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장편소설) 창비 2022.09.
(鄭智我) 1965년 전라남도 구례에서 태어났으며,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빨치산의 딸』을 출간했고 1996년 「고욤나무」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되었다. 소설집 『행복』, 『봄빛』, 『숲의 대화』, 『자본주의의 적』 등이 있다. 이효석 문학상, 한무숙 문학상, 올해의 소설상, 노근리 평화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 밖에 저서로는 청소년소설 『숙자 언니』, 『어둠의 숲에 떨어진 일곱 번째 눈물』, 『노구치 이야기』 들이 있다.
출판사 리뷰
시트콤 같은 일화들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아버지는 지리산과 백운산을 카빈 소총을 들고 누빈 빨치산이었다. 그는 일제강점기가 끝난 직후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싸웠으나 처절하게 패배했다. 동지들은 하나둘 죽었고, 아버지는 위장 자수로 조직을 재건하려 하지만 그마저 실패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자본주의 한국에서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았다. 평등한 세상이 올 거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고, 생판 초면인 이들의 어려움도 무시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조금 우스꽝스럽게 생각한다. 누구나 배불리 먹고 차별없이 교육받는 세상이 이미 이뤄진 마당에 혁명을 목전에 둔 듯 행동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누가 봐도 블랙코미디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행선을 달려온 ‘나’와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죽었다. 노동절 새벽,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이 이야기는 크게 네 줄기로 이뤄진다. 첫번째는 아버지와 평생을 반목해온, 그의 동생인 작은아버지와의 이야기다. ‘빨갱이’ 형 때문에 집안이 망했다고 생각하는 작은아버지는, 형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를 대꾸도 없이 끊을 만큼 냉담하다. 평생 술꾼으로 산 작은아버지는 이따금 집에 찾아와 “니는 그리 잘나서 집안 말아묵었냐?”(38면)라며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맞서지 않고 묵묵부답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차라리 작은아버지가 장례식장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의 등장 여부는 장례식장에 모인 모두의 관심사인 한편, 독자들도 책을 읽는 내내 흥미진진 궁금하게 지켜보게 된다. 죽은 아버지와 산 작은아버지는 화해할 수 있을까.
두번째는 구례에서 아버지가 사귀어온 친구들의 이야기다. 이들의 면면은 실로 다양하고 입체적이라 살펴보는 것만으로 한편의 시트콤을 보는 듯하다. 아버지의 소학교 동창이자 시계방을 운영하는 박선생. 그는 평생을 군인과 교련선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대척점에 있지만 아버지의 둘도 없는 친구다. 정치적 지향 차이로 발생하는 두 노인의 투닥거림은 어딘지 귀엽고, 그 끝에 “그래도 사램은 갸가 젤 낫아야”(47면)라는 말은 지금의 정치권이 배웠으면 싶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 장례식에 어울리지 않게 등장한 샛노란 머리의 소녀. 어찌된 영문인지 그는 아버지의 “담배 친구”(139면)란다. 열일곱살 소녀와 허물없이 친해지는 것은 아버지이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 와중에도 어머니가 베트남인인 소녀에게 ‘미 제국주의’ 운운하는 것을 잊지 않는 아버지의 캐릭터는 여전히 웃음을 자아낸다. 그밖에 ‘학수’를 비롯해 아버지의 아들을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 총부리를 맞서고 싸웠지만 이윽고 친구가 된 웃지 못할 사연들이 속속 등장한다.
내가 알던 아버지는 진짜일까? 그가 남기고 간 수많은 에피소드
세번째는 ‘나’와 아버지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가장 큰 줄기는 ‘빨치산의 딸’로 힘들게 살아온 딸이 아버지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사회주의자이고 혁명전사였기에 생활력은 없었고, 그런 주제에 “보증을 서”(57면)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늘 가난했던 집안 형편은 전부 아버지 탓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아버지가 늘어놓는 장광설은 지금 현실과는 맞지 않았고, 그런 만큼 ‘나’는 아버지가 있는 고향을 떠나고 싶어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죽음 이후 ‘나’는 내가 알던 아버지의 얼굴이 아주 일부였음을 깨닫는다. 아버지의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면들이 밝혀지고, 사람들을 감화시킨 담대한 모습들도 드러난다. 무엇보다 내가 잊고 있었던, ‘나’를 사랑했던 순간순간들이 떠오른다. 마침내 ‘나’는 아버지의 유골을 손에 들고, 아버지를 가장 아버지다운 방식으로 보낼 한가지 결심을 한다.
