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 한겨레-국민
재생에너지 빛과 바람 언제쯤 시민 품에 안길까 18.1.2 주간경향
-정부 ‘재생에너지 3020’ 계획… 공공기관이 주도 국민은 들러리
평창에 드리운 ‘빚잔치’의 그림자 18.1.2 한겨레21
-천년 주목 살던 산에 전기톱 소리 가득
멍들고, 병들고… 20년 비정규직화 대한민국 희망이 있을까? 1231민중
지방선거 여론조사
좌파 비즈니스 혹은 광피아 선두주자? 1.3 Redian
-에너지협동조합과 한전의 학교태양광사업
초등학생의 통일나무 그림은 '안보불감증'1.4 노컷
박종철이 죽음으로 지킨 선배의 '변절', 그는 < 1987 > 볼까 1.3 오마이뉴스
[리뷰] 누구나 박종철이 될 수 있었던 시대, 영화 < 1987 >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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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사는 사람 보며 대리 만족하는 2030
인간은 데이터, IT기업이 ‘신’이 된 세상 경향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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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발암물질 석면 실태 조사했더니] 피해자 평균 생존기간 2년 안 돼작업복 석면에 가족 악성중피종 걸려 … 환경보건시민센터·석면추방네트워크 보고서 발표17.8.29 매일노동뉴스
부산, 인구 분포 50대 연령층 최다 '중장년 도시' 1.5 부산
태안 기름사고 10년 “회복이라고 말할 수 없다” 주간경향 1259호
지난 10년간 도대체 무슨 일이
ㆍ특별법 따라 신고한 주민 피해액 4조 2274억원 중 4138억원만 법원이 인정
삼성이 끝냈다고 끝난 게 아니다”
ㆍ지역발전기금 출연 약속하고 떠나… 주민 보상 마무리 안돼 뇌관 여전
경자유전’의 원칙은 사라질까?
ㆍ밭 가는 사람이 밭을 가진다는 헌법 조항 유명무실… 개헌론·존치론 대치
한국-중앙
1-2 중앙-한겨레
경향-한국
내일-경인
기호-인천
중부-경기
국민-민중
1.3 중앙-한겨레
경향-한국
1.3 대구매일-Redian
1.3 내일-1.4 경향
민중-한국
중앙-한겨레
경인-인천
강원도민-경기
대구매일-국민
1대구매일-1,5 민중
1.5 경향-한겨레
국민-한국
1.4 pd저널-1.5기호
1.5 경인-인천
강원도민-중부
경기-대구매일
내일-주간경향
1.1~1.5 경향 장도리
재생에너지 빛과 바람 언제쯤 시민 품에 안길까 18.1.2 주간경향
정부 ‘재생에너지 3020’ 계획… 공공기관이 주도 국민은 들러리
경북 영양군 석보면 맹동산 일대에 설치된 풍력발전소. 풍력발전소는 자연환경 훼손과 주민 피해 문제로 진통을 겪는다. 사진기자 정지윤
실투자금 1억5000만원에 월수입 250만원 보장. 부동산 광고가 아니다. 태양광발전소 분양광고다. 연금발전소라는 별명까지 붙은 태양광발전소는 이제 단순히 ‘착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장소에 그치지 않는다. 햇빛은 이미 재테크 시장의 영역에 들어왔다. 분양방식은 이렇다. 태양광 발전이 될 만한 임야를 싼 값에 사들이고 구획을 나눈다. 이후 투자자를 모집해 발전소를 분양한다. 분양 기준이 되는 발전소 규모는 보통 99㎾다. 100㎾ 이하 태양광 발전설비에서 나오는 전력에는 가중치를 붙여 팔 수 있기 때문이다. 100만원어치를 발전하더라도 가중치가 적용돼 120만원을 정산 받는 식이다. 업체들이 99㎾를 한 구획으로 삼아 분양하는 이유다. 가중치 혜택을 받기 위해 가족 명의로 여러 구획을 분양 받아 ‘꼼수 발전’을 하는 사업자도 부지기수다.
태양광발전, 쪼개기 난개발 불러
태양광발전소 분양업체를 찾아 견적을 내봤다. 제주도에서 99㎾ 규모 사업소를 분양 받는 데 2억5000만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목돈이 부담이라고 하자 3.5% 금리로 1억원까지 대출 받을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업체의 설명은 간단했다. 회사에서 땅은 이미 사뒀고 계약금 8800만원을 보내면 일이 진행된다. 착공 이후 중도금을 두 차례, 잔금을 치르면 발전소를 갖게 된다. 여기에는 발전사업 허가와 개발행위 허가 등 일체의 인·허가와 시설공사, 전력거래서비스 비용까지 포함된다. 관계자는 “한 달 수익은 250만원 정도다. 제주도는 육지보다 SMP(전력판매가격)가 높아서 돈이 더 된다”고 말했다. 수익 계산법은 다음과 같다. 하루에 3.8시간씩 발전하면 한 달에 1만1200㎾의 전력이 생산되는데 이 전력을 전력판매가격(10월 기준단가 ㎾당 124.77원)과 REC(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 가격(10월 평균단가 ㎾당 120원, 가중치 1.2)을 적용해 더하면 300만원 정도의 매출이 나온다. 여기서 유지보수비용과 관리비, 대출이자 등을 빼면 250만원은 가져갈 수 있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발전소가 들어서면 해당 부지가 ‘잡종지’로 변경돼 땅값이 올라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현실은 업체의 장밋빛 전망과 다르다. 전력판매가격은 시장 상황에 따라 오르내리기 때문에 변동성이 크고, 각종 인·허가 과정에서 사업이 지연되거나 무산될 수 있다. 무엇보다 분양업체가 꼽는 가장 큰 걸림돌은 ‘지역 주민’이다. 외지에서 들어온 사업자들이 산을 깎고 땅을 훼손하는 데 대한 반발이 심하다. 태양광 발전으로 나오는 전자파와 반사광 때문에 환경과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게 이유다. 주민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지자체는 이격거리 규정 등 각종 규제를 만들어 개발행위 허가를 불허하기도 한다. 민원에 따라 주먹구구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이격거리는 지자체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업체 측에 주민 민원 문제는 없냐고 묻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3억만 내면 돼요. 제주도는 3억. 마을 쪽하고 다 합의된 거예요.” 마을발전기금으로 3억원을 내면 다 해결된다는 얘기다. 민원 무마 비용이 3억원인 셈이다. 태양광 발전사업 이면에는 불투명한 돈 거래가 성행한다. 태양광이 돈이 된다는 말이 돌면서 100㎾ 미만 소규모 태양광발전소는 빠르게 늘고 있다. 한 해 1000여개씩 짓던 100㎾ 규모 태양광발전소는 2015년 한 해에만 6340개가 새로 생겼다. 전국 태양광발전소 2만3000여곳 가운데 100㎾ 미만 소규모 발전소는 2만여곳이 넘는다. 80%가 넘는 수치다. 태양광 열풍으로 분양업체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비용이 많이 드는 풍력발전은 몸집 큰 기업의 영역이다. 2014년 박근혜 정부가 발전업계의 요구에 따라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에서도 풍력발전사업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면서 발전 공기업과 민간기업이 잇따라 사업계획서를 들이밀었다. 하지만 저주파와 소음 피해, 생태환경 파괴 등 각종 부작용에 대한 대책 없이 사업을 추진했다가 무산되거나 지연됐다. 민간기업이 추진한 울산 동대산 풍력발전과 한국동서발전의 영천 보현산 풍력, 기룡산 풍력사업이 취소됐다. 백두대간도 풍력발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관령과 태백 매봉산, 강릉 왕산 등 백두대간 지역에 풍력발전기가 설치됐다. 최근에도 한국동서발전과 민간기업이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이 포함된 양양군 일대에 39.6㎿ 풍력단지를 조성하려다 주민 반발에 부딪혀 첫 삽을 뜨지 못하고 있다.
지역주민 입막음 비용은 3억원
재생에너지 발전은 발전 공기업에 성가신 존재다. 정부는 발전 공기업을 포함한 18개 대형 발전사에 전체 발전량 중 일정량을 의무적으로 재생에너지원으로 채우도록 하고 있는데, 원자력과 화력 중심으로 운영해온 발전사들 대부분은 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발전 공기업들은 민간기업과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워 지분을 투자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투자한 지분만큼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인정받아 손쉽게 할당량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 추진은 민간 기업이 맡고 공기업은 낸 돈으로 발전량을 챙겨가는 구조다. 공기업이 추진하는 사업에 공공성과 수용성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 이유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팀장은 “발전 공기업은 공공성과 재생에너지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에 대한 총체적인 전략이 없다”며 “단순히 정해진 발전량을 채우기 위해 주먹구구식으로 사업을 하다 보니 갈등이 생긴다”고 말했다.
부작용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기 위해 정부는 ‘재생에너지 3020’ 계획을 내놨다. 태양광과 풍력을 중심으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20%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재생에너지 설비용량 역시 현재 15.1GW에서 63.8GW로 늘린다. 정부는 먼저 ‘국민참여’를 내세웠다. 태양광발전기가 있는 가정집은 요금혜택을 주고, 시민들이 참여해 만든 협동조합에서 나온 전력은 발전 공기업 6곳에서 반드시 구입하도록 했다.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제공한다는 취지다. 일반 가정과 협동조합, 농가 태양광에서 19.9GW의 재생에너지를 공급한다. 나머지 28.8GW는 공공기관 중심의 대규모 사업으로 충당한다. 지자체와 지역 주민들이 펀드와 채권을 구입해 사업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길도 열어뒀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은 자연 훼손이 덜한 수상태양광과 해상풍력 위주로 추진한다.
태양광발전소 분양업체의 광고. 안정적인 수익 보장을 내세워 투자자를 모집한다. 분양업체 홈페이지 캡쳐
20% 달성 ‘강박’에 빠진 재생에너지 3020
정부는 계획안에 재생에너지 확대 의지를 담았지만, 20%라는 수치에 사로잡혀 디테일을 놓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존의 쪼개기 난개발이 판치는 태양광발전과 ‘아니면 말고’식 풍력발전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는 것이다. 산업부도 문제를 알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대규모 태양광 분양사업이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며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참여를 내세웠지만 재생에너지 20%를 달성할 ‘진짜’ 주인공은 공공기관으로 낙점됐다. 정부는 직접 덩치 큰 사업을 이끄는 방식을 택했다. 빠른 시일 내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함이 빚은 결과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은 들러리가 됐다. 국민이 직접 재생에너지 발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기대보다 적었다. 제도적 뒷받침도 아쉬운 수준에 머물렀다. 계획안대로라면 국민참여 확대 방침은 지역 주민들에게 약간의 지분을 나눠주는 정도의 생색내기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는 주민참여사업에서 나온 전력에는 값을 더 쳐주겠다는 ‘당근’을 내놨다. 다만 참여는 의무가 아닌 권장사항이다. 참여사업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은 유도책에 불과하다. 지역 주민이 적어도 20% 투자에 참여해야 발전사업을 허가하는 ‘덴마크식’과는 거리가 있다. 주민참여가 제도화되지 않으면 공공기관과 대기업이 손잡고 벌이는 대형 프로젝트에 주민들이 끼어들 여지는 적다. 기업이 주도하는 사업은 기업의 배만 불리는 방향으로 가기 쉽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정부가 숫자를 정해놓고 농가 얼마, 대규모 기업은 얼마 이렇게 발전량을 할당해주는 접근 자체가 요즘 시대와 맞지 않는다”며 “주민참여에 대한 구체화된 내용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우리 주변에는 시민들이 모여 만든 발전협동조합이 있다. 일부 살림을 잘한 곳은 조합원들과 배당금을 나누며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참여하는 시민에게 햇빛과 바람은 중요한 에너지원이자 돈이 된다. 누구나 나눠 쓸 수 있는 재생에너지의 값어치는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매겨질 때 의미가 있다.
평창에 드리운 ‘빚잔치’의 그림자 18.1.2 한겨레21
끝난 뒤 엄청난 빚 떠안는 ‘올림픽의 저주’ 우려
경기장 등 효율적 사후 관리한 ‘릴레함메르’ 대회 본받아야
평창의 그림자
‘64조원’!
평창겨울올림픽 유치가 결정된 2011년 국내의 한 민간 경제연구소가 추산한 경제 효과다. 삼수 끝에 올림픽을 유치한 기쁨에 취한 듯, 대회 유치를 이끈 정부와 토건세력은 애드벌룬을 띄우기에 바빴다. 장밋빛 전망은 천문학적 개최 비용과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회 분산 개최를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일축하는 근거로도 사용됐다. 하지만 대회가 임박한 지금 ‘64조원’을 입에 올리는 이는 거의 없다. 평창올림픽의 경제 효과는 단지 신기루에 불과할까. 가리왕산의 소중한 자연 유산까지 희생한 평창올림픽은 결코 신기루로 끝나서는 안 된다.
역대 겨울올림픽 가운데 경제성을 인정받은 대회는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올림픽이 거의 유일하다. 릴레함메르겨울올림픽 개막식 모습. 연합뉴스
역대 겨울올림픽에서 ‘남는 장사’를 한 대회는 극히 드물다. 노르웨이에서 1994년 열린 릴레함메르겨울올림픽이 거의 유일한 대회로 꼽힌다. 당시 조직위원회는 경기장 신축을 최대한 자제했고, 선수촌을 비롯한 각종 시설을 가건물로 지어 대회 직후 바로 철거해 사후 관리비를 대폭 줄였다. 노르딕스키와 알파인스키 등이 열렸던 스키장은 여름에 트레킹과 하이킹 코스로, 아이스하키 결승전이 열린 호콘스홀은 핸드볼과 실내축구 경기장, 콘서트홀로 변신하는 등 효율적인 사후 관리 방안을 마련했다. 이처럼 겨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로 인구 2만6천 명에 불과한 소도시 릴레함메르는 연간 관광객 35만 명이 찾아와 매년 185억원의 관광수입을 올리는 북유럽의 관광 명소가 됐다.
투입 예산만 13조여원
평창도 릴레함메르처럼 될 수 있을까. 대회를 50여 일 앞둔 지금 조짐은 그리 좋지 않다. 대회가 끝난 뒤 평창 인근에 지은 각종 시설을 어떻게 활용할지 확정되지 않은 게 무엇보다 큰 불안 요소다. 올림픽은 도시 단위로 열리기 때문에 여러 시설이 한 도시에 집중된다. 대회가 끝난 뒤 이 시설의 활용 방안을 찾는 것은 온전히 해당 지역의 몫이다. 이 시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관리비가 늘어 지방정부는 재정난을 겪게 된다. 그로 인해 올림픽 개최 뒤 주민들의 삶이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 화려한 잔치 뒤 엄청난 빚을 떠안는 ‘올림픽의 저주’에 빠지는 것이다.
30년 전 열린 ‘88올림픽’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열려 대회 시설과 인프라가 충분히 활용됐다. 개최의 정치적 배경과 준비 과정에 여러 문제점이 있음에도, 서울 시민의 삶의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평창은 인구 5만 명의 소도시에 불과하고 인접한 강릉도 인구가 21만 명에 불과한 중규모 도시다. 인구와 경제 면에서 서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평창올림픽을 위해 강원도 지역에 투입된 예산은 13조7천억원에 달한다. 이 중 경기장 건설에 8800억원, 고속철도 등 인프라와 부대시설 조성에 11조원이 들어갔다. 대부분의 올림픽 시설이 평창과 강릉에 집중됐다. 하지만 이 지역들은 올림픽 인프라를 감당할 만한 수요를 창출하기 힘든 곳이다. 자칫 올림픽 인프라가 이 지역사회에 막대한 운영비를 남기는 ‘올림픽의 저주’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강원도 지역 시민단체들이 2015년 2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평창올림픽 분산 개최를 요구하는 청원운동을 벌였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앞서 2014년 말 IOC가 올림픽 대회 유치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분산 개최를 허용하는 개혁안을 통과시키자, 시민단체들이 올림픽 비용을 줄이기 위한 분산 개최 청원에 나섰다.
당시 <한겨레>가 국내 중견 건축설계 업체 2곳에 의뢰해 분산 개최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2015년 3월9일치 1면 기사 참조), 아이스하키 경기장과 알파인스키 경기장 등을 서울과 전북 무주의 기존 시설을 활용할 경우 3658억원을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와 무주 스키 리조트 시설을 재활용하면 경기장 신축비용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회 뒤 시설 유지비가 별도로 들지 않아 전체적으로 비용이 절감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설 유지비만 연 200억 예상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박찬호(오른쪽)가 2017년 12월9일 대전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에서 한화이글스 김태균과 함께 성화를 나르고 있다. 한화 제공
반면 강원도 단독 개최에 따른 비용은 대회 이후에도 상당한 규모일 것으로 추산됐다. <한겨레>가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타당성 검토 보고서를 바탕으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분석해보니 평창올림픽 시설 유지비는 연간 200억원을 넘었다. 평창슬라이딩센터 유지비가 연간 31억원, 남자 아이스하키 경기장은 29억원 등이다. 이로 인해 강원도의 올림픽 시설관리 적자 규모는 연간 165억원으로 추산됐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평창 단독 개최 고집을 꺾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의 분산 개최 청원운동은 해프닝으로 끝나고 만다. 문제는 이처럼 불 보듯 뻔한 ‘올림픽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올림픽 인프라를 활용할 지역 수요 창출은 제쳐두고라도 경기장의 사후 활용 방안조차 확정된 게 없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최근 국회 업무보고 때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12월 말까지 평창올림픽 관련 시설의 사후 활용 문제에 대한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현재 활용 방안이 확정되지 않은 곳은 전체 7개 신축 경기장 가운데 평창슬라이딩센터, 강릉하키센터,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인 강릉오벌 등 3곳이다. 1163억원의 예산을 들여 만든 올림픽플라자는 올림픽과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 개·폐회식에만 사용한 뒤 철거해 기념공원으로 만든다는 게 기본 구상이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설계안이 확정되지 않았다.
사후 활용 방안이 결정된 4곳도 운영 주체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대회가 끝난 뒤 경기장 운영권은 조직위원회에서 해당 지방자치단체로 넘어간다. 하지만 강원도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도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강원도가 최근 도의회에 제출한 행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보조경기장을 포함한 전체 13개 경기장 가운데 도가 관리해야 하는 7개 시설의 운영수지를 분석한 결과 연간 101억원의 적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정선 알파인스키 경기장이 36억8200만원으로 예상 적자가 가장 컸고,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은 22억5400만원, 강릉 하키센터는 21억4300만원의 적자가 예상됐다. 강원도개발공사가 운영하는 스키점프·바이애슬론·크로스컨트리 3개 시설의 적자액은 11억4300만원,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의 예상 적자액은 9억900만원으로 추산됐다.
강원도의 재정 상태로는 이 비용을 도저히 떠안을 수 없다. 2018년 기준으로 도의 재정자립도는 21.3%로, 전국 평균인 47.1%에 크게 못 미친다. 특히 강릉시와 평창군, 정선군의 재정자립도는 각각 18.7%, 11.8%, 25.5% 수준으로 열악하다. 이에 따라 강원도는 사후 활용 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세 경기장 외에 전문 체육시설인 스피드스케이팅·강릉하키센터·슬라이딩센터·스키점프 등 4개 시설을 국가가 관리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와 지자체의 떠넘기기
그러나 주무 부처인 문체부의 반대로 강원도의 요구가 관철될지는 미지수다. 도종환 장관은 2017년 9월22일 국회에 출석해 평창올림픽 시설의 국가 관리 근거를 만들기 위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 문제와 관련해, “법 개정은 그것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다”며 부정적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예산 수천억원을 투입해 만든 올림픽 시설을 두고 국가와 지자체가 서로 ‘떠넘기기’를 하는 것이다.
경기장 사후 관리 주체 논란은 하루빨리 매듭지어야 하는 문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사후 활용 방안이라는 ‘콘텐츠’를 준비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대회가 끝난 뒤 올림픽 열기를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콘텐츠가 없으면 관광객의 발길을 잡지 못한다. 관광객이 찾지 않으면 거액이 투입된 올림픽 시설은 자칫 혈세만 축내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 있다.
올림픽 대회의 흥행을 결정짓는 입장권 판매가 아직까지 부진한 것도 걱정거리다. 전체 판매 목표 107만 장 가운데 2017년 11월16일 기준으로 39만 장이 팔려 목표량의 40%를 넘지 못했다.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은 목표량 22만 장 중 4.3%에 불과한 1만 장이 팔렸다. 이는 평창겨울올림픽에 대한 나라 안팎의 관심이 그만큼 저조함을 드러낸다.
기업들의 후원금도 최근에야 목표액을 채웠다. 조직위는 2017년 12월18일 현재 기업 후원금이 목표액 9400억원을 초과한 1조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2020년 도쿄올림픽을 치르는 일본과 뚜렷이 대비된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의 기업 후원금 목표액은 1조4천억원인데 벌써 3배 가까운 4조원이 모금됐다. 그만큼 일본 기업들이 도쿄올림픽의 광고 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기업 후원금은 평창올림픽 대회 전체 예산 2조8천억원의 3분의 1(33.6%)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다. 기업들이 올림픽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면, 대회를 둘러싼 축제 분위기의 조성에 큰 도움이 된다. 평창겨울올림픽 후원사는 모두 49곳에 이른다. 삼성전자, 현대·기아자동차, 엘지(LG), 에스케이(SK) 등 대기업부터 트랙터 제조사인 대동공업, 대회 기간 중 한우를 공급할 평창영월정선축협에 이르기까지 규모와 업종이 다양하다.
삼성은 이번 대회에 총 1천억원을 후원하기로 했다. 현금 800억원에 대회 운영에 필요한 프린터 등 200억원 규모의 현물이 제공된다. 삼성전자는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올림픽 공식 파트너다. 다른 후원사들은 국내에서만 올림픽 마케팅 활동을 할 수 있지만 삼성은 전세계를 무대로 홍보할 수 있다.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 때는 참가 선수 전원에게 약 1만2500대의 갤럭시 휴대전화를 준 바 있다. 이번 대회에서도 각종 모바일 기기를 협찬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와 LG, SK의 협찬 규모는 250억~500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대회 기간에 사용될 각종 차량을 지원한다. LG는 공식 홍보 영상, 옥외광고물 제작 등을 포함한 마케팅 전반을 대회가 끝날 때까지 지원한다. SK는 대회 운영에 필요한 정유를 제공한다. 기업들은 또 국가대표팀 공식 후원을 맡아 훈련과 각종 장비 지원 등을 하고 있다.
대회 재정은 맞췄지만…
평창겨울올림픽 조직위는 기업들의 막판 후원 활동으로 대회 재정은 균형을 이룰 것으로 전망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12월19일 강릉행 KTX 대통령 전용 열차 안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대회가 흑자는 아니더라도 수지 균형은 대충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림픽의 저주를 피할지는 축제가 끝난 뒤에 알 수 있다. 올림픽 인프라 활용 방안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으면 축제의 여파가 고통스러울 수 있다.
천년 주목 살던 산에 전기톱 소리 가득
두릅도 못 캐던 가리왕산에 축구장 110개 크기 개발…
특별법 앞세운 1회용 스키장에 어그러진 ‘환경올림픽
2014년 9월25일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강원 정선읍 가리왕산 하봉 밑에서 평창겨울올림픽 활강경기장 건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단단한 나무들이 빼곡하다. 한여름 정오를 넘어선 태양조차 쉬이 숲을 관통하지 못한다. 쇠파리, 벌, 모기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벌레가 쉴 새 없이 달려든다. 여느 숲과 다르다는 걸 누구라도 대번에 알 수 있다. 민간인 출입이 철저히 금지되어온 곳. 등산로가 없는 이곳에서 사람은 침입자다. 2014년 벌목이 시작되기 직전 가리왕산 활강경기장 터다.
단단한 나무들의 보금자리
흔히 상봉이라 칭하는 주봉우리와 중봉, 하봉 세 봉우리가 가리왕산을 이룬다. 가리왕산 남사면은 자연휴양림과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어 출입이 자유로운 편이다. 반면 북사면은 상봉에 이르는 장구목이 쪽 등산로가 산꾼들의 길이다. 애초 중봉과 하봉 쪽으로 오르더라도 임도를 경계로 장구목이 쪽 등산로로 틀어서 상봉으로 향해야 한다. 가리왕산 북사면에서 중봉과 하봉으로 오를 수 있는 사람의 길은 없다. 2013년 6월까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철저히 보호해왔기 때문이다.
남한에서 아홉 번째로 높은 가리왕산(해발 1561m)은 봉산(封山)으로도 유명하다. 조선 세종 때부터 가리왕산은 민간인들의 출입을 금한 봉산이었다. 잠시 쉬는 것도 고역인 이곳을 500년 보호림이라고 하는 이유다. 하지만 2017년 12월 현재 이곳은 더는 보호구역이 아니다. 10만 그루의 크고 작은 나무들이 흔적 없이 잘려나갔다. 그리고 그 자리를 스키 슬로프가 대신하고 있다. 500년 보호림은 하릴없이 그렇게 끝이 났다.
이 모든 비극은 강원도가 평창겨울올림픽을 유치하겠다고 나서면서 시작됐다. 육상 종목이 여름올림픽의 메인 이벤트고 그중 마라톤이 꽃이라면, 겨울올림픽의 메인 이벤트는 설상 종목이고 그중 꽃은 단연 활강경기다. 스키어들은 지면과 공중을 넘나들며 시속 140km 이상의 속도로 내리꽂듯 질주한다. 모든 스포츠 경기를 통틀어 인간이 무동력으로 내는 가장 빠른 속도다. 이 박진감을 위해 국제스키연맹(FIS)은 ‘표고차(출발점과 결승점의 고도차) 800m 이상, 평균 경사도 17도 이상, 슬로프 연장길이 3km 이상’을 경기장 조건으로 제시한다. 2000m, 3000m 넘는 산들이 즐비한 동계스포츠 종주국들의 기준답다.
