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블로그·카페에 공유하면 저작권법 위반?
탄핵 임성근 동기’들 카톡 성명(사법 연수원 17기)…그들은 누구를 대표하는가
누구나 말하지만 누구도 잘은 모르는, ‘검찰개혁’의 깊은 속
대기업 성과급 논란 속 상대적 박탈감… “나완 다른 세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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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블로그·카페에 공유하면 저작권법 위반?
‘출처 밝혀도 허락없다면 저작권침해’, 한국일보 측 “저작권이 중요한 시대”
“공표된 저작물, 비영리적 사용은 가능하다”, “과하다”는 의견도
언론사 기사를 해당 언론사 허락없이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 공유하면 불법일까?
한국일보가 자사의 기사를 공유한 인터넷카페나 블로그 운영자에게 ‘한국일보 허락을 받지 않았으니 저작권법 침해’라고 주장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일보 측은 저작권 보호를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공표된 기사를 비영리로 활용하는 것까지 문제 삼는 건 과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미디어오늘이 복수의 카페·블로그 운영자들을 취재한 결과, 한국일보 측은 인터넷 공간에 자사 기사를 공유할 경우 내용증명을 보내 ‘저작물의 출처를 표시했더라도 당사의 허락이 없는 한 저작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법적 조치가 가능하지만 이를 보류하고 금액을 지급하는 것으로 사안을 원만하게 마무리짓기 권유한다며 한국일보 측은 기사·사진·그래프 등에 대해 1건당 법인기준 33만원, 개인기준 11만원을 요구했다. 저작권 침해행위에 대해 한국일보가 취할 수 있는 법적조치로는 저작권법에 따른 ‘침해의 정지 청구’, ‘손해배상 청구’, ‘형사고소’ 등 세 가지를 언급했다.
또한 한국일보 측은 이러한 조치가 금전적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저작권 보호, 투명한 구매문화 정착, 다른 저작권 침해당사자들과 형평성 등을 고려한 것이라고 알렸다.
▲ '뉴스저작권 침해 사례' 한국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한국일보는 자사 홈페이지에 ‘뉴스저작권 침해 사례’ 5가지를 공지했다.
기사 출처를 밝히고 사용했더라도 언론사 허락없이 기사를 온라인·SNS 등에 게시하는 것은 무단전재로 불법이고, 외부인이 볼 수 없는 사내 게시판이라도 임의로 뉴스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게재·배포하는 건 저작권법 위반행위이며, 업무상 목적으로 뉴스를 스크랩해 배포하는 것은 뉴스 저작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개인블로그나 카페에 뉴스를 허락없이 올리는 것과 허락없이 기사를 출판·판매하는 행위도 저작권법 위반이라고 공지했다.
한국일보 측은 저작권 보호를 위해 4~5년 전부터 이를 알려왔다고 했다. 한국일보 측 관계자는 지난 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저작권이 중요해지는 시대이고,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 기사 아니냐”라며 “개인이든 기업이든 저작물에 대해 허락을 맡고 쓰는 게 기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단 설명을 드리고 (상대가) 허락없이 썼는데도 저작권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전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의견이 다르면 법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했다.
▲ '뉴스저작권 침해 사례' 한국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한국일보 측이 내용증명에 함께 첨부한 법원 판결문(서울중앙지법 2013가소6000300)을 보면 단순 사실보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고, 창작성이 있는 기사는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저작물에 해당한다. 다만 해당 판례에서는 피고가 기사를 블로그에 올려 자신의 영업에 활용하기 위한 영리목적이 다분했다는 점도 고려해 배상판결을 내렸다.
법무법인 디라이트 소속 안희철 변호사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저작권법 28조(공표된 저작물의 인용)와 35조의5(저작물의 공정한이용) 등을 보면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비평·교육 등 합당한 범위에서 ‘공정이용’하면 저작권 침해로 보기 어렵다”며 “유료기사가 아니고, 기사를 비영리 목적으로 이용했다면 문제가 안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안 변호사는 “다만 기사내용 중 예술성(창의성)이 있다면 저작권성을 보호받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다퉈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한국일보 측이 제시한 판결문에 대해선 피고가 ‘공정이용’ 등에 대해 효과적으로 주장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관련해 검찰의 판단도 있었다. 2014년 7월 서울중앙지검은 언론기사를 개인 홈페이지 등에 무단으로 게재한 혐의로 고발된 국회의원 270명을 모두 ‘혐의없음’ 처분했다. 영리목적이거나 통상적 이용방법(공정이용)에 충돌하지 않으면 언론사 이익을 해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의원들이 자신을 홍보하는 목적으로 홈페이지에 기사를 공유한 것을 두고 ‘비영리 목적’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언론계에서는 이례적인 일인 만큼 비판적인 의견이 나온다. 한 신문사 기자는 “유료기사도 아니고 출처를 밝혔는데도 돈을 요구한 건 과하다”며 “그래도 한국일보 기사를 신뢰하고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해서 공유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운영자들은 처음엔 당황스러웠다는 반응이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정보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온라인 공간인데 기사를 공유했다고 사용료를 요구하는 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미디어오늘이 취재한 사례들은 모두 운영자들이 해당 게시물을 내리고 신문사 측에 재발방지를 약속했더니 따로 비용청구나 법적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국일보 관계자는 “한국일보 입장은 독자들 대다수가 저작권을 이해하는 추세인 만큼 저작권에 대해 홍보를 많이 하고 있다”며 “코로나로 대면하기 어려우면 전화로라도 자세하게 설명을 한다”고 말했다.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탄핵 임성근 동기’들 카톡 성명…그들은 누구를 대표하는가
사법연수원 17기 익명 성명
임성근 탄핵 부당하다면서도
“김명수 대법원장 탄핵” 주장
사법농단 의혹으로 국회에서 탄핵 소추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법연수원 동기(17기)들이 성명을 내고 “탄핵 사유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사법연수원 17기생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5일 낸 입장문에서 임 부장판사에 대한 무죄 판결 등을 들어 탄핵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임 부장판사의 행위에 대하여 이미 법원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선고했다. 형사재판에서 죄가 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한 행위에 관해 범여권 국회의원들은 탄핵소추를 한 것”이라며 “오래전에 스스로 사의를 표명했고, 그와 무관하게 불과 20여 일 후면 임기가 만료됨에도 기어코 탄핵소추를 강행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들은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은 부당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은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누구보다도 사법부의 독립을 수호하여야 함에도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데 급급해 소속 법관이 부당한 정치적 탄핵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도록 내팽개쳤다. 임성근 판사와의 대화 내용을 부인하는 거짓말까지 하고, 녹음파일이 공개되자 비로소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정확하지 않았다는 등의 변명으로 일관했다”며 “탄핵되어야 할 사람은 임성근 판사가 아니라 바로 김명수 대법원장”이라고 했다.
이들은 또 임 부장판사의 탄핵소추안 통과를 주도한 민주당 등 여권에 날을 세우기도 했다. 이들은 “범여권 국회의원들은 숫자의 우세를 이용하여 다수의 국민은 안중에 없는 듯한 안하무인의 태도를 취해왔다”라며 “이들이 탄핵을 추진하는 진정한 이유는 최근에 나온 몇몇 판결에 불만을 품고 판사들을 겁박하여 사법부를 길들이려고 함이 진정한 이유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번 성명은 ‘사법연수원 17기’ 명의로 나왔고 개별 참여자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성명에 참여하지 않은 연수원 17기 출신의 한 변호사는 “(17기 단체) 카톡방에서 의견 구해서 찬반의견 물어서 나온 성명”이라며 “300명 정도 중에 140명 가량 참여한 것 같다”고 전했다.
한편 임 부장판사는 앞으로 진행될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외에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이던 2015년 12월 법원행정처의 요청을 받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관련 의혹 제기 칼럼을 쓴 가토 다쓰야 전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명예훼손 1심 판결문 작성에 개입한 혐의(직권남용)로 재판을 받고 있다. 당시 임 부장판사는 해당 사건을 맡은 재판부가 쓴 판결문을 “그쪽(청와대)에서 약간 또는 매우 서운해할 듯” 등의 이유를 들며 판결문을 직접 고친 혐의를 받고 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에코빌러-비겁한 적폐판사 조폭색기들 떳떳하지 못하니 실명도 못 밝히면서 무슨 성명을 발표하냐? 저 적폐판사쓰레기들 밝혀내서 솎아내면 법원개혁 쉽게 되겠다
nn****-떡검뒤에 숨어서 법기술로 연명해 온 법꾸라지는 펀새새끼들이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 온 철밥통이고.
exite-판사시키들이 이렇게 저급하 줄은 미처 몰랐네. 을사오적의 다섯 놈이 전원 판새놈들이었다더니... 판새시키들아... 스스로 발등을 찍었구나.. 초딩만도 못한 사회 감각이라니...
누구나 말하지만 누구도 잘은 모르는, ‘검찰개혁’의 깊은 속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이준헌 기자
“개그 프로그램에서 봤는데 검찰개혁이 뭔가요?”
한 포털사이트 질문 게시판에 자신을 ‘초등학생’이라고 밝힌 이가 올린 질문입니다.
검찰개혁, 시쳇말로 ‘핫’한 단어입니다. 계층을 막론하고 찬·반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막연하게 검찰의 거대한 권력을 약화시키자는 것 아니냐 생각하는 분들도 있고, 정치 성향이나 지지하는 인물을 따라 판단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검찰개혁을 하면 시민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 걸까요? 검찰개혁은 왜 필요한지, 검찰을 어떻게 바꾸자는 건지, 그로 인해 형사사법체계에는 어떤 변화가 올지 정리해 봤습니다.
■검찰개혁에 대한 두 가지 시각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갈등 국면에서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내세웠습니다. ‘윤석열 찍어내기’가 ‘검찰개혁’이냐이냐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윤 총장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인적청산이 진짜 검찰개혁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입니다. 제도를 바꿔야 검찰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거죠.
검찰 제도를 ’왜’, 또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크게 두 가지의 시각이 있습니다.
①군사 독재 시절부터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해온 검찰을 정치 권력으로부터 독립시켜 살아있는 권력에도 칼을 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시각, ②검찰 그 자체가 막강한 권력 기관이기때문에 권한을 분산하거나 견제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또 하나의 시각이 있습니다.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제도적인 ‘검찰개혁’의 방향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기존 검찰은 수사개시권, 수사지휘권, 수사종결권, 기소독점권, 영장청구권을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검찰 스스로 수사도 시작할 수 있고(개시권), 경찰이 시작한 모든 수사를 지휘할 수 있으며(지휘권), 검찰과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 모두에 대해 수사를 끝낼지(종결권) 재판에 회부할 지(기소권)를 검찰만 결정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 체포영장·구속영장 등 모든 영장을 법원에 청구하는 권리도 검찰에만 있습니다.
극단적인 경우 검찰이 사건의 수사를 종결시키거나 기소하지 않는 방식으로 죄가 안 되게 만들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합니다. 그간 정권 실세나 재벌 등 기득권에게는 너그러운 잣대를, 반대로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에겐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 왔다고 보는 시각이 깔려있습니다.
현 정부는 이런 막강한 검찰의 권한을 분산시키려는 여러 제도들을 추진해왔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일명 ‘공수처’입니다.
■검찰개혁의 첫단추, 공수처
1996년 11월18일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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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가 처음 논의되기 시작한 건 지난 1996년입니다. 참여연대의 제안으로 당시 제1야당 새정치국민회의가 발의한 부패방지법에 공수처의 전신격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에 관한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그러나 입법은 무산됐습니다. 이후 공수처 설치를 공약으로 내세운 참여정부에서는 물론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수 차례 입법이 시도됐지만 번번이 좌절됐습니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가 ‘공수처 설치’를 1호 공약으로 삼으면서 전기를 맞습니다. 법제사법위원회를 장악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의 반발을 뚫기 위해 더불어민주당은 다른 야당들과 연합해 관련 법안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해 본회의에 자동 부의시킵니다. 이후 도출된 수정안이 지난 2019년 12월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을 놓고도 국민의힘이 반발했지만, 총선 승리로 180석에 육박하는 의석을 거머쥐고 있었던 여당은 ‘입법 독주’ 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야당의 거부권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지난해 말 다시 통과시켰습니다.
누구나 말하지만 누구도 잘은 모르는, ‘검찰개혁’의 깊은 속.
그렇게 출범한 공수처는 우선 검찰에서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권과 기소권 일부를 가져옵니다. 공수처의 수사대상자는 공수처법 제2조에 명시돼있는데요. 우리 흔히 떠올리는 고위 공직자, 즉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 검찰총장, 대법원장 등을 포함, 주요 정부 기관의 3급이상 또는 정무직 공무원들입니다. 현직자 뿐 아니라 퇴직자도 포함됩니다. 가족들도 “배우자, 직계존비속”, 대통령의 경우 “배우자와 4촌 이내의 친족”은 수사대상입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https://www.law.go.kr/LSW/lsInfoP.do?efYd=20210101&lsiSeq=224237#0000)
다만 기소권은 대법원장 및 대법관, 검찰총장, 판사 및 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행사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대상자들은 수사는 가능하지만 기소와 공소 유지는 검찰(서울중앙지검)이 맡습니다.
수사 대상 범죄 역시 직무 관련 범죄로 한정됩니다. 직무유기·직권남용·불법체포·뇌물공여 같은 죄들 말입니다. 예를 들어 형법상에 정의된 ‘폭행’의 경우 “재판, 검찰, 경찰 기타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가~”,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같은 단서가 붙어있는 제125조와 같은 죄는 공수처 수사 대상이지만 사적 폭행은 경찰의 수사 대상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공수처법 제3조와 4조에 나와있습니다.
즉 공수처는 ①고위공직자들과 가족들의 ②직무 관련 범죄에 대한 수사권을 갖고, ③그 중 일부에 대해 기소권까지 갖는 기관입니다. 만약 검찰이 먼저 고위공직자의 직무 관련 범죄를 인지해 수사하고 있었다해도, 공수처장은 공수처로 이 사건을 이첩시킬 수 있습니다. 다면 견제 차원에서 공수처장과 공수처검사는 공수처가 아닌 검찰의 수사 대상입니다.
■검·경 수사권 조정
2020년 7월 기준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른 검찰 직접수사 개시 대상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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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출범으로 검찰은 고위공직자의 직무 관련 범죄에 대한 수사권과 그들 중 일부에 대한 기소권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닙니다. 이미 지난해 공표돼 지난 1월부터 시행 중인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에 따라 검찰은 6대 중대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 경찰 공무원의 범죄 등에 대해서만 자체 수사를 개시할 수 있습니다. 그 이외의 범죄는 경찰의 몫입니다.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시행규칙 (https://www.law.go.kr/LSW/lsInfoP.do?efYd=20210101&lsiSeq=220703#0000)
다만 이 제한은 수사 개시 시점에만 해당됩니다. ‘6대 중대범죄로 인지하고 수사를 시작했는데 하다보니 다른 사건이더라’하는 경우에는 수사를 계속할 수 있을 거라고 법조계 인사들은 봅니다. 때문에 실효성에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고도 보는 이도 있지만 제약이 커진 건 사실입니다.
누구나 말하지만 누구도 잘은 모르는, ‘검찰개혁’의 깊은 속.
수사 종결권도 일부 잃었습니다. 이전까지 단지 ‘기소의견’, 또는 ‘불기소의견’ 등 의견만 제시할 수 있었던 경찰이 이제는 1차적인 수사종결권을 갖습니다. 혐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검찰에 송치하는 것이죠. 검찰은 송치된 사건에 한해 기소를 하지 않는 방법으로 2차 종결권을 행사할 수 있을 뿐입니다.
다만 경찰은 자체 종결시킨 사건의 기록과 증거도 검찰에 넘겨야합니다. 검찰은 이들 중 ‘문제가 있는 경우’에 한해 ‘90일 이내’에, 그리고 ‘1회에 한해’ 재수사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또 고소·고발인이 경찰의 수사 종결에 이의를 제기하면 경찰은 사건을 검찰에 송치해야 합니다.
수사지휘권도 공식적으로는 폐지됐습니다. 검찰은 경찰이 수사하는 모든 사건을 지휘하는 대신 사건이 ‘송치된 이후에 한해’, ‘기소 여부를 판단하거나 공소 유지를 위해서만’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송치 전에는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법령 위반이나 수사권 남용, 인권 침해 등이 발생할 경우에만’ 시정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일각에선 검찰이 체포·수색·구속 영장 등 영장 청구권을 무기로 경찰 수사에 간접적으로 간섭할 수도 있다고도 봅니다. 그러나 검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법원에 청구하지 않을 경우 경찰은 관할 고등검찰청의 영장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피의자가 내용에 동의하지 않아도 증거능력이 인정됐던 검찰조서가 향후엔 경찰조서처럼 피의자의 동의를 받아야 증거능력을 갖게 되고(2022년부터 시행), 별건 수사(피의자를 압박하기 위해 본 범죄와 상관 없는 다른 범죄 혐의를 수사하는 행위)가 원칙적으로 금지된 점 등도 달라진 부분입니다.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https://www.law.go.kr/LSW/lsInfoP.do?efYd=20210101&lsiSeq=222281#0000)
‘검찰개혁’에 따른 검찰권한 변화
이제 검찰에게 남은 건 ①6대 중대 범죄 중 고위공직자 직무 관련 범죄가 아닌 범죄에 대한 수사개시권, ②수사지휘권의 경우 송치 사건에 한한 보완 수사 요구권 ③수사종결권의 경우 불송치 사건 중 문제가 명백한 사건에 한한 보완수사 요구권 및 기소권을 통한 2차 종결권, ④사법 관련 고위공직자의 직무 범죄를 제외한 사건에 대한 기소권, ⑤영장 청구권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네요.
검찰의 수사권은 대폭 축소된 반면 기소권과 영장청구권은 대부분 유지됐습니다. 현 정부의 ‘검찰개혁’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 즉 검찰에게서 수사권을 빼앗는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사나 기소가 타인에 의해 교차 검증되니 공정성이나 투명성도 높아질 거라 점을 이유로 듭니다. 그리고 이런 방향은 여당이 논의 중이거나 추진 중인 검찰개혁의 다음 단계에서 더 선명해집니다.
■중대범죄수사청? 특수수사청? 공소청?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지난해 12월29일 국회에서 열린 검찰개혁특위 1차 회의에서 기념촬영 후 자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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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내 검찰개혁특위는 수사와 기소를 완전히 분리하는 관련 입법을 추진 중입니다. 지난해 말 여당의 김용민 의원 등은 공소청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이는 검찰청을 공소청 즉 기소와 공소유지만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바꾼다는 게 주된 내용입니다. 6대 중대범죄에 한해 유지된 검찰의 직접 수사권조차 박탈되는 겁니다.
그럼 그 수사권은 어디로 가게 될까요? 지난달 22일 여당 검찰개혁특위가 검찰의 6대 범죄 수사권을 별도 수사기구를 만들어 이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 수사기구의 명칭으로 거론되는 게 ‘중대범죄수사청’과 ‘특수수사청’이죠.
이 모두가 현실화할 경우 ‘검찰’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지게 됩니다. 역할은 기소권과 영장청구권 정도만 남고 조직 자체도 ‘공중분해’되고요. 그러나 국민의힘 등 야당이 거세게 반발하고, 여당 내에서도 검찰 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학계나 법조계에서도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출범 등이 맞물린 과도기에 이같은 급진적 변화는 자칫 수사 공백을 초래할 수 있어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나옵니다.
