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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2.10~2.15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못한 놈들

by 이성근 2020. 2. 9.


             2.10 중앙-한국

도시에서 사람을 유기농으로 키우는 타이완

미국과 이란의 질기고 깊은 악연

울먹인 진중권 "조국, 어떻게 그렇게 살고 사회주의자 자처하나"

발리 발묶인 우한 관광객 3000, 전세기 마련해도 "안 간다

시대를 넘어 응답하라 민중가요

마치 반전처럼, 트로트 열풍

민주노총 언론장악에 맞선 투사가 된 태극기 유튜버

숙대 입학 포기사건, 혐오에 힘 실어준 언론

"위안부 기사 날조 잘못 없다"는 일본 법원, 수상하다

정의당 "민노동 당원이었던 봉준호 감독, 정의당으로 승계 안돼

끊임 없는 선거개입 논란, 역대 정부와 비교해보니

우리나라 지폐에 독립운동가가 없는 황당한 이유

혐오·공포 조장에 감염된 언론, 재난 앞에서도 편가르기

최기상까지 전현직 판사 정치권행 마무리사법의 정치화우려

 

박사모에서 레지스탕스로, 가장 인상적인 극우세력

이미경 수상소감에 뚝심 CJ’ ‘영화계 천편일률화아침신문 솎아보기]

최영미 “1987년 백기완 캠프서 당한 성추행, 말도 못 한다

올해 표준지 공시지가 6.33% 상승서울 7.89% '최고'

집값 초양극화-] 턱없이 벌어진 아파트 가격...지방 4채 팔아야 서울 1?

경실련의 국민주권운동낙선운동 앞장선다

바이러스가 폭로한 정치의 위기

먹어도 먹는 게 아닌 아동 흙밥 보고서

사교육 1번지 대치동 아이들의 길밥 보고서

한겨레 2.5 사설] 불출마 의원 앞세운 위성정당’, 이게 보수 혁신인가

70만표 벽 넘으면 의제정당꽃핍니다

서울이 유령도시’? 언론의 지나친 프레임보도

크루즈선의 공포, 비정상국가 일본 민낯 드러내다.

크루즈 '악몽의 나날들'...'코로나' 환자 폭발적 증가

민주당, 비판 칼럼 쓴 임미리 교수·경향신문 고발

부동산 탈세 천태만상아빠 찬스로 고가 아파트 꿀꺽30

이만희는 구원자가 아니다이만희 교주 내연녀 김남희씨, 신천지 실체 폭로

코로나19’ 직격탄, 어떤 업종?

복지국가는 불평등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4.15총선 키워드는 '불평등'

동물권 단체 '상의탈의 퍼포먼스'"착유당하는 동물들 고통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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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징도리 2.10~14



도시에서 사람을 유기농으로 키우는 타이완

타이완 선거우 마을은 CSA 성공 사례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유기농 벼농사 등에 종사하는 귀농인들이 공동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타이중에 있는 수허위안에서는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는 대사를 양성한다.

 

시사IN 이오성 타이베이에서 1시간 거리인 이란현 선거우 마을. 150여 농가가 다양한 활동으로 마을을 변화시키고 있다.

 

중국을 바꾸는 반향청년들의 도전

타이베이 중심가에서 차로 1시간이면 도착하는 이란현 선거우 마을. 이란현은 타이완에서도 농촌 체험 프로그램으로 이름난 곳이다. 한국인 여행자도 자주 찾는다. 마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시멘트로 구획된 반듯반듯한 논이었다. ‘시멘트 이랑주위에는 번듯한 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타이베이 사람들이 별장으로 쓰는 고급 주택이었다. 우리로 치면 경기도 양평 정도 되는 교외 지역인 셈인데, 논밭이 즐비한 농촌마을이 휴양촌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이 마을의 주인공은 도시의 건물주들이 아니다. 유기농 벼농사 등에 종사하는 150여 농가가 마을을 변화시키고 있다. 도시에서 귀농한 이들 농가는 농촌 마을과 도시 소비자를 잇는 CSA(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공동체 지원 농업)를 실현하고 있다. CSA는 농가와 소비자가 1년 동안 생산할 농산물의 품목과 수량을 결정하여 공급하는 시스템이다. 소비자가 미리 돈을 내면 농가는 유기농 채소와 과일 등을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언뜻 꾸러미사업과 닮았지만, 소비자들이 생산과 유통과정에 여러 형태로 참여하며, 자연재해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경우 소비자가 그 리스크도 함께 나눈다는 점이 큰 차이다.

 

대산농촌재단 연수단이 방문한 토요일 오후 마을에서는 철새 탐방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도시에서 아이와 함께 온 가족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도시인들은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일을 마치고 저녁에 찾아오기도 한다. 타이베이(265만명), 신베이(400만명) 등 대도시와 가까운 이란현은 CSA가 자리 잡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시사IN 이오성 구둥 구락부를 이끄는 라이칭쑹 씨.

 

마을을 변화시킨 주역은 라이칭쑹 씨다. 그는 2004년 이 마을에 구둥(穀東) 구락부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타이완 최초의 CSA 농장이었다. 400여 명에 이르는 소비자 주주가 구둥 구락부에서 생산하는 유기농 쌀과 농산물을 먹는다. 라이칭쑹 씨의 명함에는 만다오(慢島, 느린 섬) 생활유한공사 대표라고 적혀 있다.

 

선거우 마을은 타이완에서도 CSA 성공 사례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식농 교육(먹거리 교육)을 최초로 실시하면서 사회 교과서에도 실렸다. 리덩후이 전 총통이 방문하기도 했다. 중국, 싱가포르, 일본 등 해외에서도 연수를 위해 찾는다.

 

1970년생인 라이칭쑹 씨는 한국의 학생운동 출신 귀농인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 대학에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고, 이후 환경과 생태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1990년대 일본에서 생활협동조합 일을 배우고 타이베이로 돌아와 소비자협동조합인 타이완 주부연맹 구매 담당자로 일했다.

 

2000년 이후 그는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출퇴근에만 매일 2시간이 걸리는 도시에서 인생을 낭비해야 하는가라는 회의가 들었다. 그즈음 마침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도시인이 늘어났다. ‘농부가 되고 싶은 도시인에게 기회를 줄 수 없을까생각하게 되었다.

 

라이칭쑹 씨는 즐거움을 강조했다. ‘힘든 도시 생활을 접고 농촌으로 왔다면 당연히 즐거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그 결과 마을에는 농산물 직거래 장터를 겸한 헌책방과 카페, 식당 등이 만들어졌다. 농한기에는 오키나와 음악의 밤같은 이벤트를 개최하고 농촌방송을 개국해 마을 사람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게끔 했다.

 

라이칭쑹 씨는 선거우 마을의 변화가 디딤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타이완 전체로 봤을 때 마을의 생산량은 턱없이 낮지만 타이완 농업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라고 말했다. ‘타이완 농업이 못하는 일은 바로 젊은이들을 농촌으로 오게 하는 일이다.

 

이런 귀농인 가운데에는 이란현 농림국장을 지냈던 양원취안 씨도 있다. 그는 2014년부터 라이칭쑹 씨와 함께 ‘200(ha)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선거우 마을을 넘어 인근 마을의 귀농 귀촌자도 함께하는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게 목표다. 이를테면 충남 홍성군 홍동면 같은 귀농 플랫폼인 셈이다.

 

타이완 중부 도시 타이중에서도 독특한 실험이 이뤄지는 곳이 있다. 수허위안(樹合苑)은 도시에서 먹거리 교육을 하는 커뮤니티 공간이다. 이곳은 실험공간부터 별나다. 중심가에 자리 잡은 건물은 언뜻 보면 잘 꾸민 플랜테리어(식물 인테리어) 카페 같다. 그런데 내부에 생태화장실이 있다. 용변을 보고 화장실 벽에 있는 손잡이를 돌리면 톱밥과 섞인다. 톱밥과 섞인 변은 자연발효되어 퇴비로 쓰인다.

 

대산농촌재단 천멍카이 씨가 커뮤니티 화폐를 들어 보이고 있다.

 

도시와 농촌 연결하는 대사양성

수허위안에서는 요즘 대사(ambas-sador)’ 양성이 한창이다. 대사란 도시에서 직업을 갖고 농민과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농촌 외교관을 말한다. 예컨대 1명의 대사가 유기농 콩 농사를 짓는 10명의 농민과 관계를 맺어 판로를 개척해주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대사는 두부 장인과정을 배워 창업에 나선다. 커피 장인, 된장 장인 등도 가능하다.

 

농촌 대사가 되는 과정은 5단계다. 1단계는 자기 돈을 내고 농산물을 사는 것. 2단계는 수허위안 등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며 깊은 관계를 맺는 것. 3, 4단계는 대사가 되는 과정을 배워 활동하는 것. 마지막 5단계는 농촌으로 이주해 사는 것이다. 아직은 시작 단계다. 2017년부터 대사 양성을 시작했다. 농촌과 도시를 어떻게 이을 것인지 퍼즐을 맞춘 지 오래되지 않았다. 발효식품 과정을 중심으로 수십 명이 과정을 밟았다.

 

수허위안을 이끄는 건 천멍카이 씨다. 그는 원래 반도체 회사를 운영하다가 건강이 악화하면서 먹거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엔 유기농 식당을 운영하다 2007년 수허위안이 있는 자리에 파머스 마켓을 열면서 첫발을 뗐다. 그는 연수단에게 도시에서 유기농으로 사람을 키우는 것에 대해 말했다. “농약을 생각해볼까? 농약은 도시에서 경쟁을 의미한다. 잡초처럼 능력 없는 것들은 다 제거해버린다. 농약을 대체하는 건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다. 느리지만 협력을 통해 신뢰를 쌓아야 한다.”

 

수허위안에서 쓰이는 커뮤니티 화폐는 신뢰를 쌓는 수단이다. 자원봉사자 등에게 지급하는 이 화폐로 지역 농민이 생산한 양배추를 사고 커피를 마시고, 먹거리 수업도 들을 수 있다. 서로 관계를 맺은 사람끼리 사용하게 되므로 위조 걱정도 없다. 사람들은 돈으로 신뢰를 산다.

 

타이완은 한국과 많이 닮았다. 인구의 5% 정도가 농업에 종사하고, 산지가 많아 농경지가 적다. 농촌인구 고령화가 심각하며, 농산물 수입으로 자국 농업의 위상이 날로 축소하고 있다. 라이칭쑹 씨나 천멍카이 씨의 고민도 결국 하나로 모아진다. 어떻게 하면 도시와 농촌을 연결시키고 사람을 키울 것인가. 귀농 플랫폼을 만들고 대사를 양성하는 것은 여러 해법 가운데 하나다.

 

라이칭쑹 씨와 나눈 대화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이런 말이었다. “도시인들이 귀농하는 이유는, 과거 농민들이 탈농했던 이유와 같다. 농촌 생활이 힘들어 도시로 갔듯이 이제 도시 생활이 힘들어 농촌으로 오려는 이들이 있다. 농민과 땅은 말을 잘하지 못한다. 사회적 발언권이 없다. 젊은이들이 귀농함으로써 농민과 농촌과 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이베이·타이중 시사인 이오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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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의 질기고 깊은 악연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이전까지 미국과 이란은 형제국 같았다.

그러나 혁명 이후 두 나라는 철천지원수로 지낸다.

미국과 이란 사이에 벌어진 결정적 사건들을 정리했다.

 

AP Photo 16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반미 시위에 참석한 시민들이 피살된 솔레이마니 총사령관의 그림을 들고 있다.

 

2020년 새해 하늘에는 전쟁의 구름이 짙게 깔려 있다. 지난해 말 친이란계 민병대의 공격으로 이라크의 미군 주둔지에 근무하던 미국인 한 명이 사망하면서 시작된 암운이다. 이후 놀라움의 연속이다. 미국은 이란 최고 실세 가셈 솔레이마니를 이라크에서 폭살했다. 이란은 미군 주둔지에 미사일 스물두 발을 날렸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일촉즉발의 위기는 일단 넘겼으나 불안감은 여전히 퍼져 있다.

 

이번 사건은 우발적 충돌이 아니라 조금씩 고조되다가 촉발된 위기다.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미국과 이란은 가장 가까운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혁명 직전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마지막 왕 팔레비 에게 이란은 중동이라는 혼돈의 바다에 떠 있는 유일한 안정의 섬이다라고 상찬했다. 그만큼 미국은 이란을 믿었다. 그러나 지난 40년간 미국과 이란은 서로 원수로 지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도대체 양국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악연의 뿌리를 좇는 이란과 미국의 시선은 서로 다르다.

 

첫 악연은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에서 시작되었다. 혁명이 일어나자 미국은 긴장했다. 1950년대 중반부터 아랍 왕정을 강타했던 군부 쿠데타로 이집트·이라크·시리아 등에서 사회주의 공화정이 들어선 기억 때문이다. 이들 아랍 공화국은 반미·반서구 경향이 강했다. 미국이 구상하는 대소련 봉쇄의 냉전 틀이 흔들렸던 기억이 이란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혁명 이전 미국과 이란 팔레비 왕가의 관계는 돈독했다. 안보 및 경제협력도 견고했다. 이란의 경우, 이슬람을 믿는다지만 세속주의에 가까워 성직자와 일부 신실한 무슬림층을 제외하고는 대개 자유롭고 발랄했다. 테헤란 거리에는 살롱이 즐비했고, 여성들의 사회활동도 활발했다. 미국 마음에 쏙 드는 나라였다.


반이란 정서의 세 가지 근원

혁명은 모든 것을 바꾸었다. 호메이니는 이슬람 신정주의 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팔레비 왕의 미국 망명 소식을 들은 이란 혁명 세력들은 주이란 미국 대사관 소속 민간인 52명을 444일 동안 억류했다. 40년 악연의 결정적 계기다. 미국 대사관이 공격당하고 미국 시민이 구금되었다. 국가의 세 요소 중 영토와 국민이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인질들은 이듬해 레이건 대통령 당선 후 전원 석방되지만, 사건의 여파는 컸다. 정체불명의 혁명 세력에 의해 자국민들이 억류되었는데도 속수무책이었던 기억이 미국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2007년 샘물교회 자원봉사단 23명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게 44일 동안 피랍되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한국 사회가 겪었던 충격을 생각해보면 미국이 이란을 떠올릴 때 어떤 느낌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Reuter 이란 혁명 세력은 주이란 미국 대사관 소속 민간인 52명을 1979114일부터 444일 동안 억류했다.

 

두 번째 악연은 레바논에서 이어진다. 베이루트 주재 미국 대사관과 미국 해병대 피습 사건의 기억이다. 레바논 내전의 혼돈이 지속되던 1983419, 베이루트의 미국 대사관이 차량 폭탄 테러를 당한다. 미국인 17명 등 63명이 목숨을 잃었다. 같은 해 1023일에는 베이루트 주둔 미국 해병대 기지에서 차량 자살폭탄 테러가 일어나 미군 241명이 숨졌다. 가해 조직이 헤즈볼라로 밝혀지면서 미국의 반이란 정서가 한층 악화된다. 미국은 레바논 시아파 과격 세력인 헤즈볼라를 이란과 시리아의 하수인으로 본다.

 

반이란 정서의 세 번째 근원은 살만 루슈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영국 출신 소설가 루슈디가 1988년 출판한 악마의 시는 이슬람권을 격동케 했다. 선지자 무함마드와 경전 코란을 모독하는 비유를 담았다는 이유였다. 적잖은 이슬람권 국가에서 이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 이란의 호메이니는 루슈디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현상금과 함께 암살 지령까지 하달했다. 호메이니 사후 암살 지령이 풀리고 공식적으로 이란은 루슈디 사면을 선언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란 일부 종교단체는 루슈디를 쫓고 있다. 이 사건은 음험하고 잔인한 이미지의 이란을 부각했다.

 

이란이 연상시키는 키워드는 인질, 대사관, 미군 공격 그리고 헤즈볼라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국시가 혁명의 수출이다. 단순히 자국 내 정치행위뿐 아니라 이란식의 정치체제를 중동 전역, 나아가 이슬람권으로 확장하겠다는 목표다. 그 대표적 대리 세력이 헤즈볼라다. 그 씨를 뿌리고 관리하고 성장시켜온 주역이 이번에 피살된 솔레이마니가 이끌었던 쿠드스 부대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하고 제재를 복원한 명분은 이란의 합의 위반이 아니다. 중동 지역 곳곳에 산재하는 친이란 무장세력의 위협과 미사일 개발을 문제 삼았다. 그리고 52명 인질 사건을 언급하며 이란이 보복 공격에 나설 경우 같은 수의 이란 목표물을 타격하겠노라 천명했다. 1979년과 1983년의 아픈 기억이 20201월에도 여전히 쓰린 통점으로 남아 있다.

 

이란 처지에서도 할 말이 적지 않다. 더 긴 원한의 기억을 갖고 있다. 미국에 배신당한 첫 기억은 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냉전이 막 고착되던 1951년 이란에서는 정치적으로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발생했다. 입헌 민주주의가 처음으로 시도된 것이다. 민족주의 정치인 모하마드 모사데크는 이란 리자 샤 팔레비 왕실과의 합의로 선거를 거쳐 첫 선출직 총리로 등장했다. 민주주의를 향한 이란 국민의 열망은 컸다. 왕실도 더 이상 절대왕정을 유지하기 버겁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입헌 민주주의의 첫걸음은 곧 난항에 빠졌다. 모사데크 총리의 국유화 정책 때문이었다. 이란산 석유로 번 돈이 영국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영국은 모사데크를 용납할 수 없었다. 결국 1953년 영국과 미국의 해외 정보기관이 움직여 현직 이란 총리 축출 공작을 벌인다. 이른바 아약스 작전을 통해 모사데크를 실각시키고 왕정을 복원한다. 이란 국민은 민주주의에 대한 영국과 미국의 이중적 태도를 기억하고 있다.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상찬하지만, 자국의 이익이 침해되자 중동의 토머스 제퍼슨이 되었을지 모를 모사데크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쫓아냈다.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

 

AP Photo 1953년 영국과 미국의 정보기관은 아약스 작전을 통해 이란의 모사데크 총리(위 가운데)를 축출했다.

 

미국과의 두 번째 악연은 미국의 팔레비 절대왕정 옹호를 계기로 깊어졌다. 모사데크 축출 후 등장한 무함마드 리자 샤 팔레비 국왕은 이란을 완전한 친서방 세속국가로 만들고 싶어 했다. 1961년 이른바 백색혁명을 시작하게 된 배경이다. 왕실 독재에 대한 비판을 비켜나가면서 반대 진영을 무력화하기 위한 일종의 국가 개조 동원 운동이었다. 백색혁명의 명분이나 슬로건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실질적으로 국가 근대화 운동의 성격도 지녔다. 히잡 착용 및 일부다처제 금지, ‘아시아가 아닌 서양(즉 아리안)’의 정체성 부각, 여성참정권과 교육 기회의 확대 등을 추진했다. 옆 나라 터키의 케말리즘(정교분리, 근대화 등 세속주의 추구)과 많이 닮았다.

 

팔레비의 백색혁명은 실패하고 만다. 왕정의 절대 권한을 유지하고 반대파를 무력화하려는 동기가 앞서 나갔다. 동시에 반정부 그룹을 너무 키웠다. 토지개혁으로 이슬람 모스크의 재산을 국유화하고 지방 토호들의 재산 기반까지 약화시켰다. 페르시아의 오랜 전통에서 유지되어온 바자르 상권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거센 반발을 불렀다. 결국 이슬람 세력과 지방 토호, 바자르 상인들이 연대해 반()팔레비 왕정 혁명의 토대로 성장한다. 이란 국민은 왕실의 실정과 독재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믿었다. 그 불만이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의 토양이 된다.

 

이란이 미국을 싫어하는 세 번째 이유는 좀 더 독특하다. 이유 없이 이란을 미워한다는 불만이다. 독일과 일본은 숱한 미군 장병들을 살상했음에도 지금 동맹국이다. 베트남 역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잘 지내고 있다. 심지어 핵무기를 만들고 탄도미사일 실험을 서슴지 않는 북한과도 미국은 나름 관계 개선 노력을 한다. 반면 이란은 단 한 번도 미국과 전쟁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미국은 오직 이란만 계속 몰아붙인다는 것이다. 물론 호메이니가 미국을 사탄으로 규정하면서 타도를 외치긴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모든 이란 지도자들이 반미주의자였던 것은 아니다.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 같은 이들은 미국과 잘 지내보려고 노력한 지도자다. 20019·11 사태 당시에도, 일설에 따르면 제일 먼저 미국에 위로 전문을 보낸 해외 정상이 하타미 대통령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테헤란에서는 테러를 규탄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집회가 열렸다. 그런데도 미국은 이란을 악의 축으로 지정하지 않았던가?

 

마지막으로 이란에 가장 깊은 아픔을 남긴 사건이 하나 있다. 198873일 미군 함정 빈센트호가 이란 민항기를 오인 격추해 민간인 290명이 생명을 잃은 사건이다. 전쟁터도 아니고, 3국도 아니고, 자국에서 이륙한 민항기를 격추시킨 데 대한 원한과 분노는 오래 남아 있다.

 

적대감의 수위를 계속 높여오던 양국은 결정적 사건과 마주하게 된다.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 차원에서 벌어진 2003년 이라크 전쟁이었다. 당시 부시 행정부 외교정책을 좌지우지한 네오콘은 위험국가 셋을 표적으로 삼았다. 그중에서도 이란을 미국의 리더십을 뿌리째 흔들 만한 위험 세력으로 찍었다. 그러나 직접 전쟁을 하기에는 이란이 너무 강했다. 미국은 우회했다. 이란 서쪽 이라크와 동쪽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이며 미군 지상군을 대규모로 배치했다. 이미 이란 북부 중앙아시아에는 미군 공군기지들이, 이란 남쪽 페르시아만에는 미군 제5함대 항모전단이 포진해 있었다. 좌우에 세계 최강 지상군이, 위아래로 각각 공군과 해군이 이란을 완전히 둘러쌌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 민주화되기만 하면 그 여파가 테헤란으로 흘러 들어갈 것이라 기대했다. 이란 역시 엄청난 압박을 느끼던 시기다.

 

그러나 미국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라크 안정화 작전이 수렁에 빠지면서 미국은 엄청난 반미 공격에 노출되었다. 5000명에 가까운 미군 병사들이 이라크 안정화 작전에서 무장 세력에게 목숨을 잃었다.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이 생각했던 민주주의의 확산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거꾸로였다. 테헤란의 영향력이 바그다드와 카불로 파고들었다. 미군 철군 이후 이라크에서는 같은 시아파인 이란과의 협력 기조가 눈에 띄게 늘었다. 이번 솔레이마니 사건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제 해당 지역 내에서는 이란의 영향력이 제일 커 보인다. 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시아 벨트의 주축일 뿐 아니라, 카타르-오만-예멘을 통해 아라비아반도를 둘러싸는 말발굽 모양의 시아 편자도 형성하고 있다. 미국이 큰 희생을 감수하고 치른 이라크 전쟁은 이란에게만 좋은 일 시켜준 셈이다.

 

트럼프 시대에 더 악화한 반미 감정  

부시의 후임자인 오바마는 이전 미국 대통령과 결이 달랐다. 중동과 이슬람권을 깊이 이해하는 편이었다. 이란을 그렇게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또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지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는 중동에서 무언가를 하면 할수록 미국이 수렁에 빠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중동을 방치해둘 수는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구상은 중동 내의 적대적 균형추구에 가까웠다. 미국은 1979년 이란혁명 이전의 중동 정치 질서로 돌아가고 싶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이란·이스라엘·이집트·터키가 서로 여러모로 다르고 긴장 관계이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안정적 균형이 이루어졌던 시대다. 미국은 한발 물러나서 상황을 관리하는 역외 균형자 구실을 하려 했다. 이 구상에서 대전제가 이란의 정상화였다. 이란이 적대적일 경우 균형은 요원했다. 미국은 이란을 정상적 행위자로 받아들이기 위한 조건을 천명했다. 핵무기 개발 중단 및 테러리즘과의 연계를 끊어야 한다는 전제였다.

 

이 전제를 충족시키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은 일단 2011년 강도 높은 제재로 이란 경제를 옥죄었다. 경제난이 가중되자 이란 내부에서는 미국과의 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부시 대통령 때라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달랐다. 이란 내 강경파가 위축되었다. 2013년 중도파인 하산 로하니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협상이 급물살을 탄다. 마침내 20157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역사적인 포괄적 공동행동계획, 즉 이란 핵 합의가 체결된다. 물론 이란의 위협이 완전히 제거된 완벽한 합의는 아니었다. 문제는 일몰조항이었다. 15년만 합의를 잘 지키면 이란은 합법적으로 농축과 재처리를 할 수 있는 나라로 바뀌게 되어 있었다. 이란의 적대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제사회가 15년이라는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했다. 이란이 미국 및 유럽과 교류(자본과 사람)하다 보면 국내에서도 변화가 발생할 것인데, 15년이면 충분하다고 믿었다. 어차피 적대관계로 계속 가면 전쟁 옵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는 미국이 다시 이란과 전쟁을 결심할 수는 없었다. 이란 핵 합의는 그렇게 체결되었다. 극적이었다. 2015년 연말, 제재가 즉각 해제되었다. CNN 기자가 테헤란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미국 투자자들이 이란을 드나들면서 경제협력 가능성을 타진했다. 이미 유럽은 이란 곳곳에 제조업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제재로 인해 수입에 어려움을 겪던 민간 항공기의 대규모 발주 양해각서도 체결되었다.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반발만 잘 무마하면 중동의 안정은 조금씩 이뤄질 것으로 보였다. 이란 국민은 지긋지긋한 제재로부터 벗어나 살 만한 나라가 되리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이란의 잠재력인 석유 및 천연가스 부존량은 제조업 기반과 인적자원 측면에서 중동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오바마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 있다.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탄생이었다. 트럼프는 후보 시절부터 이란 핵 합의를 비난했다. 비난의 요지는 핵 관련 조항이 아니었다. 이란을 완전히 굴복시켜 위협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중동 지역 내 이란의 영향력을 줄이는 조치가 있어야 했다는 점을 주장했다. 같은 맥락에서 이란의 미사일 개발 문제도 지적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를 파기하고 제재를 복원했다. 이란 국민의 분노와 좌절은 합의 이전보다 더 거세졌다. 합의를 충실히 이행했는데도 미국은 이란이 원래 불순하고 위협적인 나라라며 제재를 복원한 것이다. 반미 감정은 한 단계 더 악화되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고 더 질긴 악연이 시작되는 계기였다. 이 악연은 순식간에 발화, 2020년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이어지게 된다./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시사인

 

울먹인 진중권 "조국, 어떻게 그렇게 살고 사회주의자 자처하나"

그들은 대중의 이성윤리의식을 믿지 않는다. 선동조작 당할 수 있는 존재로 본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9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여권 인사들을 향해 그 의식이 끔찍하고 혐오스럽고 무섭다며 쏟아낸 비판이다. 진 전 교수는 이날 오후 안철수 전 의원이 이끄는 국민당 창당 발기인대회에서 무너진 정의와 공정의 회복을 주제로 강연하며 이같이 주장했다.

진 전 교수의 강연은 고해로 시작했다. 그는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정말 믿었다조국 사태는 제게 트라우마다. 내가 믿었던 사람들과 가치가 완전히 무너져내리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청문회 나와서 나는 사회주의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라고 할 땐 끝까지 말하지 못하고 울먹였다. 청중의 격려 박수에 1분여 뒤 고개를 든 그는 어떻게 그렇게 살고 사회주의자를 자처할 수 있느냐. 이념에 대한 모독이라고 조 전 장관을 비판했다.


그들이 보는 대중은 멍청하고 선동 가능한 존재

.“(여권 인사들이) 대중을 멍청하게 선동 당하는 존재로 본다는 견해는 유 이사장과 시인 안도현, 소설가 공지영씨 등을 거론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진 전 교수는 모든 사람은 이성을 가지고 태어난다하지만 저들은 다른 것 같다. 얼마든지 얄팍한 이벤트에 의해 감동 당하는, 동원 가능한 대중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이어 더 무서운 것은 그런 상태에서 대중들은 자신들이 깨어있다고 보는 것이라 지적했다.

그는 현 정권의 가장 큰 잘못으로 정의의 기준 자체를 바꿔버린 것을 꼽았다. 진 전 교수는 먼저 과거 진보든 보수든 잘못했으면 머리 숙여 사과부터 했다. 적어도 윤리의 기준은 건드리지 않았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이 정권 들어서는 잘못만 하는 게 아니라 기준 자체를 바꿔버린다. 법의 기준 자체를 바꿔서 잘못하지 않은 상태로 만든다로고스(logos, 이성)와 에토스(ethos, 윤리)가 무너지고 정치가 (시민을) 이성이 없는 좀비로, 윤리 잃은 깡패로 만든다고 비판했다. “‘2+2=4’라는 걸 논증하기 시작하면 소통이 안 되는데 공유하는 그 기준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어용 지식인·언론 통해 '사랑해요 정경심' 만들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하이서울유스호텔에서 열린 우리가 만드는 안철수신당(가칭) 발기인대회에서 초청 강연을 하고 있다. [뉴스1]

강연 마지막 질의응답에서도 진 전 교수는 여권과 확실히 선을 그었다. ‘(당신은) 과거 드루킹은 김경수 경남지사나 대통령민주당과 (범죄 혐의와 관련) 상관없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렇냐는 한 청중의 질문에 진 전 교수는 아니다. (제가) 그때는 조국도 깨끗하다고 얘기했다고 답했다.

 

.이같은 상황이 일어난 원인으로는 허위의식을 들었다. ‘속물주의적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조 전 장관이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것처럼 여권 핵심인사들이 여전히 스스로를 운동가혁명가로 생각하기에 문제가 생기면 기준 탓을 한다는 취지다. 진 전 교수는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향해 그만 두고 통일운동에 매진하겠다는데 아직도 자신을 통일운동가라 생각한다. 아직도 그들은 스스로 운동가혁명가, 순결한 사람이라 생각한다그래서 잘못됐다면 도덕의 기준이 잘못된 것으로 생각한다. 한 마디로 돈키호테 현상이라고 말했다.

 

진 전 교수는 이어 문제는 돈키호테가 모두를 산초(추종자)로 만드는 것이라며 어용 지식인, 어용 언론, 수많은 어용의 협력을 통해 사랑해요 정경심(조 전 장관 부인)’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이른바 어용이라고 지칭한 지식인 층을 향해 혐오증오를 이용해 대중을 동원하려는 정치인들을 막아주고 비판해주는 게 지식인인데 완전히 마비됐다. 통제 기구의 한 파트가 돼 그들과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서초동 집회는 사이비 종교서 나타나는 현상

검찰 개혁을 촉구한 서초동 집회를 두고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편을 든다. 사이비 종교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도 했다. “조 전 장관의 딸 때문에 누구 하나는 떨어졌을텐데 (우리 사회의) 99.9%는 손해보는 사람 축에 속할 것이라면서다.