가장 최근 열린 2014년 소치겨울올림픽 때는 ‘로사 쿠토르 스키경기센터(해발 2320m)’에서 활강경기를 치렀다. 2010년 밴쿠버겨울올림픽 활강경기는 해발 2181m 휘슬러산에서였다. 2003년 체코, 2007년 과테말라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강원도 평창을 제치고 겨울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도시들이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삿포로와 나가노에서 두 번이나 겨울올림픽을 유치한 일본의 예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98년 겨울올림픽이 열린 나가노에는 3000m 넘는 봉우리들 사이로 수십 개의 스키장이 자리 잡고 있다. 당연히 소치, 밴쿠버, 나가노 모두 기존 스키장에서 활강경기를 치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가장 높은 한라산이 1947m다. 전국에 스키장은 15개에 불과하다. 자연조건, 문화 조건 모든 면에서 올림픽 활강경기 자체가 가당치 않다.
그런데도 강원도는 “모든 경기장을 평창 알펜시아에서 30분 이내에 위치시키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활강경기장 부지로 가리왕산을 제시했다. 평창겨울올림픽이 내세운 유일한 장점인 ‘모든 경기장이 알펜시아에서 30분 이내에 위치한다’는 조건은 그 자체로 ‘재앙’이다. 인구 4000명 남짓인 평창군 횡계리를 중심으로 모든 올림픽 시설물이 새로 들어서면, 이를 누가 감당할 것인가. 하지만 불행히도 그 장점이 먹혔다.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외친 ‘2018 평창’은 그대로 가리왕산을 향한 화살로 돌아왔다.
법이 법을 지키지 못하다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 회원들이 2014년 9월19일 인천 아시아드 주경기장에 위치한 평창겨울올림픽 홍보관 앞에서 가리왕산 파괴 중단을 촉구하는 펼침막을 들고 있다. 김봉규 기자
강원도가 제시한 가리왕산 활강경기장 부지는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개발 자체가 엄격히 금지된 곳이다. 산지관리법에 규정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은 법정 보호구역 중 규제 강도가 가장 센 곳 중 하나다. 두릅이나 곰취 같은 사소한 산나물이라도 캐다 적발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무단으로 산에 들어갔다 붙들리기라도 하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10만원의 과태료가 징수된다. 그리고 이곳은 환경부가 정한 생태자연도 1등급과 2등급 지역이기도 했다. 이런 지역에선 원칙대로 하자면, 그 어떤 개발사업도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현행법상 보호구역으로 겹겹이 정해진 가리왕산은 절대로 스키장을 만들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법은 가리왕산을 보호하지 못했다. 부지런한 누구누구 정치인들께서 일찌감치 특별법을 만들어 법으로 법을 이겼기 때문이다. 이들이 사용한 도구는 ‘평창동계올림픽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었다.
2012년 6월 산림청은 평창겨울올림픽 활강경기장 부지로 가리왕산을 확정했다. 이곳이 법상 산림청 땅이라 그렇다. 산림청은 이 지역이 엄정한 보호구역인 만큼 계획을 세워 일부를 해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또 올림픽이 끝나면 산림을 복원해 다시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겠다는 단서조항도 달았다. 해제 대상 면적은 78㏊로 국제 규격 축구장 110개 정도 넓이다. 당시 스키장 건설을 위해 보호지역을 해제한다고 발표한 사람은 산림청 산림보호국장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1년이 지나 예정대로 일부가 보호구역에서 해제되었고, 공은 산림청에서 환경부로 넘어갔다. 법에 따라 환경영향평가가 시작된 것이다. 환경단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개발과 싸우는 방식은 사실 간단하다.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것인지, 예산집행은 합당한지, 근거들은 제대로 만든 것인지, 혹여 거짓은 없는지 등을 검증하고 확인받고 지적한다. 언론에 비치는 농성이나 집회 같은 방식은 백 중 하나에 불과하다. 대부분 법과 제도 안에서 옳고 그름을 다툰다.
하지만 가리왕산 문제는 법과 제도 안에서 다툴 여지가 거의 없었다. 앞서 말했듯 ‘특별법’이라는 무소불위의 법을 만들어 기존 법과 제도를 무력화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환경영향평가가 마무리되는 데 1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우리가 싸움을 잘해서라기보다는 사업자인 강원도가 너무 엉망이었던 탓이다. 애초 약속이었던 복원 계획은 함흥차사였고, 들이대는 조사 자료들은 누가 봐도 부실했다. 그 와중에 불법 벌목까지 이뤄져 일시적으로 공사 중단 명령까지 받았으니 무엇 하나 정상적인 게 없었다. 특별법이 아니라면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활강경기장 계획은 뒤집혔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전능한 누군가의 디자인인지 2014년 추석 즈음 늦지 않게 모든 행정 절차가 마무리됐다. 그리고 가리왕산은 전기톱 소리로 가득 차게 된다.
가리왕산에 드리운 최순실의 그림자
변곡점은 생각지 못한 곳에서 불거졌다. 2014년 12월8일, IOC는 ‘어젠다 2020’을 발표한다. 지금껏 올림픽 개최 최우선 원칙이었던 1국가 1도시 개최 원칙을 철회한 것이다. 복수 국가 복수 도시 개최 원칙을 천명함으로써 올림픽의 광범위한 분산 개최를 보장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따지고보면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등 유럽의 겨울스포츠 선진국들이 앞다투어 겨울올림픽 유치 포기나 철회 선언을 이어가고 있고, 여름올림픽 유치 경쟁도 예전 같지 않아진 지 오래다. 올림픽 유지가 더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한 IOC가 내놓은 자구책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IOC는 한국 올림픽조직위원회에 썰매 경기는 일본 나가노에서 치르자고 제안한다.
환경단체들은 IOC의 제안이 가리왕산을 위해 하늘이 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알펜시아에서 30분이라는 족쇄를 걷어내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상상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 분산 개최는 억지로 끼워맞춰 생긴 여러 오류를 정상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분산 개최는 없다”는 단 한마디로 찬물을 끼얹었다. 그렇게 가리왕산에 1회용짜리 스키장이 만들어졌다. 이후에 밝혀졌지만 대통령은 허수아비였고, ‘조정자’로 의심되는 인물은 평창 일대에 수많은 부동산이 있었다.
가리왕산은 한국의 대표적인 풍혈지역이다.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땅속에서 불어온다. 사계절 내내 일정한 온도로 씨앗을 품고 있는 풍혈지역은 그 자체로 종자은행이다. 더욱이 산 전체에 광범위한 풍혈지역이 흩어져 있어 생태적 가치가 그 어느 곳보다 높다.
가리왕산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간다는 주목의 유일한 자생지다. 설악산에도 덕유산에도 주목이 살지만 더 이상 남한 내륙에서는 어린 주목이 자연 발아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어린 주목부터 늙은 주목까지 어울려 살고 있는 가리왕산 생태계가 파괴되면 우리나라에서 주목은 멸종한다.
그동안 강원도는 처음 약속을 무시하고, 가리왕산 활강경기장을 사후 활용한다는 이야기를 계속 흘려왔다. 하지만 올림픽 활강경기장은 결코 일반인들이 스키장으로 이용할 수 있는 슬로프가 아니다. 일반인들은 목숨을 내놓고 타야 할 만큼 고난도다.
그리고 한국의 스키장 사업은 이제 호황이 아니다. 바로 인근의 태백 오투리조트가 부도 사태를 겪은 뒤 힘겹게 다시 문을 연 지 며칠 지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강원도, 중앙부처, 전문가들로 구성된 ‘가리왕산 생태복원추진단’이 곤돌라를 폐쇄하고 슬로프 전 지역을 복원하는 내용의 복원안을 확정했다. 물론 앞으로가 더 고민이다. 두 달 후면 올림픽인데, 강원도와 중앙부처 그 어디도 복원 예산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폭탄 돌리기 하듯 눈치만 보고 있다.
비극으로 남을 평창 활강경기장
가리왕산 활강경기장은 올림픽 역사에도 비극으로 남을 것이다. IOC가 주장하는 환경 어젠다에도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그리고 한국의 보호지역 위상에도 엄청난 상처를 남겼다. 누군가 원하면 그게 어떤 법으로 보장된 보호지역이라 하더라도 쉽게 무력화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것이다. 망치기는 쉬우나 다시 세우긴 어렵다. 이 사소한 진리를 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반복해서 깨달아야 하나. 환경올림픽, 경제올림픽을 표방한다는 2018 평창겨울올림픽은 가리왕산에 스키장을 만드는 순간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정규석 녹색연합 정책팀장
멍들고, 병들고… 20년 비정규직화 대한민국 희망이 있을까? 1231민중
정규직이 계급이 되어버린 사회 “위기의 정규직전환,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 필요”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박금자 위원장과 간부들이 1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근속수당 인상 및 교육부장관·교육감 직접 교섭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갖고 삭발식을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최근 비영리 민간연구소 희망제작소에서 15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시민희망지수’를 조사하면서 던진 질문이다. 이 질문에 20~30대의 절반은 “부모의 경제력”이라고 답했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의·식·주는 물론, 공부 할 기회까지 크게 벌어진 현실을 체감한 청년들의 답변이었다. 그만큼 대한민국 청년들이 느끼는 양극화 현상은 심각했다. 문재인 정부가 양극화 해결을 위한 카드를 꺼내든 이유다.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 양극화의 핵심적인 원인 중 하나라고 진단했다. 고용불안을 겪으며 30년을 일해도 같은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의 열악함을 개선해야만 양극화의 가속화를 멈출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꺼내든 카드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었다. 정부는 “상시지속적 업무를 수행 중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대원칙을 세우고 전국의 852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정규직화 정책을 시행시켰다.
시작은 희망찼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하자 인천공항 비정규직 당사자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희망이 온갖 잡음과 절망으로 바뀌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본격적으로 정규직전환 정책이 시행되자, 20년간 쌓여온 비정규직·정규직 노동구조의 문제점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지난 11월23일 오후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방안 공청회’가 열린 인천국제공항공사 서관 대강당의 출입문 옆벽에 인천공항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직접고용에 반대하는 표어를 붙여놓았다.ⓒ공공운수노조
황당사례 #1:정규직의 비웃음과 야유로 멍든 비정규직의 가슴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정규직들의 야유와 비웃음으로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인천공항에서 시설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당시 공청회를 떠올리며 “너무 화가 났지만 참으며 이해하려고 애썼다”며 “신분 또는 계급의 격차가 되어버린 커다란 장벽을 만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지난 11월23일 인천 영종도 공항공사 청사에서 ‘인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방안 공청회’를 열었다. 이 자리는 인천공항공사의 의뢰를 받은 2개의 연구기관이 비정규직 정규직 방안에 대해 발표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공청회는 온전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비정규직을 향한 일부 정규직의 야유와 고성, 비웃음이 가득했다. 공청회 사회자와 연구원에게 “짜고 치기 하는 거냐!”며 고성을 지르는 정규직도 있었다.
일부 정규직들은 일어서서 비정규직의 직고용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반대하는 이유로 “(정규직들은) 인천공항공사에 수백대일의 경쟁을 뚫고 들어왔다”, “두 개(공사와 협력업체)가 원래는 다른 회사다” 등의 이유를 들었다. 또 “직고용으로 천명밖에 안 되는 구조에 만 명을 우겨넣으면 부작용이 없는지 충분히 연구하셨나”라며 비정규직 정규직 방안을 발표한 연구원의 자질을 논하기도 했다.
정규직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우리와 함께 근무하는 인천공항 정규직들이 저희의 직고용을 반대하는 모습에 가슴에 대못이 박힌 듯 미어진다”고 한탄했다. 정규직들이 앉은 자리에선 야유와 비웃음이 들려왔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유모씨는 “똑같은 월급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직군·처우를 다르게 한다는 점도 인정하고, 단지 고용안정을 위해 공항공사 직원신분으로 일하게 해달라는 요구였다”며 “그런데 그걸 납득하지 못 하더라…”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그동안 공사와 협력사 노동자는 수직적인 관계였는데, 수평적인 관계가 된다고 하니 정서상 반감이 들었을 것”이라며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관계자들이 20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대량해고 판정기구! 정규직전환심의위원회 규탄! 당사자 증언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무기계약 전환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관계자들이 20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대량해고 판정기구! 정규직전환심의위원회 규탄! 당사자 증언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무기계약 전환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슬찬 인턴기자
황당사례 #2:“전환제외, 이의 있습니까? 없으면 통과”
황당사례 #3:“무기명 투표로 전환여부 결정하겠습니다”
대부분의 시도교육청에서 진행되는 정규직전환심의위원회에서는 회의 첫 날 발설금지 각서를 쓰도록 했다. 심의과정이 밖에 공개가 될 경우 심의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수십 개의 전환심의 직종에 대한 자료조차 회의 당일 날 회의장에서 배포하고 2~3시간 만에 전환여부를 졸속으로 결정하는 상황이 속출했다.
인천교육청 정규직전환심의위는 2시간 만에 41개 직종에 대한 심의를 끝냈다. 상견례 이후 11월 처음 열린 회의였다. 41개 직종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는 사실상 없었다. 교육청 측이 준비한 안에 이의가 있는지 없는지만 묻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통과시키는 식으로 진행됐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회의는 이의조차 제기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심의과정은 당사자 의견 청취 등 가이드라인에 명시된 기본적인 절차조차 생략됐다. 전환대상자는 당연히 0명 이었다. 노조가 반발하고 문제제기를 하자, 그제 서야 41개 중 5개 직종에 대해서 새롭게 논의하고 당사자 의견청취를 약속했다. 28일 노조 관계자는 “현재 약 10개 직종에 대해서 추가적인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제주도교육청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10개 직종에 대한 심사에 들어간 도교육청 정규직전환심의위는 표결을 통해 전환여부를 결정했다. 도교육청 전환심의위원은 총 9명이다. 교육청 관계자 3명, 노조 추천위원 2명, 학부모대표자 1명, 전교조 1명, 교총 1명, 지노위 1명으로 구성됐다. 교육청과 노조 측 위원이 아니고선 해당직종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자료라곤 철저히 교육청 입장에서 작성된 설명자료 뿐이었다. 이조차 회의 당일 날 심의위원들에게 배포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도교육청이 고안한 심의방식은 무기명 투표였다. 결과는 “전원 제외”였다. 결국 노조 측 위원들은 심의위 회의에 불참키로 결정했다. 노조 관계자는 “그냥 우리를 들러리로 세웠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한탄했다.
수많은 비정규직의 미래가 이 같은 졸속 처리방식으로 결정되고 있었다. 그 과정도 각서까지 써가며 외부에서는 알 수 없는 깜깜이 방식이었다. 일부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교육청은 각서를 언급하며 노조 측 참가위원에 압박하기도 했다.
시도교육청 외에도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관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수많은 사업장에서 진행되는 전환심의 내용을 취합 중인 우문숙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사업국장은 “개별기관들이 추진되는 현황을 보면, 대부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늦장부리거나, 전환규모를 최소로 잡고, 비민주적으로 추진하기도 하면서, 자회사 방식의 또 다른 간접고용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 연 총파업대회에서 애드벌룬에 걸린 현수막이 휘날리고 있다.ⓒ양지웅 기자
계급이 되어버린 정규직과 비정규직
고착화된 계급사회서 병들어가는 노동자
정규직의 비상식적인 반대, 공공기관의 비민주적인 날치기 처리 등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전환 정책이 시행되면서 발생되는 다양한 현상에 대해 우문숙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사업국장은 “20년 동안 쌓여온 문제가 터져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IMF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은 크게 확대됐다. 노동유연성이 필요하다는 기업의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민영화 정책을 펼친 결과였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비정규직 수는 843만명이다. 이조차 이주노동자를 조사대상에서 제외하고 특수고용 노동자를 자영업자로,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분류한 결과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실제 비정규직의 비율이 전체 노동자의 50%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비정규직 확대로 인한 불평등, 양극화 문제도 쌓여갔다. 사용자와 관리자 입장에서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비해 다루기가 편했다. 비정규직은 노조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짧은 계약기관과 항상 고용불안에 떨어야만 하는 비정규직에게 노조가입은 꿈꾸기도 어려웠다. 220만명이 넘는 정규직노조원에 비해 18만명에 머물고 있는 비정규직 노조원의 수가 이를 나타낸다. 노조가 없으니 임금협상의 기회도 없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에 그쳤다. 근속년수가 쌓일수록 더 극심하게 벌어지는 임금격차는 지켜만 봐야 했다. 사용자는 이런 비정규직을 선호했다.
우 국장은 “비정규직이 확대되면서 이익을 취해왔던 사람들이 있다”며 “그들의 저항이 있다고 본다. 현 노동구조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사용자 입장에서는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남아있는 게 관리하기 쉽다고 생각하지 않겠나”라고 물었다.
우 국장은 정규직들이 반대하는 현상에 대해 “같은 노동자라는 인식보다는 이중노동구조에 익숙해져 버린 탓”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말처럼 청년들은 ‘평생 비정규직’의 굴레를 피하기 위해 죽을 각오로 취업전선에 뛰어들며 적응해 왔다. 정규직이란 자리는 인천공항 공청회에서 목소리를 높였던 한 젊은 정규직의 말처럼 “수백대일의 경쟁을 뚫고 들어온” 계급이 되어버린 셈이다.
우 국장은 정규직전환 정책의 취지를 거듭 강조했다. 그는 “양극화를 해결하는 게 우리 사회의 가장 시급한 현황”이라며 “정부는 이를 위해 지금까지 발생됐거나 발생한 문제들을 취합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양극화라는 사회 구조적 문제 해결이라는 취지도 정확히 모르고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기관장은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지방선거 여론조사
국제신문
부산일보
좌파 비즈니스 혹은 광피아 선두주자? 1.3 Redian
에너지협동조합과 한전의 학교태양광사업
요즘 문재인 정부의 탈핵 에너지전환 정책에 뭐라도 흠집을 내고 싶은 보수언론들이 한전과 에너지협동조합의 논의 과정을 두고 마치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부각시키고 있다.
학교 건물 옥상을 임대하여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하고 운영하는 발전사업을 두고, ‘민간’인 협동조합의 방해로 공기업인 한전 측의 사업이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그 탓에 2020년까지 2,500개의 학교 태양광 발전소를 만들려는 산업부의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면서 시민단체들이 앞에서는 탈원전을 주장하면서, 뒤에서는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을 방해하고 있다고 힐난하고 있다. 과연 이런 보도와 분석이 맞는 것일까?
에너지협동조합은 이익을 추구하는 사업체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목표를 추구하는 결사체이다. 최근에야 조합원들에게 낮은 수준의 배당을 지급하는 협동조합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지난 몇 년간은 배당 없이도 조합원들이 참여하여 출자하고 여러 어려운 행정적․재정적 난관을 해쳐나면서 태양광 발전소를 건립․운영해왔다. 그 이유는 단지 수익만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시민들은 2011년 후쿠시마 핵사고와 이어진 밀양/청도의 송전탑 갈등을 보면서 충격을 받고 또 성찰했다. 위험한 핵에너지와 대규모 중앙집중적 에너지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도시와 지역에서 재생에너지 사업에 직접 뛰어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방법이 에너지협동조합이었다.
학교 태양광 사업도 그렇다. 학교 옥상이 햇볕이 잘 들고 넓어서 태양광 사업을 하자고 했던 것만은 아니다. 학생과 교직원, 나아가 지역 주민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하면서 학교를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그리고 사회적경제 교육과 참여의 기회로 삼자고 했다. 삼각산고등학교, 인헌고등학교 그리고 국사봉중학교 등 여러 학교에서 학생과 교직원 그리고 주민들의 참여를 설득하고 출자금을 모았다.
그 지난한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그게 사적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각종 행정적인 장벽에 부딪쳐 2년 가까이 교육청과 각 학교 교장들을 설득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내면서, 산업부의 2020년 학교태양광 사업을 물꼬를 틔운 것이 에너지협동조합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각지에서 시민들을 교육하고 자금을 모으면서 유휴부지를 찾아다니고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면서, 지역분산적인 에너지전환에 앞장서고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최근 들어 에너지협동조합이 재생에너지정책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고 비난받고 있다. 한전과 발전자회사들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인 새싹발전이 뒤늦게 학교 태양광사업에 뛰어들면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한전 측의 사업 참여는 일견 반가운 일일 수도 있다. 한전 측이 재생에너지 사업에도 참여를 확대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지속적으로 대규모 핵발전소와 석탄발전소를 늘리면서, “골목상권”에 비유되는 소규모 학교 태양광사업에 뒤늦게 참여하면서 요란을 떠는 것에 곱지 않는 눈길도 많다.
학교 옥상 위의 태양광 모습(방송화면)
그런데 과연 에너지전환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면, 이번 논란은 좀 더 심대한 의미를 가진다. 에너지전환은 단순히 에너지원만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원자력과 석탄 대신에 태양광과 같은 재생에너지의 이용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기존의 에너지 시스템에 매달리고 있는 공기업 한전 및 발전자회사들이나 사적 이익 추구에 바쁜 일부 기업들이 주도가 되어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것이 좋은 일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이 재생에너지 확대에 전력을 다할지도 의문이지만, 수익률을 쫓는 대규모 개발 방식을 선호하면서 환경 파괴와 주민 갈등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도 높다. 게다가 전력의 주요 소비처인 도시 지역에서의 소규모 분산적인 재생에너지 전원을 개발하려는 노력은 간과되기 싶다. 실제로 한전 새싹발전도 수지가 맞지 않는다며 30kW 급 정도의 소형 학교 태양광발전사업은 외면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시민사회의 정치적 지지와 견제 그리고 경제적 참여가 필요한 이유들이다. 에너지전환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그들이 전환에 필요한 비용을 이해하고 감내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문재인 정부는 에너지전환정책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주장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생활공간 안에서 재생에너지를 적극적으로 그리고 창조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에너지시민성’이라고 부른다면, 에너지협동조합은 그 발현의 결과이자 배양해내는 공간이다. 핵위험, 기후변화, 미세먼지, 에너지 부정의 등의 사회적 우려로부터 행동하고, 새롭게 출현하는 재생에너지 경제의 이익을 공유하면서 자기 강화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중요한 기반인 것이다. 국가/공공 그리고 기업/민간과 구분되는 사회적경제/시민사회가 에너지전환의 중심적 행위자로 등장해야만 에너지전환은 제대로 추진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누가 늘리던 재생에너지만 확대되면 된다는 주장은 에너지전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한전이 하든지 협동조합이 하든지 학교 태양광사업만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협동조합은 학교 태양광사업으로 옥상 위에 발전 설비만을 올리는 것이 아니다(그리고 아니어야 한다). 조합원의 모집․교육 과정을 통해서 에너지시민들을 발굴․성장․규합하는 사회적 과정이며, 성공적인 사업을 통해서 지역 사회 내에서 재생에너지 사업의 이익을 공유하고 순환시키는 경제적 과정을 동반하는 것이다. 협동조합 그리고 시민자산화를 추구하는 사회적경제 조직 등이 잘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이쯤 해서 언론들이 짜고 있는 ‘공기업’ 대 ‘민간’이라는 프레임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누가 이야기했는지 구체적인 인용 없이, 언론들은 협동조합들이 “공기업이 왜 민간 영역에 침범하느냐”며 반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협동조합을 ‘민간’이라고 모호하게 지칭해서는 안 된다. 한국 사회에서 민간은 국가나 공공기관이 아니라는 포괄적인 의미도 갖지만, 대개의 경우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들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협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다.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업체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목적과 이익을 추구하는 결사이기 때문에, 법률적으로 달리 규정하기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확히 말하자면 ‘민간’이 아니라 ‘사회적경제 조직’이 개척한 사업 영역에 공기업이 경쟁을 하자고 들어선 것이다. 또한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협동조합이 공적 이익을 추구하는 공기업과 다투고 있다는 식의 해석과 보도는 잘못된 것이다. 한전이 과연 에너지전환이라는 새로운 공적 가치를 충분히 추구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러운 일이고, 협동조합이 “단순한 이익 창출 사업”을 하자고 나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점에서 한 신문의 사설이 협동조합을 ‘민간’으로 지칭하면서 공기업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것은, 사회적경제에 대한 이해가 없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학교 태양광 사업은 신재생 에너지 시장 활성화를 위해 학교 옥상에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해 운영하는 사업이다. 단순한 이익 창출 사업이 아니다. 태양광 전력 판매와 운영비 절감으로 확보한 수익을 학교에 전액 돌려주는 공익사업이다. 누가 봐도 공기업이 맡는 게 더 효율적이다”.(세계일보 사설, 2017-12-15).
덧붙이자면, 학교 태양광사업이 수익을 전액 돌려주는 공익사업이라는 주장 역시, 명백히 사실관계가 틀린 것이다. 이미 이야기했듯이 한전 새싹발전은 수지를 따지는 계산기를 내려놓은 일이 없다. 한전과 발전자회사들이 공기업이라는 하지만, 수익을 낼 것을 강요받고 있는 ‘시장형 공기업’들이다. 1990년대 말부터 몰아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해서, 전통적인 의미의 공공성도 급속히 위축되어 있다. 비록 개발주의 시대의 낡은 공공성 개념이기는 하지만, 필요한 공적 서비스라면 수익률과 무관하게 제공한다는 공기업 경영 목표가 사라진 지 오래다. 석탄과 원자력 기술 시스템에 매달린 채 어설프게 시장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곳이 한전이다. 이들을 공기업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고민이 많다.
한 일간지의 컬럼리스트는 “태양광, 좌파 비즈니스의 탄생”이라는 ‘창의적인’ 글을 썼다. 그는 “원전 마피아 뺨치는 광피아(의) 무서운 기세”를 우려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를 흠집 내기 위한 이념적 공세의 일환일 것이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태양광 산업에 뛰어든 한화큐셀이나 OCI와 같은 대기업들은 빼놓고, 왜 에너지협동조합을 좌파 비즈니스 혹은 광피아의 선두주자로 지목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억지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때 이르다. 정말 에너지협동조합이 에너지전환을 중심적인 행위자가 되어서 독일처럼 재생에너지 발전시장의 30-40%까지 차지하도록 성장한다면 모를까. 탈핵으로 전기요금이 올라가면 공장을 해외로 옮기겠다는 태양광 기업과 원전과 함께 가야 한다고 주장한 신재생에너지협회 임원들까지도 에너지전환에 동참한 이후에야, 그나마 의미를 가질 비난이다. 하지만 어쩌면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 속에서 전환의 씨앗인 에너지협동조합이 지속적으로 거론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앞서 보여준 것이다. 에너지전환에서 에너지협동조합의 의미와 역할이 무엇인지 재확인할 때다.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운영부소장
초등학생의 통일나무 그림은 '안보불감증'1.4 노컷
자유한국당이 2018년 새해 시작부터 초등학생의 통일 그림을 두고 '안보불감증'이라고 주장하며 우리은행을 비난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2018년 1월 1일 신년인사회에서 "지금 인공기가 은행 달력에 등장하는 그런 세상이 됐다"고 언급했다.
