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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좀비학

by 이성근 2020. 11. 30.

좀비학(카이로스총서 68) 저자 김형식|갈무리 |2020.10

인간 이후의 존재론과 신자유주의 너머의 정치학

 

저자 : 김형식KIM HYOUNG SEEK 문화연구자. 동국대에서 신문방송학과 국문학을 공부했다. 중앙대 문화연구학과에서 문화이론과 영상이론을 공부했으며, ‘좀비서사와 주체성에 관한 논문으로 문화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슈퍼히어로 영화와 윤리학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허무주의나 비관론에 함몰되지 않고,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모색하며 철학과 대중문화를 넘나들고 있다. 2014년 계간지 문화/과학을 통해 문화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목차

들어가는 글 좀비의 눈으로 보기

낯선 존재와의 만남 10

좀비의 어원 13

좀비열풍 : 세계를 정복한 좀비 14

서울 한복판에 좀비 출몰? 19

노예좀비부터 포스트좀비까지 21

지금, 여기의 좀비사회 26

책의 구성과 내용 29

좀비는 누구의 이름인가? 30

 

1부 좀비란 무엇인가?

1장 예외상태의 괴물과 회복되지 않는 일상 : 부산행서울역의 배제당한 자들 34

위기에 처한 세계와 좀비의 유행 34

무기력한 좀비에서 노오력하는 좀비38

괴물이 되는 인간, 인간이 되는 괴물 4 2

호모 사케르, 배제당한 비인간 47

예외상태에 놓인 자들 51

끝나지 않는 예외상태 54

신자유주의와 위기의 통치술 59

비판적 사유의 침묵 62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65

 

2장 비인간의 존재론 : 안드로이드, 괴물, 이방인, 그리고 좀비 71

좀비라는 물음표 71

두 가지의 생명 : 비오스와 조에 73

SF영화 속 안드로이드 75

로보캅과 아이언맨 : 인간과 기계의 혼합 85

기계의 신체와 좀비의 신체 90

그로테스크의 교훈 93

죽음, 친숙하고 낯선 좀비 98

윤리의 실종과 죽음 산업의 성공 99

뱀파이어, 늑대인간, 좀비 107

괴물은 언제나 우리와 닮았다 112

이방인과 유령 : 경계를 파괴하는 것들 116

인간/비인간 개념의 구분 불가능성 121

좀비학 : 인간학의 안티테제 126

 

2부 좀비는 어떻게 탄생하고 살해당했는가?

3장 인간의 탄생과 제국주의의 타자 : 식민지 노예와 부두교좀비 129

인간의 파산 129

인간이란 무엇인가? 131

중세의 종말과 셰익스피어 136

근대의 시작과 데카르트 139

근대적 주체의 이분법과 차별 143

제국주의와 좀비의 탄생 147

시브룩의 마법의 섬 152

화이트 좀비 : 하얀 인간, 검은 좀비 156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 서구적 이성과 초자연적 주술 161

니체의 울음 164

 

4장 인간의 죽음과 안티-휴머니즘의 괴물 : 반근대적 주체와 식인좀비 169

안티-휴머니즘과 식인좀비의 탄생 169

니체와 신의 죽음 174

푸코와 인간의 죽음 177

르네상스부터 근대까지 179

반근대적 주체로서의 좀비 182

휴머니즘과 폭력 186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 규범적 가정의 몰락과 인종차별 비판 190

시체들의 새벽 : 자본주의 비판과 가능성 195

인간과 휴머니즘, 그 이후 199

좀비영화의 침체기와 좀비게임 206

 

5장 파국의 세계와 심화되는 공백 : 신자유주의와 밀레니엄좀비 209

21세기와 뛰는좀비의 등장 209

공백의 심화와 과학기술 212

금융자본주의에서 좀비자본주의로 216

문화산업과 도착적 감정의 유대 224

신체 없는 기관과 연료-좀비 231

파국의 공포와 죽음의 유대 234

신자유주의의 팽창과 정체화의 욕망 239

난민과 테러리즘, 그리고 자가-면역의 괴물 242

봉합되지 않는 묵시록 250

심화되는 가정의 붕괴 255

좀비지도와 속도의 지옥 257

시스템의 폭력과 공권력의 부재 261

신자유주의 서바이벌 가이드 264

한국과 좀비장르 271

 

3부 좀비는 어떻게 저항하고 탈주하는가?

