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국제-중앙
베이비부머’ 모시고 사는 ‘밀레니얼’ 늘어난다
시민단체 "MBC-여당 정언유착"..의혹 제보자 고발
한국 언론이 '美 코로나 위기'에 대해 말하지 않는 세 가지
포천 287만원 vs 인천·충남 등 100만원... 불평등 불씨 된 재난지원금
코 6번, 눈 2번… 14살부터 100번 넘게 성형한 여성
왜 코로나는 흑인들만 노리나 : 불평등을 보는 공간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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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와 검사Ⅱ ① 뉴스타파, '한명숙 사건'을 취재하다
김종인과 박정희 그리고 언론
억소리 나는 금융공기업 연봉…산은·기은, 초봉 5000만원 돌파
트럼프 명령으로 재가동한 타이슨 공장, 노동자 60% 집단 감염
법무부 위원회 "아버지 성 무조건 따르는 부성우선주의 폐지"
기남기녀에서 미남미녀까지… 당신은 合倫인가, 不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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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형량 낮추기 쇼’에 폭죽 터뜨린 보수신문
전직 조선일보 기자가 허위사실 조작” 문갑식TV ‘접속차단’
한국인은 왜 외신 반응에 열광하나
경인-기호
인천 -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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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중부-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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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한국-새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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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5.7 중앙
기호-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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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내일
내일-주간경향
5.4~5.8 경향 장도리
‘베이비부머’ 모시고 사는 ‘밀레니얼’ 늘어난다
준비되지 않은 은퇴’ 내몰린 탓
자식 집에 같이 사는 경우 증가
미국 2세대 이상 성인 거주 가구
1950년대 수준인 20%까지 늘어
‘베이비붐 세대’(1946~1965년 출생 세대) 부모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거나 모시고 살아야 하는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가 증가하고 있다고 2일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뉴욕 맨해튼 첼시에 거주하는 프리랜서 영화제작자 샨피에어 리지스(35)는 6월부터 어머니(78)와 함께 살기로 했다. 보스턴에서 파트타임으로 청소 일을 하던 어머니가 코로나19 사태로 일자리를 잃게 되면서, 당장 집세도 못 낼 형편이 됐기 때문이다. “(나도, 어머니도) 둘 다 생각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호텔 객실 청소부로 시작해 관리직으로 3년 전 은퇴할 때까지 40년 넘게 일했다. 하지만 싱글맘으로 두 아들을 키우느라 ‘은퇴 자금’을 모아 둘 여력이 없었다. 기업퇴직연금(401k)은 2002년 리지스의 대학등록금으로 헐어 얼마 남지 않았고, 파트타임 청소 일로 근근이 살아왔는데 그마저 끊긴 것이다. 실직 당시 어머니 통장 잔고는 600달러(73만원)에 불과했다. 리지스의 어머니가 기댈 건, 아들뿐이었다.
<뉴욕 타임스>는 2일 리지스의 사연을 전하며 ‘베이비붐 세대’(1946~1965년 출생 세대) 부모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거나 모시고 살아야 하는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가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금까지는 치솟는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캥거루처럼 부모에게 얹혀사는 밀레니얼 세대의 모습이 부각돼왔는데, ‘역캥거루’ 현상도 만만찮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리서치센터의 인구 분석 결과를 보면, 2017년 자기 집이 아닌 곳에 사는 성인 중 14%는 가구주의 부모인 것으로 나타났다. 20여년 전인 1995년(7%)보다 2배나 증가한 것이다. 이로 인해 2세대 이상이 한집에 사는 확대가족 비율이 1980년 최저점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들어 고점기인 1950년대 20% 수준에 가까워졌다. 확대가족 형태 가운데 2030 자녀들이 중년층 부모의 집에 사는 경우가 여전히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최근 들어 부모가 자녀 집에 들어와 사는 경우도 눈에 띄게 늘었다는 지적이다. 퓨리서치센터는 “베이비붐 세대가 준비되지 않은 은퇴에 나서면서 이런 추세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스턴 칼리지 은퇴연구센터는 이런 조사 결과에 더해, 현재 노동자들 절반가량이 은퇴할 때까지 평균적인 삶을 유지할 만큼의 자금을 모으지 못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미국은퇴자협회 공공정책연구소는 2030년 미국인 5명 중 1명이 65살 이상이 될 것이라며, 이들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접근 가능한 적당 가격대의 주택 부족 현상에 직면하게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젊은 세대가 이런 추세를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미 전역에 고객을 두고 있는 재정설계사 조지아 리 허시는 “내 고객들 대부분은 재정계획을 세울 때 염두에 둬야 할 부모가 최소 1명은 있다”며 “문제는, 일부 가정이 계획 없이 이런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미국 사회, 특히 백인 문화권에선 자식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걸 수치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앗, 내가 아버지(혹은 어머니)를 돌봐야 할 상황이네’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시민단체 "MBC-여당 정언유착"..의혹 제보자 고발
채널A 기자와 현직 검사장의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을 MBC에 제보한 당사자가 검찰에 고발됐다.
시민단체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법세련)는 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보자 지모씨가 채널A 이모 기자의 취재업무를 방해했다"며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법세련은 "지씨가 존재하지 않는 신라젠 관련 여야 로비 장부가 존재한다고 기자를 속이고 '검사와의 통화녹음'을 요구하며 취재업무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법세련) 회원들이 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정언유착 사건 제보자 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정언유착 제보자가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는 신라젠 사건과 관련된 여야인사 파일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속였다'며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제보자 고발한다고 밝혔다. / 사진=뉴스1
이어 "검언유착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 함정을 파놓고 걸려들도록 대화를 유도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지씨가 '검사와 채널A 기자의 통화녹음'을 유착의 증거로 사용하기 위해 녹음을 유도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검언유착' 사건은 채널A 이모 기자가 신라젠 대주주였던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에게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신라젠 관련 비위사실을 털어놓으라"고 요구하며 현직 검사장과의 인맥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수감 중인 이 전 대표를 대신해 채널A 기자를 만난 지씨는 기자에게 '신라젠 관련 여야 인사 5명의 로비 장부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최 측은 "제보자 지씨는 현 정권의 지지자"라며 "이번 사건은 (검언 유착이 아닌) 제보자와 MBC, 여권 인사 등이 기획하고 추진한 '정언유착' 사건"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파이낸셜뉴스jasonchoi@fnnews.com 최재성 기자
한국 언론이 '美 코로나 위기'에 대해 말하지 않는 세 가지
[기고] 코로나 위기 속 질문은 '누가 왜 더 죽는가?'가 되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COVID-19) 사태가 심화되고 있다. 중국을 시작으로 아시아에서 확산된 이 감염병은 중동 유럽과 미주를 거쳐 이제 남미와 아프리카까지 그 세를 뻗치고 있다.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존 우리네 삶의 양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실로 팬데믹(pandemic)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미국의 상황은 신문 방송을 비롯한 국내 주요매체에 매일 빠짐없이 소개되고 분석되고 있다. 그 덕에 한국의 가족과 친지 지인들이 걱정스러운 안부를 물어오는 일이 적지 않다. 하지만 보도의 한계로 인해 오해가 생기거나 잘못된 우려, 또는 역으로 잘못된 기대가 일어난다. 무엇보다 엄중한 위기를 겪으며 고민해봐야 할 주제들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가운데 세 가지를 짚어보고 싶다.
▲ 코로나19 위기 속에 식량이 필요한 사람들이 뉴욕 의회 인근 식품유통센터에 줄 서 있다. ⓒAFP=연합
트럼프가 다가 아니다
미국의 대응에 관해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태도를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물론 다수의 매체가 지적하듯이 트럼프 행정부의 실기와 오판이 이번 재난 대응에 중대한 문제를 야기한 것은 분명하다. <워싱턴 포스트> 등의 취재에 따르면 이미 1월에 백악관과 행정부 내에서 여러 차례 경고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3월 중순에서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했지만, 이후에도 연방정부가 전국적 수준의 방역전략을 이끈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기조는 단계적 제한완화 조치를 발표한 4월 중순에 이르러서도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대(對) 언론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도 그의 실수는 두드러졌다. 일례로 코로나바이러스 태스크포스 팀의 전문가들이 통상 배석하는 백악관 브리핑에서 대통령과 전문가 간 불협화음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이는 지난달 23일 브리핑에서 불거진 이른바 '살균제 체내 주입' 논란으로 정점에 달했다.
하지만 이번 위기의 원인을 온전히 트럼프 일인에게 돌린다면 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요인을 간과하게 된다. 코로나19는 계절성 독감에 비해 기초감염재생산지수(Ro)가 높고 무증상 감염까지 있어 어느 정부든 결코 다루기 쉽지 않다. 이러한 감염병에 대처하려면 정부가 취하는 전략이 두 가지 차원에서 모두 원활히 작동해야 한다. 첫째는 방역이다 이를 위해 국경 관리 사회적 거리두기 자택대피령이 내려지고 대규모 검사, 접촉자 동선 추적 및 확진자 격리와 같은 광범위한 역학적 조처가 요구된다. 둘째, 진료체계의 수립이다. 필요한 의료 인력과 자원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동원하는 일이 그 핵심 과제다. 물론 양자는 불가분의 관계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초기 방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어떤 국가라도 의료체계 역량이 초과하는 사태를 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선진국들이지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미국과 유럽의 상황이 그 증거다.
먼저 미국이 연방제 국가라는 점을 충분히 환기해 두자. 이를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도 -이 마저도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쯤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각 주는 고유한 정치적 배경과 제도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전국 공통으로 적용되는 연방제도조차 각자의 사정에 맞게 변용할 수도 있다. 이는 보건의료체계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말하자면 미국에는 '50개의 서로 다른 공중보건체계'가 존재한다.(Pacewicz 2020; Rose 2013) 연방주의가 코로나19의 대응에 미치는 영향은 복합적이다. 그러나 공중보건의 관점에서 볼 때 1차 의료(primary care) 인프라에 대한 저투자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Jabbarpour et al. 2019) '방역의 최전선'으로서 1차 의료는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기초적인 의료 상담과 진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는다.(Blumenthal and Seervai 2020) 이러한 문지기(gatekeeper) 역할이 잘 수행된다면 초기 대응에 크게 기여하는 동시에 사람들이 무작정 병원으로 몰려드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는 짧은 시간에 보건의료체계의 역량이 초과하는 사태를 방지할 뿐 아니라 추가적인 집단 감염을 막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취약한 미국의 1차 의료는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그런 문지기가 되지 못했다.
미국 보건의료체계의 고유한 특성 역시 재난에 대응하는 데 많은 난점을 야기한다. 진료체계의 관점에서 두 가지만 지적해보자. 첫째, 미국은 보건의료 서비스를 운영하고 공급하는 과정에서 민간 부문에 크게 의존한다. 따라서 위기가 닥쳤을 때 정부와 민간 부문이 협력해 의료자원을 신속하게 동원하는 데 많은 제약이 따른다. 혹자는 관내의 모든 의료기관 (공공과 민간 병원의) 운영을 통합·일원화해서 사태에 대처하고 있는 뉴욕 주의 상황을 거론할 수 있겠지만, 이는 오히려 위기가 강제한 예외로 3월 말이 되어서야 계획이 발표됐다.(New York State 2020a; 2020b; Scott 2020) 둘째, 미국은 서구 선진국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보편적 건강보장(UHC) 제도가 없는 나라다. 이른바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 ACA)가 시행된 이후에도 여전히 약 3000만 명이 어떤 형태의 건강보험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은 비보험자로 남아있다. 이들은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없다. 또한 보험이 있더라도 보장 범위가 취약해서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하는 계층(under-insured)이 존재한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연방정부의 구호법(CARES Act)이 지난 3월 말에 발효됐지만, 구체적인 각론에 관해서는 여러 모순과 제약이 발견되고 있다.(Abrams 2020; Rodriguez 2020) 요컨대 이른바 '트럼프 요인'이 아니더라도 오늘날 미국의 보건의료체계는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에 대응하기에 역부족이다.
뉴욕이 다가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국내 언론의 관심은 어느 지역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는지에 쏠렸다. 뉴욕 주, 그 가운데서도 뉴욕시(NYC)의 상황이 연일 크게 보도됐다 물론 피해 상황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를 조명하는 것이 그 자체로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추가적인 보도를 통해 일종의 선택편향(selection bias)을 보정하지 않는다면, 상황을 과도하게 해석하게 되고 결국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하게 된다.
유감스럽게도 미 전역의 코로나19 추이는 지역별로 큰 차이를 보인다. 주마다 대응 전략이나 역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연방주의의 효과를 생각해보자.) 사태의 초기조건 - 예컨대 확진자가 최초에 언제 얼마나 발생했는지 여부- 이 미치는 영향도 중요하다. 그러니 뉴욕이 안정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뉴스를 듣고서, 다른 지역도, 또는 미국 전체도, 그러리라 생각하면 곤란하다.
현재 미국에서는 매일 주 정부가 확진자 수 데이터를 연방정부에 보고한다. 연방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이를 취합해 업데이트된 미국 전체 데이터를 발표한다. 하지만 전국 수준에서 데이터를 표준화하는 기준이나 지표가 수립되어 있지 않아서 데이터의 질에 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Karaca-Mandic, Georgiou, and Sen 2020) 예컨대 뉴욕 주는 매일 확진자와 음성판정자에 관한 자세한 보고서를 내고 있는 반면, 캘리포니아 주의 음성판정자 데이터는 그만큼 엄밀하지 않다. 실제로 4월 21일 캘리포니아 주가 보고한 수는 7000명인데 반해 다음날인 22일에는 16만 명을 넘었다. 지나친 증가 폭인 데다 현재의 일일 검사역량을 감안하면, 이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수치다. 데이터사이언티스트인 네이트 실버(Nate Silver)는 몇 가지 통계적 처리를 통해 이를 보정하고 50개 주 전체의 확진자 비율을 추정했다. 그리고 총 다섯 번의 시점 3월 25일, 4월 1일, 4월 8일, 4월 15일, 4월 22일을 비교해 주별로 감염의 전파 추이가 정점 (peak)에 이르렀는지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적어도 지난 3주간 확진자 비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거나 적어도 전 주에 비해 하락세를 보인 지역은 정점에 도달했다고 조심스럽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Silver 2020)
그의 분석에 따르면, 뉴욕, 뉴저지, 루이지애나, 미시건 주를 비롯한 20개 주가 4월 22일을 기준으로 전주에 비해 확진자 비율이 떨어졌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6개 주는 4월 1일 이래로 3주째 하락세를 유지했다. 따라서 초기에 큰 피해를 입은 몇몇 지역들은 이제 진정세로 돌아서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정점을 지났을 것으로 분류한 지역에서조차 상당수 주들은 사실 등락이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는 최근 부분적 제한완화 조치를 취한 조지아 네바다 사우스캐롤라이나를 비롯해 인디애나 위스콘신 아이다호주 등이 포함된다. 역으로 워싱턴 DC를 포함해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주에서는 여전히 감염병 전파가 지속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아이오와 오하이오 네브래스카 주는 한 주(4월 15~22일)만에 10% 안팎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이상의 논의로부터 적어도 두 가지 함의를 끌어낼 수 있겠다. 하나, 뉴욕시의 상황이 진정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서 미국 전체 상황이 나아졌다고 예단하는 건 무리다. 상당수 지역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둘,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택 대피령 같은 전면적 조치는 분명 효과가 있었다. 언론에서도 빈번히 원용되는 도식(하단 <그림1> 참조)에 의존해 말한다면, 미국은 곡선을 구부리는 데 일정 정도 성공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를 장기간 시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울뿐더러, 효과 자체도 한계가 있다. 따라서 보건의료체계 자체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노력, 다시금 아래 도식을 빌린다면 Y축 위로 직선을 더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병상, 중환자실(ICU), 인공호흡기, 에크모(ECMO), 개인보호장비(PPE)와 같은 자원을 보다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동원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여기에는 대규모의 검사 역량을 갖추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방역과 감염병 전문가들이 일관되게 지적하듯이 이것이야말로 "미국을 다시 개방하기(Opening Up America Again)"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확진자 사망자 수가 다가 아니다
사실 코로나19를 다루는 언론 보도에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건 이런 이야기들이 아니다. 가장 귀에 박히는 소식은 확진자 수, 그리고 무엇보다 사망자 수다. 4월 29일 현재 미국의 전체 확진자 수는 100만 명을 넘었으며 사망자 수는 6만 명에 육박한다.(확진자 101만5289명, 사망자 5만8529명) 이 막대한 희생에 대해서는 애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매일 늘어나는 숫자에 감각이 무뎌지면 정작 이를 통해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도 종종 흐려진다.
역사적으로 보면 가공할 만한 위기는 사회가 가진 기존의 모순과 문제점을 드러내는 -증폭된 형태로- 계기가 되어왔다. 따라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지 '얼마나 죽었는가?'가 아니라 '누가 왜 더 죽는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건강불평등(health inequality)이라는 주제로 나아가야 한다.
21세기를 다양한 형태의 불평등이 마침내 모든 사회과학의 핵심 주제가 된 시기로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 더불어 가장 높은 수준의 불평등이 각종 지표를 통해 경험적으로 확인되는 나라 중 하나다. 한국과 눈에 띄는 차별점이 있다면 미국 사회에서 인종주의가 갖는 중요성이다. 남북전쟁(노예제 철폐)를 거쳐 민권운동(선거권과 시민권 쟁취)에 이르는 정치적 경험 그리고 원주민과 다양한 이주민 투쟁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인종(race and ethnicity)이라는 범주는 미국 사회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이번 코로나19 위기에서도 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 -아메리칸 인디언과 알래스카 원주민- 은 백인에 비해 확진자 비율과 치명률이 크게 높았다. 예컨대 흑인은 전체 인구의 13%를 차지하지만, 전체 확진자는 그 세 배에 가까운 34%에 달했다.(Artiga et al. 2020; Zephyrin et al. 2020) 물론 흑인이 이른바 '기저질환'을 가진 이들의 비율이 높을 뿐 아니라 저소득층이자 비보험자일 확률 역시 더 높다는 점에서, 이 통계적 사실은 슬프지만 놀랍지 않다. 하지만 재난이 발생했을 때 자원의 분배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면, 사정은 그리 간단치 한다. 의료접근성을 예로 들어보자. 지난달 테네시 주 내슈빌에는 세 곳의 드라이브스루 검사소가 설치됐지만, 검사에 필요한 진단기기와 개인보호장비를 구하지 못해 검사소는 몇 주간 사실상 공회전했다. 그중 한 곳은 유서 깊은 흑인 고등교육기관인 머해리 의과대학 (Meharry Medical College) 내에 위치해 있다. 대신 이 지역의 상당수 검사는 벨 미드(Belle Meade)와 브렌트우드(Brentwood) 소재의 선별진료소(walk-in clinics)에서 이뤄졌다. 모두 전통적인 백인 거주지인 곳이다. 오늘날에도 인종주의는 이렇게 끈질기게 작동 건강불평등으로 나아간다.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는 위스콘신 주의 주지사 토니 이버스(Tony Evers)의 말을 빌린다면, 이는 실로 코로나19라는 "위기 속의 위기(a crisis within a crisis)"다.(Farmer 2020)
인종주의와 건강불평등의 관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또 다른 지점에서 작동하는 이 논리를 데이터 수집의 정치학이라 불러도 좋겠다. 감염병의 기초적 대응은 해당 데이터의 철저한 수집과 분석을 통해 진전된다. 따라서 연령 성별 인종 지역별 인구학 데이터 중 어느 하나라도 충분히 검토되지 않으면 방역과 진료는 성공할 수 없다. 그러나 연방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오랫동안 인종별 확진자 수를 파악하지 않다가 지난 4월 17일이 되어서야 이를 발표하고 있다. 그마저도 전체의 60%에 가까운 사례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거나 미분류인 상태여서 데이터 자체의 한계가 크다. 메릴랜드 주 사례를 통해 이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이래 주 하원의원인 닉 모스비(Nick Mosby)의 주도로 인종별 데이터를 수집해 공개해야 한다는 정치적 압력이 있었고, 4월 9일 래리 호건(Larry Hogan) 주지사는 최초로 주 보건부가 향후 이 데이터를 계속 관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취약계층의 거주지는 그들의 건강과 무관하지 않으므로, 정치인들은 우편번호(zip-code)를 활용한 거주지별 데이터 역시 사태에 대응하는 핵심이 될 것이라 주장했다. 그 결과 메릴랜드 주는 뉴욕 주와 함께 코로나19 관련 데이터베이스의 운영에 있어 전국에서 가장 앞서 있는 지역이 되었다.(Cohn, Ruiz and Wood 2020) 이는 취약계층의 건강이 어떻게 정치와 직결되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사회과학에서 건강(health) 연구는 오랫동안 보건의료(health care)에 대한 연구와 등치되어 왔다. 물론 이는 그 자체로 중요한 분야지만, 또한 많은 것을 누락시켰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주창한 이른바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social determinants of health)' 개념은 이러한 연구지평을 크게 확대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사회적 결정요인은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고 생활하는 -따라서 일하고 나이 들어가는- 조건을 가리키는데, 여기에는 교육, 직업, 소득과 같은 통상적인 사회경제적 지위(SES)뿐 아니라 거주, 주거지역, 식량, 교통 등이 포함된다.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드러난 미국 사회의 모순은 그 중요성을 다시금 환기한다. 동시에, 이제 우리는 더 나아가 건강의 '정치적' 결정요인 (political determinants of health)을 말할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되었는지 모른다.(e.g. Dawes 2020) 이미 2008년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 위원회 보고서에서 권고사항의 두 번째 원리로 논의된 바 있었던 이 개념은, 건강불평등의 사회적 원인을 규명할 뿐 아니라 이 원인이 형성되고 강화되는 데 기여하는 제도적·정치적 동력을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이는 기존 정치체계에 내재한 제도적 배열(institutional arrangements)을 어떻게 바꿔나가야 하는지에 관한 실천적 함의를 갖는다. 말하자면, 이 제도를 드라이브스루 검사소의 위치에도, 인구학 데이터의 수집 과정에도 작동한다.