자유한국당 장제원 수석대변인도 이날 '북한 인공기가 은행 달력에 등장하는 시대,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장 대변인은 "이제 학생들은 미술대회 수상을 위해 인공기를 그릴 것이고, 미술대학 교수는 이런 그림을 우수상으로 선정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안보불감증의 자화상을 보는 듯 하다"고 규탄했다.
한마디로 우리은행의 탁상 달력 사진에 인공기가 들어간 것이 '안보불감증'이라는 논리.
2018년 1월 1일 자유한국당에서 낸 수석대변인 논평. (사진=자유한국당 홈페이지 캡처)
논란이 된 그림은 우리은행이 주최한 22회 '우리미술대회'에서 유치‧초등부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우리은행은 해마다 대상작 작품을 신년 달력 사진으로 사용하고 있다. 작품을 그린 학생은 초등학교 4~6학년 부분에 참가한 어린이였다. 학생은 통일나무를 표현하며 나무의 왼손에는 태극기와 대한민국 어린이의 모습을, 오른손에는 인공기와 북한 어린이의 모습을 표현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신하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부학장은 "나뭇가지와 잎을 자연스럽게 배치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행복한 미소가 느껴진다. 평화로운 통일나무가 스스로 움트고 자라서 행복한 미래의 통일을 바라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며 수상작 선정이유를 밝혔다. 심 위원장은 이어 '어린이와 같은 시각에서 그림을 그리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아이들 작품의 순수성을 높이 평가했다.
제22회 ‘우리미술대회’ 유치‧초등부 대상 작품. (사진=우리은행 우리미술대회 수상작갤러리 캡처)
하지만 자유한국당 어른들의 시각은 달랐다. 자유한국당 김종석 의원은 2017년 12월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은행 2018년 탁상달력입니다. 저는 민노총(민주노총) 달력인 줄 알았습니다. 우리은행 왜 이러나요?'라는 게시물과 함께 달력 사진을 올렸다. 이어 훙준표 대표, 장제원 수석부대변인이 해당 작품을 문제 삼고 있는 것. 자유한국당 중앙직능위원들은 지난 1월 3일 오후 우리은행 본점 앞에서 '인공기 달력 규탄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주옥순 자유한국당 디지털소통 부위원장(가운데)이 3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앞에서 우리은행의 탁상달력에 북한 인공기가 등장한 것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후 은행관계자에게 항의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하지만 예전부터 한반도의 통일이나 평화를 알리는 그림에서 북한의 인공기를 그리는 것은 일반적인 사례이다. 헌법기관이자 대통령자문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관련 자료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홈페이지에서 지역회의‧협의회 활동을 보면 해마다 '평화통일그림 그리기 대회'를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회에서 수상된 작품을 살펴보면 분단된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표현하기 위해 어린이들이 태극기와 인공기를 그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과거 박근혜‧이명박 정부 시절에서도 전국 각지에서 진행된 그림대회의 수상작 역시 태극기와 인공기가 함께 그려져 있다.
남한보다 북쪽에 있는 북한을 표현하다보니 인공기가 태극기 위쪽에 있거나 크기가 더 큰 경우도 있었다.
2016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청양군협의회 청소년평화통일 포스터 공모 시상식 중등부 수상작. 수상작을 보면 북한의 인공기가 태극기와 함께 사용된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사진=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의 홈페이지 캡처)
네이버, 다음, 구글 등 포털 사이트에서 '통일 포스터'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도 인공기와 태극기를 활용한 그림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자료 어디에서도 통일이나 평화의 소재 그림에서 아이들이 인공기를 그린 것이 문제가 된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따라서 우리은행 달력에 수상작 사진에 '인공기'가 있다는 이유로 '안보불감증', '장밋빛 대북관' 등을 주장하는 자유한국당의 논리는 초등학생의 순수한 통일 염원을 심각하게 왜곡한 것으로 보인다.
박종철이 죽음으로 지킨 선배의 '변절', 그는 < 1987 > 볼까 1.3 오마이뉴스
[리뷰] 누구나 박종철이 될 수 있었던 시대, 영화 < 1987 >이 남긴 것
'초전에 박살났어! 그놈들은 인간백정들이었어!'
송파보안사에 끌려간 그는 야구방망이로 온몸을 구타당하고 전기고문 2차례, 거꾸로 매달고 고춧가루 코에 붓기 5차례 등 일주일 동안 고문을 받으며 허위자백과 수배자 은신처 위치를 요구받았다고 한다. 군사정권은 5.3 인천 투쟁의 배후로 서노련(서울노동운동연합)을 지목했고 김문수는 서노련 지도위원이었다. 당시 민주진영의 기관지 역할을 했던 <민중의 소리> 17호(발행인 문익환)는 '보안사, 살인적 고문으로 민중 민주화 운동탄압'이라는 제목을 달고 김문수 지도위원의 고문 내용을 생생하게 적었다.
▲ 1986년 진실을 알렸던 유인물문익환 목사님이 발행인이였던 '민중의 소리'는 당시 진실의 전파자 역할을 했다. 1986년(1988년은 잘못 인쇄된 듯)5월 25일 발행된 유인물에는 김세진. 이재호 열사의 분신. 문익환 목사님의 구속 등 급박한 정세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안호덕
누구나 박종철이 될 수 있는 시대였다
영화 < 1987 >을 보면서 5.3 인천 항쟁을 생각했다. 1986년이었으니 내가 대학 2학년 때 일이다. 군부독재를 상대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야당 성토가 대규모 정권 타도 투쟁으로 이어진 사건이었다. 정권은 기다렸다는 듯 대대적인 탄압을 가했다. 김문수 등 노동운동가 40여 명을 고문·구속하고, 노동현장에 위장취업한 권인숙씨를 성고문하며 5.3 인천사태 관련자 행방을 종용했다. 박종철의 고문치사. 어쩌면 진작 생겨났을 일, 영화 속 그들의 대화처럼 정권을 지키는 애국 행위에 한번쯤은 터질 수 있는 일이었다.
박종철의 죽음을 안 건 TV나 신문이 아닌 선배가 전해준 유인물에서였다. 몇 번이나 꼬깃꼬깃 접혀서 몇 사람의 손을 거쳐 나에게 온 유인물에는 방송에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 죽음의 진실이 있었다. 남영동, 물고문... 이런 낱말들이 배열된 소식을 전해주면서 선배는 후배에게 투쟁심을 기대했을 테지만, 나는 오히려 두려웠다. 누구나 박종철이 될 수 있는 시대였고, 군 미필이었던 나는 강제 징집되면 녹화사업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무서웠다.
▲영화 <1987> 포스터ⓒ CJ 엔터테인먼트
그러나 영화 < 1987 > 속 연희의 운명처럼, 눈감고 귀 막는다 해서 외면할 수 현실은 아니었다. 방학 때였기에 잠잠하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개학과 더불어 본격적인 투쟁이슈로 떠올랐다. 4.13 호헌 조치는 기름을 붓는 꼴이었다. 호헌철폐, 정권타도를 요구하는 대자보가 게시판을 메웠고, 옥상에서는 유인물이 뿌려졌다. 학내에 상주한 사복경찰과 학교직원들은 유인물 배포자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버스 천정 환풍기에 유인물 뭉치를 물래 끼워 놓고 내리면, 차가 출발하면서 뿌린 듯 날렸다. 경찰들은 범인을 찾으랴, 떨어진 유인물 수거하랴 정신없었고, 시민들은 유인물을 얼른 주머니에 숨겼다. 짜릿한 순간이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두명씩 짝을 지어 유인물을 집안으로 몰래 던져 넣는 '가피'(가는 집(家)의 한자어. 피는 유인물의 은어다)작업을 했다. 요즘같이 CCTV가 곳곳에 있었으면 어림도 없을 일이겠지만, 30년 전이라 대문 밖으로 불쑥 달려오는 개만 조심하면 됐다. 그러나 매번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잡히면 신나게 얻어맞고 구류 며칠은 각오해야 했다.
▲ 87년 7월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소식지이한열 열사의 민주국민장에 150만 인파가 모였다는 소식. 제주에서 열린 이한열 추모집회에 경찰이 난입 무차별 폭력을 자행했다는 소식 등이 보인다ⓒ 안호덕
87년 6월 항쟁은 6월 10일 하루의 투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영화의 시대 배경은 86년 12월부터 87년 6월까지다. 80년 광주학살과 저항, 이후 진상규명과 반독재 투쟁, 5.3 인천항쟁과 서노련 사건, 권인숙 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와 이한열 열사의 죽음, 6.29 선언과 야당분열, 대선 패배까지. 영화 < 1987 >은 대하소설 같은 30년 전 역사의 가장 아프고도 빛나는 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택시운전사> → <변호인> → <남영동 1985> → < 1987 >→ < 26년>이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채워야 할 이야기와 진실은 너무 많다.
영화 < 1987 >, 영화 같았던 '2017'
맞고 고문당했던 사람들이 변절했다. 노동운동의 대부라고 불리던 김문수. 그는 80년 노동운동의 김근태로 불렸다. 그런 그가 '인간백정'을 부려 자기를 고문했던 군사정권과 야합해 탄생한 신한국당에 입당해 정치인생을 시작했다. 김문수만도 아니다. 박종철이 물고문을 받으면서도 보호했던 선배 박종운은 2000년에 한나라당에 입당해 국회의원에 여러 번 출마한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정치에 몸 담는 것이야 본인의 선택이지만, 고문했던 사람들, 후배를 죽게 만든 사람들과 한통속으로 정치를 한다는 게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김문수도, 박종운도 이 영화를 볼까? 본다면 무슨 말을 할까? 악취미를 가진 사람처럼 물어보고 싶다.
▲고 박종철 열사 25주기 추도식이 열린 2011년 1월 14일 오후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 509호 조사실에서 경찰이 박종철 열사를 고문해서 소재파악을 하려고 했던, 학교 선배인 박종운 당시 한나라당 경기도당 서부지역 총괄본부장이 헌화를 하고 있다.ⓒ 권우성
▲2004년 총선 당시. 좌부터 박종운(오정). 박근혜 대표. 임해규(원미갑). 김문수(소사)ⓒ 양주승
영화 < 1987 >은 관객을 6월 10일 시청 앞마당에 세워놓고 막을 내린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주지 못한 87년 6월 항쟁의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군사정권을 몰아내고 직선제를 쟁취했지만, 야당분열로 또다시 노태우 정권을 탄생시켰다. 이후 3당 합당이 이뤄졌고, 군사정권의 막바지였던 91년에는 또 숱한 사람들이 죽었다. 87년 6월 항쟁이 온전한 승리였다면 만들어질 수 없었던 음지였다. 그러나 역사에서 가정은 의미가 없다. '87년 6월 항쟁이 미완이라도, 변절하고 등 돌린 사람들이 생겨났더라도, 민초들이 군사독재를 굴복시킨 역사는 여전히 위대하고 숭고하다.
"보유세 올려도 집 안팔아요"…버티는 다주택자들 1.4 머니투데이
보유세 인상해도 집값 상승 기대감 더 커…"시장 영향 제한적 예상"
"보유세 올리면 세금 더 내면 되죠. 집값은 그보다 더 오를텐데요. 세금 올려도 집 팔 생각은 없습니다."(서울에 주택 3채를 보유한 다주택자 C씨)
정부가 다주택자에 대한 부동산 보유세 개편 논의를 본격화했지만 시장은 이에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다. 증세 대상이 초과다 부동산 보유자에 한정될 가능성이 높고, 세금이 오르더라도 서울 등에서는 이보다 집값이 더 오를거란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부의 보유세 인상 움직임에도 서울 등 주요 지역의 주택 매매시장은 잠잠한 상황이다. 정부가 부동산 규제 신호만 내비쳐도 급매가 쏟아지고 집값이 떨어졌던 이전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시장이 무덤덤한데는 보유세를 인상하더라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많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달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에서 다주택자에 대한 보유세 개편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부와 정치권 안팎에서는 보유세 인상이 재산세보다는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 인상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고 있다.
주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야 하는 재산세를 인상하는 것보다 다주택자, 초고가주택 소유자를 대상으로 하는 종부세를 인상하는 것이 조세저항을 완화하고 조세형평성도 맞출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하지만 종부세 과세 대상은 전체 주택소유자 중 2% 정도로 소수에 불과하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6년 주택분 종부세를 납부한 사람은 26만8791명으로 전체 주택 소유자(통계청 집계 1331만1319명)의 약 2%를 차지한다. 종부세 인상 대상을 3채 이상 주택소유자(41만5924명)에 한정한다고 해도 전체의 3.1% 수준이다.
서울과 경기 신도시에 아파트 3채를 소유한 최모씨(39)는 "아무래도 주택을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의 세부담을 더 높이지 않겠느냐"며 "세율 인상폭이 미미한 수준이라면 집을 매도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세부담보다 주택가격이 더 오를거란 기대감 때문에 집을 팔지 않겠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가령 '갭투자의 성지'로도 불리는 서울 성북구 길음뉴타운에서는 정부의 연이은 규제에도 여전히 매도자 우위 시장이 형성돼 있다. 갭투자란 높은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을 이용해 전세를 끼고 주택을 구입한 뒤 집값이 오르면 팔아 시세차익을 남기는 투자법이다.
길음동의 G공인중개소는 "갭투자로 집을 여러채 가진 사람들이 아직 매물을 내놓고 있진 않다"며 "앞으로도 집값이 더 오를거란 기대가 많아 보유세 인상 논의에도 아랑곳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 부동산 투자업계 관계자는 "종부세 인상해봐야 1년에 400만~500만원일텐데 서울 강남권 같은 경우 올해에만 4~5억원씩 오른 곳도 있다"며 "주택가격인상분, 임대소득 등을 상쇄할만한 세금인상이 나오지 않는 이상 다주택자들의 버티기는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앞서 지난해 '8·2 부동산대책'과 '주거복지로드맵'으로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 중과, 임대등록시 세제혜택 등 대책을 연이어 발표했다. 이는 다주택자로 하여금 소유한 주택을 팔든지 아니면 임대등록을 해서 투명하게 임대사업을 하라는 의도였다. 이후에도 다주택자들의 버티기가 계속되자 이번에 보유세 인상 카드를 꺼냈지만 효과는 미미할 것이란 분석이다. 안명숙 우리은행 WM자문센터 부장은 "시장에는 여전히 유동성이 풍부하고 새 아파트를 선호하는 수요도 많다"며 "보유세 인상이 시장에 당장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파원리포트] “아파트나 한 채 사지 뭐”…베트남 투자, 한국인끼리 ‘들썩’ 1.4 kbs
"베트남 쇼핑관광...아파트나 한 채 사지 뭐"
관광에 쇼핑이 빠질 수 없겠지만, 그 쇼핑이 아파트라면 어떨까? 베트남에선 실제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난 2015년 베트남 외국인 투자법이 개정되고 2016년 시행세칙이 개정돼 관광비자를 받아 입국하는 모든 사람에 문호가 열렸다. 우리 기준으로는 아파트값도 싸다. 30평, 그러니까 100㎡ 정도 하는 아파트가 2억 원 안팎이다. 아파트 수준도 기대 이상이다. 법이 바뀌고 처음으로 외국인 구매가 허용된 베트남 하노이의 빈홈가드니아 아파트 내부는 호텔급이다. 단지 내에 수영장도 있다. ㎡당 175만 원에 분양됐다. 현지 부동산 업자는 "한국에선 주로 주부들이 원정을 오는데 한 사람이 구매하고 돌아가면 그 사람 가족들, 친구들이 줄줄이 따라온다"고 말했다. 베이징 한인타운의 랜드마크 ‘소호’…집값이 최근 10년 동안 열 배 이상 뛰었다
베이징 한인타운의 랜드마크 ‘소호’…집값이 최근 10년 동안 열 배 이상 뛰었다
"중국에서 집 사서 재미 본 사람, 못 사서 입맛만 다신 사람"
베트남 아파트 구입에 열성인 사람들은 사실 한국에 거주하는 한국사람보다 중국에 거주 중인 한국사람들이 더 많다. 중국 베이징에 아파트를 샀다가 큰돈을 번 사람들, 그리고 그걸 바라만 보고 있다가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베트남 하노이 투자에 적극적이다.
베이징 내 한인타운 왕징의 경우 지난 10여 년 동안 아파트값이 12배 정도 올라서 이젠 웬만한 재력가가 아니면 사고 싶어도 못산다.
중국에 거주 중인 한국사람들이 베트남 부동산에 눈을 돌리는 이유다. 베이징에선 주말마다 베트남 투자 원정대를 모집하는 설명회가 열리고, 위챗 투자자 단체방에는 실시간으로 최신 정보가 올라온다.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 하노이가 꼭 중국 베이징이 올림픽 하기 직전의 상황 같다고 한다.
베트남 썬샤인 그룹 분양 사무실, 외국인 투자자 대부분은 한국인이다
"수능 마친 손자 손녀에게 아파트 선물을..."
우리나라와 달리 베트남 세법은 납세자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는다. 쉽게 말해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다. 부동산 취득세 보유세 양도소득세, 증여세가 우리와 비교하면 거의 없다고 볼 정도다. 집을 사고 팔 때 값의 2%가 세금이다. 계산 빠른 한국사람들은 투자와 함께 증여와 상속을 한꺼번에 해결하기도 한다. 부동산 업자의 말이다.
"사실은 증여와 상속까지 하는 분들도 많아요. 베트남에선 만 17세 이상이면 부동산 구입할 수 있거든요. 한국에서 손자 손녀에게 대학입시 본 애들 데리고 와서 집 사주고 그래요. 2억짜리 집 사줬는데 10년 뒤에 10억 되고 20억 되면 할아버지가 해외 비자금 하나 만들어주는 거잖아요. 실제로 많이 있어요."
하노이 미딩의 한인타운(좌) / 베트남 한인 부동산업자의 휴대전화(우)하노이 미딩의 한인타운(좌) / 베트남 한인 부동산업자의 휴대전화(우)
"하노이 부동산 들썩? 알고보니 한국 사람들끼리"
한국사람들은 참 빠르다. 너무 빨라서 문제다. 지금 하노이 부동산이 들썩이는 건 알고 보면 한국사람들끼리 만든 현상이다. 이미연 주베트남 한국대사관 경제공사는 "한국분들 스스로가 값을 올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하노이에서 외국인 분양비율 30%에 처음으로 걸린 빈홈그룹의 디캐피탈 아파트의 경우 외국인 투자자의 대다수가 한국인으로 추정된다. 디캐피탈 아파트는 옛 한인타운에 건설 중이다.
기자가 직접 만나본 썬샤인그룹의 분양담당자는 진행중인 썬샤인시티 사전분양에서 한국인들이 2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외국인 투자의 절대다수가 한국인이란 얘기다. 하노이에서 만난 김운석, 박성열 대표 등 부동산 업자들의 휴대전화에는 정말로 수많은 문의 문자가 쇄도하고 있었다. 아직도 오토바이를 많이 타는 베트남 하노이에는 지하철이 이제 막 생기려 하고 있다.아직도 오토바이를 많이 타는 베트남 하노이에는 지하철이 이제 막 생기려 하고 있다.
"베트남 1인당 국민소득 2천 달러...그들만의 리그"
베트남 부동산 가치가 올라가려면 기본적으로 베트남 사람들의 수요가 많아야 한다.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처럼 보인다. 객관적 지표로 보면 우선 1인당 국민소득이 2천 달러 내외다. 3만 달러를 향해 가는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눈높이 차이가 크다는 얘기다. 앞서 언급했던 디캐피탈 아파트는 한국사람들에겐 인기 최고였지만, 정작 베트남 사람들에겐 여전히 미분양 상태다. 한인 타운을 중심으로 한국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아파트들을 중심으로 한국사람들끼리 거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오고 있다.
화려한 베이징 궈마오 전경(좌) 하노이 중심가 출근길 모습(우)화려한 베이징 궈마오 전경(좌) 하노이 중심가 출근길 모습(우)
"베트남, 포스트 중국 될까?"
베트남 당국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6.8%로 추산했다. 높은 경제성장률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저렴한 인건비를 무기로 세계의 공장들이 옮겨오고 있고, 베트남 정부도 시장을 개방하고 자본유치 경쟁, 공기업 민영화 등 중국식 개발 모델을 따라 하고 있다.
인구가 1억 명에 달하고, 특히 젊은이들 비중이 높다. 석유 등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많은 이들이 베트남을 포스트 차이나로 지목하는 이유이며, 베트남 투자 전망이 밝은 이유다. 하지만 어두운 면이 있다는 점을 외면하진 말자. 베트남은 공산당 서기, 총리, 주석, 국회의장으로 권력이 4분돼 있다. 이들이 각각 자신의 혈육과 세력을 모아 엘리트층을 형성하고 있다. 부패가 심하고 행정에 효율이 떨어진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경제 드라이브를 걸지 못하고 있다.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국토에 변변한 고속도로 하나 없을 정도로 인프라가 열악하다. 교육열은 높지만 유교의 잔재가 남아 과학, 기술 쪽 발전이 더디다. 삼성전자 공장이 많이 들어섰지만, 베트남의 인적 자원이나 기술력이 워낙 모자라 베트남 입장에선 자생적 기업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명품 사는 사람 보며 대리 만족하는 2030
"구입한 수천만원 명품 소개 영상, 배고플 때 보는 '먹방'과 같아"
지난해 11월 한 여성이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1570만원 질러왔어요. 명품 하울 같이 뜯어요'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이 여성은 "최근 프랑스에서 구입한 제품들"이라며 150만원대 지갑, 200만원대 핸드백 등 명품 제품 10여 개의 포장을 뜯어 하나씩 소개했다. 현재 이 영상의 조회 수는 126만 건이 넘는다.
고가의 명품 제품을 구입해 소개하는 일명 '명품 하울' 영상이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다. '하울(haul)'이란 '끌어당기다'라는 뜻으로, 하울 영상은 매장에서 쓸어 담듯 구입한 제품의 개봉 과정을 보여주는 비디오를 의미한다. 과거엔 전자기기나 화장품을 다루는 하울 영상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어치 명품 제품을 구입해 소개하는 영상이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대리 만족이 된다' '명품들을 척척 사는 걸 보니 부럽다' 같은 댓글을 달며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다. 대학생 유현주(23)씨는 "명품을 직접 구입하긴 어렵고, 이런 영상을 보면 마치 내가 산 물건을 뜯어보는 기분이 든다"며 "다이어트할 때 먹방(먹는 방송)을 보며 허기를 달래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고급스러운 제품을 보면 힐링이 된다" "요즘 인기 있는 명품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좋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영상을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결국 돈자랑이다' '남들 박탈감 느끼라고 이런 영상 찍느냐' 등 부정적 댓글도 적지 않다. 고강섭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리 만족용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것은 소셜미디어 발달로 소비욕·과시욕이 더 커지고, 이를 어떤 식으로든 충족시키고 싶어 하는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인간은 데이터, IT기업이 ‘신’이 된 세상 경향 1.3
ㆍ빅데이터, 알고리즘, 민주주의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우리는 ‘인간’의 정의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격변기를 살고 있다. 모두 데이터베이스화한 인간이다. 시시각각 온갖 정보를 송수신하는 이 시대의 인간이란 (…) ‘걸어다니는 ATM 기계’나 마찬가지다. 매번 어떤 선택을 할지 뻔하기 때문이다. 빅데이터는 마케팅과 감시가 분리되지 않는 세계, 인간 행위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조정할 수 있는 사회로의 재편을 지향한다.” (임태훈, ‘검색되지 않을 자유’ 중)
모든 것이 정보다. 가장 아날로그적이라 생각했던 내 몸은 발가벗겨져 디지털화된다. 수집되고 분석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데이터 덩어리’에 불과하다. 이 덩어리에 군침을 삼키는 이들 사이에서 우리는 무력하다. 기분이 나쁠 새도 없다. 그 수집된 정보를 통해서만이 사회적 주민성을 획득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내 정보를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정보에 대한 기본권은 다른 기본권들의 전제다. 국가는, 헌법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내 정보가 빅데이터가 되는 사회
내년부터 우리나라에 범죄예측시스템이 도입된다. 경찰청이 시범적으로 운용하는 클루(CLUE·Crime Layout Understanding Ending)다. 기반은 범행이 일어날 만한 상황을 찾아낸다는 알고리즘이다. 이를 위해 경찰은 각종 데이터들을 결합하고 있다.
범죄기록 이외에도 지역별 부동산 가격, 업종별 사업체 정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명단 등이 동원된다. 범죄 데이터와 상관성을 갖는 다른 데이터의 패턴을 찾고 있다. 이렇게 해서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시간과 장소가 찾아지면 지도에 표시하고 검증에 들어간다.
경찰청 범죄예측시스템은 어떻게 운용될까. 2009년 미국 시카고 경찰청은 빅데이터를 분석해 강력 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높은 400명의 명단을 작성하고 살인 사건에 연루될 가능성에 따라 순위까지 매겼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13년. 22세의 고교 중퇴자 로버트 맥대니얼의 집에 경찰이 방문했다. 경찰은 그에게 예의주시하고 있으니 행동을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맥대니얼은 총기류 관련 전과도 없었고 강력 범죄 혐의로 기소된 적도 없었다. 위험하기로 악명 높은 웨스트사이드 지역의 오스틴에 살았을 뿐이다. <대량살상 수학무기>의 저자 캐시 오닐이 소개한 이 사례는 ‘자신의 행동’ 때문이 아니라 ‘데이터’ 때문에 위험인물이 된 사례다.
