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저자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번역 박세연/출판 어크로스 2024.05
Steven Levitsky 하버드대 교수이자 정치학자. 정당,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라틴아메리카의 정권 교체 등에 중점을 두고 연구해왔다. 쓴 책으로 《경쟁적 권위주의: 냉전 이후의 혼합 체제(Competitive Authoritarianism: Hybrid Regimes After the Cold War)》가 있다. 2003년부터 하버드대 역사상 최대 규모의 비교정치학 기초 강의를 가르쳐왔고, 2004년에는 하버드대 우수 강의자에게 수여하는 로슬린 에이브럼슨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대니얼 지블랫과 함께 쓴 전작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뉴욕타임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동시에 2019년 골드스미스 도서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Daniel Ziblatt 하버드대 교수이자 정치학자. 19세기부터 현재까지의 유럽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연구의 독보적인 권위자다. 저서 《보수 정당들과 민주주의의 탄생(Conservative Parties and the Birth of Democracy)》으로 2017년 미국정치학회가 주는 우드로 윌슨상, 2018년 미국사회학회가 주는 배링턴 무어상 등을 수상했다. 수년 동안 하버드대 학부 최고 인기 세미나 중 하나인 〈민주주의는 어디에서나 가능한가?〉를 이끌어왔으며, 스티븐 레비츠키와 함께 쓴 전작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로 골드스미스 도서상을 수상했다.
목차
들어가며
1장 패배에 대한 두려움
2장 독재의 평범성
3장 이 땅에서 벌어진 일
4장 왜 공화당은 민주주의를 저버렸나
5장 족쇄를 찬 다수
6장 소수의 독재
7장 표준 이하의 민주주의, 미국
8장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다
감사의 글
주
출판사 서평
왜곡된 선거에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까지 극단주의는 합법과 민주주의의 가면을 쓰고 온다
무엇이 트럼프의 귀환을 가능하게 만들었는가?
민주주의 붕괴를 경고한 현대의 고전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후속작,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가 출간되었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의 대표작인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2018년 출간 이후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세계 주요 언론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것은 물론, 국내에서도 언론과 정치권의 주목을 한 몸에 받으며 정치 분야 최장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이 책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도 출간 즉시 아마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트럼프의 귀환을 마주할 전 세계 독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전작이 트럼프의 당선과 함께 시작된 책이라면, 이 책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습격과 함께 시작된다. 2021년 1월, 선거 패배에 불복한 트럼프 지지자들은 국회의사당을 점거했고 트럼프는 지지자들의 정치 테러를 독려했다. 이는 21세기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50년 넘게 보장된 투표권. 6만 3천 달러의 1인당 GDP. 사회과학 이론에 따르면 미국의 민주주의는 절대 무너질 수 없었다. 그러나 지지자는 물론이고 전직 대통령과 공화당 주류 정치인까지 선거에 불복하면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급격히 후퇴하고 말았다. 공고해 보였던 미국 민주주의 체제는 왜 위험에 빠진 것일까? 이 책은 미국의 헌법, 선거 제도, 현대사와 함께 프랑스, 헝가리, 태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합법적으로’ 무너진 과정을 살펴보면서 극단적 사상을 가진 소수가 어떻게 상식적인 다수를 지배하게 되는지 파헤친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파괴하는 범인은 누구인가?
겉으로만 민주주의자인 이들과 극단주의 세력의 위험한 동맹
저자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움직임 뒤에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 그리고 변화를 막는 낡은 민주주의 체제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허점으로 가득한 낡은 민주주의 체제가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의 손에 들어갈 때 민주주의는 치명적인 결과를 맞이한다.
그런데 “충직한 민주주의자”(loyal democrat)와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semi-loyal democrat)의 차이는 무엇일까? 민주주의자는 세 가지 기본 원칙을 지켜야 한다. 선거 결과에 승복할 것. 권력 쟁취를 위해 폭력을 사용하지 말 것. 극단주의 세력과 동맹을 맺지 말 것. 충직한 민주주의자는 평화롭게 권력을 이양하며, 정당한 경쟁으로 권력을 차지하고, 같은 진영이라 해도 극단주의 세력과 단호히 관계를 끊는다.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은 앞의 두 원칙을 지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넥타이 차림의 주류 정치인이며 민주주의에 노골적으로 반대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극단주의 세력을 묵인하거나 은밀하게 지원하면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들을 파괴한다.
1934년 2월 6일, 재향군인회, 청년애국단, 프랑스행동 등의 단체에 소속된 수만 명의 젊은 남성들이 프랑스 국회의사당을 습격했다. 그들은 의회 해체와 보나파르트파 정부 복귀를 주장하며 의회로 진입했고, 수많은 이들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다. 이들의 정치 테러보다 치명적인 것은 주류 정치인들의 반응이었다. 프랑스의 주요 정당인 공화연맹당은 습격에서 발생한 폭력을 가볍게 치부한 것을 넘어 폭도들을 “순교자”로 치켜세웠고, 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방해하며 조사 결과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조정하였다. 명백한 정치 테러는 순식간에 정쟁의 대상이 되었고 극단주의 세력의 폭력은 주류 정치권으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1934년 프랑스 국회의사당 습격, 그리고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주류 정치권이 극단주의 세력과 동맹을 맺을 때 극단주의는 헤게모니를 쥘 수 있는 동력을 얻는다.
