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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실리콘제국-거대 기술기업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훔쳤눈가

by 이성근 2020. 5. 12.


실리콘 제국 거대 기술기업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훔쳤는가 저자 루시 그린|역자 이영진|예문아카이브 |2020.02

 

저자 : 루시 그린 -세계적인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에이전시 제이월터톰슨(JWT)의 이노베이션 그룹에서 글로벌 디렉터를 맡고 있다. 미래 혁신 싱크탱크인 이노베이션 그룹의 연구 활동은 뉴욕타임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가디언, WWD, USA 투데이, 타임스(런던) 등의 매체에 자주 인용된다.

캠페인의 리더십 칼럼니스트이며, 파이낸셜타임스에 미래를 전망하는 글을 기고해왔다. TNW, WWD 디지털 포럼, SXSW, 웹 서밋, 코스모프로프, 애드 위크를 포함한 여러 컨퍼런스에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한 미래 트렌드를 강연해왔다. BBC, 폭스뉴스, 블룸버그 TV에 미래 전문가로 출연하고 있다.

 

목차

여는 글 - 지형의 변화를 감지하며

 

1. 새로운 권력의 지도

2. 정부와 실리콘밸리

3. 5계급의 출현

4. ‘세계 연결하기에 숨은 야심

5. SF 영화가 된 문샷

6. 실리콘밸리 의료의 명과 암

7. 교육 고치기에 나선 실리콘밸리

8. 에어비앤비랜드

9. 여성이 소외된 실리콘밸리

10. 해커들의 자선사업

 

닫는 글 - 미래에 대해

 

출판사 서평

구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을 위시한 실리콘밸리의 권력이 전 세계에 미칠 영향력 그리고 그들이 바꾸는 우리의 삶을 분석하다

 

실리콘밸리의 핵심 기술은 기존 산업의 붕괴

실리콘밸리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저자는 실리콘밸리가 단지 한 산업 부문이 아닌, 그 자체로 산업의 기류이고 문화라는 점에 주목한다. 이곳에서 부상한 스타트업과 그 문화, 자유로 대변되는 라이프스타일과 기술의 연계, 인터넷 시대에 따른 영향력의 증가, 그리고 이제는 산업을 넘어 소수 커뮤니티로서 정치와 경제, 사회의 패러다임까지 위협할 정도로 막대한 부와 권력을 가진 개체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본다.

원래 실리콘밸리의 고객은 정부와 기업이었다. 스탠퍼드대학교를 중심으로 정부 지원을 받는 군사 기술 연구 허브로 시작되었고, 기업을 위한 제품과 솔루션 개발로 확장해오다, 현재는 소비자 중심의 플랫폼과 디바이스를 제공하고 판매하는 기술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기술과 데이터와 과학이 모든 면에서 중심이 되고 있으며 실리콘밸리(그리고 샌프란시스코)는 만능의 중심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저자는 실리콘밸리가 지금처럼 부상한 핵심을 붕괴(disruption)의 탄생으로 보고 있다. GAFA로 불리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파워 집단인 페이팔 출신의 페이팔 마피아는 기술로 시작해 붕괴를 실현한 대표적 기업과 기업가들이다. 그들은 기술이 기존의 시스템을 재편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실리콘밸리의 혁신은 기존의 다른 분야를 기술로 붕괴시키는 과정이었다. 그들은 케이블통신, 종이 신문과 잡지, 택시 산업, 소매업 등 여러 분야를 붕괴시켰다. 그리고 이제는 정부로 대변되는 거버먼트의 영역인 교육, 의료, 주거까지 발을 디디고 있다. 저자는 실리콘밸리가 새로운 붕괴를 위해 어떤 행보를 보이는지 주목하며 이 책을 집필했다.

 

실리콘밸리와 정부의 관계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에 페이스북이 일조했다는 의혹은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실리콘밸리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확연히 달라진 계기였다. 정치와는 철저히 무관해 보이는 그들은 사실 정치 및 정부와 긴밀하다. CRP에 따르면 구글의 지주회사인 알파벳은 2017년에 로비 활동으로 1,800만 달러 이상을 썼다. 아마존은 1,280만 달러를 지출했고, 페이스북은 1,150만 달러를 썼다. 애플까지 합하면 전체적으로 2017년에만 5,000만 달러 정도가 지원되었다. 2016년 대선 경쟁에서 그들의 최고 수혜자인 힐러리 클린턴이 400만 달러를 지원받았다.

실리콘밸리 기업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벽은 늘 규제였다. 막대한 자금을 가진 그들은 시민의 마지막 보호막이 될 수 있는 규제들을 걷어내는 데 사력을 다하고 있으며, 회전문 인사를 통해 기술기업인이 정부로 가고 정부 관료가 기술기업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거대 기술기업이 편협한 관점으로 세상을 대변할 때 정치와 사회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기업의 문제점을 짚는다.

 

소셜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미디어 권력-5계급의 출현

저자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미디어 영향력을 파헤친다. 미국인의 62퍼센트가 소셜 미디어에서 뉴스를 받아 보는 시대인 만큼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같은 거대 IT 기업들이 미디어로서 뉴스를 생성하고 중재하고 선별한다는 사실에 저자는 주목한다. 그만큼 가짜 뉴스가 난무하고 저널리즘이 신뢰를 잃어갈 뿐만 아니라 소비자 보호도 불가능해지고 제대로 된 담론과 질문이 사라져 위험한 영향력이 세상에 발휘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저널리스트를 가리키는 제4계급에 이어 소셜 플랫폼 기업들이 제5계급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알고리즘으로 선별된 뉴스들을 보지만 가짜 뉴스들이 판을 치는 실정이다. 공정성보다는 효과에 집중하는 소셜 플랫폼과 그 소유주들은 마음만 먹으면 세계를 편집할 수 있다.

