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과 어울리기/서평

애니미즘과 현대 세계-다시 상상하는 세계의 생명

by 이성근 2023. 5. 14.

https://www.youtube.com/watch?v=5clYbvH1Bc0 

애니미즘과 현대 세계 다시 상상하는 세계의 생명 유기쁨 지음 l 눌민 l

유기쁨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종교와 생태학 분야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생태철학과 환경윤리, 생활 속의 생태학을 강의하고 있다. 8년 전에 시골로 이주해서 농촌마을의 작은 집에서 개성이 뚜렷한 네 마리의 개들과 함께 살고 있다. 시골로 이주한 뒤 키우던 강아지, , 꿀벌에게서도, 그리고 마당의 호두나무, 포도덩굴, 민들레, 잡초에게서도 생명 세계의 신비를 배우고 있다. 최근 발표한 논문으로는 발 플럼우드의 철학적 애니미즘 연구: 장소에 기반한 유물론적 영성 개념을 중심으로, 잊힌 장소의 잊힌 존재들: 생태적 위험사회의 관계 맺기와 종교, 핵에너지의 공포와 매혹: 한국인의 핵 경험과 기억의 정치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는 생태학적 시선으로 만나는 종교, 아픔 넘어: 고통의 인문학(공저), 바이러스에 걸린 교회(공저) 등이 있다. 역서로는 원시문화: 신화, 철학, 종교, 언어, 기술, 그리고 관습의 발달에 관한 연구,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트로브리안드 군도의 경작법과 농경 의례에 관한 연구, 세계관과 생태학: 종교, 철학, 그리고 환경, 문화로 본 종교학등이 있다. 현재 생태인문학의 지평을 확장해가며 나의 공부가 지역(사회, 생태계)과 잘 엮일 수 있는 길을 모색 중이다.

 

목차

프롤로그 9

 

서문 다시 호명되는 애니미즘 19

왜 애니미즘인가? 20

 

1부 그들의 애니미즘: “무엇이 그들과 우리를 다르게 만드는가” 33

 

1장 차이의 물음 35

1. 새로운 세계와의 조우 37

낯선 존재들의만남 37

원주민이 낯선 백인을 만났을 때, “하늘에서 온 사람들

침략자 유럽인들이 그 땅의 원주민을 만났을 때, 39

영리하고 훌륭한 하인” 41

2. 근대 과학의 탄생 46

법칙에 지배되는 자연 46

인간, 자연, 초자연: 세 영역의 분리 48

과학적 접근법의 확산 51

3. 인류의 진보와 근대 문명 53

진보에 대한 낙관적 믿음 53

근대인의 자기 정체성 형성 58

 

2장 애니미즘 논의의 시작: 타일러의 애니미즘 61

1. 철로 위의 인간 63

2. 다른 것 같지만 비슷한 67

가설: 동일한 본성, 그리고 진화 67

문화과학, 종교과학의 시도 70

3. 타일러의 애니미즘 정의 75

바위에 올려둔 나뭇잎 75

참과 거짓의 문제? 77

그들에겐 종교가 없다? 79

최소한도의 종교 정의 86

오래된 물음: 무엇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를 만드는가? 88

영혼의 물질성 92

영혼 교리의 확장 95

타일러의 원시 종교는 물리적 세계의 작용에 관한

(나름의) 합리적 설명이었다 102

4. 문화 발달과 잔존물 104

야만에서 문명으로 진화 104

잔존물: 현대 사회에 남아 있는 무의미하고 우스꽝스러운 관습 107

의미는 떠나고 형식만 남아 113

5. 계몽의 빛 114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 타락한 현대인 대 고상한 야만인? 114

문명, 그녀는 앞으로 나아간다 118

문화과학은 개혁자의 과학 121

 

3장 낯선 타자에게 붙이는 멸칭의 꼬리표로서 애니미즘 127

1. 타일러의 유산, 그 선택적 전유 129

2. 애니미즘이란 꼬리표 132

3. 근대의 허구 136

 

2부 우리의 애니미즘: “무엇이 우리와 그들을 연결하는가” 141

 

4장 애니미즘의 귀환 143

1. 배경: 생태 위기의 문제의식 확산 145

2. “다시 연결의 희망과 애니미즘 153

3. 어쩌면 잔존이 아니라 생존, 살아남은 것 155

 

5인간-사람비인간-사람” 157

1. 미래에서 온 물음: 인간이 사람일까? 159

2. 사람의 범위 162

사람의 의미 162

근대 서구의 개인이 사람의 보편적 기준은 아니다 168

비인간-사람 170

3. 새로운 애니미즘 176

투사가 아닌 존중 176

관계와 소통 178

4. 인간적인 것 너머의 세계 182

5. 우리의 물음: 지금 인간은 인간 외 존재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186

 

