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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10.16~10.31 ‘좌우’는 없고 ‘위아래’는 확실한 새로운 신분사회가 온다

by 이성근 2019. 11. 1.

기후변화와 자본주의 5.0 경향

화석연료 없는 복지국가 한겨레 10.16

검찰·언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카르텔끊어내야 한다 한겨레 2019.10.18.

 

검찰 개혁의 훼방꾼들 한겨레 2019.10.18.

'도덕 정치'의 덫 프레시안 2019.10.18

'떡값 검사', 비리 의사'가 판치는 세상 프레시안 2019.10.20.

너무 놀라지 마라 경향 2019.10.22.

판사들이여 형사소송의 원칙을 기억하라 경향 2019.10.22.

 

대학 졸업장, 가성비로 따져보자 경향 2019.10.23.

이제는 누구와 어떻게 공존해 살아갈지를 고민할 때다 경향 2019.10.23

좌우는 없고 위아래는 확실한 새로운 신분사회가 온다 경향 2019.10.23.

주한미군 철수 트럼프 친서가 온다면 한겨레 2019.10.27.

금강산 관광, 결기 있는 '담판'을 프레시안 2019.10.28

공수처 반대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한겨레 2019 10.28

자살공화국의 직장과 노동 경향 2019 10.29

남북관계, 무엇을 할 것인가 경향 2019 10.30

모든 문제가 페론주의 탓인가 국민일보 2019.10.30.

에너지 전환과 일자리 변화 경향 2019.10.30.

하산길, 시간은 대통령 편이 아니다 경향 2019.10.31.

우리는 '트럼프가 통치하는 땅'에 살고 있다 프레시안 2019.10.31.

 

    

기후변화와 자본주의 5.0

모든 생물에는 주변 환경과의 균형을 추구하는 본능이 각인되었다고 믿는다. 이런 균형본능을 상실하여 무절제할 때 멸종하거나 재앙을 겪는다. 인간에게도 이런 본능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동서고금의 윤리와 사회규범들은 탐욕을 경계하고 절제와 절약을 장려한다. 가끔 내 자신에게서도 균형본능을 발견한다. 간편 음식점에서 내가 먹은 것보다 더 많은 쓰레기를 버릴 때, 가까이서도 생산되지만 수천, 수만리 먼 거리를 날아온 물건을 소비할 때, 아직도 멀쩡하지만 오래된 가구를 새 가구로 교체할 때, 작은 부품 하나만 갈아 끼우면 쓸 수 있는 전자제품을 폐기할 때,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다 사라진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팽창으로 균형본능이 더 이상 인간의 행동을 제약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본능을 버리고 무한한 물질적 욕망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선()이 돼버렸다. 자본가의 돈 욕심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은 하찮은 것이 되고 시장가격이 사회적 서열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선진국 국민들은 옛날 극소수의 귀족들만 향유했던 것 이상의 물질적 풍족을 누린다. 이미 넘쳐나는 소비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더 풍족하게 하는 것이 인류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될까? 하지만 잘사는 나라와 부자들은 자본의 질서에 따라 돈 되는 데 투자하고 또 투자하고, 양적 경제성장 경쟁의 무한궤도를 굴러간다. 아직도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은 이런 풍요의 혜택은커녕 빈곤과 결핍 속에 살아간다. 이들을 국가라는 장벽으로 가두고 부자가 더 부자가 되는 시장만 거대하게 돌아간다. 더 가치 있는 과학 발전과 인간 개발의 길이 있어도 돈 되는 길로만 자본이 흐를 뿐, 그 길이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치 않다.

 

이렇게 살면 안된다. 멸종을 피하려면 균형본능을 회복하라. 기후변화가 알려주는 답이다. 산업혁명 이후 유래 없이 대규모로 태웠던 화석연료가 문제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200년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많은 양의 석탄과 석유를 땅속에서 캐내고 불태워야 유지되는 경제활동에도 불구하고 이를 걱정하는 균형본능은 작동하지 않았다. 20세기 중엽 과학자들이 의심하면서부터 문제가 감지되었고 그로부터 50여년 더 흘러 비로소 교토의정서라는 최초 실행 안에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200년도 더 지난 산업혁명기부터 방출된 이산화탄소가 대기에 축적되어 지구온난화를 야기하니 그렇게 축적되는 총량을 제한해야 한다. 지금 국제사회에서 공감대를 형성한 합리적 방안은 2050년까지 경제활동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0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적이 되려면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50% 이상 감축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목표에 미달하는 파리협약의 감축목표조차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기후변화를 음모론으로 폄훼하거나 국가 이기주의적 신념을 퍼트리는 미국 정부와 보수주의자들의 책임이 크다.

 

다수의 못사는 나라들은 경제개발을 위해 더 많은 화석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가장 많은 화석에너지를 소비하는 잘사는 나라들은 기득권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해상충의 문제가 해결되려면 가난한 후진국이 화석에너지 없이도 발전할 수 있게 해야 하고, 선진국이 더 이상 양적 경제성장을 추구하기보다는 깨끗한 에너지 개발과 온실가스 저감 기술에 투자하고 그 기술을 확산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선진국은 절약과 절제를 위한 기술개발에 투자하여 손실을 보전할 수 있게 하고 후진국은 그 기술의 확산과 경제개발로 발전의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 지금의 자본주의로는 어렵다.

 

절약과 절제의 기술혁신에 투자하도록 하려면 남용과 무절제의 비용이 훨씬 더 커져야 하고 지구 곳곳의 자원을 헐값에 고갈시키는 경제활동이 어려워져야 하며, 열대우림, 생물 다양성 등 지구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보존은 충분히 보상되어야 한다. 지구 사회의 빈곤을 퇴치하기 위한 노력이 초국가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후진국 발전의 기회가 공평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이란 기술변화보다 우리에게 더 시급한 것은 이러한 지구적 자원관리체계 그리고 환경과의 균형이 존중되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적 소유와 공유의 권리 획정, 공동자원에 대한 권리와 책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기후변화라는 재앙이 이런 역사적 전환의 기회다. 온실가스 배출의 80%를 차지하는 G20 국가들, 특히 역사적 책임이 지대한 유럽과 북미 선진국들이 나서야만 한다. 그렇게 되려면 국민 개개인의 각성, 실천, 정치참여가 필요하다. 소비하는 기계가 되기를 거부하고 자율적 의지로 소비자 주권을 행사하는 개개인이 변혁의 주체이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분배정의연구센터장 / 경향

 

화석연료 없는 복지국가

2019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청소년을 꼽으라면 아마도 스웨덴의 10대 소녀 그레타 툰베리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지난달 뉴욕에서 열린 ‘2019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선보인 그의 연설은 압권이었다. “모든 미래 세대의 눈이 여러분을 향해 있습니다. 여러분이 우리를 실망시키는 선택을 한다면 우리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 정상들을 향해 성난 사자처럼 포효하는 툰베리를 보며 또 다른 여성 환경운동가가 떠올랐다. 2011년 암으로 별세한 케냐의 왕가리 마타이다. 마타이는 사막화돼가는 아프리카 땅을 살리기 위해 나무 3천만그루를 심은 아프리카 그린벨트 운동의 창시자다. 그 또한 2004년 노벨 평화상 수상 때 한 벌새연설로 유명하다.

 

숲에 불이 나면 모든 동물이 도망갑니다. 그런데 달아나지 않고 숲을 지키는 동물이 있습니다. 벌새입니다. 이 작은 새는 숲에 불이 나면 개울가에서 그 작은 부리로 물을 머금고 와서는 불붙은 나무 위에 뿌립니다. 큰불에 비하면 벌새의 이런 행동이 하찮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60억 인류가 벌새가 되어 한사람 한사람이 평생 나무 열 그루를 심는다면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툰베리와 마타이의 외침은 지구촌 환경운동가들의 열정을 불태우고, 세계 시민들의 의식을 깨우는 죽비다. 문제는 기후변화 대응 정치다. 실질적 변화를 이끌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의 기후변화 정책과 구체적 실행이다. 이런 맥락에서 눈여겨볼 나라 또한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일찍이 세계 최초로 화석연료 없는 복지국가를 목표로 내걸고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탄소 배출량을 낮추기 위해 1991년 탄소세를 제정했고,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0~2008년 동안 12% 줄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저 수준이다. 지난해 1월부터는 극우 정당을 뺀 7개 정당 합의로 기후법을 제정했다.

 

926일 미국 현지에서 만난 제러미 리프킨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은 기후변화 대응에 한국이 맨 앞줄에 서라고 주문했다. 우리 정치와 공동체는 지금 그럴 의지와 계획, 구체적 방안이 있는가? 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10.16

 

검찰·언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카르텔끊어내야 한다

조국 사태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제압하려 한 사건

 

진보세력 계급 대물림·위선에 실망

검찰수사 역시 구시대 습성 되풀이

 

정치권 민주화세력 무능이 검찰 키워

무소불위 수사 최대 피해자는 국민

 

검찰개혁은 미완의 민주화마침점

정치가 이제 제 일을 해야 한다

 

조국 사태에 대해선 여러 갈래의 해석과 평가가 가능하지만, 거시적으로는 검찰·언론이라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선출된 권력을 제압하려 한 사건이자, 1987년 이후 한 묶음으로 간주되어온 민주진보세력의 내적 균열을 극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조국 가족에 대한 검찰의 비상식이고 무차별적인 수사, ‘피의사실 흘리기와 언론을 통한 망신 주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 뒤에도 이 나라의 법치와 공론의 장은 여전히 심각하게 뒤틀려 있음을 확인시켰다. 아울러 민주진보세력에 속한 이들 역시 일상생활에서는 보수세력과의 구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 또한 아프게 일깨웠다.

 

임명직 검찰총장이 인사권자인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선 이 사태를 법치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검찰권력의 핵심은 미운 사람을 적으로 몰아 괴롭히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편은 제대로 수사·기소하지 않는 데 있다. 언론권력의 핵심은 으로 분류된 사람을 악의적 보도로 도배하는 데 있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편의 심각한 범법과 부정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 데 있다. 그들에게 우리는 누구인가?

 

많은 언론이 전관예우라는 아름다운표현을 여전히 애용하지만, 그것은 심각한 부패 카르텔이자 반사회적 범죄에 다름 아니다. 마이클 존스턴 미국 콜게이트대 교수는 한국의 부패를 엘리트 카르텔 유형이라 규정하면서 많이 배우고 가진 놈들이 조직적으로 똘똘 뭉쳐 대다수 국민을 등쳐 먹는다고 했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가 1년 수임료로 100억원을 벌어들이고, 퇴임 검사가 수사 검사에게 전화 한 통 넣고 전화변론명목으로 5천만원을 받은 일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검찰, 법원, 언론, 행정부, 재벌은 이런 엘리트 범죄의 강고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조국과 그의 가족을 집요하게 공격했던 검찰과 언론, 한국당이 이 카르텔의 주요 축이란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다.

 

자녀 교육과 재산 관리에서 드러난 조국 가족의 행태에서 보통의 사람들은 계급 대물림의 속된 욕망을, 청년들은 구세대의 이기심을 읽고 실망과 분노에 휩싸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검찰 수사와 기소 행태 역시 사회정의를 무너뜨릴 만큼 계급편향적이면서 구세대의 권위주의와 명령주의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게 사실이다.

 

수십년을 투표하고도 똑똑한 놈들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아직도 알아채지 못한 국민들이 여전히 검찰 권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는 국민의 0.05%도 안 되는 법조인 출신이 국회의원의 16%를 차지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에선 검사 출신이 4명이다. 대표와 원내대표가 모두 법조인 출신인 자유한국당에선 무려 13명의 전직 검사가 지도부와 원내에 포진해 있다. 이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퇴임 뒤 로펌과 정치권에 갈 수 있는 검사들이 기소권과 수사권을 독점적으로 거머쥐고 있는 한 그들의 칼은 언제나 기득권 카르텔을 위협하는 세력을 향할 것이다. 검찰은 1987년 이전에는 권력을 틀어쥔 군부에 충성했다. 권력이 기업으로 넘어간 87년 이후에는 대체로 그들에게 충성했다.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오늘의 검찰개혁은 미완의 민주화, 미완의 2016-2017 촛불의 완성으로 가는 시대적 화두임이 분명하다. 87년 이전의 정치를 안기부와 보안사가 주도했다면, 87년 이후는 사법부와 검찰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약점 많은 여야 정치권은 검찰과 법원, 언론과의 관계에서는 언제나 일 수밖에 없었고,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국가적 의제를 법원과 검찰에 넘겨버렸다. 87년 이후 심화된 정치의 사법화가 오늘날의 괴물 검찰을 만든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하겠다고 정계에 진출한 민주화 세력의 무능이 검찰에 무소불위의 힘을 안겨주었다.

 

시민들이 주말마다 서초동에 모여 정치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문재인 정부나 여당의 책임도 작지 않다. 그들은 구정권의 적폐 청산을 검찰에 의탁했다. 검찰이 아무리 막강하다 한들, 그들을 통제할 입법권은 국회와 정치권에 있다. 정치가 이들과 물밑에서 타협하거나 이들에게 약점을 보이면, 그들을 제어할 방법이 없다. 결국 조국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국민, 즉 촛불시민인 셈이고, 이런 검찰의 편향적 칼날의 최대 희생자가 힘없는 서민인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사법적폐청산 범국민 시민연대가 12일 저녁 검찰 개혁과 조국 법무부 장관 수호를 주장하며 검찰청사가 있는 서울 서초역 사거리에서 `9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 개혁 촛불 문화제'를 열고 있다.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조국 가족의 자산 투자나 자녀 진학을 위한 행동들은 이 정부, 더 나아가 586세대에 대한 깊은 실망감을 안겨주었고, 이미 알고 있던 민주진보세력의 이중성과 위선을 다시 한번 들추어냈다. 시민들은 우리 사회의 작동 원리를 좀 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고, 특정 부류 사람들이 평범한 이들은 생각하지도 못한 방법을 동원해 교육을 통한 지위의 대물림을 시도한 사실을 고통스럽게 확인했다.

 

물론 위선이라는 말조차 적용할 수 없는 세력의 후안무치함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겠다는 이들이 도덕을 그리 쉽게 무시해선 안 된다. 그러니 보수언론의 공격에 억울해할 것도 없고,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다고 정당화해서는 더욱 안 된다. 이론과 삶의 현장이 분리되면 행동이 말을 따라갈 수 없게 된다. 이제 중산층 학생운동권 출신들이 보수세력과 일상생활에서 큰 차이를 보여줄 만큼 철학과 가치관을 체화하지 못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청년의 좌절과 보수화는 조국 사태가 드러낸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숙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실력주의에 길들여진 청년들은 시험=공정이란 생각에 노력의 결과가 오염된다며 조국 딸의 상급학교 진학 행태에 분노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실력 없는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정권에서 마음이 떠난 불안한 20대 청년들과, 사회경제적으로 심각한 소외감을 느낀 광화문의 60·70대 모두 전지구적으로 기세를 떨치는 우익 포퓰리즘의 토양이다. 진보가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자유한국당의 극렬한 저항이 큰 장벽으로 작용했다고 하나 문재인 정부를 지탱하는 청와대와 민주당은 를 의식해 이해가 충돌하는 사회경제적 개혁, 특히 서민의 삶과 직결되는 부동산과 교육 문제에서 사실상 현상유지로 일관했다. 촛불시민은 사라지려던 비상식 집단이 다시 보수로 자처하게 된 지금 상황에 가슴이 무너진다. 그러나 지위 세습에 분노하는 지금의 여론 지형은 정부가 교육, 복지 등 사회 영역에서 새로운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좋은 밑천이다. 문제는 방향과 주체다.

