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물이다. 해수욕장을 가득 채운 피서 인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아침
미포로 향했다
101층 고층 엘시티 더 샆 공사가 한창이다.
그리고 입주를 유혹하는 광고판들이 즐비하다.
저 괴물이 들어서고 나면 그리고 저곳에 살러 오는 사람들은 아파트같은호텔, 별장같은 아파트에서 우아하게 력서리하게 살 수있으리라 . 그러나 저 괴물로 인해 발생하게 될 여러가지 환경의 문제, 교통의 문제는 누가 책임을 진단 말인가
선착장 입구에 정차해 있는 어 버스는 뭔가
차주가 궁금했다. 시를 좋아하는 농사꾼 국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미포항 옆 사회적 기업 게스트하우스 레움 (부산시 해운대구 달맞이길 62번길 55, 신선장횟집3층 (중동3~6층))이 목적지다. 동아시아 민주평화인권 네트워크에 참석한 사람들을 가이드하기 위한 걸음이다. 후배 이준경이 운영하는 이곳 레움에 그들이 투숙하여 워크숍을 가졌다.
2012년 출범한 동아시아 민주평화인권 네트워크는 노근리국제평화재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5·18기념재단, 오키나와현평화기념박물관, 2·28기념재단, 제주 4·3평화재단, 히로시마평화기념박물관이 가입해 있다.
동아시아의 평화, 인권,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에 의한 고뇌에 찬 노력과 희생을 기념하고자 만들어 졌다. 2016년 네트워크는 지난 8월25일~26일 1박2일 부산에서 워크숍을 가졌다. 워크숍의 주제는 초등학교 사회과 교과서(2007년 개정 교육과정<2011년 발행>, 2009년 개정 교육과정<2014년 발행>, 2009년 개정 교육과정 교과서<2016년 발행>)에 실린 민주화 관련 내용을 분석하고 공유하면서 대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잡혔다.
발제글의 평가에 따르면 2007년 교육과정 개정(수시) 이후 서술된 초등 역사교과서(사회과) 내용은 민주주의를 억압한 독재에 대한 미화와 쿠데타 등 비민주적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표현하는 듯한 서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면 이에 저항한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간략 서술, 축소서술, 왜곡 서술 등을 통해 폄하 축소하고 있다고 했다.
예컨데 4.19의 성과를 사실상 왜곡하고 5.16 쿠테타를 정당화 하고 있음이라든지/ 10월 유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정당한 듯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유신반대운동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축소 서술하고 유신시기 박정희 정부의 경제발전에 대한 서울이 강화되었다.
한편 5.18 민주화운동은 대규모 시위발생 > 진압 > 희생 순으로 서술함으로써 마치 광주에서의 무자비한 탄압의 인과관계를 거꾸로 서술하며, '계엄군' 표현이 삭제되고, 군부의 정권찬탈을 정당하게 서술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6월 항쟁의 주역(학생 시민 노동자 등)에 대한 표현이 사라지면서 대신 그 결과로서 노태우ㅠ에 대한 강조 서술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워크숍에는 직접 참여를 못했지만 진행된 이야기를 전해 듣자니 한숨이 나왔다. 어떻게 보면 동아시아 민주평화인권 네트워크의 존재는 친일파->자유당->공화당->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집권 우익집단의 폭력에 저항했던 민중의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전하면서 역사의 진실을 지키는 그룹이다. 다시말해 대한민국 현대사를 상징하는 사건들의 진상과 규명을 통해 이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는 결집체 그 자체다.
동해남부선 폐선 철로에 그들이 섰다. 가이드 요청을 진작 받았지만 까먹고 있다 어제 아침에 통보받음으로써 부랴부랴 벼락치기 공부를 해야 했다.
다행히 날씨가 급변해 웬종일 바람앞에 설 수 있었고, 참가자들에게도 바람을 주제로 약을 팔 수 있었다. 마이크가 준비되지 않아 소리가 울림이 있는 터널에서 해운 삼포와 동해남부선에 대해 설명했다.
옛부터 이곳은 푸른 바다, 백사장, 동백숲, 소나무숲이 어우러진 절경으로 이 지역을 대표하는 명소이며 부산팔경(釜山八景)의 하나이기도 하다. 해운대 달맞이(看月)고개와 청사포(靑沙浦)에서 바라보는 저녁달은 운치가 있다고 하여 대한팔경에 포함시켰다. 주의를 환기 시키기 위해 1936년 발표된 노래인 선우일선(鮮于一扇)의 《조선팔경가》를 부르기도 했다.
