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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 원추리 등 개량해 인터넷서 고가 판매

by 이성근 2017. 11. 28.

한국산 원추리 등 개량해 인터넷서 고가 판매 1126 시사저널

인터넷에 나타난 선진국들의 겨레 자생식물 유린 실태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우리나라에서 몰래 가져간 자생식물을 선진국들이 어떻게 활용하는지 실감 나게 볼 수 있다. 특히 한국산 원추리를 원종으로 활용, 개발한 원추리 신품종의 아름다움과 높은 가격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싼 것은 한 뿌리에 3~10달러, 신품종이면서 아름다운 것은 400달러(42만원)를 호가한다.

 

미국의 원추리협회인 아메리칸 헤메로칼리스 소사이어티의 활동만 살펴봐도 그렇다. 1938년 결성된 미국원추리협회는 오랜 역사만큼 식물 자원 육성이나 유전연구, 유전자지도 작성, 형태적 연구, 각종 내성연구 등에 장학금과 지원금을 아끼지 않고 있다. 매년 품평회를 통해 신품종 육성을 촉진하고 있다. 초보자와 전문가를 망라한 원추리 관련 전문잡지가 10여 종에 달할 정도다. 이 협회의 회원 1명이 육종한 원추리가 600종에 달한다. 그동안 미국에서만 수만 종의 신품종이 개발되고 상품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미국원추리협회 홈페이지(왼쪽)에 들어가면 우리나라 원추리를 개량한 원추리가 즐비하다. 이들 품종은 한국에 역수입돼 고가에 판매되고 있다. 시사저널 김형운

 

한국서 유출된 원추리 뿌리당 400달러 호가

원추리를 기르기 어려운 기후인 유럽권의 원추리 협회 헤메로칼리스 유로피아도 지난 93년 영국·독일·이탈리아·스위스에서 발족했고, 98년 오스트리아·벨기에·핀란드·프랑스·네덜란드·노르웨이 등이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이 협회 역시 역사는 길지 않지만 신품종과 유전자 연구를 비롯한 품평회나 워크숍을 활발히 개최하고 있다. 관련 출판물도 발행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의 원추리들은 1500년대에 영국으로 건너가 육종되기 시작했다. 이후 유럽과 달리 기후가 좋고 다양한 미국에서 원추리의 육종과 육성이 더욱 활기를 띠게 됐다. 예로부터 식용과 한약재로 중국과 우리나라 등에서 활용된 원추리는 다른 식물과는 달리 종() 간 교잡이 잘된다. 여기에다 미국의 원추리에 대한 열정과 생물 다양성을 활용한 육종 노력이 결합되면서 성공을 거뒀다.

 

자생지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구상나무와 미선나무의 유출 역사처럼 우리 산야에 널리 퍼져 있는 원추리가 타국에서 전성기를 맞고 있는 현실이 뼈아프다고 식물학자들이 입을 모으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우리 원추리 원종을 활용한 신품종 원추리가 하루에도 몇 십종 나올 정도로 왕성한 육종 개발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종류가 많고, 우수한 유전자원을 갖고 있으나 보전대책과 품종개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미국이 육종한 신품종이 비싼 값에 우리나라로 역수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한국 특산식물에 대한 연구와 육종 경쟁이 치열하다. 식물학계 보고서를 보면 우리 특산식물 400여 종이 이미 해외에서 상품화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원추리와 백합과의 나리류, 비비추 등 초목류, 구상나무·소나무 등 목본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인터넷의 야후’ ‘웹크롤러프로그램에 들어가 각 식물의 속()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일단 한국 식물이 유난히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한국 특산식물들이 외국에서 육성과 상품화가 그만큼 많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자생식물에 대한 보전과 육성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사이에 미국·영국·네덜란드·독일·프랑스 등 소위 식물 선진국은 이미 세계 각국의 식물 유전자와 개체를 보유하고 보전과 육종, 품종 개량을 통한 신품종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 국가는 인터넷 보급이 본격화되자 육종한 식물을 홍보하며 수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자생식물 분포도조차 치밀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상황과 큰 대조를 보이고 있다.

