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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탄소사회의 종말

by 이성근 2020. 11. 22.

탄소사회의 종말 조효제 지음) 21세기북스 2020.11

 

 

저자 : 조효제 성공회대학교 교수 겸 베를린자유대학교 글로벌 패컬티 초빙교수.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비교사회학 석사, 런던정경대학교(LSE)에서 사회정책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하버드대학교 인권 펠로로 일했다. 한국인권학회장,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준비기획단 위원, 국제앰네스티 자문위원, 세계인권선언 70주년 유엔본부 학술대회 기조강연자, 코스타리카대학교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인권의 최전선』 『인권의 지평』 『인권을 찾아서』 『조효제 교수의 인권 오디세이』 『인권의 문법』 『HUMAN RIGHTS AND CIVIC ACTIVISM IN KOREA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인권사회학의 도전』 『거대한 역설』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인권의 대전환』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세계인권사상사등이 있다.

 

 

목차

서문004

들어가며008

 

1부 불편한 진실과 더 불편한 현실: 어떤 성격의 위기인가

1장 비교할 기준이 없는 위기025

2장 인간화가 필요한 위기036

3장 사회학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위기044

4장 감축과 적응의 위기057

5장 역설로 가득 찬 위기066

6장 세상의 맥락이 달라지는 위기073

7장 인권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할 위기082

 

2부 재난은 약자의 몫이 될 수 없다: 누구 책임이며 왜 풀기 어려운가

8장 기후위기의 식민 지배적 기원093

9장 국민국가, 국익 경쟁, 지정학적 갈등103

10장 화석연료 기업과 기후변화 범죄학112

11장 신자유주의의 증폭효과121

12장 기후위기의 정치적 측면125

13장 태도의 뿌리와 외면하는 심리134

14장 기후행동의 사회문화적 장벽150

 

3부 권리를 방패 삼아 위기에 맞서다: 어째서 인권문제로 봐야 하는가

15장 기후위기와 인권의 기본 구도161

16장 기후위기로 인권이 침해되는 집단175

17장 인권에 기반한 접근과 기후정의188

18장 기후환경과 인권의 만남199

19장 인권 메커니즘이 기후위기에 관여하다204

20장 기후레짐에 인권이 포함되다210

21장 기후소송215

22장 남반구 발전권, 근본 원인 분석, 자연의 권리225

 

4부 각자도생 사회를 넘어: 사회적 차원에서 무엇이 필요한가

23장 사회적 응집력237

24장 정의로운 전환249

25장 갈등의 극복과 인간안보263

26장 기후위기 커뮤니케이션283

 

5부 전환을 위한 여섯 가지 제언: 어떻게 할 것인가

27장 지속불가능성의 해체301

28장 첫째, 전환을 위한 관점 세우기308

29장 둘째, 전환을 위한 언론·미디어의 역할320

30장 셋째, 전환을 위한 사회적 동력327

31장 넷째, 전환을 위한 젠더 주류화336

32장 다섯째, 전환을 위한 새로운 인권담론344

33장 여섯째, 전환을 위한 민주주의의 재발견352

 

나오며368

미주374

참고문헌410

찾아보기471

 

출판사 서평

기후위기를 관통하는 다섯 개의 질문

사회와 인권의 관점에서 구성된 새로운 기후 내러티브

 

인권사회학자 조효제는 두 가지 차원에서 탄소 사회를 규정한다. 한편으로, 탄소 사회란 탄소 자본주의의 논리와 작동방식을 깊이 내면화한 고탄소 사회체제를 뜻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탄소 사회는 생산, 소비, 그리고 인간의 내밀한 의식까지 지배하는 달콤한 중독의 체제다. 다른 한편으로, 탄소 사회란 탄소 자본주의에서 파생된 불평등이 전 지구적으로 깊이 뿌리내린 사회 현실을 뜻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탄소 사회는 팍팍한 고통의 체제다.

달콤한 중독과 팍팍한 고통의 이중적 탄소 사회와 단절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기후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생긴다. 이러한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탄소 사회의 종말은 각 부를 일련의 질문으로 구성했다.

