 경영 참여를 제도화해 자본 독주를 막자는 것이 뼈대다. 글로벌 공공재의 공급이나 탄소세 같은 의제는 글로벌 연방제 방식으로 관리하고, 일상 문제는 지역공동체 차원에서 결정하자는 내용도 추가적으로 제안했다.

 

이런 문제의식은 화석연료 문명의 종말에 대비하는 경제 계획으로 <글로벌 그린뉴딜>을 제안한 제레미 리프킨에게서도 확인된다. 그가 제안하는 세계화는 폐쇄적·집중형 인프라에 기반을 둔 채 위계적 대기업이 수직적으로 주도하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아니라 개방적·분산형 인프라에 기반해 시민이 민주적·수평적으로 주도하는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다. 디지털 인프라로 세계인과 하나로 연결되어 다양한 사회·경제·문화적 욕구를 충족하며, 인프라를 지역에서 관리하고 통제하는, 지역 중심, 사회적경제 방식의 세계화다.

 

이런 대안적 세계화를 위해서는 그 토대인 디지털 인프라를 위한 대규모 사회투자와 재정지출이 요구된다. 역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중 세계화에 가장 비판적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그린뉴딜1930년대 대공황만큼이나 악화한 경제를 회복하고, 새로운 사회경제 질서를 세우는 해법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영국의 한 토마토 농장에서 토마토를 수확하는 모습. 코로나19 확산이 진정되면 재화와 서비스 그리고 돈의 이동이 자유로웠던 세계화의 항로는 어떻게 될까. REUTERS

 

지역공동체 복원과 시민 참여가 답

세계화 시대, 지역공동체와 시민 참여의 중요성은, 진보 경제학자로 결코 분류될 수 없는, 미국 시카고 경영대학원의 라구람 라잔도 특별히 강조하는 논점이다. 인도중앙은행 총재를 한 라잔에 의하면, 세계화는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지만 치명적인 결함도 있다. 지역공동체가 무력화되거나 해체된다는 점이다. 여러 사람이 세계화에 반발하는 이유는 미래를 자주적이고 민주적으로 통제하려 하기 때문이다. 라잔은 세계화와 기술 변화가 던지는 도전에 대한 최선의 대답이 바로 지역공동체 복원과 시민 참여에 기초한 포용적 향토주의’(Inclusive Localism)이며, 지역에서 다양한 공유자산 확보와 주민의 공동 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논의에는 세계화 전망과 희망이 혼재돼 있다. 경영자가 리스크 관리와 회복력을 중시하고 공급망을 축소하리라는 주장은 객관적 전망에 가깝다. 반면 강력한 재분배 정책, 기업 경영에 관한 사회 발언권 강화, 글로컬리즘(세계화와 지역화를 결합한 개념)이나 포용적 향토주의로 표현되는 절제된 세계화 같은 주장은 지속가능한 발전과 사회통합을 위한 권고안에 가깝다. 하지만 이런 제안이 근거가 희박한 백일몽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코로나19 사태에 우리가 겪은 특별한 사건과 체험이 이런 방향으로 변화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몇 달 동안 경제에 관한 기본 상식이 부정됐다. 시장은 마스크나 인공호흡기가 가장 필요한 상황에서 생명을 구할 물자를 공급하지 못했고, 기업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안정적인 일자리와 소득을 제공하지 못했다. 자유방임의 경제 상징인 미국에선 대통령이 긴급명령으로 민간기업의 인공호흡기 생산을 강제하거나, 모든 가구에 현금을 지원하는 대신 외부와 접촉을 최소화하도록 강제하는 조처가 나왔다.

 

경제문제는 시장이 효과적으로 해결한다는 믿음 위에 움직인 시장 만능주의세상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이 멈추는 순간 정부가 자원배분 최종결정자로 등장했고, 세상은 삐걱거리면서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류는 일상의 필요를 충족하는 단순노동에 우리의 안전이 크게 의존했다는 점, 그런데도 그 노동 가치 평가와 보상은 지나치게 박했다는 점, 코로나19 방역과 치료 과정에서 공동체와 시민 참여가 정부 서비스 품질을 높여준다는 점도 깨달았다.

 

코로나19 사태가 일단락되면 팬데믹과 싸우는 데는 큰 정부가 필요했지만, 앞으로는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민이 코로나19에서 본능적으로 느낀 교훈을 잊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찾아올 감염병과의 대결에서 유능하고 민주적인 정부호혜적인 시민에 기초한 공동체효능이 계속 체감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동안 대기업과 시장 쪽에 일방적으로 쏠린 자원 배분의 무게중심이 정부와 공동체 쪽으로 옮겨가면서 적절한 균형이 회복되고, 그 과정에서 절제된 세계화를 향한 구체적인 모습을 만들어갈 것이다.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경제학 교수 / 한겨레

 

공무원 65세로 정년연장?“‘철밥통호봉제부터 손봐야

공무원 등 직무·능력 중심 임금체계 개편 추진 중

공무원노조 일방적 가치산정, 공직사회 서열화 우려

코로나19로 추진동력도 잃어 늦기 전 사회적 타협

국회에서 공무원을 시작으로 현재 60세인 정년을 65세로 연장하자는 의견이 제시되면서 정년연장을 둘러싼 논쟁이 불붙을 전망이다. 공공부문 임금체계 개편은 정년 연장을 논의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꼽힌다. 연차가 쌓일수록 임금도 올라가는 호봉제 대신 직무와 능력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무원 노동조합 등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올해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개혁 추진동력도 상당 부분 상실했다는 지적이다.

 

어려운데은 연차 쌓이면 월급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가 공무원 임금체계를 현재의 연공서열 시 임금체계를 직무급제로 개편하는 것이다. 현재 공무원 보수체계를 보면 1~5급은 성과연봉제를 적용하지만 나머지 6급 이하는 호봉제를 적용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그동안 경제정책방향 등의 발표마다 공무원 임금체계 개편 의지를 드러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지난 3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공직에 대해 직무급제 도입이 과제로 주로 4~6급의 중간 계층에 대해 (직무급) 시스템이 제대로 정착돼야 한다인사혁신처와 속도를 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이달초 내놓은 올해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 사회적 대화를 통한 공감대를 확산하고 연공급 위주에서 직무·능력 중심의 임금체계로 개편을 지속하겠다고 발표했다.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올해 초 공공부문 임금체계 개편과 노동이사제 등의 현안을 다룰 공공기관위원회를 출범한 것도 공무원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징검다리를 마련하기 위한 차원이다.

 

철밥통으로 불리는 공공부문 임금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공무원 정년연장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임금체계를 손보지 않고 호봉제 상태에서 정년을 늘리면 그만큼 재정 부담이 늘고 청년층 고용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실제 장기 저성장에 민간 어려움은 커지고 있지만 공공부문은 큰 부담 없이 월급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공무원 보수 인상률은 2015~20173%대에서 20182.6%, 20191.8%까지 낮아졌지만 올해 다시 2%대로 회복했다. 물가와 민간 임금 등을 고려한 결정이라지만 상승폭은 2017(3.5%) 이후 가장 높다.

 

민간대비 공무원 보수 수준도 지난해 86.1%2009(89.2%)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금융위기 이후 민간의 임금 상승세를 공공 부문이 웃돌고 있는 셈이다.

 

 

 

 

[자료=인사혁신처]

 

기본소득 등 굵직한 이슈 밀려 지지부진

공무원 임금 체계에서는 지금도 특정 분야에서 장기 근무하는 공무원들에게 수당을 주는 전문직무급이나 6급 이하 중요직무급을 만드는 등 직무 가치를 반영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호봉제 폐지 같은 전면적인 개편까지는 거리가 멀다. 공무원 인사제도를 총괄하는 인사처는 4월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해 호봉제 폐지나 4~6급 직무급제 도입 방안에 대해 검토한 바 없다며 신중한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공공부문 임금체계 개편 필요성에도 이같은 작업이 늦어지는 이유는 정부와 공무원 집단간 타협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3월 홍 부총리의 직무급제 발언 이후 즉각 성명을 내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전공노는 공직사회 업무는 직무를 측정할 정량·정성적 계량이 불가능하고 업무 특성상 상호 간 유기적인 협력이 중요하다일방적인 직무 가치 산정은 공무원 노동자 간 분열과 갈등으로 이어지고 공직사회를 서열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료=인사혁신처]

 

올해는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사회 충격으로 일자리가 최우선 과제로 꼽히는 상황에서 공공부문 개혁을 위한 명분이 마땅치 않다는 의견도 있다. 정치권에서도 기본소득 등의 굵직한 정책을 들고 나오고 있어 관심도에서도 밀렸다는 평가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정책이 고용 유지와 경제 회복에 방점이 찍히면서 공공부문 임금체계를 개편할 동력을 잃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권 후반기 아직 시간이 있는 만큼 정년 연장을 논하기 전에 사회적 타협을 통해 현재 임금체계 문제를 빨리 손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이 시국에?” 잇따라 문 여는 해수욕장들의 속 사정

무더위에 전국 해수욕장 개장 준비 중

각 지자체 공식 개장 전 인파 몰려 어쩔 수 없었다

 

 

 

 

안전 개장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오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을 찾은 관광객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안전개장은 관광안내소~이벤트 광장 앞바다 300m 구간을 물놀이 구간으로 지정하고 안전관리 요원을 배치한다. 부산=뉴스1

 

뜨거운 여름이 성큼 다가오면 생각나는 곳, 바로 해수욕장일 텐데요. 더위를 피하기엔 제격이지만, 마스크 착용 등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방역 수칙이 지켜지기 어려운 만큼 꼭 해수욕장 개장을 해야 하나라는 따가운 눈초리도 따라붙습니다.

 

이런 우려 속에도 전국 267개 해수욕장은 차례로 문을 열 준비에 한창입니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해수욕장 개장을 향한 비판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라는데요. 코로나19 확산을 막으려 각 해수욕장 마다 개장 시기를 늦추는 등 일정을 조율해왔지만 피서객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출입구가 따로 없는 해수욕장의 특성 상 (출입을) 막기가 어렵다차라리 공식적으로 문을 열고 관광객들의 안전 관리에 나서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지난해 관련 법 개정으로 해수욕장이 공식 개장하지 않더라도 사시사철 물놀이가 가능해진 상황입니다. 이전에는 해수욕장이 문을 열어야만 입욕을 할 수 있었죠.

 

방역당국은 전국 해수욕장의 개장을 앞두고 감염병 예방과 확산 방지를 위한 세부지침을 배포하고 현장을 점검하기로 했어요. 단체가 아닌 가족 단위 방문을 권장하고, 백사장에서 파라솔 등 햇빛 가림 시설은 2m 거리를 두고 설치하도록 했습니다. 또 물놀이를 제외하고는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하는데요.

 

실제 문을 연 해수욕장의 풍경도 예년과 달라졌습니다. 1일부터 안전 개장에 들어간 부산 해운대와 송정 해수욕장 모습을 볼까요.

 

해운대구는 해수욕장 해운대관광안내소를 기준으로 좌우 150m씩 총 300m 구간만 개장했는데요. 구는 300m 구간에 해안 감시 망루를 곳곳에 설치했고, 수상구조대를 투입해 물놀이객들의 안전 관리에 나서고 있습니다. 1시간 간격으로 마스크 쓰기 안내 방송을 하고, 백사장 호안 도로 곳곳에 방문자가 명함을 넣을 수 있는 상자를 만드는 등 코로나19 감염 방지에도 힘을 쏟고 있어요.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하면 방문객에게 알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하네요.

 

전국적으로 무더위가 찾아온 7일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을 찾은 어린이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착용한 채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부산=뉴시스

 

다만 해수욕장 개장이 공식 선언된다면 이전보다 사람이 몰려들 수밖에 없을 텐데요.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방문객 수 통제가 방역의 핵심이라는 입장입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사람이 너무 많이 모이거나 밀집하는 상황이 되면 경보를 울려서라도 더 이상 많은 사람이 못 들어오게 막는 방법들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정부 역시 이용객 분산을 위해 대형 해수욕장보다는 중소형 해수욕장 이용을 권고할 계획입니다.

 

해양수산부는 15일부터 전국 지자체를 상대로 지역 내 가볼 만한 해수욕장을 추천 받아 홈페이지에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울 것으로 예상되는 올 여름. 좀처럼 잡히지 않는 코로나19를 생각하면 움직이지 않는 게 좋겠지만 그래도 피서를 반드시 가야 한다면 유명 해수욕장보다는 작지만 오붓한 바다를 찾아보는 게 어떨까요.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 '적대적 공존' 이제 안 통한다...오판하지 말라

[현안진단] 판문점 선언 이후 20번 살포된 전단, 왜 지금 문제 삼고 있나

대북 전단살포와 김여정, '통전부'의 비난 담화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다시 전면에 나섰다. 우리 측 탈북단체가 531일 풍선에 띄워 대북 전단을 살포하자 64일 김여정이 직접 나서 담화를 발표한 것이다.

 

지난 32일 북한이 단거리 발사체를 쏜 직후 청와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긴급 관계부처장관 화상회의를 열고 북측에 유감을 표명하며 중단을 요구하자, 이튿날 김여정이 직접 담화를 발표해 "자기들은 군사적으로 준비되어야 하고 우리는 군사훈련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강도적인 억지 주장'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이번이 김여정 명의로 된 담화로는 두 번째다.

 

김여정의 담화 발표에 이어 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통전부') 대변인의 담화가 나왔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아닌 '통전부' 대변인 명의로 담화가 발표되었는데, 이것은 '조평통'2016년 당대회에서 국가기구로 승격되었고 김여정이 당중앙위 제1부부장 직함을 썼기 때문에 당 중앙위 '통전부'의 담화 형태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특히 '통전부' 담화는 김여정이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면서 이 담화가 김여정 담화문의 내용을 실무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검토사업에 착수하라는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개최한 당 정치국 회의에 김여정(가운데) 노동당 제1부부장이 참석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은 김여정의 담화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통전부' 대변인 담화, 노동신문 사설, 대남 매체 '우리민족끼리', '메아리' 등을 통해 우리 측이 4.27 판문점 선언9.19 남북군사합의서에서 규정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전단살포', '적대행위' 금지라는 약속을 위반했다는 비난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곳곳에서 군중집회를 열고 탈북자단체들의 대북 전단살포를 집중적으로 규탄하는가 하면 이를 막지 못했다며 한국정부를 비난했다.

 

먼저 '통전부' 대변인 담화에서 눈에 띄는 것은 "남쪽에서 법안이 채택되어 실행될 때까지"로 기간을 한정하여 '접경지역에서 남측이 몹시 피로해 할 일판'을 하나씩 벌여나간다고 한 부분이다. 북측이 대남 비난 수위는 높이고 있지만, 앞으로 벌여나갈 일로 열거한 것들은 남북연락사무소 폐쇄, 개성공업지구의 완전철거, 남북군사합의 파기 등 법제도적인 연성안보와 관련한 것들이다.

 

김여정 제1부부장, 김영철 부위원장이 대남사업부서 사업총화회의에 참석해 첫 단계 행동으로 69일 정오부터 남북 사이의 모든 통신연락선을 완전히 차단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직접적인 군사도발과 같은 경성안보 수단은 언급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눈여겨 볼 대목은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가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왜 이 시점에 문제 삼았나 하는 점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에 58, 201815, 201911회로 점차 대북 전단살포가 줄어들다가 올해는 4건을 살포한 데 그쳤다. 4.27 판문점 선언이 2018427일에 채택된 점을 고려하면, 탈북자단체가 그 후에도 최소한 20여 차례 대북 전단을 살포해온 셈인데 이번에 새삼 문제로 들고나온 것이다.

 

또 다른 대목은 대남 요구의 내용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북측은 지금까지 남북대화 재개의 조건으로 우리 정부에게 첨단 군사장비의 반입 중지와 한·미 군사연습의 중단과 같이 쉽게 응하기 어려운 것들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이번 요구는 국회에서 대북 전단살포를 막을 법령을 입안하라는 것이다.

 

우리 측 입법 문제를 거론한 것은 내정간섭으로 볼 소지가 있지만, 이미 20189월 집권여당 쪽에서 발의했다가 실현되지 못했고 이번 제21대 국회에서도 법 제정을 준비 중인 것을 북측이 공개리에 제기한 것일 뿐이다.

 

끝으로 주목할 부분은 탈북자들에 대해 '쓰레기', '똥개', '조국을 배반한 인간추물'과 같이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군중집회에서도 '탈북자 쓰레기들에게 죽음을', '탈북자 쓰레기들을 죽탕쳐 버리자' 등 구호를 내걸며 이들을 지목해 집중적인 비난을 퍼붓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이번 제21대 국회의원이 된 북한외교관 출신의 태영호 의원과 꽃제비 출신의 지성호 의원을 염두에 둔 행동들로 보인다.

 

북한 대남사업 당국자들의 잇단 오판

이 시점에서 북측이 대남 담화를 잇달아 발표한 것은, 지난 415일 총선에서 집권여당이 헌법개정을 빼곤 모든 법을 통과시킬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한 것이 북한에 여러 가지 유리한 여건을 조성해줄 것으로 판단한 때문으로 보인다.

 

'4.27 판문점 선언'의 국회 동의 확보를 통해 법적 구속력을 갖도록 함으로써 탈북자 출신 의원들의 활동을 제한하고, 이들의 반북 활동이 북한주민들에게 알려지더라도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몇 가지 엄포에도 불구하고 우리 측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를 고려하여 남북관계의 판을 깨지는 않겠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북측이 대남 담화의 발표를 본격화한 것을 보면, 이제 북한이 대남정책의 검토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대남사업에 나선다는 신호탄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입법 논의 중인 것을 북측이 선수 쳐서 제기한 것은 자신들이 남북관계를 주도하고 있는 것과 같은 모양새를 만들려고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김영철 당 부위원장 후임으로 통전부장이 된 장금철의 활동이 전혀 없어 경질설이 나돌고 있는 상황에서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대남사업을 총괄하고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밝힌 점이 눈에 띈다.

 

통상적으로 북한은 11일 신년사에서 대남 메시지를 내놓고 1월 하순의 정부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호소문을 통해 대남정책의 기조와 방향, 실천조치 등을 밝혀 왔다. 하지만 올해는 신년사를 대신한 작년 말의 당 중앙위 전원회의 결정서에 대남 메시지가 담기지 않았고, 정부정당단체 연석회의도 열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 33일 김여정의 담화 때부터 대남 입장표명을 재개한 것이다.

 

이번에 잇달아 대남 담화를 발표하고 군중집회를 여는 것을 보면, 북한당국이 여전히 남북관계에 대한 잘못된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 간의 수출규제 갈등, 태극기부대 등 극우세력의 반정부 투쟁 등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는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그 시기 탈북자단체의 대북 전단살포에 대해서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7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지난 6일 평양시 청년공원야회극장에서 전단 살포를 규탄하는 청년학생들의 항의 군중 집회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코로나 19를 의식한 듯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로동신문

 

그러다가 문 대통령이 17일 신년사에서 "·미 대화가 본격화되면서 남과 북 모두 북·미 대화를 앞세웠다"고 회고하며 앞으로 "남북협력을 더욱 증진시켜 나갈 현실적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독자적인 남북관계의 활로를 모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뒤 코로나19 방역에서 세계적인 모범국가가 되며 총선에서 집권여당이 승리하고 제21대 국회가 개원하자, 북측이 대남 협상에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우리 정부를 고강도로 비난하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당국은 노무현 정부 때 실패사례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당국의 시각에서 보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한국의 여당이나 야당 모두 보수세력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여야당을 똑같이 취급하는 것처럼 말해 왔다.

 

하지만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의 경험에서 보듯이 이것은 북측의 오판이다. 우리 정권의 성격에 따라 남북관계의 진전 여부가 달라진다는 점은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과거 남한 독재정권 때처럼 '적대적 공존 관계'가 통하는 세상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북측 당국자들은 무엇이 진정으로 우리 민족의 이익이 되고 북한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지 깨달아야 할 것이다.

 

대화 상대가 적극적으로 관계개선 의지를 보이면 이것을 자신들의 우위로 착각해 오히려 더 세게 나오는 북한의 그릇된 태도는 대미 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이었던 오바마 행정부 초기에 우주발사체를 쏘아올리고 뒤이어 핵실험을 실시하는 바람에 당초 예상과 기대와 달리 8년 동안 제대로 된 북미 대화조차 없었고, 미 관계는 물론 한반도 비핵화 협상도 전혀 진전이 없었다.

 

심지어 보수적인 부시 행정부 때보다 북미 관계는 뒷걸음질 쳤다. 앞으로 북한이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 관계를 잘 풀기 위해서는 기존의 잘못된 관행을 극복해야만 할 것이다.

 

미 대화 재개도 당분간은 쉽지 않아

지금 북한은 오는 113일 미 대선 이전에는 미국이 쉽게 북미 대화에 나서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하지만 미 대선이 끝나더라도 누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느냐에 따라 북미 관계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미 관계는 트럼프 리스크에 따른 불확실성과 바이든 당선에 따른 대화재개 지연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이번 미 대선과 관련해 우선 주목할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연임 여부이다. 몇 번의 예외를 빼고 현직 대통령이 연임해 온 미국의 선거 풍토로 볼 때, 올 초만 해도 트럼프의 연임은 확실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무능한 대처, 흑인 플로이드 사망에 대한 연방군대 투입 시도 등 잇단 악재로 인해 그의 재선이 불투명해졌다. 미 대선일까지 4달 이상 남았기 때문에 아직 선거 결과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연초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트럼프 재선의 불확실성은 북미 관계의 불확실성을 낳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되더라도 제1기 행정부 때의 톱다운 방식을 그대로 유지할지 의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재선을 위한 외교적 성과를 내기 위해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과감히 수용했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에 합의한 직후 초강경파 존 볼턴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하는가 하면, 전임 정권에서 합의했던 이란 핵합의를 파기하고, 정상회담을 보름여 앞두고 전격 취소하기도 했다.

 

그 뒤로도 북미 고위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코언 청문회 실시에 맞춰 제2차 정상회담을 열면서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고 했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불확실한 행보로 인해 재선되더라도 북·미 관계는 여전히 예측 불가능하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당선될 경우를 생각해 보자. 바이든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폭군으로 비난하면서도 외교적 해법을 강조하고 있다. 바이든은 대선 캠페인 공식 웹사이트에서 "새로운 시대를 위한 군축 공약을 갱신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미 협상가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공동의 목표 진전을 위해 동맹국은 물론 중국 등 다른 나라들과 지속적이고 조율된 캠페인을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과거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핵 합의가 대북 해법의 청사진을 제공한다고 밝힌 점이 주목된다.

 

바이든 후보의 대외정책을 읽으려면 캠프의 대외정책 담당자가 누군지 알 필요가 있다. 현재 바이든 캠프의 외교정책 자문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활동했던 토니 블링큰 전 국무부 부장관이 책임을 맡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이란 핵협상을 이끌었던 니콜라스 번스 전 국무부 정무차관도 외교안보팀에 합류했다. 바이든의 정책전문위원 출신으로 오바마 대선캠프에서 한반도팀장을 맡았고 현재 맨스필드재단 소장을 맡고 있는 프랭크 자누지가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

 

그밖에 주한 대사를 역임한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커트 캠벨 전 동아태 차관보, 톰 도닐론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에브릴 해인스 전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 토마스 허바드 전 주한 대사 등이 바이든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무엇보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할 경우 북·미 대화의 재개가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 20211월 신 행정부가 출범하면 우선 국무장관을 비롯한 각 부처 장관을 임명하게 되며, 한반도 정책을 총괄하는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국무장관과의 협의를 거쳐 5월 무렵에 지명되어 6월이 돼야 인준청문회가 열리게 된다

 

신임 동아태 차관보가 한반도정책 검토를 완료하려면 8~9월이 돼야 한다. 대북 협상을 맡을 대북정책특별대표도 그즈음에야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지금부터 1년 이상이 지나야 북미 협상이 본격화될 수 있어 북한으로서는 그동안 대북 제재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8(현지 시각) 미국 방송 CNN이 이달 25일 미 전국의 성인 1259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부통령인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두 자릿수 이상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CNN 화면 갈무리

 

문재인 정부를 ''으로 돌리려는 잘못된 시도를 멈춰야

북한 당국자들의 속내는 미국이나 한국의 정치 상황을 보면서, 자신들에게 상황이 유리해졌을 때까지 기다리며 협상에 나오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 또 협상에 나서더라도 자신들이 우위에 서기 위해 강공으로 선수 치며 나오겠다는 계산이다. 남북관계에서도 4.15총선에서 남북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집권여당이 승리하자 상황이 유리해졌다고 판단해 대남 공세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 정세가 미국 변수의 고려 없이 집권여당의 4.15총선 승리만으로 북한에게 유리하게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민주주의 정당정치의 본질은 선거에서 많은 표를 얻어 집권하는 것이지만, 아무리 집권여당이 남북관계 개선을 희망하고 북한당국이 대남 압박을 가한다고 해도 국민여론이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정책으로 채택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대선 국면에 들어가 있는 미국으로서는 공화당, 민주당 할 것 없이 북한의 대미 압박을 받아들일 정치적 공간이 남아있지 않다.

 

지난해 1228~31일 개최된 당 중앙위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결정서가 판단한 대로 북미 간의 교착상태는 불가피하게 장기성을 띠고 있는 정세임에 틀림없다. 올해 14일 자 <로동신문>이 이 전원회의 결정서를 해설하면서 지적한 것처럼, "이번 회의의 기본정신, 기본사상은 정세가 좋아지기를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정면돌파전을 벌이는 것"이라며 "오직 자력갱생의 힘으로 정면돌파 해야 한다"고 파악하고 있다.

