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만 없는 아이들 은유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창비 펴냄 2021.6
은유 작가. 책과 사람이 있는 현장에서 글쓰기를 배웠다. 『글쓰기의 최전선』 『쓰기의 말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있지만 없는 아이들』 『크게 그린 사람』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다가오는 말들』 등을 썼다. ‘메타포라’ ‘감응의 글쓰기’ 등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 먼 타인의 아이를 사랑하라
열아홉, 내년이면 쫓겨난다는 불안감마리나(이주아동)
당신은 왜 한국에 살고 있나요?페버(이주아동)
한국도 이들이 필요해요이탁건(변호사)
오늘이 마지막이겠다는 생각이 없어졌어요김민혁(이주아동)
정직한 한 사람이 중요해요석원정(이주인권활동가)
태어난 건 죄가 아니잖아요카림(이주아동)
사람은 그냥 사람이죠달리아(이주아동)
이건 사는 것도 안 사는 것도 아니에요인화(이주아동 부모)
말하는 소리가 작으면 듣는 귀라도 커야 해요이란주(이주인권활동가)
에필로그 슬픔이 보시가 될 때
출판사 제 책소개
있지만 없고 없지만 있는, 미등록 이주아동 이야기
있지만 없는 아이들이 있다. 부모에게 체류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국가가 돌보지 않는 아이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법을 어긴 존재가 되어 사람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아이들, 바로 미등록 이주아동이다. 미등록 장기체류 이주아동의 체류자격 부여 제도가 마련되기를 바라는 마음들을 만들어내고자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고 은유 작가가 쓴 『있지만 없는 아이들: 미등록 이주아동 이야기』가 출간되었다. 국내에 2만명 정도 있을 것으로 추산되는 미등록 이주아동들에게 배제와 좌절은 일상이다. 대학 진학이나 미래를 설계하는 것은 물론, 보험 가입이 필요한 수학여행을 가거나 QR 체크인을 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 평범한 일상도 고난이 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의거해 교육받을 권리는 갖지만,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 않아 살아갈 자격은 없는 모순된 현실에서 ‘있지만 없는 아이들’로 자라나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나고 배우고 생활하며 ‘한국인’으로 자라지만, 만 18세가 넘으면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말도 안 통하는 부모의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세상은 ‘불법체류자’라는 말로 이들의 존재를 일축하지만 은유 작가의 눈을 통해 본 이들은 그저 ‘소외된 아이들’이 아닌 자기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단단한 존재이자 ‘왜 한국에 살고 싶냐’는 질문에 명민하고도 용감하게 ‘그럼 당신은 왜 한국에 살고 있는가’ 하고 되물을 줄 아는 동료 시민이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이 전하는 목소리들은 미등록 이주아동의 체류 문제, 더 나아가 이주민과 함께 나아가야 할 한국사회의 성원권에 대해서 묵직한 고민거리를 던진다.
"저는 한국에서 유령으로 지내온 거나 마찬가지예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이 책에는 마리나, 페버, 김민혁, 카림, 달리아 등 이주아동 다섯명,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어른들인 이주아동의 어머니 인화, 이주인권활동가 석원정, 이주민 이야기를 꾸준히 써온 작가이자 이주인권활동가 이란주, 이주아동을 지원하는 변호사 이탁건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 각각은 서로 다른 이유로 미등록자가 되었다. 미등록 이주민의 자녀로 태어났거나, 문제없이 살다가 아버지가 출국 후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불법체류자’가 되었거나, 한국에 거주하며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탓에 귀국이 어려워졌지만 난민 신청에 실패했거나 등 사연은 다양하다. 세상은 짓궂은 장난처럼 이들의 등에 합법과 불법 딱지를 떼었다 붙였다 한다. 이들 중 몇은 강제추방 위기에 놓였다가 행정소송을 해 체류자격을 얻었고, 몇은 여전히 체류자격이 없는 채로 불안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미등록 이주민이자 미등록 이주아동의 부모인 인화는 ‘코리안 드림’을 품고 1990년대 초 다섯살짜리 아이와 한국에 왔다. 한국인 브로커한테 사기를 당해 미등록 노동자가 되었고, 힘든 생활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악착같이 아이를 키워냈다. 다섯살이었던 미등록 이주아동 호준은 어느덧 서른을 바라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었다. 인화는 묻는다. “한국인과 결혼하는 사람에게는 비자를 주는데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사는 사람은 왜 안 되죠? 저는 여기 한국에서 25년을 일했어요. 여기서 제 월급도 다 썼고요. 먹고 살고, 월세 내고, 세금 내고요. 제가 번 돈 나쁜 돈 아니잖아요. 제가 땀 흘리고 피 흘리고 눈물 흘려서 번 돈이잖아요. 제가 한국에 와서 사는 동안 대통령이 여섯번 바뀌었어요. 한국은 선진국이고 몽골보다 잘살잖아요. 그런데 왜 아무도 외국인 체류 문제를 해결하지 않죠?”