마지막 네번째는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의 일화들이다. 이들은 서사의 무게를 한층 발랄하게 만들며 독자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평생의 동지이자 그 역시 사회주의자였던 어머니는 아버지보다는 현실적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이런저런 일로 늘 구박을 받는다. 옷을 털지 않아서 술 담배를 끊지 못해서 같은 비교적 소소한 일도 있고, 빚보증을 서서 농사를 내팽겨져서 같은 큰일도 있다. 어찌 보면 앙숙 같은 이들은 ‘유물론’과 ‘민족’ 앞에서 경건하게 하나가 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티키타카’는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는 유쾌한 촉매제가 되어준다.
“빨치산의 딸, 한국문학의 딸로”정지아라는 센세이션
32년 전 정지아의 등장은 한국문학에서 하나의 센세이션이었다. 판매금지와 공안 당국의 기소 같은 일련의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가 보여준 핍진한 서술과 역사를 대하는 진지한 태도 때문이었다. 이제 정지아는 그 태도에 더해 사실과 허구를 섞어가며 자유자재로 이야기를 다루는 관록과, 마지막 페이지까지 독자의 손을 꼭 붙들어놓는 대가의 면모까지 갖추었다. 32년 만에 내놓는 이 소설로 정지아가 다시 한번 그 존재감을 증명하게 되리라 기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지아는 빨치산의 딸일 뿐 아니라 우리 문학의 귀하디귀한 딸”(소설가 김미월)이 되었다는 말에,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모두가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작가의 말
고향에 돌아오니 서울서 보이지 않던 아름다움 천지다. 섬진강변의 벚꽃길, 반야봉의 낙조, 노고단의 운해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벚꽃은 정 읎어 싫고 산수유는 속 읎어 싫다는 동네 할매, 필요 없다고 해도 밥을 묵어야 힘이 난다며 기어이 가져다주는 식당 주인, 심지어는 먹도 못할 억센 나물을 삶으면 부드럽다고 뻥쳐서 파는 장터 할매, 주방에서 가장 먼 안쪽 테이블에 앉았더니 사람도 없는데 가차이 앉으라고 호통치는 식당 아줌마(알고 보니 그이는 관절염이 심했다)까지, 이곳엔 사람 냄새 넘치는 사람이 그득하다. 오죽하면 할매가 뻥을 치겠는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다. 급하면 뻥도 치고 호통도 치는 것이 사람 아닌가.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 아버지 십팔번이었다. 그 말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진작 아버지 말 들을 걸 그랬다.
아버지. 아버지 딸, 참 오래도 잘못 살았습니다. 그래도 뭐, 환갑 전에 알기는 했으니 쭉 모르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딸을 대장부의 몸으로 낳아주신 것도, 하의 상의 인물로 낳아주신 것도 다 이해할 터이니 그간의 오만을, 무례를, 어리석음을 너그러이 용서하시길…… 감사합니다, 아버지. 애기도 하는 이 쉬운 말을 환갑 목전에 두고 아버지 가고 난 이제야 합니다. 어쩌겠어요? 그게 아버지 딸인걸. 이 못난 딸이 이 책을 아버지께 바칩니다.
책 속으로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만우절은 아니었다. 만우절이라 한들 그런 장난이나 유머가 오가는 집안도 아니었다. 유머라니. 유머는 우리 집안에서 일종의 금기였다. 그렇다고 유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누가 봐도 유머일 수밖에 없고 유머여야 하는 순간에도 내 부모는 혁명을 목전에 둔 혁명가처럼 진지했고, 그게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p.7
개 이름 같은 아리는 내 이름이다. 아버지가 활동했던 백아산의 아, 어머니가 활동했던 지리산의 리,를 딴 이름 덕분에 나는 숱한 홍역을 치렀다(사실 아버지가 주로 활동한 곳은 백아산보다는 백운산이었다. 그런데도 백아산의 아를 따온 것은 백운산의 백이나 운이 여자아이 이름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그러니까 제 아무리 남녀평등을 주장했다 한들 반봉건시대에 태어나 가부장제의 그늘을 아주 벗어나지는 못한 반봉건적 사유의 발로였던 것이다). 학교에서나 관공서에서나 고아리, 내 이름을 말하면 아유, 이름이 참 예쁘네, 얼굴도 참…… 하면서 나를 쳐다보았고 이내 말줄임표가 뒤따랐다.--- p.29
유물론자다운 대답이 나는 만족스러웠다.