이미 출범한 공수처와 1차 완료된 검·경 수사권 조정 만으로도 검찰에게 ‘제 식구 감싸기’는 더 이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고위공직자에 대한 봐주기 수사나 표적 수사도 직무 범죄에 대한 수사권이 없어 불가능해 보입니다. ‘봐주기 불기소’와 ‘무리한 기소’ 가능성은 남아있지만, 이 정도면 “비대한 검찰 권력의 분산”은 어느 정도 이뤄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칼을 든 강도, 칼이 문제인가 강도가 문제인가
동백림 사건 항소심의 피고인들과 방청객(1968년) 동백림 간첩단 사건은 동베를린의 북한 대사관과 평양을 드나들며 간첩 교육을 받은 뒤 대남 적화 활동을 한 혐의로 독일 및 프랑스의 교민과 유학생 194명이 적발된 사건이다. 작곡가 윤이상, 화가 이응로, 시인 천상병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1967년 12월 3일의 선고 공판에서 34명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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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검찰이 권한을 남용한 사례 중 많은 경우, 그 뒤에 정치권력이 있었습니다. 독재 시절 공안사범은 검찰 스스로 만들었다기보다 정권을 향한 충성의 일환이었죠. 봐주기 수사는 주로 여당 실세 정치인에게, 표적 수사는 야당 정치인에게 집중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검찰개혁의 또 다른 한 축, 즉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역시 중요합니다. 허나 이 부분은 진척이 없어 보입니다.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가진 검찰 인사권은 예전 그대로입니다. 오히려 추 전 장관은 여권을 향한 수사를 지휘하던 윤 총장의 측근들을 ‘찍어내기’라는 비판도 불사하며 대거 인사이동시켰습니다. 반대로 특정 간부들을 중용해 ‘추라인’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그간 거의 사용된 적이 없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검찰 수사에 개입했고,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라는 초유의 조치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해야 하는 검사는 정권과 불편한 관계가 되기 쉬운 만큼, 정권의 자의적인 검찰 인사권 행사를 막을 장치가 필요하다”며 “판사와 같은 수준의 독립성을 보장하진 못하더라도 공소유지나 수사 실적 등의 ‘공’과, 무리한 기소·인권 침해 등의 ‘과’에 기초한 공정한 인사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다른 기관들은 어떨까요? 공수처의 경우 공수처법에는 “대통령, 대통령비서실의 공무원은 수사처의 사무에 관하여 업무보고나 자료제출 요구, 지시, 의견제시, 협의, 그 밖에 직무수행에 관여하는 일체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는 독립성 보장 취지의 조항이 있습니다.
그러나 공수처장은 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추천위원 7명 중 야당의 몫은 2명입니다. 지난해 개정 과정에서 정족수가 6명에서 5명으로 줄면서 공수처장 후보에 대한 야당의 거부권이 사실상 무력화됐습니다. 또 공수처 차장 역시 공수처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습니다. 정권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공수처는 여·야를 막론한 부패의 근절을 목적으로 하는 ‘부패 방지법’에서 그 논의가 출발됐고, 그래서 독립성이 중요했습니다. 이 때문에 초기에는 국회가 처장을 임명해야한다는 논의도 있었습니다. ‘국회의 임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야당의 거부권마저 무력화된 현재의 공수처는 ‘권력의 엄호기관’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안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또 정권이 사법권을 휘둘러 정적을 탄압하는 것을 막기에는 장악해야 할 곳이 ‘검찰’ 한 곳인 경우보다 ‘공수처’와 ‘공소청’ 두 곳인 경우가 더 나을 수도 있지만 정권을 향한 수사를 방어하려 할 때엔 얘기가 달라집니다. 수사기관과 기소기관이 분리돼 있을 경우 한 곳을 장악하는데 실패해도 다른 한 곳을 장악하면 재판에 회부되는 사태는 피할 수가 있으니까요.
■누구를 위한 검찰개혁인가
독립성 측면에서만 우려가 나오는 게 아닙니다. 공수처 검사의 자격요건에서 수사 경력 요건이 삭제되면서 일각에선 ‘강한 사정의 칼날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고 있습니다. 공수처가 불기소한 사건도 검찰이 재수사 할 수는 있지만 증거·관련자의 신병·증언 등의 확보 여부가 사실 수사의 초동단계에서 결판이 나는 경우가 많아 ‘사후약방문’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검·경수사권조정에 따른 경찰 조직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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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형 범죄 뿐 아니라 민생 범죄에서도 공백이 우려되긴 마찬가집니다. 과거엔 검찰이 경찰의 초동수사단계부터 지휘를 했지만 이젠 민생범죄의 경우 초기 수사는 온전히 경찰의 몫입니다. 또 인지나 신고 사건의 수사 전 단계, 즉 내사 단계에서도 검찰은 유치장 감찰 등을 통해 사실상의 개입을 해왔지만 이제는 경찰의 내사 종결에 대해 검찰은 전혀 개입할 수가 없습니다. 국민들을 위해선 ‘경찰개혁’ 또한 ‘검찰개혁’만큼이나 중요하게 논의돼야 할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권경애 변호사(법무법인 해미르)는 “수사권 조정 전에 경찰이 검찰에 제출하던 ‘불기소 의견서’에 비해 조정 후 검찰에 내는 ‘불송치 이유서’는 매우 조악하다”면서 “이 이유서를 보고 검찰이 과연 재수사 요구에 필요한 근거들을 제대로 찾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물며 “일반 고소·고발인들이 이 이유서를 보고 이의를 제기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변호사의 도움 없이는 사실상 어려워보인다”면서 “실제 일각에선 ‘변호사들만 신 날 상황’이라는 말도 나온다”고도 했습니다.
김한규 전 서울변회장은 “과거 검찰이 정권에 장악당했을 때의 폐해를 보면 검찰권의 분산과 견제는 필요하다”면서도 “그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정권에 장악당하지 않는 검찰’을 만드는 개혁이 병행되지 않으면 ‘검찰개혁’은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또 “국민을 위해 한다는 ‘검찰개혁’이 오히려 형사사법체계의 공백을 만드는 모순을 낳는다면 결국 국민들과 유리된 ‘그들만의 검찰개혁’이 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대기업 성과급 논란 속 상대적 박탈감… “나완 다른 세상 이야기”
대기업 성과급 논란 속 상대적 박탈감
“나와 상관없는 다른 세상 이야기”
SK하이닉스발 성과급 논란이 삼성전자, LG 계열사 등 재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난 속에 상대적 박탈감을 토로한다. 상여금은커녕 급여조차 온전히 받기 힘든 중소·영세사업장 근로자와 생계가 막막한 자영업자들은 대기업의 성과급 논란에 ‘그들만의 리그’라며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쏘아올린 성과급 논란
논란은 SK하이닉스가 지난달 말 “성과급으로 연봉의 최대 20%를 지급하겠다“고 공지하자 직원들이 불만을 터뜨리면서 시작됐다. 직원들은 실적에 비해 성과급이 미미하다며 “산정 방식을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지난해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반도체 업계 호황에 힘 입어 전년 동기 대비 84% 증가한 5조원을 기록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직접 나서 SK하이닉스에서 받은 연봉 30억원 전액을 반납해 직원들에게 나눠주겠다고 밝히고,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 역시 부랴부랴 사과했지만 불만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경쟁업체인 삼성전자로 이직하고 싶다”는 격앙된 목소리까지 나왔지만,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성과급에 대한 불만이 나왔다.
삼성전자는 사업부문별로 초과실적성과급(OPI·옛 PS)을 차등 지급하는데, 반도체사업부(DS 부문)의 성과급이 연봉의 47%를 산정됐다. 문제는 반도체사업부가 전사 실적의 절반을 이끌었는데 스마트폰(IM) 부문이나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의 50%보다 적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DS와 소비자가전(CE), IM부문에서 각각 18조8100억원, 3조5600억원, 11조47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같은 논란은 SK텔레콤과 LG화학에서 분사한 LG에너지솔루션 등 주요 대기업으로 계속 확산하고 있다.
그동안 주로 대기업 생산직 직원들이 주도하는 노조차원에서 노사협상 과정에 사측에 연봉 인상을 요구해왔다. 사무직 근로자들이 임금 문제로 사측과 갈등을 빚는 일은 흔치 않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사무직들은 대부분 노조 가입률이 낮은데다 수직적인 조직 분위기상 내부적으로 연봉 등과 관련한 목소리를 좀처럼 내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정보 공유가 활발해지고, 과거처럼 ‘평생직장’의 개념이 약해져 언제 나갈지 모르니 바로바로 성과에 대한 보상을 받기를 원하는 세태가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SK에서 논란이 시작된 것은 최태원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으로 나서면서 이슈가 커진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최 회장이 ‘재계 어른’이자, 대표성을 갖게 됐으니 본보기가 되어 달라는 것 같다”며 “이렇게 공정성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근로자들의 목소리는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만의 리그’에 상대적 박탈감 느끼는 직장인이 더 많아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 직장인들은 상여금을 둘러싼 노사 갈등에 대해 “딴 세상 이야기”라는 반응이다. 실험연구원인 신모(34) 씨는 6일 “우리 회사는 작년에 매출이 30% 오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상여금은 커녕 명절 떡값이 전년 대비 50% 줄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스타트업에 근무하는 박모 씨(36)는 “성과급을 받아봤어야 알지”라며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들려 전혀 감흥이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모씨(41)는 “대기업 직원들은 내 연봉을 성과급으로 받아가니 대단한 것 같다. 은행도 수천만원 성과급으로 받던데 삼성은 수천억을 벌었으니 가능한 것 같기도 하다”며 “이걸로 트집 잡는 사람들이 많던데 억울하면 대기업에 가면 된다”고 냉소했다.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한 익명의 직장인은 “코로나19로 자영업자는 물론 전 국민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소위 잘 나간다는 직장인들이 수천만 원씩 성과급을 받고 만족하지 못한다는 걸 기사로 접하니 씁쓸하다”고 토로했다. 한 누리꾼은 “성과급은커녕 월급도 제대로 못 받는 사람도 있다”며 “이런 기사를 볼 때 마다 진심으로 성과급 안 받아도 되니까 월급이라도 받게 취직하고 싶다”고 한탄했다.
양다훈 기자 yangbs@segye.com
정당한 보수, 투명한 공개…부모세대와 다른 2030 ‘성과급 인식’
ㆍSK하이닉스발 ‘성과급 논란’…2030 대기업 직원들에게 들어보니
SK하이닉스에서 촉발된 ‘성과급’ 논란이 삼성전자, LG화학 등 또 다른 대기업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돈 잘 버는 일부 대기업이나 특정 사업부의 문제가 아니라 불공정하고 불투명한 것을 참지 못하는 2030세대의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이들은 성과급을 ‘가욋돈’ 같은 보너스가 아니라 정당한 보상의 한 종류로 여기고 있었다. 회사 마음대로 주는 성과급이 아니라, 납득할 만한 기준에 따른 ‘공정한 급여’로 책정되길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 “평생직장 사라졌는데…”
기업 간 연봉 차이 만드는 핵심 요소
“노력에 대한 평가라 생각해 민감”
“보상 적으면 언제든 이직할 수도”
7일 국내 4대 그룹(대기업집단)에 근무하는 2030세대의 얘기를 들어 보니, 이들은 성과급에 대한 인식이 기성세대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기성세대는 성과급을 ‘부수적으로 추가된 소득’으로 여겨온 반면 이들은 성과급이 연봉 차이를 만드는 핵심 요소라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대기업에 8년째 다니는 A씨는 “대기업이라고 해서 기본급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며 “회사가 기본급은 억누르고 성과급을 늘려 불만을 불식시켜 왔는데, 최근엔 기업별로, 기업 내부에서도 사업부별로 성과급 차이가 커지다 보니 불만이 쌓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금 다니는 대기업이 ‘평생직장’이라는 인식도 희박했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 10년째 다니는 B씨는 “선배들은 지금 성과급이 적어도 나중에 잘되면 더 크게 보상해줄 거라고 믿었다는데, 우리는 ‘이번에 못 받으면 나중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사이에서는 ‘지금 받는 보상이 적으면 기회가 될 때 언제든 이직할 수 있다’는 생각도 강하다.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다 보니 비교도 많이 하게 된다. 다른 회사 성과급에 대한 정보를 뉴스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손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로 성과급이 높은 회사들이 알려지다 보니 그에 따른 불만도 쌓인다. 자동차 업계에서 일하는 C씨는 “대학이나 학점은 노력에 따른 결과라고 생각하는데, 대기업 입사는 ‘내가 이 기업에 왜 붙었는지, 왜 떨어졌는지’ 설명도 잘 안 되고 우연적인 요소가 많다”며 “그런데 어느 회사에 입사했느냐가 몇년 뒤에 엄청난 성과급 차이로 벌어지니 부당하단 생각이 든다”고 했다. 기본급은 액수가 적더라도 ‘그 정도 수준을 받아들이고 입사했다’고 생각해 상대적으로 불만이 적은 편이다. 하지만 성과급은 입사 후 ‘나의 노력에 대한 평가나 보상’이라고 생각해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 객관적 잣대·절차적 공정 우선
‘공정’ 민감한 세대인식과도 닿아
성과급 액수, 경영진 자의적 결정에
“납득할 만한 기준을 제시” 요구
젊은 세대들은 무엇보다 성과급이 명확한 기준 없이 경영진의 자의적 판단으로 결정된다는 데 불만이 컸다. 디스플레이 대기업 5년차인 D씨는 “요즘은 적자라 성과급이 거의 없지만 몇년 전에 입사 이후 최대 영업이익이 났을 때에도 ‘업계 전망이 나쁘다’면서 조금밖에 안 주더라”며 “영업이익이 다르면 성과급도 달라야 하는데, 동료들끼리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D씨는 “당장 성과급 얼마 더 주는 것보다, 올해 조금 받더라도 회사가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점수나 자격시험 등 명확한 기준에 따른 평가가 공정하다고 믿는 젊은 세대의 전반적인 인식과도 맞닿아 있다. SK하이닉스의 사례를 보면, 입사 4년차 직원이 사장에게 보낸 전체 공개 메일에서 성과급 지급 기준을 밝히라고 요구한 것이 논란을 키웠다. 결국 SK하이닉스는 지난 4일 내년부터 성과급을 영업이익과 연동 책정해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로 노조와 합의했다.
대기업들은 성과급 책정 권한이 회사에 있고, 책정 기준은 회사 기밀이라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 강하다. 그러나 경영진이나 사측이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젊은 세대를 납득시키려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 담론을 연구해 온 김정희원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는 “2030세대는 굉장히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살았지만 주택 등 삶의 기반을 마련하긴 힘든 세대다. 그러다 보니 공정성에 대한 민감도가 굉장히 높다”며 “기업들이 성과급을 책정할 때 관련 정보를 어느 정도 공개하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소통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미덥 기자 zorro@kyunghyang.com
서울시장 성추행 2차가해 주장 인용기사, 신문윤리위 ‘주의’
헤럴드경제 “2차가해 심화” 지적하면서 구체적 사례 인용… “객관성 잃은 주장 퍼져 낙인효과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실상을 전하며 원색적 발언을 구체적으로 열거한 헤럴드경제 보도에 한국신문윤리위원회가 ‘주의’ 조치했다.
헤럴드경제는 지난 12월30일 22면 머리기사 “박원순 극단선택 전 ‘독극물’ 검색… 다시 거세진 ‘2차 가해’”에서 “경찰이 5개월여 동안의 수사에도 박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제대로 풀지 못하고 수사를 종결하자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헤럴드경제는 검찰이 박 전 시장이 자신에 대한 고소 여부를 알지 못한 채 스스로 숨졌고, 이에 앞서 주위에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게 있는데 문제 소지가 있다’고 언급하는 등 성추행 논란을 의식한 듯한 행동을 했다고 결론 내렸다고 전했다. 이어 “온라인 커뮤니티, SNS 등에서 성추행 피해자와 그를 변호하는 시민단체를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며 관련 내용을 구체적으로 인용했다.
보도는 ‘처벌’이나 ‘언론플레이’, ‘사자명예훼손’ 등 극단적 표현을 사용한 2차 가해 주장을 그대로 인용했다. 신문윤리실천요강은 3조 보도준칙의 ‘선정보도의 금지’ 조항에서 “기자는 성범죄, 폭력 등 기타 위법적이거나 비윤리적 행위를 보도할 때 음란하거나 잔인한 내용을 포함하는 등 선정적으로 보도해서는 안 되며 또한 저속하게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 정했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헤럴드경제의 “박원순 극단선택 전 ‘독극물’ 검색… 다시 거세진 ‘2차 가해’” 기사가 원색적인 2차 가해 발언을 구체적으로 열거했다며 ‘주의’ 조치했다.
신문윤리위는 이에 “비록 기사는 2차 가해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해 구체적 사례를 든 것으로 보이나 이러한 내용을 적시하는 것만으로 피해자와 가족에게 사회적 불이익과 심리적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객관성을 잃은 이런 주장이 언론을 통해 전파될 경우 낙인효과 등으로 이 메시지는 그대로 남기 때문에 사건 본질마저 흐리게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신문윤리위는 “독자 호기심을 자극하는 선정보도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고, 신문 신뢰성을 해칠 수 있어 실천요강의 ‘선정보도의 금지’ 규정 위반”이라고 했다.
신문윤리위는 한국신문협회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가 꾸린 자율기구다. 운영규정 시행세칙에 따르면 윤리위는 1년 동안 신문윤리강령과 신문광고윤리강령, 그 실천요강의 같은 조항을 3회 이상 경고 받고도 시정하지 않은 언론사에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김예리 기자 ykim@mediatoday.co.kr
전우용 페이스북 21.2.7 ·
대구의 중소기업 사장 집 딸이었던 ‘그녀’는 대학 졸업반일 때 이종사촌 형부 소개로 젊은 검사시보를 만났습니다. “세상의 매듭을 푸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말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녀는 이듬해 ‘그’와 결혼했습니다.
그가 검사직을 그만두고 변호사가 된 뒤, 재산은 빨리 불어났습니다. 수만 권의 책을 쌓아두고도 여유가 있는 번듯한 2층집도 장만했죠. 그러나 ‘그’는 서른 살이 되던 해부터 재산을 털어먹기 시작했습니다. 역사문제연구소에 먼저 책을 기증했고, 한남동의 57평짜리 청화아파트와 연희동의 대지를 처분해 건물까지 기증했습니다. 요즘의 공시지가로 환산하면 30억 원쯤 될 겁니다. 그 뒤로도 시민단체들에 퍼주는 그의 ‘낭비벽’은 계속됐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이 전 재산을 남들에게 퍼주는데도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마흔 살이 된 남편이 돈 잘 버는 변호사 일조차 그만두고 돈 못 버는 ‘시민단체 상근 사무처장’이 됐을 때는, 가정생활은 자기가 맡겠다며 인테리어업체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검사 노릇 그만두겠다는 ‘그’를 말렸더라면, 시민단체에 기부하겠다는 ‘그’를 말렸더라면, 변호사 노릇까지 그만두겠다는 ‘그’를 말렸더라면, 집안 살림에도 신경 좀 쓰라는 잔소리라도 자주 했더라면, 여느 검사나 변호사 부인처럼은 살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 덕에 호의호식하는 삶보다는, ‘세상의 매듭을 푸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의지와 함께 하는 삶을 택했습니다. 그녀는 그와 운명으로 묶인 동지였고, 그녀보다 그를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녀의 말은, 다른 누구의 말보다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증언입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평소 그의 동지를 자처했던 사람 중에서도, 심지어 그에게 큰 은혜를 입은 사람 중에서도, 그에게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나왔습니다. ‘그’에게 받기만 한 사람들의 ‘신뢰’란 그런 것인가 봅니다. 하지만 그에게 주기만 하고 받은 것은 거의 없는 사람의 신뢰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박원순의 평생동지 강난희 여사의 삶에 한없는 경의를 표합니다. 더불어 남편이자 동지였던 사람에 대한 신뢰를 꺾지 않는 것조차 비난하는 잔인하고 비정한 세태에, 가슴이 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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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장에서 성 접대받은 남편을 위해 피해자를 협박한 부인보다, “내 남편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호소하는 부인이 더 크게 비난받는 이 상황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김진숙이 ‘동지’였던 노무현과 문재인에 보낸 글
“오랜세월 동지, 짧은시간 적” “우린 어디서부터 갈라졌나” 부산서 34일만에 청와대 걸어온 김진숙 옛글 재조명
“전두환 정권에서 해고된 김진숙은 왜 36년째 해고자인가. 그 대답을 듣고 싶어 34일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약속들이 왜 지켜지지 않는지 묻고 싶어 한발 한발 천리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36년간 나는 유령이었습니다. 자본에게 권력에게만 보이지 않는 유령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내가 보이십니까. 함께 싸워왔던 당신이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후에도 여전히 해고자인 내가 보이십니까.”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부산에서 걸어서 청와대 앞까지 온 지난 7일 한 말이다. 지난 5일 ‘김진숙 복직’을 주장하며 46일째 단식하던 송경동 시인이 국회 경호원들에게 끌려나오다 실신해 병원에 실려갔고, 지난 6일 김진숙 위원의 희망뚜벅이가 서울에 도착하면서 주말 사이 그가 과거 썼던 글이 다시 회자됐다. 인권변호사 출신 변호사들이 인권을 외면한 것에 대한 노동자들의 심정, 민주당 계열 대통령의 반노동 행보 등을 잘 보여주는 글이었다.
