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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더불어 살기

조선원앙(원앙사촌)

by 이성근 2021. 12. 17.

 

한상훈박사의 한반도 야생동물 이야기 8. 조선원앙(원앙사촌)>
전 세계에 단 3점의 표본만 남아있는 진귀한 새,‘원앙사촌’
 

전 세계에 제작, 배포한‘원앙사촌’생존 제보 공개 수배 그림엽서

다른 이름 : 조선원앙(옛 이름), 댕기진경이(북한명)
분류 : 오리목 혹부리오리과
학명 : Tadorna cristata (Kuroda, 1917)
영명 : Crested shelduck 혹은 Korean crested shelduck
 
일본 야마시나조류연구소에 소장 보관중인 한국산 원앙사촌 암수 표본(출처 : 일본야마시나연구소)
1877년 4월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서 세계 최초로 채집된 원앙사촌 암컷 표본. 현재 덴마크 코펜하겐박물관에 소장 보관(출처 : 일본 야마시나조류연구소)
조선시대 후기에 조선통신사를 통해 일본에 산 채로 보내 일본 귀족들이 사육하면서 그린‘조선원앙’사생도(일본 ANIMA 잡지, 1990년 11월호)
1916년 12월 조선과 만주의 야생동물을 조사하고, 표본을 채집하기 위해 나가사키(長關)에서 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 부산에 도착한 일본인 동물학자 쿠로다 나가미치(黑田長禮)박사(당시는 일본 동경제국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학생 신분)는 왜관(현 부산 초량동 일본영사관일대)의 동물박제상점에 들렀다가 세상에서 처음 보는 한 마리의 기묘한 오리박제에 매료되어 거금을 주고 구입한 뒤, 여행 중이라 소포로 일본 도쿄의 자택으로 보냈다.
 
1917년 봄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즉시 부산에서 손에 넣은 오리 표본을 조사하여‘세계적 신종, 원앙사촌’으로 논문을 작성하여 발표하였다. 쿠로다 나가미치는 대학원생 시절부터 이미 전 세계의 오리류에 대한 책을 집필했을 정도로 조류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탁월했으며, 후에 아시아를 대표하는 조류학계의 최고 원로가 된 조류학자이다.
 
그리고 신종 확인차 영국의 오리류 권위자에게 문의하자 이미 1877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서 한 마리가 채집되어 황오리와 청머리오리의 자연교배 잡종으로 1890년 1월 런던동물학회에 보고된 적이 있다는 의외의 소식을 전해 받았다.
 
원앙사촌은 최초로 발견되었을 당시에는 그다지 조류학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때까지 알려져 있던 야생의 오리들과는 너무나 다른 특이한 생김새와 당시까지 전혀 외부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불모의 땅인 극동아시아에서만 분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럽의 조류학자들에게 원앙사촌은 외계에서 갑자기 날아 들어온 이방인처럼 기묘하기만 하였다. 그 결과 야생 오리류에서 간혹 발생하는 자연적인 잡종 교배에 의한 돌연변이 개체로 취급되었고 40년 후에 두번째 표본이 조선에서 발견되어 학술지에 소개되기까지 까맣게 잊혀진 새였다.
 
하지만 쿠로다박사는 의문을 가지고 더 조사를 진행하던 중 일본 귀족 집안에서 소장하고 있는 옛 동물 사생화에‘조선원앙’이란 이름으로 조선에서 선물로 전해 온 진귀한 새의 살아있을 때 그린 그림을 발견하여 같은 새임을 확인하였다. 일본의 토쿠가와 장군시대인 1780∼1800년경에 만들어진 조류 화보집에 원앙사촌의 수컷을 정확하게 묘사한 그림이 있는데 설명에는 중국으로부터의 수입품이라 적혀 있다. 1794년에 출판된『관문금보』에는 조선에서 보내온 매우 진귀한 조류라는 설명과 함께 ‘조선원앙’이라는 이름으로 암수가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다. 또 다른 고문헌에서는 조선에서 매우 드물게 일본으로 선물되는 진귀한 새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조선에서 진귀한 야생 오리로 살아왔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천운이 따라 1923년 조선에 있는 일본인으로부터 1913년 내지 1914년에 나카무라라는 일본인에 의해 우리나라 금강 하류 강경과 군산의 중간에 위치하는 모래섬에서 채집한 두 마리 오리 박제가 원앙사촌일 거라는 연락을 받고 당시 집 한 채 이상의 거금을 주고 한 마리를 구입하였다. 이 표본은 이전에 알려진 적이 없고 지금도 세계 유일의 성별이 다른‘원앙사촌’수컷 이었다. 이로서 완벽한 암수 1쌍의‘원앙사촌’표본을 손에 넣은 쿠로다박사는 1924년‘세계적 신종, 원앙사촌 암수’논문을 발표하여 세계적으로 그의 업적을 인정받게 되었다.

 

현재 한국산‘원앙사촌’암수 1쌍의 표본은 일본 치바현에 소재하는‘야마시나조류연구소’에 보관되어 있는데, 하마터면 불에 타 사라질 뻔한 적도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1945년 미국의 일본 도쿄 대공습 때 쿠로다박사는 목숨이 위태로운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오직‘원앙사촌’암수 표본 2점만 품에 안고 대피소로 피난한 뒤 공습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보니 폭격을 받고 집이 완전히 불타 사라진 것을 후에 사람들에게 무용담처럼 전했다고 한다. 하마터면 세계에서 가장 진귀한 단 3점의 표본 가운데 한국산‘원앙사촌’암수 2점(그 중 수컷 표본은 세상에서 유일무이함)이 영영 사라질 뻔한 것을 구해낸 쿠로다박사의 열정은 마땅히 칭송받아야 할 것이다.
 
이후 1964년 5월 16일 러시아의 젊은 조류학자가 연해주 블라디보스톡 림스키 코르사코프 열도에서 세 마리를 관찰하였다고 주장하는 보고가 있고, 북한 함경북도 명천군 칠보산에서 동해로 흐르는 보천강 하구에서 선생과 학생 20명이 1971년 3월 하순 40∼50미터 거리 해상에서 헤엄치고 있는 여섯 마리(수컷 2, 암컷 4)를 관찰했다는 두 건의 불확실한 생존 정보가 유일한 목격담이다.

 

 

1970년대 들어 살아있는‘원앙사촌’을 찾아 암수 그림을 새겨넣은 그림엽서를 각국의 언어로 제작 배포하고 확실한 제보에는 미화 500달러의 현상금을 주겠다고 세계 각국에 알렸지만, 아직 생존을 확신할 수 있는 정보는 받지 못했다.
 
야생 오리류로는 60cm로 중대형 크기로 수컷 머리의 댕기 깃털, 암컷의 수수하면서도 화려한 몸 깃털 색으로 다른 오리류와 확연히 구분되고, 지금까지 채집과 발견장소가 바다와 접한 강 하류로 어쩌면 동북아시아의 외딴 인적 접근이 어려운 강과 바다 호젓한 곳에서 지금도 생존해 있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