 

북한당국이 정세가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정면돌파 해야 한다는 정세 파악은 차치하고, 정면돌파전의 방향이 '자력갱생'에 맞춰져야지 남측을 위협해서 뭔가 얻으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통전부' 대변인 담화에서 "적은 역시 적이라는 결론"이라고 밝힌 것처럼 남측 정부를 ''으로 규정하며 대남 벼랑끝 전술을 쓰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남북 화해협력에도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북한이 현 난국을 정면돌파하는 데도 결코 유리하지 않다. 과거와 같은 '적대적 공존 관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북한 당국자들은 오래된 불신과 잘못된 관행 때문에 화해와 협력 자세보다는 압박과 대결 자세를 취해야 자신들의 목적이 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세계의 세력 판도도 급격히 바뀌고 있고 한국의 국내 정치지형도 크게 바뀌었다.

 

그런 점에서 북한당국은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국제정세를 제대로 보고 올바로 판단해야 한다. 어떠한 상황에도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견결함으로 남북관계의 활로를 열 준비를 갖추는 것이 북한당국이 우선해야 할 과제이다. 우리 사회 안에서도 대북 전단살포가 몰고 올 부정적 결과를 낮추어 보는 무책임한 태도를 지양하고, 그보다는 북한이 제대로 변화의 길에 나설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데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평화재단 /프레시안

 

대북 삐라는 돈벌이 수단반북활동 최대 자금줄은 미국"

대북단체 수십억 지원 CIA 관여설도

"일부 돈벌이가 국가 불안 조성" 비판론

미국의 반북 지원활동 정당성 도마 위에

 

탈북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여파로 남북 사이의 모든 통신연락선이 완전히 차단되는 등 정치적인 문제로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반북 활동을 하는 탈북자 단체의 활동 자금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박상학(오른쪽)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와 회원들이 2016429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낙화IC 인근에서 대형 풍선에 대북전단(삐라)을 넣어 날리고 있다. [뉴시스]

 

지금까지 보도된 바에 따르면 미국 쪽 자금이 탈북자 단체들에게 대거 지원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에 따라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는 데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의 탈북단체 지원사업이 재고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미국 정부는 해마다 수백만 달러를 국내 탈북 단체나 대북 매체 등에 지원해왔다. 미국의 대표적인 대북 지원 단체는 '국립민주주의기금(NED)'으로 사실상 국무부 산하 기관이며, 미국 중앙정보국(CIA)도 깊숙이 관여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1500여 자체 지원 프로그램에 의해 주로 분쟁 지역이나 민주화가 요구되는 곳에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데 전체 지원금의 규모도 연간 수천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NAUH(나우), 북한인권시민연합, 북한인권정보센터, 열린북한방송, 자유북한방송, 데일리NK 등의 단체가 매년 NED 자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NED 홈페이지에 게시된 2019년 탈북 단체, 대북 매체 지원 내역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 '건강이상설' 오보 사태의 진원지인 데일리NK에만 40만 달러(48000여만원)가 지원됐다. NED는 또 북한개발연구소에 28만 달러, 북한인권정보센터에 22만 달러, NK워치에 21만 달러, 나우에 128000달러, 국민통일방송에 60만 달러의 자금을 댔다.

 

아울러 미국 국무부에서도 탈북 단체 등에 직접 자금을 지원하기도 한다. 앞서 NED의 경우 국무부가 직접 나서지 않고 비영리 단체를 내세웠으나, 국무부 내 민주인권노동국의 '인권과 민주주의 기금(HRDF)'은 탈북 인권단체들에게 직접적으로 자금을 지원한다. 이밖에 북한자유연합 등 순수 민간단체들과 교회 등 기독교인들도 매년 여러 탈북민 단체들에 기부금을 전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탈북 단체나 대북 매체들에게 NEDHRDF 자금은 생존을 위해 절대적이며 이들 단체들이 한국정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반북활동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미국이 지원하는 돈줄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이번에 대북 전단 살포를 주도한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도 미국으로부터 자금을 공급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탈북민이자 '북한 보위사령부 직파간첩 조작사건'의 피해자인 홍강철 씨는 9일 페이스북에 "대북삐라는 박상학 형제의 돈벌이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홍 씨는 "박상학 형제의 돈벌이 때문에 북에 있는 우리 가족, 친척들이 머리를 쳐들고 다니지 못하는 이 현실이 너무 처참하지 않냐"고 성토하면서 "돈 몇 푼 때문에 박상학이네 형제가 하는 일에 동조하시면 안 된다. 박상학이네 형제의 돈 벌이를 해주다가 남북교류도 물 건너갔다"고 말했다.

 

 

 

 

 

수잔솔티(오른쪽) 디펜스포럼재단 대표와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이 2016429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낙화IC 인근에서 대형 풍선에 대북전단(삐라)을 넣어 날리고 있다. [뉴시스]

 

이들 단체가 일부 보수 단체, 교회 후원금이나 미국 민간 단체의 지원금 등을 노리고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대북 전단을 발송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탈북단체 관계자는 "풍향도 맞지 않는 날을 택해 삐라를 뿌리려는 이들이 있다"면서 "다 돈을 위해서"라고 귀띔했다. 또 다른 북한 북한 인권단체 관계자도 "언론에 자주 등장해야 미국 국무부나 단체, 또는 한인교회 등에서 지원금을 더 받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적 김포 민통선평화교회 목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박상학 씨를 비롯한 탈북인들은 돈을 받는 것이 목적"이라며 "전단 살포할 때마다 '디펜스포럼재단(DFF)' 대표인 수잔 숄티(Suzanne Scholte)가 박상학에게 돈을 전달하는 것을 우리는 매일 목격했다"고 말했다.

 

더욱이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은 탈북민들이 설립한 각 단체들의 돈 관리가 허술하다는 의혹까지 제기하는 상황이다. 앞서 CBS '김현정의 뉴스쇼'는 지난 5일 탈북자 출신인 지성호 미래통합당 의원의 탈북단체 'NAUH(나우)'가 지난해 후원금이 한달에 10억 원이나 걷혔음에도 회계장부 총액과 차이가 나고, 기부금 사용내역도 통일부에 제출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심지어 탈북인들이 만든 예술단의 행사비를 연합회장 개인이 챙겨서 통일부가 감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또 탈북자를 구출해내는 데 쓰인다면서 정부 돈 수천만원을 빼낸 탈북단체가 적발되기도 했다./ UPI뉴스 / 김광호 기자 khk@upinews.kr

 

 

수주 가뭄 건설사들, '계륵' 리모델링시장 기웃

 

 

 

 

리모델링 공사비가 일반 재건축 공사비를 상회하기 시작하면서 사업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리모델링이 추진되고 있는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 단지 입구 전경.(사진=윤민영 기자)

 

[에너지경제신문 윤민영 기자] 재건축 규제가 강화되면서 일감이 부족한 대형건설사들이 리모델링 시장을 기웃거리고 있다. 그러나 조합방식 재건축 사업보다 비싼 공사비로 진행되는 단지가 많아 수주활동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9일 주거환경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리모델링을 제외한 서울의 재건축 사업장 10곳의 3.3당 평균 공사비는 4869944원이었다. 이는 2018년 리모델링 사업장의 평균 공사비 수준이다. 최근 리모델링이 진행되고 있는 단지 중에서는 3.3당 평균 공사비가 600만원에 근접한 단지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포스코건설이 수주한 서울 서초구 잠원훼미리 아파트의 경우는 3.3당 공사비가 5979000원으로 전국 리모델링 단지 중 가장 높은 가격이다. 구조물 보강 등 높은 공사 난이도가 공사비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는 최근 삼성물산이 수주한 서초구 반포3주구의 3.3당 공사비 542만원보다 36만원 정도 비싸다. 새로 짓는 것 보다 고쳐 쓰는 게 더 비싼 경우다. 업계는 재건축 대안으로 리모델링을 선택할 경우 비싼 공사비로 인한 사업 갈등을 겪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리모델링은 건설과 보수가 같이 들어가는 사업으로, 사업 초기부터 건설계획이 들어가는 재건축과는 조금 다르게 리모델링은 각 단지마다 철골을 뜯어보면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따라서 예상 못한 공사비용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감이 부족한 건설사들이 리모델링 시장 진출을 꾀하고 있다. 최근 서울 성동구 금호동 벽산아파트는 올해 초 리모델링 추진위원회를 설립한 뒤 이달 중 건설사들을 대상으로 사업설명회를 개최할 움직임을 보이자 현대건설, 대림산업, 롯데건설, 포스코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등 대형 건설사들이 플랜카드를 내걸기도 했다.

 

그동안 리모델링 시장은 대형사의 경우 포스코건설이, 중견사의 경우 쌍용건설이 독식해왔다. 그러다 롯데건설이 리모델링 시장을 겨냥한 연구개발을 진행하면서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재건축 연한이 도래한 단지를 집중 겨냥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이후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HDC현대산업개발,대림산업, GS건설도 리모델링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 같은 행보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정부의 재건축 규제 기조에 대비하고 향후 리모델링 시장 확장 가능성에 기대를 걸며 일찍이 사업 포트폴리오를 만들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대형사들은 소규모의 단지더라도 재건축 가능성이 낮은 대신 입지 등 사업성이 높은 곳을 위주로 수주전에 나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리모델링은 재건축보다 사업 속도가 빠르지만 수직증축이 모든 단지에 적용되지 않을 경우 일반분양 물량을 늘리는데 한계가 있어서 수익성이 높지 않을 수 있다. 또 일반분양 물량도 30가구 이상 늘어나면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적용 받는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나 임대주택 건설 의무가 없어서 재건축보다 규제가 덜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수익성 보다는 주거환경 개선에 목적을 둬야 한다.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가 재건축을 규제하고 리모델링이나 가로주택 등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사업을 활성화 시키겠다는 정책을 펼쳤으면 기존 보다 규제를 풀어주는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아직까지 리모델링 수주 시장이 작아서 대형사들도 일반적인 정비사업에 이어 리모델링 현장에서도 과열 수주 경쟁을 펼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6월 기준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는 리모델링 추진 단지 중 시공사가 결정된 곳은 서울의 경우 동대문구 신답극동(쌍용건설), 강동구 둔촌현대2(효성), 잠원 갤럭시1(롯데건설), 송파구 삼전 현대(GS건설) 등이다./ 에너지 경제 윤민영 기자

 

이재용 수사, 상당한 증거 확보법정서 등장한 중요물증’ 3가지

경영권 불법승계 관련 상당 정도 증거 확보

 

삼성, 2015년 초 에피스 상장 어렵다결론

20157, 바이오젠 동의없이 나스닥 상장발표

승계작업 프로젝트G’ 문건과 수백개 미전실 문건

이 부회장 이메일로 보고받고, 수정 지시하기도

삼성바이오 분식회계입증하는 삼정 보고문건

삼바 합작계약서 숨겼다. 콜옵션 부채 반영해야보고

 

이재용 변호인단 박근혜 경제민주화 입법 대응 성격반박

 

법원이 9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 소명이 부족하다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지만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되었고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가 확보되었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의 사기적 부정거래와 분식회계 혐의 입증에 공을 들인 검찰의 수사 성과를 어느 정도 인정한 셈이다. 검찰이 확보한 증거를 중심으로 경영권 불법 승계를 둘러싼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로 소명된 건지 짚어봤다.

 

바이오젠 동의 없이 발표된 에피스 상장자본시장법 위반 핵심

9<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은 전날 이 부회장의 영장실질심사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 투표를 앞두고 발표된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 나스닥 상장 추진이 주가부양을 위한 허위 발표라는 결론을 뒷받침하는 물증을 제시했다. 삼성이 에피스의 투자합작사인 미국의 제약회사 바이오젠과의 협상 결렬로 2014년 말2015년 초께 당분간 상장은 힘들다고 결론내린 문건을 다수 확보한 것이다. 바이오시밀러 개발 업체인 에피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와 바이오젠이 합작해 만든 회사다. 바이오젠이 원하는 시점에 에피스 지분의 절반 가량을 싼 값에 사들일 권리(콜옵션)와 경영동의권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장을 하려면 바이오젠의 동의가 필수적이었다.

 

검찰은 삼성이 합병을 앞두고 주가부양을 목적으로 발표 시점을 ‘20157월 초로 특정한 문건도 확보했다.(관련기사 : [단독]삼성, 물산 합병때 주가 띄우려 에피스 나스닥 상장발표했다) 바이오젠은 동의 없이 이뤄진 상장 발표에 삼성 쪽에 항의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 뒤 고한승 에피스 대표가 직접 미국의 바이오젠 본사까지 찾아가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려 했으나, 결과적으로 협상이 결렬돼 그해 11월 상장은 최종 불발됐다. 이 부회장은 고 대표로부터 협상 경과를 지속적으로 보고받았고, 나스닥 상장 논의를 위해 바이오젠 대표와 직접 통화까지 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검찰은 에피스 나스닥 허위 상장을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 혐의의 핵심 증거로 보고 있다.

 

승계작업 담긴 프로젝트 G’와 수백개의 미전실 직보문건

전날 검찰은 이 부회장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이 부회장이 불법 승계 과정을 보고받았다는 다수의 물증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2012년 미래전략실 핵심들이 승계작업을 위한 티에프(TF)’를 구성했고, 논의 내용을 프로젝트 지(G·거버넌스의 앞글자)’라는 문건으로 수년간 정리해온 내용을 확보했다. ‘프로젝트 지에는 에버랜드·전자·물산이 바이오사업을 나눠갖되 전자와 물산은 유상증자 참여를 포기해 이 부회장이 대주주인 에버랜드가 바이오사업을 온전히 보유하게 하는 방안,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 에버랜드 그룹 내 매출 비중이 높은 식자재 사업을 다른 사업으로 넘기는 방안 등 각종 승계 관련 구상들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지난 56년간 이 부회장님 보고 필이라고 적힌 현안 관련 보고 등 미전실 문건 수백건을 확보했다고 한다. 문건에는 이 부회장이 수정 지시한 내용과 수정 뒤 재보고 경과까지 세세하게 담겨있고, 이 부회장은 이런 문건들을 본인의 전자우편으로 직접 보고받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 김종중 전 미전실 팀장도 검찰 조사에서 이 부회장 보고 여부에 대해서는 대체로 인정하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삼정 보고문건’, 삼성바이오 회계사기 스모킹 건

삼성바이오 분식회계(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건은 삼정회계법인의 보고 문건이 뒷받침했다. (관련 기사 : [단독] 삼정 삼바 부채 누락결론내고도삼성물산에 분식회계 제안) 통합 삼성물산 탄생 직후인 20159월과 11, 삼성바이오의 외부감사인이었던 삼정 회계법인이 삼성물산에 보낸 보고문건에는 합병 결의 전 진행된 회계감사에서 삼정이 콜옵션 조항을 확인하기 위해 합작계약서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는 내용과, 삼정이 콜옵션 부채를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모두 소급해서 반영해야 한다고 결론내린 내용이 담겨있다. 삼성은 금융당국의 조사 과정에서 콜옵션 가치를 평가할 수 없기 때문에 콜옵션 부채를 반영하지 않았고, 회계법인과 콜옵션 조항 내용을 투명하게 공유했다고 주장해왔으나, 이를 모두 뒤집는 물증인 셈이다.

 

특히 이 부회장은 바이오 사업을 자신의 주력업종으로 여겨 설립 당시부터 그 경영 상황을 세세하게 보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삼성바이오와 에피스가 설립될 당시의 지분구조와 회계처리 방식, 분식회계가 이뤄진 2015년을 포함해 2016·2017년까지의 경영의 세세한 부분을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와 고한승 에피스 대표로부터 직보받은 내역들을 다수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이재용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전날 영장실질심사에서 경영권 승계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입법에 대응하기 위한 조처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부수적 효과라고 반박했다. ‘에피스 나스닥 허위 상장 발표에 대해서도 삼성에피스 나스닥 상장을 실제로 추진했고, 그에 따라 발표한 것이라고, 삼성바이오 회계사기 의혹에 대해서는 국제회계기준(IFRS)에 맞게 처리됐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극단적 선택앞에서도 왜곡·과장 보도 멈추지 않는 보수언론

정의연 사태 한달, 보수언론 보도행태 점검]

지난달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뒤 취재경쟁

기부금 관리 부실에 유용·착복 의혹 등 제기

압도적 보도량에 왜곡·과장·부실 일삼아

민언련 조선 기부금으로 딸 학비완전한 오보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

문창극·이영훈 망언땐 엄호하더니

손영미 소장 사망 이후에도 흠집 내기 여전

피해자 편드는 척하며 위안부운동 훼손 비판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운영하는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거처인 마포 쉼터’(평화의 우리집)’ 손영미 소장 사망을 계기로 정의연 사태에 대한 언론의 과도한 취재와 보도가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조··동 등 보수언론은 위안부 피해 당사자이자 인권 활동가인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달 7일 정의연을 공개 비판한 기자회견을 연 뒤 관련 뉴스를 쏟아내며 위안부 운동단체와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한 총공세를 펼쳐 왔다. 정의연의 기부금 유용과 윤 의원의 개인 착복 의혹 등을 제기하는 기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지만, 실체적 진실 규명보단 위안부 운동 폄훼와 인신공격 등 악의적 공세와 왜곡·과장이 심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조선일보> 521일치 6. 피디에프 갈무리

 

과도한 보도량에 내용도 부실·왜곡

<한겨레>는 언론진흥재단의 빅카인즈 분석을 통해 57~67일까지 정의연 사태에 대한 조중동의 뉴스 보도 건수(온라인 포함)를 조사했다. 이 기간에 <조선일보>537, <중앙일보>431, <동아일보>181건의 보도를 쏟아냈다. 조선과 중앙은 보도량 자체가 다른 언론보다 월등하게 많았다.

<조선>8일 치 10<마포쉼터 소장 극단적 선택정의연 압수수색·과도한 취재 탓”> 기사에서 윤 의원은 20174월 위안부 피해자 이순덕 할머니가 별세하자 페이스북에 손씨 개인 계좌를 조의금 계좌라고 공개하며 돈을 걷었다. 윤 의원 외에 개인 계좌로 피해자 장례 비용을 걷은 정의연 인사는 손씨가 유일하다고 보도했다. 연일 이어진 의혹 보도와 취재에 심적 압박을 호소했던 손 소장에게 마지막까지 부정적 이미지를 씌워 흠집 내는 모양새다.

 

 

 

 

<조선일보> 59일치 사설. 피디에프 갈무리

 

이 신문의 공격적이고 악의적인 보도는 사태 초반부터 이어졌다. 지난달 9일치 1<‘위안부 단체 이끈 윤미향, 30년 동반자 이용수 할머니 공격’>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는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윤미향 전 대표는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 성금 용처를 두고 기억력이 달라져 있다고 했고, 정치권에선 이 할머니를 떠받들던 여권이 불리한 폭로가 나오자 표변했다는 말이 나왔다며 갈등을 부추기는 보도를 했다. 또 이날 사설 <“이용당할 만큼 당했다위안부 단체문제 모두 밝히라>에선 정의연과 시민당도 ‘1억원씩 드렸고 이 할머니도 돈을 받았다’ ‘할머니의 기억이 왜곡돼 있다’ ‘심신이 취약한 상태라고 맞받았다이 할머니가 치매에 걸렸다는 것이라고 마치 윤 의원이 이 할머니를 치매 노인으로 규정한 것처럼 단정적인 언급을 했다. 이어 시민단체들은 어느 순간부터 문제 해결보다 문제 유지와 잿밥에 더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위안부 운동을 공격했다.

 

 

 

 

<조선일보> 64일치 김창균 논설주간 칼럼 문 대통령 행사 4번 동원되고 팽 당한 이용수 할머니’. 피디에프 갈무리

 

보수언론이 툭하면 덧씌우는 종북 낙인도 빠지지 않았다. 지난달 21일치 1<‘“윤미향 부부, 위안부 쉼터서 탈북자 월북 회유”> 기사에선 2016년 중국 닝보 류경식당 지배인으로서 여성 종업원 12명과 함께 탈북한 허강일씨가 민변 소개로 윤미향 부부를 만났다는 폭로 기사를 담았다. 윤미향 부부와 정대협, 민변 등이 이들에게 돈을 주며 북한으로 돌아가라고 종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변은 월북을 권유했다는 주장에 대해 허위사실을 짜깁기한 것이라며 즉각 반박했다. 4일치 <‘문 대통령 행사 4번 동원되고 팽 당한 이용수 할머니’>라는 제목의 김창균 논설주간 칼럼에선 문 대통령에게 위안부 운동은 반일 비즈니스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반일만큼 확실하게 남는 장사는 없다. 그 영업 파트너는 윤미향씨가 대표를 맡아온 정대협·정의연이다. 이용수 할머니는 잘 팔리는 대표 상품이었다. 시이오도 대표 상품도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그중 하나만 선택한다면 답은 정해져 있다며 이용수 할머니는 조연으로 동원됐을 뿐이라고 강조한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8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운동의 역사다. 누구의 인정도 필요 없이 스스로 존엄하다며 위안부 운동의 대의가 훼손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 512일치 기사. 피디에프 갈무리

 

<중앙일보>피해자 뜻을 저버렸다며 윤 의원 공격에 나섰다. 지난달 11일치 <“위안부 지원금 1억원 받으려 하자 윤미향이 못 받게 했다”>(1),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일본 지원금 받으면 배신자 낙인’>(6) 기사에서 “10억엔과 관련해 윤 당선인은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게 이용수 할머니의 주장이다. 윤 당선인 역시 일방적 통보를 받은 것이라고 했지만, 10억엔에 대해 미리 알았다는 점 자체는 시인했다며 피해자의 자발적 의사와 선택권을 무시한 것처럼 몰고 갔다. 하지만 일본의 10억엔 제시는 당시에도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다 알려진 사실이었으며, 일본의 사죄 없는 위로금은 피해자 상당수가 반대한 사안임에도 이를 위안부 운동을 낙인을 찍는 왜곡 프레임으로 이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일보>는 정의연이 코 묻은 어린이 돈까지 횡령한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가는 모양새를 보였다. 지난달 22일치 1<‘영수증도 없이 학생 성금-저금통 받은 정의연’> 기사에서 정의연은 어린이 등이 낸 성금을 받고도 영수증 발급을 하지 않은 사례들이 확인됐다. 중고교생들이 몇 년 동안 전한 기부금도 부실하게 공시됐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몰아치는 회계 의혹 보도, 문제는 따로 있다보고서를 통해 모든 기부금은 영수증이 발급돼야 하지만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처럼 바로 발급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영수증과 국세청 제출용 기부금 영수증은 다름에도, 영수증도 안 주는 단체로 낙인찍고 기본 도리도 지키지 않는 단체로 묘사했다회계 부정 프레임에 끼워 맞춘 행태로 현실을 못 따라간 보도라고 비판했다.

 

 

 

 

<동아일보> 522일치 기사. 피디에프 갈무리

 

문창극·이영훈 엄호와 다른 잣대

조중동은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의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던 언론이 아니다. 되레 위안부 관련 망언을 한 뉴라이트 인사들을 엄호하는데 앞장섰다. 지난 20146, 박근혜 정부 시절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되자 <한국방송>(KBS) 등 일부 언론이 식민지배가 하나님의 뜻이었다거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등 과거 그의 발언을 통해 친일·반민족적 역사관을 문제 삼는 것에 대해 조중동은 문 후보를 지원사격했다. 자진 사퇴 논란 와중에 이들은 친일을 강조한 의도적 편집”(조선), “오도여론·왜곡보도”(중앙), “악마의 편집”(동아)이라며 일제히 한국방송을 비난했다. 정부를 공격하려는 정파적 사고로 보도했다는 주장이었다.

 

앞서 20049<반일종족주의> 저자인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과거 진상 규명 논란을 다룬 <문화방송>(MBC) ‘100분 토론에 나와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상업적 공창론에 빗대는 망언으로 파문을 일으키자 조중동은 그의 발언을 제대로 보도하기보다 되레 옹호하거나 해명에 무게를 실어 물타기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도 이번 정의연 사태엔 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 편에 서는 척하며 위안부 단체를 공격하고 있다. “투명성을 확보하되, 30년 투쟁의 성과가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이 할머니 발언 취지는 나 몰라라하는 셈이다. 친일 시각에서 반민족주의를 노골화하는 뉴라이트와 극우 유튜버의 프레임을 그대로 따른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봉우 민언련 언론모니터팀장은 이들 언론의 정의연 관련 보도는 부실·오보·왜곡·과장이 많다. ‘정의연 기부금을 윤미향 의원 딸 학비에 썼다는 조선일보 보도는 완전한 오보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단체들의 성과를 뒤흔들며 자신들의 의도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 것이라며 이는 이는 이용수 할머니의 문제 제기와도 거리가 있다고 비판했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

 

한국전쟁 70미국의 북한 악마화넘어서야 끝난다

남북·북미 정상회담에도 정전상태

미국 기독교적 선민의식과 이분법 탓

악마는 대화 대상 아닌 제거의 대상

 

북한 전문가로 유명해져 종종 협박

악마인 북한 편들고 미 이익 반한다

조지아대학 총장에게 파면 압박까지

유력 로펌 대표 대학 기부 중단위협도

 

미국 정치적 경제적 목적세가지 동기

첫째 중국의 군사력 증대·팽창 견제

둘째 주한미군 주둔의 정당성 강화

셋째 남한 대상 무기구매 종용·강요

 

한국전쟁 때부터 양민들까지도 악마화

35천여명 학살당한 황해도 신천 사건

진두지휘한 육군 소장 해리슨 디 매든

‘ABC’ 방송 통해 신원파악 요청했으나

미군 쪽 그런 인물 기록 없다존재 부인

 

‘6·15’ ‘10·4’ ‘4·27’ 세차례 선언에 답

민족 자주의 원칙

 

 

 

 

박한식 교수는 한국전쟁 70년이 되도록 정전상태인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미국 패권주의 세력의 북한 악마화 프레임을 넘어서는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정전협정 체결 직전인 1953722일 미군들이 휴전선에서 비무장지대 표지판을 세우고 있다. 사진 남북회담본부

 

작금의 한반도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70년 전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남북한 대치 상황도 여전하고 북한은 이미 실질적인 핵국가가 되었으며 남한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북-미 간에는 여전히 험악한 말들이 오간다.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과 두번의 북-미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정전협정은 여전히 유효하고 평화협정은 고사하고 종전선언조차도 요원한 게 현실이다. 왜 지난 70년 동안 남북 관계 그리고 북-미 관계는 제자리걸음만을 반복하고 있는 것인가?