코로나19를 둘러싼 갖가지 불확실성 가운데서도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포스트 코로나 시기는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보건의료(체계), 건강, 건강불평등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 역시 그래야 할 것이다.
정웅기 존스홉킨스대학교 정치학과 박사과정 / 프레시안
포천 287만원 vs 인천·충남 등 100만원... 불평등 불씨 된 재난지원금
정부 협의 골든타임 놓친 새 지자체들 지원책 경쟁
“똑같은 세금 냈는데…” 형평성 위해 제도 보완 필요
‘287만1,000원 vs 100만원.’
경기 포천시에 사는 A씨 가족(4인 가구)과 충남 서산시에 사는 B씨 가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각각 받게 될 재난지원금이다. B씨 가족은 하위 소득 70%에, A씨 가족은 상위 소득 30%에 속한다. 감염병 사태 장기화로 인한 경제위기로 지원이 시급한 쪽은 B씨 가족인데 정작 이들이 받는 지원금은 A씨 가족보다 약 187만원이 적다.
4일부터 정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최대 100만원까지 지원하지만, 국민이 받는 지원 금액은 지역별로 천차만별이다. 지자체마다 추가재난지원금 지급 여부와 규모,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관련 지자체 분담 방식 등이 제각각이라 많게는 3배까지 차이가 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국민인데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손에 쥘 재난지원금 규모가 널을 뛰다 보니 형평성을 위해 제도적 보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보 취재를 종합한 결과, 경기도(고양ㆍ부천시 제외) 외 서울ㆍ광주ㆍ대구시 등 전국 16개 광역지자체에서 정부가 가구별로 지급하는 긴급재난지원금 40만~100만원 전액을 받을 수 있다. 경기도가 지난달부터 지급한 재난기본소득(1인당 10만원)을 받은 4인 가족은 정부가 지급할 긴급재난원지금 100만원 중에 87만1,000원만 수령 가능하다. 경기도는 정부에 분담할 지방 지자체 부담 몫(12.9%)을 기존 도 지원금으로 지급한 것으로 처리, 해당 금액을 중복 지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코로나19 지원금 규모가 가장 큰 지역은 경기도다. 정부 지원금과 소득에 상관없이 도에서 1인당 10만원, 기초자치단체인 도내 모든 시ㆍ군에서 추가로 1인당 5만~40만원을 지원한다. 그 결과, 경기도민에게는 약 147만~287만원(4인 가구)이 돌아간다. 포천시민이 최고 287만1,000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19 관련 지원금을 받는다. 4인 가구 기준 정부에서 지급하는 100만원 중 87만1,000원과 경기도 지원금 40만원, 포천시 지원금 160만원을 더한 액수다. 경기도는 지난해 기준 재정자립도가 68.4%로, 전국에서 ‘돈 많은’ 지방정부 중 하나로 손꼽힌다.
경기도와 달리 인천ㆍ세종시와 충청남도 등은 4인 가구 기준 100만원만, 즉 정부 지원금만 지급한다. 재정 부담 등으로 추가 지원 관련 예산 확보가 어려운 점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서울시민도 경기도민보다 코로나19 지원금을 적게 받는다. 서울시는 소득 하위 50% 이하 가구에만 30만~50만원을 준다. 소득 하위 50%에 해당하는 서울 4인 가구가 받을 코로나19 관련 총 수령액은 140만원, 상위 50%가 받는 금액은 100만원이다.
지역별로 재난지원금 규모가 큰 차이를 보인 것은 정부가 재난지원금 관련 논의의 골든타임을 놓쳤기 때문이란 비판이 나온다.
정부가 재난지원금 지급을 주춤하는 사이 전주 등의 지자체들은 선제적으로 지원책을 내놓았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 간 경쟁의 불이 붙으면서 재난지원금 격차는 커지기 시작했다.
국가적 재난 상황임을 고려해 정부가 지자체와 협의해 지급 기준을 먼저 마련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 지역별 재난지원금 격차를 줄이지 못한 것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자체도 시도지사협의회를 통해 광역 단위라도 재난지원금 지급 관련 볼륨을 조정했어야 한다”며 “총선 등의 이슈가 있어 너무 경쟁적으로 가면서 국가적 위기상황에 연대재정을 하지 못한 것게 아쉽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지자체 간 재난지원금 관련 엇박자는 결국 또 다른 불평등의 불씨가 됐다. 충남 서산에 사는 김모(62)씨는 “똑같은 세금을 내고도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사는 곳에 따라 차별적 지원금을 받아 상대적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고 씁쓸해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코 6번, 눈 2번… 14살부터 100번 넘게 성형한 여성
중국 웨이보 '吴晓辰 Abby' 계정 캡처
중국의 한 유명 모델이 100번이 넘게 성형수술을 받아 놀라움을 주고 있다. 우 샤오첸(Wu Xiaochen·30)은 화려한 외모와 몸매로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는 인플루언서(SNS에서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지난 16년 동안 수백 번의 성형수술과 시술을 받았다.
샤오첸은 웨이보에서 ‘애비(Abby)’라는 계정명으로 알려진 그는 성형 수술을 많이 해 중국에서 ‘성형외과 포스터 소녀’라고 불리고 있다. 그는 14살 때 처음으로 성형 수술을 받았다. 그의 첫 수술은 허벅지 지방흡입이었다. 샤오첸은 10대 시절 자가면역질환으로 항염제인 글루코코르티코이드(glucocorticoid)를 복용해 비만이 됐다. 글루코코르티코이드를 장기간 고용량으로 복용하면 당뇨병과 비만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불어나는 자신의 몸을 보고 불만이 쌓였다. 특히 그의 다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에 허벅지 지방흡입 수술을 받았다.
그는 수술 이후 확 달라진 모습에 자신감을 얻었다. 샤오첸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수술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모두 고치자고 결심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점점 예뻐지면서 연예인처럼 주목을 받게 됐다”며 자신이 성형수술에 중독됐다고 밝혔다.
그는 16살 때 콧대를 높이고, 유방보형물을 넣고, 눈을 크게 하려고 쌍꺼풀 수술을 하고 턱선을 V자 얼굴로 만들기 위해 안면윤곽수술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걸 했다. 하지만 그는 항상 자신의 외모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샤오첸은 지금까지 코 6번, 눈 2번, 입술 3번, 윤곽수술 3번씩 수술을 받았으며 최소 4번 이상 지방 이식 수술을 받았다. 그는 지금까지 100번이 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비용은 약 400만 위안, 우리 돈으로 자그마치 6억8700만원에 달한다.
그는 과거 잡지사 인터뷰에서 “외모의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이 쓰였다”며 “매달마다 필러를 맞고, 매년 마다 성형수술을 받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가 받았던 성형수술이 항상 성공적이었던 아니다. 수술 부위의 흉터가 오랫동안 아물지 않아 고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성형을 멈출 수 없었다. 외모에 문제를 느낄 때마다 성형외과를 찾았다.
샤오첸은 “나는 여성들이 더 예쁘게,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며 “많은 여성에게 롤모델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샤오첸은 성형수술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특히 “성형수술은 항상 위험하다. 특히 어린 나이에 수술을 받는 것은 더 위험하다”며 10대 여성들이 성형수술을 받는 것을 피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형수술은 합리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성형수술이 외모를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는 있지만, 인생을 아름답게 해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
왜 코로나는 흑인들만 노리나 : 불평등을 보는 공간의 사회학
제국이 그들의 배를 불리는 방식 <12>
거대한 격차
<21세기 자본>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두고 “치명적인 불평등”(a virulent inequality)을 드러낸 위기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 <에이비시뉴스(ABCNews)> 4월 26일 자 'Covid-19 Reinforces an Economist’s Warnings About Inequality') 미국의 불평등만을 콕 짚어 얘기한 것은 아니지만, 가장 불평등이 심한 국가 중 하나인 미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코로나 창궐이 불평등의 위기를 발생시킨 것이 아니고 이미 기저에 깔려 곪을 대로 곪아있던 불평등의 상황을 수면 위로 극명하게 끌어올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기에 그렇다.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를 비롯한 유수 언론들도 최근 코로나 위기가 인종, 재산, 그리고 보건의 뿌리 깊은 불평등을 여실히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며 미국의 거대한 격차(the great american divide)를 꼬집고 한탄하며 반성하는 특집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4월 20일 자 'The Great American Divide') 그런데 미국에서의 이런 격차가 확연히 목도되는 곳이 있다. 바로 공간이다. 불평등은 공간별로 존재한다.
▲ '미국의 거대한 격차', 뿌리 깊은 미국의 인종·재산·보건 상의 불평등을 코로나 사태가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뉴욕타임스> 기사 갈무리.
▲ '코로나 창궐이 미국을 둘로 쪼갤 것이다. 코로나로 흔들리지만 결국에는 안정화될 부류와 그렇지 못할 부류로 나뉠 것이다. 그리고 후자는 오래 갈 깊은 상흔을 입을 것'이라며 둘로 쪼개진 미국을 진단하는 <디 애틀랜틱(The Atlantic)> 기사 갈무리.
경제학자들의 경고
공간을 통해 미국 사회의 불평등을 들여다보기 전에 먼저 경제학들의 경고부터 들어보자.
최근 시카고 대학에서 전 세계 경제학자들을 상대로 코로나와 관련한 설문 조사를 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84%) 비록 2조 달러(약 2448조 원)가 넘는 정부의 지원금이 시중에 풀리더라도 부유한 자들보다 저소득층이 이번 코로나로 심각한 타격을 받으리라 예측했다. 교육에서의 격차도 더욱 확장될 것으로 91%가 전망했다. 마지막으로(사실은 이것이 현재 시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인데), 설문에 응한 95%의 경제학자가 주로 가난한 흑인들이 이번 코로나 사태의 최대 피해자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의 전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코로나가 미국의 극심한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점이다.(<에이비시뉴스(ABCNews)> 4월 26일 자)
퍼펙트 스톰 불어 닥친 미국 남부: 빈곤과 인종의 배합이 빚어낸 참혹한 결과
그런데 코로나로 불평등이 더욱더 악화하는 공간은 크게 보면 어디일까? 뉴욕주와 뉴욕시가 최근까지 코로나 사태로 집중 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다음 진앙으로 지목되고 있는 곳이 남부 지방이다. 보스턴에서 발행되는 잡지인 <애틀랜틱>은 <미국 남부에 유독 치명적인 코로나>란 제목의 기사를 4월 초 게재했다. 기사 표제에 딸린 일러스트레이션을 보면 미국 남부가 코로나에 확실한 표적이 되었음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무슨 눈이 달린 것도 아닐 텐데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 '미국 남부에 유독 치명적인 코로나: 왜 남부의 청소년들이 코로나로 죽어 나갈 것인가'라는 제목의 <디 아틀랜틱> 기사 갈무리.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먼저 그 공간의 구조를 살펴보는 것이 지름길이다. 더 쉽게 말하면 그 공간에 누가 주로 거주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곳의 거주자들은 바로 저소득층 흑인들이다. 그런데 뉴욕시처럼 이곳은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사실은 뉴욕보다 더 심한 데도 말이다. 심지어 그곳은 심각한 의심 증상이 있으면서도 코로나검사를 받지 않은 이들이 부지기수로 검사율이 매우 낮다. 그래서 미국 남부는 인종과 빈곤이 빚어낸 결과물로서 코로나의 최대피해지로 부상하고 있다. 언론은 이를 두고 미국 남부 지방에 "퍼펙트스톰"(perfect storm, 최악의 상황)이 불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관련 기사 : <가디언> 4월 12일 자 ''A perfect storm': poverty and race add to Covid-19 toll in US deep south', <유에스에이투데이(USAToday)> 4월 22일 자 'The other COVID-19 risk factors: How race, income, ZIP code can influence life and death')
코로나 전쟁의 최대 격전지 루이지애나
<가디언>은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시(New Orleans)의 한 가족의 장례식 장면을 기사에 실었다. 지난 4월 11일과 12일 이곳 교회 두 곳에서 두 명의 목사가 한 가족 4명의 장례를 집례했다. 4명 모두 이번 코로나에 감염돼 사망했다. 먼저 한 교회에서 올해 각각 71세, 61세, 58세 되는 삼형제의 장례가 거행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은 이들 형제의 모친 장례식이 치러졌다. 노모의 나이는 올해 86세. 이들 장례를 집도한 목사의 말은 남부지역에 불어 닥친 코로나 참상을 여실히 들려준다.
"우리는 갈기갈기 찢겼다. 어떻게 하루 상관에 엄마와 사랑하는 자식 세 명이 한꺼 번에 줄초상이 난단 말인가. 이게 바로 우리가 사는 지역의 비극이다."(<가디언> 4월 12일 자)
삼형제의 장례식장에서 터져 나온 통곡과 신음이 지금 미국의 남단, 뉴올리언스시 전체와 루이지애나주 전역에 걸쳐 흑인 가정 수백 군데에서도 똑같이 흘러나오고 있다. 4월 11일 현재 루이지애나주의 코로나 감염 사망자는 755명이다. 1인당 사망률로 보면 미국에서 최고의 수치를 보여주는 주 중의 하나다. 그러나 이곳은 흑인의 비율이 전체 루이지애나주 인구의 절반에도 한참 못 미치는 32%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자 중 70%가 흑인이다. 그만큼 코로나로 인한 흑인의 사망률이 백인보다 훨씬 높다. 인구 구성에서 흑인은 3분의 1인데 죽어 나간 것은 3분의 2가 넘으니 말이다.
그러나 루이지애나의 흑인들은 코로나 이전 이미 죽음의 그늘에 뒤덮여 있었다. 뉴올리언스시 인근 지역에 유독성 화학물질을 내뿜는 석유 정유 및 석유화학제품 공장들이 200여 개가 넘게 집중돼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듀폰, 쉘, 모자이크 퍼틸라이저 등의 회사가 그것들이다. 특히 뉴올리언스에서 배턴루지(Raton Rouge: 루이이애나주의 주도)까지 이르는 약 137km 길 중간에 위치한 세인트제임스군(St. James Parish)의 인구는 약 2만1000명, 주민 대부분이 흑인이다. 이곳은 코로나가 급습하기 전에도 이미 질병과 죽음이 드리워진 곳으로 유명했다. 얼마나 악명이 높았으면 군의 별명이 '암의 골짜기'(Cancer Alley)이었을까. 코로나가 창궐한 뒤로 그 별명이 '사망의 골짜기'(Death Alley)로 바뀌었다. 이를 두고 <엔비시뉴스(NBCNews)>는 루이지애나의 흑인 거주지역이 이전엔 공기 오염, 이제는 코로나로 죽음의 "이중 타격"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관련 기사 : <엔비시뉴스> 4월 14일 자 'First pollution, now coronavirus: Black parish in Louisiana deals with 'a double whammy' of death') 세인트제임스군은 미국에서 코로나로 인한 1인당 사망률이 가장 높은 지역 20곳에 속한다. 주지하다시피 코로나는 고혈압, 당뇨, 호흡기질환 등의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세인트제임스군이라는 공간에서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열추적 미사일 코로나
정말 이상하게도 흑인들 밀집 거주지역만 코로나 사망률이 유독 높다.(☞ 관련 기사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os Angels Times)> 4월 7일 자 ''A crisis within a crisis': Black Americans face higher rates of coronavirus deaths', <가디언> 4월 8일 자 ''It's a racial justice issue': Black Americans are dying in greater numbers from Covid-19',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 4월 7일 자 'The coronavirus is infecting and killing black Americans at an alarmingly high rate') 도시별, 주별로 놓고 보아도 그 사실은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백인과 흑인의 사망률의 차이가 확연하다. 뉴욕시의 경우, 흑인이 백인보다 두 배 더 많이 죽었다. 시카고시의 경우 인구의 30%가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로 죽은 흑인은 전체 사망률에서 70%를 차지한다. 위스콘신주는 전체 인구에 흑인의 비율은 고작 6%이지만 사망률에선 거의 40%를 차지한다. 미시간주의 경우 사망자 중 흑인 비율은 40%에 이르지만 주 전체 인구 중 흑인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14%이다.(<가디언> 4월 12일 자, <엔비시뉴스> 4월 14일 자) 일리노이주는 흑인이 15%이지만 사망자의 43%를 그들이 차지한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4월 7일 자 'Black Americans Face Alarming Rates of Coronavirus Infection in Some States') 시카고시의 위와 같은 통계를 보고 시카고의 첫 흑인 출신의 시장으로 피선된 로이 라이트풋트(Lori Lightfoot)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면서 작년 5월 시장에 취임한 이후 자신이 접한 수치 중 가장 충격적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뉴욕타임스> 4월 7일 자) 이게 도대체 뭔가? 코로나에 무슨 열추적 장치라도 달렸다는 말인가? 마치 유도미사일처럼? 그래서 흑인만 추적해 감염돼 죽이는데 최적화라도 됐다는 말인가?(☞ 관련 기사 : <에이비시뉴스> 4월 14일 자, <유에스에이투데이> 4월 22일 자, <가디언> 4월 25일 자 'Why is coronavirus taking such a deadly toll on black Americans?')
물론 그런 것은 없다. 즉, 유전적 요인 그런 것은 결코 없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텍사스 남부대학(Texas Southern University)의 도시계획 및 환경정책과 불라드(Robert Bullard) 교수가 정답을 알려준다.
"유독성 화학물질이 공기 중에 쏟아지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 양질의 의료시스템이 접근이 불가한 사람들, 의료보험 무가입자가 많은 지역의 사람들은 코로나라는 열추적 미사일의 표적이 될 성숙한 조건을 갖고 있다. 해서 코로나에 누가 가장 취약한가를 따지기는 매우 쉽다. 그러니 이들 지역에서 흑인들이 차지하는 인구구성비에 비해 그들의 사망률이 월등히 높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의 단 한 가지 이유는 바로 인종주의와 인종과 공간에 기초한 뿌리 깊은 불평등 때문이다."(<엔비시뉴스> 4월 14일 자)
▲ '코로나19로 다른 인종에 비해 흑인이 더 사망하고 있다'고 전하는 <뉴욕타임스> 기사 갈무리.
사회취약계층의 전유물: 기저질환과 의료보험 무가입
사회취약계층에 늘 따라다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의료보험 무가입과 기저질환이다. 병이 나도 보험이 없어 의료서비스를 못 받으니 병은 더욱 도지고 그것은 결국 악순환의 고리 속으로 빠져들어 계속해서 돌고 돈다.(☞ 관련 기사 : <가디언> 2월 28일 자 'Inequalities of US health system put coronavirus fight at risk, experts say') 그리고 그것은 흑인 저소득층의 전형적인 삶이다. 조지아주도 미국 남부에서 루이지애나주와 함께 코로나의 타격을 제대로 입은 주 중 하나이다. 그런데 조지아주의 의료보험 무가입률은 약 16%이다. 전국에서 4번째로 높다.