“그럼 제사는?”
“지사는 무신 지사. 헹제라도 많아서 핑계 김에 얼굴이나 볼라먼 모릴까 니 혼찬디 지사는 무신 지사.”
아버지는 뼛속까지 유물론자였다. 부모가 여든 넘도록 장지 마련은 고사하고 영정사진 찍어둘 생각조차 못한 불효자식이었으나 아버지의 유지가 그러하였으니 따르면 될 터였다. 역시 유물론은 산뜻해서 좋다.--- p.94
“오죽흐먼 나헌티 전화를 했겄어, 이 밤중에!” 또 그놈의 오죽하면 타령이었다.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는 아버지의 십팔번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오죽해서 아버지를 찾는 마음을 믿지 않았다. 사람은 힘들 때 가장 믿거나 가장 만만한 사람을 찾는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힘들 때 도움받은 그 마음을 평생 간직하는 사람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대개는 도움을 준 사람보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먼저 잊어버린다.--- p.102
“노동이…… 노동이…… 힘들어.”
그때까지 위태위태 잘 참고 있던 나는 노동이 힘들다는 빨치산의 고백에 그만 풉, 웃음을 뿜고 말았다. 스스로도 염치가 없었는지 그가 비식 웃으며 덧붙였다.
“사흘 노가다 뛰고 석달 입원했네. 나는 암만해도 노동과 친해지질 않아.”
“저놈의 부르주아 근성은 머리가 희캐져도 뿌리가 안 뽑히그마이. 그런 놈이 멀라고 뽈갱이는 돼가꼬……”--- p.150
월남전에서 다리를 잃었다고 했으니 아마도 육십년대 후반이나 칠십년대 초반, 원래의 다리보다 더 오래 다리 노릇을 해온 때문인지 노인은 지팡이를 능숙하게 움직여 비틀거리지도 않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아따 조문은 무신…… 나랑 쐬주나 마시장게.”
다리 불편한 노인네를 확 낚아챌 수도 없는 노릇, 황사장이 어쩌지도 못하고 졸졸 뒤를 따르며 다그쳤다.
“왜? 나는 베트콩 때려잡던 사램잉게 뽈갱이 조문하먼 안 된다는 것이여! 나가 고상욱이 때려잡았간디?”--- p.193
“넘의 딸이 담배 피우먼 못된 년이고, 내 딸이 담배 피우먼 호기심이여? 그거이 바로 소시민성의 본질이네! 소시민성 한나 극복 못헌 사램이 무신 헥명을 하겄다는 것이여!” 그때 어머니 나이 환갑을 넘었다. 환갑 넘은 빨갱이들이 자본주의 남한에서 무슨 혁명을 하겠다고 극복 운운하는 것인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블랙 코미디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자리를 떴다.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오직 담배를 태우기 위해 나는 동네 사람이 절대 다니지 않을 산중턱까지 올랐다. 담배 세대를 연달아 태우는 동안 바라본 우리 집은 성냥갑 같았다.--- p.243
“가가 오죽하면 글것냐” MZ세대 매혹시킨 ‘빨치산 어른’의 한마디
“한탄하면 뭐 할 것이여” “다 이유가 있것제”
노동이 혁명보다 고통스러운 전직 혁명가
‘아버지의 해방일지’ MZ세대가 열광한 ‘빨치산 시트콤’
진짜 어른은 좌우에서 보아도 좋은 사람
정지아, 구례에선 돈 없어도 기죽지 않아
태어나보니 가난한 빨갱이의 딸이었을 뿐이다.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군들 빨갱이의 딸을 선택하겠는가. 할 수만 있었다면 나는 당연히 이부진이나 김태희의 삶을 선택했을 것이다.’- 정지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중에서
▲정지아의 부모 이옥남과 정운창은 정지아 소설의 아름다운 뿌리가 되었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로 시작하는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었다. 콘돔을 사러 편의점으로 질주하던 김애란의 소설 ‘달려라 아비’ 이후로 아버지의 운동력을 이렇게 발랄하게 묘사한 작품은 처음이었다. 지리산 출신의 전향한 사회주의자 아버지와 최후의 남부군 생존자 어머니가 농사지으며 사는 이야기는 책갈피에 머리를 박고 ‘오열할 정도로’ 웃기다.
