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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11.18~11.22 한국인 ‘백만장자’ 80만명

by 이성근 2019. 11. 17.


           11.18 한국.한겨레

없는 노벨상의 나라학교·국회에서 상은 1등 아닌 봉사 의미

조국 사태가 팩트체크 문제? 언론의 판을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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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22 경향


없는 노벨상의 나라학교·국회에서 상은 1등 아닌 봉사 의미

상을 팔고 스펙을 삽니다] <3·> 돈으로 사면 안 되는 것들

 

서울신문은 상을 팔고 스펙을 삽니다’ 1·2회를 통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돈 주고 상 타기의 병폐를 파헤쳤다. 각종 시상 단체들이 매해 쏟아내는 수많은 상들은 대학생, 기업가, 정치인 등에게 팔려 입시와 취업, 홍보, 선거를 위한 수단이 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상을 사서라도 수상 실적을 쌓지만 그럴수록 상의 가치는 추락하고 있다. 상으로 대변되는 스펙 경쟁은 교육 현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올해 서울대 수시 입학생이 써낸 상장의 수는 평균 30. 가장 많은 상을 받은 학생은 고등학교 재학 중 총 108개의 상장에 이름을 올렸다. 한 고등학교에서는 한 해 동안 학생에게 준 상장의 개수가 전체 학생 수의 5배를 웃돌기도 했다. 교과목 경시대회부터 토론대회, 봉사상, 개근상, 친절상까지 이름만 바꿔서 찍어대는 상장은 더이상 성과와 노고에 대한 격려의 의미가 아니라 만들어진 스펙에 불과하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 해법을 찾아 지난달 노벨상의 나라스웨덴으로 향했다. 경쟁보다는 개인의 적성과 능력을 존중하는 스웨덴의 학교에는 전교 1상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지난달 7일 스웨덴 스톡홀름의 시트브링크스고등학교에서 연말에 시상하는 베스트 학생상의 강력한 후보 스테판 테오도로픽(오른쪽)이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 남단에 위치한 시트브링크스고등학교. 전교생 수 220명인 이 학교는 일반고와 직업고가 함께 있다. 직업고에서는 집 짓기, 자동차 수리 등 직업에 관련된 실무를 가르친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목공 수업으로 흙투성이가 된 검정색 작업복을 입은 남학생들이 우르르 카페테리아로 몰려들었다. 대학 진학과 취업을 앞둔 학생들이었지만, 같은 시각 문제집과 씨름하고 있을 한국의 학생들과는 분위기나 표정이 사뭇 달랐다. 학생들에게 대뜸 상 받아본 사람 있느냐고 묻자 몇몇이 스테판!”을 불렀다.

 

이 학교에서는 매년 연말 전교생 중 딱 한 명에게 수여하는 베스트(Best) 학생상이 유일한 상이다. 2학년인 스테판 테오도로픽(16)은 올해의 강력한 후보 중 한 명이다. 베스트 학생이라고 해서 성적이 좋은 학생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교사들은 그해 학교 생활을 성실하게 하고 다른 친구들을 잘 챙긴 학생들을 눈여겨보았다가 연말에 추천한다. 그리고 교사들의 토론과 투표 과정을 거쳐 공정하게 선정한다.

 

베스트 학생상의 특전은 선생님들과의 저녁식사다. 이는 선생님들 못지않게 학생들을 잘 이끌고 수업 분위기를 좋게 한 학생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다. 이 상을 받는다고 해서 대학 입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은 이 상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테오도로픽은 베스트 학생상을 받으면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내가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인증서를 받는 느낌이 들 것이라며 내 자신과 가족들에게 매우 자랑스러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가 가능한 건 경쟁보다는 평등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스웨덴의 교육 정책에 있다. 1960년대부터 스웨덴은 과목당 일정 점수 이상만 받으면 모두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학점제 시스템을 만들었다. 학교 성적으로 입학이 어려운 경우 호그스콜레프로비엣이라는 대학 시험을 통해 다시 점수를 받아 입학할 수 있다. 얼핏 보면 우리의 수시·정시 입학 개념과 비슷해 보이지만 대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분위기는 정반대다. 더 높은 점수를 받고자 입시 코디네이터를 동원하는 일도, 학원과 과외에 수백만원을 쏟아붓는 일도, 스펙을 쌓기 위해 부모의 인맥을 총동원하는 일도 없다. 모든 것이 공교육 내에서 해결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각 학교에 진학설계사를 파견해 학생들이 진로를 설계하고 관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취업을 위한 인턴 프로그램도 각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 연결해 준다.

 

이런 기조에 맞게 스웨덴의 학교들은 베스트 학생상처럼 봉사상 개념의 상만 일부 남기고 경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는 교육 현장에서 모두 걷어냈다. 주임교사인 사라 달크비스트(42)적당한 종류의 상이 있다면 학생 능력을 계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너무 많은 상은 학생들에게 오히려 스트레스를 주고 과도한 경쟁을 부추겨 불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스웨덴에서의 상은 대개 각 분야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감사패의 개념에 가깝다. 수상자들은 사회에서 존경의 대상이 된다. 남발하지 않은 덕에 얻은 권위다. 누군가가 성공하고 인정받기위해 수단이 되어버린 우리나라 상들과는 격이 다르다.

 

스웨덴에서는 대학 입학 원서에도, 취업 원서에도 수상 경력을 기재하는 란이 없다. 스웨덴의 입시 원서는 단출하다. 대학 지원 통합 사이트에 가입한 뒤, 원하는 대학에 지원하고 고등학교 성적과 졸업 증명서만 올리면 된다. 이후 합격자 발표가 나면 원하는 대학 전공 코스를 신청한다. 내신과 수능 성적, 자기소개서·교사 추천서·동아리와 봉사 활동·수상 경력 등 각종 스펙 증명서를 챙기고 면접까지 준비해야 하는 우리나라와 대조적이다.

 

이 고등학교의 직업반 집 짓기수업에서 한 학생(가운데)이 선생님에게 나무 바닥을 설치하는 목공 작업을 배우고 있다.

 

스웨덴 정치인은 상복이 없다. ‘좋은 게 좋지 않느냐는 식으로 정치인들에 뿌려지는 의정상따윈 존재하지 않는 탓이다. 평생을 바친 몇몇 의원에게 주는 감사패가 전부다. 지난달 9일 스웨덴 국회의사당에서 만난 국회의원 마르쿠스 비셸(31·스웨덴민주당)스웨덴에서 정치인은 국민을 대표할 뿐, 미국이나 한국처럼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는 특권층과는 거리가 멀다면서 국회에는 고졸부터 박사까지, 그리고 20대부터 60대까지 농부든 의사든 다양한 직업과 배경을 가진 정치인들이 모여 있다고 말했다.

 

우리만큼 화려한 스펙 없이도 스웨덴의 인적 자본의 질과 활용도는 훨씬 뛰어나다. 2017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인적자본지수를 보면 130개국 중 스웨덴은 8(100점 만점에 73.95)를 기록했다. 한국은 27(69.88)에 그쳤다. 학습능력 면에선 양국이 비슷했지만, 사회 진출 이후 노동자들의 숙련도(스웨덴 3, 한국 25)나 기술력(16, 26) 면에서 스웨덴이 훨씬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여년간의 헌신을 인정받아 자치구에서 교육계의 노벨상이라 일컬어지는 최고의 선생님상을 받은 이 학교의 교감 존 페터손.

 

상이 귀한 스웨덴에서 시트브링크스고는 올해 상복이 터졌다. 직업반 교사이자 교감인 존 페터손(42)이 구청으로부터 올해 최고의 선생님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상 역시 A4용지 크기의 상장 외에는 상금도, 승진 가산점도 주어지지 않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매년 한 명의 선생님을 선정하기 위해 노벨상 시상식만큼이나 뜨거운 관심을 보낸다. 학생과 동료 교사는 물론 학부모와 학교 이사들의 투표를 거치고, 동료 교사가 장문의 추천서를 써 줘야 하는 등 선정 과정이 까다롭다. 페터손은 교사 생활 22년 만에 처음 상을 받았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처럼 뿌듯하다면서 더 많은 학생들에게 헌신할 수 있는 큰 힘이 된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소수의 엘리트를 키워내는 게 아니라, 모두가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우수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학교 교육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상을 받는 일은 경쟁이 아니라 즐겁고 좋은 일이지요.”

 


글 사진 스톡홀름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조국 사태가 팩트체크 문제? 언론의 판을 바꿔야"

[언론개혁, 대안을 말하다 ] 국내 최초 팩트체크 전문 미디어 만든 김준일 뉴스톱 대표

"조선일보, TV조선... 그런 데는 절대 안 변한다. 죽어도 안 변하는 이들 끝까지 붙들고 어떻게 할 생각인가. (서울-주류 중심에서 벗어난) '탈중앙' 언론들을 늘려 그들(기성 언론사)의 힘을 희석시킬 생각을 해야 한다."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이 화두다. 이른바 '가짜뉴스'를 검증하는 '팩트체크 저널리즘'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과연 팩트체크가 신뢰를 잃어버린 언론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요즘 국내에도 팩트체크하는 언론사가 많이 늘었지만, 팩트체크 전문 미디어는 지난 20176월 문을 연 '뉴스톱'(www.newstof.com)이 유일하다.

 

지난 1029일 오후 서울 대학로 공공그라운드에서 만난 김준일 뉴스톱 대표는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팩트체커다. 팩트체커 일도 모자라 <국민TV>에서 '김준일의 핫6' 진행을 맡고 있고, 11월 초 일본 현지로 방사능 팩트체크 취재를 떠났다.

뉴스톱은 인턴 1명을 포함해 팩트체커 6명이 전부이지만, 2년 반 만에 한국을 대표하는 팩트체크 미디어로 자리잡았다. 정치, 사회, 과학, 문화 등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50여 명의 외부 팩트체커가 활동하고 있고, 지난 923일에는 한국을 대표해 전 세계 23개 팩트체크 기관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의 유엔 총회 연설을 공동 팩트체크하기도 했다.

 

김준일 대표는 요즘 이른바 '가짜뉴스 규제' 등 네거티브 방식의 언론개혁 정책에 비판적이다. 대신 출입처 중심의 언론 취재 관행을 깨는 한편, '보험성 광고'에 의존하는 언론사 '돈줄'을 바꿔, 독자 후원과 구독 모델에 바탕을 둔 신생 매체들의 힘을 키우는 '포지티브 방식'을 당부했다.

 

"언론 정정 보도를 1면에 싣게 한다고 언론개혁이 되겠나. 정부도 세액 공제나 언론 바우처 제도를 도입해 수용자들이 각자 좋아하는 비영리 언론을 후원하게 해서, 시민들이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언론들이 시장에 많이 들어와 혼탁함을 그나마 덜어주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만들기 어렵고 돈도 안 되지만 팩트체크가 필요한 이유는 '신뢰'

김 대표와 본격적으로 언론개혁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 팩트체크 현주소를 짚으려고 '팩트체크 저널리즘에 관한 3가지 속설'을 검증했다.


팩트체크는 어렵고 재미없다?... '대체로 진실'

- 팩트체크 기사는 공이 많이 들어가 쓰기도 어렵지만 일반 기사에 비해 논문처럼 딱딱해서 독자들이 읽기도 어렵다는 편견도 있다.

"편견이 아니고 사실이다. 쓰기도 어렵고 읽기도 어려운 건 맞다. 다만 팩트체크 기사 타깃층(목표 수용자)이 누구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일반 독자들이 많이 읽어도 좋겠지만 일반적으로 뉴스를 많이 소비하고 미디어 리터러시(수용자 교육)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팩트체크 기사는 기자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정보 확산의 가장 중요한 통로가 언론이기 때문이다. 오피니언 리더나 저널리즘 관계자가 팩트체크 기사를 참고하고 바이블처럼 활용하면 (허위조작정보 확산 방지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 기성 언론사가 팩트체크 전담 조직을 만들기 꺼리는 이유는 투입 대비 생산성, 즉 조회수가 떨어지기 때문이란 의견도 있다.

"맞다. 투입 대비 생산성이 떨어지고 전담 인원이 붙으면 꾸준히 기사를 생산해야 하는데 뭘 해야 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미국 3대 팩트체커 가운데 하나인) <워싱턴포스트> 글렌 케슬러는 정치 분야만 하는데, 다양한 분야를 하려고 하면 (기자에게) 전문 영역이 아닌 경우 난관에 많이 부딪힌다. JTBC 뉴스룸 '팩트체크'에는 하루 5분 정도 방송하려고 기자와 작가 5명이 붙는데, 어머어마하게 투입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JTBC가 팩트체크를 하는 이유는 자사 보도의 신뢰도를 높이는 파생 효과가 있어서다. 그런 게(신뢰도 향상) 필요한 언론이라면 하겠지만 모든 언론이 하기는 어렵다. 시장 논리가 강한 한국 저널리즘 판에서 언론에 팩트체크를 규범적으로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

- 팩트체크 기사를 만들긴 어렵지만, 언론사에서 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의미인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 2017년 국민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팩트체크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답변이 90% 정도 나왔다.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팩트체크 필요' 94.2%, '의무화 찬성' 85.7% 출처: [뉴스톱] 10명 중 9"팩트체크 필요...의무화해야").

"국민이 팩트체크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한국 언론의 신뢰도 하락과 맞물려 있다. '너희를 못 믿겠으니까 스스로 팩트체크하라'는 건데, 언론에 원래 자체적인 '팩트체크' 기능이 있는데도 못 믿겠다는 얘기다. 언론에서 80~90% 이상 팩트체크해도, 안 걸러지는 게 단 1%라도 있으면 독자에겐 너무 크게 보인다. 언론 내부의 기술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자성하는 모습을 안 보여주니 독자들 불신이 커지고 팩트체크에 대한 갈증도 커지고 있다."

 

'팩트체크'란 원래 언론사에서 자사 보도 내용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미리 검증하는 과정을 말한다. 하지만 최근 언론이나 시민단체에서 정치인 발언이나 허위조작정보의 진위를 가리는 독립적인 기사나 콘텐츠를 만들기도 하는데, 이를 '팩트체크 저널리즘'이라고 부른다.


팩트체크는 효과가 없다?... '절반의 진실'

- 조국 사태와 검찰개혁 국면에서 기성 언론이 많은 비판을 받았다. <알릴레오> 같은 유튜브 방송이 KBS 같은 기성 언론 보도보다 더 신뢰를 받기도 했다. 수용자가 보고 싶은 매체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한다는 '확증편향' 현상 때문에 언론의 팩트체크 효과가 크지 않다는 회의론도 있다.

"팩트체크는 만능이 아니다. 굉장히 보조적이고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하고 그 영향력도 제한적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요즘 '팩트체크'란 단어가 남용되고 있다. 팩트체크(저널리즘)의 형식적 논리를 전혀 갖추지 않았는데도, 방송 나와서 당사자가 하는 주장만 듣고 '이건 팩트체크 됐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조국 사태 같이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은 팩트체크하기도 어렵다. 뉴스톱에 왜 조국 사태 팩트체크 안 하느냐고 많이 묻는데, 전국 난다긴다하는 언론들이 다 달려들어도 (검증) 안 되는데 누가 할 수 있겠나. 그래서 우린 팩트체크 대신 '팩트 정리'를 했다."

<뉴스톱>은 조국 전 장관 인사청문회를 앞둔 지난 8월 말 조국 가족 관련 논란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조국 의혹 팩트 정리 시리즈' 를 내보냈다. 이어 9월에도 '조국 딸 vs 나경원 아들 연구 논란 4대 쟁점' '팩트 정리'를 계속 이어갔다.

"(팩트 정리를) 기자들이 더 좋아하더라. 기사들이 흘러가는 게 많고 쌓이지 않다 보니, (사건을) 정리하고 맥락을 짚어주는 저널리즘 역할도 필요하다. 독자들뿐 아니라 기자들이 모르는 사실도 많다. 검찰 등 수사기관 기사가 대표적이다. 사소한 팩트 하나만 가지고 기사를 쓰다보면 전체 사건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기자도 잘 모른다. '팩트 정리' 방식은 언론사에서 꾸준히 해볼 필요가 있다. 오마이뉴스가 1, 2, 3신 기사를 업데이트하는 것처럼 시간과 사건의 흐름에 따라 맥락을 보여주면, 독자들 스스로 팩트체크하는 효과를 줄 수 있다."

- 팩트체크가 독자들의 확증편향 현상을 막을 수는 없는 건가.

"해외 연구 사례를 보면 정치 관련해서는 팩트체크가 '중도'는 바꿔도 '진보''보수'는 절대 바꾸지 못한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거짓말했을 리 없다는 인지부조화 현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다만 중도 성향 유권자는 (거짓말 하는 후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증가하거나, 심지어 투표소에서 다른 후보를 찍는 현상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다."


팩트체크는 돈이 안 된다?... '진실'

- 팩트체크만으로 독립 매체를 꾸려야 하는데 (구성원이) 먹고사는 게 가능한가?

"지금까지는 돈이 안 됐다.(웃음). 다른 나라에서도 팩트체크가 돈이 안 된다는 게 이미 입증됐다."

뉴스톱은 재정적 독립성을 강조하려고 회사 재정 상황을 홈페이지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뉴스톱은 지난해 14000만 원을 벌었지만 18300만 원을 써서 4300만 원 정도 적자였다. 광고 수입도 거의 없었고 SNU팩트체크센터 기획취재 지원과 네이버 콘텐츠 펀딩, 후원 수입이 대부분이었다.

언론사 재정 이야기가 나오면서 화두는 자연스럽게 언론개혁으로 이어졌다.

"언론개혁이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질문해야 한다. 검찰개혁처럼 제도나 법을 바꾼다고 언론개혁이 되겠나. 언론은 애초 권력에서 자유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자유를 제도화한 특수한 시스템이다. 언론은 공공성이 강하지만 시장에 맡겨진 이율배반적인 시스템이기도 하다. 지금 언론개혁 담론은 '언론이 OO해야 한다'는 식인데, 너무 뜬구름만 잡는 것 같다.

 

언론개혁은 현실적인 데서 출발해야 한다. 한국에서 언론은 이윤을 쫓고 출입처 제도 같은 관행에 따라 움직인다. 2가지를 바꿔야지, 언론 자율을 제한하고 규제하는 방식으로는 안 바뀐다. 지금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기사가 생산된다. 이를테면 그동안 조국 관련 기사가 10~13만 건 정도 나왔는데 왜 이렇게 많았겠나. 조국 기사가 돈이 되기 때문이다. 일부 정치적 목적으로 조국을 낙마시키려한 언론도 있겠지만, 나머지는 조국 기사가 돈이 되니, 클릭수가 높으니 '어뷰징(악용)'하는 것이다. 배우 '설리' 기사로 어뷰징하는 것과 똑같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 1024'언론사의 가짜뉴스를 처벌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답변에서 허위조작정보 관련 법안을 소개하면서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허위조작정보를 차단할 의무를 부과하거나 언론사의 오보 등에 대한 정정보도 위치를 신문의 첫 지면에 게재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 같은 정부 차원의 '언론 규제'에 부정적이다.

"허위조작정보 문제는 언론뿐 아니라 독자도 똑같이 책임져야 한다. 언론만 바뀌라고 하면 바뀌겠나, 그게 돈이 되는데. 좋은 기사든 쓰레기 기사든 소비해준 독자가 있어 언론이 여기까지 온 거다. 정부는 언론을 규제하기보다 양화가 악화를 밀어내는 방식으로 언론개혁 판을 만드는 '포지티브' 방식으로 가야 한다.

 

언론 정정 보도를 1면에 싣게 한다고 언론개혁이 되겠나. 정부도 세액 공제나 언론 바우처 제도를 도입해 수용자들이 각자 좋아하는 비영리 언론을 후원하게 해서, 시민들이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언론들이 시장에 많이 들어와 혼탁함을 그나마 덜어주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팩트체크는 근본적인 대안 아냐, 저널리즘 관행을 바꿔야"

 

팩트체커(Fact Checker) 김준일 뉴스톱 대표 이희훈

 

- 팩트체크가 언론개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근본적인 대안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팩트'가 문제가 아니다. 조국 사태에서 언론개혁이 불거졌지만, 팩트체크가 안 돼서 벌어진 게 아니다. 언론이 거짓 보도했다고 주장하지만 대체로 사실에 가까운 보도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너무 앞서 나가거나 팩트체크 없이 검찰 말을 받아쓴 건 사실이지만, 언론사에 팩트체크를 요구한다고 그런 관행들이 바뀔지는 회의적이다. 언론이 더 절제하고 조심할 필요는 있지만 쉽게 안 바뀐다. 사람들도 박근혜-최순실 사태 때 검찰에서 나온 언론 보도를 보고 환호했다. 언론이 조국에게만 가혹했던 게 아니라면 저널리즘 관행을 바꿔야 한다.

팩트체크만 강조한다고 바뀔 것 같지는 않고 언론도 소비자도 바뀌고, 저널리즘의 전체적 가치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런 차원에서 팩트체크를 강조하는 흐름도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팩트체크를 왜 안하느냐고 따지는 건 대안이 아니다. 팩트체크 저널리즘은 보조적이고 제한적 역할만 한다. 어떻게 모든 보도를 팩트체크 저널리즘처럼 하겠나. 팩트체크도 탐사보도, 데이터 저널리즘, 스트레이트 기사, 칼럼 같은 언론 보도의 하위 장르일 뿐이다. 다만 조국 사태 과정에서 너무 과도하게 넘겨짚는 보도는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준일 대표는 지난 2001년부터 <경향신문> 기자로 10년 정도 일하다 미국 유학을 계기로 팩트체크 미디어를 창업했다. 자신이 오랫동안 몸담았던 언론계를 지켜보는 심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김 대표가 '허위조작정보'라는 말을 쓰는 것도, '가짜뉴스'란 말이 기성 언론에 대한 막연한 불신을 초래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와서 보는 저널리즘이 새롭다. (언론계) 내부시스템 안에서는 잘 못 보는 게 있다. 시스템 밖에서 출입처 없이 일하다보니 출입처를 깨면 어떤 방식으로 취재할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한편으로, 밖에서 보니 저널리즘에 대한 애정도 더 생긴다. 언론계 안에서는 자괴감만 들었는데 요즘 밖에서 '친언론' 발언을 많이 한다. 난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언론을 비판하는 기사를 계속 써 왔고 지금도 뜬구름 잡지 않고 어떤 언론이 뭘 잘못했는지 쓰고 있어서다. 대신 뜬구름 잡는 식으로 언론 공격하는 건 스스로 차단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 1028<한겨레>에서 진행한 언론개혁 좌담회에 참석했다. 참석자들 가운데 언론사 출신은 김 대표가 유일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방어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한겨레] "검찰이 흘린 정보에 의존'조국보도 백서' 만들어 자성해야")

"언론은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굴러가 본 적이 없다. 언론이 생긴 이래 항상 엉망이었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람이 왜 언론은 이러지 못하느냐고 규범적으로 접근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구체적으로 뭐가 잘못됐는지 현실적인 대안을 내놔야 한다. 왜 이리 조국 보도가 많으냐고 지적하는 건 하나마나한 비판이다."

 

"한국 포털이 저널리즘 혁신 가로 막아"

- 언론개혁을 위해선 뉴스톱 같은 새로운 매체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신생 매체 파워가 강해 기성 매체가 자극 받는 선순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요즘 20, 30대가 만든 신생 매체들이 대부분 (사업이) 잘 안 된다. 한국은 저널리즘 광고시장이 굉장히 경직돼 있고 거의 담합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신생 매체가 뚫고 들어가기 어렵다. 한국에 많은 기성 언론사가 한 군데도 망하지 않는 이유와 맥을 같이 한다.

 

내가 봤을 땐 그런 흐름도 몇 년 남지 않았다. 짧으면 5, 길면 10년 안에 깨진다고 본다. 신문 구독률이 2022년이 되면 산술적으로 0%가 된다고 한다. 지상파 방송사도 매년 1000억 원대 적자를 내고 있다. 온라인광고가 급격히 '프로그래머틱 광고(광고 효율을 측정해 자동 배치되는 광고)'로 전환되면서 더는 '보험성 광고'(광고 효율보다 언론의 비판적 보도 방지 성격이 강한 광고... 기자 주)가 안 되는 흐름으로 봤을 때, 미국에서 선도적으로 뜬 '구독' 트렌드가 10년 정도 후에 한국에서도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 유튜브 방송과 같은 구독 모델을 말하는 것인가?

"유튜브는 아예 생태계를 만들어 놓고 플레이어들이 참여하게 한 것이고, 다른 새로운 구독 경제 모델들이 나올 것이다. 한국 저널리즘의 가장 큰 문제는 포털이라고 생각한다. 포털이 저러고(언론 기사의 관문 역할) 있는 이상 혁신이 안 된다. 한국은 언론사 사이트 직접 방문 비율이 4%로 전 세계 꼴찌다. 핀란드나 노르웨이는 60%대다. 고객이 안 오는데 어떻게 영업을 하겠나. 포털(중심 구조)을 안 깨면 저널리즘의 미래가 어렵다."

- 뉴스톱도 후원 모델을 고민하고 있나?

"우리 존재 자체가 한국 저널리즘 시장에서 일종의 실험이다. 우리도 네이버 뉴스검색 제휴 매체 500개 중 하나여서 열심히 기업 기사 '베껴 쓰기' 하면 먹고 살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하루 2~3개 기사만 생산해도 어떻게 먹고 살지 실험하고 있다. 다음달(11) 새 홈페이지를 오픈할 예정인데, 독자 후원도 받으려고 하고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의 광고도 고민하고 있다.

 

지난 정권 때 정권교체 열망과 분노 때문에 <뉴스타파> 같은 매체가 후원을 많이 받았는데 탐사 보도는 특성상 뜨겁고 ''한 게 있는데, 팩트체크는 싸하게 만드는 ''한 미디어다. 대한민국 독자들이 얼마나 팩트체크 가치를 인정하고 지갑을 열지 일종의 실험을 해보고 싶다."

 

"12년마다 새로운 현상 출현, 2024년엔 탈중앙 언론이 나올 것"

- 개인이 아닌 기업으로선 큰 모험이다.

"솔직히 기업가적 마인드가 아니라 일종의 '운동'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도 기업이니까 지속가능성 확보는 매우 중요하다. 아직은 멤버들이 돈을 조금 덜 받아도 문제없다. 그래도 회사가 좀더 안정적으로 굴러가려면 돈을 버는 모델이 필요하고, 그런 성공 사례가 있으면 다른 새로운 시도도 나타나지 않겠나."

 

김 대표는 나름 '12년 주기론'을 근거로, 앞으로 5년 뒤엔 언론계 판도가 크게 바뀐다고 기대하고 있다.

