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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밥상](8) 일본 주부 “후쿠시마산 여전히 꺼림칙…아이들에겐 안 먹여”

by 이성근 2015. 12. 18.

지구의 밥상](8) 일본 주부 후쿠시마산 여전히 꺼림칙아이들에겐 안 먹여

원전 사고 후 불안감 계속 가지 등 채소는 친정에서 쌀은 친구네가 키운 것 먹어

 

서구식으로 변한 일본 밥상 세대 간 소통새 고민으로 상대방 식성 인정 필요해

지난달 15일 오후 일본 도쿄(東京) 스기나미(杉竝)구의 한 슈퍼마켓. 식품 매장에 있는 농수산물 가운데 후쿠시마(福島)산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산지가 후쿠시마현으로 표기된 것은 복숭아와 에다마메(줄기째 자른 풋콩) 등 두 가지뿐이었다. 수산물은 아예 없었다.

 

40대 주부가 후쿠시마 복숭아를 들었다 놨다 하며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3개에 499(4800)으로 비교적 싼 편이었지만, 주부는 결국 복숭아를 그냥 내려놨다. “값을 생각하면 사고 싶었는데 후쿠시마산이라는 것 때문에 결국 사지 않았다면서 후쿠시마 농수산물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정부 발표를 믿고 싶지만 사기가 꺼려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30대 공무원은 구내식당에서는 후쿠시마 쌀 등이 식재료로 쓰이지만, 집에서는 아이들 건강을 생각해 가능한 한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1311일의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일본인들, 특히 수도 도쿄 주민들의 식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고 뒤 4년 반이 흘렀지만 후쿠시마에서 나온 식재료들에 대한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원전 사고는 정부에 대한 불신뿐 아니라, 먼 곳에서 재배해 가져오는 먹거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부추겼다. 원전 사고 뒤 도쿄에서는 텃밭이 크게 늘었다. 스기나미구 주택가의 공터는 오이·토마토·가지·파 따위를 키우는 사람들로 붐볐다. 여기서 채소를 키우는 60대 남성은 가장 안전한 식재료는 내가 직접 키운 것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가족과, 이웃과 소통의 밥상일본 도쿄 분쿄구에 사는 시라니타 다마오(왼쪽에서 두 번째)가 지난달 4일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나고 4년 반이 지났지만 시라니타는 “100% 믿음이 가지 않는다며 여전히 후쿠시마 주변에서 잡힌 수산물을 사지 않는다 .

 

도쿄 분쿄(文京)구의 한 아파트.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주부 시라니타 다마오(白仁田玉緖·45)의 가장 큰 즐거움은 가족에게 맛있는 밥을 해먹이는 것이다 

그런데 원전 사고 뒤 방사성물질에 오염된 먹거리에 대한 걱정이 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처음에는 채소나 과일도 후쿠시마 주변에서 나온 것은 피했어요. 하지만 농산물을 먹어도 된다는 정부 발표를 믿고 지금은 먹고 있어요.” 그 지역 농민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시라니타는 오히려 후쿠시마와 그 주변 농산물을 적극적으로 사먹는다. 하지만 그 지역 수산물은 여전히 먹지 않는다. “아직은 100% 믿음이 가지 않으니까요.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 건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왜 믿음이 가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냥이라며 설명을 피했지만,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사고가 수시로 일어나면서 불안감이 커졌음을 엿볼 수 있었다.

 

 

시라니타 가족의 저녁 식탁은 소박했다. 직접 만든 닭튀김은 늘 인기가 높다. 간장·마늘·후추를 섞은 전분을 얇게 발라 튀겨낸 이 요리는 남편 요스케(洋介·41)는 물론 초등학교 5학년인 딸과 2학년인 아들 모두 좋아한다. 아이들의 젓가락은 아무래도 샐러드보다는 닭튀김 쪽으로 자주 갔다.

 

딸 나오(菜緖·10)를 향해 시라니타가 잔소리를 늘어놨다. “아이들이 자꾸 육식만 하려고 해서요. 가족들이 되도록 채소를 많이 먹게 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식탁에는 양상추, 토마토, 당근, 브로콜리, 감자와 참치·마요네즈를 섞은 샐러드가 커다란 유리그릇에 가득 담겨 있다. 당면과 비슷한 하루사메라는 면으로 만든 요리인 하루마키에도 양배추, 버섯, 당근, 양파, 피망이 잔뜩 들어 있다. 감자, 옥수수, 가지, 오이를 비롯한 채소는 주로 지바(千葉)현에서 친정아버지가 재배한 것을, 쌀은 친구 아버지가 키운 것을 구해다 먹는다.

 

일본에서 밥상의 고민 중 하나는 세대 간 소통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은 세계적인 미식가로 꼽히지만 일본의 밥상은 이미 서구식으로 변한 지 오래다. 요스케는 식문화가 서양식으로 변하고 있다면서 고기 중심의 서양식을 어쩔 수 없이 따라가고 있지만, 그래도 채소를 중시한 전통식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가족과, 이웃과 소통의 밥상일본 히로시마현 히가시히로시마의 농촌 마을에 사는 우메모토 아키라(사진 앞)가 지난달 1일 가족, 지인들과 나가시소면을 먹고 있다. 대나무관에 흐르는 찬 지하수에 실려오는 소면을 젓가락으로 걷어올려 양념에 찍어먹는 맛이 일품이다. 젊은이들이 떠난 농촌에는 1, 2인 가족이 대부분이다. 우메모토는 이웃과 어울릴 기회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메뉴가 바뀌는 것뿐 아니라,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할아버지·할머니의 밥상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서양식 식탁의 차이는 커져만 간다. 지난 71일 히로시마(廣島)현 히가시히로시마(東廣島)의 시골 마을을 찾았다. 점심때가 다가오자, 우메모토 아키라(梅本享·74)의 집에 지인들이 몰려들었다. 우메모토는 부인 마사코(政子·73)와 함께 안마당의 야외 식탁 앞에 반으로 쪼갠 10m 길이의 대나무통 수로를 설치했다. 30m 지하에서 끌어올린 차가운 우물물을 흘려보내면서 그 위로 미리 삶아 놓은 소면을 조금씩 실어보냈다. “자리에 앉아서 흘러가는 소면을 집어 양념에 찍어서 드시면 돼요.” 일본의 여름철 별미인 나가시()소면먹기가 시작된 것이다. 대나무통 수로 옆에서 젓가락을 든 사람들이 물줄기와 함께 흘러가는 소면을 걷어올려 먹기 시작했다.

 

우메모토는 이날 텃밭에서 따온 채소로 만든 샐러드와 소면을 내놨다. 그는 모두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고 재배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메모토가 사는 곳은 소문난 장수촌이지만 이제는 주민 대부분이 1인 또는 2인 가족이다. 우메모토 부부는 이렇게 이웃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메모토가 또 하나 정성을 기울이는 것은 여러 세대가 어울리는 식탁을 만드는 것이다. 이날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히로시마에 사는 딸 우에다 아키코(植田明子·48·회사원)도 아들을 데리고 친정을 찾았다. 우메모토는 딸과 함께 마당 한쪽에 최근 설치한 가마에서 피자를 구웠다. 수시로 찾아오는 딸·손자 등 3대가 즐겁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메모토가 딸과 함께 만든 것이다. 우메모토 부부는 이날 오후 딸·손자와 피자를 구워먹으면서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 “3, 4대가 함께 살면서 일어나는 문제 중 하나는 식생활의 세대 차이라고 할 수 있어요. 상대방의 식성을 서로 인정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메모토는 가마를 만들고 피자를 구우면서 젊은 세대의 식생활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면서 지금은 딸과 손자가 좋아하는 피자도 맛있게 먹는다고 말했다. 점심식사 뒤 우메모토와 지인들은 공방 옆 차방에서 전통녹차를 마셨다.

 

1941년생인 우메모토는 16세부터 전통인형을 만들어온 장인이다. 히로시마에서 살다가 20년 전 100년 된 농가로 이사왔다. 인형을 만드는 틈틈이 텃밭을 가꾸는 그는 부인·딸과 함께 요리하는 것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여긴다.

 

아침식사는 빵과 야채를 요구르트·커피와 함께 먹고 간단하게 끝내요. 점심은 밥 한 공기와 간단한 야채로 해결하고, 저녁식사는 조금 푸짐하지만 지나치지 않게 하고 있어요. 생선, 고기, 야채도 즐기고요.” 같은 마을의 요코기 겐지(橫儀建次·74)후쿠시마 식재료는 여기까지 오지 않기 때문에 별걱정을 하지 않지만,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 수입된 식재료는 되도록 사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지구의 밥상]‘석유 부자두바이 마트에 채소·과일 다 보내고가난한 에티오피아 농민 식탁엔 멀건 옥수수죽만 오른다(2) 석유로 키운 채소

    

농사 힘든 사막의 두바이 곡식·고기·과일에 음료까지 모든 식료품 해외서 들여와

UAE, 식량 수입 의존도 90%석유로 번 돈 채소 사는 데 써

식량위기 겪은 걸프국들 에티오피아에 대규모 경작

일자리·외화 늘었지만 지역 농장, 물 마르고 오염식량 불균형 심화시켜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경제 중심지 두바이.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828m짜리 빌딩 부르즈할리파 옆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몰이라는 두바이몰이 있다. 바깥세상이 아라비아해가 내뿜는 습기와 사막의 열기로 삶아질 것만 같은 여름날에도 드넓은 두바이몰은 별세계처럼 서늘하다. 검은색 아바야로 온몸을 가린 여자들과 긴 토브를 입고 수염을 기른 남자들이 돌아다니는 이 쇼핑몰 지하, 영국계 고급 식료품점 웨이트로즈에는 7개국에서 온 토마토가 진열돼 있었다. 네덜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페인, 프랑스, 영국, 멕시코, 요르단에서 온 토마토들은 밭에서 금방 따 온 듯 빨갛고 탱글탱글했다.

 

바로 옆에는 색도 모양도 가격도 다양한,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사과가 쌓여 있다. 사과의 고향은 칠레와 남아공, 미국, 프랑스. 감자는 7개국에서 왔고 양파는 5개국에서, 멜론은 4개국에서 온 것이다. 드넓은 마트의 채소 코너에서 현지산 채소는 파프리카 한 종류와 오이 한 종류뿐이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에미레이트몰 내에 있는 대형마트 카르푸에서 지난 615일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이 세계 각국에서 온 과일과 채소들을 살펴보고 있다. 두바이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에미레이트몰 내 대형마트 카르푸에서 주부 하딜이 라마단을 앞두고 장을 보고 있다. 두바이 | 강윤중 기자

 

이슬람 성월 라마단을 사흘 앞둔 615일 두바이 에미레이트몰 지하의 카르푸에서는 7살 딸과 4살 아들을 데리고 나온 주부 하딜(31)이 대추야자를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낮 금식을 마친 무슬림들이 속을 달래기 위해 먹는 것이 대추야자다. 하딜의 쇼핑카트 안에는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와 미주산 채소가 모두 담겼다. 스페인산 콜리플라워와 인도산 망고, 튀니지에서 난 가지, 필리핀 바나나, 호주 감자, 요르단 토마토, 미국산 오렌지. 남편, 두 아이와 먹을 것들이다. “여기엔 우리나라에서 농사지은 채소는 없어요. 보시다시피 이곳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이거든요.” 팔레스타인 태생인 하딜의 아버지는 중동전쟁을 피해 두바이로 이주했다고 한다. 하딜의 아버지가 살았던 곳은 올리브와 채소가 잘 자라는 비옥한 땅이었지만 지금은 이스라엘이 정착촌을 지었다고 그는 말했다.

 

유럽계 고급 대형마트를 나와 두바이 서민들이 애용한다는 인도계 슈퍼마켓체인 루루하이퍼마켓을 찾았다. 웨이트로즈나 카르푸에 비해 잎채소는 시들시들하고 토마토 꼭지는 말라 있었다. 유럽과 북아프리카, 호주 대신 인도나 방글라데시, 오만에서 온 채소가 주류였다. 하지만 여기에도 현지산 채소는 없다. 버섯 몇 종류만 초라하게 UAE산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남아공산 배와 필리핀 바나나, 이란 멜론, 호주 포도, 오만 파프리카를 장바구니에 넣은 인도네시아 출신 이민자 가르시(40)와 이야기하고 있는데 쇼핑카트를 밀고 지나가던 검정 아바야를 걸친 할머니가 끼어들었다. “두바이의 음식에 관심이 있다고? 로컬푸드를 찾아? 그러면 잘못 왔어. 이 나라에선 채소가 나지 않아. 다 수입해온 거야.”

 

 

사람도 음식도 모두 다 다른 곳에서 흘러들어온 도시가 두바이다. UAE는 아부다비와 두바이를 비롯한 7개의 에미리트(토후국)가 연합해 세워졌다. 두바이는 아부다비 다음으로 큰 에미리트다. 지금이야 중동의 허브이자 손꼽히는 부자도시지만 1930년대까지만 해도 두바이는 진주를 채취해 먹고살던 어촌이었다. 허허벌판이던 이곳 사막에 고층빌딩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겨우 30여년 전이고, 본격적으로 성장한 것은 걸프전 이후다. 정정이 불안한 중동에서 그래도 개방적이고 안정된 두바이가 투자처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인구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2013년 기준 두바이 인구의 약 10~15%UAE 시민권자이고, 나머지는 외국인 이주자다. 외국인 대부분은 인도와 파키스탄 출신 노동자다. 지하철을 점령한 사람들, 값싼 슈퍼마켓에서 장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눈에 남아시아계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두바이의 평범한 시민은 이 나라 국민이 아닌 이주노동자인 셈이다. 16, 두바이 외곽 주택가에 사는 파키스탄 노동자 무함마드 이스마일(46)의 집에 초대받아 점심식사를 함께했다. 펀자브 출신인 무함마드는 12년 전 일자리를 찾아 두바이로 왔다. 그는 파키스탄에서 온 다른 이들에 비해 꽤 성공한 편이다. 일본계 회사에서 근무하며 월 6500디람(207만원)씩 벌던 시절도 있었다. 빠듯하지만 아내와 세 아들을 두바이에 살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8년 두바이를 유령도시로 만든 금융위기 때 무함마드는 일자리를 잃었다. 어렵게 새 일을 찾았지만 월급은 1500디람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가족들과 함께 두바이의 높은 생활비를 감당하기엔 무리였다. 취업비자가 있는 무함마드만 남고 나머지 가족들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후 그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있다. 지금은 번듯한 수리센터에서 관리직으로 일하며 월 5000디람씩 벌지만 이 돈도 두바이에서 가족을 부양하기에는 부족하다. “아내와 통화할 때면 늘 오늘의 메뉴가 뭔지 물어보곤 해요. 아내가 만드는 음식은 정말 맛있거든요.” 돈벌이에 치여 1년에 한두번밖에 고향을 찾지 못하는 그는 늘 아내와 어린 아들들이 그립다.

 

무함마드의 아내와 아이들은 6월 초 방학을 맞아 두바이로 왔다. 1인당 1200디람만 내면 되는 셰어하우스에서 사는 그는 한 달 동안 두바이에 머무를 가족을 위해 월급의 반이 넘는 3000디람을 내고 부엌과 화장실, 마당이 딸린 도시 외곽의 원룸을 빌렸다. 한 달 동안 그는 새벽같이 출근했다가도 점심때면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식사를 함께했다.

 

무함마드의 아내 루비나 나즈(39)가 요리한 점심식사는 파키스탄의 전통 닭조림 치킨콜마와 전통 빵 로티, . 여기에 아이들 위한 비타민 음료와 스프라이트, KFC 치킨을 곁들였다. 후식으로는 멜론과 서양배, 바나나가 나왔다. 파키스탄인과 한국인이 함께 둘러앉은 두바이의 식탁은 3개 대륙을 품고 있었다. 냉동닭은 사우디아라비아산, 닭 요리 에 들어간 향신료는 파키스탄산, 쌀은 인도산, 치킨콜마 위에 뿌려서 밥과 함께 먹는 올리브는 스페인산, 멜론은 오만산, 서양배는 미국산, 바나나는 필리핀산. 비타민 음료는 일본산이고 스프라이트와 KFC는 미국 회사 것이다.

 

 

무함마드 이스마일의 아내 루비나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라시디아에 위치한 집에서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두바이 | 강윤중 기자

 

무함마드 이스마일 가족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교외 라시디아에 위치한 집에서 치킨콜마와 밥, 로티로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두바이 | 강윤중 기자

사람들이 사막의 신도시로 이주해온 것처럼, 사막에서 자랄 수 없는 식료품도 모두 해외에서 온다. UAE에는 오만 접경지대에 있는 알아인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이 없다. 강도 지하수도 없는 사막지대라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두바이의 경우 물 공급의 99.8%를 해수 담수화 플랜트에 의존한다. UAE의 식량 수입 의존도는 85~90%에 달한다. 석유로 번 돈으로 신선한 채소를 사들이는 것이다. 척박한 사막지대에서 석유로 먹고사는 사우디와 쿠웨이트, 카타르 등 다른 걸프국가들도 마찬가지다. 걸프에 채소를 파는 나라 중 하나가 에티오피아다. 아덴만만 건너면 바로 아라비아반도와 만나는 아프리카의 뿔지역에 있는 데다 인근 소말리아나 에리트레아 등에 비해 정치가 안정돼 있고 치안도 좋은 편이다. 비옥하고 드넓은 땅에는 고도와 기후에 따라 어떤 작물이든 심을 수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땅은 모두 정부 소유인데, 정부가 외국인 투자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어 토지 임대료도 매우 싸다. 농업노동자들의 임금은 월 600비르(34000)에 불과하다.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남쪽 도시 아와사로 가는 길, 잘 닦인 도로 곳곳에 비닐하우스 수백채가 밀집한 하우스 단지가 보였다. 한 비닐하우스 단지 앞에는 초록색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하우스 셋 걸러 한 명꼴로 앉아 감시하고 있었다. 열린 하우스 문틈 새로 화려하게 피어 있는 붉은 장미가 보였다. 드넓은 밭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붉은 양파를 따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호라이즌 플랜테이션이라는 농업기업이 신선한 파파야가 있다며 홍보했다.