조지아주 에모리대학(Emory University)의 감염학과 알리(Mohammed Ali) 교수는 "의료서비스를 받는 데 있어 우리 주(조지아)는 둘로 쪼개져 있다. 이런 파행은 결국 어떤 지역은 극히 감염률이 낮은 지역으로 그리고 다른 지역은 바이러스가 산불처럼 삽시간에 퍼지게 한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4월 24일 자 'Why Georgia Isn’t Ready to Reopen, in Charts')
코로나의 가장 위험한 3대 기저질환으로 알려진 당뇨병, 고혈압(심장병)과 호흡기 질환의 경우도 조지아주는 미국 전체에서 매우 높은 것으로 보고되었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4월 24일 자, <워싱턴포스트> 4월 21일 자 'Georgia Leads the Race to Become America’s No. 1 Death Destination') 조지아주 전체 인구 중 13%가 당뇨병을 갖고 있고, 심장질환과 폐질환은 50개 중에서 각각 상위 15번째와 19번째이다. 그래서 조지아주의 3대 흑인 밀집지역인 토럴(Terrell), 랜돌프(Randolph), 도허티(Dougherty) 등의 군들이 이번 코로나19가 퍼졌을 때 초기에 속절없이 유린당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기저질환 이야기를 할 때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당뇨나 고혈압 등은 환자 개인의 생활 습관이나 가족력에서 비롯될 수 있는데 그것을 인종 문제와 불평등의 문제와 결부시킨 것이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물론 일리가 있다. 그렇지만 개인의 생활 습관 자체도 커다란 외부적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서 전적으로 개인의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예를 들면 공기가 나쁜 곳에서 운동하기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의료사막
기저질환도 사실은 적절한 예방교육과 조기 검진 등을 통해 충분히 피할 수 있거나 통제할 수 있다. 그것은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통해 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일 때는 어쩔 도리가 없다. 바로 의료서비스의 부재가 그것이다. 의료서비스의 부재는 둘 중 하나다.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관, 즉 병원이 아예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돈이 없어 방문을 못 하는 것이다. 후자의 이야기는 다른 데서 많이 했으니 건너뛴다.
미국은 아예 어디가 아프다고 바로 전문의에게 갈 수 없다. 반드시 1차 담당의(가정의)에게 가서 진료를 받고 필요하면 진료의뢰서를 받아 전문의에게 갈 수 있다. 오해하지 마시라. 우리가 처음 동네 안과에 갔다가 대학병원 안과에 가는 것과 같은 일을 미국서는 할 수 없다. 처음부터 안과에 갈 수 있는 게 아니고 가정의부터 보고 가야 한다.
그런데 아래 지도에서 보듯, 미국에서는 아예 1차 전문의가 없는 지역이 부지기수다. 이것을 '의료사막'(healthcare desert) 혹은 '1차 진료사막'(primary care desert)라고 한다. 2019년 현재 의료사막을 보면 까만색이 도시 지역의 의료사막, 초록색이 농촌 지역의 의료사막, 그리고 흰색은 의료사막이 아닌 곳이다. 주로 중서부와 남부 지방에 걸쳐 의료사막이 펼쳐져 있다. 이 그림을 보면 왜 남부 지방의 흑인들이 주로 코로나의 타깃이 되는지 대충 갈피가 잡힐 것이다.
▲ 의료사막(1차 진료사막): 농촌과 도시 비교 현황.(☞ 바로 가기)
1차 전문의가 없는 곳이라면 그 지역엔 그다음의 환자를 받을 대형병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근처에 병원이 없어 위기상황이 닥치면 생명에 위협을 받는 곳이 미국이다.(☞ 관련 기사 : <시엔엔(CNN)> 2017년 8월 3일 자 'Millions of Americans live nowhere near a hospital, jeopardizing their lives')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그것은 비록 대부분의 병원이 명색이 비영리병원이라고 해도(물론 영리병원도 따로 있다) 병원에 수익이 나지 않는다면 병원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것은 그 지역의 거주자들이 이른바 병원을 드나들지 못할 정도의 형편없는 소득과 재산을 갖고 있단 말과 같다. 그러니 의료서비스의 부재를 돈이 없어 못 가는 것과 병원이 없어서 못 가는 것으로 칼로 무 베듯 자를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미국의 병원은 대책 없이 사라지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2019년은 농촌 지역의 병원이 폐쇄되는 최악의 해였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무려 2019년 한 해에만 19개가 문을 닫았다. 특히 남부 지방의 병원폐쇄는 최악이다. 2010년 이래 10년 동안 텍사스, 테네시, 오클라호마주에서 120개의 병원이 문을 닫았다. 특히 이들 지역은 중산층보다는 완전히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지역이라 의료보험의 경우 둘 중 하나다. 무보험자이거나 아니면 극빈자에게 주는 정부 의료복지인 메디케이드의 수혜자다. 즉 비싼 민간보험가입자들은 매우 드물다. 이것은 병원 입장에서 볼 때 수지타산이 안 맞는 장사다. 왜냐하면 메디케이드의 경우는 정부가 지불 요청된 비용을 깎아서, 그것도 매우 더디게 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두말하지 않고 병원 사업을 접고 있다.(☞ 관련 기사 : <가디언> 2월 19일 자 '2019 was worst year for US rural hospital closures in a decade, report finds')
이런 추세는 코로나 창궐이 본격화된 이후에도 어김없이 벌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올해 4월 한 영리 민간회사가 경영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웨스트버지니아와 오하이오주의 3개 병원을 사들인 후 가차 없이 의사를 비롯한 의료진을 해고하고 병원을 영구 폐쇄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결국 이들 병원에 의존하던 지역 환자들은 병원 갈 곳이 없이 오도 가지도 못하며 먼 타지역으로 차를 타고 마치 젖동냥하듯 방황하고 있는 신세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4월 26일 자 'Closed Hospitals Leave Rural Patients 'Stranded' as Coronavirus Spreads') 사람들은 살려달라고 난리인데 병원은 사라지고 있다. 수익이 없으면, 병원도 없다. 그게 바로 미국의 의료체계를 지배하는 철학이요, 정신이다.
근접성의 위험
공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또 다른 불평등이 있다. 바로 사적 공간의 부재다. 그리고 이것은 코로나 같은 재난 상황에서 더 큰 위험을 내포한다. 이것을 한 마디로 줄이면 '근접성의 위험'(the perils of proximity)이다. 이것은 소위 요새 건강의 전제조건으로 일컬어지는 '6피트'(약 2미터)의 거리 유지가 힘든 것을 의미한다. 한정된 공간에서 많은 수의 사람들이 복작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위험을 말한다.
근접성의 위험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소설 <황폐한 집(Bleak House)>(1852)에서 잘 묘사되어 있다. 소설에서 역병(천연두로 추정)이 도는데 그것의 위협은 빈자와 부자를 가리지 않고 보편적이지만, 실제 피해는 온전히 빈자들의 몫이다. 19세기 영국 소설 전공자인 펜실베이니아 대학(Univ. of Penn.) 영문학과 교수인 스타인라이트(Emily Steinlight)는 바로 이 점이 디킨스의 소설에서 공간을 통해 극명하게 부각된다고 말한다. 즉 "디킨스의 소설 속에서 역병이 돌고 있을 때 가난한 자들과 사회적으로 중심에서 벗어난 이들이 가장 많이 죽어 나가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것은 어떤 공간을 점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차별적으로 발생한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 우리가 코로나 사태 속에서 목도하는 바로 그것을 그대로 반향 한다". 그래서 스타인라이트는 디킨스가 공간을 하나의 "호사"(luxury)로 여겼다고 말한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4월 12일 자 'The Coronavirus Class Divide: Space and Privacy')
사적 공간을 향유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전형적 예가 바로 감옥이나 요양병원 같은 시설의 수감자나 환자들이다. 좁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과 부대끼는 이들에겐 어김없이 코로나가 찾아왔다. 그러나 이렇게 사적 공간을 향유하지 못하는 자들은 일반인들 가운데도 많다. 모두 저소득층이다.코넬대학(Cornell Univ.)의 사회학과 하비(Hope Harvey) 교수에 따르면, 지난 20여 년간 미국에서는 조부의 집에 들어가 사는 확대가족(3세대 이상이 함께하는 가족)의 비율이 증가했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10년간 3대가 조부모의 집에서 함께 기거하는 아동의 비율이 20%, 도시 지역은 거의 절반가량인 것으로 조사됐다. 핵가족(부모 및 자녀만으로 이루어진 가족)이 오랫동안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었던 미국에서 확대가족의 증가라니, 참으로 격세지감이다.(<뉴욕타임스> 4월 12일 자) 그것은 바로 장성한 자식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따로 나가 살 능력이 없어서 그렇다.(부동산 가격과 임대료의 급등도 한 이유다. 필자) 아니면 은퇴한 노인이 노후자금이 없어서 자식과 합치는 경우 둘 중 하나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5월 2일 자 'My Retirement Plan Is You') 두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불평등의 심화를 이야기해준다. 더불어 코로나 같은 재난 상황에서는 높은 감염 가능성까지 덤으로.
▲ 밤에는 어쩔 수 없이 뉴욕의 브롱크스 노숙자 쉼터에서 밤을 보내지만, 낮에는 감염이 두려워서 사람을 피해 화물보관소 창고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내는 한 노숙자를 소개하는 <뉴욕타임스> 기사 갈무리. 머물 곳이 없는 이들이 자가격리란 불가능하다. 바이러스는 창궐에 사회적 거리가 요구되고 있지만 사회적 거리를 갖지 못하는 이들의 세상도 존재한다. 그들에겐 코로나는 시한폭탄과 같은 것이다.
근접성의 위험은 또한 대중교통의 전유물이기도 하다.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에 사적 공간이란 없기 때문이다. 감염자일지도 모르는 낯선 이들과 같은 공간에 머물러야 한다. 그래서 뉴욕시의 상징인 지하철은 뉴욕시의 불평등의 상징이기도 하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3월 말 현재 뉴욕시 지하철 이용객은 87%가 줄었다. 그러나 누구는 재택근무를 하고, 누구는 자가용을 끌고 나올 때 여전히 지하철을 타고 일터로 나가야 하는 이들이 있다. 먹고 살려면 타야 한다. 뉴욕타임스가 인터뷰한 한 승객의 말이다.
"바이러스 무서운 것을 나라고 모를 리 있겠는가. 나도 걸리기 싫고, 내 가족이 걸리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러나 나는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당장 굶어 죽는다. 그러니 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 승객이 탄 곳은 브롱크스(Bronx)지역으로 이곳의 중간소득은 미국의 가구 중간소득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만2000달러(약 2700만 원)로 뉴욕시에서도 가장 빈곤율이 높은 지역이다. 거주자 대개가 흑인들이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3월 31일 자 'They Can’t Afford to Quarantine. So They Brave the Subway', <워싱턴포스트> 4월 21일 자 'The Bronx, long a Symbol of American Poverty, is Now New York City’s Coronavirus Capital', <타임(Time)> 3월 4일 자 ''If We Don't Work, We Don't Get Paid.' How the Coronavirus Is Exposing Inequality Among America's Workers', <뉴욕타임스> 3월 1일 자 'Avoiding Coronavirus May Be a Luxury Some Workers Can’t Afford') 이렇게 근접성의 위험은 불평등의 또 한 가지 설명 요소가 된다.
줄서기와 불평등
다음의 사진을 보라. 하나는 길게 늘어선 자동차의 대기 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직접 늘어선 줄이다. 줄은 당장의 먹거리를 구하기 위해 늘어선 줄에서부터(그래도 이것은 사정이 뒤엣것보단 나은 축에 속한다), 무료 음식을 받으러 온 줄에서부터, 실업수당 신청을 위해 늘어선 줄까지 다양하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4월 8일 자 ''Never Seen Anything Like It': Cars Line Up for Miles at Food Banks', 4월 12일 자 'It’s 'People, People, People' as Lines Stretch Across America') 미국 전역이 이런 줄로 북새통이다.
▲ '미국 전역에 식료품과 무료 배식, 그리고 실업수당 신청을 위해 사람들이 줄을 늘어서고 있다'고 전하는 <뉴욕타임스>. 사진은 무료 배식을 타기 위해 늘어선 자동차 행렬.
▲ '굶주린 미국인들이 무료 먹을거리 배급을 받기 위해 수 마일에 걸친 줄을 서고 있으나 푸드뱅크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전전긍긍한다'는 기사 제목을 단 <비지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 사진은 로스앤젤레스의 푸드뱅크 앞에 늘어선 줄.
줄서기(queue)에 대한 훌륭한 분석으로는 사회학자 고프만(Erving Goffman)(1983)의 것이 있다. 고프만은 줄서기가 매우 민주적이라고 봤다. 거기엔 평등과 예의가 존재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려고 늘어선 줄을 떠올려보라. 거기서는 사람들의 생김새나 출신 성분, 직업, 재산의 정도, 연령 등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처음 계산대에 온 사람이 순서대로 계산을 지불하고 떠난다. 선착순이다. 그래서 선착순에 따른 줄서기는 민주적이고 평등하며 공손함의 예의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다시 저 사진들을 보라. 과연 그것만이(고프만이 본 것만이) 다일까?
나는 저렇게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서 동시에 거대한 불평등도 보게 된다. 지금과 같은 코로나 재앙 상황에서 과연 코로나바이러스를 뒤집어쓸 수도 있는 저런 공간에 누가 줄을 서고 누가 저런 용무를 직접 볼 생각을 하는가?
이렇게 줄을 서는 것은 사회의 반쪽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즉, 줄을 서는 사람은 따로 있다. 사회적 약자들이다. 빈자들이다. 다른 반쪽 세상의 사람들은 자신의 사적 공간과 시간을 갖고 저렇게 줄을 설 필요가 없다. 그들은 마치 시공간을 초월해 존재하고 이동하는 신처럼 여유롭게 자신만의 일에 몰두한다. 그들은 재택근무하고, 아마존에서 온라인 쇼핑을 하고(아무리 물건값이 올라도 개의치 않고), 음식물을 택배로 주문해 받아먹는다. 그러나 저렇게 줄을 서야 하는 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들은 컴퓨터도, 인터넷도, 신용카드도 없다. 그러니 그들이 할 것은 오로지 줄서기와 직접 현장에 가서 용무보기, 먹고 살기 위해선 죽음을 무릅쓰고 일터에 나가는 것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3월 1일 자, 5월 1일 자 'For Most Food Stamp Users, online Shopping Isn’t an Option') 그러니 빈자들은 코로나 위험에 더 노출될 수밖에 없다. 결국, 현대 미국 사회의 극심한 불평등은 줄서기와 같은 곳에서조차 평등과 민주성(사회학자 고프만이 좋다고 했던)을 여지없이 훼손하기에 이르렀다. 오호, 통재라. 이런 사실을 땅속에 있는 고프만이 알게 된다면 무슨 말을 할까? 뻔뻔하게 보일 정도로 솔직 담백했다던 그의 성정을 생각해 보면 아마도 이랬을 것 같다. 민주적? 개뿔. 퍼스트 컴 퍼스트 서브드(선착순), 개나 줘버려!
'우리'에게 '그들'도 포함된 것인가?
오로지 11월 재선만을 생각하고 있는 트럼프는 대다수 국민이 죽어 나가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경제 재개의 나팔을 불어 대고, 이에 화답하듯 일부 주지사는 경제 재개 명령을 내렸다. 남부의 조지아주 주지사가 그 선봉에 서 있다.(<워싱턴포스트> 4월 21일 자) 그러나 많은 의료진은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셧다운을 풀고 경제 재개를 한다는 것은, 곧 사람들이 더 죽어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4월 10일 자 'Restarting America Means People Will Die. So When Do We Do It?') 그렇다면 과연 누가 죽어 나갈까? 이 글을 읽은 이들이라면 답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위정자들은 이렇게 취약한 지역 흑인들의 감염과 사망은 전혀 문제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
▲ '미국의 경제 재개는 곧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언제 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뉴욕타임스> 기사 갈무리. 그렇다면 누가 죽을 것인가? 누구를 죽이고 미국 경제를 다시 시작할 것인가? 그 피해자는 누구인가? 답은 나와 있다. 제국이 단물을 빨아 먹고 있는 저소득층이다. 그들의 피해자이다. 그 대표적 예는 저소득층 흑인들이다. 그들을 잉여인구로 간주하는 한 미국의 불평등을 해소할 방안은 없다.
다시 스타인라이트 교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에 따르면, 디킨스를 포함한 19세기 소설엔 산업혁명에 의해 갑자기 늘어난 인구와 그것으로 인한 각종 사회 문제에 대한 당대 작가들의 문제 의식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디킨스의 소설도 예외가 아니다. 자린고비 스크루지가 주인공인 <크리스마스 캐롤>(1843)엔 잉여인구에 대한 제거가 아무렇지도 않게 묘사되고 있다. "많은 사람이 갈 수 없어, 그러니 그들은 차라리 죽는 편이 나"라든지, "만일 그들이 죽는다면 그러는 편이 낫지, 그게 흘러넘치는 잉여인구를 줄이는 것"이라고 스크루지가 말하는 대목이 있다. 아마도 스크루지는 당시 기득권층의 생각을 그대로 대변하는 인물일 수 있겠다. 시간은 변해도 기득권층, 내가 말하는 제국들의 생각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혹시나 지금 취약계층이 몰려 사는 지역의 주지사와 시장들, 그리고 트럼프는 디킨스 소설에 나온 스크루지와 같은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회복지 혜택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이들이 이참에 싹쓸이되어 버렸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가? 그들을 사회에 전혀 쓸모가 없는 식충 같은 잉여인구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든다. 그런데 이런 의구심도 완전히 터무니없지만은 않다.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일국의, 그것도 세계 최강의 나라 대통령 입에서 코로나 치료를 위해 살균제를 음복하라는 말이 나온 것을 보면 말이다.
이러는 사이 힘없고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은 속절없이, 하릴없이 죽어 나가고 있다. 혹시 운이 좋다면, 언제 걸린 줄 모르게 항체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뉴욕시민들 중 5명 중 한 명이 코로나 항체가 생겼을 수도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서 하는 이야기이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4월 13일 자 '1 in 5 New Yorkers May Have Had Covid-19, Antibody Tests Suggest') 실로 '웃프'(웃기면서 슬프다)기만 하다.
생명은 '운발' 아니면 '운명'이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그래도 그 절반 정도는 사회가 커버할 수 있다. 사회가 주는 안전망으로서 말이다. 완전하진 않지만 사람들은 그런 안전망에 의지해 오늘도 마음을 턱 놓고 살아간다. 그게 사회와 국가의 기능이다. 쓰임새다. 물론 완전하지 않은 것을 전적으로 믿으면 결국 그 피해는 그것을 믿은 사람 자신에게 돌아가겠지만, 어쨌든 우리가 일해서 국가에 세금을 내고 국가에 의무를 다하는 것이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생명을 오로지 운발에만 맡기게 하는 사회, 그게 정상적인 사회는 결코 아니다. 그것도 선진국이라는 곳에서 그런 일이 버젓이 벌어진다면 더더욱 그렇다.
사람이라면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생명은 귀하다는 것이다. 거기서 '모든'은 글자 그대로 '모든'이다. 단 한 명의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된다. 주위를 두루두루 살펴야 하는 이유다.
김광기 경북대 교수 | 프레시안
10년 전 한국 어린이 ‘삶의 만족도’ 최하위···지금은?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을 찾은 어린이들이 놀이기구를 타고 있다.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2010년 5월5일 한국의 아이들 “우린 행복하고 싶어요”
오늘은 제98회 어린이날입니다. ‘대한민국의 미래’인 어린이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10년 전 경향신문에는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OECD 국가 중 꼴찌를 기록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당시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와 한국 방정환재단이 초등학생을 포함한 전국 5437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 지수’를 조사한 결과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는 대답은 50%를 겨우 넘겼습니다. 자세한 내용 살펴보시죠.
2010년 5월5일자 경향신문 11면.
“한국 사회의 어린이 둘 중 한 명은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고”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와 부모와의 갈등 등으로 ‘행복’이란 단어에 고개를 저은 것이다“
‘삶에 만족한다’라고 대답한 청소년은 전체 중 53.9%였습니다. 동일한 지수 조사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소속 26개국 어린이들의 평균 84.8%가 삶에 만족한다고 답한 것이 비하면 현저히 낮은 만족도였습니다. 한국 어린이들의 만족도는 OECD 국가 중 가장 낮았습니다.
한국 어린이들은 삶의 만족도, 주관적 행복, 학교생활 만족, 어울림, 소속감, 외로움 등 6개 부문을 합산해 점수로 표준화한 ‘주관적 행복’ 지수에서도 65.1점을 기록하며 비교 대상 25개 국가 중에서도 최하위에 머물렀습니다.
어린이들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 탓이었습니다.
조사결과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 중 절반에 가까운 49.4%가 학업 관련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답했습니다. 학업 스트레스는 학년이 높아질수록 커졌는데요, 고3 학생의 경우 84.1%가 학업 스트레스를 호소했습니다.
대화 단절 등 부모와의 갈등도 어린이들에게는 삶의 만족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의 24.4%가 부모 관련 스트레스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고, 중·고등생들은 절반 가까이가 부모와 갈등을 겪는다고 응답했습니다.
