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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6.15~6.20 코로나19가 드러낸 ‘한국인의 세계

by 이성근 2020. 6. 15.

코로나19가 드러낸 한국인의 세계’- 갈림길에 선 한국 편

중앙일간지 필진 164명 중 남성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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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드러낸 한국인의 세계’- 갈림길에 선 한국 편

-시사IN, KBS 공동 기획 대규모 웹조사

코로나19는 한국에 위대한 세대를 탄생시킬까. 좀 낯선 질문이다. 맥락을 보려면 미국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미국에는 가장 위대한 세대(Greatest Generation)’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불리는 세대가 있다. 1901~1927년 태생이다. 이 세대는 청년기에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이겨냈고, 1950년대에는 미국 역사상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사회적 자본개념을 널리 알린 나 홀로 볼링을 썼다. 이 책은 미국 사회의 질이 왜 갈수록 나빠지는지, 사회적 자본이 왜 갈수록 쪼그라드는지 추적했다. 답은 의외였다. 사회적 자본을 유난히 풍부하게 가졌던 윗세대가 퇴장했기 때문이다. 그게 전쟁을 겪은 세대, 그러니까 위대한 세대였다(퍼트넘은 1910~1940년생까지로 좀 더 넓게 잡는다). 이 세대는 후속 세대보다 공적 토론에 더 관심이 많고, 더 많이 투표하고, 시민적 결사와 공공업무에 더 많이 참여하고, 다른 사람을 더 많이 돕고, 동료 시민들을 더 신뢰한다. 한마디로 더 나은 시민이다.

 

위대한 세대는 가장 가혹한 전쟁의 자식들이었다. 외부의 적은 내부의 응집력을 극적으로 높이므로, 때로 전쟁은 더 나은 시민을 만드는 용광로다. 퍼트넘은 방대한 데이터를 검토한 후, 결론으로 이렇게 쓴다. “1945(2차 세계대전이 끝난 해다)에 절정에 달했던 국가 통합의 시대정신과 전시(戰時)에 불붙은 애국심이 시민정신을 강화했을 것이다.” 그 힘은 이 세대가 살아 있는 내내 사라지지 않을 만큼 오래갔다. 이들이 주도한 시대에 미국은 최전성기를 달렸다.

AP Photo 1945814일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축하하는 뉴욕의 인파 속에서 한 수병이 키스하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전은 낮은 강도의 전시상태와 비슷한 경험을 모든 국민이 공유하도록 만든다. 이 경험은 한국에서도 더 나은 시민들의 세대, 그러니까 위대한 세대를 탄생시킬까. 시사INKBS는 공동으로 코로나 시대 사회조사를 기획하면서 결국 이 문제를 다루고 싶었다. 그렇다면 물어봐야 할 주제는 정해져 있었다. ‘신뢰. 사회적 자본을 구성하는 핵심 중 하나가 신뢰다. 기획 단계이던 428, 사회학자 장덕진 교수(서울대)와 통화했다. 우리가 신뢰를 다룰 생각이라고 하자, 그는 곧바로 이렇게 답했다. “아이템 잘 잡았네요. 그게 요즘 사회학계에서도 최대 화두예요. 코로나19 이후 한국 사회의 신뢰도가 어떻게, 왜 움직이나.” 51,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임동균 교수가 합류했다.

 

시사IN·KBS 공동기획 사회조사는 한국리서치의 웹조사 방식을 이용해 228개 문항을 사용하는 방대한 조사다. 크게 두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첫째, 지금까지의 방역전을 성공으로 이끈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그 결과를 지난주 시사IN663호에서 소개했다. 둘째, 그 경험은 우리를 어떻게 바꾸었나. 신뢰도의 폭발적인 상승은 여러 사회조사에서 되풀이해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우리가 바뀐 것은 무엇이고 그대로인 것은 무엇인가. 그 변화는 한국 사회를 어디로 끌고 갈까. 이번 호의 주제다.

 

장덕진 교수가 신뢰를 듣자마자 요즘 사회학계의 최대 화두라고 말한 이유는, 신뢰도 수치가 폭발적으로 움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신뢰는 그 사회가 얼마나 건강하고 유능한지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신뢰가 낮으면 같은 일을 할 때도 더 많은 계약과 보증서와 변호사와 치안 능력이 필요하다. 이게 다 비용이다. 그래서 한 사회의 신뢰수준은 그 사회의 보이지 않는 재산, 즉 사회적 자본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한국은 대표적인 저신뢰 사회로 알려져 있다. 공적인 제도 신뢰는 대체로 낮다. 이번 기획과 별개로 시사IN이 창간 이후 매년 시행해온 신뢰도 조사에서, 각 정부기관 신뢰도는 10점 만점에서 대체로 4점대를 꾸준히 맴돈다. 2019년 조사에서 가장 높은 신뢰 점수를 받은 국세청이 4.7점이었다. 사적 사회 영역에서, 가족 신뢰는 강한 반면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는 낮다. 저신뢰 사회의 전형적 특징이다.

 

좋은 사회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좋은 공공재를 만드는 일을 잘 해낸다. 그런데 신뢰수준이 낮으면 이게 안 된다. 특히 낯선 사람을 못 믿으면 문제가 된다. 저신뢰 사회는 공동의 프로젝트를 해내기에 더 무능한 사회다. 코로나19를 겪으며 한국의 신뢰수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는, 그러니까 한국이 저신뢰 사회를 탈피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만약 그렇다면 코로나19는 한국 사회를 질적으로 도약시키는 기회가 될 수 있다.

1은 대통령, 정부, 국회 등 공적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를 10점 만점으로 물은 결과다. 대통령과 정부 신뢰도는 과거 데이터와 비교해 크게 올랐다. 대통령 신뢰도 6.2점과 정부 신뢰도 6.1점은 각종 신뢰도 조사에서 거의 등장한 적이 없을 만큼 높다. 과거 조사 대비 50% 가까운 폭등이다. 미묘하지만 의미심장한 변화는 국회 신뢰도다. 응답자들은 대체로 국회를 싫어하기 때문에, “국회를 신뢰하게 되었는지 불신하게 되었는지물어보면 불신한다는 답이 훨씬 높게 나온다. 지난 호에 소개한 신뢰 변화 지수에서 국회가 -33점이 나온 이유다. 하지만 10점 만점으로 물어본 뒤 과거의 같은 질문과 비교해보면 결과가 다르다. 국회 신뢰도 3.8점은 2016년 조사(3.0) 대비 27% 상승한 결과다.

2는 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다. 주요 복지제도 신뢰도가 일제히 높게 나온다. 건강보험 신뢰도는 무려 88%에 이른다. 건강보험제도의 위력을 코로나19 국면에서 실제로 경험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코로나19와 직접 관련되지 않는 다른 복지제도들도 신뢰도가 매우 높다. 고용보험 신뢰도는 78%, 기초노령연금 신뢰도는 72%, 이번에 일시 도입된 재난지원금 신뢰도는 73%였다. 심지어는 급속한 노령화 때문에 젊은 가입자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국민연금조차 67%가 신뢰한다고 답했다. 세대별로 보면, 가장 신뢰도가 낮은 20대에서 56%가 국민연금을 신뢰한다고 답했다. 과거 조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U자 곡선의 덫 빠져나오는 중일까

코로나19 국면은 특정한 제도가 아니라, 공적 시스템 전반의 신뢰도를 끌어올리는 것 같다. 이것은 중요한 변화다. 장덕진 교수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공적제도 신뢰가 ‘U’자 모양 곡선을 그리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권위주의 시절에는 다른 정보가 없어서 정부를 신뢰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래서 국제 비교를 해보면 권위주의 저개발 독재국가의 정부 신뢰가 꽤 높게 나온다. 그러다가 민주화가 진전되고 투명성이 높아지면, 그때부터는 다른 정보와 의견에 노출되면서 공적제도 신뢰가 추락한다.

 

한국은 민주화가 진전된 1980년대 후반부터 이 고비를 겪었다. 장 교수의 설명이다. “U자 곡선의 가운데에 걸린 시기가 되게 힘들어요. 정부가 뭘 하려 해도 신뢰가 없어서 일이 안 굴러가니까. 그렇다고 권위주의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이 시기를 견디면서 투명성과 민주주의 수준을 더 높여서 U자의 오른쪽 꼭대기로 가야 하거든요. 이런 반등 계기가 한국에서는 거의 안 보이고 신뢰가 지속적으로 낮은 구간에 걸려 있었는데, 코로나19 유행 이후 나오는 조사들에서 정부 신뢰가 전반적으로 높아지는 경향이 보입니다. 이건 굉장히 드문 일이고, 신뢰가 반등하는 계기가 될지 지켜봐야겠죠.”

 

공적제도 신뢰만 놓고 보면, 우리는 U자 곡선의 덫을 마침내 빠져나와 오른쪽 꼭대기를 오르는 중일지 모른다. 하지만 신뢰에는 또 다른 중요한 속성이 있다.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로 나타나는 사회적 신뢰다. 이건 왜 중요한가? 다른 사람들 없이 온전히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내 뒤통수를 치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안심할 수 있을까? 유력한 수단은 국가의 강제력이다. 법이 제대로 집행되면 타인에게 속을 걱정은 덜 해도 된다.

 

하지만 자녀의 학교 일일교사 당번이나 눈 오는 골목 쓸기와 같은 일상적이고 삶 내내 반복되는 약속마저 변호사와 경찰을 대동해야 한다면, 타인을 신뢰하기 위한 비용이 너무 높아져서 신뢰 자체가 의미 없는 지경에 이른다. 공적제도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탈리아의 사회학자 디에고 감베타는 신뢰를 유지하는 데 무력에 의존하는 사회는 다른 수단으로 신뢰를 유지하는 사회보다 비효율적인 동시에 불쾌하다라고 지적했다. 사회적 신뢰는, 변호사와 경찰 없이도 사회가 굴러가도록 만들어주므로 비용을 크게 낮춰준다.