강연 마지막 질의응답에서도 진 전 교수는 여권과 확실히 선을 그었다. ‘(당신은) 과거 드루킹은 김경수 경남지사나 대통령민주당과 (범죄 혐의와 관련) 상관없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렇냐는 한 청중의 질문에 진 전 교수는 아니다. (제가) 그때는 조국도 깨끗하다고 얘기했다고 답했다. 한영익이가람 기자 hanyi@joongang.co.kr

 

발리 발묶인 우한 관광객 3000, 전세기 마련해도 "안 간다

 

마스크를 쓴 관광객이 지난 5일 인도네시아 발리 섬 응우라라이 국제공항 청사 안을 걷고 있다. [EPA=연합뉴스]

 

.인도네시아의 유명 관광지 발리 섬에 발이 묶인 중국 우한의 관광객 중 대다수가 귀국기가 마련됐는데도 불구하고 탑승 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3000명 중 61명만 전세기 탑승 신청

총영사관서 이유 물어보니

"늘어난 휴가 여기서 즐기겠다"

그런데 이유가 다소 엉뚱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에 따른 공포 때문이 아니라 늘어난 휴가를 즐기기 위한 것이라고 AFP통신이 현지발로 9일 보도했다.

AFP에 따르면 현재 발리에는 우한에서 온 관광객 3000명이 체재 중이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중국 본토를 오가는 항공편을 중단했기 때문에 이들은 사실상 발이 묶인 상태다.

그래서 현지의 중국 영사관이 이들을 위해 우한으로 돌아가는 전세기를 마련했다. 중국 동방항공 항공기로 189석을 갖췄지만 탑승 신청을 한 사람은 어린이 12명을 포함해 61명뿐이었다고 통신은 전했다.

발리의 덴파사르 주재 중국 총영사관 관계자는 AFP발리에 남은 우한 사람들은 대부분 늘어난 휴가를 즐기기 위해 남은 것이라며 "그들이 원한다면 추가로 전세기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시대를 넘어 응답하라 민중가요

홍콩의 거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입에서 입으로 울려퍼졌다. 지난해 범죄인 중국 인도 조례(송환법)’에 반대하며 대규모로 집결한 홍콩 시위대는 광둥어로 개사한 이 노래를 부른 뒤 한국어 원곡도 함께 불렀다. 광둥어로 개사한 곡의 제목은 <우산 행진곡>. 2014년 홍콩에서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벌어진 민주화운동 우산 혁명을 기리는 뜻으로 붙여진 제목이다. 노래를 개사한 홍콩의 사회운동가 검검(甘甘)은 당시 외신 인터뷰에서 이 노래 덕에 홍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된 한국인들이 많다고 들었다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한 싸움에서 국적과 인종, 문화에서 오는 차이는 없다고 말했다.

 

민중가요 그룹 희망의 노래 꽃다지2019년 공연 모습. / 꽃다지 제공

 

아직도 시위현장이나 노동쟁의 현장 등에서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지기는 하지만 국내에서 민중가요는 시민들의 삶과 서서히 멀어져 왔다. 1980년대 전성기를 맞으며 대학가와 노동현장에서 분위기를 주도했던 민가가수들이 설 자리도 점차 줄어들었다. 그래도 민중가요를 추억하는 ‘86세대가 사회의 주류 세대로 진입하고 민중가요를 부르던 가수들 역시 오랜 침체기를 벗어나 공연과 음반 등으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려는 움직임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민중가요 분야에서 인기를 끌었던 팀들이 대중가수들과 함께 대형 공연 무대를 계획하기도 하고, 바뀐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 디지털 음원 등의 형태로 신보를 내는 등 새로운 변화의 길도 찾고 있다.

안치환·손병휘 등 콘서트 준비

민중가요의 야심찬 귀환을 노린 민중가요 소환 콘서트 더 청춘은 비록 원래 계획대로 21일 공연을 치를 수는 없게 됐지만 프로젝트를 이어갈 동력은 충분한 상태다. 갑작스레 국내에도 밀어닥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의 여파로 서울 송파구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해당 공연의 개최 시기는 올 상반기 중 여는 것으로 미뤄졌다. 그럼에도 공연에 앞서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일반 시민과 대학 노래패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민중가요 커버곡 콘테스트가 예상을 넘어선 호응을 이끌어내기도 하는 등 민중가요를 재조명하는 분위기 자체는 위축되지 않았다는 것이 주최 측의 판단이다.

 

더 청춘공연은 안치환과 자유’, ‘우리나라’,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 ‘조국과 청춘의 손병휘 등 민중가수로 이름난 출연진과 육중완밴드’, ‘노브레인’, 박시환 등 대중가요 라인업이 호흡을 맞춰 1980~1990년대 민중가요의 전성기 시절 유명곡들을 새롭게 편곡해 선보일 예정이다. 공연 주최사인 다음페이지 관계자는 음지에 묻혀 있던 민중가요를 대중문화로 끌어올린다는 취지로 공연을 기획했다아울러 민중가요가 시위나 집회에서 불리는 공공적인 성격 때문에 저작권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실정이어서 제작자가 정당한 대가를 보상받도록 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말했다.

 

더 청춘이 민중가요 공연으로는 보기 드문 대형 공연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중소규모 공연이나 신보 발표는 최근까지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지난해 12노찾사멤버 김은희와 새벽의 윤선애가 30년이 넘는 활동 기간 처음으로 합동공연을 열기도 했다. ‘꽃다지도 지난해 11데모가 희망이다라는 이름으로 공연했고, ‘노찾사출신 음악인 문진오도 신보인 6

 

<듣지 않는 노래> 발표 기념 콘서트를 열었다. 지난해 10월에는 <청계천 8>로 유명한 천지인의 보컬 손현숙도 새 앨범 <노래이야기 2> 발표와 함께 기념공연을 했다.

 

지난해 114<서럽다 꿈같아 우습다>를 발표한 연영석은 14년 만에 새 앨범을 냈다며 부끄럽다는 감회를 밝혔다. 연영석은 민중가요로 불리건 저항가요로 불리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음악은 꾸준히 부름을 받아왔는데 한 명의 음악인으로서 나도 해야 할 음악적 작업을 선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미쳐 새 음반을 냈다고 말했다. 비록 대중적인 접점이 줄어들고 투쟁현장 등에서나 자신을 부르는 상황 때문에 음악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는 신보 발표 후 예상보다 다양한 팬층의 호응을 받으며 고무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연영석은 전보다 음악이 부드러워졌다는 얘기도 듣고, 대중음악계에서도 음반 판매가 쉽지 않은데 이런 상황에서도 음반을 사주는 분들을 보면서 민중가요 분야에도 다양하고 지속적인 음악활동이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손수 민중가요 공연을 기획하고 반응을 살피는 민중가수들과 공연기획 관계자들은 호응을 보이는 주된 연령층이 40~50대 중·장년층이지만 최근 들어 자녀들과 공연장을 찾는 모습도 많이 보인다고 말했다. 한 공연기획업체 관계자는 “40대와 50대가 과거의 추억을 되새기듯 찾는 경우가 많지만 30대 관객들 역시 대학에서 민중가요를 접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공연장에서 노래를 따라부르는 모습이 보인다“20대 관객끼리만 오는 경우는 드물지만 부모세대와 함께 온 가족이 와서 공연을 감상하는 모습은 셋 중 하나꼴로 자주 눈에 띈다고 말했다. ‘더 청춘공연을 예매했다는 직장인 오효석씨(48)고등학생인 딸이 민중가요를 거의 모르기는 하지만 관심은 있다길래 대학 서클에서 만난 아내와 함께 옛날 생각도 할 겸 가족이 함께 예매했다고 말했다.

 

노찾사와 꽃다지 지난해 말 공연

엄밀하게 따지면 일반적인 인식대로 민중가요가 운동권 노래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민중가요에는 시위 현장에서 불리는 투쟁가를 비롯해 대학 노래패의 창작곡들이나 번안된 외국 민요, 기독교계 복음성가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범위의 노래들이 포함된다.

 

실제로 민중·노동운동 진영에서 나온 노래집들을 살펴보면 1970년대 포크송 계열의 대중음악 가수들의 노래도 상당수 실려 있다. 이전 시대부터 구전된 <해방가>, <정의가> 같은 노래들은 1960년대 시위 현장에서 데모송이란 이름으로 자주 불렸다. 1970년대 들어선 <오 자유>,

 

<우리 승리하리라> 등의 노래가 기독교 학생운동권에서 유입되기 시작했고, 군사독재 기간 금지곡으로 묶인 곡들도 민중가요로 널리 불리게 됐다.

 

전성기가 시작된 1980년대부터는 학생운동권의 성장과 함께 민중가요도 빠른 속도로 확산돼 <그날이 오면>, <광야에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처럼 현재까지도 유명한 노래들이 만들어졌다. 1987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전후한 시기엔 노동문제를 주제로 한 민중가요들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파업가>, <단결투쟁가>, <노동조합가>와 같은 노래들을 작곡한 운동가 김호철씨가 이 무렵 대표적인 노동가요 작곡가로 떠올랐다. 전성기의 끝자락인 1990년대 들어선 민중가요 역시 시대적 변화와 맞물려 바뀌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부터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사회적 발언권이 약해지면서 대학가의 노래패와 전문적 문화운동 집단을 중심으로 민중가요의 영역도 줄어들었다. 시대에 맞는 옷을 갈아입으려는 시도는 이어졌지만 계속 남아 있던 투쟁현장 대신 대중과의 접점을 찾기는 어려웠다. 여기에 저작권 등 지속적인 음악활동을 이어갈 기반이 민중가요 분야에서는 특히 약할 수밖에 없던 상황도 활력을 떨어뜨렸다.

 

1992년 결성돼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민중가요 팀 꽃다지의 민정연 대표는 현재까지도 90년대 대학을 다닌 세대를 비롯해 다양한 연령층의 팬들이 남아 있긴 하지만 시대의 전반적인 흐름을 뒤집기는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민중가요의 지속적 생존을 위해 사회운동 진영에서 노래가 필요한데 비용 부담 때문에 쓰지 못하는 문제가 없도록 저작권 등록을 안 했지만 오히려 방송이나 정치권에서 민중가요는 공짜인 줄 알았다며 무단으로 사용하는 등 아직도 인식이 바뀌지 않은 문제가 있다며 이러한 인식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마치 반전처럼, 트로트 열풍

트로트는 비주류 문화였다. 송가인이 입바람을 불고, 유산슬이 불을 지피기 전까지 말이다.

 

트로트 가수들은 신곡을 출시하면 서울이 아닌 지역 방송사나 동네 노래교실로 먼저 달려가 입소문에 기대 곡을 홍보해왔다. ‘그들만의 시장 형성은 지역 축제를 중심으로 한 행사, 지역 방송사 성인가요 프로그램의 무대로 국한됐기 때문이다.

 

TV조선, MBN

 

트로트 가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자구책이었다. TV 주시청자인 젊은층의 선호도에 따라 트로트는 음악방송에서 사라졌고, 음원차트나 대중매체에서도 철저히 외면당해왔다. 때로는 트로트 가수 장윤정·홍진영 그리고 김연자가 EDM트로트 <아모르 파티>로 선전했지만 개인의 인기에 지나지 않았을 뿐 트로트 붐업까지 이루지는 못했다.

 

비주류였던 트로트가 변화의 물결을 맞고 있다. MBC 예능 <놀면 뭐하니?- 유산슬 프로젝트>2030대 젊은층을 트로트의 매력에 빠져들게 했고, 지상파 설 특집으로 <송가인 단독 콘서트>를 편성해 시청률 6%를 보장했다. 방송사들의 트로트 예능 제작에 힘을 싣기 시작했다.

 

지난 1월에 시작한 TV조선 <미스트롯>의 시즌2 <미스터트롯>은 시청률 20%에 육박하며(지난 234회 방송,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종편 최고 시청률인 JTBC 드라마 <SKY 캐슬>22.3% 기록을 가볍게 넘보고 있다. MBN<미스트롯>의 주부 버전 <보이스퀸>을 제작해 6~7% 시청률을 유지하며 쏠쏠한 재미를 보았고, 현재는 상위 순위권 참가자들의 전국투어 공연을 준비 중이다.

 

지상파 SBS트로트해외 버스킹을 합친 <트롯신>이라는 예능을 제작해 1월 초 첫 배경지인 베트남에서 촬영을 마쳤다고 알려졌다. <트롯신>은 트로트를 국내시장에서 ‘K-트롯이라는 글로벌 장르로 확대하는 원대한 기획 의도도 품고 있다.

 

사라졌던 과거 프로그램이 심폐소생술을 받기도 했다. MBC 음악예능 <나는 가수다>의 트로트 버전인 MBC every1 <나는 트로트 가수다>25일 첫 방송을 맞는다. 7명의 트로트 가수가 경연을 펼치고 청중 평가단에게 심사를 받는 경연 포맷인 해당 프로그램은 2011년 명절 특집으로 방송됐다가 최근 트로트 붐을 타고 부활했다.

 

살랑살랑 봄바람처럼 불기 시작하는 트로트 바람이 특정 연예인의 개인 인기를 탄 것뿐이라고 분석하는 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주목할 만한 점은 중·장년층 트로트 애호가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 적극적인 소비의 주체로 나선 것이다. 콘서트 티켓을 구매하고 핑크색 굿즈를 거리낌 없이 흔든다. 휴대폰앱을 통해 음원 사이트에서 좋아하는 곡을 찾아 듣기도 하고 팬 카페 활동으로 서로의 결속을 다진다.

 

강력한 팬덤 문화는 트로트를 하나의 어엿한 소비 장르로 정착시킬 토양을 마련한다. KBS1 <노래가 좋아-트로트가 좋아> 가수 조명섭이나 <미스터트롯>의 새 얼굴들, 새로운 예능이 시청자의 시선을 끌면서 그 토양은 더욱 다져지고 풍요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유진 스포츠경향 기자 8823@kyunghyang.com


민주노총 언론장악에 맞선 투사가 된 태극기 유튜버

언론학자 이종명씨, ‘광장 정치에서의 유튜버의 역할논문 펴내

전통 미디어는 사기 탄핵에 주요한 역할 해 싸워야 할 대상

우리 집회 보도하는 언론 하나라도 대보세요. 없죠? 여기 수십만 수백만이 모였는데, 어느 하나 안 와요. 눈앞에서 이렇게 모이고 목소리 내도 안 들어. 안 봐. 어쩌겠어요? 우리가 해야지 뭐.”

우리 있으면 경찰도 함부로 못 해. 시비 걸던 놈들도 깨갱 한다고. 이렇게 내가 보고, 구독자가 보고, 참여자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제깟 놈들이 뭐라 해보라지. 아주 물건이야 (유튜브 방송) 이게.”

 

이종명 고려대 언론학 박사가 최근 광장 정치에서의 유튜버의 역할: 2019년 태극기 집회 유튜버 참여 관찰 연구로 박사 논문을 냈다. 지난해 상반기 동안 매주 토요일 서울역 광장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며 20명의 유튜버를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 대부분은 50~60대 남성으로 현장에서 집회를 생중계하고 있으며 인터뷰 당시 구독자 수 5만 이상인 채널은 2, 5~1만인 채널은 7, 1만 이하 채널이 11곳이었다. 지금껏 언론학자가 태극기 광장을 직접 취재해 분석한 논문은 찾기 어려웠다.

 

언론학자가 목격한 유튜버들은 태극기 광장의 구심점이었다. “유튜버가 높이 들고 있는 삼각대와 스마트폰 두 대(한대는 촬영용, 한 대는 채팅창 관리용), 대용량 외장 배터리, 거대한 명찰은 일종의 마패와 같다. (이들은) 태극기·성조기 등 스티커와 뱃지로 옷가지를 장식하고 현장을 누빈다. 어디든 유튜버가 들이민 카메라만 있다면 길을 터주고, 집회 참여자들의 마음을 열고, 행진 차량에 탑승해 태극기 집회 무리 전체를 이끄는 힘이 부여된다.”

 

지난해 광화문 광장에서 문재인 하야 촉구 집회를 생중계하고 있는 유튜버의 모습. 연합뉴스

 

논문에 등장하는 유튜버들의 코멘트는 태극기 집회의 작동원리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요새 누가 봐요 뉴스. 여기 나온 사람들 전부 다 안 볼걸?(집회) 나와서 서석구 변호사님 얘기 듣고, 김세의 기자 억울함 듣고, 조원진 대표님이 매일같이 해주시는 말씀 듣고 하니 이제 뭐 좀 알겠다고. 그걸 내가 열심히 전하고 있죠.” “뉴스 요즘 누가 봐요? 근데 이 유튜브는 전부 다 보거든. 우리 (유튜버 구독자) 다 합치면 500, 1000만이 넘어. 그 사람들이 다 여기 나와 봐요. 나라가 안 뒤집어지겠어? 우리가 그만큼 힘이 있다 이거예요.” 유튜버들의 원동력은 기성언론에 대한 불신이다.

 

이종명 박사는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모든 언론을 불신한다. 기자들에 대한 불신은 전문가 집단의 권위 추락과 직결된다. 전통적 뉴스 미디어의 모든 기사가 거짓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참여자들과 유튜버들은 언론을 믿지 않고 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논문은 유튜버들은 태극기 집회 현장을 세 시간, 여섯 시간, 심지어 열 시간이고 온종일 라이브 중계한다고 전하며 보도 과정에서 축소되거나 혹은 완전히 사라져버린 태극기 집회에 대한 불만과 분노, 신뢰할 수 없는 전통 미디어에 대한 반발심으로 그들은 집회 규모를 제대로 드러내 보이는 데 주목한다고 분석했다.

 

논문은 또한 유튜버들은 민주노총의 언론장악대한민국의 베네수엘라화라는 검증되지 않은 사실과 의견을 전파한다. 또한 탄핵이 전통 언론의 가짜뉴스로 이뤄진 사기임을 주장한다. 아울러 죄 없는 박근혜라는 종교적 서사를 통해 광장 정치의 결속을 이끈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유튜버들에게 제 1명제는 민주노총이 장악한 언론이다. 논문은 민주노총이 장악한 전통적 미디어는 태극기 집회를 왜곡 및 축소보도했을 뿐만 아니라, 태블릿PC 조작 등을 통한 사기 탄핵에 주요한 역할을 수행한 전적으로 인해 태극기 집회 참여자들과 유튜버들로 하여금 조직적으로 맞싸워야 할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2017년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의 한 장면. 연합뉴스

 

유튜브가 미래에요. 유튜브는 거짓된 게 없거든. 순 거짓말만 늘어놓는 JTBC니 뭐니 하는 것들, 다 필요 없어.” “요샌 기자들보다 우리를 더 쳐줘요. 우리(태극기 집회 참여자)는 유튜브 훨씬 더 보니까.” 유튜버들에게 유튜브는 대안 언론이다. 마찬가지로 탄핵 이후 뉴스를 불신하는 집회 참가자들은 하나의 저항방식으로서, 현장에서 만나는 유튜버들의 활동을 환대한다. 태극기 집회를 주도해온 우리공화당·자유한국당 등은 그들을 이용해 지지자를 규합하고 각종 메시지를 유통한다.

 

앞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해 1216일 의원총회에서 유튜버들에게 입법 보조원 자격을 줘서 쉽게 국회에 들어올 수 있게 하자고 주장해 논란을 자초했다. 나경원 전 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1027일 유튜버들을 국회로 불러 조국 전 장관을 낙마시키 건 첫 번째가 국민의 힘이었고, 두 번째가 유튜버들의 힘이었다고 말하며 유튜브야말로 국민들을 깨워주시는 채널이라고 강조했다.

 

논문에 따르면 유튜버들은 우리공화당을 지지하며 그들의 집회와 행사를 쫓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일부에선 자유한국당 정치인과 행사를 따르는 등 세력이 나뉘어 있다. 논문은 유튜버들은 탄핵 이후 일련의 사태를 극복하는 첨병으로 스스로를 위치시킨다. 투사적 존재로서, 국민여론 형성까지 주도할 수 있다는 믿음은 전통 미디어를 대체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이들 유튜버는 다가오는 총선에서도 중장년층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광장 정치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논문은 일간베스트저장소 커뮤니티가 태극기 집회 담론 확산의 온라인 근거지 역할을 수행한다면 그 정보를 담화로, 라이브로 공유하는 역할을 유튜버가 수행하면서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몇십 년씩 보던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끊고 일베와 유튜브만 본다는 태극기 집회 참여자들이 늘었다“(유튜버들은) 전통적 뉴스 보도의 왜곡된 내용을, 진실을 알려 바꿔줘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갖게 된다고 분석했다. 논문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국부에 대한 향수가, 그 영애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무너진 상황은 태극기 집회 참여자들에게 국가의 붕괴와 같다유튜버는 국가적 위기 담론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전파한다고 지적했다.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숙대 입학 포기사건, 혐오에 힘 실어준 언론

혐오와 혐오비판을 기계적 균형으로 다뤄소수자 혐오 비판 커졌지만 여전히 혐오를 의견으로 포장하는 언론

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성전환) 여성 A씨의 입학을 비난한 서울 소재 6개 여대 소속 자칭 레디컬 페미니즘단체들은 낸 지난 4일자 입장문에서 여대를 남성중심사회에서 차별받고 기회를 박탈당하는 여성들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라며 “A의 여대 입학은 물론 이를 가능케하는 법원의 성별변경 허가는 헌법에 위배된다고 했다.

 

남성중심사회에서 혜택받던 남성이 자신을 여성이라고 주장한다고 여성들의 공간에 들여선 안 된다는 말인데 이는 논박이 가능한 주장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모순된 감정을 담아낸 궤변이다.

 

남성중심사회란 이성애 남성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사회의 최상층에 위치하고 여타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차별받는 사회를 말한다. 따라서 이성애 여성, 동성애 남성·여성,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젠더 정체성을 가진 이들도 이성애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봐 차별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따라붙는다. 언론이 전할 부분은 인류보편 가치에 근거해 남성중심사회를 비판하는 내용, 차별받는 이들이 어떻게 연대하고 있는지 등 남성중심사회를 해체하는 과정이다.

 

성소수자 혐오 발언이 쏟아져 결국 트랜스젠더 여성 A씨가 숙명여대 입학을 포기했다. 이에 숙대 측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사진=pixabay

 

언론은 이런 기본 기능과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페미니즘 관점을 차용하거나 페미니스트들에게 힘을 실을 필요도 있다. 물론 페미니즘을 하나의 관점으로 단정할 수 없지만 어떠한 페미니즘이 특정집단을 혐오하거나 사회 진보에 도움되지 않을 때 언론은 그 페미니즘을 비판하거나 합리적인 의견에서 지울 필요가 있다.

 

자칭 레디컬 페미니즘단체들 글을 요약하면 이성애 남성을 최상층에 놓고 젠더를 수직질서에 편입한 현재 구조를 그대로 둔 채 남성들이 우리 여성들을 차별해선 안 되지만 우리 여성들은 여타 젠더소수자들을 차별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는 (남성에 비해 적지만) 여성들이 다른 젠더에 비해 가진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이기적인 발상으로 보일 뿐 소수자들간 연대로 새 합의를 이뤄가는 민주사회의 모습은 아니다.

 

과거 메갈리아 사태 이후 일부 여성들이 자신들을 페미니스트라면서 여성을 ’, 남성을 으로 규정하는 목소리가 언론에 등장했다. 여성운동은 남성에 비해 약자인 여성이란 정체성 하나로 모여 힘을 얻지만 동시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하나의 정체성만 요구받는 현상에서 벗어나야 했다. 정체성의 정치를 넘어서지 못하면, 성소수자들에겐 기득권자로 비칠 수 있으며 남성중심사회를 유지하는 세력에겐 너희도 다르지 않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이번에 A씨가 혐오에 상처받고 숙대 입학을 포기한 사태가 이를 상징한다. 이번 사태 역시 언론에 책임이 있다. 사건의 성격과 맥락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채 기계적 균형, 혹은 여러 입장이란 명목으로 입학 찬성과 반대로 전했다. 다음은 일부 기사 제목이다.

 

여성 모욕”vs“차별·혐오 배제해야트랜스젠더 입학에 온·오프라인 찬반 가열 (6일 세계일보)

숙대 성전환 합격자에 두쪽난 여대권리위협” vs “환영” (4일 중앙일보)

트랜스젠더 여대생두고 여성 권익 위협” vs “소수자 혐오갑론을박 (4일 아시아경제)

성전환 20대 합격숙대입학 찬반 논쟁 (4YTN)

굳이 여대에?” 성전환자 숙명여대 입학에 트위터 분노 (130일 위키트리)

 

지난 8일 뉴시스 "'숙대 포기' 불구 트랜스젠더 조롱 계속"정신병원 가""란 기사 마지막 부분. 이는 성소수자 혐오 온라인 댓글을 중심으로 작성한 기사로 제목 뿐 아니라 다수의 혐오표현을 기사본문에 인용했다. 미디어오늘은 자칫 이를 인용하면서 다시 한번 혐오를 재생산하는 것 아닌지 우려하면서도 해당 부분은 언론의 심각성을 부각하기 위해 일부 인용한다. 해당 기사를 쓴 기자는 성전환한 여성 A씨가 숙대에 합격해 입학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처음 단독보도한 기자다.

 

일부 매체는 A의 숙대 입학이나 성전환 관련 혐오 댓글을 제목으로 뽑거나 댓글 내용을 기사로 전했다. 선정적인 댓글을 그대로 기사에 인용해 혐오를 확대재생산하며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클릭 장사.

 

입학 과정에서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는데도 한 개인의 선택을 법적 명분 없이 훼방 놓는 걸 존중받아야 할 하나의 의견으로 다뤄도 되나. 혐오와 혐오를 비판하는 주장을 동등한 선에 놓을 수 있나. 어떤 사안의 찬성vs반대식의 보도는 토론을 위한 과정인데 이번 사태에서 혐오세력들은 토론의 준비, 다시 말해 자신들 입장을 수정할 가능성을 보였는가. 언론이 확대해선 안 될 혐오를 하나의 의견처럼 다뤄 혐오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숙명여대 상징 캐릭터 '눈송이'. 사진=숙명여대

 

여성으로 성을 전환해 여군복무를 신청했지만 군에서 쫓겨난 변희수 하사 사건이나, A씨가 숙대 법대에 지원하는데 동기를 부여했다는 트랜스젠더 박한희 변호사 인터뷰 등으로 이미 한국 사회에선 성소수자 혐오의 심각성과 문제점을 충분히 보여줬다. 페미니즘을 자칭한 혐오단체들은 이런 분위기에서도 혐오를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다수 매체가 이를 공론화하고 기사 제목으로 올렸다.

 

의견에도 층위가 있다. 사실을 허위정보와 대립각 세울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정치권 소식을 여야 입장을 반씩 담는 식의 보도를 인권문제에 그대로 적용해선 안 된다. 유대인 차별이나 나치 지지를 토론이 가능한 것처럼 찬성과 반대를 절반씩 다룰 수 없다. 혐오자들의 언어를 별 생각없이 토론 가능한 논리로 채택한 게으른 언론도 한 개인의 대학선택권을 짓밟는데 일조했다.

 

다행인 건 몇몇 언론사에서 성소수자 권리에 연대하며 혐오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줬다는 점이고, 불행한 건 이런 언론이 수차례 이런 목소리를 내왔는데도 여전히 혐오를 하나의 의견으로 포장하는 무책임한 언론이 있다는 사실이다.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위안부 기사 날조 잘못 없다"는 일본 법원, 수상하다

[기고] 아베의 도쿄올림픽, 히틀러의 베를린올림픽 떠올려

202026일 오후 230분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시 고등재판소는 1991년 일본군 성노예 위안부 사건을 첫 보도한 전 아사히 신문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에 대한 명예훼손 항소심 공판에서 원고에게 패소 판결했다. 201811월 삿포로시 지방재판소 1심판결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아베 총리의 측근으로 널리 알려진 사쿠라이 요시코 저널리스트는 "우에무라 기자의 위안부 보도는 날조되었다"는 기사를 각종 출판물들에 기고하여 일제의 위안부 강제동원의 전쟁범죄를 지워가는 극우세력의 역사왜곡(역사수정주의)의 선봉장으로 등장했다. 우에무라 기자의 명예훼손 소송을 불러들이고 일본 사회의 우경화 분위기 속에 법원으로 하여금 극우 논객들의 "위안부 보도는 날조되었다"는 주장을 합리화하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다. 오는 33일 도쿄 고등재판소의 우에무라 기자에 대한 같은 명예훼손 고소 항소심 선고에도 삿포로 항소심 판결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평화헌법의 파기를 추구하고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지향하는 아베 정권의 극우 분위기 속에서 일본법원의 판결 시리즈가 수상하다. 보편적 인권을 무시하고 전쟁범죄를 은폐하는 나라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1936년 제2차 세계대전을 예비하던 히틀러의 베를린 올림픽을 떠올리게 한다. 도쿄 올림픽을 성대하게 개최한 뒤 중의원을 해산하고 중의원 선거를 실시, 개헌 정족수를 확보한다는 것이 아베의 수순으로 알려져 있다.

 

우에무라 기자는 1991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처음 보도하여 여성을 성노예로 강제동원한 일본제국주의의 전쟁범죄의 진상규명 과제를 인류의 법정에 제기했을 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 사이의 최대의 외교 현안으로 등장토록 했다. 김학순 할머니의 실명 공개는 국내외의 다른 피해자들이 등장하도록 이끌었으며 일제의 전쟁범죄에 대한 규명 요구를 여러 부분으로 확대시켰다. 특히 1965년의 한일협정을 재론해야 한다는 학계의 논의를 촉발시켰다.