그들은 민주적인 절차를 따랐을 뿐이다
극단주의자의 무기가 된 민주주의 체제의 허점과 한계
시대정신을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체제는 극단주의자와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의 강력한 무기다. 미국에서 헌법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 여겨진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정교하게 설계한 헌법 덕분에 권력의 균형을 이루고, 자유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의 기원을 살펴보면 그러한 인식이 오해라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의회 구성과 선거인단 제도는 노예 소유주들을 설득하기 위한 타협과 반다수결주의의 산물이다. 노예제 유지를 원했던 미국의 몇몇 주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면 연방에서 탈퇴하겠다고 협박했고, 이는 미국을 외부의 공격에 취약하게 만들 위험이 있었다. 결국 노예제가 있는 주들은 투표를 할 수 없는 노예들까지 투표 인구로 인정받아 매사추세츠에 비해 투표 인구가 더 적은 버지니아가 매사추세츠보다 다섯 석을 더 차지하게 되었다. 의회 의석수에 비례한 선거인단 제도로 대통령을 선출하게 되면서, 대선에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물론이다. 인구수에 비례하지 않은 의석수, 간접선거나 다름없는 선거인단 제도는 지금까지 유지되어 오면서 남부와 백인의 표만으로 다수 의석과 대통령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만든다. 도널드 트럼프와 공화당이 여성과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를 남발하고도 권력을 쟁취할 수 있는 이유다. 실제로 2000년 조지 W. 부시, 2016년 도널드 트럼프는 경쟁자보다 더 적은 표를 얻고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패자가 승자가 된 것이다.
다수가 아닌 특정한 소수의 편을 들어주는 제도로 인해 변화를 향한 다수의 의지가 묵살되는 일이 연이어 발생한다. 트럼프가 임명한 대법관들로 구성된 대법원은 헌법에 보장된 임신중단권을 폐기해버렸다. 미국인 55퍼센트가 낙태 합법화에 찬성하고, 39퍼센트만이 반대를 했음에도 대법원은 임신중단권을 국가가 아닌 각각의 주가 결정할 문제로 만들었다. 선거구를 특정 정당에 유리하게 구획하는 게리맨더링에 대해서도 대법원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판결하면서, 적은 표를 얻고도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부조리가 발생할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필리버스터 역시 소수의 지배를 강화하는 무기이다. 미국의 상원에는 입법을 위해 60표 이상을 요구하는 “압도적 다수 원칙”이 있다. 찬성이 60표 미만일 때 소수의 의원들은 필리버스터를 통해 입법을 가로막을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미국 정치사에서 투표권 확대, 임신중단권, 총기 규제 등을 위한 법안이 50퍼센트 이상의 표를 받았음에도 필리버스터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다. 민주적이라고 알려진 수많은 제도는 사실 사회적 소수자가 아닌 극단적 소수에게 혜택을 부여하며, 반동을 꿈꾸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준다.
소수의 권리를 위한 것인가, 당파적 이익을 위한 것인가?
익숙한 법과 제도에 담긴 민주주의 붕괴의 씨앗
민주주의에서 다수의 힘을 제한하기 위한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개인의 자유라는 영역에서 그렇다. 선출된 정부라고 해서 우리가 특정 신에게 예배를 드리도록 강요할 수 없고,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영화를 보고, 대학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 판단해선 안 된다. 또한 개인이 어떤 인종이나 성과 결혼해야 할지 결정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적은 표를 얻은 이가 많은 표를 얻은 이 대신 공직에 오르고, 의회 다수가 결정한 법안이 소수의 의원에게 가로막히고, 소수의 극단적인 의견에 끊임없이 귀를 기울여야 하는 상황 역시 민주주의의 제어 장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저자들은 “소수를 보호하고 민주주의를 보전하는 제도”와 “특권을 가진 소수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제도”를 엄연히 구분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우리가 관습적으로 따르고 찬양하는 제도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것을 촉구한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횡포. 특정 집단을 과도하게 대표하는 선거. 선택적으로 규정되는 합법과 불법. 이 책은 우리가 신성하게 여겨왔던 정치 체제가 실은 타협과 한계로 가득한 제도라는 것을, 때문에 반동을 꿈꾸는 이들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다양한 구성원이 공존하는 민주주의 국가가 되느냐, 소수만이 권리를 누리는 독재 국가가 되느냐? 세계 인구의 절반이 투표소로 향할 슈퍼 선거의 해, 저자들은 민주주의의 운명이 바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강력하게 경고한다.
책속에서
1월 6일, 미국인들은 상상조차 힘든 장면을 목격했다. 그것은 미국 대통령이 나서서 부추긴 폭동이었다. 이로써 4년에 걸친 민주주의 퇴보가 쿠데타 미수로 정점을 찍었다. 그 광경을 지켜봤던 많은 미국인은 다른 나라 국민들이 그들의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 느꼈던 공포와 혼란, 분노의 감정을 똑같이 느꼈다. 정치적 목적으로 시작된 폭력의 흐름, 선거 운동원에 대한 위협, 투표를 더 힘들게 만든 갖가지 시도,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는 대통령의 획책 등 미국인들이 목격한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민주주의의 퇴보였다. _ 〈들어가며〉 중에서 P. 12
미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퇴보했는지는 우리에게 섬뜩한 느낌을 안겨다준다. 오늘날 여러 기관은 전 세계 민주주의 수준을평가해서 수치적인 결과로 제시한다. 가령 프리덤하우스 FreedomHouse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지원으로 1941년에 워싱턴 DC에 설립된 비정부기구-옮긴이)는 세계자유지수Global Freedom Index 로 매년 전 세계국가를 0~100점으로 평가한다. 여기서 100점은 최고의 민주주의를 뜻한다. P. 15
미국은 2015년에 90점을 받았고, 이는 캐나다와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일본, 스페인, 영국 등과 비슷한 점수였다.