 

그리고 이 논리에서 보듯, 사회적 신뢰와 공적제도는 어느 정도 서로를 대체해주는 경향도 있다. 사회적 신뢰가 높으면 사람들끼리 자율적으로 문제를 푸는 걸 더 좋아하고, 정부가 끼어들어서 제도와 규칙을 만들려 드는 걸 더 꺼린다. 사회적 신뢰가 부족할 때는, 정부가 규칙을 만들어서 집행하는 게 더 깔끔하고 억울할 일이 없게 느껴진다. 한국에서 사회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낮은 사회 신뢰를 예측 가능한 공적제도로 바꿔 끼우는 시도다.

 

한국의 사회적 신뢰도 공적제도 신뢰처럼 증가했을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여기서는 가족 신뢰는 강고하고, 낯선 사람 신뢰는 부족한 기존 경향이 그대로 이어진다. 10점 만점으로 물어본 낯선 사람 신뢰도는 3.9점이다. 가족(8.7), 친척(7.3), 이웃 사람(6.1)은 물론이고 외국인 노동자(4.0)보다도 낮다. “코로나19 이후 낯선 사람을 신뢰하게 되었나, 불신하게 되었나?”로 변화를 직접 물어본 문항도 있다. “신뢰하게 되었다4%, “불신하게 되었다40%이다.

 

감염병은 연대와 협력의 의지를 북돋는다는 점에서 전쟁과 닮았지만, 같은 국민이라도 낯선 사람을 의심하고 두려워하고 배척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전쟁과 다르다. 임동균 교수는 감염병 특유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람들이 목표를 기꺼이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그걸 함께 추구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위협이다.” 각 집단에 대한 호감도를 물은 뒤, 2018년 한국종합사회조사(KGSS)와 비교해보았다. 2018년 대비 호감도가 떨어진 그룹은 넷이었다. 떨어진 폭이 큰 순서대로 보면 동성애자, 낯선 사람, 정치적 의견이 다른 사람, 이민자 순서였다. 감염병이 더 밀어낸 사람들이다.

 

사회적 자본 연구자들은 긴밀하고 자주 보는 사이의 신뢰와, 낯설고 다시 만날 일 없는 타인과의 신뢰를 구분한다. 로버트 퍼트넘은 전자를 두터운 신뢰’, 후자를 얇은 신뢰라고 불렀다. 그리고 후자가 사회적 자본에 더 결정적이다. “얇은 신뢰는 두터운 신뢰보다 훨씬 더 유용하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알 수 있는 사람들의 범위를 넘어 신뢰의 반경을 확장하기 때문이다.” ‘두터운 신뢰는 일종의 접착제다. 내부 결속을 다지고 강한 동류의식을 끌어올린다. ‘얇은 신뢰는 일종의 윤활유다. ‘우리저들사이의 마찰을 줄이고 연결을 더 매끄럽게 만들어, 결국 우리자체를 확장한다. 코로나19는 한국 사회에서 접착제 노릇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윤활유 구실은 사실상 하지 않았다. 동성애자나 낯선 사람에 대해서는 더 냉담해졌다.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리는 위대한 세대를 만들어가는 동료 시민인가, 그저 방역 성공에 열광하는 관중인가.

 

방대한 문항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헤매던 임동균 교수가 흥미로운 단서 하나를 포착했다. 복지 철학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우리는 이를 물어보는 질문 세 개를 던졌다.

 

1. 고소득자와 저소득자 간 소득 차이를 줄이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2. 정부는 실업자도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3. 정부는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혜택을 줄이면 안 된다.

각각의 문항은 매우 반대부터 매우 찬성까지 5점 척도로 답하도록 되어 있다. 응답 평균을 점수로 환산해보았다. 셋 다 엇비슷하게 3.4~3.5점 정도가 나왔다. 보통보다 약간 찬성에 기운 수준이다. 그런데 이게 과거와 비교해 어떻게 바뀐 것일까?

 

우리는 앞에서 복지제도에 대한 신뢰가 하늘을 찌르는 것을 이미 확인했다. 따라서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설명은 이렇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복지제도가 좋은 것이라는 효능감을 사람들이 맛봤다. 따라서 복지 태도를 묻는 질문에는 복지를 지지하는 성향이 높아졌을 터이다. 정말일까. 2018년 한국중앙연구원 조사에서 같은 문항들을 뽑아 비교해봤다. 그 결과가 3이다.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복지를 찬성하는 취지의 세 문장에, 일관되게 동의 정도가 낮아졌다. 특히 1번 문항에 낙폭이 컸다. 2018년에 3.89점이었는데 이번 조사에서는 3.54점으로 떨어졌다.

 

대통령 지지층이 더 권위적

복지제도 신뢰는 대단히 높은데 복지에 찬성하는 태도는 떨어졌다. 이 모순되어 보이는 결과를 설명할 방법이 필요했다. 효능감을 느껴서 복지제도 신뢰가 올랐다는 설명 말고 어떤 대안이 가능할까. “어쩌면 시스템 정당화 심리일 수도 있겠네요.” 임 교수가 말했다. “그게 뭡니까?” “현재의 제도와 시스템이 문제가 없고,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정당화하는 식으로 마음이 작동하는 겁니다. 시스템에 외부 위협이 닥쳐올 때 이 스위치가 켜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위기 국면에서는 정치 지도자의 지지율이 오른다. 내부의 모순과 갈등을 일단 제쳐두고, 똘똘 뭉쳐서 위기를 극복하는 게 먼저라는 식으로 우리 마음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비슷한 논리로, 위기는 현재 시스템의 모순과 하자를 일단 제쳐놓도록 만든다. 일단은 지금 있는 시스템으로 위기를 뛰어넘어야 하니까 그렇다. ‘시스템 정당화 심리가 켜지면, 공적제도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믿음이 강화된다. 국가 자부심도 높아진다. 반면 시스템을 더 낫게 만들고자 하는 욕구는 줄어들고 현상 유지 성향이 강해진다.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 상태라면 복지제도는 신뢰하면서 복지 강화에는 시큰둥한 조합이 가능하다.

 

우리 조사에서는 시스템 정당화 성향을 측정한 문항이 없어서 이 가설을 직접 검증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징후를 살펴볼 수는 있다. “권위주의 성향이 전반적으로 올라갔어요. 권위주의 측정 문항 7개에서 모두 상승세가 잡힙니다.” 임동균 교수가 말했다. 권위주의 성향을 측정할 때 쓴 문항은 아래와 같다. 7점 척도로 답을 받았다.

 

1. 우리나라를 망쳐놓고 있는 극단주의를 제압할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2. 정부 권력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국민들을 쓸데없이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3. 사회 혼란을 일으키는 사람들과 싸워 나라를 옳은 길로 되돌려놓기 위해서라면 무력 사용도 정당화될 수 있다.

4. 우리나라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폭넓은 인권 보장이 아니라 좀 더 강력한 법질서이다.

5. 권위에 대한 순종과 존경은 우리 아이들이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6. 우리의 가치관과 법질서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문제 집단들을 강력히 척결해야 한다.

7.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것은 국가 지도층의 인도에 잘 따르는 질서정연한 국민들이다.

이 결과를 2016KGSS 조사와 비교했다. 권위주의 성향이 모든 문항에서 약간이라도 상승했다. 변화를 잘 보여주는 네 문항만 추려서 그린 결과가 4이다.

 

지난 호에서 우리는, 한국의 방역 성공이 권위주의 성향과 무관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권위주의 성향은 방역 참여를 결정하지 않았다. 방역 참여를 결정한 변수는 민주적 시민성과 수평적 개인주의였다. 하지만 코로나19 방역전을 거친 후, 한국인들은 좀 더 권위주의적으로 이동하는 징후가 포착됐다. 이 둘은 다른 얘기다. 임 교수는 “‘다시 태어나도 한국에서 태어나고 싶다문항이나 나는 대한민국 국민임이 자랑스럽다문항에 동의하는 사람들일수록 권위주의 성향이 높게 나타납니다라고 분석했다. 국가 자부심의 상승이 권위주의 성향 상승과 연계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시민들 덕에 방역에 성공했지만, 성공의 결과 우리는 더 수직적이고 권위 지향적인 사람들이 될지 모른다.

 

이제 우리는 드러난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가지 경로를 손에 쥐었다. ‘효능감으로 출발하는 길과 시스템 정당화로 출발하는 길이다. 먼저 효능감으로 출발해보자. 우리는 방역전에서 제대로 잘 작동하는 공적제도를 보았다. 세계 선진국들과의 비교로 이게 확인됐다. 따라서 국가 자부심과 공적제도 신뢰가 올랐고, 특히 코로나19 국면에서 위력을 발휘한 건강보험제도가 나머지 복지제도의 신뢰까지 끌어올렸다. 효능감을 느낀 시민들은 더 자신감을 갖고 공적제도를 업그레이드해 더 큰 효능감을 맛보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정치에 더 참여하려 할 것이고, 정치 효능감도 더 크게 느낄 것이다.

 

이 설명을 뒷받침할 만한 데이터로 정치 효능감 응답을 살펴보자. 정치 효능감을 묻는 질문은 모두 네 개인데, 모든 질문에서 정치 효능감이 올랐다. “나 같은 사람은 정부가 하는 일에 어떤 영향도 주기 어렵다라는 문장에, 응답자들은 5점 만점에서 3.25점을 기록했다. 이건 2014KGSS 조사의 3.49점보다 낮아진 것이다. , 정부가 하는 일에 내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더 많이 생각한다. 나머지 세 문항도 추세는 일관된다.