가까운 이웃이 아닌 먼 이웃을 사랑하라
이주민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면 우리나라 사람부터 도우라는 비난이 SNS와 뉴스 댓글 등에서 날아들곤 한다. 그런데 사회문제의 우선순위는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 걸까? 이 책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자기 삶의 자리에서 우연히 타인의 고통을 목격했고, ‘무엇이 더 중한지’ 우선순위를 따지기보다는 그 고통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을 뿐이다.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지기 위하여’(석원정) ‘말하는 목소리가 작으면 듣는 귀라도 커야 한다는 마음으로’(이란주) ‘내가 아니면 도울 사람이 없어서’(이탁건) 같은 각기 다른 이유로 거들고 돌보고 싸웠다.
우리 사회에는 잘 보고 잘 듣는 어른들에 의해서만 세상에 드러나는 아이들이 존재한다. 니체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도덕 법칙을 전복해 ‘보다 먼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했다. 자기 지인이나 지역, 국가, 민족, 가치관 같은 익숙한 세계의 틀을 깨고 먼 이웃, 먼 타인의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고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먼 이웃, 작은 이웃, 미래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리하여 국가와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는 아이들의 평등을 지켜주는 것이 더 좋은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길임을 삶으로 보여준다.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 불법인 사람은 없다
은유 작가는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글을 쓰는 탁월한 에세이스트로 잘 알려져 있지만 국가폭력, 가정폭력, 성폭력, 직장내폭력 피해자 등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오랜 시간 성실하게 전해온 르포르타주 작가이기도 하다.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작가라는 소개는 들을수록 민망하다. (…) 세상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기록한 건 좋은 일도 아니고 나쁜 일도 아니며 그냥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34면)고 겸손하게 말하는 그는 이 작업을 시작할 당시 글쓰기의 원동력이 되어온 분노와 감동의 연료가 바닥난 것 같아 ‘절대 안정’ 팻말을 붙여놓고 휴업 중이었다. 그 바닥난 연료를 다시 채우고, 마음에 불을 지핀 것이 이 ‘있지만 없는 아이들’이었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태어나자마자 죄인이 됐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경찰차만 봐도 가슴이 오그라든다. 학교 선생님이 자신의 상황을 발설하지 않을까, 친구가 자신의 상황을 눈치챌까 미세한 불안감에 만성적으로 시달린다. 보험 가입이 안 되니까 수학여행도 못 가고, 공부를 잘해도 경진대회에 나갈 수 없다. 티켓 예매 사이트 회원 가입이 안 되니까 좋아하는 아이돌 콘서트에 가지 못하고, 떡볶이를 먹고 친구들이 엔분의 일로 ‘계좌이체’를 할 때 주섬주섬 현금을 꺼내야 한다. 이들이 말하는 ‘존재를 부정당하는 삶’은 너무나 구체적으로 막막하고 낱낱이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사람은 그냥 사람이지 태어난 것만으로 불법인 존재가 어디 있느냐고 담대하게 묻고, 우리 사회는 앞으로 더 낫게 변할 것이라고 낙관한다. 세상이 아무리 자신의 존재를 지워도 그저 살아감으로써 존재를 입증해내는 이 아이들은, 역으로 세상에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완전한 행동”임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보호받을 특권을 지닌다
국가와 부모를 골라서 태어나는 아이는 없다. 보호자가 없어도, 안전한 집이 없어도, 적법한 체류자격이 없어도 아이들이 충분히 존중받으며 자라고 무사히 어른이 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사회와 국가의 책임이자 의무다. 이곳에 사는 어린이·청소년 모두가 차별받지 않고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사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누구나 자신의 생애기회를 설계하고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시혜나 휴머니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20년 5월 권고에 응해 법무부는 2021년 4월 '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 시행방안'을 발표했다. 국내 출생, 15년 이상 거주 등 일정 요건을 갖춘 아동에게는 체류자격 심사기회를 부여하기로 했지만, 이 대책은 아주 소수의 아동에게만 해당된다. 인터뷰 당시인 2020년 가을에 열아홉을 앞두고 있던 마리나는 올해부터 추방 대상이 되었지만 제도 변경으로 체류자격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자격은 1년간 유효할 뿐이고, 매년 갱신해야 한다. 마리나는 아직 대학에 입학하지 못해서 체류 사유가 마땅치 않기에 내년, 또 내후년에도 마리나가 한국에 계속 살 수 있을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각각 네살, 두살에 한국에 온 카림과 달리아는 안타깝게도 이 제도의 대상에 해당되지 않아 여전히 언제든 추방될 수 있다.