그러나 미국의 점수는 이후로 꾸준히 하락해서 2021년에 83점을 받았다. 이는 서유럽의 모든 기존 민주주의 국가들뿐 아니라, 아르헨티나와 체코공화국, 리투아니아, 타이완 등 새롭게 등장한, 혹은 역사적으로 많은 고난을 겪은 민주주의 국가들보다 낮은 점수였다. P. 16
또한 왜 미국의 민주주의가 퇴보에 특히 취약한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핵심 제도를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 미국에서 시대에 역행하는 유권자는 유럽과 마찬가지로 소수에 불과하다. 이는 중요하지만 종종 간과되는 사실이다. 트럼프가 이끈 공화당은 유럽의 급진적인 우파 정당들처럼 ‘언제나‘ 정치적 소수를 대변했다. 그러나 유럽 내 극우 정당과는 달리 트럼프의 공화당은 대선에서 승리를 거뒀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를 또 다른 불편한 진실에 직면하도록 만든다. 그것은 미국이 오늘날 직면한 문제의 일부가 많은 이들이 숭배하는 대상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다름 아닌 미국헌법을 말한다. 미국의 성문 헌법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정치 기술자들의 탁월한 작품인 미국 헌법은 안정과 번영의 근간이 되었다. 그리고 2세기가 넘게 영향력이 막강한 야심 찬 대통령들의 힘을 성공적으로 견제했다. 하지만 이러한 헌법에 내재된 결함이 오늘날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트리고 말았다 P. 20
두려움은 때로 사회를 독재로 되돌리려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정치권력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더 중요하게는 기존의 지배적인 사회적 지위를 잃어버리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바로 그러한 힘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주류 정당이 이러한 두려움 때문에 민주주의로부터 등을 돌리게 된다면, 정확하게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일까? _ 〈1장 패배에 대한 두려움〉 중에서 P. 52
충직한 민주주의자가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동을 일관적이고 확고하게 거부하는 데 반해,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는 다소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그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움직인다. 즉, 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폭력이나 반민주적 극단주의에 눈을 감는다. 이러한 애매모호한 태도야말로 그들이 그토록 위험한 이유다. _ 〈2장 독재의 평범성〉 중에서 P. 64
선거 당일에 백인통치연합은 지역 투표소에 선거 “감시인”을 파견했고, 지역 신문들은 흑인들에게 투표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붉은 셔츠단은 말을 타고 거리를 활보했다. 집 밖을 나선 흑인은 거의 없었다. 용감하게 투표소로 향한 흑인들 대부분은 총구의 위협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흑인 주민이 많은 지역에서는 민주당 암살단이 투표가 끝난 뒤 투표소로 난입해서 선거 관리원을 협박하고 그들이 가져온 투표 용지로 투표함을 채워넣었다. 놀랄 것도 없이 민주당은 압승을 거뒀다. 주 의회 총 118석 중 98석을 차지했다. _ 〈3장 이 땅에서 벌어진 일〉 중에서 P. 105
재건주의가 막을 내리고 한 세기가 흐른 1963년 11월, 린든 존Lyndon Johnson 대통령은 상하원 합동 의회 연단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나라에서 평등한 권리에 대해 충분히 오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백 년, 혹은 더 오랫동안 논의했습니다. 이제 다음장을 써 내려갈 시간이, 그리고 그 이야기를 법전에 기록해야할 시간이 왔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존슨의 민주당은 남부 보수 진영을 넘어선 자유주의 계파와 더불어 시민권을 옹호하는 정당이 되었다. 재건시대가 미국의 ˝두 번째 건국˝이라면, 시민권법(1964)과 투표권법(1965)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낸 법원의 판결과 개혁의 노력은다인종 민주주의를 위한 탄탄한 법적 토대를 마련한 ˝세 번째 건국˝이었다 P. 137
도널드 트럼프가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엎으려는 시도를 감행하기 한 달 전, 공화당 핵심 상원 의원인 마이크 리Mike Lee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이렇게 의문을 던졌다. ˝자유와 평화, 번영과는 달리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그리고 트위터에다가는 이런 글을 올렸다. ˝우리는 인류가 살아가는 세상이더 번영하길 기원한다. 그러나 계급 민주주의가 이를 가로막을것이다.˝
미국의 공화당은 수십 년간 영국의 보수당이나 캐나다의 보수당, 혹은 독일의 기독민주당처럼 주류 중도 우파 정당이었다. 공화당 지도부는 전반적으로 민주주의를 향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그렇지 않았다.
전 세계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Vari-eties of Democracy) Institute는 전 세계 주요 정당들을 대상으로 매년 ˝반자유주의 illiberalism˝ 점수를 발표한다. 이 점수는 다원주의와 시민권, 야당에 대한 관용, 정치적 폭력에 대한 거부와 같은 민주주의규범으로부터 정당이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P. 139
선거 결과를 부정한 트럼프와 측근들
앞서 우리는 민주적인 정당이 따라야 할 세 가지 기본 원칙을살펴봤다. 민주적인 정당은 승패를 떠나 공정한 선거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권력을 차지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폭력을동원하는 방안을 분명하게 거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반민주적인 극단주의자와 손을 잡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공화당은 어땠는가?