6장 괴물에서 벗어나는 좀비들 : 포스트휴먼과 포스트좀비주체 277

파국에서 벗어나기 277

존재론적 전회 281

인간, 그 이후를 사유하기 285

휴머니즘 이후, 포스트휴머니즘 288

포스트휴머니즘의 다양한 갈래 292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 296

일원론적 포스트휴먼 299

괴물에서 벗어나기 : 뛰는좀비에서 포스트좀비로 308

질병과 포스트좀비 313

소수자와 포스트좀비 322

유목적 포스트휴먼 334

 

7장 폐허를 딛고 새로운 주체를 발명하기 : 좀비시위와 포스트좀비의 정치학 337

다중 주체 337

포스트좀비의 전사 : 좀비의 정치성 343

파국의 역설적 가능성 347

인싸 혹은 아싸, 좀비라는 마이너리티-되기 350

좀비시위의 발발 : 월가 점령 시위의 다중 356

촛불집회와 육체 정치 362

뇌과학과 좀비의 회복 374

공항을 방황하는 좀비 378

감히 욕망하라! 384

가능성으로 흘러넘치는 세계 390

정체성의 폐지 : 증오에서 사랑으로 396

 

8장 일상 없는 삶의 지속과 반복 : 지리멸렬한 파국과 냉소하는 좀비 404

냉소하는 좀비의 탄생 404

예능 프로그램의 일상화와 일상의 불가능성 408

관음하는 좀비와 타인의 일상 413

효리네 민박과 한끼줍쇼 : 전면화되는 비상 418

욜로 혹은 짠내 : 탕진잼의 향락과 스튜핏의 고행 사이 4 25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짠내나지만 확실한 욜로 435

냉소하는 주체 : 모든 행동의 경멸 440

신자유주의와 파국의 지속 448

반복으로서의 일상의 리듬 452

일상의 회복을 위하여 458

 

나오는 글 좀비가 욕망하는 세계

좀비와 인간 468

망가진 세계와 잔존하는 희망 472

포스트좀비의 역능 477

좀비 선언 481

 

감사의 글 484

참고문헌 487

인명 찾아보기 496

용어 찾아보기 498

 

 

출판사 서평

좀비가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살이 아닌 다른 형태의 삶이다.

파국으로 치닫는 세계, 좀비 아포칼립스는 도래할 것인가? 환경재앙과 팬데믹, 신자유주의의 심화, 무엇이 인간을 좀비로 만드는가? 부두교좀비부터 포스트좀비까지, 왜 좀비는 인간과 사랑에 빠지게 됐는가? 99%의 좀비-되기, 월가시위와 촛불집회는 어떻게 좀비혁명으로 구성되는가?

 

나는 박제처럼 굳어버린 무기력하고 위선적인 인간이기보다, 차라리 역동적이고 솔직한 좀비이기를 원한다. 좀비는 욕망에 충실하며 그것을 가로막는 것에 분노하고,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멈추는 법이 없다. 좀비는 어떠한 종류의 권위나 규율 앞에서도 순응하거나 훈육되지 않는 야성적 역능이다. 거리로 나와 장소를 점유한 그들은 사멸 가능하며 살 가치가 없는 생명, 처분 가능한 위태로운 삶이라는 박탈의 자리에 저항하고, 그럼에도 나는 이렇듯 여기에 서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대로 죽게 내버려진 채 처분당하지만은 않겠다고, 지금과는 다른 세계를 원한다고 소리 높여 선언한다. 충만한 비정상으로서의 좀비는 몰락한 불모의 세계를 풍요로운 생성의 가능성을 향해 활짝 열어젖힌다. (본문 중에서)

 

