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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화이트: 백인 재현의 정치학

by 이성근 2020. 6. 7.

화이트: 백인 재현의 정치학 리처드 다이어 지음, 박소정 옮김/컬처룩·2020.05

 

저자 :리처드 다이어RICHARD DYER는 킹스칼리지런던 영화학과와 세인트앤드루스대학 영화학과 명예교수다. 주로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를 통해 재현과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어 왔다. 스타STARS(1979)천상의 몸HEAVENLY BODIES(1986)은 스타 연구와 셀러브리티 연구의 고전으로 꼽히며, 화이트(1997)는 인종과 백인성, 재현 문제를 다룬 기념비적 저작이다. 나우 유 시 잇NOW YOU SEE IT(1990)이미지라는 것THE MATTER OF IMAGES(1993)은 미디어 속 퀴어의 재현 문제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그 외에도 퀴어 문화THE CULTURE OF QUEER(2001), 패스티시PASTICHE(2007), 영화 속 노래IN THE SPACE OF A SONG(2011) 등을 통해 대중문화 속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에 대한 사유를 펼쳤으며 영화 비평을 하기도 했다. 자신의 개인적 삶과 정체성을 학문적 연구를 통해 녹여냄으로써 날카로운 통찰력과 이론적 개념들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이를 다시 정치적인 목소리와 운동의 힘으로 바꾸어 내는 활동을 해 왔다.

 

역자 : 박소정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언론정보학과에서 석사 학위 및 박사 과정을 수료한 후 한국의 미백 문화에 대한 박사 학위 논문을 쓰고 있다. 주로 미디어 문화를 통해 관찰되는 정체성과 친밀성의 문제를 연구해 왔다. 논문으로 신자유주의 한국 사회에서 연애하기: 2008년 이후 한국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재현을 통해 본 연애, 아재라는 호명의 독: 대중문화 속 아재 코드가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구축하는 방식, K-뷰티의 미백 문화에 대한 인종과 젠더의 상호교차적 연구를 위한 시론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연애정경이 있다.

 

목차

지금, 한국에서 읽는 화이트· 홍석경

옮긴이의 말

빛을 들여다보기: 백인성, 인종주의, 재현 체제 · 막심 세르뷜

머리말

 

1장 백인성이라는 문제

2장 색 없는 유색 백인

3장 세상의 빛

4장 백인 남성의 근육

5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6장 하얀 죽음

 

감사의 말

참고 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서구 시각 문화의 백인성 재현에 관해 획기적인 통찰력을 제공한 기념비적 저작이자 고전

백인성은 서구 문화에서 특권적인 위치를 형성해 온 문화적 구성물이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유럽과 북미의 길거리에서 아시아인들에게 신체적, 언어적 폭력이 공공연하게 가해지고 있다. 피부색은 인종을 구별하는 데 가장 즉각적이고 강력하다. 한국 사회 또한 결코 인종주의나 피부색주의colorism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우리의 시선 속에서는 또 다른 백인성이 작동한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230만 명을 넘어선 현 시점에서 한국 사회가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어두운 피부색의 외국인에게는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은 다문화 수용 지수와 같은 지표를 동원하지 않아도 사회적인 분위기로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인종의 위계, 피부색의 스펙트럼은 상대적이기에 우리 사회는 늘 울타리와 사다리를 세움으로써 우리의 정상성을 확인받고자 한다.

 

리처드 다이어의 화이트는 지구적 질서에서 규범으로 여겨지는 백인성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을 제공한다. ‘white’가 내포하는 두터운 의미의 지층, 백인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서구 문화의 무수한 면면들을 날카롭게 파헤쳐 보여 준다. 백인성은 서구 문화에서 특권적인 위치를 형성해 온 문화적 구성물이라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그렇게 구축된 백인성은 백인의 인종주의적 우월성의 근거로 작동해, 모든 유색인을 개인성을 확립하지 못한 미개하고 이해할 수 없고 비이성적인 집단으로 타자화하는 인종 차별적 태도를 뒷받침한다.

 

다이어는 이 책에서 주로 시각적 재현을 다루고 있는데, 중세 이래 서구 문화에서 시각은 특권적 감각이었고 19세기 중반부터는 사진이 지식, 사상, 감정의 중심적이고 권위적인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백인 얼굴을 표준으로 삼아 발전한 사진술, 할리우드 영화에서 스타를 비추는 조명 관습에서 드러나는 백인성, 기독교적인 레토릭에 부합하는 빛의 사용과 백인성의 관계 등을 면밀하게 분석한다. 할리우드가 발전시킨 영화의 장치는 백인의 피부를 아름답게 조명하면서, 서사 속에서 백인 남성을 인류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백인 여성에게는 그 숭고함을 유지해 주는 역할을 부여했다고 설명한다. 즉 할리우드의 미학이 어떻게 화이트라는 개념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장치인지, 다시 말해 얼마나 인종주의적인 담론의 산물이고 식민주의적 세계 구조에 기여하는 재현 체계인지를 설파한다.

 

1997년 출간 이래 화이트는 백인성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며 고전으로 자리 잡았고, 미디어·기술 환경의 변화 속에서 함께 변모하는 인종 담론을 해체하려는 수많은 후속 연구들에 영향을 미쳤다. 영화를 비롯해 대중문화를 통해 재현과 정체성 문제를 탁월하게 연구해 온 다이어가 안내하는 이 유구하고도 역동적인 백인성의 세계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던, 또는 알고서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세상의 편향을 드러낸다.

이 책은 인종적 재현이 현대 세계를 조직하는 데 중요한 문제인 가운데, 흑인과 아시아인의 이미지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많은 반면, 백인들은 어떻게 해서 거의 고찰되지 못한 인종으로 남게 되었는지 탐구한다. 다이어는 백인성의 명백한 비가시성의 이면을 살펴봄으로써 백인의 이미지를 분석하는 작업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이를 위해 흰색을 색조, 인종, 피부 세 차원에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다시 각 차원에서 흰색이 지닌 의미가 다른 차원으로 미끄러지며 백인성의 권력을 작동시키는 양상을 분석한다. 따라서 백인의 속성으로서의 희다는 개념은 검정에 반대되는 색으로서의 단순 명사가 아니라, 인종주의, 식민주의, 기독교, 여성성, 계급성, 이성애 규범성 등의 차원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하나의 담론이다.

 

다이어는 이러한 백인성 재현을 기독교, 인종, 식민주의의 맥락에서 살펴본다. 이를 위해 고전 문학부터 대중 음악, 르네상스 회화부터 20세기의 사진술, 1950년대 이탈리아 영화부터 할리우드 SF 영화까지 광범위한 영역을 종횡무진하며 백인성의 자취를 좇는다. ‘빛의 문화를 형성하는 사진과 영화의 기술에서 백인성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보여 주고, 타잔헤라클레스부터 코난람보까지 근육질의 남성 액션 영화에서 나타나는 영웅적인 백인 남성성에 대해 논한다. 그리고 1984년에 영국에서 방영된 드라마 가장 귀한 것과 같은 영국 제국 말기의 서사에서 백인 여성의 억눌린 역할을 분석하고, 영화 폴링 다운과 호러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일리언3부작 같은 디스토피아적 영화에서 백인성이 죽음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밝혀낸다. 다이어가 이토록 광역의 텍스트를 다루는 것은 백인성의 권력이 사실상 모든 서구 문화의 기저에 하나의 관행(관습)’으로서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그림, 사진, 영화 등 50여 컷에 달하는 본문에 삽입된 이미지들은 백인() 재현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백인은 어떻게 할리우드 영화에서 미의 표준이 됐나

예술 매체의 백인 재현에 감춰진 백인중심주의 폭로

인종주의 담론 해체를 이끈 문화연구의 고전적 저작

서구 백인 사회가 자기 자신을 성찰의 대상으로 삼아 상대화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탈근대철학의 등장 이후의 일이다. 1970년대 말 에드워드 사이드는 탈근대철학의 논의를 이어받아 쓴 <오리엔탈리즘>으로 서구중심주의 해체에 중대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사이드는 이 책에서 서구가 동양을 왜곡한 뒤 이 왜곡된 상을 거울로 삼아 자기 자신의 우월한정체성을 구성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1990년에 나온 로버트 영의 <백색신화>는 사르트르·알튀세르·푸코 같은 가장 진보적인 이론가들조차 서구 중심의 백색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줌으로써 서구 사회의 자기비판을 한 발 더 전진시켰다.