모든 장기체류 이주아동의 인권을 아우르는 실질적이고 항시적인 구제대책 마련은 우리 공동체에게 남겨진 숙제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에 담긴 목소리들을 통해 미등록 이주아동·청소년을 위한 ‘존재의 합법화’ 경로가 제대로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책속으로
언제부턴가 나는 아이들에게 마음이 쓰였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기를 쓰고 사는 작은 인간에게 눈길이 가곤 했다.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생의 초기 세팅이 이뤄지는 시기에 사막 같은 곳에 내던져진 아이를 뉴스에서 보고 나면 오래도록 심란했다.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는 아이들의 평등을 지켜주는 게 공적 지원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라는 일본 사회학자 미나시타 기류(水無田 氣流)의 말을 다이어리 첫장에 적어두고 틈틈이 생각했다. 그러면 나는 무얼 해야 하지? P. 7
국민국가에서 신분증 없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기 명의의 통장 없이 과연 살 수 있을까. 코로나19 사태 초기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고 마스크를 사는 일부터 QR체크인을 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 일까지, ‘비국민’ 아이들에게 배제와 좌절은 일상이다.P. 8
미등록 이주아동만이 아니라 이 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들 모두가 차별받지 않고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사회적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생애기회를 설계하고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시혜나 휴머니즘 차원이 아니라 인간의 당연한 권리다.P. 32
보다 먼 이웃, 작은 이웃, 미래의 이웃을 사랑하는 평범한 시민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상상한다. 우리 사회에는 잘 보고 잘 듣는 어른들에 의해서만 세상에 드러나는 아이들이 존재한다. 보호자가 없어도, 안전한 집이 없어도, 적법한 체류자격이 없어도, 대단한 매력 자본이나 스펙이 없어도 아이들은 충분히 존중받으며 자라고 무사히 어른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와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는 아이들의 평등을 지켜주는 사회적 토대를 다지는 일에 이주아동들의 목소리가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다. P. 35~36
결국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살 수 있는 것. 내가 나임을 인정받는 것. 제가 원하는 건 그런 최소한의 것들이에요. 저는 한국에서 유령으로 지내온 거나 마찬가지예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요.P. 58
왜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으냐고 묻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이 질문을 한 사람에게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어요. 그럼 왜 당신은 한국에 살고 계시나요? 똑같아요. 저는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그러니까 여기에 사는 거죠. 만약에 제가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자랐으면 아마도 거기 살지 않았을까요? 꼭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P. 82
왜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으냐고 묻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이 질문을 한 사람에게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어요. 그럼 왜 당신은 한국에 살고 계시나요? 똑같아요. 저는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그러니까 여기에 사는 거죠. 만약에 제가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자랐으면 아마도 거기 살지 않았을까요? 꼭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P. 82
“제가 누군가를 믿어줄 때 그 사람이 또다른 누군가를 또 믿고 반기면 사회에서 누가 누구를 배척할 일이 없지 않을까요.”