좀비와 코로나19 팬데믹

21세기는 좀비의 세기로 기록될 것이다. 가히 좀비 현상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분야와 장르를 막론하고, 사회와 문화 전반에서 좀비가 출몰하고 있다. [부산행]1,1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고, 드라마 [킹덤]은 전 세계에 K-좀비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오늘날 좀비는 영화, 드라마, 소설, 그래픽 노블, 게임, 웹툰 전반을 장악했으며, 이제는 학계에서도 좀비를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보고 있다. 좀비에 관한 연구가 언제 갑자기 일어날지 모르는 치명적 감염병에 대한 시뮬레이션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고 있듯이 전례 없는 팬데믹 시대를 맞아 좀비에 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대유행과 이로 인해 손쓸 수 없이 파괴되고 망가져 가는 세계의 모습은 마치 좀비영화가 현실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듯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 이외에도 대규모의 자연재해, 기후변화, 초미세먼지, 방사능 유출, 금융위기, 양극화, 테러리즘, 전쟁 등 현대사회가 처한 위기의 목록을 끝없이 열거할 수 있다. 좀비영화는 인류문명이 멸망하는 순간을 압도적 스펙터클로 재현한다. 금방이라도 스크린에서 뛰어나올 것만 같은 생생한 위협으로 나타나는 좀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임박한 파국을 온몸으로 체감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좀비영화를 보며 내가 사는 세계가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며, 언제라도 멸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세계의 종말이라는 묵시록적 공포와 불안감은 좀비의 유행을 견인하는 원동력으로 작동한다.

 

생활 속 거리두기강화로 인한 관객 수 감소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K-좀비영화 [#살아있다][반도]가 개봉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공중파에서는 드라마 [좀비탐정]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이렇듯 세계가 처한 위기의 정도에 비례하여 좀비의 출몰은 잦아지며, 좀비는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의 정동을 양분 삼아 번성한다. 이 책에 따르면 좀비는 매 시대의 상황과 정동을 반영하며 가장 다채롭고 다양한 형태로 변용되어 온 괴물이다. 좀비는 사람들이 지닌 막연한 불안감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알레고리다. 저자는 좀비를 통해 한국사회의 오늘을 비판적으로 읽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다가올 미래를 예비할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좀비학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좀비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정초하고자 시도한다. 그에 따르면 좀비는 인류의 타자에 대한 유구한 억압과 배제의 역사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좀비학은 무엇보다 주체와 타자 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고 재설정해야 한다. 좀비학은 인간학의 안티테제로서 인간학과 긴밀하게 연관되며, 특히 주체성 변화의 도정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며 전개된다.

좀비학은 오늘날 인간을 둘러싼 여러 담론들과 인간에게 부여된 지위가 전혀 자명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인간학이 형성된 역사와 배경을 추적하고 인간학을 해체하고자 한다. 좀비학은 인간이 만든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구도에 문제를 제기하며, 우리 시대에 가장 근원적이며 혐오스러운타자(좀비)를 사유의 중심에 두고, 인간학을 그 토대부터 전복하려는 사유 양식이자 태도다.

 

좀비학은 존재론적 전회를 통해 좀비가 인간뿐 아니라 다른 존재자들과 존재론적으로 동등하다고 주장한다. 좀비학은 인간을 정체성이나 유사성에 기반한 위계로부터 구해내며, 가장 먼 타자 모두와 함께 공존하는 존재로서 구성하고자 한다. 좀비학은 파국으로 치닫는 현 세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한다. 좀비학은 인간이 해체된 자리에서 출발해 우리 시대의 새로운 사유와 발견들을 자원으로 활용한다. 좀비학은 현재의 지배적인 담론, 억압적인 권력, 파국적인 세계에 대항하는 긍정의 존재론, 정치적인 주체, 제도적 배치들을 창안하며, 궁극적으로 지금과는 다른 삶과 세계를 발명하려는 집요하고 줄기찬 노력이며 결말이 열린 운동이다.

 

부두교좀비의 탄생은 데카르트의 근대철학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최초의 좀비 탄생이 근대철학과 제국주의의 결합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중세 신본주의 세계관의 급격한 붕괴 속에서 데카르트는 새 시대를 위한 철학을 마련하려 했다. 데카르트의 철학에서 인간은 유일하고 우월한 이성적 존재, 생각하는 명석 판명한 주체로 여겨진다. 이제 유럽인은 선험적이며 확고부동한 주체, 보편적이고 균질한 주체로서 세계의 중심에 자리 잡는다. 반면에 여기에서 벗어나는 이질적인 존재들은 인간의 범주에 포함되지 못하는 비인간이 된다.

