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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식물의 사유

by 이성근 2020. 8. 28.

식물의 사유: 식물 존재에 관한 두 철학자의 대화

루스 이리가레·마이클 마더 지음, 이명호·김지은 옮김/알렙·2020.08

 

 

페미니즘 철학자와 식물성의 철학자의 만남

32편의 편지에 담아낸 식물 세계를 통한 사유

 

저자 : 루스 이리가레LUCE IRIGARY 벨기에 출신 페미니스트 철학자이다.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학 세미나에 참여하여 정신분석 수련의 과정을 밟았지만, 검경(SPECULUM OF THE OTHER WOMAN)(1974) 출간 이후, 파리 프로이트학회로부터 파문당하고 재직 중이던 파리 제8대학에서도 쫓겨났다. 남근 로고스 중심주의를 벗어나 성차를 사유한 성차의 윤리(AN ETHICS OF SEXUAL DIFFERENCE)(1984), 하나이지 않은 성(THISSEX WHICH IS NOT ONE)(1985) 등을 집필하여 성차 페미니즘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 주요 저서로는 성차의 문제를 민주주의와 연결시킨 민주주의는 둘 사이에서 시작한다(DEMOCRACY BEGINS BETWEEN TWO)(1994)를 비롯하여 동양과 서양 사이(BETWEEN EAST AND WEST)(1999), 둘로 존재하기(TO BE TWO)(2001), 세계를 공유하기(SHARING THE WORLD)(2008) 등 다수가 있다.

 

저자 : 마이클 마더MICHAEL MARDER 스페인 바스크 대학 철학과 이케르바스크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하이데거 현상학에 사상적 토대를 두고 현대 서구 철학과 식물성의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왔다. 주요 저서로는 식물 생각하기(PLANT-THINKING)(2013), 철학자의 식물(THE PHILOSOPHER’S PLANT)(2014), 불의 정치학(PYROPOLITICS)(2014), 체르노빌 식물표본(THE CHERNOBYL HERBARIUM)(2016) 등이 있다.

 

목차

서문5

 

1부 루스 이리가레

 

프롤로그

1 식물 세계에서 피난처 찾기

2 생명을 망각한 문화

3 보편적 호흡을 공유하기

4 원소의 생성적 잠재력

5 계절의 리듬에 맞춰 살기

6 자연 존재의 놀라운 다양성의 복원

7 우리의 감각지각을 키우기

8 인간 동반자에게 향수를 느끼기

9 인간들 사이로 돌아가는 위험을 무릅쓰기

10 자신을 잃고 자연에게 다시 도움을 요청하기

11 숲에서 다른 인간을 만나기

12 어떻게 우리의 살아 있는 에너지를 키울지 생각하기

13 몸짓과 말은 원소를 대체할 수 있을까?

14 자연 속에 혼자 있는 것에서 사랑 안에서 둘로 존재하는 것으로

15 인간 되기

16 만물 사이에서 생명을 키우고 공유하기

에필로그

주석

 

2부 마이클 마더

 

프롤로그

1 식물 세계에서 피난처 찾기

2 생명을 망각한 문화

3 보편적 호흡을 공유하기

4 원소의 생성적 잠재력

5 계절의 리듬에 맞춰 살기

6 자연 존재의 놀라운 다양성의 복원

7 우리의 감각지각을 키우기

8 인간 동반자에게 향수를 느끼기

9 인간들 사이로 돌아가는 위험을 무릅쓰기

10 자신을 잃고 자연에게 다시 도움을 요청하기

11 숲에서 다른 인간을 만나기

12 어떻게 우리의 살아 있는 에너지를 키울지 생각하기

13 몸짓과 말은 원소를 대체할 수 있을까?

14 자연 속에 혼자 있는 것에서 사랑 안에서 둘로 존재하는 것으로

15 인간 되기

16 만물 사이에서 생명을 키우고 공유하기

 

에필로그

주석

옮긴이 해제

 

출판사 서평

기존 철학 서사를 뒤흔들고 확장된 감수성을 깨우다

이 책은 인간중심적 형이상학에서 경시되어 온 자연과 식물, 그리고 이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생성적 에너지를 다룬다. 우리에게는 식물성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낯설다. 하지만, 두 사람의 철학적 지평에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 새로운 철학적 사유는 인간과 식물의 창조적 만남을 그린다.