‘누가 봐도 유머일 수밖에 없고 유머여야 하는 순간에도 내 부모는 혁명을 목전에 둔 혁명가처럼 진지했고, 그게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라고 그는 쓰고 있다. 이를테면 사정이 딱해 보이는 방물장수를 무조건 집에 재우려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화.
“우리 집이 방이 왜 없어? 야랑 자면 되잖애?”
“베룩이라도 옮으면 워쩔라고.”
“자네. 지리산 서 뭣 헐라고 목숨을 걸었능가? 민중을 위해서 아니었능가? 저이가 자네가 목숨 걸고 지킬라 했던 민중이여, 민중!”
정지아는 방물장수 하룻밤 재우는 일에 민중을 끌어들이는 아버지나, 그 말에 꼬리를 내리고 찬장에 모셔둔 새 접시를 꺼내는 어머니, 그 민중이 옮기고 간 벼룩 자국에 허벅지를 벅벅 긁는 딸 사이를 오가며, 거리를 두고 이 희비극을 완성해 냈다. 민담 같기도 하고, 만담 같기도 한, 시골뜨기 사회주의자 부모의 생애사를 읽으며, 나는 크게 위로받았다.
2011년 고향인 구례에 둥지를 튼 화제의 베스트셀러 작가를 만나러 기차를 타고 남도로 떠났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읍내엔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햇빛이 은어 비늘처럼 반짝이는 섬진강 변을 달려 통창이 시원한 작가의 시골집으로 들어섰다. ‘빨갱이 아버지’가 조선 미디어에 나오다니 격세지감이라며, 그가 웃었다. 초여름, 섬진강에 뜬 물별만큼이나 은은한 미소였다.
-당신은 누구의 딸인가?
“아버지의 딸(웃음). 어머니보다 아버지랑 공통점이 더 많다.”
-어머니는 어떤 분인가?
“똑똑한 분이다. 국졸이었지만, 아버지는 어머니를 엘리트주의자라고 놀렸다. 아버지보다는 오지랖이 덜하셨고 민중보다는 딸을 더 사랑하셨다. 어머니에겐 딸이 이념이었다.”
정지아의 어머니 이옥남은 지리산에서 활동했던 남부군이었다. 98세로 현재 유일한 생존자. 읍내에서 혼자 개밥처럼 거칠게 식사하시는 게 눈에 밟혀, 곁으로 모셔 왔다고 했다. 아버지 정운창은 전남도당 조직 부부장이었다.
▲정지아는 1990년 소설 ‘빨치산의 딸’로 데뷔했으며 ‘숲의 대화’ ‘자본주의의 적’ 등등을 썼다. 김유정 문학상, 이효석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정말 많이 웃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불시착한 ‘빨치산 가족 시트콤’처럼 읽혔다. ‘출생의 비극’을 이토록 유머러스하게 거리를 두고 회복해 내다니, 놀랍다.
“(담담하게)빨치산의 자식들은 사는 게 투쟁이었다. 소설 ‘남부군’ 쓰신 이우태 씨는 나보다 더 상상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 그분 아버지가 사회안전법 생기기 전에 2~3년 살다가 아이를 낳았는데, 전향을 안 해서 다시 감옥으로 들어갔다. 아들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자기를 버리고 사상을 택한 격이니, 오죽 상처가 컸겠나.
사람들은 이문열 선생도 우파라고 비난하는데 나는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다.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이문열 선생도 남로당 고위 간부였던 아버지가 자신을 버리고 월북했다. 가서 성공한 것도 아니고 숙청당했다. 그러니 간첩만 내려오면 끌려가고… 나는 이문열 선생이 서울대 사범범대에 간 걸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정지아의 입에서 발화된 ‘오죽하면’이라는 부사 위로 그의 아버지의 말이 스르르 감겼다. “가가 오죽하면 글겄냐?”는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건진 가장 아름다운 한국말이었다.
-서울대 사범대에서 왜 눈물이 왜 나나?