 

1_ 불편한 진실과 더 불편한 현실: 어떤 성격의 위기인가

1부는 기후위기의 성격을 묻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기후위기는 인류세(人類世)를 초래한 인간에게 궁극적인 도전을 가하는 전무후무한 위기이며, 과학의 인간화와 사회학적 상상력을 요구하는 위기다. ‘감축과 적응이라는 기후대응의 양대 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격렬한 논쟁을 특징으로 하며, 그것의 방대한 규모만큼이나 역설로 가득 찬 현상이다. 따라서 기후위기로 인해 초래된 문제는 맥락적으로 파악해야 할 때가 많으며, ‘인권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2_ 재난은 약자의 몫이 될 수 없다: 누구 책임이며 왜 풀기 어려운가

2부에서는 기후위기가 어떻게 구성되고 유지되는지를 역사·정치·경제·사회·심리적으로 분석해 책임소재를 따진다.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인 탄소 자본주의에서 시작해, 그 배경을 형성한 식민 지배와 제국주의라는 역사적 차원, 국익 경쟁 및 지정학적 갈등이라는 정치적 차원 및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라는 경제적 차원에 주목한다. 나아가 기후행동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과 위축을 개인적·심리적 차원과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설명한다.

 

3_ 권리를 방패 삼아 위기에 맞서다: 어째서 인권문제로 봐야 하는가

3부에서는 기후위기에 인권으로 대응하면 좋은 이유를 묻는다. 기후위기는 천재가 아니라 인재이므로 인권유린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문제다. 이를 위해 기후위기로 침해되는 다양한 인권의 종별과 집단을 소개하며, 인권에 기반한 접근이 무엇인지, 기후정의가 왜 기후행동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또한 기후환경과 인권 분야가 기후위기를 계기로 서로 만나게 된 과정을 분석한다.

 

4_ 각자도생 사회를 넘어: 사회적 차원에서 무엇이 필요한가

4부는 기후대응에 반드시 필요한 네 가지 사회적 차원에 대해 묻는다. 기후대응을 위해선 사회적 응집력을 유지하고 사회 불평등을 줄여야 하며, 이를 위해선 과정상의 정의, 정의로운 전환이 기후행동의 목적 자체가 되어야 한다. 또한 기후위기가 초래하는 갈등과 범죄 극복의 필요성,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조명한다.

 

5_ 전환을 위한 여섯 가지 제언: 어떻게 할 것인가

5부에서는 전체 문제의식을 정리하며 무엇을 해야할지를 묻는다. 기후행동의 목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전환을 통한 지속불가능성의 해체. 저자는 전환의 구체적인 여섯 가지 방법을 제시하는 것으로 모든 논의를 마무리한다. 전환의 관점을 바로 세우고, 언론·미디어의 역할을 정립하고, 사회적 동력을 확보하고, 젠더 주류화를 실행하고, 새로운 인권담론을 설정하며,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재발견하자는 주장이 그것이다.

 

기후변화는 21세기 인권이 마주한 가장 심각한 도전이다!

보편적 재난과 차별적 피해

기후위기라는 실존의 세기를 건너는 법

 

오랫동안 기후문제는 북극곰의 문제같은 환경적인 서사로 여겨지거나, 경제적·과학적 분석을 통해 탄소 감축 수치를 제시하는 목표 달성 논리로 다루어졌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인간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라는 인식 없이 탄소 배출을 수치상 줄이기만 하면 된다는 결론에 이르면, ‘대중은 어째서 기후행동에 나서지 않는가왜 탄소를 배출해야 하는가같은 근본적인 문제는 잊히기 쉽다.

탄소 사회의 종말은 과학적 패러다임이나 기술관료적 목표 달성 논리를 넘어, 모든 시민의 민주적 참여를 통한 탈탄소 사회로의 정의로운 전환을 역설한다. 이때 인권 담론과 사회학적 상상력이 전환을 위한 렌즈를 제공한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기후변화를 인권문제로 본다는 말은 기후위기 피해를 더 이상 천재에 의한 불운으로 보지 않고 인재에 의한 불의로 보겠다는 뜻이다. 보통의 인권침해 사건에서 우리는 불의한 가해자에 분노하고 그에게 책임을 묻는다. 마찬가지로 탄소 배출이 생명권·생계권·건강권·주거권 등 개인의 실질적인 권리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인권유린 행위임을 인식한다면, 그리고 기후변화에 책임이 적은 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불평등을 마주한다면, 국가와 기업에 적극적으로 분노하고 행동하며 책임을 물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는 정치적 의지와 공동체의 합의만 있으면 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일도 실행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재난지원금 등 1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조처들을 우리는 이제 상식선에서 받아들인다. 마찬가지로 당장은 아득해 보이고 불가능해 보이는 녹색 전환 역시 대중적 합의와 행동이 있다면 가능하다.

