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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더불어 살기

있어 줘서 고마울 뿐

by 이성근 2017. 6. 19.

야생동물에도 귀천이 있다? 있어 줘서 고마울 뿐

크고 귀하면 보호 작고 흔하면 홀대, 재미로 죽이기도   

생명의 가치는 평등, 그들의 존재 자체에 감사해야

 

두꺼비 유생 (3).JPG » 야생을 자유로이 살아가는 모든 동물이 야생동물이다. 늑대나 호랑이처럼 특별한 동물, 멧돼지나 두루미처럼 큰 동물, 황새나 저어새처럼 보호받아야 할 동물뿐만 아니라 아주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모두 야생동물이다. 어린 두꺼비의 모습.

 

집 밖으로 나가 주위를 둘러보면 어떤 야생동물을 볼 수 있을까. 참새, 까치, 비둘기, 다람쥐 흔하디흔한 동물들이지만 이들도 야생동물이다. 야생동물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보호해야 하는 귀한 동물만 야생동물인 것도 아니다. 야생에서 자유로이 살아가는 모든 동물이 야생동물이다. 하물며 작은 들쥐나 개구리, 민물고기도 야생동물이란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무슨 이유에선가 홀대받는 생명이 된 '그들'과 그들을 대하는 '우리'를 돌아본다.

 

자주 접하는 것에 대한 감정은 빠르게 퇴색한다. 부모님의 사랑을 매일 새로이 되새기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고, 출근길 만나는 참새를 보며 매일 가슴 벅찬 사람은 없을 것이.

 

드물고 귀한 것은 오래 기억되지만 흔한 것은 금방 잊힌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검은머리물떼새를 처음 만난 날의 날씨, 주변 풍경과 소음까지 기억나지만 큰고니를 처음 촬영한 날이 언제인지 어디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처음엔 그렇게 벅찰 수가 없었지만 수차례 반복될수록 그 감정은 점점 무뎌졌다. 어찌 보면 짧은 세월을 살아가는 인간에겐 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 그들의 생명을 책임지고 그들의 삶에 개입하는 '야생동물 전문가' 에겐 반드시 경계하고 멀리해야 할 모습이다.

 

검은머리물떼새 (11)-horz.jpg » 감사하고 벅찬 마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검은머리물떼새(왼쪽)와 큰고니.

 

여행비둘기 혹은 나그네비둘기라 불리던 새가 있었다. 한 때, 북아메리카 하늘을 뒤덮으며 이동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개체수가 많았고 이동하는 무리를 일컬어 비둘기 구름이라 부르기도 했다.

 

워낙 수가 많다 보니 멸종에 대한 경계심 따윈 없었고 그들을 사냥하는 것은 일종의 인기 스포츠가 되어 수만 마리가 희생됐다. 결국 1914년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마지막 한 마리가 죽으며 지구 위에서 살아 숨 쉬는 여행비둘기를 다시 볼 순 없게 됐다.

 

Bird_lore_(1913)_(14562557107).jpg » 살아있는 나그네비둘기 암컷의 모습. 휘트먼이 1896~1898년 기르던 개체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우리 주변에도 여행비둘기와 같은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를 동물이 있다. 살아있는 모습보단 싸늘한 주검으로 도로 위에서 더 자주 마주치는 고라니다.

 

고라니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에 취약등급으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국내엔 개체수 조절이 필요할 정도로 많은 고라니가 서식하고 있고 그래서인지 고라니에 대한 연구는 다른 종보다, 심지어 개체수가 훨씬 적은 중국고라니보다 부족하다.

 

그렇다 보니 개체수 조절이라는 명목으로 매년 많은 수가 수렵, 밀렵으로 희생되고 있다. 또 로드킬 하면 떠오르는 동물이 고라니일 정도로 많은 수가 사고를 당하지만 개체수의 변화가 어떤지 알 길이 없다.

 

고라니 로드킬-horz.jpg » 도로에서 만난 고라니(왼쪽)와 야생에서 만난 고라니.유해조수로 미움받는 그들이 안쓰러울 따름이다. 김봉균(왼쪽), 이준석

 

고라니 외에도 까치, 오리, , 비둘기 그리고 야생동물의 범주에 속하진 않지만 거리를 배회하는 개, 고양이까지 많은 종이 흔하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 작아서인지, 그들의 감정을 느낄 수 없어서인지 가벼운 생명으로 취급받는 양서류, 파충류, 어류 그리고 인간에게 피해를 주든 안 주든 상관없이 많은 사람이 재미로 잡고 죽이는 곤충도 그렇다.