시카고 경찰은 400명의 잠재적 강력 범죄자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경고했을 뿐 체포하지는 않았다. 한국은 어떻게 될까. 경찰은 클루가 특정 개인의 신상 정보를 이용하지 않기에 개인정보 침해는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공시지가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 같은 데이터로 특정 지역이 ‘범죄 소굴’로 지목된다면 어떻게 될까. 미국은 피부색과 소득 수준으로 지역이 갈린다. 한국은 어떤가. 경찰 관계자는 “범죄 정보의 데이터화는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혼부부 5만가구의 부채와 신용등급을 분석한 자료를 정부가 공개했다. 민간의 빅데이터를 활용한 첫 사례라고 2016년 통계청은 홍보했다. 정부는 남편과 아내의 신용등급을 결합했다. 민법이 정한 부부별산제 원칙을 위협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부부라고 해도 혼인 전부터 가졌던 재산, 혼인 중에도 자기 명의로 얻은 재산은 각자의 재산이다. 통계청은 인구주택총조사에서 확보한 같은 주소지의 부부 명단에 신용평가회사의 등급을 혼합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 이 결과 남편과 아내의 신용등급이 모두 1~2등급인 신혼부부의 비중이 14.8%였다.
통계청은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부부의 신용등급이 모두 높으면 추가 대출도 가능해지지 않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배우자가 9등급이면 어떻게 될까. 지금까지는 배우자 신용등급이 금융권의 대출심사 기준이 아니었다. 더구나 신용평가회사가 가구정보를 확보하면 정부와 같은 데이터를 갖게 된다. 통계청은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면서도 “개인 데이터가 아니라 평균 데이터를 신용평가회사에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인을 알아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익을 늘리는 것과 손실을 줄이는 것은 같은 말이며, 이익은 사기업의 유일한 목표다.
■ 인권보다 경제 논리 앞세운 정부
기업과 정부는 개인이 드러나지 않는 비식별화(非識別化·de-Identification)를 거친 데이터를 쓴다고 설명한다. “이름, 주민번호, 계좌번호, 주소지 같은 것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금융회사 관계자는 말했다. 비식별화 정보를 이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서 평일 오후 가장 많이 (신용카드를) 사용한 집단은 30대 남성으로 월평균 약 37만원, 같은 조건에서 시간을 오후 6시대로 좁히면 20대 남성으로 바뀌고 지출액은 약 35만원, 이런 식이다.”
다른 예로 ‘어느 보험회사의 고객정보’에서 개인정보가 드러나는 이름, 주민등록번호는 모자이크 처리를 하고 결제내역만 보관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정보와 대조하거나 결합하면 개인이 특정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임아영’이라는 사람의 카드결제 정보와 통신사 가입·이용 정보 등을 묶으면 당사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데이터는 범위가 좁을수록, 최종적으로 개인에 근접할수록 힘이 커진다. 더구나 비식별 조치는 개별 기업이 자율적으로 하게 돼 있다.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은 2016년 박근혜 정부가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위해 만들었다. 비식별 조치는 기업들의 고객 정보 공유 허용이 골자다. 개인정보를 가명화·익명화·범주화하면 개인정보가 아닌 것으로 보고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도 활용·유통할 수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을 우회해 개인정보를 유통할 수 있는 길을 정부가 터줬다는 지적을 받는다.
비식별화 가이드라인은 2013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만든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제언’이라는 정책 건의를 반영한 것이다. 건의에서 전경련은 “개인정보보호법이 모호한 부분이 있어 사업자가 활용하기 어려우니 빅데이터 사업자가 현행법 안에서 활용할 실무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전경련의 제안을 받은) 박근혜 정부가 개인정보보호법을 우회하기 위해 이런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 같다”며 “국가가 기업의 논리에만 주목해 개인정보를 활용하도록 해준 셈 아니냐”고 했다.
공공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가입자 6420만명(연인원)의 성별·나이·진료 내역 등 데이터를 민간보험사에 팔았다. 2014~2016년 정보다. 이 데이터를 구입한 KB생명보험, 현대라이프생명 등은 위험률 개발 같은 추상적인 이유를 댔다. 하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제3자의 권리를 현저하게 침해한다며 외부에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거부했다. 결국 별다른 기준이 없었던 셈이고, 보건복지부가 ‘보건의료 빅데이터 사용 가이드라인’을 다시 만들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국인터넷진흥원, 정보통신산업진흥원, 금융보안원, 한국신용정보원 등이 ‘비식별 가이드라인’ 도입 이후 3억4000만여건의 개인정보 결합물을 기업에 제공한 사실이 밝혀졌다. 삼성생명과 삼성카드는 2017년 두 회사에 동시에 가입된 240만여 고객의 정보를 13회 결합했다. 가입건수·보험료·가입기간·가입상품 및 카드이용 정보 등이다. SK텔레콤과 한화생명도 동시 가입된 약 218만명의 데이터를 결합했다. 이를 통해 한화생명은 직업·신용대출건수·총신용대출금액·최근신용등급 등 항목을 내놓고, SK텔레콤은 통신료 연체금액·멤버십 사용금액·통신료 미납횟수 등을 내놓아 서로 나눠 가졌다.
데이터를 결합하면서 새로운 정보가 생성됐다. 통신료를 연체하면 신용대출과 보험료 납입 연체율도 평균 연체율 수준을 상회했고, 과거에 보험료 미납으로 해지 경험 등이 많을수록 통신요금 연체도 높은 경향성을 보였다. 약관대출을 받은 고객의 통신요금 연체발생률도 높았다. 두 회사는 금융거래 정보가 없는 이들에 대한 신용평가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금융거래 내역이 없어도 통신사 연체기록을 활용해서 신용도를 평가하는 것이다.
■ 빅데이터에 목매는 기업
국내외 대기업은 우리의 통화기록, 결제내역, 위치정보, 검색기록, 페이스북 등에서 데이터를 확보해 이익을 내고 있다. 거실 벽에 걸린 인터넷TV(IPTV)는 내가 좋아하는 로맨스 영화의 신작을 추천하고, 신용카드사는 내 단골식당 옆에 개업한 체인점 할인쿠폰을 보낸다. 데이터가 기업의 운명을 좌우한다.
페이스북은 이미 2014년 모바일 메신저 업체 왓츠앱을 190억달러(약 20조원)에 인수했다. 왓츠앱 이용자는 당시 4억5000만명, 이용자 1명 정보를 42.2달러(약 4만5000원)에 구입한 셈이다.
기업들로서도 빅데이터로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두려움에 데이터 축적에 사활을 건다. 정부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뒤처지면 안된다는 말을 반복한다. “중국에서는 빅데이터를 결합해 국내에서 낼 수 없는 융·복합 상품을 많이 내고 있다. 데이터를 활용하지 못하면 당장 몇 년 뒤 상황도 장담하기 어렵다”고 요즘 대기업 관계자들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정부도 제조·유통업체가 공동 활용 가능한 빅데이터 구축 등 4차 산업 관련 기술개발에 향후 5년간 15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들의 생활은 지구적 플랫폼에 의존하고 있다. 구글 지도와 네이버 쇼핑이 없이는 적잖은 불편을 느낀다. 이러는 사이 조만간 개별 국가들보다 글로벌 인터넷 기업의 힘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들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남겨놓은 내 흔적을 통해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안다. 세계 최대 인터넷데이터센터(IDC)인 구글 IDC에는 어떤 정보가 있을까. 한국판 구글이라는 네이버 IDC센터에는 어떤 데이터가 쌓이고 있을까. 개인은 이미 기업들의 데이터 축적 깊이를 가늠도 못하는 시대가 됐다.
정부는 민간 기업의 데이터 활용을 규제하기보다는 돕는 쪽을 선택해왔다. 장여경 활동가는 “빅데이터 활용 자체를 막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서울시가 KT 데이터를 이용해 버스노선을 만든 정도는 공익을 위한 것이지만 기업의 이익을 위해 내 개인정보를 내줘야 하는 문제는 다르다”고 말했다.
앞서 나온 사례에서 한화생명은 데이터 결합 목적을 ‘중금리 대출 대상 확장 가능성 검증’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개인의 정보를 상품화하는 기업을 통제하는 데 무심하다.
구글 직원이 데이터센터 내 중앙처리장치(CPU)를 검사하고 있다. 구글 데이터센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이용자들의 정보를 기록해 축적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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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소불위 글로벌 IT기업
글로벌 IT기업들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협하고 있다. 구글이 가입자 개인정보를 정보기관에 제공한다고 폭로된 것이 이미 2013년이다. 미국국가안전보장국(NSA) 출신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 정보기관이 인터넷과 통신을 감시해왔다”고 공개했다. 당시 구글이 사용자의 개인메일을 봐온 사실도 밝혀졌고, 이에 2014년 서비스 약관을 바꿔 이용자의 e메일을 분석한다고 공개하고 있다.
구글은 최근에도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쓰는 우리나라 이용자의 위치정보를 미국 본사로 전송한 사실이 드러났다. 현행 위치정보법에 따라 형사처벌이 가능하지만 기본적으로 구글은 본사가 외국에 있어 수사에 어려움이 있다. 과거에도 구글이 사진지도서비스 ‘스트리트 뷰’를 만들면서 시민 수십만명의 통신정보를 무단 수집해 검찰이 수사를 벌였지만 2012년 기소중지로 끝냈다. 대신 방송통신위원회가 2014년 과징금을 부과했다. 정보통신법에 따라 위반 행위 관련 과징금은 매출액의 3%까지 가능하지만 방통위는 불과 2억1000만원으로 정했다.
시민단체 활동가 6명은 2014년 구글 본사와 구글 코리아가 수집·보유하고 있는 개인정보 및 서비스 이용내역을 제3자에게 제공한 현황을 공개하라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다. ‘열람권’을 보장하라는 소송이다.
구글은 본사가 미국에 있고 국내 법인인 구글 코리아는 국내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하고 있지 않다며 이용자들의 열람권 청구를 거부해왔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해 3월 구글 본사는 이용자가 열람하고자 하는 개인정보 및 이용내역을 공개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구글이 글로벌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국내법이 보장하는 이용자 개인정보 보호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는 의미다.
소송을 담당한 양홍석 변호사(참여연대 공익법센터장)는 “스마트폰에서 GPS를 꺼놔도 구글이 위치정보를 가져갈 수 있다는 건 구글의 정보 수집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례다. 이번 판결은 구글이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열람권을 보장하라고 명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들에게 ‘정보 결정권’을 허하라
열람권 보장 요구는 이제 시작이다. 유엔 인권이사회(UNHRC)는 지난해 디지털 시대 프라이버시권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이 가진 것과 같은 권리가 온라인에서도 보호돼야 한다. 기업들에 개인정보의 수집, 이용, 공유, 보관 정보를 이용자에게 제공하고, 이와 관련한 투명성과 정책 수립을 요청한다”고 했다. 정보인권연구소 이은우 이사는 “구글은 자신들의 방향이 모두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결국은 광고비를 내는 순서에 따라 정보가 제공될 수밖에 없다”면서 “오랜 역사를 통해 쌓아온 민주주의 질서가 자칫 글로벌 인터넷 기업의 힘으로 뒤바뀔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지구적 플랫폼이 내 정보를 축적하고 있다. 개인들은 기업에 대항하기 어려운 시대다. 개인정보를 축적한 기업은 사람들의 취향을 이끌어갈 수도 있다. 취향은 상품 소비에 그치지 않고 정치 판단으로 이어진다. 김보라미 변호사(법무법인 나눔)는 “민주사회 원리를 깨는 시작이 될 수 있다”며 “개인정보에 대한 통제를 완화할지는 산업적·사회적·정치적 측면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21세기에는 정보가 자유·경제·문화·정치의 바탕이 되고, 정보인권이 다른 모든 인권의 전제가 된다는 것이다.
■ 정보인권 조항 전무한 헌법
인터넷이 상용화되기 전인 1988년 시행된 현행 헌법에는 정보인권 조항이 없다. 헌법에서 기본권으로 인정하지 않다 보니 정보인권 확보는 둘째치고 개인에 대한 정보인권 침해조차 고쳐지지 않았다. 그러다 2005년 헌법재판소가 정보인권의 초보적 단계인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이라는 기본권을 선언했다. 하지만 1983년 독일연방 헌법재판소 결정을 비롯해 외국의 사례 등을 참조해 이론적으로 도출한 기본권이어서인지 지금까지도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당장 이 기본권이 처음 언급된 2005년 지문날인 사건조차 결론은 기각이었다.
당시 헌재는 전 국민에게 열 손가락 회전지문과 평면지문을 날인하도록 강제하고 수집된 지문정보를 경찰청장이 보관·전산화하는 것은 합헌이라고 했다. 이에 검사 출신인 송인준·주선회 재판관 등 3명이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은 “수사상 목적을 위한 경우라도 범죄 전력이 있는 자나 성향을 가진 자의 지문정보를 수집·보관하고 이를 후일 수사에 활용할 수 있을 것임에도, 그런 전력이 없는 모든 일반 국민의 열 손가락의 지문 일체를 보관·전산화하고 있다가 어떠한 제한도 없이 일반적인 범죄수사 목적 등에 활용하는 것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침해”라고 했다.
가장 치열한 정보인권 헌법소송은 2010년에 있었다. 빚을 갚지 않은 사람의 명부를 만들어 무제한 열람을 가능하게 한 민사집행법 사건이다. 민사집행법에 따라 채무자가 빚을 갚지 않으면 채권자가 법원에 신청해 채무불이행자 명부라는 일종의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수 있고, 누구나 열람·복사할 수 있다. 여기에 오른 채무자들이 민사집행법이 인권을 침해한다면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들은 적당한 헌법 조항을 찾지 못해, 10조 인간의 존엄 및 행복추구권, 17조 사생활 비밀보장권을 근거로 들었다.
위헌의견을 낸 이강국 헌재소장 등은 명부 열람·복사의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전면적인 공개는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했다. 위헌의견 재판관들은 “열람·복사 신청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아니하고 누구나 채무불이행자 명부를 열람·복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은 채무자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침해”라고 했다. 반면 합헌의견을 낸 이동흡 재판관 등은 돈을 갚게 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이들은 “이 명부에 등재됨으로 인하여 받게 될 불이익을 피하기 위하여 채무의 자진이행에 노력하도록 하는 등 효과가 있다”고 했다. 위헌의견이 5명이었지만 위헌정족수에 1명 모자라 결론은 합헌이 됐다. 헌재에는 이후에도 대체로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에 소극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 정보인권은 모든 기본권의 전제
국가인권위원회는 2013년 정보인권보고서를 내고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은 2세대 프라이버시권이라고 했다. 인권위는 “타인이 자신의 개인정보를 수집·이용·제공하는 경우 정보 처리과정에 참여하는 권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열람청구권, 정정청구권, 처리거부청구권 등을 포함한다. 외국은 더 나아가 있다. 유럽연합(EU)은 올해부터 알고리즘에 대한 포괄적 규제에 나선다. 2016년 개인정보 수집, 저장, 사용을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개인정보보호규정(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을 발표했다. EU는 GDPR에서 개인정보를 사용하는 모든 형태의 자동화된 개인정보 처리(프로파일링)에도 거절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했다. EU는 “알고리즘이 사회적 배제와 계층화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구직, 대출, 보험 등에서 불리한 입장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개인정보 수집·처리에서 최소한의 개인정보만 다루라는 정보회피(Datenvermeidung)와 최소정보(Datensparsamkeit) 원칙을 연방정보보호법 등에서 밝히고 있다. 김중길 영남대 법학연구소 연구교수는 “빅데이터는 이 원칙과 전적으로 충돌한다. 빅데이터는 특정 영역에 한하여 일반적인 업무 차원에서 해당 정보만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최초의 처리 맥락에서 벗어나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다른 다양한 정보와의 맥락을 처리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고, 분석하고, 이용하는 것에 의해 유지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근본적으로 빅데이터의 위험성을 규제하려는 게 유럽의 움직임이란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국회 헌법개정 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는 개헌안에 정보인권 조항을 신설했다. 지금도 헌재의 해석으로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은 인정되지만, 소극적 개인정보 보호는 물론 개인정보 열람·정정·삭제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설 정보인권 조항 2항에 ‘모든 사람은 자신의 정보에 관한 결정권을 가진다’를, 4항에 ‘국가는 개인별·지역별 정보격차를 해소하고 정보독점으로 인한 폐해를 예방 및 시정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넣자고 했다. 국회 개헌특위 관계자는 “일부 기관이나 기업이 정보를 독점하고 유통·활용해서는 곤란하다는 여론을 수렴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헌재가 2005년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면서 참조한 1983년 독일 헌재 판결에 이런 구절이 있다. “개인정보 파일이 문서로 보관되던 시대를 지나 자동화된 데이터 처리 기술로 인해 개인정보가 보관 기간의 제약 없이 저장되며, 지리적 거리와 상관없이 언제든 원하는 순간에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통합정보 처리 기술로 자신의 정보가 담긴 데이터베이스가 다른 데이터베이스와 통합되어 처리되고 활용됨에 따라 2차적으로 가공된 결과물에 대해서는 관련 당사자가 그 존재 여부를 알 수 없고, 정보의 삭제와 수정에 대한 권리도 행사할 수 없는 위험이 발생할 것이다. 미래에는 더욱 특별한 정보보호 장치가 필요하다.” 미래는 이미 도착해 있다.
‘비정규직 제로 시대’ 선언의 역설 1.4 시사저널
반발 수위 높이는 노동계 “자의적 해석으로 정규직 전환 제외 속출”
“저는 임기 중에 비정규직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우선 공공부문에서 임기 내에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 (중략) 납득할 만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엔 전부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삼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직후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다.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을 없애 민간까지 정규직 전환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였다. 외환위기 이후 고용불안과 저임금, 차별적인 처우에 시달리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통령의 한마디로 기대감에 부풀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12일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곳곳에서 잡음이 발생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정부와 노동계의 엇갈린 시선
하지만 너무 서둘렀던 것일까. 이상과 꿈은 컸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다. 7개월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공공부문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정규직 일자리는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다. 정부의 태도도 사뭇 달라졌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뒤늦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모든 비정규직을 없애겠다는 것이 처음부터 아니었다”고 한 발 뺐다. 고용노동부는 “상시·지속적 업무 종사자 외의 비정규직은 정규직 전환 대상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와 노동계의 시선은 엇갈리고 있다. 형식적으로 만들어진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를 두고 ‘해고 심의위원회’라는 말까지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2017년 7월20일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고용부에 따르면, 공공부문 852개 기관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31만여 명(기간제 19만1000명, 파견·용역 12만1000명)이다. 10월28일엔 공공부문 연차별 전환계획을 발표하고 2020년까지 상시·지속적 업무에 종사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20만5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2017년 말까지 7만4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목표치 달성은 불투명해졌다. 11월27일 기준 정규직으로 전환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는 기간제 1만5652명(143곳), 파견·용역 2580명 등 1만8232명에 불과했다. 2017년 목표 달성률은 기간제 30.7%, 파견·용역 11.2%에 그친다.
그런데도 고용부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고용부는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가 89% 기관에서 구성됐다”며 “지방자치단체와 일부 공공기관에서 갈등이 표출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전체 전환 대상 기관 835곳 가운데 743개 기관에서 전환 심의위 구성이 완료됐다. 파견·용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노·사·전문가협의회도 190개 기관에 설치됐다.
하지만 곳곳에서 꼼수가 발생하고 있다. 정규직 전환 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인 ‘상시·지속적 업무’에 대한 해석이 임의적으로 이뤄지고 있어서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전환 심의위원회도 거치지 않은 채 연구직 2048명 중 1095명을 한꺼번에 ‘일시·간헐적 업무’로 구분해 버렸다. 대한석탄공사는 산업 수요 변화를 이유로 굴진·채탄·발파·운반·선로보수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 1109명을 전환 대상에서 제외했다. 한국가스기술공사는 설계직종을 정규직 전환 예외로 분류하면서 프로젝트성 사업, 고도의 전문직, 일시적·간헐적 업무라는 이유를 들었다.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설계직종은 반복적인 프로젝트 사업에 해당하고, 고도의 전문직도 아니다”며 “재심의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2017년 9월11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교육부 정규직 전환 심의위 결정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 사진=연합뉴스
‘해고 심의위’ 된 정규직 전환 심의위
인천공항공사는 파리바게뜨의 사례처럼 자회사를 만들어 비정규직들을 흡수하려고 하다가 홍역을 치렀다. 인천공항공사가 연구용역을 맡긴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은 854명을 공사가 직접 고용하고 8984명을 자회사에서 고용하는 최종안을 제시했다. 반면 다른 연구용역 업체인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4504명을 직고용, 3589명을 자회사 고용으로 할 것을 권고했다. 결국 3000명을 직접 고용하고, 나머지 7000명은 자회사에서 고용하는 방식으로 정리됐다. 정부의 정규직화 가이드라인 중 ‘생명·안전 업무’를 어디까지 볼지에 대한 해석에 차이가 생긴 탓이다.
서울시에선 상시·지속 업무를 9개월 이상 계약하면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이 되기 때문에 8개월20일을 계약 기간으로 정하는 꼼수까지 등장했다. 서울시 산하기관인 서울대공원, 중부·동부·서부공원녹지사업소, 서북병원, 서울로운영단 등은 2012년 9개월 단위로 채용하던 기간제 노동자들을 2013년부터 현재까지 8개월20일 단위로 계약했다. 문 대통령에 앞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기간제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라는 지침을 내렸기 때문이다. 정규직 전환 논의가 완료되기 전 기간만료를 이유로 해고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의 운영 방식과 결정 내용에 대해서도 잡음이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17개 시·도 교육청의 정규직 전환 심의위는 학교 비정규직 8만여 명의 정규직 전환 여부를 심의한다. 현재까지 8000여 명은 정규직 전환자로 결정됐고, 2만5000여 명은 전환 제외 직종으로 분류됐다. 정규직 전환 대상자보다 제외 대상자가 4배에 달하는 셈이다. 초단시간 돌봄 전담사, 도서관 개관연장 실무원·학습 상담사, 운동부 지도자 등을 전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일부 교육청은 심의위가 정규직 전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할 경우 계약기간 만료 시점에서 계약을 종료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사실상 ‘해고 심의위’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학교비정규직노조가 집계한 시·도 교육청별 정규직 전환 심의위 현황에 따르면, 울산·대구를 제외한 15개 교육청에서 심의위 회의를 2~5회 진행했다. 울산시와 대구시 교육청은 심의위가 종료됐다. 대구시교육청의 경우 심의 대상 4276명 가운데 78%에 달하는 3364명을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대구 지역의 한 학교에서 2009년부터 사서로 근무한 A씨는 매년 실무원·보조원·업무보조원 등 명칭만 바꿔가며 일했다. 그는 “10년 동안 일했는데 지금 와서 한시 사업이라는 이유로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했다”며 “사서 자격증까지 보유하고 있는데 보조 업무, 한시적 업무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노동계에선 정규직 전환 심의위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는 “정규직 전환 심의위가 비민주적으로 밀실에서 심의를 하고 있다”며 “심의 대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겠다는 결정이 속출해 비정규직 집단 해고가 예상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안명자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장은 “어떤 직종이 어떤 방향으로 심의되는지 전혀 알 수 없고, 심의위원조차 당일 교육청이 준비한 자료를 받아 그 자리에서 전환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며 “전환 심의위 구성부터 전면 재조정해 직종별 고용안정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2017년 12월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 관계자들이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성과급제 폐지 등을 주장하며 파업 출정식을 가졌다. © 사진=연합뉴스
노무현 정부의 트라우마, 文 정부는 다를까
각 시·도 교육청은 전환 심의위 논의 과정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비공개 회의를 원칙으로 심의위원들에게 비밀유지서약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회의자료 사진 촬영과 메모도 금지했다. 노조는 “교육청별 심의위원 10여 명 가운데 노조 추천 인사가 20~30%에 불과해 당사자 입장을 대변하는 위원들이 소수”라며 “비정규 노동자들은 정확한 결정 과정을 모른 채 불안에 떨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공운수노조는 “많은 기관이 노골적으로 정규직 전환 추진을 지연하고 임의적인 지침 해석으로 상시·지속 업무 여부를 판단하는 등 정규직 전환을 최소화하려는 꼼수 행태를 보였다”며 “정규직 전환 최소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중앙정부 차원에서 감독하라”고 촉구했다.
현재 집권여당에는 과거 참여정부 초기 노동계의 극심한 저항으로 국정 운영에 제동이 걸린 선례가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참여정부 출범 첫해 철도 파업과 화물연대 파업이 발생해 노동계와 갈등을 빚었다. 일자리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비정규직 보호법을 만들었지만,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위안부’ 피해자 손 꼭 잡은 문재인 대통령 “할머니 뜻에 어긋난 합의, 대통령으로서 사과”
피해 할머니들 “합의 잘못됐다는 소식 듣고 펑펑 울어…소원은 사죄 받는 것”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중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를 병문안 하고 있다.ⓒ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은 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나 박근혜 정부 당시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를 한 데 대해 “대통령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길원옥·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 할머니 8명을 비롯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공동대표와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 지은희 이사장, ‘위안부’ 피해자의 쉼터인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과 함께 오찬 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말했다. 이번 간담회는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TF(태스크포스)의 조사 결과 박근혜 정부가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이면합의를 했던 것으로 드러난 데 따른 후속조치의 일환이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TF의 발표 후 “정부는 피해자 중심 해결과 국민이 함께하는 외교라는 원칙 아래 빠른 시일 안에 후속조치를 마련하라”고 주문했고, 이를 위해 피해자 의견수렴에 우선 나서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과거 나라를 잃었을 때 국민을 지켜드리지 못했고, 할머니들께서도 모진 고통을 당하셨는데 해방으로 나라를 찾았으면 할머니들의 아픔을 보듬어 드리고, 한도 풀어드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오히려 할머니들의 의견도 듣지 않고, 할머니들의 뜻에 어긋나는 합의를 한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합의는 진실과 정의의 원칙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정부가 할머니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한 내용과 절차가 모두 잘못된 것”이라며 “대통령으로서 지난 합의가 양국 간의 공식합의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으나, 그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천명했다. 문 대통령은 “할머니들을 전체적으로 청와대에 모시는 게 꿈이었는데, 오늘 드디어 한 자리에 모시게 돼 기쁘다. 국가가 도리를 다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봐주시기 바란다”며 “오늘 할머니들이 편하게 여러 말씀을 주시면 정부 방침을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이용수 할머니는 “2015년 12월 28일 합의 이후 매일 체한 것처럼 답답하고 한스러웠다. 그런데 대통령이 이 합의가 잘못됐다는 것을 조목조목 밝혀줘 가슴이 후련하고 고마워서 그날 펑펑 울었다”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식사과, 법적 배상을 26년이나 외쳐왔고, 꼭 싸워서 해결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이 할머니는 이어 “대통령이 여러 가지로 애쓰시는데 부담 드리는 것 같지만, 이 문제는 해결해 줘야 한다”며 “(일본이)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하는데, 소녀상이 무서우면 사죄를 하면 된다. 국민이 피해자 가족이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면 세계평화가 이루어진다”고 강조했다.