 

검은구상나무 열매(), 홍도비비추 시사저널 김형운

 

전 세계 크리스마스트리의 80% 한국이 원류

인터넷의 식물목록에서 ‘Hosta’, 즉 비비추로 들어가면 지난 97년 한국 등 동양에서 들여간 품종을 원종으로 해 신품종을 육성, 품평회에서 상을 받은 수많은 비비추가 우리의 눈을 간지럽게 하고 있다. 이들 비비추 중 미국과 유럽에서 원종으로 많이 사용하는 것은 한국산 좀비비추로 인기종을 배출하는 산파역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 특산식물인 좀비비추는 잎 모양이 다른 비비추에 비해 아름답고 크기가 작아 관상용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를 신품종 육종의 원종으로 사용, 한 포기에 10~20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또한 인터넷에서 ‘Conifer(침엽수)’에 이어 ‘Abies’, 우리말로 구상나무로 들어가면 우리 고유나무인 구상나무에 대한 수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구상나무의 경우 지구상에서 11종으로 우리나라밖에 없는 나무이며, 일제강점기에 미국으로 건너가 품종이 난장이구상나무10가지로 개량됐다. 이 나무 역시 전 세계에서 크리스마스트리의 80%를 차지하며 정원수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인터넷의 ‘Pinus(소나무)’ 사이트로 들어가면 한국산 소나무의 우수성도 한눈에 들어온다. 한국산 소나무를 용모양형, 원추형, 수형 등으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 정원 중심 수목으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이 사이트에는 한국산 소나무의 우수성에 대해 대단히 수형이 아름답고 안정되어 있는 데다, 어떤 환경에서도 잘 자라고 병충해에 강해 재배가 쉽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잎의 색이 아름답고 사계절 변치 않는 잎의 색과 수형(樹形)이 일품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이처럼 인터넷에 올려진 한국특산식물에 대한 선진국의 활용과 상품화는 우리에게 생물 다양성에서 겨레 자생식물 보전과 육성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있다. 안영희 중앙대 교수(조경학)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원추리 등 값진 유전자원인 원종을 다양하게 외국에서 개발해 역수출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를 보유한 한국에서 이들 식물에 대한 연구와 육성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에 유린당한 겨레 자생식물 수탈 100년의 역사

3차 원정 통해 고유 식물 960종 미국 반출일본서 펴낸 조선삼림식물편중요한 교본 되기도

우리나라 고유 식물에 대한 미국의 수탈은 당국의 반 묵인하에 1984년부터 5년 동안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미국국립수목원 아시아 식물채집 책임자였던 베리 잉거와 식물부장인 실베스터 마치, 홀덴수목원의 피터 브리스톨, 미국 듀폰사가 지원하는 롱우드식물원의 식물부장 윌리엄 토머스, 미국 최대 제약사인 머크가 지원한 식물학자 폴 마이어 등이 이 작업을 주도했다.

 

이들은 19841차 원정대를 꾸리고 강화도-소청도-대청도-백령도-태안반도를 돌았다. 1차 원정대는 백령도의 추위에 내성이 강한 동백나무 등 자생식물 250종을 채집해 몰래 반출하고, 종자도 함께 가져갔다. 19852차 탐사에서는 내장산-변산반도-목포-대흑산도-소흑산도에서 산딸나무를 비롯한 900종을 가져갔다. 19893차 원정에서는 용문산-태백산-울릉도를 샅샅이 뒤지며 우수한 유전자원을 찾아다녔다. 이런 식으로 미국은 3차례에 걸쳐 모두 950, 6000여 점의 겨레 자생식물을 반출했다는 것이 우리 식물학자들의 증언이다.

 

우리나라 자생식물 반출의 역사는 중국과 일본이 유럽 열강들에 의해 집중적으로 수탈당한 직후인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 열강들이 당시 조선의 문호 개방을 요구할 당시 조선을 다녀간 선교사들이 우리의 희귀한 자생식물의 묘목과 종자를 가져가며 시작됐다.

 

© pixabay·freepic·연합뉴스

 

겨레 자생식물 밀반출 1800년대부터 시작

1900년대로 접어들며 외국인에 의한 식물 밀반출이 본격화됐다. 식물 반출의 전설적인 인물인 어네스트 윌슨, 일명 차이니스 윌슨으로 통하는 영국인이 1914년 중국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식물 채집과 반출에 나섰다. 1920년대부터는 네덜란드와 영국, 프랑스 등 선진 유럽의 여러 선교사에 의해 우리 자생식물이 반출되며 유럽 각국에 알려지게 됐다. 당시 프랑스 신부인 타케는 제주도와 남해안의 난대수목과 백두산 등에 많이 퍼져 있는 북방식물을 자국으로 반출해 유럽에서 뿌리를 내리게 했다.