 

파리와 모기까지 사랑하라는 것도, 존중하며 살생을 멈추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현실이 어떻든 그들 또한 한 생명이란 사실은 인지해야 하지 않을까. 이 작은 사실은 당연하지만 우리 가슴에 쉽게 새겨지지 않으며, 이 작은 사실이 우리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흰뺨검둥오리-tile.jpg » 우리 주변을 살아가는 수많은 야생동물.그들의 생명에 가치를 매겨선 안 되지만 자신도 모르게 차별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이 있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 정말 그런가. 이 말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현실과 동떨어지게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모든 생명의 가치가 평등하다는 말도 그리 느껴져 안타깝다. 사람 사이에서도 생명의 가치가 나뉘지 않은 적이 없는데 하물며 동물은 오죽할까.

 

꾸미기_KakaoTalk_20170618_230252363-tile.jpg » 태어날 때부터 가격이 매겨지는 동물들. 인간의 욕심은 사그라들 기미가 없다.

 

유해조수인지 아닌지, 개체수는 어떻고 생태적 가치는 어떤지 그러한 이유를 막론하고 한 마리, 한 마리가 우리처럼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생명임을 잊어선 안 된다. 특히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이 매긴 그들의 가치가 어떠하든 그들을 대하는 자세에 다름이 없어야 한다. 물론 어찌할 수 없는 날들이 많겠지만 그래도 애써야만 한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라지만 나무가 있기에 숲이 있고 그들이 있기에 지금의 야생, 생태계가 있다. 우리가 야생의 많은 것들을 누려오던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의 존재에 대해 한 번이라도 감사해 본 적이 있었던가.

 

KakaoTalk_20170618_232414663.jpg »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앞에 선 어린 고라니.

 

6.19 한겨레 물바람 숲 이준석/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연구원

 

차로 치고 새끼 유괴하고고라니의 잔인한 봄

IUCN 취약종 지정, 체계적 조사 없이 우리는 매년 15만마리 죽여

세계서 중국과 한국이 자생지, 중국은 멸종위기에 복원 움직임

 

도로변이 주 서식지인 고라니는 차량과의 충돌 사고가 주요 사인이다. 이맘때 대부분의 암컷은 뱃속에 곧 출산할 새끼를 가지고 있다. 홍천/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야생동물을 맞히는 퀴즈. 수컷의 입에는 기다란 송곳니가 삐져나와 흡혈귀 사슴이란 별명이 붙어 있다. 가장 원시적인 사슴의 하나로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취약종으로 지정한 세계적 보호종이다. 한반도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가 분포하며 해마다 사람이 죽이는 수가 15만 마리에 이른다.

 

정답은 고라니다. 이런 설명이 낯설다면 몇 가지 더 들어보자. 한 살이 채 안 된 나이에 독립해 홀로서기 하는 꿋꿋한 동물, 물가를 좋아해 영어 이름이 물 사슴인 동물, 아무나 잡거나 죽여도 되는 것으로 잘못 알려진 동물, 그리고 한반도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포유류이지만 자칫하다가는 한순간에 사라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동물.

 

최근 김백준 국립생태원 박사 등이 펴낸 <한국 고라니>란 책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김 박사는 전 세계에서 오로지 중국과 한국의 토착종인데 중국에서는 멸종위기이고 한국에서는 갑자기 늘어났지만 과학적인 연구도 체계적인 관리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에서 책을 내게 됐다.”라고 말했다. 고라니란 동물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 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05044306_R_0.jpg » 긴 어금니가 특징인 수컷 고라니가 들판을 달리고 있다. 요즘은 새끼가 태어나고 털갈이를 시작하는 때이다. 사진=안성/사진공동취재단

 

야생동물은 대부분 야행성이어서 직접 보기는 매우 힘들다. 연구자라도 발자국과 배설물을 주로 찾아다닌다. 고라니는 예외다. 하천변 습지나 호젓한 등산로에서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산 고라니보다는 도로에서 차량에 치여 숨진(로드킬) 죽은 고라니를 보게 될 확률이 더 높다. 고라니가 좋아하는 물가엔 도로가 있다.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고라니가 사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다. 얼마나 죽는지도 잘 모르긴 마찬가지다. 김 박사는 합법적으로 유해 조수 구제 허가를 받아 연간 6~10만 마리가 사냥을 당하고, 로드킬로 적어도 연간 6만여 마리가 죽는 것으로 추정했다. 밀렵을 빼고도 해마다 인위적으로 죽는 고라니만 줄잡아 10~15만 마리에 이르는 것이다.

