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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5.17~5.22 전두환, KAL858, 한명숙 , 윤미향

by 이성근 2020. 5. 17.

진압 안하면 공산화미국에 5·18 실상 감춘 신군부

미국 코로나 구제금융의 실상: 영세상인 PPP 낚아챈 대기업

일베보다 무서운 전교조? '스승의날'에 본 충격적 영상

혐한 이어진 정의연 논란열올리는 극우세력

5.18 40주년 다시 쓰는 검시 기록] 2, 3의 김안부가 있다

카빈 총상 사망자의 진실

그해 5월 광주... 나는 고1 소녀였다

감염병의 정치학···"코로나19는 누구에게나 평등하지 않다"

차별·불평등 드러낸 코로나19후순위로 밀려난 약자들

경향사설]아버지가 아들 고발해 미국행 막는 국내 성범죄 처벌 현실

조국 가족 증언에 멘붕된 검찰..

5·18 필름 들고 스웨덴행, 전두환이 쫓던 '그들' 찾았다

유튜브에 '5.18의 진실' 검색해보니..."폭동" 주장 아직도

SBS 스페셜] 5·18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그녀의 이름은 최후의 밤, 도청을 지킨 여성들

30대재벌 자산, 지난해 GDP 91% 규모

정의연 사태 만든언론 보도 톺아보다

“BTS팬 기부 패딩, 할머니들 못 받아언론 보도는 오보

명령 따라 5·18 투입된 보통 군인도 역사 속 피해자

죄수와 검사(한명숙) 검찰의 반격, 그리고 죄수H

'더 세진 코로나' 신규 확진 10만명 넘어 일일 최다 기록

극우세력, 윤미향 논란 악용해 역사 뒤집기시도

결국 폐기된 종부세 법안... 민주당 '의지' 물음표

윤미향은 도대체 왜 국회의원이 됐을까?

뉴욕 코로나19 사망률, 가난한 지역이 최대 15배 높았다

전직 조선일보 기자부터 탈북민까지... 북한 가짜뉴스의 진원지

조선시대 임금 수라상 단골메뉴는 개고기찜

정의연과 윤미향, 그를 바라보는 복잡한 시선들

한명숙 9억 수수는 검찰과 제가 만든 시나리오한만호 육성 공개

"KAL858 추정 동체"정부 '현지조사' 나선다

죽였다는 김현희가 죽은 자의 가족을 명예훼손했다”2018.07.24.

KAL858 유족들 "조작주범 전두환 처벌하라"06.01.17

아흔아홉점은 부끄러움이 있다? 2004.08.12.

월 소득 격차 더 벌어졌다상위 20% 1115만원, 6.3% 증가하위 20% 149만원 제자리

<조선일보>'무뜬금' 종북몰이..."허강일 씨 발언에 놀아나"

추모식만 한다더니..현충원 속인 '5·18 망언 집회'

빨갱이주사파라는 아주 오래된 혐오[ 민언련 유튜브 모니터 ]

신문, 한명숙 재심 뒤집기라며 일제히 비판

'한명숙 사건' 증인 한만호의 울분 "검찰, 군대암기사항 외우듯 교육시켜

한명숙 전 총리는 검찰이 주는 밥을 먹지 않았다

패티김·이미자·양희은·희자매국민가수들의 과거는 과연?

 

“진압 안하면 공산화” 미국에 5·18 실상 감춘 신군부

미 국무부 비밀해제 문건 43건 제공

12·12 반란 뒤 전두환 만난 미 대사

, 의심할 여지 없이 제 잇속만 차려

 

외교부 광주 집단발포 명령자 등

진상규명 자료 추가 요청할 것

분수대 앞 광장, 민주의 커뮤니타스. 나경택, 5.18기념재단 제공

 

12·12 군사반란과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 당시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가 전두환·이희성 등 신군부 인사들과 나눈 대화 내용을 본국 정부에 보고한 기밀문서가 15일 공개됐다. 미 국무부가 우리 외교부에 최근 보내온 비밀해제 외교문서 43건 중 일부로, 19805·18 민주화운동을 전후해 주한미국대사관이 본국 정부와 주고받은 전문이 대부분이다.

 

이날 공개된 문서에는 글라이스틴 대사가 신군부 반란 수괴인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어떻게 평가했는지도 잘 나타나 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두환이 12·12 반란을 쿠데타나 혁명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강변한 데 대해 길고 상세하며 의심할 여지 없이 자기 잇속만 차리는 설명을 했다고 평가했다. 문서에는 전두환이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세력의 반격을 막기 위해 미국한테 도움을 요청한 사실도 적시됐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문에 전두환은 현재 상황이 표면적으로는 안정됐지만, 군부 내 다수의 정승화 지지자가 향후 몇주 동안 상황을 바로잡으려 행동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전두환과 동료들은 (반대 세력의) 군사적 반격을 저지하는 데 우리의 도움을 받고 싶어한다고 적었다.

 

1980518일 글라이스틴 대사가 본국에 보낸 전문에는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이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면서 “(시위 대학생을 진압하지 않으면) 한국이 베트남처럼 공산화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 대목도 눈에 띈다. 신군부가 당시 학생운동을 반미 공산주의자 세력으로 왜곡하면서 자신들의 권력 찬탈 행위를 정당화한 것이다.

 

비상계엄 확대 직후 최광수 청와대 비서실장과 만난 뒤에는 “(최규하) 대통령이 계엄령(해제)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을지 최 실장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정부가 (시위) 대학생들한테 유화 전술을 쓰는 것에 군부가 강하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이날 공개된 자료에는 198012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재판이 끝날 때까지 미대사관과 본국 정부가 김대중 구명을 위해 주고받은 문서들도 포함됐다.

 

이날 공개된 자료는 1996년 미 국무부가 정보공개법에 따라 언론과 시민단체 등에 제공한 것이다. 당시엔 문서의 상당 부분이 가려진 상태였지만 이번에는 온전히 공개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에게 정부는 5·18 전후 6개월의 맥락을 따지기 위해 12·12 사태부터 1년 동안의 자료를 (미 정부에) 요청했다진상규명위원회 등 단체와 협력해 미국이 자료를 더 공개할 수 있도록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는 전두환이 광주민주화운동 폭력 진압의 최종 책임자였음을 입증하는 내용은 없다. 5·18 진상규명 단체 등은 집단 발포 등 유혈 진압과 관련된 내용은 한미연합사 등 군사 채널을 통해 보고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미국 코로나 구제금융의 실상: 영세상인 PPP 낚아챈 대기업

제국이 그들의 배를 불리는 방식 13

#사례

 

뉴욕 주 와쇼(Warsaw, NY)의 가족 식당 주인은 25명 종업원 고용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식당 내에서 손님 받을 수 없어 매상이 확 줄은 사장은 드라이브 스루로 음식만 사 가게 하고 간간이 빵과 치즈 등도 함께 파는 궁여지책을 동원해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고 있다. 그러나 역부족이다. 이에 사장은 소상공인 재난지원금 대출인 급여보호프로그램을 이용하려 30년간 거래한 지역 은행에 125000달러(15000만 원) 대출을 신청했다. 그러나 은행에서 돌아온 답은 돈이 다 떨어져서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관련 기사 : <포춘(Fortune)> 430일 자 '14 years in 14 days: Inside the chaotic rollout of the SBA’s PPP loan plan to save America’s small businesses')

소상공인을 위한 구제 금융이 시작된 지 14일도 안 돼 다 소진되었다는 <포춘>지 기사 갈무리.

 

코로나19에 직접 타격받은 소상공인과 서민

미국 정부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미국 경제가 1920년대 대공황급 이상으로 악화될 것을 우려해 선제적 방어에 나섰다. 엄청난 돈을 풀어내기로 했다. 그런데 막대한 이 긴급재난지원금을 갚을 이들은 정작 누구인가? 돈이 곳간에서 흘러넘쳐서 준 것이 아니라 빈 곳간에서 돈을 찍어서 풀어낸 것이니 향후에 납세자들이 이 돈을 갚아야 한다. 그리고 향후란 그리 먼 미래도 아니다. 현재 50세 미만의 직장인들이 갚아야 할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 <포춘> 421일 자 'Who Will Pay For the Coronavirus Bailout? If you’re under 50 and Working, You Will')

 

돈을 찍어 푸는 것이 사망 직전의 미국 경제를 살릴 유일한 방법임을 일단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좋다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에게 우선적으로 쓰여야 할까? 답은 명확하다. 이것을 갚아 나가야 할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들은 국민들이고 서민들이다. 당장 실탄이 필요한 이들에게 가야 한다. 한시가 급한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서민들이 일하는 곳은 대부분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사업체다.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가 만든 아래 표를 보면 큰 그림이 보인다. 미국에선 고용근로자 500명을 기준으로 그 아래를 중소기업으로 그 이상을 대기업으로 분류하는데,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사업체에 민간부문 근로자의 거의 절반이 고용되어 있다. 그리고 100명 미만의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체에서 대부분의 서민들이 일을 한다. 2016년 현재 6000만 명에 이르는 근로자가 3100만 개의 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57일 자 'Where the Small-Business Relief Loans Have Gone') 그래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에게 인공호흡기를 달아 그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일단 막는 것이 매우 시급한 일이다. 그것이 곧 일반 서민을 보호하는 지름길이기에 그렇다.

미국 민간부문 근로자의 업체(고용자수)별 고용 현황. 소상공인 자영업체에 미국의 민간부문 근로자의 거의 절반이 고용되어 있다. <뉴욕타임스> 기사 갈무리.

 

정부가 소상공인들을 돕겠다며 내놓은 돈은 이제까지 6600억 달러(809조 원, 13490억 달러(429조 원) / 23100억 달러(380조 원))이다. 이름은 '급여보호프로그램'(Paycheck Protection Program, PPP), 그걸로 직원의 급료를 주고 해고하지 말라는 취지로 붙인 이름이다.(João Granja , 2020). 그런데 그 돈은 제대로 쓰였을까? 그렇지 않아서 문제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 혜택을 본 이들은 매우 적고 대부분 PPP 구경도 못 했으니까. 그렇다면 그 돈은 도대체 어디에 어떻게 쓰였을까?

 

대기업이 낚아채 간 소상공인 재난지원금(PPP)

영세자영업자 같은 소상공인에게 주라고 국가가 푼돈이 어디로 갔는지는 위 사례의 식당 사장의 말을 들어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돈이 어떻게 다 떨어졌는지 곧 알게 되었다. '루스 크리스 스테이크 하우스'(Ruth’s Chris Steak House)와 같은 큰 체인점이 정부가 돈 풀자마자 바로 신청해서 수백만 달러를 가져갔다. 그런 큰 회사는 일 년에 수백만 달러를 번다. 정말 화가 났다. 그런 대형 식당 체인이 소기업인가. PPP라는 게 원래 소상공인 도우라고 조성한 돈 아닌가? 근데 왜? 도대체 왜 그 돈이 그들에게 갔는가?"

 

이런 상황은 와쇼의 식당 사장만 겪는 게 아니다. <뉴욕타임스>에 소개된 뉴욕시에서 6개의 식당을 경영하며 310명을 고용한 제법 큰 소상공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도 PPP를 신청했지만 단박에 거절됐다. 그의 입에서도 "범털(큰 회사)들은 구제금융 받고, 나 같은 개털들은 못 받고 이게 말이 되나?" 하는 분통이 터져 나왔다.(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420일 자 ''The Big Guys Get Bailed Out' : Restaurants Vie for Relief Funds')

 

그럼 큰 식당 체인들은 도대체 얼마나 타 갔을까? 100개 이상의 점포에 5000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는 '루스 크리스 스테이크 하우스'2000만 달러(245억 원)을 받았다. 전국에 189개 점포를 갖고 8000명의 직원을 갖고 있는 햄버거 체인점 '쉐이크 쉑'(Shake Shack)1000만 달러(123억 원), 샌드위치 체인점 '포트벨리'(Potbelly)는 전국에 약 500개 점포가 있고 직원 수는 6000명에 이르는데 이 회사도 소상공인 구제금융 1000만 달러를 받았다. 또 다른 대형 체인 '제이 알렉산더스'(J. Alexander’s)1510만 달러(185억 원)PPP를 따냈다.(관련 기사 : <엔비시뉴스>(NBCNews) 425일 자 'Firms With Trump Links or Worth $100 Million Got Small Business Loans') 요새 말로 '득템'(좋은 것을 획득했다)했다.(그것이 득템인 이유는 조금 뒤에 밝히겠다.)

 

이에 대해 식당, 술집, 호텔 등 사업체의 사교단체인 '뉴욕시접객업소연맹'(NYC Hospitality Alliance)"정말 분노와 짜증이 난다. 정부의 지원은 소상공인 영세 자영업 식당에 가야 마땅하다"는 성명을 냈다. '미국식당협회'(National Restaurant Association)에 따르면, 3월 이후 4월 중순 현재까지 미국에서 약 800만 명의 식당 종사자 또는 노동력의 3분의 2가 해고당했다. 식당업계는 300억 달러(367000억 원)의 손실을 입었고, 4월 말까지 추가로 500억 달러(61조 원)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추정했다. 대기업 체인보다 영세 식당들의 타격이 컸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단기간 내에 끝나지 않아 셧다운(정상영업중지)이 연장되더라도 버틸 여력이 있어 잘 넘기겠지만, 영세자영업자들은 버티지 못하고 약 3분의 2가량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영세업자를 살리라고 제공한 구제금융을 덩치 큰 대기업이 툭 채가 버렸다. 대기업의 가로채기는 다른 곳에서도 벌어졌다.

 

소상공인 구제 금융에 숟갈 얹은 호텔 등 대기업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거의 300개에 이르는 상장기업들이 소상공인 구제금융 중 10억 달러(12000억 원)을 가져갔다. 예를 들면, 텍사스 주 달라스시 에 기반 한 호텔회사 애쉬포드 주식회사(Ashford Inc.)는 리츠 칼튼 등의 특급호텔을 소유한 호텔업계 제왕이다. 이런 회사가 7600만 달러(934억 원)PPP 구제 금융을 받았다. 애초에 신청은 간 크게도 총 12600만 달러(1544억 원)을 했다. 그 절반가량을 따낸 것이다.(관련 기사 :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 52일 자 'Public Companies Received $1 billion in Stimulus Funds Meant for Small Businesses', <뉴욕타임스> 422일 자 'Luxury Hotel Company Is Biggest Beneficiary of Small-Business Funds')

소상공인 구제 금융 받아 간 대기업 중 호텔업계의 제왕인 애쉬포드 소속 리츠 칼튼 아틀랜타 호텔의 전경. 이 호텔은 PPP2900만 달러를 받아냈다. <뉴욕타임스> 기사 갈무리.

 

도대체 어떤 대기업이 이런 짓을 했느냐는 비난이 비등했지만, 소관 부처인 중소기업청(The Small Business Administration, SBA)은 양심 불량 기업들의 명단을 공개하길 꺼렸다.(뭐가 구리긴 구린 모양새다.) 그러나 매체는 그동안 과거에 공개됐던 대출 프로그램 정보를 종합해 몇몇 회사 이름을 밝혀냈다.(우리나라 대부분의 맹탕 기자들과는 좀 다르다고 해야 하나?) 그때 단서가 됐던 것은 바로 회사 대표(CEO)의 연봉이었다. 캘리포니아 주의 인공지능회사 '베리톤'(Veritone)2018년도 대표의 연봉이 1870만 달러(230억 원), 동생이 1390만 달러(170억 원)를 받는 대기업이다. 그런데 이 회사는 이번에 650만 달러(80억 원)PPP를 받았다.

 

뉴저지 주의 제약회사 '애퀴스티브 테라슈이틱스'(Aquestive Therapeutics)의 대표 연봉은 작년에 260만 달러(31억 원), 올해 이 회사는 소상공인 구제금융 480만 달러(59억 원)를 받았다. 복제약회사인 '웨이브 라이프 사이언스'(Wave Life Sciences)720만 달러(88억 원)PPP를 챙겼는데, 회사 대표의 2018년 연봉은 580만 달러(71억 원)였다. 회사 대표가 그렇게 엄청난 연봉을 챙기는 큰 회사이면서도 소상공인을 위한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마저 한 치의 주저함 없이 채간 것이다. 이들이 왜 부자가 되었는지 알만하다. '챙길 건 확실히 챙기자'가 이들의 모토!

 

14일 내에 14년 치 지원금(1PPP) 소진: 그 많던 소상공인 재난지원금은 다 어디로 갔나?

 

그렇게 영세자영업자 구제를 위한 정부 재난 지원금은 정작 그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에 소진되었다. 특히 43일 발효된 PPP14일이 되기도 전에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재무부 산하 중소기업청(SBA)이 보통 소상공인을 위해 대출프로그램으로 잡은 액수가 1년에 300억 달러(307000억 원)가 안 된다. 그런데 SBA14년 치 소상공인용 대출금액보다 더 많은 코로나19 대응 PPP14일이 되기도 전에 동나 버린 것이다. 대부분 상장사인 대기업의 호주머니 속으로 홀랑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전국의 소상공인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그래서 2PPP가 또 발주되었다. 1차 때 보다 대기업이 몸을 조금 사린 것 같지만 여전히 대기업이 채간 돈이 훨씬 많다. 다음 <뉴욕타임스>의 도표를 보라.

 

100만 달러(12억 원) 이상의 거액대출이 초기 재정지원에 큰 부분 차지한다. 첫 번째 PPP의 경우, 소수 5% 기업에게 대출금 전체의 거의 절반이 갔다. 대기업이 채갔다. 15만 달러(18000만 원) 미만의 소액을 빌린 소상공인은 전체 대출자의 70%를 차지하지만 빌려 간 액수는 PPP15%에 불과하다. 2PPP는 조금 눈치가 보였는지 소액대출이 늘었다(1차 대출액 평균 206000 달러, 2차 평균 79000 달러). 15만 달러 미만의 소액대출은 PPP37%를 차지했다. 그러나 100만 달러 이상 대출을 챙긴 대기업은 대출자의 1%에 불과하지만 받은 액수는 PPP4분의 1이 넘는다.(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57일 자 'Where the Small-Business Relief Loans Have Gone')

1차와 2차 소상공인대출(PPP) 대출액별 현황. 소상공인대출(PPP) 100만 달러가 넘는 대출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뉴욕타임스> 기사 갈무리.

 

<뉴욕타임스>분석에 따르면 소상공인의 25%만이 정부 지원을 받았다.(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424일 자 'Failing to Help Those Who Need It Most') 공간적으로 보면, 코로나로 타격을 가장 많이 받은 지역은 3, 4월 현재까지 뉴욕과 뉴저지 주이다. 그러나 시카고대학과 MIT대학의 학자들이 분석해 본 결과 이런 지역의 소상공인들은 PPP지원을 적게 받았고, 오히려 코로나의 직접적인 타격이 덜한 지역에서 지원을 더 많이 받는 불균형 현상이 벌어졌다. 한 마디로 코로나 대응 PPP가 코로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애먼 데로 가버린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관련 인물들이 따간 PPP

그렇다면 어떤 대기업들이 소상공인을 살리라고 준 돈들을 날름 삼켜버린 것일까? 어떤 루트로? 다음의 예를 보면, 그 실마리를 풀 수 있다.

 

'홀라도르 탄광'(Hallador Coal)이란 회사가 있다. 이 회사가 PPP로 타간 돈은 1000만 달러(123억 원)이다. 그런데 이 회사가 로비스트로 고용한 이는 다름 아닌 트럼프 행정부에서 '스캔들 메이커'로 악명이 높았던 스콧 프루이트(Scott Pruitt)이다. 그는 환경청장(EPA)으로 취임한 직후부터 에너지업계 로비스트가 제공한 10만 달러(12000만 원)를 받고 모로코 여행을 하는 등의 온갖 지저분한 문제로 구설수에 올랐다. 한 마디로 청렴과는 거리가 먼 쓰레기 탐관오리다. 그러나 그를 감싸고도는 트럼프에 의해 청장직을 유지하다 결국엔 사임했다. 그런데 그가 자리에서 물러나자마자 간 곳이 바로 '홀라도르'. 그는 지금 '홀라도르'를 위해 대정부 로비스트로 맹활약 중이다. 동시에 현재 그는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14건의 죄목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관련 기사 : <가디언>(The Guardian) 51일 자 'Fossil Fuel Firms Linked to Trump Get Millions In Cornavirus Small Business Aid', <엔비시뉴스> 425일 자 'Firms With Trump Links or Worth $100 Million Got Small Business Loans', <뉴욕타임스> 201875일 자 'E.P.A. Chief Scott Pruitt Resigns Under a Cloud of Ethics Scandals')

뇌물 등 온갖 비리 추문에 휩싸였으나 트럼프의 비호 아래 버티던 스콧 프루이트가 사임을 두고 <아틀랜틱>(The Atlantic)은 그의 사임으로 엄청난 추문이 과연 덮어질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는 사임 후 '홀라도르 탄광'의 로비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그 회사는 소상공인 구제금융 1000만 달러를 따냈다. <아틀랙틱> 기사 갈무리.

 

'리노 리소시스'(Rhino Resources)란 탄광회사도 1000만 달러의 PPP를 받았다. 그런데 그 회사의 전임 사장이 누구였나 하면, 현재 트럼프의 '미국광산안전보건청'(mine saftey and health administration) 수장인 데이비드 자테잘로(David Zatezalo). 이게 끝이 아니다. '라마코 리소시스'(Ramaco Resources)라는 탄광회사는 무려 840만 달러(103억 원)을 따냈다. 어떻게? 현재 회장 랜디 애킨스(Randall Atkins)가 미국 '에너지국'(Dept. of Energy)의 석탄위원회위원이기 때문이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더 있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와 연줄을 가진 전 현직 관료들이 물심양면으로 애쓰는 통에 소상공인을 살리기 위해 만든 정부 재원에 대기업들이 침을 발라 꿀꺽하고 자신들의 배를 채웠다. 물론 그들은 그런 연줄이 전혀 돈을 타내는데 작동하지 않았다고 극구 부인하고 있다. 비리를 저지르고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사람 보기 드물다. 하긴 잘못을 시인할 인간이면, 아예 그런 짓을 저지르지는 않을 공산이 클 터. 어쨌든 이렇게 해서 사양산업인 화석연료 생산 대기업이 소상공인 긴급재난지원금으로 따간 돈이 무려 5000만 달러(613억 원), 그중 트럼프 행정부와 연계된 회사가 가져간 PPP<가디언> 추산 2800만 달러(343억 원), <엔비시뉴스>추산 1830만 달러(224억 원)이다.(관련 기사 : <가디언> 51일 자 'Fossil Fuel Firms Linked to Trump Get Millions In Cornavirus Small Business Aid', <워싱턴포스트> 55일 자 'Coal Snags $31 Million in U.S. Stimulus Loans for Small Business')

소상공인 대출 낚아채 간 석탄회사란 제목의 <워싱턴 포스트> 기사 갈무리.

 

트럼프 행정부와 관련된 인사로 인해 PPP를 받은 회사는 화석연료 회사 이외에도 많다. '크로포드 유나이티드'(Crawford United)'플로테크 인더스트리'(Flotek Industries)가 그 예로 각각 370만 달러(45억 원), 460만 달러(56억 원)를 받았고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작자들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해외대사 등의 요직과 특혜를 받은 회사의 이사 등의 중역을 돌아가며 맡고 있다. 소위 회전문 인사의 당사자들이 정부 돈을 타내는 데 거간꾼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과 단골고객의 상부상조

앞에서 언급했듯 소상공인의 몫을 채가는 이런 비열한 짓의 선두주자는 단연코 트럼프 행정부와 연줄이 닿는 대기업이다. 그다음은 어떤 방식이 동원되었을까? 소상공인 옹호 시민단체인 '중심가연맹'(the Main Street Alliance) 대표 아만다 볼란틴(Amanda Ballantyne)"은행과 돈독한 관계를 쌓아온 기업"PPP를 따갔다고 말한다. 은행과 짬짜미한 기업들이 타갔다는 뜻이다.

 

대형은행들은 PPP 신청을 받을 때 하나의 원칙을 가지고 대출 신청을 받았다고 호언장담했다. 이전 회에서 필자가 말했던, 선착순 규칙이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로는 두 개의 줄을 만들었다. 하나는 진짜 소상공인을 위한 줄, 다음은 속성 줄인 기존의 단골 대기업을 위한 줄. 예를 들면 '제이피 모건'(JP Morgan)이 그렇게 두 개의 줄을 세웠다. 그런데 대기업은 솔직히 줄을 설 필요도 없다. 전화 한 통이면 끝나니까. 아니면 먼저 은행 측에서 고객에게 전화를 했을 수가 있다. 이렇게 좋은 대출 조건이 있는 상품이 나왔으니 신청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먼저 타진했을 수 있다. 이것저것 다 논외로 치더라도 영세 자영업자들은 대출받는데 제출해야 하는 서류작업에 서툴다. 그러나 대형회사들은 능숙하며 완벽하게 서류를 꾸며낼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다. 이미 게임이 안 되는 것이다.

소상공인 대출을 대행하는 대형은행이 선착순 규칙을 어겨 소상공인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는 <뉴욕타임스> 기사 갈무리.

 

또 대출 대행 은행은 자기들과 관련 있는 인사가 있는 기업에게 우선적으로 대출을 해 주었다. 스마트폰 보호 장구를 만드는 기업인 '재그주식회사'(Zagg Inc.)는 무려 940만 달러(115억 원)의 지원을 키뱅크(KeyBank)를 통해 받았다. 그런데 현재 회사 대표가 키뱅크의 과거 고위 임원이었다. 웃긴다. 서로서로 챙겨주기 그런 건가? 이 때문에 볼란틴은 정책입안자들이 소상공인지원프로그램을 연줄과 은행 단골고객이 아닌 실질적인 소상공인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가도록 규정을 정비해야한다고 일갈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구제금융 분배를 대신한 대행사인 은행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수수료다. 그들이 고작 한 일이라곤 신청 받아 정부 돈을 자신들 입맛대로 나눠준 것뿐인데 엄청난 수수료까지 챙겼다. 미국공영라디오방송(NPR)에 따르면 대출 대행 은행이 수수료로 거둔 금액은 무려 100억 달러(12조 원)가 넘는다.(관련 기사 : <엔피알>(National Public Radio, NPR) 54일 자 'Here’s How The Small Business Loan Program Went Wrong In Just 4 Weeks')

 

그들이 대기업에게 우선적으로 거액의 돈을 선뜻 대출해 준 데에는 또 다른 야비한 이유가 있다. 대출 규모가 클수록 수수료가 더 높기 때문이다. 물론 대출 서류 작성 등 거기에 들어가는 시간과 정력이 다수에게 소액대출을 해줄 때 보다 덜 들어가는 것은 덤이다. 결국 종합하면, 소상공인에게 가야 할 구제 금융을 이들 은행들도 챙겼다는 뜻이다. 단골고객인 대기업과 짝짜꿍하면서. 이런 걸 보고 우린 말한다. 벼룩의 간을 내먹는다고. 그러면 일이라도 제대로 할 것이지, 이게 뭐람. 하긴 아무런 정부의 제제가 없는 곳에서 이들처럼 안 하는 것이 바보 취급 받을 테니 저들의 행보는 저들로서는 무척 합리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 정부가 나서서 대기업을 감싸고도는 판에 누구 탓을 하랴.(이것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말하겠다.)

 

대형회사의 PPP'득템'인 이유

그러면 이쯤에서 다음의 질문이 나와야 한다. 상장기업인 대기업들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소상공인 대출에 슬쩍 숟가락을 얹으려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기업이 굳이 죽어라 PPP 돈을 빌리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500명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한 대기업이 소상공인을 위한 PPP를 받을 수 있었는가?

 

먼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다. 대기업이 노린 것은 바로 탕감이다. 탕감을 노리고 PPP를 받는 것이다. 무슨 말일까? PPP는 다른 대출과 달리 탕감 가능성이 있는 대출이다. 대기업은 탕감받기에 유리하다고 판단해서 그토록 PPP를 타내려고 애쓴 것이다. 탕감받는 조건은 630일까지 직원을 해고하지 않는 것이다. 이 조건은 소상공인보다 덩치가 큰 대기업이 지키는 것이 더 쉽다. 왜냐하면 덩치가 크면 그만큼 그 시한까지 고용 유지가 쉬우니까.

 

이에 비해 소상공인들은 규모가 워낙 작고 영세하다 보니 그게 어렵다. 미국에 팬데믹이 시작되자마자 소상공인들은 이미 직원들을 많이 내보냈다. 일단은 실업보험을 타게 하고 사태가 나아지면 다시 고용할 요양으로 나름 선제적 조치를 취했다. 일단은 소나기는 피하는 게 상책이니까. 그러나 문제는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를 장기전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미국 전역이 경제 재개를 다 허용한 것도 아니다. 즉 열고 싶어도 못 열 수 있다. 또 열었다 한들 파리만 날리고 있고, 십중팔구 앞으로도 그렇게 될 공산이 매우 크다. 사업이 팬데믹 이전처럼은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 말은 곧 고용을 그 이전으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말과 같다. 그것은 소상공인에겐 대출금 탕감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말과 같고, 그것이 현실화되면 대출은 고스란히 빚으로 떠안게 된다는 의미다.(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56일 자 'Small Businesses Counting on Loan Forgiveness Could Be Stuck With Debt')

소상공인 구제금융은 탕감 가능하지만 그 요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대기업이지 소상공인들은 아니다. 그래서 탕감을 염두에 두고 대출을 받은 소상공인들은 자칫하면 이자와 함께 원금도 갚아야 해서 빚더미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뉴욕타임스> 기사 갈무리.

 

게다가 문제가 그것만 있는 게 아니다. 소상공인이 PPP를 받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수십 번 신청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NO)' 밖에 없다.(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424일 자 'Denied, Deferred and Ignored: 13 Applications, and No Relief') 설사 PPP를 받는다 한들 탕감은커녕 빚더미에 앉을 공산이 큰 데다, 또 규정이 너무 까다로워서 받아 놓고도 한 푼도 쓰지 못하고 손도 못 댄 소상공인들이 많다. 반드시 급여로만 대출금의 75%를 써야 한다는 단서 조항 때문이다.(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52일 자 'Some Small Businesses That Got Aid Fear the Rules Too Much to Spend It') 이미 직원들을 내보냈는데 어찌하란 말인가. 이런 걸 두고 엎친 데 덮친 격, 설상가상이라 하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소상공인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대형회사는 6월 말까지의 고용은 '식은 죽 먹기니 일단 타고 보자' 하고 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6월 말의 시한만 지나면 탕감받고 직원들을 가차 없이 자를 것이 뻔하다. 누구에겐 PPP가 생명줄이자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만, 누구에게는 먹고 입 싹 씻을 수 있는 그저 눈먼 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득템'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어쨌든 대기업이 PPP를 거의 다 채가자 엄청난 비난이 일었다. 이에 재무부 장관 므누신이 200만 달러(245000만 원)이상 대출자(대기업만 가능)에 대한 조사가 들어갈 것이고 법적 책임도 물을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완전 뒷북이다. 이에 몇몇 회사들이 받은 돈을 토해내겠다고 발표했다. 호텔 체인점 '에쉬포드', '쉐이크 쉑' 햄버거, '루스 크리스 스테이크 하우스' 등이 슬그머니 발을 뺀 것이다.(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52일 자 'Hotel Group Will Return Tens of Millions in Small Business Loans')

 

짜고 치는 고스톱: 탕감받기 위해 로비해 법령 바꾼 대기업

이제 다음 질문에 답할 차례다. 어떻게 500명 이상의 직원을 가진 대기업이 500명 미만의 소상공인 구제 금융을 받았는가? 이 대답을 하기 전에 재무부장관 므누신이 1PPP가 소진되고 나서 대기업을 향해 뒷북을 친 것에 대한 평가를 해야 한다. 그러면 저 질문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답을 확보할 수 있다.

 

왜 재무부와 SBA는 초장부터 PPP 시행 계획을 세밀하게 하지 않았는가? 이번 경우(코로나19)가 전례가 없는 것이라 경황이 없어서?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고용인 500명을 기준으로 벌어진 PPP 자격 요건을 보면 처음부터 너무나 꼼꼼히 대기업을 위해 정책과 법안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니까 그렇다. PPP 법안은 500명 이상의 종업원을 둔 대기업이라도 회사 전체로 보지 않고 회사에 속한 물리적 장소 1개당 직원이 500명 이하면 PPP를 받을 수 있게 허용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이렇다. 수백() 개의 체인점과 수천 명의 직원을 고용한 식당체인과 호텔체인이라고 하더라도 체인점 단 한 곳의 직원이 500명만 넘지 않는다면 전체 회사에 소상공인이 탈 수 있는 자격요건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완전 꼼수다. 물론 이런 꼼수도 이들 업계의 집요한 대정부 및 대의회 로비를 통해 이루어진 혁혁한 성과다.

 

이렇게 정치권은 철저히 대기업 편이다. 대기업에게 뭔가를 주지 못해 안달한다. 물론 그래야 자신들이 주워 먹을 콩고물이 떨어지니까. 그러니 실로 일로매진할 수밖에. 소상공인과 서민들을 위해 일해 봤자 그들에게 떨어지는 콩고물은 없다. 도의적 책임과 사명? 바랄 걸 바라자. 그들의 안중엔 그런 것은 없다. 소상공인과 거기서 일해 생계를 유지하는 서민들 생각일랑 그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그러니 저런 짓을 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기준 선 500명과 관련한 특혜가 한 가지 더 있다. 이것은 다음 회에서 알아보기로 하자.

 

이렇게 소상공인을 위한 PPP는 구멍이 숭숭 난 채 내가 말하는 제국들(탐욕과 부정 및 반칙에 찌든 극소수 부자들, 엘리트들)의 뱃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정작 생명줄이 필요한 이들에겐 지푸라기 하나 던져주지 않고 모터보트를 타고 있는 이들에게 기름을 더 넣어준 격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원성이 하늘을 찌르자 제국 중 어떤 것들은 슬그머니 PPP를 돌려주기로 했단다. 그러면 다인가? 생각해 보라. 그것이 도둑질하고 들키니까 제자리에 갖다 놓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 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반환하면 범죄 아닌가? 자격도 없는 것들이 정경유착과 로비로 규정을 수정해 자격 있는 것으로 둔갑하고 또한 갖은 연줄 동원해 없는 자들에게 돌아갈 것을 가로챘다. 그건 명백한 범죄다. 한도 끝도 없는 욕심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제국들이 그렇게 PPP를 가로챈 사이 생명줄 놓친 자영업자들은 줄도산하고 노동자들은 실업자로 전락했는데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 일자리는 그들에겐 유일하게 남은 호구지책이었다. 번듯한 직장도 아니고 그저 허드레 일자리였다. 그것마저 낚아채 갔으면서, 그래서 남의 가정을 파괴했으면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가? 돈을 반환하기로 했으니 끝이란 말인가? 하긴 누가 뭐래도 PPP를 꿍치고 앉아 뱃속을 채울 요량인 대기업도 있긴 하니 더 이상 뭐라고 말하겠는가. 그러니 뭐 잘못 한 게 있느냐고 적반하장으로 안 나오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것인지. 남의 나라 일이지만 참 답답하기만 하다.

 

이 대목에서 구약성서의 나오는 다윗 왕과 나단 선지자의 삽화가 떠오른다. 나의 지도교수 피터 버거(Peter Berger)가 가끔 언급하던 매우 유명한 이야기다. 다윗은 자신을 위해 전장에 나가 싸우는 우리아의 아내에 꽂혀서 간통을 저지른다. 그것이 발각 날까 봐 충신 우리아를 일부러 최전선에 보내 죽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아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삼는다. 왕의 이 비열한 범죄는 유야무야 끝날 것 같았다. 그러나 어느 날 선지자 나단이 다윗 앞에 선다. 그리고 이런 이야길 꺼낸다. 여기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다. 부자는 양과 소가 많고 가난한 자는 가진 것이라곤 오직 새끼 양 한 마리뿐이다. 어느 날 부자에게 손님이 왔고 부자는 자기 양과 소를 잡아 손님을 대접하지 않고 가난한 자의 새끼 양을 빼앗아 그걸 잡아 대접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은 불같이 화를 냈다. 당장 그 자를 잡아 오라고 사형에 처하겠다면서. 그 때 나단이 다윗을 보며 말했다. "왕이여, 그게 바로 당신이다." 그 순간 다윗은 고꾸라져 자신의 죄를 회개한다. 이런 다윗 같은 제국을 기대하는 것은 한낱 부질없는 꿈일 터.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은 구제금융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보도한 <블룸버그> 기사 갈무리.

 

김광기 경북대 교수 pressian.

 

일베보다 무서운 전교조? '스승의날'에 본 충격적 영상

"이게 다 전교조 때문이다"라는 젊은 교사에게

코로나19의 지역 감염이 확산되는 이 와중에 스승의 날을 맞았다. 학교에 아이들이 없는 스승의 날이 조금은 낯설지만, 한편으론 마음 편한 구석도 있다. 촌지 문화가 거의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이맘 때는 아이들도, 학부모도, 교사조차도 여러모로 께름칙한 시기다.

 

몇몇 졸업생이 인사드리러 온다기에 외부인의 학교 출입이 금지돼 있다며 손사래를 쳤다. 현재 학교는 교직원을 제외하고 누구도 교문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예전 같으면 교무실까지 배달되던 택배도 교문 관리실에 놓고 간다.

 

올해는 스승의 날을 온전히 교사들끼리 보내게 됐다. 오랜만에 몇몇 동료 교사들과 스승의 날을 주제로 이야기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다. 해마다 스승의 날을 명절처럼 쇠고 있지만, 교사들 중에 그 유래와 변천 과정을 아는 경우는 드물다.

 

"이게 다 전교조 때문이다"라는 젊은 교사

201910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에서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6, 문재인 정부 규탄 교사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이희훈

 

스승의 날은 19585월 충남 강경여고 학생들이 전현직 교사들을 찾아가 위문한 데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5년부터 세종대왕 탄생일인 515일로 공식 지정되었고, 스승의 날 행사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세종대왕이 우리 민족의 큰 스승이라는 뜻에서다.

 

이후 유신정권이 들어서자 교육 관련 모든 행사가 '국민교육헌장 선포 기념일'로 통합되면서 금지되는 운명을 맞는다. 유명무실한 스승의 날이 부활한 건 19825월로,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어 지금에 이른다. 공휴일은 아니지만, 일부 학교에서는 재량 휴업일로 운영하기도 한다.

 

"스승의 날이 교사에 대한 존경심을 높이기는커녕 비하하고 조롱하는 날이 된 마당에 차라리 폐지했으면 좋겠어요. 유공 교원에 대한 정부의 관행적인 포상도 권위를 잃은 지 이미 오래잖아요."

 

교사들과의 대화는 절망과 자책으로부터 시작됐다. 우리 사회의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스승의 날은 '빛 좋은 개살구'라는 것이다. 한 동료 교사는 언제부턴가 교사 집단은 '안줏거리' 신세로 전락했다면서, 학교 밖 모임 자리라면 굳이 신분을 밝히지 않는단다.