▲ 복직 기원 희망뚜벅 행진 마지막 날인 7일 오후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서울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 도착하여 관계자들 및 48일째 단식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서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다음달인 6월 김진숙 위원이 쓴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란 제목의 글이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사망 소식을 듣고 부산역에 조문하러 갔다가 방명록에 몇 줄을 남겼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동지였고 짧은 시간 적이었습니다. 90년 변호사 접견 오셨을 때처럼 봉하마을 어딘가에 앉아 각자의 위치가 만들어 낸 그동안의 원망과 미움을 두런두런 털어낼 수 있으이라 여겼습니다. 곧.. 고맙고 죄송합니다.”
1990년 김 위원이 처음 징역을 살 때 재판이 아닌 ‘징역살이 힘들까봐 놀아주려고’ 왔던 노무현 변호사에 대한 고마움을 언급하면서 “당신은 우리들의 유일한 빽”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노 변호사가 정치권으로 갔고 김 위원은 그때 직감적으로 ‘이제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겠구나’하고 생각했다고 했다.
김 위원은 왜 “이회창이 당선된 거보다 노무현이 당선된 게 노동자들에게 더 힘”이 드는지,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3년 한진중공업에서 두명의 동지를 잃은 김 위원에게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는 말이 가혹한지 말했다. 고등학교 밖에 못 나온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고 다들 침이 마르게 말했지만 고등학교도 못나온 김 위원 같은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 됐고, 대드는 노동자만 잘리던 군사독재 시절과 달리 남녀노소가 다 잘리는 시대가 됐다고도 했다.
김 위원은 “다음 생에 오실 땐, 너무 똑똑하게 오지 마시구려. 그냥 태생대로 기름밥 먹는 노동자로 만났으면 해요. 떠날 일도 보낼 일도 없이 그냥 내내 동지로”라며 개인 노무현과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각기 다른 마음을 함께 적었다.
이후 크레인에 올라간 김 위원을 지지하기 위한 2010년 희망버스가 있었고,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끝낸 촛불집회가 있었다. 그렇게 탄생한 문재인 정권에서도 김 위원은 복직하지 못했다. 지난해 10월20일 김 위원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띄웠다.
김 위원은 편지에서 “86년 최루탄이 소낙비처럼 퍼붓던 거리 때도 우린 함께 있었고, 91년 박창수 위원장의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라는 투쟁의 대오에도 우린 함께였고,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오위원의 자리에도 같이 있었던 우린. 어디서부터 갈라져 서로 다른 자리에 서게 된 걸까요”라며 노 전 대통령에게 던졌던 비슷한 질문을 다시 던졌다.
김 위원은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면, 가장 많은 피를 뿌린 건 노동자들인데, 그 나무의 열매는 누가 따먹고, 그 나무의 그늘에선 누가 쉬고 있는 걸까요”라며 “그저께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저의 복직을 응원하겠다고 오셨습니다. 우린 언제까지나 약자가 약자를 응원하고, 슬픔이 슬픔을 위로해야 합니까”라고 했다.
이어 “그 옛날 저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말씀하셨던 문재인 대통령님 저의 해고는 여전히 부당합니다”라며 “옛 동지가 간절하게 묻습니다”라고 글을 마무리했다.
▲ 참여정부 시절 문재인 대통령비서실장과 노무현 대통령(오른쪽). 사진=연합뉴스
[관련기사 : 문재인 정부 청와대 앞 풍경의 ‘역설’]
다음은 김 위원의 두 글 전문이다.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
집회도 없고 수련회도 없는 휴일은 외려 잠이 일찍 깨요. 아무 일도 없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언제부터 저는 평화가 실감나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걸까요. 아무 일도 없는 이상한 토요일. 아니나 다를까. 텔레비전 화면에 뉴스속보가 뜨는군요. ‘노무현 전 대통령 뇌출혈로 입원’
검찰조사가 시작되면 입원으로 시작해서 휠체어나 마스크가 구명보트처럼 등장하는 꼴을 늘 봐오긴 했습니다만 당신은 그런 쇼를 할 사람은 아닌지라 스트레스가 어지간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10여분 후 ‘노무현 전대통령 사망한 듯’이라는 자막이 뜨고 그제서야 뒹굴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나날이 일구 우일구하기 여념없는 시시껍절한 방송이 중단되고 속보가 이어지더군요. 경호원, 사저뒤편, 부엉이 바위, 세영병원, 양산부산대병원, 심폐소생술, 열상 따위의 일상과 밀접하지 않은 단어들이 바퀴벌레처럼 툭툭 튀어나와 소름을 돋게 했습니다.
정신적 공황상태까진 아니었지만 불면 탓으로 약간 멍한 채로 이틀을 보냈고 월요일 아침 부산역까지 가긴 했으나 조문은 못하고 역 광장을 몇 바퀴 빙빙 돌다 왔습니다. 선뜻 신발을 벗고 절을 하는 문상객들의 거리낌없는 몸놀림이 참 부럽다고 생각하며. 잠이 안오대요.
조문은 못하고 역 광장을 몇 바퀴 빙빙 돌다 왔습니다
다음 날 다시 부산역엘 갔습니다. 역 광장을 또 빙빙 돌다가 그냥 돌아가면 다시 닥칠 불면의 밤이 성가셔 문상객들의 뒤에 얼른 붙어 섰습니다. 방명록에 몇 줄 쓰기도 했습니다. 잠을 자야하니까.
“오랜 세월 동지였고 짧은 시간 적이었습니다. 90년 변호사 접견 오셨을 때처럼 봉하마을 어딘가에 앉아 각자의 위치가 만들어 낸 그동안의 원망과 미움들을 두런두런 털어낼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곧.. 고맙고 죄송합니다.“
90년. 제가 첫 징역을 살 때였습니다. 접견을 오셨었지요. 보통 변호사 접견은 재판 전날 와서(사실 재판 전날도 안 오는 변호사도 많습디다만) 재판절차를 일러주고 이빨도 맞추고 하는데 재판날짜와는 아무 상관없는 시기였던지라 많이 의아했던 만큼 20년 전인데도 이리 생생하네요.
접견실에 먼저 오셔서 기다리시더군요. 보통은 재소자들이 한 시간 이상씩 주리를 틀면서 기다리는데. 요샌 교도소 반찬이 뭐가 나오냔 얘기, 여사에선 뭐하고 노냐는 얘기, 변호사가 해주던 징역살이 얘기, 남사에선 뭐하고 논다는 얘기, 법무부 시계도 가니까 재밌는 놀이를 많이 개발해서 징역을 잘 깨라는 얘기. 변호사가 접견을 와선 재판이야긴 한마디도 없이 노닥거리기만 하다 그 더디기로 유명한 법무부시계가 세상에 한 시간이나 흘렀습니다.
“가야겠네” 일어서시길래 하도 황당해서 물었습니다. “왜 오셨어요?”. “진숙씨 징역살이 힘들까봐 놀아 줄라고 왔지요”
그리고 당신은 정치권으로 갔고, 정치권으로 갔다는 건 권력을 탐하는 변절로 규정하는데 한치의 주저함도 없었으니 변호사비용을 거침없이 떼먹고도 사기꾼의 돈을 떼먹은 것 마냥 일말의 부채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복직하면 갚으마. 유전 발견하면 갚으마. 보물선 찾는대로 갚으마. 막연한 약속이 선임비였던 시절이었으니. 그게 인권변호사의 당연한 책무였으니. 이제와 생각해보니 상실감이었어요.
그 시절 당신은 우리들의 유일한 빽이었는데. 공돌이 공순이 편을 들어주는 가장 직책 높은 사람이었는데. 당신이 있어 우린 수갑을 차고도 당당할 수 있었는데. 그때 직감적으로 생각했어요. 이제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겠구나.
“진숙씨 징역살이 힘들까봐 놀아 줄라고 왔지요”
재판장 앞에서 수갑을 찬 채 잔뜩 주눅 든 우리를 향해, “피고인은 무죕니다.” 외쳐 줄 사람이 이젠 없겠구나. 이제 재판에서 지더라도 찾아가 울 데도 없겠구나. 노동자들이 그들의 부엉이바위인 크레인 위에 올라갈 때 따라 올라가지도 않겠구나. 그리고 당신을 잊었습니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없어서 혼자 진행했던 1심 재판에서 당연히 지고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왜 항소를 안했어요?” 라는 질문에 “항소가 뭔데요?” 라고 되묻던 저에게 “노동자가 항소를 알면 그건 노동자가 아니지.” 하던 말도 잊었고, 노동자도 이론이 있어야 세상을 바꾼다며 함께 했던 소모임도 잊었고, 군사정권 시절 해고된 노동자의 그 막막한 눈빛을 들여다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유일하게 내 얘기를 그대로 들어주던 무료법률 상담소도 잊었고,
어느 날은 밤에 오라 길래 밤에 찾아갔더니 그날이 전태일이라는 노동자의 기일이라고 변호사 사무실 구석에 조촐한 제상을 차려놓고 아무 말도 없이 유령들처럼 절을 하던 그 뭉클하던 밤도 잊었고, 함께 같은 거리를 달리던 6월 항쟁도 잊었고, 최루탄 가루가 싸락눈처럼 내린 범냇골 국민운동본부 옥상에서 막걸리를 나누던 걸판지던 뒤풀이도 잊었습니다.
그리고 침례병원이 초량에 있을 때였습니다. 노동조합 조합원 교육에 초청을 받았는데 앞 시간 강사가 당신이었더군요. 당신은 내려오고 나는 올라가던 계단에서 마주쳤습니다. 난 참 어색하기가 짝이 없습디다.
그냥 모른 척 할라고 했습니다만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지요?” 굳이 손까지 내미시더군요. 그때 대답을 했거나 웃기라도 좀 했으면 지금 잠을 이루기가 좀 쉬었을까요.
그리고 당신이 출마한 대선에서 전 4번을 찍었습니다. 단 한 번도 단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외포리를 한번도 벗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평생 1번을 벗어난 적이 없는 큰언니가 전화를 했더군요. “이 노무헤니가 그 노무헤니지? 니 벤호사. 그 사람 찍었다. 너 인쟈 깜빵 안가지? 복직두 되갓지?” 얼른 대답할 말이 떠오르질 않더군요.
제가 왜 “내 변호사”를 놔두고 4번을 찍었는지 우리 큰언닌 죽을 때까지 이해 못할 거예요. 2번과 4번의 극심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도 이리 막막한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그 미세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은 저의 재주로는 난망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뻐서 우는 사람도 있습디다만 이회창이가 당선된 거보다 노무현이가 당선된 게 노동자들에게는 더 힘들 거라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고립은 깊어졌고 고착화되었습니다. 김영삼이가 당선되었을 때 운동권이 1/3이 떨어져 나갔고, DJ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른바 재야가 사라졌고,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서는 그야말로 오롯이 노동자들만 남았습니다.
전 4번을 찍었습니다
한 사업장에서 수천 명이 한꺼번에 해고될 때 그 무지막지한 자본을 향해 호통쳐주는 어른 하나 없습디다. 노동자들이 핏발 선 눈으로 거리로 나설 때 역성들어주기는커녕 죄 우리만 나무랍디다. 그거 아세요. 당신은 조중동이랑 열심히 싸우셨습니다만 우리에겐 조중동이랑 한편처럼 보인 거.
“야~ 기분좋다!” 시며 봉하로 가셨을 때 오리농법보다 더 중요한 일은 농민들의 삶의 실상을 들여다보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왜 목숨 걸고 한미 FTA를 반대했는지. 그리고 전용철, 홍덕표 그들의 죽음에 당신이 늦게나마 사과를 하면 참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랬다면 제가 봉하마을을 갔을까요. 아마 갔겠지요. 그리고.. 김주익 얘기도 했을까요. 아마 그 얘긴 못했을 거예요. 말로 꺼내긴 크나큰 상처였으니까.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 말씀. 유난히 노동자들에겐 가혹하셨습니다. 2003년도 한진중공업에서 저는 한꺼번에 두 명의 지기이자 동지를 잃었습니다. 김 주익은 600여명 조합원의 명퇴에 맞서 2년을 싸웠고 노사가 합의를 했고 그 합의를 회사가 번복을 했고 그래서 크레인에 올라갔고 그 크레인 위에 129일을 매달려 있다가 아시다시피 목을 맸습니다.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런 시대는 정말 지났을까요.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에게 종종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조각인 것을..
저는 당신을 부정한 게 아니라 당신을 넘어서고 싶었습니다. 착한 사람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지배가 없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시대에 그 꿈은 가장 허황되고 지리멸렬해졌습니다. 때론 우리가 품은 꿈이 너무 초라했고 궁색했습니다.
당신의 시대에 가장 많은 노동자가 짤렸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구속됐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됐고 그리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귀족으로 격상됐고 그들은 언론과 자본은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조차 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이기주의를 꾸짖으십디다만 동료가 수백 명씩 짤리는 걸 목격한 노동자가 비정규직에게 내밀 손이 남아 있겠습니까. 저 살아남는데 써야지.
징역을 살 때 만난 사형수가 있었어요. 이 여잔 영치금이 한 푼도 없는 개털이었는데 새로 신입이 들어오면 아주 불쌍한 표정으로 샴푸나 속옷을 사달라는 거예요. 출소한 사람들이 쓰다만 물건들도 다 그 여자 차지였죠. 언제 죽을지 모를 사람이 사소한 물건에 집착하는 게 도덕의 눈으로 보자면 참 추접스럽습디다.
그 여자 집행되고 보니 샴푸나 속옷 나부랭이가 구석구석에서 쏟아져 나옵디다. 백분의 일도 못쓰고 죽었죠. 생에 대한 나름의 집착이었던 거죠. 샴푸 생길 때마다 빌었겠죠. 이거 다 쓰고 죽자. 정규직 노동자들은 삶의 벼랑에서 그런 심정으로 잔업하고 철야를 합니다. 얼마가 남았을지 모를 정규직의 삶을 그딴 식으로 저축하면서.
다음 생에선 노동자로 만났으면 해요.
그 무렵쯤이었을 거예요. 변호사비용을 이제 그만 갚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당신의 시혜나 은전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적이 될 거라면 호적수이고 싶었습니다. 실력도 한참 모자라고 열정도 전만 못하고 진정성마저 잃어 그리 되진 못했습니다. 그게 참 부끄러워요.
똑똑한 사람들은 다 떠나 우리를 속속들이 아는 가장 무서운 적이 되었고 남은 자들은 동네북이 되어 초딩들마저 두들겨대고 천덕꾸러기가 되어 크레인엘 올라가고 굴뚝엘 기어 올라가도 언놈 하나 눈길주는 놈이 없어졌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고등학교밖에 못나온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입 달린 사람은 죄다 침이 마릅디다만 고등학교도 못나온 저 같은 노동자들은 당신의 시대에 대부분 절감해야 할 원가가 되어 구조조정 당했고 효율화를 위해 비정규직이 됐습니다.
차라리 군사독재 시절엔 대드는 노동자만 짤렸으나 당신의 시대엔 남녀노소가 짤렸습니다. 서민의 벗이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나 부자와 빈자의 간극은 훨씬 더 까마득해졌습니다. 당신이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24년의 세월 동안 전 아직 복직도 못한 해고노동자로 찌질한 50대가 됐습니다.
생각해보니 짧은 시간 동지였고 오랜 세월 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뜨겁고 바른. 만고 씰데없는 소립디다만 그래서 대통령 같은 거 하지 말았으면 참 좋았겠단 생각 지금도 해요.
불안하고 불길한 기운으로 떠돌던 예감이 당신의 죽음으로 확연해집니다. 한 시대가 갔다는..
이제 상고출신이 변호사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양양한 가도가 보이고 그 길을 편하게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의 있습니다!” 외칠 때, 그 외침에 뒤돌아보는 사람도 이제 더는 없을지도 몰라요.
만 명이 울어주면 천국에 간다했던가요. 천국에 가셨을 거라 믿어요. 진심으로. 김주익 곽재규 배달호 김동윤 최복남 이용석 이해남 이현중 정해진 하중근 박수일 허세욱.. 당신의 시대에, 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서러움으로 억울함으로 목 놓아 울었던 죽음들입니다.
당신처럼 벼랑 끝에 내몰렸던..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죽음을 당신이 이해해주길 바란 적이 있었어요. 하도 야속해서. 노동자의 삶을 안다는 사람이 어찌 저럴 수가 있나 너무 미워서. 아무리 야속하고 미워도 그런 바람은 품지 말걸 그랬다 싶어요. 애증도 부질없어 졌습니다.
언젠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말들이 기형도의 시처럼 떠돌다 때때로 부딪히겠지요. 이제 변호사비용은 영원히 안 갚아도 되게 생겼습니다.
다음 생에 오실 땐, 너무 똑똑하게 오지 마시구려. 사법시험 같은 것도 합격하지 마시구요. 그냥 태생대로 기름밥 먹는 노동자로 만났으면 해요. 저는 당신에게 변절이라 손가락질 할 일 없이, 당신은 절더러 경직되었다거니 세상을 모른다거니 한심해 할 일 없이. 떠날 일도 보낼 일도 없이 그냥 내내 동지로.
그래서 언젠가 하셨던 말씀대로 자본가가 지는 해라면 노동자는 뜨는 해다. 그 멋진 말씀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순수한 열정, 남다른 정의감 그대로 만날 수 있길. 다시는 미워할 일도 상처 받을 일도 이렇게 미어질 일도 없이…
김진숙 동지가 문재인 대통령에 전하는 글
우린 어디서부터 갈라진 걸까요
86년 최루탄이 소낙비처럼 퍼붓던 거리 때도 우린 함께 있었고,
91년 박창수 위원장의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라는 투쟁의 대오에도 우린 함께였고,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오위원의 자리에도 같이 있었던 우린.
어디서부터 갈라져 서로 다른 자리에 서게 된 걸까요.
한 사람은 열사라는 낯선 이름을 묘비에 새긴 채 무덤 속에,
또 한 사람은 35년을 해고노동자로, 또 한 사람은 대통령이라는 극과 극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 건, 운명이었을까요, 세월이었을까요.
배수진조차 없었던 노동의 자리, 기름기 하나 없는 몸뚱아리가 최후의 보루였던
김주익의 17주기가 며칠 전 지났습니다.
노동없이 민주주의는 없다는데 죽어서야 존재가 드러나는 노동자들.
최대한 어릴 때 죽어야, 최대한 처참하게 죽어야, 최대한 많이 죽어야 뉴스가 되고
뉴스가 끝나면 그 자리에서 누군가 또 죽습니다.
실습생이라는 노동자의 이름조차 지니지 못한 아이들이 죽고, 하루 스무시간의 노동 끝에 ‘나 너무 힘들어요’라는 카톡을 유언으로 남긴 택배 노동자가 죽고, 코로나 이후 20대 여성들이 가장 많이 죽고, 대우버스노동자가 짤리고, 아시아나케이오, 현중하청(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들이 짤리고, 짤린 비정규직들은 수년 째 거리에 있습니다.
연애편지 한 통 써보지 못하고 저의 20대는 갔고, 대공분실에서, 경찰청 강력계에서, 감옥의 징벌방에서, 짓이겨진 몸뚱아리 붙잡고 울어줄 사람 하나 없는 청춘이 가고, 항소이유서와 최후진술서, 어제 저녁을 같이 먹었던 사람의 추모사를 쓰며 세월이 다 갔습니다.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면, 가장 많은 피를 뿌린 건 노동자들인데,
그 나무의 열매는 누가 따먹고, 그 나무의 그늘에선 누가 쉬고 있는 걸까요.
그저께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저의 복직을 응원하겠다고 오셨습니다.
우린 언제까지나 약자가 약자를 응원하고, 슬픔이 슬픔을 위로해야 합니까.
그 옛날 저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말씀하셨던 문재인 대통령님
저의 해고는 여전히 부당합니다.
옛 동지가 간절하게 묻습니다.
2020. 10. 20.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자 김진숙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조국 딸 인턴 합격 의혹 보도에 “치졸하고 비열”
정청래 의원, ‘한일병원 특혜 채용 의혹’에 “나와 통화 한 기자 한 명도 없어”
조국 전 장관 “딸이 시민의 한 사람으로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기를”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딸 조민씨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부인이 근무하는 병원에 합격했다며 ‘특혜 채용 의혹’을 제기했다. 정청래 의원은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 같은 내용의 조선일보 기사를 공유하며 “의혹 유도성 기사를 뽑아낸 것”이라며 강한 유감을 드러냈다.