 

세계 연결하기와 해커들의 자선사업에 숨은 야심

사회공헌 단체를 통해 저개발국에 무료 인터넷을 공급하는 실리콘밸리 기업의 이타주의에 주목한다. 저자는 이를 실리콘 선교단으로 본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시장으로의 진출을 노리지만 이미 연결된 세계에서 로컬 경쟁자들을 상대로 고전하고 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의 글로벌 장악 시도는 계속 되고 있다.

또한 실리콘밸리가 맹렬한 속도로 자선사업 분야에 진출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한다. 그들은 이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만들어 홍보의 대상이 되고자 한다. 그래서 데이터, 기술, 과학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이것을 저자는 이른바 해커의 자선사업에 비유하며, 필랜트로피(Philanthropy) 2.0이라고 칭한다. 즉 자선사업과 수익이 하나로 맞물리는 자선자본주의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의 공익재단은 대부분 유한책임회사로 운영된다.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영리단체라는 사실을 피할 수 없다.

 

SF 영화가 된 문샷과 실리콘밸리 의료의 명과 암

일론 머스크의 화성 식민지 건설 프로젝트를 살펴보고, 세계 자산 순위 1위인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를 포함한 실리콘밸리 리더들의 우주로 확장된 관심을 조명한다. 미지의 영역에서 기술적 혁신을 일으킨다는 서사는 실리콘밸리에게 어울리지만, 결국 규제가 없는 곳을 찾아 떠나는 도전이기도 하다. 그들은 지구에서의 시급한 문제에는 실질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실리콘밸리의 우주 프로젝트는 상업적 동기에 기인한 것이며, 소비자 빅 데이터를 모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2018년에 아마존은 버크셔해서웨이, JP모건과 손잡고 건강보험 회사를 차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페이스북과 아마존 등은 의료 분야에 투자하고 있고, 각종 건강 관련 앱과 웨어러블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실리콘밸리가 라이프스타일에서 웰빙을 강조하며 관련 제품 개발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헬스케어 산업을 넘어 보건 시스템까지 넘보고 있다. 이 또한 빅 데이터에 기반한 새로운 문샷이 될 수 있다.

 

교육 고치기에 나선 실리콘밸리

교육 분야에 진출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을 다룬다. 그들은 바로 적용 가능한 실질적 기술 교육에 탁월하다. 직업 시장에 맞춤인 교육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구글의 전 부사장이 설립한 유다시티는 성인의 직업 교육을 목표로 삼고 있는 등 실리콘밸리의 교육 진출은 현실적인 면을 보인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한 평등한 교육이라는 이념은 실제로는 공교육보다 접근이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다. 일정한 자격을 갖춘 이들을 위한 직능 교육이며, 실리콘밸리 인재를 위한 양성소가 된다. 저자는 교육의 본질적 가치와 관련해 그들이 내세우는 이타주의에 의문을 제기한다.

 

에어비앤비를 위한 에어비앤비랜드

상품보다 경험에 투자하는 소비자 트렌드 변화의 중심에 에어비앤비가 있다. 에어비앤비는 사회사업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지만 결국 마케팅과 홍보를 위한 일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들은 노숙자 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며, 일본 요시노에 아름다운 커뮤니티 센터를 짓는 쪽을 선택했다. 그들의 사회사업은 그들이 구축한 세상 안에서 이루어지며, PR 플랫폼으로서 작동한다

 

책속으로

틸은 생각에 잠긴 듯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인 채 대답했다. “권리의 문제들은 항상 매우 까다롭죠. 그 질문을 뒤집어서, 워싱턴 관료들에게는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릴 의학적 발명을 막을 권리가 어떻게 허용되는지 물어도 될까요? 이런저런 기술을 막을 권리를 사람들은 어떻게 허용받나요?”--- 여는 글 - 지형의 변화를 감지하며중에서

 

페이팔 마피아는 매우 중요한 인물 집단입니다. 기술사업을 재무적 관점에서 시작한 1세대이기 때문입니다.” 보이드가 말했다. “그들은 어떤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등장한 게 아닙니다. 그저 기술적인 일을 하다가 붕괴 도착증에 빠지게 되고, 그러다 보니 기술이 기존의 시스템을 재편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발견한 것일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실리콘벨리가 부상한 핵심이다. ‘붕괴disruption’의 탄생. 변화를 무섭고 불길한 것이 아닌 멋지고 바람직하며 진보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대두한 것이다.--- 새로운 권력의 지도중에서

 

CRP에 따르면 구글의 새로운 지주회사로서 유튜브와 구글 및 기타 구글 자산을 소유한 알파벳은 2017년에 로비 활동으로 1,800만 달러가 넘는 금액을 지출했다. 아마존은 1,280만 달러를 지출했고, 페이스북은 1,150만 달러를 썼다. 애플까지 합하면 전체적으로 2017년에만 5,000만 달러 정도가 지원되었다. 2016년 대선 경쟁에서 그들의 최고 수혜자인 힐러리 클린턴이 400만 달러를 지원받았다.--- 정부와 실리콘밸리중에서

 

가까운 미래까지는 소비자들이 아마존을 통제할지 모르지만, 사실 아마존은 모든 소비자 구매를 기어코 독점할 것이다. 아마존은 모든 영역의 소비자 지출을 장악해서 다른 모든 소매업체가 망하면 자체적인 거래 조건만 설정할 것이다. 다른 선택지들이 남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아마존의 거래 조건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 정부와 실리콘밸리중에서

 