 

"한국 언론 역사를 보니 12년 정도 주기로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1975년 독재 권력에 맞선 동아투위 사태, 1988년 국민이 주주인 <한겨레> 창간, 2000년 모든 시민이 기자인 <오마이뉴스> 창간, 2012<뉴스타파> 창간이 그것이다. 2024년 시대정신은 '탈중앙화'가 될 것이다. 그동안 한국 사회가 서울 중심이어서 언론도 서울 중심이고 젠더 같은 다양성 문제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탈중앙' 언론이 나오려면 정부에서 어느 정도 판을 깔아줘야 한다. 지금 죽어도 안 변하는 기성 언론들을 바꾸려고 애쓰지 말고 (탈중앙) 매체를 늘려 그들(기성언론사)의 힘을 희석시킬 생각을 해야 한다 글: 김시연(staright) 오마이뉴스

 

 

[이슈&탐사]문재인정부 부동산 정책을 완전히 가지고 놀더라

[부동산 가격 상승 추적기] 대전울산부산, 외지인이 휘젓는 지방 부동산

가격 올라도 사들일 실수요자 충분

지역의 강남불리는 곳 집중 공략

외지인지역 투자자실수요자

매수 패턴에 동네 사람이 곤욕 치러

 

외지 투자자들의 매매 패턴을 지켜본 부동산업자들의 평가다. 최근 가격이 급등한 지역 부동산업자들의 설명은 대체로 유사했다. 우선 외지인들이 찍은 동네가 비슷했다. 해당 지역의 강남으로 불리는 곳이다. 이런 동네 중에서도 규제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거나 저평가돼 있는 지역이 타깃이 됐다. 지방 부동산 시장이 침체됐다고 하지만 교육시키기 좋고, 교통이 편한 동네에는 늘 실수요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내 집값도 오를 수 있다는 내지인 심리까지 노린 전략이다. 문재인정부 부동산 규제 정책 핵심인 핀셋 규제’(이상 과열현상을 보이는 특정 지역만을 타깃으로 한 규제)는 외지 투자자의 다음 과녁 선정 기준이 된 것이다.

 

울산 남구 옥동에는 문수로 대로변을 따라 거대한 학원가가 형성돼 있다. 1층을 빼곤 전부 학원으로만 들어찬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식이다. 이 학원가를 둘러싸고 있는 옥동은 울산의 대치동으로 불린다. 울산 주민들 사이에서 옥동 입성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쓰일 정도다.

 

외지인들이 몰려들었던 아파트 단지는 이 학원가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인 문수로2차 아이파크 단지다. 대부분 구축 아파트인 옥동 바로 옆에 지어진 신축 아파트라 내지인의 수요가 높은 곳이다. 큰길 하나만 건너면 울산서여중 등 중고등학교가 모여 있어 학교 가기 좋은 아파트로도 꼽힌다. 울산 주민 A씨는 17옥동이 학원의 중심지인데 그쪽에는 신축 아파트가 없다그러다보니 새로 옥동에 진입하려는 사람들은 그쪽에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그 아파트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대전 부동산 급등 지역인 서구 둔산동 입지도 비슷하다. ‘대장주중 한 곳으로 지목된 목련아파트의 경우 걸어서 5분 거리에 서울 대치동에서도 유명한 학원들이 모여 있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교육열이 굉장하지 않냐. 대전 사람들은 맞벌이 부부가 많다보니 학원가가 밀집돼 있어 안전하게 학원 보낼 수 있는 (목련아파트) 쪽을 찾는 것 같다고 했다. 이런 동네는 지역 내 전통적인 부촌인 경우가 많다. 최근 정부의 규제 완화로 외지인의 원정 투자 행렬이 밀려들고 있는 부산 해운대구는 부산 내 집값이 높은 지역 중 하나다. 대전 둔산동이나 울산 옥동 인근도 해당 지방의 대표적인 부촌으로 꼽힌다.

 

외지인이 이런 지역을 찍고 움직이는 모습은 전국 곳곳에서 목격된다. 국민일보가 접촉한 지방의 부동산 중개업자들에게서는 이런 동네의 이름이 몇 차례 거론됐다. “대전에 왔던 손님이 대구 수성구로 가서 돈을 벌었다거나 울산에서 한두 건을 하고는 부산 해운대로 넘어갔다는 식이다. 외지인이 움직인 시점의 차이는 있지만 좋은 학군, 부촌 등 특징이 비슷한 동네들이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일반적으로 외지인은 해당 지역을 잘 모르기도 하고, 상품으로 접근하는 차원이기도 하기 때문에 랜드마크 아파트를 산다고 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사람이 없고 고령화된 지역을 사지는 않는다. 지방 중에서도 성장할 것 같은 지역을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실수요자다. 외지인들이 이런 지역의 아파트를 골라 사들이는 건 가격이 올라도 매물을 받아줄 사람들, 즉 실수요자가 충분하다는 계산에서다. ‘오를 만한 곳이 올랐다는 인식이 형성되면 추격 매수가 쉽게 붙는다는 전략도 깔려 있다. 게다가 지방이라는 이유로 서울·수도권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가격 상승 여력도 충분하다고 본다. 울산의 감정평가사 B씨는 매집하는 사람들은 비싸게 해 놔도 누군가는 소화를 한다고 보고 학군 좋고 안정적인 곳으로 몰린다고 분석했다.

 

외풍과 내지인의 실수요가 섞이면 집값은 공고해진다. 대구 수성구의 경우 외지인 자금이 집값 띄우기에 한몫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내지인 수요가 집값을 떠받치고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최근 수성구 범어동에서는 84규모의 아파트 입주권이 99000만원에 거래됐다. 최근 집값 급등세인 부산 해운대에서는 내지인 사이에서 집을 사야 한다는 분위기가 달아올라 호가 띄우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저금리로 시중에 풀린 돈이 규제 장벽의 틈을 파고든 영향도 있다. 갈 곳을 잃은 뭉칫돈이 지방으로 모여든다는 것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대부분 지방이 규제지역은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청약과 관련된 이런 부분 규제가 적고 대출이나 세금 부분도 허들이 낮다이런 부분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서울은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오른 데다 규제도 강해 투자가 쉽지 않다이 자금이 지역으로 갈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고 진단했다.

 

규제의 빈틈과 실수요자를 노린 외지인들의 전략에 지역은 속수무책인 구조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전문가는 보통은 내 동네의 부동산 가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런데 (외지 투기꾼들이) 학군 선호지역 등에서 이 동네는 죽지 않는다는 그럴듯한 개연성을 갖고 붙는다“(그 결과) 먼저 외지인이 사고, 두 번째는 그 지역 투자자들이 산 다음 마지막에는 동네 실수요자가 들어온다고 했다. 결국 동네 사람이 투기 후유증을 떠안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렇게 심하게 급등하고 투기바람이 일었던 곳은 회복이 힘들다고 말했다.

 

광풍이 지나쳐 간 지역 현장에서는 이들이 규제를 가지고 논다는 표현마저 나왔다. 지역의 한 공인중개사는 원래 수요가 있고 공급이 부족했던 동네에 외지인이 기대심리를 가져오면서 정상가격의 마지노선을 넘겨 버렸다부동산 대책을 내놔도 외지인은 안하무인이었다고 말했다. 김판 임주언 정현수 김유나 기자 pan@kmib.co.kr

 

86조 국고보조금 눈먼돈 구조조정필요한데정부의 고민 4가지

내년 1618개 사업에 861358억원 지출 예정

규모 커지면서 내년에 눈 먼 돈구조조정 계획

기초연금 등 복지확대로 의무지출 증가해 고민

재량지출도 노인 일자리 등 정부 주요 정책과 연관

지방과 민간의 반발도 넘어서야 해 고민 깊어져

 

정부가 지방 또는 민간의 비용을 내주는 국고보조금이 내년에 86조원을 돌파한다. 기초연금, 일자리 창출, 도시 재생 등 정부정책 추진을 위해 지급하는 보조금이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정부도 부담을 느낀다. ‘눈먼돈은 없는지 내년에 구조조정을 할 계획이다.

 

다만 복지 확대로 의무지출해야 할 보조금이 늘고 있는 점은 고민이다. 깎을 수 있는 보조금인 재량지출도 현 정부 들어 노인 일자리, 최저임금 인상 보완 등 주요 정책과 연관돼 구조조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조금이 깎이는 지방과 민간의 반발도 넘어서야 한다.

 

18일 기획재정부가 김성식 바른미래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내년 국고보조금 규모는 861358억원에 이른다. 2014525391억원과 비교해 약 1.6배 증가한다. 내년 국고보조금 사업은 모두 1618개다. 국고보조금은 특정 사업을 장려하기 위해 지방과 민간에 국가가 을 지원해 주는 것이다. 보조금 내용에 따라 인건비·운영비 등을 지원하는 경상 보조금’, 토지매입비·시설건축비 등을 지원하는 자본 보조금으로 나뉜다. 올해 지방자치단체에는 약 60조원, 민간에는 약 18조원이 전달됐다.

 

정부도 보조금이 늘자 고민이 크다. 사업이 많아지고 규모도 커지면 구멍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내년 구조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관행적으로 지출된 국고보조사업에 대해 원점에서 존폐 여부를 점검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술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깎기 힘든 의무지출이 증가하고 있다. 내년 국고보조금 의무지출 중 상위 10개 사업의 규모는 349835억원이나 된다. 2014(182945억원) 대비 약 2배 늘었다. 각 사업은 예산을 줄이기 힘든 복지 확대와 연결돼 있다. 기초연금, 의료급여 경상보조, 생계급여, 주거급여 지원 등이다. 대부분 2014년보다 약 2배 규모가 증가했다.

 

재량지출을 줄이려고 해도 만만치 않다. 재량지출은 정부가 의지에 따라 예산의 축소·확대를 결정할 수 있다. 다만 내년 국고보조금 재량지출 상위 10개 사업은 현 정부의 정책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의무지출과 다르게 2014년 대비 종류가 많이 달라졌다. 10개 중 8개 사업이 새롭게 추가됐다. 일자리안정자금지원, 고용창출장려금,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 대기개선 추진대책, 청년내일채움공제, 도시재생사업, 전기자동차보급 충전 인프라 구축, 공익형직불제 제도 개편 등이다. 노인·청년 일자리 창출, 도시 재생, 최저임금 인상 보완책 등은 현 정부 대표 정책이다. 재량지출 비중이 큰 사업의 보조금을 깎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1618개 중 혈세가 새는 작은 사업들까지 꼼꼼하게 들여다 봐야할 것으로 보인다. 여러 분야에 방대하게 국고보조금이 편성돼 있어 점검 작업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정부 관계자는 국고보조금 사업은 여러 예산 항목에 들어가 있다관성적으로 지자체와 민간에 나가는 돈은 없는지 효율성을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반발도 걸림돌이다. 국고보조금 구조조정은 지방과 민간 입장에서는 정부 지원의 감소로 직결된다. 반대가 클 수밖에 없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 보조금이 깎인다고 하면 반발이 심할 것이라며 그래서 어떤 사업을 들여다 보겠다는 구체적인 예시조차 언급하기 조심스러운 상황이다고 말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

 

집안일은 외주 주고 집에서 푹 쉰다홈코노미’ 1년반새 2배 성장

KB국민카드 홈코노미 분석

배달앱 2.14배 성장세 선두속

청소 등 집안관리 업종도 2배 증가

 

배달 앱으로 시킨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며 넷플릭스로 영화를 본다. 요리·빨래·청소 등 집안일은 외주를 주고, 집에서 충분히 쉬는 방식의 여가 소비 패턴이 굳어지면서 홈코노미(Home+Economy)’ 관련 업종에 대한 지출이 1년반새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케이비(KB)국민카드가 18일 주요 홈코노미 관련 업종에서 발생한 결제를 분석한 결과, 20181분기 대비 올해 2분기 홈코노미 관련 업종에서의 지출이 1.9배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국민카드가 꼽은 주요 홈코노미 업종은 음식 배달앱 가전 렌탈 일상용품 배송 집안/차량 관리 홈엔터테인먼트 등이 해당된다. 카드 데이터 분석은 20181월부터 올해 6월까지 5개 유형의 홈코노미 관련 업종을 이용한 25~54살 국민카드 고객의 카드 결제 데이터 4492만건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소비자 설문조사는 올해 상반기 중 홈코노미관련 업종 이용 경험이 있는 25~54살 고객 1200명을 대상으로 모바일 채널로 진행했다.

 

5개 유형 가운데 음식 배달앱은 지난해 1분기 대비 올해 2분기 카드 결제 건수가 2.14배 증가하며 관련 업종 중 성장세가 가장 두드러졌다. 이어 자녀·반려동물 돌봄 서비스, 출장 청소·세차 등 집안/차량 관리 업종(2.01) 영상·음악·도서·게임 등 홈엔터테인먼트 관련 업종(1.83) 순으로 증가 폭이 컸다.

 

집안일에 능숙하지 않고 사회 생활을 시작한 그룹인 25~34(53.7%)이 홈코노미 관련 업종을 결제한 빈도가 가장 높았다. 35~44살 여성(19.1%)은 홈코노미큰손으로, 건당 결제 금액(28840)이 가장 컸다. 가정 내 주요 가사에 대한 결정권을 쥔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홈코노미 관련 업종의 전체 평균 건당 결제 금액은 24393원이었다.

 

국민카드는 이같은 홈코노미 관련 업종의 성장세의 원인으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에 대한 인식 변화에 있다고 분석했다. 홈코노미 관련 업종 이용 경험이 있는 고객 중 35.9%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지난해 대비 증가했다고 응답했다. ‘여유 시간이 생기면 집에서 보낸다는 응답도 51.7%외부에서 보낸다는 응답(21.2%)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여유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이유로는 집에서 보내는 것이 진정한 휴식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49.5%로 가장 많았다. 이어 내가 원하는 활동을 편하게 할 수 있어서’(32.4%), ‘집에서 즐길 수 있는 활동이 많아서’(30.7%) 순으로 꼽았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에 대한 인식과 관련해 여유로움을 떠올리는 경우가 전체의 45.1%로 가장 많았으며 휴식’(34.3%), ‘콘텐츠’(26.5%)가 뒤를 이었다.

 

이런 소비자 인식에서 배달 앱의 성장세는 필연적이다. 소비자들은 집에서 먹는 식사를 떠올릴 때 귀찮고 번거로워서 간단하게 배달음식 간편식 등을 연상하는 경우가 41.9%를 차지했다. 집밥 맛있는 건강한 등 기능적인 품질을 떠올리는 경우(40.7%)를 근소하게 제쳤다.

 

국민카드 관계자는 이번 분석 결과 1인 가구 증가 등 인구통계적 변화 외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에 대한 대중의 인식 변화도 집에서 먹고 즐기며 전문가의 관리를 정기적으로 받는 홈코노미 관련 업종 성장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집에 대한 인식 변화에 따라 관련 산업도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어가며 점차 다양화되고 전문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짚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육아친화적 도시가 지속가능한 사회의 첫 걸음이다

지속가능한 도시와 커뮤니티

3040세대 이동의 주된 요인은 육아·교육 문제

좋은 보육 받을권리도 지역 환경 따라 차별 적용

지방 소멸 막으려면 보육·교육 인프라 중심 둬야

살기 좋은 공동체 만들기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

 

아이들이 처음 경험하는 사회기관은 어린이집이다. 많은 부모가 좋은 국공립 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 이사를 감행하기도 하지만, 국공립 어린이집의 지역별 편차가 매우 큰 게 현실이다. 크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3040세대 인구 유입과 유출의 주된 요인은 무엇일까? 많이들 예상하지만, 우리나라 3040세대는 육아와 자녀교육이 보다 수월한 곳으로 지역 이동을 한다. 육아·교육 인프라를 중심으로 지역 간 인구 유입과 유출이 진행되는 것이다.

 

실례로, 충청북도에 사는 30대의 53.8%가 이사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그 중 34.2%가 육아와 자녀교육 때문이라고 한다.(‘충청북도 사회조사’, 2018년 기준) 강원도 정선군에 사는 30대의 21.4%도 이사 의향이 있고 그 중 58.5%가 자녀교육 때문이며, 이사 의향이 있는 가구의 92.3%가 정선군 밖으로 이사하고 싶어 한다.(‘정선군 사회조사’, 2017년 기준) 이런 조사들은 비혼 가구를 포함한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만약 유자녀 가구만을 따로 분석한다면 그 비율이 훨씬 더 높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우수한 보육·교육자원이 많은 서울은 어떠할까? 과거 조사에 따르면 자녀교육 때문에 이사하겠다는 비율이 10%도 되지 않았다.(2011년 기준)

 

많은 사람이 육아와 자녀교육을 위해 농어촌에서 도시로, 중소도시에서 대도시로 이주해 왔다. 아이들이 줄어드는 농어촌은 사회적 투자를 줄이게 되고, 이로 인해 다시 3040세대가 떠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역으로 대도시에서 비싼 교육비와 주거비를 부담하던 세대들이 5060세대가 되면 경제적 이유로 다시 이주한다. 내가 사는 지역에 좋은 육아 및 교육인프라가 없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오래 정주하기 어렵게 하는 주요 요인임을 알 수 있다.

 

우리 모두의 아이들, 그러나 지역 환경은 차별적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입니다.”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교육정책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의 서두에서 던진 화두이다. 이처럼 아이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차별받지 않고 좋은 보육,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권리는 내가 대한민국 어느 지역에 살고 있는가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듯하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사회기관은 어린이집이다. 부모들은 좋은 국공립 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 몇 년간 대기하거나 아예 국공립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쉬운 곳으로 이사하기도 한다. 서울시 성북구에는 국공립 어린이집이 80개나 있지만 경기도 여주시에는 1개밖에 없다. 어떤 동네의 아이들은 꽤 멋지고 큰 어린이집에 다니지만 어떤 아이들은 상가나 아파트에 있는 작은 어린이집에 다닌다. 비록 규모가 품질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물리적 인프라가 주는 영향은 크다. 비단 어린이집뿐만 아니라 초중등 교육기관이나 도서관, 보건의료시설, 문화체육시설, 놀이시설, 관련 정책 등에서 농어촌과 중소도시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인생의 출발선이 대도시의 아이들과 다른 것이다. 출발선 평등의 원칙, 모든 아이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사회정책의 방향이 이들에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인구 감소로 인해 기초자치단체의 3분의 1 이상이 소멸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한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출생률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시도를 진행 중이지만, 그 중심엔 아이들이 어느 지역에 살더라도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세심하고 통합적인 정책이 자리 잡아야 한다. 삶의 터전에서 육아와 자녀교육 걱정이 없도록 사회 인프라와 제도를 만들어 갈 때 대한민국 전체가 지속가능하지 않을까.

 

공동체 없는 고립 육아의 현실

그렇다면 아이들을 위한 사회 인프라와 정책이 잘 갖추어진 대도시의 삶은 어떠한가? 대도시라고 해서 아이들이 더 행복하고 부모들의 육아 부담이 덜하다고 할 수는 없다. 아이들과 부모들에겐 마을, 지역사회 공동체도 필요하다.

 

서울시에는 다양하고 우수한 육아·교육 인프라와 관련 정책들이 많다. 그렇다고 해도 아이들의 사회 정서적 문제, 부모들의 고립 육아, 상대적 박탈감 등은 여전한 것 같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는 고층아파트, 빌딩 숲에서 느끼는 사회적 관계의 빈곤도 있지 않을까. 이런 가운데서도 육아의 어려움을 지역에서의 사회적 관계와 활동으로 해결해 가는 사례들이 종종 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으로 잘 알려진 성미산 마을은 아이들이 성장해감에 따라 새롭게 다가오는 육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과후교실과 학교까지 운영하게 됐다. 마을주민들은 자녀를 위해 더 나은 중고등학교 환경을 찾아 이사하기보다는 계속해서 마을이 함께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선 것이다. 육아·교육 친화적 환경을 지역 스스로 만들어감으로써 아이들과 부모들의 삶의 만족도를 높여 온 성미산의 주민들은 자연스레 더 오래 마을주민으로 정착하게 됐다.

 

한 아이가 성장하려면 온 마을의 지원, 즉 지역주민의 함께 돌봄, 적정한 지역환경과 지역자원이 필요하다. 아이가 더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은 비단 부모뿐 아니라, 더 많은 주민이 활기찬 지역사회와 지역경제를 누릴 수 있게 하는 바탕이 되어줄 것이다. 공동체가 함께 하는 육아는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다라는 명제의 실천인 동시에, 포용적 도시와 커뮤니티로 나아가는 첫 단추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 행복’ ·‘육아 행복도시 만들기

유엔이 정한 지속가능 발전목표(SDGs)의 열한 번째 목표에서 말하는 지속가능한 도시는 지역주민이 오랫동안 살고 싶고, 살 수 있는 지역사회를 의미할 것이다. 육아친화적 도시는 육아와 교육 문제로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덜어주며, 장기적으로는 모든 세대를 위한 도시로 확장될 수 있다.

 

먼저, 도시의 모든 정책과 인프라를 아동과 육아친화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싶다. 특히 만족할 만한 육아·교육 인프라는 30대가 정착하게 하는 동시에, ‘모든 영유아를 위한 양질의 보육·교육’(SDGs 4.2) 환경을 만들어 아이들이 어느 지역에 살든 인생의 평등한 출발을 지원해 줄 수 있다. 또한, 지역의 육아와 교육 문제를 주민 참여적으로 인식하고 실천·해결하는 공동체적 노력을 강조하고 싶다. 공동체가 함께 하는 육아가 있을 때 부모책임 육아와 정부의 육아정책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도 성장할 수 있다. 우리는 성미산 마을의 경험에서, 육아친화적 지역을 만들려는 노력이 퍼지면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도 풍부하게 하고 새로운 지역경제를 창출할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이가 행복하고 육아가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은 지속가능한 사회의 필요조건이지 않을까. 육아친화적 도시와 커뮤니티 조성을 초저출산 시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육아정책의 방향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백선희 육아정책연구소 소장/ 한겨레

 

함께 사는 도시, 생동감 있는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지속가능한 도시와 커뮤니티

세계 최고수준인 85.4%의 도시화율에도

자본의 논리 따라 도시 공간 재편된 현실

모두를 위한 도시핵심가치 외면한 것

실질적 주거권 보장 등 해결과제 산적

장기적으론 시민 참여와 책임도 높여야

 

사회적기업 아이부키가 짓고 운영하는 도시임대부 사회주택인 홍시주택입주자들이 1층에 있는 로운쌀롱에 모여 입주자 모임 운영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아이부키 제공

 

독립한 청년 1인 가구 대다수가 고시원이나 원룸과 같은 방 한 칸짜리 공간에서 살아간다. 비슷한 구조와 규모의 옆방에도 같은 또래의 청년이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잠만 자거나 잠깐 살고 떠나는 공간이라 서로 인사를 나누며 이웃으로 교류하는 경우는 드물다. 세입자인 거주자들이 친한 관계가 되어 공유의 가치를 누리며 살아가는 주택을 상상해 볼 수는 없을까?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인 홍시주택을 짓고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아이부키는 이런 상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한창 실험 중이다. 홍시주택은 서울시로부터 땅을 저렴하게 임대해 건축한 1인 가구 맞춤형 주택이다. 16명이 각자의 집에 거주하지만, 1층에 있는 로운쌀롱에서 월례회의도 열고 차 한 잔을 곁들인 소소한 문화생활도 누리면서 살고 있다. 입주자는 시세의 80% 이하인 저렴한 임대료로 10년간 안심하고 살 수 있고, 덤으로 한 지붕 아래 또래들과 같은 가족처럼 교류하며 지내는 소소한 즐거움이 일상이 된다.

 

불량주거지, 옥탑과 지하방으로 내몰리는 사람들

이런 집도 있어?”

주변에 홍시주택과 같은 사회주택 이야기를 전하면, 많은 이들이 보이는 반응이다. 이런 반응들을 들으며, 도시의 대다수 주거 환경이 얼마나 포용적이지 않은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도시가 언제부터 이런 각박한 공간이 된 것일까?

근대 시민사회의 태동기만 해도, 도시에 산다는 것은 임금노동자로 편입되는 관문이자 신흥 부르주아 계급으로의 신분 상승을 위한 기회의 땅에 진입하는 행위였다. 한국에서도 불과 20~30년간의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급격한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농촌의 인구는 급감하고 85.4%에 달하는 세계 최고수준의 도시화율이 달성됐다.

 

단시간에 인구가 집중된 도시는 필연적으로 기반시설과 적정 주거의 부족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대규모 주거지 정비사업과 각종 도시계획을 통해 이 문제에 대응해 왔다. 하지만 주택공급의 양적 확대에 치중한 철거·재개발 위주의 정책은 원주민의 낮은 재정착율, 강제철거와 같은 수많은 부작용 속에 속도전의 양상으로 진행됐고, 그 결과 도시 공간은 철저히 자본의 논리에 따라 재편되고 말았다. 모든 도시민이 안정적인 주거공간을 부담 가능한 수준에서 점유·소유해야 한다는 정책적 이상은 뒷전으로 밀리고, 도시는 가난한 이들을 도시의 그늘 속에 있는 불량주거지, 옥탑과 지하방으로 거침없이 내몰았다.

 

포용도시의 관점에서 본 현실

유엔 해비타트는 20년마다 인간 정주회의를 개최하는데, 2016년 제3차 인간 정주회의에서 도시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the City·RTC)’를 새로운 도시 의제로 제시한 바 있다. 도시에서는 국적이나 성별, 나이 등에 상관없이 누구나 적절한 공간에서 주거하고 활동할 권리가 있으며, 어느 지역에 거주하든 공공 공간이나 서비스에 대한 접근과 이용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모두를 위한 도시(Cities for All)’가 핵심가치로 채택됐다. 이처럼 불평등과 사회적 배제가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포용도시, 회복력 있는 도시를 지향해야 한다는 전 지구적 합의가 형성되는 지금, 과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올해 8월 등록 기준, 국내 주택임대사업자 중 개인의 최다 보유 등록 호수는 594채이고, 최연소 임대사업자는 2세의 영아이다. 최저 주거기준 미달 가구가 111만 가구에 이르며(2018년 국토부 주거실태조사), 고시원, 비닐하우스, 노숙 등 주택이 아닌 곳에 거주하는 가구가 37만 가구(2018년 국토부 주거실태조사)인 현실과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연 소득 대비 주택가격(PIR)은 무려 9.8(2017)로 나타났는데, 이는 10년간 번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내 집 한 칸을 장만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서울로 한정하면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14.1년이 소요된다. 또한 이른바 핫한지역에서는 어렵사리 창업해 자리를 잡은 청년 창업자와 소상공인이 임대료 급등으로 인해 폐업하는 일을 쉽게 목도할 수 있고 교체주기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론 공원, 주차장, 교육, 문화시설 등 기초생활 인프라의 양극화 현상도 심각하다. 낙후된 저층 주거지와 뉴타운이나 신도시로 대표되는 아파트 단지는 거주여건 측면에서 큰 격차를 보인다. 국가는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그 차이를 줄여보려 노력하고 있으나 막대한 예산에 더해 계층에 따른 주거지 분리가 가속화되면서 단기간에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대부분의 도시 공간이 사유화돼 있는 상황에서, 사회 통합을 위해 중요한 공유 공간의 확보는 더디게 진행되고 도시재생이나 마을 만들기 사업을 통해 지역공동체의 거점을 만드는 정도의 접근만이 이루어지고 있다.

 

안정적인 주거, 공유 공간을 위한 과제

그렇다면 모두에게 열려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모든 시민이 각자의 소득과 재산 상황 내에서 부담 가능한 임대료로 거주할 수 있는 실질적인 주거권 보장이 선행돼야 한다. ‘계약 갱신청구권·월세 인상률 상한제의 도입과 같은 적극적인 세입자 보호 방안이 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국회에서 발의된 주택 임대차보호법개정안 41건 중 단 한 건도 처리되지 않고 모두 자동 폐기될 위기 상황이어서 우려가 앞선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의 임대차 보장 기간이 5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난 변화는 선례가 될 만하다.