 

이제 반대쪽 경로, ‘시스템 정당화로 설명하는 길을 따라가보자. 위기 국면에서 사람들은 갖고 있던 불만을 접어두고 현재 시스템을 지지하도록 결집했다. 그 결과로 국가 자부심과 공적제도 신뢰가 올랐고 복지제도 신뢰도 따라서 올랐다. 하지만 현재 시스템이 정당하다고 믿기 때문에 복지를 요구하는 강도는 줄어들었다. 수직적 성향, 권위주의적 성향도 함께 올랐다. 이건 위기 국면에서 지도자를 중심으로 결집할 때 드러나는 전형적인 반응으로 볼 수 있다.

 

시스템 정당화설명이 타당하다면 흥미로운 예측이 하나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일수록 권위주의 성향이 강해졌으리라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평소라면 말이 안 된다. 문 대통령 지지층은 진보 성향이 강하고, 진보주의자들은 권위주의 성향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하지만 시스템 정당화가설은 이런 결과를 예측하도록 만든다. 임동균 교수는 대통령 신뢰도 점수를 기준으로 응답자들을 상중하 세 그룹으로 나눴다. 그리고 권위주의 7문항 응답을 기준으로 권위주의 성향 지수를 뽑았다. 그 결과가 5이다. 대통령 신뢰도가 높을수록 권위주의 성향이 높아졌다. 이 둘의 관계는 통계적으로 유의했다.

 

감염병 재난은 간명한 현상을 만들어내는 법이 없다. 거의 언제나 복잡하고 모순적이고 상충하는 설명을 동시에 요구한다. 감염병은 우리가 더 큰 공적제도 효능감을 느껴서 더 적극적인 시민이 되도록 만드는 동시에, 시스템을 정당화하는 더 보수적이고 내부 지향적인 시민으로도 만드는 것 같다. 효능감 경로와 시스템 정당화 경로는 둘 다 뒤엉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감염병은 평등한 동시에 불평등하다. 모두를 동시에 위험에 빠트려서 평등하고, 똑같이 때려도 약한 곳부터 부러지니까 불평등하다. 감염병은 유대감과 거리감을 동시에 만들어낸다. 공동의 싸움을 함께 겪고 있다는 유대감과 국가 자부심 위로 낯선 사람이 나를 감염시킬지 모른다는 거리감이 뒤섞인다. 감염병은 정말이지 독특한 재난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쩌면, 재난의 원래 속성이 그럴 수도 있다. 재난은 각자도생의 욕망과 서로 돕고자 하는 연대의식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것 같다. 미국의 위대한 세대는 2차 세계대전의 산물이지만, 모든 전쟁이 더 나은 시민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로버트 퍼트넘은 나 홀로 볼링에서, 왜 베트남전쟁은 2차 세계대전처럼 시민성 높은 사람들을 만들어내지 못했나를 묻는다. 답은 이렇다. “2차 세계대전은 미국 경제사에서 평등 효과를 가장 크게 발휘한 사건이었다. 전쟁을 거치는 동안 소득 상위 5%가 차지하는 몫은 28%에서 19%로 떨어졌다.” 이 시기 미국에서는 노동조합이 대규모로 조직되고, 군수산업이 대규모 고용을 창출하고, 고소득자 세금이 크게 올랐다. 이 모든 변화가 평등화에 기여했다. 그렇다면 베트남전쟁은? “저학력자, 빈곤층, 흑인이 주로 참전했던 악명 높은 불평등은 냉소주의가 널리 퍼지는 데 크게 공헌했다.” 베트남전쟁은 미국인들을 더 나은 시민으로 만들기는커녕 원자로 해체해버리는 전쟁이었다.

AP Photo 1965년 베트남전쟁 때 어린이와 여성을 미군이 경비하고 있다.

 

우리가 어디로 가기를 원하는가

우리는 감염병 재난이 위대한 세대한국판을 만들어낼지, 외환위기 이후의 각자도생 시대를 되풀이할지가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 갈림길이 외환위기 이후 사반세기 만에 맞이한 한국 사회의 대전환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데이터로 답을 내보고 싶었다. 그러나 데이터는 답 대신 꽤 평범한 진리를 알려주었는데, 우리가 사는 세계는 정해진 법칙대로 굴러가는 예정된 답 같은 건 없다는 사실이다. 위대한 세대가 만들어질 토양도 있고, 그에 반하는 징후도 있다. 갈림길 그 자체가 현재 상황의 본질이다.

 

공적제도 신뢰와 국가 자부심이 높아졌다. 이건 굉장한 자산이다. U자형 곡선의 함정을 빠져나갈 기회가 열렸다. 하지만 재난이 곧바로 신뢰와 호혜성이 넘치고 연대의 폭을 확장하는 좋은 시민을 만들어내지는 않았다. ‘얇은 신뢰는 사실상 움직이지 않거나 심지어 나빠지는 징후가 있다. 재난은 약간이라도 사람들을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것 같다. 그러나 사람들이 지금 국면에서 권위주의 성향이 올라간다는 사실이, 우리 미래가 나빠질 것이라고 결정되었다는 뜻은 또 아니다. 사회적 자본이, 특히 접착제와 같은 두터운 신뢰가 강화될 때는 내집단 충성심이 강화되면서 외집단을 밀어내는 부작용을 낸다. 사회적 자본과 편협한 태도는, 어느 정도는 함께 간다. 자산에 묻어 있는 부채와 비슷하다.

연합뉴스 528일 밤 서울 서소문역사공원에 마련된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주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갈림길 자체가 본질이라면 핵심 질문이 바뀐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어디로 가기를 원하는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우리는 일단 첫 판을 크게 이겼고 공적제도 신뢰를 판돈에 추가했다. 하지만 재난은 그냥 두면 불평등을 가속시키는 힘이 있다. 그리고 불평등은 위대한 세대의 출현을 가로막을 최대의 적이다. 퍼트넘은 간명하고 단호하게 이렇게 쓴다. “불평등과 사회적 연대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

 

외환위기 이후에 한국 사회는 재난의 갈림길에서 각자도생의 길을 갔다. 이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합의는 한국 사회에 폭넓다. 갈림길의 반대편에는 연대의 길이 있다. 여기까지도 이견이 크지 않다. 그러나 연대는 신뢰만큼이나, 어쩌면 신뢰보다 더 복잡하고 의미심장하고 풍성한 키워드다. 지금까지는 데이터가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었지만, 연대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낼지 숫자가 알려줄 수는 없다. 여기서부터는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의 영역이다. 19세기 사상가 마르크스는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이런 문장을 썼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이리저리 해석해왔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혁시키는 일이다.” 이 문장은 재난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적용되지만, 정치 지도자와 지식인들에게 특히 진실이다. 이걸 다루려면 또 하나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시사인 천관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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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간지 필진 164명 중 남성 112

외부 필진 남성 교수’ 32% 직업 교수 69명 가장 많아

 

신문의 오피니언 리더는 남성교수가 주류였다. 미디어오늘이 주요 중앙일간지 9곳의 오피니언 필진 164명을 분석했다. 각 신문의 2019년 하반기, 2020년 상반기 새 필진 알림 발표 내용이 대상이다. 이 가운데 남성은 112명으로 총 필진의 68%를 차지했다. 국민일보의 경우 새로 발표한 필진 7명 전원이 남성이었다.

 

직업 중 가장 많은 부류는 대학교수였다. 대학 총장까지 포함하면 69명이 교수다. 필진의 42%가 대학교수인 셈이다. 69명의 교수 가운데 여성 교수는 15명이었다. 164명의 필진 중 남성 교수54명으로 32%를 차지했다. 교수 외에는 작가, 칼럼니스트, 변호사, 의사, 종교인, 시민단체 활동가 등이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경향신문 35(남성 22교수(총장 포함) 9), 국민일보 7(남성 7교수 3), 동아일보 12(남성 9교수(총장 포함) 7), 서울신문 15(남성 9교수 8), 세계일보 20(남성 14교수 11), 조선일보 16(남성 8교수 8), 중앙일보 10(남성 9교수 4), 한겨레 10(남성 7교수 2), 한국일보 39(남성 27교수 17)으로 총 164명이 집계됐다. 남성과 여성 필진이 동수인 신문은 조선일보가 유일했다.

각 지면에 실린 새로운 필진 합류 알림.

 

국민일보는 지난해 7월 새 필진 7명의 합류를 발표했는데 전원 남성이었다. 남성 7명 가운데 3명이 교수였다. 중앙일보는 지난해 1210명의 추가 필진을 발표했다. 10명 가운데 9명이 남성이었고 여성은 1명이었다. 10명 가운데 4명이 교수였다. 여성 1명은 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다.

 

경향신문은 지난 1월 필진 35명을 발표했다. 35명 가운데 남성은 22, 여성은 13명이었다. 35명 가운데 교수 필진은 9명이었다. 청년 필진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참여가 눈에 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김도현 노들장애학궁리소 활동가, 권지웅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등이 참가했다. 경향신문 의제가 청년 노동, 장애, 주거, 빈곤층, 환경으로 확대됐음을 확인할 수 있는 필진 구성이다.

 

한겨레도 지난 1월 새 필진 10명을 추가했다. 남성은 7, 여성은 3. 이 가운데 교수는 2명이었고 의사 필진도 있었다.

 

세계일보도 같은 달 20명의 필진을 공개했다. 남성은 14, 여성은 6명이었다. 이 가운데 교수는 20명 필진 중 11명이다.

 

한국일보는 지난 2월 필진 39명을 발표했다. 남성은 27, 여성은 12명이다. 이 가운데 교수만 17명이었다. 필진 가운데 거의 절반이 교수다. 교수 뒤를 이은 직업은 작가로 7명이었다.