 

농장의 상당수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직접 운영한다. 사우디의 에티오피아계 억만장자 모하메드 알아무디가 대표적인 농업기업가다. 그가 소유한 한 농업기업의 광고문구는 이렇다. “모든 채소와 과일은 유럽과 중동 시장이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시킵니다. 에티오피아는 고품질의 채소와 과일을 생산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곳입니다.”

이 회사는 손만 대면 이슬이 묻어날 것 같은 토마토와 파프리카, 호박과 가지 같은 채소들이 드넓은 온실 안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사진들로 온라인 마케팅을 펼친다.

 

에티오피아 전국에 6개의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며 100여종의 채소와 과일, 꽃을 키운다. 농산물은 수확한 즉시 그 자리에서 상자에 포장돼 사우디나 쿠웨이트, UAE 등으로 실려간다. 갓 딴 토마토들이 아디스아바바를 거쳐 비행기로 제다나 두바이 같은 걸프의 도시들로 운송되는 데는 24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일부는 아디스아바바의 고급 식료품점이나 호텔로 간다. 나이지리아 같은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로 수출되기도 한다.

 

많은 부자 나라들이 다양한 이유로 에티오피아에 농장을 세운다. 특히 2000년대 후반 세계 식량위기 이후, 걸프국들은 안정적으로 식량을 들여오기 위해 곡식을 직접 수입하는 대신 해외에 농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특히 곡물 생산에 적극적인 국가는 사우디였다. 아라비아반도 최대 밀 생산국인 사우디는 2008년 물을 절약하기 위해 국내 밀 생산량을 12% 줄이는 대신 해외에 농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꽃도 에티오피아의 대표적인 특산품이다. 유럽국들은 관상용으로 에티오피아에서 꽃을 재배한다. 바이오연료용 옥수수를 기를 땅을 찾는 투자자도 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1500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걸프국 쇼핑몰에 진열된 신선한 토마토나 양배추, 브로콜리 같은 비싼 채소는 에티오피아 농민들의 식탁에는 올라오지 못한다.

 

 

에티오피아 남부 시다마 지역의 훌라에 사는 소녀 담보베(6·맨 왼쪽)가 남동생 아윌(4)과 할머니, 엄마 하지투, 오빠 투테(12), 아버지 아메드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모여 있다. 메뉴는 전통음식인 고초와 옥수수죽이다. 훌라 | 강윤중 기자

 

에티오피아 남부 시다마 지역의 훌라에 사는 농민 파노세가 부엌 한옆에 저장해 둔 고초를 정리하고 있다. 훌라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624일 오후, 아와사 부근 시다마 지구의 훌라에 있는 나세르 아메드(55)의 집을 찾았다.

 

그는 아내와 12·6·4살 된 세 아이, 늙은 어머니와 유칼립투스 나무로 엮은 움막처럼 생긴 전통 가옥에 산다. 아내 하지투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집 안에 불을 피워놓고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매캐한 연기가 집 안에 가득하다 못해 천장이 새까맣게 변할 정도였다. 이날 나세르 가족의 저녁 메뉴는 시다마의 전통 음식인 양배추를 넣은 고초와 멀건 옥수수죽이 전부였다.

 

고초는 바나나를 닮았지만 열매가 열리지 않는 식물 엔세트의 뿌리와 줄기를 다진 뒤 오랜 시간 동안 발효시켜 만드는 음식이다.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한 고기나 생선,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생채소나 과일은 밥상에 없었다. 나세르는 내가 조금이라도 더 벌면 아이들에게 과일도 사줄 수 있을 텐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방앗간에서 일을 해 월 500비르(26000) 안팎을 번다. 그의 가족은 대개 하루 두 끼밖에 먹지 못한다. 훌라에서 교육·식량 지원사업을 하는 월드비전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하루 세 끼를 다 챙겨먹지 못하는 사람이 3분의 1이다. 사업 시작 전인 2007년보다는 절반가량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가난한 농민들이 끼니를 굶고 채소를 먹지 못하는 것이 에티오피아에 투자한 부자 나라만의 탓은 물론 아니다. 외국인들의 아프리카 농장 개척이 한창 이슈가 됐던 2010, 에티오피아 정부 대변인은 영국 가디언에 전국의 농지 7400중 현재 농민들이 쓰는 땅은 15%에 불과하다. 농지 전체의 3~4%만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내줬다그들이 농민들의 땅을 빼앗아간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에티오피아 시다마 지구 훌라의 한 곡물상인이 에티오피아에서 주식으로 먹는 시큼한 빵 인젤라의 원료가 되는 곡식인 테프를 빻은 가루를 체에 걸러내고 있다. 훌라 | 강윤중 기자

 

외국인 투자자들은 외화에 의존하는 에티오피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고, 새 일자리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아와사에서 만난 한 농업전문가는 일자리도 생기고 외화도 들어오지만, 지역 농업에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대규모 농장들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물을 끌어오거나 지하수를 퍼올리는 바람에 농민들이 자기 밭에 물을 대지 못하게 된 경우도 있고, 큰 농장들이 퍼붓는 화학비료에 흙이 오염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분명한 사실은, 척박한 땅에 자리 잡은 부자 나라들이 신선한 채소와 과일뿐만 아니라 물문제와 연료문제까지 해결하기 위해 가난한 나라에 돈을 내고 비옥한 땅과 값싼 인력을 사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탈리아 저널리스트 스테피노 리베르티는 이런 현상을 땅뺏기(Land-Grabbing)’라 부르며 이 현상이 장기적으로 글로벌 식량 불균형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두바이의 마트에 신선한 채소가 늘어날수록, 에티오피아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땅을 잃고 저임금 노동자가 된다.

 

글로벌한 밥상이 만든 입맛 식민지

정크푸드가 장악한 나우루섬 전 국민이 아픈 콜라식민지

유럽·중동의 식재료 키우지만 끼니 굶는 에티오피아 농부들밥상의 차이는 곧 삶의 격차

 

나우루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다. 인구가 채 1만명도 되지 않는 외딴섬이지만 식생활은 세계의 다른 어떤 곳보다도 글로벌화돼 있다. 먹고 마시는 거의 모든 것은 외국에서 수입한 것들이다. 사방이 바다로 에워싸여 있으나 어업은 무너졌다. 이곳 사람들은 더 이상 고기를 잡지도, 채소를 키우지도 않는다. 통조림과 인스턴트 음식, 청량음료를 수십년간 먹고 마신 끝에 섬사람들은 모두 비만하게 돼버렸다. 이 섬 인구의 94.5%는 비만·과체중이고, 성인들은 거의 전부 당뇨병을 앓고 있다. 정크푸드가 들어가고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 이 섬은 학자들이 콜라식민지라 부르는 곳이 돼버렸다. | 관련기사 4·5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국토 대부분이 사막이다. 그러나 두바이의 대형마트에서는 신선한 채소들이 냉기 속에 쇼핑객들을 기다린다. 마트에서 파는 토마토에는 7개국의 원산지 표시가 붙어 있다. 두바이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밥상에는 9개국에서 난 음식이 올라온다. 이들이 먹는 채소는 에티오피아 같은 나라들에서 들여온 것들이다. 사우디아라비아나 UAE 등 걸프 산유국 사업가들은 아프리카에 현대식 농장을 짓고 채소와 과일을 키워 가져간다. 그사이 에티오피아의 아이들은 옥수수죽을 먹으며 자란다.

 

밥이 몸이다라는 말처럼, 먹는 것이 우리의 몸을 만든다. 개인의 몸만이 아니다. 먹거리는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구조를 반영하며, 그 모든 구조가 합쳐져 나온 결과물이기도 하다. 글로벌화가 가장 크고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부문도 다름 아닌 먹거리다. 때아닌 집밥 열풍이 한국을 강타하고 있는 데에서 보이듯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마저도 비즈니스 대상이 됐고, 밥을 짓고 먹는 행위는 글로벌화된 거대 산업의 톱니바퀴 속에 끼어들어 간 지 오래다. ‘농업비즈니스(agribusiness)’콜라식민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은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밥상은 세계가 얼마만큼 비슷해졌는지, 지역의 색깔과 전통이 어떻게 사라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지정학적 공간이 됐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밥상은 여전히 세계에 존재하는 차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부국과 빈국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한 나라와 지역 안에서도 밥상의 차이는 곧 삶의 격차다. 영국과 프랑스의 마트에서는 농산물부터 심지어 젤리까지 유기농 마크가 붙은 값비싼 식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중산층이 많이 사는 런던 외곽의 이스트그린스테드에서는 실직자와 미혼모들이 푸드뱅크(무료급식소)에 생존을 의지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한 지역인 인도 뉴델리 쿠숨푸르 빈민가의 밥상은 소박하지만 그래도 이곳 사람들은 지역에서 생산한 먹거리로 끼니를 채운다. 세계 사람들의 밥상을 통해 글로벌화의 가장 생생한 단면과 함께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찾기 위한 노력을 소개한다.

 

지구의 밥상](6) 푸드뱅크, 풍요 속의 빈곤

직장 잃은 영국 중산층 남성, 푸드뱅크 음식 받고 눈물 펑펑

영국 런던에서 남쪽으로 43떨어진 웨스트서식스의 이스트그린스테드. 주민센터 실내체육관 창고에 음식이 종류별, 유통기한별로 차곡차곡 쌓여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고급 슈퍼마켓 체인 웨이트로스의 로고가 찍힌 채소 통조림이다. 구운 콩, 잘게 썬 당근, 감자가 든 통조림이 수북이 쌓여 있다. 한국에서도 많이 파는 그린자이언트 옥수수 통조림도 보인다. 버섯수프 통조림과 햄, 파스타, 시리얼, 튀긴 면도 한쪽에 놓여 있다.

 

 

푸드뱅크 안내 간판 영국 웨스트서식스 이스트그린스테드 주민센터 입구에 푸드뱅크 안내 입간판이 서 있다. 사정이 급한 주민들에게 긴급구호식품을 내준다.

 

지난 6월 찾아간 이스트그린스테드는 런던 빅토리아역에서 기차로 1시간가량 걸리는 곳으로, 런던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과 은퇴 후 전원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 주로 사는 백인 중산층 밀집지역이다. 역에서 내려 바라본 이스트그린스테드는 왕복 2차로를 오가는 차들과 녹지, 아담한 2층 주택들이 어우러진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어디에도 배고픔같은 말은 끼어들 자리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한 걸음 들어가자 첫인상과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민센터 앞에는 저녁을 뭘 먹을까? 만약 음식과 살 돈이 없어서 모르겠다면, 저희가 돕겠습니다라고 쓰인 입간판이 있었다. 푸드뱅크(무료급식소) 안내판이다. 영국 전역에서 푸드뱅크 437개를 운영하는 최대 무료급식기구인 트루셀트러스트가 201212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전원마을의 무료급식소

이 급식소의 담당자 줄리아 해리스(50)처음엔 이 동네에도 푸드뱅크가 필요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조사를 해보니 빈곤 문제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고 말했다. 푸드뱅크가 생긴 뒤 2년 반 동안 2000명의 주민들이 도움을 받았다. “멀쩡하게 직장에 다니던, 승용차도 있는 남자가 갑작스레 직장을 잃고 이곳에 왔어요. 부인마저 떠난 후 친구의 집에 얹혀 지내다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푸드뱅크를 찾은 거죠. 자기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펑펑 울더군요.”

 

 

유통기한 임박했으니 먼저 반출영국 웨스트서식스 이스트그린스테드 주민센터에 마련된 푸드뱅크 창고에 고급 슈퍼마켓 체인 웨이트로스에서 기부한 감자 통조림이 쌓여 있다. 통조림이 담긴 바구니 앞에는 ‘(유통기한이 임박했으니) 먼저 사용할 것이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작은 창고에서 시작된 급식소는 이용자가 많아지자 주민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푸드뱅크는 매일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문을 열고 사정이 급한 주민들에게 사흘 치 긴급구호식품을 내준다. 사연은 다양하다. 실직과 질병 때문에, 보조금을 받는 게 늦어져서, 갑작스러운 지출이나 빚으로 식료품을 살 돈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줄 음식은 여러 곳에서 기부받은 것들이다. 여유가 있는 주민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가져오기도 하고, 교회나 학교에서 기부하기도 한다. 웨이트로스, 세인스베리 같은 슈퍼마켓 체인에서도 1년에 1번 음식을 기부한다. 말하자면 푸드뱅크는 남아도는 음식먹을 것을 살 돈이 없는 사람들이 만나는 곳이다.

 

창고 구석에 놓인 푸드 박스에는 ‘3인용 식품 할당량의 목록이 붙어 있었다. ‘시리얼 큰 것 1, 파스타소스 2, 수프 4, 쌀 또는 파스타 1.5, 우유 3, 토마토 2, 빵 한 덩이, 과일주스 1, 티백 80개 또는 커피(중간 크기) 1, 생선 3, 고기 2, 구운 콩 4, 1, 쌀푸딩 2, 과일 2, 푸딩 2, 커스터드소스 2, 비스킷 2, 채소 4, 감자 2, 설탕 1.’ 모두 쉽게 부패하지 않게 통조림 따위로 가공된 것들이다.

 

해리스는 집에 오븐이 없는 사람들도 쉽게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한다고 설명했다. 대개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것들을 기부받기 때문에, 통조림 바구니 앞에는 유통기한이 가까운 것부터 반출할 것이라고 쓰인 쪽지가 붙어 있었다. 트루셀트러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에서 사흘 넘게 이 단체의 푸드뱅크를 이용했던 사람은 모두 110만명에 달했다. 전년도 913000명보다 크게 늘어난 것이다. 그중 3분의 1 이상이 어린이다. 이 단체는 영국에서 1300만명이 빈곤선 아래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푸드뱅크가 없으면 당장 밥을 굶어야 하는 사람이 100만명이 넘는다는 것은 엄청난 사회문제다.

 

저가 슈퍼마켓 식품으로 차린 아침이스트그린스테드에서 3일간 머물렀던 곳은 60대 남성 조지의 집이었다. 둘째날 아침 조지는 전통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를 준비해줬다. 모두 저가형 슈퍼마켓 체인 알디에서 구입한 것이다.

 

대규모 해고를 낳은 마거릿 대처 시절의 신자유주의 파도, 그리고 2009년 금융위기 이후의 복지축소 여파로 영국의 빈곤은 나날이 확대되고 있다. 부의 양극화는 세계 모든 대도시의 고민거리이지만, 특히 런던의 빈부격차와 중산층 붕괴는 심각하다.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1980년부터 2010년까지 30년 동안 런던의 중산층은 43% 줄고 빈곤 가구와 부유층 가구는 각각 80%씩 늘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지난해 말 영국 국교회인 성공회의 정신적 지도자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는 굶는 사람들이 100만명에 이르는 현실을 가리켜 이곳(영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라며 대책을 호소하기도 했다.

 

먹을 것조차 없는 이들이 늘어나고 푸드뱅크가 영국 전역에 퍼졌지만 누구나 매일 무료급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담소, 주택협회, 지역 보건의사, 자녀의 학교, 교회, 가족센터, 시 사회복지과 등에서 바우처를 받아와야 한다. 또한 한 가지 사유로는 3번까지만 음식을 받아갈 수 있다. 공짜 밥에 의존하는 이들을 막기 위해서다. 어떤 이들은 공짜 복지는 사람을 게으르게 만든다고 주장하지만 해리스의 생각은 다르다. “처음 푸드뱅크가 생겼을 때는 도움을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찾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데도 자존심 때문에 오지 않는 경우가 여전히 많습니다.” 푸드뱅크에 오면서 얼마나 망설였는지 바우처가 구겨져 있고 이미 날짜가 지난 것을 가져오는 경우도 많다. 음식을 받아가는 이들의 인터뷰는 허용되지 않았다. 해리스는 이미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라며 이용자 인터뷰 요청을 정중히 거절했다.

 

슈퍼마켓도 계급화

밥상의 빈부격차는 급식소에서만 눈에 띈 것이 아니었다. 테스코, 아스다, 세인스베리, 모리슨은 영국 슈퍼마켓 업계 4’로 불린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저가형 슈퍼마켓과 고급 마켓이 동시에 커지며 빅4에 도전하고 있다. 슈퍼마켓도 양극화, 계급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주민들은 슈퍼마켓 봉지만 봐도 벌이 수준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유기농강조한 당근 영국 웨스트서식스 이스트그린스테드의 고급 슈퍼마켓 체인 웨이트로스매장에 진열된 당근 포장에 유기농표기가 적혀 있다. ‘DUCHY organic’은 찰스 왕세자가 1990년 세운 유기농 식품업체 더치 오리지널스와 웨이트로스가 함께 만든 유기농 브랜드다.

 

이스트그린스테드의 저가 슈퍼마켓 아이슬란드(Iceland)’에 들렀다. 30대 여성과 노부부 등이 쇼핑 카트를 끌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손님의 대부분은 비만 상태였다. 흰 조명 아래 별다른 인테리어 없이 단조로운 매장에서 가장 먼저 발견한 음식은 냉동빵이었다. 가게 이름 그대로, 이곳의 주력 상품은 냉동식품이다. 버거용 패티, 인도계 이민자들의 주식인 치킨티카마살라, 감자커리, 미트볼 파스타, 소시지, 슬라이스햄, 치킨, 스파게티면·소스 모두 냉동고 안에 들어 있었다.