 

이런 주체 중심적 관념은 역사철학과 결합하여 제국주의 지배의 정당성을 설파하고, 다른 인종을 착취하고 죽이는 데 정당성을 제공한다. 데카르트는 인간만이 영혼을 지닌 존재이며, 동물은 영혼이 없는 자동인형이라고 보았다. 마찬가지로 피식민지의 주민 역시 자동인형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들을 채찍질하고 죽인다 해도 인간은 아무런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으며, 이들이 내는 신음은 그저 기계의 삐걱거림처럼 기능상의 이상을 알려주는 신호일 뿐이다.

저자는 다양한 문헌과 영화들을 분석하여, ‘부두교좀비가 백인이 자신을 보편적인 주체로 정립하면서 배제한 바깥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0세기 초까지 서구 문화는 피식민지 노예를 끔찍하지만 위협적이지는 않은 무기력한 비인간, 부두교좀비라는 인간 이하의 타자로 상상했다. 이들은 자신의 처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가련한 비생명들로, 원래 있어야 할 곳(, 무덤)에서 이탈되어 부당하고 과도한 노동에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노예다. 이들은 주술사에게 조종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며, 백인의 지배나 인도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비주체로만 존재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식인좀비는 안티-휴머니즘의 반근대적 괴물이다

근대철학의 가장 강력한 적대자인 니체는 의 절대성에 근거한 인간 개념의 해체를 위해 신의 죽음을 선언했으며, 뒤를 이어 푸코는 인간의 죽음을 선언했다. 푸코에 따르면 인간개념은 발명된 지 수백 년에 지나지 않은 담론적 구성물이며, 모래사장에 그려진 그림과도 같아 이내 사라질 위태로운 형상에 불과하다. 저자는 구성된 담론이자 관습적 의미에서의 근대적 인간 주체는 이제 종말을 맞이했으며, ‘식인좀비야 말로 반근대적 괴물이라고 주장한다.

 

로메로 감독은 인간의 죽음과 휴머니즘의 종말을 온몸으로 표상하는 괴물 식인좀비를 탄생시켰다. 로메로의 영화에서 식인좀비는 부모와 가족을 살해하며 닳아빠진 근대적 가치체계에 징벌을 내린다. 근대적 주체는 영혼과 육체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영혼에 특권을 부여한다. 반면 좀비는 영혼 없는 육체로서 등장하여, 육체가 내리는 정언명령인 배고픔에 굴복하여 타인을 살해하고, 그 육체를 먹는다는 점에서 철저히 반근대적이며 반휴머니즘적이다. 좀비는 근대적 인간 주체가 지녔다고 가정되며, 다른 존재와 변별되는 특성으로 여겨지는 가치들(인간으로서의 존엄, 이성, 윤리 의식)을 철저히 배반하고 짓밟는다.

 

이 책은 근대적 인간 개념과 휴머니즘의 폭력을 비판하지만, 동시에 허무주의적 안티-휴머니즘으로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체를 최후까지 제거해 버리면, 어떠한 변화를 위한 행위 주체 역시 상정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재의 퇴행적 반복, 몰락의 항구적 지속만을 남길 뿐이다. 저자는 인간과 휴머니즘의 죽음 선언이 인간의 본질이나 존재 근거, 혹은 도덕과 윤리를 사라지게 하려는 허무주의나 반-사회적 기획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상실이나 부정적 함의로 축소되지 않으며 오히려 긍정과 생성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현대철학의 출발점이다.