 

서문에서 이리가레는 우리가 이 책을 함께 쓰게 된 것은 현재 자연과 생명이 처한 상황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사상적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식물 존재를 통해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열려는 문제의식이 이 지적 대화의 밑바탕을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식물이 현재 자연과 생명이 처한 위기에 대한 진단과 대안 모색의 핵심으로 간주되었을까? 인간중심주의가 지구 환경 파괴와 생태계 위기를 낳은 원인이라는 반성이 일면서 동물과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현대 담론의 뜨거운 주제로 떠올랐지만, 식물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식물은 가장 미발달된 생명 존재이고, 생산의 원자재이자 바이오 연료로 치부되어 왔을 뿐, 인간이 그 일부를 이루는 생명의 토대로 이해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식물적 존재로 돌아가는 것은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 생명과 연대하는 사유의 가능성을 길어 올리는 것이다. 생명의 에너지를 키우고 나누는 새로운 사유와 삶의 방식은 생태 지향성을 당연히 함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생태 지향성은 그것을 가로막는 사유 체계와 사회경제 체제의 해체와 극복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 철학자로서 이리가레와 마더에게 이 작업은 서구 형이상학을 극복하는 일과 깊이 연동된다.

 

식물은 자라고 변하고 생성하는 존재이다!

-하이데거를 경유하여 그리스 철학으로 돌아가다

 

이리가레와 마더 두 사람 모두에게 서구 형이상학을 넘어서는 길은 하이데거를 경유하여 소크라테스 이전 그리스 철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리가레는 인도 철학과 불교 철학에서 그리스 철학과 접속하고 그것을 보완할 사유의 가능성을 찾기도 한다. 하이데거는 만물을 조율하는 하나의 통일된 원리를 설정하는 로고스 중심주의가 출현하기 전, 스스로 생성하는 존재들로 자연을 바라보았던 초기 그리스 철학에서 존재 망각을 넘어설 수 있는 사유의 단초를 발견했다. 하이데거가 초기 그리스 철학에서 읽어낸 퓌시스(phusis, 자연)’는 죽어 있는 고정된 물체가 아니라 스스로 자라고 변화하는 물질이다. 하이데거의 용어로 퓌시스는 시간과 공간 속에 자신을 나타내는(appearing)’ 존재사건이다. 자기 안에 성장의 잠재력을 지닌 살아 있는 존재가 퓌시스라면, 이 퓌시스의 속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존재가 다름 아닌 퓌톤(phuton, 식물)’이다. 퓌톤은 퓌시스의 축소판이다. 다른 무엇보다 식물은 자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 곳에 뿌리박힌 채 이동과 변화가 불가능한 존재로 간주되었던 식물에게서 자라고 변화하고 생성하는 존재로서 자연의 원형적 모습을 발견한 것이 자연과 인간의 관계, 인간 안의 자연과 인간 밖의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읽어낼 길을 열어주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우주를 구성하는 4원소로 알려진 물, , , 공기는 생성적 잠재력을 지닌 살아 있는 물질로서 지구 생명체의 필수적인 요소이자 만물의 뿌리로 간주된다. 인도 자이나교는 여기에 식물을 제5원소로 추가한다. 식물은 생명을 선사하는 4원소들을 모으는 존재이자, 이 원소들에게 적당한 양의 햇빛과 습기와 미네랄과 공기를 제공함으로써 원소들에게 영양을 공급하고 활력을 불어넣는다. 생명이 싹트고 자라고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활력과 잠재력을 유지하려면, 4원소 사이에 적절한 비율이 유지되어야 한다. 서구 문명은 4원소 중에서 불에 특권적 위상을 부여하여 다른 원소들을 불에 복속시켜 왔다. 불은 물질을 연소시켜 에너지를 추출하는 문명의 원천으로서, 생명 자체가 안에서 타오르는 거대한 불길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인들은 불의 창조적 잠재력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는 겸손을 잊지 않았던 반면, 현대인들은 절제 감각을 잃고 문명 자체를 통제 불능의 대화재로 만들어 왔다.