이옥선 할머니도 “우리가 모두 90세가 넘어 큰 희망은 없지만, 해방 이후 73년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도 (일본이) 사죄를 하지 않는다. 어린 아이를 끌어다 총질, 칼질, 매질하고 죽게까지 해놓고, 지금 와서 하지 않았다 게 말이 되나”라고 분통을 터뜨리며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사죄만 받게 해달라. 대통령과 정부를 믿는다”고 당부했다. 또 다른 이옥선 할머니는 “우리의 소원은 사죄를 받는 것이다. 사죄를 못 받을까봐 매일 매일이 걱정”이라며 “대통령이 사죄를 받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13세에 일본군에 끌려가 아직도 평양에 있는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길원옥 할머니는 인사말 대신 가요 ‘한 많은 대동강’을 불렀고, 작년에 발매한 음반 ‘길원옥의 평화’를 문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오찬이 끝난 후 김정숙 여사는 할머니들에게 일일이 목도리를 직접 매주었다. 할머니들에게 선물한 목도리는 아시아 빈곤여성들이 생산한 친환경 의류와 생활용품을 공정한 가격에 거래해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국내 최초의 공정무역 패션 브랜드 제품이라고 청와대는 전했다. 이에 앞서 문 대통령은 병원에 입원한 관계로 이날 오찬 간담회에 참석하지 못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평화 운동가인 김복동 할머니를 직접 병문안하기도 했다. 김 할머니는 현재 식사도 못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오늘 할머니들의 말씀을 듣기 위해 청와대에 모셨는데, 할머니들이 건강하셔서 싸워주셔야 한다”며 “할머니이 쾌유하셔서 건강해지시고, 후세 교육과 정의와 진실을 위해 함께 해 주시기를 바라는 국민들이 많다”고 힘을 보탰다. 또 문 대통령은 “할머니들이 바라시는 대로 다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정부가 최선을 다할테니, 마음을 편히 가지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에 김 할머니는 “총알이 쏟아지는 곳에서도 살아났는데 이까짓 것을 이기지 못하겠는가”라며 “일본의 위로금을 돌려보내주어야 한다. (일본이) 법적 사죄와 배상을 하면 되는 일이다. 그래야 우리가 일하기 쉽다”라고 강조했다.
김 할머니는 “그래도 이 복잡한 시기에 어려운 일이고 우리가 정부를 믿고 기다려야 하는데, 우리도 나이가 많으니 대통령이 이 문제가 해결되도록 힘을 써달라. 내가 이렇게 누워있으니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당부했다.
또한 김 할머니는 위안부TF 조사 결과와 이후 문 대통령의 메시지 발표에 대해 “문 대통령은 다르다. 역시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한다”고 관계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1.4 민중
위안부합의 무효화 요구 1.4 국민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은 28일 오후 통영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정부는 2015한일 위안부합의 무효화를 선언하라”고 요구했다.
시민단체 출신은 모두 호봉 오른다? 팩트체크 해보니 1.5 미디어오늘
인사혁신처 “시민단체 호봉경력 인정요건 개선” 발표 … 한국당‧조선일보 반발, 사실과 다른 주장 논란
4일 인사혁신처에서 공무원보수규정 개정을 발표한 가운데 ‘시민단체에서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힘쓴 경력도 공직에서 폭넓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호봉 경력 인정 요건을 개선’하겠다고 하자 자유한국당과 일부 언론이 반발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5일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관련 사안에 대한 지적을 몇 차례 반복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권이 드디어 시민단체 공화국을 만들겠다고 공무원보수규정을 개정했다”며 “경악을 금치 못하는 이번 개정에 대해 행정안정위원회 전체 회의를 소집해 면밀히 따지겠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도 5일 ‘시민단체 경력까지 공무원 호봉 반영’ 기사에서 해당 규정을 문제 삼았다. 자유한국당과 조선일보 주장은 타당한 것일까. 미디어오늘이 5일 오전 인사혁신처에 직접 확인했다.
▲ 4일 인사혁신처의 보도자료.
1. 아무 관련 없는 시민단체여도 경력이 인정된다?
“보수규정 개정안을 보면 인사혁신처는 업무 관련성과 상관없이 시민사회단체 경력을 호봉으로 인정하겠다고 했다. 국민 혈세가 세는 것.”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이와 관련해 인사혁신처는 5일 미디어오늘에 “전혀 상관없는 시민단체 경력을 인정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라며 “기존에는 시민단체 경력을 경력으로 인정할 때 완전히 동일한 분야에만 인정했고, 인정을 위해 자격증이나 박사학위를 취득하느냐 등 아주 제한적으로 인정해왔다. 그런데 그 부분의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인사혁신처 측은 “업무 관련성에 대해서는 심의위원회에서 심의를 한 후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시민단체 경력이 호봉으로 인정되려면, 행정안전부에 등록된 ‘비영리 민간단체’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업의 직접 수혜자가 불특정 다수일 것 △구성원 상호간에 이익분배를 하지 않을 것 △ 사실상 특정정당 또는 선출직 후보를 지지·지원 또는 반대할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거나, 특정 종교의 교리전파를 주된 목적으로 설립·운영되지 아니할 것 △상시 구성원 수가 100인 이상일 것 △최근 1년 이상 공익활동 실적이 있을 것 △법인이 아닌 단체일 경우에는 대표자 또는 관리인이 있을 것 등의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조선일보는 이런 요건을 기사에 담지 않고 “일부 공시생들은 ‘아무 시민단체나 들어가서 활동하기만 하면 공무원 호봉 혜택을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 5일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
2. 여성가족부 공무원들 대거 혜택 본다고?
조선일보는 “여성가족부 공무원들 경우, 출범 당시 주로 여성 관련 시민단체 출신으로 충원돼 호봉이 대거 올라갈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여성 시민단체 역시 행정안정부에 등록된 비영리 민간단체여야 하며, 상시 활동가 100명 이상의 시민단체여야 호봉인정이 가능하다.
인사혁신처 측은 “여성단체 중 상시인원 100명 이상의 시민단체가 얼마 있을지는 알 수 없는데, 인상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3. 문재인 정부 의식해 요건 바꾼 것?
“이렇게 되면 일반 공무원뿐 아니라 청와대 행정관, 장관 정책보좌관들도 시민단체 경력이 있으면 혜택을 받게 된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내각에 시민단체 출신이 대거 입성한 것이 정부의 정책 변경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조선일보)
인사혁신처는 “공직에 경력 채용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이번 정부뿐 아니라, 이전 정부에서도 지속적으로 본인의 경력을 인정해달라는 요구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인사혁신처 측은 “시민단체 경력이 인정되려면 본인이 따로 신청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한 심의가 따로 진행되기에 현재로서는 몇 명이 적용대상이 될 것인지 추산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4. 헌법에 위배된다?
자유한국당은 5일 원내대표회의에서 “시민단체 호봉 인정은 공무원법 근간을 뒤흔들고, 헌법에 위반된다”며 “참여연대나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인모임)이나 민주노총 인사들을 공무원으로 임용하고 있고, 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법을 어떻게 위반하는 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미 행정안전부에 등록된 ‘비영리 민간단체’ 요건 중 ‘특정정당 또는 선출직 후보를 지지·지원 또는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항이 있기에, 직접적으로 정당과 관련 있는 시민단체는 호봉 인정 요건이 되지 않는다. 인사혁신처 측은 “자유한국당이 주장하는 헌법은 ‘정치적 자유’라든지 ‘정치적 중립성’을 말하는 것 같은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복지 선심' 부메랑… 5대 보험료 줄줄이 인상 1.4 조선
당장 이달부터 건보료 인상, 고용보험료는 5년만에 내년 인상
20년간 묶였던 국민연금 보험료도 상반기 중에 올리는 방안 추진
월급 400만원 받는 직장인 年보험료 444만원… 40만원 늘어
정부의 복지 확대 정책에 따라 국민과 기업들이 부담하는 5대 보험료가 올해부터 줄줄이 인상된다. 5년 만에 최대 폭으로 올린 건강보험료와 8년 만에 인상된 장기요양보험료가 당장 이달부터 적용되고, 4년간 동결됐던 산재보험료도 올해 인상됐다. 여기에 정부는 내년부터 고용보험료를 5년 만에 올리는 방안을 최근 입법 예고했고, 20년간 묶여 있던 국민연금 보험료도 올 상반기 중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처럼 5대 보험료가 연쇄적으로 인상되는 것은 유례가 드문 일이다.
◇5대 보험료 잇따라 인상
3일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건보료는 올 1월부터 작년보다 2.04%, 치매 등 노인을 돌보는 장기요양보험료는 12.7% 인상됐다. 정부는 직장인들의 건보료가 월평균 2000원가량 오를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임금 상승분까지 감안하면 실제로는 4000원 넘게 올라간다. 올해 월급이 작년(400만원)보다 3% 인상된 직장인 김모씨의 경우 건보료와 장기요양보험료가 월 26만2000원(사업주 부담금 포함)에서 올해 27만6040원으로 월 1만4040원(5.4%)을 더 내야 한다.
정부는 건보료 인상률을 올해보다 더 높여(3.2%) 내년부터 적용하겠다는 방침이어서 국민 부담은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국민 의료비 부담을 덜겠다는 명목으로 건보 적용이 안 되는 비급여 항목 3800여 개를 단계적으로 건보에서 지원하는 '문재인 케어' 시행을 위해 건보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게 정부 논리다. 산재보험(회사가 전액 부담)도 이달부터 월급의 1.7%(전 업종 평균)에서 1.8%로 올라 기업 부담이 커졌다.
고용부는 또 내년 1월부터는 고용보험료를 월 소득의 1.3%에서 1.6%로 23% 올리겠다고 지난달 입법 예고했다. 실업급여 지급액과 수급 기간을 늘리겠다는 대선 공약에 따른 것으로, 전체 근로자 평균으로 연간 4만1000원, 사업주는 연간 42만8000원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 고용부는 "추가 재정이 2조원가량 필요해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1998년 이후 20년간 월소득의 9%로 묶여 있던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도 예고돼 있다. 현재 40%인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2022년까지 50%로 올리겠다는 대선 공약에 따라서다. 올해는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 상황을 점검하는 '4차 재정 재계산'이 열리는 해로, 올 상반기에 보험료 인상 폭과 시기 등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자세히 설명 않고 청구서 내밀어"
국민들과 기업 부담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올해 인상된 건강보험·장기요양보험료와 내년 인상되는 고용보험과 국민연금(1%포인트 인상 가정) 보험료를 적용할 경우, 월 급여 400만원 근로자가 부담하는 연간 보험료 총액은 444만원으로 지난해보다 40만3200원이 오르게 된다. 사업주의 경우엔 여기에 대해 근로자의 산재보험료를 전액 내야 해 부담이 더 커진다. 영세·중소상공인 등은 올해부터 적용된 최저임금 인상에 이어 보험료 부담도 더 커지게 됐다.
5대 사회보험의 국민부담금은 2006년 46조1625억원에서 2016년 104조3370억원으로 연평균 8.5% 증가율을 나타내고 있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사회보험은 국민과 기업들이 내는 보험료로 충당하기 때문에 보장성을 확대하려면 보험료 인상에 대해 국민들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며 "결국 정부가 먼저 선심 쓰고 국민과 기업들에게는 계속 청구서를 내놓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섭 보건복지전문기자
고작 7개월 일하고 3개월 실업급여 1.4 서울경제
실업급여 '얌체족' 기승 고용보험 제도적 허점 악용
2~3번 이상 반복 수급자 늘어 작년 실업급여 지급 5조 돌파
일각 "취업률 제고 효과 없어"
지난해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서 8개월간 일하다 그만둔 김모(27)씨는 작년 말까지 3개월간 매월 140만원가량의 실업급여(구직급여)를 받았다. 김씨는 올 초 경기도의 한 중견기업에 재취업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언제든 그만둘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일이 힘들지 않고 월급도 많이 주는 회사에서 계속 일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굳이 한 직장에 오래 머물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전했다. 김씨는 잦은 이직의 이유 가운데 하나로 7개월 이상 일하고 그만둔 뒤 통근 곤란 등 비자발적 퇴사 사유만 인정받으면 3개월가량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취업 한파에 따른 양질의 일자리 부족과 현재를 즐기려는 ‘욜로(YOLO)족’의 증가 등으로 실업급여를 반복적으로 수급하는 ‘얌체족’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체 실업급여 지급액은 지난해 5조원을 돌파했다. 이는 지난 1995년 고용보험제도가 도입된 후 사상 최대치다. 올해 실업급여액이 대폭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총지급금액은 더욱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4일 정부의 한 관계자는 “실업급여 지급자 수와 신규 신청자 수는 월별로 수치를 챙기고 있지만 2번 또는 3번 이상 받는 수급자격인정자 수를 따로 관리하고 있지는 않다”며 “다만 비정기적으로 체크하는데 여러 번 받는 사람이 아직도 적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실업급여는 크게 구직급여와 취업촉진수당 등으로 나뉜다. 통상적으로 실업급여라 부르는 것은 구직급여다. 현행 고용보험법과 관련 법령에 따르면 구직급여는 이직 전 18개월 동안 피보험 기간이 180일 이상인 자에게 지급된다. 수급 기간은 연령과 고용보험 가입 기간에 따라 90~240일이다. 올해 기준 하루 구직급여 상한액은 6만원, 하한액은 최저임금의 90%인 5만4,216원이다. 가령 1년 반 동안 고용보험 가입 기간 180일 이상, 비자발적 퇴직 등의 요건을 충족한 사람은 최소 487만9,440원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업급여 지급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실업급여 지급액은 4조6,679억원이다. 12월은 근로계약 종료 등으로 실업급여 지급액이 늘어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간 5조원을 확실히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올해는 증가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오는 7월부터 지급 수준이 실직 전 3개월 평균임금의 50%에서 60%로 올라가고 지급 기간도 최장 30일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와 맞물려 정부가 내년부터 고용보험료를 인상하기로 하자 일각에서는 실업급여가 취업률 제고에 별 효과가 없다는 불만 섞인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실업급여는 재취업 지원뿐 아니라 생계안정 보조의 목적도 있다”며 “실업급여 수급자격 인정 기준을 보다 촘촘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2005년 북한 만수대예술단 소속 무용수 조명애와 가수 이효리가 함께 출연한 삼성전자 휴대전화 애니콜 광고의 한 장면. 자료사진
나이아가라 얼린 ‘한파’ 이유 있었네 1.5 한겨레
‘폭탄 사이클론’이 미국 북동부를 강타한 가운데 나이아가라폭포가 얼어붙었다.연합뉴스
2014년 1월 미국 북부 캐나다 접경에 위치한 나이아가라폭포가 얼어붙었다. 1911년 이래 103년 만이다. 2018년 새해 벽두 북미대륙에 이른바 ‘폭탄 사이클론’이 강습하면서 2일(현지시각) 나이아가라가 4년 만에 다시 얼어붙었다. 사망자도 속출하고 있다. 텍사스에서 3명이 한파로 동사했고,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눈 쌓인 길을 달리던 자동차가 전복돼 2명이 숨졌다. <유에스에이 투데이>(USA today)는 4일 이번 한파로 인한 사망자 수가 17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이날 4000편이 넘는 비행기가 결항됐다. 뉴욕, 필라델피아, 보스턴 등 이 지역의 많은 학교들이 폐쇄됐다. 또 시속 95km의 강풍을 동반한 폭설로 보스턴에는 최고 45㎝의 눈이 쌓였고 남부인 플로리다주까지 30년 만에 눈이 쌓였다. <워싱턴 포스트>는 5~6일에 미 북동부 지역의 기온이 사상 최저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보도했다.
북미의 ‘폭탄 사이클론’은 왜 발생했을까?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누리집 등에서 북반구 중위도 지역의 겨울철 한파 선행 요소인 북극해빙 면적과 북극진동지수를 살펴보면 이번 한파는 예고됐음을 알 수 있다.
‘폭탄 사이클론’은 24시간 안에 24기압이 떨어지는 폭탄급 폭풍을 일컫는다. 또 이런 폭풍이 생성되는 현상을 ‘폭탄 저기압 발생’(bombogenesis)이라고 한다. 이번주 북미 대륙에서는 따뜻한 해양의 기류가 북극에서 내려온 한기와 만나 기압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폭탄 사이클론이 발생했다. 북극의 한기가 내려오지 않았다면 ‘폭탄’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북극에 갇혀 있던 한파가 내려온 것은 북극 소용돌이(폴라 볼텍스·Polar Vortex)의 강도가 약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기상학자들은 북극 소용돌이가 약해지는 현상이 북극해빙 면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북극 소용돌이 강도가 주기적으로 강해졌다 약해졌다 하는 북극진동 현상은 지수(북극진동지수·AO·arctic oscillation)로 나타낸다. 올해 북극해빙 면적과 북극진동지수는 북극 한기가 중위도 지역을 기습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미국 국립빙설자료센터(NSIDC)의 자료를 보면, 2017년 12월 북극해빙 면적은 1175만㎢로 위성 촬영을 시작한 1979년 이래 역대 두번째로 적었다. 1981~2010년 30년 평균보다 109만㎢ 작고, 역대 최저인 2016년 12월보다 불과 28만㎢가 큰 면적이다. 특히 이달 들어서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변하고 있다.
2017년 12월 북극해빙 면적. 1981~2010년 평균 면적(빨간색 선)보다 크게 감소했음을 보여준다. 미국 국립빙설자료센터 제공
북극 소용돌이의 주기적 변동을 나타내는 북극진동지수는 11월부터 12월 중순까지 강한 음의 지수를 나타내고 있다. 북극진동지수가 음의 값을 보이면 보름~한달 뒤 중위도 지역에 한파가 닥칠 확률이 높아진다.
왜 북극해빙 면적이 줄어들고, 북극진동지수가 음의 값이면 중위도 지역에 한파가 닥칠까? 북극해빙 면적이 감소한 지역에서 열과 수증기(지표면 열속)가 방출되면 대기 움직임에 따라 이 열과 수증기가 성층권까지 전달된다. 북극 상공 2㎞의 성층권에는 북극 소용돌이가 영하 40~50도의 한기를 북극에 가둬두고 있는데, 지표면 열속이 이 소용돌이의 강도를 약화시키면 한기가 남쪽으로 내려올 수 있다. 북극진동지수가 음일 때는 대류권에서 뱀처럼 사행을 하는 제트기류가 중위도 지역까지 처지게 돼 북극 상공에서 내려온 한기가 그대로 지상에까지 전달돼 한파가 닥친다. 지난해 12월에는 제트기류가 동아시아 쪽으로 처져 우리나라에 초겨울 한파를 가져왔고, 1월 들어서는 처지는 지역이 북미와 유럽대륙으로 변한 것이다.
북극해빙 감소가 기상·기후에 영향을 주는 원리. 북극해빙 감소 지역에서 열과 수증기(지표면 열속)를 방출하면 대기 흐름에 따라 성층원에 전달되고, 이로 인해 북극 소용돌이가 약해져 중위도 지역까지 처지면서 북극 한기를 전파해 한파와 폭설이 발생한다.
김백민 극지연구소 기후변화연구부 책임연구원은 “북서태평양 지역에서 라니랴 관련 수증기 수송이 많아져 북미 지역에 따뜻한 공기가 들어와 있는 상태에서 성층권의 차가운 공기가 남쪽 깊숙이 급격하게 내려와 폭설과 한파가 닥쳤다. 현재 북극해빙 면적은 감소한 상태가 지속돼 해마다 북극 소용돌이가 약해져 북극 한기가 중위도 지역으로 내려올 수 있는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상태인데 올해는 적도 지역 따뜻한 공기의 북상까지 겹쳐 폭탄 사이클론이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겨레 특파원 칼럼- 북한의 ‘이간질’보다 더 무서운 것들 1.4
물샐틈없는’, ‘빛샐틈없는’ 한-미 동맹이라는 말이 풍미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다. 정부 당국자들은 한-미 동맹의 공고함을 표현할 수 있는 화려한 형용사를 찾는 데 골몰했다. 그리고 미국 당국자들한테서 그런 형용사가 나올 때마다 한-미 회담의 성과로 포장했다.
공개적으로 표면화된 갈등이 적었다는 의미에선 한-미 동맹은 견고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전략적 인내’라는 한-미의 대북정책 속에서 북핵 문제는 더 악화됐고, 이제 미국의 직접적인 안보위협으로 떠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략적 인내는 실패했다”고 선언했을 때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쩌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더 큰 책임을 지울 수도 있다. 조지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에 대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반성은, 동맹이 원하는 것이면 거의 모두를 수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다보니 한국 정부가 사실상 운전석에 앉았다.
그래서 성 김 당시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2014년 말 방북 시도는 박근혜 정부의 완강한 반대로 무산됐다. 박근혜 정부는 2016년 2월 개성공단 폐쇄를 미국에 사실상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개성공단의 가치를 나름 평가했던 오바마 행정부는 깜짝 놀랐지만, ‘동맹이 원하니’라며 수용했다. 동맹 간 파열음 방지를 최선의 가치로 여긴 결과는 ‘깜깜이’ 대북정책과 북핵 능력 고도화였다.
최근 북한의 신년사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을 놓고 벌써부터 한국과 미국의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동맹 균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북한의 ‘이간질’에 한국 정부가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식이다. 첫째, 솔직히 이들의 분석에선 지적 게으름이 느껴진다. 북한의 의도는 몇십년째 똑같고, 결국 북한과 대화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우리에게 지금 정말 필요한 것은 김정은 정권에 대한 정보 아닌가? 북한의 ‘나쁜 의도’를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대북 인식의 지평을 한걸음도 넓히지 못할 것이다.
둘째, 한-미 간 균열을 우려하는 일부 전문가들의 목소리에선 ‘갑질’ 심리가 느껴진다. 미국이 하는 대로 따라오라는, 혹은 따라가라는 안팎의 무언의 압력이다. 균열을 우려한다면서, 실제로는 문재인 정부를 흔들기 위한 균열의 명분을 찾는 것처럼 비친다. 하다못해 미국 50개주 사이에도 ‘빛샐틈없는’ 공조는 이뤄지지 않는다.
셋째, 북한의 의도가 ‘이간질’이라고 하더라도, 어감이 좋지 않을 뿐 모든 외교에는 어느 정도 이간질이라는 방책이 포함돼 있다. 이른바 ‘분할과 지배’(divide and rule)이다. 일본은 ‘한국이 중국으로 기울고 있다’며 한-미 관계를 이간질하려고 하지 않는가? 미국은 ‘한국이 중국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며 한-중이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을 경계하지 않는가? 북한의 의도가 이간질이라고 정말로 확신한다면, 힘겨루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겁부터 먹지 말고 이를 역이용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면 된다.
오히려 지금 한-미 간에 가장 큰 잠재적인 갈등 요인이 있다면, 미국 조야에서 심심찮게 흘러나오는 ‘주한미군 철수 위협’이라고 본다. 동맹국인 한국의 가장 큰 약점을 이처럼 노골적으로 활용하는 트럼프 행정부한테 중국의 ‘사드 보복’ 못지않은 완력 행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럼에도, 어렵겠지만, 문재인 정부가 최선을 다해 트럼프 행정부와 조율하는 모양새를 갖추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문 정부를 진심으로 지원하고 있는 미국 전문가들에게 명분을 줄 필요가 있고, 국내 정치적 동력을 확보하는 방어전략으로도 나쁘지 않다. 이제 기동전과 함께 진지전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용인
자녀 죽이는 부모 괴물은 어디서 왔나
1980년대 초반의 중학교 시절, 태국의 한 여성이 주로 관광객을 상대하는 도시의 성매매 업소에 미성년 딸을 팔러 가는 내용을 실은 기사를 읽은 충격이 여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장애 자녀에게 비정한 폭력을 가하고 시체를 유기한 한 부모의 이야기가 세상을 들썩인 2018년 새해에 그 기억이 소환됐다. 몇년 전부터 이런 수위의 아동학대가 매해 한두 번씩 언론을 달궜다. 언론은 매번 몸서리쳐지는 그 끔찍함에서 뉴스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이 충격을 대하는 주된 방식이 한번쯤은 진지하게 공론화되었으면 좋겠다.
이번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 모 언론사는 ‘낳았다고 다 부모가 아니다’라는 제목 아래 전문가의 멘트를 빌려 국가 차원의 부모 교육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색채가 비슷한 다수의 뉴스에서 부모됨, 모성을 변치 않는 본성으로, 또 당연히 변치 말아야 할 정상성으로 두는 우리 사회 절대다수의 합의 내지 공감이 확인된다. 유대감과 협력이 가장 중요한 종으로서 인간은 새끼를 낳아 기르는 모든 종을 통틀어 가장 긴 유아기에 가장 애틋한 돌봄을 받는다. 부모들에게는 족히 수만년에 걸쳐 진화한 유별난 자녀 사랑의 본성이 있다.