 

뛰는좀비는 우리 시대의 위기와 모순을 폭로하는 기표다

뛰는좀비영화에서 출몰하는 좀비는 가공할 파괴력으로 순식간에 세계 전체를 유린한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서로 아귀다툼을 벌이며 서로 죽고 죽이다가 결국 절멸에 이른다. 인간들이 아무리 높은 장벽을 세우고 안전지대를 마련하더라도 좀비는 끝내 그것을 돌파하고 인류를 파멸로 이끈다. 세계화와 운송 수단의 발달은 좀비의 신속한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현대 과학기술이 응집된 현대 대도시 공간은 좀비가 활약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책속으로

오늘날 좀비가 중요한 함의를 지니는 것은, 좀비야말로 현대인이 지닌 공포와 불안의 정동을 읽어내는 결정적인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 우리에게 좀비가 공포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매력적인 괴물로 다가오는 것은, 좀비가 단순한 서사적 상상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현대인의 정동을 반영하는 실재적인 공포의 알레고리이며, 더 나아가 그것과의 직접적인 대면이기 때문이다.--- p.26, 들어가는 글 - 좀비의 눈으로 보기중에서

 

서울역부산행에서 좀비와 인간은 각자의 영역을 침투하여 서로 식별하지 못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구분 불가능한 영역에 진입한다. 연상호는 좀비라는 알레고리를 통해 예외상태가 일상이 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타자화되고 비인간이나 괴물로 추락하는지 그려낸다.--- p.57, 1장 예외상태의 괴물과 회복되지 않는 일상중에서

 

좀비학은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여 새로운 존재론을 구축해 나가는 이론적 과정이다. 또한 좀비학은 타자를 삶에서 배제하는 현시대의 권력에 대항하고, 다른 세계를 마련하려는 정치적 과정이다. 좀비학은 이론적 투쟁에 발을 딛고서 정치적 투쟁을 향해야 한다.--- p.125, 2장 비인간의 존재론중에서

 

좀비는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인간 주체뿐 아니라, 도덕과 윤리를 결부시켜 이상적이며 초월적 가치로 설정한 휴머니즘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회의를 초래한다. 휴머니즘을 살펴보기 위해 다시 푸코로 돌아가 보자. 푸코는 우리에게 하루빨리 인간학적 잠에서 깨어날 것을 촉구한다.--- p.186, 4장 인간의 죽음과 안티휴머니즘의 괴물, 186

 

오늘날 좀비 아포칼립스에 대한 공포는 단순히 서사적 상상이나 엔터테인먼트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은 그것을 실재하는 위협이자 공포로 받아들인다. 바이러스라는 형태로 전파되는 좀비는 테러의 공포와 동시에 전염병의 공포를 함께 자극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언론에서는 좀비가 나타났다는 뉴스를 종종 보도한다.

--- p.249, 5장 파국의 세계와 심화되는 공백중에서

 

존재론적 전회는 휴머니즘과 안티-휴머니즘 간의 대립을 극복하고 양자의 유산을 모두 충분히 참조하되, 안티-휴머니즘이 초래할 수 있는 허무주의에 머무르지 않는다. 동시에 근대적 휴머니즘으로의 회귀라는 손쉬운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유의하며, 주체의 공백이라는 자리에서 출발하여 다른 주체성 양식들을 실험하고 창안해나가고자 하는 철학적 사유양식이자 윤리적 태도다.--- p.284, 6장 괴물에서 벗어나는 좀비들중에서

 

좀비는 더 이상 무기력하고 나약한 존재거나 혹은 손쓸 수 없는 전염성과 파괴력으로 세계를 멸망시키는 존재가 아니다. 대중의 정동과 가장 맞닿은 괴물인 좀비는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시키며 지배체제에 저항하는 주체로서 등장하고 있다.--- p.347, 7장 폐허를 딛고 새로운 주체를 발명하기중에서

 

공권력 앞에 맨몸으로 거리로 나선 민중들은 좀비와 마찬가지로 가진 것이라곤 오직 몸뚱이가 전부인 자들이다. 거리로 나선 자들은 모두가 동일한 하나의 육체로서 현전한다. 거리에서 모든 육체는 권력의 고하나 직업의 종류, 나이, 성별, 인종과 관계없는 하나의 육체일 따름이다. 이들은 다양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열망으로 한데 뭉치고, 특이성을 유지한 채 총체성으로 구성되어 함께 권력에 대항한다.--- p.371, 7장 폐허를 딛고 새로운 주체를 발명하기중에서

 

