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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칼럼 기고

코로나 3년 차로 가는 길목에서

by 이성근 2021. 12. 10.

해를 넘기면 코로나 3년 차가 된다. 그럼에도 진정의 기미가 없다. 오히려 증가일로에 있다. 2021129일자 통계치는 전국 7,022명에 부산만 해도 확진자 303명이다. 코로나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워드코로나 세상에서 마주한 수치다.

1년 전 이맘 때 신규확진자는 682명이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3차 유행으로 규정하고 121일부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격상시켰다. 긴장의 폭은 지금보다 훨신 강했다. 유럽 주요국가들은 2차 국가 봉쇄령을 발표했다. 징글벨 소리 없는 크리스마스가 되었고 거리는 얼어 붙었다. 신년 해맞이도 사라졌다.

 

이대로라면 올해 연말연시 또한 작년과 같은 판박이가 될 수 있겠지만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하루 수천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더 이상의 동요는 없다. 이른바 걸리는 사람은 걸리는 거고, 안 걸리면 다행이라는 심리가 지배적이다. 그래서 음식점이며 술집들은 코로나 이전처럼 불야성을 이루고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가 자정 가까운 시각임에도 사무실 책상으로 날아 든다.

 

강제된 격리, 단절의 시간에 대한 반작용 일 수도 있다. 영업손실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중소상공인들의 고통도 이해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갓난아기나 유아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장면 앞에서는 분노마저 치밀었다. 예컨대 저 어린 것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태어나자 말자 마스크로 숨구멍을 가려야 한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어른이라고 하는 자들이 도무지 미안해하는 낯빛이 아니다. 마치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며 얼버무린다. 과연 그런가

 

나훈아가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간 해운대구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나훈아 어게인 테스형’ 공연을 총 6회 열었다    12월10일 오후 나훈아 콘서트를 찾은 많은 시민이 길게 줄을 선 채 입장하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부산일보

 

코로나의 등장은 야생과 인간의 경계가 허물어짐으로서 비롯된 것이다. 화석연료에 기초한 과도한 개발괴 성장주의, 그리고 불평등이 심화된 이 세계는 몸살이 났다. 지구평균기온 불과 1도 상승된 결과로서 때 아닌 폭설이 내리고 한파가 몰아쳤다. 어떤 나라는 거대한 산불이 발생하고 또 어떤 나라는 홍수로 난리였다. 해수면이 상승하고 동토가 녹고 있다. 얼음속에 갇혀 있던 고대 박테리아가 나오고 전에 없던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변형하면서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전쟁이 아닌 상태에서 국가 간의 교역이 중단되고 출입이 봉쇄되었다. 이 전대미문의 상황 속에 하늘은 잠시 제 빛깔을 찾았고 사람들은 간만에 멈춰 선 채 그 하늘 보았다.

 

하지만 그 교감 길지 않았다. 코로나가 던진 메시지는 더불어 삶이 없는 풍요와 욕망의 중독 세계로부터 거리를 두고 공존괴 지속 혹은 지탱 가능한 세계로 전환하라는 것인데, 백신으로 좀 살만해지자 해석이 달라지고 있다. 다시 온갖 개발이 난무하고 있다. 급기야 아이들이 학교 파업을 벌이며 외치기 시작했다.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최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6)에서 툰베리가 세계 지도자들에게 퍼부었던 No more blah blah blah(어쩌고저쩌고 말만 하지말라) 는 비단 그곳에 모였던 지도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어른들이 내일의 주인이 될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최소한의 배려다. 더 이상 망가뜨리지 말라.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장담하건데 현재와 같은 방식대로 살고자 한다면 지구 평균기온 상승 2도는 현실이 된다. 지옥이 따로 없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때는 코로나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진정 이런 세상 원하는가.

 

부산지속가능발전협의회 -소식지 권두언  20221.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