선거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원칙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중요한 민주주의 원칙은 없다. 선거에서 패했을 때, 정당은 경쟁자의 승리를 인정하고, 조직을 재편하고, 잃어버린 다수를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공화당은 그러한 일을 하기 위한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P. 175
도널드 트럼프가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역사는 오래되었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지지자들에게 선거 제도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훼손되었다고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대선 토론을 포함해서 여러 기회를 통해 자신이 패한다면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P. 176
2016년 보통선거에서 패한 이후로 트럼프는 선거 결과를 부정하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불법적으로 투표한 사람들의 수백만 표를 제외한다면 나는 투표에서 이겼다.˝ 또한 2018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를 거두자트럼프는 사기를 주장했다. ˝
이러한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선거 결과를 부정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2020년 공화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트럼프는 이렇게 주장했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이번 선거를 앗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부정 선거뿐입니다.˝ 트럼프는 가을선거 운동 기간 내내 그 주장을 되풀이했다.
2020년 11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선거 패배에 대한 인정을 거부했다. 선거 당일 늦은 밤, 투표 집계 결과가조 바이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선거는 ˝미국 사회에 대한 사기이며(・・・) 우리는 선거에서 이길 준비가 되어 있다. 솔직하게 말해서,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이겼다. (...)
이 선거는 우리나라에 대한 거대한 사기다˝ ˝트럼프는 자문들의 만류에도 선거 결과를 공식적으로 부인하면서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2개월 동안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고 했으며, 수십 명의 주지사와 선거관리위원회 위원들, 주 의회 간부들을 대상으로 선거 결과를조작하거나 무효화하도록 압박했다. P. 176
헌법에 대한 환상
미국인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헌법은 신성한 문헌이며, 그래서 존경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배운다. 그리고 미국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여러 제도는 거대한 설계, 즉 공화국이 효율적으로 기능하도록 만들기 위해 치밀하게 구성한 청사진의 일부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타협과 양보, 그리고 이를 위한 차선책의 역사를 흐릿하게 만든다. 또한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핵심 제도,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중요하지 않으며 심지어 반민주적이기까지 한 제도를 혼동하게 만든다.
근본적인 다양한 제도를 견제와 균형을 위한 일관적이고 고정된 하나의 집합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고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규칙, 그리고 특권을 지닌 정치적 소수가 선거와 입법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도록 힘을 실어주는 규칙을 혼동하게 된다. 전자는 민주주의를 위해 꼭 필요하지만, 후자는 민주주의와 모순을 이룬다.
여론조사 결과는 미국인 다수가 대단히 포괄적인 가치를 인정하며, 다인종 자유 민주주의 원칙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미국의 제도는 이러한 다수를 좌절시키고 있다. 한 유명 정치평론가는 약 75년 전 이렇게 지적했다. ˝미국인다수는 사자의 목줄에 영원히 묶인 채 살아가는 순한 양치기 개다. ˝ 오늘날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해방된 다수가 아니다. 그것은 ‘족쇄를 찬 다수‘다. P. 238
소수는 때로 정치 싸움에서 다수를 좌절하게 만들거나 일시적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이러한 일은 민주주의 정치에서 일반적인 협상을 통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소수가 ‘계속해서’ 거대 다수를 이기거나 정책을 강요하는 것, 나아가 그 시스템을 이용해서 자신의 우위를 굳건하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그곳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소수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_ 〈6장 소수의 독재〉 중에서P. 247
당시 새롭게 떠오른 여러 민주주의 국가들 역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귀족적인 형태의 상원을 모두 폐지했다. 뉴질랜드는1950년에 상원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입법위원회를 없앴다. 그리고 덴마크는 국민투표를 거쳐 1953년에 19세기 상원Landsting을 폐지했다. 스웨덴도 1970년에 그 흐름을 따랐다. 21세기 초에 전세계의회의 2/3가 일원화되었다. 하지만 상원 제도를 옹호하는 이•들이 종종 경고했던 정치적 혼란과 마비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뉴질랜드와 덴마크,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민주적인 3대 국가로 거듭났다. 접기 - 은하수P. 302
오늘날 독일에서 작은 규모의 주들은 세 명의 대표를, 중간 규모의 주들은 네 명을, 그리고큰 규모의 주들은 여섯 명의 대표를 상원으로 보낸다. 독일의 전후헌법 설계자들은 바로 이러한 방식을 바탕으로 연방주의 원칙과민주주의 원칙을 하나로 통합했다.
20세기 민주주의 국가 대부분은 다수의 의결만으로 의회 토론을 끝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의회 ‘내부에서 소수의 방해를 제한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는 ‘토론 종결cloture‘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원래 ˝토론 종결˝이라는 용어는 프랑스 제3공화국 시절초기에 처음 사용되었다. -P. 303
우리가 제시하는 개혁안이 급진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덴마크와 독일, 핀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스웨덴과 같은 큰 성공을 거둔 대다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미 자리를 잡았다. 투표를 더 쉽게 만들고, 게리맨더링을 없애고, 선거인단 제도를 직접적인 보통선거로 대체하고, 상원 필리버스터를 없애고, 상원을 보다 비례적으로 만들고, 대법원 종신제를 폐지하고, 헌법 수정을 좀 더 쉽게 만드는 개혁. 이 모든 변화를 통해 미국은 세상의모든 나라를 따라잡게 될 것이다. P. 341
1920년 헌법 수정 제 19조로 이어졌던 (백인) 여성 참정권 운동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운동은 단기적인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전미여성참정권연합 National AWoman Sutrage Association 대표이자 여성유권자연맹 설립자, 그리고 수정헌법 제19조의 주요 설계자인 캐리 채프먼 카트Camie Chapman Catt는 수정헌법 제19조가 ˝상상력이 부족한 거리의 남성들에게는 난데없이 등장한 것처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제19조는 난데없이 등장하지 않았다.