 

그런데 한 젊은 교사가 내부의 자성이 필요하다면서 다짜고짜 전교조를 들먹였다. 여론과 전교조의 불화로 공교육 전체가 싸잡아 욕먹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비율로 따지면 15% 정도에 불과한 전교조가 전체 교사 집단을 과잉 대표하고 있는 것부터가 패착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교조의 연이은 '헛발질'로 여론이 등을 돌렸다고 강조했다. 과거 온갖 탄압을 이겨내고 창립될 당시와 지금의 전교조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도 했다. 교육보다는 정치에, 아이들의 성장보다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더 골몰하는 조합원이 적지 않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허구한 날 상경 투쟁만 고집하는 관행, 편향된 역사관을 고수하는 시각, 정시 비중의 확대에 반대하는 입장 등을 전교조의 대표적인 '헛발질'로 꼽았다. 게다가 전교조 교사들의 '이중성'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여론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고 말했다. 겉으론 평등 교육을 외치면서, 자기 자식은 대치동에 방을 얻어 집중 과외를 시키는 행태를 질타한 것이다.

 

전직 교사 출신 유튜버의 전교조에 대한 근거 없는 비판

유튜브에서 전교조를 비판하는 한 인기강사 유튜브 캡처

 

그의 날 선 비판은 곱씹어볼 대목이 분명 있다. 조합원 수를 늘려 그 집단적인 힘으로 의사를 관철하려는 관행과 극단적 역사관을 주입하려는 태도 등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그는 전교조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많은 젊은 교사들의 보편적인 인식이라고 잘라 말했다. 20~30대 교사들의 가입률이 다른 세대에 견줘 턱없이 낮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란다. 사실 지역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20~30대 교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25% 남짓에 불과하다.

 

조만간 조합원 셋 중 한 명이 50대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해가 갈수록 젊은 교사의 비율이 낮아지고 있다. 예순 즈음에 정년을 맞는 현실에서, 전교조가 극심한 고령화에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교직에 첫발을 내딛는 신규 교사에 대한 조직사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그의 분석은 어디서 많이 듣던 익숙한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 전교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때, 보수 언론에서 맞장구치며 쏟아냈던 내용이다. 결국 전교조는 그들의 바람대로 법외노조가 되어 풍찬노숙하는 처지가 됐다.

 

그는 요즘 젊은 교사들의 전교조에 대한 인식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며, 어느 전직 교사의 유튜브 영상을 소개해줬다. 조회 수가 25만 회에 이를 만큼, 여론을 잘 대변해주는 영상이라고 평가했다. 해당 유튜버는 구독자 수가 수십 만에 달하는, 나름 진보적 성향의 역사 강사다.

 

안타깝게도, 전교조에 대한 해당 유튜버의 평가는 침소봉대, 견강부회, 아전인수로 점철되어 있다. 전직 교사로서 애정 어린 고언이라고 재차 강조했지만, 보수 언론의 공격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외면한 장사치의 해석일 뿐이다.

 

전교조가 외면받는 이유를 영상에선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우선, 자기 밥그릇만 챙기려는 이들이 많다는 점을 꼽았다. '밥그릇'이라는 저속한 표현이 귀에 거슬려서 그렇지, 그걸 나무랄 순 없다. 하나 분명한 건, 적어도 내 주변에서 밥그릇'' 챙기려는 전교조 교사는 거의 없다.

 

오래된 '해명'이지만, 노조의 결성 이유는 조합원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 향상에 있다. 노조가 법적으로 보장된 마당에 교사 노조가 일반 노조와 달라야 한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는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30여 년 전 케케묵은 인식에서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교과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질타도 이어진다. 거칠게 말해서, 사교육 강사에 견줘 전교조 교사의 수업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교조 교사가 자녀의 담임이 되면 그해 학업은 망쳤다고 여기는 게 일반 학부모들의 보편적인 인식이라는 여론까지 덧붙였다.

 

물론, 여론이 그렇다는 게 유일한 근거다. 교과의 전문성과 수업 능력이라는 개념부터가 모호하다. 영상이 말하는 기준은 오로지 수능 점수다. 아이들의 수능 점수로 교사의 전문성과 수업 능력을 평가한다면, 대체 학교와 학원이 다를 바가 뭔가.

 

여기서 잠깐. 종일 수업 준비만 하는 사교육 강사와, 수업에 생활지도에 잡무까지 처리해야 하는 학교 교사를 수업의 효율만으로 단순 비교하는 건 애초 말이 안 된다. 나아가 전교조 교사를 학교 내 비전교조 교사와 견주지 않고, 매번 사교육 강사와 비교하는가도 의문이다.

 

천문학적인 사교육비의 증가도 교과의 전문성이 부족한 교사 탓으로 돌리고 있다. 보수 언론이 전가의 보도처럼 읊었던 거라 귀담아들을 건 없지만, 스스로 진보적 성향이라는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 정녕 사교육비 증가의 원인이 맹목적인 입시 경쟁과 승자독식의 사회구조가 아니라, 교사들의 수업 능력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전교조가 일베보다 무섭다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0205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을 통해 전교조 법외 노조화를 진행했다는 내용을 밝히고 서훈 국정원장의 사과와 법외노조 취소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희훈

 

더욱 황당한 건, 전교조 교사들이 정치 활동에 신경 쓰느라 수업을 게을리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교사가 집회를 통해 정책의 찬반 의사를 표현하는 정치 행위를 두고 왈가왈부할 순 없다. 이는 정치 혐오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애먼 전교조에 덤터기를 씌우는 짓이다.

 

교사가 아이들 앞에서 시의적절한 정치적 쟁점을 소개하고 토론하는 것이 미래의 수업 모델이자 최고의 교육이라 믿는다. 수능에 출제될 리 만무하니 다 제쳐두고, 기출 문제만 반복해서 풀라는 것인가. 선거 연령이 점점 낮춰지는 시대, 학교에는 더 많은 '정치화'가 필요하다.

 

수업을 게을리한다는 주장의 근거 또한 수능 점수로 귀결된다. , 수능 점수만 높다면 그 어떤 것도 문제 될 게 없다. 밥그릇만 챙긴다는 질타도, 교과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조롱도, 정치 활동에 빠져 수업에 소홀하다는 억측까지도 피할 수 있다. 결과만 좋으면 다 좋다는 식이다.

 

그동안 학교 교육이 파행을 거듭해온 이유가 그것인데, 되레 전교조 교사더러 수능에 '올인'하라며 다그치는 형국이다. 입시가 학력고사와 수능을 거치며 변화를 거듭해왔지만, 오로지 점수를 높이기 위해 교육과정을 편법으로 운영해온 학교의 현실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 이유가 오로지 점수에만 얽매인 결과 중심의 교육에 있었다고 한다면, 뭐라고 반박할 텐가.

 

결국, 영상의 맨 마지막은 예상했던 대로 정시의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잖아도 외면당해온 전교조가 정시 비중의 확대를 반대하면서 치명타를 맞았다는 논리다. 정시와 학종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섣부른 예단이다.

 

설령 그렇다 해도, 학종을 통해 전교조 교사의 권위를 높이려 한다는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망언이다. 생활기록부를 '무기' 삼아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교사의 입맛대로 통제한다는 발상이 놀랍기만 하다. 알다시피, 학종은 수능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솔직히 전교조가 지난 10년간 보수 정권과 언론으로부터 융단 폭격을 당하고도 이만큼 버티고 있는 게 용할 따름이다. 진보적 성향의 유튜버조차 저들의 논리에 포섭되어 전교조를 맵차게 헐뜯는 형국이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전교조를 위해서'라는 말이 가증스러울 따름이다.

 

해당 유튜브의 '진면목'은 맨 마지막의 단 1초짜리의 외마디 말에 담겨있다. 유튜브가 닫히기 직전 내뱉는 "젠장!"이라는 감탄사. 전교조를 비판하는 영상을 찍는다고 하니 교사인 지인이 우려하면서 이런 말을 건네더란다. '전교조가 일베보다 더 무서울 수 있다'.

 

부디 걱정 마시라. 전교조가 일베 따위와 비교된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긴 하지만, 이 정도의 영상에 조목조목 반박할지언정 감정적으로 발끈하지는 않는다. 보수 정권과 언론의 맹목적인 비난에 숱하게 시달려온 탓에, 웬만한 전교조 교사라면 그만한 면역력은 갖추고 있다.

 

한 가지 빼먹은 게 있다. 전교조에 젊은 교사가 상대적으로 적은 건, 신뢰를 잃어서라기보다 개인주의적 성향과 사회적 분위기 탓이 크다. 전교조의 신뢰 운운하기 전에 최근 전국 사범대, 교육대의 재학생과 임용시험 합격자의 현황을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들여다보길 권한다./서부원(ernesto) / 오마이뉴스

 

 

혐한 이어진 정의연 논란열올리는 극우세력

무토 전 주한 일본대사, 두 차례 칼럼 통해 혐한 분위기 조성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후원금 논란 이후 처음으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가 열린 모습.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일본군성노예제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윤미향 전 정의연 이사장의 회계 관련 의혹이 일자, 일본 언론과 극우 성향 세력들이 이를 빌미 삼아 혐한(嫌韓)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 15일 일본 최대 포털사이트 '야후 재팬'을 살펴보면 이번 정의연 의혹에 대한 기사가 일본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정의연 의혹으로 인해 벌어진 현상을 전하는 기사가 대부분이었지만 이를 두고 정치권과 묶거나 혐한을 조장해 분열을 야기하는 글도 보였다.

 

특히 일본 온라인 매체 'JB Press'는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일본대사의 칼럼을 두 차례에 걸쳐 보도했다. 무토 전 대사는 대표적인 혐한 인사로 지난 2017'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좋았다'를 출간하며 한국 사회의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켰던 인물이다.

 

무토 전 대사는 지난 12일 칼럼에서 정의연에 대해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면 단체의 존립 기반이 없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반일 운동을 추진하고 위안부 문제를 이용하는 북한과 연계하면서 한일 갈등을 심화시키길 바라고 있다"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어 "과연 이를 문재인 정권이 모르고 있는 것인지, 혹시 안다면 그것이 정권의 방향성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하고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를 계기로 정의연의 진실을 이해하면서 이러한 움직임에 현혹되지 말고 한일관계를 재고해주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14일에는 ''2의 조국'으로 변한 윤미향 의혹, 여당을 필사적으로 옹호'라는 칼럼을 게재하고 "윤미향과 그 주변의 행보가 객관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지만 4.15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한만큼 이번에도 힘으로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토 전 대사는 또 "한국 정치권은 여전히 반일을 국내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이래서는 당분간 한일관계에 대한 전망을 내놓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일본 네티즌들은 무토 전 대사의 칼럼에 찬성하는 댓글을 달았다.

한 네티즌은 "일본은 한국과 단교해도 문제가 없겠지만 한국 입장에서 보면 일본이 없으면 여러가지 곤란한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철저히 일본을 깔아뭉개더라도 단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댓글을 남겼다.

 

또다른 네티즌은 "한국이라는 나라에는 진실이라고 할 것이 없다. 거짓말이라도 뭐든지 큰 소리로 몇 번이나 반복해 외치면 그것이 진실이 되어가는 것을 우리 일본인들은 현실로 봐왔다"라며 "모든 것이 자업자득이다. 이제 아무도 동정 따위 해주지 않을 것"이라며 위안부 문제 해결은 동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억지를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CBS노컷뉴스 송대성 기자

 

5.18 40주년 다시 쓰는 검시 기록] 2, 3의 김안부가 있다

5.18 검시 기록을 확인하던 취재팀은 계엄군의 잔인함을 곳곳에서 확인했습니다. 한 몸에서 나타난, 총에 맞고, 두들겨 맞고, 칼에도 찔린 흔적들. 19살에 생을 마감한 김경환 씨의 검안서 얘기입니다.

머리 뒤쪽에 타박상과 열창, 등 쪽에 자상이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특히 좌견갑부, 왼쪽 어깨 뒤에 총알이 몸에 박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맹관총상이 있다고 써 있습니다.

 

두들겨 맞고, 칼에 찔리고, 총에 맞고...

검안서 내용만을 놓고 상상해볼까요.

어깨에 총을 맞은 19살 청년을 계엄군이 두들겨 패고, 칼로 찌른 겁니다. 아니면 대검에 찔린 19살 청년을 두들겨 패고 어깨에 총을 쏜 겁니다. 시신에 남은 상처의 순서와 상관없이 5.18 당시 계엄군의 잔혹했던 진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검찰 보고서는 '자상으로 분류할 것'이라고 적었고, 보안사 검시 참여 보고에도 총상은 빠져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김 씨의 주요 사인은 타박사로 분류됐습니다.

 

총상 숨기고 주요 사인은 타박사로

당시 26살이던 전재서 씨의 검안서에는 오른쪽 귀 뒤에 직경 1.2cm의 맹관총상이 의심된다고 돼 있습니다. KBS가 입수한 전 씨의 병원 기록에도 전 씨가 총상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습니다. 군은 총상 기록을 빼고 자상과 타박상만 기록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몸에 총상이 확인됐지만, 결과적으로 타박사로 최종 기록이 남은 겁니다.

김형석 전남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총상이나 타박상이) 사인에 얼마만큼 개입을 했느냐는 부검을 하기 전에는 알기가 어렵습니다. 같이 기록되어야 할 손상 중에 일부는 인용이 돼 있고 일부는 빠져있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칼로 찌르고, 총을 쏘고, 마구 때린 흔적들이 희생자의 몸에 그대로 남았지만, 군은 자위권 주장을 하며 시신의 기록까지 가리려 했습니다.

 

그들은 왜 총상 사망자를 타박사로 분류했나?

총에 맞은 김안부 씨의 사인은 왜 타박상으로 수정 또는 조작됐을까요?

 

만약 조작이라면 사망 시점과 밀접합니다. 계엄군의 발포로 인한 공식기록은 1980520일 밤입니다. 검시 기록을 보면 520일 밤 광주역 앞 등에서 총상으로 4명이 숨졌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군이 인정한 건 아닙니다. 군은 한동안 이 같은 사실을 숨겨오다 자위권 차원에서 실탄 지급과 발포가 이뤄진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5.18을 다룬 영화에서 수레에 시신을 싣고 시민들이 거리를 행진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요. 바로 이 장면이 520일 광주역 희생자들의 시신을 전남도청 앞으로 옮기는 장면입니다.

 

신군부 자위권 흔드는 '19일 총상' ..신군부 인정 안 해

 

다시 김안부 씨의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광주역 발포보다 하루 앞선 519일 김안부 씨의 총상 사망은 신군부 입장에서는 인정할 수 없었을 겁니다. 김 씨가 사망한 날인 19일 광주지역에서는 일부 소요는 있었지만, 군이 발포할 정도의 격렬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19일 총상 사망이 인정되면 신군부의 자위권 주장이 흔들리는 겁니다.

 

군의 검시 참여 보고서에도 김 씨는 '데모를 구경하던 중'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김 씨의 죽음은 전두환 신군부의 자위권 사격이 허구임을, 5.18의 성격이 잔혹한 국가 폭력에 의한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는 "19일 광주의 시위가 막 시작됐던 이 시기에 총을 쐈다는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계엄군이 처음부터 총 사격까지 포함한 잔혹한 작전을 시행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총격 상황 목격자 있어도..신군부 "19일엔 발포 없었다" 발뺌

신군부가 19일 총상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던 사례는 더 있습니다. 같은 날 총에 맞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김영찬 씨도 목격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상자로 인정받기까지 고통을 받았습니다.

 

김영찬(1980519일 총상 부상자) 씨는 "제가 19일 맞았다고 그래서, 그것이 국회나 아니면 정부에서, 직접 당사자가 맞은 사람이 있는데 그걸 인정을 안 해주는 게 참 답답하죠. 과거 1988년 국회 청문회 할 때도 군부에서는 21일 최초 발포했다, 그렇게 해서 인정하지 않았어요"라고 말합니다.

시민들에게 총을 겨눈 계엄군은 한결같이 자위권 차원의 발포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총상 상처가 기록된 김안부 씨의 검시 내용은 자위권 논리를 뒤엎는 또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이성각 기자drill@kbs.co.kr

 

카빈 총상 사망자의 진실

5.18 총상 사망자에 대한 논란이 하나 있습니다. 계엄군이 사용했던 M16과 시민들이 들었던 카빈총에 의한 총상 구분 때문인데요.

당시 검시 보고는 엄밀하게 말해 '검안'이었습니다. 시신을 의사들이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검안이었습니다. 물론 검안에 참여했던 의사들은 최선을 다해 기록으로 남기려 했던 흔적이 검시 기록 곳곳에서 보입니다. 대학병원 의사들이 졸지에 검안에 참여하게 된 상황이었는데, 특히 총상 사망자 검안은 어려웠다고 합니다. 총상 검시 경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몸에 난 상처만을 보고 M16에 의한 것인지, 카빈에 의한 것인지 판단하는 건 더더욱 어려웠을 겁니다.

 

M16과 카빈 총상의 차이폭도와 양민

그럼에도 총상이 M16과 카빈 중 어떤 총에 의해 사망했는가는 그때도, 지금도 중요합니다. M16에 맞았다면 그 당시 기준으로 '폭도'. 카빈에 맞았다면 시민군의 총에 맞은 '양민'으로 분류되기 때문입니다. 지금에 와선 '카빈총에 맞은 5.18 사망자가 30여 명이 된다'며 폭도들에 의한 사망자가 이렇게 많았다는 논리로 이용됩니다.

 

그래서 취재팀은 카빈총에 의해 숨졌다는 30여 명의 검시기록을 분석했습니다. 1980521일 저녁. 광주에서 전남 담양 집으로 돌아가던 고규석 씨 일행은 광주교도소 옆을 지나다 계엄군의 무차별 총격을 받았습니다. 탑승자 4명 중 고규석 씨 등 두 명이 현장에서 숨지고 계엄군에게 붙잡힌 두 명도 폭행당했습니다.

숨진 두 사람의 검시 기록에는 계엄군이 사용한 'M16' 대신 '카빈' 총상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기록됐습니다. 그런데 당시 교도소에 주둔했던 공수부대의 군 기록에는 고규석 씨 일행의 피격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 일행이 교도소를 습격하려 해 자신들이 사살, 체포했다는 내용입니다. 물론 이들은 집으로 돌아가던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었습니다.

군 스스로 주요 전과(戰果)로 기록해놓고, 정작 검시 기록에는 시민군에 의해 숨진 것으로 남은 겁니다.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광주에서 일어난 일들에 자기들의 정당성, 합리적인 거 이런 것들을 주장하기 위해서 조작하지 않았나 본다"고 말합니다.

 

비슷한 사례가 더 있습니다. 520일 밤 계엄군에 의해 광주역 앞에서 희생된 김재화 씨와 김만두 씨. 두 사람 모두 카빈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하지만 21일 계엄군의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후에야 시민들이 무장한 사실에 비춰보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계엄군의 M16 총에 맞아 희생된 것이 분명한데도 시민군에 의해 숨진 것으로 호도되는 5.18 역사. 이 때문에 40년이 지난 지금도 '시민군들이 쏜 총에 시민들이 희생됐다는 왜곡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최후 항쟁 17, 그들은 어떻게 죽음을 맞았나?

사망자별로 검시 기록을 분석하고, 유족들과 목격자들의 인터뷰와 진술 내용을 맞추다 보면 어느 사연 하나 쉬이 넘길 수 없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80527일 전남도청에서 숨진 17명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계엄군이 도청 앞에서 시민들에게 집단 발포를 한 뒤 외곽으로 물러난 1980521. 이후 적어도 광주 도심에서는 별다른 불상사가 없었습니다. 이미 많은 시민이 희생돼 슬픔에 젖었지만 어려울 때 함께 나누는 이른바 '광주 공동체 정신'이 싹트는 시기였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하지만 계엄군이 다시 들어올 것이라는 공포는 날이 지날수록 커졌습니다.

 

523, 524, 525, 526.... 계엄군의 진압작전이 임박했다는 사실은 도청 안에 남은 시민군도, 공포 속에 집에 있던 시민들도 "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라는 절박한 목소리의 가두방송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도청에 남았던 시민 2백여 명은 죽음을 각오했던 겁니다. 1980527일 새벽 계엄군이 전남도청에 다시 진입합니다. 군의 작전명은 '상무충정작전'. 광주시민은 이날을 '최후 항쟁일'이라고 부릅니다.

3도 화상 입은 윤상원 열사..자상의 의미는?

이날 도청에 투입된 병력만 공수부대원 870여 명. 진압작전 중에 도청과 도청 앞 YWCA 안에 남아있던 시민군 17명이 군의 총탄 등에 숨졌습니다. 당시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 열사의 시신은 그날의 참상을 똑똑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상반신 전체에 3도 화상을 입었고 아랫배엔 흉기로 크게 베였습니다. 가족들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신 상태는 끔찍했습니다. 검찰 조서에는 화상을 입은 후에 자상이 생긴 걸로 추정된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화상으로 쓰러진 윤 씨의 시신을 누군가 훼손했을 가능성도 남아있습니다.

윤상원 열사의 동생 윤정희 씨는 "처음에 우리가 시체를 못 찾았어요. 시신을 보니까 머리도 터지고 화상을 입어버렸어요. 그래서 마음 아파요. 두 번 죽였잖아요."라고 말합니다.

 

17명 검시 기록...진압작전 '공격적·보복적'

전남도청에 남았던 평범한 청년들과 학생들은 고도로 훈련받은 공수부대원들 앞에서 잔인하게 짓밟혔습니다. 교련복을 입고 있던 문재학 군은 배와 목에 총을 맞았고, 턱 부분이 골절되는 등 참혹한 모습이었습니다. 김종연 씨는 몸 5곳에서 총알이 관통한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신군부는 전남도청에서 숨진 희생자들이 마치 시민군의 총에 사살된 것처럼 총기 종류를 왜곡하려 한 정황도 확인됐습니다.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는 "공수특전사의 역사를 유지할 수 있는 놀라운 전과였다, 이런 식으로 평가를 했거든요. 군의 작전이 대단히 공격적이고 보복적이지 않았나 생각을 해본다."고 말합니다.

신군부는 진압작전을 광주의 안정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했지만, 고의적이고, 무자비한 진압이었음을 희생자의 주검들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성각 기자drill@kbs.co.kr

 

그해 5월 광주... 나는 고1 소녀였다

[루게릭병 환자가 눈으로 쓴 에세이] 5.18에서 코로나19까지

5.18민주화 운동 당시 광주 제일은행(현재 무등빌딩) 앞에서 최루탄이 터진 상황에서 한 시민이 방독면을 쓴 계엄군에 둘러 싸여 겁에 질린 모습을 하고 있다. 나경택 촬영, 5.18기념재단 제공

 

19805월 나는 16살로 광양에서 광주로 유학 온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다(국민학교에 7살에 입학했다). 일 년 선배 언니와 자취를 했는데 학교가 조선대학교 바로 옆에 있었기에 날마다 대학생의 시위 소리가 들렸다. 시위가 내게는 공부를 방해하는 소음으로만 들렸다.

 

주초마다 실시하는 주요 과목 시험과 버거운 과제 탓에 두 달이 되도록 집에도 못 간 채 처음 보는 중간고사 준비에 열중했다. 중간고사를 이틀 앞두고 담임 선생님이 들어 오셔서 눈물을 흘리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자취생들은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시며 살아서 만나자고 하셨다.

 

영문도 모른 채 집으로 돌아와 교복을 입은 채로 선배 언니가 오기를 기다리며 집에 갈 준비를 했다. 언니와 함께 고속버스터미널 행 버스를 기다렸지만 버스는 오지 않았다. 다시 집으로 향하며 겁이 나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으론 '설마 내 나라 군인이 교복 입은 여고생을 해치겠어?' 하는 믿음이 있었다.

 

선생님은 집에 가라 하셨지만 버스가 오지 않았다

그날 밤 그 집에 세 살던 사람들과 집주인 가족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앉아 각자 밖에서 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회의를 했다. 도무지 믿기지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내용들이었다. 공수부대가 시위 진압에 투입되어 시위 학생들과 행인에게 총을 쏴서 많은 사람이 죽었고 앞으로 얼마나 더 죽을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겁에 질려 겨울 담요로 방문을 가린 채 며칠을 보냈다. 얼마 안 지나 계엄군이 물러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중간고사 후에 집에 가려고 미뤄둔 탓에 쌀과 돈이 바닥이 났다. 집주인 댁에서 빌릴 수도 있었지만 남에게 폐를 끼치는 걸 몹시 꺼리는 언니 탓에 우리가 살던 지산동에서 제법 먼 거리인 방림동 언니의 외삼촌댁까지 걸어서 쌀과 돈을 얻으러 갔다. 가는 길에 창문을 열고 몽둥이를 두드리며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가 탄 버스가 보였다. 가게들은 군데군데 문을 열었지만 시내버스가 안 다녀서 그런지 침묵의 도시 같았다.

진압군에 희생당한 시민들. 평화봉사단 소속이었던 데이비드 돌린저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찍은 사진. 이 사진은 5.18 직후 미국의 잡지 에 실리기도 했다. 데이비드 돌린저 제공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전남대병원으로 들어가기에 호기심에 우리도 쌀자루를 든 채 따라 들어갔다. 병원 뒤뜰에는 그늘이 있었고 거기엔 총을 맞아 참혹하게 죽은 사람들이 한 줄로 눕혀져 있었다. 대부분 젊은 청년들이었고 가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주검도 있었다. 머리, 가슴, 등에 총을 맞아 죽은 사람들 시신이 건물 끝에서 끝까지 빼곡했다. 우리는 너무 큰 충격에 할 말을 잃고 병원 밖으로 나와 부둥켜 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 날 이후

전남대병원 근처엔 조선대병원이 있었고 거기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었다. 무섭고 싫었지만 가보겠다는 언니 손에 이끌려 어쩔 수없이 조선대병원으로 갔다. 거기도 마찬가지로 참혹했다. 그늘마다 시신이 누워 있고 역겨운 냄새까지 났다. 믿기지 않는 처참한 현실에 두려움보다는 '왜 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죽어야 했나? 그것도 내나라 군인에 의해 이토록 처참하게 목숨을 잃어야 하나' 하는 의문과 함께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고 울분이 솟구쳤다.

 

그 날 이후 우리는 말을 하진 않았지만 많이 달라져 있었다. 피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언니와 나는 헌혈을 하기로 하고 전남대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언니는 시위대가 탄 버스를 보고 먼저 버스에 올랐다. 나는 겁이 났지만 어쩔 수 없이 버스에 따라 올랐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 20대로 보였다. 그 중 몇 명은 교련복 상의를 입고 총을 들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몽둥이를 들고 버스 바깥쪽을 두드리며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부통치 결사반대를 외치며 시위하는 시민들. 전남대학교 버스도 보인다. 1980.5.24 연합뉴스

 

도보로 30분이면 가는 거리를 돌고 돌아 3시간 동안 시위대가 탄 버스를 타고 광주 외곽까지 갔다. 광주 외곽은 보지는 못했지만 군인들이 에워싸고 있는 듯했다. 가는 길에 시민들이 나와 주먹밥을 전해 주기도 하고 박수를 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태극기를 흔들기도 했다. 차를 탄 내내 겁이 났다.

 

우리는 시내에서 내려 달라고 강하게 요구해 어딘지도 모른 채 내려서 길을 물어 전남대병원으로 갔다. 늦은 아침 식사 후에 출발했는데 병원에 도착하니 오후 3시쯤이었다. 헌혈을 하려고 많은 사람이 긴 줄을 서 있었다. 그런데 막상 헌혈을 하려고 학생증을 내미니 나는 아직 어리다며 그냥 가라 하고 언니는 몸무게가 너무 적다고 거절 당했다. 언니는 괜찮다며 제발 헌혈하게 해달라 울면서 졸랐지만 우리는 거부 당해 돌아와야 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날마다 도청 앞에 나갔다. 그 당시 내 일기에 '나는 오늘도 역사의 증인이 되기 위해 도청 앞에 나갔다'라고 썼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건 처음 본 것 같다. 빈틈이라곤 찾을 수 없을 만큼 모여 있었다. 시위를 주도하는 사람들의 핸드마이크 소리를 귀 기울이며 들었다. 그들은 "김대중 석방하라", "계엄령 해제하라", "전두환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전두환이 누구인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리고 있었다. 외신 기자로 보이는 사람과 인터뷰하는 모습도 보였다.

 

계엄군이 잠시 물러난 광주는 민주화의 열기와 분노로 뜨거웠지만 치안은 신기할 정도로 안전했다. 가게도 문을 열었고 혼연일체가 된 주민들은 서로 도왔다. 경찰이 제 기능을 못하는데도 오히려 더 안전했다. 신기한 생각이 들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도청 앞 상무대엔 계엄군의 총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관이 놓였다. 언니와 나는 관 위에 태극기를 덮어 주고 싶어 광주 시내의 체육사마다 찾아다녔다. 체육사를 찾아 종일 다녔지만 힘들지 않았다. 체육사 사장님들은 우리를 칭찬하시며 아낌없이 태극기를 내어 주셨다. 구해 간 태극기를 관 위에 덮었다.

 

총소리만 들릴 뿐

그러던 중 26~27일 쯤으로 기억되는 어느 날 다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졌다. 헬기에선 '폭도들은 자수하라. 시민들은 밖에 나오지 말라'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도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아 불안했다. 집주인 아저씨를 졸라 집 뒤에 있는 조선대 뒷산에 올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총소리가 들려오고 시가전이 벌어진 듯하였다. 총소리만 들릴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도시 전체가 숨도 쉬지 않는 듯 적막했기에 총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5.18민주화운동당시

희생된 시민들. 1980.5.25 연합뉴스

 

늦은 오후 산에서 내려왔다. 집은 조선대 뒷산과 바로 연결돼 있었지만 그때 상황은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겁쟁이인 내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저녁엔 며칠 전 지역 일간지에 실린 시 "광주여, 무등산이여, 우리들의 청춘의 도시여"를 다시 읽었다. 시가 너무도 가슴에 와닿아 제법 긴 서사시를 일기장에 정성껏 옮겨 적었다.

 

(그 당시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 그 일기장을 대학 1학년 때 총학생회 부회장이던 동아리 선배에게 보여 주었다. 내 일기는 서울 동부지역 여러 대학의 대자보에 붙었었다. 일기장의 행방을 물으니 선배는 그걸 김근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님께 드렸다고 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사망한 시민의 시신을 끌고 가고 있다. 1980.5.28 연합뉴스

 

새벽까지 나던 총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통행 제한도 풀렸다. 난 광양으로 내려갔다. 광주를 벗어나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평화로이 들판엔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가족들은 전쟁터에서 돌아온 것처럼 반가워했다.

 

얼마간의 휴교령이 풀리고 돌아간 학교는 무척 오랜만인 듯 낯설게 느껴졌다. 우리는 이상하리만큼 불과 얼마 전 겪은 일에 관해서는 서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가끔 국어 시간에만 선생님의 분노에 찬 말씀이 있을 뿐 다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처참한 상처를 감춘 채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다.

 

살아남은 자들의 침묵

재수를 해서 1984년 대학에 입학했다. 멋진 캠퍼스에서 낭만적인 대학 생활을 꿈꾸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동아리 소개 책자를 받아들고 살피던 중 "뜨거운 가슴, 냉철한 이성" '백단학회' 라는 글귀가 가슴을 뛰게 했다. 과 선배에게 물으니 거기 가입하면 제대로 졸업하기 힘든 곳이라 했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내 가슴을 뛰게 한 그 글귀에 끌려 혼자 학생회관 5층의 백단학회 문을 두드렸다. 거기는 캠퍼스의 낭만과는 거리가 먼 분위기였다. 사회 구조적 모순과 군부 독재 타도에 관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곳이었다. 봄부터 캠퍼스는 '5.18 광주 학살 책임자 처벌과 군부 독재 타도'를 외치는 학우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나는 80년 광주에서 벌어진 일을 서울 사람들이 거의 모르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광주 학살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학우들이 마치 나의 억울함을 편들어 주는 듯 고마웠다.

 

나는 그렇게 소위 말하는 운동권 학생이 되었다. 공부는 아예 뒷전이었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백단학회와 함께했다. 나와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선배들이 좋았고, 아는 게 많아 후배들을 지도하는 선배들이 존경스러웠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시위는 거듭 되었다. 나는 교내시위뿐 아니라 기습적인 가두시위와 몇 개 대학이 함께하는 연합시위 등에 거의 빠짐없이 참석했다.

 

서울 사람들은 그날을 거의 몰랐고, 나는 운동권 학생이 되었다

 

살다보면 엊그제 일도 기억이 안 나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도 어제 일처럼 선명한 일도 있다. 내게 5.18 광주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5.18 광주는 내 가슴과 머리에 각인되어 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 그 시절 운동권이었던 대부분의 학우들은 학교 다니는 이유가 학과 공부가 아니라 학생 운동을 하기 위해서 였다. 일주일이면 두세 번의 시위가 있었다. 나는 군부독재 타도를 위해 싸우지 않는 학우들은 비겁하다 생각했고 그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종종 들려오는 학우들의 분신 소식은 참으로 가슴 아팠다. 우리는 순수했고 뜨거웠고 다소 급진적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박종철이고 이한열이었다.

876월 항쟁을 상징하는 사진 한장. 한 청년이 태극기 앞으로 손을 들고 뛰쳐 나가고 있다. 6월항쟁기념사업회

 

군부독재에 싸워 승리한 6월 항쟁은 양김의 후보 단일화 실패로 반쪽짜리 승리로 끝났지만 그때 시청과 명동에서 싸우던 청년 학생들이 쉰을 넘겨 이제 청년이 된 자녀들과 함께 2017년 촛불혁명으로 이한열을, 박종철을 부활시켰고 5.18광주를 완성시켰다. 잘못된 국가권력에 굴하지 않고 이 땅의 민주주의를 드디어 승리로 이끌었다.

 

나는 촛불혁명엔 전혀 참여하질 못했다. 2012년 봄부터 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왼팔부터 힘이 빠지더니 불과 몇 달 만에 걷기 힘들 정도가 되어 버렸다. 처음엔 여러 가지 검사를 했지만 검사 결과 정확한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 2012년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서울대병원에서 MND라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 그게 무슨 병인지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루게릭병이라 했다. 치료법도 원인도 모르는 이 참담한 병이 내게 오고 말았다. 아마 이유도 모른 채 사형 선고를 받고 형 집행을 기다리는 심정이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2, 내 인생 마지막 투표라는 생각으로

시청과 명동에서 싸우던 청년 학생들이 쉰을 넘겨 이제 청년이 된 자녀들과 함께 2017년 촛불혁명으로 이한열을, 박종철을 부활시켰고 5.18광주를 완성시켰다. 오마이뉴스

 

루게릭병은 내 모든 것들을 삼켜버린 블랙홀이 되어 버렸지만 일주일 후의 대통령 선거만은 예외였다. 그 당시 남편이 원주로 발령을 받아 집 주소지가 남편이 근무하는 원주로 되어 있었다. 나는 투표 전날 친구의 도움을 받아 성남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내 인생 마지막 투표가 될 거란 생각을 하며 원주로 향했다.

 

너무도 간절했던 민주세력으로의 정권교체가 좌절되던 날 나는 너무도 힘들었다. 나는 박근혜정부에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독신으로 살며 자신은 대한민국과 결혼했다 하니 비록 왜곡된 방법일지라도 그녀 나름의 방법으로 사심 없이 일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역사는 발전하는 거라는 내 믿음은 너무도 쉽게 허물어졌다.

 

뉴스를 접할 때마다 느끼는 실망감, 좌절감, 분노는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실타래가 풀리던 날 난 마음으로 촛불을 들었다. 비가 오면, 눈이 오면, 날씨가 추우면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촛불을 들었다. 마침내 촛불혁명이 승리하던 날 너무도 기뻤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살고 있는 보람을 느꼈다. 역사는 이렇게 결국엔 발전하는 거란 확신이 들었다.

 

얼마 전 전두환씨가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광주법정에 섰다. 그의 지금까지의 태도로 보아 그에게 역사와 국민 앞에 참회하길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 진상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되지 않았고 일부 세력이 계속 왜곡하고 폄훼하는 상황에서 5.1840주년을 맞이했다. 광주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지만 5.18 광주는 우리 현대사의 민주주의의 아프지만 빛나는 역사로 길이 남을 것이다.

 

올해, 다시 투표를 했다

글을 입력하고 있는 필자 이준호

 

올 봄은 코로나19로 전 세계인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구·경북에서 코로나가 무서운 기세로 확산할 때만 해도 전세계로부터 따갑게 외면받던 우리가 지금은 모범적으로 코로나19에 대처한 국가가 됐다. 투명한 공개와 철저한 관리, 선진 의료체계 등은 우리 국민의 높은 시민 의식으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전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치러진 총선도 성공적으로 끝났다. 다시는 투표하지 못할줄 알았던 나도 이번 총선에 남편의 도움을 받아 참정권 행사를 했다. 우리의 코로나19 극복과정은 우리보다 세계 언론이 먼저 주목하고 놀라워했다. 코로나로 경제는 더욱 어렵고 일부 업종은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어렵지만 이 고비를 넘기고 나면 우리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거라 확신한다.

 

올봄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롭고 힘들었지만 TV로 코로나19 극복과정을 지켜보며 자긍심으로 가슴 벅찬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코로나19 대처 과정에서 우리 자신에 대한 높은 자긍심과 정부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되었다.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가 재난기본소득을 나눠준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기부로 작은 힘을 보태기로 했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국난을 힘 모아 극복해 왔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처럼 코로나 이후에 우리의 도약이 기대된다.

 

이 글은 8년여간 루게릭병으로 병상에 누워 있는 신정금씨가 삶의 의욕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쓴 에세이입니다. 신정금씨는 온몸이 굳은 상태로 안구마우스를 이용해 눈을 움직여 글을 씁니다. 하루 하루 힘겹게 버티고 있는 단 한 명에게라도 작은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마이뉴스

 

감염병의 정치학···"코로나19는 누구에게나 평등하지 않다"

코로나19 대유행 국면에서 마스크라는 자원은 누구에게 우선적으로 배분돼야 할까. 시간제 임금을 받는 생산직 노동자가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로 일을 쉬게 됐을 때, 생계유지를 위한 비용은 누가 부담해야 할까.

 

이러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할까.

한국건강형평성학회가 15혐오와 차별의 유행, 감염병의 정치학이라는 주제로 온라인 학술대회를 열었다. 토론자로 참여한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며 코로나19를 비롯한 감염병은 생물학적, 보건의료적인 동시에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감염 이후의 삶은 평등하지 않다. 2015년 메르스 발발 당시 전라북도 순창군 장덕리 마을이 폐쇄됐다. 동네 안쪽에 거주하던 한 노인이 확진판정을 받았고, 역학조사를 통해 14명의 밀접접촉자가 확인됐다. 이후 100명이 넘는 주민들이 거주하던 마을 전체가 격리됐다. 인구밀도가 더 높은 도심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박유경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은 언론에 방역 모범사례로 알려진 이 사건을 감염 불평등의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했다. 박 연구원은 동선이나 주거밀집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행정편의적 조치이자 과도한 공포에 기초한 비이성적 조치였다주민들은 폐쇄 결정 과정에 대한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생계나 의료 체계와의 단절을 견뎌야 했다고 말했다.