미디어는 실리콘밸리가 채택하는 서사의 강력한 보급자가 되었다. 미디어는 그 서사들에 감정을 입혔다. 소비자의 애착을 얻고 도덕적 틀 안에 들어가는 데 일조한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자신들이 단순한 플랫폼이 아니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경이로운 일을 해내는 감정적이고 도덕적인 존재다.--- 5계급의 출현중에서

 

저커버그는 인도인의 문화와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비에 열중하고 있다. 가네샤 (인도의 신)는 인도가 1947년에 영국 식민지주의자들로부터 얻은 자유를 소중히 여기며 서구 기업의 원조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알지 못하고 있다. 인도인은 가난할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방문하는 사이트, 자신이 보는 영화, 자신이 다운로드하는 응용 프로그램들에 대해 누구의 통제도 원하지 않는다라고 워싱턴 포스트지의 비벡 워드화가 썼다.--- 세계 연결하기에 숨은 야심중에서

 

실리콘밸리의 기술은 지구에서는 도시, 오래된 인프라, 법률처럼 뒤죽박죽인 것들과 씨름해야 한다. 하지만 화성 도착은 단연코 훌륭한 과학적 업적이 되고, 완전히 새로운 공동체를 처음부터 만드는 일은 기존의 조직들에 통합해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다. 그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마을, 인프라, 사회 규범 등이 존재하는 지구와는 달리 어떤 것에 적용할 필요 없이 자신들의 구상에 따라 우주를 설계할 수 있다. 우주에서는 새로운 문명의 요람을 기초부터 건설할 수 있다. 그러나 성가신 기존 시스템의 제약에 구속받지 않는 미래 지향적 전망이 과연 그들이 꿈꾸는 완벽한 세계일까?--- SF 영화가 된 문샷중에서

 

이런 분위기는 마크 저커버그에서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에 이르기까지 실리콘밸리의 가장 성공적인 리더들이 대학을 중퇴했고 세르게이 브린도 박사 과정을 중단했다는 사실에 힘입어 증폭되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도 있다. 모두 하나같이?하버드, 리드, 스탠퍼드라는?명문 대학에 입학한 다음 중퇴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시스템 자체를 완전히 배척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명문 대학에 입학한 사실은 그들의 위용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므로, 중도에 그만둔다고 결정해도 자랑할 권리를 안겨주었다.

--- 교육 고치기에 나선 실리콘밸리중에서

 

에어비앤비 세계에서는 끊임없이 체험하고 연결하고 진정으로 살아 숨 쉰다. 여행에서 모든 이가 진정한 몰입을 원하지는 않는다 해도 이는 놀라울 정도로 영리한 메시지다. 사실 전문적인 에어비앤비어들과 그들의 대규모 멤버십 덕분에 에어비앤비 체험의 많은 부분이 호텔이나 전통적인 홈 렌털 플랫폼과 별반 다르지 않다. 보통은 전체 부동산을 임대하므로 집주인과 접촉하거나 대화할 일은 생기지 않는다. 심지어 많은 도시에서 더는 저렴하지도 않다. 에어비앤비가 그럴듯한 홍보를 하지만 실상은 그리 특별한 게 없다.--- 에어비앤비랜드중에서

 

그들의 이런 결정에서 엿보이는 것이 있다. 벚꽃이 만발한 일본 요시노의 지역 사회 쇠락은 해결해야 할 아름다운 문제이지만 캘리포니아주의 노숙자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사고방식이다. 따라서 노숙자들에 대한 숙소 제공은 에어비앤비 마케팅 플랫폼의 일부가 될 수 없다.--- 에어비앤비랜드중에서

 

한마디로 실리콘밸리는 보이 클럽입니다. 업무를 진행하는 이들도 보이 클럽이고, 진행되는 업무에 자금을 대는 이들도 보이 클럽입니다. 사무실에, 촉진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모든 종류의 사무실에 여성을 위한 의자들을 추가로 집어넣어야 합니다.”--- 여성이 소외된 실리콘밸리중에서

 

통신, 개인 컴퓨팅, 인터넷 서비스, 모바일 디바이스 분야의 선구자들로 구성된 새로운 글로벌 엘리트 집단은 현재 세계의 부호 1,000명이 보유한 자산 7조 달러 중 약 8000억 달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새 시대 귀족들을 부르는 명칭은 테크놀로지시트, 엔지니어, 심지어 긱까지 다양하지만, 그들이 지닌 공통점은 모두가 해커라는 사실이다.”

--- 해커들의 자선사업중에서

 

실리콘밸리는 측정 가능한 영향력과 해결안을 강조한다. “자선사업과 관련하여, 실리콘밸리 집단은 조직 운영이 아닌 아이디어에 관심이 더 기울어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연구를 기반으로 자신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들은 기술적인 솔루션을 낼 수 있는 문제들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사스키스가 말했다. --- 해커들의 자선사업중에서

 

 

그들에게 미래를 맡기지 말자

 

정부가 하고 있는 공적인 일을 혁신기업을 이끈 기업가들에게 맡기면 어떨까. 미래학자 루시 그린은 절대 안될 일이라고 단언한다. 더 나아가 그들에게 미래를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사진은 혁신기업의 상징인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기업들을 로고로 표시한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자금·인재·야심으로 무장, 전 세계 주도권을 장악하며 소비자 신뢰를 흡수하는 실리콘밸리의 기업들 기존의 산업을 붕괴시킨 뒤 공적 영역까지이젠 마음만 먹으면 세계를 편집할 수 있게 된 소셜 플랫폼 미래학자 루시 그린은 성과에 비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혁신가들의 실패를 꼬집는다시민의 마지막 보호막이 될 규제들을 걷어내려 막대한 돈을 뿌리고 자선마저 홍보 수단으로 쓴다가장 가부장적인 백인 중심의 기술업계에 가장 강력한 지위를 허용하기 일보 직전경고는 절절하다

 

정부의 정책이 마뜩하지 않을 때 종종 기업이 그 비교 대상이 되곤 한다. ‘느려터지고 고루하기까지한 정부의 대응에 복지부동하는 공무원들을 보고 있자면 분노가 차오른다. 기업은 저렇게 빨리빨리 움직이며 혁신을 하는데, 도대체 정부는 왜 저러는지 답답하다.