그것은 두 세대 이상을 아우르는 여성 운동가들이 벌인 투쟁의 산물이었다. 카트는 이렇게 주장했다. P. 354
헌법에서 남성male 이라는 단어를 없애기 위해 이 나라의 여성은52년간 끊임없이 운동을 벌여야 했다. 그동안 여성들은 남성 유권자를 대상으로 56번의 국민투표 캠페인, 의회가 유권자에게 투표권 수정안을 내놓도록 촉구하는 480번의 캠페인, 여성 참정권을 주 헌법에 포함시키기 위해 주 헌법회의를 촉구하는 47번의 캠페인, 주정당 집회가 여성 참정권 조항을 상정하도록 설득하는277번의 캠페인, 대선 정당 회의가 여성 참정권 조항을 정당의 강령으로 채택하도록 촉구하는 30번의 캠페인, 19번의 연속적인 의회와 함께한 19번의 캠페인을 벌여야 했다. 수백 명의 여성이평생에 걸쳐 쌓아온 가능성을 보여줬고, 수천 명의 여성이 평생을바쳤으며, 수십만 명의 여성이 최선을 다해 끊임없는 관심과 지속적이고 끝이 없어 보이는 활동의 연속이었다.
그 흐름의 마지막 고리를 연결하는데 기여한 젊은 나이에 젊은 여성 참정권론자들은 그 운동이 시작될 무렵에 태어나지도 않았다. 그리고그 연속의 첫 번째 고리를 만들어낸 나이 많은 여성 참정권론자들은 그 운동이 끝났을 때 이미 세상에 없었다.˝P. 355
여성 참정권 운동이 직면한 또 하나의 과제는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백인 상류층 민족주의였다. 그러나 1900년 무렵부터 카트와 같은 지도자는 또 한 번의 전환을 통해 참정권이 문맹에서 열악한 공중위생, 그리고 아동 노동에 이르는 다양한 사회적 병폐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엘리트 상류층이 중심이 된운동을 노동조합 운동가와 최근 이민자, 여성 사회주의자, 인보관 운동settlement movement, 흑인 여성 클럽을 기반으로 조금씩 확장해 나가는 운동으로 바꿔 놨거든.˝P. 356
계엄령에 반대한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8년 전 도널드 트럼프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문제는 트럼프인 것 같았다. 하지만 올해 11월 트럼프가 제47대 대통령으로 재선되면서 문제는 트럼프가 아니라 트럼피즘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제 트럼프가 없더라도 트럼피즘은 건재할 것이다. 히틀러의 죽음과 함께 나치즘도 따라 순장되었던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본다면 이것은 매우 주목할 사실이다.
한국의 진보·좌파 인사들의 트럼피즘 해석은 하나같다. 민주당이 “백인 노동자들의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거다. 이런 분석은 더불어민주당이 좀 더 노동자와 서민의 정당이 되기를 주문하기 위한 국내용 해석으로, 미국에서 트럼피즘이 세력을 얻게 된 특수성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렇지만 국내의 진보·좌파가 한입으로 말하는 트럼프의 당선 비결이 아주 엉뚱하지만은 않다. 미국의 진보 진영 일각에서도 백인 노동자 계층의 분노가 트럼피즘의 표밭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투표장에서 자신이 먼저 버린 노동계급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지난 선거에서는 백인 노동자들의 표를 잃더니, 이번에는 라틴계, 흑인 노동자들의 표까지 잃었다. 미국인들은 지금의 부조리에 분노하며 변화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현상 유지를 우악스럽게 고집했다. 유권자들의 선택은 옳았다(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민주당에 주어진 임무는 단 하나, 불평등과 싸우는 것이다. 바로 눈앞에 이토록 극심한 불평등이 보란 듯이 존재하는데, 많은 민주당 사람들은 이를 보지 않았다. 많은 좌파가 인종 불평등, 젠더 불평등, 성소수자 불평등에 집중했다. 좌파가 정체성 행위예술로 방향을 트는 사이 트럼프는 두 발 벗고 계급 전쟁에 뛰어들었다(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라틴계와 흑인 노동자의 표를 좀 더 얻었다지만 그 표는 트럼프의 반이주민·흑인 억압 정책과 융화될 수 없다. 흑인과 라틴계 하층민이 투표를 하려면 공화당이 그들의 투표를 가로막기 위해 만든 유권자 신분확인법 등 무수한 난관을 넘어야 한다. 라틴계든 흑인이든 그들이라고 중상류층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고, 중상류층이 되면 공화당원이나 된 듯 공공의료와 소수자 우대 정책을 반대한다. 트럼프를 지지했던 라틴계와 흑인의 성향이 좀 더 분석되어야 하는 이유다.