 

서보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한국의 HIV 정책을 통해 전염병 감염인이 낙인화되는 현상을 짚었다. 1985년 첫 감염인 발생 이후 한국에 HIV가 대대적으로 확산한 적은 없었고 치료법 역시 꾸준히 전문화됐다. 하지만 HIV 감염인의 일상적 삶을 전파 매개 행위로 간주해 처벌해야 한다는 논리는 끊임없이 정당화됐다. HIV 감염인임을 밝혔을 때 의료기관에서 진료·입원을 거부하는 사례도 반복됐다.

 

서 교수는 질병 당사자를 사회문제화하는 것은 공중 보건에 기여하지 않으며 감염인의 사회적 고통만을 더할 뿐이라는 것이 지난 40년간 HIV 정책의 교훈이라며 “(코로나19 국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염의 치안화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라고 했다.

 

토론자들은 감염정책의 민주화가 궁극적인 해결책이라고 봤다. 김 교수는 코로나19의 근본적 해결에 백신과 치료제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하지만 구체제가 바뀌지 않으면 그 해결은 아주 적은 일부 집단에 국한될 것이라며 지역사회 감염이 한 고비를 넘기면 시민참여적 방역체계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차별·불평등 드러낸 코로나19후순위로 밀려난 약자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가 공동주최한 사회적 소수자 그리고 재난집담회서 패널들이 말하고 있다. 탁지영 기자

활동가들 코로나19 집담회

대처 능력의 차이 고려 안 돼

차별 없애는 제도 설계 필요

 

코로나19는 사회적 약자에 가혹한 한국 사회 단면을 드러냈다. 국내 코로나19로 인한 첫 사망자는 경북 청도대남병원 정신병동에 입원 중이던 환자였다. 비정규직·하청 노동자들은 마스크마저 자비로 마련해야 했다.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조되면서 무료 급식이 중단돼 노숙인들은 끼니도 챙기지 못했다. 최근 서울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 여파가 커지면서 성소수자들은 혐오와 아우팅’(당사자 동의 없이 성적 지향 등이 공개되는 행위) 공포에 휩싸였다.

 

장애·노동·빈곤·성소수자 활동가들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4·16연대 사무실에 모여 사회적 소수자와 재난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코로나19는 세상을 바꾸지 않았다. 모순적인 세상을 드러냈다’ ”고 입을 모았다.

 

코로나19는 여느 재난과 다르다. 빈부·나이·성별·인종·국적 등을 초월해 누구나 감염될 수 있다는 불안을 안겼다. 활동가들은 모두가 위험에 처해도 대처하는 능력은 불평등하다고 했다. 변재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은 코로나19 시국에서 시설 입소자나 장애인은 후순위였다약국에서 마스크를 구입하는 체계로 가다보니 접근 가능한 자와 불가능한 자’ ‘능동적인 자와 수동적인 자로 명확히 나뉘었다. 후자에 속한 사람은 대처하는 데 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재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노숙인종합지원센터에서도 감염 우려를 이유로 신규 입소를 받지 않는다이들은 생활공간조차 보장받지 못한다고 했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활동가는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일거리가 끊겼다. 정부가 고용유지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했지만 근본적으로 차별을 없애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감염에 대한 불안은 타자에 대한 공포를 낳고 혐오를 부추긴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만연했던 환경에선 그 양상이 더 심하다. 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정치세력화됐던 토양 위에서 질병이라는 구실로 혐오와 차별이 확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확진자가 게이클럽에 다녀갔다는 보도가 나온 후 색출하자며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가입하려는 시도도 있다성소수자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내리는 등 일상을 닫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연대가 강해져야 한다고 했다. 변 국장은 질병과 무관한 개인 정체성을 두고 혐오해도 되는근거가 만들어지고 있다주변인과 연대할 용기가 필요해진 시대가 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경향사설]아버지가 아들 고발해 미국행 막는 국내 성범죄 처벌 현실

세계 최대 아동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의 운영자 손모씨(24)의 아버지가 최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혐의로 아들을 고발한 것으로 15일 알려졌다. 아들이 동의 없이 자신의 정보로 가상통화 계좌를 개설하고 범죄수익금을 은닉했다는 내용이다. 미국의 요구로 강제인도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같은 범죄에 대해 거듭 처벌받지 않는 일사부재리원칙을 이용해 상대적으로 형이 가벼운 한국에서 수사받고 강제인도를 막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입장은 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지만, 이유가 국내의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라니 참으로 씁쓸하다.

 

웰컴 투 비디오사건은 32개 국가의 공조로 밝혀낸 국제범죄다. 국제 수사당국이 수사망을 좁혀 운영자 손씨를 먼저 체포했고, 지난해 10월 수사결과 38개국에서 검거된 337명 중 223명이 한국인이란 사실까지 알려지며 한국은 국제적인 오명을 썼다. 손씨는 성착취물 배포·판매 혐의 등으로 지난달 27일 징역 16월의 형기를 마쳤지만, 오는 19일 미국으로의 인도 심사를 앞두고 있다. 미국 검찰이 기소한 9가지 혐의 중 한국에서 처벌받은 부분을 제외한 자금세탁 혐의에 대해서만 한국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된다.

 

손씨의 아버지는 아들의 인도 심사를 맡은 법원에 미국으로 송환된다면 본인이나 가족에게 너무 가혹하다아들이 여죄를 한국에서 처벌받게 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탄원서와 기이한 고발을 보며 우리 사회는 반성해야 한다. 미국이 가혹하다는 말은 한국이 가해자에게 관대하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손씨는 16월 형을 살았지만, 해당 사이트에서 영상을 내려받은 미국인과 영국인들은 단순 소지만으로도 5년 이상의 형을 받았다. 한 한국인은 돈은 지불했지만 영상을 내려받지 않았다는 주장이 인정돼 무죄판결을 받고는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걸 감사한다라는 게시글을 올려 축하 댓글도 달렸다고 한다. 이런 토양에서 웰컴 투 비디오의 전신인 소라넷과 AV스누프에 이어 최근 n번방까지 디지털 성착취물 불법 유통구조가 몸집을 불려왔다.

 

가해자들이 낮은 처벌을 비웃으며 유유히 일상을 유지해선 안 된다. 이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겐 가혹한 처벌이다. 국가와 제도가 공범이 되어선 안 된다. 성착취물 범죄 주도국·성범죄 피난처라는 오명을 지울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조국 가족 증언에 멘붕된 검찰..

조민 양의 서울대 인권센터 인턴 증명서 가지고 검사와 변호사 간에 치열하게 공방

구속 기간 만료로 풀려난 정경심 교수의 재판이 14일에 중앙지법에서 속개된 가운데, 조민 양의 서울대 인권센터 인턴 증명서 가지고 검사와 변호사 간에 치열하게 공방이 벌어졌다.

 

증인으로 나온 당시 인권센터 사무국장이 조민 양이 당시 세미나에 참석했다고 증언하자 당황한 검찰이 그 사람이 조민 양 정말 맞나?”하고 다그치자 사무국장이 세미나가 끝나고 조국 딸이라고 해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반면에 그 전에 증언한 단국대 교수 아들은 "조민이 참석한 기억은 없다"는 증언을 했다. 그렇다면 본인은 참석했다는 것인데, 인권 센터를 소개해 준 조민은 없고 자신만 거기에 갔다는 것이어서 모순이 된다.

 

=세미나 당시엔 조국 교수 딸인지는 몰랐다고 했죠?

B=당일엔 몰랐다.

=그럼 어떻게 조민이 온 걸 기억하나

B=(저녁 식사로) 30명 정도 예약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얼마 안남아서 끝까지 있던 사람들은 같이 가서 밥을 먹었다. 그래서 그날 봤다. 자기소개를 했다.

=그사람이 조민인줄 어떻게 아나?

B=본인이 조민이라고 말했으니까.

 

한편 검찰은 세미나 참석 자체만으로 허위 인턴 증명서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다고 하자 정 교수의 변호인은 "세미나 참석 전 한인섭 원장이 조씨에게 2주간 스터디 과제를 내줘 한영외고 친구들과 같이 스터디를 했다"고 반박했다.

'권순일 불법 대법관을 구속 수사하라'관청피해자모임 기자회견 김은경기자

 

문제는 언론의 보도 태도다. 지금까지 조국 가족 관련 보도를 보면 대부분 검찰 입장에서 보도했고, 조국 가족 측에서 말한 변호사의 반박은 별로 싣지 않았다. 심지어 기레기들은 재판 중 검사 심문이 끝나면 우르르 나가버린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마치 조국 가족이 유죄인 것처럼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만들어 여론을 왜곡했던 것이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검찰의 억지 논리와 기레기들의 편파 보도는 하나하나 깨지고 있다. 모든 걸 차치하고 11년 전에 있었던 인턴 증명서 하나 가지고 저 난리를 폈던 검찰이 있었던가?

 

반면에 검찰은 나경원 자녀 입시 비리 의혹, 윤석열 장모 비리 의혹에 대해선 수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현직 검사들의 자녀들을 전수조사하면 아마 허위 표창장, 인턴 증명서, 논문이 쏟아질 것이다.

 

표창장만 해도 공소장에는 성명 불상이 협조하여 총장직인 직접 날인, 정경심 연구실 pc에서 총장직인 발견이라고 명시했지만, 그후 나온 증거는 전혀 달랐다. 나중에 검찰 스스로 밝힌 일이지만 정경심 교수 연구실 PC에서 발견되었다는 총장 직인도 복도에서 방치된 PC에서 나와 검찰은 스스로 망신을 샀다. 당황한 검찰이 부랴부랴 공소장을 변경하려 했지만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은 공소장에 제기된 죄목만 가지고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표창장, 인탄 증명서 논란은 점점 검찰이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고, 사모펀드 문제는 보도도 잘 안 되고 있다. 정경심 교수가 실제 소유주라는 직접적인 증거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증거인멸 의혹도 본인이 컴퓨터 내용을 일절 수정하지 않았고 검찰에 제출했으므로 위법이라고 볼 수 없다. 참고로 우리 법은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는 감추어도 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

 

표창장이 안 되니까 인턴 증명서로, 인턴증명서도 안 되니까 사모펀드로, 그것도 안 되니까 감찰무마, 하명수사로 프레임을 전환한 검찰은 지금 궁지에 몰려 있다. 만약 이 모든 게 무죄가 나오면 당시 수사팀은 모두 옷을 벗어야 한다. 오히려 직권남용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검찰이 기를 쓰고 별건 수사로 꼬투리 하나라도 잡으려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검찰 역사상 가장 악랄하고 수준 낮은 수작이 아닐 수 없다.

 

이제 7월에 공수처가 실시되면 검찰은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될 것이다. 검찰이 그동안 묻어버린 사건이 모두 재수사가 이루어지고, 위법이 드러나면 모두 감옥으로 갈 것이다. 검찰이 최후의 발악을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모든 걸 차치하고 세상 어느 나라에 11년 전에 받은 자녀 표창장, 인턴 증명서 가지고 70군데를 압수수색해 일기장까지 들춰보는 검찰이 있다는 말인가? 한 마디로 그들은 쓰레기다, 하이에나 같은. 4.15 총선은 그런 검찰에 대한 심판이기도 하다뉴스프리존(http://www.newsfreezone.co.kr)유영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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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필름 들고 스웨덴행, 전두환이 쫓던 '그들' 찾았다

[5.18 40주년 특집 - 이방인의 증언 -1] 외무부 비밀문서에 담긴 평화봉사단 두 사람

외교부 외교사료관으로부터 받은 "미국 평화봉사단원의 1980. 5. 18. 광주사태(민주화운동) 관련 발언문제, 1980" 문건 중 일부. 사진은 1980722일 박동진 외무부장관이 김용식 주미대사에게 보낸 "Peace Corps(평화봉사단) 단원의 광주사태 관련 발언" 대외비 문서다. 외교사료관

 

발단은 1980715일자 스톡홀름발 AFP통신 기사였다. 이후 720일에도 "코리안 페이퍼스(Korean Papers)"라는 제목의 스톡홀름발 AP통신 기사 3건이 나왔다. 모두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잔혹함을 묘사하고 있다.

 

이 기사들에는 두 명의 인물이 제보자로 등장한다. 스티븐 클라크(Steven Clark)와 캐롤린 페리(Carolyn Perry)가 그 주인공이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두 사람을 <오마이뉴스>가 찾아냈다.

 

이들은 한국 외교 당국에서도 쫓던 인물이다. 당시 생산된 외무부(현 외교부) 비밀문서에 두 사람의 이름이 선명히 박혀 있다. 그들의 활동은 전두환이 상임위원장으로 있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보고된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외교사료관으로부터 받은 "미국 평화봉사단원의 1980. 5. 18. 광주사태(민주화운동) 관련 발언문제, 1980" 문건 중 일부. "국보위 보고사항"이라고 적힌 문건에 "스티븐 클라크(Steven Clark)""캐롤린 페리(Carolyn Perry)"의 이름이 담겨 있다. 외교사료관

 

5·18 두 달 후

5·18 이후 두 달 지난 시점에서 나온 스톡홀름발 이 기사들에는 광주시민의 관점이 비교적 강하게 담겼다. 사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5·18 직후 외신 보도는 가치와 한계를 함께 지니고 있었다. 미국 5대 언론매체(<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 AP > <뉴스위크> <타임>)에서 1980518~618일 생산한 기사 190건을 분석한 5·18기념재단 보고서에 이러한 내용이 담겨 있다(<미국 주류언론에 투영된 광주항쟁: 비판적 검토>).

 

2017년 이 보고서를 쓴 최용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 조사1과장은 "국가폭력에 대항해 민주주의·인권신장의 '보편적' 가치를 쟁취하려는 시민저항으로서의 본질은 외면되고, 지역 차별에 분노한 주변부 시민의 국지적 폭동이란 측면이 (미국 매체에서) 더 강조됐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최 과장은 "미국 매체들은 공수부대의 유혈진압이 항쟁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사실을 전적으로 간과하지는 않았다"라며 "미국 매체들은 최소한 사실을 왜곡하거나 사건의 인과관계를 의도적으로 뒤틀지는 않았다, (왜곡·날조를 반박할 수 있는) 실증적 가치가 크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매체들은 원칙적으로 미국의 관점, 보다 구체적으로는 자국 정부의 관점에서 광주항쟁을 해석하고 뉴스원을 고르고 기사를 생산했다"라며 "한국 신군부와 유착을 강화하려고 했던 카터 행정부의 외교적 전략을 비판적으로 보지 못한, 당시 미국 언론의 경로의존성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비해 스톡홀름발 기사는 시위의 성격을 "민주적 권리와 계엄령 종료를 위한 비교적 평화로운 시위"라고 설명했다. 시위가 시작된 시점을 "김대중이 검거된 날"로 표현해 지역성을 내비치긴 했지만, 제보자 2인의 취재원을 "학생들이 작성한 성명서와 미국 평화봉사단 및 한국인 천주교 성직자들의 증언"이라고 소개하며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강조한 광주의 관점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 "미국과 한국 정부 관계자들에 의해 진실이 억압되었다"라는 제보자의 주장도 기사에 실렸다.

외교부 외교사료관으로부터 받은 "미국 평화봉사단원의 1980. 5. 18. 광주사태(민주화운동) 관련 발언문제, 1980" 문건 중 일부. 1980720일자 스톡홀롬발 AP 기사는 5.18민주화운동을 "민주적 권리와 계엄령 종료를 위한 비교적 평화로운 시위"라고 설명했다. 외교사료관

 

40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 기사들을 보면 사실과 다른 내용도 있다. 하지만 사망자 수나 일부 과장된 표현을 제외하면, 사실에 가까운 내용이 상당하다. 계엄군의 잔혹함과 관련해 "(사망자가) 3세에서 80세에 이른다", "버스 한 대를 채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기관총에 맞아 죽임을 당했다", "많은 여학생들이 죽임을 당했고 일부는 강간당했다", "수천 명의 시민들이 묶이고 구타당했다" 등의 증언이 기사에 담겼다.

 

실제로 198067일 오전 11시 광주지방검찰청의 검시조서를 보면 527일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가 효덕동 뒷산에서 '좌우경부 맹관총상'을 입은 상태로 발견됐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의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는 74세 여성의 '복부관통상 사망' 기록도 남아 있다.

 

523일엔 주남마을 인근 버스 집중사격으로 탑승자 18명 중 15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고, 나머지 3명 중 2명은 야산으로 끌려가 사살·암매장됐다. 최근에는 5·18 당시 계엄군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가 직접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198067일 조선대병원에서 작성된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검시조서(광주지검). 본적 : 불상, 주소 : 불상, 성명 : 불상, 연령 : 4세 가량. "91"이라고 적힌 이 검시조서는 "알 수 없는(불상)" 내용으로 가득하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전두환의 '고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재판의 쟁점인 '헬기 사격' 관련 증언도 나온다. 기사에는 "무장 헬기가 민간인 군중을 향해 덤덤탄(보통탄보다 상처가 크게 나도록 만들어진 특수 소총탄으로 현재는 참혹성 때문에 사용이 금지되었다 - 편집자 주)을 무분별하게 발사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는 내용이 있다. 특수 살상 무기인 '덤덤탄'이 사용됐을 가능성은 없지만, 5·18 두 달 후 나온 기사에 헬기 사격 내용이 담겨 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사망자가 2000명에 이른다는 내용은 확인되지 않은 수치다. 물론 당시 정부가 "철저한 조사 끝에 밝혀냈다"174명 역시 신뢰할 수 없는 수치다.

 

현재까지 5·18의 정확한 사망자 수는 알 수 없다. <5·18 관련 사망자 검시내용>(광주지검) <광주민중항쟁비망록>(5·18광주민중항쟁 유족회 편) <피해자신고서> 사망자·부상자 편(평민당) <광주사태, 사망자 명단>(계엄사) <5·18 관련자 치료비 지원금 내역>(1988년 국정감사 제출) <1980년대 민주화운동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편)를 종합해보면 총 235명의 사망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기록에 남지 않은 사망자, 무명열사, 행방불명자 등을 고려하면 숫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 현재 집단 암매장과 관련된 조사도 이뤄지고 있다.

 

5·18 해외 기록물을 발굴·분석해온 최용주 과장은 "당시 정부의 통계를 믿는 사람이 어디 있었겠나, (일부 과장된) 이야기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있었다"라며 "그만큼 많은 사상자를 냈다는, 당시 상황의 끔찍함을 전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로 보면 된다"라고 추정했다.

 

항의

 

당시 외무부는 곧장 반응했다. <오마이뉴스>가 외교사료관으로부터 받은 '미국 평화봉사단의 1980. 5. 18. 광주사태(민주화운동) 관련 발언문제, 1980' 문건에는 위 AFP, AP 기사가 나온 이후 외무부의 대응이 상세히 담겨 있다. 108쪽 분량 중엔 당시 비밀문서로 분류된 문건도 포함돼 있다.

 

우선 AFP 기사가 나온 직후인 716, 외무부는 "광주사태 관련 미 평화봉사단원의 발언"이란 주요 내용이 담긴 '한국 관련 주요 외신보도' 문건을 작성했다. 해당 문건엔 수기로 두 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스티븐 클라크와 캐롤린 페리였다.

 

앞서 소개했듯 두 사람의 이름은 AFP 기사의 제보자로 등장한다. 이 문건이 작성된 이후에 나온 AP 기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기사에 미국 평화봉사단(Peace Corps)으로 소개돼 있다. 평화봉사단은 1961년 미국 정부가 만든 청년 봉사단체로 주로 개발도상국에 파견돼 교육, 의료, 농수산기술 분야에서 활동했다. 한국엔 1966~1981년 평화봉사단이 들어와 있었다.

 

1980718일 오후 3시 한·미 당국자가 외무부 미주국장실에서 만나 두 사람을 거론한다. 외무부 이계철 미주국장, 소병용 북미담당관과 주한미대사관 블랙모어(Blackmore) 정무참사관이 이 자리에 참석했다.

 

미주국장 : 기사에서 주한 미 평화봉사단원이라고 자칭한 스티븐 클라크 및 캐롤린 페리 등 미국인 2명이 밝힌 내용은 전혀 근거 없는 날조이며 이는 북괴의 광주사태 관련 선전을 의도적으로 부추기려는 것으로 판단되는 바, 상기 2명이 정말 미 평화봉사단 요원인지 및 당시 광주에 있었는지의 여부를 조사하여 외신에 공개해명을 해주기 바라는 바임.

블랙모어 참사관 : 현재 알기로는 이들은 평화봉사단 명단에는 없으나, 다시 확인하여 결과를 알려주겠음. 이들이 거짓 이름을 사용했을 경우도 상상할 수 있겠는 바, 이러한 경우 미() 측 입장이 매우 어려워질 것으로 봄.

 

블랙모어 참사관은 잠시 후인 동일 16:15에 미주국장에게 전화로 다음과 같이 통보해 옴.

 

블랙모어 참사관 : 조사 확인 결과 이들이 평화봉사단원이 아님이 판명되었음.

미주국장 : 그렇다면 공개적으로 동 사실을 해명해주기 바람.

블랙모어 참사관 : 해명을 자발적으로 하는 것은 힘든 바, 만일 기자가 질문을 해오면 이에 응답하는 형식으로 해명하는 것이 좋겠음.

미주국장 : 그런 정도로는 이번 사건으로 이미 초래된 피해를 복구하기에 미흡하므로 받아들일 수 없음. 공개 해명을 해주기 바람.

블랙모어 참사관은 동일 19:00 또다시 미주국장에게 전화로 다음과 같이 통보하여 왔음.

블랙모어 참사관 : 재차 확인 결과, 상기 2인의 이름과 비슷한 이름이 미 평화봉사단원 명단에서 발견되었으며, 이들 유사 성명의 소유자들은 1980625일 한국에서 출국한 것으로 되어 있음.

 

미주국장 : 귀하 말대로 문제의 미국인들이 평화봉사단원이라면 이는 중대한 문제라고 보며 미국 측에서 이에 대한 시정조치가 있어야 될 것으로 생각함. (중략)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하여 우리가 만족할 수 있는 시정조치가 취해질 때까지 계속 추궁할 것임.

 

실명

미국 평화봉사단 앨범에 실린 스티븐 클라크 헌지커(Steven Clark Hunziker)와 캐롤린 트루비필(Carolyn Turbyfill)의 모습. 데이비드 돌린저 제공

 

블랙모어 정무참사관이 스티븐 클라크와 캐롤린 페리에 대해 혼선을 빚은 이유는 기사에 익명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두 사람은 당시 대구에서 평화봉사단으로 활동했던 스티븐 클라크 헌지커(Steven Clark Hunziker)와 캐롤린 트루비필(Carolyn Turbyfill)이었다. 두 사람이 썼던 익명과 실제 이름을 비교해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수소문 끝에 두 사람 중 트루비필과 연락이 닿았다. 안타깝게도 헌지커는 2014년 세상을 떠났다. 한국에 머물던 당시 트루비필은 '부경희', 헌지커는 '문성배'란 이름을 사용했다. 트루비필은 <오마이뉴스>와 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우리는 (언론과 인터뷰하며) 순간적으로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했지만 거의 익명이 아니었다"라며 "(AFP보다 먼저 스웨덴의 일간지에 기사가 실렸는데) 우리의 사진도 함께 게재됐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는 한국인과 미국인 모두에게 존경받는 한국인으로부터 (5·18)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누구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반체제 인사라고 생각되지 않았다"라며 "(5·18) 은폐는 명백한 현실이었다, 우리는 한국의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억압과 잔인함을 알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평화봉사단 소속 팀 원버그(Tim Warnberg)의 모습을 담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사진.

나경택 제공

 

헌지커와 트루비필에게 광주의 소식을 전한 이는 또 있었다. 광주와 영암에서 평화봉사단으로 있다가 5.18을 직접 목격한 팀 원버그(Tim Warnberg)와 데이비드 돌린저(David Dolinger)였다(관련기사 : 계엄군 곤봉에 맞은 미국인, 그가 광주를 위해 남긴 선물). 원버그와 돌린저의 이름은 720일 보도된 스톡홀름발 AP 기사에도 실려 있다.

 

원버그와 돌린저는 518~27일 동안 광주에서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목격했다. 또한 광주시민을 보호하는 데에도 힘을 쏟았다. 그들은 계엄군의 구타를 말리고, 환자를 후송했으며, 외신기자의 통역(대표적으로 <택시운전사>의 주인공 위르겐 힌츠페터)을 맡았다. 1987년 하와이대학 한국학 잡지 < Korean Studies >에 논문 < The Kwangju Uprising: An Inside View >를 게재한 원버그는 안타깝게도 1993년 세상을 떠났다. 돌린저는 현재 영국에 거주 중이다.

 

돌린저는 <오마이뉴스>와 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헌지커와 트루비필은 팀과 내가 광주에서 목격한 것에 큰 관심을 가졌다"라며 "19806월 초 그들과 광주의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들은 2년 동안의 프로그램을 마치고 6월 후반에 한국을 떠났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돌린저는 자신이 광주에서 찍었던 사진의 필름과 광주시민들이 만들었던 성명서 등을 두 사람에게 넘겼다. 이 필름의 사진들은 198012월 미국의 잡지 <커버트 액션(Covert Action)>에 실렸다.

198012월 미국 잡지 <커버트 액션> 표지. 5.18민주화운동 소식으로 채워져 있다. 평화봉사단 자격으로 한국에 있었던 스티븐 클라크 헌지커와 캐롤린 트루비필은 광주의 참상을 목격한 팀 원버그와 데이비드 돌린저로부터 자료를 받아 이 잡지에 사진과 글을 실었다. 최용주 제공

 

트루비필은 "돌린저가 한국군 병사들의 말할 수 없는 만행을 들려주었다, 우리는 화가 나고 소름 끼쳤다"라며 "우리는 그로부터 필름을 받을 수 있어 기뻤다, 이 필름을 빼앗길까봐 한국에선 감히 사진을 뿌릴 수 없었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5·18을 기록한) 서류와 필름을 받았을 때 우리는 더욱 조심스러웠다, 미국이나 한국의 어느 누구에게도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라며 "그 결과 한국을 떠날 때 수색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헌지커는 당시 <커버트 액션>에 사진과 함께 실은 기고를 통해 "전두환은 군대와 경찰로 나라를 뒤엎었고 수천 명의 한국인을 감옥에 가뒀다"라며 "518일 광주의 일부 용감한 시민과 학생은 탄압에 맞서 시위를 벌였다. 전두환은 공수부대를 광주로 보내 시민들을 죽였고, 더 많은 시민이 거리로 모여 군대에 맞서 저항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상하게도 카터 행정부는 (사회적 안정을 도모했다는) 전두환의 진술을 공개적으로 거부하지 않았다. 미국의 전략적 관심사는 일본을 (공산권의) 완충지대로 삼는 것이었고, 때문에 (한국의 안정화를 통해) 일본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라며 미국의 책임도 거론했다.

 

트루비필은 같은 잡지에 중앙정보부를 분석하는 글을 썼는데, 이를 통해 "중앙정보부뿐만 아니라 경찰과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는 고문, 테러, 혼란과 불신 조장의 전술을 사용했다"라며 "칠레의 디나(DINA, 정보기관 겸 비밀경찰), 나치 독일의 게슈타포(Gestapo, 비밀경찰)와 마찬가지로 교활하고 잔인한 조직"이라고 말했다. 이 잡지는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같은 주로 정보기관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아왔다.

 

그들은 왜 스웨덴으로?

5.18민주화운동의 참상을 스톡홀름 언론을 통해 알린 캐롤린 트루비필. 팀 원버그와 데이비드 돌린저로부터 5.18 소식을 접한 그는 스티븐 클라크 헌지커와 함께 스웨덴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모두 평화봉사단 단원이다. 캐롤린 트루비필 제공

 

두 사람은 왜 한참 떨어진 스웨덴의 스톡홀름까지 가게 됐을까? 사실 두 사람이 가장 먼저 간 곳은 일본이었다. 트루비필은 "우리는 편향되지 않은 신문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일본에서도 그런 신문은 찾을 수 없겠다고 판단했다"라며 "우리는 또한 한·미 정부의 보복과 일본에서 우리를 억압하려는 시도를 두려워했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강영규 주스웨덴대사가 박동진 외무부장관에게 보낸 대외비 문건에는 그들이 스웨덴에 도착해 여러 언론사를 다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 AFP > 기사 대응조치'란 제목의 이 문건에는 "두 사람은 715< UPI >, 716<로이터>를 방문했으나 기사화하지 않았다"라고 적혀 있다.

 

"우리는 스톡홀름으로 갔다. 스웨덴은 인권을 중시하는 나라였기 때문에 그곳이 안전할 거라고 느꼈다. 우리가 접촉한 스웨덴의 첫 인권운동가로부터 일간지 <다겐스 니히터(Dagens Nyeter)>를 소개받았다. 우리는 인터뷰보다 (언론사의) 취재를 원했지만 결국 인터뷰하기로 동의했고 715일 보도됐다. 이후 <다겐스 니히터>를 손에 들고 우리는 스웨덴의 AP 지사로 갔다. 그들은 720일에야 이 내용을 보도했는데, 그 이유는 남·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전날 (지사로 와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기 때문이다."

 

특히 트루비필은 보도를 전후로 한·미 정부 관계자로부터 압박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우리는 한국 정부의 억압적인 활동 때문에 (광주의) 이야기를 보도하도록 도왔다"라며 "(한국 정부는) 스웨덴 신문기자들을 한국에서 추방했고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전역으로 우리를 쫓아다녔다"라고 주장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의 헬기가 전일빌딩 앞에서 선회하는 모습. 현재 전일빌딩에는 당시 헬기 사격의 탄흔으로 조사(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된 자국들이 남아 있다. 나경택 촬영, 5.18기념재단 제공

 

특히 덴마크에서 벌어졌던 사건은 외무부 대외비 문건에도 기록돼 있다. 다만 무엇이 진실인지는 현재로선 알기 어렵다. 724일 임명진 주덴마크대사가 박동진 외무부장관에게 보낸 '평화봉사단 회견'이란 제목의 문건에는 "단원 2명이 당지(덴마크)에 입국함으로써 (반한 교포 김○○에 의해) 회견이 주선된 것으로 판단. ○○가 계속하여 독일, 프랑스 등 남부 유럽으로 안내해 동종의 회견을 주선할 것으로 예측되는 바 해당공관에 통보, 대처할 것을 건의함"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문건에서 거론한 회견은 헌지커와 트루비필이 진행한 것으로 이 내용이 723일 덴마크 조간지 <악튜엘트(Aktuelt)>에 실렸다.

 

같은 날 역시 임 대사가 박 장관에게 보낸 '반한교포, 아국대표단 유인 시도'라는 제목의 3급비밀 문건에는 "반한 교포 김○○으로 추측되는 자가 72312:00경 당시 유엔 여성회의 본회의장에 나타나 아국 대표를 유인 시도한 것으로 판단되는 사건이 발생함"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면서 임 대사는 "당관(주덴마크대사관)에서는 현재 김○○의 행방을 추적 중이며 파악되는대로 추보 위계(추가로 보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트루비필의 기억은 이와 다르다. 그는 "<다겐스 니히터> 편집장은 우리에게 한국의 인권운동가 김○○을 소개했고 그는 우리를 도왔다"라며 "그와 함께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의 다른 곳을 다니며 언론과 대화하고 인권운동가를 만났다. 동시에 우리를 쫓는 사람들을 피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는 우리를 덴마크 코펜하겐 국제여성회의에 데리고 가서 더 많은 인권운동가와 이야기를 나누게 했다"라며 "우리가 회의를 떠나려는데 우리 차에 한국 여자가 와서 김○○와 이야기를 나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린 그것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스웨덴에 왔을 때 한 우익 신문이 '○○가 회의장에서 그 여자를 납치하려고 했다'는 기사를 실었다"라며 "우리는 코펜하겐에서 내내 김○○와 함께 있었고 김○○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이후 김○○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라고 떠올렸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심지어 가족에게도 우리가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알리지 않았다"라며 "그런데 미연방수사국(FBI)이라고 주장하는 두 사람이 미국에 있는 부모님 집에 찾아와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부모님은 아무것도 몰랐고 매우 무서워했다"라고 덧붙였다.

 

국보위 보고사항

 

외교부 외교사료관으로부터 받은 "미국 평화봉사단원의 1980. 5. 18. 광주사태(민주화운동) 관련 발언문제, 1980" 문건 중 일부. 1980715일에서 20일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외무부 관계자의 수기 메모에 "국보위 보고사항"이란 문구가 담겨 있다. 외교사료관

 

이들의 활동은 당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보인다. AFP 보도(715)AP 보도(720) 사이, 외무부 고위 관계자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수기 메모에는 '국보위 보고사항'이란 문구가 적혀 있다. 제목은 '주한 미 평화봉사단의 광주사태 허위사실 유포'였다. 국보위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 줄임말로, 전두환 등 신군부 강경파로 구성돼 이후 5공화국 독재의 발판이 됐다. 725일에도 3급기밀 문서를 통해 최규하 대통령과 박충훈 국무총리 서리에게도 보고가 올라갔다.

 

외무부는 722일 해외공보관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발표하며 스톡홀름발 기사를 강하게 비난했다. 당시 박동진 외무부장관이 김용식 주미대사에게 보낸 '평화봉사단원의 광주사태 관련 발언'이란 제목의 대외비 문건에는 해당 성명이 영어로 첨부돼 있다.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폭동과 모든 사상자들에 대한 사실 판단을 위해 즉각적인 조치가 내려졌다. 철저한 조사 끝에 사망자 수는 174명으로 밝혀졌다"라며 "사태를 목격했다는 이들이 거짓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서울발 AP를 통해 기사화되기도 했다. 또 주미, 주일, 주캐나다, 주호주, 주뉴질랜드 대사관에 "(헌지커, 트루비필의 발언은) 광주사태 진상을 왜곡·과장한 것으로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임을 표명토록" 지시하기도 했다.

 

같은 날 외무부는 '미 평화봉사단 관계관 회의'를 열었다. 이때부터 평화봉사단 입국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취지의 논의가 진행됐다. 참석자 명단엔 외무부 미주국장·북미담당관·조약1과장, 청와대 이수영 과장, 문교부 사회국제교육국 국제교육과장, 보사부 의정국 의정 1과장, 과기처 기술협력국 총괄과장, 문교부 외신과장이 적혀 있다.

 

이 자리에서 미주국장은 "평화봉사단의 현 운영실태를 점검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했다"고 밝혔다. 이에 문교부 참석자가 "긍정적인 면이 컸던 것은 사실이나 필수적이며 크게 유익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본다"고 말하자, 보사부 참석자도 "정확한 평가는 어려우나 문교부 측 코멘트에 동감한다"라고 호응했다.

외교부 외교사료관으로부터 받은 "미국 평화봉사단원의 1980. 5. 18. 광주사태(민주화운동) 관련 발언문제, 1980" 문건 중 일부. 강박광 과학기술처 기술협력국장과 메이어(Mayer) 평화봉사단장이 1980724일 면담한 것을 기록한 3급비밀 문서다. 외교사료관

 

 

724일 외무부 북미담당관이 과기처 기술협력국장에게 보낸 '전언통신문'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간 이야기가 나와 있다. 북미담당관은 "그동안 평화봉사단이 한국에서의 봉사를 통해 성과를 거둔 것으로 사료하는 바, 이제 추가로 파견될 계획으로 있는 53명의 파견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로서는 필요 없다고 생각함"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강박광 과학기술처 기술협력국장은 메이어(Mayer) 평화봉사단장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면담했다. 이 내용이 담긴 3급기밀 문건에서 강 국장은 "우리의 의견은 최종 파견 분 (53명에) 대해 초청을 취소하는 편이 타당하다는 것인데 당신의 입장은 어떠한가"라고 말했다.

 

725일 외무부장관실에선 박동진 외무부장관과 몬조(Monjo) 주한미대사관 대사대리가 만났다. 이 자리에서 박 장관은 "그들의 소행이 끼친 피해는 매우 크다고 생각되며 북괴의 허위선전에 휘발유를 뿌리는 격이 되고 있다"라고 불만을 강하게 표현했다. 이처럼 외무부는 722~25일 차츰 직급을 높여가며 미국 측에 불만을 표시했다.

 

미국의 태도

외교부 외교사료관으로부터 받은 "미국 평화봉사단원의 1980. 5. 18. 광주사태[민주화운동] 관련 발언문제, 1980" 문건 중 일부. 사진은 대외비로 분류된 박동진 외무부장관과 몬조(Monjo) 주한미대관 대사대리의 면담요록 중 일부다. 박 장관이 "북괴의 허위선전에 휘발유를 뿌리는 격"이라고 5.18의 진상을 외신에 제보한 평화봉사단 단원들을 비난하자, 몬조 대사대리도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동조하고 있다. 외교사료관

 

이 자리에서 몬조 대사대리 역시 박 장관과 비슷한 관점을 내보인다. 그는 "본인도 평화봉사단원 행동이 매우 무책임한 것으로 생각하며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라며 "(이는) 미국에 대해서도 크게 독을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관님의 도움으로 53명 평화봉사단원이 예정대로 한국에 도착한다면 메이어 단장이 재차 강경한 경고를 할 것임을 거듭 약속드린다"라며 "봉사대상국을 비방한 행위에 대해 매우 통탄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5·18 직후 미국 대사관을 찾아간 다른 평화봉사단의 증언을 들어보면, 몬조 대사대리의 이러한 태도는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었다. 돌린저는 "원버그와 함께 530일 대사관을 찾아갔는데 (대사와의 만남을) 거절당했다"라며 "대사관 관계자는 '광주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 알고 있고 당신들의 증언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라고 말했다. 대사관 측은 두 사람이 광주에서 목격한 것을 토대로 작성한 보고서도 받지 않았다.

 

역시 광주에서 5·18을 목격한 평화봉사단원 폴 코트라이트(Paul Courtright)도 대사관을 찾았다가 문전박대당한 경험이 있다. 그의 회고록 <푸른 눈의 증인>의 마지막 부분이다.

 

"우리는 건물 안으로 안내를 받아 대사대리 사무실로 향했다. (함께 간) 짐이 이미 약속을 해놓은 터였다. 앞으로 내가 할 이야기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확신했다. (중략) 우리는 대사대리의 사무실 밖에서 2시간을 기다렸다.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그 자리를 일어나 나왔다.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대사관은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을까?"

