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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오래된 미래

지사 명동 허황후길, 그 나무가 사라졌다

by 이성근 2015. 5. 30.

 

강서구 강동동 수봉도와  지사 명동을 찾았다.

수봉도 당산 팽나무는 수령이 150년 정도 된다.  과거 홍수가 났을 때 팽나무 세 그루가 떠내려와 지금의 당산나무로 성장했으며, 나무를 잘 모신 결과 한국전쟁 때도 전쟁에 나간 마을 청년들이 한명도 다치지 않았다고 한다.  매년 음력 정월 초 이틀 밤 자정과 사월 초파일 밤 자쩡께 제의를 지낸다 . 

일대는 에코델타 사업지구에 속한다. 해서 향후 이 나무의 거취가 어떻게 되는지 수자원공사에 물었더니 존치한다고 했다. 참 다행한 일이다. 수봉도 팽나무는 그 자태가 안정감 있고 의젓하다.  세그루의 팽나무 중 제일 몸집이 큰 당산 뒷편 팽나무의 경우 지난 2014년 방문 때   가슴둘레 3.45m 뿌리둘레 4.14m  수관은 동서 20m 남북 18m로 조사 됐다. 지표근이 발달했고, 수고는 그리 크지 않다.  주간에서 분지된 가지수도 세가닥으로 안정된 형태다.   몸시 더운 날이었는데  그늘이 시원했다.

에코델에코델시티 계획 수립시 기존의 역사적 장소성보전하기 위하여 노거수(팽나무 3그루)’가 위치한 강동동 4384-1번지 일원(수봉도)’은 토지이용계획상 근린공원으로 지정, 노거수현 위치존치보존하는 계획을 수립, 노거수가 가진 인문경관가치 및 건강한 생육환경을 유지토록 함

두번째 방문지 지사 명동 팽나무를 찾아 갔다.  혹시나 싶었나 그 혹시가  적중했다. 

마을의 철거와 함께 멀리서도 보이던 팽나무들은 보이지 않았다.  당혹스러움과 낭패김을 감출 수 없었다.  

명동 팽나무는 마을 입구 일반 주택 안 담벼락에 서 있던 팽나무와 함께 마을 안쪽 팽나무 두 그루 였다.  이곳의 팽나무는 수령 300년으로 수고 15m 가슴둘레 3.6m  뿌리둘레 4.6m 남북 수관은 15m 였다.

주간 기부에서 세 가닥으로 분지가 되었는데 그 중 한 가닥은 태풍으로 유실됐다.

 이들 나무는 마을의 형성과 함께 그동안 성장해왔는데, 마을의 해체와 더불어 나무도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집을 지키고 있던 올해 여든 삶의 할매 한분이 60년 전 자신이 시집을 올때도 나무가 컷다고 하며 몹시 안타까워 했다.  마침 친정에 다니러 왔던 딸도 여간 안타까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릴 적 놀이터 였다고 했다.  지난 11월 이곳을 방문했을 때  은근 걱정을 했다.  사실 그때도 주변 산림의 벌채가 이루어 지고 있었고 일부 주택은 철거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래 적기가 꼽혀 있는 자리에 나무가 있었다.

인근 주민을 찾아 수소문하자니 공사장에서 관계자가  자초 지종 이야기를 전해 준다. 결론적으로 자사 명동 팽나무들은 마을 대표들의 간곡한 부탁과  요청으로 인해 올 봄 홍천수목원으로 이식되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홍천이란 말인가 .   석대 수목원 조성 중인데 ... 너무 멀리 보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그 산골에 ...

이식되는 과정에서 팽나무들은 몸을 줄여야 했을 것이다.  가지를 쳐 내고 분을 만들기 위해 뿌리를 잘라 내어야 했을 것이다.

그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지사동(智士洞)은 원래 김해군 토야면(土也面) 범방리(凡方里탑동리(塔洞里구랑리(九郞里소압리(小鴨里미음리(美音里상룡리(上龍里중곡리(中谷里지사리·생곡리(生谷里)의 한 마을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김해군 녹산면(菉山面)과 토야면이 통합되어 녹산면이 되면서 녹산면 관할이 되었다.

1989년 녹산면이 부산직할시 강서구에 편입되어 녹산동이 되면서 지사리도 지사동으로 바뀌어 강서구 지사동이 되었고, 1995년 부산광역시 강서구 지사동이 되었다.

지명은  지세가 명망있는 선비가 독서하는 형국의 명당이라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명동(明洞지사·신명(新明) 등의 자연마을과 곰티고개·너더니고개·굴암산· 보개산 등의 산과 지사천의 발원지가 있다. 유로 9.3km 지사천은 세산에서 서 낙동강 합류한다,   이곳의 팽나무가 사라진 마당에 이곳을 다시 찾아 올 이유는 없다.  실로 안타까운 노릇이었다.  일대는  원전기자재 특성화 산업단지로 개발된다.  하고 많은 업중에 하필이면 핵발전소 관련 공장들이라니  ..  실소했다. 핵 관련 산업이 얼마나 지속될 것이라고 

아직 완전히 철거가 되지 않았던 지난 해 11월 마을 뒷산의 모습이 지금과는 너무도 비교된다.  마을 길을 따라 가다 보면 명월산 자락에 흥국사가 있다. 흥국사에는 조선 숙종 32(AD1706) 증원선사(證元禪師)가 지은 사적기가 전해온다. 여기에는 조선 선조 25(AD1592)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광해군 9(AD1617)에 중건하고 숙종 32년에 중수를 했는데 이 때 옛 기와 한 장을 얻었다고 한다. 거기에는 건강(建康) 원년 갑신 3월 장유화상이 불법을 전하니 왕이 불도를 중신하고 숭불하였다고 명각 되어 있었다고 한다. 건강 원년 갑신년은 AD144년으로 수로왕이 재위하던 시기이다.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불교 남방전래설의 근거가 될 수 있을 텐데 현재 명문 기와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대웅전에 있는 명월사 사왕석(明月寺 蛇王石)가 남방불교 도래설에 대한 한 가닥 근거로 남아 있을 뿐이다. 높이 60너비 80의 좌불이 양각돼 있고 양 옆에 코브라뱀이 떠받치듯 조각돼 있다. 이는 국내 불교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인도 불교에서나 볼 수 있는 양식이라고 한다이 터에서  김수로왕과 허황후가 첫날밤을 보냈다고 하는데 그날로부터 2천년이 지난 지금 그 자손은 3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서기 48년 그들이 운우지정을 보내던 밤 달빛이 너무 좋아 산이름을 명월산이라 하고 암자를 지어 명월사라 했다고 전한다.

 

돌아서 나오는 길에 후계목을 몇 그루 보긴 했지만, 아마도 후계계목의 미래는 없을 듯 하다.

 비내리는영동교 - 주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