 

그렇다면 기업의 혁신가들에게 정부를 맡기면 어떨까.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같은 노회한 장사꾼말고 진짜 혁신가들 말이다. 이른바 ‘GAFA’로 불리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의 창업자들이라면 공적 영역에서도 그 능력을 보여주지 않을까.

 

다국적 광고회사 제이월터톰슨(JWT)의 미래혁신 싱크탱크에서 글로벌 디렉터를 맡고 있는 미래학자 루시 그린은 책 <실리콘 제국>(Silicon States)에서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답한다. 그린은 여기서 더 나아가 그들에게 미래를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낮아질수록 기업가에 대한 기대는 높아진다. 특히 혁신의 대명사 격인 미국 실리콘밸리기업들은 풍부한 자금, 인재, 야심으로 무장하고 전 세계의 주도권을 장악하며 소비자의 신뢰를 흡수하고 있다.

 

괜한 걱정이 아니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기존의 산업들을 붕괴시킨 뒤 이제 공적 영역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휴대전화를 혁신하고, 전 세계를 소셜미디어로 묶어버렸으며, 모든 유통망을 장악한 이들은 교육, 주거, 의료에서도 혁명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실리콘밸리 리더들은 거버넌스(통치)와 정치도 붕괴시키고 말 또 하나의 케이블 네트워크나 교외 쇼핑몰 정도로 보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미 구축한 부드러운 시민적 영향력의 기반 위에 서 있고, 그 영향력은 국경 규제, 선거, 국가 통제 같은 힘을 초월한다.”

 

혁신가들이 이룬 성과에 비해 실패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들의 윤리적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그린은 모든 걸 고쳐주겠다는 실리콘밸리의 약속이 매혹적인 것은 당연하다그렇다고 실리콘밸리가 국가의 올바른 대체물이라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어 정부가 결함이 많다는 것은 맞지만, 최소한 선출된 사람들로 구성되며, 그들은 주주를 위해서가 아닌 사회 전체를 위한 자리라는 것을 알고 그 자리에 앉아 있다면서 실리콘밸리가 맡는 시민적 역할이 계속 확대된다면 우리는 실리콘밸리의 리더들이 세우는 윤리적 틀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리콘밸리의 혁신가들은 기대만큼 순수하지 않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비영리 연구단체인 책임정치센터(CRP)에 따르면 구글의 지주회사인 알파벳은 2017년에 로비 활동으로 1800만달러 이상을 썼다. 아마존은 1280만달러를 지출했고, 페이스북은 1150만달러를 썼다. 애플까지 합하면 ‘GAFA’ 4개 회사만 한 해에 5000만달러를 썼다. 앞서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그들의 최고 수혜자인 힐러리 클린턴이 이들로부터 400만달러를 지원받았다. 그린은 막대한 자금을 가진 그들은 시민의 마지막 보호막이 될 수 있는 규제들을 걷어내는 데 사력을 다하고 있다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렇다면 현재 언론이 정부를 감시하듯, 이들을 견제할 수 있을까. 책은 아직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 본다. “현재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무도한 행위들은 공개적인 망신이나 신문의 1면 기사로 규제되었다. 그들은 좋은 평판을 유지해야 하는 소비자 브랜드이므로 대중의 항의가 심하면 특정행동을 중단하고 단념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영향력은 미디어에서도 막강해지고 있다. 미국인의 62%가 소셜미디어로 뉴스를 받아보고 있고, 페이스북·트위터·구글 같은 거대 IT 기업들은 이미 미디어로서 뉴스를 생성하고 중재하고 선별한다. 그린은 아예 저널리스트를 가리키는 제4계급에 이어 소셜 플랫폼 기업들이 제5계급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사람들은 알고리즘으로 선별된 뉴스들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그중 상당수는 검증되지 않은 가짜뉴스들이다. 공정성보다 효과에 집중하는 소셜 플랫폼과 그 소유주들은 마음만 먹으면 세계를 편집할 수 있다.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인 GAFA(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혁신적 기업가들이 만든 기업이다. 위 사진부터 구글의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애플의 스티브 잡스. AP·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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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빈곤한 국가에서 하는 자선활동이 그들의 선의를 보여준다는 반론이 나올 수도 있겠다. 그린은 이런 기대 역시 실리콘 선교단이란 비유로 단칼에 잘라버린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자선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만들어 홍보의 수단으로 삼는다. 데이터, 기술, 과학을 최대한 자선사업에 활용한다. 자선사업과 수익이 하나로 맞물리는 이른바 자선자본주의. 책에 따르면 이들이 만든 공익재단은 대부분 유한책임회사로 운영된다.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영리단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일론 머스크와 제프 베이조스의 우주개발 경쟁역시 곱지 않은 눈으로 본다. 미지의 영역에서 기술적 혁신을 일으키는 것은 실리콘밸리에 가장 어울리는 서사이긴 하지만, 결국은 규제가 없는 곳을 찾아 떠나는 도전이기도 하다. 그들은 지구에서의 시급한 문제에는 실질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실리콘밸리의 우주 프로젝트는 상업적 동기에 기인한 것이며, 소비자의 빅데이터를 모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너무 멀리 와버렸는지도 모른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우버, 아마존 등이 제공하는 편리함으로 인해 이미 많은 사람이 개인정보 침해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시간 절약, 개인화된 제품, 하루 중 언제라도 이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이로움을 위해 엄청난 데이터를 기꺼이 넘겨주고 있다.” 언론과 정부가 나서서 실리콘밸리 집단에 대해 아무리 많은 비판을 한다 해도, 그로 인해 우리의 기술 사용이 줄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을 배경으로 깔고 있는, 그리고 세계를 구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한층 더 훌륭하고 빨라진 무엇인가를 가지고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가 있다.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는 정부를 필요로 하는 층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린은 말한다. “정부를 필요로 하는 이들은 우버 차량이나 응급실을 이용할 형편이 안되는 사람들, 맥북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머지않아 이들은 백인 남성 위주의 민간 기업들이 베푸는 관용에 의지하여 생계를 유지할 것이고, 그들이 겪는 문제가 새로운 사회적기업의 사명이 될 만한지 아닌지의 시장성에 의존하여 생존하게 될지도 모른다. 현재의 서비스와 시스템을 혁신해도 좋겠지만, 좀 더 훌륭한 어떤 다른 방법이 나와야 할 것이다. 그것은 적어도 포용적인 성격이 더욱 강해져서 소수가 아닌 모든 이를 대변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경고로 책을 마무리한다. “우리는 가장 가부장적인 백인 중심의 기술업계에 가장 강력한 지위를 허용하기 일보 직전인 위태로운 지점에 이르렀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정보 꿰찬 실리콘 밸리 기업들이 새로운 헨리8된다