총 주택 수에 견줘 4.3% 수준에 불과한 장기 공공임대주택 재고 외에는 사실상 모든 주택이 시장에 의해 공급되는 상황에서, 사회주택과 같이 낮은 임대료와 긴 거주 기간이 보장되는 공익적 민간임대주택에 대한 지원을 대폭 확충할 필요가 있다.

 

이뿐 아니다. 도시에서의 안정적인 주거는 거주공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활권 단위별로 다양한 복지, 여가, 문화, 교육시설이 배치되어 삶의 질을 뒷받침해야 한다. 국가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생활SOC 공급과 함께, 보다 체계적인 권역별 공간분석에 기초해 어느 곳에 살든지 간에 시민이라면 누구나 일정한 생활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사각지대 없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요구된다. 공공청사, 공영주차장, 공공임대주택과 같은 곳만 이런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 자산화 공간과 사회주택과 같은 사회적 실험의 장도 시설 복합화를 통해, ‘함께 모이고 서로 돌보며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는생활SOC로서 기능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공간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몰려나는 소상공인도 당연히 포용의 대상이 된다.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공간

시민을 위한 공간의 확보는 기본적으로는 공공의 책임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운영의 지속가능성과 활성화라는 관점에서 시민의 참여와 책임이 높아져야 한다. 공공주도로 대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지어 공간을 무상 혹은 염가임대하는 방식만을 고수하면 안 된다. 시민 펀딩과 공적 융자로 건물 등 소유권을 지역조직이 갖고 다양한 활동과 사업으로 고용을 창출하면서도 자생할 수 있는 생동감 있는공간을 지향해야 한다. 지역에 기반을 둔 사회적경제 기업의 등장은 이를 앞당길 수 있다. 사회적기업이 지은 청년 사회주택 건물 1층의 마을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동네 문제를 논의하고, 부모들이 설립한 협동조합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치매가 있는 어르신을 함께 돌보는 돌봄센터에서 노노(老老)케어가 이루어지는 미래를 상상해 보자.

 

토지와 도시 공간의 상품화를 최소한의 범위에서라도 제어하면서, 공유의 가치에 기반을 둬 주거와 생계를 위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고 시민의 참여로 운영할 때, 비로소 도시는 모두를 위한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남철관 나눔과미래 지역활성화국장/ 한겨레

 

이제는 누구와 어떻게 공존해 살아갈지를 고민할 때다

지속가능한 도시와 커뮤니티

도시의 지속가능성이란 우리 삶의 지속가능성

도시의 소유 구조를 사용자 중심으로 바꿔야

가진 정도 따라 사는 곳이 결정되는 현실에서

어디에 사느냐고 묻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일 뿐

 

국내 최초 협동조합형 아파트 위스테이의 조합원들이 서울 중구 명동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앞으로 함께 살아갈 주거 공간과 커뮤니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회혁신기업 더함 제공

 

현재 우리는 정주권보다는 사적 소유권이, 녹지와 생태의 보호보다는 개발 이슈가 힘을 갖는 도시 공간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도시가 가진 것 없는 이들을 변두리로 쫓아내는 치열한 전장(戰場)이 되어 가는 가운데, 많은 이들이 도시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포용적이고 안전하며 회복력 있고 지속가능한 도시와 정주지 조성을 열한 번째 목표로 삼고 있다. 도시를 지속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은 그동안 도시 공간 안에서 소외됐던 권리들을 살피고, ‘도시의 주인은 시민이라는 명제를 현실화하는 일일 것이다. 또한 국가 주도의 도시계획에 따라 조성되고, 자본에 의해 계층화되는 도시 공간을 수용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원하는 삶의 모습과 도시의 조건들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일이 될 것이다.

 

도시의 다양한 공간과 조건에 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고 대안을 제시해 왔던 오피니언 리더들과 함께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들을 모색하고 담론의 토양을 풍부하게 만들어 보려 한다.

 

초역세권, 프리미엄, 자산가치’.

신축 분양 아파트의 홍보 문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열쇳말들이다. 심지어 최근 어떤 아파트 홍보물에서는 자신들의 브랜드를 선택하면 내신이 올라간다는 문구를 발견하기도 했다. 공간을 둘러싼 자본주의적 욕망을 이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이 또 있을까?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도시학자인 앙리 르페브르는 현대 자본주의의 생산관계가 재생산되는 공간, 소외의 모든 형태를 담고 있는 공간으로서 도시문제에 주의를 기울였다. 르페브르에 따르면, 현대의 도시 공간 안에서 교환가치는 사용가치를 압도하고 있으며, 도시는 단순한 거주처로서만 기능할 뿐 사람들의 권리 공간으로서 사유되지 않고 있다. 그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데이비드 하비는 <반란의 도시>라는 저작에서 어떤 도시를 원하는지의 문제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 사회 및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지, 어떤 생활양식을 원하는지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고 역설했다. 이런 점에서,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논하는 것은 곧 우리 삶의 지속가능성을 논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도시의 주인은 시민?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할 때 도시의 주인은 시민이라는 명제가 의심 없이 통용되곤 한다. 시민들이 도시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권리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일 텐데, 시민들에게 정말 그러한 권리가 보장되고 있을지는 엄밀하게 고찰해 볼 일이다.

앞서 언급한 하비는 공유재를 사용할 권리는 공유재를 생산한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도시를 만들어낸 집단적 노동자들이 도시권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도시의 주인은 그 안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며, 이들의 요구에 맞게 도시가 만들어지고 변화해 가야 한다. 하지만 소수의 개인과 법인, 국가가 대부분의 토지 및 공간을 소유하고 있는 지금의 도시 구조 내에서 그런 권리들을 실현해 가기란 쉽지 않다.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도시의 소유와 전유의 구조를 사용자와 수요자 중심으로 바꾸어 내는 일이 그 어떤 것보다 선행돼야 한다.

 

지금, 여기의 희년(jubilee)’

소유의 재분배와 토지 정의를 이야기할 때, 많은 이들이 성서의 희년제도(jubilee, 주빌리)’를 언급한다. ‘희년50년마다 돌아오는 안식의 해로, 이때가 되면 노예를 석방하고 매매됐던 토지를 원래 주인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이는 단어가 뜻하는 바 그대로, 현재의 가난과 고통이 대를 이어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준다. 그런데 만약 가난과 고통의 대물림이 끊어낼 수 없는 굴레라면? 차라리 세대를 잇지 않겠다는 선택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0%대로 떨어졌다는 한국의 출생률 수치는 시민들이 체감하는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맞닿아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자산 대물림 수단으로 부동산 증여가 많이 선택되고 있을 만큼, 부동산은 한국 사회의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꼽힌다. 또한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은 오랜 기간 지역을 가꾸어 오던 주민들을 내쫓는 방식으로 도시를 재편 중이다. 도시는 가진 것 없는 이들이 계속해서 변두리로 쫓겨날 수밖에 없는, 치열한 전장(戰場)이 되어 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시민 자산화 혹은 공동체 자산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새로운 방식의 공간 소유 실험들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직은 활동단체들의 사무 공간과 지역의 일부 공유 공간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주거 공간과 토지 전반에 점차 적용해 간다면 좀 더 근본적이고 거대한 전환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더 가져야만 좋은 공간 누리는 도시

도시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의 주인이 된다는 뜻만은 아니다. 공간의 다양한 규칙들을 함께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공간의 운영 철학은 당연히 공공성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히는 포틀랜드의 사례를 살펴보자. 포틀랜드의 95개 주민자치 조직은 도시의 계획, 시설 및 서비스 공급 등에 관해 결정하는 거버넌스에 참여하면서, 살고 싶은 도시를 직접 만들어 가고 있다. ‘친환경 도시를 표방하는 포틀랜드에는 대중교통, 자전거 도로가 잘 조성돼 있으며, 현지 농산물을 주재료로 삼는 레스토랑과 파머스마켓이 수시로 열려 소규모 농가들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한다. 포틀랜드의 수많은 방문자는 그곳에서 좋은 삶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증언한다.

 

우리 중 상당수가 도시에서 나고 자라, 이곳에서 일자리를 얻고 살아간다. 그리고 좋은 삶보다는 성공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각자 전력을 다해 질주하고 있다. 그 속에서 도시는 삶의 활기와 표정을 잃었다. 도시가 명품에 비유되고 기업하기 좋은 공간으로 조성되는 동안, 정작 그 안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주체들은 소외되고 쫓겨나야 했다.

 

도시 공간을 자본 논리에 따라 계층화하고 파편화하는 이들은 우리에게 자꾸만 묻는다. “어디에 사느냐라고 말이다. 가진 정도에 따라 사는 곳과 환경을 결정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어디에 사는지를 묻는 것은 또 다른 폭력으로 다가갈 수 있다. 더 가져야만 좋은 공간과 삶을 누릴 수 있는 도시는 이미 지속가능한 도시가 아니다. 이제 누구와 어떻게 공존해 살아갈 것인지로 질문을 전환해야 할 때이다.

 

어디에 사는지보다 누구와 사는지’.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자산화와 다양한 삶의 실험들을 모색하는 협동조합형 아파트 위스테이(WE STAY)’의 캐치프레이즈다. 이제 막 한 걸음 나아갔을 뿐이다. 다양한 주체들과 함께, 더 다양한 캐치프레이즈로 변주해 가고 싶다.

양동수 사회혁신기업 더함 대표/ 한겨레

 

국민연금 20년 이상 가입자가 월 평균 받는 돈은?

7월말 국민연금 통계20년 이상 수급자 60만 넘어

최고액 2108천원전체 노령연금 평균은 52만원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 KT스퀘어에서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 주최로 '국민연금 개선, 국민의 의견을 듣습니다' 국민 참여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참가자들이 국민연금에 대한 메세지를 적은 포스트잇이 게시돼 있다. 2018.09.17. (사진=뉴시스 DB)

 

국민연금에 가입한 지 20년 넘는 노령연금 수급자가 처음 6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받는 노령연금은 월평균 925000원으로 20년 미만 가입자 평균인 399000원의 2배가 넘었다. 17일 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 공표통계'에 따르면 지난 7월말 현재 국민연금 노령연금 수급자는 3925000명이다.

 

가입 기간을 기준으로 20년 이상 가입한 수급자는 약 607000명으로 전체 가입자의 15.5%였다. 전월(597000) 대비 1만명가량 늘면서 60만명을 넘어섰다. 가입 기간이 20년 미만인 수급자 수는 3318000명이었다. 201412262000명으로 전체 가입자의 8.9%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20년 이상 가입자는 5년만에 2.3배 이상 늘었다. 1988년 도입돼 올해로 31년째를 맞는 국민연금 제도가 성숙하면서 그만큼 장기간 가입자도 늘어나고 있다.

 

국민연금 노령연금은 전체 가입자 평균소득(A)과 본인 평균소득(B)을 더한 값에 소득대체율을 맞추기 위한 상수를 곱하고 보험료를 낸 가입기간을 반영해 계산한다. 납부 기간이 길수록 돌려받는 급여도 늘어나게 된다.

 

20년 이상 가입자들의 월평균 노령연금 수령액은 7월말 기준 925421원이었으며 가입자 중 최고 금액은 2108430원이었다.

 

전체 노령연금 수급자 평균(특례·분할연금)523505원보다 76.8%(401916) 많았다. 10~19년 가입 수급자 평균인 399699원과 비교하면 2.3배가 넘는 액수다. 가입 기간이 20년이 안 된 수급자 중 최고 수급액은 1755640원이다.

 

하지만 20년 이상 국민연금에 가입해도 국민연금만으로 노후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지난해 국민연금연구원의 '국민노후보장패널 7차 부가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 기준 은퇴 후 한 달 최소생활비와 적정생활비는 50세 이상은 108만원과 154만원, 65세 이상은 95만원과 137만원이었다.

 

질병 등이 없어도 최저 생활을 유지하려면 95만원 이상 필요하다는 얘기인데 보험료율 9%(사업장 가입자는 사업주와 노동자 절반씩 부담), 소득대체율(40년 가입 시 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 보장 수준) 44.5%(202840%까지 감소)인 현행 제도만으론 노후 보장이 어렵다.

 

국민연금이 노후소득 보장 수단이 되려면 보험료를 더 내거나 가입 기간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기금의 재정 안정화를 고려해 노후 보장 수준을 결정할 국민연금 제도 개혁 논의는 정부가 복수안을 제시하고 국회가 총선을 앞두면서 멈춰있는 상태다. limj@newsis.co

 

 

백년대계 논하는 자리에 입시 질문만 쏟아졌다

-OECD 국제교육콘퍼런스에서 전 세계 교육 전문가들이 토론을 벌였다. 한국 교육이 학생 성공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는 논의가 나왔다. 하지만 언론의 초점은 결국 대입 전형이었다.

 

시사IN 윤무영 1023-OECD 국제교육콘퍼런스에서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OECD 교육국장이 한국 교육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시 확대 추진으로 교육계 안팎이 떠들썩하던 10월 끝자락,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작지 않은 교육 행사가 하나 열렸다. 1023일부터 사흘간 열린 한-OECD 국제교육콘퍼런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우리나라 국가교육회의, 교육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한국교육개발원 등 총 11개 교육기관이 주최했다. 국내 교육계 인사들뿐 아니라 독일·핀란드·미국·네덜란드·일본 등 해외 교육 전문가 2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번 콘퍼런스의 바탕은 OECD교육 2030 프로젝트이다. ‘교육 2030 프로젝트2030년 무렵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 역량이 무엇이며, 학생들이 그 역량을 갖추기 위해 교육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해나가야 할지 논의하는 국제적 사업이다. 그동안 교육과정과 정책은 국가마다 따로 논의되고 결정되어왔지만 이제 범국가 수준에서 함께 머리를 맞대기로 했다. 공통으로 맞닥뜨린 여러 도전 과제(기후변화, 인공지능, 사회적 불평등, 테러 등)에 대응하는 교육의 역할과 기능은 결코 개별 국가 혼자서는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2016년부터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미래 사회에 필요한 학습자의 지식·태도·기술·가치를 설정하기 위해 교육학계와 정부 등에서 꾸준히 연구하고 토론해왔다. 이번 콘퍼런스는 그동안 흘러온 논의의 도착점이기도 하지만 이른바 교육 전문가안에 머무르던 미래 교육 의제를 학생·교사·학부모·지역 주민 등 모든 교육 주체에게 던지는 시작점이기도 했다.

 

에서 할 줄 앎’, 나아가 살 줄 앎으로

2030년을 위한 미래 교육은 어떤 방향이어야 할까?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은 1023일 한-OECD 국제교육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2030 미래교육체제의 방향과 주요 정책의제를 발표했다. 김 의장은 앞으로 교육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개념으로 학력 개념의 역량을 제시했다. 그간 우리 교육에서 학력은 요약·압축된 학문적 지식을 암기·적용하는 과정이며 상위 위계의 직업으로 나가기 위한 자격증 역할에 그쳤다. 이런 개념적 앎(지식)’에서 할 줄 앎’, 나아가 살 줄 앎으로 학력을 확장할 필요가 있고, 이 세 가지 앎이 융합한 살아가는 능력이 곧 역량이다.

 

김 의장은 이런 역량 중심의 미래 교육 체제 수립을 위한 전략으로 교육 내적 공정성 강화’ ‘경제·사회 혁신과 맞물리는 교육 혁신’ ‘국가교육위원회 설립을 통한 중장기 개혁의 안정적 추진등을 제안했다. 교육 내적 공정성이란 아이들에게 자신이 살아갈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고, 그럴 수 있는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며,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기르는 부분을 국가가 책임지고 보장하는 것이다. 김 의장은 현재 대입 전형을 둘러싸고 논란이 되고 있는 공정성은 이런 교육의 내적 공정성과 관계없는, “지위 획득을 위한 게임 룰의 유불리를 따지는 이해관계 다툼으로 해석했다. 김 의장은 이 다툼이 교육의 장에서 일어나기는 하지만 다툼의 연원이 교육 외부에 있다는 점에서 교육 외적 공정성 논란으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OECD 교육 전문가가 본 한국 교육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OECD 교육국장은 세계 각국의 교육정책과 현실을 비교적 객관적인 위치에서 볼 수 있는 전문가이다. 슐라이허 교육국장은 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를 비롯한 국제적인 평가 도구를 창설했고 지금껏 관장해오고 있다. 그는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독일인이지만 마이클 고브 영국 국무장관에게 영국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 사람이기도 하다. 교육을 범국가적 관점으로 평가할 수 있는 그에게 한국 교육을 분석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가 뽑은 키워드는 학생 성공이었다(1023일 한-OECD 국제교육콘퍼런스 기조연설 ‘2030년을 향한 한국 교육, ‘학생 성공을 다시 정의하다’).

 

슐라이허 교육국장이 고안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한국은 상위권을 유지한다. 잘 알려져 있고 많은 국민이 뿌듯해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는 조금 상대적인성적표를 하나 화면에 띄웠다. 총 학습시간을 반영한 과학 성취 점수, 즉 학습 효율성 점수다(<그림 1>). 절대 점수에서 상위권을 유지했던 한국은 이 학습 효율성그래프에서 중하위권으로 밀려난다. 그는 학습 경험의 질이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 들이는 시간보다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한국 학생들의 긴 학습 시간은 많은 기회비용을 발생시킨다. “신체활동, 사회생활 및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이다. 여러 OECD 지표들이 뒷받침한다. 학업 관련 불안감이 두드러지게 높고(<그림 2>) 학교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학생 비율이 가장 낮다(<그림 3>). 15세 학생들의 삶의 만족도도 최하위권이다(<그림 4>). 슐라이허 교육국장은 한국 교육에서 학생 성공이 더 이상 학업 성공에 머무르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이 학생의 인지적 성과 외에 신체적·심리적·사회적 성과의 발달에도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평생학습, 디지털 교육, 대학 혁신, 마을공동체

사흘간 진행된 콘퍼런스에서 전문가들은 다양한 미래 교육 의제와 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류방란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학습-삶의 선순환을 위한 평생학습 체제 수립의 방향과 과제, 김대현 부산대 교수는 미래 사회와 새로운 학교체제, 김진숙 한국교육학술정보원 미래교육정책본부장은 디지털 전환과 교육체제 융합 방향, 장수명 한국교원대 교수 등은 한국 고등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체제 혁신과 정책과제, 김용 한국교원대 교수는 교육자치와 교육주권을 미래 교육의 화두로 던졌다.

 

의제별로 참고할 만한 해외 사례들도 소개했다. 바바라 헴크스 독일 연방직업교육훈련연구소 본부장은 학습자의 다양한 발전 경로를 보장하는 독일의 평생학습 사례,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 혁신국장은 핀란드 교육과정의 개혁과 실행, 에이드리언 림 싱가포르 정보통신미디어개발청 디지털리터러시 본부장은 사회 성장을 위한 싱가포르의 디지털 시민성 추진 사례를 발표했다.

 

존 오브레이 더글러스 미국 UC 버클리 고등교육센터 선임연구교수는 캘리포니아 체제로 바라본 한국 고등교육 체제를 통해 사립대 위주의 한국 대학 체제를 비판했고, 고이치 나카타 일본 대동문화대 교수는 일본 커뮤니티스쿨 정책의 현황과 과제를 통해 한국의 마을교육 공동체 운동에 시사점을 주었다.

 

이처럼 많은 미래 교육 의제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교육에 관한 논의는 여전히 대입이라는 좁은 영역 안에서만 맴돌고 있다.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과 슐라이허 OECD 교육국장이 역량중심의 미래 교육 혁신과 한국 교육에서의 성공의 재정의를 주제로 한 발표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들의 질문 90%가 대입 전형에 관한 것이었다. “대통령이 정시 확대한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학종과 수능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외국에는 대입 전형과 관련해 어떤 논란이 있습니까?” 등등. 슐라이허 교육국장이 표준화된 성취 평가의 한계에 대해 발언하자 한 언론사는 이런 기사 제목을 내걸었다. “OECD 교육국장, 수능 확대 반대.”

 

이런 상황임에도 미래는 다가오고 있다. OECD가 설정한 2030년은 결코 멀지 않은 미래다. 지금 중학생 정도 나이의 아이들이 취업을 하고 사회에 진출할 즈음이 2030년 전후다. 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쯤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그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은 무엇일까? 그 능력을 갖추도록 우리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나? ‘정시 대 수시 몇 퍼센트의 비율로 대학 입시를 치를 것인가논쟁에 묻혀버린, 이 거대하고 막연하지만 기필코 그 답을 찾아야 할 미래 교육 의제를 우리는 더 자주 입에 올려야 한다시사인 변진경 기자

 

 

335개 언론사가 인용하는 WCIJ의 기사들

<위스콘신 워치>를 운영하는 위스콘신 탐사보도센터(WCIJ)한 언론사가 모든 걸 감당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라고 단언한다. 저널리즘 위기의 시대, 언론사 간 협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광고 없는 뉴스의 미래

기자를 키우고 동네를 바꾼다:위스콘신 탐사보도센터(WCIJ)·텍사스 트리뷴

뉴스를 믿지 못하는 시대다. 언론 신뢰도는 하락세다. 미디어 환경 변화도 원인이지만 광고 수익에 기댄 언론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광고는 언론 길들이기성격이 강하다.

 

언론이 여전히 사회적 공기(公器)임을 포기하지 않는 언론사도 존재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자본과 권력에서 독립한 비영리 언론사다. 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비영리 저널리즘2000년 이후 미국에서 꾸준히 확산됐다. 주류 언론이 여러 이유로 보도하지 않거나 못한 이슈를 비영리 언론사들은 정면으로 다루었다. 이들은 지역 밀착형, 이슈 밀착형으로 차별화한 뉴스를 보도함으로써 저널리즘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도 기여했다.

 

<시사IN>은 미국의 비영리 언론사 및 비영리 뉴스룸을 네트워킹하고 지원하는 단체를 현지 취재했다. 123일에는 탐사보도와 비영리 저널리즘을 주제로 제3<시사IN> 저널리즘 콘퍼런스(sjc.sisain.co.kr)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시사IN 신선영 포이베 페트로빅 기자, 앤디 홀 이사,디 홀 편집국장, 파커 쇼어 기자,코번 듀크하트 멀티미디어 편집장(왼쪽부터).

 

위스콘신 탐사보도센터(Wisconsin Center for Investigative Journalism)

설립:2009

규모:15(편집국 9, 인턴 포함)

출판 방식:팟캐스트, 웹사이트(wisconsinwatch.org)

재정:후원금 운영. 2019년 총예산 80만 달러

 

미국 위스콘신 대학 매디슨 캠퍼스는 수평선이 보이는 큰 호수를 따라 길게 펼쳐져 있다. 위스콘신주 의회 앞까지 곧장 연결되는 넓은 캠퍼스에 자유분방하게 자리 잡은 대학 건물은 388채나 된다. 신문방송대학 건물은 그 중심에 위치해 있다. 비영리 언론 <위스콘신 워치(Wisconsin Watch)>를 운영하는 위스콘신 탐사보도센터(WCIJ)’ 사무실은 신문방송대학 건물 5층에 자리 잡고 있다.

 

WCIJ가 사용하는 공간은 5평 남짓한 사무실 세 곳이다. 풀타임 정규직 기자 5, 인턴과 펠로십 등을 통해 일하는 기자까지 포함해 15명 정도가 움직이는 공간치고는 비좁다. 편집국장실 한편이 편집실이 되기도 하고, 비품실 한구석이 편집실이 되기도 한다. 사무실 밖 복도에는 수업 듣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지나다닌다. <위스콘신 워치> 기자들은 복도를 지나가던 학생 또는 교수와 인사를 나누며 서로 근황을 묻는다. 언론사 사무실치고는 문턱이 낮은 덕분인지 직접 사무실에 찾아와 제보를 하거나 사무실 문 앞에 편지를 두고 가는 사람도 종종 있다.

 

WCIJ 사무실 문에는 <위스콘신 워치>의 로고가 큼직하게 붙어 있다. 푸른색 돋보기를 품은 위스콘신주 형태의 로고는 지역 이슈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WCIJ의 공동설립자인 앤디 홀 이사와 디 홀 편집국장은 위스콘신 지역 신문사에서 지역 이슈를 파고들었던 베테랑 기자다. 홀 편집국장은 <위스콘신 스테이트 저널> 기자로 24년간 일하는 동안 수상한 경력만 40여 개이지만, 그만큼 소모감도 컸다고 말했다. “쳇바퀴에 올라탄 햄스터 같았다. 일단 쳇바퀴에 올라서면 큰 이야기(big story)를 다룰 시간이 없다. 물론 누군가는 최신 뉴스를 업데이트해야 하지만,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WCIJ가 과감한 선택을 한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속보와 탐사보도를 둘 다 잘할 수는 없다. 특히 우리처럼 규모가 작은 조직이라면 더욱 그렇다라고 홀 편집국장이 말했다. 2009년 문을 연 WCIJ는 올해 창간 10주년을 맞았지만,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정규적으로 일하는 기자 5명 중 3명은 앤디 홀 이사와 디 홀 편집국장, 그리고 사진과 영상 등을 전반적으로 다루는 코번 듀크하트 멀티미디어 편집장이다.

 

나머지 2명은 사실 다른 언론사로부터 월급의 일부 또는 전부를 지원받는 협력 직원에 가깝다. 규모가 작은 비영리 언론사의 생존 전략 중 하나는 다양한 언론사와 파트너십을 맺는 것인데, 특히 WCIJ의 협업 수준은 매우 높다. 함께 기사를 쓰는 데 그치지 않고, 기자를 공유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팟캐스트를 통해 잘못된 형사사법 제도를 알리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포이베 페트로빅 기자는 각 지역 언론사를 후원하는 단체 리포트 포 아메리카(Report for America)’에서 월급 일부를 지원받는다. 페트로빅 기자가 주로 작업하는 공간은 같은 신문방송대학 건물 7층에 위치한 지역 라디오 채널 <위스콘신 퍼블릭 라디오> 스튜디오다. <위스콘신 퍼블릭 라디오>로서는 특정 이슈를 파고드는 페트로빅 기자의 깊이 있는 콘텐츠를 얻을 수 있고, <위스콘신 워치>로서는 라디오 청취자를 독자로 끌어들일 수 있다.

 

WCIJ에는 오직 뉴스뿐입니다

WCIJ에서 공공정책에 대한 기사를 주로 쓰는 파커 쇼어 기자는 위스콘신주 지역 언론사인 <캐피털 타임스>로부터 월급 전액을 받는다. 페트로빅 기자와 마찬가지로 WCIJ로 출근하며 <위스콘신 워치><캐피털 타임스> 양쪽에 똑같은 기사를 싣는다. 일간 뉴스를 다루는 <캐피털 타임스>는 호흡이 긴 탐사보도 기사를 실을 수 있고, 무엇보다 쇼어 기자를 탐사보도 전문 기자로 훈련시킬 수 있다. 그의 월급을 교육비로 투자하는 셈이다. <위스콘신 워치>는 인건비를 줄이면서 기사를 만들 수 있고, <캐피털 타임스> 독자와 접할 기회를 얻는다.

