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20여 년 전에도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 1996년 여름 무주 남대천은 덕유산국립공원에 동계유니버시아드 스키 경기장을 건설하면서 흘러내린 토사로 몸살을 앓았다. 1982년 천연기념물 322호로 지정된 무주 남대천의 반딧불이 서식지가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다행히 지역 주민들의 노력으로 반딧불이는 되살아났고, 97년 시작된 반딧불이 축제는 국내 주요 생태관광으로 자리 잡았다. 반딧불이가 사는 곳은 오염 없는 깨끗한 곳이다. 그래서 청정 환경의 지표생물로 불린다.
전 세계에는 2100여 종의 반딧불이가 있고, 국내에는 8종의 반딧불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에서도 애반딧불이·늦반딧불이·파파리반딧불이(운문산반딧불이) 등 3종은 전국에 비교적 널리 분포한다.
6월 중순에서 7월 초순 사이 오후 9시쯤 출현하는 애반딧불이는 성충의 크기가 8~10㎜이며, 암수 모두 날 수 있다. 노란색 불빛을 내며 1분에 120회 정도로 짧은 간격을 두고 반짝인다. 유충은 논·습지·배수로 등에서 서식하며 우렁이·물달팽이를 먹고 산다. 짝짓기 2~3일 뒤 200~300개의 알을 낳는다. 알은 20~30일 만에 부화하고, 이듬해 봄까지 물속에서 살며 변태 과정을 거친다.
8월 초순에서 9월 초순 사이 초저녁부터 나타나는 늦반딧불이는 성충의 크기가 15~~19㎜로 가장 크며 수컷만 날 수 있다. 노란색 불빛이 길게 반짝거린다. 유충은 산기슭과 밭 주변에서 달팽이를 먹고 산다.
파파리반딧불이는 5월 중순에서 7월 초순 사이 늦은 밤에 나타나며 암컷은 속 날개가 퇴화해 날지 못하고 수컷만 날 수 있다. 유충은 냇가에서 달팽이를 먹고 자란다. 성충은 크기가 8~10㎜이고, 불빛은 푸른색이 돌 정도로 밝으며, 1분에 80회 정도로 짧게 점멸한다.
과거 반딧불이 유충의 먹이는 다슬기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일본의 겐지반딧불이에 관한 내용이 확인 없이 잘못 알려진 탓이다. 다슬기도 먹지만 달팽이 등을 더 좋아한다.
반면 반딧불이가 내는 반딧불은 생물발광(生物發光·bioluminescence)이다. 루시페린(luciferin)이란 색소와 루시페라아제(luciferase)라는 효소 덕분에 반딧불이가 스스로 배 마디에서 빛을 낸다. 루시페라아제는 몸속에 축적된 에너지(ATP)와 산소(O2)를 사용, 루시페린을 산화시킨다. 처음에는 에너지가 많은 ‘들뜬 상태’의 산화루시페린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바닥 상태’로 떨어질 때 빛 에너지가 방출된다. 반딧불이 중에는 빛을 내는 부분 안쪽에 일종의 반사판 같은 세포층을 형성, 빛이 밖으로 잘 나가도록 하기도 한다.
반딧불이 외에도 비브리오 속(屬)의 몇몇 세균이나 밤바다를 파란 불빛으로 물들이는 야광충(夜光蟲)도 생물발광을 한다. 버섯·오징어·달팽이 중에도 있다. 오징어나 심해 아귀는 발광세균 주머니가 있다. 세균은 빛을 내주고, 아귀는 세균에게 영양분을 제공하는 공생 관계다.
이들 생물 역시 반딧불이처럼 짝을 찾기 위해 빛을 내기도 하지만 먹잇감을 유혹하기 위해, 혹은 적을 쫓아내기 위해 빛을 사용한다.