다문화 이해 교육 커리큘럼을 만들고 한참 열심히 하다보니 ‘도대체 교육이라는 게 효과가 있나? 인간이 교육으로 변하나?‘ 하는 의문도 들었어요. 당근과 채찍 전략으로 한편으로는 교육, 한편으로는 규제, 이렇게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걸로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았고, ‘감수성‘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하지만 그 감수성이라는 게 하루 아침에 바뀌는 건 아니잖아요. 제 스스로의 생각이나 의식이 바뀌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P. 140
고등학교 때까지 미등록으로 산 아이들에게 체류 자격을 부여하게 되면, 부모들이 한국에 살기 위해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을 하는데요. 그건 부모 입장에서 보면 정말 과도한 수단이에요. 한국에서 미등록 상태로 18년을 사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럼에도 근 20년을 살고 있다는 것은 한국도 이 사람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인 거죠. (이탁건 변호사)P. 91
미등록 아동의 부모까지 국적을 주자는 것도 아니고, 체류자격을 주자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평생을 살고 공교육을 받은 아이들을 여기서 살게 해주자는 거예요. 미등록 이주아동의 체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늘 하는 이야기가 ‘이렇게 하면 다 여기에 와서 애 낳을 거다‘잖아요. 아니, 자기들 같으면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 살겠다고 일부러 애를 낳겠느냐고요. 남의 나라, 특히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들어요. 그리고 설사 그런들 그게 뭐가 문제예요. 지금 인구가 부족해서 문제인데. P. 150
모든 장기체류주아동의 인권을 아우르는 실질적이고 항시적인 구제대책마련은 우리 공동체에게 남겨진 숙제가 되었다. 미등록 이주아동·청소년이 오늘이 마지막이겠다는 불안을 베고 잠들지 않을 수 있도록 ‘존재의 합법화‘ 경로가 제대로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P. 230
저희는 한국에서 평생을 생활하고 있잖아요. 태어난 건 죄가없는데 왜 차별당하고 고통받고 꿈도 못 이루고 살아야 하는지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돼요.
'이 아이들'의 꿈은 올겨울이 마지막일지도 모릅니다
'미등록 이주 아동' 무비나씨, '미등록 이주 아동 조건부 구제책'을 말하다
지난 16일, 3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강태완씨의 장례가 마무리됐다. 그가 일하던 전북 김제의 특장차 개발·생산 업체에서 산재 사고로 사망한 지 38일 만이다(관련기사 : '미등록 이주아동' 출신 고 강태완씨, '산재 사망' 한 달 만에 장례치른다
https://omn.kr/2bf4n).
시민 단체에서는 회사의 무책임한 태도를 규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집회를 열었고 강태완씨가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이 넘어서야 회사로부터 산재 사고 인정과 사과를 받았다. 이주와 인권 연구소는 지난 15일 공개 추모제를 열어 시민들과 그의 마지막 길을 추모했다.
미등록 외국인(불법체류자)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강태완씨는 경기도 군포시에서 초·중·고등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미등록 이주 아동이었던 그는 사회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고 2020년 법무부의 지역 특화 비자 사업으로 연고 하나 없는 몽골로 가 우여곡절 끝에 비자를 취득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대한민국 귀화의 꿈을 안고 열심히 살아가던 강태완씨의 안타까운 죽음은 우리 사회에 '미등록 이주 아동'에 대한 중요한 과제를 남겼다.
'미등록 이주 아동', 내년 봄이면 그 어떤 사회의 보호도 받지 못합니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 '유령 아동'이라고도 불리는 '미등록 이주 아동'은 합법적 체류 자격을 갖지 못한 채 국내에 체류하는 아동들을 말한다. 지난 2021년 법무부는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조건부 구제책을 내놓았다.
2021년 2월 기준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해 중·고교에 재학 중인 미등록 이주아동들을 대상(▲ '21. 2. 28. 이전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자로서, 신청 당시 아래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자 ① 국내에서 출생 ② 15년 이상 국내에서 체류 ③ 신청일 기준 국내 중‧고교 재학 또는 고교 졸업 ▲ '21. 2. 28. 이전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자로서, 제도 시행일 당시 자격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였더라도 시행기간인 '25. 2. 28. 까지 상기 3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게 되어 그 기간 내에 신청하는 자)으로 학업을 위한 체류 자격(D-4)이, 부모에게는 범칙금 부과되고, 임시 체류 자격(G-1)을 부여하는 것이 구제책의 내용이다.