 

취재진이 WCIJ를 방문했을 때 홈페이지 메인 기사를 쓴 사람이 바로 쇼어 기자였다. 그는 위스콘신주에서 메스암페타민(필로폰)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 11년 전에 비해 450%나 증가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예산이 편성되어야 한다고 보도했다. 기사에는 약 15000자의 활자와 다양한 인포그래픽이 포함됐다. 쇼어 기자의 이름 뒤에 캐피털 타임스라고 소속이 명시돼 있었다.

 

쇼어 기자는 위스콘신 매디슨 대학 신문방송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학보사에서 일하는 동시에 WCIJ에서 인턴으로 활동했다. 현재 WCIJ에는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인턴 3명과 언론사 경영 과정을 배우는 인턴 3명이 근무하고 있다. 각자 수업 시간표나 개인 사정에 따라 근무시간이나 근무 형태가 다르며, 시간당 11.50달러(2020년부터 12달러)를 받는다.

 

미국 국세청(IRS)이 비영리단체에 주는 세금 면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일종의 세법 코드인 ‘501(C)(3)’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단체가 자선·종교·교육 등 공익적 활동을 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미디어는 따로 카테고리가 없기 때문에, 교육 활동을 한다. 미국의 비영리 언론사가 대학과 연계한 인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유다.

 

WCIJ가 학생들을 교육하는 건 단순히 세금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홈페이지에는 지난 10년 동안 이곳을 거쳐간 인턴 47명이 당시 어떤 기사를 썼는지, 현재는 어디서 어떤 일을 하는지 일일이 알려준다. WCIJ에서 가르치고 키워낸 인재인 만큼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잘 해내리라는 믿음과 응원이 깔려 있다. 2009WCIJ의 첫 인턴으로 들어왔던 렉시 클린턴은 현재 뉴욕의 한 언론사에서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으며, 가장 최근 인턴 과정을 마친 새라 화이트코디체크는 앨라배마주에서 기자로 활동 중이다. 홀 편집국장은 복도 게시판에 붙어 있던 전단지 한 장을 가리키며 활짝 웃었다. “2011년 인턴을 했던 제이콥 쿠슈너가 다음 주 학교에서 특강을 연다. 지금은 아프리카에서 취재한 내용을 <뉴욕 타임스> <가디언> 등에 싣는 대단한 기자가 됐다.”

 

구독료나 광고료 없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후원으로 살림을 꾸려가는 비영리 언론사에 경제적 안정성은 늘 가장 중요한 문제다. WCIJ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첫 화면에 광고가 없습니다. 소유주도 없습니다. 뉴스뿐입니다(No ads. No owners. Just news)’라고 쓰인 팝업창이 뜬다. 그 아래 후원회원 가입하기라고 쓰인 버튼이 있다.

 

후원자가 아니더라도 기사는 누구든지 무료로 볼 수 있다. 개인이 가진 자본과 권력에 따라 접할 수 있는 정보 수준이 급격하게 벌어진 오늘날 비영리 저널리즘은 모두에게 기사를 무료로 제공해 정보 불평등을 줄이고자 한다. WCIJ는 한 해에 1000달러 이상을 내는 후원자를 워치독 클럽으로 분류하고, 그들에게만 취재 뒷이야기를 공개하거나 기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에 초대하는 등의 혜택을 준다.

 

2019년 현재 WCIJ는 한 해 338, 80만 달러(92500만원)의 후원을 받고 있다. 후원자의 약 3분의 2는 재단 및 기업이고, 3분의 1은 개인이다. WCIJ의 기금마련 정책 원칙에 따라 모든 후원자의 실명은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5000달러 이상의 기부금은 액수와 시기까지 자세하게 공개한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익명 후원은 받지 않으며, 선출직 공무원이나 정당 등 공직과 관련된 곳으로부터도 후원을 받지 않는다.

 

후원자가 자신의 후원금을 특정한 주제의 기사를 작성하는 데 써달라는 등의 조건을 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후원자는 기사 편집에 어떤 개입도 할 수 없다. 홀 편집국장은 돈이 어디서 들어와서 어디로 나갔는지 모든 내역을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독자들이 기사를 신뢰할 수 있으려면 자금의 투명성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사 자체의 투명성도 강조했다. 온라인에서 <위스콘신 워치> 기사를 읽는 독자들은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따라다니는 버튼 두 개를 보게 된다. ‘우리의 원칙을 읽어보세요(Read Our Policies)’라고 적힌 푸른색 버튼을 클릭하면 편집 방침에서부터 윤리 기준, 팩트체크 기준, 기금 마련 기준에 이르기까지 WCIJ의 모든 원칙이 정리돼 있는 페이지로 연결된다. 독자들은 언제든지 쉽게 기사 작성의 원칙을 찾아보거나 질문할 수 있다. <위스콘신 워치>가 그만큼 기사의 질에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다.

 

온라인에서 <위스콘신 워치> 기사를 읽는 독자들은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따라다니는 버튼 두 개를 보게 된다.

 

트러스트 프로젝트 로고가 붙은 진짜 뉴스

두 번째 버튼은 검은색으로 더 트러스트 프로젝트(The Trust Project)’라고 적힌 로고다. 이 프로젝트는 2014년 미국의 저널리스트 샐리 레어먼이 가짜 뉴스진짜 뉴스를 판별하기 위해 시작한 일종의 인증 캠페인이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 이름과 사진이 달려 있는지, 해당 언론사의 재정 상태가 투명하게 공개되는지, 익명 제보를 처리하는 과정이 만들어져 있는지 등 엄격한 기준을 모두 준수하는 기사에 트러스트 프로젝트 로고를 달아 독자들이 안심하고 기사를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취지다.

 

현재 100곳 이상의 언론사가 동참하고 있으며, 구글과 페이스북 등의 업체도 협력하고 있다. 로고를 단 기사가 검색 결과 상단에 먼저 노출되는 식이다. <위스콘신 워치> 기사에 트러스트 프로젝트 로고를 도입한 듀크하트 디지털 편집장은 우리가 이 프로젝트에 동참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영광이었다. 사실 우리는 이미 모든 기준을 충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로고를 추가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WCIJ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세 가지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보호하고(Protect the vulnerable), 잘못된 것을 고발하고(Expose wrongdoing), 해결 방법을 찾는 것(Explore solutions)이다. 두 달 전 <위스콘신 워치>는 이주노동자를 부당하게 착취한 위스콘신주의 한 농장에 대한 고발 기사를 썼다. ‘로베르토(가명)’라는 피해자와 인터뷰한 건 한참 전이었지만, <위스콘신 워치>는 그의 안전이 보장될 때까지 몇 달을 기다린 뒤에야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를 쓴 기자와 마주 앉아 평균 8~12시간 동안 꼼꼼하게 기사를 점검하는 것으로 유명한 홀 편집국장의 팩트체크 과정을 거친 것은 물론이다.

 

<위스콘신 워치>의 공들인 기사는 대부분 다른 언론사에서 인용한다. 201871일부터 2019630일까지 1년 동안 <위스콘신 워치>가 낸 기사 29건은 미국 전역 335개 언론사가 인용 보도했다. 2200만명에 이르는 독자가 기사를 읽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팟캐스트나 라디오, 방송 등을 제외한 활자 매체에서만 집계된 수치다.

 

시사IN 신선영 코번 듀크하트 디지털 편집장이 인턴을 교육하고 있다.

 

WCIJ는 다른 언론사에서 기사를 공유하는 것을 반긴다. 최대한 많은 독자에게 무료로 읽히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 출처를 밝혀야 하고 광고를 붙여선 안 된다. 지난 9월 폭스콘 공장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석연치 않은 도로 확장공사 탓에 집을 팔고 떠나야 했던 사건을 취재한 기사가 위스콘신주에서 가장 큰 언론인 <밀워키 저널 센티널>에 실렸다. 기사는 <밀워키 저널 센티널> 홈페이지에서 9월 한 달 동안 독자가 가장 많이 클릭한 기사가 되었다. 이 기사는 WCIJ<위스콘신 퍼블릭 라디오> 기자가 협업해 만든 공동 기사였다.

 

홀 편집국장은 언론사 간 협업이 중요해진 계기를 저널리즘의 위기에서 찾았다. “미국, 아니 전 세계 모든 언론사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경제적인 면에서나 기사 질적인 면에서나 한 언론사가 모든 걸 감당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그는 앞으로 더욱 언론사 간 협업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우리는 경쟁하는 대신 모든 걸 터놓고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WCIJ윈윈 전략을 바탕으로 10년 동안 꾸준히 성장을 거듭해왔다. 비영리 저널리즘 전문가, 비영리 재무관리 전문가 등 13명으로 구성된 WCIJ 이사회는 내년 예산 100만 달러(115600만원)를 승인했다. 올해 예산의 약 1.25배다.

 

왜 하필 비영리 언론사냐고?

 

시사IN 신선영

 

바버라 존슨(사진)은 위스콘신 탐사보도센터(WCIJ)의 개인 기부자이자 자원봉사자다. 디트로이트·댈러스·뉴욕 등 미국 각지에서 15년 동안 기자로 활동했고, 이후 여러 스타트업 언론사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일을 했다. 현재 센터의 수석전략고문을 맡고 있지만, 무엇보다 센터의 크고 작은 행사에 가장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자칭 ‘1호 팬이다.

 

어떤 계기로 WCIJ를 알게 되었나?

-2010년 한 행사에서 우연히 앤디 홀 이사를 만났다. 위스콘신주 매디슨시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홀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설명했고, 나는 은퇴하면 그에게 연락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2015년 중반에 은퇴한 뒤 2016년 초부터 홀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나는 영리 언론사에서만 일했지만, 영리든 비영리든 자금이 모여야만 회사가 굴러가고 기사가 나온다는 사실은 똑같다. 나는 WCIJ가 어떻게 더 많은 기부금을 받을 수 있을지 궁리한다.

 

왜 하필 비영리 언론사를 선택했나?

-<워싱턴 포스트>에 내 도움이 필요할까? 나는 그런 큰 언론사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는다(웃음).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 한복판에 놓여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언론사에 좀 더 애정을 쏟으면 좋겠다.

 

기부자이자 봉사자이기 전에 지역 주민으로서 WCIJ의 기사를 계기로 지역사회가 변했다는 걸 느낀 적이 있나?

-<위스콘신 워치>에서 수질 문제를 지적한 기사가 나온 뒤 위스콘신 주지사가 기사에 나온 수치를 인용하며 2019년을 깨끗한 식수의 해로 선포한 사례가 있었다. 이 밖에도 이주노동자의 인신매매 문제, 교도소 내 인권 문제, 취약한 선거 보안 문제 등을 다룬 기사가 나오고 나서 주 정부가 개선에 나선 적이 많다. 또 센터에서 예비 저널리스트를 키워내는 것도 멋진 일이다.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간 인턴들이 이곳 위스콘신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을 넘어 각 대륙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젊은 친구들이 이곳에서 무엇을 배웠을지 상상하면 가슴이 벅차다.

 

지금까지의 WCIJ를 평가한다면?

-상상 이상이다. 대단한 그룹이다. 계속 성장하면 좋겠다. 규모가 커져서 전국적인 이슈를 다뤘으면 좋겠다는 뜻이 아니다. 앞으로도 지역 이슈에 집중하되 전국적인 영향력을 가진 기사를 써내는 언론사가 되기 바란다./ 시사인 위스콘신/ 나경희 기자

 

민심에 밀린 여야 물갈이, 20년만에 되풀이?

2000년 총선 '낙천운동' 커지자 정치권 살기 위해 물갈이

민주, 권노갑 불출마 뒤 중진 교체 임종석 등 386 발탁

한나라, 계파보스 김윤환·이기택 낙천 원희룡 등 영입

20년만에 임종석 불출마 여야 '억지춘향 물갈이' 압박

 

역사는 되풀이되는가.

19년 전인 2000년 여의도 정치권은 지금처럼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었다. 당시 여야는 살기 위해 경쟁적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에서는 실세 권노갑씨가 불출마를 선언했고 중진들을 내쳤다. 빈 자리에 임종석 등 386을 들였다. 한나라당도 '대학살'로 불릴만큼 대대적 물갈이를 감행하고 새 얼굴을 영입했다.

 

그로부터 19년 뒤인 2019.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지낸 임종석씨가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민주당은 그가 떠난 빈자리를 채울 새 얼굴을 찾고 있다. 한국당도 마찬가지다. 민심의 분노에 직면한 정치권이 또다시 물갈이를 통해 생존을 모색하는 역사가 되풀이될 전망이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을 향한 민심의 분노는 거셌다. 1992년 문민정부 출범과 1997년 수평적 정권교체가 있었지만 정치권은 80년대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부패했고 무능했다.

 

분노한 여론을 등에 업은 시민단체들이 '총선시민연대'를 구성해 낙천·낙선명단을 발표했다   여야는 민심의 분노를 피해갈 수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과 시민단체의 비판은 역사의 큰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다"며 여론의 요구를 수용할 뜻을 내비쳤다. 1야당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도 총선시민연대에 "낙천대상자 명단을 비공개로 통보해달라"고 호응했다.

 

여야는 경쟁적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은 2인자로 불리던 권노갑 고문이 불출마를 선언했고 공천과정에서 텃밭인 호남과 중진의원들을 대거 축출했다. 대신 30·40대 젊은 피를 수혈했다. 우상호 이인영 송영길 임종석 등 386이 영입됐다  한나라당은 더 파격이었다. 실세 김윤환 이기택 신상우 이세기 오세응 김정수 한승수 등을 대거 숙청했다. '2.28 대학살'로 불릴 정도였다. 빈자리에는 원희룡 오세훈 임태희 등 젊은 전문직들이 들어왔다.

 

여론에 떠밀린 여야가 경쟁적으로 물갈이를 한 덕분에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200016대 총선을 통해 입성한 38619년 뒤인 지금 여권지도부에 포진해있다. 19년 전 영입된 한나라당 젊은 인재들도 지금은 차기를 다투는 거물이 됐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19년전 역사가 되풀이될 조짐이다. 정치권을 겨냥한 민심의 분노는 어느 때보다 뜨겁다. 한국갤럽 조사(102224, 1001,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20대 국회에 대한 평가에서 '잘했다'는 답은 10%에 그쳤다. '잘못했다'83%였다.

 

20대 국회에 대한 점수(100점 만점)을 묻자 평균 40점이 나왔다. 4년전 같은 질문에서는 42점이 나왔다. 20대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불신이 극에 달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여야 모두 이같은 민심을 의식하는 분위기다. 민주당에선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17일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19년전 중진들이 떠밀려난 빈자리에 영입된 임 전 비서실장이 이번에는 스스로 자리를 비운 것. 한국당 부산 3선인 김세연 의원은 불출마 뜻을 밝혔다. 여야 모두 곧 닥쳐올 여론의 쓰나미를 감지하고 대책을 마련해야한다는 고민에 공감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자발적인 비움은 미미하다. "네가 먼저 떠나라"고 외칠 뿐 "내가 먼저 내놓겠다"는 목소리는 드물다. 중진들은 "다선이 죄냐"고 버티고 초재선은 중진들에게 책임을 미룬다. 여야 모두 똑같다. 결국 20년전처럼 여론의 불신에 떠밀려 억지춘향식 물갈이가 이뤄지지 않겠냐는 관측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격언이 틀리지 않게 된 것이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50·60대 변심, 부울경 한국당지지 급락

타 지역 비해 PK 도드라져

쇄신·보수통합 실망 겹쳐

"'조국' 이후 거품 걷힌 듯"


김세연개혁 물거품? 친박도 비박도 외면

정우택 "여연 원장직 계속 수행? 코미디"김영우 "저는 끝까지 싸우겠다"

자유한국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원장인 김세연 의원(3선 국회의원, 부산 금정)이 쏘아올린 불출마 선언 및 당의 발전적 해체 제안이 한국당에서 외면받는 분위기다. 친박·비박 등 계파를 불문하고 '시큰둥한 반응' 차원을 넘어 김 원장에 대한 공개 비판까지 나왔다.

 

구 친박계 중진인 정우택 의원(4, 충북 청주상당)19일 한국방송(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 원장의 불출마 선언이 당 내 쇄신과 혁신에 박차를 가하는 원동력이 되기를 기대한다"면서도 "본인이 스스로 몸담고 있는 정당을 '좀비 정당'이라고 표현한 것은 너무 과도한 표현"이라며 "'좀비 정당' 발언은 좀 오버했다는 시각이 많다"고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정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가 김 원장이 여의도연구원장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당이 해체돼야 하고, 소명을 다한 '좀비 정당'으로 판단한 사람이 이번 총선에서 결정적 역할을 할 여의도연구원장 직을 계속 수행한다는 것은 코미디 아니냐""본인이 스스로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할 때 순수성을 의심받아서는 안 된다. 따라서 자기 희생을 보여주고 백의종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당연한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김 원장이 '불미스러운 일을 막기 위해' 여의도연구원장 직을 계속 수행할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해 정 의원은 "'불미스러운 시도'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불미스러운 시도를 막는 것은 나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하면 순수성을 잃을 수 있다""당에 고언과 충정을 준 그 발언을 손상시킬 수 있다"고 거듭 주장했다. "이미 우리 당에 대해서 어떤 판단을 내린 사람으로서는 모든 것을 손을 떼고, '나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순수성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정 의원은 또 "'당 해체'는 제가 보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클 것"이라며 "어제(18) 황교안 당 대표도 '총선에서 책임지겠다'는 표현으로 해체론·용퇴론에 선을 그었다"고 말했다. 그는 쇄신·용퇴론에 대해 "인적 쇄신은 공천 과정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인사(人事)라는 것은 항상 어떤 기준에 의해서 해야지, 자의적으로 하는 것은 누구도 승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유승민계와의 통합 논의에 대해서는 "제가 보기에는 시계바늘이 멈춘 게 아닌가"라며 "통합 성공 여부는 미지수지만 끝까지 통합을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정 의원은 말했다.

 

비박계 중진인 김영우 의원(3, 경기 포천·가평)도 같은 방송 인터뷰에서 "1야당의 모습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지 못하다는 문제 의식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원장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한 것이고 한국당의 많은 의원들, 당원들도 (그에) 공감하는 것"이라면서도 "그런데 다만 방법을 어떻게 찾느냐에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했다.

 

김 의원은 "김 원장은 자리를 내어놓음으로써, 불출마를 선택함으로써 '이대로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저 같은 경우는 문제 의식은 비슷하지만 '무대의 조명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더 철저하고 투철하게 싸워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방법은 당 내에서 슬기롭게 찾아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게 아닌가"라고 했다.

 

김 의원은 "결국 정치인은 자신의 결정이고 자기의 선택"이라며 "이런 면에서 방법은 각자 찾는 것"이라고 재강조했다. 그는 쇄신론·용퇴론에 대해 "흔히 여태까지는 '공천 물갈이'라고 해서 물갈이를 굉장히 중요시하는 정치 문화이고 그것도 중요하다"면서도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야당의 시대정신은 개혁이고 그 개혁의 핵심은 보수 통합이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원장이 제기한 '당 해체' 논의에 대해서도 김 의원은 "해체 자체가 목표가 아닌 창조적인 파괴가 되어야 한다""창조 없이 파괴만 한다? 그러면 내년 총선은 그냥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황 대표의 전날 언급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총선을 잘 치러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 보수 통합이 필요하다는 큰 차원의 대답은 이미 한 셈"이라며 "인재 영입과 보수 통합의 방안을 찾고 있는 것을 저는 알고 있는데, 하려면 제대로 해야 된다. 황 대표를 포함한 지도부는 거기에 올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한국당 내에서 김 원장을 공개 옹호한 이는 김 원장과 등원 동기(18대 국회)인 김용태 의원이 유일하다시피 하다. 공개 비난까지는 아니라도, 물밑에서는 김 원장을 겨냥해 "해당(害黨)행위다", "먹던 우물에 침을 뱉었다" 등 가시돋힌 발언이 쏟아졌다.

프레시안 곽재훈 기자

 

네팔에서 왔어? 그럼 싸구려 모텔에서 촬영하자

이주민이 본 한국의 다문화 예능 "차별의식 깔려 있다"

"어이구, 순댓국도 먹을 줄 알아?(굳이 꼭 반말을 한다.) 이제 한국사람 다 됐네?"

 

"좋아하는 음식이 국밥? 한국사람 입맛이네!"

TV 예능 프로그램, 유튜브에 이런 내용의 콘텐츠가 많다. <대한 외국인>, <이웃집 찰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다문화 고부열전>, <아빠 찾아 삼만리> 등 다문화 배경의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프로그램이 여럿이다. '외국인'이 한국적인 것을 이해하면 감탄하고 좋아하는 한국인의 모습. 적잖은 한국인이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거나 적극적으로 즐기지만, 과연 이주민 역시 그럴까.

 

"처음에는 '한국사람 다 됐다'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였어요. 한국에 오래 살면서 이런 얘기를 많이 듣다보니, '나는 나인데 꼭 한국사람이 돼야 하는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무언의 압력을 받는다고 느낀 달까요. 저는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데, 이런 분위기(매운 걸 먹어야 인정받는다는 분위기) 때문에 종종 오해를 받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 고교생 두 자녀를 둔 장동희(일본) 씨는 한국인의 '동화주의'에서 폭력성을 가끔 느낀다. 고교생과 중학생 두 자녀를 키우는 이레샤(스리랑카) 씨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말씀을 하는 분들의 칭찬하는 마음을 알아요. 재미를 추구하는 방송의 속성도 이해하고요. 하지만, 방송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주민 1세가 될 테고, 제 자녀는 2세인데, 1세에게 취하는 태도가 2세에게도 그대로 내려와요. 답도 항상 같아야 하죠. 저는 한국에 산지 20년 되는데, 여전히 아이와 함께 있으면 '김치 잘 먹는다'는 말을 들어요. 다문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다양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18일 저녁 7, 서울 종로구 전태일 기념관에서 '사소하지 않은 차별'이라는 제목의 토크쇼가 열렸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최한 토크쇼는 이주민의 눈으로 한국의 다문화 예능, 교양 프로그램을 바라봐 우리 안에 내재한 차별의식을 되새기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토크쇼에는 이레샤 이주여성 단체 톡투미 대표와 장동희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일본어 통번역지원사, 정혜실 이주민방송 MWTV 대표(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와 이채훈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이 참여했다.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이 사회를 맡았다. 토크쇼 참가자들은 지난 3개월간 이주민, 혹은 외국인 관광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TV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한 후, 해당 프로그램에서 발견한 한국인의 차별의식을 주제별로 나눠 이야기했다.

 

명절이 되면 절대 빠지지 않는 종교 폭력의 전시. 한복 입은 외국인의 노래자랑 쇼(명절), 이주민 여성의 김장 연출(연말)도 빼놓을 수 없다. 연합뉴스

 

20년째 '한국인 다 됐다'는 말 들어보세요...

가장 먼저 거론된 주제는 한국인의 동화(同化)주의였다. 앞서 예시된 "한국인 다 됐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TV 프로그램에서 심심치 않게 확인하는 장면이다. 외국인이 한국 관련 콘텐츠를 업로드한 상당수 유튜브 콘텐츠가 비슷한 맥락의 내용을 담고 있다.

 

참가자들은 <대한외국인>에서 외국인 출연자가 "국밥을 좋아한다"고 말하자 한국인 출연자가 "한국사람 다 됐다"고 말하는 장면, <이웃집 찰스>에서 순댓국에 양념장과 들깻가루를 넣는 학생을 향해 한국인 진행자가 "제대로 먹는다"며 감탄하는 장면을 토크쇼 관객과 함께 봤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3개월간 모니터링한 과정에서 가장 많이 확인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정혜실 대표가 한국인의 동화주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국 동화주의의 문제점은 공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한국이 다문화 사회를 표방한다'고 하면서 실은 동화주의를 채택한다. 순혈적 한민족이라는 의식을 놓지 못한 상황에서, '너희 외모는 다르지만, 한민족의 문화와 관습을 따르라'는 관념이 저변에 깔린 것 같다"고 그는 전했다.

 

한국과 반대의 경우가 프랑스다. 프랑스는 대외적으로 강력하게 동화주의를 공표한다. '너희를 차별하지는 않겠지만, 프랑스 문화에 무조건 적응하라'는 식이다. 학교 내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원칙이 대표적이다. 다문화 사회에서 문화 차이로 인한 갈등이 생기지 않게끔 원칙을 정하려는 조치이지만, 부작용도 생겨난다.

 

정 대표는 특히 혼인 이주여성에게 명절 제사문화를 강요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제사문화는 유교 의례다. 필리핀에서 이주한 가톨릭 신자, 스리랑카에서 이주한 불교도나 무슬림에게 이는 타종교 강요 행위다. 정 대표는 "한국의 다문화센터가 명절 마다 언론에 홍보하는 모습이 이주민 여성에게 한복을 입힌 후 제사를 가르치는 모습"이라며 "강력한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다문화'라는 단어가 오용되는 사례도 토크쇼의 주제로 올랐다. <이웃집 찰스>의 한 장면이 언급됐다. 다문화를 배경으로 꾸려진 '글로벌 프렌즈' 팀이 한국의 중학생 팀과 농구 시합을 했다. 시합 후 한국 방송 카메라가 한국 태생의 아이에게 마이크를 건넨다. "다문화가정 애들이랑 농구하니 느낌이 색다르고 좋았어요." 꾸밈없이 밝은 미소로, 학생이 방송에 의례적으로 할 법한 대답을 들려준다. 왜 문제일까?

 

'다문화(multiple culture)''다문화가정'은 한국에서 완전히 다른 맥락으로 사용된다. '다문화가정 아이'라는 단어가 한국 사회에서 갖는 맥락에는 쉽게 말해 '가난한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이주한 여성과 한국인 남성 사이에 태어난 아이'라는 뜻이 깔려 있다. 아예 법적으로도 차별 정신이 내재돼 있다. 다문화가족지원법은 아예 '결혼이민자와 대한민국 국적자로 이뤄진 가족'만을 지원 대상으로 못 박고 있다. 법부터 '다문화', 곧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제한적으로 정의하는 셈이다. 결국 이는 구별, 차별로 이어진다.

 

"결국 '한국인은 누구냐'는 질문으로 이어져야 한다. 한국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돼 있나? 국적자면 한국인인가? 존재하지도 않는 이른바 '순수한 한국인'만이 한국인인가? 한국인은 '특정 가족'을 기준으로 한국인은 정상, 나머지는 비정상으로 가른다. 우리 단체가 (다문화가족) 아이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아이들은 그저 '내 이름으로 불렸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정혜실)

 

정 대표는 나아가 '다문화가족'이라는 단어에 얽힌 차별적 함의도 지적했다. 그는 "적잖은 한국 방송 프로그램에서 '다문화가족'이 범주화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서부유럽, 일본에서 온 사람은 글로벌한 사람이지만, 동남아시아에서 이주한 여성이 있는 집이 '다문화가족'이 된다""방송이 국가별 위계, 돈에 따른 서열화를 부추기는 듯하다"고 우려했다.

 

PD인 이채훈 정책위원도 한국 방송 프로그램의 차별의식을 인정했다. 이 위원은 "단순히 단어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다문화''다양성'으로 바꾼다 해도 결국 다름을 전제한다""당장은 대안이 떠오르지 않지만,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인 듯하다"고 언급했다.