 

우리나라의 특이한 기후조건으로 인해 겨레 자생식물의 유전자원은 다른 나라에 비해 탁월하다는 게 외국 식물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우리나라는 위도상 해양성 및 대륙성 기후가 공존하고, 사계절이 뚜렷한 것이 특징이다. 이 같은 기후의 특성으로 내한성이 강한 식물과 남해안·서해안·제주도 등지의 난대성 식물이 함께 자라 그 어느 국가보다 식물 다양성이 높은 편이다. 또한 특수한 기후조건으로 인해 우리 식물들은 내한성과 함께 내병·내충성이 강하다. 이 때문에 외국 식물학자들과 종자회사들이 일찍부터 눈독을 들였다는 것이 국내 식물학자들의 분석이기도 하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우리 자생식물은 일제 강점기 때 집중 반출의 대상이 됐다. 우리의 토종 고려꿩을 비롯한 각종 동물 유전자원과 함께 대부분의 식물들이 일본으로 넘어갔다. 일본 총독부의 식물채집원이자 식물학자인 나카이는 조선에서 10년을 머물면서 중대 규모의 탐사대를 이끌고 다녔다. 이들은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전국을 돌며 우리 산야에 자생하는 대부분의 식물을 반출했다.

 

나카이는 이렇게 모은 겨레 자생식물을 묶은 10권의 조선삼림식물편을 펴냈다. 부끄럽게도 이 책은 한국과 일본 식물학의 중요한 교본이 되고 있다는 것이 우리 식물학자들의 솔직한 고백이다. 일본인이 펴낸 한국 식물 분류도감이 아직도 식물학의 교본으로 널리 읽히고 있고, 우리 식물의 학명에는 대부분 나카이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는 자생식물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반출을 막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도 갖추지 못한 결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 현재 판매되고 있는 우리나라 나무나 꽃의 원종과 신품종만 311가지에 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찍부터 우리 자생식물의 대부분을 본국으로 가져간 데다, 우리 자생식물을 체계적으로 분류해 책까지 엮어낸 일본과 대조되고 있다.

국제적인 공통어인 라틴어를 사용하는 식물학명은 이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나 앞으로가 더 문제다. 우리의 고유한 나무인 미선나무와 구상나무를 비롯해 이름만 들어도 싱그러운 산딸나무, 때죽나무, 모감주나무, 동백나무, 층층나무, 섬바디와 나도풍란, 콩짜개덩굴 등을 비롯한 관상수와 난 종류도 1000여 종이나 유출됐다. 지금도 여러 경로를 통해 외국으로 유출되고 있다는 것이 식물학자들의 걱정이다.

 

더 이상의 반출을 막고, 우리나라도 이제는 겨레와 조상들의 숨결과 함께해 온 우리 자생식물의 보호와 육성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식물학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이영주 한국식물원협회 부회장은 열강들에 의해 반출된 우리 자생식물은 특산종과 희귀종 중심이다. 조경수 등 상업적인 측면에서도 가치가 높은 식물도 많이 유출됐다그러나 식물의 반출에 대한 만시지탄보다는 이제라도 우리 자생식물에 대한 보전·육성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당국 무관심에 겨레 자생식물은 고사 위기

[탐사기획-겨레 자생식물(1)] 암 치료제 등 식물종 유전자 가능성 무궁무진겨레 자생식물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세계는 지금 식물종의 유전자 확보를 위해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영국과 미국, 일본,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스위스 등 선진국과 구미는 이미 200년 전부터 식물종 유전자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자국의 자생식물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 한국, 동남아 등 동양 자생식물과 북미 및 남미의 열대성 식물 등을 입수해 유전자 특성에 대한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 유전자 원산지국에 역수출하는 기민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선진국선 이미 자생식물 유전자 확보 전쟁

우리나라는 반대다. 환경과 자연 생태계를 무시한 산림 훼손과 벌목을 하지 않는 녹화 위주의 산림정책으로 우리 자생식물은 점차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유전자원이 우수한 200여 종의 품종 상당수가 이미 해외로 반출된 상태다. 이들 유전자원은 새로운 품종으로 둔갑해 우리에게 역수입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부끄러운 일로 치부해야 할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이런 현상은 가속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우리 자생식물에 대한 대응책 마련이 늦어질 경우 원산지가 우리나라인 식물을 오히려 우리가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하며 수입·육종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1994년 우리나라가 생물다양성협약에 가입했고, 최근 환경부를 중심으로 자생식물에 대한 연구와 활동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이에 따라 국민적인 관심을 높이고 당국의 전폭적인 지원과 예산 반영을 통해 식물종 유전자에 대한 체계적인 보호·육성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식물학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우선적으로 우리나라 자생식물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정리가 이뤄져야 한다. 또한 자생식물에 관한 한 가장 부끄러운 일이라 할 수 있는 국립식물원 설립과 식물원법 제정이 추진돼야 할 것이다. 우리 자생식물의 귀중함을 일깨우고, 연구와 교육, 휴식, 정서 함양, 관광자원 개발을 위해서라도 각 자치단체와 국립공원별로 식물원 설립 추진이 가시화돼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들과 산에 널려 있는 우리 자생식물은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진 자원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자생식물을 활용, 암 치료제를 비롯한 각종 치료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만 봐도 그렇다. 식물 유전자의 가치는 이처럼 잠재적인 효용성이 무궁무진한 데다,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한 가치는 더욱 많아 우리 자생식물의 보전과 연구 활동 강화가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

