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과 어울리기/서평

암컷들

by 이성근 2023. 5. 21.

 

암컷들 루시 쿡 지음·조은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05

 

루시 쿡 (Lucy Cooke)영국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리처드 도킨스를 사사하여 동물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계를 떠나 방송인으로 거듭난 그녀는 최신 생물학 연구와 현장탐사를 넘나드는 혁신적 스토리텔링, 그리고 뛰어난 유머감각으로 자연사 다큐멘터리계의 떠오르는 별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쿡은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BBC, PBS, 디스커버리 채널의 황금 시간대에 방영되는 다큐멘터리 시리즈의 작가이자 프로듀서, 감독으로 활동하며 수상 경력을 이어갔다.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텔레그래프, 선데이 타임스를 비롯하여 BBC 와일드 라이프등에 기고하고 있으며, 영국 왕립연구소와 TED우먼,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 등에서 야생동물의 생태에 관한 뛰어난 대중 강연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생물학계에 드리운 성차별적 신화를 넘어 암컷의 생물학을 재구성한 문제작 암컷들은 출간 즉시 주요 언론은 물론 학계의 극찬을 받았고,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 프린스턴대학교 및 주요국제 대학의 교재로도 선정되었다. 그 밖에 지은 책으로 영국 왕립학회 과학도서상 후보에 오르고 전 세계 18개 언어로 번역된 오해의 동물원,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나무늘보에 관한 작은 책등이 있다.

 

목차

들어가며 다윈의 고정관념을 거스르는 암컷들

빅토리아 시대와 진화론의 아버지 | 생물학자들의 확증편향

다윈에게 반기를 든다는 것 | 여성의 본성을 찾는 여정

 

1장 무정부 상태의 성: 암컷이란 무엇인가

두더지와 하이에나 암컷의 가짜 음경

남성성과 여성성의 기원을 찾아서 | 혼돈의 염색체

남성염색체가 사라지고 있다? | 성적 형질의 다양성

하와의 갈비뼈

 

2장 배우자 선택의 미스터리: 여성은 무엇을 어떻게 선택하는가

산쑥들꿩의 아찔한 춤 | 암컷의 선택에 관한 논란의 역사

수새는 선택받고 싶어 한다

 

3장 조작된 암컷 신화: 바람둥이 암컷에 대한 불편한 발견

조작된 정절 | 바람피우느라 바쁜 새들

음탕한 랑구르원숭이 | 고환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베이트먼의 오류 | 정숙한 암컷의 죽음

 

4장 연인을 잡아먹는 50가지 방법 : 성적 동족 포식의 난제

거미의 극심한 성적 갈등

죽더라도 암거미의 눈에 띄어라

삶과 죽음을 가르는 진동 | 성적 동족 포식의 큰 이점

 

5장 생식기 전쟁 : 사랑은 전쟁터이다

암컷의 생식기는 모두 거기서 거기? | 암오리의 나선형 질

질은 진화한다 | 음핵과 오르가슴, 그리고 친부 결정권

 

6장 성모마리아는 없다 : 상상을 초월하는 어미들

모성애라는 미신 | 개코원숭이의 계급과 부모되기

어미의 다양한 통제권 | 엄마답게 만드는 호르몬, 옥시토신

호르몬만으로는 작동하지 않는 애착 | 함께 돌보다

 

7장 계집 대 계집 : 암컷의 싸움

암컷들의 피 튀기는 결투

다윈의 성선택에 문제 제기하는 암컷들

알파 암탉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무자비한 번식 경쟁과 독재자 | 여왕님 만수무강하시옵소서!

벌거숭이두더지쥐 여왕의 폭압

 

8장 영장류 정치학 : 자매애의 힘

원더우먼 여우원숭이 | 암컷 지배 | 지배의 이유

자매여 단결하라! | 보노보가 충돌을 피하는 법

보노보 사회가 보여준 새로운 가능성

 

9장 범고래 여족장과 완경 : 고래가 품은 진화의 비밀

폐경의 수수께끼 | 범고래 똥에서 찾은 진화의 비밀

나이 든 여족장 사회의 유대와 결속력

완경한 범고래에게 기대하는 미래

 

10장 수컷 없는 삶 : 자매들끼리 알아서 해결하고 있다

개척적인 동성 커플 | 놀라운 무성생식 기술

질형목 생물의 진화적 장수 비결

암컷으로만 이루어진 종의 성공 | 미래는 여성이 될 것이다

 

11장 이분법을 넘어서 : 무지갯빛 진화

따개비의 유동적 성 | 비이원적인 세계

흰동가리 니모와 성전환 | 암컷들이 가르쳐주는 것

 

나오며 편견 없는 자연계

감사의 말 | | 더 읽을거리 | 찾아보기

 

출판사 리뷰

이분법적 성, 자비로운 모성 신화,

다윈 시대의 편견을 깨부순 암컷 생물학의 탄생

똑바로 봐, 우리 암컷들의 진짜 모습을!”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렇게 말했다. “암컷은 착취당하는 성이다. 착취의 진화적 근거는 난자가 정자보다 크다는 사실에 있다.” 다량의 정자를 지닌 수컷은 아무리 많은 암컷과 교미를 해도 충분하지 않으며, 작고 약한 암컷은 출산과 양육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기에 수동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도킨스의 제자로 있던 동물학 전공자 루시 쿡은 암컷이 발생적으로 수컷의 유전자에서 비롯하였으며 진화를 주도하는 것은 수컷이라는 경전의 해석 앞에 늘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떤 성은 경쟁적이고 방탕할 수 있으며, 어떤 성은 수동적이고 정숙할 수 있단 말인가.

 

이에 루시 쿡은 학계를 떠나 편견 없는 자연의 모습을 대중에게 알리겠다는 신념하에 양서류, 나무늘보 등을 카메라에 담으며 영국의 대표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제작자로 자리매김했다. 오해의 동물원으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그가 암컷 생물학으로 한국의 독자를 찾아왔다. 암컷들은 수컷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던 과거 생물학의 가부장적 프레임을 벗어버리고, 진화생물학 연구의 최전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혁명적 연구에 주목한다. 저자는 캘리포니아 호두농장에서부터 하와이의 해안, 마다가스카르의 정글과 케냐와 북아메리카의 대평원 등을 직접 탐험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암컷 동물들을 만났다. 이 책은 프란스 드 발을 비롯하여 세라 블래퍼 허디, 진 앨트먼, 메리 제인 웨스트 에버하드, 퍼트리샤 고와티 등 첨단 과학기술과 야생 탐사의 풍부한 데이터, 진화와 성에 대한 대안적 시각으로 무장한 학자들의 선구적인 연구를 박력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엮어내고 있다. 특유의 재치 있는 문체로 모성, 돌봄의 본능, 일부일처제 같은 편견을 깨고 생태계에 군림하며 역동적으로 경쟁하는 암컷들의 생생한 초상화를 완성시켰다.

 

저자는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 혐오적 문화와 가부장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다윈의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뿐 아니라, 다윈 시대의 프레임에 갇혀 데이터에 대한 간결성의 원칙(증거를 신뢰하고 단순한 설명을 선택하는 과학의 방법론)’을 어기며 결과를 조작하기까지 했던 과거 생물학의 허점들을 통쾌하게 파헤친다. 스승인 리처드 도킨스를 뛰어넘는 대담한 서사로 다윈주의의 경계를 무한히 확장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진화생물학을 재구성하고자 하는 시도다. 지금껏 기록되지 않은 암컷들의 삶을 담은 이 책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진짜 암컷들의 본모습은 우리의 상상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 있다.

 

바람피우기 바쁜 새부터 수컷을 두고 싸우는 토피영양

진화의 엔진으로서 암컷의 진면목

성적으로 방탕하고 치열하게 쟁취하며 무리 위에 군림하는 투사들

 

케냐 마라이 국립공원의 밤, 저자는 탐사 차량 주변을 서성거리는 암사자 때문에 공포의 하룻밤을 보낸다. 암사자는 녹음기 속 수컷의 울음소리를 듣고 슬그머니 빠져나와 다른 수컷과 밀회를 즐기러 온 것이다. 생물학에서 이형접합(암수 배우체의 근본적 차이)은 암수의 성 분화뿐 아니라 그들의 행동까지 결정하며, 이에 수컷은 방종하고 암컷은 까다롭고 정숙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암사자의 방탕함과 바람기는 동물의 왕국에서 유일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진부한 성역할이 씌인 것일까? 저자의 말에 따르면 동물들의 진짜 모습을 아직 인간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구애를 받는 암컷은 경쟁하는 수컷의 매력과 성적 요구에 마지못해응한다고 설명했던 다윈을 비웃기라도 하듯, 자연계의 암컷들은 성적 방종 그 자체를 보여준다. 암컷들은 바람둥이 암사자를 비롯해 폭압의 여왕인 미어캣, 수컷을 차지하기 위해 피 튀기며 싸우는 토피영양, 레즈비언이 된 알바트로스와 나이 든 범고래 여족장 등 수컷보다 방탕하고 생존을 위한 투사로 살아가며 무리 위에 군림하는 자연계 암컷들의 진면목을 과감하게 펼쳐낸다.