 

18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 기념관에서 한국의 외국인 대상 프로그램의 차별 의식을 논하는 토크쇼가 열렸다. 왼쪽부터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 이레샤 이주여성 단체 톡투미 대표, 장동희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일본어 통번역지원사, 정혜실 MWTV 대표, 이채훈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프레시안(최형락)

 

'다문화' 배경에는 'GDP 차별'

특히 토크쇼 출연자들은 세 번째 주제인 '고부갈등' 부문에 들어서 EBS<다문화 고부열전>에 분통을 터뜨렸다. 토크쇼에서 이 프로그램의 두 꼭지가 살짝 보였다. 일하다 늦게 집에 들어온 베트남 출신 며느리 때문에 밥을 굶었다며 역정을 내는 시어머니의 모습이 한 편, 짧은 반바지를 입은 며느리의 모습이 못마땅하다며 굳이 '사부인'에게까지 반말을 하는 시어머니의 모습이 한 편이었다. 토크쇼 참가자들이 일제히 한숨을 쉬었다.

 

이레샤 대표는 단호한 목소리로 "모니터링 과정에서 이 프로그램을 처음 봤는데, 제작진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이 방송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언급했다. 이레샤 대표는 "다른 문화를 배경으로 한 며느리에게 오직 한국 법만 따르라고 강요하는 모습이 보였다""제가 있는 단체에서 하루 열 명 이상의 이주여성과 상담하는데, 그분들로부터도 이 방송을 성토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방송의 의도가 있을 것이다. 일단 이 프로그램은 EBS의 인기 콘텐츠다. 이채훈 위원은 "EBS가 한국의 고령층 시청자에게 영합하려다 이주민 여성의 정서를 소홀히 한 듯하다""고부갈등을 선명히 부각하려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갈등을 조장하는 연출을 하는 것 같다. EBS 내부에서도 비판이 있다고 알고 있다"고 전했다.

 

정혜실 대표는 이처럼 이른바 '나쁜 며느리''전통적 시어머니', 이제는 한국 여성이 거부하는 고부상이 여성 전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이 프로그램에서 주로 등장하는 연출은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마구 무시하고, 결국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화해'하는 모습이다. 이제 한국 며느리에게서 기대하기 힘든 모습을 고령 시청자가 내면화하게끔 한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나아가 "'이주여성은 시어머니에게 구박받는 불쌍한 존재'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만드는 문제도 있다""결국 시청자는 '가난한 나라에서 살던 여성'보다 (방송을 보는) ''의 우월한 위치를 내면화하게 된다.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가 언급했듯, 이제 한국에서 인종차별은 단순히 피부색 차별이 아닌, GDP 차별이다. 우리가 얼마나 경제 위계 질서로 사람을 판단하고 국가를 판단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다문화 고부열전>"이라고 지적했다.

 

'동남아 출신'이면 일단 반말?

토크쇼 출연자들은 '가난한 동남아시아 출신 노동자가 수년 만에 가족과 감동적으로 만나는 모습을 연출'하는 EBS<아빠 찾아 삼만리>로부터 가난을 전시하는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정 대표는 특히 이 방송의 한 꼭지에서 한국의 날씨에 적응하지 못한 네팔 출신 아이가 아빠를 만나러 슬리퍼를 신고 왔다가 추워하는 모습을 보여준 후, 지나가는 여성이 양말 사 신으라고 돈을 건네는 장면을 설명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정 대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며 "심지어 제작진은 '아빠의 고생하는 모습'을 연출하겠다며 아이들을 싸구려 모텔이나 공장기숙사에 재운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장면을 찍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방송이 알려주지 않는 문제를 중요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아빠 찾아 삼만리>에서 흔히 나오는 연출은 먼 한국으로 가족을 두고 돈을 벌러 온 아빠가 수년 만에 가족과 감동적으로 재회하는 모습이다.

 

정 대표는 "실상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한국에서 가족을 만날 수 없다. 법무부가 '내 아버지를 만나러 오겠다'고 해도 비자를 내주지 않기 때문"이라며 "방송은 이런 제도적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오직 '좋은 사장을 만나서 성실하게 일하는 아버지가 가족과 잠시 만나 감동적 모습을 연출한 후 헤어지는 그림'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특히 '못 사는 나라 노동자'에게 무례한 한국인의 언어 습관 역시 문제로 떠올랐다. 이번에도 <아빠 찾아 삼만리>가 대상이 됐다. 공장 기숙사 벽에 한글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쓴 출연자에게 제작진이 물어본다. "무슨 뜻인지 알아요?"

 

모르는 말을 적어놓을 리가 있나. 한국인이 대상이었다면 당연히 "왜 붙여놓았느냐"고 물었을 것이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심지어 질문자는 자신의 무례함을 인지하지도 못 한다"고 혀를 찼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서 적잖은 한국인이 한국말을 하는 외국인에게 갑자기 말을 놓는 화면도 자주 잡힌 바 있다.

 

이레샤 대표는 해당 장면을 보고 씁쓸함을 표했다. 그는 "저는 한국에 산지 20년이 됐는데, 지금도 '안녕하세요' 하면 '한국말 잘 한다'는 말을 듣는다""한편으로는 우리(이주민)의 잘못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질문에 언제나 한국인이 바라는 답을 하니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출연자들은 한숨을 쉬었다. 이채훈 정책위원은 "오늘 거론된 문제는 방송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나아가 세계의 문제이기도 하다""방송이 반걸음이라도 앞서가야 하는데, 오히려 시대를 따라가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날 토크쇼는 분쟁 지역을 전문적으로 취재하는 김영미 피디도 지켜봤다. 분쟁지역 취재를 위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김 피디는 "저의 경우 여러 나라를 다니다보니 그 지역 사람과 공감코드, 동질감을 찾을 것부터 찾는데, 한국 사회는 구분짓기부터 하는 듯하다"며 한국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는 모습, 과거 '38따라지'라고 하며 북한 이주민과 나머지를 구분한 사례 등을 들어 안타까움을 표했다.

 

김 피디는 "한국이 너무 심한 경쟁사회라서 어떻게든 나의 우월함을 찾으려는 생각이 차별코드를 만드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모두가 함께 살려면 차별 대신 공감 코드부터 찾았으면 한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관객석에서 토크쇼를 지켜보던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장재혁 책임피디도 한 마디를 거들었다. 장 피디는 특히 해당 프로그램에서 '부유한 나라의 남성이 주로 출연하는 모습'에 대한 비판을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아무래도 저희 제작사가 상업방송사(엠비시에브리원)이다 보니 시청자의 선택을 맞춰갈 수밖에 없다"면서도 "이를 극복하려고 제작진도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

 

부동산 양극화 심화상위 10% 1억 오를때 하위 10% 고작 100만원

통계청, 2018 주택소유통계 결과'빈익빈 부익부' 뚜렷

부동산 부자 10% 평균 집값 10억 육박하위 10% 38

집 없는 가구 7만 느는 동안 두 채 이상 보유도 7

 

[세종=뉴시스]오종택 기자 = 지난해 주택자산 가액 기준 소득 상위 10%가 보유한 주택자산은 1년 새 1억원 가까이 오른 반면, 하위 10%는 고작 100만원 오르는데 그쳐 부동산 빈부격차가 더욱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19일 발표한 '행정자료를 활용한 2018년 주택소유통계 결과'에 따르면 작년 111일 기준 개인이 소유한 주택은 15317000호로 전년(14973000)보다 2.4% 증가했다.

 

주택 소유가구의 평균 보유 주택수는 1.36, 평균 자산가액은 25600만원, 1호당 평균 주택면적은 86.3로 조사됐다. 주택자산 가액 기준 10분위 현황은 전년보다 격차가 커졌고, 상위 10% 주택가격 상승폭과 상승액은 하위 10%와 큰 차이를 보여 부동산 빈부격차가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상위 10%의 평균 주택자산 가액(올해 11일 기준 공시가격 기준)97700만원, 하위 10%2500만원으로 나타났다. 상위 10%와 하위 10% 배율은 37.57배로 전년도 35.24배보다 증가했다.

 

특히 상위 10%의 평균 주택자산 가액이 201788100만원에서 지난해 97700만원으로 1억원(9600만원) 가까이 증가했다. 반면, 하위 10%20172500만원에서 지난해 2600만원으로 고작 100만원 오르는데 그쳤다. 또 부동산 부자 상위 10%의 평균 주택자산은 1년새 10% 가까운 9.8%가 뛰었지만 하위 10%3.8% 상승에 머문 것으로 집계됐다.

 

소유주택 수도 상위 10%2.59호로, 하위 10% 0.96호와 3배 가까이 차이를 보였다. 상위 10%의 평균 주택면적(다주택이면 소유주택 면적 평균)123.0로 하위 10% 62.2의 두 배 차이를 보였다.

 

7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상가에 전세 매물 관련 문구가 게시돼 있다. 정부는 지난 6일 강남 4(강남·서초·송파·강동)와 마포·용산·성동·영등포구 등 서울 8개구 27개 동()을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으로 지정했다. 2019.11.07.

 

부동산 부자 상위 10%의 거주지역은 서울이 4.9%로 가장 높고, 경기(2.7%), 부산(0.4%), 대구(0.4%), 인천(0.3%) 순이다. 하위 10%가 많이 사는 지역은 경북(1.6%), 전남(1.4%), 전북(1.0%), 경남(1.0%), 충남(0.9%) 순이다.

 

통계청은 "서울과 경기는 상위로 갈수록 비중이 높아지는 특성을 보였으나 그 외 대부분 지역은 하위로 갈수록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양극화는 집값 뿐 아니라 주택 소유 현황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지난해 무주택 가구는 8745000가구로 전년보다 7만 가구 넘게 늘어났다.

그 사이 집을 두 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 역시 전년도 301만 가구 대비 7만 가구 증가한 3081000가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 주택 소유 11234000가구 중 1주택 가구는 8153000가구(72.6%), 2주택은 224만 가구(19.8%), 3주택은 523000가구(4.8%), 4주택 이상은 306000가구(2.7%) 등이다.

 

주택 2건 이상 소유자가 많은 시도지역은 제주(33.6%), 세종(32.3%), 충남(31.3%) 순이며, 시 지역 기준으로는 서울 강남구(36.0%), 서초구(35.2%), 제주 서귀포시(34.6%) 순으로 다주택자가 많았다.

 

경향사설]뚜렷한 집값 상승세, 정교한 대책 없이는 잡기 어렵다

서울의 입주 1년 미만 신축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분양가 대비 45% 올랐다. 분양가 10억원 아파트가 1년도 안된 사이에 145000만원이 됐다는 이야기다. 전국 평균 상승률도 12%였다. 부동산정보업체 직방이 지난 7~9월 전국 359개 단지 아파트 실거래 정보를 비교 분석한 결과다. 신축 아파트는 새 아파트일 뿐 아니라 이처럼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에 선호도가 더 높다.

 

하지만 새 아파트 가격 폭등은 주변 시세를 끌어올리고, 이는 다시 고분양가를 낳는다. 이런 악순환이 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낮은 금리 탓에 풍부한 시중의 유동성이 부동산에 몰렸기 때문이다. 국토연구원 자료를 보면, 기업 및 개인 투자가 위축되는 상황에서도 서울 주택매매 소비심리지수는 지난달 151에 달했다. 이 지수가 100을 넘으면 가격 상승·거래 증가를 체감한다는 뜻이다. 지수가 최대치인 200을 향하고 있으니 주택 소비심리가 대단히 높은 셈이다.

 

이번 조사에서 17개 시·도 중 서울·세종·대전·대구 등은 30% 이상 올랐고, 경기와 광주도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실거래가가 분양가보다 떨어진 곳은 충북, 경남·북 등 3곳에 불과했다. 한국감정원의 최근 자료를 보면, 분양가상한제 적용 27개 동()이 포함된 서울 강남구 등 7개구는 지정 이후 아파트 매매가격이 되레 큰 폭으로 상승했다.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8주 연속, 서울은 20주 연속 오름세를 유지했다. 사정이 이러니 투자자들이 지방을 돌며 아파트 쇼핑으로 집값을 올리는 심각한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부동산 외 투자처와 주택보유 부담을 더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공공주택과 노후주택, 빈집 개·보수를 통해 공급도 늘려야 한다. 분양가상한제는 전면 실시해야 장기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이날 부동산시장점검회의를 연 뒤 내놓은 대책은 상한제 추가 지정 검토’ ‘편법 증여·불법 전매 단속 강화뿐이었다. 도대체 집값 안정 의지가 있기는 있는 건지 의심스럽다. 누누이 말하지만 부동산정책이 시늉에 그치면 시장은 부동산 경기가 꺼질까 정부가 겁을 내고 있다고 오판하게 된다. 그 결과 집값은 상승하고, 고통은 대부분 서민이 지게 된다. 정부는 국민 모두가 집으로 돈을 벌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강력하고 정교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

 

0.9% 부유층이 세계 부 절반 보유한국인 백만장자’ 80만명

크레디트 스위스 ‘2019년 글로벌 부 보고서

 

세계 성인 1인당 ‘7850달러’, 0.6%그쳐

성인인구 0.9% 글로벌 부총액 43.9% 보유

 

“21세기 벽두의 부 증가 황금시대는 끝나

1만달러 이하 전세계 인구 56.6%, 29억명

전세계의 부(자산) 총액이 올해 6월말 기준으로 3606천억달러(4226592600억원)로 집계됐다. 2017년말에 견줘 2.6%(9870억달러) 증가했으나 인구증가를 고려한 성인 1인당 부로 따지면 이번 21세기가 막 시작되면서 6년간 기록한 황금시대’(연간 1인당 부 성장률 10% 이상)는 다시 찾아오기 어려울 것으로 분석된다. 전세계 성인인구의 0.9%가 글로벌 부 총액의 43.9%를 보유하고 있으며, 글로벌 부 상위 1%(1백만달러 이상)에 드는 한국인 백만장자는 806천명으로 집계됐다.

 

22일 글로벌투자은행인 크레디트 스위스가 펴낸 ‘2019년 글로벌 부 보고서를 보면, 글로벌 부 총액은 올해 6월말 기준 3606천억달러로, 2017년말(3515천억달러)보다 9조원가량 늘었다. 여기서 부는 주식 등 금융자산과 부동산 등 비금융자산을 합친 뒤 부채를 뺀 순자산을 뜻한다. 금융자산은 43천억달러, 비금융자산은 66천억달러 각각 늘었고 부채도 19천억달러 증가했다. 보고서는 각국 가계·자산조사를 담고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럽연합통계국(Eurostat) 및 각국 중앙은행 데이터를 활용해 각국의 금융·주택자산 최신 포괄데이터를 집계했다. 인구를 고려한 성인 1인당 부2017년말(7460달러)에서 지난 6월말 7850달러로 0.6% 성장하는데 그쳤다. 인구증가를 고려할 때 부의 증가세가 거의 멈춘 셈이다.

 

보고서는 금융위기 이래 경험적으로 세계 부의 장기 성장세를 보면 세계총생산(GDP) 변동 추세와 거의 유사하다. 자산가격 인플레이션이나 집계 표시통화인 미국 달러화 가치절하가 일시적으로 부의 성장 수치를 낮출 수는 있으나 장기 추세를 변동시키지는 못한다이번 21세기가 시작됐을 때 2002~2007년 성인 1인당 부 증가율(연간)10~20% 수준으로 분출했고 2017년에도 또 한번 증가율 10%를 기록했으나 이런 황금시대는 근래에 또 찾아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중국경제의 급속 성장과 신흥시장 부상 같은 요인이 이제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고, 오랜 저금리 시대가 끝나 시장이자율이 재차 상승하고 있는데다, 주택가격 상승세가 주춤하고 주식가격의 자산인플레이션도 낮아지면서 많은 국가에서 부의 성장을 짓누를 공산이 크다고 보고서는 내다봤다. 물론 부의 성장률이 낮아진 부분적인 까닭 중 하나로 달러가치 변동이 있긴 하다. 보고서는 달러환율을 최근 5년간의 기간말 이동평균환율로 조정하면 2017년 이후 글로벌 부 총액은 5.9% 증가했고 성인 1인당 부도 3.8%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자산 1백만달러(117210만원) 이상을 보유한 성인은 전세계 성인인구의 0.9%(46792천명)2018년에 비해 114만명 늘었다. 이들은 글로벌 부 총액의 43.9%(1583천억달러)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을 국적별로 보면 미국(18614천명), 중국(4447천명), 일본(3025천명), 영국(246만명), 독일(2187천명), 프랑스(207만명) 순이다. 한국은 741천명(성인인구의 약 2%)이다. 세계 부 상위 10%(10만달러 이상)에 드는 한국인은 12308천명이고, 상위 1%(1백만달러 이상)에 드는 한국인은 806천명이다.

 

자산 1만달러(1172만원) 미만을 보유한 성인은 전세계 인구의 56.6%(288300만명)로 이들이 보유한 부 총액은 63천억달러(전세계 부의 1.8%)로 나타났다. 1~10만달러(11718만원) 자산계층은 전세계 인구의 32.6%(166100만명), 이 집단의 부 총액은 557천억달러(전세계 부의 15.5%). 이 계층(평균 33530달러)200051400만명에서 지난 20년간 3배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중국 등 신흥시장 경제에서 중산층이 팽창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10~1백만달러 구간은 전세계 성인인구의 9.8%(49900만명)로 이 집단의 부 총액은 1402천억달러(전세계 부의 38.9%)로 나타났다.

 

한국의 성인 1인당 부의 연간 증가율은 2000~2019년 평균 6.9%로 전세계의 성인 1인당 부 증가율에 견줘 1.5배 높다. 보고서는 한국은 금융 제도가 발달하고 저축률이 높은데도 가계의 총 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금융자산보다 비금융 부동산자산(63%)이 놀라울 정도로 높다인구 밀집에다 소득이 성장하면서 부동산가격이 매우 높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향후 5년 뒤(2024) 자산 1백만달러 이상 성인 인구 예측을 보면 한국은 965천명으로 올해보다 30% 증가하고, 중국(6874천명)55%, 일본(5161천명)71%, 전세계(62908천명)34% 각각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한국 여권 파워미국 제치고 세계 2

200개국 중 188곳 사전 비자 없이 여행 가능

일본·싱가포르 공동 1아시아권이 톱3 차지

미국은 트럼프 취임 뒤 1~2위권에서 6위로 하락

 

<한겨레> 자료사진

 

세계 시민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여권은 어느 나라의 여권일까?

영국에 본부를 둔 글로벌 시민권·영주권 자문회사 헨리 앤드 파트너스가 최근 전 세계 200개국을 대상으로 해당국 여권으로 여행할 수 있는 나라의 수가 많은 차례로 순위를 매긴 ‘2019년 헨리 여권 지수에서 한국이 공동 2(입국 가능 수 기준)에 올랐다. 대한민국 여권이 있으면 조사 대상 200개국 중 모두 188개국을 단기 방문시 무비자, 또는 도착 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에서 가장 여권 파워가 센 나라는 일본과 싱가포르가 공동 1위였다. 두 나라의 여권은 각각 190개국에 사전 비자 없이도 방문할 수 있는 여행 친화적인 여권으로 꼽혔다. 한국·핀란드·독일이 2개국 차이로 뒤를 이었는데, ‘톱 쓰리(3)’가 모두 아시아권 국가라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이어 덴마크·이탈리아·룩셈부르크(187개국)가 공동 3, 프랑스·스페인·스웨덴(186개국)이 공동 4, 오스트리아·네덜란드·포르투갈(185개국)이 공동 5위로 바짝 뒤를 쫓았다.

 

세계 여러 나라의 여권들. 위키미디어 코먼스

 

헨리 여권 지수는 헨리 앤드 파트너스가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최신 여행 정보 데이터를 바탕으로 2006년부터 매년 작성하고 있다. 한국은 2011년 처음 10위권에 든 이래 꾸준히 순위가 상승했으며, 2014~15년과 지난해 3위에 이어 올해 처음 2위에 올랐다.

미국과 영국은 벨기에·캐나다·그리스·노르웨이·스위스·영국(184개국)과 함께 6위에 머물렀다. 특히 미국과 영국은 2014~16년 새 3년 연속 공동 1~2위를 다퉜으나, 공교롭게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한 2016년 이후 나란히 매년 한 단계씩 순위가 떨어졌다.

북한 여권은 사전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는 나라가 39곳으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여권 지수가 가장 낮은 나라는 아프가니스탄(25개국), 이라크(27개국), 시리아(29개국), 예멘(33개국), 팔레스타인(37개국) 등 내전 또는 분쟁 국가들이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임기 중반인데... 노무현 절반에도 못 미친 문재인의 개혁

[문재인정부 사회경제 개혁 어떻게 되어가나 ]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싶다면

2018718일 지식인선언네트워크는 '문재인 정부의 담대한 사회경제 개혁을 촉구하는 지식인 선언'을 발표하여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습니다. 그 후 14개월이 지나는 동안 문재인 정부는 담대한 사회경제개혁에 나서기보다 지표 관리와 지지율 유지에 몰두해 왔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에 지식인선언네트워크는 문재인 정부 임기 반환점을 지나며 그동안 추진된 사회경제개혁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향후 정책 방향을 다시 한번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 아래 연재 글을 준비했습니다. - 지식인선언네트워크

 

한국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카드대란, 2008년 재차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청년들은 3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포기)에서 N포세대로 더욱 힘들어졌다. 노인빈곤율과 자살률은 OECD최고수준이다. 송파3모녀 자살에 이어 성북4모녀 자살까지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의 절반을 보낸 현재, 사회경제개혁에 소극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헌법상 '경제민주화' 30



전반적인 사회경제개혁의 필요성은 30년도 넘은 1987년에 소통부재의 전두환 정권조차 인식하였다. 전두환 정권은 당시 10%가 넘는 경제성장률이 직선제하에서 후계자인 노태우 후보의 득표에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을 하였다.198815일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노태우 차기 대통령의 예방을 받고 새해 인사를 나누며 악수하고 있다 .노태우 후보는 '보통사람'임을 내세워 당선되었다. 당선된 뒤 토지공개념 3개법(택지소유상한제, 토지초과이득세, 개발부담금제)을 과감하게 추진하였다.  연합뉴스

  

1987년 직선제 부활 이후, 정치민주화는 진전되었지만 경제민주화는 전반적으로 후퇴일로이다. 헌법재판소는 노태우의 토지공개념을 위헌 또는 헌법불일치로 무력화시켰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는 2차 연도에 대우그룹이 쪼개지는 시장규율(Market Discipline)이 작동하게 하고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한다는 명분하에 지주회사제를 도입하였지만, 임기말에는 재벌정책이 후퇴하기 시작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임기 내내 특히 삼성그룹 총수에게 유리한 재벌친화적인 정책을 썼다. '공기업도 기업'이라며 공익이 우선해야 하는 공기업을 사기업의 잣대로 평가하였다. 사기업은 물론 공공부문에도 비정규직이 급증하였다.

 

지역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행정수도 이전 추진은 비록 헌재의 위헌 결정에 좌절되고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축소되었지만, 공기업 본사 지방 이전 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개혁이라 하겠다. 김대중-노무현 10년간 복지지출이 늘어난 것도 부족하지만 약간의 진전이라 하겠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9년 역주행은 길게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2008년 외환위기를 은폐하기 위하여 4대강 죽이기, 자원외교 퍼붓기, 방산 비리 등 마구잡이로 예산을 낭비하고 부패 세력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했다.

 

재건축과 재개발을 쉽게 해 부동산의 지역격차를 심화했고, 다주택자의 청약과 가계대출을 용이하게 해 투기세력의 배를 불렸다. 경제구조는 질적으로 나빠졌고, 잠재성장률도 크게 낮아졌다. 공동체 사회는 고사하고 많은 가족이 해체되었다.

 

한마디로 이명박-박근혜 두 대통령이 나라 경제를 망친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수십차에 걸친 부동산 부양책으로 '갭투자' 등 전대미문의 부동산 투기가 극성을 부렸다. 경영권이 세습되는 재벌총수 일가와 건물주와 고가 다주택 소유주들의 천국이요, 서민들의 지옥이요, 중산층은 점점 줄어드는 사회가 되었다.

 

박근혜-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에 그 많은 사람이 모인 것에는 경제파탄에 대한 불안과 저항도 큰 요인이었다. 1987년과 201730년을 비교하면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과 경제사회의 불공정성은 오히려 심화되었다.


촛불정부의 역사적 책무  

문재인 정부가 물려받은 것은 더욱 불공정해진 경제와 사회다. 중소 생산자본이 푸대접 받고, 부동산 투기자본이 우대 받는 나라가 되었다. 재벌이 세습까지 되는, OECD 어느 나라에도 없는 나라가 되었다.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은 국정농단에 연루된 특정 재벌의 총수를 구속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렇듯 특권층을 몰아내고 공정한 사회경제를 이루는 것이 촛불시민들의 지지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이 할 일이었다. 그런데 왜 2년 반을 허송했을까?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문 대통령이 여러 번 발언한 것에 미루어, 불평등 불공정 불의에 대한 심각성은 인지한 것으로 본다.

 

임기 절반이 지난 지금, 이 나라는 더욱 불평등해졌고, 더욱 불공정해졌다. 따라서 결과도 더욱 정의롭지 못하다. 2003년 노무현정부 초년도보다 개혁과제의 무거움은 두 배가 넘는다. 반면에 개혁의 노력은 노무현정부의 절반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결과는 참담하다. 총선을 앞두고 정권 차원에서 원점에서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개혁의 열쇠  

개혁의 첫째 열쇠는 대통령의 개혁 의지다. 소위 '조국 사태'로 문 대통령의 검찰개혁과 교육개혁 의지는 강해진 것 같다. 직접 법무부 장관(또는 대행)을 불러 개혁을 지시하여 여론 반전에 일부 성공하였다. 검찰개혁, 교육개혁처럼 경제개혁도 담당 장관을 불러 직접 지시하면 된다. 법을 고쳐야 하는 개혁이면 국회의 다수가 필요하지만, 행정부 차원의 개혁은 법을 고치지 않아도 대통령의 의지가 있으면 동력을 얻는다.

 

둘째 열쇠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개혁 추진 능력이다. 무엇을 개혁해야 할지 판단하고 뚝심있게 추진하는 능력이 대통령에게 필요하다.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과 그에 이은 개성공단사업은 적어도 1971년 첫 출마 이후 25년 이상 스스로 갈고 닦은 내공이 깊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나 사회분야에서 내공이 깊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내공은 필요조건은 아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말대로 머리는 빌리면 된다. 검찰개혁이 꼭 조국만 할 수 있나? 민변 출신 변호사 등 얼마든지 '개혁 제갈량'은 있다. 사회경제개혁도 마찬가지다. 장관이나 수석으로 머리를 빌릴 사람은 많다.

 

효율적으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부조직을 개편하고, 책임자를 제대로 뽑아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만든 금융위원회는 어느 나라에도 없는 조직이고, 모피아의 확대재생산에 기여하면서 가계부채발 제4의 금융위기 발발 가능성만 높였다. 없애야 한다.

 

기획재정부도 어느 OECD 국가에도 없는 조직이다. 영어로 'Ministry of Strategy and Finance'라고 하다가 국제회의에서 왕따 당하자 슬그머니 'Strategy'를 빼고 'Economy'로 바꿨다. 비정상적 존재임을 고백한 것이다.