 

최근 세계는 생물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식물 다양성 문제에 다양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생명 과정의 원천이며, 인류의 경제발전을 위한 기본적인 생물자원이 생물 다양성에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식물 다양성은 동·식물을 망라한 생물종 간의 상호작용으로, 생태계를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인류에 위협적인 요인에 대한 회복능력과 안정적인 생산성도 보장하고 있다. 특히 식물 다양성 확보는 식량은 물론, 약품 등 신물질 생산과 농업, 유전공학, 의학, 공업, 생명산업 등과 같은 인류의 삶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류의 과학기술도 생명 다양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나아가 인류의 복지 역시 생물 다양성, 특히 식물 다양성의 활로가 지구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식물 다양성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식물에 대한 연구와 조사활동은 여전히 우리나라의 경제규모에 비해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반도의 경우 12000종의 생물이 번식하고 있으며, 동일한 면적의 다른 지역에 비해 상당히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지니고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중 식물의 경우 3000종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목복류와 초본류를 포함한 3000여 종의 풍부한 식물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식물 조사활동과 보전 및 활용을 위한 당국의 연구활동 및 지원 현황은 보잘것없다는 게 식물학자들의 공통된 불만이다.

고가 로열티 주고 자생식물 해외서 역수입

 

최근 무분별한 산림 개발과 녹화정책에만 신경 쓴 탓에 멸종하거나 멸종 위기에 처한 식물이 점차 늘어나고 있으나 종합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일부 식물학자들이 현지답사를 통한 식물 조사나 보전·육성 노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약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에 분포한 3000여 종의 식물 중 절반가량은 이미 100여년 전부터 선진국으로 유출된 상태다.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미스킴라일락을 비롯, 전체 유출 식물의 20%가량은 현지에서 재배·육성돼 우리나라로 고가에 역수입되거나 상품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택주 용인 한택식물원 원장은 지구상에서 자생지가 우리나라밖에 없는 구상나무가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다양하게 개량돼 각 가정의 정원수나 크리스마스 트리용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무 이름과 모양조차 잘 모르는 우리에게는 충격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이 같은 상황을 직시해 우리도 이제는 식물 다양성을 살리고 우리 자생식물에 대한 종합적인 보전·육성 대책을 세워야 할 때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때가 됐다고 조언했다.

 

멸종 위기 식물 보호와 육성 시급하다

[탐사기획-겨레 자생식물(2)] 자생식물 개발 및 보전 노력 미흡해 250여 종 멸종 위기특단 대책 마련해야

유전자원의 보고(寶庫)로 일컬어지는 겨레 자생식물. 우리나라 기후풍토에 잘 적응하며 오랫동안 겨레와 함께 살아온 식물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봄과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뚜렷한 사계절을 가지고 있다. 이 독특한 환경조건으로 인해 생물다양성협약에 가입한 나라 중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귀중한 식물들의 품종을 다수 간직하고 있다.

 

뚜렷한 사계 금수강산으로 식물 다양성 풍부

우리나라 자생식물은 목본과 초본을 모두 합쳐 약 4500여 종에 이른다. 나무인 목본이 1300여 종으로 분류되고, 나머지 3200여 종이 풀인 초본으로 구성돼 있다. 달맞이꽃과 같이 외국에서 오래전 반입돼 자생하고 있는 귀화식물 300여 종도 포함돼 있다. 구상나무와 미선나무의 경우 한라산과 소백산, 태백산, 지리산, 덕유산 등에 자생하며 우리나라에만 있고, 지구에서 단 한 속(), ()밖에 없어 보존 가치가 높다. 이들 2종의 고유식물을 포함한 특산식물 역시 1000여 종에 이른다.

 

자생식물의 종류가 목본과 초본을 포함해 4500여 종에 달하고 있지만, 이들을 품종으로 분류하면 난 종류만 해도 400여 가지에 달하는 등 모두 2만 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중에는 북한에만 자생하는 특산식물이 나무와 풀을 합쳐 600여 가지에 달한다. 좁은 국토면적에 비해 식물의 다양성이 풍부한 이들 자생식물의 자원화와 육종 등 활용대책이 앞으로 큰 숙제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무분별한 개발과 안일한 보전 노력으로 인해 멸종되거나 멸종 위기에 처한 식물들이 250여 종에 달하고 있다. 특단의 조치가 강구되지 않을 경우 자생식물들의 개체와 종류가 급속도로 줄어들 위기에 처한 것이 우리 자생식물의 현주소다.