 

조선일보는 지난 5월 새 필진 16명의 합류를 알렸다. 16명 가운데 남성과 여성 수는 각 8명으로 동수. 조선일보는 새 필진 나이를 모두 기재했다. 30대는 3, 40대는 6, 50대는 5, 60대는 2명이었다. 새 필진 중 교수는 절반인 8명이었다. 교수 가운데에서도 서울대 교수가 5명이었다. 조선일보에는 5월 합류 필진 외에도 기존 필진에도 강원택 서울대 교수, 윤석민 서울대 교수, 전상인 서울대 교수 등 서울대 교수 필진들이 포진해 있다.

 

서울신문은 지난해 7115주년을 맞아 새 필진들을 소개했다. 15명 필진 가운데 남성은 9, 여성은 6명이었다. 이 가운데 8명이 교수였다.

 

동아일보는 지난 4100주년을 맞아 12명의 새 필진을 공개했다. 남성은 9, 여성은 3명이었다. 이 가운데 교수는 총장을 합해 7. 눈에 띄는 필진으로 삼성 공채 출신 첫 여성 임원을 지낸 뒤 독립서점을 연 최인아씨, 작사가 김이나씨가 있다./정민경 기자 mink@mediatoday.co.kr

 

삼성 법률대리인이 썼나비판받는 양창수의 매경 칼럼

양창수 검찰수사심의위원장 이재용이 왜 사과해야 하나한겨레 선후관계 비튼 왜곡 칼럼심상정 삼성맨 위원장 사퇴해야

삼성 경영권 부정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기소 여부를 심의하는 양창수 검찰수사심의위원장의 과거 칼럼이 논란이다.

 

양 위원장은 대법관 재직 시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 사건에 무죄 판단을 내린 데다가 지난달 매일경제에 이재용 부회장을 적극 두둔하는 칼럼을 기고하는 등 삼성 편향논란에 휩싸였다. 그의 처남이 현재 삼성서울병원장으로 재직하는 등 양 위원장의 자격 적절성 논란에 정치권에서도 사퇴 요구가 나오고 있다.

 

양 위원장은 지난달 22일 매일경제에 양심과 사죄, 그리고 기업지배권의 승계라는 제하의 칼럼을 기고했다. 양 위원장은 칼럼에서 아버지가 기업지배권을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범죄가 아닌 방도를 취한 것에 대해 승계자가 공개적으로 사죄를 해야 하는가. 혹 불법한 방도라고 하더라도, 그 행위의 당사자도 아닌데 거기서 이익을 얻었다는 것으로 자식이 사과를 할 것인가라며 경영권 승계 논란에서 이 부회장 책임은 없다는 취지의 글을 썼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01810월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이어 법이야 독립한 개인을 출발점으로 한다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역시 집안이라는 게 우선이고 그 구성원의 일은 다른 구성원 모두에게 당연히 책임이 돌아가는가라며 아니면 이 부회장 또는 삼성은 그 승계와 관련해 현재 진행 중인 형사사건 등을 포함해 무슨 불법한 행위를 스스로 선택해 저질렀으므로 사죄에 값하는 무엇이라도 있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삼성 경영권 승계에 불법성이 있었더라도 불법 행위 당사자는 이 회장이지 이 부회장 책임은 아니라는 취지의 글이다.

 

양 위원장은 같은 글에서 국가는 고율의 상속세를 부과한다. 현재 과세표준이 30억원을 넘는 부분은 그 세율이 50%로서, 기업은 반쪽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주가 자신의 사후에 대비해 기업의 지속을 원해 지배권의 원만한 승계를 위한 방도를 미리 마련하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매일경제 522일자 양창수 칼럼.

 

이어 이른바 삼성에버랜드사건에서는 그 점이 정면에서 다뤄졌다. 이사회의 결의로 실권주를 낮은 가격으로 배정한 것 등이 당시의 법으로 회사에 대한 업무상 배임이 되는지가 문제됐다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095월에 피고인들을 무죄로 판단했다.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았다는 점이 그 최종적 판단을 뒤엎지는 못한다고 주장했다. 2009년 당시 자신이 면죄부를 준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 사건에 기존 입장을 피력한 것이다.

 

한겨레는 15일 사설에서 양 위원장 매경 칼럼을 교묘하기 이를 데 없는 언술이라며 양 위원장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수동적인 존재라고 간주하면서 그의 무죄를 단언한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 안에는 이번에 수사심의위에 오른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의 분식회계 등 불법행위까지 포함돼 있다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한겨레 15일자 사설.

 

한겨레는 이 과정이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다음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양 위원장의 주장은 사건의 선후관계를 교묘하게 비튼 왜곡이라며 양 위원장의 글은 이 부회장과 삼성의 법률 대리인이 쓴 변론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15“(양 위원장은) 한 달 전 이 부회장 무죄를 주장하는 글을 기고했고 현재 처남이 삼성서울병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삼성맨위원장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를 지휘하면 어떤 결정이 나와도 시민들은 왜곡됐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밝혔다./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공영 시사프로는 친정부 편향세력영향권작심 비판한 손석춘

진보언론학자 손석춘 교수, 공영언론 정파성 비판

시민언론운동, 민주당의 하위조직화비판에 보수언론 프레임 시각반박도

한국 저널리즘 위기에 공영방송 정파성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와 주목된다. 조선·중앙·동아일보와 이들 신문이 소유한 종합편성채널 등 조중동 신방복합체의 독과점도 여론 시장을 왜곡하고 있지만 공영방송도 친정부 편향으로 기울고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이 진보 언론학자에게서 나왔다.

 

10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80년 제작거부 언론투쟁 40년 기획세미나발제자인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조중동 신방복합체만 침묵하면 한국의 언론자유는 만발할까라고 질문을 던진 뒤 조중동 신방복합체에 저널리즘 복원을 촉구하기 위해서라도 짚어야 할 것은 우리 안의 저널리즘이라고 밝혔다.

 

손 교수는 한국의 공영방송은 영원히 친정부 편향일 수밖에 없는 걸까라며 대표적 보기로 저널리즘을 바로잡겠다는 KBS저널리즘토크쇼J’가 보여주듯 KBS·MBC, 교통방송(TBS) 시사프로그램들은 친정부 편향 세력의 영향권 아래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손 교수는 지난 2KBS 저널리즘토크쇼J 시즌2에 합류했지만 제작진에 강의와 집필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전하고 자진하차했다.

 

손 교수는 “KBS는 총선을 앞두고 정치합시다를 몇 달에 걸쳐 방송했다. 유시민·박형준 등 고정 출연자에서 볼 수 있듯 정치를 양당 구도로 굳어졌고 실제 그 결과는 20204월 총선에서 거대 양당 체제로 나타났다. 교통방송의 김어준 시사프로그램은 노골적인 진영 방송이다. 그 결과 저널리즘은 쇼나 희화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노무현과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기레기로 단정 짓는 해괴한 흐름을 목도하고 있다. 권력 감시가 저널리즘 생명임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시시비비를 가리는 수고를 접은 채 진영논리와 확증편향이 짙어가고 있다. 저널리즘 자체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시청률과 청취율, 구독율을 무기로 응집한 진보진영의 저널리즘 이해와 정파적 언행이 저널리즘 신뢰도를 추락시킨다는 비판이다.

 

손 교수는 더불어민주당도 도마 위에 올렸다. 손 교수는 민주당은 언론개혁을 진영논리로 공공연히 받아들이고 있다. 정파적 관점에서 보면 2020년 현재 언론 지형에 문재인 정부도 민주당도 큰 불편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고 꼬집고는 시민언론운동이 민주당의 하위조직으로 편입돼 가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시민사회 일각의 주장은 정말 기우일까라고 비판했다.

 

손 교수는 언론 신뢰도 위기 극복을 위한 해법으로 송건호의 저널리즘을 강조했다. 독재정권에 맞섰던 언론인 송건호 선생은 언론을 소유한 기업주들로부터 편집의 자율성 보장이 시대적 과제임을 제시했고 이를 헌법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 교수는 송건호 주장은 지금도 유효하다지금 편집권 독립에 관해 헌법은 차치하고 입법하자는 움직임도 동력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대통령 직속으로 미디어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며 그 위원회가 미디어 개혁 합의를 이루고 그를 토대로 국회에서 법제화하는 과제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디어위원회 구성을 통해 편집권 독립과 소유권 분산이라는 오래된 과제를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날 세미나에서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손 교수의 시민언론운동이 민주당의 하위조직으로 편입돼 가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에 불편함을 드러내며 적극 반박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를 지낸 정 교수는 시민언론단체가 민주당의 하위 조직으로 편입돼 간다는 주장은 지나친 말씀이다. 어떤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걱정스럽다. 이와 같은 주장은 언론개혁 대상이자 개혁운동에 반대하고 있는 일부 보수 언론 프레임이라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지난 20대 국회에서 민언련을 포함한 시민단체들은 민주당이 가짜뉴스 규제 등을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움직임을 보일 때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또 민주당 등 정당이 공영방송 이사 선임에 관여하는 방송법안에 반대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미래통합당에 비해 민주당이 개혁입법에 나설 수 있는 정당이라는 점에서 행보를 같이 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를 민주당의 하위조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반박했다.