 

한 연구에 따르면 빅토리아 시대 충실한 부부의 모델로 삼았던 명금류 새 바위종다리 암컷이 실은 두 마리 수컷과 250회 이상 짝짓기 하느라 바빴다. 사회적으로 일부일처성인 암새의 90퍼센트가 다수의 수컷과 교미하는데, 이러한 바람기는 더 나은 유전자를 선택하기 위한 수단임은 물론 친부가 누구인지 혼동을 줌으로써 영아 살해의 위험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고 양육 과정에서 도움도 받기 위한 교묘한 전략이다. 과학자들의 확증편향과 편견 너머 동물계의 암컷들은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 위해 성적으로 해방된 삶을 영위하고 있었으며, 일말의 수치심도 느끼고 있지 않다.

 

암컷의 선택과 생식기 연구에서 만난 진화의 비밀

자연에 대한 올바른 질문을 하려면 여성에 대한 자료도 많아야 합니다

 

북아메리카에 서식하는 산쑥들꿩 수컷은 구애를 위해 목울대를 부풀리며 가슴을 튕기는 기묘한 팝핑 춤을 춘다. 죽을힘을 다해 경쟁적으로 춤을 추는 수컷들 앞에 암컷은 마치 관심 없다는 듯 소극적으로 군다. 그런데 새를 가장한 펨봇로봇으로 이들의 습성을 연구한 결과 이러한 춤은 수컷끼리의 괴상한 경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암컷과 소통하는 과정이었다. 그 한 해 가장 많이 짝짓기를 한 산쑥들꿩(닉네임 딕) 수컷은 가장 요란한 춤꾼이었을 뿐 아니라 암새가 주는 미묘한 신호에 잘 반응하며 상대의 말을 잘 듣는매력적인 새였던 것이다. 이 연구는 여성이 무엇을 선택하는가라는 최신 진화론의 화두를 반영한다.

 

과학은 시대의 편견 앞에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2세기가 지난 지금도 전 세계 자연사 박물관의 모식표본은 여전히 대부분 철저히 수컷 위주이며 암컷을 대표하는 표본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다. 생식기 연구는 말할 것도 없다. 미국의 조류 생식기 연구자인 퍼트리샤 브레넌은 말한다. “과학에는 뜻밖의 재미가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올바른 질문을 하려면 이걸 살펴볼 여성이 있어야 하지요.” 암컷의 생식기가 출산을 위한 기관으로 거기서 거기라는 통념과 달리 동물의 생식기는 가장 진화가 빠른 기관이다. 하이에나는 남성의 음경처럼 생긴 음핵을 통해 출산을 하고, 나선형으로 생긴 청둥오리와 돌고래의 질은 수컷의 음경을 차단하여 원치 않는 임신을 막는다. 집게벌레 암컷 역시 저장낭에 수컷의 정자를 보관함으로써 새끼의 친부를 결정하는 은밀한 선택권을 행사한다. 여성 생식기에 대한 연구는 번식과 진화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펼쳐지는 여성의 선택이 진화의 또다른 엔진을 주도하고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개코원숭이 암컷의 계급사회와 알로마더가 보여준

모성의 새로운 정의와 돌봄 전략

성모마리아 같은 모성은 없다. 다정함과 덜 이기적인 마음이 필요할 뿐

 

출산율 0.78명 시대, 모성은 요즘 여성들은 물론 과학자들에게 관심 받지 못한 주제일지도 모르겠다. 동물의 암컷은 늘 어머니와 동일시되어 왔으며, 천성인 모성으로 육아에 헌신하는 존재로서 그려졌다. 모성은 애착 호르몬인 옥시토신의 영향을 받지만 저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케냐 킬리만자로에서 일곱 세대에 걸쳐 1,800마리가 넘는 노랑개코원숭이를 연구한 동물학자 진 앨트먼 프린스턴대학교 동물행동학과 명예교수에 따르면 영장류에게 모성이란 양육과 생존 사이에서 끊임없이 협상하는 줄타기.

 

매일 수 킬로미터씩 이동하며 먹이를 찾는 개코원숭이 암컷은 초산일수록 새끼를 제대로 안는 법도 모른다. 초산의 영아 사망률은 무려 60%에 이르고, 새끼를 많이 낳아 경험이 쌓일수록 사망률은 급격히 줄어든다. 생존율을 결정하는 또 하나의 조건은 어미의 계급이다. 먹이에 우선권이 있는 상위 계급 암컷의 새끼는 어미가 지닌 네트워크의 호위를 받으며 더 건강하고 독립적인 개체로 성장한다. 그러나 하위계급 암컷의 새끼는 다른 수컷에 의해 살해당할 가능성이 크고 어미의 집착과도 같은 보호 아래 상대적으로 느리게 독립한다. 이에 따라 암컷의 에너지는 점점 고갈되고, 사회적 불평등 앞에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 새끼를 학대하기에 이른다.

 

흥미롭게도 동물의 세계에서 암컷이 임신과 수유의 세계에서 풀려나면 오히려 자식에게 헌신하는 주체는 주로 아빠다. 조류 대부분은 부모가 새끼를 함께 돌보고 양서류는 싱글대디, 싱글맘에서부터 공동육아에까지 다양한 돌봄 전략을 보여준다. 공동의 탁아소를 짓고 새끼를 키우는 백목도리여우원숭이를 비롯해 포유류의 3%는 남의 새끼를 돌보고 부양하는 알로마더, 즉 다른 엄마들의 절실한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이처럼 동물 세계의 다양한 돌봄 전략은 인간이 그 어떤 유인원보다 크고 무력하게 태어나지만 훨씬 빨리 번식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든다. 바로 돌봄의 무게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이 하나의 사회가 보호자의 역할을 공유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가운데 공감과 협력,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이 진화되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다정함과 덜 이기적인 마음이라는 모성본능을 깨울 수 있는 기회가 아직 우리 사회에 남아 있다고 강조한다. 사회가 알로마더의 역할을 자처할 때 저출산 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결이 가능하지 않을까.

 

거미의 성적 동족 포식으로 보는 성적 갈등과

암컷 지배로 재해석한 인간의 본성

암컷은 어떻게 수컷을 지배하는가?”

 

한국사회의 심각한 젠더갈등은 저출산의 주요 요인으로 주목받지만, 암수 동물 사이의 성적 갈등은 성공적인 번식을 위한 진화의 엔진이 된다. 이 성적 갈등의 정점에 서 있는 존재가 바로 거미다. 번식기의 황금무당 거미는 교미를 시도하는 수컷을 슬러시로 만들어 흡입해버리고, 수컷은 죽어가는 와중에 정자를 발사시켜 번식에 성공한다. 번식이 양성이 합심하는 조화로운 과정으로 설명했던 다윈에게 팜파탈과 같은 암거미의 존재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번식이 남녀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대립하는 이해의 줄다리기 혹은 성적 갈등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전자를 전달하고자 하는 수거미와 양질의 영양분을 흡수해 건강한 알을 낳고자 하는 암거미의 목표가 서로 다르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이 모든 성적 갈등이 누군가에게 치우친 권력 구조에서 벌어진 것은 아닐까? 가부장적 사회가 아닌 암컷이 지배하는 사회는 좀 다를까? 귀여운 외모로 유명한 미어캣은 모계사회를 이루는 대표적 포유류인데, 여왕을 제외한 다른 암컷이 수컷과 짝짓기를 시도한다면 무리에서 퇴거당할 뿐 아니라 잔혹하게 살해당하기 십상이다. 하위 계급의 암컷은 자신의 새끼를 죽인 여왕의 자손에게 젖을 먹여야 하는 형벌에 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간처럼 폐경을 하는 동물 중 하나인 범고래의 모계사회는 어떤가. 수십 년간 무리를 이끄는 나이 든 여족장은 자신의 생식 능력을 제한하여 젊은 암컷과의 경쟁을 피하고, 축적된 경험과 지혜로 무리를 이끈다.