 

결과적으로 추가 평화봉사단원 53명의 입국은 취소되지 않았다. 다만 평화봉사단 협정 종료가 1982년에서 1981년으로 앞당겨졌다. 또한 한국은 1982년부터 여러 차례 있었던 미국의 재협정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외무부의 또 다른 문건에 담겨 있다. 'Peace Corps(미국 평화봉사단)의 활동재개 문제, 1981~1987'이라는 제목의 이 문건엔 비밀문서도 포함돼 있다. 문건에선 전두환 정권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린 국가안전기획부(중앙정보부의 후신)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이 문건의 내용은 다음 기사에 이어진다. (관련기사 : [단독] "광주사태 때..." 미국 봉사단 막은 전두환 정권 막전막후 http://omn.kr/1nlyh)

 

[5.18 40주년 특집 - 이방인의 증언]

-1 이 미국 청년을 아십니까 http://omn.kr/1nj3g

-2 계엄군 곤봉에 맞은 미국인 http://omn.kr/1nj2u

광주 할머니와 약속 지킨 청년 http://omn.kr/1nk4l

"전두환 부끄러워해야" http://omn.kr/1njqo

미국인이 찍은 805http://omn.kr/1nkf9

택시운전사 류준열, 사실... http://omn.kr/1njxh

 

이메일 인터뷰 번역

: 송재걸 (카디프대학 석사학위 논문 저자)

소중한(extremes88)/ 오마이뉴스

 

유튜브에 '5.18의 진실' 검색해보니..."폭동" 주장 아직도

5.18민주화 운동 40주년을 맞는 올해도 유튜브에서는 5.18의 진실을 둘러싼 역사 전쟁이 진행 중이다.

 

유튜브에 '5.18 진실'을 검색하면 나오는 영상들. 상위권에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영상들이 적지 않게 올라와있다.

[유튜브 캡처]

 

조회수 50만 찍은 인기 영상 “5.18은 폭동

유튜브에서 '5.18의 진실'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하면 5.18민주화운동 역사를 왜곡하는 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개월 전에 등록돼 조회 수 59만회를 기록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실'이란 영상은 특히 상단에 배치돼 있다. 자신을 광주광역시에 사는 청년이라고 주장한 해당 유튜버는 "어떻게 청년들이 무기를 탈취해 시청을 점령할 수 있겠느냐""광주 민주화 운동은 말도 안 된다"고 칠판 앞에서 목소리를 높인다. 12분짜리 영상에는 1만 개 넘는 댓글이 달렸다.

5.18민주화운동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한 유튜버의 영상. 유튜브에서 조회수 59만 회를 기록했다. [유튜브 캡처]

 

."자극적인 영상으로 돈을 벌어보려는 것"이라고 유튜버를 비난하거나 진실을 바로 잡으려는 댓글도 적지 않게 달렸으나, 유튜버를 지지하는 댓글도 많다.

 

5.18은 북한 소행" 지만원 주장 유튜브에 그대로

5.18 민주화 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주장을 해온 보수 논객 지만원씨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는 영상도 수십 개다. 지씨가 운영하는 매체인 '뉴스타운TV'에서 등록한 영상도 검색 상단에 있다. ‘5.18은 폭동이었다! 당시 전남도청 근무 공무원 육성 증언이란 제목의 영상에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 보건과에서 일했다는 남성이 등장해 "특정 일시부터 시위가 급격히 과격해졌다"며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한다. 평소 지 씨의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1년 전에 올라온 이 영상은 조회수 148만회를 기록했다.

서울중앙지법 출석하는 지만원씨. [연합뉴스]

 

.이 같은 지씨의 5.18 북한군 개입설은 법정에서 이미 거짓으로 판결 난 내용이다. 지난해 9월 대법원은 지씨의 도서 출판물이 5.18유공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5.18단체에 손해배상 배상금을 지급하란 판결을 내렸다. 지씨는 해당 사건을 포함해 대법원에서 두 차례 5.18유공자들에게 억대 배상금을 지급 판결을 받았다.

 

"폭동 아닌가?"논란 부추기는 유튜버들

5.18민주화운동이 폭동인지에 대한 "역사적 논쟁이 끝나지 않았다"며 논란을 부추기는 영상들도 있다. 11개월 전에 올라와 조회수 64만회를 기록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실'이란 제목의 영상은 "광주 민주화운동이 '폭동적인 성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5.18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한 유튜버의 방송. 해당 영상은 조회수 65만 회를 기록했다. [유튜브 캡처]

 

.그러나 "내란 행위를 벌인 전두환 일당에 맞서 싸운 광주 시민군은 폭도가 아니라 헌법 수호자"라는 게 대법원 판결 내용이다. 앞서 법원은 계엄군을 향해 발포했다가 처벌받은 시민군 정 모씨에 대해서 헌정질서파괴 범행(전두환 측 행위)을 저지하거나 반대함으로써 헌법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5.18단체 "처벌 근거 조항 필요해"

이처럼 유튜브에서 5.18 역사 왜곡을 부추기는 영상들이 올라와 수백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지만 특별한 대처 방법은 없는 상황이다.

 

5·18운동 역사 왜곡을 처벌할 역사왜곡방지법(5.18 민주화운동 특별법 개정안)20대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는 역사 왜곡은 처벌이 불가능하다. 앞서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한 지씨의 주장에 대해 2008년 대법원은 전반적인 사실 왜곡은 인정하면서도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며 명예훼손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5·18기념재단 관계자는 지난해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뒤 "북한군 투입은 허위사실이라는 점이 명백한데도 지금까지 같은 주장을 반복하며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개인적인 손해배상 차원을 넘어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역사왜곡처벌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5.18의 진실을 알리려는 영상도 활발히 올라오고 있다. 일부 네티즌 역시 왜곡 영상에 대해 "5.18의 진실을 알아달라"며 왜곡 내용을 정정하는 영상 링크를 댓글로 남기기도 한다.

 

21대 국회서 역사왜곡방지법을 적극적으로 논의할 가능성도 커 보인다. 177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의 광주지역 국회의원 당선인 다수는 “5.18역사왜곡처벌법을 가장 먼저 발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SBS 스페셜] 5·18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그녀의 이름은

최후의 밤, 도청을 지킨 여성들

"우리 형제자매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40년 전 고립된 광주. 27일 최후의 밤, 도청 스피커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켰던, 광주를 사수했던 여성들. 그녀들의 이야기는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30대재벌 자산, 지난해 GDP 91% 규모

재벌 경제력집중 갈수록 심화 “21대국회 재벌개혁 실행해야

30대 대규모기업집단(재벌)의 공정자산 총합이 명목 국내총생산(GDP)91%와 맞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벌의 경제력집중이 갈수록 심화되는 모습이다. 15일 서울대 행정대학원 시장과정부연구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GDP 대비 30대 재벌 자산총액 비중은 91.3%였다. 전년도는 87.3%, 2017 년에는 86.4%였다. GDP 대비 재벌의 자산총액 비중 증가속도가 최근 3년 동안 상대적으로 가팔라졌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명목GDP19133964억원에 달했다. 30대 재벌 공정자산 총액은 17478억원이 었다.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5대재벌의 지난해 자산총액은 11435700억원으로 GDP 대비 59.7%였다. 60%에 육박한 셈이다. 5대재벌이 전체 재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절대적임을 알 수 있다. 20155대재벌 자산총액은 GDP대비 56% 였다.

 

기업 자산과 부가가치 총합인 GDP는 다른 범주이지만 재벌의 경제적 위상을 상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GDP와 비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가총액에서도 재벌그룹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코스피와 코스닥 시가총액은 1717조원인데 5대재벌의 시가총액은 846조원으로 전체 49.3%를 차지했다. 전년도 비중은 48.5%였다.

 

10대재벌로 범위를 넓혀도 같은 모양새다. 지난해 10대재벌 시가총액은 911조원으로 전체 상장사 시가총액의 53.1%를 점유했다. 전년도 10대재벌 시가총액 비중은 48.5% 였다.

 

박상인 경실련 재벌개혁운동본부장(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은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2000년 이후 재벌의 경제력집중도가 일정수준 이상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미 경제권력으로 나타났다구체적 수치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지만 재벌의 경제권력이 추세적으로 고착화됐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20대 국회까지 재벌개혁 입법이 부진했다“21대 국회에서는 황제경영 방지를 위한 소수주주 동의제 도입 등 최소 3+1 법안 통과가 반드시 이뤄지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가 제안한 재벌개혁 법안은 소수주주 동의제 외에 금산분리와 관련된 보험업법 개정 징벌적 손해배상 확대와 집단소송제 지주회사체제 출자규제 등이다.

 

재벌권력 심화되는데 개혁입법은 언제

18~20대 국회 입법 성과 미흡 21대 총선 후보자 72% 이상 찬성

 

재벌의 경제력집중도가 심화되고 있지만 재벌개혁 입법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다만 21대 총선 후보자 72% 이상이 재벌개혁 주요 입법안에 찬성하고 있어 주목된다. 15일 서울대 행정대학원 시장과정부연구센터 연구결과 지난해 30대 대규모기업집단(재벌) 자산총액이 명목 국내총생산(GDP) 규모 91% 수준이었다. 이는 재벌의 경제력집중이 심화됐음을 나타낸다.

 

재벌의 경제력집중은 이미 2000년대 들어 나타났고 일정 수준을 넘어섰다는 얘기다.

경제시민단체의 재벌개혁에 대한 입법 요구가 계속됐고 주요정당들도 앞다퉈 경제민주화에 호응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실제 국회의 재벌개혁과 관련한 입법 성적표는 낙제점이다.

 

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선거 때마다 경제민주화 공약을 내놓았다. 18대 총선에서는 중소 하청 기업 지원 및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협력 공약으로 납품단가 연동제 제도적 장치 마련, 불공정거래업체에 대한 벌점 부과 강화, 과징금 부과 기준 강화, 정부 입찰 참가자격 엄격 제한, 중소기업 신기술 및 신사업 지정제 도입을 약속했다. 하지만 알맹이 없고 실효성 없는 법안이 통과됐다.

 

19대 총선에서도 출자총액제한제도 재도입, 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 요건 강화 등 재벌의 경제력 집중 억제 공약과 금산분리 강화 공약을 제시했다. 또 납품단가 부당인하, 일감몰아주기 등에 대한 규제 강화도 약속했다. 그러나 19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 억제와 관련된 공약은 하나도 실현시키지 못했다.

 

20대 총선에서도 징벌배상제 확대도입, 과징금 상향, 기술탈취 방지, 하도급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20대 국회 역시 재벌개혁 공약과 관련해 일부 징벌배상제 확대와 과징금의 상향만 이루어진 것 외에는 대다수 이행되지 않았다.

 

이번 21대 총선에서도 민주당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사익편취 규제 적용 대상 확대, 지주회사 보유 주식 한도 확대 등 재벌의 불공정행위 근절, 다중대표소송제 등 황제경영 방지, 산업자본의 금융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규제 강화 등 금산분리 원칙 준수, 중소기업 기술유용 관련 징벌적 손해배상 범위를 10배로 상향하는 하도급거래 공정화 공약 등을 내놓았다.

 

경실련이 지난달 총선 직전 지역구 후보자를 대상으로 경제민주화 관련 설문조사를 한 결과 대상자의 72% 이상이 찬성응답을 했다.

 

'재벌의 불공정행위에 대해 손해액 10배 또는 기업 매출액 10%로 배상하는 '징벌배상특별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질문에 응답자 74.9%가 찬성의사를 밝혔다. '황제경영 방지를 위해 총수일가 이사와 임원으로서 보수, 계열사 간 인수합병, 일정규모 이상 내부거래 등을 결정할 때 소수주주(비지배주주) 동의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질문에 72.5%가 찬성했다.

 

이번 조사는 331일부터 46일까지 지역구 출마자 1118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조사에 답변한 후보자는 350명이었다. 민주당이 146, 미래통합당은 63명이었다. 당선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 범현주 기자 hjbeom@naeil.com

 

정의연 사태 만든언론 보도 톺아보다

단독 도배정의연 회계 공시 논란, 언론은 얼마나 옳았나

초기 보도 부족한 취재문제 확신침소봉대 많아확인된 건 공익법인 전반의 회계 부실 공시관행

정의기억연대를 둘러싼 논란 초기, 정의연이 부실하게 회계를 공시한 사실이 곧 부정한 비리로 받아들여진 배경엔 자극적인 보도가 있었다. 사건을 둘러싼 상황을 종합하거나 해명을 반영하지 않고 섣불리 의혹을 확신한 보도도 많았다.

 

회계 논란 시작은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이다. 이 할머니는 지난 7일 대구 기자회견에서 정의연이 피해자를 위해 후원금을 쓰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할머니가 그간 밝힌 입장을 종합하면 이 말은 모든 피해자를 위해 필요한 사업을 해야 한다는 운동 방향성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이 할머니는 지난 13일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전국의 할머니를 도우라고 (기부금을) 주는 건데 어째서 거기(정의연 운영 쉼터) 할머니만 피해자라고 하나라고 말했다. 보도가 집중되던 12일엔 폄훼와 소모적인 논쟁은 지양돼야 한다는 전제에서 말한다현 시대에 맞는 사업 방식과 책임 있는 집행 과정, 그리고 투명한 공개를 통해 국민 누구나 공감하는 과정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정의연이 피해자들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는 보도 프레임이 공고해진 직후다.

이용수 할머니의 7일 대구 기자회견 직후 보도된 "정의연이 피해자들에게 현금성 지원을 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기사 모음.

 

피해자들에게 왜 돈 안 줬냐는 소모적 논쟁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 보도가 이 같은 프레임을 강화했다. “할머니들 위해 모은 성금인데정작 받은 건 106만원”(조선), “정의연 기부금 수입 49, 피해자 현금지원 9”(동아), “22억 중 9억 피해자 지원했다는 정의연최근 2년은 4700만원”(머니투데이) 등의 보도다. 정의연이 한 해 기부금 가운데 피해자에게 얼마의 현금을 지원했는지 분석해 그 비율이 부족했다고 비판했다.

 

생계비 등의 직접 지원은 위안부특별법이 제정된 1993년부터 정부가 책임져왔다. 지자체 지원을 빼면 2016년 기준 여성가족부가 피해자에게 지급한 생활안정지원금은 총 15여억원이다. 주거, 생활안정, 간병, 장례 등 지원이 포함됐다. 정의연의 피해자 지원 사업엔 정기방문·전화, 기부품 전달, 의료·상담 치료 지원, 일부 장례 지원 등의 부대 활동이 있다. 다른 아시아 피해국의 피해 여성을 지원하는 활동도 포함됐다.

 

피해자 지원 사업은 12개 목적사업 중 하나다. 정의연의 한 해 사업은 피해자 지원 수요시위 기림사업 국내연대 남북연대 국제연대 나비기금 연구조사 지원 교육사업 장학사업 홍보사업 모금사업 등으로 나뉜다. “일본 정부의 공식사죄·배상, 책임자 처벌, 진실규명 등을 통해 피해자 명예와 인권회복에 기여하고, 미래 세대로 하여금 올바르게 기억하게 하고, 전시 성폭력을 막고 전시 성폭력 피해자 인권회복에 기여한다는 게 단체 설립 목적이다.

 

이런 맥락은 초기 보도에 반영되지 않았다. 현금성 지원이 주 목적이 아닌 단체를 겨냥해 기부금에서 현금지원 비중을 분석한 기사가 쏟아졌다.

 

이와 별도로 시민사회 진영에선 현금지원을 하지 않은 점에 사회적 공분이 생겼다면, 기금 마련이 성 착취 구조 근절에 목표를 둔다는 것을 시민사회와 충분히 공유하지 못한 것이다. 정의연과 피해자가 동일시된 측면도 있다. 정의연이 극복해야 할 과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경제는 12일 정의연이 하룻밤에 3300여만원을 (후원 행사를 치른) 술집에서 사용해 논란이라고 적었으나 사실 왜곡이 있었다.

 

국세청 공시 기사들, 충분한 팩트 담았나

국세청 공시자료 발기사가 연이어 나오며 회계 비리 의혹이 거세졌다. 취재가 불충분해도 비리 의혹을 확신한 기사가 집중적으로 보도됐다.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의혹이 확실시됐다.

 

12일 한국경제 “[단독] 하룻밤 3300만원 사용, 정의연의 수상한 술값보도가 대표적이다. 정의연의 2018년 국세청 결산 공시 자료 중 국내 모금사업지출란을 보면 지급처엔 맥주회사를 운영하는 A업체가, 지출액으로 현금 3300만원이 적혔다. 한국경제는 하룻밤에 3300여만원을 (후원 행사를 치른) 술집에서 사용해 논란이라고 적었다. “당일 매출은 970만원이었다는 술집 입장을 전하며 정의연에 은폐 의혹도 제기했다. 조선일보(“맥주값 3339만원 썼다던 정의연, 430만원 결제”), 중앙일보(“맥줏집에선 3300만원, 할머니들에겐 2300만원 쓴 정의연”) 등의 보도로 확산됐다.

 

이들 기사만 보면 정의연이 기부금 3000만원을 술집에 지출했고 그 금액까지 속인 것으로 보인다. 배경엔 2018년까지 유지된 국세청 서식 작성법이 있다. 작성법이 개정된 20193월 전까지 가장 큰 금액이 지급된 대표 지급처만 적는 방식이었다. 정의연은 “3300만원은 50개 지급처에 지급된 모금사업비 지출 총액이라고 밝혔다. 취재에 응한 술집 관계자는 기사를 본 후 정말 교묘하게 악의적이라며 스트레이트 기사는 팩트를 자기 세계관에 맞춰 찌그러뜨려서는 안 되는 걸로 안다고 자신의 SNS에 밝혔다.

기부금단체가 기부금 사용 내역 등을 공시할 때 사용하는 국세청 작성 포맷. 지급처 란에 '대표지급처'로 명기돼있어 대표 지급처만 관성적으로 적어온 단체 실무자들이 적지 않다.

 

대표 지급처를 지급처 한 곳으로 보고 의혹을 제기한 보도는 계속 나왔다. “기부금 지출항목에 상조회사 1170만원업체 한푼도 안받아’”(12일 동아일보)정의연 12000만원 보냈다던 해외사업해당 재단은 ‘2000만원 받았다’”(18일 시사저널) 등이다. 동아일보는 2019년 기부금품 지출명세서 중 지급처는 한 상조회사로, 지출액은 1170여만원이라고 공시한 지출란에 근거했다. 시사저널 근거는 2018년 지출명세서의 국내사업 중 지급처 무케케재단’, 수혜자는 999, 지출액은 12202만원이라는 공시였다. 언론은 대표 지급처 한 곳만 공시된 사실과 다른 지급처는 전수 공개되지 않았다는 사실, 이 두 가지 사실로 비리 의혹을 지폈다.

 

의혹 제기가 급물살을 타면서 해석이 필요한 팩트를 의혹 근거로 무분별하게 차용한 흔적도 있다. 단독을 단 한국일보의 “‘22억 증발정의연, 회계처리 오류라고 변명하기엔보도는 정의연의 2018년 및 2019공익법인 결산서류 공시를 비교해, 2018년엔 227300만원 기부금 수익을 2019년에 이월한다고 적혔으나 2019년 이월 수익금엔 ‘0’이 적혔다며 단순 실수라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그러나 2019년 별도로 공시하는 기부금 모금액 및 활용실적 명세서229500만원이 기재돼 있다.

언론은 2018년과 2019'공익법인 결산서류' 공시상 2018년에 기록된 기부 수익 이월금이 2019년엔 사라졌다며 단순 실수라 보기 어려운 회계 부정으로 봤다.(왼쪽) 그러나 별도로 공시하는 2019년 기부금 모금액 및 활용실적 명세서엔 이월금이 적혔다.(오른쪽)

 

보도는 “2019년 정의연 재무제표상 현금성 순자산이 187000만원에 달한다는 점도 불투명한 기부금 사용 근거로 활용했다. 이 가운데 146800여만원은 사용처가 따로 있어 적립한 목적기금이었다.

 

‘99’, ‘999’ 등이라고 표시된 사업 수혜자 논란도 비슷했다. 정의연이 국세청 공시에 사업 수혜자명수를 99, 999, 9999 등이라고 적어 놓은 게 회계 비리 의혹 근거였다. 대표적으로 지난 11일 한국일보 “[단독] 정대협 사업항목 같은데기부금 수혜자 1년 새 9999999?” 기사다. 엄밀하게 공시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사회운동 단체 상황을 종합 반영하지 않은 결과이기도 하다. 사회운동 단체는 캠페인, 연설, 집회 등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활동하는 사업이 많다. 사회복지기관처럼 서비스나 용역을 받는 사람이 명확하지 않다. 이들 단체가 국세청에 공시한 수혜자 대부분이 모호한 추산 값이다.

중앙일보 14"[안혜리 논설위원이 간다] “개인 계좌로 공익법인 기부금을_ 당장 문 닫아야할 사안”"() 기사와 "SNS서 기부금 모금, 윤미향 개인계좌 3개로 받았다" 기사 갈무리.

 

사회운동 단체들이 관습적으로 진행한 개인 계좌 모금방식도 정의연의 회계 비리로 좁혀졌다. 이 같은 모금 방식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나 밀양 송전탑 반대투쟁 희망버스및 용산참사 대책위원회 후원부터 각종 열사 장례위원회에서도 볼 수 있다. 여러 단체·개인들이 함께하는 연대모금의 경우 단체 고유 목적사업이 아니라 개인 계좌로 모금하는 방식이 유지된 측면이 있다. 이 문제에 위법 소지를 따지더라도 언론이 이를 곧바로 특정 단체의 회계 비리 근거로 삼으려면 내부자 증언이나 허위 세금계산서 등 추가 근거가 요구된다.

 

중앙일보는 14일 이를 “SNS서 기부금 모금, 윤미향 개인계좌 3개로 받았다” “[안혜리 논설위원이 간다] ‘개인 계좌로 공익법인 기부금을 당장 문 닫아야할 사안’” 등의 기사에서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할머니를 앞세운 사적인 앵벌이 모금이라는 일각의 비판도 같이 전했다.

 

부실한 회계 공시는 문제다. 시민사회단체 내에서도 정의연을 둘러싼 논란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다만 한 사회단체 활동가는 “(정의연의 회계 공시를) 정당화할 순 없지만 언론도 단체들이 처한 상황은 보도에 반영해야 한다. 기부금 단체는 이를 관리 감독을 하는 정부 부처 제출 보고서만 중요하게 판단, 국세청 공시는 안이하게 작성해 온 면이 있다. 한 번도 오류를 지적받은 적이 없으니 오랫동안 관성적으로 올려왔다특히 국세청 양식이 기업 중심이라 비영리 법인 실무자는 무엇을 채무로, 자산으로 잡을지 몰라 실수할 때가 있다고 전했다.

외부 회계 기관에 감사를 받겠다는 정의기억연대 공지.

 

회계 투명성에 민감한 시민 인식을 사회단체들이 따라가지 못했단 자성도 있다. 이참에 미국처럼 모든 비영리 법인을 회계 감사 대상으로 두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말도 나온다. 다만 비영리 법인 회계에 대한 법률 등이 개선돼야 한다는 요구도 높다. 또 다른 사회단체 활동가는 비영리 법인 회계 관련 법률이 사회단체 운영 현실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다양한 활동을 투명하게 운영하는 것을 제약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실제 비리·부정이 있었다면 정의연은 그에 맞는 책임을 져야 한다. 정의연은 외부 회계 검증을 받을 예정이다. 정의연은 지난 15일 한국공인회계사회에 공익법인 감사 회계 기관 추천을 의뢰했다. 검찰 수사도 진행된다.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 등은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정의연을 고발했다.

 

회계 검증과 향후 이어질 수사와 별개로, 언론은 의혹 제기가 얼마나 꼼꼼했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중앙일보는 다른 근거자료 없이 개인 계좌로 기부금을 모금한 것 자체를 횡령 혐의인 양 보도했다. 일부 언론은 국세청 공시 작성 방법을 충분히 알아보지 않고 정의연의 회계 부정을 못 박았다. 의혹 제기에 꼼꼼한 사실확인과 반론 취재가 필요하다.

손가영 기자 ya@mediatoday.co.kr

BTS팬 기부 패딩, 할머니들 못 받아언론 보도는 오보

사실확인 없이 한 쪽 말 듣고 못 받았다단정, 정의연 반박 자료 공개기사 삭제 요구에 확인했다주장했다수정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 팬클럽이 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전해달라고 정의기억연대(정의연)에 기부한 물품을 정의연이 전달하지 않았다는 중앙일보 보도는 오보였다. 정의연은 해당 할머니에게 물품을 전달한 영상 기록과 소포 영수증을 공개했다.

 

정의연은 지난 19일 밤 페이스북 SNS 등에 중앙일보 김준희 기자 ‘[단독] ‘아미가 기부한 패딩... 이용수.00 할머니 못 받았다거짓보도 관련 정의연 입장이라는 글을 실었다. 해당 보도가 사실관계 확인 없이 고 곽예남 할머니의 양딸 이민주씨 말만 듣고 쓴 허위 보도라는 입장문이다.

19일 중앙일보가 단독을 달고 보도한 "‘[단독] ‘아미가 기부한 패딩... 이용수.곽예남 할머니 못 받았다‘" 보도 갈무리.

보도 후 정의기억연대가 19일 공개한 반박 자료. 곽예남 할머니에게 기부품을 전달한 날 찍은 영상을 캡쳐한 사진(왼쪽)과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기부품을 소포로 발송한 지출 영수증(오른쪽).

 

이 기사는 “(정의연이) BTS 팬클럽으로부터 받은 기부 방한용품을 이용수·곽예남 할머니 등 일부 피해자에게 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했다. “이용수 할머니와 201812월 당시 생존한 고 곽예남 할머니는 아미(팬클럽) 측이 기부한 패딩 점퍼와 방한용품을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했다고도 보도했다.

 

핵심 근거는 이민주씨 증언이다. 이씨는 곽 할머니가 별세하기 8개월여 전 수양딸로 법적 등록이 됐다. 이씨는 중앙일보 취재에 정의연에서는 BTS 팬클럽이 기부한 방한용품을 나눔의 집 할머니들에게 줬다고 두루뭉술하게 얘기하는데 이용수 어머니와 제 어머니(곽예남 할머니)는 분명히 못 받았다고 주장했다.

 

기사는 또 일각의 전언을 인용해 “‘정의연 측이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할머니 6명에게만 BTS 팬클럽이 기부한 방한용품을 줬다는 이야기도 들린다나눔의 집 외에 전국에 흩어져 사는 나머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BTS 팬클럽이 기부한 방한용품을 정의연을 통해 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정의연은 이에 당시 곽예남 할머니를 방문해 기부품을 전달한 사진과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물품을 소포로 보낸 지출 영수증을 공개했다. 정의연은 “20181221일 조카 OOO씨와 간병인이 같이 있는 상황에서 곽 할머니께 방탄소년단에 대한 설명과 함께 패딩을 전달해드렸다. 당일 전달 과정은 내부 공유를 위해 촬영한 동영상에 담겨 있다고 밝혔다.

 

정의연은 또 이용수 할머니께는 방문 전달이 어려워 20181227일 택배 발송했다.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중 병상에 누워계신 생존자를 제외한 피해자 16명에게 직접 또는 택배 발송했다고 반박했다.

반박 자료 공개 후 수정된 기사 문구 갈무리. 왼쪽이 수정 전 기사, 오른쪽이 수정 후 기사다.

 

정의연은 중앙일보에 기사에 대한 사과와 함께 삭제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으나 중앙일보는 확인됐다는 문구를 수정하고 반론을 추가 삽입했다.

 

중앙일보는 반론을 추가 반영한 경위로 “19일 반론을 듣기 위해 당시 정의연 이사장이던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과 한경희 정의연 사무총장에게 통화를 시도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두 사람에게 각각 오후 253분과 254분에 사실 확인과 입장 표명을 요청했지만 끝내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기사는 반론 취재 시작 5시간여 후인 오후 631분 보도됐다.

 

정의연 관계자는 이와 관련 이 기사가 지금 당장 나가지 않으면 숨이 넘어갈, 분초를 다투는 기사인가. 당일 확인을 못했으면 기사를 내보내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서 의도가 명백한 기사라며 사실관계 확인도 없이 기자윤리에 어긋나는 보도 행태다. 정의연을 둘러싼 의혹 보도가 대부분 이와 같다. 회계 공시 논란은 한국공인회계사회에 외부 회계감사 기관 추천을 맡겼고 곧 진행되니 그 결과를 보면 된다고 말했다.

손가영 기자 ya@mediatoday.co.kr

 

명령 따라 5·18 투입된 보통 군인도 역사 속 피해자

5·18 40돌 기획] 다섯개의 이야기-참회

살인·성폭행 등 가해유형 조사 처벌하되

명령에 따른 군인 트라우마 치유책 필요

19805·18 당시 광주 금남로에 배치된 계엄군(왼쪽)과 무차별적인 학살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모습.5·18기념재단 제공

 

전남 나주 출신 하태영(1958년생) 하사는 1980511공수 특전여단 통신병으로 광주에 왔다. 5·18 학살 참상을 목격한 뒤 31사단 보충역으로 전속됐다가 전역한 그는 주변에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말하는 등 광주 트라우마를 겪었고, 1988년 입원 중이던 국립나주병원에서 숨졌다.

 

“5·18이 끝나고 건강이 안 좋아져 제대 말 휴가를 나왔는데, 밥 먹으면서도 막 웃고 계속 전파가 들린다고 하고 눈동자도 이미 정상인이 아니었어요.”(2000325일 하씨 누나 진술)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은 신군부에 맞섰지만, 진압군 가운데 명령에 따라야만 했던 보통 군인들 역시 피해자이기도 하다. 5·18을 소재로 한 소설 속 군인들의 트라우마를 분석한 논문을 쓴 심영의 박사는 개인 일탈이나 성폭행 등의 범죄를 저지른 이는 찾아서 처벌해야 하지만 명령에 따라 투입된 군인들은 자기 뜻과 달리 가해자가 돼버린 피해자다. 치유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5·18 민중항쟁 소설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5·18 유공자 심영의 박사는 5·18 당시 명령에 따라 광주에 온 보통 군인들도 분단체제의 피해자라고 강조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정신질환에 시달렸던 5·18 진압군이 국가유공자가 된 사례도 있다. 대법원은 2009123공수여단 부대원으로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됐던 김동관씨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5·18 때 부당한 진압작전에 항의하다 상급자에게 구타당해 정신을 잃기도 했던 김씨는 전역 후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이혼 등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자 국가유공자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했으나 거부당하자 소송을 냈다.

 

5·18 유공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연구해온 오수성 전 전남대 명예교수는 명령을 내린 사람들이 가해자다.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던 투입 군인들은 5·18 투입 사실이나 심리적 고통을 숨기는 등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보훈병원에서 광주에 투입됐던 군인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5·18 광주에 투입됐다가 정신질환을 앓게 돼 국가유공자 신청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받은 김동관씨. <한겨레> 자료사진

 

진압군 가운데서 진짜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5·18 당시 날짜와 작전별로 명령 발령과 하달, 실행 과정을 구체적으로 조사·분석해야 하지만, 실제 드러난 건 미흡하다. 곽송연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지난해 11월 열린 5·18 학술대회에서 가해자를 명령권자에 국한한다면 전두환이나 작전지시를 내린 고위간부에 대한 기록으로 충분하겠지만, 그 범위를 장교와 사병까지 넓힌다면 현장에서 직접 살해를 지시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 자들의 명단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죄수와 검사(한명숙) 검찰의 반격, 그리고 죄수H

이야기는 다시 20101220일로 돌아간다. 검찰 조사에서 한명숙 전 총리에게 9억 원을 줬다고 진술했던 사업가 한만호는 이날 열린 공판에서 진술을 뒤집었다. 한만호가 감옥에서 작성한 비망록에 따르면 검찰이 자신을 추가 기소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컸다. 한만호는 당시 회사가 부도 났고 이미 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형기를 마치고 나가면 재기를 해야 하는데 검찰 말 대로 하면 검찰이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본인의 진술이 언론에 생중계되다시피 보도가 되고 결과적으로 선거에 이용되는 모습에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가 비망록에 쓴 표현에 따르면 검찰의 언론플레이는 마술사수준이었다. 한만호는 검찰 조사를 받을 때 돈을 한명숙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줬다는 말을 했지만 검찰이 묵살했다고 비망록에 적었다. 한만호는 결국 공판을 기다려 증인석에서 검찰 진술을 번복할 수밖에 없었다.

 

<한만호 비망록 52>

검찰은 알고 있었다. 기자님들 들어주세요. 검찰은...다른 곳에 지원했거나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 증인이 2번 가량 실탄이란 용어 사용하며 이야기했고요... 못 알아들은 척 하였고 어렵게 이아기 했는데 핸드폰 들고 밖으로 나가서 한참만에 들어와서 오늘은 한 사장님이 피곤해하시니 그만하자, 오늘 드시고 싶은 메뉴를 말씀해달라. 회초밥을 먹었다. 무고한 총리님의 살점을 발라먹고 있다는 생각으로 복통 설사로 무척 고생했다.

한명숙 사건의 핵심 증인 한만호가 감옥에서 작성한 1,200페이지의 비망록. 검찰에서 뇌물 공여를 진술한 이유와 이후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한 이유 등이 상세히 적혀있다.

 

한만호의 진술 번복으로 한명숙 사건재판은 국면이 완전히 바뀌었다. 검찰이 수세에 몰리는 상황. 검찰은 핵심 증인 한만호 진술에 기대지 않고 한명숙 전 총리에게 돈을 전달한 사실을 입증해 내야 했다. 또 한편으로는 한만호가 법정에서 증언한 내용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판사들 앞에서 증명해야 했다. 검찰은 한만호가 법정에서 위증을 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개시했다. 한만호의 감방을 압수수색해 비망록 등을 압수해갔다. 그리고 한명숙 전 총리 1심 판결이 나기도 전에 한만호를 위증 혐의로 기소한다.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검찰의 다급한 사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검찰은 또 다른 반격의 카드를 내놓는다.

 

다급한 검찰의 반격 카드사기꾼

2011221일 피고 한명숙 제 7차 공판. 검찰 측 증인으로 김00이 나왔다. 한만호와 함께 서울구치소에 있었던 사람이다. 1977년 생으로 당시 나이 35. 2009년 사기로 구속됐다가 20109월 출소했다. 이미 상습 사기 전과가 있었던 인물이다.

 

증인 김 씨가 재판정에서 한 증언의 핵심은 한만호가 한명숙에게 뇌물을 줬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여러차례 이야기했고, 8.15 특사를 기대했는데 검찰이 해주질 않아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겠다는 말을 했다는 내용이다. 쉽게 말하면 한만호가 법정에서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검찰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이었다. 김 씨의 증언은 핵심 내용도 한만호의 증언과 달랐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한만호의 주장과 완전히 배치됐다.

2010221일 피고 한명숙 7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00. 검찰 측 증인이었던 김 씨는 한만호가 법정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그림 : 윤석민)

 

증인 김 씨와 한만호는 201041일 서울중앙지검 구치감에서 만났다. 한만호는 통영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갑자기 서울구치소로 이감된다. 그리고 중앙지검 특수부에 소환됐다. 재소자가 검찰에 소환되면 구치소 버스를 타고 이동해 일단 검찰청 구치감이라는 곳에서 대기하게 된다. 여기서 김 씨와 한만호가 만난 것이다. 여기까지는 양 쪽 모두 똑같이 인정한 사실이다.

 

증인 김 씨는 구치소 수감 전부터 한만호와 경기도 일산에서 사업을 하던 중 여러차례 만난 사이로 서로 인사 정도는 하는 관계였다고 증언했다. 반면 한만호는 서로 고향을 물어보다 일산이라고 해 반가워했던만큼, 김 씨와는 구치감에서 처음 만난 사이라고 주장했다.

 

<한명숙 사건 공판 조서 중>

00 : (수감 전인) 2006년 일산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한만호는 건설회사에 있었고 저는 부동산 관련 건설회사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오다가다 뵙고 인사하는 사이였습니다.

한만호 : 저는 구치감에서 김OO이라는 사람을 처음 봤고 일산 후배라고 해서 반가운 내색을 해줬을 뿐입니다.

 

증인 김 씨는 또 한만호가 처음 만난 구치감에서 뇌물 때문에 문제가 됐다며 본인에게 의논을 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한만호는 김 씨를 그런 이야기를 나눌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한명숙 사건 공판 조서 중>

00 : 한만호가 첫날 되게 불안해했습니다. 한만호의 표현이 그랬습니다. ‘나는 뇌물 준 것이 문제가 된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라고 저에게 의논을 했습니다. 제가 뇌물 처벌 받겠는데요라고 했더니 정지차금법으로 한번 둘러봐야되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알아서 하시라고 했습니다.

한만호 : 뇌물이고 정치자금이고 이런 쪽의 이야기는 한 기억도 없고,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진술을 하는 것인지 저로서는 감조차도 잡을 수가 없습니다.

00 : 한만호 사장님이 한명숙 총리 집에 간 내용까지 저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한만호가 저에게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해주었습니다.

한만호 : 아무리 일산 사는 후배라고 하더라도 구치소에서 처음 보는 후배에게 무슨 돈을 준 이야기, 또 돈을 가져간 집의 구조나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그것은 지나치다. 정말 지나치다. 참 너의 뇌를 진짜 쪼개 보고 싶다.

 

한만호는 비망록에서 처음 중앙지검 특수부에 소환될 때 무엇 때문인지 알지도 못했다고 썼다. 그런 상황에서 소환 첫날 구치감에서 만난 김 씨에게 한명숙에게 준 뇌물에 대해 털어놨다는 것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만호 비망록 21>

41. 통영에서 올라온 다음 날 소환되어 부도 경위와 피해자들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제가 무슨 신분으로 조사받는 것이냐 물었다. 아무 신분도 아니고 그냥 조사하는 것이다.... 이때까지는 한 총리님 건이라 생각못했다.

 

한만호는 1961년 생, 2010년 당시 50살이었다. 비록 회사가 부도가 나 감옥에 갇힌 신세였지만 중견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사업가였다. 증인 김 씨는 34, 16살 어린 상습사기범에게 내밀한 뇌물 얘기를 만나자마다 털어놨다는 것 역시 다소 의아한 대목이다. 김 씨는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명숙 사건 공판 조서 중>

00 : 그 안(구치소)에서 같은 옷을 입고 사회에서 조금 알면 한 끼를 먹어도 가족 같이 지냅니다. 왜냐하면 어려운 사람들끼리 비록 죄를 짓고 들어왔지만 동질감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고, 증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증인 김 씨의 증언에 따르면 한만호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한 이유는 한명숙에게 돈을 줬다고 털어놨는데 가석방이나 특사, 사업 재기 등에 검찰이 도움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만호가 한명숙의 도움을 받을 생각으로 진술을 번복했다는 것이 김 씨의 주장이다.

 

<한명숙 사건 공판 조서 중>

(한명숙 측) 변호인 : 증인은 한만호로부터 검찰이 도움을 안 주니 (법정에서) 거짓말을 해야겠다, 진술을 번복하겠다라는 말을 직접 들었는가요.

00 : .

변호인 : 주로 한명숙이 도와줄 것이라고, 검찰보다 더 큰 기대를 했다고 하였지요. 그 근거는 뭐라고 하던가요.

00 : 한명숙 총리님이 자신의 손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변호인 : 야당 정치인이고 검찰에 의해서 기소까지 되어서 재판까지 받았고, 한만호는 불리한 진술까지 했는데도 한만호는 한명숙 총리가 자신을 계속 도와줄 것이라고 크게 기대했다는 것인가요.

00 : .

변호인 : 그렇게 판단한 근거는 무엇인가요.