한국의 어린이들은 온갖 범죄와 교통사고에도 심각하게 노출된 것으로 조사됐네요.
당시 경찰청에 따르면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2005년 739건에서 2009년 1017건으로 늘어났습니다. 아동학대도 2001년 4133건에서 2008년 9570건으로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0년 기준으로 이전 5년간 1077명의 어린이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해마다 9000여건의 아동 실종사건이 발생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해졌을까요?
지난해 한국방정환재단이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와 손잡고 초등 4학년부터 고교 3학년까지 총 7454명을 대상으로 같은 조사를 실시한 결과, 2019년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주관적 행복지수 표준점수는 88.51점으로 나타났습니다. 10년 전(65.1점)에 비해 높아진 졌지만 OECD 22개국 가운데 20위를 기록하며 여전히 최하위에 머물렀습니다. 주관적 행복지수는 2018년(94.7점)보다 6점이나 급감했습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총 3621건이었습니다. 13세 미만 아동 성범죄는 2016년 1083건, 2017년 1261건, 2018년 1277건으로 해마다 늘어나며 3년 간 약 17.9% 증가했습니다.
유형별로는 강간·강제추행이 2016년 1009건에서 2018년 1181건으로 179건 늘어났고, 13세 미만 아동에게 스마트폰, 인터넷 등 통신매체를 이용하여 음란한 글이나 그림을 전송하는 ‘통신매체이용음란죄’ 위반도 2016년 50건에서 2018년은 22건이 늘어난 72건이었습니다.
어린이 교통사고도 크게 늘었습니다.
지난 4월 보험개발원이 발표한 2017~2019 자동차보험 통계 자료를 보면 지난해 어린이 교통사고 피해자는 11만2558명으로 전년도(10만6651명)보다 5.5%늘었습니다. 다만 사망자수는 41명으로 전년도(45명)보다 줄었습니다. 어린이 교통사고 피해자는 초등학교 1~2학년 등 저학년이 많았습니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돈만 날린 황소개구리 잡기, 유용했던 정보화사업… 고용대책 '공공근로史'
코로나發, 실업대책으로 또 등장한 공공근로사업
정부 3조6000억원 투입해 ‘공공일자리’ 55개 창출
공공근로史 명암… 황소개구리에서 정보화·간벌사업
"단기 효과 있지만… 일자리 質·뉴딜 연계 고려해야"
정부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고용시장이 타격을 받자 실직자와 취약계층 등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일자리 55만개를 만들기로 했다. 공공근로사업은 과거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어려울 때마다 등장한 대표적인 실업 대책이다.
정부는 올해 총 3조6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공공·청년일자리 55만개를 만들 계획이다. 먼저 공공데이터 구축, 다중이용시설 방역, 행정 지원 등 비대면·디지털 작업이 가능한 정부 일자리 10만개를 만든다. 채용 취소·연기 등으로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다. 또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30만개의 공공근로 일자리도 만들 계획이다. 근로 기간은 최대 6개월이다. 인건비는 2020년 최저임금인 8590원을 기준으로 해 최대 180만원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진행한 공공근로 일자리 사업에 중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는 것도 있지만 효과는 크지 않고 예산만 잡아먹는다는 비판을 받은 사업도 있었다.
1997년 5월 24일 열린 황소개구리 포획대회에서 포획된 황소개구리가 건져올려지고 있다./조선DB
◇IMF 때 등장한 황소개구리 퇴치 사업, 공공일자리 ‘흑역사’로
정부가 추진했던 대표적인 공공사업으로는 IMF 시절 고안된 ‘황소개구리 퇴치 사업’이 있다. 당시 외래종인 황소개구리가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토종 물고기의 씨를 말린다는 문제가 사회적 화두가 됐다. 이에 환경부는 공공근로사업 아이템으로 황소개구리 퇴치 사업을 제안했다. 황소개구리도 잡고, 일자리도 창출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 사업은 훗날 공공근로사업의 ‘흑역사’로 불리게 됐다.
환경부는 1998년 5월부터 7월까지 공공근로사업을 통해 70여일간, 하루 평균 200명을 동원해 황소개구리 3만600마리를 잡았다. 일당 2만5000원의 참가자가 하루에 잡은 황소개구리는 평균 2.18마리이었다. 석달 가까운 황소개구리 퇴치 사업에는 3억300만원이 투입됐다. 결론적으로 황소개구리 한 마리를 잡는데, 1만원 가까운 비용이 들어간 ‘허울 좋은 실업대책’으로 마무리됐다.
당시 정부는 황소개구리 퇴치 사업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최재욱 당시 환경부 장관과 국회의원을 초대하고, 공무원과 공공근로 인력 등 1000여명을 동원해 황소개구리 포획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행사 당일 황소개구리를 1마리 밖에 잡지 못하면서 사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고 대표적인 탁상행정 공공근로사업으로 낙인이 찍혔다. 결국 다음해 황소개구리 퇴치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당시 내부적으로 공공근로 사업 아이템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라는 목소리가 컸다"며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생각에 발굴된 사업이지만 효과가 떨어져, 나중에는 망신만 당하고 예산을 삭감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1997년 6월 12일 오전 과천정부종합청사 주차장에서 열린 황소개구리 시식회. /조선DB
반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공공근로사업도 있다. IMF 사태와 금융위기 시절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정보화 사업’이다. 이 사업은 각 부처나 지자체에 종이 문서로 존재하던 다양한 행정정보를 컴퓨터로 입력해,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상하수도, 도로교통, 산림, 수도관 현황을 비롯해 도서관의 기록물·서적자료 DB, 동사무소의 주민등록, 지적도면, 건축물대장 정비사업 등 사람의 손을 거쳐야하는 전산화 작업 등이다.
정보화 사업에는 대학을 졸업해 취업을 준비하거나 기업에서 실직한 고학력자들이 주로 참여했다. IMF와 금융위기 당시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하거나 채용을 취소하는 등 고용시장은 그야말로 ‘빙하기’였다. 또 이미 선발된 최종합격자도 입사가 지연되거나 일부 회사는 합격을 취소하기도 했다. 결국 실직자와 갈 곳을 잃은 대학 졸업생들이 정보화 사업에 대거 몰렸다.
IMF 당시, 각 구청에서는 문서로 된 건축물 대장을 도면화하는 공공근로사업이 한창 진행됐다고 한다. 컴퓨터 건축 디자인 프로그램인 ‘캐드(CAD)’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자들이 몰렸다. 건축과 공무원이 현장에 배치돼 업무를 지원하면서, 공공근로 참가자들의 업무 효율이 높았다.
구청에서 근무하는 한 공무원은 "당시 외부 기업 등에 의뢰하는 것에 비해 예산을 30% 이상 절감하면서, ‘공공근로는 예산낭비’라는 인식을 불식시키는데 기여했다"며 "당시 참가자들도 실무 경험을 갖게 돼 만족감이 높았고, 구축된 DB는 향후 공공자료 전산화 작업의 기반이 됐다"고 했다.
IMF와 금융위기 당시 산림청이 진행한 ‘푸른 숲 가꾸기’ 공공근로사업도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사업은 실업자나 노숙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당시 기재부와 산림청 공무원은 수요 조사를 위해, 새벽시간 노숙자들이 몰려있던 서울역 지하도를 찾아가 면담 등 사전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노숙인들은 전국 250여개의 간벌사업장에 투입돼 간벌, 가지치기, 거름주기 등 숲가꾸기 작업을 벌였다. 또 노숙인들은 작업 참여에 앞서 일주일 간 ‘간벌’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간벌은 나무들이 적당한 간격을 유지해 잘 자라도록 불필요한 나무를 솎아내는 작업을 말한다.
당시 현장을 찾았던 한 기재부 공무원은 "서울역 지하도에 가보니, 정장과 넥타이를 옆에 둔 실업자 노숙자들이 많았고, 대부분 다시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다"며 "노숙자들이 공공근로를 마쳤을 때, 일을 하고 급여를 받는 경험을 통해 다시 자신감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23년의 공공근로史, 명암… "과거 답습하면 안돼"
공공근로사업은 23년 전인 IMF 시절 급격한 경기 침체로 대량 실업 사태가 벌어지자 정부가 실직자·청년들에게 단기적 일자리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공공근로사업은 기재부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당시 유럽에서 추진 중인 공공근로(Public Works) 사업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이에 국내 사업명도 영문을 그대로 해석해 ‘공공근로’가 됐다는 게 관가의 정설(定說)이다. 공공근로사업은 긴 역사만큼 시대에 따라 ‘실업자 구제 사업’, ‘생계 지원 사업’, ‘희망근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1998년~1999년에 추진된 공공근로사업에는 총 3조2240억원의 예산이 투입돼, 195만3000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그 결과 1999년 상반기 실업률이 1.5%포인트(P) 줄었다.
공공근로사업은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실업률을 낮추고 개인의 소득을 보전할 수 있으며, 공공근로 참가자 스스로에게 성취감과 자활의지를 심어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반면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지만, 사업이 단기간에 끝나 ‘일회성 처방’이라는 우려도 있다. 또 정부의 고용통계를 왜곡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실업률은 줄었지만, 비정규직자가 급증하면서 일자리의 질이 현저히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최근 추진하는 공공사업은 일회성이긴 하지만, 코로나19로 경기 침체가 우려되는 만큼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다만 과거처럼 단순 업무 등 탁상 행정에 가까운 퍼주기식 공공근로처럼 운영하면, 그 효과는 반감될 수 있다. 직업훈련이 가능한 질좋은 일자리 선별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정부가 추진하는 뉴딜 정책과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일자리사업을 연계시켜, 학생들이 그 과정에서 경험을 쌓아 창업이나 고부가가치 취업으로 연계될 수 있는 계획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선비즈 세종=박성우 기자
우리 가족이 ‘5월 광주의 진실’ 알릴 수 있어 자랑스러워요”
‘5·18 체험기’ 동화 펴낸 제니퍼 헌틀리
찰스 베츠 헌틀리(맨오른쪽) 목사와 마사(왼쪽 둘째) 부부의 1974년 가족 사진. 막내딸인 제니퍼(앞줄 오른쪽)가 4살 때이고 ,세째인 아들(앞줄 왼쪽)은 한국에서 입양했다. 사진 하늘마음 제공
“5·18의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독재와 싸우다 죽어간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며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는 일입니다. 아직도 5·18의 진실을 부정하는 시도들이 있다는 게 마음이 아파요. <제니의 다락방>이 사람들이 진실에 귀를 기울이게 해주길 바랍니다.”
최근 나온 동화 <제니의 다락방>(하늘마음)의 저자 제니퍼 헌틀리는 광주가 고향이다. 부친인 고 찰스 베츠 헌틀리(1936~2017·한국이름 허철선) 목사가 원목으로 사역한 광주기독병원에서 1970년에 태어났다. 부친이 한국 선교를 마친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지금은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에서 비영리 노숙인 지원단체 ‘오픈 테이블 미니스트리’를 이끌고 있다.
<제니의 다락방>에는 10살 소녀 제니퍼가 1980년 5월 광주에서 겪은 사건들이 담겼다. 우연히 2009년 미국에서 만난 동화작가 이화연 하늘마음 대표의 제안을 받고 그가 쓴 5월 체험기를 이 대표가 동화로 꾸몄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각) 전자우편으로 제니퍼와 만났다.
부친 헌틀리 목사 광주기독병원 원목
광주에서 태어나 10살 때 ‘80년 5월’
“총알 피하려 20여명 내 지하방 밤샘”
최근 동화 ‘제니의 다락방’으로 출간
“헬리콥터 내눈으로 똑똑히 보고 들어”
“전두환 법정 진술은 명백한 거짓”
제니퍼의 부모인 고 찰스 베츠 헌틀리 목사와 마사 헌틀리 부부. 부친은 1980년 5·18 참상 사진을 힌츠페터 기자 등에게 전달했고 모친은 기사로 써서 국내외 언론에 알렸다. 사진 제니퍼 헌틀리 제공
부친 고 헌틀리 목사는 광주항쟁의 진실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한 공로로 3년 전 ‘오월어머니상’을 받았다. 고인의 뜻에 따라 부친의 유골 절반은 광주 양림동 선교사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광주기독병원 원목으로 5·18을 겪은 부친은 항쟁 기간 내내 병원에 실려 오는 계엄군 총격 피해자의 참혹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사진들은 고인의 자택 지하 암실에서 현상돼 영화 <택시 운전사>에 등장하는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등의 손을 거쳐 세계로 퍼졌다. 헌틀리 목사는 특히 자신이 찍은 사망자 엑스레이 사진을 근거로 계엄군이 비인도적 살상무기인 연성탄(soft bullet·납탄)을 썼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납탄은 총알이 사람 몸 안에서 산산조각이 나 수술로 제거하기가 어렵다. 그의 모친 마사는 항쟁 기간에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기사를 써 비밀리에 국내외 언론에 보내기도 했다.
막내 제니퍼는 4남매 중 유일하게 항쟁 내내 부모 곁을 지켰다. 10살 소녀에게 ‘5월 광주’는 조용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일상에 파열음을 내는 힘겨운 시간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기억은 아버지가 찍은 사진이었단다. “부친이 일하던 광주기독병원에 총을 맞거나 구타당한 환자들이 밤낮으로 들어왔어요. 지금도 그때 죽거나 다친 사람들, 피 흘리는 주검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어요. 우리 집 암실에서 사진을 현상하던 부친 곁을 지키며 피범벅이 돼 오직 치아만 식별되는 사진을 보고 공포에 떨기도 했어요. 그 사진들 때문에 내 몸이 아팠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 사진들을 볼 때마다 수많은 젊은이가 삶의 터전인 광주를 지키기 위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가 무고하게 죽어간 것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파요. 그리고 지금은 민주주의가 일상인 세상에서 사는 우리가 얼마나 운이 좋은가 생각하게 되죠. 그건 바로 민주주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용감한 사람들 덕분이라는 것도요.”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난 제니퍼 헌틀리는 10살 때 광주에서 직접 겪은 ‘5·18’의 진실을 알리고자 동화 <제니의 다락방>을 썼다.
부친이 체포 위험에 처한 학생 7명을 집 다락에 숨겨준 기억도 생생하다. 집에 자신과 피신한 학생들만 있을 때 총을 든 군인이 초인종을 눌러 부모를 찾자, 임기응변을 발휘해 아이스티 두 잔을 군인들에게 대접하고 수색을 피할 수 있었단다. 계엄군 최후의 진압 작전 날에는 총알이 집으로 날아올 것을 우려해 다락방 학생들과 병원 의사 가족 등 20명이 제니퍼의 지하방에서 함께 밤을 지새웠다.
모친 마사는 지난해 2월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5·18을 왜곡·모독한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을 징계해달라고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 대한 딸의 생각을 물었다. “자식 잃은 광주 시민들의 친구이자 5월 목격자로서, 우리 어머니는 그 세 명 의원들이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걸 잘 알아요. 다른 지역 사람 중 일부는 광주의 일을 여전히 믿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그때 언론이 진실을 보도할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검열된 신문에 실린 거짓을 믿게 되었어요. 때로는 무언가를 진실로 믿기 위해서는 스스로 알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며칠 전 전두환이 법정에서 오월항쟁 동안 헬기 사격은 없었다고 진술한 걸 알게 됐어요. 내 두 눈으로 똑똑히 헬리콥터들을 보았고 내 두 귀로 분명히 총성을 들었어요. 그가 하는 말은 거짓입니다.”
제니퍼는 위험을 무릅쓴 부친의 행위를 언제쯤 온전히 이해했을까. “80년 5월에는 어려서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증거를 남기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못했어요. 나중에야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광주의 진실을 믿었다는 걸 알게 되었죠. 대학을 다닐 때 부친이 찍은 사진들이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우리 집에 사람들을 숨겨주는 일이 아주 중요했다는 것도요. 부모님이 광주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썼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선교사였던 부모님이 하신 일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나누는 일이었어요. 아주 참혹한 시기에도 부모님이 당신들의 사명을 삶으로 살아냈다는 점이 자랑스러워요.”
‘80년 5월’ 10살 소녀 제니퍼 헌틀리의 목격담을 그린 동화 <제니의 다락방> 표지. 사진 하늘마음 제공
헌틀리 가족이 1969년부터 85년까지 살았던 광주광역시 양림동 선교사 사택. 사진 하늘마음 제공
그의 세 자녀는 엄마가 10살 때 겪은 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그는 2년 전 부친의 유골을 들고 큰딸, 막내아들과 함께 광주를 찾았다. “올해 21살인 큰딸은 고교를 다닐 때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보고서를 써 에이(A) 학점을 받기도 했죠. 딸은 광주의 일을 처음 알고 크게 놀랐지만 우리 가족이 학생들을 숨겨주고 사진과 글로 광주의 진실을 세계에 알렸다는 걸 알고 무척 자랑스러워했죠.”
그의 마지막 답변이다. “오월광주에 대한 나의 목격담 <제니의 다락방>이 사람들에게, 특히 어린이들에게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 바랄 게 없겠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CDC “6월부터 하루 3천명 사망”…2배 악화, 美봉쇄완화 빨간불
백악관, 코로나19 TF 인사 의회 증언 막기로
지난달 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브롱크스 인근의 외딴 섬인 ‘하트섬’에서 보호복을 입은 인부들이 시신이 담긴 관을 파묻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가장 많은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한 미국에서 한 달여 뒤인 다음 달 1일부터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현재의 8배, 사망자는 2배 가까이 불어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이 제기됐다. 경제 재개를 위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섣부른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가 전염병 재확산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를 뒷받침하는 관측이다.
뉴욕타임스(NYT)는 4일(현지시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작성한 내부보고서에 6월 1일부터 신규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에 20만명씩, 사망자는 대략 3000명씩 나올 것이라는 분석이 담겼다고 보도했다. 현재 미국의 하루 신규 확진자는 2만5000명선, 사망자는 1750명선이다. CDC는 보고서에서 “여전히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지역들이 많이 남아 있다”며 5대호 주변, 캘리포니아 남부, 미국 남동부와 북동부 지역이 새로운 코로나19 진원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9쪽 분량의 이 보고서에 작성 날짜는 명시돼 있지 않은 상태이나 지난달 30일 카운티별 코로나19 상황이 담긴 지도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작성된 문건이라는 의미다. NYT는 이 보고서에 대해 “미국이 경제 활동을 재개하면 코로나19 사태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냉정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백악관은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TF) 차원의 공식 자료가 아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저드 디어 부대변인은 “백악관 코로나19 TF에 보고되지도, 관계 부처 사이 분석을 거친 자료도 아니다”며 “미국을 다시 열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단계적 가이드라인은 연방정부 내 최고 보건·감염병 전문가들의 동의를 거친 과학적인 접근법”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워싱턴대학교 보건계량분석평가연구소도 이날 미국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 규모를 과거에 내놓았던 예측치보다 2배 가량 높여 발표했다. 해당 연구소는 백악관 코로나19 브리핑에서 자주 인용됐던 곳이다. 연구소는 지난달 17일 발표한 사망자 추계 모델에서 5월 말까지 완벽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뤄질 경우 8월 초까지 6만415명의 사망자가 나올 것으로 예측했다. 새 추계 모델에서는 예측치가 13만4475명으로 크게 늘었다. 불과 3주도 안돼 예측치가 두 배 이상 뛴 것이다.
연구소 측은 추계 모델 개정 이유에 대해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이동이 증가하고 있고, 오는 11일 31개 주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을 완화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점을 반영했다”며 “사람들 사이 접촉이 늘어나면 바이러스 전파가 촉진된다”고 설명했다.
‘신속한 경제 재개’로만 기울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는 5월 한 달 동안 백악관 코로나19 TF 인사 등의 의회 증언을 사실상 금지할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NYT가 입수한 이메일에 따르면 백악관은 코로나19 TF 관계자들이 마크 메도스 백악관 비서실장의 승인 없이는 의회에 출석하지 못하도록 막는 지침을 내렸다. 국무부와 보건복지부, 국토안보부 등 코로나19 관련 1차 대응부서 소속 공무원들도 5월 하원 청문회 중 단 4개만 출석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두기로 했다.