 

이리가레와 마더는 4원소 중에서 물과 공기, 그중에서도 특히 공기의 중요성에 주목한다. 공기는 생명체가 숨 쉬게 해주고, 물질들 사이에 이동을 보장해 주는 보편적 공유물이다. 또한 공기는 신체의 물질성이 영혼의 섬세함으로 옮겨갈 수 있게 해줌으로써 대지와 하늘을 이어준다. 그러나 공기는 그 자체로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유동적 물질로서 여성적-모성적이다. 하이데거에게서도 공기는 사유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는 여성적-모성적 차이에 대한 망각과 억압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리가레의 생각이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수행하는 자율적 신체 활동이 숨 쉬기이다. 인간에게 숨 쉬기는 식물의 뿌리 내리기와 같다. 그러나 서구적 정신을 추동한 것은 밖으로 내쉬는 순간을 지연함으로써 공기를 지배하고, 주체성이라는 신체 없는 숭고한 폐 속으로 가급적 많이 들이 마시고 외부 세계와 호흡을 공유하는 것을 막으려는 욕망이었다(마더). 그 결과 근대 서구인은 자신의 숨을 없애 버렸다. 그는 자신이 이룩한 기술적 성취를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느라 숨을 헐떡였고, 그 성취가 뿜어내는 매연으로 질식 상태에 빠졌다”(마더). 그러나 안과 밖 사이에 참된 공유가 일어나지 않으면 숨을 쉴 수가 없다. 들숨과 날숨은 생명의 기본 리듬이다. 이 잃어버린 생명의 리듬을 되찾기 위해 이리가레와 마더 두 사람 모두 호흡에 주목한다. 인도의 요가 호흡법은 수행을 통해 우리의 몸이 공기가 흐르는 관이 되게 하려고 한다. 그것은 줄기와 잎사귀로, 아니 온몸으로 숨 쉬는 식물의 호흡을 닮았다.

 

식물은 더불어 자라는 공동체이다!

-문화는 자연의 경작이어야 하지 분리나 지배가 아니다

 

호흡뿐만이 아니라 인간은 식물로부터 자연과 더불어 성장하는 존재 양식과 자세를 배울 수 있다. 마더가 뉴욕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시절 비좁고 누추한 아파트 뒷마당에서 만난 한 그루 나무는 더불어 자라는 공동체의 표상으로 남아 있다.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생명의 왕국을 이루는 한 그루 나무와 그런 나무들과 풀들과 꽃들이 다른 생명체들과 함께 어우러져 자라는 숲에서, 혹은 숲 옆에서, 인간은 내부의 자연과 외부의 자연을 분리시키지 않고, 생명의 원소적 토대를 이루는 햇빛과 공기와 물과 땅과 신체적·감각적 교감을 나누며, 인간으로서 자신의 고유한 성장의 과제를 이루어낸다. 식물 존재 주위에서 인간 사회와 정치 공동체가 무르익을 수 있다. 자연과의 분리에서 인간적 탄생을 찾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자연적 속성(natural belonging)을 문화적으로 키워내는 것이 인간 되기의 과제가 된다. 문화(culture)는 자연의 경작(cultivation)이어야 하지 자연으로부터의 분리나 단절, 혹은 자연의 지배와 정복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 인간이 되는 것은 특별히 인간적이라고 여겨지는 생명의 내적 표현이 점차 드러나고, 그 과정에서 개별적 존재로서 우리 각자에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인간에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마더). 이 문장은 마더의 것이지만 이리가레도 공유하는 인간 생성의 원리이다.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그리스 비극의 여주인공 안티고네에서 발견한 것이 국가의 법에 맞서 생명을 지키고 돌보는 윤리이다. 안티고네가 죽은 오빠의 장례를 치러주려는 것은 국가에 맞서 가족의 가치를 옹호하는 것(헤겔)이 아니라 오빠의 시신을 땅에 돌려주려는 것이다. 그녀의 애도 작업은 땅에서 분리되지 않은 사람만이 취할 수 있는 윤리적 자세이다. 그것은 여성적이다.

성차의 철학과 식물 철학은 어떻게 만나는가?

-성차화는 섹스와 젠더라는 페미니즘의 낯익은 구분을 가로지른다

 

이리가레에게 자연적 존재로서 인간은 하나가 아니라 이다. 퓌시스 자체가 최소한 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은 하나로 환원되지 않고 다수로 열릴 수 있다. 성차(sexuate difference)는 동일한 성적 정체성을 취하지 않는 두 주체 사이의 환원할 수 없는 비대칭적 차이이다. 차이는 간극을 전제한다. 하이데거와 달리 존재는 하나가 아닌 성이다. 다른 성과의 사이에 간극을 지닌 성적 존재는 다른 성으로 흡수되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성적 특성을 신체적 욕구와 관계적 욕망에서, 감각적 경험과 영적 표현에서, 사적 관계와 정치 영역에서 키워야 한다. 이 작업이 성차화혹은 성적 되기(sexuation)’이다. 남성과 여성은 각기 다른 자연을 타고난 성적 존재로서 자기 안의 자연의 리듬에 가장 잘 어울리고 그것을 키워줄 수 있는 문화 질서를 만들고 향유할 성적 권리를 지닌다. 성차화는 자연적 소여로서의 섹스와 문화적 구성물로서의 젠더라는 페미니즘의 낯익은 구분을 가로지르고 뛰어넘는다. 참된 의미에서 인간이 되는 것은 성차화된 존재가 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철학자로서 이리가레는 동일자 남성으로 환원되지 않고 자신의 성적 특수성을 키우고 표현하는 여성적 문화를 꿈꾼다. 기묘하게도 그것은 식물성과 공명한다. 이리가레가 식물의 철학자 마더에게 대화를 제안한 이유일 것이다.