미국의 주류·보수층과 노동계층이 다 함께 민주당의 정체성 정치에 넌더리를 냈다지만, 미국의 주류·보수층이 일관되게 행사해온 ‘백인-기독교-반공주의’라는 정체성 정치는 어째서 문제삼지 않는가. 2009년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직후 출범한 티파티 운동은 수백 개의 지방 조직과 50만명에 달하는 회원을 모았다. 이후 지지자 4500만명을 모은 티파티는 오바마를 무슬림으로 모함하는 것을 넘어 미국과 미국 기독교를 파괴하라고 사탄이 지명한 ‘적그리스도’이자 ‘빨갱이’로 규정했다.
트럼피즘의 출생지는 인종주의
트럼피즘의 출생지는 러스트벨트(쇠락한 제조업 지대)가 아니다. 그 자신이 유명한 버서(birther: 2008년과 2012년 대선 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미국 태생이 아니기 때문에 피선거권이 없다고 주장하는 음모론가들)였던 트럼프는 티파티 운동에서 자기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줄 구호를 찾아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 말이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미국은 누구의 미국일까? 이 질문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가 없다면 트럼프는 샌더스와 브룩스가 말한 그대로, 무려 미국의 마르크스요 엥겔스일 것이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트럼프 1기 행정부가 건재하던 2018년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어크로스, 2018)를 출간했고, 트럼프가 낙선한 뒤인 2023년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어크로스, 2024)를 출간했다. 지은이들은 앞의 책 243쪽에서 트럼프가 전쟁이나 테러를 활용하여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리라 우려했으며, 뒤의 책 192쪽에서 트럼프가 주도하는 공화당이 다시는 미국에서 다수 지위를 차지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했다. 두 사람은 정치적 노스트라다무스가 되는 데 실패했지만, 두 책을 통해 트럼피즘을 떠받치는 두 기둥 가운데 한 기둥을 분석하는 일만은 성공했다.
미국의 양당제도가 남북전쟁 이후 상호 관용·이해·자제라는 미국식 민주주의 규범에 의해 유지되어온 것은 인종문제를 논의의 테이블에서 치워버린 결과 이루어진 것이었다. 민주당과 공화당뿐 아니라 미국의 정치와 국민이 그동안 정치적 양극화(적대)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이나, 세계인들이 미국에서 민주주의의 모범을 찾을 수 있었던 것도 다 인종문제를 덮어두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위선된 민주주의 규범은 1960년대 남부의 흑인 차별법인 짐크로법을 철폐하기 위한 시민권 혁명으로 흔들리기 시작했고, 2008년 오바마가 아프로-아메리카인으로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완전히 깨졌다. 게다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인종적 수직 체계에서 맨 꼭대기에 있던 ‘백인-기독교’의 지위가 유색인에 의해 점차 평평해지는 시점에서 결핍과 위기를 느낀 백인들이 매달린 데가 트럼피즘이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의 마지막 문장이다. “다민족 민주주의는 미국의 중차대한 과제다. 지금 여기서 후퇴할 수는 없다.” 인종주의가 트럼피즘의 한 기둥이라면 다른 하나의 기둥은 기독교다.
이 글의 나머지 두 문단을 남겨두었을 때, 출근을 하려고 일어난 동거인으로부터 지난밤(12월3일) 22시23분경,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이후,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쌓았던 대한민국의 정치·경제·문화적 브랜드 가치는 열등생의 자해로 한순간에 무너졌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달려간 시민, 계엄령 해제 요구 결의안을 상정하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모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그리고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안에 표를 보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 18명에게 감사한다. 특히 한동훈과 18명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을 대신하여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의 67쪽 마지막 문단을 바친다. 지은이들도 크게 기꺼워하리라.
“충직한 민주주의자는 필요한 경우에 반드시 반민주적인 극단주의자를 고립시키거나 물리치기 위해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경쟁 정당과 손을 잡는다. 이는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충직한 민주주의자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폭넓은 연합을 형성하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나 정책적 목표를 내려놓는다. 반면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는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조차 이념적인 경쟁자와의 협력을 거부한다.”
장정일 (소설가) 시사인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스티븐 레비츠키 , 대니얼 지블랫 저자(글) · 박세연 번역 어크로스 · 2024년 01월
목차
들어가며: 모든 민주국가에 던지는 경고
1장 민주주의자와 극단주의자의 치명적 동맹
2장 무력화된 정당
3장 왜 정치인들은 잠재적 독재자를 방조하는가
4장 합법적으로 전복되는 민주주의
5장 민주주의를 지켜온 보이지 않는 규범
6장 민주주의에 감춰진 시한폭탄
7장 규범의 해체가 부른 정치적 비극
8장 트럼프의 민주주의 파괴
9장 민주주의 구하기
감사의 글
주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극단주의 포퓰리스트는 어떻게 권력을 잡는가: 정당의 약화와 정치인의 타락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고, 반민주적인 말과 행동을 일삼는 포퓰리스트들은 늘 있었다. 그들 가운데 다수는 권력을 잡는 데 실패했지만 일부는 성공했다. 미국의 트럼프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트럼프를 비롯해 극단주의 포퓰리스트들은 어떻게 권력의 중심부에 다가갈 수 있었을까?