6장 인간과 동물 189

1.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부르는 자와

그가 동물이라고 부르는 것 사이의 관계 191

2. 인수공통 감염병이 퍼지는 시대,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함 200

3. 발견, 눈이 마주친 순간 204

보는 동시에 보이는 존재 204

다른 존재의 시점을 인정하는 애니미즘 210

4. 애니미즘과 동물-사람 217

동물의 영혼 217

토테미즘, 비인간 동물과 인간의 연결 222

비인간 동물을 사람으로 대한다는 것: 바바라 스머츠의 사례 227

5. 음식의 생명성과 잡식동물의 딜레마” 231

사냥과 육식, 관계의 에티켓: 유카기르족의 사례 233

동물의 변형 240

죽이기를 은폐하지 않기: 마오리족의 경우 244

6. 어쩌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와 함께 살아가기 249

 

7장 인간과 식물: 숲과 함께 생각하기 255

1. 인간과 식물의 관계를 들여다본다는 것 257

2. 식물을 망각한 문화 260

식물의 존재론적 위치 260

식물맹 265

인간 생명의 모든 것은 식물과 연결된다 267

3. 식물의 생명성 272

식물의 지능 272

식물의 소통 278

식물의 공생 281

4. 애니미즘과 식물-사람 284

식물의 영혼 284

식물 숭배 288

식물-사람: 식물의 관여성을 존중하기 292

5. 식물-사람 논의의 곤경 298

6. 식물과 더불어 생각하기 306

 

8장 비인간 존재들과 관계 맺는 삶의 방식으로서 애니미즘 313

1. 시선을 되받는 존재들 317

2. 공존의 기술 320

세계의 생명성을 포착하기 320

시선의 존중과 번역 323

생명세계의 역동적 활기 327

3. 주고받는 세계 331

모스의 증여론 331

선물과 답례 333

생태계서비스 337

호혜적 주고받기와 공생 340

 

3부 하이테크놀로지 시대의 생명성에 대한 새로운 상상 347

 

9장 인간과 물체 349

1. 물질에 대한 생각 351

2. 물체의 영혼, 물체의 활력 355

3. “이 돌들은 모두 살아 있나요” 362

 

10장 기계의 아니마: 세 가지 풍경 365

1. 취약한 육체의 인간, 인간보다 더 활기찬 기계 367

2. 테크노 애니미즘 370

3. 트랜스휴먼의 꿈 378

 

11장 동식물의 생명성과 기계의 활력 389

1. 흔들리는 경계 391

2. 중립적인 기계와 기술의 환상 395

 

에필로그: 열린 세계 399

참고문헌 403

찾아보기 410

 

출판사 리뷰

세계의 일부분으로 살아가기: 생태 위기 시대에 재발견되는 애니미즘적 세계관과 삶의 방식

 

전 지구적 기후 변화와 생태 위기는 우리에게 낯선 말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일상에서 영위하는 생활 방식으로 인해 생태 환경이 점점 더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공이며 다른 존재들은 모두 인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 여기는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과 문화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생태 위기를 불러일으킨 당사자로서 우리는 인간이 지구를 독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으며, 인간은 더 다채롭고 커다란 세계에서 분리되지 않고 연결된 일원이라는 세계관과 삶의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애니미즘과 현대 세계은 대학과 삶의 현장에서 생태철학과 환경윤리, 생활 속의 생태학을 연구하고 강의해온 유기쁨의 새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하고, 인간과 세계의 분리가 아니라 연결을 상상하는 애니미즘적 세계관과 삶의 방식을 재발견한다. 애니미즘 이론을 처음으로 도입한 에드워드 타일러의 1871년 대작원시문화Primitive Culture를 완역한 바 있거니와 활발한 저술 활동과 실천을 통해 애니미즘에 정통한 저자는 이 책에서 타일러의 애니미즘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여러 흐름들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함으로써 애니미즘이라는 개념이 어떠한 맥락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출현했으며 오늘날 생태 논의의 최전선에서는 어떠한 의미 범위에서 사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낡은 애니미즘에서 인간과 비인간 세계를 다시 연결하는 존재론, 생활 방식으로서의 애니미즘으로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1. 그들의 애니미즘: “무엇이 우리와 그들을 다르게 만드는가에선 서구 근대 과학의 탄생과 더불어 타일러의 사회진화론적 애니미즘을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저자는 인간과 자연의 분리, 우리와 타자의 분리, 우등과 열등의 구별, 야만에서 문명으로의 진보, 사회진화론적인 종교관 등 서구의 근대적 기획을 파고들어 서구가 보편적 기준이 되어 타자의 원시화를 추구하는 과정을 탐구한다. 타일러는 언뜻 우스꽝스러워보이거나 이해하기 힘든 타자의 문화 현상에도 합리성과 일관된 맥락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인류의 보편성을 논한다. 그와 동시에 역사의 성장과 발전 속도의 차이에 따라 진화의 차이를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애니미즘이 유아기적 단계이며 근대인으로서 극복해야 할 사고 체계로 여겨졌다.