00 : 시장 선거에서 떨어졌어도 옛날에 총리를 했었으니까요. ‘네가 봤을 때 일개 검사가 힘이 세겠느냐, 전 총리가 힘이 세겠느냐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당시는 이명박 정부 집권 4년차였다. 아무리 전 총리라고 해도 이미 선거에서 떨어지고 뇌물 혐의로 기소까지 당한 한명숙 전 총리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거라고 한만호가 기대했다는 진술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다급한 검찰의 반격 카드약쟁이

한 달 뒤, 201137일 제 8차 공판에서도 또 다른 검찰 측 증인이 증인석에 섰다. 역시 한만호와 같이 서울구치소에 있던 최00. 상습 마약 사범이었다. 최 씨의 증언도 앞선 김 씨와 일맥상통했다. 한만호가 처음 만난 날부터 한명숙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자신에게 말했으며, 이번에는 보다 구체적으로 9억 원이라는 액수,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서운한 감정까지 말했다는 것이다. 한만호는 역시 마약사범과 그런 말을 섞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201137일 피고 한명숙 8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최00. 앞선 공판에 출석한 증인 김00과 마찬가지로 최00도 검찰의 기소 내용을 정확하게 뒷받침하는 증언을 했다. (그림 : 윤석민)

 

<한명숙 사건 공판 조서 중>

검사 : 한만호가 한 총리에게 돈을 주었고, 그 액수가 9억이라는 말을 처음 만난 날 하던가요.

00 : . 처음 만난 날 들었습니다. 얼마 지난 뒤에 언론보도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제가 진짜 사실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검사 : 그러자 한만호가 뭐라고 하던가요.

00 : 웃으시면서 내가 준 것을 줬다고 하지 안 준 걸 줬다고 하겠습니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검사 : 증인은 한만호가 한명숙 피고인에게 서운한 감정을 토로하는 거를 들은 사실이 있는가요.

00 : 제가 법정에서 말씀드리기 곤란하지만, 험한 욕을 해 가면서 자기가 돈을 줄 때는 자기 회사 잘 될 때 갖다준 것이 아니고, 참 힘든 상황에서도 어렵게 갖다줬는데 약속을 안 지켰다면서 욕을 하고, 그 다음에 표현하기가 좀 그런데, 돈만 너무 밝힌다, 이러면서 욕을 하셨습니다.

한만호 : 이 사람이 웃기는 사람이네. 검사님이 전에 말씀하셨죠. “마약사범들 말 믿지 마세요. 박연차 회장도 당할 뻔했답니다.” 그렇게 말씀한 적 있지 않습니까. 이런 마약사범들에게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검사님 말씀 듣고 마약사범들과는 그냥 얘기를 듣기만 했지 누구 욕을 하나요.

 

검찰 측 증인 김 씨와 최 씨의 증언은 당시 언론에서도 크게 보도했다.

<”한만호, 진술번복 대가로 사업 재개동료수감자 증언>(MBC)

<”한만호 진술 뒤집고 사업재개 생각했다”>(연합뉴스)

<”한만호 진술 번복 이전부터 계획”VS”근거없는 얘기>(노컷뉴스)

 

워낙 세간의 관심이 높은 재판이었기 때문에 증인들의 증언은 하나하나 보도되던 때였다. 한만호의 검찰 진술과 법정 증언 중 어떤 것이 진실이냐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던 상황이어서 위 검찰 측 증인 두 명의 법정 증언은 한만호의 평소 언행이 석연찮았다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수시로 검사실 출입했던 검찰 측 증인들

검찰 측 증인 김 씨와 최 씨는 공통점이 있었다. 구치소에서 친밀한 사이였다는 점 말고도, 검찰에 수시로 불려다니는 죄수들이었다는 점이다. 취재진이 입수한 두 증인의 출정기록에 따르면 김 씨는 20103월부터 20108월까지 6개월 동안 89차례 검찰에 출정을 갔다. 한 달 평균 15, 이틀에 한 번 꼴이다. 특수부, 강력부, 형사부 등 다양한 검사실에 불려다녔다. 최 씨도 마찬가지였다. 최 씨는 20104월부터 20113월까지 12개월 동안 148차례. 한달 평균 12회다. 직장인이 출근하듯 검찰청에 출정을 다녔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증인 김00과 최00의 출정 기록. 이들은 마치 직장인이 출근하는 것처럼 검찰청에 다닌 죄수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구치소에는 속칭 검찰의 빨대’, ‘프락치역할을 하는 죄수들이 있다. 검찰에 죄수들의 동향이나 범죄 첩보 등을 보고하고 편의를 제공 받거나, 자신들에 대한 구형량, 가석방 등을 거래하려는 자들이다. 검찰은 이런 죄수들을 수사에 적극 활용한다. 한만호의 변호인이었던 최강욱 변호사는 사기전과자, 마약사범 등이 검찰에 가서 검사하고 딜을 많이 한다. 내가 뭐를 얘기해 줄 테니까 구형을 줄여달라, 이런 거라며, 당시 한만호는 이들이 검찰과 거래하는 소재로 활용된 것이라 여겼다고 말했다. “자기(한만호)가 나중에 결국 그런 딜의 소재로 활용이 된 거잖아요. 그러니까 더 충격을 받았죠.” 최강욱 변호사가 전한 한만호의 당시 심경이다.

 

판결문에 숨어있던 죄수H’의 존재

수상한검찰 측 증인 김 씨와 최 씨의 공통점은 하나가 더 있었다. 두 증인의 증언이 의심스러웠던 한명숙 측 변호인은 한만호의 평소 언행을 들은 사람이 더 있냐고 반복적으로 질문했다. 이에 대해 김 씨와 최 씨는 공통적으로 대답한다. ‘죄수H’가 있었다고.

 

<한명숙 사건 공판 조서 중>

(한명숙 측)변호인 : (한명숙 뇌물 사건을 한만호에게)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딱 듣고 증인은 누구에게 이야기하였나요.

00 : H입니다.

변호인 : 한만호, H, 증인 세 사람이 같이 한만호의 사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가요.

00 : .

변호인 : 구치소에서 H 외에 다른 사람에게도 한만호 법원에서 거짓말 하는 것이다이런 말한 적이 없나요.

00 : 없습니다.

변호인 : 한명숙 재판 이후에 H와 김00, 셋이 만난 적도 있는가요.

00 : . 있습니다.

변호인 : 검사실에서 만난 것인가요.

00 : .

 

더구나 증인 최 씨는 죄수H가 본인들보다 한만호와 더 가까웠으며, 한만호가 진술 번복에 대해서도 죄수H와 내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한명숙 사건 공판 조서 중>

(한명숙 측)변호인 : 한만호, H 등과 구치감에서 다시 만난 사실이 있나요.

00 : 만났습니다.

변호인 : 그때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나요.

00 : 저는 H와 별 얘기를 나눈 것이 없고 H와 한만호가 둘이 붙어서 얘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변호인 : 한만호, H, 증인 김 씨, 증인 최 씨 중에서 주로 한만호와 이야기한 것은 김 씨인가요?

00 : 처음에는 김00이 많이 했고, 나중에 법원에서 진술을 뒤집겠다는 구체적인 얘기는 모두 H와 했습니다. 한만호가 자신의 결심 같은 구체적인 얘기는 H와 했습니다.

변호인 : 한만호와 H가 구체적으로 진술 번복에 관해 계획도 짜고 했는가요.

00 : 그날은 그런 얘기만 했습니다. 두 분 사이에 어느 정도 얘기가 되고 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건 정작 죄수H가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검찰은 한만호의 진술 번복 계획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죄수H를 왜 증인석에 세우지 않았을까. 여러가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우리는 죄수H를 찾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는 죄수H의 이름과 경제사범으로 꽤 긴 형을 선고 받아 복역 중이었다는 사실뿐이었다. 지금도 감옥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가설을 세우고 추적했다. 운 좋게도 죄수H가 광주교도소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죄수H’의 답장: “검찰은 썩은 집단

취재진은 죄수H에게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렸다. 긴 시간이 흐르고 취재를 포기할 무렵 답장이 왔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심인보 김경래 기자님... 여기서 보는 검찰은 참으로 썩은 집단입니다.”

광주교도소에 복역 중인 죄수H가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보낸 편지. 뉴스타파는 죄수H10여 차례 편지를 교환했다.

 

여러차례 편지가 오간 뒤 죄수H는 면회를 허락했다. 우리는 광주교도소로 향했다

김경래/ 뉴스타파

 

'더 세진 코로나' 신규 확진 10만명 넘어 일일 최다 기록

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전 세계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20일 하루에만 10만 명 이상 급증했다. 일일 신규 확진자수로 코로나19 발병 이후 최다다. 이날 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기자회견에서 "이날 전 세계 신규 확진자의 3분의 24개국에서 발생했다"면서 "우린 여전히 이 전염병과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WHO 일일 집계에 따르면 새로운 감염 사례 대부분이 미국과 유럽에서 나왔는데 이날 미국에선 45251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왔다. 9263명이 새롭게 감염된 러시아가 그 뒤를 이었다.

그외 5000명 이상 급증한 인도, 남미의 페루와 브라질, 멕시코, 서아시아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네자릿수 대 증가를 보였다.

 

거브러여수스 총장은 "코로나19 발병 이전의 국정 운영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면서 "일부 국가에선 신규사례가 줄고 다른 국가에선 또 다른 정점을 찍고 있는 상황을 볼 때 예측 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코로나19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국가가 코로나19 확산 방지 조치를 취하고 있으나 바이러스는 여전히 위험하다""전 세계 인구 대부분이 아직도 취약한 상태"라고 경고했다.

 

거브러여수스 총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목해 그가 WHO 등을 위협할수록 코로나19 대응 비상 프로그램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WHO'친중국' 행보에 매몰돼 코로나19 대응을 적극적이고 객관적으로 하지 않고 있다면서 지원금을 끊겠다고 연일 위협하고 있다.

 

이에 이날 마이크 라이언 WHO 건강비상사태 책임자는 "미국이 내는 대부분의 자금은 취약하고 어려운 환경에 놓은 국가들에 대한 도움에 직접 쓰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런 자금이 계속 흐를 수 있도록 다른 국가들과 협력해야 한다""이건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미국이 지원을 끊으면) 우리는 필요한 경우 다른 기부국이 부족분을 메울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거브러여수스 총장은 "한국이 메르스 경험을 통해 코로나19에 인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은 모든 사례를 추적하고 격리하고 검사하는 등 포괄적인 전략을 신속하게 구현하고 있다"면서 "이게 한국이 첫 번째 감염 물결을 억제하고 새로운 감염 사례를 빠르게 인지하고 잡아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시간 21일 오전 830분 기준 존스홉킨스대학 통계에 따르면 현재까지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5056307, 사망자 수는 328114명이다. /머니투데이 임소연 기자,

 

극우세력, 윤미향 논란 악용해 역사 뒤집기시도

반일종족주의저자들 얽힌 단체

위안부·강제동원 피해 부정하고

소녀상 철거·수요집회 중단시위

흑석동 소녀상 돌로 찍어 훼손도

일 극우신문도 가세 철거주장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터 앞에서 열린 제1440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윤미향 논란이 반대 진영의 백래시’(진보적 변화에 대한 반발)를 넘어 극우세력의 조직적인 역사 뒤집기시도로 번지고 있다. 한국 사회 내부 갈등에 일본 쪽도 뛰어들어 전선이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윤미향 논란의 한 축인 정의기억연대의 회계 처리와 기부금 사업 등에 대한 의혹 제기는 보수언론과 미래통합당이 주도하고 있다. 논란의 다른 한 축인 역사인식과 관련해선 국내 극우단체와 일본 우익 세력이 제휴하는 모양새다.

 

역사 뒤집기의 선두에는 이름도 생소한 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공대위)가 자리하고 있다. 공대위는 제1439회 수요시위 하루 전인 12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집회를 열어 위안부상 철거, 수요집회 중단을 주장했다.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문제 해결에 30년째 헌신해온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현 정의기억연대)와 이 단체 대표를 지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를 아동학대죄, 청소년보호법 위반죄로 고발했다. 정대협이 주도해온 수요집회가 청소년들한테 성노예 개념을 주입해 정신적으로 학대했다는 게 이들이 내건 고발 사유다.

 

공대위는 감추고 싶고 치욕스러운 위안부 이력을 속속들이 까발려 모욕 준 정대협과 여가부(여성가족부)는 용서 못 할 인권 침해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1440회 수요시위 전날인 19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위안부상 반대 집회를 겸한 이른바 위안부 진실규명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소녀상이라 불리는 평화비를 일본식 비칭인 위안부상이라 부른다. 두 집회의 사회를 본 정광제 공대위 사무총장은 이승만학당의 이사다. 이승만학당은 <반일 종족주의><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 출간을 주도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교장이다. 두 책에 필자로 참여한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2019122일 열린 공대위 창립 회견에서 단체 연혁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승만학당-낙성대경제연구소-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가 인적으로 연결돼 있는 셈이다.

 

이영훈·이우연 등이 이른바 학문의 영역에서 일본군 위안부·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운동을 공격한다면, 정광제 등은 이른바 시민운동의 영역에서 소녀상과 강제동원노동자상’(용산역 앞)반일동상이라 폄훼·공격하며 철거를 주장하고 있다. 이영훈씨는 두 책에서 전시 성노예제이자 반인도 국가범죄인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문제를 일본군위안소는 후방의 공창제에 비해 고노동, 고수익, 고위험의 시장이라고 주장해 피해자 단체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1440회 수요시위가 열린 20일 아침엔 이들의 말로 하는 혐오운동이 물리적 폭력으로 비화했다. 20대 남성 씨가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의 얼굴을 돌로 찍어 훼손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일본 언론도 논란에 뛰어들었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이날 한국 신문의 사설에 해당하는 2주장에서 반일집회를 그만두고 (소녀)상 철거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반일 증오의 상징인 위안부상을 조속히 철거하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일본 정부의 20151228일 합의 이후 일본 쪽의 소녀상 철거주장을 다시 꺼내 든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운동 역사에 밝은 한 원로 인사는 보수야당, 보수언론, 극우단체, 일본 쪽이 소녀상 철거, 수요집회 중단, 정의기억연대 무력화 등을 목표로 연대 공격하는 모양새라고 짚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연대해온 청소년 조직 평화나비네트워크의 이태희 전국대표는 이날 수요집회에서 이 집회를 왜곡·폄훼하는 세력이 있지만 꿋꿋하게 지켜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제훈 박윤경 기자, 도쿄/조기원 특파원 nomad@hani.co.kr

 

결국 폐기된 종부세 법안... 민주당 '의지' 물음표

[집값 잡기, 또 거꾸로? ] 법안 발의까지만 속전속결... 12·16 부동산 대책 공수표 위기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등 관계자들이 종합부동산세 관련법을 즉시 개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당의 반대가 워낙 완강했어요. 조율도 해보고 했는데 안 되더라고요."

종합부동산세를 인상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9<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착잡한 심경을 밝혔다. 그가 발의한 종부세법 개정안이 결국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 수순을 밟게 됐기 때문이다.

 

종부세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될 때만 해도, 이렇게 되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서울 집값이 또다시 급등세를 이어가던 지난해 12, 정부는 종합부동산세 인상 방안을 담은 12.16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뒤이어 국회가 움직였다. 같은 해 1223일 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종부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1주택자와 비조정대상지역 2주택자의 종부세율을 0.1~0.3% 포인트 올리고, 조정대상지역 다주택자(2주택 이상)의 연간 종부세 인상 폭을 기존 2배에서 3배로 늘리는 내용이 개정안에 담겼다.

 

정부가 제시한 종합부동산세 개정안 처리 데드라인은 20205월 말. 정부안대로 종부세를 인상, 부과하려면 종부세 과세기준일인 202061일 이전에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 대책발표에 이어 법안 발의까지는 일사천리였지만 거기까지였다.

 

속전속결로 밀어붙였지만... 국회 문턱 못넘어

종부세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는커녕 상임위(기획재정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하고 20일 자동폐기됐다. 여야가 법안 통과를 두고 논의를 거듭했지만,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핵심 원인은 야당인 미래통합당의 강한 반대 때문이다. 김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종부세법 개정안 처리가) 어렵게 됐다"고 했다. 김 의원은 "야당이 워낙 반대를 하니까 안된 것"이라며 "우리(여당)야 의지를 갖고 타협안도 내보고 이야기하려 했는데 전혀..."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두 야당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이경민 참여연대 팀장은 "미래통합당이야 종부세 인상 반대가 명확하지만, 국회 논의 과정을 보면 민주당에서 법안 통과 의지를 강력하게 가져가지 못했던 점도 작용했던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대표 발의한 법안이 폐기 수순을 밟게 되는 것과 관련해 "많이 아쉽다""부동산 조세 정책은 일관성 있고 속도감 있게 해야 하는데, 입법이 안 된 것에 대해 책임감도 있다"고 말했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이 강력한 의지 갖고 추진해야"

종부세 인상이 무산되면서 일단 다주택자, 주택 투기꾼들은 일단 내년까진 한 숨 돌리게 됐다. 하지만 정부는 21대 국회 출범 직후 같은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종부세 감면 추진" 후보자 합동 기자회견 서울 강남과 경기도 성남 분당 등 수도권 지역구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김성곤(강남갑최재성(송파을김병욱(분당을) 후보 등이 27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종부세 문제 해결을 위한 민주당 후보 일동" 명의의 기자회견을 열고 "1세대 1주택자의 종부세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법 개정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남소연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15일 부동산시장점검회의에서 종합부동산세 강화 법안과 관련해 "20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면 21대에서 재발의해 시장을 안정시키고 주택을 통한 불로소득을 환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도 "21대 국회가 개원하면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을 정부 입법으로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1대 국회에서 법안이 다시 발의되더라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야당인 미래통합당은 여전히 종부세 인상에 대한 반대 입장이 확고하다. 여당인 민주당에서도 종부세 완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황희, 김병욱 민주당 의원은 총선 과정에서 종부세 부담 완화 공약을 내걸었던 인물들이다.

 

이경민 팀장은 "이낙연 당선자도 그렇고, 민주당 내부에서 종부세 완화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20대 발의한 법안보다 더 완화된 내용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스럽다""180석이라는 거대 의석을 확보한 만큼, 민주당이 토지 불로소득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신상호(lkveritas) 오마이뉴스

 

윤미향은 도대체 왜 국회의원이 됐을까?

[기자의 눈] 민주당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이 단체의 성격은 명확하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범죄인정, 공식사죄와 법적 배상, 진실규명, 책임자처벌 등을 통한 정의로운 해결을 이룸으로써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에 기여하고, 역사교육 및 추모사업 등을 통해 미래세대로 하여금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를 올바르게 기억하게 하고 나아가 전시 성폭력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 할 것입니다."

 

이 단체는 단일 목적을 가진 사실상의 '당사자(피해자) 단체'. 일본군 성노예(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피해자와 시민들이 결합한 단체로, 목적은 하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이다. 이 단체의 상대도 사실상 단일 집단이다. 일본 정부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이 결사체는 해산되거나,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단체는 여야, 보수, 진보를 떠나 폭넓은 지지를 받는다. '정파성'에서 자유롭다고 인식돼 대기업도, 진보단체도 이 단체를 열심히 지원한다. 심지어 북한도 이 단체의 설립 취지와 목적과 활동에 대해 함부로 하지 못한다. 아시아는 물론, 미국과 유럽의 수많은 지식인들도 이 단체와 피해자들을 옹호한다. '성역'이라는 비유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인류 보편 정신을 구현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지지 받는 초정파적 단체로서는 범접하기 힘든 거대한 상징 자본을 획득한 곳이다.

 

윤미향, 그 단체의 핵심 인물이 국회의원이 되었다.(당선인 신분이지만, 일단 국회의원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런데 꼬리를 무는 의문은 지울 수가 없다.

 

위안부 문제 해결이라는 단일 목적으로 30여년을 달려온 시민단체 활동가가 국회의원이 되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와의 문제다. 외교적 파워라면, 일개 국회의원보다 정의연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다. 외교부를 움직일 힘도 일개 국회의원보다 정의연이 더 크다. 여야 정권을 떠나 그렇다. 박근혜 정부 시절 졸속으로 합의된 위안부 협상이 시민들의 공감을 잃은 것은 '피해자 단체'인 정의연이 더 큰 명분을 갖고 정부를 비판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건 정권도 어쩌지 못할 힘이다. 그런데 그런 단체의 '위안부 문제' 전문가가 특정 정파에서 300분의 1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 이제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외교부 담당 상임위에서 관료를 상대로 호통이라도 칠 건가, 여성 관련 상임위에서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요구할 건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안 같은 것도 '정의연 출신' 국회의원 한 명 없어도, 숱하게 생산해 내 왔던 곳이 대한민국 국회다. 그 국회를 움직인 것은 초정파적 시민의 지지를 받은 정의연이고.

윤미향 당선인 연합뉴스

 

대체 정의연(혹은 정대협) 출신의 국회의원이 필요한 이유가 단 하나라도 있는가? 지금 우리 외교부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에 저자세 외교를 벌이고 있는가? 다시 말하지만, 그런 일이 만일 벌어진다고 해도, 외교부의 정책을 바로잡는 데 정의연의 파워가 일개 국회의원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세지 않을까? 대한민국에서 정의연만큼 기부금을 잘 걷을 수 있는 단체도 없다. 그만큼 시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은 다른 어떤 시민운동 단체보다 더 독보적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잡고 물어봐도 크게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것 같다.

 

환경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도 아니고, 경제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도 아니고, 대체 단일 목적의 피해자 단체 활동가가 국회의원이 돼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아직까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필자가 과문한 탓일 지도.

 

어떤 이는 "어려운 시기에 위안부 문제를 가지고 싸워왔던 한 시민운동가의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국회의원 배지가 어떤 노력에 대해 보상하는 훈장과 같은 것인가. 그 시민운동가가 국회의원이 되지 못하면 예의를 지키지 못하는 게 된다는 걸까.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윤미향 당선인의 '사과' 태도를 두고 한 얘기는 이런 의문을 더 불지핀다. "윤미향이 갑자기 방으로 찾아와 깜짝 놀랐다. 국회의원이 돼서 미안하다는 말도 없고, 뚜렷한 이유도 대지 않고 무릎만 꿇고 용서를 비는데 뭘 용서하란 말인가." 윤미향 당선인은 무엇에 대한 용서를 바라는 걸까. 국회의원이 되어서 미안하다는 것인가. 정의연 내부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미안하다는 것인가. 할머니들에 대한 지원을 소홀히 해서 미안하다는 것인가. 국회의원이 되고자 했다면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가 있었을 것인데, 그걸 설명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목표 자체가 없던 것은 아닌가.

 

이를테면 세월호 유가족 단체 활동가가 국회의원이 된다고 해서 세월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 안전과 재난 문제에 천착해 온 전문가가 훨씬 나을 수 있다. 왜 윤미향이 국회의원이 되어야 했는지, 윤미향 국회의원이 어떤 의정활동을 펼칠 수 있는지, 민주당은 이 모든 의문에 답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어떤 '상징'에 배지를 달아주거나, 누군가의 지적대로 고생한 '운동권 동료'에 예우 차원으로 배지를 달아주는 나라가 아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위안부 시민 활동가'가 파란 옷을 입게 됨으로서(그것도 이명박, 박근혜 시절 야당이 아니라, 슈퍼 여당의 파란옷을 입게 됨으로서), 이제 정의연과 위안부 문제는 '정파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는 빌미를 주게 됐다. 당장 일본 극우는 '문재인 정권=위안부 문제' 프레임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초정파적 운동의 상징이 정파로 들어가는 순간, 위기에 몰린 전쟁 범죄자들은 산소 호흡기를 획득한다. '위안부 전문가 출신 의원'이 없어서 그동안 정의연이 정부나 국회의 지원을 못 받아왔던가?

 

'이명박 독도 방문' 따위의 이벤트로 일본 극우 집단에 명분을 안겨준 정부의 외교 참모가, 정의연을 "성역"으로 표현하며 이명박 정부와 일본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해결 노력에 윤미향 당선인이 "사형 선고"를 전달받았다고 운운하는 건 언급할 가치도 없이 기가 차는 이야기지만,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만은 가장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현 정부 하에서 정의연의 상황은 운동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정의연 사건'은 세상이 더이상 기존 문법으로 해석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진보든 보수든 '옛날 방식'은 모두 청산 대상이 된다. 옛 운동권 방식과 결별하지 않으면 안된다. 진짜로 정의연을 살리고,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해 볼 때다.

 

도덕적인 문제라든지, 정의연의 운영 과정 의혹에 대한 것들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를 비롯한 많은 지식인이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이 지면에선 이 질문만 하고 싶다. 꼭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대체 윤미향 국회의원은 어떤 필요로 공천을 받았고, 앞으로 국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민주당이 납득할 만한 대답을 내지 못한다면, 그 한 석은 지금이라도 다른 정치인 앞으로 돌리는 게 맞다. /프레시안 박세열 기자

 

뉴욕 코로나19 사망률, 가난한 지역이 최대 15배 높았다

가난할수록 고통받는 코로나 사태...미국인, 의료보험 입장 변화 없어

 

519(현지시간) 현재 전 세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의 31%, 사망자의 28%가 미국에서 발생했다. 미국은 지난해 말 중국 우한시에서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이후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코로나19의 가장 큰 피해국이다.

 

미국 중에서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지역은 뉴욕이다. 뉴욕주는 19일 오후 현재 352천여 명의 확진자, 22천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세계의 부자들과 가난한 이민자들이 모두 거주하는 뉴욕은 코로나19 사태의 참혹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뉴욕 보건부가 지난 18일 발표한 코로나19 관련 통계자료에 따르면, 뉴욕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의 코로나19 사망률이 가장 부유한 동네의 사망률에 비해 15배 높게 나타났다. 뉴욕은 지역별 우편번호로 분류한 뒤 코로나19 환자와 사망자의 숫자를 집계해 이같은 통계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률이 가장 높은 지역은 브루클린 인근의 스타렛 시티(Starrett City) 지역으로 나타났다. 인구 구성 비율이 흑인 40% 이상, 라틴계나 히스패닉계 25%가 넘는 이 지역에서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주민 10만명 당 444명으로 나타났다. 반면 사망자 수가 가장 적은 지역은 뉴욕 맨해튼의 부유한 백인 거주지역인 그래머시 파크(Gramercy Park)로 주민 10만 명 당 31명으로 조사됐다.

 

마크 레빈 시의회 보건위원장은 19<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정말 가슴 아픈 통계로 이 도시의 도덕적 양심을 일깨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극적인 불평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번 통계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가난 + 주거 환경 + 기저질환 등 맞물려 사망률 높아져...미국 전체에서 흑인의 사망률이 다른 인종에 비해 2배 높아 이처럼 빈부 격차에 따라 코로나19 사망율이 크게 영향을 받는 이유는 크게 3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가난한 흑인과 라틴계 주민들은 원격 근무가 불가능한 저임금 노동자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노출될 확률이 높았다.

둘째, 이들은 집세 때문에 한 집에 여러 가구가 세들어 사는 경우가 많아서 집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환경이었다.

셋째, 가난한 이들은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이들이 많기 때문에 평소에도 아파도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지 않아 기저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나타나도 병원비 걱정 때문에 빨리 병원을 찾지 않아 병을 키운 이들도 많았다.

 

가난한 이들이 부자들에 비해 코로나19로 피해가 크다는 것은 미국 전역에서 확인되는 사실이다. 지난 12일 발표된 APM리서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인구 10만 명당 코로나19 사망자 수를 살펴보면 흑인계가 43명으로 다른 인종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라틴계는 19, 아시아계는 18, 백인계는 17명으로 조사됐다. 흑인들의 사망률이 2위를 차지한 라틴계에 비해서도 2배 넘게 높게 나타난 이유는 상대적으로 고연령자가 많고, 기저질환자의 비율도 높게 나타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미국민들의 삶이 크게 영향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절반 가까운 미국인들의 전국민 의료보험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는 등 인식이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의 전국민 의료보험에 대한 인식은 바뀌지 않았다 민주주의 기금과 UCLA 네이션스케이프 프로젝트의 공동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51%가 전국민에게 정부가 운영하는 의료보험 혜택이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유에스에이 투데이>19일 보도했다. 이는 지난 2월 조사 때보다 전국민 의료보험에 동의하는 응답자가 오히려 1% 줄어든 결과로, 코로나 사태가 의료보험에 대한 인식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저소득층을 위한 보험 가입 지원에는 응답자의 63%가 동의한다고 답했으며, 이 역시 지난 2월에 비해 소폭(2% 포인트) 하락한 결과다. 이에 비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실업 등 단기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 대한 식량 원조 등 구호정책에 대해선 응답자의 절대 다수인 79%가 찬성했다.

 

결과적으로 코로나19 사태로 당장 눈에 보이는 경제적 어려움을 완화하는 정책에는 절대 다수의 미국민들이 공감하고 있지만, 의료보험 체계 등 구조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변화시키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조사 결과는 위에서 지적된 것처럼 중산층 이상의 계층은 상대적으로 코로나19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석 가능하다.

 

민주주의 기금 연구책임자인 로버트 그리핀은 "코로나 사태로 미국인들의 정책에 대한 지지 입장이 하루 아침에 변화하지는 않았다""아직 의료보험의 변화에 대해 결론을 내리게 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기금+UCLA 네이션스케이프 프로젝트는 미국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로, 이번 조사는 429일부터 56일 사이에 실시되었으며, 6366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고 밝혔다. /프레시안 전홍기혜 특파원

 

전직 조선일보 기자부터 탈북민까지... 북한 가짜뉴스의 진원지

[북한 가짜뉴스 현황 ] 김정은 얼굴 드러내자 '짝퉁 김정은' 주장도 제기

활짝 웃는 김정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절(5·1)이었던 지난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검은 인민복 차림의 김 위원장이 공장을 둘러보며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부터 52일 북한 매체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을 비롯해 해외언론은 '김정은 사망설'로 들끓었다. 이후 북한 왜곡 보도나 가짜뉴스를 향한 비판과 자성이 필요하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북한의 대외선전매체 <메아리>조차 지난 5'남한에 가짜뉴스가 성행'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북한과 관련한 확인되지 않은 소문은 여전히 떠돌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서다. 북한 이탈주민부터 <조선일보> 전직 기자까지. 이들은 자신의 '소식통'을 빌어 여전히 북한정보를 전하고 있다. 짝퉁 김 위원장이 진짜 김 위원장을 대신해 활동한다는 주장, 현송월 노동당 부부장이 김 위원장의 아이를 낳았다는 말도 나왔다.

 

<오마이뉴스>는 최소 8, 최대 37만의 구독자를 보유한 세 명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들이 어떻게 북한 뉴스를 다루고 있는지 정리했다.

 

[문갑식의 진짜TV] 짝퉁 김정은이 등장했다?

문갑식의 진짜TV 문갑식의 진짜TV 갈무리 문갑식

 

'북한-중국 압록강 인근에서 교전, 중국군 800명 사망설!'

'김정은 '가게무샤' 평양으로 갔다?'

 

'문갑식의 진짜TV' 채널에 나온 북한 관련 소식이다. 문갑식 전 <조선일보> 기자는 <월간조선> 편집장을 지낸 인물로, 현재 보수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다. 구독자는 19일 기준으로 205000명에 달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그는 김 위원장을 둘러싼 여러 의혹을 제기했다. 김 위원장의 '가게무샤(대역)'가 등장했다는 것.

 

문 전 기자는 "북한에서 최신정보를 입수했다"라면서 "중국에서 김정은과 비슷하게 생긴 가게무샤, 짝퉁 김정은이 평양으로 갔다"라고 주장했다.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날 경우를 대비해 중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문 전 기자는 다시 '최신 소식통'을 언급했다.

 

그는 "김 위원장의 유고가 중국 대외연락부를 통해 나오고 중국은 북한을 어떻게 점령할지를 논의하러 (북한에) 갔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중국이 "북한의 나진-선봉 지구를 (중국의) 영토로 만들려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48000명이 본 이 영상에 문 전 기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최신 소식통'의 말 뿐이다. 20여 분의 영상은 문 전 기자의 주장으로만 가득차 있다. 지난 2일 김 위원장이 활동을 시작했지만, 이 영상은 버젓이 유튜브에 남아있다.

 

'북한-중국 압록강 인근에서 교전, 중국군 800명 사망설!'은 김 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낸 이후 나왔다. 대만의 <자유시보>를 인용한 문 전 기자는 북한과 중국이 압록강에서 총격전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짜인지 거짓인지 모르지만"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중국 시진핑 주석이 화를 내 중국 동북지역의 30만 병력에 동원령을 내렸다"라고 했다. 이 역시 동북지방 주민에게 받은 정보였다.

 

중국은 북한에 의료진을 파견했다는 데에 인정한 적이 없지만, 문 전 기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시보>를 인용해 '북한 파견설'에 기반한 주장을 폈다. 그는 매체의 주장을 반박하지도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해외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이 영상은 13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강명도TV] 현송월이 김정은의 아이 낳았다?

강명도TV-자유조선 강명도TV-자유조선 갈무리 강명도

 

'단독보도/현송월이 낳은 김정은의 아들, 누가 키울까?'

'김정은 4월 잠적과 5월 잠적이 다른 이유'

 

37만의 구독자를 보유한 '강명도TV-자유조선'은 김 위원장과 둘러싼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북한 이탈주민인 그는 북한 강성산 총리의 사위라고 주장하는 인사다. 19945월 탈북해 경민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북한 인민무력부 보위대학 보위전문 연구실장을 지낸 것으로 알려진 그는 유튜브를 통해 북한, 특히 김정은 위원장과 관련한 일방적인 주장을 펴고 있다.

 

그가 2개월 전 올린 '단독보도/현송월이 낳은 김정은의 아들, 누가 키울까?' 영상은 북한 현송월 노동당 부부장이 김 위원장의 아이를 낳았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강 교수는 "김정은의 사생활을 잘 알만한 사람에게 받은 정보"라면서 "김정은과 현송월 사이에 낳은 아들을 김여정이 돌보고 있다"라고 했다. 북한에서도 최고 권력자의 사생활을 세밀하게 알 수 있는 이는 거의 없지만, 김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확신에 차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도 김여정의 집에 가정교사, 집사, 유모가 있어 이들이 아이를 돌보고 있다"라고 부연했다. 이 영상의 조회수는 208만 회에 달한다.

 

이후 김정은 위원장 '건강 이상설'에 동조했던 김 교수는 김 위원장이 등장하자 '가짜 김정은'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18일 업데이트한 '김정은 4월 잠적과 5월 잠적이 다른 이유'의 영상을 통해서다. 김 교수는 지난 5월에 모습을 드러낸 김 위원장의 몸이 '더 뚱뚱해지고 이빨이 삭아서 까매졌다'라는 걸 근거로 삼았다.

 

그는 재차 "김정은이 (지난 2) 참석한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은 가짜"라면서 "김정은 역시 가짜일 수 있다"라고 했다. 이후 김 위원장이 20여일 넘게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 역시 '가짜 김정은'을 통해 북한이 이른바 '새판짜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상이 공개된 지 14시간 만에 11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안찬일TV] 직접 본 듯 확신에 찬 모습으로 이야기

안찬일TV 안찬일TV 갈무리 안찬일

 

'특집방송/북한 2인자 최룡해, 잠적인가? 숙청인가?'

'탑시크릿/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리대사 조성길 행적'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WINK) 소장은 탈북 1호 박사로 알려진 인사다. 그는 1979년 탈북해 1981년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당시 현대건설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 이후 그는 "이명박 사장의 조언으로 1984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라고 밝혔고, 1991년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 특채로 들어갔다.

 

여러 경력을 바탕으로 2010년 세계북한연구센터를 설립한 이후 최근 유튜브에서 '안찬일TV' 채널을 운영하며 북한과 관련한 소식을 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의 채널은 19일 기준으로 87600명의 구독자가 시청하고 있다.

 

안 소장은 3일 전 '조성길 전 주 이탈리아 북한 대사 대리'와 관련한 영상을 올렸다. 201811월 조성길 대사대리 부부가 잠적한 이후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라는 게 영상의 주된 내용이다. 그의 주장은 대부분 인적 정보를 통해 수집한 휴민트(HUMINT)에 기대있다.

 

안 소장은 "조성길은 이탈리아에서 김정은의 개인용품 사치품 수입하는 일을 도맡았다"라면서 "조성길이 북한의 이런 일을 하면서 북한의 흥망을 읽고 탈북했다"라고 강조했다. 눈앞에서 본 것처럼 "조성길 대사대리가 탈북한 날, 부부싸움을 했다"라고도 했다. 조성길 대사대리는 현재까지 행적이 묘연한 인물로 그의 탈북이유 역시 확인된 바 없다. 하지만 안 소장은 자신의 '휴민트'가 전해준 소식을 확신했다. 이 영상은 조회 수 17만을 달성했다.

 

, 안 소장은 5일 전 특집방송으로 '북한 2인자 최룡해, 잠적인가? 숙청인가?'라는 주제의 영상을 올렸다. 안 소장은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김 위원장이 건재함을 과시한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며 '잠적' 혹은 '숙청'의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최룡해와 김여정 사이에 심각한 권력투쟁의 의혹이 있다"라면서 "최룡해의 권력은 김여정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라고 근거를 대지 않은 채 일방적인 주장을 폈다.

 

언론 통해 인지도 쌓고 유튜브 활동 다시 언론이 인용하고

북한 관련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을 편 이들은 공통점은 자신의 '소식통' 을 확신한다는 것이다. 가짜뉴스로 판명된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결국 '소식통'을 근거로 삼고 이것이 북한 왜곡보도의 이유라고 지적받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소식통'을 강조했다.

 

앞서 이들은 언론에 '북한 전문가'로 등장해 북한을 분석해왔다. 이후 인지도를 쌓아 유튜브에 진출해 확인되지 않는 북한 소식을 확신에 차서 전했다. 언론은 다시 이들이 유튜브에서 한 주장을 보도한다. 북한 가짜뉴스의 생성·전파 방식이다.

 

안찬일 소장은 현재 미국의회의 출자, 투자로 만들어진 자유아시아방송(RFA)'안찬일 박사의 주간 진단' 코너를 맡아 매주 북한과 관련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지난해(2019)는 보수 종편인 채널A<뉴스TOP10>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다. 20195,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종편 패널 분석 보고서'를 통해 안찬일 소장이 총 29회 채널A에 출연했다고 밝혔다. 최다 출연자 4위다.

 

강명도 교수의 발언 역시 종종 <뉴데일리> 등 보수 매체의 보도에 실린다. 지난 41일 매체는 강 교수의 말을 빌려 "북한이 4.15 김일성 생일 때 중성자탄 실험을 했다"라고 전했다. 421<매일경제>"김정은, 심장·발목수술 함께 받았다"라는 강 교수의 발언을 보도했다. 소식통이라는 ''에 기댄 일방적인 주장을 언론이 사실확인을 하지 않은 채 실어주고 있는 셈이다.

 

자신의 주장이 가짜뉴스로 판명받았는데도 반성·사과 없이 활동을 이어가는 경우도 있다. 문갑식 전 <조선일보> 기자는 지난 4월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제공할 마스크를 하루 100만 장씩 만들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후 통일부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아래 방통심의위) 문 전 기자가 '사실과 다른 영상을 배포해 국민 불안감을 증폭했다'라고 심의 민원을 요청했다.