 

검찰개혁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고위관료-검찰-언론-사학-지역토호로 연결된 한국의 기득권 부패 카르텔의 개혁이다. 정권은 수없이 교체되고, 촛불시민이 아무리 광화문과 서초동에 많이 나와도 이것을 바꾸어내지 못하면 서민 대중은 개돼지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 민주화 이후, 아니 그 훨씬 전부터 한국은 사법-관료-언론 복합체가 지배하는 ‘1당 국가였다. 이런 국가에서 정책은 실종되고 정당이 해야 할 일을 시민이 거리에서 수행하였다. 검찰과 언론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니, 조국 사태와 같은 이슈가 국가의 여론을 집어삼키고 정작 중요한 국가사회적 대사는 수면 아래에 잠긴다. 정치가 제 일을 해야 한다. 선거제도와 정당시스템 전반에 걸친 정치개혁이 중요한 이유다. 불평등, 교육, 저출산, 기후위기 등의 시급한 과제에 몸을 던질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기대한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한겨레 2019.10.18.

 

검찰 개혁의 훼방꾼들

현재 공수처법은 문재인 정권의 집권 연장 시나리오일 뿐이다. 다음 국회로 넘겨야 한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 등 패스트트랙에 오른 검찰개혁 법안 입법을 확실하게 추진하겠다는 더불어민주당에 이렇게 반격했다.

 

집권 연장 음모론다음 국회로는 검찰개혁 반대 세력이 끊임없이 반복·재생한 단골 레퍼토리다. 검찰개혁에 공감하는 듯한 착시를 유발해 국민을 현혹하지만, 본질은 개혁 불가론이다. 공수처법 논의가 시작된 건 1996, 참여연대가 주도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참여연대 사무처장 시절인 1998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표에게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신설안이 담긴 부패방지법 제정을 제안하기도 했다.

 

답보하던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검찰개혁 의제로 끌어올린 건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는 대통령 후보 시절인 20021211새로운 정치를 위한 기자회견을 통해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비리 척결을 위한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설치를 공약했다. 200411공직부패수사처 설치에 관한 법률을 국회에 냈다. “검찰 권한 약화를 노린 것이라며 반발한 검찰은 야당 의원들에게 반대 의사를 전달했다. 한나라당은 청와대 직속의 거대한 사직동팀을 만들어 권력기관을 장악하려는 의도라며 반대했다. ‘공수처 백지화 촉구 결의안까지 내며 버텼다. 결국 국회 회기 종료와 함께 공수처법은 자동폐기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 성 접대 스폰서 검사, 우병우 사태 등 수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검찰을 충견으로 활용해온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공수처에 무관심했다.

 

지난 4월 자유한국당을 뺀 여야 4당 공조로 패스트트랙에 오른 공수처법은 입법을 눈앞에 뒀다.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 심사 기간 180일이 만료되는 26일 이후 본회의에 상정, 표결할 수 있다. 여기까지 오는 데 무려 20여년이 걸렸다. 자유한국당은 오래된 레퍼토리를 반복한다. ‘장기집권 사령부’, ‘정권의 특수부. 급기야 황교안 대표는 공수처를 문재인 정부의 게슈타포라고 명명했다. 인종학살을 일삼던 나치의 비밀경찰에 빗대는 건 몰염치한 일이다. 여야 4당은 무수한 논의를 거쳐 절충했다. 공수처에 수사권과 영장청구권을 부여하되 판사와 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에 대해서는 기소권까지 갖도록 한 민주당 백혜련 의원 안과 기소권은 일반인으로 구성한 기소심의위원회에 부여한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 안이 함께 패스트트랙에 올랐다. 논의와 조정으로 해결하면 된다.

 

공수처법의 본질은 검사, 판사, 경찰, 국회의원의 범죄를 다루는 것이다. 수사권, 기소권, 영장청구권을 모두 거머쥔 채 자기 식구의 비리는 감싸고 정치적 목적으로 수사권을 남용해온 무소불위 검찰을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의 핵심이기도 하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권한을 나누고, 공수처로 검찰을 견제하는 방식이다. 국민의 70~80%가 일관되게 지지해온 법안이다. ‘조국 대전을 거치면서 필요성은 더 명확해졌다. 검찰조차 드러내놓고 반대하지 못한다. 장기집권 음모론은 검찰 기득권 수호대를 자처한 자유한국당의 무분별한 버티기일 뿐이다.

 

이런 현실에서 금태섭 민주당 의원이 수사권·기소권 완전 분리를 주장하며 공수처법 반대를 역설하는 건 유감이다. 온전한 검찰개혁을 원하는 것이라 믿고 싶다. 그러나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첫째, 그가 말하는 방식의 공수처법 합의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둘째, 자유한국당 검찰 출신 의원들의 주장과 결과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경찰 수사의 인권침해나 권한 남용을 막는 것은 검찰의 존재 이유라며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없애는 방안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금 의원 주장은 전형적인 검찰 논리다. 무소불위 검찰은 수십년 동안 경찰의 인권 감수성 미비를 이유로 권한 나누기를 거부하며 경찰을 하인 부리듯 했다. 검찰과 경찰, 두 기관의 권한 배분 문제를 인권의 문제로 치환해 논쟁의 본질을 흐리는 건 검찰의 해묵은 수법이다. 강기훈씨 유서대필 조작, 간첩단 조작 등 인권을 침해한 것도 검찰이다. 검찰 개혁을 돕지는 못할망정 훼방꾼은 되지 말아야 한다. 신승근 논설위원 한겨레 2019.10.18.

 

'도덕 정치'의 덫

도덕 정치의 덫에 갇힌 진보정치는 미래가 없다·

도덕 정치의 소용돌이온 나라가 도덕정치, 엄밀히 말하면 '도덕적 단죄 정치'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과거에 수없이 보아왔던 모습이다. 조국 장관이 사퇴했으니, 그 결말도 비슷한 모양새가 되었다. 후보자 시절부터 시작된, 조국을 도덕적으로 단죄하려고 하는 사람들과 그 근거가 타당하지 않다며 그를 지키려는 사람들 간의 진실과 가치를 둘러싼 싸움이 끝을 모르고 지속되었다. 아마도 사퇴가 그 대결의 끝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다투어야 할 진실이 있고 따져야 할 가치들이 있고, 성찰하고 또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서초동 조국수호 및 검찰개혁 촛불'이 타올랐고, 다른 한편에서는 '광화문 조국 사퇴 태극기'가 출렁거렸다. 이것을 두고 국론 분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확산되었는데, 아쉽게도 국론 분열의 근원을 제대로 따지고 있지 못하고, 또 원래 국론이란 분열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별로 설득력이 없다. 게다가 대부분 이러한 우려를 조국 사퇴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유로 제시하려 했다. 사실 이익과 가치가 서로 갈등하고 대립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론이 하나로 모이지 않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저 국론은 분열되어 있으며, 이 사실이 국면에 따라 좀 더 격렬하게 표출되기도 할 뿐이다. 그래서 국론 분열을 우려하려면 이러한 분열의 원인을 따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국론 분열의 근원을 따져 들다 보면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가 드러난다. 그것은 '도덕 정치'의 폐단이다. 개인에 대한 도덕적 단죄의 근거가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정치권에서든 시민사회에서든 너도나도 개인에 대한 도덕적 비난에 몰두하면서 정치를 후퇴시킨 것이다. 도덕적 비난은 대중들로부터 당장의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유용하지만, 이러한 감정에 매몰될수록 사람들은 합리적 판단이 어려워지고 개인이 아닌 제도나 정책에 대한 관심도 희석되기 쉽다. 그러는 동안 진정 추구해야 할 도덕은 사라지고 정치는 거짓과 음모가 난무하는 아수라장이 된다.

 

도덕 정치가 위험한 것은 '도덕'이 위험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정치'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도덕을 정략적 수단으로 만든다. 여기에는 좌도 우도 없고, 위도 아래도 없다. 대중에게서 상대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나 인식을 끌어내고 또 공격하는 데에 도덕만큼 손쉬운 수단은 없으며, 그런 만큼 정치인들이나 정치적 의도를 지닌 사람들에게 도덕은 매력적인 공격수단이 된다. 하지만 그 진실에 도달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감정에서 이성으로 움직이는 시간이다. 그래서 이제 도덕적 단죄(비난) 정치가 얼마나 정당했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도덕적 단죄의 근거가 얼마나 타당한지를 따져보아야 하며, 또한 상대방에 대한 공격에 도덕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누구이며, 또 그 이면에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자리 잡고 있는지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조국 가족의 위법행위에 근거한 도덕적 비난은 정당했나?  

얼마 전 '나눔문화'가 낸 성명은 조국에 대한 법적, 도덕적 의혹을 둘러싼 비난이 지닌 과도함을 잘 지적한 바 있으며, 검찰개혁과 진보의 성찰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있는 주장을 제시하였다. 비슷한 맥락에서 조국 가족의 위법행위 의혹에 근거한 도덕적 비난은 타당했는지를 따져보자. 조국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후, 조국 가족에 대한 각종 위법행위에 관한 의혹들이 제기되면서 비난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위법행위의 근거가 타당한지를 따져보기도 전에 마치 사실인 것처럼 언론을 통해 확산되기 시작했다. 언론은 표창장, 장학금, 논문, 사모펀드 등 의혹들을 마치 확증된 불법행위인 것처럼 단정하면서, 그와 그 가족을 범죄자로 낙인찍고 도덕적으로 단죄했다.

                  

그 배후에는 검찰이 있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내세우며 인사청문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수사를 개시하고 압수수색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피의사실을 언론을 통해 흘리기 시작했다. 조국의 자녀들은 표창장을 위조하거나 논문을 부당하게 이용하여 대학에 진학하고 또 부유층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장학금을 받아 챙긴 파렴치범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입학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조국가족은 특혜와 특권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고, 이것은 법적 단죄를 넘어 도덕적 단죄를 하는 근거가 되었다. 사모펀드로 돈벌이를 했다는 의혹도 여기에 한몫했다. 특히 진보적 지식인으로서 과거에 쏟아냈던 사회비판의 목소리와, 특혜와 특권을 누린 개인의 삶 간의 불일치가 부각되면서, 조국은 언행이 불일치한 위선자로 낙인이 찍혔고, 특히 진보좌파 지식인들이나 언론으로부터는 배신자 취급을 받았다.

 

개인에 대한 숱한 도덕적 비난과 인격적 모욕이 이루어졌지만, 그 과정은 결코 정당하지 않았다. 검찰이 소위 먼지털기식 수사나 엄청난 횟수의 전방위 압수수색을 한 과정은 정당하지 않았으며, 명백한 불법의 근거가 제시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타당하지도 않았다. 검찰의 언론플레이가 난무하고 언론의 모욕주기 기사들이 흘러 넘쳐났지만, 다툼의 여지가 있을 뿐 확증된 범죄 사실은 없었다. 법을 지켜야 할 검찰이 앞장서서 피의사실공표금지법을 어기는 꼴이 되었고, 무죄 추정의 원칙은 언론기자들의 기사 작성에 아무런 지침이 되지 못했다. 이것은 소위 진보언론이라고 얘기된 <한겨레><경향신문>도 예외가 아니었고, 오히려 비난에 더 열을 올렸다.

 

법으로 보나 증거로 보나 확증된 위법행위가 없는 상황에서 공인이라는 명분으로 개인과 그 가족에게 도덕적 비난, 조롱, 모욕을 퍼부을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물론 의심의 여지가 있으니 비난할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싫은 감정을 가질 수도 있다. 확실한 근거도 없이 공개적인 매체를 통해 인격적 모욕을 퍼붓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나중에 불법이 확증되면 이에 따른 책임을 묻고 비난하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불확실한 근거에 기초하여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언론과 지식인들은 개인에게 온갖 인격적 비난과 모욕을 퍼부었다. 그래서 최소한 불법의 근거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잘못된 판단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이 보여야 하는데, 옹졸하게도 사과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조국에 대한 도덕적 비난은 정당한가  

조국을 법적으로 단죄했던 사람들은 법적 판단의 과오를 도덕적 비난으로 희석시키는 길로 나갔다. 그리하여 사회정의를 내세워 입바른 소리를 하던 사람이 알고 보니 특혜와 특권을 누리며 살지 않았느냐며 도덕적 비난을 하기 시작했다. 대학 수시입학 과정에서 드러난 각종 스펙들이 일반 학생들과 비교되면서 부당한 특혜로 몰렸고, 공식적인 대답을 얻고 투자한 사모펀드에 대해서도 그 적절성을 의심받았다. 조국 가족의 특권과 특혜를 부각시키기 위해 힘없고 ''없는 청년들,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소환되었고, 이를 통해 조국가족을 특혜와 특권, 불평등의 화신으로 만들어놓았다. 조국 가족은 이제 야당 정치인들, 지식인들, 언론인들이 합심하여 물어뜯고 모욕할 수 있는 공공의 적이 되었다. 그들은 아무런 사생활도 인격도 보장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 고등학교 교사가 조목조목 반박한 바가 있듯이, 그 시절 입시제도에 맞춰 대학을 가려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것은 단지 조국 가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조금만 시야를 넓혀서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을 언론은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개인적 특혜와 특권으로 몰아가며 인격적 모욕을 주기에 바빴다. 오히려 네티즌이 입시제도의 성격과 특권 구조를 파헤치면서 이것이 개인의 문제로 돌려 개인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는 제도의 문제임을 보여주었고, 조국 자녀만이 아니라 '조국 사퇴'를 외쳤던 명문대 학생들도 그러한 구조 속에서 특권을 누렸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혜와 특권을 겨냥한 도덕적 비난은 시민대중의 도덕적 감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부유층이 아니면 쉽게 동조할 수 있는 비난이었기에 언론은 도덕적 비난을 멈추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보수우파 언론이나 지식인들이야 원래 조롱거리를 찾아 나서는 하이에나들이라는 게 별반 새롭지 않다고 하더라도, 검찰개혁을 좌절시키려는 이들의 조국 죽이기 의도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일부 진보좌파가 지나친 도덕적 기준을 내세워 도덕적 비난을 넘어 인격적 조롱과 모욕주기 대열에 참여한 것은 씁쓸함을 넘어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과연 개인을 인격적으로 조롱하고 모욕하면서 온 국민의 껌딱지로 만드는 것이 인권을 중요시해온 진보좌파의 바람직한 태도일까? 개인에 대한 조롱과 모욕을 더 잘하는 것이 더 진보적인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물론 조국 장관이 과거 젊은 시절 운동권에서 함께 추구했던 가치를 성찰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고 적응하며 살았다는 사실은 진보좌파의 괘씸죄를 살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인격적 모욕을 당할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많은 발전을 이루었고 그 속에서 직장을 얻고 결혼도 하고 자녀도 키우게 된 사람이 사회적 지위와 처지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이 무슨 심각한 범죄인 것도 아니고 비슷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더한 특혜와 특권도 누리며 사는데, 높은 도덕적 기준을 앞세워 인격적 모욕주기를 하는 것이 과연 진보좌파가 취해야 할 입장인지 묻고 싶다.