 

정 교수는 손 교수의 공영방송 시사프로그램 비판에도 일부 프로그램은 비난받곤 하지만 저널리즘토크쇼J의 경우 KBS 미디어포커스, 미디어비평 등을 잇는 프로그램으로, 이 프로그램이 언론개혁 대상인 보수·수구언론과 종편에 비판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친정부 편향 세력 영향력 하에 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정 교수 반박에 제 발제문 표현대로, 시민언론운동이 민주당의 하위조직으로 편입돼 가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시민사회 일각의 주장은 정말 기우일까라고 다시 묻고 싶다성찰할 지점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KBS 시사 프로그램 정치합시다가 총선을 앞두고 양당의 대표 스피커인 유시민, 홍준표, 박형준 등을 불러서 이야기했고 총선 결과 역시 양당 구도로 공고화했다. 최근 저널리즘토크쇼J가 최강욱(열린민주당 대표)을 불러 토크했는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나. 누군가는 그 부분을 이야기하고 지적해야 하지 않느냐. 교수가 안 하면 누가 하느냐고 물었다.

10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80년 제작거부 언론투쟁 40년 기획세미나발제자인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조중동 신방복합체만 침묵하면 한국의 언론자유는 만발할까라고 질문을 던진 뒤 조중동 신방복합체에 저널리즘 복원을 촉구하기 위해서라도 짚어야 할 것은 우리 안의 저널리즘이라고 밝혔다. 사진=김용욱 기자.

 

토론자로 나선 이선민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강사는 언론의 정파성도 문제지만 정파성 강한 시민들이 저널리즘 위기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사실에 일단 기레기로 낙인을 찍고, 자신들이 믿는 진실을 관철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박성현 자유언론실천재단 기획편집위원은 토론문을 통해 언론이 완전한 중립성, 객관성을 견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취재에는 이미 기자의 문제의식이 포함돼 있고 신문기사의 편집과 TV뉴스 꼭지들의 순서 배정에는 데스크와 보도국의 관점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박 위원은 어떤 사안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전달하고 그 사안의 맥락과 이면에 대한 해석 또는 관점을 제공한다면 거기에 개별 언론인·언론사의 정파성이 반영됐다고 해서 배척할 일은 아니다라며 단 언론인과 언론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 규범은 진실 추구라는 언론 본연의 책무를 잊지 않는 것이며 정파성은 그 책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남성, 42% 성구매 해봤다"'성매매' 실태, 여성은?

우리나라 남성 가운데 평생 성구매를 경험해 본 비율은 42.1%인 반면 여성은 1% 정도로 나타났다.15일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등과 함께 전국 만 20세 이상 60세 미만 남성 2300, 여성 800명 성인을 상대로 '성매매 경험·인식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남성의 경우 42.1%"평생 한 번 이상 성구매를 경험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여성의 경우 응답자 800명 가운데 9(1%)"평생 한 번 이상 성구매를 해 본적이 있다"고 말해 남녀의 성구매 경험 비중이 극명히 갈렸다. 특히 한국 남성들의 최초 성구매 동기로는 호기심(28.6%)을 가장 많이 선택했으며, 이어 특별한 일전에(20.4%), 회식 등 술자리 후(18.9%) 순으로 나타났다. 또 한국 남성들이 최초 성구매를 한 연령은 20세 이상(53.9%)이 가장 많았고, 이어 25세 이상(26.8%), 30세 이상(10.3%) 순이었다.

여성가족부 제공 여성가족부 제공

 

이와 함께 여가부는 같은 기간 전국 중고생 6423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서 성적 유인 피해' 사례를 조사한 결과 청소년의 11.1%20168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온라인에서 원치 않는 성적 유인을 당했다고 답했다.

 

성적 유인이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은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메신저 같은 인스턴트 메신저(28.1%)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대표적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27.8%)와 인터넷 게임(14.3%), 랜덤채팅(13.7%)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위기 청소년의 경우 응답자 166명 중 조건만남을 해봤다고 말한 비율은 47.6%였으며, 조건만남 경우 87.2%가 온라인을 이용했다고 답했다. 이중 가출과 조건만남을 모두 경험한 응답자의 77.3%는 가출 이후 조건 만남을 처음 경험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정옥 여가부 장관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청소년들은 그만큼 성적 유인과 성매매 피해를 경험할 위험이 높다"면서 "범죄 방지와 피해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장혜진 부산닷컴 기자 jjang55@busan.com

북한은 왜 남북간 파국의 길을 택했나

대북삐라 때문에 연락사무소 폭파? 문 대통령 북미관계 힘든 것 알아발언도향후 개성공단 철거, 전방 재무장격랑속으로 우려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파괴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쓰면서 남북관계가 파국의 위기에 처했다. 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시킨 것은 거친 비난이나 바닷가에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건물 설립과 유지에 우리측의 세금이 들어간 공적 재산일 뿐 아니라 소통의 상징인 탓이다.

 

북한은 왜 이같이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북한은 대남 비난전이 시작된 지난 4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에서 문제 삼은 것은 탈북단체의 대북전단(반공화국 삐라) 살포였다. 당시 김 부부장은 사람값에도 들지 못하는 쓰레기들이 함부로 우리의 최고존엄까지 건드리며 '핵문제'를 걸고 무엄하게 놀아댄 것이라고 비난했다. 우리 정부가 이날 곧바로 대북삐라는 백해무익”(청와대 관계자) “대북전단 금지 법안 제정”(통일부) 등의 입장을 냈다. 7일엔 우리민족끼리가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관계의 선순환관계 언급을 들어 달나라 타령이라 조롱했다. 북측은 9일엔 급기야 모든 통신을 끊었다. 조선중앙통신은 쓰레기들의 반공화국적대행위를 묵인하여 북남관계를 파국적인 종착점에로 몰아왔다면서 우리 정부의 대북전단 묵인을 문제삼았다.

 

이에 우리 정부는 최고안보기관인 NSC가 지난 11일 긴급회의를 열어 직접 대북전단을 철저히 단속하겠다고까지 했다. 그랬더니 김여정 부부장은 13일 저녁 담화에서 “2년동안 하지 못한 일을 당장에 해낼 능력과 배짱이 있는것들이라면 북남관계가 여적 이 모양이겠는가라며 늘 뒤늦게 설레발 치는 그것들의 상습적인 말에 귀를 기울이거나 믿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우리 정부의 약속도 걷어차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면서 김 부부장은 남조선 것들과 결별하고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무너뜨릴 것이며 총참모부에 행동의 행사권을 넘겨주려 한다고 했다.

 

이에 문 대통령이 15일 대화의 창을 닫지 말 것을 요청한다고까지 간곡히 제안했으나 하루도 되지 않아 대화의 창의 상징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켜버렸다.

 

결국 대북 전단은 북한의 파국적 행보에 근본적 원인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의 15일 두차례 대북 메시지를 보면 그런 행간을 읽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나는 한반도 정세를 획기적으로 전환하고자 했던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과 노력을 잘 안다기대만큼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나 또한 아쉬움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6·15 공동선언 20주년 기념식 영상 축사에서도 김 위원장에게 기대만큼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진전이 이뤄지지 않은 것에 아쉬움이 매우 크다고 거듭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한마디로 북한의 이런 불만 폭발의 배경이 북미관계가 잘 풀리지 않고 있어서라고 보고 있음을 내비쳤다고 해석할 수 있다. ‘남과 북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사업을 찾아 실천하자고 한 것도 이런 협력의지로 해결해보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16일 폭파 직전 브리핑에서 우리정부가 대북전단 규제 약속까지 했는데도 북한이 왜 이렇게 강하게만 나온다고 보느냐는 미디어오늘 질의에 정부 부처가 대응을 했다는 말로 갈음하겠다고 답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16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내놓은 분석자료에서 북한이 남북관계를 냉전시대의 적대적 관계로 되돌리겠다는 입장을 이처럼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은 북한이 문재인 정부에 대해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정부는 이 같은 불길한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는지도 의문이다. 김여정 부부장이 지난 13일 담화에서 멀지 않아 쓸모없는 북남공동련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다만 이렇게 말한지 사흘만에 진짜로 비참하게 폭파시키리라고까지 예상했을지는 미지수다. 김유근 NSC 사무처장도 16일 저녁 NSC 긴급회의결과 브리핑에서 사무소 폭파를 두고 북측의 일방적 폭파라고 규정했다.

 

문 대통령은 전날 수석보좌관회의 발언에서 정부의 대화 노력을 강조하면서도 그러나 남북관계는 언제든지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격랑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여지를 두었다.

 

향후 어떻게 한반도 운명이 어떻게 될지 우려가 나온다. 김 부부장이 지난 13일 담화에서 다음단계의 행동으로 남조선당국이 궁금해할 그다음의 우리의 계획에 대해서도 이 기회에 암시한다면 다음번 대적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고 했고,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16일 아침 노동신문에 비무장지대의 재무장과 요새화등 행동방안을 연구하라는 의견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개성공단의 철거로 이어지리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센터장은 북한이 대북전단 살포의 한국정부 책임론제기와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정당화에 이어 곧바로 개성공단의 완전철거로 나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던 개성공단 지역을 확실하게 군사적 용도로 다시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조현호 기자 chh@mediatoday.co.kr

 

소장 무릎 꿇고 사과보도에정의연 교묘한 짜깁기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어생애 송두리째 부정

 

부실 회계 논란 등이 제기된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 등을 향해 책임지지 못하는 말과 글 그만 쏟아내달라고 경고했다. 특히 위안부 피해자 쉼터 평화의 우리집소장 손영미씨의 사망 원인을 놓고 여러 추측이 나오는 것과 관련, “고인의 생애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이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4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17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44차 수요시위에 참가해 일부 정치인이 앞장서고 언론이 판을 키우며, 연구자가 말과 글을 보탠다원인 규명과 질문을 가장한 각종 예단과 억측, 책임 전가성 비난과 혐오 표현이 난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지지 못 하는 말과 글을 그만 쏟아내 주시기 바란다아집과 편견, 허위사실, 사실관계 왜곡, 교묘한 짜깁기에 기초한 글쓰기를 중단해달라고 밝혔다. 이 이사장은 특히 지난 6일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쉼터 소장 손씨에 대한 일부 언론의 행태에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오전 조선일보 등 언론은 손 소장이 관리하던 길원옥(92) 할머니의 통장에서 다른 계좌로 여러 차례 돈이 빠져나갔고 길 할머니의 며느리가 손 소장에게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자 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고 보도했다. 손 소장은 그 일이 있은 지 사흘 뒤 목숨을 끊었다고도 했다.