이 책에서 저자들은 극단주의자를 선거 전에 걸러내는 정당의 문지기(gatekeeper) 기능이 사라진 것을 이유로 든다. 미국의 경우, 각 정당이 대선 후보를 선택할 때 동료 정치인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이는 분명 비민주적인 방식이었다. 하지만 동료 정치인들만큼 대선에 나서고자 하는 후보 정치인들의 능력과 인격과 이념을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또한 그들은 검증을 통해 민주주의를 파괴할 가능성이 높은, 정치 경험 없는 대중선동가와 극단주의자를 철저히 가려냈다. 히틀러를 지지했던 포드자동차 설립자 헨리 포드 같은 인물이 시민들 사이에서 큰 지지를 얻었음에도 대선 후보가 될 수 없었던 이유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얘기가 달라진다. 각 정당은 더 민주적인 방식을 채택한다는 명목으로 프라이머리를 확대해, 당 지도부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대선 후보를 선출하게 했다. 후보를 검증하는 정당 기능은 크게 약해졌다.
저자들은 정당의 문지기 기능이 허약해질 때, 주류 정치인들이 권력의 중심에 위험 인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았을 때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발생한다. 독자들은 이 책에 등장하는 히틀러와 무솔리니부터 페루의 후지모리,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등을 거쳐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며, 정당과 정치인들이 어떻게 잠재적 독재자들을 방조했고 그것이 어떻게 민주주의의 파괴로 이어졌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모든 민주주의는 유사한 방식으로 무너진다”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가 보내는 경고신호
잠재적 독재자는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선출된 독재자는 어떤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며, 독재자가 집권하기 전까지 어떤 징후들이 나타날까? 이 책의 저자들은 세계 여러 나라의 경우를 비교한 끝에 민주주의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과정을 거쳐 무너졌음을 발견했고, 몇 가지 신호를 패턴화했다.
-잠재적 독재자를 감별하는 네 가지 신호
많은 독재자는 권력을 쥐기 전에 독재 조짐을 드러낸다. 히틀러와 차베스는 무장봉기를 일으켰던 적이 있고, 무솔리니는 의회를 대상으로 한 폭력에 가담했다. 하지만 모든 독재자가 이런 두드러진 특징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민주주의 규범을 성실히 따르다 나중에 본색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잠재적인 독재자를 감별할 수 있는 네 가지 경고신호를 개발했다. 말과 행동으로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하는가, 경쟁자의 존재를 부인하는가, 폭력을 용인하거나 조장하는가, 언론의 자유를 포함하여 반대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 드는가. 주로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 정치인들이 이에 해당하며, 책에는 더 구체적인 항목의 독재자 감별법이 제시되어 있다.
-심판 매수, 비판자 탄압, 운동장 기울이기
선출된 독재자는 심판을 매수하고, 비판자와 경쟁자를 탄압하며, 운동장을 기울인다. 이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기에 시민들 다수가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심판 매수는 주로 공직자나 비당원 관료를 해고하고 측근을 임명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헝가리 빅토르 오르반 총리의 경우 검찰과 감사원, 헌법재판소 등을 친 여당 인사로 채워 넣었다. 다음으로 비판자와 경쟁자는 입막음을 당한다.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는 일간지 〈엘 우니베르소〉가 자신을 ‘독재자’로 칭하자 4천만 달러의 명예훼손 소송을 걸어 승소했고, 터키의 에르도안과 러시아의 푸틴은 법률을 활용해 각각 자신에게 비판적이고 야당에 우호적인 언론 대기업 도안 야인과 NTV 소유주에게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는 등의 방법으로 경영권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한발 더 나아가 독재자는 게임의 규칙을 바꾼다. 저자들은 말레이시아와 헝가리의 게리멘더링, 미국에서의 흑인 선거권 제한 등을 사례로 제시한다.
-무조건적 반대, 권한 남용, 반국가 세력 낙인 찍기
칠레에서 좌파 아옌데가 집권했을 때, 처음부터 우파 진영은 그를 끌어내리는 데 혈안이 되었다. 자신의 사회주의 정책을 제대로 펼 수 없게 된 아옌데는 의회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 직속 권한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려 했고, 야당이 다수였던 의회는 아옌데가 임명한 장관들을 해임했다. 아옌데의 측근들은 야당을 ‘파시스트’ 또는 ‘국민의 적’이라고 불렀으며, 야당은 아옌데 정부를 ‘전체주의 정권’이라 불렀다. 서로를 적대하며 극단의 대립과 혼란으로 치달은 끝에 군부가 등장해 17년 동안 칠레를 지배했다. 저자들은 미국에서도 오랜 시간 동안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 이와 유사한 대립이 있었음을 보여주며, 미국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했다는 신호가 진작부터 존재했음을 말한다.