“그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도 연좌제에 걸려서 내 미래에 답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 이문열이 서울대 사범대를 나와서 뭘 할 수 있었겠나? 그렇게 존재를 외치고 한 학기 만에 휴학을 한 거다. 어찌 보면 70년대 한국문학의 부흥은 연좌제가 만들었다. 이문열, 김원일, 김승옥, 이문구, 김성동, 조정래… 좌파의 자식들은 세상에 나와서 예술밖에는 할 게 없었다. 돈 안 들어가는 예술이 글밖에 없으니, 글쓰기 말고는 할 게 없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내어준 세상의 출구가 글 밖에는 없었다는 말이 아프게 명치를 찔렀다. 사상범의 가족 또는 친족은 공무원 임명, 해외 출국 등 사회 활동을 제한하던 연좌제는 1980년 정지아가 중학교 3학년 때 폐지됐다.
-책에서 당신의 아버지는 혁명가라기보다는 좋은 어른처럼 보였다.
“좋게 말하면 혁명가고 나쁘게 말하면 반란군인데, 아버지는 이념으로 선택한 게 아니라 사람으로 살고 싶어서 택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의지적이었던 것에 반해, 어머니는 상황을 따라갔다. 시집갔더니 남편이 빨갱이였고, 여순 반란 사건 때 산으로 따라 들어가 임신을 했다. 12월에 산달이 되어 내려왔더니 가족도 외면해서 친척 집 전전하다 애 낳자마자 산으로 쫓겨났다더라.
다들 살려고 상황에 휩쓸려 다녔다. 이념의 실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무슨 사회주의 활동을 했겠나. 방물장수 하루 재워주는 거, 집 앞 눈 먼저 쓰는 거, 궁한 사람 돈 빌려주는 거… 적어도 내가 겪은 빨갱이 부모는 그런 것들을 사회주의의 실천이랍시고 했다. 사람의 도리를 하겠다는 거였지.”
-최근에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멘터리에 누군가 그분을 ‘빨갱이’라고 욕설하는 장면이 담겼다. 문득 우리 시대의 어른은 모두 이데올로기의 그물에 갇혀 자유롭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진짜 어른은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는다. 좌우에서 보아도 좋은 사람이다. 내 아버지는 깨어있는 사람이고, 편견 없는 평등주의자였다.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것에 너그러우셨다. 코 찔찔이 코부터 닦아주고, 못생기고 더러운 아이들부터 챙겼다. 예쁜 애 예뻐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아버지처럼 편견 없는 평등주의자로 사는 건 쉽지 않다. 정치는 진보인데 자기 이익을 포기 못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나? 그러면 또 그 주장이 얼마나 우스운가? 자신이 뱉은 말대로 살기가 쉽지 않다.”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꼽히는 정지아./사진=강민구
-말에는 힘이 있다. 특히 ‘명명’은 진리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구글이, 애플이, 그냥이, 저냥이라고 이름 붙인 당신의 네 마리 고양이도 불리는 순간, 나름의 운명이 부여됐을 거다(웃음). ‘지아’라는 이름은 어떤가? 지리산과 백아산에서 딴 이름이라던데, 듣기만 해도 울창하다.
“지혜지(智), 나 아(我)자다. 부모가 자신의 지향을 담아 지은 이름이지. 엘리트주의자의 센 고집이 다 들어가 있다(웃음).”
지리산 밑에 들어오니 산이 아(我)를 품었다고 했다. 나라는 중력을 버리고 나니 가볍고 산뜻한 가족사가 떠오르더라고.
-지리산에 치유의 힘이 있는 걸까.
“하하. 구례에 와서 배운 게 많다. 살아보니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것, 하찮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다른 모습이 보인다. 내가 생각했던 게 100% 옳지 않았다. 학교 문예창작 수업에서는 자기 상처를 다 드러내라고 한다. 그런데 남의 상처를 들여다보면 그 고통의 깊이가 다 천차만별이다.
내 부모가 사상범이라는 건 정치적 지향의 문제지만, 이상한 종교에 빠진 엄마부터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아버지까지, 듣고 보니 세상 자식들의 괴로움은 끝이 없었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 가르치던 제자들을 보면 어린 시절 애착이 온전치 못해 내면이 파헤쳐진 이들이 많았다.”
그 자신, 세상과의 불협화음은 있었지만 부모의 지극한 사랑을 받아서 내면은 탄탄하다고 했다. 세상과의 불화를 삭혀낸 ‘빨치산의 딸’ ‘숲의 대화’ 등 정지아의 전작 소설은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빼고 웬만한 문학상은 다 받았지만, 오랫동안 독자의 사랑은 못 받았다.