미래 Big Questions 14권력

6명의 여인과 결혼한 남자. 2명은 참수형을 당하고, 2번의 결혼은 무효가 되었으며, 1명은 출산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마지막 부인은 남자가 먼저 사망한 덕분에 살아남는다. 헨리 8세 영국 왕 이야기다. 튜더 가문 헨리의 결혼사는 단순히 귀족 한 명의 시시콜콜한 개인사만이 아니다. 첫째 부인 캐서린 (Catherine of Aragon 또는 Catalina)은 당시 최강대국 스페인 국왕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카를 5세의 이모였다. 교황과 황제 모두 절대 반대한 이혼. 하지만 젊고 매력적인 앤 볼레인(Anne Boleyn)과 결혼하고 싶었던 헨리는 로마천주교를 포기하고 본인 스스로가 교주인 영국국교회, 오늘날의 성공회를 설립한다.

 

말 한마디면 아내·신하 등 참수

두려워도 큰 보상 기대 덕 유지

 

누구나 완벽한 미래 예측 못 해

어른·전문가 경험에 아웃소싱

정보 가진 쪽이 타인 행동 좌우

 

헨리 8’, 한스 홀바인의 원작을 기반으로 한 사본. [사진 리버풀 워커 미술관]

 

.헨리 8세의 피해자는 캐서린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스승이자 총리였던 토머스 울지 추기경은 교황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반역죄로 처벌됐고, 유토피아의 저자로 유명한 토머스 모어는 앤 볼레인을 여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죄로 참수형을 당한다. 추기경 울지를 몰락시켰던 앤 볼레인의 가족들은 결혼 3년 만에 새로운 여인과 사랑에 빠진 헨리에게 숙청당하고, 앤과 앤의 측근들을 반역죄인으로 참수시킨 헨리의 수석비서관 토머스 크롬웰 역시 몇 년 후 반역죄로 참수당한다.

유토피아토머스 모어도 참수형

헨리 8세의 개인 비서였던 브라이언 튜크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두려움과 불안함.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장 두렵지 않았을까? 반역죄로 런던탑에서 오늘 참수형을 기다리는 죄인들은 어제까지 헨리와 함께 사냥 나갔던 친구들이었고, 오늘 헨리의 친구와 가족들 역시 언제든지 참수당할 수 있으니 말이다. 숙청과 우정과 참수와 사랑의 반복. 잉글랜드는 헨리 튜더라는 한 남자를 위한, 그리고 그 한 남자만을 통해 모든 것이 결정되던 절대왕정 국가였다. 이제 슬슬 궁금해진다. 어떻게 한 사람이 나라의 모든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을까? 말 한마디면 언제든지 아내와 친척과 백성의 목을 자를 수 있었던 헨리. 큰 덩치로 유명했지만, 성인 남자 몇이면 충분히 제압 가능했을 헨리는 남들보다 수백 배 힘이 강하지도, 특별히 더 영리하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한스 홀바인 브라이언 튜크’(1527). [사진 워싱턴 DC 국립미술관]

 

.권력이란 무엇일까? 우선 단순하게 타인의 행동이나 생각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능력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겠다. 아이들은 부모 말을 들어야 하고, 학생은 선생님을 따라야 하고, 신도는 교주를, 국민은 왕을, 그리고 인간은 신을 따라야 하는 뭐 그런 관계 말이다. 한번 질문해보자. 도대체 왜 인간은 신을, 국민은 왕을, 그리고 아이는 부모의 말을 따라야 할까? 심리학자 프렌치(John French)와 레이븐(Bertram Raven)은 권력이 유지될 수 있는 총 6가지 이유를 제시한 바 있다. 강제성 (말 안 들으면 매 맞을 수 있다). 보상 (말 잘 들으면 더 많은 용돈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정당성 (정부는 법을 시행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참고적 (BTS 곡에 등장하는 책을 읽고 싶다). 전문성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극복하려면 전문가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 정보력 (나보다 많은 정보를 가진 여의도 증권사들의 의견을 듣자) 때문에 인간은 타인의 말을 따른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 권력은 대부분 여러 이유의 조합이겠다. 헨리 8세의 신하들은 참수형을 두려워했겠지만, 동시에 왕으로부터 막대한 보상 역시 기대할 수 있었다. 더구나 잉글랜드 국왕으로 헨리의 권력은 정당성까지 가지고 있지 않았는가!