 

이에 대해 일본의 극우세력은 우에무라 기자의 기사가 "날조됐다"는 거짓 주장을 계속 제기했고 우에무라 기자를 음해·박해하기 시작했다. 우에무라 기자는 아사히 신문에서 물러나야 했고 두 차례 대학교수직에서 우익의 압력으로 사직해야 했다. 극우세력의 박해는 당사자인 우메무라 씨 개인에 한정되지 않았다. 그들은 우에무라 씨의 어린 딸 사진을 인터넷상에 공개하고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201910월에는 서울에서 우생모(우에무라 기자를 생각하는 모임: 대표 임재경 전 <한겨레> 부사장)가 모였다. 우에무라 씨의 법정투쟁을 응원하고 참관하자는 취지였다. 우에무라 씨를 '돕자'는 뜻보다는 그의 올바른 기자정신과 인류애를 실천하는 자세를 '생각'하고 본받자는 취지였다. 한국 사회에서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정상적 관계를 저해하는 왜곡과 저자세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에 힘을 쏟으려 했기 때문에 일본 안에서 역사왜곡과 인종차별에 저항하다 희생되는 일본인들에 대해 큰 관심 갖지 못해온 것이 그동안의 사정이었다. 이제 한국인들도 일본 안에서 보편적 인권과 진정한 한일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일본인들과 연대하는 시민운동을 벌여보자는 취지로 '우생모'를 결성하게 되었다. 이 모임에는 함세웅 신부, 신인령 이화여대 명예교수, 임재경 전 <한겨레> 부사장, 신홍범 전 조선투위 위원장,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등 30여 명이 참여하고 우에무라 씨의 법정 투쟁에 함께 해왔다.

 

우에무라 씨는 현재 부천의 카톨릭대학 겸임교수로 있으면서 일본 주간 <긴요비(金曜日)>의 대표 겸 평기자로 일하고 있다. 주초에는 대학에서 강의하고 주후반에는 도쿄에 가서 주간지 제작에 참여한다. 주간 <긴요비>는 일본의 유수한 진보 주간지이다.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 프레시안

 

'기생충'이 종식한 아카데미 '인종차별' 잔혹사

북미 열광 뒤에 드리웠던 '인종차별' 어두운 그림자

'한국어' 트집부터 평점 테러까지공격도 거세

"'기생충' 아카데미 수상, 백인 중심주의는 이제 비주류"

 

봉준호 감독이 9(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국제영화상을 받고 있다. 우측은 '기생충'1점 평점을 준 네티즌들의 평. (사진=연합뉴스, 아마존 홈페이지 캡처)

평점 테러부터 한국어 비하까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향한 북미 열광 뒤에는 인종차별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아카데미 시상식 당일까지도 그 벽은 좀처럼 무너질 것 같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생충'은 백인 중심주의를 대표했던 이 시상식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냈다.

 

'더 화이트 하우스 브리프'(The White House Brief) 진행자인 방송인 존 밀러는 10(한국시간)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각본상을 타자 SNS에서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을 비판했다.

       

존 밀러는 "봉준호라는 이름의 남자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1917'을 넘어 '오스카' 각본상을 수상했다"면서 "'엄청난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Great Honor. Thank you)'를 영어로 말한 후, 그는 남은 수상소감을 한국어로 진행했다. 이런 사람들이 미국을 파괴(destruction)한다"고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에 NBC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 케이티 팽은 욕설과 함께 "한국인이 싫으면 사라져라"는 답글을 남겼다. 가수 존 레전드 역시 "이런 멍청한 글은 돈을 받고 쓰는 건가, 아니면 재미로 쓰는 건가"라고 해당 글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프리랜서 기자이자 작가인 제나 기욤은 이날 SNS'기생충' 아카데미 인터뷰 도중 나온 황당한 질문을 공유했다.      그는 "일부 인터뷰 진행자들이 봉준호 감독에게 왜 '기생충'을 한국어로 제작했는지 물어봤다. 그들은 모든 미국 감독에게도 왜 그들의 영화를 영어로 제작했는지 물어볼 것"이라고 꼬집었다.

 

인터뷰 당시 영어로 제작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기생충'의 차이를 묻는 과정에서 이런 질문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설국열차', '옥자' 등 영어로 제작된 봉준호 감독 영화들에서도 캐릭터나 배경이 한국과 연관되면 한국어로 이야기가 전개돼왔다. 따라서 해당 질문에 인종차별적 인식이 깔려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한 네티즌(아이디: st****)"'기생충'은 한국 사회와 문화가 반영된 영화라 그 질문은 애초에 이치에 맞지 않는다. '설국열차'는 디스토피아 세계가 배경이라 그것이 어떤 언어든 관계가 없다"면서 "미국인들은 여전히 영어로 된 내용 이외의 다른 어떤 콘텐츠가 성공하고 호평받는 현상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슬프다"라고 안타까워했다.

 

미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 '기생충' DVD 리뷰에는 11%가 넘는 네티즌들이 평점 1~2점을 주기도 했다. 이 중 일부는 영화가 한국어로 돼있다며 '영어 자막'을 읽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환불을 요구했다.

 

그러나 결과는 기생충의 승리였다. '기생충'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최초로 최우수작품상을 포함, 감독상, 각본상, 국제 장편 영화상 등을 거머쥐며 4관왕에 올랐다. 무엇보다 92년 역사를 가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비영어권 외국영화가 대상인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기생충'이 처음이다.

       

AP통신은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 92년 역사상 처음으로 비영어권 영화로 작품상을 수상했다. 세계의 승리"라며 "'기생충'의 승리는 할리우드의 전격적인 변화와 지금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전진을 가능하게 했다"고 밝혔다.

 

CNN방송은 "'기생충'이 작품상 수상으로 오스카의 역사에 남게 됐다. 지금껏 오로지 11편의 국제 영화만이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오를 수 있었는데, 그중 '기생충'이 비영어권 영화로는 최초로 작품상을 받은 작품이 됐다"고 전했다.

 

'기생충'을 통해 백인과 남성, 두 가지 키워드로 대변되던 아카데미 시상식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 전체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는 평가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이날 CBS노컷뉴스에 "백인 우월주의적 시각은 존재하니까 당연히 아카데미 시상식이 '미국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런 부정적 반응이 나올 수 있다"면서 "다만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더 이상 그런 시각이 미국 내 주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아카데미는 '기생충'을 통해 백인 남성 중심 가치에서 탈피해 변화의 포인트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ywj2014@cbs.co.kr



정의당 "민노동 당원이었던 봉준호 감독, 정의당으로 승계 안돼

 

지난 9(현지시간)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각본·국제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미국 LA 더 런던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4관왕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이 정의당 당원은 아니라고 정의당이 밝혔다.

 

정의당 관계자는 11일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봉 감독의 당원 여부에 대해 "(과거) 민노당(민주노동당) 당원이었지만 정의당 당원으로 승계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라며 "중앙당에서도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봉 감독의 당적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당 전신(前身)이었던 당들에 대한 자료가 현재는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민노당 당원이었던 봉 감독이 진보신당을 지지하면서 현재 정의당 당원인지에 대해 누리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봉 감독은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좌파 연예인 대응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정부 비판 성향 문화·예술인을 대거 퇴출했을 당시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갔다.

 

지난 2017년 국정원 개혁위원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봉 감독은 이창동, 박찬욱 감독과 함께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영화감독 52명 중 한 명이었다. 2014년 청와대에 보고된 '문제 인물' 목록에도 봉 감독을 포함한 104명의 영화인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봉 감독은 지난해 한국인 최초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TBS 라디오 '최일구의 허리케인 라디오'에 출연해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것 자체가 죄악"이라며 "(블랙리스트에 오른) 독립영화 감독, 연극이나 소설 쪽 종사자처럼 국가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은 힘든 시절을 보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수완 기자 suwan@asiae.co.kr

 

BBC·아사히 기생충반지하조명남북갈등·주택난 산물, 가난의 상징

 

기택이 반지하방에서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

 

반지하’(banjiha)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배경이자, 주제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지난 9(현지시간) 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하자 해외 언론들이 한국적인 독특한 주택 구조인 반지하를 조명하고 있다.

 

영국 BBC10서울의 반지하에 사는 진짜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반지하 거주자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BBC영화는 허구이지만, 반지하는 그렇지 않다. 한국의 수도 서울에는 수천명의 사람이 여기에 산다고 소개했다. 기사에 소개된 오기철씨(31)의 반지하 주택은 빛이 거의 들지 않고 다육식물도 살기 힘들고, 사람들이 창문으로 그의 집을 들여다볼 수도 있다. 10대들이 그 앞에서 침을 뱉기도 한다. 여름에는 습기와 곰팡이와 싸워야 한다. 오씨는 한국에서는 좋은 차와 집을 갖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반지하는 가난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일부 반지하 거주자들은 가난하다는 사회적 평가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라고 BBC는 전했다. 반지하 거주자 박영준씨(26)여기에 산다고 사람들이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BBC는 반지하가 한국의 젊은이들이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면서 살아가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BBC는 특히 반지하가 남북 갈등의 역사에서 비롯된 주택 형식이라고 소개했다. 1968년 북한의 청와대 습격 사건 등 남북간 긴장이 높아진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1970년 건축법을 개정해 국가 비상사태 시 모든 신축 저층 아파트의 지하를 벙커로 사용할 것을 의무화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반지하 공간을 거주지로 임대하는 것은 불법이었지만 1980년대 주택난이 심해지자 충분한 주택을 공급할 능력이 없는 정부는 반지하 임대를 묵인했다. 1984년 주택법이 개정돼 합법화면서 반지하 주택은 더 급속히 확산됐다.

 

일본 아사히신문도 10<기생충>의 수상 소식을 전하면서 서울 관악구·마포구 등의 반지하 주택을 찾아가 반지하를 조명하는 기사를 실었다. 아사히도 반지하가 북한과의 긴장 관계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소개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반지하 주택의 한 주민은 아사히에 반지하는 가난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아사히는 도심에서 주택 부족이 심화하면서 저소득층이 저렴한 지하층 방에 살기 시작했지만, 최근 젊은이들이 몰리는 이태원 등지의 관광지에서 건물 반지하를 살린 카페나 잡화점이 특징적인 구조 등으로 인기를 끌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35년 전부터 살았다는 이즈미 지하루 서경대 부교수(한국문화)한국의 반지하 주택이 보여주는 사회의 격차는 세계적으로 공통된 테마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기택네 반지하38만가구가 산다

바닥에서 지표면까지 높이가 해당 층의 절반이 안 되면 반지하, 절반 이상이면 지하층으로 구분한다. 국토교통부의 ‘2018년 주거실태조사자료를 보면 전국 가구의 1.9%가 지하·반지하·옥탑방에 산다. 38만가구에 달한다. <기생충>이 세계 영화사에 기록할 만한 의미 있는 상을 받은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반지하의 삶은 그대로라는 점에서 씁쓸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기생충> 수상 소식을 전한 뉴스를 보고 한 누리꾼은 댓글에 누군가는 반지하로 고통받고, 누군가는 반지하로 상을 받는다고 썼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끊임 없는 선거개입 논란, 역대 정부와 비교해보니

과거 권력기관 동원문 정부 내부자들주도

권력 집중 청와대, 감시·견제 작동 안돼 되풀이

열린우리당 지지해달라

총선 앞둔 대통령 발언

중립 위반탄핵소추로

 


청와대 등의 직간접적 선거개입 논란은 매 정부 일어났다.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박근혜 정부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공천·경선 개입은 수사와 재판으로 이어졌다. 노무현 정부에선 지지해달라는 대통령의 말이 선거개입 논란으로 번져 탄핵소추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을 수사하면서 주요 인사 13명을 재판에 넘겼다.

 

18대 대선 국정원 동원

온라인 댓글 여론 조작

법원 “11만건 선거개입

 

역대 정부에서는 주로 청와대가 사정기관 등 권력기관을 직간접적으로 동원하는 방식으로 선거개입이 이뤄졌다. 이명박 정부는 201218대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을 동원해 온라인 댓글조작을 하는 간접적인 선거개입 방식을 이용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 수사팀장을 맡아 수사를 진행하다 좌천됐다. 법원은 대선 후보자들의 출마 선언일 이후 국정원의 트위터 글 등 11만건이 선거개입이라고 판단했다. 이익을 본 당사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선 전까지 이명박 정부 국정원의 댓글조작 사실은 인지하지 못했다.

 

당 경선·친박 공천 개입

청와대가 여론조사까지

정보경찰 동원한 정황도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대선이나 총선·지방선거가 아닌 여당 경선에 개입했다. 당시 청와대는 대구·경북 등 주요 지역의 새누리당 경선·공천 과정에 직접 개입했다. 법원은 20187월 국정원 특수활동비 국고 손실 관련 판결을 내리면서 비박계 의원들이 당 주도권을 잡은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이 친박계 의원을 대거 당선시켜 국정운영의 편의를 도모하려고 공천·경선에 개입했다고 봤다. 당시 대구·경북 지역 새누리당 당내 경선은 통과만 하면 대부분 당선으로 이어졌다. 청와대가 국정원 특별활동비까지 끌어와 120여차례 여론조사를 진행한 사실도 재판에서 드러났다.

 

검찰 수사 결과 박근혜 정부가 정보경찰을 동원한 정황도 드러났다. 검찰 공소장을 보면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은 201620대 총선을 앞두고 경찰에 선거 정보 수집을 요구했다. 현 전 수석은 20162당선 가능성을 알아봐달라며 친박계 후보 60~70명의 명단을 경찰에 전달했다.

 

검찰은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정보경찰을 이용한 정황은 밝혀내지 못했다.

 

특정 후보 당선에 초점

하명수사·공약지원 의혹

청 핵심 등 13명 재판에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은 청와대의 2018년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검찰은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 주요 인사 13명을 기소했다.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공소장에는 청와대가 경찰 수사력을 동원해 야당 후보자의 당선을 방해하려 한 정황이 나와 있다. 검찰은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송철호 울산시장의 당선을 도우려 당내 경쟁자를 회유하고, 공약수립을 도왔다고 본다. 특정 후보에게 초점을 맞춘 청와대의 선거개입 정황이 드러난 것이 특징이다. 아직까지 검찰 수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 등 선거개입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법원 판단을 받아야 하겠지만,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실제 경선과 선거에 개입하고 상대 후보를 떨어뜨리려 경찰 수사력까지 동원했다면 심각성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한규 전 서울변호사회 회장(변호사)청와대에 권력이 집중된 상황에서 청와대를 감시·견제하는 기구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선거개입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우리나라 지폐에 독립운동가가 없는 황당한 이유

조선 이씨 남자들 단골 모델로 쓰는 한국 지폐

 

현행 5만 원권에 오른 신사임당은 화폐 도안인물로 유일한 여성이다.

 

마침 때가 됐다. 평소에는 입에 올리지 않는 독립이니 운동이니 하는 낱말이 줄줄이 소환되고 관련 논의의 밑돌을 까는 때 말이다. 2019년은 3·1운동 100,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일제 식민지 치하 망명지에 ()정부하나 세운 거지만 어쨌든 1910 경술년에 나라가 망한 뒤 처음으로 왕정’(대한제국)에서 공화정’(대한민국)을 선포한 해니 그 100돌의 의미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우리 지폐엔 독립운동가가 없다

온 나라가 이 100돌을 기념하는 행사로 분주하다. 어저께는 2·8독립선언 기념식이 서울과 도쿄에서 동시에 열렸고 20일 뒤면 3·1운동 100주년 기념일이다. 411에는 임시정부 수립 100돌이 기다리고 있다.

 

언론매체에 소환된 기사 가운데 세뱃돈엔 왜 그 흔한 독립운동가 얼굴이 없을까?’(노컷뉴스)가 눈길을 끈다. 짐작했듯 우리나라 지폐의 도안 인물에는 독립운동가가 없다는 얘기다. 노컷뉴스는 조선 이씨 남자들 단골 모델로 쓰는 한국 지폐라고까지 표현했다.

 

1천 원권에는 퇴계 이황, 5천 원권 율곡 이이, 1만 원권 세종대왕이 나오니 조선 이 씨 남자들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나마 고액권인 5만 원권에 신사임당이 오르게 되면서 유일하게 여성이 올랐다.

 

그러나 그는 율곡의 어머니다. 율곡은 100원짜리 동전에 오른 충무공 이순신(500원 지폐 도안 인물)과 마찬가지로 덕수 이씨다. 이 집안 며느리가 된 사임당까지 포함하면 덕수 이씨 종친회라는 비아냥이 있을 만큼 치우친 건 맞다.

 

이들의 특징은 모두 조선 시대 인물이라는 점, 불행하게도 우리 화폐에는 근현대 인물이 없다. 이 민주공화국 시대에 여전히 봉건 왕조시대의 인물을 지폐에 올리고 있다.

 

외국에서는 독립운동가를 지폐 도안 인물로 올리는 경우가 많다. 생각해 보라. 식민지 압제를 받다가 독립해 신생 공화국을 세울 때 독립에 이바지한 인물을 지폐에 새겨 기리는 것은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 아닌가 말이다.

 

미국의 1달러 지폐()와 스코틀랜드 20파운드 지폐

 

미국의 1달러 지폐의 도안 인물은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다. 스코틀랜드의 20파운드(pound) 지폐엔 13세기 잉글랜드에서 독립을 쟁취한 로버트 브루스의 얼굴이 실려 있다.

 

독립운동가가 실린 영미, 아세안 국가의 지폐들

아시아권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필리핀은 5페소(peso) 지폐에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운동가인 에밀리오 아가날도의 초상을 실었는데 그는 스페인 식민지배와 맞서 싸우며 독립을 선언한 이다. 인도네시아도 5, 2, 1천 루피아(rupiah) 지폐에 각각 네덜란드에 저항한 독립운동가인 이드함 칼리드, 모하메드 호스니 탐린, 튜트 메우타를 새겼다. (관련 기사: 세뱃돈엔 왜 그 흔한 독립운동가 얼굴이 없을까?)

 

필리핀 5페소 지폐에 실린 독립운동가 에밀리오 아가날도

 

인도네시아 지폐에도 독립운동가인 이드함 칼리드, 모하메드 호스니 탐린, 튜트 메우타를 새겼다.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긴 했다. 한국은행이 20075·10만 원권 지폐 발행을 추진할 때 도안 인물로 몇 분의 독립운동가가 후보에 오른 것이다. 2차로 압축된 후보는 10명은 김구, 김정희, 신사임당, 안창호, 유관순, 장보고, 장영실, 정약용, 주시경, 한용운이었다.

 

신사임당과 유관순을 빼면 모두 남자다. 애당초 여성계에서 추천한 인물로는 허난설헌, 김만덕도 있었지만, 이들은 10명의 후보로는 오르지 못했다. 결국, 여성계의 반대에도 신사임당이 도안 인물이 됐다. (관련 글: 다시 난설헌을 생각한다)

 

유관순 열사가 탈락한 것은 안타깝다. 미혼여성으로 일제에 맞서다 감옥에서 순국한 그가 지폐에 올랐다면 그는 프랑스의 잔 다르크에 못지않은 상징성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성단체들이 연대해 유관순을 지지했는데도 신사임당이 뽑힌 이유는 역으로 유관순이 탈락한 까닭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유관순 열사가 열여덟의 여성이 아니라 한 가정을 이룬 어머니였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적어도 어머니가 아닌 여성미완의 존재로 인식되는 것은 이 땅에선 여전히 관습인 것이다. 어쨌든 신사임당이 도안 인물이 된 것은 여성계의 지적처럼 가부장 시대의 현모양처 이미지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고액권 지폐의 도안 인물로 거론되었던 독립운동가들(김구, 안창호, 안중근, 유관순)

 

10만 원권은 김구를 도안 인물로 낙점했다. 그러나 2009년 고액권이 나올 때 정작 10만 원권은 발행이 무산되면서 독립운동가가 지폐에 실릴 기회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적지 않은 이들이 당시 이명박 정부가 도안 인물로 김구를 올리는 걸 마뜩잖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우리 지폐에 독립운동가가 없다는 문제 제기에 한국은행에서는 독립운동가의 경우 좌우 사상이 달라서 국민 평가가 나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글쎄, 이미 법적·역사적 평가가 끝난 광주민주화운동(5·18광주항쟁)’을 두고 민의를 대변한다는 국회의원들이 망언을 서슴지 않고 제1야당이 다양한 해석운운하는 상황이라면 독립운동가에 대한 국민 평가가 수렴될 일이 있기나 할까.

 

독립운동과 건국을 바라보는 '슬픈 확증편향들'

한국은행은 충분한 시간이 흐른 뒤 역사적인 고증을 완료하고 국민이 일관되게 해당 인물을 평가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러나 소수 극우세력이 일삼는 역사 왜곡 뒤에 숨어서 자신의 정치적 이해를 꾀하는 정치적 상황이 이어진다면 그건 가망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김구가, 안창호, 안중근이, 유관순이 독립운동가라는 사실은 한국인이라면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좌우 사상이 달라서 국민 평가가 나뉜다고? 문제는 독립운동을 정치적 입장과 이해에 따라 재단하는 걸 용인하는 우리 사회에 있다.

 

저들은 올해를 대한민국 100년으로 규정하는 것이 마뜩잖다. 저들의 뇌리에는 국부이승만이 정부 수립을 선포한 1948815일이 건국일이라 강변한다. 저들에겐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일이 저들이 우러러 받드는 이른바 국부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그것은 저들이 이승만과 동렬에 놓고 숭앙하는 박정희의 친일부역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일이기도 하다. 자신들이 우러르는 가치를 위해 역사적 사실마저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슬픈 확증편향의 질곡에 저들의 대한민국은 꽁꽁 갇혀 있는 것이다. 1boon.kakao/직썰20.2.5/낯달

 

혐오·공포 조장에 감염된 언론, 재난 앞에서도 편가르기

지역 편견 우려 우한 폐렴명칭

변경 권고에도 중 눈치 보나묵살

총선 앞두고 무능한 정부프레임 강조

방송사는 여야 의원 싸움 부추겨

 

정확성보다 속보, 질보단 양 치중

허위·과잉보도 거침없이 쏟아내

확진자 신상털이식 사생활 침해도

언론계, 내일 보도준칙의견 수렴

 

국민 생명·건강과 직결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를 보도하는 언론들이 혐오·공포를 조장하는 자극적 표현으로 되레 국민 불안과 혼란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지난달 20일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뒤 지금까지 우리 언론은 이 사태를 어떻게 보도하고 있을까. 생명·건강과 직결된 감염병 보도에서조차 여전히 정확성보다 속보 경쟁에 골몰하고, 혐오·공포를 지나치게 조장해 국민 불안과 혼란을 부추기는가 하면 4월 총선을 겨냥한 정파적 보도를 일삼는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특정 지역 혐오 담긴 용어 지속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번에 확산한 감염증에 대해 특정 지역을 둘러싼 불필요한 편견이 생기지 않도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병명을 사용하도록 권고했다. 한국기자협회,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 등 언론단체도 지난달 30일 인종차별적 명칭 및 사회적 혐오·불안을 유발할 수 있는 자극적 보도 자제, 현장 취재기자들의 안전 고려 등 긴급 제안에 나섰다. 김동훈 기자협회장은 검증되지 않은 잘못된 보도들이 나돌아 국민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보도는 자제하자는 취지에서 지침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처음엔 감염병의 발생지를 반영해 우한 폐렴으로 명명하던 언론들은 이런 권고와 지침을 받아들여 대부분 신종 코로나로 바꿨으나 일부 보수신문은 중국 눈치 보기를 하는 거냐며 묵살했다. <조선일보> <문화일보> <한국경제> 등은 기사 본문에선 우한 폐렴과 신종 코로나를 같이 쓰지만 제목에선 우한 폐렴을 고집한다. 일부 신문은 우한폐렴 공포’ ‘신종폐렴 포비아’ ‘신종 코로나 초비상등 경각심보다 과도한 공포감을 조성하는 머리띠를 몇개 면에 걸쳐 사용하고 있다.

외국 언론의 경우, 지역명은 가급적 넣지 않는다.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 언론은 대부분 코로나바이러스<아사히신문> <요미우리> 등 일본 신문은 신형 폐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4월 총선 겨냥 정파적 프레임

과거 사스, 신종 플루, 메르스 등 감염병 사태 때도 불안과 갈등을 부추기는 보도가 있었지만 이번엔 4월 총선을 앞두고 방역 구멍’ ‘방역 참사등 정부 무능을 드러내는 정파적 프레임이 더 확대됐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사회적 재난이 터졌는데 언론이 노골적으로 정파적 보도를 일삼고 있다재난 앞에 내 편 네 편 하며 공정 보도를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비판했다. 방송에선 여야 의원을 불러 감염병 사태를 놓고 싸움을 부추겨 시청자 눈총을 받기도 했다.

 

국민 불안 해소를 위해 전문성에 근거한 정확한 정보 전달이 절실한데 선정적 분위기에 무게가 쏠린 기사로 되레 공포심을 자극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임영호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미국 <시엔엔> 등 보도는 전문가 해설과 사건의 진전 위주로 건조하게 전달한다. 그런데 국내 언론은 정보 전달보다 반응 등 정서적 분위기에 치우쳐 불안감을 극대화한다고 짚었다. <헤럴드경제>대림동 차이나타운 가보니’(129) 르포기사는 가래침을 뱉고 우한 폐렴을 무색하게 하는 비위생적인 행태가 즐비하다며 중국인 혐오 정서를 드러내 논란이 됐다.

앞서 종합편성채널 <채널에이>중 에이즈 치료제까지 투입’(뉴스에이·126) 리포트를 통해 우한 의료진을 자처하는 여성이 감염자가 이미 9만명에 이른다. 현재 2차 변이까지 일어났다. 폭발적인 전염이 예상된다고 말하는 영상을 내보냈다. 에스엔에스를 통해 퍼지는 미확인·허위조작 정보에 대해 언론이 진위를 가리기는커녕 무책임하게 보도해 국민 불안을 키웠다는 비판이 일었다.

 

모든 현안을 삼키는 과잉 보도를 우려하는 견해도 있다. 신문은 날마다 몇개 면에 걸쳐 신종 코로나 사태를 집중 조명하고, 방송도 10여 꼭지로 나눠 20분 넘게 진행한다. 김동원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은 신종 코로나 보도량이 너무 많다. 재난 보도는 정확성이 핵심인데 속보성에 치우쳤기 때문이다. <중앙일보>가 정부 공식 발표 전에 우한 교민 수용지역을 천안이라고 보도해 논란을 촉발한 것이 단적인 사례라고 비판했다.

 

무분별한 외신의 재인용이나 간접인용도 문제다. 지난 8<연합뉴스>신종 코로나, 비말·접촉 외에 에어로졸 통한 전파도 가능이라는 보도가 그렇다. 쩡췬 상하이시 민정국 부국장이 기자회견에서 위생방역 전문가 의견을 인용했고, 이를 중국 매체 <펑파이>가 보도한 것을 받아쓴 기사인데 검증 없이 전달해 파장이 컸다.

 

인권·사생활 침해보도준칙 되새겨야

확진자의 동선에 대한 신상털기식 보도나 사생활 침해를 일삼는 보도도 논란거리다. 일부 언론은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생활하는 우한 교민들이 빨래를 널거나 앉아서 휴대폰 하는 모습 등을 클로즈업해 찍은 사진을 내보냈다. 윤석빈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장은 피해자 노출 사진은 질병 예방을 위한 정확한 정보와 관리 등의 본질을 벗어난 인권침해라며 언론사들이 내부 준칙을 점검한 뒤 이용자에게 선제적으로 알리고 이를 준수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종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전문가와 언론이 머리를 맞대고 기존의 인권·재난 보도 준칙과 별도로 감염병 보도 준칙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미 2012년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단이 학회와 협의해 공포·대혼란 등의 표현 안 쓰기, 감염병의 규모·증상에 대한 과장된 표현 자제하기 등을 담은 준칙을 제정했으나 전체 기자 사회에 공유되진 못했다. 기자협회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은 13일 긴급 토론회를 열어 감염질병 보도준칙제정을 위한 언론계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

 

최기상까지 전현직 판사 정치권행 마무리사법의 정치화우려



전국법관대표회의 최기상 전 의장(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이 지난해 38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최기상(51) 전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가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며 정치권 진출을 공식화했다. 법조계를 중심으로 전·현직 판사의 정치권행이 판결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 사법의 정치화, 정치의 사법화를 심화시킨다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더불어민주당은 4·15 총선을 앞두고 최 전 부장판사를 인재 20로 영입했다고 밝혔다. 최 전 부장판사는 기자회견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가 드러난 지 3년이다. 그동안 법원 안팎으로 수많은 개혁 논의가 있었지만 실제로 바뀐 것은 없었다. 법 개정에 앞장서야 할 국회는 나서지 않고 법원은 주저하고 있다생살을 찢어내는 고통 없이는 개혁을 이룰 수 없다. 인권 최우선 수사와 책임 있는 재판을 통해 국민들께서 법이 있어 참 다행이다라고 느끼는 사법제도를 꼭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최 전 부장판사는 1999년 임용돼 광주지법과 서울중앙지법 등에서 근무했다. 2015년 우리법연구회 회장과 20182월 전국 각급 판사 대표들이 모인 회의체 기구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의장을 지냈다.

 

이날 민주당의 1차 인재 영입을 끝으로 최기상, 이수진, 이탄희, 장동혁 등 전·현직 판사의 정치권 진출도 마무리된 모양새다. 그러나 현직 판사의 정치권행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판결의 공정성을 의심받지 않으려면, 적어도 법원을 퇴직하고 나서 일정 기간 냉각기를 가져야 하는데 일부가 현직 판사라는 프리미엄을 갖고 정치권으로 직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시각이다. 지난해 2월 퇴직한 이탄희전 판사를 제외하고 모두 사표 제출 뒤 바로 입당 절차를 밟았다. 최 전 부장판사는 서울북부지법 민사합의부에 소속돼 일하다 사표를 내고 지난달 13일 자로 법원을 퇴직했다. 장동혁 전 부장판사도 사표를 내자마자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한 판사는 시민의 입장에선 과거 판결의 공정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 불신은 결국 남아있는 3천여명 판사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판사는 정치를 하겠다는 것을 말릴 수는 없지만 어제까지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는 판사였고, 오늘은 특정 정당 소속 정당인이라면 국민들에게 그 연속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나. 국민들이 어떻게 판사의 판결을 믿을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특히 최 전 부장판사가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의장을 지냈던 만큼 사법농단 의혹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전국법관대표회의 활동의 진정성을 퇴색시켰다는 비판도 나온다. 법관대표회의는 각급 법원 판사회의에서 선출된 판사들이 법관 독립과 사법행정 개혁을 위해 모여 토론하고 의결하는 대의기구다. 최 부장판사 등 정치권에서 뛰어든 전·현직 판사를 설명할 때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주요 이력으로 소개되자, 전국법관대표회의 운영위원 등은 특정 판사의 정치경력으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발표할지를 검토하기도 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박사모에서 레지스탕스로, 가장 인상적인 극우세력

[한국의 보수단체들 1]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은 왜 위축됐나

 

다큐멘터리 <미스 프레지던트>의 한 장면 단유필름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이하 박사모)은 한때 친박세력 혹은 극우세력의 대명사였다. '박사모 현상'이라 할 만한 센세이션도 일으켰다. 박정희나 1970년대에 향수를 가진 사람들이 이들의 집회에 참석해 박정희와 박근혜를 연호했다.