 

개인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 놓치고 있는 것들   

일부 진보좌파가 주도한 도덕적 단죄 정치는 정의당을 포함한 진보좌파 세력에게 큰 정치적 부담을 안겨줄 것이다. 우선 개인의 도덕적 흠결에 초점을 맞춘 정치전략은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세력과의 차이를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개인의 도덕적 비난에 몰두하는 도덕정치에 빠져들수록 그들은 보수우파의 프레임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보수언론의 전략에 동조하고 검찰개혁의 필요성마저 의심하면서 냉소주의에 빠져들었다. 이러한 전략은 진보좌파가 도덕정치에서 벗어나 불공정한 제도와 구조의 개혁에 초점을 맞추면서 사회개혁의 방향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데 실패했다. 이것은 도덕과 정의를 혼동한 결과였다. 도덕으로는 개인을 단죄할 수는 있지만 정의의 실현방안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정의는 사회관계, 사회제도를 통해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진보좌파의 도덕적 단죄 정치는 조국 개인에 대한 감정을 앞세워 개혁과 진보 연합세력이 내세운 조국수호와 검찰개혁과 거리를 두게 되면서 검찰개혁을 의심하고 심지어 윤석열 검찰총장을 옹호하는 길로 나아갔다. 두 세력 간의 논쟁과 갈등은 '진보의 분열'로 이어졌으며, 이것은 진영논리를 강화하면서 연대의 균열을 낳았다. 차별화를 내세운 일부 진보좌파의 전략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불만을 조국 장관에게 과도하게 투사함으로써 쟁점을 흐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개인에 대한 도덕적 비난에 치중하면서 제도적 정의의 문제를 부각시키는 데 실패하면서 보수세력의 도덕적 단죄 정치에 흡수되어갔고, 이로 인해 검찰개혁을 위한 연대도 놓치고 제도개혁에 대한 공감 확산에도 실패하는 이중적 실패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조국 죽이기'에 대한 집착은 청년세대의 분노에 공감해야 한다는 과도한 감정적 대응의 결과인 듯하다. 사실 불평등, 특혜, 특권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었고, '조국 사태'와 관계없이 늘 제기되어야 할 문제였다. 그런데 조국 가족의 특혜와 특권 문제가 갑작스럽게 부각되자, 일부 진보좌파 지식인들이나 언론인들은 청년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소환하면 조국 개인에 대한 도덕적 비난과 인격적 모욕주기에 몰두했다. 당장에는 청년들과 비정규직의 분노에 호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검찰개혁과 특권 및 사회불평등 구조는 서로 환원할 수 없는 각각의 과제이며, 조국 가족에 대한 도덕적 비난을 통해 해결할 수는 없는 과제이다. 언론권력과 검찰권력의 개혁 좌절 선동과 모략에 맞서 검찰개혁을 추진해나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고 또 조국 장관이 그 중심에 놓여있는 상황임에도, 일부 진보좌파는 조국 개인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며 사퇴시키는 것을 급선무로 생각하는 감정적 대응으로 나아갔다. 이것은 결국 보수우파의 도덕적 단죄 정치에 흡수되는 결과를 낳았다.

정태석 전북대 교수 프레시안 2019.10.18.

 

'떡값 검사', 비리 의사'가 판치는 세상

[민미연 포럼] '전문직(profession)''비즈니스(business)'가 되면?

영어에는 '직업'을 표현하는 말들이 참 많다. 가장 일반적인 표현인 'occupation'을 비롯해서 천직으로서의 직업을 의미하는 'calling''vocation', 목수나 석수 같이 손의 기술과 훈련을 필요로 하는 직업을 의미하는 'trade', 일생의 일이라고 할 전문적 직업을 의미하는 'career' 그리고 일자리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는 'job', 'work', 'employment' 등이 있다.

 

그리고 이밖에 직업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영어 표현 중 주로 '전문직'으로 번역되는 'profession'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보통 이와 대비되어 쓰이는 'business'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직업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이 중에서도 특히 'profession'이라는 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이는 그 종사자들 자신이 "헌신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천명(profess), 즉 고백(confess)한 활동이나 직업을 말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이런 전문직은 그 종류가 다양해졌으나 전통적으로는 의사, 법률가, 성직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전통적인 각각의 다양한 전문직 종사자들이 "스스로 헌신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하거나 고백한" '삶의 방식들'이란 당연히 헌신할만한 가치가 있는 '삶의 방식'일 것이다. 그래서 법률가는 합법적이고 정당한 것을 우러러보면서 자신의 의뢰인들을 위해 부정의를 바로잡는데 헌신해야 하고, 성직자는 성스럽고 신성한 것을 우러러보면서 자기 교구민들의 영혼을 돌보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 그리고 의사는 건강과 생명의 가치를 우러러 보면서 환자들의 치료에 헌신해야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 20170227일 개정된 '변호사윤리장전'의 첫 번째 항목에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사회정의의 실현을 사명으로 한다"고 되어 있고, 한국의사협회에서 20170423일에 개정한 '의사윤리강령' 첫 번째 항목에도 "의사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며, 의료를 적정하고 공정하게 시행하여 인류의 건강을 보호 증진함에 헌신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어원적으로 보더라도 전문직 종사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기술자가 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그것은 우리의 도덕적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직은 어원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윤리적인 직업이다. 흔히 여러 학자들은 "전문직에게는 해당 분야에 대한 높은 수준의 기술과 지식을 필요로 하며 일정한 자격이 요구"되고 "공공에 대한 봉사를 주된 목표로 삼으며 기술과 지식을 사회적으로 유익하게 사용할 책임을 지닌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전문직은 "금전적 보수를 일차적인 목적으로 추구하지 않으며 물질적인 부를 획득하는 것을 자신의 직업상 성공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학자들은 전문직의 조건으로 '자율성', '공식적인 조직', '윤리강령의 준수' 등을 제시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전문적인 업무는 그들만이 지니고 있는 특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에 자율적인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전문직은 의사협회나 변호사협회 등과 같이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하나의 통일된 조직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며, 전문직에게는 저마다 윤리강령 및 행동강령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자들뿐만 아니라 실제로 의사나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직업이 다른 직업과 차별화되는 특성에 대해 물었더니 대부분 '이론적 지식에 기초한 기술'을 요구하고 '교육 훈련을 통한 준비'가 필요하며 '공식적인 조직''윤리적인 행동강령'을 가지고 '이타적인 서비스'를 한다는 것을 대표적 특성으로 꼽았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얘기들은 공자님 말씀처럼 교과서에나 나오는 한가한 소리라고 비웃기라도 하듯, 우리 사회에서는 전문직 종사자들의 비리 행위가 심심치 않게 보고된다. 사실 전문직 종사자들은 전문지식을 통하여 사회에 기여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그들의 특정한 지식과 기술 그리고 그로 인해 주어지는 자율성이나 권세가 잘못 사용되는 경우 사회에 해로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다분히 가지고 있다.

 

얼마 전 "과잉진료 동료 치과의사의 면허를 취소해 달라"는 현직 치과의사의 청와대 청원이 있었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관련 기사 : 92일 자 <쿠키뉴스> '"과잉진료 동료 치과의사, 면허 취소해 달라"..현직 치과의사 청원') 얘기인즉슨 한 의사가 환자를 상대로 쓸데없이 이를 갈고 뽑고 하는 등 범죄 수준의 과잉진료로 6살짜리 어린아이부터 89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수백 명의 환자들에게 끔찍한 피해를 줬다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그 의사는 본인이 잘못한 것이 없고 정상 진료를 했으므로 사과를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피해 환자들에게 소송하라고 큰소리를 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과잉진료 의혹을 받고 있는 치과의사로부터 병원을 인수하여 운영 중인 동료치과의사 김 씨가 "악행을 저지르는 의사의 면허를 어렵게 취소시켰다 하더라도 다시 1~3년 뒤 보건복지부의 심사를 통해 의사면허가 재발급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그런 의사를 처벌할 수 있도록 의료법을 개정할 것을 청와대 게시판에 청원했다는 것이다.

 

사실 치과의사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몇 해 전 '양심 치과의사'로 알려진 강창용 원장이라는 분은 이른바 치과계의 과잉진료 행태의 실상을 폭로해 SNS를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강창용 원장은 이일로 일부 업계 사람들에게 내부고발자로 낙인찍혀 곤욕을 치르는 일도 있었다. 최근 강창용 원장은 아예 과잉 진료 치과 의사의 영업기술을 전하며 그 기술에 대처하는 방법을 소개한 <치과의사의 거짓말 : 과잉 진료 치과 의사가 절대 말하지 않는 영업의 기술>(강창용 지음, 소라주 펴냄)이라는 책을 출간하기까지 했다. 치과의사는 물론 의료인들은 전문직 종사자들로 그들 나름의 윤리강령이 있고 사실 많은 의료인들은 자신의 소임을 다하며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이런 사건들은 접하고 보면 과잉진료로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의사들도 적지 않게 있는 것도 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흔히 전문직이라고 불리는 직업의 이런 비리 행태는 의료계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의료계의 '과잉 진료'라는 말 못지않게 우리는 또 다른 대표적인 전문직인 법조계의 비리 행태를 나타내는 '전관 예우', '스폰서 검사', '떡값 검사'니 하는 등의 말들을 쉽게 접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과 연관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도 우리에게는 이미 익숙한 말이다. "돈이 있을 경우 무죄로 풀려나지만 돈이 없을 경우 유죄로 처벌받는다는 말"이다. 이런 말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대부분의 비리 행위는 돈이라는 것과 결부되는 것 같다.

 

더군다나 이러한 비리들은 관행적 비리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는 일부 이러한 비리를 '법조계의 관행'이니 '문화'니 하는 말들로 표현하며 당연하고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실제로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최근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략 10명 중 9(88.8%) 꼴로 여전히 한국사회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사회라는데 공감"을 했고, "법보다는 주먹이나 돈의 힘이 더 세다고 바라보는 시각도 64.7%에 이른 것"으로 조사되었다는 것이다.(관련 기사 : 20181111일 자 <세계일보> '유전무죄 무전유죄법 지키면 손해인 대한민국?') 게다가 전체 응답자의 85.8%가 권력자들은 법을 잘 지키지 않는다고 바라보기도 했다는 것이다.

 

종교계 또한 예외가 아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어려운 환경에서 묵묵히 봉사하는 삶을 사는 성직자들도 많지만 일부 성직자들의 비리도 만만치 않게 언론에 오르내린다. 대형 교회의 횡령 등 재정비리 및 교회 세습 문제는 단골 메뉴다. 그리고 교회 사유화와 재벌형 기업화 등이 적폐로 지적되기도 한다. 불교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불교계에서도 부처님보다 돈을 더 섬기고 주지가 모든 재정과 권력을 독점해 승가 공동체를 붕괴시키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게다가 종교인들조차도 일부 성직자들의 비리는 종교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할 지경이고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기보다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이렇듯 오늘날 도덕성에 뿌리를 두고 있어 주로 공공이나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특성으로 하는 전문직 종사자들과 관련한 비리 행각들이나 행태들이 심심치 않게 보고된다. 그리고 여론조사 결과 등을 통해 보듯이 이들의 이런 행태들은 세인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게다가 요즈음 벌어지는 촛불집회에서 보듯, 우리는 전문직 종사자들 개인뿐만 아니라 검찰과 같은 전문가 집단 자체가 우선적이고 핵심적인 개혁대상으로 지목되는 현상을 목도하기도 한다. 물론 어찌 우리 사회에 개혁대상이 검찰뿐이겠냐 마는, 이들에게는 누구보다도 강한 도덕성이 요구되기에 그 잘못이 특별히 더 부각되어 크게 조명을 받게 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저마다 이런 비리 행위가 저질러지는 데는 여러 이유들이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앞서 늘어놓았던 전문직의 본분을 망각하는 경우가 일반적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본분을 망각하는 것이란 자신들이 강령을 통해서든 선서를 통해서든 "스스로 헌신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하거나 고백한 삶의 방식들"을 저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앞의 사례에서 보듯 이러한 삶의 방식들을 저버리고 이들이 주로 추구하는 것은 주로 금전적 이익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들은 앞서 말한 "공공에 대한 봉사를 주된 목표로 삼으며 자신의 기술과 지식을 사회적으로 유익하게 사용할 책임"을 지니고, "금전적 보수를 일차적인 목적으로 추구하지 않으며 물질적인 부를 획득하는 것을 자신의 직업상 성공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전문직의 조건에 반해, 고의적이든 부지불식간이든 그런 본분을 저버리고 영리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비즈니스로서의 직업인으로 전락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환자나 의뢰인들 혹은 교구민들의 건강이나 정의, 영혼의 평화라는 최선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영업이익에 보다 집중하게 되고 영업실적을 올리기 위해 무리수를 두게 되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전문직 종사자들은 헌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의 방식을 저버림으로써 바로 윤리적인 직업으로서의 전문직을 영리 추구를 주요 목적으로 하는 비즈니스로 만들어 버리고, 따라서 금전적 이익에 치중하게 만들며, 이것은 바로 그들을 필연적으로 잘못된 삶의 방식에 이르도록 만들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오늘날처럼 이윤의 획득을 가장 큰 목적으로 하고 물질적 및 금전적 가치가 중시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문직이 무슨 봉사활동도 아니고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따질 수도 있다. 그리고 오늘날 현실에서 보통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의대나 법대에 진학하고 의사나 판사, 검사, 변호사가 되어 부와 권세를 누리는 꿈을 꾸고 실제로 그렇게 사는 것이 어쩌면 지극히 일반적이고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물론 전문직 종사자도 직업인인 이상 생계가 유지 되어야 한다. 보수를 받지 않고 일하는 봉사활동을 직업이라고 할 수 없듯이, 전문직이 무료봉사만 한다면 그것 또한 직업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한 비즈니스가 영리 추구를 주요 목적으로 한다고 윤리적이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도 아니다. 비즈니스가 윤리성을 구비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직업이 아니다. 이는 마치 도둑질이나 강도질, 사기 혹은 도박, 매춘사업 등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 나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직업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서 어떤 직업이든 그것이 바람직한 직업이려면 생계유지는 물론 윤리성을 갖추어야 한다. 거기에다가 자아실현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요지는 우리의 현실이 어떠하든 전문직은 어원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본질적으로 윤리적인 직업이기에 영리나 이윤 추구가 주목적이 되는 이른바 사업, 즉 비즈니스가 될 수 없고 또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영리병원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리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특히 본질적으로 윤리적이어야 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본분을 망각하고 돈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우 그것은 필연적으로 범죄적 수준의 비리로 연결되기 쉽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보건대 틀림없이 전문직은 특성상 금전적이거나 물질적인 가치와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냥 '직업'이거나 '비즈니스'가 아니라 '전문직(profession)'인 것이다.

김완구 민족미래연구소 소장 프레시안 2019.10.20.

 

너무 놀라지 마라

황교안과 유승민이 합칠 수도 있다. 그러나 태극기 부대, 자유한국당, 중도 보수층이 반문 연합의 깃발 아래 하나로 통합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보수는 더 이상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탄핵 이전의 시간에 머물러 있는 구보수와 탄핵의 강을 건넌 신보수는, 진보와 보수처럼 서로 다른 존재다. 강을 건넌 건지 아닌 건지, 도강 중인지 알 수 없는 한국당, 바른미래당의 유승민·안철수·손학규는 다 다르다. 보수 통합을 한다 해도 통합에 참여하지 않는 보수세력이 반드시 나온다. 세상이 변했다. 보수의 다원성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이들이 연대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시민들도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부끼는 광화문 대규모 집회에 참석해 분노를 터뜨린 바 있다. 대규모 광화문 집회는 더 이상 없지만, 중도층은 그 집회를 통해 이미 살짝 선을 넘었다. 이들은 총선을 앞두고 돌아올까?

