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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더불어 살기

‘범 내려온다’ 19세기 말 한양 밤길엔 표범이 다녔다

by 이성근 2021. 11. 19.

거북, 절반이 멸종위기식용 남획·플라스틱 공해 탓

IUCN 전문가 그룹 51% 멸종 위험 평가미얀마 대형 민물 거북 야생에 암컷 5마리뿐

야생에 암컷이 5마리뿐인 버마지붕거북. 대형 민물 거북으로 식용으로 남획돼 멸종 직전이다. 릭 허드슨 제공.

 

 

 

세계의 거북 절반 이상이 멸종위기에 놓였다는 전문가 단체의 평가가 나왔다. 서식지 파괴와 함께 고기와 애완동물로 팔기 위한 남획 그리고 플라스틱 공해와 기후변화까지 더해 거북을 위협한 결과이다.

 

거북은 웃자란 갈비뼈가 몸통을 감싸는 기발한 디자인으로 2억년 전 지구에 출현한 뒤 공룡을 멸종시킨 소행성 충돌 등 수많은 격동을 이기고 살아남아 성공적인 진화의 귀감이라고 불린다(그 많던 거북은 어디로 갔나).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거북 및 민물 거북 전문가 그룹은 최근 세계의 거북’ 9판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인터넷으로 공개된 이 모노그래프(단행본 논문)는 전 세계에 분포하는 357종의 거북을 종마다 사진과 함께 현재와 과거 분포지역 변화, 멸종위험 수준 등의 최신 정보를 담았다.

 

이 책에 수록된 버마지붕거북은 미얀마 고유종으로 서식지가 90% 이상 줄어들었다. 국제자연보전연맹 적색목록에서 가장 멸종위험이 큰 위급종으로 올라 있다.

암컷 등딱지 길이가 63에 이르는 대형 민물 거북인 이 종은 2002년 재발견되기 전에는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야생에는 남아있는 암컷은 5마리에 불과하며 2007년 중국 광저우의 야생동물 시장에서 한 마리가 발견되기도 했다.

 

멕시코 작은 지역에서만 발견되는 바야르타흙탕거북은 다 자라도 등딱지 길이가 10에 불과한 지구에서 가장 작은 거북이다. 시내와 연못에서 사는데 서식지가 대부분 개발돼 야생에서 얼마나 남았는지 불확실하다. 어디서 번식하는지, 짝짓기 행동은 어떤지 아무것도 몰라 잠정적으로 위급등급이 매겨졌다.

다 자라도 등딱지 길이가 10인 세계에서 가장 작은 거북인 바야르타흙탕거북. 멕시코의 한 지역에 소수가 산다. 카롤리나 산체스 아리아스 제공.

 

반대로 장수거북은 거북 가운데 가장 커 등딱지 길이가 2m 26에 이른다. 전 세계에 분포하고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발견되지만 장수거북의 등급도 취약으로 멸종위험에 놓여 있다.

작은 언덕처럼 굴곡진 등딱지에 별 모양의 무늬가 난 버마별거북은 독특한 모양과 희귀함 때문에 애완동물 시장에서 고가로 팔리지만 야생에서는 위급한 상태다. 미얀마의 건조한 활엽수림이 서식지로 암컷은 등딱지가 45길이로 자란다. 현지에서는 오랫동안 식용으로 포획했고 중국에 식재료로 수출하기도 했지만 최근 인공증식 시도가 활발하다.

버마별거북은 독특한 무늬와 모양으로 애완용으로 인기이고 현지에선 식용으로 잡혔다. 현재는 멸종 직전이어서 인공증식이 시도된다. 칼리아르 플라트 제공.

 

우리나라의 민물 거북인 남생이도 서식지 파괴 등으로 급속히 줄고 있으며 국제자연보전연맹의 보전등급은 위기이다(국내 최대 남생이 서식지 발견 2년 만에 망가져).