변화의 한편에 과학의 시각이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인권과 사회의 시각이 있다. 양쪽 끝을 민주시민의 행동으로 잇는다면 기후위기라는 실존의 세기를 건너는 희망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책속으로

이 책은 두 가지 차원에서 탄소 사회를 규정한다. 한편으로, 탄소 사회란 탄소 자본주의의 논리와 작동방식을 깊이 내면화한 고탄소 사회체제를 뜻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탄소 사회는 생산, 소비, 그리고 인간의 내밀한 의식까지 지배하는 달콤한 중독의 체제다.

다른 한편으로, 탄소 사회란 탄소 자본주의에서 파생된 불평등이 전 지구적으로 그리고 한 나라 내에서 깊이 뿌리내린 사회 현실을 뜻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탄소 사회는 팍팍한 고통의 체제다. 달콤한 중독과 팍팍한 고통, 이러한 이중적 탄소 사회와 단절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기후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생긴다. 인권은 그런 길을 찾을 수 있는 렌즈를 제공한다. --- 들어가며중에서

 

여론조사에서 기후행동에 대해 일반적인 평가를 물으면 높은 지지도가 나오곤 한다. 그러나 비용을 부담하고 불편을 감수하면서라도 온실가스를 줄일 의향이 있는지를 물으면 그때부터 답변이 달라진다. 기후변화를 환경과 생태를 살리는 문제라기보다 자신에게 직접 피해를 주는 문제로 보는 경우도 많다. ‘내가 경제적, 물질적 손실을 입을지’ ‘나와 가족이 건강할지’ ‘내 자식의 미래가 괜찮을지에 관한 문제로 기후변화를 바라본다.

--- pp.36~37, 1불편한 진실과 더 불편한 현실: 어떤 성격의 위기인가중에서

 

이런 사례들로부터 기후변화라는 자연적현상조차 사회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 즉 기후변화가 젠더, 인종, 계급, 지역 등의 차별 구조를 개별적으로 그리고/또는 교차적으로 악화, 재생산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자연과학적으로 정의된 하나의 기후변화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수많은 기후변화들이 있다. 보편적으로 설명되는 기후위기가 아니라 사회적 배태성에 따른 다양한 기후위기들이 있다. 그러므로 공통된 기후대책이 아니라 개별적이고 특유한 기후대책들이 있어야 한다.

--- pp.46~47, 1불편한 진실과 더 불편한 현실: 어떤 성격의 위기인가중에서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면 누구에게도 책임이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기후위기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이 사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장애물 때문에 기후행동이 제한되는지를 찾으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도 찾을 수 있다.--- p.92, 2재난은 약자의 몫이 될 수 없다중에서

 

개도국 중에는 이처럼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유산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애초부터 불리하게 구조화된 경우가 많다. 모든 인류가 그 안에서 생존과 생활을 해나가는 지구의 대기는 인류의 공통 관심 사안이다. 그런데 인류의 16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인구를 가진 북반구 선진국들이 대기의 식민화를 통해 온실가스를 함부로 배출하면서 개도국들도 함께 사용해야 할 대기환경을 미리 선점해버린 것이다.

그러니 세계 모든 지역의 사회적 대비 상태, 재난 취약성, 회복력, 인프라 설비 등은 식민 지배 유산의 정도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난다. 그런데 1.5도니 2도니 하는 하나의 전 세계적 단일 목표를 정해놓고 그 수치가 초과되면 전 세계가 위험에 빠진다고 하는 것은 일종의 기술관료적 보편주의에 입각한 목표 달성 논리다.