하늘에서 추방당한 타락 천사 루시퍼는 사탄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지옥의 왕으로도 일컬어진다. 원래는 하늘의 치천사(熾天使: 천사의 아홉 계급 중 첫 번째) 중 한 명으로 천사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위대하며, 하느님으로부터 가장 사랑받았던 존재였다. 천사의 3분의 1을 지휘하는 권한을 받았다고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간을 창조한 하느님이 루시퍼에게 인간을 돌보라고 명령을 내린다. 루시퍼는 자신보다 못한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을 더 많이 차지하자 질투를 느꼈다. 그는 천사들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대천사 미카엘이 이끄는 천사 군단에 패했고, 지옥으로 추방됐다는 것이다. 생물발광을 연구한 학자들이 빛을 낸다는 이유로 루시퍼의 이름을 가져다 썼지만, 반딧불이가 굳이 사탄의 편에 설 이유는 없다.
빛을 발하는 반딧불이가 겉으로는 아름답고 낭만적이지만 그 생활사를 들여다보면 섬뜩한 부분도 있다. 악마인 루시퍼만큼은 아니겠지만 착하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얘기다. 수중 생활을 하는 애반딧불이의 애벌레는 다슬기·물달팽이·고둥 등을 먹고사는 육식 곤충이다. 날카로운 턱으로 먹잇감을 문 뒤 턱의 작은 홈을 통해 강력한 소화마취제를 먹이에 주입한다. 껍데기 속의 상대를 액체 상태로 만들어 놓고는 빨아먹는다. 반면 반딧불이는 성충이 된 다음에는 짝짓기하고 죽을 때까지 보름 동안을 그저 이슬만 먹고 지낸다.
포투리스(Photuris) 속(屬)의 반딧불이는 속이 다른 ‘포티누스 카롤리니스’를 잡아먹는다. 포티누스 수컷 반딧불이가 한꺼번에 빛을 내면 포투리스는 포티누스 암컷 반딧불이와 비슷한 신호를 내보낸다. 암컷으로 착각한 포티누스 수컷이 짝짓기를 하기 위해 땅으로 내려오면 포투리스가 포티누스 수컷을 붙잡은 뒤 먹어치운다. 일부 학자들은 포투리스에 ‘팜므 파탈(Femme fatale, 치명적인 여자 혹은 악녀) 반딧불이’란 별명을 붙였지만 제대로 된 이름은 아닌 셈이다.
포티누스도 당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포식자의 공격을 받으면 포티누스는 자신의 피 일부 배출한다. ‘반사 출혈(reflex bleeding)’이다. 포티누스의 피는 포식자의 입속에서 끈적끈적한 덩어리로 바뀐다. 포식자가 움찔하는 사이에 포티누스는 달아날 기회를 얻게 된다.
반딧불이 중에는 두꺼비처럼 독을 만드는 종류도 있다. 포식자는 독을 내는 반딧불이를 먹었다가 맛이 없다는 걸 깨닫고 뱉어버릴 수도 있다. 포식자인 포투리스 속 반딧불이 스스로는 이런 독을 만들지 못하지만 다른 반딧불이를 잡아먹고 그 독을 몸속에 간직한다. 심지어 자기가 낳는 알에 전달해주기도 한다.
당시에는 비닐이나 유리가 없어 얇은 명주 주머니에 반딧불이를 넣어 책을 읽었다고 하니 150마리로는 부족했을 수도 있다. 더욱이 반딧불이는 계속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깜빡거리기 때문에 눈의 피로가 적지 않을 것이다. 반딧불이는 2주일을 넘길 수 없으므로 여름 한 철 반딧불이를 잡느라 밤낮으로 허비하는 시간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겨울철에는 눈에 비친 달빛으로, 여름에는 반딧불이 빛으로 책을 읽었다면 봄과 가을엔 어떻게 했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타카하타 이사오(高畑勳) 감독이 8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의 대표작인 '반딧불이의 무덤'은 노사카 아키유키의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한 것인데, 이 소설에도 차윤(車胤)이란 이름과 형설지공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전쟁 동안 일제가 저지른 만행은 언급하지 않고, 미군 폭격으로 피폐해진 일본인의 삶만을 다룬 애니메이션이어서 우리로서는 아쉬운 구석도 많지만, 슬픈 결말에 짠해진 마음이 오래오래 남아 있다.