 

멸종 위기 식물인 한라솜다리, 깽깽이풀, 둥근잎꿩의비름, 가시연꽃(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 시사저널 김형운

 

지역과 식물별 자생지 조사는 그동안 식물학계를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이뤄져 왔지만, 정부 차원의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조사는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자생식물의 중요성에 대한 당국의 인식과 육성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최근 희귀식물과 멸종 위기 식물에 대한 학계와 정부기관의 보존 활동이 진행되고 있으나, 개발 속도에 비하면 더딘 감이 없지 않다. 자생식물에 대해 보호의 손길이 닿지 않는다면 수천 년을 겨레와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곁에 있던 식물들이 차츰 하나둘씩 사라져갈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환경부는 1994년 특정 자생식물을 지정하는 한편, 학술적으로 보호가치가 있는 식물을 자연환경보전법에 의거해 지정·고시했다. 산림청 임업연구원도 1996년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희귀 및 멸종 위기 식물 72, 116, 191, 23변종, 3아종 등 217종과 후보종을 선정·발표했다. 보전 순위별로는 광릉요강꽃(1)과 금자란(2), 나도풍란(3) 등 멸종 위기에 있는 자생식물을 선정해 중장기 보전 계획을 수립하는 등 환경부와 산림청이 보전사업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자생식물의 중요성과 멸종 위기 식물의 보전 필요성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자생지 훼손과 멸종 위기 식물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식물학계의 진단이다.

 

겨레 자생식물 보호가 결국 국가 경쟁력

멸종 위기 식물이 나오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식물을 남획하고 간벌을 하지 않아 낙엽이 쌓여 자생식물이 자랄 환경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복주머니꽃을 비롯해 해오라비난초 등 희귀난과 식물들이 탐욕스러운 인간들의 남획으로 점차 사라지고 있다. 천마와 산작약, 삼지구엽초 등 생약재와 백양꽃, 솔나리, 깽깽이풀, 애기앉은부채 같은 관상가치가 높은 식물도 불법 채집 등으로 점차 개체수가 줄어들며 멸종 위기로 치닫고 있다.

 

식물자원 관리에 있어, 특히 희귀 및 멸종 위기 식물의 경우 자연환경이 나날이 훼손돼 가고 있어 그 현황 파악과 보전대책이 매우 시급한 시점이다. 지난 37년여 동안 자생식물을 수집해 동양 최대 사립 식물원인 용인 한택식물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택주 원장은 멸종 위기 식물을 전국에서 찾아내 자신의 식물원에서 육종하며 개체수를 늘려나가고 있다. 그는 자생식물의 멸종 위기를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행정 당국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고 과감한 투자로 뛰어난 유전자원을 지닌 우리 자생식물을 살려나가기 위한 각계의 공동 노력과 국립식물원 설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멸종 위기 식물의 대부분이 우리 특산식물인 점을 감안해 주관적인 보전관리가 아닌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 자생식물의 멸종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우선 생물종 다양성 보전을 위한 국내외의 대응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장기적인 계획과 정부의 과감한 예산지원을 통한 식물자원의 효율적인 자원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안영희 중앙대 교수(조경학)겨레와 생사고락을 함께하면서 수천 년을 살아온 우리 자생식물의 다양성은 세계 식물학계에서도 오래전부터 관심의 대상이 됐다이제라도 당국의 과감한 지원을 통해 자생식물의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보전 육성해야 식물의 경쟁력, 나아가 국가 경쟁력을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르포] 전 세계 식물학도의 성지순례코스 영국 큐식물원을 가다

[탐사기획-겨레 자생식물(3)] 1759년 개원 이래 광범위한 식물 자료 수집, 2003년 영국의 25번째 세계문화유산 등재되기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는 우리나라 자생식물을 제대로 보전하고 키워나가는 대안과 방향 제시의 기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국립식물원이 전무한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 대부분의 나라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식물원이 있다. 특히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국립·왕립 식물원과 대학식물원, 자치단체별 식물원이 미래 종자 전쟁을 위한 식물자원의 보고(寶庫)로 활용되고 있다. 이들 식물원은 식물의 보전과 육성이라는 고유의 기능 외에 교육과 연구, 공공서비스, 레크리에이션 등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지구촌의 식물자원을 결집한 생태공원과 즐기면서 배우는 자연학습장, 희귀식물이 살아 있는 연구 및 휴식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시민과 자연의 공유가 자연스럽게 이뤄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필자는 4회에 걸쳐 미국과 유럽 현지의 식물원을 답사했다. 제일 먼저 간 곳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케닛스퀘어 자치구에 있는 롱우드식물원이다. 미국이 몰래 가져간 우리 식물들이 어떻게 보전되고, 활용되는지가 우선 궁금했다. 현장에 가 보니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식물을 가져가 전 세계에 대박을 터뜨린 구상나무와 미스킴 라일락, 미선나무, 홍도(잉거) 비비추가 한눈에 들어왔다.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한국에서 관심도 없는 식물을 가져다 신데렐라로 만든 미국 식물학자들이 고맙게 느껴질 정도였다.