--- p.99, 2재난은 약자의 몫이 될 수 없다중에서

 

기후변화에 대해 사람들은 흔히 냉담과 무관심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것보다 냉담과 무관심이 더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다(“기후변화? 난 상관 안 해”). 그런 것을 자신과 직접 이해관계가 없다고 여기는 소극적 무관심이 있고, 기후변화를 웃기고 황당한 주제로 간주하여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막아버리는 공격적 무관심도 있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기후변화를 공개적 논의의 테이블에 올리지도 못하게끔 만드는 어떤 문화적 장벽에다 냉담/무관심이 합해지면 기후행동의 가능성은 크게 낮아진다.

--- p.140, 2재난은 약자의 몫이 될 수 없다중에서

 

기후변화는 과거 및 현재 세대가 지속불가능할 정도로 자원을 남용하고 온실가스를 과다 배출한 결과로 미래세대의 권리가 박탈당한 사태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후위기와 인권을 논할 때에 미래세대의 인권을 위한 현재세대의 의무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이를 세대 간 형평성이라고 부른다. 미래세대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먼 훗날의 인간만이 아니라 이미 태어난 자식, 손주들이 모두 포함된다.--- p.184, 3권리를 방패 삼아 위기에 맞서다중에서

 

한국의 청소년들도 2020년 봄, 정부의 소극적인 온실가스 정책 때문에 청소년들의 헌법적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들은 주말 행동, 결석 시위, 관련 부서에 대한 요청과 서한 발송 등 많은 시도를 해보았지만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변화가 없음을 깨닫고 정부에 책임을 묻게 되었다고 한다. 정부와 정책결정권자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겠다는 목표도 밝혔다.

청소년기후행동의 원고 19명은 한국 정부가 정한 감축목표와 실제 행동이 워낙 부실하여 헌법에서 보장한 생명권과 행복추구권, 정상적인 환경에서 살아갈 환경권 등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의 헌법소송은 전 세계 기후운동에서 주목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기후위기의 헌법적 기본권 침해, 국가의 책무성, 미래세대에 속하는 청소년들이 원고가 된 점, 정책을 변화시킬 목표 등 전략적 기후소송의 특성이 모두 들어 있는 소송이기 때문이다.--- p.220, 3권리를 방패 삼아 위기에 맞서다중에서

 

경제사회적 조건이 나빠져 사람들의 삶이 팍팍해질수록 정치적 선동, 메시아적 약속, 음모론, 가짜 뉴스, 혐오와 차별이 횡행할 수 있는 풍토가 늘어난다. 여성혐오, 외국인 혐오, 소수자 혐오, 특정 집단 혐오 등이 그럴듯한 설명의 외피를 걸치고 등장하여 소셜미디어를 통해 무차별 확산된다.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이런 현상들이 국내외에서 표출되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극우 포퓰리즘과 유사 권위주의, 그리고 백인우월주의를 비롯한 극단주의 세력이 발호하기 시작하여 파시즘의 재등장을 걱정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증오의 불길은 세 요소로 이루어진다. ‘땔감과 같은 증오 지지자들, ‘불꽃을 지피는 선동형 지도자, ‘산소역할을 하는 사회경제적 악조건, 이 세 요소가 만나 증오의 불길을 타오르게 한다. 사회적 응집력이 약해질수록 공기 중 산소가 많아진다. 폭력적 증오의 화염이 옮겨붙기 좋은 조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p.240, 4각자도생 사회를 넘어중에서

 

오늘 공정하지 않은 전환은 내일의 불공정한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그런 세상을 위해 사람들에게 기후행동에 나서자고 설득할 수는 없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전환은, ‘지금 여기에서조금이라도 덜 불평등하고 덜 부조리한 세계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과 결부될 때에만 정의로운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

--- p.262, 4각자도생 사회를 넘어중에서

 

기후위기가 진정으로 위기가 되려면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그것을 위기로 간주해야만 한다. 하나의 기후위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기후위기이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의 최전선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이미 생살여탈권을 지닌 현실인 반면, 위기의 후방에서 안락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후위기란 뉴스에 나오는 먼 나라 이야기?자신은 약간 불편한 정도에 그치는?에 불과하다.

