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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오래된 미래

김해 한림 쇠실(금곡: 金谷里) 팽나무 외

by 이성근 2015. 2. 22.

 

처가집에서 귀가하는 길에서 잠시 우회하여 금곡리 쇠실 노거수를 확인하러 갔다. 금곡리는 고려시대 역이 있던 곳이다. 

아마 화포천 관련 기록파일을 뒤적이면  2000년대 초 중반  아님 90년대 후반 어느 여름날 찍었던 사진이  있을 것이다만  현재 상태도 확인할 겸 그 나무들을 만나 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폐교가 된 금곡국민학교가 있다.  아내와 처남들이 다닌 학교다.   폐교는 거기에 몸 담았던 구성원들의 기억 저장소가 몽땅 사라지는 일이다. 얼마나 많은 폐교가 생겨났든가.  어쩌면 우라는 한 시절을 고스란히 잃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금곡마을은 가야시대 야철장이 있었다고 하여 쇠실이라 부른다. 광주 노씨 집성촌으로 마을 어귀 노거수는 400년 전 광주 노씨(盧氏)들이 입촌을 기념하여 식재한 상수리나무와 팽나무가 노거수가 되었다. 광주노씨들의 김해 이주는 제법 오래 된 듯하다.  영남의 주요 세거지는 경남 고성을 시작으로 합천 초계, 의령, 산청, 거제 , 함안, 창령 등으로 퍼져 나갔으며 김해도 그 중의 하나 인듯하다 .

두 나무는 지난 2007년  김해시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팽나무의 경우 수령 400년에 수고 14m 나무둘레 4.2m 로서 기부 60cm에서 두 갈래로 뻗어 자란다  우측 가지는 약 45도 정도 기울기로 비스듬히 자라지만 그 기울기 덕에 내습했던  태풍의  피해로부터 견딜 수있었던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이날 나 말고도 누군가 이들 나무에 관심을 가진 이가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왔던 여인인데 꽤나 진지한 모습으로 노거수를 담고 있었다.  솔직히 긍굼했다.  무엇을 하는 사람이기에  그것도 혼자 ... 

 

상수리 나무 역시 지난 2007년 보호수로 지정받았지만  현재는 해제된 상태다.  나무는 수고 17m 나무둘레 4.4m

 아래 2012년 5월 비록 외과수술을 받기는 했어도 3~3.5m 지점에서 가지가 벌어진 모습은 온전했다.   

                                                                                                                                                                             사진출처: 다음 카페 대구노씨 청장년회

사진출처:  다음 블로그 김기일 2006년

 아마도 얼마 가지 못할 듯하다. 대신  후계목으로 삼을 수 있는 나무가 몇 걸음 앞에 있다. 

 

                                                                                                                                                                              사진출처: www.daum.net  2011.12

나무의  변화는 지난 2012년까지 건재한 것으로 보아 얼마 전에 가지가 부서진 듯하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 마을 부모들의 교육열이 높아 애들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열에 아홉은 대처로 유학을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을에는 유수의 대학 졸업자가 많다고 한다.  그렇건만  마을의 모습은 시골마을 어디나 같은 닮은 꼴로 있을 뿐이다.  그들이  우수한 인재가 된다 한들 이미 고향과는 관계 없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화포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림정역 앞 습지에 쉬고 있는 큰기러기 무리들, 몇 마리는  망을 보고 나머자는 먹이 활동에 열중이다. 약350~400개체 정도될 듯하다.  

빗속의연인 - 김목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