 

신선식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얼리지 않은 것들도 통조림이나 레토르트 같은 즉석조리식품이 대부분이다. 물건 값은 매우 싼 편이었다. 독일산 핫도그 7개가 든 통조림, 프랑스산 옥수수 198g짜리 통조림 2, 작은 소시지 30, 슬라이스햄 12개 모두 각각 1파운드(1800)에 팔렸다.

 

1970년 세워진 저가 슈퍼마켓 체인 아이슬란드는 2009년 호주계 슈퍼마켓 울워스 매장들을 인수, 사업을 확대했다. 지금은 영국 내 매장이 850개에 이르며 금융위기로 고생한 같은 이름의 나라 아이슬란드에도 체인점들을 냈다. 중산층이 많이 찾는 슈퍼마켓 영국 웨스트서식스 이스트그린스테드의 슈퍼마켓 체인 세인스베리매장 통로 양쪽에 수박, 레몬, , 복숭아, 바나나, , 멜론, 사과 등 색색의 과일들이 진열돼 있다.

 

독일계 저가 슈퍼마켓 알디4년 전 이스트그린스테드에 매장을 냈다. 알디는 지난해 매출이 25%가량 증가할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알디 매장은 평일 낮도 주차장의 빈 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매장 안은 손님들과 직원들로 어수선했고, 곳곳에 진열을 기다리는 물건 상자들이 발에 차였다. 매장 입구에는 대용량 콘플레이크와 감자칩이 진열돼 있었다. 이 상점엔 대용량 벌크 상품들이 유독 많았다. 아이슬란드와의 차이라면 저렴하지만 구색을 갖췄다는 점이다. 410g 스파게티 통조림이 16펜스(290)에 불과할 정도로 쌌지만, 스페인산 체리 토마토와 복숭아, 모로코산 강낭콩 같은 채소·과일도 있었다. 유기농 식품은 보이지 않았지만 방목해 키운 닭과 가둬 키운 일반 닭 중에서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었다. 원산지 표기는 까다롭지 않은 듯했다. 토스트빵과 으깬 콩, 여러 채소를 모아놓은 샐러드볼 포장에는 영양성분표시뿐이었고 원산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이스트그린스테드에서 머물렀던 곳은 60대 남성 조지의 집이었다. 은행에서 일하다 은퇴하고 이곳에 정착한 그는 상당한 액수의 연금을 받기 때문에 중산층 마을인 이곳에서도 소득이 높은 편에 속했다. 그는 항상 알디에서 장을 본다. 첫날 저녁식사에는 오븐에 구운 돼지고기, 삶은 감자와 당근, 시금치 무침을 준비했다. 다섯 명이 배불리 먹을 만큼의 돼지고기는 4파운드도 되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은 전통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를 준비해줬다. 구운 토마토와 버섯, 베이컨, 달걀에 오렌지 주스, 떠먹는 요구르트, 복숭아, 감이 곁들여졌다. 스페인산 복숭아는 달고 맛있었다. 한국 돈으로 1000원이면 알디에서 이런 복숭아 5개를 살 수 있다. 영국 슈퍼마켓의 과일과 채소 대부분은 남유럽이나 북아프리카에서 수입한 것들이다. 조지는 알디가 처음 영국에 진출했을 때는 싸구려 이미지가 강했지만 점차 중산층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체면 때문에 저가형 슈퍼마켓을 외면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불황이 오래 계속되면서 중산층이 점점 저가 식료품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따라 가격 다른 닭고기 영국 웨스트서식스 이스트그린스테드의 고급 슈퍼마켓 체인 웨이트로스매장에 닭고기가 판매대의 맨 위부터 유기농’ ‘방목’ ‘필수품순으로 진열돼 있다. 아래로 갈수록 값이 싸다.

 

고급 매장엔 유기농 식품들

이스트그린스테드에서 가장 큰 매장과 주차장을 보유한 곳은 중산층이 많이 찾는 세인스베리다. 수박, 레몬, 복숭아, 바나나, 멜론, 사과 등 색색의 과일들이 통로 양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과일·채소·고기 포장지에는 큼지막하게 유통기한, 생산 농민(농장), 원산지가 적혀 있었다. 고급 매장으로 갈수록 신선식품 비중이 커지는 것 같았다. 손님이 많은 것만큼이나 제품 가짓수도 많았다. 달걀만해도 개수에 따라, 크기에 따라, 방목을 했는지, 유기농인지에 따라 20종이 넘었다. 유기농 밀가루 값은 일반 밀가루의 2배가 넘었다. 멕시코산 바나나, 영국산 양고기와 닭고기에 붙은 SO 표시가 눈에 띄었다. ‘세인스베리 오개닉(Sainsbury’s Organic)’의 약자로, 자체 유기농 인증 마크였다. 바나나에는 공정무역 마크가, 닭에는 방목 표시가 추가돼 있었다. 냉동 감자칩은 유전자조작(GM) 가능성이 높은 옥수수기름 대신 해바라기유로 튀긴 제품이었다.

 

같은 날 방문한 웨이트로스 매장은 좀 더 한적했다. 우연인지 몰라도, 쇼핑객들 중 비만인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고급화 전략을 내세운 곳답게 먹거리 값은 비쌌지만 종류는 다양했다. 저가 매장 알디에서는 일반 달걀을 6개들이 1팩에 1파운드에 파는데, 이곳에서는 방목한 닭이 낳은 달걀 1팩을 2.4파운드에 팔았다. 사과만해도 10가지 종류가 넘었다.

 

상품에는 철저히 을 매겨놨다. 상대적으로 싼 상품에는 필수품(essential)’이라고 적혀 있었다. 유기농 식품이 흔했고, ‘동물윤리채식주의자 적합’ ‘공정거래라고 찍힌 식품도 있었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손질한 훈제 방목 돼지고기와 필수품돼지고기는 가격이 50%가량 차이가 났다. 닭은 판매대의 맨 위부터 유기농, 방목, ‘필수품순으로 진열돼 있었다. 밀가루와 우유도 유기농과 필수품으로 구분돼 있었는데, 가격은 2배 차이가 났다. 홈페이지에도 제품별 영양정보를 공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홍보하고 있었다. 유명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 헤스턴 블루먼솔과 제휴한 반조리 식품도 팔았다. 이탈리아, 프랑스, 인도, 중국, 일본,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나라별 코너가 따로 있어 각국 음식과 향신료를 골라 살 수 있다.

 

줄 서서 기다리는 유기농 농장

이스트그린스테드에서 10분쯤 차로 달려 이스트서식스에 있는 테이블허스트 팜을 찾았다. 농장은 큰 도로에서 산쪽으로 조금 들어간 곳에 있는데, 지역주민들이 바이오다이내믹(생체역학)’이라는 특이한 농법으로 농작물을 키운다. 이 농법은 자연의 리듬과 조화를 중시해 파종이나 수확 시기를 태양, , 행성 등 천체 움직임에 맞춰 결정한다. 농작물에 음악을 들려주기도 한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평일 낮 시간인데도 이 농장의 좁은 매장은 줄을 서서 계산해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그리스산 키위부터 꿀, 아몬드, 코코넛오일에다 기르면서 즙을 내 먹을 수 있는 밀·보리·해바라기의 어린 싹까지,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먹거리가 가득했다. 유기농 티백에는 표백하지 않았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매장 옆 카페에서 파는 차와 커피도 유기농이다. 숲 바로 옆 테이블에서 여유롭게 차를 즐기는 노부부와 맨발로 돌아다니는 젊은 여성은 자연과의 일체감을 즐기기 위해 일반 슈퍼마켓의 2배가 넘는 값을 치를 가치가 있다고 믿는 듯했다.

 

1990년대 광우병 파동과 몇 해 전의 말고기 파동을 겪으면서 영국인들의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온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은 고급화를 내세운 슈퍼마켓의 성장과 유기농 열풍을 낳았다. 하지만 단순히 먹거리의 질에 대한 관심을 넘어, 식품이 계급과 계층을 가르는 브랜드가 되고 있다는 점 또한 분명한 듯했다. 웨이트로스가 회원용으로 내는 100쪽짜리 월간지와 48쪽의 주간신문은 여행, 스포츠, 먹거리, 유명인을 소개하는 럭셔리 잡지를 닮았다. 알디를 애용하는 조지는 유기농은 결국 많은 돈을 남기려는 기업들의 마케팅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실감나지 않을 수 없었다. 런던에서 만난 한 30대 여성은 돈이 없으면 싼 재료를 사 먹으면 된다. 슈퍼마켓 서열이 매겨져 있기 때문에 오히려 본인의 선택권이 크다고 했다. 그러나 안전 먹거리를 사는 것이든, ‘고급 이미지를 사는 것이든, 당장 주린 배를 안고 푸드뱅크로 향해야 하는 사람들은 이 열풍에 끼어들 자리가 없을 것 같았다.

 

지구의 밥상](7)육식의 종말?

채소·콩 요리가 기본인 인도 식단채식하면 새로 태어난 느낌

12억마리가 지구 곡물 3분의 1 꿀꺽소가 인간을 먹는 셈구의 밥상](7)육식의 종말?

미국의 초원에서 버펄로가 사라지고 식육용 소들이 그 자리를 채운 뒤로 세계는 쇠고기의 홍수속에 살고 있다. 고기를 많이 얻기 위해 소에게 성장호르몬을 투입하고, 항생제에 동물성 사료까지 먹여 광우병 파동이 일어났다. 몇 해 전 유럽에서는 말고기를 쇠고기로 속여 만든 햄버거용 말고기 패티가 들통나 난리가 났다. 소득이 늘고 쇠고기 소비가 증가한 중국에선 지난해 유통기한이 지난 쇠고기를 쓴 다국적 패스트푸드 체인들이 줄줄이 적발됐다. 닭은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가슴살을 공급하기 위한 살코기 기계가 돼버렸다. 식용 닭의 근육분포를 조작해 스모선수 체형으로 만든 닭들이 밀집사육시설이라 불리는 양계장에서 대량 생산된다. 프랑스의 미식은 옛말이고,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다리를 잘라 모양틀에 넣어서 성형한 인조 햄들이 슈퍼마켓에 깔린다.

 

세계의 밥상을 고기가 지배한 지 오래다. 신흥경제국들이 성장하면서 고기 수요는 갈수록 늘고 있다. 하지만 식육 생산시스템의 부작용에 대한 반발로 채식을 고민하는 이들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인도의 채식주의 가정을 방문, 그들은 실제로 무엇을 먹는지 들여다봤다.

 

 

 

인도에는 채식주의자들이 많다. 인구의 3분의 1이 채식을 한다는 통계도 있다. 뉴델리 아래에 있는 구르가온은 신흥도시다. 마천루가 들어서고 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외국자본과 다국적기업들이 집중된 세계화의 현장이기도 하다. 맥도널드, 피자헛, KFC의 간판이 곳곳에 보인다. 이들 매장에서도 고기로 만든 음식을 팔지만,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모든 매장에 채식 메뉴가 따로 있다는 점이었다. 직원들은 주문대에 선 손님에게 먼저 베지(Veg·채식), 논베지(Non Veg·비채식)고 묻는다. 상당수가 베지라고 답하며 고기 대신 감자와 양파 등이 들어간 버거나 피자를 받아든다. 인도에서 채식은 특별한 게 아니라 아무데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식단의 일부였다.

 

채식주의 자이나 교도의 식탁

인도의 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뉴델리무역관에서 일하는 샐리쉬 젠(47)은 채식주의자다. 아내와 두 딸, 칠순 넘은 어머니도 그렇다. 지난 6월 이 가정을 찾았다. 오랫동안 채식을 해온 사람들이 고기를 거부하는 이유와 육식에 대한 생각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샐리쉬 가족은 대부분의 인도인들이 그렇듯 종교적인 이유로 채식을 한다. 이들은 기원전 9세기 이전에 생겨난 것으로 추정되는 자이나 교도다.

 

 

채식해도 몸집 큰 식구들 샐리쉬 젠(오른쪽 위)이 아내와 어머니가 만든 저녁 식사를 두 딸과 함께하고 있다. 칠순이 넘은 어머니를 제외하고 모두 체구가 큰 편이다.

 

샐리쉬는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자이나 교도의 5대 원칙을 먼저 설명했다. 비폭력주의 거짓말하지 않기 도둑질하지 않기 욕심 없이 검소하게 지내기 순결을 유지하기다. 그는 우리는 모기 같은 해충조차 죽이지 않을 정도로 생명을 중시한다고 강조했다. 자이나교의 스승들은 행여 길을 가다 벌레를 밟는 일이 없도록 빗자루로 길을 쓸면서 걷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나도 지금껏 한번도 폭력을 쓴 적이 없다아이들에게도 말로 훈계할 뿐 욕을 하거나 손찌검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자이나교의 문양이 걸린 현관을 지나 거실로 들어갔다. 어두운 조명의 거실은 한눈에 봐도 검소했다. 가구는 단출했고 벽에 걸린 그림 몇 개가 장식의 전부였다. 2층에 있는 딸들 방도 아주 심플했다. 다섯 식구 모두 우유와 치즈는 먹었지만 고기는 물론 생선, 계란도 입에 대지 않았다. 샐리쉬는 우유와 치즈는 소의 부산물이지만 계란은 생명 자체다. 어떻게 먹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식구들 모두 고기는 먹어본 적 없고 먹고 싶었던 적도 없으며 먹어보라고 권한 사람도 없었다고 했다.

 

아내 가리마(44)과 어머니 스네티라타(73)가 정성스레 만든 음식을 식탁에 차렸다. 물론 모두 채식이었다. 함께 자리한 샐리쉬의 동료 자야 자야르는 인도 음식에는 채소요리 1, 콩요리 1개가 기본적으로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날의 식탁이 딱 그랬다. 아욱과의 채소인 오크라로 만든 빈디가 한복판에 놓였다. 오크라는 끝이 뾰족해 여성의 손가락(ladies’ finger)’이라고도 불리는데, 비타민과 아연, 철분, 칼슘 등 미네랄이 풍부하다.

 

인도식 콩요리는 이라고 통칭된다. 샐리쉬 가정이 내놓은 것은 달 마카니. 껍질 벗긴 렌틸콩에 양념을 넣고 끓인 것으로 여기에 빵을 찍어 먹거나 밥에 비벼 먹는다. 단백질이 많으면서도 소박한 음식이다. 인도인들의 주식은 밥과 빵이다. 이날 테이블에도 여러 종류의 빵이 올랐다. 하나는 한국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이다. 밀가루 반죽을 발효시킨 뒤 종이처럼 얇게 밀어 구운 빵이다. 인도인들이 즐겨 먹는 또 다른 밀가루빵 자파티는 발효 없이 구웠다는 게 난과 다른 점이다. 거기에 샤히 투크다라는 빵을 특별히 내놨다. 밀가루 반죽을 우유에서 나온 라는 버터로 구운 것이다. 샤히 투크다는 왕족이 먹는 것이라는 뜻으로,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것이라고 했다. 빵도 기름진데 거기에 우유와 치즈까지 더해졌다. ‘파니르는 치즈 덩어리를 잘게 빻은 토마토, 양배추 등에 넣은 것이다. 기름에 튀긴 렌틸콩 가루 경단에 요구르트를 부어 만든 다히 바다(커리볼)’도 나왔다. 인도요리 특유의 향은 강하지 않았지만 한국 사람 입맛에는 좀 느끼한 듯했다.

 

 

햄버거 가게의 채식 버거 구르가온 맥도널드 매장. 직원들은 주문대에 선 손님에게 먼저 베지(Veg·채식), 논베지(Non Veg·비채식)고 묻는다. 원 안의 메뉴가 토마토 등 채소로만 만든 버거로 가격은 55루피(990).

 

채식하면 새로 태어난 느낌

다이어트를 위해 육식을 피하는 이들이 많지만, 샐리쉬 집안 사람들은 뜻밖에도 모두 몸집이 컸다. 설탕과 유제품을 많이 먹기 때문으로 보인다. 큰딸 묵다(21)와 작은딸 리야(18)버거, 피자, 탄산음료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대학생인 묵다는 최근에는 기름, 설탕, 향신료를 적게 먹는다고 덧붙였다. 샐리쉬 가족은 신체활동을 많이 하지 않는다. 정원 관리와 세차, 빨래 같은 일을 하는 하인 5명을 쓰고 있다. 카스트 제도가 남아 있는 인도에서 높은 계급의 사람들은 허드렛일을 꺼린다. 계급이 낮은 사람들이 하는 일을 하면 자신들의 신분도 낮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코트라 무역관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인도 도시 인구 중 40%가 과체중이거나 비만이다. 도시 여성들은 다소 뚱뚱한 반면 시골 여성들은 대체로 많이 마른 편이다. 패스트푸드 매장이 도시에 집중된 데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시골 여자들은 농사일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샐리쉬네 식탁 한쪽에는 작은 접시에 담긴 처트니라는 반찬이 몇 개 있었다. 망고, 양파, 레몬 따위로 만든 피클인데 메인 요리의 달고 느끼한 맛을 상쇄하기 위해 조금씩 먹는다.

 

신도시의 중산층 집이지만 인도의 대부분 지역이 그렇듯 상수도는 없었다. 그래서 집에 정수기를 두고, 지역 공동 물탱크에서 내려온 물을 정수해서 마시거나 생수를 사다 마신다. 식재료는 거의 다 동네 시장에서 사왔다. 곡식과 향신료는 30년 단골가게에서 사온단다. 전업주부인 가리마는 채소는 월요일마다 들어서는 채소시장에서 산다며 다섯 식구의 한 달 식비가 15000루피(267000) 정도이고 그중 절반이 채소 구입 비용이라고 말했다.