조선일보는 한국전력공사 산하 한일병원 인턴에 합격한 조민씨를 두고 “하필 민주당 정청래 의원 부인이 부서장으로 있는 한일병원에서 1등으로 합격했다면 특혜 가능성을 의심할 만하다”는 황보승희 국민의힘 의원 주장을 인용 보도했다. 황보 의원은 “부산대 의전원 부정 입학 사건의 공범과 함께 일해야 하는 한일병원 의료진의 입장과 또 베드에서 마주쳐야 하는 환자의 입장을 생각해서 조 씨는 인턴을 하지 않는 게 맞는다”고 주장했다. 관련 사실을 보도한 언론은 한일병원이 3명을 추가 모집했고 3명이 지원한 결과 합격했다고 전하며 “조민씨의 합격에 의료계가 반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정청래 의원은 “며칠 동안 많이 웃었다. 저와 통화를 한 기자는 한 명도 없었다. 아내는 한일병원에서 약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약제부장”이라고 밝혔다. 정 의원은 “의사는 의사들이 알아서 뽑는다. 아내는 조민 양이 지원한 지도 합격한 지도 사전에 알지 못했다. 약사가 의사 뽑는데 관여할 수 없다”며 관련 의혹을 반박했다. 정 의원은 “기자들도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데 알면서도 의혹 유도성 기사를 뽑아낸 것”이라며 “치졸하고 비열한 일”이라고 비난했다. 정청래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께서 기사를 보고 내게 사실관계를 확인하라고 했다. 정 의원과 부인 모두 전혀 몰랐던 일”이라고 전했다.
조국 전 장관 역시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저와 제 딸은 한일병원 인턴 지원 사실을 정청래 의원이나 부인께 알린 적이 없다”고 해명해야 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연합뉴스
앞서 조 전 장관은 지난 4일 “근래 제 딸을 향한 스토킹에 가까운 언론보도와 사회적 조리돌림이 재개된 느낌”이라고 복잡한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28일 “조민씨가 국립중앙의료원 인턴에 지원해 면접까지 마친 것으로 확인됐다”며 “병원 안팎에서는 조씨의 합격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복수의 병원 관계자 발언을 전했다. 이후 조씨는 탈락했고, 보건복지부는 국립중앙의료원 피부과 레지던트 정원 증원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 딸 조민씨와 무관하다고 했으며, 국립중앙의료원은 중앙일보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예고한 바 있다.
조 전 장관은 “제 딸의 거취는 법원의 최종적 사법판단 이후 관련 법규에 따른 학교의 행정심의에 따라 결정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제 딸은 자신의 신상에 중대한 불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이 과정에서 진솔하고 진지한 소명을 할 것”이라고 전한 뒤 “제 딸이 시민의 한 사람으로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하지만 조민씨를 둘러싼 일련의 보도행태에 비춰볼 때 조만간 기자들이 한일병원에 몰려들어 ‘조민 취재 경쟁’에 나설 것으로 보여 병원 업무 차질이 예상된다.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조국’·‘조민’으로 동시 검색되는 기사는 1월8일부터 2월8일 현재까지 최근 한 달간 462건이다./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韓, 넉달째 선박 수주량 세계 1위…1월 전세계 발주량 51.7%
고부가가치 선종 100% 수주”
〈자료: 산업통상자원부〉
우리나라가 4개월 연속 선박 수주량 세계 1위를 이어가고 있다. 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우리나라는 전 세계 발주량 180만CGT 가운데 93만CGT를 수주해 전체 선박 발주량의 51.7%를 차지했다.
이는 작년 1월보다 12배 증가한 수치다. 작년 1월 수주량은 7만CGT로,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의 4.4%에 불과했다.
이번 성과로 우리나라는 작년 10월부터 4개월 연속 수주량 세계 1위를 유지했다. 주요 경쟁국인 중국과 비교할 때 수주량은 1.6배, 수주금액은 2.2배로 수주량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수주금액을 달성했다. 대형 컨테이너선 8척 중 8척,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2척 중 2척, LNG선 2척 중 2척 등 세계 고부가가치 선박 발주량을 모두 우리나라가 수주한 결과다[헤럴드경제=배문숙 기자]
리얼돌에 감정이입이 더 비정상적” “소름끼쳐..그냥 죽어라”
법원, 리얼돌 수입통관 허용 판결에 누리꾼들 성별로 나뉘어 입장 갈려
© News1 김명섭 기자 /사진=뉴스1
법원이 "풍속을 해치지 않는다"며 ‘리얼돌(real doll)’에 대한 세관의 수입통관 보류조치를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이를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 판결의 쟁점으로 꼽혔던 리얼돌의 성적 대상화 등에 대한 법원의 해석을 두고 온라인상에서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뜨거워진 논쟁은 이제 성대결로 양상까지 치닫고 있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박양준 부장판사)는 수입업체 A사가 신청한 성인용 여성 전신인형의 수입통관을 보류한 김포공항 세관장의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허가 판단 근거는 크게 4가지로 꼽힌다. △개인 사생활과 행복 추구에 법 개입이 불가한 점 △인간 존엄성과 가치를 훼손할 정도로 문란하지 않은 점 △리얼돌과 실제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는 점 △성 기구 특성상 사실적으로 묘사해야 한다는 점 등의 이유다.
리얼돌과 결혼한 카자흐스탄 남성 톨로츠코. 톨로츠코는 지난해 12월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리얼돌 '마고'와의 결혼식 장면을 담은 영상을 업로드했다. 보디빌더인 톨로츠코는 리얼돌 마고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는 영상을 올린 후 "마침내 일어났다. 앞으로 계속"이라는 문구를 적었다. /파이낸셜뉴스
조국사태, 87세대 한계 드러내…교수·지식인이 특권임을 몰랐다”
창립 33년만에 ‘민교협 2.0’ 선언]
조국사태로 민교협 균열 표면화
말과 행동 불일치에 분노·실망
이를 극복해 민주평등사회 실현
세대와 젠더, 불평등의 문제에
예민한 시각 없인, 설득력 없어
대학내 신분 안정된 지식인 소수
대부분 비정규직…각자도생 몰려
이젠 새로운 운동 주체 세울 때
민교협이 지난 1월1일 국회 앞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민교협 제공
민주화 항쟁의 열기가 뜨겁던 1987년, 대학교수들도 “대학과 사회의 민주화”를 목표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민교협’은 이후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진보적인 지식인’과 그들의 사회운동을 대표하는 명찰이었다. 그러나 ‘87년 체제’가 잇단 균열을 일으키면서 민교협도 다른 사회운동조직들과 마찬가지로 위기에 빠진 지 오래다. 2019년 이름을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로 바꿨지만, 변화는 크게 감지되지 않았다.
그런 민교협이 2021년을 맞아 ‘민교협 2.0 선언’(선언)을 공식 발표하고 혁신 작업에 착수한다. 불평등이 심화하고 사회 위기가 고조되면서 새로운 민주평등사회 건설을 위한 교수·연구자들의 실천이 요구되고 있어 무너져가는 대학과 연구공동체를 시급히 재건하겠다는 취지의 선언이다. <한겨레>는 최근 강명숙(배재대)·김진석(서울여대) 민교협 상임공동의장과 천정환(성균관대) 학술교육위원장과의 대면·서면 인터뷰를 통해 선언의 배경과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왼쪽부터 민교협 강명숙, 김진석 상임공동의장과 천정환 학술교육위원장.
이들은 2019년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과정에서 불거진 ‘조국 사태’를 민교협 내부의 균열을 표면화한 사건으로 꼽는다. 민교협 회원 가운데 ‘조국 세대’에 속하는 교수들은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앞세워 ‘조국 지지’ 목소리를 내고 집단행동도 벌였다. 그러나 이후 세대에서는 “조 교수가 특별히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 해도 그 가족이 드러내준 문제가 한국 교육과 사회 불평등의 핵심에 걸쳐 있고, 이것을 직시해야 한다”(천정환)는 문제의식이 컸다고 한다.
이는 그동안 ‘민주화’라는 말로 어느 정도 한데 묶였던 진보적인 교수·연구자들이 다양하게 분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진석 교수는 “조국 사태는 민교협 내부에 존재하는 이질성을 드러내는 한편, ‘87세대’가 가진 가치와 철학의 한계를 드러내 보인 사건으로 작용했다. 교수·지식인이 대단한 특권임에도 불구하고 그게 문제가 되는 것임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뎌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체성에 대한 인식 변화는 지향점의 변화로 연결된다. ‘민주화’라는 기존 목표에 ‘평등’을 더하려는 움직임이 더해진 것이다. 선언은 ‘민주평등사회의 실현’을 지향점 가운데 하나로 제시하고, “세대와 젠더, 불평등의 문제에 대한 예민한 시각 없이는 설득력 있는 시민운동도, 새로운 민주주의도 없다는 것을 깊이 새기고 시민사회 운동의 주체를 형성하는 데 함께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87년 체제의 대학과 지식인상은 이미 현실 세계에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과거 지식인으로서의 고민과 성찰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안정된 신분과 사회적 명망 따위가 뒷받침됐음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요즘 대학에는 신분이 안정된 지식인이 극소수다. 대부분은 비정규직 교수·연구자로 지위와 임금의 차별구조 속에서 각자도생에 내몰려 있다. 선언은 “수도권과 국립대학 일부 정규직 교수들은 안온과 권세를 누리지만, 이는 비정규직 교수와 지역 및 여성 연구자들에 대한 차별과 착취를 대가로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존의 ‘남성, 수도권, 정규직 교수’에서 벗어나 ‘신진, 지역, 여성연구자, 독립연구자’ 등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는
것을 핵심 과제로도 꼽았다.
선언에 이은 구체적인 활동으로 민교협은 이달 말께 ‘시국 대토론회’를 여는 한편, ‘한국 사회와 지식인’을 주제로 한 연속 토론회도 계획하고 있다. 연구자·비정규직·여성 분회를 각각 만드는 등 조직 강화에 역량을 집중하고, 문재인 정부 개혁과제에 대한 평가, 대선을 겨냥한 사회개혁 의제 제안 등도 준비한다. 강명숙 교수는 “우리 사회에는 말로써 사회에 공헌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행동으로 이에 일치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데 대한 분노와 실망감이 크다. 이를 극복하고 연구자들의 역량이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우리 아이가 화장품 말고 ‘화장품회사 주식’ 산다는데요
10대를 위한 경제교육
십대들도 ‘주식’ 하는 시대
사고파는 기법만 익히지 말고
‘경제 보는 눈’ 제대로 키워줘야
나만의 경제노트 만들어보고
기획재정부·한국은행 누리집에서
웹툰·동영상 보며 머니 센스 ‘쑥쑥’
중학교 2학년 딸을 둔 안미영씨는 “얼마 전 아이가 ‘화장품 말고 화장품회사 주식을 사보고 싶다’고 말하더라”며 “우리 세대만 해도 금융 지식은 20대 후반 지나면서 접했는데 이제 확실히 나이대가 어려진 듯하다”고 말했다. “처음엔 놀랐죠. 주식, 펀드는 어른들의 영역이었잖아요. 한데 달리 생각하면 오히려 경제 개념을 잘 키워줄 수 있는 적기 아닌가 싶어요.”
최근 ‘13살 주식 유튜버’가 천만원을 벌었다고 인증한 영상이 화제에 오르며 아이들을 위한 경제·금융 교육법에 관심 갖는 보호자들이 많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않은 아이의 ‘머니 센스’는 어떻게 키워줘야 하는지, 시작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아봤다.
자본시장 보는 ‘큰 눈’ 키워주자
“주식을 ‘수익률 게임’ 관점으로 접근하게 하지 마세요. 장기적으로 시장을 보는 안목을 키워주는 게 우선입니다.”
곽병찬 전국투자자교육협의회(이하 투교협) 사무국장의 말이다. 투교협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비롯해 한국금융투자협회 등 7개 기관이 공동으로 설립한 비영리 투자교육 기관이다.
곽 사무국장은 최근 불고 있는 ‘십대들의 주식 열풍’에 대해 “‘용돈 모아 10만원 투자했는데 금방 50만원으로 뛰었다’ ‘그동안 모은 용돈 100만원을 잘못 투자했다가 다 날렸다’는 등 주식을 사고팔며 생기는 ‘결과’에만 주목하는 건 제대로 된 금융교육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어쩌다 고수익이 날 수 있고 거기서 성취감을 얻을 수는 있지만, 단순히 주식을 넣었다 빼는 거래 행위에만 초점을 맞추면 투자가 아닌 투기 성향만 키워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최근 보호자들이 주식이 얼마가 오르고 어느 종목이 좋은지 등 수익률 게임을 염두에 두고 계좌를 개설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곽 사무국장은 “제대로 된 경제·금융 교육을 시작하려면 개별 주식 종목보다는 해당 산업이 속한 시장 전체를 보는 안목을 길러주는 게 보호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무슨 방식으로 이익을 내는지, 수익을 내는 방식이 윤리적인지 등 ‘시장 전체를 조망하는 눈’을 갖게 해주는 게 우선이라는 말이다.
수익률만 보고 계좌개설 말아야
곽 사무국장은 아이가 주식 계좌를 통해 개별 종목을 골라 하나씩 투자하는 방식보다는 이티에프(ETF, Exchange Traded Fund)를 추천했다. 이티에프는 인덱스펀드를 거래소에 상장시켜 투자자들이 주식처럼 편리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상품이다. 개별 주식을 고르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펀드 투자의 장점과, 언제든지 시장에서 원하는 가격에 매매할 수 있는 주식 투자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 상품으로, 인덱스펀드와 주식을 합쳐놓은 것이다.
청소년기에는 개별 종목보다는 이티에프 등 약간 덩어리가 큰 상태의 금융거래를 통해 기업의 성장과 국제 정세의 흐름 전체를 볼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게 맞다는 이야기다.
곽 사무국장은 “코카콜라, 넷플릭스 등 우량 기업의 개별 종목이 당장 아이들의 흥미를 끄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개별 종목 투자를 통해 금융을 배우면 경제를 보는 시야가 좁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교육의 측면에서 기업 자체에 관심을 갖는 건 교육적으로도 좋은 일입니다. 다만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거나 직장 생활을 시작한 뒤에 개별 종목에 투자해도 늦지 않다는 이야기죠. 아이를 위해서라면 개별 종목을 사고파는 기술이나 기법만 익히도록 하면 안 되겠지요. 중요한 건 ‘내가 앞으로 살아갈 자본시장 자체에 대한 기초 지식을 어떻게 쌓아갈 것인가’라는 겁니다.”
‘머니 센스’부터 만들어주자
10년이 넘는 공교육 과정부터 소득이 끊기는 노년기까지 우리 아이가 살아갈 인생은 길다. 고교 졸업 뒤 ‘남은 50년’을 전망할 수 있는 ‘경제 읽는 법’을 제대로 가르쳐줘야 할 이유다.
<17살, 돈의 가치를 알아야 할 나이>를 펴낸 한진수 경인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경제학 박사)는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사회 초년생 시기에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험을 한다. 신용카드를 무절제하게 쓰거나 ‘친근한 이미지’를 내세우는 대부업체 등을 이용하기 시작하면 20대 초중반부터 ‘경제 낙오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금융 교육을 시작할 때 머니 센스부터 만들어줘야 하는 이유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머니 센스는 경제 용어를 제대로 이해해야 생긴다.
보호자가 아이들 경제교육을 시작할 때 가장 당황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경제 용어다. 환율, 신용등급, 금리, 주식 투자, 채권, 화폐 등 매일 뉴스에서 듣는 단어지만 막상 그 뜻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신문 등에 나온 짧은 경제 기사 한두개를 오린 뒤 공책에 붙여 용어 개념부터 차근차근 알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한 교수는 “경제면 기사에서 모르는 경제·금융 용어에 밑줄을 쳐본 뒤 아이와 함께 뜻을 적어보는 과정을 5~6개월만 해봐도 대부분의 경제 기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며 “이해하면 관심이 생기게 된다. 한글을 배울 때 ‘가나다라’부터 익히듯 아이에게 자기만의 경제 노트를 한권 마련해주면 자연스레 정치, 국제 사회 공부도 된다”고 말했다. “새 학기 앞두고 ‘나만의 경제 노트’ 한권을 만들어보면 좋습니다. 눈으로만 읽는 것보다 쓰면서 정리하면 성취감도 더해지고요.”
웹툰, 동영상 통해 금융소비자로 성장
이때 참고할 수 있는 누리집과 프로그램이 많다. 기획재정부 경제배움이(www.econedu.go.kr)에 접속하면 아동기부터 청소년기 등 생애주기별 경제교육 자료가 보기 쉽게 정리돼 있다. 동영상과 웹툰 등으로 구성된 자료와 시사 경제용어 사전, 나에게 맞는 경제교육 등이 올라와 있어 보호자가 참고하기에도 좋다.
기획재정부 어린이 경제교실 누리집(kids.moef.go.kr)도 활용해보자. 우리 집에도 경제가 있어요, 금융과 신용은 친구예요, 기업 속에 경제가 숨어 있어요, 경제 핵심 개념을 알아보아요 등 항목을 둘러보면 아이가 기초 경제 개념을 잡는 데 도움이 된다.
최근 보호자들이 주식이 얼마가 오르고 어느 종목이 좋은지 등 수익률 게임을 염두에 두고 계좌를 개설해주는 경우가 있는데, 제대로 된 경제·금융 교육을 시작하려면 개별 주식 종목보다는 해당 산업이 속한 시장 전체를 보는 안목을 길러주는 게 좋다. 전국투자자교육협의회 제공
한국은행 누리집(www.bok.or.kr)에 접속한 뒤 오른쪽 상단의 ‘경제교육’ 항목을 클릭해보자. ‘온라인 학습’ 범주에서 ‘청소년’을 선택하면 10분 안팎의 동영상이 경제 주제별로 나뉘어 있어 쉽게 공부할 수 있다. 신용회복위원회 신용교육원(www.educredit.or.kr)에서는 어린이부터 일반인을 위한 다양한 신용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어린이 국세청(kids.nts.go.kr), 서민금융진흥원 금융교육포털(edu.kinfa.or.kr)에도 청소년 대상 경제·금융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위 누리집에서 신용 관리의 중요성과 불법대출의 위험성, 세금의 개념 등을 함께 배울 수 있다.
투교협에서는 금융·투자 관련 뮤지컬을 제작·공연하고 웹툰 등을 만들어 전국 고교에 배포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금융투자체험관을 통해서도 투자 원칙과 투자 마인드, 생애주기별 경제 계획 등을 교육하고 있다.
최근에는 청소년 금융교육 웹툰 ‘슬기로운 금융생활’을 만들었다. 이 웹툰에서는 청소년들이 합리적 금융소비자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기초 금융지식을 생활 속에서 겪게 되는 소재를 중심으로 재미있게 풀어나가고 있다.
저축과 투자, 금리와 환율, 위험 관리, 신용 및 부채 관리, 금융회사 활용법과 진로 탐색을 위한 금융권 직무 소개 등 전반적인 금융지식을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다루고 있어 도움이 된다. 투교협 누리집(www.kcie.or.kr) 등을 통해 볼 수 있고, 전국 2300여개 고교에도 무료 배포돼 있다.
아는 만큼 보여…경제입문서 추천
흔히 ‘돈 밝힌다’는 말을 안 좋은 뜻으로 많이 쓰는데, 문자 그대로만 보면 ‘돈에 밝은 것’은 나쁜 게 아니다. 우리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수단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 성적만큼 중요한 게 용돈 관리다. 경제와 금융에 관한 기본 상식과 원리를 재미있게 설명한 책 두권을 추천한다.
청소년을 위한 경제 입문서로 <청소년 돈 스터디: 금융 문맹 탈출을 위한 경제 이야기>(책담)가 있다. 생존에 필수인 돈에 관한 모든 것을 쉽게 풀어 써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돈에 관한 상식, 돈의 역사부터 세계 속에서 돈의 구실까지 금융과 경제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10대를 위한 용돈 관리법, 저축하는 법, 주식 투자법 등도 알려준다. 사회·경제면 이슈를 바탕으로 돈과 관련한 궁금증을 설명해 청소년들의 금융 문맹 탈출을 돕는다.