▲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이렇게 뜨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는 정지아. 책은 청년과 장년 세대에게 고르게 사랑받았다./사진=강민구
-좋은 이야기도 읽어줄 시대를 만나야 꽃이 피는 법.
“어찌 보면 나는 진정성이 사라진 시대에 계속 진정성을 붙잡고 있었던 거다(웃음). 요즘은 자기 삶이 고달파서, 다들 지금 여기가 아닌 곳으로 데려다주길 바라잖나. 그래도 문학이 언제까지 가벼우랴… 하는 마음을 놓지 않았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고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니까.”
그래도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이렇게 뜨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가제는 ‘이웃집 혁명 전사’였다. ‘혁명’과 비장한 세트를 이루던 ‘해방’이라는 단어는 반세기가 지난 후, 중심에서 밀려난 변두리 가족의 ‘추앙’과 세트를 이루며 산뜻하게 빛을 발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는 ‘가가 오죽하면 글것냐?’라는 마법의 문장이 있다. 사람들은 이렇게 다 받아주는 어른이 고팠던 것 같다.
“그런데 구례에는 아버지 같은 분이 많다. 아버지 장례식장에 전복죽 끓여오는 떡집 언니도 그중 하나다. 실존 인물이고 허락받고 책에 썼다. 우리 엄마 전남편의 친척인데, 평소에도 음식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와서 늙은 내 어머니를 봉양한다.
부침개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한 장씩 다섯 종류의 전을 부쳐온다. 나는 깻잎 몇 장도 씻기 싫어 꾀를 내는데, 몇천 장의 깻잎을 다 씻어서 밑반찬을 만들어 오는 거다. 정말 신기했다. 대체 남을 위해 저러는 마음은 뭘까…”
-혈연관계도 아닌데.
“미스터리다. 불편한 마음 들까봐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선물을 한다. 찬찬히 보고 필요한 게 뭘까를 찾아서, 슥 준다. 가령 허리가 편한 몸빼바지 같은 거. 게다가 노인의 하등 재미없는 반복적인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처럼 다 받아준다. 그 자애로움을 온전히 받아들이다 보니 나도 조금씩 사람이 되고 있다. 그러니까 이곳은 내 것을 내어주는 사람이 많은 거다.”
-바라는 것 없이…
“없이... 내가 빨치산의 딸로 오래 살아서 사람 경계하는 게 몸에 배어 있었다. 친구도 10년 봐야 친구인가 보다 했을 정도로. 아버지는 아무도 경계하지 않았지만, 나는 경계가 심해서 속을 터놓지 않았다. 나의 핵심을 보여주지 않으면 그게 무슨 관계겠나.
그런데 지리산 양반들이 그 빗장을 풀어줬다. 엄마 아빠가 어땠기에 이분들과 이렇게 경계 없는 관계를 맺고 사나, 연구하다 보니 한 권의 책이 나온 거다.”
-그분들은 대체 왜 그러나?
“자기가 받았기 때문 아닐까.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게다가 다들 왜 그렇게 다 웃긴가? 얼어 죽고 굶어 죽는 고통을 견뎠던 전직 빨치산이 고추밭 김매는 2시간을 못 견디고, 노동이 혁명보다 더 고통스럽다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배꼽을 잡았다. 한여름에 권총 자살했다고 신문에 난 앵커 처벅이 퍼벅으로, 펄 벅으로 전도돼서 자존심을 건 싸움이 되는 장면도 웃기고 서글펐다.
“실제로 우리 작은아버지가 꼭 신문을 잘못 봐서 낭패를 보시곤 했다. 나는 얘기를 재밌게 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다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소설가에서 좀 벗어나 있는 것 같다. 권위가 없달까. 그런데 알고 보면 무학의 소설가가 더 짱이다. 기대를 깨는 웃음의 바이브가 있다.”
▲반려견 치타, 그냥이, 저냥이, 애플이, 구글이… 네 마리 반려묘, 옆 집의 어머니와 함께 사는 정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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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보기에 아버지는 권위가 있으셨나?