 

고기를 안 먹어도 건강상태는 다들 좋아 보였다. “보험이 없어서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지는 못하지만 아픈 데도 없고 당뇨도 없다고 했다. 샐리쉬의 어머니 스네티라타는 고기 먹는 친구들은 나보다 건강하지 못하다며 웃었다.

 

샐리쉬는 나름의 채식 예찬론을 펼쳤다. 그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 몰라도, 채식을 하면 난폭성이 줄어들고 머리가 맑아진다고 믿는다채식을 해보면 새로 태어난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딸도 음식 외도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고등학생 리야는 고기를 먹는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 게 싫지는 않지만, 함께 고기를 먹고 싶다는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고 했다.

 

 

보기 드문 야간 고기시장야간 고기시장의 한 상인이 그 자리에서 산 닭을 잡아 부위를 나누고 있다.

 

29개 주 중 24개 주 쇠고기 금지

육식을 하는 인도인들은 주로 닭고기와 양고기를 먹는다. 돼지고기 요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쇠고기 대신 물소(버펄로) 고기로 만든 음식을 간혹 볼 수 있었다. 잘 알려진 대로 힌두교도들은 소를 숭배한다. 소가 길을 건널 때면 차를 멈추고 경적도 울리지 않은 채 소가 지나가기를 묵묵히 기다린다. 대형 마트에서도 고기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동네 시장에서도 닭고기가 들어간 밥이나 국수를 파는 곳은 있었지만 고기 요리를 파는 곳은 찾기 힘들었다. 운 좋게 늦은 밤에 허름한 골목의 야간 고기시장을 볼 수 있었다. 어른 종아리만 한 크기의 생선과 살아 있는 닭이 있었다. 상인들은 그 자리에서 닭을 잡아 내장과 고기를 나눴고 생선의 배를 갈라 팔았다. 큰 칼은 서슬이 퍼렇고 길바닥에는 핏물이 흥건했다.

 

시장 한쪽에 생선과 닭을 튀겨 파는 상점이 있었다. 먼저 생선과 닭을 약간 튀겨놨다가 손님이 오면 다시 한번 튀겨 내는데, 위생은 확신할 수 없었다. 가이드 타라찬드는 인도에는 물이 오염된 곳이 많아 생선도 더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인도는 하나의 국가라기보다는 수많은 다양성이 존재하는 대륙으로 보는 편이 더 나을 듯싶었다. 헤아릴 수 없는 언어, 인종, 종교, 계급, 문화, 기후, 정치성향 등이 한데 섞여 모두의 인도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태어난 구자라트주는 올 초 쇠고기와 주류 판매를 법적으로 금지했다. 경제도시 뭄바이가 있고 무슬림이 많은 마하라슈트라주도 상황이 비슷하다. 29개 주 중 24개 주에서 소 도축과 판매가 법으로 규제되고 있다. 모디 총리는 힌두민족주의 성향의 인도국민당(BJP) 소속이며 인도 인구 중 80%가 힌두교도다. 하지만 쇠고기 도축·판매 금지는 비힌두교도들을 무시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북부 지역은 오랜 기간 이슬람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돼지고기를 제외한 육류가 다양하게 쓰이며, 향신료를 넣어 끓이거나 튀긴 음식이 많다. 반면 정통파 힌두교도가 많은 중남부 지역 주민들은 채식을 주로 한다. 중남부에서는 고온다습한 기후 때문에 쌀과 콩, 과일을 많이 재배한다. 인도는 태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쌀을 많이 수출하는 국가다. 서쪽의 웨스트벵갈주는 바다와 접해 있어 생선을 많이 먹는다. 웨스트벵갈보다 더 동쪽에 있는 8개 주는 거의 모든 음식을 먹는다.

 

종교 때문에 쇠고기 금지인도 인구 중 80%를 차지하는 힌두교도들은 소를 숭배하기 때문에 소를 자유롭게 놔둔다

 

세계 곡식의 3분의 1은 소 사료

인도는 세계적인 농축산물 수출국이다. 땅은 세계에서 7번째로 넓고, 다모작을 할 수 있는 기후에 토지도 기름지다. 이 나라가 쇠고기를 거의 먹지 않는다는 것은 지구에 엄청난 축복인 셈이다. 세계적으로 육류 소비가 늘면서 생겨나는 부작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비만과 혈관질환, 당뇨 같은 건강 문제만이 아니다. 가축의 방뇨로 수질이 오염되고, 소의 트림에서 나오는 메탄가스가 일으키는 온실효과도 엄청나다. 소에게 곡물 9을 먹여 얻을 수 있는 고기 양은 450g에 불과하다. 학자들은 이를 가축의 단백질 전환율이라고 부르는데, 소의 단백질 전환율은 돼지의 절반, 닭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미국인들은 1인당 연간 98의 육류를 먹는다. 미국 지구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세계인들이 모두 미국인처럼 고기를 먹을 경우 지금의 곡물 생산량으로는 26억명만 부양할 수 있다. 반면 세계가 인도인들의 수준(1인당 연간 5.4정도)으로 고기를 먹는다면 95억명도 먹여살릴 수 있다.

 

인도인들은 재배한 곡물의 90%를 식재료로 쓰지만, 지구상에서 재배되는 곡물 상당량은 소 사료로 쓰인다. 브라질 아마존 숲도 소 사료용 콩 재배지에 밀려 사라지고 있다. 특히 중국이 1990년대 중반 사료용 콩 수입을 시작하면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는 콩 골드러시가 일어났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고기를 생산하는 육류 공장의 무자비한 사육과 도축 방식, 대량생산을 위해 첨가·변형하는 사료, 부자 나라의 사료 공급처로 전락한 빈국의 식량 부족, 농경지 사막화 등 지나친 육식으로 인한 문제점은 이루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2014년 조사에 따르면 세계에서 쇠고기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는 아르헨티나(1인당 41.6)였고 이어 우루과이(37.9), 브라질(27.0) 순이었다. 돼지고기는 중국(32.0), 유럽연합(30.9), 베트남(28.9)에서 많이 먹는다. 가금류의 대표적인 소비국은 이스라엘(63.0)과 미국(44.5)이다. 한국은 돼지고기(24.4), 가금류(15.4), 쇠고기(11.6) 순으로 조사됐다. 돼지고기를 제외하고는 OECD 평균치보다 적게 먹는 셈이다.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저서 <육식의 종말>에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128000만마리 소들이 세계 토지의 24%를 차지하며 지구에서 생산된 곡물의 3분의 1을 소비한다인간이 소를 먹는 게 아니라 소가 인간을 먹어치우고 있는 셈이라고 적었다.

 

그는 축산단지는 생태계를 파괴하고 경작지를 사막화한다육식을 끊는 행위는 모든 대륙의 자연을 회복시키는 생태적 르네상스의 시발점이라고 덧붙였다

 

지구의 밥상](5) 슬럼가의 생존법

인도 슬럼가에선 카레대신 양 많은 튀김 음식이 주식

과일 비싸고 설탕은 그림의 떡그래도 굶진 않아요

 

농업시장 개방된 저개발국 농업은 붕괴 농촌은 해체 농민들 대도시 몰려 슬럼화

밀가루 빵 자파티들고 일찍부터 일 가는 남자들 가족들과 함께 식사 드물어

 

보리가루와 밀가루로 튀겨낸 빵. 쌀과 옥수수를 섞어 빻아 끓인 죽. 밀가루와 감자가루 반죽으로 만들어 튀긴 과자. 염소에서 짠 우유. 기름에 볶은 채소. 그리고 힘겹게 얻은 물. 인도 뉴델리 쿠숨푸르에 있는 파하리 슬럼 주민들이 먹는 일용할 양식이다. 뉴델리 아래쪽에 있는 1크기의 작은 땅에는 무려 10만명이 살고 있다. 이곳 주민은 대부분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온 시골 사람들이다. 마을이 생긴 것은 50년 전이지만 최근 인도가 빠르게 도시화되면서 거대한 슬럼(빈민촌)이 돼 버렸다. 정부가 소규모로 지원을 해주기는 하지만 주민들의 삶의 전제는 어디까지나 자력갱생이다. 손바닥만 한 방에서 새우잠을 자며 대충 끼니를 때운 뒤 허드렛일로 연명하는 이곳 사람들의 목적은 돈을 모아 하루라도 빨리 슬럼을 탈출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 중의 하나인 인도의 슬럼, 그곳 사람들은 무엇을 먹으며 허기를 달래고 시름을 잊을까. 지난 6월 슬럼을 찾았다. 가이드와 통역사, 슬럼에 살면서 근처 학교에서 일하는 보조교사, 교민 3명과 쿠숨푸르에 들렀다. 가이드와 취재진만 갔다가는 험한 일을 당할 수도 있다고 해서 일행을 늘려 그룹을 꾸렸다. 슬럼을 찾은 시간은 오전 11시쯤이었고, 여성들과 아이들이 많았다. 보조교사로 일하는 샤바브는 남자들은 이른 아침밥을 먹고 모두 일하러 밖으로 나갔다고 말했다.

 

가난해도 먹을거리는 자급자족

여성 몇몇이 늦게 일어나는 아이들에게 줄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한 여성이 노란 죽이 든 통을 열어보였다. 쌀과 옥수수 가루를 빻아 끓인 덜리야라는 죽이다. “부드럽고 따뜻해 아이들이 잘 먹는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표정은 환했다. 이곳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것은 튀긴 빵이다. 밀가루로 만든 자파티라는 빵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주 먹는다. 자전거 인력거꾼 랑지트는 아침에 일하러 갈 때 싸가지고 나가서 손님 없는 시간에 커리(카레)’에 찍어 먹는다고 말했다.

 

 

인도 뉴델리 쿠숨푸르의 파하리 슬럼에서 살고 있는 한 여성이 쌀과 옥수수 가루를 빻아 끓인 덜리야라는 죽을 보여주고 있다.

 

이튿날 아침 일찍 다시 슬럼에 들렀다. 여러 집이 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성들은 출다라는 전통 화덕에 마른 나무를 태워 음식을 만들었다. 두 아이의 엄마인 스루티는 출다에 불이 잘 안 지펴질 때에는 가스레인지를 쓰는 옆집이 부럽다며 웃었다.

 

 

밀과 감자가루 반죽이 가스레인지 위에서 기름에 튀겨지고 있다. 위에 보이는 흙색 화덕이 출다.

 

슬럼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지난 30년 새 국제통화기금(IMF) 등 이른바 워싱턴 기구들의 압력에 밀린 저개발국 정부들이 시장을 열면서 곳곳에서 농업이 붕괴하고 농촌이 해체됐다. 땅에서 분리된 사람들은 대도시로 모여들었고, ‘메가 시티로 표현되는 초거대도시들 주변에는 예외 없이 메가 슬럼들이 들어섰다. 이미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시대가 됐으며, 그들 중 상당수는 슬럼 주민이다. 특히 인도는 슬럼의 나라.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유명세를 치른 뭄바이의 다라비 슬럼에는 100만명이 산다.

 

슬럼의 인프라는 열악하고 삶은 거칠지만, 그곳 사람들에겐 그들 나름의 생존법이 있다. 밥을 굶는 절대 빈곤이나 비참한 삶의 나락을 떠올려서는 안된다. 인도의 슬럼들은 도시의 나머지 지역과 분리돼 있되 공생한다. 미국 저널리스트 앨런 와이즈먼은 다라비 슬럼을 탐사한 뒤 슬럼이 얼마나 생산적인지를 묘사했다. 버려진 것들을 모아 집을 짓고, 쓰레기를 모아 재활용하고 새로운 상품으로 만드는 이들이 슬럼 사람들이다. 그래서 슬럼 옆에 27층짜리 대저택을 지은 인도의 갑부 무케시 암바니조차 집 주변 빈민들을 내쫓으려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적은 돈을 받고 적은 돈을 쓰며 일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인도의 슬럼에서는 그래서 실업자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문제는 간신히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저임금이라는 것이다.

 

 

자전거 인력거꾼 랑지트가 오전 일을 마친 뒤 인력거 위에 올라 자파티를 커리(카레)에 찍어 먹고 있다.

 

슬럼의 인프라는 형편없고 삶은 거칠지만, 제대로 된 밥상 대신 길거리에서 끼니를 때울지언정 그들에겐 그들만의 생존법이 있다. 인도는 거의 모든 곡물을 자급자족하며 수출도 많이 한다. 곡물 값은 매우 싸서, 종류에 상관없이 120~75루피(360~1370)에 팔린다. 가이드인 타라찬드는 곡물 가격은 거의 오르지 않는다폭동을 일으킬까봐 정부가 값을 묶어놨다는 소문도 있다고 귀띔했다.

 

그래도 빈곤한 슬럼가의 생태계

정부는 또 슬럼 주민들에게 쌀을 거의 공짜로 공급한다. 두 자녀,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수미트는 정부 쌀 가격은 시중의 15분의 1 수준이라고 말했다. 1020루피(360) 정도면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 배급량 이상을 먹으려면 상점에서 훨씬 비싸게 사야 한다. 이곳에도 나름 시장이 형성돼 있다. 여기에서 파는 곡물은 바깥보다 싼 편이다.

 

파하리 슬럼에서 20년 동안 곡물가게를 하고 있다는 마흔 살의 초텔달은 요즘은 장사가 잘 안된다며 걱정했다. 한 옆의 노점상에서는 밀가루 반죽을 겨자기름에 튀긴 푸리라는 빵을 팔았다. 10루피(180)를 주고 아이 손바닥만 한 푸리 5개를 샀다. 위생상태가 다소 걱정스러워 일행들은 꺼렸지만, 기자는 용감하게’ 2개를 먹었다. 뜨겁고 기름지지만 먹을 만했다.

 

쿠숨푸르 파하리 슬럼에서 과자와 인스턴트식품을 파는 작은 상점

 

기온은 40도를 웃돌았다. 습도가 낮아 땀은 많이 나지 않았지만 내리쬐는 강한 볕에 머리가 아팠다. 이때 눈에 들어온 것은 과일 장수와 아이스크림 장수였다. 과일은 115루피(270) 정도에 팔렸다. 수박 반 통이면 50루피(910)가 넘는다. 함께 다니던 가이드 굴라브는 과일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돈이 있는 사람들뿐이라고 했다. 아이스크림도 맛보고 싶었지만 배탈이라도 날까 싶어 자신이 없었다. 희뿌연 종이에 싸인 채 녹슨 철제 통에 담긴 아이스크림은 크기에 따라 5루피(90)에서 20루피(360) 정도였다.

 

정부서 거의 무상으로 쌀·밀 등 식량 배급 받지만 4인가족 생활하기엔 빠듯

매출 1국민 라면에서 허용치 7배 넘는 납 검출 지난 6월 완전 판매금지

 

음식 양이 부족하진 않아 질과 위생상태가 늘 문제

정부의 식량 배급이 있긴 하지만 넉넉할 리 없다. 이곳에서 14년째 살고 있다는 두 아이의 아빠 쿠마르(33)는 물을 길어오느라 흘린 땀을 닦으면서 배급카드를 내밀었다. 쿠마르는 우리 식구는 4명인데 나와 아내 둘만 이름이 올라가 있다“4, 5살 두 아들의 이름을 올리려 해도 정부가 허락해주지 않는다고 답답해했다. 쿠마르는 배급카드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매달 1인당 밀 4, 1을 거의 공짜로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쿠마르는 경비원 등 몇 가지 일을 해서 한 달에 8500루피(155380)를 번다. 4000루피는 먹는 데 쓰고 2000루피는 시골 부모에게 보낸다. 그의 월급은 인도 평균을 약간 밑돌지만 파하리에서는 형편이 좋은 편이다. 마히싱 촌장은 이곳 사람들의 가구 평균수입은 하루 200~250루피(3650~4570)”라면서 버는 돈을 먹는 데에 거의 다 쓸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먹을거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질과 위생상태가 문제다. 샤바브는 이곳에 들어오는 곡물은 물량보다는 질이 문제라며 좋은 것은 모두 바깥 시장에서 팔리고 나쁜 것만 슬럼으로 온다고 말했다.

 

슬럼에 없는 건 설탕

인도는 설탕의 원산지다. 유럽이나 아시아 다른 지역에 설탕이 알려지지 않았던 2000년 전부터 인도에는 설탕이 있었다. 고대 인도인들은 사탕수수의 즙을 짜서 먹었다. 8세기 무렵에는 이미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정제해내는 기술이 개발됐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정작 21세기 인도의 빈민들은 설탕을 입에 대기 힘들다. 슬럼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설탕과 과일이다. 과일은 노점상이 있어도 돈이 없어서 못 사 먹지만 설탕은 다르다. 쿠마르는 설탕을 거의 먹지 못한다. 설탕을 사려면 암시장에 가서 많은 돈을 주고 사야 한다고 말했다.

 

인도는 세계 2위의 설탕 수출국이자 최대 소비국이다. 이달 초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인도의 사탕수수 생산은 최근 5년 연속 수요를 초과했고 재고도 1020t에 이른다. 그러니 슬럼가에 설탕이 없는 것은 분배의 문제다.

물도 항상 부족하다. 수도 시스템이 없어 급수차가 하루에 몇 번씩 와서 물을 주고 간다. 마실 물, 세탁용 물은 따로 공급된다. 아침에 급수차가 오는 시간에는 물통을 갖고 몰려든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룬다. 물을 받으면 다행이지만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물도 식구 수가 아니라 가구당 배급되기 때문에 식구가 많은 집은 항상 물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영국 BBC는 최근 우물을 파서 얻은 지하수를 암시장을 통해 비싸게 파는 물 마피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20010달러에 파는 곳도 있다고 했는데, 실제로 상황을 보니 그럴 만도 했다.