 

1부에서 근대적 우리와 야만적인 타자를 구분하는 그들의 애니미즘을 다룬다면 2. 우리의 애니미즘: “무엇이 우리와 그들을 하나로 묶는가?”에선 재발견되는 애니미즘을 소개하며 우리와 그들, 인간과 인간 외 존재, “인간-사람비인간-사람의 연결성을 모색한다. 서구 근대적 기획의 한계를 생태 위기의 심화를 통해 경험하면서 인간과 세계 내 다른 존재와의 연결성과 관계성을 묻게 되면서 애니미즘이 재발견되고 재해석되는 과정을 다룬다. 이때에 관계적 존재론의 핵심 개념인 사람person”이 등장한다. 저자는, 인간과 더불어 동물, 식물, 자연물이 사람이 되어 상호작용하는 세계의 생명성과 공동체성에 주목하고 애니미즘적 사유를 펼쳐나간다. 저자는 애니미즘을, “유아기적 야만인의 낡은 애니미즘에서 세계의 생명성을 민감한 감수성으로 감지하는애니미즘으로 재조명한다. 이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의 경계를 넘어 인간을 포함한 더 큰 생태계라는 틀에서 세계를 해석하고 행동하는 생태주의적 삶과 연결된다.

 

3. 하이테크놀로지 시대의 생명성에 대한 새로운 상상에선 현대 하이테크놀로지 시대를 배경으로 인간과 사물, 특히 인간이 만든 인공물과의 관계를 고찰한다. 저자는, 첨단 테크놀로지의 산물에 둘러싸여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둔감해지는 현 시대에 애니미즘적 감수성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질문한다. 하이테크놀로지 시대의 기계의 생명성에 대한 물음이 동식물의 생명성과 같은 전통적인 감각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탐구하고, 생태 위기를 경험하면서 생명성에 대한 감각의 조정이나 확장이 의미하는 바를 고민한다.

 

한 권으로 알기 쉽게 정리한 애니미즘의 흐름

 

또한 이 책은 자칫 어렵게 다가올 수 있는 저명한 외국 학자들의 이론서들을 적재적소에 인용하여 알기 쉽게 친절히 설명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애니미즘의 주창자인 타일러를 비롯하여, 관계적 존재론과 애니미즘의 중요한 논자인 팀 잉골드, 에두아르도 콘,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 브뤼노 라투르, 바바라 스머츠, 애나 칭, 그레이엄 하비, 라네 빌레르슬레우, 알프 혼보리, 발 플럼우드, 자끄 데리다 등이 펼친 주요 논지를 이 한 권의 책에서 성공적으로 종합한다. 이들의 사유를 따라가면, 인간이 동물, 나무, 세계에 대해 어떻게 사유하느냐가 아니라 동물이, 나무가, 세계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더 예민함을 알 수 있다. 또한 피터 고프리스미스, 크레이그 포스터의 생생한 바닷속 체험담이나 심너울, d, 앤 레키 등의 작품 들은 사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관계적 존재론 질문의 깊이를 더해준다.

 

이 책에서 저자는 완결된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또한 인간성을 회복하고 자연을 보호하고 동물을 사랑하자는 낭만적인 해결책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진다. 대신에 사유를 확장하기를 제안한다. 인간이 살아 있는 다른 존재들-사람들과 적절히 관계를 맺음으로써 더 큰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를, 다시 연결되는 세계를 상상하기를, 홀로 주인공이 아님을, 사물을 일방적으로 바라보는 인간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사람들)로부터 응시되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의 삶을 살기를, 다른 존재들의 생명성을 인정하는 존재론,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인간 중심적이지 않은 존재론을 제안한다.

 

 

책 속으로

인간들만이 무대 위 주인공이고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은 인간을 위한 소품이나 배경이라고 여길 때, 세상은 단조롭게 경험된다. 그러나 비인간 존재들의 생기와 활력을 민감하게 인식하기 시작할 때 인간적인 것보다 더 큰 다채롭고 풍부한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지기 시작한다.

--- p.17

 

애니미즘은 세계의 생명성, 공동체성을 다시 사유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가 된다. 무언가를 살아 있는 존재로 여긴다는 것은 관계로 들어가는 첫걸음이며, 고립된, 분리된 자아로부터 지역적 관계와 상호 관계 들의 열려 있는 그물 속으로 관심의 방향을 옮긴다는 뜻이다.--- p.22

 

브뤼노 라투르는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여러 함의가 있는 말이지만, 무엇보다도 그 말은 객체의 세계와 주체의 세계가 분리 가능하다는 관념은 사실상 처음부터 환상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p.27

 

자연의 법칙을 탐구하는 학문으로서 과학의 위상은 유례없이 높아졌다. 자연의 힘은 신비로움을 잃고 과학적으로 관찰되고 측정되고 예측될 수 있었고, 인간은 신성함을 잃은 자연을 거리낌 없이 정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에서의 근본적인 변화였다.--- pp.47~48

 

타일러는 만약 누군가 원시 시대에 인간의 사유와 행동은 현대 세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법칙에 따라 작동한다고 주장하려면, 그는 타당한 증거를 통해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태를 증명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우리 눈에 낯설고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개념이나 관습조차도 원래의 맥락에서는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형성된 개념이고 그에 따라 생성된 관습이라는 것이다.--- p.69