중학교 사회 교과서 중 경제 분야에 나오는 시장과 가격 이론,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주요하게 다룬 <시장과 가격 쫌 아는 10대: 드디어 만난 보이지 않는 손>(풀빛)은 전기요금, 유명 상표 물건은 물론 휴대전화, 자동차 등 우리가 일상에서 늘 접하는 상품을 통해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고 왜 변동하는지, 그에 따라 사려는 수요와 만드는 공급은 또 어떻게 변하며 다시 가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어 기본 경제 개념을 갖추는 데 좋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설 특집 광주·전남 여론조사] '차기 대통령감' 1위
재산 절반 기부"…10조 번 김범수의 마음 움직인 시 한
“격동의 시기에 사회문제가 다양한 방면에서 더욱 심화되는 것을 목도하며 더이상 결심을 더 늦추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카오가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을 찾고 지원해 나갈 생각이다.”
국내 최대 모바일 플랫폼 ‘카카오톡’을 만든 김범수(55)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재산의 절반이상을 기부하겠다고 8일 발표했다. 목적은 ‘사회문제 해결’. 5조원이 넘는 규모의 기부 계획을 그는 카카오 직원 7000여명이 포함된 단체 메시지로 공개했다. 그는 또 “기존 방식으로 풀 수 없는 문제가 많아지면서 함께 지혜를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직원들과 지속적으로 공유하며 아이디어도 얻고 기회도 열어 드리겠다”고도 말했다. 기부 계획을 알린 방식만큼이나, 향후 실행도 기존의 관성을 따르지 않겠다는 메시지다.
김 의장은 국내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기업인이자, 1세대 정보기술(IT) 창업자다. 한게임ㆍNHN을 거쳐 창업한 카카오로 그는 모바일 플랫폼 시대를 열었다. 그런 그가 재산 50% 이상 기부를 약속하고, 이를 통해 사회 문제를 풀겠다고 공언함으로써 한국에 새로운 기부 모델을 확산시킬 지 주목된다. 해외에서도 IT 기업 리더들이 자산 기부를 통한 사회문제 해결을 주도한다. 재산 90% 기부를 선언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빌 게이츠나 주식 99% 환원을 약속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CEO 퇴진후 자선사업과 새로운 문제해결에 집중하겠다고 한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등이다.
김 의장 역시 수년 전부터 사회적 영향력을 뜻하는 ‘소셜임팩트’와 ‘사회문제해결’을 입에 달고 살았다. “사회를 지속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조직은 기업”, “기업이 선한 의지를 가지면 사회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다”며 기업의 방식을 차용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내비쳤다. 카카오톡이란 국내 최대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을 만든 그가 사내외 플랫폼을 통해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할 가능성도 있다. 사회공헌재단 카카오임팩트 이사장도 맡고 있는 그는 ‘사회문제 정의 플랫폼 100up’을 만들며 이렇게 말했다. ”플랫폼을 만들어 사회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찾고, 문제정의를 올바르게 해두면 해결은 다양한 방법으로 할 수 있다.”
이번 기부 발표에도 해법에 대한 그의 고심이 묻어난다. 김 의장은 이날 “지난해 3월 (카카오톡) 10주년을 맞아 사회문제 해결의 주체자가 되자고 제안 드린 후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앞서 그는 지난해 3월 직원들에게 공개한 영상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보더라도, 카카오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아직 미흡하단 걸 느꼈다. 사회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5500만명이 쓰는 모바일 플랫폼 만들기엔 성공했지만, 보건ㆍ교육ㆍ환경 등 더 큰 문제 앞에선 무력한 현실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 관계자는 “교육 격차ㆍ일자리 문제ㆍ환경 문제 등 다양한 사회 문제가 심각해진 만큼 확실한 ‘소셜 임팩트’가 필요하단 생각에 기부 결심을 공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의장이 평소 좋아한다는 시(詩)도 그의 기부 결심을 해석하는 열쇠다. 그는 평소 미국 시인 랄프 왈도 에머슨의 『무엇이 성공인가』라는 시를 자주 읽는다고 한다. 김 의장과 가까운 IT업계 인사는 “김 의장은 이 시의 구절을 인용해 ‘내가 태어나기 전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를 카카오톡 상태메시지로 쓸 만큼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강하다”고 전했다.
재산기부 발표 시점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타격을 거의 입지 않은 카카오는 지난해 기업가치가 급등한 기업으로 손에 꼽힌다. 8일 기준 시가총액 41조원에 육박, 1년새 포스코 같은 전통 대기업을 밀어내고 코스피 시총 10위 안에 안착했다. 카카오 주식 13.67%(5조5617억원)를 보유한 김 의장의 재산도 크게 불어났다. 김 의장 개인회사인 케이큐브홀딩스가 보유한 카카오 주식(11.15%, 4조5380억원)까지 합치면 그의 카카오 주식 가치는 10조1000억원에 달한다. 포브스 기준 김 의장은 서정진 셀트리온 명예회장ㆍ김정주 NXC(넥슨 지주사) 대표에 이은 세번째 부호다. 마침 올해초 가족들에 대한 주식 증여도 마무리했다. 그는 약 1450억원 어치의 주식(33만주)을 직계 가족과 친인척에게 증여했다. 사회적으론 여당이 ’코로나 이익공유제‘를 추진하는 등 잘나가는 기업들의 양극화 해소 노력을 요구한단 점에서도 타이밍이 나쁘지 않다.
이제 관심은 김 의장이 기부 재산을 어디에, 어떻게 쓸 할 것인가로 쏠린다. 카카오 관계자는 “교육ㆍ빈부 격차, 소외, 기후변화 등 사회경제 문제 전반에 김 의장의 문제의식이 깊다”며 “혼자서 해결할 문제를 결정하기보단 직원들과 의논하고 사회적 논의의 물꼬를 트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최근 코로나19 이후 더 심해진 ‘격차’ 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2남 3녀 맏이로 태어나 여덟 식구가 단칸방에 살았을 만큼 유년시절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코로나19 이전에도 장학ㆍ교육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단순한 재정 지원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키우고 기회를 주는 방식에 주목했다.
김 의장은 “가르치는 쪽도 배우는 쪽도 단순히 지식에 집중하지만, 이젠 스스로 세상의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2016년 스타트업 캠퍼스 총장 취임사 중), ”N개의 성장 사다리를 만들지 않으면 아이들은 방황한다. 우리가 하늘을 열어줘야 한다“(2018년 C프로그램)며 새로운 교육과 기회를 강조했다. 김 의장은 2014년 1세대 창업자 친구들인 이해진(네이버)ㆍ김택진(엔씨소프트)ㆍ김정주(넥슨)ㆍ이재웅(다음ㆍ쏘카)씨와 벤처기부 펀드 C프로그램을 만들어 교육혁신사업을 지원해왔다.
정원엽 기자 jung.wonyeob@joongang.co.kr
대를 이어 득세하는 관료 출신 금융 마피아
박정희 정권 시절 재무부, 1980년대 재정경제원, 현 기획재정부 경제관료 출신 ‘모피아’는 한국 경제를 주무르며 사익을 추구한다. ‘하나회 척결’ 같은 철퇴를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
ⓒ연합뉴스 이헌재 전 부총리는 금융감독원장, 재정경제부 장관(부총리) 같은 요직을 거친 뒤 김앤장 비상임 고문 등을 지냈다.
“옵티머스 사태의 본질은 모피아와 법비(法匪)가 사기꾼을 만났을 때 발생한 최악의 금융 범죄다.” 옵티머스펀드 사기 사건의 온상이었던 옵티머스자산운용의 1대 대표 이혁진씨가 한 말이다.
모피아(Mofia)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경제 사령탑이었던 옛 재무부(MOF: Ministry of Finance) 출신 인사들을 비꼬아 일컫는 용어다. 당시 재무부에서 1980년대의 재정경제원, 지금의 기획재정부에 이르기까지 경제 사령탑 출신들이 현직 때는 산하기관들을 장악하고 퇴직 이후엔 정계와 금융계로 진출해 서로 밀고 끌어주는 방식으로 막강한 세력을 구축해서 사익을 도모하며 한국 경제를 주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옛 재무부를 의미하는 ‘모프(MOF)’와 이탈리아계 범죄조직 ‘마피아(Mafia)’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을 빗대어 이들을 모피아라고 부른다. ‘법비’는 법을 악용해서 사리사욕을 채우는 법률가들을 의미한다.
문제는 최근 잇따라 발생한 대규모 금융 사기 사건의 검찰 조사에서 내로라할 경제 사령탑 및 법관 출신들의 이름이 거론된다는 점이다. 이혁진 전 대표가 옵티머스 사건과 연루되었다고 지목한 모피아와 법비 역시 한국 정관계에서 최고의 지위에 올랐던 사람들이다.
옵티머스자산운용(이하 옵티머스)의 전신은 이혁진씨가 2009년 설립한 에스크베리타스자산운용이다. 이후 사업가 출신 김재현씨가 에스크베리타스의 경영권을 인수해 2017년 6월 옵티머스로 회사명을 바꾸고 대표로 취임했다. 그해 말부터 옵티머스가 판매한 펀드 상품들이 문제를 일으켰다.
옵티머스 측은 출시한 펀드들이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하는 굉장히 안정적인 상품이라고 소개했다. 공공기관의 납품업체들이 해당 기관에 재화·서비스를 납품했지만 일정한 시기 이후에 돈을 받기로 했다고 치자. 그 납품업체들은 물건을 판 대가로 ‘받을 돈’, 즉 ‘매출채권’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 채권이 예컨대 1억원인데 6개월쯤 뒤에 받기로 되어 있다고 가정하자. 급전이 필요한 납품업체들은 이를테면 그 채권을 9000만원 정도에 팔아 현금을 만들고 싶어 할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지금’ 9000만원으로 사서 6개월 뒤에 공공기관으로부터 1억원을 회수하면 수익 1000만원을 올릴 수 있는 셈이다. 더욱이 공공기관이 돈을 갚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매우 안정적인 투자다.
ⓒ연합뉴스 2020년 10월14일, 옵티머스 사태에 연루된 윤 아무개 금감원 전 국장이 다른 건의 뒷돈 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은 후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그러나 공공기관들은 대체로 납품을 받자마자 바로 현금을 지급하므로 사실은 ‘공공기관 매출채권’ 같은 것은 없다. 옵티머스는 존재하지 않는 상품으로 투자자들의 돈을 끌어모은 셈이다. 이 돈은 존재하지 않는 공공기관 매출채권이 아니라 위험하고 심지어 범죄성까지 보이는 투자(?)들에 사용되었다. 김재현 전 대표는 투자자들에게 받은 돈 가운데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까지 받고 있다. 옵티머스가 굴린 돈은 무려 1조2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옵티머스가 투자자들을 속이고 굴린 돈이 일정한 수익을 내고 회수되었다면 사태가 지금처럼 커지진 않았을 터이다. 그러나 2020년 6월 옵티머스는 투자자들에게 만기에도 돈을 돌려줄 수 없다는 의미인 ‘환매 중단’을 선언한다. 그제야 검찰과 금융감독기관이 수사에 들어가 당시 김재현 대표, 이동열 대표이사, 윤석호 감사(변호사) 등을 구속하게 된다.
그런데 백주대낮에 이런 사기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펀드회사가 단독으로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며, 그렇게 들어온 돈을 직접 관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옵티머스는 투자상품(펀드) 개발과 운용을 맡을 뿐이다.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유명 금융기관들이 이 상품을 고객에게 설명하고 판매했다. 고객의 돈을 맡아(수탁) 옵티머스의 요청에 따라 입출금한 것은 하나은행이었다. 예탁결제원은 이처럼 고객과 옵티머스, 증권사, 하나은행 간 돈이 오가는 과정에 필요한 계산이나 사무를 대행했다. 문제는 옵티머스의 협력사들이 옵티머스 사기를 알아챌 수 있는 처지에 있었는데도 결과적으로 방관한 듯 보인다는 것이다. 이 사기 사건의 배후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 커넥션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옵티머스에 대한 하나은행의 비정상적 특혜
ⓒ시사IN 이명익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하나금융그룹 본사.
이미 검찰 수사 과정에서 유력 인물들의 이름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옵티머스 내부에서 작성된 문건인 ‘펀드 하자 치유’에는 이헌재 전 부총리가 등장한다. ‘펀드 하자 치유’ 문건에 따르면, 옵티머스 사기의 주역인 김재현 전 대표는 2017년 4월 “지인인 양호(회장), 이헌재 고문님이 PEF (사모펀드) 설립을 제안, 진행을 검토했다”라고 되어 있다. 같은 해 12월 옵티머스는 적기시정조치(금융감독원이 재무상태가 불건전한 금융기관에 경영 개선을 요구·명령해서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조치)를 유예받는데, “고문님들의 도움으로” 가능했다고 문건에 적시하기도 했다.
이 문건은 이헌재 전 부총리가 여러 투자 사업을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에게 제안했다고 기록했다. “이헌재 고문이 추천, 남동발전과 추진하는 바이오매스 발전소 프로젝트 투자 중”이라는 대목도 나온다.
이헌재 전 부총리는 금융감독원장, 재정경제부 장관(부총리) 같은 요직을 거친 뒤 김앤장 비상임 고문 등을 지내, 모피아의 대부로 불리기도 한다. ‘이헌재 사단’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오랜 세월 경제관료 출신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막강했다. 이 정도의 힘을 가진 인물이 특정 자산운용사의 고문으로 활동한다는 사실 자체가 수탁사(하나은행), 판매사(증권회사), 사무대행사(예탁결제원)들의 옵티머스에 대한 턱없이 너그러운 행위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온다.
수탁사인 하나은행은 펀드를 매입한 고객들의 돈을 받
아 보관하다가 옵티머스가 지정한 피투자회사로 송금하는 역할을 했다. 문제는 그 피투자회사들이 굉장히 수상한 페이퍼컴퍼니들이었다는 점이다. 하나은행 측은 자사의 의무는 돈의 유출입을 관리할 뿐 그 돈이 어디에 투자되는지 묻거나 감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탁사 역시 자사가 맡은 돈에 대해 마치 자신의 돈을 관리하는 것 정도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선관주의 의무(선량한 관리자 의무)’가 자본시장법에 규정되어 있다.
하나은행은 왜 선관주의 의무를 무시한 것일까?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옵티머스 사기가 벌어진 배경에 하나은행과 모피아의 연결고리인 강경포럼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강경포럼’이란 충남 강경상고 출신 금융권 인사들로 구성된 친목모임이다. 서울 여의도에 사무실을 두고 있어 ‘강경여의도포럼’이라고도 불린다.
옵티머스펀드를 출시하는 과정에서 김재현 대표는 금융권 인맥이 절실했다. 김 대표는 이헌재 전 부총리를 옵티머스 고문으로 영입한 뒤 강경상고 출신이며 이헌재 사단의 모피아로 꼽히는 윤만순 전 금감원 국장을 소개받았다. 윤씨는 금융권에 포진해 있는 강경상고 출신 인사들을 김재현 대표에게 소개했다. 이때 하나은행 임원 김 아무개 전무도 포함됐다. 이런 내용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알려졌다.
옵티머스가 이처럼 금융 모피아와 강경포럼이라는 막강한 세력을 등에 업었기에 마음 놓고 사기극을 벌였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로 하나은행이 옵티머스에 대해 수탁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호의’를 베푸는 정황이 있다. 옵티머스펀드 잔고에 구멍이 나자 임의로 장부 숫자를 고쳐준 것이다. 2018년 8월9일, 하나은행은 옵티머스펀드 판매 증권사에 돈을 송금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펀드 투자자들이 만기 이전에 돈을 돌려달라는 ‘환매 요구’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은 옵티머스의 계정에 있는 돈을 판매사에 송금해줘야 했는데 해당 계정의 잔고가 모자랐다. 그러자 은행 돈을 대신 판매사에 보내주고 옵티머스가 해당 금액을 은행으로 입금하길 기다렸다. 그러나 옵티머스 측은 마감 시간까지 해당 금액을 입금하지 않았다. 하나은행은 임의로 지급준비금의 일부를 덜어내 빈 구멍을 메우고 내부 장부의 수치를 고쳤다. 지급준비금은 고객 예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은행이 중앙은행에 예치해둔 자금이다. 상황이 마무리된 뒤 하나은행은 이런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장부를 고쳐놓았다. 같은 행위가 2018년 10월23일과 12월28일에도 벌어졌다.
금융권에서는 하나은행의 이런 업무처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수탁업무를 맡고 있는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운용사와 수탁사인 은행은 갑을 관계가 아니다. 금액이 안 맞을 때는 운영사인 옵티머스를 상대로 해당 금액을 맞춰달라고 다시 요구하지, 은행 내부에서 임의로 조정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옵티머스에 대한 하나은행의 비정상적 특혜 조처는 그뿐이 아니다. 당초 옵티머스는 안전한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하겠다고 공표하고서도 하나은행에는 정체불명 회사 4곳의 사채를 사들이도록 지시했다. 정상적인 은행이라면 이의를 제기했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은행은 별다른 문제도 삼지 않고 옵티머스 지시대로 사채를 사들였다.
ⓒ시사IN 신선영 2020년 10월21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금융정의연대 등이 옵티머스 사태 관련 금융 당국과 금융사의 책임 방기를 규탄하고 있다.
하나은행이 유독 모피아에 약한 이유
하나은행이 옵티머스의 불법행위에 원칙대로 문제를 제기했다면 대규모 펀드 사기 피해를 막을 수도 있었을 터이다. 뒤늦게 금융감독원은 수탁사인 하나은행이 내부 장부 수치를 임의로 조정한 행위 등에 대해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통보했다. 하나은행 측은 이에 대해 “환매자금은 하나은행이 한국은행에 개설한 결제전용예금계좌(지급준비결제계좌)에서 은행 고유 자금으로 지급한 것이다. 시스템상 마감 때문에 내부적으로 장부 수치를 조정한 것일 뿐 펀드간 돌려막기는 없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대형 시중 금융기관 중 하나은행이 유독 모피아의 위력에 약하다고 지적받는 데는 뿌리 깊은 역사가 있다. 하나은행은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작은 단자회사(단기 자금을 빌려주거나 중개하는 금융기관)에 불과했다. 1991년 은행 면허를 얻은 하나은행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몸집을 불렸다. 이헌재 사단의 막강한 힘이 작동했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에 이헌재 당시 금감원장과 최흥식(전 금감원) 원장이 지휘하는 지배구조개선팀에서 충청은행, 보람은행, 서울은행 등 세 은행을 하나은행이 흡수하도록 지속적으로, 전폭적으로 지원해줬다”라고 말했다. 2015년에는 하나은행이 외환은행까지 흡수하면서 일약 국내 4대 금융지주그룹으로 급성장했다.
하나은행의 이해할 수 없는 행태는 옵티머스 사태가 처음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단군 이래 최초’라는 수식어를 단 초대형 금융대출 사기 사건(KT E&S 대출 사기)이 터졌다. 사기 주범 서정기씨 일당이 16개 금융기관에서 무려 1조8000억원을 사기 대출받아 착복하고 정관계 로비 자금으로 뿌렸다. 이 중 무려 1조1000억원의 불법 대출금이 하나은행에서 나왔다. 당시 서정기씨 등 대출 사기 주범들은 약 5년 동안 수백 회에 걸쳐 하나은행에 수기로 작성한 허위 매출증(물건을 팔고 돈을 받기로 약속한 계약을 기록한 증권. 앞으로 돈이 들어온다는 증거이므로 은행에 담보로 제출하고 대출받을 수 있다)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거액을 빌렸다. 그런데도 하나은행 측에서는 아무런 현장 실사도 하지 않았다. 정상적인 은행 대출 심사 시스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당시 사기범들의 또 다른 표적이었던 우리은행 같은 다른 금융기관은 서정기씨 등이 담보로 제출한 매출증권이 수상하다며 현장 실사를 예고했다. 그러자 대출 사기가 들통 날 것을 우려한 주범들은 황급히 대출 신청을 철회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사기 범죄단에 대한 허술한 대처로 하나은행은 당시 1600억원을 회수하지 못하는 손해를 보았다. 하지만 현장 실사도 없이 거액을 빌려준, 무모하기 짝이 없는 대출 심사에 대해 금감원이 뒤늦게 행정징계를 내리기 전까지 하나은행은 자체적으로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았다. 하나은행 측의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느슨한 대출 심사에 하나금융그룹 수뇌부와 정권 핵심부의 유착 의혹이 불거지는 것은 당연했다.