 

'기획'의 주요 내용은 개혁의 기획이어야 하고, 청와대가 직접 수행하여야 한다. 수구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한 자들을 어느 경제부처든 임명하면, 그날로 그 분야의 경제개혁은 물 건너간다. 모든 경제 부처와 사회 부처가 검찰처럼 개혁이 필요하다. 따라서 모든 경제 부처와 사회 부처에 개혁 인사가 책임자로 임명되어야 마땅하다. 조직과 사람을 무시한 개혁은 '종잇장 위의 개혁'일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후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식이 열린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부품연구동(DSR)에서 발언 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2019.4.30

연합뉴스


셋째 열쇠는 개혁반대 세력, 즉 개혁의 적에 대한 분석과 활용이다. 불법과 부패를 일삼다가 경영권을 세습까지 하는 재벌총수들이 경제개혁의 적장들이다. 그들은 막대한 비자금으로 정치인, 고위관료, 국회의원, ·검사·변호사, 언론인, 대학교수 등을 거느리고 있다. 길게는 50년 이상 다져온 '조폭 집단'이다.

 

특히 수구언론이 문제이다.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20:80의 사회에서 20을 대표하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탄생한 것이다. 불법부패세습 재벌로 경제력이 집중됨에 따라, 부패와 특권세력의 밑천은 점점 더 두둑해지고, 언젠가부터 민주당 정권의 청와대까지 장악하였다. 작년 5월 이재용 회장의 집행유예 석방 뒤에 문 대통령이 이재용을 아홉 차례나 만났다는 것은 불길한 징조이다.

 

이재용 회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사기 건으로 오래전에 추가로 수사를 받고 기소되었어야 한다. 수조 원대인 회계 사기는 최순실-박근혜 뇌물 건보다 훨씬 중형에 처할 범죄다. 현직 대통령 박근혜가 탄핵되고 구속되는 '법의 지배'가 경제권력자 이재용에게는 물러서 있다. 그 원인을 문재인 대통령이 밝혀내고 고치지 않는다면, 누가 그의 말을 믿겠는가? 재벌개혁 포기의 최대 피해자는 문재인 대통령 자신이다.

 

자유한국당이란 '적폐정당'은 성장률에 근거하여 '경제를 망치고 있다'고 비난한다. 국민행복은 성장률 순이 아니다. 지난 2년 개선된 행복의 국제순위가 증명한다. 수구 언론과 잔당의 주장에 넘어가면 안 된다. 제대로 대응해야 한다.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린 책임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있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 '소득주도성장' 등 그들이 강하게 반대한 정책일수록 옳은 정책이었다. 그들이 강하게 반대하는 장관 후보나 청와대 인사일수록 '개혁인사'라는 보증서다.

 

개혁반대세력의 주장을 역이용하면 오히려 개혁을 일관성 있고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다. 적폐세력에는 분명 약한 고리가 있다. 가장 약한 고리는 2008년 세계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아직도 주장한다는 것이다. 금융, 환경, 노동 분야의 규제완화는 일반적으로 불공정한 제도를 더욱 불공정하게 만드는 독약임을 문재인 정부는 지금이라도 깨달아야 한다.

 

넷째 열쇠는 사회경제정책과 정치의 불가분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활용이다. 많은 사회경제정책이 이득 보는 자와 피해 보는 자를 낳는다. 소득분배, 자산재분배, 재정재분배와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다.

 

대한민국 주권자는 촛불시위를 성공시켰다. 각종 SNS로 소통하고 연대하는 주권자의 힘을 낡은 잣대로 재면 정치적인 오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주권자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개혁이 표를 깎아먹는다"는 식의 낡은 정치 셈법에 매달린다면 시민들의 수준을 얕잡아 보는 치명적인 실수이다.

 

유권자 개개인의 직접적 이해관계가 적은 남북정상회담에도 지지율이 급등한 경험을 문재인 정부는 가지고 있다. 이재용 구속수사, 모피아 해체, 노동자 기본권 보장, 여성차별 없애기, 보편적 복지, 미세먼지 등 환경개선, 부동산공개념 확대, 교육개혁 등 80%를 위한 정책 시행과 제도개혁에 최선을 다한다면 대한민국의 주권자들은 그 정치주체세력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낼 것이다.

 

제대로 된 개혁은 덜 불평등하고, 덜 불공정한 사회를 만든다.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게 되는 지름길이다. 개혁이 최선의 선거전략이다. 개혁이 최선의 정치이다.

김태동/ 오마이뉴스

 

사업주 방패가 된 검사 ] “반성 없는 검찰, 권한만 나눈다고 개혁되나

고용노동행정개혁위 위원 김상은 변호사가 느낀 검찰 권한 남용 불법파견, 노조파괴만큼 심각

검찰의 수사지휘에 고용노동부는 유명무실했다. 독자적인 판단도 없고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이하, 개혁위) 외부위원으로 참가해, 지난 10여 년간 불합리하게 진행됐던 노동사건 수사과정을 검토한 김상은 변호사의 말이다. 지난 5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현대·기아자동차 불법파견 사건과 유성기업 노조파괴 등 각종 노동관계법 위반 사건을 열거하며 “(이 사건 수사에 있어서) 수사주체인 노동부 근로감독관은 아무런 권한이 없어 보였다고 지적했다.

 

내부자의 제보와 고용노동부의 압수수색 등으로 확보된 결정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몇몇 열의가 있는 근로감독관도 검찰의 권한 남용앞에 고개 숙일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발레오전장·유성기업·보쉬전장 등 사업장이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으로부터 컨설팅 받아 2010~2012년 사이에 벌인 노조파괴 사건에 대해 근로감독관들은 해당 사업장 사업주들에게 혐의가 있다고 보고 재판에 넘겨야 한다고 검찰에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이 모든 의견은 묵살됐다.(관련기사: 사업주 방패가 된 검사 사업주 방패가 된 검사 )

 

또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사내하청 해고 노동자가 현대자동차 정규직이라는 대법원판결이 나온 2010년 이후 고발된 수많은 불법파견 사건에서 파견법 위반 사실이 확인된다는 근로감독관의 의견도 별 의미가 없었다. 이는 기존의 판례보다도 혐의를 축소해 제시한 의견이었지만, 검찰은 사업주의 불법파견 혐의를 더욱 축소해, 재판에 넘겼다. 사건을 축소하면서 근거로 댄 논리는 사측이 불법파견 재판 과정에서 내세웠다가 사측 스스로도 무리가 있다고 느껴선지 지금은 사용하지도 않는 논리였다.

 

검찰뉴스1

 

검찰 권한 남용, 불법파견 사건에선 더욱 심각

5일 서울시 서초구 남부터미널 인근 한 허름한 빌딩에 위치한 새날법률사무소에서 그를 만났다. 2016년 갑을오토텍 노사분규 현장에서 처음 만났던 그는 여전히 바쁜 일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듯 얼굴이 수척해 보였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주변에 발 디딜 틈도 없이 수북하게 쌓인 재판기록 문서는 법률사무소 새날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동사건을 다뤄왔는지 짐작케 했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굵직한 노동사건을 다뤄왔다. 그렇다 보니, 노동부 근로감독관과 검찰 공안부(지금의 공공수사부) 검사들을 대면할 일도 꽤 있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선, 개혁위 외부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지난 10여 년간 벌어진 노조파괴 및 불법파견 사건을 재조사하기 위해 근로감독관들을 면담했다. 그만큼 노동사건에 있어서 수사기관의 문제점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고민해 온 법조인 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개혁위에서 지난 노동사건을 조사하면서 검찰의 부당한 수사지휘 또는 적절치 않은 기소·불기소 처분이 있었다고 느낀 사건’, ‘개혁위 활동을 하면서 느낀 한계’, ‘최근 논의되고 있는 검찰개혁에 대한 견해등에 관해서 물었다.

 

그가 꼽은 검찰의 부당한 수사지휘가 가장 많이 드러나는 사건중 하나는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사건이었다. (유성기업 노조파괸 건 등도 있었으나, ‘사업주의 방패가 된 검사 1·2에서 다뤘으니, 이편에선 다루지 않기로 한다.)

 

현대차 불법파견 사건에선 아예 (검찰의 수사지휘가 부당하다고 느낀) 근로감독관들이 검사가 이렇게 수사지휘를 했기에 내가 이렇게 불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고 수사보고서에 써 두었더라. 노골적으로. 나중에 자기 의견은 그게 아니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201811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금속노조 조합원들과 자동차 판매 대리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부당노동행위 정몽구 사장 처벌 촉구 결의대회를 갖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정부에 현대·기아자동차 부당노동행위의 대한 엄중 조사와 처벌을 촉구하고 자동차 판매 시장의 왜곡을 바로 잡아줄 것을 촉구했다.

 

201811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금속노조 조합원들과 자동차 판매 대리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부당노동행위 정몽구 사장 처벌 촉구 결의대회를 갖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정부에 현대·기아자동차 부당노동행위의 대한 엄중 조사와 처벌을 촉구하고 자동차 판매 시장의 왜곡을 바로 잡아줄 것을 촉구했다.김슬찬 기자

 

이미 판례가 나온 불법파견 사건

파견은 사용자가 파견업체에 비용을 지불하고 파견업체 소속 노동자를 받아 자신의 사업장에서 직접 업무 지휘·감독을 하는 구조로, 대표적인 간접고용 중 하나다.

 

파견은 사용자 입장에서 매우 매력적인 고용계약형태다. 자신이 직접 고용한 노동자에게 일을 시키듯 지휘·감독하면서도 사용자로서 져야 할 각종 책임에선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자기 회사 직원이 아닌 파견노동자에겐 본인 회사 직원에게 적용되는 각종 복리후생을 지원하지 않아도 되며, (취지와는 다르게) 정규직보다 훨씬 싼 인건비로 부릴 수 있고, 사업을 축소할 필요가 있을 때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손쉽게 고용을 해지할 수 있다.

 

남용될 경우, 전체 노동시장에서 심각한 노동환경 악화로 이어질 수 있는 고용계약 형태인 셈이다.

 

이런 이유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에선 파견이 가능한 분야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특히 파견법에는 파견이 가능한 분야를 설명하는 조항에서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는 제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근로자파견 대상 업무국가법령정보센터 화면 갈무리

 

하지만 사용자 중에선 이 같은 고용계약과 비슷한 형태의 도급을 가장해 불법파견을 저지르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건이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김 모 씨 외 3명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이다.

 

이 사건은 2003년 해고된 김 씨 외 3명의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가 20051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현대차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20071심은 원고(김 씨 등 3)는 피고(현대차)의 노동자임을 확인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현대차는 김 씨 등이 도급계약을 맺은 사내하청 소속 노동자라고 주장했지만, 이 주장이 법원에선 통하지 않은 것이다. 현대차는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상고하지만, 2심 재판부와 대법원 재판부 또한 1심의 판결이 맞다 결론 내렸다.

 

특히 20152월 대법원은 그동안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용하던 각종 꼼수를 정리하는 판결을 내놨다. 대법원은 프레스로 찍어낸 철판을 용접해 자동차의 뼈대를 만드는 과정, 차체에 색을 입히는 도장 등 현대자동차 생산 공정 전반에 대해 불법파견이라는 판단을 내놨다. 또 현대차가 직접 고용한 노동자와 분리된 공간에서 일한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해서도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했다.

 

이렇게 불법파견 문제는 일단락된 셈이다.

이 판결에 앞서서 20107월에도 비슷한 취지의 대법원판결이 나온 바 있다. 2차례의 재판 과정으로 분명히 확인된 사안인 것이다.

 

그런데도, 고용노동부는 자동차 제조업 분야에서 만연한 불법파견 실태를 방치했다. 이런 이유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또다시 똑같은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이 다시 전개해야만 했다. 이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이전 정권에서 벌어진 불합리한 고용노동행정을 바로잡기 위해 201711월 탄생한 고용노동행정개혁위는 이 사건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노동부의 소극적인 태도도 확인됐지만, 곳곳에서 검찰의 부당한 수사지휘도 확인됐다.

 

검찰, 법원 판결 외면

법리적 판단으로 보이지 않아

 

이미 (2015226일 대법원 2010106436판결 등) 최종 판결이 나온 판례가 있는데, 그와 똑같은 건에 대해서 노동부는 사내하청 노동자와 직고용 정규직 노동자가 혼재된 공정만 불법파견이라는 식으로 (혐의를 축소해서) 기소의견을 검찰에 내고, 검찰은 거기서 한 발 더 나가 계약기간이 6개월 미만이면 불법파견에 해당하고, 계약기간이 그 이상이면 합법적인 도급이라는 이상한 기준을 제시하며, 노동부 의견을 정리해 버린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 조사결과, 생산 공정 전반과 혼재가 아닌 분리된 공정에서도 사내하청 식으로 도급을 준 행위는 모두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대법원판결을 무시한 것도 모자라, 검찰은 계약기간 기준을 새롭게 도입하면서 불법파견 범위를 대폭 축소해 일부 혐의만 기소했다.

 

게다가 2번째 대법원판결이 나온 이후인 201510~11월 검찰은 고용노동부 울산·천안 지청의 의견 송치 과정에서, 불법파견 혐의를 대폭 축소하는 방향으로 수사지휘를 해서 노동부 송치의견을 변경하게 했다. ‘사업주의 방패가 된 검사 1·2에서 다뤘던 검사의 부당한 수사지휘가 불법파견 사건 처리 과정에서도 일어났던 것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부분은 이 사건의 경우 이미 대법원판결로 판가름이 끝난 사건임에도, 검사가 판례를 무시하는 수사지휘를 했다는 점이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일부 현대차 불법파견 사건에서 노동자 측 대리인을 담당하고 있는 변호사도 불법파견 사건에서 검찰의 권한 남용이 심각하다고 봤다. 19일 서면인터뷰에서 김태욱 변호사는 현대차가 불법파견을 했다는 민사판결은 대법원 판결 2건을 포함해 수십 건의 판결이 있었다. 그런데 근 20년간 현대차가 파견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것은 1건도 없었다검찰이 불법파견 형사처벌만 제대로 했어도 파견 문제가 이렇게 심각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상은 변호사는 검찰의 이 같은 수사지휘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성기업 등의 노조파괴는 사후적인 법원의 판결로 검찰의 판단이 틀렸다는 게 드러난 건이지만, 현대차 불법파견 사건의 경우엔 다수의 판례가 검찰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

 

또 그는 검찰이 수사지휘 과정에서 갑자기 제시한 계약기간에 따른 불법파견과 합법도급 기준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아봤다고 말했다.

검찰이 갑자기 꺼내온 계약기간 기준 관련해서 이 사건을 담당했던 변호사에게 물어보니, 사측 대리인이 민사 1심에서 주장했던 논리고, 그 뒤로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논리라고 한다. 그런데 검찰이 그 논리를 끄집어 와서 불기소 처분한 것.”

 

그러면서 그는 검찰의 판단이 법리적인 판단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공안적 시각에서 노사관계를 고려하는 듯하다. 실제 노동자들이 피의자가 됐을 땐 구속수사하고 기소의견을 올릴 것도, 역으로 사용자가 피의자일 땐 그렇게 하지 않는다.”


반성 없는 검찰개혁 동의하기 어려워”   

김 변호사가 고용노동행정개혁위에서 문제의 사건을 조사하면서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고용노동부가 검찰의 하위기관처럼 노동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었다.

 

경찰이 다루는 사건에선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는데, 검찰이 불기소 처분했다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지 않나? 그런데 노동사건에선 그렇지가 않다. 노동부 근로감독관들은 송치단계에서조차 의견을 마음대로 낼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지청은 지청대로, 위는 위대로, 검찰의 통제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노동사건이 왜 이렇게 왜곡돼서 처리되는지 의아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인 듯하다.”

 

김 변호사는 최근 검찰의 개혁 방안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최근 검찰은 노동사건을 담당했던 검찰 공안부를 공공수사부로 바꾸고 직접수사를 축소하는 등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간판만 바꾸었지 실제 얼마나 다를지에 대해선 신뢰가 안 간다. 그동안 내놓았던 자본 편향적 수사를 반성하는 건 아니지 않나? 반성적 평가 속에서 그렇게 이름을 바꿨다고 보진 않는다. 노동사건을 대하는 공안적 태도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검찰개혁을 위해선 내부 문제를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 공안부에서 잘못된 수사를 해왔던 원인이 무엇인지, 사람의 문제인지, 아니면 내부 뿌리 깊은 기조의 문제인지, 지금이라도 드러내 놓고 평가를 해야 한다. 그래서 책임질 건 얼른 책임지고, 그래야 하는데 간판부터 바꾸고 있다. 아마 기존의 검찰 공안3과가 갖고 있는 매뉴얼 같은 게 있을 것 같다. 만약 내가 검찰개혁위에 있었다면 그것부터 내놓으라고 했을 것 같다.”

 

또 그는 단순히 권한을 분배하면 검찰의 권한 남용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검찰개혁에 관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검찰개혁에 관한 논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배하는 데에만 집중되고 있다. 마치 검찰이 독점하던 걸 다른 수사기관에 분배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하는데, 지금까지 보여 왔던 편향적 수사의 문제를 권한 분배로 해결할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권한이 분배되면 반성해야 할 부분 등도 모두 해결될 것처럼 논의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그 권한을 경찰이 갖는지, 검찰이 갖는지가 중요한 건 아니라고 본다. 그 권한을 어떤 방향으로 행사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검찰의 권한 남용으로) 고통받았던 사람들이 볼 때, 도대체 뭐가 달라지나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 않나. 거기에 답변은 못 해주는 듯하다.”

민중의 소리

 

민식이법부터 제주 제2공항까지, 20건 넘는 국민질문에 응답한 문 대통령

    


 

리뷰]체 게바라와 함께 싸운 쿠바 한인 헤로니모를 아시나요?영화 헤로니모 21일 개봉

 

     영화 헤로니모스틸컷

 

우리는 한국과 일본, 조선족에 대해 관점으로 이야기하죠. 일본 침략엔 분노해야 하고, 재중동포의 권익은 보호해야 하고. 그런데 일상에선 어떻죠? 조선족 식당종업원·가사도우미,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죠? 만일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 감옥에서 죽지 않았다면, 그 역시 용정 출신 조선족이었을 뿐이라는 생각, 해 본 적 있을까요?”

 

지난해 개봉한 영화 군산:거위를 노래하다를 만든 재중동포 장 률 감독이 언론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우리는 뿌리와 민족에 집착하며 애정을 느끼는 듯하면서도 그 이면에선 동포들을 배척하는 배타성을 보인다.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부유하는 삶을 우리는 디아스포라라고 부른다. ‘디아스포라흩뿌리거나 퍼트리는 것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특정 민족이 자의적이든지 타의적이든지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우리 민족의 디아스포라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수많은 아픔이 자리하고 있다. 영화 헤로니모는 우리 민족의 디아스포라와 그런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싸워온 동포들의 삶을 보여준다.

 

헤로니모는 바다 건너 낯선 땅 쿠바에서 만난,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해 준 숨겨진 주인공들을 조명하며 과거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그들과 우리의 역사, 그리고 조국에 대한 그들의 그리움을 전하고 있다. 2015년 혼자 쿠바로 여행을 떠난 전후석 감독은 공항 픽업 택시에서 한인 4세 쿠바인을 만나게 되고, 그녀의 가족 모임에 초대 받아 그들의 역사를 접하게 된다. 바로,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아바나 법대를 다닌, 남미 한인 최초의 대학입학자이자 쿠바 혁명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 체 게바라와 함께 쿠바 정부의 고위직에서 일한 그녀의 아버지 헤로니모 임(임은조)’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 것이다. 여기에 헤로니모의 아버지 임천택의 일제강점기 독립 운동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많은 이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전후석 감독은 다큐멘터리 제작을 결심하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후원금을 모금 받아 작품을 완성했다.

 

영화 헤로니모스틸컷

 

헤로니모의 삶은 스팩터클하다. 헤로니모는 쿠바 혁명 당시 아바나에서 혁명군을 위한 자금을 모으고, 선전활동에 가담하는 등 활약했다. 쿠바 혁명 이후 경찰국에서 관리로 활동했고, 나중엔 산업부 차관에까지 올랐다. 모두가 잘사는 사회를 꿈꿨던 그는 쿠바 혁명 이후에도 헌신했고, 쿠바 혁명과 이후 활동을 인정받아 9개의 훈장을 받았다. 지구 반대편에서 혁명가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혁명을 이끌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삶은 충분히 흥미롭다.

 

그가 혁명에 나서게 된 데에는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의 영향도 컸다. 1900년대 초 멕시코와 국교도 없던 시절, 신문광고에 속은 1033명의 한인들이 부푼 꿈을 안고 멕시코행 배에 오른다. 그들 중에는 만 2세의 나이로 어머니의 품에 안겨 조국을 떠난 헤로니모의 아버지 임천택이 있었다. 멕시코의 에네켄(선인장) 농장에서 노예와도 같은 생활을 했던 그들은 4년의 계약기간이 끝난 후 고국행을 기다렸지만 한일합병으로 인해 돌아갈 곳을 잃고 만다.

 

쿠바로 재이주해 에네켄(선인장) 농장에서 일하며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다른 이민자들과 함께 쌀 한 숟가락 씩을 모아 대한민국임시정부로 독립 운동 자금을 보낸 이가 바로 헤로니모의 아버지 임천택이다. 그가 1938년부터 1945년까지 8년 간 보낸 독립 운동 자금은 모두 148970전으로, 이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도 기록되어있다. 임천택은 또한 한글을 깨치기도 전에 한국을 떠나왔음에도 쿠바 한인들의 정체성을 이어가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다.

 

결국 이런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에 힘입어 광복을 맞이했다. 하지만, 다시 조국은 분단되고 말았고, 서로 전쟁을 벌이며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들은 고국으로 돌아오겠다는 꿈을 버리고, 쿠바에 완전히 정착하게 된다. 쿠바에 정착하면서, 한인들을 포함해 모두의 삶을 나아지게 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선택한 길이 바로 혁명이었다.

 

공직에서 은퇴한 이후 헤로니모는 동포들을 하나로 묶어내는데 앞장섰다. 그것은 단순히 좁은 의미의 민족주의가 아닌, 자신의 뿌리를 찾고, 그 뿌리를 바탕으로 세계의 모든 이들을 아우르는,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위한 여정이었다. 1995년 쿠바 한인 대표로 생애 처음 한국 땅을 밟은 후에는 아버지의 꿈을 이어받아 900여 명의 한인들을 모두 직접 찾아가 명부를 만들고, 한글 학교를 세우고, 한인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현재 쿠바의 4, 5세대 재외동포들은 쿠바인들과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우리와 겉모습은 많이 달라졌지만 임천택과 헤로니모’, 그 후손들의 노력으로 마침내 헤로니모사후 쿠바한인후손회가 조직되고, 정체성을 이어가고 있다.

 

전후석 감독은 쿠바 한인사는 고난의 역사다. 농장을 전전하며 노예와도 같은 삶을 살았음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한인회를 꾸리고, 한글학교를 세우고, 독립 운동 자금까지 보냈다. ‘헤로니모는 디아스포라 개념을 소개할만한 상징적인 인물이다. 지금같이 국민간의 통합이 간절한 시기, 쿠바 한인들이 지난 100년간 모든 역경을 뚫고 이겨낸 끈기와 조국에 대한 애정은 우리에게 뼈있는 가르침을 전달한다. 세대를 거듭할 수록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희미해지는 상황에서 본국과 연결시키려는 노력, 전세계 흩어져있는 800만 디아스포라를 포함해 한인의 의미를 좀 더 넓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 영화에 아쉬움이 있다면 헤로니모가 종교를 갖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 영화 후반부다. 헤로니모가 사회주의를 떠나 종교를 선택한 것으로 그려지면서 사회주의권이 어려움에 처하면서 국민의 삶을 두고 고뇌했던 헤로니모의 고민이 너무 단편적으로 보여진 건 아닌지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헤로니모와 쿠바 한인들의 삶을 통해 재외동포들을 이해하고, 또한 쿠바 한인들처럼 우리 사회에 도움을 청하고 있는 난민들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등 세상을 보다 넓게 볼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고 있다민중의소리 권종술 기자


이승만·박정희 비판 다큐 백년전쟁’, 21일 대법원 판결

방통심의위, 다큐 방영한 RTV에 관계자 징계RTV가 행정 소송하자 1·2심 모두 패소 판결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행적을 비판적으로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감독 김지영)을 방송한 시민방송RTV에 법정제재 처분을 내린 방송통신위원회의 판단이 정당했는지 대법원이 오는 21일 결정한다. RTV2심 판결에 불복해 20158월 상고한 지 4년 만이다.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포스터

 

역사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주관해 제작한 백년전쟁은 한국 근현대사 100년을 다룬 4부작 다큐멘터리다. 2012111두 얼굴의 이승만과 박정희 경제성장 신화의 허실을 파헤친 번외 편 스페셜에디션 프레이저보고서등을 공개했다. RTV는 해당 영상을 20131월부터 3월까지 총 55차례 방송으로 내보냈다.

 

이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0138월 해당 방영분들을 심의 안건으로 상정했다. 방통심의위는 백년전쟁이 방송심의규정 공정성, 객관성, 명예훼손 조항 등을 위반했다며 이를 방송한 RTV에 대해 법정제재인 관계자 징계 및 경고를 결정했다.

 

그러자 RTV는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방통심의위의 제재를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2심 재판부 모두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해당 방송은 특정 자료만을 근거로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전직 대통령을 폄하했다해당 프로그램이 전체 관람가로 두 달에 걸쳐 55회나 방영돼 위반의 정도가 중하다고 판단했다.

 

또 해당 방송들이 사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 없이 부정적 사례와 평가만으로 내용을 구성하고, 이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은 의도적으로 배제해 사실을 왜곡하고 사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방통심의위 제재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RTV2심 판결에 불복해 20158월 상고했고, 4년만인 오는 21일 대법원 판결이 결정된다.

 

김영준 RTV 팀장은 20일 미디어오늘에 대법원이 파기 환송하면 방송의 독립성과 객관성, 표현의 자유 등을 확인받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패소의 경우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만일 패소한다면 판결에 대해서는 존중할 것이나 앞으로 방송사들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과가 나오는 대로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박서연 기자 psynism@mediatoday.co.kr

 

기어코 삼성 보호법을 만들어낸 국회의원들게

현재 진행 중인 <삼성 반도체 공장 작업환경 보고서>에 대한 정보공개 소송에서, 삼성 측 변호사는 최근 이 보고서의 공개 논란은 입법적으로 해결되었다며 올해 8월에 통과된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제출했습니다. 그 내용을 보고 많이 놀랐고 참담했습니다.