그러나 이 조건부 구제책마저도 내년인 2025년 3월 종료된다. 수많은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법무부 출입국 기록을 바탕으로 한 미등록 외국인(불법체류자)은 25만1041명, 이 중 19세 이하 미등록 이주아동은 5279명으로 집계된다(2017년 기준). 한국국제문화교류학회에서 발행한 <국내출생 '미등록 이주 아동'의 구제방안 연구>(2022)에 따르면, 공식적인 통계를 파악할 수 없지만 연구자들은 약 2만명 이상의 미등록 이주 아동이 국내에 체류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22일, 제2의 고향 한국에서 '미등록 이주 아동'이 되었던 무비나(21)씨와 '미등록 이주 아동 조건부 구제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열네 살, 한국에서 처음 꿈꿀 수 있게 됐어요."
러시아 국적의 무비나씨는 미등록 상태의 외국인이다. 7년 전인 2017년 무비나씨는 부모님, 두 명의 동생들과 대한민국 광주광역시에 왔다. 가정 사정으로 러시아에서 학교에 다니지 못했던 무비나씨는 열네 살, 한국에서 그토록 바랐던 학교에 다니게 됐다.
무비나씨의 가족은 한국에 난민 신청을 했지만 '난민으로 수용될 정도의 위협은 없는 상태'라며 난민 신청은 거절됐다. 그렇게 온 가족이 미등록 외국인 상태로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2021년 법무부의 이주아동 조건부 구제책 덕분에 무비나씨의 두 동생은 학업을 위한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중퇴하게 된 무비나씨에게 이 모든 건 순탄치 않았다.
"고등학교 중퇴, 가족 중 유일하게 미등록 외국인이 됐습니다."
IT 분야에 관심이 있던 무비나씨는 관련 수업을 전문적으로 들을 수 있는 광주 소재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광주광역시에서 대구광역시로 이사하면서 무비나씨를 받아주는 고등학교가 없었고 중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 소속된 상태도, 그렇다고 졸업한 상태도 아닌 채로 성인이 되어버린 무비나씨는 가족 중 유일하게 비자 신청이 거절됐다.
출입국 사무소에 체류 자격을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물었지만 이제 성인이니 러시아로 돌아가야 한다는 답만 내놓았다. 하지만 이미 온 가족이 한국에 온 무비나씨는 러시아에 돌아갈 곳도, 러시아가 무비나씨를 보호해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미등록 상태의 아동들은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어요."
무비나씨의 두 동생은 '조건부 구제책' 덕분에 비자가 있어 건강보험에 가입했고, 아플 때 병원에도 쉽게 갈 수 있다. 하지만 무비나씨는 아파도 편하게 병원에 갈 수도, 필수적인 의료 혜택을 받을 수도 없다.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무비나씨는 "미등록 상태의 이주 아동들은 병원에 가거나 공공 서비스를 이용하면 신변이 위험해질 수 있는 불안정한 상황이다"라며 소속된 사회에서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미등록 이주 아동들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유엔(UN) 아동권리협약 일반 원칙은 아동의 생존과 발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아동은 특별히 생존과 발달을 위해 다양한 보호와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아동 구제책 역시 미등록 외국인 이전에 '아동'인 이들의 권익 보호에서 출발한 한시적인 대책이었다.
"우리가 계속해서 한국에서 꿈꿀 수 있게 보호해 주세요."