 

여권은 기존 태도를 바꿀 생각이 없어 보인다. 성찰하지도 않고, 민심에 역행한 책임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정치갈등의 책임을 야당에 돌렸다. 한국당이 정신 차리고 혁신했다면, 여권이 이렇게 태평할 수 없다. 하지만 상승기류를 탔다고 믿는 한국당은 이대로 좋다고 생각한다. 한국당에 혁신의 내적 동력이 없을 때 외부 자극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대로 가겠다는 여권은 결코 한국당에 자극제가 되지 않는다. 여권과 한국당은 서로에게 긴장감을 주지 않는, 안심할 수 있는 파트너이자 편안한 존재다. 사실 양측의 적대적 공존과 현상유지 전략은 상대가 변심하지 않을 것을 굳게 믿는 신뢰동맹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했다. 한국당을 너무 믿으면 안된다. 한국당이 대안은 못 되더라도 내년 총선에서 사고 칠 수는 있다. 이런 경우다. 문재인 정부를 지지했던 시민들이 분명한 실책을 바로잡지 않는 집권세력에 따끔한 경고를 주기로 마음먹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어떤 당을 찍을 것인가가 아니라, ‘민주당을 찍지 않는 것이다. 한국당은 잠시 빌려 쓰는 도구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동안 문재인 정부를 지지했던 처지에서 한국당, 3보수당을 찍을 때의 찜찜함, 혹은 심리적 부담을 덜 수 있다. 그렇게 그날 아무도 모르는 반란이, ‘조용한 복수의 밤이 펼쳐질 수 있다.

 

근거 없는 상상일까? 20대 총선에서 우리가 목격한 게 바로 조용한 복수극이다. 2016년 야당은 민주당과 국민의 당으로 분열하고, 지지율은 여당인 새누리당이 훨씬 높았다. 새누리당은 승리를 자신했다. 하지만 박근혜에게 신호를 보내기로 결심한 시민은 그날 숨소리도 내지 않고 정국을 여소야대로 뒤집어놓았다. 그렇게 패배하고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눈 깜짝 안 한 박근혜를 시민이 어떻게 했는지는 생략한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쯤 국정 전반을 뜯어고치고 있어야 한다.

 

10년 전 박근형 연출의 연극을 본 적이 있다. 돈 한 푼 벌지 못하는 남편은 영화감독이랍시고 밖으로만 나돌 뿐 집안일에 아무 관심이 없다. 세상이 무서워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시동생은 변비로 고생한다. 변기통을 타고 앉아 끙끙거리지만 소용없다. 생계를 위해 노래방 도우미를 하는 며느리는 매일 밤 술에 취한 채 귀가하고, 어느 때는 손님을 안방으로 들인다. 친구 부음을 듣고 문상 갔던 시아버지는 집 나갔던 아내가 상주 노릇을 하는 걸 보고 집 화장실에서 목을 맨다. 환풍기 없는 화장실에서 시체가 썩어가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관객은 눈앞에 펼쳐지는 기이한 가족 이야기에 놀라지만, 무대의 주인공들은 그게 일상인 듯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한다. 관객과 배우 간 거리감·어긋남이 인상적이었던 이 연극을 10년 만에 다시 보았다. 이번에는 극장이 아닌, 한국정치 무대에서다. 이 무대에서도 주연·조연, 여야 가릴 것 없이 충격적인 일을 벌여 시민을 놀라게 해놓고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낸다. 연극이 그런 것처럼 정치 무대에도 제 본분을 다하는 정치인은 한 명도 없다. 자기들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는 가족들처럼 여권도 자신이 벌여놓은 일을 주워 담을 생각을 않는다. 그러니 6개월 뒤 무슨 일이 생겨도 너무 놀라지 말기 바란다. 10년 전 본 연극의 제목이 <너무 놀라지 마라>.


민주당은 6개월 뒤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만 한다. 나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별로 고려하지 않는다. 권력을 다루는 자신의 능숙한 기교를 믿기 때문일 것이다. 하기야 사형수도 교수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사면될 거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권투선수 마이크 타이슨은 말했다. “누구나 그럴 듯한 계획은 갖고 있다. 한 방 맞기 전까지는.”   이대근 논설고문 경향 2019.10.22.

 

판사들이여 형사소송의 원칙을 기억하라

검찰이 조국 전 장관의 배우자 정경심 교수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판사들이 형사소송의 원칙을 잊고 재판한다는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먼저, 재판 중인 피고인은 검사와 대등하다는 원칙이다. 검사가 같은 사건으로 영장을 청구하여 당사자인 피고인을 구속할 수 없다. 기소된 사건과 다른 사건으로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는가? 형사소송법은 ‘1개의 목적을 위하여 동시 또는 수단·결과의 관계에서 행하여진 행위는 동일한 범죄사실로 간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피의자 구속에서 수단과 목적 관계에 있는 범죄(가령 주거침입과 절도, 감금과 강간)는 동일한 범죄로 본다는 것이다. 별건 여부를 유추할 수 있는 규정이다.

 

정 교수의 혐의 중 재판 중인 사문서 위조와 위조사문서 행사, 업무방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증거인멸은 모두 수단과 결과·목적 관계에 있으므로 같은 범죄로 볼 수 있다. 별건은 허위작성공문서 행사, 업무상 횡령, 허위신고·미공개정보 이용 등 자본시장법 위반이다. 영장청구로 피의자가 아닌 재판 중인 피고인에 대한 별건구속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당사자 대등주의에 비추어 중대한 별건 범죄 등 훨씬 제한되어야 한다.

 

다음, 무죄추정에서 나오는 불구속 수사·재판 원칙이다. 구속의 목적은 증거 확보 및 수사와 재판 절차를 진행하기 위함이다. 반면에 사회활동 등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한다. 형사사법의 효율과 신체 자유 사이에 균형, 즉 비례성이 필요하므로 비례성의 원칙도 실질적인 구속의 요건이다.

 

구속요건은 현저한 범죄혐의’, 기소할 때 요구되는 충분한 혐의보다 높은 유죄를 받을 고도의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 도망이나 도망의 염려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야 한다(형소법 70). 이미 한 증거인멸은 증거가 확보되어 처벌 여부만 문제되므로 도망과 달리 구속요건이 아니다. 구속이 수사의 편의나 자백, 특히 공범 범죄에 대한 자백 강요 수단으로 이용될 수 없다.

 

중 허위작성공문서 행사죄는 한인섭 서울대 교수 등 당시 인권법센터의 권한이 있는 자가 공문서를 허위로 작성하지 않았다면 행사도 처벌될 수 없다. 나머지 범죄혐의는 공범인데, 조 전 장관의 5촌 조카 조모씨와 같이 약점이 많고, 구속되어 있는 자의 진술에 의존하고 있어 신빙성 여부가 문제될 것이다. 증거은닉과 증거위조죄는 본인이 한 범죄는 처벌할 수 없으나, 교사하면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이 판례이지만 통설은 교사도 처벌을 부정할 정도로 비난 가능성이 약하다. 따라서 다른 요건을 논하기 전 현저한 범죄혐의가 있는지 의문이다.

 

중 문제는 증거인멸의 염려이다. 이 사건과 같이 장기간 압수 등으로 증거가 충분히 확보된 경우에는 이를 인정하기 어렵다. 공범에게 허위진술을 부탁하려고 한다면 이에 해당되지만 정 교수가 구속된 5촌 조카 조씨에게 허위진술을 부탁할 수 없을 것이다. 딸에 대한 소액의 보조금법 위반은 검찰의 먼지털기와 비례성을 맞추기 위한 초조함을 보여줄 뿐이다.

수사기법의 하나가 공범을 구속해 회유 등으로 다른 공범의 가담 진술을 얻는 것이다. 판사가 지금까지 교과서를 잊어 관행으로 허용되었으나 이제는 용기가 필요하다. 판사가 정치적 논란을 무릅쓰고 원칙의 수호자가 될 수 있을까.

정한중 |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 경향 2019.10.22.

 

대학 졸업장, 가성비로 따져보자

좀 궁상맞은 편이다. 뭘 할 때마다 가성비따지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한 끼 식사를 아무리 호화롭게 해도 이 비용만은 넘으면 안된다는 기준이 꽤 완고하다. 호화로운 식사를 할 때는 미리 온라인에서 식당에 대해 조사해보거나, 이미 그곳에 가본 믿을 만한 사람의 인증을 확인한 후 찾아간다. 온라인 쇼핑할 때도 최저가 검색을 다양한 경로로 확인하고 여러 리뷰를 눈 아프게 읽고 난 뒤 구매한다.

 

이토록 효용 가치 높은 소비를 위해 노력하는 내가, 이미 저질러버린 낭비가 있다.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한 일이다. 4년치 등록금을 합산하면 약 2000만원.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생각해본다. 단편영화를 여러 편 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종의 인쇄물을 수만부 찍을 수도, 세계 여행을 갈 수도, 어쩌면 인스타 성지가 될 작은 가게를 시작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주택 보증금에 보태면 매달 들어가는 비용 부담이 크게 절감되겠지.

 

대학에서의 배움이 2000만원으로 할 수 있는 다른 일보다 더 큰 효용을 가졌는가.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 경우는 아니었다. 내 전공은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는데, 경영학과이다. 수능이 끝난 뒤, 입시 공부는 이제 지긋지긋했기에 대충 점수 맞춰 추상적인 이미지로 학교와 학과를 선택해 진학했다. 빼곡한 숫자와 기호를 보면 바로 기분 나빠지는 사람이 회계·재무관리·생산관리 수업을 필수로 들어야 하는 전공을 선택해버린 것은 인생의 실수였다. 졸업 후 경영학을 일상에서 활용할 일은 없었고, 배운 것의 대부분은 말끔히 씻겨 사라졌다.

 

지금 하는 일은 오히려 대학 밖에서의 배움과 관계됐다. 언론사 입사 스터디에서의 토론과 글쓰기. 인쇄소 사장에게 굽실굽실대며 익힌 잡지의 제작 과정. 지역 미디어센터의 영상 교육으로 찍은 단편영화. 이 모든 것들에 든 비용을 합쳐도 대학 등록금에 한참 못 미치지만, 대학보다 인생에 보탬이 됐다. 새로운 만남과 즐거움, 성장의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먹고사는 데 도움을 줬다.

 

적성에 맞는 전공으로 진학했다면 대학에 대한 인식이 좀 달라졌을까? 그러나 초··고 기간 동안 시험공부에만 매진한 뒤 적성 맞는 전공을 찰떡같이 선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것은 정시 확대 기조에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 내내 하나의 시험만을 목표로 시간을 보내게 하는 일은 학생들로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며 추구하는 인생이 어떤 모양인지 충분히 돌아볼 여유를 앗아간다. 한 줄로 세워 경쟁시키는 방식은 남을 깎아내리며 값싼 우월감을 느끼고 드러내는 어른들을 양산한다는 점에서도 문제적이다. 단순히 시험문제를 더 맞히게 하기 위한 사교육비용 증가도 예상되는 문제이다. 정시 확대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심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 너무 원론적이라 김빠지는 대답이지만, 대학에 가지 않아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가 되는 게 우선이라는 거다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약 70%로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대학 교육이 거의 무상인 독일의 대학진학률이 약 30%, 한국에 비해 학비가 매우 저렴한 프랑스 및 여타 유럽 선진국도 40%대이다. 대학등록금이 낮은 국가에서 오히려 대학진학률이 낮은 것은 학력 차별이 적기 때문으로 분석되곤 하는데, 이 말을 거꾸로 적용하면 한국에서는 차별받지 않기 위해대학에 간다는 뜻이 된다.

 

누군가를 만날 때, 그에 대해 종합적으로 느끼고 이해하기보다 단편적인 조건들로 평가한 뒤 태도에 차별을 두는 사람들. 한국에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들을 사회 곳곳에서 만나 자존감에 상처 입는 순간을 언제고 마주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졸업이 취업을 보장하지도 않는 형국에, 본인이 딱히 학문에 대한 열정이 없는데 단지 차별받지 않기 위해 인생 걸고 막대한 돈을 쓴다면, 정말이지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 아닐까? 그냥 사회에서의 차별을 없애는 편이 낫잖아? 그로써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확보된 자원을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활용하면 모두의 삶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입시 공정성보다 더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의제라고 생각한다.

최서윤 작가 경향 2019.10.23.

 

이제는 누구와 어떻게 공존해 살아갈지를 고민할 때다

초역세권, 프리미엄, 자산가치’.

신축 분양 아파트의 홍보 문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열쇳말들이다. 심지어 최근 어떤 아파트 홍보물에서는 자신들의 브랜드를 선택하면 내신이 올라간다는 문구를 발견하기도 했다. 공간을 둘러싼 자본주의적 욕망을 이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이 또 있을까?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도시학자인 앙리 르페브르는 현대 자본주의의 생산관계가 재생산되는 공간, 소외의 모든 형태를 담고 있는 공간으로서 도시문제에 주의를 기울였다. 르페브르에 따르면, 현대의 도시 공간 안에서 교환가치는 사용가치를 압도하고 있으며, 도시는 단순한 거주처로서만 기능할 뿐 사람들의 권리 공간으로서 사유되지 않고 있다. 그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데이비드 하비는 <반란의 도시>라는 저작에서 어떤 도시를 원하는지의 문제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 사회 및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지, 어떤 생활양식을 원하는지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고 역설했다. 이런 점에서,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논하는 것은 곧 우리 삶의 지속가능성을 논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도시의 주인은 시민?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할 때 도시의 주인은 시민이라는 명제가 의심 없이 통용되곤 한다. 시민들이 도시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권리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일 텐데, 시민들에게 정말 그러한 권리가 보장되고 있을지는 엄밀하게 고찰해 볼 일이다.

 

앞서 언급한 하비는 공유재를 사용할 권리는 공유재를 생산한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도시를 만들어낸 집단적 노동자들이 도시권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도시의 주인은 그 안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며, 이들의 요구에 맞게 도시가 만들어지고 변화해 가야 한다. 하지만 소수의 개인과 법인, 국가가 대부분의 토지 및 공간을 소유하고 있는 지금의 도시 구조 내에서 그런 권리들을 실현해 가기란 쉽지 않다.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도시의 소유와 전유의 구조를 사용자와 수요자 중심으로 바꾸어 내는 일이 그 어떤 것보다 선행돼야 한다.

 

지금, 여기의 희년(jubilee)’

소유의 재분배와 토지 정의를 이야기할 때, 많은 이들이 성서의 희년제도(jubilee, 주빌리)’를 언급한다. ‘희년50년마다 돌아오는 안식의 해로, 이때가 되면 노예를 석방하고 매매됐던 토지를 원래 주인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이는 단어가 뜻하는 바 그대로, 현재의 가난과 고통이 대를 이어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준다. 그런데 만약 가난과 고통의 대물림이 끊어낼 수 없는 굴레라면? 차라리 세대를 잇지 않겠다는 선택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0%대로 떨어졌다는 한국의 출생률 수치는 시민들이 체감하는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맞닿아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자산 대물림 수단으로 부동산 증여가 많이 선택되고 있을 만큼, 부동산은 한국 사회의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꼽힌다. 또한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은 오랜 기간 지역을 가꾸어 오던 주민들을 내쫓는 방식으로 도시를 재편 중이다. 도시는 가진 것 없는 이들이 계속해서 변두리로 쫓겨날 수밖에 없는, 치열한 전장(戰場)이 되어 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시민 자산화 혹은 공동체 자산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새로운 방식의 공간 소유 실험들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직은 활동단체들의 사무 공간과 지역의 일부 공유 공간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주거 공간과 토지 전반에 점차 적용해 간다면 좀 더 근본적이고 거대한 전환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더 가져야만 좋은 공간 누리는 도시

도시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의 주인이 된다는 뜻만은 아니다. 공간의 다양한 규칙들을 함께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공간의 운영 철학은 당연히 공공성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히는 포틀랜드의 사례를 살펴보자. 포틀랜드의 95개 주민자치 조직은 도시의 계획, 시설 및 서비스 공급 등에 관해 결정하는 거버넌스에 참여하면서, 살고 싶은 도시를 직접 만들어 가고 있다. ‘친환경 도시를 표방하는 포틀랜드에는 대중교통, 자전거 도로가 잘 조성돼 있으며, 현지 농산물을 주재료로 삼는 레스토랑과 파머스마켓이 수시로 열려 소규모 농가들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한다. 포틀랜드의 수많은 방문자는 그곳에서 좋은 삶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증언한다.