백악관 측은 코로나19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나 실상은 보건 및 과학 분야 소신파 인사들의 ‘입’을 막기 위한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의 냉철한 전망이 경제 재개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CNN 인터뷰에서 해당 지침과 관련해 “우리는 끝까지 진실을 추구할 것이고, 그들은 진실을 두려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이재용 삼성 ‘4세 경영’ 포기…82년 ‘무노조 경영’ 종식 선언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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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52)이 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빚어진 각종 의혹을 사과하고 향후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4세 경영’ 포기도 선언했다. 또 삼성그룹 사업장에서 창업 후 82년간 유지돼온 ‘무노조 경영’을 종식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대법원이 이 부회장이 연루된 ‘국정농단 사건’ 원심을 파기환송한 후 삼성전자에서 “국민께 송구스럽다”는 입장을 서면으로 낸 적은 있지만, 이 부회장이 직접 연단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부회장은 6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제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게 하겠다”면서 “법을 어기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저와 삼성은 승계 문제와 관련해서 많은 질책을 받았다. 최근에는 승계와 관련한 뇌물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기도 하다. 저와 삼성을 둘러싼 많은 논란 이 문제에서 비롯된 게 사실”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삼성그룹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원활하게 경영권을 승계받도록 하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삼성바이로직스 등 계열사들을 움직였다는 의혹으로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을 받고 있다.
앞서 준법감시위는 과거 삼성그룹을 둘러싼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대체로 이 문제와 관련 있다고 판단해 이 부회장의 사과를 요구했다. 이날 이 부회장은 무노조 경영 종식 등 노조 활동에 대한 전향적인 태도를 약속했다. 노사가 노동 법규를 준수하고 화합하고 상생하는 것이 지속가능경영에 도움이 되고 자유로운 노조활동이 거시적 관점에서 기업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삼성전자 이상훈 이사회 전 의장과 강경훈 부사장 등이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공작 등에 가담한 혐의로 1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데 따른 후속조치이기도 하다. 이 부회장은 준법감시위가 요구한 시민사회와 신뢰관계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방안도 발표했다. 또 이 부회장의 형사재판과 무관하게 준법감시위 활동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시민사회에서는 준법감시위가 자신의 뇌물사건 파기환송심 형량 감경을 위한 ‘면피용’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앞서 준법감시위는 지난 3월11일 이 부회장과 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SDI·삼성SDS·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화재 등 7개 관계사에 경영권 승계, 노동, 시민사회 소통, 준법감시위 활동에 대한 권고문을 송부하고 이달 11일까지 회신해달라고 요청했다.
구교형·곽희양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마스크는 안 쓰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애리조나주 피닉스 소재 허니웰 인터내셔널 마스크 공장을 방문했다. 38일 만에 공식 외부 일정을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은 보건당국의 마스크 착용 지침을 무시하고 투명 고글만 썼다. 피닉스 | AFP연합뉴스
좌천된 백신 개발 책임자
특별조사국에 내부고발장
“트럼프 사위 쿠슈너 연루
클로로퀸 사용 압박도 받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부실한 코로나19 대응 뒤에는 대통령 사위 재러드 쿠슈너 등과 결탁된 제약회사들의 이해관계와 정부 인사들의 ‘뒷거래’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트럼프 정부 인사들의 ‘정실주의(cronysm)’에 반대하다가 쫓겨났다고 주장하는 전직 복지부 간부의 내부고발에서 나온 얘기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5일(현지시간) 코로나19 백신 개발 책임을 맡았던 릭 브라이트 전 생물의약품첨단연구개발국(BARDA) 국장이 연방 특별조사국(OSC)에 공식 내부고발장을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특별조사국은 연방 공무원의 권한남용을 조사하고 기소하는 독립기관이다.
지난달 국장에서 물러난 브라이트는 1월 말에 코로나19가 확산될 우려를 제기했지만 알렉스 에이자 장관을 비롯한 간부들의 반대에 부딪혔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정부 고위관리들이 코로나19 경고를 무시했다는 주장은 여러 번 나왔다. 브라이트는 그뿐 아니라 자신이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내내 고위층과 연결돼 있는 제약회사들과의 거래를 비롯한 미심쩍은 일들을 목격했으며, 그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가 핍박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내부고발장에서 트럼프의 사위 쿠슈너의 친구가 운영하는 제약회사를 비롯해 “정부와 정치적 관계를 맺고 있는 회사들”이 정부 계약을 따내곤 했다면서 2017년부터 여러 계약이 이런 “정실주의”에 따라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항의했지만 “정치적 편의보다는 과학과 안전을 우선시하려는 노력”은 상급자에 의해 좌절됐다고 적었다.
BARDA는 2006년 출범한 ‘신생’ 기구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생물학·화학무기 공격이나 대규모 감염증 위험에 ‘의학적인 대응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 기구를 출범시켰다. 이 기구는 제약회사나 생명공학기업들과 수십억달러 규모의 연구·개발 계약을 체결한다.
면역학 박사인 브라이트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인플루엔자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한 인플루엔자·백신 전문가다. 2010년 BARDA에 합류했고 2016년 11월부터 국장을 맡아왔으나 코로나19 위기가 한창인 지난달 갑자기 국립보건원(NIH)으로 전출됐다.
89쪽짜리 내부고발장에서 그는 지난 3년여 동안 국장으로 일하면서 상급기관인 보건복지부 질병예방대응본부(ASPR)의 로버트 캐들럭 본부장 등과 여러 차례 마찰을 빚었으며 제약업계 경영진과도 긴장이 조성됐다고 주장했다.
거기에는 ‘하이드록시클로로퀸’ 문제도 관련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말라리아 치료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과 ‘클로로퀸’을 코로나19 치료제로 거론해 물의를 빚었다. 보건복지부 고위관리들도 두 약품을 코로나19 치료제로 적극 사용하라는 압력을 가했다고 브라이트는 밝혔다. 로이터통신에 이 문제를 털어놨고, 그로 인해 간부들과 충돌했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주장에 대해 “코로나19 바이러스 진단검사를 맡기기 위해 국립보건원으로 브라이트 박사를 보낸 것인데, 10억달러 규모의 예산 사업을 책임진 그가 미국인들을 위해 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입장을 내놨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구정은 선임기자 ttalgi21@kyunghyang.com
일본 시민들은 왜 가만히 있는 것일까?
11> 무능한 정부를 꾸짖지 않는 일본 시민 사회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잘못된 대응이 잇따르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와’(和)를 중시하는 일본 사회에서는 무능한 정부를 강하게 꾸짖는 집단행동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일본 시민들은 왜 가만히 있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대한 일본 정부의 헛발질이 계속되면서, 한국의 지인들로부터 “일본의 시민들은 왜 이런 상황에 가만히 있는가” 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시민의 힘으로 폭주하는 권력을 응징한 경험이 생생한 한국 사회에서 익히 나올 수 있는 궁금증이다.
신종 전염병과의 싸움이 시작되고 계절이 바뀌었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진단 검사를 늘리면 의료 붕괴가 되네 마네 하는 소모적인 논쟁을 질질 끌고 있다. ‘긴급 사태 선언’은 했지만 시민들에게 외출 자제를 요청할 뿐 이렇다 할 방역 대책이 없어 불안감은 커질 뿐이다. 국가 원수가 한가롭게 애완견과 노는 영상을 소셜 미디어에 올려 공분을 사는가 하면, 엄청난 국가 예산을 써서 지급한 천 마스크는 불량품이 속출한다. 게다가 이 마스크의 공급처는 정치권과의 유착이 의심되는 정체 불명의 유령 회사란다.
이쯤 되면 시민의 인내심도 바닥날 만한데, 시민들이 정부를 꾸짖는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일본의 시민들은 스스로의 생명과 건강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것인가? 일본의 시민들은 왜 무능하고 오만한 권력을 묵인하는 것일까?
◇역사 속으로 사라진 ‘데모의 시대’
한국에서는 정치적 이슈뿐 아니라 성차별, 직장내 괴롭힘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한 집단 행동이 끊이지 않는다. 광화문 광장은 늘 시끌벅적하고 혼란스럽지만, 덕분에 사회적 과제가 공론화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대조적으로 일본에서는 시민들의 대규모 집단 행동은 찾아보기 어렵다. ‘혐한 시위’ 같은 인종차별적 집단 행동은 종종 있지만, 이런 움직임은 막연한 배타주의와 혐오의 감정을 드러내는 정치적인 이벤트에 가깝다. 특정 사회 문제에 대해 해결을 요구하는 시민 운동과 동급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과거 일본에도 지금의 한국에 못지 않게 시민 사회의 목소리가 우렁차던 시절이 있었다. 예를 들어,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이 터지자마자 일본의 시민들이 연대해서 대규모 반전 시위를 지속적으로 실행에 옮겼던 일이 잘 알려져 있다. 전국의 300여개 단체가 연대한 ‘베트남에 평화를! 시민 연합’(줄여서 ‘베평련’)이 주도한 시위에는 수백만명의 시위대가 자발적으로 참가했다. ‘베평련’은 일본 정부에게 전쟁에 협조해서는 안 된다고 명확히 요구했을 뿐 아니라, 미국 정부에도 전쟁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당당하게 전달했다. 1965년 11월 미국의 신문 <뉴욕타임즈> 1면에 일본 시민의 힘을 모은 ‘베평련’의 이름으로 “폭탄은 베트남에 평화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호쾌한 캐치프레이즈의 전면 광고가 게재될 정도였다. 무기력한 지금과는 전혀 딴판인 ‘데모의 시대’가 일본에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어디까지나 반 세기 전의 역사일 뿐이다. 급속한 경제 성장과 사회적 변화 속에서 정치에 대한 관심이 옅어졌다. 학생 운동의 주역들이 정치권으로 대거 진출한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서 시민 운동을 이끌던 리더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데모의 시대’에 대한 기억의 끄트머리에는 급진 좌파 학생들의 과격한 무장 투쟁 (일명 ‘전공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남아 있다.
2017년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에서 개최된 ‘1968년전’은 일본 사회의 역사 속으로 사라진 ‘데모의 시대’를 조명한 전시회였다. 사진 김경화
◇후쿠시마 사고 이후 반짝 높아졌다가 시들해진 시민의 목소리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시민들의 목소리가 반짝 커지는 듯도 했다. 2011년에는 반원전 시위가 전국 곳곳에서 제법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2012년에는 동일본대지진 이후 재집권한 보수 정권의 노골적인 우경화를 비판하는 대학생과 지식인의 조직 행동이 잠깐 활발했지만, 뒷심 부족으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인터넷 공간의 시민 행동에 대해 연구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일본의 지식인들과 의견을 나눌 기회가 적지 않았다. 일본에서 시민의 집단 행동은 이래저래 난감한 주제이다. 건강한 시민 사회를 위해 권장해야 마땅하다는 원론적 입장도 있지만, ‘화합’ (‘和’라고 쓰고 일본어로 ‘와’라고 읽는다)을 최우선에 두는 분위기 속에서 모난 돌의 역할을 자청하는 부담감을 떨쳐내기 어렵다. 삼키지는 못하겠고 뱉기에는 아까운 ‘뜨거운 감자’ 같은 사안이다. 결국 “일상 속에서 묵묵히 할 일을 하는 것도 바람직한 시민”이라는 교과서적 역할론으로 무기력함을 정당화하기 일쑤이다.
한 일본인 동료는 일본 시민 사회가 활력이 없는 이유에 대해 “폭주하는 권력으로 인한 파탄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국 사회는 군사 독재, 민주화 운동에 대한 폭력적 탄압 등 권력의 남용으로 인한 문제를 뼈아프게 경험했다. 그에 비해 일본 사회에서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시민들이 권력의 폭거를 피부로 느낀 적이 없다는 것이다.
◇반 세기 동안 대외 문제에 매달려 온 정치권과 시민 사회
일본인의 관점에서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제3자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일본 사회 내부적으로 문제가 없었다기 보다는, 곳곳에 산재한 모순이 ‘파탄적 상황’으로 표면화된 적이 없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패전 이후 줄곧, 일본 사회는 어떻게 다시 국제 무대에 자리매김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주요 아젠다로 삼아왔다. 정부의 정책 과제도, 시민 사회의 비판 의식도 외교나 국제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다른 나라에 무력을 과시하려는 호전적인 시도 끝에 비참하게 20세기 전반을 마감한 패전국의 숙명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 결과, 일본 사회 내부의 모순과 문제들은 상대적으로 방치되어 왔다.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단순한 경제적 과제로 치환하거나, 외교적 문제인 양 해결하려는 사고 방식도 자리잡았다. 그러다 보니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극복하기 위해 도쿄 올림픽을 유치하자는 식의 무리한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것이다. 전세계에서 관심이 들끓는 ‘미투 운동’이나 정보의 온라인화 등의 움직임에 대해 일본 시민 사회의 대응이 둔감하고, 심지어는 전근대적인 모습을 ‘일본 고유의 문화’ 라고 옹호하는 의아한 태도도 이런 경위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파탄’이 일본 시민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사회는 ‘파탄’을 경험하면서, 권력의 위험한 속성을 깨닫고 고통스럽게 과거와 결별한다. 한국만큼 파워풀한 집단 행동은 아니지만, 일본에서도 소셜 미디어의 해시태그를 활용해 정부의 코로나 대응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온라인 데모’가 조용히 번지고 있다. 그런 것을 보면,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 일본 사회가 건설적인 ‘파탄’을 경험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상황 속에서 치룬 중의원 보궐 선거에서 집권당이 승리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반 세기 이상 굳게 자리잡아 온 사상의 관습이 그리 쉽게 깨지겠는가 싶기도 하다. 어떤 쪽이든 이번 코로나 사태는 일본 사회에 중요한 변화의 계기가 될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일본 사회가 내부의 모순과 문제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김경화ㆍ칸다외국어대 준교수
죄수와 검사Ⅱ ① 뉴스타파, '한명숙 사건'을 취재하다
2017년 8월 23일 의정부교도소 앞. 한명숙 전 총리가 징역 2년을 마치고 만기출소했다. 다소 수척해진 모습이지만 비교적 밝은 표정이었다. 교도소를 나온 뒤 한 전 총리는 사실상 정계를 은퇴했다. 9년에 걸친 이른바 ‘한명숙 뇌물 사건’이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종결되는 순간이었다.
▲ 2017년 한명숙 전 총리는 징역2년을 마치고 만기 출소했다.
‘한명숙 사건’의 시작과 끝
‘한명숙 뇌물 사건’은 2009년 검찰 수사로 시작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다. 노 전 대통령 장례위원장이었던 한명숙 전 총리는 야권의 잠재적인 대권 후보였고,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상황이었다.
2009년 말 검찰이 한명숙 전 총리를 첫번째로 기소한 내용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서 인사청탁과 함께 5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였다. 하지만 곽 전 사장의 진술이 오락가락하면서 한 전 총리의 무죄가 유력했던 상황. 검찰은 ‘곽영욱 사건’ 1심 선고를 하루 앞둔 2010년 4월 8일 한 전 총리의 또 다른 혐의를 언론을 통해 공개한다. 이번에는 한신건영이라는 소형 건설사의 사장 한만호가 한 전 총리에게 수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줬다는 내용이었다.
‘한만호 사건’은 이상하게 돌아갔다. 검찰이 기소한 뒤 진행된 두 번째 공판에서 한만호는 기존에 검찰에서 한 진술을 완전히 뒤집는다. 검찰이 횡령 등 자신의 추가 범죄를 수사할 것이 두려워 검찰이 원하는 진술을 해줬다는 주장이었다.
치열한 법적 공방 끝에 2011년 10월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 김우진 부장판사)는 무죄를 선고한다. 하지만 2013년 9월 2심 재판부(서울고등법원 형사6부, 정형식 부장판사)는 1심을 뒤집고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여 원을 선고했다. 2015년 8월 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원심대로 유죄를 확정했다. 한 전 총리는 의원직을 상실했고, 수감됐다.
한명숙은 사법농단 ⠂ 검언유착의 피해자인가
‘한명숙 사건’은 이렇게 법적으로 종결됐지만 대중의 뇌리에서는 사라지지 않고 종종 소환된다. 2018년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태 때가 대표적이다. 2018년 7월 31일 ‘대법원 사법행정권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공개한 196건의 문건에는 ‘한명숙 사건’이 포함돼 있다.
▲ 2018년 공개된 ‘사법농단 문건’ 중 2015년 5월 6일 작성된 ‘상고법원 입법을 위한 對국회 전략‘이라는 제목의 문건.
2015년 5월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한명숙 의원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해 달라고 대법원에 요청했으며, 대법원이 이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할 경우 김무성 대표에게 상고법원안 처리를 설득하는 게 어려워진다는 내용이다. 2018년 문건이 공개 된 뒤 더불어민주당은 “한명숙 전 총리는 억울하게 희생됐다”며 “의혹을 밝혀야한다”고 논평을 냈다.
최근에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한명숙’을 다시 소환했다. 채널A 기자가 구속 수감된 죄수를 상대로 유시민 이사장 관련 비위 사실을 말하라며 협박한 행태가 폭로되면서다. 채널A 기자와 모 검사장의 유착 의혹은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이다. 유 이사장은 MBC 라디오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죄수가) 저한테 의자에 돈 놓고 나왔다고 말하던가 어디 도로에서 차 세우고 트렁크에 돈 실어줬다, 이렇게 말했으면 저는 한명숙 전 총리처럼 딱 엮여 들어간다.” 의자에 돈을 놓고 나왔다는 건 ‘곽영욱 사건’을, 도로에서 차 세우고 돈 실어줬다는 건 ‘한만호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죄수와 검사> 그리고 한명숙
뉴스타파는 지난해 검찰개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죄수와 검사>를 연속 보도했다. 서울남부구치소에서 복역 중이던 죄수(일명 제보자X)가 검찰 수사에 참여하면서 목격한 검찰 치부를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뉴스타파는 검찰이 죄수를 수사에 활용하기 위해 죄수에게 불법적인 편의를 제공하기도 하고 가석방 등을 약속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검찰이 특정한 수사를 덮기도 하고, 사건을 만들어 내기도 하는 여러 정황과 증거들도 드러났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검찰 스스로 ‘특수수사 기법’이라고 그럴 듯하게 이름 붙이기도 한다.
<죄수와 검사> 프로젝트 취재원 중에 ‘한명숙’이라는 이름을 꺼낸 사람이 몇몇 있었다. <죄수와 검사> 내용에 검찰이 ‘한명숙 뇌물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과 흡사한 대목이 있다는 말이었다.
1차 뇌물사건의 당사자인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은 비자금으로 먼저 구속돼 죄수가 된 뒤 검찰에 한명숙 전 총리의 이름을 불었다. 2차 뇌물사건 당사자인 한만호 전 한신건영 사장도 같은 순서로, 즉 사기 혐의로 죄수가 된 뒤 한 전 총리 관련 내용을 검찰에 진술했다. 두 사건 모두 한 전 총리의 혐의를 주장하는 근거가 ‘죄수’의 입이었다는 말이다. 또 한 전 총리 재판 과정에서는 복수의 또 다른 죄수들이 법정 증인으로 나서 검찰의 기소 내용을 정확하게 뒷받침하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한명숙 사건을 자세히 아는 사람들은 <죄수와 검사>를 보면서 조건 반사적으로 ‘한명숙’이라는 이름을 떠올렸을 수 있다.
▲ 2019년 보도한 뉴스타파 <죄수와 검사> 시리즈.
다시, 한명숙 사건을 깊게 들여다보다
사법 판단이 끝난 사건을 다시 취재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한명숙 사건’은 수많은 검사와 변호사들이 정면 승부를 벌인 세기의 재판이었다. 하지만 빈 공간은 어디나 있기 마련이다. 뉴스타파는 한명숙 사건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면서 비어있는 공백,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부분을 다시 들춰봤다.
방대한 재판 기록에는 사건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들이 등장했다. 그 인물들의 행적을 쫓아가봤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충격적인 증언도 있었다.
김종인과 박정희 그리고 언론
[비평] 정치 보도 블랙홀 김종인, 검증·분석 부족…김종인 제시한 ‘40대 경제전문가’, 결국 박정희식 리더십
21대 총선 이후 정치 보도의 키워드는 ‘김종인 비대위’(비상대책위원회)다. 언론에선 김종인 비대위가 출범할지, 찬·반 의원이 각각 누군지, 미래통합당 결정 과정과 이에 대한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김종인)의 반응 등을 스포츠 경기처럼 전달하는데 그쳤다. 선거 운동기간, 어떤 후보가 앞서는지 전하던 경마 중계식 보도와 다르지 않은 행태다.
한국 주류가 교체됐다거나 50대까지 보수진영을 외면했다는 사회구조적 분석이 나오는데 숲이 아닌 변두리에 심은 나무에만 치중한 모습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김종인 비대위’는 현 사태 해결책일 수도 없으며 제대로 검증도 안 된 김종인이란 인물이 블랙홀처럼 정치 이슈를 빨아들이는 게 시민들에게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온통 ‘김종인 비대위’ 기사
총선 직후 선거 결과와 분석을 다룬 기간을 제외하고, 지난달 20일부터 지난 1일까지 총 11일간 한겨레와 조선일보 지면을 살폈다. 정치면이나 종합면에서 ‘김종인 비대위’를 톱기사로 배치한 날이 한겨레는 9일(4월20일·21일·22일·23일·24일·25일·29일·30일·5월1일)이었고, 조선일보는 6일(4월23일·25일·27일·29일·30일·5월1일)이었다. ‘김종인 비대위’ 보도는 1순위였다.