영국의 문화연구자 리처드 다이어. 위키미디어 코먼스

 

영국의 문화연구자 리처드 다이어(킹스칼리지런던 영화학과 명예교수)<화이트: 백인 재현의 정치학>은 서구 백인의 자기비판에서 또 한 번의 진전을 보여주는 저작으로 평가받은 책이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백인이라는 인종이 서구의 예술 매체에서 다른 인종들과는 구별되는 특권적 지위를 누리면서 인류를 대표하는 보편적 인간으로 재현되는 양상을 추적한다. 지은이가 다루는 매체는 르네상스 시기 이래 서구의 회화, 19세기에 발명된 사진, 20세기에 대중화한 영화들인데, 지은이는 특히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를 통해 백인성이라는 기표가 어떻게 모든 인종을 초월한 보편적 기표로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때는 1997년인데, 이 책 이전에도 영화를 비롯한 예술 매체의 인종주의를 분석하는 저작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 책들은 주로 유색인이 예술 매체에서 어떤 식으로 그려지는가를 탐색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 책은 그런 반인종주의 담론의 공백으로 남아 있던 백인 자체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전의 책들과 구별된다. 말하자면 이 책은 백인이라는 인종이 재현되는 양상을 백인 자신의 눈으로 분석해 백인의 보편성을 해체한 최초의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선구자적 역할 때문에 이 책은 지난 20여년 사이 문화연구 분야에서 고전적 지위에 올랐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지은이는 성장과정에서 겪은 내밀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어려서 인형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했던 지은이는 이상하게도 백인이 아닌 친구들에게 유대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지은이는 그 친구들이 자신과 같은 종족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자신이 백인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고 한다. 이어 지은이는 청소년기에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고백한다. 아마도 동성애자라는 이 주변부성이 백인으로서 정체성에 균열을 일으켰고, 이 균열이 백인성을 성찰하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유색인이라는 단어 대신에 비백인’(non-white)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유색인이라는 단어는 백인을 무색인색이 없는 인종으로 이해하도록 오도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강조하는 대로 백인은 분명히 피부색이 있는 유색인이다. 더구나 피부색이 실제로 백색인 것도 아니다. 백인들이 다른 사람들을 유색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흰색은 색이 아니며 색을 초월해 있다는 백인들의 관념이 반영된 것이며, ‘색이 없다는 관념은 백인이 모든 유색인들과 다른 차원에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동시에, 백인이 스스로 백인이라고 칭한 것은 단순히 살결이 상대적으로 밝기 때문이 아니라, 백색이라는 상징 속에 정신·순수·고결 따위의 의미가 배어 있기 때문임을 지은이는 역사적 문헌들을 통해 밝힌다

 

백인 사회에서 인종이라는 말이 쓰이는 것도 유색이라는 말이 쓰이는 상황과 유사하다. 인종은 백인을 제외한 다른 모든 유색인종들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지 백인 자신들을 향해 쓰이지 않는다. 백인은 인종의 하나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 그 자체다. “다른 사람은 인종이고 우리는 그냥 인간이다.” 이것이 백인들의 생각이다. 그리하여 백인은 언제나 특수성을 넘어선 보편성 자체로 자신을 드러낸다. 반면에 인종이라는 낙인이 찍힌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인종을 대변할 뿐이어서 인간으로서 보편성을 구현하지 못한다. 이런 백인 중심성은 숱한 할리우드 영화에서 되풀이하여 재현된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백인이 아름다움의 전형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 매체 기술을 선택적으로 발전시킨 결과임을 보여주는 데도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다. 19세기에 유럽에서 발명된 사진은 백인의 얼굴을 가장 아름답게 재현하는 데 기술 개발을 집중했고, 백인의 얼굴은 자연스럽게 규범으로 정착했다. 백인을 표준으로 삼은 사진 기술은 20세기에 영화 촬영 기술로 그대로 옮아갔다. 문제는 백인의 얼굴을 드러내는 데 최적화한 촬영 기술이 백인이 아닌 사람을 촬영할 때는 전혀 적합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백인과 비백인이 함께 나올 경우 비백인은 잘 보이지 않거나 얼룩이 지거나 실제보다 못생겨 보이게 된다. 백인 중심성은 이렇게 촬영과 조명 기술에 힘을 행사했고, 비백인은 이 보이지 않는 백인 중심성 아래서 미적으로 주변부에 놓일 수밖에 없게 됐다.

 

백인으로서 지은이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백인의 특수성에 대한 자기 인식이다. 백인은 보편적 존재가 아니며, 백색은 여러 색깔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백인은 자기 자신을 특수한 인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만든 기준을 인류의 보편적 기준으로 세우고 그 기준에 맞춰 자신들을 정상으로, 다른 인종은 그 정상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본다. 이런 백인 중심성이 해체되지 않는 한, 인종적 다양성과 혼종성이 평등하게 어우러지기는 요원한 일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백인은 스스로를 백인으로 보는 법을, 자신들의 특수성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시 말해 백인은 (백인 자신에게) 낯설어져야 한다.” 이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백인은 특별하지 않다, 그냥 똑같은 사람일 뿐이다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흑인 남성이 숨진 사건 이후 미국 전역에서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28일 한 흑인 여성이 백인 경찰에게 큰 소리로 항의하고 있다. 미니애폴리스=AP 연합뉴스

 

#1. 수갑이 등 뒤로 채워진 상태로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흑인 남성 용의자의 목을 백인 경찰이 무릎으로 짓누르고 있다. 고통을 호소하던 흑인 남성이 숨을 쉴 수 없다. 살려 달라고 간절히 애원하고, 보다 못한 시민들이 그도 인간이라며 말려 봤지만, 백인 경찰의 목 누르기는 계속됐고 흑인 남성은 끝내 숨졌다.

 

#2 공원에서 강아지 목줄을 채워 달라는 요구를 한 흑인 남성에게 백인 여성은 대뜸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공중도덕을 위반한 건 백인 여성인데, 그는 경찰에 전화해 자신이 위협받고 있다고 도움을 요청한다. “여기 흑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빨리 경찰을 보내 주세요.”

 

최근 미국 전역을 뒤흔들고 있는 인종차별 반대 시위의 도화선이 된 두 장면이다. 백인은 흑인을 인간으로 상대하지 않았다. 백인에게 흑인은 그저 흑인이었을 뿐. 두 사건이 극히 예외적인 것도 아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발생한 증오범죄 7,120건 중 흑인 대상이 46.9%로 가장 많았다.

 

링컨 대통령이 1863년 노예 해방 선언을 하고, 1964년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연방민권법(Civil Rights Act)이 제정된 지 56년이 흘렀지만 미국 사회에서 인종차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백인 경찰관이 흑인 청년 조지 플로이드의 목덜미를 무릎으로 찍어 누르고 있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미국 전역에 인종 차별 반대 시위가 불 붙었다. 이 사건에 연루된 경찰 4명은 즉각 파면됐다. 미니애폴리스=AFP 연합뉴스

 

끝없이 반복되는 비극과 깨달음에도 인종차별은 왜 사라지지 않는가. 세인트앤드루스대학 영화학과 명예교수인 리처드 다이어의 화이트는 그 답을 백인성에서 찾는다. 백인성은 모든 서구 문화의 기저에 깔려 특권적 위치를 형성해 온 문화적 구성물을 일컫는다. 책은 1997년 처음 출간 이후 2017년에 20주년 기념판이 나왔는데 국내 소개는 다소 늦었다.

 

화이트가 나오기 전까지 백인 이미지를 들여다본 인종 연구는 없었다. 백인은 그 자체로 표준이자 이 세계를 지배하는 질서였으므로 굳이 설명할 필요를 못 느꼈던 탓이다.

 

인종이 오로지 유색인에게만 적용되는 한, 백인은 인종적으로 보이지도 명명되지도 않는 한, 그들/우리는 인간 규범으로 기능한다. 다른 사람들은 인종이고, 우리는 그냥 인간이다.”

 

다이어는 이 같은 백인성의 비가시성을 정면으로 돌파해 나가며 하나의 인종으로서의백인을 설명하려 든다. 권력으로서의 백인성은 보이지 않음으로써 유지돼 왔다는 걸 깨트리기 위해서다. 그는 첫머리에서 이 책의 목적을 백인 권력의 위치를 들여다봄으로써 그것을 약화시키려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힌다.

서구 문화에서 백인, 백인성은 그 자체로 특권이자 규범이었다. 남녀를 막론하고 하얀 피부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알리바이로 작동했다.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의 흰색의 심포니 3’(1865~1867), 조슈아 레이놀즈의 어느 여인의 초상화’(1767~1769). 컬처룩 제공

 

책은 고전문학부터 대중음악, 사진, 할리우드 영화까지 종횡무진하며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던, 혹은 알고서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백인성의 실체를 드러낸다. 20세기 사진술에서 쓰이는 빛은 백인 얼굴을 기준으로 발전했고, 할리우드 영화 조명 기술과 카메라 워크조차 역시 백인 주인공을 가정하고, 그들의 하얀 피부를 더 하얗고 아름답게 비추기 위해 표준화됐다. 조명은 그 자체로 위계질서를 갖는다. 누가 중요하고 아닌지를 지시한다.

 

이로써 백인의 얼굴은 특권화되고 비백인(non-white)’은 있는 모습 그대로 재현하는 것조차 더 어렵게 만든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이 자신이 주인공인 작품에서도 잘생겨 보이지 않는다고 푸념한 건 애당초 할리우드 촬영 시스템이 백인용이기 때문이다.