 

우리 중 상당수가 도시에서 나고 자라, 이곳에서 일자리를 얻고 살아간다. 그리고 좋은 삶보다는 성공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각자 전력을 다해 질주하고 있다. 그 속에서 도시는 삶의 활기와 표정을 잃었다. 도시가 명품에 비유되고 기업하기 좋은 공간으로 조성되는 동안, 정작 그 안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주체들은 소외되고 쫓겨나야 했다.

 

도시 공간을 자본 논리에 따라 계층화하고 파편화하는 이들은 우리에게 자꾸만 묻는다. “어디에 사느냐라고 말이다. 가진 정도에 따라 사는 곳과 환경을 결정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어디에 사는지를 묻는 것은 또 다른 폭력으로 다가갈 수 있다. 더 가져야만 좋은 공간과 삶을 누릴 수 있는 도시는 이미 지속가능한 도시가 아니다. 이제 누구와 어떻게 공존해 살아갈 것인지로 질문을 전환해야 할 때이다.

 

어디에 사는지보다 누구와 사는지’.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자산화와 다양한 삶의 실험들을 모색하는 협동조합형 아파트 위스테이(WE STAY)’의 캐치프레이즈다. 이제 막 한 걸음 나아갔을 뿐이다. 다양한 주체들과 함께, 더 다양한 캐치프레이즈로 변주해 가고 싶다.

양동수 사회혁신기업 더함 대표 경향 2019.10.23

 

좌우는 없고 위아래는 확실한 새로운 신분사회가 온다

유명인의 도덕성을 문제 삼는 보도에서 진위 여부는 큰 의미가 없다. 거론되는 것만으로 죗값이상을 치르게 된다. 지난 2개월, 조국 교수와 그의 가족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가해진 공격 중에는 린치테러에 가까운 것도 분명히 있었다. 언론과 모두의 성찰이 필요하다.

 

독자들은 이 글에서 조국 사태를 바라보는 여성주의자의 관점을 기대할지 모른다. 기고를 제안한 <한겨레> 역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성주의자보다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말하고 싶다. 진보를 대표한다는 어느 방송인이 자기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에서 조국 교수의 배우자를 두고 이 사태가 끝날 때까지 감옥에 가 있으라고 했다. 내가 알기로, 박정희 시대에도 나온 바 없는 언설이다. ‘진보의 여성 혐오,새삼스럽지 않다.

 

물론 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지금, 검찰개혁이 화두다. 대통령도 엊그제 국회 연설에서 그 중요성을 역설했다. 검찰개혁과, 정의·공정·평등 이슈가 연루된 여타의 사회개혁 의제들(교육개혁도 그중 하나다) 가운데 무엇이 중요한지를 두고 논쟁하는 양상도 빚어진다. 검찰 문제와 교육을 위시한 사회 불평등 문제는 각각 한국의 근대국가 건설과, 최근의 글로벌 자본주의화에 깊숙이 연루된 사안이다. 우선순위를 둘러싼 논의가 세대 갈등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대에 따라 원하는 바가 다를 뿐이니, 어느 하나가 국가적 대의인 양 택일을 강요해선 안 될 일이다.

 

지금의 검찰 조직은 검찰에 대한 문민 통제의 개념이 없었던 독재 시대의 적산(敵産)이다. 미국에서는 검사가 피의자를 기소할 때 자신을 피플”(people)이라고 표기한다. 국민의 대표라는 뜻이다. 검사는 법치국가에서 유일하게 국가와 국민을 대표해 개인을 기소할 수 있는 주권적 자아다. 한국 검찰의 자기 정체성은 무엇일까? “피플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은 과거 언터처블이었던 군부의 권력을 넘겨받은 것처럼 행동한다. 내가 검찰 개혁조국 지지란 슬로건에 일정 부분 공감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검찰 문제가 근대국가 건설 초기부터 내려온 묵은 과제라면, 교육·노동 문제는 비교적 근래에 제기된 최신 과제. 금융과 유통 중심의 글로벌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하게 구조화된 사회를 빚어냈다. ‘고용 없는 성장과 함께 계층 이동의 통로는 차단되었다. 이런 시대에 김연아 선수 같은 사례는 특출한 예외일 뿐, 성실한 금수저(모든 금수저가 잘되는것은 아니다)는 개인의 노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넘사벽이 된다. 그런데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즉 구조와 공동체가 개인을 방치했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개인의 시대가 도래했다. 생존을 위해서는 개인 능력의 최고치를 발휘해야 하는 극한의 각자도생 시대가 열린 것이다. 경쟁, 힐링, 우울이 순환하고, 이 악무한의 순환에 지친 이들은 분노한다.

 

조국 사태, 새로운 신분사회의 진통

동아시아 연구자 다카하라 모토아키는 그의 책 <한중일 인터넷 세대가 서로 미워하는 진짜 이유>에서 삼국 네티즌 전쟁의 원인이 뭔가 대단한 게 아니라, ‘실업으로 인한 가처분 시간의 증가에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사회학자 엄기호 역시 21세기 한국에서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촛불시위가 직접민주주의의 발현이라기보다, 더이상 병역이나 노동의 주체로서 사회적 멤버십을 획득할 수 없게 된 개인들의 자기 존재 확인에 가깝다고 진단한다.

 

물론, 여기서 이야기하는 개인은 계몽주의 시대의 해방된 주체가 아니다. ‘고립되고 잉여화된 개인들이다.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을 가진 이들로 구성된 국적 불문의 공동체가 미디어를 무기 삼아 글로벌 자본주의 시스템의 최상층부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세계에서 고립된 잉여들이 상대하는 경쟁자는 글로벌 시티즌이다. 새롭게 도래한 이 신분사회에서 우리에게 진정 절실한 것은 지금의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와 한국 사회가 당면한 현실의 상관관계를 논하는 일이다.

 

나는 이번 조국 사태 역시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에 국경을 초월한 새로운 신분사회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겪게 된 진통이라고 생각한다. 1990년대 후반 ‘20 80의 사회를 경고한 <세계화의 덫>이 출간되었을 때, 사람들은 빈부격차의 고착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20 80’이 아닌, ‘1%와 그 나머지의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1%가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이런 사회가 혁명을 겪지 않고 버티려면, 지그문트 바우만의 진단대로 99%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다이소’(초저가 소비재 판매점)가 있어야 한다. 여기엔 보통의 사람들이 자존감을 확인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SNS), 신흥 종교에 가까운 셀럽(과 지지자) 문화도 포함된다.

 

우리가 조국을 욕망했다

확대되는 격차는 자산·소득의 양극화는 말할 것도 없고, 지식의 양극화, 성격의 양극화를 낳고 있다. 압도적 경제력을 갖춘 오늘의 최상층은 외모, 학벌, 기호, 집안, 성격, 지성, 인맥 등 모든 것을 소유한다. 10여년 전 등장한 엄친아담론은 이런 현상의 전조였다.

 

이미 25년 전 페미니스트 도시학자 사스키아 사센은 국제사회의 주도권은 국가가 아니라 세계 도시(global cities)로 이동 중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시티()는 국경을 초월한 부자와 엘리트들의 공동체다. 돈과 영어, 학벌을 갖춘 서울 사람들은 평균 한국인들과 국민 정체성을 공유하지 않는다. 뉴욕과 도쿄의 상층 시민들의 문화에 익숙하고 그들과 같은 시간대를 산다.

내 주변의 좌파, 페미니스트들은 대개 자녀를 외국에서 교육시키거나 고급 대안학교에 보낸다. ‘강남좌파는 여기에 정치적 올바름과 인권 의식까지 갖춘 반가운존재들이다. 조국 교수는 본의든 아니든, 사실이든 아니든, 그 반가운 존재의 상징이었고 우리는 그를 대한민국의 간판으로 욕망했다. 내가 조국이 될 수는 없지만, 그가 우리를 대표해주길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 엘리트에게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고, 그것이 조국 사태를 통해 드러났다. 그들은 젠더 문제, 학벌주의, 자산 증식 등에 관한 한, 의식과 삶의 양 측면에서 보수 엘리트와 큰 차이가 없다. 한국의 보수는 북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분단 체제의 부산물일 뿐 정치 세력이 아니다. 한국의 진보는 민주주의 세력을 의미한다기보다 근대사회가 형성되던 당시의 중상주의(발전주의)자들에 가깝다. 여기에 피식민 경험으로 인한 콤플렉스, 부국강병에 대한 동경이 뒤섞여 국가주의적 경향 역시 강하다. 아이티(IT) 산업에 대한 좌우를 초월한 열광, 그에 대한 성찰의 부재는 이를 잘 보여준다.

 

좌우는 없어도, 위아래는 확실한

남한에는 좌우는 없지만 위아래는 확실하다.” 영화 <공조>에 나오는 대사다. ‘팩트라고 생각한다. 조국 사태를 지켜보며 고통스럽게 확인한 사실 역시 한국 사회에는 진정한 의미의 진보/보수, /우가 없다는 것이다. 좌우 대립은 위아래의 격차를 줄이려는 정치적 경쟁의 산물이다. 그런 경쟁은 한국 정치에서 보이지 않는다. 한국 정치는 실체 없는 좌/우가 맞서며 갈등해온 가상현실에 가까웠다는 얘기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기존의 진보/보수 전선은 해체, 재구성되어야 한다. 우리가 붙들고 싸워야 할 문제는 따로 있다.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 경향 2019.10.23.

 

주한미군 철수 트럼프 친서가 온다면

문재인 대통령 각하, 좋은 거래를 해봅시다. 당신은 한반도에서 미군이 발을 빼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고, 나도 중국의 코앞에서 퇴각하는 데 대한 책임은 지고 싶지 않소. 하지만 한국이 동맹으로서 공정한 분담을 위한 기여를 대폭 늘리는 것을 거부한다면, 나는 시리아에서 했던 것처럼 한국의 우리 군대를 집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소. 그러니 터프가이가 되지 마시오, 바보가 되지 마시오. 트럼프.”

 

조만간 한국에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친서가 도착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에서 미군을 철수시킨 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에게 보낸 것과 꼭 닮은 친서를 상상해봤다.

 

-미가 진행 중인 협상에서 미국이 내년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액수로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 50억달러(6조원)는 한국으로선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내용이다. 미국은 전략무기 전개, -미 연합훈련, 미군 순환배치, 미군 군속·가족 지원 비용 등도 모두 한국이 부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밝힌 바 있다. -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의 틀을 훨씬 넘어선 무리한 요구다.

 

동맹은 미국의 패권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국은 전세계 패권을 유지함으로써 금융·군수산업·첨단기술 분야에서 막대한 이익을 거둬들인다.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거의 전부를 한국이 내라는 미국의 요구는 한국인들이 세금으로 미국의 패권 유지 비용을 부담하라는 것이다.

 

한국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군을 위협하며, 방위비 대폭 인상을 노골적으로 압박할 것으로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지자들 앞에서 부자 나라 한국이 제대로 기여하지 않는다며 주한미군 철수를 원한다는 발언을 해왔다.

, 트럼프의 주한미군 철수 친서나 트위터가 공개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한국 내 보수 정치인들과 언론은 문재인 정부가 한-미 동맹을 끝장낸다며 요란한 여론몰이에 나설 것이다. 이미 서울 광화문 일대에는 -미 동맹 파탄을 비난하며 성조기를 흔드는 우익세력의 플래카드가 요란하다.

 

침착하게 생각해보자. 지금 미국은 하나가 아닌 둘이다. 트럼프의 미국과 기존 주류 세력의 미국이 있다. 트럼프는 재선을 위해, 지지층이 원하는 해외 미군 철수 또는 부자 나라들의 방위비 대폭 인상이란 성과가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 주류 세력에게 주한미군 철수는 중국과의 대치선에서 스스로 퇴각하는 패권의 자해 행위다. 존 햄리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소장은 지난달 한국에서 한 강연에서 주한미군이 한국에 남아 있는 것은 북한 때문이 아니라 중국 때문”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치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리아에서 미군 철수를 비롯한 오판으로 중동에서 영향력이 쇠퇴하고 석유-달러 거래에 기반한 달러 패권이 타격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는 터라 미국 내에서 동맹 체제 균열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중 패권 경쟁으로 더욱 중요해진 동아시아 전략을 유지하려면, 미국도 한-미 동맹이 절실하다. 한국은 미국의 6대 교역국이며, 한국이 2006~2018년 구매한 미국 무기는 358천억원어치나 된다. 미 의회는 주한미군 병력을 28500명 이하로 감축하는 예산 편성을 제한하는 국방수권법을 마련해, 트럼프의 돌발 결정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문제는 한국 내에서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동맹이 끝장난다고 겁을 주면서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증폭시키는 세력들이다. 미국이 원하니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도 배치했고 방위비도 대폭 올려주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도 일본이 한국을 어떻게 대하든 연장해야 한다면, 한국을 미-중 갈등의 한가운데로 밀어넣을 미국의 중거리핵미사일 배치 압박에도 곧 직면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가 방위비 인상을 받아내기 위해 주한미군에 대해 어떤 위협을 하더라도 한국 시민들이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냉정하게 대응한다면, 무리한 요구가 멈추고 공정한동맹의 길이 열릴 것이다. /박민희 한겨레 통일외교팀장 2019.10.27.

 

 

              사진 출처:에버그린 2017.10.15 


금강산 관광, 결기 있는 '담판'

'평화경제' 구현하려면

지난 105일 스톡홀름 북미협상이 결렬된 지 약 10여 일 만에 김정은 위원장은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 그로부터 1주일 뒤, 금강산을 현지 지도했다. 이 시점에 김정은의 이 같은 행보는 무엇을 의미하나?

 

집권 초기인 201211월 백두산에 다녀온 김정은은 20132월 고모부 장성택을 공개 처형했다. 어린 나이에 집권한 김정은의 대내권력 기반강화가 목적이었다. 201712월에도 백두산에 올랐다. 백두산에 다녀온 뒤, 201811일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할 의사를 내비쳤고, 29일 개막식에 김여정을 보냈다. 김여정 편에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을 초청하는 친서도 전달했다. 이는 핵과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개발 성공 카드를 들고 북미협상을 시작하는데 있어, 문재인 대통령의 대미 영향력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계산이 깔린 행보였다.

 

평창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20184월과 5월에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고, 그것이 디딤돌이 되어 6월에는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북미 공동선언은 북한의 오래된 대미 요구가 충분히 반영된 것이었다. 따라서 201712월 김정은의 백두산행은 핵·미사일 때문에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었던 북한이 제재를 벗어나고자 하는 계산과 기대가 담긴 행보였다. 그러나 6.12 싱가포르 북미 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대북제재와 압박은 계속되고 북미 정상 간 합의는 이행되지 않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어렵게 열린 2019228일 하노이 회담이 '노딜'로 끝났다. 하노이 '노딜'이후 6.12 싱가포르 합의는 온데 간데 없고, 오히려 지난 25-6년간 북한의 '선 핵포기'를 요구해온 미국의 압박만이 지속되고 있다고 판단한 김정은은 4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미국이 금년 연말까지 기존의 '셈법'을 바꿔 나온다면 북미정상회담을 한번쯤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는 최후통첩을 미국에 보냈다.

 

'셈법' 변화를 요구한 뒤, 북미 물밑협상과 문 대통령의 중재로 630일 판문점에서 트럼프-김정은 회동이 성사됐고, 그 연장선상에서 105일 스톡홀름에서 북미협상이 열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미국의 '셈법'이 바뀌지 않았다고 판단한 북한은 회담 결렬을 선언했다.