 

박사모 회원들의 일상을 추적한 2017년 다큐멘터리 <미스 프레지던트>는 아침마다 선비 복장을 하고 의관을 정제하는 조육형 농민을 보여준다. 그는 그런 차림으로 박정희·육영수 영정에 절한 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낭송한다. 그런 다음에야 부모님 영정에 절을 올린다. 청주에 사는 그는 박사모 집회에 참석하고자 자비를 들여 서울역까지 부지런히 행차한다.

 

울산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종효 사장 부부는 식당 벽면을 박정희 부부 사진으로 도배해 놓았다. 이 부부는 "친일을 했다, 사람을 많이 죽였다 하지만, 나한테는 귀에 안 들어와"라며 이런 가치관이 싫으면 식사하러 안 오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말한다. 매상이 감소하는 한이 있더라도 식당 손님들한테 자기들의 가치관을 꼭 알려주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처럼 극우에 가까운 일부 한국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다큐 영화 소재로까지 등장했던 박사모다. 그런 박사모가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 있다. 2016년과 2017년 탄핵정국 때만 해도 눈에 자주 띄었던 박사모가 어느 순간 희미한 존재가 되어 있다.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은 다음카페가 왕성했던 20043월 생겼다. 2선 국회의원인 박근혜가 한나라당 지도자로 부각되던 때였다. 2002년 대선 당시 선거자금을 트럭째 불법 수수한 '차떼기 사건'으로 한나라당이 국민적 지탄을 받는 데다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2004312일 국회 탄핵소추로 한나라당이 역풍을 받고 있을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323일 한나라당 임시전당대회에서 박근혜가 51.8% 득표로 새 대표로 선출됐다.

 

당시 한나라당 출입기자였던 천영식 문화일보 기자가 <박근혜, 나는 독신을 꿈꾸지 않았다>에서 "박근혜는 차떼기로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의 유일한 구원투수였다"고 한 것처럼, 이 시기 박근혜는 좀 과장되게 말하면 보수세력의 구세주였다. 그 구세주가 한나라당 신임 대표가 된 지 일주일 뒤인 330, 정광용이라는 전직 CF 감독 겸 광고회사 사장에 의해 박사모가 생겨났다. 박근혜의 지도자 부각과 거의 정확히 때를 같이해 출현했던 것이다.

 

노무현 팬클럽으로 출발한 노사모의 정식 명칭은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노사모에서 '노무현'뿐 아니라 '사람들'도 함께 강조된 것과 달리,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에서는 박근혜만 강조되고 있다. 가벼이 볼 수도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차이다.

 

처음부터 정치 결사체 지향

 

18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진 2012121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박사모" 회원들이 모여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응원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이 외에도 두 팬클럽의 차이는 많다. 초창기 모습도 확연히 달랐다. 노사모는 팬클럽으로 시작해 정치 결사체로 변모해간 데 반해, 박사모는 외형상으로는 팬클럽을 표방했지만 실상은 처음부터 정치 결사체를 지향했다. 박사모 카페의 게시글들을 분석한 조국현 한국외대 교수의 2011년 논문 '정치인 팬 커뮤니티 분석-박사모를 중심으로'는 이렇게 설명한다.

"박사모는 처음부터 결사체적 팬 커뮤니티로 출발했다. '대한민국 박사모 회칙'에는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대한민국의 헌법을 수호하여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적 실현과 시장경제질서에 의한 평화적 통일에 기여'하고자 한다는 포괄적인 정치적 목표와 더불어 (중략) 구체적인 활동 방향을 제시한다." - 한국텍스트언어학회, <텍스트 언어학> 31

처음부터 정치 결사체를 지향한 박사모는 박근혜의 정치적 기운 상승과 보조를 맞추며 회원 수를 늘려갔다. 박근혜한테는 영부인 대행을 한 1974~1979년과 한나라당 지도자와 대통령으로 생활한 2004~2016년이 정치적 절정기였다. 박근혜의 절정기가 재개된 2004년에 등장한 박사모는 <미스 프레지던트> 등장인물과 비슷한 사람들을 회원으로 흡수하며 국내 최대의 정치인 팬클럽으로 급성장했다.

 

이 단체의 절정기는 박근혜가 당선된 2012년 대선 때였다. 2016118일자 <매일경제> 기사 '최순실 정국 속 박사모 회원 수 2012년 수준으로 증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2012년 당시 박사모 회원은 7만 명 이상이었다. 물론 그 전부가 다 진성 회원은 아니지만, 이 숫자는 이들의 영향력을 반영할 만했다. 전년도인 201142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박사모 7주년 창립기념 대회장에 한나라당 전·현직 최고위원들을 포함해 6000명 정도가 참석했다. 그들의 세를 짐작케 하는 장면이다.

 

그들은 전국 주요 시·도는 물론이고 해외에도 지부를 뒀다. 해외 지부도 적극적인 활동을 보였다. 일례로 미주본부는 대선 5개월 전인 20127월 중앙선관위의 경고를 받았을 정도로 열심히 '불법선거운동'을 했다. 국내에까지 영향을 줄 정도로 박사모 해외 지부가 열성을 보였던 것이다.

 

미주본부장 션리(Sean Lee)는 그해 대선 3주 전인 1127, 박근혜 당선 축하 행사 초대장을 돌렸다. 로스앤젤레스 한식당을 예약까지 해두고 초대장을 발송했다. 이 때문에 126일자 <한겨레>'박사모 벌써 김칫국··· 박근혜 대통령 당선 축하 초대장 발송'이란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박사모의 과도하지만 적극적인 열성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그런 세를 발판으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과 2012년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및 대선 운동에서 박근혜 유세장에 군중을 모으고 열렬한 환호를 표시했다. 이들은 박근혜가 출마하지 않은 선거들에도 지나친 적극성을 보이는 바람에 말썽을 일으키기도 했다.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으로 카페 활동이 위축된 뒤에도 그들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일례로 20대 총선 직전인 2016213일에는 박사모 구미지부·김천지부 및 박사모 동우회가 새누리당 예비후보 백승주에 대한 지지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백승주는 이때 당선됐다.

 

맹목적 애정

 

201745일 박사모, 탄기국 등 박근혜 지지자들이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모여 새누리당 중앙당창당대회를 열고 있다. 왼쪽부터 새누리당 권영해, 정광택 공동대표, 정광용 사무총장, 조원진 사무총장, 박근혜 전 대통령 전 변호인 서석구 변호사. 이희훈

 

박근혜 당선을 계기로 한국 사회는 이전보다 훨씬 우경화됐다. 독재자 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유연해진 가운데 국정교과서 사태에서 드러나듯 우경화 경향이 힘을 얻었다. 일반 국민들의 분위기와 관계없이 정권 차원에서 조장된 경향이기는 하지만, 이런 속에서 박사모 회원들은 자유롭게 말하고 외칠 수 있었다.

 

그들은 단순히 극우 목소리를 쏟아낼 뿐 아니라 박근혜에 대한 맹목적 애정을 함께 드러냈다. 박근혜를 위해서라면, 같은 편일지라도 가차 없이 공격했다. 2008년 총선 때 친이명박계인 이재오를 포함한 5명을 상대로 '5적 낙선운동'을 벌여 4명을 낙선시킨 일은 유명하다.

 

이때 그들은 '5' 일원인 이방호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경남 사천에서 당선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차라리 강기갑 민주노동당 후보가 낫다'는 내용의 기자회견까지 했다. 이때 당선자는 강기갑이었다.

 

이렇게 맹목적인 열성을 보이던 박사모는 2016년 연말의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거리로 광장으로 뛰어나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었다. 그들은 태극기 집회 초반에 주도적 세력으로 부상했다. 카페지기 정광용이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대변인이 된 것도 그런 배경 덕분이었다.

 

그들은 '박근혜 무죄'를 외치며 새누리당 재건에도 나섰다. 자유한국당 출범으로 새누리당이 없어지자, 박근혜의 흔적이 묻은 그 당명을 되살리고자 극우세력을 중심으로 당을 재건한 것이다. 정광용은 재건된 새누리당에서 사무총장이 됐다.

 

박사모는 2012년 박근혜 당선 때도 절정기를 맞았지만, 2016년 촛불정국 때도 비슷한 절정기를 맞이했다. 이전보다는 줄어들었지만 박근혜를 연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은 가장 인상적인 극우세력으로 부각됐다.

 

하지만 얼마 뒤, 박사모는 언론 지상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다른 조직이 그 자리를 점유한 것이다. 서울역 친박집회나 서울구치소 앞 친박집회는 그들의 몫이 아니었다. 조원진으로 대표되는 우리공화당(대한애국당의 후신)2017년 이후로 그 자리를 차지했다.

 

정광용의 절대적 영향력

 

2017412일 박사모 정광용 회장이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안국역 인근 집회에서 일어난 폭력 사태 등으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다. 이희훈

 

202025일 현재 81178명이라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의 박사모는 더 이상 예전의 박사모가 아니다. 81178이라는 숫자는 더 이상 이들의 영향력을 반영하지 못한다.

 

2017년 초반까지만 해도 왕성했던 박사모가 이렇게 유명무실하고 형해화된 것은 정신적 구심점인 박근혜가 구속되고 촛불혁명 이후 한국사회가 진보를 지향하게 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박근혜가 구속되고 보수가 위축되는 속에서도 토요일마다 서울역에서는 여전히 친박집회가 왕성하게 열린다. 박사모가 위축된 원인은 다른 데 있다.

 

2016년 촛불혁명은 극우세력한테도 기회였다. 한국 사회가 진보로 기울자, 위기감을 느낀 보수가 극우를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중도 성향의 보수한테는 불리해도, 극우한테는 꼭 그렇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인데도 박사모가 오히려 위축됐던 것이다.

 

촛불혁명 직전까지 극우세력 중에서 비교적 잘 준비된 곳은 박사모였다. 그런데도 박사모는 촛불 정국 몇 개월 만에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졌다. 이렇게 된 원인 중 가장 중요한 2가지는 그들의 조직 구조와 대선 정국 때의 패착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군중이 집회에 참석하고 지부들의 모임도 왕성했지만, 실제로 박사모는 카페지기 1인의 절대적 영향 하에 놓여 있었다. 다음카페를 통해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구조 속에서 카페지기 정광용 1인을 중심으로 중요 결정들이 이뤄졌다.

 

2011년 창립 기념대회에서 정광용의 대회사 첫마디는 "2004330일 밤, 정광용이라는 네티즌 한 사람이 포털사이트 다음에 1인 카페를 개설한 것이 오늘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정치인 팬클럽인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대한민국 박사모의 태동이었습니다"였다. 다소 감상적이고 자화자찬 같은 언급이 대회사 첫머리에 나올 수 있었던 데서도 느낄 수 있듯이, 박사모는 정광용 1인의 절대적 영향력 속에 운영됐다. 박근혜를 구심점으로 하는 조직이면서도 실상은 정광용을 중심으로 작동됐던 것이다.

 

이로 인해 2017년에 정광용이 폭력집회 혐의로 구속되자, 박사모는 위축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중이 알고 있던 외양과 달리 박사모의 내실이 그다지 튼튼하지 않았던 것이다. 충무체육관에 6000명을 모았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으면서도, 카페지기가 없으면 운영되기 힘들 정도로 내적 원동력이 취약했던 것이다.

 

박사모에서 레지스탕스로

 

박사모 카페 갈무리 박사모

 

201712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정광용은 이듬해 5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하지만 3개월 뒤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지금은 다시 활동하고 있지만, 2017년 이후로 박사모는 재기의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1인 카페를 그 정도까지 키운 능력은 대단하지만, 1인이 없으면 조직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현실은 그들의 한계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과도한 1인 체제에 더해 2017년 대선 때의 노선 혼란도 박사모 약화의 계기가 됐다. 새누리당이 재건된 뒤의 노선 혼란이 박사모를 흔드는 원인이 됐다.

 

201745일자 <중앙일보> '박사모 등 친박단체 새누리당 창당 ···독자 후보 내겠다'에 보도된 것처럼, 새누리당 재건 당시 정광용은 조원진 의원,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 등과 더불어 대선후보 경선에 나설 용의를 피력했다. 그 뒤 그는 후보가 된 조원진에게 반기를 들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지지했다.

 

이것은 박사모 회원들의 정서에 역행하는 것이었다. 박사모 회원들은 당선 가능성을 떠나 '극우이념과 박근혜'를 가장 잘 대변할 후보를 선호했다. 당락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들의 생각을 대변해줄 후보를 원했던 것이다. 정광용의 홍준표 지지는 이런 분위기를 거스르는 것이었다. 이는 많은 박사모 회원들이 정광용한테서 등을 돌리게 만드는 원인이 됐다.

 

보수세력 내에서 극우의 입지가 강해지던 때였다. 대선 득표율과 관계없이 그런 현상이 강해지던 때에, 박사모 지도자 정광용의 노선 이탈은 박사모를 위축시키는 원인이 됐다. 지금도 여전히 박근혜 석방을 외치는 목소리가 작지 않고 친박집회도 계속 열리고 있지만, 박사모가 우리 귓전에서 멀어진 것은 그런 이유들 때문이다.

 

20185월 석방 뒤 정광용은 조직 명칭을 박사모에서 레지스탕스로 변경했다. 그래서 지금 이들의 카페에는 박사모와 레지스탕스라는 두 개의 명칭이 병기돼 있다. 그들은 조직 명칭을 '박사모(레지스탕스)'로 표기하기도 한다.

 

정광용과 박사모는 한때 큰 성과를 본 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단체가 향후 재기할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박사모의 초기 성장을 가능케 했던 '박근혜의 정치적 기운 상승'이라는 요인이 사라진 데다가, 과도한 1인 체제와 2017년의 정치노선 이탈로 극우 지지자들의 신망을 잃어버린 박사모가 앞으로 어떤 방법으로 활로를 모색할지 주목된다./ 김종성(qqqkim2000) / 오마이뉴스

 

이미경 수상소감에 뚝심 CJ’ ‘영화계 천편일률화아침신문 솎아보기]

이미경의 수상소감 다른 시각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탔을 때 수상소감을 밝힌 이미경 CJ 부회장. 논란이 일었다. ‘배우와 감독을 제치고 자기가 뭔데?’ ‘재벌의 수상소감은 기생충의 현실판’ ‘꼭 마이크를 잡아야 했느냐등 부정적 반응이 적지 않았다.

 

반면 아카데미 수상에서 이 부회장의 조력 역할을 높게 평가하며 문제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부회장은 기생충의 책임프로듀서(CP). 쉽게 말하면 투자자 역할이다.

 

12일자 조간에서도 엇갈린 평가를 확인할 수 있다. 서정민 한겨레 기자는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정권 시절 탄압을 받으면서까지 봉 감독 영화에 지속해서 투자·지원을 했고, 오스카 수상을 위해 100억원 넘는 돈을 들여 홍보 캠페인을 벌였다고 평가하면서도 기여도는 인정하지만 주인공처럼 전면에 나서는 건 과했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전했다.

 

이미경 CJ 부회장을 조명한 내일신문 11일자 기사.

 

한겨레 보도에서 강유정 강남대 교수는 이 부회장 수상소감에 “CJ로 대표되는 대기업 수직계열화가 한국 영화산업 고도성장의 밑거름이 된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로 인해 대작 상업영화 중심으로 영화계가 천편일률화되면서 그 부작용으로 포스트 봉준호가 될 재능 있는 신인이 나오기 힘든 환경이 됐다. 이런 공과를 모두 보여준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한겨레가 이미경 CJ 부회장이 왜 거기서 수상 소감을?”이라는 제목으로 이 부회장을 둘러싼 논란을 정리했다면 동아일보는 “‘기생충 영광뒤엔 뚝심투자 CJ남매라는 제목으로 CJ의 후원자 역할을 치켜세웠다.

 

동아일보는 이 부회장과 동생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25년간 영화 투자와 제작, 극장, 콘텐츠 투자, 방송 등 문화 콘텐츠를 앞세워 세계 시장에 진출할 밑그림을 그렸다. 봉 감독과는 살인의 추억을 시작으로 마더’, ‘설국열차’,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함께 하며 인연을 이어나갔다고 했다.

 

이어 유일하게 미국 대형 제작사의 작품이 아니었던 기생충의 오스카 캠페인은 봉 감독은 물론 CJ에도 모험이었다. 아카데미 상 후보 선정과 수상은 관객의 반응뿐 아니라 투표권을 가진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들의 표심을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라며 이 부회장의 지원 아래 CJ ENM은 영화사업본부 해외배급팀을 중심으로 전체 캠페인을 총괄하고 오피니언 리더들을 대상으로 현지 프로모션과 파티, 홍보 등을 통해 기생충 캠페인을 펼쳐나갔다고 전했다.

 

한겨레 12일자 2.

 

김동호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칼럼에서 한국 영화산업의 대모로 떠오른 이미경 부회장은 작품상 수상 소감에서 이재현 회장의 기여를 두 차례나 언급했다. CJ는 그동안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과감히 투자해 왔다. 관련 상장사도 두 개나 된다사실 엔터테인먼트는 한국에서 큰돈을 벌기 어려운 사업이다. 시장이 작고 언어도 한국어여서 확장성이 없다. 그럼에도 CJ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수많은 화제작을 배출했다. 이번에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의 주인공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한편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을 독점 중계한 TV조선 시청률은 6.1%(닐슨코리아·수도권·유료가구)였다. 조선일보는 분당 최고 시청률은 작품상이 발표되고, CJ 이미경 부회장이 수상 소감을 말하는 장면에서 11.6%까지 치솟았다고 밝혔다.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최영미 “1987년 백기완 캠프서 당한 성추행, 말도 못 한다

시집 돼지들에게모델은 문화예술계 권력인사

 

최영미 시인이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카페에서 '돼지들에게'개정증보판 발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인 최영미가 시집 돼지들에게에 등장하는 돼지에 해당하는 인물을 폭로했다. 2005년 초판을 낸 지 15년 만이다. 그는 실명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경험담을 통해 일부 신상을 설명했다. 1987년 대통령 선거 후보 캠프에서 공공연히 일어났던 성추문을 고발하기도 했다.

 

최 시인은 11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시집 돼지들에게개정증보판 출간을 기념한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돼지들에게에 등장하는 수많은 돼지들은 지난 15년 동안 그 실체에 대한 무수한 논란이 있어왔다.

 

그는 “2005, 그 전쯤에 어떤 문화예술계 사람을 만났다그가 돼지들에게의 모델이라고 폭로했다. 이어 해당 인물을 문화예술계에서 권력이 있고 한 자리를 차지한 인사” “기사가 딸린 차를 타고 온 사람등으로 기억했다.    성희롱까지는 아니지만 여성에 대한 편견이 담긴 말을 듣고 매우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고도 했다. 최 시인은 조금 더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면서도 보도는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를 만나고서 개운치 않은 기분이어서 며칠 동안 기분이 안 좋았다불러내고서 뭔가를 기대하는 듯한, 나한테 진주를 기대하는 듯한 (눈치였다)”이라고 회상했다. “그 사람은 이런 시를 쓰도록 동기를 제공한 사람이고, 첫 문장을 쓰게 한 사람이라고도 했다.

 

최 시인은 이날 1987년 대통령 선거 기간 진보 단일후보였던 백기완 후보 캠프에서 활동할 당시 보고 겪었던 성추행 사건을 폭로하기도 했다. 그는 그때 당한 성추행은 말도 못 한다선거철에 합숙하며 24시간을 일한다. 한 방에 스무명씩 겹쳐서 자는데 굉장히 불쾌하게 옷 속에 손이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나에게뿐만 아니라 그 단체 안에서 심각한 성폭력이 있었다학생 출신 외에 노동자 출신 등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 그때 다 봤고 회의를 느꼈다고 털어놨다.   당시 최 시인은 피해 사실을 여자 선배에게 상담했으나 네가 운동을 계속하려면 이것보다 더 심한 일도 참아야 한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했다./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

 

올해 표준지 공시지가 6.33% 상승서울 7.89% '최고'

작년보다 3.09%p 하락10년 평균보다는 높아

현실화율은 평균 65.5%전년보다 0.7%p 상승

서울·광주·대구 전국 평균 상회울산 가장 낮아

서울에선 성동구 11.16% 최고..강남구 10.54%

명동 네이쳐리퍼블릭 17년째 1…㎡2억 육박

 

[서울=뉴시스] 강세훈 기자 = 올해 전국 표준지 공시가격이 지난해 보다 6.33% 오른다. 두 자릿대 상승률을 기록했던 작년보다는 낮아졌지만 최근 10년 평균(4.68%) 보다는 높은 수치다. 가격 현실화율은 작년보다 소폭 오른 65.5% 수준을 기록했다.

 

1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표준지 공시지가는 전국 평균 6.33%, 서울 7.89% 상승했다. 전년과 비교하면 전국 평균은 3.09%포인트(p) 하락했고, 서울도 5.98%p 하락한 것이다. 국토부는 전국 공시대상 토지 약 3353만 필지 중에서 50만 필지를 표준지로 선정해 이에 대한 가격을 공시했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0년 부동산 가격공시' 기준에 따라 산정됐으며 오는 313일까지 접수된 이의신청에 대한 재조사·평가와 중앙부동산가격공시위원회 심의를 거쳐 410일 최종 공시된다. 올해 전국 평균 상승률은 지난해(9.42%) 보다는 하락한 것이지만 최근 10년 평균 상승률(4.68%)에 비해서는 높은 수준이다.

서울은 7.89%로 두 자릿대 상승률(13.87%)을 기록했던 작년에 비해서는 낮아졌지만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서울에 이어서는 광주 7.60%, 대구 6.80% 등의 순으로 상승률이 높았고, 울산은 1.76%로 전국에서 가장 낮게 상승했다. 대전의 경우 전국에서 유일하게 작년(4.52%)에 비해 올해 상승률(5.33%)이 확대됐다. 이밖에 부산(6.20%), 인천(4.27%), 세종(5.05%), 경기(5.79%), 강원(4.39%), 충북(3.78%), 충남(2.88%), 전북(4.06%), 전남(5.49%), 경북(4.84%), 경남(2.38%), 제주(4.44%) 등으로 나타났다.

 

이용 상황별로는 주거용(7.70%)의 상승률이 평균(6.33%)보다 높고, 상업용은 5.33%로 작년(12.38%)에 비해 상승률이 크게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평균 현실화율은 65.5%로 작년(64.8%)에 비해 0.7%p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주거용은 64.8%로 작년(64.8%)에 비해 1.1%p 올랐고, 상대적으로 현실화율이 낮았던 농경지와 임야의 현실화율은 62.9%62.7%로 각각 0.9%p, 1.1%p 상승했다.

 

··구 기준으로는 52곳이 전국 평균을 넘어섰고 198곳이 전국 평균을 밑돌았다.

이 중 전국에서 서울 성동구(11.16%)가 상승률 1위를 기록했다. 이어 서울 강남구(10.54%), 서울 동작구(9.22%), 서울 송파구(8.87%), 서울 서초구(8.73%), 서울 영등포구(8.62%) 순으로 많이 올랐다. 종로구는 4.11%로 서울에서 가장 낮은 상승률을 보였다.

 

표준지 50만 필지 중 10만원 미만은 294747필지(58.9%), 10만원 이상~100만원 미만은 123839필지(24.8%), 100만원 이상~1000만원 미만은 77909필지(15.6%), 1000만원 이상~2000만원 미만은 2556필지(0.5%), 2000만원 이상은 949필지(0.2%). 10만원 미만 필지 비율은 전년 대비 0.9% 감소했고, 2000만원 이상 필지 비율은 전년 대비 8.8% 증가했다.

전국에서 공시지가가 가장 높은 필지는 서울 중구 명동 네이처리퍼블릭 땅으로 17년째 1위를 유지했다. 당 가격이 전년도 18300만원에서 올해 19900만원으로 올랐다. 상위 10위 필지는 모두 서울 중구 충무로, 명동 일대 필지가 차지했다.

표준지 공시지가는 국토부가 매년 전국 3300만여 필지 중 대표성이 있는 50만 필지를 골라 단위면적()당 공시지가를 매기는 것이다. 각 지자체는 이를 기준으로 개별 공시지가를 산정한다. 이는 조세와 각종 부담금 등 60여 가지 행정자료에 활용된다.

 

집값 초양극화-] 턱없이 벌어진 아파트 가격...지방 4채 팔아야 서울 1?

서울-경기도 중위가격차, 55597만원으로 벌어져  

규제 강해질수록 안정적인 서울 택해수요 여전

 

정부의 고강도 규제가 부동산에 계속되면서 혼돈은 멈추지 않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이 더욱 확대되면서 서울과 지방간은 물론, 수도권과 신도시 내부에서도 양극화 현상은 심화됐다

 

서울 아파트단지 전경.데일리안

 

서울과 타 지역 아파트 중위가격 격차가 갈수록 크게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지난해 12·16부동산대책에서도 서울 고가 아파트를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보고 강도 높은 규제를 가했으나, 아파트값 격차는 갈수록 확대 돼 역대 최악의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

12KB부동산 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월에만 하더라도 서울과 경기도 아파트 중위가격 격차는 49341만원 상당이지만, 올해 1월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91216만원까지 치솟아 오르면서 경기도 아파트 중위가격 격차는 55597만원까지 벌어졌다.

 

2년 전인 20181월 서울(7500만원)과 경기도(32476만원) 아파트 중위가격 격차는 38024만원이었다. 또 지난해 1월 서울과 5대광역시 아파트 중위가격 격차도 699만원 수준이었지만, 올해 1월에는 66584만원으로 아파트 가격격차는 더욱 커졌다.

 

지난해 1월 서울과 5대광역시 아파트 중위가격은 각각 84025만원, 23926만원에서 올 191216만원, 24632만원을 기록하며 가격 차이는 4배 가까이 달한다. 지방 5대광역시 아파트 4채를 팔아야 서울 아파트 1채를 장만할 수 있는 셈이다.

 

서울에서도 강남권과 강북권의 아파트 가격 차이는 시간이 지나며 더욱 확대되는 모습이다.2년 전 강남권 아파트 중위가격은 89683만원, 강북권 아파트는 47969만원으로 41714만원의 차이가 났으나, 1월 강남권(114967만원)과 강북권(64274만원)5억원 넘게 가격이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강력한 정책으로 서울 강남권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대출이 사실상 막혔지만, 수요는 계속해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 중에서도 12·16대책을 통해 서울 고가 아파트 규제가 강화되면서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9억원 이하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몰릴 것으로 봤다.

 

실제로 서울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 역시 여전히 높다. 1월 서울의 아파트 매수우위지수는 102.1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지만, 5대 광역시의 경우 56.6에 그쳤고, 경기도 역시 73.0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오대열 경제만랩 리서치팀장은 정부가 9억원 초과 주택에 대해 주택담보대출 가능 금액을 줄이고, 15억원 초과 아파트는 아예 대출을 막았다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에도 서울 아파트 가격은 크게 흔들림 없고, 이제는 서울 9억원 미만 아파트들이 규제의 반사효과를 누리면서 서울 아파트의 똘똘한 한 채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규제가 강해질수록 부동산도 안정적인 지역을 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서울과 강남의 집값이 그 외 지역과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라며 정부의 규제가 집값 상승을 단기적, 일시적으로 막을 수는 있겠으나, 중장기적으로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원나래 기자 (wiing1@dailian.co.kr)

 

경실련의 국민주권운동낙선운동 앞장선다

한마디로, 새 판을 짜자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는.”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황도수 건국대 교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경실련이 벌일 운동은 국민주권운동이라고 덧붙였다. “주권자인 국민이 자신의 한 표로 제대로 실질주권을 행사할 방법이 뭐냐는 것이다. 우리 운동은 탈진영·탈정파다. 마땅히 밀어줄 정당이 있나. 없다.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은 당이 아닌 인물이다.” 인물을 기준으로 본다면 평가할 방법이 있다. 현직 국회의원이라면 그의 의정활동 기록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평가의 잣대는 초선보다 재선, 재선보다 다선의 현직 국회의원에게 더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재선에서 3선 이상이면 당의 중진이다. 초선은 국회 경험이 처음이니 고려해볼 만하다. 그러나 다선의원이 당 중진 역할을 제대로 해왔는지는 엄밀하게 평가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는 그나마 잘하는 10% 정도만 남겨두고 현역 의원 90%는 물갈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능한 이야기일까.

 

2016217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총선시민네트워크 발족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심판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선거를 두고 생각해보면 뭐가 먼저 떠오르는가. 당이 떠오른다면 고정관념이다. 정당이 국민의 뜻을 따라왔나. 당을 지배하는 것은 국민이 아니라 당의 실세들이었다. 진보·보수, ·야를 가릴 것 없이 한국의 정당은 이념으로 모인 정당이 아니다. 붕당이다. 이제 제대로 된 정당을 국민이 만들어내야 한다.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주어지는 한 표를 제대로 행사하면 된다.” 황 위원장은 정당을 기준으로 한 차악 선택어차피 나중에 정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선택 기준으로 삼지 말자고 말한다.

 

기성정당의 중진 의원 엄격 검증

다시, 가능한 이야기일까. 이상론처럼 들린다. 기자가 사는 지역구를 떠올리면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수십 년간 보수의 아성이었던 기자의 지역구는 최근 두 번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인사가 당선됐다. 이 국회의원은 재선이지만 당 중진 실세다. 이번 선거에서 국회의원 보좌관을 역임한 인사가 예비후보로 등록해 도전장을 내밀고 있지만, 당 실세를 누르고 그가 후보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여당인 민주당의 경우 신인 후보에게 20% 가산점을 부여하지만 후보는 여론조사 50%와 권리당원을 포함한 당원투표 50%로 최종 결정된다.

 

야당인 자유한국당 쪽에서도 예비후보 여럿이 등록하고 있지만 대부분 지역유지 출신에 전형적인 정치권 커리어를 쌓아온 사람들이다. 믿음이 안 간다. 다른 신생 소수정당도 예비후보를 등록하고 있지만 언급하고 싶지 않다. 한마디로, 황 위원장이 제시하는 것처럼 당과 분리시켜 표를 줄 신진 인물이 마땅치 않다.

 

이번 선거는 유권자 운동 관점에서 예년의 총선과는 다르다. 2000년 이래, 2008년을 제외하고 총선 때마다 등장했던 시민사회단체 중심의 총선시민연대는 현재까지 결성될 움직임이 없다. 대신 경실련이 나섰다. 경실련은 지난 조국대전 국면 때 반대 목소리를 낸 거의 유일한 시민단체다.