작가 미상. ‘심장에서 피 흘리는 그리스도’ 1996년 제노아 성당에서 판매하던 엽서다. 백인으로 재현된 그리스도를 통해 백인 헤게모니는 더욱 강화된다. 컬처룩 제공

 

백인성이란 권력은 이미지를 넘어 담론으로도 발전해 간다. 저자는 백인성이 기독교를 전파하고, 인종주의, 제국주의, 식민주의 등을 정당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주장도 편다. 서구 문화에서 백인성은 진취적 정신을 상징한다. 육체의 고통을 초월하고 부활한 백인 그리스도의 얼굴, 비옥한 땅을 놀려 먹는 미개한 원주민들을 교화시킨다는 명분으로 침입한 서부 개척자들의 이야기, ‘타잔에서부터 람보까지 남성 액션 영화에서 영웅으로 그려지는 근육질의 백인 남성의 몸까지. 백인성의 우월함을 재현해 낸 모티프는 다양하다.

 

논문을 바탕으로 한 데다, 서구의 문화를 교본으로 삼다 보니 한국 독자 입장에선 낯설게 느껴질 법한 내용이 다수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백인성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크다.

 

프랑스 문화연구자 막심 세르뷜은 20주년 기념판에 실은 서문에서 백인성에 대한 무지야말로 백인 헤게모니를 눈감고 용인해 주는 태도라고 지적한다. “무지란 권력이나 지식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능동적인 위치다. 다이어의 연구는 눈이 멀 지경인 백인 헤게모니의 빛 앞에서 눈을 크게 뜨고 응시할 수 있게 한다.”

 

당장 우리만 해도 비백인, 유색인이지만, 우리 안의 백인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똑 같은 외국인이라 해도 동남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어두운 피부색의 외국인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건 부인할 수 없다. 우리 역시 피부색의 스펙트럼을 쫙 깔아 놓고 인종의 위계를 세우고 있는 것이다. 책을 번역한 박소정 연구자는 ‘K-뷰티등 한류가 미백 중심의 미를 생산하고 있는 것 역시 인종주의적 위험을 내포하는 것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 흑인 여학생이 나는 숨을 쉴수 없다는 문구가 쓰여진 마스크를 쓴 채 인종 차별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휴스턴=AP 연합뉴스

 

1963828, 노예 해방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미 전역에서 모인 군중은 흑인 해방 운동 지도자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연설에 전율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아이들이 이 나라에서 살며 피부색으로 평가되지 않고 인격으로 평가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평등하다는 이 간단한 명제는 아직도 실천되지 못하고 있다. 그 돌아오지 않는 응답에 책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하나다. “화이트는 특별하지 않다.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또 다른 사람일 뿐이다.” 백인성의 권력을 내려놓을 때 모두가 숨 쉴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낙인찍힌 몸 흑인부터 난민까지, 인종화된 몸의 역사 저자 염운옥|돌베개 |2019.07

염운옥-고려대학교 사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도쿄대학교에서 영국의 우생학 운동과 모성주의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와 민족문화연구원의 연구교수로 재직했고,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연구교수이다. 인종, 젠더, 계급이 교차하는 몸의 역사, 도시위생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식민주의와 인종주의: 아리안 인종론과 영국, 인도, 그리스(2018), 잃어버린 기회? 로런스 사건과 맥퍼슨 보고서, 제도적 인종주의(2014) 등이 있고, 저서로는 낙인찍힌 몸: 흑인부터 난민까지 인종화된 몸의 역사(2019), 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 유전자 정치와 영국의 우생학(2009)이 있다.

 

목차

들어가는 글

 

1. 인종에 갇힌 몸들

인종 개념의 기원과 형성

린네의 분류학

빙켈만의 미학

안면각과 두개측정에서인종 사진까지

 

2. 검은몸의 노예, 저항의 언어

누가 흑인인가?

노예무역, 노예제,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

노예제의 유산과 기억의 정치

 

3. 인종,계급, 젠더가 교차하는 여성의 몸

사르키 바트만, 3중의 억압 아래서

메리 프린스, 여성 노예는 말할 수 있는가?

서저너 트루스, 흑인 여성의 여성성과 모성

 

4. 혐오스러운 몸에서 강인한 육체로

누가 유대인인가?

유대인의 몸 담론

파괴하기와 재생하기

 

5. 베일 안과 밖, 그리고문화정치

테러의 세계화와 이슬람포비아

무슬림 베일논쟁과 이슬람포비아의 젠더화

무슬림의 악마화인종화

 

6. 한국에서 다양한 몸과 함께 살아가기

한국인, 외국인, 이주민

혼혈에서 다문화

이주노동자와 인종차별

다문화주의와 인종주의

나가는 글

 

미주

시각자료 출처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당신의 코에서는 열정이 보이지 않아!”, “머리 크기로 짐작하건대, 똑똑하시겠군요.”

타자의 몸을 먹고 자라난 인종주의의 역사

가느다란 눈에 광대뼈, 큰 엉덩이에 두툼한 입술, 흰 피부에 커다란 눈, 곱슬머리에 기다란 코……. 이러한 표현들을 접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특정 인종을 상상한다. 그리고 판단한다. 왜 어떤 몸은 아름다움의 척도가 되지만, 어떤 몸은 비하 대상이 되는가? 나아가 미와 추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별과 박해를 받는가? 저자 염운옥이 인종주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몸을 둘러싼 규정과 편견에 물음표를 던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박사논문 주제였던 우생학을 공부하면서 인간의 몸에 등급을 매겨 제한을 두는 발상에 분노했고, 이를 좀 더 깊게 보기 위해서는 그중 열등하다고 분류된 유색인종의 몸과 이데올로기에 주목해야 한다고 여겼다. 10여 년 전 가졌던 의문이 소논문들과 몇 편의 글로 조금씩 풀려가는 동안 한국사회에서 다른 인종에 대한 혐오는 변주를 거듭하며 거세졌고, 책 작업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시 묻자. 인종주의란 무엇인가. 인종주의는 타자의 행위가 아닌 피부색, 머리카락, 골격, 두개골, 혈액 등과 같은 생물학적인 속성에 근거해 인간을 규정짓는다. 눈에 보이는 것에 기반해 보이지 않는 것을 결정하며, 이 과정에서 몸에 대한 담론이 더욱 강화되는 것이 인종화의 속성이다. 이 역사의 시작은 16세기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낙인찍힌 몸은 혈통을 의미하던 인종이 어떤 연유로 인간 분류의 하위범주로 사용됐는지, 그리고 피부색으로 인간을 분류한 린네의 명명법과 흰 그리스 조각을 아름다움의 척도로 삼았던 빙켈만의 미학이 어떻게 씨줄과 날줄이 되어 백인우월주의 신화와 인종화를 만들어냈는지 찬찬히 풀어낸다(1). 여기서 문제는 몸 담론이 인종과 결합되고 합리화하는 방식에 있다. “작은 안면각, 가벼운 뇌, 돌출된 아래턱, 앞이마 중앙의 미발달”(77)이 흑인의 특징을 넘어 범죄나 백치 같은 열등한 인간의 특성으로 확대 해석되거나, 유대교를 믿던 유대인들의 종교 집단이 검은 머리에 매부리코를 지닌 탐욕스러운 인간들로 인종화되는 경우 등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흥미로운 점은 인종화에 대한 시각 경험을 배반하기도 일이 종종 발견된다는 것이다.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제아무리 피부가 하얗더라도 흑인이지만 그들 중에는 패싱을 통해 백인 사회에 자연스레 진입하는 경우도 있었다(94~103). 또한 예쁜 아리아인 선발대회에 유대인 해시 레빈슨 태프트가 1등으로 선발됐던 웃지 못할 사연도 있다(216~218). 유대인은 여러 지역에서 여러 민족과 함께 살아왔기에 외모만으로 식별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생물학적인 몸을 근거로 인종을 구분한다는 것의 비논리성을 보여주는 증거인 동시에 태어남과 동시에 낙인찍힌 채 살아가야 했던 몸들에 해방과 자유를 찾아주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외모, 말투, 옷차림부터 종교, 문화적 지표까지

신인종주의를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

만약 당신의 옆집에 무슬림 가족이 이사 온다면? 장시간 타야 할 비행기의 옆자리에 국적을 알아채기 쉽지 않은 유색인 남성이 앉았다면? 값비싸고 고급스러운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종업원들이 전부 조선족 여성이라면? 겉으로 내색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슬금슬금 피어나는 불편함 감정까지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낙인찍힌 몸이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고 싶은 메시지도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교양 있는시민이기에 학창 시절에 배운 대로 인종차별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남아 있는 인종을 서열화하는 습속은 가벼운 계기만으로 그 민낯을 드러낼 수 있다.

 

여기서 들라캉파뉴가 말했던 인종주의는 천 개의 머리가 달린 히드라”(6)라는 말을 떠올리는 게 유용하다. 인종주의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에 단일하게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낙인찍힌 몸의 전반부가 생물학적인 특성에 따른 인종차별의 역사를 정리하는 데 주력했다면, 후반부에서는 백인우월주의가 여전히 건재하는 가운데 문화적인 지표가 더 중요하게 작동하는 신인종주의현상에 주목한다. 5장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이슬람국가의 테러와 베일이라는 제2의 피부를 지닌 무슬림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인종차별을, 6장에서는 다문화한국에서 살아가는 혼혈인, 이주민, 난민을 다룬다. 외모, 말투, 옷차림에 문화적인 요인이 덧대져 위협 집단으로 고착화되는 데 우리 역시 동조자였음을 확인하는 일은 씁쓸하지만 유의미한 독서가 될 것이다.