전문가 그룹은 이 책에서 현생 거북 357종 가운데 5종은 이미 멸종했으며 잠정 평가 결과 전체의 51.3%183종이 위급, 위기, 취약 등 멸종위험 단계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국제자연보전연맹이 2021년 공식적인 평가에서 거북 전체의 47.9%171종을 멸종위험 등급으로 지정한 것보다 늘어났다.

 

거북은 척추동물 가운데 고릴라·침팬지·오랑우탄 등 영장류 다음으로 멸종위험이 높은 집단이다. 특히 육지와 민물 거북은 습지와 구릉 등 주요 서식지가 개발되고 고기나 애완동물로 팔기 위해 남획하면서 급속히 줄었다. 최근엔 각종 오염과 플라스틱 공해에 더해 기후변화로 성비가 교란되는 타격을 입고 있다

자라와 함께 우리나라 자생 민물 거북인 남생이. 서식지 파괴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에 참여한 우베 프리츠 독일 드레스덴 동물학 박물관 교수는 거북의 멸종을 막기 위한 포괄적인 보전대책이 시급하다그렇지 않으면 공룡의 등장과 몰락을 지켜본 놀라운 동물이 지구 위에서 영영 사라질 것이라고 박물관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범 내려온다’ 19세기 말 한양 밤길엔 표범이 다녔다

18701900년 한양 사대문 안 12건 목격 기록

유기견·돼지 등 잡아먹어뭄바이·나이로비는 현재도 공존

 

한국표범(아무르표범)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에 놓인 대형 포식자이다. 그러나 19세기 말까지도 대도시 한양에서 사람과 공존했다. CGWP.co.uk, 런던동물원협회(ZSL) 제공.

 

현재의 자카르타 비슷한 높은 인구밀도였던 19세기 말 서울(한양) 사대문 안에 최상위 포식자인 표범이 출몰했다는 서구인의 기록이 여럿 확인됐다.

조슈아 파월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박사과정생 등 국제연구진은 과학저널 보전과학 최전선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조선 말인 18701900년 사이 조선을 여행하거나 거주했던 서구인의 책, 현장 노트, 편지, 일기 등을 분석한 결과 도성 안에서 표범을 직·간접으로 목격했다는 기록 12건을 찾았다고 밝혔다.

 

1880년대 한양에 머물던 영국의 작가이자 인류학자인 아널드 새비지 랜도어는 1895년 발간한 책 코리아 혹은 조선, 아침 고요의 땅에 한양에서 어느날 밤 일어난 범 소동을 적었다. 주민들은 버려진 궁궐의 배수구에 범이 숨어있다며 영국인 사냥꾼 알프레드 버트에게 잡아달라고 요청했다. 버트는 밤새 궁에서 잠복한 끝에 조선인 하인이 몰아낸 큰 표범을 쏘아 넘어뜨렸다.

19세기 말 한양 지도. 표범 목격지점(붉은색)은 사대문 성곽 안이다. 조슈아 파월 외 (2012) ‘보전과학 최전선제공.

 

경희궁과 덕수궁 사이에 자리 잡은 러시아공사관에는 겨울이면 표범이 수시로 출몰한 것으로 나온다. 독일인 통역사 앙투아네트 손탁은 표범을 직접 목격하고 추적해 경희궁으로 가는 것을 보았고 의료선교사로 조선에 왔다 명성황후의 주치의가 된 언더우드는 견문록한양에 온 몇 달 뒤 집 옆 러시아공사관에 표범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는 기록을 남겼다.

 

연구자들은 12건의 기록 가운데 5건이 저자가 직접 살아있는 표범을 목격하거나 죽은 것을 보고한 것으로 신빙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2건은 왕의 명령을 기록한 승정원일기로 고종 8(18711127) “창덕궁에서 호랑이를 잡았다는 것과 고종 30(18931212) “창덕궁 후원에 호랑이가 나타나 포수 40명을 투입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당시 궁에 출현한 동물은 호랑이가 아니라 표범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당시 조선에서 호랑이와 표범을 구분하지 않고 뭉뚱그려 범으로 불렀던 데다 융통성이 큰 표범만이 대도시에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중구 정동 손탁호텔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1902년의 주거지 모습. 조슈아 파월 외 (2012) ‘보전과학 최전선제공.