 

저자는 동물을 이념의 무기로 휘두르는 것을 경계하지만 한편으로는 동물의 암컷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이해한다면 무엇이 자연적이고 정상이며 심지어 가능한가에 대한 오래된 기본 전제를 뒤흔들 수 있다고 믿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기원과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은 영장류학으로 이어졌다. 사회적 무리를 이루고 살아가는 잔인한 개코원숭이의 문화는 남성 지배와 공격성을 설명했으며, 1970년대에는 침팬지가 인간 조상의 모델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러나 저자는 침팬지 사회에서 암컷의 권력이 과소평가되었다는 프란스 드 발의 목소리에 동의하며, 모든 권력을 거머쥔 그 어떤 알파 수컷도 배후에서 그를 밀어주는 암컷 킹메이커, ‘마마가 없이는 무리를 지배할 수 없었다는 놀라운 발견을 주지한다.

 

이들 나이 든 암컷 침팬지는 모든 침팬지를 이어주며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갈등이 벌어졌을 때 모두가 찾는 중재자였으며, 암컷들의 우두머리로서 가족과 동맹 네트워크의 중심에 서 있었다. 영장류 사회에서 권력은 신체적 우위뿐 아니라 경제적 레버리지(예를 들면 열매 위치를 아는 전문 지식, 번식에 대한 통제, 전략적 동맹 등)에서 나오고 있었는데, 마마의 존재는 수컷이 지배하는 히말라야원숭이와 버빗원숭이 사이에서도 심심찮게 발견되었다. 만약 침팬지 말고 다른 영장류를 먼저 발견했으면 인간 사회와 권력의 기원에 대한 이해가 뒤집혔을까? 이러한 질문들이 대안적 사회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동성애와 단성생식을 택한 동물들,

진화를 가속화하는 기후재앙과 과학에 필요한 다양성의 시각

무엇이 자연적이고 정상이며 심지어 가능한가

앨버트로스 커플의 모습. 하와이의 앨버트로스 갈매기는 놀랍게도 무려 3분의 1이 레즈비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기후재앙으로 인한 서식지의 변화는 암컷들의 진화 역시 가속화하고 있다. 하와이의 알바트로스 갈매기는 해수면 상승을 피해 새로운 서식지를 개척해 떠나면서 레즈비언이 되기를 감행했다. 수컷 개체수가 감소하면서 번식할 수 없게 되자 정자만을 기증받고 같은 암컷을 파트너 삼아 새끼를 키우게 된 것이다. 동물원에 살면서 유성생식의 기회를 잃은 흑단상어, 코모도왕도마뱀, 그물무늬비단뱀 등이 수컷 없이 복제를 통한 단성생식을 했다는 뉴스도 심심찮게 전해진다. 환경이 파괴되고 생물 종이 재앙수준으로 감소하면서 멸종위기에 처한 톱상어 암컷은 자신을 복제하며 개체수를 늘려 나가고 있다. ‘복제라는 고대의 번식 기술이 자연계에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 그리하여 미래는 모두 복제하는 성이 될 것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상상은 행위의 기후변화 가해자로서의 인간을 돌아보게 만든다.

 

암컷들에 등장하는 자연계의 수많은 여성들은 생물학정 성 구분 자체도 고정적이지 않으며, 진화를 이끄는 힘은 어느 한 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유전자와 환경과 다양하게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낡은 분류방식에 순응하길 거부하는 암컷들의 진면목은 자연선택과 성선택, 사회선택이 복잡하기 뒤엉킨 진화의 메커니즘을 보여줄 뿐 아니라 남성과 여성, 그리고 사회 시스템의 전략적 협력이 어떻게 성공적인 진화로 이어지는지 확인시켜준다. 지배에 순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성과 공감력으로 무리를 이끌고 지혜와 연륜으로 공존하는 사회 모델을 찾는 것. 생물학적 진실을 밝히는 싸움은 우리 모든 존재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첫걸음임을, 이를 위해 과학의 시선은 좀 더 다양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책 속으로

동물의 암컷에 대한 풍성하고 생생한 초상화이며 진화의 뒤엉킨 역학을 새롭게 해석하는 놀라운 통찰이다. 우리는 진화생물학자들에게 흥미진진한 시대를 살고 있다. 성선택은 커다란 패러다임 변화의 진통을 겪고 있다. 실험으로 폭로된 내용이 기존에 수용된 사실들을 뒤엎고 개념의 변화는 오랫동안 고수되어온 가정들을 밀어내고 있다. 다윈이 전적으로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수컷의 경쟁과 암컷의 선택이 성선택을 주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역시 진화가 그린 큰 그림의 일부일 뿐이다. 다윈은 빅토리아 시대의 핀홀 사진기를 통해 자연 세계를 보았다. 여기에 암컷의 성을 추가한다면 우리는 지구의 생명을 총천연색 와이드스크린 버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점점 사람들을 빨아들인다.---32쪽 들어가며중에서

 

이 책에 나오는 계집들은 암컷으로 태어나 어떻게 단순한 수동적 보조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투사로 살아가는지 보여줄 것이다. 다윈의 성선택 이론은 암수의 차이에 초점을 맞추어 두 성을 가르는 쐐기를 박았지만, 이런 구분은 생물학적이라기보다는 문화적인 측면이 더 컸다. 동물의 형질은 신체적이든 행동적이든 다양하고 가소성이 있다. 자연선택이든 성선택이든 선택의 힘이 부리는 변덕에 맞춰 변형될 수 있으며 성적 형질을 유동적이고 유연하게 만든다.---34쪽 들어가며 중에서

 

동물계에서 생식세포는 오로지 두 종류의 크기로 나타났다. 크거나 작거나. 이 기본적인 이분법이 생물학적으로 성을 정의하는 표준이다. 암컷은 크고 영양분이 풍부한 난자를 생산한다. 수컷은 작고 이동성이 있는 정자를 만든다. 이보다 완벽한 구분이 있을까? 참으로 훌륭하지 않은가? 아니, 그렇지 않다. 성은 복잡한 비즈니스다. 앞으로 보겠지만 상호작용하여 성을 결정하고 구분하는 유전자와 성호르몬의 오래된 네트워크에는 남과 여라는 이분법을 무시하고 생식세포, 생식샘, 생식기, , 그리고 행동을 뒤죽박죽 섞어버리는 능력이 있다. 이 모든 것은 성을 구분하는 일을 전혀 간단하다고 볼 수 없는 아주 복잡다단한 과정으로 만든다.---42, 1장 무정부상태의 성중에서

 

여자는 책임질 일이 많다. 왜 코주부원숭이 수컷은 그렇게 길고 덜렁거리는 코를 가졌을까? 코주부원숭이 아가씨들이 그걸 좋아하니까. 자루눈파리의 거추장스럽게 양쪽으로 뻗친 눈자루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눈자루의 너비가 몸길이보다 더 길다. 당연히 산쑥들꿩의 팝핑 댄스도 그렇다. 암컷의 선택은 진화의 힘 중에서도 가장 엉뚱하고 기발하며 자연이 만든 가장 사치스러운 창조물에 영향력을 발휘한다. 여성이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선택하는지를 밝히는 일이 최근 몇 년간 진화생물학에서 가장 활발한 연구 분야가 되었다. 그리고 산쑥들꿩만큼이나 초현실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통찰을 끌어냈다.---80, 2장 배우자 선택의 미스터리중에서

 

범고래 레아는 (나처럼) 삶의 다음 단계에 들어선 사회적 동물이다. 레아에게 난소의 죽음은 주체성의 부활을 예고했다. 그녀는 퇴색되어 사라지기는커녕 사회의 중앙 무대를 차지할 것이다. 무르익은 통찰로 무리의 존경을 받고 무리를 이끌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남부 상주군 범고래에 남아 있는 완경한 암컷의 하나로서 레아는 새로운 그래니가 될 수 있을까? “다들 누가 무리를 넘겨받을지 궁금해해요. 하지만 저들에게는 그런 사치를 부릴 여유가 없어요.” 가일스가 말했다. 이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유지할 치누크연어가 부족해지면서 전통적인 삶의 방식에도 영향을 줄 거라는 게 가일스의 생각이다. “문화의 틀 전체가 해체되는 기분이에요.”---374, 9장 범고래 여족장과 완경중에서