 

방통심의위는 문 전 기자의 유튜브에 '시정요구'(접속차단)를 결정했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문 전 기자는 지난 8일 방통심의위에 '영상을 자진 삭제할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19일 현재 이 영상은 그의 유튜브에 남아있다. 문 전 기자의 해명이나 사과도 없다

오마이뉴스/ 신나리

 

조선시대 임금 수라상 단골메뉴는 개고기찜

사진1. 혜화문(동소문).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 혜화문 바로 앞에 민가가 있고 그 앞에 흰둥개가 묶여있다. 조선시대 개는 흔한 가축이자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육류였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임금의 수라에는 늘 산해진미가 올라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임금도 국상 중에는 육식을 경계했다. 단명한 조선 제12대 인종(재위 1544~1545·1515~1545)은 그 정도가 심했다. 율곡 이이(1536~1584)가 쓴 <석담일기>"(인종이) 지나치게 채식을 고집해 피부로 뼈가 드러날 만큼 야위었다.

 

중국 사신이 왕의 몰골을 보고 육식을 해야 한다고 권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인종은 특히 아버지의 병간호에 전념하느라 건강을 크게 해쳤다. 중종실록은 "20여일동안 수라를 들지 않았고 물도 5일간 입에 대지 않았다"고 적고있다. 인종은 아버지가 승하한지 5일뒤인 1544년 음력 1120일 즉위해 결국 이듬해 음력 71일 죽었다. 반면 주색을 즐겼던 조선 제9대 성종(재위 14691494·1457~1494)은 국상동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다시 고기를 입에 댔다. 그러면서 "채식은 과연 어려운 일"이라며 "나는 고기를 먹겠다. 여색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으로 장례에 정성을 다하면 되지 않는가"라고 변명했다고 <석담일기>는 전한다.

 

먹는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다. 음식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다를 바 없겠지만 그 문화는 시대별, 지역별 천차만별이다. 세태를 이해하려면 음식문화를 알아야 한다. 다양한 고전은 식문화도 놓치지 않는다.

 

조선사람들은 소고기에 열광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즐겼던 음식이 있다. 바로 개고기였다. 조선시대 개고기는 모든 계층에서 즐겼다. 궁중 수라상의 단골메뉴에 구증(狗烝·개찜)이 들어가 있다. 퇴계 이황(15011570)은 스스로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저술한 <활인심방>에서 무술주(戊戌酒)8대 보양음식으로 꼽았다. 무술주는 개를 통째로 여러 한약재와 함께 고아낸 개소주다. 17세기 양반가 조리법을 설명한 <음식디미방>에는 순대, 개장꼬지 누르미, 개장국 누르미, 개장찜 등 다양한 요리법과 함께 누렁개 삶는 법, 개장 고는 법 등이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향약집성방>(1433), <본초강목>(1578), <동의보감>(1611), <산림경제>(1715), <해동농서>(1799), <규합총서>(1815), <임원십육지>(1827), <동국세시기>(1849) 등 무수한 책에서 개요리를 다룬다.

 

중종 때 간신인 김안로는 개고기를 뇌물로 받았다. 1534(중종 29) 실록은 "김안로는 개고기를 좋아하니 이팽수가 늘 크고 살진 개를 골라 사다가 바쳤다. 어느날 갑자기 이팽수가 청반(淸班·승정원 주서)에 올랐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가장주서(家獐注書·개고기 주서)라고 불렀다"고 소개한다.

 

사실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개고기를 선호하지 않았다. 불교의 영향이었다. 불교는 살생 자체를 금지하지만 환생설화 등에 따라 개는 식용을 극도로 금기시한다. 개 식용은 조선에 와서 비로소 보편화된다. 개고기 애호가였던 공자의 영향이다. 논어엔 "제사에는 반드시 개고기를 쓴다"고 기록돼 있다. 성리학을 숭배하면서 유학자들도 공자를 따라 개고기에 빠져든다.

 

개고기 중에서는 누런 개가 우리몸을 보호하며 검은 것은 누런 개에 못 미친다고 실학자 홍만선(16431715)<산림경제>는 전한다. <산림경제>`호견(糊犬)`이라는 독특한 요리법도 소개한다. 개 한 마리를 잡아 깨끗이 씻어 뼈를 발라내고 소금과 술, 식초, 양념을 적당히 쳐 고루 섞은 뒤 동아(박과의 식물) 속에 넣는다. 김이 새지 않게 동아를 잘 밀봉해 겨를 태운 불 속에 하루를 재우면 된다고 설명한다.

 

개는 그저 식용일 뿐이던 그런 시대에 개를 애지중지 키우던 사람도 있었다. 조선 말기의 문신 이유원(18141888)<임하필기>는 판서 조상진의 유별난 개사랑을 언급한다. <임하필기>에 의하면 조상진은 개가 병이 나자 대궐의 의원을 불렀다. 조상진의 부름을 받고 온 의원은 개를 보고 기가 막혔다. 그는 "대감, 저는 어의요"라고 하자 조상진은 공손히 의원을 돌려보냈다. 그 개가 통통하게 살이 찌자 조상진은 주위에 자랑하고 다녔다. 누군가 그런 그를 두고 "복날이 머지않았으니 안타깝소"라고 농담을 걸자 조상진은 "늙은이가 아끼는 것에 대해 무슨 말이 그렇게 경박한가"라고 버럭 화를 냈다.

 

육류 중에서는 맛은 사슴류가 제일 탁월하다. 캐나다인들은 무스(큰 사슴) 고기를 좋아하는 것을 잘알려져 있다. <산림경제>도 여러 고기 중 사슴고기를 최고로 쳤다. 사슴은 신령한 풀을 먹어 다른 육류와는 다르다고 했다. 사슴고기를 요리하는 방법은 구이와 곰탕, , 포 등 여느 육류의 조리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슴의 혀와 꼬리는 곰탕 재료로, 꼬리는 주로 절임용으로 썼다.

 

곤충도 훌륭한 음식이었다. 실학자 이익(16811763)<성호사설>"참새, 종달새와 함께 매미와 벌을 임금에게 진상하며 개미알과 메뚜기 새끼 등은 잔칫상에 올린다. 이 중 개미집 속에 흰 좁쌀처럼 생긴 개미알은 매우 작아서 모으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어 "메뚜기는 떼를 지어 날아다니며 벼싹을 파먹는데 우리나라 메뚜기는 벼의 싹과 잎을 파먹기는 해도 재앙은 되지 않으니 이상한 일"이라고 했다.

 

실학자 이덕무(1741~1793)<앙엽기>는 아몬드가 18세기 조선시대에 존재했다고 말한다. 아몬드는 밤이나 도토리 같은 견과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복숭아나 자두 같은 핵과에 속한다. 다음은 <앙엽기>의 한 대목이다. "교서관(숭의여대 자리에 있던 인쇄 기관) 숙직실에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동쪽 담장 아래에 심어져 있었다. 그 복숭아나무에 납작한 열매가 맺었는데 `구수시`, 우리말로는 `또애감`이다. 사람들이 `감복숭아`라고만 할 뿐 다른 나라에서 진품으로 여기는 줄은 알지 못한다. 당나라 단성식이 지은 `유양잡조`에 따르면 `편도는 파사국(페르시아)이 원산지다. 파담수(婆淡樹) 열매라고 부르며 복숭아와 비슷하나 형상이 납작하다. 서역의 여러 나라가 모두 편도를 보배로 여긴다`고 돼 있다." 당시 우리나라에 전래는 됐지만 귀한 대접은 받지 못했던 모양이다.

 

오늘날 흔해진 땅콩은 아몬드보다 늦게 들어왔다. 이덕무는 땅콩을 중국에서 처음 먹어보고 참깨 맛이 난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앙엽기>의 내용이다.

 

"낙화생은 형체가 누에 같으면서 몸뚱이가 옹크려져 있다. 허리는 묶은 듯이 오목하고 빛깔은 말린 생강 같다. (중략) 알맹이는 번데기 같으며 자색 꺼풀이 감싸고 있으며 꺼풀을 벗기면 말갛게 희고 맛은 참깨 같다. (중략) 정조 2(1778) 내가 연경에 갔다가 이조원(청나라 문인)의 종제 이기원을 만나서 그것을 심고 기르는 법을 자세히 들었다."

매일경제 배한철 기자

 

정의연과 윤미향, 그를 바라보는 복잡한 시선들

[아침신문솎아보기] 한겨레 어떤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지킬 자리인가한국일보 “34개 단체 할머니 귀닫고 윤미향지지조선 할머니 아니었다면 들춰볼 엄두도 못내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이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기되는 회계오류 문제뿐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을 위해서다. 윤 당선인이 지난 19일 일본군 위안부피해자인 이용수씨를 찾아 용서를 구했지만 이씨는 윤 당선인을 용서하지 않았다. 이씨는 화해가 아닌 법의 판단을 말했다. 오랫동안 투쟁한 피해자의 상처는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운동방식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하고, ‘윤미향식 운동의 한계를 드러냈다.

 

박찬수 한겨레 선임논설위원의 21일자 칼럼 “2009년 최열, 2020년 윤미향을 보면 박 위원은 20094월 최열 환경재단 대표를 인터뷰했다. 환경운동연합 후원금 횡령 혐의로 검찰이 그를 불구속 기소한 직후였다. 빼돌린 돈을 딸 유학비용으로 썼다는 보도가 있었다고 전했다. 당시 최 대표는 초기에 건물을 조성할 때 자금을 모자라 사비로 넣었다가 나중에 기부금에서 돌려받았다며 당시의 관행을 말했고, 그럼에도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고 전했다.

 

박 위원은 한국에서 환경운동이 이만큼 뿌리내린 게 최열 대표의 헌신적 노력 덕분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면서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을 둘러싼 의혹을 보면서 그 시절 마주했던 당혹스러운 표정의 최열 대표를 떠올린다고 했다. “열악한 시민운동 환경과 활동가들의 헌신, 그 과정에서 지나쳐버리는 회계규정, 시민운동을 싸잡아 매도하는 보수 언론의 정치 공세와 그래도 대의를 훼손하지 말라는 항변까지, 시민운동이 처한 힘겨운 현실이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어서다.

21일자 한겨레 박찬수 칼럼

 

공익을 붙들고 온 시민운동이 몇몇 인사의 성과물로 축소돼 그들 출세에 이용된 현실이 이 사태의 배경이 됐다는 지적이다. 박 위원은 윤 전 이사장을 비례대표로 뽑은 건 30년에 걸친 개인의 열정과 노력도 크지만 정의기억연대로 대표되는 위안부 인권운동의 빛나는 업적을 평가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그 대의에 비춰보면,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어떤 부담을 감수하고라도 지켜야 할 자리일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수구와 극우세력, 일본의 우익까지 나서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왜곡 축소하고 시민운동과 피해자들의 증언까지 훼손당하고 있다. 이런 판국에 비례대표 국회의원 하나를 지키는 게 과연 가치가 있는 일인지, 또 그렇게 얻은 자리에서 실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진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한국일보 칼럼에선 박 위원 칼럼보다 냉정하게 현 사태를 비판적으로 진단했다.

 

진 전 교수는 기억을 지워버린 기억의 연대란 글에서 활동가 이상형에 들어맞는 피해자들을 선별해 그들을 순결한 이미지로 만들고 그 틀을 거부하는 이들을 배제하는 형식의 운동방식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주장했다. 일본군 위안부운동 진영 내부에서도 오래전부터 윤 당선인이 모금에 집착했고, 피해자들은 자신들을 앞세워 모금에 열을 올리지 말라는 소송까지 냈다.

 

그는 칼럼에서 남산 기억의 터조형물에 새겨진 247명 위안부 피해자 명단에 심미자 할머니 이름을 빠져있다할머니는 정대협을 향해 당신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역사의 무대에 앵벌이로 팔아 배를 불려온 악당이라 말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2008년 돌아가신 할머니가 8년 후 조형물이 세워질 것을 예견하고 내 이름을 빼달라고 했을 리는 만무할 터라고 덧붙였다.

 

진 전 교수는 황당한 것은 한국여성단체연합 산하 34개 여성단체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아니라 외려 횡령과 배임 의혹을 받는 윤미향을 지지하고 나섰다는 사실이라며 이들이 할머니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윤미향을 옹호한 것은 그들 또한 윤미향 부류의 운동권 서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21일자 한국일보 만평

 

문제의 발단이 윤 당선인의 국회 진출인 만큼 민주당에도 책임있는 태도가 요구된다. 한국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지난 30년 수요집회 성과가 물거품이 되지 않으려면 민주당은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진퇴 문제도 윤 당선인에게만 맡겨 둬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역시 윤 당선인의 국회 진출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다.

 

그간 순결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소녀상 이미지에 안 맞는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배제되고 있다는 식의 비판은 곧바로 일제 옹호 주장으로 비난받다 배제됐다.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란 이름에 걸맞지 않게 정신대의 또 다른 피해자인 강제동원 피해자를 철저하게 외면해왔다.

 

[관련기사 : ‘소녀상에 갇힌 위안부를 꺼내오는 일]

[관련기사 : 정신대는 위안부와 같은가]

21일자 경향신문 사회면 사진기사

 

그렇게 야박하게(?) 일본군 위안부피해자의 기억을 근거로 싸우던 이들이 이제와 피해자가 나이 들어 기억이 오락가락해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을 꺼냈다. 이날 한국일보 보도를 보면 피해자 이씨는 자신을 배신당한 자’, 윤 당선인을 배신자로 표현했다. ‘기억에 바탕을 둔 정의는 힘을 잃어버린 모습이다.

 

정의기억연대를 감쌀 게 아니라 곪아 터졌어야 할 문제로써 사안을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창균 조선일보 논설주간은 위안부 운동 살리는 건 비호가 아니라 손절이다란 칼럼에서 윤미향씨가 국회의원 배지를 욕심 내다가 사달이 났다고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정반대로 봐야 한다. 윤씨가 그대로 위안부 운동을 하면서 국고와 기부금을 엉뚱하게 관리해 나갔다면 일이 더 커졌을 가능성도 있다. 하마터면 위안부 진상 규명이 회복 불능의 치명상을 입을 뻔했다고 했다.

 

김 주간은 허술한 차원을 넘어 황당하기까지 한 윤씨의 자기관리,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당당함, 그럼에도 그를 지키겠다는 여권의 결의는 모두 한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199228세 나이로 정대협에 몸을 담고 간사, 사무국장, 사무총장, 상임대표를 역임한 뒤, 그 후신인 정의연 이사장까지 지낸 그의 경력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윤씨는 자신이 위안부 진상 규명 30년 역사를 상징한다는 자신감 때문에 감히 누가 내 뒤를 캐랴라고 방심했을 것이라며 실제 할머니들을 위해 모았다는 돈이 어디 쓰였는지 모르겠다는 문제제기가 위안부 할머니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누구도 윤씨와 관련 단체를 들춰 볼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이번 사태로 훼손당한 대의를 상기시켰다. 이날 1면 톱기사 극우세력, 윤미향 논란 악용해 역사 뒤집기’”에서 일본군 위안부와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운동을 공격하는 국내외 세력을 비판했다. 사설 나눔의집, 뼈 깎는 자정 의지로 초심 회복해야에선 피해자들을 이용해 돈벌이(요양원)에 나선 사태를 비판했고, 다른 사설 “‘가해자일본이 무슨 염치로 끼어드나에서 식민지배와 전쟁범죄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비판했다.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

 

“한명숙 9억 수수는 검찰과 제가 만든 시나리오”…한만호 육성 공개

뉴스타파가 공개한 한만호 씨 비망록으로 한명숙 전 총리 검찰수사에 대한 문제제기와 재조사, 또 재심 요구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도대체 진실이 뭔지 관심이 증폭되고 있죠. 당시 검찰 수사팀은 "비망록은 허위 주장이고, 재판 과정에서 증거로 제출돼 사법적 판단을 받은 문건이다", "근거 없는 의혹 제기다".. 이렇게 유감을 표했습니다.

 

KBS 통합뉴스룸은 이 사안의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2011년 한만호 씨가 출소한 직후 당시 KBS 취재팀이 한 씨를 만나 직접 인터뷰한 영상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인터뷰를 검토한 결과 뉴스타파가 공개한 비망록과 비슷한 취지의 내용이 있었습니다저희는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또 다른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9시 뉴스를 통해 이 인터뷰 내용을 보도하기로 했습니다.

 

한만호 씨는 당시 KBS와의 인터뷰에서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9억 수수는 검찰과 자신이 함께 만든 시나리오에 따른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리포트]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사건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11613. KBS한만호 씨를 한 씨 부모의 자택에서 만났습니다. 한 씨가 다른 사건으로 복역한 뒤 출소한 날이었습니다. 한 씨는 한 전 총리 관련 진술 압박이 자신의 회사 감사인 남 모 씨로부터 시작됐다고 말했습니다.

 

[한만호 씨 : "(남 씨가)아주 윗선에서 계획적으로 아주 윗선입니다. 협조해서 도움받으시고 아주 윗선에서 계획된, 계획적으로 진행된 수사입니다(라고 말했어요)."]

 

그리고는 자신의 검찰 진술이 허위였다는 재판 증언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저는 검찰에서 9억 원의 자금을 세 번에 걸쳐서 이렇게 조성을 했습니다라고 만 진술을 했고, 그 후로부터 만들어진 스토리는 검찰과 저희가 만든 시나리오예요."]

 

검찰이 애초 파악한 불법 정치자금 규모도 9억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 정치자금 5억으로 알고 있었어요. 5억이 아니라 9억입니다. 왜 그러냐면 나는 내가 조성한 9억에 대해 면피할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검찰은 5억이라고 하고 나는 9억이라고..."]

돈을 준 장소 등도 만들어냈다는 게 한 씨의 주장입니다.

 

["어떻게 얘기를 만들어낼 때 기억이 나질 않는 거야. (한 전 총리) 집으로 갔다는 게 최고 상책이야. 검찰에서도 집으로 갔다는 게 가장 거기 하지(낫지) 않겠습니까. 집으로 얘기가 되니까 쭉쭉 퍼즐 맞추듯 맞춰나간 거지..."]

그렇지만 언론에 관련 보도가 이어지면서 괴로웠다고 말합니다.

 

["저도 초반에는 기꺼이 협조를 같이 했으면서 편의를 누렸던 게 사실이에요. 그게 어느 시간이 지나며 자꾸 언론에 나오는 얘기가 내가 진술했던 내용이 아닌 다른 왜곡돼 갖고 나오다 보니까 제가 자꾸 쇼크를 먹게 된 거죠."]

 

검찰 진술이 조작됐다는 한 씨의 주장은 1심에선 받아들여졌지만 항소심에선 기각됐고, 한 씨도 위증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한 총리 님에 대해선 나는 평생 죄인으로 석고대죄할 거예요. 총리 님한텐 찾아가고 싶어도 찾아가면 또 어쩌고저쩌고 얘기하다 (말이 나올까 봐) 또 가지도 못 하고..."]

 

한 씨는 지난 2017년 재출소한 뒤 이듬해 지병으로 세상을 떴습니다.

KBS 뉴스 방준원입니다.

 

"KAL858 추정 동체"…정부 '현지조사' 나선다

 

MBC는 올해 초부터 1987, 승객과 승무원 115명을 태우고 서울로 향하던 중 미얀마 상공에서 추락한 대한 항공 858, 추정 동체를 미얀마 안다만 해저에서 발견했다고 연속 보도했습니다.

계속된 촬영 시도에도 '추정 동체'로 표현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반복해서 보도해 드린 건 정부가 직접 나서주길 촉구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마침내 미얀마 현지, 조사에 나서기로 결정 했습니다. 먼저, 임명현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리포트 미얀마 안다만 해저에서 대구MBC 취재팀이 3차례에 걸쳐 촬영한 KAL858기 추정 동체. 가장 최근 촬영에서 비행기 엔진 2개가 확인됐고, 이 중 1개는 날개에 붙어있는 등 비교적 온전한 모양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KAL858기가 공중에서 완전 폭파된 게 아니라 긴급 동체착륙을 했을 가능성과 함께 유품·유해 수색 필요성이 제기됐습니다.

 

[설훈/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27)] "민관 합동 조사단을 구성해서 동체 확인 및 유해 수색에 나서야 합니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정부 차원에서 미얀마 현지 조사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고, 양국 정부가 협의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정부가 미얀마 측에 제안한 방안은 3가지입니다. 한국과 미얀마의 공동 조사 방안과 한국 정부의 단독 조사 방안, 또 미얀마 정부가 조사하고 한국은 인력과 장비를 지원하는 방법입니다. 정부 관계자는 "어느 방안이든 미얀마의 협조 속에 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라며 "인도주의 원칙을 최우선으로 두고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미얀마 측은 조사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내부 협의를 거쳐 신속히 입장을 정하겠다'고 최근 답해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33년 간 유품 한 점 찾지 못한 가족들은 하루라도 빨리 현지조사, 나아가 인양까지 이뤄지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김호순/KAL858 탑승희생자 유족회 대표] "민관 합동 수색단을 구성을 해가지고 인양을 하는 게, 저희들이 우리 858 가족들이 바라는 일입니다. 간절히 바라는 일입니다."

 

문 대통령은 한국과 미얀마 수교 45주년을 맞아 최근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과 서한을 교환했고, 양국 외교장관도 전화통화를 가졌습니다. 이같은 양국의 우호관계가 과거사 해결의 진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청와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MBC뉴스 임명현입니다. (영상취재: 송록필 정인학 / 영상편집: 김민호)

 

[연관기사]

1. [단독] "KAL858 추정 동체"정부 '현지조사' 나선다

2. '판도라의 상자' 열리나수색 작업의 핵심은?

 

죽였다는 김현희가 죽은 자의 가족을 명예훼손했다

KAL858기 희생자가족·활동가, 김현희 31년 만에 형사고소 우리는 종북좌파가 아니다지속적으로 매도, 진상규명 방해

1987년 승객·승무원 115명을 태운 대한항공 KAL858기 실종 사건의 피해자 가족과 진상규명 활동을 해온 활동가들이 김현희씨를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형사고소했다. 스스로를 폭파주범이라고 자백한 김씨를 고소한 것은 사건 발생 31년 만에 처음이다.

 

KAL858기 희생자 가족회 대표자인 김호순 회장과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대책본부의 신성국 총괄팀장(신부) 9명의 피해자 가족과 활동가는 23일 김씨에 대한 고소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이들은 KAL858기 사건이 김현희의 폭파에 의해 발생했다는 국가안전기획부 발표가 객관적 증거 없이 김현희의 말에서 시작해 말로 끝났다며 이후 2001년경부터 진상규명과 함께 김현희와 가족의 면담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그러나 김씨는 가족의 요구에 일체 불응했을 뿐 아니라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11월 이후 국정원과 국정원 진실위원회의 15차례 면담조사 요청도 거부했다.

 

KAL858기 피해자 가족과 활동가들은 고소장에서 김현희씨가 이처럼 정부나 가족회·대책본부의 면담 요구는 모두 거절하면서도 종합편성채널 방송이나 인터넷 방송의 대담프로그램 등에 지속적으로 출연하여 가족회와 대책본부 활동가들을 친북좌파’, ‘종북좌파’, ‘종북세력’, ‘북한을 옹호하고 대변’, ‘이적행위’, ‘민족반역자들’, ‘국정원의 전위조직’, ‘조작설 선동등으로 매도해 왔다고 밝혔다.

 

가족과 활동가의 고소장에 따르면 실제로 김현희씨는 지난 14일과 5일 각각 조갑제닷컴과 유투브에 [조갑제-김현희 대담] 김현희, “나를 가짜로 모는 건 역사를 바꾸려는 범죄행위라는 제목의 대담 동영상에서 “2003년 좌파성향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 때는 또 정부 차원에서 국가기관, 방송사, 이런 뭐 천주교 신부들, 뭐 시민단체까지 완전히 연대해서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이런 가짜 만들기 몰이를 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그러니까 그런 친북성향 단체들이 (이 사건을 두고) 가짜다, 군사정권이 했다, 북한이 아니라는 식으로. 그런 사람들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진짜 온갖 자유와 진짜 풍요를 다 누리면서 북한을 옹호하는, 북한에 면죄부를 주려는 그런 행위를 하고 있잖아요? 그게 대한민국에 오히려 해를 끼치는, 그리고 한마디로 민족반역자들이에요라고도 비난했다.이를 두고 가족들과 활동가는 우리가 정부를 상대로 KAL858기 사건의 진상규명 등을 요구했을 뿐 국가기관이나 방송사와 연대해 활동한 적이 없었고, 객관적 사실관계와 다른 부분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을 뿐 가짜 만들기 몰이를 한 적이 없었다가족회와 대책회의가 친북성향 단체라며 이념적으로 지탄을 받는 단체로 매도했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우리를 비방할 목적으로 거짓 발언을 해 명예를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이밖에도 김현희씨는 지난해 1127VOA(미국의소리) 방송과 인터뷰 [KAL기 폭파 김현희 : “북한은 테러와 거짓의 나라테러지원국 재지정 환영”]에서 제가 아무리 진짜라고, 진실을 말해도 그들은 진실이 싫은 것 같습니다. 북한이 했다는 이 테러 진실이 싫고 북한을 이념적으로 옹호하고 싶은가 봅니다라고 주장했다.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KAL858기 가족회 및 진상규명 대책본부 관계자들이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김현희 씨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KAL858기 가족들은 순수한 진상규명의 요구 활동을 사회와 대중들로부터 이념적으로 지탄을 받는 행위로 매도했다우리를 비방할 목적으로 거짓 발언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씨가 지난 200810월 하순경 이동복에게 보낸 서신도 피해자 가족 등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고소장에 씌어있다. 이 서신에서 김씨는 대책본부를 조작의혹을 부풀리는 정치성향의 단체로 규정하여 여기에서 활동하는 고소인들이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갖고 대책본부를 만들어 활동하는 것으로 매도하고 고소인들을 국정원의 전위조직이라면서 국가정보원의 사주를 받은 시위와 선동 주도자들로 매도했다고 피해자 가족과 활동가들은 전했다.

 

가족들이 만나자고 할 땐 거부하고 종편에 나와 가족 비방가족들은 김현희씨가 종편에 나와서도 허위사실을 주장해 자신들과 활동가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썼다.

 

김씨는 지난 2014115일 종합편성채널인 채널A’정용관의 시사병법135‘KAL기 납치 김현희 정부서 날 가짜로 몰아”’라는 방송에 출연해 노무현 정부가 이 사건을 뒤집으려는 그런 가짜 공작을 주도적으로 했다20093월 국정원 자체조사에서 시인했다. (노무현 정권) 청와대, 국정원, 경찰, 방송지상파 3,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책위 다 함께 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특히 테러한 북한을 면죄부 주고 대한민국에 해를 끼치는 이적행위를 한 자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는 그런 진짜 의지로 사실 지금까지도 버티어 왔다“(KAL858) 대책위라는 곳은 한 7~8개 종북좌파 단체가 들어가 있습니다. 저를 가짜 만들어서 북한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완전히 종북세력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김현희씨가 허위사실을 적시해 희생자 가족들의 유대강화와 사건 규명 활동을 하고자 하는 업무를 방해해왔다고 가족회 등은 비판했다.KAL858기 희생자 가족회와 진상규명 대책본부는 23일 기자회견에서도 우리는 종북세력도 아니며, 북한을 옹호하고 대변하거나, 이적행위를 한 적이 없다. 민족반역자들도 아니며 조작설 선동을 한 적도 없다. 국정원의 전위조직이나 전위세력은 우리에게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이것이 그동안 김현희 주장에 대한 우리 가족회와 대책위의 명백한 대답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우리 가족회와 대책본부는 김현희는 적폐세력에 부화뇌동한 70년 수구세력의 대변자이자, 분단의 그림자에 몸을 숨긴 어둠의 세력의 끄나풀이라고 단호히 규정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걸음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며, 우리를 공격하고 매도해 진상규명 운동의 이미지를 훼손하려는 온갖 방해세력의 책동과 도전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언젠가 반드시 그의 입에서 이 사건의 진상을 실토하게 하는 우리의 바램이자 진상규명 운동의 한 단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고소대리인 채희준 변호사 김현희 끊임없이 가족 비방 진상규명 방해한편, 이날 희생자 가족과 활동가의 김현희 고소사건을 대리하고 있는 채희준 변호사는 2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김현희씨의 끊임없는 가족 명예훼손과 업무방해에 대한 책임을 묻고 진실 규명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해 31년만에 고소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198712월 김포공항에서 압송, 88년 안기부 회견, 91년 법정, 93년 강연, 95년 책 발간 회견, 2009년 회견하고 있는 김현희씨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연합뉴스

 

채 변호사는 노무현 정부 시기 국정원 진실위에서 김현희를 조사하지 않고도 과거 안기부 발표와 동일한 결론을 내는 바람에 가족들과 활동가들 모두 좌절했다이후 이명박근혜 정부 들어오면서 김현희가 종편, 인터넷방송, 조갑제 닷컴 등에서 더 열심히 떠들었다. 그 때문에 가족들은 더 고통스워했다고 털어놨다.

 

채 변호사는 이번 김현희씨에 대한 고소를 통해 진상규명에 한 발자국 다가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사건이라 김현희 입장에서는 허위가 아니라는 항변을 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가족회와 대책본부가 주장한 내용이 쟁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8년 가까이 가족회와 대책본부가 김현희씨를 만나고자 했으나 거부한 것을 두고 채 변호사는 가족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면담하자는 것이다. ‘당신 자백에 많은 의문을 갖고 있으니 의문에 대해 답을 해달라는 요구이다. 그런데 김현희는 자신을 가짜로 모는 사람과 얘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자신이 죽였다는 사람의 가족인데, 더욱 적극적으로 만나서 답변해줘야 하는데, 계속 피하는 것을 보니 더욱 더 가짜 같이 느껴진다고 말했다.이 사건의 진상규명에 대해 채 변호사는 가족회는 여전히 진상규명을 원하고 있다. 자신들의 가족이 죽었다는 것 자체가 불분명하며, 유품이나 시체조차 나오지 않았다. 비행기 동체라고 해서 몇가지 건져올렸는데, 국과수는 폭발흔적이 전혀 없었다고 발표했다. 그후 국정원이 그것마저 폐기했다고 평가했다. 채 변호사는 향후 대책본부에서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준비중이며, 안기부가 발표한 이른바 무지개공작문건의 미발표분을 공개하라는 소송이 현재 진행중인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현재 JTBCKBS가 심층취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현호 기자 chh@mediatoday.co.kr 2018.07.24.

 

KAL858 유족들 "조작주범 전두환 처벌하라"

17일 연희동 전씨 집 앞 기자회견... "국정원은 김현희 비호 중단하라"

KAL858기 대책위와 가족위가 17일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집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오마이뉴스 안홍기

 

지난 871129일 승객 115명과 함께 추락한 KAL858기 사건이 당시 정권에 의해 폭파 테러사건으로 조작됐다고 주장해온 유가족과 시민단체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을 조작 책임자로 지목하면서 이들의 사죄와 진실고백을 촉구했다.

 

KAL858 사고 유족들로 구성된 '대한항공 858기 가족회'(회장 차옥정)'KAL858기 사건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 10여명은 17일 오전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집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노 전 대통령 등 당시 관련자들에게 의혹 해명을 요구했다. 대책위원회는 "사고 이후 지금까지 19년간 안기부의 수사 발표가 모두 거짓임을 확인했다""(사건진상에 대한) 가족회와 대책위 질의에 대한 국정원의 답변도 모두 허위임이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전두환, 현지조사 시작하기도 전에 '북한테러' 언급"

대책위원회는 이번 사건과 직간접으로 관련된 21명의 인물 및 단체의 명단을 발표하고 연루 의혹에 대한 해명을 재차 주문했다. 가장 먼저 거론된 사람은 전두환 전 대통령. 대책위원회는 "전두환은 현지사고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인 122일부터 국무회의에서 '북한에 의한 테러 추락사건'으로 언급했다""전두환 정권의 안기부는 진상규명 요구를 묵살한 채 언론을 조종해 테러사건으로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노태우 전 대통령이 거론됐다. 대책위원회는 "노태우는 현지 수색이 진행 중인 13대 대선기간 선거연설에서 '북한테러'로 주장하며 사건의 진실을 호도했다"고 지적한 뒤 "유족들이 거부했음에도 일방적으로 김현희를 특별사면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졌다. 또 당시 김현희씨 사면을 발표했던 최병렬 공보처 장관과 안무혁 부장, 이상연 국내담당 차장, 정형근 수사담당 차장, 박철언 특별보좌관 등 당시 안기부 주요 책임자 등이 조작 책임자로 지목됐다.

 

이어 당시 김현희씨 기소 및 재판과 관련된 이상형(김현희 담당 검사), 김기춘(검찰총장), 배석(대법관), 이회창(대법관), 김상원(대법관), 김주환(대법관)을 비롯 당시 유엔 안보리 회의에 참석했던 최광수 외무부 장관과 김씨 신병 인도를 맡았던 박수길 당시 외무부 차관보 등의 이름도 언급됐다.

 

조갑제 당시 <월간조선> 기자와 <조선일보>도 도마에 올랐다. 대책위원회는 이들이 "사고 이후 해마다 KAL기 사건 관련 보도를 통해 사건을 왜곡하고 관련 의혹을 감추는데 일조했다"고 비난했다. 수사자료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검찰과 대한항공, 김현희씨 등도 연루자 명단에 올랐다

 

대책위는 "국정원이 아직도 핵심 당사자인 김현희를 보호하고 있다"면서 명단에 포함된 이들의 진실고백과 사죄 검찰의 수사기록 일체 공개 국정원의 김현희 비호 중단과 진상규명 협조 등을 촉구했다.

 

"박철언, 사건조작을 기획한 책임자"

KAL858가족위와 대책위가 "박철언이 조작을 기획한 주범"이라며 제시한 882월 박철언 당시 안기부 특보가 김현희와 함께 찍은 사진. 오마이뉴스 안홍기

 

대책위는 사건 직후인 지난 882월 박철언 당시 안기부장 특별보좌관이 김현희씨와 함께 찍은 사진을 들어보이며 "범죄자가 어떻게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안기부장 특보 사무실에서 기념촬영을 할 수 있느냐, 박철언이 사건조작을 기획한 책임자"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이 사진은 박철언씨가 지난해 여름 출간한 회고록에 실린 것으로 당시 박 특보와 함께 안기부에 근무했던 강재섭 현 국회의원 등 4명이 함께 찍었다

 

-KAL858기 사건, '북의 테러'인가 '실종'인가 -

KAL858기 사고는 아직도 '폭파사건'으로 불린다. 그러나 유족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KAL858기 사건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대책위)'실종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유는 뭘까. 지난 871129일 미얀마(버마)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115명의 탑승객을 태운 대한항공 KAL858편 보잉707 여객기가 흔적없이 사라졌고, 당시 안기부(현 국정원)는 이를 '비행 중 폭발에 의한 추락사고'라고 발표했다.

 

안기부는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사고가 하치야 신이치·하치야 마유미라는 일본인으로 이름으로 위장한 북한 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가 김정일의 지령을 받고 저지른 테러였다고 발표했다.

 

체포된 김현희는 법정에서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보름 만에 특별사면돼 <이제는 여자가 되고 싶어요>라는 베스트셀러를 펴내기도 했다.

 

그러나 대책위는 이 사건이 당시 집권당 대통령 후보가 대선 승리를 위해 안기부를 동원, 조작한 사건이라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이후 정부의 이해하기 어려운 대응은 이런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사고 비행기가 교신을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지점에서 약 403km 떨어진 곳에서 수색작업이 벌어졌고, 원인규명의 가장 중요한 증거인 블랙박스(비행기록 장치)를 찾기 위해 필요한 장비(수중공명위치탐지기)를 갖추지도 않은 채 수색하는 등 의도적인 소홀함을 보였다는 것. 또 정부는 실종자의 시체 한 구, 유품 하나 발견하지 못한 채 사고발생 10일 만에 현지조사단을 철수시켜 수색작업을 중단했고, 이후 김현희 자백에 거의 의존한 수사가 이뤄졌다.

 

비행기 사고의 경우 1년인 실종 유예기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교통부가 유족 동의없이 일괄적으로 사망 신고를 한 점도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김현희가 설치했다는 폭발물의 양으로는 비행기 잔해가 한 조각도 남지 않을 정도의 폭발이 불가능하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도 대책위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바레인에 체포돼 있던 김현희를 서울로 압송한 것도 대선 하루 전 날이었고, 당시 압송 책임자로 바레인에 파견된 정부 관리가 압송시간을 맞추기 위해 바레인 수사당국에 떼를 쓰다시피 했다는 정황이 보도되기도 했다.

 

'폭파범' 김현희에게도 의혹이 발견됐다. 당시 안기부는 김현희가 북한 출신 테러리스트임을 입증하는 어린 시절 북한에서의 사진 3장을 발표했으나 사진 속 김현희 모습이 지금과 너무 다르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현희 아버지 김원석이 사건 당시 앙골라 주재 북한 무역대표부 수산대표로 근무하고 있었다는 것도 사실무근으로 밝혀졌고, 자서전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와 수사 당시 진술이 엇갈리는 부분이 80여곳에 이른다는 것이 대책위의 주장이다.

 

20023월 유가족들은 이런 의혹을 풀기 위해 당시 수사기록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냈고 200423일 서울행정법원은 KAL858기 사건기록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은 이에 항소했고 지난해 10월 서울고등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그러나 검찰은 판결에 다시 불복, 지난해 12월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한편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위원장 오충일)는 지난해 2월 김대중납치사건, 민청학련·인혁당사건 등과 함께 KAL858기 폭파사건을 진상규명 대상에 포함시켰다.

 

국정원 진실위는 그동안 김현희씨를 면담하고 당시 수사기록을 검토하는 등 조사를 진행하고 있어 앞으로 어떤 내용이 발표될지 주목받고 있다.

안홍기(anongi) 오마이뉴스 / 06.01.17

 

아흔아홉점은 부끄러움이 있다?

<한겨레21> 520(200485일 발행)에 실린 KAL 858기 폭파 사건 당시 안기부 수사관들의 인터뷰를 읽고 ‘KAL 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가 반론 성격의 글을 보내왔다. <한겨레21>은 이 사건의 재조사 논의가 더 활발하게 진행되기를 기대하며 이 글을 싣는다. - 편집자

 

<한겨레21>KAL 858기 사건 당시 안기부 수사관들의 공식 인터뷰가 실릴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KAL 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이하 진상규명대책위)혹시나하고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기사를 다 읽고 난 뒤 돌아온 것은 큰 실망감뿐이다. 수사관들의 증언이 과거의 것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현희의 진술에만 의존했다는 수사관들의 고백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그들 말에 따르면 북괴정예특수공작원고도의 심리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나. 고도의 심리전술에 말려들 위험을 무릅쓰고 북괴정예특수공작원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진술 내용이 많이 틀리니까, ‘김현희가 일부러 안기부를 골탕 먹이려고 그랬는지 한때 의심까지 했다고 한다. 의심만 하고 전면적인 재조사는 하지 않았는가? 안기부는 재조사는커녕 오히려 김현희의 거짓 진술들을 두둔하기 위해 의도적인 은폐를 해왔다.