 

연구자들은 “20세기 초 한양에는 2530만 명이 16.7에 몰려 살아 현재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만큼 인구밀도가 높았다고 밝혔다. 연구에 참여한 새러 듀란트 런던동물원협회 동물연구소장은 표범은 도시에서 생존할 수 있을 정도로 적응력이 뛰어난 동물이라며 사람들이 공간을 함께 나누려는 일정한 정도의 아량만 있다면 적은 수일지라도 살아남는다고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실제로 표범이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대도시에는 인도 뭄바이를 비롯해 케냐 나이로비,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 등이 있다(뭄바이의 어떤 공존, 표범과 대도시 주민이 함께 사는 법). 듀란트 소장은 도시에 표범이 살아가려면 충분한 먹이와 낮 동안 은신할 울창한 숲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당시 한양에는 어떻게 표범이 살 수 있었을까. 연구자들은 뭄바이처럼 유기견과 길에 풀어놓아 기른 돼지 그리고 경복궁에서 기르던 사슴 등이 먹이가 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로 실록에는 창덕궁 후원과 함춘원 등지에 호랑이와 표범이 출입하는데 여염의 개를 물어가는 일이 많다는 등 표범이 개를 잡아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 당시 정치적 여건에서 쇠락한 채 방치된 궁궐과 여기에 연결된 녹지가 표범의 은신처 노릇을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형순 중부대 교수는 2018한국전통조경학회지에 실린 논문에서 조선 시대 궁궐과 도성 주변의 산림정책이 범과 표범의 출몰을 촉진했을 수 있다벌목을 금지한 봉산 정책과 산과 산이 이어진 지형에 숲이 우거지게 해 이것이 범의 은신처이자 이동통로 구실을 했다고 밝혔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들어있는 경조오부도. 사대문 안 도성이 어떻게 주변 녹지와 연결돼 있는지 잘 보여준다.

 

대형 포식자인 표범은 활동 범위가 넓다. 서울 외곽의 녹지에 은신하다 밤에 도성 주변의 성곽을 따라 은밀하게 도심으로 접근했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보았다. 특히 겨울에 표범이 자주 나타난 것은 (유기견 등) 쉬운 먹이를 찾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이밖에 범을 두려워해 주민들이 밤거리 다니기를 꺼리는 등의 사회·문화적 요인도 표범과의 공존에 기여했다. 도심의 좁고 어두우며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표범이 은밀하게 돌아다니기에 적당했다.

 

그러나 이런 공존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연구자들은 서울의 표범 역사는 대규모 포식동물 보존에 교훈을 주는 이야기라고 밝혔다. 정치적 사회적 격변과 총기 도입, 일제에 의한 대대적 해로운 동물 제거로 서울 근교의 표범은 20세기 초에 절멸했다.

1963년 경남 합천 가야산에서 주민이 잡은 표범. 19601970년대까지 지리산 등 산간 오지에 잔존하다 절멸했다.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이 연구는 19세기 말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14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조서 500년 동안 서울(한양)에서는 간헐적으로 사람과 대형 포식자 사이의 공존 기록이 있다특정한 조건이 충족된다면 포식자와 도시민은 아주 가깝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표범의 서식지 변천(왼쪽)표범의 땅국립공원. 원래 한반도가 중심이던 서식지(고동색)는 연해주 일대(노랑)로 좁혀졌다. 붉은 색은 추가 복원 대상지.

무언가를 발견한 어미가 긴장하자 새끼 한 마리도 그곳을 주시하고 있다. 새끼 2마리는 아직 놀기에 바쁘다. 표범의 땅 국립공원 제공.

한국표범의 유일한 번식지인 러시아 연해주 표범의 땅 국립공원에는 한때 35마리까지 줄었던 한국표범이 보호와 먹이 확보에 힘입어 100마리로 불어났다. 표범의 땅 국립공원 제공.