 

국가핵심 기술에 관한 정보는 공개되어선 안된다”(9조의 2)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보던 문장입니다. 지난 수년간 삼성 반도체 공장에 관한 <안전보건진단 보고서> <특별감독 보고서>, <작업환경 보고서> 공개 소송에서, 그리고 삼성 노동자들의 직업병 관련 소송에서, 삼성과 고용노동부가 숱하게 했던 주장입니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는 산자부가 지정한 국가핵심기술이 쓰이고 있으므로 그 공장에 관한 이 보고서들은 모두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이고, 따라서 공개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명백히 틀린 주장이었습니다. 종래 산업기술보호법이 국가핵심기술을 따로 지정하는 이유는 관련 기관으로 하여금 그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관리감독하라는 취지이지, 관련 정보를 모두 비공개하라는 취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국가핵심기술에 관한정보라는 건 대체 어디까지 일까요. 그 공장에 관한 모든 정보를 말할까요. 그래서 삼성 주장처럼 그 공장 작업환경의 유해성을 알 수 있는 모든 정보들도 국가핵심기술에 관한정보가 되는 걸까요. 더욱이 우리 정보공개법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생명건강 보호를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는 설령 그 내용이 기업의 영업비밀에 해당하더라도 공개되어야 한다고(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917호 가목).

 

우리는 삼성 측의 그 주장에 논리적으로 맞섰고 법원도 우리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2017년과 2018, 잇따라 위 보고서들에 대한 공개 판결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 위와 같은 삼성의 주장은 법률적으로 틀렸다는 판결을 이미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주장이 고스란히 새로운 법률이 돼 나타난 겁니다.

 

이번 개정안에는 이런 규정도 있습니다. 산업기술을 포함한 정보라면 적법하게 취득했더라도 그 취득 목적 외로 사용·공개해서는 안된다(148). 그렇게 사용하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도 있고(364),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22조의2). 심지어 기업은 그러한 행위가 우려된다는 이유만으로 수사기관에 조사 및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15).

 

역시 어디서 보았던 문장입니다. 법원의 정보공개 판결로 인해 어느 삼성 직업병 피해 유족이 <작업환경 보고서>를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삼성은 그 유족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그 안에 이런 경고가 있었습니다. “산재 입증 외의 용도로 사용·공개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달라” [ 관련기사 : 삼성전자가 직업병 피해 유족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합니다 ] 역시나 법률적으로 틀린 경고였습니다. 정보공개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취득한 정보에는 사용 목적에 제한을 둘 수 없었습니다. 유족이 그 보고서를 어떻게 사용하건, 설령 삼성 반도체 공장의 유해성을 폭로할 목적으로 사용하더라도,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경고도 고스란히 법률이 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무거운 처벌규정도 붙었습니다.

 

, 그래서 이제 어떻게 될까요.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사업장에 관한 모든 정보가 비공개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건강 보호를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라도 공개되지 않을 겁니다. 또한, ‘산업기술을 사용하는 공장에 대해서라면 그 공장의 유해성을 규명하고 알리는 모든 활동이 수사 대상이 될 겁니다. ·경이 출석요구를 할 수도 있고 관련 자료를 압수할 수도 있습니다. 형사 처벌을 받을 수도 있고 민사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공장의 유해성에 관한 모든 공익적 행동에 합법적인 재갈이 물려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법이 만들어졌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국회,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 언론의 역할이 컸습니다. 이 법이 최종 통과될 때까지 국회에서는 소소한 논란 조차 없었습니다. 이 법의 개정 소식을 알리는 산자부의 공식 보도자료에도 앞에서 말한 문제 조항들은 모두 빠져 있었습니다. 언론이 국가핵심기술 관리 대폭 강화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단 몇 개의 기사에도 관련 내용은 빠져 있었습니다.

 

2007년부터 시작된 삼성 반도체 직업병 투쟁의 역사는 곧 삼성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에 관한 알권리 투쟁의 역사였습니다. 처음부터 삼성은 모든걸 감췄고 국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롯이 직업병 피해가족들과 활동가들의 싸움이었습니다. 그 오랜 투쟁이 위 보고서들에 대한 정보공개 판결을 이끌어냈고 고용노동부로 하여금 안전보건자료 공개 지침이란 것을 처음 만들게 했습니다. 이제 막 그 공장을 둘러싼 시커먼 장막이 조금씩 벗겨지려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국회가 그 모든 성과를 한방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참 대단들 하십니다.

 

이 법에 찬성한 206명의 국회의원들께 묻습니다. 이 법안은 처음 국회에 발의된 원안 그대로 통과됐습니다. 민주당, 정의당 가릴 것 없이 단 한 명의 반대표도 없었습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신겁니까. 이제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는 손 놓을까요. 다른 공장에 대해서도 산업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 행여 국가핵심기술은 없는지, 하나하나 따져가며 문제제기 할까요. 그 공장 노동자들과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병들건 죽건, 그냥 눈 감을까요.

 

이제라도 솔직하게, 미안하다, 몰랐다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일본이랑 무역 분쟁이 한창일 때 우리 기업 보호하는 법이라기에 그냥 그런 줄 알았다, 누가 어떤 의도로 이 법을 기획했는지, 그 안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정말 몰랐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쩔 건지, 이 악법을 어떻게 되돌려 놓을지, 함께 머리 맞대고 고민해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이 법은 이미 나쁜 법입니다. 그런데 기업과 공공기관이 이 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하위 법령이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더 나쁜 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일단 그것부터 막아야 합니다. 내년 2월부터 시행되는 법입니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임자운 변호사·반올림 활동가

 

공익·안전정보도 묻지마비공개, ‘삼성보호법인가

개정 산업기술보호법 핵심기술공개금지, 목적외 알리면 처벌

노동시민사회단체 법원이 기각한 삼성 주장, 국회가 명문화

개정 산업기술보호법이 시행을 3달 앞둔 가운데 정부가 지정한 국가핵심기술 관련 정보를 광범위하게 숨길 수 있도록 규정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비공개할 정보를 모호하게 규정한 데다 정보를 얻어도 취득 목적 외에는 알리지 못하도록 해, 생명·안전과 직결된 공익적 문제제기를 가로막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8월 공포된 개정 산업기술보호법(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를 공개해서는 아니 된다(92)”는 조항이 신설됐다. 또 정보공개 청구를 하거나 산업기술 관련 소송을 하는 이들에게 비밀유지 의무를 부여했다. “산업기술을 포함한 정보라면 적법하게 취득했더라도 그 취득 목적 외로 사용·공개해선 안 된다(148)”는 규정을 담았다. 현행법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핵심기술을 지정한다.

 

개정된 법은 이 같은 비밀유지 의무를 어기면 3년 이하 징역에 처하거나 기업이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했다. 또 기업이 산업기술 유출이나 침해가 우려될 때 수사기관에 조사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법안은 이종구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자유한국당)7월 대표발의한 뒤 한달여 만에 압도적 표차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내년 221일 시행에 들어간다.

 

시민사회는 기업이 산업기술 유출 방지를 내세워 노동자·시민 안전과 생명 관련 정보 공개를 거부하는 데 조항을 악용할 소지가 높다고 비판한다. ‘기술 관련 정보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인체유해성 등 안전 관련 정보공개 청구도 기술과 관련 있다는 이유로 거부될 수 있어서다. 산업기술과 연관된 정보라면 공익을 목적으로 한 문제 제기도 처벌할 수 있다.

 

반올림과 노동건강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20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뒤늦게라도 산업기술보호법 개악안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국회에 촉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김예찬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는 현행 정보공개법은 경영상 비밀 사항이라도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면 적극 공개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는데, 이같은 대원칙이 깨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예찬 활동가는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 등 산업재해 피해자들의 법정 투쟁도 알권리 원칙 덕에 가능했고, 이들이 희귀난치병에 걸린다는 사실도 알릴 수 있었다. 이제는 반도체 공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정보를 얻기도 어려워질 뿐더러, 작업장 환경이 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도 이들에게 알릴 수 없다고 우려했다.

 

김예찬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는 현행 정보공개법은 경영상 비밀 사항이라도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면 적극 공개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는데, 이같은 대원칙이 깨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예찬 활동가는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 등 산업재해 피해자들의 법정 투쟁도 알권리 원칙 덕에 가능했고, 이들이 희귀난치병에 걸린다는 사실도 알릴 수 있었다. 이제는 반도체 공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정보를 얻기도 어려워질 뿐더러, 작업장 환경이 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도 이들에게 알릴 수 없다고 우려했다.

 

실제 법안 내용이 알려진 것도 시민사회단체와 삼성의 정보공개 소송 과정에서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에 따르면 최근 삼성은 반올림이 제기한 삼성 반도체 공장 작업환경 보고서공개청구 소송에서 해당 법을 들고 나왔다. 삼성 측 변호사는 이 보고서의 공개 논란은 입법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했다. 법률사무소 지담의 임자운 변호사는 개정 산업기술보호법은 그간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에 관한 자료를 은폐하기 위해 산재·정보공개청구 소송에서 반복해온 주장을 명문화한 것이다. 법원은 삼성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잇따라 공개 판결했는데, 그 주장이 고스란히 법률이 됐다고 말했다.

 

[ 관련 기고 : 기어코 삼성 보호법을 만들어낸 국회의원들께 ]

 

반올림과 노동건강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20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뒤늦게라도 산업기술보호법 개악안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국회에 촉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반올림과 노동건강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20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뒤늦게라도 법안이 시행되기 전 개악안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국회에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 국회의원 전원에 전달한 의견서에서 각 의원이 법 개정 당시 쟁점을 알고 있었는지 여부와 문제점을 바로잡을 의향에 대해 답변할 것을 요구했다. 또 해당 법조항을 삭제한 개정안이나 새 법안을 발의하는 등 논의를 시작하라고 밝혔다. 김예리 기자 ykim@mediatoday.co.kr

 

철도노조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파업합니다

[기고] 출근했던 사람이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오는 노동현장

결국 철도노조가 20일 오전 9시 파업에 돌입했다. 노조의 교섭 상대인 철도공사는 정부의 지침이 없어 실질적인 교섭 당사자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 정부는 자율적 노사 관계가 원칙인 만큼 노사가 합리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당위론을 앞세워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공기업 노사관계의 특수성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공기업 노사관계에서 정부는 적극적 중재자 이거나 최소한 사측의 자율성을 어느 선 까지 보장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공기업은 노사정 협의라는 틀에서 벗어 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인식 아래 공기업 노사관계에 접근 한다면 작은 노사정 협의 모델의 모범적인 사례를 쌓아갈 수 도 있다. 예산, 인력이라는 경영상에서의 가장 중요한 요소들은 정부가 손에 쥐고 있으면서 노사 관계는 해당 기관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한다. 문제는 존재하지만 해결 의지가 없는 사람들이 돌리기 하는 폭탄과 같다.

 

이렇게 방관 속에 방치되다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 권력 순위의 높은 단계에서 '탑다운' 방식으로 해결된다. 또는 합의든 강압에 의해서든 회사나 노조의 양보 속에 눈에 보이는 문제들을 카펫 밑으로 일단 쓸어 넣는 미봉책으로 끝이 난다. 이미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많이 지출 된 후에 벌어지는 일이다.

 

철도는 지난해 12월 강릉선 KTX 탈선 사고로 시민들에게 큰 걱정을 안겼다. 국토부 항공철도사고 조사위원회는 아직도 사고 조사 중이지만 그동안 국토부가 전략적으로 추진해왔던 철도 정책이 탈선사고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정황은 충분히 드러나고 있다. 사고 이후 국토부와 철도 공사는 철도 안전대책이 최우선이라며 그동안 추진되던 철도 개혁을 위한 밑그림조차 만들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철도 현장에서는 국토부가 주장하는 철도안전이 무색하게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다.

 

철도에서는 외주업체 노동자나 정규직 노동자 가리지 않고 생명이 소진되고 있다. 지난 1022일에는 밀양역에서는 선로 작업중인 노동자가 달려오는 새마을호 열차에 치여 숨졌다. 열차가 수시로 운행되는 시간대에 선로 작업이 가능하도록 만든 안전체제도 문제였지만 사람이 부족해 선로 감시원을 제대로 배치하지 못한 것도 큰 문제였다.

 

인력충원을 비용의 문제로만 접근하는 기재부와 국토부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사람의 목숨은 끊임없이 건너편 저울 접시의 돈뭉치와 평행을 이룰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노동존중이란 말은 정치인들이 가끔씩 사용하는 단어장에만 들어있는 죽은 용어에 불과하다. 아침 인사 후 출근했던 사람이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오는 일이 반복되는 노동현장을 그대로 놔두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을 살아나가면 안 된다.

 

일부 언론에서는 강성철도노조가 42교대 근무 체계 등 무리한 요구를 내놓고 파업을 벌인다고 비난하고 있다. 현행 주력 근무체제인 32교대는 15년 동안 유지된 근무체계다. 현재는 '워라벨'이 회자되고 주52시간 근무체계가 도입 되고 있는 시기이다. 32교대 방식 근무 중에는 야간 밤샘 이후 아침에 퇴근 했다가 당일 저녁 다시 출근해 밤샘하는 근무가 이어진다. 연속 밤샘 근무에 투입되는 노동자는 피로도도 심하고 집중력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더군다나 42교대 근무체제로의 이행은 철도노사가 도입하기로 합의한 사안이기도 하다. 안전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안전을 책임지는 노동자가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없는 구조를 바꿔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강성노조의 집단이기주이라면 한국 사회는 차라리 노조를 없애는 게 맞지 않는가?

 

이낙연 국무총리는 철도 파업사태에 대해 인력확충 등 파업 해결 방안을 마련하라고 국토부에 지시했다. 그러나 국토부는 국무총리의 지시에도 아랑곳 않고 철도 파업을 즐기는 게 아닐까 생각들 정도로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국토부의 뿌리 깊은 노조 불신이 사태를 더 꼬이게 만들고 있다.

 

철도노조가 20일 예정된 파업에 돌입함으로서 강대강 대립구도가 완성됐다. 노조가 더 가볍고 융통성이 있었다면 국무총리 지시 이행을 국토부에 압박하며 파업일정을 연기하는 대안도 마련해 볼 수 있었다.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은 먼 총선에 벌써 몰입했는지 중재 역할도 안하고 있다. 정치도 관료도 노조도 일관된 행보다. 돌이켜 보면 시대에 적응 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은 멸종됐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 / 프레시안


불출마 이용득 "문 대통령 시정연설 듣는데 부글부글 끓었다"

[인터뷰] 52시간 유예 등 노동정책 후퇴 성토... "기성 정치, 젊은이들에게 공간 내줘야"

내년 21대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한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노동 정책에 대해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다를 게 없다고 실망했다. 유성호

 

"표를 의식해 노동회의소를 공약에 넣어놓고, 입은 꽉 다물었다."

"탄력근로제 보완 입법을 말한 시정연설을 들으며 솔직히 부글부글 끓었다."

 

거침이 없었다.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초선, 비례대표)19<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노사 관계를 대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부의 '철학 없음'과 노동 정책 입법을 미루는 국회를 강하게 성토했다. 이 의원은 한국노총 위원장 3선과 민주당 전국노동위원장을 지낸 노동 전문가다.

 

앞서 불출마를 선언한 표창원, 이철희 의원 등과 달리 이 의원의 불출마 이유는 정책 실패에 대한 실망에 집중돼 있었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특별연장근로 인정 사유 중 '경영상의 사유' 포함 300인 미만 사업장 최대 16개월 계도기간 부여 등 '52시간 근로 시간 상한제' 입법 보완책을 향한 비판은 분노에 가까웠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다를 게 없다"는 혹평이 뒤따라 나왔다.

 

"청와대 이중대에 그칠 거면 정치할 필요 없다"

정부가 "52시간을 누더기로 만들며" 이유로 든 '영세 중소상공인들을 위해서'라는 주장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대통령과 독대를 한다면 중소상공인들이 어려운 원인을 진단해 봤는지 묻고 싶다, 최소한 (유예 방침 발표 전에) 중소상공인들의 경영개선을 위한 대책 기구라도 만들었어야 했다"면서 "(대통령) 잘못 뽑았다 싶더라. 그런데 야당으로 눈을 돌리면 사람이 없다. 야당 복이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언제나 법안 계류중'인 국회에 대해선 '기성 정치의 극복'을 주문하며 비판을 더했다. '그래도 입법으로 뜻을 이뤄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아무 것도 기대할 게 없다"고 자조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청와대 이중대에 그칠 것이라면 정치할 필요가 없다"면서 "지금은 정치는 기성세대들 중심이다, 젊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 분야 비례대표로 제도권 정치에 들어온 이유이자 그의 오랜 숙원이었던 '노동회의소'가 대선 공약에 포함됐음에도 공염불에 그친 대목에선 긴 시간을 할애해 비판했다. 노동회의소는 90%의 비조직 노동자를 사회적 대화에 참여시키기 위해 구상된 시스템으로, 오스트리아 경제회의소 모델을 딴 전문가 그룹의 자율기구다. 사업장 분배 중심의 기존 노사관계를 벗어나 한국형 노사관계를 구축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노무현 정부 때 '노사관계발전재단'으로 출범하기는 했지만, 고용보험에서 재원을 충당하는 것을 두고 고용노동부의 반대로 결국 실패했다.

 

이 의원은 한탄했다. "대한민국의 노사관계는 불과 10%(노조 조직률)이다. 거기서 벌어지는 일은 오직 사업장 분배로 싸우는 일뿐이다. 4차산업이 도래해 사업 발전 속도는 전광석화다. 정부가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를 만들어 줘야 한다. 그러나 늘 늦다. 그래서 외국 전문가들은 '한국엔 노사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이 의원은 "(노동회의소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난 대선에서 공약으로 넣었다. 장관도 이해를 못하니 관료들을 설득하지 못하더라"라며 "10% 안에서만 있었기 때문이다. 지동설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가 된 기분이더라. 90%는 땅이 둥글다고 하는데, 10%만 땅이 평평하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 불출마 결심은 언제부터 했나.

"(생각을 굳힌 것은) 지난 4월이었다. 의원실 식구들에게도 그때 말했다."

 

- 불출마 선언문에서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를 위한 정치는 없다'고 했다.

"(20대 국회에 들어오기 전) 노동계 출신들을 국회로 많이 보냈다. 그런데 그 중 노동회의소를 추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한 번 해봐야겠다 하고 들어왔다. 그 사이 정권 교체도 하고, 노동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대통령도 나오지 않았나. 꿈과 희망이 생겼다. 그런데 들어와서 보니 참 답답하더라. 대선 공약으로 힘들게 넣은 노동회의소도 임기 반환점이 돌았지만 대통령의 입에서 한 마디 나온 적이 없다."

 

- 왜 이렇게 됐나.

"노동회의소 설립에 부정적인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명박 정권 시절 차관을 하던 사람이고, 박근혜 정권 땐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을 지냈다. 문 대통령의 공약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일까 의문이 들더라. 너무 실망이 컸다."

 

- 20대에서 노동회의소 법안 통과가 쉽지 않겠다.

"법안 발의를 하면서, 정부 반대를 최소화하기 위해 의무가입과 강제회비 징수 등 원래 안에 있던 내용을 느슨하게 바꿨다. 그런데 그것도 안 되더라. 우리 당 환경노동위원회 간사를 이해시키고 나니, 한국노총 출신인 야당 간사가 반대했다. 정치판이 이렇구나, 싶더라."

 

- 국회 입성 당시엔 '꿈과 희망을 가졌다'고 했는데.

"야당과 여당은 다를 줄 알았다. 문재인과 이명박, 박근혜와 다를 줄 알았지. 그런데 그 기대가 송두리째 무너졌다. 미국의 경우 1947년부터 2009년까지 60년 동안 집권 정당별 저소득층 소득향상률이 민주당 집권 때가 공화당 때보다 6배가 더 높았다. '저소득층을 위한 민주당'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수치다. 그걸 보고 우리도 민주당이 여당이 되고, 문재인 대통령이라면 뭔가 다르겠지 생각했다. 10%의 고소득층보다, 90%의 저소득층 노동자가 훨씬 많은 나라 아닌가. 그런데 여당 의원으로서 법안을 발의해도 되지 않더라. 정치권에서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은 완전히 사라졌다."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 싶더라"

- 노동 분야를 대표하는 여당 비례대표이지 않았나.

"청와대 이중대에 그칠 거라면 정치인이 아니다. 잘못하면 지적할 줄 알아야 한다. 적어도 노동계를 대표해서 국회에 들어온 거라면 그래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아무 것도 기대할 게 없다. 법안은 언제나 계류 중이고, 법안 소위도 열리지 않았다. 열린다 한들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떠난다."

 

- 정부가 발표한 주52시간 상한제 유예 방침에 대해서도 비판을 제기했다.

"노동시간 단축을 말한 지 2년도 안 돼 시정연설 중 보완 수정을 말하며 누더기로 만들었다. 전임 정권과 차이를 못 느끼겠다고 한 이유다. 솔직히 말하면, 시정연설을 들으면서 부글부글 끓더라."

 

- 왜 문제인가.

"보완 입법을 말하면서 그 이유로 영세 중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들었다. 그들의 경영 상황이 어려운 건 인정. 그런데 주52시간 상한제는 노동자들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휴식권을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법안이다. 서로 상충되는 이야기 아닌가? 대통령한테 이렇게 묻고 싶다. 영세 중소상공인들이 어려운 게 주52시간 상한제 때문인가? 그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해 봤나?

 

최소한 경영개선을 위한 종합 대책 기구라도 만들었어야 한다.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했어야 한다. 52시간 상한제가 일부 원인이 됐을 수도 있다. 임차료 갑을 관계, 원청과 하청, 카드 수수료 문제 등 다른 원인도 많다. 정말 원인이 주52시간 상한제 때문이라고 하면 백 번 양보할 수 있다. 그런데 아니지 않나.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 싶더라. 그런데 야당으로 눈을 돌리면, 사람이 없다."

 

- 그런데도 야당은 주52시간 예외를 인정해 탄력근로제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은 야당 복이 있는 사람이다. 대통령이 한마디 하니 야당도 특별연장근로 등을 막 쏟아내고 있지 않나. 문제는 여당이다. 대통령이 한 마디 하고, 노동계는 반대하니, '이걸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팡질팡 한다. 그래서 대통령 리더십이 중요하다.

 

야당은 이때다 하면서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 영세 중소상공인들의 경영 개선에 큰 도움도 안 되는 노동 악법을 막 쏟아낸다. 대통령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다. 변호사 수준에 멈춰 있어서는 안된다. 판사가 돼야지, 수임 받은 피해자 입장에서 말만해선 안 된다."

 

- '일이 안 되는 국회'를 향한 쇄신 요구도 높다. 당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

"대한민국은 이제 젊은 사람들의 국가다. 민주당이든 한국당이든, 그 사람들을 많이 참여 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공간을 내줘야 한다.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상식적인 이야기다. 지금은 기성세대들 정치만 있다. 젊은 사람은 국가의 미래고, 그 미래가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 게 상식이다. 물갈이든 용퇴든 모두 필요하다."

 

- 이젠 무엇을 할 것인가.

"노동회의소 밖에 더 있겠나. 일각에선 날 모함하기 위해 '그걸 만들어서 자기가 가려고 한다'고들 하는데, 난 전문가 출신도 아니고 은행원 출신 활동가다. 내가 중심이 돼 갈 자리는 아니다. 노동회의소로 이어나갈 수 있는 길, 그걸 찾으려고 한다.

 

일단 책을 쓰기로 했다. 예전에 <노동은 밥이다>라는 책을 썼는데, 베스트셀러였다. 많이들 읽어 그런 줄 알았는데, 정작 읽은 사람은 별로 없더라. 국회에 들어와 노사관계의 역사적 배경부터 상세히 설명한 동영상집을 만들었는데, 그것도 본 사람이 없더라. '노사관계에 대한 선입관이 있구나' 싶었다. 이번엔 문답식으로 만들어 볼 생각이다. 대한민국 노사관계에 대한 지침서가 됐으면 좋겠다." : 조혜지(hyezi1208) / 오마이뉴스

 

기업 60·개인 111명 국세청, 역외탈세 조사

 

외국에 바지 회사차린 IT기업

소득 없이 부동산 취득 병원장 딸

 

   

이준오 국세청 조사국장이 20일 오전 역외 탈세 혐의자 전국 동시 세무조사 실시와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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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이 역외탈세 및 공격적 조세회피 혐의가 있는 기업 60곳과 개인 111명을 대상으로 동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20일 밝혔다. 현 정부 들어 5번째 역외탈세 전문 세무조사이다. 외국계 글로벌 기업이 다수 포함됐고, 개인은 해외 부동산 취득자 57명과 해외 호화사치 생활자 54명 등으로 중견 사주 일가가 상당수 포함됐다.

       

국세청에 따르면 온라인에서 게임·음성·동영상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외국계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의 모회사인 법인은 한국에서 법인세를 내지 않기 위해 한국 자회사가 주요 업무를 수행함에도 단순지원용역계약을 체결한 뒤 사업지원 수수료만 지급해오다 적발됐다. 또 다른 외국계 모회사인 법인은 한국과 조세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나라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국내 자회사들이 이 회사를 거쳐 상표권 로열티를 내도록 했다. 원천징수를 피하기 위해서다.

              

개인 탈세 혐의 조사의 경우 국세청은 중견 사주 일가의 해외 신탁 취득 등을 통한 편법 상속·증여, 해외 부동산을 은닉 자금으로 사들인 사례 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계획이다. 예로 국내 법인 사주 씨는 3개국을 넘나들며 탈세를 했다가 세금 유목민사례로 적발됐다. 해외 두 곳에 회사를 세워 부동산을 구매하면서 계열사 간 거래로 위장해 소득신고는 누락했고 세금은 어느 나라에도 내지 않았다. 국내 병원장 딸 씨는 뚜렷한 소득원이 없는데도 부친이 신고 누락한 병원 수입 금액을 부당하게 증여받은 뒤 해외 부동산을 사들였다가 적발됐다.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서울서 48천만원짜리 집 사려고 31천만원 빚내는 20

서울에서 내 집을 장만한 20대는 평균적으로 31000만원을 빚내 48000만원짜리 주택을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국토교통부에서 받은 서울시 주택자금조달 계획서를 분석한 결과, 서울에서 집을 산 20대는 전체 매매가격 중 64%를 빚으로 충당했다. 이번 조사는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받기 시작한 지난해 1210일부터 올해 9월까지를 대상으로 했다.

 

20대 다음으로 차입금 비중이 높은 연령대는 30대로, 평균 55000만원짜리 집을 장만하기 위해 3억원을 빚냈다. 전체 집값 중 차입금 비중은 55%에 달했다. 40대와 50대 차입금 비중은 각각 47%, 41%였다. 60대 이상에서는 평균 64000만원짜리 주택을 사기 위해 집값의 29%19000만원을 대출받았다. 나이가 많을수록 자기자금 비중이 높고 차입금 비중이 낮은 것이다.

 

10대와 10대 미만에서도 서울에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가 있었다. 10대의 경우 평균 35000만원짜리 주택을 사기 위해 8000만원을 빚 냈다. 10대 미만에서는 평균 1억원을 빌려 평균 3억원짜리 집을 구입했다.