에 금강산 일만이천 봉마다 기암이요
한라산 높고 높아 속세를 떠났구나
에헤라 좋구나 좋다 지화자 좋구나 좋다
명승의 이 강산아 자랑이로구나.
에 ~ 석굴암 아침경은 못 보면 한이 되고
해운대 저녁달은 볼수록 유정해라
에헤라 좋구나 좋다 지화자 좋구나 좋다
명승에 이 강산아 자랑이로구나
그 명승은 아직도 유효한가. 자신없다. 해안의 개발과 잠식으로 인해 그 시절 자랑하던 경관은 변질됐다. 나 역시 훼손 되기 전의 원형을 알지 못한다. 그렇건만 얼마나 뛰어 났길레 조선 팔경의 지위를 가졌더란 말인가. 이곳에 철길이 열린 때만 하더라도 간직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 풍광을
동해 남부선(東海南部線)은 부산광역시 부산진역을 기점으로 울산광역시, 경상북도 경주시를 거쳐 종점인 포항시 포항역까지의 구간이다. 부산권 구간은 진역> 범일역> 부전역> 거제역> 남문구역> 동래역>안락역 > 재송역>수영역>우일역>해운대역>송정역>기장역>일광역> 좌천역> 월내역을 지나면서 통학열차로 통근열차이자 화물열차로 기능했다. 종점 포항까지 총길이 147.8km이며 1918년 10월 경주~포항 사이가 먼저 개통되었고, 경주-부산은 1935년 개통되었다.
동해남부선은 동해안의 석탄과 목재, 광물, 해산물 등을 반출하고 함경선과 부산과의 연결을 긴밀하게 하기 위해서 건설을 계획한 철도였다. 운행기간은 80여년으로 복선공사가 완료되면서 지난 2013년 12월 폐선이 됐다. 이땅에서 해안선을 지나는 철로 중에 그 풍광이 가장 아름다운 구간으로 이름 났었다. 송정에서 미포 4.8㎞가 그 현장이다. 실제 해파랑길 조상을 위한 답사 당시 강원도 고성에서 부산이기대까지 걸어 오면서 보았던 해변 철길 중에 송정 미포 구간의 풍광은 그 어느 곳보다도 뛰어 남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부산시와 한국철도시설공단이 보전을 주장하는 시민환경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상업시설을 도입하려는 계획으로 인해 충돌이 있었고 정치 쟁점화 되기도 했다. 시민들은 획기적 방안이 아니라면 천천히 개발하지는 주장이다. 그래서 국내.외 사례를 수집하고 토론도 수차에 걸쳐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개발사업에 지역의 언론 대부분이 관여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땅의 소유주인 코레일은 민간자본을 유치해 관광시설을 유치하고자 했지만 따지고 보면 일대의 땅은 일제 치하 징발한, 강제로 빼앗아 조성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시 시민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맞다
그리고 두번 째 쉼터에서 명상에 들기도 했다. 이날따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솔숲을 빠져 나오며 감기는 맛이 아주 좋았다.
말미엔 시도 낭송했다. 참가한 단위에 맞게 바람 87-7 할려고 했으나 찾지못해 벌거숭이바람으로 하고 말았다.
그렇게 겨우 겨우 고비를 넘기고 청사포에 도착하여 망부송의 전설과 일대의 해안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청사포(靑蛇浦)달맞이길(달맞이고개) 아래에 있는 작은 포구이다. 청사포[푸른 구렁이의 포구]는 골매기 할매의 전설과 관련된 지명이다. 새 신부였던 김씨 부인은 고기잡이를 나간 남편이 난파하여 돌아오지 않자 매일 해안가의 바위에서 두 그루의 소나무를 심고 남편을 기다렸다고 한다. 수십 년을 하루같이 기다리는 김씨 부인을 애처롭게 여긴 용왕이 청사(靑蛇)[푸른 구렁이]를 보내 용궁에서 남편과 상봉시켰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청사가 출현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1920년경 뱀 ‘사(蛇)’ 자를 모래 ‘사(砂)’ 자로 바꾸어 푸른모래 곧 청사포(靑砂浦)로 개칭했다고 전한다. 김씨가 멀리 수평선을 향하여 눈물지으면서 기다리던 큰 소나무와 그 아래 바위에는 망부송(望夫松)과 망부암(望夫岩)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북쪽의 고두백이[고두말이라고도 한다]까지의 해안선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암석 해안이다. 해안가에는 대밭끝과 문둥이 골짜기, 빰아리끝[선착장 위쪽 배 모양 바위로 1925년에는 이곳 해안에는 8m나 되는 고래가 자갈밭으로 올라온 적이 있다고 함] 등이 있다. 아쉽게도 이곳 또한 개발바람을 피해가지 못했다. 참가자 중에 누군가 망부송 뒷편의 상가는 시가 매입해서 풍광을 살릴 수 있으면 좋겠다 했다. 백번 공감하는 바다. 안타깝게도 시는 그런 의지나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동아시아 민주평화인권 네트워크와 가졌던 시간은 두시간 남짓했다.