그러나 어른들이 진화적 본성을 상실한 역사적 시간과 공간이 분명히 있었다. 산업혁명 시기 앤드루 유어는 올챙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햇빛이 어린이의 성장에 필수적이라는 의학적 진단을 세상에 내놓았다. 공장에 갇혀 일하는 아이들의 상당수가 햇빛 부족으로 구루병을 앓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공장 시스템의 옹호자였던 그는 창문 없는 공장의 작업장에 가스등을 다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비슷한 시기 서인도제도의 한 노예 소유주는 영국 브래드퍼드에 소재한 공장의 공장주들에게 자신이 노예 소유주임을 수치스럽게 여긴다고 운을 뗀 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서인도제도에서는 9살짜리 어린이에게 하루 12시간 반이나 일을 시킬 만큼 잔인한 사람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것이 보통의 관행이군요.” 영국의 정치가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1845년에 내놓은 <두 개의 국민>에는 수직기 직조공 토머스 히스가 등장한다. 그는 자녀 두 명의 죽음을 하느님께 감사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확신하듯 답변한다. “나는 그 애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짐에서 벗어났고, 그 불쌍하고 귀여운 아이들은 이 죽음 같은 삶의 고통에서 벗어났으니까요.”
한때 아동에 대한 전면적이고 체계적인 폭력이었던 산업자본주의의 역사는 부모가 어떤 조건에서 진화적 본성을 잃고 영락하는지에 대한 교훈이다. 그러나 아동학대 문제를 대하는 한국 사회는 이 교훈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는 2014년 아동학대처벌법을 제정했고, 보건복지부는 전면 조사, 신고시스템 구축 등의 익숙한 행정을 강화해왔다. 아동학대 범죄자에 대한 사형과 중벌을 꾸준히 외쳐온 한 시민단체도 있다. 양적, 질적으로 심화되는 아동학대는 가해 부모에 대한 사회적 비난, 감시, 처벌 위주의 그간 대책들이, 없는 것보단 낫지만 역부족이라는 것을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2016년까지 발행한 ‘전국 아동학대 현황 보고서’는 부모가 어떤 상황에서 쉽게 괴물로 둔갑하는지에 대한 통계적 진실을 담고 있다.
2015년 아동학대 건수의 15.9%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에 의해, 68.2%가 비수급 대상자에 의해 발생했다. 수급 여부가 파악이 안 된 15.8%를 중립으로 놓고, 전체 인구 대비 수급권자에 의한 아동학대 발생 비율은 비수급권자의 그것에 비해 약 7배 높게 나온다. 학대 가해자의 직업은 단순노무직 15.2%, 무직 30.1%로 아동학대 사건의 45.3%가 소득이 낮은 계층으로 추정되는 직업군에서 나타났다.
또 다른 비극인 광주 세 아이 화재 참사 사건에서는 경제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부모의 기초수급자 신청이 거절되고, 아이들이 간장에 밥을 비벼 먹으며 굶주리고 지냈다는 것이 확인됐다. 계속 확대되고 강화되는 아동학대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계속 확대되고 강화되는 절대적·상대적 빈곤과 불평등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그것이 막막할 정도로 거대하고 급진적인 사회적 전환을 요구하는 일이라 해도, 논리와 통계는 그렇게 말한다./ 장흥배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원
“문재인 찍으면 김정은이 대통령 된다”던 홍준표 대표님께 1.3
자유한국당 시대착오적 ‘종북몰이’
‘촛불정국’땐 “종북세력이 자금 지원”
대선 땐 “친북좌파정권 막아야”
위기 몰릴 때마다 거세지는 ‘종북몰이’
새해 첫날부터 구태의연한 이야기로 시끄러웠습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1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인공기 달력’을 언급하며 ‘종북몰이’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홍준표 대표는 2018년 신년사에서 “인공기가 은행 달력에 등장하는 그런 세상이 됐다. 금년 선거는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는 그런 선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홍 대표가 말한 ‘인공기 달력’은 우리은행에서 제작한 2018년 탁상달력입니다. 이 달력에는 초등학생 조아무개양이 그린 그림이 실렸는데요. 지난해 우리은행이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을 받아 주최한 ‘제22회 우리미술대회’ 초등학교 4~6학년부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주최 쪽은 심사평에서 “평화를 의미하는 통일나무를 표현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행복한 미소가 느껴진다”고 호평했습니다. 그림에서 인공기는 ‘통일나무’에 태극기와 나란히 걸려있습니다. 당연하게도, 통일이라는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홍 대표는 이런 초등학생의 작품을 두고 색깔론, 종북몰이에 나선 셈입니다. (▶관련 기사: 해가 바뀌어도…홍준표, 초등생 그림까지 ‘색깔론 덧칠’)
이러니 “종북세력은 홍준표와 자유한국당의 희망 속에 존재하는 그 무엇”(최홍재 바른정책연구소 부소장)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겁니다. 지난해 7월 바른정당이 주최한 ‘종북몰이 보수 청산 토론회’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토론회에 참석한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종북몰이 극우 정당은 이제 해산돼야 한다”고까지 말했습니다. 바른정당 사람들은 거의 모두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새누리당 후신) 의원들과 한솥밥을 먹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마저 자유한국당이 ‘종북세력’이라는 상상의 적을 만들어 적대적 공존을 꾀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합니다. (▶관련 기사: “종북세력 없다”…바른정당, 자유한국당에 이념전쟁 선포)
도대체 자유한국당이 말하는 ‘종북’, ‘종북세력’은 무엇일까요. 정권교체의 출발점이었던 ‘촛불 정국’에서 대선, 문재인 정부 출범에 이르기까지, 자유한국당의 시대착오적 ‘종북몰이’ 발언들을 모아봤습니다.
■ 촛불 정국: “촛불집회 조직·자금, 종북세력이 다 준비”
2016년 11월29일 김종태 당시 새누리당 의원(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2017년 2월 의원직 상실)은 당 의원총회에서 “현재 촛불시위는 평화시위가 아니다. 종북세력은 시위 때마다 분대 단위로, 지역별 책임자를 정해 시위에 나온다. 조직과 자금을 다 준비했다”고 말해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김 전 의원의 발언이 있기 사흘 전인 2016년 11월26일 열린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규탄 제5차 촛불집회에는 전국에서 190만 명이 참여했는데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반박하고 종북세력의 자금 유입을 입증할 만한 근거는 지금껏 나오지 않았습니다.
2016년 11월17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열린 박근혜 특검법 전체회의에서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촛불에 밀려서 원칙을 저버린 법사위라니. 촛불은 촛불일 뿐이지 바람이 불면 다 꺼진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1월17일에는 김진태 자유한국당(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나와 “(촛불집회에) 불순세력이 있었다. 촛불은 촛불일 뿐 바람 불면 다 꺼진다”고 말해 논란을 불렀습니다. 김 의원은 최순실씨의 전 남편 정윤회씨의 국정 개입 의혹이 불거졌던 2014년 12월15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 나서 당시 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을 두고 “근거도 없이 대통령 중상모략…이러니 (야당이) 종북숙주 소리 듣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2016년 11월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다른 참석자의 발언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더 노골적인 발언을 꼽자면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대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박근혜 복심’이라고 불렸던 그는 야당의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요구는 “인민재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2015년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두고 ‘적화통일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발언했다가 지역구인 전남 순천에서 활동하는 변호사에 의해 명예훼손과 모욕 혐의로 고발당하기도 했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운동이 ‘대북 지령’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 의원도 있었는데요. 윤재옥 자유한국당 의원은 2015년 10월 28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북에서 지령 내려서 에스엔에스(SNS)에서 대남공작기관과 일부 (국내) 종북세력을 선동하고, 또 해외 종북세력 단체를 이용해서 남남갈등을 조장하는 그런 조짐이나 동향이 보인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논리도, 근거도 없는 ‘막말’이 집권여당의 국회의원들 입에서 나온 것입니다. (▶관련 기사: [카드뉴스] “종북좌파가 선동”…촛불민심에 기름 붓는 ‘막말 형제’)
■ 대선: “문재인 찍으면 김정은이 대통령 된다”
홍준표 대표는 제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패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탄핵도 원인이었고, 시간도 부족했지만 그래도 희망을 걸 수 있었던 것은 친북좌파 정권의 탄생에 대한 국민적 저항감이었습니다. 비록 친북좌파 정권이 탄생했지만 이 나라가 친북, 좌편향되는 것은 자유한국당이 온몸으로 막을 겁니다. 이제 새로운 성전이 열립니다. 이번 대선이 끝이 아닌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겠습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의 온라인 선거 홍보물.
홍준표 대표는 대선 후보 시절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친북 좌파’라는 표현을 반복해가며 ‘종북 딱지’를 붙이려고 했습니다. 당시 온라인 선거 홍보물만 봐도 노골적인 문구가 자주 등장합니다.
-문재인 찍으면 김정은이 대통령 된다
-문재인 상왕은 이해찬, 태상왕은 종북좌파
-언론·포털 장악, 관권개입, 여론조작…온갖 적폐를 일삼는 친북좌파들. 언론도 관도 모두 좌파 문재인편
-이번 선거는 친북좌파정권이냐? 보수우파정권이냐를 선택하는 체제선택 전쟁
-김종필(JP) 전 총리는 홍준표 후보가 예방한 자리에서 문재인 후보를 겨냥해 수위 높은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당선되면 김정은 만나러 간다고 했는데, 이런 사람이 뭐가 잘한다고 지지를 하느냐. 김정은이 할아버지라도 되나…빌어먹을 자식” 또한 “뭘 봐도 문재인은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의 온라인 선거 홍보물.
유세장에선 더 노골적인 말도 나왔습니다. 홍 대표는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지난해 5월8일 서울시청 건너편 대한문 앞에서 태극기를 든 지지자 수천 명 앞에서 “전교조를 완전 손보겠다. 종북이념에 미친 종북집단, 이거 내가 절대 용납 안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종북집단’을 손보겠다는 홍 대표의 바람과 달리 제19대 대선은 문재인 후보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습니다. (▶관련 기사: 홍준표 “종북이념에 미친 집단 용서 안해”)
■ 문재인 정부 출범: “문재인 정부는 주사파 정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홍 대표는 이번엔 문재인 정부를 일컬어 “주사파 정부”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홍 대표는 지난해 6월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대선 패배 원인에 대해 “자유한국당이 정의와 형평을 상실한 이익집단이었기 때문에 청·장년의 지지를 상실했다. 친박당이 몰락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쓴 뒤 “자유한국당이 이들의 지지를 회복하려면 철저하게 자유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 주사파 정권에 맞서기 위해서는 그들 못지않은 이념적 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당시 “주사파 정책을 펴지도 않았는데 주사파라고 비판하면 공격하는 사람만 비판받는다. 요즘은 더 심각한 게 ‘신주사파’다. 신주사파는 평소에 취객이 주사하듯이 발언하는 정치인이다. 신주사파 수령이 ‘레드준표’ 아니냐”고 꼬집었습니다. (▶관련 기사: 하태경 “취객 홍준표가 신주사파 수령”)
강동호 자유한국당 서울시당위원장이 2017년 6월16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홍 대표의 발언 뒤에는 ‘국지적 도발’이 이어졌습니다. 강동호 자유한국당 서울시당위원장은 지난해 6월15일 홍 대표가 참석한 자유한국당 서울시당 당사 이전 개소식에서 “문재인이가 청와대 전세 내서 일을 시작했는데, 적폐 청산이라고 해서 정치보복을 시작했다. 친북하는 종북하는 문재인은 우리 보수 우리 주류세력을 죽이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문 대통령을 일컬어 ‘깡패 같은 놈’이라고도 칭해 당시 큰 논란을 불렀습니다. (▶관련 기사: 자유한국당 서울시당위원장 “문재인은 깡패 같은 놈” 막말)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왼쪽),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국회방송 갈무리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왼쪽),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국회방송 갈무리
또한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11월6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주사파,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운동권이 장악한 청와대”라고 주장했습니다. 전 의원의 말을 들은 임종석 비서실장은 “국민의 대표답지 않게 질의를 한다. 충분히 국회를 존중하고, 최선을 다해서 인내하고 답변해 왔으나 더 답변할 필요를 못 느낀다”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관련 기사: 전희경 “주사파 청와대”에…임종석 “그게 질의인가”)
■ ‘종북몰이는 가장 무능하고 비겁한 전략’ 비판
자유한국당은 왜 ‘종북몰이’를 놓지 못하는 걸까요. 지난해 7월 바른정당이 주최한 ‘종북몰이 보수 청산 토론회’에 발표자로 나선 홍진표 시대정신 상임이사는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종북몰이 선동에는 두 가지 의도가 있다. 첫째, 자유한국당 주류의 생존기반을 거기서 찾으려 한다. 자유한국당은 현 정부를 극단적인 종북으로 몰고 자신들은 반대편에 서려고 한다. 중도는 설 자리가 없게 만들려는 것이다. 둘째, 바른정당과 보수혁신 경쟁을 해야 하는데, 종북몰이는 혁신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종북몰이 선동을 붙잡고 혁신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가장 무능하고 비겁한 전략이다.”
이제 홍준표 대표에게 다시 되묻고 싶습니다. “대표님, 문재인 찍으면 김정은이 대통령 된다면서요? 그 말 끝까지 책임지실 꺼죠?”
소화전 앞 주차, 엄두도 못내는 日 1.5 동아
소방차 막는 불법주차에 無관용을]민간업체에도 불법주차 단속권한
반발땐 공무방해로 엄격한 처벌… 1km당 불법주차 24.2→ 9.8대로
비워둔 일본 3일 오후 일본 도쿄 긴자 거리에 주차한 차량들. 소화전 앞(빨간 점선)에는 주차가 가능하다는 흰색 실선이 그어져 있지 않다. 아무리 바빠도 소화전 앞에 주차하는 운전자는 없다. 실제로 새해 연휴에 쇼핑 관광 등으로 많은 인파가 몰렸지만 소화전 앞은 항상 비어 있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1993년 12월 일본 도쿄(東京) 외곽 히노(日野)시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20대 여성의 방화로 두 아이가 목숨을 잃는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남편과 불륜 관계인 여성이 부부가 없는 사이 들어가 불을 지른 것이었다. 이후 언론 취재에서 소방차가 불법주차 차량 때문에 도착이 늦어 목숨을 구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 더 큰 논란이 됐다.
고도성장기 자동차가 급증한 일본은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처럼 불법주차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차대란이 벌어져 긴급 사태 때 소방차나 구급차가 진입하지 못하는 일이 연달아 발생했다. 불법주차는 도로 정체와 교통사고 증가로도 이어졌다. 불법주차 문제가 극에 달했던 1990년 오쿠다 게이와(奧田敬和) 국가공안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이대로라면 모두가 질식해버릴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일본은 1962년 일찌감치 차고증명제를 도입해 자동차를 살 때 주차장 보유를 의무화했다. 하지만 대도시에 국한했고 경차가 제외되는 등 예외가 많아 실효성이 크지 않았다. 타인 명의로 가짜 차고증명을 만들어주는 등 탈법행위도 성행했다. 결국 일본 정부는 법을 개정해 1991년부터 경차에도 차고증명을 의무화했다. 차고 증명 스티커 부착 의무화, 차고 변경 신고 의무화 등 더 강도 높은 조치도 시행했다. 위반 시 처벌도 대폭 강화했다. 자동차업계와 주택 건설업자들은 비명을 질렀지만 국민 위기의식이 더 강했다. 그 결과 도쿄도 내 노상에 일시 주차해 놓은 차가 1년 만에 23만 대에서 19만 대로 줄어드는 등 눈에 보이는 성과를 냈다.법 시행에 맞춰 자치단체와 지역 경찰도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냈다. 일부에선 위반 차량에 대한 바퀴 고정 장치도 도입했다. 소방서 경찰서 등 관계기관이 모여 대책회의도 열었다.
자신감을 얻은 일본 정부는 2006년 도로교통법을 개정해 민간업체에 주차 위반을 단속하는 권한을 주는 제도를 신설했다. 또 운전자를 특정하지 못할 경우 차량 소유주에게 벌금을 물리는 조치도 시행했다. 초반에는 “네가 뭔데 단속이냐”며 민간 주차감시원을 폭행하는 등 반발도 있었다. 하지만 공무집행 방해로 엄격하게 처벌하며 법을 집행한 결과 반년 만에 전국 주요 도로의 km당 불법주차 대수가 24.2대에서 9.8대로 급감하는 성과를 냈다.
골든타임 막는 무개념 주·정차 … ‘국민 공분’ 1.5 충청투데이
29명의 희생자를 낸 ‘제천 화재’는 불법 주·정차로 인해 소방차의 접근이 늦어져 사고가 확대된 대표적인 참사다. 제천 화재로 인해 불법 주·정차 문제는 다시 한번 국민에게 경각심을 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15년 13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의정부 도시형생활주택 화재 역시 불법 주차 때문에 소방차 진입이 10분 가까이 지체된 바 있다. 새해를 맞은 1일에는 강원 강릉소방서 경포 119안전센터 앞마당을 빼곡히 메운 해맞이 차량의 ‘무개념 주차’로 국민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 4일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의 한 이면도로 양쪽으로 차량들이 빽빽이 주·정차돼 있다. 이 도로의 경우 한쪽면은 통행에 지장을 주지않는 한 주차가 가능하지만 양쪽에 주·정차를 할 경우 긴급차량 등의 통행이 어려워진다
청주시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 주·정차는 14만 4312건, 2016년에는 14만 5294건이 적발됐다. 하루에 390대 이상의 차들이 도로와 주택가, 도심 등에 불법 주·정차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정두언 "국민들이 다스가 누구 것인지 몰라서 묻겠나"…1.5 경향
"MB, 정말 돈에 집착 강하신 분"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61)은 5일 “국민들은 (다스가) MB 것인줄 알면서 ‘너 그거 포기할래 아니면 네 거 해가지고 궂은 일 당할래’라고 묻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은 이날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국민들이 그거(다스가 누구 것인지)를 몰라서 물어보겠느냐. MB 건지는 다 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MB가) 내 게 아니라고 하는 순간 대박 터진거죠. 친형이랑 처남댁이랑 또 친구랑은. 그게 8조짜리 회사라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그렇다면 8조짜리 회사를 어떻게 해야하나 밤잠을 설칠 수 있겠다’는 사회자의 언급에 “굉장히 그럴 것 같다. 왜냐하면 정말 돈에 대해서는 집착이 강하신 분이다”라며 “그러니까 대통령 재직 시절에 140억을 김경준 사장으로부터 받아냈지 않냐. 그 많은 소액 피해자들이 받아야 될 돈을 혼자서 다 받아냈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은 자유한국당의 상황에 대해 “한국당은 지금 쉽게 얘기하면 태극기 플러스 영남만 있는 것이다. 나머지 건전한 보수라고 할 수 있는 세력들은 떠났다”며 “간판부터가, 그 간판 보고 누가 건전한 보수가 돌아오겠느냐”고 말했다.
또 국민의당과 바른정당과의 통합과 관련해 “저는 개인적으로 걱정되는 게 안철수 대표나 유승민 대표나 다 참 성격적으로 만만치 않은 사람들이다”라며 “그래서 그 당이 처음에는 컨벤션 효과도 있고 그렇겠지만, 계속 갈지가 의문이다. 그러니까 아까 말한 중도보수층을 끌어들여야 되는데, 결국은 자유한국당하고 나눠 먹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당 입장에서는 지방선거가 되게 좋다”고 밝혔다.
세계인의 축제라지만... '설국열차' 같은 올림픽 1.5 오마이뉴스
[특집] 누구를 위하여 올림픽은 열리나 ① 올림픽 120년 역사의 민낯
초대장 받지 못한 여성과 유색인종
이 글을 쓰기 위해 올림픽 120년사를 돌이켜보는데 어느 순간 영화 <설국열차>가 떠올랐다. 기차 맨 뒤 칸에 최하층민이 타고 앞으로 갈수록 서열이 높은 계급을 태움으로써 현실의 모순을 보여주려는 듯한 설정이, 불평등과 과잉성장 속에서 온갖 문제를 싣고 달려온 올림픽 역사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비유컨대, 1896년 출범한 올림픽은 '칸칸'마다 여성, 인종차별, 민족주의와 이데올로기, 극한경쟁과 금지약물, 프로화와 상업주의, 테러와 환경파괴 같은 비등하는 '폭발물'을 싣고 질주해온 열차였다. 근대 올림픽은 남성적 쇼비니즘(chauvinism)에 경도된 쿠베르탱의 창조물이다. 그는 소년 시절 프랑스가 프로이센 전쟁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는 것을 목도했고, 이 원체험의 트라우마는 그의 쇼비니스트적 삶을 관통했다. 스포츠에 대한 그의 이상은 백인 남성에 시민계급 중심의 고대 올림픽에 닿아 있었다.
마침 독일의 고고학자 쿠르티우스가 고대 올림피아 유적 발굴에 성공하자 여기에 고무된 쿠베르탱은 서둘러 근대 올림픽을 기획했다. 그러나 부활한 올림픽은 반쪽의 재현에 그쳤다. 대항해와 산업혁명을 거쳤지만 백인 남성 중심의 세계관은 꿈쩍하지 않았다. 여성과 유색인종은 초창기 올림픽에 초대받지 못했다. 그는 "아들이 스포츠에서 훌륭한 성적을 내도록 고무하고 격려하는 게 여성에게 주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 참여사회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처음부터 정치를 끌어들였다. 올림픽에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고, 국가가 대표선수 선발권을 가지며, 올림픽 메달 순위를 나라별로 매기도록 해 정치가 개입할 틈을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 뒤에는 상당수 IOC위원들이 자국 정부의 요직을 맡고 재정지원을 받으면서 IOC의 독립적 위상을 훼손했다.
올림픽의 정치화, 이념과 자본의 대리 전쟁터
나치 정권의 탄압을 피해 망명한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비정치적인 스포츠는 없다'며 올림픽을 정치도구화한 히틀러를 비판했다. 그때까지 여성 참여 문제 등이 쟁점이었던 올림픽은 베를린에 와서 본격적인 인종차별과 배타적 민족주의의 폭력에 오염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맞서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에서 올림픽 보이콧 움직임을 보였으나, 논란 끝에 모두 참가했다.
나치 정권은 유태계 독일 선수들의 참가를 막고 육상 4관왕 제시 오언스를 비롯해 유색인종에 대한 노골적인 인종차별을 저질렀다. 베를린 시내 곳곳에 고대 올림픽 영웅들의 동상을 세우고 라디오와 텔레비전 보급을 통해 상징 조작에 나섰다. 쿠베르탱은 올림픽 폐막 뒤 <르 주르날>에 "많은 사람들이 정치선전에 올림픽의 이념이 이용됐다고 하는데, 베를린의 성공으로 올림픽의 이상은 더 숭고해졌다"라고 평했다. 히틀러는 노벨평화상 후보로 쿠베르탱을 추천했다.
올림픽은 2차 세계대전으로 두 차례 중단한 뒤 1948년 런던올림픽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전쟁 뒤 재편된 국제질서는 올림픽을 냉전의 인질로 붙들었다. 미-소를 정점으로 한 동-서 간 대결구도에다가, '검은 구월단' 사건과 남아공 추방처럼 국제정치와 이념 대결, 인종차별과 종교적 편견, 테러와 보이콧으로 얼룩졌다.
냉전 시기 IOC를 이끌어온 브런디지 위원장은 올림픽의 순수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의 순수성은 멕시코 올림픽 남자육상 200m 시상식에서 인종차별에 항의해 '침묵의 제스처'를 펼친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 이들과 연대한 피터 노먼의 행동을 아마추어 규정 위반으로 보고 징계할 때만 빛났다.
IOC는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했다. 얼마 전에는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미국은 평창올림픽 참가를 결정하지 않았다"라며 올림픽운동과 IOC를 뒤흔드는 정치적 발언을 쏟아냈지만 비판 성명 한 줄 내지 못했다.
이념의 대리전은 1980년 모스크바와 1984년 LA 올림픽 때 극에 달했다. 1979년 구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자 지미 카터는 모스크바 보이콧을 제안해 반쪽 올림픽을 만들었다. 영국의 대처는 5000만 파운드를 기부하겠다며 개최지 변경을 압박했다. 64개 국가가 불참했다. 4년 뒤 LA 올림픽 때는 소련이 14개 국가와 '동맹휴업'했다. 동-서 패권국이 힘없는 동맹을 꾀어내 '동굴'에 가두고 마을잔치에 얼씬도 못 하게 한 셈이다.
냉전 이후 올림픽은 미디어를 틀어쥔 자본이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자본의 노리개가 된 올림픽을 성찰하고 가치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IOC는 혁신안 '어젠다 2020'을 내놨으나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브라질 정부는 올림픽 성공 명분으로 리우 시 인구의 23%가 사는 파벨라를 철거한 뒤 7만7000여 명을 강제 이주시켰으며, 치안유지를 이유로 2015년 한 해에만 645명을 숨지게 했다. 희생자는 주로 빈민 출신의 흑인 남성들이었다.
올림픽 '설국열차'는 멈춰야 한다
▲ 올림픽의 역사를 되짚어보니 떠오르는 게 있다. <설국열차>다. ⓒ CJ 엔터테인먼트
올림픽을 위협하는 최대 악재는 금지약물이다. 얼마 전 IOC는 금지약물 복용 선수들의 책임 물어 평창 올림픽에 러시아의 참가를 금지했다. 더 큰 문제는 의외로 많은 선수들이 탐지되지 않는 금지약물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에는 2017년 런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0m에서 우사인 볼트를 꺾은 저스틴 게이틀린이 금지약물 복용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게이틀린은 당시 도핑검사는 무사통과 됐으나 예기치 않은 전 에이전트의 폭로로 알려졌다.
게이틀린의 사례처럼 의학기술 수준은 도핑테스트를 쉽게 피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 스포츠 공정성을 파괴하고 선수의 육체에 치명적인 해악을 입히는 기술범죄를 적발 기술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메달 색깔을 약물이 결정한다고 해도 반박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게 120년을 달려온 올림픽의 민낯이고 속살이다. 물론 책임은 '올림픽 동맹'인 IOC와 자본에 있다. 이들은 인간의 생리학적 한계를 뛰어넘는 '신의 기술'을 욕망하고 부추겨왔다.