“(놀라며)아버지가 뭔 권위가 있었겠나. 감옥 들락거리고 농사도 못 짓고 온 식구를 고생시키셨으니… 외려 권위가 있는 사람에게 당당하셨다. 약한 자들에겐 한없이 약하셨고. 어쩌면 권위에 연연하지 않았기에, 현실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인민군이 추수 때 잘 된 논을 표본으로 골라서 낱알까지 다 세서 세금 걷어간 걸 보고, 이 싸움은 질 줄도 예견했다더라. 이런 방식으로 세금 거두면 농민이 100% 등 돌릴 거라고. 자신이 믿었던 길을 갔지만 결국 중간에 전향했으니, 장기수 분들 입장에선 또 ‘변절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도 또 개의치 않았다. 아버지는 이념 따위도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셨으니까.”
‘아버지에게는 사상과 사람이 다른 모양이었다. 광주교도소에서 함께 복역한 동지 한 사람이 떠르르한 지주의 자식이었다. 그에게는 늘 사식이 풍성하게 들어왔다. 그 사식을 벤소에 숨겨놓고 돼지처럼 저 혼자 먹었다고, 진짜배기 혁명가가 아니라고, 아버지는 두고두고 흉을 보았다.’-’아버지의 해방일지’ 중에서.
-신념 가진 자들은 다 위험하다고 이어령 선생도 생전에 말했다.
“신념이 강한 영웅은 오래 살면 다 다크히어로가 된다. 체 게바라 같은 사람이야 일찍 죽어서 신화가 됐지만(웃음). 제일 문제는 정치권으로 간 사람들이다. 자신을 경계하고 반성하는 자들은 반성하지 않는 주류를 못 견뎌 떠날 수밖에 없다. 빨치산도 레지스탕스도 다 일상으로 돌아갔다.
가만 보면 “나야 소시민으로 살지”라며 겸연쩍어하는 변두리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 대학으로 간 내 선배 한 분이 그랬다. 강사나 학생들이 교수들에게 인사 다니거나 과한 선물을 하지 못하도록 규칙을 세웠다. 신념 가진 자가 아니라 반성하는 자들이 조금씩 세상을 바꾼다.”
/정지아 작가.
-부모님처럼 당신도 유물론자인가?
“(미소 지으며) 좀 다른 의미로 유물론자가 아니다. 나는 물건을 싫어한다(웃음). 제자들은 예쁜 것들을 사 모으던데, 나는 물건 대신 사람을 모으는 것 같다. 위스키를 좋아하지만 그것도 마시면 없어지는 것이고. 5천 원짜리 몸빼 바지에, 양말도 누가 벗어놓고 간 것 빨아서 신는다.”
-아… 정말 물욕이 없나?
“돈 벌면 갖고 싶은 게 뭘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조니워커 블루 향을 좋아하고 에르메스 디자인이 취향에 맞지만, 가격을 보면 ‘으흥’ 이다. 뭘 사달라고 해본 적도 없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나는 이 책이 뜨기 전에도 좋았다. 부족하지 않았다.
대학 문예창작과 강의를 나가고 있는데, 운전을 좋아하니 교수보다 택시 운전사를 해볼까 진지하게 고민도 했다. 소설가보다 택시 기사가 더 멋있지 않나?”
물욕도 편견도 권위도 없어 태평한 정지아의 얼굴을 나는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편견만 내다 버려도 삶의 지경이 태평양처럼 넓어지는구나. 소설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을 만났을 때도 느꼈듯이 마이노러티의 온유함으로 메이저를 품은 여자들에게선 은은한 기품이 배어 나왔다.
가난해도 인간의 도리를 아는 아버지는 딸의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가.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이민진의 ‘파친코’, 이슬아의 ‘가녀장의 시대’를 보면서 나는 얼굴도 모르는 그녀들의 아버지에게 깊이 감사했다. 선자의 아버지 훈이도, 슬아의 아버지 웅이도, 아리의 아버지 상욱도 가부장의 권위에 연연하지 않고 당신의 딸을 고귀하게 대접했다.
아버지의 신뢰를 먹고 단단해진 소녀들은 세상 권력에 기죽지 않고 제 기질대로 나긋하고 꼿꼿하게 자랐다.
▲구수한 남도 사투리로 빨치산 출신 아버지의 장례식 풍경을 맛깔스럽게 그려낸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현재 26만부 가량 판매되었다.
-올해 나는 두 문장의 힘으로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도 상관없다(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와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첫 문장)’. 아버지 세대가 만든 비극을 다루는 화자의 쿨한 애티튜드가 역대급이다. 자이니치라든지, 빨치산의 딸이라든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정체성으로 멸시를 받아도, 화내지 않고 최선을 다해 거리를 두는 자세에 감동받았다. 힘을 빼서 더욱 힘이 센, 이 첫 문장은 어떻게 나왔나?