 

영적인 존재들에 대한 믿음은 도처에서 나타난다. 이렇게 종교를 넓은 의미에서 정의하면, 타일러의 오만한 동시대인들이 비서구, 비근대 타자에 대해 증언하는 말과는 달리, 비서구, 비근대 타자의 문화와 근대 서구인의 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점 혹은 연속성이 눈에 들어온다. 타일러는 이러한 도처에서 발견되는 뿌리 깊은 영적인 존재들의 교리를 애니미즘animism이란 이름 하에 연구할 것을 제안하였다.--- p.87

 

타일러의 눈에 비친 고대인 혹은 원시인의 영에 대한 믿음은 역사의 성장과 발전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즉 타일러는 원시인의 애니미즘에 점차 인격적인 속성과 신적 능력에 대한 관념들이 추가되면서 다신론polytheism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했다.--- p.99

 

타일러는 근대 서구 사회를 문화 발달의 최고점에 두고서, 야만에서 문명으로 진화해가는 인류 문화 발달의 기본 이론을 전개한다. 인류 문명을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한 줄로 세우면, 가장 왼쪽에는 소위 야만인들이 자리하고, 가장 오른쪽에는 타일러 자신이 속한 근대 서구인의 문화가 자리한다는 것이 타일러의 생각이었다.--- p.106

 

타일러는 아직도 잔존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인류의 유아기적 단계의 철학인 애니미즘이란 근대인으로서 극복해야 할 사고 체계로 보았다. 인류는 과거의 오류를 딛고 앞으로 나아간다. 인류 문화의 역사는 그러한 진보의 흐름을 뚜렷이 보여준다. 야만인 철학자들은 생명이 없는 존재를 살아 있다고 믿었고 세계에 영들이 가득하다고 믿었지만, 결국 타일러가 볼 때 그러한 믿음은 극복되어야 할 잔존물에 불과하다.--- p.120

 

그는 종종 인류의 역사에서 원시인의 시기를 유아기에 비유했고, 문화 발달의 초기 단계라고 보았다. 그리고 원시인은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본질을 인간이 아닌 다른 사물에게 그대로 적용한다고 생각했다. 원시인은 동식물을 포함해서 무생물에게까지도 영이 존재하며 이러한 영은 인간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숭배해야 한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p.130

 

자연인간 사회(문화)초자연은 언제나 어떤 식으로든 뒤섞여왔다. 이를 무시하고 오로지 분리를 전제하고 강제하는 근대적 기획의 부작용으로, 현대 세계는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가장 큰 위기가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생태 위기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인간초자연 연결됨을 인정하는 것이 점점 더 요청되고 있다. 타일러의 애니미즘 논의도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 p.139

 

서구근대의 세계관이 생태 위기의 근본적 원인에 자리하고 있으니 멀리 떨어진 비근대(주로 전근대를 의미한다) 비서구 타자의 세계관에서 대안을 찾아보겠다는 발상은 실은 근대인으로서의 우리와 전근대인으로서의 그들사이의 차이를 전제한다는 점에서는 근대 지식인들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 p.152

 

하비는 과연 사람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를 이야기하는 데 그 책의 대부분을 할애한다. 눈에 띄는 것은, 하비는 무엇보다도 사람을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자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 사물을 논할 때에 비해 사람을 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성이다. 이러한 접근은 근대적인 인간 중심적 접근법과는 매우 차이가 있다.--- pp.165~166

 

다른 종을 사람으로 부를 때, 자작나무 사람들, 곰 사람들, 바위 사람들로 일컬을 때, “다른 종을 주권자로 대우하고 하나의 독재가 아니라 종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세상, 물과 늑대에게 도덕적 책무를 지는 세상, 다른 종의 처지를 고려하는 법률 체계를 가진 세상으로 향하는 길이 열릴 수 있다.--- pp.173~174

 

오늘날 할로웰을 비롯한 많은 인류학자, 철학자, 종교학자 들은 애니미즘을 인간성의 투사가 아니라, 다른 존재들의 생명성을 (그리고 자신이 그것들을 다 알 수 없음을) 인정하는 존재론, 따라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인간 중심적이지 않은 존재론으로 재해석한다.--- p.176

 

비인간 동물과 눈에서 눈으로 만나는 경험이다. 브론 테일러는 그러한 경험들을 눈에서 눈으로의 현현 eye-to-eye epiphanies”으로 명명한다. 눈에서 눈으로, 문화의 필터를 거치지 않은 생생한 만남의 경험은 많은 이들에게서 삶의 전환점이 되는 일종의 충격으로 작용했다. 동물의 눈을 바라보면서, 더 이상 어떤 사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로서 동물의 생명성을 감지하게 되는 것이다.--- p.205

 

데리다는 벌거벗은 상태로 로고스의 시선을 받으면서, 나와 마주하고 나를 바라보며 심지어 벌거벗은 나를 바라보는 대체할 수 없는 생명체로서 그 고양이의 존재감을 새로이 느낀다. 데리다는 바닥 없는 전적인 시선으로서, 타자의 눈으로서 동물이라는 이 시선이 자신으로 하여금 인간적인 것의 깊은 한계를 보도록한다고 말한다.--- p.207