 

근거를 제시하라는 적반하장 수사관들은 김현희가 KAL 858기 폭파에 사용했다는 폭약이 무엇인지 모른 채, 이러저러한 정황을 들어 콤포지션 C4 폭약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러면서 김현희 옷과 김승일의 복대에서 검출됐던 TNT 성분에 대해서는 그건 정말 우리도 모를 일이다. 원래 옷과 복대를 만들 때 TNT 성분이 들어가는 건지라고 했다. ‘옷과 복대를 만들 때, TNT 성분이 들어간다는 발상은 참 놀랍다. ‘북괴정예특수공작원을 수사한 수사관들의 이런 발언은 유족들을 허탈하게 만든다. 결국 용의자에게서 검출된 화약 TNT, 즉 물증에 대한 조사는 하지 않고 정황 증거로 추정한 콤포지션 C4를 범행에 사용된 폭약으로 제멋대로 단정하는 수사가 과연 수사인가? 세상에 어느 수사가 물증이 있음에도 진술에 의존해 추정을 하는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1988115일 수사 발표 때, 안기부는 김승일과 김현희의 소지품에서 TNT 화약성분이 검출됐다는 사실을 고의로 은폐했다는 점이다.

수사관들은 조작 의혹을 제기하려면 먼저 그 근거를 제시하라고 말했다. 이는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가족회와 진상규명대책위가 무슨 수사기관인가? 진상규명대책위가 재조사를 요구하는 것은 조작 근거를 찾기 위함이다. 명쾌하게 설명이 안 되는 수사 결과를 다시 한번 면밀하게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수사가 미흡했다고 인정하면서, 조작 근거를 피해자들에게 찾아오라고 윽박지르는 수사기관이 어디 있는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세계경제 규모 십수위권 국가임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국가기관이 할 소리인가? 국정원은 그동안 가족회와 진상규명대책위의 공개 면담 요구를 거절해왔다. 증거물 촬영도 수사기록 공개도 거절했다. 수사기록 등은 조작 근거를 찾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자료다. 이런 요청에 응하지도 않으면서 근거를 제시하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국정원은 김현희 진술이 충분한 증거가 될지 모르겠지만, 가족회와 진상규명대책위는 증거물, 즉 물증에서 근거를 찾기 원한다. 그러니까 제발 증거물과 수사기록을 공개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김현희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지나가는 소도 웃을소리 좀 그만하고 김현희와의 만남도 주선해주기 바란다. 김현희에게도 인권이 있지만, 실종자 가족들의 17년간 짓밟힌 인권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김현희는 역사의 증인으로 필요해서 살려준 사형수였다. 지금이 바로 그 역사의 증인이 제 몫을 할 때다.

 

김현희와의 만남 주선해야 수사의 미흡한 점을 인정한다. 유족들께 미안하다는 수사관들의 증언은 참으로 가증스럽다. 국정원은 무고한 민간인 115명의 목숨을 앗아간 폭탄테러 사건의 수사 미흡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공식적인 사죄는 아니다. 언론을 통해 슬쩍슬쩍 흘리는 비공식적인 사과로 얼버무릴 사안은 아니지 않은가. 또 그렇게 엄청난 사건을 엉터리로 수사한 수사관들에게 아직도 공안수사를 맡겨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수사 미흡을 인정한다면 KAL 858기 실종자 가족들의 재조사 요구에 지금이라도 당장 응하라. 17년 동안 KAL기 실종자 가족들을 감시하고, 겁주고, 김현희를 만날라치면 강제로 끌고 가 낯선 곳에 떨어뜨려놓고, 진상조사 요구는 철저히 무시하면서 피해자 가족들에게 온갖 수모를 줬던 국정원은 가족들에게 진솔한 반성과 함께 공식 사과를 해야 한다.

 

국정원은 예나 지금이나 그저 김현희 타령만 하고 있다. 하지만 진상규명대책위가 제기하는 KAL 858기 사건 수사의 문제점들 가운데는 김현희의 진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도 많다. 예를 들어 안기부가 ‘KAL 858기 동체조각이라고 주장한 조각들에서 폭발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점과 ‘KAL 858기의 부유물이라고 주장한 구명보트는 거짓 증거물이라는 점, 그리고 KAL 858기가 공중 산산조각 폭발’(수사 발표, 공소장에 기재)됐다고 했다가 추락으로 말을 바꾼 점 등이다. 추락 지점에 관한 것도 허점투성이다. 국정원이 얘기하는 지점과 버마가 작성해 국제민간항공기구에 보고한 지점 사이에 약 190km의 차이가 있고, 추락 지점이 좌표까지 특정됐음에도 불구하고 블랙박스 수색을 하지 않은 것 등이다. 수사관들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를 이런 말로 끝맺었다. ‘안기부 수사는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다라고. 내겐 그것이 안기부 수사에 아흔아홉점은 부끄러움이 있다는 말로 들린다. 국정원이 진정으로 미안하고 수사 미흡을 인정한다면, 지금이라도 가족회와 진상규명대책위의 요구대로 공개 면담과 증거물 촬영에 응하길 바란다. KAL 858기 진상 규명에 뚜렷한 기여를 한 <파괴공작>의 저자인 일본인 저널리스트 노다 미네오씨의 입국 금지 조치를 해제하기 바란다. 미네오씨는 국익을 해하는 자라는 이유로 입국 금지됐다고 한다. 국익대한민국의 이익인지 국정원의 이익인지 필자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파괴공작>에 대한 국정원의 판매금지가처분신청도 법원이 기각한 마당이다. <파괴공작>에서 제기한 의혹들이 이유 있다라고 대한민국 사법부가 판결을 내린 것이다.

 

북한 폭탄테러로 밝혀져도 인정하리라 최근 고영구 국정원장은 특별법이 만들어지면 재조사에 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대통령과 여당은 독재와 냉전시대의 의문 사건들을 다룰 수 있는 기구를 만들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이번 기회에 가족회와 진상규명대책위는, 국정원이 KAL 858기 폭파 사건의 진실을 찾아나서는 데 동반자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우리는 KAL 858기 실종 사건이 정말로 안기부의 과거 수사 발표대로 북한의 폭탄테러로 밝혀진다면 그것을 인정할 것이다. 실종자 가족들이 요구하는 것은 KAL기 사건이 남한의 자작극으로 밝혀지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탑승객들이 어떤 최후를 맞이했으며, 왜 그런 최후를 맞이했는지 그것을 알고 싶어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부모·형제·자식이 왜 죽었는지 알아야, 떠났어도 떠나보내지 못하는 미련을 정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신동진/ KAL 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 사무국장 · KAL 858, 무너진 수사발표저자/ 한겨레21 2004.08.12.

 

월 소득 격차 더 벌어졌다상위 20% 1115만원, 6.3% 증가하위 20% 149만원 제자리

 

1분위 가구 근로소득 월 51만원

정부지원 자금으로 총소득 메워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1분기 임시·일용직 등 고용 취약계층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저소득자와 고소득자 간 소득 격차가 1년 전보다 더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1~31분위(소득 하위 20%) 가구 소득은 월평균 1498000원으로 1년 전과 동일했다. 1분위 가구 소득은 20181분기(-8.0%)부터 지난해 1분기(-2.5%)까지 연속 감소하다 지난해 2분기(0.04%)부터 증가세로 전환했다. 이후 지난해 4분기(6.9%)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으나 올해 1분기까지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1분위 가구의 근로소득은 513000원으로 1년 전보다 3.3% 감소했다. 코로나19 여파로 고용 취약계층인 임시·일용직 중심으로 취업자 감소세가 확대되면서 근로소득이 쪼그라들었다. 통계청의 ‘3월 고용동향을 보면 임시·일용직 취업자는 593000명 감소해 1989년 집계 이후 역대 최대다. 일시휴직자는 1607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6만명 폭증해 1982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로 늘었다. 그나마 사업소득(257000) 증가(6.9%)와 기초연금·사회수혜금 확대로 인한 이전소득(697000) 증가(2.5%) 등 정부의 긴급생계지원으로 1분위 가구의 소득이 전년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 5분위(소득 상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1158000원으로 1년 전보다 6.3% 증가했다. 코로나19 여파에도 대규모 사업장의 취업자 증가, 고액 국민연금 수급 증가 등으로 근로·이전소득이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퇴직금 등 비경상소득이 늘면서 2분위(0.7%), 3분위(1.5%), 4분위(3.7%), 5분위(6.3%) 소득은 모두 증가한 반면 1분위만 1년 전과 같았다.

 

이로 인한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5.41배로, 1년 전(5.18)보다 0.23배포인트 증가했다. 5분위 배율은 5분위 가구의 평균 소득을 1분위 가구의 평균 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소득불균형이 더 악화됐다는 의미다. 강신욱 통계청장은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서비스업 부진이 일용직과 임시직이 많은 가구의 근로소득을 감소시켰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조선일보>'무뜬금' 종북몰이..."허강일 씨 발언에 놀아나"

"안성 쉼터 간 적 없어...후원금은 변호사 개인이 전달만 한 것"

윤미향 국회의원 당선인 부부가 과거 위안부 쉼터에서 탈북 종업원의 월북을 권유했다는 주장을 두고 22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입장문을 내 "허위 사실을 짜깁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안성 쉼터에 민변의 '2016년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사건 법률지원 TF(이하 민변 TF)' 소속 변호사들이 동행한 사실이 전혀 없고, 민변이 탈북 종업원에게 생활비를 지급하지도 않았으며, 탈북 종업원에게 재월북을 권유하거나 강요한 사실도 없다"는 게 민변의 입장이다.

 

앞서 지난 21<조선일보>는 중국 닝보 류경식당 지배인이었던 허강일 씨와의 통화를 인용해 "'정대협과 민변 관계자들이 2018년 서울 마포와 경기도 안성의 위안부 피해자 쉼터로 나와 류경식당 출신 탈북 종업원 일부를 초청해 북한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했다'면서 '그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자 후원 명분으로 돈을 줬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허 씨가 <조선일보>에 공개한 계좌 조회 화면에 따르면 민변 TF 소속 장경욱 변호사가 2018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매달 50만 원씩, 300만 원을 보낸 것으로 나온다. 허 씨는 "나 말고 다른 탈북 여종업원 3명도 월 30만 원씩 후원금을 받았다""장 변호사에게 출처를 물으니 '민변은 돈이 없고, 정부는 당신들을 챙기지 않으니 정대협이 후원금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조선일보>는 지난해 한 해 동안 위안부 피해 할머니 3명에게 지원한 현금 금액이 44만 원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위안부 활동이 위주가 되어야 할 정대협이 정작 할머니 지원에는 소홀했고, 탈북 종업원 지원에 거액을 썼다는 비판이다. 아울러 해당 활동에 민변이 연결고리로 얽혔다는 주장으로도 이어진다.

201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범죄 수사촉구를 위한 고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민변 "마포 쉼터서 탈북 종업원-할머니 밥 한 끼가 전부"

그러나 민변은 입장문에서 이 같은 평가는 사실과 어긋난다고 반박했다. 민변은 탈북 종업원들이 윤미향 전 대표, 윤 당선자의 남편 김삼석 씨(양심수후원회)와 만난 정황을 설명하며 안성 쉼터의 모임은 존재하지 않았다고도 지적했다.

 

민변의 설명에 따르면, 민변 TF 변호사들은 20185월경 탈북 종업원 4명과 만났다. '탈북 종업원들이 입국 이후 약 2년간 기초생활 수급자로 생활하는 등 여러 어려움이 있으니 TF 변호사들이 한 번 만나보면 좋겠다'는 모 기자의 주선으로 자리가 마련됐다.

 

이후 민변 TF 변호사들은 기획탈북의혹사건 시민사회대책회의에 참여하던 양심수후원회와 연락이 닿았다. 이에 따라 민변 TF 변호사들과 윤 전 대표의 남편인 김삼석 씨(양심수후원회)의 연도 닿았다.

 

이에 따라 마포 쉼터에 거주하던 길원옥 할머니와 탈북 종업원들의 만남이 추진됐다. 길 할머니가 평양 태생이라는 점이 고려됐다. 그 결과 20181117일 마포 쉼터에서 탈북 종업원 3, 허 씨, 민변 TF 소속 변호사 4, 정대협 관계자 3, 시민사회대책회의 관계자 1, 그리고 김 씨와 윤 당선인이 함께 하는 식사자리가 마련됐다.

 

이 만남 후 김삼석 씨(2)와 양심수후원회의 다른 회원 한 명(3)이 개인계좌를 통해 민변 TF 장경욱 변호사에게 생활비 명목의 후원금을 건넸다. 장 변호사가 이를 허강일 씨와 다른 탈북 종업원들에게 송금했다. 아울러 장 변호사도 몇 차례 개인 자격으로 후원금을 지급했다는 게 민변의 입장이다.

 

민변은 "이들 후원은 정대협과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민변은 이어 "당시 입국 경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채 어렵게 살고 있던 당사자들에게 위안부 할머니들과 밥 한 끼 하는 자리를 만든 게 마포 쉼터 방문의 전부"라며 "허위사실을 짜깁기해 진상규명이 필요한 사안을 악의적으로 이용한 행위를 엄중 경고한다"고 전했다.

 

"월북 권유 허위"

장 변호사는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월북 권유'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전했다. 실제로 허 씨는 말이 계속 바뀌는 등 논리적 일관성이 취약한 모습을 보여 왔다.

 

장 변호사는 "탈북 여종업원 일부가 '우리는 (국정원 기획 탈북에 얽혔지) 탈북한 게 아니니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당시 주장했고, 저희는 언론사 소개로 이들에게 법률적 도움을 주기 위해 만난 것"이라며 "이전 언론 보도라도 확인하고 (종북 몰이를 하라)"고 지적했다.

 

실제 2018년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허강일 씨는 <조선일보> 보도와 전혀 다른 주장을 한다. 허 씨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국가정보원의 협력자였으며, 국정원으로부터 과거 종업원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들어오게 하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자신이 그 같은 협박을 따랐다는 게 허 씨의 당시 입장이다. 탈북 기획 사건이 터진 이유다.

 

또한 허 씨는 2018715<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스스로 "나는 북한으로 가서 처벌받더라도 고향에 돌아가겠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이 나를 철저하게 이용하고 버렸다""내가 현재 연락을 주고받는 여종업원 일부도 모두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국정원이 자신을 포함한 종업원들의 '탈북'을 기획했다고 폭로한 허 씨가 인터뷰를 통해 북한에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도 있는데, '월북 권유'에 분개했다는 것은 선뜻 납득되지 않는다.

 

또한 <조선일보>는 교묘한 왜곡도 시도했다. <조선일보>"민변 장 변호사는 허씨에게 '(류경식당 종업원들의 탈북은) 조직적 국가 범죄'라며 '허강일씨도 자신이 저지른 응분의 죗값은 치르고 속죄하며 새 삶을 살기를 바란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허씨는 '목숨 걸고 탈북한 사람한테 '탈북은 죄'라고 말하는 걸 듣고 기가 막혔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장 변호사가 '조직적 국가 범죄'라고 한 것은 맥락상 국정원의 기획 탈북을 겨냥한 것이다. 즉 상대가 국정원이다. 그런데 허 씨는 엉뚱하게 "탈북은 죄'라는 말이라고 오독한다. <조선일보>는 이같은 인터뷰를 그대로 내보냈다.

 

장 변호사는 "허 씨가 과거 이런 저런 사건으로 인해 고발당하자, 악감정에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한 것 아니냐"고 추정했다. 허 씨는 지난해 10월경 강요, 협박, 체포·감금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바 있으며 현재는 해외로 망명했다. 장 변호사는 "보수언론은 허강일씨의 말에 놀아나면 안 된다. 진실은 드러날 것이며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수준이 얼마나 저열한 지 보여주겠다"

 

민변은 "허 씨가 20168월 직접 민변 변호사들을 찾아와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거짓으로 (이번 정대협과 관련한) 혼란을 초래했다""누구보다 이 사건에 큰 책임이 있는 자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언론을 통해 무책임한 언사만 반복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조성은 기자 프레시안

 

추모식만 한다더니..현충원 속인 '5·18 망언 집회'

뉴스데스크] 앵커

 

5.18 40주년 기념일에 현충원에서 망언 집회를 열었던 지만원씨와 태극기 부대.

알고 보니까 "유족 중심으로 경건하게 추모식만 하겠다" 면서, 현충원 측에 거짓 계획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 됐습니다. 현충원 측은 오늘 이들을 경찰에 고소 했습니다.

리포트 5.18 40주기, 국립현충원.

대형 천막이 설치되고 이동식 모니터에 마이크까지 동원된 가운데 태극기 부대의 집회가 열렸습니다.

<전두환! 전두환!>

극우인사 지만원 씨도 참석해 망언을 쏟아냈습니다.

 

[지만원(지난 18)] "광주 인민봉기는 북조선의 특수부대가 애국투사인 김대중 선생님을 도와주기 위해서 내려가서 싸운 것으로 알고있다"

 

그런데 이 행사는 사전에 현충원 승인을 받아 개최됐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MBC가 입수한 주최 측의 추모식 계획안입니다.

"코로나 사태를 감안해 유가족과 전우들을 중심으로 경건하게 치를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참석자들이 시위용 깃발과 태극기를 휴대하지 못하게 하고, 추모 복장을 입을 것이라고도 적혀있습니다. 지만원 씨는 추모식 관련 발언을 할 예정이라고 써놨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태극기는 물론 성조기가 등장했고, 5.18 왜곡 발언이 이어지는 가운데, 박수와 함성으로 시끄러웠습니다.

[지만원(지난 18)] "추모의 말씀을 드리려고 온 것이 아니라환호를 하고 싶으면 환호를 하십시오."

 

현충원은 오늘 "거짓 계획안으로 속여 공무집행을 방해하고 현충원의 존엄을 훼손했다'며 주최 측을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주최 측은 책임을 현충원 측으로 떠넘겼습니다.

[이두호/주최 측 대표자] "그 때 현장에 현충원에서 직원이 나와있었어요, 두 사람이나. (만원) 박사께서 연설할 때도 현장에서 '하지 말아라' 그런 얘기 전혀 없었습니다."

 

국방부는 앞으로 추모 행사로 신고한 행사가 정치 집회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관련 예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MBC뉴스 이유경입니다.

 

빨갱이주사파라는 아주 오래된 혐오

[ 민언련 유튜브 모니터 ]

민주언론시민연합은 216일부터 517일까지 유튜브상의 혐오표현을 집중적으로 모니터링했습니다. 효과적인 모니터링을 위해 유튜브에서 여성혐오, 외국인 혐오, 사회적 약자 혐오 등 혐오 관련 키워드 34개를 검색하여 혐오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37개의 유튜브 채널을 찾은 뒤, 그중 구독자 수를 기준으로 상위 9개의 유튜브 채널을 모니터했습니다. 혐오 발언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9개의 유튜브 채널 이외에도 217일부터 415일까지는 구독자 수 기준으로 상위 9개의 정치시사 주제의 유튜브 채널과 정치시사 주제의 유튜브 인기 동영상도 모니터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415 총선을 앞두고 정치시사 유튜브 게시물에서 선거와 관련하여 화제성 있는 사안을 다루면서 혐오표현이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민언련은 이러한 유튜브 모니터 결과 발견된 혐오 콘텐츠들을 분석해 연속 보고서를 발행하고 있습니다.(혐오표현 확산을 막기 위해 대상 유튜브 채널 전체 목록과 혐오관련 키워드는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민식이법및 민식 군 유가족을 향한 혐오를 다룬 첫 편에 이어, 두 번째 편에서는 제주 43 사건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혐오표현, 레드콤플렉스 기반의 낙인찍기 혐오표현을 살펴봤습니다.

 

제주 43 사건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올해로 각각 72주년과 4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제주 43 사건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대표적인 민주주의 역사로서 국가 폭력에 많은 시민들이 무고하게 희생된 사건들입니다. 그럼에도 남북분단이라는 현실 아래 레드콤플렉스를 바탕으로 한 혐오의 대상이 됐습니다. 주로 보수 성향 혹은 극우 성향의 유튜브 채널에서 그러한 혐오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제주 4·3 사건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레드콤플렉스나 지역주의 같이 독재정권 시절 통치 수단으로 이용되어온 관념들을 당연한 사회 윤리로 치부하는 콘텐츠들이 특히 두드러집니다.

 

1. 제주 4·3 사건을 주저 없이 폭동이라 말하며 국가폭력 정당화

제주 4·3 사건은 극우 성향의 유튜버들이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더불어 역사 왜곡의 단골 소재로 삼는 대상 중 하나입니다. 극우 유튜버들은 국가폭력에 의해 많은 민간인이 학살됐던 사건을 폭동 진압이라는 프레임으로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채널 배승희 변호사’ <잔잔한 울림-따따 1>(43)에서 배승희 변호사와 민영삼 시사평론가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민영삼 시사평론가 : 제주 4·3, 좌파들이 얘기한 대로 학살이라 칩시다. , 우파는 폭동이라 그래요. 그러니까 중립적으로 제주4·3 사건. 이렇게 우리가 표현을 해서 할 적에, 진상조사를 하고 하는데 누가 뭐라고 그래도 그때는 1948510일 날 예정되어 있는 5·10 총선. 총선을 해서 그때 이제 북한 애들은 반대했죠. 대한민국을 남북한 하나로 해서 출범시켜야 되지, 남쪽만, 한쪽만 정부가 출범을 하면 안 된다. (중략) 그래서 이제 좌파 이념에 그쪽 그 사람들이 전부 다 이 총선거를 반대했죠. 5·10 총선거를. 제주도에서 이 5·10총선거를 반대하는 남로당 350명 일당이 폭동을 일으켜서 시작된 거예요.

 

배승희 변호사 : 폭동이었군요.

민영삼 시사평론가 : 그래서 남로당 무장대가 일으켜서 폭동이었는데, 그것을 막는 과정에서 군경, 군경이 투자돼서 과잉진압을 해서 제주도의 양민, 그 민간인이 너무 많이 희생됐어요. 그러니까 이 양민의, 문재인 대통령과 좌파들은 이 양민이 희생된 것만 봐가지고 우리 정부한테 잘못됐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남로당이 들고 일어나서 남로당이 했던 것에 대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43일에도 얘기를 전혀 안 하는 거예요.

지난 43일 제주 43 사건을 폭동이라 규정한 배승희 변호사

 

제주 43 사건을 남로당의 폭동으로 규정하여 국가폭력 정당화

유튜브 채널 왕자에서도 제주 43 사건은 이유 없이 정부군들이 순진한 제주도민들을 학살했던 사건이 아니라, 명백히 새빨간 남로당들이 순진한 제주도민들을 이용했던 사건이라며 제주 43 사건의 책임을 민간인을 학살한 국가가 아닌, ‘남로당에 오롯이 떠넘겼습니다. ‘뉴스타운TV’에서는 공영방송 KBS이사로서 역사왜곡과 소수자 혐오 발언을 일삼아 문제가 됐던 조우석 문화평론가를 통해 제주 43 사건을 폭동으로 규정했는데요. 조우석 씨는 뉴스타운TV’에서 제주 43이라고 하는 무장폭동을 일으킨, 국가반란행위를 일으킨 남로당과 그의 배후인 북한을 찬양할 순 없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이 주저 없이 제주 4·3 사건을 폭동이라 부르는 것은 사건의 피해자를 모욕하고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혐오에 해당합니다.

 

제주 4·3 사건은 앞서 언급한 극우 성향 유튜버들의 말처럼 남로당의 폭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간단한 사건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지속됐던 본토의 제주도 수탈과 미군정의 횡포, 도민을 향한 경찰의 폭력 등으로 인해 촉발된 민중 항거였습니다. 제주 4·3 사건 당시 제주에서는 해방으로 부풀었던 기대감이 점차 무너져 갔습니다. 미군정은 무능했고, 6만 명에 이르는 귀환인구의 실직난, 생필품 부족, 전염병(콜레라)의 만연 등 여러 악재가 겹쳤죠. 특히 일제강점기 당시 경찰출신들이 미군정 경찰로의 변신해 착취와 비리를 그대로 이어갔습니다. 이러한 절망적 상황 속에서 몇몇 제주도민과 남조선로동당계열의 세력들은 미군정 주도의 남한 단독 정부수립을 저지하기 위해 194843일 새벽 2시 무장 봉기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이를 진입한다는 명목으로 국가의 무자비한 폭력이 시작됐습니다. 그날 새벽 무장봉기를 시도했던 이들은 350명 남짓이었지만, 19549월까지 14000여 명의 도민들이 희생당했습니다. 불의에 저항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국가라는 이름으로 짓밟은 것으로도 모자라, 무고한 민간인조차 남로당’, ‘빨갱이의 이름을 붙여 처참히 살해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이 이미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으로도 확인됐습니다. 명백하게 국가가 가해자, 국민이 피해자인 사건입니다. 이런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역사에 깊이 새겨 반성해야 합니다.

 

뿌리 깊은 차별과 폭력 끊어내기 위해 제주 43 사건에 대한 왜곡혐오 멈춰야

배승희 변호사채널에서는 이런 사건을 두고 남로당이 원인 제공을 했는데 이 부분은 싹 빼고 말한다고 말했는데요. ‘우리도 그럴 만했어라는 국가폭력 가해자의 비겁한 변명에 가깝습니다.

 

이런 발언과 표현들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부정을 넘어 국가폭력 피해자를 비롯한 약자 집단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혐오입니다. 반인륜 범죄의 대상이 된 대부분의 집단은 사회적 소수자이고, 그에 대한 혐오, 차별, 폭력이 누적되어 집단 학살로까지 나아간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홀로코스트, 제주 4·3 사건이 바로 그런 사례입니다. 제주는 우리 역사에서 오랜 기간 순전히 중앙정부를 위해 존재했습니다. 중앙정부에게 제주는 좋은 유배지이자, 각종 세금과 진상품을 착취할 수 있는 보고였습니다. 도민들은 재산을 빼앗기고 노동을 착취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중앙-지방 사이의 보편적 대립과 차별을 바탕으로 19세기 제주엔 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죠. 제주에는 육지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제주도민을 적대적으로 표현하는 말로, 43 사건의 비극 이전부터 존재했던 제주도민의 상처와 좌절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역사에 뿌리 깊게 새겨진 차별과 폭력을 과거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제주 4·3 사건을 폭동으로 규정하거나, 제주도민을 빨갱이로 명명하는 것부터 멈춰야 하는 것입니다.

 

2. 유튜버 시둥이와 왕자의 광주시민 괴롭히기 프로젝트

시둥이왕자는 광주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극우, 안티 페미 성향의 유튜버입니다. 주로 페미니스트좌파를 공격하며 혐오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제작하는 토크 형식 콘텐츠 외에도, 두 유튜버가 함께 현장에 나가 실시간 생중계 방송을 진행하기도 하는데요. <광주 문재인 지지율조사2-전라도 광주 전통시장 문재인지지율조사>(39)가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문재인 정권의 국정수행에 대한 평가를 묻는 표지판을 들고 광주 말바우 시장을 돌아다녔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민의 정치적 견해를 묻고 이에 반문하거나, 레드콤플렉스에 바탕을 둔 간첩’, ‘빨갱이등의 혐오 표현은 물론, 욕설까지 쏟아냈습니다.

 

왕자 : 김대중 간첩. 문재인 간첩. 문재인 간첩. 문재인 간첩이여 엄마. 문재인 간첩이여.

상인 : 예끼 나쁜 놈들.

 

(중략)

왕자 : 박근혜 미**이라 하는 건 되고 김대중 간첩은 안 된대. 박근혜 **은 되고 김대중 ***는 안 돼?

 

(중략)

상인들 : 빨리 가라 시끄럽게 하지 말고.

왕자 : 김대중 ***!! 문재인 ***!!!!

시둥이 : 문재인 ***!!! 문재인 *****!!!

 

(중략)

왕자 : 자국에 마스크가 아니고 중국에 갖다 마스크 갖다 바치는 문재인 간첩!!! 김대중 빨갱이 센터!! 문재인 ***. 중국밖에 모르는 문재인 ***!! (중략) 아까 박근혜 ***이라 할 땐 가만 있드만, !!

지난 39일 광주 전통시장 활보하며 혐오표현 쏟아낸 유튜버 시둥이와 왕자

 

레드콤플렉스에서 비롯된 대표적 혐오표현 간첩’, ‘빨갱이

왕자시둥이의 막무가내식 욕설 폭격에 시장 상인들은 분노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평화롭던 일상에 극우 성향의 유튜버가 등장해 난데없이 김대중 문재인은 간첩을 외쳐댔기 때문입니다. 왕자와 시둥이의 주장은 이러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비난의 말을 던질 수 있다면, 문재인 대통령에게 간첩이라는 말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또한 왕자는 광주 시민들이 친중친북을 일삼는 현 정부에는 어떠한 비판도 하지 않고 무조건 지지만 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왕자와 시둥이가 이날 광주 말바우 시장에서 쏟아낸 발언과 행위 자체가 명백한 혐오표현입니다.

 

왕자와 시둥이는 해당 영상에서 김대중 간첩과 문재인 간첩이라는 구호를 여러 차례 외쳤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간첩’, ‘빨갱이라는 표현은 과거 독재정권의 레드콤플렉스에서 비롯된 대표적 혐오표현입니다. 해방 후 이어진 독재 정권은 분단 현실을 이용해 반공, 반북을 국민을 통제하거나 반대자를 숙청하는 이데올로기로 삼았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이나 공산주의가 언급되기만 해도 무조건적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사회 전반에 퍼졌습니다. ‘간첩이나 빨갱이는 과거 정부가 권력의 수단으로서 부추겨 온 낡디낡은 혐오표현입니다. 국가 최고 권력자, 대통령에게 한 것이니 괜찮지 않냐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으나, 해당 유튜버들이 지지자와 시민들을 겨냥해 혐오 표현을 사실상 강요한다는 점, 특히 광주에서 그런 행위를 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북한군 개입설’ ‘광주시민 교도소 습격설등 허위조작정보 기반의 518 혐오 계속돼

광주에는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시민들이 그날의 공포와 희생당한 가족들을 기억하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죠. 극우 세력들은 계엄령과 독재에 대항한 광주시민들의 민주화운동을 북한군에 의한 폭동으로 왜곡했습니다. 제주 4·3 사건을 남로당의 폭동으로 정당화하는 것과 유사한 논리 구조입니다. 현재도 유튜브 채널 뉴스타운TV에서는 극우정당 자유당과 지만원 씨의 주장을 그대로 전하면서 ‘518 북한군 개입설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만원 씨는 518 폄훼를 반복하여 각종 재판에서 형사처벌과 배상 판결을 받아온 인물이기도 한데요. 그런데도 뉴스타운TV에서는 지만원 씨의 근거 없는 주장을 끊임없이 실어 나르며 끈질기게 허위조작정보를 유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제주 43 과 광주 518 등 좌파정권에 의해 왜곡된 모든 역사와 문화의 진실을 밝혀 바로잡겠다는 자유당의 415 총선 공약까지 전했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광주 말바우 시장에서 혐오표현과 욕설을 수차례 내뱉은 유튜버 왕자는 또 다른 게시물에서 1995년 검찰 수사와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를 통해 이미 허위임이 드러난 518 당시 광주시민들의 교도소 습격설을 꺼내들며 광주시민들을 폭동으로 몰아가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억압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빨갱이라는 낙인은 19805월부터 지금까지 광주시민들, 나아가 호남지역 국민들을 정치 지형의 약자로 만들었고, 그들을 향한 배제와 차별을 정당화한 기제입니다. 극우성향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가 홍어’, ‘전라디언등의 혐오표현을 만들어 비하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지속적 차별과 억압을 경험한 광주시민들 앞에서 간첩빨갱이라는 말을 써가며 정권을 비난하는 것은 그 자체로 폭력이자 혐오입니다.

 

호남 지역민들에 대한 혐오 조장으로 사회 갈등 심화시켜

왕자시둥이가 벌인 이 혐오표현 생방송은 광주시민들을 모욕해 상처를 줬을 뿐 아니라, 호남 지역민들에 대한 혐오를 조장해 사회 갈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시장 상인들과 두 사람의 갈등 상황이 고스란히 담긴 해당 영상에는 익숙한 혐오표현들이 댓글로 달렸습니다. “늙은 전라도 것들이 **야 나라가 바로 섬”, “역시 빨갱이 전라도”, “광주는 공산화의 상징이다등의 뿌리 깊은 차별적 인식이 유튜브 댓글을 통해 재생산됐습니다. 이런 편견의 재생산은 호남지역민, 나아가 좌파로 불리는 정치 신념을 가진 이들의 목소리를 위축시킵니다. 약자의 목소리는 더 작아지고, 강자의 논리와 불평등한 사회구조는 더욱 공고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혐오표현은 배제와 억압의 사회구조를 재생산함으로써 사회를 분열시키고 민주적 가치를 훼손할 뿐입니다.

 

3. 극우 성향 유튜버들이 버리지 못하는 색깔론 기반의 혐오

역사 부정과 허위조작정보 생산에 앞장서고 있는 극우 성향 유튜브 채널 가운데 하나가 펜앤드마이크TV’. 현 정부와 여권을 비방하기 위해 펜앤드마이크TV’가 꺼내드는 주요 논거 중 하나가 친중, 친북론인데요. ‘펜앤드마이크TV’ 단골 출연자인 조성환 경기대 교수는 <02266시 펜앤뉴스>(226)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조성환 경기대 교수 : 20세기의 가장 악마적 체제가 나치 독일, 무솔리니 이탈리아, 그다음에 스탈린, 그다음에 중국의 마오 때 홍위병 전체주의, 그다음에 지금, 민족이라고 문재인 대통령은 포용하는 김 씨 집단이 벌이는 북한의 사교전체주의. 근데 우리 지금 내부의 소위 말하는, 이른바 주사파라고 하는 게, 말하자면 김 씨 주사사상을 혹은 주사 이데올로기를 내장해서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편성해서 역이용해서 지금 집권하는 데 아닙니까.

 

주사파라는 딱지 붙이고, ‘빨갱이프레임 안에 가두려는 혐오

‘20세기의 가장 악마적인 체제 중 하나가 북한의 사회주의이며, 북한의 사상을 내장한 주사파들이 한국 민주화를 역이용해 정권을 잡은 것이 현재 문재인 정부와 그 측근들이라는 주장입니다.

 

먼저 주사 이데올로기를 내장해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편성했다는 주장부터 허무맹랑한 이야기입니다. 1970~80년대 많은 운동권 학생들이 독재에 반대하며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독재라는 거대한 부조리에 대항한 온 국민의 시대적 소명이었습니다. 각계각층에서 일어난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주사파라는 이름으로 대변할 수는 없습니다.

 

현 정부가 주사파라는 주장도 낡은 색깔론에 불과합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 같은 인사들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에서 학생운동을 했다는 등의 과거 활동 이력이 곧바로 주사파’, ‘북한 사상을 내면화한 정권으로 이어진다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습니다. 이는 정부 여당의 다양한 구성원에게 주사파라는 딱지를 붙여 일반화하고, 이른바 빨갱이라는 프레임 안에 가두려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도 현재 문재인 정부가 사회, 경제, 복지 분야에서 펼치는 다양한 정책들은 사회주의나 북한과 거리가 멉니다. 사회주의의 국가는 본질적으로 사유재산 불인정, 주요 산업 국유화, 1당 정치라는 3가지 요소를 특징으로 합니다.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주요 산업을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이 이끌며, 21대 국회 기준으로 원내 정당이 최소 3개 이상인 대한민국에 주사파 정권이 들어섰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입니다.

 

신의한수에서도 등장한 색깔론 기반의 혐오

펜앤드마이크TV’와 같은 색깔론 기반의 혐오는 신의한수에서도 등장하는데요. ‘신의한수’ <김대중이 전광훈 목사를 건들다!-박완석 문화부장>(36)에서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로당 전남지부장을 했다는 전광훈 목사의 발언을 인용했습니다. 전광훈 씨의 해당 발언을 단순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 허위사실을 바탕으로 한 혐오표현을 노출했습니다.

 

박완석 기자 : 전광훈 목사님은 지난 달 4일 광주 애국국민대회에서 김대중이가 해방 이후 남로당 전남지부장까지 했었다라고 주장하신 바가 있습니다. 이러한 발언은 대한민국의 일그러져 있는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일환으로 역사 사기를 비판하는 가운데 나온 발언입니다. (중략) 김대중이 같은 경우에는 이 신민당의 조직부장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신민당이요. 후에 여운형의 조선 인민당, 박헌영의 조선공산당과 합당해서 남조선노동당을 만들었습니다. , 남로당과 김대중이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매우 합리적으로 생각해볼 수가 있는 것이며, 또한 그동안 많은 증언들과 기록들을 비추어 볼 때도, 김대중과 남로당의 연루설에 대해서는 우리가 의심을 할 수가 있는 부분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전광훈 목사와 박완석 씨의 발언은 근거가 없습니다. 현재까지 나온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각종 기록과 김 전 대통령 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46년에 조선신민당에 참여한 사실은 있지만, 당 내부의 좌익세력과 노선 갈등을 겪고 같은 해 여름에 탈당했습니다. 이후에는 우익 세력이 주축이 된 한국민주당에 입당했죠. 194611월에 결성된 박헌영의 남조선노동당과는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신의한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남로당의 연관성에 대해 합리적으로 의심해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오랜 기간 계속되어온 색깔론 기반의 혐오에 해당할 뿐입니다.

 

극우 성향 유튜버들, 레드콤플렉스에서 벗어나 혐오 멈춰야

펜앤드마이크TV’신의한수에서 끊임없이 주사파’, ‘종북몰이를 하는 것은 결국 그러한 말들이 갖는 힘 때문일 겁니다. 몇 해 전 보수논객 변희재 씨가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를 종북·주사파’, ‘아이돌 스타등으로 표현했다가 소송을 당한 바 있죠. 결국 20181030일에 있었던 손해배상 상고심에서는 전원합의체 판결로 변 씨의 손을 들어줬지만 대법관 5명은 반대의견을 냈습니다. ‘종북·주사파와 같은 표현은 공론장에서 소수자를 배제하는 표현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대법관들은 반공주의가 강고하게 사회를 지배하고 있고 국가보안법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소위 보수정권이 집권하고 있는 시기에 특정인이 종북·주사파로 낙인찍히게 될 경우 느끼는 두려움이나 공포는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다. 다수의견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가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에 대해 너무도 무감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주사파’, ‘종북등의 혐오표현을 일삼는 극우 성향 유튜버들이 원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그러한 낙인의 대상이 되는 이들을 영영 배제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1960~70년대 반공교육이 북한 주민들을 머리에 뿔난 도깨비로 그리고, ‘우리의 주적은 북괴라는 구호를 새겨 넣으며 악마화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나라를 생각한다는 극우 성향의 유튜버들이 그 낡아빠진 레드콤플렉스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민언련 유튜브 모니터 보고서는 출연자 호칭을 처음에만 직책으로, 이후에는 ○○○ 씨로 통일했습니다.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20216~517일 유튜브에서 혐오 관련 키워드 34개를 검색하여 나온 혐오발언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채널 중 구독자 수 상위 9개 채널, 2020217~415일 정치시사 주제의 유튜브 채널 중 구독자 수 순위 상위 10개 채널의 게시물 및 정치시사 주제의 유튜브 인기 동영상/출처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신문, 한명숙 재심 뒤집기라며 일제히 비판

[아침신문 솎아보기] 재심 가능성 낮고 공수처 대상 적절성 의문검찰 압박용해석 중론 가운데 조선일보는 조국 소환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 이른바 한명숙 뇌물수수 사건재조사를 주장하고 나섰다. 재심보다는 7월 출범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대상으로 검토할 수 있지 않겠냐는 방향에 가깝다. 여권이 개혁 대상으로 지목한 검찰에 대한 압박용 카드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지난 2015년 대법원 판결로 징역 2년형 확정, 2017년 옥살이를 마쳤다. 재조사 주장 근거는 탐사보도 전문매체 뉴스타파고 한만호 비망록 단독 입수보도다. 한만호 전 한신건영 사장은 한명숙에게 9억원의 정치자금을 줬다는 진술을 번복했고 검찰의 강압수사를 주장했던 인물이다. 재판 당시 법정에 검찰 측 증거로 제출됐던 그의 비망록을 뉴스타파가 입수해 보도했다. KBS21“(진술) 스토리는 검찰과 저희가 만든 시나리오라는 한씨의 생전 육성 인터뷰를 공개했다.