ⓒ연합뉴스 2014년 2월11일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관들이 KT E&S 협력업체 사기 대출 관련 압수수색을 위해 서울 강남구의 한 협력업체로 들어가고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약해지지 않는 모피아
한국의 모피아들은 금융산업과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펀드 사기 사건은 물론 대형 인수합병(M&A)에서 불거지는 시비에도 모피아로 불리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모피아의 원조라 할 수 있는 개발독재 시대의 재무부는 당시 희귀했던 금융자원을 배분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런 과정에서 재계나 금융계의 인맥과 커넥션을 맺으며 업무를 추진하던 관행이 후대에까지 이어지면서 청산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재직 시에 이런 커넥션을 통해 막강한 힘을 발휘하던 모피아들이 퇴직한 뒤엔 ‘먼저 차지하는 게 임자’라는 듯이 고액 연봉을 받는 각종 금융협회장 자리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다.
경제 사령탑 출신들의 낙하산 인사와 금융 모피아의 득세는 개혁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다. 지난해 말 손해보험협회장 자리는 재무부 관료 출신 정지원씨가 단독 후보로 나서 거머쥐었다. 정지원 회장은 한국증권금융, 한국거래소에 이어 손보협회장까지 낙하산 3관왕을 차지했다. 서울보증보험 대표는 유광열 전 금감원 수석부원장이다. 전국은행연합회장도 재경부 관료 출신 김광수씨가 내려앉았다. 김광수 회장은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 과장,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 금융정보분석원장을 거쳐 2018년부터 NH농협금융 회장을 맡았다.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행정고시 동기다.
국회 정무위 소속 박용진 의원이 지난해 금감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기재부 출신 경제관료 중 상당수가 117곳의 금융기관에 재취업했다. 서민금융진흥원, 신용보증기금, 예금보험공사, 기업은행, 예탁결제원, 자산관리공사, 주택금융공사, 산업은행 등 8곳의 금융 공공기관 중에서는 산업은행(이동걸 회장)을 제외하면 7곳의 수장이 모두 기재부와 금융위 출신이다. 분야별로 보면 공공기관 45명, 은행 25명, 증권 45명, 생명보험 30명, 손해보험 36명, 협회 6명, 기타(카드·저축은행) 20명이다. 금감원 등 나머지 기관 출신 284명도 퇴직 후 금융기관에 낙하산 취업해 막강한 모피아 군단을 형성하고 있다.
모피아의 연봉도 파격적이다. 지난해 신한은행에 영입된 관료 출신 상임감사의 연봉은 5억원으로 책정됐다. 국민은행과 전북은행 상임감사 연봉도 각각 3억8000만원, 3억원 수준이다.
이렇게 낙하산으로 자리를 차지한 모피아들은 현직에서의 막강한 파워와 연대감으로 선후배를 챙겨주면서 대정부 로비를 일삼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보다 해당 금융기관의 이권을 챙기는 데 골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피아의 폐해에 대해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은 이렇게 말했다.
“금융 마피아들은 자기들끼리만 뭉치는 이너서클이 따로 있다. 그 힘은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약화하는 법이 없다. 금융정책 등을 개혁하려면 그 취지에 맞게 인사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곳곳에 포진한 모피아의 세력은 전혀 약화되지 않고 영향력을 강화했다.”
모피아와 금융권의 공고한 카르텔은 더 이상 모피아들이 스스로 자성이나 염치 차리기를 바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 중론이다. 금융 비리의 온상인 모피아의 폐해를 이대로 계속 방치하다가는 금융산업 발전과 혁신은 기대하기 어렵다. 모피아에 대해 ‘하나회 척결’과 같은 철퇴를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되는 이유다.
시사인 정희상 기자
모피아의 섭외 1순위
금융감독원은 대형 금융사기단의 범죄를 사전에 막아야 하는 조직이다. 하지만 이 기관이 금융 모피아 등 외풍의 영향으로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되었다.
금감원은 중앙행정기관인 금융위원회의 산하조직으로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감독 업무를 수행한다. 상급기관인 금융위가 금감원의 예산과 인사에 큰 영향을 미친다. 금융위 인사들이 금감원 수석부원장으로 가는 것이 인사 관행이다.
금감원은 지금까지의 일부 대형 금융 사기 사건에서 본연의 임무인 비위를 적발하고 예방하기는커녕 일부 직원들이 사기단과 한통속이 돼 비리를 저지르는 흑역사를 갖고 있다. 무려 2조원 규모인 ‘제이유 주수도 다단계 사기 사건’ 당시 금감원 팀장은 주수도로부터 억대 뇌물을 받고 시중은행 대출을 알선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 시절 ‘단군 이래 최대’로 기록된 KT E&S 대출 사기 사건에서도 주범인 서정기씨 일당이 금감원 관계자와 유착했다. 당시 대출 사기단은 은행에서 사기로 대출받은 자금으로 경기도 시흥시의 임야 116만㎡(약 35만 평, 구입가 230억원)를 매입한 뒤 그 부지에 ㈜신천지농장을 조성했다. 이 과정에서 금감원 김 아무개 팀장이 사기단에게 물주를 소개해주는 대가로 신천지농장 지분 30%를 갖기로 했는가 하면, 수차례에 걸쳐 억대 호화 골프여행 접대를 받는 등 사기범 일당과 유착된 사실이 드러났다.
1조6000억원대 라임펀드 사기 사건에도 금감원 직원의 비리가 도사리고 있었다. 금감원은 라임 측의 펀드 돌려막기 낌새를 알아채고도 제때 대응하지 않았다. 뒷돈을 받고 라임 측을 도운 금감원 직원이 있었다. 청와대에 파견되어 있었던 해당 직원은 라임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금감원 조사 보고서 일부를 불법적으로 건네줬다. 금감원은 지난해 봄 해당 직원이 검찰 수사에서 적발됐는데도 6개월 동안 손 놓고 있다가 라임펀드 사태가 크게 불거진 뒤에야 겨우 감봉 징계를 했다.
전현직 금융 모피아들의 유대는 금융회사들이 금감원 출신을 감사 자리에 앉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금융과 관련된 일들은 비밀리에 추진되는 경우가 많고 인맥에 의해 시스템이 무력화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로비와 이권이 개입되면서 금융 권력자들 간 ‘짬짜미’가 활개를 치는 것이다.
사기 뒤에 어른거리는 힘센 분들의 그림자
대형 사기 범죄의 이면에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조력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범죄행위를 단속해야 할 수사기관 간부들의 이름도 나온다. 옵티머스펀드 사기 사건과 관련해서도 거론된다.
ⓒ연합뉴스 2013년 9월 채동욱 검찰총장이 사퇴 발표를 한 뒤 대검찰청을 떠나고 있다.
21세기 들어 한국 사회에서 천문학적 규모로 기록된 대형 사기 사건들로 수많은 서민이 피해를 보았다. 자살과 살인, 가정파괴 등 사회악적 폐해를 양산한 이런 대형 사기 범죄 이면에는 유감스럽게도 각계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조력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범죄행위를 단속해야 할 검경 등 수사기관 간부들 면면이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다.
검찰이 ‘단군 이래 최대 사기 사건’이라고 칭한 제이유그룹 주수도 사기 사건에는 김강자 전 총경과 서한샘 전 국회의원, 박세직 향군회장 등 각계 사회 저명인사 67명이 고문단으로 포진했다. 또 송광수 전 검찰총장은 주수도씨가 구속되자 변호인으로 이름을 올렸다가 구설에 휘말리자 사임하기도 했다. 2007년 터진 제이유그룹 주수도 사기 사건 당시 주범 주수도씨는 이들 정·관계 유력 인사에게 많게는 8억원부터 적게는 수천만 원의 검은돈을 건넨 사실이 드러났다. 주씨는 피해자들에게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인 2조원대의 사기 자금으로 각계각층 유력자들에 접근해 투자금, 공익성 법인후원금, 고문료 등 다양한 로비자금 전달 수법을 구사했다. 로비 효과로 국세청으로부터 800억원대의 세금을 감면받았고, 국회에서는 제이유그룹의 다단계 사기에 유리한 방향으로 방문판매법 개정안까지 이끌어내기도 했다.
지난해 1000명 넘는 펀드 가입자에게 5000억원대 사기 피해를 입힌 옵티머스펀드 사기 사건과 관련해서도 사회 지도층 인사가 여럿 거론된다. 이헌재 전 부총리를 비롯해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양호 전 나라은행장, 김진훈 전 군인공제회이사장 등이다. 옵티머스 고문으로 올려진 유명인사들의 이름은 이 사기 조직이 금융기관들로부터 자금을 유치하는 데 큰 몫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옵티머스 측은 그 대가로 이헌재·양호 고문에게 매월 500만원을, 군 장성 출신인 김지훈씨에게 다달이 200만원을 고문료로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펀드나 각종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사업 구상, 인맥 소개 등을 도와주는 명목이었다. 옵티머스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대표로 있는 법무법인 서평과도 법률자문 계약을 맺어 매월 500만원을 자문료로 주었다고 한다.
“이헌재 소개로 채동욱 고문 위촉”
옵티머스 사태가 터지기까지 검찰이 소극적으로 대처해 대형 사기 사건을 미리 막지 못한 배경으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역할이 주목되기도 한다. 지난해 7월 구속 기소된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 등이 작성한 ‘펀드 하자 치유’ 문건에는 “2018년 12월 이헌재 고문님 소개로 채동욱 변호사 고문 위촉, 형사사건 전담토록 함”이라고 적혀 있다. 이 문건에는 또 “문제 발생 시 김재현 대표의 도주를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는 내용과 함께 “주범(김 대표)의 도주로 인하여 수사 진행이 어렵다는 취지의 검찰 작업은 필수. 채 총장님 등과 상담 필요”라는 문구가 나온다.
옵티머스 유현권 고문은 채동욱 전 총장과 함께 수사 대응 시나리오를 짜고 이를 시행하기 위한 대가로 서평 측에 7억원을 주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채동욱 전 총장이 대표로 있는 로펌 ‘서평’은 지난해 10월 서울남부지검이 수사해 옵티머스 관계자들을 기소한 ‘성지건설 무자본 M&A(인수합병) 사건’을 수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서평 측은 “당 법인은 옵티머스 사기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고 사건이 이슈화한 직후인 지난해 6월 자문 계약을 즉각 해지했다”라고 해명했다./시사인 정희상 기자
여권인사 우수채용병원’ 조민 인턴 병원에 풍자 현판 내건 시민단체
경축, 친여 친정부 인증’ ‘환자들이 소중하지 않습니까’
풍자 화환·현수막 등장…“지금이라도 적절한 조치 해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가 인턴으로 합격한 한국전력공사 산하 한일병원에서 시민단체가 풍자 현판을 내걸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입시 비리 의혹을 받는 조씨에 대한 인턴 합격을 취소하라는 취지다.
보수 성향 시민단체 ‘신(新)전대협’은 8일 서울 도봉구 쌍문동 소재 한일병원을 찾아 간판에 ‘여권인사 우수채용병원’이라고 적은 간이 현판을 걸었다. ‘경축 한일병원, 친여 친정부 병원 인증’이라는 문구가 담긴 화환과 “한일병원, 환자들이 소중하지 않습니까”라고 적은 현수막도 등장했다.
신전대협은 기자회견을 열고 “(한일병원은) 의사 면허는 물론이고 학위마저 취소될 가능성이 높은 지원자를 인턴으로 선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조씨의 입시 7대 스펙은 모두 허위로 밝혀졌다”며 ”(고려대, 부산대의) 입학 취소 조치가 이뤄진다면 조씨의 의사 면허 또한 자동 취소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법은 입시비리 혐의 등으로 기소된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대 교수에 대해 조씨의 고려대·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입시에 활용된 ‘7대 스펙’이 모두 허위라며 징역 4년형을 선고했다.
신전대협은 “의사들은 피해를 입는 환자가 단 한 명이라도 나오지 않도록 조씨의 의사면허를 자격정지 시켜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면서 “(한일병원은) 지금이라도 양심과 의료윤리를 회복해 적절한 조치를 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또 신전대협은 “한전은 이전에도 대선캠프 출신 등 정치권 인사나 임직원들의 친인척들을 대상으로 한 특혜 채용 문제로 몸살을 앓아 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주장은 국민의힘 황보승희 의원이 지난 5일 “하필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의 부인이 부서장으로 있는 한일병원에서 1등으로 합격했다면 특혜 가능성을 의심할 만하다”고 특혜 채용 의혹을 제기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다만 의혹에 이름이 거론된 정 의원은 “약사는 약제부장인 제 아내가 면접을 보지만 의사는 의사들이 알아서 뽑는다고 한다”며 “제 아내는 조민양이 지원한 지도 합격한 지도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했다. 약사가 의사 뽑는 데 관여할 수 없다. 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이게 상식”이라고 일축했다.
시민단체 신전대협 회원들이 8일 서울 도봉구 한일병원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조민 씨 인턴채용 합격을 규탄하며 ‘여권인사 우수채용병원’ 문구가 새겨진 현판식을 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정부 들어 출범한 보수성향 대학생단체인 신전대협의 이름은 1987년 조직됐다 해체된 운동권 단체(전대협)를 풍자하는 의미로 지어졌다. 전국에 3000명의 회원이 활동한다고 주장하는 이 단체는 지난해 단국대 천안캠퍼스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풍자성 대자보를 붙여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신전대협 소속 김모(25)씨는 건조물 침임 혐의로 벌금 50만원이 선고됐다.
일각에서는 한일병원에 대한 신전대협의 현판식 퍼포먼스를 두고 사유지 침입과 시설물 훼손 아니냐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한일병원 측은 “내부 논의를 거쳐 법적 대응 여부 등을 검토할 수 있다”고 언론에 밝혔다. 다만 신전대협은 현판을 양면테이프로 붙였다가 기자회견 종료 후 제거했는데, 경찰은 한일병원 측이 문제를 제기하면 현행법 위반 여부를 검토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나경원 전 의원 딸에게 일어난 흔치 않은 일
[하성태의 인사이드아웃] 10과목에서 성적 정정, 검찰은 '교수 재량'이라고 불기소
"문재인 정부의 여러 프레임 공격으로 인한 혐의(자녀 특혜 의혹 등)들에 대해 검찰이 모두 무혐의 처분을 했다. 그게 출마에 대한 판단의 여지를 넓혀줬다."
- 1일 <시사저널>, '[인터뷰] 나경원 "安, 자신 있다면 우리 당 경선 들어오라"' 중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나경원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털어놓은 출마 결심의 결정적 계기다. 나 전 의원은 이어 "결단력 있게 해결해 나가며 국민의 지지도 받고 현 정권을 심판할 부분을 해야 하는데 그 부분엔 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라고 덧붙이긴 했다. 그래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검찰의 역할을 언급한 대목일 수밖에 없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는 지난해 12월 24일 나 전 의원 자녀들과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조직위원회, 사단법인 스페셜올림픽코리아(SOK) 등과 관련된 고발사건을 무더기로 불기소(13건은 불기소, 1건은 기소중지) 종결 처리했다.
"여지를 넓혀줬다"라는 말의 해석을 달리하면,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없었을 경우 '판단의 여지'가 좁혀질 수도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일까. 나 전 의원은 여러 매체 인터뷰에서 지속해서 "이성윤 검찰로부터 무혐의를 받았다"라거나 "이성윤 중앙지검장이 저한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줄 줄은 몰랐다"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검찰이 아닌 이성윤 검찰이란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보수‧경제지들이 '친 추미애', '추미애 측근'이라 일컬었던 이성윤 중앙지검장이 진두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이 일종의 면죄부를 부여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나 전 의원. 그 역시 검찰의 수사나 기소에 '정치적 판단'이 어느 정도 개입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셈인가.
검찰의 불기소 처분으로부터 3주 후 나 전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윤 총장이든 이 지검장이든, 결과적으로 검찰이 서울시장 예비후보 나경원의 출마 결정에 날개를 달아준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일부 언론이 인터뷰에 나선 나 전 의원에게 질문을 던져도 "사건조차 안 되는 거"라는 고발 사건들은 그렇게 검찰에 의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헌데, 석연치 않다. 나 전 의원을 단 한 번도 소환조사하지 않은 검찰이 일부 사건을 무혐의 처분한 사유 말이다. 우선, 최근 나 전 의원 관련 사건을 서울고검에 일괄 항고한 시민단체 중 하나인 '사립학교개혁과 비리추방을 위한 국민운동본부'가 공개한 나 전 의원 딸의 성적 정정 내용만 봐도 그랬다.
검찰의 크리스마스 선물
▲ 사립학교개혁과 비리추방을 위한 국민운동본부가 공개한 나경원 전 의원 딸의 성적 정정 내용. 검찰의 불기소 결정문엔 이와 같은 성적 정정이 모두 10번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 사립학교개혁과 비리추방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대학을 다녀본 누구라도, 특히 교수나 강사, 재학생이라면 두 눈을 의심할 만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2학년부터 4학년까지, 총 네 학기에 걸쳐 각기 다른 과목에서 무려 10번의 성적이 향상됐다. Dº가 A+가 되고, C가 A나 B로 정정된, 비상식적으로 성적이 올라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성적 정정 자체만큼 눈길이 가는 것은 교과목과 비고란(정정 절차)이었다. 나 전 의원 딸 김아무개씨는 성신여대에서 실용음악과를 전공했다. 맞다. 지난 2016년 부정입학 의혹이 제기됐던 바로 그 학과다.
일례로, 김씨가 C+에서 A+을 받은 과목은 영화예술의 이해다. 수강생이 대규모인 인기 있는 교양과목 중 하나다. 타과생들과 함께 수강하는 강의이기에, 성적 경쟁도 당연히 치열할 수밖에 없다. 김씨는 이 인기 교양과목에서 C+에서 A+로 성적이 정정됐다. 다른 과목들 역시 2013학년도 2학기 '화성법2', '콘서트 프로덕션'을 제외한 나머지도 전공과목이 아닌 걸로 보인다.
검찰은 이 모두를 "교수와 강사의 재량"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말이다, 전국의 대학에서 각기 다른 연도의 각기 다른 10개 (교양) 과목의 교수(강사)들이 특정 학생의 성적을 일제히 월등하게 높여 정정해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그 흔치 않은 일이 나 전 의원 딸에게 일어난 셈이다.
정정 절차도 의아하다. 전공과목은 학과 이메일을 통해, 여타 교양과목은 학생지원팀의 협조문을 통해 이뤄졌다. 민생경제연구소 등 고발단체는 그 과정에서 교수나 강사의 의사가 배제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최근 <더팩트>가 보도한 검찰의 불기소 결정서에 따르면, 검찰은 이 모두를 "교‧강사의 재량"으로 봤다. 검찰은 "변경 편차가 비교적 큰 과목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장애학생의 특수성과 이를 고려해 학칙상 인정되는 교‧강사의 재량을 고려하면 부당한 성적 변경의 근거로 단정하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김씨는 장애학생 절대평가(일정 점수를 넘으면 해당 학점을 부여하는) 대상이었다. 성신여대 학칙‧학사 규정상 일반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상대평가에서 예외 적용을 받았다. 이에 검찰은 김씨 외 다른 장애학생 4명도 성적을 정정 받았고, 강사들도 제3자의 요구나 외압은 없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검찰은 "장애학생 절대평가 시행 초기(2013~2014년) 위와 같은 세부 절차나 제도가 정립되지 않아 어떤 경로로든 교·강사의 의사가 전달되면 학사지원팀이 성적을 정정했던 것으로 확인된다"라며 "교·강사의 요청서 없이도 다양한 방법으로 교·강사의 의사 확인이 이뤄진 것으로 보이므로, 학과 명의 이메일로 성적변경 요청이 됐다는 점만으로는 부당한 성적 조작이나 개입이 있었다고 단정이 어렵다"라고 증거불충분의 사유를 설명했다.
정말 이걸로 충분한 걸까. 다른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한 서울지역 대학교수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저 정도의 성적 정정이라면 '대학이 권력에 도륙당했다'고 표현하는 편이 맞습니다"란 반응을 보였다.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우종학 교수도 격한 반응을 보이며 의구심을 제기한 이들 중 하나였다.
현직 대학교수들의 이어진 의문표
아니, 어떻게 나경원 전 의원의 자녀가 들은 과목의 강사들이 다들 집단적으로 그렇게 성적평가를 엉망으로 했다가 재평가를 해서 추가 점수를 수십 점이나 주고 성적을 올려줄 수 있다는 걸까요? 한 명의 강사도 아니고 10명의 강사가 재량으로 성적을 올려주었다면 누구라도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지요. 그것도 한두 등급이 아니라 C, D 수준의 최하위 성적을 A급으로 올려준 경우가 4과목이나 됩니다.