 

전체 매수금액 중 자기자금 구성 내역을 보면, 20대는 전세를 끼고 매입한 임대보증금 비중이 34%(16000만원)로 가장 높았다. 차입금 31000만원 중 금융기관 대출금이 11000만원, 임대보증금이 16000만원이다. 대출금보다 임대보증금이 더 많은 연령층은 20대가 유일했다. 30대는 차입금 3억원 중 임대보증금 비중이 23%(12000만원)이었으며, 60대 이상에서는 차입금 19000만원 가운데 16%(1억원)만 임대보증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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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대표는 주택을 구매한 20대 중 상당수가 대출과 임대보증금 승계 등 빚에 의존해 주택을 구매한 것으로, 소득이 낮다보니 대출보다는 전세보증금 승계 등의 방법으로 주택을 구매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실거주보다는 이후 주택가격 상승을 통한 수익을 노린 이른바 갭투자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금융기관 대출액 비중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30대였다. 전체 매수 금액의 29%(16000만원)을 대출로 마련한 것이다. 20대와 40대의 금융기관 대출액 비중은 24%(각각 12000만원, 15000만원)였다. 60대 이상에서는 대출금도 12%(8000만원)로 가장 낮았다. 60대 이상은 주택 구입 자금의 절반에 가까운 48%(31000만원)를 부동산 처분대금으로 마련했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주택을 매매하고 신규 주택을 매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 대표는 집값이 더욱 높아질까 두려워하는 20대와 30대가 과도한 부채를 감수하며 집을 사는 것은 매우 슬픈 현실이라며 토지임대부 분양 주택 등 저렴한 공공주택 공급과 분양원가 상세공개, 보유세 대폭 강화, 공시가격 현실화, 후분양제 등 전면적인 부동산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성희 기자 mong2@kyunghyang.com

 



1 99의 불평등, 고장난 자본주의를 고쳐야 산다

예비 노벨 경제학상의 하나로 꼽히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수상한 대런 애쓰모글루 미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교수는 경제성장에서 국가와 제도의 역할을 강조하는 경제학자다. 그는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2012)에서 한국과 북한이 동질적인 사회였음에도 한쪽은 경제적 유인을 창출하고, 혁신을 보상하며, 모든 사람에게 경제적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는 포용적 제도로 경제강국으로 발돋움한 반면 다른 한쪽은 착취적·억압적 제도를 택해 경제 성과에서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의 한 명품 매장 쇼윈도우 앞에서 노숙인이 행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Photo by Max Bohme on Unsplash

 

그가 만약 2019년 지금의 한국을 보면 어떤 조언을 할 수 있을까.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지난 2월 발표한 ‘2017년까지의 최상위 소득 비중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현재 20세 이상 성인 중 소득 상위 10% 집단의 소득 비중은 50.6%로 절반을 넘었다. 10명 중 1명이 전체 소득의 절반을 가져가고 나머지 9명이 절반을 나눠 갖는 사회가 된 것이다. 한국의 불평등 정도는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 중에서도 최악의 수준에 도달한 상황이다. 이런 소득 집중도는 미국·일본에 비해서도 높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애쓰모글루는 연구할 때 1980~90년대 고도성장하던 한국을 본 것이라며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도 열심히 공부해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집도 사고, 차도 사는 모습을 본 것인데 그걸 지금도 가능하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불평등과 양극화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 의회조사국의 지난 7월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소득 상위 10% 계층의 실질임금은 1979~201837.6% 증가했지만 하위 10%1.6%, 하위 50%6.1% 성장에 그쳤다. 특히 남성 하위 10%의 경우 실질임금이 13.3% 감소했다. 미국을 상위 10%가 사는 나라와 하위 10%가 사는 나라로 나누면 별개의 나라인 것처럼 엄청난 격차의 소득성장률을 보인 것이다.

 

불평등은 짧게는 세계화의 물결이 거세게 밀려들던 1990년대 이후, 길게는 신자유주의가 태동했던 1970년대 이후 줄곧 악화됐다. 전체 국민소득에서 근로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속적으로 줄고, 자산의 격차도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10% 계층의 소득 비중 증가는 최상위 1%가 주도했다. 2010년대 이전까지는 임금 불평등이 최상위 계층 소득 증가의 주요 원인이었지만 그 이후에는 배당과 같은 금융소득과 사업소득 불평등의 영향이 커진 것으로 분석됐다. 노동소득보다 자산소득의 격차가 불평등을 더 키우는 상황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 8’을 넘어 ‘1 99’란 얘기가 나올 정도로 불평등 문제가 심해지고 있지만 정치권은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성장 둔화에 기후위기까지 가시화되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발상지라 할 미국과 영국에서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9자본주의를 리셋(재출발)할 시점이라는 제목의 기획을 냈고, <이코노미스트>는 부유세 도입과 구글·페이스북 등 독점 기업의 해체, 노동자의 경영 참여 등을 주장한 민주당의 대선주자 엘리자베스 워런을 특집으로 다루기도 했다.

 

신자유주의 태동 이후 불평등 악화

신자유주의는 무역장벽을 낮추고 자본 시장 규제를 완화해 노동이 가장 저렴한 곳으로 자금이 흐르도록 하는 경제 모델이다. 중국과 인도 등 신흥시장이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세계화와 자유무역으로 성장해 많은 사람들이 빈곤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개별 국가 내부에서는 불평등을 키웠다는 부정적 평가가 더 크게 나오고 있다. 사이먼 존슨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경제학자는 지난 101(현지시간) ‘자본주의를 다시 생각하는 방법이라는 프로젝트신디케이트 기고문에서 “2008년 금융위기는 기후변화와 급격하게 증가한 불평등에 대응하지 못한 실패와 함께 미국을 비롯해 대다수 서구 세계에 널리 퍼진 신자유주의적 합의를 파탄냈다더 나은 결과를 낳을 수 있는 포용적 형태의 자본주의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사례로 엘리자베스 워런이 강조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들었다. 워런은 지난해 내놓은 책임 있는 자본주의 법안에서 경영자 보수 제한, 노동자 경영 참여 조항과 더불어 일정 규모 이상의 법인기업은 재무적 이해뿐 아니라, 해당 기업과 계열사 및 협력업체 노동자, 소비자, 지역공동체 등 전반적인 공공의 이익(이해관계자)을 위해 활동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워런은 이 외에도 부유층과 기업들에 최소 6조 달러(6959조원)의 증세, 애플·페이스북·아마존·구글 등 IT 기업들의 독점 해체, 셰일가스 채취를 위한 수압파쇄 금지, 전 국민 의료보험 실시 등 급진적 주장을 내세웠다. ‘뼛속까지 자본주의자라고 자청한 그가 요구한 것은 미국 자본주의를 개조 혹은 재설계하자는 제안에 가깝다.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엘리자베스 워런 연방 상원의원이 지난 1022(현지시간) 시카고 웨스트사이드의 오스카 드프리스트 초등학교 밖에서 파업 중인 시카고 교원노조 및 국제서비스노조와 시위를 함께하며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 대선의 또 다른 관심 주자인 민주당의 앤드루 양 후보는 18세 이상 성인에게 매달 1000달러(120만원)씩 지급하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제안했다. 자동화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기술진보의 성과를 독점하는 기업들에게 세금을 거둬 재원을 마련한다는 생각이다.

 

비록 월가가 워런에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자본주의가 주주 이익만 좇을 것이 아니라 다양한 대안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인식은 공감대를 넓히고 있다. 주요 미국 대기업을 대표하는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BRT)은 지난 8월 말 포용적 번영을 강조하는 기업의 사명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이윤을 극대화하고 주주가치를 높이는 것을 기업 활동의 최우선 목표로 삼는 주주 자본주의를 재검토하고 직원과 고객, 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번영을 극대화하는 것을 새 목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노동자에게 정당한 몫을 보상하고 교육에 투자하며, 납품·협력업체는 공정하고 윤리적으로 대우하며, 지역사회 구성원을 존중하고, 사업 전반에 걸쳐 지속가능한 행위를 함으로써 환경을 보전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포용적 번영을 위한 기업의 사명

BRT에는 아마존, 애플, 뱅크오브아메리카, 제너럴모터스, 블랙록 등 미국 최대 기업들이 참여했다. 미국 JP모건체이스의 최고경영자이자 BRT 회장인 제이미 다이먼 회장도 지난 4월 비슷한 취지를 담은 서한을 주주들에게 보냈다. 밀턴 프리드먼이 1970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주주 이익의 증대라고 주장하며 시작된 주주 자본주의에 중대한 균열이 생긴 것이다.

 

국내에서도 최근 SK그룹이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면서 국제적 흐름과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경제적 가치와 함께 일자리 부족, 환경 오염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한 성과를 일컫는 사회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고 그 성과를 측정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 관계사 경영평가에 반영하기로 했다.

 

물론 주주 수익의 극대화를 위해 세금을 회피하거나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행위를 피하고 자사주 매입 대신 투자를 확대하는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민간연구소 랩(LAB)2050의 이원재 대표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대한 미국 기업가들의 성명은 2008년에도 있었지만 실패했다지금 똑같은 말을 다시 하는 것은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돈만 풀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앤드루 양의 돌풍을 보더라도 불평등과 인종갈등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기본소득 같은 보편적 시스템을 갖춘 복지국가로의 변화가 함께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내·외에서 자본주의 비판론이 거세진 것은 사회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을 정도로 불평등이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최상위층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세정책이 이뤄진 것도 한몫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정우 의원이 국세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2013~2017년 최상위 0.1%가 벌어들이는 근로소득이 40% 늘어나 전체 소득에서 점유하는 비중은 높아졌지만 전체 결정세액에서 차지하는 세 부담 비중은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정부 5년간 소득 최상위 구간에 속하는 이들이 월등히 높은 소득증가율을 기록했지만 세부담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서구, 특히 미국의 경우 주로 최상위 1%나 상위 소득자의 자산 및 소득 증가 문제가 상당히 심화됐고 그런 맥락에서 부유세가 많이 논의된다국내에선 상위 소득자의 증가와 저소득층의 지위 하락이 눈에 띄게 커졌고, 이게 빈곤 문제로 나타나는 특성을 보여 특히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 보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저소득층 지위 하락에 기술 변화와 세계화 같은 외부 시장 변화만이 아니라 비정규직 증대나 중소·대기업 간 격차 같은 제도적 요소가 큰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근래에는 노인빈곤 문제가 심각해졌는데, 연금으로 소득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태로 노후에 진입하면서 소득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사회 제도적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엘리자베스 워런이 미국 자본주의를 개조하려 한다는 내용을 담은 <이코노미스트> 1026일자 발행 표지(왼쪽)자본주의를 리셋할 때가 됐다는 글귀를 전면에 인쇄한 지난 918일자 <파이낸셜타임스> 1(오른쪽) / <이코노미스트> 홈페이지, 트위터

 

구 교수는 우리나라는 1980년대까지 분배와 성장을 잘 결합한 사례로 분류되는데 그때 중요한 역할을 한 게 1950년대 있었던 농지개혁이었다당시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 할 농지를 재분배하면서 평등화를 이뤄 산업화를 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장점이 1990년대를 지나면서 사라지고 부동산이 계층 간 격차를 벌리는 주요 요인으로 등장하면서 소득 불평등만이 아니라 자산 불평등까지 본격적으로 확대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문재인 정부의 불평등 해소 방안도 이런 점에서 노동소득보다 자산 불평등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그간 근로소득 균등화에 초점을 맞춘 최저임금 정책, 비정규직 정책을 펴왔지만 이제는 자본소득의 불균등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자소득, 배당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와 보유세 강화 등이 이런 정책 수단으로 거론된다.

 

자산소득 균등에 더 관심 쏟을 때

구 교수는 과도하게 낮은 상태인 보유세의 강화는 기본적 제도 정상화 차원에서 당연히 밟아야 할 조치라면서 최근 세대 간 불평등이 재생산되는 양상이라 교육과 고용에서의 형평성을 높이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정치다. <21세기 자본>을 쓴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불평등은 정치·사회적 선택의 결과로 해법도 정치적 선택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금 정책이나 교육, 고용 등 모든 정책은 정치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 정당들의 노선과 정책 대결로 합의점을 찾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다양하고, 소수자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비례대표제로 가능하다는 게 구 교수의 생각이다. 단순 다수 득표자가 당선되는 소선구제 역시 중·대선거구제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부동산 보유세 올리면 농지개혁과 비슷한 효과

한국은 1960년대 고도성장을 발판으로 지금은 경제강국 반열에 올라섰지만 기득권의 진입 장벽 탓에 세대 간 계층 이동이 어려운 상황이다. 새로운 제도개혁이 다시 필요해진 시점이다. 매년 1%씩의 부동산 보유세를 제안한 하준경 한양대 교수(50)에게서 한국의 불평등 해소 방안을 들었다.

 

-엘리자베스 워런의 부유세 등 자본주의 개조 정책을 어떻게 보나.

자산 불평등이 심화되니까 자본에 세금을 부과해 재분배해 쓰자는 것이다. 워런이 말하는 2~3% 부유세가 과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1950년대 했던 농지개혁을 지속적으로 하는 구조와 같다. 자산을 재분배해 초기 조건을 비슷하게 한 후 자유경쟁을 통해 경제를 성장하자는 건데 이게 몇십 년이 지나면서 양극화가 생겨 기득권을 얻은 사람이 진입장벽을 쌓고 독과점을 만들면서 모든 경제 주체가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하면서 효율성 높이고 성장한다는 자본주의 작동 메커니즘이 변질됐다.”

 

-한국의 불평등은 어떻게 보는가.

우리의 경우 모든 불평등이 부동산과 교육으로 나타난다. 부동산으로 쌓은 부를 사교육을 통해 대물림하는 세습 자본주의의 모습이 나타난다. 집값 상승과 사교육은 출산율을 떨어뜨린다. 지난해 합계 출산율이 0.98명인데, 이는 전쟁하는 나라에서 나오는 수준이다.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해 사교육을 통해 신분을 세습할 수 없는 입장에서 아이를 낳는 게 전장에서 죽느냐 사느냐의 상황이 된 것과 비슷하다. 이런 정도면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다 깨지고 세습 자본주의 스스로의 생존도 보장하기 어렵다.”

-알게 모르게 법과 제도가 저소득층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 아닌가.

대표적으로 입시제도가 그렇고 정규직·비정규직도 그렇다. 실력 차는 얼마 안 되지만 임금 차이가 많이 나 실제적인 신분제로 작용한다. 조그만 차이를 굉장히 큰 차이로 만들어 극복하기 어렵게 만드는 게 많다. 성장을 체감하지 못하고 정책이 나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협력하지 않고 부동산 투기 같은 남의 것을 뺏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된다.”

 

-‘자본주의 리셋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불평등 담론이 퍼진 이유는 무엇인가.

“‘월세계급이라는 말이 있다. 옛날 같으면 자기 집을 샀는데 이젠 월세 내면서 전전해야 한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은 새로운 농노계급이라고 한다. 밀레니얼 세대에 이런 불만이 많은데 나이가 들어 노동시장에 들어오면서 이들의 목소리가 커진 세대적 요인이 있다. 또 양극화가 워낙 심해 여기서 분노한 백인 노동자의 표심이 대선(트럼프 당선)에 영향을 줄 정도가 됐다. 리셋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사실 같은 출발선상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시 같은 출발선상에 서야 공정하지 않겠냐는 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출발선상의 격차를 줄이고 그간 규칙이 너무 기득권에 유리하게 맞춰져 있는데 이걸 재정비하자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유연안정성이 가능할까.

내가 이걸 양보하면 굶어죽는다고 생각하면 양보 못 한다. 일단 사회안전망부터 잘 만들어놓고 그다음에 기득권이 갖는 지대를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여기에는 돈이 든다. 재정을 잘 써서 손해 보는 사람들에게 먹고살 수 있게 해주고, 이익 보는 사람들은 그만큼 부담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농지개혁과 같은 효과를 갖는 부동산 보유세를 주장했다.

미국에서 2억원짜리 집에 살면 매년 200만원씩 세금을 낸다. 그 정도면 집값 자체가 크게 오르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이 집을 사기 용이해진다. 우린 재산세하고 종부세가 있는데 크게 효과가 없다. 우린 20억원짜리 집을 갖고 있어도 400만원 내고, 30억원이 넘어도 같은 액수를 낸다. 우리의 세금 부담이 적은 것이다. 1%씩 매년 보유세를 걷으면 100년이 지나면 토지를 100% 회수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온라인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극우주의자

109일 독일에서 발생한 테러는 전 과정이 인터넷으로 생중계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신념과 행위를 초국가적으로 공유하는 극우주의자들이 창궐하고 있다.

 

dpa 지난 109일 헬멧에 카메라를 장착하고 테러를 생중계한 슈테판 B.

 

옛 동독 지역 도시인 할레에서 발생한 극우 테러로 독일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지난 109일 슈테판 B(27)라는 남성은 유대교 최대 명절을 맞아 유대교 회당에 사제 폭발물을 던졌다. 회당 진입에 실패한 그는 미리 준비한 총으로 행인들과 케밥 가게에 총격을 가했다. 범인의 차량에서는 사제 폭발물 4이 발견되었다. 이 테러로 두 명이 사망하고 두 명이 다쳤다.

 

독일 사회를 더욱 충격에 빠트린 건 범인의 테러 생중계였다. 전 과정이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인 트위치를 통해 약 35분간 생중계된 것이다. 슈테판 B는 이날 낮 12시 렌트한 차량 내부에서 휴대전화로 방송을 시작했다. 그는 어눌한 영어로 페미니즘과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 발언을 하며 유대인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유대교 회당을 향해 차를 몰았고 아무도 인터넷 나치 친위대를 예상하지 못했을 거야라고 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준비한 헬멧에 카메라를 장착한 뒤 차에서 내려 테러를 시작했다. 시청자들은 슈테판 B의 시점에서 테러 현장을 목격했다. 5명이 슈테판 B의 방송을 라이브로 시청했고, 사건 직후 2200여 명이 이 영상을 보았다. 아무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테러 일주일 전 슈테판 B는 자신의 계획을 극우 커뮤니티에 공유했다.

 

게임하듯 테러에 점수와 순위 매겨

테러 사건 직후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백인 극우주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해 심층 보도했다. <슈피겔>에 따르면 온라인 극우주의자들은 자신의 신념과 행위를 초국가적으로 공유한다. 슈테판 B는 올해 3월 뉴질랜드 크라이스처치에서 총기를 난사해 51명을 살해한 브렌턴 태런트처럼 범행을 생중계했으며, 2011년 노르웨이에서 77명의 목숨을 앗아간 안드레스 브레이비크처럼 군인과 유사한 전투복을 입고 헬멧을 착용했다. 극우 인터넷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18~30세의 남성이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다. 그들은 커뮤니티에서 자기들만의 언어를 사용하고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주의, 여성 혐오, 반유대주의 등의 사상을 공유한다. 그들은 게임을 하듯이 테러에 점수와 순위를 매긴다. 그리고 테러 행위를 축하하고 기념한다. 슈테판 B는 이런 커뮤니티를 통해 자신의 신념과 계획을 키웠다. <슈피겔>은 슈테판 B가 경찰과 정보기관의 감시 대상 명단에 없었다며 인터넷상의 극우 커뮤니티가 감시와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일간지 <디벨트>114새로운 극우 범죄자 유형이라는 기사에서 테러 전문가인 페터 노이만 영국 킹스칼리지 교수의 발언을 실었다. 노이만 교수는 단독으로 테러를 계획하고 실행한 범인들도 사회에서 고립된 것이 아니다. 인터넷을 통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전 세계의 사람들과 생각을 교환한다라고 분석했다.

 

할레시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 이외에도 독일은 극우 테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62, 기독민주당 소속 정치인 발터 뤼브케가 극우주의자에 의해 자택에서 살해당했다. 그는 메르켈 총리의 난민정책을 지지하던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최근에는 녹색당의 유력 정치인들이 네오나치 조직으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아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미국의 극우주의 단체 아톰바펜(독일어로 핵무기)’의 독일 추종자들은 쳄 외츠데미어 전 녹색당 대표의 사무실에 협박 이메일을 보냈다. 그들은 외츠데미어 전 대표가 자신들의 살해 명단 최상단에 있으며 클라우디아 로스 연방의회 부의장이 두 번째라고 위협했다. 독일 내무부 통계에 따르면 2019년 상반기 극우주의자들이 저지른 범죄 건수는 8605건에 달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00건 증가한 수치다. 시사인 프랑크푸르트김인건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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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클로 앞 '긴 줄'문 열리자마자 '물건 향해 달렸다'

'노 재팬' 불매운동 다섯 달째관광도 늘어나는 중

지난여름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서 자발적인 불매운동이 시작됐죠. 'NO JAPAN' 구호 아래 일본 여행이나 제품 구입을 자제했고 실제로 일본 관광 산업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는 발표도 계속 나왔는데요.

불매운동 5달째인 지금은 분위기가 어떤지, 최재영 기자가 곳곳을 돌아다니며 취재했습니다.

 

<기자>저는 지금 유니클로 매장으로 가고 있습니다.

불매운동으로 발길이 뚝 끊어졌던 매장에 최근 할인행사 때문에 사람들이 찾는다고 하는데, 진짜 어떤지 한번 가보겠습니다. 매장 문을 열기 전인데도 기다리는 줄은 제법 길었습니다.

문이 열리자 서둘러 물건을 집어 듭니다.

[이런 거 하나 사도 줘요. 아무거나.]

양말 하나라도 사면 유니클로 대표 상품을 공짜로 주는 이벤트 현장입니다.

[여기 줄 선거야 지금?]

이벤트 상품은 15분 만에 다 나갔습니다.

[히트택을 선착순으로 증정해 드리는 이벤트가 모두 종료됐습니다.]

이 할인행사와 온라인 구매로 유니클로 매출이 많이 늘었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유니클로 매장 앞에 늘어선 긴 줄[서경덕/성신여대 교수 : 온라인 매출은 계속 달성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는 굉장히 좋아하는 분위기다라는 제보를 저한테 계속 해줬습니다. (이번 행사는) 소비자들을 유니클로 매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형적인 꼼수의 방법입니다.]

유니클로 측에게 물어봤지만 확인해 주지 않았습니다.

 

판매율이 급감하던 일본 맥주도 알아봤습니다. 관세청과 대형마트의 자료를 봤더니 '판매량'은 늘지 않았는데, 대신 앞으로 팔려고 업체들이 미리 수입하는 '수입량'은 늘고 있었습니다.



일본으로 떠나는 관광객도 확인해 봤습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오사카와 후쿠오카행 탑승객은 불매 운동이 시작된 후 지난 9월이 가장 적었고 10월부터는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중단했던 일본행 노선을 일부 재개한 항공사들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항공사 직원 : 살짝 조금 늘어난 거 같아요. 비행기 노선도 몇 개가 줄었었는데 다시 몇 개가 생기고 그래서]

물론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는 사람들은 불매운동으로 줄어든 상태 그대로였습니다.

일본 현지 상황도 알아봤습니다. 단체 관광객은 여전히 발길이 끊어진 상태인데, 개인 관광객은 조금 늘어나고 있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정일수/일본 현지 관광업체 대표 : 11월 들어서는 견적 문의가 하루에 2~3건씩 들어오고 있고,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달라졌고]

 

오늘(21) 몇몇 일본 언론들은 한국 불매운동으로 지역관광산업이 크게 타격받고 있다고 기사를 썼습니다.지난달 기준으로 본 건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다만 불매운동이 5개월째 접어들면서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 SBS 뉴스 최재영 기자


산호초에도 칼로 'XX''낙서천국 코리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낙서하는 한국인들처벌 가능한 범죄·해외서도 '낙서주의보'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편의점 사진. 편의점이 온통 낙서로 가득하다. / 사진 = 온라인 커뮤니티

Q. 다음 중 한국인이 머물다 간 자리에 남는 것은?

수고했다면서 챙겨 주는 팁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은 '헌팅'쪽지

이름·나이·주소 등이 한글로 적힌 큼지막한 낙서

먹고 남은 음식물 등 쓰레기

 

정답은 번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은 음식 쓰레기를 되가져가거나 현지인들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 '여행 에티켓'에 민감한 모습을 보이지만, 유독 낙서에는 지나치게 관대하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심각해 보이는 낙서'라는 글과 함께 몇 장의 사진이 게시돼 이목을 끌었다. 해당 사진에는 '죽어' 'x' 'x'등 원색적인 표현이 가득한 낙서가 즐비한 편의점이 등장했는데, 이름이나 욕설·성희롱에 가까운 표현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어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글의 게시자는 "울산에 거주중인데 우리 동네 편의점이다"라면서 "낙서를 해도 괜찮다고 점장이 말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평소에도 펜을 잡고 끄적이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누리꾼들은 "저 가게 점장은 뭐 하고 있나" "낙서를 해도 괜찮다고 방치한 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데" "내가 고객이라면 불쾌해 절대로 방문하지 않을 것 같다"며 잇따라 비판 댓글을 달았다.

 

국내·국외 가리지 않는 낙서광 한국인들'어글리 코리안'

 

SNS나 커뮤니티에 게시된 '낙서광 한국인' / 사진 =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녀간 장소에는 어김없이 낙서가 등장한다. 해외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10월에는 스위스 루체른의 무제크 성벽(Museggmauer)에 자신과 가족의 이름을 한글로 쓴 사진이 SNS에 게시돼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다. 누리꾼들은 낙서한 사람을 찾아내 처벌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낙서한 사람은 언론 인터뷰에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기억나지 않는다"고 모르쇠로 일관해 큰 비판을 받았다.

 

2017년에도 한 누리꾼이 페이스북에 이탈리아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Duomo di Firenze·피렌체 대성당)벽면을 찍어 올렸는데, 해당 벽면에는 '엄마의 바람대로 세상 반대편에 홀로 설 수 있는 당당한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문구가 한글로 쓰여 있었다. 2016년에는 태국 남부 해상 국립공원에서 한글로 'XX'라는 이름을 칼로 산호초에 새긴 관광객이 등장해 시밀란 주의 현지 주민들이 공식 항의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낙서 잘못했다간 재물손괴죄로 처벌해외서도 예외 없어

 

'그래피티'낙서로 훼손된 베를린 장벽. 이 장벽은 2005년 한국의 평화 통일을 기원하는 의미로 베를린 시가 직접 장벽의 일부를 서울시에 기증했다.

 

하지만 아무 곳에나 낙서를 하는 것은 현행법상 엄연한 범죄다.

지난 4월에는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독일의 베를린 시가 기증한 베를린 장벽에 '그래피티(Graffiti·스프레이를 사용한 낙서 예술)'를 한 20대 예술가가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검찰은 허가된 장소에서 적법하게 이뤄진 낙서도 아니고, 용인 정도도 넘어선 행위라며 징역 1년을 구형했으며 재판을 맡은 수원지법 형사 12부는 20대 예술가 A(29)에게 "베를린 장벽의 가치를 손상한 점이 명백하다"며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형법 366[재물손괴죄]에는 '타인의 재물을 손괴해 효용을 해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대법원의 2007년 판례에 따르면 래커 스프레이를 이용해 건물 외벽과 1층 벽면에 낙서를 한 것도 건물의 효용을 해한 '재물손괴죄'에 해당된다. 다녀온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나 예술을 목적으로 낙서를 하더라도 위법이란 의미다.

 

해외 여행지에서 낙서를 하다가도 범죄자가 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중요 문화재에 낙서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0만엔(한화 약 315만원)의 벌금형에 처하며, 싱가포르에서는 길거리에 낙서하다가 적발되면 태형(곤장)에 처한다. 중국에서는 유적지에 낙서하거나 문화재를 고의로 손상하는 사람을 최장 5~10일까지 구류에 처할 수 있는 여행법이 20133년부터 발효됐으며, 외국인이라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문화재에 낙서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발각 즉시 법적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고 시행 중이다. 머니투데이 오진영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