 

문제는 미국에 있다. 미국이 집요하게 추진해온 북한에 대한 악마화가 그 근원이다. 기독교 이념에 바탕을 둔 선민사상과 미국의 가치로 선과 악을 재단하는 이분법적인 행동양식은 북한을 악마로 규정하고 따라서 악마는 이 지구상에서 제거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정당화한다. 악마는 없애버려야 하는 대상이지 대화와 타협을 위해 같은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게 미국의 사고방식이다. 악마를 죽이는 일에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정당화될 수 있으며 전쟁 윤리나 도덕적 규범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을 악마로 인식하는 풍조는 실제로 미국 사회 저변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 배운 사람이든 못 배운 사람이든 북한에 대한 혐오감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데는 별반 차이가 없다. 나는 북한을 오가며 북-미 대화와 관계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로 인해 미국 언론의 조명을 받는 일도 많았다. 미국 전역에 송출되는 <에이비시>(ABC)<시엔엔>(CNN) 등은 물론 지역 언론들과도 수많은 인터뷰를 해왔다. 그러나 방송으로 유명해지면서 뜻하지 않은 고통도 감내해야 했다. 해마다 몇차례씩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협박에 시달렸다. 내가 악마인 북한을 편들고 찬양하며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활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밤길을 조심하라는 협박이 많았는데 그런 협박을 받는 날이면 우리 가족은 며칠 동안 저녁 외출을 극도로 삼가야 했다. 누구나 총을 지닐 수 있는 미국 사회를 생각하면 나와 가족의 안위가 늘 걱정이었다.

 

조지아대학(UGA)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한번은 총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애틀랜타에서 제일 큰 로펌의 대표 변호사에게 정식 항의 서한을 받았는데 그 내용인즉, 박한식 교수를 즉각 파면하고 다시는 강단에 서지 못하도록 하라는 압력이었다. 그 변호사는 편지에서 내가 악마 정권인 북한을 대변하고 옹호하는 사람이기에 자기 아이들을 그런 사람 밑에서 공부하도록 놔둘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그 로펌에서 조지아대학에 매년 해오던 기부를 중단하겠다는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다행히 총장은 학문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람이었고 나의 학문적 노력과 평화를 위한 열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내 신상에 큰 악영향은 없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평생을 일해왔지만, 미국에서도 남한에서도 늘 빨갱이 또는 친북 종북이라는 딱지가 붙어다녔던 내 삶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착잡하다.

미국은 무력을 통한 북한 붕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경제 제재와 정치적 고립을 이용한 북한 붕괴 전략으로 선회했다. 물론 이 전략도 북한을 붕괴시키지는 못할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은 북한에 대한 악마화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했고 북한을 군사적 위협을 넘어서 같은 하늘 아래 공존할 수 없는 악마로 규정했다. 미국의 잣대에서 보면 북한은 악마가 되기 위한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미국과 다른 정치체제, 비민주주의 국가, 종교의 자유가 없는 인권 유린의 사회, 국민 탄압과 정치범 수용이 일상인 나라, 그리고 미국의 젊은이 오토 웜비어를 죽인 나라까지. 북한, 중국, 이란, 이라크 등 미국이 악마화한 국가들을 보면 악마화는 다분히 인종적인 우월감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북한 악마화는 또한 미국의 현실적인 정치적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세가지 동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첫째는 중국의 팽창과 관련이 있다. 중국의 도전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데 주한미군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미국은 북한을 악마화함으로써 주한미군 주둔의 명분을 강화하면서 실제적으로는 중국의 군사력 증대와 팽창을 견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배치 논란을 보면 이 점은 명백하다. 미국은 사드가 대북 억제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대중국 견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아는 바이다. 둘째는, 남한에 주둔하는 미군의 정당성 강화이다. 북한이라는 악으로부터 남한의 안위를 지켜준다는 명분은 미군의 존재를 신성하게 만들어놓았다. 셋째는, 경제적인 동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악마로 규정된 북한은 남한의 주적이 되기에 충분했고 미국이 남한에 무기 구매를 종용하고 강요하는 수단이 되었다. 매년 실행되는 한-미 연합훈련은 미국의 첨단무기를 선보이는 무기 박람회장으로 변질되었다.

 

무기 판매를 위해서 군산복합체는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군사적 갈등과 긴장을 부추기며 종종 의도적으로 악마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정보가 없으면 어디서 군사적 갈등을 조장할지 누구를 악마로 만들지 결정하는 게 쉽지 않다. , 정보는 군산복합체의 활동을 정당화하는 구실을 한다. 이런 이유에서 보면, 북한과 관련해 쏟아져 나오는 정보는 대부분 거짓이거나 아니면 조작 왜곡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시답잖은 사실을 침소봉대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있다. 군산복합체의 입맛에 맞는 가짜정보를 정보기관이 생성해내고 언론은 그것을 검증 없이 선전해대는 나팔수 노릇을 수행한다. 북한이 미국을 공격하기 위해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만든다는 미국 언론의 보도를 보면 참으로 답답함을 느낀다. 내가 아는 한 북한은 미국을 공격할 생각도 없고 계획도 없다. 북한도 미국을 공격하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북한은 한국전쟁 때 미군이 황해남도 신천 일대에서 양민 35383명을 학살했다며 신천박물관을 지어 반미교육을 하고 있다. 2009년 북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박물관을 방문한 모습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은 북한 정권뿐만 아니라 선량한 주민들까지도 악마로 여겨왔다. 한국전쟁 때 황해도 신천 양민학살 사건이 대표적인 예이다. 신천에는 이들의 혼을 달래고 반미 성토장으로 활용되는 신천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나는 1990년대 북한을 자주 오갈 때면 여러차례 신천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악마로 둔갑해 희생당한 순박하고 무고한 사람들의 명복을 빌었다. 나는 추모관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북한은 이 박물관을 미국의 야수성과 잔인성을 선전하고 교육하는 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19501017일부터 52일 동안 어린아이, 부녀자, 노인을 포함하여 35383명의 선량한 사람들이 미군에 의해 무참히 학살되었다. 무고한 주민들을 악마로 보지 않았다면 과연 이런 학살이 가능했을까?

 

나는 매번 박물관 안내원의 해설과 설명을 한자도 빠짐없이 받아 적었다. 북한의 설명을 보면, 학살은 미제 침략군 장교인 육군 소장 해리슨 디 매든의 진두지휘하에 자행되었다. 박물관은 또한 해리슨의 사진과 함께 그의 신분을 확증하는 여러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나중에 미국으로 돌아와서 내게 북한 관련 자문을 하고 있던 <에이비시> 방송국에 의뢰하여 해리슨 디 매든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했으나 미 국방부는 그런 사람의 군 복무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간단한 답변만을 보내왔다. 추측하건대 미국으로서는 해리슨 디 매든의 존재를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박물관은 1950년 학살 현장의 사진 자료는 남아 있지 않지만 생생한 증언을 토대로 그려진 걸개그림들로 가득 차 있었다. 걸개그림들이 하도 생생하고 끔찍하여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또한 희생당한 양민들이 사용하던 가재도구며 신발, 안경 등의 개인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한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희생자들의 유골과 머리카락을 그대로 전시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2015727일 정전협정일(전승일) 62돌을 맞아 신천박물관을 새로 지어 개관식을 했다. 사진 연합뉴스

 

나는 신천박물관을 방문할 때마다 독일 뮌헨에 위치한 다하우 강제 수용소 추모 사이트를 떠올리곤 했다. 유대인들을 학살한 나치의 만행과 신천 양민학살이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이 북에서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19507월 충청도 노근리에서도 미군에 의한 끔찍한 양민학살의 만행이 자행되었다. 피난민 행렬에 북한군이 한두명 섞여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범죄였다. 우리 민족을 하찮고 열등한 존재로 보고 아무 죄도 없는 양민들을 악마로 보지 않았다면, 과연 이런 만행이 가능했을까?

 

북한 관련 가짜뉴스는 악의적으로 만들어진 시나리오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우리의 북한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기도 하다. 내가 보기에 우리는 북한을 수박 겉핥기만큼도 모른다. 북한의 행동과 정책을 결정하는 근본적인 동력과 요인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이 미국과 한국을 통틀어 과연 몇명이나 있겠는가?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북한에 부과된 무지막지한 경제 제재는 한가지 가설에서 비롯되었다. 북한 주민들이 경제 제재로 고통을 받아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상황이 되면 그 불만이 정권에 대한 저항으로 발전하여 아랍혁명 같은 바람이 불 것이라는 가설이다. 북한에서 그런 일이 과연 일어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믿고 있다면 그것은 무지의 소산이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나는 확신한다.

민주주의 국가든 공산주의 국가든 체제를 유지하는 근본은 국가의 정통성이다. 정통성의 원천은 단 한가지, 즉 인민의 동의와 지지이다. 다시 말해 정치체제가 인민의 지지를 잃으면 정통성을 상실하게 되고 그 체제는 붕괴하는 것이다. 북한 체제는 인민들의 호주머니에 돈을 채워줌으로써 인민들의 경제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서 정통성을 찾는 체제가 아니다. ‘길을 찾아서’ 27회에서 언급했듯이 북한 체제의 정통성은 주체사상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북한의 통치 이념인 주체사상을 바로 보지 않고서는 북한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북한 인민의 삶을 옥죄는 경제 제재는 오히려 북한을 똘똘 뭉치게 만들고 단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북한을 더 민족주의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1968년 초 북한 원산 앞바다에서 나포된 미해군의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는 -미 군사 대치의 상징이다. 그해 말 미해군 승조원 82명은 사과문을 쓰고 석방됐다. 사진 연합뉴스

 

 

 

 

 

 

북한은 나포한 미해군의 푸에블로호 선체를 지금도 평양 보통강변에 전시해두고 항미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는 수십차례 북한을 방문하면서 북한 관리들뿐만 아니라 일반 주민들과의 대화를 통해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면, 대미 승리의 상징이자 전리품으로 여겨지는 푸에블로호가 보통강에 전시되어 있다. 1968년 동해상에서 비밀 정찰 중 북한에 나포된 미군 정보함 푸에블로호는 원산에서 대동강으로 옮겨져 전시되다가 김정은 집권 이후 지금의 전시 장소인 보통강으로 다시 자리를 옮겨왔다.

 

북한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은 방문하는 장소이며 특히 학생들의 견학이 빈번한 곳이다. 나도 평양을 방문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찾는 곳이기도 하다. 내부에 들어서면 미군 승조원 82명을 조사했던 전 과정과 그들이 죄를 인정하고 뉘우치는 장면들이 비디오로 상영되고 있다. 내가 푸에블로호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북한 주민들 대부분은 푸에블로호를 미국과 싸워 이겨서 항복을 받아낸 영광의 상징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푸에블로호는 항미 교육의 장이자 북한의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역사적 장소이다. 특히 미국과 외교 설전이 오가는 때면 푸에블로호는 방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무력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북한이라는 악마를 제거하는 것이 미국의 도덕적 책무이며 신에게 부여받은 소명을 이루는 신성한 미션이라는 환상은 미국의 북한 정책을 지배해온 지침이다. 또한 북한이라는 악마를 제거하는 것은 인류의 공공선을 추구하는 일이므로 다른 나라들도 미국에 협력하고 공조해야 한다는 논리도 더해졌다. 한국 또한 남북 관계를 북-미 관계에 맹목적으로 종속시킴으로써 미국의 대북한 악마화에 동조해온 것이 현실이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명한 ‘4·27 판문점 선언문’. 박한식 교수는 그동안 남북정상회담 때마다 나온 공동 선언문의 첫 문장에 한반도 평화의 해법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연합뉴스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명한 ‘4·27 판문점 선언문’. 박한식 교수는 그동안 남북정상회담 때마다 나온 공동 선언문의 첫 문장에 한반도 평화의 해법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연합뉴스

악마화를 통한 북한 붕괴는 절대 가능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북한에 대한 악마화를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금의 한반도 상황을 변화시킬 돌파구는 없는 것인가? 해답은 지난 세차례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 선언문에 잘 나와 있다. 20006·15 남북 공동선언, 200710·4 남북 정상회담 합의서, 그리고 20184·27 판문점선언을 보면 세 선언문 모두 1조에 공통된 표현이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민족 자주의 원칙이다. 한국이 좀 더 유연한 자주성을 가지고 독자적인 주권국가로서 국익에 부합하는 정책을 만들고 추진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미국과 국제사회에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설명하고 남북 교류와 협력 그리고 통일이 미국의 국익에 해가 아니라 득이 될 것이라는 외교적 설득이 절실히 필요하다.

구술집필 권준택 미국 유티카대학 교수/진행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예비역 준장의 일갈 "백선엽이 이순신? 원희룡·안철수 무식"

[인터뷰] 박경석 육군 예비역 준장 "프랑스였다면 백선엽의 행동은 극형감"

 

 

 

 

박경석 육군 예비역 준장. (자료사진) 권우성

 

"프랑스였다면 그는 극형감이다."

박경석(88) 장군(육군 예비역 준장)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백선엽(101) 장군(육군 예비역 대장)의 사후 현충원 안장과 관련된 논란에 "현행법이 그러니 (현충원에 안장되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후과가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9<오마이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백선엽은 간도특설대에서 독립군을 잡는 데 앞장선 사람이다"라며 "일본군대 출신이라고 해서 다 친일파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간도특설대로서 독립군을 잡으러 다닌 사람을 국립묘지에 안장할 순 없지 않겠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내가 백선엽 가족이라면 현충원에 안장하지 않겠다"라며 "그게 백선엽 자신을 위해서도 더 낫다. 이후 벌어질 사태를 어떻게 견디겠나"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일각의 국립묘지법 개정 움직임과 관련해선 "법을 바꿀 수 있다면 바꿔야 한다"라며 "아무리 후사에 공적을 세웠더라도 조국을 배반한 것이 입증되면 프랑스에선 극형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백 장군을 이순신·홍범도 장군에 비유한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향해선 다소 거친 표현을 사용하며 비판하기도 했다.

"미친X들이다. 무식하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다. 어떻게 대한민국 독립을 막으려던 사람을 (일본과 싸운) 이순신·홍범도와 비교할 수 있나. 기가 막히다. 우파든 좌파든 명백한 진실을 봐야 한다."

 

박 장군은 이른바 '육사생도 2' 출신이다. 육사생도 2기는 1950년 육사 입학 후 한 달도 안 돼 6.25전쟁이 터져, 임관도 하지 못한 채 전장에 투입된 이들을 말한다. 그들은 한동안 육사에서 정식 기수로 취급되지 못했다. 육사생도 2기 상당수가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박 장군도 전투 중 수류탄 파편에 맞아 몸의 왼편을 크게 다쳤다. 그때 왼쪽 귀의 고막을 잃기도 했다.

 

1980년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차장이었던 박 장군은 당시엔 '광주사태'로 불렸던 5.18민주화운동 직후 무공훈장 심사를 거부했다가 결국 군복을 벗었다. 전역 후 한국군사평론가협회를 만들어 회장으로 긴 시간 활동했다.

 

박 장군은 이명박(MB) 정부에서 추진했던 '백선엽 초대 명예원수 추대'를 강력히 비판해 결국 이를 무산시킨 이력도 갖고 있다. 그는 "(백 장군이) 아무리 나의 옛 상사라 하더라도 그를 국가보다 우위에 둘 순 없다"라며 "간도특설대에서 독립군을 잡았던 사람이 초대 명예원수가 되고 영웅으로 부각된다면 대한민국이 뭐가 되겠나"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아래는 박 장군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MB정부가 추진한 백선엽 초대 명예원수 막은 이유

- 최근 백선엽 장군의 사후 현충원 안장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백선엽은 간도특설대에서 독립군을 잡는 데 앞장선 사람이다. (일본어판 자서전에서도) 스스로 그런 이야기를 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6.25전쟁의 4대 영웅도 아니다. 현재 법대로라면 대전현충원에 묻히게 될 건데, 현행법이 그러니 그건 어쩔 수 없다고 본다. 다만 후과가 클 것이다. 제가 백선엽 가족이라면 현충원에 안장하지 않고, 동생 백인엽이 묻혀 있는 가족묘에 안장하겠다. 그게 백선엽 자신을 위해서도 더 낫다. 이후 벌어질 사태를 어떻게 견디겠나."

 

- 백 장군이 6.25전쟁 4대 영웅이 아니란 건 어떤 의미인가.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 정권이 이후 군과 선배들을 기린다며 6.25전쟁 4대 영웅을 선정한 바 있다. 한국에선 김홍일 소장과 김정우 대령, 미국에선 맥아더와 워커가 4대 영웅으로 선정됐다. 이미 1984~85년도의 일이다. 김 소장은 한국광복군 출신으로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대한민국 최초 장군으로 임관한 인물이다. 6.25전쟁 초기 흩어진 병력을 모아 한강방어선을 구축해 사흘 동안 인민군이 못 내려오도록 막았는데, 그때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참전을 결정했다. 그때의 지연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김 대령은 6.25 전쟁 때 384개 사단 중 춘천에서 1개 사단을 맡고 있었다. 이때 인민군의 공격을 막아내 그들이 상당한 시간을 허비하도록 만들었다. 인민군은 춘천에서 수원으로 이동해 국군을 포위하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김 대령 때문에 이 계획이 무산됐다. 김 소장과 김 대령이 양쪽 날개에서 버텼기 때문에 물밀 듯이 밀려오던 인민군의 남하를 지연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4대 영웅에 선정된 것이었다. 근데 나중에 이상하게 백선엽과 김동석 대령이 끼어들었다. 이들은 미국과 매우 가까웠던 사람들이다."

 

(미국 정부는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정전협정 50주기 기념사업을 진행하며 6.25전쟁 4대 영웅을 선정한 바 있다. 이때 선정된 인물이 한국의 백선엽과 김동석, 미국의 맥아더와 리지웨이다. 박 장군은 훨씬 이전인 1984~85년 한국 정부에 의해 맥아더를 제외한 다른 인물들이 6.25전쟁 4대 영웅으로 선정됐다고 주장한다 - 기자 주)

 

- MB정부에서 백 장군을 초대 명예원수로 추대하려고 했을 때 강하게 반발했다.

"(백 장군이) 아무리 나의 옛 상사라고 하더라도 그를 국가보다 우위에 둘 순 없다. 간도특설대에서 독립군을 잡았던 사람이 초대 명예원수가 되고 영웅으로 부각된다면 대한민국이 뭐가 되겠나. 완전히 대한민국을 죽이는 길이다. 그때 채명신, 박정인, 이대용 장군 등 대한민국의 정의감 넘치는 장군들이 백 장군의 초대 명예원수 추대를 막아줬다. 그때도 <조선일보>(백선엽 명예원수 추대에) 앞장을 섰다.

 

제가 노골적으로 비판하니까 청와대에서도 연락이 왔다. 전화를 했던 비서관이 (MB를 칭하며) '각하'라고 하더라. '장군님, 각하가 결정하시려는데 왜 반대하십니까' 그러기에 내가 '야 이 XX, 대한민국이 어떻게 생긴 나라인데 독립군 잡으러 다닌 사람을 대한민국 초대 명예원수로 세울 수 있냐'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백선엽이 초대 명예원수가 된다면 우리의 건국이념은 말소되고 만다.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결국 국방부에서 육군 소장인 인사복지실장과 육군 대령인 담당 과장이 집으로 찾아왔더라. 그래서 내가 이런저런 자료를 보여줬다. 결국 명예원수 추대가 무산됐다."

 

- 당시 생존해 있던 채명신 장군은 어떤 반응이었다.

"나 혼자로선 힘이 부족해 채명신 장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울역 그릴'에서 점심을 먹고 백선엽에 대해 이야기했다. 채 장군도 (백 장군의 공적이 부풀려져 있다는 걸) 다 알고 있었다. 낙동강 전선의 다부동 전투를 통해 백선엽이 우리나라를 혼자 다 구한 것처럼 알려져 있는데 그렇지 않다. 낙동강 전선이 240km였고 여기에 한국군 5개 사단과 미군 3개 사단이 배치돼 있었다. 그렇게 8개 사단이 합심해서 지킨 것이다. 백선엽은 그 중 1/8의 역할을 한 것이다."

 

- 2013년 세상을 떠난 채 장군은 서울현충원 사병 묘역에 안장돼 있다.

"돌아가시기 전부터 부인에게, 그리고 저에게 항상 '8평 장군묘 말고 월남전 전우들이 있는 1평 사병묘에 묻히고 싶다'고 말해 왔다. 꼭 채 장군이 아니더라도 다른 예비역 장군의 모습과 백선엽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최근 원희룡 제주도자시가 백 장군을 이순신 장군에 비유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그를 홍범도 장군과 비교했다.

"미친X들이다. 무식하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다. 어떻게 대한민국 독립을 막으려던 사람을 (일본과 싸운) 이순신·홍범도와 비교할 수 있나. 기가 막히다. 우파든 좌파든 명백한 진실을 봐야 한다."

 

- 최근 국립묘지법 개정을 통해 현충원에 안장돼 있는 친일 인사의 묘를 옮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파내야 한다. 법을 바꿀 수 있다면 바꿔야 한다. 백선엽이 주장하는 6.25전쟁 당시 공적을 행여 다 인정하더라도, 프랑스였으면 그의 행동은 극형감이다. 아무리 후사에 공적을 세웠더라도 조국을 배반한 것이 입증되면 프랑스에선 극형이다. 일본군대 출신이라고 해서 다 친일파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지 않은 인물들도 많다. 하지만 최소한 간도특설대로서 독립군을 잡으러 다닌 사람을 국립묘지에 안장할 순 없지 않겠나."

소중한(extremes88) / 오마이뉴스

 

 

 

 

 

, F-15전투기 저위력 전술핵폭탄 투하 성능시험 성공

미국 국립 핵개발 연구소, 지난 3월 실험성공 뒤늦게 공개

전문가 "지하시설 타격 효과적"

 

F-15E 전투기.<사진출처:위키피디아> 2020.06.10

 

미국 핵무기 개발연구소가 F-15 전투기의 저위력 전술핵폭탄 투하 성능시험에 성공한 사실이 뒤늦게 공개됐다. 앞으로 F-35 등 차세대 전투기와 전략폭격기에도 적용될 예정인 가운데, 북한 지하시설도 목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9(현지시간)미국의소리(VOA)방송에 따르면, 미국 3대 핵무기 개발연구소인 샌디아국립연구소는 전날 보도자료를 통해 "F-15E 스트라이크 이글 전투기의 B62-12 핵폭탄 투하 최종 성능시험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B61-12는 미국이 핵무기 현대화 계획의 핵심 목표 중 하나로 삼고 양산을 추진 중인 개량형 저위력 전술핵폭탄이다.

 

이번 실험은 핵탄두를 제거한 모형 B61-12 중력폭탄을 F-15E 2대를 동원해 실제 고고도와 저고도에서 각각 투하하는 방식으로 네바다주 토노파 시험장에서 지난 39일부터 사흘 간 진행됐다고 연구소 측은 밝혔다. 고고도 실험의 경우 해발고도 7.62km 상공에서 모형 B62-12 중력폭탄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낙하 약 55초 뒤 마른 호수바닥 위로 꼿혀 12~15m 높이의 사막 먼지를 일으켰다고 한다. 저고도 투하 실험은 F-15E가 해발고도 304m 상공에서 음속에 근접한 속도로 비행하면서 모형폭탄을 투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사막 표면에 꼿히기까지 약 35초가 소요됐다.

 

샌디아국립연구소는 이번 실험이 미 공군 F-15스트라이크 이글과B61-12 간 호환성을 입증하는 마지막 단계로서 완벽한 무기체계 성능을 증명하는데 성공했다고 강조했다. 스티븐 새뮤얼스 샌디아국립연구소 B61-12체계 팀장은 프로그램 자체는 2010년에 시작됐지만 전투기 호환성 실험은 2013년부터 진행됐다지금까지 지상실험, 가상비행실험, 설계 등 준비태세를 증명하기 위한 작업이 선행됐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이번 실험으로 B61-12F15E에서 탄도비행 방식이나 유도중력 낙하용으로 모두 수행 가능한 것이 증명됐다고 평가했다.그러면서, 향후 B-2전략폭격기와 F-16 C/D계열 전투기,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F-35와의 호환성 실험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동맹국의 전투기에도 실험을 적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는데, 전문가들은 미국과 핵공유협정을 맺고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5개 동맹(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 터키)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고 있다고 VOA는 전했다.