 

영국 런던 남서부의 교외에 위치한 큐식물원 온실 © 시사저널 김형운

 

자국은 물론 타국 식물도 유전자원화 열중

1906년에 세워진 롱우드식물원은 실외 정원 20개와 실내 정원 20, , 목초지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이곳에는 현재 11000여 종의 식물이 있다. 온실에만 5500여 식물종이 자란다. 미국에서 분수대가 가장 많은 식물원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교육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며 연간 400여 개가 넘는 공연을 주최하고 있다. 1906, 퍼스 가족이 가꾸던 유명 식목원이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세계적인 제약회사 대표인 피어 듀폰(Pierre Samuel du Pont·1870~1954)이 사들여 식물원으로 바꿨다.

롱우드식물원을 안내한 원예사 제이미 클락은 식물원의 기능은 무척 다양한데, 생물 다양성 확보와 연구 및 식물 육성이 기본적인 역할이라며 선진국의 식물원은 살아 있는 연구실과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산실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 코스는 영국. 1670년부터 시작된 영국의 왕립식물원 에든버러식물원을 찾았다. 에든버러식물원은 9만 평 규모로, 식물원이 잘 가꿔진 데다, 식물 다양성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다. 연간 입장객이 80만 명에 달하는데, 무료로 입장시켜 식물원의 기능을 최대한 살리고 있었다.

 

350년 역사를 지닌 에든버러식물원은 식물학이나 식물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꼭 가 보고 싶어 하는 곳 중 하나다. 규모가 세계 최대인 데다, 연구 및 유지관리를 위한 인력도 세계 제일이다. 한국의 원추리와 나리 등 전 세계 희귀식물이나 멸종 위기 식물의 보전과 육종을 위해 꾸준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비치해 놓은 자료 또한 방대하다. 신청 즉시 인편이나 우편 등으로 자료를 전달하는 등 연구기능이나 고객 서비스 또한 수준급이어서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어 영국 런던 남서부의 교외에 자리 잡고 있는 큐식물원을 찾았다. 1759년 개원한 이곳은 식물학도들의 성지순례코스가 될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수 세기에 걸쳐 수집한 식물과 광범위한 관련 자료들을 보유해 식물 다양성과 실용식물학 연구에 공헌해 온 곳이다. 2003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7차 세계유산위원회(WBC)에서 영국의 25번째 세계유산(문화)으로 등재됐다. 등재 유산의 면적은 132ha, 완충지역(buffer zone) 면적은 350ha.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케닛스퀘어 자치구에 위치한 롱우드식물원. 실내의 정원만 40개를 보유한 탓에 연구나 식물 육성 등 기본 역할 외에 지역민들의 문화행사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 시사저널 김형운

 

이곳은 원래 캐플가(Capel family)의 소유로, 16세기 중반에 이미 훌륭한 정원이 조성돼 있었다. 1731년 웨일스 공 프레더릭(Frederick, Prince of Wales)이 이곳을 양도받았다. 1751년 프레더릭이 사망한 뒤 1750년대 말과 1760년대에 걸쳐 그의 미망인이자 조지 3세의 어머니인 아우구스타 공주가 뷰트 경과 윌리엄 체임버스의 도움을 받아 정원을 확장했다. 이 식물원의 공식 설립연도가 1759년인 것도 이 때문이다. 1761년에는 오렌지 온실(현재는 레스토랑으로 사용)이 지어졌다. 1773년 조지프 뱅크스가 식물원의 체계를 세워 나감으로써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802년에는 이웃한 또 다른 왕립식물원 리치먼드정원과 경계를 이루는 담장을 허물어 통합됐다.

 

식물원 안에는 한국 식물을 포함해 35만 분류군, 700만 점이 넘는 표본을 보유하고 있다. 식물표본실과 고산식물온실, 진달래온실, 수련온실, 암석정원, 철쭉정원, 겨울정원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75만 권 이상의 장서와 175000개 이상의 식물 그림 및 판화를 소장한 도서관, 18m 높이에서 식물원을 조망할 수 있도록 설치한 약 200m 길이의 리조트론 엑스트라다 트리톱 워크웨이 등이 있다. 주변의 완충지역에는 왕실 재산인 올드디어파크나 템스강 건너편의 숀파크 등이 위치해 있다.