 

회담 결렬 선언 후 10여일 만에 김정은이 백두산에 다녀온 뒤 북한 매체들은 민족자존, 자력갱생을 강조하면서, "제재와 압박을 가하는 세력들이 배 아파하고 골치 아파할 정도로 버텨 나가자"고 북한주민을 독려했다.

 

백두산행 이후 내놓는 김정은의 메시지는 연말까지 미국의 태도 변화를 기다려 보겠다는 단서가 달려있지만, 미국의 셈법이 안 바뀌면 핵실험과 ICBM 발사 등 미국을 괴롭히는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미국이 셈법을 바꾸지 않고 제재를 계속해도 제재로 인한 고통은 이겨낼 수 있으니 '미국은 할 테면 해보라'는 식의 대미 최후통첩이다. 412일 시정연설보다 강했다.

 

그러나 김정은의 백두산행 이후 나온 트럼프의 반응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너스레가 잔뜩 담긴 아리송한 말뿐이다. 미국이 셈법을 바꿈으로써 연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런 와중에 지난주 김정은은 금강산에 들려 남한 정부와 현대아산이 지어놓은 관광시설들이 꼴도 보기 싫다며 철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선임자들이 남쪽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금강산 관광 사업을 시작했다는 점도 비판했다. 그러면서 시설 철거 문제는 남측 관계부문과 합의하라고 지시했다. 그로부터 사흘 후인 25일 북측은 회담 대신 문서로 철거문제를 협의하자는 통지문을 보내왔다.

 

지난해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9.19 평양 정상회담에서 두 번이나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조업 재개에 대해 문서로 합의가 되었기 때문에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조건과 대가 없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조업을 재개하겠다"는 호언까지 했다.

 

그런데 금강산 관광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따라서 김정은의 금강산 관광시설 철거 지시는 남한 정부가 미국의 견제로 합의 이행을 하지 않고 있는데 대한 불만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금강산 사업과는 무관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을 대동한 것은 금강산 관광 재개를 허용하라는 미국에 대한 압박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대응책 마련을 위해서 김정은의 금강산 지시 중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철거를 남측과 협의하라는 대목과 금강산 관광 사업을 남측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시작한 건 잘못이었다는 대목이다. 이는 철거 문제로 남한 정부 또는 현대아산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시설도 개보수하고 사업방식도 '의존'에서 '협업' 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남한 정부가 남북정상간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서 미국에 금강산 관광 재개 허용을 강하게 요구하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지만, 필요시 북한이 직접 미국에게 요구하겠다는 속내가 바로 최선희 대동에서 엿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하나? 우선 대미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남북관계만큼은 능동적인 자세로 견인해 나가야 한다.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조업 재개를 유엔 대북제재 예외 사안으로 인정하도록 미국을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원래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조업 중단은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행정명령'으로 중단시킨 것이었다. 유엔 대북제재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김정은이 백두산을 다녀와서 내놓은 메시지와 금강산 지시와 관련해서 한미 간 대책 협의를 시작하되 이번에는 우리가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미국의 셈법을 바꾸도록 설득해서 북미 정상이 다시 만나도록 하고, 남북 정상 간 합의를 이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지 않고서는 문 대통령이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시한 '평화경제'를 실현해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평화경제'의 마중물이라고 할 수 있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조업이 재개되지 않는다면 문 대통령의 '평화경제 구상'은 첫발도 떼지 못하게 된다. 평화롭고 풍요롭게 살 수 있는 한반도, 바로 '평화경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의 결기와 감투(敢鬪)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 황재옥 민화협 정책위원장 프레시안 2019.10.28

 

유엔사, 유엔모자 쓰고 왜 미국 뜻대로?

유엔사 권한, 엄밀히 제한돼야

지난해 8월 경의선 철도 현지 조사를 위해 우리측이 군사분계선 통과를 신청했지만 불허했다. 출발 48시간 전에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긴급통행이라는 것도 있는데 고려하지 않았다. 경의선·동해선 철도 현대화는 4·27 남북정상회담의 주요합의 사항이었고, 공동조사는 이를 위한 첫 단계 사업이었다.

 

유엔사는 올해 초 북한에 지원하는 타미플루 적재 차량의 군사분계선 통과도 허가하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독일에서 온 방문단을 이끌고 고성 통일전망대와 GP(감시초소)를 방문하려 했지만 유엔사가 제동을 걸어 못 갔다.

 

국감장에서도 이런 부분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유엔사는 2018년 이후 DMZ 출입신청 2220여 건 가운데 93%는 승인해줬다고 밝혔다. 7%, 155건은 불허했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 외에도 많은 것이다.

 

유엔사는 한국전쟁 당시 구성돼 정전협정을 실행하는 주체가 되어 있다. 정전협정 17항이 "군사정전위원회의 특정한 허가 없이는 어떠한 군인이나 민간인이나 군사분계선을 통과함을 허가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고, 9항은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의 집행에 관계되는 인원과 군사정전위원회의 특정한 허가를 얻고 들어가는 인원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군인이나 민간인이나 비무장지대에 들어감을 허가하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다.

 

또 군사정전위원회의 한쪽 당사자가 유엔사로 되어 있고, 군사정전위 남측의 구성과 운영을 유엔사령관이 맡아서 하고 있다. DMZ 출입과 군사분계선 통과를 유엔사가 관장하는 것은 이러한 정전협정 체계에 따른 것이다.

 

정전협정은 전쟁을 우선 중단한다는 내용의 합의이고 군사정전위원회는 이 정전협정이 잘 지켜지도록 감독하고 합의 위반 사항에 대해 협의, 처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유엔사도 그런 목적에 맞게 운영되면 된다. 그런데 지금의 유엔사는 그렇지 못하다. 미군체계 속에 있으면서 미국정부의 정책방향에 따라 정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남북관계가 북미관계보다 먼저가지 말라는 입장이다. 북한에 대해 제재를 유지하면서 비핵화를 이루겠다는 생각이다. 한국이 무슨 일을 추진하고 북한과 교류를 활성화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가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인식인 것이다. 유엔사는 이러한 미국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면서 이를 반영해 DMZ 출입에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도 그럴 것이 유엔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관이 겸하고 있다. 미군의 4성장군이다. 게다가 당초 유엔사가 생길 때는 유엔의 틀에서 창설되었지만 운영은 미국이 해왔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라 1950724일 창설됐지만, 이후 운영은 오롯이 미국에 맡겨진 것이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나 사무총장 등 그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

 

1995년 북한이 유엔에 유엔사 소환을 요구하자 당시 유엔사무총장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는 '유엔사는 유엔의 보조기관이 아니며 유엔사의 해산문제는 유엔기구의 책임이 아니라 미국정부의 권한 내에 있는 문제'라는 내용의 답신을 보냈다. 유엔사가 유엔의 조직이 아니라 미국의 조직이라는 얘기다. 유엔사가 미군의 지휘계통에 따라 명령을 받고 미국의 국익에 따라 운영되고 있음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 되다시피 했다.

 

게다가 유엔사는 한반도 종전선언이 이루어지고 평화협정이 맺어지면 없어져야 할 존재이다. 정전체제를 관리하는 기구이니 정전체제가 사라지는 날 함께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한반도에 훈풍이 불게 되면 유엔사는 해체 준비를 해야 한다.

 

조직은 한 번 생기면 점점 커지는 속성이 있다. 파킨슨의 법칙이다. 외교정책이론 가운데 관료정치모델도 대외정책이 결정되는 것은 관료들이 서로 자기 조직의 존속·확대·강화 등을 추구하면서 쟁투하고 밀고 당기기를 하는 와중에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유엔사 입장에서는 자기조직의 해체를 앞당길 남북관계의 개선을 도와줄 이유가 별로 없는 것이다.

 

유엔사는 남북관계의 진전을 막아서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전시작전권 환수 이후 미국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통로가 되려한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전시작전권이 환수되면 한미연합사는 없어지고 미래연합사가 생겨 한국군 4성장군이 사령관이 된다. 미군장성이 미래연합사 부사령관이 되어 주한미군을 지휘한다. 이런 상황이 미국에게 달가울 리 없다. 그래서 미국은 유엔사를 키워 이를 통해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려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한미연합지휘소 연습이 실시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미국은 전작권 전환 이후 유엔사가 한반도 위기관리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전협정 유지 임무를 넘어 한반도 위기관리에도 참여한다는 것은 유엔사를 통해 미래연합사와 한국군을 통제하려는 게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유엔사의 후방기지가 일본에 있고, 후방기지는 유사시 전력제공국의 병력과 장비를 지원받아 한국으로 보내는데, 그 과정에서 일본이 적극 개입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유엔사는 확대되고 있다. 유엔사 부사령관은 종전에는 주한 미7 공군 사령관이 겸임했는데, 작년 캐나다 육군중장 웨인 에어를 임명했고, 올해에는 호주 해군 소장 스튜어트 마이어를 임명했다. 따로 부사령관을 임명해 유엔군의 규모를 확대하고 다국적성도 강화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8군 사령관이 겸직하던 유엔사 참모장도 따로 임명해 지금은 마크 질레트 미육군 소장이 와 있다. 유엔사 참모부의 자리들도 한국군, 미군, 3국군으로 채워나가려 하고 있다. 독일군 연락장교를 배치하려고도 했는데, 이는 문재인 정부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한국군 장교 20명 파견도 요청해놓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나가야 할까. 정전협정의 서언(序言)"이 조건과 규정의 의도는 순전히 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것이며 이는 오직 한국에서의 교전 쌍방에만 적용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협정의 내용은 군사적 부문에만 적용된다는 얘기다. 비군사적 성격의 DMZ 출입까지 군사정전위원회와 유엔사가 관장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문화재를 조사하고, 북한에 의약품을 전해주고, 환경조사를 하는 것까지 유엔사의 허가를 받아야 할 근거는 없다고 하겠고, 이는 전적으로 한국정부의 뜻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그런 부분에 대한 정밀한 연구, 그에 따른 유엔사 권한의 엄밀한 제한이 우선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유엔사가 자기 역할을 확대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한반도 상황을 안정화시키고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법이 될 것이다. 종전선언, 평화협정까지 간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도 남북이 경제, 문화 등의 분야에서 교류를 확대하고 점점 가까워지는 단계로 나아간다면 '유사시'를 상정해 유엔사의 역할과 조직을 확대하려는 시도는 논리적 기반이 약해진다. 유엔사의 발밑을 파는 작업, 설 자리를 아예 없애는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안문석 전북대학교 교수 프레시안 2019.10.28

 

공수처 반대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자유한국당 김태흠 좌파독재저지특위 위원장을 비롯해 윤영석·이장우·성일종 의원과 이창수 충남도당 위원장이 2일 오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법안 패스트트랙 지정의 부당성을 알리는 삭발식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창수 위원장, 성일종 의원, 김태흠 위원장, 이장우 의원, 윤영석 의원. 서울/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사퇴하고 정경심 교수가 구속됐다. 103일과 9일 광화문 태극기 집회 참석자들의 가장 중요한 요구 사항이 관철된 것이다. 그런데도 1025일 밤 광화문에서 문재인 하야 3차 투쟁대회와 철야 기도회가 열렸다. 전광훈 목사는 공수처를 만들어서 공산주의를 집행하려는 문재인을 끌어내야 한다고 연설했다. 참가자들은 아멘” “할렐루야로 화답했다.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 나경원 원내대표, 홍준표 전 대표도 참가했다. 자유한국당의 진짜 목표는 처음부터 조국 사퇴정도가 아니었던 것 같다.

 

자유한국당과 이른바 보수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정치는 기세 싸움이다. 이 기회에 문재인 정부의 기를 꺾고 내년 총선에서 승리해 문재인 정부를 무력화하겠다는 계산일 것이다.

조국 사퇴다음 목표는 뭘까? 국회 신속처리대상 안건으로 올라가 있는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 등 검찰 개혁 법안을 좌절시키려는 생각일 것이다. 그래야 문재인 정부의 무릎을 꿇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인터넷 대화방에는 공수처 가짜뉴스가 무차별적으로 살포되고 있다. “대통령 일가와 국회의원은 수사 대상에서 제외되고, 사회주의 입법에 반대하는 사람은 언제든 비리로 몰아 제거가 가능해진다는 등 터무니없는 내용이다.

대화방만 그런 게 아니다. 원로 헌법학자는 신문 기고에서 검찰이 조국 일가 수사를 통해 정치권력의 시녀이기를 거부하려는 조짐을 보이자 검찰의 힘을 빼겠다고 공수처를 들고나왔다고 했다.

 

황교안 대표는 공수처를 친문 보위부라고 했고, 나경원 원내대표는 친문 은폐처’ ‘반문 보복처라고 했다. 원로 헌법학자와 야당 지도부가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공수처는 20년 넘은 의제다. 지난 4월 말에 이미 패스트트랙에 올라갔다. 현 정부의 영향력을 차단하려면 지금 제도를 도입하되 시행을 늦추면 된다.

 

공수처법은 백혜련 의원이 발의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안과 권은희 의원이 발의한 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 법안이 있다. 패스트트랙 절차에 따라 위원회 심사 기간을 채웠기 때문에 29일이면 본회의에 부의된다. 선거법 개정안이 위원회와 법사위 심사 기간을 채우고 1127일 본회의에 부의되면 한꺼번에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를 둘러싼 논쟁은 당분간 더 뜨거워질 것이다. 따라서 몇가지 쟁점을 정리해 놓을 필요가 있다.

 

첫째, 공수처가 선진국에 없는 기구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은 어느 나라에 우리나라처럼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검찰이 존재하는지 먼저 답변해야 한다.

 

둘째, 공수처를 설치해야만 검찰 개혁이 되는 것일까? 그렇다. 공수처 도입은 검찰 개혁의 출발선이다. 공수처를 만들지 못하면 검찰 개혁은 이번에도 또 무산된다.

 

셋째, 검찰 개혁을 하려면 공수처를 만들 것이 아니라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수사와 기소를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다. 우선 공수처를 만들어 검찰 개혁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나중에 필요가 없어지면 폐지하면 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개혁을 지금 당장 해야 한다거나 제대로 하지 않으려면 어설프게 손대지 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개혁에 반대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자신의 알량한 명분과 체면을 지키기 위해 대의와 당위를 외면하는 이상주의자일 것이다. 비겁한 사람이라는 얘기다. 과거 국가보안법 개정도 그런 사람들 때문에 실패했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공수처 설치를 내걸고 집권했다. 따라서 공수처는 법률적 의제가 아니라 고도의 정치적 의제다. 선거법 개정과 맞물리면서 더더욱 그렇게 됐다. 공수처 설치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의 시작이다. 공수처를 만들 수 있다면 문재인 정부의 다른 개혁 과제도 하나씩 밀고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반대로 공수처를 만들지 못하면 문재인 정부의 개혁은 물건너가고 문재인 정부는 실패한다. 문재인 정부가 실패하면 대한민국이 실패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겠는가.