 

 

슬럼 여성들이 물통을 세워놓고 급수차가 오기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슬럼 곳곳에는 시궁창이 흘렀다. 하수도가 없기 때문에 버려진 물은 집 마당 한쪽을 타고 아래로 흐른다.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파리가 들끓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개의치 않는 눈치다. 염소, 돼지, 개도 시궁창에서 뒹굴며 그 물을 먹고 산다. “인도 사람들이 돈이 없어도 돼지고기를 안 먹는 건 더럽기 때문이라는 말이 실감됐다.

 

가족이 한데 모여 밥 먹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어른들은 아침을 일찍 먹고 일하러 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느지막이 일어나 식사를 하고, 여성들은 집안일을 마친 뒤 틈이 날 때 끼니를 때운다. 저녁식사도 모두 모여 하기는 힘들다. 한국계 회사에 다니는 인도인 해먼트는 새벽밥을 먹고 나가 일한 뒤 들어와 쉬고, 늦은 밤에 식사를 하고 바로 잠을 자는 게 농경사회인 인도의 관례라고 말했다. 인도는 국토의 60%가 경작되며 인구의 절반이 농업에 종사한다.

 

 

슬럼에 사는 아버지와 아들이 밀가루 빵과 작은 그릇에 담긴 커리로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무거운 마음으로 슬럼을 둘러본 뒤 다음날 뉴델리 중심부에 있는 파하르간지로 이동했다. 이곳은 국내외 여행자들의 거리로 유명하다. 값싼 숙소와 저렴한 음식이 있고, 적은 돈으로 쇼핑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여행자들의 천국이라 하는 이들도 있지만, 중산층 이하 사람들이 뉴델리역 근처에 모여 살면서 배낭여행자들이나 외지 사람들을 상대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정도다.

 

이곳에서 파는 음식도 대부분 서민들이 먹는 것이었다. , , 감자가루 따위로 만든 빵, 과자를 기름에 튀긴 뒤 설탕이나 물엿을 묻혀 판다. 밀가루와 감자가루를 튀겨 만든 카초리는 1개에 10루피(180)였다. 이메르티는 밀가루 반죽을 겨자기름에 튀긴 뒤 설탕물에 푹 담갔다가 꺼낸다. 밀가루, 채소 등을 넣은 튀김도 있다. 튀김기름과 설탕물은 모두 오래돼 보였고 솥과 진열장도 지저분했다. 가이드는 보통 인도 남쪽 사람들이 빵과 과자를 즐겨 먹는다대부분의 음식을 튀겨 먹는 것은 더운 날씨에 냉장고 없이 음식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고 말했다.

 

 

파하르간지 시장 상인이 밀가루와 감자 가루를 튀겨 카초리를 만들고 있다.

 

네슬레 라면 파동

길거리 음식들을 사 먹을 때마다 위생상태를 걱정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도에서 최근 식품안전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것은 상점에서 파는 글로벌 기업의 즉석식품이었다. 인도인들이 한 끼를 때우기 위해 즐겨 먹는 매기누들은 네슬레가 1983년 출시한 즉석 면으로 2분이면 조리가 끝난다. 즉석식품 시장에서 독보적인 매출 1위를 달려 밀과 쌀에 이어 3의 주식이라는 말도 들었다.

 

이렇게 인기가 높았던 매기누들에 허용치보다 7배가 많은 양의 납이 들어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지난 6월 전국에서 판매가 완전히 금지됐다. 24세 남성 고발은 매기누들을 식당에서 25루피(450)에 사 먹거나, 10루피에 한 팩을 사서 집에서 끓여 먹었다고 한다.

 

그는 일주일에 다섯 번은 먹었는데라며 더 이상 못 먹게 된 것을 아쉬워했다. 다른 음식으로 배를 채우려면 50루피(910) 정도가 필요하다. 목을 축이려면 곳곳에서 파는 과일주스를 마신다. 이곳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것은 피가 맑아진다는 석류주스와 사탕수수 주스다. 주스는 컵 크기에 따라 한 잔에 10~30루피씩 했다. 즉석에서 갈아주기 때문에 위생은 괜찮았지만 물로 대충 헹군 컵으로 받아 마시는 게 찝찝했다. 개인용 컵을 꼭 갖고 다니라는 한국 친구의 말에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슬럼에선 과일을 사 먹기 힘들다지만 슬럼 밖 길거리에서 파는 과일은 한국과 비교하면 싸고 맛있다. 망고는 150루피(910), 수박은 140루피(740). 과일 중 가장 싼 바나나는 12개에 50루피였다.

 

술집을 찾기는 어디에서나 힘들었다. 인도에서 술을 판매하려면 면허증이 있어야 한다. 면허증을 얻으려면 돈을 내야 하고 일정 기간 지나 갱신할 때도 돈이 들어간다. 그래서인지 작은 상점과 길거리 식당에서는 술을 팔지 않았다. 술을 병이나 캔으로 사려면 길거리에 간혹 보이는 주류전문판매점에 가야 했다. 이런 가게에서 파는 300짜리 독일 맥주는 한 병에 250루피(4570)에서 300루피(5480)로 한국보다 오히려 비쌌다. 12년째 한국음식점을 경영하는 교민 김진범씨는 주류판매 면허증도 내는 돈 액수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외국 술을 팔 수 있는 면허증을 사려면 많은 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외국 술은 비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구의 밥상](3) 식품사막미국

가난하고 차도 없어 신선식품 못 사통조림 끼니 악순환’, “내 가족에게 쓰레기 먹이고 싶지 않아텃밭 가꾸기 열풍

 

통조림 파는 동네 가게도 차로 10, 걸어선 40~50분 정부 지원금으로만 생활 소득 비만의 주요 원인

미국 곳곳이 식품사막특히 흑인 빈민 거주지나 어린이 등 취약계층과 겹쳐

워싱턴 근교 사는 질리 가족 하루 2~3시간 밭일에 투자 오이·호박·토마토 등 얻어 식비 3분의 1 줄이는 효과

미국 3가구 중 1가구 텃밭미셸 오바마도 6년째 가꿔

 

지난달 8일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시의 빈민가 길모어스트리트. 승합차량 트렁크에서 한 흑인 여성이 봉지에 담긴 식료품들을 바쁘게 내리고 있었다. 봉지들에는 세이브얼랏로고가 적혀 있다. 값싼 식료품들을 파는 동네 슈퍼마켓 체인이다. 이 여성은 근처에 사는 조카가 한 달에 한 번 차를 몰고 시장에 갈 때에 맞춰 식료품을 구입하는 줄리아 플레밍(69)이다. 그의 집에서 세이브얼랏은 차로는 10분 정도 거리이지만 걸어가면 40~50분 걸린다. “나이 든 사람이 어떻게 거기까지 걸어가서 이 모든 걸 다 사오겠어요.” 플레밍이 땀을 닦으며 말한다.

 

소득이 거의 없는 플레밍은 매달 300달러(35만원) 정도의 정부 지원금으로 생활한다. 보충영양지원프로그램(SNAP)으로 불리는 이 복지수당은 미국 저소득층 가정의 식생활을 지탱하는데 필수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만 의존할 경우 대개는 값싸고 칼로리 높은 식품 위주로 사게 된다. 저소득층에 비만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플레밍은 푸드스탬프(SNAP의 옛이름)를 잘 쓰면 한 달 동안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지만 우리 동네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 동네 식료품점엔 유통기한이 없는 통조림 음식이나 정크푸드밖에 없다고 말했다.

 

도심에서 살면서 신선한 채소나 치즈, 우유를 얻기는 쉽지 않다. SNAP의 제한된 액수로 신선한 음식들을 사려면 코스트코 같은 대형할인점에 가야 하는데 회원 가입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그런 매장은 교외에 있어서 자동차 없이는 갈 수가 없다. 흑인들이 많이 살고 범죄율이 높은 지역에는 치안 문제 때문에 대형마트가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다. 값을 더 주더라도 식료품을 구할 수 있는 동네 가게조차 찾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그러니 플레밍 같은 사람들은 꼼짝없이 통조림을 뜯어야 한다.

 

 

볼티모어에 남아 있는 과일 마차. 애라버(arabber)라고 불리는 이 마차는 뉴욕, 필라델피아 등에서 흑인들이 애용했지만 이제 볼티모어에만 남아 있다.

 

그래도 이날은 장을 볼 수 있었다. 플레밍은 아무런 연고 없이 찾아온 기자를 경계하는 빛이 전혀 없다. 연립주택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좁은 복도에 방 두 개와 부엌이 한 줄로 늘어선 구조다. 방에는 창문이 없어 한낮인데도 토굴 같았다. 30대 초반의 딸과 둘이 사는 그는 대부분의 음식을 집에서 해먹는다. 플레밍은 방금 사온 양상추와 호박, 토마토를 쓱쓱 잘랐다. 그 위에 칠면조 슬라이스를 얹고 마요네즈를 뿌렸다. “우리는 이렇게 먹고 살아요.” 플라스틱 그릇에 담아 기자에게도 건네준다. 5분 만에 선 채로 점심을 해치운 그는 냉동실에 포장육을, 냉장실에 요거트와 양배추, 버섯, 계란을 채워넣었다.

 

과일은 애라버’(arabber)가 동네에 올 때 살 거라고 말했다. 애라버는 말이 끄는 마차에 과일을 싣고 다니는 과일장수다. 뉴욕, 펜실베이니아 등 동부 해안 도시에서 흑인들이 했던 일이지만 동물권리운동가들의 반대와 도시에서 마구간을 관리하는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볼티모어 서부 빈민가에 거의 유일하게 애라버가 지금도 남아 있다.

 

플레밍의 집을 나서 5분쯤 걸었을 때 저 멀리서 방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과일이 한가득 실린 노란 지붕의 마차가 왔다. 49년째 이 지역에서 애라버로 일하는 피위(65)이 마차는 신선한 과일을 원하는 주민들에게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며 딸기 한 팩을 내밀었다. 딸기 한 쿼트(1부피)3달러로 코스트코보다 1달러가량 싸다. 5달러 지폐를 내밀자 거스름돈 대신 복숭아 두 개를 건넨다. 애라버의 과일마차는 SNAP를 받지 않기 때문에 플레밍 같은 노인들에게는 부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볼티모어는 미국에서 시 정부로는 처음으로 식품사막개념을 규정하고 실태를 조사한 곳이다. 식품사막이란 지리적으로 식료품점이 멀고, 자동차가 없어 이동성이 떨어지고, 거기에 빈곤이 겹쳐 건강한 음식에 접근하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시 식품정책국과 존스홉킨스대의 살 만한 미래 연구소가 지난 6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볼티모어시 인구 62만명 가운데 4분의 1이 식품사막에 산다. 도시 곳곳에 고루 퍼져 있는 식품사막은 주로 흑인 지역과 겹친다. 홀리 프레이슈탯 볼티모어시 식품정책국장은 도시 주민들의 기대 수명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20~30년까지 차이가 나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라 할 수 없다식품사막은 우리 시의 어두운 모습이지만 그 모습을 정확히 드러내야 정책적 대응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만다 부진스키 존스홉킨스대 연구원은 식품사막은 미국의 거의 모든 도시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인종적으로 흑인들이, 세대별로는 어린이와 노인 등 취약 계층이 더 많이 식품사막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볼티모어시 서부 펜노스의 한 도서관. 오후 1시가 되기를 기다리던 흑인 아이들이 몰려들어왔다. “어머니들은 밖에서 기다려주세요. 아이들 혼자서도 잘 먹을 수 있습니다.” 옥타비아(23)가 딸 스카일러(5)의 식사를 돕겠다며 따라 들어오다가 제지당했다. 급식 자원봉사자 키아 애크우드(19)는 스카일러를 자리로 안내했다. 방학 중인 아이들이 도서관에 무료 점심배급을 받으러 온 것이다. 스카일러도 그중 하나다.

 

받아든 도시락에는 베이글과 치킨샐러드, 사과 4분의 1조각, 막대치즈, 주스가 들어있다. 그는 나중에 먹으려는지 사과를 호주머니에 넣었다. 베이글을 반으로 잘라 치킨샐러드를 발라 먹기 시작했다. 손놀림이 빠르다. 오늘 처음 먹는 식사다. 애크우드가 20여명의 아이들에게 아침 먹은 사람?” 하고 물었다. 대부분 고개를 저었다. 애크우드는 기자에게 이 아이들은 대부분 저녁도 제대로 먹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빈민가 무료 급식 여름방학에 볼티모어 빈민가의 한 도서관에서 어린이들이 받는 무료 점심 도시락.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주스, 치킨샐러드, 베이글, 빨대와 일회용 수저, 사과, 치즈, 우유.

 

갑자기 남자아이 둘 사이에 주먹다짐이 벌어졌다. 마이크(10)가 에릭(9)의 막대치즈를 빼앗으려다 벌어진 일이다. 마이크는 그 벌로 5분간 밖에 나가 있다가 다시 들어왔다. “막대치즈를 원 없이 먹어봤으면 좋겠어요.” 또 다른 자원봉사자 제이다 아르카(16)는 다른 아이들 모르게 자신의 도시락에서 치즈를 하나 꺼내준다. 마이크는 두 손으로 치즈를 들어올리고는 춤을 춘다. 온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이다.

 

식단표에 ‘1온스 흰색 미국 치즈라 적혀 있는 막대치즈는 샐러드에 조금 들어 있는 닭고기와 함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다. 막대치즈 한 개당 단백질은 3.8g으로 식품의약국(FDA)이 권장하는 어린이 1일 단백질 섭취량 19~38g에는 훨씬 못 미친다. 방학이 되면 학교급식을 못 먹는 아이들을 위한 여름 급식 프로그램이 반경 3~4이내에 스무 곳 가까이 운영된다니 굶주리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이 된다. 여름 무료급식은 볼티모어시의 재정과 기부를 받아 도서관, 교회 같은 곳에서 실시된다.

도서관을 나와 주변을 둘러봤다. 불타버린 편의점, 깨어진 창문들. 전당포와 담배 가게는 있어도 식료품점은 없었다. 넉 달 전 프레디 그레이(25)라는 흑인 청년이 경찰에 연행되다가 척추가 부러져 사망한 뒤 흑인 폭동이 일어난 곳이다.

 

볼티모어시가 식품사막의 오아시스라며 소개해준 펜실베이니아애버뉴의 라파예트마켓 편의점으로 갔다. 초입부터 분위기가 살벌했다. 가게 앞에서 경찰 대여섯 명이 한 흑인 남성을 에워싼 채 손으로 온몸을 훑고 있었다. 마약 단속을 하는 중이었다. 가게에 들어가니 뜻밖에 한국계 여성이 주인이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 여성은 흑인 남편 에드워드 브라운과 가게를 운영한다. 볼티모어시가 식품사막을 해소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동네 가게들을 건강 가게로 지정해 지원하고 있다. 식품사막 대책 마련에 부심하던 볼티모어시는 구멍가게들을 건강한 식품을 파는 가게들로 키우는 방안을 생각했고, 이 가게를 1호로 선정했다. 지원이라야 냉장고와 진열대 등을 무료로 제공하는 정도이지만 이 가게들이 싼값에 건강에 좋은 음식을 공급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여주인은 말했다.

 

가게에는 흰색 강낭콩, 말린 완두 등 콩 종류만 10여가지가 있고 토마토, 고추, 호박, 오이도 있었다. 현미도 있었다. 이곳은 통조림만 가득한 일대 식료품 가게와 다른 모습이었다. 냉동실에는 직접 만들어 얼린 콩 수프가 가득 들어 있다. SNAP로는 즉시 먹을 수 있는 뜨거운 음식은 사지 못하도록 돼 있어 택한 편법이다. 이 여성은 한국어로 처음에는 제가 먹으려고 비치한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것을 다 어디서 조달했는지 궁금했다. 비밀은 가게 뒷마당 텃밭에 있었다. 브라운은 텃밭의 호박, 고추, 토마토를 보여주며 아내가 없었으면 이런 일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아시스는 억척스러운 부인의 세심함, 지칠줄 모르는 건장한 남편이 만나 만들어진 것 같았다.

 

땅덩이가 넓은 미국에서 살다 보면 슈퍼마켓에 가기 힘든 식품사막은 도시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교외 지역의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할 수 있다.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주의 페어팩스에 사는 주부 후마 질리(39)도 그런 경우다. 지난달 7일 그의 집으로 찾아갔을 때 질리는 공교롭게도 20일째 라마단 금식을 하고 있었다. 질리는 금식으로 내 육체가 고통받을 때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알게 된다그 고통을 겪음으로써 신의 뜻을 더 이해하고, 금식 기간 중 내가 먹지 않은 음식을 돈이 없어서 굶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쓸 수 있다고 했다.

 

 

도심 거주자·텃밭 이용자 다른 냉장고 속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빈민가 길모어스트리트에 사는 줄리아 플레밍의 집 냉장고에 보충영양지원프로그램(SNAP)으로 불리는 푸드스탬프로 사온 인스턴트 식재료 몇 가지가 놓여 있다(왼쪽). 반면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 사는 후마 질리의 냉장고 속엔 텃밭에서 키운 시금치, 오이 같은 채소가 가득하다.

 

20년째 미국에서 살고 있는 파키스탄계 미국인 질리는 자기 소유의 주택에서 남편, 두 초등학생 아들과 산다. 실내장식업을 하는 남편의 일이 많지 않을 때에는 SNAP에 의존하기도 한다. 집이 있으니 중산층이라 부를 수도 있고, 가계소득이 들쭉날쭉하다는 점에서 중산층의 아래에 위치한다고 할 수도 있다.