 

자신이 언제나 인종차별을 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일은 계급차별과 성차별에 대해 좀 더 예민한 감각을 갖겠다는 다짐이 되기도 한다. 저자가 3장에서 깊게 서술한, 흑인 여성에게 교차하는 인종, 계급, 젠더 차별은 여전히 잔존하기 때문이다. 2, 3중의 억압 속에서 개개인의 목소리는 쉽게 사라지고 문젯거리로만 남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가령 2018년 초, 제주에 도착한 예멘난민을 두고 페미니즘의 한쪽에서 예멘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여기며 입국 반대를 외치는 모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국민이 먼저라는 슬로건을 내건 보수 매체들과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저자의 바람대로 성급히 결론 내리기보다 꾸준히 공부하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신인종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지 않을까.

 

수동적인 노예에서 사슬 끊는 흑인으로, ‘보여지는 대상에서 보는 주체

인종주의에 갇힌 인종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인종주의를 떠올리면 노예, 혐오, 차별, 배제, 말살, 흑백의 이분법 같은 단어들이 자연스레 달라붙는다. 낙인찍힌 몸역시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 괴물쇼에 올라야 했던 흑인 여성들, 홀로코스트 속으로 사라진 유대인, 이스라엘 국가에서 배제당한 에티오피아 유대인, 한국사회에서 부당한 처우에 놓인 이주민 등과 같이 인종주의의 슬픈 역사를 재현하는 데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한다. 그렇지만 이에 못지않게 폭력에 맞서 저항하며 주체적인 목소리를 냈던 장면들을 소개하는 것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노예 해방을 애원하는 수동적인 노예가 아닌 스스로 사슬을 끊는 노예’(142), 불쌍하고 연민을 자아내는 노예 여성 트루스가 아닌 꼿꼿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 나(이미지)를 판다”(198)고 말하는 트루스의 모습을, ‘거래가 아닌 열렬한 연애를 거쳐 결혼했음을 당당하게 공개한 결혼이주여성의 편지 사연(317)을 실었다. 독자들은 각 장마다 저자가 숨겨 놓은 희망의 몸짓을 만나게 될 것이다. 책에 실을 70여 장의 시각자료를 선정하며 인종차별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고착화시키는 이미지를 일부러 배제했던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중요한 점은 인종주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한걸음 나아가 인종주의에 갇힌 인종주의에서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20181014일 세상을 떠난 네팔인 미누를 추모한다. 그는 1992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입국해 18년을 일하며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알리는 데도 앞장섰으나, 표적단속으로 잡혀 결국 강제출국을 당했다. 저자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미누와 그가 활동했던 다국적밴드 스탑크랙다운(Stop Crackdown)을 떠올리며, 그가 온정의 대상이 되는 것도, 단속과 추방,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것도 거부했”(380)다고 쓴다. 이는낙인찍힌 몸이 그의 말을 빌려 전하고 싶은 메시지기도 하다.

 

혈통과 민족으로 보는 세계사 일본인은 조선인의 피를 얼마나 이어받았는가? 저자 우야마 다쿠에이|역자 전경아|센시오 |2019.10.

원제 民族世界史 敎養としてっておきたい

저자 : 우야마 다쿠에이 1975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게이오기주쿠대학교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명문 입시 학원 요요기 세미나에서 세계사 강사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현재는 작가로 활동하는 동시에 TV, 라디오, 잡지 등 여러 미디어 매체를 통해 국제 시사 문제를 역사적 관점에서 알기 쉽게 해설하는 시사평론가로 맹활약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너무 재미있어서 잠 못 드는 세계사를 비롯하여 경제를 읽는 종교사, 역사로 읽는 경제 : 경제, 우리가 아는 모든 세계를 움직이는 힘, 실패로 배우는 세계사등 세계 역사와 다른 분야를 융합시킨 다수의 역사책을 펴냈다. 새로운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참신한 접근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글쓰기가 장점이다.

 

 

목차

저자의 말 _ 민족을 알면 세계사가 새롭게 다가온다

 

Part 1 민족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Chapter 1 인종 · 민족 · 국민은 어떻게 분류되는가?

과연 우리 민족은 특별한가?인종을 구분하는 기준은 뭘까?인종, 민족, 국민의 의미와 차이민족과 혈통의 문제

Chapter 2 민족의 역사적 혈통 증명서

백인은 신의 선택을 받았다?어족이란 무엇일까?세계의 주요 어족들인도인과 유럽인은 동족일까?

Chapter 3 인도-유럽 어족은 어떻게 고귀한 민족이 되었는가

노아의 방주 전설은 설득력이 있는가?세계를 지배한 인도-유럽 어족민족주의자에 이용당한 아리아인히타이트 왕국의 소멸로 유출된 제철 기술아리아인은 다른 민족의 문자를 훔쳤다

 

Part 2 동아시아의 여러 민족들

Chapter 4 하이브리드 인종 중국인의 정체

일본인은 반()중국인이다?한인을 위협하는 북방 이민족진나라의 멸망과 여러 민족의 피가 섞인 새로운 인종의 탄생인정사정없던 북위의 혼인 정책역대 중국 왕조는 한인 왕조가 아니다

Chapter 5 지나(支那)가 차별어라면 중화(中華)는 어떨까?

민족의 짙고 옅은 지나라는 단어가 중국을 깎아내리는 말일까?중화사상이란 무엇인가?한인 왕조 이외의 왕조에 중화사상이 형성된 수수께끼중화사상의 탄생, 그 아이러니와 모순

Chapter 6 일본인은 조선인의 피를 이어받았는가?

수백만 명에 이르는 한반도인과의 혼혈백촌강 전투와 일본이라는 국가 의식의 탄생일본이라는 국호에 담긴 의미오키나와인과 아이누는 원일본인

Chapter 7 한국인은 누구인가?

두 민족의 흐름대립하는 한인과 만주인통일 왕조 고려를 건국한 퉁구스계 만주인왜 한국에서는 전라도 출신이 차별을 당했는가?고려와 조선민족 문자 훈민정음의 탄생

 

Part 3 세계를 지배한 유럽의 나라들

Chapter 8 유럽을 형성하는 3가지 카테고리

따뜻한 지역에 사는 사람은 게으른가?로마의 후예 라틴인원래 노예를 뜻하던 슬라브비잔틴 제국의 혈통을 잇는 슬라브인온난화가 게르만인의 세력을 키우다라틴인 교황과 게르만인 황제가 협조하는 서유럽

Chapter 9 유럽의 나라들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유럽에서 통일 왕조가 탄생하지 않았던 이유구르구르 알 수 없는 말을 쓰는 사람들노르만인은 해적이었을까?노르만인이 건국한 영국과 러시아세계의 지배자가 된 앵글로색슨인

Chapter 10 아시아인과 유럽인이 피로 맺어지다

머리 모양으로 인종을 알 수 있다?노르디시즘은 무엇인가?광범위한 아시아인 콜로니북유럽은 아시아인의 왕국이었다상상 이상으로 강한 피의 통합스페인의 카탈루냐가 독립을 원하는 이유

 

Part 4 인도 · 중동 · 중앙아시아

Chapter 11 인도를 지배한 정복민들

3,200년이나 계속된 카스트 제도의 기원인더스강의 수혜를 입은 신두 민족신의 규칙에 얽매인 사람들몽골인은 어떻게 인도를 지배했을까?지배자에 의한 민족 분단

Chapter 12 이슬람이 가져온 민족 간의 혼혈

이란인은 아랍인이 아니다왜 이란인은 중동의 패권을 빼앗겼는가유럽의 배후를 친 우마이야 군대비아랍인의 불만을 이용한 아바스 왕조신인종 베르베르인은 누구인가?국가와 민족을 초월하는 베르베르인

Chapter 13 ()으로 불리던 터키인

터키인의 기원은 무엇인가?투르크, 돌궐, 터키왜 터키인은 서쪽으로 갔는가?중동을 지배한 터키인 왕조중세 유럽을 습격한 수수께끼의 아시아인헝가리인은 훈족인가?자유인’, ‘모험가를 의미하는 카자크의 정체

Chapter 14 유대인 민족의 디아스포라

아랍인과 같은 계통의 민족, 유대인백인에 동화된 유랑하는 사람들재산은 빼앗겨도 지식은 빼앗기지 않는다유대인은 왜 박해를 받았는가?대혼란에 빠진 약속의 땅팔레스타인미국을 움직이는 거대한 자금력팔레스타인 분쟁의 행방

 

Part 5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동남아시아의 민족들

Chapter 15 민족의 교차점, 동남아시아

외국인이 모르는 빈민가의 실태인도차이나반도인이란 누구인가?전성기를 맞은 12세기의 크메르 왕조왕도 앙코르의 번영과 멸망독립 의식이 강한 베트남인왜 베트남은 남북으로 긴 모양인가?