성한용 정치팀 선임기자 한겨레 2019 10.28

 

자살공화국의 직장과 노동

알다시피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나라 중 하나다. 촛불 이후 한국 사회가 부유하고 민주적이라는 자부심이 부쩍 커졌다지만, 자살 관련 지표 앞에서는 무색해진다. 자살이란 현상이 만약 사회적 비참의 어떤 결정체로 간주될 수 있다면, ‘헬조선이라는 자조도 유효하다. 2018년엔 10대 청소년부터 80대 노인까지, 하루 평균 약 37명이 스스로 생을 중단했다. 매일 우리는 뭔가 대단히 다층적이고 잔인한 내전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한국 사회는 이 문제를 방치하지 않고 나름 대응해왔다. 지난 10년간 자살률은 대체로 낮아져왔다. 단순 비교해봐도 2017년의 자살 사망자 수는 12463명으로 이명박 집권기에 비해 한 해 3000여명(2009년 기준)이 줄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자살예방법의 제정(2011)과 실천이 작지 않은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법에 따라 사상 최초로 정부는 지자체·학교 등과 함께 자살예방사업을 벌여 각급 자살예방센터가 설치되었고 보건복지부에는 자살예방정책과가 생겼다. 병원 응급실에 온 자살 기도자를 관리(?)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2014년부터는 중앙심리부검센터 같은 기관도 만들어져 자살 사건을 세밀하게 분석해 연령별, 성별, 직업군별 자살의 경로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그러니까 만연한 자살 현상에 대한 한국 사회의 지식과 분석력은 전과 비할 바 없이 높아진 것이다. 그저 막연할 뿐이었던 자살의 사회적 요인들에 대해 처음으로 나름 체계적이고 실제적인 지식을 갖게 된 셈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기까지다. 지난 9월 하순 발표된 통계에 의하면 꾸준히 낮아지던 자살률이 2018년에 다시 높아졌다. 내용도 나쁘다. 10·30·40대의 자살률 증가 폭이 커졌다. 분석이 더 필요하겠지만, 우려되는 것은 현행 자살예방법과 그에 따른 정책 실행의 효과가 한계에 다다른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추출한 74개 자살 위험 요인 중 ‘15대 중대 요인을 들어본다. “자살 시도, 우울장애, 업무부담, 가족관계 문제(부부), 정신건강 문제와 그 악화, 상사·동료 관계, 이혼·별거, 음주 문제, 사업부진·사업실패, 직무 변화, 지속적 빈곤, 대인관계 단절·철수, 부채(도박·주식), 실업.”

 

개인의 정신적·심리적 고통, 가족 및 대인관계, 직장생활(노동), 그리고 경제상황 등으로 범주화될 이 요인들은 서로가 서로의 원인 또는 결과가 되는 상호성을 갖고 있고 비배타적인 관계에 놓여 작용한다. 한 인간에게 저런 고통이 서너개 이상 겹치면 삶 자체가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 중에서 정책과 타력으로 예방할 수 있는 건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사회와 개인들의 삶에 드리운 심연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연루된 구조적·문화적 한계라 할 수 있다. 자살에 작용하는 많은 요인과 문제상황은 다름 아닌 학교, 가정, 직장 그리고 일상에서 빚어지는 것이다.

 

그중 직장과 노동에 관련된 것만 생각해보자.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유가족들에 대한 면담 연구를 바탕으로 지난 9월 발표한 103명에 대한 심리 부검 분석 결과 중엔 30~40대 직장인들이 어떤 경로로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는지가 포함돼 있다. 그 경로는 부서배치 변화, 업무부담 가중 상사 질책, 동료 무시 급성 심리적·신체적 스트레스 사망이다. 비극이 완성되는 시간은 놀랍게도 불과 5개월 미만인 것으로 조사돼 있다. 과중한 업무를 맡는 직장인은 상사의 압박이나 동료의 따돌림, 그리고 다른 부서로의 발령 같은 상황이 겹치면 곧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직장이란 어떤 곳인가? 왜 사회적 잔인성의 체계 중 직장과 노동이 최전선일까? 비극을 야기한 직장 내 따돌림이나 공격성의 거시적 배후는 자본의 논리와 경쟁의 압박일 것이다. 프로이트의 표현처럼 인간이 늑대가 되어 다른 인간을 해치는 그 같은 사회적 잔인성의 체계때문에 평범한 사람들도 자기도 모르게 사회적 타살에 연루된다. 이를 통해 주 52시간 근무제나 각종 직장갑질 근절 같은 미시적(?) 변화가 직장인의 사람다운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할 수 있다.

 

복지부는 자살예방과 지역정신보건에 올해보다 275억원이 늘어난 예산을 편성했다. 그러나 커지는 우려처럼 정부가 노동개악을 행하면 이런 노력이 헛된 것이 되지 않을까? “어차피 없어질 직업이라든가 획일적 주 52시간제는 국가가 개인의 일할 권리를 막는 것이라는 식의 인식도 노동 존중은 물론 사람이 먼저다라는 명제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또 그런 식의 생각은 사회적 잔인성을 증폭시켜온 주요한 요소다.

 

여느 때보다 일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와 동료의 삶을 위한 연민과 단결을 깊이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자살론> 저자 경향 2019 10.29

 

남북관계, 무엇을 할 것인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630일 판문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회동한 50분 중 절반가량을 한·미 연합훈련 중단 요구에 할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의 집을 나서던 김 위원장의 표정이 밝아 보인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긍정적인 언질을 받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두 달이 못돼 한·미 연합훈련이 실시됐다. 북한은 미국은 물론 한국에도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지난해 북·미 비핵화 협상은 쌍중단’(북한의 핵·장거리미사일 실험과 한·미의 군사훈련 중단) 원칙에 양측이 동의함으로써 출범했다. 봄철 한·미 연합훈련이 연기됐고, 김 위원장도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중단 방침으로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5개월 뒤 한·미 양국은 해병대 연합훈련을 횟수만 줄여 실시함으로써 쌍중단원칙을 흔들었다.

 

게다가 남북관계 복원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국방비를 역대급으로 늘리는가 하면 F-35A 스텔스기 같은 첨단 공격형 무기를 들여왔다. F-35A는 청주기지에서 떠서 15분 만에 300떨어진 평양의 주요 시설을 공격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 군은 무인기, 정밀유도탄, 전자기펄스(EMP), 경항공모함 등도 대거 도입할 계획이다. 군사합의서를 체결하며 긴장완화를 다짐했던 문재인 정부의 이중적 행태’(725일 김 위원장 발언)에 북한이 당혹감을 느낀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부는 8월 한·미 연합훈련은 전시작전권 전환에 필요한 사전조치이고, 첨단무기 도입은 북한뿐 아니라 중국·일본 등의 군사력에 대비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해도 스텝이 꼬인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F-35A를 두고 주변 국가 방위용이라고 하는 건 북한이 핵무력은 미국용이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허무하다.”(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북한은 북한대로 지난 5월부터 11차례나 단거리미사일을 쐈고, 이달에 들어서는 사정거리 2000가 넘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도 시험발사하면서 쌍중단궤도를 이탈하려 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고, 미국이 전략자산을 한반도 주변에 집중시키던 2017년 못지않게 긴장이 고조될 우려도 있다.

 

북한은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제재완화 외에 제도안전(안전보장) 문제를 들고나왔다. 미국이 북한의 제도안전을 불안하게 하고 발전을 방해하는 적대시 정책을 철회해야 비핵화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적대시 정책의 첫번째 목록에 한·미 연합훈련이 올라 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발언은 평화경제’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같은 한담(閑談)을 벗어나지 못한다. 바둑으로 치면 급한 곳대신 큰 자리만 두는 격이다.

 

정부의 태도에는 중재 역할의 효력을 상실하면서 한반도 정세의 종속변수로 전락한 데 따른 무력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북한이 최근 금강산에 지어진 남측 시설을 철거하고 우리식으로 새로 짓겠다고 한 데는 한국 정부가 가만있지 말고 움직이라는 메시지도 담겨 있다. 남측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다면 남북 화해협력은 꿈도 꾸지 말라는 통첩이기도 하다.

 

정부가 할 일은 자명해 보인다. ·미 협상만 기다리며 좌고우면하지 말고 대북 제재와 제도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선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이끌어냄으로써 쌍중단원칙을 복원해야 한다. ‘대화를 하기 위해 무기를 내려놓자는 것이니 명분도 확실하다. 11월 중순 열리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합의를 이끌어내거나, 그게 여의치 않다면 문 대통령이 직접 연합훈련 중단방침을 천명하는 것도 방법이다. 비핵화와 별개로 재래식 군비통제와 긴장완화 등을 다루는 ··미 군사협정’(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을 체결하는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

 

금강산관광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재개를 모색해야 한다. 금강산은 물론 개성에서 개별관광을 우선 시행하는 것으로 활로를 뚫어 나갈 필요가 있다. 우물쭈물하다간 남북관계가 아예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남북 접촉을 막는 유엔사의 월권에도 제동을 걸어야 한다. 몇 가지 원칙을 묶어 문재인 독트린을 내놓는 건 어떨까. 좀 더 과감해지지 않으면 터널을 빠져나갈 수 없다. 노태우 대통령이 남북 자유왕래와 교역 문호개방을 담은 7·7선언(1988)을 발표한 것은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이 발생한 지 8개월도 채 안됐을 때였다.

서의동 논설위원 경향 2019 10.30

 

모든 문제가 페론주의 탓인가

TV애니메이션 엄마 찾아 삼만리는 이탈리아 단편동화 아페니니 산맥에서 안데스 산맥까지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소년 마르코가 아르헨티나로 일하러 간 엄마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작품 속 배경인 19세기 말 마르코 엄마를 비롯해 수많은 유럽인이 아르헨티나로 향했다. 당시 아르헨티나가 농축산업을 중심으로 경제적 발전을 이뤘기 때문이다. 1913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남미 최초의 지하철이 건설되는 등 20세기 전반 아르헨티나는 경제력 면에서 세계 5위 수준의 강국이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군사 쿠데타 등을 겪으면서 아르헨티나 경제는 추락을 거듭했다. 그동안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은 것도 30차례에 육박하며 디폴트(국가 부도) 선언도 9차례나 있었다. 아르헨티나 경제가 만성 위기에 처한 주원인으로 언급되는 것이 페론주의.

 

페론주의는 1946~1955, 1973~1974년 대통령을 지낸 후안 도밍고 페론에서 따온 이념이다. 외국 자본 배제와 산업 국유화, 복지 확대와 임금 인상을 통한 노동자 수입 증대 등으로 요약된다. 페론의 아내였던 에비타 페론은 복지 정책에 적극적으로 관여함으로써 페론주의 아이콘이 됐다.

 

아르헨티나 현대 정치사는 이 페론주의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군부 독재에서 벗어나 민주화가 이뤄진 1983년 이후 10명의 대통령(임시직 포함) 7명이 페론주의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카를로스 메넴(1989~1999), 에두아르도 두알데(2002~2003), 네스토르 키르치네르(2003~2007)와 그의 부인 크리스티나 키르치네르(2007~2015)가 대표적이다. 지난 27일 대선에서 승리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는 온건한 페론주의자로 평가받는다.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마우리시오 마크리 현 대통령은 IMF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강력한 긴축정책을 폈다. 이에 비해 페르난데스는 통화확대 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되는데, 자칫 국가 재정이 더 악화될 우려가 제기된다. 한국에서는 페론주의를 무분별한 복지 정책으로 국가를 파산시킨 절대악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페르난데스의 집권 기사는 온통 부정적이다.

 

하지만 페론주의에 대해 아르헨티나는 물론이고 구미에서도 재평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1976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군부가 의도적으로 페론주의를 폄훼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아르헨티나의 경제 파탄은 페론주의가 아니라 군부 집권 시절 무분별한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페론 집권 시절부터 군부 집권 이전까지 아르헨티나의 국민총생산은 127%의 성장을 기록했다. 페론 집권 시절 어느 정권보다 많은 산업 투자가 이뤄졌다. 개인소득이 232% 증가하면서 극빈층은 줄고 두터운 중산층이 형성됐다. 반면 군부 집권 시절 무분별한 외자 및 다국적기업 유치는 아르헨티나에 독으로 돌아왔다. 이익을 챙긴 해외 자본과 다국적기업이 빠져나가자 천문학적인 외채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외채는 197678억 달러였으나, 1983450억 달러로 증가했다. 중산층은 붕괴되고 빈곤층은 급증했다.

 

특히 군부 출신 첫 대통령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는 경제 파탄의 주범으로 꼽힌다. ‘더러운 전쟁으로 불리는 비델라 정권의 탄압으로 수만명이 고문당하고 살해당한 것은 논외로 치자. 비델라는 경제 위기로 인한 국민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1978FIFA 월드컵을 이용했는데, 비용 마련을 위해 자국의 알짜 기업들을 해외 자본에 헐값에 매각함으로써 경제난을 심화시켰다.

 

비델라의 후임자인 군부 출신 대통령 레오폴도 갈티에리는 영국과 무모한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켰다. 20억 달러가 넘는 전쟁 비용으로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결정타를 맞았다. 덕분에 그가 물러날 때엔 빈곤율이 74%에 달했다. 군부가 물러나면서 민간 정권에 남긴 것은 거덜난 국가였다. 이후 대통령들의 과제는 바로 그 수습이었다.

장지영 국제부 차장 국민일보 2019.10.30.

 

에너지 전환과 일자리 변화

2년 전 이 지면에 어떤 에너지 미래를 만들 것인가란 주제로 글을 썼다. 이정문 화백이 1965년에 그린 서기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란 그림에서 35년 뒤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생활의 변화를 통찰력 있게 그려낸 걸 보고 우리의 에너지 미래를 상상해 보자고 했다. 기후변화와 관련해 흔히 언급하는 2050년은 앞으로 30년 정도밖에 안 남았다. 앞의 그림에서 내다본 기간보다 5년이 더 짧다. 이 화백이 1965년에 상상한 재생에너지 이용은 기후위기를 주된 동인으로 더 강력하고도 빠르게 일어날 것이다. 에너지 전환은 이제 불가피하고도 비가역적인 세계적 흐름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있기 어렵다.

 

오늘은 그런 에너지 전환으로 우리의 일자리가 어떻게 달라질지 상상해 보자고 말하고 싶다. 내가 어릴 때 동네엔 으레 연탄가게가 있었다. 겨울이면 김장하듯 겨우내 태울 연탄을 집집마다 창고 가득 들여놓는 게 일이었다. 이제 연탄배달부들이 별로 없다. 연탄을 연료로 쓰는 가정이 얼마 없기 때문이다. 또 좀 더 후엔 프로판가스통 배달부들이 있었다. 프로판가스로 취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시가스가 보급되면서 그분들도 거의 사라진 것 같다.

 

과학기술 발전과 에너지 이용방식 변화는 생활의 변화와 더불어 일자리도 변화시켰다. 기술 변화에 따른 이런 변화는 막기 어렵다. 수용 여부를 결정할 여지가 별로 없다. 이러한 변화는 빨리 감지해서 대응하지 않으면 사회 혼란과 충격, 고통이 그만큼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현명한 대응은 변화 추세를 먼저 읽어내어 변화 흐름을 좇아가기보다 선도하는 것이다. 변화된 일자리에 맞는 새로운 인력을 길러냄과 아울러 일자리 전환이 기존 일자리 종사자를 실업상태로 몰고 가거나 생계 곤란에 빠지지 않도록 재교육, 재훈련이 필요하고 촘촘한 사회복지 안전망이 필요하다.