늦었지만 멈추고 돌아봐야 한다. IOC는 자본과 거리두기에 나서야 한다. 탐욕을 버리고 올림픽의 몸피를 줄여야 한다. 메가스포츠 이벤트가 아니라 스몰스포츠 이벤트에 가치를 둔 제전으로 되돌려야 한다. 영화 <설국열차>는 구질서의 죽음이라 할 폭발에 이어 두 명의 아이와 곰 한 마리를 살려 희망을 이어간다. 올림픽! 한 번 더 부활할 때가 왔다./ 고광헌 평창올림픽분산개최시민모임 상임대표
고용부, 최저임금 인상 1주차 횡행하는 편법에 골머리 1.5 머니투데이
일자리안정자금 신청은 200여건에 불과, 이달 말부터 최저임금 준수 여부 점검
5일 서울 양천구의 아파트단지에서 한 경비원이 청소를 하고 있다. 이 아파트의 경우, 올해부터 경비원의 임금을 올리는 대신 점심·저녁시간과 야간 휴게시간을 총 10시간 30분으로 확대 운영하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해보다 16.4% 오른 최저임금에 부담을 느낀 영세사업장들이 이를 회피하기 위한 편법을 쓰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소상공인들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일자리안정자금 홍보에 치중하고 있지만, 신청이 저조해 이래 저래 고용부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5일 고용부에 따르면 이번 주 들어 각 지방고용노동청과 지청마다 최저임금을 준수하지 않는 사업주에 대한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근로자들은 올해부터 올라간 최저임금이 지켜지지 않거나, 이를 주지 않기 위해 취업규칙을 사업주가 일방적으로 변경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주휴수당 줄이기 △각종 수당 없애기 △공제금 액수 늘리기 △휴게시간 늘리기 △최저임금 미준수 등의 사례가 이어졌다.
주휴수당은 1주일에 15시간 이상 근무한 근로자에게 하루치 임금을 더 주는 것인데 이는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된다. 하지만 편의점 등에서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주휴수당을 올해부터 지급하지 않겠다는 곳들이 나타났다. 별도로 지급하던 식대, 교통비 등을 기본급에 넣어 임금상승 없이 최저임금만 준수하는 사업장들도 있다. 연장·야간수당도 없애 오히려 실 지급액이 줄어들었다는 근로자들의 피해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월급에서 공제하던 식대, 숙소비 등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한달 임금에서 식대 3만원, 숙소비 15만원을 빼던 사업장이 최저임금을 지키기 위해 전체 임금은 인상하지만 식대 10만원, 숙소비 30만원을 공제하는 식으로 실지급액은 줄이는 방법이다. 이 밖에도 경비원, 청소원 등의 업종에서 휴게시간을 늘리고 근로시간을 줄이는 방법으로 임금을 동결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올해 적용되는 최저임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못 박는 경우도 있다.
사업주들은 일자리안정자금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이는 한시적 정책에 불과하다는 점과, 1월부터 접수를 받지만 2월에서야 지급되는 점 등으로 인해 당장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데 골몰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 식대, 숙소비와 각종 수당의 경우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가 진행중이지만 결과를 예측할 수 없기에 선제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될 수당을 기본급으로 합치는 추세다.
정부는 영세사업장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일자리안정자금이 ‘최저임금 해결사’가 될 것으로 장담했지만 아직까지 결과는 좋지 않다. 1월 2~5일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전국에서 접수된 일자리안정자금을 신청한 사업체는 200여곳에 불과하다. 일자리안정자금의 신청 대상이 되는 전국 30인 미만 사업장의 수는 2015년 기준 180만9092곳이다. 이 중 0.01%만 일자리안정자금을 신청한 셈이다. 30인 이상이더라도 자금신청 대상이 되는 공동주택 경비·청소원 사업체까지 감안하면 극히 적은 수의 사업체들만 이 제도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용부는 이달 말부터 편의점, 주유소, 미용실 등 최저임금 적용 사례가 많은 사업장을 중심으로 최저임금 위반에 대한 전체 점검에 들어간다. 각 지방고용노동청을 통해 법 위반 사례를 접수 받고 현장 지도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최저임금 시행 초기인만큼 곧바로 근로감독에 들어가 제재를 가하기보다는 한달 동안 바뀐 제도를 인지하고 법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계도기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근로감독 직무규정상 최저임금은 즉시 시정토록 하는만큼 이달말 적발된 사업장들은 즉시 미지급분을 지급하도록 지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속돼도 月 1100만원 수당… 줄줄 새는 의원歲費 1.5 문화
국회의원 수당법 개정안
18개월째 운영위서 낮잠
유죄 확정 전까지 지급돼
국회의원이 구속돼 사실상 입법활동을 못하더라도 월평균 1100여만 원에 이르는 수당 등을 꼬박꼬박 챙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법상 구속된 의원에 대한 수당 지급을 제한하는 조항이 없기 때문인데, 이를 개선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1년 6개월째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이로 인해 지난해 1월 부산 해운대 엘시티 금품비리 의혹에 연루돼 수감 중인 배덕광 자유한국당 의원은 1년째 수당을 받고 있으며, 지난 4일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된 같은당 최경환·이우현 의원도 향후 유죄판결 확정 전까지는 수당이 지급될 예정이다.
5일 국회에 따르면 구속된 국회의원들은 유죄 판결이 최종 확정되기 전까지는 기본급이라 할 수 있는 일반 수당과 입법활동비, 관리업무수당 등을 받는다. 연간 1억3000여만 원에 달하는 액수다. 국회법 32조는 ‘국회의원이 정당한 사유 없이 회의에 불출석하거나 징계를 받는 경우’ 외에는 수당 등의 지급을 제한하지 않고 있다. 의원이 구속된 경우에도 수당 등의 지급이 가능한 것이다.
이는 다른 공무원과 비교했을 때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공무원 보수 규정’은 지방자치단체장이 구금 상태에 있어 부단체장이 그 권한을 대행하는 경우 해당 지자체장에게 연봉 월액의 70%를 지급하고, 3개월 경과 후에는 연봉 월액의 40%를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단, 최종 재판 결과 무죄가 나오면 소급해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 2016년 정종섭 한국당 의원과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각각 국회의원이 구속된 경우 그 기간 동안 해당 의원의 수당, 입법활동비, 특별활동비 등을 지급하지 않고, 구속된 국회의원이 무죄 확정이 나는 경우 이자 등을 계산해 수당을 환급해 지급하는 내용의 ‘국회의원 수당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이들 법안은 국회 운영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정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에게 지급되는 수당은 국민의 혈세인 만큼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하자는 취지로 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제대로 논의조차 못됐다”고 말했다.
日 아이들 장래희망 1위는 의사·연예인·간호사 제친 '이것' 1.5 중앙
영화 '심야식당'
.일본의 남자 아이들의 장래희망 1위는 '학자·박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2위는 야구선구, 3위는 축구선수였다. 여자 아이들의 장래희망 1위는 21년째 음식점 주인이 차지했다. 일본 보험회사 제일생명보험이 작년 7~9월 전국 유아·초등학생 1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어른이 된다면 되고 싶은 직업' 설문조사에서 이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도쿄신문이 5일 보도했다.
남자 아이들이 꼽은 장래희망 순위에서 4위는 의사와 경찰관·형사가 올랐다. 목수와 소방관·구급요원은 6위와 7위를 차지했다. 여자 아이들이 꼽은 장래희망 순위에서는 음식점 주인이 21년째 1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 간호사, 보육원·유치원 교사, 의사, 학교 교사, 탤런트·예능인, 약사 순으로 나타났다.
도쿄신문은 '학자·박사'가 남자 아동 사이에서 주목받는 배경에는 일본인의 노벨상 수상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지난해에는 노벨상 수상자를 내지 못했지만 2015년과 2016년 2년 연속 일본인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학자·박사'는 남자 아동의 장래희망 순위에서 빠지지 않는다. '학자·박사'는 2016년 발표된 설문에서 8위를 차지하다 지난해 2위로 상승한 뒤 올해 다시 1위를 차지했다.
성병 ‘콘딜로마’ 20~30대 남성 감염 급증
인유두종 바이러스(HPV) 감염으로 발생하는 성병 중 하나인 ‘콘딜로마’(Condyloma)가 국내에서 연간 8.3%씩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여성은 HPV 백신 접종으로 감소세…남성은 연평균 11.6% 급증
[사진 질병관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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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향대 부천병원 비뇨기과 김준모 교수팀은 2007∼2015년 사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콘딜로마 진료환자로 등록된 34만4327명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4일 밝혔다. 콘딜로마는 성기 주위에 사마귀 같은 게 생겼다고 해서 ‘성기 사마귀’로도 불린다. 고위험군 HPV는 성적접촉으로 상피세포에 감염을 유발하고 구강·인후두·자궁경부·항문·전정·질·남성성기에 암을 일으킨다. 2002년 기준 세계에서 새로 발병한 암의 5.2%인 56만1200건이 HPV 때문이며, 암을 유발하는 가장 위험한 바이러스가 HPV다. 특히 고위험군 HPV 16, 18번이 자궁경부암뿐 아니라 두경부암을 유발한다. 구강 및 인두암의 25%가 HPV 때문에 발생한다. 미국에서는 흡연보다 HPV를 구강암의 가장 중요한 발병인자로 본다. 또한, 2020년에는 자궁경부암보다 두경부암 발병이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할 정도다. 최근 20년간 미국에서는 16번 HPV 감염과 관련된 후두암 발병률이 3배 이상 증가했는데 여성보다 남성에서 더 많다.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콘딜로마 진단 환자는 2007년 2만6606명에서 2015년 4만7920명으로 1.8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남성은 1만4038명에서 3만2086명으로 2.3배 늘어난 반면 여성은 1만2568명에서 1만5834명으로 1.3배 증가하는 데 머물러 남녀 간 증가율에 큰 차이를 보였다. 남성의 경우 상대적으로 성관계가 왕성한 30대(39.3%)와 20대(34.2%)에 환자의 73.5%가 몰렸다. 이어 40대 환자가 15.4%를 기록했다. 전체 환자 수에 견줘도 20∼30대성 비율이 절반(49.2%)에 육박했다. 여성도 20∼30대에 환자의 70.9%가 집중됐지만 20대(50.7%)와 30대(20.2%)의 유병률 차이는 30% 포인트 이상으로 컸다.
연구팀은 국내 콘딜로마 환자가 2007년 이후 8년 사이 연평균 8.3%씩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성별 연평균 증가율은 남성이 11.6%로 여성(3.6%)에 비해 높았다. 연구에 따르면 2011년 이후 여성의 콘딜로마 환자가 감소세로 돌아섰지만, 남성은 매년 증가세가 지속했다. 연구팀은 이 같은 차이가 2007년부터 시작된 HPV 백신 접종이 여성에게 집중되면서 2011년 이후 실제로 감염 예방 효과를 냈기 때문으로 봤다. 당시 국내에 도입된 HPV 백신은 남녀 모두가 접종할 수 있었지만, 여성의 자궁경부암 예방이라는 목적이 더 강조되면서 여성들만 백신을 접종했다는 것이다.
김준모 교수는 "여성의 콘딜로마 유병률이 낮아진 것은 자발적으로 HPV 백신을 접종한 여성에게서 HPV 감염을 예방하는 효과가 순차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라며 "이와 달리 남성은 별다른 예방조치가 없어 환자 증가세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이제는 남성에 대해서도 HPV 백신 접종을 권장할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게 연구팀의 판단이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역학과 감염'(Epidemiology & Infection) 최근호에 발표됐다.
규제후 석달새 5천만원'뚝'…외지인 투자도 25% 급감1.5 매일경제 MBN <엄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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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투자한 집주인들 처분"…다주택자 규제가 약세 부추겨
올 입주물량 15% 늘어 `불안`
지방 부동산 '맹주' 부산 집값마저 약세 전환
사진설명부산광역시 주택 매매 가격이 5년 만에 처음으로 하락세로 반전됐다. 사진은 바다를 끼고 있는 부산 해운대구 아파트촌 전경. [매경DB]
"부산도 몇몇 알짜 단지 빼고 다 꺾였어요. 부산에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사놨던 사람들은 지금 물건 뺀다고 난리입니다."
부산에서 십수 년간 공인중개업소를 해왔던 A씨는 전화기 너머로 한숨을 쉬었다. 그는 경기와 부동산 시장 전체가 다 어려웠던 2013년 이후 5년 만에 또 한번 빙하기를 맞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특히 서울의 위세는 여전한 가운데, 지방 부동산 시장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부산 주택 가격 상승률이 4년4개월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을 지역에서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부산지역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부산의 강남이라 불리는 알짜 단지를 제외하고는 현재 부산 지역 전반적으로 올해 부동산 시장이 어렵다고 예측하고 있다"며 "특히 정부 규제 폭탄이 고스란히 부산 지역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부산 지역 투자자들조차 탈부산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KB국민은행 조사에 따르면 작년 10월 부산 아파트 매매 가격 상승률은 2013년 9월 이후 4년여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서 0.02% 하락을 기록했다. 이후 하락폭은 확대 일로다. 2017년 11월에 0.05%, 12월에는 0.07% 하락했다. 이는 가격으로도 증명된다. 2013년 입주한 부산 기장군 '정관동원로얄듀크 2차' 전용 85㎡는 작년 7월까지 꾸준히 올라 분양가 대비 1억원 넘게 상승한 3억5000만원에 거래됐지만 8월 이후 하락세를 걷고 있다. 작년 11월에 이 아파트의 같은 면적 매물은 2억9300만원에 거래됐다. 3개월 만에 매매가가 15% 떨어진 것이다. 해운대구 'LH뜨란채' 역시 전용 49㎡ 가격이 2016년 2억5500만원까지 올랐으나 작년 11월 1억7000만원까지 거래되며 가격이 폭락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월평균 400여 건에 달하던 부산지역의 외지인 아파트 구입 건수는 올 하반기(7~11월) 들어 300여 건으로 25%가량 급감했다. 문제는 올해도 여건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올해 부산 전체 입주물량은 2만3000가구로 작년에 비해 15%나 늘어날 전망이다. 당장 1분기에만 8000가구가 입주를 준비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부산에서도 가장 하락률(12월 -0.22%)이 컸던 해운대구에 입주를 앞둔 단지가 3개나 있다.
[1급 발암물질 석면 실태 조사했더니] 피해자 평균 생존기간 2년 안 돼작업복 석면에 가족 악성중피종 걸려 … 환경보건시민센터·석면추방네트워크 보고서 발표17.8.29 매일노동뉴스
1급 발암물질 석면의 끔찍한 실태가 통계로 드러났다. 석면에 노출돼 중피종암이 발병한 피해자의 평균 생존기간은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석면에 노출된 노동자 작업복에 묻은 석면으로 가족이 악성중피종에 걸리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는 2011년부터 시행된 석면피해구제법에 의해 인정된 석면암인 중피종 발병자 411명의 석면노출 원인을 분석한 '석면노출 설문지 개발 및 국내 악성중피종 환자의 역학적 특성연구' 보고서를 28일 공개했다. 보고서는 순천향대 천안병원 석면환경보건센터가 2011~2014년 석면피해자로 인정돼 정부 구제급여를 받은 이들 중 악성중피종 환자 411명을 대상으로 한 역학조사 결과를 담고 있다.
전체 피해자의 절반에 가까운 171명(41.6%)이 업무 중 석면에 노출돼 악성중피종이 발병했다. 석면공장이나 석면광장 인근에 거주하다 중피종에 걸린 노동자도 각각 91명과 30명으로 집계됐다. 동거가족이 가져온 작업복에 의해 석면에 노출된 가족 17명도 중피종에 걸렸다.
재개발·재건축 지역 2킬로미터 이내에 거주하거나(78명) 자동차정비소 2킬로미터 이내에 거주하다(13명) 발병하는 등 간접 경로로 중피종에 걸린 경우도 확인됐다.
중피종에 걸린 피해자 생존기간을 보면 직업노출은 19개월, 환경노출은 21개월이었다. 2011년 1월 석면피해구제법이 시행된 뒤 최근까지 확인된 석면피해자는 2천500여명이다. 이 중 1천여명이 사망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2009년부터 신규 석면사용이 금지됐지만 그 이전에 사용된 석면건축물의 안전관리 미흡과 허술한 석면관리로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며 "직업적 석면노출로 암이 발병한 경우가 40%가 넘는다는 것은 석면관련 산업재해·직업병 관리시스템이 엉망이라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부산, 인구 분포 50대 연령층 최다 '중장년 도시' 1.5 부산
전국적으로 40대 연령층 인구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반면 부산은 50대 연령층 인구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이 대표적인 중장년층 도시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이 최근 발간한 '2017 부산여성가족통계연보'에 따르면 2016년 부산은 50대 인구가 61만 390명(부산시 전체 인구의 17.5%)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25년 전인 1992년만 하더라도 부산에는 20대 인구가 78만 3034명(20.1%)으로 가장 많은 젊은 도시였다.
태안 기름사고 10년 “회복이라고 말할 수 없다” 주간경향 1259호
태안 기름유출 사고가 난 지 10년이 지났다. 언론의 “다시 찾은 청정바다” 기사를 보는 주민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가장 피해가 심했던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 주민들의 속마음을 들어봤다.
“이게 신문에 나봐라. 테레비 나봐라. 그렇지 않아도 시원찮은 경기, 그냥 죽는다.” 말을 아끼던 식당 주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거짓말 같으면 동네 돌아다니면서 물어봐라. 다 비슷하게 말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12월 27일과 28일 충남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를 찾았다.
모항리는 2007년 태안 기름유출사고 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마을이다. 모항리는 모항 1구부터 4구까지 총 4개 구역으로 구성돼 있다. 사고 당시 자원봉사의 상징이 된 만리포 해수욕장이 모항 3구다. 사고는 만리포에서 10㎞ 떨어진 지점에서 발생했다. 만리포 해안을 따라 쭉 걸어가면 모항항이다.
2017년 7월 5일 충남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 해수욕장으로 밀려 온 타르 덩어리들. / 전상수 제공
12월 7일은 사고가 일어난 지 딱 10년째 되는 날이었다. 언론에는 “태안 10년, 123만의 기적” “태안 기름유출 10년, 다시 찾은 청정바다” 등의 기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심경은 복잡하다. 관광객이나 지역 해산물을 생각하면 반가운 기사다. 하지만 한편에는 “이렇게 끝나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있다. 환경과 건강 때문이다.
모항항에서 만난 홍재표씨(49)는 “아직 회복이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된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그는 모항리에서 나고 자랐다. 자연스럽게 바다가 생활 터전이 됐다. 15년 전, 34살의 홍씨는 형과 함께 만리포 인근 무인 섬 주변 바다를 사 자연산 전복과 해삼 양식을 시작했다. 형제는 모은 돈을 모두 쏟아부었다.
태안 바다는 자원이 풍부하기로 유명했다. 전복이나 해삼은 해수면 아래 바위에 붙은 미역이나 다시마를 먹고 자란다. 홍씨는 “사고 전에는 다시마와 미역이 어마어마하게 자랐다”며 “전복 종패(씨를 받으려고 기르는 조개)를 뿌리고 3년이 지나면 세 배로 거둬들이곤 했다”고 말했다. 좋은 시절이었다.
10년이 지났다. 만리포 해수욕장이나 모항항 바다에서 기름 흔적은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홍씨는 “바닷속은 다르다”며 “미역이나 다시마가 바위에 붙어야 하는데 기름 성분 때문에 붙지를 않는다. 먹을 게 없는데 전복이 뭐 먹고 크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종패를 넣어도 상당수가 죽어버린다고 덧붙였다.
기름 흔적은 없지만 “바닷속은 다르다”
수협판매사업소에서 중매 일을 하는 한 주민도 더딘 회복을 실감한다. 그는 “해산물을 사서 소매로 팔아야 하는데 양 자체가 안 나온다”며 “기후변화 등 여러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 먹이사슬이 망가져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하며 막걸리를 들이켰다. 어민들에게 생태계 복원은 곧 생계 문제로 이어진다.
이들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또 있다. 홍씨는 매년 여름이면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정비사업을 한다. 포클레인으로 자갈을 걷어내 백사장을 고르게 하는 작업이다. 지난 2017년 여름, 홍씨는 포클레인으로 자갈을 걷어내다가 ‘시커먼 무언가’를 발견했다. 포클레인에서 내려 땅 속을 살폈다. 타르였다.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전상수씨(53)도 “다들 쉬쉬하지만 여름마다 자잘한 타르 덩어리들이 파도에 밀려 들어온다”고 말했다. 수온이 높아지면 바다 깊은 곳에 굳어 있던 타르 덩어리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전씨와 홍씨는 이를 모두 사진으로 찍어놓았다.
지난여름 타르가 나온 곳은 만리포뿐만이 아니다.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25㎞가량 떨어진 연포 해수욕장에서도 타르가 발견됐다. 태안군청 해양수산과 관계자는 “계절풍의 영향으로 쓰레기 등이 떠밀려 온다”며 “인력과 장비를 투입해서 밀려 온 쓰레기와 기름 찌꺼기를 모두 제거했다”고 말했다.
12월 28일 충남 태안군 모항항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 / 우철훈 기자
물론 이 타르가 사고 당시의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태안군청 해양수산과 관계자는 연포 해수욕장에서 발견된 타르에 대해 “분석 결과 사고 당시 타르와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환경부 국립공원관리공단 유류오염연구센터도 사고 직후 태안지역 전체 해안의 69.2%에 달하던 잔존 유징이 2014년 0%가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민들 생각은 다르다. 주민들은 2007년 사고 이전에는 타르가 해안으로, 그것도 매년 밀려오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만리포에서 숙박업을 하는 한 주민은 “정부 발표는 믿을 수 없다”며 “해양수산부는 맨날 다 잘 되고 다 좋다고 한다. 외국기관이 조사를 하면 믿겠다”고 말했다.
실제 폐유 수거실적을 보면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08년 10월 10일 기준으로 해상과 육상에서 수거된 폐유는 4175㎘에 불과하다. 사고 당시 유출된 기름은 1만2547㎘다. 즉 33%만이 직접 수거됐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만 기름이 묻은 흡착 폐기물은 3만2074톤이었다.
이를 두고 12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태안 기름유출 환경참사 10주기’ 토론회에 참석한 김형근 울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폐기물에 붙은 기름이 많을 것임을 유추하는 데서 그나마 위안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10년 동안 모니터링을 했다고 하는데 연구 결과가 주민들 증언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연구원과 주민들이 팀을 이뤄서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복되는 생태계, 하지만 악화되는 건강
또 다른 문제는 건강이다. 생태계는 느리지만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 하지만 건강은 악화되고 있다. 사고 당시 주민들은 방제에 앞장섰다. 초기에는 방제복이나 마스크 등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그게 중요한지도 몰랐다. 빨리 퍼내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주민들은 양동이와 삽, 마대자루를 들고 기름을 쓸어 담았다.
김관섭씨(59)도 3개월 동안 방제작업을 했다. 위험하다고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김씨는 “당시 현장에 의료 자원봉사자들이 있어서 혈압을 쟀더니 2008년 1월에 150이 나와서 놀랐다. 그런데 2월에는 180이 나왔다”고 말했다. 그 전까지 김씨의 혈압은 최대치가 120 정도였다. 가족 중 고혈압은 없다.
동시에 ‘목에 가시가 박힌’ 느낌이 이어졌다. 병원에서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몇 개월을 지냈다. 얼마 뒤에는 치아 사이사이에 염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염증에서는 고름이 나왔다. 치아가 하나 둘 빠졌다. 그리고 2008년 4월 27일, 얼굴 근육이 이상했다. 병원에서 안면마비 진단을 받았다.
지난 7월 11일 만리포 해수욕장으로 밀려온 타르 덩어리들. / 홍재표 제공
김씨는 방제작업과 자신의 건강에 연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해 2010년 허베이 스피리트호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건강과 관련된 유일한 소송이다. 방제작업 외에 집히는 게 없었다. 실제 원유에는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 벤젠, 톨루엔, 에틸벤젠 등이 포함돼 있다. 벤젠과 톨루엔은 1급 발암물질이다.
김씨는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모르겠지만 유독가스를 흡입하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이로 인해 여러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엑슨발데즈호 기름유출사고를 연구한 미국의 해양독성학자 리키 오트는 PAHs가 몸이 쌓이면 면역체계에 이상을 일으키거나 암을 발생시킨다고 지적한 바 있다.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한 건 김씨 한 명이지만 아픈 건 김씨만이 아니다. 태안환경보건센터가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남성의 경우 전립선암이 두드러지게 높게 나타났다. 애초 인구 10만명당 10~12명 수준이었던 발생률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이뤄진 조사에 따르면 30명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여성은 백혈병이 두드러졌다. 10만명당 5명 수준이었던 백혈병은 2009년부터 2013년에는 8.6명으로 뛰었다. 같은 시기 전국 평균은 4.1명이다. PAHs 대사체도 방제작업에 오래 참여한 사람일수록 높게 나타났다. DNA 산화손상지표인 8-OHdG 또한 높게 나타났다.
이에 대해 박명숙 태안군청 태안환경보건센터 연구팀장은 “암은 만성질환이기 때문에 노출에서 암 발생까지는 최소 10년 이상, 20년 정도 걸리므로 현재 태안지역 주민의 암 발생률이 기름유출로 인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긴 추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린이의 경우 사고 발생 1.5년 후 조사 결과, 사고지점으로부터 거주지까지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천식의 위험도가 2.43배 높았다. 사고 발생 3년 후 사고지점과 거주지, 학교와의 거리가 가까운 초등학생에게서 천식 증상이 더 높았는데, 천식 유병률은 전국의 2배 수준으로 나타났다.
전씨의 아이가 이런 케이스다. 전씨의 딸은 2007년 4월에 태어났다. 그는 “당시에 만리포 해수욕장 바로 앞에서 가게를 했다. 집도 거기 있었다”며 “지금 애가 초등학생인데 비염과 천식 때문에 한 달에 두세 번씩 병원에 간다”고 언성을 높였다. 사고 전후로 태어난 아이들은 ‘기름둥이’로 불린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조차도 특정 질병에 국한돼 있다고 주장한다. 같은 유해물질을 흡입한다고 해도 사람마다 증상은 다르게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가령 홍명순씨(66) 자매는 2008년과 2009년에 각각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여덟 자매 중에 태안에 사는 두 자매에게만 일어난 일이다.