강사들이 뇌물을 받았거나, 학교 측으로부터 다음 학기에 과목을 안 준다는 압력을 받았거나, 외부 청탁을 받았거나, 그런 이유로 이렇게 성적이 드라마틱하게 변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훨씬 합리적이지 않나요? 저만 그런 거예요? 대학에서 10년 넘게 성적을 내왔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6일 우종학 교수 페이스북 글 중 일부
절대 평가와 상대 평가의 차이와 사후 점수 변경 자체의 논란 여지, 다른 학생들과의 형평성 여부를 조목조목 짚은 우 교수. 그는 "수십 점의 추가 점수를 근거 없이 보태주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라며 "이것은 불법입니다. B, C를 받은 학생들을 다 무시하고 D를 받은 학생을 갑자기 A로 올려주는 것은 불공정하고 불의한 일입니다. 이런 건 허락되지 않습니다 강사 재량으로 볼 수 없습니다"라고 강조하고 있었다.
또 다른 현직 교수는 검찰 무혐의 처분 사유로 언급된 '장애인 학생 별도 평가'의 경우 성신여대 학사규정 제39조(성적 평가) 항목에 해당한다고 지적하며 "정정이나 변경에 관한 것이 아니라 평가 항목이므로 이 조항의 적용이 적절하였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서울시장 선거 본경선 미디어데이에서 나경원 경선 후보자가 기호추첨을 마친 뒤 자신의 사진 위에 서명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지난 2016년 3월 해당 의혹을 최초 제기한 <뉴스타파>가 <성신여대, 나경원 딸에게 성적도 특별 대우 정황> 보도에서 공개한 김씨의 담당 강사 인터뷰는 꽤 충격적이었다. 성적 정정의 과정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시험 성적이 "빵점"인 것은 분명했다.
콘서트 프로덕션을 가르친 강사 B씨는 "당시 김씨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 백지를 내면서 '교수님, 교수님 강의가 너무 어려워서 뭐라고 써야 할지 몰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답안지를 써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B씨는 "시험 성적만으로는 빵점이었지만 출석과 수업태도를 반영해 점수를 매긴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강사 B씨가 당초 나 의원 딸에게 매긴 점수는 확인되지 않았다.- <뉴스타파>, '성신여대, 나경원 딸에게 성적도 특별 대우 정황' 중에서
정유라 학사 특혜 사건 당시 검찰은 전방위적인 수사를 통해 정유라의 출석부를 허위기재하고 과제물과 시험지 등을 위조한 이화여대 교수를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했고, 2018년 대법원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한 바 있다. 검찰은 과연 나 전 의원 딸 사건을 정유라 학사특혜 사건과 동등한 잣대로 수사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또 검찰은 나 전 의원의 부친이 설립한 사학법인 홍신학원 관련 배임 의혹 사건 역시 "홍신유치원의 위성 사진과 주변 공인중개사의 의견 등을 종합해 주변 시세보다 낮은 곳이 맞다"라고 판단했다. 나 전 의원이 회장으로 재직하던 사단법인 스페셜올림픽코리아(SOK)가 나 전 의원의 지인 자녀를 특별채용했다는 의혹 사건 또한 채용 절차 및 관련 규정을 지켰느냐 여부나 서류의 미비보다 지인 자녀에게 입사 면접을 먼저 권유한 SOK 측 주장을 무리 없이 받아들여 무혐의 처분했다.
이쯤 되면, 합리적 의심을 해보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검찰이 나 전 의원 사건을 철저히 수사한 것이 맞는지, 성적 정정이 "강사의 재량"이라던 검찰 역시 수사 과정에서 "검사의 재량"을 용인한 것은 아닌지.
위안부=매춘부 틀린 것도 아냐"…박유하 교수 누구?
지난달 위안부 손배소 판결도 비판
"재판부 위안부 인식에 문제 많아"
지난 2015년 12월 2일 당시 책 '제국의 위안부'를 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박유하(세종대 국제학부) 교수가 프레스센터에서 성명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가지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윤창원 기자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존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교수를 옹호하는 글을 올린 게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램지어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로 규정한 논문을 최근 내놨다.
박유하 교수는 지난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위안부를 '매춘부'로 주장했다는 하버드 교수의 글을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 정확한 건 말할 수 없다"면서 "보도만 보자면 이 교수의 주장은 역사적 디테일에선 크게 틀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썼다. 이어 램지어 교수가 '미쓰비시 일본 법학 교수'라는 공식 직함으로 재직 중인 점을 들어 '전범기업 후원 교수'라는 국내 비판이 나오는 것에 대해 "무조건 망언이니 심지어 전범기업 교수라고 할 이야기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쓰비시를 전범기업이라고 하는 것도 문제지만 기업의 연구비가 역사정치적 목적으로 주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을 전범기업으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를 밝힌 것이다. 다만 그는 "'위안부=매춘부'라는 주장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당시 일본군이 중국 우한에 위안부 공양비를 세운 점 등을 근거로 램지어 교수의 주장에 일부 힘을 실었다.
지난해 6월 24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의 모습. 이한형 기자
박 교수의 발언이 논란이 된 것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8일 박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2021년 1월 8일 위안부 손배소 판결에 부쳐'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재판부의 위안부 인식에 문제가 많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이번 소송의 쟁점은 한국 재판부가 일본이라는 국가를 상대로 판결을 내릴 수 있는지 여부를 따지는 '국가면제' 대상인지에 있었다"며 "일본은 '국가면제' 대상이라는 주장과 함께 한일 합의를 근거로 재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논리로 일관한 듯한데, 그러다 보니 내용에 관해서는 아예 터치하지 않은 듯하다"고 썼다. 그러면서 "보도자료에 따르면 재판부의 위안부 인식에 이미 문제가 많다"며 "원고 측 주장을 그대로 옮겨 놨을 뿐이기 때문이겠지만, 학문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역사'법정의 한계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위안부 동원과 관련해 "유괴나 납치의 행위자는 유괴범이나 업주들이었다. 일본은 그런 행위에 대한 단속지침을 내렸고 실제로 경찰들은 납치범들을 잡아들였다"며 "(판결에서) 불법행위의 주체를 일본정부로 단정하고 있지만 옳지 않다. 위안부 동원에 대한 비판을 하려면 오히려 '법'의 바깥에서 이루어진 일임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5년 12월 2일 당시 책 '제국의 위안부'를 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박유하(세종대 국제학부) 교수가 프레스센터에서 성명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가지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윤창원 기자
앞서 박 교수는 2013년 8월 출간한 책 '제국의 위안부'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정신적 위안자', '군인의 전쟁 수행을 도운 애국처녀', '자발적 매춘부' 등으로 표현해 국민적 공분을 산 바 있다.
이에 법원은 박 교수의 저서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9천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이옥선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9명은 박 교수와 세종대 학교법인 대양학원을 상대로 손해배상금 9천만원 압류 및 추심명령 신청해 박 교수의 월급을 압류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 1일 일본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램지어 교수의 '태평양전쟁 당시 성(性) 계약'(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일부 공개했다. 이 논문에서 램지어 교수는 "위안부 여성들은 성매매를 강요당한 성노예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램지어 교수는 유소년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고, 지난 2018년 일본 경제와 사회를 홍보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 훈장인 '욱일장' 6가지 중 세번째 등급인 '욱일중수장'을 수상한 바 있다.
특히 지난 1972년 미쓰비시가 하버드 법대에 100만 달러를 기부하면서 개설한 '미쓰비시 일본 법학 교수(Mitsubishi professor of Japanese legal studies)'라는 직함을 받은 것으로도 알려져 '전범기업 후원 교수'라는 국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연합뉴스
노컷뉴스 송정훈 기자
tlstkekd-해방후 위안부가 귀국하면 가는곳이 종삼 서울역 양동 도동 창녀촌이었고 박정희시절까지 위안부는 말도 못꺼내고 살다 왜정시대를 잘아는사람들이 죽고 없어지니 정신대 위안부가 악발이 여성단체에 이끌려 이른바 성폭력 피해자로둔갑되었다.일본의 주장도 설득력있다
몽구-떠오르는 매국 잡년놈 윤서인 박유하
인생 왜 그렇게 사냐
민들레-뭐 이런 상또라이가 있어 니가 그런가보다
일본매춘부구나
황장군-지도 똑같이 당해봐야 정신차리지..
나가자맨-야이 개XXXX년아 저런게 교수라니
별라군-제발 일본으로 귀화해서 너희 나라에서 헛소리를 해라...그럼 돈도 벌고 너한텐 좋잖아...부탁한다. 일본에서 대학나오고 혐한서적 같은 것 내서 일본에서 상도 받았던데..왜 여기서 이러는거냐
위안부 망언 하버드 교수, 美 지지받는 이유 있었다
日정부, 위안부 관련 극우주장 담은 6권 요약본 유포
램지어 교수도 6권 인용…"위안부, 일본군 사랑했다"
램지어 교수 옹호하는 미국인들도 6권 요약본 들먹여
일본 정부 조직적인 '위안부 역사왜곡 프로젝트' 먹혀
'위안부는 매춘부였다'는 미국 하버드 대학 마크 램지어 교수의 주장으로 한반도가 발칵 뒤집혔지만 미국 언론은 침묵 중이다. 이 소식을 다룬 미국 언론사는 8일(현지시간) 현재 나오지 않고 있다. 다만 국내에 소개된 대로 하버드 대학교 교지(The Crimson)에 관련 기사가 전날 게재됐다. 해당 기사에는 이날 오후 현재 100여건의 댓글이 달려 있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와 달리 램지어 교수의 글을 옹호한 댓글들도 적지 않다. 'KenT'라는 필명은 "당시 여성인권 학대(abuse)가 과연 누구 책임인지가 의문"이라면서 "딸들을 끔찍한 상태로 내몬 아버지가 많았다는 당시 기록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3명의 찬성과 3명의 반대를 각각 받은 것으로 돼 있는 해당 댓글은 "당시 한국은 가부장적 사회였다"면서 "일본군이 '사랑하는 부모들'에게서 딸들을 강압적으로 납치해 갔다는 이야기는 근거가 없다"고도 했다.
그는 '소정희' 라는 이름의 한국계 미국인 교수의 '2008년 책'을 인용해 이 같은 주장을 폈다.
한국계 미국인 교수 '소정희'의 '2008년 책'을 인용해 주장한 'KenT'의 댓글. 하버드 대학교 교지(The Crimson) 홈페이지 캡처
'소정희' 교수는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교 교수로, 2008년 '위안부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식민지배 이후의 기억'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낸 인물이다. 이 책은 일본 제국주의와 한국의 가부장제가 결합해 어린 여성들을 가정 학대에서 피해 성노예가 되도록 몰아갔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한국 민족주의자들의 정치와 국제 여성인권운동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불완전한 인식(incomplete view)에 기여했다는 논리를 폈다. 램지어 교수를 옹호한 'KenT'라는 댓글러를 '정신무장' 시켜준 것이 바로 소정희 교수의 책이었던 셈이다. 문제는 소정희 교수의 책이 일본정부가 미국에서 위안부 관련 역사를 왜곡시키기 위한 '프로젝트'에 활용해 온 책이라는 사실이다. 앞서 일본 외무성은 2019년 5월 위안부 문제를 극우적 시각에서 조명한 6권의 저작물을 해외에 유포시키기 위해 2~3페이지의 영어 요약본을 만들었다.
해외 기관의 로비 등록을 의무화한 미국 법무부의 해당 사이트(justice.gov/nsd-fara)에는 뉴욕주재 일본 총영사관이 당시 컨설팅업체(Marathon Strategies)와 관련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고 신고한 것으로 돼 있다.
용역 계약의 목적에 대해서도 일본의 목적에 다가가기 위한 공공 전략을 개발하고 시행하기 위해서라고 명시했다.
6권의 용역 계약서. justice.gov/nsd-fara 자료 캡처
바로 이 6권의 저작물에 소정희 교수의 책이 포함돼 있다. 문제의 저작물 목록은 아래와 같다.
6권의 저작물
①소정희, '위안부; 성폭력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식민지배 이후의 기억'
②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③이우연(반일종족주의 공저자), '전시 일본에 동원된 한국인 탄광 노동자들'
④하타 이쿠히코, '전장에서의 위안부와 섹스'
⑤니시오카 쓰토무, '2차 대전 당시 한국인들 모집의 현실'
⑥아치 미야모토, '위안부에 관한 전시 군대 기록'
지금도 소정희 교수를 설명한 '위키피디아'에는 ①번 요약본이 참고자료로 게재돼 있다.
이번에 파문을 일으킨 램지어 교수의 논문 '태평양전쟁의 성매매 계약'도 이들 저작물을 인용한 것으로 돼 있다. 그가 2019년 3월 하버드 로스쿨 교지에 올린 또 다른 글 '위안부와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 글에서 "한국인들은 일본 시민들이었다. 확실한 것은 일본 정부는 한국인들을 여러 면에서 2등 시민들(second-class citizens)로 다뤘다. 일본은 한반도를 점령하고 1910년 병합했다. 그리고 호의가 있어서 정복하지 않았다. 1919년까지 일부 한국인들은 폭력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했다"고 적었다.
일제의 침략을 '호의(kindness)'라는 말로 설명한 반면 3.1운동을 '폭력적 운동'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가 당시 위안부들이 대부분 돈벌이를 위해 자발적으로 모집된 것이라고 주장한 것도 이 같은 시대 인식 때문으로 보인다.
램지어가 재팬 포워드에 기고한 글 "정대협은 공산당". 재팬 포워드 캡처
그는 또 이렇게 서술했다.
"모든 한국인들이 맹렬한 항일 정서를 공유한 것은 아니다. 토착 왕조가 부패하고 비효율적이었던 것에 반해 일본 정부는 안정된 명령을 내렸다. 많은 한국인들이 이 새로운 체제를 받아들임으로써 반응했다. 1938~1943년에 백만 명 이상의 한국인들이 일본군에 자원했다. 입대자 중에는 장교도 있었고, 장군까지 진급한 사람도 있었다."(⑥아치 미야모토의 '위안부에 관한 전시 군대 기록')
그는 이어 위안부와 일본군들 사이에 사랑이 싹텄다고도 했다.
"많은 위안부들은 일본군과 동일한 국가정체성을 느꼈던 것 같다. 바로 그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이 위안부와 일본군 사이의 사랑과 연민이었다. 바로 이 같은 위안부들의 기억을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이 없애려 한 것이다. (중략) 위안부들이 일본군을 사랑하고,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인 역사는 어디에도 없는 역사다."(②박유하 교수, '제국의 위안부')
이렇듯 램지어 교수의 위안부 관련 주장은 일본정부의 왜곡 '프로젝트'의 결과물일 가능성이 크다.
램지 교수는 논문 뿐 아니라 일본의 극우매체인 산케이 신문의 해외 홍보매체 '재팬 포워드(Japan Forward)'에도 위안부 관련 기고문을 영문으로 싣고 있다. 그는 지난달 12일에도 '위안부에 대한 진실 회복'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한국의 수요집회에 대해서 한국 공산당이 만든 단체(정대협)가 조직화했다고 허위 주장을 펴기도 했다.
워싱턴=CBS노컷뉴스 권민철 특파원
스마트팜-하버드 교수는 그렇다 치고라고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토왜들이 더 큰 문제이지요.
mgs-우리의 주적은 북한,일본,중국이다.
최후종결자짱-우리 정부는 뭐하나?
조선인민-미국 하버드대 존 마크 램지어 교수 누가 좀 죽여버려주세요 성금모아 돈 드릴께요!!!!!!!! 아 짜증나.......
강종수-모든 문재의 발단은 한일 합방 을사조약이다. 조선 말기를 일본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조선이 엉망이었으니 일본이 정한 잣대로 남의 나라 내정을 간섭하면서 짓밟은 것 아니냐? 누가 감히 남의 나라 들어와서 겁탈을 했냐고??? 그리고 결국 전쟁을 일으켜 조선의 딸들을 어쨋건 잡아갔건 속여 데려 갔건 군인들의 정력 해소를 지원하였으니 어쨋건 강제가 아니고 뭐냐 접대부라면 현찰 줬냐? 부표 나눠주고 돈을 결국 돈을 주지 않았잖나? 위안부를 전쟁에 이용한 나라가 어딧냐? 더러분 일본 잡넘들아....
szy-접대부는 합당한 돈이라도 받지. 위안부가 어디 합당한 돈을 받았나. 그리고 누가 자원해. 강제로 끌려간 수많은 자백을 뒤로 하고 수많은 자원자? 개소리 작작해. 성리학적 유교질서에 목매던 여자들이 돈 번다고 왜국으로 가 몸을 팔아? 에라이 ㅆㄴ아
“생전에 좋아하시던 라면과 김치입니다”…차례상이 바뀐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제삿상 차리기 등 전통 변화 앞당겨져
그래픽/이은별·김혜인 교육연수생
.독립서점 ‘스페인책방’을 운영하는 40대 남성 다미안(42·필명)은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눈 뒤 이렇게 결정했다. 훗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 생전에 좋아하시던 라면에 김치를 올려놓고 제사상을 차리기로.
“아버지가 키우지 않은 사람이 차린 홍동백서를 따른 제삿상에, 아버지가 드시지도 못하는 술을 올리고 절하는 것은 아버지라는 고유한 사람을 기리는 데 적당한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 아버지의 제사라면, 남은 가족이 모여 서로 안부를 확인하고 아버지를 추억하는 것이 훨씬 의미 있다고 봐요.”
3년 전 결혼한 그는 부모님 생일 등을 챙기러 고향집에 갈 일이 생기면 보통 혼자 간다. 명절도 마찬가지다. “며느리가 남편 집에 가서 전을 부치는 게 명절의 목적은 아닙니다. 자기 가족의 일은 각자 알아서 처리하는 것이 좋겠죠.”
간혹 아내 에바(37·필명)와 함께 부모님 집에 가면 그는 부모님이 아내를 ‘아들의 친구’처럼 대해주길 바란다. 이들 부부는 폐백, 예물 등을 거부하고 치른 결혼 과정을 <행여혼신>(2018)이라는 책으로 엮었다. 결혼 뒤에는 가부장적 명절 문화를 바꿔나가려 노력 중이다.
다미안과 에바 부부처럼 생각하는 사람에겐 코로나19 전염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5인 이상 모임 제한 지침은 새 명절 문화의 촉매가 된다.
2남 중 차남인 송권재(46)씨도 이번 설 연휴에 형과 자신만 부모님을 방문해 차례를 지내기로 했다. 두 며느리와 손주들은 모바일 영상통화로 안부 인사를 하기로 했다. 송씨는 “정부에서 5인 이상 모이지 말라 해도 부모님께 먼저 못 간다고 말하기 어려웠는데, 이번에 부모님께서 먼저 내려오지 말라고 말씀을 해주셨다. 두 형제만 가기로 했고, 손이 많이 가는 제사용 음식은 구매하기로 했다. 음식을 거의 안하는 방향으로 할 것 같다”고 했다.
이지수 작가 인스타그램툰
친척이 한 자리에 모이고, 예법을 따른 차례를 지내는 전통적 방식의 명절 문화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제법 널리 퍼져 있다. 온라인 설문조사기관 두잇서베이가 2019년 설날을 전후로 남녀 4081명에게 명절·차례·제사 문화를 물었다. 명절에 차례·제사를 지낸다는 응답은 54.7%였다. 명절 스트레스 지수를 묻는 질문에 ‘높은 편’이라고 답한 비율은 39.4%였다. 차례·제사 문화에 대해서는 ‘지속하되 시대변화에 발맞춘 변형이 필요하다’(57%)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28.3%였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 제공.
‘온라인 제삿상에 지방(종이에 고인의 이름 등을 적어 위패로 삼는 것)을 쓸 수 있어서 실제 차례 지내는 느낌이 난다’ ‘애들에게도 온라인으로 제사에 관해 가르쳐 줄 수 있어 좋다’ ‘차례 지내는 영상을 해외 가족들한테 에스엔에스로 공유할 수 있어서 좋다’ ‘차례상에 더 다양한 음식을 차릴 수 있게 해주세요’.