 

자연적인 요인도 있다. 고라니 새끼는 삵, 담비, 너구리, 유기견, 수리부엉이 등의 먹이가 된다. 어린 고라니는 우기에 저체온증으로 잘 죽어 1년을 넘기는 개체는 4마리에 한 마리꼴이다. 봄에 태어난 암컷이 겨울에 첫 배 새끼를 낳는 번식력이 있다지만 이렇게 많이 죽으면서 무리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보인다.

 

05001597_R_0.JPG » 담비가 사냥해 잡아먹은 고라니 주검. 사진=국립생태원

 

그렇다면 고라니는 왜 이렇게 늘었을까. 고라니 서식 밀도가 19821.8마리에서 20117.3마리로 지난 30년 사이 4배로 불었다. 고라니는 현재 전국에 강변부터 도시 주변과 고산지대에까지 두루 산다. 그러나 과거에는 남서부 저지대에만 분포했다. 호랑이, 표범, 늑대, 여우 같은 포식자와 대륙사슴 같은 경쟁자가 사라진 공간에서 고라니가 폭발적으로 불어난 것이다.

 

지금 상태는 생태적으로 건강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김 박사는 개체수는 많지만 죽는 수도 많고 늘어나는 추세라며 고라니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라고 말했다. 도도새처럼 아무리 많아도 없어지는 건 한순간이다. 김 박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무엇보다 고라니가 교란종인지 또는 조절자인지 생태계 안에서 하는 역할이 규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개체수가 너무 많은 곳에서는 산에서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와 교통사고를 일으킵니다. 대륙사슴이나 노루는 나무까지 갉아먹지만 고라니는 주로 잎을 먹기 때문에 이런 피해를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고라니는 반대로 삵, 담비, 수리부엉이 등 포식자의 먹이여서 고라니가 사라지면 생태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생태계에서 하는 역할을 제대로 알아야 고라니를 어느 정도로 관리할지를 정할 수 있는데, 지금은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이 주먹구구로 유해 조수를 없앤다며 개체수를 조절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라니의 유전다양성이 높지 않은 것도 불안하다. 2014년 과학저널 <유전자 및 유전 시스템>에 실린 김 박사 등의 논문을 보면 한국 고라니의 유전적 다양성이 중국 고라니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온다. 한국의 고라니 개체수가 중국(1만 마리)보다 적어도 10배 이상 많다는 사실에 비추어 뜻밖이다.

 

William Warby_800px-Hydropotes_inermis_inermis_Whipsnade_Zoo_(crop).jpg » 중국 고라니. 영국 동물원에서 사육중인 개체다. 사진=William Warby, 위키미디어 코먼스

 

여기서 중국과 한국의 고라니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세계 학계에 처음 보고된 것은 중국 고라니였다. 나중에 한국에도 고라니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한국 것이 털 빛깔이 더 진하고 붉은빛이 돌아 중국 고라니와 한국 고라니는 다른 아종으로 분류돼 왔다.

 

그러나 최근 유전적 연구가 이뤄지면서 한국과 중국 고라니는 아종으로 갈리기에는 유전적 차이가 너무 작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김 박사는 한국과 중국의 고라니는 사실상 같은 종일 가능성이 크지만 확실한 결론을 얻기 위해서는 두 나라의 공동연구 등 추가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어금니가 튀어나온 고라니는 사향노루와 닮았다. 뿔보다 어금니가 두드러지는 종들은 사슴 무리에서 가장 일찍 가지 쳐 나온 무리다. 고라니가 사슴이나 노루보다 원시적인 종으로 보는 이유이다.

 

현재 고라니는 한국과 중국에 자생하고, 중국 고라니를 영국과 프랑스에서 도입해 풀어놓은 개체가 있다. 그렇다면 고라니는 애초 왜 한국과 중국에서만 서식하게 됐을까.    빙하기와 간빙기가 교대로 나타나던 신생대에 출현한 고라니의 조상은 동아시아가 고향이었다. 간빙기 때 고위도까지 서식지를 넓히던 고라니는 빙하기가 오자 따뜻한 곳에 피난해 살아남았다.