홍씨는 “2008년 이전까지 40년 가까이 생리주기가 일정했다”며 “방제작업을 시작한 다음달부터 생리가 끊겼다. 그 다음달에도 생리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병원에서는 혹이 자궁 안팎으로 퍼졌다며 곧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2008년 4월의 일이다. 홍씨가 입술을 떨면서 말했다.
주민간 갈등으로 심리적 고충도
심리적인 고충 역시 심각하다. 2008년 충남 천안 나사렛대 심재권 교수가 2008년 실시한 ‘태안 기름유출지역의 주민 의식 및 행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만리포와 모항항 주민 200명 중 72.3%가 기름유출사고 이후 자살충동을 느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후 태안군에서 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삼성발전기금 배분을 두고 주민들 간 갈등이 심해져 심리적인 고충도 심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홍씨는 “제일 안타까운 게 제 몸보다 동네가 이상해진 것”이라며 “지금 다들 적 아닌 적이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실제 만리포 해수욕장과 모항항 근처에는 ‘삼성발전기금은 피해민의 눈물이다. 허베이 조합은 삼성발전기금에 관여하지 마라’ ‘삼성발전기금에 눈 먼 태안 유류피해민대책총연합회는 즉각 해산하라’는 글자가 적힌 플래카드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정부는 “상황이 마무리되어 간다”는 입장이다. 해수부 헤버이 스피리트 피해지원단 관계자는 “12만7000건에 달하던 소송의 99.8%가 해결됐고 남은 건 0.2% 수준”이라며 “이 소송이 모두 해결되고 나면 ‘보상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지원이 이뤄지고 마무리된다”고 말했다. 태안군청 태안건강보건센터는 남성의 전립선암과 여성의 백혈병과 관련해 건강검진 독려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해 주민들은 서운함을 보였다. 전씨는 “정부는 배상과 보상만이 전부인 것처럼 말하고 건강과 관련해서도 전립선암이랑 백혈병에만 집중하고 있다”며 “마치 배상과 보상 문제만 끝나면 태안 문제가 다 해결된다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프고 공동체는 갈라졌다. 이게 정말 해결된 건가”라고 되물었다.
지난 10년간 도대체 무슨 일이
ㆍ특별법 따라 신고한 주민 피해액 4조 2274억원 중 4138억원만 법원이 인정
“특별재난지역만 선포되면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런데 별 거 없었다. 그래서 특별법만 제정되면 다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도 별 거 없더라. 소송에만 10년 걸렸다. 삼성발전기금은 아직 받지도 못했다.”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 한 주민의 말이다. 이 말은 지난 10년간 태안에서 있었던 일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2007년 12월 7일, 오전 7시6분. 삼성중공업의 크레인 부산 1호가 홍콩 선적인 허베이 스피리트호를 들이박았다. 허베이 스피리트호는 화주인 현대오일뱅크로 향하던 중이었다. 충남 태안군 만리포 해수욕장 북서쪽 8㎞ 해상에서 허베이 스피리트호가 쏟아낸 원유는 1만2547㎘(1만900톤)다.
2007년 9일 해경헬기 상공에서 내려다 본 충남 태안군 해안의 모습. 유조선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파도를 타고 해변으로 퍼져가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주민과 정부, 주민과 삼성 간 갈등 깊어져
주민들은 그날 저녁부터 ‘보일러’가 터진 것 같은 기름 냄새를 맡았다고 증언했다. 다음날 주민들은 ‘검은 바다’와 마주했다. 주민 대부분이 바다에 생활을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특히 모항항, 만리포 해수욕장, 천리포, 의항리, 신두리, 학암포 앞바다는 기름 범벅이 될 정도로 피해가 심했다.
정부는 사흘 뒤인 10일, 태안군을 비롯한 6개 시·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특별재난지역 지정은 보통 피해조사가 끝나야 이뤄지지만 피해가 심각해 조기 대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됨에 따라 해당 지역은 국세 납부기한 연장과 지방세 감면 등의 혜택을 받았다.
정부 최종 발표에 따르면 당시 사고로 오염된 지역은 전국 11개 시·군이다. 해안선 375㎞가 오염됐으며 해수욕장 15개, 섬 101개가 포함돼 있다. 정부는 특별 해양환경 복원지역으로 총 8052㎢를 설정했다. 평으로 따지면 24억3573만평이다. 원유를 제거하기 위해 투입된 인력은 207만명이며 이 중 123만명이 자원봉사자다.
어마어마한 방제인력의 투입으로 태안은 순식간에 이전 모습을 되찾는 듯 보였다. ‘태안의 기적’이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했다. 2008년 6월, 공식 방제작업이 종료됐다. 그리고 태안군은 그 해 여름 만리포 해수욕장을 개장했다. 해수욕장 개장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대다수 주민들은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렇게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태안은 ‘해결된 곳’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민과 정부, 주민과 삼성 사이 갈등은 깊어져 갔다. 2008년 1월 태안 주민 3명이 잇달아 목숨을 끊으면서 갈등은 정점을 찍었다. 주민들은 삼성중공업과 정부에 격분하며 수차례에 걸쳐 태안과 서울에서 집회를 열었다.
2008년 1월, 태안군은 군민 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태를 맞아 정부 예산과 국민 성금을 지역주민들에게 지급했다. 긴급생계비라는 명목이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마을 간은 물론이고 마을 내에도 갈등을 불러 일으켰다. 지급 기준과 원칙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갈등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런 과정 속에서 탄생한 게 특별법이다. 정부와 국회는 2008년 2월 22일 허베이 스피리트 특별법을 제정하고 2008년 6월 15일 관련 시행령을 발효시켰다. 특별법은 피해금액의 선보상과 함께 3000억원 한도를 넘어선 피해에 대해서는 국가가 배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민들 기대치에 못미친 삼성중공업
특별법에 따라 주민들은 2009년 5월 8일까지 개별 채권을 신고했다. 피해주민이 신고한 개별채권은 총 12만7319건이며, 피해금액은 4조2274억원에 이른다. 12만7000여건이 넘는 채권금액 산정은 국내 법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때문에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은 검증단을 꾸리고 전산시스템까지 바꿨다.
하지만 이후 법원이 내린 판단은 주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서산지원은 2013년 1월 해당 사고에 대한 사정재판에서 피해금액을 총 7341억4383만3031원으로 결정했다. 이 중 주민들이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금액은 4138억73만1359원이 인정됐다. 이는 주민들이 신청한 채권금액의 17% 수준이다.
사정재판으로 확정된 채권은 1458억6400만원 범위에서 유조선사인 허베이 스피리트사가 부담하고 이를 초과하면 국제조약에 따라 3298억4860만원 한도 내에서 IOPC펀드가 책임을 진다. 확정된 손해액이 이 한도를 초과함에 따라 한도 초과분은 특별법에 따라 정부가 책임을 부담하게 됐다.
삼성중공업의 책임 역시 주민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삼성중공업은 2008년 12월 ‘선박책임제한절차’를 신청했다. 이는 해상에서 선박사고로 피해가 발생했을 때 피해보상 책임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는 상법상 절차다. 2009년 3월 24일, 서울지방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삼성중공업의 배상금액을 56억3400여만원으로 제한했다.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2013년 11월 21일 삼성중공업은 2014년 1월까지 3600억원 규모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명목은 지역발전기금이다. 실제 삼성중공업은 2014년 1월 29일 지역발전기금 중 2900억원을 자사 명의 계좌에 입금했다. 그리고 11개 지역이 이 돈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다툼을 시작했다.
결국 해양수산부 권고에 따라 11개 시·군은 대한상사중재원의 중재판정을 따르기로 합의했다. 이게 2016년 2월 4일의 일이다. 그리고 2017년 7월에서야 대한상사중재원은 삼성이 내놓은 지역발전기금의 지역 분배를 확정했다. 태안군은 2900억원 중에 49%를 받게 됐다. 1500억원가량이다. 하지만 이제는 발전기금 관리 수탁자를 놓고 이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태안군이 수탁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부 주민들은 비영리 공익단체가 수탁자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게 지난 10년 동안 태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깊어진 갈등의 골은 언제쯤 풀릴 수 있을까.
삼성이 끝냈다고 끝난 게 아니다”
ㆍ지역발전기금 출연 약속하고 떠나… 주민 보상 마무리 안돼 뇌관 여전
10년 전 일이다. 삼성중공업의 크레인 부선 삼성1호가 충남 태안군 만리포 해수욕장 북서쪽 5마일(8㎞) 해상에서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를 들이받았다. 그 충격으로 허베이 스피리트호가 싣고 있던 원유 1만2547㎘(1만900톤)가 태안 앞바다와 인근 해상을 뒤덮었다. 삼성중공업과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는 민ㆍ형사상 책임을 져야 했다. 법원 판결로 사고 가해자는 ‘삼성’과 ‘허베이 스피리트호’임이 명확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역대 최악의 해양오염사고는 ‘태안 기름유출사고’로 불렸다. 보통 해상오염사고에는 선박 이름이나 원인 제공 기업의 이름이 붙는 게 관례다. 1995년 씨프린스호 사고처럼 국내 유조선 사고에는 선박 이름이 붙었고, 1989년 알래스카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엑손 발데스(Exxon Valdez) 사고 역시 정유회사 이름인 엑손과 선박 이름인 발데스를 합해 이름을 지었다. 하지만 이번 재앙을 이르는 명칭에서 가해자 ‘삼성’은 사라졌다. 엉뚱하게도 피해자 ‘태안’이 전면에 나섰다. 삼성이 일으킨 사고에 ‘태안 기름유출사고’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삼성의 과실은 희석됐다. 실제로 지난 2010년 학계에서는 대학생들에게 ‘삼성-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와 ‘태안 기름유출사고’라고 이름을 다르게 붙여 기사를 읽게 한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삼성-허베이 스피리트호’ 기사를 읽은 학생은 사고의 책임을 기업에 돌린 반면, ‘태안’ 기사를 읽은 학생은 사고를 자연재해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였다. 김찬국 한국교원대 환경교육과 교수는 “삼성이라는 이름이 빠졌을 때, 경제적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업 이미지와 관련한 막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은 셈”이라며 “만약 삼성 이름이 붙었으면 삼성이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에 대해 전 국민들이 기억하기 때문에 삼성이 해결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 원인을 제공한 삼성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진 이유다. 지난 1991년 발생한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에서 페놀을 강에 흘려 보낸 ‘두산’을 누구도 기억하고 있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서울역 광장에서 삼성의 무한책임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태안군 주민들. / 남호진 기자
가해자 ‘삼성’ 빠지고, 피해자 ‘태안’ 부각
사고 수습과정에서 삼성중공업의 안이한 대처는 사고 직후부터 도마에 올랐다. 삼성은 사고 40일이 지나도록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았다. 첫 공식 입장 발표는 검찰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 이후에 이뤄졌는데, 그 사이 처지를 비관한 태안 주민 3명이 잇따라 목숨을 끊었다. 결국 사고 발생 50일 만에 삼성 측은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일주일 뒤, 삼성중공업은 이번 사고가 삼성 측의 과실이 아니라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태안 피해 주민들은 책임을 피하려는 삼성의 태도에 분노했다.
책임소재를 가리는 과정은 내내 삐걱거렸다. 삼성중공업은 사고 이후 배상책임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택했다. 먼저 삼성중공업은 손해배상책임을 50억원으로 제한하는 책임제한절차를 법원에 신청했다. 피해 주민들은 삼성 측이 악화된 기상상태에서 무리한 항해를 했고, 예인줄은 부실한 데다, 사고 당시 교신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사고의 책임이 삼성중공업에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주장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2년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삼성중공업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삼성중공업의 손해배상 책임은 56억원으로 마무리됐다. 피해 주민들이 신고한 피해액 4조2271억원의 0.13%에 불과한 금액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없는 대한민국에서 소유주 책임제한제도를 지렛대 삼아 헐값에 면죄부를 받은 셈이다. 남현우 서해기름유출공익법률상담소 변호사는 “삼성 때문에 사고가 났기 때문에 원인을 제공한 삼성중공업에 책임이 있고 전액 배상하는 것이 맞다”며 “검찰과 법원이 내린 판단에 원칙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피해주민 보상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08년 삼성중공업은 서해안발전기금으로 1000억원을 출연하기로 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발전기금 액수를 3600억원으로 늘렸다. 태안 지역에 직원을 파견해 사고대책본부를 열고 지원사업을 벌였다. 지역상품권 280억원어치를 구입하는 한편 7개 마을과 자매결연을 맺고 주민 숙원사업에 돈을 들였다. 임직원들에게는 태안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도록 지시했다. 지역 경제 활성화와 사회공헌 활동에 해마다 100억원을 투입, 2013년 말까지 약 594억원을 집행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삼성중공업의 지원사업에 대해 석연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 특히 자매결연 사업은 일부 선택 받은 마을에 혜택을 몰아주는 형식이어서 주민들 간 분열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2008년 8월 태안군수가 긴급 읍ㆍ면장 회의를 열고 삼성과의 자매결연을 자제할 것을 요청할 정도였다. 태안 만리포에서 숙박업을 하는 전완수씨(56)는 “자매결연을 맺어봐야 삼성 홍보에만 놀아난다”며 “서로 악감정 없을 때가 자매결연이지 사람 죽여놓고 결연하면 그게 자매결연이냐”고 되물었다. 모항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기순씨(66)는 “기름 70%가 여기 동네에서 회수됐지만 우리는 자매결연 안 맺었다”며 “혜택을 제일 못 받았다”고 말했다.
2017년 12월 6일 태안기름유출 환경참사 발생 10년 기자회견장에 뿔논병아리 사진 모형과 오염 현장 시료 샘플이 놓여 있다. / 권도현 기자
삼성 지원사업으로 마을 주민 간 균열
그나마 삼성중공업과 그룹이 진행하던 지원사업 대부분은 2013년 삼성중공업이 3600억원의 지역발전기금을 출연하기로 합의한 시기와 맞물려 중단됐다. 태안 지역상품권 구매는 이뤄지지 않고 있고, 삼성중공업 직원들도 더 이상 여름철에 태안을 찾지 않는다. 탈 많았던 자매결연사업 역시 교류가 끊겼다. 태안에 있던 사고대책본부도 2015년 문을 닫았고 담당자는 회사를 그만뒀다. 사실상 태안에 대한 삼성의 지원사업은 모두 끝났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회사가 2015년 큰 적자가 나면서 2016년부터는 (지원)활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라며 “그룹 미전실(미래전략실)도 없어지고 했기 때문에 더 하기가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삼성은 떠났지만 가장 큰 뇌관은 그대로 남아있다. 주민 보상 문제다. 삼성중공업이 내놓은 지역발전기금을 어느 지역, 누구에게, 얼마만큼 나눠야 하는지가 문제의 핵심이지만 삼성은 이 문제에서 손을 뗐다. 오랜 진통 끝에 대한상사중재원이 분배 비율을 정했다. 하지만 기금 수령 방식을 놓고 주민들 간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발전기금은 몇 년 전부터 준비가 돼 있다”며 “(분배) 부분은 우리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환경복원 문제와 주민들이 겪는 후유증에 대해서도 삼성은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환경오염 문제는 환경부에서 환경영향평가를 해서 문제가 없다고 결론이 난 사안”이라며 “주민들 입장에서는 트라우마를 얘기하는 부분이 있는데, 어쨌든 다 마무리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 이후 6명의 지역주민이 처지를 비관해 세상을 떠났다. 바다는 기름으로 뒤덮였고 생태계는 파괴됐다. 보다 못한 123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은 기적처럼 바다를 되살렸다. 하지만 그 사이 지역공동체는 사라졌고 주민들은 여전히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 모든 이야기를 시작한 삼성은 그동안 어디에 있었을까.
경자유전’의 원칙은 사라질까?
ㆍ밭 가는 사람이 밭을 가진다는 헌법 조항 유명무실… 개헌론·존치론 대치
경자유전(耕者有田). 밭 가는 사람이 밭을 가진다는 헌법 121조의 원칙이다. 농지 소유권이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있어야 한다는 이 원칙은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점차 유명무실해졌다. 농촌을 떠나는 인구가 늘고 농업인구는 줄어들면서 농사를 짓지 않아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하는 다양한 예외조항이 법률에 하나둘 더해졌기 때문이다. 개헌 논의가 확대되면서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아예 헌법의 경자유전 원칙을 지워버리자는 조심스러운 의견까지 나오는 한편, 그에 맞서는 존치론도 힘을 모으고 있다.
농업인구 줄고 다양한 예외조항 신설
“요즘은 제발 우리 땅에 농사 좀 지어달라며 찾아도 지을 사람을 못 구해요. 주변 땅값이 있으니까 덩달아 임대료도 올라서 아예 다들 농사를 포기해버렸다니까.” 경기 수원시에 살면서 고향인 평택에 5000㎡가 안 되는 밭을 가지고 있는 최순성씨(69)는 농지를 빌려줄 사람을 찾지 못한 지가 꽤 됐다고 말했다. 농지의 절반가량은 아직 마을에 남아있는 혼자 사는 할머니가 빌려 소일 삼아 농사를 짓는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을 빌려 농사를 짓던 마을 어르신이 세상을 떠난 이후론 땅을 놀리고 있다. 틈틈이 최씨가 가서 직접 길러 먹을 채소를 심고 거두기는 하지만 비어 있는 기간이 훨씬 길다. 농지 면적이 넓지 않고 접근하는 데 불편하기 때문에 전업농이나 농업법인도 사거나 빌리려 하지 않고, 개인이 빌리기에는 노력과 비용에 비해 소출이 보잘 것 없기 때문이다.
강원 춘천시의 농촌 지역에서 한 농민이 단무지용 무를 수확하고 있다. / 연합뉴스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농업인 입장에서도 들이는 품만큼 들어오는 소득이 없는 것은 마땅치 않다. “논이라면 한 마지기(약 660㎡)에 한 가마씩 보내주는 걸로 퉁치는데, 밭에다가 돈 되는 농사 지으려면 비닐하우스라도 깔아야 돈이 남지. 할머니 혼자서 할 수가 없거든.” 최씨로부터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김모 할머니(80)의 말로는 농사 지어 조합에 넘겨봐야 손에 쥐는 돈은 병원비와 약값 대기에도 모자라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주수입원은 오히려 자식들이 보내는 용돈이다. “다른 일을 할 게 없으니 남의 땅 빌려서 농사 짓는 양반도 마을에 있긴 하지. 그래봐야 비룟값 농약값 빼고 소작료(임대료) 내고 나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먹고 남는 게 없지.” 농지를 가졌건 못 가졌건 모두 수익을 극대화할 뾰족한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국내 농지 가운데 임차농가가 빌려서 농사를 짓고 있는 비율은 2016년 기준 57.6%다. 절반이 넘는 농가에서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있다는 것이다. 농지 자체의 값어치가 천차만별인 만큼 임대료 부담도 편차가 크지만 임차농가들의 가계는 대부분 열악한 수준이다. 벼농사를 짓는 농가에서는 회복되지 않는 쌀값을 감내해야 한다. 각종 지원을 받기 위해 농협에 조합원으로 가입하려고 해도 본인이 농사를 짓고 있다는 점을 입증할 임대차계약서가 없는 경우도 많다. 지주들이 세금감면과 직불금 수급 등을 위해 서면으로 계약을 맺지 않고 직접 농사를 짓는 것처럼 등록하곤 하기 때문이다.
공식 지원을 받지 못한 농사는 김 할머니의 표현대로 “입에 풀칠하기에 바쁜” 수준에 그친다. 특히 전체 농가의 41.4%(농가경제 조사)를 차지하고 있는 70세 이상 농가의 소득을 보면 자영농과 임차농가를 막론하고 연간 소득은 2261만원, 그 중 농업소득은 전체 소득의 28.6%인 646만원에 그쳤다.
소작농을 착취하는 지주와 마름은 농업사회였던 조선시대 이전의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일제강점기 총독부를 통한 일제의 보다 체계적인 착취까지 더하면 소작의 폐해는 비교적 최근인 해방 후 농지개혁 전까지 이어져 왔다. 그러나 1962년 ‘경자유전’과 ‘소작제도 금지’의 원칙이 헌법에 명시된 이후로 이 폐해는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농지만큼은 농사를 짓는 사람만 가질 수 있고, 불가피한 이유가 없으면 소작의 형태로 농지를 빌려주고 막대한 이윤을 챙길 수 없다는 원칙이 선 것이다.
빌려서 농사를 짓고 있는 비율 57.6%
현행 헌법과 농지법에 따른 농지 임대차는 소작과는 다르다. 지주와 소작농 사이의 임의적인 계약으로 농사를 짓고 생산물을 나누는 것이 소작제인 반면, 임대차는 민법에 규정된 계약을 기반으로 한다. 법대로는 농지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역사적으로는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신분제 폐지와 함께 봉건적 소작제도는 반(半)봉건적 소작제로 바뀌었고 현대에 와서 이 제도는 사라졌다. 지주가 소작농을 강제로 동원하고 고율의 소작료를 받는 소작제 대신 현재의 농지 임대차에서는 생산량의 10% 수준으로 임대료 수준이 정착됐다.
이에 따라 헌법의 경자유전 원칙에 의문을 품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개헌론이 사회 곳곳에서 제기되면서 경자유전 원칙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는 것이다. 경자유전 원칙 폐지론은 소작제의 폐해가 사라진 농업환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보다 효율적으로 농지를 활용하고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비농업인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까지 남아있던 지주와 소작농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가 사라졌기 때문에 과거의 유산인 조항을 헌법에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농업에서도 세계 수준에서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자유전 원칙은 농업기업 입장에선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규제로 작용하는 셈이다. 현행 농지법에 따라 농사를 짓는 개인 대신 농업법인을 통한 농지 소유가 점차 확대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경자유전 폐지는 농지시장에 더 많은 농업법인이 진입할 수 있게 문턱을 낮추는 방안이 된다. 이미 임대차 계약조차 잘 이뤄지지 않을 정도로 농지가 농업인의 경작에 쓰이지 못하는 점을 보면, 농업에서도 구조조정을 시행할 수 있게 시장을 열어 규모가 있는 농업기업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농지마저 기업의 경제활동에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허용하면 도시민 입장에서도 장기적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산물 가격이 널뛸 수 있고 농약을 대량 투하하는 농업방식으로 먹을거리의 안전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 근거다.
또 사실상 부동산 투기만 조장할 수도 있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대기업 일가가 농업용도라고 신고해 농지를 구입한 뒤 자신이 대주주인 골프장 개발 법인에 땅을 넘기는 등의 편법 행태가 드러나기도 했다. 농업인이 아닌 개인이 텃밭이나 주말농장 등의 목적으로 취득할 수 있는 농지는 1000㎡ 미만에 불과하다. 골프장이나 부동산 개발에 필요한 수십만㎡ 단위의 땅 소유는 지자체에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하는 등 농지 취득자격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 절차를 감수하고서도 개발이익을 만들어내려 농지를 구매할 정도로 농지를 향한 수요는 잠재돼 있는 것이다.
충남 홍성군 농촌의 한 농민이 논두렁을 다지고 있다. / 연합뉴스
이와 같은 편법은 농업법인을 통한 농지 소유에도 적용된다는 것이 농촌문제 관계자들의 입장이다. 농지법을 제정할 당시에는 엄격한 기준으로 소유를 제한했지만 농업법인의 농지 취득자격 요건은 점차 완화되고 있는 추세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농업개혁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임영환 변호사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박완주 의원과 경실련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헤아릴 수 없는 농지법 완화로 업무집행권을 가진 사람들 중 농업인의 비율은 줄어들었고, 대표자가 농업인이어야 하는 제한마저 폐지된 상황”이라며 “결국 비농업인이 농업회사법인을 통해 자유롭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농지 소유에 제한을 둬야 한다는 경자유전 존치론이 폐지론보다는 비교적 더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는 농업기반이 약해지는 현실을 개선하고 농업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농지는 농업인의 소유로 남겨둬야 한다는 주장이 뒤따른다. 농촌과 농업에 대한 무관심 탓에 경자유전 존치 이상의 대책을 강구하자는 여론은 그다지 힘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오히려 현행 농지법을 개정해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를 허용하는 예외적 경우들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움직임에도 사회적 반향은 크지 않다.
때문에 노인인구가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농촌의 현실이 그대로 노인 빈곤율과도 이어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농지 거래가 자유로워져 가격이 높아지면 임차농가의 소득은 더 위협받을 수밖에 없고, 이 경우 개별 농가 차원의 소규모 영농까지도 포기하게 만들 소지가 크다. 이에 대해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의 마두환 사무총장은 “농촌인구 감소와 고령화, 그리고 영세농과 임대농의 비중이 큰 현실을 반영해 오히려 농지제도는 지속가능한 가족농 중심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며 “농업인 중심으로 농지를 소유하고 이용하는 제도를 세우는 방향의 법 개정과 별도의 농지임대차보호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비농업인 소유 가능케 해 경쟁력 높여야”
영세한 임차농가를 보호하는 방향의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임차농가를 보호하는 데는 유리하지만 반대로 농지 공급 자체가 줄어들 위험도 있다. 정부가 고민하는 것도 이 지점이다. 정부는 일단 경자유전의 원칙 자체는 존치시킨다는 입장이지만 경제논리가 지배적인 현실을 전적으로 무시할 수도 없기 때문에 현실적인 딜레마를 안고 있다. 현실과 제도 사이의 거리가 멀어져버린 상황을 바로잡으려면 현실을 반영해 농지를 필요로 하는 수요는 유지해 농지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한편, 농지를 빌리는 농가와 빌려주는 농가 모두를 보호하는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채광석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농지 임대차 관리제도를 도입해 농지가 어디에서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당국이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하면 이를 토대로 제도를 개선하고 농지 임대차 현황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수열 농림수산식품부 농지과장도 경자유전의 원칙은 중요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현행 농지법의 문제는 개선해야 하지만 그만큼 난관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임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농지법의 비농업인 농지 소유 예외조항 중 농지를 취득하자마자 바로 임대가 가능한 조항 등은 문제가 있는 만큼 개정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비농업인이 농지를 상속받을 수 있는 문제는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상속하면 세금을 감면하는 등의 제도 정비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밝혔다.
Piensa En Mi - Giovanni Marra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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