 

몇 년 전 자동차 정기점검을 통과하지 못했을 때 그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장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가장 가까운 슈퍼마켓도 걸어가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곳에 있어, 이웃들의 차를 빌려타야 했다. 미국에 와서 내내 질리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 비싼 외식비와 정크푸드다. 올해 7, 8살인 두 아들에게 쓰레기를 먹이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벌이로는 매달 식비지출이 300~400달러로 한정돼 있으니 선택지가 없었다. ‘건강한 식탁예산 제약사이에서 4년 전 시작한 일이 텃밭 가꾸기다.

 

냉장고에는 질리가 집에서 키운 오이, , 호박, 토마토가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오이, 콩 씨앗을 말려 이듬해 다시 심는다. 토마토는 가지를 쳐내 수경재배한 뒤 이듬해 봄 다시 심는다. 유기농 식료품 체인인 홀푸즈마켓과 비교하면 식료품 구입비가 3분의 1로 줄어든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뒤 집에 있는 시간 중 2~3시간 정도를 텃밭 가꾸기에 써야 한다. 물도 많이 쓰지 않는다. 양동이와 컨테이너에 빗물을 받아 사용한다. 거름도 직접 만들어 쓴다. 가정용품 대형매장인 홈디포 직원으로 일하던 시절 원예코너에서 근무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홈디포 원예코너에 가면 텃밭을 가꾸는 데 필요한 공구, 울타리, 컨테이너 화분, 토양, 그리고 각종 채소와 과일 씨앗들을 구할 수 있다.

 

질리의 가족들은 외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 돈도 돈이거니와 건강에 좋지 않아서다. , 피클, 피자 모두 집에서 만든다.

 

건강한 식탁을 위해미국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주의 페어팩스에 사는 주부 후마 질리가 지난달 7일 텃밭에서 콩과 오이를 따고 있다. 20년째 미국에서 살고 있는 파키스탄계 미국인인 질리는 두 아들에게 정크푸드를 먹이고 싶지 않아 마당의 텃밭에서 직접 채소를 키운다. | 손제민 특파원 jeje17@kyunghyang.com

 

질리의 식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육류와 유제품이다. 그는 육류는 반드시 이슬람 율법대로 도축된 할랄제품을 산다. 미국의 식문화에 대해 물었다. “너무 많은 음식을 만들어 상당량을 버리고, 어디서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모를 음식을 배가 터지게 먹고는 병원에 가고 심지어 죽기도 하는 게 미국의 음식문화인 것 같아요.”

 

미국에서 질리처럼 텃밭을 가꾸는 사람은 드물지 않다. 기자가 2년간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동네에도 텃밭이 눈에 띄게 늘었다. 전국가드닝협회의 지난해 집계에 따르면 세 가구에 한 가구 꼴로 자신이 키운 작물을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늘어나는 텃밭을 달가워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2012년 플로리다 올랜도에서는 한 주민이 앞마당을 채소밭으로 바꿨다가 미관을 해쳐 동네 집값을 떨어뜨린다는 이웃의 신고로 공방을 벌였고, 미시건 오크파크에서는 여섯 자녀를 둔 주부가 텃밭을 갈아엎으라는 명령을 거부해 93일간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시 당국이 텃밭을 규제하는 법을 둔 경우, 대개는 거대 종자기업들의 로비가 뒤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제 대통령 부인이 백악관 앞마당에 텃밭을 가꾸는 시대다. 6년간 백악관 텃밭을 가꿔온 미셸 오바마가 사람들의 먹거리에 대한 인식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지역 농산물을 파는 식료품점에 가면 미셸 오바마의 저서 <미국에서 기른(American Grown·사진)>과 함께 토종 종자 목록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중산층이 모여사는 버지니아 비엔나시 메이플애버뉴마켓에서 지역 농산물을 파는 새라 게르는 직접 농사짓는 일이 얼마나 이로운지, 1940년대 이전의 토종 종자를 찾아내고 공유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를 강조했다. 1940년대인가? 몬산토나 듀폰 같은 거대 농생명공학 회사들이 대규모 화학농법에 맞춰 종자를 개량해 특허를 내기 시작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곳곳에 퍼져 있는 식품사막에서 미국의 절망을, 차츰 늘어나는 텃밭에서 희망을 읽었다. 식품사막과 텃밭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은 것 같았다.

 

식품사막’(Food Desert)

반경 400m 이내에 슈퍼마켓이 없고 중위가구 소득이 연방 빈곤선의 185% 미만이고 30% 이상의 가구가 차가 없으며 건강식품지수가 낮은 지역 (전체 도시 거주민의 4분의 1이 식품사막에 거주)

 

지구의 밥상](8-1) 중국 주부 유기농도 산지 구입우유·조미료는 외국산

소고기는 무슬림 동네서 사 3~5배 비싸도 안전선호 대도시 유기농 소비확산

연어·참치·소고기 수입 급증 건강한 먹거리 관심 많아

 

중국 주부 리리(李麗·45)는 베이징시 차오양(朝陽)구 쭤자좡중제(左家莊中街)의 한 아파트에서 국영기업에 다니는 남편(53), 20대 조카와 살고 있다. 외아들은 톈진(天津)에서 대학을 다니며 기숙사 생활을 한다.

 

 

리리가 차린 74일 저녁 식탁.

 

지난 74일 저녁, 간간이 비가 내리는 날씨 속에 리리의 집을 찾았다. 녹음이 우거진 곳으로 겉보기에도 중산층 이상이 사는 아파트 단지였다. 집으로 들어가자 널찍한 거실 옆 식탁 위에 사각 젤리 모양의 아몬드 두부와 청포도, 유기농 채소에 치즈를 얹은 샐러드가 차려져 있었다. 리리는 아몬드 두부는 궁중요리인데 아몬드를 많이 먹으면 장수한다고 한다. 채소는 친구가 근교의 농장에서 재배한 것을 사다 먹는다고 말했다. 아몬드 두부는 묵처럼 생겼는데 달콤했다. 채소는 이탈리아에서 씨를 가져와 재배한 것이라고 했다. 리리는 같은 유기농 채소라도 마트보다는 산지에서 직접 사온다. 채소밭도 직접 가보고 품질을 확인한다. 유기농 채소를 먹은 지는 2년 정도 됐다.

 

주방에는 이날 저녁 요리 재료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중국인들의 필수 식재료인 돼지고기 외에 다롄(大連)산 낙지, 고추, 가리비 등이었다. 리리는 돼지고기는 쓰과(絲瓜·수세미외)에 집어넣어 기름을 둘러 요리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돼지고기는 거의 시장에서 사지 않고 6개월마다 아는 사람을 통해 구입한다.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사 친구의 냉장 창고에 맡겨놓고 필요할 때마다 갖다 쓴다. 닭고기는 거의 먹지 않고 계란은 일주일을 넘기지 않는다. 아들이 좋아하는 소고기는 집에서 4가량 떨어진 무슬림 동네에서 사온다. 500g30~40위안(5500~7500) 수준이다. 스테이크가 먹고 싶을 땐 호주산 수입 소고기를 주로 산다.

 

 

리리의 냉장고 열어보니중국 베이징시 차오양구에 사는 주부 리리가 지난 74일 자신의 집 냉장고 문을 열어 식재료를 소개하고 있다. 중산층인 리리는 친구가 근교 농장에서 재배한 유기농 채소를 사다 먹고, 돼지고기도 한 마리를 통째로 사 친구의 냉장 창고에 맡겨놓고 필요할 때마다 가져다 쓴다. 그는 식품 안전을 남에게 맡길 수 있느냐본인이 노력해야지, 누구를 믿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베이징 | 오관철 특파원 okc@kyunghyang.com

 

일본제 파나소닉 냉장고 안에 있는 조미료나 우유는 외국산이 대부분이었다. 대만산 발효두부, 일본산 샐러드 소스, 독일산 잼, 100% 자연산 알래스카 연어 등이 눈에 띄었다. 돼지고기 요리에 쓰는 푸젠(福建)성에서 나온 발효 콩, 일본산 떡과 중국산 떡 등도 눈에 띄었다. 냉장고 안에는 해삼 같은 해산물과 국수를 만들 때 많이 넣는 광둥(廣東)산 말린 특산 야채도 있었다. 고추장은 직접 만들어 먹고 올리브유는 미국 대사관 근처 수입식품 판매점을 이용한다. 리리의 식단은 수산물이 중국인들의 새로운 식단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줬다. 중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노르웨이와 칠레로부터 연어를 수입하기 시작했고 수입량은 이미 일본을 앞질렀다. 2000년대 중반부터 소개된 참치는 소비량이 급증하면서 참치 소비대국 일본이 중국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수준이다.

 

아침 식사는 중국인들이 많이 먹는 여우티아오(油條, 밀가루 반죽을 튀겨낸 음식)나 더우장(豆漿, 두유의 일종)을 먹고 가끔 빵과 우유도 식탁에 오른다고 리리는 소개했다. 여우티아오는 집 근처의 역사가 오랜 국영 음식점에서 사 온다. 길에서 파는 것은 위생적이지 않아서 사지 않는다. 실제로 지난 5월 베이징시 당국 조사 결과 길거리에서 파는 여우티아오에서 기준치를 넘는 알루미늄이 검출됐다.

 

베이징 출신인 리리는 중산층 이상 소득 수준을 가진 가정의 주부다. 마트를 멀리하고 웬만한 식재료는 아는 사람을 통해 직접 사고, 외국산을 많이 사용해 다소 유별나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리리의 사례는 중국에서, 특히 중산층 이상에서 식품안전이 가장 큰 걱정거리임을 보여준다. 중국은 아직 빈부격차가 심하지만 온포형 사회(溫飽型社會·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회)에서 소강사회(小康社會·중산층 이상의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사회)로 들어서고 있다. 리리는 식품안전은 본인이 노력해야지, 누구를 믿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유기농 먹거리 소비는 대도시에서 두드러진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 등 4대 도시가 전체 유기농 먹거리 소비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소비자의 71%는 식품안전을 위해 20~50%의 값을 더 낼 의사가 있다는 통계도 있다. 유기농 채소와 일반 채소의 가격차이는 3~5배로 다른 나라보다 높은 편이다. 일부 유기농채소 재배지는 비닐하우스에 카메라를 설치, 고객이 집에서 컴퓨터로 재배 과정을 볼 수 있게 해준다. 마트에서는 이제 무공해 농산품, 친환경·유기농 인증이 붙은 과일, 채소, 고기가 넘쳐난다. 2013년 중국의 유기농 식품 판매량은 이미 50억달러(56900억원)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선진국에서는 유기농 제품이 영양은 물론 생태·환경보호 측면에서 인기를 끌지만 중국에서는 식품안전이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중국의 유기농 식품이 과연 100% 안전한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공기와 토양이 이미 많이 오염된 탓이다.

 

호주의 영양 컨설턴트 킴벌리 애슈튼은 지난 4월 상하이에 요리 강좌를 개설했다. 그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인터뷰에서 중국 주부들은 가족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먹이고 싶어한다. 나이 들고 완고한 이들과 달리 강좌를 듣는 사람들은 기꺼이 식습관을 바꾸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고기 소비가 늘어난 것도 건강에 대한 관심과 관련 있다. 소고기가 돼지고기에 비해 지방이 적다는 인식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전에는 주로 북방 사람들이 소고기를 먹었으나 지금은 남방 사람들도 많이 먹는다. 원래 소고기는 겨울에 주로 먹었지만 지금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경제발전으로 소득이 높아진 것도 소고기 수요가 늘어난 원인이다.

 

하지만 국내산 소고기 공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013년 중국의 소고기 수입량은 297000t으로 전년보다 3.8배 늘었다. 호주(47%)·우루과이(25%)·뉴질랜드(18%)산 비중이 높다. 중국인들은 외국산 고기를 자국산보다 더 신뢰하지만, 외국산이 전체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낮은 편이다. 지금 중국의 1인당 연간 소고기 소비량은 4~5수준이지만 5년 안에 8가량으로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근래에는 밀수된 쇠고기가 많이 반입되면서 식탁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심지어 살아 있는 소를 국경을 통해 밀수한 다음 직접 도살하는 경우도 있다. 소고기와 양고기의 밀수 규모는 연간 200~300t으로 추정된다.

 

 

아침부터 북적이는 시장지난 73일 중국 지린성 지안시의 한 아침시장. 중국인들은 밀가루 반죽을 튀긴 여우티아오나 국수, 만두 등으로 아침부터 밖에서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많다. 지안 | 오관철 특파원 okc@kyunghyang.com

 

대도시 중산층과 달리 중소도시와 농촌 주민들에게 식품안전은 아직은 미래의 일이다. 지난 73일 오전 7시쯤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의 한 아침시장. 더운 여름인데 냉동시설 없이 육류와 생선을 파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양돈·양계·양식업이 항생제 오염의 주범이란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글로벌 푸드와 밥상의 위기 1028 시사인

유럽이 공동농업정책(CAP)을 통해 식량의 자급을 넘어서면서 1970년대에는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농산물의 과잉생산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고, 1980년대에는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그리고 카길(Cargill) 등과 같은 곡물 메이저를 비롯해 농식품(Agri-Food) 산업에 투자한 자본의 이윤율도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의 농업 자본은 새로운 해외시장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양쪽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1986년 우루과이라운드(UR) 농산물 협상이 시작되고, 1993년 협상 타결에 이어 199511일부터 농업협정문이 정식으로 발효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한국을 비롯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모든 나라가 농산물 자유무역을 내세운 글로벌 푸드 시스템에 편입되었다.

 

UR·WTO 체제에 편입하면서 한국은 쌀을 제외한 모든 농산물의 수입이 자유화되었고, 수입 농산물이 국내로 밀려 들어왔다. 그리고 2000년대 접어들면서 농산물의 수입 개방을 더욱 빠르게 확대하는 자유무역협정(FTA)이 잇따라 체결되었다. 칠레와의 FTA를 시작으로 미국·유럽연합(EU)·중국·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뉴질랜드 등 농산물 수출 강국들과 잇따라 FTA를 맺었다. 한편 올해부터는 그동안 자유무역에서 제외되었던 쌀도 관세화로 개방되면서 모든 농산물의 수입이 완전히 자유화되었다. 이처럼 동시다발적이고 전방위적인 농산물 수입 개방이 빠르게 확대되는 것에 비례해 한국의 농업과 농민 그리고 농촌은 빠른 속도로 몰락해왔다.

 

 

연합뉴스19942월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UR 반대 시위. 199511일부터 농업협정문이 정식으로 발효되었다.

 

1990년대 초반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약 45% 수준이었으나, 최근에는 약 23%로 반 토막이 나버렸다. 그리고 750만명에 달하던 농가 인구는 최근 약 280만명으로 62.7%나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농업소득은 겨우 1.5배 늘어난 데 비해 농가 부채는 6배 증가하면서 농민의 빈곤화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2012년 기준으로 농민 23.7%가 가계소득이 최저생계비보다 낮은 절대 빈곤층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농업과 농민의 몰락은 농촌 공동화 및 노령화를 초래해 지역사회를 붕괴시켜왔다. 아기 울음소리가 끊어지고 노인들만 겨우 명맥을 이어가면서 무기력하게 해체되고 있는 농촌의 일상적인 모습을 오늘 우리는 목격한다.

 

한국 식량자급률은 겨우 23%

농업과 농민 그리고 농촌의 몰락은 도시민을 비롯한 전체 국민의 밥상도 위험하게 만들었다. 식량자급률이 겨우 23% 수준인 한국은 밥상 먹을거리의 약 77%를 글로벌 푸드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미 대다수 국민이 체감하는 바와 같이 먹을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근원적 요소들이 계속 재생산되고 있다. 유전자조작(변형) 식품(GMO), 화학농업, 공장식 축산, 수확 후 처리, 각종 첨가물 등 갖가지 화학으로 무장한 글로벌 푸드가 이미 우리 밥상을 지배하고 있다. 글로벌 푸드가 밥상을 지배하는 것과 비례해서 먹는 것 때문에 발생하는 질병, 즉 식원성(食原性) 질병도 빠르게 증가하면서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한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아토피를 비롯해 비만·당뇨·고혈압 등과 같은 소아 성인병도 그 일부에 해당한다.

 

 

시사IN 조남진20147월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열린 농민들의 쌀 개방 반대 시위.

 

사회 전체로 보면 식원성 질병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지만 이를 소득계층별로 구분해보면 건강 불평등이라는 새로운 병폐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고소득층일수록 상대적으로 건강하고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고, 반대로 저소득층일수록 위험한 먹을거리에 더 많이 노출되기 때문에 저소득 빈곤층 가구에서 식원성 질병 피해가 상대적으로 더 많이 집중되는 현상이 점차 일상이 되고 있다. 이미 국내외에서 발표된 수많은 보고서에서 나타나듯 먹는 것이 사람을 차별하고, 이 때문에 사람의 건강도 양극화되는 사회적 병리현상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먹을거리의 가격파동 피해도 더욱 심각해졌다. 원래부터 농산물은 약간의 공급 감소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크게 오르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농업의 몰락은 국내 농산물 생산 기반을 약화시켜 생산·공급 감소에 따른 가격 폭등을 더욱 심하게 만들었다. 가격 폭등 혹은 폭락이 과거에 비해 발생 빈도가 더 많아지고, 그 변동 폭도 더 커진 것이다. 가격 불안으로 인한 피해는 상대적으로 저소득 빈곤층에 타격을 준다. 부자들이야 먹을거리 가격 변동에 그다지 큰 영향을 받지 않지만 서민들에게는 장바구니 물가 부담이 훨씬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농업의 몰락과 식량자급률 급락, 먹을거리 위험과 식원성 질병의 증가, 먹을거리 양극화 및 건강 불평등, 생산 기반 축소와 빈번한 가격 파동 등은 별개의 현상이 아니라 거대한 초국적 농식품 자본이 지배하는 글로벌 푸드에 종속된 지금 한국의 푸드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또한 자동차와 휴대전화를 좀 더 수출하기 위해 농업을 수입 개방의 희생양으로 삼았던 우리의 잘못된 선택이 초래한 결과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 밥상을 초국적 자본의 탐욕에 내맡기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미 탐욕에 가득 찬 초국적 농식품 자본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은 신세가 되어버렸다.