“통합당 ‘비상대권’ 김종인 손에…임기도 스스로 정한다”(4월25일 한겨레 종합면톱)
“김종인 비대위, 내일 통합당 전국委 넘을까”(4월27일 조선일보 정치면톱)
“‘회의장 나오지 마라’ 전화…조경태·김태흠 ‘김종인 저지 작전’”(4월29일 조선일보 정치면톱)
“결국 김종인호? 조기 전당대회?…갈팡질팡 혼돈의 통합당”(4월30일 한겨레 정치면톱)
▲ 4월29일 조선일보 정치면
▲ 4월21일 한겨레 정치면 톱기사
이처럼 대부분 통합당과 김종인의 핑퐁게임을 기록한 기사다. 대표로 두 신문을 모니터링했지만 다른 매체들 보도 내용도 비슷했다. 이는 김종인에 대한 검증과 분석이 부족한 상태로 언론이 김종인을 과대평가한 탓도 있고, 근본적으론 정치권 이슈를 따라가는 데 바쁜 정치 보도 관성 때문이기도 하다.
김종인식 해법, 새 시대 리더십인가
주목할 보도는 조선일보가 지난달 25일 1면과 정치면에 보도한 김종인 인터뷰다. 김종인은 ‘지난 대선 후보들을 배제하고, 40대 경제전문가를 차기 주자로 내세우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김종인으로선 현 정부가 경제로 실패할 것이란 예측과 당의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섞어 내놓았을 방안이지만 이 역시 낡은 관점일 수밖에 없다. 보수진영에선 그나마 낫다는 김종인 역시 새 시대를 설계할 인물로 보기 어려운 지점이다.
▲ 김종인 전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 사진=노컷뉴스
보수진영의 화수분이었던 ‘반공주의’와 ‘경제성장’ 담론은 통하지 않고 있다. 구체적으로 ‘안보보수’와 ‘시장보수’의 경쟁력이 많이 떨어졌고 최근 10년간 민생 이슈가 전국단위 선거 중심에 놓인 만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다른 말로 ‘박정희식 리더십’이 더는 21세기 시대정신일 수 없다는 지적이다.
김종인이 던진 ‘40대 경제전문가’는 박정희를 떠올린다. 박정희는 만 43세에 쿠데타로 권력을 점령해 장기독재로 경제를 살린 인물로 이미지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동아일보를 보면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동아시론’ 칼럼에서 통합당 실패를 진단하며 “서민적 보수와 젊은 보수의 길을 가야한다”고 조언한 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온갖 반대에도 1977년에 서민을 위한 획기적인 복지 정책으로 전 국민 의료보험제를 채택했다”고 했다. 이 주장은 지난달 20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이미 꺼냈던 얘기다. 의도와 관계없이 박정희에서 답을 찾는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통합당 안팎에선 당의 외연을 넓히고 세대교체가 절실하다는 진단으로 수렴했다. 이를 실현하려면 현재 국민 눈높이에 맞는 리더를 찾아 제시해야 한다. 문제는 통합당과 김종인이 추구하는 리더십 형태가 낡아 회생 가능성이 낮다는 데 있다. 따라서 김종인이냐 아니냐는 본질이 아니다. 해당 진영 화두로 삼거나 정치 보도 메인을 장식하기엔 소모적이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당을 비판 중인 김세연 의원은 ‘자강론’에 비해 김종인 비대위가 낫다면서도 김종인 비대위가 ‘희망고문’이 될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아예 김종인 비대위가 출범하는 것 자체도 실패라고 봤다. ‘40대 경제통’ 제안이 낡은 관점이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전문가, 즉 스페셜리스트(Specialist, 특정분야 전문가)로서 권위주의형 지도자가 경제성장을 이끄는 모델이 가능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산업화시대가 아니라서다. 이제 국민은 ‘기꺼이 따를만한 지도자’를 원한다. ‘리더’라기보단 ‘허브’에 가까워야 한다는 뜻이다. 제너럴리스트(Generalist, 다방면에 걸쳐 많이 아는 사람)가 적합한 시대라는 주장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를 봐도 알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미네르바 사건이나 박근혜 정부 시절 홍가혜씨 구속사건 등 통합당 계열 정당은 권위주의형 리더십으로 이견을 묵살해왔고, 이들 대통령의 연관검색어는 ‘불통’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소통을 강조했다. 본인이 전문가도 아니고 전문가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집권 만 3년에 회고적 투표를 넘겼는데도 대통령을 뽑지 않은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 이미 많은 국민이 전문가이기도 하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리더’가 아닌 ‘허브’가 필요하다는 진단의 좋은 예시다. 특정 시점에 하나의 이슈가 사회를 지배하기보단 모두가 제각각 이슈로 떠든다. 이를 서로가 확인하고, 20만이 넘을 때까지 정부도 지켜본다. 정부가 원론적 답변을 내놓더라도 이미 시민들이 사회문제를 진단하고 때론 위로와 공감도 받는다. 주요 현안을 정부·여당 플랫폼에서 소통하는 반면 통합당은 이 시국에도 다수 시민 관심 밖인 투표 조작설과 김정은 사망설을 의제로 던졌다.
김종인은 총선 전날인 지난달 14일 “총선이 다가오자 코로나 확진자 수가 줄고 있는데 선거 끝나면 폭증할 우려가 있다”는 허위정보를 유포했다. 통합당 다른 후보자들의 막말을 비판했지만 무책임하긴 김종인도 마찬가지였다. 김종인을 ‘구원투수’로 포장하고 그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언론 책임이 크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성찰 없이 김종인 말과 주변을 비중 있게 보도하고 있다.
또 경제 살릴 전문가를 찾는 김종인의 주장은 당직에서 물러난 황교안 전 통합당 대표 리더십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황 전 대표는 박정희를 유산으로 한 박근혜 정부 인물이면서 대표 시절 박정희식 리더십을 실현했다. 한국당의 많은 의원을 삭발시키고, 무리하다는 지적에도 장외투쟁을 이끌었으며, 불법 위험을 감수하며 ‘패스트트랙’을 물리력으로 막게 했다. 문재인 정권의 경제 실정을 외쳤고 대통령과 친문, 그 지지자들까지 묶어 독재·패권주의로 몰았다.
▲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박정희 리더십 추구하는 황교안과 김종인
유능한 지도자를 세우고 구성원들이 이를 따라가면 잘될 거라는 ‘박정희식 리더십’을 제시한 김종인은 황교안만큼 낡았다. 김종인이 지난 3월 말 통합당을 맡으며 처음 내건 총선 구호는 “못살겠다 갈아보자”였다. 무려 1956년 대선 때 야당이 내놨던 말이다.
통합당과 통합당을 보도하는 언론이 차라리 김세연 의원이 말한 것처럼 기본소득 논쟁에 뛰어들어 보수진영 입장이라도 정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아니면 여당에서 길을 찾는 게 더 나은 방법으로 보인다. 대통령은 단지 한 인물의 출세나 특정 정당 승리를 넘어, 그 당시 사회의 시대정신을 의미한다. 이를 찾아내고 분석하는 게 알권리에 더 부합하지 않을까.
소통·공정을 말한 문 대통령의 당선, 대선 지지율 1위를 달린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리더십 사이 어디쯤 오늘날 시대정신이 있다. 대선 지지율 2위로 올라선 이재명 경기지사의 모습에도 국민 열망의 일부를 발견할 수 있다. 통합당 만큼이나 정치 보도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
억소리 나는 금융공기업 연봉…산은·기은, 초봉 5000만원 돌파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금융공기업 9곳 중 4곳의 평균 연봉이 1억원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KDB산업은행과 IBK기업은행은 신입사원 초봉이 처음으로 5000만원을 넘겼다. 경기 침체와 저금리로 금융권의 이익 창출 여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지만 금융 공기업의 고액 연봉 행진은 꾸준히 이어졌다.
6일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금융위 산하 8개 공공기관(한국예탁결제원ㆍ산업은행ㆍ기업은행ㆍ신용보증기금ㆍ예금보험공사ㆍ한국주택금융공사ㆍ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ㆍ서민금융진흥원)과 한국수출입은행 등 금융공기업 9곳의 지난해 일반 정규직 기준 1인당 평균 보수는 9363만원으로 집계됐다. 전체 공공기관 362곳의 1인당 평균 보수(6779만원) 대비 38.1% 많은 수준이다.
금융공기업 9곳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1년 전(9243만원)과 비교해 1.29% 올랐다. 이는 전체 공공기관 평균 보수 상승률(0.1%)의 13배다. 많은 공공기관이 신규 채용을 늘리면서 평균 보수 상승률이 낮은 수준을 기록한 반면 금융공기업은 신규 채용을 상대적으로 덜 늘린 영향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평균 연봉이 가장 높은 곳은 예탁원으로 지난해 1인당 1억1074만원을 챙겼다. 다음으로는 산은 1억988만원, 기업은행 1억411만원, 수은 1억205만원 순으로 나타나 연봉이 1억원 이상인 금융공기업이 전체 9곳 중 4곳에 이르렀다. 뒤를 이어 신보 9425만원, 예보 8911만원, 주금공 8692만원, 캠코 8199만원 순으로 연봉이 높았다. 서민금융진흥원은 6364만원으로 가장 낮았다.
다만, 지난해 특수은행을 중심으로 주요 금융공기업의 실적이 악화되면서 평균 연봉이 낮아진 곳도 있다. 예탁원과 수은은 평균 연봉이 1년 전 보다 각각 0.77%, 0.34% 떨어졌다. 산은은 평균 연봉이 0.32% 오르는 데 그쳤다.
경기 부진, 기업 지원에 따른 대손충당금 적립 등으로 실적이 눈에 띄게 둔화돼서다. 산은의 경우 당기순이익이 2018년 7059억원에서 지난해 2791억원으로 60.4% 쪼그라들었고, 수은은 6858억원에서 4347억원으로 36.6% 급감했다. 예탁원은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이 831억원에서 489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신입사원 초봉은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각각 5141만원, 5045만원으로 처음으로 5000만원을 넘어섰다. 전체 금융공기업 평균 초봉은 2018년 4420만원에서 2019년 4505만원으로 1.9% 상승했다. 금융공기업 신규 채용은 2018년 935명에서 지난해 957명으로 소폭 늘어났지만 산은, 수은, 예보, 주금공, 캠코 등 5곳은 신규 채용 규모를 줄여 신의 직장 입사 문은 좁아졌다고 볼 수 있다./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트럼프 명령으로 재가동한 타이슨 공장, 노동자 60% 집단 감염
미국, 코로나 사태로 '육류 대란'...."노동자들 일회용품 취급"
미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육류 대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열악한 작업 환경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집단 발생한 육류가공 공장들이 작업을 중단하면서 육류 유통에 문제가 생길 조짐이 보이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말 공장 재가동을 명령했다. 육류 공급에 차질을 빚을 경우, 시민들의 불안 심리가 극도로 가중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확진자가 나온 공장을 재가동할 경우, 집단 감염이 발생하는 등 노동자들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는 문제가 지적됐다. 노동자 안전과 경제 중 경제를 택한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은 예상된 비극을 불러왔다.
타이슨푸드 워털루 공장, 1000명 넘게 집단 감염...전체 노동자 60% 감염된 곳도 있어
8일 <폭스뉴스>에 따르면, 세계 2위 육류가공업체 타이슨 푸드의 아이오와주 페리에 있는 공장에서는 전체 노동자의 60%인 730명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또 아이오와주 블랙호크카운티 보건당국은 타이슨의 워털루 공장에서 1031명의 노동자가 코로나19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는 전체 공장 근로자(2800여명)의 37%애 해당하는 숫자다. 타이슨푸드의 이들 공장은 급속하게 코로나19가 노동자들 사이에 확산됨에 따라 2주 전에 작업을 중단했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8일 "육류와 가금류 공장은 필수적인 국가 기반 시설"이라며 미국 내 육류 공장을 강제로 재가동할 수 있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행정명령은 국방물자생산법(DPA)에 기반한 것인데, 이는 한국전쟁 당시 군수물자 생산을 위해 제정된 법이다.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근거로 타이슨은 공장 내 근무하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발열 검사를 실시하고 작업장 내에서 안전 거리를 확보하겠다고 밝히는 등 노동자 안전을 중시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뒤 지난 7일 공장을 재가동시켰다.
그런데 재가동한지 하루 만에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했다. <폭스뉴스>는 "워털루 공장 직원들 중 이미 3명이 코로나19로 사망했고, 1명은 의식이 없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공장 내 집단 감염은 타이슨푸드의 공장에서만 발생한 일이 아니다. 지난 1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미국 19개주의 115개 육가공 공장을 조사한 결과 총 4900명의 근로자가 코로나19 확진자로 분류됐으며, 사망자도 20명이나 됐다.
육류가공공장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 CDC는 물리적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노동 환경과 집단 거주와 통근 버스 등 생활 환경이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높인다고 분석했다. 또 이들 공장 노동자의 대다수가 이민자들이기 때문에 언어 문제로 작업장 안전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1000여명의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한 타이슨푸드의 워털루 공장ⓒ폭스뉴스 갈무리
웬디스에서 햄버거 메뉴 사라져...코스트코 등도 육류 구입 제한
육류가공공장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하면서 미국 내 육류 공급에도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웬디스는 햄버거 등 쇠고기가 들어간 메뉴 판매를 5500곳의 매장 중 1043곳에서 중단했다.
또 미국 최대 슈퍼마켓 체인인 크로거와 대형 유통매장인 코스트코, 샘스클럽, 하이비 등은 고객의 육류 구매 수량을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공급 부족 조짐을 보이자 소비자 가격도 오르고 있다. CNN에 따르면, 돼지고기 소매 가격은 일주일만에 30% 이상 뛰었고, 우육 도매가 역시 기록적으로 폭등했다.
바이든 "트럼프, 노동자들 일회용 취급"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공장을 재가동시킨 조치에 대해 민주당의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노동자들을 일회용 취급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지난 4일 성명을 내고 노동자들을 위한 의료보험료 지불, 신속한 코로나 테스트 등을 요구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육류 공장의 재가동이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재개의 시험대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정부와 식품 회사, 노동자에 의한 코로나19 반응은 국가 비상 상황에서 누가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밝혀내고 있다"며 "육류 공장의 재가동은 제 2의 감염을 유발하지 않고 어떻게 사업을 재개할 수 있는지 시험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전홍기혜 특파원 프레시안
법무부 위원회 "아버지 성 무조건 따르는 부성우선주의 폐지"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 부성우선주의 폐지·출생통보제 도입 등 권고
법무부 산하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위원장 윤진수)'가 아이가 태어나면 아버지의 성을 자동으로 따르게 하는 '부성우선주의'를 폐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출생통보제'를 도입하고 '체벌 금지'를 민법에 명시할 것을 권고했다.
법제개선위는 여성·아동의 권익 향상 및 평등한 가족문화 조성을 위해 민법과 가족관계등록법 등 관련 법률 일부의 신속한 개정을 법무부에 권고했다고 8일 밝혔다.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는 법무부가 출생·가족·양육 분야 법제에 자문을 위해 지난해 4월 해당 분야에 경험을 갖춘 전문가 11명으로 구성한 기구다.
위원회는 우선 출생 시 아버지의 성을 따르게 하는 '부성우선주의'(민법 제781조)를 폐지하고, 부모의 협의를 통해 자녀의 성·본을 결정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민법 제781조는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라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부모가 혼인 신고할 때 합의한 경우나 아버지를 알 수 없는 경우에만 아이는 어머니의 성을 따른다.
해당 조항은 자녀에 대해 아버지의 권리를 어머니보다 우선시 하는 '부성우선주의' 원칙이 담긴 것으로 "헌법과 성평등의 관점에서 가족이 다양화하는 사회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
위원회는 "가족생활 내 평등한 혼인관계를 구현하고 가족의 자율적 합의를 존중할 수 있도록 '부성우선주의'를 폐지하고 부모의 협의를 원칙으로 하는 등 민법의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부모의 협의 시점 등 구체적인 방법은 입법 과정에서 논의될 전망이다. 또 위원회는 혼외자녀가 인지되면 자동적으로 본래 아버지의 성으로 변경하도록 하는 민법 제781조 5항도 개정해, 종전의 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권고했다. 특히 자녀가 일정 연령 이상이면 자신의 성·본 변경에 동의권이 명시돼야 한다고도 권고했다.
위원회는 의료기관이 아동의 출생정보를 국가 또는 공공기관에 신속히 통보하는 '출생통보제'도 도입할 것을 권고했다. 부모가 출생신고 하지 않을 경우 국가가 직권으로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현행법은 부모가 자녀의 출생 뒤 1개월 안에 출생신고를 하도록 하고 있으나,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국가의 현황 파악이 어려워 아동권리보호에 공백이 생긴다는 지적이 있었다. 위원회는 출생통보제가 도입되면 유기·학대·방임되는 아동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고 보고 있다.
위원회는 또 산모가 상담 등을 전제로 자신의 신원을 감춘 채 출산 뒤 출생등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익명출산제'의 도입 필요성에도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친권자는 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징계할 수 있다'는 민법 제915조(징계권)을 삭제하고, 민법에 '체벌 금지'를 명확하게 규정할 것도 권고했다.
법무부는 "앞으로 위원회의 권고를 토대로 관련 법제의 개선방안을 마련해, 여성·아동 권익 향상 및 평등하고 포용적인 가족문화 조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조성은 기자 프레시안
기남기녀에서 미남미녀까지… 당신은 合倫인가, 不倫인가
2020 불륜의 세계
성인 남녀 700명에 설문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죄는 아닐 수도 있는데, 욕은 먹는다.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유부남 이태오가 아내 지선우에게 불륜을 들키고서 이렇게 소리치자, TV 앞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욕을 내뱉었다. 그렇게 욕을 많이 먹은 드라마이지만, 시청률은 꾸준히 20%를 넘겼다. 지난해 흥행에 성공한 SBS 드라마 'VIP'나 지금 tvN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화양연화'도 모두 불륜이 소재다. 현실에서도 불륜은 인기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는 불륜을 한 이들이 모인 카페 '금지된 사랑'도 개설이 됐다. 회원 수는 2만6000명이 넘고, 6일 현재 하루 방문자 수 3만명이 넘었다.
부부의 세계를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치명적이어서 금기시되지만, 흔하기도 하다. 이런 불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무튼, 주말'이 불륜을 물었다. 4월 27일부터 5월 6일까지 성인 남녀 702명이 응답했다.
기혼자 셋 중 한 명은 "불륜 해봤다"
설문조사 결과, 전체 기혼자의 30.4%가 불륜을 해봤다고 응답했다. 기혼 남성 중 41.3%, 기혼 여성 중 24.4%인 것으로 드러났다(남녀 불륜의 최저 기준은 아래 확인). 가사 소송을 주로 하는 변호사와 부부 상담을 하는 정신과 전문의들은 기혼 여성의 불륜 비율이 설문조사보다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가사 소송을 주로 다루는 최한겨레 변호사는 "예전에는 기혼 남성과 미혼 여성의 불륜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기혼 여성과 기혼 남성, 기혼 여성과 미혼 남성의 불륜이 많이 늘었다.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성별 간 차이는 크게 줄었다"고 했다.
온라인 카페 '금지된 사랑'에선 기혼끼리 만나는 것을 '기기' 혹은 'ㄱㄱ'으로, 기혼 남성과 미혼 여성이 만나는 것을 '기남미여', 그 반대를 '기여미남'으로 표현한다. 게시판에서 세 가지 경우를 모두 찾아볼 수 있다. 기혼 남녀가 만나는 경우, 지속 기간이 더 길다는 게 특징이다. 지난해 6월 '만난 지 12년이 넘어가는 기기'라는 글이 올라오자 '우린 10년이 넘어가는 기기' '우린 16년 차 기기다'라는 댓글이 달렸다. '기혼 남녀가 12년간 사귀다가 각자 자녀를 다 대학에 보내고 이혼을 한다'는 글에는 축하와 함께 '부럽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기혼을 선호하는 이유는 더 안전하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모(40대·자영업)씨는 "지금까지 세 번 외도했는데, 첫 번째를 제외하고는 기혼 여성을 만났다. 미혼 여성인 경우, 자주 연락하거나 만나야 하고 이혼을 바라기도 하기 때문에 기혼 여성을 선호한다"고 했다.