 

분자 계통유전학 연구는 고라니에 두 계통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둘 사이에 고립으로 인한 약간의 유전적 차이가 있다. 김 박사는 이런 분리가 약 160만년 전 빙하기 때 고라니가 중국과 한국의 피난처에 각각 대피하면서 격리됐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마지막 빙하기인 약 2만년 전 서해는 육지여서 중국과 한반도는 육지로 연결돼 있었다. 서해는 수많은 강의 지류와 호수가 있어 고라니가 좋아하는 물가가 많았을 것이다.

 

이상헌_2010.jpg » 2만년 전 마지막 빙하기 때의 해수면 분포. 서해는 육지였고 중국과 한국의 주요 하천이 흘러 드는 습지는 고라니의 주 서식지였을 것이다. 사진=이상헌

 

간빙기와 함께 해수위가 높아지면서 고라니는 중국 동부와 한반도 서부로 이동했을 것이다. 중국에는 한반도보다 커다란 서식지가 있었을 것이다. 과학저널 <생화학 유전학> 20064월호에 실린 후 지에 중국 저장대 동물학자 등의 논문을 보면, 중국의 고라니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해마다 수천 마리가 포획됐을 정도로 개체수가 많았다.

 

그러나 이후 서식지 파괴와 밀렵, 한약재로 남용 등이 겹쳐 급격히 줄어 최대 서식지인 저장성의 주샨 섬에 1500마리, 양쯔강 하류 본토인 장수성과 장시성에 각 1000마리가 사는 서식지가 남게 됐다. 고라니의 두 가지 계통이 한반도에는 모두 있지만 중국에는 하나만 남았다. 중국은 현재 상해에서 고라니를 증식해 복원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개체수가 급감했어도 과거 넓은 서식지가 있었기 때문에 중국의 고라니가 한국보다 유전적 다양성이 클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고라니는 주 분포지였던 남서부 저지대가 농업개발이 집중되고 인구가 밀집되면서 큰 타격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 애초 한반도의 피난처에 소수의 창시자 무리가 이주했기 때문에 나중에 개체수가 불어나도 유전다양성이 작았을 가능성도 있다.

 

한반도 고라니가 유전적 다양성은 떨어져도 중국에 없는 계통이 있고, 개체수도 월등히 많기 때문에 세계 고라니 분포지로서 중국 못지않게 중요한 곳이 됐다.

 

04314743_R_0.jpg » 차량과 충돌한 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응급 시술을 받는 고라니 모습. 사진=강재훈 기자

 

04314744_R_0.jpg » 위 고라니의 엑스선 사진. 태아가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강재훈 기자

 

5월은 고라니가 새끼를 낳기 시작하는 철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야생동물 구조센터의 직원들도 바빠진다. 이들이 구조하는 포유동물의 70% 이상이 고라니다.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는 요즘 교통사고를 당하는 암컷 고라니의 뱃속에는 대부분 출산이 임박한 새끼들이 들어있다.”라고 말했다.

 

동물구조센터에는 주로 밤에 차에 치여 척추나 다리에 골절을 당한 고라니가 들어온다. 그러나 무사히 치료와 재활을 마치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는 고라니는 드물다. 김씨는 고라니는 너무 예민하고 겁이 많아 아주 경미하거나 일시적 충격을 받은 개체만 자연으로 돌아갈 뿐 대부분 폐사하거나 안락사 된다.”라고 말했다.

 

사슴류는 갑작스런 변화에 맞닥뜨리면 잠시 주춤하면서 상황을 판단하려 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길을 건너려다 갑자기 자동차가 접근하면 불빛에 일시적으로 눈이 머는 상태에서 주춤거리다 차에 치이기 쉽다.

 

DSC08405.JPG »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구조돼 풀을 먹고 있는 새끼 고라니들. 미아가 된 것으로 오인한 이들이 데려오는 일이 흔하다. 사진=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행락철의 로드킬이 끝나면 유괴가 시작된다. 고라니는 새끼 혼자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 어미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홀로 있는 새끼를 데려오면 아무리 좋은 뜻이라 해도 결국 유괴하는 결과가 빚어진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구조한 고라니 641마리의 가운데 52%가 차량 충돌이 원인이었고 이어 납치가 23.1%로 뒤를 이었다. 눈에 띄는 것은 농수로 추락이 7.6%로 주요한 이유였는지, 콘크리트 상자 형태의 농수로에 빠진 뒤 탈출하느라 발굽이 다 닳도록 헤매다 죽거나 구조되는 일이 잦다.