 

B61-12는 최대 50킬로톤의 폭발력을 낼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되며, 지하 깊은 곳에 있는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게 고안돼 일명 핵벙커버스터로도 불린다. 낙하산 대신 꼬리 날개를 부착해 목표를 향해 정확히 날아갈 수 있도록 했고, 기존 핵폭탄에는 없는 GPS 등 내부 유도체계를 장착해 정밀폭격이 가능하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9VOA에 이번 실험에 앞으로 북한의 지하시설을 타격하기 위한 전력 개발도 셈법에 반영됐다고 평가했다. "메가톤 규모의 전략핵무기보다 폭발력이 작기 때문에 한국, 일본, 중국 등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낙진 효과를 최소화하면서 동시에 정확도가 높아 복수의 북한 지하 핵시설을 원점 타격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는 것이다.

 

"저위력 핵폭탄의 셈법은 냉전 당시 상호확증파괴 개념에 따라 소련이 핵 전면전은 야기하지 않는 선에서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경우에 대비해 대칭적 보복 조치를 마련하기 위한 국지전 성격으로 고안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러시아, 중국, 북한 등이 모두 핵 역량을 고도화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대통령에게 폭넓은 선택지를 제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뉴시스/ 오애리 기자

 

100년 전 영국 여성이 이순신 장군 초상화를 그렸다고?

엘리자베스 키스 `올드 코리아` 완전 복원판 출간

100년 전 한국을 찾았던 영국 출신 여성 화가가 그린 조선 시대 무인에게서는 용맹함과 카리스마가 흘러넘친다. 이 그림을 발굴한 재미 한국인 학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사실일 경우 현존하는 이순신 장군 초상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그림이 된다. 그리고 아마도 실물에 가장 가까운 초상화일지 모른다.

 

최근 발간된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20세기 전반기에 주로 활동한 영국 출신 여성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1946년 펴낸 `Old Korea`를 번역하고 그가 1919년 이후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해 그렸던 그림들을 수록했다. 송영달 전 미국 이스트캐롤라이나 교수가 지난 20062월 처음 번역 출간했으나 키스의 한국 관련 그림을 추가하고 화질도 대폭 개선하는 한편 초판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다양한 정보를 더해 이번에 `완전 복원판`으로 다시 내놓게 됐다.

 

우연히 일제 강점기 한국의 풍경과 그곳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따뜻하게 그려낸 키스의 그림들을 접하고 큰 흥미를 느껴 그의 생애와 작품에 관해 연구해온 송 전 교수는 키스가 남긴 그림들을 후손으로부터 매입하는 등 그의 작품을 수집, 보존하는 데도 힘을 기울여 왔다.

 

 

 

 

이것이 이순신 장군?

 

1887년 또는 1888년 스코틀랜드 애버딘셔에서 태어난 키스는 1915년 일본을 방문한 이후 동양의 이색적인 아름다움과 문화에 심취해 동양 각국을 여행하며 그림을 그렸다. 특히 1919년부터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해 진솔한 우리 문화와 일상을 수채화로 그렸다. 1919년 겨울 일본 도쿄에서 사상 처음으로 한국을 소재로 한 그림을 전시했다. 이때 일본 `신판화 운동`의 기수 와타나베 쇼자부로(渡邊庄三郞)를 만나게 된 것을 계기로 목판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키스는 1921년 서양인 화가로서는 최초로 서울에서 연 전시회를 비롯해 서울과 미국, 유럽에서 여러 차례 전시회를 개최했다. 1956년 영국 런던에서 사망한 그의 작품은 미국 오리건대학 조던 슈니처 미술관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이번 `완전 복원판`에 수록된 그림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조선 시대 무관을 그린 초상화다. 김 전 교수는 지난 2007년 캐나다에 살고 있던 키스의 조카 집을 찾았을 때 봤던 키스의 유작 중에서 제목이 따로 표기되지 않은 이 수채화를 발견한 순간 바로 `이순신`을 떠올렸지만, 그때는 워낙 그림이 많아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고 한다. 몇 년 뒤 숨진 조카의 딸에게 이 그림을 포함해 키스의 작품들을 매입한 송 전 교수는 그림을 찬찬히 분석하고 전문가들의 의견도 들어본 결과 이것이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일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

 

 

 

 

엘리자베스 키스 초상화

 

이런 추정을 하게 된 근거 가운데 하나는 주인공의 뒷배경에 나오는 거북선과 판옥선 그림이다. 키스는 상상화나 추상화와는 거리가 먼 사실화만을 그렸다고 김 전 교수는 지적한다. 언제나 실물을 그렸으며, 모델을 구해 직접 보면서 카메라로 찍듯이 그렸다고 한다. 그림의 규모도 이 작품의 주인공이 특별한 인물임을 나타낸다. `77X 55`인 이 초상화는 키스가 평생 그린 그림 가운데 제일 크기 때문이다.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고 한국의 역사도 잘 알았던 키스가 굳이 다른 인물의 배경에 거북선을 그려 넣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김 전 교수는 이것이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라는 심증을 굳혔고 일부 한국의 이순신 전문가도 같은 의견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물론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다. 김 전 교수는 1920년대만 해도 남해안 일대에 다수 남아 있었던 이순신 사당에 걸린 그림을 보고 따라 그렸을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이런 짐작이 옳은지, 옳다면 정확히 어떤 경위로 키스가 이순신 장군의 초상을 그리게 됐는지를 규명하는 것은 전문 지식을 갖춘 역사가들의 과제로 남게 됐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100년 전 우연히 발을 들여놓게 된 한국을 깊이 사랑하고 그곳 사람들을 정확히 이해한 영국 여성이 있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 없이 확인하게 된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191931일 시작된 만세운동을 지켜보고 이런 글을 남긴다.

 

"한국인의 자질 중에서 제일 뛰어난 것은 의젓한 몸가짐이다. 나는 어느 화창한 봄날 일본 경찰들이 남자 죄수들을 끌고 가는 행렬을 보았는데, (중략) 일본 경찰의 키는 한국 죄수들의 어깨에도 못 닿을 정도로 작았다. 죄수들은 오히려 당당한 모습으로 걸어가고 그들을 호송하는 일본 사람들은 초라해 보였다. (중략) 3·1 만세운동은 놀라운 발상이었고 영웅적인 거사였다."

 

 

 

 

책과함께. 376. 38천원.

연합뉴스.

 

기본소득제, 먼저 해본 핀란드가 말해준다 "결과는 충격적"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운을 떼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취지에 공감을 표시했다.

 

김 위원장은 2016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 시절에도 기본소득을 화두로 꺼냈다. 당시 국내 언론은 기본소득을 "진보진영의 어젠다"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합리적 보수 이미지를 가진 김 대표가 제안한 것이 의아하다"고 했다.

 

기본소득, 작은 정부와 시장·행정 효율 추구보수의 논리

한데 기본소득은 원래 보수의 어젠다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국민을 일터에 나오도록 하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어서다.

 

2017년부터 2년 동안 기본소득을 실험한 핀란드도 보수 정부의 주도하에 실험이 이뤄졌다. 실험 목적으로 "노동시장에 대한 참여를 증가시키고, 사회보장 혜택과 관련된 관료주의를 감소시킬 수 있는지 연구"라고 적시했다.

 

각종 사회보장 정책을 모두 기본소득으로 통합해 대체하면 행정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일정액을 기본소득으로 준다. 대신 다른 사회보장은 없다. 그러니 그 돈이 부족하면 나와서 일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유휴 노동력을 일터로 끌어내면서 복지 정책의 통합을 꾀하는 셈이다. 한마디로 행정과 시장의 효율성을 추구한다. 국가가 거저 주는 돈이 아니라는 의미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본소득 등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이런 속내를 간파하는 일부 복지단체는 "기본소득은 기본권 보장이 아니다"며 반대 목소리를 낸다. "실업부조나 공공부조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려는 것"이어서다. 이렇게 되면 돈 없는 저소득층에게 오히려 불리하다. 201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선진국을 대상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도 "저소득층이 타격을 입는다"였다.

 

각국, 실험 거치며 조심스럽게 접근검증없는 도입 논의는 한국이 유일

그래서 어느 국가든 기본소득제를 섣불리 하려 않는다. 특정 집단을 선정해 효과를 실험하거나 국민의 뜻을 묻는 투표까지 하며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국가의 재정과 국민 생활, 복지체계, 조세 제도 등 사회 각 부문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만 유독 검증 과정도 없이 '도입'이나 '시행'을 전제로 논란을 벌인다. 일단 실시하고, 추후 문제가 나타나면 수정하는 구태의연한 정치·행정이 기본소득 접근 방식에도 어김없이 적용되고 있는 꼴이다. 기본소득을 두고 이렇게 접근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통계청장을 지낸 유경준 미래통합당 의원은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 기본소득은 한 나라도, 하고 있는 나라도 없다""시도하려는 국가도 국민투표를 하거나 장기간의 사회적 실험이라는 숙고 과정을 거친다"고 말했다.

 

 

 

 

핀란드 탐페레 시내 호숫가에 자리한 쿠마 레스토랑 사우나에 딸린 간이 수영장에서 여가를 즐기는 핀란드 인. 중앙포토

 

.기본소득이 주목받은 건 꽤 오래전이다. 1970년대 캐나다와 미국 일부 지역에서 실험했었다. 캐나다는 전 국민이 아니라 저소득층에 돈을 주는 실험(민컴 실험)이었다. 미국의 경우 닉슨 대통령 재임 시절 가족부조계획이 의회에서 논의됐다. 그러나 의회는 "시기상조"로 결론 내렸다. 2018년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시가 빈민 지역 1000가구를 무작위로 선정해 주민 개개인이 아니라 가구당 월 1000유로(135만원)를 지급하는 실험(B-MINCOME)을 했다. 고용증가나 창업·구직의욕, 직업훈련 참여 등 고용효과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970년대부터 기본소득 실험국가 전체 실험은 인구 544만명인 핀란드뿐

전국 단위의 실험은 2017년부터 2년 동안 실시한 핀란드가 유일하다. 핀란드의 인구는 554만명에 불과하다. 사회보장 수준도 높다. 이처럼 적은 인구를 가진 복지 국가도 실험부터 했다. 2000명의 실업자를 무작위로 뽑아 매달 560유로(756000)를 지급하고, 다른 실업자 집단과 고용효과를 비교했다.

 

이 실험 결과는 지난해 발표됐다. 이를 두고 "실패""실패는 아니다"는 등 반응이 엇갈린다. 확실한 것은 실험의 목표였던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실패로 보는 이유다. 이에 반론을 제기하는 부류는 실험 목표와 상관없는 "행복도가 높아졌다"는 점을 내세운다.

 

 

 

 

헤이키 히일라모 헬싱키대학 교수. 트위터 캡처

 

. 그렇다면 핀란드 현지의 학자는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헤이키 히일라모 헬싱키대 사회정책학부 교수가 실험 결과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냈다. 결론은 "노동시장에 미치는 효과는 무시할 정도고, '주관적 복지(행복도 등)가 나아졌다'는 조사 결과도 신뢰하기 어렵다"였다. 기본소득 실험이 실패했다는 말이다.

 

히일라모 교수는 "전통적으로 좌파연합이 기본소득을 주장해왔지만 놀랍게도 2017년 실험은 중도 우파인 부르주아 정부에 의해 시행됐다"고 말했다. 그는 "훌륭한 복지국가 시스템을 가진 핀란드가 사회적 보호가 약하거나 전혀 없는 나라에서나 나오는 아이디어를 실험한 것도 특이한 점"이라고 덧붙였다.

 

"기본소득은 은제 탄환 아니다고용 효과 무시할 수준"

히일라모 교수는 기본소득을 실험한 목적을 "사회보장 제도를 재구성하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강력한 노동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고용 결과가 긍정적 신호를 주는 방향으로 나와야 기본소득이 고용시장에서 당근으로서의 효과가 입증된다는 의미다.

 

그는 "기본소득은 실업의 은제 탄환이 아니다"고 단언했다. 서구의 전설에선 은제 탄환을 악마를 퇴치하는 무기로 여긴다. 기본소득으로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

 

히일라모 교수는 우선 실험의 과정부터 비판했다. 그는 "실험 시작 1년 뒤인 2018년 핀란드 정부는 실업 시스템에 새로운 취업 활성화 제도를 도입했다""이로 인해 실험 과정과 표본이 오염됐다"고 꼬집었다. 새 제도 때문에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고용 효과를 제대로 비교분석하기 어렵게 됐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일라모 교수는 "결과는 실망"이라고 했다. 실험을 분석한 결과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의 근로일수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많지도 않고, 소득도 높아지지 않았다는 것. 이를 근거로 그는 "젊은이와 장기 실업자에겐 금전적 인센티브보다 기술이나 건강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시켜줬다"고 꼬집었다.

 

실험 결과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은 201749.6일 일했고, 안 받은 실업자는 49.3일 일했다. 소득 비중은 각각 43.7%, 42.9%였다. 기본소득 실험을 진두지휘한 올리 캉가스 핀란드 사회보장국장도 "고용 효과는 미미했다"고 인정했다.

 

"행복도 높아져 실패 아니라고? 실험 과정 오염돼 신뢰성 결여"

다만 일각에선 웰빙 측면에선 기본소득이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삶의 만족도(10점 척도)는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이 7.3점이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6.8로 큰 차이가 없었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16.6% 25%로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이 조금 낮았다. 미래에 대한 자신감도 58.2% 46.2%로 기본소득의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히일라모 교수는 "신뢰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 이유로 그는 우선 "기초 조사가 없었기 때문에 실험 대상의 주관적인 평가가 기본소득을 받기 시작한 뒤 바뀌었는지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즉 긍정적인 평가는 기본소득 자체와 관련성이 없다. 오히려 기본소득에 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진 시점에서 '(표본으로)선택된' 집단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주관적 평가에) 관련성을 키웠다"고 덧붙였다.

 

히일라모 교수는 또 "실험 도중에 장기 실업자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제도를 시행한 것도 웰빙 조사 결과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을 받지 않는 실업자는 구직이나 직업훈련에 나서지 않으면 새 제도에 따른 제재를 받게 돼 스트레스가 가중됐을 것이라는 의미다.

 

"기본소득 주장하는 사람에겐 핀란드 실험이 충격"

히일라모 교수는 "응답률이 아주 낮은 것도 신뢰도에 의문을 갖게 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실험 뒤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은 설문 조사에서 31%밖에 응답하지 않았다. 안 받은 사람의 응답률은 고작 20%였다.

 

캉가스 국장도 OECD에 낸 보고서를 통해 "표본이 너무 적었다. 그나마 표본의 응답률도 낮았다"고 고백했다.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는 고용 수치와 달리 행복감과 같은 주관적 점수에 대한 신뢰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히일라모 교수는 "기본소득이 저소득층에게 자립을 도모할 수 있도록 활성화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겐 핀란드 실험의 결과는 '충격적'일 수 있다"는 말로 분석 보고서를 갈무리했다.

 

OECD 시뮬레이션에선 기본소득이 저소득층에 더 타격 줘빈곤율 높아져 소득재분배 효과 역행

OECD2017년 영국과 핀란드, 프랑스, 이탈리아 등 4개국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도 히일라모 교수의 분석과 같다. 시뮬레이션 결과 핀란드·영국·프랑스에선 빈곤율이 증가했다. 저소득층이 더 큰 타격을 입는다는 뜻이다. 기본소득이 소득 재분배 효과를 낼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과 정반대다. 이탈리아에서는 빈곤율이 낮아졌다. OECD는 그 이유로 "이탈리아의 사회보장제도는 부자에게 더 큰 혜택이 돌아가는 구조로 짜여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OECD "기본소득 주려면 증세 필요국민 세금 부담 커져"

OECD"최저보장 소득 수준만큼 기본소득을 주려면 증세가 필요하다""국민 대다수의 세금 부담이 올라가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금 비율도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본소득은 혜택을 보는 사람과 불이익을 입는 사람(저소득층)으로 나누게 되고, 이는 결국 근로의욕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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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 2020-06-10 02:35:48 신고하기

역시 중앙일세... 스위스 에서 기본소득에 관해서 국민회부해서 부결됬죠 왜 부결 됐을까요? 기본소득은 복지 정책하고 같이 가야 효과가 나타나는 겁니다 스위스국민들에게 우리나라 돈으로 300주고 복지폐지한다고 하니 스워스 국민들이 머리에 총맏은것도아닌이상 반대 하는게 당연한거 아닢닙니까? 이글 쓴 기자양반 300 기지고 복지혜택없이 스위스 가서 살아보고서 이란글 씁시다. 그리고 핀란드는 실패한게 아닌걸로아는데.... 미래똥곡당 실드 치느라 힘드시죠 천찬히 갑시다. 기본소득이 보수꺼요 국민의 권리지... 단단히 합시다 기자양반... 노동기자면 신자유주의가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건지에 대해서 좀 글올립시다.

 

 

?**** 2020-06-10 01:48:26 신고하기

하위소득 70%에게 국민 기본 소득을 제공 하는것이 자본주의의 붕괴를 막는 길이다. 지금 극우놈들이 기를 쓰고 반대 하는데, 나는 그놈들의 가정형편을 좀 알아 보고 싶어. 솔직히 나는 사는 것 걱정 없다. 단독주택에 죽을 때까지 검소하게 먹고 살 것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러나 하위 영세계층을 생각 해야 돼. 지금 지구촌은 빈부격차의 심화로 폭발 직전이야. 이것은 일찌기 19세기에 도스또예프스키도 자신의 수필에서 토로 했듯이 : "지금 프랑스는 폭발 직전입니다. 영세 서민들의 눈에는 살기가 돌고 언제 어떻게 다시 프랑스 혁명이 터질지 모르는 분위기 입니다." 지금은 19세기 빈부격차의 100배는 더 심해. 가진 놈들은 무한정 가지고도 회사 자금 빼 내고 온갖 Girahl을다 하고 있어. 이번에 국세청이 적발 했지. 강남 요지에 가보면 가관도 아니야. 1억짜리 외제차는 명함도 못 내밀어. 나도 국산차 치고는 고급차를 타지만 창피를 느낄 정도야.

 

Chri**** 2020-06-10 02:23:52 신고하기

?****? 밋친 놈, 또 지랼 떠는 구만. 지금 니들이 사는 것 때매 그런 거 아니잖아. 배가 아파서 그러지. 그담에 대갸리 잘 못 굴려서 사고쳐갖고 가위눌려서 그거 폭로됨, 인생개망신을 당할까 봐서 알아서 기는 거잖아. 모르는 줄 알아? 평양 문수리 류동에 기쥡하고 사생아들 우글거리는 거, 장군님이 지어주신 현대식주택들, 생명보험으로 갖고 있는 거 모르는 줄 알아? 너같은 훌룰루 부화뇌동파들이나 모르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영국 텔레그래프가 알고 다 아는 사실이거든.

 

?**** 2020-06-10 01:51:22 신고하기

지금 형편도 어려운 극우놈들이 이념이 빠져서 허우적거리면 가난한 계층을 엿먹이는데, 한심한 일이야. 지금 미국의 형편을 보라구. 국민의 70%는 영세민 계층이라고 볼 수밖에 없어. 이런식이면 사회는 폭발 한다. 미리 미리 예방을 하는 선견지명을 발휘 해야 돼. 다 같이 먹고 살자는데 형편도 어려운 극우놈들은 여기에다 왜 좌파니 우파니 하고 개.나발을 부냐 이거야?

 

free**** 2020-06-09 21:29:29 신고하기

기본소득은 나라를 망치는 좌파들의 사기행각 감언이설일뿐.... 미통당 소속 정치인들이라고 해서 그들안에 좌파가 없겠냐? 미통당이건 더민당이건 기본소득을 선동하면 그게 바로 좌파지.

 

push**** 2020-06-09 20:04:39 신고하기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왜 저소득인지 원인을 알아야 한다. 저소득의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소득인 것이다. 고소득자는 고소득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s123**** 2020-06-09 21:37:42 신고하기

. 제가 관찰한 바로도 그렇습니다. 고소득자? 엄청나게 시간 투자하고 노력합니다. 그만큼 노력하면 누구라도 부자될 정도입니다. 결국은 개개인의 생각에 달렸습니다. 뜯어먹을 생각이나 하느냐, 벌 생각부터 하느냐.

 

 

pesc**** 2020-06-09 19:31:25 신고하기

우리나라 포플리즘 정치는 이미 전 세계에도 시행하지 않았던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제도를 시행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무임승차제도는 지하철 운영사의 막대한 적자를 가져오게했다. 그 이후 민주당이 초중고교 무상급식제도로 이슈화하면서 총선에서 재미를 보았다.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나라의 곳간은 생각하지도 않고 다음 정권을 지키거나 탈환하는데만 급급하여 포플리즘 정치를 펼치려한다. 이러다 그리이스, 베네스엘라 꼴된다.

 

leee**** 2020-06-09 19:20:53 신고하기

일하고 싶어도 일할수없는 미래사회 향후5년정도뒤....기본소득은 필요하다 이재명이 그토록 말했건만....양극화는 고착화되고 더욱 심해질것이다...문제는 옛날 양극화는 물질과멘탈이 같이 양극됬는데 현대사회는 물질만 양극화가된다 ....이건 분명 문제된다 이재명이 다른정치인과 다른점은 국민인지감수성이 제일 발달한것이다 다른 정치인들보면 헛소리.헛발질..... 국민의삶을 너무 모른다

 

ldra**** 2020-06-09 18:58:37 신고하기

그동안은 세금을 걷어서 기업들의 각종 사업에 지출했다. 일부는 인건비 등으로 순환되지만, 이윤은 기업가들의 주머니로 갔다. 그런데 기본소득은 세금을 직접 전국민에게 주는 것이고, 목돈이 아니라서 거의 100% 순환된다. 재정에 부담되면 액수를 줄여서 지급하면 된다. 뭐가 나쁘다는 거냐?

 

s123**** 2020-06-09 19:10:29 신고하기

기업들은 그동안 세금도 어마어마하게 냈다. 인간아, 이윤이 기업가의 배만 불린건 옛날 일이지. 지금은 정치자금으로도 뜯긴다. 앞으로 미래 먹거리 기술개발도 해야하고... 총체적으로 생각하면 기업이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더 국민들에게 이익이다. 그리 기업이 사회에 손해만 끼치면 전세계 국가가 일류기업 만들라고 왜 발악을 하겠냐? 맨날 뜯어먹기나 하는 인간들 100년도 더 전에 살던 마르크스 귀신놈.

 

nari**** 2020-06-09 18:53:13 신고하기

이제 대한민국이 선진국이라고 머리숙여 예를 갖추어야 하는 나라는 없다. 우리가 시도해서 좋은 결과를 내면 그들이 따라할 것이다. 이런 쓸데없는 기사보다는... 1차 지원금 지급 후 변화되는 것들을 취재해서... 다음번에는 어떻게 해야할지 방향을 제시해라... 실력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수영어린**** 2020-06-09 18:47:56 신고하기

역시 제목만 보고도 중앙 일꺼라 생각했지

 

**** 2020-06-09 17:24:18 신고하기

아참 그 잘나신 이건희가 사실상 죽은 식물 인간이 되어서 일안하고 누워 있는데 주식 배당으로 몇천억이나 처 먹고 있는게 정상이냐?

 

mh01**** 2020-06-09 17:11:22 신고하기

기본소득이 답이다. 왜 막으려고 하는가. 국민 전체에게 돌아갈 파이를 일부 소수가 차지하겠다는 말 아닌가.

 

박원순의 '고용보험' vs. 이재명의 '기본소득'

"20만원부터 기본소득 출발"... "어려운 사람에게 고용보험을"

여당의 차기 대선 경쟁자인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지사가 코로나19 시대의 민생 정책으로 각자가 밀고 있는 '전국민 고용보험''기본소득'을 놓고 9일 맞붙었다.

 

박 시장은 지난 7"폭우가 쏟아지면 우산 쓰는 사람도 있지만, 비를 쫄딱 맞는 사람도 많다"면서 "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에게 똑같은 소득을 지급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로 이 지사를 비판했다.

 

그동안 박 시장의 지적에 대응하지 않던 이재명 지사는 9일 오전 CBS 라디오인터뷰를 통해 '전국민 고용보험제'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지금 인공지능(AI) 등 기술혁명 때문에 생산은 늘어나는데 고용이 없다. 일자리가 줄어드는 게 현실이고 피할 수가 없는데 자꾸 일자리를 만드는 데 매달린다. (전국민 고용보험은) 구조적 문제에 대한 대책이 못 되는 거다. 일자리를 못 만드는 걸 보완하는 것은 그냥 나타난 현상에 대한 대책이다. 문제는 더 근본적인 대책,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이 경제 시스템에서 어떻게 선순환이 가능하게 만들 거냐다."