효리네 민박210회에서 평소에 누려보지 못했던 충만한 일상을 만끽한 한 손님, 효리와 상순의 뇌 부스러기 조각을 한 입 베어 물고, 타인의 일상으로의 외출이라는 잠시간의 꿈같은 달콤한 행복(가상체험이자 관음이라는 향락)을 즐긴 한 청년좀비는 민박집을 떠나면서 이렇게 독백한다. “현실행 급행열차 출발합니다. 내리실 문은 없습니다.” --- p.466, 8장 일상 없는 삶의 지속과 반복중에서

 

 

식민지의 주술 걸린 노예 좀비, 글로벌 자본주의의 알레고리가 되다

2016년 늦가을, 나는 국내 최초로 열린 좀비 학술대회에서 같은 해 여름에 연달아 개봉된 연상호 감독의 영화 <부산행>과 애니메이션 <서울역>에 대한 글을 발표했다. 그때까지 좀비에 대해 두 세 편의 글을 썼지만, 글로벌 자본주의 괴물 좀비가 한국에 언제 상륙할지, 또는 자생할 수 있을지 별반 확신이 들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연상호 감독이 두 편의 멋진 좀비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선보이게 되어, 대한민국은 <부산행>의 한 표현을 빌리면 '좀비민국'으로 바꿔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발표가 끝나고 종합토론 자리에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한 선생님께서 했던 총평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정확하게 옮길 수는 없지만 대략 이런 말이었다. "이제 좀비가 현대의 온갖 철학과 문화 이론의 피와 살, 내장을 탐닉하는 괴물, 모든 이론이 빠져드는 블랙홀이 되겠군요." 우려와 기대가 반반 섞인 말로 기억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분의 언급은 내가 쓴 글에도 얼마간 해당되는 것이었다.

 

'인간 이후의 존재론과 신자유주의 너머의 정치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김형식의 <좀비학Zombiology>을 읽으면서 오래 전에 학술대회에서 들었던 촌평이 떠올랐다. 과연 이 책은 A에서 Z(아감벤Agamben에서 지젝 Žižek)까지, 에서 (가타리Félix Guattari에서 후쿠야마Francis Fukuyama)까지 도미노로 촘촘히 세워도 이(齒牙) 하나 빠지지 않게 철학자와 이론가의 저작을 광범위하게 인용하고 있었다. 책을 읽다보면 마치 좀비라는 괴물을 해석하기 위해 예외상태(아감벤), 인간의 종말(푸코), 역사의 종말(후쿠야마)이 도리어 발명된 것처럼 보인다. 당연히 <좀비학>의 의의와 가치를 폄훼하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전도(顚倒)의 감각은 활력 있고, 유려하며, 재미난 문체로 쓰인 문화비평서를 읽을 때 체감할 수 있는 것이다. <좀비학>은 그런 유의 책이다. 이 책은 좀비처럼 혐오와 구역질을 유발하는 괴물을 멋지고 세련된 포스트휴먼의 혁명주체로 탈바꿈시킨다.

 

아이티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주술에 걸려 밤낮없이 일만 하는 노예였던 좀비는 ()식민주의적인 영화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1943)와 함께 미국에 상륙해, b급 하위문화, 특히 조지 A. 로메로의 시체 삼부작을 거쳐 지금은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2019, 2020)에서 남녀노소, 평민과 양반, 왕과 신하 너나할 것 없이 맨발로 뛰어다니는 봉두난발의 떼 괴물(mob monster)이 되었다. 그 즈음에 근대는 탈근대로 서서히 바뀌었으며,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늑대인간처럼 홀로 어슬렁대던 근대의 괴물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고, 좀비가 전 지구적 자본주의로 식민화된 탈근대를 해석하는 알레고리 괴물로 등장한다.