 

김백준 박사는 고라니가 농업에 일정 부분 피해를 주는 것은 맞지만 유해동물 취급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라며 피해를 사전에 막고 합리적인 보상을 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03670392_R_0.jpg » 고라니의 평화는 언제나 올까.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비무장지대 개울에서 한가롭게 물풀을 뜯는 고라니. 사진=육군본부

 

고라니는 너무 많다거나 해롭다는 편견에 시달리는 동물이다. 생태적 지위도 불안정하고 진화적 가치가 큰데도 제대로 평가하려는 노력은 부족해 보인다. 한국의 자연을 대표할 만한, 생태관광의 주역이 될 수 있는 야생동물인데도 말이다. 야외에서 고라니를 만나자. 살아있는 상태로./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5,6

 

야생동물 새끼 구조 자칫하면 납치한 꼴

어미가 먹이 구하러 간 사이 어미 잃은 새끼라고 데려오면 안 돼

당장의 위험과 부상 있으면 즉시 구조센터 연락, 사람 접촉 최소화

새해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월입니다. 이제 곧 4월이 오겠지요. 햇볕도 따뜻해지고, 오가는 사람들의 가벼워진 옷차림만큼이나 싱그러운 봄이 찾아왔지만 구조센터 직원들의 마음은 그리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다가올 안타까움에 직면하기에 앞서 충분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죠.

 

곧 있으면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로 새끼동물 구조를 요청하는 연락이 많아질 것입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수리부엉이를 시작으로 삵, 너구리, 고라니, 황조롱이 등 다양하고 수많은 새끼동물이 구조센터를 가득 채우게 될 겁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러했으니까요.

 

kid1.jpg » 일반적으로 야생동물에게 최적의 번식기는 먹이자원이 풍부한 봄부터 초여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리부엉이는 그보다 이른 1~3월 사이에 산란을 하고 2~4월 초순 사이에 부화하여 새끼가 태어납니다. 때문에 매년 구조센터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새끼동물은 항상 이 친구입니다.  

 

새끼동물이 구조되는 원인은 꽤 단순합니다. 다른 대부분의 야생동물이 구조되는 다양한 원인에 비하면 말이죠. 대부분 어미를 잃은 채 덩그러니 있는 것이 걱정되어 데려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례에 해당하는 개체들을 저희는 미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새끼동물이 정말 어미를 잃고 미아가 된 걸까요? 새끼동물 구조 요청이 들어왔을 때 저희는 가장 먼저 새끼동물이 어떤 상태인지, 주변에 어미가 보이는지, 새끼 새일 경우 둥지가 있는지 등을 발견자에게 묻습니다.

 

하지만, 저희와 닿기 전 이미 관할 시청이나 동물병원 등으로 직접 인계하거나 발견 당시의 상황을 확실히 살피지 않고 직접 구조해 당시 상황을 판단하지 못하는 때가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자칫 구조가 아닌 납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죠.

 


kid2.jpg » “내가 구조된 게 아니라 납치된 거라고? 이게 무슨 소리야?!

 

물론 납치라는 단어가 무척 자극적인 단어입니다. 무슨 이득을 취하려는 게 아니라 좋은 목적으로 데려온 것이니 엄밀하게 납치도 아닙니다. 다만, 부적절한 구조로 인해 새끼동물을 애타게 찾아 헤맬 부모동물을 떠올린다면 그리 과한 표현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야생동물을 잘못 구조하면 납치와 같은 결과를 낳게 됩니다. 순간의 섣부른 판단으로, 구조하지 말아야 할 동물을 구조하게 되는 것이지요. 만약 새끼동물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상태가 나쁘지 않고, 주변에 어미로 보이는 동물이 머무르고 있거나 근처에 둥지와 같은 은신처가 있다면 구조해야 할 상황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새끼동물을 구조한다는 것은 어미동물의 입장에서는 자식을 납치당하는 것과 같겠지요.

 

물론, 모든 새끼동물의 구조가 납치인 것은 아닙니다. 어미를 잃었거나, 새끼가 위험에 빠지거나 도태되는 과정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당연히 구조하여 성심성의껏 돌봐야 합니다. 때문에 내가 발견한 새끼동물이 구조를 필요로 하는 상황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선 새끼동물을 위협하는 요인이 없는지 살핍니다. 개나 고양이 등의 포식자 혹은 불필요한 사람의 접근, 새끼동물 발견 장소가 도로 근처라 언제든지 새끼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인지를 따집니다.