어쩌면 프렌치와 레이븐의 6가지 이유 모두 결국 정보라는 공통점의 다른 이름이지 아닐까? 인간의 행동을 좌우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들은 무엇일까? 물론 우선은 의식주이겠다. 하지만 우리에게 의식주만큼 중요한 것은 예측 가능성이다. 내일 사냥은 성공적일까? 한발 앞으로 더 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손에 잡은 돌을 던지면 어디로 날아갈까? 어쩌면 인생은 미래에 대한 예측의 꼬리 물기인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 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뇌피질(Cerebral cortex)의 가장 핵심적 기능은 미래 예측이라고 주장하는 뇌과학자들이 적지 않다. 진화적으로 오래된 중뇌와 간뇌 등은 현재와 과거에 대한 정보를 처리하는 반면, 가장 최근 만들어진 대뇌는 대부분 미래를 예측하고, 미래의 나를 위해 가장 최적화된 결정을 오늘의 나를 통해 실행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긴다. 완벽한 미래 예측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래 예측이란 무엇일까? 근본적으로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만약 미래는 과거의 반복이라고 가설한다면 우선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과 인생은 변곡점과 특이점이라는 예측불가능한 함정으로 가득하다. 과거는 미래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지만, 미래는 반복성과 랜덤의 조합이다.

미래예측을 시도할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아웃소싱이다. 과거 데이터만으로 미래를 예측하기 불가능하다면, 내가 앞으로 살아남아야 할 미래가 이미 과거인 타인에게 내 판단을 위탁해볼 수 있겠다. 모든 사람이 동시에 동일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보자. 맹수로 가득한 정글을 처음 경험하는 나에겐 모든 것이 예측불가능한 미래 위험 요소들이지만, 이미 정글을 여러 번 경험한 이들에겐 기억 가능한 과거 사건들이다. 나의 미래를 스스로 예측하긴 어렵지만, 내가 경험할 미래를 이미 경험한 이들의 과거를 통해 앞으로 내게 일어날 일들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여볼 수는 있겠다

 

IT 기업의 권력은 감시 자본주의



쇼샤나 주보프 교수

.그렇다면 권력이란 사실 정보의 방향성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미래에 대한 확신을 줄 수 있는 정보를 가진 자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이의 판단과 행동을 좌우할 수 있다는 말이다. 헨리 8세의 절대 권력은 그를 통한 절대 확신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을까? 헨리라는 공통변수를 통해 울지, 모어, , 크롬웰은 불확실한 자신의 미래가 -좋든 나쁘든- 예측가능해 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만약 권력의 핵심이 정보라면, 정보의 미래는 동시에 권력의 미래이겠다. 나에 대한 정보는 동시에 내 미래 행동의 예측 가능성을 의미한다. 아마존과 넷플릭스가 나보다 더 정확히 내가 선호하는 영화와 책을 추천해준다. 하버드 경영대학교 쇼샤나 주보프 교수는 그렇기에 소비자의 데이터를 모으고 예측하는 다국적 IT 기업들이 최근 새로운 형태의 권력인 감시 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를 가능하게 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약한 호모 사피엔스. 나 자신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에 우리의 미래가 이미 그들의 과거일 것이라는 믿음 아래 부모와 전문가와 정부에 미래에 대한 선택권을 아웃소싱했다. 이제 정부, 교사, 부모보다 나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가진 기업에 우리는 또 미래 선택권과 판단을 아웃소싱하고 있기에, 실리콘 밸리 기업은 21세기의 새로운 헨리 8세가 돼 가고 있다.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자/ 중앙SUNDAY

 

서평 | 실리콘밸리가 꿈꾸는 세상이란

다르게 생각하라!” 1997애플의 광고 문구였다. 상품광고치고는 사뭇 철학적이고, 소비자들을 훈계하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별로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2000년대 접어들어 놀라운 신제품들을 출시할 때마다 스티브 잡스는 직접 무대에 올라와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그의 말과 표정과 몸짓은 단지 하나의 상품을 홍보하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선포하는 분위기였다. 청바지와 검정 셔츠 차림은 애플의 로고만큼이나 강력한 이미지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아이폰디자인에 담긴 단순함은 잡스가 추구해온 선()의 경지를 정갈하게 구현하였다. 바야흐로 우리는 다르게 생각하는 법의 정수를 기술과 비즈니스를 통해 배우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

 

잡스만이 아니다. 저커버그, 일론 머스크, 제프 베조스 등 지금 최상급의 IT기업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들은 글로벌 셀럽’(유명 인사)이 되었다. 그들은 단지 장사꾼이나 경영인 또는 기술자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정신을 설파하는 현인(구루)으로 여겨진다. 막대한 부()는 물론 전문지식과 통찰력 그리고 자기 나름의 스타일과 오라를 가지고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거대한 체제에서 사소한 일상에 이르기까지 패러다임의 전환을 기하며 혁신을 주도하는 그들은 시대의 우상이 되었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에어비앤비’, ‘넷플릭스등은 21세기의 문화적 아이콘이다.

