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4월 개교했다. 보다 앞서 1909년 사립 학원으로 등록을 세월을 보태면 100년이 넘는다
2016년 3월1일 이웃한 명지 국제 신도시로 이전한다고 한다. 아는 사람의 집이 근처에 있었다. 그의 집은 헐리어져 사라졌다. 이른바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으로 편입되어 땅도 집도 모두 LH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에 수용되어 버린 것이다. 그는 이 지역의 토박이로서 명지국민학교룰 다녔다. 그의 아버지와 형제가 동문이었다고 했다.
부산교육청에서 현재 금정산 청소년 수련원의 분원으로 점찍어 둔 학교다. 서부산 권역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한 수련원을 명지초등학교가 이전하면 만들기 위해 적지 심사를 하기 위해 방문했다. 명지초등학교는 꽤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학교에 대한 이력을 검색하니 "...1909년 7월 25일 명지초등학교의 전신인 사립동명학교가 설립되었다. 사립동명학교는 동래부학교(1898-1903), 개양학교(1904-1907), 삼락학교(1906-1907), 동명학교(1907-1916) 등을 계승하였다. 동래부학교는 1898년 동래기영회 회원인 신명록이 동래 유지들과 함께 세웠으나 1903년 재정난으로 폐교하였다. 폐교된 동래부학교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아라나미 헤이치로(荒波平治郞)가 1904년 설립한 개양학교(開揚學校)는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 고조된 동래지역의 배일 정서 속에서 동래부민들이 1906년 설립한 삼락학교에 흡수되었다.
1907년 동래기영회는 민족교육을 위하여 공유재산을 바탕으로 동명학교를 설립하여 삼락학교를 흡수하였다. 동명(東明)은 대한제국의 독립을 뜻하는 ‘동명지광(東明之光)’을 뜻하였다. 1908년 8월 26일 칙령 제62호로서 통감부의 사립학교령이 공포되자 이에 따라 1909년 8월 30일 사립 동명학교로 공식인가를 받았다. 1923년 4월 17일 사립동명학교는 명지공립보통학교로 바뀌었다. 조선총독부의 3면 1교제 정책에 따른 것이다.
1938년 4월 11일 명지공립심상소학교로 이름을 고쳤다. 1941년 4월 1일 명지공립국민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1978년 2월 15일 부산시직할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명지가 부산시에 편입됨에 따라 명지국민학교는 부산직할시의 관할로 이관되었고 " 1996년 3월 1일 명지초등학교로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예전에 길 걷할 때 늘 스치는 곳이었다. 그리고 가끔 파밭을 보기 위해 들리곤 했지만 정작 학교 내로 들어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초행길에 이 향나무와 마주쳤다. 수령을 물으니 150살이라는 사람도 있고 130년 됐다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100살 넘는 나무를 여기서 만났다. 헌데 이 학교 동문들이 이 나무를 새로이전할 학교로 이식해 갈거라고 했다. 충분히 그럴 수있는 이야기지만 가능하면 존치하기를 권고했다. 강하게
살 던 터 뿌리째 들어내 나무치고 제대로 뿌리 내린 나무들 많지 않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나무가 시름시름 앓다 고사하기라도 한다면 이식을 결정한 사람들은 뭐라할까
[사진출처]blog.naver.com/road8511/220191081505
앞서 이야기 했듯 명지초등학교의 교포에는 지역의 중요 생산물인 대파와 김을 상징하는 그림이 도안되어 있다. 명지 대파는 난지형 잎파 품종으로 일대가 사질 토양이라 배수가 잘되고 땅이 부드러워 대파의 생육환경으로는 그만이다. 언제부터 대파를 재배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50~60년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 현지민의 이야기로는 고링을 깊이 파고 파 모종을 심은 다음 흙을 쳐 올려 붇독음만 잘 해주면 잘 자란다고 했든가 . 식재료로 마트나 시장에서 만나는 대파는 대부분 위 그림에서 처럼 생산지에서 겉껍질을 벗기는 고된 노동의 결과물이다.
명지대파는 연백부가 길고 매운맛과 향이 뛰어나 처음으로 정부 품질인증 농산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 주산지가 콘크리트로 뒤덮이고 있다. 명지는 예로부터 소금이 유명했다. 그 지명은 조선 영조때 편찬된 <여지도서>를 비롯하여 <대동여지도> 등에 분명하게 나타나며 이곳에서 생산된 소금에 대해서는 <태종실록>과 <정조실록>에 “소금은 오곡 다음가는 중요한 것으로 낙동강 사람들은 명지소금을 먹고 살아왔다.”라고 적혀 있다.
학교 뒷쪽에는 이곳에서 보기 드믄 상수리나무가 제법 큰 키로 서 있었다. 눈여겨 볼 것이 많은 나들이었다.
머나먼고향 - 나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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