 

과거 2000년에서 2016년까지 총선시민연대 활동엔 알려진 것과 달리 경실련은 참여하지 않았다. 경실련은 선거 시기 유권자가 자신의 정치성향과 최대한 가까운 성향의 정당을 찾아주는 발오마트(Wahl-O-Mat) 프로그램 웹사이트를 운영하거나 공명선거실천시민협의회(공선협) 투표참여운동 등 비교적 온건한 운동을 주도해왔다. 그러던 경실련이 변했다. 과거엔 하지 않던 낙선운동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경실련은 1989년 부동산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창립한 단체다. 초기 경실련 활동은 토지불로소득 문제해결, 토지공개념 실현 등을 목표로 한 일종의 진보·보수 합작운동이었다. 경실련을 기점으로 사회운동의 중심축이 기존 재야·민중운동에서 시민운동으로 넘어왔다. 경실련과 함께 한국의 시민운동 중심축을 양분하고 있는 참여연대는 1994년 창립했다. 2000년 이래 종전 총선시민연대 활동은 참여연대가 총대를 메면, 전국 지역단체들이 결집하는 형태였다. 참여연대는 지역지부조직이 없다. 경실련은 다르다. ·도 단위 조직이 제주까지 전국에 걸쳐 있다. 이번 총선에서 지역지부를 중심으로 전국적인 낙선운동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총선이 7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지역 차원의 낙선운동의 흐름도 조금씩 감지된다. 24일 부산에서 아베 규탄 부산시민행동과 적폐청산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가 시작을 알린 친일파 없는 국회 만들기운동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부산지역 총선 예비후보자 전원을 대상으로 질의서를 보내 돌아온 답변을 근거로 친일 정치인을 선정해 낙선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친일 발언, 친일미화 주장 전력 등에 점수를 매겨 총점 100점 이상을 받은 후보자들을 국민의 대표 부적격자등으로 분류해 홈페이지(노노후보닷컴·nonohubo.com)에 게시한다. 이 단체의 전기훈 총무는 지난해 아베 규탄 촛불이 이어지는 과정에 온 국민의 염원이었던 친일청산을 부산지역부터 시작하는 의미로 준비했다부산에 출마 예정인 예비후보 본인들은 친일행적과 발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한편, 타 지역도 관련 제보가 들어오면 홈페이지를 통해 게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낙천·낙선운동은 참여연대 중심의 총선시민연대가 주도해왔다. 반면 경실련은 투표참여나 선거법 개정 등 상대적으로 온건한 운동에 집중해왔다. 사진은 지난 20001월 경실련이 벌인 선거법개정 촉구집회. / 정지윤 기자

 

친일후보 청산지역 낙선운동 주목

각 부문 단체들도 낙선운동에 시동을 걸고 있다. 이미 지난해 12공천하지 말아야 할 20대 반환경 의원명단을 발표한 환경운동단체들은 환경적 관점에서 우수한 활동을 보인 의원들과 반환경적 의정활동을 편 의원 각각 10여 명을 선정해 발표한다는 구상이다. 최준호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선거시기 난무하는 난개발·토건 공약에 대한 감시활동을 집중적으로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여성단체들도 미투 관련 성범죄자를 공천단계에서 배제하거나, 공천 이후 선거운동 과정에서 낙선운동을 벌이는 방안에 대해 논의 중이다. 김영순 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최근 미투 논란으로 낙마한 민주당 영입인사 원종건씨의 경우 사전에 세평이라도 들었다면 그런 사태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성범죄자의 경우 공천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은 정파나 입장을 떠나서 여야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 이후 선거법은 여러 차례 개정절차를 거쳤다. 현재 중앙선관위의 유권해석에 따르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단체들이 선거운동 기간에 합동으로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반대운동을 한다는 의견을 공표하거나, 허위사실이나 후보자 비방에 해당하는 않는 내용으로 특정 후보자를 낙선대상자와 집중 낙선대상자로 선정해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고 언론에 보도하게 하는 행위는 가능하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단체뿐 아니라 개인도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지지·반대의견을 표현할 수 있다.

 

반면 오프라인의 경우는 다르다. 낙선대상 후보자를 특정해 거리집회를 하거나 낙선후보 명단을 실은 홍보물의 우편발송, 스티커 배포·부착은 금지되어 있다. 여기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단체에 대한 규정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단체, 향우회·동창회 등 사적 모임’,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나 한국자유총연맹 등 법령에 의해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단체’, ‘후보자 연관 단체등을 제외한 모든 단체를 말한다. 이런 단체를 제외한 대부분 시민단체의 경우, 낙선운동뿐 아니라 지지운동까지 모두 가능하다.

 

오프라인에서 제약 부분은 여전히 논란으로 남아 있다. 2016년 총선시민네트워크는 선관위의 유권해석에 따라 낙선대상자의 지역구에 가서 후보자를 명시하지 않은 대신 후보자의 선거사무실이나 현수막의 얼굴이 들어가는 사진을 언론에 보도하는 형태의 낙선운동 기법을 선보였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낙선후보 투표와 함께 이 활동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고, 기획을 주도한 3(이승훈, 안진걸, 이재근)의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참여연대를 떠나 싱크탱크와 시민참여를 결합한 새 시민단체를 만든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어떤 식으로든 시민사회의 총력을 모아 총선대응이 필요한데, 2016총선시민연대와 같은 범시민사회 총선대응 연대기구가 아직도 안 만들어졌다는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대표성이 있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주요 시민단체들이 총선대응기구를 만들어 보수야권 일각의 극우·비리 정치인들에 대한 낙천낙선운동에 나선다면 작은 시민단체들도 힘을 보탤 것이라며 아울러 정의당 등에서 좋은 공약도 많이 발표되고 있는데, 그런 공약에 대한 응원 캠페인도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진영·정파 넘어 낙선운동 벌이겠다

황도수 경실련 상임집행위 위원장은 기존 총선시민연대와 경실련 낙선운동의 차이를 종전 낙선운동이 내심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배제하자는 스타일이었다면 이번에 경실련이 벌이는 운동은 그 자체로 국민주권운동이라고 말한다. 진보나 보수와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낙선운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기준은 무엇일까.

 

20165월 총선시민네트워크 관계자들이 후보자를 명기하지 않은 패널 등을 예시하며 서울시 선관위와 경찰의 유권자 단체 고발 및 수사에 대한 반박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윤순철 경실련 사무총장은 아직은 논의 중이라고 전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현역 의원의 경우 법안 투표 발의 등에서 일관되게 재벌에 유리한 법안을 내놓은 사람들이 많다. 또 부동산이나 재산축적 과정에 의혹이 있는 사람 역시 대표자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타깃을 인물로 보기 때문에 여권에서도 많은 사람이 나올 것이다. 단적으로 KTX 민영화에 관여한 김경욱 전 국토부 2차관이나 법원 판결을 받고도 톨게이트 노동자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버티던 이강래 전 도로공사 사장도 여당에 공천신청을 했다. 사회적 참사 문제에 대한 되지도 않은 망언을 쏟아냈던 사람들도 기본적인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

 

그는 황 위원장이 공언한 90%까지 물갈이는 어렵겠지만 종전 기득권 정당에서 자격 없는 현역 중진 의원을 떨어뜨린다는 목표로 최대한의 역량을 쏟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일상 업무를 중단하고 기존 조직체계를 선거 시기에 정책·콘텐츠·홍보의 세 파트로 재구성해 낙선운동에 올인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25일 열린 전국 경실련 조직회의에서도 상임집행위가 제시한 낙선운동 방침이 깊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 선보이는 경실련판 낙선운동은 성공할 수 있을까. 경실련 활동가 출신으로 국회의원 보좌관을 역임한 박신용철 정책컨설팅 그룹 더체인지플랜 선임연구원은 현실적으로 선명하게 치고 나가던 경실련의 초창기 모습을 회복하는 것 같다면서도 그러나 현역 중진 의원 대폭 물갈이로 기성정당의 기득권을 해체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 관념적이고 교과서적인 방식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200417대 이후 국회가 모두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를 받아왔고, 제도권 정치에 대한 국민의 정치적 효능감은 떨어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를 평가하는 기준이나 잣대는 30년 전 경실련이 출범할 때와는 달라졌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오히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 정부 들어 환경부 장관이 취임해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들이 환경단체가 아니라 미세먼지 관련 인터넷커뮤니티 사람들이었다는 것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듯이, 지난 박근혜 탄핵뿐 아니라 그전부터 촛불시위를 주도한 것은 소수의 시민단체가 아닌 온·오프를 통해 새로 자라난 자발적 결사체들이었다.”

 

종전 시민단체들 중심의 낙선운동은 관성으로 흐를 가능성이 많은 반면, 오히려 주목해야 하는 것은 풀뿌리 단위에서 자발적으로 벌어지는 낙선운동이라는 평가다. 윤순철 경실련 사무총장은 낙선운동은 선거법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합법적으로 진행할 것이라며 경실련만 독야청정 낙선운동을 벌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환경·여성단체는 물론 SNS 등을 통한 개인 참여를 조직하는 등 다양한 방식의 낙선운동과 연대를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바이러스가 폭로한 정치의 위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중국 후베이성 우한을 비롯한 일대 지역이 봉쇄된 지 보름이 지났다. 중국의 통치시스템은 짧은 순간에 크나큰 모순을 드러냈다. 지난해 1230일 환자로부터 사스바이러스와 흡사한 코로나바이러스를 발견했다는 의사 리원량의 경고를 들었더라면 사태가 이렇게 치닫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공안 당국은 이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고 괴담을 유포시켜 사회를 불안하게 한다며 그를 체포했다.

                      

대중의 의혹을 증폭시키는 건 지난 128일 이후 시진핑 주석이 TV나 신문 지면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다는 점에도 있다. 언론에는 매일 시진핑의 발언이 보도되지만 정작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23CCTV 헤드라인뉴스 꼭지는 13분에 달했지만, 아무런 자료화면도 없었다. 당장 상황이 진전되기 어려우니 나타나 봤자 좋을 게 없다는 판단 때문일 게다. 리커창 총리가 우한의 방역현장을 찾은 것은 이런 통치시스템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다.

 

중국 정부의 의료적 대응은 확실히 2003년 사스(SARS)보다 진보했다. 하지만 이번 감염증은 단순히 의료의 문제가 아니다. 질병은 언제나 정치적이고 계급적인 모순을 드러낸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역시 없는 이들에게 더 큰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 17살의 뇌성마비 장애 청소년 옌청의 농민공 아버지는 감염 의심증상이 나타나 격리 조치됐다. 집에 홀로 남겨진 소년은 돌봄을 받지 못해 세상을 떠났다. 사회서비스가 충족하거나 부유했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

 

봉쇄된 약 5000만 명의 일상이 정지되고 교통마저 마비된 가운데서도 도시의 후생을 책임져야 하는 노동은 멈추지 않았다. 수만 명의 의료 노동자들이 보호장구가 완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이들은 집에도 돌아가지 못한 채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배달서비스 플랫폼 메이퇀의 라이더들은 정부의 휴무 연장에도 불구하고 출근하고 있다. 메이퇀 사측은 바이러스를 핑계로 일하지 않을 경우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엄포까지 놨다.

 

종일 일해야 고작 70위안(12000)을 받는 청소노동자들 역시 출근하지 않을 땐 무려 150위안(25000)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마스크조차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채 일한다. 봉쇄된 지역에서 하루하루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보면 먼 땅의 참극이 숫자화된 바이러스가 아닌 재난 속의 인간과 그 사회의 불평등을 마주하게 된다.

지난해 홍콩 항쟁이 환기한 중국의 위기는 해를 넘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반복되고 있다. 둘은 완전히 다른 사태에서 촉발된 것이지만 공히 공유하는 바가 있다. 바로 망가진 통치시스템과 만연한 사회불평등이다.

 

문제는 박쥐가 아니라 정치다. 관방 언론은 단결과 분투를 북돋우지만 모순을 감추는 분투여선 곤란하다. 이런 총체적 위기는 결코 일원화된 통치시스템으로 극복할 수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는 민주적이고 비판적인 시민사회를 복원해야 비로소 건강한 사회를 재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홍명교 동아시아 연구활동가> 주간경향

        

먹어도 먹는 게 아닌 아동 흙밥 보고서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한다. “밥 먹었냐” “언제 밥 한번 먹자” “밥은 잘 먹고 다니니” “나중에 밥 한번 살게가 한국인의 흔한 인사말이라고도 한다. 세계에서 우리만큼 밥을 중요시하는 나라가 없다고들 말한다.

 

과연 그럴까. 잘 먹여야 하는 대상으로 누구나 마땅히 인정하는 어린아이들의 밥상을 들여다보면, 물음표가 생긴다. 요즘 아이들이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어떻게, 무엇을 먹는지를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밥 중시 문화는 빈껍데기 인사말로만 남았다.

 

배고픈 결식아동은 눈앞에서 사라졌지만 더부룩한 흙밥아동이 사회 곳곳에 숨어 있다. 기초수급 가정 아이는 급식카드를, 서울 대치동 키즈는 엄마 카드를 손에 쥐고 똑같이 고만고만한 선택지 사이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아이들의 밥을 챙겨주는 사람도, 아이들이 밥을 먹을 공간도, 마음 편히 식사할 수 있는 시간도 모두 턱없이 모자란다. 무엇보다 부족한 것은 아이들 밥에 대한 어른들의 관심이다. 어른들의 무관심 탓에 밥에 관한 한 아이들의 삶은 완벽하게 계급 평준화가 이루어졌다. 잘살거나 못살거나 요즘 아이들은 똑같이 너무 못 먹고 산다. 못 먹으니 제대로 못 자고 제대로 못 큰다.

아동 흙밥이 사라져야 청년 흙밥도 노인 흙밥도 사라진다. 내 밥상의 소중함을 알고 자란 아이가 남의 밥상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아이들에게 식사란 필요한 열량을 채우는 행위가 아닌 나와 타인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여유로 가르쳐야 한다. 아이들을 잘 먹이자는, 아무도 딴죽 걸지 않을 세상 당연한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늘어놓는 까닭은, 현실이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아동 흙밥 보고서는 그 현실을 알리기 위함이다. 기사에 등장하는 아이들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21세기 아동 흙밥은 이제 결식(缺食)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질 낮은 음식을, 혼자, 불규칙하게, 허겁지겁 먹는다. 아이들에게 식품 보장상태가 절실하다.

 

시사IN 조남진지난해 1218일 서울 대치동 학원가 편의점에서 한 학생이 컵라면을 먹고 있다.

 

오늘 뭐 먹었어?” 하고 묻자 열세 살 상진이는 말했다. “12시에 집에서 짜파게티 부숴 먹고 게임하다가 8시에 편의점에서 김치라면 사먹었어요.” 피자·치킨 간식을 거부하던 열 살 준성이는 밥버거 간식이 나오자 떨어진 밥풀까지 싹싹 긁어먹고 나서 멋쩍게 말했다. “요새 밥을 못 먹어서요.” 또래 친구들과 아침식사를 제공해주는 지역복지 프로그램에 참여한 열한 살 소미는 설문조사 종이에 적었다. “집에서 텔레비전 보며 혼밥할 때보다 덜 쓸쓸해서 좋아요.” 여섯 살 여동생 손을 꼭 잡은 아홉 살 지예는 자랑했다. “저 다섯 살 때부터 밥했어요. 쌀 씻고 물 맞춰서 넣을 줄 알아요.”

 

우리 사회는 밥 굶는 아이가 눈에 보일 때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외환위기 사태가 진행되던 1990년대 후반 학교 운동장에서 수돗물로 배를 채우는 아이들이 대거 발견된 것이 우리나라의 대표적 결식아동 지원사업인 아동급식지원사업을 시작한 배경이었다. 이후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됐던 아동급식지원사업에 한시적으로나마 국비가 지원된 때도 수돗물 점심아이들이 다시 눈에 띈 2008년 금융위기 이후였다.

 

201812월 기준 357127명의 아이들이 하루 한 끼 혹은 두 끼씩 나라에서 밥을 지원받는다(그림 1참조). 아무리 매정한 자유시장주의자라도 이 복지지출에는 크게 딴죽을 걸지 않는다. 결식아동 지원만큼 비정치적이고 보편타당한 후원 행위도 드물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결식아동을 입력해보자. 숱한 국가기관, 기업, 시민단체, 정치인, 연예인, 유튜브 스타, 인스타그램 유명인들이 결식아동을 돕기 위해 돈을 내고 바자회를 열고 김치를 담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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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따뜻한 손길은 보이는 데까지다. 수돗물로 배를 채우는 아이들이 사라지자 정부는 아동급식지원사업 국비 지원을 끊었다. ··고교 무상급식 덕분에 학기중 점심에 배곯는 아이는 없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학기중 아침·저녁, 주말·방학 중 밥을 제대로 챙겨 먹는 아이를 발견하기가 더 힘들어졌다. 기초생활수급, 차상위계층 등의 국가 공인결식 우려 아동 인정 기준을 통과하지 않은 아동에겐 좀처럼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는다.

 

‘21세기 아동 흙밥(흙수저의 밥)’은 더 이상 결식(缺食)의 형태로 잘 나타나지 않는다. 상진이, 준성이, 소미, 지예처럼 오히려 늘 무언가를 먹는다. 질 낮은 음식을, 혼자, 불규칙하게, 허겁지겁 입안에 욱여넣을지라도 일단은 먹기 때문에 결식 지원의 사각지대에 남는 아이들이 많다. 아동 흙밥의 양태는 다양하고 복잡하다. 어떤 아이는 굶어서 흙밥이지만, 어떤 아이는 너무 먹어서 흙밥이다. 어느 아이는 너무 가난해서 흙밥을 먹지만, 어느 아이는 적당히 버는 부모 밑에서도 흙밥을 먹는다. 늘 배고픈 흙밥 아동도 있지만, 늘 더부룩한 흙밥 아동도 있다. 기존 결식 렌즈로는 아이들의 식사권과 건강권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굶는 아이들에 더해 먹는 아이들도 자세히 바라봐야 한다. ‘누가 못 먹고 있는가?’에서 어떤 아이들이 어떤 밥을 어떻게 먹고 있는가?’로 질문을 바꾸어 살펴보면, 형편없는 아동 흙밥이 사회 도처에 널려 있다.

 

굶지 않지만 고기·생선·과일은 못 먹는다

우리는 끼니를 거를 정도의 상황은 아니에요(현수(8)·민수(6) 어머니).” “실제 밥을 못 먹이지는 않지만(정희(17)·정수(16)·선희(13)·란희(11) 아버지).” “우리 같은 사람이 어떻게 잘사는 사람들과 똑같이 먹으면서 하고 그래요? 우리랑 그 사람들은 다르지(은미(9)·성빈(2) 어머니).” 자녀의 결식 경험을 묻는 질문에 대한 부모들의 첫마디였다(정정호, 아동이 있는 빈곤 가구의 식품 미보장 경험에 대한 질적 연구, 2012). 모두 한 달 생활비가 평균 80만원, 식비는 30만원 남짓한 가정이다.

 

굶기지는 않았다라는 부모들에게 어떻게먹이는지를 물어보자 결핍이 드러났다. 아이들은 먹되, 단조롭게 배를 채웠다. “단백질을 고기보다는 두부나 이런 거에 많이 의존하게 되고, 대체하는 거 있잖아요. 우리 돈으로 삼겹살 1년 내내 한 번도 안 사요. 아이들도 그런 줄 알고.” “김치찌개를 끓이더라도, 다른 걸 썰어 넣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다른 걸 못 넣으니까어쩌다 김치 하나에, 시금치나물 하나 해주니까 왜 이렇게 반찬이 많으냐고 하더라고요.” “딸기가 한 바구니에 5000원 하는데 몇 번 손이 가더라고요. 에휴 이걸로 반찬 사면 몇 끼를 먹는데. 그냥 왔어요.”

 

2018년 아동종합실태조사(한국보건사회연구원)는 아동의 상대적 박탈감을 측정할 수 있는 박탈지수항목을 처음 추가했다. 기존 가구소득을 바탕으로 한 아동빈곤율 수치만으로는 계층에 따라 아동 투자 격차가 큰 우리나라에서 아동의 결핍을 제대로 가늠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의식주, 의료, 문화생활 등 9개 영역 31개 문항을 제시하고 , 아니요를 물었다. 이를테면 이런 문항들이다.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고기나 생선을 사먹는다(식생활)’ ‘매우 추운 날 입을 수 있는 외투(코트, 파카, 털이나 가죽옷 등)를 두 벌 정도는 가지고 있다(의생활)’ ‘전용 수세식의 화장실 및 온수 목욕시설을 갖추고 있다(주거환경)’ 등등.

 

조사 결과 가구소득에 따라 전체적으로 아동의 박탈지수가 차이 났지만 가장 큰 격차를 보인 영역은 의식주 가운데에서도 ()’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고기나 생선을 사먹지 못하는 아동의 비율은 전체 평균 2.87%인 데 비해 기초수급 빈곤 아동가구는 25.55%에 이르렀다(그림 2).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신선한 과일을 먹지 못하는 아동 비율도 마찬가지다. 전체 평균은 3.24%인데 빈곤 아동은 32.39%였다. ‘식사의 양을 줄이거나 거른 적이 있다는 항목도 격차(3.67~9.6%)가 나지만 식단의 구성에서 훨씬 더 큰 차이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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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섭취량 통계에서도 이런 사실이 확인된다. 12~18세 아동의 소득수준별 주당 채소류 섭취량을 살펴보면 3~5분위(상위 60%)에 비해 1~2분위(하위 40%) 아동이 눈에 띄게 낮게 나타난다(그림 3). 아이들의 흙밥은 단순히 먹고 안 먹고의 문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무엇을 먹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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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급식카드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고기, 생선, 채소, 과일 대신 가난한 아이들은 무얼 먹고 살까? 기초생활수급, 차상위계층 등 빈곤 가정 아동들에게 지급되는 아동급식카드 사용 데이터로 추측이 가능하다. 꿈나무카드(서울), 컬러풀드림카드(대구), 푸르미카드(인천), 행복드림카드(부산) 등 지방자치단체별로 그 명칭과 하루 한도액 등이 다양하지만, 아동급식카드는 대부분 아동이 속한 지역 내 음식점에서 하루 한두 끼니를 사먹을 수 있게 도와준다. 기존 종이 식권을 대체한 방안이다.

 

이 카드를 아이들은 어디에서 긁을까? 편의점이 8할이다. 서울 영등포구, 서초구, 송파구, 종로구, 중구는 가맹점 중 편의점 비율이 90%를 넘는다(그림 4〉 〈그림 5). 20183월 기준 대구시 아동급식카드 편의점 이용률(거래 건수)70%에 이른다. 해가 지날수록 편의점 이용률이 올라간다(그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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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뭘 사서 먹을까? 아이들은 사 먹기보다 사 마신다’(그림 7〉 〈그림 8). 우유·요구르트 같은 음료 종류가 가장 많은 비중(43.5%)을 차지하고, 도시락·레토르트 식품 등 겨우 식사라 불릴 수 있는 품목은 36.6%에 그친다. 치즈·어묵·핫바·가공란··주먹밥 등도 아이들의 배를 자주 채워준다. 라면·탄산음료·과자 등은 아동급식카드로 편의점 구매가 제한된 시기의 통계여서 그나마 건강한 식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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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외 가맹점을 다변화하면 아이들의 식단이 좀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담당 공무원들도 가맹점 확대를 아동급식카드의 가장 시급한 개선 과제로 꼽지만(그림 9) 현실에서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단 1식 지원 단가 4000~5000(지자체별 상이)으로 한 끼 식사를 내어줄 수 있는 식당이 많지 않다. 절차도 번거롭다. 전용 카드단말기를 설치해야 하고(편의점은 범용인 경우가 많다), 매달 시··구청에 서류를 보내 매출액을 정산받아야 한다. 아이들이 급식카드를 꺼내면 구석에 처박아둔 전용 단말기를 꺼내 전원부터 켜고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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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도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는다. 편의점을 선호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일반 식당에 비해 메뉴가 다양(19%)”하고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어서(46%)”이기도 하지만 주변의 눈치가 보이지 않고(13%)” “친구에게 보여주기 싫어서(4%)”이기도 하단다(그림 10).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먹은 다음 티 나는 결제를 처리해야 하는 식당보다 얼른 음식을 사서 집에 갖고 들어가 먹을 수 있는 편의점 이용이 훨씬 마음 편한 것이다. 그렇게 흙밥 먹는 아이들은 자꾸 안 보이는 곳으로 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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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아니라 사람이 없다

아동급식지원을 받는 아이 부모에게 자녀가 밥을 잘 챙겨 먹지 못하는 이유를 물었다. “밥이나 반찬이 없어서(20.8%)”는 부차적인 이유다. 많은 아이들이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서(39.1%)”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다(그림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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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결식률 통계에서도 돌봄 부재에 따른 밥의 격차가 보인다. 9~17세 아이들의 아침 결식률은 가구 유형·맞벌이 여부에 따라 갈린다(그림 12). ()부모보다 한부모·조손 가정의 아이, 외벌이보다 맞벌이 가구의 아이들이 더 많이 아침을 굶는다. 특히 한부모·조손 가정 아이들은 밥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서아침을 건너뛰었다는 비율(17.7%)이 양부모 가구 아이(2.1%)에 비해 월등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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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가 다 있어도, 엄마 아빠 대신 파출부 이모가 있어도 밥 챙겨주는엄마·아빠·이모가 아니면 결국 아이는 못 먹는다. 성규(7)는 엄마 아빠가 있지만 게임중독에 빠진 부모가 PC방에서 살다시피 하는 탓에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한다. 민아(12)와 진아(10)는 엄마가 없지만 아빠가 부자다. 그런데 이틀에 한 번씩 들어온다. 가사 도우미가 들르지만 집 청소만 하고 나간다. 쌀도 없는 집에서 자매는 과자·피자·햄버거로 배를 채운다. 지역 사회복지사가 우연히 발견한 성규나 민아 자매는 국가 공인 결식아동이 아니다. 가구소득을 기준으로 한 국가의 복지망은 빈곤형 결식아동만 찾아낼 뿐 이렇게 다양한 사연의 돌봄 부재형 결식아동까지 잡아내진 못한다.

 

그걸 찾아내는 것도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밥을 챙겨주는 사람은 가정뿐 아니라 공공영역에서도 턱없이 모자란다. 지방자치단체 아동급식 담당 공무원에게 아동급식 지원대상 발견의 어려운 점을 물었을 때 69.5%인력 부족을 들었다(그림 13). 한 공무원은 공무원 한 사람이 대상자 700~1000명을 관리해야 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시간이 없으니 방문조사(36.4%)보다 전화조사(38.8%)로 결식아동을 찾아내고, 그러다 보니 담당자 절반이 우리 지역 내 모든 결식아동이 급식 지원을 받고 있다는 확신을 하지 못한다(그림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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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아동센터에서도 늘 호소하는 게 급식 운영 인력 부족이다(그림 15). 지역아동센터에서는 결식아동을 포함한 지역 내 취약계층 아이들에게 평일 석식, 공휴일 중·석식 등을 제공한다. 지역아동센터에 등록된 아이들은 전자급식카드를 쓰는 대신 센터에서 조리된 음식을 먹는다. 이때 센터에 지급되는 식비는 편의점·식당에 적용되는 1식 단가보다 500~2000원가량 낮다. 재료를 사서 음식을 만들고 차리는 인건비도 따로 없다. 많은 센터에서 기존 직원이 급식 업무를 겸하거나 자원봉사자들에게 재료 준비, 조리, 배식을 의존한다. 지금 아이들에게 진짜 부족한 것은 이 아닌 밥 차려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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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밥의 대물림

아동 흙밥은 단순히 식사 메뉴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밥을 먹는 시간, 밥을 먹는 환경, 밥을 먹는 태도, 밥을 바라보는 관점까지도 아동 흙밥의 구성 요소가 될 수 있다. 밥을 먹는 환경·태도·관점이 무서운 것은, 그것이 대물림된다는 점이다.

 

서울시 급식지원카드인 꿈나무카드 사용 데이터를 분석한 경희대 산학협력단 SK청년비상 빅리더팀(지도교수 전종식)은 꿈나무카드 결제 시간대를 분석해보았다. ‘제시간에 먹지 않는아이들의 규모를 가늠해보기 위해서다. 아침 7~11, 점심 11~15, 저녁 5~9시로 식사 시간대를 꽤 넓게 잡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시간대를 벗어난 시간에 음식을 구매한 비율이 전체 결제의 50%를 넘기는 아이가 무려 대상자의 16.5%, 2023명이나 되었다. 이 가운데 116명은 주로 새벽 시간대(0~6)에 편의점 음식을 사먹었다. 분석팀은 아동청소년기는 식습관 형성이 결정되는 시기로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식습관 정립 교육 등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

 

사회복지사나 교사들은 식습관이 망가진 아이들을 종종 본다. 경기도 군포 지역에서 돌봄 공동체 헝겊원숭이운동본부를 운영하는 김보민 대표는 아버지와 살던 창배(12)를 떠올렸다. 아버지가 밤늦게 퇴근해 집에 올 때까지 혼자 기다리며 식사하던 습관이 밴 아이였다. “뭐든지 다 말고 비벼서 허겁지겁 삼켰어요. 쩝쩝 소리를 내고 흘리고. 누군가와 함께 밥 먹으며 식습관을 배우는 건데 기회가 없었던 거죠. ‘비빔 금지, 입에 넣고 다섯 번 이상 씹기이런 규칙을 만들어서 식사 지도를 했어요.”

 

초등학교 교사 이준수씨는 학교 급식 시간에 잔반 줄이기 운동을 벌이면서 가정환경 간 식습관의 격차를 실감했다. 2주간 반찬을 남기지 않는 학생에게 스티커를 주고 스티커를 많이 모으면 상품을 주는 캠페인이었다. 이 교사의 반에서 상품을 받은 아이 9명은 모두 부모와 거의 매일 저녁 식사를 하는 집 아이들이었다. 부모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아이일수록 편식이 심하고 반찬을 많이 남겼다. 이 교사는 체감상 돌봄이 부족한 아이일수록 비만율도 높은 것 같다라고 말했는데, 실제 통계에서 뒷받침된다. 소득분위별 2~18세 소아청소년의 비만율을 살펴보면, 가구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하위 20%)에서 가장 높게 나타난다(그림 16). 한부모·조손 가정 아동의 비만율도 양부모 가정 아동보다 높다(그림 17). 가난하고 돌봄이 적을수록 뚱뚱한 것이다.