 

우리는 동물을 발견하고 동물을 바라보지만, 동물도 우리를 발견하고 우리를 바라본다. 우리는 보통 동물을 바라보는 우리 인간의 시선에만 주의를 기울이느라, 인간을 바라보는 동물의 시선, 그 의미에 대해서는 간과하기 쉽다. 그렇지만 대자연에 깃들어 살아온 많은 종족들에게 동물이라는 인간과 다른 부류의 존재들의 시선을 예민하게 인식하는 일은 생사를 좌우하는 일이었다.--- p.209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애니미즘은 가령 인간이 숲에 대해동물에 대해, 나무에 대해, 혹은 오히려 세계에 대해어떻게 사유하느냐가 아니라 숲이동물이, 나무가, 혹은 오히려 세계가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묻는 일과 더욱 연관된다는 점이다.--- p.213

 

우리가 루나족을 비롯한 애니미스트 원주민들과 함께 사유하다 보면, 우리는 인간 이외의 존재들과의 관계성을 의식하게 되고, 다른 존재의 시점을 의식하게 된다.--- p.215

 

유카기르족은 이와 달리, 사람이 여러 형태를 취할 수 있으며, 인간은 수많은 사람들 중 단지 하나일 뿐이라고 여긴다. 비슷한 맥락에서, 유카기르족은 세계가 눈eyes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강이나 호수, 나무로부터동물은 물론이고심지어 그림자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모든 존재는 우리의 시선gaze을 되받는 자신의 시점을 가지고 있다. 나는 바라보는 동시에 누군가에게 보이고 있다. 일방적인 관찰은 불가능하다. 관찰하는 나는 동시에 내가 관찰하는 대상으로부터 관찰되고 있다. 그러니 유카기르족의 세계는 매우 감응적인 세계이다.--- p.235

 

사실 현대 세계에서 베어지는 나무를 자신처럼 여기는 이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오늘날 생태 위기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동인이 있지만, 식물을 주로 수동적인 자원으로만 간주하는 세계관과 인간 중심적 존재론이야말로 생태계를 파괴하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해왔을 것이다. 그러한 세계관과 존재론은 식물에 대한 보살핌과 존중의 결여라는 결과로 나타났고, 이는 자연 서식지 파괴로 이어졌다. 그러한 세계관과 존재론에서 흔히 생명의 연속성은 무시되고, 인간, 비인간 동물, 식물 사이의 뚜렷한 단절이 가정된다.--- p.261

 

에두아르도 콘은 숲의 여러 존재들의 생명성에 주목해온 루나족에게 애니미즘이란 생명과 사고의 중요한 속성들을 증폭하고 드러냄으로써 세계 속에서 살아있는 사고에 주목하는 한 가지 방식이라고 정의한다.--- p.293

 

식물과 동물과 인간과 암석 등이 공통의 친족 관계를 맺는 친족 중심적 생태학kincentric ecology”에 주목한다. 많은 애니미즘 문화에서 서로 다른 종들 사이의 공통의 친족 관계가 가정되는 경우가 많으며, 인간과 식물은 흔히 공통의 조상을 공유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p.294

 

오래된 숲에 가본 적이 있는가? 생명을 다해 쓰러져 죽은 나무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생명이 다한 나무는 새로운 생명으로 이어진다. 그 썩어가는 줄기는 수많은 동물, 균류, 미생물의 먹이가 된다. 그리고 주위에서 어린 나무들이 자라난다. 이렇게 식물 공동체가 이어지게 된다. 식물세계의 보편적인 삶의 모습이다.--- p.310

 

만약 루나족이 숲의 무수한 비인간 존재들을 인간과 마찬가지로 주체적으로 생동하는 생명체로 여기지 않게 된다면, 그래서 비인간 존재들의 관점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민감하게 대응하는 일을 멈추게 된다면, 더는 그들과 관계를 맺을 수도 없고, 그들을 사냥하거나 수확할 수도 없게 될 것이며, “관계의 그물망에서 떨어져 나가게 될 것이다.”--- p.322

 

라투르에게서 번역이란 기본적으로 연결을 통해 관계를 창조하는 과정이다. 인간과 비인간 등 서로 다른 부류의 존재들은 끊임없는 번역 작업을 통해 낯선 존재와 관계를 맺고 의미를 창출한다. 라투르의 말을 빌리면, 관계 맺기의 과정에서 핵심은 그들의 낯선 시선을 번역하는 일이다.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과 공생을 위한 길을 모색할 때, 우리 인간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멀리 떨어진 높은 곳에서의 관찰과 조망이 아니라 종을 가로지르는 번역 작업인 것이다.--- p.324

 

애니미스트들은 뒤얽혔다가 풀리고 풀렸다가 다시 얽히면서 움직이는 세계 속에서 얽기도 하고 풀기도 하면서 세계의 흐름에 동참하며 역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p.328

 

낡은 애니미즘 이해를 버리고 인간과 비인간 세계를 다시 연결하는 어떤 태도, 존재론, 생활 방식으로서 애니미즘에 새롭게 접근할 때, 애니미스트들이 생명을불어넣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감지하는 민감한 감수성, 생명 세계 속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반응하며 번역하는 방식에 주목하게 되고, 그들이 경험하는 역동적인 세계의 활력에 관심을 갖게 된다.