18살 고등학교 중퇴 이후에도 무비나씨는 IT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잃지 않고 혼자서 IT 공부를 했고, 풀스택 개발자(웹과 앱 프로젝트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개발자)로도 활동하며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최근 무비나씨는 어렵게 그녀를 받아주는 대구광역시 소재 대안 학교를 찾을 수 있었고 내년 3월 고등학교에 재입학할 예정이다. 이주 아동 조건부 구제책이 종료되기 직전 극적으로 고등학교 입학 절차를 밟아 못다 마친 학업을 이어가고 비자를 신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무비나씨는 현재 인공지능 분야에도 관심이 생겨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묻자 그는 "한국에서 대학교도 가고,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도 갖고 싶다. 그리고 한국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것이 꿈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무비나씨는 "한국은 경쟁하면서 또 함께 성장하는 법을 알려준 나라"라며 "한국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이주 아동들이 계속해서 한국에서 꿈을 꿀 수 있게 구제책이 계속돼 아동들의 권리와 희망을 보호해 주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주 아동 구제책, 포용 사회로의 첫걸음 되길
'미등록 아동'이 조건부 구제책으로 D-4 체류자격을 받아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성년이 되어 학업을 이어가지 않는 경우 문화적 배경이 다른 본국으로 스스로 출국해야한다. 대학 진학을 하거나 자진 출국을 하지 않은 채 한국에서 일을 시작하면 '미등록 외국인(불법체류자)'이 되어 또다시 체류에 관한 문제가 생긴다.
이를 막기 위해선 본국(부모님의 국가)에 가서 유학생 체류 자격 (D-2)을 부여받아야하는데, 정작 본국이라고 불리는 국가에는 무비나씨처럼 연고가 없거나, 연고가 있어도 돌아가는 데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경우가 많아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출입국·외국인 전문 변호사 백수웅씨(법률사무소 어스)는 "미등록 이주아동 구제책이 미등록 외국인(불법체류자)을 합법화하는 정책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대한민국이 포용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그 이면을 볼 필요가 있다"라며 "한국 정체성을 가진 아동들의 권위를 보호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거듭날 수 있게 제도적인 보호와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권현서(khyeons03) 오마이뉴스
입원율 5배, 응급실 이용률은 3배··· ‘있지만 없는 아이들’은 아프다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 아동들은 높은 의료비와 낮은 병원 접근성으로 인한 보건의료 취약계층이다. 장애가 있는 경우 장애인 등록이 불가능해 부모 한 달 월급을 치료비로 다 쓰는 경우가 많다. 사진·이주민과 함께 제공
갓 태어난 아기는 집에 돌아와 3일 동안 소변을 보지 않았다. 아빠 A씨는 아기를 데리고 인근 병원으로 내달렸다. ‘큰 병원’으로 가라는 말을 듣고 찾아간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아 고비를 넘겼다. 경황이 없던 A씨는 외국인 아동에게는 출생신고 격인 ‘외국인 등록’을 기한 마지막날인 출생 90일째에 완료했다.
그해 말,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1600만원 가량의 병원비 고지서가 날아왔다. 건보공단은 아이 치료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했던 것을 무효로 하고 차액을 환수하겠다고 통보했다. A씨가 아이를 출생 92일째에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한 것이 이유였다. 기한보다 ‘이틀’이 지연됐으니 92일째까지는 건강보험을 적용할 수 없다고 했다. 140만원이던 병원비가 10배 넘게 불어났다.
한국인 아동은 출생신고가 늦으면 최고 5만원의 과태료를 낼 뿐, 이처럼 소급해서 건강보험을 미적용하지는 않는다. “이런 법이 어딨습니까”라는 말은 통하지 않았다. 설상가상 출입국사무소에서는 건보공단에 돈을 내지 않으면 비자를 연장해줄 수 없다고 했다. A씨는 이자까지 더해진 병원비 1700만원 중 대부분을 대출받아서 건보공단에 납부해야만 했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한국의 의료제도는, 어떤 아동들 앞에서는 멈춘다. 국내 체류 중인 이주 아동(외국국적 아동)은 ‘꼼꼼하게’ 차별적으로 설계된 의료제도로 인해 ‘재난적 의료비’를 지출하고 병원을 겨우 이용한다. 참다참다 병을 키워 병원에 가는 경우가 많아 한국인 아동에 비해 입원률과 응급실 이용률이 몇배는 높다. ‘이주와 인권연구소’가 17일 공개한 ‘2024 이주민 영유아 건강권 실태조사’에는 낮은 의료 접근성으로 인해 건강권을 위협받는 이주 아동 171명의 실태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작가 은유의 책 제목처럼 ‘있지만 없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병 키우다 입원하거나 응급실로 가는 아이들
이주 아동은 부모가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비자가 있는 등록 이주민인 경우와 비자가 없는 미등록 이주민인 경우를 뜻한다. 부모가 직장이나 지역에서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으면 사정이 조금 더 낫긴 하지만, 이주 아동들은 대체로 높은 의료비와 낮은 병원 접근성에 놓인 보건의료 취약계층이다.