 

이는 다양한 예로 보여졌다…… 암컷은 비록 비교적 소극적이지만 대개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권을 잘 행사하고 특정 수컷을 다른 수컷보다 선호하여 받아들인다.”4 다윈은 계속해서 그런 변덕의 전반적인 효과를 설명한다. “더 매력 있는 수컷을 암컷이 선호하기 때문에 수컷이 변화한다. 종의 존재와 양립하는 한 오래도록 시간제한 없이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가부장제는 성선택을 자연선택의 하위 분류로 취급하긴 했어도 암컷과 짝지을 권리를 두고 수컷들이 대결한다는 발상을 받아들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다윈이 물의를 일으킨 부분은 여성이 성적으로 자율적일 뿐 아니라 남성의 진화를 좌지우지하는 결정권을 가졌다는 주장이었다. 이것은 마나님들에게 강력한 권한을 준 것으로 대부분의 (남성) 생물학자들의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 빅토리아 시대는 남성이 여성을 통제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 반대가 아니라.---86, 2장 배우자 선택의 미스터리중에서

 

세상 누구보다 독창적이고 꼼꼼한 과학자도 문화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다윈이 남성 중심으로 성을 읽은 것은 그 시대에 만연한 남성 우월주의 탓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빅토리아 시대 상류층 사회에서 여성에게는 평생 한 가지 중요한 역할이 있었으니,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남편의 관심사에 동참하며 바깥일을 거드는 것이다. 이는 가정을 지키며 남성을 뒤에서 받쳐주는 보조 역할에 불과하다. 여성은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 약한성으로 정의되었기 때문이다. 여성은 모든 면에서 남성의 권위에 종속되어 있었다.---24, 들어가며중에서

 

그런데 얼마 뒤에 조사해보니 정관수술을 받은 수컷의 영역에서 낳은 알의 69퍼센트가 새끼를 까는 유정란이지 않은가(중략) 암컷이 제 영역 밖에서 거세되지 않은 수컷과 정사를 한 것이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나리오였다. 1970년대 인간 세계에서는 성 혁명이 한창이었는지 몰라도 명금류 암컷은 아직 그 대열에 합류하지 않았다. “모든 참새목 아과(명금류)10분의 9(93퍼센트)가 대개 일부일처를 따른다.” 권위 있는 조류학자 데이비드 랙David Lack1968년에 쓴 말이다. “‘일처다부제인 종은 알려진 바 없다.” 당황한 과학자들은 수컷의 불임화가 붉은날개검은새 개체수를 조절하는 도구로 적합하지 않다고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암컷의 성적 문란함이 원인일 가능성을 울며 겨자 먹기로 인용했다. 이런 당황스러운 결과는 유해 조수 통제의 실패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암컷의 짝짓기 행동에 대한 이해에 일대 혁명을 예고했다.---115, 3장 조작된 암컷 신화중에서

 

허디는 도서관에 들어가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자신이 본 랑구르가 유일한 음탕한암컷 영장류는 아니었음을 발견했다. 사회성이 강한 많은 종들이 특히 배란기에는 색정증에 가까운 적극적인 성적 취향을 보였다. 야생에서 침팬지 암컷은 평생다섯 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지만 수컷 수십 마리와 6,000번 이상의 교미를 한다. 배란기에 이 암컷은 무리의 모든 수컷을 유혹하고 하루에 30~50회 섹스를 한다. 바바리마카크 암컷도 욕정이 강하기로 유명하여 기록에 따르면 11마리의 성숙한 수컷이 있는 집단에서 한 암컷이 모든 수컷과 17분마다 교미를 했다. 개코원숭이 암컷은 발정기에 색욕이 넘쳐서 심지어 수컷이 거부할 정도로 섹스를 조른다는 기록도 있다.---126, 3장 조작된 암컷 신화중에서

 

저녁 식사와 데이트를 한 번에 해결하는 암거미의 성향은 빅토리아 시대 남성 동물학자들에게 여러모로 모욕적이었다. 악랄하고 난잡하며 지배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원래의 소극적이고 수줍고 한 남자만 아는 틀에서 벗어난 여성이 나타난 것이다. 암거미는 또한 진화의 난제이기도 했다. 생물이 사는 이유가 제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이라면 섹스도 하기 전에 파트너를 집어삼키는 행위는 진화적으로 적절치 못한 적응 아닌가. 그러나 성적 동족 포식은 전갈에서 나새류, 문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무척추동물과 함께 모든 종류의 거미에서 흔하게 나타난다. 가장 유명한 동물이 아마 사마귀일 것이다. 암사마귀는 연인의 머리를 뜯어먹는 팜파탈이다. 수사마귀는 목이 잘린 채로 용맹하게 뒤로 물러선다. 그런 행동을 보고 수 세대의 동물학자들은 진화가 머리를, 즉 이성을 잃은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150, 4장 연인을 잡아먹는 50가지 방법중에서

 

처음 암오리를 해부했을 때 어찌나 놀랐는지 하마터면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어요.” 브레넌이 내게 한 말이다. (중략) 브레넌은 암오리가 실제로 자신의 알을 수정시킬 수오리를 선택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마음에 드는 상대의 음경이 난관으로 더 깊이 들어오게 통로를 허락하는 것이다. 비폭력적 상황에서 수오리는 교미 전에 춤을 춰서 암오리에게 구애한다. 마음이 동한 암컷은 수용의 자세를 취하여 물속에서 엎드린 채 꼬리를 들어 올린다. “암오리는 배설강 윙크를 해요. 나는 네 것이니 데려가라는 보편적인 신호죠.”---1955, 생식기 전쟁중에서

 

귀족의 딸로 태어난 개코원숭이는 엄마의 사회적 관계 덕을 크게 본다. 엄마의 높은 지위가 자식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어미의 폭넓은 인맥이 다른 개코원숭이의 경쟁적 공격은 물론이고, 납치를 시도하는 암컷이나 영아를 살해하는 수컷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때문이다. 상류층의 훌륭한 사회적 네트워크에 속한 새끼는 다른 어른 근처에서 먹이를 먹어도 용인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든든한 지원 구조 안에서는 어미가 자식에게 유일한 전부가 되지 않아도 된다. 이는 특히 처음으로 새끼를 낳아 혹독하게 학습 중인 초보 엄마에게 도움이 된다. 앨트먼은 높은 계급의 친척들로 둘러싸인 딸들은 어린 나이에 새끼를 낳고 새끼가 생존할 가능성도 더 높다는 걸 발견했다.---231, 6장 성모마리아는 없다중에서

 

양육하고 보호하려는 강렬한 욕구는 여전히 혼합된 모성의 핵심 부분으로 남아 있다. 모성애에는 이기적으로 태어난 두 이방인을 깊고 근본적인 관계로 연결하는 변혁의 힘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엄마와 아기의 신비로운 결합은 진짜이다. 다윈이 우리에게 준 믿음과 달리 누구에게나 있거나 즉시 발휘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나는 이런 상징적인 관계를 뒷받침하는 강력하면서도 위태로운 호르몬의 발판을 알아보기 위해 스코틀랜드 동쪽 해안에서 떨어진 바위투성이 무인도로 떠났다.---239, 6장 성모마리아는 없다중에서

 

풀이 무성한 마사이 라마 평원의 늦은 오후. 주황빛 태양이 슬슬 수평선을 향해 내려오는 가운데 토피영양Damaliscus lunatus jimela 한쌍이 아카시아 긴 그늘에서 대결이 한창이다. 발정기를 맞아 두마리의 중간 크기 영양과장하면 업그레이드된 염소이 섹스를 위해 겨루는 다른 수백 마리 토피영양에 합류했다. 뿔 달린 한 쌍이 대결을 시작하여 상대를 향해 돌진한 다음 무릎을 꿇더니 수금 모양의 뿔을 마주 걸고 머리를 바닥까지 내린 채 사납게 대치한다. 긴장된 몇 초가 지나자 몸집이 좀 더 큰 놈이 힘을 발휘하여 상대를 밀어붙인다. 씨름판에서 쫓겨난 패자는 치욕스럽게 머리를 흔들며 허둥지둥 무리로 돌아가고 승자는 남아서 상을 받는다. 포상은 최고의 수컷과 나누는 정사이다. 잔뜩 무장하고 공격에 나선 이 경쟁자들은 암컷을 두고 싸우는 수컷이 아니다. 토피영양의 제일 좋은 정자를 두고 겨루는 암컷들이다.---7, 계집 대 계집중에서