--- pp.329~330

 

과학소설, 로봇공학, 그리고 문화적으로 특수한 사람다움의 모델들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나타나는 사람다움의 개념적 모델을 기술하기 위해 그가 사용한 용어가 과학기술적 애니미즘이다.--- p.372

 

노블David F. Noble은 오늘날 테크놀로지에 대한 매혹은 종교적 신화와 오래된 상상에 기반한 것이라고 본다. 현대의 테크놀로지는 초자연적 구원에 대한 오래된 꿈, 영적 갈망에 붙들려 있으며, 테크놀로지의 발달을 추동한 힘은 다른 세계, 다른 현실에로의 초월과 구원에 대한 갈망이라는 것이다.--- p.376

 

영적 기계의 시대The Age of Spiritual Machines(2000), 특이점이 온다: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The Singularity is Near: When Humans Transcend Biology(2020[2006]) 등을 집필한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인간이 생물학적 유산의 한계를 초월하는 영적 기계의 시대를 상상한다. 그는 인간을 초월하는 기술이 점점 발달하면, 앞으로 인간과 기계 사이의 구분이 사라지는 시대가 도달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p.383

 

인간 사회의 뒤틀린 욕망과 사회적 모순이 걸러지지 않은 채 테크놀로지의 산물인 기계를 통해 구현될 경우, 프랑켄슈타인 박사처럼 자신의 창조물과의 뒤틀린 관계 속에서 비참한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암울한 미래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더불어 인간과 기계의 접합면에서 창발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사회적, 윤리적 관심이 필요한 까닭이다.--- p.398

 

오늘날 우리는 인간과 비인간 생명의 관계성에 충분히 천착하지 않고서 너무 쉽게 다시금 인간적인 것의 확장으로서 인공 사물, 기계와의 관계로 넘어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현대인은 비인간 동물, 식물과의 관계를 응시하고 다양한 연결을 시도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과업을 뛰어넘어 너무 쉽게, 너무 매끈하게 컴퓨터 앞에 다시 안착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p.401

 

애니미즘(Animism)

애니미즘(Animism) 또는 정령신앙(精靈信仰)은 해와 달, 별과 같은 천체나 바위, , 바다 등 자연물에 신격을 부여하여 자연현상을 영()과 생명의 작용으로 해석하려는 원시적인 종교의 형태[1]이자 자연계의 모든 사물에는 영적,생명적인 것이 존재해기에(=영혼과 생명이 존재한다), 인간처럼 의식,욕구,느낌 등이 존재하고, 자연계의 이러한 현상 또한 영적 및 생명적인 것의 작용으로 보는 세계관(만물에는 영혼이 존재한다라는 세계관)이다.[2]

 

조직화된 종교일수록 소통 조건이 복잡해지며 애니미즘 색채가 희석된다. 특히, 일신교의 경우 신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점은 인정하나, 잡다한 신은 신으로써의 가치가 없다고 보아 애니미즘과 거리를 둔다.[3] 그러나 이런 조직화된 종교들도 나중에는 ''이 무조건적으로 나서서 소통해준다는 태도로 바뀌며 먼 길을 돌아 겉보기에는 애니미즘의 일부 특성이 복구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4]

 

2. 역사

샤머니즘과 더불어 인류가 여태 만들어왔던 신앙 형태 중 가장 오래된 형태인 만큼 언제부터 탄생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러한 신앙의 탄생이 원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에는 이론(異論)이 없다. 신석기 혁명으로 대표되는 농업의 시작은 인류로 하여금 정착 생활을 가능케 했으며,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기후와 자연현상을 해석할 필요성이 생겼고 자연물을 숭배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로부터, 종교와 신앙을 학술적으로 다룬 이들도 이구동성으로 애니미즘이 모든 신앙 형태의 원초적 형태라고 인정하는 편이며, 19세기 말에 종교를 체계적인 연구 대상으로서 포섭시킨 학문들[5]의 등장으로 다른 종교들과 함께 더 세밀하게 연구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3. 특징

애니미즘을 둘러싼 현대적 해석은 많은 편이지만 그 중에서 프랑스 문화 인류학의 시조 뤼시앙 레비브륄[6]의 저서 원시인의 정신 세계는 애니미즘의 두 가지 특징을 빼어나게 정리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레비브륄은 원시인과 문명인의 정반대의 인과 해석을 꼽았는데, 문명인이 객관적 현상을 바탕으로 인과를 끌어내는 반면 원시인은 그 반대의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사람이 병에 걸리면 문명인은 몸의 이상을 바탕으로 병을 해석하지만 원시인은 보이지 않는 힘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여긴다. 두 번째로, 원시인에게 자신의 물건은 단순한 물건이 아닌 자기 자신과 동일시되는 무언가에 해당한다. 원시인이 물건을 교환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상대방에게 내주고 정체성을 소거하는 셈이라 볼 수 있다.[7]