Chapter 16 민족의 교차점, 동남아시아

타이인은 누구인가?대인도차이나를 실현한 민족의 융합미얀마의 선주민 퓨인과 몽인민족 융합의 산물, 파간 유적로힝야족 문제의 뿌리는?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유적의 재원오스트로네시아 어족의 해상 제국이슬람화된 오스트로네시아 어족

 

Part 6 미국과 아프리카, 민족에 새겨진 침략과 대립의 상흔

Chapter 17 수수께끼의 민족, 인디언

인디언은 정말로 아시아에서 온 것일까?일부러 좁은 산악 지대에 터를 잡은 이유인디언의 고도로 발달된 기술산 제물을 바치는 의식과 잉카 제국의 멸망마데이라섬으로 흘러들어 간 시체유럽인의 욕망에 불을 붙인 엘도라도잉카 제국과 아스테카 왕국을 멸망시킨 테러와 병원균스패니시와 히스패니시는 어떻게 다른가?인디언주의에 의한 반란과 독립

Chapter 18 모든 인종은 흑인이었다

아프리카에 등장한 호모 사피엔스구인과 신인의 단절호모 사피엔스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의문아크숨 왕국에서 이루어진 흑인과 아랍인의 혼혈어족에 따라 4가지로 분류되는 아프리카인니제르-콩고 어족의 노크 문화황금의 나라에 군림하던 왕, 만사 무사흑인 노예 무역과 사탕 플랜테이션노예 무역이 금지된 진짜 이유

Chapter 19 WASP는 왜 다른 민족과 섞이지 않았을까?

신대륙으로 건너간 유럽의 극빈층나치 뺨치는 민족 말살 정책미국이 독자적으로 추진한 흑인 노예 증식 정책강제 혼혈로 태어난 블랙 인디언유전자에 새겨진 계율지금도 여러 대립을 낳고 있는 백인 우월주의

 

Part 7 대제국의 성립과 민족의 융화

Chapter 20 세계를 연결시킨 몽골인

몽골인은 누구인가?대제국을 떠받친 새로운 수익 구조세계 경제를 일체화시킨 고도로 발달한 유통 시스템지옥의 사자로 불리던 타타르인몽골인은 중국인을 경시했다몽골인의 진격을 가로막은 터키인몽골의 지배는 정말로 가혹했을까?

Chapter 21 만주인은 어떻게 패권을 잡았는가?

막대한 부를 축적한 만주인만주인은 몽골인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야만인들의 한심한 머리 모양타이완 원주민은 중국인이 아니다티베트인은 왜 중국에 굴복했는가?청 왕조를 몰아낸 민족주의

Chapter 22 300년에 걸친 민족 평화의 대상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민족은?다민족의 협력을 꾀한 오스만 제국혼혈 융합 민족, 오스만인의 탄생문명의 교차로에서 분출된 민족 대립의 마그마쿠르드인은 누구인가?

 

Part 8 민족의 혈통을 가르쳐 주는 세계

Chapter 23 글로벌리즘에 침식된 국민 국가

법을 바탕으로 통합된 주권 국가주권의 세분화로 탄생한 국민 국가귀화한 외국인은 한국인인가?민족주의는 위험한 사상이 아니다빈곤층 불만의 배출구가 되는 국가주의

Chapter 24 백인 우월주의의 역사

일본인을 유해한 인종으로 본 루스벨트의 인종 개량론우생학이 주장하는 열등 인종을 배척하는 논리배일 이민법으로 지키고자 했던 미국의 순수한 혈통식민지 경영, 경제적으로는 수지가 맞지 않았다?오늘날 우리에게 인종과 민족은 어떤 의미인가?

 

참고 문헌

 

출판사 서평

어떻게 인류는 흑인과 황인, 백인으로 분화되었고, 각 민족을 형성하게 되었을까?

 

아프리카에서 현생 인류의 먼 조상이 탄생했다. 그들은 수에즈 지협(해협)을 통해 아시아와 유럽으로 뻗어 나갔다. 오랑우탄, 침팬지, 긴팔원숭이, 고릴라 등 유인원의 종류가 여러 갈래이듯 인류도 여러 종으로 분화되었다. 그중에서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이 살아남았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 곳곳으로 흩어졌다. 원래 흑인이었던 호모 사피엔스는 각 지역의 기후와 환경에 따라 서서히 모습이 변해 갔다. 추운 지역의 인류는 추위에 적응하는 동안 얼굴이 평평해지고 두꺼운 눈꺼풀로 안구를 덮었으며 동상을 방지하기 위해 입술이 얇아졌다. 햇빛이 강하지 않은 유럽 지역에서는 자외선을 차단하는 멜라닌 색소가 필요하지 않아서 피부와 홍채, 모발의 색깔이 옅어졌다. 이렇게 인류는 기후와 풍토에 적응하면서 흑인, 황인, 백인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오랜 기간 각각의 고립된 지역에 터전을 잡고 생활하는 동안 인간은 보다 더 세분화되었다. 일정한 무리 사이에 유전형질과 전통이 이어지면서 독특하고 고유한 외모와 전통, 문화, 언어를 갖게 되었다. 이들을 이르러 민족이라 부른다. 그리고 각 민족의 인구가 불어나고 활동 영역을 넓힘에 따라 민족 간의 충돌과 합병이 이루어진다. 비로소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혈통과 민족들의 대립과 융합이 곧 역사다!

1차 세계 대전은 발칸반도에서 잉태된 게르만인과 슬라브인의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세르비아와 코소보에서 일어난 인종 청소역시 민족 간의 대립이 불씨가 되었다. 역사 속 거의 모든 전쟁의 원인은 민족 분쟁이었으며, 이러한 비극은 오늘날까지도 반복되고 있다. 도대체 민족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숱한 전쟁의 원인이 되었을까?

 

2차 세계 대전 때 희생당한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독일 국민으로 여겼으나, 나치는 민족이라는 혈통 증명서를 내밀며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한국인과 중국인, 일본인은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같은 민족이 아니고, 어족으로 분류할 때도 같은 집합에 속하지 않는다. 한국인으로 귀화했고 한국말을 쓰며 한국인보다 한국 문화를 더 잘 아는 외국인을 우리 민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책은 이처럼 복잡하고도 미묘한 인종 / 민족 / 국민 / 어족에 관한 질문에 분명하고도 명확한 정의를 내림으로써 역사 공부의 제대로 된 출발점으로 이끈다.

 

이후 이 책은 전 세계를 종횡무진하며 혈통과 민족의 연대기를 보여 준다.

동아시아는 한족(중국인)과 주변 민족들의 먹고 먹히는 사슬 속에서 역사를 형성해 왔다. 한족에 의해 오랑캐로 지목된 몽골계 민족(흉노족, 선비족)과 퉁구스계 민족(만주족, 여진족), 한반도인(동이족), 티베트족, 투르크족이 중원이라는 거대한 땅덩어리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는 양상이 2,000년 넘게 이어졌다. 6세기 이후 으로 이어진 중국 왕조 가운데 한족이 세운 왕조는 명이 유일하며, 오늘날의 중국인은 중원을 지배한 이민족의 동화 정책에 의해 형성된 하이브리드 인종인 셈이다.

 

코카서스 지방에서 발원한 인도-유럽 어족의 아리아인은 인도 지역으로 이동하여 선주민인 드라비다인을 지배한다. 이들은 스스로 고귀한 존재임을 내세우며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계급 제도를 만드는데, 이것이 카스트 제도의 기원이다.

 

유럽에서는 라틴인과 게르만인, 슬라브인이 세 가지 민족적 원류를 이룬 가운데 세력을 다투었다. 최초의 주역은 로마 제국을 건설한 라틴인이었다. 하지만 유럽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게르만인에게 라틴인은 많은 세력권을 내주어야 했고, 결국 중세 이후 게르만인이 유럽의 주역이 된다. 게르만인은 프랑크인, 앵글로색슨인, 노르만인(바이킹) 등으로 분화되며 오늘날 유럽의 3대 강대국인 독일과 프랑스, 영국의 기초를 세운다. 러시아와 동유럽에 산재해 있던 슬라브인은 민족적 유대를 바탕으로 나름의 세력을 형성했고, 발칸반도에서 일어난 게르만인과 슬라브인의 갈등은 제1차 세계 대전이라는 비극의 불씨가 되었다.

 

이 외에 세계사의 변방으로 여겨지는 동남아시아와 남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역사도 혈통과 민족의 관점에서 들여다본다. 아프리카는 인류의 종주국이면서도 훗날 백인과 황인으로 모습을 바꾼 변종들에 의해 침탈당했고, 베링 해협을 건너 아메리카로 진출한 황인종의 후예들은 침략해 들어온 백인(스페인, 포르투갈), 백인들이 노예로 데려온 흑인들과 피가 섞이면서 독특한 민족 지형을 이루게 된다. 동남아시아는 울창한 밀림으로 고립된 지역적 특색으로 인해 지교적 민족의 순수성을 유지하게 된다.

 

그리고 한국인과 일본인의 혈통적 연결고리에 대해서도 다룬다. 저자는 고대부터 한반도인과 일본 원주민의 결합이 시작되었으며, 4세기부터 7세기까지 일본의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이유는 수백만 명에 이르는 한반도인이 일본으로 건너갔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2001년 아키히토 천황이 스스로를 백제인의 후손이라고 밝힌 데서도 알 수 있듯, 오늘날의 일본인은 한반도인과 혈통으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오늘날까지도 원일본인의 혈통을 유지한 이들은 홋카이도의 아이누와 뒤늦게 일본에 속한 오키나와의 원주민뿐이다.