 

이 정부는 잘못된 선택을 되돌리기는커녕 오히려 되돌릴 수조차 없는 막다른 길로 가려 한다. 이른바 수입 개방의 완결판이라 불리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FTA는 두 나라 사이에 체결되는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이 대부분이지만 TPP12개 나라가 참여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라는 점이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인 내용과 골격은 거의 동일하다.

 

 

시사IN 조남진 2011년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일본산 수산물의 방사능 수치를 조사하고 있다. 현재 후쿠시마 인근 8개 현의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TPP 가입은 농산물 수입 개방의 완결판

 

그런데 한국이 TPP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12개 회원국에서 개별적으로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 국가로부터 단지 동의를 받는 대가로 가혹한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미 그동안 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뉴질랜드 등에는 FTA를 체결하는 방식으로 입장료를 지불해왔는데, 여기에 더해 미국과 일본 등 나머지 국가에도 입장료를 내야 한다.

 

미국이 요구할 첫 번째 입장료는 아마도 현행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위생 검역조건 철폐 또는 대폭 완화일 것이다. 30개월 미만의 뼛조각 없는 쇠고기만 수입하게끔 되어 있는 현 규정의 철폐를 요구하는 등, 2008년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싸운 결과 광우병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그나마 최소한도로 만들어놓은 최후의 장치마저도 없애라는 요구가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입장료는 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산 쌀에 대해 관세를 대폭 낮추거나 혹은 일본과 같이 의무수입 물량을 추가로 더 늘리라고 요구할 터이다. 만일 이 요구를 수용할 경우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쌀이 수입되고 우리 밥상의 주식인 쌀 자급률은 그만큼 낮아질 것이다. 만약 미국산 쌀에 대해 양보할 경우 TPP 회원국인 오스트레일리아와 베트남도 쌀에 대해 미국과 유사한 대가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중국, 타이 등 현재 한국과 쌀 협상 중인 나라들도 비슷한 대우를 요구하며 우리를 압박할 것이다.

 

세 번째 입장료는 미국산 GMO 식품과 유기농 식품에 관한 규제를 대폭 낮추라는 요구가 될 것이다.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국은 GMO 및 유기식품에 대한 허용 기준이 더 까다로운데, 이것을 미국 수준으로 낮추면 그만큼 우리 밥상은 불확실성에 더 노출될 것이다.

 

한편 일본에도 대가를 치러야 하리라 보이는데, 일본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입장료는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 해제일 것이다. 현재 한국은 방사능 오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후쿠시마 인근 8개 현에서 생산된 수산물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이 조치를 풀어 일본산 수산물을 수입하라는 요구가 나올 수 있다. 최근에도 일본 정부는 한국의 수산물 수입 규제가 부당한 차별이라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이 문제를 가져갔다. 한국 정부의 이 같은 조처가 무역협정 위반인지 검토해달라며 WTO에 패널 설치를 요청하고 나선 것이다.

 

 

시사IN 자료 TPP 가입과 관련해 미국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위생 검역조건 철폐·완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 내용에 반대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 등 수많은 나라에 값비싼 입장료를 내면서까지 이 정부가 추진 중인 TPP 가입은 농산물 수입 개방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이전의 농산물 수입 개방 조치들로 인해 이미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민은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여기에 TPP 가입으로 쌀과 쇠고기 등 한국 농업의 주춧돌마저 빗장이 완전히 열리게 되면, 회생 가능성마저 기대하기 어렵다.

 

농업이 회생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 우리 밥상은 더욱더 글로벌 푸드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먹을거리에 관한 한 한국은 초국적 자본과 글로벌 푸드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먹을거리와 밥상을 글로벌 푸드에 완전히 내주면서까지 TPP에 가입해야 할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내팽개치면서까지 TPP에 가입해야 할까.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배고플 때 마음 다르고 배부를 때 마음 다르다 115 시사저널

나아갈 즉()과 이미 기()의 상반된 의미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는 말이 있다. 화장실 가기 전에는 다급해 무엇이든 다 해줄 것처럼 약속했지만 볼일을 다 보고 나서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입을 싹 씻을 때를 가리켜 하는 말이다. 한자에도 이와 비슷한 뜻을 담은 글자가 있다. 밥 먹기 전 태도와 먹고 나서의 태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바로 나아갈 즉()’이미 기()’자가 그것이다.

 

은 음식 그릇(·) 앞에 앉은 사람을 그려 식사하려는 모습을 나타냈다. 고봉으로 담은 음식, 맛있는 밥을 나타내는 =(도토리, 혹은 고봉으로 쌓은 밥의 모습) + (숟가락) 옆에 무릎을 꿇은 사람(병부)이 입을 크게 벌리고 금방이라도 음식물을 덮치려고 하는 형세다. 여기에서 식사의 자리에 앉는다가 변해 지금’ ‘이제부터’ ‘금방이라는 의미가 되었다.

 

시사저널 이종현

이에 반해 같은 원리이지만 는 밥을 이미 다 먹은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정반대의 뜻이다. 는 글자의 왼쪽 절반은 과 같은 것이지만, 그 오른쪽 글자의 풀이가 다르다. 첫째는 목멜 기()의 모습을 더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앉아 있는 사람이 얼굴을 뒤로 향하고 입을 크게 벌린 모습을 본뜬 상형문자로, ‘이미 배불리 먹었다혹은 다 했다는 뜻을 나타낸다. 밥을 다 먹고 고개를 돌린 모습, 혹은 배가 불러 음식을 보고서도 전혀 식욕이 일지 않아 고개를 돌린 모습으로 풀이한다. 또 하나는 없을 무()자로 보아 배가 불러서 별 볼일이 없어 꿇어앉은 채 고개를 뒤로 돌린다는 의미의 회의자(會意字)로 해석하는 것이다. 또는 트림하는 모습으로 보기도 한다. 배고프기 전의 절실함과는 달리 말 그대로 배가 불러절실함은커녕 만족도가 떨어져 이제 별 볼일 없다는 뜻의 글자다.

 

이렇게 무릎을 꿇고 밥에 달려드는 자와 목이 멜 정도로 배가 부르자 고개를 홱 돌리는 모습의 자를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우선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떠오른다. 먹는 것은 물론 재화나 서비스를 처음 이용했을 때 최고로 만족도가 높고, 이후 이용하면 이용할수록 만족도가 줄어드는 것을 말한다. 독일의 경제학자 헤르만 고센이 발견해 고센의 제1법칙이라고도 불린다. 처음엔 무릎을 끌어가며 달려들어 먹고자 하지만, 배불러 이 쑤실 때가 되면 이전에 먹던 그 빵은 그 빵이 아닌 것이다. 마치 조선 14대 선조 임금이 피난길에 맛있게 먹었던 생선을 은어라 명명했다가 그 이후 다시 먹어보니 그 맛이 예전과 같지 않다 하여 도루묵이라 했던 것처럼 말이다.

 

아침 시장이 저녁 시장보다 붐비는 건 당연

더 나아가 염량(炎凉) 세태를 생각하게도 한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지만, 정승이 죽으면 참새 잡는 그물을 칠 정도로 썰렁하다는 세태처럼 말이다. 하지만 인심의 표변(豹變)을 탓할 것만은 아니다. 2000년 전,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식객 풍훤은 자신이 모시던 재상 맹상군에게 바로 이 같은 세상 원리를 아침 시장, 저녁 시장에 빗대 설파한다.

 

무릇 일에는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결과, 즉 이치가 있습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따르는 사람이 많고, 가난하고 천하면 적은 것 또한 세상사의 이치입니다. 물건이 많은 아침 시장이, 이미 팔리고 없는 저녁 시장보다 사람이 더 붐비는 이치는 당연한 것입니다. 주군이 권세를 잃자 떠나간 것이고 다시 되찾자 모여든 것뿐이니 이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가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의한 자연의 이치든, 아침 시장과 저녁 시장의 원리든 뭔가 생의 씁쓸함을 느끼게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또 하나의 불명예 기록 대장암 세계 1 1126 시사저널

유독 대장암에 취약한 한국인 특유 유전자에 대한 연구 진행 중 원인 밝혀지면 예방에 획기적 성과 거둘 것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대장암 발생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의 최신 자료를 보면, 전 세계 184개국 가운데 한국인의 대장암 발병 인구가 10만 당 45명으로 세계 1(2012년 기준)를 기록했다. 대장암 발생률 2위 국가는 슬로바키아(인구 10만명당 42.7)이고, 헝가리(42.3), 덴마크(40.5), 네덜란드(40.2), 노르웨이(38.9), 벨기에(36.7) 등이 뒤를 이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대장암 발병률은 슬로바키아, 헝가리에 이어 세계 3위였다.

 

2008년 대장암 전문가인 박재갑 서울대병원 외과 교수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대장암이 국내에서 3위이지만, 5~10년 이내에 가장 흔한 암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이는 현실이 됐다. 국제암연구소는 최근 자료를 통해 2012년 기준 모든 암 가운데 한국에서 발병 인구가 가장 많은 암으로 대장암을 꼽았다. 연간 대장암 환자는 33000여 명으로 갑상선암(32900여 명), 위암(31000여 명)을 처음으로 앞지른 셈이다.

 

시사저널 박은숙

 

국립암센터는 올해 남성의 대장암 인구가 10만명당 92.4명으로 2012(58.7)보다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여성도 대장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모든 연령에서 여성을 괴롭히는 암은 갑상선암과 유방암이지만, 65세 이상에서는 대장암 발생률이 가장 높다. 김광호 이대목동병원 위암·대장암 협진센터장은 여성에게 발병하는 암 중에서는 3, 65세 이상 노령에서는 가장 많이 발생하는 암으로 집계되고 있다면서 특히 여성은 남성보다 대장암의 조기 발견이 늦고 상대 생존율이 낮아 폐경 이후의 여성은 대장암의 예방과 조기 검진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 1위 대장암 발생국이라는 불명예를 얻게 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크게 4가지 요인을 꼽는다. , 붉은색 고기, 유전자 변형, 건강검진이다. 국내 술 소비량은 과거보다 줄었지만 한국은 여전히 술을 많이 마시는 나라에 속한다. WHO2014년 세계 음주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 1인당 연간 알코올 소비량은 12.3리터로 세계 15위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을 제외하면 이 소비량은 27.5리터로 증가한다. 알코올이 대장암 발병과 관련이 깊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정승용 서울대병원 대장암센터장은 대장암 환자가 많은 나라 순위를 보면 우리나라와 헝가리·슬로바키아 등이 최상위권에 속하는데, 모두 알코올 섭취량이 많은 나라라는 공통점이 있다한국인의 식습관과 생활 방식을 봤을 때 고기보다 알코올 섭취를 줄이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대장암, 국가대표 암으로 등극

심지어 암에 걸렸다가 회복한 후에도 술을 끊지 못해 대장암 재발 등의 위험성도 커지는 실정이다. 연세암병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장암 경험자의 28.2%(19.7%는 가벼운 음주, 8.5% 폭음)가 술을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성훈 연세암병원장은 한 번 암이 생긴 사람은 유전적 또는 환경적 요인으로 암이 재발하거나 2차 암이 생길 수 있는 만큼 반드시 금연·금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술 섭취량은 과거보다 줄어드는데도 대장암 발생이 최근 급증한 배경에는 과거보다 늘어난 붉은색 고기 소비가 있다. 1960년 이후 가파른 경제 성장과 함께 가정과 직장에서의 채식 위주의 식단은 육류 중심의 서구식으로 바뀌었다. 얼마 전 국제암연구소가 붉은색 고기(·돼지·양고기 등)와 가공육(소시지··베이컨·육포 등)을 발암물질 1군으로 규정했다. 이 연구소는 붉은색 고기를 매일 100g(작은 안심 스테이크 분량) 섭취할 때 대장암 발생 비율이 17%씩 높아진다고 했다. ·소시지·베이컨 등 가공육을 매일 50g(핫도그용 소시지 분량) 먹을 때 대장암 발생 비율이 18%씩 상승한다는 것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과 성신여대 식품영양학과의 공동 연구에서도 붉은색 고기의 하루 섭취량이 50g 늘어나면 대장암 발생 위험도 15%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붉은색 고기 섭취가 대장암의 발생률을 상승시킨다는 점을 재차 확인했다.

 

흔히 삼겹살에 소주를 먹는 한국인의 식습관은 대장암의 최대 적이다. 붉은색 고기와 알코올을 동시에 섭취하는 데다 고기를 불에 구울 때 발암물질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삼겹살 자체가 나쁘다기보다는 고기를 구워 먹는 식습관이 좋지 않으므로 요리사들이 지금과 다른 조리법을 개발하면 대장암 발생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보건 당국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하루 붉은색 고기 섭취량은 201062.2g에서 201364.6g으로 늘어났고, 가공육 섭취량 역시 같은 기간 5.9g에서 7.2g으로 증가했다. 해마다 육류 소비가 증가하는 추세지만, 그래도 서양보다는 적은 양이다. 예를 들어 미국인의 고기 섭취량은 우리보다 10배가량 더 많다. 그런데도 미국·영국 등은 대장암 발생률 상위 10개국 안에도 들지 않는다. 인구 10만명당 대장암 발생자는 한국보다 적어서 영국은 30명을 약간 넘고, 미국은 25명 전후이며 일본은 32명 선이다.

 

섭취하는 육류의 절대량이 서양에 비해 적은데도 한국인의 대장암 발생률이 높은 이유를 유전자에서 찾으려는 연구가 현재 활발히 진행 중이다. 대장암 발병은 인종 간에 차이가 있는데, 유독 한국인이 대장암에 취약한 증거를 찾는 것이다. 유전자 변형이 특별히 한국인에게 잘 발생하거나 대장암에 취약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암 억제 유전자(P53)에 대한 연구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유전자는 우리 몸에서 암 생성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데, 대장암 환자에게서 이 유전자에 이상이 생긴 것이 확인됐다. 정승용 교수는 외국에서 발표한 대장암 관련 연구는 주로 서양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국내 여러 연구기관에서 한국인의 대장암에 대한 연구가 현재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대장암에 취약한 한국인 유전자 찾는다

이런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은 암 조기 진단이나 예측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명승권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암관리정책학과 교수는 특정 유전자 변이로 대장암이 발생한다는 결과가 나오면 암 진단에 순기능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암 조기 발견은 물론 암에 걸릴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를 판단해 미리 생활습관이나 식습관 처방을 함으로써 암을 예방하게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대장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건강검진도 대장암 발병률을 높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많이 검사하는 만큼 대장암 발견도 늘어난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대장 내시경으로 용종을 제거한 건수만 지난해 170만 건 이상이고, 올해 200만 건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검사만 받은 건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명승권 교수는 적지 않은 음주량, 짧은 기간 내 붉은색 고기 섭취량 증가, 잦은 대장암 검진 등이 대장암 1위 국가가 된 배경이라며 대장암 발생이 다른 암보다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암연구소 등은 대장암 발병을 줄이는 방법으로 신체활동을 제시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의 신체활동은 과거보다 오히려 줄어든 상태다. 국민건강영양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2001년 이후 걷기 실천율은 점차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신체활동이 많은 농어업 인구 비중은 1960년대 후반에 50% 이상에서 1990년대 14%까지 감소했지만, 신체활동이 많지 않은 서비스업 종사자의 수는 전체 종사자의 50%를 넘었다. 정성애 이대목동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등록된 자동차 수와 운전면허 발급의 증가, TV 시청, 개인용 컴퓨터 보급 등으로 신체활동이 감소한 것으로 볼 수 있다신체활동 감소도 대장암 발병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잘 먹고 몸을 움직이지 않아 생긴 비만이 또 다른 대장암 요인으로 등장했다. 여러 국내외 연구에서 뚱뚱하면 대장암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성애 교수는 “78만명의 국민건강보험 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연구에 의하면 체질량지수의 상승이 대장암 발생 위험을 증가시켰다체질량지수가 30 이상(비만)인 사람은 18.5~22.9(정상 범위)인 사람에 비해 대장암 발생 위험이 거의 2배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아스피린으로 대장암 예방·치료 시도 중

아직 대장암 치료제는 없다. 그러나 대장암 세포를 약으로 억제하는 시도가 국내외적으로 활발하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의대 존 배런 박사는 8월 저용량(75~150mg) 아스피린과 같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를 5년 이상 장기간 복용하면 대장암 위험을 27~45%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네덜란드 연구팀도 9월 아스피린이 암 환자의 생존율을 2배 가까이 높인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대장암·위암·췌장암·식도암 환자 중 매일 아스피린을 복용한 환자는 5년 생존율이 75%, 아스피린을 복용하지 않은 환자는 42%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한국원자력의학원 이민영·박명진 박사팀도 아스피린을 대장암세포에 투여했더니 세포가 분열을 멈추고 노화 과정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백승혁 강남세브란스병원 대장암센터장은 아스피린이 대장암 예방이나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확정되려면 연구가 더 축적돼야 한다현재로서는 정기적인 검진으로 용종과 초기 대장암을 빨리 발견하는 게 최선의 대장암 예방이라고 강조했다.

 

장수촌 명성도 퇴색시킨 식습관

일본 오키나와는 장수촌이라는 별칭을 붙이기 어려워졌다.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긴 지 오래고 100세 노인이 많기로 유명했던 오키나와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부동의 1위 장수촌이었다. 2013년 평균수명이 남성은 79세로 전국 30위로 추락했고 여성도 87세로 3위에 턱걸이했다. NHK지금대로라면 10년 안에 일본 전체에 장수 붕괴 시나리오가 펼쳐질 것이라고 보도할 만큼 충격적인 결과다.