 

에너지 전환은 바로 세상의 변화와 더불어 일자리 변화를 가져올 엄청난 사건이다. 에너지 전환이란 화석연료와 원자력에서 재생가능에너지로 주된 에너지원이 단순히 바뀌는 것 이상의 변화다. 공급지향적 중앙집중식 에너지체계에서 수요관리 위주의 분산적 에너지체계로의 전환으로,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과 함께 기존 일자리의 축소와 쇠퇴를 동반한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체계에서는 에너지 효율 향상 기술의 개발과 기기 설계 및 제작, 재생에너지 이용 기술 개발과 설비 설계 및 제조, 제품의 유통과 설치, 운영과 유지, 보수, 폐기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다양한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효율 향상을 위한 사물인터넷(IoT) 이용이 활발해지고 지역적으로 소형화된 재생에너지 발전소 운영 기술과 전력망 운용기술이 보다 중요해질 것이다. 수요자원거래시장 운용이 활성화되고 에너지 프로슈머 간 거래까지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은 지난주 열린 아시아미래포럼 기조연설에서 한국은 여전히 중앙집권화되고, 옛날 방식의 에너지 체계인 원자력과 화석 연료체계를 운영 중인데 이는 곧 쓸모없다는 게 판명날 것이라며 태양광과 풍력이 다른 에너지원보다 저렴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유공장, 파이프라인, 주유소 등은 가동을 멈추고 관련 산업도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씨티그룹은 화석연료시대가 저물어감에 따라 100조달러 규모의 화석연료 관련 설비가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 발표했다. 석탄화력발전에 보험을 제공하는 것은 넷플릭스시대에 비디오에 투자하는 격이란 비유도 있다. 최근 영국, 스코틀랜드 해상풍력 가격은 39~41파운드/MWh로서 힝클리포인트C 원전의 93.5파운드/MWh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을 정도로 낮아졌다.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그래서 만들어질 일자리와 줄어들 일자리가 무엇인지 잘 판단해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기후변화는 기후만이 아니라 경제와 산업, 일자리도 바꾸고 있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경향 2019.10.30.

 

하산길, 시간은 대통령 편이 아니다

모든 악업은 내가 지고 갑니다. 주상은 성군이 되세요.” 상왕으로 물러난 지 4년째, 태종 이방원이 생의 마지막 힘을 모아 기우제를 지내다 아들 세종에게 한 말이다. 태종은 무엇 때문에 흘린 피였습니까. 죄는 저를 탓하시고 비를이라며 울부짖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형제들, 공신들, 처남들, 세종의 외척까지 쳐내려간 피바람을 그는 왕권 정지작업이라 했다.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 사극 <용의 눈물> 마지막 회를 찾아본 것은 3년 전 이맘때 타오른 촛불이 생각나서다. 태종의 눈물과 그 겨울의 촛불은 공명(共鳴)했다. 벽을 싹 걷어주고 새 역사를 열어준 마중물이었다.

 

촛불대통령이라 불렸다. 취임 첫달 국정지지율이 81%. 세대·지역·남녀·계층을 불문했다. 그해 6·10 기념식에서 지선 스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고을 장정들이 서로 먼저 타보려다 지쳐 쓰러지게 했다는 용마(龍馬)’의 고사를 더했다. 소탐대실과 과욕을 경계하자고 총대를 멘 것이다. 사방팔방 거칠 게 없는 출발이었다. 그 국정지지율은 조국 돌부리에 걸려 대선 득표율(41%)이 뚫렸다가 지금도 하루하루 떨리고 있다. 왼쪽으로 감아 오르는 칡과 오른쪽으로 감기는 등나무의 갈등(葛藤)이 이럴 게다. ‘조국 대전은 국회로 옮겨졌다. 혼군(昏君)을 넘어선 촛불도 쪼개졌다. 광화문광장과 서초역4거리, 그사이 반포대교 어디쯤이다. 격세지감 속에 문재인 대통령은 혼돈스러운 반환점 앞에 섰다.

 

5·18 광주둥이를 안아주고, 가습기살균제를 국가가 사과하고, 4대강 보를 열고, 고리원전 1호기를 세우고, 평창 올림픽이 한반도의 봄을 열고. 임기 1년 달력엔 촛불로 달라진 세상과 대통령 어록이 이어졌다. “나는 거기까지” 10월 마지막 날 밥상머리에서 시민사회 원로는 말을 잘랐다. 촛불무대에도 섰고 지금은 비판적 지지를 좌표 삼는 사람이다. “평가요? 박하죠. 착잡하고.” 그는 붕 떠왔다고 했다. 힘없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큰 개혁’, 대통령이 배수진 치고 뚫은 민생의 큰 길없이 전반전이 끝났다고 했다. 단임 대통령은 두괄식 개혁이 좋다고 끄덕인 밥상 위로 밥이 민주주의라고 한 대통령의 첫해 6·10 기념사가 소환되고, 그제 나온 비정규직 36.4%’라는 아픈 숫자가 포개졌다.

 

공정·원칙·신뢰·겸손. 조국 연관어로 곱씹어지는 말이다. 민주당 초선 의원은 그 66일을 지옥이었다고 했다. 살아온 가치와 침묵이 충돌하고, 민심과 멀어지는 시간이 괴로웠다는 표현일 테다. 김구 선생의 좌우명이 만사의 발원지를 살피라는 음수사원(飮水思源)이다. 조국이 넘지 못한 허들, 조국을 퇴장시킨 발원점은 공정사회와 불통이었다. 지금 여권이 걱정할 것은 메신저 위기다. 비유하면 말발이고, 정치에선 개혁의 헤게모니가 될 것이다. 대통령은 조국이 물러난 날, 총리는 국회 예결위장에서, 여당 대표는 16일 만의 기자간담회에서 매우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많은 갈등을 야기한 데 대해사과한 대통령의 간접화법도, 야당 질의에 답한 총리도, 등떠밀리듯 한 여당 대표도 시민들의 화난 맘과 실의엔 못미친다. 판단·소통에 책임 있는 대통령 참모는 쇄신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풀리지 않고 막힌 응어리는 언젠가 터지는 게 역사다. 세월호의 아픔과 앙금이 26개월 뒤 촛불에서 폭발한 것처럼.

 

곧 하산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중반 때인 20045내려갈 때가 더 위험하다더라. 무사히 발 삐지 않고 했으면 한다잘 하산하려면 정상의 경치에 미련 갖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에게 그 정상의 경치81% 지지율일 테다. 조국 표창장에, 대통령을 벌거벗겨 조롱하고, ‘갑질 대장을 영입리스트에 올리고. 1야당의 헛발질도, 한 지붕 두 가족이 된 제3야당의 구락부 정치도 점입가경이다. 그렇다고 야당복만으로 여당이 이긴 중간선거는 없다. 누가누가 못하나? 총선 목전에 시민들이 입에 담는 말이다. 원효대사가 일깨운 화쟁(和諍)’은 갈대구멍으로 본 내 하늘만 고집하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대통령이 주목할 하늘도 노랑풍선 너머에 있는 반포대교 사람들일 테다. 그 숫자까지가 81%였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교과서에서 읽은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은 이렇게 끝난다. 쉬운 길, 어려운 길, 처음 가는 길, 아니다 싶어 돌아간 길. 번뇌 속 많은 갈림길에 서지만, 걸은 길과 시간은 돌이킬 수 없는 게 숙명이다. 각오를 새롭게 해도 개혁·민생 봇짐만 천근만근일 하산길. 삐끗하면, 대통령은 촛불염원과 다른 구시대의 막내가 되고, 촛불은 세월을 덧없어 할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된다. 첫 단추는 소통, 답은 민생이다. 하산길, 시간은 대통령의 편이 아닐 수 있다. 이기수 논설위원 경향 2019.10.31.

 

우리는 '트럼프가 통치하는 땅'에 살고 있다

[창비 주간 논평] "한국 사람들은 트럼프를 어떻게 생각하니?"

채식의 천국, 환경의 지옥

 

얼마 전 처음으로 뉴욕을 비롯한 미국 동부지역을 여행했다. 아내가 채식을 선언한 뒤 처음으로 함께하는 여행이었고, 그레타 툰베리가 무동력 요트를 타고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가 열리는 뉴욕에 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거 알아? 육식을 위해 기르는 가축들이 뿜어내는 가스가 인위적 온실가스의 51%를 차지한다는 거.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채식을 해야 해. 아내는 툰베리를 향해 조롱을 쏟아냈던 트럼프의 사진을 가리키곤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뉴욕의 유명 스테이크 하우스에 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내심 조금 슬펐다.)

 

가히 뉴욕은 채식주의자의 천국이라고 할 만했다. 거의 모든 카페와 식당에 채식 메뉴가 준비되어 있었고, 한국에서는 접할 수 없던 다양한 채식 식재료가 즐비했다. 채식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내는 여행 전부터 개성 있는 채식 레스토랑을 검색하며 들떠 있었지만, 들뜸이 경악으로 바뀌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양한 채식 메뉴가 무색하게 모든 식당에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일회용품을 제공했고, 쓰레기 분리수거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다는 듯 굴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카페 안에서 먹을 거라 말했음에도 굳이 플라스틱 잔에 음료를 담아주는 직원을 향해 머그잔으로 바꿔달라 요청해야 했고, 직원은 흔쾌히 음료를 머그잔에 옮겨 담아주었지만 플라스틱 빨대와 스푼을 함께 건네주는 일을 잊지 않았다. 여행을 위해 대나무로 만든 빨대와 칫솔, 젓가락과 포크까지 준비해 간 아내의 안색은 종종 급격히 어두워졌다.

 

우리는 자주 이 모순된 현상에 대해 토론했다. (아마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한 몇몇 정상들보다는 확실히 그 주제에 대해 더 오래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토록 채식(주의자)을 배려하는 사려 깊은 도시가, 이토록 일회용품 사용과 쓰레기 분리배출에 대한 의식이 낮다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두서없는 대화 끝에 다음과 같은 물음이 남았다. 이곳에서의 채식은 어떤 총체적인 사회적 비전과 결부된 정치적 실천이 아니라 단지 개인의 국지적인 취향을 존중하기 위한 세련된 매너 같은 것이 아닐까. 진정한 채식이란 단지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라이프스타일 이상의 정치적 의미를 지니는 것일진대 여기서는 그 정치성은 소거되고 채식주의자의 개인적인 만족만이 부유하는 느낌이랄까.

 

'채식의 천국''환경의 지옥'과 사이좋게 손잡고 노니는 뉴욕의 광경은 우리에게 어떤 각성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우리의 결론은 이랬다. 더 많은 채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채식은 더 넓은 세상의 모순과 마주하며 부대끼는 계기일 뿐 그 자체로 완결되고 고립된 목적은 아니다. (왜인지 뉴욕에서 돌아온 뒤로는 삼겹살을 구워 먹어도 맛이 예전 같지 않다. 한편 아내는 항공기 운항으로 인해 발생하는 탄소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걸 알고서 앞으로의 여행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들은 트럼프를 어떻게 생각하니?

 

뉴욕을 떠나 코네티컷에 사는 이모 내외를 방문했다. 이모는 두어 번 뵌 적이 있지만 이모부는 처음이었다. 월남전 참전 군인인 이모부는 한국에 잠시 머무르던 시절 미군이 후원하는 보육원에서 일하던 이모와 결혼했다. 이후 이모부는 잠수함을 건조하는 선박회사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다 은퇴했고 이모는 아직도 학교 급식 노동자로 일하고 계신다. 화기애애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갑자기 이모가 물었다. "한국 사람들은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너무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눈치만 살폈다. 정치적인 주제는 어느 나라에서건 인화성이 강할 터,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내가 답답했는지 이모가 먼저 목소리를 높이셨다. "이모부랑 거의 싸운 적이 없었는데 지난 대선 때 싸웠어. 세상에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는 거 있지. 트럼프는 정말 문제가 많은 인종차별주의자잖니." 이모는 트럼프에 대한 이모부의 지지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부인과 모욕으로 받아들이시는 듯했다.

 

나는 미국 백인 노동자 계급이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걸 뉴스에서 이미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이모부의 정치적 지향이 충격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백인 육체노동자로서의 정체성 역시 이모부에게는 뿌리 깊고 거대한 것일 테니까. 어려운 건 한국의 진보파가 트럼프에게 거는 기대와 희망에 대해 설명하는 일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트럼프에 대해 그렇게 나쁘게만 보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트럼프는 어쨌거나 북한 지도자와 대화하려는 의지가 있고 그게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오바마는 8년 동안 한 번도 북한 지도자를 만나지 않았어요." 나는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띄엄띄엄 말했다. 내 말에 이모는 크게 놀라는 기색이었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난 건 다 정치적 쇼야. 그렇지 않니? 그래서 바뀐 건 아무것도 없잖아."

 

이모는 40년 전에 한국을 떠났고 온통 백인들뿐인 미 동부에서 유색인종 노동자로 평생을 차별받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아무래도 이모가 느끼는 정치적 현실과 여전히 분단되어 있는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실감과 기대, 희망은 다를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다르게 느껴요.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나고, 문재인이 김정은을 만난 것 자체로 아주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고 느끼거든요." 이모는 끝내 수긍하지 못했고, 우리는 재빨리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야 했다.

 

다음 날 우리는 아쉬움 가득한 이별을 나누고, 코네티컷을 떠나 유학하는 친구를 만나러 보스턴에 갔다. 나는 친구에게 전날 있었던 작은 정치 토론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이모도 미국 사람 다 되셨나 봐. 우리 한국 사람들한테는 그게 꼭 그렇지가 않은데 말이야. 우리에겐 트럼프가 굉장히 소중한 기회잖아." 그러자 친구가 조금 냉소적인 말투로 대답했다. "거꾸로 생각하면, 트럼프는 더 선하고 좋은 세계를 바라며 성실하게 일해온 미국 민중과 세계 인류에게 커다란 고통이자 모욕일 수 있지. 한국에 좋은 게 다른 세계에도 좋은 건 아닐 테니까."

 

나는 그 말을 듣고 머리를 세게 가격당한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분단체제의 극복은 단지 한반도 사람들끼리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인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는 새로운 세계사적 의의를 갖는 과업이라는 걸 머릿속으로는 알면서도 어느 순간 그 점을 몰각하고 트럼프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실제로 나는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때 트럼프를 정치적 곤경에 빠뜨린 코언을 원망하며 트럼프가 보다 굳건하고 안정적인 정치적 위치에 서게 되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편이 한반도의 분단 체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어쩌면 그건 분단체제 극복의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지향을 망각하고 트럼프 같은 추악한 정치인에게 무구한 희망을 건 졸렬함의 발로는 아니었을까.

 

이 문제에 대해 정리된 생각을 갖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여전히 남북관계는 한미관계에 복속되어 있고, 그래서 촛불혁명으로 수립된 정부조차 금강산 관광도 재개하지 못했고, 여전히 우리는 트럼프의 트위터만 애달프게 바라보고 있는 형편이니까. 아마도 그 졸렬함은 나의 개인적 박약함 때문이라기보다 좀 더 깊은 역사적 구조를 갖는 것일 테다. 그러니 이 역사적 구조를 비약하듯 날아올라 벗어나는 도리는 어쩐지 기만적이지 않나. 쉽게 벗어던질 수 없는 졸렬함이라면, 차라리 그 안에서 못나질 만큼 못나는 것도 제대로 된 반성의 계기를 얻는 일이 아닐까.

 

며칠 전 금강산을 시찰하고 거기 있는 남한 시설을 철거할 것을 요구했다는 김정은의 말을 들으며, 이모의 질문을 떠올렸다. "한국 사람들은 트럼프를 어떻게 생각하니?" "글쎄요, 한국 사람들에게 트럼프 개인에 대한 호불호는 무의미할지도 몰라요. 그가 어떤 사람인지보다 그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먼저 온 신경이 곤두서게 되니까요. 그런데 이런 생각, 그저 이기주의에 불과한 걸까요? 아니면 분단체제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노예근성일까요?" 마침 TV에서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규탄하며 미 대사관 담을 넘었다는 이유로 4명의 대학생들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는 소식과 트럼프의 탄핵 추진이 재선 가도에 미칠 영향을 셈하는 말들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었다. 13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건너왔는데, 여전히 나는 트럼프가 통치하는 땅에 서 있는 것 같았다.

한영인 문학평론가 프레시안 2019.10.31.




Imagine (John Lennon & Plastic ono Band) (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