 

국제 시사와 이슈에 눈을 뜨게 해 주는 책!

팔레스타인을 둘러싸고 이스라엘과 이슬람 국가들이 대치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얼굴이 거무스레한 중동인과 얼굴이 하얀 서양인이 다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유대인(이스라엘)과 아랍인(중동)은 같은 셈족이다.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등의 아랍인과 이란 국민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란인은 아랍인이 아니라 엄연히 페르시아인으로 민족 계열이 다르다. 영국 국민은 대다수가 앵글로색슨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왕실의 계보는 노르만인(바이킹)이다. 오늘날 중남미를 라틴 아메리카라고 부르는 이유는 라틴인이 세운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한때 이 지역을 지배하며 문화적으로 유전적으로 강력한 흔적을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민족의 지형을 알면 오늘의 세계가 보인다. 왜 미얀마에서는 로힝야족 문제를 겪고 있는지, 스페인의 카탈루냐주와 중국의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가 분리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왜 자치 정부를 세우고 독립하려 하는지, 아랍 세계와 미국 사이에 갈등이 잦은 원인은 무엇인지, 왜 발칸반도를 세계의 화약고라고 부르는지 등의 국제 이슈를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 바로 이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지식의 울타리에 가두지 않고 오늘날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있는 실제 세계의 흐름과 연결시킨다는 점이다.

 

책속으로

어족이란 동일한 선조로부터 갈라져 나왔다고 추정되는 일정한 언어 그룹을 말합니다. 어족은 각 민족이 사용하는 언어 계통을 가리키며 언어를 통해 민족을 구분하는 분류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 주의할 점은 어족(語族)이 일정한 언어군의 집합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민족(사람)의 집합을 가리킨다는 사실입니다.--- p.23, 어족이란 무엇인가중에서

 

많은 사람이 곧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어족이 인도-유럽 어족입니다. 고등학생 때 세계사를 공부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인도-유럽 어족을 배우면서 어느 정도 좌절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왜 인도인과 유럽인이 동족이지?” 이런 의문을 가졌지만, 교과서에는 거기에 대한 설명이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p.26, 인도인과 유럽인은 동족일까?중에서

 

20세기에 이 같은 오컬트적인 의미로서의 아리아인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한 집단이 히틀러의 나치였습니다. 나치는 남러시아에서 러시아를 경유하여 동유럽 지역으로 들어간 인도-유럽 어족을 다른 열등한 민족과 접촉하지 않고 혈통을 유지한 순수 아리아인으로 여겼습니다.

--- p.33, 민족주의자에 이용당한 아리아인중에서

 

각 민족의 얼굴 생김새, 풍습, 기질은 저마다 다르지만 한자라는 공통의 언어 기반을 가진 다민족의 결합과 혼합(하이브리드)이 바로 중국인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사회를 형성할 때는 언어가 그 출발점이 되고 언어로 하나가 되며 언어를 통해 소통하면서 발전합니다. 이것을 보면 인간 사회와 언어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 p.43, 일본인은 반()중국인이다중에서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일본인과 한반도인의 교류가 깊어지고 혼혈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때 순수한 혈통을 가진 일본인은 사라졌습니다. 이미 야요이 시대부터 한반도 사람들이 이주해 왔는데, 4~7세기 때의 이주 인구는 야요이 시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컸고 조직적이었습니다.

--- p.62, 수백만 명에 이르는 한반도인과의 혼혈중에서

 

유럽인은 크게 라틴인, 게르만인, 슬라브인, 3가지 계열로 나뉩니다. 독일인은 게르만인, 이탈리아인은 라틴인으로 분류됩니다. ‘, 그럼 인종이 다른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라틴인, 게르만인, 슬라브인이라는 3가지 계열을 구분하는 기준은 그들이 쓰는 언어의 문법과 형식의 차이입니다. 혈통과 인종이라는 카테고리로 나눈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유럽인이고 같은 혈통과 인종에 속합니다.

--- p.88, 따뜻한 지역에 사는 사람은 게으른가?중에서

 

우리가 모두 하나의 인종이고 하나의 민족이어서 똑같은 언어와 풍습과 문화를 공유했다면, 이 세상이 참 지루하고 따분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디를 가나 비슷한 생김새의 사람과 똑같은 모양의 건물이 있고 죄다 엇비슷한 옷만 입고 다닌다면 어떨까요? 그럼 멀리 여행을 갈 필요도 없을 겁니다. 아무리 멀리 간들 삶의 모습이 달라지지 않는데, 굳이 외국으로 떠날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 p.332, 오늘날 우리에게 인종과 민족은 어떤 의미인가?중에서

 

 

 

하나의 중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과연 중국인구의 95%를 차지한다는 한족은 실재하는 개념인가? - 단상 2017. 8. 20. https://blog.naver.com/stratic007/221078225505

 

중국에 순수 한족(漢族)은 없다 ; 중국의 두 연구결과 발표

1. 란주(蘭州)대 사소동(謝小東 셰샤오둥) 교수

http://blog.naver.com/xxxod/70071717538

 

13억 중국인 가운데 92%를 차지하고 있다는 한족(漢族)이 실제 조사 결과 '유전학적으론 현존하지 않는 제3의 혈통'으로 나타났다.

 

'한족은 혈통 개념이 아니라 문화적인 개념'이라는 통설이 학술연구로 밝혀졌다는 점에서 이목을 끈다. 중국 간쑤(甘肅)성 란저우(蘭州)대학 생명과학학원 셰샤오둥(謝小東) 교수는 "순수한 혈통의 한족은 현재 없다"는 연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고 중국 언론들이 15일 보도했다. 그의 연구 결과는 중국 서북지역의 소수민족 DNA 연구 등을 통해 나온 것이다. 셰 교수는 "DNA 조사 결과 현대 중국인은 다양한 민족의 특질이 고루 합쳐진 것으로 어떤 특정 민족의 특질이 도드라지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한족은 중원(中原)에 살고 있다'고 생각돼 왔으나 이는 특정 시기의 한족을 주변의 다른 종족과 구별하기 위해 만든 지역적 구분일 뿐"이라면서 "이젠 한족을 그렇게 지역적으로 따져 정의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춘추전국시대 현재의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에 세워진 진()은 소수민족인 '서융(西戎:서쪽 오랑캐)'이 주류였다는 것이다.

 

또 중국 역사에 나타나는 중원의 범위는 주로 현재의 산시(山西) 남부와 장쑤(江蘇) 서부 및 안후이(安徽) 서북부 등의 소수 지방을 포함한 허난(河南)성 일대였으나, 이곳에 거주한 사람들을 한족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중국인들은 또 자신들이 "염제(炎帝)와 황제(黃帝)의 자손(炎黃子孫)"이라고 주장하지만 연구 결과 황제와 염제의 발원지도 중국인들이 오랑캐로 치부해 왔던 '북적(北狄)' 지역이었던 것으로 연구 결과 드러났다. 황제와 염제의 발원지는 모두 현재의 간쑤성과 산시(陝西)성에 걸쳐 있는 황토 고원지역으로 이 두 곳 모두 한족의 본거지가 아닌 것은 물론 주요 거주지역도 아니라는 얘기다.

 

셰 교수는 "연구 결과 오히려 중국 북부에서 남부로 이주한 소수민족 객가족(客家族)이 고대 중원인의 문화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이들의 고어(古語), 풍속 및 습관에서 나타나는 역사의 흔적을 보면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중원인"이라고 강조했다.

 

몽골학을 전공한 박원길 교수는 이 맥족의 원래 이름은 코리라고 합니다. 위략(魏略)’이나[위략에는 고리(?: 중국식 발음으로 읽으면 [까오리])] ‘몽골비사의 기록처럼, 맥족의 원래 명칭은 모두 코리(Khori)를 음역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특히 몽골은 몽골비사에서 몽골의 기원이 이 코리족의 일부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사실 몽골 문화 가운데 한국인들과 유사한 것이 많고 외모나 체격 등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닮았습니다.

 

윤내현 교수(단국대)도 이와 유사한 견해를 피력했습니다. 현재의 몽골인들의 주류 종족은 보르치긴족이라고 합니다. 칭기스칸을 배출한 종족이죠. 윤내현 교수는 이 보르치긴족이 몽골로 이주해 가기 전 북만주 어르구나하 유역에 거주했던 종족이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고대 북만주 지역은 고조선의 영토였다는 점에 주목하면 이들은 결국 고조선을 구성한 종족이라는 말이 된다는 것이죠. 이 후 고조선이 붕괴된 후 이 지역은 동부여 영토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보르치긴족은 한민족의 한 갈래이거나 아주 가까운 지역에 거주했던 사람들로 한민족에서 갈라져 나갔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몽골과 코리족들은 형제, 또는 자매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지요.

 

흉노는 중국어로는 슝누[xiongnu]인데 몽골어의 훙(XYH)에서 나온 말로 문어(文語)에서는 훙누로 들립니다. 이 말의 뜻은 몽골어로 그저'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음차(音借 : 음을 빌려 표현)하여 한족(漢族)들은 흉노(匈奴)로 불렀지요. 그런데 이 흉()자가 '입심이 좋은(시끄러운)' 이라는 의미이고 노()자는 노예(奴隸)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사람'이 그 민족의 명칭이 된다는 것도 거북스러운데 이것을 아예 '시끄러운 노예'라고 표기했다는 것이죠.