 

책속으로

우리가 이 책을 함께 쓰게 된 이유는 현재 자연과 생명이 처한 상황에 대한 우려 때문입니다. 애초에 우리는 이 책이 각 장의 주제에 해당하는 대화로부터 발전하리라고 상상했지만, 우리는 이 계획이 너무 야심 차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은 적절치 않다는 점을 곧바로 알아차렸습니다. 해당 문제에 접근하는 우리 두 사람의 입장은 상당히 달랐고, 우리가 공통의 목표를 다루면서 서로의 입장을 이론적, 윤리적, 정치적 차원에서 구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거의 알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 산다는 점을 고려하면 특히 그랬습니다.

 

우리가 당면한 딜레마는 이 프로젝트를 포기하거나, 이 책이 미래의 대화로 발전해 나가도록 제안하는 다른 구성 방식을 창안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제안한 것은 루스가 쓴 텍스트와 마이클이 쓴 텍스트가 아래위가 뒤집힌 포맷으로 구성된 책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구성을 취하면 책의 중간 지점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요. 불행히도 이 도발적인 해결책은 우리 두 사람 모두 각자의 관점에 충실하면서 대화가 가능한 방식을 찾는 데 영감을 주긴 했지만, 특히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출판사와 합의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기여를 이끌어내는 가장 풍요로운 방식을 찾는 작업은 독자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식물 존재에 관한 주요 메시지와 우리 두 사람이 식물 존재를 다루는 상이한 방식을 함께 파악하는 일은 독자들의 몫입니다.

--- p.4~5

 

친애하는 마더에게

당신에게 이 책을 공동 저술하자고 제안했을 때 나는 이 작업이 어떻게 전개될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앞서 이 책을 소개하는 편지에서 언급했듯이, 두 가지 사안 때문에 나는 이 제안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 지구와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 존재가 위험에 처해 있으며, 식물 세계를 보존하는 것은 지구 행성을 구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의 에너지를 살아 있게 해주는 다른 실존 방식과 공동-실존 방식을 확립하기 위해, 우리의 자연적 속성으로 돌아와 그것을 적절하게 키우는 것을 통하여 우리는 인간으로서 오늘날 세계를 통치하는 과학과 기술의 지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성적 정체성이 이런 과제를 수행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골격(framework)하이데거가 말한 뼈대(Gestell)’를 약간 다른 의미로 쓸 수도 있습니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성적 정체성은 우리 신체의 물질성이 생명의 성장과 공유에 기초한 보다 구체적인 문화적 개별화와 관계적 질서로 변형되는 쪽으로 나아가도록 우리가 이 신체적 물질성을 초월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식물 생명 및 식물 생명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과 관련하여 생명을 키우는 일로 돌아가도록 초대하는 이 책의 공동 저자로 남성이 더 좋겠다고 상상했던 것은 이런 생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 p.159~160

 

 

식물 세계 속으로 피난하라

성차의 철학루스 이리가레와 식물성의 철학마이클 마더의 지적 대화

오늘날 생명 자연 처한 상황 우려식물을 경유해 다른 존재로 나아가자

루스 이리가레. 알렙 제공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간이 그간 지구와 다른 종에 끼친 해악이 몹시 크고, 이로 인해 자신의 존재마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일깨웠다. 환경생태학자들은 삼림훼손과 환경오염으로 야생동물과 인간의 거리가 좁아지면서 종간 감염의 위험이 커졌고, 지구 온난화로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경고한다. 박쥐와 같은 야생동물에서 기인한 또 다른 바이러스가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와 지구가 함께 살아남을 방법을 찾고 행동에 나서야 하는 지금, 다른 여러 학문과 마찬가지로 철학 역시 큰 고비에 직면했다. ‘인간중심주의가 환경파괴와 생태계 위기의 한 원인이라는 반성이 일면서, 인간 중심 사유를 넘어서 새로운 사유의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루스 이리가레와 마이클 마더가 함께 쓴 <식물의 사유>는 인간중심적 형이상학이 하위에 두고 지배하려 들었던 자연, 그 가운데서도 동물보다 더 변방에 있던 식물을 화두로 삼는다.