‘이주민과함께’ 등 9개 이주인권 단체 활동가들은 시민단체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을 받아 국내 체류 이주 아동의 건강권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는 부모가 모두 외국 국적자이며 2018년 1월 1일 이후 태어난 영유아, 비수도권 지역에 거주하는 아동으로 대상을 한정했다. 상대적으로 의료자원이 빈약한 비수도권 지역에 거주하는 이주민이면서 영유아인 경우에 초점을 맞췄다.
국내 체류 이주민은 2022년을 기점으로 다시 증가하고 있는데, 이주 아동의 증가 속도는 전체 이주민 증가속도에 비해 훨씬 빠르다. 보고서에서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 정책 통계연보를 이용해 계산한 결과, 2018년에 비해 2023년 체류 외국인(250만7594명)은 5.9% 증가했는데, 이중 10세 미만 아동(8만8673명)은 8.3% 증가했다. 장기체류자만으로 보면 이주아동은 19.3%나 늘었다.
체류자격에 따라 이주민도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운데다가 보장 범위도 제한적이다. 보고서는 “제도적 차별에 의한 건강 취약성이 이주민의 자녀에게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이주 아동들은 태어나자마자 받는 각종 필수 예방접종에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 아동의 경우 만 1세의 필수 예방접종 완전접종률이 96.4%(질병청 2023년 예방접종률 현황)로 100%에 가까웠으나, 이주아동은 55.2%로 절반 수준이었다. 인플루엔자(독감) 예방접종은 한국 아동의 83.0%(2022 국민건강통계 1~5세 기준)가 받았으나, 이주아동은 절반도 안 되는 44%만이 받았다.
한국 아동의 연간 외래 이용률은 94.5%(2021년 10세 미만 아동 기준)로 대개 1년에 한 번 이상 병원에 갔다. 이주아동은 최근 1년 새에 병원에 한 번 이상 갔다고 한 비율이 72.5%에 그쳤다. 반면 연간 입원율은 이주 아동이 36.8%로 한국 아동(6.8%)에 비해 5배 이상 높았다. 응급실 이용률도 24.6%로 한국 아동(8.3%)에 비해 3배 가량 높았다. 보고서는 “이주민 영유아들이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가 상태가 악화돼 입원 치료가 필요한 중증 상태가 되거나 응급 상황에 이르러서야 의료기관을 이용하게 되는 비율이 높다”고 추정했다. 최근 1년간 의료기관에서 치료나 검사가 필요했지만 받지 못했다는 미충족 의료율은 한국 아동이 2.4%였으나, 이주아동은 8배 많은 19.3%였다.
건보없이 병원 이용하면 ‘의료관광객’에게 적용되는 ‘국제수가’ 내야
이주민도 체류자격에 따라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지만, 현재의 건강보험 제도는 가입자격부터 체납 시 제재까지 “모든 면에서 이주민에 대해 차별적으로 운용”된다. 이는 가정의 부담능력을 초과하는 ‘재난적 의료비’로 이어진다.
미얀마인 B씨는 매우 안정적인 취업 및 장기체류 비자로 분류되는 E-7-4 비자를 가지고 있다. 부인을 한국으로 초청할 수 있게 돼 지난해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아이가 출산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숨이 가빠지면서 경련을 했고, 대형병원 응급실을 통해 입원을 하게 됐다.
B씨가 아기를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미얀마 대사관에 출생신고를 하고 아이 명의의 여권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당시 미얀마가 내전 중이라 아이 여권을 받는 데까지 길게는 3년까지 걸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앞선 A씨의 사례처럼 3년간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할 수도 있다. 실제로 등록을 못하는 동안 병원비가 일주일만에 7000만원이나 나왔다. B씨는 출입국사무소와 대사관을 오가며 사정사정해 겨우 피부양자 등록을 마쳤다. B씨의 아이에게는 장애가 생겼는데, 장애인 등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병원비만 한달에 200만원이 넘게 나오고 있다.