가사 소송을 주로 다루는 이명숙 변호사는 "바람이 난 기혼 남녀의 배우자끼리 만나서 하소연과 위로를 하다가 사귀는 경우도 있었다. 나중에 만난 기혼 남녀가 먼저 이혼을 요구했고, 이 둘은 재혼했다. 요즘 불륜에는 나이나 성별, 결혼 여부에 따른 차이점이 별로 없는 게 특징"이라고 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이태오가 과거 내연녀이자 현재 아내 여다경에게 말한다. "너랑 나 바람 아니었잖아." 여다경이 그의 품에 안긴 채 대답한다. "맞아. 절대로 단 한 번도 떳떳하지 않은 적 없었어."
불륜한 이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의 이름이 '금지된 사랑'이란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자신의 감정이 사랑이라고 여긴다. 카페 내에서도 '불륜'이나 '외도'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금사'('금지된 사랑'의 줄임말) 혹은 'ㄱㅅ'(금사의 초성)을 쓴다. 대부분의 기혼자가 "우리 불륜은 바람이 아니고 사랑"이라는 이태오의 대사에 분노했다면 이 카페에선 아내 지선우가 남편의 불륜 상대 여다경에게 "유부남의 바람은 배설"이라고 말한 대사에서 들고일어났다. 'ㅇㅇ(와이프를 지칭하는 말)와 기계적으로 해야 하는 성관계야말로 배설' '나는 기혼남이지만 배설이란 말에 분노가 앞섰다. 나는 (불륜) 상대의 사랑을 느끼고 싶어한다'는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설문조사에서 불륜을 한 남성과 여성 모두 불륜의 이유로 제일 많이 꼽은 게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거나 사랑해서'(54.4%)였다. 그 뒤를 이은 것이 '성욕이나 배우자와의 성관계 불만'(21.3%)으로 1위에 비해 응답자 수가 절반도 못 미친다. '배우자에게 화가 나서'(7.3%)가 3위를 차지했다. 이모(40·전문직)씨는 "결혼 초반, 남편이 나를 무시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을 때 홧김에 옛날 애인과 잠깐 만난 적이 있다"며 "이혼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외도를 멈췄다"고 했다. 최명기 정신과 전문의는 "불륜을 한 사람들은 사랑이나 권태, 복수 등 다양한 이유를 대지만, 결국은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갖고 싶다는 게 이유다. 성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은 불륜은 없다"고 했다.
불륜을 해봤거나 하는 사람들은 배우자의 불륜에 관대할까? '배우자의 불륜을 의심한 적이 있다'는 항목에서 '네'라고 응답한 기혼자 비율은 34.4%였지만, 응답자를 불륜 경험자로 국한하면 '네'의 비율은 73%로 늘어난다. '배우자의 불륜을 알았을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당장 이혼을 하겠다'거나 '별거나 각방을 쓰겠다'고 응답한 불륜 경험자도 67.4%다. 자신이 불륜을 한다고 해서 배우자의 불륜에 대해서 무감각하거나 쉬이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륜의 대가는 얼마?
연애를 하는 미혼남녀 사이에서 데이트 비용이 문제가 되듯이 불륜 관계에서도 돈이 문제가 된다. 기혼자의 경우, 경제권이 배우자에게 있거나 가계에 소득을 다 써야 하는 상황이 가장 문제다. '금지된 사랑'에서 'ㄱㄴ(기혼남)이 경제권을 ㅇㅇ(와이프)에게 다 넘겨서 만날 때마다 내가 돈을 다 낸다' '금사(금지된 사랑)를 하면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 '기기로 만나는데 봉투에 각자 현금을 넣어서 데이트 통장처럼 쓴다'는 글을 자주 볼 수 있다. 기혼 남성과 만나던 한 미혼 여성은 '나한테는 돈 한 푼도 안 쓰면서 아내와 아이에겐 돈을 잘 쓰는 걸 보고 열이 받아서 데이트 비용을 받아내는 청구서를 아내에게 보낼 계획이다'라고 했다.
돈 문제가 더 커지는 것은 불륜을 들킨 다음이다. 간통죄는 2015년 2월, 62년 만에 폐지됐다. 형법상 간통죄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했고, 이혼을 전제로 했다. 설문조사에서 간통죄 폐지에 대해 '찬성한다'는 응답자 비율은 48.9%, '반대한다'는 응답자 비율은 51.1%로 팽팽하게 맞섰다. 간통죄 폐지에 반대하는 기혼 남성 김영하(41·가명)씨는 "바람난 아내와 상간남에게 민사소송으로 돈을 받아내긴 했지만, 그 금액이 두 사람에게 타격을 입히지 않았고,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던 나에게별 도움도 안 됐다. 그들이 형사 처벌을 받아서 불륜을 했다는 것을 합법적으로 알리고 싶다"고 했다.
간통죄가 없어진 이후에는 상간자에게 민법상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하거나 배우자와 상간자 모두에게 위자료 청구소송을 한다. 불륜으로 정신적인 피해와 가정이 파탄 난 데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이다. 이명숙 변호사는 "불륜 상대가 1000만원에서 3000만원 정도를 지급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불륜의 지속 기간, 재산 규모, 방식에 따라서 금액이 더 올라가기도 한다. 1억원이나 3억원을 받은 의뢰인도 있었다"고 했다.
"돈을 낸다고 해서 불륜을 그만두는 것도 아니에요. 한 의뢰인은 같은 불륜 상대를 상대로 세 번째 소송을 진행하고 있어요. 첫 번째 소송에선 3000만원, 두 번째 소송에선 5000만원을 내고도 남편과 피고인이 다시 만난 거죠."
드물긴 하지만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상간자를 대신해 불륜 배우자가 돈을 내기도 한다. '금지된 사랑'에서는 '나중에 ㅇㅇ(와이프)에게 걸리면 ㄱㅁ(기혼남)이 대신 돈을 내주기로 약속했다'는 내용의 글도 볼 수 있다. 최한겨레 변호사는 "불륜 상대를 대신해 돈을 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1500만원의 위자료를 한 번에 내지 못해서 10개월간 나눠서 내는 피고인도 있었다. 연이율 12%의 이자까지 붙어서 실제로는 더 많은 돈을 냈을 것"이라고 했다.
이명숙 변호사는 "요새는 불륜 상대가 자신을 고소한 상대 배우자에 대해 맞고소하기도 한다. 대여섯 가지 항목을 한 번에 걸어 고소하는 경우도 봤는데, 그야말로 적반하장이었다"고 했다. 상대 배우자가 복수하기 위해 상간자의 회사에 불륜 사실을 알리는 경우엔 명예훼손으로, 상간자의 부모·가족에게 알리겠다고 하는 경우엔 협박으로 맞고소한다. 불륜에 대한 법원의 정서는 부정적이기 때문에 상대 배우자의 벌금은 100만원을 넘지 않는다. 화를 참지 못한 상대 배우자의 경우, 폭행으로 고소당하기도 한다.
"데이트만 해도 불륜(女 58%)" 對 "지속적인 성관계가 필수(男 40%)"
2020 불륜의 최저 기준
불륜을 소재로 한 영화 ‘화양연화’(2000). / 미디어캐슬
"그 여자와 성적인 관계는 맺지 않았습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모니카 르윈스키와 맺은 관계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을 때, 그는 아마 "섹스를 하지 않았으니 불륜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배우자가 야한 동영상을 보는 것을 불륜이라고 보는 사람부터,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 정서적 교감 없이 성관계만 가진 건 불륜이 아니라고 보는 사람까지, 불륜의 기준은 다양하다. 간통죄가 폐지된 지금, 법에서는 불륜을 '부정한 행위'라고 이르고 있다. 이 역시 범위가 넓고 애매모호하다. 불륜이란 무엇인가.
설문 조사에서 불륜의 최저 기준에 대해 물었을 때 남녀의 응답은 큰 차이를 보였다. 남성 응답자가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지속적 성관계'(40.1%)였지만, 절반이 넘는 여성 응답자는 '성관계가 없는 애정 관계 혹은 데이트'(58%)라고 했다. 2위로는 남성 응답자가 '성관계가 없는 애정 관계 혹은 데이트'(35.5%), 여성 응답자가 '지속적 성관계'(17.1%)를 꼽았다. 남성 응답자가 3위와 4위에 각각 올린 것은 '일회성 성관계 혹은 성매매'(15.3%) '짝사랑'(7.7%), 여성 응답자는 이 두 항목 순위가 바뀌었다. '짝사랑'이 11.1%, '일회성 성관계 혹은 성매매'가 9.4%로 나왔다.응답 결과에 따르면 배우자의 불륜에서 남자는 육체적 관계를, 여자는 정신적 관계를 더 결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볼 수 있다.
기타 의견도 다양하게 나왔다. 기혼자 강정화(31·가명)씨는 "산악회 가입부터 불륜으로 볼 수 있다. 등산을 좋아하면 혼자 산에 가면 되는데 굳이 남녀가 함께 모이는 산악회에 가는 건 이성을 만난다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기혼자 남명수(38·가명)씨는 "아내가 직장 남성 동료의 차를 타고 시내로 출근하는 카풀을 했다. 일주일 중 5일간 자동차와 같은 밀폐된 공간에서 남자와 단둘이 있는 것도 불륜이다"라고 했다.
미국의 저명한 상담심리학자 에스터 페렐의 저서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은 현대사회에서 불륜은 "두 개인 간의 계약 위반이란 개념과 관련이 있다"며 "둘 사이의 합의를 벗어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이 배신을 만든다"고 했다. 예를 들어 연애 시절, 이성 친구와 따로 만나는 것이 싫다고 두 사람이 암묵적 합의를 했다면, 결혼해서도 이 행위를 불륜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합의를 하지 않은 다른 부부 사이에서는 이성 친구를 만나는 게 불륜이 아닐 수 있다. 불륜의 정의는 사회나 사법 체계가 해주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보낸 시간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로 이뤄지는 셈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08/2020050802424.html
조선일보 변희원 기자
지난 7일 경남 창원시 낙동강유역환경청 연못에서 태어난 흰뺨검둥오리 새끼들이 엄마의 인솔로 도심 인근 하천으로 이주하기 위해 창원지방병무청 인근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낙동강유역환경청 조재천씨 제공=연합뉴스
이용수 할머니는 왜 ‘30년 동행’ 수요집회를 비판했을까
수요집회 없애야…성금 사용처 몰라”
회견 파문에 정의연 뿐 아니라 연대자들도 ‘충격’
정의연 쪽, 1억원 계좌 이체증 등 공개…“모금내역은 감사받고 공시”
단체 중심 운동 과정에서 소외감……비례대표 배제된 쪽 배후설도
1992년 1월8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차 수요시위”가 열린 뒤 만 28년이 지났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오른쪽)와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지난 1월 열린 제1421차 수요시위에서 대화 중 포옹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1992년 1월8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차 수요시위”가 열린 뒤 만 28년이 지났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오른쪽)와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지난 1월 열린 제1421차 수요시위에서 대화 중 포옹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8년 동안 한결같이 ‘수요집회’를 이어왔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인권운동가들이 충격에 빠졌다. 피해를 맨 앞에서 증언해온 피해자 가운데 한명인 이용수(92) 할머니가 수요집회 성금의 용처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더이상 집회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집회를 주최해온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쪽은 이 할머니를 만나 대화하려 했으나 불발된 것으로 전해졌다.
8일 한경희 정의연 사무총장은 <한겨레>에 “앞서 어버이날을 맞아 이용수 할머니를 방문하는 일정이 잡혀 있었으나, 여러 차례 연락해도 받지 않으셔서 결국 찾아가지 못했다”고 전했다. 정의연은 이날 입장문을 내어 “지난 30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과 명예회복을 바라며 정의연의 운동을 지지하고 연대해오신 분들의 마음에 예상치 못한 놀라움과 의도치 않은 상처를 드린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 할머니는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어 “수요집회를 없애야 한다. 참가한 이들이 낸 성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모른다” “성금을 할머니들한테 지원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정의연 쪽은 이날 2017년 시민 모금 등을 통해 이 할머니에게 전한 1억원의 계좌이체증 등을 공개하고 “후원금은 정의연이 피해자 지원 쉼터를 비롯해 전국에 거주하고 계신 피해자 할머니들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기금 사용은 정기적인 회계감사를 통해 검증받고 공시 절차를 통해 공개한다”고 설명했다.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은 단순히 금전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실제 주인공인 이 할머니는 2007년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직접 증언했을 정도로 피해자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런 그가 정의연 중심으로 전개돼온 위안부 피해자 운동에서 오랫동안 소외감을 느껴온 것으로 전해진다. 정의연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일본과 보수진영 등에서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 ‘가짜 피해자’라는 등의 공격이 있었는데 이 할머니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시키는 대로 증언을 해왔는데 왜 나를 보호해주지 않냐’고 정의연에 서운함을 토로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30년 동안 함께 운동해온 윤미향 전 정의연 이사장이 더불어시민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나서 당선된 것도 할머니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윤 전 이사장은 “국회에서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시민사회에선 “현장 활동가로 일할 때와 같을 순 없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시선을 던지기도 한다. 이 할머니도 기자회견에서 “나는 국회의원 윤미향이는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구에서 홀로 사는 이 할머니는 최근 코로나19 확산 뒤 고립된 채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에 동석한 최용상 가자평화인권당 대표가 지난 총선 당시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후보에서 배제된 데 크게 반발한 점을 들어 ‘배후설’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최 대표는 이날 <한겨레>에 “나도 (이용수 할머니가) 그런 발언을 하실 줄 몰랐다. 할머니가 이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면서 허망해하고 있는 것 같다”며 배후설을 일축했다.
그동안 위안부 피해자 운동을 공격해온 극우 진영의 공세도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는 조만간 위안부 문제를 정당화하는 <반일종족주의> 속편 출간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정의연 건물 앞엔 이미 한달 동안 보수단체가 집회신고를 해둔 상태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그따위 신문종이 만드는 ‘언롱인’들” 30년전 리영희 가르침
리영희재단, 언론정보학회 주최 10주기 세미나… 전통언론·탈언론 모두 ‘리영희 정신’ 새겨야
“지난 한 세월 동안 내게는, 이 사회에 ‘신문지’는 있어도 ‘신문’은 없었다. 무슨 말인지 알 수도 없는 넋두리를 인쇄한 ‘…지紙(종이)’는 내게 조석으로 배달되어 왔지만 ‘새 소식(신문)’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소식이라는 것도 하나같이 권력을 두둔하는 낡은 것이고, 권력에 아부하는 구린내 나는 내용들이었다. 그러기에 그따위 ‘신문종이’를 만들어내는 신문인들이 감히 ‘언론인言論人’을 참칭할 때 나는 그들을 ‘언롱인言弄人’이라는 호칭으로 경멸해 왔다.”(1988년 한국기자협회보에 기고한 리영희의 글 ‘후배 기자들에게 하는 당부’)
‘사상의 은사’ 리영희는 평소 언론과 언론인을 매섭게 비판했다. ‘언론인’이 아닌 ‘언롱인’이라는 멸칭은 30년이 지난 오늘 ‘기레기’라는 단어로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언롱인이 다시 언론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리영희는 한국기자협회보에 1971년 발표한 글에서 답을 준다. “관료가 되지 말고 지식인이 되자.” 이 말은 “‘기자’라는 직업에 종사하는 한 ‘관료적’인 가치관이나 관료적인 행동을 하지 말자”는 뜻이다.
그가 말했던 관료는 “현행의 질서를 지키고 관습과 규율을 존중하고 압력을 감수함으로써 변혁을 배격”하는 존재다. 리영희가 생각했던 이상적 기자는 ‘독립적·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기자’였다. 스스로 공부하고 행동하는 단독자로서의 기자. 오늘날 ‘지식인’이라 부를 수 있는 기자는 몇이나 될 것인가.
▲ ‘사상의 은사’ 리영희는 평소 언론과 언론인을 매섭게 비판했다. 사진=리영희재단.
8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뉴스타파 리영희홀에서 열린 리영희재단, 한국언론정보학회 주최의 10주기 세미나 ‘진실 상실 시대의 진실 찾기’에서 1부 발제를 맡은 박영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초빙교수의 문제의식이다.
박 교수는 “리영희가 2020년 다시 ‘후배 기자들에게 하는 당부’라는 글을 쓴다면 무엇보다 먼저 조직의 통제와 낡은 관행의 구속부터 벗어던지라고 조언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기자들이 내부 힘에 종속되는 상황에 쉽게 눈을 감는다는 지적이다.
이를테면, 기자들이 신주단지 모시듯하는 객관주의 신화, 출입처 제도 관행, 사주와 간부들의 압력, 이데올로기로 결정된 뉴스가치 등을 ‘우상’으로 삼고 있다는 진단이다.
반면 기자 리영희는 “오늘의 우리 직업이 마치 ‘객관적 보도’라는 미국식 저널리즘의 몰사상 내지 몰가치적인 행위만으로 그 소임과 기능을 다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단편적 사실보다 ‘진실’을 추구하고자 했고, “우리사회 신문들은 정론의 정의를 중립 또는 불편부당이라는 표현으로 압축해왔다. 그러나 중립이란 실제로 존재할 수 없다”며 ‘불편부당’이라는 단어 뒤로 숨은 언론을 비판했다.
박 교수는 언론의 정파주의적 비판이 ‘지식인 기자’를 막는 요인이라고도 진단했다. 그는 “한국정치의 고착화한 정파 구도 속에서 언론은 자신들이 옹호하는 정파의 과오에는 적극적으로 눈을 감지만, 반대하는 정파에는 과도하거나 불합리한 비판을 가하면서 언론에 주어진 비판의 자유를 자신들의 정파적 이해관계를 위해 전유하고 있다”며 대표적 사례로 한일 갈등과 코로나19 국면에서 정부를 비판했던 보수언론들을 꼽았다.
▲ 8일 오후 서울 중구 뉴스타파 리영희홀에서 열린 리영희재단·한국언론정보학회 주최의 10주기 세미나 ‘진실 상실 시대의 진실 찾기’에서 1부 사회를 맡은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왼쪽)와 발제를 맡은 박영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초빙교수. 사진=김도연 기자.
리영희가 살아있다면 전통언론 비판뿐 아니라 소셜미디어, 팟캐스트, 유튜브 등 ‘탈언론’(박 교수 표현)에도 준엄한 비판을 가했을 것이라는 게 박 교수 주장이다. 탈언론은 낡은 우상에 갇힌 전통적 언론을 비판하며 성장했다. 탈언론은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실증적 저널리즘보다는 해설이나 주장의 저널리즘에 가깝다.
박 교수는 “그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무모한 추측에 근거한 음모론으로 발전하면 위험하다. 아예 악의적 허위정보까지 포함시킨다면 위험성은 한층 더 커진다”며 “(탈언론 시대는) 나의 기호와 취향에 맞춰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정보만 편향적으로 소비하며 내가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 진실이 되는, 우리 편에 이득이 되느냐가 진실의 유일한 판별 기준이 돼버린 시대”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현상과 대조적으로 리영희는 ‘공부하는 기자’였다. 그의 글쓰기는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데 공을 들이는 실증적 글쓰기였다. 그의 특종 보도 대부분은 자료 수집과 학습, 분석의 결과물이었다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일례로 1964년 한일회담 교섭 막바지, 대일재산청구권 문제가 걸림돌이 됐던 당시 리영희는 일본이 과거 점령 통치했던 베트남, 버마, 필리핀의 배상 사례를 연구해 현금 상환이나 개개인에 대한 상환은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특종 보도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는 MBC 사장 임기를 마치고 뉴스타파 PD로 복귀한 최승호 PD가 자리했다. 최 PD는 “리영희 선생 책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대단한 탐구 정신”이라며 “전쟁터 참호 속에서 책을 읽으셨다는 기록이 있다. 미군 장교들이 일본으로 휴가 갈 때 일본에서 나온 책을 사달라고 부탁해 그 책들로 전쟁터에서 공부하셨다고 한다. 실존적 자유인으로서 세계적 현상과 실상을 스스로 판단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최 PD는 “그는 민감한 기사를 썼다 싶으면 댁에서 며칠이나 옷을 벗지 않고 주무실 정도로 스스로에게 엄격했다”며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없는 그 시대에 민감한 기사를 쓴다는 것은 전문성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엄정함이 요구된다. 리영희 선생을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하는 자들도 그가 제시한 ‘팩트’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던 것”이라고 말했다.