 

서로의 허점 파고드는 박원순과 이재명

이 지사는 지난 5일 페이스북 글에서 탄소세(환경오염으로 얻는 이익에 과세), 데이터세(국민이 생산하는 데이터로 만든 이익에 과세), 국토보유세(부동산 불로소득에 과세), 로봇세(일자리를 잠식하는 인공지능로봇에 과세) 등의 새로운 재원조달처를 예시했다. 일단 연 20만 원으로 시작해서 수년 내에 연 50만원을 거쳐 경제활성화 효과를 봐가며 연 600만 원까지 늘리자는 제안이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이 어떻게 하면 가능하냐, 재원 문제에 대한 방향성을 두는 것을 전제로 정치인들과의 공개토론을 제안하며 미래통합당 김종인 대표와 김세연·유승민 전 의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상대로 지목했다. 최근 이 논쟁에 참여한 박원순 시장과 이낙연 의원 등 당내 대선후보 경쟁을 해야 할 사람들의 이름은 빠졌다.

 

새로운 복지 정책이 논의될 때 항상 따라붙는 문제가 재원이다.

이 지사가 장기 목표로 제시한 월 50만 원(연간 60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려면 300조 원이 필요하다. 이는 올해 정부 총예산(512조 원)60%에 가깝고, 보건·복지·고용 부문 예산(1805000억 원)을 훨씬 웃도는 비용이다.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마련하려고 하냐'는 현실성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 지사는 이 문제를 단계적 증액으로 풀어가려고 한다. 20만 원 지급 비용은 10조 원으로, 이 정도면 일반회계예산 조정으로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 증세가 없으니 조세저항의 부담을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사는 "10조 원을 특정 재벌기업들 넘어지는 데, 부실기업 지원하는 데 쓸 거냐? 전 국민에게 줘서 영세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 소상공인을 살리는 방향으로 갈 것이냐? 선택은 명확하다"고 주장한다.

 

20 50 600까지 단계적 접근론... 문제는 재원

그러나 기본소득 도입에 비판적인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금액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일단 제도가 시행되면 되돌리기 힘들다고 고개를 저었다.

 

미국 알래스카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온전한 의미의 기본소득이 시행되는 지역이다. 우리나라의 6배가 넘는 면적을 자랑하지만, 인구가 70만 명에 불과한 이곳은 막대한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보유하고 있다.

 

알래스카주는 지난 1982년부터 자원을 공유하자는 취지로 천연자원 수출 대금을 1인당 300~2072달러씩 지급하고 있다. 국가 단위에서는 핀란드가 실업자 2000명을 대상으로 월 560유로(74만 원)2년 동안 지급했지만, 지속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얻지 못하고 실험을 중단했다.

 

이 대표는 <오마이뉴스> 전화 통화에서 "핀란드의 경우 소수를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한시적으로 하다가 중단할 수 있었다"면서 "하지만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려면 관련법도 만들어야 하고 말 그대로 제도의 도입이 되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의 일자리 감소에 대한 대비라는 기본소득의 대전제에도 이 대표는 부정적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심리를 부추기는 정치는 안 된다. 일자리가 줄어들기보다는 일자리의 구성이 바뀌게 된다고 봐야 한다. 과거 세 차례의 산업혁명이 모두 그랬다. 없어지는 일자리도 있겠지만, 고임금·고숙련 일자리와 서비스 쪽의 저임금·저숙련 일자리는 늘어날 것이다. 변화하는 노동시장에서 자동화된 생산 체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직업 능력을 키워줘야지, 일자리 감소를 전제로 기본소득 나눠줄 궁리를 하면 안 된다."

 

상대적으로 비용 적게 드는 전국민 고용보험... 그래도 추가 재원 필요

전국민 고용보험은 기본소득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들지만 수혜 대상이 줄어든다. 노동자와 사용자 그리고 정부가 일정 비율씩 분담하는 보험료로 재정이 충당되기 때문에 정부의 재정 부담도 기본소득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하다.

 

핵심은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와 자영업자, 비정규직들을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정부가 지원해줄 수 있는 폭이다.

 

박 시장은 자영업자에게 지급하는 일자리 안정자금 4조 원과 저임금 청년 대상의 근로장려금 EITC 1조 원을 돌려서 5조 원의 초기 예산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고용보험에 지출하는 예산은 8조 원이 조금 넘고, 그나마 지난해부터 적자로 돌아섰다. 여기에 고용보험의 혜택을 못 받는 미가입자들을 포괄하는 제도가 완성되려면 추가재원 확보가 불가피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국민 고용보험의 기초를 놓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발표하면서도 "보험 대상을 단계적으로 넓혀 나가겠다"고 단계적 접근을 강조한 이유다. 그러나 박 시장은 "대통령도 사회적 합의가 잘 이뤄진다면 당장 하는 것을 반대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면서 전면실시를 주장한다.

 

[전국민 고용보험] 문 대통령이 화두 던지고 박원순 시장이 이어받고

[기본소득] 이재명 지사가 선점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관심

 

전국민 고용보험 전면실시론에는 금융 위기로 근로계층이 실직하거나 비정규직으로 전락한 1997년의 경험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데, 이같은 주장은 양대 노총(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차기 대선의 주요 의제로 부상한 기본소득과 달리 고용보험에 대한 논의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기본소득의 경우 이 지사가 2015년부터 의제화를 위해 노력했고, 2016년 민주당 비대위원장 시절부터 여기에 관심을 보였던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이 재차 주장하면서 이슈로 부각됐다.

 

전국민 고용보험은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 후 박 시장이 논의를 이끌어보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고용보험 관련 로드맵을 발표하면 국회에서 관련 입법이 준비되면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손병관(patrick21) / 오마이뉴스

 

 

망신 주고 들추고 쑤시고... 언론은 이것밖에 못하나-조중동의 쇠락사 (2)

"...언론 망국론이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군부 독재정권에 빌붙어 온갖 굴종과 왜곡으로 군부독재 정권의 수명을 떠받쳐온 수구언론,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면서 조폭적 행태를 일삼는 세습 수구언론의 사주들, 이들 사주들에게 충성을 바치는 중간 보스들의 노예근성과 이들이 휘두르는 붓의 폭력성, 관할영역 확대를 위한 피투성이 싸움처럼 판매부수 1위를 위해 벌이는 살인적인 판매 경쟁 양태, 이런 수준의 신문들이 신문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하면서 이 땅을 황폐화하고 있는 이 처절한 상황이 계속되는 한, 이 땅에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공동체 건설을 바라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20년 전, '한국신문의 조폭적 행태'(1)(한겨레 2000.10.11 '정연주 칼럼')에 담긴 내용이다. '조폭언론'이라는 말을 탄생시킨 첫 글이다.

 

'조폭언론'이라 표현한 이유는 당시 여론시장을 독과점하던 조중동의 행태가 조직폭력배의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자기 관할영역을 지키기 위한 무지막지한 폭력 행사(언어폭력뿐 아니라, 1등 신문 판매경쟁을 하면서 실제로 살인사건까지 벌어졌다), 중간 보스들(언론사 중간 간부)의 두목(족벌 언론사주)에 대한 노예·아부 근성, 조직에 대한 충성심 등 족벌언론과 조폭의 행태는 닮은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1978년 가을, 동아투위(동아일보사 해직언론인) 동지 9명과 함께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나는 조폭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당시 서대문 구치소에는 우리나라 조폭계에서 이름을 떨친 조직의 인물들이 들어와 있었다. 교도관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으니, 그들 중 일부는 청와대 경호실과 검찰 등 당시 권력기관에서 '보호 차원'에서 감옥에 잠시 '모셔다 두었다'는 것이다.

 

권력기관이 정치 목적에서 조폭들을 동원하여 폭력을 행사하게 하는, 권력과 조폭 간 유착이 보통이 아니었다. 야당 행사장 또는 유세장에 폭력배들이 난입하여 난장판을 만드는 일이 흔했는데, 그 과정에 권력과 조폭의 검은 밀착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얘기였다. 실제 '잠시 쉬러' 감옥에 들어온 거물급 조폭들은 여러 면에서 '특별대우'를 받았다. 교도소 안에서 모두가 갇혀있는데, 그들은 자유롭게 활보하고 다녔다. 함께 들어온 부하들은 보스를 하늘처럼 섬겼다.

 

"청와대 경호실과 검찰의 높은 분들이 어제 교도소장 방에서 조폭 거물 누구를 특별 면회하고 갔다"는 얘기를 교도관들이 종종 전해주었다. 그들이 일정 기간 '쉬고 나서' 풀려나곤 했는데, 출소할 때의 풍경은 영화의 한 장면 그대로였다. 서대문 구치소 앞에는 수십 대의 검은색 승용차와 부하들이 일렬로 서 있었다는 것이다. 교도관들이 얘기해준 그들의 세계는 말 그대로 '별 세계'였다.

 

우리나라 조폭 역사를 보면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명동의 '신상사파'가 건달 세계를 지배했다. 당시 신상사파는 주로 주먹을 사용한, '신사적' '낭만적' 깡패였다는 것이다. 그 신상사파가 주먹이 아닌, 칼과 몽둥이를 마구 휘두르는 신종 '조폭'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면서 깡패 세계가 매우 잔인해졌다는 것이다. 내 옆방에 수감되어 있던 조폭 중간 보스에게 들은 얘기다.

 

영역 싸움 벌이는 신문

2000611년간의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생활을 포함해 18년간의 미국 생활을 끝내고 귀국했다. 귀국하자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역사적인 첫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일보>는 본격적으로 냉전의 전사답게, 극우와 수구 기득권의 중심세력답게,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핏발이 선 것처럼 느껴졌던 그들의 언어와 가학적 공격은 신상사파를 칼과 몽둥이로 제압한 신종 조폭들의 폭력을 연상시켰다.

 

<동아일보>는 추석 언저리인 200099일 자에 '대구 부산에는 추석이 없다', 지방색을 부추기는 기사를 썼다. 당시 <미디어오늘>은 동아일보의 '정부 때리기' '영남 달래기'의 원인이 열세에 몰린 영남권 사세를 확장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지방색을 부추기는 기사를 썼다고 분석했다.

 

실제 그즈음 나는 옛날 함께 근무했던 현직 동아일보 기자 한 명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가 이런 얘기를 했다. 지방색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자극하면서 사세를 확장하려는 동아일보의 이 '작태''나와바리'(영역) 싸움을 벌이는 조폭과 뭣이 다른가, 라고.

 

20년 전, '조폭언론'을 처음 썼을 때, '언론망국론'을 얘기했다. 그때나 2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이나 '언론망국론'은 여전하다. 지금은 오히려 온갖 종류의 '매체들''기자들'이라 칭하는 존재들이 넘치는 데다, 포털의 선정성과 상업주의, 거의 무한 반복·재생의 기능으로 '망국 언론'의 패악은 훨씬 더 증폭되어 있다. 그 행태를 보면 마치 방화범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불을 지르며 때로 린치를 가하는 망나니짓 같다.

 

최근 2년간. 거의 패턴이다... 망신준다. 들춘다. 쑤신다. 법과 윤리를 섞는다. 헤드라인으로 자극한다. 입증되지 않은 걸 퍼뜨린다. 청와대를 거론한다. 반박하면 발끈한다, 뭐가 있으니 저러겠지 조롱한다. 의혹 터뜨리는 건 언론의 책무라고 지껄인다. 진실이 아님...상관 없다. 다음 대상, 다른 의혹으로 이동한다. 찔러본다. 망신준다...

- 최경영 KBS 기자의 페이스북 글

 

마포 쉼터 소장의 죽음

 

 

 

 

정의기억연대 이나영 이사장이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평화의 우리집 앞에서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과거 여론시장을 독과점하면서 좌우했던 조중동의 장악력은 종이신문의 급격한 쇠락과 다매체 시대에서 크게 떨어져 버렸다. 그렇게 쇠락한 처지로 전락해서인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폭력의 수준, 논리와 행태는 조악하다. 그리고 이들 논리를 추종하는 대부분 언론의 수준과 행태도 별로 다르지 않다.

 

정의기억연대의 마포쉼터 '평화의 우리집' 손영미 소장이 목숨을 잃었다. 정의기억연대는 고인이 "무엇보다 언론의 과도한 취재경쟁으로 쏟아지는 전화와 초인종 벨소리, 카메라 세례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냈다"'인권침해적인 무분별한 취재경쟁의 중단'을 요구했다(관련기사: '언론 촬영과 취재 일체 금지'... 비공개 된 손영미 소장 추모제 http://omn.kr/1nv40).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할머니들의 손과 발이 되어준 활동가"(한겨레 6.8)로 알려진 손영미 소장이 기자들의 취재경쟁과 검찰의 압수수색에 힘들어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망신주고 들추고 쑤시는 언론, 자료제출 요구만 해도 될 것을 압수수색이라는 강압적인 방식을 쓴 검찰, 둘의 집단 린치가 또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구나 하는 분노를 다시 느끼게 된다.

 

두 집단을 정상으로 바꾸기 전에 우리 공동체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바뀌는 일은 불가능하다./정연주(jung46) / 오마이뉴스

 

 

피의자 신상공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평화와 가치를 열어가는 부천연대 420일 부천북부역 마루광장에서 시민 40여 명이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 및 처벌을 요구하는 침묵 플래시몹을 진행했다.

 

장자(莊子)에는 厲之人 夜半生其子 遽取火而視之 汲汲然 惟恐其似己也’(여지인 야반생기자 거취화이시지 급급연 유공기사기야)라는 구절이 있다. 불구자가 밤중에 자식을 낳고서 급히 불을 들어 비춰보았는데, 그가 서두른 까닭은 자식이 혹여 자기를 닮았을까 두려워서였다는 내용이다. 신영복 선생은 이 구절을 비통하리만큼 엄정한 자기 응시, 이것은 그대로 하나의 큼직한 양심이라고 해석했다(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사건의 가해자들(정확히는 피의자들)의 신상이 공개되고 있다. 가장 먼저 검거된 피의자 조 아무개씨의 실명과 얼굴 사진 그리고 나이가 공개되었다. 얼굴을 드러낸 조씨가 이송되면서 인터뷰를 하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이후 검거된 대화방 운영자들인 피의자 강 아무개씨, 이 아무개씨, 그리고 문 아무개씨의 신상도 차례차례 공개되었다. 아직 검거되지 않은 운영자들은 물론이고 대화방에 가입한 사람 전원에 대한 신상공개 요구도 이어지고 있다.

 

피의자신상공개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09년 강호순 등 연쇄살인범 검거를 계기로 20104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하 특정강력범죄법’)에 제8조의 2(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가 신설됐다. 같은 시기 제정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에서도 당시 제23(현행 제25)를 두어 피의자의 얼굴 등을 공개하도록 하였다.

 

그 이전에도 신상공개제도는 있었다. 이전의 신상공개는 성폭력처벌법 제42조 이하 및 청소년성보호법 제49조 이하 규정과 같이 법원 확정판결에 따른 보안처분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서 재범 방지를 위한 목적이 있었다. , 확정판결 받는 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형사제재로서 기능했다. 반면 특정강력범죄법 제8조의 2, 성폭력처벌법 제25조에서 규정한 신상공개(같은 취지로 범죄수사규칙178)는 확정판결을 받기 전 수사 단계의 피의자를 대상으로 한다.

 

보안처분의 성격을 띤 이전의 신상공개는 가족 등에 대해 연좌제와 같은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비록 형벌과 보안처분은 형식적으로는 다른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이중처벌과 같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곤 했다. 다만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자에 대한 형사제재의 하나라는 점에서, 더 나아가 재범 방지라는 뚜렷한 명분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지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수사 중인 피의자에 대한 신상공개는 전자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상 노출에 따라 방어권이 위축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된다는 점, 그리고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한다는 근본 문제를 야기한다. 그뿐인가. 피의자 신상공개는 형법을 통해서 일반적으로는 명예훼손이 될 수 있고(307조 제1), 특히 피의사실 공표라는 범죄가 되기도 한다(126).

 

물론 피의자 신상공개는 일정한 요건과 절차가 정해져 있다. 공개의 주체는 검사와 사법경찰관이어야 한다.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고 필요할 때’(성폭력처벌법) 혹은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 사건이며 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특정강력범죄법)을 요건으로 한다. 2015년부터 경찰서나 지방경찰청별로 신상공개위원회가 신설되어 이곳에서 공개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신상공개 시점은 피의사실에 대한 법원의 1차 판단이 완료됐다고 볼 수 있는 구속영장 발부 시점 이후를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대개 강력범 얼굴 및 신상공개 지침에 따라,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이미 실명이 공개된 피의자의 경우는 충분한 증거가 확보됐을 시 구속영장 발부 전에 신상공개위원회 결정을 거쳐 공개할 수 있다. 만약 수배 대상자라면 경찰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에 의해 얼굴 사진과 성명, 나이는 물론 직업, 신체의 특징 등 신상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까지 공개할 수 있지만, 이미 신병이 확보된 피의자의 경우는 얼굴, 성명 및 나이 등으로 범위가 축소된다. 이 과정에서 피의자는 자신의 주장을 여과 없이 발언하기도 한다.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하거나 스스로를 영웅시할 수도 있고, 피해자를 모욕하거나 비난하기도 한다. 더러는 양형의 참작을 받기 위해 전략적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

 

일단 신상이 공개되면 사실상 돌이킬 수 없다. 피의자 신상공개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 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함으로써 제도의 정당성과 지지를 확보한다. 하지만 이미 신병이 확보된 피의자에 대해서는 특별 예방(범인이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재사회화)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일반 예방(범죄자를 처벌함으로써 다른 일반인들이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함)의 효과 또한 검증된 바 없다. 그렇다면 국민의 알권리는 무엇일까. 응보 성격의 망신주기와 호기심, 그에 편승한 언론의 상업주의에 그 실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시사IN 자료 200922일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현장검증 모습.

 

공개된 피의자 신상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공공의 이익을 좀 더 적극적으로 재구성하고 이해할 필요는 있다. 이번 텔레그램 n번방 사건처럼 디지털을 활용한 범죄는 피의자가 신상공개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갖기 때문에 의외로 예방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지금 신상공개에 보내는 국민의 지지는 디지털 성범죄의 낮은 처벌에 대한 반발, 즉 검사의 구형과 법원의 판결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때문에 신상공개가 오히려 성범죄자에 대한 효과적이고 정당한 처벌로 국민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지점에서 신상공개 제도에 대한 성찰이 요구된다. 많은 문제를 무릅쓰고 신상공개를 운용할 필요성과 정당성 그리고 운용의 합리성을 도모해야 한다. 우선 공공의 이익의 내용에 대한 합리적 해석 및 공공의 이익과 침해 법익 사이의 실제적 조화가 필요하다. 어찌 보면 원칙적이고 뻔한 얘기 같지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공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얻어지는 이익과 침해되는 법익 사이를 면밀하게 따지는 작업, 형량을 의식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형량 작업을 통해 신상공개 판단의 자의성과 비일관성을 줄여야 한다. 더 나아가 신상을 공개할 만큼 사회적으로 비난 가능성이 높은 범죄와 행위가 무엇인지 알려줌으로써 법치국가적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

 

신상공개가 자칫 피의자의 마이크로 전락하거나 가해자 서사(敍事)의 계기가 되어서도 안 된다. 특히 가해자의 불필요한 신상 노출은 가해자도 알고 보면 지극히 평범하거나 순수한 사람이었다는 식으로 동정 여론을 형성하거나, ‘오히려 비난받을 사람은 피해자였다는 식의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는 공개된 피의자의 신상을 통해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일까. 아니,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저 사람이 나와 무관한 인격이라는 점을 애써 확인하고 그를 타자화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내 안에 잠재할 수도 있는 또 다른 인격의 가능성을 응시함으로써 그를 자기화하려는 것일까. “비통하리만큼 엄정한 자기 응시야말로 신상공개 제도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여야 한다./ 김대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시사인

 

정의연 ‘사태’ 언론 보도 어떻게 볼 것인가[ 미디어오늘 1254호 사설 ]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달 7일 기자회견을 할 때 주목하는 언론은 많지 않았다. 10명 남짓 기자가 모였던 첫 기자회견 때와 달리 두 번째 기자회견에 100명이 훨씬 넘은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불과 몇 주 사이 이슈를 만들고, 이슈를 좇고, 이슈로 먹고 사는 미디어의 성찬이 됐다. 데스크로 재직 중인 한 언론사 간부는 윤미향 의원과 정의기억연대 콘텐츠를 내놔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고 말했다. 불나방과 비슷한 게 미디어의 속성이다. 미디어는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 문제를 사태로 만들었지만 그것이 곧 진실에 부합했는지는 의문이다. 발화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입장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위안부 운동 방식에 고민을 던지는 언론보도가 과연 얼마나 있었는지 물어보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지난 20151228일 한일 양국이 위안부 문제를 최종·불가역적으로 합의했을 때 일부 언론은 위안부 할머니를 애써 지우려하기까지 했다. 한 언론은 위안부 문제에만 매달려 한국과 일본과 반목하는 국면이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된다고 했고, 다른 언론은 위안부 할머니 개인이나 시민단체가 불복해 국내뿐 아니라 국제무대에서 법적 소송을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썼다. 한일합의로 인해 관광업계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엄연한 피해 당사자인데도 위안부 할머니를 주변부로 만들었던 게 언론이었다.

 

정의연 사태에서 합리적 의혹에 정의연이 답해야 할 것도 있었지만 나쁜미디어의 속성을 노골적으로 보여준 보도도 적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의 말을 그대로 옮긴 내용이 대표적이다. 천 이사장은 지난달 24일 요리우리신문과 인터뷰에서 정의연을 강하게 비난했다. 2015년 한일 양국 협상안으로 거론됐던 사이토안을 윤미향 의원이 거부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일본 대사가 위안부 피해자를 만나 일본 총리 사죄 친서와 보상금을 전달하는 안이었는데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국가 차원의 법적 책임 문제를 분명히 하자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의연의 전신) 30년 운동을 부정하는 내용에 가깝다. 천영우 이사장은 위안부 할머니는 생전에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받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추정을 갖고 사이토안에 난색을 표했던 윤 의원을 위안부 할머니들의 배신자로 낙인찍었다. 문제는 천 이사장의 인터뷰를 국내언론이 받아쓰면서 갈등을 조장하는 데 활용했다는 것이다.

 

마포쉼터 소장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에서도 나쁜미디어에 대한 책임론이 나온다. 한 사람이 죽음으로 내몰린 사건에 언론은 덧칠하기 바쁘다. 언론은 윤미향 의원이 마포쉼터 소장을 추모하는 모습을 놓고 포착이라고 표현했다. 포착이라는 단어는 무언가 나쁜 짓을 하다 들통났다는 부정적 의미가 내포돼 있다. 마포쉼터 소장은 언론의 집요한 취재가 괴롭다고 지인들에게 토로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 언론은 보란 듯이 고인의 얼굴까지 실었다. “윤미향, 숨진 소장 계좌로 위안부 할머니 조의금 걷었다라는 기사는 마치 비리에 가담한 마포쉼터 소장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마포쉼터 소장이 윤 의원과 14년 동안 위안부 운동을 함께한 맥락은 제거되고 그는 윤 의원의 공범자로 남았다. 헥터 맥도널드는 만들어진 진실이라는 책에서 진실은 경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진실을 편집하는 31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생략하기’, ‘유리한 기준으로 설명하기’, ‘앞뒤 맥락 무시하기’, ‘악마 만들기’, ‘상황에 맞춰 단어 비틀기등이다. 정의연 사태 관련 보도들 역시 경합하는 진실 중 편집된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되돌아보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기업 프렌들리, 정부도 다르지 않았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 정부의 긴급 경제대책 비판

긴급재난지원금, 전 국민 고용보험 단계적 도입,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에 대한 지원, 그린뉴딜 등 정부가 잇따라 내놓은 경제대책들이 연일 회자되고 있다. 총선을 거치며 전 국민 지급으로 바뀐 긴급재난지원금은 갑자기 여야 정치인들의 '기본소득' 논쟁으로 옮아갔고, 대통령의 언급으로 등장한 '그린뉴딜'은 이명박의 녹색성장과는 다른, 기후변화시대에 조응하는 정책처럼 이야기된다.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 때와는 달라야 한다며,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 중심으로 재정 지원을 하겠다고 한다.

 

정말 이번에는 다를까? 짧은 시간에 쏟아지는 저 정책들만 보면 정부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누구를 위한 어떤 최선인지 알려면, 전체 그림을 봐야 한다. 13조 원의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은 재정건전성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은 경제대책은 총 300조 원 규모에 달한다. 한국뿐만 아니다. 미국과 유럽연합, 중국, 일본 등 세계 각국 정부는 모두 사상 최대 규모의 경제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그 많은 돈을 대체 어디에 쓰나

정부는 '비상경제회의'6차례에 걸쳐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며 경제 전반에 걸친 대책들을 쏟아냈다. 이는 크게 '금융시장 안정', '디지털·그린뉴딜 투자', '생계지원 및 고용안정'으로 나뉜다. 균형 잡힌 위기 대응처럼 보이지만 총 300조 원에 달하는 재정의 대부분은 '금융시장 안정'에 쓰인다. '금융시장 안정'은 기업들에 대출, 채권구매, 어음할인 등의 형태로 돈을 빌려준 은행과 증권사를 지원하고, 회사채나 대출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기업들에게 직접 자금 지원을 하는 것이다. 대기업, 중소기업, 우량기업, 한계기업을 가리지 않고 지원하며 채권시장, 증권시장, 기업어음시장을 망라해서 200조 원 이상 투여된다. 그 어떤 기업, 금융 회사라도 망하지 않게 하겠다는 결의가 느껴질 정도다.