 

시사IN 변진경·최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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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것을 들고 취약 아동의 가정을 방문한 사회복지사들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막막한 상황을 종종 겪는다. 쌀을 들고 갔는데 집에 밥솥이 없다거나 햇반을 들고 갔는데 집에 전자레인지가 없는 식이다. 김장 나눔 행사로 받은 김치 한 통이 모텔용 소형 냉장고에 들어가지 않아 베란다에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쉬어가고 있는 광경도 자주 본다.

 

아동 구호단체 기아대책의 심희영 간사는 지난해 도시락 김 세트 등 밑반찬거리를 사들고 아버지와 함께 사는 건희(8)네 집을 방문했다. 온 집이 쓰레기 더미로 덮이고, 1구짜리 전기쿡탑과 냄비 하나가 부엌세간의 전부이던 환경에서 건희는 여러 차례 장염에 걸려 입원을 반복했다. 임대아파트에 입주하게 돼 이사를 축하하며 반찬을 건넸다. 그날 저녁 맛있게 잘 드셨냐라고 전화했더니 건희 아버지는 대답했다. “반찬들이 너무 아까워서 그냥 간장에 밥 비벼 먹었어요.”

 

건희 아버지는 가스레인지 불을 켜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었다. 고아원에서 자라 노숙과 여인숙 생활을 반복하며 살아온 그는 아이를 키우면서도 제대로 된 집밥을 차리고 아이를 먹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몰랐다. 초등학생 셋을 키우는 다른 가정의 부모도 비슷했다. 전화해서 물어보면 어김없이 쌀 다 떨어졌어요해서 부랴부랴 쌀과 반찬을 구해다주면 , 다행이에요. 이제야 먹일 수 있겠네요라고 안도하는 이 대책 없는부모는 수입이 생기면 빚을 갚는 데 다 써버렸다.

 

심 간사는 말했다. “가난을 경험하며 자란 부모들이 또 현실이 가난하면 가장 후순위로 미루는 게 바로 식사더라. 아이들을 제대로 먹이는 게 1순위가 아니라 빚 갚고 공과금 내고 남는 게 있으면 먹이고 아니면 못 먹이는 식이다. 옆에서 보면 이런 식으로 또 가난이 대물림되는구나, 대물림될 수밖에 없구나싶다.” 기아대책 박현주 간사는 아이뿐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어른들에게도 올바른 식습관과 식생활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교육이 필요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공간과 시간으로 쪼개지는 아이들의 밥상

정부는 뭘 하고 있을까? 아동복지법 제35건강한 심신의 보존조항은 아이들 밥에 관한 국가의 책임을 명시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아동의 건강 증진과 체력 향상을 위하여 급식 지원 등을 통한 결식 예방 및 영양개선에 관한 사항을 지원하여야 한다.” 그래서 정부는 2000년부터 아동급식지원사업을 시행 중이다. ‘보호자가 충분한 주식과 부식을 준비하기 어렵거나, ·부식을 준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아동 스스로 식사를 차려 먹기 어려운(2019년도 보건복지부 결식아동 급식 업무 표준매뉴얼)’ 결식 우려 아동이 그 대상이다. 2018년 기준 357127명의 아이들이 이 정책의 지원을 받고 있다.

 

, 이 아이들을 먹이는 건 중앙정부가 아니다. 2005년 정부는 아동급식지원 업무를 보건복지부에서 지자체로 이양했다. 결식 우려 아동을 찾아내고, 지원 범위와 방법을 결정하며, 가맹점과 도시락업체를 관리하고, 음식 위생을 점검하는 일을 모두 지자체가 한다. 각 시··구가 따로 아동급식위원회를 설치하고 지자체 조례에 따라 세부 내용을 결정한다. 보건복지부는 업무 표준 매뉴얼을 만들어 지자체에 내려보내고 몇 년에 한 번 우수 사례 시상식을 연다.

 

문제는 예산도 지자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중앙정부는 매뉴얼을 통해 권장 최저 단가만 정해준다. 현재 한 끼에 4000원이다. 그나마 20183500원에서 500원 오른 금액이다. 보건복지부가 지자체에 하달한 업무 매뉴얼에는 지방재정이 가능한 경우 급식 단가 탄력적으로 인상 가능이라고 적혀 있다. ‘지방재정이 가능한지자체도 있지만 불가능한 곳도 있다. 재원난을 겪는 지자체의 호소로 2009541억원, 2010285억원씩 국비 지원을 해준 적이 있지만 그때뿐이었다. “경제위기 극복과 함께 결식아동 수가 줄어들었다는 이유로 국비 지원이 끊긴 2011년부터 지금까지 아동급식지원사업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출액은 ‘0이다.

 

지자체들은 형편대로 아이들에게 밥을 주고 있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1810월 기준 결식아동 급식 단가는 최저 4000(대구·대전·강원 등)에서 최고 6000(서울 일부·경기도)까지 벌어져 있다. 한 끼당 가격뿐 아니라 한 해 한 아이에게 지원하는 끼니 수도 모두 달랐다. 부산이 최저 131, 충남이 최고 282끼다. 한 아동이 1년간 지원받는 총예산액도 최저 588000(부산)에서 최고 1159000(제주)까지 천차만별이다. 광역지자체별로도 다르지만 기초지자체별로도 다르다. 서울시 서초구는 올해부터 한 끼당 7000원을 지원한다. 같은 나라에 사는 아이들인데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밥의 질이 갈린다.

 

행정은 공간뿐 아니라 시간에 따라서도 아이들의 밥상을 분절한다. 취학아동의 경우 아침, 점심, 저녁은 물론이고 학기중, 방학, 주말, 공휴일에 따라 밥의 지원체계가 다르다. ·석식 지원 예산은 지자체에서 맡지만 중식은 교육청에서 돈을 낸다. 그런데 그것도 학기중 평일 중식만이다. 학기중 주말·공휴일은 지자체가 교육청과 협의해 시·도교육비특별회계를 조달받아야 한다. 방학중 중식 예산은 아예 교육청 대신 지자체에서 부담한다(그림 18). 이 복잡한 급식비 전달체계 안에서 아이들의 밥상은 구멍이 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방학일, 개학일, 재량휴업일도 제각각이다. 갑자기 결정된 대체휴일이나 천재지변으로 인한 휴교일에도 급식 공백이 발생한다. 월요일, 개학일, 긴 연휴의 끝이면 학교나 지역아동센터에서 유독 허겁지겁 밥을 입에 욱여넣는 아이들이 많다.

 

시사IN 변진경·최예린

 

결식 넘어 식품 보장으로

좋은 밥이란 매우 주관적이다. 무엇이 흙밥이고 무엇이 좋은 밥인지 매끈하게 나눌 수 없고 사람마다 그 기준도 다르다. 특히 아이들의 밥이 그렇다. 삼시 세끼를 다 먹으면 좋은 식생활일까? 필요 열량을 채우면 그만일까?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이면 될까? 일정한 시간 익숙한 장소에서 먹는 게 중요할까? 아무리 복지망을 촘촘히 엮어서 보살핀다 한들 국가와 사회가 이 모든 질문에 답을 내리고 모든 아이를 완벽하게 챙겨 먹이기는 힘들다. 다만 기존의 렌즈를 바꿔 끼울 필요는 있다. 기존의 결식렌즈는 21세기형 아동 흙밥을 바라보기에 너무 화각이 좁다.

 

정정호 청운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이 있는 빈곤 가구의 식품 미보장 경험에 대한 질적 연구(2012)에서 아동의 식사 복지를 논할 때 결식대신 식품 미보장(food insecurity)’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식품 미보장이란 가정 내 경제적 자원 부족으로 가구 구성원이 음식 부족을 걱정하거나 질적·양적인 면에서 음식을 충분히 혹은 제대로 먹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식품 보장(food security)’ 상태가 되려면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적극적이고 건강한 삶에 필요한 음식에 충분히, 항상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영양상 적절하고 안전한 음식이 즉각적으로 이용 가능하고, (응급 구호식품에 의존하거나 버려진 음식을 활용하거나 훔치는 등 다른 대처 전략을 사용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식으로 적절한 음식을 얻을 수 있는 확실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시사IN 신선영 헝겊원숭이운동본부 등에서 격주로 진행하는 맘마미아 푸드트럭이 지난해 1119일 경기도 군포시 한 공원에 차려졌다.

 

아동 결식은 식품 미보장 가구의 일부분, 특히 가장 심각한 상태에서 발생하는 응급상황이다. 한번 응급 상황으로 치달은 아동의 삶이 다시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 개입하는 게 효율적이다. 정 교수는 논문에서 일반적으로 가정 내에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아동이 식사를 거르는 상황은 어쩌면 가장 마지막에 발생하기 때문에 빈곤 아동의 일상적 경험이 아니며, 따라서 빈곤층의 식생활 경험을 살펴보기 위해 결식이라는 개념을 활용하는 것은 부적절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식품 보장상태는 아이 개인이 아니라 그 아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실현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결식 혹은 결식을 둘러싼 상황을 부분적이고 단편적으로만 이해해왔지만, 이제는 좀 더 종합적인 이해를 위해 개인에게 필요한 식사(영양)가 제공되는 공간인 가족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득으로 아동 및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필요한 재화, 특히 식품을 구입하고 제공하는 생활단위는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시사IN 이명익 아동급식카드는 저소득층 아동의 식사 지원을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한다. 아동급식카드의 편의점 사용 비율은 매년 높아지고 있다.

 

사람 없이 돈만 써서는 효과가 없다

지난해 1129일 오후 530. 일찍 퇴근한 직장인, 이웃 할머니, 인근 학교 급식실 조리원 등이 경기도 군포시 헝겊원숭이운동본부 사무실에 모였다. 지역 내 취약 아동들에게 반찬을 배달해주는 푸드 키다리자원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후원 반찬가게에서 금방 요리해 갖다준 고추장돼지불고기, 메추리알버섯장조림, 카레돈가스가 보온가방에 차곡차곡 나눠 담겼다. ‘푸드 키다리들은 따뜻한 반찬 가방을 메고 군포 각지로 흩어져 저녁 시간 좀체 밥 짓는 냄새가 나지 않는 아이들 집의 문을 두드렸다. 이날 자원봉사자 태기웅씨는 정미(13), 재현이(15), 수지(9)를 만나 반찬을 건넸다. 여러 차례 방문해 낯이 익은 태씨를 보고 아이들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태씨는 처음엔 아이들이 방문을 부담스러워할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아이들이 생각보다 먹을 것뿐만 아니라 사람이 찾아와주는 걸 즐거워한다라고 말했다.

 

식품 보장의 단위가 꼭 가족일 필요는 없다. 해체된 가족공동체를 대체할 울타리가 있다면 완벽하진 않아도 온기가 도는 밥상을 차릴 수 있다. 그 울타리는 사람이 만든다. 한 지자체 아동급식 담당 공무원은 말했다. “정책이 좋다고 한들 세상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찬밥이라도 같이 먹을 사람이 필요하다.” 김보민 헝겊원숭이운동본부 대표도 말했다. “아이를 돌보려면 사람을 써야 한다. 사람 없이 돈만 써서는 효과가 없다. 돌봄은 관계 속에서 가치가 전달된다.” 헝겊원숭이운동본부는 맘마미아 푸드트럭, 엄마품 멘토링, 푸드 키다리가 간다 등 음식과 사람이 함께 아이에게 가는형태로 아이들의 식생활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

 

시사IN 변진경 돌봄 사각지대 아동에게 반찬을 배달하는 푸드 키다리자원봉사자들이 음식을 챙기고 있다.

 

전주시 엄마의 밥상은 획일적인 복지 행정에 온기를 더한 사례다. 엄마의 밥상은 전주시청이 아침을 굶고 등교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아침마다 따뜻한 도시락을 배달해주는 사업이다. 기존 결식아동 급식지원사업과는 별개로 진행된다. 2014년부터 시작해 지난해에는 예산 56200만원으로 280명 아이들에게 아침밥을 먹였다. 새벽에 갓 만들어진 밥, , 반찬 세 가지가 보온 도시락에 담겨 아이들 집으로 배달된다. 일주일에 한 번 간식꾸러미와 1년에 한 번 생일 케이크도 제공된다.

 

박은하 전주시청 희망복지지원팀장은 단순히 아이들의 배고픔을 채우는 차원을 넘어 밥을 먹으면서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있구나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이어나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주시민이 선정한 최고의 정책으로 꼽히고 여기저기서 후원금도 들어오지만 정책 유지가 쉽지는 않다. 새벽에 도시락을 만들고 배달해야 하다 보니 무엇보다 그 일을 할 사람을 구하기가 녹록지 않다. 그래서 다른 지자체에서 종종 벤치마킹을 위해 전주시를 방문하지만 정책이 쉽사리 확산되지 않는다.

 

연합뉴스 전주시가 실시하는 엄마의밥상도시락을배달받은 한아이가 감사의글을 남겼다.

 

까다롭고, 모호하고, 빈 구멍을 막으면 또 다른 데서 구멍이 보이는, 내 아이도 아닌 남의 아이들 밥 문제에 왜 이렇게 신경을 써야 할까? 우리 아이들 모두가 흙밥을 먹지 않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2013년부터 천안에서는 여러 시민단체, 아동복지단체가 네트워크를 결성해 어린이건강권사업의 일환으로 아침밥 지원사업을 벌여나갔다. 주도적 역할을 해온 전경자 순천향대 간호학과 교수는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한 교사의 볼멘소리를 기억한다. “우리 애도 아침밥 안 먹고 학교 가요. 대체 학교(사회)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 겁니까.” 전 교수는 말했다. “노동시간이 길어지고, 비정규직 등 고용이 불안정한 사회에서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가정에 맡긴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입니다. 가정에서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사회가 책임을 지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시사인 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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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1번지 대치동 아이들의 길밥 보고서

서울 대치동 아이들의 식사는 길밥이다. 삼각김밥, 닭꼬치, 카페인 음료 따위가 주식이다. 중계동, 목동 등 학원가가 밀집한 곳은 어디라도 비슷하다. 부모를 포함한 어른들은 아이들 밥에 무관심하다.

 

시사IN 조남진 지난해 1218일 대치동 학원가 패스트푸드점에서 한 초등학생이 저녁을 먹고 있다.

 

민수(14)는 오후 330분에 마지막 끼니를 먹는다. 밤까지 배고프지 않으려고 충분히 먹어두려 하지만 매일 저녁 허기짐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지연이(16)는 허구한 날 밥을 굶는다. 그나마 잘 챙겨 먹는 날은 프랜차이즈 도시락 가게 창가 자리에 앉아 3900원짜리 도시락으로 혼밥을 한다. 소윤이(17)는 밤 12시 즈음 자주 집 근처 편의점에 들른다. 터덜터덜 기운 없이 걸어 들어가 집어 드는 메뉴는 늘 삼각김밥과 고농도 카페인 함량의 커피 음료 따위다.

 

이 아이들은 흙수저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민수는 한 해 학비가 1500만원을 넘는 전국 단위 자사고 입시를 준비 중이다. 지연이는 입결(대학 입시 결과)’ 좋기로 유명한 특목고에 다니는 강남 키드. 소윤이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아파트촌에 산다. 소윤이네 집을 비롯한 그 동네 아파트값은 대개 30억원을 넘는다. 세 아이는 모두 부모에게서 아낌없는 투자를 받는 금수저에 가깝다.

 

그런데 왜 이렇게 먹고 살까? 바로 그 투자 때문이다. 민수, 지연, 소윤이가 학교 외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장소는 대치동 학원가이다. 그곳에서 아이들의 하루는 아침, 점심, 저녁 삼시 세끼에 맞춰 배치되지 않는다. 시간을 배치하는 것은 학원 스케줄이다. 이들에게 밥이란 그냥 배고프면 채워 넣는 알약 같은 것이다. 꽉 짜인 학원과 숙제와 자습 시간 가운데 틈새가 발생하면 급히 해치워버려야 하는, 걸리적거리는 삶의 방해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길에서 밥을 먹는다. 한시라도 허비하지 않도록, 앉아서 여유롭게 꼭꼭 씹는 대신 이동하며 허겁지겁 배를 채운다. 가난한 아이들이 흙밥을 먹는다면 부유한 대치동 아이들은 길밥을 먹는다. 그 둘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거의 겹친다.

 

불닭볶음면, 버블티, 햄버거, 닭강정대치동 아이들의 10시 식사

지난해 말, 취재진이 여러 차례 찾아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는 저녁식사 시간에 한산한 모습이었다. 일반적인 저녁밥 시간인 오후 5~8시 분식집, 햄버거 가게, 편의점 등은 서울 시내 다른 비슷한 식당들보다 손님이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원이 문을 닫는, 정확히 말하면 닫아야 하는10시가 되자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2008년부터 서울시 조례로 밤 10시 이후 학원의 심야 교습이 금지됐다). 아이들이 학원 건물에서 쏟아져 나왔다. 아이들의 식사 시간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붐비는 곳은 편의점이었다. 후다닥 달려온 남학생 셋이 간이 테이블 앞에서 모바일 게임을 하며 불닭볶음면이 익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밖은 영하 2. 한 여학생은 밖은 춥고 간이 테이블 자리도 없으니 계산대 근처를 서성이며 바삭통다리치킨을 뜯었다. 까르보불닭왕교자를 전자레인지에 돌린 다른 여학생은 음식을 담은 플라스틱 용기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갔다.

 

시사IN 조남진 학원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대치동 학원가에서 닭꼬치를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버거킹과 맥도날드는 대치동에서 한밤의 급식소였다. 키오스크 앞에 잔뜩 줄을 서서 햄버거와 감자튀김, 콜라를 주문했다. 떡볶이집, 튀김집, 1인 피자집, 짬뽕집, 버블티 매장 등에도 학생들이 바글바글했다. 달고 맵고 짠 음식들을 먹었다. 대개 매장 앞에 서서 먹거나 테이크아웃을 해갔고, 따뜻한 실내에 앉아 먹는 아이들은 두꺼운 롱패딩과 가방을 벗지 않았다. 1030분이면 대치동 식당들도 대부분 문 닫을 준비를 했지만 아이들의 식사는 끝나지 않았다. 종업원이 의자를 테이블 위에 엎어놓고 밀대로 바닥을 닦을 때까지 입에 음식을 밀어 넣었다.

 

아이들의 식사는 길 위에서 이어졌다. 학원가 사거리 포장마차 앞에 아이들이 잔뜩 서서 입을 우물댔다. 한 초등학생은 한 손으로 자기 몸집의 반만 한 롤링백(학생용 캐리어)을 끌고 다른 한 손엔 닭강정 종이컵을 든 채 바삐 걸었다. 고등학교 교복 치마 아래에 수면바지를 입은 여학생 둘은 얼음이 든 버블티를 마시며 24시간 스터디라운지로 들어갔다. 지하철 3호선 대치역 에스컬레이터에서도 아이들은 초코우유, 버블티, 삼각김밥, 떡꼬치 등을 마시거나 먹으며 걸었다. 승강장에 서서 삼각김밥 하나를 해치운 한 여학생은 구파발행 전철을 타서 자리에 앉더니 점퍼 주머니 안에서 햄버거 하나를 또 꺼냈다. 1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밥 먹느니 쪽잠 자고 숙제해요

한창 입맛 좋을 나이니 삼시 세끼를 잘 먹고 나서도 밤이면 배고플 수 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길밥을 먹고 나머지는 집에서 잘 챙겨 먹을 수도 있다. 입시 경쟁이 치열하니 고등학교 3학년 막바지 정도는 잠시 미래를 위해 현재의 식사를 포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치동 아이들의 식사에 관해 이런 합리화는 불가능하다. 저녁은커녕 아침과 점심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고, ‘월화수목금금금학원 스케줄로 꽉 채워 식사 시간이 없으며, 고등학교 3학년은 물론 중학교나 초등학교 때부터 이런 식사로 삶을 영위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

 

전형적인 대치동 학생으로 자신을 소개한 고등학생 지연이는 시간이 없으면 웬만하면 밥을 거른다.” 아침은 집에서 제대로 먹고 나오지만 학교 점심 급식은 아예 신청하지 않았다. 급식실에 가서 줄을 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다. 지연이처럼 점심시간에 밥을 먹지 않고 학교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이 꽤 많다고 한다. ‘야자(야간자율학습)’가 없는 매주 수요일 하교 후 대치동 학원가에 가면 오후 510분쯤 된다. 첫 학원 수업은 오후 6시에 시작하는데 저녁식사도 거의 거른다. 그 시간에 학원 숙제를 하는 게 낫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주말도 마찬가지다. 토요일, 일요일 모두 온종일 대치동에서 보내지만 밥을 제대로 먹은 적은 별로 없다. 지연이는 살도 빼고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지난해 1218일 밤 대치동 학원가에서 초등학생들이 롤링백을 끌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배고프지 않을까? 지연이는 그럴 때 친구들과 나가서 버블티를 사먹는다라고 말했다. ‘쩐주(타피오카 알갱이)’가 들어 있어 배도 든든해지고 공부하느라 당 떨어진 데에도 제격이란다. 그래도 자기는 잘 챙겨 먹는 편이란다. “위염 있어서 뭘 먹으면 속이 뒤집어져라며 아무것도 안 먹는 친구도 있다. 위염은 대치동 아이들에게 아주 흔한 병이다. 친구 여럿은 위염 때문에 엎드려서 못 잔다.

 

그런데도 지연이와 친구들은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를 끊지 못한다. “애들이 텀블러 가져온 거 열어보면 다 아메리카노예요.” 편의점에서 커피 음료를 고르는 기준은 카페인 함량이다. 높을수록 선호한다. “스누피 커피라고 엄청 센 거 있거든요. 차츰차츰 높여서 이제 애들 다 그거 마시는데 다들 걱정하죠. 3 때는 얼마나 더 센 걸 마셔야 하냐고요.” 그러면서 덧붙였다. “저는 그래도 (커피와 에너지 음료를) 고등학교 들어가서 시작했는데, 독서실 가보면 중학교 2학년생도 잠을 이겨야 한다며 마시고 있어서 마음이 안타까워요.”

 

대치동 학원에서 조교로 일하는 박 아무개씨(23)는 대치동의 식사 시간을 배틀로 표현했다. “특히 주말 오전 수업 시간 전에는 아침 못 먹고 오는 애들로 편의점 배틀이죠. 인파를 뚫고 겨우 전자레인지에 소시지 돌려서 오는 길에 먹더라고요.” 학원마다 쉬는 시간이 거의 겹치니 점심시간에도 밥 배틀이 이어진다. “애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니까 어디를 가든 줄 서서 먹어야 해요. 인기 많은 버거킹 같은 데는 최소 30~40분 기다려야 하니 포기하는 친구들도 많죠.” 겨우 자리를 잡는다 해도, 숫기 없는 사춘기 아이들은 식당 사장이 마음대로 합석시키거나 물 뜨러 간 사이 테이블을 정리해버리면 우물쭈물 따지지도 못한다. 그런 꼴을 겪느니 앞자리도 맡을 겸 일찍 학원 교실에 들어가 빵을 뜯어 먹으며 숙제를 한다. 음식물 섭취가 금지된 학원이 많아 학원 건물 계단 벽에 기대서서 먹기도 한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박씨도 수험생 시절 대치동에서 끼니를 자주 굶으며 학원을 다녔다. “시간이 모자라서 저녁 먹을 생각은 아예 못했어요. 그나마 제일 빠른 게 스타벅스에서 사이렌 오더(앱 주문)로 우유 들어간 좀 든든한 음료를 시켜 먹는 정도.” 정신없이 흘러가는 대치동 생활에서도 어떤 장면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진짜 슬펐던 거 하나가, 주말에 KFC에 갔는데 어떤 쪼끄만, 많이 봐줘야 초등학교 1~2학년같이 보이는 여자애가 고등수학 문제집 풀면서 혼자 햄버거를 먹고 있더라고요. 저도 여기서 일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기괴하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결식아동 흙밥과 대치동 길밥의 슬픈 평준화

대치동만의 특수한 풍경일까? 2의 대치동을 꿈꾸는 학원가라면 어디라도 비슷하다. 중학교 3학년 아들을 서울 노원구 중계동 학원가에 보내는 학부모 이 아무개씨는 처음 저녁 7시쯤 중계동에 들렀다가 한산함에 당황했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했는데 밤 10시 넘으니 다 쏟아져 나오더라고요.”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는 아이들이 한 손에 삼각김밥을 들고 한 손으로 자전거를 운전하며 학원과 학원 사이를 오간다. 자전거로 맥도널드 드라이버 스루(차에 탄 채 메뉴를 주문하고 음식을 받아가는 방식)’를 이용하는 모습도 익숙한 풍경이다. 경기도 안양시 평촌 학원가의 한 학원에는 아이들의 밥시간을 줄여주기 위한컵라면 자판기가 설치돼 있다.

 

이른바 학군지부유한 아이들의 길밥은 실제 통계에서도 뒷받침된다. 6~17세 아동에게 평일 방과 후 같이 저녁식사 하는 사람을 물었을 때 부모님이라고 답한 비율은 중위소득 50% 미만 못지않게 중위소득 150% 이상 그룹에서도 낮았다. 중위소득 150% 이상 그룹에서 유독 많은 답변은 친구학원 선생님이었다(44참조). 잘살수록 학원가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경우가 빈번한 것이다.

 

이렇게 슬픈 밥상의 평등이 이루어졌다. “있는 집이나 없는 집이나 모든 아이들이 평등하게 편의점 참치김밥 1+1로 끼니를 때우는역설적인 현실이다. 결식아동 급식카드냐, ‘엄카(엄마 카드)’냐의 차이일 뿐 아이들은 고만고만한 메뉴 선택지 안에서 돌봄없는 열량 덩어리를 씹어 삼킨다. 학군 좋기로 유명한 서울 시내 한 아파트촌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 아무개씨는 이전에 서울 노량진 편의점에서 일했다. “잘사는 동네니까 아이들이 사먹는 것도 다를 줄 알았죠. 그런데 차이가 없어요. 노량진 청년처럼 삼각김밥을 그렇게 많이 먹어요. 카페인 함량 높은 음료도 많이 마시고요.” 하교 후 김씨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커피를 사들고 대치동행 버스를 타고 떠난 아이들은 밤 11~12시쯤 다시 김씨의 편의점으로 돌아온다. 또 똑같은 삼각김밥과 커피를 사서 집이나 독서실로 향한다.

 

식사 금지, 대변 금지, 수면 금지

학부모 이 아무개씨는 지난해 말 아들의 겨울방학 학원 스케줄을 짜기 위해 중계동 학원에 전화를 돌리다가 마음이 착잡해졌다. 어떻게 시간표를 짜도 아이가 저녁 먹을 시간이 나오지 않았다. 대부분 수업 기본단위가 4~5시간이었다. 한번 간 김에 두 수업을 연달아 등록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그러면 10시간 내내 밥시간이 없다. 학원에 밥 먹는 시간 없나요?” 물어봤더니 그런 거 없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이씨는 오후 330분에 아이에게 저녁을 먹이고 4시 수업을 보낸다. 수업은 밤 10시까지 이어진다.

 

초등학생 때부터 그러고 산다. 학부모 정 아무개씨는 대치동 한 학원에 방문했다가 복도에서 이색적인 풍경을 봤다. 플라스틱 통에 담긴 프랜차이즈 도시락 수십 개가 이름표가 달린 채 선반 위에 주르륵 놓여 있었다. 그 학원은 초등생 대상 영재 수학 학원이다. 오후 5시부터 밤 10시까지 5시간짜리 수업이 주 3회 진행된다. 그래도 20~30분짜리 밥시간을 주는 인간적인학원이다. 어떤 학원은 10분 쉬는 시간도 주지 않고 화장실도 손 들어서 허락받고 가야 한다. 화장실에 대변 금지문구가 붙어 있고 화장실에 두 번 이상 다녀오는 아이는 공부할 준비가 안 되었다며 집에 돌려보내는 학원도 있다.

 

쉬는 시간이 있다 해도 편의점 방문을 포함한 외출을 일절 금지한 학원도 많다. 일명 자물쇠 반이다. 방학에는 텐 투 텐(오전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자물쇠 반도 운영된다. 어떤 초등 영재 수학 학원은 오후 3시에 시작해 미션(주어진 수학 문제를 다 푸는 것)’을 완수할 때까지 아이가 밖에 나가지 못한다. ‘미정(시간 내 미션 미완수)’을 받은 아이들은 밤 10시 넘은 시각 울면서 계단을 내려온다. 모두 학부모들 사이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는 학원들이다. ‘○○고시따위로 불리는 이런 학원들의 입학 테스트를 통과하면 주변 사람들의 축하가 쏟아진다.

 

잘 먹지 못하는 아이들은 잘 자지도 못한다. 10시 넘어 학원을 마치고 기름진 음식으로 허기를 채우는 아이들의 취침 시간은 빨라야 자정이다. 서울 강남 일대에서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개인 과외를 다니는 민 아무개씨는 초등학생 3~4학년이 학원 가고 숙제하느라 새벽 1시 넘어 자는 경우가 수두룩하다라고 말했다. “특히 과학고, 영재고 트랙을 밟는 애들은 눈에 띄게 키가 작고 늘 피곤해 보인다. 잠을 푹 재우지 않으니 그런 것 같다. 아직 엄마 말을 잘 듣는 나이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오히려 큰 아이들보다 더 못 자는 것 같기도 하다.” 잘 못 자면 또 잘 못 먹는다. 악순환이다. 성적 경쟁이 심한 학교에 다니는 지연이는 대부분 친구들이 새벽까지 공부하느라 늦게 자서 다음 날 아침에 밥 대신 10분이라도 더 자는 쪽을 선택한다라고 말했다.

 

아무도 아이들 밥에 관심이 없다

학원가에서 부모의 역할은 아이를 잘 먹이고 잘 재우는 돌봄이 아니다. 성적 올려주는 학원 정보력과 일타 강의줄서기에 성공하는 민첩성이 더 중요한 부모의 능력이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 장 아무개씨는 학부모끼리 만나면 아이 학원, 입시에 관련된 얘기는 많이 하지만 아이 밥은 전혀 관심사가 아니다. 아이 키가 안 크면 오히려 어떤 의료적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선 정보를 나누지만 어떻게 잘 먹여야 하는지에 관해선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서울 목동 학원가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 이 아무개씨도 엄마들 단체 카톡방에 영양제, 홍삼 뭐가 좋다더라 정보는 엄청나게 공유되는데, 밥은 어차피 학원 시간표 때문에 애들 먹는 게 뻔하니까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대치동 같은 학원가에서 아이들의 식사 장소는 대개 길거리이다.