 

생각해보세요. 한국인의 명칭을 한족(중국인)'사기 사()''누더기 람()'을 사용하여 詐襤(사람 : 성품은 사기를 잘치고 몸은 거지 꼬락서니)이라고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모욕적인가 말입니다.

 

몽골의 원류인 동호계는 주로 해(: 현재의 내몽골 지역), (?) 실위(室韋 : 현재의 몽골 지역) 등 입니다(新五代史74 契丹 ; 北史94 ).

 

(- 여자노예라는 의미), (? - 큰바람), 실위(室韋 - 집에서 잘 다듬은 가죽) 등 말들이 이상하죠? 대부분 욕설에 가깝고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요? 그 이유는 이 말들이 음차(音借 : 발음을 빌림)를 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한족(漢族)들은 여전히 이들을 욕설로 부르고 있습니다. 아무리 한족을 잘 봐주려고 해도 신성한 민족이름이 이게 뭡니까? 이렇게 함부로 불러도 됩니까?

 

이 한자말들은 서로 다르게 보여도 발음은 모두 [], 또는 []에 가깝게 나타납니다. 즉 해([x?]), (? [x?]), 실위(室韋 [sh?we?]) 등으로 똥고양이라 지칭하는 예(), 또는 예맥(濊貊)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발음으로만 보면 이들은 예맥과는 구별이 잘 안 되지요. 결국은 철과 관련된 민족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 해는 거란이 되고 실위가 바로 몽골이 되었다고들 합니다.

 

신오대사(新五代史)에서는 거란과 동류인 "()는 본래 흉노의 별종(新五代史74 契丹)"이라고 합니다. 북사(北史)에 따르면, "해는 거란과 이종동류로 본래 고막해(庫莫奚)라 하였는데 그 선조가 동호의 우문(宇文)의 별종(北史94 )"이라고 합니다. 요나라 태조가 해()를 정벌하면서 "거란과 해()는 언어가 서로 통하니 하나의 나라이다(遼史72 宗室列傳)."라고 합니다. 요나라는 자신의 발상지인 현재 내몽골 자치구 빠린줘치(巴林左旗)를 상경(上京)으로 하였습니다(契丹國志22 四京本末).

 

북사(北史)에 따르면 "실위는 대체로 거란의 부류로서 남쪽에 있는 것은 거란이 되고 북쪽에 있는 것은 실위라고 불렀다.(北史94 室韋)"고 합니다. 실위는 발음이 예맥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예맥이나 숙신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북사(北史)에서도 "실위는 풍속이 말갈(靺鞨)과 같다(北史94 室韋)."라고 합니다. 이 실위는 바로 이전의 오환·선비이며 그 후 거란··실위가 되고 후일 몽골이 되지요.

 

선비·거란·오환··실위·말갈·숙신·동호 등등으로 불러왔던 민족들이 실제로는 별로 다르지 않는데 한족(漢族)들이 지방의 특색 정도에 불과한 것을 완전 별개인 듯이 묘사를 한 것이지요.

 

선진시대에는 발()을 맥()과 대신하여 사용하였고 한나라 때에는 조선(朝鮮 : 고조선)을 맥()과 동일시합니다.

 

후한대(後漢代)에서는 이르러서는 고구려를 맥()과 동일시하기도 하고(후한서4 和帝紀) “부여(夫餘)는 본래 예()의 땅이라고 하기도 하고(후한서85 東夷傳), 동예(東濊)를 가리켜서 예맥으로 칭하기도 합니다(삼국지』「동이전) 후한서(後漢書)에서는 (옥저(沃沮고구려가 본래 조선 땅에 위치해있다고 합니다(後漢書』「東夷列傳: 濊及沃沮句麗本皆朝鮮之地也).

 

예맥은 중국의 한나라 이전에는 마치 맥과 예가 요동을 동과 서로 나누어 차지하는 것처럼 서술이 되다가 한나라 이후에는 예맥이라는 말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서(漢書)에는 예맥조선(濊貊朝鮮)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漢書24 식화지). 앞서 본대로 예와 맥은 하나의 범주로 봐야합니다.

 

예맥이라는 종족은 관자(管子)에서 처음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허뻬이(河北) 동북 지역에 거주하는 종족을 의미하였습니다. 따라서 지리적으로 보면 당연히 선비나 동호 등도 모두 이들로 볼 수 있습니다. 한서(漢書)(소제기(紹帝紀))에 따르면, 예맥은 오환(烏桓)선비(鮮卑)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여 중원에 위협을 주는 존재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오환선비는 동호의 대표적인 민족이 아닙니까? 결국 동호나 예맥을 구별하기 어렵다는 말이죠.

 

()은 중국의 고대 전적에서 야만족의 대표적인 종족으로 묘사되어왔습니다.

 

그 동안 많은 연구로 몽골 - 만주 - 한반도에 거주했던 여러 종족들이 동일한 민족, 또는 동일한 기원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많은 연구와 증거들이 발굴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점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유 엠 부찐은 맥족의 분포 지역은 오늘날의 랴오시(遼西 : 요하 서쪽) 지역(그 이전 시대에는 산둥반도의 일부 지역 포함), 요하(遼河) 중상류의 계곡, 랴오뚱(遼東) 반도 한국의 서북부 해안 지대를 포함한다. 그리고 예족은 지린(吉林)의 남부 및 동북만주 지역이다.”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유 엠 부찐 고조선(소나무 : 1990)].

 

북한학자 리준영은 맥족은 고대 중국 사서(史書)에 나타나는 고리국(?離國)의 구성원이며 이 고리국이 바로 북부여이고, 북한의 탁월한 사가인 리지린 선생은 이들이 동호(東胡)라고 합니다. 이 말은 맥족이 지역적인 분포나 문화적인 특성이 동호와는 구별하기 어렵다는 말이지요. 간단히 말하면 동호 = (예맥)’이라는 것입니다.

리지린 선생의 연구에 따르면 황해 연안과 발해만 한반도에 거주했던 종족인 조이족(鳥夷族)과 예맥족이 융합하여 기원전 2천년 경에 숙신(肅愼)이 나타났다고 하고 있습니다(리지린고조선연구1963). 여기서 리지린 선생이 지적하는 시기는 의문스럽지만 예맥족과 숙신족도 구분이 대단히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한 것입니다.

 

http://weekly.hankooki.com/lpage/nation/200703/wk2007030614592237070.htm

 

실제로 숙신은 한()나라 이전에는 허뻬이(河北) 지역과 남만주지역에서 나타나고 있고, ()나라 이후에는 흑룡강과 연해주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죠. 그런데 한()나라 이전 숙신의 영역은 고조선의 영역과 대부분 겹치고 있으며, 조선(朝鮮)과 숙신이 같이 나오는 기록이 없어 숙신(肅愼)은 조선(朝鮮)의 다른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동호에서 거란(契丹)이 나온 것으로 말하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이들과 몽골(蒙兀)은 민족적으로 다르지 않고 거란 또한 고구려를 구성한 민족과 다르지 않죠.

 

같은 주거문화, 유사한 장례문화, 같은 토템, 같은 무속(巫俗)에 언어도 같은 계열이고 생물학적 체질과 체격조건도 같은데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자연환경 변화에 따른 생활양식이 다른 것뿐인데 말입니다.

 

예를 들면 버드나무를 신목(新木)으로 숭배하는 사상은 흉노·몽골·거란·선비·여진·고구려 등 모두에서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江上波夫 匈奴祭祀」『ユウラシア古代北方文化東京 1948 227-231). 참고로 선비·오환 등도 동쪽과 푸른색을 숭상합니다. 실제로 삼국지(위서), 요사(遼史)등에 나타나는 오환선비(동호)의 습속은 현대 한국인과도 매우 유사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예맥이 단순히 만주 중부에서 대동강 지역에 이르는 곳에서만 살아온 것이 아니죠.

 

예맥의 신화(단군신화)로 파악해 보더라도 중국의 베이징 부근으로 이동한 예맥족들이 요동 - 만주 - 연해주 지역의 곰토템 민족들과 융합하면서 한민족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곰토템 지역으로만 보더라도 유라시아 아메리카 형(시베리아 산림지대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남 : 야생의 곰을 종족의 수호령, 또는 수렵신으로 간주)아이누형(연해주에서 북해도에 걸쳐 나타남 : 곰을 사육하여 의례적으로 죽여서 나눠 먹지만 곰을 조상으로 간주) 등이니 이 지역들은 사실상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서 북해도에 이르는 태평양 주변의 전 지역을 의미하고 있지요.

 

http://media.daum.net/culture/art/view.html?cateid=1003&newsid=20080327042013010&p=seoul

http://www.kookje.co.kr/news2006/asp/center.asp?gbn=v&code=2505&clss_cd=150810&key=20090102.22018193124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7072401032430065004

 

요사(遼史)에서는 “(거란 수도인 중경의 동부 관문인) 동경요양부는 본래 조선의 땅이라(遼史』「地理志二東京遼陽府本朝鮮之地)”고 합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바와는 다르게 요나라는 조선의 옛 땅에서 유래했으며, 고조선과 같이 팔조금법(八條禁法) 관습과 전통을 보존하고 있다(遼史卷四十九 : 遼本朝鮮故壤 箕子八條之敎 流風遺俗 蓋有存者).”고 하고 있지요.