 

이번 대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40조 원 규모로 조성된 '기간산업안정기금'25조 원 규모의 저신용 회사채 매입기금이다. 기간산업안정기금은 주로 재벌 대기업들이 망라된 항공, 조선, 자동차, 통신 등 7개 분야 기간산업에 대출상환 등에 필요한 현금 공급뿐만 아니라, 주식매입과 같은 지분투자까지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국유화 논란이 일자,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 우선주만 취득하도록 하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정부가 재벌 대기업에 거액을 직접 쥐어주는 꼴이다. 이에 더해 저신용 회사채까지 정부가 매입하겠다는 것은 금융사나 기업의 경영손실인 부실 채권을 국민 세금으로 떠안겠다는 것이다.

 

'디지털·그린뉴딜 투자'는 정부가 위기 대응을 넘어, 코로나19 이후 신 성장 동력으로 디지털 산업과 그린 산업을 국가투자를 통해 육성하겠다는 것인데 향후 5년 간 76조 원을 투입할 계획을 밝혔다. 디지털 뉴딜은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에 더해 디지털 교육 인프라 구축과 원격의료와 같은 비대면 산업 육성을, 그린 뉴딜은 공공시설, 주택 등의 에너지효율화 사업이 중심이다. 금융 대책에 비해 재정 규모가 크지 않은 점, 향후 3년 간 55만 개 일자리 창출 목표가 병행된 것으로 볼 때 투입 재정의 대부분은 저임금 임시직 일자리 사업에 쓰이고, 디지털·그린 산업에서는 민간 자본 중심의 시장을 만들기 위해 관련 규제들을 대폭 완화하는 방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생계지원 및 고용안정' 대책은 긴급재난지원금 13조 원, 일자리 창출 사업과 실업급여 확대, 사회보험료 감면 등에 쓰일 11조 원이 중심이다. 정부가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전 국민 고용보험 단계적 도입에는 3년 간 고작 9000억 원의 예산만 배정됐다.

 

한 해 정부 예산이 500조 원, 한국 GDP1900조 원임을 감안하면, 300조 원은 결코 작지 않은 재정 투입이다. 이미 3차에 걸친 추경으로 60조 원의 예산이 추가됐고, 정부보증을 전제로 한국은행이 직접 나서 원화를 무제한 공급하겠다고 했으며, 미국 연준과 60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를 체결해 외화대출도 실시하고 있다. 그야말로 시장과 금융에 대한 국가의 전면적인 개입이다. 자본주의 중심부 국가들이 대부분 비슷한 대책들을 쏟아내는 현 상황은 이번 경제위기의 규모와 강도를 짐작케 한다. 시장과 자본소유권의 신성불가침을 외치다가도 위기가 다가오면 어김없이 정부에 손을 벌리는 익숙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전례 없는 규모의 국가개입이 이뤄지는 지금, 거대한 변화를 눈앞에 둔 중요한 시기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가 한국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온 몸으로 경험했듯이 말이다.

 

이윤은 자본에게, 손실은 사회에게?

코로나19 이후, 고강도 방역대책으로 '물리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면서 여행숙박업, 음식도소매업, 문화예술산업, 판매영업직, 공공기관의 교육, 돌봄영역에 종사하는 노동자, 자영업 종사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겪으며 폐업과 실직이 급증하고 있다. 이 분야의 종사자들은 대부분 특수고용직, 프리랜서, 자영업자여서 고용보험 가입대상조차 아님에도, 5월 실업급여 지급액이 최초로 1조 원을 넘었다. 서비스업을 넘어서 산업 전반으로 위기가 옮아가는 모양새다. 한국은 비교적 방역에 성공해 봉쇄조치까지 시행되진 않았지만 수출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이기에 전 세계적 수요위축과 경기침체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한 실물경제의 수요위축 이전부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저성장과 이윤율 문제는 이미 심각했다. 국제통화기금을 비롯한 여러 경제기구들은 이미 2020년 경기침체를 예상했고 크게 늘어난 기업부채, 부동산 폭등으로 인한 가계부채 문제를 일제히 경고한 바 있다. 저비용항공사의 난립과 과잉경쟁으로 인한 항공업의 구조조정은 세계적으로 초읽기 상태였고, 심각한 과잉생산 상태였던 철강과 석유 생산량을 조절하려던 국제협의는 작년에 이미 실패했었다. 자동차업계는 전기차 전환, 에너지 업계는 탈탄소 재생에너지 전환이라는 산업전환의 한 가운데 있다. 그 와중에 코로나19가 터진 것이고, 이전부터 진행 중이던 아시아나항공, 두산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쌍용차, 한국GM 등 개별 기업들에 대한 산업은행의 자금지원과 매각사업은 해당 산업계 전체를 대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

 

세계적인 과잉생산으로 인한 경쟁의 심화와 이윤율 및 성장률의 하락 위기를, 2008년 국가의 재정지원을 통해 모면한 자본이 다시 과잉생산을 야기하고, 이번에는 코로나19를 계기로 더욱 큰 규모의 국가 지원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원은 그저 어려운 시기를 넘기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나서서 기업에 대출을 권하고 시중에는 돈이 넘쳐난다. 기업이 이 지원금을 가지고 돈이 돈을 불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투기하는 일은 언제나 반복된다. 지속된 과잉 생산으로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곳에 자원이 낭비되며, 그 결과로 드러난 자본의 경영손실을 국가가 대신 떠맡아 사회화하겠다는 게 이번 경제대책의 밑그림이다. ?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살고, 국가경제도 산다는 뿌리 깊은 믿음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경제 정책

그래도 외환위기 때 장롱 속 금붙이까지 갖다 바친 결과가 불안정노동의 일반화, 불평등의 심화였다는 걸 모두가 알아서일까? 정부는 이번 경제대책을 발표하면서 기업 지원의 전제로 고용 유지 조건을 내세웠다. 하지만 '기간산업안정기금' 관련 산업은행법 개정과정에서 고용 유지 조건은 '노사가 고용유지를 위해서 노력한다'는 문구로 바뀌었고, 정부는 90% 이상 고용을 '6개월'간 유지하는 조건을 내건다고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주로 재벌 대기업을 지원하는 이 기금에서 연관 하청산업 노동자들의 고용 유지는 애당초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외환위기 때와 달리 이제 대다수 노동자가 비정규직-불안정 노동자인 상황에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그것도 6개월간 한시적 고용 유지는 '조건'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하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조 단위의 자금을 지원받게 되지만, 다단계 하청구조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인천공항 노동자 대다수가 이미 해고와 무급휴직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그 와중에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은 화물수송 급증으로 2분기 흑자 전환이 예상된다. 그 외에도 저신용 기업의 회사채 매입 등을 통해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에게 수십조 원이 지원되지만 고용 유지 조건은 부과되지 않는다.

 

전 국민 고용보험 단계적 도입도 마찬가지다. 실업급여 지급액은 연일 최대치를 갱신하지만, 고용보험 가입자가 전체 취업자의 절반도 되지 않는 현실이 이번 코로나19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정부는 '전 국민 고용보험'이라는 운을 띄웠지만 고용된 임금노동자를 기초로 설계된 기존 고용보험제도를 그대로 둔 채, 몇몇 직종을 특례로 포함시키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니 3년 간 9000억 원의 예산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노동소득의 중단을 겪는 모든 취업자들의 생활안전망이 될 수 있도록, '이윤 있는 곳에 책임 있다'는 원칙 아래 새롭게 설계되지 않으면 '전 국민 고용보험'은 수많은 불안정 노동자의 삶을 바꿀 수 없다.

 

긴급재난지원금 논쟁에서 시작해 이재명, 박원순을 필두로 여야 정치인들의 기본소득, 전 국민 고용보험을 둘러싼 주장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꼭 필요하다. 노동 소득이 끊기면 생계가 막막한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조차 없는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번에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도 누군가에겐 동아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누구도 노동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전 국민 고용보험과 기본소득과 같은 정책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제 안정적인 노동은 불가능하고 취업과 실업을 반복해야만 하는 것일까? 디지털 혁신으로 인공지능이 전면화 되고 자율주행차가 등장하면 인간노동은 사라질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정부가 디지털 뉴딜이라며 내놓은 22만 개 데이터 구축 일자리 사업과 같이 분절화 되고 단순화된 인간노동은 급속히 늘어날 것이다. 21세기 판 가내노동으로 저임금 재택노동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이것만으로 생계비를 벌 수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 잡, 쓰리 잡을 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전 국민 고용보험과 기본소득은 어쩌면 21세기 불안정노동 시대의 복지정책에 더 가까울 수 있다.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13조 원의 긴급재난지원금과 9000억 원의 고용보험 확충 계획 너머에 있는, 300조 원 가까운 기업과 금융회사 살리기, 기간산업지원, 디지털-그린뉴딜 사업은 앞으로 한국사회의 노동현실과 산업구조를 새롭게 재편하려는 정부와 자본의 계획이다. 지금 당장은 모든 기업들에 현금을 공급하면서 부도를 막고 있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각각의 산업들이 이미 과잉생산-과잉경쟁인 상태에서 구조조정은 필연적이다. 정부 지원으로 재무 상태를 개선하고 손실을 사회화한 다음, 노동자 해고, 외주화를 통한 구조조정으로 주식가치를 높이고 매각하면, 기업과 금융사들은 오히려 막대한 이윤을 남기게 된다. 특히 재벌 제조 대기업들이 주축인 기간산업구조조정이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되면, 공공부문을 제외한 노동시장은 100% 비정규직에 가까워지게 될 것이다.

 

국가의 전면적인 개입으로 기업지분과 금융 전반에 걸쳐 공적 재정이 차지하는 비율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민간 자본에 맡겨진 소유와 경영 아래에서 과잉생산을 비롯한 산업생산 전반에 대한 구조개혁, 원하청 총고용의 유지, 탈탄소사회를 위한 산업전환과 같은 지금 당장 필요한 사회적 과제를 어느 것 하나 이루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과제 앞에서 개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사회적 책임은 사회가 져야 한다. 개별 기업 수준에서 불가능한 사회적 계획 수립과 타협, 조정은 정부의 경제대책으로 이미 시작되었다. 개별 기업의 부실을 떠안는 국유화가 아니라 기간산업을 사회적으로 계획하고 운영하는 사회화를 이야기해야 할 때다.

 

디지털·그린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 새로운 시장 만들기가 코로나19와 기후위기를 이용한 새로운 돈벌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가 우리에게 알려준 것은 자연과 노동을 끊임없이 수탈하고 착취해 온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이제는 정말 유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지금 상황은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노동과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새롭게 묻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성별분업에 기대지 않는 돌봄노동의 사회화, 보건의료와 교육 등과 같은 사회적 필수노동의 확대, 탈탄소사회를 위한 노동과 자원의 투여를 사회가 계획하고 책임지는 게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정록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프레시안

 

'기본소득'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먼저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코로나 교훈 헛되지 않으려면 '전 국민 고용보험' 제대로 설계해야"

재난은 한 사회의 가장 약한 부위를 드러낸다. 코로나19도 그렇다. 아직 재난이 다 지나간 것도 아니건만 이미 우리 사회의 약점을 명백하게 드러냈다. 불안정 노동에 대한 보호가 그중 하나다. 감염병으로 인한 고용 위기 속에서 가장 먼저 위험에 처한 것은 임시·일용직 노동자, 하청·파견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와 같은 불안정한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 안전망에서도 사각지대에 있어 위기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두 가지 서로 접근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기본소득''전 국민 고용보험'이다. 사실 어느 쪽이든 이미 위기에 처한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니다. 위기에 대한 대응은 신속성이 가장 중요한데, 이 제도들이 현실화되어 영향력을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위기가 닥쳐왔을 때 미봉책으로만 대응하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기본소득과 전 국민 고용보험을 놓고 이루어지는 논의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기본소득과 전 국민 고용보험의 공통점과 차이점

기본소득과 전 국민 고용보험의 공통점은 불안정 노동의 증가와 기존 복지제도의 부정합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다. 명시적으로 현재의 고용보험 밖에 있는 이들을 포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전 국민 고용보험은 말할 것도 없고, 기본소득 역시 노동시장 불안정성의 증가에 따른 사회안전망 밖 인구의 보호를 위한 대안으로 관심을 모았다. 물론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 자체야 그 역사적 연원이 길지만, 흔히 '프레카리아트'로 불리는 불안정 노동 문제가 아니었다면 지난 몇 년 사이 기본소득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이처럼 높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제도가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복지국가의 기존 제도를 고쳐서 포괄범위를 넓히고 변화하는 노동시장에 맞게 개선하려는 접근이라면, 기본소득은 기존 복지국가 프로그램들과는 상당히 다른 원리의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해서 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접근이다.

 

'노동'을 보는 시각 역시 두 접근의 큰 차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유급노동에 참여한다는 것을 전제로 "일하고 있거나 일할 의사가 있지만 일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소득보장"을 꾀하고 있는 반면, 기본소득은 탈노동 패러다임 위에서 '노동과 소득의 연계'를 끊거나 최소한 완화하자는 입장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사용자와 피용자 관계를 전제로 하는 고용 관계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면, 기본소득은 유급노동과 소득이라는 좀 더 넓은 의미의 노동의 상품화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그 범위가 확대되더라도 여전히 '보험'의 원리에 기초한다. 따라서 특정한 사회적 위험에 대비해 공동으로 재원에 기여하고, 그 재원을 바탕으로 위험이 실제로 발생한 이들을 지원한다. 급여를 지급하는 기간 역시 한정되어 있는데, 보장 대상 위험이 사라지거나 대개 기여 기간에 비례하여 결정되는 급여수급 기간이 종료되면 급여가 정지된다. 종전의 고용보험과 새롭게 논의되는 전 국민 고용보험은 보장대상 위험이 '실업'이냐 '소득의 급격한 감소나 단절'이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종의 보험제도로서 이와 같은 특성을 공유한다.

 

기본소득은 모든 시민의 생존에 대한 권리 및 공유자원에 대한 권리에 따라 지급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 정치공동체의 시민이라면 다른 조건을 달지 않고 지급된다. 특정한 위험의 발생을 전제하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특정한 기여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 충분성, 정기성, 현금 지급이라는 5가지 원칙들은 기본소득의 이와 같은 특성을 요약적으로 보여준다.

 

기본소득과 전 국민 고용보험, 함께 추진하자?

기본소득은 다른 조건 없이 모든 시민에게 지급하기에 원칙적으로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는 불안정 노동과 기존 복지 프로그램의 부정합 문제의 핵심이 사각지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중요한 장점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소요되는 비용이 매우 크다. 전 국민에게 1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연간 62조 원이, 30만 원을 지급하면 186조 원이, 50만 원을 지급하는 311조 원이 소요된다. 우리나라 중앙정부의 1년 예산이 513조 원(2020) 수준임을 고려하면 대단히 큰 금액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지급가능한 최대 50만 원의 금액 1인 가구 생계급여 기준(527000)보다 적다. 종전의 고용보험 실업급여가 실업자 1인당 평균 144만 원 지급됐음을 고려하면, 이 금액은 불안정 노동자에 대한 생활 보장 수준에 턱없이 부족하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기본의 고용보험에서 제도적으로 배제되어 있던 이들(영세자영업자,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등)을 고용보험으로 포괄하면서, 동시에 전형적인 임금 근로 관계가 아닌 방식으로 일하는 이들의 상황에 맞게 제도를 보완하고자 하는 방안이다. 이를 위해 기여는 임금이 아닌 소득을 기준으로 하고, 급여 역시 실업이 아닌 소득의 급격한 감소 시 지급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전 국민 고용보험은 사회보험이며, 최소한의 노동 이력과 보장대상 위험의 발생, 그리고 정해진 수급 기간을 급여의 조건으로 한다. 그 결과 기본소득보다 훨씬 적은 재정으로 수급자들의 생활 보장이 가능한 급여를 지급할 수 있지만, 비록 그 수가 많지는 않더라도 급여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노동 이력이 전혀 없는 신규실업자나 정해진 수급 기간을 경과한 장기실업자가 그 예이다.

 

이렇게 본다면 전 국민 고용보험과 기본소득이 꼭 대립 관계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충분한 보편성 확보 시에도 급여를 수급할 수 없는 이들을 발생시키는 반면, 기본소득은 막대한 재원을 소모하고도 불안정 노동자의 생활 보장수준의 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 이 두 제도는 서로가 서로를 완전하게 대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두 제도를 함께 운영함으로써 서로를 보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기본소득론 중에서도 이른바 '좌파 버전의 기본소득'은 이렇게 기본소득과 기존 복지 프로그램을 보완 관계로 설정한다.

 

정책 우선순위를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둘 다 좋은 제도니 둘 다 도입하자'라고 결론짓고 넘어가기에 현실은 만만치 않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기본소득보다 훨씬 재정소요가 적은 접근이지만, 여전히 상당한 재원을 소모한다. 2020년 구직급여 예산은 약 9.5조 원이다. 코로나 재난으로 늘어난 실업자를 고려하면 실제 지출은 더 늘어날 것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은 구직급여의 잠재적 수급권자를 두 배 이상으로 증가시킨다. 게다가 이들의 상당수가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기에 새로운 가입자는 기존 가입자보다 급여수급 가능성이 클 것이다. 또한 급여수급의 조건을 '소득의 급격한 감소'로 변화시키게 됨으로 인해 나타나는 효과 역시 재정소요를 증가시킬 가능성이 크다. 최소한 10조 원, 그리고 현실적으로 그보다 훨씬 큰 재정을 필요로 한다.

 

기본소득의 재원은 이보다 훨씬 더 크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국민 1인단 30만 원씩만 지급한다고 해도 연간 186조 원의 재원이 소요된다. 물론 이 경우 기초연금이나 아동수당 등 일부 항목의 예산을 절감하게 되겠지만, 이를 고려해도 막대한 예산이다. 따라서 이 두 제도를 함께 도입하고자 하는 시도는 막대한 재정소요를 요구한다. 특히 기본소득의 도입은 정부재정 자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전제하지 않으면 어렵다. 바로 이 재원의 문제가 기존 복지 프로그램의 확충이라는 접근과 기본소득이라는 접근을, 최소한 한시적으로는 경합 관계에 놓이게 한다. 예산의 과감한 확대를 전제로 하더라도 '한정된 재원을 어디에 먼저 배분할 것인가?'라는 정책 우선순위에 관한 질문에 직면하는 것이다.

 

기본소득론의 입장에서는 토지세, 생태세, 로봇세, 구글세, 시민세 등 새로운 항목의 조세를 통해 재원마련이 가능하고 이는 기존 복지제도의 확충과 경합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무슨 항목의 세목을 어떻게 신설하든 결국 이는 국가가 사회로부터 수취하는 조세의 일부분이며, 기존 복지 프로그램의 확대든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든 그에 대한 재정소요는 여기에 기댈 수밖에 없다. , 증세를 통해 사회적 지출의 확대를 전제하더라도 하루아침에 두 배로 증세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한, 모든 프로그램을 동시에 도입할 수는 없으며 우선순위를 따져야 한다. 이때 우선순위는 무엇이 지금 여기의 문제해결을 위해 더 나은 접근인가에 기초해 결정되어야 한다.

 

기본소득에게 따라붙는 재정소요에 대한 질문이 재정의 확대 여부가 아닌 지출의 우선순위라고 보면, 기본소득이 재정소요라는 입증해야 하는 것은 토지세, 생태세, 로봇세 등 새로운 세금을 도입하면 된다거나, 기존의 지출을 어떻게 재편성하면 된다는 숫자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이를 통해서는 '그렇게 마련한 재원을 왜 다른 프로그램에 사용하지 않고 기본소득에 사용해야 하는가?'에 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여러 집단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필요(needs)에 대응하여 전 국민 고용보험을 도입하고,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며, 돌봄서비스 질을 개선하고,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 투자하는 것과 비교할 때, 적어도 상당기간 동안은 전 국민에게 미미한 금액의 현금을 쥐어줄 뿐인 기본소득이 먼저여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한, 기본소득이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우선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설득하기 어렵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먼저다

현실적으로 지금 여기의 불안정 노동에 대한 해법으로는 기본소득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먼저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전 국민 고용보험은 앞서 언급한 재정소요 문제에서 기본소득보다 낫다. 또한 기존의 복지프로그램을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개선하는 접근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사회적 수용가능성도 더 높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기본소득은 기존의 분배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접근이라는 점에서 기존 제도의 개선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정치적 효과가 나타난 가능성이 있겠지만, 그만큼이나 실제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충분한 검토와 합의 없이 재정소요가 큰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은 자칫 저소득층에 대한 기존 복지 프로그램의 혜택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기본소득을 주창하는 이들의 적어도 일부는 명시적으로 기존 복지프로그램의 삭감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설사 그런 목표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도입 과정에서 이와 같은 정치적 결정이 나타날 위험이 없지 않다.

 

기본소득과 전 국민 고용보험은 서로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 그러나 전 국민 고용보험의 경우 포괄적 실업부조와 결합함으로써 기본소득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보편성 문제를 상당부분 완화할 수 있다. 고용이력이 없거나 실업급여를 소진하여 전 국민 고용보험을 통해 생활 보장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제도로 포괄적 실업부조를 도입하고 이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연계함으로써 고용보험 수급권이 없는 이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실업부조는 어느 국가에서나 자산조사를 거친다는 점에서 '권리로서의 급여'라는 측면에서 손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불안정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효과에서 낮은 수준의 급여 이상을 약속하기 어려운 기본소득보다 실질적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 소득 기반으로 제대로 설계하자

사실 기본소득의 여러 버전만큼이나 전 국민 고용보험도 서로 다른 형태를 가질 수 있다. 20대 국회의 막판에 고용보험 적용 범위 확대가 예술인에 대한 특례로 귀결됐던 것처럼, 전속성 높은 일부 특수고용 노동자를 찔끔찔끔 가입시키며 전 국민 고용보험이라고 이야기하는 접근은 불안정 노동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없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실효성 있는 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일하는 사람을 포괄한다는 것을 전제로 기여와 급여를 재설계해야 하며, 고용 관계가 아닌 소득을 기준으로 하는 소득보장제도로 변화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영업자를 어떻게 포괄할지, 기업의 기여를 어떤 식으로 수취할지, 급여지급의 구체적인 기준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여러 가지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2021년부터 실행 예정인 한국형 실업부조(국민취업지원)의 좁은 적용 범위, 낮은 급여 수준, 짧은 수급기간 문제를 개선하여, 이 제도가 전 국민 고용보험을 제대로 뒷받침하는 포괄적 실업부조로 기능하게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한 숙제다.

 

이와 같은 기여와 급여체계의 설계, 보완적 제도의 설계, 대상범위 확대의 속도 문제들이 어떻게 정해지는지에 따라 전 국민 고용보험은 정치인들의 말 잔치가 될 수도 있고 불안정 노동에 대한 실질적 보장이 될 수도 있다. 코로나19라는 재난 속에서 얻은 교훈이 헛된 것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전 국민 고용보험을 제대로 설계해야 한다.

 

정리하면, 기본소득은 지금 여기의 불안정 노동 문제에 대한 사회적 보호로서 전 국민 고용보험보다 앞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고용보험은 여전히 임금노동 관계는 아니라도 ''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소득론자들이 가정하는 기술변화에 따른 일자리의 소멸이 현실화된다면, 그때는 기본소득이 더 실질적인 해법이 될 수도 있다. 이 점에서 기본소득을 통한 노동과 소득의 분리라는 상상력은 소중하지만, 일자리의 소멸이라는 가정이 실제로 도래할 것인지, 언제 도래할 것인지는 아직 정해져있지 않다. 적어도 지금까지 노동시장에서 현실화되고 있는 위협은 '일의 소멸'보다는 '고용 관계의 변화'이기에,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서는 전 국민 고용보험이 먼저다./남재욱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프레시안

 

 

기본소득 논의의 맥락과 몰이해를 다시금 묻는다

[기고] 이상이는 기본소득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 글은 국내 좌우파의 기본소득 논의를 비판한 이상이의 기고문을 반박해 보라는 지인들의 권유 아래 만들어졌다. (관련기사 : 좌파 기본소득·우파 기본소득을 모두 반박한다) 이상이 글의 시작은 멋있을 뻔했다. 하지만 그가 소환한 유령은 마르크스 공산주의 유령을 흉내 냈을 뿐, 마르크스의 유령은 아니었다. 이상이의 글이 기본소득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정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오해와 몰이해를 낳는다는 점에서 반박할 필요가 있다.

 

이상이의 오해는 소득(revenue)과 필요(besoin)를 나누어 사고하는데서 비롯했다. 이는 이상이가 복지국가 담론 설계자의 세계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복지국가 담론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영국의 베버리지적 유형이고, 다른 하나는 독일의 비스마르크적 유형이며, 또 다른 하나는 프랑스의 공공부조형이다. 이 세 가지 유형은 공통적으로 일정한 행위와 지위에 따라 만들어진, 혹은 얻은 이득과 사람들의 생존에 필요한 재화가 불일치할 때 어떻게 사회를 방어할 수 있느냐는 문제의식 속에서 만들어졌다. 특히 1945년 유럽 발 세계전쟁 이후 논의가 본격화했고 제도화되었다.

 

베버리지적 유형은 조세로 자금을 조달해 사회보험을 고안하는 것이다. 삶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최저한도로 지원한다는 수직적 유형이다. 반면, 비스마르크적 유형은 노동소득을 갹출해 소득 상실자, 혹은 필요에 못 미치는 소득으로 인해 삶의 위기에 봉착한 자에게 부분적으로 소득을 보전하는 수평적 유형이다. 오늘날 모든 갹출금 형태의 보험이 바로 이 비스마크스적 유형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해도 좋다.