책은 두 사람이 201311월부터 2014년 말까지 주고받은 편지를 엮었다. 페미니스트 철학자인 루스 이리가레가 식물성의 철학자마더에게 먼저 편지를 썼다. 주류학계에서 배제되어 고립된 상태였던 이리가레는 마더의 저서 <식물 생각하기>(Plant-Thinking, 2013)를 읽고 본문을 많이 읽기도 전에크게 공감하며 마음이 편안해졌고, 마더의 또 다른 저서 <철학자의 식물>(The Philosopher’s Plant, 2014)에 포함될 원고를 청탁받아 글을 쓰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풍요로운 공동작업의 가능성을 예감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지적 대화는 식물과 자신을 연결하는 개인적 경험을 털어놓은 1식물 세계에서 피난처 찾기에서 시작해 생명과 연대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한 16만물 사이에서 생명을 키우고 공유하기에 이르기까지, 16개 주제로 1년여간 이어졌다.

 

두 사람은 식물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이리가레는 벨기에와 프랑스 국경 지역에 있는 작은 탄광 마을에서 태어나 자연이 놀이터고 동식물이 장난감인 환경에서 자라났다. 학교교육이 시작되면서 자신의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그는 급기야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의사는 기숙학교를 탈출하라는 처방을 내렸다. 긴 통학 시간을 감수하면서 매일 저녁 에덴동산에 돌아올 수 있게 된 이리가레의 병은 씻은 듯이 낫는다.

식물 세계에서 피난처를 구하고 식물 세계에 도움을 청하는방식은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 박사학위 논문을 책(<검경>, 1974)으로 펴내면서 수련의 과정을 밟고 있던 이리가레는 라캉정신분석학교와 파리뱅센대학 교수직에서 쫓겨나는 아픔 속에서도 자연에서 힘을 얻었다. 책이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둘수록 주류학계는 그를 따돌렸고 동료들은 그를 외면했다. 고립된 상황에서 용기 내어 목소리를 내면 거센 비판과 반박이 쏟아졌다. 숨 막히는 상황에서 그를 숨 쉬게 한 것은 요가 호흡법이었다.

식물성의 철학을 펼치는 마이클 마더. 알렙 제공

 

이리가레와 마더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우주를 구성하는 4원소로 꼽은 물, , , 공기 가운데 특히 공기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서구사회가 불을 문명의 원천으로 가장 중시해온 것과 대비된다. 이리가레는 공기를 신체의 물질성이 영혼의 섬세함으로 옮겨가게 함으로써 대지와 하늘을 잇는 여성적-모성적 존재로 파악한다. 마더는 근대 서구인이 자신이 이룩한 기술적 성취를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느라 숨을 헐떡이고 성취가 뿜어내는 매연으로 질식 상태에 빠졌다고 비판한다. 이렇게 두 사람은 들숨과 날숨으로 이루어진, 잃어버린 생명의 리듬을 되찾기 위해 호흡에 주목한다. 인도의 요가 호흡법은 수행을 통해 우리 몸을 공기가 흐르는 관으로 만드는데, 이는 줄기와 잎사귀, 나아가 온몸으로 숨 쉬는 식물의 호흡과 유사하다.

 

마더와 식물의 인연은 유대인인 그가 13살까지 살았던 러시아에서 추방당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행 비행기를 타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자신이 떠난 뒤에도 집 주변 나무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뿌리내린 채 살아가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후 그는 캐나다에 이민을 갔고 미국에서 유학했으며 현재는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에서 살고 있다. 세계 곳곳을 떠돌며 살아온 그에게 뿌리내리기는 오랜 숙제이자 염원이었고, ‘뿌리 뽑힘은 충격과 상처였다.

마더와 이리가레가 인간 중심 형이상학을 넘어서는 방법은 하이데거를 통해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철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초기 그리스 철학의 피시스’(phusis, 자연)가 죽어 있는 고정된 물체가 아니라 스스로 자라고 변화하는 물질이라는 점을 파악했다. 마더는 피톤’(phyton, 식물)피시스의 축소판이라고 말한다. “식물은 자라고, 성장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곳에 고정되어 변치 않는 존재로 여겨지던 식물을 자라고, 변하고 생성하는 존재로 바꾸어 인식하는 것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할 기회를 제공한다.