--- p.303, 5전환을 위한 여섯 가지 제언중에서

 

이제 인간만의 인권, 인간 중심적인 인권이라는 개념 자체를 쓰기 어렵게 되었다. 비인간 자연계에 대한 침해와 인간에 대한 침해가 함께 일어나는 이익 침해의 융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순수한 의미에서 인간만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 인간과 자연환경의 이익 침해가 하나로 수렴되었고, 반대로 인간과 자연환경이 권리를 보유함으로써 파생되는 효과를 공동으로 향유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상황을 이렇게 만든 것은 인간이고, 인간과 자연환경의 공존을 실천해야 할 책임과 행위 주체성을 가진 것도 결국 인간이다. 인류세 시대에 인간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연결성을 직시해야 하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책임을 지는 것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 pp.347~348, 5전환을 위한 여섯 가지 제언중에서

 

마지막 질문으로 마무리하자. 기후위기 상황에서 희망을 말할 수 있는가? 기후과학의 계측치는 어두운 전망 쪽을 가리킨다. 탄소 농도와 비관의 눈금은 정비례한다. 그러나 희망은 객관적 조건의 산물이 아니라 실천적 행동의 창조물임을 기억하자. 한편에 과학의 법칙이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인간의 연대심, 정의감 그리고 창의적인 적응력이 있다. 양쪽 끝을 민주시민의 행동으로 잇는다면 실존의 세기를 건너는 희망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373, 나오며중에서

 

코로나는 서막에 불과하다...기후위기와 팬데믹은 인권의 문제

기후위기는 과학적 팩트다. 이제 이를 허황된 목소리로 지적하는 이를 찾기는 어렵다. 기후위기가 심각하다는 명제에 도전하는 이도 이제는 그리 많지 않다.

 

지구 평균 기온 상승폭을 1.5도로 제한하기 위해 2030년까지 지구의 탄소배출량을 기존의 절반 이하로 낮추고, 2050년까지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 특별보고서를 두고 외려 '과학자 집단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이에 관해서는 앞서 조천호 경희사이버대 특임교수(전 국립기상과학원장)<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IPCC 합의서는 참가한 모든 과학자 사이에 합의된 내용만 담으므로 당연히 가장 보수적인 예측치"라고 지적한 바 있다. 현 상황을 더 위기적으로 바라보는 목소리는 걸러지고, 가장 온건한 예측 상황을 담을 수밖에 없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 (관련기사: "전 세계가 한국인처럼 산다면, 지구 3개 이상 필요하다")

 

불행히도, 혹은 다행히도 인류는 현재 기후위기를 선행 학습 중이다.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사태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자연계를 침범한 인류로 인해, 즉 폭력적인 인류세의 발전에 의해 일어난 기후위기 문제의 하나임을 부정하는 목소리는 이제 별로 없다.

 

문제는 다음이다. 보통 사람에게 기후위기는 '나의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다. 대중은 과학자들의 잇따르는 경고를, 환경운동가의 절박한 목소리를 매일 같이 뉴스를 통해 소비한다. 하지만 이는 기껏해야 극단적 환경주의자의 목소리로, 혹은 과학 엘리트의 '뻔한' 경고로만 울린 후 대중의 뇌리에서 바로 사라진다.

 

한국의 대표적인 인권 연구자인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가 신간 <탄소 사회의 종말>(21세기북스)에서 지적하는 핵심이 여기 있다. 기후 문제를 과학자의 목소리에서 대중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조 교수는 지적한다. '인권의 눈으로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바라본다'는 부제에 걸맞게, 연구자가 쓴 대중서라는 위치에 걸맞게 책은 사회학자의 시각에서 소화한 기후위기에 관한 해석을 충실한 연구 결과로 담았다.

 

책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사회학적인 접근이, 인권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대로 가면 100년 후 지구는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과학자의 말은 그 시기에 이미 사망할 보통 대중에게 절박한 목소리로 다가가지 못한다. 조 교수는 이를 '탈인간화한 기후과학'의 한계로 규정하고, 사람의 목소리로 위기에 대응할 방책을 재해석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책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사례는 코로나19가 될 것이다. 기후위기의 징후에 불과하다 할, 혹은 기후위기가 초래할 상상하기 힘든 여러 복잡다단한 문제 중 하나에 불과하다 할 코로나19는 창궐 11개월여 만에 전 세계 인구 5724만 명을 감염시켰고 136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북반구가 겨울에 접어들어 본격적인 2차 대유행이 시작된 상황을 고려하면, 해당 수치는 앞으로도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다. 기후위기의 전조에 불과한 문제 하나가 대참사를 낳는 시대를 우리는 관통하고 있다.