반딧불이가 발견되는 곳으로는 부산 태종대와 인천 만월산과 계양산, 대전 서구 노루벌, 경기도 성남시 분당 맹산, 양평군 명달마을, 남양주시 조안면, 강원도 강릉 남대천, 영월 물무리골, 충남 논산 수락계곡, 청양 칠갑산, 아산 궁평저수지, 경북 영양과 안동, 청도 운문산, 제주 서귀포시 한남 시험림, 제주시 청수곶자왈 등이 있다. 이들 중 일부 지역은 반딧불이 보호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서울 남산과 길동생태공원, 울산, 강원도 원주 치악산 국립공원, 전주시 삼천 등에도 반딧불이 복원사업이 진행됐다. 서울대공원이나 에버랜드 등 놀이공원에서도 사육한 반딧불이가 볼거리로 제공되기도 한다.
애벌레 시절 1급수의 맑은 물에 사는 달팽이·다슬기를 먹고 사는 반딧불이에게 가장 큰 위협은 농약을 뿌려대는 사람이다. 그리고 밤에도 환한 인공조명을 켜 짝짓기를 방해하는 게 사람이다. 반딧불이가 살 수 없는 환경은 사람도 살기 어렵다. 여름밤 반딧불이의 불빛을 찾아 수풀 속에서 헤매는 것은 어쩌면 우리 자신의 건강한 삶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인지도 모르겠다. / 4.7 강찬수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반딧불이의 묘'의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다카하타 이사오 별세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과 함께 일본 애니메이션계를 대표해온 다카하타 이사오(高畑勳) 감독이 지난 5일 도쿄 도내 병원에서 별세했다고 6일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향년 82세. 다카하타 감독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 <반딧불이의 묘> <추억은 방울방울> 등의 작품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미에(三重)현 이세(伊勢)시 출신으로 도쿄대 문학부 불문과 재학 시절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갖게 됐다. 1959년 도에(東映)동화에 입사, 1968년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으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을 처음 감독하면서 주목받았다.
1971년 후배인 미야자키 감독과 함께 퇴사한 뒤 TV시리즈인 <루팡 3세> <알프스 소녀 하이디> <엄마 찾아 삼만리> <빨강머리 앤> 등의 작품을 다뤘다. 미야자키 감독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섬 라퓨타>에는 프로듀서로 참가했다. 1985년 미야자키 감독과 함께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했다.
1988년 노사카 아키유키(野坂昭如) 원작의 <반딧불이의 묘>로 모스크바 아동청소년 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았다. 그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 막바지 부모를 모두 잃은 소년이 여동생과 함께 친척 집과 방공호를 전전하다 동생이 굶어죽고 자신도 최후를 맞이한다는 내용이다. 전쟁의 참상을 절절하게 묘사한 작품이지만, 가해국 일본을 피해자로 묘사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공습에서 살아남은 감독 개인의 전쟁 체험이 반영돼 있기도 하다.
이런 체험에 기반해 안보법 개정과 헌법 개정 시도 등 ‘전쟁가능한 국가’를 만들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문재성 作 Dream (7.27X90.9(cm), 한지에 수묵채색)
고목나무 샘을 돌아온 바람이
빨래집게 하나 덜렁거리는
빈집 마당을 들여다본다
작은 산새 발자국이 혼자 놀고
눈물이 빛바랜 벽에 얼룩으로 남아있는 집
아직 자리 잡지 못한 방황의 그림자가
문득 고향 쪽을 향해 멈춘다
뜰 안 능소화 한 줄기
붉은 노을 뚝뚝 떨구며 늘어진다.
잠시 머물던 초승달, 희미한 꼬리를 감추면
반딧불이 환하게 불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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