 

22일자 한국일보(법조계 한명숙 사건 재조사·재심 근거 약해”)재심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당시 수사팀이 한씨를 회유 또는 협박해서 진술을 받아낸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재심을 받아 볼 수 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2018년 출소 직후 숨졌기 때문에 비망록에 담긴 주장을 뒷받침할 신빙성 있는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라며 문재인 정부에서 출범한 검찰 과거사위원회에서 재조사나 재심이 거론되지 않은 점도 여권 입장에서는 불리한 사정이라 보도했다.

'뉴스타파' 보도 갈무리.

 

공수처 출범 후 재조사 방안에 대해서는 이마저도 정치적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강압수사 의혹이 제기된 당시 수사팀을 공수처 수사 대상으로 삼아 사건을 다시 살펴보자는 논리인데, 법조계에서는 공수처 출범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당시 모든 대법관들이 살핀 증거로 확정된 사안을 가지고 집권 여당이 공수처 수사를 거론하는 것은 총선 압승에 따른 자신감으로 비칠 수 있다는 현직 판사 주장을 전했다.

 

한국일보는 다만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전날 국회에서 정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힌 만큼 실제 강압이 있었는지를 살피는 법무부 차원의 진상조사는 가능하다는 의견이 있다. 한 변호사는 법무부 진상조사단 정도가 큰 논란 없이 가능한 마지노선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했다.

 

서울신문(한명숙 사건 재심은 바늘구멍여권 공수처 카드는 효과 의문)도 재심 가능성은 낮게 봤다. “새 증거가 나왔더라도 무죄가 인정될 만큼 명백해야 하지만 한만호 비망록은 이미 한 전 총리 재판 과정에서 다뤄졌던 사안이다. 이에 여권에서도 재심이 아닌 재조사나 공수처 조사를 꺼내 들며, 당시 검찰 수사부터 문제 삼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어 한 전직 검찰 간부 입을 빌려 여당의 목적은 판결을 뒤집는 것보다 정치적으로 한 전 총리가 억울하다는 프레임을 만들기 위한 것 같다” “여당이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셈이라는 비판을 전했다.

522일자 서울신문 6면 기사.

 

서울신문 사설(‘한명숙 사건 억울’, 검찰 압박 말고 재심 청구하라)정부여당은 한 전 총리가 검찰의 강압수사와 사법농단의 피해자임을 강조하는데, 그토록 경계하라고 주문했던 오만과 독선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한다고 비판했다. 서울신문은 정부여당이 한 전 총리에 대한 정치적 부채 때문에 이런 무리수를 둔다면 이 또한 문제다. 숱한 국민이 검경의 강압수사와 법원의 무심한 판결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그들에 대한 구제가 없이 제 식구를 먼저 챙기는 것이 집권여당의 옳은 태도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17년 동안 살인강도 누명을 쓴 채 감옥살이를 한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사건 당사자들은 2016년에야 박준영 변호사를 만나 재심에서 무죄를 받고 가까스로 명예를 회복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그 진실규명의 과정에서 어떤 도움을 줬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국민이 지난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여당에 안긴 것은 코로나19 극복과 경제위기 타개에 매진하라는 일종의 주마가편(走馬加鞭)이라고 할 수 있다. 개헌이나 한명숙 살리기등으로 헛심을 써서는 안 된다. 한 전 총리의 명예가 소중하다면 재심 청구를 통해 진실을 다시 규명하면 될 일이라 당부했다.

 

조선일보(한명숙 사건, 법적으로 재심 어렵자박주민 공수처에서 수사”)윤석열 검찰총장 압박용으로 공수처 수사를 띄우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이름을 소환했다. 조선일보는 ()조국 인사인 민변(民辯) 출신 김용민 당선자는 전날 언론 인터뷰에서 한 전 총리 사건 조작 의혹은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사안이므로 공수처나 특검에서 수사해야 한다했다고 전한 뒤 검찰 관계자는 한 전 총리 사건은 특수부 검사들이 주도했고 윤 총장과 가까운 검사도 여럿 포함됐다이들 이름이 공수처 수사 대상에 오르내리면 윤 총장에게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수사팀 관계자들은 거리낄 게 없다는 입장이다. 법원이 한씨 비망록 내용보다 한씨가 애초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한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한 데다, 검찰의 진술 강요도 없었다는 것이라 보도했다.

522일자 중앙일보 사설.

 

중앙일보 사설(177석 거대 여당의 한명숙 재심무리수를 경계한다)대법원에서 9억원의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확정판결을 받았던 한명숙 전 총리의 정치적 생명을 되살리기 위해 집권 여당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정치가 사법에 개입해 범법자를 양심수로 둔갑시킨다면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며 여당은 177석의 힘을 남용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적으로 검찰과 법원을 압박하기 위해 무리하게 한명숙 재심 카드를 휘두를 경우 여론의 강한 역풍을 맞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세계일보 사설(여권의 한명숙 유죄 뒤집기 시도, 법치 파괴 아닌가)“‘친노 대모로 꼽히는 한 전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라고 한다. 한 전 총리 구명운동 배경에 부당한 수사와 재판 피해자라는 걸 부각시켜 특별사면의 명분을 쌓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권이 177석이라는 숫자의 힘만 믿고 뇌물 사범을 무리하게 양심수로 만들려고 한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 주장했다

노지민 기자 jmnoh@mediatoday.co.kr

 

'한명숙 사건' 증인 한만호의 울분 "검찰, 군대암기사항 외우듯 교육시켜"

[] 9년 전 '한명숙 9억 사건' 핵심증인 한만호 전 대표 출소하던 날

2년 만기출소 한 한명숙 전 총리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년간 수감생활을 한 한명숙 전 총리가 2017823일 새벽 경기도 의정부교도소에서 만기출소하고 있는 모습. 권우성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두 가지 계기'가 없었다면 계속 잊고 지냈을지 모른다. '한명숙 전 총리 9억 원 수수 사건'을 취재했던 기억을 다시 일깨운 '두 가지 계기'란 핵심 증인(한만호 전 한신공영 대표)의 죽음을 전해들은 것과 비영리 탐사보도 전문매체인 <뉴스타파>가 최근 '한만호 비망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보도한 것이다.

 

강기석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현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은 지난 201991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몇 달 전 한만호(58)씨가 죽었다는 소문을 언뜻 들었다"라고 처음으로 한만호 전 대표의 부음을 전했다. 의미심장하게도 "'검찰주의'의 희생자, 고 한만호'"라는 제목을 단 글에서였다.

 

강 전 국장은 한만호 전 대표가 일찍 죽음에 이르는 이유로 '오랜 감옥생활로 인한 스트레스' '불면과 술로 인한 육체적 병' '억울함을 이기지 못한 홧병' 등을 언급하면서 "사인이야 어쨌든 한만호씨가 '검찰주의자'들이 만든 참극의 희생자인 것만은 분명하다"라고 일갈했다.

 

이렇게 한만호 전 대표의 부음이 전해진 지 8개월 만에 '중요한 보도'가 나왔다. <뉴스타파>'한만호 비망록'을 입수해 그 내용을 자세하게 보도한 것이다. 기자가 그토록 입수하고 싶었던 자료였다.

 

'한만호 비망록'은 한만호 전 대표가 한 전 총리 관련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 등을 친필로 적은 '옥중비망록'이다. 그 양이 무려 '291200여 쪽'에 이르는데 그 양보다는 거기에 기록된 내용이 충격적이다. 재판에 나가기 전 검사들이 그를 어떻게 '교육' 혹은 '연습'시켰는지 등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검찰의 "마술사" 같은 언론플레이와 서울시장 선거개입 의혹, 한나라당 유력 인사 6억 원 전달 의혹 덮기 등이 담겨 있다.

 

한만호 전 대표의 쓸쓸한 죽음과 <뉴스타파>의 충격적인 '한만호 비망록' 보도는 기자를 9년 전으로 데려갔다.

 

2011613일 새벽, 한만호 출소하다

기자의 2011년도 다이어리 중 613일자 메모. "0시 한만호 출소 *서울구치소(한명숙 기획수사 비망록)"이라고 적혀 있다. 구영식

 

한만호 전 대표는 지난 2010년 검찰수사(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과정에서 한명숙 전 총리에게 9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고 진술했다가 1심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이를 뒤집어 검찰을 크게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인물이다.

 

기자는 당시 선고공판을 포함해 총 24차례 열린 한 전 총리의 1심 재판(재판장 김우진 판사)에 거의 다 들어가 취재했다. 검찰과 한 전 총리 변호인들의 불꽃 튀는 공방으로 재판이 새벽까지 진행되는 날도 적지 않았다.

 

특히 한 전 총리의 16차 공판이 예정돼 있었던 지난 2011613일 새벽, 출소하는 한만호 전 대표를 서울구치소 앞에서 만났다. 취재기자로서는 유일한 인터뷰였다. 의아스럽게도 한 전 총리 9억 원 수수 사건의 핵심증인이 출소하는 현장에는 그 어떤 취재기자도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당시 진보언론들조차도 이미 한 전 총리를 '유죄'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운동권 출신 A검사의 전언에 따르면, 한 진보언론의 기자들은 한 전 총리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는 A검사에게 위로문자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을 때에는 '사필귀정'이라는 축하 메시지를 보냈을 정도다.

 

기자는 기자생활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줄곧 '다이어리'를 써오고 있는데 한 전 총리의 1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던 '2011년도 다이어리'를 보면 한만호 전 대표 출소에 관한 메모가 이렇게 적혀 있다.

 

'0시 한만호씨 출소('한명숙 기획수사 비망록') *서울구치소취재 감'

실제로 기자는 지난 2011613일 어두컴컴한 새벽 서울구치소 정문 앞에서 한만호 전 대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예정됐던 시각보다 30분 늦은 새벽 1230분에서야 구치소 문을 나섰다. 그가 출소하기 전 서울구치소의 한 관계자는 취재기자 유무를 확인한 뒤 그것을 '어딘가'에 보고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한 전 총리 재판이 진행되고 있던 터라 법무부와 검찰이 그의 출소를 민감하게 보고 있었던 것이다.

 

"20101220510호 법정에서 진실을 밝혔다"

"한만호 비망록"의 표지. 뉴스타파 제공

 

기자는 출소하는 한만호 전 대표 옆을 따라붙으며 '출소 인터뷰'를 진행했다. '238' 동안의 짧은 인터뷰였다.

 

- 지난해 12월 법정에서 했던 진술은 그대로 유지되나?

"그렇다. 저는 20101220510호 법정에서 김우진 재판장에게 진실을 밝혔다. 사실대로 정직하게."

- 한명숙 전 총리에게 정치자금을 준 적이 없다는 건가?

"물론이다. 한 전 총리의 누명은 곧 벗겨질 것이다."

- 얼마 전 검찰이 압수해간 '비망록'에 검찰이 회유하고 협박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고 들었는데.

"완전히 통제된 15개월간 독방 시절 동안 쓴 비망록, 증언과 관련된 서류와 증거, 대질 증인의 위증을 요약한 것, 집필 중인 참회록과 진술서 등 모든 정황을 설명해줄 30여 권의 노트와 1만여 장의 서류를 모두 빼앗겼다."

- 마지막으로 검찰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수사는 잘못된 사람의 말을 믿고, 잘못 작성된 자료를 근거로 잘못된 목적을 가지고 현 서울시장 당선을 돕고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 세력을 척살하기 위해 저질러진 아주 잘못된 수사다. 검찰은 지금이라도 수사를 다시 생각해서 반성해야 한다."

 

검찰은 한만호 전 대표가 출소하기 나흘 전인 지난 201169일 그의 감방을 압수수색하고 비망록을 압수해 갔다. 당시 한명숙 공동대책위 위원장을 맡고 있었던 박주선 민주당 최고위원은 "한씨는 출소를 앞두고 옥중에서 검찰이 지난 지방선거 직전에 공표한 한 총리 사건을 어떻게 기획했고, 짜 맞춰 왔는지를 밝히는 '진실과 참회의 자필 비망록'을 준비해왔다고 한다"라고 전한 바 있다(2011611). 기자가 '2011년도 다이어리'에서 '한만호 비망록''한명숙 기획수사 비망록'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다.

 

인터뷰하는 동안 서울구치소의 한 관계자는 기자 옆에서 인터뷰 내용을 훔쳐 기록하려다가 당시 구치소에 나와 있던 민주당의 한 관계자에게 저지 당하기도 했다. 서울구치소 관계자는 전화로 "<오마이뉴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라고 '어딘가'에 또 보고했다.

 

"검사들이 변호사의 입장이 돼서 질문을 던졌다"

한만호 전 대표는 비망록에서 "한나라당 인사에게 6억 원을 제공했다"라고 진술했지만 검찰은 이를 덮었다고 주장했다. 뉴스타파 제공

 

한만호 전 대표 출소 인터뷰는 <한만호 "한명숙 전 총리 누명, 곧 벗겨질 것">(관련 기사 : http://bit.ly/12qFCMq)이라는 제목을 달고 보도됐다(2011613). "30여 권 노트와 1만여 장 서류 빼앗겨"라는 그의 발언을 부제로 배치했다.

 

그런데 '238'의 출소 인터뷰 가운데에는 검찰을 자극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 당시 담당 변호사의 강력한 요청으로 보도하지 못한 내용이 있다. "검찰이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듯, 군대암기사항을 외우듯 교육시켰다"라고 한 대목 등이다. 검찰의 교육 내용에는 '총리 일정을 피해서 자금제공 날짜를 잡는 방법'이나 '변호사 질문을 피하는 방법' 등이 포함돼 있었다. 당시 보도하지 못한 기자와 한만호 전 대표의 문답은 이렇다.

 

- 한명숙 전 총리 사건과 관련해 '이렇게 진술하라, 저렇게 진술하라'고 검찰이 교육시켰나?

"73회에 걸친 출정 기간에, 특히 기소된 이후에 출정을 나가면 늘 하루 3, 4시간씩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듯, 군대암기사항을 외우듯 교육시켰다."

- 검사들이 (공판을 대비해) 한 전 총리 쪽 변호사 대역도 했나?

"검사들이 변호사의 입장이 돼서 질문을 던졌다. 총리님 일정을 피해서 자금제공날짜를 잡는 방법, 변호사 질문을 피하는 방법 등을 교육받았다."

 

"검찰의 언론플레이는 마술사 수준"

"한만호 비망록"의 일부. 검찰이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정치자금을 처음엔 "444", "332"로 제공하는 것으로 했다가 최종 "333"으로 결정했다는 내용이다. 뉴스타파 제공

 

당시 보도하지 못한 출소 인터뷰 내용은 최근 <뉴스타파>가 보도한 '한만호 비망록'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당시 검찰은 한만호 전 대표를 매주 불러 '테스트'(TEST, 한 전 대표의 표현)했다.

 

"변호인 답변을 피해 가는 법이나 윽박지르는 방법" 등을 교육한 뒤 이것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는지를 '테스트'했다는 것이다. 한 전 대표는 이를 "시험 본다"라고 표현했다. 한 전 대표는 "출정 전날 방에서, 운동장에서 시험을 준비했다"라고 적었다. 이러한 교육과 테스트를 두고 "사냥개 노릇을 시켰다"라고 하면서 "검찰은 오로지 한 총리만을 겨냥해서 마녀사냥 했다"라고 썼다.

 

한만호 비망록에 따르면, 특히 검찰은 처음에 한 전 총리가 '433'('4억 원, 3억 원, 3억 원 세 차례 나눠 전달했다'는 뜻)으로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한 것으로 "스토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나중에 '332'로 바꾸었다가 '333'으로 하자고 최종 합의했다. 한만호 전 대표가 금액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할까 봐 '333'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특히 한만호 비망록에는 검찰의 선거개입 의혹을 짐작게 하는 '일화'도 적혀 있다. 검찰이 서울시장 선거 전에 계속 지지율과 여론조사결과를 점검·분석했다는 대목이 나오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한명숙 후보와 오세훈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20%포인트 차이가 나자 한 검사는 "한 사장님, 시장선거 하나 마나 아닙니까?"라며 흐뭇해 했다고 한만호 전 대표는 전했다. 검찰은 이렇게 지지율과 여론조사 결과를 점검하면서 증인들의 허위진술을 언론에 흘리는 '언론플레이'도 병행했다. 한 전 대표는 "검찰의 언론플레이는 마술사 수준이다"라고 꼬집었다.

 

그밖에도 충격적인 내용은 더 있다. 서울구치소에서는 한만호 전 대표와 대화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상당수 '검찰의 정보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재판의 증인으로 나와 성공하면 가석방, 감형, 수감 편익 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한 전 대표와 접촉해 대화 내용 등을 검찰에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한 전 대표는 그들을 "공작원" "감시원"이라고 불렀다.

 

'한만호 비망록''한명숙 사건' 진실규명의 출발점

한명숙 전 총리의 9억 원 수수 사건은 이미 사법적 판단이 끝났다. 대법원이 지난 2015820'8 5'로 상고를 기각하며 유죄를 선고한 항소심을 확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대법원장은 현재 '사법농단 의혹'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었다.

 

그런데 대법원이 확정한 항소심(2)은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1심에서는 총 23차례(선고공판 제외) 공판과 현장검증 등을 통해 꼼꼼하게 쟁점들을 확인한 반면, 2심에서는 단 3차례(선고공판 제외)만 공판을 열었고 심지어 핵심증인인 한만호 전 대표는 부르지도 않았다.

 

1심의 무죄를 뒤집고 유죄(징역 2년 벌금 88000만 원)를 선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증거를 보강하는 등 더 꼼꼼한 재판이 진행됐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2심의 재판장은 지난 20182월 국정농단사건과 관련한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던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형식 판사였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의혹에도 불구하고 일단 대법원의 최종 판단은 존중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검찰이 한 전 총리를 '유죄'로 만들기 위해 한만호 전 대표에게 행한 부적절한 행위는 조만간 출범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을 통해 반드시 규명되길 바란다. 검찰에서는 모두 허위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한만호 비망록'에 대한 조사는 한명숙 전 총리 9억 원 수수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01220510호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했던 한만호 전 대표는 죽을 때까지 그 번복된 진술을 유지했다. 진술 번복으로 인한 불이익을 감수한,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결의에 찬 증언"이었다(2011171심 재판부에 제출한 불출석 사유서 중에서). 비망록에도 자기 진술의 신빙성을 강조하는 말들이 나온다.

 

"진술 번복으로 보복을 당할지 모르지만 (그것을) 감수하고 사실대로 진술했다."

"진술 번복한 것이 천만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어찌 하늘로 머리를 들 수 있나?"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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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전 총리는 검찰이 주는 밥을 먹지 않았다

 

한명숙 전 총리 관련 재판 일지

1차 곽영욱 사건(5만 달러 수수 의혹)

- 2009124<조선일보> '한명숙 전 총리 수만불 정치자금' 보도

- 20091229일 불구속 기소

- 2010128~4913차례 집중심리, 현장검증 등을 거쳐 1심 무죄판결(주심 김형두 판사).

- 20121132심 무죄 판결(주심 성기문 판사)

- 2013314일 대법원 무죄 확정

 

2차 한만호 사건(9억 원 수수 의혹)

- 201048<동아일보> '한 전 총리 새로운 혐의 수사 시작' 보도

- 201062일 서울시장 선거, 한 전 총리 0.6%포인트 차이 석패

- 2010720일 불구속 기소

- 2010126~20111031일 한만호 사건 1(주심 김우진 판사). 23차례 공판(선고공판 제외), 10여 명 증인신문, 현장검증 거쳐 무죄 판결.

- 2013916일 한만호 사건 2. 3차례(선고공판 제외) 공판, 2명의 증인 신문 후 징역 2년 벌금 88000만 원 선고(주심 정형식 판사)

- 2015820일 대법원 '8 5'로 상고 기각. 유죄 확정.

*강기석, <무죄-만들어진 범인 한명숙의 헝거게임 그 현장의 기록>(2016, 레디앙) 재구성

구영식(ysku) 오마이뉴스

 

한명숙 전 총리는 검찰이 주는 밥을 먹지 않았다

황창화 전 정무수석, <피고인 한명숙과 대한민국 검찰> 펴내

지난 4,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 한 권의 새 책이 건네졌다. 국무총리 시절 정무수석으로 한 전 총리를 보좌했던 황창화씨가 자신의 책 <피고인 한명숙과 대한민국 검찰>(위즈덤하우스)을 증정한 것이다. 황씨는 '한명숙 대책위' 상황실장과 대변인을 맡아 한 전 총리의 검찰수사와 재판 과정을 소상하게 들여다봤다.

 

"총리님이 몸으로 쓴 것을 제가 글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 저자는 총리님입니다."

한 전 총리도 황씨에게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황씨의 책은 한 전 총리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두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한 전 총리에게 최대의 시련을 안긴 '5만 달러-9억여원 수수' 사건(저자는 각각 '곽영욱사건''한만호사건'이라고 표기했다)이 그것이다. 황씨는 "한 전 총리는 두 사건을 모욕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가 검찰에 체포됐을 때 '도시락'을 준비한 이유

황창화씨의 저서 <피고인 한면숙과 대한민국 검찰>.

 

두 사건은 모두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서 맡았다. 5만 달러 사건은 특수2, 9억여원 사건은 특수부의 선임부서인 특수1부에서 맡은 것이다. 최고의 수사력을 자랑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200912월부터 20107월까지 '한명숙 사건'에 집중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한명숙 수사부"라는 조롱섞인 지적까지 나왔다.

 

<피고인 한명숙과 대한민국 검찰>의 저자인 황씨는 두 사건을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단순한 형사사건이 아니라 공권력의 이름으로 한 총리, 나아가 민주진영에 굴복을 강요하는, 또다른 형태의 정치, 즉 전쟁"이라는 것이다. 그 전쟁기간만도 700일에 이른다.

 

"검찰이 한 총리를 대하는 태도에서 시종 날선 증오와 섬뜩한 적의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지나치게 전투적이었다. 차분히 자신들이 확인한 공소사실을 법리적으로 입증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적을 무찌르고자 하는 무모함만이 보였다. '전쟁은 나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적에게 굴복을 강요하는 폭력행위, 전쟁은 다른 수단으로 계속하는 정치'라는 클라우제비츠의 말이 일면의 진실을 담고 있다면 검찰이 한 전 총리를 대하는 태도가 바로 그러했다."

 

이런 "전쟁"을 대하는 한 전 총리의 태도도 단호했다. 한 전 총리는 지난 20091218'5만 달러 수수' 혐의로 검찰에 체포됐다. 한 전 총리는 서울중앙지검검찰청에 도착해 김주현 당시 3차장과 20여 분간 대화를 나누었다. "총리 예우에 어긋나지 않게 조사하겠다"는 김주현 3차장의 말에 한 전 총리가 날카롭게 응수했다.

 

"한 명의 시민으로 왔습니다. 예우를 원하지 않습니다."

특히 한 전 총리가 들고온 가방에는 '도시락''성경책'이 들어 있었다. 한 전 총리가 검찰과 벌여야 할 "전쟁"에 어떻게 임하려고 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품들이었다.

 

"한 총리는 체포되기 전에 도시락을 미리 챙겼다. 체포될 때 들고 온 가방에는 성경책과 도시락이 들어 있었다. 검찰이 주는 밥은 먹지 않겠다는 한 총리의 뜻이 워낙 강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성경책을 들고 조사에 임하겠다는 의지 또한 완고했다."

 

'도시락''성경책'이 예고한 것처럼 한 전 총리는 검찰의 어떤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검찰조사 도중 권오성 특수2부장과 단둘이 있게 되었을 때 권 부장이 "이런 상황이 오기 전에 간단하게 사실확인만 해주셨으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을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 전 총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들을 믿지 않습니다."

이는 "검사들이 한 총리로부터 들은 유일한 답변"이었다. 황씨는 "한 전 총리가 평탄한 인생을 살아온 인물은 결코 아니었지만 검찰조사 과정에서 심한 모멸감과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하고 싶은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고 했다"고 전했다.

 

한 전 총리 "내 직업은 피고인, 사무실은 중앙지법 510"

'불법정치자금 9억여원 수수 혐의'에 대한 1심 선고에서 무죄를 받은 한명숙 전 총리가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 참석해 검찰개혁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5만 달러 사건('1차사건')9억여 원 사건('2차사건')은 연달아 일어났다. "사건의 내용도, 등장인물도, 발생시기"도 다른 사건이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2차사건을 1차사건의 항소심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검찰이 별도의 사건으로 재판을 받거나(곽영욱) 아예 구속상태에 있는(한만호) 인물들의 궁박한 처지를 악용해 사건의 얼개를 짜거나, 이들이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했다는 점 등, 두 사건은 다르면서도 같은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2차사건 자체가 1차사건의 선고를 앞두고, 무죄를 예상한 검찰이 별건으로 시작했다는, 즉 시기적으로 너무 맞물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사건이 처음 알려지는 과정도 1차 때는 <조선일보> 보도, 2차 때는 <동아일보> 보도로 시작됐다는 점도 비슷하다. 검찰 '빨대'가 누설하고 수구언론이 사건을 기정사실화하고 한 총리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려 했다는 점도 두 사건이 많이 닮아 있다."

 

실제 5만 달러 사건이 무죄판결을 받기 전날(201048), <동아일보>'검찰, 한 전 총리 새로운 혐의 수사'라는 '검찰발 기사'를 통해 '9억여 원 사건'의 시작을 예고했다. 황씨는 "검찰이 2차사건의 제보를 받은 것이 20103월 하순이었고, 수사에 착수한 것은 326일경이었다""수사에 착수하고 열흘 남짓 만에 수사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이었다"고 꼬집었다.

 

게다가 9억여 원 사건은 지난 20107월 재판이 시작된 지 13개월 만인 지난 10월에서야 끝이 났다. 황씨의 지적처럼 "1차사건이 태풍처럼 순식간에 지나갔다면, 2차사건은 지루하게 계속되는 장마처럼 오래 끌었"던 것이다. 그만큼 한 전 총리가 겪어야 할 '고난'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1차사건이 한달 동안 12차례의 공판이 있었던 반면에, 2차사건은 증인신문을 끝내는 데만 201012월부터 2011829일까지 대략 9개월 동안 22차례의 공판기일을 필요로 했다. 한 총리는 도합 34차례나 서초동 법원을 드나든 셈이다. 그래서 한 총리는 검찰과의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 언젠가부터 내 직업이 피고인이고, 사무실은 중앙지법 510호라는 생각이 든다고 자조적으로 말하곤 했다."

 

5만 달러 사건이 무죄판결을 받아 큰 타격을 입은 검찰로서는 9억여 원 사건에 '특수부의 운명'을 걸어야 했다. 결국 검찰이 무리수를 두면서 여러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한 전 총리에게 돈이 전달된 날짜를 기소장에서 특정하지 못한 점이나, 핵심증인이 진술을 번복하자 그를 위증혐의로 수사한 점이나, 사기전과자나 마약사범 등 '함량미달 증인들'을 내세운 점이나,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한만호 전 사장의 모친을 주임검사까지 나서서 강제구인해온 점 등이 그렇다. 한 전 사장의 모친이 강제구인돼 증언을 마치자 남편인 한 전 사장의 부친이 검찰을 향해 이렇게 항변했다.

 

"이렇게 하면 안돼요. 나 한사람 불러서 물어봤으면 족하지. 환자를 데려다 놓고 이게 무슨 짓이야. 만호 돈 뜯으려고 사기꾼, 깡패들이 우글우글했어요. 그 놈들한테 돈 뜯기고 엉뚱한 데 쓰고서는 헛소리한 걸 가지고 이 야단이야. 이 사람 진짜 아파. 이렇게 하면 진짜 안돼."

 

심지어 한 전 총리의 비서였던 김아무개씨(피고인)5차 공판에서 코피를 쏟아 변호인이 재판장에게 선처를 호소하자 검찰은 "김아무개 피고는 검찰조사나 곤란한 일을 당하면 상습적으로 쓰러지는 경향이 있다, 진단서를 가지고 와야만 선처를 고려할 수 있다"'반인권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핵심증인인 한만호 전 사장을 무려 73차례나 소환조사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중산층은 집에 현금이 얼마 있는지 기억해야 한다"(?)

<피고인 한명숙과 대한민국 검찰>의 저자 황창화씨.

검찰은 아주 집요했다. 핵심증인이 검찰에서 한 진술을 법정에서 번복하자 "사실상의 재수사"에 들어갔다.

 

"한 총리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계좌추적, 통화기록 조회, 광범한 탐문 등이 수시로 이루어졌다. 심지어는 한 총리가 살고 있는 집주인에게까지 찾아가 보증금이 현금이었는지 수표였는지 등을 캐묻고 다닌다고도 했다. 오죽했으면 검찰이 재판 전에는 피의사실 공표에만 힘을 쏟고 정작 재판할 때 수사를 한다는 비웃음을 샀겠는가."

 

황씨는 "검찰은 한 총리 형제 자매의 모든 금전거래를 샅샅이 뒤졌음은 물론 누가, 언제, 누구에게 전화했고 그 전화를 걸고 받은 장소가 어딘지까지 밝혀냈다""특히 김 비서에게 돈을 빌린 여동생 한씨의 재산상태와 금융거래 내역을 다시 한번 완벽하게 까뒤집은 모양"이라고 지적했다.

 

"한 총리의 여동생은 '언니의 자금관리인'이라는 혐의를 씌우면서 한 총리가 무슨 큰 정치자금을 움직이는 것 같은 인상을 주려 했다. 여동생에 대한 신문이 대개 그렇게 지저분한 의도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였다. '시부모 사는 집이 자택인가, 전세인가' '언제 퇴직했는가' '무엇으로 생활하는가' '세를 놓았으면 집세는 얼마인가' '시부모에게 용돈을 주는가, 얼마를 주는가' '집에 (현금) 얼마를 보유하고 있는가' '집에 금고는 있는가' 등의 질문을 한 뒤, 검사는 인구에 영원히 회자될 만한 '충고' 한마디를 덧붙인다.

 

'중산층은 집에 현금이 얼마 있는지 기억해야 한다.'"

황씨는 이러한 검찰의 행태를 '인디언의 기우제'에 비유했다. 비가 올때까지 계속 기우제를 지냈던 인디언들처럼 검찰도 한 총리를 '유죄'로 만들 때까지 수사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인디언 기우제의 성공확률은 100%라고 한다. 인디언들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인디언들은 기우제를 한번 지내기 시작하면 비가 올 때까지 계속해서 지냈기 때문이다. 검찰의 수사는 인디언의 기우제와 닮았다. 유죄라는 확고한 믿음 내지는 유죄여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과 처벌해야 한다는 신념만 강하다보니, 시도 때도 없이 혐의가 입증될 때까지 수사를 계속하는 것이다."

 

한 전 총리는 이렇게 집요한 검찰에 '진술거부권 행사'로 맞대응했다. 특히 5만 달러 사건과 달리 9억여 원 사건은 자신과 전혀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 전 총리도 "검사가 제기한 소위 공소사실은 저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가공의 사실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1차사건에서는 검찰이 '뇌물'을 주고받았다고 주장한 총리 공관 만찬에 한 총리와 곽 사장이 참석한 것까지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변호인의 피고인 신문을 통해 한 총리가 답변할 내용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한 총리는 한 사장을 단 한 차례도 만난 적이 없었다. 검찰의 공소사실 자체에 대해 '모른다'는 말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한 전 총리의 진술거부권 행사로 인해 검사가 한 시간이 넘도록 한 전 총리에게 혼자서 질문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1심에서 검찰이 패소했을 때 항소권 제한하는 방안 검토해야"

하지만 이렇게 집요했던 검찰은 한 전 총리를 이기지 못했다. 5만 달러 사건(201049)에 이어 9억여 원 사건에서도 무죄판결을 받은 것이다(1031). 최소한 두 사건의 1심 재판부는 "저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는 한 전 총리의 주장을 받아들인 셈이다.

 

지난 6일 만난 황씨는 "두 사건 모두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성급하게 터뜨린 것들"이라며 "여기에는 '친노세력 죽이기'라는 정치적 상황논리가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 전 총리가 끝까지 버틸 수 있는 것은 그런 일(돈 수수)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그것이 한 전 총리가 쌓아온 신뢰감"이라고 강조했다.

 

황씨는 "미국의 어느 주에서는 검찰이 기소한 사건이 1심에서 패소했을 때 항소를 못하게 돼 있다고 한다""무리한 기소를 막고 피고인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검찰의 항소권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씨는 연세대를 졸업한 이후 성남노련 정책실장을 지내는 등 경기도 성남에서 10여년간 노동운동을 벌였다. 지난 1998년 임채정 전 국회의장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해 노무현 대통령 대통령직 인수위 전문위원(2003)에 참여했고,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실 정무2비서관과 정무수석으로 각각 이해찬 전 총리와 한 전 총리를 보좌했다.

 

패티김·이미자·양희은·희자매국민가수들의 과거는 과연?

선데이서울에 실린 전설적인 스타들의 그때 그 모습. 한국 가요계의 한 획을 그은 그들의 과거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선데이서울 제208(1972101일자)에 실린 가수 패티김의 인터뷰와 제118(197113일자)에 실린 가수 이미자의 신년인사

 

한국 가요계의 전설을 꼽아보자면 이미자와 패티김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두 사람은 같은 해인 1959년 가요계에 데뷔해 1960~70년대 가요계의 여왕으로 자리 잡았다. ‘엘레지의 여왕으로 불리는 이미자가 한국적인 정서가 강한 트로트 음악을 주로 불러왔다면, 패티김은 서구적이고 세련된 분위기의 노래를 불러왔다. 데뷔 시기도 같은 데다가 나이대도 비슷해 언론에서는 자주 이미자와 패티김을 라이벌 관계로 묶어 비교하기도 했다.

 

이미자의 대표곡으로는 동백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아씨등이 있으며 히트곡으로 분류되는 노래만 약 400여 곡에 달한다. 1964년 발표한 동백 아가는 여성 가수 최초로 음반이 100만 장 이상 판매되며 이미자를 국민가수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하지만 1965, 동백 아가씨왜색을 이유로 금지곡 판정을 받아 방송과 음반에서 부를 수 없게 됐다. 결국 22년이 지난 19876·29 선언 이후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신중현의 미인등과 함께 해금(解禁)되어 방송에서 이 곡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패티김의 대표곡으로는 서울의 찬가, 이별, 초우, 그대 없이는 못 살아등이 있으며 패티라는 예명은 미국 가수 패티 페이지와 같은 명가수가 되고 싶다는 뜻에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해방 이후 일본을 거쳐 미국 카네기 홀,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공연 등 대한민국 가수 최초로 해외시장에 진출하기도 했다. 당시 큰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니었지만, 동양 여성으로서 홀로 해외시장에 진출했다는 점에서 큰 평가를 받고 있다. 패티김은 한국 대중 가요사에서 수없이 많은 최초’, ‘최고란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최고의 디바였다. 20131026, 55년 가수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마지막 무대를 가지고 공식적인 은퇴를 선언했다.

선데이서울 제519(19781029일자) ‘스타 추적에 실린 가수 혜은이

 

1975, 작곡가 길옥윤의 곡 당신은 모르실 거야로 데뷔한 가수 혜은이는 외모와 가창력, 춤 실력까지 두루 갖춰 1970년대 후반 혜은이 신드롬을 일으켰다. 대표곡에는 3 한강교, 감수광, 진짜 진짜 좋아해, 뛰뛰빵빵등이 있으며 1970년대 후반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 인기가수로 등극했다. 특히 1977년에는 대한민국 모든 가수상을 석권하는 진기록을 남겼고 10대 가수상·가수왕·최고 인기 가수상 등 3사 통합 가수왕을 수상하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1집부터 14집까지의 모든 타이틀곡이 1위에 등극하며 엄청난 인기를 자랑했다.

 

또한 혜은이는 1978년 태평양가요제 입상 후 동남아 지역에 화제를 몰고 다녔던 원조 한류스타로서 패션, 헤어스타일 등의 유행을 주도하기도 했다. 가수 활동뿐만 아니라 드라마, 영화, 쇼 오락 프로그램, 뮤지컬 등에도 출연하며 만능 엔터테이너로 활발히 활동했다.

선데이서울 제207(1972924일자) ‘예비스타 베스트4’에 선정된 가수 윤희정, 양희은, 이수미, 정미조의 모습과 제534(1979218일자) ‘스타 추적에 실린 가수 희자매

 

2030 세대에게는 너 이름이 뭐니?”라는 유행어로 더 익숙한 가수 양희은은 한국 포크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1971아침 이슬로 연예계에 데뷔했으며, 작은 연못,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가을 아침, 한계령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양희은만이 가질 수 있는 중후한 성량과 호소력 짙은 음색으로 대중들의 감성을 자극해 많은 인기를 얻었다.

 

1970~8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 군부독재로 억압받는 상황과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많은 사람들이 양희은의 곡을 불렀으며 데뷔곡 아침 이슬은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곡이 되었다. 이로 인해 양희은의 곡 중 30여 곡이 금지곡으로 지정됐고, 19876·29 선언 이후 대부분 해금(解禁)되어 음반 활동과 방송 활동을 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활발한 방송 활동과 라디오 DJ로도 그 이름을 떨쳤다. 최근에는 장르의 제약을 넘어서 이적, 육중완, 악동뮤지션 등 후배 가수들과 협업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1978년 데뷔한 3인조 걸그룹 희자매는 첫 정규 앨범의 타이틀곡 실버들TBC 가요차트 71위를 하며 인기를 얻었다. 1970년대 후반에는 바니걸스’, ‘숙자매등과 함께 걸그룹 트로이카를 형성하며 많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가수 인순이를 주축으로 활동한 희자매는 화려한 무대 매너와 의상으로 당시 군인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얻기도 했다. 주로 디스코풍의 빠른 템포에 율동을 더한 음악들을 주로 했으며 우리는 사랑해요, 망향, 등의 히트곡이 있다. 글 장민주 인턴 goodgood@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