“첫 문장은 이야기의 얼개가 다 있는 상태에서 썼다. 좌우가 명료할 때는 한쪽이 먼저 파괴됐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시간만이 해결해 준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첫 문장엔 세대에 관한 이야기라는 힌트를,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에서 전봇대는 전류가 모이는 곳이니, 어떤 세계든 상관없이 소통하려던 사람이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아버지는 한탄을 안 했다. “‘가가 그럴 때는 이유가 있것제’ ‘한탄하면 뭐 할 것이여’가 아버지가 지킨 언어의 세계관이었다.”
-아버지는 말년에 농부와 혁명가 중 무엇으로 남기를 바라셨나?
“글쎄. 농사는 인내심이 있어야 하는데, 혁명가인 아버지와는 안 맞았다. 누구를 도와서 삶이 달라지면 그게 큰 기쁨인 분인데, 아버지 입장에선 사람 농사에 비해 쌀농사 밭농사는 너무 성과가 미미했다. 잡초 뽑는 걸 너무 힘들어하셨다(웃음). 심고 거둘 땐 좋지만, 잡초는 뽑아도 다시 나니, 기막힌 노릇이라고. 사람 농사에 비하면 가성비가 떨어지니까…
신기한 게 나도 그렇다. 피 뽑는 게 제일 싫다. 하하. 그런데 아랫집 언니는 잡초 뽑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고 한다. 깨끗해진 만큼 고추가 무럭무럭 자라겠구나, 하면서.”
아버지는 농사에는 소질이 없었지만, 열심히 일을 했다고 했다. 뼛속까지 사회주의자였던 당신이 인심 잃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한 덕분에, ‘빨치산의 딸’도 대학에 가고 대처로 나갔다.
“보증 빚을 물려주긴 했지만, 아버지 당신도 빚내기의 귀재였다. 대학 등록금도 늦지 않게 빚으로 다 막아주셨고.”
조건 없이 서로에게 빚을 내어주고 내어 받는 것… 그것이 빨갱이 아버지의 빛나는 인생 매트릭스, 딸이 물려받은 인생 ‘자본론’인 듯했다. 그 자신, 인세로 번 돈도 제자가 만든 인터넷 신문사 1년 치 임대료 내라고 주었다고 했다.
-어쩌면 정지아의 소설은 거리에서 캐스팅된 사람들이 부르는 코러스 내러티브 같다.
“진짜 삶이 아닌 것은 쓰고 싶지 않다. 허공에서 보는 문학이 무슨 소용이 있나? 나는 소설 쓰는 것보다 출퇴근의 고통이 더 힘들다는 걸 안다(웃음). 사는 건 누구나 다 힘들다. 그래서 내가 쓰는 소설을 살아가는 고통 위에 놓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름답게 사고하는 보통 사람들과 술을 마신다. 아름다운 진실이 숨어 있는 한마디를 건지기 위해서. 여기 이 집 주인아저씨도 감자에 2천 원 더 비싸게 붙여서 나한테 팔았다가, 병실에 사골국 끓여갔더니 허허 웃으며 앞으론 다 갖다 먹으란다. 여기 동네 분들은 행위 하나하나가 다 소설 감이다.”
-구례에서의 삶은 이렇게 계속될까?
“물론. 나는 다작할 생각도 없다. 이곳은 드물게 느슨한 일상이 가능한 곳이다. 치열하지 않다. 더 벌어도 덜 벌어도 상관없다는 튼튼한 마음이 있다. 식당에 둘이 가서 밥을 한 공기만 달라고 해도 기어이 두 그릇을 준다. “사람이 그거 먹고 어찌 힘을 쓴다요. 더 묵소” 하면서.
“구례에선 돈 없어도 기죽지 않는다. 사는 게 무섭지가 않다.”
▲“갖고 싶은 건 없다. 오직 더 나은 소설을 쓰고 싶을 뿐.”/사진=강민구
-마지막으로 정지아에게 성공이란 무엇인가?
“더 나은 소설을 쓰는 것. 한 발짝 더 나은 글을 쓰고 싶다. 그 욕망이 가장 크다.”
김지수 작가 조선
서평에 소설을 소개한 사례는 극히 이례적이다. 순전히 작가와 닮은 사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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