한국표범은 세계 표범 9개 아종 가운데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세계의 표범 서식지. 초록은 현 서식지, 연두색은 서식 가능, 노랑은 절종 우려, 회색은 과거 서식지. 현지연. 현 서식지, 연두색은 서식 가능, 노랑은 절종 우려, 회색은 과거 서식지. 이항 외 피어 제이’(2020) 제공

한국표범의 마지막 번식지인 러시아 연해주 표범의 땅 국립공원시설과 전경.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포식자가 감염병 막아 준다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를 복원하는 것은 코로나19 같은 인수공통감염병을 막는 근본대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교수는 호랑이와 표범이 사는 연해주에는 남한보다 멧돼지 밀도가 훨씬 낮고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돌지 않는다최상위 포식자가 사람이 깨뜨린 생태계 균형을 되살리는 조절자 구실을 해 대규모 감염병을 막아 준다고 말했다

 

인용 논문: Frontiers in Conservation Science, DOI: 10.3389/fcosc.2021.765911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야생 한국표범 근친교배 비상

표범의 땅국립공원 표범 절반에서 뭉툭 꼬리, 흰 발 등 특이 형질

유럽 증식 프로그램, 동물원 표범 적응·훈련해 러 서식지 도입 추진 중

한국에 암컷 2마리 제공 제안, 정부는 머뭇유전자원 확보 위해 적극 나서야

앞발 끝이 흰 러시아 표범의 땅국립공원의 한국표범. 야생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형질로 근친교배의 결과이다. ‘표범의 땅국립공원 제공.

 

표범은 몸길이의 절반이 넘는 길고 굵은 꼬리로 몸의 균형을 잡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러시아 표범의 땅국립공원에 서식하는 한국표범(아무르표범) 가운데 꼬리가 스라소니처럼 뭉뚝하거나 짧은 개체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게다가 집고양이처럼 발끝이 흰 표범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야생에 없는 이런 형질은 근친교배의 명백한 증거로 낮은 유전다양성이 한국표범의 장기적 생존을 위협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윤미향 의원 등의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한국 범 복원 토론회에서 호랑이와 함께 우리나라의 상징동물인 표범을 보전하려면 동물원의 유전자원을 야생에 도입해야 하며 이를 위해 국내에도 한국표범의 서식지 외 사육시설을 만들어 개체군을 확립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나왔다.

 

카메라 찍힌 표범 절반이

한국표범은 한때 한반도를 중심으로 중국 동북부와 러시아 연해주 남부에 분포했지만 현재는 북한·중국·러시아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100120마리가 살아남아 세계의 표범 9개 아종 가운데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한국표범 분포 지역의 변천. 임정은 박사 제공.

 

한때 멸종 직전에 이르러 200030마리가 살아남았지만 북한 접경에 표범의 땅국립공원을 설치하는 등 러시아 당국의 보전노력 등에 힘입어 2020년엔 100마리 이상으로 불어났다. 그러나 급격히 개체수가 증가했는데도 애초 적은 집단에서 출발해 근친교배가 계속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날 주제발표를 한 임정은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포유류팀장은 표범의 땅 국립공원에서 설치한 수백 대의 무인카메라에 최근 들어 꼬리가 뭉뚝한 표범이 찍히기 시작했고 발끝이 흰 개체는 전체 촬영 표범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많았다고 말했다.

표범의 땅국립공원 무인 카메라에 찍힌 꼬리가 뭉툭한 한국표범(왼쪽 A, B, C, D)과 발끝이 흰 한국표범(오른쪽 A, B). 마르첸코바 외 2020 제공.

 

개체수 감소로 인한 근친교배 문제는 단지 서식지 감소와 남획뿐 아니라 애초 한국표범의 진화과정에서 비롯됐다. 요한나 파이만스 독일 포츠담대 생물학자 등은 지난해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린 논문에서 아프리카와 아시아 표범 26마리의 게놈을 분석해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표범의 조상 가운데 소수가 5060만년 전 단 한차례 아시아로 퍼져 나왔음을 밝혔다. 한국표범은 아시아의 동쪽 끝으로 확산하는 과정에서 더욱 유전다양성이 낮아졌다.