 

위의 두 가지 특징은 애니미즘 이후의 종교에서도 상당히 많이 보이는 부분이며, 이는 애니미즘이 인류의 가장 원초적 형태의 신앙이라는 강력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 그에 걸맞게 최근들어 직접적으로 믿는 사람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8] 남이 쓰던 물건 가져다 쓰면 동티난다던지 지박령, 서낭당[9] 등이 우리 사회에 남은 애니미즘의 잔재의 대표적인 예. 그 외 무속[10]적 요소나 도교적 요소를 갖는 종교를 믿는 사람이 있다.

 

일본의 민족종교인 신토는 애니미즘의 특징을 잘 유지하고 있는 종교 중 하나이다.

 

세계적으로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믿는 사람이 꽤 존재했으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도 기독교나 이슬람이 완전히 주류가 됐기 때문에 이제는 그 동네에서마저도 소수에 가깝다.

 

거석숭배 역시 애니미즘의 한 종류로 간주된다.

 

4. 기타

대중 매체에서 애니미즘은 정령(elemental/spirit)들의 "속성" 개념으로 등장한다. 특히 파라켈수스의 4대 정령 개념이 가장 일반적. 정령신앙이 막강한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면 모든 마법과 기술은 전부 정령의 힘을 바탕으로 하는 자연계/원소계 마법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러나 정령 신앙이 과거의 유산인 경우, 그 사회를 지배하는 신앙은 유일신교인 경우가 많고,[11] 정령신앙은 잊혀져 있거나 내지는 배척받고 있는 상황인 경우가 많다. 물론 이 경우는 그 잠재적 가치를 간파한 주인공을 버프시켜 주는 역할.

 

사실 Anima는 영혼 비슷한 개념을 뜻하는 라틴어로, 사물에 영혼을 부여했다는 의미에서 애니미즘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 'Animal' 또한 영혼이 깃들어 움직인다는 뜻에서 만든 단어.[12]

 

유로파 유니버설리스 4에서도 하나의 종교로 나온다. 국교 관용 +1, 반란도 -1이라는 토테미즘과 동일한 게임상에서 가장 구린 효과에 개종에 2% 더 취약한 패널티까지 가지고 있어서 애니미즘을 믿는 채로 시작하는 원시 국가라면 빠르게 다른 종교로 갈아타는 게 좋다. 다만 버그로 추정되는데 다른 그룹 종교에서 이교 그룹 종교로는 개종이 불가한데 유일하게 애니미즘으로는 개종이 가능해서 다른 그룹 종교를 믿다가 이교 그룹으로 갈아타고 싶을 때 거쳐가는 통로 역할은 한다.

[1] 영국의 인류학자 E.B. 타일러는 애니미즘을 가리켜 모든 생물,사물,현상에 인정되는 영혼군을 일괄해 영적존재라고 일컬으며, 이러한 신앙을 애니미즘이라고 규정했다고 한다. (타일러)에 의하면은 죽음,,황홀,환상(특히 꿈)에서의 경험을 반성한 미개사회의 지적인 인간은 신체로부터 자유롭게 이탈하는 비물질적이고 인격적인 실체라 할 수 있는 영혼의 존재를 확신하게 이르렀으며, 인간은 이러한 영혼의 관념을 유추적으로 자기 주위의 동식물이나 자연물에게도 미치게 되어, 여기에 여려 가지 영적존재의 관념과 그들에 대한 신앙을 정립했으며, 그렇기에 신령,정령,사령 등은 각종 대상 혹은 존재에 관련해서 인정된 영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 모든 사물에는 영적존재(영혼)이 있으며, 모든 현상에도 영적존재(영혼)이 작용하고 있으며, 성인(聖人)들은 이러한 영혼의 존재를 확인할 수가 있다고 말한다고 볼 수 있다.

[2] 다르게 보면 무생물계에도 정령 또는 영혼,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영적의 힘 혹은 존재'가 깃들어 있다고 믿는 세계관이라고 할 수가 있다.

[3] 즉 믿을 대상은 쓸데없이 흩어져 있는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단 하나의 실체라는 것. 삼위일체론은 바로 이 점에 기반해 만들어진 교리이므로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아주 일신론적인 교리다.

[4] 그러나 일신교는 애니미즘으로 회귀하는 대신 율법주의 vs. 신비주의 구도를 택하였기에 여전히 애니미즘과 매우 다르다. (불가항력에 대한 두려움이 적을때는 율법주의로 흐르고, 불가항력에 대한 두려움이 클 때는 신비주의로 흐른다.)