 

이 식물원은 18세기 이래 세계 식물학 분야에 확립된 과학적·경제적 교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러 과학 분야, 그중에서도 특히 식물학과 생태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경·건축 면에서도 유럽 대륙을 비롯해 일본, 중국 등 더 먼 지역의 예술적인 영향을 받았다. 린네(Linné) 이후부터 기재된 전 세계 모든 고등식물 종들을 수록한 큐 식물목록을 5년마다 발간하고 있다. 2000년부터는 멸종 위기 식물종을 보호하기 위한 밀레니엄 종자은행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영국 환경식품농촌부(DEFRA)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도 일본은 국립 및 대학, 개인 식물원이 수백 개에 달하고 있다. 도쿄의 진다이식물원과 도쿄대 부속식물원인 나리타식물원, 세계 유일의 어린이 식 물원인 요코하마어린이식물원 등이 꼽힌다. 일본 식물원은 유전자원 육성은 물론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이미 생활화된 식물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중국 역시 국립 및 대학, 지역별 식물원이 21개나 있으며 식물의 다양성을 구비하고 있는 베이징식물원은 식물의 보전과 육성의 전진기지로 활용되고 있다.

탐사에 함께 나선 이택주 한택식물원장은 선진 외국의 경우 자국의 식물 보호에 이어 식물 다양성을 키우기 위해 식물 유전자원 전쟁에 이미 들어간 상황이라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우리 자생식물의 유출을 막기 위한 연구와 육종에 눈을 돌려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우리 자생식물은 일제 강점기부터 알게 모르게 외국으로 유출되며 귀중한 유전자원의 주권을 잃어가고 있다. 미국 등 선진 구미국가와 일본이 자생식물의 가치와 효용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채집과 육종에 이은 상품화를 통해 유전자원의 주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특히 미국과 일본은 우리 자생식물을 반출하기 위한 탐사반을 편성해 일제 강점기부터 최근까지 각각 우리나라 전역을 돌며 채취에 열을 올렸다.

 

우리가 경제성장과 식량증산에만 몰두하며 자생식물의 가치와 활용의 중요성에 눈을 돌리지 못하는 사이에 미국과 일본, 영국, 네덜란드 등지로 우리의 귀중한 자생식물들이 반출돼 새롭게 육종돼서 역수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미선나무와 함께 지구상에 11종인 구상나무는 1917년 미국으로 반출됐다. 이후 구상나무는 신품종으로 개량돼 세계적인 정원수와 크리스마스 트리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어느 산에서나 자생하는 원추리 역시 미국과 유럽 등지로 수십 종이 유출된 후 새로운 품종으로 역수입되고 있다.

 

멸종 위기 식물인 구상나무, 미스킴 라일락, 홍도 비비추, 미선나무(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 시사저널 김형운

 

라일락의 원종 알고 보니 한국산 털개회나무

특히 우리나라의 정원수 중 인기를 끌고있는 털개회나무가 라일락의 원종으로, 우리나라 자생식물을 개량한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봄철 라일락이 피면 온 동네에 향기가 퍼진다. 이 라일락은 우리나라의 털개회나무를 미국에서 개량한 후, ‘미스킴 라일락이라는 이름으로 둔갑시켜 우리나라에 역수출하고 있다. 우리 능소화를 미국에서 개량한 모닝캄과 비비추 등 200여 종의 자생수목과 자생화들 역시 미국 등으로 반출된 후 현지에서 아름다움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외에도 산딸나무와 때죽나무를 비롯한 수십 종의 우리나라 자생수목들이 유출돼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1급 정원수로 속속 개발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같은 우리의 귀중한 자원인 자생식물 유출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자생식물의 보호와 육성에 이은 유전자원의 활용이 초보적인 단계여서 식물학자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자생식물 가치 문화재 못지않게 중요하다

[탐사기획-겨레 자생식물(4)] 선진국과 달리 우리 정부의 자생식물 가치 인식 걸음마 단계

자생식물의 가치를 알고 나면 그 중요성과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함을 느끼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 자생식물의 경우 뚜렷한 사계절 덕분에 식물 다양성이 풍부하고, 유전자 역시 뛰어나 외국에서 더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 산야에 흔히 널려 있는 자생식물들을 단순한 잡초로 인식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그 어떠한 문화재 못지않은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 자생식물에 대한 당국의 인식이 안이한 데다, 보전과 활용을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산과 들에서 자생하는 식물의 가치를 충분히 깨닫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식물종이 빈약했던 선진국은 반대였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의 고유 식물종에 관심을 기울이며 채집해 자국으로 가져가 육종과 연구를 통해 산업화하기에 이르렀다.