 

이 이사장은 “16여 년간 피해 생존자들과 함께한 소장님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와 예의조차 갖추지 않은 채 고인의 생애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있다고인의 죽음을 비인권적, 반인륜적 호기심과 볼거리, 정쟁 유발과 사익추구, 책임 회피용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 11일 마포 쉼터를 떠난 길원옥 할머니에 대해서도 “(언론이) 활동가들과 피해 생존자 가족 간 갈등을 조장하고 분쟁을 즐기며 살아계신 길원옥 인권운동가의 안녕과 명예에 심각한 손상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 연합뉴스

 

한편 정의연은 최근 언론중재위원회에 언론사 7곳에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조정신청서를 냈다. 이 이사장은 발언 끝에 수많은 시민의 사랑과 땀으로 일궈진 운동의 역사를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천천히 나아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누가 옥류관 냉면을 '논란의 대상'으로 삼았나

누구를 위한 '따옴표 저널리즘'인가

누군가의 주장을 아무 검증 없이 받아 적는 행위'.

 

한국언론진흥학회는 '따옴표 저널리즘'을 이렇게 정의하며 "'he said, she said coverage(보도)'라고도 말하는 따옴표 저널리즘은 특정한 주장의 진위는 파악하지 않고 주장 자체를 부각해 보도하는 경향"이라고 부연했다. 검증도, 진위 파악도 없이 오로지 자사의 정파적·경제적 '유불리'만이 중요시되는 '따옴표 저널리즘'이 작금의 한국 언론을 지배하는 중이다.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미국 역시 이 '따옴표 저널리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미국은 1950년에 "찰리 채플린도 빨갱이다"라고 지목했던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에 의해 '매카시즘 광풍'이 불어 닥쳤다. 이게 무려 70년 전이다.

 

우리의 경우, 언론이 인터넷 포털에 종속되고, 독자들이 기사를 온라인으로 소비하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따옴표 저널리즘'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 할 수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심각한 형태를 나는 '복화술'이라 부른다. 기자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해당 발언자를 통해 전달하거나, 모종의 특수한 이해관계를 공식적인 기사를 통해 자연스럽고 정당한 것으로 바꾸어 사람들의 의식 안에 침투시키고자 하는 일련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통해 일일이 다 밝힐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매일매일 결코 간과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종류의 복화술 저널리즘을 마주한다. 기자 스스로 대기업의 입이 되고, 특정 정치세력의 대변자가 되고, 공익과는 무관한 이해관계의 목소리를 받아쓰면서 일말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불쾌감을 넘어 무력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가 지난 20193월 방송기자연합회가 발간하는 <방송기자>에 기고한 <따옴표 저널리즘의 딜레마관행이란 이름의 범속함, 그 악의 평범성> 중 일부다. 정 교수는 이러한 '따옴표 저널리즘'의 횡행을 "단적으로 말하자면 너무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뒤, 그중 가장 심각한 형태의 '복화술 저널리즘'을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비유하며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대개의 '따옴표 저널리즘'은 온라인 속보 경쟁 시대 저널리즘의 맨얼굴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기자의, 편집자의, 언론사의 의도와 편집 방향이 배제된 발언의 경우 단순 전달이 과연 가능할까. 이같이 정 교수가 '복화술 저널리즘'이라 일컬은 보도와 편집 행태야말로 언론사와 기자의 각종 의도를 발언자의 발언을 통해 전달하는 고도의 저널리즘 행위이지 않을까.

 

그리고, '따옴표 저널리즘''복화술 저널리즘의'의 정점을 찍는 기사들이 6.15 공동선언 20주년 당일인 15일 소셜 미디어를 장식했다. 다름 아니라, 최근 북한의 오수봉 옥류관 주방장이 북한의 대외선전 매체인 <조선의 오늘>에서 이른바 '옥류관 국수' 발언을 제목으로 내세운 기사들이었다.

 

6.15 공동선언 20주년 수놓은 '따옴표 저널리즘'

조선일보는 15일 평양 옥류관의 오수봉 주방장의 문재인 대통령 비판 발언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날 조선일보는 다소 과격한 문장을 제목으로 뽑아 사용했다.조선일보

 

<"국수 처먹을 때는 요사 떨더니... " 옥류관 주방장까지 대통령 조롱>

<"처먹을 땐 요사 떨더니"... 평화 상징 평양냉면의 '독한 변신'>

<"국수 처먹을땐 요사 떨더니"... 옥류관 주방장까지 대남 비난>

 

약속이나 한 듯, 엇비슷한 따옴표 속 "요사 떨더니"란 표현이 눈에 콕 박힌다. 차례대로 15일자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가 앞다퉈 지면과 온라인을 가리지 않고 내놓은 기사 제목이다.

 

최근 북한이 연일 대남 강경 기조를 앞세우고,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강경 발언에 이목이 집중되자, '처먹을 때', '요사 떨더니'란 거칠고 자극적인 발언과 '옥류관 주방장'이란 발화 주체가 맞물린 해당 발언이 '따옴표 저널리즘'으로 먹고 사는 언론들의 구미를 당겼다고 볼 수 있다.

 

해당 발언이 최초 보도된 것은 지난 13일부터다. 북한 선전매체 특유의 강성 발언과 튀는 표현이 기사화되는 것은 드문 일도 아니다. 여기에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 등 보수야권과 진중권 동양대 전 교수 등이 이 발언을 문재인 정부 비판에 활용하며 주목도를 높였다. 이 같은 주목에 종편을 위시한 각종 시사토크 프로그램에서도 단골 소재로 활용되는 중이다.

 

이렇게 해당 발언은 156.15 공동선언이 20주년을 맞으면서 경색된 남북 분위기를 상징하는 '워딩'으로 사흘째 활용되고 있다. 과연 이 옥류관 주방장의 발언이 이 정도 기사가 쏟아질 만큼 기사 가치가 있는지는 둘째치더라도 말이다.

 

'조중동'만의 문제도 아니다. 13일 이후 사흘간 보수경제지, 통신사, 인터넷 매체 할 것 없이 해당 발언이 제목으로 포함된 기사들을 내용만 바꿔 재활용하고 있고, 보수 유튜브 채널들도 가세했다.

 

'조중동'을 비롯한 일부 매체들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은 '따옴표'뿐 만이 아니다. 사진으로 그 의도를 드러내는 매체도 부지기수다. 지난 사흘간 관련 기사에 문재인 대통령이 2018919일 평양 옥류관에서 열린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오찬에서 평양냉면으로 식사하는 평양사진공동취재단의 사진을 게재한 곳이 부지기수였다.

중앙일보는 15< "처먹을 땐 요사 떨더니"···평화 상징 평양냉면의 "독한 변신" > 제목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의 사진을 배치했다. 기사 전체의 불분명한 의도보다 제목과 사진에 먼저 눈길이 가게 만들었다.중앙일보

 

이들 매체의 편집 효과에 의해 오수봉 옥류관 주방장의 "국수 처먹을 때는 요사 떨더니"란 비난은 문재인 정부가 아닌 대통령 개인을 겨냥한 발언으로 둔갑해 버렸다. '따옴표 저널리즘'과 사진 편집 효과가 극대화된 경우랄까.

 

<중앙일보>15일 자 <"처먹을 땐 요사 떨더니"... 평화 상징 평양냉면의 '독한 변신'> 기사가 대표적이다. <중앙일보>는 해당 사진을 첫머리에 내세운 뒤 "평양냉면의 정치적 의미도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됐다"며 오 주방장의 발언을 소개했다. 기사 전체의 의도보다 제목과 사진에 눈길이 가게 했으나, 이 기사의 결론은 제목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평양냉면이 다시 평화의 상징이 될지는 불투명하다. 북한이 옥류관 주방장을 대남 막말공세에 동원한 것은 북한 정권이 남북관계에서 평양냉면의 함의를 잘 꿰뚫고 있다는 방증이다. 어쨌든 평양냉면의 정치적 위상은 위태로운 지경이 됐지만, 날이 급속히 더워지면서 전국의 평양냉면 집들은 때 이른 대목을 노릴 수 있게 됐다."

 

'따옴표 저널리즘'이 애호하는 또 하나의 이름, 삼성

15일 오후, <조선의 오늘> 홈페이지에서 오수봉 주방장의 발언이 담긴 기사는 찾아볼 수 없다. 한국 언론이 앞다퉈 인용하는 탓에 북한 측이 삭제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지난 사흘간 해당 발언을 '뜨거운 논란의 대상'으로 부각시킨 것은, 남조선 당국을 비판해온 <조선의 오늘>이 아닌 우리 언론일 것이다. 6.15 공동선언 20주년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남북관계 현안을 분석하는 기사들보다, '따옴표 저널리즘'에 입각한 기사들이 누군가에겐 더 주목받고 훨씬 더 '클릭'을 받지 않았을까.

 

'따옴표 저널리즘'을 애호하는 언론들은 절대 "누군가의 주장을 아무 검증 없이 받아 적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대체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주장 자체를 부각"할 때 적극 활용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옥류관 주방장의 발언이 문 대통령의 냉면 시식 사진과 함께 6.15 공동선언 20주년 즈음에 부각된 이유도 미루어 짐작 가능할 것이다.