표범의 9개 아종 분포 지역.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표범은 5060만년 전 아시아로 퍼져나갔다. 한국표범은 확산의 끄트머리에 해당해 유전다양성이 애초 낮았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한국표범은 야생개체의 곱절 가까운 220마리가 동물원에 산다. 이들 사육 개체의 유전다양성은 야생보다 높다. 따라서 사육 표범을 야생에 돌려보내 새로운 유전자원을 공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이 행사를 주관한 한국범보전기금 이항 대표(서울대 수의대 교수)유럽과 미국 동물원은 한국표범의 번식을 가능한 한 억제하고 혈통을 철저히 관리하는 한편 국제협력을 통해 우수한 형질의 표범을 반자연 상태에서 적응·훈련해 야생에 풀어놓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동물원수족관협회(EAZA)의 서식지 외 보전위원회(EEP)에 참여하는 한국표범은 113마리에 이른다.

 

범 내려온다복원은 필연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동물원이 유일하게 한국표범 2마리를 사육 중이다. 2018년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동물원에서 들여온 공인된 한국표범이지만 모두 수컷이다. 멸종위기종의 서식지 외 보전기관인 서울동물원은 장차 한국표범을 증식하기 위해 기존의 중국표범을 내보냈다.

 

러시아는 201514개 국제단체와 함께 수립한 표범 보전계획에 따라 국제적인 혈통관리로 증식한 표범을 적응 훈련을 거쳐 방사하기로 했지만 아직 수용할 준비가 안 됐다. 유럽에서 증식한 표범을 당장 처리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애초 한국표범의 서식지도 아니지만 유럽 각국의 동물원은 러시아 서식지에 재도입할 표범의 혈통을 관리해 증식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영국 콜체스터 동물원의 한국표범. 윌리엄 워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유럽 동물원 수족관 협회(EAZA)는 지난해 7월 국립생태원에 한국표범의 증식과 자연적응 훈련, 재도입 사업에 참여할 것을 요청하면서 혈통관리가 잘 된 암컷 한국표범 2마리를 무상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이항 교수는 유럽 증식 프로그램이 스코틀랜드에서 적응 훈련한 암컷 2마리를 한국의 반자연 상태에서 사육하다 여건이 마련되면 러시아로 보내 방사하자는 것이라며 서울동물원의 수컷을 염두에 둔 번식용 도입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환경부는 번식을 위한 암컷 확보에 더 관심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박소영 환경부 생물다양성 과장은 이날 기존 표범과 유전적 근연관계를 확인한 뒤 도입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연말 국립생태원 멸종센터가 연 표범 도입 전문가 자문회의에서는 현재 서울동물원이 보유하고 있는 개체와 교배 가능한 개체를 추가 도입하는 방안도 이이피(EEP)와 협의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가 주로 나왔다.

표범의 땅국립공원의 야생 한국표범. 야생보다 유전다양성이 높은 동물원 개체가 이 종의 생존을 지키는 데 핵심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표범의 땅국립공원 제공.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보호종인 표범의 유전자원을 확보하는 차원에서도 정부가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편 증식사업에도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항 교수는 국내외에 표범 사육과 보전번식 계획의 경험이 풍부하고 국제협력이 활발해 표범 도입에 따르는 안전성, 근친번식, 사육기법 등의 기술적 문제는 사소하다야생에 풀어놓지 못하더라도 서식지 외 보전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식물 종자 은행처럼 야생에서의 멸종을 대비해 국립생태원을 비롯한 전국 동물원을 네트워크로 만들어 한국표범을 3040마리까지 확보하면 유전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최태영 멸종위기종복원센터 복원연구실장은 러시아의 한국표범이 이미 중국과 북한으로 확산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한반도의 표범 복원은 저절로 이뤄질 것이라며 단기적으로는 표범을 서식지 밖에서 보전하는 국제협력 사업에 참여하고 남북협력의 기반을 닦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2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