 

단시간에 거대기업의 랭킹을 통째로 갈아버린 이 기업들은 실리콘밸리에서 잉태되고 성장했다. 실리콘밸리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디지털기술을 개발해낸 집단을 가리키는데, 캘리포니아주가 프랑스보다도 큰 규모의 지역경제(이곳보다 큰 국가는 중국, 일본, 독일 영국뿐이다)를 구축하게 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 자리 잡은 기업들을 아울러 빅테크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 은 테크놀로지에 국한되지 않는 힘을 갖는다. 금융, 문화산업, 자동차, 식품, 보건, 유통, 수송, 에너지, 교육, 우편 등 거의 모든 영역으로 손을 뻗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삶과 사회 곳곳에서 그 실상을 목격하고 체험한다. 빅테크는 상상의 한계를 돌파하면서 미지의 영토에 도전한다. 그런데 그들이 빚어내는 현실은 어떤 모습인가? 겉으로 드러나는 경이로움이나 즉각적으로 증명되는 효율 및 편리함 이면에 드리운 그늘은 없는가? 그들에게 인류의 미래를 맡겨도 좋은가? 그쪽으로 권력이 이동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빅테크가 지배하는 세계

루시 그린의 실리콘 제국은 지난 20여 년 동안 지구촌을 지배해온 거대 기술기업들의 정체를 다각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원제는 ‘Silicon States’인데, ‘United States’를 염두에 두고 뽑은 단어가 아닐까 짐작된다. 하나의 중심이 우뚝 서서 모든 것을 다스리는 제국보다는, 여러 권력들이 연합체를 이루는 합중국의 이미지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실리콘밸리는 단지 거대기업들이 한군데 모여 있는 것을 넘어, 그들 사이에 경쟁과 긴밀한 상호작용도 존재하는 생태계다. 그리고 브랜드파워에서도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대중적 호소력을 높이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지배 전략을 입체적으로 조감하는 이 책은 발로 쓰여졌다. 저자는 여러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기업인, 학자, 컨설턴트, 비평가, 언론인, 사회운동가 등을 만나 생생한 대화를 나누고, 그 내용을 일정한 주제들에 맞춰서 배치한다.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여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피력한 말들이 직접화법으로 인용되기에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수많은 사건이나 인물이 언급되고 있는데, 그 구체적인 맥락을 알지 못하면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대목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저자가 착목하는 지점과 그에 대한 문제의식은 우리에게 이미 다가온 여러 현실과 연결해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실리콘밸리의 주축을 이루는 빅테크 기업들의 야심을 보자. 그들이 구사하는 디지털기술은 기존의 사업 모델의 붕괴를 유발하면서 전방위적으로 놀라운 효력을 발휘한다. 각광받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의료다. 수명이 길어지고 건강이 삶의 질을 천차만별로 갈라놓는 가운데, IT산업은 새로운 목표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혈당의 변화를 감지하는 스마트 콘택트렌즈, 말초신경의 전기 신호를 변조함으로써 질병을 치료하는 생체전자공학 의약품, 수면 패턴과 실내조명과 스트레스 수준 등을 모니터링하여 하루의 생체리듬을 최적화하는 기기가 그것이다. 더 나아가 피부에 인터넷을 접속해 완전히 새로운 감각을 부여하여 사이보그로 만들고, 자신의 정신을 복제하여 데이터베이스에 보관하여 영구 보전하는 시스템(지난해 널리 읽힌 깁초엽 작가의 SF소설 관내 분실은 그런 서비스가 상용화된 세상을 상상하여 모녀 관계를 그린 작품이다)까지 개발하고 있다.

 

빅테크는 시간뿐 아니라 공간도 과감하게 확장하려 한다. 안락한 근접 우주 공간을 체험하는 벌룬 투어를 개발하고, 그런 사업을 벌이는 기업 네트워크로서 우주체험경제나 우주관광협회 등이 등장했다. 더 나아가 잘 알려진 대로 일론 머스크는 화성을 인류의 새로운 서식지로 개척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여러 광물을 채취할 뿐 아니라 지구에 넘쳐나는 온갖 쓰레기를 처분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한다. 환경오염과 에너지 고갈에 대한 위기감이 깊어지는 가운데 부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할 만한 프로젝트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후위기의 실체를 부정하면서 파리협약에서 탈퇴했을 때 일론 머스크가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데는 그런 배경이 깔려 있었다.

 

물론 별천지만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에어비앤비는 단순한 숙소 공유가 아니라, 현지의 문화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함께 제공한다. 다른 한편 빅테크는 인류의 보편적인 복지를 위해 막대한 돈을 기부하거나 투자한다. 저개발 국가의 빈곤을 물리치고 열악한 위생과 보건을 개선하기 위해, 그리고 인터넷을 보급하여 드넓은 세상과 연결시키기 위해 많은 부호들이 기꺼이 큰돈을 내놓고 있다. 또한 가난한 지역의 주민들에 대해서 그들이 박탈당한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는 한편, 고비용 저효율의 구태의연한 교육을 탈피하여 학습체계를 업그레이드하는 모델을 다양하게 실험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업들은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혁신을 거듭하는 첨단 의료장비들은 신체의 건강을 증진시켜주고 의료비를 낮출 수 있지만, 개인의 건강 정보가 무제한적으로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빅데이터로 가공되면 경제적으로 엄청난 부가가치로 이어질 텐데, 예를 들어 보험회사의 손에 들어가면 건강이 취약한 소비자들의 가입을 거부하는 자료로 악용될 수 있다. 빈곤 국가의 개발을 지원하고 인터넷을 보급하는 것도 해당 지역의 복리 향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분명하지만, 빅테크는 질병 퇴치나 교육 개선 등을 약속하면서 그 시장에 제국주의적으로 진입하여 권위를 행사한다(베풂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그런 행태를 자선자본주의라고 칭한다). 그리고 막대한 돈이 흘러 들어가는 기부금 단체나 민간 재단이 탈세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교육 혁신은 어떤가. 기존의 낡은 학교체제를 대체할 여러 학습시스템을 창안하여 가동시키고 있는데, 그 가운데 널리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미네르바스쿨은 배움의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았다. 그런데 그 혜택을 누리는 인재들은 부유한 특권층 자녀들이다. 물론 보다 보편적인 적용이 가능한 모델들이 나오고는 있지만, 기업가들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변화를 도모하기보다는 당장의 성과에 집착하는 경향이 짙다. 그 기대에 부응하다 보면 기술해결자의 관점으로 접근하기 일쑤고, 그래서 애당초 내세운 취지를 달성하기가 어려워진다.