 

최대한 멀리서 새끼동물을 꽤 오랜 시간 관찰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어미가 돌아오는지를 보아야겠죠. 위협 요인이 없고 어미까지 있다면 이 새끼동물은 절대 구조해서는 안 됩니다. 그대로 두고 기쁜 마음으로 떠나면 되는 거죠. 반면에 위협요인이 하나라도 있거나 어미가 돌아올 가능성이 없다면 구조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때는 저희와 같은 관련 기관에 빨리 연락해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kid3.jpg » 어미동물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 종종 새끼를 두고 자리를 비웁니다. 그 사이 어미가 없다 판단하여 새끼를 데려간다면 다시 돌아온 어미의 심정은 어떨까요?  

 

상황에 따라서는 직접적인 구조보다는 적절한 조처만을 취해주는 것이 훨씬 좋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직 둥지를 떠날 시기에 이르지 못한 새끼 새가 둥지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면 최선의 방법은 다시 둥지 위로 올려주는 것입니다.

 

가능하면 원래 둥지에 올려줘야겠지만 둥지가 너무 높거나 올려주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아쉬운 대로 대체 둥지를 만들어 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대체 둥지라고 해서 그리 어려울 건 없습니다. 바구니나 상자 등에 나뭇잎, 솔잎 등을 넣어서 적당한 높이에 달아주기만 해도 어느 정도 둥지 구실을 합니다. 둥지에 다시 올려주기 전 상태를 잘 살피고 필요하다면 간단한 처치 등을 해줘야 합니다. 떨어지는 충격으로 다쳤을 수도 있으니까요.

 


kid4.jpg » 쥐뼈가 목에 걸려 구조된 새끼 황조롱이입니다. 뼈를 제거해 준 뒤 본래 둥지로 다시 돌려보내 어미의 보살핌을 받도록 해주었습니다. 그게 최선이니까요.  

 

, 납치의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도 잘 살폈고, 간단한 처치만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살펴봤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다면, 꼭 구조를 해야만 합니다. 구조가 끝났다고 모든 고민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에 대한 후속조처를 해야 하기 때문이죠. 이 역시도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고려해야 할 점도 많죠.

 

과거에 있었던 새끼수달 구조 사례가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네요. 많은 분이 수달은 물과 아주 친숙한 동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물이 수달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것까지 아는 분은 얼마나 될까요?

 

새끼수달 한 마리가 물에 흠뻑 젖은 채 저체온증을 앓다가 폐사했던 일이 있습니다. 새끼수달은 성체와 달리 방수능력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그러한 사실을 몰랐던 구조자는 수달이 좋아할 것이란 생각에 큰 물통에 물을 받아 수달을 보호하고 있는 곳에 넣어주었고 그 물통의 물이 쏟아지면서 푹 젖은 수달이 저체온증에 빠져 결국 폐사하였습니다. 전문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야생동물을 구조하다가 자칫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위험이 새끼수달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새끼동물의 종에 따라, 어린 정도와 상태에 따라 취할 조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을 꼭 받아야 합니다.

 


kid5.jpg » 방수능력이 없어 물에 흠뻑 젖은 새끼 수달. 보호자의 잘못된 배려는 비극적인 결말을 맺고 말았습니다.

 

구조 새끼동물을 돌보는 동한 선뜻 먹이를 주고 애완동물처럼 품에 안은 채 지극 정성으로 보호하는 분도 있는데, 이는 새끼동물에게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큽니다. 새끼동물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거나 각인이 되어 버리면 훗날, 이 동물이 야생으로 돌아가는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새끼동물을 구조하여 돌볼 때에는 최대한 사람과의 접촉을 줄이고, 사람이 긍정적인 자극을 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흔히 말하는 정을 나누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kid6.jpg » 구조된 붉은배새매 새끼에게 먹이를 먹이고 있습니다. 먹이를 먹이는 등 새끼와 접촉할 때 그 시간을 최소화하고 사람에 대한 긍정적인 의식이 생기지 않게끔 주의해야 합니다.

 

새끼동물의 구조는 이처럼 까다롭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제 감이 오나요? 글로만 보니 어렵기만 하다는 분들을 위해 상황에 따라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은지 그림으로 표현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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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동물은 생존율은 낮습니다. 어미보다 위험에 대처하는 능력도 떨어지고 천적도 많으며 자연의 섭리에 따라 도태되기도 하지요.