 

코로나19는 단순히 '기후위기는 중요한 문제'라는 차원 이상을 환기한다. 대표적 사례가 죽음의 불평등이다. 코로나19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미국의 사례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특히 흑인과 히스패닉, 아메리칸 인디언에 죽음이 집중된다. 이들이 코로나19에 감염돼 입원할 확률은 백인의 4배에 달했다(관련기사: 코로나19 사망자 하루 1700...사망자수 25만 명 넘어서).

 

이 같은 문제는 다른 자연 재해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1991년 방글라데시를 휩쓴 초대형 사이클론과 해일로 인해 불과 서너시간 만에 13만여 명이 사망했다. 여성 사망자가 남성 사망자보다 42퍼센트 많았다. 재난은 대체로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 과학의 시각에서 이 문제 해결에 집중하려면 방파 시설 설립, 뜨거워지는 바다 문제 대응에 관한 복잡다단한 해석이 나올 것이다. 사람의 눈으로 보자면 다른 시각에서 문제에 접근하게 된다. 방글라데시 여성은 "온 몸을 감싸는 전통 복장인 '사리'를 입고 있어 폭우 속에서 이동이 어려웠고 헤엄을 치기는 더 어려웠다." 아울러 남존여비 관습이 뚜렷했던 방글라데시에서 대다수 여성의 영양 상태는 남성보다 나빴다. 그렇다면, 남녀 차별 해소가 사이클론 대비를 위한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조 교수는 인권으로 기후위기를 바라보면 "기후변화를 '인간화'할 수 있어" 대중에게 위기를 설득하기 훨씬 용이하다고 강조한다. 그래야만 탄소 중독 사회인 오늘날 인류 문명이 스스로 판 함정인 기후위기로부터의 탈출구를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불행히도 기후위기를 인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입장은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찾기 쉽지 않다. 유럽과 미국이 앞장서고 한국 등이 뒤따르는 그린 뉴딜 메시지가 대표적이다. 이는 오직 경제적 논리로, 환경적 논리로 '탄소 중립'이라는 일직선적 목표를 향해 내달리자는 메시지를 담는다. 정책적으로 메시지를 간소화하고 선명화하면 그 핵심이 부각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자칫 이는 '기후위기는 탄소 문제'라는 협소한 계곡으로 대중을 잘못 이끌 위험성도 가진다.

 

조 교수는 따라서 '기후레짐에 인권이 포함'되는 변화를 통해 현 위기의 시대를 헤쳐나갈 새로운 통찰을 찾자고 독자에게 제안한다. 기후위기는 단순한 재난이 아닌, 인재임을 뚜렷이 하고 그 책임을 인권 차원에서 묻자고 강조한다. 아울러 전환의 동력 역시 인권 정의의 차원에서, 약자들의 연대를 통해 찾자고 제안한다.

 

인류는 이제 실존이 위협받는 불투명한 미래의 목구멍에 진입했다. 이제 기후 문제는 단순히 빙판을 잃어 배를 곯는 북극곰의 문제가 아니다. 살아갈 땅이 사라지고(팔라우 사례), 목숨이 위협받고, 식량 주권이 흔들리고, 무엇보다 약자가 일방적인 피해를 입을 것이 명약관화한 대재난이다. 이는 그야말로 대대적인 인권의 위기다. 대중의 시각으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전달해야 할 필요가 어느 때보다 커지는 시대다. 사회와 인권이라는 큰 줄기로 기후위기를 정리해 엘리트의 목소리로 치부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새롭게 전달하는 이 책은 기후위기에 관심이 큰 일반 대중은 물론, 특히 전대미문의 위기를 인지하지 못하는 대중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한 과학자와 환경운동가에게도 소중해 보인다.

이대희 기자 프레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