 

그 결과 오랫동안 암컷의 지배는 포유류에서 드문 것으로 알려져왔다. 앞서 보았던 점박이하이에나와 벌거숭이두더지쥐의 모계 사회는 반대로 암컷의 몸집이 수컷보다 크게 진화하여 다윈의 자연스러운 질서를 뒤엎고 수컷을 제압하게 된 사례이다. 그런데 여우원숭이는 암수의 크기에 큰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집단에서는 암컷이라는 약체가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여우원숭이는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에서 권력의 기원과 역학에 관해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그걸 알아내기 위해 나는 마다가스카르 남부의 뜨거운 내륙으로 순례를 떠났다.---300, 8장 영장류 정치학중에서

 

로레타는 창에 몸을 기울여 머리를 댔다. 패리시도 똑같이 창에 몸을 기댔고 둘은 2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 털을 골라주는 시늉을 했다. 어느 시점에 로레타가 자신의 손을 올려서 창에 대었고 과학자도 자기 손을 보노보손과 마주 댔다. 마치 유리가 없는 것처럼. (중략) 나는 보노보와 이런 교감을 경험하는 패리시의 특별한 능력에 경이를 느꼈다. 그리고 인간과 아주 가깝지만 인간이 아닌 동물과 그토록 오래 역사를 공유하는 것이 참으로 대단한 특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은 정말로 특별한 관계였다. 이 현명한 늙은 암컷은 패리시가 그들의 평화로운 모계 사회의 비밀을 해독하게 도왔고, 가부장제와 폭력이 인간의 DNA에 처음부터 새겨진 것이 아님을 이해하게 했다.---339, 8장 영장류 정치학중에서

 

알바트로스는 사람과 똑같아요.” 드물게 의인화의 덫에 걸린 영이 인정했다. “대부분 일부일처이고 오랫동안 같은 상대와 함께 머물러요. 물론 저 사회적 일부일처 커플 중에서도 누구는 바람을 피우고 누구는 이혼을 하죠. 전체적인 스펙트럼이 그렇습니다.” 그 스펙트럼에 이제는 기혼의 다른 수컷에게 정자를 기증받아 다음 세대를 생산하는 장기적인 동성 관계가 포함된다. 새로 밝혀진 알바트로스 동성 커플이 제안하는 바는 훨씬 고무적이다. 자연에서 성역할에 내재된 융통성은 물론이고 동물이 새로운 사회, 생태적 환경 앞에서 파격적으로 행동을 바꿀 수 있다고 암시하기 때문이다. 이는 생태적 대재앙이 가까워지는 시점에 점차 더 중요해질 특성이다.---389, 수컷 없는 삶중에서

 

난잡한 암사자, 폭력적 미어캣···인간의 고정관념 부수는 암컷들

인간 남성의 외도를 설명하는 데 본능이라는 단어가 동원되곤 한다. 1979년 잡지 플레이보이남자는 움직이는 것이면 무엇과도 하려고 들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다. 사회생물학이 그 이유를 말해줄 것이라며 진짜 악마는 당신의 DNA에 있다고 말하는 심층 기사를 실었다. 정자는 크기가 작고 양이 많지만 난자는 크고 수가 제한된다는 데까지 가닿는 이 논리는 남성의 난잡함과 여성의 조신함이 수컷의 활력과 암컷의 수동성이라는 동물계의 짝짓기 전략을 닮았다고 성토했다. 어떤 이들은 생물학을 고정된 성역할은 물론 강간과 가정폭력을 정당화하는 데까지 이용했다.

암사자는 난교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발정기 중에 수컷 다수와 하루 최대 100번까지 짝짓기를 한 암사자도 있다. 사진은 남아프리카공화국 크루거국립공원에 있는 암사자. unsplash

 

인간의 뇌는 깔끔한 이분법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길 선호한다. 생물학은 오랜 시간 남성과 여성, 수컷과암컷이라는 군더더기 없는 이분법적 분류를 사용해 동물의 몸과 행동을 인간의 고정관념에 맞게 해석했다. ‘군더더기들은 예외 취급했다. 찰스 다윈을 비롯한 과거 진화생물학자들은 암컷을 제대로 발육이 이뤄지지 않은 성, 몸집이 작고 약하며 대체로 색깔이 덜 화려한 성으로 보았다. 수컷은 암컷보다 형태가 복잡하고 다양하며 정신적 능력까지 뛰어난 개체로 여겼다. 암컷은 수컷의 정자를 재생산하는 통로일 뿐, 진화를 주도하는 것은 수컷이라 믿었다. 다윈은 이를 인간에도 적용해 궁극적으로 남성은 여성보다 우월해졌다는 결론을 도출해내기에 이른다.

 

진화생물학의 뿌리박힌 편견은 최근 과학자들에 의해 꾸준히 반박되고 있다. 암수가 서로에게 충실하다고 믿고 바위종다리처럼 살아라라고 1853년에 말한 목사 프레더릭 모리스는 사실 여성 신자에게 밖으로 나가 연인을 찾고 두 마리 수컷과 250회 이상 짝짓기 하라고 말한 것이나 다름없다. 생물학자들이 제대로 관찰을 수행하고 거기서 나타난 흐름을 제대로 포착했다면 목사의 잘못된 인용은 없었을 것이다. 암새의 90%가 일상적으로 수컷 다수와 교미한다는 것은 최근 생물학에서 주지의 사실이 됐다. 왜 과거 생물학자들은 이를 읽어내지 못했을까. 19세기 진화생물학의 도약을 이뤄낸 학자들은 빅토리아 시대 상류층 남성들로, 가부장적이던 당시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아버지, 남편, 오빠나 남동생, 혹은 아들에게 귀속된 존재였으며 가정을 지키고 남성을 보조하는 역할을 가진 존재였다.

 

첨단 과학기술과 풍부한 야생 탐사에 기반한 과학적 사고로 무장한 최근의 학자들은 과거 생물학자들이 보고 싶은 것을 보느라 불편한 것들은 모조리 카펫 밑에 쓸어 넣고 덮어버렸다는 것을 증명해내고 있다. <암컷들>은 카펫 밑을 들여다본 학자들을 만나 자연계 암컷에 대한 풍성하고 생생한 초상을 제시한다. 폭력적인 암컷 미어캣, 레즈비언 앨버트로스, 타고난 모성애가 없어 보이는 암컷 개코원숭이 등의 모습을 기록하며 기존의 논리를 전복한다.

미어캣은 우두머리 암컷 한 마리가 씨족사회 번식의 80%를 독점한다. 미어캣 암컷은 무자비한 번식 경쟁을 벌인다. unsplash

 

책의 원제는 ‘Bitch’(비치). ‘암캐혹은 나쁜 년등으로 번역돼온 단어다. 여성을 얕잡아 이르는 욕설이지만 최근에는 똑똑하고 잘나가는 여성들이 센 여자등의 의미를 담아 스스로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쓰기도 한다. 가부장제에서 규정한 좋은 여성을 스스로 벗어나겠다는 주체적 표현인 것이다. 책 속 암컷들은 우리가 흔히 아는 여성성에 갇히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이들은 방탕하고 쟁취하고 군림하며, 거기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

 

암컷들은 생각보다 음탕하고 포악하다. 암사자는 난교로 유명하다. 발정기 중에 수컷 다수와 하루 최대 100번까지 짝짓기를 한 암사자도 있다. 침팬지 암컷도 만만찮다. 평생 5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지만 수컷 수십 마리와 6000번 넘게 교미한다. 번식에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과도하게 성적 활동을 하는 것이다. 암거미는 저녁 식사와 데이트를 한 번에 해결한다. ‘성적 동족 포식은 전갈, 나새류, 문어 등 무척추동물에서 흔하게 나타난다. 토피영양 암놈, 유인원 등은 수컷을 쟁취하기 위해 격렬하게 싸운다. 우두머리 암컷 한 마리가 씨족사회 번식의 80%를 독점하는 미어캣은 암컷들이 무자비한 번식 경쟁을 벌인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암컷이 임신과 수유의 책임에서 풀려나면 수컷이 자식에게 더 헌신적인 모습을 보이는 일이 흔하다. 물고기는 전체 종의 3분의 2가 수컷이 양육 책임을 전적으로 진다. 심지어 해마는 수컷이 출산까지 한다.