 

부모를 포함해 아이를 둘러싼 어른 누구도 아이들 밥에 관심이 없다. 특목고생 지연이는 학부모들은 학교에 학습 관련한 사항은 아주 작은 문제까지 민원을 내지만 학교 급식이 맛없어서 아이들이 잘 안 먹는 문제에 대해선 아무도 민원 제기를 안 한다.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들도 아이들이 밥을 먹는지 마는지, 왜 안 먹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어떤 부모들은 오히려 학원가 인스턴트 음식을 아이를 학원으로 밀어 넣는 유인책으로 쓰기도 한다. 경기도 과천에 거주하는 한 학부모는 부모들이 학원 가기 싫어하는 초등학생을 학원으로 넣는 가장 빠른 수단이 인스턴트 음식이다. 학원 가는 날은 편의점에서 네가 좋아하는 콜라, 햄버거, 컵라면 먹어도 된다며 꼬드기는 것이다. 그렇게 한번 입맛을 들인 아이들은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밥을 그런 식으로 때운다라고 말했다.

 

아이의 밥을 신경 쓰는 부모도 학원에 밥을 맞추지, 밥에 학원을 맞추지 않는다. 학원 건물 주차장에서 아이를 접선해 쉬는 시간 10분 동안 차에서 보온 도시락을 먹이거나, 학원 쉬는 시간 5분 전에 미리 식당에 앉아 메뉴를 주문해놓거나, 비교적 편안히 혼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 리스트를 뽑아 아이에게 살뜰히 대치동 혼밥 지도를 그려주는 식이다.

 

학원이 아이들 밥시간을 파괴하는 게 너무 속상하다는 학부모 이 아무개씨도 제시간에 밥을 먹이기 위해 학원을 포기하진 못했다. “아무리 학교 수업 시간에 충실해도 좋은 성적을 받기 힘들고 얼마나 선행(학습)을 하고 갔느냐에 따라 내신이 달라지는 슬픈 현실때문이다. 그래도 계속 마음이 아프다. “밥시간이라는 게 어찌 보면 하루 3번 강제로라도 쉬게 만드는 거잖아요. 아이들에게 그런 휴식 시간을 박탈하는 거잖아요. 아무리 악덕 기업이라도 노동자에게 밥 먹는 시간은 최소 1시간을 주는데 우리 아이들은 파업도 못하고 당하고 사는 것 같아요.”

 

이씨는 학원 심야 교습 금지법처럼, 사람들이 비웃더라도 학원가 밥시간에 관한 어떤 상징적인 차원의 규제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지금도 (학원 수업) 10시 규제가 있지만 다 셔터 내리고 하고 카페 가서 하고 그래요. 하지만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은 한단 말이에요. 이게 나쁜 거라는 메시지는 주잖아요. 학원가 아이들 밥시간에 관해서도 그런 규제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다 비웃고 어기더라도 아이들 굶기고 공부시키면 안 된다는 메시지만이라도 줬으면 좋겠어요.”/시사인 변진경·나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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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5 사설] 불출마 의원 앞세운 위성정당’, 이게 보수 혁신인가

자유한국당이 5일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의 중앙당 창당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이른바 자매정당이라는 미래한국당 대표엔 자유한국당 소속 한선교 의원이 추대될 예정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용되는 30석의 비례 의석을 챙기기 위해 허울뿐인 가짜 정당을 만든다는 발상이 결국 현실화하는 셈이다. 더욱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친박 국회의원을 대표로 내세운 건 명분도, 염치도 없는 낯부끄런 정치 행태다.

 

위성정당 대표로 추대될 한선교 의원은 지난달 불출마 선언 때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죄송하다. 용서해 달라친박 코스프레를 한 인물이다. 골수 친박 인사를 위성정당 간판으로 내세운 건, 결국 태극기 부대표까지 긁어모으겠다는 얄팍한 정치 계산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한선교 의원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체제의 첫 사무총장이었고, 둘이 대학 선후배로 가까운 사이라는 점은 미래한국당이 황 대표의 직할 통치를 받는 허수아비 정당이란 걸 여실히 보여준다.

 

한쪽에선 코미디에 가까운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다른 한쪽에선 보수 진영의 새판짜기에 혁신과 통합이란 가치를 내거는 걸 보면 이율배반도 이런 이율배반이 있을 수 없다. 현재 통합 논의를 활발히 진행 중인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이 합당을 해서 보수통합 신당을 창당할 경우, ‘불출마 인사들의 집합소인 가짜 정당을 용인하고서 어찌 보수의 혁신을 말할 수 있겠는가. 위성정당 창당은 합리적 보수의 정립이라는 시대 과제와 역행하는 몰상식한 행태일 뿐이다.

 

위성정당 창당은 정치 도의상으로도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꼼수 정치의 극치다. 선거를 앞두고 정책이나 이념, 인물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퇴물 정치인을 끌어모아 국민 앞에 내놓는 것 자체가 정당 정치의 본령을 훼손하는 일이다. 자유한국당은 상당수 불출마 의원을 위성정당으로 옮기도록 해 비례대표 투표용지의 앞자리를 차지하도록 하겠다는 속셈인데, 정치를 희화화하고 국민을 우습게 보는 일이다. 다른 정당들이 고발을 예고한 만큼, 위성정당 창당이 정당법 등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관련 당국은 엄밀히 따져봐야 한다.

 

정치권과 언론의 거듭된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유한국당이 기어코 위성정당을 만든다면, 건전한 상식을 가진 유권자들의 심판에 직면할 수 있음을 지금이라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70만표 벽 넘으면 의제정당꽃핍니다

준연동형비례 도입 첫 선거 맞아

여성의당·기본소득당·시대전환 등

지역·이념 아닌 개별의제로 도전

거대정당 맞서 선거연대 논의도

 

21대 국회부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 특정 정책이나 가치를 지향하는 의제정당의 국회 입성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여의도 전경련 빌딩에서 바라본 국회 본회의장의 야경.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문이 열리고 있다. 저 문을 통과하는 데 필요한 건 70만표. 새로운 꿈을 꾸는 이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다. 준연동형비례제가 도입되는 첫 선거를 앞두고 의제정당을 내세우는 다양한 작은 정당들이 그 주인공이다.

여성주의 가치 실현을 목표로 한 여성의당이 오는 15일 중앙당 발기인대회를 연다. ‘기본소득당은 비례후보 4, 지역구 후보 2명이 출마하겠다고 나섰다. 직접 교육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나선 교육당도 창당을 준비 중이다. 기성정치 대신 플랫폼 정당‘3040세대를 내세우는 시대전환은 지난달 창당선포식을 하고 당원 모집에 들어갔다. 시대전환의 창당선포식과 토론회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이 찾는 등 기성정치권의 주목을 받았다.

 

이들이 기존 정당과 가장 다른 점은 목표가 디테일하다는 것이다. 정의당이 전반적인 진보이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올해 국회 진입을 노리는 작은 정당들은 기본소득’ ‘기후환경’ ‘여성등 정당이 개별 사안으로 다뤘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여성의당 창당에 함께하고 있는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은 새로운 선거제도가 마련해준 가능성에 주목했다“2030세대들이 여성주의 정치의 주체로 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의 어젠다를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결사체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창당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원재 시대전환공동대표는 그동안 정당에서 정강정책은 중요하지 않고 정치인 개인만 중요했다. 정당에 의제가 담기지 못하는 상황을 이번 선거법 개정을 통해 한걸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보수 대 진보’ ‘산업화 대 민주화의 진영 다툼에서 벗어나, 유권자 자신이 관심을 갖는 사안에 목소리를 낼 정당을 찾을 시기가 왔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을 본격적으로 움직이게 한 것은 역시 득표율만큼 의석을 받는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이다. 아직 100% 득표율이 반영되지 않는 탓에 준연동형이란 딱지가 붙어 있지만 이전보다는 좀 더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이들이 국회에 진출할 기회가 열린 셈이다.

 

특히 이들은 이전 선거제와 달리 정당득표율 3%라는 기준을 넘어섰을 때의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한 정당이 3%를 득표하면 이전 총선에서는 1석만 받았지만, 바뀐 제도에서는 3~4석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작은 정당 2~3곳만 연합해도 입법 발의 요건인 국회의원 10명을 채울 수 있다. 3%를 넘기면 작은 정당의 발언권이 이전보다 훨씬 커지는 것이다.

 

유럽에서 불고 있는 신생정당의 돌풍도 이들의 희망을 키우고 있다. 스페인의 포데모스, 아이슬란드의 해적당 등은 이미 오래된 서구 양당정치에 균열을 낸 바 있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공화당도 사회당도 아니었지만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은주 소장은 여성의당은 온라인을 통해 20대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선거전략을 세우면 80~100만표 정도 득표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전망을 내놨다. 이원재 대표는 총선 전까지 국회의원을 영입해 앞번호 기호를 받을 전략을 세우고 있다이번에 국회에 깃발을 꽂아야 (연동형비례제하에서 정당으로서) 오래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물론 원내 진입장벽인 정당득표율 3%의 벽은 생각보다 높을 수 있다. 유권자 70만표 이상(20대 총선 정당득표율 기준 73만여표)을 받아야 하는데, 20대 총선에서 녹색당은 0.76%를 받았고, 민중연합당은 0.61%에 그쳤다.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은 한국의 양당정치가 아직 살아 있어서 유권자들이 자유한국당을 심판하려면 민주당에 표를 주고, 정부를 심판하려면 한국당에 표를 주는 정치공학이 여전하다. 다양한 세력이 국회에 진출할 만큼의 주목은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이유로 작은 정당들은 활로 모색을 위한 선거연대 등도 논의하고 있다. 12일 녹색당과 시대전환, 기본소득당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소득불평등, 기후위기, 기술변화로 인한 일자리 위기 등에 대응하기 위해 기본소득제를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는 당리당략과 국고보조금을 위한 정당들의 이합집산이 아니라 정책 중심의 연대가 필요하다. 이색정당·군소정당을 넘어 유니콘정당으로 함께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미 원내에 진입한 정의당은 청년정당인 우리미래당과 녹색당 등에 선거연대를 요청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채진원 경희대 교수는 “3%라는 문턱을 넘으려면 단일 의제정당 간 네트워크나 응집력이 도모되어야 한다거대정당이 위성비례정당을 만드는 상황에서 소수정당이 손해 보지 않으려면 몸집을 키워 전략적으로 호소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지역구를 제외한 미미한 의석(47)을 놓고 경합하기 때문에 의제정당·군소정당이 빠른 속도로 지분을 넓힐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신 교수는 유럽에서 20년째 나온 현상을 보면, 이주자·난민·성소수자 등 제한된 이슈에 총집중한 극우정당이 기존 중도좌파와 중도우파를 밀어내고 성공한 비결 역시 비례제에 있었다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이어 수십개 정당의 포스터가 붙을 텐데, 유권자들이 충분하고 올바른 정보를

갖고 선택할 수 있도록 정당체제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게 한국 정치의 새로운 과제가 됐다고 짚었다./이완 황금비 기자 wani@hani.co.kr

 

서울이 유령도시’? 언론의 지나친 프레임보도

불안 일으키고 자극적 보도 지속중국 눈치 본다프레임뚫린 방역망질타하더니 폐쇄 조치에는 경제 피해 크다고 비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보도가 쏟아지면서 정부가 중국 눈치를 본다 예방조치에 대해 경제 피해가 크다방역이 뚫렸다더니 폐쇄 등 대응이 과도하다고 비판하는 보도가 나온다.

 

검증 없는 보도나 자극적 보도는 계속 지적돼왔다. ‘의사도 시민도 픽픽 실신봉쇄된 우한 현장’(노컷뉴스 125), ‘우한 폐렴 실제 감염자 9만명, 중국 현지 간호사로 추정되는 남성의 폭로’(인사이트)가 대표적이었다. 이들 보도는 우한의 의료진이라고 주장하는 여성의 영상을 근거로 감염자가 1월에 이미 9만명이 넘었다고 전했다. 채널A뉴스A’(126)에서도 해당 영상을 내보냈다. 211일 현재 중국 감염병 환자는 4만여 명으로 발표된 상황이다. 이런 보도는 사실과 다른 주장을 널리 퍼뜨려주는 역할을 했다.

 

격리된 이들이 공용 세탁기를 쓴다며 전염될까 걱정인데 공용 세탁?’(채널A, 23)같은 기사도 사실 확인이 부실하고 공포만 유발한다. 연합뉴스 우한교민 잠 못드는 밤’(격리된 우한 교민을 찍은 뉴스, 131)도 자극적이고 사생활 침해적 보도였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우한 교민들 숙소를 클로즈업한 보도에 연합뉴스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채널A 126일 뉴스 화면 갈무리.

 

정부가 중국 눈치를 본다는 프레임도 있다. 초기에 언론이 우한 폐렴이라고 부르다가 세계보건기구(WHO)가 공식 명칭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정하자 정부 역시 이같은 발표를 했다. 이에 조선일보는 우한폐렴이란 병명 모두 바꿔, 네티즌 엔 왜 저자세로 나가나”(128)라는 기사부터 시작해 우리 정부가 중국 눈치에 병명을 바꿨다고 보도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여전히 우한폐렴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조선일보는 11도 신종 코로나에 우한 지명 사용 못하게 해라는 기사에서 마치 북한이 중국 눈치에 병명을 바꾸었고 한국 정부도 그랬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중앙일보도 신종 감염병 속 한중 관계 조망’(130)에서 우한 폐렴 대응에도 중국 눈치를 보고 있다는 의심은 병명 문제로 번진다. 자업자득이라고 썼다. 서울경제 중국 앞에만 서면 왜 작아지나’(26)도 중국에 여행제한조치를 미루고 정부가 중국 정부를 지나치게 감싸준다며 시진핑 주석의 방한 등 현안 해결에 차질을 우려한 정부가 서둘러 꼬리를 내렸다고 해석했다.

 

11일 조선일보 사설.

 

이에 더해 조선일보 등은 정부가 중국 눈치를 봐서 중국 입국 제한을 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조선일보 7일 사설은 정부는 중국인 입국 제한 주장이 나올 때마다 중국 혐오를 그만두라며 자국민 건강보다 중국 눈치를 더 살피는 모습이라며 총선 전에 김정은 답방이 안 되면 시진핑 방한이라도 성사시키고 싶은 미련이라고 썼다. 한국경제도 6일 사설 우한폐렴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정부는 후베이성 방문자에 대해서만 입국을 금지했다. 중국 눈치보기인가 아니면 방역 능력에 대해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것일까라고 보도했다.

 

이들 매체는 중국인 입국 제한에는 열을 올리면서도, 감염자들이 거쳐간 장소 등을 폐쇄하는 등 감염 확대 예방조치를 하면 경제적 손해라며 반발한다. 이들은 백화점·상점 일시폐쇄에 유령도시가 됐다’, ‘경제타격이 크다고 부풀려 보도한다. 지금까지 중국 우한이나 베이징을 유령도시로 칭하는 보도는 일부 있었지만 서울을 유령도시로 칭한 건 조선일보와 조선비즈 기사가 있었고 확진자가 다녀간 송도에 대해 유령도시를 방불케 한다는 기사가 있었다. ‘유령도시와 같은 단어은 불안감을 일으키는 표현이다.

 

조선비즈 29일 보도.

 

조선일보는 7일 기사에서 우한폐렴 공포가 확산되면서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이 유령도시처럼 변해가고 있다며 한 자영업자의 말을 빌어 사스나 메르스 때도 시민들 공포감이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일상과 생활경제도 함께 쪼그라들고 있다고 썼다.

 

같은 면에 기침 옮으면 입사 시험장 쫓겨날 판, 취준생들 친구 기침에도 철렁이라는 기사에도 감기 증세만으로 입사시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썼다. 감염병 보도는 국민 건강과 직결돼 자극적 보도를 지양해야 하는데 조선일보는 공포를 극대화시킨 보도가 적지 않았다.

 

초기엔 방역이 뚫렸다고 비판하던 언론이, 이제는 어린이집이나 상점 폐쇄가 지나치다며 경제적 피해를 강조하고 있다. 조선일보 11일 사설은 코로나 공포가 번지면서 상가와 식당에 발길이 끊겼고 행사와 모임도 속속 취소된다며 이렇게까지 불안에 떠는 나라는 중국 빼고는 한국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시흥시는 일가족 확진자가 나오자 어린이집 등 517개 돌봄 시설 운영을 중단시켰다. 지금의 분위기는 지나치다국내에선 중증으로 진행한 경우가 아직 하나도 없다. 확진자가 수백m 근방을 스쳐 지나갔다고 모조리 폐쇄부터 하고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는 식이어선 피해가 너무 크다고 했다. /정민경 기자 mink@mediatoday.co.kr



크루즈선의 공포, 비정상국가 일본 민낯 드러내다.

[안종주의 안전사회] 방역교과서에도 없는 일본의 비과학적 검역 정책

지금 일본 요코하마 항에 정박해 있는 크루즈선에서는 꿈과 행복, 그리고 낭만이 오래 전에 사라졌다. 대신 불안과 죽음의 공포만 가득하다. 코로나19(신종코로나)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코로나19라기보다는 일본의 비상식적 오판으로 인한 방역 실패 때문이다. 대형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4천명에 가까운 승객과 승무원, 그리고 천문학적인 숫자의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뒤섞여 대혼란이 벌어지는 바다 위 우한으로 변했다.

 

중국 우한과 후베이성 등에서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하기 시작할 무렵인 지난 120일 요코하마에서 승객과 선원 3711명을 태우고 출발한 이 크루즈선은 홍콩, 베트남, 대만 등을 거쳐 지난 3일 요코하마에 돌아왔다. 요코하마에서 승객이 내리기 전에 경유지인 홍콩에서 내린 한 남성이 코로나19 확진 환자로 드러났다.

 

크루즈선 승객의 불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일본은 승객과 승무원을 육지에 내리지 못하게 하고 2주간 해상 격리하는 방역 전략을 택했다. 의료진을 투입해 기침, 발열, 인후통 등의 증세를 보이는 감염 의심자에 한해 검진을 한 뒤 바이러스 검사를 거쳐 확진이 된 환자만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다.

 

일본 신속 검역 대신 소걸음 전략으로 코로나19 환자 확산

문제는 일본 정부가 의료진을 대량 투입해 신속하게 검진을 하지 않고 느림보 소걸음검역을 하는 동안 배 안에서 계속 2, 3차 감염이 이루어져 날이 갈수록 환자 수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12일에만 39명이 환자로 추가 확진됐다. 이로써 크루즈선 안에서 코로나19에 걸린 사람은 모두 무려 174명으로 늘어났다.

 

이 가운데 일본인 3명과 한 명의 외국인 등 4명은 위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역관 한 명도 감염됐다. 앞으로 감염자와 확진 환자가 얼마나 더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승무원과 승객들은 언제 자신이 감염자가 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불안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배에는 한국인도 14명 있다. 호주 등 여러 국적의 승객들이 검역 격리’, 즉 콰란틴을 이유로 감옥이나 진배없는 밀폐된 선실 안에서 갇혀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호주 등 세계 각국에서 늑장 검역에다 잘못된 검역 정책으 펴고 있는 일본을 비판하고 있다.

 

일본은 승무원과 승객들을 입항 2주 뒤에 모두 하선시킬지 여부를 아직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14일이라는 날짜는 코로나19의 최대 잠복기를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매일 많은 환자가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방역 원칙을 따진다면 마지막 환자가 발견된 뒤 2주가 지나서 격리 해제를 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입항 40일이 되어도 배에서 격리 해제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방역교과서에도 없는 일본의 비과학적·비상식적 검역 정책

감염병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일본의 이런 방역 전략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하고 있다. 먼저 크루즈선에는 너무나 많은 승객들이 있고 이들은 좁은 배 안 밀폐 공간에서 북적거리며 생활하기 때문에 하루빨리 그런 환경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것이 방역의 핵심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환자가 174명으로 집계될 정도면 배 안은 거대한 바이러스 배양실처럼 변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한마디로 일본의 비과학적 방역 전략 때문에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아도 될 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일찍이 우한에서 자국민을 항공기 편으로 데려온 뒤 의심환자는 병원으로 이송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14일간 자가격리 하는 방역 전략을 펼쳤다. 크루즈선 승객과 승무원에 대해서도 같은 전략을 적용해야 함에도 어찌된 일인지 외면했다.

 

일본이 입항 14일이 되는 오는 18일에도 승객을 모두 하선시키지 않는다면 승객의 격렬한 저항은 물론이고 국제사회의 비판과 승객·승무원 가족들의 거센 항의에 직면하게 될 공산이 크다. 만약 이때 어쩔 수 없이 이들을 다시 14일간 자가격리 또는 집단시설에 임시 격리하는 정책을 편다면 왜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않고 뒤늦게 그렇게 하느냐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일본은 처음부터 배 위 또는 항구 부두에 임시 검진시설을 차려놓고 수십 명의 의사 등을 동원해서라도 의심증상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하루 이틀 안에 판별했어야 한다. 그 결과 증상이 있는 사람은 격리 병상이 있는 병원으로, 없는 사람은 자택이나 임시격리 시설로 이송하는 것이 정상적인 방역 대책이었다.

 

크루즈선 승객 검역과 관련한 일본의 정말 어처구니없는 이런 방역 전략은 선진국 일본에 큰 오점을 남길 것으로 본다. 또한 세계 감염병 방역의 역사에서도 매우 불미스런 비상식적 처사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본다.

 

특히 사망자가 나온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엉터리 검역 전략을 펼친 일본 정부에 있을 것이다. 사망자가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승객들의 인권과 정신적 충격, 그리고 감염병 때문이 아니라 오랜 감금에서 오는 육체적 피로로 인한 건강 악화에 대해서도 분명 책임이 있다.

 

우리나라도 공포의 크루즈선에서 옴짝달싹 하지 못하고 있는 14명의 국민을 어떻게 국내로 데려오는 것이 좋을지 본격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배 안에 김치를 들여보내 주는 등의 지원에 그쳐서는 결코 안 된다. 호주 등 다른 국가들과도 힘을 한데 모아 감염병 감염 가능성을 이유로 사실상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자국민들을 하루빨리 지옥 같은 일본 바다 위에서 구출하는 것이 마땅하다.

 

외국인 중국은 이송 허용, 일본은 하선 금지 그렇다면 인권국은 어디?

중국은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있는 도시 우한에서 자국민들을 데려가도록 외국에게 허용했다. 하지만 일본은 바다 위 우한이 된 요코하마항의 크루즈선에서 외국인의 하선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는 중국보다도 못한 반인권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콰란틴은 40일간을 뜻하는 이탈리어 어원을 지니고 있다. 중세 페스트 창궐 때 흑사병에 걸린 선원과 승객들이 육지에 내려 항구도시에 죽음의 감염병을 퍼트리는 것을 막기 위해 40일간 하선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다. 40일이면 배 안에서 죽을 사람은 모두 죽고 만다.

 

이런 식의 콰란틴은 지금 시점에서는 비과학적이고 반인권적이다. 현장에서 감염 여부를 확실히 알 수 없다면 승객이 바글거려 바이러스 전파의 최적지 구실을 하는 크루즈선이 아니라 최대한 빨리 다른 곳에 분산해 격리한 뒤 감염 여부를 살피는 것이 상식적이고 정답이다.

 

한데 일본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일본은 적어도 코로나19 검역에 관한 한 비정상, 비상식, 비과학적 국가이다. 요코하마항의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본의 지난 10일간의 행태와 174명 환자 발생이라는 그 결과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 /프레시안

 

크루즈 '악몽의 나날들'...'코로나' 환자 폭발적 증가

신종 코로나 공포로 '웨스테르담호'도 바다 표류 중

일본 요코하마(橫浜)항 앞바다에 격리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새로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가 12, 추가로 39명이 나왔다. 이로써 지난 510명의 집단 감염이 처음 확인된 후 격리된 해당 선박의 감염자 수는 전체 검사 대상 492명의 35%가 넘는 174명으로 급증했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일본 후생노동상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같이 밝히는 한편, 확진자 174명 중 "인공호흡기를 달거나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가 60~70대 남성 4"이며 "이들 중 일본인은 3"이라고 밝혔다. 승객과 별도로 선내 검역관 한 명도 신종 코로나 감염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였다. 해당 검역관은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했으나, 방호복은 입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는 약 3600명의 인원이 탑승하고 있다. 이들 중 발열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이가 나오면 검사가 진행된다. 제대로 된 격리가 어려운 상황에서 감염자가 늘어나고 있어 사태가 더 심각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일본 정부는 크루즈선 환자를 일본의 공식 감염 환자로 집계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현재 자국의 신종 코로나 환자를 29명으로 집계하고 있다. 도쿄올림픽이 코앞인 상황에서 자국의 감염증 환자가 늘어날 경우, 올림픽 유치와 해외 방문객 유치 등에 심각한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감염자는 본토 감염자와 분리해 발표하는 조치를 취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는 한국인 14명도 탑승하고 있다. 정부는 현지 영사관을 통해 상황을 파악하는 데 집중하고, 당장은 이들을 한국으로 송환할 계획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신종 코로나 확산 우려로 인해 크루즈선이 표류하는 사례는 또 있다. 이날(현지시간) 태국 일간 <방콕포스트>는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가 "웨스테르담호는 람차방에 입항하지 못하겠으나, 태국은 승객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의료 지원과 음식 및 연료 보급과 같은 인도적 지원"을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바꿔 말하면, 태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 확산 우려로 인해 크루즈선 웨스테르담호의 자국 입항을 거부한 셈이다. 1455명의 승객과 802명의 승무원을 태운 웨스테르담호는 지난 1일 홍콩에서 출발해 대만을 거쳐 7일 일본 오키나와현 이시가키(石垣) 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신종 코로나 환자가 무더기로 발생하는 사태가 일어나자, 웨스테르담호는 각국에서 입항을 거부당했다. 일본은 물론 한국과 필리핀, 괌도 해당 선박의 입항을 거부했다.

 

이와 관련, 웨스테르담호의 선주인 홀랜드·아메리카사는 지난 10일 성명을 내 웨스테르담호 승객이 신종 코로나에 감염됐다고 믿을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신종 코로나 공포가 커지는 가운데, 앞으로 신종 바이러스 피해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날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정부와 국회 등에 전달한 <한림원의 목소리 83> 문건에서 "앞으로 신종·변종 바이러스 출현이 이어질 것"이라며 "역학 조사 질을 높이고 백신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바이러스는 생존에 유리하도록 진화하기 마련인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특히 이런 능력이 뛰어난 사례다. 증식 속도가 빠른데다, 박쥐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숙주의 범위가 넓어 종간 이동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유전자 재조합 능력도 뛰어나다. 사스와 메르스가 이 같은 재조합의 결과물이다. 한림원은 그러나 "신종 바이러스 발생을 구체적으로 예측하기는 어렵다""빅데이터를 활용한 상시 감시 체계를 마련해 바이러스를 조기 발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종 코로나의 공식 명칭을 '코로나19(COVID-19)'로 변경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날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가진 언론 브리핑에서 이 같이 밝히고 "이름을 정하는 것은 부정확하거나 낙인찍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이 사용되는 것을 막는 데 중요하다""향후 코로나바이러스가 발병할 때 사용할 표준 형태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

 

민주당, 비판 칼럼 쓴 임미리 교수·경향신문 고발

 

임미리 교수 SNS 발췌.

 

더불어민주당이 민주당 비판 칼럼을 쓴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와 칼럼을 게재한 경향신문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지난 5일 임 교수와 경향신문에 대해 공직선거법상 사전선거운동 및 투표참여 권유 활동 금지 위반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했다고 13일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고발장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해서는 안된다는 투표 참여 권유 시의 단서조항, 선거기간이 아닌데 사전 선거운동을 했다는 점을 문제삼았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민주당은) 왜 고발했을까? 위축시키거나 번거롭게 하려는 목적일 텐데 성공했다. 살이 살짝 떨리고 귀찮은 일들이 생길까봐 걱정된다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는, 노엽고 슬프다. 민주당의 작태에 화가 나고 1987년 민주화 이후 30여년 지난 지금의 한국민주주의 수준이 서글프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이어 선거법의 가장 큰 목적은 부정부패와 과열 방지에 있다특정 후보의 당락이 아닌 특정 정당을 대상으로 하는 선거법 위반은 그래서 성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임 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당시 헌재의 기각 결정문을 인용해 후보자 특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발언을 한 것은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민주당이 고발한 임 교수의 칼럼은 지난달 29일 경향신문 오피니언면에 게재됐다. ‘민주당만 빼고라는 제목의 당시 칼럼에서 임 교수는 국회가 운영 중인데도 여야를 대신한 군중이 거리에서 맞붙고 있다자유한국당에 책임이 없지는 않으나 더 큰 책임은 더불어민주당에 있다고 했다. 임 교수는 민주당의 책임에 대해 촛불정권을 자임하면서도 국민의 열망보다 정권의 이해에 골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의 사유화에 대한 분노로 집권했으면서도 대통령이 진 마음의 빚이 국민보다 퇴임한 장관에게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더 이상 정당과 정치인이 국민을 농락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국민이 정당을 길들여보자.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알려주자. 국민이 볼모가 아니라는 것을, 유권자도 배신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자. 선거가 끝난 뒤에도 국민의 눈치를 살피는 정당을 만들자. 그래서 제안한다. ‘민주당만 빼고투표하자고 했다.

 

민주당의 조치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정태인 독립연구자는 “2000년쯤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자한당, 한나라당, 새누리당만 빼고20년 동안 쓴 셈이다라며 그러나 아직 고발당한 적 없다고 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낙선 운동으로 재미봤던 분들이 권력을 쥐더니 시민의 입을 틀어막으려 한다리버럴 정권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했다.

 

박권일 사회비평가는 노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당시 후보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당에 대한 찬반 발언은 문제가 없음을 명시한 헌재 결정문을 인용한 뒤 민주당의 방약무도가 넘치다 못해 기본권마저 파괴하고 있다고 했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부동산 탈세 천태만상아빠 찬스로 고가 아파트 꿀꺽30

국세청, 개인 325명 법인 36건 세무조사 착수

 

고가 전세 보증금 편법 증여 사례. 자료 국세청

 

변칙 거래로 고가의 부동산을 취득했거나 고액의 전세자금을 편법 증여한 혐의로 325명이 세무조사를 받는다. 소득에 비해 과도한 수준의 고가 부동산을 소유한 30대 이하가 4명 중 3명 꼴이다. 초등학생부터 무직자까지 아빠 찬스를 활용한 이들의 탈세 수법도 다양하다.

 

국세청은 부동산 탈루 혐의가 있는 361건의 세무조사에 돌입한다고 13일 밝혔다. 국토교통부 등 관계기관이 1~2차에 걸쳐 조사한 서울 지역 의심 사례 중 173명을 포함했다. 여기에 자체 조사 결과 자금 출처가 불분명한 고가 주택 취득자(101)와 고액 전세입자(51), 부동산 법인(36)을 더했다. 지난해 11월과 12월에 이어 6개월 사이 3번째 조사에 나섰다.