지난해 추석, 온라인으로 차례상을 차리고 비대면 성묘를 한 사람들이 남긴 후기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 이(e)하늘장사정보시스템은 전국 346개 추모시설에 가족을 모신 이들에게 온라인 추모·성묘 서비스를 제공한다. 온라인 추모·성묘 서비스를 제공하는 누리집에서 음식 그림을 마우스로 끌어다 옮겨 차례상을 차릴 수 있다. 키보드로 지방을 쓸 수 있고, 헌화와 분향도 할 수 있다. 추모 영상을 메신저나 에스엔에스로 친척에게 공유할 수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장례문화진흥원 관계자는 “지난해 추석 연휴 23만명이 이용했고, 올해는 설을 앞두고 차례를 미리 지내려는 이용자들이 지난 1월18일부터 하루 2000~3000명 꼴로 접속하고 있다. 이번 설에 많은 이들이 온라인 추모·성묘 서비스를 편하게 이용할 있도록 지난 추석 뒤 이용자들의 후기를 반영해 시스템을 고도화했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어기면 처벌도…명절에 꼭 지켜야 할 방역수칙
이번 설 명절에는 무엇보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한 명 한 명의 노력이 중요한데요.
'이 정도는 괜찮겠지'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다간 벌금형이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설 명절 방역 수칙과 이를 어길 때 받을 수 있는 처벌을 윤솔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이번 설 명절 가장 유의해야 하는 방역 수칙은 '5명 이상 모임 금지'입니다.
방역 당국이 오는 14일까지 5명 이상 사적으로 모이는 걸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만큼, 아무리 명절이어도 직계 가족이라도 같은 집에 살고 있지 않다면 모여서는 안 됩니다.
만약 위반할 경우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1인당 1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또 몰래 만났다가 확진자가 발생하는 경우 국가가 치료 비용과 손해 등에 대해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연휴 기간 밀접 접촉자로 분류돼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면, 잠깐이라도 밖에 나가서는 안 됩니다. 지난해 법이 개정되면서 자가격리 대상자들에 대한 처벌 규정이 신설됐습니다.
코로나19에 확진되지 않더라도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가격리 중 집을 벗어나 27분 동안 근무지와 카페 등을 방문한 30대 A씨에게 벌금 300만 원이 선고됐고, 격리 통보를 받고도 집 앞 식당을 방문한 50대 B씨는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됐습니다.
이 밖에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거진 다툼이 폭행으로 번져 실형이나 벌금형이 선고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만큼, 명절 기간 외부인을 접촉할 땐 꼼꼼히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 방역 수칙을 지키는 게 중요합니다.
연합뉴스TV 윤솔입니다. (solemio@yna.co.kr)
따순 봄날 오니라” “불효자는 옵니다”…현수막에 담긴 ‘고향의 마음’
아그들아∼ 따순 봄날에 오니라.”
전남지역 자치단체들이 설을 앞두고 현수막을 내걸고 ‘고향방문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다양한 내용의 지자체 현수막에는 고심의 흔적이 역력하다. 연로한 주민들이 명절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리는 사람들이 해당 지자체 공무원들이다.
하지만 농어촌지역 지자체들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도시에 비해 많지 않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우려한다. 노인들이 많은 지역 특성상 코로나19 감염은 자칫 소중한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 설을 앞두고 지자체들이 내건 방문 자제 현수막에는 이런 우려가 담겨있다.
전남 보성군이 설 방문 자제를 요청하며 건 현수막.
보성군의 현수막은 정겹다. 군은 ‘아그들아∼ 이번 설날에는 오지말고 따순 봄날에 오니라’ 라고 적힌 현수막을 걸었다. 정겨운 전라도 사투리로 말하는 ‘부모님 들’의 당부는 들어야 할 것 같다. 고향을 방문하고자 했던 계획이 머뭇거려진다.
강진군의 청년단체의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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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자’가 될 것인가 말 것인가. 강진군 청년단체의 현수막은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든다. ‘불효자는 옵니다’는 문구 밑에 ‘설 연휴, 찾아뵙지 않는 게 효입니라’ 라고 적었다. 고향을 찾았다가 코로나19 감염으로 부모님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 보다 오지 않는 게 ‘효’라는 발상이다.
전남 신안군의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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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며느리들은 신안군 ‘엄마·아부지’의 며느리가 부러울 수도 있겠다. 신안군은 ‘엄마·아부지’ 명의를 빌려 고향 방문을 자제시키고 있다. 군은 ‘아들, 딸, 며느리! 이번 설에는 고향 안 와도 된당께!’ 라는 문구로 혹여 고향 방문 부담을 가질 자녀들을 먼저 배려하고 있다.
전남 장흥군의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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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수막을 보면 이번 설에는 부모님 용돈을 더 드려야만 할 것 같다. 전남 장흥군의 현수막은 ‘유머’가 담겼다. 군은 ‘아그들아! 이번 설날은 오지 말고 용돈만 많이 보내라. 우리도 안갈란다’ 라는 내용으로 현수막을 만들었다.
전남 구례군의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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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군은 방역 지침 준수를 당부하는 내용이다. 군은 ‘마스크는 당기시고 고향 방문은 밀어주세요’라는 내용으로 방역수칙 지키기 캠페인 현수막을 만들었다.
전남 완도군의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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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형제를 지키는 일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지 않을까? 완도군도 방문 자제를 당부하는 현수막을 만들었다. 설 명절 귀성과 역귀성을 자제하는 것이 ‘고향을 지키는 일! 여러분들의 부모, 형제를 지키는 일!’ 이라고 밝힌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설날 먹는 떡국은 우리나라에만 있을까?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떠올리는 떡국의 형태는 우리나라만 있는 것이 맞는다. 하지만 아시아의 농경 문화권에서는 대부분 곡식으로 만든 떡의 형태를 새해 첫날 음식으로 먹는 풍습이 있다.
일본에서는 찹쌀가루로 소위 ‘모찌’를 만들어 나무 제기에 켜켜이 쌓아 신에게 바치는 공물로 두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불에 구워 먹거나 살짝 녹인 후 ‘조니’라는 된장국에 넣어 먹는다. 일본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쭉 늘어나는 새해 음식으로 길게 늘어나는 만큼 장수하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중국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중국 남부지역에서는 보통 새해에 ‘탕원’을 많이 먹는다. 우리나라로 치면 새알옹심이와 비슷한데 찹쌀가루로 만든 경단을 설탕으로 달게 끓인 국물에 넣어 먹는 요리로 홍콩 등지에는 디저트로 판매하는 전문점도 있다. 탕원의 발음이 단원(團圓)과 같아서 가족의 단란함을 의미하기도 하고 경단처럼 둥글고 원만하고 화평한 한 해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한다.
베트남에서는 찹쌀 속 안에 돼지고기와 완두콩을 넣고 쪄낸 떡과 같은 형태의 음식을 먹는데, 네모 모양으로 만들어 손님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는 대표적 슬로푸드다. 10시간 동안이나 쪄야 해서 찌는 동안 친척들과 밤새 덕담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반면 라오스, 태국, 스리랑카, 캄보디아 등의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는 계절적 영향으로 4월에 설날을 맞아서 이런 문화가 상대적으로 별로 없고 축제를 여는 경우가 더 많다.
▶설날 음식 더 알아두면 좋은 TIP
전은 왜 살이 많이 찔까?=우리나라 명절 음식으로 빠지지 않는 전은 보기에도 기름이 좌르르 흐르는 게 열량이 높다. 호박같이 칼로리가 적은 음식으로 만들어도 결과는 같다. 원재료와 계란이나 밀가루로 만들어 낸 껍질이 기름을 머금고 있으며, 이 기름에는 포화지방산이 많기 때문이다.
명절에 마시는 한 잔은 괜찮지 않을까?=명절에는 자연스럽게 음주의 기회도 늘어난다. 대부분 명절에 조심해야 할 것이 과음이라고 하지만 사실 과음만큼 좋지 않은 음주 습관이 하나 더 있다. 하루 종일 조금씩이라도 계속 먹는 것이다. 제사 지내고 한 잔, 성묘 가서 한 잔, 저녁에 한 잔, 밤에 얘기하면서 한 잔 하다 보면 뇌의 중추신경이 서서히 마비되면서 취기도 덜 느끼게 되므로 총 음주량은 늘어나고 몸은 더 망가진다. 특히 안주로 먹는 기름진 명절 음식은 간에 더 무리가 된다.
식혜도 조심?=우리나라의 대표적 음료인 ‘식혜’는 명절에 주로 등장하는 음식이다. 그런데 만드는 과정에서 당분이 많이 생성되므로 칼로리가 높아 주의할 음식으로 꼽히곤 한다. 실제 칼로리상으로는 한 잔에 100㎉ 정도로 공기밥의 1/3 정도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당뇨 환자를 제외하고는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기본적으로 제대로 만든 식혜는 효소의 함량이 높고 식이섬유가 풍부해서 소화를 촉진하는 작용을 하므로 칼로리 소모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식혜의 주재료인 맥아는 현대 한의학에서도 소화기능을 돕는 약재로 사용된다.
한의사·임성용한의원 대표원장 / 경향
기사 출처가 이상해 다시 추적했더니
한 선배 이야기다. 매년 4월18일 학교에서 4·19국립묘지까지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대학교 새내기가 됐다. 달리기에 자신 있던 선배는 이를 악물고 달렸더니 5등을 했단다. 5등까지 주는 작은 상을 받았다고. 2학년 때도 참가했으나, 막걸리 과음으로 체력이 망가졌는지 결과는 18등 했단다. 입상권 밖이다. 그러나 4·18 기념 마라톤 특별상으로 18등인 자기도 상을 받았다고. 3학년 때는 30등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웬걸? 4·19혁명 30주년 기념으로 30등인 자기가 상을 받았다고. 그것도 더 큰상을. 이쯤 되면 입상은 실력이 아니다. 타이밍이다.
이번 주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재정 관련 뉴스는 IMF에 따르면 대한민국 2025년도 국가채무비율이 64.96%가 된다는 소식이다. 37개 선진국 중 증가 폭이 9위라고 한다. 이 뉴스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SBS 등 40개가 넘는 기사에서 인용되었다. 특히, 서울경제, 파이낸셜뉴스, 이투데이, 디지털타임스 등은 사설에서도 다뤘으니 이만하면 ‘빅히트 상품’이다. 그런데 모든 기사가 IMF 자료를 인용했으니 그 출처는 과연 IMF일까?
▲ 연합뉴스는 7일 IMF 세계경제전망 자료를 인용했다고 하나 IMF는 7일 세계경제전망 자료를 발표한 바 없다.
7일 IMF 세계경제전망 자료를 인용했다고 하나 IMF는 7일 세계경제전망 자료를 발표한 바 없다.
40여 개의 기사를 보면 거의 모두 “7일 IMF에 따르면”이라고 출처를 달아놨다. 그러나 IMF는 대한민국이 2025년에 국가채무비율이 64.96%가 된다는 자료를 2월7일 발표한 적이 없다. IMF는 몇 달에 한 번씩 경제 전망치(World Economic Outlook)를 발표한다. 가장 최근 자료는 21년 1월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국가채무 자료 업데이트는 없다. IMF가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 국가의 국가채무비율을 발표한 시점은 지난해 10월이다. 그래서 IMF 경제전망치 ‘2020년 10월(IMF WEO oct. 2020) 자료에 따르면’이라고 출처를 달아야 한다.
그럼 7일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기자가 지난해 10월 IMF 자료를 본 날이 7일이라는 의미다. 기자가 7일 IMF 홈페이지에서 자료를 봤을 수도 있고, 아니면 기재부가 IMF 자료를 7일 언론사에 제공했을 수도 있다. 언론계에 이상한 관행이 있다. 오래전 자료를 인용해서 기사를 작성하려면 좀 뜬금없을 수 있다. “그 기사가 중요한지는 알겠어. 근데 왜 하필 지금이지?”라는 질문이 나올 수도있다. 이를테면 지난해 1월1일에 발표된 어떤 자료를 이제야 봤다. 그런데 기사 가치가 여전히 존재한다면, 21년 2월7일 기사를 쓸 수 있다. 그럴 때 기사 출처는 ‘지난해 1월1일 발표된 어떤 자료에 따르면’이 아니다. ‘7일 어떤 자료 따르면’이라고 눙치는 이상한 관행이 있다. 기자가 그 자료를 본 시점이 언제인지는 뉴스 가치가 없다. 누가 언제 그 자료를 발표했는지가 중요하다. 중요한 자료라면 발표된 타이밍을 놓쳤다 하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말자. 그냥 솔직히 원자료가 발표된 시점을 기록하고 그 자료가 왜 지금 시점에서 보아야 하는지 논리적 근거를 더 충실히 하면 된다.
그런데 왜 지난해 10월 자료가 ‘갑툭튀’ 40여개 언론에서 기사화가 되고, 여러 개의 사설을 이제야 장식할까? 이 비밀을 알고자 한다면 더 중요한 타이밍을 알아야 한다. 첫 번째 기사는 7일 새벽 5시에 출고된 연합뉴스다. 그리고 7일은 일요일이다. 전에도 일요일 새벽 5시에 출고된 연합뉴스 기사가 많은 언론에서 인용되는 비밀을 다룬 적이 있다.
[관련기사 : 연합뉴스 기사, 인용될수록 강해진다?]
일요일 출근한 기자들이 출근해서 컴퓨터를 켰을 때, 그날 새벽에 연합이 일용할 양식을 줬다면, 일하기 싫은 일요일 기사 하나가 뚝딱이다. 다만, 출처는 정확히 하는 것이 좋다. 정확한 출처는 ‘7일 IMF에 따르면’도 아니고 ‘20년 10월 IMF 경제전망’도 아니다. ‘7일 연합뉴스에 따르면’이라고 인용해야 한다. 어차피 연합뉴스를 통해 누구에게나 공개된 IMF자료를 확인했기 때문에 IMF를 출처로 해도 괜찮지 않을까?
▲ 연합뉴스 보도를 토대로 7일 IMF를 출처라고 인용한 기사와 사설
그럼 한 번 IMF 원자료를 보자. 2020년 10월 IMF WEO 보고서에는 관련 내용이 없다. IMF 보고서에는 한국 국가채무비율 관련 언급 자체가 없다. 관련 내용은 IMF 보고서와는 별도로 IMF가 20년 10월 발표한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한다. 195개 IMF의 회원국 정부의 수입, 지출, 재정수지, 총부채, 순부채 등의 각종 재정자료 수십년 치와 2025년까지의 예측치가 모두 들어있는 광활한 정보의 바다다. 그 정보의 바다 중에서 선진국을 택하고, 총부채 비율을 선택한 후에 하필이면 2025년 총부채비율에서 2015년 총부채비율을 뺀 수치가 “37개 선진국 증가폭 중 9위”라는 제목을 달아서 출고한 기사다. 자료출처만 IMF WEO oct. 2020이지 특정한 정책적 목적을 통해 상당히 공을 들여서 분석한 결과다.
IMF 재정 데이터베이스를 보면 한국 재정은 꽤 건전한 편에 속한다. 선진국 37개 재정수지 건전성 순위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5위에서 2020년 2위로 올라간다. 21년도 국가채무비율 건전성 순위가 11위다. 특히 연합기사가 언급한 2015년부터 2025년까지 재정수지 비율을 합산해 봐도 한국은 37개 국가 중 재정수지 비율 건전성이 상위 10위에 랭크된다. 즉, 2015년부터 2025년을 따지더라도 한국 재정 수입과 지출의 차이는 ‘벌어진 악어입’이 아니라 제법 건전한 축에 속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재정 데이터베이스를 이리저리 돌려봐서 한국에 불리한 자료를 찾는 실력과 노력은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를 무시하고 출처를 ‘7일 IMF’로 하는 것은 물론 ‘IMF 2020년 10월 경제 전망치’로 달아도 안 된다. ‘7일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이 돼야 한다.
다만 오해는 마시길. IMF 데이터베이스 자료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서 부정적인 지표를 하나 뽑아냈다고 저 기사의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현재는 물론 2025년도 재정건전성 지표가 좋다 하더라도 그 증가율이 너무 가파른 것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중요한 부분을 지적한 좋은 기사다. 이 사실을 발견한 사람이 기자 본인이든 또는 정부부처 누군가에게 제공 받았는지 중요하지 않다. 다만, 만약 정부부처 누군가에게 IMF 데이터베이스를 가공한 자료를 받은 것이라면 연합 기사 출처는 이렇게 돼야 한다.
‘기획재정부가 분석한 IMF 2020년 10월 경제 예측치에 따르면’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mediatoday
14억 대륙 울린 사진 한 장…그녀 이름은 '어머니’
최근 중국에선 11년 전 찍은 사진 한 장이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에서 빠르게 퍼져 나갔습니다. 2010년 1월 30일 중국 중남부 장시성의 난창(南昌)역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우리의 설에 해당하는 중국 최대 명절 춘제를 앞두고 한 여성이 고향에 가는 장면입니다. 어른 키만한 커다란 짐을 등에 짊어지고, 한 손에는 갓난아이를, 다른 손에는 불룩한 배낭을 땅에 끌리다시피 들고 걸어가는 사진입니다. 짐 무게에 허리는 굽어 있습니다.
● 커다란 등짐에 양 손엔 아이와 배낭…'춘윈 엄마'
이 한 장의 사진은 중국인들의 가슴을 울렸고, 그녀에게는 '춘윈 엄마'라는 별칭이 붙었습니다. 여기서 '춘윈(春運)'은 중국의 춘제 특별 수송 기간을 말합니다. 넓은 땅에, 인구도 많다보니 중국은 통상 춘제 전 15일부터 춘제 이후 25일까지, 40일간을 춘윈 기간으로 정합니다.
이 사진이 11년이 지나 다시 널리 퍼진 까닭은, 중국 매체가 이 여성이 누군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찾아 나섰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이 사진 속 여성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이 컸던 탓입니다.
신화통신 기자는 장시성 100개에 가까운 지역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산둥성과 광둥성에서도 계속 수소문을 했다고 합니다. 허사였습니다. 그러다 네티즌이 제공한 단서를 근거로 지난 1월 21일 드디어 사진 속 주인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쓰촨성 량산 이족자치주에 살고 있는 32세의 이족 여성 바무위부무(巴木玉布木)였습니다.
시장에서 아이들에게 옷을 골라주고 있는 바무위부무
● 사진 속 아이 세상에 없어…벽돌 운반에 담배 농사
바무위부무의 스토리는 다시 한 번 중국인들을 울렸습니다. 사진 속 갓난아이는 세상에 없었습니다. 신화통신 기자는 "하늘과 땅을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아이는 그녀의 둘째 딸이었는데, 2010년 고향에 돌아온 지 6개월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병원이 워낙 먼 데다, 약도 없어 제대로 치료도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 바무위부무는 돈을 벌기 위해 외지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난창의 한 벽돌공장에서 벽돌을 날랐습니다. 둘째 딸이 자주 아파 2010년 춘제에 딸을 데리고 고향으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바무위무부가 살던 고향 마을
바무위부무는 "아이가 자신처럼 큰 산에 갇혀 살기를 원치 않아" 외지행을 택했다고 합니다. 이후 그녀는 세 번째 아이를 가졌지만, 태어난 지 열흘도 안 돼 또다시 생사의 이별을 겪어야 했습니다. 슬픔에, 몇 날을 곡기를 입에 안 댔다고 합니다. 가족의 위로로 다시 일어섰고, 지금은 큰 딸과 세 명의 어린 아이를 두고 있습니다.
바무위부무는 남편과 함께 산중턱의 황무지를 일궈 담배 농사를 지었습니다. 2월 1일부터는 푸젠성으로 옮겨 와 해삼 양식을 하고 있습니다. 큰 딸은 중학생이 됐고, 막내도 이번에 유치원에 들어갑니다. 둘째 딸(아이들이 모두 살아 있었다면 넷째 딸)은 성적이 우수하고 반장까지 맡고 있다며 바무위부무는 웃었습니다.
푸젠성에서 해삼 양식을 하고 있는 바무위부무
중국 매체들은 바무위부무를 '빈곤 탈출'의 상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모든 인민이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이른바 '샤오캉(小康)' 사회 달성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 공산당 창당 100년이 되는 올해를 샤오캉 사회 원년으로 선포했습니다. 일부 중국 관영 매체들은 바무위부무 관련 기사에 '지난 8년간 1억 명의 가난한 사람들이 빈곤에서 벗어났다'는 내용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한 여성의 역경을 정치적인 도구로 삼는 게 옳은지는 차치하고, 바무위부무가 우리네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나라는 다르지만, 가족을 위해 그 무거운 짐을 마다않는 모든 어머니들의 숭고하고 강인한 삶을 떠올리게 합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이번 설에 고향에 못 가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저도 베이징에 있다 보니 한국에 가기는 어렵습니다. 어머니에게 한 통이라도 더 전화를 드려야 겠습니다.
(사진 출처=중국 신화통신) / SBS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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