 

암컷은 양육하고 희생하는 존재이자 신비로운 모성 본능을 타고난 존재라는 오해가 만연해 있다. 그러나 동물의 세계에서 암컷이 임신과 수유의 책임에서 풀려나면 수컷이 자식에게 더 헌신적인 모습을 보이는 일이 흔하다. 조류에서는 부모가 함께 자식을 돌보는 경우가 90%에 이른다. 물고기는 전체 종의 3분의 2가 수컷이 양육 책임을 전적으로 진다. 심지어 해마는 수컷이 출산까지 한다. 양서류는 종에 따라 다양한 돌봄 전략을 보여준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한 성만이 새끼를 돌보도록 프로그래밍되지 않았음을 발견할 수 있다.

 

실은 동물의 성을 암컷과 수컷으로 구분하는 일조차 간단하지 않다고 책은 말한다. 다듬이벌레부터 아프리카코끼리까지 암컷 수십 종이 흔히 남근으로 묘사되는 애매한 생식기관을 가졌다. 많은 종이 환경적으로 성을 뒤집는다. 어떤 올챙이는 XX 유전자를 가지고도 수컷이 되고, 턱수염도마뱀은 뜨거운 날씨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암컷이 된다. 어떤 암컷들은 에스트로겐이 촉진될 것으로 기대되는 임신기에 남성호르몬으로 알려진 테스토스테론을 폭발적으로 분비한다. ‘남성호르몬여성호르몬이 양방향으로 변환되며, 남성과 여성에 모두 존재한다는 사실을 책은 보여준다. 유전자 레시피는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턱수염도마뱀은 뜨거운 날씨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암컷이 된다. 동물의 성은 암컷과 수컷으로 구분하는 일조차 간단하지 않다. 많은 종이 환경적으로 성을 뒤집는다.

 

저자인 루시 쿡은 옥스퍼드대학에서 리처드 도킨스의 제자로서 동물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생물학 연구와 현장 탐사를 넘나들며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고 <오해의 동물원> 등 책을 펴냈다. 그는 막연하게 과학이란 당연히 과학적일 것이라 생각해온 과거를 고백한다. 그는 대학에서 복음처럼 배운 진화생물학의 기본 개념들이 편견에 의해 왜곡돼왔다는 것은 충격적 깨달음이었다. 그 덕분에 우리가 개인적 인지에서 벗어나 동물의 세계를 진정 공정한 눈으로 볼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고 썼다.

 

공정한 연구를 위해 과학을 생산하는 사람들의 구성에도 다양성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암컷 오리의 복잡한 생식기관을 연구한 진화조류학자 퍼트리샤 브레넌은 저자와 인터뷰하며 이렇게 말했다. “과학 하는 사람들도 모두 나름의 성향이 있어요. 나는 여성이고 나한테는 질이 있어요. (조류의 질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하는 게 당연하죠.” 그는 덧붙였다. “과학에는 뜻밖의 재미가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질문하지 않는다면 답도 찾을 수 없겠지요. 올바른 질문을 하려면 이걸 살펴볼 여성이 있어야 해요.”

오경민기자 5km@khan.kr

 

감히 날 강간하려 해?이 동물 암컷이 특이한 신체를 가진 이유

동물의 암컷은 교미를 강제당할 때 자신의 성기를 활용해 수컷의 성기를 방어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잘라내진 못하더라도 삽입은 능히 막아내지요. 수정이 되지 못하게끔 주도하기도 하고요. ‘오리가 그 주인공입니다.

 

암컷 오리의 질은 나선형이다

암컷 오리의 질에 그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암오리의 질 구조는 번식기에 들어서면 나선형으로 변화합니다. 평소에는 단조로운 모양이다가 짝짓기를 해야 할 시기에 구불구불 바뀌어 가는 것이지요. 척추동물 암컷 중에서는 가장 복잡한 모양을 자랑합니다.

오리는 평화로운 존재처럼 보이지만, 수 없이 많은 강제적 교미가 일어나는 종이기도 하다. <저작권자=Waylah>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이들의 나선형 질은 오랜 시간 축적된 진화의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강제적 교미에 저항하기 위해서라는 게 과학자들의 설명입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나선형질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 수컷의 사타구니부터 열어봅니다. 수컷은 척추동물 중 유달리 성기가 거대합니다. 아르헨티나파란부리오리(Oxyura Vittata)는 발기했을 때 크기가 무려 42.5cm에 달합니다. 자신들의 몸집(30cm)보다 성기가 더 큰 것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2m의 성기를 가진 남성인 셈이지요.

거대한 성기를 자랑하는 아르헨티나파란부리오리. <저작권자=Dude Daniels>

 

평소 10분의 1 크기로 숨겨져 있다 번식철에 손오공의 여의봉처럼 빠른 속도로 확 커지지요. 그 속도가 무려 시속 120km에 달합니다. 이렇게 크고 거친 성기를 가진 탓에 암오리 역시 길고 구불구불한 질을 갖도록 진화한 것입니다. 라이벌 국가간 군비경쟁처럼, 암오리 역시 수오리의 공격 무기에 맞춰 방어 시스템을 고도화한 셈이지요.

 

강제적 교미에 노출되자 엄청난진화가 일어났다

오리의 성비 또한 질을 복잡하게 만든 요소입니다. 오리 세계에서는 암컷보다 수컷이 훨씬 많은 탓에 짝짓기 경쟁이 치열하게 이뤄지지요. 수컷오리는 암오리의 취향에 맞춰 깃털을 열심히 장식하고 구애를 펼칩니다.

수컷 오리가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는 건 암컷에게 구애하기 위해서다. 사진은 수컷 원앙.

 

하지만 암오리의 선택을 받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짝을 찾은 오리 커플은 낭만적인 로맨스를 펼치지만, 남은 수컷들은 욕구불만에 빠져들지요. 수놈들은 참지 않고 강제로 암컷과 관계를 시도합니다.암오리가 강압적인 교미의 위험에 자주 노출되는 배경입니다. 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오리의 교미 중 3분의 1 이상은 강제적관계로 추정됩니다.

 

수컷 오리의 거대한물건, 거기에 물리력까지 행사할 경우 암컷은 생명의 위험에 노출되지요. 더구나 수컷 오리들은 떼 지어 암컷 한 마리를 노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암컷으로서는 신체적 부상과 자신의 마음에 들지도 않은 수컷의 새끼까지 낳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입니다.

 

오리 암컷은 강제적 관계에서 삽입이 어렵게 만드는 질을 갖고 있다. 임신 방지 기능도 있어서 강간오리들은 후손을 남길 가능성이 작다.. 사진은 오리의 교미를 묘사한 그림. <저작권자=Bellyp>

 

그러나 암컷 오리는 마냥 당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나선형 질이라는 견고한 방어구를 진화시키면서입니다. 맘에 들지 않은 숫놈과의 강제적 관계에서 그 효과가 탁월합니다. 나선형의 암컷 성기는 강간범수컷오리가 자기 몸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버리지요. 40cm를 자랑하는 큰 성기도 소용없습니다. 강제적 교미를 시도하는 수컷 오리 중 80%가 발기도 제대로 못 하고 물러나게 되는 배경입니다.

 

합의 하의 관계에서는 달라진 신체

여기서 의문이 듭니다. 마음에 드는 수놈과의 관계에서도 나선형 질은 불편하지 않을까요. 정답은 아니오입니다. 로맨스적인 교미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오리의 사랑을 살펴 보시지요.

 

잘생긴 수놈이 춤을 춥니다. 구애의 메시지입니다. 암컷오리는 윤기나는 털을 가진 수놈이 썩 맘에 드는 눈치입니다. 물속에서 엎드린 채 꼬리를 들어올려봅니다. “너를 허락하노라라는 몸짓이지요. 수놈은 기분좋게 암놈 위로 올라탑니다. 암놈은 질의 내강을 활짝 열고 수컷의 음경이 생식관을 따라 깊숙이 들어올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음경 거부 장치로 불리는 질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것이지요.

저희는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 파리에서 촬영된 암수<저작권자=Marie-Lan Nguyen>

 

오리 새끼의 95퍼센트가 사랑의 결과물로 태어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강제적관계로 잉태되는 오리는 불과 5퍼센트입니다. 누구와 교미할지 선택할 순 없어도 알의 친부만큼은 암오리가 직접 고를 수가 있는 셈이지요. “여성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Girls can do anything)는 격언, 암오리를 설명하는 데 탁월한 문장입니다.

 

<세줄요약>

ㅇ암컷 오리의 질은 나선형으로 강간을 방지할 수 있는 특이한 신체구조를 지녔다.