잘 설계된 헌법이 민주주의를 지킨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제도가 아닌 규범이다
한 설문조사에서 미국인들의 85퍼센트가 ‘헌법’이 지난 세기 동안 미국이 번영할 수 있었던 핵심 기반이라고 응답했다. 실제 균형과 견제를 바탕으로 한 미국 헌법 체계는 지도자가 권력을 함부로 독식하거나 남용하지 못하도록 설계되었고, 대체로 잘 작동되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아무리 잘 설계된 헌법이라도 민주주의를 지킬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 책에 나오는 민주주의 붕괴를 경험한 유럽과 중남미 여러 나라에는 미국 헌법과 크게 다르지 않은 훌륭한 헌법이 있었으며, 미국 민주주의 역시 트럼프의 당선으로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두 저자에 따르면 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고, 그 가운데서도 핵심 역할을 하는 건 ‘상호 관용(mutual tolerance)’과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다. 상호 관용은 자신과 다른 집단과 의견도 인정하는 정치인들의 집단 의지를 뜻하며, 제도적 자제는 주어진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를 뜻한다. 둘 모두 언뜻 보면 매우 당연한 개념인 것 같지만 이 규범들이 무너질 때 민주주의도 함께 허물어진다. 저자들은 스페인 좌파 공화당과 우파 세력 간의 대립 끝에 일어난 내전을 규범 파괴로 인한 민주주의 붕괴의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한다. 무엇보다 트럼프의 당선 역시 민주주의를 지켜오던 두 규범이 무너지면서 정치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달은 끝에 만들어진 결과임을, 200년 미국 민주주의 역사 속 규범의 형성과 정착, 파괴 과정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책 속으로
경고신호를 인식하고 위험한 신호를 가려내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 배워야 한다. 또한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를 파멸로 몰아갔던 치명적인 실수를 인식하고, 다른 나라의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에 맞서 어떻게 저항했는지, 그리고 민주주의 붕괴를 막기 위해 어떻게 뿌리 깊은 양극화를 극복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역사는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다. 하지만 거기에는 패턴이 있다. (p.16) -들어가며: 모든 민주국가에 던지는 경고
잠재적 대중선동가는 모든 민주주의 사회에 존재하며, 때로 그들은 대중의 감성을 건드린다. 그러나 어떤 사회에서는 정치 지도자들이 경고신호를 인식하고, 이러한 인물들이 권력의 중앙 무대로 올라서지 못하도록 방어한다. 극단주의자나 선동가가 대중의 인기를 얻었을 때 기성 정치인들은 힘을 합쳐 그들을 고립시키고 무력화한다. (p.29) -1장 민주주의자와 극단주의자의 치명적 동맹
프라이머리는 분명하게도 더욱 민주적인 방식이었다. 그런데 혹시 ‘지나치게’ 민주적인 방식은 아닐까? 대선 후보 지명을 오로지 투표자의 손에 맡겨둠으로써 구속력 있는 프라이머리는 정당의 문지기 역할을 약화했고, 동료에 대한 평가 절차를 생략함으로써 아웃사이더에 문을 열어놓았다. (p.66) -2장 무력화된 정당
‘집단적 포기collective abdication’, 다시 말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인물에게 권력을 넘기는 행동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잠재적 독재자를 통제하거나 길들일 수 있다는 착각이다. 둘째, 사회학자 이반 에르마코프Ivan Ermakoff가 ‘이념적 공모ideological collusion’라고 부른 개념으로, 이는 집단적 포기를 택한 주류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잠재적 독재자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는 경우에 해당된다. (p.86) -3장 왜 정치인들은 잠재적 독재자를 방조하는가
독재 정권은 종종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혐의로 소송을 함으로써 반정부 성향이 강한 언론을 ‘합법적으로’ 경기에 뛰지 못하게 막는다. 에콰도르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는 이러한 기술에 특히 능했다. 2011년 코레아는 주요 일간지 〈엘 우니베르소El Universo〉가 자신을 ‘독재자’라고 칭한 사설을 게재한 것에 대해 4천만 달러의 명예훼손 소송을 걸었고, 승소했다. (p.108) -4장 합법적으로 전복되는 민주주의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는 밀접하게 얽혀 있다. 이 둘은 때로 서로를 강화한다. 정치인이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받아들일 때 그들은 자제의 규범도 기꺼이 실천하려 든다. 또한 경쟁자를 위협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 정치인은 상대를 권력 경쟁에서 퇴출시키려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자제 규범의 실천(가령 민주당 대통령이 제시한 연방대법원 판사 임명안을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이 통과시킨 것처럼)은 스스로 관용적인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줌으로써 선순환을 이뤄낸다. (p.143) -5장 민주주의를 지켜온 보이지 않는 규범
미국 정치 시스템을 떠받치는 규범은 사실 인종차별에 의존해왔다. 재건 시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 사회의 평화는 그 원죄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다시 말해 1877년 타협과 이후로 이어진 남부 지역의 반민주화 흐름, 그리고 흑인 차별법인 짐 크로 법을 근간으로 삼았다. 인종차별은 20세기 미국 정치의 특성을 규정했던 정당의 협력과 태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p.181) -6장 민주주의에 감춰진 시한폭탄
뉴트 깅리치에서 도널드 트럼프에 이르는 공화당 정치인들은 양극화된 사회에서 경쟁자를 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쓸모가 있으며, 정치를 전쟁으로 인식하는 입장이 많은 걸 잃어버릴지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유권자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호 관용과 자제의 규범을 향해 더욱 거세지는 공격은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민주주의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정쟁으로부터 미국 사회를 오랫동안 지켜주었던 연성 가드레일을 흔들고 있다. (p.219) -7장 규범의 해체가 부른 정치적 비극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주의 제도를 직접적으로 허물어뜨리지는 않았다고 해도, 그의 규범 파괴는 분명히 그러한 일을 했다. (...) 취임 후 이어지는 트럼프의 규범 파괴는 미국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대통령의 행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거짓말과 속임수, 탄압 등 예전에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여겨졌던 행동들이 점차 정치인의 전술적 공구함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p.244) -8장 트럼프의 민주주의 파괴
미국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이제 미국 국민은 지금껏 그들의 민주주의를 지켜주었던 기본 규범을 되살려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규범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해야 한다. 규범이 포괄하는 범주를 넓혀가야 한다. 미국 민주주의 규범의 핵심은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그러나 역사의 많은 시간 동안 인종차별과 함께했고, 또한 그것 때문에 유지될 수 있었다. 이제 그 규범이 인종 평등과 전례 없는 민족 다양성 시대에서도 제대로 기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p.289) -9장 민주주의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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