 

 

이 책의 문제의식과 설정, 방법론은 변이와 진화를 겪어온 족보 있는 괴물에 대한 역사적인 탐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좀비학>은 제목에 걸맞게 좀비에 대한 다양한 어원, 그 문화적 유래를 짐작하게 하는 수많은 문학과 영화, 다른 괴물들과의 차이, 좀비에 대한 여러 해석학을 참조하고 휴머니즘과 반휴머니즘, 신자유주의와 통치술, 삶과 생명의 간극, 인류세와 팬데믹 등의 문제 틀로 좀비 알레고리, 알레고리 좀비에 대한 방대하고도 심도 있는 탐구를 수행한다. 독자들은 <좀비학>이 제공한 싱싱하고도 풍성한 재료를 살과 피, 뼈까지 핥아먹고 포만감에 젖어 아랫배를 만지다가 어느새 포스트휴먼 좀비로 변신하는 것만 같은 자기 자신을 틀림없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영혼 없는 신체'인 좀비는 무엇에 대한 이름(알레고리)인가. "좀비는 모든 '이름이 없는 자들'의 이름이다."(32) 비록 우리가 사는 사회가 좀비사회이고, 우리의 삶이 좀비의 그것을 닮았지만, 우리=좀비는 한낱 대상이나 객체가 아니다. 좀비는 새로운 주체성을 요구한다. 모든 대표와 재현에서 배제당한 억압받는 자들, 소수자들에 대한 이름 없는 이름이 되어야 한다! <좀비학>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테제다. 좀비는 그저 혐오감을 주는 비체(卑體, abject)적인 은유로만 머물지 않는다. 좀비물에 열광하면서 그것을 사유의 대상으로 탐구하는 이들에게 좀비를 비체로만 간주하는 것은 좀비의 변이와 진화를 무시하는 처사다.

 

좀비는 알레고리가 되기를 요구하는 괴물이다. 시대와 역사, 자본주의에 대한 은유와 환유의 알레고리. 그런데 알레고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편으로 표상(이미지)으로 표현하되 그 너머의 개별에서 집단에 이르는 정신적·도덕적 의미를 추론하고 종합하도록 요구하는 해석기계다. 독자는 <좀비학>에서 잘 구축된 좌파 해석학의 성채에 입장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알레고리는 '모든''없는'을 극에서 극으로 오가는 해석기계이기도 하다. 이러한 해석기계에 좀비를 집어넣으면 세상 모든 게 좀비 아닌 것이 없고, 또 좀비인 것도 딱히 없다. 그리하여 이 책의 어느 순간부터 좀비는 알레고리 밖으로 뛰쳐나와 현대사회 이곳저곳을 배회한다.

 

화려함을 넘어서 과장된 문체 때문인지는 몰라도 500여 쪽에 이르도록 지칠 줄 모르고 달리는 이 책을 읽다보면, 좀비는 썩은 눈과 갈라진 입, 내장이 비어져 나오고 팔다리의 일부분이 뒤틀리거나 잘린 채 온갖 오물덩어리를 뒤집어쓰고 인육을 탐하러 몰려드는 괴물로 더는 보이지 않게 된다. 대신에 <좀비학>의 좀비는 스피노자의 코나투스(conatus)와 들뢰즈의 생기(vitality), 네그리의 역능(puissance)으로 충전하고 월가 시위에 좀비 분장으로 퍼포먼스를 벌이는 문화연구 전공의 힙스터 대학원생 모임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진지해야 마땅할 이런 대목을 만나면 눈물이 나오지 않아 못내 아쉽다. "만일 니체가 설탕 농장에서 채찍을 맞고 있는 좀비의 모습을 보았더라면, 그는 말 대신 좀비에게 뛰어가 그를 끌어안고 사죄하며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167) 상상해보라. 초인을 설파한 니체가 농장의 좀비를, 니체의 후예로 인간의 죽음을 선언한 푸코가 걷는 좀비를, 들뢰즈와 네그리가 역능의 좀비-되기를 위해 뛰는 좀비를 끌어안는 장면을. 그리고 곧 이어질 또 다른 장면을……

 