ㅇ수컷의 강제적 교미가 오랜 시간 지속되면서 이를 방지할 수 있는 형태로 진화했다. 강제로 하는 수컷들은 교미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구조다.

ㅇ맘에드는 수놈은 몸 속 깊숙이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한다. ‘강제적 교미로 수정되는 새끼는 5퍼센트에 불과한 이유다.

 

<참고문헌>

ㅇ에밀리 윌링엄, 페니스 그 진화와 신화, 뿌리와이파리, 2021

강영운 기자 penkang@mk.co.kr

 

체구 좋은 그 남자, 근데 그 곳이 좀

그는 누가봐도 잘생긴 남자였습니다. 180cm가 넘는 큰 키, 떡 벌어진 어깨, 100kg 넘는 거구였지요. 구릿빛을 넘어 흑빛마저 감도는 피부도 매력적이었습니다. 여자관계는 좀 복잡해보였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여자한테 인기 없는 호리호리한 남자는 질색이었거든요. 여자가 따르는 것도 결국 매력의 방증이 아니겠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와 관계하기로 결심한 날이었습니다. 참 많은 준비를 해갔지요. 아침부터 꽃단장을 하느라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의 육체에서 뿜어나오는 매력은 어느 정도일까를 상상하면 시간 가는 줄 몰랐지요.

 

희망이 있는 곳에, 좌절이 있다고 했던가요. 신도 무심하시지. 완벽한 외모의 그 남자. 중요한 그곳의 크기가 너무 작았습니다. 5cm도 안되어 보였지요. 물론 가장 화가 났을 때 말입니다. 시쳇말로 간에 기별도 안온다고 해야 할까요. 그 남자의 이름 공개합니다. ‘고릴라입니다.

콩고민주공화국 카후지-비에가 국립공원의 동부 로랜드고릴라. [

 

가장 화 났을 때가 4cm...고릴라는 왜 작나

고릴라의 성기는 4cm입니다. 그것도 가장 화가 났을 때입니다. 성인 남성 평균인 12cm에 비해 월등히 작은 수치죠. 고릴라와 우리는 같은 영장류입니다. 인류와 고릴라의 조상이 갈라진 건 불과 900만년 전이지요. 길게 느껴지지만 진화의 시간표에선 매우 짧은 시간입니다. 우리와 고릴라의 DNA차이 역시 2.3%에 불과하죠. 이렇게 가까운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성기는 왜 세배나 차이가 나는 걸까요.

 

진화적인 요인이 있습니다. 고릴라들은 일부다처제로 살아갑니다. 싸움을 가장 잘하는 수컷 한마리가 암컷 여러마리를 거느리고 살지요. 이 모든 암컷을 차지한 수컷을 실버백이라고 부릅니다. 10살 이상의 성체가 되면 고릴라 등에는 은백색 털이 자라는데 이 털은 강한 힘의 상징이라서 고릴라 무리의 리더를 실버백이라고 칭하지요.

어이 다섯 번째 마누라, 등 좀 제대로 긁어.” 르완다 비룽가 국립공원 내에서 실버백 고릴라(왼쪽)와 암컷 고릴라가 서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저작권자 = 패트릭 큐사]

 

실버백은 무리의 모든 암컷과 성관계를 할 수가 있습니다. 무리에는 다른 수컷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설사 있더라도 그는 다른 암컷과 관계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 사회로 따지면 임금의 후궁을 신하가 맘대로 건드린 것과 같은 일이지요. 다른 수컷이 성관계를 맺을 수 있는 건 실버백이 죽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수컷 고릴라가 짝짓기를 잘하려면 싸움을 잘해서 우두머리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외모나 성기 크기는 짝짓기의 주요 요인이 아닌 셈이지요. 성기가 매우 작더라도 싸움을 잘해 한 무리의 실버백이 되면 모든 암컷과 수시로 잠자리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생깁니다. 고릴라의 몸집이 엄청 큰 반면, 성기나 고환이 무척 작은 건 진화적인 이유지요.

서부 롤랜드 고릴라 사진. [저작권자= 투룬디르]

 

자유롭게 성관계하는 침팬치 암컷, 수컷은?

고릴라의 친척과도 가까운 침팬치는 이와 정반대입니다. 침팬치 암컷은 자유롭게 여러 수컷과 잠자리를 갖기 때문입니다. 싸움을 잘하는 수컷과도, 못하는 수컷과도, 잘생긴 수컷과도, 못생긴 수컷과도 잠을 자지요. 고릴라 암컷이 리더와만 자야하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침팬치 수컷은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암컷이 자유롭게 섹스를 하는 탓에 자신의 유전자가 전달될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침팬치는 고환이 큰 방향으로 진화합니다. 고릴라의 고환이 호두 크기인 반면, 침팬치는 달걀만한 것을 지니고 있지요.(성기도 고릴라의 두배인 8cm고요.)

우간다 키발레 국립공원에 있는 암컷 침팬치와 그 새끼 사진. [저작권자 = Alain Houle (하버드 대학교)]

 

정자 역시 침팬치의 것이 200배나 더 많습니다. 한번의 성관계에서 가능한한 많은 정자를 암컷에 전달하는 게 후손을 남기는 데 유리했던 것이지요. 몸집은 작지만 성기는 큰 침팬치, 큰 떡대를 지녔지만 성기가 작은 고릴라. 모두가 각자의 고민을 안고 삽니다. 우리네 삶이 그렇듯이요.

 

<세줄요약>

ㅇ고릴라는 가장 발기했을 때 크기가 4cm.

ㅇ가장 싸움을 잘하는 수컷이 암컷을 독식하는 구조라 진화적으로 몸은 커지고 성기는 작아졌다.

ㅇ고릴라 앞에선 당당히 어깨를 펴자. 동물원에서도 쫄지말자. 인간이 세 배는 크다.

 

<참고문헌>

ㅇ리처드 프롬, 아름다움의 진화-연애의 주도권을 둘러싼 성 갈등의 자연사, 동아시아, 2019https://bgtkfem.tistory.com/search/%EC%95%84%EB%A6%84%EB%8B%A4%EC%9B%80%EC%9D%98%20%EC%A7%84%ED%99%94

ㅇ다그마 반 데어 노이트, 인간의 섹스는 왜 펭귄을 가장 닮았을까, 정한책방, 2017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 출신. 심리학 잡지 [Psychologie Magazine] 편집인이자 심리학, 생물학, 진화, 동물행동학, 자연, 건강 등 인간의 본질을 연구하는 주제에 관심이 많은 언론인. 인간의 섹스는 왜 펭귄을 가장 닮았을까는 그녀의 첫 번째 책이다.

 

목차

프롤로그 지구를 가장 역동적인 행성으로 만든 것

 

1 섹스의 기원

2 인류가 멸종하지 않은 이유

3 생물학적으로 남자는 기생충이다

4 다윈도 몰랐던 사랑의 가치

5 덩치 큰 고릴라의 페니스는 왜 작을까

6 수줍음이 많아도 기회는 있다

7 인간은 천성적으로 일부일처제를 거부한다

8 원숭이가 엉덩이를 높이 들 때는

9 앵무새의 생식기는 어디로 숨었나

10 사랑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11 내 남자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12 질투가 심한 여자 Vs 바람기가 심한 남자

13 젖소에게도 친구가 있을까

14 동물과 육체적으로 결합할 수 없다고 해도

15 섹스는 결코 야하지 않다

16 모두가 궁금해 하는 아빠의 육아

17 당신의 페티시를 알려주세요

18 에리카는 도라를 정말 사랑합니다

 

에필로그 사랑과 섹스는 결핍에서 유래한다

출판사 리뷰

섹스에 대해 예리하고 재치있게 다룬 최고의 동물행동학 책이라고

영국 과학전문잡지 [NEW SCIENTIST]가 극찬한 책!

 

어린이의 호기심을 발휘하자면 나는 30개도 넘는 질문을 쏟아낸 다음에야 섹스를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사랑의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사람들이 감히 물어볼 수 없었던 모든 질문들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많이 하면 할수록 핵심에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나는 인간을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와 비교함으로써 인간의 본원을 추적할 수 있었다. 보통 섹스라고 하면 삐걱대는 침대와 우는 아기가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섹스는 이 지구를 우주상에서 가장 다양하고 역동적인 행성으로 만들었고 또한 우리의 존재를 가능하게 했다.- 프롤로그 중에서

 

인간이 인간하고만 섹스해야 할 이유가 있다? 없다?”