▲ 8일 오후 서울 중구 뉴스타파 리영희홀에서 열린 리영희재단·한국언론정보학회 주최의 10주기 세미나 ‘진실 상실 시대의 진실 찾기’에서 최승호 뉴스타파 PD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KBS 부사장 출신 정필모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인은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이 진실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순간”이라며 “언론 역할은 폭넓게 맥락과 진실을 전달하는 일인데 현재 언론은 단편적 정보만 좇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언론 개혁’도 주요 주제였다. 오정훈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언론 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가. 개혁은 특정 언론을 쓸어버리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며 “올바르고 제대로 된 보도를 하는 언론을 육성시키는 방식의 개혁이 필요하다. 미디어 노동자 권리가 보장될 수 있는 제도와 민주적 의사소통 구조가 있는 언론이 살아남아야 한다. 이와 달리 민주적 소통을 말살하고 잘못된 관행을 방치하는 언론은 퇴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당선인은 “제도권 언론이 팩트를 비틀어 보도하는 행태가 여전하다”며 “언론 당파성 때문이다. 특히 보수언론이 프레임을 만들면, 비판적 언론도 프레임 안에서 비판할 수밖에 없다. 이걸 깨지 않으면 한국사회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한 뒤 ‘언론 소비자 운동’을 통한 언론 개혁을 주문했다.
2부 발제자인 정용준 전북대 교수는 “선생님이 그토록 질타했던 ‘강자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약자 위에 군림하는 기회주의 언론’의 본질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며 “급기야 국민들은 조국 사태를 계기로 검찰 개혁과 언론 개혁을 외치고 있다. 선생님의 실천적 지식인에 기반한 언론 사상을 지금의 언론 개혁으로 승화하는 것은 우리들 의무이자 시대적 책무”라고 밝혔다.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이재용 ‘형량 낮추기 쇼’에 폭죽 터뜨린 보수신문
[비평] “자녀에게 경영권 안 물려준다” 헤드라인 뽑으며 ‘사과 기자회견’에 의미 부여…그러나 애초에 경영권은 승계나 세습의 대상이 아니다
2008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경영에서 물러나고 일체의 직에서 사임했다. 특검 수사결과에 따른 대국민 사과였다. 당시 이 회장은 4조5000억 원 규모의 차명계좌에 대한 실명전환과 함께 누락 된 세금납부와 사회 환원을 약속했다. 지배구조 개선도 약속했다. 물론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구체성이 없는 ‘말뿐인 선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2020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경영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경영권은 자신이 계속 갖되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아버지처럼 구체성 없는 선언에 불과했는데, 그 내용의 ‘수위’도 아버지에 미치지 못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범죄행위에 대한 반성이 없었다. 기자들에게는 질문할 기회도 없었다. 그럼에도 ‘사과 기자회견’ 다음날 대다수 신문의 1면 헤드라인은 이 부회장을 향한 선물에 가까웠다.
△고개 숙인 이재용 “자녀에게 경영권 승계 않겠다” (국민일보) △이재용 “자녀들에 경영권 안 물려줄 것” (동아일보) △이재용 “자녀에게 경영권 물려주지 않겠다” (세계일보) △이재용 “제 아이들에게 경영권 물려주지 않겠다” (조선일보) △“삼성 경영, 자녀 안 물려준다” (중앙일보) △이재용 “삼성 경영권 대물림 않겠다” (한국일보) △이재용의 결단 “자식에게 삼성 경영권 물려주지 않겠다” (한국경제) △이재용 “자녀에 경영권 안 물려줄 것” (매일경제)
7일자 보수신문과 경제지 1면 헤드라인은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포기’했다는 데 집중했다. 조선일보는 “경영권 승계 관련 논란을 근원적으로 끊겠다고 밝힌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파기환송심 재판과 삼성 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수사를 받고 있는 이 부회장이 외부 압력에 못 이겨 삼성을 초일류로 만든 경영상 장점까지 포기하는 선언을 해버렸다”는 비판도 나왔다는 ‘재계’의 입장을 전했다.
▲7일자 주요 신문의 1면 헤드라인. 디자인=이우림 기자.
매일경제는 “4세 경영 포기를 공식 선언한 것은 삼성의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미래를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사과를 뛰어넘은 선언”이라 평가했다. 국민일보는 “사과 수위가 재계의 예상을 넘어섰다”며 “주변의 우려에도 (이재용이) 삼성의 변화를 위한 소신을 밝히겠다는 뜻을 강하게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이번 선언이 실천될 경우 삼성은 창립 82년만에 가족경영을 뒤로하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된다”고 전망했다.
중앙일보는 “자녀 승계에 대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의미를 부여하는 한편 ‘대기업 소유·경영 분리 계기돼야 할 이재용의 사과’란 사설을 통해 “이번 사과는 재판과 검찰 수사에 불합리한 영향을 미쳐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매일경제는 같은 날 사설에서 “이 부회장은 2018년 총수 자리에 오른 이후 반도체 백혈병 사태를 마무리했고 80년 무노조 경영 원칙을 폐기하는 등 삼성에 대한 신뢰를 제고하기 위한 변화를 이끌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날 주요 보수신문과 경제지는 ‘4세 경영 포기’를 강조하며 ‘초일류 삼성’으로 거듭나라는 덕담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언론의 본분을 망각한 대목이 눈에 띈다. 우선 ‘4세 경영 포기’ 프레임은 전제부터 잘못됐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소속 김종보 변호사는 8일 통화에서 “경영권은 재산권이 아니다. 승계나 상속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지적하며 “승계 대상으로서의 경영권은 존재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세습자본주의’에 익숙한 한국 언론은 승계 대상으로서의 경영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식의 전제를 바탕으로, 이재용 부회장이 마치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 것처럼 보도했다.
이 부회장 스스로 과거와 같은 탈법적 경영권 승계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경제정책팀장은 7일 통화에서 “이재용의 재산이 10조라고 하면 상속세를 법대로 내는 경우 6조는 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탈법 승계를 할 수 없다면 재산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데, 안 물려주는 게 아니라 못 물려주는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다. 김종보 변호사 또한 “법대로 재산을 상속할 경우 지배력이 약화 되면서 (이재용의 자녀가) 스스로 경영자로 선출될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내다봤다.
권오인 경제정책팀장은 ‘4세 경영 포기’ 발언을 두고 “20년 뒤에나 할 이야기를 지금 왜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앞으로 얼마든지 말이 바뀔 수 있고, 또 다른 편법으로 경영권을 가져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논평을 통해 “오늘 발표문도 12년 전,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사과문과 같이 언제든지 휴지조각처럼 버려질 수 있는 구두 선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다수의 보수신문과 경제지는 이 같은 합리적 의심 대신, 이재용 부회장이 원하는 대로 헤드라인을 뽑고 “결단”이라며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이재용 부회장이 몇 번 고개 숙였는지보다 중요한 대목은
이재용 부회장은 6일 기자회견에서 현재 재판 중인 국정농단 범죄에 대한 인정이나, 수사가 진행 중인 삼성물산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경실련은 “사건의 본질은 이재용 부회장 본인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정경유착 및 경제범죄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판결이 확정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적 책임을 지겠다는 최소한의 내용도 언급이 없었다. 결국 법경유착에 의해 급조된 조직인 준법감시위의 권고에 따라 구체성 없는 형식적인 사과를 통해 위기를 모면하겠다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대법원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박근혜 등에게 뇌물을 준 불법이 있었다며 유죄 판결을 내리고 이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미국의 연방양형기준을 언급하면서 준법감시기구를 설치하면 양형사유로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으나 해당 제도는 ‘회사’에 대한 양형기준이지 ‘개인’에 대한 양형기준이 아니다. 이재용 부회장 사건은 기업범죄가 아니라 개인범죄다.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 지배권 승계’를 위해 온 임직원이 달려들었다. 이는 회사 이익과 무관하며, 이재용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참여연대는 이날 기자회견을 두고 “마치 삼성이 저지른 범죄를 자신이 대신 사과하는 듯한 모양새를 띄었다”고 비판하며 “노조파괴 등으로 인한 피해자에 대한 사과도 일체 없었다”고 했다. 참여연대는 “이재용 회장이 진정으로 자신의 과오를 씻고자 한다면 현재 진행 중인 국정농단 재판과 삼성물산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불법 회계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제대로 죗값을 받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대목은 보수신문과 경제지에서 찾기 어려웠다.
경실련은 “황제경영을 막기 위한 총수일가의 이해 관련 거래에 대해 주주총회에서 비지배주주(소수주주)의 다수결 동의와 같은 제도도입과 같은 개선의지를 보였어야 했다”고 지적하며 “정경유착 근절과 황제경영을 방지하기 위한 근본적인 소유․지배구조개선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동아일보는 “삼성은 이미 2018년 이사회 중심 경영을 선언했다. 투명한 지배구조로 경영하겠다는 의지”라고 보도했는데, 보수신문과 시민사회와의 ‘거리감’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현 삼성전자 이사회 이장은 이명박 정부 기획재정부 장관 출신의 박재완씨다.
국회에서 ‘삼성 저격수’로 통하는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변명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도덕적 책임회피와 법적 자기면죄부를 위한 구색 맞추기식 사과”라고 기자회견을 혹평하며 “앞으로 잘하겠다는 허황된 약속보다 그동안 저지른 각종 편법, 탈법, 불법 행위를 해소하기 위한 계획을 제시했어야 했다. 삼성생명 공익재단 등을 통한 공익법인 사유화 문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법적 한도 초과분의 처분 문제 등 현재 방치되고 있는 삼성의 경영권 관련된 사회적 논란을 해소하는 일이야 말로 제대로 책임지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언론이 이틀 전 사과 기자회견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몇 번 고개 숙였는지보다 중요한 대목이다.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전직 조선일보 기자가 허위사실 조작” 문갑식TV ‘접속차단’
방통심의위,“정부가 북한에 마스크 공급” 문갑식TV 심의… 문갑식 기자는 불출석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제공할 마스크를 하루 100만장씩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 유튜브 채널 문갑식TV 동영상이 ‘접속차단’된다.
심의위원들은 “지난해 연말 퇴사한 전직 조선일보 기자 출신 문갑식씨의 유튜브 영상 수준이 실망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통신심의소위원회(방통심의위 통신소위·전광삼 위원장)는 7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유튜브 채널 ‘문갑식의 진짜TV’가 정보통신심의규정 ‘사회혼란 야기 등’ 조항을 위반했는지 심의했다. 그 결과 ‘시정요구’(접속차단)를 결정했다. 접속차단은 해외 사이트에 내려지는 조치다.
▲문씨는 지난달 5일 “특종!! 북한에 지원할 마스크 2종 최초 공개, 하루 100만장씩 만들고있다”는 제목의 영상에서 정부가 북한을 위해 마스크를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 ‘문갑식의 진짜TV’ 유튜브채널 화면 갈무리.
방통심의위 통신소위는 지난달 13일 해당 안건을 두고 ‘의견청취’ 절차를 결정했다. 문씨가 이 같은 허위 주장을 한 근거가 무엇인지 들어보기 위해서다. 이날 방통심의위는 문씨에게 7일 방통심의위에 출석해 의견진술을 해달라고 통보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문씨는 지난달 5일 “특종!! 북한에 지원할 마스크 2종 최초 공개, 하루 100만장씩 만들고 있다”는 제목의 영상에서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초기 때 중국에다가 마스크를 와장창 보내 난리법석을 만들고 곤욕을 치렀다. 겨우 마스크 공급이 안정되나 싶었는데 또 버릇을 못 고치고 북한에 보낼 마스크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4월3일부터 하루 100만장씩 만들고 있다고 한다”고 했다. 문씨는 “이 마스크 존재가 처음 확인돼 보여드리려고 방송을 시작했다. 북한에 공급되고 있는 마스크 실물이다. 최초 입수한 분이 제게 제보해줬다”며 마스크를 보여줬다.
이번 심의 민원은 통일부가 넣었다. 통일부는 지난달 9일 “정부가 따로 대북 지원용 마스크 100만장을 비축하고 있다는 근거 없는 일부 유튜버의 주장이 있다. 사실과 다른 영상을 배포해 국민 불안감을 증폭했다”며 방통심의위에 심의 민원을 제기했다.
심의위원 3인(정부·여당 추천 강진숙·김재영·심영섭 위원)은 ‘시정요구’(접속차단)을, 미래통합당 추천 전광삼 소위원장과 이상로 위원은 ‘해당없음’을 주장했다.
심영섭 위원은 “경기도에 있는 ‘(주)더편한’이라는 마스크 업체에 직접 방문했다. 이 업체는 3월31일까지만 공적 마스크를 공급하고, 4월2일부터는 핵심 소재인 필터를 구할 수 없어 공적 마스크 공급망에서 빠졌다”며 “이후 두 종류의 마스크를 세 가지 색깔 총 6가지의 부직포 마스크만 생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업체가 공적 마스크 공급망에서 제외된 후 부직포 마스크를 만드는 이유는 미국과 일본, 캐나다에는 KF마스크가 아닌 부직포 마스크를 수출 공급해도 상관없어서다.
심 위원은 문씨가 ‘(주)더편한’ 회사를 방문한 후 일방의 주장을 하는 어떤 개인 A씨 말만 듣고 유튜브 영상을 내보냈다고 비판했다. 심 위원은 “업체 관계자 말을 들어보니 유튜브 영상이 올라가기 전 A씨가 ‘남북교류 기금을 받아 북한에 마스크를 공급할 것’이라면서 물건을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업체 관계자가 대금을 먼저 보내면 물건을 주겠다고 했는데 이후 영상이 떠도는 것”이라며 “(A씨의) CCTV 방문 기록도 찍혀 있다”고 주장했다.
심의위원들은 전직 기자 출신 유튜버가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고 유튜브 영상을 올린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심 위원은 “문갑식씨는 전직 기자다. 최소 확인은 해봐야 했다. 누군가가 개인 탐욕을 채우기 위해 허위조작 정보를 만들었고 소재 공급난을 겪는 중소기업에 어려움을 줬다. 대북지원용이라는 허무맹랑한 주장도 했다”고 비판했다.
강진숙 위원도 “공신력 있는 조선일보 출신 유튜버가 왜 이렇게 허위사실을 조작하면서 중소기업에 피해를 입히는 방송을 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반면 미래통합당 추천 위원들은 ‘해당없음’을 주장했다. 이상로 위원은 “해당 정보가 사실이 아니고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유통했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 정보가 사회 혼란을 야기했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다. 한국은 세계에서 인정하는 코로나19 방역 모범 국가다. 삭제 자체가 뉴스거리를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전광삼 소위원장은 “언론인 선배다. 하지만 존경하지 않는 선배다. 소문으로 기사 썼다가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다. 이 영상 역시 본인이 들은 이야기를 확인없이 썼다”면서도 “이런 걸 자꾸 시정요구하면 이 사람 가치만 이상한 방향으로 키워주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방통심의위 통신소위는 7일까지 174건에 ‘시정요구’를 결정했다. 접속차단은 39건, 삭제는 135건이다./ 박서연 기자 psynism@mediatoday.co.kr
한국인은 왜 외신 반응에 열광하나
“역시 민족정론지 BBC답네요.”
영국 독자의 평이 아니다. 한국 독자들이 영국의 공영방송 BBC를 ‘민족정론지’라고 한다.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이 이어지는 가운데 주요 외신은 한국 정부의 민주성과 투명성, 고도의 진단 역량 등 체계적 대응에 주목했다. 국내 언론들의 잇따른 오보, 불안감을 키우는 정파적 보도에 독자들은 외신으로 눈을 돌렸다. 직접 외신 사이트에서 기사를 소비했고, 한국어로 번역해 소셜미디어(SNS)에 공유했다. 유튜브에선 외신 반응을 전하는 콘텐츠들이 크게 늘었다.
최근 유튜브에선 ‘유럽이 부러워하는 한국의 방역 성공 외신 보도 모음’, ‘미국 언론이 한국을 극찬하는 4가지 이유’와 같은 콘텐츠를 쉽게 볼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불거진 뒤 일반 이용자들이 외신 보도를 번역해 전달하는 콘텐츠가 눈에 띄게 늘었다. 대다수는 한국의 방역체계를 칭찬하는 보도를 다룬다. 조회수 100만을 넘은 콘텐츠가 꽤 있다. 정부기관이나 언론사도 잇따라 비슷한 콘텐츠를 내놓으며 화력을 더했다.
국내 언론의 자업자득
한국사회가 외신 반응에 크게 주목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방탄소년단(BTS)이 음원을 내거나 프리미어리그 손흥민 선수가 출전했을 때,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4개 부문을 수상했을 때도 외신이 어떻게 보도했는지에 관심이 쏠렸다. 북한이나 한·일관계 이슈가 터질 때도 외신 반응은 주요하게 다뤄졌다. 그때마다 유튜브에는 외신 반응을 전하는 콘텐츠가 올라왔다. 산업화 후발주자였던 한국의 달라진 위상을 외부의 시선을 통해 인정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작용한다는 분석도 따라왔다.
다만 코로나19를 다루는 외신 반응 콘텐츠는 사뭇 다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게 정말 자랑스럽다’는 댓글은 그대로지만, 국내 언론을 향한 불만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뉴스 볼 때마다 우리나라 기자들과 비교된다’, ‘이참에 방역 수준 만큼이나 언론 수준도 더 높아졌으면 좋겠다”는 식이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는 이렇게 진단했다. “우선 미디어 이용자의 전반적인 수준이 올라갔다. 마음만 먹으면 외신을 접할 수 있는데 편향적 기사가 많았던 국내 언론과 달리 외신에는 건조하고 객관적인 정보가 있더라는 것이다. 국내 언론이 사실 보도보다는 정파적 판단을 먼저 하고, 같은 사실도 이념을 넣어 뜨겁게 보도하다 보니 그걸 식히는 과정을 외신 보도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강 교수는 “지난해 일본 수출규제 때부터 (외신을 찾아보고 번역하는 현상이) 본격화된 것 같다. 당시에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하려 하자 많은 언론이 ‘일본에 그래선 안 된다’고 했다”며 “외신을 보면서 자신만의 주관을 가지려는 하는 적극적 언론 소비행태”라고 했다. 국내외 보도를 두루 보며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언론도 해외 직구해야 하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가 지난 3월 그달의 현안, ‘주목하는 시선’으로 선정한 주제다. 누리꾼들이 질 좋고 가성비 높은 상품을 해외에서 직구하듯 국내 언론의 기사 대신 외신을 찾아가고 있는 현상을 꼬집었다. NCCK 언론위는 “언론에 대한 불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는 그 양상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한국언론의 자업자득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언론이 단편적이고 표피적인 기사들로 공포와 불신, 냉소와 혐오의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동안 해외 언론은 한국의 코로나19 대처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편견 없이 한국 사례를 추적하고 검증하는 보도를 해 눈길을 끌었다”고 진단했다.
외신 반응에 일희일비 말아야
NCCK 언론위는 한국의 대응 시스템을 검증하고 다른 국가들이 따라하기 쉽지 않은 이유를 분석한 <뉴욕타임스>, 설 연휴 20개 제약회사 관계자들에게 진단키트 개발을 독려한 방역 당국의 ‘서울역 긴급회의’에 주목한 로이터 등을 언급했다. 대체로 외신 보도는 사건을 관찰해 패턴을 발견하고 구조를 이해하며 해법을 찾는 ‘솔루션 저널리즘’을 추구하고 있다고 평했다. 3월 ‘주목하는 시선’을 작성한 정길화 아주대 겸임교수(전 MBC PD)는 “국내 언론에 대한 불신의 배경으로 조급성·전문성 부재·정파성 등 3가지를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언론을 향한 불신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1~3월 세 차례 성인 1000명을 상대로 코로나19에 대한 국민 신뢰도 조사를 한 결과, 보건당국과 정부 등 6개 기관 신뢰도는 초기보다 계속 높아졌지만 언론만 신뢰가 계속 하락했다. 1차 때 46.4%였던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2차 39.9%로 떨어지더니 3차에선 30.7%를 기록했다.
정보의 명확한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한국이 세계 최고다’라는 메시지만 전달하는 콘텐츠도 여럿이다. 자긍심을 가질 만한 상황임은 분명하지만 배타적 애국주의로 흐를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외신을 번역해 전달하려는 자체는 긍정적이고 꼭 필요한 작업이다.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서라도 외신을 소개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국뽕’과 맞물려 너무 도취하면 현실에 안주해 시스템을 개선할 동력이 악화될 수 있다. 애국주의적 열풍으로 발전해나가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외신을 과도하게 신뢰하거나 그 보도에 일희일비해선 안 된다고 정길화 교수는 말한다. 그는 “외신도 결국 자신의 입장이 있으니 자국 정부나 타국을 비판하기 위해 한국 사례를 인용할 수 있다”며 “일부 외신은 독재 경험·유교문화 등으로 한국의 사례를 해석하는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을 보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국내 언론이 앞으로 재난기본소득과 같은 국내 의제를 제대로 설정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같이 전 세계적 이슈에선 수용자들이 외신으로 쏠릴 수 있어도, 국내 문제는 국내 언론보다 더 잘 들여다보긴 어렵다는 얘기다. 그는 “코로나19로 새로운 기준, 뉴노멀에 도달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한국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변화하지 않고 관성에 의해 회귀하면 정말 독자들에게 버림받을 수 있다”고 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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