 

실리콘 제국이 추구하는 프로젝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무엇인가. 글로벌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결국 부유한 백인 남성들이 중심이 되어 배타적이고 자족적인 세계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기아문제에 매달리지만 샌프란시스코 도심지에서 힘들게 연명하는 노숙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젊은 엘리트들은 자유로운 사고와 탁월한 창의성을 지니고 있지만, 자신과 다른 처지에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공감능력은 아주 부족하다. 그리고 그 기업들의 인적 구성이나 권력 배분은 백인 남성에 치우쳐 있어서 실질적으로 공헌한 여성들이 가려지기 일쑤고, 여성 창업자들이 투자를 받을 기회도 매우 적다. 그렇듯 남성 우월주의적인 조직문화 속에서 성희롱이 오랫동안 빈발해오다가, 몇 해 전에 미투고발이 잇달아 터져 나왔다.

 

그것은 조직 내부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윤리감각이 결여된 집단이 압도적인 기술 우위로 시장을 지배하면서 새로운 현실을 창조해간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빚어질까? 기업 연합체가 정부보다 더 큰 재정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대중적인 지지까지 확보한다면, 그리고 소셜미디어의 플랫폼과 검색엔진이 언론을 능가하는 새로운 계급을 형성하고 구글이 최종적 팩트체커’(사실 확인자)가 된다면, 공공영역의 지형은 어떻게 될까? ‘페북의 막대한 데이터가 의도와 전략을 가지고 사용된다면? 저커버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국가권력과 정치가 시민들을 배반하고 관료제의 무능과 비효율이 곳곳에서 드러나는 상황에서 세련된 엘리트집단이 고도의 전문성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나설 때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구축되는 세계는 부유한 이들 위주로 돌아가고, 소비지상주의의 에너지로 추동되는 경향이 짙다. 아무리 국가가 낙후되어 있다 해도 그것은 수리하고 혁신해야 할 대상이지 폐기해버릴 일은 아니다. 정부를 바로 세우는 것은 소비자의 욕망으로는 결코 해낼 수 없다. 시민의 책임을 모아내면서 공공성을 새롭게 구축해가야 한다.

 

공동의 미래를 디자인할 집단지성이 절실하다

이번 바이러스 재난은 시민사회의 자율적인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극명하게 입증해주었다. 2차대전 이후 최대의 세계사적 위기인 지금 이 사태 앞에서 실리콘제국은 어떤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까. 접촉과 이동이 크게 제약되는 상황에서 같은 화상회의 시스템이나 넷플릭스등의 채널이 인기를 누리는 것 이상으로, 새로운 문명의 비전을 빅테크가 내놓을 수 있을까.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 것이 2018년인데, 저자가 지금의 거대한 난국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이미 실리콘밸리의 오름세는 2014~2015년을 정점으로 꺾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워낙 탁월한 위치에 있기에, 그리고 소비자들의 동의와 승인 덕분에 그 위력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문제는 거기에서 산출되는 성과들이 우리의 삶과 사회를 건강하게 향상시켜줄 것인가이다. 노동시장에서도 취약한 입지에 있고 국가의 보호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엄청난 규모의 시민들에게 빅테크가 줄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이다(팬데믹 상황에서 온라인 거래가 폭증하면서 아마존같은 기업에 일감이 밀려드는 가운데, 밀폐된 창고에서 일해야 하는 이탈리아와 미국의 배송 직원들이 자신들의 건강을 지켜달라고 시위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현재의 서비스와 시스템이 끊임없이 첨단을 향해 치닫는 대신, 보다 포용적인 성격으로 변환하면서 부유한 백인 남성이 아닌 모든 이들을 대변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실행파일을 제시하지는 않고, 밀레니얼과 Z 세대의 각성된 힘에 막연한 기대를 걸고 있다.

 

실리콘 제국은 일상생활과 사회적 상호작용과 상거래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꾼 기세로 신체와 생명을 리모델링하고 국가의 기능을 능가하려는 단계에 이르렀다. 사물의 작동체계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알고리즘에게 우리의 주권을 어디까지 양보할 것인가. 슈퍼파워가 인류를 위협하는 괴물이 되지 않도록, 우리의 대의를 모아가는 공론의 장이 열려야 한다. 너와 나를 정의와 사랑으로 연결하면서 공동의 미래를 디자인하는 집단지성이 절실하다. 그것은 우선 우리가 각자 삶의 주인으로 스스로를 일깨우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 모두는/자기 삶의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네//내가 나 자신을 연구하지 않으면/다른 자들이 나를 연구한다네/시장의 전문가와 지식장사꾼들이/나를 소비자로 시청자로 유권자로/내 꿈과 심리까지 연구해 써먹는다네//(중략)//내 모든 행위가 CCTV에 찍히고/전자결제와 통신기록으로 체크되듯/내 가슴과 뇌에는 나를 연구하는/저들의 첨단 생체인식 센서가 박혀 있어/내가 삶에서 한눈팔고 따라가는 순간/삶은 창백하게 빠져나가고 만다네//우리 모두는/자기 삶의 최고 기술자가 되어야 한다네”(박노해, 자기 삶의 연구자(부분))     녹색평론 통권 제172 | 김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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