 

그 원인은 식습관 변화에 있었다. 콩류를 많이 먹는 식습관이 오키나와 사람들의 장수 비결로 꼽혔으나 언제부터인가 통조림 햄을 먹는 식습관이 퍼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된장국과 비슷한 미소시루, 오키나와식 볶음요리인 찬푸르는 물론 김밥에도 햄과 치즈를 듬뿍 넣었다. 1970년대 주둔했던 당시 미군부대에서 나온 가공식품이 오키나와 전통식에 침투했다.

 

현재 70대 이상은 건강하지만 20~60대의 비만율과 사망률은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성인 2명 중 1명은 비만이다. 비만율이 남자 47%, 여성 26%로 전국 1위로 일본 전국 평균(3명 중 1)보다 심각하다.

 

게다가 예전보다 걷지 않고 차를 타는 습관에 익숙해지면서 심혈관 질환이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30년간 오키나와의 사망 원인에서 순환기계 질환 발병률이 일본 전체 평균보다 현저히 높아졌다는 현지 언론 보도가 나온 바 있다.

 

동맥경화·고혈압 등 혈관 질환이 거의 없었던 에스키모(이누이트)도 비슷한 경우다. 이들은 바다표범, 고래 등은 날것으로 먹었다. 채식을 거의 하지 못하고 동물성 지방을 주로 섭취하므로 이누이트는 대체로 비만하고 편식하는 탓에 수명은 40~50대로 낮았지만 혈관 질환 발생률은 미미했다. 1920년대 여러 학자가 연구한 결과, 그들이 해양성 생물에 풍부한 오메가-3 불포화지방산을 섭취한 때문으로 밝혀졌다.

 

이후 이들 중 일부는 추운 곳을 떠나 미국 허드슨 강 등으로 이주하면서 조리된 음식과 백색 밀가루로 만든 패스트푸드를 접했다. 심장 질환 발생률이 높아졌고 피부 질환에도 취약한 상태가 됐다. 아일랜드 보몬트종합병원 피부과 질리언 머피 교수는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알래스카 에스키모가 야생의 물개를 사냥해 날고기를 섭취하던 시절에는 건선에 걸리지 않다가 캐나다 밴쿠버로 이주해 햄버거를 먹으며 살게 되자 건선이 발병했다환경과 식습관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과학동아 11월호] <특집> 인류, 지구를 먹어치우다 10.30

[인간은 과식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잡식동물 인간, 수만 가지 동식물을 탐하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한 사람에게 하루 동안 공급된 열량은 전세계 평균 19612196kcal에서 20112870kcal50년 사이에 무려 30%가 늘었다. 2011년 벨기에인들은 하루 섭취 권장량(2000~2500kcal)을 훨씬 웃도는 3793kcal를 공급받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오스트리아(3784kcal), 터키(3680kcal), 미국(3639kcal)이 그 뒤를 이었다. 과연 인간의 몸은 이처럼 엄청난 먹이 활동을 감당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 인간의 몸은 메가이터(Mega Eater)’가 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매우 다양한 종류의 동식물을 자주,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많이 먹고 있다. 이 같은 불일치로부터 모든 재앙이 시작됐다. 많이 먹을 수 있는 몸을 타고나지도 못했으면서 인간이 메가이터가 될 수 있었던 이유들을

 

[인간은 과식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잡식동물 인간, 수만 가지 동식물을 탐하다 - GIB 제공

 

인간이 매우 다양한 동식물과, 이들을 조합해 만든 더 다양한 요리를 먹어 치우는 현상은 인간이 잡식동물이라는 데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동물은 크게 육식, 초식, 그리고 잡식동물로 나뉜다. 고기를 주로 먹는 고양이나 개, 늑대, 밍크, 호랑이, 사자, 독수리 등은 육식동물이다.

 고기를 거의 먹지 않는 말, 토끼, , 양 등은 초식동물인데, 그 중 상당수가 위 앞에 반추위가 있는 반추동물이다. 반추위는 불용성탄수화물, 즉 섬유소를 미생물로 발효해 소화하는 기관이다. 소나 양 같은 반추동물이 전분(가용성탄수화물)이 많은 쌀이나 밀 같은 곡물보다는 섬유소가 많은 풀이나 건초 등을 즐겨 먹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육식과 초식 외 나머지를 잡식동물로 분류한다. 동물성 단백질과 식물을 모두 먹는 돼지, , , , 라쿤, 스컹크 등이 속한다.

인간은 이 중 잡식동물에 해당한다. 첫 번째 증거는 치아다. 입 안으로 들어간 음식물은 가장 먼저 치아를 만나 잘게 부숴지는데, 이 때 앞니와 송곳니, 앞어금니, 어금니의 역할이 각각 다르다. 초식동물은 앞어금니와 어금니를 이용해 음식을 반복해서 씹어 먹고, 육식동물은 주로 앞니와 송곳니를 이용해 고기를 찢어 먹는다.

 

 

초식동물(맨 위)은 어금니와 앞어금니가 발달했고, 육식동물(가운데)은 앞니와 송곳니가 발달했다. 반면 인간의 치아는 모든 이가 골고루 발달했다. 잡식동물이라는 증거다. 그 덕분에 지금처럼 매우 다양한 종류의 동식물을 먹어 치우게 됐다. - GIB 제공

 

따라서 초식동물은 크고 넓적하며 튼튼한 앞어금니와 어금니를 갖고 있고, 육식동물은 앞니와 송곳니가 날카롭게 발달했다(오른쪽 사진 참조). 잡식동물은 그 중간쯤이라고 보면 된다. 인간은 모든 치아가 대체로 잘 발달해 있고, 음식을 먹을 때에도 모든 치아를 골고루 사용한다. 잡식동물이라는 증거다.

인간의 침 안에서도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음식물의 전분과 지방 일부는 침 안에 포함된 효소에 의해 분해 된다. 전분은 육식동물이나 반추동물은 잘 먹지 않고 잡식동물이 주로 섭취하는 영양소다. 토끼, 말 같은 비반추 초식동물의 침에도 이 효소가 있지만, 소화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 육식동물과 반추동물의 침에는 그마저도 아예 없다. 인간은 침 외에 다양한 소화 기관에서도 전분 분해 효소가 많이 분비된다.

 

결국 인간은 잡식동물로 태어난 덕분에 소, 돼지, , 닭 같은 고기와 채소의 섬유소뿐만 아니라 쌀, , 옥수수, 감자 등 전분 위주의 곡물까지 섭렵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잡식동물이 가진 소화생리학적 특성 덕분에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종류의 동식물을 먹어 치우게 된 것이다.

 

편집자 주

이 글은 동물과 인간의 소화생리를 짧게 비교 요약한 것으로, 실제로는 훨씬 복잡한 기작이 숨어 있음에 유의하자. 또 필자의 연구 경험을 통한 개인적 의견이 포함돼 있다.

 

삼시 세끼 꼬박 챙겨먹고 간식, 후식, 야식까지?

 

야식의 대표 메뉴 치킨 - pixabay 제공

 

다양한 음식을 즐기는 데서 더 나아가, 인간은 자주 먹는다. 나라와 문화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하루 삼시 세끼를 챙겨 먹는다. 후식과 야식도 먹는다.

그런데 사람과 소화기관이 비슷한 돼지도 사람 못잖게 자주 먹는다. 잡식동물의 특성이라는 얘기다. 반면 소 같은 반추동물은 늘 사료가 주어지는 사육 환경에서도 한번에 많이 먹은 뒤 하루 종일 입을 우물거리며 되새김질을 한다. 야생 동물은 음식을 늘 접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음식을 먹는 빈도가 적다.

잡식동물이 자주 배고픔을 느끼는 건 전분의 영향이다. 대부분의 소화와 영양소 흡수는 소장에서 일어나는데, 이때 곡물같이 전분이 많은 음식을 먹는 잡식동물의 소장에서는 전분이 분해돼 만들어진 포도당이 다량으로 흡수된다. 이를 신호로 소장에 붙은 췌장(이자)에서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인슐린은 우선 체세포들이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쓰게 하고, 남은 포도당을 지방산으로 바꿔 체지방 합성을 촉진한다. 또한, 음식을 통해 함께 흡수된 아미노산을 이용해 체단백질 합성을 촉진하고 동시에 단백질 분해를 감소시킨다. , 전분에서 온 포도당이 인슐린을 움직여 몸 조직을 만들게 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포도당 수치가 낮아지면, 인슐린이 줄어들고 글루카곤이라는 호르몬이 나온다. 이 때에는 체지방과 체단백질이 분해돼 케톤체와 포도당이 만들어져 에너지원으로 쓰인다.

 

이처럼 몸을 조직했다가 다시 에너지원을 만드는 과정에서, 뇌와 장에서는 배부름이나 배고픔을 느끼는 호르몬들이 추가로 분비된다. ‘배꼽시계의 정체다. 전분을 많이 먹는 잡식동물은, 음식 섭취에 따라 인슐린과 글루카곤의 분비량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이에 따라 배부름 혹은 배고픔 호르몬 분비가 반복되면서 음식을 자주 먹게 되는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잡식동물은 전분을 많이 먹는다. 이로 인한 인슐린과 글루카곤 호르몬 작용이 확연하게 달라지면서 배고픔을 반복해서 느끼고 자주 먹는다. 특히 인간은 여기에 탐식이 더해져 메가이터가 됐다. - GIB 제공

 

육식동물이나 반추동물은 다르다. 전분을 거의 먹지 않고 이로 인한 인슐린의 역할이 미미하기 때문에 호르몬 작용으로 배고픔을 느끼는 정도가 낮다. 음식을 섭취하는 빈도가 아무래도 적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동물들은 먹은 열량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많아지면 섭취를 더 이상 하지 않게 하는 기작이 작동한다.

이를 이용해 돼지나 닭 같은 가축을 기를 때 사료의 열량 함량을 통해 섭취량을 조절하기도 한다. 섭취와 관련된 호르몬의 상호작용 때문으로 추정하지만, 아직 정확한 메커니즘은 모른다. 현재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는 중이다.

 

결국 인간이 다른 잡식동물과 비교해서 더 자주 먹는 몸을 타고난 건 아니다. 그런데 인간과 다른 잡식동유도물 사이에 소화생리학적 유사함을 뛰어넘는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바로 인간의 의지. 인간은 본능적 반응을 조절하는 의지력이 탁월하다.

 

맛있는 음식이 눈 앞에 있으면 열량 섭취가 많아져도 더 먹고자 한다. 식사를 마친 뒤에 달콤한 케이크 같은 후식을 더 먹을 수 있다. 이는 생리학적인 이유라기보다 다분히 심리적인 이유(탐식)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모든 재앙이 시작됐다.

 

소도 단백질을 먹는다?

우리 몸의 마지막 소화기관인 소장에서 미처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 특히 섬유소는 대장으로 내려간다. 그곳에 응집해 살고 있는 많은 미생물이 섬유소를 발효시켜 휘발성지방산을 만든다. 이 가운데 일부는 다시 흡수된다. 포도당을 만드는 원료가 되거나 주요 에너지원으로 쓰인다. 반면 소 같은 반추동물은 이 과정이 위 앞에 붙은 반추위에서 일어난다. 이 기관에 서식하는 미생물들이 섬유소를 먼저 발효시켜 휘발성지방산을 만든다. 그 뒤 반추위를 통해 몸 안으로 흡수돼 주요 에너지원으로 쓰인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섬유소를 먹은 미생물이 자라고 번식한다.

 

이들 미생물은 결국 위로 내려가 소화 흡수된다. , 반추동물에게 미생물이 단백질 공급원이다. 이 때문에 반추동물은 초식동물로 분류되지만, 정작 위와 소장으로 공급되는 영양소 대부분은 미생물에서 기인한 단백질이다. 위와 소장만 보면, 소와 호랑이가 비슷하다. 인간이나 돼지 같은 잡식동물의 소화생리학은 오히려 독특하다고 볼 수 있다.

 

동아사이언스 제공

 

인간이 과식하면 안되는 이유

이제 인간은 탐식을 주체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탐식 때문에 자주 먹더라도 섭취량이 적으면 괜찮다. 문제는 과식이다. 전 인류는 과식하는 식습관때문에 비만이나 성인병 같은 여러 가지 문제를 겪고 있다. 음식은 다다익선이 아니다. 몸에 꼭 필요한 필수 영양소도 과다하면 문제가 된다.예컨대, 고기를 많이 먹으면 몸에 필요한 아미노산을 초과하는 분량은 모두 분해되는데, 이 과정에서 생성된 암모니아는 요소로 바뀌어 오줌으로 배출된다. 몸에 해로울 수 있는 암모니아가 배출되므로 당장 대사적인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과정이 너무 과도하게 오래지속되면 간과 콩팥에 무리를 줄 수 있다. 곡류를 너무 많이 먹어도 문제가 생긴다. 몸에 흡수되는 포도당의 양이 급격히 많아져 인슐린이 과다하게 분비된다. 인슐린은 체지방 합성을 촉진하므로 살이 급하게 찔 수 있다. 만일 인슐린이 잘 작동하지 않는 당뇨병 환자라면 혈액 속 과다한 포도당이 혈관에 손상을 줄 수 있다.

 

섬유소, 즉 채소류 역시 너무 과식하게 되면 가용성 섬유소를 몹시 좋아하는 장내 미생물이 과도하게 발효를 일으켜 장 안에 메탄 가스가 급격히 많아진다. 배가 꽉 찬 듯한 불쾌한 느낌과 메스꺼움이 동반된다.

 

지금도 배고픈가? 그러나 당신의 몸은, 소화생리학적으로 지금의 엄청난 포식량을 감당할 수 없다. 메가이터 인간은, 결코 메가이터가 되지 말았어야 했다.

 

 

잡식동물인 인간은 다양한 음식을 자주 즐기지만, 메가이터가 될 몸을 타고나지는 않았다. 예컨대, 섬유소를 너무 많이 먹으면 장내 미생물이 과도하게 발효를 일으켜 장 안에 메탄 가스가 급격히 차 메스꺼움을 느낀다. - Rocky Mountain Laboratories, NIAID, NIH(W) 제공

 

전분을 먹지 않는 극단적인 육식주의가 문제다

자유의지 덕분에 인간은 동물과는 다른 독특한 식습관을 발달시켰다. 개인적 취향에 따른 채식주의와 육식주의다. 최근 건강을 위해, 또는 정치적, 도덕적 이유에서 채식을 하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이에 대해 논란이 많다. 실제로 고기 단백질을 거의 먹지 않으면 근육이 줄어들고 몸의 면역력이 저하될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꼭 고기가 아니더라도 콩 같은 식물을 통해 적절한 양의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다면 문제가 없다(물론 인간을 비롯한 잡식동물에게는 탄수화물, 단백질, 그리고 지방이 골고루 든 식단이 가장 이상적이다. 오랫동안의 경험과 과학적인 관찰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상식이다).

 

 

GIB 제공

 

특별히 채식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람들은 고기를 많이 먹는다. 고기 소비량이 세계 상위 수준인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는 한 사람이 1년 동안 각각 26.3kg, 42.4kg, 36.7kg의 소고기를 먹는다(2015 OECD-FAO 농업 전망, 2012~2014년 평균). 돼지고기와 양, 염소, , 오리 등 다양한 고기의 소비량을 모두 합하면 100kg을 거뜬히 넘긴다.

흔히 오해하는 것과 달리, 일시적으로 고기를 좀 많이 먹는다고 해서 몸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인간은 단백질을 소화하는 효소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몸이 필요로 하는 단백질을 초과하는 분량은 에너지원으로 저장되거나 배출된다.

고기는 20개의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는데, 이 중 18개는 간에서 포도당이나 포도당 유사물질로 바뀌어 체내 에너지원으로 쓰일 수 있다. 고기에 붙어 있는 지방 역시 지방산으로 소화된 뒤 케톤체로 바뀌어 에너지원으로 쓰인다.

 

문제는, 전분을 먹지 않는 극단적인 육식주의다. 밥이나 국수 없이 고기만 먹으면 몸에 공급되는 포도당이 없기 때문에 췌장의 인슐린 분비가 낮아진다. 분명히 음식을 먹지만 대사적으로는 굶고 있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GIB 제공

고기를 통해 아미노산과 지방산이 많이 공급되지만, 마치 굶을 때처럼 체지방은 계속 분해된다. 이를 이용한 황제다이어트10여 년 전 유행했다.

요즘 사람들이 닭가슴살만 먹어 체지방은 줄이고 식스팩을 유지하는 것도 바로 이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일정 기간 동안의 황제다이어트는 분명 체지방을 감소하는 데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런 식습관이 오래 지속되면 대사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체지방이 계속 분해되면 간과 혈액에 지방산이 많아지고, 이로 인해 케톤체가 급격히 많이 생산된다. 케톤체는 원래 굶어서 포도당이 부족할 때 만들어져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대사물질이다.

 

황제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은 실제로는 많은 양의 고기를 먹어 아미노산이나 지방산이 공급된 상태기 때문에, 급격히 늘어난 케톤체는 에너지원으로 다 쓰이지 못하고 체내에 축적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혈액의 수소이온 농도(pH)가 낮아지는 대사산증이 올 수 있다. 두통이나 설사, 경련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또한, 케톤체의 하나인 아세토아세테이트는 신경세포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또 다른 케톤체인 아세톤은 몸에서 특유의 냄새가 나게 한다. 물론 일생 동안 황제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은, 적어도 필자 주변에서는 보기 어렵다. 극단적인 육식주의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늘어난 고기 섭취로 인해 문제가 생길 일은 적다는 의미다.

 

신날새 - 찔레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