14, KBS <저널리즘토크쇼J>"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feat. 언론)"라는 주제로 삼성에게만 유독 관대해지는 언론사들의 "따옴표 저널리즘"을 비판했다.KBS

 

물론 그 반대도 존재한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구태여 왜곡할 필요도 없는 따옴표 제목이 등장할 때도 있다. 바로 삼성 관련 보도다. 옥류관 주방장의 독한 워딩은 6.15 공동선언 20주년 특수에 따른 것이지만, 대다수 언론은 삼성이 내는 보도자료나 이재용 부회장 관련 기사의 제목들을 따옴표 안에서 '대동단결' 시키고 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구속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던 지난 8, 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라는 정체불명의 연구소가 제공한 보도자료와 제목을 고스란히 따옴표 안에 인용한 매체들은 "80여 곳에 달한다"고 한다. 그 따옴표 안에 들어있던 제목은 이랬다.

 

"국민 60% 이재용 부회장 선처 의견."

 

하성태 / 오마이뉴스

 

 

김여정, 문대통령 6·15 메시지에 혐오감 금할 수 없어사죄와 반성, 재발방지 있어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연합뉴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6·15 선언 20주년 메시지에 대해 혐오감을 금할 수 없다남조선 당국자의 이번 연설은 응당 그에 대한 사죄와 반성, 재발방지에 대한 확고한 다짐이 있어야 마땅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 제1부부장은 17철면피한 감언리설을 듣자니 역스럽다는 제목의 담화를 내고 문 대통령이 지난 15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회의와 6·15 선언 20주년 기념행사에 보낸 영상 메시지를 언급하며 “20006·15 공동선언 서명시 남측 당국자가 착용하였던 넥타이까지 빌려 매고 2018년 판문점 선언 때 사용하였던 연탁 앞에 나서서 상징성과 의미는 언제나와 같이 애써 부여하느라 했다는데 그 내용을 들어보면 새삼 혐오감을 금할 수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제1부부장은 명색은 대통령의 연설이지만 민족 앞에 지닌 책무와 의지, 현 사태 수습의 방향과 대책이란 찾아볼래야 볼 수가 없고 자기변명과 책임회피, 뿌리 깊은 사대주의로 점철된 남조선 당국자의 연설을 듣자니 저도 모르게 속이 메슥메슥해지는 것을 느꼈다고 비난했다.

 

그는 엄중한 현 사태가 쓰레기들의 반공화국삐라살포망동과 그를 묵인한 남조선 당국 때문에 초래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며 하다면 남조선 당국자의 이번 연설은 응당 그에 대한 사죄와 반성, 재발방지에 대한 확고한 다짐이 있어야 마땅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본말은 간 데 없고 책임회피를 위한 변명과 오그랑수(꼼수)를 범벅해놓은 화려한 미사려구로 일관되여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평화는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느니, 구불구불 흐르더라도 끝내 바다로 향하는 강물처럼 락관적신념을 가져야 한다느니, 더디더라도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느니 하며 특유의 어법과 화법으로 멋쟁이 시늉을 해보느라 따라 읽는 글줄 표현들을 다듬는데 품 꽤나 넣은 것 같은데 현 사태의 본질을 도대체 알고나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쓰레기들이 저지른 반공화국삐라 살포행위와 이를 묵인한 남조선 당국의 처사는 추상적인 미화분식으로 어물쩍해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것을 어떻게 일부의 소행으로, 불편하고 어려운 문제로 매도하고 단순히 무거운 마음으로만 대할 수 있단 말인가라며 그런데 남조선 당국자에게는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인정도 없고 눈곱만큼의 반성도 없으며 대책은 더더욱 없다. 이런 뻔뻔함과 추악함이 남조선을 대표하는 최고 수권자의 연설에 비낀 것은 참으로 경악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비난했다/이주영 기자 young78@kyunghyang.com

 

검은 공생법 ] 물어보셨나요: 누구 돈 받고 연구하세요?

뉴스타파 백신 프로젝트 <, , >

검은 공생법 : 혈관과 로비

물어보셨나요: 누구 돈 받고 연구하세요?

아주대병원 '스텐트 대리점'의 진짜 주인

의사들의 속내를 읽다: '로비 노하우' 파일

 

제약회사나 의료기기 업체가 의료인에게 제공한 금품과 향응은 고질병과 같았다. 결국 지난 2010년 일종의 납품 사례인 리베이트를 주는 업체 뿐만 아니라 이를 받는 의료인까지 처벌을 하는 이른바 리베이트 쌍벌제'가 생겼다. 이후 관련 업계는 허용 가능한 금전적 지원의 기준을 정해 자율적으로 업계 규약을 제정·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규약이 제정되자 노골적인 리베이트는 점점 음성화 되고 수법 또한 고도화 돼 왔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지난 2018년부터 의료기기 업계의 리베이트 비리를 추적하고 있다. 이번에는 국내 관상동맥스텐트 제조업체 제노스의 사례를 통해 의료기기 업계의 고도화된 리베이트 수법을 파헤쳤다.

스텐트는 노폐물이 쌓여서 좁아진 혈관이나 장기를 넓혀 혈류가 정상적으로 흐를 수 있도록 돕는 인체이식형 의료기기이다. 인체에 주는 영향이 큰 만큼 잠재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등 위해성이 높아 4등급 의료기기로 분류된다.

 

연 매출이 270억 원 가량인 의료기기 업체 제노스는 의료기기 중에서도 위해성이 가장 높은 관상동맥 스텐트와 풍선 카테터, 커넥터와 같은 제품을 만든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입수한 제노스 내부 자료에 따르면, 이 회사 영업사원들은 이미 식약처 허가를 받은 자사 제품 임상시험을 병원에 의뢰하고 연구비를 지원하는 수법으로 판로를 개척했다. 제노스가 이렇게 임상시험을 진행한 곳이 전국 주요 병원 40곳에 이른다. 제노스는 병원 측에 자사 제품을 시술받는 임상시험 참여 환자 1인당 40~50만 원의 연구비를 지급했다.

 

임상시험, 고도화된 리베이트·영업수단연구비 지급 구조도 문제

보통 식약처 허가 뒤 병원에서 사용되는 의료기기의 임상시험은 한 회사 제품만 하지 않고 여러 회사의 동종 제품을 비교하는 연구가 주를 이룬다. 이와 달리 제노스는 병원에 자사 스텐트만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을 의뢰했다. 전국 주요 병원 심장질환 전문의에게 일정량의 자사 스텐트를 환자들에게 시술하고, 경과를 관찰해 달라고 했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자문을 구한 한 대학병원 심장내과 전문의와 의료기기 연구자는 이미 식약처 허가를 받은 의료기기라도 허가 후 임상시험을 진행할 필요성은 있다고 말했다. 특정 기기를 이식받은 환자들의 경과를 관찰하면서 개발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 했던 이상사례와 개선할 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특히 국내 업체에게는 이 같은 관찰연구 외에는 허가 후 연구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세계 시장을 장악한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는 자금력도 풍부하고 환자도 많아서 신뢰도 높은 임상시험을 할 수 있지만 국내 업체는 제품 효과나 안전성을 증명할 수 있는 길이 단순한 관찰연구 정도밖에 없다는 것이다. 단 원칙을 지키며 제대로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국내에선 매년 6만 명 가량이 관상동맥에 스텐트를 삽입하는데, 지난해에만 건강보험과 환자 주머니에서 1100억 원이 넘는 돈이 나갔다.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 3사가 장악하고 있는 관상동맥스텐트 시장에서 국내 후발주자인 제노스가 판로를 개척하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 그래서 제노스는 의료기기 국산화를 추진하던 보건복지부의 국산 유망 의료기기 성능 개선 지원대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뉴스타파 취재 결과, 제노스는 전국 주요 병원의 심장질환 전문의에게 임상시험을 의뢰하고 자사 제품을 사용하게 하는 수법으로 연구를 판촉에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의료기기 제조사는 자사 제품이 이미 식약처 허가를 받았다고 해도 해당 제품의 효과나 안전성을 추적 관찰하는 임상시험을 의료인에게 의뢰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업체는 연구비를 해당 의사가 소속된 병원을 통해 의사에게 전달한다.

 

병원 측이 임상시험에 참여시키는 환자를 늘릴수록 제노스에서 받는 연구비 규모도 커진다. 제노스 내부 자료에 따르면, 의료진은 환자 1명당 최대 50만 원의 연구비를 받았다. 모집 환자 수에 따라 병원 한 곳이 한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받은 연구비 총액은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억대까지 됐다.

 

연구비는 연구 진행 단계별로 지급됐다. 예를 들어 제노스의 의뢰로 지난 2016년부터 관상동맥 질환 환자에서 제노스 약물방출 스텐트의 유효성과 안전성 평가를 위한 전향적 다기관 관찰연구를 진행한 전국 31개 대학병원은 참여 환자 25명을 모집할 때마다 1천만 원씩 업체의 연구비를 받았다. 환자 1명당 40만 원이다.

임상시험을 의뢰한 의료기기 제조사는 한 번에 연구비를 전달하지 않는다. 임상시험 참가 환자가 특정 목표치를 달성하는 시점 마다 일정 금액씩 지급한다.

 

특정 기간 안에 제노스 스텐트 이식 환자를 일정 규모로 모아야 하는 임상시험이므로 일종의 약정 계약인 셈이다. 특히 연구비가 한 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모집 환자 수가 늘어날 수록 연구비도 늘어나기 때문에 의료진으로서는 제노스 스텐트를 가급적 많이 늘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제노스가 의뢰한 대다수 임상시험의 연구비 중 80% 가량은 의료진과 연구자의 인건비, 연구수당, 연구활동비에 책정됐다.

취재진이 입수한 제노스 내부 자료에 따르면 연구비 총액 중 참여 의료인과 연구진 인건비 조로 책정한 금액은 병원마다 다양했다.