 

두 사람은 인간이 식물로부터 더불어 성장하는 공동체적 존재 양식과 자세를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마더는 그동안 우리가 파괴된 세계로부터 우리 자신을 최대한 분리시켜 왔다고 지적하면서 함께한다면, 우리는 처음으로 식물의 존재를 경유하여 생명을 향해, 세계를 향해, 우리 자신을 향해, 다른 인간 존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리가레는 자연적 존재로서 인간이 하나가 아니라 이며, 이 둘은 하나로 환원되지 않고 다수로 열릴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페미니즘 철학자로서 그는, 동일자인 남성으로 환원되지 않고 자신의 성적 특수성을 키우고 표현하는 여성적 문화를 꿈꾼다.

 

<식물의 사유> 전반부는 이리가레의 편지, 후반부는 마더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두 철학자의 사유를 개별적으로 충실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책을 처음부터 차례로 읽으면 되고, 두 사람이 같은 주제를 두고 대화하는 과정을 따라가려면 같은 주제를 다룬 장을 번갈아 읽어도 좋겠다. /이미경 자유기고가 nanazaraza@gmail.com

 

식물성의 사유 식물성을 화두로 삼은 우리 미술 읽기 저자 박영택|마음산책 |2003.06

박영택-미술평론가, 경기대학교 교수.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 대학교에서 미술 교육을, 동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 꼬박 1년 동안 혹독한 병치레를 했다. 부모님은 자식의 몸 걱정에 '안정빵' 직장을 원하셨고. 선생이나 공무원이 되길 간절히 바라셨다. 물론 화가가 되는 것은 끔찍이 싫어하셨다. 그래서 찾은 절충이 미술교육과였으나 교사도 화가도 될 수 없는 교과과정에 절망하였다.

 

혼자 이런저런 책을 읽다가 막연히 그림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대학교 은사이신 조선미 선생님 덕분에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였다. 졸업후 금호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했다. 힘들고 외로웠지만 많은 작가와 작품을 볼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큐레이터와 미술평론가, 대학강사로 활동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내게는 여전히 이 모든 게 낯설기만 하다. 미술관을 그만두고 강사생활을 하다 지금은 경기대학교 미술학부에 적을 두고 있다.

 

무엇이 되고자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삶이 있는 한 인연이 되어 다가온 일들을 그저 해낼 뿐이다. 그림을 보고 그림과 관련된 책들을 읽고 강의를 하는 일은 힘들고, 때로는 열등감이 들기도 하지만 내게는 견딜만한 거의 유일한 일이다. 전시장에 가거나 가슴 졸이며 서점에 가서 새로운 책들을 고르거나 카페에 앉아 줄을 쳐가며 책을 읽거나, 예쁜 문구를 고를 때가 가장 즐겁다. 내가 만난 사람들, 내가 본 책들과 그림들을 고통스럽게 기억하면서 버티고 있다. 무엇보다도 좋은 강의,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만은 늘 가슴 뛰는 일로 남아있다.

 

목차

- 책머리에

1. 식물성을 생각한다

2. - 한 잎의 희망

3. - 하나의 우주가 열린다

4. 씨앗 - 밥이 되고, 생명이 되고

5. 사군자탈사군자 - 간결하고 담백한 삶의 향기

6. 나무 - 세상에 나무가 없다면?

7. - 정령과 만나는 시간

8. - 사람은 죽어 산에 묻힌다

9. - 최초의 화면을 찾아서

10. - 하늘에 닿고 싶다

11. 하늘 - 해와 달이 숨쉰다

12. 바다 - 떠나온 자는 바다를 바라본다

13. - 불명을 새긴다

14. 정물 - 새롭게 태어나는 일상

15. 풍경반풍경 - 자연의 표정을 읽는다

- 찾아보기

 

 

이성원은 실재 씨앗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나팔꽃 씨앗이나 박주가리 씨앗, 결명자나 사상초, 갈대, 나팔꽃 넝쿨 등으로 직접 자연을 그렸다. 아니 자연을 되살려놓았다. (...) 마치 농부가 씨를 파종하고 가꾸듯이 그렸다. 그것은 재배와 자연 본래의 상황성을 화면에 재생하는 일이기도 하다. (p.94 , '씨앗'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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