[5] 종교학, 사회학, 인류학 등

[6] 원래 철학을 전공하던 전형적인 철학자였으나 말년에 인류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7] 다만 이 저서도 한계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레비브륄이 인류학 방법론의 핵심인 현지 답사를 하지 않고, 오직 사료에 의존해 저서를 작성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8] 우리가 특정한 물건에 의미 부여를 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도 한편으로는 애니미즘의 잔재라 볼 수 있지만, 사유와 연관짓기도 한다.

[9]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아무리 깡촌이라도 서낭당에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10] 샤머니즘적인 분위기가 강하지만 애니미즘적 분위기도 상당히 겹친다.

[11] 마법이 난무하는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한 작품 중에 비신론적이거나 세속적인 사회를 묘사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12] 그 외에도 'Animation' 또한 그림에 Anima가 들어가 움직인다는 의미이다. 스포츠 브랜드 ASICS'Anima Sana in Corpore Sano.'(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라틴어 격언의 이니셜에서 따온 것이다.

출처 -나무위키

 

 

동물도 식물도 바위도 사람아닌가애니미즘의 생태 상상력

생태철학·환경윤리 연구자 유기쁨씨가 쓴는 애니미즘을 생태학적 상상력의 중심으로 삼아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과 협력의 길을 찾는 책이다.

 

애니미즘(animism)생명··영혼을 뜻하는 라틴어 아니마(anima)를 뿌리로 한 말이다. 애니미즘이라는 말을 처음 내놓은 사람은 영국 인류학자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1832~1917)인데, 타일러는 1871년 펴낸

 

에서 동물과 식물과 사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을 애니미즘이라고 불렀다. 타일러 논의의 핵심은 원시문화에서 발견되는 애니미즘이 모든 종교의 바탕이며, 이 원초적인 믿음이 발달하여 마지막에 유일신 종교가 됐다는 것이다. 타일러가 보기에, 원시문화의 애니미즘은 종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철학적 사유의 원형이었고 당시의 지적 수준에서 완전히 합리적이고 지성적인 초기 과학이었다. 그러나 근대 과학으로 무장한 서구 세계는 애니미즘을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낡은 믿음으로 간주하고 밀어냈다. 지은이는 여기서 사고의 역전을 시도한다. 서구의 근대가 만들어낸 문명이 생태와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면, 그 문명이 비합리·비과학이라고 매도한 애니미즘이야말로 반생태적 근대 문명의 대안을 찾는 상상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브뤼노 라투르, 자크 데리다, 도나 해러웨이를 비롯해 이런 역발상을 시도한 여러 학자들의 주장을 참조하고, 남북아메리카·오세아니아 원주민 문화와 고대 인도에서 발생한 자이나교 같은 근대성 바깥의 문화를 살펴 애니미즘의 생태적 상상력을 펼쳐낸다. 애니미즘은 동물과 식물, 더 나아가 강물과 바위 같은 사물이 모두 살아 있으며 인간과 영적으로 교류한다는 믿음이다. 이 모든 것들이 살아 있다면 인간만 사람이라고 불릴 이유가 없다. 사람이란 살다에서 나온 말이므로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다. 동물은 동물-사람이고 나무는 나무-사람이며 바위는 바위-사람이다. 이렇게 사람으로 부를 경우, 이 모든 비인간 존재들은 그 자체로 인격을 지닌 존재로 인정받게 되고 인간과 동등하게 생명의 세계에 참여하는 존재로 존중받게 된다.

 

그렇다면 생명체를 먹는 일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인간이 살아가려면 다른 동식물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 육식을 그만두고 채식만 한다고 해도 사정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뭇 존재를 인격으로서 존중하는 것과 그 뭇 존재를 먹어야 하는 것 사이에는 모순이 있다. 지은이는 말한다. “세계 각지의 애니미스트 원주민들은 세상의 뭇 존재의 생명성을 존중하는 것과 그 생명을 취하는 것 사이의 불가피한 긴장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예컨대 자이나교 수도승들은 땅에 떨어진 과일만 주워서 최소한도로만 먹는다. 그러나 이런 방식이 궁극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지은이는 인간이 어쩔 수 없이 다른 생명체를 먹어야 할 때 그 생명체의 허락을 구하고 적절히 취하는 것을 방안으로 내놓는다. 북미 원주민들은 그런 방식의 취함을 받드는 거둠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나아가 지은이는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가에서 이야기한 선물 경제를 인간과 인간 사이를 넘어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주고받음으로 해석하자고 제안한다. 모스는 말한다. “선물을 받고 답례하지 않으면 그 받은 사람의 인격이나 지위는 좀더 열등한 상태로 떨어지며, 답례할 생각 없이 받았을 때는 특히 그러하다.” 모스의 말은 더 큰 세계와 관계 맺기에도 적용된다. 인간과 비인간 사이 우호적 상호작용에서 벗어난 존재는 사람답지 않은 존재다. “우리는 과연 우리 인간이 비인간 자연과의 관계에서 사람답게행동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지은이는 비인간 존재의 생명성을 포착하고 그 생명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생태적 상상력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인간과 비인간을 사람으로 묶어주는 상상력의 한가운데서 애니미즘이 부활하고 있는 셈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