 

그런 친구들이 저희에게 와 다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은 그 어느 것보다 의미가 있습니다. 부득이한 사고로 인해 구조되어 보호받아야 할 동물을 위해서라도, 불필요한 구조가 이뤄지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구조였는지 납치였는지, 구조를 해야 한다면 적절히 했는지, 적당한 처치와 올바른 보호를 했는지, 그 누구도 쉽게 판단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야생동물을 지키려는 좋은 마음에서 행동했는데 안타까운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걸 꼭 기억해 주셔야 합니다.

 


kid9.jpg » 저 맑은 눈동자에 비치는 철조망이 보이나요? 어쩌면, 이 친구가 있을 곳은 이곳이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사진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3.27 한겨레 물 바람 숲

 

덫에 걸린 삵, 닭장에 침입한 게 잘못일까

애지중지 기른 닭 떼죽음 이해할 만, 덫보단 예방책 필요

소비자도 무관치 않아정확한 실태 파악과 예방, 보상 뒤따라야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고양이과 야생동물 삵. 멸종위기 야생 생물 2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지만 양계 농민에게는 피해를 주는 동물일 뿐이다. 그러나 공존의 길은 분명히 있다.

 

삵이 덫에 걸렸다. 그것도 창애라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덫에 말이다. 멸종위기 야생 생물 2급에 해당해 법으로 보호하는 삵이 왜 이런 덫에 걸리게 되었을까?

 

사람이 덫이나 총을 이용해 야생동물을 포획하는 경우는 대개 이렇다. 동물의 털이나 가죽을 얻기 위해, 근거 없는 보신 문화로 야생동물을 섭취하기 위해, 연구·전시·사육을 위해, 사냥을 취미로 삼고 즐거움을 얻기 위해, 동물을 혐오하기 때문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동물이 사람에게 경제적으로 손해를 끼치거나 생명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삵이 덫에 걸린 곳은 어느 양계 농가였다. 요 며칠 녀석이 양계장에 침입해 닭을 물어갔다. 물어간 한, 두 마리 닭이 피해의 전부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일반적으로 양계 농가는 닭을 좁은 공간에서 집단으로 사육한다. 삵이나 수리부엉이 같은 포식자가 닭을 노리고 양계장에 들어오면 놀란 닭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폐사하거나 포식자를 피해 무리 지어 몰려다니다 넘어져 밟히거나 서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폐사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닭을 사육하는 농장 주인은 큰 경제적 피해를 볼 수 있다.

 

c1.jpg » 침입자로 인해 폐사한 양계장의 닭.

 

크고 작은 피해가 반복되자 농장 주인은 침입하는 녀석을 잡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덫을 사와 양계장에 드나드는 길목에 설치했다. 삵은 이 덫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걸리게 됐다. 농장 주인은 자신과 닭에게 피해를 주는 삵을 잡는 데 성공했다는 성취감을 느끼기도 전에 막상 덫에 걸려 몸부림치는 녀석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구조센터에 구조를 요청하게 되었다.

 

현장에서 만난 삵의 몰골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덫에 걸린 뒷다리는 잘려나가기 직전이었고 상처 부위엔 파리가 들끓었고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덫에 걸린 뒤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치는 과정에서 다치게 되었는지 오른쪽 눈이 심하게 부어 있기도 했다.

 

덫을 제거하고 구조하기 위해 다가갔지만 녀석은 무척이나 예민한 상태였다. 사람이 놓은 덫에 걸렸으니 사람이 그리도 두려운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상황이었다.

 

c2.jpg » 덫에 걸린 삵의 모습. 다리가 거의 절단되기 직전이었다.

 

녀석을 포획하는 모습을 내내 지켜보던, 정작 덫을 설치했던 양계장 주인의 표정에는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가득했다. 자신이 덫을 설치한 걸 후회라도 하는 듯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신으로 인해 고통받는 생명체를 지켜보는 것이 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양계장 주인의 선택을 쉽사리 비난할 수도 없다. 양계장 주인의 마음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애지중지 기른 닭들이 예기치 못하게 죽어 나갈 때의 심정이 오죽 화나고 안타까웠을까. 특히 그에겐 생계를 유지하는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과 방법이 잘못되었다.

 

c3.jpg » 검사와 치료를 위해 마취 중인 삵의 모습.

 

서로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없었을까?

포식자가 양계장에 침입하는 것이 확인된 시점에서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침입을 막을 수 있도록 양계장을 보수하거나 외벽을 설치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침입하는 동물을 포획해 처리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 동물을 제거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동물이 양계장에 나타나지 않겠는가.