그들이 수행하는 일의 노고에 격려를 보낸다.
다시 미포로 향하는 길
개발 이전에 철길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고 주변 식생들의 생육을 도울 수있는 조치라도 기대 해 본다. 칧ㄱ넝쿨이 곳곳에 울을 만들면서 경관을 왜곡시키고 있다. 귀화식물의 제거도 필요하다. 그러면서 달맞이 사면의 변화를 도모해 볼일이다.
다시 레움으로 가는 길 미포 바다로 내려가는 하수구를 보다 물통에 담긴 물이 녹조를 변한 것을 눈여겨 보았다. 사대강과 녹조, 갇힌물의 운명을 떠올린 것이다.
과연 내 삶의 현자에서 바다는 얼마나 가차이 있는 것일까 . 늘 바다가 지척에 있지만 바다는 생활과 업무로부터 유리되어 있다. 그래서 정작 바닷물에 몸을 담구는 일은 손꼽을 정도다.
다시 미포(尾浦 )를 보았다. 저 그림에 뿔이 솟은 듯 불쑥 솟아오른 고층의 건물들이 조만간 높이를 자랑하며 해운대를 지배하리라 . 언제쯤 욕망의 거세가 가능할까.
미포는 해운대 동북쪽에 자리 잡은 와우산(臥牛山)[높이 183m로 장산에서 내려다보면 소가 누워 있는 것같이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의 꼬리 부분에 해당되는 갯가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의 정확한 형성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현재 인동 장씨(仁同 張氏) 남산파 11세손이 살고 있으며, 임진왜란을 전후해 파평 윤씨(坡平尹氏)·경주 김씨(慶州金氏)·단양 전씨(丹陽田氏)가 입향하였다고 전한다. 주민들은 매년 음력 10월 보름부터 5일 동안 풍어제 별신굿을 지낸다.
끝믈 해수욕장에서 건진 몇 컷
중국 관광객과 서로 찍어 주기를 하면서 남긴 2016년 8월26일의 한 때
유심히 사장을 지켜보다 백사장의 침식을 본다. 퍼다 넣고 잠재를 설치해서 다시 백사장이 복원에 가깝게 되었다고 하는데 얼마나 이 복원 현상이 오래 갈까 의문이다.
간만에 해운대해수욕장의 동서끝을 보았다
춘천천 다리 난간 아래 뿌리내린 애기땅빈대며 망초류 괭이밥, 방가지똥의 자리 다툼이 치열하다
동백사거리를 지나 운촌마을로 향한다.
雲村 마을은 원래 해운대로 불려 왔는데 운촌으로 바뀌게 된 정확한 연유는 알 수 없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조선 후기 이 마을 출신인 김기원이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 갯가 마을 출신임을 숨기려고 해운대의 가운데 글자를 따 운촌으로 부른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한다.
춘천 하구의 포구에 자리하고 있어 일찍부터 어촌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수산지(韓國水産誌)』[1910]에 운촌은 수영만의 북동안에 위치한 동하면 내의 주요한 어촌 마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마을 앞바다는 춘천과 수영강의 담수와 바다의 해수가 섞이어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는 천혜의 어장으로, 멸치 분기망 어업·상어 자망어업·넙치 종어업·채조업 등이 성행하였다고 한다. 특히 멸치 어업이 성행하였는데, 운촌 포구에는 멸치 어선 20척과 어막이 있었다고 한다. 운촌 멸치는 부산 멸치의 70%를 차지하였고 동래장의 특산물이었다.
하지만 다 옛날이다. 마을은 고층 아파트며 호텔에게 자리넘겨주고 아주 일부만 옛 이름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유일한 흔적은 소나문 뿐이다
무소의 뿔처럼 / 범능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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