 

프랑스의 공공부조형은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나왔다. 사회는 불행한 시민의 생존 수단을 보장해야 함을 명시한다. 일할 수 있는 자에게는 일거리를 제공하고,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생계 수단을 제공하여 생존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개인의 필요(besion) 부족과 결핍으로부터 사회를 방어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을 천명한 것이다. 따라서 프랑스 혁명의 전통은 개인에게 사회적 책무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과 시민권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의 사회적 책무'를 제기한다.

 

기본소득은 필요와 소득의 괴리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에 준하는 소득을 모두에게 지급하는 것이 좋겠다는 아이디어에서 비롯했다. 이상이가 올바로 지적한 '충분성'의 항목은 바로 기본소득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기본이 되지 않는 소득은 기본소득이 아니라는 이상이의 엄밀한 잣대는 올바르다. 특히 재난지원금을 '재난기본소득'으로 부르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은 전적으로 올바르다.

 

이상이의 글에서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개인의 생존에 필요한 소득 수준을 어떻게 결정하느냐가 아니다. 해당 소득 수준 마련에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기본소득론의 내용이 전적으로 달라진다. 바로 이 점이 기본소득론에 대한 이상이의 착각과 오해가 만들어진 지점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논의된 기본소득 논의는 모두 우파적 기본소득론이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이가 나눈 좌우파의 기본소득론은 국내에서 편의상 불리는, 그래서 이상이가 착각한 좌우파의 범주일 뿐이다.

 

한국에서 기본소득 논쟁에 불을 붙인 이재명 경기지사. 이 지사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마련한 재난지원금을 '재난기본소득'으로 명명했다. 하지만 이를 '기본소득'으로 명명할 수 있느냐를 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연합뉴스

 

밀턴 프리드먼의 "마이너스 소득세론"은 우파적 기본소득론이 아니다

이상이는 우파의 기본소득론을 밀턴 프리드먼의 네거티브 인컴 택스(negative income tax, 마이너스 소득세, 일정 수준 이하 소득의 노동자에게 일정액의 세금을 지원하는 제도)로 지적한다. 이는 통화주의자 프리드먼이 케인스주의 복지제도의 핵심 내용인 고임금 정책 유지를 통한 유효수요 창출 정책을 깨기 위해 고안했다.

 

마이너스 소득세론이 나온 배경은 1795년 영국의 스피넘랜드법(구민법)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스피넘랜드법은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국가 재정으로 보장하도록 했다. 가령 빵 한 조각의 가격이 1실링이라면, 주당 세 조각의 빵을 최저임금으로 주어야 한다는 법이다. 아주 암울한 시절 빛을 발휘했던 법이다. 고용주는 임금인상을 하지 않아서 좋았고, 노동자는 적어도 최저임금이 보장되어 굶지 않아서 좋았다. 그렇지만, 이 제도는 노동생산성과 무관했다.

 

이 지점이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개입한 지점이다. 세상에는 공짜란 없다. 최저임금조차도 생산성과 연동하여 사고하자는 경제학자의 철의 규율, 이 규율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마이너스 소득세법이다. 그럼에도 노동생산성과 무관한 스피넘랜드법과 노동생산성을 동반한 스피넘랜드법(마이너스 소득세법)은 공통점을 가진다. '노동 의사가 없는 자에게 구제 지원금의 수혜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의 두 번째 특징은 노동을 제공할 의사 여부에 관계없이 지급해야 하는 무조건성이다. 프리드먼의 마이너스 소득세론은 애초에 이를 위배하므로 기본소득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상이는 마이너스 소득세론을 갑자기 우파의 기본소득론으로 둔갑시켰다. 이것이 과연 이상이의 실수일까? "기본소득제도 = 노동생산성을 유발할 수 있는 최저임금제도"로 사고하는 것이 과연 우파의 생각일까, 아니면 이상이의 생각일까?

 

이상이는 최저임금제도를 노동생산성의 여부에 따라 규정하는 것 자체를 반대할 것이다. 왜냐하면, 생산성 임금론이 바로 우파적 관점이기 때문이다. 혹시 이상이는 기본소득제도가 만일 정착된다면 노동자 생산성이 향상되리라는 장밋빛 전망조차 우파 담론으로 간주하는 건 아닐까? 예를 들어, 예술가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자기 가치실현을 위한 노동에 더욱 매진하여 사회적 생산성을 유발할 수 있다는, 기본소득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그 흔한 주장을 밀턴 프리드먼의 체로 걸러서 사고하기 때문에 기본소득론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닐까?

 

여기서 분명히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기본소득제도는 생산성 유발효과가 있다"는 주장과 "생산성의 향상 없이 임금인상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은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파들이 그토록 외쳤던 "생산성의 향상 없이 임금 인상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과도 다르다. 정반대로 "임금 인상 없이 생산성은 향상될 수 없다"는 케인스주의적 주장과도 다르다. 분명히 할 것은 우파 주장과 상반되는 케인스주의적 주장이 곧 좌파적인 주장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좌우파의 딱지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 그러한 주장이 나왔는지, 해당 주장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지다. 이상이는 분명히 "사회보장의 실질적 보편주의 달성을 위해 전력 질주를 해야 할 시기"에 뜬금없이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못마땅하다는 입장이다. 설령 그럴지라도 우파의 담론과 기본소득론을 억지로 뒤섞어 놓을 하등의 여지는 없다.

 

이상이가 놓치고 있는 지점은 기본소득론이 기존의 관점과 어떻게 다르게 사고하느냐다. 국민경제의 복지를 증진하기 위한 이상이의 관점과 더불어, 기본소득론이 사회보장을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그 한계를 지적하는 데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상이가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은 아마도 좌파의 기본소득론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파의 관점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좌파의 기본소득론은 사회배당금이 아니다

이상이가 말하는 사회배당금은 좌파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사회배당금은 우파적 세계에서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회배당금이 좌파적이냐, 우파적이냐를 따져보려면, 어떠한 방식으로 분배하느냐를 보아야 한다. 우선, 우파적 분배방식은 능력자를 위주로 배당금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능력자의 자금이 좀 더 많은 일을 창출하여 사회에 기여한다는 사고와 믿음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좌파적 분배방식은 능력에 관계없이 만인에게 평등하게 나누어 주자는 견해다. 소위, '(n)분의 1'이라는 근대적 평등개념에 기반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명성과 영향력에 비례하여 자금을 배분하는 방식은 보수적인 사람들이 선호한다. 그들에게는 사회적 명성과 영향력이 곧 신뢰를 보장하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신뢰가 바로 폭력의 기반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신뢰란 기본적으로 불신을 전제로 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신뢰란 믿을 수 없는 자들 중에서 믿을 수 있는 자를 찾는 게임이다. 따라서 이 게임의 승자를 신뢰한다는 것은 가장 폭력적인 자를 믿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가장 폭력인 자만이 말과 행동의 일치를 보이며, 말의 위력을 가장 손쉽게 재현하기 때문이다.

 

우리 일상에서 신뢰는 말과 행동의 일치 아래 만들어진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려면, 말에 힘이 있어야 한다. 힘 있는 말이란 말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며, 나의 말이 곧 타자의 법으로 작용하는 상황이다. 나의 말이 타자의 행동과 교환되는 상황에서, 혹은 타자의 행동에 제약이 되는 상황에서 말에 힘이 생긴다. 또한 나의 말과 나의 행동이 일치하는 상황보다는 나의 말과 타자의 행동이 일치할 때 사람은 더 큰 신뢰를 갖는다. 신뢰에 비례하여 말은 타자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좋게 말하면, 그 말은 신(dieu)을 참칭하여 타자를 믿게 만든다. 나쁘게 말하면, 타자를 탈나게 하여 나의 말을 따르게 한다. 여기서 신을 참칭하는 것은 변색되지 않는 황금에 대한 물신숭배로 변질되고, 사람을 탈나게 하는 것은 탈레스(thales)가 되어 사람들을 돌게 만드는 화폐(dollar)가 된다.

 

이상이가 말한 사회보장(social securit; social guarantee)이란 바로 사람들을 탈내고 돌게 만드는 화폐적 권력을 신봉하도록 사회서비스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상이의 말에 따르면 "보편적 복지란 곧 사회보장"이며, 사회보장은 소득 보장과 사회서비스보장(보육, 건강, 요양 및 교육서비스)으로 나뉜다. 사회보장은 "실질적 보편주의 아래에 있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의 어법을 약간 비틀어 거론하면, 사회보장이란 노동에 따른 소득보장(사회보험과 사회수당)과 무관한 사회적 권리로서 사회적 용역의 수혜 혹은 화폐에 의한 사회적 통합을 신봉함을 의미한다.

 

이 지점에서 복지국가 담론의 한계가 드러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노동 의사와 무관한 신뢰란 없을 뿐만 아니라, 화폐소득도 절대 있을 수 없다"는 말을 신봉하는 것이다. 이 점이 산업자본주의의 강철 같은 강령의 한계를 남김없이 드러낸다. '노동해야 돈을 벌 수 있고, 돈을 벌어야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강령이 바로 복지국가의 한계담론이다.

 

특히 이상이의 기고문 말미에 "사람의 능력을 키워주는 사회서비스 분야와 직업훈련 등에 정부의 지출을 크게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환상일 뿐이다. 현실은 냉엄하게도 클린턴 정부의 "개인책임 노동기회법(Personal Responsibility and Work Opportunity Act)"으로 끝나고 만다. 이는 삶의 필요(besoin)와 소득(revenue)의 분리 속에서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은 오직 개인 책임이며 화폐 획득 게임에 동참해야만 살 수 있다는 우울한 디스토피아(dystopia)의 세계관일 뿐이다. 이 세계관의 문제는 타자에게 자신의 세계관을 주입하기 위해 배제(exclusion)를 서슴지 않고 행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복지의 사각지대가 존재할 것이다.

 

이상이의 순진함은 그 배제 혹은 복지의 구멍은 시민적 사회역량이 약해서 복지 확대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믿는 데 있다. 이 배제가 바로 지배의 본질이자 자본주의 혹은 국가권력의 작동 방식이다. 이를 간과한 것은 그만큼 순진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순진함은 사회보장이 삶의 양식의 변화 혹은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찾는데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더는 질문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기본소득에 대한 좌우파적인 견해

이상이의 몰이해는 이 속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우파적인 관점과 좌파적 관점이 어떻게 차이를 드러내는지를 파악하지 못하는 데서 드러난다. 우파적 기본소득론은 재원조달 문제를 전제로 하여 기본소득제도를 현행제도에 외삽한다. 강남훈과 필리프 판 페레이스가 대표적이다. 아마도 대부분 기본소득론을 주장하는 정치세력들도 이 우파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좌파적 관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본소득제도의 정착이 재원조달 문제와 무관함을 인식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제도는 무엇보다도 임금레짐을 바꾸는 문제라는 관점이다. 좌파적 관점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필요와 소득이 합치된 가운데 계산되기 때문에 학자들의 계량적 예측이 불필요하다. 그래서 대중이 삶 속에서 수긍할 수 있는 기본소득을 여론조사를 통해서 찾으면 된다.

 

만일 이상이의 추측대로 월 80만 원이 우리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본소득이라면, 어떻게 우리의 사회제도를 이에 맞춰 디자인하느냐가 좌파적 기본소득 관점이다. 반면 이상이의 우파적 버전은 월 8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한국자본주의가 붕괴되지 않을까를 걱정하는 것이다. 모든 우파적 견해는 인간의 기본을 유지하며 살 수 있는 기본소득이 현실에서 구현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즐긴다. 특히 사회보장을 맹신하는 사람일수록 기본소득이 사회를 파괴하리라는 과격하고 거친 주장을 따른다. 게다가 그 믿음은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에 따른 스트레스, 소득 격차에 따른 사회양극화를 시민사회운동의 사회적 의제로 더는 제기 못할 상황을 두려워한다.

 

기본소득에 대한 좌파적 견해는 자본주의 철의 규율을 끊어내면서 새로운 삶의 양식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히 제기해야 할 쟁점은 임금레짐(salary regime)을 바꾸는 것이다. 임금이란 노동시장의 수요과 공급을 통해서만 결정되지 않으며, 암묵적인 사회적 관습에 준거하는 것도 아니다. 만일 기본소득으로 월 100만 원을 상정한다면, 일반사람들의 임금소득이 어떻게 변할까? 현행의 관습적 방식을 그대로 반영하여 수치를 계산해 보자. 기본소득이 무엇을 바꾸는지, 어떠한 관점으로 기본소득이 정착되어야 좀 더 숨 쉴 수 있는 세상이 되는지를 상상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전병권

 

20191인당 국내총생산(GDP)1934조 원이다. 만일 현행 방식대로의 임금배분을 전제하고 기본소득을 도입한다면, 연간 569.2조 원이 소요된다. 대략 1인당 GDP30% 수준이다. 기본소득에서 재원마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본소득제도가 사회적으로 우선 존재하는 가운데 여타의 제도가 다시금 디자인됨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혁명적이어서 기본소득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한다면, 기본소득의 도입은 자본주의 사회의 질곡 속에서 지체될 뿐이다. 그 지체와 질곡이 사회비극의 원흉이라는 자각이 있은 후에나 도입 가능하다. 기본소득제도 도입 여부는 대중에 의한 국민투표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것이 통과되면, 각 부분별 임금배분의 원칙을 정하고 인센티브적 임금개념을 도입하는 등 새로운 사회적 협약의 성립과 임금과 복지를 관장하는 레짐(정치적 결정체)이 마련될 것이다.

 

다만, 변하지 않는 것은 기본소득제 시행 이전의 직업과 고용 관행일 것이다. 그리고 산업별·부문별 합리성 위원회에서 경제활동의 타당성과 지속 가능성 여부를 판단하는 별도의 신용평가제도가 보완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사회적 비효율을 판단할 지표를 시장 메커니즘으로 방치한다면 너무나 큰 파장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장적 기제에서 파생된 사회경제적 위기를 보완하는 보편적 복지의 신개념이 등장할 것이다. 그 핵심은 의료복지와 교육복지로 나뉠 것이다. 그리고 기본소득과 함께 각종 사회보험제도가 개편될 것이다. 산업별 직업별 창업법/도산법이 더욱 세분화 될 수 있다. 그 속에서 기존의 각종 기금(실업기금, 퇴직금, 국민연금, 공무원, 교원연금)이 폐지되거나 개편될 것이다.

 

기본소득 도입의 쌍두마차는 생산레짐/통화레짐, 임금레짐/복지레짐과의 관계설정에 따라 생성될 것이다. 한 사회의 안정성은 이들 레짐 간의 상보적인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기존의 관행대로라면, 생산레짐의 위계적 상부는 통화레짐이고, 복지레짐의 위계적 상부는 임금레짐일테지만, 기본소득의 도입과 함께 임금레짐의 위계적 상부는 복지레짐이 될 수밖에 없다. 이상이는 기본소득과 함께 보편적 복지가 축소될 것을 염려하는데, 오히려 기본소득과 함께 보편적 복지가 더 확장될 것이다. 게다가 기본소득의 도입은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출하고 이것에 대한 사회적 확산을 도모하는 새로운 문화레짐의 탄생을 예고할 것이다. 이 문화레짐이야말로 경제활동을 수분화(pollination)하는 중요한 기관이 될 것이다.

 

복지국가 담론은 산업자본주의적 삶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복지국가 담론은 생산양식으로서 산업자본주의와 양식의 생산체제로서 인지자본주의의 질적 차이를 간과한다. 산업자본주의의 발전은 구래의 희소성 문제를 표준화된 생산 공정 체계로 극복하였지만, 새로운 차원의 문제를 잉태했다. 그것은 생산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의 문제였다. 이 점을 주목한 최초의 경제학자는 바로 존 메이너드 케인스였다. 소비의 문제가 곧 유럽자본주의의 위기였다. 유럽자본주의의 선택은 파괴를 통한 소비의 진작, 즉 전쟁이었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위기는 어느 정도 해소되었지만, 전쟁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대한 불신과 회의를 양산하였다. 복지국가 담론의 출현은 전쟁 아니면 혁명이라는 두 극단의 상황에서 자본주의적 탈출구로 기획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는 복지를 포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빈곤한 자의 삶의 위기는 언제나 복지담론 속에서 면피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자본주의적 소비의 위기는 두 가지 차원으로 자리매김 된다. 일국적 차원에서 유효수요 문제는 복지국가 담론으로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지만,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자본의 세계화에 따른 복지국가 담론의 해체는 제2차 자본주의적 소비의 위기에 직면했다. 과연 제2차 자본주의적 소비의 위기는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그 실마리는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에서 찾을 수 있다. 전통적 방식에서 자금배분은 기업을 통해 대중에게 전달되는 경로를 갖지만, 양적완화는 대중에게 직접 화폐를 주어 소비를 진작하는 방식이다. 재난지원금이 이것의 좋은 사례다. 이 점에서 이재명의 제2차 재난지원금 지급은 선도적이다. 그런데 이상이는 우파의 담론과 한 치도 어긋남 없이 이러한 의미를 묵살하고 선별적 복지론을 들고 나온다. 재난 상황에서 보편적 복지가 갑자기 선별적 복지로 회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상이의 근원적 한계이다. 왜 갑자기 우파 이상이로 돌변했을까? 그것은 제2차 자본주의적 소비의 위기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경제의 특이성(singularity)이 변했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한다. 경제의 특이성이란 물질적 생산체계로서 자본주의 생산과 비물질적 생산체계로서 자본주의 생산이 근원적으로 상이하다는 것이다. 그 상이성은 자본주의적 생산과 자본가적 전유의 모순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말하자면, 자본주의적 상품이 물질적 대상일 때는 명시적으로 소유권을 드러낼 수 있지만, 비물질 대상일 때는 소유권을 손쉽게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적인 것을 사적으로 전유하는 것, 그 자체가 새로운 차원의 자본주의적 위기를 낳는다. 대중의 소비 거부가 곧 자본의 치명적 위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은 더 이상 사회정치적 의미, 사회문화적 의미와 무관하게 운동할 수 없게 되었다.

 

사회적 유용성을 상품으로 생산하는 자본주의는 언제나 대중의 검증을 받으며 성장한다. 비물질적 상품을 생산하는 인지자본주의 속에서 자본은 정치가적 전망과 사회운동가적 전망 속에서 자신의 유용성을 대중에게 끊임없이 검증 받으며 작동한다. 게다가, 대중의 검증은 언제나 무상분배의 원칙 아래에서 작동한다.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배분한다는 것, 구래의 자본주의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 이제는 마케팅의 기본이 되어 버렸다. 신상품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 대중에게 무상으로 배포하고 대중의 주목을 받아야만 그 상품의 생산체계가 작동하는 것이 바로 인지자본주의적 생산의 특징이다.

 

인지자본주의 단계에서 자본주의 철의 규율이 두 가지 차원에서 깨지게 된다. 하나는 "화폐 없이 자본주의적 상품을 사용할 수 없다"는 철의 규율이다. 다른 하나는 "노동 없이 화폐를 구할 수 없다"는 철의 규율이다. 기본소득의 논의가 최근에 쟁점이 되는 것도 이와 같은 시대적 맥락과 함께 한다. 이상이의 복지담론이 이해하지 못했던 지점이 바로 이 시대정신이다.

 

그래서 이상이는 기본소득을 "경제효과가 미약하다"거나, "소득재분배의 효과가 미약하다"고만 거론한다. 그는 '자기 가치실현으로서의 노동'이 위의 것보다 더 소중함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상이는 오직 자본에 고용 당하면서, 자본에 혹은 국가에 일자리를 요구하면서 얻은 일자리에 비례하여야만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환상 속에서 가치 평가의 단위를 오직 자본의 운동으로 환산하여 사고했기 때문이다. 좋다, 그래도 무관하다, 오직 나에게 기본소득만 지급된다면. 타인이 자본의 운동에 편승하여 보다 큰 물질적 풍요를 누려도 상관없다, 오직 나에게 기본소득만 주어진다면. 이와 같은 자조어린 기본소득론자의 말에 이상이가 설득될 리 없기 때문에, 임금레짐을 바꾸자는 좌파적 기본소득론을 음미해 보길 바란다.

 

임금레짐은 자본과 노동 간의 소득 불평등과 신용 불평등에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다. 국내 기본소득론자들이 복지국가론자들을 설득할 수 없었던 것도 이 문제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의 재원마련에 매몰된 것, 기본소득을 권리개념으로 사고하여 경제적 관점을 회피한 것 등이 보편적 복지의 구현과 무관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본소득 논의와 논쟁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떠한 지점에서 어떠한 관점으로 사고해야 하는가를 묻고 토론하는 것이다./ 전병권 독립연구자 /프레시안

 

노동계 일각 "돌팔매 맞더라도 임금동결" 논쟁 촉발

이남신, 한석호 등 언론기고 통해 "사회연대기금 조성으로 취약 노동자 지원 강화" 주장

'코로나19 위기대응 사회적 대화'가 진행 중인 가운데, 노동계 일각에서 대기업과 공공기관 정규직 임금 동결을 노동계가 먼저 제안하고 이를 지렛대로 총고용 유지와 사회안전망 강화를 얻어내자는 제안이 나왔다.

 

'임금동결론' 주장의 내용은 이른바 '상박하후(上薄下厚)' 방식으로, 정규직이 임금을 동결하면 정부와 기업이 그만큼의 돈을 내 기금을 조성한 뒤 이를 통해 취약계층 노동자를 지원하자는 것이 골자다.

 

노동계 일각에서 '임금 동결론'이 제안된 것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노동계 안에서도 논란이 일 수 있는 내용이다. 재벌 대기업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계가 먼저 이같은 제안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대기업에 '악용'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이 전례없는 글로벌 재난 상황인만큼 노동계 안에서도 지나치게 커진 소득 격차를 더 두고 볼 수 없으며, 다양한 제안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이해 '사회적 타협'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향후 노동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

 

"먼저 임금 동결 제안하고 총고용 유지 받아내자"

포문을 연 것은 한석호 전태일재단 기획실장이다. 한 실장은 지난 8<매일노동뉴스>'돌팔매 맞더라도 목청껏 임금동결을 주장하고 싶은데'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노동 내 심각한 임금 불평등'이 코로나19로 더 커지고 있다고 진단하며, 노동계가 정규직의 임금 동결을 먼저 꺼내고 이를 통해 총고용 유지, 사회안전망 강화를 얻어내자고 제안했다.

 

한 실장은 사석에서 이 같은 이야기를 꺼냈을 때 "임금을 동결하면 재벌만 좋은 것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며 이에 대해 "임금을 동결하는 대신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그만큼의 금액을 받아내서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하고 그 기금으로 코로나19에 일자리를 잃고 신음하는 밑바닥 노동자를 지원"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한 실장은 이어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19 사회적 대화'에 대해 "노동측에 절박한 것은 총고용 유지와 사회안전망 강화다. 반드시 따내야 한다""거기에다 노동계가 먼저 공격적 방어로 임금인상 자제를 제시하면 어떨까 싶다"고 적었다. 한 실장은 경제단체와 양대노총이 각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기에 총고용 유지와 임금인상 자제를 완벽하게 실행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총고용 유지와 임금인상 자제를 합의하는 것은 사회의 흐름을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위기에 가장 큰 고통을 당하는 계층은 비정규직, 하청노동, 특수고용직 등 밑바닥 주변부 노동이다. 지금 양대 노총이 몰두해서 봐야 할 계층은 중심부 정규직 노동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사회적 대화, 사회연대기금 조성으로 풀자"

이남신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 의장도 11<매일노동뉴스>에 실은 '코로나19 위기극복, 담대한 임금동결을 제안한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노사교섭에선 정당성을 담보한 선제적 대안 제시가 중요하다"며 사회연대기금 조성론을 꺼냈다.

 

이 의장은 "노동자 연대 정신을 바탕으로 정규직 조직노동자가 향후 2년간 임금동결을 선언하면 49조 원 가량의 임금이 비축된다""이에 상응해 정부와 자본이 동일한 비용부담을 할 경우 147조 원을 거둘 수 있어 위기 극복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의장은 "코로나19 위기는 기왕의 정책수단과 의사결정 방식으로 극복되기 힘들다""초유의 위기인 만큼 초유의 노동 주도 사회연대기금 조성으로 활로를 열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장은 "수세적 대응에 머물면 자본에게 진다""코로나19 위기 극복과 상생을 위해 노동운동이 앞장서는 담대한 임금동결 결단을 기대하고 촉구한다"고 글을 마쳤다.

최용락 기자 /프레시안

 

 

진보단체 일감 몰아주기 중앙일보 보도 엉터리

정의연 논란 프레임기생해 정상 활동까지 회계 비리’ ‘일감 몰기’, “기자가 사회운동 뭔지도 몰라힐난

진보진영 단체들이 서로 일감을 몰아줘 몸집을 불려왔다고 비판한 중앙일보 기획보도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중앙일보 보도는 단체의 정상 활동조차 회계 비리처럼 몰았고 진보 성향 거래처와의 계약 자체를 부정행위로 그렸다. 보도에 낙인 찍힌 시민단체 쪽에선 색깔론이라는 지적부터 근거 없이 주장만 선명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논란이 되고 있는 보도는 지난 10일 중앙일보 1면의 “[견제 없는 권력, 시민단체 <>] 후원금·일감 주고받는 그들만의 경제 공동체기획 기사와 대동소이한 내용의 “‘정의연은 운동권 물주재벌 뺨치는 그들만의 일감 몰아주기온라인 기사다. 시민단체들이 “‘일감 연대를 이뤄 경제 공동체몸집을 키웠다는 게 요지다. 중앙일보는 이를 재벌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에 비유했다.