 

나아가 만약 포획을 시도한다면, 덫의 선택에 조금 더 깊은 고민을 해야 했다. 창애는 동물이 덫의 일부분을 밟으면 잠금장치가 풀리면서 날카로운 톱니를 지닌 부분이 맞물려 동물의 신체를 무는 구조이다. 이 덫에 동물이 걸리면 피부와 근육의 손상, 골절은 기본이고 심할 경우 신경이 손상되거나 절단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c4.jpg » 결국 다리는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덫의 종류는 다양하다. 창애나 올무처럼 신체 일부에 심각한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덫이 있지만, 포획 틀과 같이 조금은 더 안전하게 잡을 수 있는 덫도 있다. 만약 이러한 덫을 사용했으면 어땠을까? 안전하게 포획해서 양계장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 삵이 살기 적합한 환경에 풀어준다면 서로가 받는 피해를 해소할 수 있지 않았을까?

 

c5.jpg » 일반적으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는 것이 바로 이 '창애'일 것이다.

 

결국 삵은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덫이 너무 깊게 파고들어 이미 돌이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구조센터에 머물면서 야생에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오랫동안 평가받아야 했다. 그렇게 약 3개월이 흘러 삵은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비록 다리를 잃었지만, 녀석이 쌓던 삶의 역사는 계속해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물론, 양계장에서 굉장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말이다.

 

c6.jpg » 수술을 받는 삵.

 

야생동물은 왜 사람에게 접근하는 것일까?

사실 이런 일이 양계장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유해 야생동물로 알려진 고라니나 멧돼지, 까치와 같은 동물이 밭에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고라니나 멧돼지는 이동하다가 저도 모르게 도심이나 민가에 진입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후에 갑작스럽게 맞닥뜨리는 수많은 사람과 무섭게 내달리는 자동차, 소음, 불빛에 놀라 극도의 흥분상태가 된다. 흥분하니 난폭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고, 덩달아 사람들도 놀라거나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난폭함은 사실 그들에겐 살고 싶다는 표현이자 절박한 저항의 수단이다.

 

그 때문일까? 이런 유해 야생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다. 피해만 끼치고, 난폭하기까지 한 동물이라고. 그래서 무분별하게 잡아 없애고, 어떠한 가학적 처치를 가해도 상관없는 존재쯤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로 그렇게 해도 괜찮은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c7.jpg » 밀렵으로 올무에 걸려있는 멧돼지를 구조하기 위해 마취가 진행되고 있다. 김영준

 

그렇다고 직접 피해를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자금과 노동력을 들여 정성껏 재배하고 키워낸 농작물이 하룻밤 사이에 망가지는 것을 보는 농민들의 마음도 야생동물의 생존권만큼이나 중요하게 헤아려야 한다. 동물의 접근을 적절히 예방하고 차단하고, 동시에 서로에게 경제적, 감정적, 생명의 소모만을 불러일으키는 갈등을 줄이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동물이 꺼리는 초음파를 발생시키거나 포식자의 소리, 배설물을 농장 부근에 뿌려두는 방법, 전기 목책, 폭음탄 등 이미 시행되고 있는 예방법도 다양하다. 물론 필요하다면 개체 수를 조절하기 위해 직접 포획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사전에 피해의 정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예방 노력을 먼저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20160818194255.jpg » 정성껏 기른 농작물이 야생동물에 의해 망가지는 것을 보는 농민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한 고민과 해결을 위한 노력을 피해 당사자들에게만 떠넘기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농작물의 생산자와 야생동물의 갈등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농작물을 소비하는 우리와도 뗄 수 없는 문제이다. 피해를 겪는 농장에 대한 예방책 지원, 피해 정도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이에 걸맞은 투명한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가 먹을 농작물의 가격이 다소 상승할 수밖에 없다면, 이를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해심도 갖춰야 한다.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 인간의 거주지 확대와 농토 확보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면서 자연 생태계가 속수무책으로 훼손됐다. 서식지가 줄어들고 먹을 것을 찾기 어려워진 동물에게 양계장이나 농작물을 재배하는 곳은 얼마나 유혹적인가.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자. 그들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고 싶어서 혹은 피해가 된다는 것을 알고서 하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사람들이 산에 올라 임산물을 채취하고 도토리를 주워 오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야생동물이 사람들의 거주지 부근으로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위로 인식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다. 야생동물이 삶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해 주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c8.jpg » 야생동물이 나름대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 글에서 다룬 삵 이야기는 2012년에 발생한 사례입니다.)

·사진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16.11.10 한겨레

Teddy - Connie Franc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