 

이번 조사는 30대 이하에 초점을 맞췄다. 법인을 제외한 개인 325명 중 240(73.8%)이 소득에 비해 과다한 수준의 부동산을 갖고 있었다. 재력가인 가족에게서 세금을 내지 않고 증여를 받아 아파트·상가를 취득하는데 활용했다. 지방에서 자영업을 하는 30A씨는 거액의 전세 보증금을 끼고 서울에 고가 아파트를 구입했다. 전세금을 제외한 자금은 가족에게서 받았다. ‘현금 창고는 할머니와 부친이었다. 이 과정에서 증여세를 내지 않아 덜미를 잡혔다.

 

고액의 전세 자금을 편법 증여 창구로 활용한 사례도 눈에 띈다. 별다른 소득이 없는 B씨는 부친 명의의 고가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 중이다. 부친은 이 집을 팔면서 전세 보증금을 차감한 잔금만 받았다. B씨가 전세를 뺀다고 하면 새로운 집주인이 고액의 전세 보증금을 내어 줘야 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국세청은 이를 편법 증여로 보고 억대의 증여세를 추징키로 했다.

 

연이은 고강도 세무조사는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하겠다는 정부 기조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부지방국세청은 변칙 부동산 거래 탈루 대응 태스크 포스(TF)’를 설치·운영하며 상시 대응 체계도 갖췄다. 김태호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은 부동산 관련 세금 탈루 행위는 경기와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엄정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이만희는 구원자가 아니다이만희 교주 내연녀 김남희씨, 신천지 실체 폭로

 

김남희 씨가 20179월 열린 신천지 측의 위장 행사 종교대통합 만국회의 3주년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현대종교 제공.

 

이만희는 구원자가 아니다. 그도 죽음을 두려워했고 사후를 준비했다. 이 교주의 허구성과 실체를 알리고자 양심선언 하려 한다.”

 

이만희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 교주의 내연녀로 알려진 김남희씨가 11일 동영상 재생 사이트 유튜브의 한 개인방송을 통해 이 같이 폭로했다. 김씨는 신천지의 위장 단체 세계여성평화그룹(IWPG) 대표를 역임했던 인물이다.

 

김씨는 이날 성경보다 이만희를 믿어야 한다’ ‘이만희는 성경 말씀 위에 있다고 주장하는 모 신천지 전 총회교육 부장의 교육 내용을 소개했다. 김씨는 이를 두고 과거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소름이 끼쳤다고 전했다. 김씨는 그동안 유엔이나 해외의 각국 국영방송을 통해 이만희를 하나님이 보내준 구원자라 선포하는 등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대적자의 일을 했다면서 하나님과 성령님을 만나고 그 은혜로 변화되면서 사람을 우상 숭배했던 지난 제 과거가 얼마나 큰 죄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신천지는 이 땅에서 없어져야 할 종교 사기 집단이다. 이만희는 한낱 평범한 사람이고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라면서 앞으로 이만희가 직접 쓴 편지와 영상 등 실제적인 증거를 통해 그의 허구성을 있는 그대로 알려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탁지일 부산 장신대 교수 겸 현대종교 이사장은 검증되지 않은 신흥종교가 쇠락기에 접어들 때 일어나는 주된 현상과 일치한다고 봤다. 탁 교수는 전권을 가진 교주는 나이가 들면 후계 구도를 구축하려 노력하는데 신천지의 경우 그동안 김씨가 유력한 이만희 교주의 후계자였다면서 하지만 점점 내부 갈등이 생기고 후계 구도가 불안정해지면서 차기 이만희를 꿈꾸는 분파가 형성돼 그들로부터 축출된 것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김씨의 회심에 대한 진정성 부분에는 앞으로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탁 교수는 김씨가 실제로 신천지의 문제점을 깨닫고 그 실체를 알리고자 한다면 인터넷 방송이 아닌 좀 더 공개적인 장소로 나와 한국교회와 협력해 신천지 문제를 대처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천지 문제를 대처하기 위한 틀을 만들어나가면서 한국교회에 대한 진정성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김씨에게 회개의 진정성이 보인다면 한국교회도 나서서 그를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유영권 한국종교(이단)문제연구소장은 김씨가 자칫 영웅시될 현상을 우려했다. 김씨의 폭로가 그동안 교회와 성도들을 힘들게 했던 부분을 모두 지워버리고 김씨만 주목받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유소장은 신천지의 정체에 대한 내부 폭로가 한국교회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김씨가 정말 회심했다면 그동안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당 기간 근신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나아가 신천지의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를 전부 밝히는 과정도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천안시기독교총연합회(천기총·회장 임종원 목사)가 주관한 이단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교주 이만희) 연합 규탄 집회4일 천안시 서북구 신천지천안교회 앞에서 열렸다. 천안=송지수 인턴기자. 2019.8.4. 국민일보DB.

 

한편 신천지 내부에서는 김씨의 폭로를 두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간부가 이탈했을 땐 교리를 통해 비판하면 됐지만, 이 교주와 내연관계였고 차기 후계자로까지 예상됐던 김씨의 위상을 고려했을 때 그 파급력은 더 크리라는 것이다.

 

탁 교수는 신천지는 앞으로 자신들이 운영 중인 인터넷 방송 등을 통해 신도 대상 교육을 강화할 것이라면서 김씨와 그 측근 문제에 대해 조직적으로 대처해 나갈 것이며, 재정 확보를 통해 분파 세력을 통제하는 한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같은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 결속을 다지는 일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코로나19’ 직격탄, 어떤 업종?

온라인 카드 소비액은 늘어

관광수입 감소가 가장 직접적 영향

음식·숙박·도소매·다중접객업·서비스업 타격

석유 화학과 반도체 등 중간재 수출도 우려

 

코로나19는 관광수입 감소를 통해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온라인·배달 업계는 때 아닌 호황

"코로나19가 오늘(13)로 약 20일인데, 경제지표 변화를 살펴봤더니 5년 전(메르스 당시)보다 더 영향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장 간담회에서 홍남기 부총리가 한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오히려 매출이 느는 업종도 있다.

 

'혹시나' 하는 감염 우려 때문에 외출을 자제하는 사람이 늘면서 인터넷으로 물건과 음식을 주문하는 사람이 많이 늘어난 것이다. 올해 설 연휴 직후 1주일 8개 전업 카드사의 온라인 결제액은 25천억 원으로 지난해 대비 45% 급등했다. 같은 기간 롯데마트 온라인몰의 배송도 51% 증가했고, 2월 첫 주말 배달 앱 '요기요' 주문량 역시 18% 늘었다.

 

코로나19가 대기업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이다. 현대·기아차의 중국산 부품이 제대로 수입되지 않아 지난주부터 잇따라 휴업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이번 주 들어 하나둘씩 정상화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폭스바겐과 BMW 등 글로벌 경쟁 업체들도 중국 관련해서 타격을 입고 있어서 현대·기아차의 위기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도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의 경제적 영향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중국산 부품 수급 문제는, 코로나19 확산이 장기화하지 않는다면 큰 문제가 아니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입에서 후베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1%(2018)에 불과한 데다, 후베이와 톈진을 제외하고 중국 공장들이 거의 가동을 재개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만약 조기에 코로나19 확산이 멈춘다면 생산 차질분은 주말 근무 등으로 보충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국내 자동차 공장의 조업 중단으로 23차 하청업체들의 직접 피해는 충분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이처럼 코로나19 여파로 경제적 어려움은 예고된 상황이지만 당장 모든 업종이 큰 피해를 보는 상황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업종이 직접 피해를 보게 될까?

 

"중국의 해외 관광이 위축되면 한국에 직접 영향"

대외경제연구원은 가장 직접적이고 큰 영향을 줄 문제로 '관광수입 감소'를 꼽았다. 코로나19 여파로 중국인들의 해외 관광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은 평균의 2배 가량 쇼핑비를 많이 지출해, 외국 관광객 여행수입의 절반에 이른다.

 

관광객이 감소하면 음식업과 숙박업, 운송서비스업 등이 직접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KDI 역시 최근 발표한 '경제 동향'에서 "관광과 관련된 일부 업종에서 부정적 영향이 우선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메르스 사태 당시인 20156~8월 외국인 관광객은 전년 대비 45% 줄었고 서비스업 생산은 연평균 대비 0.8%포인트 낮아졌다.

 

문제는 운송서비스업과 음식업 분야가 자영업자 등 경제적 충격에 취약한 층이 많이 종사한다는 점이다. , 이들 업종은 중국 관광객 문제와 별개로 각종 모임과 행사가 취소되면서 내국인의 소비가 줄어든 데 대한 피해도 이중으로 받을 수 있다. 정부의 우선적인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조영무 LG경제연구소 연구위원도 "최근 나온 고용동향도 115일이 속한 주의 상황이고, 설 연휴 이후의 불안감 영향을 반영한 거시 지표들이 아직 발표되지않았다"면서 "메르스 당시에도 한 분기 정도 민간소비가 급격히 위축됐다"고 지적했다. 메르스 당시에는 도소매업과 다중접객업 등 서비스업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됐다.

 

중국 제조업 성장 둔화되면 한국산 중간재(반도체, 석유화학)도 영향

대기업 쪽도 문제가 없는 상황은 아니다. 조영무 위원은 "메르스는 중동과 한국에만 퍼졌지만 코로나19는 중국 등 세계 경제 중심지가 포함됐다는 점에서 민간소비 이외의 분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 제조업은 최근 중국에 반도체와 석유 화학 제품, 디스플레이 등을 수출해 중국이 이를 다시 가공해서 미국 등지에 수출하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지난해 중간재 수출 중 중국 의존도는 28%가 넘는다. 코로나19 여파로 중국의 제조업 성장이 둔화하면 한국산 중간재 수출도 직접 영향을 받을 거라는 게 대외경제연구원의 분석이다.

 

2월 첫 10일간의 수출 실적도 이런 우려와 일치한다. 조업일당 수출액이 3% 줄어든 가운데, 조업일당 대중국 수출액은 22%, 대일본 수출액은 26% 줄었다. 이 추세가 단기로 끝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움을 겪는 한중일 간 무역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박대기 기자waiting@kbs.co.kr


복지국가는 불평등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시민정치시평] 소외된 자들의 '협상력'이 중요하다

지난 10여 년 간 전 세계를 달군 화두를 꼽으라면 '불평등'은 그 유력한 후보의 하나일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과 양극화를 배경으로 대두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운동에서 불평등의 역사적 변화에 대한 고찰로 일약 '락스타 경제학자'로 떠오른 피케티 열풍을 지나, 올해는 부자 클럽"이라고 불리는 다보스포럼(WEF, 세계경제포럼)에서도 불평등은 최대의 이슈였다. 한국은 또 어떤가? 최근 한국에서 사회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부동산 문제, 일자리 문제, 세대 간 불공정 문제, 성차별 문제는 모두 불평등 문제를 그 기저에 깔고 있다. 바야흐로 불평등의 시대라고 할만하다.

 

이처럼 심각한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처방으로 많은 이들이 제시하는 것 중 하나가 복지국가다. 다른 사회과학적 개념들과 마찬가지로 복지국가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그 핵심적인 역할 중 하나는 비시장적 수단을 통해 재화와 서비스를 분배하는데 있다. 현 시대 불평등의 직접적 원인을 지난 수십 년간의 시장만능주의에서 찾는 관점에서 보면, 복지국가를 통한 재분배는 불평등에 대한 유력한 해법으로 여겨질 만하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예외적으로 불평등이 낮았던 시기라고 꼽히는 20세기 중반이 바로 복지국가의 전성기였다는 점과 불평등 심화의 출발점이라고 지목되는 1980년대에 복지국가도 위축되기 시작했다는 점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실제로 복지국가가 불평등을 완화하는지는 복지국가 연구자들에게도 오랜 수수께끼였다. 복지국가의 재분배 기능이 반드시 부자에서 빈자로의 수직적 재분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복지국가에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프로그램은 건강보장과 노후소득보장인데, 이 제도들의 핵심적인 기능은 부자에서 빈자로의 재분배 보다는 건강한 사람에서 아픈 사람에게로, 장수하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장수하는 사람에게로의 재분배에 있다. 물론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재원과 급여 구조에 따라 수직적 재분배도 나타나지만 이는 이 제도들의 2차적인 기능이다. 요컨대 건강과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대표적인 제도인 사회보험은 '불평등 완화' 보다는 '위험의 분산'을 위한 제도이며, 따라서 우리가 주목하는 부자와 빈자 간 재분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복지국가에는 부자에게 돈을 걷어 빈자에게 재분배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공공부조도 있다. 그러나 이는 '최후의 사회안전망'으로서 불평등 완화보다는 빈곤방지가 그 핵심기능이다.

 

이 때문에 라메쉬 미쉬라와 같은 연구자는 복지국가를 통한 계급 간 재분배 정도는 미약하며, 사실 이 점이 바로 복지국가가 자본부의 사회에서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보면 20세기에 형성된 복지국가는 불평등 완화 장치라기보다는 사회적 위험을 집단화함으로써 분산시키고, 최악의 빈곤을 막는 수단으로 발달해왔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그 자체로도 복지국가의 가치는 충분히 높지만 불평등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복지국가를 떠올린 이들로서는 실망스러운 결론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복지국가가 오히려 불평등을 증가시킨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20세기의 복지국가는 노동인구의 대부분에게 안정적 고용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형성되었다. 복지국가의 핵심 프로그램인 사회보험은 종종 장기간의 사회보험료 납부 이력을 요구했는데, 노동인구의 다수가 장기적·안정적으로 고용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이와 같은 일자리는 대부분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이 주어진다고 보았기 때문에 복지국가는 남성생계부양자를 보호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고, 여성의 가정 내 무급노동은 사적 영역에서 당연하게 주어지는 조건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21세기 복지국가 환경은 이와 다르다.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완전고용은 더 이상 자연스러운 상황이 아니며, 불안정한 비표준적 고용(비정규직)은 이제 노동시장의 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다. 고용구조의 변화로 기존의 일자리가 사라진 자리에 가족까지 부양하기에는 불충분한 저임금 일자리들이 채지고 있으며, 핵가족 구조는 해체되고 있다. 이와 같은 조건 안에서 '일정기간의 안정적 고용을 전제로 하는' 사회보험과 같은 프로그램은 노동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 일자리를 가졌던 이들만을 보호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실업과 불안정 일자리를 오가는 이들은 오히려 복지국가로부터도 소외되고 있으며, 이는 불평등을 증가시키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정규직 87%, 비정규직 45%라는 한국의 고용보험 가입률은(20198월 기준) 이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복지국가를 통한 불평등의 완화는 헛된 바람일 뿐일까?

21세기 복지국가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문제는 복지국가 프로그램의 재편을 통해 극복해야 하는 문제다. 노동시장 약자를 배제한다는 점을 지적받고 있는 사회보험의 경우에도 스웨덴이나 최근 사회보험 프로그램을 개혁한 프랑스의 경우처럼 불안정 노동자나 비임금노동자들까지 사회보험에 포괄하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 개선할 수 있다. 물론 한국의 경우 사회보험의 법적 적용대상조차 사회보험에 제대로 가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이들 국가들보다 많은 숙제를 가지고 있지만, 복지국가의 핵심 프로그램인 사회보험을 변화하는 노동시장 환경에 적응시키려는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기에 고용을 조건으로 하지 않는 소득보장제도를 보완하는 것 역시 중요한 정책적 과제다.

 

공적으로 제공되는 보편적 사회서비스는 불평등의 관점에서 의미가 큰 복지국가 프로그램이다. 사회서비스는 특정한 요건(아동돌봄이라면 아동의 유무, 장애인 활동지원이라면 장애의 유형과 정도 등)이 있는 이들에게 보편적으로 제공할 수 있으며, 이 경우 고용이력이나 여타의 원인으로 배제될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서비스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돌봄의 부담을 지고 있는 여성, 비장애인에 비해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 소득 외에도 다양한 지원을 필요로 하는 고령자들의 욕구를 사회적으로 해소함으로써 소득이 아닌 성, 연령, 건강상태에 따라 나타나는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방향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차별과 불평등 문제를 모두 금전적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관점에서 보면, 양질의 공적 사회서비스를 확대하는 일이 불평등 문제에 대해 갖는 잠재력은 매우 크다.

 

우리가 복지국가 프로그램에서 배제되는 이들을 포괄하고 이를 통해 복지국가의 빈곤방지와 위험분산 기능이 모든 시민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면, 이는 불평등과 관련한 또 한 가지 가능성을 열어준다. 복지국가가 현재의 불평등한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이들의 '협상력'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 노동소득분배율이 낮아진 원인을 분석한 엥겔베르트 스톡해머는 사회보장의 약화가 세계화 및 금융화와 함께 노동소득분배율 하락을 설명하는 요인이라고 제시한 바 있다. 사회보장의 약화는 자본측에 대한 노동측의 협상력을 낮추었고, 그것이 노동소득분배율을 낮춘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분석은 복지국가가 직접적으로 부자의 돈을 걷어 빈자에게 나누어줌으로써 직접적으로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정도는 제한적일지라도, 시민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사회적 위험을 낮추고 빈곤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정치'의 영역을 경유하여 불평등 완화에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사실 정치야말로 불평등 문제의 궁극적인 해법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소외된 이들의 이익을 옹호하는데 이들의 목소리를 찾아주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불평등 문제를 연구한 피케티는 불평등에 대한 대안으로 글로벌 자본세의 도입을 주장하면서, 글로벌 자본세 자체의 효과보다도 글로벌 자본세를 통해 사람들이 불평등의 심각성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면 민주주의의 힘이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두터운 복지국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민주주의의 힘을 작동시킬 수 있다. 시민 개개인이 하루하루 생존의 위협과 압박에서 자유로워진다면, 이들이 심화되는 불평등에 맞서 자신의 목소리를 좀 더 적극적으로 표출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재욱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 /프레시안

 

4.15총선 키워드는 '불평등'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어르신 빈곤 문제'에 총력을 기울여야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비롯해서 4관왕을 달성했다. 영화 기생충은 2019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후, 영국, 호주, 미국 등 전 세계 주요 영화제 수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기생충은 다분히 한국적인 소재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담고 있다. 세계인들이 공감한 보편성의 토대는 바로 불평등과 빈부격차였다.

 

불평등과 빈부격차, 최근 몇 년간 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이슈다. 피케티가 쓴 <21세기 자본>의 세계적인 흥행,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 트럼프의 당선, 영화 기생충의 흥행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민주당과 정의당의 총선 1호 공약 : 공공 와이파이 확대와 청년기초자산제

불평등과 빈부격차는 진보의 대표적인 아젠다이다. 얼마 전, 민주당과 정의당은 '총선 1호 공약'을 발표했다. 총선 1호 공약은 해당 정당이 2020년 총선에서 '가장 중시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민주당의 총선 1호 공약은 '공공 와이파이 확대'. 자유한국당의 총선 1호 공약은 '공수처 폐지'. 정의당의 총선 1호 공약은 '청년기초자산제'. 자유한국당의 총선 1호 공약은 불평등과 완전히 무관한 의제다. 민주당 공약은 2022년까지 공공 와이파이를 전국적으로 53000개로 확대하는 것이다. '청년기초자산제'는 만 20세가 되는 모든 청년에게 3년에 걸쳐 1000만 원씩 총 3000만 원을 기초자산으로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불평등과 빈부격차 관점에서 볼 때, 민주당의 총선 1호 공약은 약간 민망한 수준이다. 공공 와이파이 확대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정책이 '1호 공약'의 격에 어울리는지 의문이다. 또한 정의당의 청년기초자산제 매년 15조 원이 드는 정책인데 투입되는 재정 대비 얼마나 효과가 지닐지 따져 봐야 한다.

 

'어르신 빈곤 문제'를 회피하는 진보 불평등 담론의 문제점

우리는 불평등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불평등은 자본-노동 불평등, 노동-노동 불평등, 노동-()노동 불평등으로 구성된다. 이 중에서도 한국의 불평등 현실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노동-()노동 불평등이다. 한국의 불평등은 '노동자조차도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불평등의 최하단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에서 불평등과 빈부격차 문제의 핵심 중 핵심은 '어르신 빈곤 문제'이다. 어르신 빈곤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는 진보의 불평등 담론이 있다면, 그것은 불평등 실태를 모르는 무지이거나, 엉뚱하게 알고 있는 거짓이거나, 알고도 외면하는 위선일 것이다.

 

불평등은 최상위층과 최하위층의 격차이다. 불평등은 최상위층에게 사회적 책임을 추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최하위층에 있는 사람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것이다. 그럼, 가장 중요한 질문은 도대체 '누가 빈곤자인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1]은 세대별 관점에서 볼 때, '누가 빈곤자인지' 명징하게 보여준다. 시장소득 기준으로 65세 이상(61.7%)20(10.3%)보다 약 6배 정도 빈곤율이 높다. 가처분소득 기준으로 65세 이상(46.9%)20(9.2%)보다 약 5배 정도 빈곤율이 높다.

 

요컨대, 한국의 불평등은, 한국의 빈곤 문제는 '청년 문제'가 아니라 '어르신 문제'이다. 민주당이든, 정의당이든 청년의 자산형성은 중시 여기면서 어르신들 문제는 후순위로 미룬다면, 불평등과 빈부격차 문제를 주목한다고 평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혹자가 인정한 것처럼 '포퓰리즘'일 수는 있지만, '좋은' 포퓰리즘으로 볼 수는 없다.

 

대한민국은 고려장(高麗葬) 사회 : 경제위기일수록 어르신들을 자살로 내몰았던

빈곤은 '소득'을 기준으로 하는 개념이다. 중위소득의 1/2은 빈곤이며, 중위소득의 1/4은 극빈층으로 간주한다. 일부에서 고령자들은 청년들에 비해 '자산'이 많기 때문에, 소득을 기준으로 파악하는 어르신 빈곤율은 과장된 것이며, 자산까지를 고려한 어르신들의 실제 빈곤율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청년 빈곤이 어르신 빈곤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자산은 개념상 소득의 역사적 집적(集積)이다. 그래서 고령자일수록 자산이 많은 게 일반적이며, 정상적이다. 소득과 자산을 동시에 고려한 연구에 의하면, 어르신 빈곤율이 '부분적으로' 완화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불평등에서, 자산을 고려해도 어르신 빈곤 문제의 심각성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그걸 보여주는 간접적인 지표가 '연령별 자살률의 변화'이다.

        


[2]는 연령별 자살률 변화이다. 1985년 대비 2005년의 연령별 자살률 변화와 1985년 대비 2015년 연령별 자살률 변화를 보여준다. 1985년 대비 2005년 연령별 자살률 변화는 20대의 경우 20%가 증가했다. 70대는 395% 증가하고, 80대는 무려 728% 증가했다. 1985년 대비 2015년 연령별 자살률 변화를 살펴보면, 20대는 13% 증가했다. 70대는 286% 증가하고, 80년대는 447% 증가했다.

 

[2]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한국의 자살률 증가는 '어르신 자살률'의 급증이 주요 원인이다. 놀라운 지점은 어르신 자살률이 증가했던 변곡점과 원인 부분이다. 결론부터 말해, 대한민국은 고려장(高麗葬)사회이다. 고려장(高麗葬) 사회라는 의미는 '경제가 어려울 때' 한국 사회는 어르신들을 자살로 내몰았다.

 

[그림 1]1985~2015년 기간, 연령별 자살률 변화를 보여준다. 맨 밑바닥에 깔린 보라색은 15세 미만, 파란색은 15~64, 노란색은 65세 이상의 자살률 변화이다. 65세 이상 어르신들의 자살률을 보여주는 '노란색 그래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노란색 그래프가 '급증하는' 시기를 주목해야 한다. 노란색 그래프는 두 번에 걸쳐 급증한다. 최초 급증 시기는 199711IMF 구제금융 이후부터 2005년경 즈음까지다. 두 번째 증가 시기는 2009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다.

 

불평등 축소를 위해 진보는 '박근혜'보다 더 멀리 나가야

불평등과 빈부격차 축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한국의 불평등은 자본-노동 불평등, 노동-노동 불평등, 노동-()노동 불평등의 3차원적 구조를 갖고 있다. 이 중에서 한국 진보는 그동안 '자본-노동 불평등'을 가장 중시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과 최저임금 1만 원 정책 등은 '노동-노동 불평등'을 주목한 정책들이다. 노동-노동 불평등을 주목하는 것은 진일보한 접근이며, 여전히 중요한 테마이다.

 

그러나, 한국적 현실에서 불평등을 줄이고자 한다면, 더더욱 주목해야 하는 것은 노동-()노동 불평등이다. 우리는 '노동자조차도 되지 못하는' ()노동을 시야에서 놓치면 안 된다. 노동-()노동 불평등의 핵심 중 핵심은 '어르신 빈곤문제'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불평등과 빈부격차 축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그 힌트는 역설적이게도 [그림 1]에 있다. [그림 1]을 보면, 65세 이상 어르신 자살률을 보여주는 노란색 그래프가 두 번 급증한 이후, 두 번에 걸쳐 '하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노란색 그래프는 2006년 이후 소폭으로 하락하고, 2012년 이후에는 대폭으로 하락한다. 2006년 이후와 2012년 이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이 시기에 갑자기 '어르신 자살률'이 하락했던 것일까?

 

유력한 가능성 중 하나는 2007'기초노령연금법'의 제정과 2014'기초연금 20만 원' 인상이다. 한국의 복지국가 정책사에서, 기초노령연금 도입의 일등 공신은 누가 뭐라고 해도 과거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정당이다. 기초노령연금은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가 강하게 주장하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당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수용해서 만들어진 타협의 산물이다.

 

한국 진보는 '조직된 노동'을 핵심 지지층으로 한다. 민주노총, 한국노총이다. 노동 3권은 중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소득 수준으로 본다면, 대기업-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상위 10~20%에 해당한다. 상위 10%~20%여서 나쁘다는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라, '상위 소득'에 위치하기 때문에 약자 집단은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한국 진보가 '자본-노동 불평등'을 강조하는 것에 그친다면, 그것은 상위 20% 집단의 이해관계만 반영하는 것에 불과하다.

 

어르신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기초연금 인상'이다. 기초(노령_연금 도입과 인상 이후 어르신 자살률은 줄어들고, 한국의 불평등 증가율도 완만해졌다. 문재인 정부 역시 현행 20만 원 기초연금을 30만 원으로 인상을 공약했다.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어르신 빈곤율과 국민연금 제도의 본질적-구조적 한계를 감안할 때, 내가만드는복지국가의 주장처럼 기초연금을 50만 원 수준으로 인상하거나, 보충연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기초연금을 중심으로 다층형 연금체계로 나아가야 한다.

 

둘째, '어르신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과거 정부에 비해 '어르신 공공근로 일자리'를 대폭 늘렸다. 바람직한 대응이다.     

한국 불평등의 핵심은 '어르신 빈곤 문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30년간 한국의 진보정치 세력은 무엇을 주장했고, 무엇을 실천했는가? '공공 와이파이 확대'를 내건 민주당과 '20세 청년 3000만 원 지급'을 내건 정의당의 총선 1호 공약이 실현되면, 박근혜가 주장하고 실천했던 것보다 한국의 불평등 축소에 기여하게 될까? 한국 진보는 박근혜보다 더 과감하게, 더 멀리 나가야 하는 것 아닐까?

 

한국의 진보정치 세력은 스스로에게 자문해봐야 한다. 불평등과 빈부격차 축소를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말이다.

최병천 내가만드는복지국가 회원 /프레시안


동물권 단체 '상의탈의 퍼포먼스'"착유당하는 동물들 고통 알아야"

DxE, 14일 오후 서울 도심서 '상의탈의 퍼포먼스'

"밸런타인 데이 초콜릿 제조 위해 수많은 소 고통"

"착유 위해 엄마 소 강간, 출산 반복끔찍한 고통"

모든 존재는 고통 앞에 평등합니다.”

     

밸런타인 데이인 14일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동물권 단체 활동가 10여명이 상의 탈의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들은 가슴에 빨간 물감을 묻혀 착유당하는 동물의 피로 물든 젖꼭지를 형상화했다.

   

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DxE (직접행동 어디서나) 코리아 회원들이 우리도 동물이다. 착유당하는 동물을 위한 고통의 연대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동물권 단체 디렉트 액션 에브리웨어(DxE)밸런타인 데이에 많은 사람이 초콜릿 등 선물을 주고받지만 그 뒤 착유당하는 동물들이 있음을 알리기 위해 퍼포먼스를 기획했다초콜릿을 포함한 각종 제품에 쓰이는 유제품 포장지 속에 감춰진 착유당하는 동물의 끔찍한 현실을 직접 가시화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임신과 출산을 해야만 새끼를 먹일 젖이 나오기 때문에 엄마 소는 임신을 위한 강간과 출산을 반복한다면서 착유는 매일 반복돼 소는 자연 수명의 10분의 1도 안 되는 2년이 조금 지나면 서 있을 힘조차 잃어 주저앉는다고 밝혔다.

 

업계에서 다우너(앉은뱅이)’라고 부르는 이 소들은 지게차, 크레인으로 질질 끌려 도살장으로 가는 트럭에 실린다주저앉지 않더라도 2년이 지나면 젖의 양이 줄어들어 결국 도살되고 햄버거 패티 등의 가공육으로 만들어진다고 덧붙였다.

 

한 활동가는 반백에 가까운 시간 동안 그들의 고통의 결과물들을 아무런 죄책감도, 일말의 양심도 없이 소비했다면서 조금 더 일찍 나의 무지와 무관심이 누군가에게 상상할 수조차 없는 끔찍한 고통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더라면, 내 아이에게 빼앗은 젖을 먹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외쳤다.

             

피로 물든 젖꼭지액션은 지난달 10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시작됐다. ‘엄마 돼지가 고문과 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폭로한 내부고발자를 고소한 코스트코 측에 대한 항의 액션이었다. DxE코리아는 한국의 상황에 맞게 코스트코가 아닌 밸런타인 데이를 타깃으로 이번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은영(활동명) 활동가는 사람들은 옷을 벗고 맨살을 드러낸 모습을 낯설어 한다. 똑같이 옷을 입고 이야기하면 동물의 모습을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면서 피를 두르고 끔찍하게 죽어가는 게 동물들의 모습이다라고 전했다./ 이데일리 손의연


Rachmaninov - Piano Concerto No.3 in D Minor, Op. 30


I. Allegro ma non tanto  14:52



II. Intermezzo. Adagio  10:49



III. Finale. Alla breve  1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