그렇다면 역능을 지닌 포스트휴먼의 좀비를 분장시키기 위해 <에티카>를 쓴 말년의 스피노자보다 좀비를 비롯한 괴물의 계보를 작성하기 위해 <지성개선론>을 쓴 청년 스피노자를 인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스피노자는 본질과 행동에 그릇된 관념들의 구체적인 사례를 든다. 그는 숲과 이미지, 짐승, 사물에 신성이 있다는 확신, 신이 기만당한다는 데카르트적인 가설과 함께 "신체들의 단순한 결합에서 지성이 생기는 신체들이 존재"한다거나 "추론하고 배회하며 말"하는 "시체들"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을 그릇된 관념의 사례로 든다(바루흐 스피노자, <지성개선론>, 강영계 옮김, 서광사, 2015, 66). 그리하여 스피노자는 생동하는 물질을 말하는 오늘날의 신유물론(, 이미지, 짐승, 사물에 깃든 신성),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신체들의 결합에서 지성이 생기는 신체)<좀비학>에서 저자가 특별히 강조하는 혁명적 주체성의 형상인 '포스트좀비'의 대표적인 영예를 누리는 <웜바디스>(2013)의 좀비 R(추론하고 배회하며 말하는 시체)의 저주어린 선구자로 변신한다.

 

맥스 브룩스의 좀비 아포칼립스 소설 <세계대전Z>(2006)에는 퀴즐링(quisling, 부역자)으로 명명되는 일군의 인간 무리가 등장한다(<워킹 데드> 시즌 9·10에서 좀비 행색을 하고 다니는 위스퍼러whisperer 무리를 떠올려도 좋겠다). 소설에서 증언자는 "좀비처럼 움직이고, 좀비 같은 소리를 내고,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면서 먹으려고" 드는 사람들, "좀비의 마음에 들려고 하고, 한패가 되고 싶어 하고, 그들처럼 되려고 하는" 사람들, 좀비와 다를 바 없으며 끝내 좀비에게 순순히 먹히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아무래도 내게는 <좀비학>의 저자가 좀비-되기를 수행하는 좌파 퀴즐링이나 위스퍼러의 한 멤버처럼 보인다. 2년 전엔가, 나를 좀비 강연자로 호명했던 어느 대학의 강연 자리에서 좀비에 대한 지금의 책을 준비하던 저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때는 저자의 정체를 몰랐다. 내가 거기서 무사히 빠져나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좀비에 대한 본격적인 좌파 문화비평을 수행한 국내 첫 저서인 <좀비학>에 대한 이 서평을 작성하기 위해서였던가. 저자의 배려에 감사드린다

복도훈 문학평론가/ 프레시안

 

 

좀비학: 인간 이후의 존재론과 신자유주의 너머의 정치학

좀비학좀비를 주제로 역사·과학·철학·정치·문학·문화·사회현상 등을 종횡하며 비평하고, 어떻게 우리 시대에 좀비가 주체로서 거듭나게 되었는지를 면밀히 분석한다. 종말과 파국의 시대에 맞서 여전히 희망을 추구하며, 좀비를 혁명적으로 재사유하려는 분투의 결과물이다.

 

우리가 좀비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냉소나 포기, 체념 따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파국의 세계에 대항하려는 긍정의 역능으로서, 불굴의 의지이자 자기 확신의 표명이다. 우리는 왜 좀비였고, 여전히 좀비이며, 앞으로도 좀비여야만 하는가? /생명을 파괴하는 체제에 대항하는 좀비혁명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다.

 

인간의 신체는 좀비를 잉태하고 있는 배아이며, 부드러운 살은 좀비에게 탐스러운 과육과도 같은 식량이자 동력이다. 제 몸으로 좀비를 낳고, 제 살을 먹여 좀비를 길러 번성시키는 인간은 좀비의 유일한 원천이자 부모다. 부모와 닮은 자식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죽음을 꿈꾸며, 항상 우리의 곁에 상존한다. 그러므로 좀비학의 탐구는 인간학에 근접하되, 보완하거나 지지하기 위한 순접으로서가 아니라, 인간학의 치명적인 안티테제로서 역접한다.

 

좀비는 자기 근거적, 자기 규정적, 자기 입법적인 주체, 이 주제넘은 주체를 무참히 전도하고 배반하며, 내부에서 폭발시키고 해체한다는 의미에서 우리 시대 가장 첨예한 안티-휴먼적 표상이다. 그 잔재 위에서 도래할 새롭고 활력적인 존재론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미래적 현재, 도래할 인간에 대한 도발적인 상상이며, 실재적인 포스트휴먼 주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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