 

 

10일 중앙일보 1

 

기사 논리는 부실했다. 먼저 전태일재단사례다. 중앙은 시민단체들이 주로 진보진영 단체·업체에 기부금을 쓴다며 전태일재단 국세청 공시자료를 근거로 댔다. 월별 기부금 지출 명세서에 진보적 단체들이 대표 지급처로 적힌 기록을 보고 일감 몰아주기라고 규정했다.

 

기사는 지난해 6월 명필름(39)9047만원을 썼고 7노동자 지원 명목으로 이주노동희망센터(40)4124만원을 지급했으며 11월 부산 지하철 노조(43)4085만원을 지출했다고 강조했다. 명필름 경우 회사 대표가 박근혜 정부 때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등 진보 색채가 강한 영화사라고 설명했다.

 

전태일재단은 “19701113,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바꿔내고자 자신의 몸을 불사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정신을 기리고 실천하는단체다. 노동 교육 활동부터 투쟁 현장 연대, 전태일·이소선 열사 추모사업 등 활동 범위도 넓다. 중앙이 비판한 사례 모두 이 목적에 따른 활동이다.

 

 

10일 중앙일보 관련 보도 근거가 된 '전태일재단' 기부금 지출 공시자료. 이 자료는 전태일재단 홈페이지에도 게시돼있다. 붉은색 표시는 '일감 몰아주기' 예로 중앙일보가 거론한 내용이다. 사진=전태일재단 홈페이지

 

지난해 6월 명필름 7200만원 지급 건은 영화 태일이제작비 모금 전달이다. 태일이는 전태일 열사의 생을 그린 애니메이션으로 열사의 50주기인 올해 개봉이 목표다. 재단은 제작비를 후원금으로 모금했고, 지난해 6월 모금된 금액을 제작사 명필름에 줬다.

 

지난해 7월 이주노동희망센터에는 네팔여성노동자쉼터 지원명목으로 120만원을 후원했다. 같은 해 11월 부산지하철노조는 전태일재단이 주최하는 27회 전태일노동상을 받았다. 이 상금이 500만원이고 대표 지급처로 등재됐다. 부산지하철노조 조합원들은 지난해 임금을 반납해 그 반납분으로 일자리 540개를 만들어 노동계 지지를 받았다.

 

 

6월 전태일재단 기부금 지출 세부 내역. '진보 진영 일감 몰기'라고 칭한 단체 간 지출을 보면 1~10만원 선이고, 횟수도 전체 39건 중 일부다. 사진=전태일재단 홈페이지

 

전체 지급 내역도 대부분 이와 비슷하다. 6월 내역에 활동가 인건비(1500여만원)나 식대를 빼면 청년유니온 연대비(1만원), 민주열사추모단체 연대비(10만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대비(2만원), 진보네트워크센터 연대비(1만원) 매일노동뉴스 등 구독비(83000) 등의 지출이 대부분이다. 7, 11월도 마찬가지였다. “진영 내 자본 재유입의 흔적이라는 중앙일보 표현에 비해 규모가 턱없이 적다.

 

다른 사례인 정치하는 엄마들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견된다. 중앙일보는 이 단체가 지난해 1058개 지급처에 5706712원을 썼다며 진보시민단체 기부금, 진보진영으로 재유입이라는 제목의 자료 사진에 내용을 넣었다. 이 수치는 지급처 1개당 98000원이다.

 

 

중앙일보가 10일 관련 보도에 삽입한 진보시민단체 기부금, 진보진영으로 재유입제목의 자료 사진. 사진=중앙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진보 성향 업체에 한달 35만원 썼다고 일감 몰아주기

중앙일보는 단체들이 직접 기부하지 않고 소비한 건이 “(자본 유입의) 우회적 형태라며 정치하는 엄마들과 연대와 전진이라는 업체의 거래를 문제 삼았다. 중앙일보는 업체를 시위용품 전문 판매 업체라며 수익금 전액을 장기투쟁사업장 노조 조합원들의 생계비로 지원한다고 전했다.

 

 

중앙일보가 10일 보도에 '일감 몰기' 비판 근거로 삼은 정치하는 엄마들 2019년 기부금 지출 공시 자료.

 

정치하는 엄마들은 10월 동안 연대와 전진에 현수막 2, 포스터 300장 제작 등 총 3건을 의뢰해 약 35만원을 줬다. 장하나 활동가는 연대와 전진은 시중 업체의 80% 가격으로 현수막을 공급해주고, 급하게 주문해도 양해해준다. 이유는 이 단체가 비영리 공익활동을 하고 재정도 열악하기 때문에 지원해 주는 것이라며 우리 입장에서도 수익금을 해고노동자들이나 사회적 약자를 위해 쓰는 회사를 선호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 물었다.

 

이들 단체는 대표 지급처기재 자체를 회계 비리로 모는 것도 지나치다고 밝혔다. 국세청 공인법인 공시 서식 작성란을 보면 대표 지급처만 적게 돼 있다. 작성 사이트엔 ‘100만원 이상의 지급처는 별도 기재하라는 공지도 없고, NGO 활동가들은 별도 교육도 받지 않아 오랫동안 대표 지급처만 작성란에 등록해왔다. 이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는 공감대는 있지만 기록을 전부 소급해 고의 은폐로 모는 건 과장이라는 지적이다.

 

 

기부금단체가 기부금 사용 내역 등을 공시할 때 사용하는 국세청 작성 포맷.

 

일감 몰아주기비유가 가능한지도 논란이다. 일감 몰아주기는 보통 대기업 총수 일가가 자회사에 수의계약 등으로 일감을 몰아줘 사주의 이익을 챙기는 불공정거래를 칭한다. 중앙 보도는 진보 성향의 단체가 다른 진보 성향의 단체를 후원하거나 관련 업체에 돈을 쓴 것을 동일선 상에서 다뤘다. 그 비율과 규모에 대한 취재내용도 없다. 한 예로 전태일재단은 지난해 717NGO 등에 218만원을 지급했다. 총 지출의 5%.

 

장 활동가는 중앙일보 기사 제목부터 재벌 뺨치는 그들만의 일감 몰아주기. 비영리공익단체를 재벌에 비유하는 기자의 악의적 의도에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 “201910월 기부금 지출 내역 58(570만원)이 전부 진보 진영에 유입된 것처럼 기사를 썼다그러나 연대와 전진과 거래한 내역은 3(35만원)에 불과하다. 비영리단체 회계규칙 상 매월 대표 지급처만 적게 돼 있는데 이 점을 의도적으로 악용했다고 덧붙였다.

 

사실관계 엄정히 확인했느냐반문

중앙일보는 같은 논리로 정의기억연대가 운동권 물주재벌 뺨치게 일감을 몰아준다고 비판했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로 있는 김복동의 희망이 지난해 지출한 13204만원 중 상당액을 진보적 단체나 관련 인사들에게 지출했다는 게 핵심 이유다. 정의연이 지난해 내부 소식지 디자인을 윤 의원 배우자 회사인 수원시민신문에 발주한 것도 덧붙였다.

 

김복동의 희망은 지난 2월에는 11개 시민사회단체에 200만원씩 2200만원을, 4월엔 여성·인권·평화·노동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자녀 25명에게 200만원씩 총 5000만원을 장학금으로 후원했다. 고 김복동 할머니의 장례위원회는 논의를 거쳐 장례 후 남은 조의금 1억여원을 김복동 유지 계승활동비로 남겼다. 그리고 이를 심의위원회 논의를 거쳐 후원금과 장학금으로 배분했다. 당시 언론 보도로 이미 공개됐던 사실이다.

 

 

20192월 중앙일보 홈페이지에 실린 제휴사 뉴시스 기사. 보도는 장례추진위 조의금 중 2000만원을 '햇살사회복지센터', '미투시민행동', '강정사람들', '소성리사드철회성주주민대책위원회''사드배치반대김천대책회의' 10여개 시민단체의 활발한 활동을 위해 내놓는다고 전했다. 보도는 또 장례추진위가 2차 나눔 기부 일환으로 여성·인권·평화·노동·통일 단체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의 대학생 자녀들을 장학생으로 선정해 장학금을 지급한다고 전했다. 사진=중앙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정의연은 매해 한 번 활동 보고를 위해 소식지를 발행한다. 지난해 디자인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4개 업체에 견적을 의뢰했고, 최저금액을 제시한 수원시민신문에 신문 편집·디자인을 맡겼다. 이때 370여만원을 지불했다. 2019년 정의연 총 사업비의 0.26%”라고 해명했다.

 

전태일재단 관계자는 중앙일보가 사실관계를 엄정히 확인하고 기사를 낸 건지 궁금하다기자분이 기부금 내역을 질문하겠다며 재단으로 전화한 게 9일 오후 5시경이고 담당자가 없어 답변을 하지 못했는데, 취재 전화는 그걸로 끝이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후원회원과 단체에서 보내온 후원금은 지금까지 그랬듯 전태일이라는 글자가 부끄럽지 않도록 연대와 나눔이 필요한 현장에 소중히 쓰겠다고 했다.

손가영 기자 ya@mediatoday.co.kr

 

"합병 찬성이 국익" 소나기 광고기사도 대신 써줘

다음 장애물은 합병을 최종 추인 받을 주주 총회였습니다. 삼성은 주총을 위한 우호적인 여론 조성을 위해서 돈을 앞세운 전방위 여론 전을 시작합니다. 여러 언론사를 상대로 접대가 이뤄지고 심지어 기사를 대신 작성해 주거나 유명 인사를 동원한 청탁 인터뷰도 진행합니다.

 

합병을 부추기는 광고에는 수십 억원이 들어갔습니다. 이어서 강연섭 기자입니다.

 

리포트

합병 발표 이후 10일만인 201564. 삼성물산 대주주였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엣은 합병 반대를 공식화했습니다. 그러자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삼성 미래전략실은 엘리엣에 대한 전방위 공세에 나섰습니다. 해외투기자본인 엘리엣의 이른바 '먹튀'가 우려된다며, 삼성물산 합병이 곧, 국익을 위한 조치라는 여론몰이를 한 겁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드러난 삼성의 무기는 돈과 향응이었습니다. 장충기 미래전략실 사장을 중심으로 언론사 임직원들에게는 접대와 로비가 이뤄졌고 대가로 합병에 우호적인 기사가 실렸습니다. 합병에 비판적인 언론사에 대해선 광고비를 줄였고, 일부 경제신문 기사에는 보도자료를 제공한 것도 모자라, 기사 초안까지 삼성이 직접 수정해 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합병을 둘러싼 비난 여론을 잠재우는 데는 경제 전문가들이 동원됐습니다.

 

"우울한 경제, 삼성마저 흔들리나"라는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기고문.

엘리엣을 공격하는 황영기 당시 투자금융협회장과 노대래 전 공정위원장의 인터뷰 모두 삼성이 청탁했던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습니다. 전경련이 주최했던 30대 그룹 사장단의 긴급 간담회 역시 삼성의 요청에 따른 행사였습니다.

 

삼성은 합병을 최종 결의한 주주총회를 앞두고 4일간 270개 언론사 등에 '합병 찬성이 국익에 부합한다'는 광고에만 36억 원을 쓰는 등 물량공세에 나섰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룹 역량이 총동원됐던 합병은 성사됐지만, 이 부회장은 결국 '경영권 승계'에 발목이 잡혀 다시 재판을 받을 위기입니다.

 

검찰 시민위원회는 오늘 '사안의 중대성과 국민적 관심에 비춰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결론냈습니다. 이에 따라 법조계와 학계, 언론계 인사들로 구성된 수사심의위가 2주 안에 열려, 이 부회장의 기소 타당성을 논의할 전망입니다. MBC뉴스 강연섭입니다.

 

한겨레사설] 손영미 소장 죽음에 도 넘은 음모론펼친 곽상도

 

곽상도 미래통합당 의원이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일본군 위안부피해 생존자 쉼터 평화의 우리집손영미 소장 사망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곽상도 미래통합당 의원이 11일 손영미 평화의 우리집소장의 죽음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의혹을 제기했다.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았으나, 손 소장이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타살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강하게 암시했다. 하지만 곽 의원이 제시한 근거들은 빈약하기만 하고, 논리 비약도 심하기 이를 데 없다. 적어도 타인의 죽음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려면 충분하고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마땅하다. 그러지 않으면 고인을 욕되게 할 뿐 아니라 정치적 의도까지 의심받게 된다

 

곽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손 소장이 발견될 당시 자세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어렵다며 사실상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앞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직접 현장을 조사하고 1차 부검까지 마친 뒤 타살 가능성이 없다는 소견을 내놓았다. 그런데도 곽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의문사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가도 너무 나갔다.

 

곽 의원은 또 손 소장이 숨진 날 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에스엔에스에 손 소장에 대한 글을 올린 것과 관련해 우연의 일치일 수 있는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윤 의원의 글과 손 소장의 죽음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얘기한 것이다. 하지만 윤 의원이 글을 올린 시각은 손 소장이 숨진 이후다. 선후 관계부터 틀렸다.

 

곽 의원은 어느 인터넷 기사에 위안부 피해자 유가족이름으로 올라온 댓글을 들어, 손 소장이 할머니 계좌에서 거액을 빼내 돈세탁을 해왔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비리를 덮으려는 과정에서 죽음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댓글 내용의 신빙성을 검증하지도 않은 채, 비극으로 생을 마감한 이에게 파렴치범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게 국회의원으로서 할 도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조작 당시 곽 의원이 수사팀 검사였고, 국과수가 강씨 필적 감정을 조작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곽 의원은 아직까지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이제 와서 손 소장에 대한 국과수 부검에 의혹을 제기하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2017위안부피해자에 대한 생활지원을 강화하는 법률에 반대표를 던진 그가 미래통합당의 위안부 할머니 피해 진상규명 티에프위원장을 맡고 있는 것도 어처구니없다. 곽 의원은 근거 없는 주장을 거두고, 어울리지도 않는 위원장 자리에서 내려오기 바란다.

'더러운 잠'과 표현의 자유, 그리고 삐라

통일부 '대북전단' 방치는 임무 방기만시지탄이나 규제는 당연한 조치

역지사지 관점에서도 상식적 결정과거 정부에서도 11번 살포 막아

최순실게이트 풍자화 사건 때도 '표현 자유' 논란됐지만 공익 중시 공감대

, 울고 싶은데 뺨맞은 격일회성 대증요법보다 남북관계 전반 성찰해야

(사진=온라인커뮤니티 캡처)

 

정부가 대북전단 관련 단체를 고발하고 법인 허가 취소에 나선 것은 숙제를 미루던 학생이 뒤늦게 허둥대는 꼴 같아 볼썽사납다. 지금은 사라진 줄 알았던 대북전단이 4.27 판문점 선언 이후로도 계속해서 뿌려졌다는 사실은 북한이 이번에 발끈하기 전까지 국민들은 거의 몰랐다.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뭐라도 대책을 세우던지 최소한 알리기라도 했어야 했는데 임무를 방기한 책임이 있다. 남북 연락채널이 모두 끊기는 지경이 되고서야 황급히 움직이다보니 자의적 유권해석이란 비판도 면키 어렵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북전단 규제는 만시지탄일지언정 당연하고 필요한 조치다.

 

남북이 판문점 선언에서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를 금지하기로 한 이상 통일부는 진즉에 후속대책을 내놨어야 했다. 굳이 판문점 선언이 아니더라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조차 11번이나 전단 살포를 막았던 전례에 비춰 오히려 현 정부는 소심한 셈이었다.

 

남북 합의 여부를 떠나 역지사지 관점에서도 전단 규제는 상식적 결정이다. 만약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방하는 전단을 매번 날려 보내도 우리는 가만히 있어야 할까?이런 판단에는 최고 존엄 모독 같은 북한 체제의 특수성 따위가 개입할 필요조차 없다.

 

설령 아무 내용이 없는 '백지 전단'이라 할지라도 국경을 넘는 순간 그 자체로 주권을 침해하는 성가신 도발이자 공해다. 북한의 실체를 현실적으로 인정하기로 한 이상,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에 비방 전단을 날리지 않듯 북한도 같은 대우를 받는 게 마땅하다.

 

언필칭 '표현의 자유'도 이미 정리됐음에도 불구하고 좀비처럼 반복 재생되는 논란이다. 대법원은 2016년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에 위협이 된다면 표현의 자유도 제한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표현의 자유 논란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풍자한 2017'더러운 잠'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박 대통령을 성적으로 모욕했다고 거센 비판을 받은 이 그림은 한 예비역 장성에 의해 현장에서 뜯겨졌고, 당시 표창원 의원은 전시 장소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당직정지 6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그런데 이 두 사건을 비교할 때 대북전단이 '더러운 잠'보다 과연 국익에 덜 해로운 사건이라 할 수 있을까? 이 그림이 철거됐듯 전단 역시 금지되는 게 맞다.

 

따지고 보면 '표현의 자유' 논란은 우리의 취약한 안보 환경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예컨대 북한의 맹렬한 반응은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대북전단 하나로 풀릴 문제가 아니고 쌓인 게 많다는 뜻이다. 일회성 대증요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상황만 악화시킬 공산이 크다. 북한은 하노이 노딜 이후 남측에 책임을 전가하며 배신감과 분노의 강도를 높여왔다. 우리로선 답답하고 억울한 노릇이지만 일부 진실을 담고 있음을 겸허히 인정할 필요가 있다.

 

어찌됐든 북한에는 영변 핵 폐기 약속까지 받아놨음에도 미국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우리 역량의 한계를 드러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한반도 문제의 불편한 본질을 더 이상 회피하기 어려운 '진실의 순간'에 다다랐는지 모른다. 군사도발을 감수하고라도 북한을 더 밀어붙이든, 아니면 얼굴 붉히면서라도 미국을 설득하든 선택을 더 미룰 여지가 없는 것이다. 바야흐로 미·중뿐만 아니라 북·미 갈등 속에 우리의 지혜와 결기를 시험 받는 엄중한 상황이다. CBS노컷뉴스 홍제표 기자

 

편향적 뉴스이용자의 나라, 대한민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보고서 나와 같은 관점 뉴스 선호” 40개국 평균 28%, 한국은 44%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참여하고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수행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0’ 보고서가 한국의 뉴스수용자들이 갖는 특성으로 편향적 뉴스이용을 꼽았다.

 

한국은 다른 조사대상 국가에 비해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를 선호하는 비중이 높은 편이었다. ‘나와 같은 관점을 공유하는 언론사 뉴스특별한 관점이 없는 언론사의 뉴스’, ‘나와 반대되는 관점의 언론사의 뉴스중 어떤 유형의 뉴스를 선호하는지 묻고, ‘모름응답자를 제외해 응답 비율을 산출한 결과 한국은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44%로 나타났다.

 

이는 40개국 평균인 28%에 비해 16%p 높았으며, 터키·멕시코·필리핀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지표였다. 반면 나와 반대되는 관점의 뉴스를 선호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은 4%로 매우 낮은 편이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말한 해장국 언론이 한국언론계가 처한 현실임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뉴스리포트 2020' 일부.

 

이 같은 지표는 정치관심도가 높고 정치적 성향이 분명한 사람들에 의해 견인된 것이라는 게 보고서 설명이다. 자신을 매우 보수라고 답한 사람은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선호비율이 66%로 가장 높았다. 자신을 매우 진보라 답한 사람의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선호비율도 55%로 역시 높은 편이었다. 이 상황에서 언론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정파적 이해관계에 더욱 편승할 것이냐’, 혹은 편승하지 않고 양쪽으로부터 얻어맞을 것이냐정도로 보인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지난 17일 미디어이슈 보고서에서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보고서 주요 내용을 요약하며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하며 특정 관점 혹은 의견에 초점을 맞춘 뉴스를 생산함에 따라 뉴스의 정파성 또한 세계 각국에서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상대적으로 높은 신뢰도의 공영방송이 존재하는 독일, 영국, 노르웨이, 일본의 경우 다수 국민이 특별한 관점이 없는 뉴스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한국에서 편향적 뉴스이용이 높아진 이유는 승자 독식 체제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대선에서 승리하는 정치세력이 모든 것을 갖기 때문에 양당제 구도에서 집단과 개인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도록 강요받게 되며, 쏠림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뉴스수용자들의 편향적 뉴스이용은 그 자체로 하나의 권력투쟁이자 생존투쟁이며, ‘내로남불은 사회에서 보편성을 획득하게 된다. 언론은 이 같은 지형에서 정파성을 최상위 가치로 여기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는 게 강준만 교수의 지적이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는 뉴스 전반에 대한 한국의 낮은 신뢰도가 이용자의 뉴스이용 편향성 때문일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비춰보면 2016년 조사대상으로 포함된 이후 매년 같은 조사에서 한국의 뉴스 신뢰도가 최하위권인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는 저널리즘 자체의 품질보다는 언론이 전달하는 뉴스의 관점에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뉴스 전반에 대한 신뢰 하락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해석했다.

 

한국은 뉴스 전반에 대해 신뢰한다는 응답 비율이 21%로 조사대상 40개국 가운데 올해도 최하위였다. 40개국 평균 비율은 38%. 다만 한국은 중립응답 비율이 45%40개국 평균인 32%보다 높아서 결과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뉴스 전반에 대해 신뢰 여부를 표현하기보다 판단을 보류한 응답자가 많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정보 출처별 허위정보·오보에 대한 우려를 따져보면 40개국 평균은 정치인 40%, 정치행동가 14%, 언론사·기자 13%, 대중 13% 순이었으나 한국의 경우 정치인 32%, 언론사·기자 23%, 대중 20%, 정치 행동가 18% 순이었다. 상대적으로 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있는반면, 언론에 대한 불신이 상당이 높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지표다. 대중에 대한 우려도 높았는데,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포털 상에서 여론을 조작하는 조직적 선동가들이 있다고 의심하는 탓으로 보인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뉴스리포트 2020' 일부.

 

연령별로 보면 한국에선 20대 여성(13%)이 뉴스 신뢰가 가장 낮은 집단으로 나타났다. 뉴스 신뢰가 가장 높은 집단은 50대 여성(26%)이었다. 20대 남성은 21%, 60대 남성은 24%로 연령대별로 큰 차이는 없었다. 한국은 또한 지역뉴스에 대한 관심도가 가장 낮은 국가로 나타났다. 40개국 평균은 47%이지만, 한국은 12%에 불과했다. 서울에 모든 권력이 집중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한국에서의 유튜브 영향력이다. 한국에선 허위정보·오보 채널로 우려되는 미디어플랫폼 1위가 유튜브(31%)였다. 반면 40개국 전체로는 페이스북(29%)이 가장 높았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속도와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의 보편화에 따라 유튜브 이용 시 발생하는 속도·데이터의 장벽이 무너진 결과 유튜브의 영향력이 해외에 비해 높은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이번 조사에서 40개국의 유튜브를 통한 뉴스 이용률은 평균 27%였지만, 한국은 45%로 무려 18%p 높았다. 2019년 같은 조사에 비해 1년 사이 7%p 증가한 수치다. 뉴스 소비 선호방식을 묻는 질문에서도 40개국 전체 평균은 뉴스 읽기(50%), 뉴스 보기(36%) 순이었지만, 한국은 뉴스 보기(45%), 뉴스 읽기(44%) 순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영국 설문 조사 업체 유고브가 이메일 온라인 설문으로 지난 1월부터 2월 말까지 진행했으며, 한국 뉴스이용자 2304명이 응답했다./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 대미 비난 메시지 왜 안 내놓나

코로나·대선 몰두할 트럼프 시선 돌릴 여력 없어향후 대화 가능성 남겨두기

 

북한이 지난 4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담화를 신호탄으로 연일 대남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미국에 대한 직접 비난이나 뚜렷한 대미 메시지를 내놓지 않고 있다.

 

북한은 남측에 대해 막말을 동원해 관계 단절을 선언하고 대남 군사적 도발까지 암시하고 있지만 싱가포르 정상 합의 등 북·미 간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해 18일 현재까지도 대미 비난은 자제하고 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로 끝난 뒤 북한은 미국의 태도에 여러 차례 불만을 나타낸 바 있다. 하지만 이번 국면에서는 철저하게 미국을 배제하고 있다. 북한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미 국무부가 북한이 추가적인 비생산적 행동들을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반응하지 않았다.

 

또한 국무부가 미국은 남북관계에 관한 한국의 노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면서 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준 것에 대해서도 반박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북한이 남측을 거칠게 몰아붙이면서도 미국에는 특별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배경에는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남겨두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월 대선을 앞두고 국내 문제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 시선을 돌릴 여력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미국은 당분간 현상 유지에만 주력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북한은 남측을 압박함으로써 북·미관계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기를 원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또한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 시한으로 정한 지난 연말이 지났음에도 아직 대화 가능성을 완전히 없애지는 않고 있다. 북한이 지난 12일 리선권 외무상의 담화를 통해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힘을 키우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대화가 중단된 동안 핵능력을 고도화함으로써 대화 재개 시 협상에서 이를 활용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은 의도적으로 빠른 속도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미국이 이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면서 북한은 현재 미국의 국내 상황과 대선 이후 대미협상까지도 염두에 두고 도발 여부와 시기 등을 가늠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