 

선진국은 식물종 육종 및 연구 통해 산업화

특히 자태가 아름다운 우리나라 백합류를 비롯해 원추리류, 비비추류 등 다년초와 목본류 1000여 종의 자생식물이 유럽과 미국, 일본 등으로 반출됐다. 이 중 180여 종은 미국에서 상품화되기도 했다. 이들 국가는 이같이 채집된 우리나라 자생식물들을 원예종으로 개량해 역수출하고 있다. 우리 자생식물 개량품종 중 구근류나 종자, 묘목을 우리나라가 수입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자생식물의 가치와 중요성을 한눈에 읽을 수 있다.

 

세계는 이제 본격적인 자원 경쟁 시대를 맞고 있다. 그간 우리가 쉽게 지나쳐버린 나무 한 그루와 풀 한 포기가 지금 각국의 귀중한 자원이 되고 있다. 현재 각국은 이러한 식물을 자원으로 인식해 고부가가치를 지닌 실용상품으로 만들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선진국에서는 더욱 귀중한 식물자원의 미래 역할을 인식, 그 식물자원의 보전과 활용대책에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자생식물의 경우 그 가치는 최근 약용으로서의 효용가치와 각종 연구결과에서 도출되고 있다. 농학과 원예학, 생물공학과 유전공학적인 첨단이론을 이용해 우수한 형질의 식물종을 육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안영희 중앙대 교수(조경학)머잖아 하찮게 여기던 식물 한 포기와 나무 한 그루마저 생산지 혹은 자생지 당사국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거래될 전망이라며 우리 자생식물의 유전적 특성이 뛰어난 점은 이미 국내외에서 검증돼 보전과 육성을 위한 국가적 지원과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멸종 위기 식물인 광릉요강꽃(왼쪽)과 미선나무 열매

 

식물학에서는 유사한 식물들을 그룹으로 구분해 가장 큰 단위인 문(·division)에서부터 강(·class), (·order), (·family), (·genus), (·species) 6가지 등급으로 나눈다.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종에서도 아종(亞種)을 비롯해 변이종, 품종 등으로 세분화된다. 이렇게 분류된 식물들은 각 종에 라틴어 학명(scientific name)이 붙여진다. 이제까지 무관심했고, 하잘것없이 여겼던 식물들도 이름을 알고 나면 그 식물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은 물론, 더욱 친근감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2년 생물다양성보호협약에 가입해 전 세계와 무한경쟁에 뛰어들었다. 이 협약은 경제적 가치와 지구환경보호, 개도국 소유 생물자원에 대한 가치인식을 배경으로 지난 876월 유엔환경계획(UNEF) 집행이사회에서 협약을 제정해 특별실무회의를 개최하며 시작됐다. 이후 88년부터 90년까지 3차에 걸친 특별실무위원회를 조직했고, 92년까지 생물 다양성에 관한 법률 및 기술전문가 그룹이 7차에 걸쳐 협상·회의를 실시했다. 이 같은 회의와 협상을 토대로 926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유엔환경개발회의를 열어 생물다양성보호협약이 체결됐고,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140개국이 가입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96년부터 협약 발효가 시작돼 이 분야에 대한 세계와의 무한경쟁과 함께 생물 다양성을 지켜야 하는 의무와 권리를 갖게 됐다. 생물다양성보호협약은 전문과 42개 조항의 본규약 및 2개 부속서로 구성돼 있다. 전문에는 생물 다양성의 본질적인 가치와 생물권 진화, 지속적인 생명체계 유지를 위한 생물 다양성의 중요 역할 인식, 생물 다양성의 현저한 감소현상에 인류의 활동이 관여됨을 인정하고 있다.

 

나도풍란(왼쪽)과 푸른구상나무

 

한국, 1992년 생물다양성협약 가입

또 각국은 자국이 보유하고 있는 생물자원에 대한 주권적 권리 인정과 생물 다양성의 감소 또는 손실의 원인 예측 및 방지, 생물 다양성 이용에서 각국 간 긴밀한 유대강화와 인류평화에 기여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협약은 전체적으로는 지구 전체의 생물 보호와 활용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나 각국별로는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 셈이다.

 

이처럼 생물다양성보호협약은 우리나라의 생명공학 기술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앞으로 환경문제와 환경산업의 첨병 역할을 가늠하는 잣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이 협약에 따라 우리나라 자생식물의 보전과 육성 및 활용방안이 기로에 서게 됐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생식물 전공학자들은 식물 제공국에 대한 기술이전 우선권을 부여하거나 적절한 대가, 즉 막대한 로열티 지불 등이 수반된다자생식물 보전과 활용 문제가 국제통화기금(IMF) 시대를 맞아 거액의 달러가 왔다 갔다 하는 사안이라는 점을 당국이 인식하고 적절하고 바람직한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 김형운 탐사보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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