 

임상시험의 적절성, 전적으로 병원 해석에 달려있어

제노스 스텐트처럼 이미 식약처 허가 받은 제품은 식약처의 추가 승인 없이 각 병원 임상시험윤리심의원회(Institutional Review Board, 이하 IRB)의 승인만 받으면 진행할 수 있다. IRB는 비의료인 등 병원 외부 인사가 참여하도록 하고 있지만 사실상 병원 내부 의료인들의 영향력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취재진이 입수한 제노스 내부 문서에 따르면 제노스가 신청한 임상시험 계획서를 그대로 승인해준 병원 IRB도 있고, 특정 스텐트만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은 리베이트성이 짙다고 계획서를 반려한 병원도 있었다.

 

20193월 분당서울대병원 IRB는 제노스 임상시험 계획서 심의 의견서에서 위원회에서는 다양한 스텐트들 중 연구자가 특정 스텐트를 선택해야만 하는 취약한 환경을 우려한다"연구자가 리베이트 등의 이슈에서 독립적으로 어떻게 연구를 수행할 것인지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임상시험 의뢰를 받은 교수 측은 환자의 질환 및 병변 상태에 따라 시술의가 시술 시 독립적으로 스텐트를 선택한다"어떤 시술자도 다른 시술자에게 스텐트 사용을 강요하거나 설득하지 않고 본인의 임상 지식 및 경험에 의해 선택한다"고 답했다. 이 병원 IRB는 최종 심의 결과서에서 리베이트성 이슈가 우려돼 본 과제는 반려로 결정함이 적절하다"며 제노스 연구를 반려했다.

 

그러나 이처럼 반려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제노스가 2016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병원 40곳에 의뢰한 임상시험 72건 중 반려한 사례는 분당서울대병원 한 건에 불과하다. 한 대학병원 심장내과 전문의는 의료진 입장에서 이 같은 임상시험은 리베이트로서의 효용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연구비 총액에서 의료진 인건비는 보통 30~40% 선이라며, 그 돈을 연구에 참여하는 여러 의료진과 나누다 보면 실제 한 명이 손에 쥐는 돈은 적다고 설명했다. 그는 리베이트라 하기엔 너무도 적은 이 연구비를 위해 시험에 필요한 번거로운 추가 업무를 감내할 의사는 별로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구비가 집행되는 사정은 병원마다 다르다. 취재진이 확인한 한 대형 사립대학병원의 연구비 내역서에는 의료진 인건비로만 68%가 책정된 사례도 있었다. 특히 이런 유명 대형병원은 여러 스텐트 업체의 임상시험 여러 건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반적인 시술비 외에 별도로 들어오는 임상시험 연구비가 제품 선택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보긴 어렵다.

 

리베이트성 임상연구에 의료보험 재정이 샌다

의료기기 업체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에 이르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다기관 임상시험 하나를 성사시키면 연구가 진행되는 몇 년 동안은 안정적인 매출을 누릴 수 있다. 취재진이 입수한 제노스 영업사원 로비 노하우 파일을 통해서도 업계가 임상시험을 영업 수단으로서 여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제노스 연구자 모임이나 기타 연구진행 참여를 유도하고, 향후 O 교수를 동시 공략해 스텐트 사용량을 늘리는 것이 목적.”

- 중앙대병원 담당 영업사원

 

“(병원 내) 연구소 재정 문제로 인해 DES 시술자에게 연구비 전달이 안 되고 있는 상황. 시술자 또한 연구 진행에 대한 동기부여 결여.”

- 부천세종병원 담당 영업사원

 

더 큰 문제는 의료기기 제조사 의뢰로 진행하는 임상시험인데도 업체가 스텐트를 무상으로 환자에게 제공하기는 커녕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에 요양급여 적용 신청을 해서 돈을 받아간다는 점이다. 관상동맥스텐트는 건강보험 재정 지원을 받는 의료기기로 20206월 현재 시술 1건 당 최대 1975940원까지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다.

제노스는 자사 제품의 효과와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해 임상시험을 의뢰했지만 이 과정에서 사용되는 스텐트 비용은 부담하지 않았다. 이 업체는 국민건강보험에 스텐트 값을 청구해 급여액을 받아갔다.

 

제노스 내부 파일에 따르면 영업 담당 직원들은 요양급여 적용을 받는 임상시험을 설계하기 위해 사전에 전국 십여 개 병원 IRB에 문의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의견 취합 결과, 제노스는 업체가 의뢰자가 되는 의뢰자 주도 연구가 아닌 의료인이 의뢰자가 되는 연구자 주도 임상연구로 진행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국립보건연구원 임상연구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업체가 의뢰해서 진행하는 임상시험 중 희귀난치성 질환 등 공익적 목적이 뚜렷한 연구인 경우에만 급여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연구자 주도 연구는 공익적 목적으로 진행한다면 쉽게 급여를 받을 수 있다.

 

실제 지난 2019년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반려됐던 제노스 임상시험은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으로 심사 의뢰서가 제출됐으나 이 병원 IRB특정 업체 스텐트만 사용하기 때문에 업체가 의뢰하는 임상시험으로 분류되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며 연구계획서 수정을 요청하기도 했다.

 

 

임상시험으로 의사, 병원, 업체는 이득보는데환자만 몰라

환자의 의무기록을 임상시험에 활용한 덕에 업체와 의사, 병원은 이득을 보지만 환자는 정작 이런 사실을 전혀 알 수가 없다.

 

제노스 스텐트로 임상시험을 진행한 한 유명 대학병원 심장내과 교수가 환자에게 배포한 연구 동의 설명서에 따르면 해당 연구는 제조사에서 연구비를 받지만 오로지 학술적인 목적로 진행하는 임상시험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업체가 연구비를 제공했다는 정보를 제외하고는 연구비가 어떻게 집행되는지, 연구비에서 의사나 병원이 각각 얼마의 수익을 가져가는지 등의 내용은 전혀 명시돼 있지 않다.

 

일부 업체에서는 이 같은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에게 정기 검진비와 교통비를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제노스 연구를 수행한 교수들이 환자에게 배포한 동의서를 보면 이 회사는 임상시험 참여 환자에게 이런 지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공정거래법에 따라 의료기기 업계가 제정·운영하는 공정경쟁규약 제15조에 따르면 이미 식약처에서 허가받은 의료기기로 시판 후 임상시험을 하더라도 매출 증대 목적으로는 하지 못하게 돼 있다.

 

식약처에서 승인을 받고 진행하는 시판 후 조사’(PMS)에 대한 연구비는 시술 건당 최고 5만 원까지 지급할 수 있고, 희귀질환 등에 의해 추가 조사가 필요한 경우에만 최대 30만 원까지 지급할 수 있다.

 

그러나 제노스가 대거 진행한 임상시험과 같이 시판 후 조사 외 임상활동에 집행되는 연구비에 대해서는 세부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

 

업체 지원 임상시험 연구, 영업 수단 변질...해외에서도 논란

영업 수단으로 변질된 임상시험 논란은 해외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지난 1998년 미국의사협회저널(JAMA)은 연구를 의뢰하는 제약·의료기기 업체가 의료인과 연구자에게 제공하는 선물(gift)이 연구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연구를 소개했다. 설문에 응답한 의료인과 연구자 2천여 명 가운데 43%가 연구와 관련한 선물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이 가운데 66%가 선물이 연구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고 답했다.

 

2000년 출간된 또 다른 논문은 임상시험과 관련해 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각종 지원 행위에는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이 발생한다고 적었다.

 

국내에서도 임상시험 연구비 문제가 제기된 적이 있다. 지난 2012년 신동아는 한 대학병원 IRB에서 의료기기 임상시험 심의를 담당하던 의료인들로부터 임상시험이 리베이트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아 기사를 썼다. 스텐트 제조사가 주는 연구비가 의사들에게 사실상 리베이트로 전달된다는 내용이었다.

 

관련 업계는 뉴스타파의 질의에 대해 공정경쟁규약상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입장을 내기가 곤란하지만 나중에라도 고칠 부분이 드러나면 고치겠다고 알려왔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대외협력부장은 보도가 계획돼 있는 부분은 저희가 모니터링하고, 협회나 산학계에 제안 사항이 있으면 저희가 홍보나 교육을 통해서 개선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병원 내 연구비 감시체계 마련, 연구결과 공개해야

대학 내 국가 연구비 관리체계와 같이 병원에도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연구비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 수 있게 감시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대학병원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한 연구자는 보통 정부에서 과제형식으로 어떤 연구가 진행되면 사전이든 진행 중에든 사후든 분명 감사라는 절차를 거치게 돼 있다. (의료인에게) 개인적으로 주는 임상 관련 연구는 감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고 지적했다.

의료기기 업계에서는 제노스 사례와 같이 업체가 의사 개인에게 의뢰하는 임상시험은 연구비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감시할 장치가 없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임상시험을 매개로 의사나 병원이 챙기는 금전적 이득이 베일에 가려진 것처럼 연구 결과도 깜깜이인 것을 마찬가지다. 제노스가 2016년부터 진행한 관상동맥 질환 환자에서 제노스 약물방출 스텐트의 유효성과 안전성 평가를 위한 전향적 다기관 관찰연구도 결과가 공개돼 있지 않다.

 

식약처 승인 없이 각 병원 IRB 승인만으로 진행되는 임상연구 현황도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국내에서 진행되는 임상시험을 등록하는 국립보건연구원 임상연구정보서비스 사이트에도 검색되는 관상동맥스텐트 관련 연구는 24건에 불과했다. 이 중 지금까지 제노스가 추진한 임상시험은 한 건 밖에 등록돼 있지 않다.

김지윤/ 뉴스타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