찰스 다윈, 리처드 도킨스 등이 동물행동학적으로 증명한

인간의 사랑과 성()에 대한 18가지 진실과 거짓

 

40억 년 전 지구에 최초의 생명체가 생겨나고 박테리아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그 세포가 자기 복제를 통해 번식을 시도한 점을 미루어볼 때 이는 분명 지구상에서 일어난 최초의 섹스라 할 수 있다. 이후 40억 년이 지난 오늘날 인간이 정의하는 섹스는 무엇일까? 사랑하고, 침대에서 동침하는 것은 섹스에 대한 조금은 부드러운 정의일 것이며, ‘교접하다, 교미하다, 밤을 지내다, 관계를 맺다, 몸을 섞다, 짝을 짓다처럼 생물학적인 관점에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정의에는 분명 남녀의 성기에 대한 고민이 빠질 수 없다. 도덕과 윤리라는 영역 안에서는 이 단어의 사용이 음란하게 다가올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섹스를 정의함에 있어서 보다 생물학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더불어 진화론의 대가인 찰스 다윈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동물행동학의 관점에서 사랑과 성을 이야기한다.

생물학자들에게 섹스란 두 생물체가 성기라고 하는 도구를 통해 유전 물질을 교환하는 유전자적 재조합에 지나지 않는다. 동물과 달리 인간은 쾌락 때문에 섹스에 대한 정의가 사뭇 다를 수 있지만, 그 쾌락 역시 자손의 양적 팽창을 위한 신체적 변화 정도로 인식한다면 인간의 섹스를 동물의 섹스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도 있다.

 

심리학적, 윤리적으로도 접근해 관점의 차이를 가감 없이 설명

인간의 본능은 생각보다 동물의 왕국 가까이에 있다

 

몇 년 전 미국의 심리학자가 17~42세 남녀를 대상으로 섹스하는 이유를 조사했더니 욕정이 일어나서’, ‘내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서’, ‘호르몬이 넘쳐서’, ‘심심해서’, ‘결혼했으니까’, ‘두통 해소를 위해서’, ‘나를 벌주기 위해서등과 같은 다양한 답변이 있었다고 한다. 이토록 여러 가지 이유를 통해 섹스를 한다는 말은 결국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또한 섹스가 단순히 감정 없이 행위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인류는 점차 줄어들다가 결국 멸종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동물에게 섹스는 어떠한 의미일까? 더불어 인간은 이들의 사랑과 성을 어떻게 오해하고 있을까? 동물의 세계에서는 일부다처제가 일반적일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생각한다. 하지만 동물은 일부다처제뿐만 아니라 일부일처제, 일처다부제, 다부다처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하고 섹스를 나눈다. 심지어 동성애마저 일상적인 애정 표현의 방식일 뿐이다. 인사나 복종의 의미로 섹스를 이용한다.

 

덩치가 큰 고릴라의 성기는 클 것이라고 상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너무 작을 뿐이다. 오히려 바다생명체인 조개의 성기가 엄청난 사이즈를 자랑한다. 왜소한 수컷은 언제나 섹스에 소외당한다고 오해하지만 그들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잔재주를 부려 사랑을 나누곤 한다. 동물도 분명 지능적으로 외도를 하고, 질투를 하고, 이에 대해 응징을 한다. 유전적으로 가까운 원숭이와 인간의 사랑과 섹스 방식이 유사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인간은 펭귄과 더 가깝다.

 

이러한 인간의 사랑과 섹스가 동물과 어떠한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는지를 동물행동학의 관점에서 풀어낸 책이 바로 인간의 섹스는 왜 펭귄을 가장 닮았을까이다. 더불어 이 책은 심리학적 시각에서 묘한 사랑의 감정을 드러내는 소소한 읽는 재미를 더하며, 인간과 원숭이의 성세포 결합이 성공했던 사례를 들어 윤리적 타당성을 논하기도 한다.

 

영국의 유명 과학잡지 [뉴 사이언티스트]는 이 책을 생각보다 동물의 왕국에 가까이 있는 인간의 섹스 본능을 사실적으로 일깨워준다라고 평가했다. 우리가 숨을 쉬듯, 잠을 자듯, 밥을 먹듯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가 바로 섹스임을 이야기한다.

책 속으로

몇 년 전 미국의 심리학자인 신디 메스톤(Cindy Meston)과 데이비드 버스(David Buss)17세부터 42세 남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사람들은 아주 다양한 이유로 섹스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욕정이 일어나서’, ‘내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서’, ‘호르몬이 넘쳐서라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이유들도 있었지만 아주 많은 다른 답변도 있었다. 누구는 월급 인상을 원해서라는 사람도 있었고 심심해서또는 결혼하니까 당연한 거지라거나 두통을 해소하기 위해서’, ‘칼로리를 소비하기 위해서’, ‘나를 벌주기 위해서또는 ()과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pp.23~24

 

몇몇 생물학자들의 추론에 의하면 페니스는 정액을 제 자리에 분사하는 역할뿐만이 아니라 라이벌을 제치는 목적도 가진다. 몇몇 곤충의 페니스를 보면 마치 무기를 보는 듯하다. 길고 날씬한 몸매의 잠자리는 꼬리가 흡사 중세시대의 고문 기구처럼 생겼다. 갈고리, , 집게 등 이 모든 것들 이 교미 중에 다른 연적이 남기고 간 정액을 제거하는 기능을 한다. 인간 페니스의 귀두도 다른 정액을 밀어내는 기능을 할 수 있다. 정액 전쟁에 출정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군대를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만 적을 제압하고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p.63

 

아프리카 열대어 시클리트 무리에서 가끔 그러한 권력 이동 현상이 일어나는데 그때 아주 눈에 띄는 태도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스타 수컷이 갑자기 잡아 먹혔을 때 우연히 그 옆에 있던 동료가 그 영역을 차지하게 된다. 초고속 승진이 되는 셈이다. 이 신입 대지주는 갑자기 형태 변화를 하게 된다. 그는 몇 시간 안에 평화롭고, 섹시하지 않고, 무색이던 존재에서 레몬색 또는 녹황색을 띄는 알파 수컷으로 바뀌고, 고환도 거대해진다. 그리고 성격도 그로테스크해진다.” ---P 76

 

암컷들은 가정의 행복전략과 남자와의 기쁨전략 사이의 타협을 선택하는 것 같다. 가정에는 든든한 파트너, 밖에서는 유전적 다양성의 제공으로 더 강한 후손을 보장해주는 슈퍼맨이 있다. 수컷들도 마찬가지이다. 가정을 가지고도 가끔 한눈을 판다. 일부일처제 동물류도 죽을 때까지 결혼 서약을 지키는 예는 드물다. 그래서 생물학자들은 사회적 일부일처제와 유전적 일부일처제를 구분한다.--- p.90

 

부부의 머리나 눈 색깔은 상관관계가 있다. 하지만 나의 파트너와, 나와 성이 다른 부모의 머리와 눈 색깔의 상관관계는 더 높다. 이를 다른 말로 풀어보면 나의 아버지가 푸른 눈을 가지고 있으면 내 미래의 남편도 푸른 눈일 가능성이 높다. 파트너의 나이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부모가 상대적으로 늙은 편이면(내가 태어났을 때 30대 이상이었다면) 내 파트너도 역시 나이가 많을 가능성이 높다.--- p.133

 

우리는 황제펭귄 수컷이 알을 부화시키고 겨울 내내 북극의 추위로부터 알을 보호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오면 자신의 두꺼운 피부 주름 사이에 넣어서 따뜻하게 하고 젖과 비슷한 액체를 분비해서 수유를 한다.” (190)

 

신기하게도 자녀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동화책을 읽어주는 자상한 인간 아빠는 유전학적으로 우리와 유사한 침팬지보다 펭귄과 비버를 더 닮았다.” (192)

 

생물학적으로 볼 때 성 흥분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가죽, , , 방귀 같은 것에 흥분을 느끼는 것은 후손 번식 기회나 진화 단계 면에서 볼 때 전혀 관계가 없지 않나? 여자들은 넓은 가슴과 곰을 사냥할 만한 팔뚝을 가진 남자를 보면 성적인 매력을 느끼고, 남자들은 풍선 같은 가슴과 출산이 수월할 것 같은 큰 골반을 보면 흥분을 느낀다. 전형적인 진화론적 사고방식에 의하면 그렇다.---p.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