미등록 이주민은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한국인의 경우 건보 적용이 안 되면 병원 이용 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비급여 기준으로 의료비가 계산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의료기관에서는 이주민에게 이보다 더 비싼 의료비를 부담시키고 있다. 의료기관들은 외국인 의료 관광객들에게 1.5~2배 가량 높은 의료비를 받곤 하는데, 통상 ‘국제수가’라 불리는 이 비용을 이주민들에게도 적용하는 것이다. 미등록 이주아동 부모들은 “아이가 감기로 아파서 병원에만 가도 10만~15만원이 나온다”고 토로했다. 울산에 사는 미등록 이주아동 부모 C씨는 “돈보다 아이가 먼저입니다. 그래서 아프면 꼭 병원에 데리고 갑니다. 그렇지만 병원에서 입원하라고 하면 그렇게는 못하고 약만 받아옵니다.”라고 말했다.
‘무임승차자’막겠다면서, 이주민 배제 수단이 된 건강보험제도
해외에 주로 살면서 국내에 잠시 들어와 건강보험의 혜택만 누리고 가는 일명 ‘무임승차자’들을 막겠다는 취지로 여러 차례 개정된 건보제도는 이주민 배제 수단으로 변질됐다. 2018년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건강보험 지역 가입자 기준을 국내체류 3개월에서 6개월로 높였다. 만약 1개월 이상 출국했다 돌아오면 다시 6개월을 체류해야 지역가입자 자격이 생긴다.
국외체류기간이 6개월 미만이면 그동안의 보험료를 납부하고 지역가입 자격을 바로 취득할 수도 있으나, 이주민 다수는 6개월간 건강보험 없이 지내는 방법을 택한다. 이는 가족구성원들이 같이 살면 하나의 세대로 묶이는 한국인과 달리, 이주민들에게는 세대원 각각에 대해 보험료가 부과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주아동들은 건보 외에 다양한 의료비 지원제도에서도 배제된다. 특히 장애인 등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희귀질환이나 장애를 가진 경우에는 더욱 열악한 환경에 놓이게 된다. 아이가 뇌수막염이 있는 미얀마인 D씨는 “월급이 250만원 정도 되는데 한 달에 병원비가 200만원 넘게 나와서 병원비를 내고 나면 생활비가 없다”고 했다.
‘아동’ 건강권만이라도 우선 보장해야
보고서는 이주민에 대한 각종 차별을 일거에 없애기 어렵다면, ‘아동’의 건강권만은 보장하자고 강조한다. 한국은 1991년에 UN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을 비준했다. 이에 따라 국내 모든 아동에 대해 차별 없는 학습권·발달권·건강권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협약을 토대로 해 미등록 이주아동의 주거권, 교육권 등 기본권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라는 권고를 여러 차례 내놓았다.
이주민 관련 단체들은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점으로 국내 체류하는 이주 아동들에게만이라도 ‘국제수가’를 적용할 수 없도록 규제하자고 지적했다. 국제수가는 의료관광 목적으로 입국한 경우에만 적용할 수 있도록 시행규칙을 개정해서 대상을 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당장 건보 제도 내 차별을 없애기 어렵다면 이주 아동을 위한 의료지원사업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신설하는 방법도 있다. 복지부는 ‘외국인 근로자 등 의료지원 사업’을 통해 기존 제도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외국인 노동자의 의료비를 지원한다. 지원 대상에 이주 노동자의 배우자와 자녀가 포함돼있으나, 지원 액수가 적고 보장 범위가 너무 좁다. 지원 비용 상한이 500만원으로 정해져있으며, 노동자 당사자가 아닌 자녀는 외래진료만 지원된다. 국비 지원액은 2024년 한해에 25억원으로 책정됐는데, 금액이 너무 적어 조기 소진된다. 보고서는 “예산을 늘리는 것도 시급하지만,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산모와 이주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지원사업을 별도로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경향 이혜인 기자 : 2024.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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