 

고구려나 몽골은 기원적으로 타브가치(Tabgachi : 拓跋鮮卑), 즉 선비족(鮮卑族)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이 때 사용된 (chi)’는 몽골계 언어의 인칭대명사입니다. 예를 들면 장사치·벼슬아치 등의 치와 같은 것이죠]. 이 점은 몽골이나 북방 유목민들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타브가치는 흔히 탁발선비(拓跋鮮卑)라고 기록된 민족으로 북위(北魏)를 건설한 민족인데 고구려몽골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습니다. 이들의 원주지가 맥족이나 몽골과 겹치고(같거나 인근지역) 있을 뿐만 아니라 언어나 풍속이 거의 같다고 합니다[박원길 유라시아 초원제국의 샤머니즘(민속원 : 2001) 82, 9495].

 

북위의 역사서인 위서(魏書)에는 사신이 와서 북위의 세조(世祖)에게 민족 발상지를 설명해주자 세조가 그 곳에 사람을 파견하여 축문을 새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魏書』「烏洛侯傳). 그런데 내몽골 자치구 후룬뷔일멍(呼倫貝爾盟) 어룬춘(鄂倫春) 자치기(自治旗) 아리하(阿里河) 진 서북 10km 지점에 있는 천연동굴에서 이 축문 비석이 1980730일에 발견되었다는 것이지요[박원길 유라시아 초원제국의 샤머니즘97]. 이 비석은 아리하, 즉 아리수(阿利水) 인근에서 발견되었는데 바로 이 강 이름이 고구려의 시조가 건너간 강과 같은 이름이죠.

 

신석기 때 요서지역에 주로 나타나는 홍산(紅山)문화(40003000 B. C.)는 중국 문명인 황하(黃河) 유역의 앙소(仰韶)문화 및 용산(龍山)문화와는 성격이 확실히 다릅니다(흔히 중국인들을 앙소문화의 후예라고 합니다). 홍산 문화에서 나타난 토기는 우리 한국의 것과 유사한 반면, 중국본토의 신석기 토기 형태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이 홍산문화는 청동을 사용하는 형태로 발전하여 하가점[夏家店 : 내몽골 적봉(赤峰) 하가점촌] 하층(下層)문화(20001500 B. C.)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같은 지역에서 나타나는 하가점 상층(上層) 문화(1000300 B. C.)는 이전과는 다르게 유목문화의 특징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죠. 즉 이전과는 달리 스키타이 동물문양들이 나타나는 등 유라시아 초원지대와의 교류를 보여주는 많은 유물들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우리가 앞서 이미 본 비파형 동검은 바로 이 하가점 상층문화에서 나타나죠.

 

여기서 잠시 봅시다. 일반적으로 하가점 상층문화의 시기와 지역은 동호의 존속기간과 지역이 거의 일치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인심을 써서(?) 요동지역은 고조선(古朝鮮)의 문화로 요서지역은 동호(東胡)의 문화로 생각해오기는 합니다만, 요서와 요동의 문화적 차이가 무엇이 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애초에 동호 = 예맥인 것이죠. 구체적으로 봅시다.

 

그 동안의 발굴된 과정에서 나타나는 주요 현상은 돌무덤에서 출토되는 것은 청동검(靑銅劍)과 청동거울 등이 마치 하나의 조를 이루고 있고, 그 합금비율(合金比率)이 한반도·요서·요동 지역 등이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파형 동검은 동일한 세력의 기술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이들은 결국 하나라는 것이죠.

 

그리고 한반도 중남부지역에 비파형 동검의 발달된 형태인 세형동검이 나타날 즈음 일본 열도에서는 야요이 문화가 시작됩니다. [조진선, 세형동검문화의 전개과정 연구전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 2004) 참고].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34699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1031740465&code=960201

 

나아가 홍산문화 - 하가점 상하층 문화의 특성들(빗살무늬 토기·민무늬 토기·고인돌·비파형동검)은 요서 - 요동 - 만주 - 한반도 - 일본 열도에도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숙신은 만리장성 이북의 지역에서 동북아시아에 걸쳐서 거주했던 민족들을 부르는 일반적인 명칭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숙신은 카멜레온의 몸 색깔처럼 물길(勿吉말갈(靺鞨읍루(?) 등으로 불리었으며, 후일에는 여진·만주족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름들이 거의 욕설로 바뀌어졌습니다.

 

한족(漢族)의 사가(史家)들에 의해 재단된 것이죠. 그러나 이 숙신이야말로 우리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 중 하나였습니다.

 

중국인들은 북방 유목민들을 서융(흉노, ), 북적(흉노, 선비), 동이(, 예맥) 등으로 나눕니다. 그런데 흉노·선비··예맥이니 하는 명칭들은 이들 부족들이 스스로 부르는 명칭이 아니라 중국인들이 자기들이 분류하기 편리한 대로 임의로 부여한 명칭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인간 이하를 지칭하는 욕들입니다.

 

예컨대 일반적으로 우리 민족을 지칭하는 것으로 알려진 예맥(濊貊)’이란 똥오줌이 묻은 더러운 (승냥이 같은) 짐승라는 뜻인데 간단히 얘기하면 똥고양이이죠. 세상의 어느 부족이 자기 부족 그렇게 부르겠습니까? 그리고 선비(鮮卑)란 동물무늬가 있는 허리띠[세르베] (에가미 나미오 교수의 고증), 흉노(匈奴)입심 좋은 노예라는 뜻입니다. 물길(勿吉)기분 나쁜 놈(재수 더러운 놈)’입니다.

 

http://www.sciencetimes.co.kr/search.do?query=한국인의%20고향,%20‘신비의%20왕국’%20찾았다

 

유전자로 밝혀보는 뿌리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4/11/09/200411090500015/200411090500015_1.html

 

중국의 역사는 철저한 이민족에게 지배당한 역사였습니다. 한나라가 망하고, 삼국시대 이후, 사마씨에 의해서 진나라가 성립하게 됩니다. 하지만 진나라는 곧 이민족들에게 패퇴하여 남부지역에 자리잡게 됩니다. 이 시기를 일컬어서 동진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동진은 곧 망하고 이민족들에 의해서 516국 시대가 개막됩니다.

 

동진이 망한 420년부터 오랑케 출신이 세운 수나라가 창건,된 후, 망한 618년까지 이민족의 지배를 받고, 당나라가 들어섰으나, 당나라를 세운 이연도 이민족인 선비족 출신입니다. , 중국역사 420년부터 당나라가 망하는 907년간 총 487년간 한^족은 이민족의 노예였습니다. (420~907487년간)

 

그러나 여기에서 중국의 노예역사는 그치지 않습니다. 당나라가 망하자 510국 시대가 도래하게 되는데 510국의 주축세력은 돌궐족이었습니다. 다시 907년에서 960년 송나라가 세워지기전까지 53년의 노예 역사가 추가 됩니다. (907~96053년간) 지금까지 총 540년이 중국역사 중 노예역사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540년간의 노예역사를 거치면서 그들의 정신세계에는 "나는 노예이다"라는 정신이 깊숙히 박혀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중국 송나라가 세워진 후에도 요나라와 금나라에 조공을 받치면서 스스로 노예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거란족인 요나라가 907년에서 1125년까지, 여진족인 금나라가 1115년에서 1234까지 존재했으니, 327년의 역사가 노예역사로 중국사에 편입되게 됩니다. (907~1234327년간)

 

이런 오랜 노예근성을 버리고자 송나라는 새로이 세력을 확장하던 몽골과 연합하여 금나라를 멸망시켰으나, 노예근성에 찌들어버린 그들은, 마침내 나라까지 이민족 몽골이 세운 원나라에게 내어주게 됩니다. 1234년에서 1368년까지 천한 농민의 자식이 세운 명나라가 나타나기 전까지 몽골 이민족의 노예로써 총 1001년간 이민족의 노예로써, 충실하게 살아오게 됩니다. (1234~1368134년간)

 

곧이어 명나라가 나타나지만 명나라 1368년에서 1644년까지 276년간은 노예들에게는 과분한 기간이었습니다. 여진족은 이들 노예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갖는것을 용서치 못하여 곧바로 이들 노예들을 응징하러 갑니다. 이로 인해서 또다시 이민족 여진족에 의해서 명나라는 멸망하고, 중국에는 청나라가 세워지게 되어 그후, 1644년에서 1911년까지 267년간을 노예로 살게 됩니다. 여기까지 총 1268년간 노예들의 역사가 이어져 오게 됩니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청일전쟁에서 패퇴하고난 뒤 (1644~1911267년간)

20세기초부터 중국의 동북지역에서 홍콩,까지 중국의 동부지역과 내륙일부 지역이 일본에게 정렴당하고 1931년에는 일본에 의해서 만주국이 세워지기까지 합니다. 1945년 일본세력이 물러나기까지 34년간의 노예역사가 추가됩니다. 물론 여기서 노예역사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홍콩은 영국에 의해서 156년간, 마카오는 1999년까지 포르투갈에 의해서 통치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